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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환의 Hi-story](102)김부식도 천대한 가야, 유네스코가 대접한 까닭(2023. 09. 22 11:24)
2023. 09. 22 11:24 문화/과학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가야고분군 7곳.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주변국과 자율적이고 수평적인 독특한 체계를 유지하며 동아시아 고대 문명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가 된다는 점에서 ‘탁월한 보편적 가치’가 인정된다”고 평가했다. / 가야고분군 세계유산추진단 제공 “1000년 전 김부식이 천대했던 ‘가야’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며칠 전 한국의 ‘가야고분군’이 제45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습니다. 7개 가야고분군은 유곡리 및 두락리(전북 남원), 지산동(경북 고령), 대성동(경남 김해), 말이산(경남 함안), 교동 및 송현동(경남 창녕), 송학동(경남 고성), 옥전(경남 합천) 고분군입니다. 유네스코는 “주변국과 자율적이고 수평적인 독특한 체계를 유지하며 동아시아 고대 문명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가 된다는 점에서 ‘탁월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OUV)’가 인정된다”고 평가했습니다. 천덕꾸러기에서 백조로? 이대목에서 저는 웃음이 나왔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그동안 한국 역사에서 가야의 존재가 얼마나 무시당했습니까. 다른 예를 들 것도 없죠. 맨 처음 인용했지만, 김부식(1075~1151)이 편찬한 <삼국사기>만 봐도 그렇습니다. 고구려·백제·신라 등 3국의 역사만 기술하지 않았습니까. 가야사는 쏙 빼놓았죠. <사국사기>가 아닌 <삼국사기>가 된 겁니다. 완전히 뺀 것은 아닙니다. ‘신라본기’에만 종종 ‘가야국’ 이야기를 넣었습니다. “기원후 77년(탈해왕 21) 가야와 황산진 전투를 벌였다”는 기사를 시작으로 “지원군을 보내 가야를 공격하는 포상 8국을 물리쳤다”(209), “가야가 왕자를 볼모로 보냈다”(212)는 기사가 보입니다. 또 “신라·백제·가야 연합군이 고구려 공격을 격퇴했다”(481), “가야국 왕이 혼인을 청했다(522)”, “법흥왕이 변방 순행 중 가야국 왕을 만났다”(524)는 내용도 있네요. 급기야 “532년(법흥왕 19) 금관국왕 김구해(김유신의 증조할아버지)가 항복했다”는 구절이 등장합니다. 이후 “554년(진흥왕 15) 관산성 전투에서 백제·가야 연합군을 무찔렀다”는 기사가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562년(진흥왕 23) 9월 배반한 가야를 토벌했다”는 가야의 멸망 소식을 전합니다. 7개 고분군에서 출토된 가야 유물들. 가야 제국은 각각의 문화와 전통을 나름대로 유지하며 성장했다. / 가야고분군 세계유산추진단 제공 <삼국사기> ‘잡지·지리’는 ‘김해소경’을 설명하면서 ‘금관국’의 역사를 요약 소개합니다. “김해소경은 옛 금관국(가락국 혹은 가야)이다. 시조 수로왕~10대 구해왕에 이르렀고, 532년 항복해….” <삼국사기> ‘열전·김유신’전은 “김유신의 12대조인 수로왕이 기원후 42년 가야를 건국하고, 후에 금관국으로 이름을 고쳤다”고 부연설명했습니다. 제법 구체적이죠. 금관가야만이 아닙니다. ‘대가야국’ 이야기도 <삼국사기> ‘잡지·지리’에 나옵니다. “고령군은 본래 대가야국이 시조 이진아시왕에서 도설지왕까지 모두 16대 520년 이어졌던 곳이다. 진흥왕이 멸망시키고….” 가야는 왜 ‘따로국밥’을 지향했을까? <삼국사기>에 따르면 10대 500년 이어간 금관국과 16대 520년 존속한 대가야가 분명히 존재했죠. 그쯤 되면 ‘금관국본기’, ‘대가야국본기’ 등은 아니더라도 ‘가야본기’쯤은 나와야 하는 것 아니었을까요. <삼국사기> 편찬자인 김부식은 왜 ‘가야’의 역사를 무시한 걸까요. 일반적인 설명은 이거죠. 가야는 멸망할 때까지 삼국과 같이 통일된 하나의 고대국가를 이룬 적이 없다는 겁니다. 12개(전기) 혹은 22개(후기)의 소국으로 느슨한 연맹체를 이루고 있었다는 겁니다. 가야는 고대국가의 첫 번째 조건인 ‘강력한 통일국가’를 이루지 못했기에 ‘사국’ 대접받기에는 자격 미달이라는 겁니다. 가야는 왜 통일국가를 이루지 못했을까요. 가야 제국은 소백산맥 및 지맥과 낙동강 및 그 지류로 형성된 작은 분지를 중심으로 성장했습니다. 