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옵션
닫기
범위
전체
제목
본문
기자명
연재명
이슈명
태그
기간
전체
최근 1일
최근 1주
최근 1개월
최근 1년
직접입력
~
정렬
정확도순
최신순
오래된순

주간경향(총 26 건 검색)

우크라이나에서 만난 ‘전쟁의 얼굴’(2023. 03. 17 14:25)
2023. 03. 17 14:25 국제
ㆍ박은하 유럽 순회특파원, 러시아 침공 1년 맞아 현지를 가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한 지 1년이 넘었다. 우크라이나의 평범했던 시민들은 이 전쟁을 어떻게 겪어내고 있을까. 지난 2월 16일부터 열흘간 우크라이나에 머물며 30명의 시민을 인터뷰한 박은하 유럽 순회특파원이 현지취재 후기를 보내왔다. <편집자 주>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 키이우로 진격하려는 러시아군과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이르핀에서 주민들이 파괴된 차량들이 쌓여 있는 공터 앞을 무심히 지나가고 있다. / 이르핀 | KISH KIM·다큐앤드뉴스코리아 보채지 않는 아이들 지난 2월 15일 오후 8시 폴란드 바르샤바 서부 터미널에서 우크라이나 키이우행 버스에 올랐다. 개전 1주년을 앞두고 러시아가 국경 근처로 전투기를 끌어모으고 있다거나 올봄 대공습으로 전환할 것이라는 뉴스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불안해졌다. 키이우까지 18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휴게소에 들르겠지만 혹시나 낙오될 수도 있으니 내리지 않을 생각이었다. 화장실에 안 가려고 물도 몇 모금만 조금씩 나눠 마셨다. 하늘을 찢는 전투기 소리와 하늘에서 떨어지는 불덩어리가 내 눈앞에서 펼쳐질 수도 있을까. 버스 안이 고요해 더욱 으스스했다. 그러다 버스 안이 고요하다는 사실에 놀랐다. 분명히 그 버스 안에는 아이들도 타고 있었다. 보채는 소리가 조금도 나지 않았다. 약 4시간 만에 폴란드와 우크라이나 국경에 닿았다. 검문소에서 여권 검사를 받으면서 잠시 화장실에 들렀다. 대여섯 살 남짓한 아이는 검문소 화장실에서야 짜증을 냈다. 날이 밝고 정오가 될 무렵 버스는 키이우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도시인 지토미르에 도착했다. 어느 엄마와 열 살 정도로 보이는 딸이 버스에서 내렸다. 터미널에서 기다리던 군복 입은 아버지는 딸을 품에 쏙 넣고 껴안더니 한동안 놓아주지 않았다. 고속버스에서도 보채지 않는 아이. 터미널에서 서로를 껴안고 놓지 않는 가족들. 향후 이어진 9박10일의 우크라이나 취재에서 가장 먼저 본 전쟁의 얼굴이었다. 시내 호텔에 여장을 풀고 바라본 수도 키이우는 겉으로는 평온했다. 매일 공습경보가 울렸지만, 실제 공습이 이뤄지는지는 알 수 없었다. 사람들은 공습경보 와중에도 출퇴근하고 일을 했다. 하지만 ‘버스에서 조금도 보채지 않는 아이’처럼 전쟁의 얼굴은 평온한 일상 속에서 기습적으로 만나게 된다는 사실을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알게 됐다.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에서 군복무를 하던 중 두 다리를 잃은 올레크 시모로스가 키이우 오베리흐병원에서 전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지방정부의 인권 정책을 모니터링하는 변호사였던 그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2022년 2월 24일 자원 입대했다. / 키이우| KISH KIM·다큐앤드뉴스코리아 “탱크는 무서웠으나 우린 도망가지 않았다” 상이군인 올레크 시모로스(25)는 키이우에서 가장 먼저 만난 사람이었다. 지난 2월 17일 키이우의 한 병원을 찾았을 때 그는 이불을 말끔하게 개어놓고 정자세로 앉아 취재팀을 기다리고 있었다. 단정한 얼굴과 곧은 허리 아래로 한 뼘 정도만 남기고 잘린 다리가 적나라하게 눈에 들어와 충격적이었다. 지뢰로 인한 부상이었다. “혹시나 끔찍한 기억이 떠올라 말하기 힘들어지면 언제든 인터뷰를 중단해도 좋다”고 했지만, 그는 “괜찮다”고 했다. 단 한 번도 시선을 피하지 않고, 담담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올레크 시모로스는 지방정부의 인권정책을 모니터링하는 변호사였다. 전쟁이 발발하자 자원입대했다고 했다. 전쟁터에서 빗발치는 포탄과 총알이 “너무 무서웠다”고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라와 도시를 잃는 게 더 두려웠다”고 했다. 자신과 함께 자원입대한 행렬을 보면서 버텼다. 전쟁이 끝나면 결혼해 가정을 이루고 싶다고 했다. 인권변호사 활동을 계속하고 싶다고도 했다. 전쟁터의 참혹함을 온몸으로 새긴 병사가 “우리는 지금 우크라이나뿐 아니라 세계를 위해 싸우고 있다”며 평화협상에 단호하게 반대하고 있었다. 참혹한 모습과 당당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그의 태도를 보면서 슬퍼졌다. 지사(志士)란 이런 사람일 것이다. 우크라이나 체르니히우에서 러시아군의 미사일 공격으로 집과 가족을 모두 잃고 혼자 살아남은 스비틀라나 젤다크가 폐허가 된 자신의 집 앞에서 전쟁 전에 찍었던 가족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 체르니히우 | KISH KIM·다큐앤드뉴스코리아 키이우, 바흐무트, 하르키우 등 전선만 골라다녔다. 부대원이 70%까지 전멸한 전투에서도 살아남았다. 지금은 키이우에서 행정병으로 근무 중인 니콜라이 코발(39) 이야기다. 그는 키이우 근교에서 벌어진 첫 전투에서 러시아군 탱크 16대를 만났다. 상대하는 우크라이나군은 포병과 보병만으로 이뤄져 있었다. 그는 “탱크의 포를 쏘는 속도는 너무나 빨라 보병들은 알아차릴 새도 없이 죽는다”며 “무서웠다. 정말 무서웠다”고 했다. 탱크가 보병을 향해 돌진하면 도망가는 것이 상식인데 놀랍게도 아무도 자리를 이탈하지 않고 수류탄을 던지며 저항했다고 한다. “무서웠다”와 “도망가지 않았다”는 말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 것일까. “나는 왜 혼자 살아남았을까” 키이우에서 북쪽으로 150㎞가량 떨어진 도시 체르니히우에서 만난 스비틀라나 젤다크(45)는 ‘공습’이 민간인에게 얼마나 잔인한 것인지 적나라하게 들려줬다. 지난해 3월 3일 스비틀라나의 집에 미사일이 떨어져 그는 남편 미하일로(42), 딸 폴리나(21), 예비사위 예우헨 코발렌코(33), 아들 렙(14), 할머니 할리나 페체르나(86)를 한꺼번에 잃었다. 위험수칙대로 집에서 납작 엎드려 있었다고 한다. 마당에 미사일이 떨어지며 땅이 움푹 꺼지고, 집이 무너지고, 건물 잔해에 가족들이 깔리고, 정신을 차리고, 남편을 흔들어보고, 119에 신고를 하고, 즉사한 가족과 숨이 남은 가족을 하나씩 확인하다가 나머지 건물 잔해가 떨어져 아들의 머리를 강타하는 모습까지 지켜보던 짧고도 긴 시간을 설명하는 데 1시간가량이 걸렸다. 스비틀라나는 지금도 “대체 나는 왜 혼자 살아남았을까” 하고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되묻는다고 했다. 건물 3개층이 날아간 호텔 등 체르니히우 곳곳의 무너지고 부서진 잔해는 현대 무기의 파괴력과 잔인함을 보여주는 전시장이나 마찬가지였다. ‘리나’라는 이름의 우크라이나 여성이 딸 키라를 데리고 키이우 숲 묘지공원에서 남편의 묘를 찾았다. 리나의 남편은 지난달 루한스크에서 전사했다. 리나는 “남편은 에너지가 넘치고 농담도 잘하는 사람이었다”고 충혈된 눈으로 말했다. 아이는 조용히 엄마 손을 잡았다. / KISH KIM·다큐앤드뉴스코리아 스비틀라나의 이야기를 들으며 중동이 떠올랐다. 이런 공습을 매번 겪고 있었구나.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면서 드론이나 정보전 등 신기술이 주목받고 있지만, 전쟁의 패턴과 본질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해왔다. 지금도 전쟁은 공습으로 시작한다. 전투기와 미사일을 동원해 방공망을 파괴한 다음 탱크가 돌진하며 상대방 병사들을 살해한다. 그러는 동안 후방에서 포병이 지원한다. 상황이 종료되고 보병이 들어가 행정청사에 깃발을 꽂으면 ‘전투의 승리’라고 부른다. 민간인 학살 등은 보병이 깃발을 꽂고 도시를 점령하는 과정에서 대개 이뤄진다. 목숨을 잃는 대다수가 보병이다. 전쟁범죄를 저지르는 이들도 대체로 보병이다. 그래서 전쟁의 잔혹함을 고발하는 영화들은 보통 보병의 전쟁을 다룬다. 반면 공군 위주인 공습은 어딘가 깔끔해 보인다. 표적만 골라 파괴할 수 있을 듯한 느낌마저 풍긴다. 공격하는 쪽의 희생도 적다. 이 왜곡된 이미지 때문에 중동의 전쟁이 더 오래 지속된 건 아니었을까. 알고 보면 모두 착시일 뿐이다. 전 지구적으로 보면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는 시선은 지역마다 온도차가 있다. 유럽은 충격에 빠졌고 단결했다. 중동이나 북아프리카, 식량위기 등을 겪는 남반구 국가들의 시선은 다소 미지근하다. 역설적으로 체르니히우를 방문해 이 전쟁을 바라보는 중동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이런 공습을 겪은 사람들에게 지금의 세계는 얼마나 위선적으로 보일까. 더 일찍, 더 깊이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는 사실에 미안함과 부끄러움이 동시에 밀려왔다. 더 이상 ‘공습’이란 단어에서 매끄러운 질감을 느낄 수는 없을 것 같다. 키이우의 한 지하 보도 입구 우크라이나 군 홍보 광고판 앞에서 한 여인이 꽃을 사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일상을 유지하면서 긴 전쟁에 맞서고 있었다. / 키이우 | KISH KIM·다큐앤드뉴스코리아 그들이 만들고픈 사회 지난 2월 20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키이우를 깜짝 방문했다. 키이우 시민들의 반응을 알아보라는 응당한 지시를 받고 한편으로는 마음이 무거웠다. “바이든이 와서 너무나 기쁘다”는 대답이 예상되는 질문을 한다는 것은 어쩌면 미국만 바라보고, 미국의 은혜에 감사하는 수동적 시민의 모습을 전하는 일이 되지 않을까 염려스러웠기 때문이다. 실상은 달랐다. 시민운동가 막심(45)은 “매우 기쁘다”면서도 부연했다. “바이든은 우크라이나에 올 때마다 뭘 요구한다. 부정부패를 해소해라. 투명성을 유지하라. 시스템을 개혁하라. 자유시장을 유지하라.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내용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바이든은 우리의 친구다.” 