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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엔군까지 공격하는 이스라엘···‘부글부글’ 들끓는 국제사회(2024. 10. 21 06:00)
- 2024. 10. 21 06:00 국제
- 국제사회 ‘국제법 위반’ 비판 불구 더 노골적 공격에 나서 이스라엘의 막무가내 행보 막을 실질적 방법 없어 속앓이 10월 12일(현지시간) 레바논 남부에서 레바논 지역 유엔 평화유지군(유엔 평화유지군) 소속 차량이 순찰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스라엘이 레바논 지상전 과정에서 유엔 평화유지군까지 공격했다. 유엔 회원국인 이스라엘이 평화유지군을 공격하는 상황을 두고 국제사회에선 ‘국제법 위반’이자 ‘전쟁범죄’라는 비판이 빗발치고 있다. 이스라엘은 아랑곳하지 않고 되레 더 노골적으로 공격에 나섰다. 동시에 레바논 전역으로 공습 범위를 넓혀 민간인 인명 피해도 불어나고 있다. 유엔 기지 ‘헤즈볼라 방패’라는 이스라엘 유엔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은 지난 10월 13일(현지시간) 오전 레바논 남부 접경 지역에 있는 레바논 지역 유엔 평화유지군(UNIFIL) 기지 정문을 탱크로 부수고 강제 진입했다. 이 과정에서 유엔 평화유지군 대원 15명이 다쳤다. 앞서 지난 10월 11일부터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유엔 평화유지군 대원이 잇따라 다치자 파병한 40개국은 이스라엘을 규탄하는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이스라엘은 이를 전혀 신경 쓰지 않고 하루 만에 유엔 평화유지군 기지를 공격했다. 레바논 지역 유엔 평화유지군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에 따라 이스라엘·레바논 국경 지대에 주둔하며 양국의 완충지대 역할을 해왔다. 한국을 포함한 50개국에서 파병한 1만여명의 병사와 지원 인력이 이곳에 주둔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국제사회의 거센 비판에도 유엔 평화유지군 공격을 정당화했다. 처음엔 “고의적 공격이 아니었다”는 입장을 밝혔다가 이내 이스라엘·레바논 국경을 따라 넓게 주둔하는 유엔 평화유지군 뒤에 숨은 친이란 무장정파 헤즈볼라를 무력화하기 위한 조치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유엔 평화유지군이 헤즈볼라를 위한 ‘인간 방패’가 되고 있다”며 유엔에 레바논 지역 유엔 평화유지군 철수를 공식 요청하기도 했다. 이스라엘군은 유엔 평화유지군 기지 인근 현장을 월스트리트저널(WSJ)과 뉴욕타임스(NYT) 등 일부 언론에 공개하기도 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스라엘군이 기자들에게 국경지대 산비탈에 있는 땅굴 입구 2개를 공개했으며, 여기에서 불과 90m 떨어진 곳에 유엔 평화유지군 기지가 있었다고 전했다. 앞서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 북부 최대 병원인 알시파 병원 진압 작전으로 국제사회 비판에 직면했을 때도 병원 아래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땅굴이 있다며 외신에 현장을 공개한 적이 있다. “레바논 남부의 눈과 귀 없애려는 것” 국제사회의 시선은 싸늘하기만 하다. 유엔 안보리는 지난 10월 14일 처음으로 성명을 내고 “유엔 평화유지군과 시설은 절대 공격 대상이 돼선 안 된다”라며 “강한 우려”를 표했다. 유럽연합도 지난 10월 13일 “레바논에서의 즉각적 휴전과 안보리 결의안 1701호의 이행을 위해 이스라엘의 유엔 평화유지군 공격 중단을 촉구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4개국 외교장관도 같은 취지의 공동 성명을 냈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스라엘이 유엔의 결정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이스라엘은 국제법 위반의 새로운 장을 연 것”(나지브 미카티 레바논 총리) 등 국가수반들의 비판도 이어졌다. 국제형사재판소(ICC) 설립의 근거가 된 로마 규정에 따르면 평화유지 임무와 관련된 요원이나 시설 등에 대한 고의적 공격은 전쟁범죄에 해당한다. 국제형사재판소는 전쟁범죄 혐의를 조사·기소하고 재판 절차를 밟을 수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동안 국제형사재판소뿐 아니라 국제사법재판소(ICJ)가 대량학살(제노사이드) 등 전쟁범죄 혐의를 두고 있는 상황도 모른 채 해왔다. 지난 10월 16일(현지시간)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남부 교외 지역에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인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AP연합뉴스 이스라엘군은 2006년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간 전쟁 종식을 위해 채택된 안보리 결의 제1701호 내용을 위반했다는 비판도 받는다. 안보리 결의 제1701호는 이스라엘군이 레바논에서 완전히 철수하고 레바논 리타니강 이남에는 헤즈볼라가 아닌 레바논 정규군과 유엔 평화유지군만 주둔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이스라엘은 안보리 결의 제1701호가 제대로 지켜진 적 없어 유명무실하다고 주장하지만, 미국과 레바논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더 이상의 확전을 막기 위해 이 결의의 기능을 회복시키고자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스라엘의 막무가내 행보를 막을 실질적 방법이 없다는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이스라엘군이 레바논 지상전의 구체적인 실상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유엔 평화유지군을 공격하고 철수까지 요구한다고 본다. 유엔 평화유지군은 극히 제한된 조건에서만 무력을 사용할 수 있어 억지력이 사실상 없다는 평가를 받지만, 안보리 결의 위반 상황 등을 유엔에 보고할 수 있다. 미셸 마틴 아일랜드 외교장관은 “이스라엘이 레바논 남부에서 눈과 귀를 몰아내고 자유로운 통치권을 얻으려 한다”며 “국제사회는 (이스라엘이 국제 질서를 지키도록) 매우 분명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엔 평화유지군은 계속되는 이스라엘의 철수 요구에도 이스라엘·레바논 국경 지역에 잔류하겠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전역으로 공격 확대, 민간인 피해 속출 이스라엘은 레바논과의 국경 지역에서 지상전을 이어가는 동시에 공격 범위를 확대해 레바논 전역을 폭격하고 있다. 헤즈볼라 본부 중심지로 알려진 남·동부와 거리가 먼 북부의 기독교 마을까지 공습하자 레바논이 ‘제2의 가자지구’가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총 22명이 숨졌으며 공습받은 건물엔 피란민들이 거주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지난 10월 15일 기준 레바논 전체인구의 25% 이상에 대피령이 내려졌다. 레바논 정부는 120만명 이상이 피란길에 올랐다고 전했다. 이중 어린이는 약 40만명에 달한다. 테드 차이반 유니세프 인도주의적 행동담당 부국장은 “(한 달 사이) 레바논의 학교는 접근할 수 없게 됐거나 전쟁으로 손상돼 피란처로 사용되고 있다”며 “레바논 어린이들이 ‘잃어버린 세대’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끝나지 않은 전쟁 속에 분쟁 지역 아이들은 학교뿐 아니라 미래를 위해 최소한의 희망조차 꿈꿀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다는 뜻이다. 레바논 보건부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가자지구 전쟁 발발 후 1년 동안 레바논에서 2300명이 사망했다. 이중 75%는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상대로 군사 작전을 확대한 최근 한 달 새 숨졌다.
