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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람료 내린다면서요?…기업 배만 불리는 ‘영비법’ 개정
영화관람료 내린다면서요?…기업 배만 불리는 ‘영비법’ 개정(2025. 01. 06 06:00)
2025. 01. 06 06:00 문화/과학
윤석열 정부 ‘관람권 부과금’ 폐지…기업들은 “관람료 인하 없다” 서울의 한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 입장권을 구매하고 있는 사람. ‘영화관람권 구매 시 징수되는 부과금 3%’가 폐지됐지만, 영화 관람권 가격은 인하되지 않았다. 연합뉴스 정부가 국민의 경제적 부담을 줄이겠다며 새해에 ‘영화관람권 구매 시 징수되는 부과금 3%’를 폐지했지만, 관람료는 그대로인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 설명대로면 영화관람료는 지난 1월 1일부터 기존 가격에서 450원 정도 인하돼야 하지만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은 “인하는 없다”고 밝혔다. 이들을 관리·감독해야 할 문화체육관광부는 “업계에 ‘촉구’를 해보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부과금 폐지로 ‘영화발전기금’의 주요 재원이 사라지는 문제는 세금 투입으로 해결할 방침이다. 결국은 영화상영관 및 배급사의 수익만 늘어난 셈이다. 허술한 정부, 이용하는 기업 지난해 12월 10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는 ‘2025년 예산안’ 부수 법안으로 이종욱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발의한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영비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주요 내용은 “2025년 1월 1일부터 영화 관람객에게 징수했던 부과금 3%를 폐지해 경제적 부담을 완화하고, 영화상영관 입장권의 요금 인하를 통해 영화 관람 수요 증가 및 영화산업 활성화를 도모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10일 ‘2025년 예산안’ 부수 법안으로 국회를 통과한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제안 이유에 “영화 관람객의 부담을 완화하고”라고 적혀 있다. 국회의안정보시스템 관람객이 영화표 구매 시 내는 ‘부과금 3%’는 흔히 ‘영화발전기금’으로 알려져 있다. 부과금이 영화진흥위원회가 관리 및 운용하는 영화발전기금의 주요 재원으로 활용되기에 관람권이나 영수증에 ‘발전기금’으로 표시됐다. 영화발전기금은 ‘한국영화의 창작·제작 진흥 관련 지원’, ‘한국영화의 수출 및 국제교류 지원’, ‘소형영화·단편영화의 제작 지원’ 등에 쓰였다. 영비법 개정안은 국회가 발의하고 통과시켰지만 ‘정부 법안’에 가깝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1월 “모든 부과금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라”고 관계부처에 지시했고, 3월에는 “국민이 부담하는 준조세 부담을 경감해야 한다”며 영화관람권 구매 시 징수되는 부과금 3% 폐지를 발표했다. 지난해 10월 이종욱 의원은 해당 내용 등을 담은 법률안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정부가 해당 법안 시행 이후 문제점을 미리 점검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 정부의 기대는 빗나갔다. 핵심인 ‘관람객의 경제적 부담 완화’ 효과는 전혀 없었다. 영비법 개정안이 시행되기 하루 전인 지난해 12월 31일, 주간경향은 대표적인 영화 상영관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측에 “부과금이 폐지된 만큼 새해부터 영화관람료를 인하하느냐”고 물었다. 3사 관계자들 모두 “인하는 없다”고 밝혔다. 한 상영관업계 관계자는 “관람객 부과금 3%가 폐지됐지만 이를 상영관과 배급사가 나눠 가져야 하는 만큼 영화표 한 장당 1.5% 정도 수익이 늘어난 것”이라며 “이는 상영관 수익이 영화발전기금으로 빠져나갔다가 정상화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영화관람권 가격을 내리기보다 침체한 영화산업을 살리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기존 영비법을 보면 영화발전기금을 내는 주체는 상영관이나 배급사가 아닌 ‘관람객’이다. 상영관은 영비법 개정으로 수익을 ‘되찾는’ 것이 아니라 ‘추가로’ 얻는다고 봐야 한다. 법 개정하고, 결과는 나 몰라라 영비법 개정안이 시행된 뒤 관람료가 인하됐는지 여부는 정부도 국회도 관심이 없다. 문체부 관계자는 “저희도 간접적으로 파악하기로는 (상영관 측이) 인하계획이 없는 것으로 안다”며 “정부에서 티켓 가격을 얼마나 내리라고 하기는 어렵고, 상영관들이 자율적으로 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얼마를 내리라고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협조’할 것을 ‘촉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법이 개정 취지에 따라 시행될 수 있을지 미리 검토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관계자는 “처음에 정부가 부과금 폐지를 검토하며 상영관 측과 면담을 하긴 했다. 그때도 (관람료 인하와 관련한) 명확한 답변은 못 받았다”며 “부과금 3% 폐지 효과를 온전히 발휘하기 위해서는 상영관들이 티켓 가격을 인하 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결국 영비법 개정이 상영관이나 배급사 측 수익만 증대시킨 상황 아니냐’는 물음에는 “그렇다”고 답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3월 2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제23차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열고 “국민과 기업의 준조세 부담을 경감하겠다”며 ‘영화관람권 구매 시 징수되는 부과금 3%’를 폐지할 뜻을 밝혔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정부와 여당은 영화 관람의 경제적 부담을 줄이겠다며 영비법을 개정했다. 그러나 영비법 개정으로 이득을 얻은 것은 관련 기업뿐이다. 문체부는 상영관 측이 부과금이 폐지될 시, 관람료를 인하할 것인지를 명확히 밝히지 않은 상황에서 윤 대통령 지시에 따라 해당 정책을 추진했다. 영화 관람객이 지급했던 부과금 3%는 지난해까지 영화발전기금 재원으로 쓰였다. 올해부터 부과금이 사라지면서 영화발전기금 유지에 어려움이 생기자 정부는 이를 세금으로 지원하기로 했다. 문체부에 따르면 영화발전기금 수입원을 국고(세금)로 대체했고, 그 결과 2025년 영화발전기금 사업비는 전해보다 20% 가까이 늘었다. 한 영화업계 관계자는 “영화진흥위원회를 비롯한 업계 사람들이 관람객들에게 꼬박꼬박 3%씩 받아내던 부과금을 폐지한다는데 왜 가만히 있겠느냐”며 “정부가 세금으로 기존 수준 이상으로 보전해 준다니 그냥 지켜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영진위 측은 “국회의 의결사항을 존중하고자 한다”면서도 “현재 야당에서 부과금 존속을 포함한 영비법 일부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으로 향후 야당 입장이 반영된 영비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될 경우 입장권 부과금은 다시 징수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정호철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간사는 “항공권에 부가되는 ‘출국납부금 부담금’이 지난해 7월부터 3000원 인하(1만원→7000원)되면서 그만큼 항공권 가격이 낮아졌다”며 “정부가 국민 부담 경감을 약속한 만큼 소비자가 체감할 수 있게 영화 관람료 인하를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소비자들 역시 실질적 영화 관람권 인상에 대해 적극적인 문제제기를 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주호 참여연대 민생경제팀장은 “결국 영화 관람객이 내던 부과금이 국민 전체가 내는 세금으로 항목만 바뀌고, 대기업 극장들의 수익만 증대됐다”며 “국회에서 영비법 개정안이 처리됐으면 문체부가 실질적 집행을 해야 하는데 직무유기를 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꼬다리]영화 기사에 달린 정치 댓글
[꼬다리]영화 기사에 달린 정치 댓글(2024. 11. 22 15:30)
2024. 11. 22 15:30 사회
지난 11월 15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 혐의에 대해 1심 법원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자 법원 앞 지지자들이 판결에 항의하고 있다. 정효진 기자 “정치 영역에는 여지가 필요한데,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하다. 너무 전방위적으로 모든 곳에 법의 잣대를 들이밀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022년 노무현재단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다. 정치의 사법화란 정치 문제를 사법적 판단으로 해결하려는 것이다. 지난 11월 15일 이 대표는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TV 방송 토론과 국정감사에서 ‘대장동·백현동 의혹’에 거짓말을 한 혐의다.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되면 이 대표는 10년간 피선거권이 제한돼 차기 대선에 출마할 수 없다. 일각에선 ‘유력 대선주자를 말 한마디로 처벌해 대권을 막는 것이 옳으냐’며 야단이다. 정치의 사법화란 정치인 스스로 초래한 것이다. 2022년 대선 당시 나는 사회부에서 검찰을 취재하고 있었다. 대선을 한 달 앞두고 여야 정치인들은 검찰청을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며 온갖 사건으로 상대 후보를 고발했다. 자신들이 고발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하지 않는다고 항의하며 검찰총장이나 서울중앙지검장과의 면담을 막무가내로 요구하기도 했다.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 복구)을 하겠다는 국민의힘은 물론이고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하겠다는 민주당까지 검찰 수사를 부추기는 모습에 기자들도, 검사들도 어이없어했다. 정치의 사법화만큼 ‘사법의 정치화’도 심각해 보인다. 사법의 정치화란 정치가 여론을 등에 업고 사법적 판단에 개입하는 것이다. 정치적 생명이 판결로 결정되니 이제 여야는 노골적으로 법원을 회유하고 압박한다. 이재명 대표 1심 선고 닷새 전 민주당은 국회 예산심사에서 대법원 예산을 정부 원안보다 246억원이나 늘려줬다. 유죄가 선고되자 다음 날 민주당은 서울 광화문에서 수만명 규모의 집회를 열어 “미친 정권에 미친 판결”, “검찰 독재 정권에 부역한 정치 판결”이라고 비난했다. 여당이라고 다르지 않다.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의 장모 최은순씨가 통장 잔고증명서 위조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자 국민의힘은 “정치적 판결”, “억울한 측면”, “법원 좌경화”라는 논평을 냈다. 그러자 민주당은 “사법체계와 국민의 법 상식을 조롱하지 말라”고 맞받았다. 법원이 우리 편에게 유죄를 선고하면 “정치 판사를 탄핵하라”며 비난하고, 무죄를 선고하면 “사법부를 겁박하지 말아라”며 옹호하는 추태가 요즘 국회의 문화다. 법원의 정치적 중립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아는 판사·검사·변호사 출신 의원들이 오히려 공세에 앞장선다. 지금 나는 문화부에서 영화 담당 기자로 일하는데, 영화 기사에 뜬금없이 ‘??’(윤석열 대통령 멸칭)과 ‘쥴리’(김건희 여사 멸칭)를 수사하라고, ‘찢죄명’(이재명 대표 멸칭)을 구속하라고 정치 댓글이 자주 달린다. 예술의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느낄 틈도 없이 일상이 정치만으로 가득 찬 사람을 생각하면 슬프고 안쓰럽다. 모니터 앞에서 전쟁하듯이 댓글을 다는 시민들도, 법원과 검찰청 앞에서 칼바람을 맞아가며 시위하는 시민들도 사법부의 정치적 중립을 믿지 않는다. 자신들이 재판과 수사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심지어 영향을 줘야 한다고 믿는다. 국회가 그런 간절한 믿음을 만들고 이용하며 시민의 일상을 정치화·사법화하고 있다.