비근한 예로 대가야는 고령 서북쪽에 가야산(1430m), 서쪽에 비계산(1126m)과 두무산(1038m) 등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죠. 이러한 분지로 형성돼 있으니 통일왕국의 길이 어려웠죠. 분지에서 생산되는 농산물과 철기문화를 바탕으로 낙동강을 터전 삼아 살았습니다. 큰일이 생겼을 때 인근 소국과 연합해 대처하는 길을 모색했죠. 그렇게 10~20개 소국이 ‘각자도생’을 원칙으로 성장한 겁니다. 다양성의 가치가 평가됐다? <삼국유사> ‘기이·가락국기’에 등장하는 김수로왕 탄생신화를 봅시다. “서기후 42년 하늘에서 내려온 6개 알에서 태어난 사내아이 중 한 사람은 대가야의 왕이, 나머지 다섯 사람도 가야의 임금이 됐다”고 했죠. 그뿐 아니고요. 통일신라 최치원(857~?)은 <석이정전>에서 흥미로운 대가야 전설을 전합니다. “가야산신이 천신과 사랑을 나눠 대가야왕인 뇌질주일과 금관국의 왕인 뇌질청예 등을 낳았다”는 겁니다. 대가야왕과 금관국왕이 형제라는 이야기죠. 그런 점에서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는 참 흥미롭습니다. ‘주변국과의 자율·수평적 관계’를 유지했고, 그것을 ‘동아시아 고대 문명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증거’여서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가 인정된다는 거잖아요. 언제는 통일국가를 형성하지 못해 <삼국사기>에서도 ‘자격 미달’의 평가를 받았던 ‘가야’였는데…. 이제는 자율성·다양성의 모델이라고 유네스코 세계유산 목록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니…. 세상이 참 많이 바뀌었습니다. ‘기이·가락국기’에 등장하는 김수로왕 탄생신화. “서기후 42년 하늘에서 내려온 6개 알에서 태어난 사내아이 중 한 사람은 대가야의 왕이, 나머지 다섯 사람도 가야의 임금이 됐다”고 했다. / 국사편찬위원회 제공 만년 2인자의 견제 때문? 각설하고요. 이번에 세계유산에 등재된 7개 고분군을 훑어보았는데요. 역시 최근 발굴성과가 두드러진 ‘경남 함안 말이산 고분군’에 눈이 가더군요. 함안은 가야연맹체 가운데서도 아라가야(안라국)의 본거지라 할 수 있는데요. 여러분은 가야 하면 전기(2~4세기 말)·후기(5세기 전반~6세기 중후반) 가야연맹체의 맹주국인 금관국과 대가야국 등 2개국만 아시죠. 하지만 전·후기를 통틀어 2인자로서 존재감을 과시한 나라가 있었는데요. 안라국입니다. 왜 2등은 기억해주지 않는다는 말이 있잖습니까. 그래서 잘 몰랐을 뿐 안라국의 위상도 만만치 않았답니다. 금관국과 대가야가 통일국가를 이루지 못한 이유는 바로 2인자였던 안라국의 견제 때문이었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임나일본부 찾겠다”고 큰소리 뻥뻥 말이산 고분군에는 1.9㎞ 정도 되는 구릉에 127기의 대형고분(지름 10~35m)이 조성돼 있습니다. 이렇게 즐비한 대형 고분 덕분에 함안은 일제강점기부터 주목을 끌었던 곳입니다. 일제가 이른바 ‘임나일본부’의 증거를 “여기서 찾겠다”고 혈안이 됐죠. 일본학자 구로이타 가쯔미(黑板勝美)는 “<일본서기>에 따르면 임나일본부는 분명 여기에 있다. 내 손으로 임나일본부를 찾겠다”(매일신보 1915년 7월 24일자)고 큰소리 뻥뻥 쳤습니다. 그러나 1910~1917년 4차례의 조사결과 구로이타의 장담은 헛소리로 판명됐죠. 아라가야 왕궁터로 추정되는 가야리에서는 높이 8.3m에 달하는 토성벽이 확인됐다. 잔존 성벽의 길이는 2㎞ 정도로 추정된다. /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제공 “막상 일본부라고 해도 조선풍인 것이 틀림없다. 조사결과 일본부의 자취가 사라져서 찾을 방법이 없는 게 유감이다.” 한마디로 임나일본부의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는 얘기입니다. 말갑옷, 별자리, 금동관, 청자 이후에도 일제가 뒤집어씌운 ‘임나일본부’의 악령이 여전히 지워지지 않았죠. 그러던 중 1992년 6월 신문 배달 소년이 경남 함안 도항리 아파트 신축공사장에서 말갑옷을 발견했습니다. 동수묘, 삼실총, 쌍영총 등 고구려 고분벽화에 중무장한 기병이 타고 있던 것과 흡사한 말갑옷이었습니다. 2018년 말에는 아라가야 왕궁터로 추정되는 가야리에서 높이 8.3m에 달하는 토성벽(잔존길이 2㎞ 정도)이 확인됐습니다. 또 말이산 13호분에서는 전갈, 궁수자리 등 125개의 별자리가 새겨진 무덤 덮개돌이 확인됐습니다. 이중 6개의 별로 구성된 궁수자리는 ‘남두육성’이라도 하는데요. ‘북두칠성’이 하늘과 죽음을 의미한다면, ‘남두육성’은 땅과 생명을 뜻하죠. 이 고분에서는 중국제 모방품으로 추정되는 금동제 허리띠장식과 일본 최고위 무덤에서만 보이는 녹각제 칼손잡이 등도 출토됐습니다. 2021년 7월에도 말이산 45호분 출토 유물의 보존처리 과정에서 금동관(일부)을 찾아냈는데요. 