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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경향(총 2 건 검색)

워킹 맘이 이끄는 진화 김희정 여성가족부 장관
2015. 03. 25 11:42 화제
청와대가 보이는 큰 창 너머로 어스름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예정된 시각을 조금 넘겼지만 장관의 대화 속도와 에너지는 변함이 없었다. 만 두 살 인생에 벌써 어린이집을 세 번이나 바꾼 둘째 아이 이야기를 할 때, “아유, 짠하네요”라고 짐짓 신파 분위기를 유도했지만 장관은 의연했다. 현역 아이 엄마라 의지가 되고, 그래서 더욱 기대가 큰 김희정 여성가족부 장관에게 준비해간 질문보다 훨씬 묵직한 답을 들고 돌아왔다. 아무리 좋은 정책도 꿰어야 보배 장관 취임에 앞서 읽는 직무 가이드가 있다고 한다. 직무와 관련된 태도, 도덕성에 대한 내용과 함께 전직 장관들이 후임에게 주는 코멘트가 담겨 있단다. 처음 공직자가 된 장관들은 ‘축소된 사생활의 원칙’이라는 문구가 가장 인상적이라고 말한다고. 정확하게 말하면 사생활이 없다는 것! 지난 2014년 7월 여성가족부 수장이 된 김희정(44) 장관은 이미 10년 넘게 공직에 몸담으며 잔뼈가 굵었지만, 여기에 엄마들의 입장을 대변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력까지 곱절로 짊어졌다. 장관, 지역구 국회의원, 아내, 엄마…. 흔히 엄살처럼 사용하는 1인 다역이라는 수식이 이처럼 무겁게 와 닿는 인터뷰이도 참 드물었다. 주부들의 기대를 잘 알고 계시니 부담도 클 것이고, 계획도 더 촘촘히 짜셨을 거 같아요. 일단 정부에서 마련한 정책 중 국민이 잘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적재적소에 홍보가 되고 또 잘 이용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데, 좀 더 분발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예를 들면 임신하면 고운맘카드 받는 거 아시죠? 그것도 임신 계획 단계에서 아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임신하고 나서 관련 커뮤니티나 병원을 통해 알게 되는 게 대부분이죠. 그 밖에 아이돌봄서비스 제도, 여성새로일하기센터 등도 그렇고요. 보통 공직자 입장에서는 이런저런 정책을 만들었다는 것이 중요하다면, 국민의 관점에서는 이런저런 정책을 직접 이용해봤다는 게 중요하잖아요. 실제로 엄마의 입장에서 가장 추천할 만한 제도로는 무엇이 있을까요? 직장 맘 같은 경우 제일 민감한 부분이 아이를 대신 키워줄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의 문제거든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보내더라도 그곳의 운영 시간과 엄마의 출퇴근 시간이 맞지 않아서 문제가 생기죠. 그 공백을 보완하기 위해 만든 게 아이돌봄서비스 제도예요. 저도 이용해봤는데, 혹시 아이돌봄서비스 제도 아세요? 그 제도가 굉장히 인기가 많아요. 보통 엄마들이 아이를 돌봐줄 선생님은 어느 사이트에서 구해야 하나, 면접 볼 때는 무엇을 확인해야 하나, 이런 점들로 고민하잖아요. 그런데 그런 걸 국가에서 다 해결해주거든요. 믿을 수 있고, 이용료도 저렴하고, 또 엄마가 직접 선생님과 임금 협상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어요. 직접 이용해보니 어떠셨어요? 중간에 익명으로 서비스에 대한 만족도 조사도 하지요. 개인적으로 쓰는 선생님이 안 맞으면 교체하는 과정이 껄끄러울 수 있잖아요? 여기서는 그럴 경우 엄마가 직접 그 선생님과 얘기하지 않아도 돼요. 국가가 자연스럽게 배정 선생님을 바꿔주니까요. 원래는 아이돌봄서비스 제도의 종일제는 아이가 12개월 때까지만 이용 가능했어요. 그런데 돌 지나자마자 바로 아이를 기관에 보내는 엄마들은 드물거든요. 그래서 24개월까지로 확대했어요. 그다음으로는 아이돌봄서비스 제도에도 일반 기관처럼 대기 인원을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을 올해부터 도입했어요. 그런 식으로 제가 직접 이용해보고 보완점을 찾았죠. 더 개선하고 싶은 점도 있으신가요? 현재 수요와 공급의 차이가 좀 있습니다. 이용하려는 사람들과 선생님의 절대 수치는 굉장히 비슷한데 문제는 대부분 이용하고자 하는 시간대가 겹쳐서요. 대부분 아침 등원이나 등교 시간, 부모들의 야근 시간대에 이용하고자 하니까 집집마다 필요한 시간이 같은 거예요. 그 시간대에 일할 수 있는 선생님을 많이 발굴해야겠죠. 어느 정도 아이를 다 키우신 분들 중에서 일자리를 찾고자 하는 분들에게도 아이 돌보미 선생님에 대한 반응이 좋아요. 공식적으로 90시간 교육을 받고 또 선생님으로 예우받으면서 하는 일이라 어느 지역에서 한 분이 선생님이 되면, 뒤따라오시는 분들도 많더라고요. 이번에 새로 시행되는 양육비이행관리원 제도도 ‘국가가 알아서 해결해준다’라는 점이 와 닿았어요. 며칠 전에 경북 예천에서 80대 할머니가 전 며느리한테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잖아요. 정말 끔찍한 일이에요. 그런데 그 며느리도 알고 보니까 여섯 자녀를 혼자 기르고 있었어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양육비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이 없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마련한 정책이에요. 이 제도는 절대 이혼을 하거나 미혼인 엄마, 아빠를 봐주기 위해 만든 게 아니에요. 이혼이나 비혼을 부추기자는 게 아니라 어떤 환경에서 태어났든 간에 그 아이에 대해서는 국가가 최선을 다해 돌봐주자는 거예요. 