꼬다리
[시네프리뷰] 에이리언: 로물루스-원전의 감성으로 되살아난 SF 공포영화 전설
[시네프리뷰] 에이리언: 로물루스-원전의 감성으로 되살아난 SF 공포영화 전설(2024. 08. 21 06:00)
2024. 08. 21 06:00 연예
<에이리언: 로물루스> 제작 발표에 팬들이 기대를 모은 이유는 연출을 맡은 페데 알바레즈에 대한 신뢰에 있다. 그는 자신의 우상과도 같던 <에이리언>을 직접 연출하면서 진정한 성덕(성공한 덕후)의 모범이 됐다.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목: 에이리언: 로물루스(Alien: Romulus) 제작연도: 2024 제작국: 미국 상영시간: 119분 장르: SF, 공포 감독: 페데 알바레즈 출연: 케일리 스패니, 데이비드 존슨, 아치 르노, 이사벨라 머세드, 스파이크 펀, 에일린 우 개봉: 2024년 8월 14일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사진제공: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이전까지 나온 <에이리언> 장편영화는 총 8편이다. 일단 1979년 리들리 스콧 감독이 연출한 원전 <에이리언>의 뒤를 잇는 (여주인공 ‘리플리의 연대기’로 볼 수 있는) 속편이 4개다. 1편 자체도 평가가 좋았지만, 특별히 1986년 제임스 캐머런이 연출한 <에이리언 2>의 엄청난 흥행은 이 지저분하고 기괴하게 생긴 외계생물의 영화적 생명을 연장하는 결정적 추진력이 됐다. 이후 데이빗 핀처 감독의 <에이리언 3>(1992)와 장-피에르 주네 감독의 <에이리언 4>(1997)로 이어졌는데, 당대 상업영화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신인 감독들에게 메가폰을 맡김으로써 완성도의 평가와는 별개의 흥행과 화제를 이어갔다. 그러나 무리하게 이어진 이야기와 배우 시고니 위버의 육체적 노화는 결국 이 시리즈의 정체를 초래했다. 과거 20세기 폭스 영화사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외계 악당으로, ‘에이리언’의 맞수처럼 취급돼 오던 ‘프레데터’와의 조우가 실현된 일종의 외전은 2개가 있다. <에이리언 vs. 프레데터>(Alien vs. Predator·2004)와 <에이리언 vs. 프레데터 2: 레퀴엠>(Aliens vs. Predator: Requiem·2007). 공개 당시의 화제와 달리 현재는 그냥 이벤트 자체로서의 의의만 대접하는 일종의 흑역사로 취급하는 시선도 있다. 원작으로의 회귀 또는 새로운 시작 2010년대 들어서며 원조 창작자인 리들리 스콧 감독이 말년의 예술혼을 불태우며 에이리언의 기원을 다루는 프리퀄 제작을 야심 차게 발표했다. 그렇게 <프로메테우스>(2012), <에이리언: 커버넌트>(2017)를 공개했지만, 인류의 기원까지 들먹이는 심오하고 거창한 장황설에 모처럼 ‘오리지널의 귀환’을 기대했던 팬들에게 사실상 외면당하고 만다. 여파로 원래 서너 개로 기획했던 속편의 제작이 무산되며 노장 감독의 원대한 포부는 사실상 미완으로 끝나고 말았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포기하지 않고 2025년 2월 공개 예정으로 <에이리언: 어스>란 제목의 8부작 드라마를 제작하고 있다고 한다. 이 역시 1편의 30년 전이자 <프로메테우스>의 이전 사건을 다룬다고 전해진다. 전작들과 별개의 이야기로 기획된 <에이리언: 로물루스>는 시대적으로는 1편(2122)과 2편(2179) 사이인 2142년을 시대적 배경으로 한다. 무대는 초거대기업 ‘웨이랜드 유타니’가 관리하는 새로운 개척지 행성 ‘잭슨 스타’. 이곳에서 노동자의 자녀로 태어나 신분이 종속된 채 사는 일군의 젊은이들은 이상향으로의 도피를 꿈꾼다. 이를 위해 버려진 우주기지 ‘로물루스’로 향하지만, 그곳은 예상하지 못했던 끔찍한 존재들의 둥지임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우상을 재창조한 공포영화 전문 감독 <에이리언: 로물루스> 제작 발표에 팬들이 기대를 모은 이유는 연출을 맡은 페데 알바레즈에 대한 신뢰에 있다. 1978년 우루과이 몬테비데오 출생으로 어려서부터 공포영화를 좋아했는데, 12세 때 처음 접한 <에이리언>의 (본편도 아닌) 다큐멘터리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2001년부터 유튜브를 통해 자신이 만든 단편들을 공개하며 꾸준히 영화를 만들다가, 드디어 2013년 저예산 공포영화의 신화로 통하는 <이블 데드>의 리메이크를 성공적으로 완수하며 단숨에 스타 감독으로 등극했다. 이후 <맨 인 더 다크>(Don’t Breathe·2016)로 존재감을 견고히 한 그는 드디어 자신의 우상과도 같던 <에이리언>을 직접 연출하면서 진정한 성덕(성공한 덕후)의 모범이 됐다. 여담으로 알바레즈 감독의 한국영화에 대한 애정 역시 남다르다고 알려져 있다. 일단 한국영화를 꽤 좋아하는데 특히 <올드보이>(2003)를 보며 받은 충격이 이후 작품에 많은 영감을 주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살인의 추억>(2003), <부산행>(2016), <기생충>(2019) 등을 즐겁게 본 작품으로 꼽는다. 또 두 번째 연출작이었던 <맨 인 더 다크>(2016)가 한국에서 10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전 세계에서 미국에 이어 2번째로 흥행하는 성공을 거둔 것도, 그가 한국을 더욱 특별하게 기억하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에이리언의 진정한 아버지 ‘H. R. 기거’ www.swissinfo.ch <에이리언> 시리즈가 현대 SF 공포 영화의 전설이 된 데는 이전 작품들과 차별되는 여러 요소가 있겠지만, 그중 가장 으뜸은 등장만으로 관객을 압도하는 외계 괴물의 기괴한 형체일 것이다. 이는 스위스 태생의 화가 H. R. 기거(H. R. Giger)의 손으로 만들어졌다. 기거는 1940년 스위스 그라우뷘덴주의 쿠어에서 태어났다. 약사인 아버지는 예술을 ‘배고픈 직업’이라며 아들에게 약학을 전공하기를 강권했지만, 그는 결국 응용 예술 학교에서 건축과 산업 디자인을 공부했다. 대신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의 직업 덕분에 접할 수 있었던 사람의 두개골이나 뼈에 관한 관심을 자신의 창의에 적극적으로 반영하게 된다. 기거는 1974년 <엘 토포>, <성스러운 피> 등으로 유명한 칠레 감독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감독이 연출을 맡아 진행하던 <듄>(Dune)의 콘셉트 디자인을 맡으며 처음으로 영화작업에 뛰어든다. 그러나 결국 영화가 무산되면서 그의 독창적 결과물들 역시 빛을 보지 못했다. 이 안타까운 과정은 훗날 공개된 다큐멘터리 <조도로프스키의 듄>(2013)을 통해 재조명된다. 하지만 <듄>에 함께 참여했던 댄 오배넌의 소개로 연을 맺게 된 영화 <에이리언>에서 기거는 아카데미 시각 효과상 수상에 결정적 기여를 했고, 기거 자신에겐 현대 미술가로서의 세계적 명성을 확장하는 기회를 마련했다. 이후 그의 창작물들은 순수 예술의 영역을 넘어 영화, 음반 표지, 비디오 게임은 물론 가구 디자인까지 아우르며 대중문화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쳤다. 2014년 5월 12일, 기거는 집 계단에서 넘어져 병원으로 이송됐고, 취리히 병원에서 74세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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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섦과 익숙함 사이…‘대치동’ 드라마·영화가 늘어난다(2024. 07. 08 06:00)
2024. 07. 08 06:00 문화/과학
‘일타 강사’ 이어 최근 드라마 ‘졸업’· 영화 ‘대치동 스캔들’ 잇달아 드라마 <졸업>에서 극 중 대치동 학원 국어과 강사인 서혜진(정려원 분)이 강의하고 있는 장면 / tvN 제공 “대한민국 다 무너져도 저 욕망이 남아 있는 이 동넨 절대 안 무너질 거거든.” 지난 6월 30일 종영한 tvN 드라마 <졸업> 1화, 남자 주인공 이준호(위하준 분)와 ‘대치동 친구들’의 술자리. 결혼을 앞둔 한 친구가 강남 밖에 신혼집을 알아본다는 말에 준호의 가까운 친구 최승규(신주협 분)는 ‘안면몰수’하고 부모의 집 담보로 대출을 받아서라도 대치동에 남아야 한다는 말과 함께 서울대 과점퍼를 입은 이들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한다. <졸업>의 공간적 배경은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다. 여자 주인공 서혜진(정려원 분)은 대치동 학원의 국어과 강사로 ‘등급 올리는 귀신’이라 불릴 만큼 잘나가는 강사다. 준호는 고등학교 1학년 첫 모의고사에서 8등급을 받았지만, 혜진의 수업을 받으며 1등급까지 오른 ‘기적’적인 인물. 명문대를 졸업하고 대기업을 다니다가 혜진이 있는 학원에 강사로 들어오면서 드라마는 두 사람의 로맨스를 주요 이야기로 풀어낸다. “<봄밤>(2019)과 같은 로맨스 드라마인 줄만 알았는데 마지막 회를 보니까 <하얀거탑>(2007)에 가깝더라고요.” 드라마평론가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졸업>을 연출한 안판석 PD의 이전 작품들과 비교했을 때, 대치동 학원가에서 자기 영역을 확장하고 더 높은 탑을 쌓고 싶은 강사들의 욕망과 그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경쟁과 배신, 한편으론 가르치는 사람으로서의 인간적 고민 등을 담아냈다는 점에서 그랬다. 실제 두 사람의 로맨스 서사 이외에 드라마 배경, 등장인물 캐릭터에 대한 관심이 컸다. 이 드라마의 최고 시청률은 6.6%(최종회). 시청률 측면에서 성적이 눈에 띄진 않았지만, 정려원은 지난 6월 3주 연속 화제성 배우 1위(굿데이터코퍼레이션)에 올랐고, 극 중 학교 교사 출신 국어 강사 표상섭(김송일 분)의 무료 강의 장면은 ‘현실 고증’이 뛰어났다는 평가를 받으며 실제 일타 강사들이 언급할 정도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화제였다. 이 장면은 유튜브에서 tvN 드라마 공식 계정 기준 2주 만에 조회 수 10만여회를 기록했다. ■욕망과 갈등이 자라는 곳···‘대치동’ 드라마·영화들 줄이어 <하얀거탑>이 대형병원의 속살을 드러냈다면 <졸업>은 주인공들과 그 주변 사람들의 대사와 행동을 통해 ‘대치동이 어떤 곳인가’를 끊임없이 묻고 답한다. 최근 ‘대치동’을 콕 집어 배경으로 삼은 드라마와 영화가 늘고 있다. 지난해 방영한 tvN 드라마 <일타 스캔들>의 한 장면 / tvN 제공 앞서 지난해엔 전도연·정경호 주연의 드라마 <일타 스캔들>(tvN)이 최종회 시청률 17%를 기록하며 인기를 모았다. 고소득을 올리면서 팬덤을 형성한 일타 강사(일등 스타 강사) 최치열(정경호 분)과 조카를 키우며 ‘대치동 학부모’의 세계에 뛰어든 남행선(전도연 분)의 로맨스를 주요 서사로 한다. <일타 스캔들>은 대치동이란 이름을 ‘강남구의 모 학원가, 녹은로’로 대치했지만, 화면엔 대치동 학원가 모습이 그대로 펼쳐졌다. 지난 6월 19일 개봉한 영화 <대치동 스캔들>의 주인공 안소희 역시 대치동 학원의 국어과 일타 강사로 분한다. 