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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칼럼](42) 의대 교수란 직함이 부끄럽고 웃프다
[메디칼럼](42) 의대 교수란 직함이 부끄럽고 웃프다(2024. 10. 11 16:00)
2024. 10. 11 16:00 건강
지난 10월 3일 의과대학 교수들이 용산 대통령집무실 앞에서 학교육평가원 무력화 저지를 위한 전국 의대 교수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 문재원 기자 나는 국립대학병원 의과대학의 교수다. 그런데 이 직함이 부끄럽다. 최근의 의·정 갈등하에서는 더욱더 그러하다. 의대 교수의 역할은 교육, 연구, 진료로 구분된다. 나는 진료영역에 가장 많은 공을 들였고,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왔다. 탁월한 진료, 새로운 치료 방법, 더 자세히 말하면 나는 외과의사니까 새로운 수술법을 개발해 뛰어난 성적을 내는 것이 지상목표였다. 그래야 그 결과를 바탕으로 새로운 연구를 할 수 있고, 의학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해왔다. 교육은 가장 뒷전이었다. 뛰어난 과학적 역량을 갖춘 교수님들과 만나면 만날수록 그 생각은 깊어졌다. 나는 그들처럼 교과서를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지, 기존의 교과서를 학생들에게 읽어주는 역할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실기평가 위원으로 활동하며 많은 것 배워 의과대학생 교육에 관한 생각이 바뀐 것은 학생들을 만나 가르칠 기회가 늘어나면서부터였다. 지금처럼 의과대학에 들어오기 힘들 때라면, 나는 아마 의과대학에 입학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뛰어난 학생들을 만나 그들과 대화하고, 가르치고, 평가하면서 나도 교육이 무엇인지 배우고 있던 참이었다. 내가 의대생일 때는 존재하지 않던 의학교육학교실에서는 의과대학생들을 한 명의 훌륭한 의사로 만들기 위해 늘 새로운 커리큘럼과 교수법을 연구했다. 나도 실기평가위원회의 위원으로 실기 문제를 내보고 국가고시의 실기평가에 직접 참여해보면서 새로운 것을 많이 배웠다. 대학병원에 근무하는 의사들은 진단이 끝난 환자를 치료하는 경우가 많다. 외래에 오는 환자들은 자신의 병명을 알고 있고, 치료 방법도 결정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의대생들은 의사면허를 따고 일반의가 돼야 하므로 그야말로 의학의 모든 부분에 대해 얕지만 넓은 이해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이 학생들에게 맞는 실기평가 문제를 내는 데는 전문적인 대학병원 교수들이 오히려 부적합하다. 배가 아픈 환자가 왔다고 생각하고 문제를 만들 때 외과의사들의 머릿속에는 복강 내 무슨 암이나, 복막염처럼 수술이 필요한 외과 질환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나 배가 아픈 원인은 심장이나 폐의 문제일 수도, 신경질환일 수도, 중금속 중독일 수도, 심지어는 정신과적 문제일 수도 있다. 가능한 한 모든 질병을 생각한 뒤 하나하나 배제해가야 한다. 정확한 진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환자에게 적절하고 다양한 질문을 하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꼼꼼히 신체 진찰을 하고, 환자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야 하며 정확한 의학적 지식으로 적절한 진단 방법과 치료 방법을 생각해내야 한다. 그래서 이러한 능력을 판단할 수 있는 실기 문제를 만드는 것은 매우 어렵고 전문적인 일이다. 이러한 문제를 만들기 위해서는 환자 역할을 하는 배우에게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질문에 대한 대답, 신체 진찰에 대한 반응을 교육해야 하고 객관적인 평가를 할 수 있는 체크리스트도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문제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과의 여러 교수와 같이 토의해보면서 내가 배운 것이 오히려 많았다. 의사국가고시에 실습시험이라는 것이 없던 시절에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의 노력과 자본이 들어간다. 이 실습시험은 환자를 문진하고 신체 진찰을 하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일반 의사로서의 기본적인 술기를 다루는 시험도 있다. 작년에 의사국가고시 실기시험의 채점위원으로 참여했다. 다양한 지역의 다양한 의과대학생들이 실기시험을 받으러 왔다. 나는 수혈하는 일련의 과정에 대해 평가했다. 환자에게 인사하고, 적절하게 소독하고, 혈관을 찾아 (혈관 모델이 있다) 수혈하고, 수혈 부작용을 설명하는 과정이었다. 학교에서 미리 연습을 다 잘해서 그런지 못한 학생은 거의 없었다. 실기시험이 의사국가고시에 포함된 것은 정말 잘된 일이라고 느꼈다. 예전에는 의과대학 3~4학년이 되면 응급실에서 인턴을 하는 선배들이 시키는 대로 바로 환자들에게 필요한 시술을 했다. 