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경향(총 28 건 검색)
- [시사 2판4판]유전 프로젝트 ‘대왕고래’(2024. 06. 10 06:00)
- 2024. 06. 10 06:00 정치
- 시사 2판4판
- [김우재의 플라이룸](48)선택의 유전학적 기원(2024. 02. 26 05:30)
- 2024. 02. 26 05:30 사회
- 투표하는 유권자. 한수빈 기자 우리는 매 순간 선택한다. 식사 메뉴부터 전세 대출까지, 선택은 우리 삶의 핵심이다. 단세포 생명체도 선택을 한다. 주변 환경을 감지하고 유리한 조건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무척추동물은 더 복잡한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간단한 신경계를 가지고 있으며, 자극에 반응하고 간단한 선택을 내리도록 신경회로가 구성돼 있다. 인간을 포함한 포유동물은 복잡한 환경을 탐색해야 하기 때문에 더욱 정교한 뇌 영역을 가지고 있다. 전두엽 피질은 감각 정보, 보상 신호, 과거 경험을 통합해 어떤 일의 계획과 결정, 진행을 주도한다. 인간 역시 생물이므로 도파민, 세로토닌과 같은 신경전달물질은 보상 처리와 동기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당연히 이 과정에서 다양한 유전자가 신경전달물질 시스템, 뇌 발달, 개인의 의사결정 스타일 등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생명체가 복잡해질수록 정보 처리의 정교함과 의사결정에 고려되는 요소의 수는 극적으로 증가한다. 인간은 의식적인 인식을 통해 자신의 선택과 결과를 이해하고, 사회적 요인이 의사결정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다른 생명체와 차별화된다. 산란을 위한 선택과 유전학 초파리 암컷은 두 달 정도 되는 삶 속에서 어떤 수컷과 교미를 해야 하느냐는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초파리 수컷의 구애 행위와 암컷의 선택을 연구했던 과학자들은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수컷을 선택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선택이 남아 있다. 그건 바로 자식을 위한 선택이다. 인간의 경우, 갓난아기의 모든 선택은 부모에 의해 대행된다. 그건 초파리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 선택은 오직 암컷 초파리에 의해 이루어진다. 2008년 학술지 ‘사이언스’에 ‘간단한 의사결정 과정을 연구하는 모델로서의 초파리 산란장소 선택’이라는 논문이 발표된다. 이 논문은 암컷 초파리의 산란장소 선택이 초파리로서는 아주 복잡한 신경회로를 필요로 하는 의사결정의 일종이라고 주장한다. 즉 암컷 초파리의 산란지 선택이 의사결정을 구현하는 생물학적 메커니즘을 이해하기 위한 간단하고 유전적으로 조작 가능한 모델이 될 수 있다고 제안한다. 인간 외에도 대부분 생명체는 후손을 위한 어느 정도의 희생적 선택 기제를 갖추고 있다. 초파리 암컷의 산란장소 선택이 바로 그런 사례다. 암컷의 산란장소 선택은 주변 환경의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 이루어져야 한다. 예를 들어, 암컷은 산란지 후보의 영양 상태, 안전성, 접근성을 고려해야 한다. 암컷이 자손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산란지를 선택하는 기준의 핵심은 설탕이다. ‘사이언스’의 논문은 암컷 초파리의 산란지 선택이 해당 선택지의 당 농도에 민감하며, 암컷에게 서로 다른 당 농도의 선택지가 주어질 경우, 암컷은 항상 당 농도가 낮은 장소를 산란지로 선택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마도 오랜 진화과정 중에 고농도의 당이 존재하는 장소에 알을 낳을 경우, 알이 그 당을 먹기 위해 모인 포식자에 의해 훼손될 수 있다는 방식으로 자연 선택됐을 것으로 추측된다. 초파리 수컷의 교미 시간 조절 선택 인간이나 초파리나 자식을 위해 암컷에게 복잡한 의사결정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인간이나 초파리나 암컷이 자식을 낳으며, 이는 수컷이 대체할 수 없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50일도 안 되는 삶을 사는 초파리 수컷이 내려야 하는 가장 복잡한 선택은 무엇일까. 아마 대부분 암컷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초파리 수컷의 암컷에 대한 취향은 거의 진화하지 않았다. 아마도 수백만 년의 진화 과정 중에 까다롭게 선택하던 수컷 초파리들이 대부분 자식을 남기지 못했기 때문에 진화한 흔적일 것이다. 이렇게 단순한 초파리 수컷에게도, 자신의 두뇌가 가동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 신중한 선택을 하는 경우가 있다. 초파리 수컷은 얼마나 오랫동안 암컷과 교미를 할 것인지를 신중하게 결정하는 것으로 보이며, 이 선택은 초파리 수컷의 유전자 대물림에 아주 중요한 행동으로 드러났다. 초파리 수컷이 어떤 암컷과 교미할지에는 큰 노력을 기울이지 않지만, 얼마나 교미 시간을 유지할지에는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이유는 초파리 암컷이 여러 수컷과 교미하는 전략을 구사하기 때문이다. 즉 초파리 수컷이 교미하려는 암컷의 몸속에는 다른 수컷의 정자가 들어 있을 확률이 매우 높다. 그러면 도대체 왜 교미 시간일까?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초파리의 경우 수컷이 암컷과 교미하는 시간을 조금만 늘려도, 자손이 자신의 정자에 의해 수정될 확률이 비약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까. 초파리 수컷의 정자에는 섹스펩타이드라는 물질이 존재하고, 이 펩타이드가 암컷 몸에 들어가면 암컷이 교미 후 산란 행동을 위해 다른 수컷과의 교미를 중단하는 신경학적 변화가 일어나는데, 그 시간이 약 30분에서 1시간 이후이고, 수컷 초파리가 최선을 다해 유지하려는 교미 시간도 30분 내외다. 즉 초파리 수컷이 암컷 초파리와의 교미 시간을 조금이라도 늘릴 수 있다면, 초파리 수컷의 인생은 성공적일 수 있다. 초파리 수컷에게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은 바로 교미 시간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생존과 번식을 선택하자 4월이면 한국의 유권자들은 한국의 미래를 위한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한다. 각 정파는 정권심판을, 운동권 심판을, 거대양당 심판을 슬로건으로 내놓았다. 우리가 선거에서 매번 절실함을 가지고 선택했다면, 저런 허술한 구호가 난무하진 않았을 것이다. 초파리들이 인생을 걸고 내리는 선택조차 생존과 자손을 위한 것인데, 위대한 인간이 내리는 선택이 저런 수준 낮은 포퓰리즘적 구호일 리 없다. 물론 당연히 인간은 초파리가 아니다. 정치유전학과 신경정치학의 연구 결과들이 도파민 수용체가 진보와 보수를 구분하는 잣대라 주장해도, 우리가 그 조악한 우생학의 흔적에 흔들릴 이유는 없다. 선택은 우리 스스로가 내리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 사회를 지탱하는 그 무엇도 근거를 가질 수 없다. 하지만 초파리조차 할 줄 아는 처절한 선택의 기로에서, 우리는 정치적 구호에 휘둘려 생존과 자손을 외면하고 있다. 우리가 초파리보다 나은 선택을 한다는 사실을 증명할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에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고, 행복한 가정을 만들 수 있다는 구호를 선택하면 된다. 스타벅스 커피 한 잔의 여유조차 서민이라는 프레임 속에 마셔야 하는 처절한 나라 말고, 욕심부리지 않고 열심히 최선을 다해 일하면 내 가족과 내 집에서 별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사회를 선택하면 된다. 그 길을 선택하자.
