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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네프리뷰]디셉션-사적이고 섬세한 자유연애 비망록(2022. 10. 14 14:51)
- 2022. 10. 14 14:51 문화/과학
- 불가피한 ‘기만’을 통해서라도 본능적 공허와 욕망을 채우고자 발버둥치지만, 관습의 테두리 안에 머무르며 안도할 수밖에 없는 현대인의 위선과 치부가 드러난다. 마치 중년을 위한 <비포 선라이즈>처럼도 보인다. 제목 디셉션(Deception/ Tromperie) 제작연도 2021 제작국 프랑스 상영시간 102분 장르 로맨스, 멜로, 드라마 감독 아르노 데플레솅 출연 드니 포달리데스, 레아 세두, 엠마뉴엘 드보스, 레베카 마흐데 개봉 2022년 10월 20일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영국 런던. 중년의 유대계 미국인 작가이자 유부남인 필립(드니 포달리데스 분)은 갑갑한 결혼생활에 힘겨워하는 젊은 영국 여인(레아 세두 분)과 불륜관계에 있다. 필립은 친밀한 관계에 있는 여성과의 대화와 관찰을 토대로 얻은 영감으로 작품을 쓰는 독특한 방식을 선호하는 인물이다. 일주일에 몇 번씩 필립의 작업실에서 밀회를 나누는 두 사람은 정치·문화·역사를 아우르는 거시적 이슈는 물론 매우 은밀한 성적 판타지와 개인사까지 공유하며 유대감을 키워간다. 필립은 과거의 습관대로 여인과의 만남에서 비롯된 경험과 대화를 상세하게 노트에 기록하고, 이를 새로운 작품 집필의 중요한 원동력으로 삼는다. 하지만 보편적 관습을 벗어난 두 사람의 관계는 한계를 맞이한다. 1980년대 말이란 시대적 배경이나 입체적 캐릭터, 꽤 현실적이고 신랄한 대사 등 범상치 않은 섬세함이 두드러지다 보니 영화를 보는 내내 누군가의 실제 자전적 이야기를 영화화한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역시나 원작은 미국의 유명작가 필립 로스가 1990년에 발표한 동명 소설이다. 필립 로스는 작품에 자전적 요소가 강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영화의 연출을 맡은 아르노 데플레솅 감독이 직접 각색했다. 개인적 작가주의 중견 감독의 신작 아르노 데플레솅은 1991년 54분짜리 중편 <죽은 자들의 삶>으로 데뷔했다. 첫 작품부터 누벨바그를 계승하는 비범한 개인적 작가주의 감독이란 평가를 받으며 비평계로부터 두 팔 벌린 환영을 받은 그는 이후 <파수병>(1992), <나의 성생활: 나는 어떻게 싸웠는가>(1996)를 발표했는데 위의 3편은 모두 허구라기보다 자신의 개인적 고백이라고 밝혔다. 명성에 비해서는 국내에 소개된 작품이 많지 않다. TV영화와 다큐멘터리 등을 포함한 17편의 연출작 중 2007년 개봉한 <킹스 앤 퀸>과 <나의 성생활: 나는 어떻게 싸웠는가>의 프리퀄에 해당하는 <마이 골든 데이즈> 2편만이 국내에 정식 소개됐다. 엘리트이자 지식인 출신 감독으로도 평가받는 데플레솅은 자신의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는 ‘진실’과 ‘고백’이라고 말한다. 어쩌면 작품 속에 자전적 요소를 강하게 투영시킨다는 점에서 비슷한 경향을 보인 대문호 필립 로스와 그의 소설에 큰 연대감을 느끼며 작업했을지도 모른다. 영화는 1987년 가을부터 2000년 초까지 구체적인 연도와 장소를 언급하며 흘러간다. 하지만 소제목이 달린 12개의 장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매우 부정합하고 파편적인데, 보편적 영화문법에 익숙한 관객에게는 꽤 불친절하게 다가갈 수 있다. 가을에 어울리는 어른들의 수다 영화 <디셉션>은 불가피한 ‘기만’을 통해서라도 본능적 공허와 욕망을 채우고자 발버둥치지만, 관습의 테두리 안에 머무르며 안도할 수밖에 없는 현대인의 위선과 치부를 드러낸다. 주인공 필립과 영국 여인을 주축으로 주변 인물들이 쏟아내는 주제를 망라한 대화는 관객들에게 많은 공감과 의문을 동시에 일으킨다. 그중에서도 ‘자유연애’에 대한 죄책감이나 ‘성적 판타지’만큼 도드라지는 ‘죽음’과 ‘이별’에 관한 현실적 사색은 원작 작가나 연출을 맡은 감독처럼 동년배 관객들이라면 더 깊이 몰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마치 중년을 위한 <비포 선라이즈>처럼 보이는 이 작품은 지금처럼 깊어지는 가을의 계절에 더 매력적으로 비칠 만하다. 아르노 데플레솅 감독의 능수능란한 연출과 더불어 극을 이끄는 두 배우 드니 포달리데스와 레아 세두의 섬세한 연기가 영화를 더욱 생동감 있게 만든다. 스물다섯 살의 나이에 데뷔한 드니 포달리데스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개성파 연기자로 거장 감독들이 가장 신뢰하는 배우 중 한명으로 알려져 있다. 레아 세두는 빼어난 외모와 연기력에 더해 대대로 부유한 대기업 가문의 금수저 출신으로도 유명하다. 당연히 프랑스 영화에 많이 출연하고 있지만 국내 관객들에게는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이나 <미션 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 <007 스펙터> 같은 할리우드 대작 상업영화를 통해 더 친근하다. 퓰리처상·맨부커상을 수상한 원작자 필립 로스 The Wall Street Journal 1933년 미국 뉴저지에서 폴란드계 유대인으로 태어난 필립 로스는 미국 현대소설의 아이콘, 현대 영미문학의 전설로 불리는 인물이다. 퓰리처상, 전미도서상, 전미비평가협회상, 펜 포크너상, 맨부커상 등을 수상했고 노벨문학상 후보로도 수차례 거론됐다. 1959년 <안녕 콜럼버스>를 발표해 문단에 들어선 그는 마지막 작품이 된 <네메시스>(2010)까지 30여편의 소설과 논픽션을 발표하며 왕성한 작가활동을 펼쳤다. 85세가 되던 2018년 울혈성 심부전으로 세상을 떠났다. 필립 로스는 자신이 대중에게 많이 오해 받고 있는 2가지가 있는데 반유대주의자라는 점과 여성혐오자라는 점이라고 했다. 이는 영화 <디셉션>에서도 충분히 거론된다. 2012년 절필을 선언하며 은퇴했는데, 이 시점부터 전문 전기 작가인 블레이크 베일리를 고용해 자신의 공식 전기를 집필하도록 했다. 한국어 번역본의 표지까지 직접 챙길 정도로 꼼꼼한 성격의 그는 이 작업 역시 자신은 물론 주변인들의 인터뷰를 주선하고, 소장하고 있던 다양한 자료까지 제공하며 최대한 객관적인 결과물이 나올 수 있도록 뒷받침했다고 전해진다. 유명세만큼 영화화된 작품도 10여편에 이른다. 이중 <휴먼 스테인>(2003)과 <엘레지>(2008)는 국내 관객들에게도 친숙하다. 둘 다 저명한 중년의 교수가 젊은 여성과 특별한 감정을 공유한다는 내용이다. 이런 설정은 이번 작품 <디셉션>과도 중첩된다. 배우 이완 맥그리거는 유일한 장편 연출작으로 로스의 소설 <아메리칸 패스토럴>(2016)을 선택해 주연까지 겸하기도 했다. 필립 로스는 자신의 소설을 원작으로 사후 공개된 미니시리즈 <미국을 노린 음모>(2020)에는 제작책임자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 시네프리뷰
- [신간]당신의 연애는 안전한가요 外(2021. 05. 28 11:32)
- 2021. 05. 28 11:32 문화/과학
- ㆍ사소해 보이는 폭력도 폭력이다 <당신의 연애는 안전한가요> 연아 지음·미디어일다·1만5000원 ‘이것도 데이트 폭력일까.’ 아직도 많은 여성이 연애하며 이런 고민을 한다. 과도한 스킨십을 거절하자 상대가 벌컥 화를 낼 때, 이것을 ‘폭력’이라고 알아차리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연애 감정이 달아오르는 시기에 이런 일을 겪으면 그저 ‘나를 많이 사랑하나 보다’라고 여기기 쉽다. <당신의 연애는 안전한가요>는 연애를 시작해 마무리하기까지의 여정을 있는 그대로 담은 책이다. 저자는 궂은일에 앞장서고 약자를 배려하는 ‘이상형’을 만났지만 반복되는 통제와 간섭에 지쳐간다. “너는 이기적이야”라는 비난과 함께 ‘반성’을 강요받다 자신이 폭력에 노출돼 있음을 점차 깨닫게 된다. 언론은 극단적인 사례에 치중하는 속성이 있다. 데이트 폭력 사안도 마찬가지다. 폭행, 불법촬영, 살인 같은 심각한 사태만 다루기 일쑤다. 이 책은 사소해 보이는 폭력 또한 폭력임을 알아챌 수 있도록 돕는 텍스트라 할 만하다. ▲오작동하는 뇌 | 히구치 나오미 지음·김영현 옮김·다다서재·1만5000원 50세에 ‘레비소체 인지저하증’ 진단을 받은 저자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기록한 책이다. 인지저하증은 우리가 말하는 ‘치매’다. 낯선 사람이 내 침대에 누워 있거나, 식당에서 주문한 음식에 벌레가 기어다니는 환각을 경험한 저자는 이를 글로 기록했다. 치매는 정상적인 삶을 뒤흔드는 질병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저자가 자신만의 대처법을 찾아가는 과정은 ‘정상’이란 무엇인지를 되묻게 한다. 저자는 말한다. 자신의 뇌는 때로 ‘오작동’하지만 정신은 더욱 단단하고 자유로워졌다고. ▲우리 동네 한의사 | 권해진 지음·보리·1만5000원 10년 넘게 같은 자리에서 동네 한의원을 꾸려온 저자가 주민들과 ‘병’과 ‘몸’에 관해 나눈 이야기를 담았다. 저자는 환자를 치료하는 동시에 환자들로부터 ‘삶의 지혜’도 배웠다고 말한다. 월간지 ‘개똥이네 집’과 ‘작은책’에 4년여 동안 연재된 글 중 40편을 뽑았다. ▲10대와 통하는 기후 정의 이야기 | 권희중, 신승철 지음·철수와영희·1만3000원 기후위기로 발생하는 불평등의 문제를 알기 쉽게 풀었다. 잘사는 나라는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면서도 기후 재난에 대비할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만 가난한 나라는 재난을 맨몸으로 맞아야 한다. 기후위기란 무엇이며,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지를 따져보고 생활 속 실천법을 다뤘다. ▲남북중 고속철도의 꿈 | 진장원 지음·국민북스·1만8000원 남북중 고속철도라는 관점에서 한반도 미래를 전망한다. 교통인프라 전문가인 저자는 유라시아 지역의 교통망 구축 경쟁과 중국의 고속철도 굴기 과정을 현지 기행과 엮어 쉽게 설명한다. 남북중 고속철도를 철도통합으로 지역통합의 선구자가 된 유럽연합 사례와 비교한다.