그는 국제정치의 계산을 떠나 서방의 요구가 우크라이나인으로서 만들고 싶은 사회상에 부합한다고 본다. 공무원 올렉산드르(42)는 “바이든이 속한 세계의 사람들은 문명화된 세계, 진보, 시민적 가치, 정의와 진실, 자유 그리고 존엄을 우리에게 보여줬다”고 말했다. 외세에 대한 막연한 추종이 아니라 우크라이나를 좀더 나은 사회로 만들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이 느껴졌다. 세계를 위해, 존엄을 위해 싸운다는 군인들의 말들도 같은 맥락이었다. 바이든 방문 소감을 들으러 간 키이우 독립광장에는 유로마이단 혁명 희생자들의 분향소가 차려져 있었다. 이날은 2014년 유로마이단 혁명(존엄혁명) 9주기였다. 2013년 말 친러시아 성향 빅토르 야누코비치 당시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의 유럽연합(EU) 가입 논의를 중단하자 이에 항의하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수도 키이우와 서부 지역을 중심으로 일어났다. 2014년 2월 20일 경찰특공대가 유로마이단 광장에 모인 시위대를 향해 발포해 100여명이 사망하는 유혈 사태가 발생했다. 이와 관련해 당시 키이우에 들어와 있던 러시아 연방보안국(FSB) 요원들이 개입했다는 의혹도 있다. 광장 주변에는 채식 메뉴를 팔고 독서와 세미나를 할 수 있는 북카페가 있다. 기후, 환경, 인권, 아동복지 등의 사업을 하는 시민단체 사무실이 즐비해 있다. 유로마이단 혁명을 겪으며 만들어진 단체들이라고 한다. 시민들이 원하는 사회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군인 가족 지원 조직 ‘베테랑 허브’에서 일하는 마리아 스테치우크(36)도 “나는 ‘존엄혁명’의 영향을 받았다”며 “존엄혁명은 독립운동까지는 아니더라도 탈식민 운동의 성격을 갖고 있다. 우리는 부패와 과두제가 지배하는 러시아의 길을 벗어나 공정한 사회를 원했다. 그래서 혁명에 참여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키이우 기념품 가게에서 파는 자석. 볼로디미르 젤렌스키가 운전하는 국제법정행 호송차량에 죄수복을 입은 푸틴과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 와그너 용병 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타고 있는 모습이다. / 박은하 기자 가장 많이 들은 말 ‘존엄’ 비로소 우크라이나인들이 강렬하게 저항하는 이유의 실마리를 찾은 듯했다. 이날 이후 미리 약속을 정해놓은 사람들뿐 아니라 무작위로 사람을 많이 만났다. 광장과 묘지공원, 시장 등을 잇달아 방문해 말을 걸었다. 열흘 동안 거의 30명에 가까운 사람들을 인터뷰했다. 가장 인상적 공간을 꼽으라면 키이우 외곽의 숲 묘지공원이었다. 전사자 묘역에 나부끼는 우크라이나 국기가 시각적으로도 강렬했다. 지난해 12월과 올 1월 전사자들의 묘비가 유독 많이 세워져 바흐무트 인근 지역의 전투가 얼마나 처절한지 가늠할 수 있었다. 전사자의 연인, 전우, 아내, 부모를 만났지만 누구도 오열하지 않았다. 그게 비통함을 더했다. 묘비는 앞으로 얼마나 더 세워질까. 시민들은 하나같이 존엄이라는 말을 많이 했다. 전쟁에 시달리는 이상 러시아에 대한 복수심이 들 법도 한데 “우리는 승리를 원한다”며 최대한 절제해서 표현했다. 키이우에서 일상은 잘 유지되는 듯했다. 시민들도 최대한 평온을 유지하려 애쓰고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한계가 뚜렷했다. 전쟁을 겪는 나라 시민들의 표정이 밝을 순 없었다. 사진을 찍어보면 활짝 웃는 얼굴들이 많았다. 외신기자 카메라에 최대한 품위 있게 찍히려는 그들의 노력이었다. 우크라이나에 있는 동안 인터뷰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단어도 품위 혹은 존엄으로 번역할 수 있는 디그니티(dignity)였다. 독일 베를린에서 1년간 난민생활을 하다 돌아온 잔나 스트리젠코(56)는 전쟁을 통해 인류애와 삶의 품격을 더 깊이 고민하게 됐다고 했다. 그는 “우크라이나의 승리 없는 세계 평화는 없다”고 말했다. “우리는 훨씬 멀리 내다보고 있습니다. 푸틴을 전범재판에 기소해 전 세계에 문명과 ‘존엄’이 무엇인지 보여줘야 합니다.” 기념품 가게에서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가 운전하는 국제법정행 호송차량에 죄수복을 입은 푸틴과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 와그너 용병 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타고 있는 모습의 자석을 판다. 자석에는 ‘이르핀-부차’, ‘마리우폴’ 등 전쟁범죄가 벌어진 지명이 적혀 있었다. 우리는 어떤 평화를 원하는가 국제사회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발을 뺄 준비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2월 25일을 지나면서 월스트리트저널(WSJ) 같은 서방 언론에 젤렌스키 정부의 부패를 강조하는 기사가 많이 나오기 시작했다. 러시아와 평화협상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꾸준히 있다. 우크라이나로 집중되는 지원을 다른 가난한 나라들로 돌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평화주의 논리에 따라 무기지원에 반대하는 시위도 일어났다. 그런데 우크라이나에서 만난 평화주의자들이나 사회운동가들은 한결같이 “한국이 무기를 지원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평화는 과연 어떻게 얻어지는 것일까. 평화협상이란 어쩌면 ‘존엄한 사회’, ‘품위 있는 삶’에 대한 우크라이나인들의 열망까지 주저앉혀야만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만들어진 ‘평화’가 정녕 평화일 수 있을까. 침략을 당한 국가의 자유와 존엄한 사회에 대한 열망을 주저앉힌 국제사회가 군축을 합의하고 가난한 세계를 지원할 수 있을까.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묘비의 물결 앞에서 우리는 뭐라고 말해야 할까. 딸을 껴안고 놓지 못하는 군인 아버지를 계속 전선으로 내몰아야 할까. 한편으론 무기를 들고 존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싸우겠다는 저 열망을 외면해야 할 것인가. 비통한 감정을 끝내 해결하지 못하고 지난 2월 26일 밤 바르샤바행 기차를 탔다. 쉽게 해결할 수 없는 질문들이다. 이 전쟁을 기억할 때 강대국의 지정학적 논리보다 더 먼저 떠올려야 할 게 무엇인지를 말해주는 장면들을 분명 보았다. 전쟁의 고통, 폭력의 잔인함 그리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시민적 열망이었다. 국제사회는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신간]우크라이나 전쟁과 신세계 질서 外(2023. 02. 03 11:25)
2023. 02. 03 11:25 문화/과학
우크라이나 전쟁 ‘다시보기’ <우크라이나 전쟁과 신세계 질서> 이해영 지음·사계절·1만8000원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 1년을 맞았다.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한 자유민주주의 진영에서는 침략세력인 러시아를 ‘절대악(惡)’으로, 피해자인 우크라이나를 ‘절대선(善)’으로 받아들인다. 국제관계학 전문가인 이해영 한신대 교수는 이 같은 이분법에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이 전쟁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를 통해 전쟁의 해법을 탐구한다. 러시아를 옹호하는 것으로 자칫 오해받기 쉬운 저자의 ‘위험한 탐구’는 그가 제시한 여러 팩트를 통해 설득력을 얻는다. 예컨대 러시아가 ‘특수 군사작전’이라 부른 이번 전쟁이 발발한 건 2022년 2월 24일이지만, 그보다 앞선 2월 16일에 우크라이나 군대는 돈바스 지역에 대규모 포격을 가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돈바스 지역의 영토 불가침과 주권을 보장한 ‘민스크협정’의 이행을 요구하고, 미국은 러시아의 침공 야욕을 누차 경고하던 와중이었다. 미국과 유럽의 ‘오판’과 ‘책임론’도 제기한다.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2008년 2월 1일자 모스크바발 비밀전문을 보면 “러시아는 나토에 의한 포위로 자국의 안보이익 침해를 우려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서방세계는 진작부터 나토의 동진 위험성을 알고 있었고, 자급자족이 충분히 가능한 러시아를 과소평가해 경제제재에 나선 결과 전쟁 이후 오히려 석유와 가스 등 원자재 부족으로 인한 경제위기를 겪고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에서 통상 ‘매파’로 불리는 우익세력이 전쟁에 반대하는 반면 ‘네오콘’이 주류인 미국 민주당과 좌파가 전쟁을 지지하는 ‘기현상’을 분석한다. ‘친미’를 최핵심으로 하는 한국 역시 전쟁 이후 재편될 글로벌 다극 체제 속에서 경제·정치적으로 큰 변화의 압력을 받게 될 것이라고 저자는 전망한다. ▲2050 미중 패권전쟁과 세계경제 시나리오 최윤식 지음·김영사·2만2000원 10년 전 미·중 패권전쟁을 예견했던 저자가 우크라이나 전쟁, 격화되고 있는 양안 갈등 등 국제 정세변화를 반영해 전망을 업데이트했다. 미국이 먼저 ‘경제전쟁’을 일으키는 시나리오, 양국이 재차 화해해 새로운 밀월 시대가 열리는 시나리오를 각각 제시한다. ▲아이에게 주는 감정 유산 이남옥 지음·라이프앤페이지·1만7000원 35년 경력의 가족상담치료 전문가인 저자가 3만 회 이상 가족상담을 하며 느낀 생각과 정신과 의사로 성장한 딸을 키우며 얻은 깨달음으로 부모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자산이자 가치’가 무엇인지를 전한다. 아이의 단단한 내면 성장을 위한 공감대화법도 탐구한다. ▲프레스턴, 더 나은 경제를 상상하다 매튜 브라운, 리안 존스 지음·김익성, 양준호 옮김 원더박스·1만6000원 쇠퇴하던 영국 북부의 작은 도시 ‘프레스턴’이 영국 최고의 도시로 거듭난 이야기다. 프레스턴은 지역 사회에 돈이 돌도록 하는 ‘공동체 자산 구축 전략’을 토대로 지역 경제를 개선했다. 지방소멸위기에 처한 한국사회에도 이 같은 ‘프레스턴 모델’이 해법이 될 수 있다.