아이를 맡은 한부모마저 도저히 힘들어서 아이를 포기하지 않도록. 이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나요? 최근 들어 한부모 가정의 비율이 9.7%대에 이르고 있어요. 그런데 이혼·미혼 한부모 가정 중 양육비를 한 번이라도 받아본 비율이 17%에 불과해요. 그 통계 수치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우리나라의 경제적인 수준에 비해 너무 많은 아이들이 버림받고 있어요. 그중 경제적인 이유도 분명 있거든요. 지금 단계에서는 양육비를 주지 않는 부모를 찾아서 그걸 주도록 하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들이겠지만, 이 제도가 정착되면 양육비를 이행하지 않는 사례를 방지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어요. 비록 부부는 갈라서더라도 아이만큼은 부모의 입장에서 공동 책임져야 한다는 걸 확고하게 하는 효과도 함께요. 며칠 전 애독자 엽서에서 이혼 후 남편이 양육비를 주지 않아 힘들다는 사연을 읽었어요. 오죽 답답하면 독자 고민란에 적어 보냈을까 싶었는데, 이 제도를 그분께 꼭 알려드려야겠어요. 3월 25일 출범 이후 신청을 받아 순서대로 처리하겠지만, 그중에서도 형편이 더 어려우신 분들을 먼저 배려해드리는 방법을 도모할 거예요. 분명 시간이 걸리는 일이거든요. 개개인은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죠. 그런 일을 이제 국가가 나서서 하는 거죠. 올해 소프트랜딩해서 내년에 더 많은 가정을 구제할 수 있는 예산과 인력 확보에 박차를 가할 예정입니다. 현장의 목소리를 담아 김 장관은 인터뷰 중 “○○ 제도는 알고 계세요?”라고 몇 차례 물었다. 안다고 대답하면 “인터뷰 준비하면서 알고 계신 거예요?”라고 확인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뜨끔했는데, 듣고 있자니 관할 수장의 일상적인 설문 조사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인터뷰는 질문 공세와 답변이라기보다는 함께 최선의 방향을 모색해가기 위한 어떠한 과정처럼 느껴졌다. 워킹 맘이 현장에서 느끼는 고충을 누구보다 잘 아시잖아요? 그렇죠! 아이 키우는 사람들은 다 그렇지 않나요? 보통 아이를 낳고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할 때 1차 고비가 오지요. 힘들게 기저귀랑 이유식 뗄 무렵을 보내고 그 이후 정착했다가,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할 때 2차 고비가 오고, 고학년이 되면서 또 여러 단계의 고비가 찾아오지요. 그런 순간에 우리가 도울 수 있는 시스템이 무엇일까, 고민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육아휴직도 제도가 안 돼 있다기보다는 회사 여건상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이를테면 동료들과의 관계 때문에 못 쓰기도 하거든요. 동료들에게 미안해서요? 내가 빠져버리면 그 일이 고스란히 남기 때문에 그렇죠. 두 번째가 어려워요. 앞서 한 명이 육아휴직 중이라 두 번째 휴직자로 자리를 비워야 하거나, 둘째를 임신했을 경우 육아휴직을 사용하기가 더 어려운 거예요. 이런 구조에서 탈출하기 위한 방법이 뭐냐하면, 육아휴직은 여자만 쓸 수 있는 제도가 아니라 남자도 쓸 수 있는 제도라는 걸 알리는 거예요. 즉 남녀 모두 쓸 수 있는 제도가 됐을 때 오히려 여자가 더 많이 쓸 수 있다는 거죠. 아빠의 육아휴직을 늘리기 위해 ‘아빠의 달’ 제도를 만들었어요. 또 임신부가 동료에게 미안한 마음을 덜고 쉴 수 있게 하기 위해 대체 인력 지원금을 확대했어요. 기업에서 대체 인력 차원을 넘어 아예 한 명을 더 고용한다고 생각하라는 의미로 지원금을 늘린 거예요.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는 여건이 안 되는 워킹 맘을 위해서는 12개월까지 적용되던 육아기단축근로제 기간을 2배(24개월)로 늘렸습니다. 예를 들어 회사 사정상 육아휴직을 3개월만 썼다면, 나머지 못 쓴 9개월의 2배가 되는 18개월간 단축 근무를 쓸 수 있어요. 또 상황에 따라 최대 3회까지 끊어서 사용할 수 있도록 했고요. 굉장히 많은 것이 바뀐 느낌인데요? 큰 변형이 있다기보다는 기존의 제도를 현장 상황에 맞게 진화시키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어요. 기업의 인사 담당자뿐만 아니라 개개인도 몰라서 못 쓰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래서 임신부가 고운맘카드를 만들면서 동의하면 몸담고 있는 회사에 임신과 출산 관련 제도 및 처우에 대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바꿨어요. 든든하네요. 일단 길목을 잡아야 된다는 의미에서 보건복지부와 고용노동부 장관들께 제가 제안했는데 두 분 모두 동감해주셔서 가능한 일이었어요. 일하는 엄마들이 한결 마음이 놓이겠어요. 아, 올해 워킹맘워킹대디지원센터 시범사업도 시작해요. 전국에 건강가정지원센터가 있는데 주로 주중 주간 시간대에 운영하다 보니 일하는 분들의 경우 이용하는 데 불편했어요. 노무사나 법무사에게 도움을 청해야 하는데 여건이 되지 않는 분들을 위해 워킹맘워킹대디지원센터는 직접 찾아가는 상담을 할 거예요. 또 야간이나 주말에는 엄마, 아빠를 위한 육아나 가족 프로그램도 운영할 예정이고요. 올해 새로 시작하는 게 무척 많아요. 양육비이행관리원, 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 등등. 그러다 보니 엄청난 예산 압박이 있죠(웃음). 제가 작년에 장관으로 왔을 때는 이미 예산 기본 세팅이 끝난 상황이었거든요. 올해 시작을 잘해서 내년부터 키워야죠. 올해가 본격적인 시작인 듯하네요. 