비록 그리 위험하지 않은 시술이지만 만들어진 모델이나 동물에게라도 실습 한번 해보지 않고 환자들에게 바로 시술을 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의료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어쨌든 그게 실제 일어나기도 했다 의대생 휴학 막는 등 법치주의 실종 의과대학은 한 학기에 수십 과목을 수학하고, 한 과목이라도 낙제하면 1년을 통째로 쉬어야 한다. 예를 들어 본과 1학년 2학기에 생화학에서 낙제를 받으면, 다음 해 1학기까지 쉬고 2학기에 아래 학년 학생들과 다시 수업을 들은 뒤 이를 통과해야 한다. 의대의 이러한 전통은 환자의 목숨을 다루는 학문 특성 때문이기도 하고, 모든 과목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어서 한 과목도 허투루 배울 수 없다는 정신 때문이기도 하다. 친한 내 친구들은 공부를 열심히 안 해서인지 유급을 많이 당했다. 예과 1학년 때 친하게 지내던 6명의 그룹이 있었는데, 본과 4학년이 돼보니 나 혼자 살아남았다. 유급당한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눈물이 날 정도로 처절하기도 하고, 때로는 웃기기도 했다. 어느 교수님이 해준 이야기가 생각난다. F 학점을 받은 학생이 칼을 들고 연구실에 찾아와서는 교수님이 F 학점을 취소시켜주지 않는다면 이 자리에서 자결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교수님은 “자네 같은 학생이 의사가 돼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잃게 하는 것 보다 지금 내 앞에서 죽는 게 낫네”라고 대답했다는 이야기다. 물론 실제 있었던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듣는 우리가 모두 웃으면서 있을 법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것은 어느 정도 진실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교수라면 1년을 쉰 학생을 다음 학기로 진급시키는 것이 아니라 제 몫을 하는 의사가 될 때까지 아무리 많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교육하는 것이 할 일이고, 그것이 의학교육의 본질일 것이다. 그런데 의대생들의 휴학을 막고, 6년 과정을 5년으로 바꾸는 것을 검토하는 것이 교육부와 정부의 역할이며 그들의 본질일까. 애초에 학생이 휴학한다는 것을 막는 것이 법적으로 가능한가. 사직은 헌법상의 권리가 아닌가. 이 나라는 법치주의가 지켜지고 있는가. 나는 교수라는 직함이 부끄럽고, 웃기고, 서글프다.
메디칼럼
추경호 “2025년 의대정원 재조정 어렵다···2026년은 논의 가능”
추경호 “2025년 의대정원 재조정 어렵다···2026년은 논의 가능”(2024. 09. 10 10:27)
2024. 09. 10 10:27 정치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9월1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는 9월 10일 “정부는 정부대로, 당은 당대로 의료계와 여러 형태의 접촉과 소통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추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원내대책회의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2026년 의대 증원 문제는 원점에서 재논의가 가능하다”며 “들어오기 전에 자꾸 조건을 걸면 대화 자체가 안 되지 않겠나. 모든 가능성을 열어둘 테니 들어와서 건설적이고 생산적인 답을 찾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추 원내대표는 협의체 참여 의사를 밝힌 의사 단체가 있는지 묻자 “아직 섣불리 이야기하기 이른 단계”라며 “단체별로 여러 사정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구체적인 이야기를 말씀드릴 단계는 아니다”라고 답했다. 의료계가 ‘2025년 증원 백지화’를 요구하는 것에는 “어제(9월 9일)부터 수시 접수가 시작됐다. (이를 바꾸면) 수험생과 학부모들 사이에 대혼란이 일어난다”며 “그래서 2025년 정원 재조정 문제는 현재 사실상 어렵다”고 밝혔다. 보건복지부 장·차관 경질 요구에 관해서는 “지금은 여야의정 협의체 등을 통해 현실적 의료 개혁 방안을 논의할 단계이지, 사과나 책임, 그에 따른 인사 조치를 거론하기에는 적절치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추 원내대표는 원내대책회의에서는 집단 사직에 참여하지 않은 의료진 신상을 공개한 ‘의사 블랙리스트’를 두고 “정부가 이러한 행태에 대해 엄중히 대응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추 원내대표는 “최근 응급 의료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는 상황에서 의료 현장을 지키는 의료진을 사실상 협박하는 범죄 행태를 용납해선 안 된다”며 “환자 곁을 지키는 의료진을 블랙리스트에 올려 조리돌림하고 악의적으로 진료를 방해하는 불법적 행태는 즉각 중단돼야 한다”고 말했다.
