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경향(총 90 건 검색)
- [꼬다리] 아듀, 파리올림픽(2024. 08. 16 16:00)
- 2024. 08. 16 16:00 스포츠
- 지난 8월 12일 프랑스 파리 인근 생드니의 스타드 드 프랑스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폐회식 중 여자 마라톤 시상식이 열렸다. AFP연합뉴스 “나는 월드컵, 올림픽 때만 되면 애국자가 돼.” 2024 파리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지인과 이런 대화를 했다. 올림픽이 시작되자 역시나 ‘과몰입’했다. 양궁을 시작으로 메달 행진이 이어지면서 밤늦은 시간까지 TV 앞에서 떠나지 못했다. 특히 ‘총·칼·활’ 종목에서 맹활약하는 한국 선수단의 모습에 평소라면 손사래 쳤을 ‘하느님이 bow하사(下賜) 우리나라만 쎄(세다)’라는 유행어도 사뭇 마음에 들었다. 올림픽을 즐기는 이들의 태도도 이전과 많이 달라졌다. 순위나 메달의 색보다 선수 개개인의 서사와 경기 과정의 긴장감을 즐기는 분위기다. 비인기 종목에 대한 대중적 관심도 전보다는 높아졌다. 선수 개개인의 마음가짐이 조명받은 것도 달라진 세태를 반영했다. 올림픽 기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초긍정적 사고방식을 가진 걸그룹 아이브 멤버 장원영의 이름에서 따온 ‘원영적 사고’에 선수 이름을 빗댄 ‘○○적 사고’가 번졌다. ‘나도 부족하지만 남도 별거 없다(효진적 사고)’, ‘난 된다. 난 될 수밖에 없다. 난 반드시 해낸다(애지적 사고)’, ‘잘한다, 잘한다 하니까 진짜 잘하는 줄 알고 그렇게 잘할 수 있었다(상욱적 사고)’…. 2002 한일 월드컵의 ‘꿈은 이루어진다’, 2022 카타르 월드컵의 ‘중꺾마(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가 집단적 희망가에 가까웠다면 이번 파리올림픽에서 사람들이 열광한 건 ‘나(선수)’였다. 혹자는 MZ세대의 나르시시즘 혹은 개인주의 성향이 투영됐다는 지적을 하기도 하지만 그렇게까지 볼 필요는 없는 듯하다. ‘메달을 땄다고 젖어 있지 마라. 해 뜨면 다시 마른다’(우진적 사고), ‘빵점 한 번 쐈다고 세상이 무너지는 건 아니다’(예지적 사고) 등 과잉경쟁 시대에 승패 앞에 휘둘리지 않고 전진하는 이들이 모습은 그 자체로 위로가 됐다. 이번 올림픽이 ‘성평등’을 테마로 삼은 점도 좋았다. 프랑스는 개막식에서 프랑스 역사를 이끈 여성운동가 10인을 소개하며 페미니즘이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점을 상기시켰다. 남녀 선수는 동수로 출전했고, 폐회식에서 올림픽 최초로 여자 마라톤이 마지막 시상대를 장식하도록 했다. 1896년 아테네 대회에서부터 120여 년간 폐회식을 남자 마라톤 메달 시상식이 장식해왔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성차별적인 전통의 맥을 끊어준 프랑스가 고마웠다. 다만 ‘한국 패치’가 덧씌워진 파리올림픽의 뒷맛이 마냥 개운치는 않다. SBS와 KBS는 개막식을 중계하며 페미니즘을 각각 ‘박애(자매애)’, ‘프랑스의 여성들’로 바꿔 소개했다. 사회발전에 기여한 여성들의 업적을 소개하는 섹션의 취지를 담기엔 협소한 단어들이었다. 성차별적 인터뷰와 보도도 여전했다. 양궁 임시현 선수의 턱에 있는 활 자국을 지적하며 “시술할 생각 없냐”고 말한 인터뷰가 대표적이다. 여성 선수들을 향한 ‘엄마’, ‘여제’ 같은 게으른 수식도 반복됐다. 여성 복서 이마네 칼리프(알제리), 린 위팅(대만)에 대한 소수자 혐오적 보도도 이어졌다. 개막식 현지의 장내 아나운서가 한국 선수단을 ‘북한’으로 호명하자 온 나라가 발칵 뒤집혔던 대한민국은, 언제쯤 차별과 혐오에도 민감한 사회가 될 수 있을까. 덕분에 올림픽 과몰입 탈출이 수월했다고 위안 삼을 뿐이다.
- 꼬다리
- [오늘을 생각한다] 파리올림픽이 던진 메시지(2024. 08. 09 16:00)
- 2024. 08. 09 16:00 오피니언
- 올림픽도 기후변화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이번 파리올림픽이 던진 메시지 중 이 부분만큼은 전 세계에 분명한 경종을 울린 듯하다. 지현영 녹색전환연구소 부소장·변호사 파리올림픽은 지난 올림픽의 온실가스 평균배출량을 기준으로 이를 절반까지 줄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기후변화에 관한 파리협약에 따른 목표로, 이를 달성하기 위해 건축, 게임 운영, 수송 등 각 부문에서 실행 계획이 수립됐다. 분석 결과 올림픽으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의 가장 큰 부문은 방문객의 항공 이용으로 인한 배출과 새로운 건물 건설이라고 한다. 신축 건물 건설로 인한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파리올림픽은 경기장 등 개최 장소의 95%를 기존 건물 또는 임시 건물을 이용하되, 새로 건물을 지을 때도 최소 15%의 재활용 자재를 사용하거나 목재, 바이오원료 재료 등의 활용을 장려했다. 현장에서 제공되는 식사의 탄소 발자국을 50% 줄이겠다는 목표하에 동물성 단백질에 비해 탄소배출량이 낮은 식물성 단백질의 비율을 2배 이상 늘리고, 운송되는 과정에서의 탄소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식재료를 가급적 인근 지역에서 조달하고자 했다.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50% 줄이고, 사용된 물품은 최소 60%를 임대 제품으로 마련하고자 했으며, 사용 이후에도 중고로 재판매·재사용되고, 외관 및 간판의 90%도 재사용 또는 재활용되도록 할 계획이다. 또한 경기장에 필요한 열과 전기를 재생에너지로 100% 충당했다. 그럼에도 방문객의 항공 이용으로 인한 배출에 대해서는 뾰족한 수를 내지 못했다. 이에 대해 어떤 이들은 앞으로 올림픽을 한 도시에서 개최할 것이 아니라 여러 도시에서 동시에 개최하게 해 이동을 줄여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을 제시한다. 이번 파리올림픽의 탄소 감축을 위한 실행계획이 그린워싱이라는 비난, 감축을 위한 노력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있기도 하나, 올림픽도 사회의 변화와 함께 진화해나가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올림픽의 취지 자체가 사람들이 한 장소에 와서 다양한 스포츠를 관람할 수 있는 것’에 있다며 이러한 의견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 같다. 다만 올림픽에서 탄소 배출을 최소화하려는 움직임은 이번 파리올림픽만의 특수상황은 아닌 듯하다. IOC 또한 2021년 온실가스의 직간접 배출량을 2024년까지 30%, 2030년까지 50%까지 줄이겠다는 서약을 했다. 또한 올림픽 팬과 이해관계자들이 기후변화에 대응하도록 영향을 미치고 독려하겠다는 약속을 하기도 했다. 이번 파리올림픽의 탄소 감축을 위한 실행계획이 ‘그린워싱(위장 환경주의)’이라는 비난, 감축을 위한 노력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있기도 하나, 올림픽도 사회의 변화와 함께 진화해 나가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올림픽 자체가 고탄소 문화라 재고해야 한다는 의견도 일리가 있으나, 올림픽도 기후 목표를 세우고 생물 다양성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지구촌 곳곳에 기후변화 대응의 중요성을 알리는 계기가 되는 것 같다.
- 오늘을 생각한다
- [꼬다리] 인터섹스의 올림픽(2024. 08. 09 16:00)
- 2024. 08. 09 16:00 스포츠
- 2024 파리올림픽 여자 복싱 66㎏ 8강전에서 알제리의 이마네 칼리프(왼쪽)와 헝가리의 안나 루카 하모리가 경기를 마친 뒤 인사하고 있다. AP연합뉴스 2024 파리올림픽은 ‘성평등 올림픽’이라는 가치를 전면에 내세웠다. 206개국 1만500명의 선수가 출전했는데, 남성·여성 선수가 5250명으로 성비가 똑같았다. 성소수자 선수 191명도 포함됐다. 하지만 올림픽이 열릴 때마다 벌어지는 뜨거운 논란은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바로 인터섹스(신체 성징이 전형적인 남녀의 신체 정의에 규정되지 않는 사람) 선수의 출전을 둘러싼 논란이다. 스포츠에선 오랫동안 성별 이분법이 굳건했다. 스포츠는 ‘공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신체가 다른 남녀가 동위에서 경쟁한다면 ‘불공정’하다는 합의가 있기에 따로 경기를 치렀다. 같은 성별끼리의 신체적 차이는 어떨까. 복싱, 레슬링, 유도 등은 체급을 나누고 수영, 육상, 축구 등은 체급을 나누지 않는다. 그렇다면 일반적인 시스젠더(자신의 성별과 생물학적 성별이 같다고 여기는 사람) 여성과 인터섹스 여성의 신체적 차이는 ‘불공정’할 정도일까. 어떤 기준으로 얼마나 차이를 좁혀야 ‘공정’할까.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육상 선수 캐스터 세메냐는 인터섹스였다. 여자 육상경기에 출전했지만 시스젠더 남성 선수 수준의 근육량을 갖고 있었다. 2012년 런던올림픽 육상 여자 800m와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같은 종목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불공정하다는 비판에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남성의 주요 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기준으로 세웠다. 이후 세메냐는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했다. 사람의 신체는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한다. 이번 파리올림픽에선 여자 복싱경기에 출전한 알제리의 이마네 칼리프 선수가 논란이었다. 칼리프는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은 성발달이상(DSD)을 가졌다고 알려졌지만, 평생 여성으로 살았고 성전환 수술도 받지 않았다. 16강전에서 1라운드 46초 만에 상대 선수에 승리하자 비난이 폭주했다. <해리 포터> 작가 조앤 롤링은 “치욕”이라고,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인 일론 머스크는 “미친 짓”이라고 비난했다. 오히려 상대 선수가 “칼리프도 나처럼 출전한 여성”이라며 “그에게는 잘못이 없다”고 말했다. 혐오도 공정의 가면을 쓴다. 트랜스젠더와 인터섹스의 차이를 모르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심지어 그런 무지를 당당하게 드러낸다. 일각에선 논바이너리(자신의 성별을 남성이나 여성으로 정의하지 않는 사람)로서 여성 육상경기에 출전한 미국의 니키 힐츠 선수를 겨냥해 불공정하다고 비난한다. 힐츠는 생물학적 여성으로 태어났고, 수술로 성을 전환하지도 않았다. 힐츠는 “논바이너리가 뭘 뜻하는지 계속 설명하는 것도 이제는 지친다”고 말했다. 스포츠에는 ‘공정’만큼 ‘평등’의 가치도 중요하다. 최초의 올림픽은 남성만의 축제였다. 올림픽 창설자인 피에르 드 쿠베르탱은 “격렬한 신체 활동이 여성의 매력을 파괴한다”며 여성의 참가를 금지했다. 1896년 1회 아테네 올림픽에 여성 선수는 0명이었다. 그로부터 128년이 걸려 남녀 선수가 동수가 됐다. 다시 128년이 흘러도 인터섹스의 출전을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까. 사람의 존재 자체를 이유로 배격한다면 ‘다양한 차이를 극복한다’는 올림픽 정신에도 맞지 않는다. 올림픽이 사람의 차이를 존중하는 제도로 누구도 배격하지 않는 공정하고 평등한 운동장을 열어주길 바란다.