여성가족부에 오신 뒤로 생각이나 시각이 많이 바뀌었을 것 같은데요. 일은 실제로 우리 직원들이 상당히 많이 하고 있어요. 전달이 제 몫이라고 생각하죠. 그 점에서 제가 지역구 국회의원이라는 것이 도움이 되는 거 같아요. 평소 현장의 목소리를 많이 들었기 때문에, 우리 직원들이 잘 만들어놓은 구슬을 어떻게 꿰느냐의 역할을 맡을 수 있었죠. 건강가정지원센터로 운영되던 것을 워킹맘워킹대디센터로 발전시켜서 새로운 사업을 할 수 있게 한 것처럼요. 국민 입장에서는 참 좋은데, 장관님 가족 입장에서는 더 바빠진 아내와 엄마가 마냥 반갑지만은 않겠어요. 제 개인이요? 네, 그렇죠. 그런데 남편은 저보다 더 일찍 출근하고 더 늦게 퇴근해요. 우리 연령대 자체가 어떻게 보면 회사에서 밑천을 다 뽑아먹는 시기잖아요(웃음). 맞아요! 지난주 유엔여성지위위원회에 가서 이런 얘기를 나눴어요. 한국은 제도는 굉장히 많이 발달돼 있는데 잘 활용이 안 되는 근본적인 이유가 야근 문화 때문이라고요. 야근으로 인해 이런 각종 제도나 각종 서비스가 무용지물이고, 일과 가정 양립도 안 되는 거예요. 이게 풀리지 않고는 절대 다른 문제도 풀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그런 문화를 바꾸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수요일을 (정시 퇴근해서 가족과 함께 보내자는) 가족 사랑의 날로 정했는데, 수요일 하루라도 하자는 게 사실은 얼마나…. 슬픈 일이죠. 그렇죠. 네덜란드의 헬데르그로엔이라는 디자인 회사는 오후 6시가 되면 책상이 사라져요. 리프트가 달린 책상을 아예 천장으로 올려서 더 이상 일을 못하게 하는 거예요. 우리보다 복지가 잘돼 있다는 유럽에서도 이런 방책을 쓸 정도인 거죠. 우리도 할 수 있을까요? 그럼요! 여성 대통령이 나오는 것도 상상을 못했는데 이뤄졌잖아요. 남자가 육아휴직을 쓴다는 것도 과거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는걸요. 이런 것일수록 흐름을 타는 게 중요해요. 단번에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절대로 중단하지 않고 계속돼야 해요. 터널의 끝은 있다 2004년 17대 국회의원 선거에 나섰을 때, 당시 김 장관은 초·중·고를 나오고 이사 한 번 없이 내내 한 동네에 살았던 이웃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도 어떻게 커나갈지 여러분의 눈으로 보게 될 것이라고, 정치란 아주 특별한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을 함께 공유해온 평범한 사람이 하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이다. 그렇게 최연소 국회의원이 됐고, 현직 의원 최초로 국회의사당 의원동산에서 결혼식을 올린 뒤 두 아이를 낳았다. 한결 여유로운 표정의 김 장관에게서 ‘미스 포청천’이라는 별명까지 얻을 정도로 국정감사장에서 맹렬한 질문 공세를 퍼붓던 의원 시절의 기개를 다시 엿볼 수 있었던 대목은 바로 최근 논란이 됐던 어린이집의 아동학대 문제를 언급할 때였다. 주변에서 워킹 맘과 전업 맘의 갈등을 심심찮게 접해요. 전 그게 굉장히…. 이번에도 9시 등교제를 둘러싸고 일하는 엄마들과 일하지 않는 엄마들의 갈등 관계로 몰아가던데, 오히려 교육부와 고용노동부가 함께 나서야 하는 문제인 거죠. 그 지역의 교육청에서 초등학교 9시 등교제를 결정하면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초등학생 아이를 둔 부모는 30분 늦게 출근할 수 있도록 제도가 완벽하게 세트로 같이 가야지, 아이들만 9시에 등교하게 하는 것은 반쪽짜리거든요. 이걸 엄마끼리의 싸움으로 몰아서는 절대 안 될 일이죠. 말씀을 듣고 보니 시야의 폭이 넓어지는 느낌이 드네요. 전업 맘도 언제든지 재취업 전선에 들어올 수 있고, 워킹 맘도 언제든지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해 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두 집단을 갈등 관계로 몰아가는 프레임에 절대 갇혀서는 안 돼요. 혹 회의석상에서도 그런 비슷한 구도로 몰아가면 제가 강하게 얘기를 합니다. 당장 이번에 어린이집 아동학대 문제가 터져 보건복지부가 원 스트라이크 아웃이라고 해서 문제 어린이집을 폐쇄하겠다고 발표했는데, 그러려면 기존에 다니고 있던 아이들은 어떻게 수용할 건지를 반드시 같이 언급했어야 해요. 어린이집이 문을 닫는 순간 아이들은 다시 새로운 곳에서 적응 기간을 거쳐야 하는데, 그 아이의 엄마를 위해 국가에서 유연근무를 보장한다거나 다른 국공립 어린이집에 우선 배치한다거나 하는 뒷받침이 없이 무조건 문을 닫는다는 발표만 가지고서는 절대 안심되지 않는다는 얘기를 제가 회의에서 정말 침을 튀며 했어요(웃음). 엄마 입장에서도 장관님 말씀에 수긍할 것 같아요.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까지 꿰뚫고 계시니까요. 그런 얘기를 많이 들어요. 저희 집만 해도 제 근무지에 따라 아이들이 직장 어린이집을 세 번 옮겼어요. 둘째 아이는 아직 세 돌도 안 됐는데 어린이집을 세 번 옮긴 거예요. 그것도 매번 바로바로 자리가 난 것이 아니라 공백기가 있었거든요. 그게 얼마나 힘든 줄 아니까요(웃음). 아이 키우면서 어떤 점이 가장 힘드세요? 예측 불허의 상황이 발생하는 거요. 예를 들어 제가 출근 준비를 할 때는 일어나는 시간과 밥 먹고 세수하고 옷 입는 데 걸리는 시간이 대략 정해져 있잖아요. 그런데 애들은 그게 아니니까요. 외출 준비 다 끝내놨는데, 갑자기 옷에 똥을 쌀 수도 있는 거고, 갑자기 뭘 쏟아서 자기 옷뿐만 아니라 제 옷까지 다 버리게 만드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는 거고요. 뿐만 아니라 어린이집에 전염병이 돌아서 등원하지 못할 수도 있고, 또 우리 애가 고열에 시달릴 수도 있는 거고요.