신간
[영화로 보는 우크라이나 전쟁](12)‘블러드랜드’에 평화를 허하라(2022. 09. 23 14:25)
2022. 09. 23 14:25 문화/과학
ㆍ칼라시니코프의 회한 「AK-47」에서 <로드 오브 워>로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무기는 무엇일까? 기네스북에는 AK-47이라는 이름이 올라와 있다. ‘칼라시니코프 오토매틱 라이플’의 줄임말이다. 공식적인 생산량만 1억정이 넘고, 불법복제까지 합산하면 2억정은 기본이라는 이 돌격소총은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인 무기로 알려져 있다. 국제정세와 군사문제에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모를 리 없는 이 총의 설계자는 바로 러시아의 미하일 칼라시니코프(1919~2013)로, 그의 장례식에 푸틴이 참석할 정도로 국민적 영웅 대접을 받던 인물이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에 전차병으로 참전했다가 부상을 입고 후송되던 중 독일군의 습격을 받고 구사일생으로 탈출해 목숨을 건졌는데, 당시 독일군의 우수한 기관단총에 충격을 받아 애국심의 발로로 전선의 병사들에게 더 뛰어난 총을 쥐여주겠다는 일념으로 AK소총을 개발하는 데 이른다. 「AK-47」 스틸 / DAUM 영화 그는 평생 자신이 만든 총의 성능과 평판을 자랑스러워했다. 하지만 AK 계열 총기는 ‘진정한 대량살상무기’가 돼버렸다. 값싸고 간편하고 어떤 환경에서도 작동하는 이 이상적인 살상무기는 전 세계 분쟁지역 어디에서나 애용됐고, 수많은 학살에 동원됐다. 말년의 칼라시니코프는 이 문제를 괴로워했다고 한다. 여러차례 인터뷰에서 자신의 의도와는 어긋나게 자기 발명품이 악용되는 것을 개탄했다. 청년 시절의 그가 AK소총을 완성하는 과정을 담은 <AK-47>에서 조국을 수호하는 무기로 채용된 AK소총을 자랑스럽게 지켜보던 모습과는 딴판이다. 니컬러스 케이지가 무기상인으로 열연한 <로드 오브 워>에 칼라시니코프는 등장하지 않지만 무기상인 주인공의 입을 통해 소개되는, 제3세계 분쟁에 불티나게 팔리는 ‘러시아의 최고 수출품’ AK소총 묘사가 일품이다. 처음 의도는 좋았지만 잘못 활용된 대표사례인 셈이다. 정작 칼라시니코프가 만든 걸작은 조국을 수호하는 데에는 제대로 쓸 일이 없었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 완성됐기 때문이다. 대신 전 세계 분쟁에 빠지지 않는 필수품이 되고 말았다. 나치 독일의 광적인 인종주의에 수천만명의 인명피해를 낸 소련은 그 교훈에 집착해 방어를 위해 가공할 군사력을 건설하기에 이른다. 소련의 강대한 군사력은 서방진영에 연쇄적인 공포를 불러와 동서냉전으로 치닫는다. 상호 불신이 낳은 악순환이다. 소련은 언제든 서방이 나치독일과 손잡고 자신들을 공격할 수 있다는 의심을 놓지 않았고, 이는 전후에도 이어졌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대한 신경질적 반응은 그 연장선에 있다. <화이트 타이거: 최강 전차 군단>의 묵시록 우리로선 쉽게 이해하기 힘든 러시아의 편집증을 이해하기 위해 러시아의 전쟁영화 <화이트 타이거: 최강 전차 군단> 을 소개한다. 제목만 보면 마치 <패튼 대전차 군단> 부류의 화끈한 전쟁영화를 떠올리기 쉽지만, 실체는 오히려 공포영화에 가깝다. 제2차 세계대전 동부전선에서 소련과 독일이 일진일퇴를 벌이던 1943년 무렵, 소련군은 아군 전차에서 군인 1명을 구조한다. 그는 전신 화상을 입어 몇 시간 못 버틸 거라는 군의관의 진단이 무색하게 며칠 후 회복하고 전차병으로 복귀한다. 반격에 나선 소련군에게 ‘화이트 타이거’라는 독일 전차 괴담이 퍼진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에 등장해 소련군을 박살낸다는 의문의 독일 전차를 잡기 위해 상부에선 특수부대를 편성한다. 여기에 그 부상병이 지휘관으로 합류해 화이트 타이거와 일진일퇴를 벌인다. 그는 전차와 대화할 수 있다며 화이트 타이거는 유령 같은 존재라고 말한다. 포스터 / DAUM 영화 포스터 / DAUM 영화 그와 동행한 정보장교 페도토프는 그의 말을 반신반의하지만 실제로 기괴한 적 전차의 패턴을 목격한다. 문제는 아군인 부상병도 미심쩍은 게 한둘이 아니다. 결국 양자의 대결은 무승부로 끝나고 전쟁은 소련의 승리로 마무리된다. 페도토프에게 부상병은 전쟁이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불길한 예언을 들려준 뒤 사라져버린다. 그 역시 인간이 아닌 존재였다. 그 시각에 함락된 베를린에서 히틀러가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중이다. 히틀러는 상대에게 자신이 특별한 게 아니라 거대한 소련과 사회주의 진영을 적대시하는 서방의 의지를 나치독일이 대행했을 뿐이라며 궤변을 늘어놓는다. 그리고 곧 새로운 전쟁이 준비될 것이라는 숙명론을 피력한다. <타운 오브 글로리>와 러시아의 속사정 다큐멘터리가 시작되면 초강대국으로 복귀를 꾀하는 강대국의 야망을 투영하듯 제2차 세계대전 전승 기념 승리의 날 군사퍼레이드가 한창이다. 최신예 기갑부대가 선두에서 보는 이들을 위압한다. 화면이 바뀌면 지난 전쟁의 격전지, 러시아와 벨라루스 국경 마을을 비춘다. 마을은 거대한 병영을 연상케 한다. 이곳에선 1년 내내 전쟁과 군대 관련 기념식과 추모행사가 그치지 않는다. 주민들은 군복을 입고 일상생활을 하는데다 유치원부터 안보교육이 진행된다. 행사 때마다 정치인과 관료들은 과거 역사를 상기시키며 적들이 지금도 조국을 노린다고 열을 올린다. 그 ‘적’은 미국과 서유럽, 나토, 테러집단 그리고 외국의 사주를 받아 국론을 분열시키는 시민단체들이다. 마을에는 군국주의가 군림하지만, 그 장엄한 추도와 묵념에도 점점 쇠락하는 중이다. 한때 번창하던 공장지대는 이제 연금에 의지하며 술에 찌든 노인만 남았다. 젊은 세대는 기회를 찾아 대도시로 빠져나간다. 영화에는 2명의 흥미로운 인물이 등장한다. 마샤란 이름의 중3 소녀는 소련군복을 착용하고 공연이나 오디션에 참가한다. 그는 애국적 내용의 시집을 내는 등 마을의 유명인사다. 은퇴한 중년 남자 세르게이는 마을 주변 과거 격전지를 돌며 수습되지 않은 전사자 시신을 발굴해 매장한다. 그의 동선에는 알코올 중독에 시달리는 참전용사나 자식을 체첸 전쟁에서 잃은 이들이 가득하다. 마샤는 애국적 군사단체에 가입해 무기 조작을 배우지만 정작 그의 가족 중 참전용사는 없다. 전직 군인인 어머니가 딸에게 주입식 교육을 하는데 겉으로 보이는 열기와 다르게 소녀는 점점 자신감을 잃고 침묵에 빠진다. 소련 시절의 껍데기뿐인 영광에 기대어 현실의 빈곤과 쇠퇴를 잊고픈 시골 주민들의 초상은 현재 러시아인들의 심리상태를 파악하기 위한 좋은 예시다. 작은 마을의 풍경화 같은 이 영화는 푸틴의 러시아가 처한 신경쇠약 징후를 르포르타주처럼 담아낸다. 러시아의 민주화·안정이 유일한 대안 전쟁은 어느덧 200일을 넘겼다. 이 전쟁이 언제 끝날지 이제 누구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9월 우크라이나의 반격이 상당한 성과를 내고 있지만, 전세가 밀리면 러시아가 대량살상무기를 사용할지 모른다는 불안도 깊어만 간다. 결국 러시아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이 전쟁과 향후 세계정세가 요동칠 것이다. 문제는 작금의 전쟁이 어떻게 끝나든 푸틴을 정점으로 하는 권위주의 독재체제가 근본적으로 혁파되고 러시아가 민주화(와 동시에 안정)돼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으면 제1차 세계대전 후 독일이, 그리고 소련 붕괴 후 러시아가 품었던 서방에 대한 원한이 더 큰 전쟁을 불러온 역사를 반복할지 모를 일이다. 물론 전쟁터의 우크라이나 국민과 기아에 시달리는 제3세계인들의 보편적 인권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하지만, 이밖에도 영구적 평화를 건설하기 위해 고려해야 할 난제가 한둘이 아니다. ※이번 호를 끝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영화로 보는 우크라이나 전쟁
[영화로 보는 우크라이나 전쟁](11)전쟁으로 황폐해진 나라의 풍경(2022. 08. 26 15:08)
2022. 08. 26 15:08 문화/과학
ㆍ돈바스 전쟁 영화 스틸. DAUM 영화 우크라이나 전쟁이 6개월을 넘겼다. 전쟁에 대한 여러 논란과 함께 국지전을 넘어 21세기 신냉전을 촉발할 것이라는 우려가 전 세계를 뒤덮고 있다. 코로나19에서 회복하려던 세계경제는 하락하고, 3세계 빈곤국들은 식량과 에너지 기아 위협에 직면했다.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도 이 전쟁은 ‘고작’ 6개월이 아니다. 2014년 유로마이단으로 국민을 살상하던 정권이 붕괴하고 시민혁명이 성공했지만, 새로운 내전에 돌입하는 국면으로 돌변했다. 소련 체제하에서 우크라이나는 민족주의가 강하고 농업 중심으로 유럽 친화적인 서부와 러시아계가 다수인데다 중공업단지가 러시아와 밀접한 경제권으로 묶여 있던 동부로 구분되기 시작했다. 우크라이나 독립 후 이어진 부패로 중앙정부는 특히 동부에서 신뢰받지 못하고 있었다. 유로마이단으로 친서방 정권이 들어서자 러시아는 서유럽과 완충지대를 잃어버릴 것이란 위기의식에 빠졌다. 그 결과 동부를 분리해 합병 혹은 친러시아 세력의 분리독립을 꾀했고, 비밀공작이 이어졌다. 먼저 크름(크림)반도가, 그리고 ‘돈바스’라 불리는 동부 접경지대에서 분리주의 세력의 무장봉기가 촉발됐다. 2014년 2월에 유로마이단이 성공한 뒤 불과 수개월만의 일이다. 도네츠크와 루한스크주에 ‘노보러시아’라는 미승인국을 세운 분리주의 세력과 공공연히 우크라이나 내에 침투한 러시아군은 아직 정비되지 않은 우크라이나군을 밀어붙였다. 전열을 새롭게 정비한 우크라이나군의 반격으로 일진일퇴를 거듭하다 민스크 협정으로 불안정한 휴전 상태를 유지하게 됐지만, 실제로는 끊임없는 국지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2022년 2월은 그저 전면전이 재개된 것뿐인 셈이다. 러시아가 개입한 동부지역 2014년 9월, 민스크 협정 발효 직전의 동부 친러시아 지역에서 무장세력의 공격으로 버스에 탄 민간인이 몰살당한다. 분리주의 세력은 우크라이나군이 반정부적 분위기의 주민들을 학살했다며 적개심을 고취하는 홍보에 여념이 없다. 한편 휴전협정을 앞두고 군 내부에서 평화협상을 방해하기 위해 제5열(스파이) 활동을 벌이는 세력을 색출하기 위해 ‘작전명 반데라스’라는 암호명으로 안톤 대위의 팀을 전선에 파견한다. 그들이 목격한 것은 적대적인 주민들에 둘러싸인 채 적과 아군이 뒤엉킨 혼란상이다. 안톤 대위는 실은 민간인 학살이 일어난 동네 출신이다. 20년 만에 고향에 돌아왔지만 이제 정부군이 된 그를 보는 이웃들의 시선은 냉랭하기만 하다. 부대에선 계속 석연찮은 사건과 내부 파괴공작이 거듭된다.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첩보전이 이어진다. 부대 군의관이 돌보던 반군 부상병을 체포한 안톤은 그가 어릴 적 친구이자 연적이었던 레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레히는 상부의 명령에 민간인 버스를 공격한 후 죄책감에 숨어 있었다. 그의 도움으로 안톤은 러시아가 배후에 있는 반군의 두 번째 민간인 학살 음모와 그 책임을 정부군에 씌우려는 언론공작 계획을 알게 되고 이를 저지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포스터. DAUM 영화 영화 <작전명 반데라스>에서 우크라이나 정부는 동부를 ‘대테러지역’으로 규정한 상태다. 