- ‘속전속결’ 출생통보제, 유엔 권고 후 12년 ‘미적’(2023. 06. 30 11:25)
- 2023. 06. 30 11:25 사회
- ㆍ2000년에도 검토했지만 ‘호적’ 프레임 갇혀 무산 ㆍ미등록 이주민 자녀 등 빠져 아직은 ‘반쪽’ 정책 서울의 한 병원 산부인과 신생아실에서 간호사들이 아기를 돌보고 있다. / 김영민 기자 2236명.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의료기관에서 태어났지만,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아동의 숫자다. 감사원은 올해 보건복지부 정기감사에서 이 사실을 파악하고 2236명의 1%인 23명의 신생아를 추적했다. 수원의 한 산모가 2명의 신생아를 출산한 뒤 살해해 냉장고에 보관한 사건은 이 과정에서 드러났다. 생후 76일 만에 영양결핍으로 사망했거나, 출생 직후 보호자가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버린 사례도 확인됐다. 미등록 영아의 살해·유기 사건이 속속 드러나자 정부와 국회는 “출생통보제를 도입하자”며 한목소리를 냈다. 현행 가족관계등록법에선 부모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을 경우 아동은 정부의 보호망에 들어올 수 없다. 출생통보제는 이 같은 신고 누락을 방지하기 위해 분만을 담당한 의료기관이 지방자치단체에 아동 출생 사실을 통보하도록 한 제도다. 여야는 6월 30일 출생통보제 도입을 담은 가족관계등록법 개정안을 본회의에서 통과시키기로 했다. 늦게나마 출생통보제가 도입되는 것은 다행이지만 의문이 남는다. 유엔 아동권리위원회가 부모의 조건이나 출생여건과 관계없는 ‘보편적 출생등록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한국에 권고한 것이 2011년이다. 이때를 기준으로 잡아도 출생통보제 도입까지 10여년의 세월이 걸렸다. 수원 영아 냉장고 유기사건이 드러난 후 여야의 출생통보제 도입 합의에 걸린 시간은 일주일. 여야 이견 없이 빠른 도입이 가능했는데도, 왜 한국사회는 출생통보제를 위해 오랜 세월을 돌아와야만 했을까. 왜 진작 하지 못했나 출생통보제는 사실 20년 전 도입될 수도 있었다. 보건복지부가 2000년 출생통보제와 유사한 제도 도입을 검토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이뤄진 용역연구의 제목은 ‘출생 및 영유아 신고체계 개발-출생 및 사망 전산신고체계’. 의료기관이 전산시스템을 통해 영아의 출생·사망을 자동 신고하도록 하면, 제대로 된 영아사망률 통계를 만들 수 있고 100%에 가까운 출생신고를 달성해 적절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 연구는 그러나 출생통보제 도입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이유가 뭘까. 2008년 호적제도가 사라지고 가족관계등록법이 제정됐지만, “정작 출생신고 제도는 병원 분만이 일반화되기 전인 구 호적시대의 제도 프레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송효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출생신고제도의 개선방안’, 2017년, 가족법연구).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2011년 9월,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한국의 출생신고 제도가 ‘보편적 출생등록 제도’가 아니라는 지적과 함께 개선을 권고했다(3·4차 국가보고서 심의). ‘아동권리협약 제7조(표 참조)에 따라 부모의 법적 지위 또는 출신에 관계없이 모든 아동의 출생이 신고되도록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한다’는 내용이다. 정부와 국회는 그러나 뚜렷한 입법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이후 2016년 미혼모들에게 돈을 주고 아이를 넘겨받은 뒤 자신의 아이인 것처럼 출생신고를 한 ‘논산 영아매매’ 사건이 발생했다. 의료기관의 출생증명서 없이 성인 2명을 보증인으로 세우는 것으로도 출생신고가 가능했던 제도가 그해 폐지됐다. 아울러 검사나 지자체장이 ‘행정상 존재하지 않는’ 아동에 대해 직권으로 출생신고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도 이때 생겼다. 11~17세 자녀들을 행정상 미등록인 채로 양육해온 부모 사례 등이 확인되면서 신설된 조항이다. 하지만 이런 수준의 개정만으로는 ‘미등록’ 아동을 찾아내 보호하기 힘들다는 지적이 잇따르며 출생통보제 도입 촉구가 이어졌다. 정부·국회를 움직이는 데까지 나아가지는 못했다. 그나마 2019년 정부가 보편적 출생등록을 위한 첫걸음을 뗐다. 그해 5월 정부는 ‘포용국가 아동정책’을 발표하며 처음으로 출생통보제 도입 계획을 밝혔다. 그러나 입법예고(법무부·2021년 6월)를 거쳐 정부안 발의(국무회의 통과 2022년 3월)까지 3년 가까이 걸렸다. 이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넘겨진 이 개정안은 1년 3개월간 여야 논의 테이블에도 오르지 못했다. ‘보편적 출생신고 네트워크’ 활동을 해온 김희진 아동인권 전문 변호사는 “수년간 의원실을 설득해 출생통보제 발의까지는 이끌어냈음에도 이후 진전이 없었던 이유는 발의한 의원실조차 (해당 법안에) 힘을 실어주지 않을 정도로 의원들 관심이 크지 않았기 때문”이라면서 “사실 2019년 5월 정부가 출생통보제 도입을 발표한 것도 같은해 9월 유엔 아동권리위원회 심의를 앞두고 뭐라도 보여주려고 한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아동인권이 정부와 국회의 관심을 받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출생통보제 도입 과정이 보여준 셈이다. 도입될 출생통보제는 아직 ‘반쪽’ ‘미등록 아동’을 방치했던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출생통보제 도입 외에도 과제가 적지 않다. 일단 여야가 합의한 출생통보제로는 미등록 이주민의 자녀가 배제되는 점을 해결해야 한다. 김희진 변호사는 “가족관계등록법으로 내·외국인의 자녀 모두가 출생통보제 대상이 되길 바랐지만, 한국에선 가족관계등록부가 국적부 역할을 하는 측면이 있어 (이주 아동 출생등록을 위해선) 어쩔 수 없이 별도 법률 통과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권인숙·소병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미등록 이주민의 자녀도 출생등록을 할 근거를 마련하고, 미등록 이주민들이 자녀 출생등록을 이유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한 상태다. 국내 체류 중인 19세 이하 미등록 이주 아동은 5000여명에 이른다고 알려져 있다. 앞으로 치열하게 논쟁해야 할 사안도 있다. 익명출산제(보호출산제) 도입 여부다. 정부와 여당은 임산부가 신원을 숨기더라도 의료기관에서 출산이 가능하도록 하는 익명출산제(김미애 국민의힘 의원 ‘보호출산 특별법’ 발의)를 이번에 함께 도입해야 한다고 말한다. 법안에 따르면 익명출산으로 태어난 아동은 지자체장에게 인도되고, 지자체장이 출생신고를 하게 된다. 친부모가 원치 않을 경우 아동은 성인이 된 뒤에도 친부모의 인적사항을 알 수 없다. 출생통보제가 도입되면 신원 노출을 꺼리는 임산부가 ‘병원 밖’ 출산을 시도할 테니, 친부모를 익명화하더라도 ‘출생등록 사각지대’는 방지하자는 취지다. 하지만 오랫동안 출생통보제 등의 도입을 위해 노력해온 보편적 출생신고 네트워크와 야당에선 이 제도가 ‘부모의 양육 포기’를 유도할 수 있는 데다 아동의 ‘친부모 알권리’를 침해한다고 본다. 김진 공익사단법인 ‘두루’ 변호사는 “여러 이유로 위기에 놓인 임산부가 출산을 선택한다면, 최대한 양육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최우선이어야지, 아동을 포기하도록 하는 제도가 대책일 순 없다”면서 “유엔의 권고엔 자신의 뿌리, 즉 ‘생물학적 부모’를 알권리도 포함돼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야는 일단 6월 30일 출산통보제 법안을 통과시킨 뒤, 익명출산제 도입 여부는 7월에 추가 논의키로 한 상태다. 유엔 아동권리협약 제7조 1 아동은 태어난 즉시 출생등록되어야 하며, 출생 시부터 이름을 갖고, 국적을 취득하며, 가능한 한 부모를 알고, 부모에게 양육 받을 권리가 있다. 2 당사국은 국내법 및 이 분야의 관련 국제규범에 따른 의무에 근거하여, 특히 무국적 아동을 포함한 모든 아동의 권리 이행을 보장해야 한다.
- [우정이야기]유엔은 왜 ‘크립토 우표’를 만들었을까(2020. 12. 04 14:23)
- 2020. 12. 04 14:23 경제
-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은 기아에 맞서 싸우며 분쟁지역의 평화 정착을 위해 노력한 공로로 올해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WFP는 식량 배급 등에 최신 기술을 활용하는 기구로도 유명한데 대표적인 게 ‘블록체인’이다. 유엔이 지난 11월 24일 발행한 ‘크립토 우표’. 우표 오른쪽의 은박을 긁으면 ‘QR코드’와 ‘암호화된 주소’가 나타난다. 시리아 내전 이후 난민 상당수가 난민촌을 이루며 살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요르단 북부의 아즈락, 자타리 캠프다. WFP는 캠프 난민 1인당 한달에 23디나르(약 3만6000원)를 지원한다. 난민들은 이 돈으로 난민촌 내 마트에서 식료품을 구입한다. WFP는 난민들에게 현금을 직접 주진 않는다. 난민들의 은행계좌로 지원금을 송금하지도 않는다. 단지 마트의 외상장부에 난민 한 사람당 23디나르씩 달 수 있도록 했다. 마트는 장부 기록을 토대로 물품 대금을 매달 WFP에 청구한다. 마트 주인이 직접 노트에 적고, 보관하는 방식의 외상장부는 아니다. 거짓으로 기록하고 더 많은 대금을 WFP에 청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은행을 이용하면 이런 문제는 사라지지만 난민들의 모든 거래마다 은행 수수료를 별도로 지불해야 한다. WFP는 마트 주인도, 은행도 아닌 블록체인이 만든 장부를 사용한다. 블록체인 자체가 일종의 ‘전자장부’다. 블록체인에서는 모든 거래내역이 블록체인 내 모든 참여자에게 전달된다. 또 거래 기록들을 ‘블록’으로 만들어 암호화한 뒤 각각의 블록을 ‘체인’처럼 연결한다. 블록 하나가 위조되면, 해당 블록은 다른 블록들과 연결되지 않기 때문에 거짓 장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잘 연결된 테트리스 조각 중에서 길쭉한 조각(블록)을 ‘ㄱ’ 자 모양으로 바꿀 경우, 사방의 다른 조각들과 연결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블록체인 장부는 위조 가능성이 없어 믿을 수 있다. 유엔난민기구(UNHCR)는 2017년부터 인공지능(AI)을 이용해 난민들의 대규모 이동을 예측하는 ‘프로젝트 젯슨(Project Jetson)’을 진행 중이다. 소말리아 내전 당시 대규모 난민들이 국경을 넘어 에티오피아로 왔지만, 유엔이 규모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해 대비하지 못했던 전력이 있다. 난민을 이동하게 만드는 몇가지 요인과 지표가 있다면 난민 규모를 예측하고 준비할 수 있지 않을까. 소말리아 농부들은 국경을 넘기 전에 자신이 갖고 있던 염소를 팔아치운다. UNHCR의 인터뷰에서 한 난민은 “염소는 굉장히 섬세한 동물이라서 중도에 죽어버려요. 그래서 피란 가기 전에 모두 팔아치우는 거죠”라고 했다. 피란을 가기 위해 염소를 내놓는 농부가 많으면 염소 가격이 폭락한다. 염소 가격은 소말리아 난민 규모를 예측하는 지표다. 프로젝트 젯슨에서 AI는 이런 변수들을 이용해 난민 규모를 예측한다. 이런 유엔이 지난달 블록체인을 이용한 ‘크립토 우표’를 발행했다. 우표 오른쪽의 은박을 긁으면 숫자와 알파벳으로 이뤄진 ‘암호화된 주소’가 나오는 이상한 형태의 우표다. 해당 주소는 블록체인 내에서 우표의 거래내역, 진위 여부 등을 확인할 때 사용된다. 크립토 우표에는 ‘빈곤퇴치’, ‘양질의 교육’, ‘성평등’, ‘기후행동’ 등 유엔이 2030년까지 달성하겠다고 천명한 ‘17가지 목표’가 담겼다. 유엔은 크립토 우표 발행 이유에 대해 “‘2030년 지속가능발전목표’를 위해 AI, 바이오테크놀로지, 블록체인, 로보틱스 같은 새로운 기술을 사용하는 것을 유엔이 지지한다는 뜻”이라고 했다. 이는 블록체인과 AI 등을 활용한 서비스를 도입하는 우정사업본부 같은 한국의 공공기관에게 방향을 제시해준다. ‘기술은 약자를 위해 쓰여야 한다.’
