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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경향(총 63 건 검색)

[화보] ‘환승연애’ 정현규, 청청패션으로 모델처럼
[화보] ‘환승연애’ 정현규, 청청패션으로 모델처럼
2023. 08. 27 08:49 연예
글로벌 데님 브랜드 리바이스트라우스코리아 화보 촬영 중인 정현규 글로벌 데님 브랜드 리바이스트라우스코리아와 방송인 정현규가 만났다. 패션 문화 매거진 ‘데이즈드’가 정현규의 화보를 공개했다. 레트로한 무드의 아메리칸 다이닝 콘셉트로 진행된 촬영에서 그는 캐주얼한 스타일링부터 과감한 모습까지 리바이스의 다양한 데님과 스타일들을 완벽히 소화해 냈다. 글로벌 데님 브랜드 리바이스트라우스코리아 화보 촬영 중인 정현규 또한 셀비지 트러커 재킷과 501 청바지의 낙낙한 실루엣이 주는 뉴트로한 감성을 표현하고 스트라이프 패턴의 점프슈트를 통해 모델 못지않은 모습을 보여줬다. 화보 착용 제품들은 전국 리바이스 매장과 공식 온라인 스토어에서 만나볼 수 있다. 한편 정현규는 티빙 오리지널 <환승연애2>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렸다. 최근에는 유튜브, 광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과몰입 연애 리얼리티 <환승연애> 일본판 나온다
과몰입 연애 리얼리티 <환승연애> 일본판 나온다
2023. 05. 15 17:59 화제
티빙 오리지널 <환승연애>가 오는 6월 일본 리메이크 버전으로 재탄생한다. 티빙 제공 과몰입 연애 리얼리티 신드롬을 일으킨 티빙 오리지널 <환승연애>가 오는 6월 일본 리메이크 버전으로 재탄생한다. 티빙은 오리지널 예능 <환승연애(EXchange)>의 일본 리메이크 <러브 트랜짓(Love Transit)>이 6월 15일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를 통해 전 세계에 공개된다고 밝혔다. <환승연애>의 일본 리메이크 <러브 트랜짓(Love Transit)> <환승연애>의 일본 리메이크작 <러브 트랜짓>은 출연자들이 서로의 전 연인이 누군지 모른 채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며 새로운 사랑과 전 연인 사이 설렘과 갈등을 겪는 솔직한 모습을 담았다. <환승연애>의 기본 콘셉트와 구성을 살리되 일본 현지 버전으로 일부 각색할 예정이다. 티빙 오리지널 <환승연애>는 2021년 시즌1으로 팬덤을 모으며 시즌2 제작을 확정하고 프랜차이즈 IP화에 성공했다. 2022년 <환승연애2>는 역대 티빙 오리지널 중 누적 유료가입기여자수 1위에 올라 놀라운 화제성을 입증했다. <환승연애>의 신선한 기획력은 해외 무대에서도 높은 관심을 모았다. <환승연애> 시즌1, 2는 북미, 아시아 주요 20여 개국에서 공개됐으며, 특히 <환승연애2>는 아시아 최대 OTT 플랫폼 Viu(뷰)의 싱가포르, 홍콩, 태국 등 비드라마 차트 TOP5에 안착했다. 최근에는 <환승연애>가 프랑스 OTT 플랫폼 6play(프랑스 방송국 M6 산하 스트리밍 서비스)에 공개되며 유럽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티빙 콘텐츠 총괄 황혜정 CCO는 “기존 리니어 채널에서 찾아보기 힘든 차별화된 콘셉트와 구성으로 OTT 예능의 새로운 성공방정식을 입증한 <환승연애>가 일본 리메이크 버전으로 제작돼 감회가 남다르다”며 “이번 포맷 수출을 발판삼아 K콘텐츠 트렌드를 이끄는 동시에, 글로벌 무대에 티빙 오리지널 IP의 파급력을 확산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CJ ENM 콘텐츠사업부 서장호 상무는 “<러브 트랜짓>은 원작인 <환승연애> 포맷에 충실하면서도 일본 시장에서 적합한 요소들을 효과적으로 결합시켜 일본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이라 확신한다”며 “한국 예능들이 프라임 비디오(Prime Video)와 같은 글로벌 스트리밍 플랫폼을 통해 전 세계에 소개되고, 리메이크로 영역을 확장해나가는 등 글로벌 시장에서 주목받는 새로운 트렌드로 인식되고 있다”고 전했다.
#환승연애#연애리얼리티
BL인가, 예능인가 ‘남의 연애’ 심상치 않다
BL인가, 예능인가 ‘남의 연애’ 심상치 않다
2022. 07. 15 16:41 문화/생활
웨이브(wavve) 제공 웨이브(wavve) 오리지널 리얼리티 연애 예능프로그램 ‘남의 연애’ 출연자들이 베일을 벗었다. ‘남의 연애’는 국내 최초 남자들의 연애 리얼리티다. 솔직하고 과감한 남자들이 ‘남의 집’에 입주해 서로에 대해 설레는 로맨스를 담아낸다. 지금까지 이성 로맨스에만 한정됐던 국내 연애 예능이 대부분이었던만큼 출연자 면면이 노출되면서 시청자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15일(금) 오전 11시 베일을 벗은 ‘남의 연애’ 첫 회는 완벽한 남자들의 리얼 로맨스를 신선한 시각으로 담아내 이용자들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현실 로맨스야 BL 드라마야...눈이 황홀한 출연자 6人 이날 ‘남의 연애’에 첫 등장한 6인의 출연진은 ‘안구정화’급 비주얼로 눈길을 끌었다. BL 드라마 주인공의 실사판이라고 할 정도로 훈훈한 얼굴에 우월한 피지컬의 소유자들이 대거 등장했으며, 아이돌 못지 않은 세련된 패션 스타일과 특급 매너까지 선보여 “완벽한 남자는 게이”라는 속설을 입증하는 듯 했다. 이들 6인 외에도 다음 회에는 새로운 출연진들이 등장해 시청자의 마음을 설레게 할 전망이다. # ‘적’ 혹은 ‘썸남’과의 동침? ‘남의 집’만의 핫한 룰! ‘남의 집’에는 다른 연애 리얼리티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룰이 있다. 바로 3인, 2인, 1인실로 방을 나눠 사용해 아슬아슬한 동거에 들어가는 것. 이들은 첫날 랜덤으로 카드를 뽑아 각자 사용할 방과 룸메이트를 결정했다. 아울러 총 8일 간의 동거 기간 중, 단 3번만 룸메이트를 바꿀 수 있으며, 이외에는 자신의 마음대로 룸메이트를 바꿀 수 없는 룰을 적용받는다. 즉 ‘남의 집’ 안에서의 ‘남의 방’은 달콤한 로맨스의 배경이 될 수도 있고, 날선 견제의 장이 될 수도 있다. ‘내 남자’로 만들고 싶은 룸메이트와 함께라면 ‘썸남과의 동침’이 성사되는 셈이지만, ‘내 남자’를 엿보는 룸메이트와 함께라면 ‘적과의 동침’을 하게 되는 것. ‘썸과 쌈’을 오갈 ‘남의 집’에서 솔직하고 과감한 남자들의 러브라인이 어떻게 전개될 지 관심이 쏠린다. # 처음 보는 ‘남의 연애’, 풋풋하면서도 진중한 모습 ‘반전’이야! ‘남의 연애’ 출연진은 새로운 사랑을 꿈꾸는 만큼 조심스러우면서도 진중한 모습을 보여줘 기존 ‘남남 커플’에 대한 선입견을 깨뜨렸다. 이들은 서로를 신중하게 지켜보는 한편, 속마음을 쉽사리 내비치지 못해 보는 이들을 가슴 졸이게 만들었다. 특히 하루에 한 번 정해진 시간에 전화를 통해 자신의 마음을 전달할 수 있는데, 출연진들은 “심장 떨려”, “어떡해”라고 수줍어하는 순수한 모습을 보여준다. 웨이브 ‘남의 연애’는 매주 금요일 오전 11시 2회씩 공개된다.
[박세희·우제원의 독서연애] 그런 운명으로 태어났다는 것은···이대로 괜찮은 걸까?
[박세희·우제원의 독서연애] 그런 운명으로 태어났다는 것은···이대로 괜찮은 걸까?
