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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네프리뷰] 보여주는 여자, 훔쳐보는 남자(2024. 05. 15 06:00)
- 2024. 05. 15 06:00 연예
- <그녀가 죽었다>는 규모의 한계에서 오는 아쉬움도 발견되지만, 뚝심 있는 연출과 재능있는 배우들의 열연이 맞물린 흥미로운 작품이다. 감독의 데뷔작임을 고려하면 충분히 차기작을 기대해봄 직하다. /(주)엔진필름 레이디 고다이바(Lady Godiva)의 전설에서 유래됐다는 단어 ‘피핑 톰(Peeping Tom)’은 ‘훔쳐보는 남자’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예술 분야 전반에 많은 영감을 끼쳤는데, 영화계에서는 마이클 파월 감독의 <저주의 카메라>(Peeping Tom·1960)가 대표적 작품으로 언급된다. 앨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이창>(Rear Window·1954)이나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침실의 표적>(Body Double·1989), D. J. 카루소 감독의 <디스터비아>(Disturbia·2007)는 비슷한 소재의 영화를 언급할 때 꾸준히 소환되는 작품들이다. 사실 영화라는 매체 자체가 ‘훔쳐보기’라는 본능적 욕구에 편승한다. 다만 대부분 만들어진 이야기를 합법적으로 엿보는 것이기에 도덕적 딜레마에서 벗어날 뿐이다.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구정태(변요한 분)는 사람에 대한 관심이 많은 인물이다. 주변을 스쳐 지나는 사람들조차 매사에 꼼꼼히 관찰하기를 즐기는데, 이런 그의 일상에서 최고의 순간은 고객이 맡긴 열쇠를 이용해 몰래 집에 들어가 둘러보는 시간이다. 그러던 어느 날, 미모의 여성 한소라가 정태의 눈에 들어온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허세와 거짓으로 중무장한 소라는 구정태에게 참으로 흥미로운 인물로 보였다. 그가 죽기 전까지는. 현시대를 적절하게 반영한 범죄 스릴러 <그녀가 죽었다>의 영민함 중 하나는 ‘훔쳐보기’를 넘어 좀더 확장된 시선으로 현시대의 반영을 꾀하고 있다는 점이다. 주인공 구정태는 피핑 톰의 전형적인 유형을 대표한다. 액면 그대로 훔쳐보는 것 자체에 집착하는 인물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나름의 규칙을 철저하게 지킨다. 그의 치명적 오류는 이런 규범을 빌미로 분명한 범죄행위에 스스로가 정당성을 부여한다는 점이다. 반면 대척점에 서 있어 피해자처럼 보이는 인물 한소라는 자신의 일상을 과시하고 노출하는 ‘보여주기’로 만족을 얻는 인물이다. 자신을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에 집착하고, 그것을 위해 일거수일투족을 연출한다. 계산된 행동으로 반응을 유도해 그것을 즐기는 심상 역시 결국 통상적 형태에서 변태한 새로운 ‘훔쳐보기’의 일종이라 하겠다. 영화는 이런 복잡다단한 관계의 실타래와 감정의 회오리를 미스터리 스릴러라는 장르 안에 적절히 녹여 풀어낸다. 영화는 주인공 구정태가 카메라를 응시해 관객들과 눈을 맞추며 끝난다. 일명 ‘관객 응시’ 결말이다. 근래 들어 빈번하게 볼 수 있는 끝 장면이라 자칫 게으르고 상투적인 기교로 평가될 수 있겠지만, 이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를 고려하면 어느 정도 용납해줄 만한 선택이다. 배우 신혜선의 새로운 변신과 기대 주연을 맡은 변요한을 비롯해 출연진의 안정적 연기도 매력적이다. 특히 이 작품의 중요 포인트 중 하나는 ‘배우 신혜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드라마와 영화를 넘나들며 내실 있는 이력을 쌓고 있는 신혜선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연기만큼이나 작품을 선택하는 안목도 남다름이 엿보인다. <결백>(2020·관객수 89만명), <타겟>(2023·42만명), <용감한 시민>(2023·26만명) 등 신혜선의 주연작 3편에서는 중소규모지만 기성 작품과 차별화를 꾀하는 장르영화라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무엇보다 신혜선 스스로가 배우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는 배역을 선택해 그에 어울리는 최선의 연기를 펼치고 있다는 점이 예사롭지 않다. 이런 일련의 행보가 신혜선이 이후 선택할 작품들을 더욱 궁금하게 만든다. 아쉽게도 신혜선이 주연한 영화 대부분은 흥행면에서는 그리 좋은 결과를 내지 못했다. 다만 이 작품들의 개봉 시기가 코로나19를 전후해 영화시장 전체가 타격을 입은 때임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규모의 한계에서 오는 아쉬움도 적잖게 발견되는 등 <그녀가 죽었다>는 장단점을 고루 지닌 작품이다. 그럼에도 김세휘 감독의 뚝심 있는 연출과 재능있는 배우들의 열연이 맞물린 흥미로운 작품임은 분명하다. 더불어 연출 데뷔작임을 고려하면 충분히 차기작을 기대해봄 직하다는 점에서 좀더 긍정적 점수를 줄 만한 영화다. 제목: 그녀가 죽었다(Following) 제작연도: 2024 제작국: 한국 상영시간: 102분 장르: 미스터리/스릴러 감독: 김세휘 출연: 변요한, 신혜선, 이엘, 한소하 개봉: 2024년 5월 15일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소격효과와 ‘관객 응시’ 결말 <살인의 추억>의 마지막 장면들 / 싸이더스 제공 러시아의 문학이론가인 빅토르 시클롭스키가 1920년대에 개념화한 ‘낯설게 하기(Defamiliarization)’는 익숙한 사물이나 관념을 낯설게 만들어 새로운 느낌이 들도록 하는 예술적 기법이다. 독일의 시인이자 극작가, 연출가였던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무대공연에 유사한 이론을 적용했고, 이는 소격효과(疏隔效果) 또는 이화효과(異化效果)로 널리 알려져 있다. 무대 위 가공의 이야기를 관객이 배격게 함으로써 최대한 관찰자의 시각을 유지해 사건을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관객 처지에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는 ‘낯설게 하기’의 기법은 영화에서도 꾸준히 활용됐다. 이론적 소격효과의 의도가 충실히 반영된 대표적 작품으로는 프랑스 누벨바그의 대표작 중 하나로 언급되는 장 뤽 고다르 감독의 <비브르 사 비>(1962)나 오스트리아 감독 미카엘 하네케의 <퍼니 게임>(1997) 등이 있다. 각각의 기교는 다르지만, 관객들을 화면 안의 이야기와 최대한 거리를 두게 만듦으로써 작가가 의도한 주제나 정서의 전달을 극대화한 작품들이다. 한국 영화에서 ‘낯설게 하기’를 효율적으로 활용한 감독이라면 단연 봉준호가 먼저 떠오른다.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2000)의 엔딩 크레딧에서 여주인공 현남(배두나 분)은 부서진 사이드미러를 이용해 관객들에게 햇빛을 반사해 비춘다. <살인의 추억>(2003·사진)은 범인의 인상착의가 ‘그냥 평범했다’는 소녀의 말을 듣고 비장한 눈빛으로 관객들을 응시하는 두만(송강호 분)의 얼굴에서 끝을 맺는다. 이후 적잖은 영화에서 결말에 관객을 응시하는 인물의 얼굴이 발견됐다. 하지만 작품의 빈약한 완성도에 더해졌을 때 이런 결말은 안일하고 무책임해 보이는 역효과를 유발한다. 어느새 관습화되고 익숙해져 충격효과가 미미하다는 점도 치명적이다.