친서방진영이 우세해진 상황에서 동부지역은 소외되고 탄압받을 것이라는 불안감에 휩싸였고, 러시아는 정보공작으로 이를 확산시켰다. 현대전쟁은 미디어를 활용한 전(全) 방위 선전전이라는 특성이 잘 드러난다. 그런 가운데 지방자치 확대 등 노력을 벌일 틈도 없이 내전의 불길이 오른다. 장기간의 혼란 속에 중앙정부에 대한 신뢰가 바닥인데다 러시아와 경제적으로 밀접하던 동부의 불만을 활용한 분리주의 운동의 어두운 이면이 친정부 시각에서 조명된다. 의외로 국내에서도 해당 유형의 영화들은 적지 않게 수입돼 쉽게 볼 수 있는 상황이다. 이성과 질서가 무너져가는 참상 <마이단>으로 유로마이단의 중요한 현장기록을 남긴 세르히 로즈니차 감독은 2018년엔 거듭되던 돈바스 전쟁을 다룬 극영화 <돈바스>를 선보였다. 해당 작품은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감독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은 것은 물론, 현재까지도 동부 내전의 파괴적 참상을 가장 잘 표현한 영화로 남아 있다. <돈바스>는 일관된 이야기 전개가 아닌 옴니버스 단막극 형태를 취한다. 각각의 에피소드는 큰 연결고리 없이 독자적으로 전개된다. 등장인물이나 사건이 서로 통하지는 않지만 하나의 거대한 역사화처럼 부분마다 내전의 현실을 부조리극 형태로 신랄하게 풍자한다. 영화에는 분리주의 세력 통제하의 동부지역에서 일어나는 일상과 사건이 점점이 등장한다. 어느 장면이나 평화로운 일상과는 거리가 멀다. 마을과 도시에는 불안과 궁핍 그리고 공포가 감돈다. 주민들에게 합법적으로 선출된 게 아니라 갑자기 출현한 반군은 정부군과의 대결을 위해 지역사회를 수탈하는 것은 물론 부정부패가 만연해 있다. 전체 우크라이나의 10분의 1 수준인 이 지역만으로 정부군에 맞서다 보니 강제징집이 거리에서 자행되고 주민들을 철권으로 억압하는 현실이 드러난다. 포스터. Amazon.com 주민들은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가운데 겁에 질려, 혹은 증오심에 사로잡혀 정부군 포로나 친정부인사에 대한 폭력과 테러를 방조하거나 적극적으로 가담한다. 그런 가운데 자연히 적개심과 원한이 깊어져 간다. 이제 이웃과 친지도 서로 믿을 수 없다. 영화 전체를 감싼 연극적 기운은 후반부에 가서 작품 속 현실과 픽션을 뒤엉키게 만들고, 그 서늘한 기운을 통해 관객은 내전이 만든 음산한 풍경을 극적으로 체험하게 된다. 마이단에서 돈바스를 연결한 기록영화 머나먼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에 대해 한국인들이 제대로 맥을 짚어내기란 쉽지 않은 노릇이다. 영화 <임계점: 우크라이나를 위한 전쟁>은 우크라이나 근현대사에서 마이단이 형성되기까지 과정, 그리고 마이단 이후 몇 달간 진행된 러시아의 개입과 분리주의 세력의 발호 상황을 요약 해설해준다. 시민혁명의 승리라는 감격은 잠시, 국가가 분열될 상황에 직면한 정부는 마이단 참가자들에게 입대를 호소하고 조국을 지키기 위해 사람들은 징병에 응한다. 오랜 국가적 혼란은 국방력에도 치명적 악영향을 미쳤고, 동부지역의 반정부 정서 속에 급속도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가 확산한다. 새 정부가 들어섰지만 제대로 기능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 과거의 시위대 동지들은 이제 입장이 갈려 대립한다. 그런 가운데 민스크 평화협정이 조인되지만, 요충지 확보를 위한 전투는 거듭된다. 극영화로는 표현 불가능한 실제 시가전의 참상이 펼쳐지고 반군과 연합한 러시아군의 공세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는지 생생하게 묘사된다. 민주화운동이 국가 존망을 건 전쟁으로 이어지고 그 가운데 새로운 우크라이나 국가 정체성이 싹트는 과정은 감동적이지만, 이어지는 희생을 바라보는 기분은 그저 착잡하기만 하다. 지난 8년간 이어진 국제사회의 방관이 현재의 전면전을 낳은 생생한 증거인 셈이기에.
영화로 보는 우크라이나 전쟁
[영화로 보는 우크라이나 전쟁](10)우크라이나 혁명의 광장에 서서(2022. 08. 12 13:32)
2022. 08. 12 13:32 문화/과학
ㆍ윈터 온 파이어, 마이단 2013년 11월부터 2014년 2월까지 93일간 계속된 대규모 시위(유로마이단)는 현재의 우크라이나 전쟁에 이르는 거대한 시발점을 이루는 역사적 사건이다. 21세기 국제정세를 뒤흔든 시위의 이름은 아주 간단하게 명명됐다. ‘마이단’은 광장을 뜻하는 우크라이나 말이다. 우크라이나 수도인 키이우(키예프) 중심 광장은 과거에는 ‘10월 혁명 광장’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우리에겐 2016년 연말의 광화문 광장 격이다. 여기에 ‘유럽’을 뜻하는 ‘유로’가 붙는데, 해당 사건의 성격을 좌우하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다. 영화 스틸 / DAUM영화 <윈터 온 파이어>, ‘광장’의 상황일지 해당 사건을 다룬 작업이 더 있긴 하지만 현재까지 국내에서 가장 접근 수월한 작품은 넷플릭스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윈터 온 파이어>다. 영화는 시작되자마자 시위 90여일째, 유혈로 치닫는 급박한 현장을 비춘다. 진압경찰의 총격 속에서 열여섯 살 소년 시위대와의 짧은 인터뷰로 강렬한 인상을 던진 후 카메라는 시위가 처음 시작된 2013년 11월 21일부터 연대기적 흐름을 담는다. 영화는 복잡한 역사적 배경과 정치·사회적 요소를 분석해주진 않는다. 상당히 빠른 완성 시기를 감안하면 애초 그렇게 방향 잡기도 불가능했을 테다. 대신에 마이단 상황을 주요 국면 변화에 따라 달력 방식으로 소개하는 데 총력을 다한다. 카메라에 담긴 시위 출발은 소박하다. 청년층 중심으로 자생적으로 모여든 시위대는 야당이나 사회운동단체가 보기에는 지나칠 만큼 자유분방하다. 그들은 노래하고 춤추며 2016~2017년의 광화문 촛불을 연상케 하는 집회를 이어간다. 시위 참여가 늘어나자 이 정도 모이면 조금은 반영되겠지 기대감도 싹튼다. 모두가 알듯 역사는 그렇게 흘러가지 않는다. 정권은 우왕좌왕 끝에 강경진압을 시도한다. 마이단에서 군중을 몰아내려 경찰이 들이닥치자 자연히 시위대는 거점을 지키기 위해 대항한다. 권위주의 정권이 폭력으로 일관하자 시위대는 자위권 차원에서 조직화한다. 부상자 치료를 위한 야전병원, 군 경력자들이 책임지는 광장 방위대, 차량시위대 등으로 분업화하고 경찰을 막기 위해 바리케이드를 설치한다. 시위대와 경찰의 대치는 고대 그리스-로마시대의 중장보병(重裝步兵) 전투처럼 치닫는다. 정권은 시위의 자유를 제약하는 법을 통과시키지만, 악법은 조롱과 풍자의 대상이 될 뿐이다. 해가 바뀌고 초조해진 정권은 강경대응으로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다. 경찰 선두엔 특공대 ‘베르쿠트’가 과거 한국 군사정권 시절 시위 진압에 악명을 날리던 ‘백골단’ 역할을 맡는다. 여기에 경찰 대신 ‘더러운 임무’를 청부 맡은 ‘티투쉬키’란 깡패들이 판을 친다. 인명피해가 늘어가며 광장은 그야말로 전쟁터가 된다. 영화 포스터 / DAUM영화 시위대의 요구도 피해에 비례해 더 강경해진다. 정치범 석방, 의회의 행정부 견제기능 강화, 조기 대선을 요구하며 광장에서 의회 진격을 시도한다. 이제 경찰은 총을 쏘고 시위대는 화염병을 던진다. 경찰은 저격수를 동원해 적십자 대원이나 사제까지 무차별 공격한다. 장갑차가 바리케이드로 돌진하다 불탄다. 시가전 그 자체다. 카메라에 등장하던 시위대가 총에 맞아 죽거나 경찰에 잡혀 유린당하는 광경이 펼쳐진다. 전쟁터 한복판으로 강제 소환되는 기분이다. 2014년 2월 19일 하루에만 20여명이 사망하고 400여명이 부상으로 실려간다. 야당이 타협안을 가져오지만, 동료들의 죽음에 격분한 시위대는 즉각 퇴진이 아니면 받아들일 수 없다. 3일 후 더 버티지 못한 정권이 붕괴되고 대통령은 헬기로 도주한다. 93일의 시위 동안 125명 사망, 65명 실종, 1890명이 후송돼 치료를 받은 것으로 공식 집계됐다. 막대한 희생을 치르며 승리한 시위대는 남녀노소, 종교와 민족의 차이를 초월해 하나가 된 것처럼 보인다. 영화를 만든 이들은 시위의 최초 주체였던, 소련 붕괴 후 1990년대에 태어난 청년세대가 더 이상 권위주의적인 구체제 대신 서유럽으로 상징되는 자유체제를 선택한 것으로 마이단의 의의를 풀어낸다. 공동의 체험으로 승화된 마이단을 통해 비로소 ‘우크라이나’의 통합된 국가 정체성이 확립됐다는 시각은 곧 제작진의 목소리인 셈이다. <마이단>, 장대한 시민혁명의 풍경화 세르히 로즈니차 감독은 시위 소식에 급히 다른 일정을 취소하고 키이우로 향한 덕분에 광장이 변하는 흐름을 온전히 담을 수 있었다. 여기에다 감독은 독특한 접근법으로 작업의 가치를 극대화한다. <마이단>은 우크라이나의 21세기 역사가 결정되는 4개월의 시작을 광장에 모인 시민들이 우크라이나 국가를 제창하는 장면으로 연다. 화면 가득한 사람들의 얼굴. 이어서 카메라는 광장 곳곳을 비추기 시작한다. 진행자와 현장 상황실의 안내방송이 스피커로 이어지지만, 영화는 특정 개인의 영웅화를 배제한 채 시민들의 표정과 소소한 순간을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 정치적 시위나 투쟁을 담은 영화에서 반드시 등장하게 마련인 영웅적 지도자나 친절한 전문가 해설은 찾아볼 수 없다. 감독이 의도적으로 배제했기 때문이다. 영화 포스터 / DAUM영화 대신 감독은 광장의 작은 일상이 유기적으로 어우러진 거대한 군집체로 마이단을 재구성한다. 전반부 내내 집회에 참가하고 광장을 지키는 이름 모를 시민들의 표정과 그들이 나눠 맡은 임무 수행과정이 일개미들의 작업풍경처럼 이어진다. 사람들은 다른 시위 참가자들에게 음식물을 제공하거나 바리케이드를 쌓는 등 분주하다. 어느새 크리스마스 주간. 집회에 캐럴 합창과 자작시 낭독이 등장한다. 연말엔 누구나 소원이 이뤄지길 꿈꾼다. 해가 바뀌고 정부는 묵묵부답. 시위 풍경은 점차 경직돼간다. 시민들의 복장이 군사화되고 경찰과의 충돌은 물리적으로 변한다. 자유롭던 다양성의 광장은 이제 대립하는 두 세력 간 힘과 힘의 대결장으로 재탄생한다. 두 번째 국가가 제창된다. 미세한 공기의 변화가 감지된다. 광장에선 일진일퇴 공성전이 거듭된다. 시위대는 전위에서 전투를 수행하는 이들과 지원하는 이들로 분리된다. 불꽃놀이가 크리스마스 주간 이후 다시 등장하지만, 이제는 공격용 폭죽으로 활용된다. 사람들은 계속 쓰러져가고 광장은 불바다로 변한다. 한편에선 ‘광장’을 되찾으려는 몸부림마냥 거리를 청소하는 풍경도 관찰된다. 어느새 2월 중순, 가장 격렬했던 충돌과 살상이 그치고 정적이 감돈다. 희생자들을 향한 추도사와 운구가 광장을 차지한다. 영화는 정권이 무너지는 승리의 광경은 보여주지 않는다. 그저 자막으로 희생자의 숫자와 간략한 상황 요약이 이어지며 막을 내린다. <마이단>이라는 심플한 제목은 감독의 치열한 고민 끝에 탄생한 결과물이다. 대개 우리는 해당 사건을 ‘유로마이단’이라 부른다. ‘유럽 광장’이란 뜻이다. 즉 마이단 시위를 친서방화 흐름으로 간주하는 태도다. 그런데 왜 굳이 유럽을 붙이지 않고 광장 자체에 주목했을까? 그 행간에 감독이 상황을 바라보는 입장이 농축돼 있다. 두 다큐멘터리(<윈터 온 파이어>와 <마이단>)의 미세한 결 차이는 영화를 봐야 감지할 수 있을 문제다. 로즈니차 감독은 이 영화에 담지 못한 것들, 크름반도(크림반도) 병합과 돈바스 전쟁을 다룬 후속 작업을 선보이며 고민을 이어가는 중이다.