2021. 06. 18 14:09 문화/생활
intro 청년 제원은 똑똑한 세희와 사랑에 빠졌다. 세희는 재원에게 단 하나의 연애 조건을 요구한다. ‘존중할 것!’ 처음엔 이 조건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할수록 밑도 끝도 보이지 않는 조건이었다. ‘알 수 없으면 읽으면 되지!’ 세희와 제원은 연애를 위한 독서를 함께 해 보기로 한다. ‘박세희·우제원의 독서연애’는 99년생 페미니스트 대학생 세희와 기독교학을 전공한 93년생 제원의 연애독서일기다. 세희와 제원이 함께 읽은 스물일곱 번째 책은 ‘고기로 태어나서’(한승태 지음/ 시대의 창)이다. 이번엔 세희가 쓴다. ▶ 세희와 제원의 대화 제원: 세희야, 혹시 오르톨랑이라는 프랑스 요리 알아? 세희 : 아니, 그게 뭔데? 제원 : 푸아그라랑 같이 프랑스 요리 중 최고 진미로 치는 음식이래. ‘프랑스의 영혼을 구현하는 요리’라고도 부른다더라. 그런데 만드는 방법이 엄청 잔인해서 더 유명해. 촉새를 산 채로 잡은 후 빛이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상자에 가두는데, 새가 앞을 보지 못하고 오로지 먹기만 하게끔 눈을 뽑아버리기도 한다고 해. 심지어 살이 알맞게 올랐다 싶으면 사과 브랜디에 익사시킨 후에 통째로 구워서 먹는다고 하더라? 세희 : 그게 뭐야…. 그런 게 진미라고? 제원 : 응, 심지어 ‘신의 음식’이라고 불리기도 한다더라. 먹을 때도 머리를 제외한 부분을 통째로 씹어 먹는 거래. 세희: 와, 너무 끔찍한 방법이다. 인간은 자신의 만족을 위해 어디까지 할 수 있는걸까? 제원: 글쎄…. 물론 이 방법이 유독 잔인하기는 하지만, 우리가 먹기 위해 기르는 다른 동물들은 적절한 환경에서 키워진다고 말할 수 있겠어? 세희가 비건을 지향하게 된 이유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잖아. 세희: 그렇기는 하지. ▶ 비거니즘? 비거니즘! 비거니즘은 좁게는 ‘동물성 식품(고기, 우유, 달걀 따위)을 전혀 먹지 않는 적극적인 개념의 채식’을, 넓게는 동물에 대한 착취 전반을 거부하는 삶의 방식을 의미한다. 그리고 나는 비거니즘을 지향하는 사람이다. 나라고 처음부터 동물성 식품이 없는 삶을 익숙하게 느꼈던 것은 아니다. 사실은 고기반찬 없이는 밥을 먹지 않을 정도로 그 누구보다 육류를 좋아하던 사람이 나였다. 이런 내가 비거니즘의 필요성을 인지한 것은 스무 살, 전공을 제외한 모든 일이 즐겁던 시절, 학생회에 발을 들인 시점부터였다. 학생회는 학우들을 대변하는 역할을 하는 조직이기에, 교내에 존재할 수 있는 다양한 소수자를 이해하기 위한 교양이 종종 있었다. 1년 동안 페미니즘, LGBTI, 역사 등 다양한 분야의 교양을 들었다. 하지만 비거니즘의 개념, 학생회에서 비건을 차별하지 않고 할 수 있는 다양한 행사(내가 재학 중인 학교는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학우들 사이에 ‘비건’의 존재가 인식되고 있었기 때문에 간식 행사를 준비할 때 비건식을 따로 준비했다) 등의 내용을 담은 비거니즘 교양이야말로 난생처음 접하는 ‘신세계’였다. 그리고 이 신세계는 빠르게 나를 매료시켰다. 물론 인식과 실천이 동시에 이루어지지는 못했다. 가장 가까운 가족을 설득하는 일부터 난관이었기 때문이다. 현재는 흔하다고 하기는 어렵더라도 편의점과 패스트푸드 판매점 등 우리 생활 가까이에서 비건 음식을 찾아볼 수 있지만, 내가 처음 비건에 관심을 가진 2018년만 하더라도 비건이라는 단어와 대중 사이에는 태평양보다 넓은 거리감이 있었고, 온갖 비아냥을 감수해야만 말이라도 꺼낼 수 있는 주제였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부모님의 걱정과 반대는 사회에서 규정한 ‘정상’의 범주에서 살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었을까 싶지만, 어느 순간 부모님 역시 이해일지 포기일지 나의 식습관이나 신념에 대해 크게 개의치 않게 됐고, 나는 비건 지향 인생을 살기 시작했다. 폐사율 100% 아프리카돼지열병을 막기위해 방역작업을 하고 있다.▶어쩌면, 잔인한 우리는 왜 육류·어패류 등 동물성 식품을 소비하는 것에 있어서 어떤 감정도 느끼지 않을까? 바로 얼마 전까지 살아있던 ‘싱싱한’ 동물성 식품에 일말의 죄책감 대신 식욕을 느끼는 것은, 우리 안에 무언가가 결여돼 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런 소비를 장려하는 유통·판매 과정에 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우리는 살아 있는 상태의 양돈·양계보다는 이미 ‘가공된 상품’을 더 자주, 쉽게 접하기 때문이다. ‘고기로 태어나서’는 인간이 먹기 위해 소비하는 닭·돼지·개가 어떤 환경에서 삶을 이어나가는지를 적나라하게 묘사하는 책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너무 잔인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어쩌겠는가. 우리가 ‘효율적 생산’이라는 미명 아래에서 즐거운 식사를 위해 애써 외면하던 현실이 그만큼 잔인한 것을! ‘고기로 태어나서’는 작가 한승태가 실제로 양계장을 비롯한 ‘식용 동물’을 기르는 사육장에서 근무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책이다. 작가가 처음 양계장에서의 근무를 택한 것은 단지 ‘서울을 떠나고 싶다’라는 이유 때문이었다지만, 한 달 만에 그 잔인함에 도망치듯 양계장을 떠난 그가 직면을 선택해 다시금 식용 동물 사육장에 찾아가게 됐으니, 어쩌면 작가의 소명이자 운명의 길이었을지도 모른다. 고기로 태어나서가 다른 비거니즘 서적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띠는 것은 작가 한승태가 직접 근무하며 수집한 실제의 이야기와 가장 가깝기 때문이 아닐까. 제원이와 언젠가 프랑스 요리인 오르톨랑에 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멀쩡히 날 수 있는 새를 가두고, 눈을 뽑고, 익사시키는 등의 요리 방식은 너무나도 잔인하게 들렸지만, 우리가 먹고 있는 돼지·소·닭 역시 ‘괜찮은’ 환경에서 키워진다고 이야기하기는 어렵다는 점에서 순간적으로 말을 잃었더랬다. 양계장의 한 케이지 안에 네 마리의 닭이 들어가 있는 모습을, 자식을 낳기 위한 모돈은 사육장과 분만장의 이동만이 평생 할 수 있는 이동임을 아는 순간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니 말이다. 모두가 비거니즘을 지향하며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익숙한 즐거움을 추구하며 편히 살 수 있음에도 잔인한 현실을 직면하는 일은 불필요하고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점도 동의한다. 다만 한 차례의 직면만으로 우리는 많은 것을 새로운 시각에서 볼 수 있다. 먹지 않는 것이 어렵다면 그들의 환경을 개선하는 것부터, 아니 적어도 상품 이전의 존재를 인식하는 것 그 자체부터…. 인지는 언젠가 큰 의미를 만드는 씨앗이 될 것이니 말이다. ■제원의 한마디 바로 이 대목이었어. “무감각한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10동에서부터 차례대로 작업했는데 얼마나 많은 닭을 죽였는지 모르겠다. 수백 마리는 될 것 같다. 어느 순간부터 정말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다. 손에 ‘투두둑’ 하고 닭의 명줄이 끊어지는 느낌이 전해져도 정말 아무 느낌도 들지 않았다. 나무젓가락을 부러뜨릴 때만큼의 감정도 소모하지 않고 닭의 목을 비틀었다. 내 발 주위는 무도병에 걸린 것처럼 사지를 흔들어대는 닭으로 가득했다. 잠깐, 정말 찰나의 100분의 1 정도의 순간 동안 예전의 일기에 적어 놓은 그런 감정들, 미안함, 불편함, 찝찝함 같은 것들이 느껴질 것 같았지만 금세 짜증과 피로에 묻혔다. 이런 식이면 사람도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고기로 태어나서’를 읽은 그날 밤 내내 나는 이 문장이 그려낸 지옥 같은 풍경 속에 갇혀 있었어. 문득 ‘우리는 지옥을 먹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우리 정말 이대로 괜찮은 걸까? ‘고기로 태어나서’는 ‘쉬운 답’이 아니라 ‘어려운 질문’을 무수히 던지게 만드는 바로 그런 책이었어.
