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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부터 신전까지...‘이집트’ 고대 유적을 향해 떠난 특별한 여행(2024. 01. 29 05:30)
2024. 01. 29 05:30 문화/과학
아부심벨 대신전으로 불리는 람세스 2세 신전 전경/김찬호 기자 여행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시대의 대세는 자유여행이다. 규모도 나 홀로 혹은 소수가 함께 떠나는 정도로 단출해졌다. 인터넷 검색 한두 번이면 현지 사정을 훤히 알 수 있는 만큼 더 이상 ‘우르르’ 몰려다닐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실제로 단체여행으로 모집하지만 현지에서 보내는 시간 대부분은 자유인 상품도 있다. 그런데 여전히 이러한 방식이 통용되지 않는 곳도 분명히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치안이 불안정한 경우다. 또 볼거리는 많은데 관련 정보가 제한된 경우도 있다. 혼자서는 제대로 된 관광이 어려운 사례다. 대개 둘 중 한 가지 문제가 자유여행의 발목을 잡는데 가끔씩 이 모든 상황이 겹쳐서 나타날 때도 있다. 가보고는 싶은데 안전한지 모르겠고, 섣불리 갔다가 무엇 하나 제대로 보지 못할 것만 같은 곳, ‘이집트’가 그렇다. 이집트는 많은 사람들이 꼭 한번 가보고 싶은 여행지로 꼽는 곳이다. 영화 <인디아나 존스> 등을 통해 묘사된 이집트는 피라미드, 스핑크스, 미라 등 상상력을 자극하는 요소들로 가득하다. 문제는 한국과는 1961년부터 영사 관계를 수립했지만 생각보다 알려진 것이 없다는 점이다. 일부 유튜버 등을 통해 정보가 전달되지만 이때 보여지는 이집트는 호객과 인종차별만 가득한 곳이다. 이처럼 가보고 싶다는 ‘바람’과 ‘망설임’이 교차하는 상황은 점차 이집트를 닿을 수 없는 신기루로 만들어 갔다. 그런데 이때 누군가 이 문제의 답을 내기 시작했다. 올해로 4년째를 맞은 ‘이집트 문명 탐사’의 등장이다. 이집트 기자 지역에 있는 피라미드와 스핑크스/김찬호 기자 기본적으로 ‘2024 이집트 문명 탐사’는 ‘단체여행’이다. 10명 단위로 움직이는 일반 ‘패키지여행’과는 규모가 다르다. 참여 인원만 32명이다. 나이도, 성별도, 직업도 모두 다른 사람들이 마치 학창 시절 수학여행 가듯 2주 가까이를 함께 움직인다. 목표는 오직 고대 이집트가 남긴 유적을 둘러보는 것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제대로 시대를 역행한 여행이다. 그런데 특별한 인솔자가 나타나 단체여행에 당위성을 부여한다. ‘애굽민수’라는 별칭으로도 유명한 곽민수 한국이집트학연구소 소장이다. 곽 소장이 인솔자로 나서며 평범한 단체여행은 특별한 ‘탐사’가 됐다. 실제로 1년에 딱 두 차례 열리는 이 여행에 참여하기 위해 누군가는 신청 재수를 했다. 지난해 신청 시작과 함께 곧바로 마감됐기 때문이다. 또 다른 누군가는 경향신문 후마니타스연구소에서 열린 곽 소장 강의를 듣는 등 이집트에 대한 예습 과정을 거쳤다. 이들 역시 여행지만 바꾸면 더 편하고 값싸게 자유여행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안다. 그럼에도 32명의 참가자는 더 많은 비용, 시간을 들여 이집트를 선택했다. 생애 첫 해외여행으로 ‘이집트 문명 탐사’를 선택한 사람도 있다. 이쯤 되면 이 여행의 정체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1월 2일부터 14일까지 이들의 11박13일 일정에 동행해 봤다. 일정: 따라만 다녀도 보인다 ‘이집트 문명 탐사’ 일정 중 가장 비싼 입장권 가격을 지불을 네페르타리 무덤 내부 모습/김찬호 기자 “이것은 관광인가, 학술 답사인가.” 이집트에 도착한지 하루 만에 머릿속을 스친 생각이다. 사실 ‘이집트 문명 탐사’는 참가자들에게 특별한 자격을 요구하지 않는다. ‘문명 탐사’라는 수식어가 붙지만 역사학과나 유관 전공자들을 대상으로 한 것은 아니란 의미다. 이집트에 대한 관심만 있다면 누구에게든 열려 있다. 심지어 그것이 고대 이집트 문명에 대한 관심이 아니어도 된다. 단지 이집트를 한번 가보고 싶었다는 마음이면 충분하다. 탐사를 이끄는 곽 소장을 만나보고 싶다는 ‘팬심’으로 출발해도 환영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이 여행은 분명 관광이다. 문제는 일정에서 생기는 반전이다. 11박13일의 일정을 꽉 채우고 있는 것은 피라미드, 무덤, 신전 등의 유적지나 박물관 방문이다. 이집트 하면 떠오르는 낙타 타기나 사막에서 하는 샌드보딩(모래 언덕 위에서 보드를 타고 내려오는 스포츠) 같은 건 일정에서 찾아볼 수 없다. 유적방문으로 꽉 찬 일정은 마치 고대 이집트 관련 유적을 하나라도 더 보자고 외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실제로 일행들 사이에선 “힘내서 무덤, 신전 하나라도 더 가자”라는 우스갯소리가 종종 흘러나왔다. 이런 점에서 보면 이 여행은 분명 답사다. ‘2024 이집트 문명 탐사’ 이동 동선/김찬호 기자 마치 말장난 같지만 ‘이집트 문명 탐사’는 분명 관광과 답사 그사이 어딘가쯤에 있다. 일정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뜯어보면, 이는 더욱 잘 드러난다. 우선 전체 일정을 기획한 이는 곽 소장이다. 한국에 단 두명만 있다는 이집트학 전공 전문가 중 한명이다. 그는 일정 내내 입버릇처럼 “여러분에게 고대 이집트를 하나라도 더 보여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실제로 해당 기간 동안 방문한 유적지가 40여 곳이 넘는다. 이동거리로 환산하면 좀 더 직관적인 이해가 가능하다. 이집트 내에서는 비행기, 고속버스 등을 이용해 이동한다. 나일강을 따라 이집트 북부부터 남부까지를 훑어보는 동선이다. 큰 도시 위주로 보면, 카이로-아스완-아부심벨-룩소르-카이로로 돌아오는 일정이다. 이 거리만 2000㎞가 넘는다. 그 사이사이 들른 콤 옴보, 에드푸, 에스나, 덴데라, 아비도스 등을 포함하면 거리는 더 늘어난다. 모두 합치면 서울에서 부산을 3번 왕복하고도 남는 거리다. 동선에는 분명한 의도가 있다. 카이로공항에 내리자마자 일행이 향한 곳은 호텔이 아니었다. 곧바로 카이로에서 25㎞ 정도 떨어진 ‘멤피스’라는 곳으로 간다. 기원전 3100년 무렵 상·하로 분열됐던 이집트가 통일된 후 첫 번째 수도로 사용한 곳이다. 이집트 멤피스 야외박물관에서 전시 중인 람세스 2세 거상/김찬호 기자 고대 이집트인들은 멤피스가 내려다보이는 나지막한 고원에 죽음의 신 ‘소카르’의 이름을 지명으로 붙이고 무덤을 만들었다. 이곳이 탐사단이 두 번째로 향한 ‘사카라’다. 제3왕조 시기 만들어진 최초의 피라미드인 ‘계단식(조세르) 피라미드’를 볼 수 있었다. 이튿날에는 다슈르와 기자 지역을 방문했다. 다슈르에서 제4왕조 시기의 굴절 피라미드, 붉은 피라미드를 봤다. 기자에서는 역시 제4왕조 시기 쿠푸 파라오의 대피라미드를 방문했다. 독특한 점은 하루 뒤 다시 사카라를 찾았다는 것이다. 동선으로만 보면 분명히 비효율적이다. 다만, 두 번째 찾은 사카라에서는 보는 것이 달라진다. 제5왕조의 마지막 파라오인 우나스와 제6왕조를 개창한 파라오 테티의 피라미드를 본다. 이쯤 되면 머리로 외워서가 아닌 눈으로 봐서 알게 되는 것이 있다. 이집트 피라미드는 계단식→굴절→삼각뿔 형태로 진화했다는 것이다. 또 그 규모는 제4왕조 대피라미드를 정점으로 점점 작아진다는 사실이다. 여기까지 확인하면 카이로에서의 1차 일정이 끝난다. 놀라운 점은 이집트 역사를 고왕국-중왕국-신왕국-말기왕조 순서로 나눈다고 했을 때 ‘고왕국’ 유적 답사 일정도 동시에 끝이 났다는 점이다. 이집트 제3왕조 시기 만들어진 최초의 피라미드인 ‘계단식(조세르) 피라미드’/김찬호 기자 제4왕조 스네페루 파라오가 만든 굴절 피라미드/김찬호 기자 제4왕조 시기 확립된 삼각뿔 형태의 피라미드/김찬호 기자 이는 철저히 의도한 결과다. 실제로 같은 방식으로 아스완에서는 중왕국 시대를 중심으로 보고 아부심벨, 룩소르에서는 신왕국 시대 유적을 중심으로 탐방한다. 마지막 카이로 2차 일정에서는 이집트의 근현대인 이슬람 시대를 둘러보는 식이다. 이를 통해 이집트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했던 사람도 시대 변화를 눈으로 익히게 된다. 쉽게 말해, 관광처럼 따라다니기만 했는데 나도 모르게 이집트 역사를 모두 조망한다는 것이다. 동선을 이유로 유적을 뒤죽박죽 본 뒤 ‘나는 아는 것이 없다’로 결론 내는 여행과 분명히 차별화된다. 그런데 이런 일정은 애초에 품었던 궁금증을 더욱 증폭시킨다. 이집트 역사를 보고, 듣고 있는 이들은 대체 누구인가, 왜 즐길거리로 가득한 관광을 두고 이런 여행을 선택했나 등이다. 실제로 탐사 초반에는 이집트 유적이 눈길을 사로잡았다면 뒤로 갈수록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뙤약볕 아래서 곽 소장의 설명을 들으려 애쓰는 사람들이었다. 이집트 룩소르 왕들의 계곡에 있는 투탕가멘 무덤 내부 모습. 현실(좌측)과 투탕카멘 미이라/김찬호 기자 사람: 이들은 누구인가 룩소르 왕들의 계곡 내에 있는 투탕카멘 무덤 앞에서 설명하고 있는 곽민수 한국이집트학연구소 소장. 참가자들이 뙤약볕 아래서 설명을 듣고 있다./김찬호 기자 평균 나이 41.6세. 23세 최연소부터 66세 최고령까지. 40년의 세월을 초월해 탐사 동료가 된 참가자들의 나이 분포다. 직업을 보면 더욱 다채롭다. 회사원, 선생님, 유학생, 관광 가이드부터 전직 요리사, 아쿠아리스트(수족관에서 수중생물을 기르고 관리하는 일)까지 있다. 이중 이집트나 역사와 직접 관련된 일에 종사하는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애써 작은 접점이라도 찾는다면 대학에서 고고미술사학을 전공한 사람이 유일하다. 특별한 관련이 없지만 이들이 이집트를 찾은 동기는 저마다 흥미롭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2년 연속 탐사에 참여한 두 사람이다. 이중 김한별씨는 “지난해에는 설명을 듣느라 정신없이 보냈다면, 올해는 좀더 여유롭게 둘러보고 사진도 많이 찍기 위해 왔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이와 유사하게 가족이 먼저 와보고 추천을 한 사례도 있다. 공세정씨는 “지난해에 어머니가 먼저 이집트 문명 답사를 와보시고, 꼭 가보라고 추천해서 오게 됐다”며 “평소 곽 소장님이 나오는 유튜브를 즐겨 봤는데 함께 이집트를 여행하며 설명을 들을 수 있어서 만족한다”고 말했다. 공부를 위해 온 사람도 있다. 영국 런던에서 한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가이드 일을 하고 있는 이보은·김지혜 부부다. 곽 소장이 설명을 시작하면 이씨는 쉴 새 없이 공책에 설명을 필기한다. 김씨 역시 태블릿으로 사진을 찍고, 글, 그림 등을 이용해 메모를 했다. 이동하는 버스에서는 들은 내용에 대한 정보를 주고받거나 감상을 공유했다. 참가 이유를 묻는 질문에 대한 이씨의 대답은 인상적이다. “영국 내 박물관에는 이집트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는 곳이 많은데 관광객들에게 이를 설명할 때면 ‘내가 이집트에 가보지도 않고 이 유물들을 설명하는 것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이번 탐사를 통해 보고 배워서 보다 생생한 설명을 전달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영국 런던에서 가이드 일을 하고 있는 이보은씨. 곽 소장의 설명을 메모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김찬호 기자 영국 런던에서 가이드 일을 하고 있는 이보은씨의 노트. 곽 소장의 설명을 정리한 내용으로 가득하다./김찬호 기자 의미를 따졌을 때 주목할 만한 참가자는 ‘인생의 전환점’을 맞은 이들이었다. 전직 아쿠아리스트인 최환준씨는 대학원 진학을 앞두고 있다. 최씨는 “입학이 결정되고, 시간 여유가 생긴 차에 무엇을 해볼까 고민했다”며 “마침 이집트 문명 탐사 모집 광고를 보게 됐고, 곽 소장님 설명도 들을 수 있다고 해서 곧바로 신청했다”고 말했다. 요리사를 그만두고 고향으로 내려갈 준비를 하고 있는 박석주씨 역시 유사하다. 출국 이틀 전까지 일을 해야 했던 박씨는 “자유여행을 준비할 시간은 없고, 어디론가 떠나고는 싶었는데 마침 이집트 문명 탐사 광고를 보게 됐다”며 “쉽게 올 수 있는 곳도 아니고 운명이란 생각이 들어서 기회를 잡았다”고 말했다. 프랑스 유학 중 곧바로 현지로 합류한 박찬웅·이주현 부부는 올해 귀국을 예정하고 있다. 2017년 유학을 시작해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는데 매진한 이씨는 “귀국을 앞두고 유럽과 가까운 나라들을 가보자는 생각에 참여하게 됐다”고 동기를 설명했다. 이들 외에도 “어릴 적부터 이집트를 가보는 것이 꿈이어서”, “정체된 삶에 자극을 주고 싶어서”, “관련 대학원 진학을 고민하고 있어서” 등 다채로운 동기를 들을 수 있었다. 다만 참가 동기에서 이집트와 특별한 인연이 있는 경우는 없었다. 그럼에도 여행이 끝난 후 이들의 만족감은 높았다. 최연소 참가자인 김용인씨는 이집트가 생애 첫 해외여행이었다. 남들보다 조금 빨리 일을 시작한 김씨는 부모님 도움 없이 직접 번 돈으로 경비를 마련했다. 그는 “원래 역사를 좋아하기도 하고, 이집트 유적들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다는 생각에 참가했는데 아주 만족한다”며 “무엇보다 여러 피라미드에 직접 들어가 본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최고령 참가자인 박종곤씨는 빡빡한 일정 속에서도 새벽에 일어나 그날 방문할 유적지를 공부할 정도로 열성적이었다. 