- 신간
- [만화로 본 세상]「유미의 세포들」-세포에 각인 못 시킨 연애는 언젠가 끝난다(2017. 04. 25 11:35)
- 2017. 04. 25 11:35 문화/과학
- 사랑하는 모두의 마음속에는 ‘박’이 있다. 사랑 세포가 설치한 그 박은 두껍고 견고하다. 그러나 익숙함이 만들어 낸 일상의 폭력들이 콩주머니가 되어 날아와 상처를 낸다. 박을 단번에 깨뜨릴 만큼 큰 사건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대개는 아주 작은 콩주머니 하나에 열린다. 연애의 시작은 설렌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진다. 눈길뿐 아니라 오가는 한마디의 말이, 맞잡은 손이, 모두 다정하고 다정하다. 마치 온몸의 세포가 상대방과 연결된 것처럼 두 사람은 교감한다. 내가 먹은 맛있는 음식을 너와 함께 먹고 싶고, 내가 들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너에게 들려주고는 함께 웃고 싶다. 시시콜콜한 너와 나의 이야기, 그러니까 나는 쌀떡볶이와 밀떡볶이 중 무엇을 좋아하는지, 너는 왜 겨울에도 아이스커피를 마시는지, 하는 말들을 주고받으면서도 그저 함께 있어서 행복하다. 게다가 그것은 모두 소중한 정보다. 다른 세포들보다 월등한 ‘프라임 세포’ 웹툰 은 사랑하는 연인들에 대한 이야기다. 작가의 설정에 따르면 사람의 뇌에는 여러 세포들이 있어서 행동을 결정한다. 우선 이성 세포와 감성 세포가 있다. 이성 세포는 ‘맷돌’을 굴려 유미의 이성적 선택을 돕는다. 반면 감성 세포는 야근을 하다가도 “붉게 물든 석양을 향해 뛰어가고 싶다”고 눈물을 글썽인다. 특별한 세포들도 등장하는데 멋지게 차려 입은 패션 세포는 예쁜 옷만 보면 신용카드를 꺼내게 만들고, 머리에 떡볶이를 꽂은 출출이 세포는 밤에 야식을 먹자고 조르고, 스피커를 머리에 이고 다니는 입방정 세포는 늘 쓸데없는 말을 해서 감옥에 갇힌다. 주인공인 유미는 이러한 세포들에 전적으로 영향 받는 존재다. 특히 사랑 세포는 유미가 진심을 다해 사랑하도록 돕는다. 이동건 작가의 만화 「유미의 세포들」의 한 장면. /네이버웹툰 누구에게나 다른 세포들보다 월등한 능력을 가진 ‘프라임 세포’가 있다. 유미에게는 사랑 세포가 그렇다. 3일 밤낮을 울었던 아픈 이별, 작가의 표현에 따르면 ‘3년 전의 대홍수’를 겪으며 사랑 세포는 혼수상태에 빠졌다. 그 3년 동안 유미는 연애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호감이 있는 회사 동료와의 술자리에서 알코올 해독 세포들이 술에 휩쓸려가자 사랑 세포가 “오늘은 안 취하는 날이야”라는 말과 함께 깨어난다. 유미는 “많이 마셨는데 왜 이렇게 안 취하지?”라면서 의아하게 생각하지만, 사랑 세포의 힘이다. 우리도 유난히 취하지 않는 날이 있다. 그럴 때면 어느 세포가 안간힘을 쓰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에는 이처럼 작가의 재치가 빛나는 설정들이 가득하다. 예컨대 ‘따끈따끈 사랑의 배리어’는 몸 주변에 보호막을 생성시켜 어떤 상황에서도 일정 온도를 유지시킨다. 사실 사랑하는 사람과 있으면 그와 한쪽씩 나누어 낀 장갑만으로도 손이 따뜻하다. 옷의 두께와 상관없이 주변의 온도는 언제나 벚꽃 핀 봄날이다. 당신이 그렇듯, 작가에게도 그런 특별한 경험이 있었나 보다. 유미는 소개팅에서 만난 구웅과 연애를 시작한다. 둘은 잘 어울리는 우리 주변의 평범한 연인이 된다. 커플티를 맞추고, 기차를 타고 여행을 가고, 회사 앞에서 서로를 기다리기도 한다. 둘의 ‘꽁냥꽁냥’한 모습이 보는 이들을 설레게 한다. 구웅은 어느 날 늦은 밤에 자신의 집으로 찾아온 유미를 돌려보내고 싶지 않아 한다. 그래서 굳이 가장 큰 컵에 음료수를 담아 건네고, 냉장고를 뒤져 초코 케이크를 내어 놓고, 자신의 졸업앨범을 펼쳤다가, 보드게임을 권하기도 한다. 유미 역시 빌린 물건을 돌려준다는 핑계로 찾아왔지만 그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런 분위기를 만들지 못하고 서로 민망해져서 일어난다. 응큼 세포는 울먹이고, 사랑 세포는 웅이의 세포들이 곰돌이 복장을 하고 있을 때부터 웅이가 ‘미련 곰탱이’인 것을 알아보았다며 실망한다. 그래도 유미의 세포들이 힘을 모아 보낸 텔레파시에 구웅의 세포들이 반응해서 구웅에게 “늦었으니까 자고 가, 유미야” 하는 말을 이끌어낸다. 마치 내가 연애를 하는 것처럼, 서툴고 따뜻한, 가끔은 아슬아슬하기도 한 두 사람의 모습에 나의/당신의 세포들도 함께 설렌다. 연예 초기 설렘이 시간이 지나 익숙함으로 연애의 시작과 함께 찾아온 설렘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익숙함으로 변한다. 더 이상 이전처럼 작은 공통점이나 차이점을 찾아내고서는 아이처럼 들떠 말을 전하지 않는다. 묘하게 달라지던 목소리의 톤도 점차 일상의 높낮이를 찾고, 옷에 묻은 실밥을 떼어줄 때도 조심스러움이 없어진다. 얇게 썬 밀떡볶이를 좋아하는 것을 알아 자연스럽게 몇 번째 포장마차를 찾아 들어가고, 카페에서 상대방이 말없이 화장실에 가도 계절에 관계없이 시럽을 넣지 않은 아이스커피를 미리 주문해 둔다. 이러한 익숙함이 종종 소홀함으로 느껴져서 “애들처럼 젓가락 집는 게 귀엽다고 밥도 안 먹고 바라보던 그 사람은 어디에 갔어?” 하고 물으면 “아, 그 사람은 지난 봄에 죽었지” 하고 답하며 장난스레 웃기도 한다. 유미와 구웅도 어느 단계를 지나 연애의 중반기로 접어든다. 어느 새 1년이 가까워진 그들의 만남은 이제 서로의 눈치를 볼 것 없이 익숙해졌다. 영화관에서 산 팝콘을 서로에게 먹여주지 않는다. 대신 구웅은 입을 벌리고 ‘쿠우워어어’ 하는 소리를 내며 팝콘을 흡입한다. 유미가 다급하게 “하나씩 먹어!” 하고 소리치지만 구웅은 이미 절반이나 먹어치운 뒤다. 영화를 보고 나와 코코아와 밀크티를 하나씩 손에 든 그들은, 길거리에서 자연스럽게 그것을 나누어 마신다. 그러면서 유미는 “설레는 기분은 사라졌지만 대신 다른 게 생겼다, 그게 뭔지 정확히 설명하기 좀 어렵지만 그 순간에는 ‘으이그~’라는 말을 하게 된다” 하고 생각한다. 오래 보아 온, 분명 남이 하면 한 대 쥐어박고 싶을 것 같은 행위, 그런데도 미워할 수 없고 ‘그래 너니까 괜찮아’ 하는 마음으로 건네는 말이 있다. 유미가 구웅에게 한 그것, 오래된 많은 연인들이 으이그~, 하고는 익숙함과 애틋함을 전한다. 그런데 유미는 얼마 전 구웅에게 “우리 생각할 시간이 좀 필요한 것 같아”라고 말했다. 연애가 시작되던 날, 유미의 사랑 세포는 마음에 커다란 박을 하나 설치했다. 그러고는 세포들에게 “구웅에게 불만이 생기면 여기에 콩주머니를 던져” 하고 말했다. 그래서 이런저런 서운한 일이 있을 때마다 세포들이 몰려가 박을 깨기 위해 콩주머니를 던졌다. 그러나 박은 터지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좋아하는 츄러스를 사먹기 위해 줄을 선 유미에게 구웅은 “나는 줄 서서 뭐 사먹는 거 보면 이해가 안 되던데” 하고 말한다. “되게 시간 아깝지 않아?” 하고 덧붙이는 구웅에게 유미는 그럼 다른 것을 먹자며 줄에서 이탈한다. 사실 츄러스를 먹기 위해 기다리는 시간도, 츄러스를 먹는 시간도, 사랑하는 연인들에게는 모두 연애의 시간이다. 누군가를 위한 배려와 희생이 아니라, 함께 하는 그 모든 시간이 소중해야 비로소 연인이 되는 것이다. 츄러스를 못 먹은 출출이 세포는 씩씩대면서 박에 거대한 콩주머니를 던진다. 그래도 박은 터지지 않는다. 그날 밤, 유미는 구웅에게 “웅아 오랜만에 데이트하니까 넘 좋다~ㅋㅋ 츄러스 못 먹은 건 아쉽지만 다음에는 꼭 내가 말했던 빵집도 같이 가자! 오늘 넘 피곤했을 텐데 푹 쉬고 잘 자~ 히힛” 하고는 문자를 보낸다. 구웅에게서 곧 답장이 온다. “ㅇㅇ.” 유미의 예의 세포는 “ㅇㅇ 좀 안 쓰면 안 되나?” 하면서 콩주머니를 발로 걷어차고, 그것이 박에 힘없이 가서 부딪힌다. 