박세희·우제원의 독서연애박세희·우제원독서연애
[박세희·우제원의 독서연애] '진동'은 차갑지만 '떨림'은 설렌다
[박세희·우제원의 독서연애] '진동'은 차갑지만 '떨림'은 설렌다
2021. 05. 03 16:45 문화/생활
intro 청년 제원은 똑똑한 세희와 사랑에 빠졌다. 세희는 재원에게 단 하나의 연애 조건을 요구한다. ‘존중할 것!’ 처음엔 이 조건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할수록 밑도 끝도 보이지 않는 조건이었다. ‘알 수 없으면 읽으면 되지!’ 세희와 제원은 연애를 위한 독서를 함께 해 보기로 한다. ‘박세희·우제원의 독서연애’는 99년생 페미니스트 대학생 세희와 기독교학을 전공한 93년생 제원의 연애독서일기다. 세희와 제원이 함께 읽은 스물여섯 번째 책은 ‘떨림과 울림’(김상욱 지음 / 동아시아)이다. 이번엔 제원이 쓴다. 떨림과 울림 표지▶나라는 인간이 있기까지 세상의 모든 것은 만남에서 시작된다. 별이 원자와 분자의 만남에서 태어난 것처럼 인간의 관계와 역사도 만남의 순간과 그 시간의 집적이다. 누군가 “당신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만남이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나는 ‘대학 생활의 어느 날’이라 답할 것이다. 대학 입학 전 나는 사람과 관계맺는 것에 서툴렀다. 낯선 사람과 친해지는 것이 어려웠고, 가끔은 지나치게 논리적인 태도와 말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곤 했다. 그랬던 내가 바뀌게 된 것은 대학에서 선배들을 만나게 되면서부터였다. 소외된 계층과 약자들에 관한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던 소위 운동권 선배와의 만남은 나에게 인간을 이해하고 열린 마음을 갖게 했다. 처음 선배들을 만난 곳은 청소노동자의 처우 개선 문제를 놓고 청소노동자와 학생이 간담회를 갖는 자리였다. 모임 이후 그들과 함께 여러 시위에 참여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과 삶을 목격했다. 절박한 사람, 상처받은 사람, 화난 사람…. 시위 현장은 그들의 감정이 뒤섞이는 용광로 같았다. 사람들이 시위에 나서는 것은 무언가로부터 상처를 받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그 용광로에 섞여 보고 난 뒤에야 나는 깨달았다. 만약 나를 이끌어 주는 선배들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도 사람의 상처에 공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문제에만 골몰하던 나는 다른 이의 온기를 느끼고 그들의 생각을 이해하게 됐다. 무엇보다 사람이 귀하다는 것과 인권과 자유가 누구에게나 보장되는 것이 아님도 깨달았다. 현장에서 땀 흘리며 보낸 시간으로 인해, 자연히 학교 성적을 꼼꼼히 챙기지는 못했다. 때로 아쉬움도 있었지만, 사람과 맺는 소중한 만남이 성적보다 더 중요하다는 점을 배웠다. 세상 만물은 진동으로 인해 존재한다. ‘떨림과 울림’의 저자 김상욱 경희대학교 물리학과 교수는 우리가 감정을 뒤섞는 일을 떨림과 울림으로 정의한다. 저자는 말한다. “인간은 울림이다. (중략) 우리는 다른 이의 떨림에 울림으로 답하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라고…. 인간의 만남은 감정과 생각을 뒤섞는 떨림과 울림의 교환이다. 서로 울림을 주고받는 것이 비단 인간일 뿐이겠는가. 우주에 있는 모든 물질이 울림을 주고받는다. 과학에서는 이를 ‘진동’이라고 말하는데, 놀랍게도 진동을 알면 우주에 대한 많은 것을 설명할 수 있다. 진동으로 생성된 우주 그리고 여전히 그 울림을 교환하며 생명을 지속하는 우주는 멀고 광대하지만, 동시에 우리 안에 존재하는 가까운 세계이기도 하다. ▶떨림과 울림 그리고 인간 과학자의 시선과 지식으로 해독한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떨림과 울림’은 물리학의 개념과 지식을 동반한 전문가의 식견을 바탕으로 인간의 실존과 세계의 문제를 연동시키면서 우주론적 사유를 펼치게 만드는 과학 교양서다. 김상욱 교수는 우주의 많은 것이 진동으로 설명될 수 있다고 한다. 진동이 공간으로 전파된 상태를 파동이라고 하는데, 대표적인 예시가 빛이다. 빛은 색마다 다른 고유 진동수를 가지고 있다. 진동수가 다른 빛은 굴절하는 정도도 달라서, 프리즘에 빛을 쏘면 각기 다른 색으로 분산된다. 인간이 세상을 볼 수 있는 것은 눈에 있는 빨강·녹색·파랑 세 종류의 원추세포가 각 세포와 고유 진동수가 같은 빛에 공명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하늘에 무지개가 걸리고, 인간이 세계를 볼 수 있는 것 모두가 진동에 의해서다. 진동의 중요성은 인간의 감각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거대한 별에서부터 작은 원자에 이르기까지 세상 만물은 진동으로 인해 존재한다. 물체에 평형 상태에 머무르려는 속성이 있을 때 일어나는 진동을 단진동이라고 한다. 천체 운동의 대부분이 단진동이다. 원자핵 주위를 도는 전자의 움직임도 단진동이다. 물체의 운동부터 성질까지 많은 것들이 진동으로 인해 발생한다. 심지어 양자역학에서는 파동이 물질의 운동방식이 아니라 물질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고 가정하기도 한다. 세상의 모든 물질이 원자보다 훨씬 작은 끈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는 이론을 ‘초끈이론’이라고 한다. 초끈이론에서는 끈의 진동방식에 따라 서로 다른 물질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떨림과 울림’에 나오는 비유를 들어 말하자면 당신이 기타로 ‘도’를 치면 코끼리가 나오고, ‘미’를 치면 호랑이가 나오는 식이다. 믿기지 않는 이야기지만 엄연히 과학적 논리가 뒷받침된 것이다. 진동은 차갑지만, 떨림은 설렌다. 진동은 기계적이지만, 떨림은 인간적이다.이처럼 세상 대부분은 진동으로 인해 존재한다. 그리고 많은 순간 진동은 서로 다른 것끼리의 만남으로부터 시작된다. 지구는 태양이 있어 공전궤도를 돌며 단진동을 하고, 생물은 빛과의 공명을 통해 세상을 볼 수 있다. 인간 또한 마찬가지다.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떨림과 울림을 주고받음으로써 인간은 존재하게 된다. ‘나’를 ‘나’라고 불러줄 수 있는 사람이 있어서 내가 있을 수 있고, 소중한 사람이 있기에 타인을 존중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사람은 혼자서는 존재할 수 없다. ‘떨림과 울림’은 ‘진동은 차갑지만, 떨림은 설렌다. 진동은 기계적이지만, 떨림은 인간적이다’와 같은 인간미 넘치는 시선으로 가득하다. 저자는 세상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책을 썼다고 한다. 권위보다는 합리적인 의심과 자유로운 반박을 추구하는 과학의 정신이 사회의 민주성을 성장시키는 역할을 담당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과학책을 수학적 계산이나 이론을 소개하는 지엽적 이해로 받아들였던 내게 이 책은 사람 냄새 물씬 나는 매력적인 과학서다. 인간미 없는 과학의 차가움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사람이라면 읽어 보기를 권한다. 책에 다량으로 함유된 저자의 인간적인 시선이 당신의 알레르기를 치료해 줄 것이다. 진동과 떨림의 차이를 이렇게 문학적으로 서술하다니….■세희의 한마디 사실 나는 이번 책을 읽으면서 머리가 지끈거렸어. 과학을 손에서 놓은 지 어언 5년은 돼 가니까, 진동이니 공전궤도이니 하는 것들이 ‘이게 다 무슨 말이야?’ 하는 생각에 도무지 갈피가 잡히지 않더라고. 그렇지만 조금 참고 읽다 보니 저자의 시각이 나에게도 참 좋은 울림으로 다가오더라. 진동과 떨림의 차이를 이렇게 문학적으로 서술하다니 말이야! 앞으로는 과학과도 조금은 친하게 지낼 수 있을지도?