2026년도 의대정원 재논의하나···대통령실도 가능성 내비쳐
2026년도 의대정원 재논의하나···대통령실도 가능성 내비쳐(2024. 09. 06 14:24)
2024. 09. 06 14:24 사회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9월 6일 ‘의료계의 합리적 안 제시’를 전제로 “2026년 정원을 논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조 장관은 이날 KBS라디오 ‘전격시사’에 출연해 “2026년 정원은 의료계에서 합리적인 안을 제시하면 논의가 가능하다고 저희가 일관되게 말씀드려왔다”면서 “의료계에서 정부 제안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올해 말까지 의료인력 수급 추계 조정 시스템을 구축할 예정이고, 시스템을 활용하고 의료계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될 수 있는 논의 구조도 만들겠다”며 “정부는 열린 자세로 대화에 임할 테니 의료계도 논의에 참여해 달라”고 말했다. 대통령실도 의대증원 조정 가능성을 열어뒀다. 장상윤 사회수석비서관은 이날 YTN 뉴스에 출연해 “여야의정 협의체가 구성되고, 여기에 의료계 대표가 나와서 합리적인 안을 제시하면 충분히 논의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장 수석은 “저희가 제안한 2천명이란 숫자에 구애되지 않고 합리적 안을 가져오면 논의한다는 방침”이라며 “특히 집단행동으로 의료계에서 이탈한 전공의, 의대생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분들이 협의체에 들어왔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출범하기로 한 의료인력 수급 추계·조정 논의기구와 여야의정 협의체를 서로 연계해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의료 공백 상황에 대한 국민 불안을 해소하고 지역·필수의료 체계 개선을 위한 여·야·의·정 협의체를 구성·운영하자”고 야당과 의료계에 제안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9월 6일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 로비에서 현안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 대표는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에서 종교계 예방에 앞서 현안 브리핑을 통해 “의대 증원 문제로 장기간 의료 공백이 발생하면서 국민 불편이 가중되고 응급 의료 불안이 크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어 “여·야·의·정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의료 현장의 진료 서비스를 정상화하면서 의료 개혁이 국민에게 도움이 되도록 효율적으로 진행되도록 협의하고, 의대 증원의 합리적 대안을 모색하는 협의체를 구성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2026년 증원 규모를 원점에서 논의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합리적 대안을 찾자는 것이니, 여러 의견이 논의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 대표는 ‘협의체 구성 제안이 대통령실과 사전 조율됐느냐’는 질문에 “대통령실에서도 공감하는 사안으로 안다”고 말했다.