- 꼬다리
- ‘방부제 골퍼’ 신지애, 파리올림픽에 ‘위대한 도전’(2024. 04. 10 06:00)
- 2024. 04. 10 06:00 스포츠
- 세계랭킹 15위 안으로 끌어올려야…“시간 많이 남아” 본격 승부 걸어 2023년 10월 19일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서원밸리 CC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BMW 레이디스 챔피언십 1라운드 경기에서 신지애가 티샷한 뒤 공을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내년이면 프로 데뷔 20주년이다. 19년차인 올해는 파리올림픽 출전을 목표로 삼았다.” 전 세계 여자골프 투어에서 통산 64승을 거둔 베테랑 신지애(36)는 위대함을 넘어 경이로움 그 자체다. 한국 여자골프의 전설 박세리(47)의 성공을 보며 골프채를 잡은 ‘박세리 키즈’의 선두주자인 신지애는 같은 또래 선수들이 대부분 은퇴한 지금도 변함없이 세계정상급 기량을 발휘하고 있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21승을 거둔 박인비를 비롯해 최나연, 김하늘, 유소연, 이보미 등 스타 선수들이 은퇴 선언, 또는 그 순서를 밟으며 선수생활을 정리하고 있지만 신지애는 여전히 띠동갑 아래 후배들과 겨루며 그 역시 전설로 거듭났다. 신지애는 세계랭킹 톱 50위 이내 선수 중 최고령이다. 한국, 미국, 일본 투어에서 최고 선수로 명성을 날리고 아시아 선수 최초로 여자골프 세계랭킹 1위에 오른 신지애는 올해 자신에게 힘을 불어넣을 활력소로 파리올림픽을 정조준했다. 2022년 여름 세계랭킹 80위까지 밀려났던 신지애는 2023년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 2승, 호주 여자투어 1승에 US여자오픈 공동 2위, AIG 여자오픈 3위 등 메이저대회 호성적을 더해 지난해 말 세계랭킹 15위로 뛰면서 파리올림픽 도전 목표를 현실로 만들었다. 신지애가 오는 8월 개최되는 파리올림픽 여자골프에 국가대표로 나가기 위해선 현재 18위인 세계랭킹을 마감 시한인 6월 24일까지 15위 안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올림픽 골프에는 국가별로 세계랭킹 상위 2명씩, 총 60명이 출전하는데 세계 15위 이내 강자들은 한 국가당 최대 4명까지 더 나갈 수 있다. 현재 한국선수 중 고진영(6위), 김효주(9위)가 꾸준히 세계 톱 10을 지키고 있어 신지애는 우선 15위 진입이 목표다. 세계랭킹 포인트 많은 미국 투어 노려야 올림픽 도전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힌 뒤 신지애는 새해 벽두부터 세계랭킹 포인트를 쌓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동계 훈련기간에 전훈지에서 열린 호주여자골프 빅오픈(2위)에 나갔고, 유럽여자골프투어(LET) 아람코 레이디스 인터내셔널(공동 60위)을 위해 사우디아라비아에도 다녀왔다. 이어 싱가포르에서 열린 LPGA 투어 HSBC 위민스 월드 챔피언십(공동 41위)에 나갔고, JLPGA투어 V포인트-에네오스 골프 토너먼트(3위)와 LPGA투어 퍼힐스 박세리 챔피언십(공동 5위) 참가차 일본과 미국을 오갔다. 많은 대회 출전이 랭킹 상승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세계랭킹은 최근 2년간 대회 성적으로 얻은 랭킹점수를 합산해 출전대회 수로 나눈 ‘평균값’으로 순위를 매긴다. 세계랭킹 포인트가 높은 큰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게 최상의 방법이고, 오히려 나쁜 성적을 거두면 출전 경기수만 늘리게 돼 평점 하락을 감수해야 한다. 한국, 일본 대회보다는 강자들이 많이 나오는 미국 투어에 걸린 랭킹포인트가 많기 때문에 수시로 해외대회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신지애는 지난 3월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열린 LPGA투어 퍼힐스 박세리 챔피언십에 나가기 위해 ‘지인 찬스’를 썼다. LPGA투어 시드가 없어 출전 자격이 없는 그는 이 대회에 나가기 위해 주최자인 박세리를 졸라 추천선수 자리를 받아냈다. 앞서 세계랭킹 상위권자 자격으로 출전한 사우디, 싱가포르 대회에서 기대에 못 미쳤던 신지애는 절실한 심정으로 얻은 박세리 챔피언십 카드를 제대로 살려 공동 5위를 차지하는 성과를 냈다. 3라운드까지 공동선두를 달려 우승 가능성을 높였지만 최종일에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 게 아쉬웠다. 2005년 KLPGA 투어에 데뷔한 후 통산 21승을 거두고 2008년부터 미국으로 건너가 LPGA투어 11승을 쌓으며 깊은 인상을 남긴 신지애의 박세리 챔피언십 활약은 많은 현지 팬들을 감동하게 했다. 이 대회에서 우승을 다툰 세계 1위 넬리 코르다(미국)의 언니 제시카 코르다는 자신의 SNS에 “신지애는 한국, 미국, 일본, 유럽에서 모두 최고선수(#1)가 된 선수로 알고 있는데, 누가 팩트체크를 해달라”며 찬사를 보냈다. 비슷한 시기에 활약했던 제시카로서는 여전한 ‘방부제 실력’의 신지애가 경이롭게만 보였다. 이제는 팬들의 기억도 희미해졌겠지만 신지애는 KLPGA 투어에서 ‘파이널 퀸’으로 통했다. 대회 마지막 날이면 더욱 강해지는 집중력,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얻은 별명이었다. 국내 무대를 평정하고 미국으로 건너간 지 3년 만에 세계 1위에 오른 신지애 돌풍에 현지 언론은 학생선수로 꿈을 키우던 시절 불의의 교통사고로 어머니를 잃은 불우한 가정사를 극복한 그의 인간승리에 감동하며 찬사를 보냈다. 2013년까지 미국에서 11승(메이저 2승)을 거두며 승승장구하던 신지애가 2014년 일본으로 무대를 옮긴 것도 충격적인 뉴스이자, 큰 화제였다. 모두가 꿈꾸는 LPGA를 포기하고 홀아버지와 두 동생 등 가족과 가까이하기 위해 JLPGA투어로 옮긴 신지애는 그로부터 지난 10년 동안 일본에서 28승이나 거두는 저력을 뿜어냈다. “올림픽 도전은 내게 에너지 드링크” 일본 진출 후 매년 우승하다가 부상 탓으로 우승하지 못한 2022년부터 서서히 그의 경기력도 쇠퇴하는 듯싶었으나 오히려 더욱 맹렬한 기세로 살아나 생애 첫 올림픽 출전을 노리는 자리까지 왔다. 골프는 신지애의 전성기가 지난 2016년 리우올림픽부터 정식종목으로 부활했기에 신지애는 출전 기회가 없었다. 팬들은 신지애가 젊은 경쟁자들을 제치고 꿈을 이루길 열렬히 응원하고 있다. 설령 실패하더라도 도전 그 자체가 의미가 크다는 마음의 각오도 하고 있다. 신지애는 올림픽 출전을 100% 확신하고 있다. 지난 4월 3일 제주도 서귀포 테디 밸리 골프&리조트에서 열린 2024 KLPGA투어 국내 개막전 두산건설 위브챔피언십 공식 기자회견에 나선 신지애는 “올림픽 도전은 확신이 없었다면 시작하지도 않았다”며 “목표를 설정한 만큼 꼭 이룬다는 생각으로 그만큼 열심히 하고 있다. 실은 세계 15위 턱걸이가 아닌 그 이상 더 높은 순위로 올림픽에 나가는 걸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진영, 김효주 외에 현재 세계 15위인 양희영(35)까지 4명 모두 파리올림픽에 가자는 뜻이다. 신지애는 결과보다 과정에 충실하자는 좌우명 아래 한결같이 혹독한 훈련과 노력으로 20년 넘게 최정상 엘리트 선수로 뛰어왔다. “올림픽을 향한 도전은 내게 에너지 드링크처럼 힘을 내게 한다”는 그는 “후배들도 안주하지 말고 더 강한 무대에 도전하며 발전 과정, 진심, 방향성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제 랭킹이 1년 전만 해도 70위였다”는 그는 자신의 노력이 같이 달려가는 선수들에게 좋은 자극이 되고, 그 영향력이 후배들에게도 닿기를 바란다는 마음도 잊지 않았다. 지난 3월 박세리 챔피언십 우승 좌절 이후 “아직 3월이다. 시간이 많이 남았다”며 아쉬움을 달랜 신지애는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승부를 건다. 4월 18일부터 미국 텍사스에서 열리는 LPGA 시즌 첫 메이저대회 셰브론 챔피언십에 출전하고, 5월엔 JLPGA투어 메이저대회 살롱파스컵, 6월엔 US여자오픈에 잇따라 참가한다. 랭킹포인트가 많이 걸린 큰 대회들인 만큼 여기서 결판을 낸다는 굳센 각오로 ‘위대한 도전’ 길에 오른다.