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변수가 있으니 만약의 경우에 대한 정책을 늘 고민하죠. 일과 육아 사이에 갈등을 심하게 느낀 적은 없으세요? 특별히 어떤 시기라기보다는, 일하는 엄마들은 늘 그런 생각을 하지 않나요? 저 같은 경우는 장기 출장 갔다가 돌아오면 아이가 확실히 정서적으로 불안정해요. 짜증과 잠투정도 늘고요. 그런데 아이와 함께할 시간이 아주 많이 부족해요. 주말에는 지역구에 가거든요. 지방 행사도 많고요. 그때는 아이들에게 그냥 “엄마 출장 간다”라고 얘기하는데, 어린이집 선생님이 그런 얘기를 해주시더라고요. ‘엄마 아빠 놀이’라는 걸 하는데, 두 돌 지난 둘째가 가방 들고 휴대전화로 전화하는 척하면서 “얘들아, 나 출장 갔다 올게”라고 했다는 거예요(웃음). 다른 아이들 중에는 그런 단어를 쓰는 아이가 아무도 없었대요. 담담하게 말씀은 하시지만, 짠하네요. 아, 네. 「레이디경향」을 읽는 분들도 대부분 연령대가 비슷하실 테고, 어떻게 보면 정부가 만날 무언가를 해도 현장에서는 바뀌는 것이 없다는 불만이 있으실 수 있는데, 결국은 그 회사에서 누군가가 용감하게 먼저 (워킹 맘을 위한) 제도를 쓰겠다고 나서지 않으면 절대로 바뀌지 않거든요. 안 쓰는 게 관행처럼 굳어지면 제도를 만드는 저희에게도 한계가 생기고요. 우리 중에 반드시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사람이 나와야 한다는 말씀이시죠? 네, 그랬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특히 아빠들이요. 제가 기업 CEO를 만나거나 대통령 주재 장관 회의 때 한 얘기가 있어요. 조직에서 성적이 좋거나 우수한 인력, 특히 남성에게 육아휴직을 쓰도록 적극적으로 권장하자고요. 또 휴직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도 주요 보직을 줘서 성공하는 케이스를 만들어주자고요. 육아휴직은 승진을 포기하거나 업무 의욕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쓴다는 편견부터 없애야 해요. 그 또한 능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말이죠? HR팀(인사팀)에 근무하는 한 남자 팀장으로부터 한 달간 육아휴직을 쓰고 나서 그 전에 몰랐던 것들을 많이 알게 됐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퇴근 시간 땡 하면 들어가고 출근시간에 허덕이면서 채 정리되지 못한 모습으로 출근하는 여직원에 대한 반감이 있었대요. 그런데 직접 아이를 돌보면서 예측하지 못한 상황을 겪다 보니 그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해요. 그래서 저는 남자분들도 그 길이가 길건 짧건 한 번은 전업 아빠가 돼볼 수 있는 기회에 동참했으면 해요. 그래야 이해의 폭도 넓어지니까. 장관님도 조직의 구성원으로서, 워킹 맘으로서 자기 목소리를 낸 적이 있으세요? 제가 청와대 대변인으로 갔을 때, 처음 한 일이 직장어린이집을 신청하는 거였어요. 워낙 대기 인원이 많으니까요. 그런데 어린이집은 오전 7시에 문을 여는데, 아침 첫 회의는 그보다 훨씬 이른 시간에 하는 거예요. 더 의외였던 건, 아무도 거기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저와 같은 회의에 참여하는 직급에서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는 사람이 없었던 거죠. 그런데 문제는 뭐냐면, 고위급 회의가 잡히면 그걸 준비하기 위해 실무진들도 그 시간에 같이 나온다는 거거든요. 그래서 제가 어린이집이 오전 7시에 문을 여니 회의도 7시에 하자고 제안을 했어요. 그 이후로는 6시 50분쯤 어린이집에 선생님이 오시면 아이에게 아침으로 먹을 우유와 떡을 손에 쥐어서 들여보내고 회의에 참석할 수 있었죠. 누군가는 적극적이어야 한다는 걸 제대로 보여주셨네요. 사실 동료들에게 ‘쟤 아줌마였구나’ 이런 느낌을 풍기고 싶어 하지 않는 마음이 있는 거거든요. 마치 그런 자리에서 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걸 얘기하면 프로페셔널하지 않은 느낌을 줄까 봐 얘기를 못하는 건데, 시스템 자체가 잘못됐다고 지적하는 것은 저뿐만 아니라 다음 사람을 위해서도 도움이 되는 일이에요. 지금 장관님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할 독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일단 일하고 계신 분들께는 위기의 순간이 왔을 때, 그 순간은 지나가게 마련이므로 동원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인원과 제도를 이용해서라도 절대로 그만두지 말고 극복하자는 얘기를 하고 싶고요. 그 과정에 저희가 만든 제도가 어떻게 해서든지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워킹맘워킹대디지원센터, 아이돌봄서비스, 청소년방과후아카데미와 같은 다양한 제도가 있으니까 어떻게 해서든지 활용하셨으면 좋겠고, 저희가 100% 커버는 못해드리겠지만 고충을 함께 나누면서 갔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터널은 반드시 끝이 있거든요. 그리고 전업 맘으로 그 자체에서 보람을 찾으시는 분들은 그 자체로 굉장히 좋아요. 혹시 재취업을 하고 싶다면 여성새로일하기센터를 통한다면 좋은 결과를 얻으실 수 있을 거예요. ※양육비이행관리원 제도 미성년 자녀의 양육비를 받지 못하고 있는 이혼·미혼 한부모가 양육비이행관리원에 지원 신청을 하면 비양육부·모로부터 양육비를 받을 수 있도록 상담, 소송, 채권추심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제도. 연간 2만3,000여 한부모 가정에서 이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글 / 장회정 기자 ■사진 / 박재찬>