- 우정이야기
- [2018년 주목받은 인물들]유엔총회까지 초청받은 BTS(2018. 12. 24 14:12)
- 2018. 12. 24 14:12 문화/과학
- ㆍ두 장의 앨범 모두 빌보드 정상에…세계 팝 주류시장 공연도 성황 어디까지 오를 수 있을까. 2017년 말 수많은 미디어가 ‘올해의 인물’로 주목했던 엔터테이너는 방탄소년단(BTS)이었다. 미국 3대 대중음악 시상식 중 2개 무대에 초청돼 공연했고, 그 중 하나인 빌보드 어워즈에서 ‘톱 소셜 아티스트’ 상 수상, 올해의 아티스트 10위 선정, ‘빌보드 200’ 7위 진입 등으로 ‘새로운 역사’를 썼기 때문이었다. 2018년을 빛낸 엔터테이너에도 BTS는 첫손가락에 꼽힌다. 국내 미디어뿐 아니라 세계 유수의 미디어에서도 마찬가지다. 블룸버그가 선정한 ‘블룸버그 50’에 BTS가 포함됐다. 한국 가수로서는 최초다. 빌보드가 발표한 올해의 톱 아티스트 차트에서는 지난해보다 2계단 오른 8위에 이름을 올렸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하는 올해의 인물 최종 후보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이를 위해 실시한 독자 투표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그만큼 이들은 전세계를 K팝 열기로 뜨겁게 달궜고 진기록을 만들어 왔다. BTS가 올해 발매한 앨범 <러브 유어셀프 전 ‘티어’> <러브 유어셀프 결 ‘앤서’> 등 2장은 모두 빌보드 메인 차트인 ‘빌보드 200’에서 1위를 차지했다. 이는 앨범의 판매량으로 매긴 차트로, 세계 시장에서 얼마나 탄탄한 팬덤을 확보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2006년 이후 영어가 아닌 외국어로 된 앨범 중 메인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은 BTS가 최초다. 이들은 또 지난 9월 24일 유엔 정기총회에서 ‘자신을 사랑하고 스스로 목소리를 내라’는 메시지의 연설로 세계 언론의 관심을 받았으며, 10월에는 화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역대 최연소 문화훈장 수훈자가 된 이들의 공로는 “외국의 수많은 젊은이가 한글로 된 가사를 집단으로 부르는 등 한류 확산뿐만 아니라 한글 확산에도 기여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들의 인기는 공연 성과와 앨범 판매량으로도 입증됐다. 9월 초부터 50여일간 미국과 캐나다, 영국, 네덜란드, 독일, 프랑스 등 6개국 11개 도시에서 가진 22차례 공연을 통해 32만명의 관객을 모았다. 세계 팝 시장의 양대 산맥인 미국과 영국에서 이들이 선 무대는 각기 뉴욕 시티필드, 런던 오투 아레나이다. 시티필드는 뉴욕 메츠의 홈구장으로 이곳 무대에 폴 매카트니, 비욘세, 레이디 가가, 제이지 등의 톱스타가 섰다. 오투 아레나 역시 영국 최고 권위의 대중음악상인 ‘브릿 어워즈’가 열리는 무대이며 콜드플레이, 프린스, 아델 등이 공연했다. BTS의 공연 티켓은 이 두 곳에서 모두 매진됐다. ‘21세기 비틀스이자 팝 센세이션’(영국 BBC), ‘서구 음악산업 최상위권에 도달한 최초의 K팝 그룹’(<가디언>), ‘비틀스를 잇는 밀레니엄 세대 동반자’(<르 피가로>) 등 외신들의 평가도 흥미롭다 공인 음악차트인 가온차트 발표를 보면 이들은 2013년 6월 데뷔한 뒤 지난 11월까지 앨범 누적 판매량 1000만장을 돌파했다. 2000년 이후 데뷔한 한국 가수 중 최단기간 1000만장 돌파 기록이다.
- [신간]우리가 몰랐던 유엔의 모습(2018. 02. 26 18:35)
- 2018. 02. 26 18:35 문화/과학
- 세계 평화를 유지해야 할 유엔은 무기력해졌다. 러시아는 시리아 내전에 유엔의 개입을 거부했고, 이슬람국가(IS)의 출현으로 전세계 테러 위협은 가중됐다. 북핵문제 역시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의 저자 장 지글러가 유엔의 뿌리와 창설과정, 운영방식과 역할, 유엔을 병들게 하는 힘의 논리까지 지금까지 몰랐던 유엔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장 지글러는 유엔 식량특별조사관, 유엔 인권이사회 자문위원회 부의장 등 평생을 유엔에 몸 담아온 경험을 통해 유엔 내부에서 벌어지는 암투극과 미국의 감시와 공작 등 일반인은 잘 알지 못하는 모습을 소개하며 왜 유엔이 힘을 잃었는지 보여준다. 카다피, 후세인, 김일성 등 독재자들과의 일화에서 시작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콩고민주공화국의 내란 등 저자가 겪은 경험들이 곧 유엔의 명암과도 긴밀하게 연결된다. 저자는 특히 미국이 유엔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말한다. ‘소문’으로만 들리던 미국의 배후설을 실제 사례로 입증한다. 유엔 예산의 60% 이상이 미국의 지원에 의존하고 있고, 유엔 고위직도 대부분 미국 출신이거나 미국에 우호적인 사람들이라고 폭로한다. 대외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던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선출된 것도 유엔 내 이러한 정치논리와 무관치 않다는 것이다. 다른 강대국들의 영향력도 유엔을 옥죄고 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폭격을 가했을 때도, 수단 다르푸르에서 내전이 일어났을 때도 유엔은 각각 미국과 중국의 거부권 행사 때문에 개입할 수 없었다. 이런 사실들을 폭로하는 장 지글러는 미국 등 강대국들에겐 눈엣가시일 뿐이다. 장 지글러는 유엔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허약해진 유엔을 다시 일으키고 세계 평화를 일궈내려면 국제 시민사회의 연대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조선시대 과학의 순교자 |이종호 지음·사과나무·1만5000원 역사상 중요한 업적을 남겼으면서도 불운하게 생을 마감해야 했던 조선시대 과학자들의 삶과 그들의 과학적 성취를 다뤘다. <동의보감>을 쓴 허준, <택리지>의 저자 이중환, <자산어보>의 정약전 등 선각자들의 업적은 공교롭게도 유배가 아니었다면 결실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일본 기업은 AI를 어떻게 활용하는가 | 닛케이 빅데이터 엮음· 번암집 1·2·3 신희원 옮김·페이퍼로드 1만5800원 인공지능(AI)의 실용화 측면에서 일본은 한국을 멀찌감치 앞서 있다. 2011년엔 일본 국립정보학연구소를 중심으로 AI를 활용한 로봇이 도쿄대 입학이 가능한지를 시도했다. 일본에서는 이미 생활 깊숙이 들어온 AI의 활약상을 30개 기업 및 단체의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소개한다. 번암집 1·2·3 | 채제공 지음·양기정 등 옮김 한국고전번역원·각 권 2만원 조선시대 정조 연간에 남인(南人)의 영수로 활약한 번암 채제공(1720∼1799)의 문집인 ‘번암집’이 처음으로 번역·출간됐다. 임금이 신하에게 내린 문서를 뜻하는 사륜 등이 실렸고, 글의 대부분은 채제공의 시다. 글을 통해 영·정조 시대 전반을 새롭게 조망할 수 있는 계기도 된다.