- 김우재의 플라이룸
- [김우재의 플라이룸](40)꿀벌의 멸종위기…유전학이 줄 희망(2023. 06. 02 11:29)
- 2023. 06. 02 11:29 사회
- 꽃에 꿀이 사라진 탓에 말라버린 판 형태의 벌집 위에 꿀벌들이 앉아 있다. / 최유진 PD 꿀벌은 지구생태계의 중요한 구성원이다. 모기와 초파리도 지구생태계의 중요한 구성원이자 꿀벌과 같은 곤충이지만, 우리는 세상의 그 어떤 곤충보다 꿀벌의 존재에 감사한다. 꿀벌은 꽃가루를 수분시켜 식물의 번식을 돕는 곤충이다. 그리고 꿀벌처럼 식물의 수분을 돕는 곤충과 동물은 많다. 그중에는 파리와 모기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유독 꿀벌을 사랑한다. 왜냐하면 꿀벌이 꿀을 생산해 인간에게 영양분을 공급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사랑은 대부분 이기적이며 편향적이다. 어쩔 수 없다. 우리가 인간이라는 물질적 존재를 벗어나 감정을 느낄 방법이-현재로서는-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꿀벌은 인간이 기르는 식물의 3분의 1을 수분(受粉)시킨다. 인간이 먹는 과일, 채소, 곡물 대부분은 재생산 과정에서 꿀벌을 반드시 필요로 한다. 꿀벌이 수분시키는 식물의 가치는 연간 175조4000억원으로 추정된다. 꿀벌은 토양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데도 필수적이다. 꿀벌이 꽃가루를 옮기면서 토양에 질소와 인산염을 공급하기 때문이다. 꿀벌은 기후 변화를 완화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왜냐하면, 꿀벌이 꽃가루를 옮기면서 이산화탄소를 줄이고, 산소를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벌집군집붕괴현상 벌집군집붕괴현상(colony collapse disorder·CCD)은 꿀벌의 여왕벌과 일벌이 갑자기 사라지는 것을 말한다. 2006년 10월 미국에서 처음 보고된 이후, 미국 꿀벌의 25~40%가 감소했다고 알려졌고, 이후 캐나다, 독일, 스페인, 브라질, 대만을 넘어 이제 한국에서도 자주 발생하는 현상이 됐다. CCD가 처음 발생한 이후 전 세계적으로 꿀벌에 대한 학술적 연구가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CCD의 정확한 원인은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현재까지 전문가들에 의해 합의된 결론은 CCD의 원인이 다층적이라는 점이다. 기후 변화, 농약 사용, 서식지 파괴, 꿀벌 기생충과 바이러스 감염, 꿀벌에 대체식량으로 공급하는 고과당 시럽 등의 환경적 요인 외에도, 여왕벌의 유전적 병목현상(genetic bottle neck)과 같은 유전적 요인이 전 세계에서 다발적으로 벌어지는 CCD의 원인일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여왕벌의 유전적 병목현상은 여왕벌의 유전자풀이 줄어드는 현상을 말한다. 인간은 수천 년 동안 동물과 식물을 가축화해왔다. 가축화는 인간이 원하는 특성을 가진 동물과 식물을 선택적으로 번식시키는 과정이다. 꿀벌은 누에와 함께 인간에 의해 가축화된 대표적인 곤충 중 하나다. 가축화 과정은 유전적 병목현상을 발생시킨다. 예를 들어 인간은 젖이 많이 나오는 소, 고기가 많이 나는 돼지, 알을 많이 낳는 닭을 선택적으로 번식시켜왔다. 이 과정에서 소, 돼지, 닭의 유전적 다양성이 줄어들었다. 매년 가축의 전염병 뉴스가 일상이 된 것도, 유전적 병목현상 때문이다. 유전적 다양성이 줄어들면 가축은 질병에 더 취약해지고, 질병이 발생할 경우 전파 속도가 빨라질 수밖에 없다. 유전적 다양성의 저하로 동물과 식물의 적응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기후 변화와 같은 환경 변화에 가축이 취약해지는 것도 당연한 귀결이다. 유전적 병목현상을 방지하는 유일한 방법은 다양한 개체를 번식시키고, 개체의 이동을 자유롭게 허용하는 것뿐이다. 문제는 그런 해법이 비현실적이라는 데 있다. 인간이 3분의 2의 작물을 섭취하고도 건강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꿀벌 생태학과 암 생물학 CCD가 심각한 문제로 인식되면서, 거의 주목받지 못하던 꿀벌 연구에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이전의 꿀벌 연구는 양봉에 필요한 수준의 수의학적 연구와 일부 동물생태학자들의 기초생물학 연구뿐이었다. 1974년 칼 폰 프리슈가 꿀벌의 행동연구로 노벨상을 받은 이후로, 꿀벌 연구는 단 한 번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지 못했다. 20세기 중반 분자생물학이 생물학의 중심축으로 성장한 이후, 현대생물학을 장악한 키워드는 ‘질병’, 그중에서도 ‘암’이었다. 2021년 한국에서 암으로 사망한 사람은 약 8만명으로 알려져 있다. 전체 사망자의 약 26%다. 암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큰 사망 원인 중 하나다. 전체 사망자의 약 17%가 암으로 죽는다. 기대수명이 증가하는 선진국일수록 암환자 숫자는 증가할 수밖에 없다. 암은 인간이 유전자에 쓰인 것보다 더 오래 살면서 생기는 진화적 부산물이기 때문이다. 첨단과학 연구가 선진국에서만 가능하고, 과학 연구비가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현실에서, 암 연구에 큰돈이 투입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만약 꿀벌이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 꿀을 먹지 못한다고 당장 큰일이 벌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설탕을 먹으면 된다. 그러나 인류가 기르는 작물의 3분의 1이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 당장 인류가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기아와 영양실조가 발생할 것이 분명하다. 식품 가격은 상승할 것이고, 경제적 불안정이 야기될 것이며, 식량 부족으로 사회 불안정과 정치적 불안정이 발생할 것이다. 나아가 식량을 둘러싼 국가 간의 갈등이 전쟁으로 비화하지 않으리라는 법도 없다. 물론 이런 일이 벌어질지는 장담할 수 없다. 우리는 꿀벌의 존재가 인류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암 사망률처럼 숫자로 나타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런 상상을 해보지 않았다. 꿀벌은 당연히 우리 곁에 있는 곤충이었고, 아무도 그 부존재를 상상하지 않았으며, 암이나 치매 혹은 당뇨병처럼 우리 옆에서 당장 벌어지는 인간의 죽음으로 여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류는 꿀벌이 사라지는 와중에도 생물학 연구비의 30%를 기꺼이 암 생물학 연구에 사용한다. 대부분의 거대 제약사들은 암 치료제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인간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을 대비하는 데 익숙하지 않은 종이다. 꿀벌 유전학의 미래 생물학 연구비 중 꿀벌 연구에 사용되는 연구비 비율은 매우 낮다. 미국의 경우, 2020년 꿀벌 연구에 사용된 연구비가 약 1억달러로, 전체 연구비의 약 0.001%에 해당한다. 인간이 만든 정치제도란 미래를 예측하고 대비하는 데는 무용지물이다. 꿀벌의 멸종을 걱정하는 일은 정치인의 인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초파리는 인간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곤충이지만, 100년 전 우연히 유전학자 모건의 선택을 받아 엄청난 유전학적 도구의 보고가 됐다. 꿀벌의 대량 멸종을 막으려면, 꿀벌 또한 유전학적 도구를 갖춘 모델 생물로 재탄생해야만 한다. 꿀벌의 유전학이 필요한 이유다. 지난해 한국에서만 꿀벌 78억 마리가 실종됐다.