박씨는 “이집트에 오기 전까지는 기원전이라는 시간이 멀고, 허구적으로만 느껴졌는데 막상 그 시기에 만들어진 피라미드, 스핑크스 등을 보고 나니 굉장히 현실적으로 다가온다”며 “체력적으로도 충분히 참여할 만했다”고 말했다. 4년 전 한 달간 이집트를 자유여행했던 이혜진씨의 평가에서도 만족감은 드러났다. 이씨는 “혼자 한 달 동안 본 유적보다 이번 문명 탐사에서 본 유적 수가 더 많았다”며 “이제는 매년 오고 싶어질 것 같다”고 말했다. ‘2024 이집트 문명 탐사’의 최연소 참가자 김용인씨. 그는 생애 첫 해외여행을 이집트로 왔다./김찬호 기자 정리하면 이렇다. ‘이집트 문명 탐사’라고 특별히 이집트와 관련이 있거나 유관 전공자들이 참가한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본업에 충실하며 잠시 덮어뒀던 관심을 이번 기회에 끄집어낸 사람이 많았다. 오히려 이러한 상황이 이들을 더욱 열성적으로 참여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만족 일색인 후기 역시 해당 관점으로 이해해볼 수 있다. 게다가 이 여행은 참가자들이 좋아할 만한 분명한 특징이 있다. ‘단체여행’에서 나타나는 대표적인 세 가지 악습의 부재다. 특징: 3무(無) 여행 이집트 문명 탐사가 관광인지, 답사인지는 명확히 정의하기 어렵다. 참가하는 사람이 어떻게 느꼈느냐에 따라 결론이 극명하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적지를 돌아보는 것이 ‘관광’아니냐”고 답하는 참가자도 있었다. 다만, 이 여행의 특징은 명확히 알 수 있다. 이는 단체여행을 망설이게 하는 요소들의 부재로 드러난다. 첫 번째 없는 것은 ‘강제 쇼핑’이다. 애초에 쇼핑 항목은 일정에 들어가 있지도 않다. 이집트에 체류하는 마지막 날 딱 한 번 시장 방문이 있기는 하다. 이마저도 65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집트 칸 엘-칼릴리 시장 탐방에 가깝다. 바쁘게 돌아가는 일정을 소화하다 보면 이런 생각이 스치듯 들 때는 있다. “잠깐 쇼핑이라도 하면서 쉬는 것이 나쁘지 않을지도….” 두 번째 없는 것은 ‘추가비용’이다. 비행시간을 제외하면 이집트에서만 11일을 머물지만 특별히 ‘돈 쓸 일’이 없다. 이집트는 물을 포함해 식사 때도 음료를 사서 마셔야 한다. 이때를 제외하면 입장료를 포함한 모든 것이 이미 지불한 금액에 포함돼 있다. 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애매한 가이드 팁 같은 것도 있을 리 없다. 애초에 이 여행은 수익 사업과는 거리가 있다. 이는 탐사 빈도에서 드러난다. 매해 1월 전반기/후반기 딱 두 번만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돈과 관련한 불쾌한 일은 발생할 수가 없다. 무엇보다 세 번째 없는 것이 참가자들의 만족감을 극대화한다. ‘사람’이다. 구체적으로는 ‘비협력자’다. 애초에 이 여행 참가자는 두 가지 자기 검열을 거친다. 우선, ‘비용’이다. 여타 이집트 단체여행보다는 높은 가격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가지 않는 곳을 간다. 콤 옴보, 에드푸, 에스나 등을 가는 것은 이 여행밖에 없다. 이상한 곳을 간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의심할 필요가 없다. ‘애굽민수’와 함께하는 여행이다. 고대 이집트에 대한 이해를 위해 이곳에 가야 하는 이유가 반드시 있다. 실제로 곽 소장은 현장에서 방문한 이유를 쏟아낸다. 다른 하나는 ‘시간’이다. 직장인이 2주 가까이 시간을 낸다는 것은 큰 결심이다. 이들 요소를 종합해보면 참가자들은 최대한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배우려는 의지로 가득한 사람들만 남는다. 실제로 11일의 시간 동안 아침 집결 시간에 지각하는 사람이 한명도 없었다. 애초에 실패할 확률이 적은 여행이었던 것이다. 이를 반대로 설명하면, 여행하며 보고 배우기를 즐기는 사람들이 고스란히 동료로 남는다는 것이다. 이는 ‘이집트 문명 탐사’가 주는 또 하나의 선물이다. 지난 1월 2일부터 14일까지 이집트 문명 탐사를 함께한 32인의 참가자와 곽민수 한국이집트학연구소장, 오경세 ET1 팀장, 야신 이집트 현지 가이드 / 김찬호 기자 여행이 단조로운 일상을 멈추고, 나를 낯선 곳에 던져 보는 작업이라면 이를 통해 얻어야 할 것은 ‘어제와 다른 오늘’이다. 이집트에서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탐사팀이 모인 단체 대화방에는 계속해서 새 글이 올라온다. 현지에서 찍은 사진을 공유하거나 이집트에 관해 새로 알게 된 정보를 알리는 내용들이다. 함께 이집트로 떠난 32인이 모인 단체 대화방도, 아무 관심도 없던 이집트 관련 다큐를 찾아보고 있는 나를 발견하는 시간도 모두 이집트로 떠나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던 것들이다. 그렇게 단조롭던 일상에 작은 변화가 생겼다. 이는 일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이집트 문명 탐사’를 추천할 수밖에 없는 이유기도 하다. *‘이집트 문명 탐사’ 기간 둘러본 유적지에 대한 소개는 별도 기사 “애굽민수가 추천하는 ‘이집트에 간다면 꼭 가봐야 할 유적 5곳’”을 통해 확인해 볼 수 있다.
특집
[이기환의 Hi-story](115)나라님도 ‘와유’할 때 금강산 직접 여행한 제주 여인·14세 소녀(2024. 01. 02 07:08)
2024. 01. 02 07:08 문화/과학
‘와유(臥遊)’라…. 국립춘천박물관이 지난해 12월 초부터 상설전시관 2층 브랜드존에서 <이상향으로의 초대 금강산과 관동팔경> 관련 작품 전시를 시작했습니다. 요즘 국립박물관의 ‘핫템’인 ‘고 이건희 회장 기증품’인 ‘단발령망금강산’(정선·1676~1759) 등 9건이 특별 출품됐답니다. 저는 전시회 설명 중 ‘누워서 노닌다(즐긴다 혹은 감상한다)’는 뜻인 ‘와유(臥遊)’라는 용어에 이른바 꽂혔습니다. ‘와유’는 중국 남북조 시대 송나라의 종병(375~443)과 관련된 성어인데요. 종병은 벼슬길도 마다하고 산수를 유람했던 은사였습니다. 그러다 늙고 병들어 다닐 수 없게 되자 대안을 마련했는데요. “예전에 다녔던 명승지를 모두 그림으로 그려 벽에 걸어놓고 누워 감상하며 노닐었다(臥以游之)”(<송서> ‘열전·종병’)는 겁니다. 겸재 정선의 ‘금강전도’(국보). 다시 그려봐야 이보다 잘 그릴 수 없다는 작가의 자부심이 배어 있다. 그렇게 잘 그렸으니 머리맡에 기대어 실컷 보라고 자랑했다. 개인소장·리움미술관 제공 ■‘눕방’으로 상상여행 조선조 실학자 성호 이익(1681~1763)의 ‘와유 찬양론’을 보죠. “와유란 몸은 누워 있지만 정신은 노니는 것… 직접 보지는 못하기 때문에 상상에 근거해야… 마음과 눈에 도장 찍히듯… 앉은 자리에서 감상해도 마음은 간다.”(<성호전집> ‘와유첩발’) 그림 속 풍경을 찾아가는 게 아니라 그림을 통해 마음의 유람을 즐긴다고 한 겁니다. 문신 신정하(1680~1715)는 정선의 금강산 그림을 보고 찬탄했습니다. “정선의 (금강산) 화첩을 보고 어루만지며 상상하니 깊고 높은 물과 산에서 정신이 노니는 듯하고….”(<서암집>) 또 정선의 ‘금강전도’(국보)에도 재미있는 글이 실려 있습니다. “일만이천 봉 드러난 뼈를 뉘라서… 참모습 그려 내리… 설령 내가 발로 직접 밟아 보자 한들 이제 다시 두루 걸어야 할 터, 그 어찌 머리맡에 기대어 실컷 봄만 같으리오(縱令脚踏須今遍 爭似枕邊看不慳).” 정선이 ‘다시 그린들 이보다 잘 그릴 수 있겠느냐, 차라리 이 그림을 머리맡에 두고 보는 게 낫다’고 자화자찬하고 있습니다. ■정조가 누워 감상한 산 그림 꼼짝없이 구중궁궐에 ‘붙잡혀’ 정사를 펼쳐야 했던 임금들은 어떠했겠습니까. 예컨대 정조는 1788년 단원 김홍도(1745~1806?)·김응환(1742~1789)에게 “금강산의 풍경을 그려오라”는 명을 내립니다. “김홍도는 임금의 명을 받들어 비단 화폭을 가지고 금강산에 들어가 연 50일 머물면서 일만이천 봉과 구룡연 등 여러 경승을 잘 살펴보고 형상을 본떠 수십 장 길이의 두루마리로 만들었다.”(서유구의 <임원경제지> ‘이운지’) 이때 그린 김홍도의 ‘금강산도’는 수십 길, 즉 40~50m 되는 두루마리 대작이었다는 얘기입니다. 현재는 화첩 형식의 초고본(5권 70장)이 남아 있습니다. 소문난 ‘일벌레’, ‘책벌레’였던 정조는 밤늦게까지 책을 읽고, 정사를 펼치다가 틈틈이 김홍도의 대작 ‘금강산도’를 보고 마음의 유람, 즉 ‘와유’을 즐겼을 겁니다. 정조는 1788년(정조 12) 단원 김홍도·김응환에게 “금강산의 풍경을 그려오라”는 명을 내린다. 서유구는 “김홍도가 임금의 명을 받들어 50일 머물면서 수십 장 길이의 두루마리 금강산 그림을 그렸다”(<임원경제지> ‘이운지’)고 전했다.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자료 14세에 불과했던 김금원은 남장 차림으로 여행을 떠난다. 충북 단양팔경 중 하나인 ‘옥순봉’을 둘러보며 “시인들은 풍월 읊느라 잠시의 틈도 없고 조물주는 인간을 시기해서 산 밖으로 쫓아냈네. 산새는 산 밖의 일을 알지 못하고 봄빛은 숲속에 있다고 지저귄다”고 읊었다. 국립중앙박물관·연세대도서관 소장 ■‘18세기 셀럽’ 여성 이럴 때 사대부·선비는 물론 임금조차 ‘와유’로 대리만족하는 판이었는데요. 그럴 때 “떠나볼까” 하고 길을 나선 여성 두 분이 있었답니다. 그것도 “산천에서 놀이를 즐기는 부녀자는 장 100대에 처한다”(<경국대전>)는 규정이 있는데 말입니다. 실화입니다. 먼저 제주 출신인 김만덕(1739~1812)을 소개해보죠. 이분 이야기는 정사인 <정조실록>, 정조의 일기인 <일성록>, 명재상 채제공(1720~1799)의 시문집(<번암집> ‘만덕전’), 유학자·실학자인 다산 정약용(1762~1836)의 <다산시문집>에 실려 있습니다. 그만큼 당대의 ‘셀럽’이었다는 거죠. 김만덕은 “제주 남자와는 혼인하지 않겠다”고 과감히 선언하며 독신을 고수한 ‘원조 비혼녀’였는데요. 뛰어난 장사수완으로 큰 부자가 됐답니다. 1795년(정조 19) 김만덕 인생에서 큰 전기가 마련됩니다. 제주에 큰 기근이 들어 굶어죽는 사람이 속출했답니다. 이때 김만덕은 천금을 들여 백성을 구휼했습니다. 1796년 제주목사 유사모(1750~?)가 장계를 올려 김만덕의 선행을 보고했습니다. 그러자 정조가 “너의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명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김만덕의 대답이 전혀 뜻밖이었습니다. “저는 늙고 자식도 없습니다. 신분을 바꿀 마음도 없습니다. 그저 육지로 나가 한양 구경을 하고 싶을 따름입니다. 금강산도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 정조는 흔쾌히 “그렇게 하라”고 허락했습니다. 대단하죠. 푸짐한 상금도, 신분상승도 원하지 않고 그저 ‘한양 구경, 금강산 유람’을 소원으로 내세웠으니 얼마나 파격적인 발언입니까. ■“만덕에게 ‘갑질’하면 안 된다” 국립춘천박물관이 상설전시실 2층 브랜드존에 마련한 전시(‘이상향으로의 초대, 금강산과 관동팔경’). 이 자리에는 고 이건희 회장의 기증품 9건 9점이 출품되었다. 국립춘천박물관 제공 정조는 김만덕의 한양 및 금강산 유람을 위해 파격적인 대우를 해주었답니다. “마침 한겨울(1796년 음11월)이라 (금강산 여행을) 떠날 수 없었다. …봄이 올 때까지 양식을 주고 곧바로 내의원의 차비대령인 행수 의녀로 충원하라. 그래서 수의(首醫·어의)에 소속시켜 각별하게 돌봐주라.” 정조는 만덕을 임금의 주치의인 어의의 휘하에 두도록 특전을 베풀었습니다. 자칫 김만덕을 질투하는 자들이 ‘갑질’을 하지 않을까 해서 “만덕을 건드리지 말라”고 조치를 취한 거죠. 그뿐이 아닙니다. <일성록> 1796년 11월 28일자는 “규장각 초계문신을 대상으로 한 시험에 ‘(김)만덕’이라는 시제를 냈고, 그 시험에서 서준보(1770~1856)가 수석을 차지했다”고 했습니다. ‘만덕’을 시제로 시험을 치를 정도였던 겁니다. 정조는 “만덕이 금강산 여행을 마치고 돌아갈 때도 후히 대접하라. 만덕이 지나가는 각 도의 관찰사는 양식과 경비를 넉넉히 전하라”는 특명을 내렸습니다. 김만덕은 정조 임금의 보살핌 속에서 1797년 늦봄 꿈에 그리던 금강산 유람을 떠납니다. “김만덕은 금강산 만폭동과 중향봉 등 절경을 두루 찾아다녔다. 안문령-유점사를 거쳐 해금강 삼일포에서 뱃놀이를 한 뒤 총석정(통천)까지 두루 구경한 뒤 한양으로 돌아왔다.” ■“눈동자가 두 개래” 김만덕의 일거수일투족은 당시 한양에서 엄청난 화제를 뿌렸습니다. <만덕전>(김만덕의 전기)을 쓴 채제공은 “만덕을 둘러싼 소문이 장안에 널리 퍼져 사람들이 다투어 그를 만났다”고 기록했습니다. 정약용의 <다산시문집>(‘변·중동에 관한 변증’)은 김만덕을 둘러싼 ‘오해와 진실’을 소개하면서 실소하는데요. 즉 한양으로 올라온 김만덕이 “내 눈은 중동(重瞳·눈동자가 두 개)”이라 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김만덕의 눈을 보려는 이들로 ‘줄을 서시오’를 외칠 만큼 길었는데요. 호기심을 참지 못한 정약용 역시 만덕을 초청해 그의 눈을 자세히 살펴보았답니다. 그러나 ‘중동’이 아니었답니다. 김만덕 스스로도 잘못 알고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도 한양 사람들은 김만덕의 말만 철석같이 믿었다는데요. 정약용은 “아무리 내가 아니라고 해도 사람들은 ‘만덕의 눈이 중동이 맞다’고 하는데. 사람들이 이렇게 허언을 믿으니…”라며 혀를 찹니다. 우상으로 떠오른 김만덕이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사람들이 맹목적으로 믿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어쨌든 김만덕이 금강산·한양 호화여행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갔는데요. 