- 시진핑 ‘3연임 대관식’ 앞 올림픽 성패는(2022. 02. 11 17:57)
- 2022. 02. 11 17:57 스포츠
-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지난 2월 4일 개막했다. 세계 각국의 선수들이 20일까지 15개 종목에서 109개의 금메달을 놓고 선의의 경쟁을 펼친다. 이번 올림픽 개최로 중국 수도 베이징은 동·하계 올림픽을 모두 개최한 전 세계 유일의 도시가 됐다. 중국은 2020년 동계올림픽을 2008년 베이징 하계올림픽 개최 이후 달라진 자국의 위상을 전 세계에 과시할 무대로 삼고 있다. 하지만 이번 동계올림픽 분위기는 중국의 부상을 만천하에 각인시킨 2008년 하계올림픽 개최 당시와는 사뭇 달랐다. 우선 코로나19라는 초유의 상황이 올림픽 열기를 반감시켰다. 인권문제를 고리로 한 미국 등 일부 서방국가의 외교적 보이콧까지 더해져 베이징 동계올림픽은 시작 전부터 김이 빠졌다. 우크라이나의 전쟁 위기가 고조되는 등 국제정세도 올림픽에 대한 관심을 분산시켰다. 중국 베이징 국가체육장에서 지난 2월4일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회식이 열리고 있다. / 이종섭 특파원 2008년과 2022년 베이징 2008년 베이징 하계올림픽은 부상하는 중국의 위상을 전 세계에 알린 계기였다. 14년이 흐른 지금 중국의 국제적 위상이나 국력은 당시와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커졌다. 경제 성장은 괄목할 만하다. 2008년 4.6조달러 규모였던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이 지난해 18조달러로 4배 가까이 늘었다. 2010년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고, 2008년 미국의 30% 정도에 불과했던 GDP 규모는 80% 수준까지 높아졌다. 명실상부한 전 세계 주요 2개국(G2)의 위치를 확고히 했다. 경제 성장은 군사, 우주 등 다방면에서 대국의 굴기로 이어졌다. 2008년 580억달러 수준이던 중국의 한해 국방예산이 지난해 2090억달러로 3배 이상 늘었다. 독자 건조한 항공모함을 취항했고, 현대전에서 ‘게임체인저’라고 부르는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에서는 미국에 앞서 있다는 평가도 나왔다. 2019년 달 뒷면에 인류 최초로 무인 탐사선을 착륙시킨 데 이어 지난해에는 화성에 무인 탐사선을 보내고 독자적인 우주정거장 건설에도 나섰다. 5세대(5G) 이동통신과 인공지능(AI) 등 첨단기술 분야에서도 중국의 굴기는 무섭게 뻗어나가고 있다. 이번 올림픽은 중국에 단순한 스포츠 이벤트가 아니라 정치적 이벤트이기도 했다. 2008년 하계올림픽 당시 국가 부주석이었던 시진핑 국가주석은 2012년 중국 공산당 제18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에서 당 총서기로 선출되며 최고 권력자의 자리에 올랐다. 2017년 제19차 당대회에서 총서기에 재선출된 시 주석은 이듬해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국가주석직 3연임 제한 조항을 없애 장기집권의 기반을 마련했다. 베이징 동계올림픽은 그의 3연임을 결정지을, 올가을 제20대 당대회를 앞두고 열리는 가장 큰 국가적 행사였다. 시 주석은 동계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장기집권의 중요한 정치적 자산이자 발판으로 삼을 태세였다. 이런 의지는 이번 올림픽을 통해 국내외에 던지는 메시지를 통해서도 드러났다. 중국이 강조하고 있는 동계올림픽의 콘셉트 중 하나는 ‘저탄소 올림픽’이다. 시 주석은 2020년 유엔 총회에서 2030년 탄소 배출 정점을 달성하고 2060년까지 탄소 중립을 실현하겠다고 공언했다. 올림픽 개회식에서 한족과 55개 소수민족 등 각 민족 대표단이 국기인 오성홍기를 전달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인 것도 시 주석이 집권 이후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내세우며 민족 통합을 강조해온 것과 무관치 않다. 올림픽 성화의 마지막 봉송 주자로 신장 위구르족 출신 크로스컨트리 스키선수를 내세운 것은 소수민족 탄압 등 인권문제를 제기하는 국제사회를 겨냥한 메시지를 담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지난 2월 5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주최한 동계올림픽 환영 연회가 열리고 있다. / 중국정부망(중국 국무원 홈페이지) 올림픽에 드리운 악재들 동계올림픽 분위기는 시 주석의 구상과 다소 엇나가는 모습이다. 2008년 하계올림픽 때도 중국의 티베트 시위 유혈 진압 등으로 비판적 여론이 있었지만 당시만 해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대규모 사절단을 이끌고 참석하는 등 중국을 보는 국제사회의 분위기는 상대적으로 우호적이었다. 중국이 미국의 지위를 넘보는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성장하고 시 주석 집권 이후 권위주의적 통치시스템을 강화하면서 사정은 완전히 달라졌다. 미국이 신장 위구르족 인권문제 등을 이유로 선제적으로 외교적 보이콧을 선언하며 중국의 축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여기에 일부 동맹국들이 가세하면서 베이징 동계올림픽은 개막 전부터 반쪽짜리 행사로 전락했다. 코로나19도 이번 올림픽에 드리운 악재다. 상당수 국가 정상과 대표단이 코로나19를 이유로 올림픽 무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국내 관중의 경기 관람을 허용해 코로나19 방역 성공을 전 세계에 과시하려던 계획에도 차질이 생겼다. 개막을 앞두고 세계적으로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가 확산하고 중국 내에서도 산발적 감염이 계속되자 입장권 판매 계획을 철회하고 조직된 소규모 관중에게만 관람을 허용해 겨우 무관중 대회를 피했다. 선수단과 대회 관계자들에게는 관중을 비롯한 외부와의 접촉을 철저히 차단하며 정해진 동선 안에서만 이동이 가능한 ‘폐쇄루프’ 시스템을 적용했다. 코로나19 방역은 여전히 올림픽의 최대 난제였다. 각국 선수단과 대회 관계자들이 본격 입국을 시작한 지난 1월 23일 이후 공항 입국과 ‘폐쇄루프’ 내 검사 과정에서 400명 이상이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다. 중국의 국내 확산세는 다소 수그러들었지만 광시(廣西)좡족자치구에서 집단 감염이 발생하는 등 불안한 상황을 이어갔다. 일촉즉발의 우크라이나 상황도 중국을 도와주지 않았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접경지의 대규모 병력을 전진 배치하며 침공 우려를 키워갔다.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베이징올림픽이 끝나기 전 러시아가 군사적 침공을 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내일일 수도 있고 수주가 걸릴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 자체로 올림픽에 모여야 할 세계의 관심이 흩어졌다. 실제 올림픽 중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다면 ‘전 세계 평화와 화합의 장’이라는 올림픽의 취지는 더욱 무색해지는 상황이다. 시 주석은 이를 의식한 듯 지난 2월 5일 올림픽에 참석한 정상급 인사들을 초청해 연 환영 연회에서 “예로부터 올림픽은 인류 평화와 단결, 진보의 아름다움을 추구했다”며 “우리는 올림픽의 초심을 되새겨 세계 평화를 함께 수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지난해 12월 유엔 총회에서 채택한 ‘올림픽 휴전 결의’를 가리켜 “이는 국제사회의 공통된 목소리”라고 역설했다.