- 김우재의 플라이룸
- [신간]한국주택 유전자 1·2 外(2021. 06. 11 14:40)
- 2021. 06. 11 14:40 문화/과학
- ㆍ20세기 한국인의 집은? <한국주택 유전자 1·2> 박철수 지음·마티·각권 3만3000원 박철수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가 근현대 한국주택의 역사를 정리했다. 저자는 <아파트: 공적 냉소와 사적 정열이 지배하는 사회> 등의 저작으로 한국의 주거문화사를 알려왔다. 분량만 각각 681쪽, 705쪽. 책은 두껍지만 여러 시각자료와 관공서 공식문서를 중심으로 정리해 어렵지 않게 읽힌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주택을 공급한 회사인 대한주택공사의 발자취를 소개한 드문 책이기도 하다. 새로운 팩트도 풍부하게 담겼다. 1권의 부제는 ‘20세기 한국인은 어떤 집을 짓고 살았을까?’다. 일제강점기 관사와 사택의 모습부터 부영주택, 문화주택, ‘아파-트’, 도시한옥까지 살펴본다. 부영주택이란 부 단위 행정관청이 공채를 발행하거나 자체 예산으로 짓는 임대주택이었다. 오늘날 시영주택과 유사하다. 경성에 주택이 부족해지기 시작한 1920년대 등장했다. 일본은 당시 빈곤층이 거주한다며 입주자를 몰아내고 부영주택을 철거하기도 했다. 학자마다 논란이 있는 ‘최초의 아파트’가 한반도에 출현한 시점은 일제강점기라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1930년대 아파트 임대 광고가 신문에 실리기 시작한 점을 예로 든다. 일본인 사업가들이 한반도에서 큰돈을 벌 수 있는 사업으로 아파트 임대업을 꼽았다고 소개한다. 2권은 본격적으로 아파트를 다룬다. 한국인들이 어떤 경로를 거쳐 단지형 아파트를 선호하게 됐는지, 어떤 정책 과정을 통해 주택 유형 중 왜 아파트가 우세하게 됐는지를 탐색한다. 아파트의 시초인 ‘종암아파트’와 ‘개명아파트’부터 ‘마포아파트’나 브랜드 아파트를 예견한 ‘잠실주공아파트단지’까지 소개한다. 아파트 외에 가장 많은 종류를 차지하는 다세대주택과 다가구주택, 빌라도 등장한다.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을 위하여 | 사샤 세이건 지음·홍한별 옮김 문학동네·1만6000원 인간의 다층적인 모습을 탐구해온 사샤 세이건의 첫 책. 저자는 천문학자이자 <코스모스>의 저자인 칼 세이건과 과학 저술가이면서 TV쇼 제작자 앤 드류얀의 딸이기도 하다. 결혼, 성장, 죽음 등을 이야기한다. ▲나의 <소세키>와 <류노스케> | 우치다 핫켄 지음·송태욱 옮김 뮤진트리·1만6500원 소설가이자 수필가인 우치다 핫켄의 수필집. 일본의 대표 작가 나쓰메 소세키와 이쿠타가와 류노스케에 관한 수필을 묶었다. 우치다 핫켄은 둘을 각각 ‘내 문장의 지표’였던 스승, ‘문업에 등불을 켜준 벗’으로 소개한다. ▲눈으로 만든 사람 | 최은미 지음·문학동네·1만4800원 작가 최은미의 세 번째 소설집. 2016년부터 2020년 사이 나온 9편의 단편이 담겼다. 사회와 국가 그리고 여성을 둘러싼 서사를 주로 다뤘다. 일과 육아를 소화하는 유자녀 기혼여성부터 10대 청소년까지 다양한 인물이 등장한다.
- 신간
- [알아두면 쓸모있는 과학](18)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가 판도라 상자 열까?(2020. 05. 04 14:05)
- 2020. 05. 04 14:05 문화/과학
- 유전자를 연구자의 의도대로 편집한 아이가 태어나게 해 전 세계적으로 논란을 일으킨 중국 과학자 허젠쿠이(賀建奎)가 지난해 12월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유전자를 편집한 뒤 자궁에 착상시켜 실제 출생까지 이르게 한 연구를 주도해 연구윤리를 위반한 혐의입니다. 연구결과 발표 1년여 만입니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유전자 편집 아기가 세상에 나오다 허젠쿠이의 연구 때문에 과학계는 물론 전 세계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SF영화에나 나오던 ‘맞춤형 아기’ 탄생이라는 판도라 상자를 덜컥 열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맞춤형 아기는 키를 크게 하거나 똑똑하게 만드는 등 사람들에게 선호되는 형질과 관련된 유전자만 골라 태어나게 하는 겁니다. 생명윤리 측면에서 큰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맞춤형 아기는 유전공학의 눈부신 발전에도 불구하고 과학자들에게 금기시되는 연구였습니다. 허젠쿠이가 맞춤형 아기 탄생이라는 판도라 상자를 열어젖히면서 제2, 제3의 맞춤형 아기 탄생이 현실화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와 함께 강력한 규제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허젠쿠이 교수는 2018년 11월 홍콩에서 열린 ‘제2차 인간유전체교정 국제회의’에서 유전자 편집 아기의 탄생을 발표했습니다. 그는 크리스퍼(CRISPR) 유전자 가위 기술을 이용해 에이즈(AIDS·후천성면역결핍증)를 일으키는 HIV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도록 유전자를 편집한 쌍둥이 아기 ‘룰루’와 ‘나나’가 태어나도록 하는 데 성공했으며, 세 번째 아이가 임신 중인 상태라고 밝혔습니다. 우리 몸에 있는 단백질 CCR5는 에이즈 바이러스 감염에 관여합니다. 허젠쿠이 교수는 CCR5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를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제거했습니다. HIV 감염 경로를 차단해 에이즈에 걸리지 않도록 한 것입니다. 인간의 유전자를 편집해 실제 출생까지 이어진 것은 허젠쿠이의 연구가 처음입니다. 그간 정부의 허가 아래 소수의 연구자가 인간 배아를 대상으로 크리스퍼 연구를 했지만 자궁 착상이나 출생까지 이어지는 것을 금지했습니다. 유전자를 편집해 출생까지 이어질 경우 맞춤형 아기가 현실화되기 때문에 과학 윤리라는 이름으로 감히 시도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전 세계적으로 이렇게 파란을 일으킨 것일까요? 이 기술은 유전정보가 들어 있는 DNA 가닥을 편집하는 데 쓰이는 기술입니다. DNA를 자르는 가위 역할을 하는 ‘절단효소’와 ‘크리스퍼 RNA’ 단백질을 붙인 형태입니다. DNA 염기서열 가운데 원하는 부분을 손쉽게 잘라낼 수 있습니다. 유전자를 손쉽게 편집할 수 있어 2012년 학계에 보고된 뒤 급격히 발전하고 있습니다. 크리스퍼는 유전자 가위 기술 가운데 3단계 수준입니다. 최초의 유전자 가위 기술은 징크 핑거 뉴클레이즈(1세대)이고, 이후 이를 보완한 2세대 탈렌 기술이 개발됐습니다. 두 기술 모두 유전자를 잘라내는 데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었고 정확도도 낮았습니다. 사람의 유전자에 직접 사용하기엔 위험도가 높았습니다. 그런데 3세대로 불리는 크리스퍼는 원하는 부분을 정확하면서도 빠르고 손쉽게, 게다가 저렴한 비용으로 잘라낼 수 있습니다. 정확도가 높아졌기 때문에 사람에게도 사용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입니다. 크리스퍼도 초기에는 동·식물의 유전자를 대상으로 이용됐습니다. 예를 들어 바나나 곰팡이를 막기 위해 크리스퍼를 이용한 바나나 유전자 편집 기술이 연구되고 있습니다. 바나나는 유전적 다양성이 낮은데 현재 곰팡이균 때문에 멸종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사람에게 가장 해로운 해충으로 불리는 모기를 박멸하기 위해서 크리스퍼가 활용되기도 합니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을 이용해 불임 모기를 만들어 모기의 번식을 막는 것입니다. 최근에는 사람의 질병과 관련된 유전자로 연구가 확장되고 있습니다. 지난 3월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는 암 환자에게 크리스퍼로 편집된 면역세포를 주입한 결과 오랜 기간 별다른 부작용이 없었다는 임상1상의 연구결과가 뉴스로 실렸습니다. 크리스퍼 기술을 이용해 암 환자에게 임상을 시도한 것은 세계 최초이기 때문에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암을 치료하는 데 효과는 보지 못했습니다만 세포가 최대 9개월간 몸속에서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 연구는 크리스퍼 기술을 이용해 면역항체를 만들어내 인체에 주입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기 위한 첫 연구입니다. ‘미끄러진 경사면’ 현상 우려돼 크리스퍼 기술이 발전할수록 이 기술이 가진 잠재적 위력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습니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은 2012년에 등장한 뒤 동·식물을 대상으로 유전자를 편집한 사례가 급격히 증가해왔습니다. 언젠가는 인간의 유전자도 편집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란 우려도 함께 제기돼 왔습니다. 우려가 현실이 되기 시작한 것은 2015년 4월 중국 중산대 황쥔주 교수 연구진이 크리스퍼를 이용해 인간배아의 유전자 편집을 시도하면서부터입니다. 연구진은 인간배아에서 빈혈 관련 유전자인 HBB를 잘라내는 데 성공했다는 내용의 연구결과를 국제학술지 <단백질과 세포>에 발표했습니다. 이 연구는 배아를 착상시키거나 출산으로 연결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결국 3년 뒤 허젠쿠이 교수의 유전자 편집 쌍둥이 출생 사건이 벌어진 것입니다. 처음이 어렵지 두 번째, 세 번째는 쉽습니다. 허젠쿠이 교수는 그간 과학자들이 금기시했던 유전자 맞춤 아기의 탄생이라는 길을 텄습니다. 이 연구가 앞으로 제2 또는 제3의 맞춤 아기 탄생으로 이어지는 ‘미끄러운 경사면(slippery slope)’ 현상을 촉진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미끄러운 경사면 현상은 어떤 원칙이 무너져 연관된 다른 원칙들이 순차적으로 무너지는 현상입니다. 영화 <가타카>는 맞춤 아기 출생을 소재로 한 영화입니다. 주인공은 명석한 두뇌와 훌륭한 신체 조건을 가지고 태어난 맞춤 아기입니다. 그는 교통사고를 당해 하반신이 마비된 장애인이 됩니다. 그는 맞춤 아기가 일상화된 사회를 마주하며 사람들의 기호대로 유전자가 편집돼 아이가 태어나는 디스토피아적 사회의 단상을 마주하게 됩니다. 이 영화는 더 이상 영화 속에 머무르지 않고 곧 현실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크리스퍼 유전자 편집 기술은 인류가 손에 넣은 강력한 기술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어떤 기술이든 사용하는 방법에 따라 우리에게 득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과연 우리는 맞춤 아기를 허용할 것입니까? 우리는 맞춤 아기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을까요? 이것이 우리 인류가 그리는 올바른 미래의 모습일까요? 깊은 고민이 필요해 보입니다.