영화로 보는 우크라이나 전쟁
[영화로 보는 우크라이나 전쟁](9)21세기 러시아 ‘제국’의 역습, 그 서막(2022. 07. 29 14:16)
2022. 07. 29 14:16 문화/과학
ㆍ남오세티야 전쟁 두 영화는 각각 서방과 러시아의 입장을 대변한다. 물론 진실은 2개일 수 없다. <5 데이즈 오브 워>를 보면 러시아, <어거스트 에이트>를 보면 조지아가 침략자다. 영화를 통한 ‘역사전쟁’인 셈이다. 2008년 발발한 조지아와 러시아 간 남오세티야 전쟁은 21세기 신(新)냉전의 서막을 연 사건으로 평가된다. 1991년 소련 해체 이후 유일 초강대국으로 군림한 미국 주도 하의 나토(NATO)가 구(舊)동구권으로 진출하는 상황을 막지 못한 러시아의 자존심은 바닥으로 추락했다. 소련의 억압에 시달렸던 신생국가들은 독립유지를 위해 미국과 유럽연합(EU)에 손길을 내밀었다. 러시아는 이를 자국 세력권 침범으로 받아들였다. 영화 스틸 / DAUM 영화 영화 스틸 / DAUM 영화 체첸 전쟁 이후 푸틴이 집권하며 21세기 초반의 경기호황으로 겨우 추스르기 시작했다. 이에 러시아는 미국이 이라크와 아프간 양면전쟁에 허덕이는 상황을 확인하고 주변 세력권을 정비한다. 조지아는 독립 당시부터 비(非)조지아인이 주류이던 자국 내 자치공화국 압하지야와 남오세티야 문제로 분란을 겪고 있었다. 여기에 러시아가 둘의 후원자로 개입한다. 전쟁은 언제든 터질 수 있었고, 정치적 결단만 남은 상황이었다. 서방의 시각 대변한 전쟁 스펙터클 <다이 하드 2>와 <클리프 행어>의 레니 할린 감독이 연출한 <5 데이즈 오브 워>는 종군기자의 눈으로 본 전쟁 이야기다. 주인공은 이라크 전쟁 당시 조지아 평화유지군에 의해 구조된 경험 이후 남오세티야로 향한다. 현지에서 전투에 휘말린 주인공 일행은 러시아군과 오세트 민병대가 전쟁범죄를 저지르는 현장을 촬영한 뒤 데미도프 대령에게 붙잡혀 메모리카드를 내놓으라는 협박을 당한다. 이라크에서 자신들을 구했던 레조 대위의 부대에 구출된 일행은 참상을 알리고자 방송국이 있는 도시 고리로 향하지만, 이곳은 최대의 격전지다. 액션 연출 장인이 만든 영화는 전형적인 ‘할리우드 스타일’이다. 여기에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블랙 호크 다운>에 영향받은 극사실주의 전투장면을 조합했다. 도입부의 이라크 전투부터 영화는 내내 전쟁 스펙터클의 한복판으로 관객을 이끈다. 정치 스릴러를 더해 긴장감을 한껏 끌어올린다. 당시 조지아 대통령 미하일 사카슈빌리가 전쟁에 대처하는 모습은 골리앗에 맞서는 다윗으로 묘사된다. 오세트인(人)이지만 미국 유학파 지식인 타티아, 애국심 강한 레조 대위가 종군기자들과 협력한다. 반대편에는 전쟁의 폭력적 본질을 상징하는 러시아군 데미도프 대령과 ‘더러운 작전’ 전문 코사크 군인 다닐이 선다. 주인공은 그들의 전쟁범죄를 규탄하지만, 이들은 ‘전쟁은 원래 그런 거다’란 운명론과 함께 조지아 정부가 감추고 있는 진실을 알려준다. 러시아 시각을 영화화… 역사전쟁 선포 정반대 입장으로 러시아에서 만든 <어거스트 에이트>가 있다. 제목은 ‘8월 8일’, 바로 전쟁이 시작된 날이다. 기이할 만큼 두 영화의 구조와 분위기는 닮았다. 국내 소개 당시 러시아 판 <트랜스포머>로 홍보한 덕분에 ‘낚였다’는 반응이 많았다. 이혼녀 크세니아는 여름휴가를 애인과 보낼 겸 남오세티야 평화유지군으로 근무하는 전 남편에게 어린 아들 토마를 보낸다. 토마는 한부모 가정에서 겪는 혼란 때문에 현실에서 도피해 로봇에 빠진 상태다. 설마 했던 전쟁이 (조지아의 침공으로) 터진다. 이제 크세니아는 토마를 구해야 한다. 러시아판 ‘엄마는 강하다!’ 기조로 할리우드보다 더 전형적인 할리우드 가족주의 액션물로 흘러간다. 러시아 군인들은 21세기에 기사도가 부활한 듯 목숨을 걸고 모자 상봉을 돕는다. 뻔한 전개에도 불구하고 전투묘사에 대단한 공을 들인데다 소년의 상상 속 로봇 전투장면까지 가미해 최첨단 ‘배달의 기수’를 선보인다. <어거스트 에이트>는 가부장적 가족주의 세계관을 예찬한다. 당시 대통령이던 메드베데프를 모델로 한 젊은 지도자가 등장해 미국에 주눅 들지 않는 단호한 결단력을 선보인다. 토마가 현실을 부정해온 건 믿고 의지할 ‘가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긍정적 어른으로 묘사되는 러시아 군인 레흐는 할리우드 액션영화의 과묵한 영웅 못지않다. 토마는 자연스레 그를 따른다. 반면에 영화 속 미국과 서방에 줄을 대거나 겁내는 자들은 좋게 그려지지 않는다. 미국의 심기를 거스르면 신냉전 시대가 도래할까봐 겁내는 정치고문이나 부와 쾌락만 좇는 크세니아의 애인인 은행가는 타락하고 비겁한 존재에 불과하다. 외세에 맞서 국민을 지키는 강한 지도자와 정부, 군대의 역할을 긍정하는 태도가 가득하다. 재앙의 기원을 찾아서 두 영화는 각각 서방과 러시아의 입장을 대변한다. 물론 진실은 2개일 수 없다. <5 데이즈 오브 워>를 보면 러시아, <어거스트 에이트>를 보면 조지아가 침략자다. 일방적으로 몰아붙인 건 러시아가 분명하지만 평화유지군으로 활동하던 러시아군을 선제공격한 건 조지아군이었음이 드러나 논란이 되기도 했다. 두 영화는 서로의 입장을 옹호하고자 프로파간다(선전선동) 성격을 짙게 가미했다. 영화를 통한 ‘역사전쟁’인 셈이다. 본질은 과연 무엇일까? 답을 찾기 위해선 1992~1993년의 조지아 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소련이 해체된 자리에 15개 국가가 탄생했지만, 개별 국가 내에도 자치공화국이 별개로 존재했다. 개별 독립국 안에서 주류민족의 핍박을 받을 걸 겁낸 소수민족의 분리운동은 불에 기름을 부은 것처럼 확산한다. 러시아에 대해 체첸이 그랬던 것처럼 조지아 내 압하지야인과 오세트인은 분리독립을 시도했고, 러시아가 후견인이 된다. <텐저린즈: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는 30년 전 조지아-압하지야 내전 현장이 배경이다. 산골에서 감귤농사를 짓는 에스토니아인(人) 노인 이보는 집 앞에서 전투를 벌이다 부상당한 압하지야 측 체첸용병과 조지아군인을 각각 구해낸다. 깨어난 둘은 서로를 죽이려 들지만 생명의 은인이 하는 말을 거역하진 못한다. 이보는 둘을 떼어놓고 서로 죽이지 못하게 서약을 받지만 살얼음판은 계속된다.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지만 한집에서 먹고 자면서 둘은 조금씩 같은 인간을 대하는 표정으로 변해간다. 그러나 현관 앞까지 찾아온 전쟁은 작은 비무장지대인 이 공간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조지아 감독 자자 우루샤제는 자국 내 민족분쟁에 소수자인 에스토니아인 주인공을 등장시켜 균형감각과 성찰을 유도한다. 대부분 장면이 실내에서 진행되기에 심리극을 보는 기분도 든다. 전쟁영화라면 상상할 수 있는 장대한 액션 장면을 기대하면 실망하겠지만 인간들의 분쟁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웅장한 카프카스 풍광과 함께, 결국 온전히 수확할 수 없는 과수원 풍경이 영화 속 주인공들의 운명과 고스란히 겹친다. 영화는 전쟁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연민과 성찰 그리고 이를 비웃는 전쟁의 광기 속으로 보는 이를 끌어들인다. 같이 밥을 먹고 대화를 하며 원수지간이라도 서로 이해하려 노력하는 가능성의 순간이 의미심장하다. 끝내 당시 내전은 불완전한 봉합으로 끝났고, 15년 후 남오세티야 전쟁으로 이어진다. 지금도 이보가 살던 산골은 조지아 내 분쟁지역으로 남아 있다. 러시아가 미(未)승인국의 후견자로 버티는 것 역시 여전하다.