- 신간
- [표지이야기]유엔 결의안, 피해갈 방법은 있다(2018. 01. 30 13:53)
- 2018. 01. 30 13:53 정치
- ㆍ개성공단 재가동까지 “갈 길 멀지만 그렇다고 못 갈 길은 아니다” “재개만 되면 당장 내일이라도 들어가고 싶죠.” 개성공단 입주기업인 석촌도자기 조경주 대표의 말이다. 개성공단 입주기업 대부분은 개성공단 재개를 손꼽아 기다린다. 문재인 정부를 맞아 남북관계는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이 흐름이 개성공단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전망이 밝지만은 않아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사 질의응답에서 한 발언이 이를 잘 보여준다. 문 대통령은 “유엔 안보리가 결의한 제재범위 속에 있는 것이라면 우리가 독자적으로 그 부분을 해제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 개성공단과 관련해 ‘조속한 재개를 위한 즉각 협상’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일각에서는 문 대통령이 말을 바꿨다고 하지만 그렇게 보기는 어렵다. 그가 후보 시절이던 2017년 5월과 2018년 1월 사이 큰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는 “원래 유엔 안보리 결의안은 대량살상무기와 관련한 금융거래를 막는 것을 목적으로 한 ‘타깃형 제재’였다. 하지만 2017년 하반기부터는 숨통을 막는 ‘포괄적 제재’로 들어갔다”고 말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도 “제재 때문에 이번 고위급 회담에서 개성공단 재가동에 대해 언급할 분위기가 아니었을 것”이라며 “북한도 남측이 개성공단이나 금강산을 풀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자제한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2016년 2월 10일만 해도 개성공단은 유엔 안보리 결의안과는 무관했다. 1차, 2차, 3차, 4차 핵실험 이후에도 개성공단이 그대로 운영됐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개성공단이 북핵으로 이어진다는 박근혜 정부의 주장은 근거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2016년 3월과 11월에 발표된 유엔 안보리 결의안도 개성공단 재개에 크게 저촉되지 않는다. 문제는 2017년 하반기에 발표된 결의안들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2016년 11월 30일, 대북제재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가결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2017년 하반기까지는 문제 없었다 개성공단 중단 이후 추가된 유엔 안보리 결의안은 총 다섯 개다. 김진향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이사장은 2017년 상반기까지 발표된 결의안에 대해 “개성공단 재개에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이들 결의안의 핵심 내용은 ▲회원국 금융기관의 북측 내 사무소 계좌 개설 금지 ▲교역을 위한 공적•사적 금융지원 및 보증 금지 등이다. 김 이사장은 “회원국 금융기관의 북측 내 사무소 계좌 개설 금지의 경우, 개성공단에 있던 남측의 우리은행이 다시 들어가지 않으면 되고 공적•사적 금융지원 금지조항에 관해서는 개성공단 기업들은 북측기업이 아니라 남측기업이라는 점을 강조하면 된다. 피해갈 수 있는 방법은 많다"고 말했다. 이어 김 이사장은 북측에 들어가는 현금, 즉 임금과 관련해서는 "임금 대신 북한에 도로나 다리 등 사회기반시설(SOC)을 깔아주면 된다"고 말했다. 노동의 대가를 SOC로 지원하게 된다면, 북측 노동자들은 어떻게 생활하게 되는 것일까. 이에 대해 정동영 국민의당 의원은 “우리 시각에서는 이해가 안 되지만 우리가 북측 노동자에게 한 달에 50달러를 지불하든 200달러를 지불하든, 북한 정부는 그들의 기본적인 삶을 책임진다”고 말했다. 기업에 고용된다는 개념보다는 정부에 고용된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일각에서는 ‘벌크캐시’와 관련된 결의안을 언급한다. 북측의 탄도미사일 프로그램 또는 안보리 결의 위반 행동과 관련된 대량현금이 이동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결의안은 2013년 1월과 2013년 3월에 나온 것이다. 이후에도 개성공단은 무리 없이 잘 가동됐다. 이는 오히려 개성공단이 북측의 대량살상무기와 관련된 대량현금이 아니라는 증거다. 문제는 2017년 하반기에 발표된 결의안이다. 이는 각각 2017년 9월 북한의 6차 핵실험과 2017년 11월 말 북한의 “핵 무력 완성” 발표 이후에 나왔다. 핵심 내용은 ▲천연가스 액체의 직•간접적인 공급•판매•이전 금지 ▲북측 섬유의 직•간접적인 공급•판매•이전 금지 ▲북측의 수출 금지품목을 식용품 및 농산품, 기계류, 전자기기, 목재류, 선박 등으로 확대한다는 것이다. 김연철 교수는 “당시 결의안을 보면 위탁가공도 중단하라고 한다. 위탁가공도 못 하는데 직접투자가 가능하겠느냐”며 “지금 중국 기업들도 다 중단하는 상황이다. 개성공단을 중단했을 때는 남북문제였지만 북한이 핵 완성을 선언한 이후부터는 더 이상 남북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물론 아예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김진향 이사장은 천연가스 액체가 반입되지 않는다는 조항에 대해 “개성공단 공장 운영을 위해 소량의 LNG, LPG가 들어간다. 결정적인 게 아니기 때문에 유엔 제재위 사전승인 시 예외 상황으로 인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엔 1718 제재위’는 각 사항들을 예외로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를 판단한다. 북한 ‘핵 무력 완성’ 이후 급변한 정세 김 이사장은 섬유 관련 사업은 “북•중 사업을 겨냥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섬유는 북한의 대중수출 사업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김 이사장은 “북한 내에서 섬유 관련 사업이 안 된다고 하면, 섬유 봉제를 제외한 나머지 공장부터 들어가면 된다. 결의안을 엄격하게 적용해도 피해갈 수 있다. 결국 의지의 문제”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정성장 실장도 “안보리 결의안에 분명히 빠져나갈 구멍은 있다”면서도 “하지만 북핵문제 해결이 전혀 진전되지 않는 상황에서 그 구멍을 이용하게 된다면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을 수 있다. 법률적으로 가능한 부분과 현실적으로 가능한 부분에 차이가 있다. 그 구멍을 키우는 방식을 생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구멍’을 키우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걸릴지 가늠할 수 없다. 갈 길이 멀다. 하지만 그렇다고 못갈 길은 아니다. 개성공단이 재개되지 않을 가능성도 보고 있느냐는 질문에 김연철 교수는 “북핵과 관련된 상황 변화가 빠르면 빨리 재개하는 거고, 그렇지 않으면 노력해서 빨리 재개되도록 해야 한다”며 “어떻게든 재개되게 해야 하기 때문에 재개되지 않는 것은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 표지 이야기
- [기고 / 유엔 해비타트 3차 회의 참관기]세계 흐름에 역행하는 한국의 도시 정책(2016. 11. 01 16:17)
- 2016. 11. 01 16:17 경제
- 결국 핵심은 “시민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을 전제로 어떻게 지속가능한 도시를 만들어갈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이제 한국 정부는 스스로 돌아보고 대답해야 한다. “세계로 가는 기차 타고 가는 기분 좋지만 그대 두고 가야 하는 이 내 마음 안타까워.” 들국화의 ‘세계로 가는 기차’ 노래 일부다. 10월 17~20일 도시권(Right to the City)에 대해 전 세계가 논의하는 장인 유엔 해비타트 3차 회의(이하 해비타트 3차)가 에콰도르 키토에서 열렸다. 부푼 꿈을 안고 떠났지만 시민의 권리를 두고 온, 미래로 나아가지 못한 채 과거에 집착하는 한국 정부를 보고 나서는 안타까운 심정으로 돌아왔다. 유엔 해비타트는 사회적·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한 도시를 만들고 인류에 적절한 쉼터를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설립된 유엔 산하기구로, 1976년 이래 20년마다 공식 회의를 개최하고 있다. 1976년 캐나다 벤쿠버에서 열린 1차 회의를 시작으로 1996년 터키 이스탄불에 이어 올해 키토에서 열렸다. 이번 3차 회의는 ‘지속가능도시 구축’을 위해 새로운 도시 의제(NUA)와 이를 달성하기 위한 이행계획이 논의됐다. 1·2차에서 전 세계 각지의 주거문제를 다룬 해비타트 회의는 3차에서는 도시의 문제를 종합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모든 시민은 누구나 도시에 대한 기회와 권리를 동등하게 가진다’는 도시권을 포함한다. 