- 즐기는 자들의 올림픽(2022. 02. 11 17:57)
- 2022. 02. 11 17:57 스포츠
- ㆍ결과보다 과정에 집중하는 MZ세대 선수들 ‘세대 차이’는 인류 역사가 시작되면서부터 있었다. 고대 이집트 피라미드에는 “요즘 아이들은 버릇이 없어”라는 글귀가 있다. 철학자 소크라테스도 “요즘 애들이 버릇이 없고 윗사람을 무시한다”고 했다. 사진 위부터 이상호(스노보드), 김민석(스피드스케이팅), 차준환(피겨스케이팅) 선수 / 연합뉴스 세대 차이는 신조어를 만들어낸다. 최근 우리 사회는 ‘MZ세대’라는 말을 쓴다. 1980년대에서 2000년대 초반 태어난 밀레니얼세대와 Z세대를 묶어 칭하는 말이다. “요즘은 옛날과 다르다”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도 세대 차이가 드러났다. 올림픽 경험이 있는 굵직한 선수들은 “요즘은 옛날과 다르다”고 입을 모은다. 부정적 의미의 ‘다르다’가 아니다. 과거에는 스포츠대회에서 결과만 중시하는 성적지상주의가 팽배했다면 이제는 결과보다 과정 자체를 즐긴다. 예전에는 젊은 선수들에게 ‘패기’를 강요했지만 이번 대표팀에 참가한 젊은 세대는 자신에게 더 집중하려 노력한다. 지난해 여름에 열린 2020 도쿄올림픽 때는 경기를 지켜보는 이들도 승패를 떠나 과정에 열광했다. 성적은 썩 좋지 않았다. 한국은 금메달 6개, 은메달 4개, 동메달 10개를 따 종합순위 16위에 그쳤다. 목표로 잡은 톱 10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인데다 1984년의 LA올림픽 이후 가장 저조한 결과였다. 그럼에도 한반도는 올림픽 기간 내내 열광의 도가니였다. 메달을 따진 못했지만 4강 진출의 쾌거를 이룬 여자배구대표팀을 향해 환호했고 가능성을 보인 한국 수영 유망주 황선우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탁구 신유빈, 높이뛰기 우상혁 등도 ‘라이징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도쿄에서 베이징으로 바통을 이어받은 대표팀 선수들도 ‘과정’에 집중하고 있다. ‘반드시 메달을 획득하겠다’라는 마음보다 ‘내가 스스로 만족할 만큼 후회없이 노력했는가’ 여부에 더 의미를 부여한다. 지난 2월 8일 한국에 첫 메달을 안긴 스피드스케이팅 대표팀 김민석(23·성남시청)도 그랬다. 스피드스케이팅 첫 종목에 출전한 김민석은 다소 불리한 환경에서 경기를 치렀다. 김민석에 앞서 10조에서 뛴 토마스 크롤(네덜란드)이 1분43초55의 올림픽 신기록을 세웠다. 다음 조인 11조의 김민석은 네덜란드의 키엘드 나위스와 함께 뛰었다. 나위스는 이 종목 세계기록 보유자(1분40초17)이자 평창올림픽 금메달리스트다. 나위스는 초반부터 김민석과 거리를 벌리며 치고 나갔고 1분43초21로 크롤의 신기록을 바로 갈아치웠다. 올림픽 신기록을 낸 크롤, 지난 대회 금메달리스트 출신의 나위스 등과 차례로 마주한 김민석은 자칫하면 페이스가 흐트러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김민석은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 그의 뒤에 8명이나 남아 있었지만 초조해하는 기색은 없었다. ‘과정’에 전력을 쏟았기 때문이다. 김민석은 경기 후 “‘될 대로 되라지’ 생각을 했다. 난 내 것을 했으니까 주어진 운명에 맡겨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동메달을 품에 안았다. ‘과정’에 전력 쏟는다 피겨스케이팅에서도 ‘과정’을 중시한 또 한명의 선수가 있었다. 차준환(21·고려대)은 지난 2월 10일에 끝난 피겨 남자 싱글에서 최종 총점 282.38점으로 전체 5위에 올랐다. 한국 선수가 올림픽 피겨에서 5위 내에 이름을 올린 건 김연아 이후 처음이다. 또한 4년 전 자신이 기록한 한국 남자 싱글 올림픽 최고 순위(15위)도 훌쩍 경신했다. 지난달 국제빙상경기연맹(ISU) 피겨스케이팅 4대륙선수권대회에서 본인이 세운 한국 남자 싱글 공인 최고점(273.22점)도 넘어섰다. 차준환은 이번 대회를 준비하면서 어떠한 수치도 목표로 잡지 않았다. 그는 “선수로서 좋은 목표를 바라보는 건 맞다. 하지만 나의 과정에 집중하고 싶다”고 말했다. 두 번째 올림픽을 마친 차준환은 “이번 올림픽의 최대 목표는 개인 최고점을 기록하는 것과 ‘톱 10’ 안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 이상으로 톱 5까지 나오게 됐다”며 “이번 올림픽에서는 나라는 선수를 좀더 보여줬다. 계속 싸우고 발전하면서 성장하고 싶다”는 다짐을 밝혔다. 과정에 최선을 다했으니 메달을 못 땄다고 좌절할 이유도 없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스노보드 평행대회전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배추보이’ 이상호(27·하이원)는 이번 대회의 유력한 금메달 후보였다. 준준결승에서 0.01초 차이로 아깝게 탈락하고 말았다. 예선에서는 줄곧 1위를 지켜왔기에 더 아쉬운 결과였다. 이상호는 경기를 마친 뒤 얼굴을 감쌌지만 이내 덤덤하게 결과를 받아들였다. 그는 “내가 목표로 잡았고 많은 분들이 기대했던 금메달이라는 결과를 가져오지 못해 아쉽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큰 목표로 삼았던 것은 성적이 어떻든 간에 후회가 남지 않는 경기를 하고 싶었다. 결과는 아쉽게 됐지만 후회없이 경기하는 건 다 이뤄 후련하다”고 했다. 평창올림픽 후 부상과 수술, 재활 과정 등을 거쳐 다시 출전한 올림픽이었기에 자신이 더 대견스럽다고 했다. 이상호는 “많은 관심이 부담스럽기도 해 멘털 관리가 힘들었는데, 그래도 잘 관리했고 많은 응원으로 힘도 냈다. 나 자신에게 고생했다고 하고 싶다”고 말했다. “편안하게 즐기고 싶어요” 어찌보면 이런 마음가짐이야말로 정답일지 모른다. 2010 밴쿠버올림픽부터 2022 베이징올림픽까지 4번 연속 동계올림픽에 참가한 이승훈(34·IHQ)은 이제야 스케이트를 즐기기 시작했다. 스피드스케이팅 대표팀 ‘맏형’인 그는 “이번 대회에서는 남기고 싶은 것도 딱히 없다. 앞으로 편안하게 즐기면서 가고 싶다. 스케이트를 타는 것 자체가 너무 재미있다. 그런 거로 만족하면서 성적에 목매지 않고 하면 될 것 같다”고 했다. 올림픽 3번, 4번을 거치고 나서야 얻은 깨달음을 대표팀의 젊은 선수들은 이미 알고 실천하고 있었던 셈이다. 이번 대회 개막을 앞두고 나온 전망은 썩 좋지 않았다. 코로나19로 훈련량이나 실전 경기 경험이 부족했고 ‘효자 종목’인 쇼트트랙에서는 심석희 욕설 논란으로 내홍을 겪기도 했다. 대한체육회는 금메달 1~2개와 종합순위 15위를 목표로 내걸었다. 대회 개막 후 5일 동안 단 1개의 동메달만 따내는 데 그친 한국은 쇼트트랙의 간판 황대헌(23·강원도청)이 2월 9일 첫 번째 금메달을 목에 걸면서 분위기 반전에 시동을 걸었다. 많은 메달을 따면 좋겠지만 올림픽을 지켜보는 이들이 더 관심을 갖는 건 선수들의 면면이다. 결과만 보고 박수치지 않는다. 그 길을 걸어온 과정 자체에 열광하고, 기뻐한다. ‘전 세계인의 스포츠 축제’라는 수식어에 잘 어울리는 마음가짐이다.
- 올림픽 그 이후 한국 스포츠에 남겨진 ‘고차방정식’(2021. 08. 13 14:58)
- 2021. 08. 13 14:58 스포츠
- 코로나19 논란 속에 진행된 2020 도쿄올림픽이 지난 8월 8일 폐막했다. 총 17일간 진행된 대회에서 한국은 20개의 메달을 획득하며 종합순위 16위를 기록했다. 종목별 선전과 부진은 각각의 종목이 갖는 세계적 위상 변화를 확인하게 했다. 하지만 이번 올림픽에서 발견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경기 외적인 측면에 있었다. 시민은 더이상 메달 색깔만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이러한 변화를 두고 “선수들 간 경쟁이 중심이 되는 엘리트체육에서 국민 누구나 즐기는 생활체육으로 변모한 결과”라는 해석도 나온다. 주간경향은 지난 8월 10일 도쿄올림픽의 특징을 전현직 국가대표 선수, 체육 전문가들과 함께 분석했다. ‘결과보다 과정이 존중되는 올림픽’을 손꼽아 기다렸을 것 같았던 이들은 오히려 ‘위기’를 말했다. 엘리트체육과 생활체육이 선순환적으로 연결되지 않는 구조에 대한 지적은 이들의 고민이 하루 이틀 사이에 정리된 것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이날 토론회의 사회는 박병률 주간경향 편집장이 맡았다. 토론자로는 김재현 한국체육지도자연맹 이사장, 이배영 종로구청 역도감독(2004 아테네올림픽 은메달), 김주영 용인대 무도스포츠학과 교수(복싱감독), 김언호 동국대 체육학과 교수, 김동화 충남대 체육학과 교수(2002 부산아시안게임 금메달), 인교돈 태권도 국가대표 선수(도쿄올림픽 태권도 동메달)가 참여했다. 화상회의로 진행된 토론은 밤 10시를 훌쩍 넘기고서야 끝이 났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이배영 종로구청 역도감독 / 경향신문 자료사진 -도쿄올림픽은 그동안 익숙했던 올림픽과 달랐다는 평가가 있다. 이번 올림픽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무엇이라고 보나. 김재현 “가장 큰 변화는 메달을 못 따도 국민이 최선을 다한 선수에게 열광적인 응원을 보냈다는 것이다. 4위를 해도 주인공이 되는 올림픽이었다. 특히 김연경 선수를 중심으로 한 배구대표팀, 스포츠클라이밍의 서채현, 높이뛰기의 우상혁, 유도의 윤현지, 다이빙 우하람 선수 등은 큰 응원을 받았다. 하지만 팬들 수준이 성숙했다는 것과 별개로 국가대표 선수들의 성적에는 물음이 남을 수밖에 없다. 성적만 놓고 보면 1976 몬트리올올림픽 때 19위를 한 이후로 최악이다. 도쿄올림픽 16위라는 성적은 엘리트체육의 미래에 대한 고민거리를 던졌다. 일본은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부진을 겪은 후 정부 차원에서 엘리트체육을 양성했다. 엘리트체육이 부진을 겪을 경우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생각해봐야 한다.” -엘리트체육에서 생활체육으로 중심이 이동한 것처럼 보이는데. 김언호 “공공스포츠 클럽이라는 것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관심을 가지면서 추진된 것인데 전국 시군구에 총 229개가 있다. 그런데 이 229개 가지고 국민 몇프로 정도가 혜택을 보겠나. 손에 꼽을 정도다. 