박세희·우제원의 독서연애박세희우제원독서연애
[박세희·우제원의 독서연애] 모호한 말 '기본소득' 할 말 있습니다
[박세희·우제원의 독서연애] 모호한 말 '기본소득' 할 말 있습니다
2021. 04. 05 14:17 문화/생활
intro 청년 제원은 똑똑한 세희와 사랑에 빠졌다. 세희는 재원에게 단 하나의 연애 조건을 요구한다. ‘존중할 것!’ 처음엔 이 조건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할수록 밑도 끝도 보이지 않는 조건이었다. ‘알 수 없으면 읽으면 되지!’ 세희와 제원은 연애를 위한 독서를 함께 해 보기로 한다. ‘박세희·우제원의 독서연애’는 99년생 페미니스트 대학생 세희와 기독교학을 전공한 93년생 제원의 연애독서일기다. 세희와 제원이 함께 읽은 스물다섯 번째 책은 ‘모두의 몫을 모두에게’(금민 지음 / 동아시아)다. 이번엔 제원이 쓴다. ▶언어의 TPO “밥 한 끼 먹자.” 친구에게 이 말을 들은 지 1년이 지났다. “그래, 연락 줘.” 보낸 답장에 붙은 숫자 1에는 먼지가 수북이 쌓였다. 내 머리엔 온갖 시나리오가 떠오른다. 1년이 지나도 연락이 없는 사실은 그의 신변에 무슨 일이 생겼다는 것일까. 녀석의 인스타를 확인하면 그건 아니다. 그럼 친구 말에 감춰진 의도를 내가 알아채지 못한 걸까. 그도 아니면 영화 ‘메멘토’의 주인공처럼 나의 못된 기억력이 그와 밥을 먹었다는 사실조차 망각한 걸까. 내 상상의 시나리오는 여기서 멈춘다. 팩트를 말하면 그 친구는 내게 아직 연락하지 않았다. “밥 한 끼 먹자”는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듯 보이지만, 사실 중의적이고 다의적 의미를 함축한다. “이만 안녕” “언젠가 마주치면 인사하자” “우린 나쁘지 않은 관계지” “언젠가는 어쩜 밥을 먹을 수도”…. 당신은 이 말의 의미를 어떻게 읽는가. 확인할 방법이 없는 그럴싸해 보이는 말은 사실 모호한 말이기도 하다. 모호한 말은 백지수표와 같다. 하얀 백지가 10원이 될지 1억 원이 될지는 알 수 없다. 모호한 말은 화자와 청자의 상황과 입장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곤 한다. 그러니 갈등과 오해의 핵심은 말 그 자체가 아니라, 소통하지 않으려는, 혹은 소통 못 하는 사람들 간의 컨텍스트다. 커다란 사회적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책임자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뼈를 깎는 혁신”을 내뱉는다. 이 비장한 말을 신뢰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은 말에 문제가 아님을 보여준다. 하지만 언어의 모호함이 늘 부정적인 건 아니다. 직설의 언어로 말하기 부담스러울 때 모호한 언어만큼 유익한 것도 없다. ‘벗겨진 대머리’보다 ‘연륜 있는 머리’라는 표현이 더 아름다운 것처럼 말이다. 적당한 모호함은 상황에 따라 세련된 언술로 활용된다. 그렇지만 개인의 언어와 사회적 언어의 모호성은 그 성격을 달리해야 한다. 특히 정치적 공공성을 지니는 말은 모호함에 기대지 말아야 한다. 공공의 담론을 구성하는 사회적 대화의 본질은 구성원의 합의다. 화자 마음대로 담보할 수 없는 금액을 난발하면 할수록 듣는 상대의 이해는 감소할 뿐이다. 그래서 공공의 언어는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한 말의 소통과 합의가 중요하다. 사진 동아시아 제공코로나 시대 노동과 소득에 대한 논의에 본격적으로 불이 붙었다. ‘기본소득’이 논쟁의 테이블 위에서 설전 중이다. 사람마다 기본소득에 대한 온도 차가 크다. 국가의 재정을 망치는 과한 복지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미래에 필요한 제도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온도의 차이는 기본소득에 대해 합의된 사회적 해답이 아직 산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본소득은 임금의 대체재인가, 보조금에 개념인가. 기본소득은 정당한 것인가 등…. 사회적 대화를 위해서는 서로가 생각하는 기본소득이 무엇인지부터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모두의 몫을 모두에게’(금민 지음 / 동아시아)는 기본소득의 다양한 형태를 소개한다. 고려대학교와 독일 괴팅겐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한 저자는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를 창립하고 기본소득 도입에 대한 본격적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이 책은 기본소득의 정의와 정당성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즉 기본소득의 개념과 더불어 왜 기본소득이 필요한가에 대한 정당성 확보에 논의의 무게 중심을 둔다. ▶어른들이 분노하는 이유 1855년 미국의 대통령 프랭클린 피어스는 현재 워싱턴에 거주하던 인디언 스와미족의 추장에게 그들의 땅을 팔기를 요청했다. 피어스의 요구에 추장은 이렇게 답한다. “당신은 어떻게 하늘을, 땅의 체온을 사고팔 수가 있습니까? 그와 같은 생각이 우리에게는 매우 생소합니다. 더욱이 우리는 공기의 신선함과 물의 거품조차 소유하지 않습니다.” 이 일화에는 소유권에 대한 상반된 인식이 드러나 있다. 피어스가 자연을 사유화할 수 있는 재화로 본 반면 추장은 자연을 특정 단체나 개인이 사유화할 수 없는 것으로 봤다. 추장의 생각을 현대적으로 표현하자면 그는 자연을 사유화할 수 없는 공동의 자산으로 생각했다고 할 수 있다. 기본소득은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소유권이 있는 공동의 자산이 있다는 전제로부터 출발한다. 이익 창출이 가능한 공동의 자산은 공통부라 할 수 있다. 공통부에서 발생한 이익은 소유권이 있는 모두에게 조건 없이 평등하게 분배돼야 한다. 그렇기에 기본소득은 보편적·개별적·무조건적 성격을 가진다. 기본소득과 복지의 차이가 바로 여기에서 발생한다. 일반적인 복지는 혜택을 받을 대상을 조건에 따라 선별한다. 더불어 개인이 아닌 가구를 대상으로 할 때도 많다. 기본소득과 복지는 사회적 안전망이라는 점에서는 같지만, 그 외에는 차이가 명확한 별개의 제도다. 금민은 기본소득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18세기 영국의 학자 토머스 페인의 이중적 소유권 이론에 주목한다. 페인은 소유 개념을 자연소유와 인공소유로 나눈다. 자연소유는 자원에 대한 모든 사람의 공동 소유권을, 인공소유는 노동 투입으로 발생한 가치 증가분에 대한 사적 소유권을 말한다. 인공소유로 발생한 이익은 노동을 투입한 주체가 소유하되 자연소유에서 발생한 이익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분배해야 한다는 것이다. 페인의 이론은 사유재산권을 인정하면서도 공동의 몫에 대한 분배를 가능하게 한다. 공동의 소유권과 개인의 노력, 양측에 대한 분배의 정의를 모두 만족하는 것이다. 기본소득은 책의 제목처럼 ‘모두의 몫을 모두에게’ 돌려주는, 분배의 정의를 실현하는 일이다. 저자는 조세, 용익권, 공동소유 등 기본소득을 실현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소개한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책이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은 기본소득의 기능적 효과나 실현을 위한 방법론이 아니다. 책의 핵심은 기본소득의 정당성을 논증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본소득의 전제가 될 공통부가 무엇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저자는 기본소득의 원천이 될 공통부로 빅데이터를 지목한다. 산업화 이후 전통적인 권력의 척도는 생산수단의 소유 여부였다. 그랬던 것이 세계가 디지털화돼 감에 따라 데이터의 축적량과 그것을 분석할 수단으로 이행하고 있다. 페이스북과 우버 등의 플랫폼 기업이 대표적인 예시다. 저자가 빅데이터를 공통부로 지목한 이유는 그것의 원천이 개별 이용자의 행위에 있기 때문이다. 빅데이터라는 권력의 원천이 이용자에게 있기에 여기서 발생한 이익은 이용자 모두에게 돌아가야 한다. 정부가 빅데이터 이용의 대가로 해당 기업의 지분을 일정량 소유해 배당된 몫을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분배하는 공통배당은 기본소득 실현을 위한 현실적인 방안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 대다수 시민의 생계는 임금 노동에 의존하고 있다. 문제는 AI나 데이터 처리 기술의 발달로 노동의 필요성 자체가 감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치솟는 실업률, 낮은 임금 상승, 정규직의 비정규직화를 우리는 이미 겪고 있지 않은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자리 창출에 자원을 투자하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있어야 할 일자리를 만들지 않는 게 아니라 노동의 필요성 자체가 줄어들고 있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임금 노동을 통한 생계의 유지가 점점 어려워질 미래에 대비하기 위한 열쇠는 증가하고 있는 생산력에 있다. 산업화 이후 인류는 어떻게 하면 생산력을 극대화할 수 있을지에 몰두했다. 고민은 4차 산업혁명을 맞아 AI, 로봇, 빅데이터 등의 형태로 열매를 맺었다는 점이다. 기술의 발전은 노동의 필요성은 줄이면서도 생산력의 증가폭을 산술급수에서 기하급수적인 것으로 바꾸고 있다. 다가오는 변화가 사람들에게 재앙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증가한 생산력을 어떻게 분배할지를 생각해야 한다. 이제는 어떻게 생산할지 보다 어떻게 분배할지를 생각할 때가 온 것이다. 분배의 정의는 소유에 대한 성찰 없이는 실현될 수 없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소유란 무엇이었나. 아무런 목적도 철학도 없는 맹목적인 부의 축적을 의미하지 않았나.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는 소유에 대한 우리의 뒤틀린 인식을 바꿔줄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제16차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대회 개최 기자회견 모습.기본소득은 공통부가 존재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바꿔 말하면 공통부에 대한 합의 없이는 기본소득은 실현할 수 없다. 토지는 사유재임과 동시에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공통부로 인식돼 온 자원이다. 그래서 정부는 토지의 개인 간 거래를 허용하면서도 공공성을 위해 법으로 시장을 규제한다. ‘토지는 사는(구매) 게 아니라 사는(거주) 거다’라는 말도 이 맥락에서 나온다. 이번 LH 사태는 토지 인식에 대한 일종의 ‘사회 공동체 시험의 장’이기도 하다. 우리가 시험지에 어떤 답을 쓰는가에 따라 토지에 대한 정의가 새로워질 수도 있다. 많은 이들이 투기에 관여한 공직자들에게 열을 내며, 자신들의 분노를 분출한다. 사람들은 과연 무엇에 분노하는가. LH 직원들의 투기가 토지의 공공성을 훼손했기에? 아니면 공정하게 투기할 권리를 훼손해서? 정보 특혜로부터 배제된 박탈감에 따른 허탈감과 분노일 수도 있다. 이 불만의 진원지는 소유의 문제일까 분배의 문제일까. 우리 사회는 아직 어떠한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공회전 중이다. 지구는 둥글다. 하지만 누군가 ‘너희의 지구는 둥글어도, 넓은 땅을 가진 나의 지구는 언제나 평평하다’라고 답한다면, 우리 시대의 사회적 합의는 영원히 미완의 과제로 남을 것이다. 토머스 페인의 초상. 사진 동아시아 제공■세희의 한마디 기본 소득제라…. 내가 뮤지컬이나 연극을 좋아해서 한동안 예술인 기본소득제에도 관심이 있었어. 그런데 웬걸. 생각보다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더라고. 그 직업으로 먹고살 수 있을 만큼의 능력이 있는 사람들만이 프로가 되고, 살아남는 거라며 말이야. 그 말을 듣고 의문이 들었어. 먹고살아야 살아남을 수 있는 건데, 왜 살아남아야 먹고살 수 있는 거지. 안 그래? 어른들이 하고 싶은 말은 결국에 이거야. 노오~력하라는 거. 그러면서 투기를 하는 건 도대체 무슨 심보일까. 지금도 ‘노오력 신화’가 판치는 사회에 과연 기본소득의 도입이 가능할까. 나에겐 아직 멀게만 느껴져.