대치동 일타 강사를 주인공으로 한 <대치동 1들의 전쟁>(가제)이란 드라마도 기획 단계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콘텐츠 제작자들은 대치동을 왜 작품 배경으로 삼을까. 윤석진 교수는 “대치동은 열린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물리적으로 접근하기 쉽지 않다는 특성이 있다”며 “그곳을 내밀하게 엿볼 수 있다는 부분이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갖게 만든다”고 했다. 윤 교수는 “학교라는 공간에선 교사가 그래도 여전히 어느 정도는 체면을 지켜야 한다는 인식이 남아 있지만, 사교육 현장은 정글 같은 곳이다 보니 그 안에서 극적인 갈등 구조들, 첨예할 수밖에 없는 관계들이 형성될 것이기에 드라마화하기에 적합한 요소들이 있다”고 했다. ‘접근하기 어려움’이라는 측면에선 역설적이지만, 대치동이 한국사회에서 익숙한 공간이 됐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김교석 대중문화평론가는 “대치동을 누구나 가는 것은 아니지만 인강(인터넷 강의)도 있고 현우진·이지영 등 일타 강사가 인플루언서로서 자리 잡으면서 대치동도 일상적인 공간이 됐다”며 “좋은 학교에 진학해야 한다는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최전선이기도 하고, 그런 공간에서 갈등이나 에너지들이 있고, 또 강사라는 인물이 등장하니까 동경하는 캐릭터도 넣을 수 있다 보니 작품화하기 좋은 배경인 것 같다”고 했다. ■대치동, 일타 강사···선망과 비판 사이 방송 예능 프로그램에 일타 강사가 출연하고 이들이 자체 제작한 영상 콘텐츠들이 유튜브 등에서 화제를 모으는 건 꽤 흔한 일이 됐다. 성적 올리기, 문제 풀이, 학습법 공유 등을 소재로 한 동영상 콘텐츠들에 울고 웃는다.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위시한 입시판을 비판적으로 분석한 신간 <수능 해킹>에선 이런 흐름을 “공부의 문화화”라고 했다. K팝 향유자들의 아이돌과 같이, 일타 강사가 수험생의 우상이 됐음을 의미한다. <수능 해킹>의 공저자인 문호진 교육평론가는 ‘대치동 일타 강사’에 대한 대중문화계의 관심을 두 가지 측면에서 해석했다. “예전에는 일타 강사라고 해도 꼭 대치동에서 활동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제는 완전히 대치동 일변도가 됐고, 그것을 (대중문화에서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대치동 강사이면서 인강 강사들은 수험생 커뮤니티뿐만 아니라 일반 학생들의 관심을 끌고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입시 대비 측면에서는 지방이 죽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지방에서도 여유가 있는 가정의 학생들은 주말이면 대치동으로 몰려갑니다. 학원 강의와 숙소를 묶은 패키지 상품을 팔죠. 대치동이 오프라인 강의를 듣는 학생들을 중심으로 전국화됐다는 측면이 (대중화가 되는 영향이) 있을 것 같고요.” 일타 강사에 대한 선망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문호진 평론가는 “K팝이 빈틈없이 굴러가는 세계처럼 보이듯이, 사교육 자체가 고도화하면서 그 안의 일원이 돼 함께 일하고 싶다는 선망이 자란다”고 했다. 김교석 평론가는 “일타 강사들이 선한 영향을 미친다고도 하는데, 그것이 <졸업>에서도 일면 보여준 것 같다”고 했다. <졸업>의 서혜진은 드라마 초반엔 강의 중 문제풀이를 하면서 “공감하려고 하지 마, 외워”라며 사교육이 성적 올리기에 매몰돼 있고, 문제 풀이 기법을 가르친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그러다 드라마 후반 서혜진은 어떤 계기로 강의 스타일을 바꾸면서 학부모들 앞에서 ‘학생들이 제대로 작품을 읽는 법을 가르치겠다’고 말한다. 이 과정에서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를 두고 벌이는 강사들의 치열한 논쟁은 사교육이 공교육을 대체한다는 주장 앞에서 공교육을 더 쪼그라들게 만든다. 다만 “작품에서 현실보다 사교육을 미화했을 때 (사교육의 부정적인 측면이) 가려질 우려”(김교석 평론가)는 공존한다. 사교육이 참전해 “초등학교 5학년에게 기본교육과정보다 6년을 앞당겨 고등학교 수학(상)까지 가르치는 학원의 진도 속도”(사교육걱정없는세상·‘초등의대반’ 실태조사 결과·7월 1일 발표)를 우리 사회가 따라가자고 할 순 없는 일이다. <수능 해킹>은 사교육에 대한 악마화·신화화를 벗어나 실질을 보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한다. 공교육이 위기를 맞은 것은 교사들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교육 당국의 정책 설계에서 파생된 구조적 문제임을 짚는다. 이 책은 사교육 업계가 의도와 상관없이 젊은 노동자를 착취하는 가해자임을 지적한다. “수능이 고도화하고 N수가 일반화하면서 반수생을 비롯한 N수생들이 조교 및 출제·검토 업무를 병행해 사교육비를 벌면서 산업의 하부를 지탱하는 구조”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학습과 노동의 경계가 흐릿한 곳에서 ‘열정페이’를 받는 젊은 노동자들이 지금 대치동 사교육 서비스의 질을 담보하는 한 축이라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문 평론가는 “일타 강사들의 실제 역할이나 캐릭터가 평면적이지 않다. 진심으로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려고 노력하는데, 표면상에 선과 악이 구분되지 않더라도 결국에 그것이 나쁜 결과를 도출할 수 있음을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1000만, 영화의 힘인가 자본의 힘인가
1000만, 영화의 힘인가 자본의 힘인가(2024. 05. 20 06:00)
2024. 05. 20 06:00 문화/과학
영화 <범죄도시 4>가 촉발한 ‘스크린 독점’ 논란 배우 마동석 주연의 영화 <범죄도시 4>가 개봉 22일째인 지난 5월 15일 누적 관객 수 1000만명을 돌파했다. 사진은 지난 5월 15일 서울의 한 영화관의 <범죄도시 4> 홍보물 /문재원 기자 1000만. 한국 영화계에서 흥행 대박을 상징하는 ‘고유명사’ 같은 수치다. 2024년 기준, 한국 인구수가 약 5175만명인 만큼 전체 인구의 약 5분의 1에 해당한다. 그런데 한국에서 개봉하는 상업영화는 대부분 ‘15세 이상 관람가’ 등급을 받는다. 한국의 15세 이상 인구수는 약 4627만명이다. 이에 따라 특정 영화의 관객이 1000만명이라는 것은 ‘한국 15세 이상 인구 4~5명 중 1명이 같은 영화를 본 것’일 수 있다는 의미다. 해당 수치를 유사한 오락거리와 비교해볼 수도 있다. 1982년 시작한 프로야구의 역대 최고 관객동원 수치는 2017년 달성한 840만688명이다. 지난해는 810만326명을 동원했다. 팀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총 144경기 중 41경기쯤 치른 5월 14일 기준, 296만1205명을 동원했다. 전국 5개 야구장에서 동시에 치러지는 야구경기의 하루평균 관객은 약 7만2000명이다. 수치대로라면 올해 약 741만6000명을 더 모을 수 있다. 이로 인해 프로야구는 사상 첫 1000만 관객을 달성할 수 있을지 주목받는다. 즉 관객 1000만이라는 수치는 프로야구가 한 시즌 내내 흥행을 이어가야 달성할 수 있는 꿈의 숫자라는 의미다. 국내 최고 인기 스포츠인 프로야구를 제외하면 한국에서 ‘입장권을 사서 관람’하는 오락거리 중 영화와 비교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인정하든, 그렇지 않든 영화는 한국인이 가장 즐기는 여가임을 수치가 증명한다. 실제로 상반기도 채 끝나지 않은 올해 1000만 영화가 이미 두 편이나 탄생했다. 지난 3월 24일 영화 <파묘>는 개봉 32일 만에 관객 1000만명을 돌파했다. 역대 32번째, 한국 영화로는 23번째 1000만 영화다. 곧바로 33번째 1000만 영화도 탄생했다. 지난 5월 15일,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범죄도시 4>다. <파묘>보다 10일이나 빠른 개봉 22일 만에 세운 기록이다. 연이은 1000만 영화의 탄생에 업계는 반색 중이다. 그런데 <파묘>의 1000만 달성 때와 달리 <범죄도시 4>를 두고는 조금 다른 이야기가 나온다. 영화계에서 터져 나온 <범죄도시 4>의 ‘스크린 독점’ 문제다. 지난 3월 24일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파묘>. 사진은 지난 2월 28일 서울 한 영화관에 <파묘> 홍보물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 상반된 기록이 보여주는 현실 <범죄도시 4>의 1000만 관객 동원은 한국 영화사에서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진기록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영화는 시리즈물이다. 주연배우와 이야기의 큰 틀이 변하지 않는다. 형사 마석도 역할의 배우 마동석이 범죄를 해결한다는 것이다. 결말을 누구나 알 수 있는 이야기의 빈틈은 주·조연 배우들의 연기력, 이들이 상호작용하며 만드는 웃음이 메운다. 예를 들어, 배우 마동석이 가진 힘 센 이미지가 과장되고 폭력적인 상황에 개연성을 부과하고, 장이수 역의 박지환이 이에 상응하며 재미를 만드는 식이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마동석이 나쁜 놈들을 혼내준다는 단순·명확한 이야기가 반복되는 것이 오히려 관객들이 이 영화를 선택하는 이유라고 볼 수도 있다”며 “코로나19 유행 이후 관객들은 검증된 영화를 선택한다는 것을 잘 파고든 것”이라고 말했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 역시 “주인공이나 서사구조가 반복되니까 관객들은 영화가 개봉했을 때 ‘돈을 주고 가서 볼 만한 것’인지 탐색하고, 사람들의 반응을 보는 일을 생략할 수 있다”며 “범죄도시 시리즈에는 일종의 브랜드 효과가 발생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범죄도시 4>뿐만 아니라 그 전작인 1~3편도 모두 흥행에 성공했다. 이중 2편과 3편은 각각 1269만3415명, 1068만2813명을 동원하며 나란히 ‘1000만 영화’에 이름을 올렸다. 688만546명을 동원한 <범죄도시 1>과 합치면 세 작품 관객 동원 숫자만 3025만6774명이다. <범죄도시 4>가 10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해당 시리즈는 이제 4000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한 영화가 됐다. ‘한국의 15세 이상 인구수’와 맞먹는다. <범죄도시 4>의 1000만 관객 동원은 또 다른 의미에서도 진기록이다. 영화진흥위원회(KOFIC)에 따르면 <범죄도시 4>가 개봉한 지난 4월 24일부터 1000만 관객을 돌파한 5월 15일까지 총 27편의 영화가 개봉했다. 이중 한국 영화는 딱 7편이다. 4월 24일 <드라이브>, <모르는 이야기>, <여행자의 필요>, 5월 8일 <미지수>, 5월 15일 <그녀가 죽었다>, <내 손끝에 너의 온도가 닿을 때>다. 