정책적으로 공공스포츠 클럽 활성화를 추진하지만 축구, 농구, 야구 등의 인기 종목 외에 자생력을 갖추기가 쉽지 않다. 봅슬레이, 육상 같은 종목은 애초에 클럽 활성화가 잘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정치권이 엘리트체육과 생활체육 중 하나를 딱 선점해 ‘이거 아니면 틀렸다’는 식의 흑백논리로 간다. 엘리트체육과 생활체육은 함께 키워나가야 한다. 한쪽으로만 몰아가면 문제가 생긴다. 도쿄올림픽을 두고 한 체육회 관계자는 ‘망했다’고 말하더라. 엘리트, 생활체육 모두를 지원할 수 있는 이중구조를 만들어야 했는데 생활체육 쪽으로 기울다 보니 올림픽에서 16등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고민해봐야 하는 사안들이다.” 지난 8월 10일 도쿄올림픽의 의미에 관한 화상 대담회에 참석한 전현직 국가대표와 체육 전문가들 / 화상회의 화면 갈무리 -선수만 좋은 일에 왜 재정지원을 하느냐, 사교육을 통해 각자 알아서 하라는 의견도 있다. 이배영 “인터넷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더라. 야구가 메달 따면 우리가 뭐가 좋냐? 선수들 연금이 다 우리 지갑에서 나간다는 것이다. 안타까운 것이 올림픽을 보며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희망을 느끼고 하는 정서적 가치는 이득으로 잘 인식되지 않는다. 스포츠를 통한 정서적 혜택을 누리지만 이 가치에 대해서는 잘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생활체육과의 연관성도 있다. 엘리트체육은 앞에서 끌어주며 길을 만드는 역할을 한다. 단순히 생활체육만 한다고 했을 때 그 길을 찾기 어렵다. 사실 올림픽 시작 전에 이미 성적이 목표치 이하로 나올 것이라 생각했다. 선수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지원이 줄어들고 있는데 성적이 잘 나올 수 없는 것 아닌가. 올림픽 중계를 보며 우리나라 선수 못하라고 하는 국민은 없다. 금메달 따기를 응원하면서 동시에 메달 지상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어딘가 모순이 있다.” 김동화 “그런 것은 생활체육이 자리 잡은 국가에서 가능하다. 유럽이나 일본의 체조 클럽이 200개 정도 있다면 우리나라는 10개 정도 있는 수준이다. 일본의 경우 협회가 클럽에서 돈을 받아 엘리트를 키우는 게 가능할 정도다. 생활체육이 엘리트를 키워내는 구조는 환경적 조건이 갖춰지지 않으면 힘들다. 이걸 구조적으로 만들려면 20~30년이 걸린다.” 김언호 동국대 체육학과 교수. 2016년 리우올림픽에서 태권도 스포츠과학 총괄을 맡았다. 당시 금메달을 획득한 김소희 선수(왼쪽)와 함께 찍은 사진 / 김언호 제공 -재정지원은 왜 줄어드는 것인가. 개선할 방법이 있나. 김언호 “스포츠를 정치적으로 이용만 하려고 해서 그렇다. 예를 들면, 외국은 기부 문화가 잘돼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기부조차 문제가 되는 분위기다. 누군가 스포츠에 기부하면 정치색을 띠게 된다. 최순실 사태 이후 기업과 스포츠가 연결되는 것이 나쁜짓을 하는 것처럼 돼 버렸다.” 김재현 “스포츠 저변 확대 및 안정적인 엘리트 선수 육성 구조로 가기 위해서는 협회장이 후원을 이끌어낼 능력이 있거나 스포츠마케팅을 통한 차별화된 스폰서십 프로그램 통해 예산을 확보해야 한다. 양궁은 대기업이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구조가 이루어지고 있어 안정적인 예산으로 협회가 계획성 있게 운영될 수 있다. 국민체육진흥공단 등 정부, 지자체, 기업이 함께 비인기 스포츠 종목의 시설을 확충할 필요가 있다. 이때 지역에서 중소기업의 기부 등을 이끌어내 활성화되면 더욱 좋다. 기업은 ROI(투자대비 광고효과)에만 집중하고 있는데, 스포츠단체나 시설 확충을 위해 투자나 기부한 기업을 대상으로 세금혜택 등을 준다든지 했으면 좋겠다. 스포츠 시설들이 지역의 특성에 맞게 만들어지면 엘리트 선수들뿐만 아니라 초중고교 선수들도 이용하고 주민들도 맘껏 이용할 수 있다.” 김동화 “기업의 기부나 스폰서뿐만 아니라 하나 더 중요한 부분을 말하고 싶다. 선수들을 위축시키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그동안 지도자의 성폭력, 배구계의 학교폭력 등 여러 문제가 제기됐다. 그런데 이런 일이 터지면 마치 체육계 전체의 문제처럼 과도하게 부각된다. 이러한 정서적 문제에 대한 개선도 함께 필요하다.” 2020 도쿄올림픽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인교돈 태권도 국가대표 / 연합뉴스 -올림픽에서 격투기 종목들이 약세를 보였는데 엘리트체육의 위기라고 보나. 김주영 “대한민국 투기 종목에는 세계랭킹 1위 선수들이 많이 포진해 있다. 하지만 많은 국제대회 출전에 따른 전략 노출과 부상으로 올림픽에서 계속 좋은 성과를 내기 어려운 구조다. 실제로 유도나 태권도에는 올림픽에 2~3번 이상 출전한 선수들도 있다. 은퇴를 앞둔 나이에 국제대회에 계속 출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임에도 태권도 이대훈 선수나 유도 안바울 선수가 은퇴하면 뒤를 이을 재목이 있을까? 결국 인프라 문제다. 복싱도 과거에는 세계챔피언도 많이 배출하고,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뒀다. 그러다 엘리트체육에서 생활체육으로 가장 먼저 변모했다. 경기도에서는 소년체전 선발전에서 약 60% 이상이 체육관 출신 학생이 선발되고 있다. 생활체육 활성화를 통해 엘리트 인프라를 확충하는 것도 방법이지만, 정부 차원에서 영재를 발굴하고 성장시켜야 메달리스트를 키워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복싱은 지자체가 소속 실업팀을 운영하는 구조인데 전국체육대회와 세계선수권대회가 비슷한 시기에 열리면 세계선수권을 포기하고 전국체전을 우선순위로 준비해야 한다. 이런 구조적 문제들이 해결돼야 한다.” -체조는 어떤가. 새로운 스타가 나오지 않았나. 김동화 “금메달도 나오고 동메달도 나왔다. 실제 내용을 보면 실력도 좋았지만 상당히 운이 따라주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체조도 저변이 상당히 어려운 실정이다. 우리가 신체적 조건에서 외국 선수들에 비해 불리한 것이 사실이다. 그동안은 압도적 훈련량으로 이를 극복해왔다. 그런데 지금은 선수촌에서 훈련량을 함부로 늘릴 수 없다고 한다. 이대로라면 앞으로 성적이 더 좋아질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본다.” 김주영 용인대 무도스포츠학과 교수. 복싱 감독 / 김주영 제공 -현역 선수 입장에서는 어떤가. 반드시 메달을 따야 한다고 생각하나. 인교돈 “우선 격투기 종목 같은 경우 상대에게 중점을 두고 훈련을 해야 하는 종목인데 코로나19 장기화로 아시아권 선수들은 시합을 거의 못 뛰었다. 이번에 태권도는 유럽에서 다수 메달이 나왔다. 유럽은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시합을 강행해 실전 경험을 많이 쌓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담 갖지 말고 뛰라고 하는데 사실, 부담감은 있다. 올림픽이라는 무게가 무겁다. 긴장이 될 수밖에 없고 메달 성적이 저조하다 보니 이다빈 선수의 경우 많은 부담을 느끼면서 뛰었던 것 같다.” -역도도 이번에 어려움을 겪었는데. 이배영 “역도가 약화된 것은 결국 재정적 지원 문제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장미란 선수나 내가 뛰었던 베이징올림픽 때는 국가대표 상비군 제도가 있었다. 그런데 재정 문제로 상비군이 없어졌고 실업팀을 못 가는 선수는 역도를 그만둬야 하는 상황이 됐다. 상비군이 없어지면서 전체 전력 약화로 이어졌다. 이제 역도는 숨은 진주 찾기를 기대해야 하는 상황이다. 어쩌다 숨은 진주가 나와 메달을 따주는 것이 아니라면 베이징올림픽 때처럼 시스템으로 인해 여러 선수가 메달을 따는 상황은 보기 힘들지 않나 생각한다.” 김재현 한국체육지도자연맹 이사장 / 김재현 제공 -엘리트체육에서 메달을 따고 붐이 일어도 한 6개월 지나면 사그라들지 않았나. 그래서 생활체육으로 가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김언호 “우리나라에서 엘리트 체육이 붐을 만드는 것은 축구, 농구, 야구 정도다. 인기도 있고, 프로 스포츠도 있으니까. 나머지는 엘리트체육이 붐을 만든다고까지 보기는 어렵다. 사실 엘리트체육은 생활체육에 ‘경쟁’을 더한 것이다. 이 경쟁을 포기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엘리트체육 나름대로 장점이 있고, 생활체육도 장점이 있다. 같이 개발하는 것이 맞고 한쪽으로 치우쳐서는 안 된다. 생활체육이 보편적이고 비용도 덜 든다고 하는데 자생을 못 하는 종목들은 어떡할 것인가. 예를 들어, 카바디 같은 종목들이다. 많은 종목이 자생력이 없는 상황이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김동화 충남대 체육학과 교수 / 경향신문 자료사진 -자칫 인기 스포츠 몇개를 제외하면 사라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정책에 어떤 문제가 있다고 보나. 이배영 “학습권 부분에 대해 한마디하고 싶다. 정책적으로 학교수업에 대한 중요성이 커지다 보니 이도 저도 아닌 상황이 만들어진다. 운동도 학습이다. 공부할 사람은 공부하게 하고, 운동하고 싶은 사람은 운동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학습권을 지켜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지식이 많다면 좋겠지만 그것 때문에 당장 필요하고 하고 싶은 것을 못 하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운동 학습권은 지켜지고 있는 것인지 물어보지 않을 수 없다. 탁구의 신유빈 선수를 보라. 운동을 제한 없이 하기 위해 학교를 포기하지 않나. 이제 운동에 뜻이 있는 학생 선수들은 학교를 포기하는 상황에 내몰릴 것이다. 정부 정책이 누군가에게 불리한 상황을 만들 수 있다.” 