영화로 보는 우크라이나 전쟁
[영화로 보는 우크라이나 전쟁](8)상처 입은 러시아의 분노, 푸틴 집권의 길 열다(2022. 07. 15 14:30)
2022. 07. 15 14:30 문화/과학
ㆍ체첸 전쟁을 다룬 영화들 <브라트> 2부작의 주인공 다닐라 역을 맡은 세르게이 보드로프 주니어의 영화 경력은 혼란했던 러시아의 1990년대를 관통한다. 그의 데뷔작은 1차 체첸 전쟁을 소재로 한 1996년 <코카서스의 죄수>였다. 1997년 <브라트>와 2000년 <브라트 2>에선 체첸 전쟁 참전용사 경력의 킬러로 출연했다. 2002년 <전쟁>에선 2차 체첸 전쟁에 장교로 참전한다. 당대 러시아를 관통했던 경제위기와 모라토리엄 그리고 체첸 전쟁을 영화 속에서 전부 체험한 셈이다. 영화 스틸 / DAUM 영화 체첸 전쟁은 소련 연방 해체 후 러시아가 겪은 재앙의 최종판이다. 고르바초프가 꿈꿨던 ‘독립국가연합(CIS)’의 꿈이 무너진 자리엔 15개 독립국가가 급작스레 들어섰다. 소련 시절 경제는 국가소유였고, 서로 긴밀하게 결합된 순환구조였다. 갑자기 그 연결고리가 끊어지자 경제는 곤두박질치고 혼란은 극심했다. 국유재산은 왕년의 공산당 간부와 신흥 재벌의 유착으로 조각조각 삼켜졌다. ‘올리가르히’라 불린 기득권 집단의 탄생이다. 국민의 삶은 소련이 그리울 만큼 망가졌다. 그런 상황에서 군대가 충실히 유지될 리 없었다. 인구 120만의 체첸 앞에서 초강대국 러시아의 자존심은 산산이 박살 났다. 굴욕을 갚기 위해 러시아는 울부짖었고, 하늘에서 강림하듯 강력한 지도자가 등장했다. 블라디미르 푸틴이라는 이름의 정치신인이었다. 1차 체첸 전쟁과 평화의 가능성 푸시킨의 시, 이를 바탕으로 쓴 톨스토이의 단편소설을 1차 체첸 전쟁으로 옮겨 만든 세르게이 보드로프 감독의 <코카서스의 죄수>는 배경만 현대로 바꿨을 뿐 원작과 거의 같은 이야기를 보여준다. 감독의 솜씨도 있지만 해당 지역의 지정학적 상황이 크게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작은 제정 러시아가 카프카즈 산악지대에서 타타르인들과 기나긴 항쟁을 펼치던 시절, 포로로 잡혀 인질이 된 러시아 장교 질린과 코스틸린의 고생담이다. 러시아 제국주의의 시각이 강하지만 대문호들의 필력과 고증 덕분에 카프카즈 지역민들의 생활과 문화를 엿볼 수 있다. 영화 포스터 / DAUM 영화 아프가니스탄 전쟁 시즌2를 찍던 체첸 산간에서 신병 질린과 고참병 샤샤가 포로가 된다. 아들이 러시아 감옥에 갇힌 체첸인 압둘은 인질교환을 위해 둘을 산다. 질린과 샤샤의 기약 없는 인질생활이 시작된다. 하지만 러시아군은 포로교환에 무관심하다. 압둘은 인질 가족에게 편지를 보내 교환이 안 되면 둘은 죽은 목숨이라고 말한다. 샤샤는 탈출할 궁리뿐이지만 질린은 압둘의 어린 딸 디나, 머슴 하산과 친해진다. 잔인한 운명이 그들 앞에 다가온다. 체첸인은 적이라는 샤샤의 경험적 판단과 인간적 정을 간직한 질린의 입장은 대조적이지만 영화는 둘 다 원치 않는 결말로 치닫는다. 2차 체첸 전쟁의 무자비 속으로 <브라트> 연작을 연출했던 알렉세이 발라바노프의 2002년 작품 <전쟁>은 2차 체첸 전쟁을 소재로 1차 전쟁과는 비교할 수 없는 야만적 전장으로 우리를 끌고 간다. 이 영화에는 포로로 잡힌 러시아군을 참수하는 스너프 영상 ‘체첸 클리어’ 묘사도 나온다. 카프카즈 산악지대는 여전히 전쟁 중이다. 체첸 독립군이 러시아군과 영국 사업가를 납치하고 몸값을 요구한다. 인질을 구하기 위해 체첸으로 향하는 이들의 모험 속에 적대적 공생으로 치닫는 러시아와 체첸의 현실, 속고 속이는 전장 상황이 허무적으로 묘사된다. 독립투쟁은 온건파와 강경파로 나뉘고, 극단주의 세력의 연이은 테러로 러시아 국내를 격분케 함은 물론 체첸 문제에 방관하거나 온정적이던 서방의 외면을 불러온다. 결국 체첸은 새롭게 권좌에 앉은 푸틴의 ‘평탄화’ 전술로 초토화된다. 2차 체첸 전쟁의 승리로 노쇠한 옐친의 권력을 물려받은 푸틴은 중요한 교훈을 얻는다. 치밀하게 계획해 희생을 감수하고 전쟁에서 승리하기만 하면 국민은 지지한다는 것. 그 경험은 2008년 남오세티야 전쟁, 2014년 크름반도(크림반도) 병합과 돈바스 전쟁, 그리고 2022년의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이어지고 있다. 우리가 체첸 전쟁을 기억해야 할 이유다. 영화 포스터 / DAUM 영화 ‘안정화’된 체첸의 현재 러시아는 전쟁에서 승리한 후 체첸자치공화국 수장에 독립전쟁 온건파에서 친(親)러시아 진영으로 전향한 아흐마드 카디로프를 등용한다. 초대 수장이었던 카디로프가 2004년 암살된 후 갓 서른의 나이에 대통령에 취임한 2대가 바로 아들 람잔 카디로프다. 겉으로 체첸 독립운동은 소멸했고, 잔존세력은 ISIS(이슬람 근본주의 표방 국제테러단체) 등으로 흡수된 상태다. 이제 체첸에 평화가 찾아온 걸까? 다큐멘터리 <웰컴 투 체첸>에서 볼 수 있는 체첸의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 모스크바는 수만의 전사자를 낸 1~2차 체첸 전쟁처럼 무장투쟁을 벌이지만 않는다면 안심이다. 카디로프 지배하에서 체첸자치공화국은 샤리아법(이슬람의 종교법)과 비민주적 독재로 악명이 높지만 이들(카디로프 정권)이 극단주의 세력만 관리해주면 인권유린은 부차적 문제일 뿐이다. 보수적 이슬람주의 땅을 사실상 군벌이 장악한 셈이다. 그런 체첸에서 성소수자들이 겪는 끔찍한 실상을 영화는 폭로한다. 람잔 카디로프는 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체첸에는 동성애자가 없다”고 호언한다. 영화에는 피해자의 증언과 동영상이 가득하다. 2017년에만 100여명 이상이 불법 구금되고 3명 이상 살해된 것으로 조사됐다. 체첸 내 상황에 맞선 러시아 LGBT(성소수자) 활동가들의 생명을 건 싸움이 화면 가득 펼쳐진다. 체첸의 극단화는 푸틴이 장악한 러시아 전역으로 확산하는 중이다. 활동가들의 신변이 위협받는 건 물론이다. 그럼에도 이들의 용기 있는 실천으로 2년여간 151명의 성소수자가 국외 탈출을 감행했다. 캐나다 내 연대 단위들의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과거 흑인노예들을 구출하던 비밀조직)가 44명의 망명을 이끈다. 권위주의 국가들의 인권문제를 거론하던 미국(트럼프 집권기)은 단 한명도 비자를 내주지 않았다고 한다. 체첸 상황은 지구 반대편의 어디에 붙었는지도 모를 산동네 이야기가 아니다. 체첸의 문제는 곧 강대국 러시아의 우경화 수준을 진단하는 척도이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체첸군의 악명이 뉴스를 통해 수시로 등장한다. 이뿐 아니라 러시아 내의 반 푸틴 세력을 테러하고 암살하는 전위부대로 람잔 카디로프의 사병들이 동원되고 있다. 대놓고 푸틴 정권이 손대지 못할 문제를 알아서 처리해주는 카디로프를 모스크바가 예뻐하지 않을 리 없다. 이곳 문제를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바라볼 수 없는 이유다. 체첸이 처한 현실은 강대국의 위선과 불의를 폭로하는 분명한 사례다. 우리가 무관심으로 일관한다면 이 땅의 현재는 머지않은 미래에 결국 우리 집 현관에 도달할 것이다.