이 금동관은 다소 거칠게 제작됐지만 두 마리의 봉황이 정확하게 대칭을 이루며 표현돼 있습니다. 세상 어디에도 찾을 수 없는 아라가야만의 디자인입니다. 2019년 경남 함안 말이산 고분군 45호분에서 출토된 금동관의 복원 모습. 봉황 두 마리가 마주 보고 있는 아라가야 특유의 독창적인 디자인이다. / 이한상 대전대 교수 복원·경남 함안군 제공 말이산 75호분에서는 중국제 청자가 수습됐습니다. 5세기 중국 남조(유송·420~479)에서 제작된 연꽃무늬 청자그릇이었습니다. 비슷한 시기 충남 천안 용원리와 서울 풍납토성 등 전국 각지에서 출토된 청자그릇과 쌍둥이라 할 만큼 깊은 친연관계를 보였답니다. 청자를 매개로 5세기 동북아시아에서 활발한 네트워크가 작동하고 있었다는 얘기죠. 안라인수병의 정체 이런 발굴성과를 계기로 아라가야와 관련된 문헌 기록이 재해석됐습니다. <삼국사기>의 안라국(아라가야) 관련 기사(209)가 눈에 띕니다. “신라가 ‘포상 8국의 전쟁’에 지원군을 보냈다”는 기사인데요. 지금까지 ‘포상 8국의 전쟁’은 안라의 배후지원 아래 골포(마산), 칠포(칠원), 고사포(고성), 사물국(사천) 등 8국이 가라(금관가야)를 공격한 사건으로 해석됐습니다. 지금은 그러나 거꾸로 안라, 즉 아라가야가 포상 8국의 공격을 받은 사건이라는 견해가 부각되고 있습니다. 어떤 것이 맞든 안라국의 위상이 만만치 않았다는 사실의 증거가 돼줍니다. 또 하나 주목을 받는 기록이 있습니다. 바로 ‘광개토대왕 비문’의 고구려 남정(400) 기사 중 ‘안라인수병(安羅人戌兵)’ 문구입니다. ‘고구려 남정기사’는 광개토대왕이 5만 대군을 파견해 신라를 공격한 왜를 쫓아냈다는 내용인데요. 그동안 ‘안라인수병’의 실체를 두고 설왕설래했는데요. 요즘 ‘안라’를 ‘안라국(아라가야) 별동대’ 혹은 ‘안라국 수비대’로 해석하는 견해가 만만치 않습니다. 안라국이 광개토대왕 비문에 나올 정도로 유력한 세력이었다는 얘기입니다. 1992년 신문 배달 소년이 경남 함안 아파트 공사장에서 기적적으로 찾아낸 말갑옷과 둥근고리큰칼. 아라가야 수장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2018년 함안 말이산 13호분에서는 전갈자리와 궁수자리(남두육성) 등 125개의 별자리가 새겨진 무덤 덮개돌이 확인됐다. /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 제공 1인자를 꿈꾸는 만년 2인자 최근에는 아라가야의 위상을 영원한 2인자에서 1인자로 올리려는 시도도 엿보입니다. 즉 <남제서> ‘동남이열전·가라’조는 “(479년) 가라왕 하지가 남제에 사신을 보내 공물을 바치자 ‘보국장군 본국왕’에 제수했다”고 했는데요. 지금까지는 남제의 작위를 받은 ‘가라왕 하지=대가야왕’이라는 해석이 통설이었습니다. 최근 5세기 후반(479) 중국제 청자가 말이산 고분에서 출토되자 새로운 해석이 나왔습니다. <남제서>의 ‘가라왕 하지’는 대가야왕이 아니라 다름 아닌 아라가야 왕을 가리킨다는 것이었습니다. “가야 제국이 안라를 형(兄) 혹은 아버지(父)로 여겨 오로지 안라의 뜻을 따른다”는 <일본서기> ‘흠명기·544’조도 인용됐습니다. 또 <일본서기>에 따르면 529년 남부 가야 제국이 안라국을 중심으로 자구책을 모색하고, 이에 안라가 백제·신라·왜의 사신을 초빙해 새롭게 조성한 고당(高堂)에서 국제회의를 주도합니다. 신라가 대가야와 결혼동맹을 맺고 탁기탄(경남 밀양)을 멸망시키는 등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대응하려 한 겁니다. 최후의 몸부림 이 무렵(540년대) 가야연맹은 대가야(북부)와 안라(남부) 등 남북 이원체제로 굳어졌는데요. 안라국은 541년과 544년 두 차례에 걸쳐 6~7개 소국 대표를 이끌고 백제의 사비(부여)에서 1·2차 국제 회담을 엽니다. 그러나 두 차례 사비회의는 결렬되고 맙니다. 554년 백제·가야·왜 연합군이 신라와의 관산성 전투에서 백제 성왕이 전사하는 등 대패하게 됩니다. 이때 가야연맹 제국도 더는 회복할 수 없는 치명타를 입게 됐고요. 막판 선봉에 섰던 안라국은 가야 제국 중 가장 먼저 신라에 투항합니다(560). 그후 2년 뒤, 대가야가 멸망함으로써 가야의 500년 역사에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여하간 이번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계기로 가야역사가 새롭게 부각될 것 같은데요. 솔직하게 말해 가야에 대한 연구가 일천한 상태에서 세계유산에 등재된 감이 있어요. 예를 들면 전북 남원 유곡리·두락리 지역을 왜 가야 영역으로 묶는지 의아해하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세계유산 등재를 가야사 연구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할 것 같습니다. 심도있는 연구가 필요할 것 같네요.
