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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경향(총 4 건 검색)

‘오바마의 와인’ 캔달잭슨 팝업스토어 가볼까?
오바마의 와인’ 캔달잭슨 팝업스토어 가볼까?
2024. 06. 29 12:00 화제
대표 미국 와인 ‘캔달잭슨’의 팝업스토어가 서울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하우스 오브 신세계’에 문을 열었다. 캔달잭슨 팝업스토어를 방문한 캔달잭슨 앰배서더 기은세. 아영FBC 제공. 캔달잭슨을 수입하는 종합주류기업 아영FBC에 따르면 이번 팝업스토어는 올해 캔달잭슨의 광고 슬로건인 ‘골든 모멘트(Golden moment)’를 모티브로 캔달잭슨 와인만의 화사함과 고급스러움을 경험할 수 있게 구성됐다. 팝업스토어는 캔달잭슨 빈트너스 리저브 샤르도네의 ‘골드&옐로우’의 밝고 우아한 톤으로 꾸며졌으며 특히 대표 상품인 ‘캔달잭슨 빈트너스 리저브’ 시리즈부터 ‘그랑 리저브’ 시리즈까지 캔달잭슨 와인의 전 품목을 경험할 수 있어 캔달잭슨 마니아들의 기대를 불러 모으고 있다. 팝업스토어의 대표 와인인 ‘캔달잭슨 빈트너스 리저브 샤르도네’는 망고, 파인애플, 파파야와 같은 열대과일의 풍미와 섬세한 바닐라와 꿀 향이 돋보이는 와인이다. 어떤 음식과의 페어링 없이 와인 자체만으로도 즐기기 좋다. 캔달잭슨 빈트너스 리저브 샤르도네. 캔달잭슨은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더 피플(The People)’ 지와의 인터뷰에서 가장 좋아하는 와인으로 캔달잭슨 빈트너스 리저브 샤르도네를 언급해 국내에서는 ‘오바마 대통령의 와인’으로 통한다. 세계적인 가수 레이디 가가는 공연 때마다 캔달잭슨 와인을 애용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캘리포니아 가성비 와인의 대명사인 캔달잭슨은 창업자인 제시 잭슨(Jess Jackson)이 1980년대 초 50대의 나이로 설립한 와이너리이다. 당시 부동산 전문 변호사로 일하며 농장에서 포도를 재배하고 있던 잭슨은 자신이 수확한 포도를 살 회사가 없자 직접 와인을 만들기 시작했고 캘리포니아 와인의 혁신가로 불리며 캔달잭슨을 미국의 가장 대중적인 와인으로 만들었다. 캔달잭슨은 전국 편의점, 마트, 백화점, 와인나라 직영매장(경희궁점, 서래마을점, 성수점, 송도점, 시청점, 신용산점, 압구정점, 일산점, 코엑스점, 홍대점)에서 구입 가능하다.
'작가' 미셸 오바마의 블랙 셋업 패션, 어디 꺼?
'작가' 미셸 오바마의 블랙 셋업 패션, 어디 꺼?
2022. 11. 22 13:58 패션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부인 미셸 오바마가 보테가 베네타의 2023 여름 컬렉션 블랙 셔츠와 팬츠를 착용했다. 보테가 베네타 제공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부인 미셸 오바마(58)의 신간 북투어 레이스가 화제 속에 이어지고 있다. 지난 15일 신간 ‘우리가 나르는 빛’(The Light We Carry)을 출간한 오바마는 워싱턴DC, 필라델피아, 애틀랜타, 시카고,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등 6개 대도시에서 독자를 만나고 있다. “살아오면서 불확실한 상황에 처했을 때 가졌던 견해와 실천의 모음집”이라 스스로 소개한 이번 책은 지난 2018년 출간된 ‘비커밍’(Becoming)에 이은 두 번째 자서전이다. 북투어에 앞서 그는 “새로운 인연을 만날 기대로 가득하다”며 “지난 북투어에서 만났던 낯익은 얼굴들을 만나 많은 얘기를 나누고 싶다”고 전했다. 미셸 오바마의 신간 표지. 앞서 워싱턴DC 워너극장에서 첫 일정을 마친 오바마는 지난 19일에는 필라델피아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에서 독자들과 만났다. 이날 오바마는 재킷을 연상시키는 슬림한 블랙셔츠와 팬츠와 블랙 하이힐로 이지적인 매력을 발산했다. 이 의상은 보테가 베네타의 2023 여름 컬렉션 블랙 셔츠와 팬츠이다. 오바마의 북투어에는 엘런 드제너러스, 데이비드 레터맨, 오프라 윈프리, 게일 킹, 코난 오브라이언 등 쟁쟁한 스타들이 진행자로 나설 예정이라 더욱 기대를 모은다. 이번 신간은 세계 27개국에서 14개 언어로 동시 출간될 예정이다.