그 순간 박이 열린다. 거기에서 ‘헤어져’ 하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등장한다. 사랑하는 모두의 마음속에는 ‘박’이 있다. 사랑 세포가 설치한 그 박은 두껍고 견고하다. 그러나 익숙함이 만들어 낸 일상의 폭력들이 콩주머니가 되어 날아와 상처를 낸다. 차가운 눈빛, 자신의 손을 잡는 대신 주머니에 들어간 손, 성의 없는 짧은 문자, 그것이 꾸준히 누적되면서 그 어느 날 느닷없이 연애의 종말을 고하고 만다. 박을 단번에 깨뜨릴 만큼 큰 사건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대개는 아주 작은 콩주머니 하나에 열린다. 이별을 앞둔 구웅은 ‘소중한 걸 소중하게 여기지 않은 대가는 가혹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우리의 연애도 그렇다. 설렘은 곧 익숙함이 되고, 그에 따라 가장 소중한 사람을 소홀하게 대하곤 한다. 한 번 열린 박을 다시 닫을 수는 없다. 사랑 세포는 박이 터지기 전까지 전력을 다해 사랑하는 것도 자신의 임무이지만 박이 터지면 돌아서는 것도 자신의 임무라고 말한다. 박이 견뎌내지 못하는 연애를 계속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애는 익숙함이 소홀함이 되지 않게 하는, 소중한 것을 지켜내는 끊임없는 투쟁일 것이다. 처음의 설렘과 반짝반짝함을 세포 하나하나에 잘 각인시켜 두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사랑은 언젠가 끝난다.
- 만화로 본 세상
- [그래도 사랑을 하겠다면](1) 연애의 끝은 결혼? 20세기적 사랑의 종말(2017. 02. 06 18:12)
- 2017. 02. 06 18:12 사회
- 연애의 끝에 이제 결혼이 없다.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결혼을 향해 달려가는 독점적 사랑의 방식이 아닌 다양한 연애가 상상 가능한 영역으로 들어오고 있다. 다자연애는 하나의 예일 뿐이다. 독자들에 의해 일명 ‘30금’ 딱지가 붙은 걸출한 연애 웹툰이 있다. 서른 즈음은 되어야 이 웹툰이 던지는 문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의미다. 선정성 작가의 는 무려 다자연애를 다룬다. 의 주인공은 30대 중반의 6년차 연인이다. 서로를 존중하고 성장시키며 양질의 관계를 형성해온 두 사람의 연애는 초기와 같은 뜨거운 열정은 사라졌지만 충분히 만족스럽다. 결혼은 하지 않기로 했다. 형민의 가족으로부터 환대받지 못한 경험이 있는 유희는 굳이 결혼이라는 제도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승인을 구걸하는 처지가 되기를 원하지 않고, 형민은 그런 유희를 이해하고 지지한다. 둘은 제도에 기대지 않고 오직 두 사람의 사랑에 관계의 미래를 걸기로 한다. 그런데 관계의 옵션에서 결혼을 배제한 순간 새로운 질문이 등장한다. ‘그럼 우리의 미래는 이대로 영원히인가?’ 결혼이 지금보다 당연하던 시절, 연인들에게 결혼은 일종의 ‘다음 단계’였다. 결혼은 사랑이 가장 뜨거울 때가 아니라 오히려 권태로울 때 하는 것이었다. 연애에서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을 때 넘어가는 다음 단계가 결혼이었다. 결혼하지 않기로 한 연인들에게는 그렇게 넘어갈 곳이 없다. 관계에 남은 것은 유지와 소멸뿐이다. 유지는 물론 멈춘 자리에 가만히 서 있는 것이 아니어서 관계는 여전히 변화하고 생장할 것이나, ‘다음 단계’로 넘어간 이들에게 그 역동성이 상상되기란 쉽지 않아 독신주의자들은 종종 정착할 생각이 없는 바람둥이로 오인받았다. 결혼이 아니면 관계는 소멸이라고 이해됐던 것이다. / 김상민 기자 거기다 열정의 문제가 있다. 작중에도 언급되는 심리학자 로버트 스턴버그의 ‘사랑의 삼각형 이론’에 따르면 사랑을 구성하는 세 요소는 열정, 헌신, 친밀감이다. 이 세 요소를 꼭짓점으로 그린 삼각형이 크고 반듯한 모양일 때 사랑은 이상에 가깝다. 그런데 우리 모두가 경험적으로 알고 있듯 열정과 친밀감은 반비례 관계에 있어, 함께한 시간이 길고 서로를 깊이 이해하는 친밀한 연인일수록 관계 초반 서로를 강렬하게 끌어당겼던 열정은 유지하기 어렵다. 뇌과학적으로도 증명된 이 공리는 열정의 속성에 기반한다. 열정에 불을 지피는 것은 상대의 정돈된 표면 아래 숨겨진 미지의 영역이라, 연인들이 최고의 열정을 누릴 수 있는 기간은 서로가 아직 서로에게 낯선 상대였던 초반뿐이다. 열정에 있어 오랜 연인은 새 연적을 이길 수 없다. 유희와 형민에게 새롭게 열정을 느끼게 하는 상대가 등장한 것은 필연적이었다. 연애의 미래, 결혼이 빠졌을 때 새로운 열정이냐 오랜 관계냐 선택이 필요해 보이던 순간, 는 둘 다 포기하지 않는 새로운 선택지를 내어 보인다. 서로의 일부가 되어버린 오랜 관계를 유지하는 가운데 각자에게 새로운 사랑이 시작되었다는 사실 역시 인정하기로 한 것이다. 둘뿐이었던 관계의 무대는 좀 더 북적이기 시작한다. 삼각형이 되기도 하고 사각형이 되기도 하며 관계는 이어진다. 새 연인들은 둘의 관계에 새로운 열정을 불어넣는 외부로도, 질투와 고통을 유발하는 내부로도 작용하며 관계를 역동적인 국면으로 밀어넣지만, 갈등과 고민을 거듭하면서도 둘은 다자연애의 원칙을 끝까지 밀고 가본다. 이들에게 다자연애는 더 윤리적인 사랑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도출된 실험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새 사랑으로 인해 내 연인의 삶이 더 풍요로워진다면 내가 그에게 독점을 요구할 근거는 과연 무엇일 수 있는지, 이들은 묻는 것이다. 익숙한 사랑법의 근본부터 뒤흔들기에 다자연애는 논쟁적인 주제일 수밖에 없다. 연재 당시의 댓글란도 태반이 악플이었다. 이 만화에는 대체 정신 제대로 박힌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거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다자연애를 논하는 것 자체에 불쾌감을 느낀다. 아마도 첫째는 다자연애의 이론과 실제 사이의 간극 때문일 것이다. 소유와 집착의 지양이라는 높은 이상과 달리, 현실의 다자연애는 성욕을 관계 내로 제한하고 싶지 않은 (주로) 남성들에 의해 이용되기 쉽고, 고통은 더 사랑하는 쪽의 몫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는 성욕 발산과 관계의 책임 완화에 다자연애를 악용하고 있는 무리들의 잘못이지, 다자연애의 지향 자체가 비난 받을 이유는 되지 못할 것이다. 중요한 건 두 번째인데, 많은 사람들이 다자연애의 정당성에 대한 주장을 독점적 연애 혹은 일부일처제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하고 있는 평범하나 숭고한 사랑이 다자연애에 의해 부정된다고 느끼는 것이다. 선정성 작가의 웹툰 「독신으로 살겠다」의 한 장면. / 네이버 웹툰 물론 다자연애는 독점적 연애의 대타항을 자처하며 독점을 문제 삼는다. 그러나 독점을 버림으로써 최종적으로 지향하는 것이 보다 윤리적인 사랑이라면, 다자연애와 독점적 연애는 다시 만날 수 있다. 잘 조율된 다자연애만큼이나 잘 조율된 독점적 연애 역시 그러한 사랑의 본질을 구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속과 집착을 다른 방식으로 지양하며 풍성한 사랑을 하고 있는 모노아모리스트들의 사랑이 다자연애주의자들의 사랑보다 억압적이고 위선적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사랑의 질은 그렇게 일괄적으로 평가될 수 없을 것이다. 