그때가 58세였습니다. 김만덕은 자신을 보살펴준 채제공에게 “이제 이승에서는 볼 수 없겠다”고 눈물을 흘렸는데요. 채제공은 “울지마라”면서 지당한 한마디를 남깁니다. “너는 제주에서 나고 자랐으니 한라산 백록담 물을 떠 마셨을 것이고, 지금 또 금강산을 두루 답사했다. …천하의 남자 중에 이렇게 유람할 수 있는 사람이 있겠느냐. 그런데 이별하는 자리에서 도리어 아녀자의 수다스러운 태도를 보이다니….” ■14세 소녀의 “떠나볼까?” 단원 김홍도가 정조의 명으로 금강산을 답사한 뒤 길이 40~50m 달하는 ‘금강산도’를 그렸다. 그러나 그 두루마리 그림은 전해지지 않는다. 대신 단원이 정조의 명으로 ‘금강산도’를 그리기 위해 사전에 초본(밑그림)을 남겼는데, 이것이 <해동명산초본첩>이다. 금강산 그림을 ‘와유’하고싶은 정조의 명에 부응하듯 사진에 가까울 정도로 치밀한 필치를 보여준다. 원래 60면이었는데 국립중앙박물관에는 32면이 남아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또 한 분 ‘떠나볼까?’ 하고 훌쩍 행장을 꾸린 신여성이 있었으니, 불과 14세의 김금원(1817~?)이었습니다. 원주 출신인 김금원의 신분은 기녀였습니다. 부모는 그러나 금원을 마냥 여자아이로만 키우지 않았습니다. “부모가 가사나 바느질 같은 여자아이의 일을 시키지 않고 문자를 가르쳤다. 덕분에 유교 경전과 역사서를 통하고 고금의 문장도 본받게 됐다.”(<호동서락기>) 금원은 보통내기가 아니었습니다. 조선 여성으로서 부녀자의 도리를 단호히 거부하면서 담장 밖 여행을 추구했습니다. “여자가 깊숙한 규방에서 살면서 식견을 넓히지 못한 채 결국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면 얼마나 슬픈 일이냐.” 김금원은 “남자로 태어나지 않은 것은 불행이지만 하늘은 나에게 산수를 즐기는 어진 성품과 눈과 귀로 보고 듣고 느낀 바를 글로 쓸 수 있는 능력까지 주었다”고 했습니다. 물론 14세 어린 딸의 여행을 선선히 응할 부모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항복하고 말았습니다. 소녀 김금원은 ‘마치 새장에 갇힌 새가 나와 푸른 하늘을 날아오르고, 천리마가 굴레를 벗고 천 리를 달리는 기분’이라 했습니다. ■덧없는 인생을 노래한 14세 소녀 김금원의 여행을 두고 다른 견해도 있습니다. 김금원이 원주 감영의 기녀 신분으로 참여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합니다. 물론 김금원이 사대부들의 유람에 시와 문장을 담당한 기녀로서 동행했을 수도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호동서락기>는 분명 금원이 남장을 하고 여행길에 올랐다고 했습니다. “때(1830)는 춘삼월 내 나이 14세, 머리를 동자처럼 땋고 수레에 앉았다. 충북 제천 의림지를 찾았는데….” 김금원은 이어 단양팔경을 둘러보는데요. 특히 단양팔경 중 하나인 옥순봉을 구경한 뒤의 감동을 시로 남겼습니다. 14세에 불과한 김금원은 울진 평해 월송정을 지나면서 “덧없는 인생, 사람의 생(生)이 가련할 뿐(浮世人生只堪可憐也哉)”이라는 세상을 달관한 듯한 어른스러운 시를 남겼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김금원이 정양사 앞 혈성루에 올라 금강산 일만이천 봉을 묘사한 글. 봉우리마다 각기 다른 기이한 형상을 직유법을 사용해서 표현하고 있으며 형용할 수 없는 천태만상을 리듬감 있는 필치로 그려내고 있다. 간송미술관·연세대도서관 소장 “시인들은 풍월 읊느라 잠시의 틈도 없고(詩家風月暫無閒) 조물주는 인간을 시기해서 산 밖으로 쫓아냈네(造物猜人送出山). 산새는 산 밖의 일을 알지 못하고(山鳥不知山外事) 봄빛은 숲속에 있다고 지저귀네(謂言春色在林間).” 말이 나온 김에 김금원이 평해(울진)의 월송정에 올라 바다를 바라보며 지었다는 시를 좀 보죠. “덧없는 세상, 사람의 생(生)이 가련할 뿐(浮世人生只堪可憐也哉)”이라 했습니다. 이게 14세 소녀의 시입니다. ■그리운 금강산 김금원은 이후 꿈에 그리던 금강산으로 발길을 돌리는데요. 장안사-옥경대-표훈사-백운대-보덕굴-백천동-만폭동-금강문-감로수 등 내외 금강산 전체를 둘러봅니다. 김금원이 금강산 일만이천 봉을 묘사한 장면을 볼까요. “눈 쌓인 언덕 같고, 불상 같고, 칼 든 군병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도 같고, 연꽃과도 같고, 파초잎과도 같다. 치켜올린 것도 있고 내려뜨린 것도 있고 더러는 가로 갔고 더러는 세로로 섰으며 일어서 있는 것도 쭈그리고 있는 것도 있다.” 국립춘천박물관이 상설전시실의 개편에 따라 선보이는 고 이건희 회장의 기증품. 겸재 정선(왼쪽)과 현재 심사정(가운데), 허필 등의 작품 등 금강산과 관동팔경을 그린 이건희 기증품 9건 9점이 전시된다. 국립춘천박물관 제공 봉우리마다 각기 다른 천태만상을 직유법을 사용해 리듬감 있는 필치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후 총석정, 삼일포 등 관동팔경을 두루 거칩니다. “바닷속 언덕 가까운 곳에 서 있는 돌(총석정)은 모두 6면으로 깎아 하나의 떨기로 묶어 놓았는데 거의 10여개나 된다. 매 떨기의 돌은 어떤 것은 7~8개, 어떤 것은 10여개의 기둥이다. 그 돌들이 가지런한 치아처럼 벌어졌는데 쇠줄로 갈아낸 듯 하나하나가 6면으로 조금도 굴곡이 없고 넓고 좁은 것도 없이 정밀하고 조밀조밀하다.” 지극히 공감각적인 묘사죠. 김금원은 이후 설악산 일대와 한양을 두루 살피고 여행을 마무리 짓습니다. ■글로 전하지 않으면… 이 대목에서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이제 평범한 조선의 여성으로 돌아와야 했으니까요. “군자는 족한 줄 알고 그칠 수 있기에… 지금 유람으로 숙원을 이뤘으니 멈출 만하다. 이제 본분으로 돌아가… 남장을 벗어버리니 여자가 됐다.” 김금원은 1차 여행을 다녀온 뒤 17세 살 연상인 김덕희(1800~?)의 첩(소실)이 되는데요. 1845년 평안도 의주 부윤으로 발령받은 남편을 따라 경기 이북-황해도-평안도 지방을 여행하는 행운을 누립니다. 김금원의 2차 여행입니다. 이 1·2차 여행의 경험을 담아 쓴 기행문이 <호동서락기>입니다. 저술 동기도 깜찍합니다. “지나간 일도 스쳐 지나가면 눈 깜짝할 사이의 꿈에 불과하다. 글로 전하지 않으면 누가 지금의 금원을 알겠는가….” 김금원은 여자로서가 아니라 여행작가로서, 시인으로서 후대에 당당하게 이름을 알리고 싶었던 겁니다. 이 순간 한 조각 상념이 떠오릅니다. 예전에 금강의 겨울산(개골산)을 여행한 적이 있는데요. 이제는 ‘와유’할 수밖에 없는 처지라는 것….
이기환의 Hi-story이기환김만덕김금원
[시네프리뷰]아줌마-자신을 찾아 떠나는 좌충우돌 한국 여행(2023. 12. 01 10:44)
2023. 12. 01 10:44 연예
한국 배우 여진구에 푹 빠져 사는 58세 ‘싱가포르 아줌마’는 난데없이 떠난 한국 여행 중 홀로 낙오된다.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애정과 응원을 담은 감독의 소박한 연출과 배우들의 담백한 연기가 만든 한 편의 ‘착한 영화’다. 싸이더스 제목: 아줌마(Ajoomma) 제작연도: 2022 제작국 : 싱가포르, 한국 상영시간: 90분 장르: 드라마 감독: 허슈밍 출연: 홍휘팡, 정동환, 강형석, 여진구 개봉: 2023년 11월 29일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섬나라이자 도시국가인 싱가포르는 동남아시아 다른 국가들과 비교해 경제적으로 우위인 만큼 영화산업도 꽤 활발한 편으로 알려져 있다. 적은 인구에 비하면 영화시장 규모가 큰 편이지만, 어쩔 수 없이 작은 시장의 한계 또한 가질 수밖에 없다. 에릭 쿠 감독의 <내 곁에 있어줘>(2005)는 드물게 국내에서 개봉한 싱가포르 영화 중 선구적인 작품이다. 다양한 인물의 내밀한 감정과 엇갈린 관계를 통해 현대인의 고독과 소통의 부재를 서글프게 그려 세계 유수 영화제에 소개되며 극찬을 받았다. 이후에도 매우 협소하게 개봉되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한국에서 싱가포르 영화란 낯선 대상이다. 근래 제작되고 있는 싱가포르 영화 상당수는 세계적 추세에 발맞춘 상업영화가 명맥을 잇고 있다. 2006년 제10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통해 공개된 후 이듬해 3월 개봉한 공포영화 <메이드: 하녀의 저주>(2005)는 <아줌마>의 주연을 맡은 홍휘팡이 출연했다. <일로 일로>(2013)는 1997년 아시아 경제위기를 배경으로 열두 살짜리 천방지축 소년과 필리핀 가정부와의 우정을 그린다(연출을 맡은 안소니 천 감독은 <아줌마>의 제작자다). 좀비 영화의 인기에 편승해 제작된 <좀비 워>(Zombiepura·2018)도 국내에서 개봉됐다. 이 작품은 넷플릭스 검색을 통해 볼 수 있는데, 검색해 보면 의외로 다수의 싱가포르 영화를 찾을 수 있다. 넷플릭스가 지닌 순기능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국경을 초월한 어머니들의 마음 싱가포르, 공원에서 친구들과 함께 가요 ‘여성시대’에 맞춰 라인 댄스를 추고, 한국 드라마 속 배우 여진구에게 푹 빠져 사는 58세의 아줌마 림메이화(홍휘팡 분). 3년 전 남편과 사별하고 홀로 키워온 금쪽같은 외동아들과 함께 모처럼 떠나기로 한 한국 여행에 대한 기대로 마음은 하루하루가 분주하기만 하다. 하지만 여행을 코앞에 두고 미국으로 입사 면접을 보러 가야 한다는 아들의 청천벽력 같은 통보에 아줌마는 넋이 나가고 만다. 더욱더 속상한 것은 아들의 미국행 목적이 단순히 취업에만 있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아들 홀로 미국으로 떠나는 여행 예정일 전날 밤, 림메이화는 여행사로부터 전화를 받는다. 여행을 가지 않아도 전액 환불받을 수 있다는 아들의 말과 달리, 참석하지 않으면 돈을 모두 날리게 된다는 여행사의 최후통첩이다. 이를 어쩌나. 갈등도 잠시. 아줌마는 풀어헤쳤던 여행 가방을 다시 준비한다. 그렇게 난데없이 떠나게 된 한국 여행. 다행히 뒤늦게나마 여행팀과 합류해 불안한 마음이 조금 가라앉는가 했는데 버스에서 홀로 낙오돼 졸지에 미아가 되고 만다. <아줌마>는 최초의 한국과 싱가포르 합작영화다. 애초 싱가포르 제작진에 의해 기획돼 시작됐지만, 영화의 80%가량을 한국 로케이션으로 촬영했고 상당수의 한국 스텝이 참여했다. 감독과 어머니의 실화에서 시작된 이야기 언뜻 포복절도 코미디를 연상시키는 포스터의 느낌과 비교하면 영화는 꽤 차분하고 진지한 편이다. 그렇다고 요란한 소동이나 대단한 반전을 숨긴 것도 아니다. 그러나 선한 분위기와 따뜻한 인간애가 전편에 녹아들어 있어 시나브로 전해진다. 감독의 소박한 연출과 배우들의 담백한 연기가 한 편의 ‘착한 영화’를 완성해냈다. <아줌마>는 허슈밍의 장편 데뷔작이다. 한국 드라마의 열성 팬인 어머니에게 영감을 받아 2015년경부터 구상을 시작했단다. 감독은 이야기를 확장하면서 상당 부분을 자신과 어머니의 관계 속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말한다. 오랫동안 외국 생활을 하며 어머니와 떨어져 생활했던 허슈밍 감독은 꾸준히 자신을 따라다녔던 어머니에 대한 애정과 응원을 한국 여행이라는 모험극 안에 녹여냈다. 다소 부정적인 의미로 해석되기도 하는 <아줌마>라는 제목도 어떠한 계기를 통해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중년 여성을 응원하는 의미에서 선택하게 됐다고 한다. 실제로 원제 역시도 중문(阿朱妈), 영문(Ajoomma) 모두 <아줌마>로 표기했다. 싱가포르 현지에서 4개월에 걸친 롱 런을 하며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전해진다. 낯선 싱가포르 영화와 에릭 쿠 감독 edwinkoo.photoshelter.com 싱가포르 영화계를 대표하는 인물은 에릭 쿠 감독이다. ‘에릭 쿠가 등장하기 전까지 싱가포르인이 만든 싱가포르 영화는 없었다’는 말이 있을 만큼 현대 싱가포르 영화에 있어 그의 입지는 중요하다. 대다수 장편영화가 칸영화제와 부산국제영화제에 초대되며 작품성을 인정받은 것은 당연한 이유이고, 작업 외적으로도 싱가포르 영화산업 육성과 검열 완화를 위한 활동에도 막대한 영향력을 끼쳤기 때문이다. 이런 활동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싱가포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대재벌 쿠 텍 푸아트의 아들이라는 계급적 배경과 태생적 수혜가 무시할 수 없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영화 제작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그의 노력은 싱가포르를 넘어 주변 국가들까지 이어졌고, 동남아시아 영화계 전체의 발전에 중대한 역할을 해냈다는 평가까지 받고 있다. 에릭 쿠는 어려서부터 영화를 좋아했지만, 본격적인 창작자로서의 활동은 만화가로 시작했다. 1980년대 만화가로 데뷔한 그는 1990년대 TV 드라마의 콘티를 그리다가 단편 작품으로 영화계에 발을 디뎠다. 2011년에는 만화가였던 자신의 특기를 살려 애니메이션 <동경 표류일기>(Tatsumi)를 연출하기도 했다. 일본 유명만화가 타츠미 요시히로의 작품과 자서전을 토대로 만든 작품이다. 50세를 기념해 2015년에 발표한 <호텔 룸>(In the Room)은 싱가포르가 영국의 식민지였던 1942년부터 현재를 관통하는 여섯 커플의 이야기로 한국 배우 최우식과 김꽃비도 출연했다. 그와 한국의 인연이 남다른 데는 아내가 한국인인 이유도 있다. 호주 유학 시절 만난 두 사람은 1997년 결혼해 4명의 아들(사진)을 두고 있다.