보테가베네타미셸오바마
그를 ‘세상의 리더’로 성장시킨 주인공 오바마의 여인들
그를 ‘세상의 리더’로 성장시킨 주인공 오바마의 여인들
2008. 12. 18 화제
미국을 넘어 세계인들에게 ‘희망을 상징하는 리더’ 버락 오바마. 그는 1961년 아프리카 케냐 출신의 흑인 아버지와 미국 캔자스 출신의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혼혈, 정체성의 혼란을 겪던 그가 세계의 리더로 우뚝 선 배경에는 세 명의 여인이 있었다. 꿈을 준 어머니 ‘스탠리 앤 던햄’ 오바마의 어머니, 앤은 박사학위를 받은 저명한 인류학자였다. 인도네시아어, 자바어, 프랑스어를 자유롭게 구사했으며 아프리카, 남아시아를 돌며 연구와 봉사활동에 매진한 여성이었다. 오랫동안 자카르타에 있는 포드재단에서 일했고 빈곤층을 위한 소액 대출 운동을 펼쳤다. 미국 지역의 절반이 흑백 간의 결혼을 금지했던 시절, 18세 나이에 케냐 출신 흑인의 아이를 낳아 결혼했다. 그 아이가 바로 오바마였다. 그리고 인도네시아 남성과 두 번째 결혼을 했다. 결혼과 이혼, 혼혈아 출산이라는 이력 때문에 주위 사람들에게 따가운 시선을 받았지만 자신의 아들에게만큼은 용기와 꿈을 잃지 않고 신념을 갖고 성장할 수 있도록 가르쳤다. 자식이 흑백 혼혈이라는 평범하지 않은 상황에서 남편 없이 혼자 아이를 키우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오바마의 생부와 이혼 후에도 아들에게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면서 정신적 지주로 삼을 수 있도록 했다. 그것은 오바마가 흑인이라는 사실을 저항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흑인의 장점과 우수성을 늘 가르쳤고 흑인이라는 사실은 강인한 자만이 짊어질 수 있는 영광의 짐이자 위대한 유산, 운명의 특혜라고 가르쳤다. 특히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연설집, 민권운동에 관한 책 등을 아들의 손에 쥐어주며 흑인에 대한 자부심을 잃지 않도록 애썼다. 오바마의 어머니는 ‘흑인과의 사이에 아들을 둔 젊은 이혼녀’라는 편견 어린 시선 속에서도 아버지의 부재가 아들의 마음에 상처나 분노를 남기지 않도록 하려고 노력했다. 오늘날 오바마가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고 열정을 가치 있게 사용할 수 있는 것도, 그래서 당당한 리더로 우뚝 설 수 있는 것도, 모두 어머니의 힘이었다. 오바마는 1995년 난소암으로 사망한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것을 인생에서 가장 후회하는 일로 꼽는다. 마음속 고향, 외할머니 ‘매들린 던햄’ 오바마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할 때는 외할머니 이야기를 결코 빼놓을 수 없다. 외할머니는 오바마가 새 아버지와 함께 인도네시아에 살 때를 제외하고 출생부터 청년이 될 때까지 가족의 자리를 채워준 사람이기 때문이다. 오바마는 초등학교 5학년부터 LA 옥시덴털대에 입학한 1979년까지 하와이 호놀룰루의 외가에서 자랐다. 외할머니는 입고 쓸 돈을 아껴 그를 하와이 명문 사립 푸나후 스쿨에 입학시켰다. 딸이 인도네시아로 떠난 뒤엔 외손자의 엄마 역할까지 해냈다. “어머니가 세계를 보는 눈을 키워준 날개 역할을 했다면 외할머니는 바위 같은 안정감과 미국인으로서의 뿌리를 심어준 사람입니다.” 외할머니가 없었다면 그는 엘리트 교육을 받지도 못했을 것이다. 딸이 혼혈아를 낳자, 매들린은 외손자 양육을 위해 하와이 은행에서 비서 일을 시작했다. 그녀는 대학 졸업장도 없이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은행 부행장의 위치까지 오른다. 오바마에게 외할머니는 자신의 ‘백인 뿌리’를 입증하는 존재이기도 했다. 