- 시네프리뷰
- [꼬다리]웃는 여자, 처음 봐요?(2023. 07. 21 11:15)
- 2023. 07. 21 11:15 사회
-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지난 7월 17일 국회 앞에서 ‘실업급여로 해외여행을 가고 명품 옷을 산다’ 등 청년과 여성을 비하하는 발언이 정부·여당 주최 공청회에서 나온 것에 대해 사과를 촉구하고 있다. / 문재원 기자 나는 잘 웃는다. 정말 웃겨서 웃을 때도 있고, 사회생활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정형화된 모습으로 웃는 낯을 할 때도 있다. 상대방에게 나의 무해함을 전하려고 일부러 웃기도 한다. 웃음 포인트가 남다른 편이다. 남들은 안 웃긴다고 하는 상황에서 혼자 박장대소를 할 때도 많다. 난처한 상황이 되면, 어찌할 바를 몰라 또 그냥 웃는다. 웃는 낯 때문에 오해도 많이 샀다. 수습기자 시절, 새벽 4시에 일어나 경찰서와 파출소를 돌고, 온종일 선배의 취재 지시를 따르다 자정에 퇴근하는 생활을 반복했다. 그래도 운이 좋았다. 경향신문이 내가 입사한 해부터 수습기간 경찰서에서 숙식하던 이른바 ‘하리꼬미’(언론계 은어) 제도를 없앴으니까. 고작 서너 시간을 자더라도 내 집에서 하루를 마무리하는 건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7년여의 시간이 흘렀다. 당시 어떤 상황에서, 누가, 왜 그 얘기를 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어쨌든 한창 수습교육을 받던 차에 지적사항이 하나 떨어졌다. “편집국에서 너무 웃고 다니지 마라”였다. 아마 그런 의미였을 거다. ‘조직 최말단에 있는 수습이, 심지어 사건팀 교육 중에, 웃고 다닐 기운이 있다고?’ 억울했지만 한동안 회사에 들어갈 때면 일부러 ‘죽상’을 유지했다. 이런 일도 있었다. 내가 없는 자리에서 A씨가 나와의 친분을 과시하며 “헬렐레하다”라는 묘사를 했다는 것이다. 사전적 정의를 알고 있던 터라 매우 불쾌했다. 나중에 해명을 전해듣기론, 잘 웃고 다닌다는 좋은 의미로 쓴 말이라고 했다. 이후로 A씨를 마주할 땐 기를 쓰고 웃지 않았다. 재밌는 사실은 내가 더는 웃지 않자 “화가 난 것 같다”는 말을 하고 다녔다고 한다. 요즘 말로 치면 ‘어쩔텔레비전’이 따로 없다. 케케묵은 이 기억을 소환한 건 최근 발생한 한 논란 때문이다. “(실업급여 신청 때) 남성분들은 어두운 표정으로 오는데, 여자분들, 계약기간 만료, 젊은 청년들, 웃으면서 ‘이 기회에 쉬겠다’고 온다.” 여당이 개최한 ‘실업급여 제도 개선 공청회’에서 고용센터 실업급여 담당자가 했다는 발언이다. 실업급여를 ‘달콤한 시럽급여(syrup)’로 칭하는 얄팍한 논리는 차치하고서라도, ‘여성’, ‘청년’에 대한 편견을 앞세운 그 뻔한 전략에 실소가 나왔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2015년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20대는 실업급여 부정수급 비율이 전 연령대에서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높은 비율은 50대 남성(23.4%)이었다. 이런 사실은 그러나 중요하지 않았다. 젊은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앞세운 순간, 논리적 비약은 보이지 않게 됐다. ‘샤넬 선글라스’가 포털뉴스를 장악했다. 이번 논란이 일깨운 사실은 하나다. 하고 싶은 대로 하자는 것. 웃는 여자에 대해서도, 웃지 않는 여자에 대해서도 어차피 마음대로 떠들어대는 세상이다. 웃어야만 힘이 나는 상황이라면, 마음껏 웃는 것도 방법이다. 실업급여로 선글라스를 사면 어떤가. 해외여행을 하면 또 어떤가. 그렇게 해서 재충전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 꼬다리
- [꼬다리]여자는 풍채!(2023. 05. 05 12:20)
- 2023. 05. 05 12:20 사회
- 디즈니·픽사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은 한참 전 개봉했는데 지금까지도 종종 생각나는 작품이다. 열한 살 소녀 라일리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유쾌하게 그렸다. ‘기쁨’, ‘슬픔’, ‘소심’, ‘까칠’, ‘버럭’이라는 다섯 가지 감정을 캐릭터로 만들었다. 기억과 심리에 대한 비유와 통찰이 재미나 가끔 다시 본다. 애니메이션 의 기쁨이(가운데)와 슬픔이(오른쪽 첫 번째) / 디즈니·픽사 제공 한 가지 마음에 안 드는 것은 ‘덩치’ 문제다. 라일리의 행복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문제 해결의 중심에 서는 ‘기쁨이’는 군살 없는 마른 몸을 가졌다. 라일리를 위기에 빠뜨리는 주범으로, 마지막에서야 꼭 필요한 존재로 인정받는 ‘슬픔이’는 살집이 많은 통통한 몸이다. 활기차고 적극적인 캐릭터는 왜 늘 깡마르고 허리가 잘록하게 그려지는가. 반대로 통통함은 왜 우울의 상징으로 쓰인단 말인가. 덩치에 대한 편견에 기대 만든 캐릭터는 선입견을 계속 강화한다. 어느 미국 여성 운동선수의 말이 생각난다. 자신은 통통한 몸을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있고, 몇 번이나 마라톤 풀코스를 탁월한 성적으로 완주했는데도 사람들은 자꾸 ‘살을 빼라’는 말만 한다고. 이런 세상에서 ‘뼈 말라’가 되고 싶어 먹는 일을 거부하는 청소년이 우후죽순 생겨나는 건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부피를 덜 차지하는 게 미덕이라고 언제부터 확정된 건지 모르겠지만, 세대를 불문하고 여기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는 것 같다. 특히 여성에게. 남성에게 키와 덩치가 큰 것은 여전히 미덕의 영역에 남아 있지만, 여성들은 거울 앞에 설 때마다 ‘내가 너무 크지 않나’ 검열한다. 일흔을 바라보는 엄마가 노년의 여성들이 모인 직장에 머리를 짧게 자르고 갔더니 누가 그랬단다. “머리가 작으니 큰 덩치가 잘 보이네.” 등판이 넓다고 했다나? 이 문제로 엄마는 며칠을 씩씩거렸다. 비판하고 있으면서 나조차 떨치기 어려운 게 바로 편견의 무서움이다. 그래서 디즈니 같은 데가 좀 새로운 시도를 해줬으면 하는 것이다. <주토피아>의 주인공 토끼도 허리가 얼마나 잘록하던지! 여성 코끼리가 주인공인 애니메이션도 언젠가 나올까? 군살 없는 마른 몸이 나에게도 남에게도 무해할 거라는, 심지어 더 유능할 것이라는 잘못된 환상. 어떻게 보이는지 말고, 어떻게 기능하는지에 집중할 때만이 여기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것 같다. 살찌는 게 신경 쓰이던 사춘기 시절에도 피아노를 칠 때면 살 빠지는 게 싫었다. 힘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좋은 연주에 힘이 전부라곤 누구도 말하지 않았지만, 여린 몸이 낼 수 있는 소리와 폭이 다른 건 틀림없었다. 여든을 훌쩍 넘긴 피아노의 거장 마르타 아르헤리치의 사진을 보며 넋을 잃는다. 젊어서부터 워낙 출중한 외모지만 그의 팔뚝에 특히 눈길이 간다. 한국에서라면 덩치 크다고 핀잔깨나 받았을 것이다. 지금껏 내가 만난 가장 훌륭한 수영 교수자인, 지난해 우리 반의 키 큰 여자 선생님도 떠올린다. 풋살에 푹 빠진 여성 동료들의 튼튼한 다리도. 기능하는 몸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생각하면, 마르고자 무리하려는 생각이 달아날 것이다. 쓸데없는 체중 걱정이 든다면 팟캐스트 ‘여둘톡’이 남긴 명언을 외쳐보자. “여자는 풍채!”