[주간 舌전] 의대생 늘린다고 소아과 하겠나
[주간 舌전] 의대생 늘린다고 소아과 하겠나(2024. 06. 24 06:00)
2024. 06. 24 06:00 정치
이국종 대전국군병원장/연합뉴스 “의대생 늘린다고 소아과 가겠는가.” 이국종 대전국군병원장이 의과대학 정원 확대 문제를 두고 지난 6월 19일 이렇게 말했다. 이날 이 병원장은 “현재 의료계는 벌집이 터졌고, 전문의는 더 이상 배출되지 않아 없어질 것”이라며 “의사 교육은 강의식이 아닌 선후배 간 일 대 일 도제식으로 이뤄져 함부로 많은 수를 양성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30년 전과 비교해 소아과(소아청소년과) 전문의는 3배 늘었고, 신생아는 4분의 1 수준으로 줄었지만 정작 부모들은 병원이 없어 ‘오픈런’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의대생을 200만명 늘린다고 해서 소아과를 하겠느냐”고 덧붙였다. 해당 문제를 두고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은 봉합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의료계는 정부의 정원 확대 방침에 집단 휴진으로 맞서고 있다. 이를 두고 지난 6월 18일 윤석열 대통령은 “정부는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킬 책무가 있는 만큼 환자를 저버린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엄정 대처할 수밖에 없다”며 “정부는 지역·필수 의료를 바로 세우고, 의료시스템 자체를 근본적으로 혁신하는 의료개혁에 흔들림 없이 매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2025학년도 의대 정원 증원 절차가 최종 마무리됐는데도 일부 의대 교수들의 집단휴진이 있었고, 오늘은 의사협회의 불법적인 진료 거부가 진행되고 있어 매우 안타깝고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주간 舌전
[렌즈로 본 세상] ‘의대 찬스?’···막 오른 입시 경쟁
[렌즈로 본 세상] ‘의대 찬스?’···막 오른 입시 경쟁(2024. 06. 18 06:00)
2024. 06. 18 06:00 사회
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대비 6월 모의평가가 끝나고, 사교육업체들의 입시설명회가 본격 시작됐다. 지난 6월 6일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 새천년홀에서 한 대형 입시학원이 주최한 입시설명회가 열려 학부모와 수험생으로 북적였다. 모의평가가 끝난 뒤 이틀 만에 열린 첫 입시설명회였다. “의대 모집 정원이 1500명가량 확대돼 재수생들의 대거 유입이 예상되는 첫해다. ‘킬러문항’ 배제 후 치러지는 두 번째 해로 수험생이 예측하기 어려운 변수가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입시 전문 강사가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학부모와 수험생의 눈은 번쩍였다. 지난해와 달라진 내용을 설명하는 입시자료가 대형 화면에 나타나자 참석자들은 일제히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연신 사진을 찍었다. 벌을 서듯 양팔을 높이 치켜든 참석자들의 몸짓에서 합격을 열망하는 간절함이 느껴졌다. 올해는 의대 정원 증원과 무전공 선발 확대 등으로 입시 변수가 많다. 치열한 입시 경쟁의 막이 올랐다.
렌즈로 본 세상
‘의대 증원’ 정부의 뒷걸음질, 출구 찾을까
의대 증원’ 정부의 뒷걸음질, 출구 찾을까(2024. 04. 22 06:00)
2024. 04. 22 06:00 사회
정부 한 발 물러났지만 의료계 ‘싸늘’…언제 불의의 사고 터질지 불안 지난 4월 11일 서울의 한 대형 병원에서 한 의료계 종사자가 지친 모습으로 쉬고 있다. 한수빈 기자 의·정 갈등이 중대 기로를 지나고 있다. 정부는 의대 정원 증원 규모를 일부 조정하게 해달라는 국립대 총장들의 건의를 수용하기로 했다. 총선 이후 사의를 표명한 한덕수 국무총리는 4월 19일 “(의대 증원 규모에 대한) 의료계의 단일화된 대안 제시가 어려운 상황에서 의료공백 피해를 그대로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이에 따라 증원 규모는 당초 정부가 제시한 연 2000명에서 많게는 절반 수준까지 줄어들 전망이다. 