김주영 “최근 몇 년간 초등학생 장래희망 순위에 운동선수가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자 교육부가 이 친구들 꿈을 지원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실제로는 학생이 시합을 다녀오니 팀이 해체됐거나 본인의 학교성적과 출결사항 문제로 시합에 출전하지 못하는 사례가 발생한다. 또 학습권이 침해된다며 주중에는 공부하고, 주말리그를 만들라고 한다. 결국, 학생선수는 멀티가 돼야 한다는 말이다. 탁구신동 신유빈 사례는 우리나라에서 운동선수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운동에만 집중할 수 있게 검정고시를 통과하는 것이 답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선례가 될 것이다. 우리나라 정책은 현실은 외면한 채 선진국의 외형만 따라가려고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2020 도쿄올림픽 높이뛰기 국가대표 우상혁 선수(위), 다이빙 국가대표 우하람 선수 / 연합뉴스 -엘리트 체육에서 생활체육으로 넘어가는 과도기라서 그런 게 아닐까. 김재현 “우리나라는 과거에는 스포츠로 국위선양을 했고, 2002 한일월드컵 이후로는 스포츠를 산업적 관점에서 접근하기 시작했다. 기업이 광고 이상의 도구로 스포츠를 활용할 가치가 있다고 보고 투자를 했는데 지난 정부 문제와 대기업이 엮이면서 스포츠에 대한 후원은 위축되고 녹록지 않은 상황이 됐다. 대한체육회 예산이 약 4000억원이다. 많은 예산 같지만 엘리트 선수 발굴 및 육성, 생활체육 활성화 등 스포츠의 다양한 현장에 예산이 지원된다고 했을 때 아직 부족하다. 교육부 전체 예산 중 초중고 체육 예산으로 배정된 것은 0.04%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스포츠 영재를 발견하겠다는 것인가. 문화체육관광부, 교육부, 보건복지부, 대한체육회가 함께 국민의 건강과 스포츠발전을 위해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머리를 맞대고 방안을 찾아야 한다. 지금은 과도기라기보다 ‘혁신과 변화’를 절실하게 만들어야 할 시기다.” -앞으로 올림픽은 어떻게 바뀔 것으로 보나. 김동화 “2024 파리올림픽에서는 브레이크 댄스가 종목으로 들어간다고 한다. 잘 생각해봐야 하는 것이 정식 종목인 스케이트보드는 사교육도 가능하다. 그런데 전통 스포츠는 사교육만으로 어려운 것이 많다. 재미 문제도 있다. 태권도 같은 경우 너무 재미가 없게 운영됐다. 유도도 대부분 연장전인 골든 스코어로 갔다. 이러다 전통 스포츠들은 다 퇴출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렇다면, 이게 바람직한가. 전통 스포츠를 지키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도 한 번쯤 생각해봤으면 한다. 이번에 체조 종목 중 트램펄린을 해설해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규정도 간단하고 1분 안에 경기가 끝나더라. 점수도 바로 나오고. IOC에서 돈을 벌기 위해서는 재미없는 종목들을 버리고 이런 흥미위주 종목을 더욱 챙기게 될 것이다. 이대로라면 전통 종목들의 장래는 어둡다.” -종목별 향후 대응도 궁금하다. 역도는 어떻게 해야 하나. 이배영 “상비군 제도가 절실하다. 전국체전에 대학부가 없는 상황이다. 역도는 하루아침에 잘하거나 상대방이 못한다고 이기는 종목이 아니다. 본인 기량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오랜 기간 훈련해야 한다. 선수를 육성할 환경을 만들어주고. 상비군 시스템을 도입해 중간다리를 놔줘야 한다.” -복싱은 어떤가. 김주영 “무엇보다 선수 인프라가 확충돼야 한다. 그 후에 투기 종목은 학연, 지연 등에 얽매이는 관행을 끊어야 한다. 특정학교 출신이 협회와 심판부를 장악하는 현상이 반복된다면 진짜 유능한 선수가 국가대표를 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과거 올림픽 메달리스트보다 유튜브나 SNS 등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흡수하는 지금 선수들이 기량적인 면에서는 더 우수하다고 생각한다. 협회의 투명한 선수선발과 정상적인 지원만 있다면 충분히 올림픽 메달도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선수가 외국 선수들에 비해 체격이 열악한데 이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기술강화도 필요하지만, 강인한 훈련을 통한 정신력이 무엇보다 강조돼야 한다. 유도경기처럼 연장전까지 가는 상황은 스포츠 과학만으로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다.” -체조는 성과를 계속 이어가야 하는데. 김동화 “파리올림픽에서도 좋은 성적을 내기 쉽지 않을 수 있다. 계속 메달을 따기 위해서는 장기 계획을 좀 세웠으면 한다. 선투자 후결과라는 생각을 가지고 계획을 잘 짜야 한다. 현재 엘리트체육 이미지가 너무 부정적이다. 이를 긍정적으로 전환해 인프라 확대를 이끌어야 한다. 또 아무리 좋은 인재가 있어도 이에 걸맞은 좋은 지도자가 없으면 훌륭한 선수를 키워내지 못한다. 지도자들 사기가 바닥이다. 이를 개선할 방법도 고려해야 한다.” -태권도는 어떤가. 김언호 “태권도는 10명 정도의 코칭스태프로 구성된다. 각자 전담하는 것을 좀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 전력분석전문가나 체력만 담당하는 코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10명의 코치가 있는데 실질적으로 운동 가르치는 사람은 2~3명밖에 안 되고 나머지는 감독과 친분 있는 사람으로 구성되면 안 된다.” -현역선수 입장에서는 어떤가. 인교돈 “저희가 예상치 못한 선수들과 경기를 하게 됐을 때 바로 대처할 수 있게 전력분석이 강화됐으면 좋겠다. 올림픽에서 분석한 상대는 못 올라오고 전혀 모르는 선수들이 올라왔다. 그런 부분에서 변수가 생겼다.”
- 표지 이야기
- 삐걱대는 올림픽이 떠들썩한 선거보다 나은 이유(2021. 08. 13 14:58)
- 2021. 08. 13 14:58 스포츠
- ㆍ성장·노력·성취에 대한 자신감, 과거 ‘승리 지상주의’ 자리 대신해 도쿄 출장을 1주일 앞두고 사내 동료들이 물었다. “올림픽 진짜 하나?” 코로나19 델타 변이 바이러스의 위협이 커지고, 확진자 수가 크게 늘기 시작하던 7월 중순이었다. 일본 내에서도 개최 반대 여론이 높았다. 개막 직전까지도 일본 국민의 절반 이상이 개최를 반대했다. 토요타그룹은 올림픽 후원을 취소했다. 7월 23일 개회식 때 텅 빈 신국립경기장 밖에는 수많은 사람이 모여 올림픽 개최 반대 시위를 열었다. 2020 도쿄올림픽 폐막식 / 사진공동취재단 올림픽은 강행됐다. 약간은 정치적 목적이었고, 상당 부분 경제적 이유였다. 스가 요시히데 내각의 가을 총선 정권 연장의 이유와 함께 IOC 수익의 70%를 차지하는 중계권료가 결정적이었다. NBC가 IOC에 지급하는 도쿄올림픽 중계권료는 14억5000만달러(약 1조6000억원)나 됐다. 목표 미달? 재미는 충분 한국 대표팀도 올림픽에 출전했다. 코로나19 때문에 국제대회에 나가지 못했고, 국내에서 훈련도 여의치 않았다. 기대와 우려가 함께했다. 과거 올림픽은 우리 사회가 거친 저돌적 산업화를 빼다 박았다. 메달 생산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전략 종목’을 집중 육성해 순위를 높이는 방식을 활용했다. 정부 차원의 ‘메달 목표’는 사라졌다. 대한체육회가 대신 메달 목표로 ‘금메달 7개, 메달 순위 10위 이내’를 걸었다. 다분히 관행적이다. 국가기관이 ‘올림픽 생산성 목표’를 내걸고 이를 맞추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시대 정신과는 맞지 않는다. 대회 초반 대표팀의 성적이 삐걱댔다. 옛날로 치자면 ‘생산성 목표 미달성’이었다. 선수단의 한 고위 임원은 “속이 탄다”고 했다. 선수들은 “경기 감각, 실전 감각이 좀처럼 올라오지 않았다”고 아쉬워했다. 이유는 자명했다. 코로나19로 국내에 갇혔고, 스포츠 저변이 부족했다. 유명 게임 ‘스타 크래프트’에 비유하자면 열심히 ‘싱글 모드’만 플레이했기 때문이다. 전 세계 유저들이 모여 겨루는 ‘래더’에서 경험을 쌓고, 레벨을 높여야 했는데, 싱글 모드에서 기술만 유지했으니, 막상 올림픽에서 ‘실전’에 들어갔을 때 상대 전략에 대한 대응이 이뤄지지 않았다. 새벽에 산을 뛰어오르는 ‘강철 체력’으로 메달을 따는 시대는 지났다. ‘전략 종목 집중 육성’이라는 생산시스템은 재능 있는 몇명에게 자원을 집중하는 방식이다. 잘하는 몇명이 나올 수 있지만 해당 종목의 저변은 없다시피 하다. 코로나19에 따른 고립은 ‘렙업’의 기회를 사라지게 했다. 양궁만 펄펄 날았다. 금메달 5개 중 4개를 땄다. 양궁은 달랐냐고? 달랐다. 양궁은 잘 알려져 있듯 올림픽 본선보다 국가대표 선발전이 더 어렵다. 전 세계에서 양궁 제일 잘하는 사람들이 국내에 모여 있으니, ‘실전’과 ‘렙업’의 기회가 널렸다. 양궁 저변이 엷은 미국의 베테랑 브래디 엘리슨은 실전 감각 유지에 실패하며 메달을 한개도 따지 못한 채 돌아갔다. 개최 전에 반대가 심했고, 대표팀 성적도 ‘목표’에 못 미친 것 같은데 올림픽은 재미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올림픽을 즐기는 방식이 달라졌다. 옛날의 올림픽이 “고국에 계신 동포 여러분, 기뻐하십시오. 금메달입니다”류의 ‘국뽕’에 머물렀다면 이번 올림픽은 선수 개인의 성취와 이를 이뤄가는 방식에 대한 공감이 더 큰 의미를 지녔다. 그동안의 올림픽은 목표가 외부에서 주어졌다. 전체 선수단의 ‘생산 목표’가 정해지고, 이를 위해 각 하부조직이 그 목표에 맞춰 움직였다. 누구는 금메달을 따야 했고, 누군가는 동메달에 승부를 걸어야 했다. A종목은 금 몇개, 은 몇개를 따고, B종목은 은 몇개, 동 몇개를 따야 했다. 목표에 미달하면 죄송하고, 반성하고, 뼈를 깎는 훈련으로, 다음 대회 성장하겠다는 각오를 보여야 했다. 이대훈이 7월 25일 일본 지바 마쿠하리 메세 A홀 경기장에서 열린 68kg이하급 남자태권도 동메달 결정전에서 패한 후 상대선수에게 인사하고 있다. / 사진 공동취재단 2021년에 열린 2020 도쿄올림픽에선, 그런 목표가 불편해졌다. 과거 올림픽들의 대한민국은 ‘후진국’이거나 ‘개발도상국’이었지만 이번 올림픽은 ‘선진국’ 자격으로 참가한다. 어른들에게는 미국이나 유럽, 일본이 ‘기를 쓰고 넘어야 할 강국’이었지만 지금 주축인 젊은 선수들에게 그들은 그냥 ‘다른 나라’일 뿐이다. 