- 꼬다리
- [양다솔의 기지개 켜기](21)수상한 여자(2023. 04. 14 14:19)
- 2023. 04. 14 14:19 사회
- ‘깜박했어ㅛㅇ!!!’ 자음과 모음이 제 갈 길을 가는 주홍색 말풍선. 그는 물건을 역 보관소에 맡겨달라 했다. 나는 받을 돈만 있지 낼 돈은 없었다. “저… 지갑이 없어 그러는데….” 사람들은 들은 척도 않고 지나쳤다.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나는 오늘 지하철역에 가야 했다. 거기까지는 걸어서 7분 거리였다. 준비할 것은 많지 않았다. 세수할 필요도 없었고, 옷을 갈아입을 필요도 없었다. 잠옷에 짧은 패딩 점퍼를 걸쳤을 뿐이다. 겉으로 드러난 바지는 남색 바탕에 하얀 땡땡이 패턴이었다. 누가 봐도 잠옷 바람이었지만, 각자 갈 길로 바쁜 사람들이 가득한 역사에서 입고 있다고 한들 시선을 살 것은 아니었다. 모든 것은 금방 처리될 거였다. 나는 서랍장과 벽 사이의 틈에 끼워둔 종이 쇼핑백들을 뒤적거렸다. 빳빳한 재생 크라프트지로 된 적당한 사이즈의 쇼핑백을 골랐고, 거기에 약속된 물건을 넣었다. 정해둔 시간과 장소에 약속한 물건을 들고 나타나는 것, 현대인들은 그것을 당근이라고 불렀다. 비타민A의 황제라고 불리는 선명한 주홍빛의 원통형 채소, 그런 것 따위는 잊힌 지 오래였다. 그리고 많은 현대인이 으레 그렇듯 나는 그 종이가방에 넣을 만한 젤리나 초콜릿 같은 하잘것없는 간식거리를 챙겨 넣었다. 그것이 소위 지금 시대에 필요한 센스였다. 오랜만에 맡는 바깥 공기는 새삼스러웠다. 이제 필요에 의한 것이 아니면 집을 아예 나서지 않는다. 집에서 창문마저 꼭꼭 닫고 있는 편이 나았다. 나가봤자 얻는 것은 균이요, 창문을 연들 얻는 것은 먼지뿐이었다. 불안한 마음이 들면 10평 남짓이 되는 집 안을 마구 돌아다니면 됐다. 혼자서 산책을 나설 용기는 없었다. 이 일이 아니었다면 앞으로도 며칠을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종이가방을 앞뒤로 흔들거리며 거리를 활보했다. 거리에 늘어선 꽃나무들이 갑작스럽게 온난해진 날씨에 엉거주춤하고 있었다. 누구보다 자신 있게 봄을 알리던 그들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나에게 “봄이니? 봄 맞니?” 하고 묻고 있었다. “나도 몰라.” 나는 무책임하게 대답했다. 오늘 나와 당근을 벌이기로 한 상대가 정신 나간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 건, 그즈음이었다. ‘깜박했어ㅛㅇ!!!’ 느낌표가 남발하고 자음과 모음이 각자의 길을 가는 그의 주홍색 말풍선은 딱 봐도 취해 있었다. 우리가 만나기로 했던 지하철 출구 앞에서 몇 분간 휴대전화를 붙잡고 전말을 파헤친 결과, 그는 회사에서 점심으로 급작스러운 회식을 하는 바람에 우리가 정한 시간과 장소에 오는 것을 홀라당 까먹었으며, 집으로 가버린 바람에 여기까지 다시 오는 데에는 한 시간 반이 걸린다고 했다. 그럼에도 물건이 필요하긴 했는지 그는 바로 내 계좌로 물건값을 입금했고, 얼마간의 돈을 더 입금해 그것을 지하철 물건 보관소에 맡겨주기를 부탁했다. 경우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엄밀하게 말해 공을 친 것은 아니니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전개라고 생각했다. 그 사람의 매너 온도가 곤두박질치는 것만큼은 피할 수 없겠지만 말이다. 나는 어서 이 예상치 못한 변수를 넘어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지하철 사물함을 찾았다. 빈칸을 찾아 보관 버튼을 눌렀다. 바로 그때 내가 가진 돈이 한 푼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가진 것은 휴대전화가 전부였다. 그것은 대부분 현대인의 삶에서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역에서 그 사람에게 물건을 건네주고 집으로 돌아오는 데까지 20분도 걸리지 않을 거였고, 예상대로 됐다면 어떤 문제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하철 사물함에 물건을 맡기기 위해서는 지급 도구가 필요했다. 나는 받을 돈만 있었을 뿐 낼 돈은 없었다. 역에는 마침 퇴근하는 사람들로 붐볐고, 나는 거기서 잠옷을 입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나는 방법이라도 있는 듯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러 갈래의 출구가 이어지는 지하철 내의 광장 한쪽에 편의점과 디저트 가게 몇 개가 있었다. 편의점으로 향했다. 괜히 손으로 머리카락을 빗어넘겨 보았다. 사흘째 감지 않아 덕지덕지 눌어붙은 머리였다.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저기, 실례지만, 혹시 제가 계좌이체 해드릴 테니까, 지하철 사물함 좀 대신 결제해주실 수 있을까요? 제가 지갑을 두고 나와서요.” 그 얘기를 하는 순간 지금 내 모습이 얼마나 이상해 보일까 생각했다. 남루한 잠옷 차림에, 칙칙한 패딩과 종이가방을 들고 떡진 머리로 궂은일을 하고 있는 편의점 알바생을 귀찮게 하는 꼴이라니. 솔직히 내가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고 할 만한 구석이 어디에도 없었다. 알바생은 이런 사람은 겪을 만큼 겪어봤다는 표정으로 빠르고 담담하게 말했다. “아니요.” 그 표정은 내가 그 편의점에서 가장 비싼 것을 사고 나서도 바뀌지 않을 것 같았다. ‘저 이상한 사람 아니에요. 당근을 하러 나왔는데 안 나온 그 사람이 이상한 사람이라고요’라고 말한들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이었다. 나는 편의점을 나왔고, 다시 지하광장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한명 한명 훑으며, 내 말을 들어줄 것 같은 사람을 찾아보려 했다. 얼굴에 조금이라도 상냥함이 서려 있는 사람, 걸음이 조금 여유로운 사람이 보이면 나는 놀랍게도 이렇게 말했다. “저기요…. 제가 지갑이 없어서 그러는데….” 정말이지 당연한 말이지만, 사람들은 내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지나쳤다. 나라도 그랬을 것이다. 이 도시에 사는 현대인이라면, 질릴 만큼 들어봤을 말이다. 나는 거리의 클리셰가 되어 있었다.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차갑게 나를 스쳐 가는 그 얼굴들은 전혀 새롭지 않은 것이었다. 그 눈빛을 잘 알고 있었다. 누구보다 내가 가장 냉정하게 지나쳐가곤 했으니까. 다만 이렇게 쉽게 위치가 바뀔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나는 내가 몇 년째 살고 있는 이 동네에서, 도시 한복판에서 길을 잃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까지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아왔던들 그걸 증명할 방법이 지금으로서는 없었다. 캔 따개가 열린 채로 음료수를 권하는 할머니, 대뜸 길을 물으며 따라오는 여자, 변호사 같은 명함을 내밀며 돈을 빌리는 남자들 얘기가 수도 없이 떠올랐다. 길에는 수상한 사람이 많았고, 지금은 나도 그중 하나일 뿐이었다. 나는 그러나 알 수 없는 이유로 그 행동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냥 집에 돌아가서 돈을 가져오자, 따위의 쉬운 방법을 택하지 않았다. 정확히 일곱 번째로 붙잡은 사람이 내 말에 멈춰 섰다. 말간 얼굴의 젊은 여자였다. 다른 곳에서 만났다면 친구가 됐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 여자가 내 말을 들어주는 것에 내가 더 놀라며 말했다. “저 잘 살았고요, 앞으로도 잘 살고 싶어요….” 그게 내 이상함의 개성과 완성도를 높여줄 뿐 덜하게 만들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빠른 속도로 지하철 사물함 대여비를 지불해 주었고, 나는 그 자리에서 그에게 바로 그 금액을 이체했다. 거기에 얼마간의 돈을 더 보태서 보낼까 생각도 했지만, 왠지 그렇게 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그는 그날 내가 만난 가장 상냥한 사람이었고, 자신의 덕을 아무리 자랑해도 충분한 자격이 있었지만, 짐짓 잔잔한 미소를 머금으며 멀어질 뿐이었다. 나는 몇 번이고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누군가에게 갚겠습니다. 그러나 이내 생각했다. 누구에게?