전공의들이 집단행동에 나선 지 두 달만에 정부가 한 발 물러선 것이다. 그러나 갈등 상황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정부의 일보 후퇴에도 의료계는 여전히 싸늘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의사 단체는 줄곧 의대 증원 문제를 원점에서 재검토할 것을 요구해 왔다. 연 2000명이라는 증원 규모가 합리적 근거를 가지고 산출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계획을 백지화하고 처음부터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얘기다. 총선 이후, 사회적 협의를 해보자는 정부와 야당의 제안에도 대한의사협회(의협) 등은 정부와의 “일대일 대화”를 요구하며 일축했다. 의료 현장이 언제쯤 정상화될 지도 현재로선 가늠할 수 없다. 최대 피해자는 의료 공백에 노출된 환자, 시민들이다. 현장에서는 각 주체가 초기보다 혼란에 적응하는 기미도 보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상황은 악화할 수밖에 없다. 전공의가 떠난 후 비상근무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의대 교수들도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병원은 병원대로 외래 진료와 수술이 줄어들면서 재정이 악화하고 있다. 간호사, 일반 직원들에게 무급휴가·희망퇴직 등 고통이 전가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양측은 합의점을 찾을 수 있을까. 의정 갈등 쟁점과 현 상황을 짚어봤다. 양쪽 모두 소환한 아산병원 사망 사건 정부와 의사 단체의 간극은 한자리에 앉을 수도 없을 만큼 커 보인다. 그렇다고 공통점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의외로 문제의식의 출발점은 비슷한 면이 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 4월 9일 페이스북을 통해 2022년 서울아산병원 간호사가 근무 중 사망한 사건을 언급했다. 필수의료·지역의료 붕괴 현상을 강조하면서 의사 수 증원이 필요하다고 강변하는 과정이었다. 그보다 20일 앞선 3월 18일에는 방재승 당시 전국의대교수비상대책위원장이 정부의 정책 재검토를 요청하면서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사망 사건을 이야기했다. 동일 사례를 언급하면서 전혀 상반된 논리를 전개한 것이다. 2022년 7월 서울아산병원에서 근무 중이던 간호사가 극심한 두통을 호소하다 뇌출혈로 쓰러졌다. 서울아산병원에는 수술할 의사가 없어 서울대병원으로 환자를 옮겼지만 끝내 사망했다. 병상 2700여개로 한국에서 가장 큰 병원 중 하나인 서울아산병원에서 수술이 가능한 의사는 단 2명뿐이었다. 1명은 해외 학회 참석 중이었고, 또 다른 사람은 휴가 등으로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이른바 ‘빅5 병원(서울아산·서울대·삼성서울·세브란스·서울성모병원)’조차 수술할 의사가 부족하다는 사실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정부도 이 지점에 방점을 찍었다. 필수의료 인력이 부족하니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같은 사건을 놓고 의사 단체는 다르게 진단한다. 서울아산병원 의료진은 당시 쓰러진 간호사의 뇌혈관에 관을 주입해 출혈을 멈추는, 수술이 아닌 시술 치료를 시도했다. 그럼에도 환자의 상태가 차도를 보이지 않아 수술이 필요했지만, 수술을 할 수 있는 의사 2명은 서울아산병원에 없었다. 왜 최상의 의료진이 현장에 있었음에도 수술은 할 수 없었을까. 수술 자체가 고난도였기에 배운 사람도, 배우려는 사람도 적었기 때문이다. 시술이 실패로 돌아간 상황에서 가능한 처치는 두개골을 열어 터진 혈관을 클립으로 묶는 고난도 수술이었다. 한때는 수년을 들여 이 수술법을 배우려는 의사도 많았지만, 더욱 간단한 시술법이 등장하면서 이를 익히는 의사가 많아졌다. 수술법을 익히는 시간과 노력(투자) 대비 보상이 적은 것이 원인이다. 뇌동맥류 결찰술이라 불리는 이 수술의 의료수가만 봐도 그렇다. 2022년 기준 이 수술의 건강보험 수가는 한국이 250만원, 일본이 1100만원이었다. 호주 540만원, 미국 480만원과 비교해도 적다. 병원 입장에서는 돈은 안 되고 시간은 오래 걸리는 수술보다 간단한 시술을 선호할 가능성이 크다. 