이기환의 Hi-story
[기고]5년 전 떠났던 미국의 유네스코 재가입 이유(2023. 06. 23 11:17)
2023. 06. 23 11:17 국제
오드리 아줄레 유네스코 사무총장이 지난 6월 12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미국의 유네스코 복귀 요청을 발표하는 연설을 하고 있다. / AFP연합뉴스 “친애하는 사무총장님, 유네스코를 창설한 회원국으로서 미합중국은 유네스코의 권한과 임무를 정립하고 발전시키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해 왔습니다. 유네스코 창설 이후 이러한 임무는 중요성이 증대됐으며 유네스코 본연의 관심사인 문화유산 보호와 과학, 교육에 더해 새롭게 등장하는 도전 과제에 유네스코가 대처하면서 유네스코는 계속 성장할 것이라 우리는 확신합니다.” 리처드 베르마(Richard Verma) 미국 국무부 부장관은 2023년 6월 초 오드리 아줄레 유네스코 사무총장에게 미국의 유네스코 복귀를 알리는 서한에서 이같이 말했다. 2023년 6월 현재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회의장에는 미국 대표의 좌석이 없다. 유네스코는 프랑스 파리에 본부를 두고 유엔의 교육, 과학, 문화, 커뮤니케이션 이슈를 논의하고 여러 나라가 합의를 도출하는 국제기구다. 유네스코는 2년마다 홀수 해에 총회를 연다. 회원국들은 총회에서 주요 사안을 검토하고 결정한다. 우리가 유네스코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세계유산을 규정한 세계유산협약, 문화다양성 협약으로 불리는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 보호와 증진에 관한 협약’ 등 문화 분야의 중요한 국제협약들이 유네스코총회에서 탄생했다. 협약을 비롯해 유네스코가 다루는 다양한 영역의 주요 사안은 투표로 결정한다. 투표권은 회원국만이 행사할 수 있다. 이러한 중요 결정을 하는 유네스코 회의장에 지난 5년간 미국 좌석은 보이지 않았다. 2018년 12월 31일자로 미국이 유네스코를 탈퇴했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 가입 승인되자 분담금 끊고 탈퇴  미국이 유네스코에 돌아온다. 유네스코총회 회의장에서 나라 이름이 적힌 명패를 치우고 떠난 지 5년 만이다. 흥미로운 점은 유네스코총회장에서 미국 표기는 유나이티드 스테이츠(United States)가 아닌 에따쥐니(´Etats-Unis)다. 유네스코가 프랑스에 본부를 두고 있어 프랑스어로 표기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팔레스타인의 유네스코 가입에 반대 입장을 고수해 왔지만 2011년 유네스코 회원국들이 총회에서 팔레스타인의 가입안을 승인하면서 외교적 좌절을 경험했다. 미국 의회는 팔레스타인을 회원국으로 승인하는 국제기구에 분담금 납부를 금지한다는 법을 제정한 터라 미국 정부는 유네스코에 분담금 납부를 중단했다. 이어 2017년 10월 트럼프 대통령이 유네스코 탈퇴를 선언했다. 유네스코가 공식 발표한 미국의 유네스코 탈퇴일은 2018년 12월 31일인데 미국의 탈퇴 선언과 실제 탈퇴까지는 상당한 시간차가 있다. 회원국이 탈퇴를 선언한다고 회원국 명단에서 곧바로 삭제되지는 않는다. 유네스코의 가입과 탈퇴를 규정한 유네스코헌장에 따라 탈퇴 절차를 밟고, 다음 유네스코총회에 안건으로 상정해 보고 후 승인되기까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당시 195개 회원국 가운데 미국의 유네스코 분담금 비율은 20%가 넘었다. 유네스코에 미친 타격이 클 수밖에 없었다. 미국의 분담액만큼 예산이 줄어든 유네스코는 직원 감원과 사업 우선순위 조정 등 조직과 사업 등 가능한 모든 분야에서 개혁해야 했다. 미국이 유네스코를 탈퇴했다 복귀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냉전이 한창이던 1984년부터 2003년까지 미국은 무려 19년간 유네스코와 관계를 끊은 적이 있다. 1970년대 미국의 비디오, 영상 콘텐츠 등 수많은 정보가 국경을 넘어 일방적으로 유입되는 것에 위기감을 느낀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지역의 제3세계 회원국들이 미국을 겨냥해 국제 정보 유통의 불균형 해소를 주장하며 유네스코 무대에서 장기간 정치 논쟁을 이어가자 당시 미국 레이건 행정부가 회원국 탈퇴 결정을 내렸다. 중국 최대 분담금 내며 영향력 키워  그렇다면 미국이 유네스코에 재가입(reentry)하고 다시 유네스코 회의장에 나오는 이유는 뭘까. 무엇보다 유네스코에서 미국의 국제정치적 입지를 회복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유네스코는 유엔의 교육, 과학, 문화를 망라한 영역에서 미래 방향을 설정하고 규범을 정하는 곳이다. 인공지능(AI) 윤리 이슈를 비롯한 글로벌 핵심 이슈들이 다뤄지는 동안 미국이 지난 5년간 유네스코 논의의 장에서 빠지면서 자신의 목소리를 반영할 기회를 잃었다. 그사이 중국은 유네스코 분담금 비율을 꾸준히 늘려 현재 19.7%로 분담금을 가장 많이 납부하는 나라로 부상했다. 중국의 영향력 증대에 마냥 손 놓고 바라만 볼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한 셈이다. 국익 차원에서 이는 커다란 손실이다. 미국은 유네스코 복귀의 가장 큰 걸림돌이던 ‘분담금 납부 제한’ 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분담금 납부 제한 조항의 적용을 대통령이 면제할 수 있는 권한을 포함하는 2023 회계연도 세출법안을 최근 통과시켰다. 미국 의회가 제정한 법에 따라 불가능하던 미국 정부의 유네스코 분담금 지급이 다시 가능해진 것이다. 베르마 부장관의 서한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대목은 미국이 유네스코의 개혁 노력을 평가한 점이다. 미국은 유엔에서 가장 많은 재정을 부담하면서 국제기구의 방만한 운영, 저효율성, 정치적 편향성 등에 대해 꾸준히 문제 제기를 해왔다. 그런데 이번 서한에서 “우리는 유네스코가 핵심 운영 및 행정 개혁들을 이행하고자 노력한 점, 뿐만 아니라 정치적 논쟁, 특히 중동 문제에 관한 정쟁을 줄이는 데 집중한 점을 주목한다”며 그간 지적한 문제점들이 개선됐다고 평가했다. 