조윤선 여성가족부장관의 함께하는 행복 ‘같이 가요’
2013. 10. 31 17:14 화제
행복은 개인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사회 공동체 모두의 것이기도 하다. 나 하나만 괜찮다고 해서 모두 행복해지는 건 아니다. 주변이 고통받으면 나 또한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행복을 지향하는 개인의 노력만큼이나 국가적 정책과 사회적 배려가 중요하다. 특히나 사회적 약자인 여성과 아이들에 대한 정책과 배려는 사회적 행복의 중요한 요건이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모두의 행복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을까? 그 해답을 듣기 위해 조윤선 여성가족부 장관을 만났다. ‘여성가족부라’…, 입에 착 감기지 않는 이름을 갖고 있는 정부 부처가 한둘은 아닐 테지만 여성가족부라는 명칭은 어색하게 입가에 맴돌았다. 여성과 가족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지만, 왠지 남성이 소외된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세간에 도는 여성가족부에 대한 피해의식도 여기서부터 시작된 것이리라. 그런데 청사에 들어서자 현판에 적힌 영어 명칭이 눈에 띄었다. ‘Ministry of Gender Equality&Family’. 그대로 번역하자면, ‘양성평등가족부’가 된다. 느낌이 확 바뀌었다.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여성 전사들이 부족을 지배한다는 아마조네스에 들어가는 듯한 비장함에서, 정부의 행복 정책을 좌지우지하는 여성 장관을 인터뷰하러 간 평등한 남성 시민의 설렘으로 말이다. 여성가족부, 전 부처의 코디네이터 “여성가족부가 중앙 부처로 자리 잡은 건 2001년이에요. 정무 제2장관실에서 시작돼 여성위원회 대통령 직속위원회로 있다가 여성부가 생겼어요. 처음에는 작은 부서였는데 보육 업무, 가족 업무, 청소년 업무가 들어왔고 이후 여성, 가족, 청소년 이 3가지 업무 부서로 짜여지게 됐어요.” ‘양성평등가족부’가 시대에 맞고 자연스러운 명칭이라는 생각에 여성가족부의 유래를 물었다. 점차 진화하는 타 부처들과 마찬가지로 아마 시간이 흐르면서 업무도 다양해지고 명칭도 바뀐 것 같았다. 조윤선 장관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러니까 독신 남성 빼고는 모두 저희 정책 대상인데요. 1인 가구까지 감안하면 독신 남성도 저희 소관일 수 있지요. 현재 일어나고 있는 모든 사회문제인 범죄, 폭력, 학교폭력, 가출, 청소년 문제 이런 것들이 결국 가족에서 비롯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사람을 가장 강하게 만들 수도, 가장 약하게 만들 수도 있는 것이 가정이니, 이 가정을 튼튼하게 만들어야겠다는 것이 제 신념이에요.” 가족은 국가 안보의 시작이자 사회적인 안정을 떠받드는 힘의 기본 단위라는 것이 장관의 생각이라고. 그리고 시대에 따라 여성가족부의 역할이 바뀌고 있다고 했다. “여권신장, 예를 들면 호주제를 폐지하고 사회적인 이데올로기나 양성의 불평등을 야기하는 법과 제도를 정비하는 게 이제까지 여성부의 역할이었다면 앞으로는 어떻게 하면 실질적으로 양성이 조화로운 사회를 만들고 그런 사회의 토대가 되는 가족을 건강하고 강하게 만들 수 있을지가 주안점이에요. 전 부처의 코디네이터가 되라는 것이 대통령의 주문이기도 하고 여성가족부의 원래 입장이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하는 일이 굉장히 많지요.” 여성가족부의 정책 과제는 다양했다. 성폭력·가정폭력 피해자, 결손가정 등 특수한 상황의 취약계층을 지원하고 자활을 돕는 ‘특수복지’, 부모교육, 부부교육, 성교육, 성희롱·성폭력 예방교육 등 학교를 떠난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평생교육’, 끝으로 여성들의 ‘일과 가정 양립’, 동시에 남성들의 삶의 질을 높여줄 수 있는 ‘일 가정 양립 고용정책’이 그 지향점이라고 했다.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외면해서 차별을 낳지 말고, 학생 신분의 청소년과 가정을 탈출한 아이들과의 차이를 외면해서 차별을 낳지 말아야지요. 정말 사정상 어쩔 수 없어서 집을 나온 아이들도 있거든요. 요즘은 이들을 일컬어 가출 청소년이 아니라 ‘탈가정난민’이라고 하는 분들도 많아요. 또 결손이 없는 가정과 다문화, 미혼모, 한부모, 조손가정을 차별하지 말고 잘 아울러서 가자는 의미를 담아서, 저희의 슬로건이 ‘같이 가요’예요.” 조 장관은 ‘같이 가요’라는 예쁜 엠블럼이 그려진 명함을 꺼내 보여주었다. 우리 사회는 지나치게 경쟁적이다 보니 홀로 살아남는 것에 익숙하다. 그러나 불행히도 홀로 남게 된 사람에게 행복은 있을 수 없다. 같이 가야만 행복하다. 남녀 사이도 마찬가지다. 이런 양성평등과 행복에 대한 논의는 우리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전 세계적인 변화라고 했다. 기를 쓰며 살았던 ‘여 변호사’ 시절 지난 3월 취임한 이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조 장관의 개인적인 행복이 궁금해졌다. 그야말로 일과 가정을 양립해야 하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없는 공인에게 행복은 어떻게 다가설까? “행복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전 두 가지가 떠올라요. 스스로 참 만족한다고 느낄 때 그리고 참 자랑스럽다고 생각할 때가 행복해요. 