영화로 보는 우크라이나 전쟁
[영화로 보는 우크라이나 전쟁](7)소련 해체 후…러시아의 끝없는 추락(2022. 07. 01 14:51)
2022. 07. 01 14:51 문화/과학
ㆍ 2부작 흔히 북반구와 서방에 편중된 부유한 국가들을 ‘1세계’, 남반구와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에 밀집된 가난한 국가들을 ‘3세계’라 칭한다. 그렇다면 ‘2세계’는 어디인가. 바로 소련이 맹주로 있던 동구 현실사회주의 블록이다. 세계의 3축을 이루던 거대진영 중 1축이 증발해버렸다. 그 뒤에 남은 건 무엇일까. 영화 시리즈 주인공 다닐라의 그라피티와 동상 / abrakadabra.fun 몰락 이후, 술주정뱅이 옐친의 시대 소련이 해체될 때 다소간의 혼란은 예상했지만, 러시아 국민은 초강대국의 저력으로 곧 사태를 수습하고 더 잘살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현실은 정반대로 치달았다. 해체 이전 라이벌 미국의 절반 수준 경제 규모를 가졌지만, 대부분의 부를 국가가 소유했기 때문에 제대로 된 개혁만 이뤄졌더라면 러시아인의 꿈은 실현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거대한 국부는 혼란기에 잇속을 차린 과거 공산당 관료와 신흥재벌들에게 넘어갔다. 그들은 ‘올리가르히’라는 기득권 집단이 돼 국가의 부와 권력을 독점했다. 1990년대 초 소련의 1인당 국민소득은 5000달러가 넘었다. 1990년대 중반 러시아 1인당 소득은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보리스 옐친 대통령은 당시 세계를 휩쓸던 신자유주의 개혁을 단행했다. 그 결과 초(超)인플레이션이 발생해 러시아 국민의 90%가 빈곤층으로 전락했다. 1억4000만 인구 중 2000만명이 공식 실업자로 추산되는 참상이 벌어졌다. 소련이 자랑하던 복지제도는 작동을 멈췄다. 임금을 받지 못한 경찰은 부패하거나 범죄 집단으로 변했다. ‘브리트바’라는 마피아가 권력과 결탁해 무소불위의 행패를 부려도 막을 자가 없는 세상이었다. 소련 시절 국민의 물질적 형편은 서방에 비해 낮았지만 교육과 문화예술 접근성은 높았다. 2억9000만 소련 국민의 연간 영화 관객은 20억명이었다(!). 그게 5000만명으로 97.5% 감소했다(!!). 몰락이란 표현이 모자랄 지경이다. 한해 최고 흥행작의 관객 수가 50만명이던 시절이다. 사회 전 분야의 붕괴였다. 그런 기나긴 암흑기를 뚫고 부흥의 희망을 밝혀 당대 러시아의 사회상을 담아낸 작품이 알렉세이 발라바노프 감독의 <브라트>(‘형제’) 2부작이다. 러시아판 ‘택시 드라이버’의 세계 1990년대 ‘잃어버린 10년’ 동안 러시아는 추락을 거듭했다. 경제는 붕괴하고 민주주의는 정착하지 못했다. 소련 체제가 붕괴하자 소수민족의 독립운동이 이어졌다. 그중 대표격인 체첸 자치공화국과의 전쟁에서 러시아는 치욕적인 패배를 당했다. 아프가니스탄 침공의 후유증이 소련을 붕괴시켰듯 체첸에서의 졸전은 막대한 희생은 물론 국가적 자존심도 무너뜨렸다. 그 참전용사 중 1명, 행정병 출신이라며 씩 웃는 청년 다닐라가 <브라트>의 주인공이다.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할 일도, 반기는 이도 없다. 노모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성공한 사람’ 형 빅토르를 찾아보라고 한다. 빅토르는 범죄세계의 해결사였다. 그는 지역의 레드 마피아 보스 의뢰로 경쟁조직 체첸 마피아 보스 암살을 준비 중이다. 다닐라는 형을 돕기 위해 혼자 암살을 실행한 후 도주하다 트램 운전사 스베타와 만나게 된다. 그는 시장에서 깡패들에게 시달리던 고프만을 도와주고, 하루하루 쾌락을 좇는 또래 여성 카트와도 만난다. ‘도시’를 상징하는 존재들과 관계를 맺어가며 다닐라는 뒷골목 세계의 항쟁 속으로 빨려든다. 영화 포스터 <브라트>는 (배경인 1990년대 러시아 상황을 제외하면) 그저 이국적 배경의 액션 누아르다. 하지만 미국의 월남전 패배 이후 상실의 시기에 <택시 드라이버>, <람보>(1편)의 탄생에 비견될 만한 사례이자 현대 러시아인들에겐 그야말로 ‘전설을 넘어 레전드 오브 레전드’가 된 영화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비교할 수 없는 <브라트>의 조잡하고 음울한 배경은 구닥다리 느낌이 물씬 풍긴다. 조금만 몰입해보면 이 영화만큼 당대 러시아를 극사실주의로 잘 담아낸 작품이 없다. 날것 그대로 생생하게 억지로 살아가는 힘없는 이들과 그들을 등쳐먹는 악당, 아무 도움 안 되는 공권력, 범죄자가 동경 받는 선악 뒤바뀐 세상이 압축돼 있다. 여기에 홀연히 ‘반(反)영웅’이 나타나 심판을 펼친다. 다닐라는 순박하고 우직하다. 그는 자신과 동료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살인 기술을 배웠고 어떤 원호 대책도 없이 세상에 던져졌다. 그는 자신이 옳다고 믿으면 폭력을 행사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약자를 괴롭히면 응징해야 한다. 단순함이 그의 효율성을 극치에 이르게 한다. 불필요한 폭력, 약자 학대와는 거리가 멀다. 고독한 반영웅에 당대 러시아인들은 현실을 투영하며 열광했다. 1980년대 자유와 개혁을 원하던 청년세대에 빅토르 최가 아이콘이었다면 1990년대 궁핍하고 좌절한 세대에게 다닐라는 그들만의 영웅이었다. 영화 포스터 / DAUM 영화 미국으로 떠난 주인공 복수와 응징이 끝난 후 다닐라는 어두운 ‘도시’의 근원까지 확인해보겠다며 모스크바로 떠난다. 영웅 훈장을 탄 전우와 재회한 그는 친구의 동생이 미국 아이스하키팀에 스카우트돼 스타가 됐지만, 불공정계약으로 착취당한다는 이야길 듣는다. 친구는 미국 마피아 사업가와 동업하던 레드 마피아에게 살해당한다. 이제 다닐라는 러시아의 영혼을 좀먹는 타락한 자본주의의 본산, 미국으로 복수를 위해 친형 빅토르와 비행기에 오른다. <브라트 2>는 너무나 대조적인 두 형제가 각각 미지의 땅 미국에서 벌이는 로드무비로 변모한다. 1편과 2편 사이 3년 동안 러시아는 많은 변화를 겪는다. 무능하고 부패한 옐친에서 KGB(소련의 비밀정보기관) 출신 푸틴으로 정권이 교체되고 강대국 러시아의 부흥을 꿈꾸는 민족주의 정서가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1편의 허무감 대신 2편은 풍자 개그가 지배한다. 미국에서 다닐라는 이상향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미국의 빈부 격차와 인종차별 실상을 체험한다. 조국의 가난 때문에 흩어져 비참한 삶을 살아가는 동포들에게 시선을 돌린다. 그 과정에서 서방의 환상이 무너진 자리에 민족주의와 반미주의의 그림자가 엿보이기 시작한다. 반면에 친형 빅토르는 돈만 있으면 뭐든 할 수 있다며 미국을 예찬한다. 감독은 이를 통해 당대 두 부류의 러시아인을 효과적으로 묘사한다. 다닐라는 미국으로 상징되는 서방에 대한 실망, 말쑥한 차림 이면에 권력을 악용해 부를 쌓는 기득권을 거부하고 소박하고 진실한 삶을 원한다. 그런 다닐라 역을 맡은 배우 세르게이 보드로프 주니어는 시대의 아이콘에 등극하지만 불과 2년 후 촬영사고로 사망하고 시리즈는 이어지지 못한다. 그 덕분에 다닐라는 전설로 온전히 남을 수 있었다. 소박한 러시아인들의 자존심과 향수를 응축한 것 같은 영웅전설의 주인공으로. 당시 러시아인들의 분노가 시간이 흘러 국수주의적 행보로 이어진 현실을 생각하면 차라리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영화로 보는 우크라이나 전쟁
[영화로 보는 우크라이나 전쟁](6)독소전쟁의 기억이 현재를 지배한다(2022. 06. 03 11:23)
2022. 06. 03 11:23 문화/과학
ㆍ vs “거의 60년 동안 전 세계에 참사가 더 쌓인 뒤에도 여전히 소련인이 겪었던 고통을 그저 듣기만 해도 상상력이 마비돼 보잘것없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 권위자로 꼽히는 리처드 오버리 교수의 대표작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의 한 구절이다. 우리에게 제2차 세계대전은 직접 피해를 겪었던 태평양전쟁, 그리고 대중문화로 쉽게 접하는 영·미와 독일 나치 간 서부전선이 전부다. 독소전쟁 무대인 동부전선은 전쟁사에 관심 많은 이들이 아니라면 생소하다. 독소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의 ‘결정적 찰나’라는 데 역사가들은 이견이 없다. 1941년 나치독일이 시작한 전쟁은 4년 후 소련군의 베를린 함락으로 종결된다. 독일군 피해의 8할이 동부전선에서 발생했다. 소련의 피해는 독일을 초월했다. 무려 2000만~2900만명의 희생자를 냈다(당시 조선 인구가 2500만이다). 스틸 / DAUM 영화 독소전쟁은 그 어떤 전쟁과도 비교를 불허하는 규모다. 우리가 아는 제2차 세계대전은 덩케르크 철수, 사막의 여우 롬멜,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이미지다. 하지만 롬멜과 몽고메리의 사막 혈투는 몇개 사단, 아무리 잡아도 1개 ‘야전군’ 규모에 불과했다. 노르망디는 ‘지상 최대의 작전’이지만 독소전쟁에선 그에 필적하는 전투가 흔했다. 소련군은 (한국군 현역 다 합쳐 1개 나올까 말까 한) ‘집단군’을 10개나 꾸렸을 정도였다. 독일은 소련 침공을 위한 ‘바르바로사 작전’에 300만명을 투입했고, 전쟁의 향방을 결정한 쿠르스크 전투에는 독일군 90만명, 소련군 130만명이 뒤엉켰다. 이런 거대한 규모의 전쟁은 당시 세계 2위(소련) vs 3위(독일) 경제군사대국의 ‘총력전’ 양상으로 전개됐다. 전 국민이 전후방 구분 없이 동원됐다. 정치적 대가를 위한 통상적인 전쟁이 아니라 이긴 쪽이 진 쪽을 노예로 부리고 학살하는 ‘절멸전’ 형태였다. 그 결과는 ‘현세에 강림한 지옥’이었다. 나치의 전쟁범죄는 인종정책에 의해 국가 차원에서 이뤄졌다. 오직 학살을 위한 부대가 별도로 존재했다. 그 결과 특정지역에선 인간의 뼈로만 이뤄진 지층(!)이 발견될 정도의 참상이 벌어졌다. 전황이 바뀌자 소련군이 피의 보복을 시작했다. 러시아는 히틀러를 패배시킨 공로의 우선은 자신들의 희생에 있다고 믿는다(엄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서방은 ‘언싱커블 작전’으로 제2차 세계대전 말 소련의 뒤통수를 칠 계획을 논의했다. 이후 냉전 시기엔 소련의 공헌을 축소했다. 서방에 대한 러시아의 뿌리 깊은 불신은 나름의 근거가 있는 셈이다. 포스터 / IMDB 독소전쟁에 대한 공식평가 <인간의 운명> 소련과 그 계승국가 러시아는 독소전쟁을 ‘대조국전쟁’이라 부른다. 조국을 정복하려던 ‘파시스트’를 압도적 열세를 딛고 승리한 역사는 국가에 대한 자부심과 동시에 외세에 맞선 단결을 촉구한다. 집마다 전쟁에서 가족을 잃지 않은 이가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소련을 대표하는 문호 미하일 숄로호프가 1957년 발표한 단편 ‘인간의 운명’은 당대 러시아인들의 인식을 대변한, 심금을 울리는 명작이다. 1959년 소련의 명감독 세르게이 본다르추크가 동명의 영화로 완성했다. 주인공 안드레이 소콜로프는 혁명 당시 적군에 참여했다가 백군에 의해 가족을 모두 잃는다. 하지만 역시 고아가 된 이리나와 사랑에 빠져 가족을 꾸리고 행복한 삶을 꿈꾼다. 전쟁이 터진다. 징집된 소콜로프는 포로가 된다. 수용소 정책을 비판하다 처형될 위기에 처하지만, 그의 용기에 탄복한 수용소장에 의해 생명을 건진다(이때 목숨을 건 술내기 부분이 명장면이다). 구사일생으로 탈출해 군에 복귀한 그는 고향에 가보지만 가족은 이미 폭격으로 몰살당한 뒤였다. 망연자실한 주인공은 살아남은 아들의 편지를 받고 기력을 회복한다. 아들은 장교로 임관해 훈장을 6개나 탈 만큼 출세했다. 소콜로프는 희망을 찾는다. 하지만 아들은 전쟁 막바지에 전사하고 만다. 절망한 소콜로프는 희망 없는 나날을 보내던 중 고아 소년 바냐쉬카를 만난다. 그는 고심 끝에 실은 자신이 소년의 아버지라고 거짓말을 한다. 아빠를 만난 기쁨에 소년은 펄쩍 뛰며 좋아한다. 길손에게 과거 이야기를 들려주고 나서 부자는 길을 떠난다. 원작자의 변이 뒤를 잇는다. “단단한 의지를 가진 저 러시아 남자가 잘 살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저 꼬마가 아버지 곁에서 잘 자라 무엇이든 견딜 수 있는 남자가 되길 기원합니다. 조국이 필요로 할 때를 대비해서 말입니다.” 현대 러시아인들의 기억 속 대조국전쟁은 이런 역사다. <인간의 운명>은 (특히나 러시아인들에겐) 정말 심금을 울리는 명작이다. 소련 입장에서 서술됐지만 낯부끄러울 정도로 미화된 요즘 ‘국뽕’ 영화와는 비교 불허다. 애초에 전쟁이란 자체가 비극이다. 그런 시각에서 나치의 만행으로 황폐화되는 인간 내면을 묘사한 걸작이 엘렘 클리모프 감독의 1985년 영화 <컴 앤 씨>(검열 때문에 공개까지 8년이나 걸렸다). 영화는 독일 점령 하의 벨라루스를 배경으로 나치의 학살을 가공할 수준으로 재현해냈다. 포스터 / DAUM 영화 전쟁의 진정한 이면 <컴 앤 씨> 소년 플로랴가 빨치산에 참여한다. 지휘관은 아직 어린 소년인 플로랴를 후방에 남기고 떠난다. 플로랴는 글로샤란 또래 소녀와 친해진다. 플로랴는 고향에 들르지만 이미 가족은 학살당했다. 소년은 복수를 위해 다시 빨치산에 합류한다. 작전 중 공격을 받아 인근 마을에 몸을 숨긴다. 나치 학살부대가 이 마을에 도착한다. 대학살이 펼쳐진다. 플로랴는 겨우 목숨을 건지지만 나이에 어울리던 얼굴은 어느새 노인처럼 주름져 있다. 감독은 이후 일절 다른 영화작업을 중단했다. 플로랴 역의 알렉세이 크레프첸코는 후유증에 고생했다고 한다. 영상으로 온전히 독소전쟁 당시의 학살 참극을 재현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지만, <컴 앤 씨>는 그 불가능한 미션에 근접한 걸작이다. 나치 점령지 전역에서 자행된 학살의 결과, 인구 1000만인 벨라루스에서 200만 이상이 희생됐다. 특히 100만에 달했던 유대인 생존자는 1% 이하였다. 벨라루스의 고유한 사회와 문화는 붕괴됐다. 오죽하면 해당 지역에 서식하던 늑대가 견디다 못해 서유럽과 중앙아시아로 엑소더스를 감행했을까. 우크라이나는 엄청난 희생을 치렀다. 훨씬 큰 규모 덕분에 정체성 상실은 면했다. 오히려 ‘홀로도모르’ 대기근과 연이은 재앙으로 소련에 대한 반감이 심화됐다. 그 결과 <컴 앤 씨>에서 나치의 학살을 돕던 극우 부역자들이 대거 창궐하기도 했다. 현재 러시아가 침략 명분으로 내세우는 ‘네오 나치’의 기원이 그들이다(제2차 세계대전 당시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지도자 ‘스테판 반데라’는 현대 우크라이나에서 영웅 소릴 듣지만 국외에선 논란 대상이다). 우크라이나의 20세기 전반기 경험은 러시아에 대한 불신과 함께 민족·지역별로 극복하기 어려운 갈등을 쌓았다. 독소전쟁의 역사적 파급력은 여전히 초월적이다. 왜 러시아가 5월 9일 (대조국전쟁) ‘승리의 날’에 그토록 집착하는지, 우크라이나 민족주의가 강화되는 데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지에 대해 (수용할 필요는 없지만) 주장하는 이유는 제대로 인지해야 문제의 해법도 찾아낼 수 있다.