- 양다솔의 기지개 켜기
- [양다솔의 기지개 켜기](18)세 여자의 설(2023. 02. 10 11:36)
- 2023. 02. 10 11:36 사회
-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이모가 목욕탕에서 미끄러졌다. 설날 하루 전이었다. 동네의 작은 목욕탕은 여느 때처럼 한산했고, 누구도 그가 넘어진 것을 보지 못했다. 그 소리는 짙은 수증기 속에 포근하게 묻혔다. 이모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바로 알지 못했다. 너무도 극심한 통증에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넘어진 그 자리에서 한참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없는 시점에, 그는 천천히 바닥에 손을 짚으며 몸을 일으켰다. 내가 넘어진 건가? 그는 자문했지만, 일어선 곳에 넘어진 흔적 따위는 없었다. 그는 거품 하나 묻히지 못한 몸 그대로 탕을 빠져나왔다. 천천히 옷을 주워 입었다. 온몸이 얼얼하고 욱신거렸지만, 그보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졸음이 쏟아졌다. 어딘가 한구석이 마비된 듯 무감각하면서도 뼈와 근육이 모두 제각각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는 목욕탕이 있는 사거리에 보이는 정형외과로 천천히 걸어갔다. 밖은 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는 병원 대기실 의자에 앉아 깊은 잠에 빠졌다. 이모는 손가락과 발가락이 골절됐다. 뼈가 붙는 데는 한 달이 걸린다고 했다. 경과를 지켜보며 수술의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이모가 가장 먼저 했던 말은 “감사하다”였다. 의사의 말에 따르면 허리나 머리를 다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했다. 말하자면 손과 발이 허리와 머리를 지킨 셈이었다. 사건은 바라보기 나름이었다. 그는 고개를 숙여 자신의 몸을 바라보았다. 다음날 늦은 밤에 나는 이모를 데리러 갔다. 설 귀경길 정체를 피해 해가 저문 뒤에 출발하기로 한 것이다. 손발이 불편한 그를 위해 우선 집에 가서 대신 짐을 꾸려야 했다. 집에 도착하자 짐은 이미 야무지게 싸져 있었다. 이모는 손과 발에 붕대를 친친 감은 채 두꺼운 외투와 모자까지 챙겨 쓰고 침대 소파에 걸터앉아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1년 만의 재회였다. 이모의 짐들을 둘러메고 차에 실은 뒤 천천히 동네를 빠져나갔다. “나 운전면허 처음 땄을 때 연수도 안 받고 강원도까지 혼자 다녀왔잖아.” 평소에도 시원시원한 성격을 가진 그가 충분히 할 만한 일이긴 했지만 조금 파격적이었다. “어떻게 그런 엄청난 일을 했어?” 내가 묻자 이모는 말했다. “그냥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대답은 명료했고,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했다. 그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 대뜸 물었다. “너 신호 단속 잘 지키니?” 당연한 질문이었으므로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느라 조금 뜸을 들였다. 이모는 말했다. “너 그거 안 지키면 돈 많이 문다. 나는 그런 거 있든 말든 질주해서 편지를 참 많이 받았어.” 과속 단속 카메라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질주하는 그의 모습이 너무 잘 상상돼 웃음이 났다. 이모는 어떤 의미에서건 늘 엄청난 사람이었다. 나는 명심하겠다고 답했다. 여자 셋이 한 지붕 아래 모였다. 서울 마포에 혼자 사는 나, 은평에 혼자 사는 이모, 충북에 혼자 사는 엄마다. 1년 만의 재회다. 전도 부치지 않고 제사도 지내지 않는데도 셋이 모이니 명절 기분이 났다. 장거리 운전의 피로로 늦잠을 자고 일어나보니 두 여자는 벌써 떡국을 끓여 먹고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고 한다. 나는 두 여자를 소파 앞에 앉혀놓고 마른 얼굴로 세배를 한다. 엄마가 말한다. “아랫집 순자 언니가 놀러 오래.” 그러자 이모가 질색한다. “내 평생 누구 만날 때 마스카라 안 하고 만나본 적이 없어.” 그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이모는 온종일 집에 있을 때도 아침부터 부지런히 일어나 머리를 매만지고 화장을 하고 완벽한 코디를 한 뒤에야 거실에 나타났다. 그건 허영이나 여성스러움으로 말해질 수 없는 이모의 브랜드였다. 엄마는 깜짝 놀랐다. ‘마스카라’라는 단어는 그 시골 동네에서 멸종된 언어나 다름없었다. 화장을 했다는 건 필시 큰일이 있다는 뜻이었다. 내가 말했다. “내가 해줄게.” 이모가 의자에서 사뿐히 일어섰다. 그리곤 엉덩이를 씰룩이며 방에 들어가 짙은 갈색의 가발을 가져왔다. “그럼 이거부터 씌워줘.” 엄마가 자리에서 일어나 며칠 동안 감지 않아 눅눅해진 이모의 머리카락을 정성스럽게 쓸어넘겨 쪽져 주었다. 그리고 능숙한 손놀림으로 가발을 씌웠다. 그 모습은 꼭 폭탄 맞은 만화 주인공 같았다. 몇 번의 손짓이 오가자 감쪽같이 봐줄 만한 머리가 됐다. 금세 우리가 아는 이모의 모습이 돼갔고, 그의 표정이 점점 밝아졌다. 그때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엄마도 덩달아 파운데이션을 얼굴에 문지르기 시작했다. “나도 할래.” 그렇게 세 여자의 난데없는 단장이 시작됐다. 시골 볕에 구수하게 그은 얼굴에 하얀 파운데이션을 바른 모습이 꼭 달걀귀신 같았다. 거기에 시커먼 아이라인까지 더하니 영락없는 고대 이집트인이었다. 깔깔 웃으며 내가 바르던 볼 터치를 엄마의 볼에 쓸어주었다. 무성하게 자라난 눈썹도 다듬고, 검은 아이라인도 부드럽게 펴내 주었다. 달라진 그를 가장 먼저 알아본 것은 그의 휴대전화였다. 방금까지만 해도 잘되던 얼굴 인식이 수도 없이 시도해도 되지 않았다. 휴대전화는 그날 하루가 다 가도록 주인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했다. 엄마의 휴대전화 얼굴 인식 사건은 그날 마을 사람 모두를 웃기는 하이라이트가 됐다. 살을 에는 바람이 불고 눈발이 휘날리는 추운 겨울 충북 깡시골의 어느 외딴집에는 오랜만에 명절을 맞아 모인 세 여자가 몇 분째 트럼프를 꺼낼지 화투를 꺼낼지 고민 중이다. 그들의 속눈썹은 서울 명동거리를 지나는 아가씨들의 그것처럼 바짝 올라가 있다. 입술엔 생기 넘치는 루주가 발라져 있다. 근방 10㎞에 남자는 아무도 없고 아무도 그것을 신경쓰지 않는다. 잔돈을 가져오는 일이 중요해졌다. 점당 50원의 게임을 시작한다. 귀가 들리지 않고, 손이 불편하고, 다리가 불편하고, 건망증이 있어도 게임에 예외는 없다. 승자는 웃고 패자는 재기를 다짐할 뿐이다. 게임 한 판마다 새로운 흥망성쇠가 쓰인다. 세 여자는 게임을 좋아한다. 게임은 인생과는 달리 승패가 명확하고, 계산도 정확하며, 이기든 지든 다시 시작할 수 있으니까. 짤랑짤랑 소리가 여자들 사이를 오간다. 기쁨과 슬픔의 탄성도 그사이에 섞인다. 예쁘게 단장한 얼굴로 잔뜩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패를 바라보고 있는 두 여자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본다. 밖이 어느새 칠흑처럼 어둡다. 나는 생각한다. 내일 아침엔 이 여자들과 눈썰매를 타고 싶다고….
- 양다솔의 기지개 켜기
- [신간]살아남은 여자들은 세계를 만든다 外(2023. 02. 03 11:25)
- 2023. 02. 03 11:25 문화/과학
- ㆍ분단으로 이어진 그녀들, 우리 <살아남은 여자들은 세계를 만든다> 김성경 지음·창비·1만8000원 ‘인간개조의 선구자’로 불린 북한 천리마노동영웅 길확실. 그는 출근율과 생산율이 70%대에 불과했던 제5작업반을 이끌어 출근율 100%, 생산율 140%를 달성했다고 알려진다. 그의 수기를 여성주의적으로 재해석한 서사 속에서 가난한 화전민 출신의 길확실은 영웅으로 ‘선택’된 삶에 대한 고민을 내비친다. 책은 북한 매체에서 선전용으로 소개한 여성들의 삶, 또 중국과 접경지에서 만난 탈북 여성들과 조선족, 재일교포의 삶에 작가적 상상력을 더한 결과물이다. 저자는 북한학을 연구하며 150여명의 북한 여성을 심층 인터뷰했다. 그들과 만남을 통해 연구자로서 또 한반도에 사는 여성으로서 분단에서 벗어날 수 없는 자신의 삶에 대해서도 반추한다. 결혼 10년이 지나 알게 된 시어머니의 아픈 과거와 많은 북한 여성들의 “전쟁과도 같은 삶의 다른 표현”으로서의 밥을 향한 정성이 인상적이다. ▲수학을 포기하려는 너에게 장우석 지음·북트리거·1만5500원 국포자는 없어도 수포자는 널렸다. 고교 수학교사인 저자는 수포자라는 단어의 남발이 포기를 늘린 측면도 있다고 본다. 수학은 일종의 퍼즐 게임이다. 그는 수학이 과학과 어떻게 다른지, 수학적 사고는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등 수학의 역사와 필요성에 대해 쉽고 명료하게 소개한다. 기초가 없어서, 시험을 망친 기억 때문에, 주변의 과도한 기대로 인해 ‘수학 불안’을 앓는 친구들에 대한 조언은 아주 단순하다. ‘딱 한 번’ 이겨보라는 것. 그는 수학 공부가 진학의 수단이 아니라 성장의 경험이라 말한다. ▲번아웃의 종말 조나단 말레식 지음·송섬별 옮김 메디치·2만3000원 남부럽지 않은 종신교수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하루하루가 고통인 ‘번아웃’이었다. 저자는 번아웃이 일에 대한 기대와 현실 사이에서 치이는 경험이라 말한다. 일과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는 대안적 삶에서 출구를 모색한다. ▲도시가 살롱 도시가 살롱 지음·달아실·1만6000원 문화시설은 주로 도심에만 몰려 있다. 춘천은 3년간 실험을 했다. 동네 찻집, 옷집, 밥집, 책방 등 100여곳이 문화살롱으로 탈바꿈했다. 거리 두기를 넘어 ‘커뮤니티 심리방역’으로 이어진 이웃들의 이야기가 따스하다. ▲도둑맞은 뇌 대니얼 샥터 지음·홍보람 옮김 인물과사상사·2만3000원 34년 전과 같은 질문을 받은 40대 남성들. 청소년기 체벌을 기억한 이는 33%였다. 고1 때는 90%가 체벌을 고백했다. 소멸, 정신없음, 막힘, 오귀인, 피암시성, 편향, 지속성 등 뇌과학이 밝힌 7가지 기억 오류를 분석했다.