구체적으로는 ‘포용적인 도시’, ‘기후·재난 등 위기로부터 회복이 가능한 도시’, ‘안전한 도시’, ‘지속가능한 도시’, ‘참여가 보장된 도시’, ‘일상적인 기능이 압축된 도시’가 제안됐다. 특히 지방정부를 중심으로 한 도시정책의 성장이 논의됐다. 한국 정부는 여전히 국가 중심의 계획과 경제성장의 도구로서만 도시와 도시정책을 이해하는 낙후된 사고를 보였다. 회의가 열린 4일 내내 한국 정부는 세계의 흐름과 확연하게 동떨어져 있었다. 한국 정부는 해비타트 3차에서 한국의 ‘스마트시티’를 홍보하는 전시관 1개, 한국의 비공식주거(달동네와 판자촌을 연상하면 된다)의 해소 사례 소개, 한국의 스마트시티를 홍보하는 토론회를 각각 개최했으며 총회에서 김경환 국토교통부 차관이 대표연설을 했다. 10월 15일 김경환 국토교통부 차관이 에콰도르에서 열린 UN 해비타트 3차 총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 임경지씨 제공 경제성장의 도구로서의 낙후된 사고 한국 정부를 에콰도르에서 처음 만난 건 17일에 열린 ‘비공식 주거를 어떻게 해소할 수 있는가? 한국의 전략과 남아메리카 전략의 비교’ 토론회였다. 대표로 나선 국토연구원은 지난 40년의 한국 주택정책의 역사를 압축적으로 보여줬고, 한강의 기적으로 대표되는 경제발전과 신도시 정책을 성공적으로 평가하며 사진을 통해 소개했다. 전쟁 직후 처참한 도시의 모습과 옷은 해져 있고 신발은 신지 않은 채 거리를 다니는 아이들이 그려진 1950년대, 한강을 배경으로 시간의 흐름만큼이나 높아진 빌딩을 보여주는 1960년대와 1970년대, 공격적인 신도시 개발 시기인 1980년대와 1990년대, 그리고 가장 최근인 2000년대는 ‘이명박과 오세훈의 심시티’라는 풍자가 일었던 서울시의 뉴타운 정책과 함께 신도시 3기로 인천 송도와 세종시를 우수 사례로 꼽아 소개했다. 국제사회가 새로운 도시 의제를 고민하며 미래지향적인 모습으로 임할 때, 한국 정부는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었다. 늘 그렇듯 경제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폭력적인 강제퇴거와 그 과정에서 발생한 인권침해 현장들은 소개되지 않았다. 국토연구원의 발표가 끝나고 나서 질문이 쏟아졌다. 한 외국인 참석자가 “한국에서 소개한 신도시 정책은 퇴거를 전제로 한 것 같은데, 퇴거 이후에 시민들의 저항과 부정적인 결과는 없었는가”라고 묻자, 국토연구원은 “퇴거하는 과정에서는 물론 문제가 발생했으나 결과적으로 주택가격 상승으로 시민들이 만족해 하고 있다”고 답해 현장에 있던 한국 시민들에게 큰 절망감을 안겨주었다. 이러한 절망에 쐐기를 박은 것은 김경환 국토교통부 차관의 해비타트 3차 총회 연설이다. 다른 나라 정부 대표에 비해 발표시간이 짧았음은 물론 내용도 부실했다. 한국의 빠른 도시화, 급격한 경제성장, 소득 증가 상황을 설명한 후, 이를 통해 축적된 자본과 인적 자원으로 신도시·뉴타운 등의 국가 차원의 도시정책을 추진했다는 점을 소개하며 스스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IT 기반의 스마트도시를 통해 기후변화 등에 대응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루고, 도시 서비스를 향상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해비타트 3차에서 논의되고 있는 도시권과 이를 실현시키기 위한 지방분권과 시민 참여에 대한 한국 정부의 이행 의지와 이행계획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에 한국 민간위원회는 해비타트 3차 마지막 총회에 시민사회를 대표해 한국 정부의 입장의 한계를 지적하며 변화를 촉구하는 연설을 하기도 했다. 한국 정부는 시간만 역행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가 나아고자 하는 새로운 도시를 오해하고 있기도 했다. 한국 정부는 새로운 도시 의제로 스마트시티를 꼽았다. 기술적·물리적 측면의 국가 주도 대규모 도시개발 모델을 강조했는데, NUA의 기본적인 패러다임뿐만 아니라 배제하지 않는 포용, 생태적으로 지속 가능성을 위한 ‘스마트 시티’ 개념과 동떨어져 있다는 국제사회의 비판이 있었다. 18일 국토연구원이 주관한 ‘지속가능 발전을 위한 스마트시티 전략과 데이터 혁명’ 토론회에서 세계은행의 빅토르 베르가라 수석도시담당관은 한국 정부의 접근방식이 새로운 도시의제가 말하는 상향식의 포용성과 지속 가능성을 위한 스마트시티 개념과 완전히 다르다며 직접 비판하기도 했다. 반대로 해비타트 3차에 참석한 한국의 비정부기구(NGO)들은 에콰도르 현지에서 세계 시민들과 활발히 교류하고 협력의 물꼬를 텄다. 2015년부터 주거·환경·거버넌스를 주제로 활동하는 시민단체 42곳을 중심으로 한국 민간위원회를 구성해 도시권의 관점에서 지방정부와 중앙정부의 정책 및 현실을 평가하고 새로운 의제를 제시하는 보고서를 발표했고, 현지에서는 유엔 주거권 특별보고관과 한국 민간위원회의 간담회를 개최했다. 에콰도르의 지역공동체도 직접 방문해 강제퇴거 위기에 놓인 그들과 연대했다. 비판 받은 국가주도 대규모 개발 ‘유엔 해비타트 3차에 저항하는 사회 포럼’도 열렸다. 해비타트 3차가 표면적으로는 시민사회 참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는 있으나, 구체적인 체계와 제도가 마련되지 않아 선언적 수준에 불과하고 현재의 불평등을 해소할 구체적인 입장이 없다고 비판하며 전 세계 시민사회가 협력해 주최하는 포럼이다. 민달팽이유니온, 우리동네사람들, 오늘공작소가 ‘청년의 주거권과 새로운 사회적 약속’을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한국의 도시개발정책이 오늘날 청년의 주거권을 어떻게 제한하고 있는지를 소개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패러다임과 청년활동을 소개했다. 60여명이 넘는 참석자들은 한국뿐만 아니라 전 지구가 겪고 있는 저성장·불평등 심화를 해소하기 위한 목표와 방법에 대해 토론했다. 마지막 날에는 강정마을 주민, 활동가와 함께 ‘생명평화 100배’를 진행했다. 한국 민간위원회는 노란 옷을 입고 검은 풍선을 들었다. 스마트시티를 주창하며 안전을 강조하지만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고도 단 한 명도 구하지 못한 정부, 도농 간의 격차가 심화됨에 따라 농민들의 안정적인 생활과 권리 보장을 요구한 목소리를 무참히 짓밟아 결과적으로 죽음에 이르게 하고도 사과할 줄 모르는 정부를 비판하기 위해서였다. 이러한 한국 민간위원회의 활동은 에콰도르 중앙 언론에 보도되었고, 국제사회에서 많은 지지를 받았다. 다음에는 세계로 가는 기차를 타고 기쁠 수 있을까? 한국 정부와 같은 꿈을 꾸고 다녀올 수 있을까? 지난 4일 동안 내내 에콰도르에서는 수없이 많은 권리의 증언이 쏟아졌다. 홈리스, 빈곤층, 강제퇴거를 당한 사람들의 현장이 참석자들의 마음에 펼쳐지는 시간이었다. 인권의 관점에서 도시를 해석하고 우리가 놓친 것이 무엇인지 성찰하는 자리도 크고 작은 모임에서 이어졌다. 결국 핵심은 “시민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을 전제로 어떻게 지속가능한 도시를 만들어갈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이제 한국 정부는 스스로 돌아보고 대답해야 한다. 신도시 개발과 스마트시티만 남은 채 목표는 사라지고 수단만 남은 한국 정부의 도시정책은 질문을 던지는 힘을 상실시켜 왔다. 앞으로 세계는 20년 동안 매 4년마다 새로운 도시 의제로의 이행을 추진하고 계획을 점검한다. 2017년에는 유엔 해비타트 사무총장의 첫 보고서가 나올 예정이다. 한국 정부가 부디 과거로 다시 돌아가지 않도록 부단히 붙잡아야 하는 과제는 우리 모두에게 남아 있다. 모든 도시 개발보다 권리가 우선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 [원희복의 인물탐구]유엔사무총장 반기문… 능력 있고 품성 좋은 보수적 할배(2014. 12. 09 15:12)
- 2014. 12. 09 15:12 정치
- 하나의 ‘유령’이 정치권을 배회하고 있다. 이른바 ‘반기문 대망론’이라는 유령이다. 저 멀리 미국 뉴욕에 있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차기 대권주자로 세우자는 것이다. 여당 실세 모임이 그를 ‘대권후보’로 거론하는 세미나를 열더니, 이에 질세라 야권에서도 영입 접촉설이 나왔다. 여야가 경쟁적으로 영입에 나서니 정가에서 ‘반기문 대망론’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례적으로 ‘유령’의 주인공은 자제를 요청하는 성명을 발표하기까지 했다. 반 총장은 유엔 사무총장실을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최근 일부 정치권과 언론 등에서 향후 국내정치 관련 관심을 시사하는 듯한 보도를 하고 있는 데 대해, 전혀 아는 바도 없고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면서 “앞으로 여론조사를 포함한 국내정치 관련 보도를 자제해주실 것을 거듭 간곡히 요청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정치권과 언론에 정중하게 요청한 것이지만 성명 어디에도 차기 대통령 선거에 나설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하지 않았다. 성명의 뉘앙스로 보면 초연하게 2017년을 관망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될 수 있다. 정치판이 그렇지만, 정치는 본인이 원하든 원치 않든 많은 인재를 ‘소비’하는 블랙홀이다. 당장 상품성(표가 된다면)만 있다면 순수한 정치 초(初)자도 꼬드겨 이용하다 내팽개치는 곳이다. 