- 알아두면 쓸모있는 과학
- [만화로 본 세상]AI의 유전자(2019. 07. 12 14:30)
- 2019. 07. 12 14:30 문화/과학
- ㆍ‘인간다움’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인간은 부족함을 메우기 위해 기계를 만들고 기술을 발전시키며 한계를 극복해 왔지만, 만약 실수가 없는 완벽한 휴머노이드가 있다면 그들은 오히려 인간의 불완전함이 만드는 다양한 변수를 부러워하지는 않을까. 야마다 큐리 작가의 만화 의 한 장면 / 노엔코믹스 「AI의 유전자」는 기계의 인간화, 인간의 기계화가 상당히 진행된 근미래(처럼 보이는) 세계를 배경으로 한다. 얼핏 봐서는 우리가 사는 현대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여기에서는 이미 휴머노이드가 인구의 10% 정도를 차지하고 인간과 섞여 자연스럽게 살고 있다. 물론 새로운 룰도 있다. 이 세계에서 인격(뇌)의 데이터 백업이나 복제가 기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는 것. 만화는 똑같은 범죄자의 인격이 여기저기서 발견되는 부작용을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이런 설정을 바탕으로 <AI의 유전자>는 매번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쏟아 놓는다. 인간과 기계의 경계가 희미해진 세상에서 인간다움에 대해 탐색하는 이야기는 이미 많이 쓰여 왔다. 우리는 영화 <터미네이터>의 T800이 세운 엄지손가락을 보고 가슴이 뭉클했었고, <블레이드 러너>는 이 주제가 얼마나 철학적일 수 있는지 깨닫게 하는 작품이었다. 애니메이션으로도 유명한 <총몽>과 <공각기동대> 역시 이 주제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야기 중 하나이다. 하지만 대체로 무겁고 신중했다. 반면 <AI의 유전자>는 이들과 같은 주제를 공유하지만, 굉장히 가볍고 경쾌하다. 그러다 에피소드가 끝날 때면 개그만화의 엔딩처럼 마무리하는데, 묘하게도 그 뒤의 여운이 굉장하다. 많은 독자가 에피소드를 지날 때마다 무거운 짐을 하나씩 짊어지는 경험을 할 것이다. 주인공은 휴머노이드를 치료하는 의사로 사람들은 그를 ‘모가디트’라 부른다. 하지만 그는 병원에 갈 수 없는 사정을 가진 환자들도 몰래 돌보고 있다. 게다가 암시장에서 제법 유명한 모양이다. 첫 에피소드에서 그는 몰래 인격을 백업하다 바이러스에 걸린 휴머노이드를 맞이한다. 그녀는 휴머노이드 남편과 인간인 딸을 입양해 가정을 꾸리고 있다. 어느 날 그녀는 사고로 머리를 부딪치고 걱정이 된 남편은 몰래 아내의 인격을 백업해 둔다. 이후 그녀가 점점 오류투성이가 되자 모가디트에게 의뢰가 들어온 것. 알고 보니 백업을 하는 동안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이다. 모가디트는 복제 데이터에는 문제가 없으니 보름 전의 그녀로 백업을 하자고 제안하고 당연히 받아들인다. 겨우 15일 정도의 기억이 사라졌을 뿐이고 생명과 바꿀 수는 없겠지만, 백업으로 돌아온 그녀는 과연 그 전의 아내와 어머니인가 아니면 새로운 인격일까. 이런 의심을 던지는 대화들로 에피소드는 마무리된다. <AI의 유전자>의 톤 & 매너는 이런 식이다. 주제에 대해 하나의 의견을 강요하지 않는다. 깊이 생각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맛을 느끼지 못하는 휴머노이드가 배우가 된다면 그는 과연 맛있는 음식을 먹는 연기를 어떻게 해낼까? 인간과 생식이 불가능한 휴머노이드 커플이 아기를 가지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갑자기 사고로 죽은 아내의 괴로운 기억을 지울 수 있다면 과연 삭제하게 될까? 이런 호기심 어린 질문들을 <AI의 유전자>는 아주 쉬운 이야기로 구성해 독자에게 질문한다. 이 질문들은 결국 하나의 커다란 물음으로 정리된다. 인간다움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일까? 인간은 부족함을 메우기 위해 기계를 만들고 기술을 발전시키며 한계를 극복해 왔지만, 만약 실수가 없는 완벽한 휴머노이드가 있다면 그들은 오히려 인간의 불완전함이 만드는 다양한 변수를 부러워하지는 않을까. 어쩌면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결함을 즐겨도 좋을 것 같다.
- 만화로 본 세상
- [주간 舌전]“문재인 정부의 유전자에는 애초에 민간인 사찰이 존재하지 않는다.”(2018. 12. 24 14:10)
- 2018. 12. 24 14:10 정치
- 전직 민정수석실 특별감찰반 수사관 김모씨의 청와대 ‘민간인 사찰’ 주장으로 논란이 일자 청와대는 이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12월 18일 브리핑에서 민간인 사찰이란 “청와대 등 권력기관의 지시에 따라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특정 민간인을 목표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며 특감반 수사관이었던 김씨가 문제 삼은 정보수집은 가상통화 열풍이 불 때 대책 마련을 위해 전직 고위공직자 실태조사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어서 이 기준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이에 앞서 특별감찰반이 가상통화 보유 정보를 수집하는 등 민간인을 사찰하는 범위의 업무를 해왔다고 주장해 파문이 일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 /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정부에서 실제 ‘민간인 사찰’이 있었느냐를 두고 벌어진 논란은 정치권의 공방으로 직결됐다. 자유한국당은 청와대 특별감찰반 의혹을 집중적으로 부각하며 본격적인 공세에 들어갔다. 김모 수사관이 작성했다는 ‘첩보문건 리스트’를 공개하고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을 비롯한 청와대 관계자들을 검찰에 고발하기로 한 것이다. 열흘 전까지 한국당 원내대표였던 김성태 의원은 자신의 딸이 KT에 특혜채용됐다는 의혹까지도 “청와대 특별감찰반 민간인 사찰문제가 터지자 물타기 수단으로 벌인 정치공작”이라며 반발했다. 이러한 야당의 공세에 맞서 더불어민주당도 홍영표 원내대표가 “사건의 본질은 수사관이 자신의 비리와 불법 의혹을 은폐하기 위해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있는 것”이라며 개인의 일탈로 선을 긋는 등 강경하게 맞서는 상황이다.