- 신간
- [꼬다리]“여자앤데”(2022. 11. 25 14:27)
- 2022. 11. 25 14:27 사회
- 언젠가부터 이상하게 느껴지는 한국인들의 말버릇이 있다. 제3자인 여성을 언급할 때 따라붙는 “여자앤데”, “여자분인데” 같은 추임새다. 이를테면 이런 말들이다. “우리 팀에 대리가 한명 있어. 엄청 웃겨, 여자앤데…”, “교수님이 새로 왔다? 여자분인데….” Pixabay 남성만 그런다면 상당히 눈살 찌푸려지는 일이겠지만,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가 자주 쓴다. 여성을 비하하거나 한정 짓는 맥락에서 주로 쓰이는 말도 아닌 것 같다. 지금껏 본 바로는 정말 별 뜻 없이 ‘그 사람은 여자’라는 의미로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여전히 어딘가 석연찮다. 남성을 언급하면서 “남자앤데”라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걸 생각하면 더 그렇다. 뭐랄까, ‘공정’하지 못한 것 아닌가 싶은 느낌도 들고…. 여하튼 한번 그렇게 의식해버린 이후, “여자앤데”는 잠들기 전 방 안의 모기처럼 내 머리 근처를 왱왱 맴돌기 시작했다. 하도 신경쓰여 한번은 취재원과 저녁을 먹다가 물었다. “왜 그러는 걸까요?” 그는 머리를 긁적이다가 말했다. “글쎄요, 지칭되는 사람의 성별을 알리는 게 필요할 때가 가끔 있어서? 그냥 언급하면 대부분 남자를 지칭한다고 생각하니까요.” 취재원은 이어 설명했다. 사회적 ‘표준’이 오랫동안 남성중심이어서, 사람들도 무의식적으로 제3자를 남성으로 받아들인다고. 그런 상황에서 자신이 말하는 대상이 여성임을 알리려다 보니 굳어진 말버릇 아니겠냐는 해석이었다. ‘대상의 성별을 알려야 할 상황’이 있는 건 맞다. 다만 생각보다 훨씬 드물다. 적어도 지금 사람들이 “여자앤데”를 붙이는 빈도만큼은 절대 아닌 듯하다. 예컨대 같은 팀 대리와 나눈 웃긴 대화를 친구에게 전할 때 “여자앤데”는 사실 필요없다. 같은 상황에서 대리를 ‘여대리’라고 하지 않듯이 말이다. 만약 “여자앤데”가 꼭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싶다면, 다음처럼 말해야 한다. “대리가 한명 있어. 여자앤데, 경기도 성남 출신으로 1992년 12월생이며 형제관계는….” 왜 안 된단 말인가? 이처럼 “여자앤데” 언급의 효용은 애매한 반면 부작용은 비교적 뚜렷해보인다. 취재원 말처럼 “표준이 남성중심”인 사회에선 더욱 그럴 테다. 대화에서 “여자앤데”로 불리는 누군가는, “남자앤데”로 불리는 누군가보다 대화 속 무대의 더 불리한 위치에서 상상될 가능성이 높다. 현실은 언어에, 언어는 현실에 영향을 되먹인다. 그래서일까.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되면 성별을 짚지 않는 언어문화가 조금씩 생기고 있다. 한국 언론사들은 몇년 전부터 ‘그녀’를 폐기했다. ‘여선생’이나 ‘여류시인’ 같은 단어도 사라져가는 추세다. 생활 속에서도 불필요한 “여자앤데”를 조금씩 줄여나가보면 어떨까 싶다. 가볍게 ‘그러게 굳이?’라는 생각으로부터 출발해도 충분하다고 본다. 물론 오랜 습관을 고치려면 강한 브레이크가 걸린다. 그 제동감은, 운동할 때 근육 아픈 게 몸 좋아지는 신호이듯, ‘어제보다 반발짝 평등한 사람이 되고 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말의 내장지방을 걷어내는 개운한 기분! PT처럼 돈도 안 든다.
- 꼬다리
- [이기환의 Hi-story](23)불꽃으로 산 ‘여자 안중근’과 ‘안사람 의병대장’(2022. 02. 25 15:00)
- 2022. 02. 25 15:00 문화/과학
- ‘여자 안중근’으로 불린 남자현 선생. ‘안사람 의병대장’으로 불린 윤희순 선생. 그들은 드라마 의 고애신처럼 ‘꽃으로, 불꽃으로’ 살았던 여성 독립투사들이었습니다. 남자현 선생이 1933년 2월 19일 일제의 괴뢰국인 만주국 전권대사인 무토 노부요시를 암살하려다 체포됐다는 기사가 100여일간의 보도통제 후 나왔다. 그가 풀렸다는 알림과 함께 사건의 전말을 보도한 조선일보 1933년 6월 11일자(왼쪽 ). 남자현 선생은 단식투쟁을 벌이다가 옥중 순국을 염려한 일제에 의해 보석으로 풀려났지만 5일 후 서거했다. 조선중앙일보는 1933년 8월 27일 선생의 순국 소식을 전했다. 재방, 삼방, 사방, 아니 십수방을 봐도 눈물이 나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인데요. 그중 기억에 남는 대사가 몇줄 있습니다. 유진 초이(이병헌 분)가 의병인 고애신(김태리 분)과 나누는 대화가 있죠. “…(당신은) 수나 놓으며 꽃으로만 살 수 있을 텐데… 조선 사대부 여인들은 그렇게 살던데….”(유진 초이) “나도… 꽃으로 살고 있소. 다만 나는… 불꽃이오. 그렇게 환하게 뜨거웠다 지려 하오.”(고애신) 고애신이 일본군의 무차별 구타에 위험에 빠진 조선 여성을 구하려고 “총을 빌려달라”고 하자 유진 초이가 말리는 장면은 또 어떻고요. “저 여인 하나 구한다고 조선이 구해지는 것이 아니오.”(유진 초이) “구해야 하오. 저 여인이 언젠가 내가 될 수도 있으니까….”(고애신) 61세 할머니 독립투사 드라마뿐이 아니죠. 실제로도 ‘고애신’처럼 ‘꽃으로, 불꽃으로’ 살았던 여성 독립투사들이 있습니다. 1933년 2월 19일 오후 3시 45분, 하얼빈 교외 정양가 거리에서 거지 차림의 여인이 일제 경찰에게 붙들렸습니다. 여인의 품에는 권총과 비수, 폭탄도 나왔습니다. 붙잡힌 여인은 당시 61세의 독립투사 남자현 선생(1872~1933)이었습니다. 여인의 몸은 죽은 남편이 생전에 입고 있던 옷을 감고 있었습니다(일설에는 의병전쟁에서 전사한 남편의 피 묻은 적삼이라든가, 혼인 당시 입었던 옷이라든가 여러 설이 있다). 선생은 일제 괴뢰국인 만주국 설립 1주년 기념식에 참석하는 만주국 전권대사(무토 노부요시·武藤信義·1868~1933)를 암살하려고 중국인 거지로 변장했습니다. 조선인 밀정(이종영)의 밀고로 수포가 됩니다. 선생은 혹독한 고문 속에 9일간 단식투쟁으로 버텼습니다. 옥중 순국을 두려워한 일제가 급히 병보석으로 풀어줬지만 5일 만에 서거했습니다. 남자현 선생은 만주에서 ‘독립군의 어머니’, ‘만주 투쟁의 여걸’, ‘여자 안중근’이라는 별명을 얻었는데요. 일제강점기 언론을 검색하다 보면 여성인 남자현 선생과 관련된 기사가 이례적이라 할 만큼 눈에 띄더라고요. 그분이 그만큼 독립운동사에서 대단한 비중을 차지하는 여성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떻게 그런 강철 투사가 됐을까요. 1891년 19세의 나이에 혼인(남편 김영주·1871~1896)한 남자현 선생의 인생을 바꾼 계기가 있었습니다. 1895년 ‘명성황후 시해’와 ‘단발령 선포’ 이후 의병전쟁에 참전한 남편이 1896년 전사한 겁니다. 이후 유복자(김성삼)와 시어머니를 부양하던 남자현 선생은 시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독립운동에 발 벗고 나섭니다. 손가락 끊어 쓴 혈서 남자현 선생은 1919년 3월 서울에서 독립선언 격문을 돌리며 3·1운동을 펼친 뒤 만주로 떠납니다. 그때 그의 나이가 ‘무려’ 47세였습니다. 선생은 ‘무지와 몽매도 적’이라며 조선여자교육회를 10여곳이나 만들어 여성의 항일투쟁 의식을 북돋웠습니다. 무장투쟁에도 나섰습니다. 1934년 조소앙(1887~1958)이 쓴 <여협 남자현전>은 “남자현 선생이 남녀 한인 600명을 조직해 맹렬한 항전을 벌였다”고 소개했습니다. 1920년대 서간도 일대에는 90여개 독립운동단체가 난립하고 있었습니다. 선생은 동분서주하며 동지들 간 불화를 불식시키고자 적극 노력했습니다. 남편(김영주)이 죽은 직후인 1897년 무렵 갓 태어난 아들(김성삼)을 안고 시댁 식구들과 찍은 사진(왼쪽, 뒷줄 왼쪽에서 두 번째). 오른쪽 사진은 옥중 단식투쟁 중 보석으로 출감했지만 5일 만에 순국한 남자현 선생의 임종을 아들과 손자(김시련)가 지키고 있는 장면이다. 어떤 자료는 “남자현 선생이 손가락을 베어 그 피로 글을 써서 책임자들을 소집함으로써 화합이 성립됐다”(‘독립운동의 홍일점-여걸 남자현’, ‘부흥’ 1948년 12월호)고 소개했는데요. 단지 혈서가 팩트인지는 확인할 수 없더군요. 