이중 독립영화가 5편이다. 대중에게 익숙한 유명 배우가 나오는 영화는 1000만 돌파가 확정된 5월 15일 개봉한 <그녀가 죽었다>가 유일하다. 쉽게 말해 <범죄도시 4>가 993만6307명의 관객을 모을 때까지 한국 상업영화는 단 한 편도 개봉하지 않았다. 외국 영화로까지 범위를 넓혀도 상황은 비슷하다. 5월 8일 개봉한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 정도가 알려진 상업영화였다. 적어도 한국 상업영화를 기대한 관객이라면 22일 동안 <범죄도시 4>를 보거나 영화를 보지 않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는 의미다. 보고 싶은 것인가, 볼 수밖에 없는 것인가 배우 마동석 주연의 영화 ‘범죄도시4’가 개봉 22일째인 지난 5월 15일 누적 관객 수 1000만 명을 돌파했다. 사진은 지난 5월 15일 서울의 한 영화관의 범죄도시4 홍보물./문재원 기자 “시간대가 맞는 영화는 <범죄도시 4>밖에 없던데요.” 지난 5월 15일 삼성동 코엑스 메가박스 앞에서 만난 A씨의 말이다. A씨는 “비도 오고, 생각보다 춥기도 해서 밖에 돌아다니기보다 그냥 여자친구와 영화를 보기로 했다”며 “지난주부터 영화를 볼까, 말까 고민했는데 2주째 아는 영화가 <범죄도시 4>밖에 없는 걸 보고 그냥 이거 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날 코엑스 메가박스는 <범죄도시 4>외에 <그녀가 죽었다>,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 <극장판 하이큐! 쓰레기장의 발견> 등을 상영했다. 이중 <범죄도시 4>가 제일 먼저 개봉한 영화임에도 가장 많은 상영관에서 짧게는 20분, 길게는 최대 1시간 간격으로 촘촘하게 상영했다. 이날 개봉한 한국영화 <그녀가 죽었다>는 예정된 무대인사를 제외하면 두 개 상영관에서 최대 2시간 50분 간격으로 상영했다. 강남역 CGV, 잠실역 롯데시네마 월드타워점도 상황은 비슷했다. 이중 영화관 규모가 큰 코엑스 메가박스, 롯데시네마 월드타워점은 각각 17편, 13편의 각기 다른 영화를 상영하며 다양성을 확보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범죄도시 4>, <그녀가 죽었다>,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 <극장판 하이큐! 쓰레기장의 발견>, <가필드>를 제외하면 대부분 심야 시간대에 한 번 상영하는 수준이었다. 이날 롯데시네마 월드타워점에서 <범죄도시 4>를 본 B씨는 “꼭 보고 싶어서 봤다기보다는 쉬는 날 영화를 보려고 했는데 마침 그 시간에 <범죄도시 4>가 상영하고 있었던 것”이라며 “궁금해서 본 <파묘>와는 분명히 선택 기준이 다르다”고 말했다. 실제로 개봉한 지 20여 일이 훌쩍 지나고도 <범죄도시 4>는 압도적인 상영점유율을 자랑했다. 상영점유율은 전체 영화 상영횟수에서 특정 영화가 차지하는 비율이다. 5월 14일 기준, <범죄도시 4>의 상영점유율은 56.1%다. 즉 이날 스크린에 걸린 영화 중 56.1%가 <범죄도시 4>였다. 이마저도 <혹성탈출 : 새로운 시대>가 개봉한 5월 8일을 기점으로 꺾인 것이다. 5월 7일에는 75.6%였다. 지난 4월에는 줄곧 80% 이상을 유지했다. <범죄도시 4>와 <파묘>의 개봉일부터 1000만 관객 돌파시까지 일자별 상영점유율과 상영횟수/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총 좌석 수 중 특정 영화에 배정된 좌석 수를 의미하는 ‘좌석점유율’은 상영점유율과 동기화된다. 그럼에도 좌석점유율이 중요한 것은 이를 토대로 배정된 좌석 중 실제 관객이 입장한 수(판매량)를 의미하는 ‘좌석판매율’을 계산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5월 14일 기준, 57.2%의 좌석점유율을 자랑한 <범죄도시 4>의 좌석판매율은 8.2%였다. 총 136만2048석이 <범죄도시 4>에 배정됐는데 11만1652개 좌석만 판매됐다. 이는 곧 이날 영화를 본 관객 수다. “<범죄도시 4>를 보러 갔는데 그 큰 영화관에서 2~3명이 같이 봤다”는 증언이 허언이 아닌 셈이다. ‘평일에 누가 영화를 보냐’는 반론이 있을 수도 있다. 실제로 주말 사정은 좀 낫다. 토요일인 5월 11일 좌석판매율은 20.9%, 일요일인 5월 12일은 19%였다. <범죄도시 4> 좌석판매율이 가장 높았던 시점은 개봉 첫 주 주말인 4월 27일 토요일로 47.5%였다. 이날 상영점유율은 81.8%였다. 즉 <범죄도시 4>는 단 한 번도 좌석판매율이 50%를 넘어본 적이 없다. 반면 영화 <파묘>의 개봉 첫 주 주말 좌석판매율은 2월 24일(토요일) 53.6%, 2월 25일(일요일) 58.6%였다. 같은 날 <파묘>의 상영점유율은 각각 51.8%, 52.2%였다. <파묘>는 시간이 갈수록 주말 좌석판매율을 높여갔다. 그 결과, 3월 1일 62%로 정점을 찍었다. 지난 5월 15일 서울 강남역 CGV 영화관의 티켓 발매처 앞 모습. <범죄도시 4> 상영 시간표가 나오고 있다./김찬호 기자 <범죄도시 4>가 누린 높은 상영점유율은 효과가 있었다. <범죄도시 4>가 개봉한 후 전국 영화관에서 하루 동안 약 2만1000회 각기 다른 영화들을 상영한 날이 있었다. 이중 약 1만7000회가 <범죄도시 4>였다. 상영점유율은 <범죄도시 4>가 개봉한 후 최고인 82%를 기록했다. 이날 이용 가능했던 약 290만개 좌석 중 256만8000개가 <범죄도시 4>에 배정됐다. 이날이 바로 <범죄도시 4>가 자체 하루 최고 관객 동원 기록(121만9038명)을 쓴 4월 27일이다. 초반 압도적인 물량 공세를 하면 그만큼 관객 수는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이 수치로 확인됐다. ‘영화의 힘’이 1000만명을 영화관으로 불러모으는지, ‘물량 공세’가 1000만까지 가기 어려운 영화도 기록을 세우게 해주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파묘>는 1000만 영화에 등극할 때까지 누릴 수 없었던 혜택을 <범죄도시 4>는 받았다. ‘스크린 독점’ 문제인가, 현실인가 “해도 너무하지 않은가. 내버려 둬도 될 사안인가”. 지난 5월 2일 ‘한국 영화 생태계 복원을 위한 토론회’에서 영화제작사 하하필름스 이하영 대표가 <범죄도시 4>의 스크린 독점 문제를 지적하며 한 말이다. 이 대표는 “코로나19 유행 전에 비해 관객은 줄었는데 오히려 극장 수는 늘어나며 극장 간 경쟁이 과열 체제로 넘어갔다”며 “이런 상황에서 <범죄도시 4>라는 흥행 가능한 영화가 나오니 극장들이 앞다투어 관객 확보를 위해 스크린을 <범죄도시 4>에 배정해 독과점 현상이 났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독과점이라고 할 수 있는 50%선에서 하나의 영화가 스크린을 점유할 수 없게 제한하는 ‘스크린 상한제’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사실 <범죄도시 4> 흥행이 소환한 ‘스크린 독점’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다수 스크린을 보유한 ‘멀티플렉스’가 처음 문을 열었을 때는 관객의 영화 선택 폭을 넓힐 것이란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 운영 방식은 그렇지 않다. 멀티플렉스는 <범죄도시 4>처럼 대박을 낼 것으로 보이는 영화가 개봉하면 갖고 있는 모든 스크린을 내어준다. 관객이 멀티플렉스를 찾아도 영화를 선택할 수 없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현행 멀티플렉스는 내가 보고 싶은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닌, 극장이 보라고 하는 영화를 보는 체제”란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관련법은 있지만 이를 제한할 방법은 없다.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19조는 ‘한국영화의 상영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법에 따라 영화상영관 경영자는 매해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연간 상영일 수의 5분의 1 이상 한국영화를 상영하여야 한다. 이른바 ‘스크린 쿼터제’다. 스크린 쿼터제는 외국영화의 공세에 맞서 한국영화를 보호하는 장치일 뿐, 한국영화계 내부에서 벌어지는 독점 문제는 막지 못한다. 그 결과 이른바 ‘빅5’라고 불리는 CJ엔터테인먼트, 쇼박스, 롯데엔터테인먼트, NEW,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등의 배급사와 손잡는 것이 이들 산하에 있는 CGV, 롯데시네마, CINE Q, 메가박스 등의 영화관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길이 됐다. <범죄도시 4>의 배급사는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고, <파묘>의 배급사는 쇼박스다. 영화 산업의 수직계열화는 이미 완성 단계다. 수직계열화를 인정하면 일부 의문은 해소된다. <범죄도시 4>가 개봉한 4월 24일부터 1000만 관객을 달성한 5월 15일 사이에는 근로자의 날, 어린이날, 부처님오신날 등의 휴일이 있었다. 상업영화 개봉 시점으로 고려해볼 만함에도 나서는 영화가 없었다. 이를 두고 한 영화산업관계자는 “왜 굳이 <범죄도시 4>와 나눠먹기를 하느냐”며 “조금만 기다리면 1000만 관객 달성하고 알아서 비켜줄 텐데 그때 스크린 싹쓸이를 노리는 것이 훨씬 더 낫다.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말했다. 배우 마동석 주연의 영화 ‘범죄도시4’가 개봉 22일째인 지난 5월 15일 누적 관객 수 1000만 명을 돌파했다. 사진은 ‘범죄도시4’의 한 장면/‘범죄도시4’ 측 제공 전문가들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김 평론가는 “이제 와서 멀티플렉스 스크린 독점 문제를 지적해봐야 개선될 것은 없다. 법도 없지 않느냐”며 “결국 이들이 수익을 포기하고 다양한 영화를 상영하는 방식으로 변하라는 것인데 불가능한 말”이라고 말했다. 정덕현 평론가 역시 “이제 꼭 영화관에서 영화를 개봉해야 한다는 전통적인 인식에서 탈피해 독립영화나 예술영화 같은 경우 OTT 등에서 개봉하는 쪽으로 변화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며 “영화 한 번 보는데 1만~2만원을 훌쩍 넘는 시대에 관객들에게 다양성을 담보하는 영화라고 봐달라고 하기도 어렵다. 이미 관객들은 극장에서 볼 때 효능감을 줄 수 있는 영화들을 선택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극장을 찾지 않는 관객들은 ‘볼 만한 영화’가 없어서가 아닌, ‘극장에서 볼 만한 영화’가 없어서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범죄도시 4>는 1000만 관객을 돌파한 5월 15일 상영점유율을 28.6%까지 한 번에 낮췄다. 목표를 달성하고 퇴장을 준비하는 모양새다. 남은 것은 <범죄도시 4>가 22일간 보여준 행보를 문제라고 제재할 것이냐, 현실이라고 인정할 것이냐다. <범죄도시 4>가 한국 영화계에 고민거리를 던졌다.