열정과 친밀감 사이 독점적 연애와 다자연애 중 어느 것이 더 우월한가 하는 소모적인 논쟁에서 벗어난다면 지금 이 시점, 다자연애가 가지는 의미에 대해 좀 더 풍부하게 생각해볼 수 있다. 에서 다자연애는 무엇보다도 연애의 미래에서 결혼을 뺐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가에 대한 사고 실험인 측면이 있다. 제도의 도움 없이 오로지 사랑만으로 맺어진 관계는 그 본질에 더욱 충실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불안정성을 견뎌야 한다. 사랑의 열정은 그 불안정성을 가장 주요하게 구성할 것이다. 열정은 때로 의지를 벗어나는 까닭이다. 독점적 연애의 틀 안에서 열정의 흐름을 따른다면 우리의 사랑은 연쇄적 연애의 형태가 될 것이다. 앤서니 기든스는 그런 연애를 ‘합류적 사랑’이라 불렀다. 물줄기가 합쳐졌다 다시 나뉘듯 자연스레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는 것이다. 반대로 열정을 제어하기로 한다면 그렇게 유지되는 사랑은 우정과 유사해진다. 이 두 가지 선택지 모두를 거부한다면? 열정과 친밀감을 함께 공존시킬 수는 없는가. 공존시킬 수만 있다면 그거야말로 가장 완벽한 사랑의 방법일 수 있지 않은가. 는 이 아이디어를 끝까지 밀어붙인 결과물처럼 보인다. 이 실험은 연애-결혼-새로운 가족의 구성이 일직선으로 이어졌던 20세기적인 사랑의 방식이 시효를 다하고 있는 지금 더욱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독점적 사랑은 일부일처의 근대적 결혼에 맞게 디자인된 사랑의 형태였다. 그런데 이 결혼이 위기에 처했다. 물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결혼하지만, 점점 더 ‘선택’의 영역으로 여겨지고 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실제로 2016년 결혼 건수는 통계를 내기 시작한 2000년 이래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비혼의 증가는 1인 가구의 확산 역시 가져왔다. 이제 1인 가구는 대한민국의 가장 보편적인 삶의 형식이다. 사랑과 결혼, 가족 구성의 대규모 지각변동이다. 여성들의 경제활동률 증가가 기여했고, 4인 가족 부양을 보장할 만한 양질의 일자리들이 줄어든 것이 이러한 경향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연애의 끝에 이제 결혼이 없다.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결혼을 향해 달려가는 독점적 사랑의 방식이 아닌 다양한 연애가 상상 가능한 영역으로 들어오고 있다. 다자연애는 하나의 예일 뿐이다. 비혼 공동체와 같은 대안가족 모델에 관한 논의들이 모두 이와 유관하다. 과거와는 조금 다른 이유로, 서른 즈음은 고민이 많은 시기일 수밖에. 20세기적 삶 이후의 상상력을 보여주는 가 ‘30금’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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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화로 본 세상]-세카이를 알게 하는 방법으로 연애를 택하다(2017. 01. 24 15:12)
- 2017. 01. 24 15:12 문화/과학
-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를 전면에 드러내지 않았기에, 오히려 무스비를 여러 방향으로 이어 뻗는 일이 가능하다. 일례로, 세월호와 밀양과 용산과 강정 등의 이름이 계속해서 생각날 수 있다. (주의: 이 글에는 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멀다. 의 주인공들 사이에 놓은 시공의 간극이. 하지만 둘은 3년의 시차도, 도쿄와 시골 이토모리 사이의 거리도 넘어선다. 결국 그들은 만나고야 만다. 이런 초극의 서사를 보고나니, 만화와 애니메이션이라는 간극에도 불구하고 이야기해보고 싶어졌다. 만화판 (신카이 마코토 지음, 코토네 란마루 그림, 대원씨아이, 전 2권)이 있고, 애니메이션에도 만화의 핵심 요소인 말풍선이 두 번이나 나온다는 건 물론 핑계일 뿐이다. 분명 은 지금 동아시아에서 가장 뜨거운 작품이다. 일본에서는 작년 8월 개봉 이후로 지금까지도 흥행하고 있다. 1월 중순 현재 관객 수 누계가 약 1800만명으로, 일본 영화로는 에 이은 2위이고, 외화를 합쳐도 4위다. 작년 12월에 개봉한 중국에선 일찌감치 2000만명을 돌파해 중국 내 개봉 일본 영화 흥행 기록 1위를 기록했다. 올 1월 개봉한 한국에서는 열흘 무렵 만에 2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 작품을 봤고, 소설과 만화도 엄청나게 팔려나가고 있다. 베스트셀러 10위권에 관련 도서만 4~5권이 포진하고 있을 정도다. 숫자뿐만이 아니다. 작품을 둘러싼 이야기도 풍성하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폭발 참사를 떠올리게 하는 데 긍정적 의미를 두는 논의도, 재난을 연애 이야기의 배경으로 활용했다는 비판적 논의도 나왔다. 여주인공 미츠하의 신체를 다루는 방식이 여성혐오적이라는 주장도 있고, 일본 아니메(アニメ)의 연출 치고는 온건한 편인데도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반론도 있다. 2000년대 이후 일본 서브컬처의 특수한 경향인 세카이계(セカイ系)의 완성이자 종언이라는 이야기도, 미야자키 하야오의 지브리 스튜디오의 성취를 잇는 작품이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이런 다양한 평가와 논의도 을 에둘러 짜이고 얽힌 무스비(結び)리라. 이 글도 마찬가지다. 한 번 얽혀 보자.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애니메이션 포스터(왼쪽)와 만화 한국어판 1권 표지./미디어캐슬/대원씨아이 ‘무스비’라는 일본 종교적 관념으로 연결 의 감독 신카이 마코토는 데뷔작 (2002)부터 세카이계의 기수로 주목받았다. “세계(세카이)라는 말이 있다. 나는 중학교 때까지 세계라는 건 휴대폰 전파가 닿는 곳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는 의 첫 독백은 세카이계를 설명하는 데 자주 인용되곤 한다. 청소년이 주인공일 것, ‘세계’가 언급될 것, 독백 등의 방법으로 주인공의 내면 의식이 표현될 것 등은 쉽사리 정의하기 어려운 세카이계 작품군에서 그나마 공통적으로 추출되는 특징이다. 한편, 이어지는 대사는 신카이표 작품의 특징을 집약한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내 전화는 누구에게도 닿지 않는다.” 이는 주인공이 지구로부터 광년 단위 떨어진 다른 은하에 있기 때문이다. 우주에서 보낸 문자메시지는 몇 년이 지나서야 지구에 있는 친구의 휴대폰에 닿는다. 그 몇 년 동안은, 그리고 답장이 돌아오는 몇 년 동안은 닿지 않는 것이나 매한가지다. 이 시공간적 거리감, 닿지 않음의 감각은 세카이계라는 말로 다 담을 수 없는 신카이의 독자적인 특징이었다. 대표작 주인공들 사이의 공간적 거리도, 주인공들의 나이 차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은 그 시공간적 거리를 ‘무스비’라는 일본의 종교적 관념으로 이어낸다. 이는 으로 대표되는 지브리 스튜디오의 일본 신화 활용과도 맥이 닿아 있고, 세카이계의 대표 장르 SF가 아닌 판타지의 도입이라는 면에서 세카이계와 단절하는 면모까지 보인다. 시공간적 거리에도 불구하고 ‘만난다’는 결말 또한 감독 스스로의 경향에서 벗어난다. 