선생은 의열 활동에도 나서 사이토 마코토(齋藤實) 총독(3·5대 총독, 1919~1927, 1929~1931)의 암살미수사건을 주도했습니다. “남자현은 박청산·김문거·이청수 등과 사이토 총독을 암살하기로 모의했다. 1927년 4월 권총 한자루와 탄환 8발을 지니고 몰래 들어와 총독을 암살하려 했지만 실패하고 만주로 돌아갔다.”(<조선중앙일보> 1933년 8월 26일) 만주사변(1931)을 일으킨 일제가 괴뢰국(만주국·1932)을 세우자 국제연맹은 하얼빈(哈爾濱)에 조사단(리턴조사단)을 파견합니다. 선생은 이때야말로 조선의 상황을 알릴 기회라고 여깁니다. 선생은 왼손 손가락을 끊어 무명천에 ‘조선은 독립을 원한다(朝鮮獨立願)’라는 혈서를 써서 조사단에게 보내려 합니다. 삼엄한 경비를 뚫지 못하자 인력거꾼에게 돈을 주고 리턴조사단에 전달하려 합니다. 그러나 실패로 돌아갑니다. 결코 포기하지 않은 선생이 이듬해(1933) 만주국 전권대사인 무토 노부요시를 암살하려다가 역시 무위에 그칩니다. 남자현 선생에게서 안중근 의사의 얼굴이 중첩됩니다. 남자현 선생(1872)이 안중근 의사(1879~1910)보다 일곱 살 위거든요. 그분의 기개와 행동이 어쩌면 그렇게 안중근 의사와 닮았는지 모릅니다. 남자현 선생의 유언이 심금을 울립니다. “내가 갖고 있는 249원 80전 중 200원은 조선 독립의 날, 정부에 독립축하금으로 바쳐라. 그리고 손자(김시련)를 대학까지 공부시켜 내 뜻을 알게 해라. 이 49원 80전으로 반은 손자 공부에 쓰고, 반은 친정의 종손에게 주어라.” 철혈 독립투사였지만, 한편으로는 한 가정의 평범한 어머니와 할머니의 면모를 보여주는 대목이죠. 독립정신의 근간인 교육을 절대 포기하지 말라는 당부로도 읽힙니다. 1933년 8월 23일 30여명의 동지가 모인 가운데 장례식을 치른 남자현 선생의 유해는 하얼빈의 외국인 공동묘지에 묻혔는데요. 이때 아들인 김성삼이 어머니의 부고 400장을 돌리다가 일제 경찰에 의해 압수당했습니다. 선생을 기리는 시를 한편 소개합니다. “…동포여, 무엇이 그리 바쁘뇨/ 황망한 발길을 잠시 멈추시고/ 만주벌에 떠도는 남자현이 혼백 앞에/ 자유세상 밝히는 분향을 올리시라… 아낙의 혈서와 무명지를 보게 되리라.”(고정희 시인의 ‘남자현의 무명지’) ‘안사람 의병대’를 아시나요 <미스터 션샤인>의 고애신이 활약한 그 시대, 그 무렵에 불꽃처럼 산, 최초의 여성 의병장이 계십니다. 바로 ‘안사람 의병가’를 지은 윤희순 선생(1860~1935)인데요. 윤희순의 중 ‘안사람 의병가’(왼쪽)와 ‘오랑캐들아 경고한다’는 주제의 격문. 특히 글쓴이가 ‘선비의 아내 윤희순’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 강원대중앙박물관 소장 “아무리 왜놈들이 강성한들 우리들도 뭉쳐지면 왜놈 잡기 쉬울세라. 아무리 여자인들 나라 사랑 모를쏘냐. 아무리 남녀가 유별한들 나라 없이 소용 있냐. 우리도 의병하러 나가보세….” 가정 일만 전담했던 당대 여성들의 구국운동을 일깨우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요. 쉬운 단어의 반복과 강조를 동원한 감성적인 설득으로 선동의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습니다. 윤희순 선생이 의병운동에 투신한 계기는 역시 1895년 일어난 명성황후시해사건과 단발령 선포 등이었는데요. 이때 시아버지 유홍석(1841~1913)을 비롯한 가문 전체가 의병 활동에 뛰어듭니다. 당시 35세였던 윤희순 선생은 시아버지의 만류로 나갈 수는 없었지만 나름대로의 방식대로 의병 활동의 일익을 담당합니다. 이때 선생은 ‘안사람 의병가’는 물론, ‘애달픈 소리’, ‘방어장’, ‘병정가’, ‘의병군가 1·2’, ‘오랑캐들아 경고한다’, ‘왜놈 앞잡이들은’, ‘금수들아 받아보거라’ 등 다수의 의병가와 격문을 지어 민간에 퍼뜨립니다. “우리 조선사람 농락하며 안사람들 농락하며 민비를 살해하니 우리인들 살 수 있나. 빨리 나와 의병하세.”(‘방어장’) “…좀벌레 같은 놈들아… 오랑캐가 좋단 말인가… 죽더라도 서러워 마라. 우리 의병은 금수를 잡는 것이다….”(‘병정가’) 또 ‘나라 없이 살 수 없네. 나라 살려 살아보세… 조상 없이 살 수 없네, 조상 살려 살아보세….’(‘의병군가’) ‘원수 같은 왜놈들아. 느이 놈들 잡아다가 살을 갈고 뼈를 갈아 조상님께 분을 푸세.’(‘병정가’) ‘오랑캐들아 경고한다’는 격문 또한 흥미로운데요. “…우리 안사람들도… 의병을 할 것이다… 이 마적떼 오랑캐야. 좋은 말로 할 때 용서를 빌고 가거라. 이 오랑캐야. 대장놈들아. 우리 조선 안사람이 경고한다. 조선 선비의 아내 윤희순.” 윤희순 선생은 만주 망명 후인 1912년 노학당이라는 교육기관을 설립하고 학생들을 가르쳤다. 이 학교는 1915년 폐교할 때까지 50여명의 반일애국자를 키워냈다. 선생은 “조선의 안사람들이 의병을 뒷바라지하는 것이 곧 나라 찾기이고 왜놈들 잡는 것”이라면서 “이 가사를 자주 읽고 외우라”고 신신당부하는 글귀를 붙이기도 했습니다. 윤희순 선생이 얼마나 이런 노래를 불러댔는지 친척 한분이 걱정을 태산같이 하는 편지를 선생의 시댁에 보냅니다. “밤낮없이 부르는 소리가 왜놈들이 들으면 죽을 소리만 하니 걱정이로소이다. 실성한 것 같은데… 이젠 아이들까지 그러하고 젊은 청년들까지 부르니 걱정이 태산 같습니다.” 그만큼 선생의 의병가가 저잣거리에 퍼졌다는 것을 방증하죠. 자신의 안위는 조금도 염려하지 않은 겁니다. 1907년 헤이그밀사사건 이후 고종이 강제 퇴위 되고 ‘정미 7조약’으로 군대가 해산되자 다시 전국적으로 의병이 일어났죠. 이때 선생은 30여명으로 구성된 이른바 ‘안사람 의병단’을 조직합니다. ‘안사람 의병단’은 남자 의병들의 뒷바라지에 만족하지 않고 강원 춘천 여우내 골짜기에서 실전훈련까지 받았는데요. 심지어 화약 만드는 일까지 뒷바라지했고, 군자금까지 거두었습니다. 1912년 노학당이라는 교육기관을 설립하고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이 학교는 1915년 폐교할 때까지 50여명의 항일투사를 키워냈습니다. 불행한 일도 겹쳤습니다. 시아버지(1913)와 시동생(유재열·1914), 남편(유제원·1915)까지 잃었습니다. 선생은 이후 아들인 유돈상(1894~1935)과 함께 3대 독립운동을 이어갔습니다. 이때 윤희순 선생은 여러 독립투사의 친인척 20여명으로 조선독립단을 결성해서 통신 연락 업무와 모금활동, 정보수집, 군사훈련 등의 활동을 이어나갑니다. 선생도 독립운동을 펼치던 아들이 체포돼 모진 고문 끝에 순국하자(1935년 7월 19일) 끝내 무너지고 맙니다. 조국의 독립을 꿈꾸며 시아버지와 남편의 죽음 앞에서도 의연했던 윤희순 선생도 자식의 죽음 앞에서는 한사람의 어머니였던 겁니다. 윤 선생은 아들이 순국한 지 불과 11일 만에 세상을 떠납니다. 선생의 안타까운 외침이 가슴을 저밉니다. “내 몸도 슬프련만 우리 의병 불쌍하다… 왜놈들 득세하니 배고픈들 먹을 수 있나 춥다 한들 춥다고 할 수 있나. 내 땅 없는 설움이란 이렇게 서러울까… 불쌍하다 불쌍하다… 방울방울 눈물이라. 맺히나니 한이로다.” 3.2%에 불과한 여성독립운동가 어떻습니까. <미스터 션샤인>의 고애신처럼 불꽃 같은 삶을 산 분이 어디 남자현·윤희순 선생뿐이겠습니까. 통계를 보니 2022년 2월 말 현재 국가보훈처에 등록된 여성독립유공자가 544명이더군요. 이 두분과 함께 몇분을 더 소개해드릴까 했는데요. 한분 한분의 ‘불꽃 삶’을 고작 원고지 몇장으로 정리할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공부해서 심도 있게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보훈처에 등록된 독립유공자 수가 1만7066명입니다. 544명이라면 적잖아 보이지만 ‘1만7066분의 544’라면 어떻습니까. 3.2%에 지나지 않습니다. 가부장적인 유교사회에 있던 19세기~일제강점기의 시대적 배경을 감안하면 무 자르듯 많다 적다라고 재단할 수는 없겠죠. 그러나 솔직히 말해 남녀 독립운동가의 서훈 기준이 같다면 여성들은 불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성들은 남편이 독립운동가라면 자식과 시부모를 부양하고, 가정의 대소사까지 도맡아야 했습니다. 그러니 그런 여성들도 독립유공자에 해당하는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여론도 있습니다. 독립운동가의 동지이자 어머니이고, 가족으로서 뒷바라지한 여성들이니까요.