그는 외할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에 유세를 중단하고 하와이로 날아갔다. 그는 8월 전당대회 당시, 대선 후보 수락 연설에서 “오늘 밤은 외할머니를 위한 밤이기도 하다”라는 말로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기도 했다. 충실한 조언자, 아내 ‘미셸 로빈슨’ 오바마는 시카고의 로펌에 다니던 중 여름 근무기간 동안 도움을 받고 조언해줄 파트너를 소개받았다. 미셸 로빈슨이라는 젊은 여자 변호사였다. 오바마보다 세 살 어렸지만 사려가 깊었다. 어머니를 닮아 몽상가적 기질을 가진 그에게 정확한 조언을 해주는 현실주의자였다. 오바마는 첫눈에 그녀에게 반했다. 그는 그녀의 첫인상을 이렇게 떠올렸다. “그녀는 키가 크고 멋진 데다 다정하고 사랑스럽다. 특히 전문가다운 태도가 그녀의 맞춤 정장 블라우스와 잘 어울렸다.” 오바마는 호감을 느낀 그녀에게 여러 번 데이트를 신청했다. 하지만 미셸은 일적인 만남이라는 이유로 번번이 거절했다. “저는 당신이 일을 잘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 조언자예요. 사적인 관계를 맺는 건 일을 불편하게 만들 뿐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오바마는 포기하지 않았고 몇 주 후에야 그녀에게 데이트 허락을 받아냈다. 두 사람은 그렇게 사랑을 키워나가고 1992년 시카고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그녀는 오바마의 정치 인생에 큰 의미를 준 여인이다. 인도네시아, 하와이, LA, 시카고를 떠돌던 그에게 미셸은 ‘뿌리’를 주고 흑인 사회와의 연결 끈을 쥐어줬다. 예를 들어 두 사람의 결혼식 축가를 부른 사람이 그녀의 단짝 친구인 민권운동가 제시 잭슨 목사의 딸이었다. 아내 미셸 로빈슨(사진 왼쪽). 하버드 로스쿨 시절의 오바마 오바마가 대통령 선거에 나섰을 때 그녀는 아이를 키우는 이른바 노동자 계층 여성들,‘월마트 맘’의 표심을 잡기 위해 분주히 뛰어다녔다. 총명하고 전략적인 그녀는 선거 막바지에 보통 사람의 삶에 밀착한 친근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녀가 경합지였던 버지니아 리치먼드주의 한 토론회에 참석했던 때의 일이다. 청중 가운데 한 명인 78세 과부 할머니가 질문 도중 눈물을 흘리자 연민 어린 표정으로 직접 화장지를 뽑아 건넸다. 이 장면은 보는 이들에게 꽤 깊은 인상을 남겼다. 오바마가 외할머니를 병문안하기 위해 유세를 중단한 날도 그녀는 계속 선거 현장을 누볐다. 전문가들은 그녀가 갖고 있는 집요함, 투지, 총명함은 힐러리 클린턴을 연상시킨다고 평가했다. “나는 모르는 것이 있으면 아내 미셸에게 물어봅니다.” 오바마는 아내 미셸이 종종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가장 많이 의지하는 사람 중 한 명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앞으로도 ‘오바마의 여인’으로 충실한 조언자 역할을 톡톡히 해나갈 것이다. ■ 정리 / 노정연 기자 ■자료 제공 / 「열등감을 희망으로 바꾼 오바마 이야기」(명진 출판)
美 경선에 쏠린 세계인의 관심…오바마 vs 힐러리
2008. 02. 03 화제