특집
[시네프리뷰]노 베어스-영화와 현실 양쪽에서 비극으로 치닫는 사랑
[시네프리뷰]노 베어스-영화와 현실 양쪽에서 비극으로 치닫는 사랑(2024. 01. 10 06:00)
2024. 01. 10 06:00 연예
권위주의 정권의 탄압과 시골의 미신이 ‘합작’해 두 연인의 사랑이 결국 비극으로 끝나는 과정을 영화는 감독 자신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덤덤하게 묘사하고 있다. /엠엔엠인터내셔널㈜ 튀르키예 국경도시의 한 골목. 물건을 배달하는 사람들이 교차해 지나가고 술집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여성을 남자가 찾아간다. 남자는 여권을 꺼내 든다. 어느 여행객이 잃어버린 것이다. 여행객이 분실 신고하는 데 걸리는 시간, 약 사흘의 유효기간이 있다. 남자는 여자가 먼저 떠나면 나중에 따라가겠다고 말하고, 여자는 홀로 두고 떠날 수 없다고 말한다. 영화와 현실 속 두 연인의 평행이론 이것은 실제 이야기일까. 사실 영화의 인트로 연출이 너무 티가 난다. 보통 영화에서 그러듯, 거리를 걷는 평범한 사람들도 다 단역배우다. 나는 이 대목에서 봉준호 감독 영화 <살인의 추억>(2003)에서 송강호가 “여기가 강간의 왕국이냐”며 날아차기하는 장면을 떠올린다. 송강호가 날아차기하는 논두렁길은 아마 수없는 리허설 때문인 듯 잡초가 짓이겨져 있었다. 갑자기 화면의 전환. 지금까지 관객이 보고 있던 장면은 노트북 컴퓨터의 모니터 속에서 벌어지는 일이었다. 반체제 프로파간다를 찍는다며 출국이 금지된 감독이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장면을 보며 원격으로 디렉팅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화면이 끊기면서 영화는 ‘감독의 현실’ 시간으로 넘어간다. 감독이 머무는 곳이 국경 시골이라 인터넷 신호가 잘 안 잡힌다. 사다리를 놓고 지붕 위에 올라가도 더 이상 인터넷이 안 된다. 원격으로 진행되던 영화 촬영은 중단됐고, 용을 쓰던 감독은 다 포기하고 사진기를 꺼내 동네 아이들을 찍는 한편, 집주인에게는 카메라를 들려주고 동네 처녀·총각의 약혼식 장면을 찍게 한다. 이 마을은 독특한 약혼식 풍습이 있다. 결혼을 앞둔 남녀의 친인척 동네 사람들이 모두 개울가에 모여 둘러싼 가운데 남자는 남자대로, 여자는 여자대로 발을 씻는 세족식을 하는 것이다. 순박한 집주인이 찍어온 영상을 검토하는 가운데 조감독이 튀르키예와 이란 국경을 넘어 감독을 찾아왔다. 조감독은 밀수업자들 루트로 국경을 넘어 망명할 것을 제안했고, 국경 너머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온 감독의 차를 한 처녀가 가로막는다. 이 처녀는 낮에 집주인이 찍어온 영상 속 약혼녀였다. 이 마을의 또 다른 풍습은 태를 자를 때 미래의 남편 이름으로 자르는 것이다. 고잘이라는 이 여성은 야곱이라는 남자에게 시집가기로 예정돼 있었다. 그런데 고잘은 대학 중퇴생인 또래 친구 솔두스와 사랑에 빠져 있다. 고잘은 감독에게 수수께끼 같은 예언을 건넨다. “만약 당신이 내가 남자친구 솔두스와 찍은 사진을 가지고 있다면 결국 피를 보게 될 것이다.” 권위주의 정권 탄압과 국경 마을 풍습의 컬래버 이후 감독을 찾아온 마을 사람들과 촌장은 “그 사진을 내놓으라”고 감독을 설득한다. 그런 사진을 찍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아무도 믿지 않는 눈치다. 마을 사람들 사이의 소문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고 분쟁이 발생한다. 감독이 자기 카메라를 가져와 한 장씩 찍은 사진을 보여줘도 믿지 않는 눈치다. 촌장은 마을 사람들을 진정시키는 방안으로 ‘진실의 방’에 가서 사람들에게 “그 사진을 찍지 않았다”고 선언하라고 제안한다. 영화 제목의 곰은 그 과정에서 언급된다. ‘진실의 방’에 가는 길에 곰이 출현한다는 명분으로 마을 사람들이 같이 간다. 실제 곰은 그러나 존재하지 않는다(no bears). 기성 권위를 지키거나 유지하기 위한 거짓말이었다. 영화의 후반부는 비극으로 치닫는다. 여권 위조로 연인을 먼저 탈출시키려 했던 영화 속 사랑도 운명을 비관한 여성이 물에 투신하면서 끝난다. 결국 마을에서 쫓겨나듯 떠나게 되는 감독이 목격하게 되는 것은 야간에 국경을 넘으려다 국경수비대에 걸려 죽는 솔두스-고잘 커플이다(영화에서는 야곱과 고잘의 세족식이 이뤄졌던 개울가 바위에 피투성이로 누워 있는 솔두스만 비춘다. 고잘의 예언대로 “피를 본 것”인데, 사진은 진짜로 없었던 걸까). 권위주의 정권의 탄압과 시골의 미신이 ‘합작’해 두 연인의 사랑을 결국 비극으로 만드는 과정을 영화는 감독 자신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덤덤하게 묘사한다. 2022년 9월 베니스영화제에서 공개돼 경쟁부문 최고영화상인 황금사자상을 노렸으나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황금사자상은 미국 다큐멘터리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에 돌아갔다. 전형적인 아트하우스 영화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작품들, 그리고 장이머우 감독의 초기작을 좋아하는 분들께 추천한다. 제목: 노 베어스(No Bears) 제작연도: 2022 제작국: 이란 상영시간: 107분 장르: 드라마 감독: 자파르 파나히 출연: 자파르 파나히, 나세르 하셰미, 바히드 모바셰리, 바크티아르 판제이, 미나 카바니 개봉: 2024년 1월 10일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수입/배급: 엠엔엠인터내셔널㈜ 이란 당국의 탄압에 맞선 감독의 현재진행형 ‘투쟁’ 영화 주인공이자 스토리텔링 주인공은 자파르 파나히 감독 자신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주요인물 중 그나마 필모그래피가 알려진 사람은 감독이 원격으로 찍는 영화 속 연인 바크티아르 판제이와 자라 커플을 맡은 남녀 배우다. 그중 자라 역으로 나온 미나 카바니가 이란 정부의 탄압으로 특히 널리 알려져 있다. 미나 카바니는 역시 이란의 여성 감독 세피데 파르시 감독의 영화 <레드 로즈>(2014)의 여주인공이었다. 그런데 영화 내용 중 누드 신을 찍었다는 이유로 이란 정부가 ‘이란 최초의 포르노 여배우’라고 비난하면서 비자발적 망명생활을 하게 된다. 현재 프랑스 파리에 거주 중이다. 세피데 파르시 감독의 다른 영화에도 출연하고 있다. /자파르 파나히 감독 인스타그램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수난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조감독으로 일하다가 <하얀 풍선>(1995)으로 칸영화제에서 장편 데뷔작상인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하며 입봉했다. 세 번째 작품인 <써클>(2000)로 베니스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오프사이드>(2006)로는 베를린영화제 은곰상을 수상했다. 그러다 이란 민병대의 총을 맞고 숨진 여대생 네다 솔탄 추모식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경찰에 체포돼 출국금지를 당한다. 2010년에는 ‘국가안보에 대한 위협과 이슬람공화국 반대 내용 선전’을 이유로 징역 6년형과 20년 동안 영화를 만들거나 각본을 쓰지 못하고 인터뷰와 출국도 금지되는 등의 형벌을 받는다. 전 세계 영화인들의 ‘파나히 석방탄원’을 받은 이란 정부가 2개월 복역 후 자택 구금조치를 취하자 그는 실내에서 카메라를 들고 찍은 <이것은 영화가 아니다>(2010)를 케이크 속 USB에 숨겨 베를린영화제에 출품하는 등의 ‘저항’을 계속한다. 2015년 자택 구금에서는 해제되지만, 여전히 출국은 불가능한 상태에서 자동차로 이란 곳곳을 다니며 찍은 <택시>로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을 수상했다. <3개의 얼굴들>(2018)로는 칸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했다. 여전히 출국금지 상태로, 영화제에는 참석하지 못하고 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노 베어스>를 찍은 직후인 2022년 7월 감독은 다시 수감됐다. 2023년 2월 1일 그가 단식투쟁을 선언하자 당국은 이틀 만에 석방했다고 한다. 감독의 인스타그램에 들어가 보니 지난해 11월에 동료들과 집에서 찍은 듯한 근황(사진·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마지막 게시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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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시네마쿠스’의 비디오테이프 5만 점…‘영화’로운 결말 꿈꾸다(2024. 01. 01 07:00)
2024. 01. 01 07:00 문화/과학