- 이기환의 Hi-story
- [신간]불 위의 여자 外(2021. 08. 30 11:04)
- 2021. 08. 30 11:04 문화/과학
- ㆍ찬란한 갱년기를 위하여 <불 위의 여자>실라 드 리즈 지음·문항심 옮김·은행나무·1만7000원 “좀 참으면 괜찮아지겠지.”, “폐경 후에나 생기는 거지.” 갱년기는 억울하다. 열감, 감정기복, 심혈관 질환 등 온갖 괴로운 증상에 시달리면서도 그저 ‘자연스러운 노화 과정’으로 일축되기 일쑤다. 또 폐경 이후 벌어지는 ‘먼 미래의 일’로 치부되기도 한다. 독일 유명 산부인과 전문의 실라 드 리즈 박사는 여성들이 건강한 인생 후반기를 맞이하기 위해선 갱년기에 대한 몰이해를 타파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에 따르면 노환이라고 여기는 질병 중 상당수는 실은 이 시기의 호르몬 불균형에서 시작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가 선택해야 할 건 ‘감내’가 아닌 ‘대응’이다. 특히 저자는 인체에 부작용을 일으키지 않는 ‘생체동등호르몬 요법’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또 35세가 지나며 마주하는 ‘폐경이행기’의 개념과 이 시기에 나타나는 증상을 설명한다. 이외에 성생활, 식습관, 운동 등 갱년기에 관한 유용한 지식을 알차게 담았다. ▲대서울의 길 | 김시덕 지음·열린책들·2만원 교외선, 수려선, 48번 국도 등 ‘길(철도와 도로)’을 주제로 시민의 역사와 대서울의 구조를 읽어냈다. 대서울은 서울 사대문, 영등포, 강남을 중심으로 방사선으로 이어지는 생활권이다. 저자는 지난 100여년간 서울의 정치·경제·문화적 영향력이 길을 따라 주변 농업 지역으로 뻗었고, 도시화가 촉진됐다고 설명한다. 철길변 마을의 옛 지명과 비석, 국도의 표지석 등 길과 관련된 ‘도시 화석’이 지면을 채운다. ▲삼키기 연습 | 박지니 지음·글항아리·1만6000원 20년가량 거식증을 겪어온 저자가 환자가 아닌 화자로서 써낸 수기다. 이 책엔 치유와 회복에 관한 감동적인 스토리는 없다. 거식증을 ‘극복의 대상’이 아닌 ‘발견의 대상’으로 여기며 이를 공들여 탐구하고 기록했다. ▲불공정사회 | 이진우 지음·휴머니스트·1만8000원 정치철학자의 관점에서 ‘K불공정’을 사유한다. 무엇이 공정한지에 대한 질문을 통해 불공정의 징후를 포착하고 그 현상이 왜 불공정한지, 공정을 방해하는 요소를 어떻게 제거할 수 있을지 살펴본다. ▲괜찮아,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 하인츠-페터 뢰어 지음·배명자 옮김·나무의마음·1만3800원 독일 중독 치료 병원에서 30년 이상 임상 경험을 쌓은 정신과 전문의가 친족 성폭력 피해 생존자들의 내면 치유를 위해 쓴 심리 치유서다. 그림형제의 동화에 실제 상담 사례를 곁들여 상처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 신간
- “같이 배구할 분 구합니다” 강 스파이크 날리는 여자배구 열풍(2021. 08. 13 14:58)
- 2021. 08. 13 14:58 스포츠
- ㆍ응원, 관람 넘어 직접 코트에 뛰어드는 여성 늘어…‘운동하는 여성’ 대한 호응 영향도 지난 8월 9일 저녁 서울 서대문구의 한 체육관 배구 코트. 세명의 여성이 강사의 손에 놓인 배구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자, 올리고, 때리고, 넘겨!” 지난 8월 9일 서울 서대문구의 한 체육관에서 배구를 배우고 있는 여성들이 포즈를 취했다. / 송윤경 기자 강사가 공을 던지자 세사람이 바쁘게 움직였다. 첫 번째 사람이 날아온 공을 받아 올리면(리시브), 두 번째 사람은 그 공을 세 번째 사람에게 넘기고(토스), 세 번째 사람은 공을 네트 너머로 보내는(공격) 연습이었다. TV중계로 볼 때는 간단해 보였지만, 예상대로 실전은 쉽지 않았다. 실패가 계속되면서 ‘역시 어렵구나’ 하는 생각에 잠길 무렵, 처음으로 성공적인 ‘3박자’가 만들어졌다. 지켜보던 수강생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를 쳤다. 한번 성공 사례가 나오니, 또 다른 수강생들로 ‘교체’된 이후에도 3번 연속 터치가 심심찮게 이어졌다. 배구공을 찾는 여자들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의 ‘4강 신화’ 이후 여자배구 열풍이 심상찮다. 특히 젊은 여성들의 반응이 뜨겁다. 이들은 SNS에서 다가오는 코보(KOVO)컵 경기일정을 공유하며, 응원 선수의 영상등을 올리고 있다. 나아가 직접 배구 코트에 뛰어드는 여성도 늘고 있다. “도쿄올림픽 이후 여성들의 문의전화가 20통이나 와 놀랐다”는 배구동호회 대표(경기지역의 한 배구동호회, 강모씨)가 있는가 하면, 빗발치는 문의에 수업을 늘린 배구교실도 있다. 9일 찾은 배구교실에서도 수강생 9명 가운데 7명이 10~30대 여성이었다. 아마추어 배구인들이 운영하는 ‘렛츠고 생활체육 배구’ 카페의 경우 지난 열흘간 회원수가 220여명 늘었고, 그중 여성 비율이 더 높았다고 한다. 배구에 빠져든 20~30대 여성들의 얘기를 들었다. “해보자, 해보자, 후회없이, 후회없이!” 김연경 선수의 작전타임 명언은 지난 7월 29일 도미니카공화국과의 승부에서 15:9로 점수차가 벌어지던 시점에 나왔다. 김연경 선수의 외침에 다른 선수들은 우렁찬 “파이팅”으로 화답했다. 김연경 선수와 선수생활을 함께했던 MBC 황연주 해설위원은 ‘해보자’와 ‘후회없이’를 반복하는 그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 “이기고 지는 걸 떠나서 그 목소리가 너무…”(황 해설위원). 이날 한국 대표팀은 5세트 접전 끝에 도미니카공화국을 눌렀다. 스포츠에 관심 없던 허가영씨(가명·20)의 마음을 흔든 건 이와 같은 ‘여자들의 파이팅’이었다. 지난해 대학에 입학한 그는 코로나19 때문에 주로 자취방에서 온라인 수업을 들었다. 홀로 지내는 날이 많아지면서 외로움에 시달렸고, 최근엔 경북 포항의 고향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다 우연히 올림픽 여자배구 경기를 보게 됐다. 그는 “여자들이 서로를 일으켜 세우는 것을 보면서 강렬한 에너지를 느꼈다, 요새 내가 무기력하게 지내왔다는 것도 새삼 깨달았다”고 했다. 지난 8월 8일 세르비아와의 동메달 결정전이 끝난 후 김연경 선수와 동료들이 서로를 격려하고 있다. / 연합뉴스 돌이켜보니 가영씨는 배구를 즐긴 적이 있었다. 고등학교 때 수행평가 때문에 배구를 했다. 패스 정확도 등을 기준으로 평가를 받았지만 나름대로 반 대항전도 펼쳤다. 경기 승패는 수행평가 점수와 관계가 없어 잠시나마 즐거웠다고 한다. 3년 전의 일인데도 그는 아련한 듯 말했다. “지금은 30명의 여자(당시 학급 친구들)를 다시 구할 수가 없잖아요. 생각해보니까 정말 좋았던 것 같아요.” 서사가 풍성한 여자배구 가영씨의 학교 커뮤니티에선 “여자배구 동아리를 만들자”는 제안이 잇따르고 있다고 한다. 