허구연 MBC 해설위원(70)에게 일본야구는 “어릴 때부터 아무리해도 이기기 힘든 상대”의 이미지가 남아 있지만, 이정후(23), 강백호(22)에게 일본은 “그냥 야구하는 나라, 우리가 자주 이긴 상대”다. 그래서 안산(21)과 김제덕(17)은 신선했다. 어른들은 ‘저렇게 큰 무대에서 저렇게 센 나라들과 붙는데 어찌 저리 떨지 않을까’라고 생각하지만, 그들이 겪은 시대의 공기가 어른들과 다르다. 그들에게 한국은 이미 선진국에 가까웠고, 괜히 다른 나라에 주눅 들고 쫄 이유가 없다. 안산은 양궁 여자개인 4강전과 결승에서 모두 슛오프 ‘한발 싸움’에서 이겼다. 안산은 슛오프 때 혼잣말로 “쫄지 말고 대충 쏴”라고 말했다며 웃었다. 김제덕의 눈치 보지 않는 ‘빠이팅’ 역시 뉴제너레이션이 보여주는 자신감의 상징이었다. ‘메달 못 따면 끝’은 이제 끝 2020 도쿄올림픽이 보여준 것은 새 세대의 자신감만이 아니었다. 선수들의 치열한 경쟁과 성취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우리 사회가 잠시 잊고 있던 여러 가치를 되새기게 했다. 수영의 황선우(18)는 연거푸 신기록을 세우며 세계 수영계를 놀라게 했다. 남자 자유형 200m 결승에서는 150m 구간까지 1위를 달렸다. 오버페이스를 하는 바람에 마지막 50m에서 처져 7위에 머물렀다. 예전 같으면 ‘전략 실수’라는 자책과 비난이 나왔겠지만, 황선우는 “우와 첫 100m를 49초대에 들어왔다고요? 그걸로 만족할게요”라고 환하게 웃었다. 여서정(19)은 체조 여자 도마에서 동메달을 땄다. 25년 전 애틀랜타올림픽 때 아빠 여홍철은 은메달을 따고도 표정이 굳었지만 여서정은 아버지와 비슷한 실수를 해 동메달을 따고도 “메달을 따 너무 만족스럽다”며 환하게 웃었다. 아버지 여홍철 역시 자신의 은메달에 실망했지만 딸의 동메달에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우상혁(25)은 높이뛰기에서 2m35의 한국신기록을 세우며 4위에 올랐다. 한국 올림픽 육상 최고 성적이라는 ‘숫자’보다 ‘할 수 있다’는 에너지와 “파리올림픽은 금메달이 목표”라는 자신감이 울림을 줬다. ‘메달 못 따면 끝’이라는 비아냥은 더 이상 올림픽을 보는 태도가 아니다. 배드민턴 여자복식 동메달 결정전에서 대한민국 이소희·신승찬과 김소영·공희용의 경기 / 연합뉴스 태권도 간판스타 이대훈은 대회를 4위로 마쳤다. 동메달 결정전에서 자오솨이에게 15-17로 패한 뒤 엄지를 들어보였다. 여자 67㎏의 이다빈 역시 결승전에서 세르비아의 밀리차 만디치에게 패한 뒤 ‘엄지척’을 했다. 이다빈은 “올림픽이라는 큰 무대 위한 노력 잘 알기 때문에 그 선수의 승리 축하해 주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며 “그 선수보다 부족한 점이 있으니까 은메달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웃었다. 남자유도 100㎏급 결승에서 패한 조구함 역시 상대 울프 아론의 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조구함은 “대표팀 10년 넘게 하면서 오늘의 울프가 가장 강한 상대였다. 패배를 인정한다”면서 “대신 울프가 파리올림픽 도전을 결정하게 해줬다”며 웃었다. 우리 사회는 승리에 지나치게 관대하고, 패배에 지나치게 인색하다. 이토록 ‘멋진 패배’를 어디서 또 볼 수 있을까. 그래도 올림픽은 계속되면 좋겠다 배드민턴 여자복식 동메달 결정전에서 김소영·공희용이 이소희·신승찬을 이겼다. 오랜 대표생활 동안 친자매보다 더 친한 이들의 대결이었다. 당일 아침에도 드라마를 함께 보며 밥을 먹었다. 승패가 갈린 뒤 네트를 넘어 함께 끌어안았다. 김소영·공희용은 “이겨서 미안했다”고 했고, 이소희·신승찬은 “이겼는데, 맘껏 좋아하지 못하는 것 같아 더 미안했다”고 했다. 김연경을 중심으로 한 여자배구대표팀은 ‘똘똘 뭉치면 할 수 없는 게 없다’는 걸 증명했다. 세계랭킹 11위였던 대표팀은 계속된 지독한 승부를 결국 이겨내며 4강에 올랐다. 작전 시간 때 김연경이 “해보자, 해보자, 해보자, 해보자, 해보자, 후회하지 말고”라고 외친 장면은 보는 이들을 울컥하게 했다. 다 함께, 마지막까지 쏟아부어, 뭔가를 해본 게 언제였을까. 후회를 남기지 않도록 해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나 혼자 말고, 누군가와 함께 온 힘을 쏟아부어 이룬 성과는 어떤 기분일까. 2020 도쿄올림픽은 반대와 무관심 속에 시작했지만, 금세 우리 사회 전체의 관심을 끌어모았다. ‘빠이팅’이 화제가 됐고, 새로운 세대의 자신감이 드러났다. 그 자신감은 함부로 상대를 무시하면 안 된다는 ‘공정감’으로 이어졌다. 대회 초반 올림픽 중계방송이 보여준 무감각은 비난의 대상이 됐다. 상대를 낮춤으로써 자존감을 얻으려는 시도는 과거의 자격지심일 뿐이다. 과거 올림픽의 승리 지상주의는 이제 성장과 노력, 성취에 대한 자신감 등이 자리를 대신했다. 이번 올림픽을 통해 선수들은 너를 이기는 것이 승리가 아니라 나를 이기는 것이 더 중요한 승리라는 것을 보여줬다. TV와 온라인을 통해 쉴새없이 경기가 중계되며 올림픽의 가치가 순식간에 온 나라에 퍼졌다. 어쩌면 금세 잊힐지도 모르지만, 그 가치들이 다시 한 번 환기되고, 스쳐지나가는 것만으로 우리 사회가 조금 나아질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하게 된다. 올림픽은 위기다. 돈도 많이 들고, 정치적·경제적 의도에 휘둘리기 일쑤다. 올림픽을 하겠다는 나라도 거의 없다. 그래도 이번 올림픽이 우리 사회에 환기시킨 여러 가치를 고려하면 올림픽은 계속되면 좋겠다. 편집을 통해 강요된 감동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날것이 보여주는 감동, 효율과 승리에 매몰돼 잊고 있던 가치가 살아나는 현장. 그러니까 자존감을 높여주는 올림픽이 자괴감만 쌓이게 하는 선거보다는 낫다.
- 표지 이야기
- ‘누구를 위한 축제인가’ 도쿄올림픽이 던진 물음표(2021. 08. 13 14:58)
- 2021. 08. 13 14:58 스포츠
- ㆍ개최비용 크게 늘었지만 경제적 효과 거의 없어… 향후 개최지 선정 난항 우려도 도쿄올림픽이 남긴 유산은 무엇일까. 대규모 스포츠 이벤트 개최 효과에 대한 진지한 물음표가 아닐까.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이 지난 7월 23일 관중 없이 일본 도쿄 신주쿠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개막식에서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있다. / 사진 공동취재단 일본이 올림픽 개최에 쏟아부은 돈은 400억달러(46조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당초 일본이 예상한 160억달러(18조4000억원)보다 두 배 이상 불어난 수치다. 일본이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개최 의사를 밝히면서 제시한 비용에 포함되지 않은 경기장, 도로, 올림픽 빌리지, 미디어 숙소 건설비용이 막대했다. 그외 일본은 300개 병상을 보유한 병원 건립비, 38대 비행기 항공료, 접대비 등 추가로 큰돈을 썼다. 코로나19로 인해 올림픽이 연기되면서 발생한 비용들이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2016년 리우올림픽은 당초 예상한 140억달러보다 많은 200억달러를 썼고,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에는 무려 500억달러가 소요됐다. 2012년 런던올림픽도 당초 50억달러를 쓰려고 했지만, 실제 180억달러를 쏟아부었다. 뉴욕타임스는 “도쿄도 올림픽 개최로 엄청난 돈을 불태워버렸다”고 적었다. 영국 옥스퍼드대학 연구에 따르면 올림픽 개최비용은 1960년 이후 매 대회 평균 172%가 늘었는데 도쿄올림픽 개최비용은 최대 244% 증가할 수도 있다. 국민도 기업도 외면한 올림픽 일본 정부는 도요타 등 국내 기업으로부터 올림픽 후원금 33억달러를 받았다. 그런데 다수 기업이 팬이 없는 올림픽을 치르면서 손해를 봤다고 공개적으로 항의하고 있다. IOC 최상위 15개 스폰서 중 하나인 도요타는 다수 국민이 올림픽 개최를 반대하고 있어 올림픽 기간 중 TV 광고를 하지 않았다. 올림픽 광고가 자칫 역풍을 불러올 수도 있다는 걱정 때문이다. NEC, 파나소닉, 일본생명, 메이지 홀딩스, 아사히 등도 비슷한 입장이다. 이들 모두 쓴 돈에 비하면 홍보 효과는 미비했다. 결국 도쿄올림픽은 일본 주요 기업들의 부채가 된 셈이다.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박성배 교수는 “글로벌 후원 기업들도 비용 대비 효과가 적다며 IOC를 상대로 후원비 반환 소송을 제기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일본이 얻은 건 무엇일까. 금전적으로는 얻은 게 거의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심하게 말하면, 일본이 거둔 성과라고는 여러 종목에서 금메달을 몇개 더 딴 것,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에 재생한 도시를 보여준 것 정도다. 앤드루 짐바리스트 스미스대학 교수는 “일본 정부는 올림픽 개최로 인해 최소 350억달러를 손해봤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독일 스포츠경제학자 볼프강 마에니그는 “최근 30년 동안 열린 올림픽은 수입, 고용, 관광 등에서 괄목할 만한 긍정적인 효과를 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금전적으로 이익을 본 곳은 건설사일 것이다. 도쿄는 경기장 8곳을 새로 지었다. 그중 가장 비싼 비용으로 지은 곳은 국립경기장으로 14억달러가 소요됐다. 수영장을 짓는 데도 5억2000만달러가 들어갔다. 일본 경제 규모는 5조달러에 이른다. 올림픽 비용은 국가 경제 규모에 비하면 다소 작은 게 사실이다. 일본 여론은 올림픽 개최를 반대하는 쪽이었다. 올림픽 개최 시점에서 일본 국민 중 코로나19 백신을 맞은 비율은 22%에 머물렀다. 일본은 올림픽 개최의향서에 “일본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과거 오랜 경기 침체를 극복했음을 세계에 보여주겠다”고 적었다. 이런 목표는 지금까지는 희망 고문에 그친 분위기다. 향후 정치적 압박이 상당하리라 예상된다. 