유엔총장 임기와 대선과의 ‘타이밍’ 반기문 대망론은 그만큼 반기문의 상품성이 크다는 의미다. 그것도 여·야당 모두에게 상품성이 있다는 것은 매력적이다. 반 총장은 ‘잠재적 대선주자’ 지지도가 10~20% 수준으로 다른 사람과 오차범위에 있었다. 그런데 10월 들어 39.7%(한길리서치)나 급증하면서 2위 박원순 서울시장에 비해 3배나 앞선 것으로 나왔다.(사실 이 결과는 조사방법이 기존과 달라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이런 지지율 급증이 ‘반기문 현상’으로 이어지고 결국 ‘반기문 대망론’으로 확산된 것이다. 반기문 현상을 넘어 대망론까지 이르게 된 반기문의 진면목은 무엇일까. 그는 1944년 충북 음성에서 태어나 충주고, 서울대 외교학과를 나와 쭉 외교관을 지냈다. 외교부에서 미국대사관 참사관, 미국총영사, 미주국장 등 주로 미주통으로 근무했고, 차관보-차관-장관 등 매우 이상적인 외교관 코스를 밟았다. 2006년 외교통상부 장관에서 유엔 사무총장에 도전, 제8대 유엔 사무총장에 당선됐고, 5년 임기를 마친 2011년 연임에 성공했다. 그의 임기는 2016년 말까지다. 이어지는 2017년 대선을 준비할 시점과 타이밍이 맞아 떨어진다. 부인 유순택 여사에 대한 평도 호평 외교관 출신이 대권에 오른 사례는 1960년 4·19 학생혁명 이후 장면 총리, 1979년 10·26사태 이후 최규하 대통령이 있다. 모두 현직 대통령이 부재 중인 ‘난세’에 사실상 계승한 것이다. 하지만 이번은 사정이 다르다. 민심의 바닥에서 바람이 불고 있기 때문이다. 포털에 ‘반기문’을 검색해 보면 반 총장과 관련된 책이 30여권이나 된다. 그를 취재했던 기자들이 쓴 전기류에서부터 반 총장의 영어 연설문을 모아 만든 영어학습서, 아이들을 위한 위인전까지 다양하다. 심지어 반 총장의 성공비결을 활용한 육아지침서까지 있다.(상자기사 참조) 생존한 인물에 대해 이렇게 많은 위인전이 나오는 경우는 드물다. 물론 이들 책은 출판사의 상술이 작용한 것이지만, 그만큼 상품성이 있다는 방증이다. 이들 책을 보면 거의 반 총장에 대한 찬양 일색이고, 비판적 접근은 찾기 어렵다. 대표적 표현이 “그간 출간된 책이나 매체의 글들을 보면 대개 반 총장의 근면 성실함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옆에서 유엔 사무총장이라는 자리를 지켜본 바, 단지 양적으로 투입하는 성실함만으로는 지금 같은 리더십을 발휘하기 정말 힘들다. 아니 불가능하다. 이를 두고 박인국 전 유엔대사가 반 총장을 일러 한 말이 있다. ‘반 총장이 부지런하다고? 반 총장은 천재야!’”( 19쪽) 외무부 장관 비서실장과 유엔 사무총장 특별보좌관을 거쳐 유엔 의전장을 역임한 윤여철은 이 책의 추천사에서 “유엔에서 반 총장은 동양 선비와 같은 사심 없고 겸손한 자세로 솔선수범하며, 온화한 인품과 넘치는 에너지로 조직을 강력하게 이끌어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더 이상의 표현이 필요 없을 정도의 극찬이다. 은 보다 노골적이다. 필자(KBS 아나운서)는 “반 총장이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쌓은 국제적 역량을 어떤 형태로 통일한국에 기여할 수 있느냐가 논의의 핵심이다”라며 통일 대통령으로서 반기문 대망론을 설파했다. 언론사 특파원으로 유엔에서 그를 가까이 취재했던 기자나 외교부를 오래 출입한 기자들이 쓴 이들 책은 한결같이 그를 높이 평가한다. 박근혜 대통령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 11월 12일(현지시간) 미얀마 네피도에서 열린 동아시아정상회의(EAS) 갈라 만찬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반 총장뿐 아니라 부인 유순택 여사에 대한 평가도 좋다. 참여정부 시절 같이 장관직을 지낸 한 인사는 “국무위원 부인끼리 봉사모임을 가지면 반 총장 부인이 가장 성심을 다했다는 평가가 많았다”면서 “반 총장의 긍정적 이미지 절반 이상은 부인의 역할이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기자들도 비슷한 기억을 한다. 특파원 출신의 한 기자는 “외교관도 군기가 세 상사가 주최하는 파티 준비에 부하직원 부인들이 거의 하녀처럼 일해야 한다”면서 “파티가 많은 외교가에서 이는 매우 고통스런 일인데, 반 총장 부인은 그러지 않았다”고 말했다. 반 총장의 별명은 ‘반반’(潘半)이다, ‘반 총장 반만 해도 성공한다’는 의미다. ‘반 총장 따라하면 단명하니 아예 따라할 생각을 마라’는 의미의 ‘반반’(反潘)이라는 별명도 있다. 특히 유명한 별명은 ‘기름장어’이다. 책잡힐 일은 하지 않는다고 기자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이 별명이 진화해 기름 유(油)자에 뱀장어 만(鰻)을 붙여 ‘유만’이 됐다. 반 총장은 이 별명을 움직일 유자에 일만 만자로 고쳐 ‘만 번을 움직여 세상 사람을 바꾼다’는 의미로 바꿨다. 부정적 뉘앙스의 별명을 긍정적인 뉘앙스의 별명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유머’와 ‘여유’가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해외언론은 ‘존재감 없는 총장’으로 평가 별명처럼 정치권 러브콜도 반반이다. 새누리당은 성향상 ‘우리 사람’이라고 주장하고, 새정치연합은 ‘우리가 키운 사람’임을 강조한다. 문희상 새정치연합 비대위원장은 사석에서 “반 총장은 참여정부가 만들었다, 당시 이해찬 총리가 그를 사무총장으로 만들기 위해 세계 20여개국을 돌아다녔다”면서 “내가 ‘음수사원’(飮水思原·물을 마실 때 그 근원을 생각하다)하라고 말했던 적이 있다”고 말했다.(공교롭게 ‘음수사원’은 박정희 대통령이 정수장학회에 내린 휘호이다) 그런데 반 총장은 노무현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다.(나중에 따로 참배했다) 그래서 새정치연합 쪽에서는 ‘의리 없는 사람’으로 평가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반 총장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만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외신들은 반 총장에 대해 혹평을 하는 경우가 많다. 2009년 미국 외교전문지 는 ‘어디에도 없는 남자’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2년 6개월 동안 기후변화, 글로벌 금융위기, 국제 테러리즘에 대처하는 리더십이 절실한 시점에서 세계를 돌아다니며 명예학위를 받으러 분주했다”면서 “그는 너무 조용하다. 유엔을 무력한 존재로 만들었다”고 혹평했다. 해외언론에 비친 그는 ‘유엔의 투명인간’ ‘조용한 총장’ ‘반기문, 당신은 어디 있습니까’ 등 존재감이 없는 총장으로 평가됐다. 유엔에서 여성이나 기후변화 문제 등 비교적 사소한 문제에 신경썼지, 러시아의 그루지아 침공 등 정작 민감하고 굵직한 현안에는 역할이 없었다는 것이다. 특히 반 총장은 한반도 문제에 매우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2005년 3월 미국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기존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문제를 심도 있게 검토하고 이를 한국에 제안했다. 그런데 반 장관은 ‘평화협정은 북한의 기만전술’이라는 생각으로 이를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고조차 하지 않았다. 나중에 라이스 국무장관을 만나 이 사실을 확인한 노 대통령은 반 장관을 크게 질책했다고 한다. 또 반 장관은 참여정부 때 베트남에 모여 있는 탈북자 486명에 대해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결정을 무시하고 공개적으로 일거에 입국시켜 대북관계를 경색시켰다고 한다. 이에 당시 대권주자급 실세였던 정동영 장관은 반 장관을 불러 호통을 치며 “외교부 장관이 그런 냉전적 시각으로 외교를 하니 제대로 될 리가 있느냐”고 힐난했다. 이런 내용은 정 장관 회고록 에 자세히 언급돼 있다. 당시 청와대에 근무했던 김종대 디펜스21 편집장도 “한반도 평화체계를 놓고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반기문 외교부 장관의 갈등이 심했다”고 비화를 공개했다. 이런 보수적인 통일관은 에서 얘기하는 통일시대 대통령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어찌됐든 그를 접해 본 많은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단점보다 장점이 많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반기문 대망론’이라는 유령은 그래서 더욱 여의도를 배회할 것이다. 그와 같이 장관을 지낸 한 인사는 “그는 뛰어난 능력과 많은 장점, 훌륭한 경험을 가졌지만 단 하나 걸림돌은 바로 나이”라며 “60대 중반을 넘으면 대통령 일정을 수행하기가 물리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44년생인 그는 대권에 도전하는 2017년 우리 나이로 74세가 된다. 반기문 책… 찬사로 일관, 객관적 평전이라기엔 미흡 최근 반기문 총장에 대한 책이 쏟아지지만, 본인이 직접 쓴 책은 없다. 최근에 나온 책이 이다. 뉴욕특파원이 반 총장을 옆에서 취재했던 기록을 담았다.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7년 재임 기간 동안의 치열한 고민과 카리스마, 인간적인 흡인력을 가감 없이 기록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너무 긍정적인 찬사로 일관했다는 지적도 있다. 