중국 견제를 위해 복귀가 시급했던데다 보다 외교적으로 세련된 유네스코 복귀 명분을 고심하던 미국이 유네스코에 요구해온 과제가 이행됐기에 복귀한다는 쪽으로 내부 입장을 정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서한에서 유네스코총회의 투표권 행사와 유네스코집행이사국 자격을 포함해 회원국이 가지는 모든 특권을 회복하면 첫째, 2023년 잔여기간에 산출된 유네스코 분담금 제공, 둘째, 유네스코 홀로코스트 교육 프로그램, 언론인 안전, 우크라이나의 문화유산 보호, 아프리카 지역의 과학기술, 공학, 수학 교육 등 지원을 위해 1000만달러(약 130억원)의 자발적 기여금 공여를 위한 미국 의회와의 작업 착수, 셋째 2024년 미국의 유네스코 분담금과 그간의 분담금 연체금 납부를 위해 미국 의회에 2024 회계연도 예산 1억5000만달러(약 1950억원) 배정 요청 등을 추진할 계획임을 밝혔다. 한국 분담금 8위…6월 29일 특별총회 촉각  유네스코는 미국의 유네스코 복귀 승인을 다루기 위해 오는 6월 29일부터 이틀간 유네스코본부에서 유네스코 특별총회(extraordinary session)를 개최한다고 회원국들에 공식 발표했다. 1945년 창설 이래 유네스코 역사에서 미국이 차지한 비중과 역할을 고려할 때 이번 특별총회를 계기로 미국은 회원국의 모든 권리를 회복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폐쇄한 유네스코 주재 미국대표부도 다시 파리에 개설될 전망이다. 유네스코는 유엔기구 가운데 유일하게 국가위원회(National Commission for UNESCO)라는 국제 네트워크를 갖고 있다. 유네스코헌장에 따라 모든 회원국은 국가위원회를 조직해 운영하고 있고, 남북한 포함 199개에 달한다(유네스코한국위원회는 1954년에 창립해 2024년에 70주년을 맞이한다). 미국의 유네스코 복귀로, 해산됐던 유네스코미국위원회도 다시 구성될 것으로 보인다. 재가입 승인 직후 미국 대표의 발언에 어떤 메시지가 담겨 있을지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오는 29일 밤 10시(파리 현지시간 낮 2시)에 개막하는 유네스코 특별총회는 유튜브로 전 세계에 생중계될 전망이다. 대한민국은 유네스코 분담금 3.3%를 납부(분담금 순위 8위)한다. 유네스코집행이사국으로서, 유네스코 외교 무대에서 차지하는 역할과 비중이 날로 커지고 있다.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될 이번 유네스코 제5차 특별총회에 우리 국민도 관심을 가져야 하는 까닭이다.
[할 말 있습니다](22)유네스코는 왜 등재 유산을 삭제했을까(2022. 12. 16 11:30)
2022. 12. 16 11:30 문화/과학
“의견 없으십니까?”, “8번 의안 채택합니다.” 의장이 엄숙한 목소리로 의사봉을 내리치자 회의장 곳곳에서 환희의 반응과 함께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무겁고 숙연하던 분위기는 한순간에 바뀌었다. 지난 12월 2일 모로코 수도 라바트에서 열린 제17차 유네스코 무형유산보호 정부간위원회 총회에서 한국의 탈춤이 유네스코 무형유산으로 등재된 직후 관련 영상이 상영되고 있다. / 김용범 제공 지난 12월 2일 모로코 수도 라바트에서 열린 제17차 유네스코 무형유산보호 정부간위원회에서 벨기에 도시 아트(Ath)에서 열리는 가장행렬(뒤카스·Ducasse) 축제가 유네스코 유산목록에서 삭제됐다. 흑인 노예 캐릭터가 등장해 인종차별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된 후 3년 가까이 끌어 오던 문제가 결론을 찾는 순간이었다. 2003년 유네스코총회가 무형문화유산보호에 관한 협약을 채택한 이후 유네스코 무형유산에 등재된 유산이 그 지위를 박탈당한 두 번째 사례다. 첫 사례는 2010년 유네스코 무형유산에 등재됐다가 유대인을 비하하는 인형을 등장시켜 2019년 유산 목록에서 퇴출된 벨기에의 알스트 축제이다. 흑인 희화화 비판받은 뒤카스 축제 각국 대표단은 이날 뒤카스 축제를 단호한 어조로 비판했다. “이렇게 수치스러운 종목이 어떻게 14년간 유네스코가 부여한 무형유산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까?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삭제 결정을 해야 합니다.” 인도 대표는 “검은색은 야만적이지 않습니다. 검은색은 아름답습니다. 검은색은 멋집니다. 검은색은 당당합니다”라고 말했다. 벨기에 수도 브뤼셀에서 남서쪽으로 60㎞ 떨어진 곳에 있는 아트는 매년 8월 넷째 주에 거인 조각상을 만들어 한바탕 축제를 연다. 중세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이 축제에는 얼굴과 손을 검정 물감으로 칠해 흑인 분장을 한 인물이 등장한다. 아프리카 추장을 연상케 하는 커다란 깃털 모자에 코와 귀에는 커다란 고리를 착용한 모습인데, 축제에 온 아이들에게 다가가 겁을 주고 급기야 아이들이 울음을 터뜨리는 모습을 보고 즐거워하는 행동을 한다. 가장행렬에 등장하는 이 캐릭터의 이름은 ‘야만인, 미개하고 포악한 사람’을 뜻하는 ‘소바주(le Sauvage)’다. 까맣게 페인트칠을 한 손이 닿으면 아이들 몸에 검은색 페인트가 묻기에 아이들에게는 소름 돋는 공포의 대상으로 각인된다. 2005년 프랑스와 벨기에는 공동으로 ‘벨기에와 프랑스의 거인과 용들의 행렬’을 유네스코 무형유산으로 등재했다. 벨기에 아트에서 열리는 가장행렬도 여기에 포함됐다. 벨기에 시민단체는 아프리카계 주민을 풍자하고 흑인에 대한 혐오와 인종차별을 조장하므로 유네스코 무형유산목록에서 아트의 축제를 삭제할 것을 요구하는 서한을 2019년 유네스코에 전달했다.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유네스코 무형유산 지위의 박탈을 요구해왔다. 벨기에 아트 시는 축제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의견청취를 한 결과 인종차별 의도는 없다는 입장을 내고 해당 축제에서 ‘소바주 캐릭터’를 유지해왔다. 당사국인 벨기에 정부는 어떤 형태의 인종차별 행위도 강력히 반대한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표명해왔다. 