오는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다. 지금은 각 당의 경선이 진행 중이다. 민주당 경선에는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버락 오바마와 힐러리 클린턴이 맞섰다. 1월 21일 현재, 2대 1로 힐러리가 앞서고 있다. 오는 2월 5일에는 미국 22개 주가 동시 경선 투표를 벌인다.‘워싱턴’에 대한 불만 미국에서 전국적으로 여성이 투표권을 갖게 된 것은 1920년이다. 남북전쟁이 끝난 뒤 연방헌법은 흑인의 투표권을 인정했지만 1960년대 중반까지도 일부 남부 주에서는 흑인들이 자유롭게 투표할 수 없었다. 힐러리와 오바마는 모두 ‘최초’에 도전한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11월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다면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 혹은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된다. 여성과 흑인은 미국 사회의 전통적인 소수 집단이다. 미국 대통령은 대대로 ‘백인 남성’이었다. 여성이 미국 대선에 출마한 첫 사례는 1872년 빅토리아 우드헐이라는 재벌 여성이었다. 그는 소수당인 평등당 후보였다. 역사상 예비 선거에서 여성 후보가 가장 많은 득표를 한 것은 1972년 민주당의 셜리 치스홈이었다. 전체 민주당 투표의 2.7%를 얻었다. 흑인의 경우는 제시 잭슨이 1988년 민주당 후보로서 29.1%를 득표한 것이 가장 높았다. 하지만 이들의 예비 선거 승리 가능성은 매우 낮았다. ‘소수자의 출마’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했다. 이번 미국 대선의 가장 큰 화두는 ‘변화’다. 부시 행정부와 워싱턴 정치에 대한 미국인의 반감이 높고 새로운 정치에 대한 요구가 늘어나고 있다. 지난 11월 갤럽 조사를 보면 미국 정치에 불만이라는 응답자가 73%에 이르며, 만족하는 응답자는 24%다. 특히, 오바마와 힐러리가 경선을 벌이고 있는 민주당 지지자 가운데서는 단 9%만이 정치에 만족하고 있다. 냉철한 이성, 힐러리 ‘미국 최초’는 두 사람의 공통 목표다. 하지만 삶의 궤적은 차이가 있다. 힐러리가 고요한 호숫가에서 자란 나무 같다면, 오바마는 풍랑을 헤쳐온 조각배를 연상시킨다. 힐러리는 전형적인 미국 백인 중산층의 삶을 살았다. 지난 1947년 미국 일리노이주 파크리지에서 웨일스 이민자 3세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공부를 잘했던 힐러리는 당시 가장 우수한 여학생들이 모이던 웨슬리대를 거쳐 예일대 로스쿨을 졸업했다. 가정의 소중함을 강조하는 감리교 집안에서 성장, 가족의 가치를 중시한다. 남편 빌 클린터의 잦은 바람기로 이혼을 고민하기도 했지만 참고 살았다. “아버지 없이 자라는 아이들은 거친 풍파 위에 위태롭게 떠 있는 작은 배와 같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힐러리는 언제나 당당하다. 남편이 섹스 스캔들에 휘말렸을 때도 “남편을 믿는다”며 흔들림 없는 모습을 보였다. 똑 부러지는 이미지는 유권자들의 반감을 사기도 했다. ‘너무 드세 보인다’며 거부감을 보이는 유권자도 있다. 뉴햄프셔 예비 경선 전날 그가 보인 눈물은 그간의 이미지를 뒤엎었다. 일부 선거 전문가들은 ‘힐러리의 눈물’을 승리의 일등 공신으로 지적하기도 했다. 눈물을 보이기 직전까지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는 버락 오바마 후보에게 두 자릿수 격차로 뒤져 있었다. 선거 전날 힐러리는 유권자들과의 만남에서 “어쩌면 그렇게 늘 씩씩해 보일 수 있느냐”는 질문에 “쉽지 않다”며 감정에 북받쳐 눈물을 흘렸다. 유권자들의 마음이 움직였다. “겉은 무섭도록 이성적으로 포장되어 있으나 그녀 역시 감정의 동물이어서 호감을 갖게 됐다” “힐러리가 진정으로 우리를 사랑한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는 이제 진짜가 됐다”며 호감을 표시했다. 정치학자들도 “힐러리는 눈물을 보인 뒤 부드러운 이미지로 모두를 포용하게 만들었다”며 눈물의 가치를 인정했다. 이번 승리는 오바마의 압도적인 우세를 바짝 따라잡았다. 패기와 감성, 오바마 ‘열풍’의 주인공 오바마의 이력은 평범하지 않다. 