최근 출판된 반기문 관련 도서. KBS 아나운서가 쓴 은 보다 정치적으로 적극적이다. 이 책은 반기문 대망론이 대세론으로 번져갈 수밖에 없는 이유,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에 왜 반기문이 필요한지를 적극적으로 피력했다. ‘통일시대 반기문밖에 없다’는 것이 결론이다. 기자가 쓴 은 반 총장의 외교부 차관 및 장관 시절, 그리고 유엔 사무총장 선거운동 과정을 내밀하게 묘사했다. 관심을 끄는 책은 반 총장의 총장 선거에 깊숙이 개입하고, 직접 반 총장을 모신 현직 외교관이 쓴 이다. 이 책은 그동안 보도되지 않은 반 총장의 리더십과 활약상, 그리고 유엔 사진전문기자가 찍은 사진까지 실었다. 반 총장에 대한 일부의 비판적 보도에도 조목조목 반박하는 적극성도 보였다. 이 책은 반 총장의 핵심 측근으로 현직이 쓴 책이라는 점에서 반 총장 세력이 본격적으로 대권행보에 나섰다는 정치적 해석을 낳았다. 결국 이 책은 출판되자마자 다시 전량 회수됐다. 유엔 근무자가 유엔 관련 책을 낼 때 사전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점 때문에 필자가 출판을 번복했다고 했지만, 정치적 오해 소지를 없애기 위한 조치였다는 후문도 나왔다. 이 밖에 역시 뉴욕특파원으로 반 총장을 밀착 취재했던 필자가 반 총장의 인간관계, 자기계발, 성공습관을 워렌 버핏과 비교한 책이다. 또 뉴욕특파원으로 반 총장을 취재했던 기자가 쓴 은 반 총장의 유엔 연설문을 모아 영어 학습자료로 만든 것이다. 는 반 총장을 롤모델로 살아온 한 대학교수가 쓴 전기다. 심지어 초등학생을 위한 위인전 형태의 반기문 책도 많다. 살아 있는 사람에 대한 위인전이 이렇게 다양하게 나온 경우도 드물 것이다. 특히 어린 학생들에게 인기가 있는 시리즈로 나온 것은 대단한 인기를 방증하는 것이다. 라는 책은 반 총장을 비롯해 세계적 리더들에게 배울 수 있는 삶의 노하우를 정리하면서 아이들의 교육방법을 제시했다. 하지만 출판된 대부분의 책은 반 총장에 대한 찬사와 긍정적인 부분만 부각해 객관적 의미의 인물평전에는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 원희복의 인물탐구
- [세계]194번째 유엔 독립국가의 운명은?(2011. 09. 20 16:55)
- 2011. 09. 20 16:55 국제
- ㆍ팔레스타인, 국가 수립 승인 외교전 ‘치열’… 미국·이스라엘 강력한 반대 특별한 의자 하나가 지난 9월 5일부터 아랍 국가와 유럽, 미국을 여행하기 시작했다. 예루살렘에서 생산된 올리브 나무와 서안지구 중부 고지대인 나블루스에서 만든 천으로 만들어진 이 의자는 레바논 베이루트를 거쳐 카타르를 지나 런던, 파리, 브뤼셀, 마드리드 등 유럽 도시들을 들른 뒤 뉴욕으로 갈 예정이다. 유엔을 상징하는 파란 벨벳 천으로 만들어진 나무 의자의 등받이에는 실을 이용해 양각으로 이렇게 수가 놓아져 있다. “팔레스타인. 유엔 정식 회원 가입은 팔레스타인의 권리다.” 팔레스타인 깃발도 함께 새겨져 있다. 팔레스타인 출신 엔지니어 아이만 스베이가 지난 9월 5일 요르단강 서안지구의 라말라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유엔의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인정의 염원을 담은 의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라말라/AP연합뉴스 이 의자의 특별한 여행은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승인 움직임을 지원하는 의미에서 기업가 6명과 비정부기구 단체에서 추진하고 있다. 활동가인 사미르 알 바즈는 알아라비야에 “팔레스타인의 독립국가 인정을 염원하는 의미에서 일반적인 유엔 의자와 똑같은 디자인으로 의자를 제작했다”며 “40만명의 팔레스타인 난민이 있는 유엔 의장국 레바논에서부터 여정을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옵서버 국가’ 지위 얻으면 평화군 요청 가능 유엔의 194번째 독립국가로 인정받기 위한 팔레스타인의 국가적 캠페인 ‘팔레스타인 국가 194’가 주목받고 있다. 팔레스타인의 오랜 숙원이 바로 독립국가 건설이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은 9월 20일부터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 총회에 독립국가 승인 결의안을 제출하는 등 승인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결의안의 내용은 1967년 이전 이스라엘이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 동예루살렘을 점령하기 이전 상태의 국경으로 팔레스타인 국가를 수립하는 방안이 골자다. 아직 정확히 신청서를 제출할 날짜가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현재로선 마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대통령이 반기문 사무총장과 만나는 20일 제출할 가능성이 제기된다고 BBC가 보도했다. 팔레스타인이 독립국가 승인 결의안을 유엔 총회에 제출하게 되면 반 총장은 안전보장이사회에 넘기고, 15개 이사국이 이를 승인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가운데 미국은 이미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빅토리아 눌런드 국무부 대변인은 “만약 안보리의 거부권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미국은 그렇게 할 것”이라며 “팔레스타인의 국가 수립 문제는 협상을 통해서만 성립될 수 있다”고 말했다. 독립국가 승인을 얻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팔레스타인은 결의안을 제출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193개 유엔 총회 국가 가운데 3분의 2의 지지를 받고 15개 안보리 이사국 중 9개국의 승인을 얻으면 ‘표결권이 없는 옵서버 단체’(entity)에서 ‘표결권이 없는 옵서버 국가’(state)로 지위가 상승하게 되기 때문이다. 로마교황청(바티칸)이 바로 이 옵서버 국가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고위급 관리인 나빌 샤스는 AP통신에 “팔레스타인은 세계보건기구, 유네스코, 국제형사재판소와 같은 유엔 기구에서 정식 회원으로 인정받는 등 지위 상승을 꾀할 수 있다”며 ”이 경우 국제형사재판소에 이스라엘의 범죄행위로부터 팔레스타인 국민을 보호해달라는 요청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히브루대학 국제법 교수인 유발 샤니는 CNN에 “유엔 평화유지군도 하나의 논란거리가 될 수 있다”며 “팔레스타인이 옵서버 국가가 되면 요르단강 서안이나 가자지구 같은 곳, 또는 적어도 1967년 이후 법률적 대립이 지속된 이스라엘군 점령지역에 유엔 평화유지군을 요구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유대계 눈치보는 오바마 행정부 1948년 1차 중동전쟁 이후 현재까지 이스라엘의 점령상태가 계속 이어지고 있는 팔레스타인에서 독립국가 선언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88년 11월 15일 팔레스타인 지도자인 야세르 아라파트가 독립국가 수립을 공식적으로 천명한 뒤 아랍과 라틴아메리카 국가 100여개국의 승인을 받았으며, 2000년에는 건국을 선포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40년대 후반 한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가 독립을 쟁취하고, 옛 소련으로부터 동유럽 국가들이 독립을 일궈내고, 남수단이 수단으로부터 독립하며 193번째 독립국가가 됐지만, 1948년 1차 중동전쟁 이후 팔레스타인은 가장 오래 독립운동을 하고 있는 국가로 여전히 남아있는 셈이다. 미국 중재의 중동 평화협상이 지지부진하자 지난해부터 팔레스타인은 평화협상 대신 개별 국가로부터 독립국 승인을 받는 외교전으로 전략을 수정했다. 특히 지난해 9월 말 이스라엘이 서안지구에 정착촌 건설을 재개하면서 이 같은 외교적 노력은 가속화되기 시작했다. 대립하던 양대 정파인 파타와 하마스도 독립국가 승인 문제에 있어서는 한 목소리를 내고 있고, 연립내각 구성에 대해 큰 틀에서 합의도 이뤘다. 그러나 미국과 이스라엘의 입장은 공고하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압바스 대통령에게 즉각 직접 대화로 돌아오라고 촉구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유엔 독립국가 승인이 이스라엘을 고립시키고 비정당화하려는 시도로 보고 이를 막기 위해 로비를 벌이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지난 9월 6일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압바스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이달 말 뉴욕에서 부정적인 시나리오를 피하기 위해 노력하자”고 언급했다. 이튿날 데니스 로스 백악관 중동담당 보좌관과 데이비드 헤일 중동 특사가 압바스 대통령을 만나 결의안 제출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고 이스라엘 일간 하레츠가 전했다. 진보적 성향의 정책연구소 ‘미디어 매터스 액션 네트워크’의 M J 로젠버그는 알자지라에 기고한 글에서 미국의 입장에서는 팔레스타인이 정식 국가로 인정받게 될 경우 오바마 행정부로선 중동 외교정책에 강한 타격을 입는 것은 물론 향후 재선 가도에서 유대계로부터 지지를 얻기 힘들 것이라는 분석을 제기했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이 이스라엘 입장만 고수하는 것도 큰 부담이다. 로젠버그는 “팔레스타인 문제는 모든 무슬림이 연합한 문제”라며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인도네시아, 아프가니스탄 사람이 모두 서안과 가자지구 봉쇄는 잘못된 것이라고 공감하고 있고, 미국과 이스라엘만 결국 반대 입장에 서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이슬람 국가인 터키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는 13일 아랍연맹 본부에서 “팔레스타인의 독립국가 인정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라며 지지 입장을 보였고, 아랍권의 대표적 친미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전 주미대사 투르키 알 파이잘 왕자도 “미국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사우디는 더 이상 과거와 같이 미국과 협력할 수 없고, 아랍세계와 미국의 관계에 독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 [줌인]선진국은 ‘유엔 페어플레이’ 잊었나(2010. 12. 16 15:47)