그간 유네스코와 무형유산 협약 당사국들도 당사자 간 대화로 원만한 해결을 장려한다는 입장이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위원국들은 소바주 캐릭터가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고 유네스코헌장과 무형유산보호 협약의 정신에 위배되므로 더 이상 유네스코 무형유산 목록에 포함되는 걸 용인해서는 안 된다는 데 공감했다. 유네스코 무형유산으로 등재된 유산의 구성 종목을 삭제한 결정이 모로코에서 열린 회의에서 나왔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모로코를 비롯해 노예무역의 아픈 역사, 제국주의의 인종혐오와 차별을 경험한 나라들은 사안을 중대하고 민감하게 받아들였다. 결코 쉽게 넘길 사안이 아니었던 셈이다. ‘벨기에와 프랑스의 거인과 용들의 행렬’ 유산의 하나로 유네스코 무형유산으로 분류됐던 벨기에 아트의 가장행렬은 결국 이번 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유네스코 무형유산이라는 지위를 잃었다. 스위스는 한 발 더 나아갔다. 유네스코 무형유산 목록에서 벨기에 아트의 가장행렬이 삭제되는 데 그치지 않고, 소바주 캐릭터 자체가 해당 축제에서 더 이상 등장하지 않길 강하게 희망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위원회는 결의문에 이 내용을 추가했다. 프랑스가 신청한 ‘바게트 빵 문화와 장인의 제조법’이 유네스코 무형유산에 등재된 다음 날 아침 프랑스 대표단이 회의장에 바게트를 놓고 갔다. / 김용범 제공 유산 등재 쏠림 막으려는 유네스코 이번 제17차 정부간위원회는 유산 종목 삭제 의안 외에도 우리나라가 신청한 ‘탈춤, 대한민국의 가면극(Talchum, mask dance drama in the Republic of Korea)’과 북한이 신청서를 제출한 ‘평양랭면 풍습(Pyongyang Raengmyon custom)’ 등 모두 39건의 무형유산에 대해 유네스코 무형유산 대표목록 등재를 승인했다. 또한 베트남이 제출한 ‘참족의 도자기 공예’ 등 4건의 유산에 대해 긴급보호목록 등재 안건 등을 채택했다. 북한은 이번 위원회에 2명의 대표단을 파견해 눈길을 끌었다. 쿠바가 신청한 ‘라이트 럼 제조 장인의 지식’ 등재 안건을 곧바로 채택하지 않고 다음 날 논의하는 것으로 당일 회의가 종료되자 북한 대표단은 회의장을 떠나지 못하고 회의장 입구에서 초조한 듯 담배를 태우며 상의하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다음 날 오전 북한 대표는 우리나라가 제출한 ‘대한민국의 탈춤’ 등재 안건의 채택 결정을 지켜봤다. 등재 직후 우리나라가 준비한 탈춤 홍보영상이 회의장의 대형 스크린에 상영되자 주의 깊게 지켜봤다. 북한의 평양냉면 등재 명칭은 냉면이 아니라 북한식 표기인 ‘랭면’으로 표기됐다. 북한은 무형유산을 ‘비물질유산’이라고 부른다. 유네스코는 매년 무형유산 등재를 위한 심사 건수의 한도를 총 60건으로 묶어놨다. 특정 국가나 지역으로 유산 등재가 쏠리는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유네스코는 세계 각지에서 지역별로 무형유산이 골고루 등재되도록 힘쓰고 있다. 유네스코는 유럽(2개 그룹), 남미·카리브해 지역, 아랍, 아프리카, 아시아·태평양 등 6개 그룹으로 나눠 그룹 간에 무형유산 등재 규모의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우리나라는 유네스코에서 등재 규모가 큰 나라로 분류돼 2년마다 1건씩만 등재가 가능하다. 유네스코에 무형유산 등재 실적이 없는 지역과 나라에도 등재 기회를 부여하자는 취지다. 보통 무형유산협약에 가입한 나라가 무형유산 등재신청서를 유네스코에 제출하면 무형유산 심사기구에서 신청서를 심사한다. 그후 등재권고, 정보보완, 합의 어려움 등 3가지로 구분해 심사결과를 유네스코에 제출한다. 심사결과는 유네스코 정부간위원회에 상정돼 위원회가 최종 승인한다. 유네스코총회는 2003년 무형유산보호에 관한 협약을 채택했다. 협약 명칭(Convention for the Safeguarding of the Intangible Cultural Heritage)이 길어 ‘2003년 협약’(2003 Convention)으로 줄여 부른다. 무형유산보호 협약 채택 이후 매년 정부간위원회를 개최해 무형유산 대표목록과 긴급보호목록 등재를 승인하고, 2년마다 협약에 가입한 당사국이 참가하는 총회를 개최한다. 사람과 세대 간에 계승되면서 유산의 전승자와 공동체, 역사, 여건, 환경 등과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 무형유산은 끊임없이 변화되고 재창조되는 특성을 가진다. 그 까닭에 ‘살아 숨쉬는 유산’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공동체와 집단의 정체성 형성에 영향을 미친다. 인류의 창의성과 이를 바탕으로 발전해온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 보호와 증진에도 기여한다. 유네스코 무형유산협약의 역할은 무형유산 보호에만 그치지 않는다. 유산의 보호를 위한 교육 증진과 인식 제고에 주목하고, 나아가 유산에 내포된 인류의 문화적 다양성과 창의성 증진, 문화 간 대화에 기여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특히 무형유산 협약은 협약에 가입한 나라가 무형유산 보호를 위해 적절한 정책적 조치를 하도록 요청한다. 이를 위해 무형유산 등재 신청과정은 물론 유산의 보호와 증진에 유산을 공유하는 공동체와 집단, 유산의 전승자들이 적극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번 회의가 열리는 모로코로 가는 길은 멀었다. 우리나라에서 공항 직항 노선이 없는 모로코로 가려면 유럽 지역을 경유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하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 정세가 불안정해진 탓에 우리나라 국적 항공기는 러시아를 피해 가야 한다. 