지난 1961년 케냐 출신 흑인 아버지와 캔자스주 출신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이다. 어머니는 결혼 2년 만에 이혼하고 인도네시아인과 재혼했다. 유년기는 인도네시아에서 보냈다. 10대에는 대마초와 코카인에 손을 댔다. 스스로도 “마약중독자였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모두 극복했다. 명문 콜롬비아 대학과 하버드대 로스쿨을 졸업하면서 인생을 반전시켰다. 오바마는 젊고 패기 있는 이미지, 감성에 호소하는 명연설로 민주당 경선 열풍의 주역이 됐다. ‘오바마 열풍’은 이라크전 이후 땅에 떨어진 미국의 이미지를 개선하는 부수 효과까지 낳았다. 케냐 출신 아버지를 둔 흑인이 미국 최고의 공직에 도전하는 유력 후보가 됐다는 사실이 미국 사회의 다양성과 ‘아메리칸 드림’을 상징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국제관계연구소의 자크 미스트랄은 “오바마는 세계가 꿈꾸는 미국의 모습”이라고 말했다. 오바마와 힐러리를 비교하며 “유럽에서 여성 대통령은 새로운 게 없지만, 흑인 대통령은 급격한 변화의 상징”이라고도 덧붙였다. 힐러리가 연륜과 경험을 앞세운다면, 오바마는 패기와 감성이 주무기다. 두 사람의 화법은 이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힐러리가 ‘나(I)’를 주어로 내세우는 데 비해 오바마는 ‘우리(We)’를 강조하는 식이다. 론 월터스 메릴랜드대 교수는 “힐러리는 ‘나의 연륜으로 이를 고쳐나갈 것’이라고 말하는 식이고 오바마는 ‘우리 스스로 고쳐나가자’고 말하는 식”이라고 비교했다. 오바마의 ‘우리’는 젊고 확신에 찬 개인적 매력과 맞물려 유권자들의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데 강점을 보이고 있다. 최근에는 오프라 윈프리가 오바마를 지지하고 나섰다. 세계적인 투자의 귀재 워렌 버핏은 “오바마는 장기투자의 가치가 있는 저평가 우량주”라고 말하기도 했다.세계가 주목하는 민주당 경선 유럽에서는 자국의 지도자를 뽑는 게 아닌데도 ‘오바마냐 힐러리냐’를 놓고 의견이 엇갈린다. 젊은 층은, 누가 적임자냐와 관계없이 오바마에 대한 호감을 드러낸다. 독일에서 그는 ‘검은 케네디’로 통한다. 베를린의 학생 라세 튀브너는 “왜 오바마에 공감하는지 말하기 어렵다. 단지 느낌이다. 그는 더 솔직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일본 세이난가쿠인 대학 2학년 시라이시 아즈사는 오바마를 마틴 루터킹 목사와 견주며 “오바마가 미국의 다른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고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가 전했다. 아랍인들은 오바마의 이름 때문에 특히 호감이 높다. 오바마가 이슬람 교도는 아니지만, 정식 이름은 ‘버락 후세인 오바마’로 이슬람식 이름을 갖고 있다. 아랍인의 호감은 종종 그를 둘러싼 음모론에 대한 경계로 이어진다. 가자지구의 주민 마모드 자하르는 “비주류가 이긴다면 좋은 일이지만 그런 일은 허용되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 중앙정보국이든 누구든 그를 암살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가 두 사람의 격돌에 귀추를 주목하고 있다. ‘미국’의 영향력 때문만은 아니다. 흑인과 여성 대통령감이라는 참신성에 조지 부시 행정부의 일방주의에 신물을 내던 국제사회가 기대를 걸고 있다. ■ 글 / 정우성 기자 ■사진 / 경향신문 포토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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