조대영 광주 동구 인문학당 디렉터, 소장 비디오와 책 공공 기증 ‘끝없는 기다림’ 조대영 광주 동구 인문학당 디렉터가 지난해 12월 26일 한 지하창고에서 소장 중인 책들을 소개하고 있다. 주영재 기자 철문을 열고 들어가자 노란 전구 빛이 가득한 지하공간이 나온다. 지은 지 30년이 넘은 광주 계림동의 한 아파트 지하실이다. 지상으로 난 작은 창을 통해 바람이 들어와 눅눅하진 않았다. 영화인 조대영 광주 동구 인문학당 디렉터가 20년 넘게 모아온 비디오테이프와 책의 상당수가 이곳에 있다. 약 40평의 지하실 한켠에 비디오테이프가 담겨 있는 플라스틱 상자가 가득했다. 2022년 11월부터 2023년 6월까지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린 기획전시 <원초적 비디오 본색>으로 빛을 본 후 다시 이곳에 돌아왔다. 풀어봐야 먼지만 묻으니, 그냥 두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조대영 디렉터는 줄곧 광주에 터를 두고 30년 넘게 영화 운동을 해온 영화인이다. 1991년 영화 <좋은 친구들>의 원제목 ‘굿펠라스’에서 이름을 딴 영화 동아리를 만든 이후 영화 상영회, 영화 강좌, 창작 워크숍을 진행했다. 2000년 광주비엔날레 영상큐레이터, 2007년 광주시청자미디어센터 개관 멤버를 거쳐 2012년부터 10년 동안 광주독립영화제를 이끌었다. 조대영 디렉터는 아는 사람 사이에선 ‘호모 시네마쿠스’로도 불린다. 영화애호인을 뜻하는 ‘시네필’을 넘어 영화를 떠나 살 수 없는, 영화와 삶이 한 몸이 된 사람이라는 뜻이다. 광주 지역에서 다큐멘터리를 제작해온 최성욱 감독이 조대영 디렉터를 다룬 동명의 다큐멘터리가 ‘원초적 비디오 본색’ 전시 중 상영되기도 했다. 김형중 조선대 교수(문학평론가)는 조 디렉터가 2018년 낸 첫 영화책 <영화, 롭다>(드림미디어)의 발문에서 그를 두고 ‘재야에서 영화하기’ 원칙에 위배되는 어떤 일에도 서툴다고 평했다. “그저 영화를 보고,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영화를 틀고, 영화에 대해 쓰는 일만 하며 살기로 작정한 사람, 실은 그 외에 다른 일은 하고 싶어하지도, 할 수도 없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20년 넘게 모은 5만 점의 비디오테이프 조대영 디렉터를 지난해 12월 26일 광주 동명동에 있는 동구 인문학당에서 만났다. “광주에 영화와 책의 공간을 만드는 것으로 내 영화 운동의 마침표를 찍고 싶다”는 기고문을 본 후 접촉을 시도했다. 그는 “소장한 비디오와 책을 공공에 기증해 지역의 문화자산으로 활용하고 싶다”는 생각을 피력했다. 광주의 문화계 인사들이 그의 뜻에 공감해 지역 언론 ‘광주드림’에 릴레이 기고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20명이 5개월간 기고로 호소했음에도 아직 광주시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 “마우스나 리모컨으로 영화를 발견하는 것과 실제 손으로 만져볼 수 있는 경험의 차이는 매우 크다. 비디오테이프는 영화 유통·제작이라는 산업적 측면과 시네필이라는 운동적 측면에서 영화사에서 소홀히 할 수 없는 존재다.” “광주가 좀더 문화적으로 나은 도시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다. 광주에서 30년간 영화 운동을 했는데, 제가 기여할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했다. 죽고 나서도 광주에 (영화와 책을 주제로 한) 의미 있는 공간이 만들어지면 좋겠다. 다른 지역이나 기업에서 제안이 들어오더라도, 버틸 만큼은 버티겠다.” 그가 기증 의사를 밝힌 비디오테이프는 VHS와 DVD 등을 포함해 5만 개가 넘는다. VHS 비디오테이프(일본의 JVC사가 1976년 출시한 가정용 비디오테이프 규격)의 규모로만 본다면 영상자료원의 영상도서관과 보존고에 있는 물량(2만7211개)보다 두 배 가까이 많다. 개인이 이만큼 수집하고 관리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가 본격적으로 비디오테이프를 모으기 시작한 때는 2001년이다. 비디오테이프가 소멸의 길을 걷던 때와 겹친다. 멀티플렉스 영화관의 등장과 케이블 방송의 확산, 광대역통신망을 통한 주문형 비디오 서비스가 일반화되면서 비디오를 빌려 보는 문화는 사라져가기 시작했다. 조 디렉터는 광주 대명초등학교 앞에 ‘비디오 보물섬’이라는 비디오 판매점을 열고, 폐업하는 비디오대여점에서 비디오를 사들였다. 2007년까지 그렇게 비디오테이프를 모았고 지금은 비디오 애호가들이 모인 카페에서 거래하거나 당근마켓을 활용해 컬렉션의 빈틈을 메우고 있다. 지난해 6월까지 약 반년 동안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린 <원초적 비디오 본색> 전시에서 비디오테이프 다발 위에서 영화가 상영되고 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제공 “비디오테이프가 영화 한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왜 버릴까라는 마음이 있었다. ‘남들은 다 버리는데, 왜 모으냐, 죽기 전에는 빛을 보지 못할 거다’라고 하는 친구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무식하게 20년 넘게 붙들고 있었다. <원초적 비디오 본색> 전시로 그나마 빛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원초적 비디오 본색> 전시는 지역에서 열렸음에도 10만7000명 이상의 관람객이 올 정도로 대중적으로 흥행했다. 관객의 상당수는 청년세대였다. 비디오테이프를 플레이어에 넣으면 빨려들 듯 안으로 들어가던 느낌을 알지 못하는 이들이다. 넷플릭스 등의 OTT 서비스가 주류가 되면서 비디오테이프는 물론 DVD와 같이 물리적 실체로 영화를 소장한다는 개념은 거의 사라졌다. 그래서 더욱 ‘영화’를 만져본다는 느낌이 소중하다. 조 디렉터는 비디오테이프가 갖고 있는 물성을 강조했다. 그는 “영화를 안방에서 보는 시대가 열렸지만, 그전 25년간은 비디오를 빌려보는 문화가 존재했다. 비디오테이프가 없어지면 그 문화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비디오테이프라는 실물이 있어야 비디오 문화사도 연구할 수 있다. 아카이브를 구축한다는 점에서 제가 붙들고 있는 건 결코 미친 짓이라거나 어리석은 행위로 치부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아날로그 문화유산을 다루는 전시를 고민하던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김지하 학예연구관도 비디오의 물성에 주목했다. 김 연구관은 “마우스나 리모컨으로 영화를 발견하는 것과 실제 내가 공간을 돌아다니면서 손으로 만져볼 수 있는 경험의 차이는 매우 큰 것 같다. 국내 최대 비디오대여점을 재현해 눈앞에서 영화의 패키지들을 찾아내고 만져볼 수 있는 경험이 20~30대 초반 관람객들에게 새로운 체험으로 다가간 것 같다. OTT에서는 즉각적으로 느낄 수 없는 영화의 물성과 물량, 테이프에 쓰인 정보를 스스로 읽어내는 재미를 간접적으로 경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화에 특화된 테마 도서관 만들 수 있을까 2010년 이후 비디오대여점은 사실상 멸종했다. 김지운 감독의 <악마를 보았다>가 2011년 비디오테이프로도 선보였는데, 비디오 동호인들 사이에선 그게 국내에서 출시된 마지막 비디오라는 게 정설이다. 마지막까지 VHS를 생산했던 일본의 후나이전기가 2016년 생산을 중단하면서 새로 제작될 길은 막혔다. 지금은 서울 중구 황학동 등에 마니아들을 위한 비디오테이프 판매점만 소수 존재하고 있다. 비디오테이프 영상을 따 유튜브에 올리거나 일부러 영상에 노이즈를 넣어 비디오테이프로 보는 듯한 느낌을 살리는 이들을 위한 틈새시장이 남아 있는 셈이다. 저장매체로서의 수명은 다했지만, 문화유산으로서의 비디오테이프 가치는 더 커졌다. 김 연구관은 “문화예술사의 측면에서 지금의 발전이 있기까지의 노력과 정보를 이만큼 담아낸 저장매체는 없다. 특히 비디오테이프는 영화의 유통·제작이라는 산업적 측면과 시네필이라는 운동적 측면에서 결코 소홀히 다룰 수 없는 영화사의 한 부분이다. 그런 면에서 조대영 선생님의 소장품은 영화의 역사를 잊지 않고 영화에 대한 열정을 지속시킬 수 있는 자산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조 디렉터는 비디오와 함께 책도 모으고 있다. 호주머니 사정이 허락할 때마다 전국의 헌책방을 순례한다. 지난 주말에도 전주 동문 헌책방 거리와 인근 완주의 삼례책마을에서 한 다발을 가져왔다. 그렇게 모은 책들이 또 다른 건물 지하에 가득했다. 1950년대 전후의 고서와 1970년대 문고본, 전시 도록과 교과서를 비롯해 다종다양했다. 신구문화사가 1968년 출간한 현대세계문학전집 1권은 김수영 시인이 번역한 뮤리얼 스파크의 <메멘토 모리>였다. 책을 소개하는 조 디렉터의 눈이 반짝였다. “영화를 좋아하다 보니 영화의 원작이 된 소설도 좋아하게 됐고, 영화가 종합예술이니 인접한 사진, 만화, 디자인 관련 책도 읽으면서 관심의 범위가 넓어졌다”고 했다. 2년 전 <어린 왕자 특별전>을 열 때 자신이 소장한 세계 여러 나라의 <어린 왕자> 판본을 포함해 300권을 전시하는 등 인문학당에서는 주로 책을 주제로 전시를 연다. 조대영 광주 동구 인문학당 디렉터가 지난해 12월 26일 한 지하창고에서 보관 중인 비디오테이프를 바라보고 있다. 주영재 기자 자신이 소장한 비디오와 책을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건 그가 처음 수집을 시작했을 때부터 꿈꿔오던 일이다. 비디오와 책이 캄캄한 지하를 벗어나 빛을 볼 수 있길 바라지만, 아직 그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조대영 소장품을 지역의 문화자산으로 활용하자는 제안은 나왔지만, 실현되기까진 적잖은 난관을 거쳐야 한다. 일차적으로 자료를 담아낼 공간이 필요하다. 그 공간은 자료를 영구보존할 수 있는 온·습도 환경을 갖춰야 한다. 체계적인 등록과 관리·활용할 인력도 붙어야 하고, 자료 활용 방안도 세워야 한다. 무엇보다 예산을 마련해야 한다. 김 연구관은 “사업가나 기업에서 후원을 받아 공간을 짓고 운영할 수 있다면 그나마 자율적으로 쉽게 풀릴 수도 있겠으나, 그렇지 않다면 도서관에서 기증을 받아 관리하는 것이 가장 안정적인 방안”이라면서 “다만 지금 도서관도 수장고 공간이 한정적이어서 오래된 매체를 폐기하는 상황이라 쉽지 않다. 마을 도서관 같은 곳에서 영화를 특화시켜 테마도서관으로 지원받아 운영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 디렉터는 광주극장 뒤편의 ‘영화의 집’이라는 공간에서 16년째 ‘20세기소설영화독본’이라는 모임을 이끌고 있다. 2주에 한 번 소설 원작을 읽고, 영화를 보고 토론하는 자리다. 지금까지 모두 360차례 만났다. 올해 첫 모임이 열리는 1월 17일에는 <백년 동안의 고독>과 이 소설을 영화로 만든 <안녕 하코부네>를 다룰 예정이다. 조 디렉터는 긴 시간 동안 모임을 유지해온 자신을 보며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 그의 영화 모임처럼 소장품도 긴 생명력을 갖고 사람들을 만날 수 있길 바랐다. “비디오테이프는 습기에 약해 장마철에는 힘든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지금은 (영화 포스터와 소개 글이 담긴) 비디오테이프 케이스를 온전하게 보존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창고 두 군데 모두 지하에 있는데, 공간을 잘 만나 더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았으면 좋겠다.”