시네프리뷰아줌마
[신간]지리학자의 열대 인문여행(2023. 08. 18 10:47)
2023. 08. 18 10:47 문화/과학
ㆍ열대 사람들은 다 게으르다? <지리학자의 열대 인문여행> 이영민 지음·아날로그·1만8800원 열대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다 게으르고 야만적일까? ‘열대’의 이미지는 극과 극이다. 한편으론 야자수 아래 푸른 바다와 백사장이 펼쳐지는 낙원이, 또 한편으론 정글과 야생동물, 가난과 잔인한 내전이 떠오른다. 지상낙원의 이미지는 19세기 말 폴 고갱 등의 작품 속에서 구현되기 시작했다. 가난과 내전을 초래한 것은 식민지배로 뻗어 나온 서구 선진국의 탐욕이다. 인문지리학자인 저자는 긍정과 부정의 두 모습 모두 관념적으로 정형화된 ‘열대성’에 가깝다고 말한다. 마치 ‘오리엔탈리즘’처럼 말이다. 그는 열대에는 다양한 자연이 있고 그 배경에 열대우림, 열대사바나, 열대몬순 등 다양한 기후가 있다고 설명한다. 보르네오섬, 아마존, 빅토리아호, 세렝게티, 열대 고산지대, 열대 바다휴양지 등 여섯 지역을 여행하는 매력과 열대 지역 사람들의 진짜 삶을 전한다. ▲법은 얼마나 정의로운가 폴커 키츠 지음·배명자 옮김·한스미디어·1만8000원 ‘한 여자가 밤에 아이를 낳았는데 출혈이 심했다. 신앙심 깊은 남편은 아내를 병원에 데려가는 대신 기도를 했다. 결국 아내는 죽었다. 남편은 감옥에 갈까?’ 법학과 1학년 1학기 첫 시험에서 이 소송 사례를 만났던 저자는 두 가지 답을 써냈다가 “판사는 당장 한 사람의 운명을 결정해야 한다”는 교수의 말에 반성한다. 국가의 감시는 어디까지 허용되는가, 여성 할당제는 필요한가, 안락사는 정당한가 등 법과 정의에 관한 19가지 질문에 대해 독일에선 어떤 결론을 내렸는지 전한다. ▲나 같은 기계들 이언 매큐언 지음·민승남 옮김 문학동네·1만6800원 인류 최초 인조인간 아담을 구매한 찰리는 웹상의 모든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아담의 말을 믿어야 할지 고민에 빠진다. 매큐언의 유일한 SF소설로, 리얼리즘과 상상을 결합해 인공지능이 난무하는 시대의 윤리를 묻는다. ▲첫 문장은 마지막 문장이다 김응교 지음·마음산책·1만7500원 책이 집이라면 첫 문장은 문이다. 첫 문장은 책을 이해하는 첫 단추가 된다. <햄릿>, <파우스트> 등 고전에서 <아몬드>, <불편한 편의점> 등 최신작까지 서른일곱 편 작품의 첫 문장을 11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이것이 광고인이다 임태진 지음·한겨레출판·1만8000원 ‘빡세고’ 재미있고 ‘버라이어티하면서’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직업, 광고인의 세계를 알려주는 책이다. 유머러스한 글과 그림으로 광고 제작 과정, 업계 현실과 비법,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필수 실무용어 등을 엮었다.
신간
중국 여행 중 ‘찰칵’하면 ‘철컹’? 반간첩법 어디까지(2023. 07. 14 11:19)
2023. 07. 14 11:19 국제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 앞에서 경찰이 사진 촬영을 제지하고 있다. / 연합뉴스 중국에서 7월 1일부터 시행된 개정 반간첩법에 대한 관심이 높다. 미국 국무부는 중국의 개정 반간첩법 시행을 앞두고 자국민들에게 “자의적인 법 집행과 구금의 위험이 있다”며 중국 여행 자제를 권고했다. 그러면서 “중국 당국은 광범위한 문서와 데이터, 통계 등을 국가기밀로 간주하고 스파이 혐의로 외국인을 구금·기소할 수 있는 광범위한 재량권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며 “미국 시민들이 중국에서 공개적으로 이용 가능한 자료에 접근한 혐의로 구금되거나 기소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주중 한국대사관도 중국 반간첩법 개정안 시행에 대비해 대국민 안전 공지를 했다. 주중 대사관은 공지에서 “우리나라와의 제도·개념 등의 차이로 중국에 체류하고 있거나 방문 예정인 국민에게 예상치 못한 피해가 생길 수 있다”며 중국 국가안보 및 이익과 관련된 지도나 사진, 통계자료 등을 인터넷으로 검색하거나 스마트폰·노트북 등 전자기기에 저장하는 행위에 유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또 군사시설이나 주요 국가기관, 방위산업체 등 보안통제구역 인접 지역에서 사진을 촬영하거나 시위현장을 방문하고 시위대를 촬영하는 행위, 중국인에 대한 포교나 야외 선교 등 중국 정부에서 금지하고 있는 종교 활동에도 주의할 것을 권고했다. 이런 경고가 잇따르자 일각에서는 여행이나 업무차 중국을 방문했다 사진 한번 잘못 찍었다는 이유로 간첩으로 몰려 낭패를 보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하지만 개정된 반간첩법이 외국인들의 중국 내 일상생활이나 여행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여행객에 대한 안전 공지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한 주의 환기 차원의 안내로 볼 수 있다. 다만 간첩 행위에 대한 규정과 처벌 범위가 넓어진 만큼 중국에서 활동하는 외자 기업 등은 법의 내용을 검토하고 사전에 리스크를 줄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중국 반간첩법 뭐가 달라졌나 중국 반간첩법이 새로운 법률은 아니다. 2014년 처음 시행된 반간첩법의 일부 조항을 개정해 지난 7월 1일자로 시행됐다. 개정된 반간첩법에서는 간첩 행위에 대한 정의를 확대했다. 기존에 국가기밀과 정보에 한정됐던 간첩 행위의 범위가 ‘국가안전 및 이익에 관련된 문서, 데이터, 자료, 물품에 대한 절도, 정탐, 매수, 불법제공 행위’로까지 넓어졌다. 또 국가기관이나 핵심 정보 인프라 시설 등에 대한 사이버 공격이나 침입, 교란, 통제, 파괴 등의 행위도 간첩 행위의 범위에 새롭게 포함됐다. 개정 반간첩법은 직접 간첩 조직에 참여하거나 간첩 조직 및 그 대리인의 지시를 받는 경우에 더해 간첩 조직이나 그 대리인에 협력하는 것도 간첩 행위로 간주한다. 간첩 조직이나 그 대리인이 중국 국민이나 조직 또는 기타 조건을 활용해 시행하는 제3국을 겨냥한 간첩 활동이 중국의 국가안보를 위협한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도 반간첩법의 적용이 가능하다. 개정 반간첩법에서는 국가안보기관의 조사 권한을 확대하고 처벌도 강화했다. 기존 간첩법에는 국가안전기구가 간첩 행위 방지를 위해 수사와 구류, 체포 등의 직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했는데, 이번에 법 개정을 통해 전자 데이터 열람과 수집, 소환, 자산정보 조회 등의 행정 권한을 추가했다. 여기에 더해 간첩 혐의가 있는 경우 임의로 휴대 물품 등을 검사할 수 있고, 강제 소환을 통해 일정 시간 내 심문도 할 수 있도록 했다. 처벌 조항도 기존에 형사 범죄에 해당하지 않는 간첩 행위에 대해서는 경고 또는 15일 이하 행정 구류만 할 수 있었던 데 반해 개정법에서는 벌금이나 면담, 면허 정지·말소 등의 행정처벌도 부과할 수 있게 바꾸었다. 개정법에는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활동을 할 가능성이 있는 외국인에 대해 입국을 불허하고, 반간첩법을 위반한 외국인은 추방 후 10년 동안 입국을 금지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외자 기업은 리스크 점검 필요 중국의 반간첩법 개정은 기존에 시행되던 법체계를 보완하고 시대 변화에 따른 새로운 간첩 행위 유형에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 등과의 정보 전쟁이 치열해지면서 국가안보와 관련한 정보 유출을 막고 통제를 강화하려는 측면도 있다. 우려와 달리 일반적인 중국 내 여행이나 일상생활, 정상적인 기업활동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다만 간첩 행위가 의심된다는 이유로 재산 정보조회나 압수, 동결, 추방 및 입국 금지 등의 임의적인 조치가 취해질 수 있고, 특정 산업에서 정보 통제가 강화될 수 있는 만큼 이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무엇보다 법 조항이 모호해 자의적인 법 집행이 이뤄질 수 있다는 점이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중국 최대 로펌 가운데 한 곳인 킹앤우드맬리슨스는 개정 반간첩법을 분석한 보고서에서 “국가안보 및 이익에 관한 정의가 모호해 외국인의 중국 내 입국이나 외자 기업의 중국 내 경영 활동에 예측불가능한 리스크가 있다는 주장이 나오지만, 중국의 국가안보를 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외자 기업이나 외국인이 중국 내에서 반드시 준수해야 할 기본 원칙”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반간첩법에 관련 조항이 추가되기 전에도 이미 여러 법률과 행정 법규에서 핵심 데이터의 범위와 수집, 저장, 사용, 가공 등에 대한 명확한 규정을 갖고 있다”며 “외국인이나 외자 기업이 기존 법률 규정을 준수한다면 실질적으로 반간첩법을 위반할 위험성은 크지 않다”고 분석했다. 킹앤우드맬리슨스는 다만 외자 기업이 중국에서 컨설팅 업무를 하는 경우, 특히 국방, 군수, 금융, 화폐, 첨단기술 등 핵심 분야에서는 비밀 정보 보호 등 데이터 안전에 보다 신경을 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일반 외자 기업도 데이터 처리에 신중을 기하고 국가안전 예방 의무 이행과 관련 기관·부서의 업무 수행에 적극 협조할 필요가 있다고 부연했다. 국내 법무법인 광장의 중국그룹도 “반간첩법 개정으로 간첩 행위에 대한 정의가 확대되고 중점업체관리제도와 국가안전 건설프로젝트 인허가제도 등이 도입됐으며, 국가안전기관의 권한과 처벌 기준이 강화됐다”며 “중국 내에서 상업 활동을 하는 기업이나 실무자들은 반간첩법 집행 추이를 주목하면서 중국 내에서 접촉, 수집하는 자료들이 국가안보나 이익에 관련된 자료인지 여부를 확인하고 기업 특성에 맞는 내부 교육을 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환경 지키는 크루즈여행 가능할까(2023. 01. 13 11:36)
2023. 01. 13 11:36 경제
설 대화 7첩반상 다시 설입니다. 코로나19가 여전하고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도 해제되지 않았지만, 얼굴을 맞대기조차 어려웠던 지난 3년과 비교하면 이번 설은 그래도 오랜만에 가족, 친지들이 한자리에 모일 소중한 기회입니다. 독자 여러분은 설 제사상을 물리고 마주 앉아 무슨 이야기를 나눌 계획인가요. 아마 아이들은 오랜만에 어른들이 흰 봉투에 넣어줄 세뱃돈에 마음이 설레겠지요. 아이부터 어르신까지 전 세대가 어울려 희망의 이야기꽃을 피우는 명절 연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주간경향 기자들이 각 분야에서 설 밥상에 올라올 법한 이야기 반찬을 차려봤습니다. 정치 분야에선 이재명 대표의 검찰수사와 여전히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수행능력에 대한 이야기 이외에 연초부터 급작스레 여의도를 휩쓸고 있는 선거구제 개편 논란을 다뤄봤습니다. 여기에 무인기 소동과 미사일 발사로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남북관계 전망도 빠질 수 없을 것 같고요. 이제 막 초입에 들어섰다는 불황과 경제위기 문제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세대 문제도 빠지지 않을 이슈입니다. 일각에서 대안으로 제시하는 정년 연장은 급물살을 타고 있는 초고령화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요. 윤석열 정부가 야심 차게 내놓은 공공주택, ‘뉴홈’의 앞날은 어찌 될까요. 대통령이 바뀌니 전임 대통령의 복지정책도 뭇매를 맞고 있습니다. 현 정부의 건강보험 정책을 짚었습니다. 어느 곳 하나 녹록지 않지만, 주위가 어둡기만 한 건 아닙니다. 시니어 한류에 도전하는 노익장들, 기후위기 시대의 친환경 크루즈여행 이야기도 이번 설 연휴 특집에 담았습니다. 하나같이 정답을 내기 어려운 주제들입니다. 모쪼록 부족하나마 이야기 나누는 데 길잡이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주간경향이 정성껏 마련한 ‘설 대화 7첩반상’ 맛있게 드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5첩 친환경 여행 대기오염 주범이라는 따가운 눈총…업계 자정 노력 이탈리아 조선업체 핀칸티에리는 스위스 크루즈 선사 바이킹에 수소연료전지를 탑재한 신형 크루즈선 ‘바이킹 넵튠’을 인도했다. / 핀칸티에리 제공 코로나19의 긴 터널을 지나 여행업계가 기지개를 켜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일본과 베트남을 중심으로 해외여행 수요가 급증해 여행업계는 올해 본격적인 회복세를 보이리라고 기대하고 있다. 크루즈선을 이용한 해외여행도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닫혀 있던 한·일 바닷길이 지난해 12월 열렸다. 일본·대만을 경유하는 전세선 크루즈도 오는 6월 출항한다. 국제크루즈선사협회(CLIA)에 따르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2020~2021년 500만명 수준까지 떨어졌던 전 세계 크루즈 승객 수가 지난해부터 반등해 올해는 2800만명으로 예년 수준을 회복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후엔 2030년까지 연간 6.4% 상승해 4600만명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바다 위의 호텔에서 보내는 세계 일주는 분명 낭만적이다. 환경에는 그렇게 좋지 않다. 독일자연보호협회(NABU)가 2017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크루즈선의 경우 6000명 승선을 기준으로 하루 자동차 8만4000대 수준의 이산화탄소가 나온다. 자동차에 한 명이 탄다고 가정하면, 승객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크루즈선이 자동차의 14배 수준이다. 물론 항공여행에 비할 바는 아니다. 유럽환경청에 따르면 승객 1명이 항공기로 1㎞를 이동했을 때 배출되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285g으로 버스(68g)의 4배, 기차(14g)의 20배 이상이다. 프랑스에서는 2021년 5월 고속철로 2시간 30분 이내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에는 국내선 항공편 취항을 금지하는 법안이 통과되기도 했다. 친환경 압박에 크루즈 업계도 변화 움직임 크루즈여행의 환경 훼손이 온실가스에서만 나오는 건 아니다. NABU 조사에 따르면 매일 150t의 중유(벙커C유)를 사용하는 중형 유람선이 내뿜는 미세먼지와 질소산화물, 이산화황의 양은 각각 자동차 100만대와 43만1000대, 376만대에 달한다. 항해할 때나 항구에 정박해 있을 때나 크루즈선은 24시간 운영되기 때문이다. 운송 수단일 뿐 아니라 숙박 시설이라 작은 도시가 쓰는 정도의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크루즈선을 비롯해 중유를 사용하는 배들은 오염물질 배출이 많다. NABU 조사에 따르면 크루즈선 승객들이 배 위에서 호흡하는 배기가스의 양은 공해가 심한 주요 도로보다 20배 이상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윤경준 배재대 무역물류경영학과 교수는 “크루즈선은 선박 자체의 출력이 커서 항구에 정박했을 때 발전기를 돌리면서 배출되는 배기가스와 미세먼지가 문제가 된다”면서 “항만에 들어올 땐 최대한 속도를 줄여서 미세먼지 배출량을 줄이도록 하고 있지만 벙커C유라는 근본적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국제해사기구(IMO)가 2020년 도입한 환경규제에 따라 선사들은 의무적으로 선박 연료유의 황산화물 배출량을 3.5%에서 0.5% 이하로 줄여야 한다. 