행복했던 때는 언제나 그 둘 중 하나였어요. ‘이거면 됐다’라는 생각이 들 때 말이에요. 재산 중에도 눈에 보이는 재산이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재산이 있잖아요. 그것과 마찬가지로 행복도 내가 느끼면 있는 거고, 내가 못 느끼면 없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행복을 조금씩 느끼면 그게 저축이 되듯이 쌓이는 거고 내가 행복을 계속 느끼지 못하면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게 되는 거죠.” 행복은 스스로 느끼면 든든한 재산이 되지만, 그렇지 못하면 스쳐 지나가버린다. 그렇다면 장관을 행복하게 만들었던 만족한다고 느낄 때는 언제였을까? “저도 시험을 준비하면서 많이 떨어져도 봤고, 치열하게 일하는 변호사 생활도 오래 했는데요. 변호사 생활하면서 잠깐 행복하지 않은 때가 있었어요. 그 원인이 뭘까 생각해보니 모든 불행의 시작은 남과 비교하는 데에서 오더라고요.” 법조계에 발을 들여놓고 나니 똑똑한 사람들이 많더란다. 더구나 그들에게는 힘이 돼줄 선배나 동기들도 많았다. 법대 출신도 아니고 남자 고등학교 출신도 아닌 그녀는 동문이나 동기의 지원을 기대할 수 없었다. 쟁쟁한 동료들 속에서 조 장관은 주눅이 들었다고 했다. “제가 (김앤장 법률사무소의) 첫 번째 여자 변호사였거든요. 여자 변호사 뽑았더니 애 키우느라고 일에 집중하지 못한다는 소리도 들으면 안 되겠고, 여자 변호사 뽑았더니 지적인 면이 떨어진다는 소리도 들으면 안 되겠더라고요. 저로 인해서 다음부터 여자 변호사 뽑으면 안 되겠다는 얘기가 나오면 큰 일이니까요. 그렇다 보니 얼마나 기를 쓰고 했겠어요? 그런데 그 누구하고 비교를 해도 제가 조금씩 떨어지는 거예요(웃음).” 지금이야 웃으면서 이야기를 하지만, 당시에 느꼈던 고충은 어떠했을지 어렵지 않게 짐작이 갔다. 그렇게 힘든 2, 3년을 보낸 뒤 드디어 기회가 왔다. 바로 위의 선배가 유학을 가는 바람에 그가 하던 일을 전담하게 된 것이다. 장관이 찾은 해법은 스스로에게 ‘잘한다, 잘한다’ 주문을 걸 듯 세뇌를 하는 것이었다. 노력의 결실은 주변의 인정으로부터 시작됐다. 차차 자기 확신도 생기고, 다시 행복을 찾을 수 있었다. 불행을 극복하는 그녀의 노하우는 인내와 노력이었다. 전형적이지만 시대를 초월한 불행 탈출법이다. “그때 느꼈어요. 내 안에서 뭔가 단단히 준비가 됐다는 생각이 들 만큼 꽉 찬 그런 느낌을요. 뭔가 준비가 되지 않았을 때 떠밀려서 내 몸보다 훨씬 큰 옷을 입고 나서야 하는 상황에서 느끼는 부담감이 있잖아요. 반대로 준비가 됐다는 생각이 들 때면 무엇을 해도 안심하고 즐겁게 할 수 있었어요.” 지금 필요한 것, 행복교육 행복의 또 다른 퍼즐인 자랑스러운 순간은 의도했던 것보다 더 나은 성과를 거두거나, 남을 위해 베풀고 희생한다는 생각이 들 때라고 했다. 그렇지만 만족과 자랑 속에는 경쟁의 덫이 숨어 있다. 비교하게 되고 욕심을 갖게 돼 자칫 불행해질 수 있다. “학창 시절에는 똑같은 공부를 하고 똑같은 문제를 푸니까 비교가 되잖아요. 그런데 로펌에 들어가보니 그 어떤 선배도, 그 어떤 동료도 같은 과제를 두고 저와 비교할 수가 없는 거예요. 결국은 사회에서 느끼는 만족감이란 누군가 저에게 일을 맡겼을 때 ‘얘한테 일을 시키니까 편하구나, 잘되는구나’ 하는 느낌을 받도록 하는 것이었거든요. 일렬로 뛰어가는 게임이 아니니까 나와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느낌을 주느냐가 큰 부분을 차지하더군요. 그런 면에서 과정 역시 중요하고요.” 경쟁은 행복에 분명 방해가 되는 요소라며, 조 장관은 한 백인 여의사가 쓴 책(「무탄트 메시지」(말로 모건 저))에서 읽었다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원주민 부족과 함께 대륙 횡단을 하던 한 백인 여의사가 “오늘이 내 생일이다”라며 축하를 해달라고 했단다. 그러자 부족민들은 매년 돌아오는 날, 한 살씩 더 먹는 게 무슨 축하할 일이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우리 부족은 각자의 역할을 분담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어느 날 음식을 하는 사람의 솜씨가 탁월해졌다면 그날이 그 사람이 모두의 축하를 받는 날이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정말 비교해야 할 대상은 남이 아니라고 했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비교해야 한다는 것. 경쟁은 불행의 씨앗이지만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비교하면 행복해질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지난달 만났던 채정호 박사가 들려준 옵티미스트의 핵심 가치 ABC 중 베터 앤드 베터(Better&Better, 발전하고 나아지는 것)가 떠오르는 대목이었다. 그렇다면 장관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국민의 행복에 대한 그림은 어떤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행복이라는 게 결국은 개인이 충만함을 느끼는 순간들이 모이는 거잖아요. 그런데 가만히 보면 우리가 무엇을 즐기고 거기서 행복을 느끼는 교육을 받거나 연습을 해볼 기회가 없었던 것 같아요. 학교에서나 사회생활을 하면서 배운 적도 없고요. 무엇을 할 때 가장 기분이 좋았는지를 생각하지 않고 산다는 거죠. 그래서 충분한 시간이 주어져도 행복해지지 못하는 것이지요.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행복을 경험해볼 수 있는 공부, 즉 행복교육인 거 같아요.” 여성가족부의 주요 업무 중 하나가 건강가정지원센터에서 하는 부부교육, 부모교육이라고 했다. 