물론 세계의 조건에 따른 거리를 결국 좁히지 못하던 주인공들을 동일본대지진 이후로는 “만나게 하고 싶었다”는 감독의 말처럼, 이전에도 만남을 성사시킨 작품들은 있었다. 하지만 판타지를 통해 만난 적은 없었다는 점에서 두드러지는 변별점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지브리 스튜디오의 대표작들처럼 전면적인 판타지 세계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현실에 근사한 2010년대 일본을 배경으로 크게 두 가지 비현실적 요소만을 서사에 활용하고 있다. 몸의 바뀜, 시간의 되돌림이 주인공들 사이에 놓인 시공의 거리를 극복하는 주요 장치로, 그것이 없었다면 둘은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만나게 하고 싶었다”는 감독의 말에 따르자면, 비현실적 요소를 도입해서라도 둘을 만나게 하고 싶었던 것일 터다. 그것이 이 작품 속 만남의 판타지적 방법론이다. 따라서 죽은 자와 산 자, 혜성으로 인해 파괴된 참사의 공간과 혜성의 낙하를 지켜보며 “아름답다”고 말해버리는 사람들이 사는 공간을 이어낸 방법론을, 연대의 무스비를 톺아볼 필요가 있다. 먼저 몸의 바뀜. 그것은 현실에서 전혀 불가능하지만, 몸 바뀜으로 인한 결과에는 다른 방식으로 도달할 수 있다. 미츠하와 타키는 몸이 바뀜으로써 서로의 시공을 경험하고 서로를 알아간다. 타인의 입장이 되어 보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오래토록 문학의 기능이라고, 문학이 배양할 수 있는 태도라고 우리가 믿어온 것이다. 그것을 은 관객과 두 주인공 사이에서 시도했다. 그 경험의 정도와 의미는 관객에 따라 다르겠지만. 반면 시간을 되돌리는 것만큼은 현실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불가능하다. 과거를 반추하는 것, 역사를 기억하는 것, 이름들을 확인하는 것으로 지나간 시간과 잇닿을 수 있을 뿐이다. 극중 타키가 이토모리에 찾아가 미츠하의 반분이 담긴 술을 마시고 몸 바뀜과 시간 돌림에 성공하기까지 시도했던 모든 것이 그런 잇닿음의 노력이었다. 판타지 요소를 지양해 보면 이런 태도와 노력을 요청하는 것이 작품의 메시지로 읽힌다. 세카이계라는 이야기의 완성이자 종언 타키가 미츠하와 이토모리를 몰랐을 때는 그런 태도도 노력도 생각할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몸이 바뀌어 미츠하를 알고, 기억의 편린을 더듬어 이토모리를 그리고, 결국 직접 그곳으로 나서게 되는 과정을 담은 이 이야기는 ‘이름을 아는 것’을 모든 무스비(=인연)의 첫걸음으로 시종일관 주장하고 있다. 거꾸로 말하면 ‘이름조차 모르는 것’을 꾸짖고 알아야 한다고 요청한다. 연애의 형식을 에둘렀기에 과하게 부드러워지고 오해의 소지도 커졌지만, 적어도 감독이 요청하려던 것은 그것이었다. 아마 애초에 그것은 도쿄를 향한 꾸짖음이었을 것이다. 당신들의 밤을 밝혀주던 전기가 후쿠시마 원전에서 왔는데, 그 원전이 폭발해 당신들이 아닌 후쿠시마 사람들이 죽고 다쳤다. 그런데 당신들은 너무 쉽게 잊었다. 하나의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것을 잊고 후쿠시마를 다른 세계로 분리한 채 살아왔다. 그렇지 않은가? 따라서 이 작품은 세카이계라는 이야기의 완성이자 종언일 수 있다. 연인의 이야기와 세계의 운명이 직결되어 있다는 것을 요체로 하는 세카이계는 연애라는 이야기를 그리기 위해 세계라는 배경을 이룩했다. 하지만 은 세계의 존재를 지각하게 만드는 방법으로 연애를 선택했다. 물론 감독의 의도가 관객에게 그대로 전달되라는 법은 없다. 일본에서도 연애 이야기에만 주목하고 이토모리를 동일본대지진과 연결짓지 못하는 관객들에 대한 이야기가 들려온다. 흥행의 원인으로 참사의 기억과 잇닿는 이야기라는 점은 좀처럼 지적되지 않고, 영화 홍보도 무거운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는다. 신카이 감독만이 인터뷰를 통해 의도를 밝히고 있을 뿐이다. 허나 이것도 무스비다.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를 전면에 드러내지 않았기에, 오히려 무스비를 여러 방향으로 이어 뻗는 일이 가능하다. 일례로, 세월호와 밀양과 용산과 강정 등의 이름이 계속해서 생각날 수 있다. 그 이름들이 내게 의미가 되었음에도, 시간의 침식과 거리로 인해 잊어가고 있는 나를 돌아보는 일이 가능하다. 설혹 어떤 이름도 생각나지 않았다 해도 생각과 비평과 대화를 통해 감상은 바뀌게 마련이다. 중요한 이름, 잊고 싶지 않은 이름, 잊어서는 안 될 이름을 의식적으로 붙들려 하는 작품의 뜻, 그것을 연대할 이름들 사이의 무스비로까지 잇는 일은 일어날 수 있다. 그것이 이 정도까지 알려진 작품을 멋지게 엮고 얽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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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화로 본 세상]-편의점 알바도 ‘남의 집 귀한 자식’이다(2016. 04. 25 17:40)
- 2016. 04. 25 17:40 문화/과학
- 은 편의점 아르바이트가 더 이상 ‘꿀알바’가 아님을 보여준다. 선거철만 되면 정치인들이 편의점을 찾지만, 최저 기준의 보장도, 그들을 대하는 사회의 시선도 나아지는 것이 없다. 오히려 노동자의 ‘편의’는 더욱 땅에 떨어져 간다.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의 일명 ‘땅콩리턴’ 사건 이후, ‘갑질’이라는 단어가 우리 곁에 제대로 자리잡았다. 이전에는 뭐 저런 경우가 다 있어, 하고 생각하던 일들을 우리는 이제 그렇게 명명한다. 얼마 전 미스터피자의 정우현 회장 덕분에 이 신조어는 다시 한 번 사회면을 장식했다. 그는 자신이 아직 회사에서 나가지 않았는데 정해진 시간에 문을 닫았다는 이유로 경비원을 폭행했다. 악수하는 척 다가가서 손을 잡고는 턱을 두 차례 때렸다고 한다. 상대를 방심하게 하고서는 붙잡아 자신에게 끌어당기며 급소를 가격한 것이다. 프로레슬링의 연출에서나 볼 법한, 그리고 ‘Don’t try this at home’이라는 문구가 반드시 따라붙어야 할 비열한 행동이다. 비정규직 노동자, 그 중에서도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시간제 노동자는 우리 사회에서도 가장 을의 공간에 서는 이들이다. 대개는 최저 기준의 사회적 보장을 받거나 그것조차 받지 못 하는 일이 많다. ‘알바생’이 업주에게 당당히 자신의 권리를 말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각 포털의 ‘아르바이트 게시판’에는 최저시급이나 주휴수당을 받지 못 하고 신고 여부를 고민하는 글들이 가득하다. 게다가 ‘고객은 왕이다’, ‘고객은 언제나 옳다’라는 문구가 언제부터인가 대형마트를 중심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소비자가 그 어떤 비합리적인 요구를 하더라도 묵묵히 감내하겠다고 스스로 선언한 셈이다. 김호드 작가의 만화 의 한 장면. 알바의 당당한 태도에 독자들 열광 은 평범한 ‘모태솔로’ 대학생에게 연애 코치를 담당할 정령이 찾아온다는 다소 환상적인 설정의 웹툰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연애보다는 오히려 ‘편의점 알바’라는 키워드로 화제가 되었다. 작중 인물 중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는 동은이 업주와 손님을 대하는 태도 때문이다. 동은은 신입 교육을 시작하며 먼저 그에게 ‘남의 집 귀한 자식’이라는 겉옷을 입게 한다. 