박세희·우제원의 독서연애기본소득금민
[박세희·우제원의 독서연애] 연대의 첫걸음은 '사랑이야'
[박세희·우제원의 독서연애] 연대의 첫걸음은 '사랑이야'
2021. 03. 08 14:17 문화/생활
intro 청년 제원은 똑똑한 세희와 사랑에 빠졌다. 세희는 재원에게 단 하나의 연애 조건을 요구한다. ‘존중할 것!’ 처음엔 이 조건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할수록 밑도 끝도 보이지 않는 조건이었다. ‘알 수 없으면 읽으면 되지!’ 세희와 제원은 연애를 위한 독서를 함께 해 보기로 한다. ‘박세희·우제원의 독서연애’는 99년생 페미니스트 대학생 세희와 기독교학을 전공한 93년생 제원의 연애독서일기다. 세희와 제원이 함께 읽은 스물네 번째 책은 ‘천개의 찬란한 태양’(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 홍은철 옮김 / 현대문학)이다. 이번엔 세희가 쓴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개강을 앞두고 나에게 묻는다.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지?” 개강 시즌과 맞지도 않는 엉뚱한 물음. 하지만 나는 매번 학기가 시작되면 같은 질문을 던진다. 고민할 수 없으면 고민하지 않게 된다. 바쁜 수업과 일상에 나를 맡기며 그저 주어진 대로 자신을 맞추면서 ‘성과’나 ‘보람’이 있었다고 말하긴 싫다. 또 묻는다. “왜 하필 개강을 앞두고 같을 질문을 계속 반복하지?” 아마도 방학이라는 꽤 긴 시간의 터널을 벗어나 새로운 관계를 맺는 시간이 다가오기 때문이라고 변명해 본다. “산다는 것은 도대체 어떤 의미지?” 마당의 흙들이 조금씩 푸른 새싹을 맞기 위해 단단한 입을 벌리고 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말에서 나는 ‘사회’라는 단어에 방점을 찍는다. 인간은 일차원적인 욕구 충족만으로 삶을 채울 수 없다. 적극적으로 사회를 구성하고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삶을 완성한다. 한 개인은 자신이 속한 집단에 영향을 받으며 가치관을 형성하고, 공동체 안에서 타인과 같은 것과 다른 것이 무엇인지 경험한다. 동의와 반대, 공감과 충돌, 협력과 싸움, 타협과 조율을 병행하며 공동체가 추구하는 삶의 지향점을 향해 나간다. 그리고 지향점에 도달하기 위한 상호의 노력을 통해 서로에게 새로운 준거와 지향점이 되기도 한다. 자아의 존립이 가능한 것은 자신의 출중한 능력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 모두가 지지하는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상호 보강의 힘이 상호작용하기 때문이다. ‘연대(蓮臺)’, 나는 공동체의 원동력이 ‘연대의 힘’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연대’의 사전적 의미는 “여럿이 함께 무슨 일을 하거나 함께 책임을 짐” “한 덩어리로 서로 연결돼 있음”이다. 서로 연결돼 함께 책임을 지는 것이 연대의 본질이다. 당연하지만 점점 사라지는 말 ‘혼자서는 쉽게 부러지지만, 함께면 강하다’.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지?” 나의 첫 마디 대답은 “당신과 함께여서”라고 말하고 싶다. ‘월드프레스포토 2017’ 일상 부문 수상작. ‘잊혀진 전쟁 속 무언의 피해자’. 아프가니스탄 여성이 테러로 다친 조카를 안고 있는 장면이다.  |파울라 브론스테인 작품▶연대의 아름다움 ‘천 개의 빛나는 태양’의 작가인 할레드 호셰이니는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태어나 정치적 이유로 미국으로 망명한 아프가니스탄계 미국인 작가다. 전쟁으로 인해 예기치 않게 한 명의 남편을 둔 두 여성 마리암과 라일라가 책의 주인공이다. 이 책은 과장되지 않은 말투로 담담하게 이슬람 문화권 여성의 삶을 보여준다. 소설이지만 마치 누군가의 삶을 사진을 찍은 듯 생생하게 재현했다. 주인공 중 첫 번째 부인인 마리암은 헤라트에서 이름만 대면 알 정도로 큰 부자의 하라미(사생아)다. 그의 아버지는 이미 3명의 아내와 10명의 자식을 두었지만, 가정부인 마리암의 어머니를 임신시키고 자기 소유의 외곽 땅으로 쫓아버린다. 그리고 마리암과 그녀의 엄마가 자신의 영역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어린 마리암이 아버지의 집을 방문하지만, 그녀는 아버지 집에서 강제로 쫓겨난다. 이 일을 계기로 마리암의 엄마는 외로움과 절망에 자살한다. 결국 마리암의 아버지와 그의 아내들은 14살의 어린 마리암을 중년의 라시드라는 남자에게 팔아버리듯 시집보낸다. 한편 두 번째 부인인 라일라는 어릴 때부터 유복한 집에서 태어나 시를 읽는 것을 즐기며 살았다. 공부하고, 친구를 사귀는 평범한 10대였지만, 평화로운 일상은 오래 가지 못했다. 계속된 전쟁이 라일라의 친구도, 가족도 송두리째 앗아갔기 때문이다. 폭발에 휘말려 크게 다친 그는 마리암의 남편 -이자 그녀의 남편이 될- 라시드에 의해 구해진다. 당시 라일라는 어린 시절부터 친하게 지내던 타라크와 서로 마음을 나눈 사이로, 이미 아이를 가진 상태였고, 타라크의 사망 소식을 듣자 아이를 지키기 위해 라시드의 청혼을 받아들인다. 이렇게 한 남자에 의해 강제로 두 여자의 동거가 시작된다. 예고 없이 등장한 라일라에게 자신의 자리를 빼앗기자 마리암은 조바심이 났다. 하지만 둘은 한 남자를 두고 서로 경쟁하고 질투하는 관계일 수 없었다. 그것은 폭력적이고 절대 군림하는 남편 라시드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 마리암을 때리려는 남편을 라일라가 말렸다. 이를 계기로 마리암은 라일라에게 마음을 연다. 이후 둘은 서로를 위하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집안일만을 하던 마리암의 일상에 라일라와 그녀의 딸 아지자는 소중한 쉼표이자 가족이었다. 그들은 어느새 함께 남편을 벗어나 도망을 꿈꿀 만큼 서로를 믿고 의지했다. 두 사람이 맺은 연대는 서로에게 그 무엇도 대신 할 수 없는 살아갈 이유였다. 소설의 절정은 분노에 찬 남편이 라일라를 목 졸라 죽이려 하는 데로 치닫는다. 마리암은 본능적으로 라일라를 구하기 위해 라시드의 머리를 삽으로 내리쳐 죽인다. 모든 죄를 안고 법정에 서는 마리암과 눈물로 고향을 떠나는 라일라에게 행복한 결말은 주어지지 않았다. 폭력적 남편을 둔 두 여성의 운명은 해피엔딩일 수 없었다. 서로를 향한 사랑과 연대가 강할수록 억압적이며 폭력적인 가부장 사회의 현실은 아픈 채찍을 그들에게 휘둘렀다. 남성이 주인인 사회에서 여성으로 사는 것은 비극이다. 하지만 마리암과 라일라는 이 비극에 맞서 희망이라는 연대의 씨앗을 품었다. 다큐멘터리 ‘침묵하는 여성들을 위하여(A Thousand Girls Like Me)’의 한 장면.  |사라 마니 감독.‘천 개의 빛나는 태양’은 마리암의 어머니 나나, 마리암, 라일라, 라일라의 딸 아지자의 모습을 통해 억압받는 여성의 문제가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구조적 차원임을 보여준다. 남성 중심이라는 미명하에 자행되는 이슬람 문화권에서 여성의 차별과 고통 속에 수많은 마리암과 라일라가 있음을 알려준다. 그리고 이 비극의 끝은 누군가에 의해 종결되는 것이 아니라 억압의 주체들이 서로 연대함으로써 돌파할 수 있음을 제시한다. 책이 나온 지 10년이 넘었지만 ‘천 개의 빛나는 태양’은 여전히 새롭게 읽힌다. 척박한 환경과 자신을 힘들게 하는 상황 앞에서도 우리는 놓치지 말아야 한다. 사랑의 연대를…. 할레드 호세이니.■제원의 한마디 책의 첫 페이지를 열었을 때 나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는 것을 목격했어. 금단의 상자가 열리고 그 안에서 죽음과 질병이 쏟아져 나오듯이, 책은 담담한 어조로 절망을 쏟아냈지. 소련의 침공, 끊임없는 내전과 테러 그리고 미국의 전쟁선포. 마리암과 라일라가 살던 곳은 희망보다는 절망이, 생명보다는 죽음이 가까운 곳이었어. 이런 죽음 속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일까. 페이지를 넘기며 답을 찾았어. 그리고 마침내 한 가닥 빛줄기를 발견했지. 마리암과 라일라가 만들어낸 연대. 두 사람의 연대는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었어. 비극을 거친 묘한 쾌감. 늪 같은 절망을 뚫고 그들은 누군가에 종속된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존엄한 인간임을 증명했어. 두 사람이 함께 이룬 연대의 쾌거지. 미리암과 라일라가 보여주듯 세상에 불가능한 연대란 없어. 같은 인간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우리가 서로 연대할 이유는 충분해. 대상을 가리지 않고, 한계를 따지지 않기에 연대는 강해. 반대로 말하면 인간이 서로를 차별하고, 외면하는 순간부터 절망이 시작되지. 연대의 첫걸음은 사랑이야. 분명 쉽지 않지만, 그 길을 가다 보면 나도 언젠가 빛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판도라의 상자에서 마지막 희망을 발견한 것처럼….