아울러 국방부와 양해각서를 체결해서 군대 내에서도 이 같은 교육이 이루어지도록 했다. 학교에서 하지 못했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얘기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또 새일센터(새로 일하기 센터)를 통해 경력이 단절된 여성의 사회 복귀를 돕는 일도 하고 있다. 조 장관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여성가족부가 하는 일은 매우 많고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은 물론이고 남성과 가족 모두에게 필요한 정책과 업무들을 널리 알리기 위해 최근에 웹 사이트(www.mogef.go.kr)를 개편했다는 얘기도 잊지 않았다. 대물림되는 행복, 그래서 가족이 우선 “전형적인 가장은 직장에 올인하고 부인은 가정과 아이들에게 올인해서 두 사람이 평행선을 이루다 보니 가족 안에서 공통점을 찾기가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었잖아요. 그래서 가계의 책임을 부인도 좀 나누어 지고, 대신에 남편도 자신의 삶을 영위하고 아이들을 키우는 데서 나올 수 있는 기쁨을 같이 느낄 수 있게 해서 가족 구성원 모두가 교집합이 생기게 하자는 것이 저희가 하는 일, 가정 양립과 가족친화경영문화 확산의 핵심이에요.” 세상이 바뀌면서 여성의 사회 참여는 꾸준히 늘어가고 있다. 그렇지만 남성이 가계를 책임지던 시절과 비교해서 사회적 환경과 인식이 별반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여성들은 더 힘들다. 가계의 일부를 책임지면서도 전통적으로 담당하던 가사까지 다 해내야 하니 말이다. 그 결과는 여성 자신뿐만 아니라 남성 그리고 가족 전체에 불행이 된다. 우리 모두가 행복해지려면 남편과 아빠가 바뀌어야 한다. 두 딸을 키우며 지금까지 달려온 조 장관은 워킹 맘의 롤모델로 불리기도 했다. “로펌에 근무할 당시 여자 후배들과 함께 김앤장의 김영무 박사님, 장수길 변호사님을 모시고 조언을 듣는 자리를 마련했어요. 그때 ‘동료들한테 느끼는 경쟁심에 부대끼면서, 아이들한테도 잘해야겠다는 생각에 지나치게 기를 쓰지 마라. 그러지 않아도 된다. 그건 본인한테 무척 축이 나는 결과를 가져온다’라고 하셨어요. 저는 그 말씀에 힐링이 되는 거 같더라고요.” 욕심은 나쁘고 좋고의 문제가 아니다. 일에서도, 육아에서도 만점을 받으려는 욕심을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현명하지 않은 비현실적인 욕심은 불행을 자초하게 마련이다. 조 장관은 100점 만점이라면, 육아와 일에서 모두 만점을 맞으려 하지 말고, 70점 정도만 하라고 주문했다. 아이들한테 신경 쓰면 회사가 울고, 회사에 신경 쓰면 아이들이 운다고 하지 않는가. 둘 다 완벽하게 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결코 자괴감이나 미안함을 갖지 말 것이며, 정해놓은 본인의 한계를 잘 지켜주길 바랐다. 끝으로 조 장관은 요즘 무엇으로 행복할까를 물었다. “요즘요? 일에서는 흩어져 있던 것들을 일맥상통하게 꿰어서 방향성 있게 나아가도록 정리가 될 때, 또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가는 게 맞다’라고 동의해줄 때 굉장히 기분이 좋아요. 제가 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구나, 하는 확신이 들기도 하니까요. 그리고 현장에 나가서 헌신적으로 일하는 분들을 보는 것도 행복해요. 정말 그분들이야말로 우리나라의 가장 위대한 멘토들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행복에 있어 성취는 양날의 검과 같다. 경쟁을 통해 단순히 돈이나 권력을 획득하기 위한 것이라면 사실 행복에 별 도움이 안 되는 것은 물론이고, 불행의 전주곡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성취의 방향이 공적인 의미와 목적에 맞춰져 있다면 중요한 행복의 조건이 된다. 조 장관은 그런 면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리고 또 하나, 조 장관에게 큰 행복을 주는 것은 자녀들과의 관계였다. “집에서는 아이들과 대화할 때가 제일 행복하지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작은아이에게는 제가 가끔 마치 기성 화가의 그림을 대하듯 평을 해주는데 그걸 참 반기더라고요. ‘엄마, 그게 바로 내가 얘기하고 싶었지만 표현하지 못했던 거야’라면서요. 대학에서 동아리 면접을 앞두고 있는 큰아이와는 예상 질문에 대한 얘기를 주고받았는데 그 대화에서 나온 대로 면접에서 답을 했더니 ‘너는 그런 자신감이 어디서 나왔느냐’라며 칭찬을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아이들이 ‘역시 엄마한테 물어보니까 뭔가 된다’라는 얘기를 해줄 때 정말정말 고맙죠(웃음).” 자녀와의 대화에서 행복을 얻는 것처럼 이상적인 것은 없다. 사실 쉽지 않기 때문이다. 대화 자체의 즐거움은 물론이고, 아이들에게 존경받는 엄마가 된다는 것은 장관의 말대로 ‘고마운 일’이다. 비록 힘들기는 하지만 부모라면 자녀들과의 관계에서 얻는 행복을 명심해야 한다. 아이들이 자라면 부모가 될 터이고, 그러면 다음 세대에게 자신들이 느꼈던 행복을 전달해줄 것이다. 행복은 교육이고, 그 교육은 가정에서 시작돼야 한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몇몇 학자들의 최근 주장을 전해주었다. 인류는 모계사회에서 시작해 부계사회로 발전했다가, 다시 현재는 모계사회로 진화 중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그래서 앞으로 ‘남성가족부’가 만들어져야 하지 않을까, 하고 농담을 해보았다. 