그에 따르면 알바를 천민처럼 생각하는 진상들에게 나도 귀한 자식이란 걸 일깨워 주기 위함이다. 그는 반말을 하는 손님이 들어오자 함께 반말로 응수한다. 왜 반말을 하느냐는 질문에는 “니가 하길래” 하고 간단히 답한다. 손님이 돈을 던지자 거스름돈을 바닥에 뿌리고, 새치기를 하는 손님은 “황천길도 새치기해서 가세요”라며 밖으로 내쫓는다. 점장에게도 “친구 집 개 장례식에 가야 한다”는 얼토당토 않은 핑계를 대곤 하지만, 그래도 할 말을 한다. 독자들은 여기에 열광했다. 많은 이들에게 편의점 아르바이트의 추억이 있다. 혹은 현재진행형이기도 하다. 내 주변의 많은 선후배들이 등록금이나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 누군가는 사회 경험을 쌓으려는 다양한 목적으로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러는 동안 그들은 동은이 만났던 수많은 ‘진상’들과 마주했을 것이다. 최저시급이면 일도 최저만 하게 시켜야 나 역시 학부생과 대학원 과정생 시절에 여러 아르바이트를 병행했지만 편의점에서 가장 오래 일했다. 낮에는 수업을 듣거나 조교 근무를 해야 했기 때문에 주로 야간 아르바이트를 했다. 내가 만난 가장 큰 진상은 ‘점주’였다. 그는 내가 야간에 근무했음에도 불구하고 주간의 최저시급조차 지급하지 않았고 근로계약서도 작성하지 않았다. 여기는 다 그렇다는 그의 말에, 스무 살 중반이었던 나는 그저 그런가 보다 하고 유니폼을 입었다. 한 번은 폐기된 음식을 먹었다가 꽤나 모욕을 당했다. 직영점이 아니어서 폐기 식품을 처리하는 방식이 다르다고 들었는데 잘 이해는 가지 않았다. 새벽에는 술에 취한 손님들이 많이 왔다. 넘어지면서 가판대를 엉망으로 만들어 버린 30대 직장인도 있었다. 어차피 내가 치워야 할 일이었는데, 그는 나에게 기분이 나쁘냐고 묻고는 서비스업 종사자로서 그러면 안 된다는 훈계를 하고 돌아갔다. 그밖에 돈을 던지거나, 새치기를 하거나, 여러 사소한 ‘갑질’들은 너무나 많았다. 그런데 편의점뿐 아니라 거의 모든 시간제 아르바이트는 최저시급을 기준으로 한다. 최저, 혹은 그 이하의 사회적 보장이 일어나는 공간이다. 하지만 그것이 “일도 최저 수준으로 해도 좋다”는 암묵적 합의는 아니다. 오히려 노동자는 언제나 그 이상을 강요 받는다. 은 고객의 편의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온갖 서비스를 도맡아야 하는 편의점 노동자의 노동 현실을 꼬집는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는 육체적으로 가장 편한 노동으로 흔히 인식된다. 하지만 편의점은 더 이상 계산대에서 바코드만 찍어 주면 그만인 공간이 아니다. 우선 대형마트의 조리코너에나 있을 법한 음식들이 카운터를 중심으로 진열되어 있다. 치킨이나 튀김, 수제 과자와 빵 같은 것들은 물론 전화로 예약하면 피자까지 직접 구워내야 한다. 이런 조리뿐만 아니라 배달 업무도 추가되었다. 일부 편의점에서는 원두커피를 일정 금액 이상 주문하면 추가비용 없이 배달도 해준다. 얼마 전에는 애플리케이션과 결합한 편의점 택배 서비스도 출시되었다. 은 편의점 아르바이트가 더 이상 ‘꿀알바’가 아님을 보여준다. 그림을 참조하면 음식을 직접 조리하거나 고객의 건강까지 책임지고 있다면서 “이런 편의점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음을 알려드립니다”라고 부연했는데, 인용하지 않은 부분까지 소급하면 이미 실제로 존재하는 것들이 절반은 넘는다. 편의점 문화가 우리보다 앞선 일본의 경우는 지역 노인의 건강관리까지 책임지는 시스템이 있다고 하니, ‘편의’라는 단어는 정말이지 무한한 확장성을 지닌 셈이다. 선거가 가까워 오면 여러 정치인들이 편의점을 찾는다. 유니폼을 덧입고 바코드 찍는 기계를 들고서는 사진을 찍는다. 그러면서 ‘을의 공간’에 관심을 갖는 정당이 되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최저 기준의 보장도, 그들을 대하는 사회의 시선도 나아지는 것이 없다. 오히려 노동자의 ‘편의’는 더욱 땅에 떨어져 간다. 동은이처럼 연애에 관심이 많은, 친구들과 모여 즐겁게 ‘롤’이라는 온라인 게임을 하고 치킨을 시켜 먹으면 만사가 행복한 평범한 대학생들이 오늘도 편의점에서 ‘편돌이’로 ‘편순이’로 변신한다. 우리는 이들 역시 ‘남의 집 귀한 자식’임을 기억해야 한다. 아이돌 혜리가 TV광고에서 “알바가 갑”임을 선언한 것을 많은 이들이 기억한다. ‘사장님’들이 단체로 해당 업체의 탈퇴를 결의하는 등 우리 사회의 반향도 컸다. 하지만 혜리도 틀렸다. “알바‘도’ 갑”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어느 한 집단이 자신의 아래로 선을 긋는 것은 분명히 다른 집단을 불편하게 만든다. 우리는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는 가운데 모든 타인 역시 ‘갑’으로 존중해야 한다. 그러면 갑질이라는 단어는 조금씩 우리 주변에서 사라져 갈 것이다. 땅콩은 제 손으로 까먹어야 하고, 문이 닫혀 있으면 열어주기를 정중하게 부탁해야 한다. 그렇게 사장님도 알바생도, 그리고 우리 모두가 갑으로 존재하는 세상을 소망해 본다.
- 만화로 본 세상
- [신간 탐색]건강한 연애, 나를 먼저 사랑하라(2015. 11. 09 18:04)
- 2015. 11. 09 18:04 문화/과학
- 건강한 연애, 나를 먼저 사랑하라 유인경 지음·위즈덤경향·1만2800원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평생에 걸친 연애의 시작이다.”(오스카 와일드) 엄마가 딸에게 전하는 사랑에 관한 조언들을 담았다. 많은 조언들 중 가장 앞에 선 것은 우선 ‘자신을 사랑하라는 것’. 자신을 온전히 사랑해야 타인도 온전히 사랑할 수 있고, 혹여 잘못된 상대를 만났더라도 금방 거기에서 벗어나 스스로 일어설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 여성들은 남성의 시선에 맞춰 자신을 변화시키려고 한다. 안톤 체홉의 소설 의 여주인공처럼 남자를 만나면 그 남자의 세계와 자신의 세계를 일치시킨다. 그러나 남자의 세계에 풍덩 빠지는 것은 19세기가 만들어낸 여성상일 뿐이다. 관계를 더 건강하게 만드는 것은 먼저 자기 자신을 “수시로 하염없이 사랑”하는 것이다. 드라마 의 여주인공 삼순이의 마지막 독백처럼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한 번도 상처 받지 않은 것처럼, 나 김삼순을 더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건강한 연애의 필요 조건이다. 자신을 온전히 사랑할 때 ‘자기다움’과 자신만의 장점도 온전히 발현된다. 자신을 온전히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며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분별할 줄 안다는 것이다. 자신에게 없는 것을 억지로 꾸며내며 코스프레를 하는 것보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때 자신에게 맞는 사람, 자신을 있는 그대로 좋아할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물론 지나치게 솔직하고 무례한 태도로 ‘난 원래 이런 여자야’ ‘생긴 대로 살래’라는 것이 자연스러움은 아니다. 반대로 상대의 취향에 무조건 맞춰주는 ‘착한 여자’ 코스프레도 자연스러움과는 거리가 멀다. 탄탄한 사랑의 토대는 자신에게 정직하면서 상대를 배려하고 공감하는 현명한 자연스러움으로 만들어진다. 30년 기자생활을 하며 취재·방송·강의활동을 통해 다양한 남자들을 만나온 지은이가 20~30대 후배 여성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조언을 담았다.