이 기준을 맞추려고 선사들은 배기가스 내 황산화물을 해수를 이용해 씻어내는 스크러버를 달고 있지만 사용한 해수를 바다로 배출하는 개방형의 경우 해수오염의 우려가 있어서 사용을 금지하는 나라가 많다. 이렇게 환경규제가 강화되면서 크루즈선을 운영하는 선사들은 에너지 소비를 절감하는 노력과 함께 장기적으로는 친환경 추진선으로 변화를 꾀하고 있다. 세계 2위의 크루즈 선사인 로얄캐리비안크루즈 한국총판 관계자는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완전히 없애는 걸 목표로, 선사에 속한 70% 이상의 크루즈선에 아황산가스를 98%까지 제거하는 정화 시스템을 갖췄다”면서 “2024년 1월부터 운항하는 아이콘호(Icon of the Seas)의 경우 액화천연가스(LNG) 추진과 함께 정박 시 육상 전력을 사용할 수 있는 설비를 갖춰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탄소 발자국을 줄이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한 크루즈 여행사 관계자는 “선사들은 최신 배가 취항하면 LNG 추진과 오염물질 정화 시설 등 친환경을 내세우면서 홍보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LNG는 탄소를 적게 함유해 공해 저감 장치나 필터 없이도 질소산화물과 황화합물이 크게 줄어든다.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20% 감소한다. 그래서 당장은 LNG 추진을 대안으로 삼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메탄올과 수소, 암모니아 같은 저탄소·무탄소 연료로 가야 한다. 세계 4위 조선사인 이탈리아의 핀칸티에리가 지난해 11월 수소연료전지를 장착한 신형 크루즈선을 스위스 크루즈업체 바이킹에 넘긴 사실이 이런 변화를 보여준다. 로얄캐리비안 인터내셔널이 운용하는 세계 최대 크루즈선인 ‘원더 오브 더 시즈’가 항해하고 있다. / 로얄캐리비안크루즈 제공 녹색해운 구축 본격화 녹색 바람은 크루즈선을 넘어 전체 해운 산업으로 확대되고 있다. 장기적으로 큰 배는 LNG 추진에서 수소 추진으로 발전하고, 작은 배는 전기 배터리나 암모니아 쪽으로 바뀔 것으로 전망된다. 이향숙 인천대 동북아물류대학원 교수는 “배는 보통 30년의 수명을 갖기 때문에 지금 있는 배는 스크러버나 촉매 변환기를 달아 오염물질 배출량을 줄이면서 버티고, 새로 수주하는 대형 선박은 LNG 추진선으로 만들면서 수소와 암모니아 추진선을 개발하는 방향으로 전환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배가 운항할 때뿐만 아니라 배가 정박해 있을 동안에도 무탄소·저탄소로 운영해야 한다. 이를 목표로 ‘녹색해운항로’ 논의가 지난 2년 사이 부상했다. 2021년 11월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제26회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2026년까지 6개의 녹색항로를 구축하기로 한 ‘클라이드뱅크 선언’이 이뤄진 후 지난해 열린 COP27에서는 미국 주도의 그린쉬핑챌린지(Green Shipping Challenge)가 출범했다. 염정훈 기후솔루션 연구원은 “2020년 IMO가 국제해운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2050년까지 2008년 대비 50%까지 줄이기로 했지만, 이걸로는 파리협약에서 제시한 1.5℃ 목표 달성에 많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면서 “이런 배경에서 IMO와 별도로 녹색항로를 개발하자는 논의가 가속화됐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11월 그린쉬핑챌린지 참여를 선언하면서 미국 시애틀 타코마항과 부산항 사이에 녹색항로를 구축하기로 했다. 로스앤젤레스-상하이, 싱가포르-로테르담에 이은 세계 세 번째 녹색항로다. 해수부 해운정책과 관계자는 “무탄소·저탄소 선박 개발과 건조 능력의 확보, 운항 기술 개발과 함께 무탄소·저탄소로 벙커링(연료 주입)할 수 있는 기반 시설을 갖춘 일련의 사이클을 녹색해운이라고 한다”면서 “선사에서 메탄올 추진 선박을 건조해서 그냥 운영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양쪽 항만에서 이 선박을 수리하고 벙커링할 수 있는 제반시설을 갖춰야 한다”고 설명했다. 녹색항로를 구축한다는 건 두 항만 사이에 이런 인프라를 갖추겠다는 의미다. 이 관계자는 “올해 1월부터 미국과 녹색해운 관련 공동연구를 추진해 구체적인 내용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재 항만에서 온실가스와 대기오염 물질을 저감하려는 움직임은 크게 3방향으로 이뤄지고 있다. 하나는 대기오염물질 배출규제다. 정부는 2020년 9월부터 ‘항만대기질법’에 따라 부산항·인천항 등 국내 5대 항만을 배출규제해역(ECA·Emission Control Area)으로 설정해 연료에서의 황 함유량을 0.1% 이하로 규제하고 있다. 이 교수는 “처음 시행할 땐 선사들의 부담을 고려해 접안했을 때만 규제했는데 이젠 거의 100% 적용하고 있다”면서 “초미세먼지와 황산화물 등 오염물질을 줄이는 데 큰 효과를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하나는 선박저속운항 프로그램(VSR)이다. 항만 안에 들어올 때 속도를 줄이면 항만시설의 사용료를 감면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자발적 참여인데 선사의 부담이 적어 참여율이 최대 90%까지 높아졌다. 앞의 두 제도는 안착하는 모양새이지만 육상전원공급시설(AMP)을 사용하는 건 아직 개선해야 할 사항이 많다. 선박이 항만에 정박했을 때 화석연료로 발전하지 않고, AMP로 육상전력을 사용하면서 온실가스와 미세먼지 배출량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선박마다 규격이 다르고, 대형 선박의 경우 고압선이 필요하지만 갖추고 있지 않은 곳이 많다. 의무사항도 아니라 사실상 거의 사용되지 않고 있다. 이 교수는 “고압선을 더 많이 확보해 원래 취지대로 외항선 등 큰 배가 쓰도록 해야 효과적인데 지금은 작은 배, 관공선 위주로만 쓰고 있다”면서 “전기요금을 감면하는 혜택을 주거나 안 쓰면 페널티를 주는 식으로 제도를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정기 컨테이너선은 일주일에 한 번이나 한 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오가니 AMP를 쓸 이유가 있지만, 부정기선인 크루즈 선박에 맞춰 AMP 설비를 갖추기는 아직 어렵다”면서 “결국 선박을 친환경적으로 바꾸는 게 제일 중요한데 친환경 추진체만 신경 쓸 게 아니라 촉매를 활용해 오염물질을 저감하는 기술을 연구·보급해 당장의 선박에서 나오는 오염물질을 줄이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탈탄소 대응 못 하면 해운강국 지위 흔들려 선박과 항만을 녹색으로 바꾸려는 노력은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탄소중립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추후엔 ‘탄소세’처럼 무역장벽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녹색항로 구축을 위한 각국의 움직임 속에는 차세대 연료와 표준을 선점하려는 의도도 있다. 세계 2위와 4위인 우리 조선업과 해운업이 녹색항로 구축에 적극 나서야 하는 이유다. 염정훈 연구원은 “지금은 IMO랑 보폭을 맞추는 정도인데 우리 조선업과 해운산업의 경쟁력을 유지·강화하려면 좀더 적극적으로 차세대 연료 기술과 공급망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제해운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규제하려는 흐름도 주시해야 한다. 유럽연합은 내년부터 탄소배출권 거래시장에 해운 분야도 포함시키기로 했다. 단계적으로 도입하는데 선사에 일정량의 배출권을 할당하고, 그보다 많이 배출하거나 적게 배출할 경우 시장에서 배출권을 거래할 수 있다. 배출권 거래시장에서 확보한 기금 일부를 선박 청정 연료에 지원해 중유와의 가격 차를 해소하고, 선박 에너지 효율 향상과 항구의 친환경 인프라 구축에 사용한다. 염 연구원은 “국제해운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에 가격이 매겨지면, 그만큼 우리나라 선박이 운항할 때 비용이 올라가게 된다”면서 “한국도 적극적으로 비슷한 제도를 도입해 세계적인 추세에 맞춰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문화캘린더]메소포타미아로 미술 여행(2022. 11. 11 15:05)
2022. 11. 11 15:05 문화/과학
ㆍ강연 :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문화혁신과 예술’ ▲강연 |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문화혁신과 예술 일시 11월 15일 장소 국립중앙박물관 소강당 관람료 무료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3층에 새롭게 신설된 메소포타미아실을 기념해 강연이 열린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문화혁신과 예술’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번 강연에는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와 킴 벤젤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 고대근동미술부장이 강연자로 나선다. ‘메소포타미아, 저 기록의 땅’ 전시의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마련된 강연에는 고대 문명이 이끈 문화혁신 과정에서 생성된 다양한 문화재와 장식미술을 깊이 있게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강연은 크게 2개 주제로 진행된다. 첫 번째는 ‘문명의 고향-메소포타미아의 미술’이라는 제목으로 양정무 교수가 강연한다. 고대 미술이라는 거시적 관점에서 메소포타미아 미술의 특징을 설명할 예정이다. 전시에 출품되지 않은 대표적인 유물과 유적 사진까지 풍부하게 제시해 메소포타미아 미술에 반영된 고대 문명의 사유방식과 예술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두 번째 강연 ‘사후세계의 무대-메소포타미아 장신구의 제작 기술과 정체성’은 킴 벤젤 박사가 이끈다. 고대도시 우르에서 발견된 왕실묘 연구의 권위자인 킴 벤젤 박사 안내로 메소포타미아 왕실묘 출토 장신구를 살펴볼 수 있다. 메소포타미아인들의 사후세계에 대한 인식, 그들의 정체성과 관련한 세계관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다. 강연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 국립중앙박물관 소강당에서 한다. 별도의 신청 없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킴 벤젤 박사의 강연은 영어-한국어를 순차통역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02-2077-9554 ▲연극 | 발사 3시간 전 일시 11월 24일~12월 11일 장소 서울 종로구 스튜디오76 관람료 전석 3만원 2041년 10월 25일, 대한민국 최초 유인 달 탐사선 치리호가 발사를 앞두고 있다. 발사 3시간 전 갑자기 발생한 사소한 결함으로 발사 지연 위기에 처한다. 과연 치리호는 무사히 달에 갈 수 있을까. 0507-1444-0425 ▲전시 | 미지의 걸작 일시 7월 26일~12월 31일 장소 서울 종로구 세화미술관 제1·2전시실 관람료 성인 8000원, 청소년 5000원, 아동 3000원 마크 퀸, 살바도르 달리, 만 레이, 프랭크 스텔라 등 현대 미술사에서 빠질 수 없는 해외작가 17명의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 30여점을 만날 수 있다. 매주 수요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까지는 명함을 가진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02-2002-7787 ▲전시 | 김결수 개인전 일시 10월 15일~11월 30일 장소 갤러리 오모크 관람료 무료 전시장 바닥에 사각 대형 거푸집을 만들고 다섯마지기(한마지기 200평)에서 수확 후 만들어진 볏짚을 켜켜이 쌓아 올린 특별한 전시가 열리고 있다. 볏짚 속에 묻어온 다양한 포자에서 이름 모를 식물들이 발아하며 작가가 의도한 “생명의 순환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054-971-8855
문화캘린더
[방구석 극장전]가난한 여행자의 경험을 공유하다(2022. 08. 05 14:37)
2022. 08. 05 14:37 문화/과학
영화제에 참석할 때마다 해외 감독들의 신작을 유심히 살펴본다. 세계적 거장도 찾지만 덜 알려진 유망주들의 차기작 소식에 눈에 불을 켜곤 한다. 그중 주셩저(朱聲仄)라는 1987년생 중국 여성 감독의 작업을 주시하고 있다. 그의 2019년 작품 <프레젠트. 퍼펙트.>는 다큐멘터리 형식을 취하지만 실제 감독이 촬영한 건 없다. 대신 스크린에 펼쳐지는 영상은 중국 내 마이너한 개인방송 진행자들의 채널을 편집한 것들의 조합이다. 유튜브에서 검색하다 보면 얻어걸리는 ‘인플루언서’는 등장하지 않는 대신, 작품에 소개된 개인방송은 흔히 사회적 소수자, ‘마이너리티’ 부류들이다. 하루종일 고공에서 타워크레인을 조종하는 기사, 시골의 휠체어 장애인, 거리의 무명댄서, 중화상 환자, 그 외 성소수자와 장애인들이 진행하는 온라인 방송이 조각조각 연결돼 현대 중국의 이면을 재구성한다. 「지구별 방랑자」 포스터 / TVING 개인방송을 통해 부와 명성을 좇는 행태가 위험수위에 달했다는 경보가 울리고 있지만, 규제나 자정활동으로 근절되기란 요원해보인다. 과정이 아닌 결과를 추구하며 자극적·선정적 콘텐츠로 빠른 길을 찾는 풍조는 사회 일반 추세와 동일하기 때문이다. 그런 한편, 큰 성공을 얻진 못해도 다양한 사회구성원이 드러나지 않은 삶을 보여주거나 사회적 재기를 위해 노력하는 이들의 개인방송도 소소한 반응을 얻고 있다. 일확천금 대신 자신의 현실 활동과 온라인 방송을 연계해 자급자족의 작은 생태계를 확장해나가는 시도들이다. 독립영화 감독 중 유최늘샘이 있다. 몇몇 동료들은 그를 로드무비의 대가라고 부른다. 감독은 성인이 되자마자 독립해 여러 비정규직을 전전하며 모은 돈으로 현대판 무전여행을 감행하고, 그 경험을 자신만의 로드무비로 작업해왔다. 그런 감독의 세계일주 경험담은 <지구별 방랑자>(2021)로 집대성됐다. 2018년 5월 21일부터 2019년 11월 6일까지 535일 동안 8만5899㎞, 34개국을 하루평균 1만8400원(!)으로 다녀온 기록이다. 여행 중간에 강도를 만나 카메라와 촬영기록을 몽땅 잃어버리고 휴대전화 카메라로 촬영을 이어가며 단신으로 촬영한 결과물이다. 온갖 제약이 만발하다 보니 영화라기보다는 브이로그 영상에 가까운 형식이지만 내용은 그저 고행을 넘어 세계 각국의 빈곤과 사회문제를 ‘세계시민’의 시야와 통찰로 담은 보기 드문 콘텐츠로 채워져 있다. 유명 관광지 대신 남미 인디오, 아프리카 유목민, 유럽 난민과의 일화가 가득하다. 감독이 당한 차별과 혐오는 3자로서 관찰한 그것들과 묘한 대비를 이룬다. 국내 대부분의 영화제에서 이 영화는 선택받지 못했다. 기존의 선정 기준과 궤를 달리하는 작업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감독은 지난 4월 말 온라인 개봉을 단행했다. 별도의 홍보는 없었다. 큰 반향은 얻지 못했지만 웨이브, 티빙, 올레TV, U+TV 등 다양한 공간에서 영화를 접할 수 있다. 감독은 지금도 곳곳에서 소규모 상영회를 열고 있다. 사고로 유실된 여행 전반부를 채워낸 영화와 동명의 여행 에세이를 지난 7월 말에 출간했다. 여기엔 보다 상세한 감독의 여정과 그가 듣고 본 세계의 가난과 모순이 가득 담겨 있다. 감독의 유튜브 채널 <유최늘샘 TV>에선 영화로 못다 한 이야기를 단편 클립으로 계속 이어나가는 중이다. 몇십만, 몇백만 구독자와는 인연이 없겠지만 개인방송이 가져오리라 기대하는 쌍방향 소통의 정도를 걷는 이런 작은 실천은 좀더 조명돼도 좋을 법하다.