안느 이달고 파리시장이 8월 8일 일본 도쿄 신주쿠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폐막식에서 오륜기를 흔들고 있다. / 사진 공동취재단 다음 올림픽은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이다. 중국도 엄청난 돈을 쓰고 있다. 동계종목이 크게 인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고비사막 근처에 경기장을 짓고 수도관도 매설했다. 인공눈을 만들기 위한 작업도 물론 한다. 뉴욕타임스는 “동계종목이 크게 인기가 없는 중국 북부에 스키를 활성화하기 위해 엄청난 돈을 쓴다는 것은 극도로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적었다. 도쿄올림픽 최대 승자는 이번에도 IOC다. IOC의 주요수입은 방송중계권이다. 방송중계권이 전체 수입 중 약 75%를 차지한다. 대략 30억~40억달러 선이다. 다음 수입원은 스폰서 수입으로 18% 정도다. IOC는 중계권 수입을 얻지 못하면 존립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다. 도쿄올림픽도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강행하는 쪽으로 결론 내린 것도 생존을 위한 경제 논리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올림픽 주관 방송사인 미국 NBC는 저조한 흥행을 경험했다. NBC 계열사를 운영하는 NBC유니버설은 10억달러가 넘는 중계권료를 지불했다. 그러나 대회를 시청하는 미국인은 하루평균 1680만명에 머물렀다. NBC가 하계올림픽을 중계한 1988년 이후 가장 적은 수치다. 올림픽 유치 경쟁 옛말 될 수도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이 도쿄올림픽 폐막 직전 많은 걸 긍정적으로 해석했다. 바흐 위원장은 “전 세계 수십억명이 이번 대회의 성공을 훌륭한 희망의 메시지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자평했다. 바흐 위원장은 또 “일본 국민 90%가 TV 등으로 올림픽 경기를 봤다는 데이터가 나왔다”면서 “일본 사람들이 올림픽을 지지하고 받아들였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바흐 위원장은 코로나19 확산 위험을 키울 수 있는 올림픽을 강행한 역사적 의의에 대해선 “지금은 판단하고 싶지 않다”며 “미래세대가 어떻게 판단할지에 대한 문제”라고 즉답을 피했다. 바흐 위원장은 무관중 개최로 입장권 수입 대부분을 잃은 일본 측에 IOC가 추가로 재정을 지원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앞으로 올림픽 개최를 원하는 도시가 나올까. 최근 4~5차례 올림픽 유치과정에서 다수 유럽 도시는 올림픽 개최를 중도 포기했다. 지역민이 투표를 통해 유치를 거부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기 때문이다. 지역민은 최소한 균형이 잡힌 손익계산서를 원했지만 그게 불가능했다. 다음 올림픽 개최지는 파리(2024년),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2026년), LA(2028년), 브리즈번(2032년)으로 결정됐다. IOC는 앞으로도 올림픽이 여러 대륙에서 열려야 한다는 보편성을 강조하면서 전 세계 도시들을 상대로 유치전을 이어갈 것이다. 올림픽 개최를 통해 국가 존재감을 대외적으로 알리고 싶은 곳, 동시에 건설업 부흥으로 국가 경제에 불을 지피고 싶은 곳은 여전히 올림픽 개최를 원할 것으로 보인다. 향후 올림픽 개최지 선정과정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없다면, 얼마 되지 않아 IOC는 개최지를 찾지 못해 구걸하는 처지에 몰릴 수도 있다.
- 표지 이야기
- 다양성 품은 올림픽, 모두를 품는 계기되길(2021. 08. 13 14:58)
- 2021. 08. 13 14:58 스포츠
- ㆍ비판적 성찰 통해 국내에 실재하는 인종차별에 침묵 말아야 ‘다양성과 조화’를 표방한 2020 도쿄올림픽 중 비장애인을 위한 올림픽이 지난 8월 8일 막을 내렸다. 개막식에서 거의 모든 참가팀이 ‘남녀 공동 기수’를 앞세웠고 무슬림, 원주민, 성소수자 등 다양한 사람이 각 국가를 대표해 등장했다. 육상 중장거리 2관왕을 차지해 ‘신인류’라 불리는 난민선수, 정신건강을 이유로 결선경기를 포기한 체조선수, X자 표시를 하며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한 메시지를 전한 투포환선수, 올림픽과 패럴림픽을 동시에 참가하며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가 무엇인지 묻는 탁구선수까지.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최초 선수들의 등장은 올림픽이 상징하는 시대정신과 영웅상이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도쿄올림픽 남자마라톤 경기에서 뛰고 있는 오주한 선수의 가슴에 ‘KOREA’가 선명하다. /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혼혈’ 선수는 구분짓기 불과 수년 전만 해도 승리 제일주의가 국가의 위상을 대표했다. 금메달을 획득하지 못한 선수들은 질책을 받았다. 선수들은 세계에서 2·3위를 하고도 서러운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한국 선수들 역시 ‘4위’에 그쳤어도 최선을 다해 기록에 도전하는 모습을 자랑스러워했다. 국민도 그 모습에 감동의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거기서 더 나아가 자세히 들여다보면 포용사회로 가기 위해 우리가 살펴야 할 부분이 있다. 남자 마라톤에서 부상으로 경기를 포기한 오주한 선수에 대해 “찬물을 끼얹네”라는 한 방송사의 해설이 한 예다. 마라토너 오주한 선수는 케냐 출신 한국인이다. 그의 고향은 케냐 북서부 투르카나다. 케냐에서도 비주류 소수민족 출신이었던 그는 염소를 키우며 자식을 키웠던 홀어머니를 생각하며 달렸다. 그의 재능을 알아본 오창석 감독은 그가 마음껏 뛸 수 있도록 지도하고, 귀화를 도왔지만, 올림픽 두달 전에 세상을 떠났다. 아마 오주한 선수는 영적인 아버지와 고국의 어머니를 생각하며 혼신의 힘을 다했을 것이다. 주한(走韓), ‘오직 한국을 위해 달린다’는 그의 이름에는 33년의 보이지 않는 삶의 궤적이 담겨 있다. 그가 올림픽에서 메달을 땄다면, ‘이름’에 환호했을 것이다. 선민의식으로 무장한 ‘기특하다’는 시선과 과잉 자부심의 해설을 듣게 됐을지도 모른다. 만약 메달 가능성이 있는 한국인 국내 마라톤 선수가 있었다면 우리 사회가 오주한 선수를 주목했을까? 이렇게 급하게 특별귀화를 허락했을까? 최영석 감독은 이번 도쿄올림픽에서 태국에 태권도 금메달을 안겼다. 그는 태국에서 20년간 제자를 양성하면서 스포츠 외교에 힘썼다. 우리 언론은 한국이 태권도 종주국으로 금메달을 따야 하는데, 외국에 한국인 지도자들이 위협이 된다며 ‘부메랑 효과’라는 말을 썼다. 태국으로 귀화를 신청한 최영석 감독이 대표적이다. 만약 이탈리아 출신인 라바리니 여자 배구 대표팀 감독이 20년간 한국 배구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고 귀화한다면 우리 사회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럭비국가대표 안드레진 코퀴야드(한국명 김진) / 김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캡처 남자 럭비 대표팀에 안드레진 코퀴야드 선수가 있다. 그는 17세 이하 미국 대표팀에서 활약하다가 한국럭비협회의 요청을 받고 귀화해 한국 대표팀에 합류했다. 그를 백인 아버지를 둔 ‘혼혈’ 선수라고 부른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국립국어원은 ‘혼혈아’라는 단어가 사람을 인격적 개체로 바라보지 않고, 인종 간에 이루어진 결합이라 여기는, 특정 인종을 비하하거나 차별하는 표현이라 했다. 어떨 땐 혼혈, 어떨 땐 다문화, 어떨 땐 한국계라 하고 있다. 백인 혼혈은 예능 프로그램에, 동남아 혼혈은 다큐 프로그램에서 등장하는 식이다. 불쌍하고 도와줄 수 있어야 ‘다문화’라는 식으로 구분 짓는 인식이다. 혼혈이라는 말을 대체하기 위해 ‘다문화’라는 용어가 등장했지만 구분짓기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제2의 제3의 용어를 찾게 될지도 모른다. 조건부 함께를 외치지 않길 통계청은 귀화한 내국인, 이민자 2세, 외국인을 포함한 이주배경인구가 2020년 222만명(4.3%)에서 2040년 352만명(6.9%)까지 증가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2019 법무부 자료를 보면 유엔 193개국 중 60% 이상의 세계(110개국, 20만명)가 대한민국 안에 함께 공존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출신 이민자가 체르노빌 원전사진 한 장으로 우크라이나가 대표됐을 때의 심정과 한일 양국을 응원하는 다문화가정의 자녀가 한일전을 관람할 때의 심정도 함께 고려할 수는 없는 걸까? 테니스 선수 오사카 나오미는 일본 국적을 선택했지만, 흑인으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긍정한다. 일본 역시 인종차별 문제가 심각해 일본 내 인종차별 문제를 부각하는 나이키 광고의 시작이 됐고, 재일 한국인들에 대한 차별을 광고가 다뤘을 때 많은 한국인은 일본의 인종차별에 목소리를 높였다. 이러한 세계를 향한 비판적 성찰을 이제 우리에게 비추어 국내에 실재하고 있는 인종차별에도 침묵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함께’라고 했을 때, 어디까지 누구와 함께할 것인지, 조건부 ‘함께’를 외치는 우리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다양성’이 존중받는 시대상이 반영되고 있는 이번 올림픽 이후에는 누군가가 능력으로 자신의 존재를 입증하지 않더라도 일상에서 함께 살아가는 ‘영웅’으로 다양한 사람들을 포용하는 사회로 나아갈 것을 꿈꿔본다.
- 표지 이야기
이전1
2
3
4
5
6
7
8
9
다음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