- 주간 舌전
- ‘경자유전’의 원칙은 사라질까?(2018. 01. 02 18:33)
- 2018. 01. 02 18:33 사회
- ㆍ밭 가는 사람이 밭을 가진다는 헌법 조항 유명무실… 개헌론·존치론 대치 경자유전(耕者有田). 밭 가는 사람이 밭을 가진다는 헌법 121조의 원칙이다. 농지 소유권이 농사를 짓는 사람에게 있어야 한다는 이 원칙은 산업화와 도시화의 물결 속에서 점차 유명무실해졌다. 농촌을 떠나는 인구가 늘고 농업인구는 줄어들면서 농사를 짓지 않아도 농지를 소유할 수 있게 하는 다양한 예외조항이 법률에 하나둘 더해졌기 때문이다. 개헌 논의가 확대되면서 이러한 현실을 인정하고 아예 헌법의 경자유전 원칙을 지워버리자는 조심스러운 의견까지 나오는 한편, 그에 맞서는 존치론도 힘을 모으고 있다. 농업인구 줄고 다양한 예외조항 신설 “요즘은 제발 우리 땅에 농사 좀 지어달라며 찾아도 지을 사람을 못 구해요. 주변 땅값이 있으니까 덩달아 임대료도 올라서 아예 다들 농사를 포기해버렸다니까.” 경기 수원시에 살면서 고향인 평택에 5000㎡가 안 되는 밭을 가지고 있는 최순성씨(69)는 농지를 빌려줄 사람을 찾지 못한 지가 꽤 됐다고 말했다. 농지의 절반가량은 아직 마을에 남아있는 혼자 사는 할머니가 빌려 소일 삼아 농사를 짓는다. 하지만 나머지 절반을 빌려 농사를 짓던 마을 어르신이 세상을 떠난 이후론 땅을 놀리고 있다. 틈틈이 최씨가 가서 직접 길러 먹을 채소를 심고 거두기는 하지만 비어 있는 기간이 훨씬 길다. 농지 면적이 넓지 않고 접근하는 데 불편하기 때문에 전업농이나 농업법인도 사거나 빌리려 하지 않고, 개인이 빌리기에는 노력과 비용에 비해 소출이 보잘 것 없기 때문이다. 강원 춘천시의 농촌 지역에서 한 농민이 단무지용 무를 수확하고 있다. / 연합뉴스 땅을 빌려 농사를 짓는 농업인 입장에서도 들이는 품만큼 들어오는 소득이 없는 것은 마땅치 않다. “논이라면 한 마지기(약 660㎡)에 한 가마씩 보내주는 걸로 퉁치는데, 밭에다가 돈 되는 농사 지으려면 비닐하우스라도 깔아야 돈이 남지. 할머니 혼자서 할 수가 없거든.” 최씨로부터 땅을 빌려 농사를 짓는 김모 할머니(80)의 말로는 농사 지어 조합에 넘겨봐야 손에 쥐는 돈은 병원비와 약값 대기에도 모자라다고 말했다. 할머니의 주수입원은 오히려 자식들이 보내는 용돈이다. “다른 일을 할 게 없으니 남의 땅 빌려서 농사 짓는 양반도 마을에 있긴 하지. 그래봐야 비룟값 농약값 빼고 소작료(임대료) 내고 나면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먹고 남는 게 없지.” 농지를 가졌건 못 가졌건 모두 수익을 극대화할 뾰족한 방법은 없다는 것이다. 국내 농지 가운데 임차농가가 빌려서 농사를 짓고 있는 비율은 2016년 기준 57.6%다. 절반이 넘는 농가에서 남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짓고 있다는 것이다. 농지 자체의 값어치가 천차만별인 만큼 임대료 부담도 편차가 크지만 임차농가들의 가계는 대부분 열악한 수준이다. 벼농사를 짓는 농가에서는 회복되지 않는 쌀값을 감내해야 한다. 각종 지원을 받기 위해 농협에 조합원으로 가입하려고 해도 본인이 농사를 짓고 있다는 점을 입증할 임대차계약서가 없는 경우도 많다. 지주들이 세금감면과 직불금 수급 등을 위해 서면으로 계약을 맺지 않고 직접 농사를 짓는 것처럼 등록하곤 하기 때문이다. 공식 지원을 받지 못한 농사는 김 할머니의 표현대로 “입에 풀칠하기에 바쁜” 수준에 그친다. 특히 전체 농가의 41.4%(농가경제 조사)를 차지하고 있는 70세 이상 농가의 소득을 보면 자영농과 임차농가를 막론하고 연간 소득은 2261만원, 그 중 농업소득은 전체 소득의 28.6%인 646만원에 그쳤다. 소작농을 착취하는 지주와 마름은 농업사회였던 조선시대 이전의 역사에서 지속적으로 보이는 모습이었다. 일제강점기 총독부를 통한 일제의 보다 체계적인 착취까지 더하면 소작의 폐해는 비교적 최근인 해방 후 농지개혁 전까지 이어져 왔다. 그러나 1962년 ‘경자유전’과 ‘소작제도 금지’의 원칙이 헌법에 명시된 이후로 이 폐해는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농지만큼은 농사를 짓는 사람만 가질 수 있고, 불가피한 이유가 없으면 소작의 형태로 농지를 빌려주고 막대한 이윤을 챙길 수 없다는 원칙이 선 것이다. 빌려서 농사를 짓고 있는 비율 57.6% 현행 헌법과 농지법에 따른 농지 임대차는 소작과는 다르다. 지주와 소작농 사이의 임의적인 계약으로 농사를 짓고 생산물을 나누는 것이 소작제인 반면, 임대차는 민법에 규정된 계약을 기반으로 한다. 법대로는 농지 임대차 계약서를 작성해야 한다. 역사적으로는 1894년 갑오개혁 이후 신분제 폐지와 함께 봉건적 소작제도는 반(半)봉건적 소작제로 바뀌었고 현대에 와서 이 제도는 사라졌다. 지주가 소작농을 강제로 동원하고 고율의 소작료를 받는 소작제 대신 현재의 농지 임대차에서는 생산량의 10% 수준으로 임대료 수준이 정착됐다. 이에 따라 헌법의 경자유전 원칙에 의문을 품는 목소리도 점차 커지고 있다. 개헌론이 사회 곳곳에서 제기되면서 경자유전 원칙을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조심스레 나오고 있는 것이다. 경자유전 원칙 폐지론은 소작제의 폐해가 사라진 농업환경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보다 효율적으로 농지를 활용하고 농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비농업인이 농지를 소유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직후까지 남아있던 지주와 소작농 사이의 불평등한 관계가 사라졌기 때문에 과거의 유산인 조항을 헌법에 유지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 농업에서도 세계 수준에서의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경자유전 원칙은 농업기업 입장에선 기업 활동을 가로막는 규제로 작용하는 셈이다. 현행 농지법에 따라 농사를 짓는 개인 대신 농업법인을 통한 농지 소유가 점차 확대되는 상황을 고려하면 경자유전 폐지는 농지시장에 더 많은 농업법인이 진입할 수 있게 문턱을 낮추는 방안이 된다. 이미 임대차 계약조차 잘 이뤄지지 않을 정도로 농지가 농업인의 경작에 쓰이지 못하는 점을 보면, 농업에서도 구조조정을 시행할 수 있게 시장을 열어 규모가 있는 농업기업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농지마저 기업의 경제활동에 자유롭게 쓸 수 있게 허용하면 도시민 입장에서도 장기적으로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농산물 가격이 널뛸 수 있고 농약을 대량 투하하는 농업방식으로 먹을거리의 안전도 위협받을 수 있다는 것이 근거다. 또 사실상 부동산 투기만 조장할 수도 있다는 반박도 만만치 않다. 실제로 대기업 일가가 농업용도라고 신고해 농지를 구입한 뒤 자신이 대주주인 골프장 개발 법인에 땅을 넘기는 등의 편법 행태가 드러나기도 했다. 농업인이 아닌 개인이 텃밭이나 주말농장 등의 목적으로 취득할 수 있는 농지는 1000㎡ 미만에 불과하다. 골프장이나 부동산 개발에 필요한 수십만㎡ 단위의 땅 소유는 지자체에 농업경영계획서를 제출하는 등 농지 취득자격을 입증해야 한다. 그런 절차를 감수하고서도 개발이익을 만들어내려 농지를 구매할 정도로 농지를 향한 수요는 잠재돼 있는 것이다. 충남 홍성군 농촌의 한 농민이 논두렁을 다지고 있다. / 연합뉴스 이와 같은 편법은 농업법인을 통한 농지 소유에도 적용된다는 것이 농촌문제 관계자들의 입장이다. 농지법을 제정할 당시에는 엄격한 기준으로 소유를 제한했지만 농업법인의 농지 취득자격 요건은 점차 완화되고 있는 추세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농업개혁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임영환 변호사는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박완주 의원과 경실련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헤아릴 수 없는 농지법 완화로 업무집행권을 가진 사람들 중 농업인의 비율은 줄어들었고, 대표자가 농업인이어야 하는 제한마저 폐지된 상황”이라며 “결국 비농업인이 농업회사법인을 통해 자유롭게 농지를 소유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우려 때문에 농지 소유에 제한을 둬야 한다는 경자유전 존치론이 폐지론보다는 비교적 더 힘을 얻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여기에는 농업기반이 약해지는 현실을 개선하고 농업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농지는 농업인의 소유로 남겨둬야 한다는 주장이 뒤따른다. 