영화로 보는 우크라이나 전쟁
[영화로 보는 우크라이나 전쟁](5)에서 까지(2022. 05. 20 15:41)
2022. 05. 20 15:41 문화/과학
ㆍ20세기 전반기, 피로 물든 우크라이나 2019년 미국 케이블 방송 HBO에서 공개한 5부작 드라마 <체르노빌>은 제목에서 짐작되듯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재현한다. 사고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소련 정부는 총력으로 인근 주민을 소개(疎開·분산)하지만, 특히 고령자들의 저항이 극심했다고 전해진다. 드라마의 한장면이 상징적이다. 인근 농가에서 혼자 소의 젖을 짜던 할머니와 군인들의 대화다. “총 들고 찾아온 병사가 처음이 아니야. 내가 열두 살 때 혁명이 일어났지. 차르의 병사들, 이어서 볼셰비키들…. 다음에 스탈린이 왔고 기근이 터졌지. ‘홀로도모르’… 다음으로 세계대전. 독일 애들, 러시아 애들, 더 많은 병사, 더 많은 기근, 더 많은 시체. 형제들은 돌아오지 못했어. 하지만 나는 남았고 아직 여기 있다오. 그 모든 것을 겪고서….” 군인은 말없이 소를 총으로 쏴버린다. 망연자실한 할머니는 묵묵히 군인들의 뒤를 따른다. 20세기 우크라이나의 역사를 단 몇분 만에 요약하는 명장면이다. 스틸 / ㈜디오시네마 블러드랜드 예일대 역사학 교수 티머시 스나이더가 집필한 논픽션 <피에 젖은 땅: 스탈린과 히틀러 사이의 유럽>이란 책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사와 관련해 16개 보관소를 샅샅이 뒤져 정리한 이 책은 ‘블러드랜드’, 즉 나치독일과 소련 사이 경계지대에서 죽어간 1400만명의 정치적 학살 피해자를 다룬다. 블러드랜드는 광대한 동유럽 영역을 포괄하지만, 그 핵심지대는 바로 우크라이나다. 스탈린의 대숙청과 우크라이나 대기근에 이어 히틀러의 침략과 홀로코스트가 뒤따랐다. 평범한 인간의 사고로는 상상 불가능한 대학살이 벌어졌다. 피해자 대부분은 노인과 여성, 아이들이었다. 저자는 이러한 전대미문의 참상을 정치적 학살로 규정하고, 그 경과와 원인에 다양한 주석을 달았다. 대체 ‘피에 젖은 땅’ 우크라이나에는 20세기 전반기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대장 부리바>에서 폴란드에 반란을 일으키고 러시아에 귀의한 카자크는 18세기 후반 예카테리나 2세 치하에서 자치권을 상실한다. ‘타타르의 위협’에서 벗어난 우크라이나는 비옥한 흑토에서 생산된 밀을 유럽에 수출하며 러시아의 돈줄이 된다. 카자크는 이제 과거의 자유민 집단에서 강대한 러시아 제국의 위력을 상징하는 군사집단으로 거듭난다. 나폴레옹 전쟁을 비롯한 당대 유럽 전장에서 카자크 기병은 명성을 떨쳤지만, 제정에 반대하는 이들에겐 가혹한 탄압의 첨병이기도 했다. 카자크가 20세기 초에 처한 운명 19세기 후반 러시아 사회에 자본주의가 도입되면서 비교적 평등했던 우크라이나 카자크 집단에 계층분화가 극심해진다. 카자크의 상층부는 러시아 귀족과 지주로 변신해 부를 축적한다. 반면 하층집단은 농노들과 뒤섞이면서 권리가 하락하고 빈곤상태에 빠진다. 그렇게 자유민의 정체성을 상당 부분 잃어가던 카자크는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벌어진 적백내전의 한복판으로 떨어진다. 카자크 상류층은 제정 복고를 주장하는 반혁명세력인 ‘백군’에 가담했고, 무산계급으로 전락한 하류층은 혁명에 동참하는 ‘적군’으로 참전한다. 카자크 간의 전쟁이 우크라이나 전역에서 벌어진다. 이런 동족상잔의 비극은 소련의 대문호 미하일 숄로호프의 대하소설 <고요한 돈강>에 잘 담겨 있다. 작가가 돈강 유역의 카자크 마을에서 태어났고, 어머니가 카자크 출신이라 그의 대표작은 카자크의 실상을 정교하게 묘사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이 소설은 여러차례 영화화됐지만, 특히 1957년, 세르게이 게라시모프가 연출해 4부로 구성한 320분(!)짜리 영화가 유명하다. 포스터 / 다음 영화 가난한 카자크 청년 그레고리가 마을의 유부녀 악시냐와 사랑의 도피행각을 벌인다. 고향을 떠나 행복한 삶을 꿈꾸지만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그레고리는 카자크의 임무를 다하기 위해 전장으로 떠난다. 그사이 귀족의 유혹에 빠진 악시냐는 그레고리와 헤어져 귀향한다. 혁명이 발생한 러시아는 내전의 소용돌이에 빠지고 카자크 동포들의 사이도 갈라진다. 희생이 늘어간다. 그레고리는 백군 장교가 돼 악시냐와 재회하지만, 주변의 많은 이들이 전쟁으로 목숨을 잃는다. 내전은 적군의 승리로 기울고 그레고리는 고향에 돌아오지만 고발당해 도피한다. 악시냐는 패잔병에게 목숨을 잃는다. 오랜 방황 끝에 그레고리가 어린 아들을 안고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영화는 끝을 맺는다. 그레고리의 갈지자 행보는 당시 우크라이나 카자크의 운명 그 자체다. 홀로도모르 역사상 수많은 기근이 있었지만, 현대에 발생한 ‘인재’로 1932~1933년 우크라이나 대기근, 일명 ‘홀로도모르’(Holodo는 ‘기아’, mor는 ‘대규모 죽음’, 즉 기아에 의한 대량학살을 뜻한다)를 빼놓을 수 없다. 지금도 그 원인과 책임을 두고 논쟁 중인 이 참사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역사적 갈등에도 핵심고리로 작동한다. 폴란드의 거장 아그네츠카 홀란드 감독이 연출한 2019년 영화 <미스터 존스>는 홀로도모르의 실상을 서방에 최초로 알린 가레스 존스의 이야기를 담았다. 히틀러가 집권하면서 유럽은 다시 전쟁의 위협에 직면한다. 세계 대공황에서 벗어나지 못한 서방은 공세적 정책을 취하는 나치독일을 제어하기에 역부족인 상황이다. 당시 영국 총리의 젊은 보좌역 가레스 존스는 혁명 이후 서구와 껄끄러운 상태였지만 대공황을 피해 기록적 경제성장을 이루던 소련과의 동맹을 제안하고 실태 파악을 위해 모스크바로 향한다. 젊은 혈기에 그는 소련의 자금줄인 우크라이나 현지의 암행 취재를 시작한다. 포스터 / ㈜디오시네마 도청과 미행을 돌파해 홀로 우크라이나에 도착한 가레스 존스는 홀로도모르의 참상을 목격하고 망연자실한다. 비옥한 곡창에서 생산된 곡물은 공업화가 한창이던 도시 노동자의 식량 공급과 산업화를 위한 재원으로 수탈되고 있었다. 흉작의 고통은 고스란히 우크라이나 농민들에게 전가됐다. 식인(食人)이 공식적으로 확인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존스는 퓰리처상 수상자인 뉴욕타임스의 모스크바 지국장, 월터 듀란티에 이 사실을 알리고 협조를 구하지만, 소련 정부의 입막음에 굴복한 그에게 도움은커녕 방해를 받는다. 기아로 인한 직접 인명피해는 300만, 출산손실까지 합하면 1000만이 넘는 희생자를 낸 이 대재앙은 당시 소련의 집단화계획과 맞물려 현대 우크라이나는 명백한 의도적 ‘학살’로 규정하고 있다(여전히 학계에선 논쟁 중이다). 고립상태에서 대참사를 겪은 우크라이나인들은 소련체제에 불신과 원한을 품는다. 훗날 히틀러와 나치의 실상을 모른 채 제2차 세계대전에서 소련을 침략한 독일군대를 ‘해방자’로 환영한다. 우리는 역사책을 통해 이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고 있다. ‘한 인간이 두 번의 세계대전과 내전, 강제이주와 강압적 집단화, 대기근을 불과 30년 동안 몽땅 겪는다면 어떻게 될까?’ 끔찍한 상상이 우크라이나에선 현실이 됐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뿌리 깊은 불신의 역사는 이렇게 생생한 체험으로 어둠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영화로 보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1 2 3 다음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