[취재 후]역사 고증과 ‘돈 아깝지 않은’ 영화
[취재 후]역사 고증과 ‘돈 아깝지 않은’ 영화(2023. 12. 26 07:00)
2023. 12. 26 07:00 정치
마지막으로 영화관을 찾은 것이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넷플릭스 등의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이용하기 시작하며 영화관을 갈 일이 없었습니다. 편안한 집을 두고 영화관에서 두 시간 넘게 앉아 있는 일 자체가 굉장히 비효율적으로 느껴졌습니다. 무엇보다 그동안 시선을 잡아끌 만큼 궁금한 영화가 없었습니다. <서울의 봄>은 거의 3년 만에 자발적으로 영화관을 찾게 한 작품이었습니다. ‘소재’ 때문이었습니다. 대학원 시절까지 한국 정치사를 배웠지만 아무리 기억을 되짚어봐도 12·12 군사반란만 오롯이 들여다본 적이 없었습니다. 영화가 입소문을 탄 후 관련 논문을 찾아봤지만 딱히 보이지 않았습니다. 역사 전공자에게도 물어봤습니다. “교수님들이 1980년대에 학창 시절을 보낸 분들이 많아서 아직 그 시절을 연구해야 할 역사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돌아왔습니다. 어떤 측면에서 12·12 군사반란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지만, 누구도 잘 모르는 역사가 돼 있었던 겁니다. 영화는 그날 있었던 일을 시간순으로 보여줬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상세하게 고증했을까’를 추적하면서 2018년 경향신문이 입수해 보도한 <제5공화국 전사>라는 책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습니다. <서울의 봄>이 허투루 만든 영화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고, 감독과 작가가 새삼 달리 보였습니다. 그런데 사실, <서울의 봄>을 보고 나서도 ‘고증을 잘했다’거나 ‘이 영화의 의미가 무엇인가’ 등의 생각이 즉각적으로 떠오르지는 않았습니다. 그보다는 ‘재미있다’, ‘돈이 아깝지 않다’는 만족감이 먼저였습니다. 기자가 느낀 이 단순한 감상 역시 무려 1000만명의 관객을 영화관으로 불러들인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영화는 한국인이 가장 즐기는 ‘오락’거리입니다. 갖가지 해석을 낳는 의미 있는 걸작도 좋지만 <서울의 봄>처럼 일단 ‘돈 아깝지 않은’, ‘재미있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 더욱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취재 후
[시네프리뷰]프레디의 피자가게-‘갑툭튀’ 못 살려 아쉬운 공포영화
[시네프리뷰]프레디의 피자가게-‘갑툭튀’ 못 살려 아쉬운 공포영화(2023. 11. 22 07:00)
2023. 11. 22 07:00 연예
원작 공포게임이 특히 청소년층에게 컬트적 인기를 끈 비결은 다섯 밤을 버텨야 하는 야간경비원 앞에 애니매트로닉스들이 갑자기 나타나는 점프 스케어, 요즘 말로 ‘갑툭튀’이었다. 영화는 그 지점을 정확히 포착했을까. 사진제공/유니버셜 픽처스 제목: 프레디의 피자가게(Five Nights at Freddy’s) 제작연도: 2023 제작국: 미국 상영시간: 109분 장르: 공포, 스릴러, 미스터리 감독: 엠마 타미 출연: 조쉬 허처슨, 엘리자베스 라일, 파이퍼 루비오, 매튜 릴라드 외 개봉: 2023년 11월 15일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수입/배급: 유니버설 픽쳐스 영화 홍보사로부터 3통의 전화를 받았다. 시사회 신청해줘서 감사하다, 시사회 당일 아침에는 오늘 참석 가능하냐, 그리고 영화를 본 뒤에는 어떻게 봤냐는. 삐딱한 생각일지 몰라도, 보통 저런 전화를 받는 경우 영화가 무슨 문제가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세 번째 전화를 받았을 때 물었다. 이렇게 공을 들이는 이유가 뭐냐고. 북미 흥행에서부터 두터운 팬층의 기대, 뭐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기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영화 개봉 한 달 전쯤, 이제 갓 청소년이 된 딸로부터 이 영화에 대한 ‘정보’를 들었다. 꼭 보고 싶다는 바람과 함께. 한국에서 시사회를 하면 보고 와서 알려줄게, 라고 답했다(생각해보니 리뷰를 쓰는 지금까지 영화 내용에 대해 딸과 이야기를 나눠보진 못했다). 야간경비원으로 5일 버티기 새벽 6시. 알람이 울리고 주인공 마이크가 눈을 뜬다. 마이크는 항상 같은 꿈을 꾼다. 캠핑하는 마이크네 가족. 콜라병이 쓰러지고, 동생 개럿은 비행기 장난감을 가지고 논다. 잠시 한눈을 판 사이 아이가 매연을 내뿜는 왜건차 뒷좌석에 실려 어디론가 떠난다. 쫓아가 보지만 헛수고다. 마이크의 침대 위 천장에는 ‘네브래스카 초원’ 포스터가 붙어 있다. 잠이 들기 전, 마이크는 처방받은 수면제를 먹고 카세트테이프 리코더로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한다. 그리고 또 꾸는 똑같은 꿈. 마이크는 십수 년 된 아픈 기억이 있다. 남동생이 납치돼 실종된 것. 누가 납치했는지 모른다. 범인도 아직 잡히지 않았다. 마이크뿐 아니라 부모에게도 아픈 사연이었으리라. 마이크는 나이 차가 꽤 나는 여동생과 살고 있다. 여동생은 자기 방에 인디언 텐트를 치고 잔다. ‘사건’ 뒤 마이크네 가족이 더 이상 캠프를 가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트라우마’를 안고 있어서인지 임시직을 전전하는 마이크는 오래도록 일자리를 갖지 못한다. 어느 날 찾아간 직업상담소에서 오랫동안 방치된 한 피자가게의 야간경비 일을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는다. 동생을 두고 밤에 혼자 일을 나갈 수 없어 거절하지만, 동생 양육권 문제로 다투던 이모에게 동생을 뺏기지 않기 위해 결국 받아들인다. 그리고 첫날. 그는 폐쇄된 피자가게에서 ‘그들’과 조우한다. 그들? 애니매트로닉스다. 흔히 자동기계 인형이라고 번역되는 ‘오토마타’의 정교한 전동 버전이다. 프레디(곰), 보니(토끼), 치카(닭), 폭시(여우) 등이다. 근무 첫날, 순찰하다가 가게를 방문한 여성 경찰 바네사가 전원 스위치를 넣자 이들은 1980년대 팝그룹 로맨틱스의 대표곡 ‘톡킹 인 유어 슬립’을 연주하다 그만 고장이 나버린다(저 노래를 1983년쯤에 처음 들었던 거로 기억한다). 인트로 장면의 8비트 컴퓨터게임 장면도 그렇고, mp3도 아닌 카세트테이프를 사용하는 장면도 그렇고 해서 영화의 배경이 1980년대쯤 되는가 싶었는데, 중간에 스마트폰은 아니고 피처폰으로 통화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니까 그 공간, ‘프레디의 피자가게’-정식이름은 프레디 파즈베어의 피자(Freddy Fazbear’s Pizza)다-만 어떤 연유로 1980년대에서 시간이 멈춰버린 셈이다. 근무 첫날, 눈을 붙인 마이크는 집에서와 같이 동생이 실종되던 야영장 꿈을 다시 꾼다. 그런데 꿈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다섯 명의 아이가 나오고, 마이크는 꿈속에서 아이들에게 동생을 납치한 범인의 얼굴을 봤냐고 묻는다. 아이들의 옷차림이나 성별은 묘하게도 그 가게에서 만난 애니매트로닉스들과 일치한다. 영화만 놓고 보면 너무나 상투적인 열심히 봤다. 혹시 놓친 것이 있는지 싶어 영화를 본 뒤 관련 정보도 꼼꼼히 찾아봤다. 예컨대 영화 오프닝에서 마이크에 앞서 야간경비원으로 일하던 한 남자가 희생되는 장면이 나온다. 상당히 뜬금없다 싶었는데 영화의 원작 게임 실연 영상으로 유명세를 얻어 잘나가는 ‘북한계 미국인’ 스트리머다(지난해인가 자기 고향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도 만들어 공개한 듯한데 아직 한국에 정식 수입되거나 하지는 않았다). 영화 제작자인 제이슨 블룸은 지난 11월 13일 오전 녹화 중계된 기자간담회에서 “영화의 기반이 된 게임 원작자와 논의해 게임 팬층에 집중하면서도 게임을 잘 몰라도 영화를 즐길 수 있도록 노력했다”고 말했다. 글쎄, 게임이, 특히 청소년층에게 공포게임으로 컬트적 인기를 끈 비결은 다섯 밤을 버텨야 하는 야간경비원 앞에 저 애니매트로닉스들이 갑자기 나타나는 점프 스케어(Jump Scare), 요즘 말로 ‘갑툭튀’가 포인트다. 영화는 그 지점을 정확히 포착했을까. 전 세계적으로 흥행몰이를 했다고 하는데, 영화만 놓고 보면 너무나 상투적이고 평범한 이야기라서 원작 게임의 충성 팬층을 제외한다면 관심을 끌 이유를 잘 모르겠다. 필자의 감수성이 무뎌진 탓일까. 원작게임 ‘프레디 가게에서 다섯 밤’과 고골의 ‘비이’ 경향신문 자료사진 원작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스콧 코슨이라는 개발자가 만든 독립게임이다. 