농촌과 농업에 대한 무관심 탓에 경자유전 존치 이상의 대책을 강구하자는 여론은 그다지 힘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오히려 현행 농지법을 개정해 비농업인의 농지 소유를 허용하는 예외적 경우들을 줄여나가야 한다는 움직임에도 사회적 반향은 크지 않다. 때문에 노인인구가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농촌의 현실이 그대로 노인 빈곤율과도 이어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를 유지하고 있는 한국의 현실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농지 거래가 자유로워져 가격이 높아지면 임차농가의 소득은 더 위협받을 수밖에 없고, 이 경우 개별 농가 차원의 소규모 영농까지도 포기하게 만들 소지가 크다. 이에 대해 한국농업경영인연합회의 마두환 사무총장은 “농촌인구 감소와 고령화, 그리고 영세농과 임대농의 비중이 큰 현실을 반영해 오히려 농지제도는 지속가능한 가족농 중심으로 개선할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며 “농업인 중심으로 농지를 소유하고 이용하는 제도를 세우는 방향의 법 개정과 별도의 농지임대차보호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비농업인 소유 가능케 해 경쟁력 높여야” 영세한 임차농가를 보호하는 방향의 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은 임차농가를 보호하는 데는 유리하지만 반대로 농지 공급 자체가 줄어들 위험도 있다. 정부가 고민하는 것도 이 지점이다. 정부는 일단 경자유전의 원칙 자체는 존치시킨다는 입장이지만 경제논리가 지배적인 현실을 전적으로 무시할 수도 없기 때문에 현실적인 딜레마를 안고 있다. 현실과 제도 사이의 거리가 멀어져버린 상황을 바로잡으려면 현실을 반영해 농지를 필요로 하는 수요는 유지해 농지자원을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한편, 농지를 빌리는 농가와 빌려주는 농가 모두를 보호하는 방안을 찾을 필요가 있다. 채광석 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농지 임대차 관리제도를 도입해 농지가 어디에서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당국이 정확히 파악할 수 있게 하면 이를 토대로 제도를 개선하고 농지 임대차 현황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수열 농림수산식품부 농지과장도 경자유전의 원칙은 중요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를 간과할 수 없다고 말했다.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에 현행 농지법의 문제는 개선해야 하지만 그만큼 난관도 적지 않은 것이 현실임을 지적한 것이다. 그는 “농지법의 비농업인 농지 소유 예외조항 중 농지를 취득하자마자 바로 임대가 가능한 조항 등은 문제가 있는 만큼 개정을 고려해야 한다”면서 “비농업인이 농지를 상속받을 수 있는 문제는 직접 농사를 짓는 사람에게 상속하면 세금을 감면하는 등의 제도 정비로도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밝혔다.
- 유전자 교정, 어디까지 허용될까?(2017. 10. 10 17:38)
- 2017. 10. 10 17:38 경제
- ㆍ아이의 눈·머리 색깔이나 키도 바꿔… “치료 목적에만 국한” 중론 ‘자연 선택’이라는 이름으로 오래전부터 유전자 편집을 해온 자연을 대신해 인간이 생명체를 설계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유전자 교정’으로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일어난 부분을 잘라내 원상복구할 수 있고, 질병의 원인이 되는 유전자를 제거할 수 있다.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버그를 수정하듯이 인간 및 동식물의 유전자를 ‘리프로그래밍’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유전자 교정의 핵심은 특정 유전자를 잘라내는 역할을 맡는 ‘유전자 가위’가 담당한다. 의도하지 않은 엉뚱한 곳을 자를 경우 변이로 암과 같은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어 정확성이 생명이다. 유전자 가위는 2003년 1세대 유전자 가위 ‘징크핑거 뉴클레아제’(ZFNs)가 개발된 후 2세대 ‘탈렌’(TALENs)을 거쳐 현재는 3세대 ‘크리스퍼’(CRISPRs)의 시대로 이행했다. 징크핑거와 탈렌은 만들기 어렵고 가격이 비싸 널리 활용되지 못했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특정 유전자에만 달라붙는 가이드 리보핵산(gRNA)만 교체해 유전자를 잘라내는 효소인 Cas9 단백질과 함께 세포로 전달하면 되기 때문에 대량생산이 가능하다. 유전자 가위 비용이 개당 수천만원 수준에서 수만원 수준으로 낮아졌고, 수개월이 걸리던 제작기간도 하루 이틀로 줄었다. 정확도도 높은 데다 복수의 gRNA를 사용하면 동시에 여러 유전자를 교정할 수 있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이런 장점 때문에 분자생물학, 의학, 농업 등 다양한 분야에 빠르게 적용되고 있다. 국제학술지 ‘사이언스’는 이를 ‘크리스퍼 혁명’이라고 표현했다. 징크핑거 유전자 가위를 만들었고, 현재도 1~3세대 유전자 가위로 유전자 교정 실험을 활발히 진행하는 다나 캐롤 미국 유타주립대학교 석좌교수는 지난 9월 27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의 등장으로 “유전자 교정의 민주주의 시대가 열렸다”고 평가했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아이디어를 처음으로 제시하고 이를 유전자 편집에 활용한 UC 버클리의 제니퍼 다우드나 교수(왼쪽에서 두 번째)와 크리스퍼 특허를 두고 분쟁을 벌이고 있는 장 펭 MIT 교수(오른쪽 두 번째)가 2015년 10월 3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뉴요커 페스티벌 행사에 참석해 함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게티이미지코리아 유전자 교정의 민주주의 시대? 전 세계 과학자들은 최근 몇 년 사이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이용한 연구를 경쟁적으로 쏟아내고 있다. 지난해 1월 사이언스에는 크리스퍼 가위를 이용한 쥐 실험에서 근위축증을 일으키는 유전자 결함을 교정하는 방법과 낫 모양 적혈구증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교정하는 내용이 담긴 2편의 논문이 동시에 실리기도 했다. 유전자 가위 기술로 치료할 수 있는 질환의 범위는 유전병을 포함해 암이나 감염성 질환, 퇴행성 질환 등 다양하다. 혈우병 같은 유전병, 노인성 황반증 같은 퇴행성 질환은 질병과 관련한 특정 유전자를 유전자 가위로 제거해 원천 치료할 수 있다. 유전자 교정은 다른 개체의 유전자를 주입하지 않고 같은 개체의 정상 유전자를 이용해 교정하기 때문에 GMO와 달리 자연발생적 변이에 가깝다. GMO 논란을 피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동식물 대상 연구도 활발하다. 멸종위기에 처한 캐번디시종을 대체할 바나나 종자를 개발하는 사업이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에 힘입어 급속한 발전을 이뤘다. 지난해 미국에서는 탈렌을 이용해 뿔 없는 소를 만드는 실험에 성공했다. 미국 UC 어바인대 연구진은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말라리아를 옮기지 않는 모기를 만들었다. 한국 기초과학연구원 유전체교정연구단 김진수 단장 연구팀은 2015년 중국 연구진과 함께 유전자 가위로 근육 성장을 억제하는 유전자를 제거해 일반 돼지보다 근육량이 많은 ‘슈퍼근육 돼지’를 만들었다. 올해 2월 조지 처치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유전자 교정 기술을 이용해 10년 내에 멸종된 매머드를 재탄생시킬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이 전방위로 활용범위를 넓혀가면서 이 기술을 처음 개발한 UC 버클리와 뒤늦게 기술을 개발하고서도 특허를 먼저 취득한 MIT의 특허분쟁도 격화하고 있다. 