- 신간 탐색
- [만화로 본 세상]〈7층〉-폭력의 연애를 끊고 ‘세상 밖’으로 나와라(2015. 06. 30 09:45)
- 2015. 06. 30 09:45 문화/과학
- 스웨덴 작가 오사 게렌발의 은 실화다. 작가가 대학 시절 겪었던 고통스런 기억을 담아낸 이 이야기는 폭력에 물든 연애경험이 어떻게 오사를 바꾸어 가는지, 그리고 그 가운데 무엇이 이 고통스러운 연애를 끊을 수 없게 만드는지를 충실하게 묘사한다. 언젠가 가수 김경호가 긴 머리 때문에 겪었던 고충을 이야기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지하철에서 여성으로 오인당해 추행을 당한 게 한두 번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소름 끼쳤겠네’ 정도의 감흥과 함께 웃어넘겼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최근 페이스북에서 다른 머리 긴 남성의 성추행 경험담을 읽을 때는 감흥이 전혀 달랐다. 여성으로 보이는 남성이 그런 불쾌한 경험을 여러 차례 겪었다는 것은 여성들이야말로 그처럼 잦은 성추행을 경험하고 있다는 뜻이 아닌가. 예전과 달리 거기까지 내 생각이 미쳤던 것은 글 자체의 초점이 거기 있었던 덕이기도 했지만, 최근 들어 여성의 경험을 알 기회가 조금이나마 늘어났기 때문이기도 했다. ‘나는 페미니스트다’ 해시태그, ‘메르스 갤러리’ 사태 등등, 올해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리고, 그만큼 남성인 내가 낯섦 속에서 얻는 깨달음도 컸다. 애인 마음에 들기 위해 ‘예전의 나’를 버려 깨닫기 시작하니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것, 모르고 있던 것이 정말 많았다. 남성인 나의 경험과 대조해보니 더 놀라웠다. 여성들이 경험하는 폭력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흔한 데 비해, 나는 비슷한 경험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나는 택시기사에게 ‘옷을 왜 그렇게 입었느냐’고 핀잔을 들어본 경험이 없다. 차를 직접 몰더라도 ‘운전 못하면 집에나 있으라’는 식의 폭언을 들은 적도 없다. 대중교통에서 누가 내 엉덩이를 만져서 소스라쳤던 경험도 없으며, 어두운 골목길에서 성폭행을 당할까봐 무서웠던 적도 없다. 그러니 그런 불쾌한 경험을 하고서 지인에게 “옷을 그렇게 입으니 그런 일을 당하지” 따위의 헛소리를 듣고 말문이 막힌 적도 없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최근 지속적으로 공론화가 이어지고 있는 ‘데이트 폭력’ 사례들에서처럼 애인이나 배우자에게 맞아본 적도 없다. 그러니 나는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알게 되었을 뿐, 여성이 경험하는 현실이나 그 감정을 안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저 모르는 일에 대해 함부로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문제를 제기하는 여성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뿐이다. 그러면서도 “그 어떤 여성도 데이트 폭력에 희생당하지 않기”를 바란다던 한 피해자 여성의 바람이 이루어지도록 돕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그러기 위해 마침 만화를 조금 더 아는 사람으로서 ‘우리’에게 건넬 작품이 있다. 스웨덴 작가 오사 게렌발의 만화 표지 / 우리나비 제공 스웨덴 작가 오사 게렌발의 은 실화다. 작가가 대학시절 겪었던 고통스런 기억을 담아낸 이 이야기는 폭력에 물든 연애경험이 어떻게 오사를 바꾸어 가는지, 그리고 그 가운데 무엇이 이 고통스러운 연애를 끊을 수 없게 만드는지를 충실하게 묘사한다. 오사는 원래 ‘블랙 오사’라고 불릴 만큼 검정색을 좋아하는 여성이었다. 옷도 눈화장도 머리도 모두 까맣게 치장한 오사였지만 학교에서 뭇사람의 환심을 사는 ‘멋진’ 닐과 사귀게 되면서부터 그녀는 표백돼간다. 닐이 원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둘만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강조하는 닐이 원하는 대로, 그의 마음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 오사는 친구들과 점점 더 멀어진다. “이제부터 너와 나만 생각해.” 이 달콤한 사랑의 말이 사실은 독점욕의 발로임을 독자는 금세 지각할 수 있다. 하지만 작품 속의 오사는 그것이 사랑이라고 믿는다. 그렇기에 닐 외에는 아무도 없으며 온 자아를 닐의 시선에 가둔 오사는 외양과 정신 모두 더 이상 오사가 아니게 되었다. “넌 변해야 한다”고 닐이 말했기 때문이다. 검정색과 좋아하던 음반과 추억이 깃든 물건들까지 모두 버리고서, 오사는 닐을 만나기 위해 이전의 자신과 헤어져야 했고 사회에서도 멀어져야만 했다. “닐은 내가 변하도록 도왔고 그렇게 변해감으로써 나는 마침내 그에게 인정받는 연인이 될 수 있었다.” 이제 남자친구 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오사에게 닐은 더욱 더 뒤틀린 사랑을 행사한다. 오사의 자그마한 몸짓 하나, 숨소리 하나가 모두 닐의 질투심을 자극했다. 텔레비전을 보다가 한숨을 한 번 쉬었을 뿐인데도 닐은 오사가 그 순간 텔레비전에 등장한 남자를 원한다고 생각한다. “더러운 년!” 오사는 닐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소리 내지 않고 숨 쉬는 법을 터득”해야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오사의 염색한 검은 머리가 자랄수록, 그래서 검지 않은 머리가 더 길어져갈수록 닐의 폭력도 더 심해져만 갔다. “창녀”라는 심한 욕설에 오사가 참지 못하고 발끈하자 드디어 닐은, 오사를, 때렸다. “규정1: 그가 날 때린다면 그를 떠날 것. 규정2: 그가 날 때린다면 그를 떠날 것.” 오사도 안다. 하지만 떠날 곳이 없다. 모든 게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하도록 “길들여져” 버린 오사는, 모든 사회적 관계를 끊어낸 오사는 오직 생각만 할 수 있을 뿐 실제로 떠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사는 그렇게 믿는다. 바깥은 없다. 넌 “역겨워.” 넌 “끔찍해.” 넌 “저속해.” 닐의 말대로 자신을 바라보게 된 오사와 “왜 자꾸 나를 돌게 해? 날 미치게 만들지 말라고!!!”라고 말하며 무너져가는 오사의 목을 더 세차게 조르는 닐만이 있다. 이것은 사랑이 아니다. 하지만 오사에겐 그것밖에는 없다. 떠날 곳이란, 없다. 스웨덴 작가 오사 게렌발의 만화 의 한 장면 / 우리나비 제공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주변에 알려라 이렇게 끔찍한 연애가 어떻게 끝나게 되는지는 길게 말하지 않으려 한다. 끔찍한 연애가 그만큼 끔찍한 논리와 합리화에 의해 지속되었다면, 단절은 정말 갑작스럽게 기적처럼 비논리적으로 찾아왔기 때문이다. 이것은 직접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어쨌거나 나는 여기까지 읽으며 지금까지 공개된 많은 데이트 폭력의 주인공들이 말하지 않은 것들을 아주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피해여성들이 이별을 선택하기 어려웠던 이유, 공론화를 결심하기 어려웠던 이유가 안에 빼곡했다. 그들 스스로도 돌아보며 ‘바보 같았다’고 말하듯, ‘사랑’의 폭력 속에서 피해자를 붙잡아버린 주박은 경험해보지 않은 이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하다. 이것을 나는 의 서사와 이미지 속에서 겨우 짐작할 수 있었다. 이것을 아는 것이 ‘우리’에게 중요하다. ‘우리’에게 다시금 중요한 것은 그 다음이다. 기적처럼 없다고 생각했던 바깥으로 나오자마자 오사는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된다. 그녀에게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고 생각했던 주변 사람들이, 남아 있었다. 오사가 아버지와 여자 교수님에게 상황을 알리자 그들은 사려 깊고 신속하게 움직였다. 아버지는 오사를 구출해 주었고, 교수님은 학교 내에서 닐과 만날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하고 오사에게 병원에 가고 경찰에 신고할 것을 권유한다. 의사의 진료도 경찰의 조사도, 이후의 재판도 모두 오사를 돕는다. 그렇게 일단락이 나고 오사는 샅샅이 흩어진 스스로를 주워 모은다. 재건은 너무나도 어렵지만, 그녀는 혼자가 아니다. 없다고 생각했던 떠날 곳과 함께, 그녀는 재건의 작업들을 이어나간다. 그리고 이 작품, 이 그 재건의 마지막 단계였다. 그래야 도처에 널린 닐과 마주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경험을 하며 갇혀 있는 이들에게 바깥이 있다는 것을 알리는 창문 밖의 신호가 바로 이다. 뛰어내릴까를 고민했던 바로 그 자리에서, 오사는 열어 보인다. 그녀들이, 떠나갈 바깥을. ‘떠날 곳이 있다.’ 이 말을 거짓말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가 그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 만화로 본 세상