방구석 극장전
[취재 후]울릉도 자유여행 가보셨나요?(2022. 06. 24 16:56)
2022. 06. 24 16:56 문화/과학
“울릉도 직접 가보셨어요?” 취재를 결심하며, 주변 지인들에게 가장 많이 확인했던 내용입니다. 주간경향 기획으로 경상북도 지역 중 한곳을 방문해야 했을 때 사실, 울릉도는 우선순위가 아니었습니다. 방송에 자주 나와 익숙하기도 했고, 더 소개할 것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지인들이 울릉도로 가는 방법부터 관광지까지 설명하는 모습에 ‘울릉도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이 있었습니다. 울릉도를 두고 ‘이러쿵저러쿵’ 정보는 많은데 정작 “직접 가봤다”는 사람이 별로 없었습니다. 대부분 어딘가에서 전해들었거나 방송을 통해 본 내용을 전달하고 있었습니다. 김찬호 기자 ‘울릉도는 관광을 안 가나?’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취재를 결심한 지 딱 이틀 만에 울릉도에 발을 내디뎠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울릉도를 향하는 배를 탄 순간부터 30대 중반인 기자가 비교적 젊은 연령대에 속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울릉도 도동항을 가득 메운 사람 대부분도 ‘단체관광’을 온 50·60세대였습니다. 울릉도의 단체관광 활성화는 자유여행이 불편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여행에 드는 비용이나 이동 편의성 등 확인을 이번 취재의 목표로 삼았습니다. 울릉도는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대중교통은 버스가 유일한데 이마저도 배차 간격이 길고, 저녁 9시 무렵이면 운행이 끝났습니다. 최대한 많은 관광지 방문을 목표로 마치 시험공부 하듯 버스 노선과 시간을 연구했습니다. 예상치 못한 변수로 여러차례 계획이 변경됐지만 결국, 목표로 했던 관광지를 모두 방문할 수 있었습니다. 감상은 최대한 배제하고 ‘대중교통으로 관광지를 어떻게 가는지’, ‘몇분이나 걸어야 모두 감상할 수 있는지’, ‘노약자가 방문할 수 있는 곳인지’ 등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대중교통으로 울릉도를 관광하려는 여행객들이 읽어보면 조금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직접 가서 본 울릉도는 정말 아름다운 섬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재미있었던 건 울릉도를 방문한 어르신들과 나눈 이야기였습니다. 자신을 70대라고 소개한 한 남성은 ‘초등학교 동창회’로 울릉도를 단체방문했다고 했습니다. “왜 하필 교통도 불편한 울릉도로 왔느냐”고 물었습니다. “일상에서 벗어나 친구들과 어릴 때처럼 놀 수 있는 곳이 울릉도더라. 벌써 세 번째 왔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마치 아이들처럼 서로 이름을 부르며 신이 난 70대 어르신들의 모습에서 왜 울릉도가 중장년층에 인기가 많은지 조금은 알 것 같았습니다.
취재 후
버스 타고 ‘울릉도‘ 여행…“야, 너두 30만원으로 할 수 있어!”(2022. 06. 20 10:15)
2022. 06. 20 10:15 문화/과학
태하향목전망대에서 바라본 대풍감 / 김찬호 기자 “거기가 진짜 경상북도라고?” 때로는 아주 사소한 말 한마디가 생각지도 못한 일의 시작이 된다. 오랜 친구들에게 ‘경북’ 여행지 추천을 부탁한 것이 발단이었다. 안동, 포항, 경주 등 유명한 지명들이 줄줄이 나왔다. “여행 많이 다녔다면서 좀 특별한 곳 없냐?”라는 도발에 친구가 발끈한다. “야 그럼 미리 준비해서 울릉도를 가지 그랬냐”는 핀잔이 머릿속에 ‘훅’ 들어왔다. “잉? 울릉도? 울릉도가 경북이었나?”. 그렇다. 가끔 지명이 너무 유명하면 행정구역보다 지명 그 자체로만 기억하는 경우가 있다. 울릉도는 대한민국 행정 구역 상 ‘경상북도’ 울릉군에 속한 섬이라는 것을 잊고 있었다. 울릉도 이야기에 흥분해 있을 때 다시 김 빼는 소리가 날아온다. “야, 울릉도는 최소한 한 달 전에 배를 예약하지 않으면 못 가. 숙소, 렌터카 준비도 해야하고 그냥 가면 엄청 비싸. 감당이 되겠냐?”고 한다. “왜 못가냐. 거기도 한국인데….” 곧바로 휴대전화로 ‘울릉도 배편 예약’을 검색했다. 잘 정리된 예약 사이트가 나올 줄 알았다. 검색되는 것은 여행 후기를 담은 블로그나 관광업체 홈페이지뿐이다. 그나마도 ‘사이트에 연결할 수 없음’이라는 안내문이 뜨는 경우도 있다. “햐, 이거 진짜 만만치 않네…”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울릉도 여행은 배편 예약부터 전쟁이라는 말이 비로소 실감 나기 시작했다. 난관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무엇을 위해 울릉도에 가느냐’다. 여행의 콘셉트, 목적이 문제였다. 지인들에게 물었다. 실제 울릉도를 가본 사람이 없다. 울릉도를 못 갈 것이라고 말한 친구도 사실, 울릉도를 가본 적이 없다. 방송을 통해 보거나 인터넷 후기만 보고 지레 울릉도는 ‘가기 힘든 곳’으로 판단했다. 의외로 정보를 제공해 준 것은 지인들의 부모님이다. 대부분 울릉도를 가보셨다. ‘단체관광’으로.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여러번 가보셨다. 5060세대 단체관광으로 ‘뜨거운 장소’가 울릉도였다. 행남 산책로 끝자락에 있는 등대로 올라가는 길에 찍은 저동항의 모습/김찬호 기자 결과적으로 지난 6월 12일~15일 울릉도를 다녀왔다. 방문을 결심한지 딱 이틀 만에 일정, 배편, 숙박, 관광 코스 등을 모두 결정했다. 배는 어떻게 예약하는지, 어떤 코스로 관광을 하는지, 비용은 어느 정도 드는지 등은 모두 발로 뛰어서 확인했다. 정보전달 대상은 ‘배낭여행객’에게 맞췄다. 활성화된 단체관광이 아닌, 울릉도 자유여행, 배낭여행이 궁금했다. 이를 위해 몇 가지 조건을 만들었다. 첫째로 비용은 최대한 절약했다. 울릉도에 대한 선입견 중 하나는 여행에 엄청난 비용이 들 것이라는 점이었다. 둘째는 울릉도 내에서 이동은 오직 ‘버스’로만 했다. 비용문제도 있었지만 의외로 섬 여행을 교통 때문에 가지 않는 사람들도 많았다. 대중교통이 불편할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마지막으로 울릉도 주요 관광지는 최대한 많이 방문하기로 했다. 종합하면, 대중교통으로 싸게 울릉도 관광지를 최대한 돌아본다는 것을 목표로 했다. 실제 여행은 시행착오의 반복이었다. 그러나 울릉도 안에 있는 필수 여행코스는 결국 다 갔다. 끝까지 여행 조건은 어기지 않았다. 실제 방문한 관광지, 버스 탑승 시간 및 장소, 관광에 소요된 시간 등을 일일이 확인해 기록했다. 다음 여행자가 이를 기준으로 소요되는 시간, 비용 등을 계산할 수 있게 정보를 제공하기 위함이다. 만약 “이런 초보도 울릉도 여행을 가네. 나도 한 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면 목적을 달성했다고 하겠다. 울릉도에서 방문한 곳과 실제 이 곳을 가기 위해 이용했던 버스 노선과 탑승 시간/김찬호 기자 ■1장. 대체 배 예약을 어떻게 하나요? 울릉도 여행을 결심했다면, 가장 먼저 배편을 예약해야 한다. 현재로선 울릉도로 가는 방법이 배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2025년 말, 신공항 건설이 예정돼 있지만 아직은 먼 이야기다. 배는 두 종류가 있다. 상대적으로 빠른 ‘쾌속선’, 편안하게 여행하는 ‘크루즈 선’이다. 두 배는 소요 시간, 운임 등에서 차이가 난다. 성인을 기준으로 쾌속선은 편도 6~7만원 수준이다. 크루즈의 경우 요금은 성인 기준 가장 비싼 ‘로얄스위트룸’이 80만3000원이고, 가장 싼 다인실이 6만6500원이다. 울릉도를 향하는 배들이 모두 같은 항구에서 출발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부터 헷갈리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첫째, 강원도 ‘강릉항’에서 출발하는 쾌속선이 있다. 강릉항은 옛날 안목항으로 불렸던 그 미항이다. 이곳 강릉항에서 출발한 쾌속선은 울릉도 ‘저동항’으로 들어간다. 소요 시간은 3시간이다. 둘째, 역시 강원도 동해 ‘묵호항’에서 출발하는 쾌속선이다. 울릉도 ‘도동항’으로 들어간다. 소요시간은 약 2시간 40분 정도다. 세 번째로 경상북도 ‘포항항’에서 출발하는 쾌속선이다. 울릉도 ‘도동항’으로 들어가는 경로다. 소요시간은 3시간 20분 정도다. 포항에서는 또 다른 배 ‘크루즈 선’도 운항한다. 포항 ‘영일만항’에서 울릉도 ‘사동항’으로 향한다. 소요시간은 약 6시간 30분이다. 시간이 더 걸리는 대신 배 안에 노래방, 식당 등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고 침실에서 누워서 갈 수도 있다. 울릉도에 차를 직접 갖고 들어가고 싶어도 이 크루즈 선을 이용해야 한다. 가격은 차종별로 다르다. 마지막 네 번째, 경상북도 ‘후포항’에서 출발하는 쾌속선이다. 울릉도 ‘사동항’으로 들어간다. 소요시간은 2시간 20분 정도다. 각 항구에서 출발하는 배는 소유한 회사가 다르다. 이들 회사 홈페이지를 방문해 배편을 예약하는 것이 한가지 방법이다. 또 하나는 한국해운조합에서 운영하는 ‘가보고 싶은 섬’ 사이트에서 배편을 비교 및 예약할 수 있다. 포털사이트에서 ‘가보고 싶은 섬’을 검색하면 된다. 이번 울릉도 여행에서 이용한 것은 ‘후포항’에서 ‘사동항’으로 들어가는 네 번째 경로였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출발일 기준 이틀 전에 예매할 수 있는 배는 후포항이 유일했다. 후포항은 다른 출발 항구에 비해 서울이나 기타 대도시에서 접근하기 조금 애매한 위치에 있다. 상대적으로 배편 예약에 여유가 있다. 두 번째는 배 멀미 때문이다. 최대한 배에 있는 시간을 줄이고자 했다. 그렇게 6월 12일 새벽 00시 40분에 차를 타고 집을 나섰다. 후포항이 있는 경북 울진군에 도착할 즈음 주변이 희끄무레하게 밝아오기 시작했다. 새벽 4시 50분이었다. ■2장. 입도가 여행의 절반? 멀미와의 사투 후포항에서 출발하는 쾌속선의 출항 예정시간은 오전 7시였다. 인터넷 예약고객은 탑승권을 출항 1시간 전까지 매표소에서 발권해야 한다. 신분증을 보여주니 종이 탑승권으로 교환해줬다. 어느새 대합실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여행객들은 주로 대합실 내에 있는 매점 앞에 웅성거리고 있었다. 이들은 멀미약을 하나씩 사고 있었다. 액상용과 알약 2가지가 있었다. 각각 1000원, 1500원이었다. “뭐가 더 강력한 멀미약이냐”고 물은 뒤 알약을 샀다. “배 타기 1시간 전에 먹어라. 모두 두알이 들어있는데 들어갈 때 한알, 나올 때 한알 먹으면 된다”고 했다. 그럴 여유가 있을리 없었다. 실제로 배 타기 1시간 전 한알, 배 안에서 위급한 순간 또 한알 복용했다. 경상북도 울진군에 있는 후포항 여객선터미널(왼쪽)과 내부 모습/김찬호 기자 사실 나름 뱃멀미에 대한 대비책을 세우고 있었다. 이른바 ‘기절(?)’ 전략이다. 서울에서 새벽에 출발하는 일정을 잡은 것도 이 때문이었다. 최대한 몸을 피곤하게 해서 배를 타자마자 잠들겠다고 생각했다. 날씨도 좋았고, 항구 쪽 파도도 그리 심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착각이었다. 항구를 떠나자 마자 배가 아래로 ‘쑥’ 꺼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승객들은 배 1, 2층에 나눠서 탑승했는데 두 곳 모두에서 동시에 ‘어우~’ 하는 비명소리가 났다. 약한 강도의 바이킹을 3시간 정도 탄 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그럼에도 깜빡깜빡 잠은 들었다. 얼마나 갔을까. 잠을 깨운 것은 사방에서 들리는 “억~억” 하는 정체모를 소리였다. 오른편에 앉은 승객과 뒷 쪽에 앉은 또 다른 승객이 구토를 하고 있었다. 배가 워낙 흔들리다 보니 “구토를 하는 승객은 화장실로 가지 말고, 앉은 자리에서 하라”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이럴때를 대비해서 배 곳곳에는 구토용 비닐 주머니가 비치돼 있었다. 멀쩡했던 머리가 ‘빙빙’ 돌기 시작했다. 다시 얼마나 갔을까. 어딘가에서 “저기 섬이 보인다”라는 말이 들렸다. 배가 흔들린 정도로 볼 때 울릉도 날씨도 폭풍이 몰아치고 있는 줄 알았다. 울릉도는 화창한 날씨 속에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오전 9시 45분쯤 비로소 배에서 내렸다. 승무원에게 “오늘이 특별히 배가 많이 흔들린 날이냐”고 물었다. “평소랑 비슷했다”라는 무심한 대답이 돌아왔다. ■3장. 그 버스는 왜 그냥 지나쳤나 약 3시간 만에 육지를 밟자 날아갈 듯 기분이 좋았다. 사동항 앞에는 이미 각 종 렌터카 업체, 단체관광을 위한 버스가 대기중이었다. 이동에 드는 비용을 아끼기 위해 사전에 준비한 것이 있었기 때문에 이들을 그냥 지나쳤다. 경북도에서 운영하는 ‘울릉아일랜드 투어패스’였다. 24시간, 48시간 동안 버스 무제한 탑승 가능권과 주요 관광지 입장권 등을 묶어서 팔고 있었다. 48시간 투어패스를 2만3900원에 구입했다. 굳이 투어패스를 구입한 데에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울릉도 버스는 배차간격이 1시간 정도다. 과연 투어패스를 이용해 48시간 안에 버스를 몇 번이나 탈 수 있으며, 뚝뚝 떨어져 있는 관광지를 모두 보는 게 가능한지 알고 싶었다. 울릉도 버스는 배차 간격이 1시간 이상 나는 경우가 많다./김찬호 기자 여행의 첫 관문은 사동항을 나가는 버스를 타는 것이었다. 