박세희·우제원의 독서연애박세희우제원독서연애천개의 찬란한 태양할레드 호세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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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희·우제원의 독서연애] 포르노, 성범죄 넘어 젠더 갈등 만들다
2021. 02. 01 07:12 문화/생활
intro 청년 제원은 똑똑한 세희와 사랑에 빠졌다. 세희는 재원에게 단 하나의 연애 조건을 요구한다. ‘존중할 것!’ 처음엔 이 조건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할수록 밑도 끝도 보이지 않는 조건이었다. ‘알 수 없으면 읽으면 되지!’ 세희와 제원은 연애를 위한 독서를 함께 해 보기로 한다. ‘박세희·우제원의 독서연애’는 99년생 페미니스트 대학생 세희와 기독교학을 전공한 93년생 제원의 연애독서일기다. 세희와 제원이 함께 읽은 스물세 번째 책은 ‘포르노랜드’(게일 다인스 지음 / 신혜빈 옮김 /열다북스)다. 이번엔 제원이 쓴다. ▶포르노, 투명한 폭력을 만들다 ‘Real Person Slash’를 줄인 RPS(이하 알페스)는 실존 인물을 등장인물로 한 판타지, 스릴러 등 다양한 장르의 2차 창작물을 말한다. 최근 일부 아이돌 팬들이 남자 아이돌을 대상으로 한 포르노 소설을 제작·유포해 온 사실이 밝혀지면서 알페스 포르노를 둘러싼 젠더 갈등이 불거졌다. 알페스 포르노가 단순 성범죄를 넘어 젠더 갈등으로까지 번진 이유를 알려면 사건의 이슈화 양상을 살펴봐야 한다. 사건을 공론화한 사람들의 입장은 두 분류로 나뉜다. n번방과 딥페이크 등에 대한 문제 제기를 남성에 대한 공격으로 인식, 알페스 포르노 사건을 통해 페미니스트를 공격하는 입장이 하나이고, n번방·딥페이크와 알페스 포르노 사건의 죄질을 동일한 차원에서 취급하는 것을 방어하려는 페미니스트의 입장이 또 다른 하나다. 공격하려는 쪽과 방어하려는 쪽의 입장이 부딪치면서 사건은 젠더 갈등으로 확전됐다. 두 입장은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에서는 뚜렷하게 구분되지만, 문제를 해결하려는 데 도움이 되지 않다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지금은 사건의 피해 규모와 규명, 가해자 처벌, 재발 방지를 위한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이 사건을 자신들의 입장을 강화하려는 정략적 도구로 이용하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사건 해결을 위해 우리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알페스 포르노는 하루이틀이 아닌 몇 년에 걸쳐 이루어진 범죄다. 남자 아이돌 팬의 수는 어림잡아 수십만이다. 그들 모두가 포르노를 소비하지는 않았겠지만, 최소한 그 존재 정도는 짐작했거나 알았을 가능성이 높다. 어쩌면 공공연한 사실이 최근까지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다고도 여겨진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 수 있었지?”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면서 나는 ‘포르노 산업’에 대한 본질적 성찰이 필요함을 절감한다. ‘포르노랜드’의 저자 게일 다인스는 30년 넘게 포르노 사업을 연구한 보스턴 윌록 대학의 명예교수다. 책을 읽는 동안 몇 번이나 헛구역질이 올라오는 것을 참아야 했다. 책이 설명하는 포르노 산업의 실태는 한도가 없는 신용카드 같았다. 그 안에서 인간의 타락에는 정해진 한도가 없었고, 오로지 더 추락하는 것만이 가능했다. 이런 극한의 폭력을 30년이 넘게 추적하기 위해 저자가 다졌을 각오가 어느 정도일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포르노그래피’는 그리스어 ‘포르네’(창녀·매춘부)와 ‘그라페인’(기록하다, 그리다)의 합성어에서 왔다. 직역하자면 ‘창녀에 대한 기록’ 또는 ‘매춘부에 관한 그림’ 정도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성인물을 파는 가게나 불법 인터넷 사이트에서나 나올 법한 단어라고 생각한다면 완벽한 착각이다. 포르노는 광범위하고 자연스럽게 우리 문화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아이돌에게 점점 더 많은 노출을 요구하고, 소비하면서 아름답다고 하는 말 ‘꿀벅지’ ‘짐승남’ 등 상대의 성을 대상화하는 언어가 버젓이 흘러나오는 미디어는 모두 포르노적 상상을 자극한다. 포르노의 대중화에는 해당 산업을 이끄는 기업들의 치밀한 전략이 숨겨져 있다. 미국의 남성 잡지 플레이보이만 하더라도 포르노의 대중화를 위해 고급화 전략을 사용했다. 기존 포르노 잡지가 여성의 나체에만 집중했다면, 플레이보이는 여기에 칵테일·시계·칼럼 등 고급문화를 더했다. 포르노에 고급문화가 더해지자 사람들의 인식에는 전환이 일어났다. 포르노의 선정성·폭력성에 경계가 흐려지고, 플레이보이를 포르노에서 라이프 스타일 잡지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플레이보이는 불티나게 판매됐고, 창간자 휴 헤프너는 돈방석에 앉는 것과 함께 놀 줄 아는 남자라는 시대의 아이콘이 됐다. 플레이보이의 진격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플레이보이 이후로 그 스타일을 모방한 ‘펜트하우스’ ‘허슬러’ 등의 잡지가 생기고,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유통망이 생기면서 포르노 산업은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해졌다. 포르노 업계의 전략이 고급화뿐이었다면 그나마 다행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특별한 비법을 더해 포르노를 소비에 최적화된 형태로 만들었다. 그 비법이란 포르노 배우에게서 인간성을 벗겨내고 그 자리에 걸레·창녀 등 모욕적인 언어를 채우는 일이었다. 인간성을 박탈당한 배우는 ‘강간당해도 마땅한’ 또는 ‘오로지 성행위를 위한’ 존재로 전락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포르노 소비에 죄의식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을 얻게 됐다. ‘포르노랜드’의 문제 제기는 배경이 된 미국만이 아닌 포르노 산업이 성행하는 모든 사회를 저격한다. 성 착취 DNA의 계보를 잇는 사건이 즐비한 한국도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포르노의 폭력적 구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상화·대중화·비가시화로 위장된 포르노 산업의 실체를 폭로하고 그 본질을 부각해야 한다.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이 되는 게 아니듯이 대중성의 가면을 쓴다 해도 폭력이라는 포르노의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포르노랜드’의 출판사 열다북스는 ‘해설: 한국이라는 포르노랜드를 말하다’에서 ‘홍대 몰카사건’(여성이 남성을 몰카로 촬영, 인터넷에 유포한 사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해당 사건의 수사 과정은 여성에 대한 이중 잣대가 적용된 편파 수사였으며, 여성들은 억압과 폭력에 맞서 대항했다”고. 이로써 사건의 핵심은 몰카 피해가 아닌 여성에 대한 탄압으로 전환됐다. 과연 피해자의 입장을 조금이라도 생각했었다면 이런 글을 쓸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수사 과정에 대한 문제 제기와는 별개로 피해자에 대한 미안함과 가해에 대한 성찰은 있어야 했다. 성폭력에 대한 성찰 없이는 탈포르노 또한 없다. ■세희의 한마디 음… 나는 이번 논의를 어떻게 봐야 할지 아직 고민이 많아. 나 역시 알페스가 일종의 착취라는 지점에 동의해. 알페스가 마케팅 도구로 활용되고, 시장성을 인정받아야 하는 환경에 있는 아이돌 입장에서는 알페스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기 어려웠을 테니까. 그럼에도 나는 알페스 논란이 전개되는 양상에 불편함을 느끼고 있어. 딥페이크, AI 이루다 성희롱 등 여성에 대한 성범죄가 있어 왔지만 알페스 논란만큼 빠르고, 광범위하게 이슈가 공유되지는 못했거든.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사회가 문제를 받아들이는 태도에 편향성이 있는 거지. 알페스 사건 이후 SNS에는 알페스에 연관된 기록을 지워 준다는 것을 빌미로 여성의 알몸 사진이나 자위 영상을 요구하는 등 또 다른 성 착취가 발생하고 있기도 하고 있어. 하지만 문제를 공론화한 사람들은 이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키고 있지. 문제를 공론화한 사람들이 정말로 피해자를 위해 문제를 공론화한 것일까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야. 만약 정말로 성착취를 막고 싶은 거라면 이 부분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내는 게 도의가 아닐까?