그는 “아는 친구들에게 연락을 돌려 여자배구 동아리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힘을 보탤 계획”이라고 했다. 지금은 오픈채팅방을 통해 또래 여성들과 연습 일정을 논의하고 있다. 허가영씨와 동갑인 박하나씨(가명·20) 역시 배구를 배우기 위해 나선 20대 여성 중 한명이다. “인기 있는 배구카페엔 거의 다 가입했다”는 그는 “이왕이면 비슷한 처지의 또래 여성들과 운동하고 싶어 적절한 동호회를 계속 알아보는 중”이라고 했다. 지금 당장 뛰고 싶은 마음은 집 앞 공터에서 홀로 배구공을 튀기며 달래고 있다. 며칠 전 스포츠용품점을 찾아 배구공을 샀다고 한다. 배구를 배우기 위해 나선 이들 중엔 허가영씨, 박하나씨처럼 “도쿄올림픽 때 눈을 떴다”는 이들이 많았지만 “몇년 전부터 여자배구를 봐왔다”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한달째 사설 배구교실을 다니고 있는 직장인 손윤아씨(32)가 그런 경우다. 그는 “배구팀이 있는 재단의 고등학교에 다닌 덕에 배구를 접할 기회가 많았는데 대학에 들어가고 취업하면서 거의 잊고 지냈다”면서 “그러다 2~3년 전부터 여자배구를 재밌게 봤고, 다시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했다. 서울 서대문구의 한 체육관에서 배구를 배우고 있는 20대 여성이 리시브 연습을 하고 있다. / 송윤경 기자 손씨가 여자배구에 흥미를 느끼던 무렵은 여자 프로배구의 인기가 남자 프로배구를 뛰어넘은 시점과 겹친다. 사실 여자배구의 ‘물밑 인기’는 도쿄올림픽 이전부터 만만치 않았다. 특정팀의 장기독주와 용병 의존이 두드러졌던 남자배구와 달리 여자배구는 매년 치열한 승부를 펼쳐 흥행에 거듭 성공해왔다. 경기당 평균 관중 규모는 2018~2019시즌부터, TV시청률은 2019~2020시즌부터 여자배구가 남자배구를 제쳤다. 불꽃 튀는 접전이 잦기 때문일까. 여자배구는 서사가 다채롭다. 지난 시즌만 해도 그랬다. 김연경 선수를 품에 안은 흥국생명은 ‘우승 0순위’로 꼽혔지만 이재영·이다영 선수의 퇴출로 전력에 공백이 생겼다. 김연경 선수는 어떻게든 팀 역량을 끌어올리려 분투했으나 승자는 단단한 팀워크의 GS칼텍스였다. 여자배구 ‘찐팬’을 자처하는 직장인 김은영씨(가명·35)가 꼽는 매력도 바로 ‘서사’다. 그는 “우주스타인 김연경 선수도 물론 좋아하고 올림픽 경기도 모두 짜릿했지만, 마음을 가장 울린 건 올해 초 김유리 선수 인터뷰였다”고 말했다. 김유리 선수는 11년 전 입단한 흥국생명에서 한 선배에게 괴롭힘을 당하며 가시밭길을 걷게 된 인물이다. 코트를 떠나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다, 여러팀을 거쳐 현재 GS칼텍스에서 뛰고 있지만 주목받지 못했다. 자신에게 ‘고난’을 안겼던 흥국생명에 승리를 거둔 날, 그는 ‘오늘의 선수’로 뽑혀 방송 인터뷰를 했다. “저는 (이런 인터뷰를) 평생 못할 줄 알았어요.” 이때 GS칼텍스 선수들은 김유리 선수 앞에 옹기종기 모여 그를 응원하는 ‘자매애’를 보여줬다. 당시 사진이 최근 SNS에서 다시 공유되고 있다. 지난 8월 9일 터키의 비영리단체인 환경단체연대협회(CEKUD)가 한국 여자배구 팬들의 묘목 기부에 대한 감사 메시지를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 CEKUD 홈페이지 캡처 김은영씨는 “선수마다 성장사가 있고, 또 선수끼리의 케미를 보는 것도 재미있다”면서 “요즘 SNS엔 자기가 좋아하는 팀, 좋아하는 선수를 ‘영업’하기 위한 글이 많다”고 했다. 트위터를 중심으로 불어난 여자배구 팬들은 최근 선행도 펼쳤다. 8강전에서 한국에 패배한 터키 선수들은 ‘산불로 힘든 터키인들을 웃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못 지켰다며 주저앉아 통곡했다. 이때 트위터에선 ‘터키에 묘목을 기부하자’는 아이디어가 삽시간에 퍼졌고, 많은 이들이 ‘김연경’, ‘팀 코리아’ 등의 이름으로 기부에 동참했다. 여자배구 기념품 판매량도 치솟고 있다. 배구 국가대표팀 공식스토어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엔 유니폼 주문이 한달에 한건 들어올까 말까 하는 수준이었는데 지금은 주문량을 소화하기가 버거울 정도”라고 말했다. 배구하는 여자가 멋있다 “여자배구가 내 마음속에 불꽃을 일으켜준 것 같다”고 말하는 양여진씨(25)도 최근 팬 티셔츠와 달력을 구입했다. 대학원 시험을 준비 중인 그는 “김연경 선수와 여자배구팀을 보면서 지금의 ‘힘듦’도 인생에 필요한 것이고, 결국 부딪쳐나가야만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했다. 그는 기념품 구입에 이어 ‘○○지역에서 함께 배구 연습할 20대 여성을 찾는다’라는 글도 배구 카페에 올렸다. 그는 앞으로 ‘보는 배구’와 ‘하는 배구’를 모두 누리고 싶다고 말한다. 배구 국가대표팀 공식스토어 측이 최근 주문과 관련한 문의전화가 빗발치자, 추가로 공지사항을 게시했다. / 대한민국 배구국가대표팀 공식스토어 캡처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스포츠 종목엔 늘 ‘반짝 관심’이 잇따랐다. 이번 배구 열풍 역시 찰나의 현상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페미니즘 대중화 이후의 흐름을 볼 때 스포츠에 대한 여성들의 관심 자체는 쉽게 식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손희정 대중문화평론가는 “여성들 사이에서 불고 있는 배구 열풍은 하루아침에 등장한 것이 아니다. 페미니즘 대중화 이후 5~6년간 ‘스포츠하는 여자가 멋있다’는 공통의 감각이 만들어져 온 것과 관련이 있다”고 지적했다. 몸 단련과 땀 흘리는 운동을 즐기는 여성이 대거 등장한 흐름과 최근 여성들의 ‘배구 열광’이 맞닿아 있다는 얘기다. 여성 스포츠 스타만을 내세운 <노는 언니>, ‘민경장군’(코미디언 김민경)을 발견한 <시켜서 한다! 오늘부터 운동뚱>, 여성 방송인들이 축구하는 <골 때리는 그녀> 등이 큰 호응을 얻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난 8월 9일 배구교실에서 만난 박자영씨는 “여자배구 대표팀이 올림픽 준비를 할 때쯤” 배구를 배우기 시작했다. 사실 이 무렵 여자배구 대표팀은 우려의 시선을 받는 처지였다. 올림픽 전초전 격의 VNL(발리볼네이션스리그)에서 ‘3승 12패’의 저조한 성적을 거뒀기 때문이다. 그러니 4강 진출은 그야말로 대역전 드라마였다. 배구공을 든 박자영씨는 “끝까지 열심히 한 그들을 닮고 싶다”고 했다. “좋아요. 공을 끝까지 따라왔기 때문에 기회가 생긴 거예요. 안 왔으면 기회가 없었을 거예요.” 누군가 어려운 리시브에 성공하자 강사가 말했다. 박씨는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표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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