이미 ‘치밀한’ 전략을 세우고 있었다. 울릉도 대중교통은 무릉교통이 운영하는 총 7개 노선의 버스가 있다. 이중 1노선, 2노선, 11노선, 22노선은 대형버스로 섬을 한바퀴 돈다. 노선이라는 말이 헷갈릴 수 있는데 쉽게 말해 1번 버스, 2번 버스라고 생각하면 된다. 나머지 3노선은 도동-저동-봉래폭포를 왕복하는 미니버스, 4노선은 천부-나리분지만 왕복하는 미니버스, 5노선은 천부-석포를 왕복하는 미니버스다. 계획은 이랬다. 후포 출발 쾌속선이 예정대로 2시간 20분 만에 사동항에 도착하면 9시 55분에 사동항을 지나는 1노선 버스를 타고 섬을 일주한다. 이를 위해 재빠르게 배에서 내렸다. 문제는 버스 승강장이 보이지 않았다. 어디에도 이정표가 없었다. 렌터카 관계자에게 물어 겨우 버스승강장 위치를 확인했다. 주어진 시간은 10분 남짓이었다. 9시 55분 버스를 놓치면 다음은 11시 55분이었다. 달렸다. 9시 50분 무렵 승강장에 도착했다. 그런데 느낌이 ‘쎄~’하다. 버스시간표에는 ‘사동항’이라고 돼 있는데 승강장 이름이 ‘간령’이다. “뭐, 그럴 수도 있지”라고 주억거리며 짐짓 대범한 척 승강장 내부로 들어섰다. 다행히 버스 위치를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모니터가 있었다. 확인해보니 “3분 뒤 1노선 버스 도착”이라고 떠 있었다. ‘그럼 그렇지, 사람 사는 곳이 다 똑같지’라고 생각하며 여유 있게 앉아 있었다. 사동항에서 가까운 버스 승강장. 한쪽 방면에만 승강장 건물이 있고 반대쪽 방면으로는 버스 승강장 표시가 없다./김찬호 기자 이윽고 저 멀리서 버스가 보였다. 버스가 도착할 즈음 여유 있게 가방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버스가 눈앞에서 ‘슝’ 하고 지나갔다. ‘치밀한’ 전략이 여행 시작 10분 만에 깨졌다. 알고 보니 치명적 실수가 있었다. 버스 운행 방향의 반대쪽에 서 있었다. 1노선 버스는 섬의 왼쪽으로 한바퀴를 도는데 오른편으로 가는 도롯가에 서 있었던 것이다. 주요 마을 위치를 숙지하지 못해 어느 쪽이 왼쪽이고, 오른쪽인지를 구분하지 못한 초보 여행자의 한계였다. 그러나 착각하게 만드는 요소도 분명 있었다. 사동항 버스승강장은 1노선 버스가 진행하는 방향에는 없었다. 이정표조차 없었다. 즉, 버스 승강장이 한쪽 방향에만 있었던 것이다. 처음 울릉도를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버스가 당연히 승강장 방향으로만 오나보다’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날 함께 버스를 타지 못한 관광객이 있었던 만큼 혼자만의 착각은 아닌 셈이다. 눈앞에서 버스를 놓치고 나니 머릿속이 하얘졌다. 앞으로 2시간을 더 기다려 다음 버스를 탈지, 일단 아무 버스나 타고 항구를 벗어날지 결정해야 했다. 버스시간표를 확인하니 2노선 버스가 10시 15분에 도착한다고 돼 있었다. 경로를 비교해보니 앞서 지나간 1노선 버스와는 반대 방향이다. 한 번만 더 해보자는 생각으로 기다렸다. 시간이 흐를수록 불안감이 커졌다. 정해진 시간에 버스는 도착하지 않았다. 혼자 ‘취재 망했다. 버스를 못 타겠다고 회사에 어떻게 말하지?’를 고민했다. 그때 멀리서 2노선 버스가 멀리서 보였다. 10시 18분 무렵이었다. 생각할 것도 없이 제일 먼저 올라탔다. 이렇게 울릉도 첫 번째 행선지가 원래 계획과는 상관없이 2노선 버스가 향하는 ‘도동항’으로 결정됐다. ■4장. 1일차 : 여행 시작을 도동에서? 사실, 울릉도 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깎아놓은 듯 멋진 절벽 아래 마치 그림처럼 자리잡은 항구다. 방송이나 사진기사에서 울릉도를 소개할 때면 제일 먼저 나오는 ‘도동항’의 모습이다. 이 멋진 풍경 아래 서 있었지만 당장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몰라 막막했다. 투어패스를 꺼내봐도 도동항에서 가까운 관광지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일단 ‘이른 점심을 먹자’ 결심하고 상점, 식당가가 밀집한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도동항의 모습/김찬호 기자 도동항은 관광객들로 가득했다. 울릉도에 방금 도착한 사람, 떠나려는 사람들이 섞여 말 그대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여행객들을 태운 관광버스들까지 있다 보니 사고가 나지 않을까 우려스러울 정도였다. 사람들을 헤치고 간신히 투어패스와 제휴를 맺은 식당을 찾았다. 울릉도의 명물이라는 ‘홍합밥’, ‘따개비밥’ 등을 먹어 볼 생각이었다. 식당은 한 테이블을 제외하고 비어 있었다. “몇명이에요?”라고 식당 주인이 물었다. “한명이요. 홍합밥 하나 주세요”라고 말했다. “우리가 지금 자리가 없어서 손님을 못 받아요. 이따가 단체 손님들이 와서요”라는 답이 돌아온다. 울릉도 도착 후 두 번째 계획이 틀어졌다. ‘유명 식당이라서 그런가 보다’ 하고 항구와 조금 떨어진 식당을 찾았다. 역시나 “점심시간이면 좀 바빠서요. 한분 앉을 곳은 없어요”라고 했다. 투어패스와 제휴를 맺은 식당마저 개인을 외면하는 걸 보니 아쉬웠다. 이때부터 울릉도에서 나올 때까지 도동항에서는 한 끼도 식사를 하지 않았다. 만약 도동항에서 식사를 한다면 한끼에 약 1만8000원 정도가 기본이다. 싱싱한 해산물을 쓴다고 해도 싼 가격은 아니다. 도동항을 벗어나면 한끼 식사는 약 1만5000원 정도다. 울릉도의 물가 수준을 가늠해 볼 수 있다. 도동항에서 내려갈 수 있는 행남 해안산책로 모습/김찬호 기자 차라리 첫날 숙소인 ‘저동항’으로 가자고 생각했다. 시간표 상 22노선 버스가 11시 55분에 저동으로 향했다. 버스 출발 시간까지 1시간 가까이 남은 만큼 가볍게 산책을 하려는 생각에 도동항으로 갔다. 항구를 끼고 왼쪽편으로 행남 해안산책로가 조성돼 있었다. ‘딱 30분만 걷자’는 생각으로 걷기 시작했는데 이날 산책로에서만 2시간 가까이를 걸었다. 이렇게 된 것은 이유가 있었다. 일단 반짝이는 바다와 멋진 절벽이 서울에서 내려온 관광객의 혼을 빼놓기에 충분했다. 인파에 휩쓸려 걷다 보니 너무 멀리 갔다. 이미 11시 55분 버스는 타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끝까지 가보자는 생각으로 계속 걸었다. 방파제를 경계로 길이 끝나고 있었다. 사진을 찍고 돌아 나오는데 어느 가족의 대화가 귀에 들어왔다. “아빠, 우리 등대에서 가족사진 찍자”, “그래 조금만 더 가면 나와”라는 내용이었다. ‘어라? 나는 등대를 못 봤는데…?’ 뭔가 잘못됐다. 행남 해안산책로에서 산길로 올라가면 나오는 도동항 등대/김찬호 기자 왔던 길을 되짚어갔다. 산책로 끝이라 생각했던 곳 왼편으로 산으로 올라가는 작은 길 하나가 더 있었다. 그 길을 걸어 올라가니 저동과 등대로 향하는 갈림길이 나왔다. 현재 저동으로 가는 길은 끊겨 등대로만 갈 수 있다. 약 20분 정도를 더 걸어 간신히 등대에 도착했다. 도중에 짐 가방을 바닥에 버려두고 걸었다. ‘저동항’의 촛대바위, 항구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었다. 문제는 길이 좁고 가파르다는 점이다. 실제로 많은 단체관광객들이 등대까지는 가지 않았다. ■5장. 1일차 : 천부 해중전망대에서 저동항 밤 산책까지 시작부터 계속 꼬이는 일정을 바로 잡아야 했다. 버스시간표 연구부터 다시 시작했다. 그 결과, 섬을 동-서로 나누고 첫날은 섬의 동쪽 부분 여행에 집중하기로 했다. 우선, 저동항에 있는 숙소로 이동해 짐을 놓아두고, 섬의 동북쪽 끝인 천부로 갈 계획을 세웠다. 천부-관음도-저동으로 돌아온다면 버스시간표상으로도 이동이 가능했다. 울릉아일랜드 투어패스로 이용 가능한 저동항 명가식당/김찬호 기자 도동항 버스승강장에서 1시 55분에 출발하는 22노선 버스를 타고 저동으로 갔다. 숙소에 짐을 풀고 나니 다음 버스 탑승까지 시간이 좀 남는다. 투어패스와 제휴를 맺은 명가식당을 찾았다. 다행히 저동에서는 혼자 온 관광객도 내보내지 않았다. 사실 멀미를 한 탓에 특별히 입맛이 있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엉겅퀴, 부지깽이, 울릉도에서 재배한 도라지무침 등의 반찬을 설명해주는 ‘이모님’의 정성에 남기지 않고 먹었다. 투어패스를 활용해 밥값의 10%도 할인받았다. 할인권 사용을 쑥스러워하는 사람들도 있다. 싫어하는 기색 없이 할인권을 사용하게 해주는 만큼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천부항에 있는 해중전망대(왼쪽)와 그 내부로 내려가면 볼 수 있는 바닷속 모습/김찬호 기자 2시 40분에 저동에서 출발하는 2노선 버스를 타고, 섬의 동북쪽 경계인 천부로 갔다. 천부를 방문코스에 넣은 것은 이곳에 해중전망대가 있기 때문이다. 수심 6m 아래까지 닿는 원통형 건물을 짓고 빙 둘러 창을 냈다. 수면 아래 바다 풍경을 엿볼 수 있는 환경이다. 물 한방울 안 튀고 프리 다이빙을 하는 것과 유사한 기분을 낼 수 있다. 오후 3시 무렵 방문했는데 단체 관광보다는 연인들, 어린아이와 함께 온 가족 단위 관광객들이 많았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수 있어 노약자들도 내려가고 올라오는데 부담은 없었다. 지하층에 도착한 관광객마다 “우와”라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3시 40분 천부에서 관음도로 향하는 11노선 버스를 탔다. 관음도는 원래 울릉도와 떨어져 있는 섬이다. 이를 푸른색 ‘연도교’로 연결했다. 동백나무, 억새 군락지이자 슴새(울릉도 방언으로 ‘깍새’)라는 조류가 많다. 이 때문에 관음도를 ‘깍새섬’이라고도 부른다. 관음도 북쪽 하부 해안절벽에는 ‘관음쌍굴’이라는 두 동굴이 유명하다. 문제는 배를 타고 섬을 돌아야만 관음쌍굴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관음도에 들어간 관광객들이 “관음쌍굴이 대체 어디 있다는 거냐”는 볼멘소리를 하는 것을 들었다. 미리 상세한 안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아쉬웠다. 울릉도와 관음도를 잇고 있는 연도교/김찬호 기자 관음도 관광은 A코스, B코스로 나뉘어 있다. 휴대전화 스톱워치를 켜고 돌아보니 2곳 모두를 1시간 정도면 충분히 돌아볼 수 있었다. 곳곳에 설치된 전망대에서는 울릉도 부속 섬인 죽도나 삼선암 등도 볼 수 있다. 그런데 관음도로 가는 길 역시 등산길처럼 험하다. 지상에서 연도교까지 엘리베이터를 운행하지만, 연도교를 지나 관음도 전망대까지 가는 길은 가파른 계단이 기다리고 있다. 노약자는 접근이 어렵다. 관음도를 끝으로 계획한 첫날 일정은 마무리됐다. 그런데 해가 안 진다. 그러자 갑자기 뒷날 흐릴 것이라는 일기예보가 신경이 쓰인다. ‘한곳만 더?’라는 생각이 들었다. 위치상 독도를 볼 수 있다는 전망대가 가까웠다. 투어패스를 이용하면 전망대까지 케이블카를 이용할 수 있어 힘들 것 같지도 않았다. 돌아보면 하지 말았어야 했다. 대중교통만 이용하는 여행객이라면 이곳은 몸 상태가 좋은 날 가야 한다. 4시 50분 관음도를 출발하는 1노선 버스를 탔다. 버스는 독도 케이블카라고 적힌 입구 바로 앞에 서기는 했다. 문제는 버스에서 내려 케이블카가 있는 곳까지 500~600m의 급경사 길을 올라가야 한다는 점이었다. 허리를 숙이고 숨을 헐떡이자 이를 보던 상인이 “거, 택시를 타고 올라오시지”라고 한다. 한참을 걸어 오후 5시 30분 무렵 드디어 케이블카를 탔다. 5분 정도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니 전망대가 나왔다. 이날 날씨가 좋았음에도 독도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도동 시내의 구조를 한눈에 볼 수 있었다. 도동은 산을 병풍처럼 두르고, 바다를 바라보는 곳에 자리잡은 아름다운 마을이다. 독도 전망대에서 바라본 도동의 모습/김찬호 기자 오후 7시 35분 도동항을 출발해 숙소가 있는 저동으로 가는 22노선 버스를 탔다. 사실, 숙소를 저동항에 잡은 것은 야경 때문이었다. 밤이 되면 저동항 촛대바위를 비추는 불빛이 켜진다. 반사된 불빛은 일렁이는 바다에 촛대바위 하나를 더 만든다. 연인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산책코스다. 실제로 이날 저녁 산책을 나선 연인들이 많았다. 저동항 밤 산책을 끝으로 첫날 일정을 마무리했다. 뱃멀미와 빡빡한 일정으로 숙소에서 그야말로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저동항 야경을 대표하는 촛대바위/김찬호 기자 ■6장. 2일차 : 울릉도에서 버스를 이용하는 법 6월 13일 둘째 날 아침이 밝았다. 섬의 서쪽과 중앙의 나리분지 방문을 계획했다. 첫 방문지로는 울릉도 특산식물과 수목이 어우러진 ‘예림원’을 선택했다. 사실 예림원은 버스노선표에 정류장으로 표시돼 있지 않았다. 지도를 검색해보면 그나마 가까운 항구가 현포항이다. 고민 끝에 일단, 2노선 버스를 9시에 탔다. 버스에는 승객이 없었다. 맨 앞자리에 앉아 기사분과 대화를 시작했다. “예림원에 가고 싶은데 현포에서 내려야 할까요?”(기자), “버스를 탈 때 목적지를 말하면 알아서 세워줄 겁니다.”(버스기사), “노선표에 정류장이 없어도 그런가요?”(기자), “버스가 가는 방향과 맞다면 최대한 가까운 곳에 세워준다는 거죠.”(버스기사), “그럼 승강장이 없는 곳에서 버스를 탈 수도 있나요?”(기자), “시골인심이 손을 흔들고 있는데 그냥 지나치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적극적으로 손을 흔드세요.”(버스기사) 그렇다. 울릉도에서는 버스노선표만 봐서는 절대로 갈 수 없어 보이는 관광지도 다 가는 방법이 있다. 말을 해야 한다. 일단 울릉도 버스를 타면 기사님들이 먼저 “어디까지 가세요?” 하고 묻는다. 이때 버스노선표에 있는 곳만 말하지 말고, 가고 싶은 곳을 정확히 말하면 된다. 