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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의회 선거, 유권자는 변화를 원했다(2019. 05. 31 15:07)
- 2019. 05. 31 15:07 국제
- 유럽연합(EU) 28개 회원국에서 5월 23~26일 나흘간 치러진 유럽의회 선거가 끝났다. 이번 선거는 2015년 난민위기로 반이민과 반EU를 주장하는 극우세력이 부상해 전 유럽에 ‘극우’ 경계령이 내려진 가운데 처음으로 치른 선거였다. 때문에 선거 전부터 유럽통합파와 유럽통합 반대파의 치열한 각축전이 벌어질 것으로 전망됐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앞서 지난 3월 4일 <르몽드>와 <가디언> 등 유럽 5개 언론 동시 기고문에서 ‘제2차 세계대전 이래 유럽이 이처럼 중요했던 적도 없고, 이처럼 위기에 빠진 적도 없다’면서 ‘유럽의회 선거는 유럽 대륙의 미래를 위한 결정적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유럽의회 선거 결과를 5가지 키워드로 정리했다. 벨기에 브뤼셀의 유럽의회 프레스룸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에 지난 5월 27일(현지시간) 차기 유럽의회 정치그룹별 의석수를 나타내는 도표가 비치고 있다. / AP|연합뉴스 투표율 상승 갈수록 하향하는 추세였던 투표율이 50.5%로 처음으로 50%를 넘어섰다. 50.5%는 1994년 선거 이후 최고 투표율이다. 올해는 또 1979년 유럽의회 선거를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투표율이 이전 선거보다 떨어지지 않았다. 2014년 투표율은 42.6%였다. 유럽의회 선거는 유럽 각국의 국내 선거보다 중요도가 떨어지는 부차적인 이슈로 여겨졌다. 갈수록 떨어지는 투표율을 어떻게 높일지는 유럽의회의 오랜 고민거리였다. EU가 정상들 간의 정치적 타협을 통해 결정하던 EU 집행위원회 위원장을 2014년부터 유럽의회 투표 결과에 연동시키기로 한 이유 중 하나도 저조한 투표율이었다. 그럼에도 2014년 선거 투표율은 바닥을 쳤다. 로이터통신은 “유럽의회 선거에 대한 관심 증가는 기후변화부터 유럽회의주의 정당의 부상 등의 도전에 대한 유권자들의 반응”이라고 지적했다. 극우 약진 극우정당이 얼마나 약진할 것이냐는 이번 선거의 최대 관심사였다. EU 28개국 정당들은 유럽의회에서 서로 이념이 맞는 정당들끼리 정치그룹을 구성해 활동한다. 현재 8개 정치그룹이 있는데, 이 가운데 ‘유럽민족·자유(ENF)’와 ‘자유와 직접민주주의의 유럽(EFDD)’ 등 2개 정치그룹이 극우로 분류된다. ENF는 현재 의석보다 8석 늘어난 54석을 얻었다. EFDD는 현재 의석보다 22석 늘어난 58석을 얻었다. 여기에 이념적으로 보수주의로 분류할 수 있지만 강한 반EU 정서를 지니고 있는 정치그룹인 유럽보수개혁(ECR)이 얻은 의석 63석을 합하면 유럽통합 반대 진영의 의석 점유율은 23.3%가 된다. 유럽통합 반대 진영이 30%를 넘는 의석을 가져갈 수도 있다던 애초 예상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전체 의석의 4분의 1에 가까운 수치다. 물론 유럽의회를 장악할 수준은 아니다. 그러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 됐다. <가디언>은 “극우정당들이 유럽통합을 둘러싼 긴장을 높이고, 의사결정 과정을 방해하거나 교착상태에 빠뜨리고, 유럽집행위원 임명과정을 꼬이게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극우정당은 이탈리아와 프랑스, 영국 등 독일을 제외하고 EU 회원국들 중 유럽의회에서 의석수가 가장 많은 세 나라에서 모두 1위를 차지해 존재감을 과시했다. 영국의 EU 탈퇴(브렉시트) 말고는 변변한 공약도 없는 영국 브렉시트당은 출범한 지 불과 4개월 만에 집권당인 보수당과 제1야당 노동당을 압도했다. 보수당은 5위, 제1야당인 노동당은 3위로 밀려났다. 2014년 선거에서 6%를 얻었던 이탈리아의 동맹당은 38.3%를 가져갔다. 프랑스에서는 마린 르펜의 국민연합(RN)이 마크롱 대통령의 전진하는공화국(LREM)을 1석 차이로 제쳤다. 녹색 물결 “녹색 물결이 전 유럽에 퍼졌다. 환상적인 결과다.” 유럽 녹색당(Greens·EFA) 그룹의 스카 켈러 공동대표가 선거 결과를 보고 내놓은 소감이다. 그의 말대로 유럽의 녹색당들은 약진했다. 유럽 녹색당 그룹은 2014년 50석에서 69석으로 의석을 19석 늘렸다. 녹색당은 독일에서 20.7%를 얻으며 집권당인 기민련·기사련(CDU·CSU) 연합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아일랜드(15.0%), 프랑스(13.2%)에서도 약진했다. 이는 기후변화에 대한 유럽 유권자들의 위기의식이 커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지난 4월 여론조사 기관 입소스 모리가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등 11개국 유권자들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77%가 기후변화를 투표 시 주요 기준으로 삼을 것이라고 응답한 바 있다. 지난해 8월 스웨덴의 10대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기후변화 대응을 요구하는 등교 거부 운동을 시작한 것도 환경문제에 대한 관심을 키우는 데 기여했다. 특히 기후변화의 직격탄을 맞게 될 미래세대의 관심이 컸다. 독일 공영방송 ZDF의 출구조사에 따르면 독일 30세 이하 유권자의 33%가 녹색당에 표를 던졌다. 중도파 몰락 극우와 녹색이 부상하면서 유럽의회를 지배해왔던 중도좌파와 중도우파가 몰락했다. 중도우파 정치그룹인 유럽국민당(EPP)과 중도좌파 정치그룹인 유럽사회당(S&D)의 의석 점유율이 1979년 유럽의회가 시작된 이래 처음으로 50% 미만으로 떨어졌다. EPP는 2014년보다 42석을 잃었다. S&D는 2014년보다 38석을 잃었다. 이는 중도파가 장악했던 기성 정치가 난민문제와 저성장, 불평등, 기후변화 등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서 유권자들이 보다 선명한 정치적 주장을 내건 정치세력에 이끌린 결과로 해석된다. 중도파의 몰락과 극우·녹색의 약진으로 유럽 정치는 파편화됐다. 이런 상황에서 시장친화적 중도파 정치그룹인 유럽자유민주(ALDE)는 마크롱 대통령의 전진하는공화국의 가세로 105석으로 몸집을 키워 킹메이커 역할을 하게 됐다. ‘변화’에 대한 요구 CNN은 “유럽 유권자들의 분열된 표심이 보여주는 것이 무엇인지는 분명하다. 그들은 변화를 원한다”고 지적했다. 중도파가 몰락하고 그 사이로 비집고 들어간 극우와 녹색이 세력을 키운 것은 유권자들이 ‘이대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는 분석이다. 극우와 녹색이 약진하면서 유럽의회에서 강경한 이민정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녹색당과 ALDE의 약진은 환경규제와 무역정책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파이낸셜타임스>는 “환경정책이나 무역 자유화, 기술 규제 등에 대해 소수정당의 영향력이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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