박세희·우제원의 독서연애박세희우제원알페스 포르노
[박세희·우제원의 독서연애] 페미니즘=휴머니즘’이다
[박세희·우제원의 독서연애] 페미니즘=휴머니즘’이다
2021. 01. 11 11:27 문화/생활
intro 청년 제원은 똑똑한 세희와 사랑에 빠졌다. 세희는 재원에게 단 하나의 연애 조건을 요구한다. ‘존중할 것!’ 처음엔 이 조건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할수록 밑도 끝도 보이지 않는 조건이었다. ‘알 수 없으면 읽으면 되지!’ 세희와 제원은 연애를 위한 독서를 함께 해 보기로 한다. ‘박세희·우제원의 독서연애’는 99년생 페미니스트 대학생 세희와 기독교학을 전공한 93년생 제원의 연애독서일기다. 세희와 제원이 함께 읽은 스물두 번째 책은 ‘왕진 가방 속의 페미니즘’(추혜인, 심플라이프)이다. 이번엔 제원이 쓴다. ▶세희와 제원의 대화: 우리의 나잇값은? 세희: 신축년 새해가 밝았어. 갑자기 1년이 순삭한 느낌이야. 힘들고 지친 코로나의 시간을 지우고 싶었던 걸까? 제원: 어쨌든 우리의 새로운 1년을 축하하자. 올해 달력을 보니 작년보다 휴일이 적더라. 이건 직장인에겐 우울한 소식. 그래도 올해 현역병 월급을 인상한다고 하니 반가운 소식이야. 세희야, 요즘 서른 살을 뭐라고 부르는지 알아? 세희: 음~ 설익은 살? 서글픈 살? 설설 끓는 살…. 이쯤 하면 정답이 나와야지? 제원: 하핫! ‘스물 열 살’이라고 불러. 20이라는 앞자리를 절대 떼지 않겠다는 우격다짐이지. 이런 아재스러운 농담에 눈길이 가는 걸 보면, 나도 이젠… 흐흑~ 세희: 물리적인 나이보다 성숙한 어른으로서 나잇값을 하는 거, 사람의 나이는 그걸로 평가받는 게 맞지 않겠어? 제원: 그런 의미에서 ‘왕진 가방 속의 페미니즘’을 쓴 의사 추혜인은 멋지게 나이 들고 있는 사람이야. ▶진짜 뭣이 중헌디 2019년 나는 재학하던 대학의 총학생회장이 됐다. 학생회 대표로서 내가 감당해야 할 현안들이 그야말로 산더미였다. 나를 향한 주변 사람들의 시선과 높은 업무강도를 견뎌내는 것은 고됨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총학생회장으로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나의 선택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이 선택이 최선일까’ ‘내 결정이 옳은가’ ‘후회하지 않을까’ 등등 고민과 번민들이 나를 몰아세웠다. 그때 나는 리더의 자질에 스스로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절실히 깨달았다. 나를 각성시킨 일화가 있다. 과다한 학생회 업무에 시달리다 보면 어느새 사람보다는 득과 실을 계산하는 효율을 따진다. 야근과 철야는 다반사였다. 당시 나와 함께 유독 밤샘 작업을 자주 하는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내게 도움을 요청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나는 업무와 관련한 방법이나 효율성에 대한 조언과 지침을 마련해 줬다. 시간이 꽤 흐른 뒤 알게 됐다. 당시 그 친구가 진짜 필요로 했던 것은 힘든 밤샘 작업을 함께 해 줄 사람의 온기였던 것을…. 일 처리만 중요했던 내게 사람의 마음은 보이지 않았다. 잘하지 못하면 안 된다는 내 두려움으로 인해 타인의 심정과 필요가 무엇인지 살피지 못했다. 사람이 사람을 착취하고, 도구화하는 광기가 매일 TV 화면 위를 질주한다. 이런 세상을 상대해야 하다 보니 페미니즘도 꽤 거칠어졌다. 세상이 두려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거기에 집어삼켜지지는 말아야 한다. 소셜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페미니즘 글들을 보다 보면 그 공격성에 안타까울 때가 많다. 분노의 표출이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좋은 방법이라는 사실에는 동의하지만, 약자를 변호한다는 목적을 잃고 또 다른 분노를 표출하려는, 분노를 위한 분노까지 동의하기는 어렵다. 분노의 소용돌이에 매몰되지 않으려면 ‘지금 여기의 내가 중요한 것을 잊지 않았을까’라고 스스로 질문해야 한다. ‘왕진 가방 속의 페미니즘’의 추혜인 저자는 말한다. “그 사람의 가장 아프고 힘든 시간이 걸어 들어온다. 나는 그 시간에 공명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라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의 논쟁에 사람이 결여돼 있지는 않은가’ 하고…. ▶살고 싶어지는 순간 추혜인은 살림의료복지사회협동조합(이하 살림조합) 소속 의사다. 살림조합은 사비로 개원되는 병원과 다르게 조합에 가입한 지역주민들이 돈을 모금해 만든 건강 공동체다. 덕분에 민간병원보다 진료비가 저렴하고, 조합원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 그가 처음부터 의사의 꿈을 꾸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대학교 1학년 겨울, 성폭력상담소에서 자원봉사를 하게 된 것을 계기로 공대에서 의대로 진로를 변경한다. 이후 의료인의 삶과 여성주의에 대한 고민의 결과로 살림조합을 만들었다. 첫 번째 에세이 ‘그가 그녀가 되는 곳’에는 60대 트랜스젠더 환자가 등장한다. 호르몬 치료를 받기 위해 찾아온 그에게 저자는 곤란함을 느낀다. 호르몬 치료는 피가 굳는 혈전증을 동반할 위험이 있다. 그래서 가능한 한 10대, 늦어도 20·30대에는 시작하는 게 좋다. 하지만 죽을 때 죽더라도 여자로 죽고 싶다는 환자의 말에 의사가 치료를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60대 환자에게 호르몬 치료를 하던 어느 날 저자는 그가 성전환 수술을 원치 않는다는 진심을 알게 된다. “저, 그럼 호르몬 치료는 왜 계속···?”이라는 저자의 물음에 그는 답한다. “이 세상에서 저를 여자라고 말하고 그렇게 봐주는 곳은 오로지 여기밖에 없어서요. 그래서 죽기 전까지는 여기 계속 오고 싶어요.” 바꿔 얘기하면 “죽기 전까지는 여기 계속 오기 위해 살고 싶어요”라는 말이었다. 몸을 치료하는 의사가 어느새 환자에게 삶의 의지를 불어넣는 사람임을 확인받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오늘날 의술이 인술이 된다는 사실을 쉽게 놓치곤 한다. 하지만 생명에 대한, 삶에 대한 무한한 의지를 북돋아 줄 때 의사는 전문 기술자라는 도구적 존재를 넘어서 인류를 위한 가치적 존재가 된다. 자신의 존재를 긍정받는 지극히 당연하고, 사소한 순간만으로도 인간은 살아갈 수 있다. 책에는 트랜스젠더 환자 이야기 외에도 정체 모를 통증에 시달리는 환자, 꾀병을 부리는 환자 등 다양한 이들의 사연이 담겨 있다. 그들은 사연은 달라도 자신의 아픔이 인정받을 수 있기를 바라는 점에서는 모두가 같다. 저자가 선택한 페미니즘은 그런 환자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이를 위로하는 것이다. 페미니즘을 정의하는 나만의 공식은 ‘페미니즘=휴머니즘’이다. 페미니즘을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싸워야 하는 순간이 있다. 싸움이 언제나 상책은 아니지만 필요할 때는 적극적으로 임해야 한다. 날이 선 논리로 환부를 절개해 썩은 부위를 드러내야 한다. 이때 사용되는 논리들은 메스와 같다. 상처의 치료에 사용되면 훌륭한 의료도구가 되지만 마구잡이로 휘두르기 시작하면 무기가 된다. 페미니즘은 휴머니즘이다.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이를 치유할 수 있을 때야 비로서 페미니즘은 페미니즘으로 있을 수 있다. 새해를 여는 지금은 지난날을 돌아보기 좋은 기간이다. 이번 기회에 그동안의 페미니즘을 성찰해 보는 것은 어떨까. ■세희의 한마디 타자의 시선은 중요하지도, 의식할 필요도 없다고 해도 그것이 개인의 정체성을 지탱하는 거대한 축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어. 그러니 우리의 사소한 시선이 누군가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가 될 수 있지. 글에 등장한 트랜스젠더 환자의 경우를 생각해 봐. 그는 자신의 존재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감동을 받았잖아. 언젠가 그와 같은 경험이 소규모 공동체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서 체험될 것이라고 믿어. 왜냐면 그런 날이 올 때까지 우리는 페미니즘 공부를 멈추지 않을 테니까!