- 2010. 12. 16 15:47 국제
- ㆍ교토의정서 흔들기로 기후변화 책임 회피 개도국 감축에만 집중 기후협상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둘째주에도 선진국과 개도국의 기후전쟁은 일본 대 볼리비아의 대리전 양상을 뗬다. 알바(ALBA·중남미 지역 좌파블록인 ‘미주(美洲)를 위한 볼리바르 동맹’) 국가들은 선진국이 교토의정서 2차 이행을 선언하지 않으면 더 이상 협상하지 않겠다고 공격했다. 볼리비아 유엔 대사 파블로 솔론은 “자연재해로 전세계에서 매년 30만명이 죽고 있다”면서 “이것이 ‘대학살(genocide)’ 아니면 뭐겠는가, 얼마나 더 죽어야 하는가”라고 일갈했다. 볼리비아를 비롯한 알바 국가들에 협상 교착의 책임을 묻는 선진국의 공세를 전환코자 한 것이다. 또한 G77국가(개발도상국 모임)들과 연대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으며, ‘기후정의’를 주장하는 원주민·농민·환경·풀뿌리·사회단체들과 함께 협상장 안에서 기자회견을 열 정도로 다방면에서 세를 규합하고 있다. 12월 9일 열린 고위급 회의에서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이 대학살을 중단해야 한다며 선진국의 책임과 기후정의를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12월 7일 오후 시작된 고위급 회의에 맞춰 주요국 장관들이 속속 도착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개막 행사에서 “우리는 모든 이슈에서 최종 합의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진전된 모습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또 “기후협상은 ‘단거리’가 아니라 ‘마라톤’이기 때문에 완벽한 합의에 집착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금번 회의를 초석 삼아 내년 남아공 기후총회에서 중대한 결정을 내리자는 현실적인 판단이 작용했겠지만, 2007년 인도네시아 발리 총회에서부터 이와 유사한 연설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유엔기후변화협약 사무총장 피구에레스 역시 흔들리는 국제탄소 레짐(묵시적 합의)을 강화시키는 데 무능력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칸쿤 협상이 모든 국가의 단기적 이익을 보장하지는 않지만, 어떤 결론에도 도달하지 못한다면 모든 이들의 장기적인 안녕에 위험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런데 이 말을 경청해야 할 대상은 다름 아닌 미국을 비롯하여 교토의정서 흔들기로 기후변화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선진국들이다. 이것이 바로 ‘유엔 페어플레이’의 조건이다. 개도국, 조속한 감축결정 강력 요구 군소도서국가(AOSIS)와 개도국 대표들은 이미 겪고 있는 피해상을 나열하며 조속한 감축 결정과 재정 공약을 이행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에티오피아 대통령은 “아프리카는 단지 2%만을 배출하는데 그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호소했다. 과테말라 대통령은 “20년 후에 자손들이 칸쿤에서 무엇을 했는지 묻는 질문에 우리의 답은 칸쿤 결과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며 전향적인 태도를 요청했다. 그러나 협상에 적극적인 유럽과 달리 미국, 호주, 일본, 캐나다 등이 소속된 엄브렐러(Umbrella) 그룹은 여전히 ‘코펜하겐 협정’만 운운하면서 개도국의 감축을 구속하는 ‘국제적 협의 및 분석’(ICA)에 집중하고 있다. 이미 코펜하겐 협정은 <위키리크스>의 폭로 기사를 통해 개도국과 NGO의 공분을 낳았는데도 말이다. 위키리크스에 따르면 작년 이맘때 부결된 코펜하겐 협정을 어떻게든 살려보고자 은밀히 회유와 강압에 나섰던 미국의 공작이 사실로 들통났다. 기후재정으로 최빈국들을 우군으로 만들고, 알바 국가들을 고립시키는 ‘더러운’ 전략이 폭로된 것이다. 협상 둘째주 들어 한산했던 협상장 곳곳이 사람들로 북적였다. 정부 대표단을 제외하고 비정부기구 참가자들은 고위급 회의장에 입장하는 데 제한을 받는다. 칸쿤 메세에서 문 펠리스로 이동하는 버스를 기다리는 대표단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칸쿤이 코펜하겐의 복제판이 될 것이라는 우려는 쉽게 가시지 않고 있다. 특히 몇몇 국가들끼리 모이는 별도의 회담과 문서에 대한 소문이 무성한데, 의장국인 멕시코는 12월 6일 공식적으로 ‘히든 텍스트’와 ‘비밀협상’의 존재를 부인했다. 그러나 협상 타결을 위해 비공식적인 모임들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은 인정했다. 현재 40~50개에 이르는 양자간, 그룹별 이합집산 과정에서 텍스트만 십수 개가 나돌고 있다고 한다. 협상 내용과 협상 과정이 코펜하겐과 닮은꼴이다. 칸쿤은 코펜하겐의 복제판이 되나 미국과 캐나다는 많은 NGO들과 일부 개도국들로부터 ‘잘못된 해결책’으로 비판받는 ‘시장 메커니즘’을 강하게 밀고 있다. 그 중 산림훼손 방지(REDD+) 채택과 청정개발체제(CDM) 확대 이슈는 상당한 수준의 합의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신흥개도국 의무감축 논란에 묻혀 최종적인 결정은 미뤄지고 있다. 반면 미국은 장기재정의 투명성 제고, 기술이전 메커니즘과 적응위원회 설치 의제에 대해서는 단지 ‘고려한다’면서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종적으로 중국과 미국 등 선진국간 주고 받는 거래에 따라 나머지 재정·기술, 산림 등 의제 합의사항을 포함하는 결정문(Decisions) 형태로 제출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교토체제 2차 이행을 거부하는 일본 및 선진국들과 나머지 국가들 간에 1차 이행 연장 및 차기 총회로의 논의 연기 같은 절충안으로 봉합될 가능성도 있다. 그럼에도 코펜하겐과 같이 공식적으로 채택되지 않은 채 단지 ‘유의한다’로 끝날 가능성도 존재한다. 칸쿤 협상 과정 중 가장 많이 등장한 표현은 ‘균형’이었다. 선진국과 개도국간의 균형, 완화와 적응의 균형, 그리고 재정·기술, 산림방지, 능력형성 등 주요 의제간 균형 등 대부분의 정부 협상가들이 즐겨 쓰는 단골 메뉴다. 선진국은 개도국의 역할을 강화하자는 의미에서, 반면 개도국은 의무감축과 자체감축의 투 트랙을 유지하는 의미에서 서로 다른 균형을 원한다. 그런데 선진국의 균형 추구에 ‘차별화된 책임’이라는 유엔기후변화협약의 대원칙이 유실될 가능성이 있다. 지금까지 탄소 레짐에서 세력 균형으로 탄생한 최선의 합의가 교토의정서였다면, 코펜하겐 협정은 세력 균형의 한계를 나타냈다. 칸쿤 결과 역시 이러한 한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추세라면 2020년, 2050년 중장기 비전은커녕 현재의 교토체제가 만료되는 2012년 벼랑 끝에 몰려서야 제2의 포스트 의정서에 도달할 수도 있다. 2011년 남아공 총회에서 역사적 결정을 한다면 다행이다. 그러나 각국 입법·행정 절차에 따라 국내 비준을 거치는 과정이 1년 만에 가능할지 미지수다. 그렇다면 지금과 같은 기후 레짐의 비대칭적 균형상태에 균열을 낼 수 있는 돌파구는 무엇일까. 흥미롭게도 2009년 12월 코펜하겐 회의에 참석한 아널드 슈워제네거 미국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변화는 정부가 아닌 민중으로부터 나왔다”며 “기후변화에 즉각 대응하라는 민중들의 강력한 요구가 결국 정치인들을 움직일 것”이라고 대중행동을 선동했다. 비록 정치적인 발언일지라도, 기후협상은 세계 시민의 기후행동에서 비롯될 수밖에 없다는 정답을 전달한 것이다. 순수한 국가간의 협상은 존재할 수도 없고, 존재해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멕시코 칸쿤·이정필<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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