인터넷 커뮤니티 같은 델 찾아보면 이 ‘괴작’의 탄생 배경에 대한 설명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원래 기독교 계열 유아용 게임을 만들던 스콧 코슨의 작품에 대한 평은 좋지 않았다. 작품 속에 나오는 애니매트로닉스가 상당히 무서워 의도와 다르게 게임을 하는 아이들이 울음을 터뜨린다는 것이다(‘불쾌한 골짜기’ 이론을 떠올려보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상심에 빠져 있던 스콧은 역발상을 한다. 기왕 이렇게 된 바에야, 그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공포게임을 만들어보자! 그래서 탄생한 것이 ‘프레디 가게에서 다섯 밤(Five Nights at Freddy’s, 팬덤에서는 줄여서 FNaF라고 부른다)’이라는 게임이다. 2014년에 발매된 이 게임은 그에게 인생 역전의 유명세를 안겼다. 사실 곰곰이 따져보면 그리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예컨대 이 코너에서도 한두 번 소개했던 고골 원작의 <비이>(Vij)-국내에는 일본판 어린이 문고를 번역한 <악마의 관>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소련 시절 만들어진 공포영화(1967)도 유명하다. 이 영화는 <마녀전설>이라는 이름으로 국내에 비디오로 출시됐다-도 주인공인 신학교 학생이 밤마다 되살아나는 마녀의 시체를 성당에서 3일간 지킨다는 스토리다. 첫날에는 관 속에서 일어나 앉아 있기만 했던 마녀가, 둘째 날은 신학교 학생이 쳐놓은 걸개 주위를 관뚜껑을 타고 날아다니고, 마지막 날에는 모든 것을 꿰뚫어 볼 수 있는 괴물 ‘비이’를 불러내 주인공을 덮친다!(사진) 뭐, 이 게임에서 경비원을 덮치는 것은 사악한 미소를 짓고 있는 금속 곰 인형 따위지만. 영화를 본 뒤 리뷰를 쓰기 위해 게임을 처음으로 해봤는데 상당히 어렵다. 게임은 경비원 자리에 앉아 CCTV 화면으로 가게 안의 상황을 지켜보는 것인데, CCTV를 확인하는 순간엔 마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하는 것처럼 애니매트로닉스들이 움직이지 않는다. 잠시 눈을 떼면 사사샥! 화면에 다가온다. 그들이 다가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음을 깨달았을 때의 공포란! 아마 젊은 층-주로 10대 아이들이 이 게임에 열광하는 이유일 것이다.
시네프리뷰
[이주영의 연뮤덕질기](13)흥행영화의 무대극화, 얻는 것과 잃는 것(2023. 10. 27 11:20)
2023. 10. 27 11:20 문화/과학
ㆍ연극 ·뮤지컬 ·· 강의를 할 때면 항상 좋아하는 감독이 누군지 묻는다. 연령대와 전공 여부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와 앨프레드 히치콕 감독은 빠지지 않는다. 현대 일본영화와 고전 스릴러 영화라는 간극은 있으나 자신만의 스타일이 분명해 마니아층이 두텁다. 이들의 대표작들이 요즘 무대극으로 상연 중이다. 연극 / 라이브러리컴퍼니 제공 연극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동명 영화를 원작으로 한다. 이복 네 자매의 잔잔한 일상과 바닷마을 풍광이 전부인데 연극으로 만들어진다는 소식에 잠시 고개를 갸우뚱했다. 영화의 생명인 ‘자연’을 무대에서 과연 어떻게 표현할지 궁금해서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연극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영화와 다르다. 바닷마을이 보이지도 않고 아름다운 고택도 없다. 영화 속 실제 이미지들은 연극적인 언어로 치환됐다. 바닷마을은 서라운드 음향효과와 배우들의 동선으로, 아름다운 고택은 무대 바닥에서 승강기처럼 오르내리는 미닫이문 가득한 장방형 마루로 변신했다. 영화를 그대로 계승한 것은 주요 캐릭터들의 이미지와 서로를 배려하고 보듬어내는 정서, 그리고 거대한 매실나무 한그루다. ‘매실나무 아래서’라는 부제가 필요할 정도로 무대 한켠에 거대하게 자리한 매실나무는 부모에게 방치되거나 버려져 자기들끼리 성장한 이복 네 자매의 단단한 뿌리를 상징한다. 매실나무에서 매실을 따 매년 담그는 연도별 매실주는 이들이 서로를 보듬고 또 가끔은 밀어내는 기폭제가 된다. 잔잔하면서도 격렬한 일상을 살아온 네 자매를 지켜보는 상징적 오브제이기도 하다. 이준우 연출은 이를 위해 실제 나무를 무대 위에 들여놓았다. 수종이 매실은 아니지만, 진짜 나무가 주는 에너지가 관객들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뮤지컬 / EMK뮤지컬컴퍼니 제공 뮤지컬 <레베카>는 앨프레드 히치콕 영화 <레베카>(1940)와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논 레플리카(non-replica) 라이선스 작품이다. 노래와 안무 등 일부는 원작을 반영하고 프로덕션 디자인은 한국 창작진들이 재해석했다. 2013년 한국 초연 이후 꾸준히 상연돼 올해가 일곱 번째 시즌이다. 뮤지컬이 인기를 끌면서 영화도 재조명됐다. 극중 화자이자 주인공인 ‘나’가 아내 레베카를 잃고 유랑하는 막심 드윈터와 결혼해 맨덜리 저택에 들어가 벌어지는 이야기다. 레베카는 직접 등장하지 않으면서 모든 등장인물의 공포이자 애증의 존재로 극 전체를 지배한다. ‘나’ 중심인 영화와 달리 뮤지컬은 ‘나’와 맨덜리 저택의 집사 ‘댄버스 부인’의 갈등을 더 부각시킨다. 발코니 장면이 대표적이다. 무대 안쪽에 깊이 자리한 바닷가 전망의 발코니가 빠른 속도로 무대 전면에 등장하면서 댄버스 부인과 ‘나’의 격렬한 극고음 이중창이 펼쳐진다. 이때 부르는 긴 버전의 ‘레베카’는 작품 전체에 리프라이즈(reprise)되는 대표 넘버다. 영화 속 발코니 장면이 뭉근한 위협과 슬픔이었다면 뮤지컬에서는 강력한 도전과 저항을 담고 있다. 한국 창작진들의 기술적 보완으로 생동감 넘치는 익스트림 클로즈업 장면을 완성했다. 영화를 뛰어넘은 화재 장면도 압권이다. 이중막 사이 앙상블들의 고통스럽고 일사불란한 안무와 그 위에 영사되는 불타오르는 저택은 실제 불이 붙은 소품을 들고 등장하는 배우들까지 가세해 실감효과를 높인다. 뮤지컬 / EMK뮤지컬컴퍼니 제공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한국 창작 뮤지컬 <벤허>는 또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올해가 세 번째 시즌으로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영화 <벤허>(1959)도 연상된다. 기원전 1세기 로마와 유대인들의 긴장관계를 다룬 서사는 영화보다 구체적이다. 로마 집정관의 부패를 상징하는 남성 무희들의 강렬하면서 유혹적인 군무는 영화 <벤허>마저 잊게 만든다. 하이라이트는 전차 경주 장면이다. 로보틱스 말 여덟 마리가 회전무대를 통해 역동한다. 영상미로 속도감을 부여했으나 그래봤자 고정돼 있는 로봇이다. 손에 땀을 쥐게 할 정도의 긴박감을 기대했던 관객들이 아쉬움을 나타내는 대목이다. 수중 신(Scene)은 영화를 능가한다. 격랑과 노 젓는 장면에 묻혀 빠르게 지나갔던 영화 속 장면을 무대에서 실감나게 구현했다. 뮤지컬 / 에스앤코 제공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은 반대로 뮤지컬이 유명해져 영화로 제작한 경우다. 영화 <오페라의 유령>(2004)은 뮤지컬의 이미지와 캐릭터를 그대로 갖고 오면서 역동적인 카메라로 무대에서는 상상만 했던 공간을 보여준다. 뮤지컬 제작자인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영화 제작에도 참여해 전반적인 프로덕션 디자인을 끌어왔지만, 지나친 친절함 탓에 상상력이 단절됐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상징적인 샹들리에 추락 신 역시 무대에서 관객 머리 위를 지나는 역동성과 영화 속의 사고 장면은 천지 차이다. 매회 관객과 창작진들이 주고받는 감정의 기복을 공유할 수 없다는 점에서도 영화는 호불호가 갈린다. 무대극이 주는 신비감은 사라지고 말았다. 무대극화는 박제된 영화를 해체하고 재조립하는 작업이다. 동시대의 시선과 해석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전혀 다른 작품이 된다. 영화 마니아들의 고정관념을 잃을 수 있지만, 대신 시대와 호흡하는 생생한 메시지를 얻을 수 있다. 네 작품 모두 11월 19일까지 무대에 오른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은 이후 2024년 2월 4일까지 대구 투어 공연에 나선다.
이주영의 연뮤 덕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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