중국과 우즈베키스탄, 아르메니아, 오스트리아, 독일 등으로 이어지는 러시아 국경 이남 지역으로 운항하는 바람에 운항 거리도 비행시간도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보다 늘었다. 벨기에와 프랑스 축제 퍼레이드에 쓰이는 거인상의 모습 / 유네스코 제공 무형유산 전승자 보호에도 관심 높아져 모로코로 가는 여정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건 분단으로 볼 수 없는 북한 땅을 비행기, 그것도 우리 국적기에서 바라본 경험이다. 국적기가 인천국제공항을 이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백령도 등 서해 5도는 물론 황해도의 해안과 드넓은 들판이 손에 잡힐 듯 눈에 들어왔다. 우리 국적기의 창밖으로 황해도를 조망할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못 한데다 평양냉면 풍습의 등재 결정을 앞둔 유네스코 회의에 참석하러 가는 터라 창밖의 풍경은 경이로웠다. 매사냥은 대한민국을 포함해 무려 24개국이 공동으로 유네스코 무형유산 대표목록에 등재한 유산이다. 회의장 야외 휴식공간에서 매를 눈으로 볼 기회가 있었다. 매를 데리고 온 사나이는 왼손에 매를 올려놓고, 오른손엔 스마트폰을 들고 의자에 앉아 있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매에는 관심이 없고 스마트폰만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조금 의아했다. ‘무형유산을 주제로 국제사회의 중요한 결정을 다루는 회의장 바깥에서 매보다 스마트폰이라니….’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매와 스마트폰이 서로 원심력이 작동하면서 때론 팽팽한 긴장감을 유발하는 장면을 통해 ‘유산의 보호와 발전’이라는 국제사회의 화두를 엿볼 수 있는 건 아닐까.” 유네스코 등재 유산을 잘 보호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보호의 대상인 무형유산도 유산을 잇고 전승하는 사람이 없으면 존립할 수 없다. 유산 보호 제도가 유산 보호로만 그친다면 인류의 유산은 지속가능할 수 없다. 전염병과 디지털 전환, 일상에 스며든 인공지능, 기후변화, 전쟁 등은 무형유산 분야에도 고스란히 영향을 미친다. 기후변화와 전쟁, 코로나19 여파로 무형유산 공동체와 전승자들은 일터를 잃고 생계를 걱정하고 있다. 전승자의 생계 보장을 위한 기본소득 지급 등 각종 지원정책에 여러 나라가 관심을 갖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제18차 무형유산 정부간위원회는 2023년 12월 아프리카 대륙 남부에 있는 보츠와나의 수도 가보로네에서 열린다.
할 말 있습니다
[우정이야기]유네스코 문화유산 우리나라 줄타기(2021. 10. 08 14:51)
2021. 10. 08 14:51 경제
우체국펀드가 판매 3주년을 맞았다. 우정사업본부(우본)는 이를 기념해 10월 5일부터 고객 감사 이벤트를 연다고 밝혔다. 대상은 10월 5일부터 11월 12일까지 우체국에서 판매하는 모든 펀드상품에 대해 신규 및 추가 매수로 100만원 이상 잔고가 늘어난 고객이다. 추첨을 통해 최대 30만원 상당의 우체국쇼핑 상품권을 증정한다. ‘한국의 줄타기’ 기념우표 / 우정사업본부 우체국펀드에 처음 가입(10만원 이상)한 모든 고객에게는 1만원 상당의 커피·디저트 쿠폰을 제공한다. 선취판매수수료가 있는 상품에 가입하는 경우 수수료가 전액 면제된다. 신상품도 출시됐다. 이번에 새로 추가되는 상품은 MMF 1종, 채권형 펀드 3종, 채권혼합형 펀드 3종으로 위험등급이 4~6등급인 비교적 안정적인 상품이다. 박종석 우정사업본부장은 “우체국펀드 3주년을 기념해 고객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번 이벤트를 준비했다”며 “앞으로 금융 소외지역 주민들도 다양한 펀드 상품을 편리하게 접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우체국은 이번에 나온 새 상품을 포함한 총 40종의 펀드 상품을 전국 222개 총괄우체국과 우체국예금·보험 홈페이지에서 판매하고 있다. 펀드 상품이나 이벤트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전국 총괄우체국이나 우체국 고객센터(1588-1900)에서 확인할 수 있다. 새로운 우표 발행 소식도 있다. 올해는 우리나라 전통 공연예술인 줄타기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지 10주년이 되는 해다. 우본은 이를 기념해 ‘한국의 줄타기’ 기념우표 41만장을 9월 말 발행했다. 곡예 기술에 중점을 두는 다른 나라의 줄타기와 달리 우리나라 줄타기는 음악 연주를 배경으로 줄을 타는 줄광대와 땅에 있는 어릿광대가 대화를 주고받는 것이 두드러진 특색이라고 한다. 타락한 양반을 풍자한 이야기로 익살을 떠는 것도 주요 특징이다. 줄타기를 기념해 만든 이번 우표는 모양이 조금 독특하다. 줄광대 2명이 각각 허공뛰기와 외무릎훑기를 하는 모습이 2장의 우표에 한 번에 담겼는데, 허공뛰기를 하는 줄광대가 담긴 우표는 외무릎훑기를 하는 줄광대와 어릿광대가 담긴 우표와 폭은 같지만 높이는 좀 짧다. 우표 변지에는 풍속화가 김준근의 ‘기산풍속도’ 가운데 줄타기 장면이 담겼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근대 개항기인 19세기 말에 활동한 기산 김준근은 조선 사람들의 일상과 풍속을 채색화로 그려 부산·원산 등 개항장에서 조선을 방문한 서양인들에게 팔았다. 서양인들은 이를 각종 여행기에 삽화로 사용했고, 이렇게 퍼져나간 ‘기산풍속도’ 1500여점은 현재 전 세계 20여개국에 흩어져 있다. ‘기산풍속도’는 당시의 서양인들에게는 일종의 풍속 백과전서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한글이나 한문 지식이 얕은 이들에게 풍속을 시각적으로 이해시키고 그림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제작한 것으로, 희로애락의 감정표현에 중점을 둔 18세기 김홍도·신윤복 등의 작품과 비교하면 표정은 세세히 드러나 있지 않다. 기념우표는 가까운 우체국을 방문하거나 인터넷우체국(www.epost.go.kr)에 신청하면 구매할 수 있다.