유전자 교정의 민주주의를 열었지만 특허분쟁으로 닫힌 기술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다행히 각 진영에 속한 기업이나 대학이 아닌 한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연구 목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가능하다. 국내 유전자 교정 연구는 세계적 수준에 올라 있다. 특히 김진수 단장 연구진은 1~3세대 유전자 가위를 자체 개발했고,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로 인간세포 유전자를 처음으로 교정하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올해 8월에는 미국 연구진과 함께 유전성 난치병인 ‘비후성심근증’을 일으키는 돌연변이를 인간 배아 단계에서 교정하는 실험에 성공했다. 국내에서는 인간 배아를 이용한 연구가 금지돼 있어 국내 연구진은 유전자 가위를 제공하고 교정의 정확도를 분석하는 작업을 맡고, 미국 연구진이 이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수정란의 돌연변이 유전자를 잘라냈다. “기초연구 위한 생명윤리 규제 완화해야” 우리나라 생명윤리법 제47조 제1항에 따르면 유전자 치료 연구는 “유전 질환·암·에이즈, 그 밖에 생명을 위협하거나 심각한 장애를 불러일으키는 질병이면서 현재 이용 가능한 치료법이 없거나 유전자 치료의 효과가 다른 치료법보다 현저히 우수할 것으로 예측되는 경우”에만 허용된다. 이런 제약 때문에 세계적 수준의 유전자 교정 기술을 확보하고 있음에도 유전질환 치료 연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기초과학연구원의 한 연구원은 “크리스퍼 가위는 비용이 적게 들어 여러 사례에 적용되고 있다”며 “성공사례가 쌓이면서 축적된 지식이 임상에 적용할 때 큰 장점이 된다”고 말했다. 크리스피 유전자 가위 개발로 유전자 교정 연구 사례가 급속도로 쌓이는 상황에서 유전자 치료의 대상 질환을 제한할 경우 지식의 축적에서 뒤질 수 있다는 뜻이다. 정부는 10월부터 생명윤리와 관련한 사회 여론을 공론화해 제도 개선을 추진하기로 했다. 국내 과학계의 중론은 유전자 치료를 위한 기초연구를 제한 없이 허용하자는 방향으로 모이고 있다. 학술단체인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은 9월 29일 발표한 ‘한림원의 목소리’에서 “선진국을 포함해 다른 나라에서는 배아세포나 생식세포를 대상으로 유전자 치료를 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을 뿐, (유전자 치료 연구의) 대상 질환을 제한하는 법은 없다”며 “우리나라는 아주 제한적인 연구만을 허용해 사실상 유전자 치료 연구를 불가능하게 하고 있고, 반대로 세계적인 기조와는 달리 유전자 강화 목적에 대해서는 금지하는 조항을 갖추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다만 생명윤리 규제를 완화하더라도 인간 배아에 대한 임상실험까지 허용하는 것은 기술의 안전성 측면에서나 사회 여론상 아직 이르다는 것이 과학계나 정부의 입장이다. 이미 여러 차례 유전자 교정 실험에 성공한 중국은 인간 배아에 대한 유전체 교정 연구를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도 인간 배아를 교정해 착상까지 허용하는 것은 아니다. 유전자 가위를 이용한 유전자 교정의 창시자로 불리는 캐롤 교수는 “유전자 교정 기술이 인간에게 활용될 수 있는 정도의 수준에 도달하면 중대 질환에만 적용하도록 해야 한다”며 “아이의 눈 색깔이나 머리 색깔, 키와 같은 형질을 바꾸는 목적으로는 절대 사용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유전자 교정은 인간의 경우에 있어 치료의 목적에 국한되어야지 ‘강화’를 목적으로 해선 안 된다는 말이다.
- [고장원의 미래의 속도]유전자조작으로 머리가 좋아진다 한들…(2016. 08. 02 13:49)
- 2016. 08. 02 13:49 문화/과학
- 과연 우리는 첨단과학의 힘을 빌려서까지 지금보다 더 머리가 좋아질 필요가 있을까? 보다 중요한 문제는 설사 그러한 욕망이 충족된다 한들 우리가 정말 행복해질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수능시험을 앞두고 영양주사를 맞는다는 수험생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있지만, 최근 언론 보도를 보니 이제 일부 초등학생들마저 이 대열에 동참하는 모양이다. 경시대회를 앞두고 부모의 성화로 소위 뇌혈류 순환을 도와주는 수액주사를 맞는단다. 물론 의학적 근거는 전혀 없다. 어이없다고 웃어넘기기에 앞서 이러한 세태는 인위적인 지능 향상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가 얼마나 보편적인지를 새삼 일깨워준다. 이러한 기대감은 할리우드 영화에서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1999년)에서 유전자 조작으로 머리가 인간 뺨치게 영악해진 거대상어는 괴수 같은 파워에다 뛰어난 지능을 동원하여 방심한 연구원들의 사냥에 나선다. SF에서 과학과 의료기술의 발달로 동물이나 인간의 지능을 껑충 끌어올리는 이야기는 19세기 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는 유전공학이라는 개념조차 없었기에 H. G. 웰즈의 소설 (1896년)에서는 외과수술과 심리요법(자신이 ‘동물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강박적 집착을 유도하는 일종의 세뇌)을 동원해 온갖 야생동물들의 지능을 인간에 버금가게 끌어올린다. 이런 식의 개조는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시체 조각들을 이어 붙여 전기충격으로 되살리는 방식과 오십보백보라서 과학적 개연성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모든 사람의 아이큐가 500으로 치솟는다면, 그 세상은 행복할까. 폴 앤더슨의 소설 의 표지. 특수약물로 인간 지능 높이는 소설 반면 최근 가속페달을 밟아온 유전공학이라면 동물의 DNA에 인간의 것을 뒤섞어 일종의 중간자적 존재를 탄생시키는 일이 그리 불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단, 윤리적 논란은 별개 문제다.) 인간의 경우에도 줄기세포 연구의 진척으로 기억 감퇴와 치매를 치료할 수 있는 길이 머지않은 듯하다. 뇌에 관한 지식이 쌓일수록 컴퓨터 CPU 속도를 개선하듯 뇌신경 네트워크의 정보전달 효율성을 높여 동물이건 인간이건 간에 지능을 한층 더 향상시키려는 시도가 꾸준히 이어질 것이다. 최근의 한 연구는 지능 향상 방법에 관한 구체적인 실마리를 던져준다. 2015년 8월 영국 리즈대학의 스티브 클랩코트(Steve Clapcote) 박사와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대학의 알렉산더 맥거(Alexander McGirr) 박사가 주축이 된 공동연구팀은 ‘신경정신약리학·Neuropsychopharmacology’ 저널에 인위적인 지능 향상에 관한 매우 흥미로운 실험 결과를 실었다. 이들에 따르면, 실험쥐에게 뇌에서 분비되는 PDE4B(phosphodiesterase-4B) 효소의 활동을 약물로 억제했더니(다시 말해 유전자 변이를 일으켰더니) 보통 쥐보다 학습 속도가 더 빨라지고 기억력도 더 좋아졌다. 이 효소가 억제된 쥐는 그렇지 않은 쥐보다 수조에 빠진 뒤 발판을 찾는 데 훨씬 앞선 기량을 보여준 것이다. 지능이 올라간 쥐는 고양이와 가까이 있어도 덜 두려워했고, 평소보다 밝고 열린 공간에서 시간을 더 많이 보냈다. 이 노하우를 장차 인체에 적용하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정신분열증, 그리고 알츠하이머 같은 뇌질환을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미 실험 결과를 토대로 PDE4B 효소억제제가 개발 중이며, 동물실험을 거쳐 임상실험 여부가 결정될 예정이다. 이보다 10여년 앞서 테드 창(Ted Chiang)의 단편소설 (1991년)는 특수약물로 인간 지능을 끌어올리는 이야기를 다뤘다. 이 소설은 후천적으로 체내에 약물을 투여하는 방식만으로는 영속적인 효과를 내지 못한다고 한계를 그었는데, 현재 개발 중인 PDE4B 효소억제제가 만약 관련 유전자를 영구히 바꿔놓을 수 있다면 1회 투여만으로도 큰 효과를 볼 수 있게 된다. 일단 이 약물은 지적 사고에 장애가 있는 환자의 치료용으로 개발되겠지만 향후 멀쩡한 정상인의 IQ 자체를 끌어올리는 데까지 응용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는 법. 인간의 지능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지능을 높인다고 무조건 좋기만 할까? 