- [만화로 본 세상]-티격태격, 알콩달콩 ‘10대들의 로맨스’(2015. 04. 13 18:07)
- 2015. 04. 13 18:07 문화/과학
- 동시대 TV 드라마의 10대 로맨스는 아니다. 오히려 전 시대인 와 시리즈에서 보던 구조다. 남녀 주인공의 티격태격과 우스개라는 구조는 동일하지만, 개그의 결은 다르다. 이 지점이 의 비밀이다. 누구에게나 그 시절은 있었다. 그 시절은 한때 ‘얄개’라고 불리기도 했고, 때론 ‘진짜진짜 좋아해’ 안에 있었다. 그러다 ‘고교생 일기’가 되기도 하고, ‘사랑이 꽃피는 나무’도 되었다. 그리고 나이를 먹어 그 시절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그 시절의 나를 향해 손가락질한다. 학생이 공부를 해야지, 사랑이 뭐야! 쓸데없는 짓 하지마! 그 시절의 나를 향해서 말이다. 매주 목요일 네이버 웹툰이 업데이트되면 연령대별 인기 만화 순위가 공개된다. 10대 순위에서는 남성, 여성 구분 없이 항상 이 1위를 차지한다. 반면, 20대와 30대 순위에는 이 없다. 을 두고 명확하게 10대와 10대가 아닌 세대가 갈린다. 마치 세대를 나누는 리트머스시험지와 같다. 도대체 왜 우리 10대들은 에 환호하는 것일까? 232 작가의 만화 . / 네이버 웹툰 드라마에 나오는 재벌도 일진도 없어 은 17세 고등학생 공주영과 왕자림이 티격태격하는 전형적인 10대 로맨스다. 10대 로맨스야 60년대 극장을 풍미한 , 시리즈 이후 TV드라마나 만화 등에서 꾸준히 소비되는 장르다. 10대였던 이들과 10대 시절을 지난 이들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안전 아이템이니까. 은 최근 우리가 봐 왔던 10대 로맨스와 좀 다르다. 좀 더 정확하게 구분하면, 일본의 소녀만화를 원작으로 한 TV드라마 나 , 그리고 만화원작은 없지만 앞의 작품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과 은 다르다. TV드라마에 나오는 10대 로맨스에는 재벌과 일진이 필수요소였다.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에도 첨예한 갈등과 카타르시스를 위해 한 명으로도 모자라서 여러 특징을 지닌 훈남들을 재벌과 일진에 고루 포진시켰다. 그런데 에는 재벌도, 일진도 없다. 대신 교복을 고쳐 입고, 유행하는 점퍼나 저지를 걸치고, 버스카드를 들고 버스를 타는 고등학생들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공주영(남자)은 사정으로 원룸으로 이사를 오게 된다. 주영이 버스를 타고 등교를 하려는데 버스비가 없다. 버스기사에게 “내일 내겠다”고 부탁하지만, 들어줄 리 없다. 그런데 바로 뒤를 따라온 왕자림(여자)이 주영의 버스비를 함께 찍어준다. 그런데 이 여자애, 낯익다. 이사했을 때 집앞에서 본 아이다. 상투적이지만, 버스가 급정거하고 주영은 넘어지며 여자애를 붙든다. 손을 놓고 급히 사과했는데, 여자아이는 무심하게 별 관심이 없다. 주영은 첫눈에 반한다. ‘금사빠’(금방 사랑에 빠짐) 상태가 된 것이다. 그런데 알고 봤더니, 그 여자아이는 주영의 절친 경우네 반 학생이다. 자림에게 반한 주영은 끈질기게 자림을 쫓아다닌다. 등교길에 정거장에서 기다리기, 자림이네 반에 가서 놀기, 수련회 버스 바꿔타기 등등 크고 작은 사건이 벌어진다. 그리고 자림은 그런 주영에게 특별히 반응하지 않는다. 여자아이의 마음에 들기 위해 고백하는 남자아이, 그 남자아이를 무시하는 여자아이, 그리고 주변의 친구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개그와 함께 전개된다. 알콩달콩 우스개 로맨스라, 낯설지 않다. 동시대 TV드라마의 10대 로맨스는 아니다. 오히려 전 시대인 와 시리즈에서 보던 구조다. 남녀 주인공의 티격태격과 우스개라는 구조는 동일하지만, 개그의 결은 다르다. 이 지점이 의 비밀이다. 의 개그는 게시판 하위문화의 코드들로 이루어진다. 그 중 도드라지는 건 ‘짤방’이다. ‘짤방’은 디시인사이드 같은 커뮤니티에서 등장한 문화로 ‘짤림방지’의 약자다. 디시인사이드에서 사진을 올리는 갤러리는 ‘이미지’가 첨부되지 않으면 운영자가 글을 삭제했다. 글의 ‘삭제’(짤림)를 ‘방지’하기 위해 사용된 사진을 ‘짤방’이라 불렀는데, 몇몇 재미있는 사진이 반복 사용되었고, 시간이 흘러 이 짤방이 스스로 특정 상황을 설명하는 이미지가 되었다. 청소년들은 유행하는 짤방을 게시판이나 SNS, 메신저 등에서 열심히 활용한다. 스스로 짤방을 생산하기도 한다. 그런 짤방을 은 작품 안에 재사용했다. 10대라면 유행하는 짤방을 따라 그린 의 패러디를 모를 수 없다. 중간중간 작화 스타일이 변화하고, 뭔가 튀는 장면이 있으면 그게 짤방이다. 10대는 그 짤방이 그동안 사용되던 맥락을 알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희극이 발생한다. 여기서 어른들이 모르는 10대들의 연대가 시작된다. 어른들은 모르는 그들만의 문화 사실 더 중요한 지점은 대사, 연기와 같은 이야기의 전개가 딱 10대들의 방식이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자림이를 열심히 쫓아다니던 주영이가 5월 14일 로즈데이를 맞아 고백하려고 장미 99송이를 준비하는 에피소드가 나온다. 그 모습을 본 친구가 한마디 한다. “야 근데 장미 99송이가 뭐냐. 니가 무슨 인소 주인공이여?” 로즈데이에 고백하기 정도면 어렵지 않다. 그런데 대사에서 나오는 ‘인소’가 무엇일까? 저 대사를 이해하지 못하면 의 재미를 공유하지 못한다. ‘인소’는 인터넷 소설의 약자다. 인터넷 소설 주인공 같다는 비유인데, ‘인터넷 소설’이라는 단어를 알아도 인소 주인공의 어처구니 없는 허세와 같은 특징을 이해하지 못하면 역시 이 대사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다. 하나의 사례지만, 안에는 10대들만이 공유하는 언어가, 이미지가 있다. 그래서 10대들은 을 온전한 자신들의 이야기로 받아들이게 된다. 초반부의 베스트댓글이다. “중학생들 초등학생들 연애혁명 보면 고등학교 때 저런 풋풋한 사랑을 할 수 있을 것 같죠? 안 생겨요. 아하하하하하하. 흑흑흑.” 이 베스트댓글은 이 누구에게, 어떻게 소비되는 것인가를 증언한다.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유사한 언어로 이야기하고, 문화를 공유하는 10대들이 의 주인공이자 소비자다. 그들은 와 시절 어른들이 두 영화가 만들어낸 당대의 10대 문화에 환호했던 것처럼, 에 환호한다. 은 클리셰가 아니라 10대들과 공감하는 진실이다.
- 만화로 본 세상
- [시사 2판4판]연애능력평가(2014. 11. 24 18:14)
- 2014. 11. 24 18:14 정치
- 여성추리영역 남 영화 보러 갈래? 여 영화 볼 기분 아니야. 남 드라이브 갈래? 여 드라이브 갈 기분 아니야. 남 가방 사줄까? 여 ……. 남 밥 먹으러 갈래? 여 아까 뭐 사준다 그랬지? 여당추리영역 야 사자방 국조하지 않을래? 여 국조할 기분 아니야. 야 누리과정 예산 합의하자. 여 전혀 그럴 기분 아니야. 야 그래도 선진화법 예산 기한은 지켜야 하지 않을까? 여 ……. 야 밥 먹으러 갈래? 여 아까 뭘 지키자고 그랬지? 개그콘서트의 한 코너인 연애능력평가에는 여성추리영역이 있다. 여성들의 미묘한 감정을 잘 드러내주는 아이디어로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지금 여당도 미묘한 심정일 것 같다. 누리과정 예산안 합의과정에서 돌출된 여당의 내분을 봐도 그렇다. 평소 국회선진화법을 질타하던 여당이 유독 선진화법에 포함된 예산안 법정기한만 강조하는 이유는 청와대와 야당 사이에 끼여 있는 미묘한 입장 때문이 아닐까.
- 시사 2판4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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