우정이야기
[우정이야기]유네스코 문화유산 해녀 기념우표(2018. 11. 26 15:46)
2018. 11. 26 15:46 경제
우정사업본부는 11월 21일 제주 해녀 기념우표를 발행했다. 2016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을 다시 되새기기 위한 것이다. 해녀는 제주 문화를 상징한다. 척박한 화산토가 만든 제주 역사의 주역이다. 밭농사로 연명하던 피폐한 삶의 활로는 바다였다. 여성이 바다로 나갔다. ‘좀녀(潛女)’가 됐다. 좀녀는 해녀의 제주도 사투리다. 해녀의 삶은 고단했다. ‘저승에서 벌어 이승에서 쓴다’고 할 정도다. ‘극한직업’이라는 의미다. 생활형편이 나아지면서 해녀 숫자가 급격히 줄어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1960년대에 2만6000여명이나 되던 해녀는 현재 4000여명으로 추정될 정도로 줄어들었다. 우정사업본부는 11월 21일 유네스코 인류문화유산 제주 해녀 문화 기념우표 2종을 발행했다. 해산물을 채취하는 해녀들의 모습과 수면 위로 올라가는 해녀들의 모습을 담았다. 해녀는 어떤 장비의 도움도 없이 맨몸으로 바닷속을 누빈다. 거센 파도의 물살을 거스르며 차가운 ‘바다밭’에서 해산물을 딴다. 바닷속에서 3~4분간 숨을 참는다. 가족의 생계를 위한 물질의 한순간 한순간이 목숨을 건 싸움이다. 해녀의 고충은 ‘숨비소리’에 담겨 있다. 해녀들이 물질을 마치고 물 밖으로 올라와 가쁘게 내쉬는 숨소리다. 숨비소리는 생과 사의 경계에서 터져나오는 안도의 신음이자 강인한 생명의 소리다. 사투의 순간순간 해녀의 숨통을 터주는 게 있다. 테왁이다. 해녀가 바다에서 채취한 해산물을 보관하는 도구이다. 잠수하고 나온 해녀는 테왁에 몸을 맡긴 채 숨을 고른다. 테왁은 일종의 개인 휴식처다. 테왁이 휴식을 위한 개인공간이라면 ‘불턱’은 집단공간이다. 불턱은 물질을 하러 모인 해녀들을 위한 바닷가의 갯바위 양지뜸 혹은 바위그늘 같은 바람막이에 놓인 화톳불 자리다. 해녀가 옷을 갈아입거나 쉬던 곳이다. 불턱은 휴게공간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휴식과 체험과 교육 그리고 토론이 어우러지는 지혜의 공간이다. 해녀는 어머니가 딸에게, 선배가 후배에게 물질하는 법이나 바다의 섭리를 알려주며 해녀의 지혜를 전수하는 곳이었다. 또 쉬는 해녀는 물질하는 해녀의 이름을 불러준다. 이런 행위는 위험에 대해 경계심을 일깨우기 위한 것이다. 이곳에서 해녀 노래도 배운다. 불턱에서는 더 중요한 일이 이뤄진다. 해녀들의 집안 대소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마을공동체의 의사를 결정하는 토론마당이다. 해녀는 ‘상잠수’, ‘중잠수’, ‘하잠수’ 등 개인 능력에 따라 계층이 구분된다. 하지만 불턱에서만큼은 상하 구분이 없이 자유롭게 토론에 참여할 권리가 주어진다. 의사결정은 만장일치가 원칙이다. 만일 의견이 쉽게 모아지지 않은 현안이 발생했다면 몇날며칠이고 토론을 이어간다. 그래도 결정이 나지 않으면 원로 해녀인 ‘대상군’의 의견을 존중한다. 가장 중요한 토론 주제 중 하나가 ‘할망바당’을 정하는 것이다. ‘할망’은 할머니, ‘바당’은 바다의 제주도 사투리다. 수심이 얕은 바다 작업장을 정하는 일을 말한다. 이곳에서 병들거나 나이든 해녀가 보다 안전하게 일한다. 약자를 위한 배려 정신을 엿볼 수 있다. 배려의 형태는 다양한다. 생리 때문에 물속에 들어갈 수 없는 해녀나 경험이 부족한 초보 해녀들에게는 채취한 해산물을 나눠준다. 이를 ‘게석’이라고 한다. 보통 상급의 채취물을 나눠주는 게 예의라고 한다. 제주 해녀 사회에서는 이웃과 마을을 위한 배려가 곧 마을공동체의 이익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체득했던 것이다. 체득된 지혜는 제도적 장치로 발전한다. 예를 들자면 ‘학교바당’ 같은 것이다. 학교바당은 일부의 바다 영역을 정해서 이곳에서 거둔 수익을 학교 교사 건축이나 학교 운영에 쓰도록 했다. ‘이장바당’도 운영했다. 마을의 발전을 위해서 애쓰는 이장 몫의 채취구역이다. 불턱에서 제주 해녀의 강한 공동체 의식과 결속력이 싹트고 발현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불턱이 바로 제주 해녀 문화의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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