조 장관은 즐겁게 맞장구를 쳐주었다. “5천 년 만에 슬슬 그렇게 되려나 봐요(웃음)?” 조윤선 장관은…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후 사법시험에 합격하며 법조인의 길에 들어섰다. 이후 1994년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 법률사무소의 첫 여성 변호사, 씨티은행 부행장, 보수 정당(한나라당) 사상 첫 여성 대변인, 한나라당 최장수 대변인 등 독보적인 이력을 쌓아오다가 지난 3월 새 정부의 첫 여성가족부 장관으로 취임했다. 학창 시절 미술 학도를 꿈꾸었다는 조 장관은 오페라에 대한 열정도 남달라 「미술관에서 오페라를 만나다」, 「문화가 답이다」 등의 책을 쓰기도 했다. 서울대 재학 시절 도서관에서 만난 박성엽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와 결혼해 슬하에 두 딸을 두었다. “행복도 내가 느끼면 있는 거고, 내가 못 느끼면 없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행복을 조금씩 느끼면 그게 저축이 되듯이 쌓이는 거고 내가 행복을 계속 느끼지 못하면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게 되는 거죠” “일에서는 흩어져 있던 것들을 일맥상통하게 꿰어서 방향성 있게 나아가도록 정리가 될 때, 또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가는 게 맞다’라고 동의해줄 때 굉장히 기분이 좋아요. 제가 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구나, 하는 확신이 들기도 하니까요. 그리고 현장에 나가서 헌신적으로 일하는 분들을 보는 것도 행복해요” 행복 디렉터 김진세가 전하는 11월의 제안 행복해지는 자녀와의 대화법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자리이지만, 조윤선 여성가족부 장관(47)은 딸들과 대화할 때가 제일 행복한 순간이라고 합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자녀들과의 대화가 항상 즐겁지만은 않지요. 어떤 때는 낯선 사람과 대화하는 것보다 더 불편하답니다. 하지만 대화는 서로를 이해하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이고, 서로를 이해해야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겠지요. 가족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행복의 지름길이고요. 대화를 통해 행복해지려면 우선 ‘잘 듣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정신과 의사는 사람의 심리를 이해하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치료를 합니다. 그렇다면 정신과 의사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말하는 입이 아니고, 듣는 귀랍니다. 잘 듣는 것은 그저 귀를 기울인다고 해서 될 일은 아닙니다. 이야기를 열심히 하는데 상대방이 딴 생각을 하는 것 같으면 기분이 상할 수밖에 없지요. 집중을 해야 진짜 잘 듣는 사람이랍니다. 두 번째는 ‘가벼운 대화로 시작’해야 합니다. 아이들과 문제가 있어서 상담을 온 부모들은 대부분 문제의 원인이 대화 부족에 있고 해결책은 대화라는 것을 압니다. 그렇지만 대화의 시도는 늘 꾸중, 설교, 잔소리로 끝나고 말지요. 욕심 때문입니다. 정곡을 찌르고 감동을 불러일으켜 자녀가 마음을 바꿀 수 있는 대화를 하려고만 하지요. 그러지 마세요. 아이들이 귀와 입을 닫습니다. 그냥 가벼운 주제의 이야기를 해보세요. 세 번째는 ‘자녀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이야기해야 합니다. 부모의 시선으로 보는 세상을 이야기하면 아이들은 먼 나라 이야기라고 느낍니다. 어렵다거나 동떨어졌다거나 심지어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니까요. 아이들이 부모와의 대화에서 거는 기대가 무엇인지 잘 생각해보세요. 혼나거나 꾸중을 듣고 싶을 리는 없겠지요? 이해받고 즐기고 싶을 뿐입니다. 그 점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이런 대화법은 반드시 자녀와의 대화에서만 효과적인 것은 아닙니다. 부부든, 친구든, 직장 선후배든 모든 관계에서 행복해지는 대화법이 됩니다. 대화가 안 통해서 답답한 사람이 있다고요? 잘 듣고, 가벼운 마음으로, 상대방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해보세요. 속 시원해지는 순간이 올 겁니다. 김진세 박사는… 여자보다 여자 마음을 더 잘 아는 여성심리전문가로 유명한 정신과 전문의. 고려제일정신건강의학과에서 일상의 스트레스에 지친 이들을 위한 상담을 하는 한편, ‘행복연구소 해피언스’를 통해 행복 찾기를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행복 멘토’라 불리고 있다. 요즘은 MBC-FM ‘여성시대-양희은, 강석우 입니다’의 월요일 코너 ‘마음학교’에 고정출연하며 청취자의 아픈 마음을 치유하고 있다. 2008년 1월호부터 3년간 ‘김진세의 인터뷰_긍정의 힘’을 통해 서른여섯 명의 긍정 아이콘을 만나 그들이 가진 긍정의 힘을 독자들과 공유해왔다. 저서로는 「마흔의 심리학」(공저), 역서 「뜨겁게 사랑하거나 쿨하게 떠나거나」, 「심리학 초콜릿」, 「스타트 신드롬」, 「애티튜드」가 있다. 트위터 @happy_mentor <■기획 / 장회정 기자 ■글 / 김진세 ■사진 / 민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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