요금도 그 후 지불한다. 만약 버스를 잘못 탔다면 어디서 타야 하는지 알려주고, 방향이 맞다면 최대한 가까운 곳에서 세워준다. 무뚝뚝해 보이는 기사님도 있지만 말을 걸면 버스에서 내린 뒤 어떻게 가는지까지 친절하게 알려준다. 예림원 전망대에서 바라 본 전경. 왼쪽에 따로 떨어져 있는 바위섬이 코끼리 바위/김찬호 기자 이 방법으로 승강장이 없는 예림원 입구에서 내렸다. 물론 예림원 매표소까지 가파른 길을 한참 더 올라가긴 한다. 예림원 입구는 동굴처럼 조성돼 있다. 좁고 어두운 동굴을 지나면 갑자기 눈앞에 아름다운 정원이 나타나는 식이다. 극적인 대비 효과를 만끽할 수 있다. 정원 안쪽으로 온갖 꽃들이 피어 있고, 작은 폭포도 있다. 예림원 전망대에 오르면 오른편으로 울릉도 명물인 코끼리 바위를 볼 수 있고, 왼편으로는 현포항 전경을 볼 수 있다. 다만, 이곳 전망대 역시 노약자가 오르기에는 지나치게 가파르다. ■7장. 2일차 : 울릉도 최고의 풍경 예림원을 나와 태하항으로 향했다. 투어패스에 주요관광지 중 하나로 ‘태하향목관광모노레일’이 적혀 있었다. 정확히 어떤 곳인지 알 수 없었다. 이후 ‘태하에 있는 향목전망대로 갈 수 있는 관광모노레일’이라는 의미임을 알게 됐다. 향목전망대로 가면 ‘산’을 다루는 전문 매체에서 대한민국 10대 비경으로 꼽았다는 ‘대풍감’을 볼 수 있다. 울릉도에서 꼭 한곳 풍경만 봐야 한다면 주저 없이 이곳이다. 태하향목전망대에서 바라 본 바다 모습/김찬호 기자 감상은 배제하고 정보만 공유한다면 다음과 같다. 우선 모노레일을 타고 5~6분 정도 올라간다. 하차 후 약 10분 정도를 걸어가면 향목전망대가 나온다. 이곳은 가파른 길이 아닌 만큼 노약자도 많이 방문한다. 다만 향목전망대에 갈 때는 바지를 입을 것을 추천한다. 아래쪽도 볼 수 있는 철제 구조물로 전망대를 만들다 보니 사방에서 바람이 몰아친다. 인생사진을 남길 수 있을 만큼 빼어난 풍경이다. 태하에서 버스를 타는 방법은 간단하다. 이곳에 들어온 버스는 회차한다. 나가는 방향이 한 방향뿐이다. 그러니 시간만 잘 맞추면 된다. 버스를 기다리며 정류장 앞쪽 식당 ‘우진이네’에서 점심을 먹었다. 울릉도산 오징어물회인데 물을 넣으면 물회, 밥을 넣으면 회덮밥이다. 취향에 맞는 방식으로 먹으면 된다. 사실 울릉도 자연산 오징어와 기타 오징어를 구분할 미각적 능력이 없다. 그럼에도 굉장히 좋은 식감임을 알 수 있었다. 가격도 도동에 비해 3000원가량 저렴했다. 이곳에서 피데기(반건조오징어)도 하나 샀는데 가격은 7000원이었다. 태하항 버스 승강장 앞쪽에 있는 우진이네에서 먹은 회덮밥/김찬호 기자 ■8장. 2일차 : 성인봉을 갔지만… 태하를 나온 뒤 예정된 일정은 현포 근처 숙소에 짐을 풀고, 나리분지를 산책하는 일이었다. 이날은 예보와 달리 오전 내내 날씨가 좋았다. ‘한군데 더?’라는 욕심이 또 생기기 시작했다. 하필 기사님한테서 나리분지에서 성인봉으로 가는 코스가 있다는 말까지 들었다. 평소 등산은 하지 않는다고 하니 “도동에 있는 KBS중계소 코스로 올라가 나리분지로 내려오라”는 조언을 했다. 그런데 정확히 반대로 했다. 이 역시 정말로 후회하고 있다. 나리분지에서 성인봉으로 올라가는 코스는 그야말로 ‘계단지옥’이다. 성인봉 정상 부근 일부를 제외하곤 끝도 없는 계단이 이어진다. 2시간 가량을 정말 죽을 힘을 다해 올라갔는데 정작 안개 낀 성인봉에서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한치 앞도 구분이 안 됐다. 더욱 큰 문제는 내려올 때 KBS중계소 코스를 선택한 것이다. 이 쪽은 전형적인 산길이다. 성인봉 부근은 안개가 자욱해 물기가 많다. 이날 오후 들어 갑자기 날씨가 흐려졌다. 어두운데다 물기까지 많은 산길을 내려오는 상황이 됐다. 바로 옆이 낭떠러지인데 딱히 안전망도 없었다. 온 신경을 집중해 미끄러운 길을 거의 기다시피 내려왔다. 특별한 준비 없이 성인봉을 등반할 계획이라면 KBS중계소 코스로 올라가 나리분지 코스로 내려오기를 권한다. 주말이면 8시간씩 등산한다는 버스 기사님의 추천경로이기도 하다. 울릉도 성인봉 정상/김찬호 기자 성인봉 등산 후 피로감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저동에 있는 울릉어민식당에 들려 저녁으로 물회를 먹었다. 울릉도에서 계속 물회를 먹은 것에는 이유가 있다. 그만큼 날씨가 더웠다. 따뜻한 음식을 먹기 힘든 날씨 속에 여행을 했다는 것은 식사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이날 방문한 식당은 두 차례나 재방문했을 만큼 맛이 좋았다. 특히, 물을 넣어서 먹는 익숙한 물회가 물 없이 비벼먹는 이른바 ‘전통식 물회’였다. 물회 가격은 1만5000원인데 물가가 올라 2000원 정도 인상을 계획하고 있다고 했다. 울릉도도 오르는 물가가 서서히 반영되고 있었다. 저동항에 있는 울릉어민식당에서 먹은 물회/김찬호 기자 투어패스가 제공하는 관광지 입장권 중 마지막으로 남은 봉래폭포는 3일째 날 새벽에 출발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투어패스는 48시간 한정이다. 다음날 오전 10시 15분이면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다. ■9장. 3일차 : 여행의 정리 성인봉 등산의 후폭풍은 컸다. 알람을 10개나 설정했지만 늦잠을 잤다. 눈을 떠보니 벌써 8시 20분이었다. 마지막 봉래폭포에 가려면 3노선 버스를 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숙소인 현포에서 도동이나 저동으로 이동해야 했다. 8시 45분 현포에서 저동으로 가는 1노선 버스가 있었다. 숙소 앞에 승강장은 없었지만 여유 있게 손을 흔들고 탑승했다. 해당 버스는 저동에 9시 20분, 도동에는 9시 30분 도착 예정이었다. 어떻게 해도 도동에서 9시 20분에 출발하는 3노선 버스는 못 타는 셈이었다. 48시간 내에 투어패스 관광지를 모두 방문한다는 목표 달성이 어려워졌다. 걸어갈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3노선 버스시간표만 유독 독특한 점이 있었다. 화살표 방향을 잘 보면 봉래폭포에서 저동으로 가는 방향만 시간이 나오고 도동에서 저동으로 가는 시간은 표시가 없다. 처음에는 도동에서 봉래폭포로 바로 가는 줄 알았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10분만 저동에서 기다려 보기로 했다. 9시 30분 무렵 저동에 3번 버스가 도착했다. 시간표가 명확하지 않은 설명을 들어보니 이랬다. 봉래폭포에서 저동으로 이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비교적 안정적으로 측정이 가능하다. 반면, 도동에서 저동으로 이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교통환경에 따라 들쑥날쑥한 경우가 많아 아예 표기하지 않는다고 했다. 만약 저동에서 3번 버스를 타고 봉래폭포에 방문하고자 하는 관광객이라면 버스가 도동에서 출발한 시간에서 최대 5분 정도 뒤에는 저동 버스 정류장에 서 있어야 한다. 봉래폭포 전경/김찬호 기자 결과적으로 48시간 투어패스 종료 39분을 남겨두고 봉래폭포 입장까지 완료했다. 모두 15번 버스를 탔다. 버스비를 1400원으로 계산해 관광지 입장료와 함께 계산해보면, 4만7500원어치를 이용한 셈이었다. 봉래폭포 방문을 끝으로 2박3일 울릉도 여행에서 사용한 총경비는 34만5036원이 나왔다. 그런데 해당 비용은 방을 혼자 썼다는 점이 반영돼 있다. 즉, 배낭여행객들이 선호하는 게스트하우스를 이용했다면 최종 비용에서 최소 8만원 정도 더 아낄 수도 있었다. 반면, 이 비용에는 서울에서 후포항까지 자차로 이동한 비용은 포함하지 않았다. ■10장. 그냥 끝나면 울릉도가 아니지 원래 봉래폭포를 끝으로 예정된 울릉도 2박 3일 취재는 끝이 나야 했다. 그런데 울릉도를 나갈 수 없었다. 시간을 되돌려 성인봉 등산을 할 무렵이었다. 054로 시작하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역시나 선박업체다. 6월 14일은 동해 풍랑주의보로 예정된 배가 뜰 수 없다고 했다. 울릉도 여행에서 이런 변수까지 넣지 않으면 제대로 취재한 것이 아니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렇게 울릉도에 하루 더 머물게 됐다. 체류 시간이 늘어난 만큼 추가 정보를 얻어야 했다. 배낭여행에서 벗어나 가장 많은 여행객들이 선호한다는 렌터카 여행을 해보기로 했다. 일부러 준중형 승용차 한대를 빌렸다. 울릉도는 높은 지역이 많아 힘이 좋은 SUV 차량을 빌려야 한다는 조언이 많았다. 정말 그런지 알아보고자 했다. 실제로 하루 동안 상대적으로 저지대의 해안도로부터 나리분지 등의 고지대까지를 두루 다녔다. 심지어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처음에는 불안했지만 이동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럼에도 울릉도 운전에서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있다. 과속하지 말아야 한다. 울릉도 일주도로의 제한속도는 40㎞/h다. 더 이상 속도를 내면 안 되는 이유가 있다. 첫째는 관광객들이다. 사진을 찍다 보면 자신이 도로로 나가 있다는 걸 모르는 관광객들이 많다. 일부 관광업체가 사진 찍기 좋은 명소라며 위험한 도로에 관광객들을 하차시키는 경우도 있다. 도로 사정을 잘 모르는 단체관광객들이다. 운전자라도 주의하지 않으면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울릉도 해안도로에는 차선이 하나밖에 없는 도로가 있다. 마주보고 오는 차들은 눈치껏 순서를 기다려 통과해야 한다. / 김찬호 기자 둘째는 길이 좁다. 한 차로를 서로 반대 방향에서 오는 차들이 같이 이용하는 곳도 있다. 버스를 타고 돌아다니다 보면 이런 지점이 명확히 보인다. 버스가 이런 곳을 지날 때면 클랙슨을 울린다. ‘내가 지나갈 테니 반대쪽 차량은 진입하지 말라’는 신호다. 종종 노래를 크게 틀고 다니는 차들이 있다. 이런 길에서는 잠시 볼륨을 낮추고 반대쪽 소리를 들어야 한다. 셋째는 도로 위에 떨어진 돌(낙석) 때문이다. 과속하면 절대 못 피한다. 역시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운전의 기본이지만 울릉도에서는 특히나 강조되는 부분이다. 이상의 내용들만 잘 숙지한다면 울릉도에서 운전은 크게 어려운 수준은 아니다. 이상의 안전운전 수칙들을 지키며 ‘울릉천국’과 ‘카페 울라’를 방문했다. 두 곳 모두 버스로는 접근이 어렵다. 두 곳을 방문하려면 렌터카를 이용하는 것을 추천한다. 울릉천국에 있는 가수 이장희씨 동상/김찬호 기자 울릉천국은 가수 이장희씨가 실제 거주하며 공연도 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1996년 무렵 울릉도를 처음 방문한 이씨가 이 곳 풍경에 반해 은퇴 후 머물게 됐다. 울릉천국 아트센터 건물 2층에는 이씨와 관련된 사진, 상장 등이 전시 중이다. 3층은 카페로 운영 중인데 실제 이씨가 관광객들과 만나고 공연하던 곳이다. 코로나19 유행 이후 이씨의 공연은 잠시 멈춘 상태다. 울릉천국에는 꽃과 연못 등이 조성돼 있고, 석봉을 조망할 수 있어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울릉도의 새로운 명물 울라(울릉도 고릴라)/김찬호 기자 카페 울라 역시 이미 관광객들 사이에서는 입소문을 타고 있다. 이곳이 유명해진 것은 카페 울라 앞쪽에 있는 1박에 수 천만원하는 고급 호텔 때문이다. 한 대기업이 운영하는 곳으로 신혼여행지로도 알려져 있다. 카페울라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하는데 규모가 그리 크지 않다. 이 때문에 운영시간에 방문해도 카페 내부에서 커피를 즐기기는 쉽지 않다고 한다. 다행히 이날은 비가 왔고, 마감 시간을 앞두고 방문해 매장 내 손님이 없었다. 울라는 ‘울릉도 고릴라’를 의미하는데 카페에 앉아서 바라본 절벽의 모습이 마치 고릴라를 닮았다고 하여 붙였다. 카페 앞 쪽 작은 정원에는 바다를 바라보는 ‘고릴라 캐릭터 상’이 서 있어 사진을 찍기에도 좋다. 카페를 방문하지 않아도 고릴라 상과 사진을 찍는게 가능한 만큼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하고 있었다. ■11장. 울릉도를 나오며…그래도 뱃멀미가 걱정이라면 당초 2박 3일 일정이었던 울릉도 취재는 풍랑주의보로 3박 4일이 됐다. 출장이 하루 더 길어진 것도 문제였지만 사실, 가장 큰 문제는 뱃멀미였다. 날씨가 좋은날 탑승한 배에서도 멀미를 했는데 풍랑주의보 직후 탑승할 배는 얼마나 흔들리지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6월 15일 울릉도에서 나오는 날 전혀 멀미를 하지 않았다. 배가 흔들리지 않았느냐고 하면 그렇지 않다. 모르긴 몰라도 들어갈 때와 크게 차이가 있지는 않았다. 다른 것은 멀미약이었다. 저동에 있는 약국. 멀미약으로 관광객들 사이에서 유명하다./김찬호 기자 저동항에 가면 약국이 하나 있다. 28년째 운영 중인 약국이다. 여기서 제조하는 멀미약이 있다. 만들어진 사연이 재미있다. 이곳을 운영 중인 박형태 약사는 “28년째 멀미에 시달리는 손님들을 보면서 어떻게 하면, 멀미를 줄일 수 있을까 고민하다 최적의 약을 찾았다”며 “식사와 관계없이 출발 1시간 반 전에 복용하면 100명 중 7~8명 정도만 멀미하는 수준의 효과를 보인다”고 말했다. 반신반의하며 2000원을 지불하고 샀다. 꽤 효과가 있었던 듯 싶다. 100%는 없다. 그러나 멀미로 고통을 받고, 멀미약을 사야 한다면 한번 고려해볼 만하다. 울릉도에는 도동항에 한 곳, 저동항에 한 곳 약국이 총 두 곳 있다. 비상상황이 생겼을 때 해당 약국들을 찾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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