박세희·우제원의 독서연애페미니즘박세희우제원
[박세희·우제원의 독서연애] 은밀한 차별·혐오는 저절로 사라지지 않는다
[박세희·우제원의 독서연애] 은밀한 차별·혐오는 저절로 사라지지 않는다
2020. 12. 10 11:03 문화/생활
intro 청년 제원은 똑똑한 세희와 사랑에 빠졌다. 세희는 재원에게 단 하나의 연애 조건을 요구한다. ‘존중할 것!’ 처음엔 이 조건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할수록 밑도 끝도 보이지 않는 조건이었다. ‘알 수 없으면 읽으면 되지!’ 세희와 제원은 연애를 위한 독서를 함께 해 보기로 한다. ‘박세희·우제원의 독서연애’는 99년생 페미니스트 대학생 세희와 기독교학을 전공한 93년생 제원의 연애독서일기다. 세희와 제원이 함께 읽은 스물두 번째 책은 ‘당신이 아름답지 않다는 거짓말’(조이한 지음 / 한겨레출판사)이다. 이번엔 세희가 쓴다. ▶세희와 제원의 대화 세희:오빠, 오빠는 전공이 기독교학이잖아. 혹시 릴리트 알아? 제원:가나안 신화의 여신이지. 하체는 뱀이고 상체는 여성으로 묘사되는 괴물이잖아. 세희: 흥미롭게도 아담의 첫째 부인이 이브가 아니라 릴리트라는 이야기가 있어. 릴리트는 낙원을 제 발로 박차고 나간 인류 최초의 여성이래. 제원:에덴을 자발적으로 버린 그녀의 선택은 어리석은 것일까? 탁월한 선택이었을까? 왠지 릴리트가 낙원을 거부한 이유가 남자 때문일 거라는 느낌적인 느낌이 드는군. ▶릴리트, 인류 최초의 여성 성경은 태초에 하나님이 인간을 흙으로 빚었다고 말한다. 정확히는 아담을 먼저 창조했다. 이브는 아담이 잠든 사이 그의 갈비뼈에서 나왔다. 이브의 탄생은 애초에 아담 없이는 불가능했다. 그녀의 생명도, 이브(하와)라는 이름도 모두 남편 아담에 의해 비롯됐다. 조물주가 계획한 창조의 진위가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여성은 창조 신화에서 홀로 설 수 없는 불완전한 존재였다는 점이다. 그런데 남성에 의하지 않고 창조된 릴리트 신화가 있다. 신은 릴리트를 아담처럼 동일하고 평등하게 흙으로 빚었다. 하지만 공평한 창조의 세계는 오래가지 않았다. 아담은 힘으로 릴리트를 굴복시키고 자신 아래 눕혔다. 즉 완강한 가부장의 세계를 구축하려 했다. 하지만 릴리트는 여 보란 듯이 아담의 완력을 벗어나 자신의 길을 개척했다. 가부장으로 상징되는 남성 아담의 세계에 저항해 릴리트는 낙원 에덴을 떠났다. 그리고 거친 홍해에 자신의 거처를 만들었다. 모든 것이 완벽하고 부족함이 없었다는 에덴. 하지만 그녀의 에덴은 가부장의 지배 아래 놓인 반쪽짜리의 가짜 세계였던 것이다. 그림에서 릴리트는 종종 뱀과 함께 등장한다. 실낙원 이후 뱀은 인류에게 악의 상징이었다. 릴리트와 뱀을 함께 등장시키는 데는 여성과 악의 본성을 암묵적으로 결합시키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남성에게 순종하지 않는 여성은 주체적 자발성을 갖춘 존재가 아니라 가부장의 질서를 용인하지 않는 문제적 존재로 부상한다. 창조 신화가 이토록 남성중심의 차별의 상상력을 보여준다는 점은 더 이상 행복한 상상을 만들지 못한다. 이는 여성을 철저히 종속적 존재로 인식하는 가부장 세계의 한계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가려진 것들이 보이는 순간 ‘당신이 아름답지 않다는 거짓말’의 저자 조이한은 아트 에세이스트다. 미술을 통해 젠더 문제를 다루는 것이 그가 선택한 페미니즘이다. 이 책은 인류 시원을 다룬 성경부터 남성의 동성애를 평범하게 수용했던 고대 그리스와 전위적 현대 미술에 이르기까지 미술로 바라본 여성사를 다룬다. 저자는 유독 여성에게만 악녀라는 가혹한 이름이 붙은 이유를 추적하면서 릴리트, 판도라, 이브에 대해 다룬다. 릴리트는 독립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실현했을 뿐인데도 남성을 타락시키고, 아이를 잡아먹는 악녀의 표상이 됐다. 또 이브는 아담과 같은 죄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인류사를 통틀어 남성에게 봉사해야 하는 덧씌워진 죄인이었다. 그리스·로마 신화의 판도라는 불행을 세상에 풀어 인간을 괴롭게 한 악녀로 여겨진다. 사실 세상을 멸망시킬 목적으로 판도라를 만든 건 제우스였음에도 그는 비난의 화살을 맞지 않았다. 이 밖에도 이 책은 메두사, 코르셋, 에로스 등의 이야기를 통해 익숙함의 정체가 벗겨졌을 때 소름끼치는 직면하게 될 혐오의 실체가 무엇인지 확인시킨다. 너무나 익숙해서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던 판도라와 이브의 이야기에 숨겨진 여성 혐오의 책략을 짚어내면서 나 또한 익숙한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이었음을 실감했다. 세상은 언제나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스스로를 위장한다. 안전해 보이는 빙하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혐오의 틈새를 사람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하려고, 곳곳에 널린 위험들을 무사히 빠져나가기에 우리의 ‘차별을 감지하는 감각’은 너무도 둔감하다. 그래서 직접 그 틈새에 빠져보기 전까지는 혐오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조차 하기 힘들다. 노동자가 되기 전까지는 노동권의 필요성을 체감하기 어려운 것처럼 말이다. 불안한 세상일수록 페미니즘이 필요하다. 페미니즘의 차별에 대한 날카로운 감각은 보이지 않던 것을 드러내는 효과가 있다. 2017년 할리우드에서 시작된 미투 운동이 드러낸 혐오의 실체는 놀라웠다. 그것은 없었던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게 가려 놓았던 것들의 폭로였다. 페미니즘이 모든 차별을 증명하지도 해결할 수도 없다. 그러나 페미니즘은 모순을 걷어내는 확실한 한 걸음임은 분명하다. 비록 느린 한 걸음이라도 성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한 희망의 한 걸음을 포기할 수 없다. ▶제원의 한마디 예전에 사물함에서 썩은 우유 냄새를 맡을 적이 있어. 정작 놀라운 것은 지독하게 썩은 냄새가 진동하기 전까지 아무도 그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는 점이었어. 우리 안에 내재한 차별과 혐오도 실은 썩은 우유와 비슷해. 너무나 은밀하게 숨겨져 있지. 결국 온통 썩은 냄새로 질식할 것 같아야 원인을 찾아. 아직도 많은 사람은 우리 안의 차별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아. 사물함을 여는 것이 싫고, 진동하는 냄새를 맡기 싫은 거지. 청소보다는 외면이 편하다는 생각하니까. 하지만 이 어리석은 기대는 결코 성공하지 못해. 썩은 우유가 저절로 사라지진 않으니까. 언제나 스멀거리며 결국 모든 세계를 오염시키지. 이번 책을 읽으면서 또 한 번 느꼈어. 은밀한 차별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항상 깬 정신으로 공부해야 한다는 것을….
박세희·우제원의 독서연애페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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