일찍이 SF에서는 이러한 물음에 대한 사고실험을 많이 했다. 역사상 인위적인 지능 향상을 다룬 이야기의 효시는 영국 작가 프랭크 챌리스 콘스터블(Frank Challice Constable)의 (1895년)다. 인간과 지적인 원숭이가 교대로 화자(話者)를 맡는 독특한 형식의 이 장편소설에서 인간 못지않은 지성을 갖게 된 원숭이는 끝내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자살한다. 지능이 높아진다 해서 행복지수가 오르기는커녕 도리어 더 참담해질 수 있다는 교훈을 남긴 최초의 작품이다. 이듬해 발표된 웰즈의 에서도 야수의 타고난 본능과 후천적으로 주입된 인간성 사이에서 늘 오도 가도 못하던 반인반수의 공동체가 결국 임계점에 다다르자 그간 억압되었던 충동을 한꺼번에 분출하며 무너져내린다. 올라프 스태플든(Olaf Stapledon)의 (1944년)는 외과적 뇌수술과 특수호르몬 주입으로 웬만한 인간보다 더 총명해진 개 ‘시리우스’의 불행을 그린다. 시리우스가 애초 의도와 달리 단지 우수한 양치기 개에 머물지 않고 인간의 지성을 넘어서는 바람에 역설적이게도 인간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입지가 좁아진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지능 향상을 위한 동물실험이 과연 온당한가?’라는 소재를 통해 무소불위의 과학이 세상에 미칠 여파를 우려하는 내용 일색이다. (왼쪽)H. G. 웰즈의 의 삽화, (오른쪽)유전자 조작으로 똑똑해진 상어가 등장하는 영화 의 포스터. IQ 70과 IQ 185의 눈에 비친 세상 동물 지능의 업그레이드보다 훨씬 더 눈길이 가는 것은 인간 지능의 향상이다. SF는 이 소재를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다룬다. 하나는 지능이 평균 이하인 사람을 정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정상인을 천재로 업그레이드 하는 것이다. 다니엘 키즈(Daniel Keyes)의 (단편 1959년/장편 1966년)은 전자의 고전적인 예로 유명한데, 2006년 우리나라에서도 이 소설을 원안으로 한 TV드라마 가 제작, 방영되었다. 31살의 찰스는 IQ 70의 정신지체자다. 그렇지만 외과수술과 약물요법에 힘입어 IQ 185의 초천재로 거듭난다. 이 소설의 백미는 지능이 다른 두 자아의 눈에 비친 인간군상의 이중적인 모습이다. 정신지체자 찰스는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그는 자신이 좀 더 영리해져 실수를 하지 않게 되면 사람들이 자신을 전보다 더 좋아하리라 기대한다. 반면 상대성이론까지 한눈에 꿰게 된 초천재 찰스는 이제까지 주위 사람 모두가 멍청한 자신을 골려먹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음을 깨닫는다. 그가 정상인을 압도하는 지성을 드러내자 격려는커녕 오히려 배 아파하는 주위 사람들의 반응에 그는 깊은 고뇌에 빠진다. IQ 70의 눈에 비친 세상은 행복하게만 보였다. 반면 IQ 185의 눈에 들어온 세상은 비열한 속물근성이 판치는 곳이다. 본질적으로 찰스 역시 앞에서 예로든 동물들의 처지와 다를 바 없다. 높은 지능을 얻어봤자 돌아오는 것은 전에 없던 정신적 고통과 회한뿐. 정상인이 천재가 된다 해도 안도하기에는 이르다. 폴 앤더슨(Poul Anderson)의 (1954년)는 단 한 사람이 아니라 인류 대다수의 IQ가 일제히 500까지 치솟는 이야기다. 원인은 2억5000만년 걸려 은하계를 일주해온 태양계가 갑자기 낯선 역장(力場)에 들어선 까닭이다. 알고 보니 원래 은하 대부분의 지역에서 인간 지능은 IQ 500을 유지해야 정상이건만, 간간이 두뇌 신진대사 속도를 유독 떨어드리는 지대가 있는데 때마침 그곳에서 벗어났던 것이다. 소설은 이러한 격변이 과연 사람들을 행복하게 할지 묻는다. 더 똑똑해질수록 사람들은 더 지혜로워질까? 바람 잘 날 없는 국지전과 세계대전, 이념갈등과 계급갈등, 인종청소, 종파분쟁, 남녀불평등, 그리고 이해집단 간의 크고 작은 갈등 같은 것들이 단지 사람들의 지능이 올라간다 해서 누워서 떡먹기처럼 해결될까? 작가는 회의적이다. 지능의 향상이 사람의 약점이나 무지, 편견, 맹신, 그리고 야심 자체를 없애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수술과 특수호르몬으로 인간보다 영민해진 개 이야기를 담은 SF소설 의 표지.심지어 지능의 상향 폭주는 허드렛일을 하던 이들까지 삶의 의미를 골똘히 되돌아보게 만드는 통에 사회 기능이 마비될 지경이다. 불현듯 자신의 인생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지, 자신의 일이 얼마나 초라한지, 자신의 사고가 얼마나 협소하고 무의미한지 깨달은 수많은 웨이터와 공장 노동자들이 사표를 던진다. 그리고는 세상을 주유하며 철학을 공부한다. 웃을 일이 아니다. 그 바람에 생산시스템이 붕괴되어 인류는 당장 의식주의 수급을 걱정할 처지가 된다. 세상에는 IQ 높은 사람만 필요한 것이 아니지 않은가. 지능이 높아졌다 해서 누구나 듣도 보도 못한 발명으로 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것도 아니다. 어떤 이는 예전 같으면 평범하게 살았을 텐데 갑자기 너무 많은 생각이 밀려들어 감당할 수 없게 된 나머지 심한 신경쇠약에 걸린다. 설상가상으로 폭주하는 뇌 활동에 기진맥진한 사람들은 사이비 광신도가 되어 정신적 위안을 얻는다. 머리가 좋아질수록 현명해지기는커녕 오히려 미쳐가는 현실, 이것이 바로 불완전한 인간의 한계가 아니겠는가. 너무 많은 생각에 신경쇠약 걸릴 수도 앞서 언급한 테드 창의 는 ‘지능의 상향 폭주’를 사회 일반이 아니라 한 개인의 사례로 한정지었으나 시선이 삐딱하기는 매한가지다. 뇌사상태에 빠진 주인공이 특수 호르몬 주입으로 살아난다. 게다가 덩달아 IQ까지 상승한다. 보통사람이라면 머리 싸맬 문제들을 설렁설렁 해결할 수 있게 되자 그 매력을 잊지 못한 주인공은 약효가 떨어지기 무섭게 부작용을 무릅쓰고 마약환자처럼 지능 향상 실험에 골몰한다. 머리가 좋아지면 좋아질수록 욕망 또한 그에 정비례한다. 세 차례 약물주사로 이미 정상인의 사고를 한참 넘어섰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시약을 도둑질까지 해서 체내에 주입한다. 예술과 과학, 그리고 사회의 본질을 한눈에 꿰뚫어 볼 수 있게 개안(開眼)이 되고, 주식시장과 세계 경제를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게 주무를 수 있는 정점에 올라서서도 주인공은 정작 자신의 걷잡을 수 없는 욕망을 조절하지 못해 망가져간다. 이 작품은 마치 실제 경험담마냥 실제로 머리가 한없이 좋아진다면 구체적으로 어떠한 사고 메커니즘을 갖게 될지 단계별로 조리 있게 묘사하여 더욱 설득력을 높인다. 국내 작품 가운데에는 김현중의 단편 (2010년)(이 단편은 황금가지에서 펴낸 한국 SF 단편선 에 수록되었다)가 지능 향상을 학벌 위주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병리현상과 접목시켜 눈길을 끈다. 부자는 물론이고 서민까지 빚을 내서라도 자녀의 지능 향상을 위해 뇌수술을 하지 않으면 주위의 따가운 눈총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근미래 사회의 풍경은 오늘날 월 수강료가 아무리 천정부지로 올라도 강남 학원가에 줄지어 몰려드는 학생들과 열혈(?) 학부모들에 대한 자화상이다. 이 때문에 가난한 학생들 가운데에는 기 죽기 싫은 나머지 이마에 수술흉터 자국만 똑같이 내서 뇌수술 받은 척하는 부작용까지 생긴다. 과연 우리는 첨단과학의 힘을 빌려서까지 지금보다 더 머리가 좋아질 필요가 있을까? 보다 중요한 문제는 설사 그러한 욕망이 충족된다 한들 우리가 정말 행복해질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대부분의 SF작가들은 그렇지 않으리라는 전망에 압도적으로 기울어 있다. 예컨대 PDE4B 효소를 비롯해 인간의 지능을 한층 개선할 수 있는 각종 약물과 유전자 조작기법이 단지 그것이 없으면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데 곤란한 환자들을 돕는 데 그치지 않고 더 많은 지혜, 그리고 그로 인한 더 많은 권력을 얻는 데 무분별하게 남용된다면 세상은 어찌 될까? 더구나 김현중의 소설에서처럼 부의 격차가 지능의 격차로 이어지는 이중의 불공평한 사회가 도래한다면 과연 인류는 스스로를 감당할 수 있을까? 우리가 유전자 복제의 오용을 우려하듯이 지능 향상 연구에 대해서도 이성의 눈으로 신중하게 바라봐야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 고장원의 미래의 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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