두 방식 중 어느 쪽으로도 치료할 수 있다면 환자의 선택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런 경향성이 의료진 인력 배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정확히 따져보기 어렵다. 다만 이런 질병을 다루는 신경외과 전문의들이 의료기관별로 얼마나 진출했는지는 살필 수 있다. 2013년부터 2020년까지 신경외과 전문의는 2388명에서 2659명으로 11%(271명) 증가했다. 의료기관 유형별 증감률을 보면 의원에서 일하는 전문의가 29.7%(138명)로 가장 많이 증가했고, 요양병원 전문의가 29.6%(42명)로 두 번째로 높은 증가세를 보였다. 종합병원도 23.5%(145명)로 높은 증가율을 보였지만, 상급종합병원(3.6%·15명)과 병원(-3.9%·27명 감소)은 증가율이 미미하거나 오히려 감소하는 양상을 보였다. 2·3차 의료기관에 남는 의사들보다 개원하거나 요양병원으로 향하는 인력이 많았다는 얘기다. 지난 4월 1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한 의사가 윤석열 대통령의 의료개혁 관련 대국민담화를 시청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의사 단체는 의사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환자의 생명이 달린 분야에 필요한 의사가 부족하다고 본다. 곧 인력의 배분이 문제라는 얘기다. 한국의 의료는 민간에 맡겨져 있기에, 이를 조정하기 위해서는 시장 참여자(의료진)들이 스스로 움직일 유인이 필요하다. 필수의료 영역을 떠나는 의사들을 잡아둘 보상체계를 강화하는 것이 증원보다 중요한 선결과제라는 것이다. 수가를 높이면 건강보험 부담은 늘어날 공산이 크다. 의사들의 주장에도 설득력은 있다. 정부는 일단 의사 수를 늘리면 인력난으로 붕괴해 가는 필수의료 분야나 지역으로도 의사들이 흘러갈 것이라 본다. 일종의 낙수효과다. 그러나 보상체계를 바로잡지 않는다면 의료진의 필수의료 영역 이탈은 계속될 수 있다. 보상체계를 바로 세워도 수도권 쏠림 현상을 막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정부도 4대 개혁 패키지라는 이름으로 대책은 마련해뒀다. 보상체계 강화를 위해 2028년까지 10조원 이상을 투입하고, 지역 의대에서 지역 출신 학생을 의무적으로 선발하는 비율을 높이는 한편, 일정기간 지역 근무를 전제로 장학금·수련비용 등을 지원하는 방안을 내놨다. 의사 단체는 2000명 증원이라는 정책 목표는 뚜렷한 데 반해 보상체계 강화·지역 의료 대책은 구체성이 떨어진다고 본다. 나백주 을지대 의대 교수는 “교육 여건을 갖춰 (연간) 의사 2000명을 더 양성한다고 해도 지역과 필수의료로 간다는 보장은 없다. 수가를 올리면 된다지만, 수가를 올려봐야 대도시로 몰리는 현상을 완화할 수 없다. 지역의 환자들도 수도권으로 몰리는데 수가만으로는 답이 없다. 건강보험만으로 한다는 건 유효하지 않고 결국 재정을 써 공공병원 등을 확충해야 한다”고 했다. 사태 장기화, 최대 피해자는 환자 의사 단체가 내세우는 논리의 정합성과는 별개로, 이들의 속내는 시장 참여자가 늘어난다는 것에 대한 반발이라는 의구심이 이어지고 있다. 역대 정부에서 의대 증원이 논의될 때마다 의사들은 ‘업무중단’이라는 강력한 협상력을 바탕으로 논의를 중단시켰다. 인력의 배분 문제 등을 다루는 추가적인 논의로 나아가지도 못했다. 필수의료 공백에 대한 이들의 우려가 과연 진정성이 있느냐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그 사이 전국 의대 정원은 3058명으로 30년 전인 김영삼 정부(당시 정원 3260명) 때보다 줄었다. 정부가 내놓은 증원 규모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지만, 의사의 절대 수가 부족하다는 공감대는 넓게 형성됐다. 앞선 3건의 선행연구는 모두 2035년에 국내 의사 수가 1만명가량 부족해진다고 내다봤다. 정부는 각 대학들이 증원 규모를 자율적으로 정하도록 하면서 한 발 물러섰다. 한덕수 총리는 4월 19일 “대학별 교육 여건을 고려해 금년에 의대 정원이 확대된 32개 대학 중 희망하는 경우 증원된 인원의 50% 이상 100% 범위 안에서 2025학년도에 한해 신입생을 자율적으로 모집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고 했다. 모집 인원은 이달 말까지 결정하기로 했다. 32개 대학 모두가 증원된 인원의 최소치인 50%씩만 선발할 경우 내년도 의대 정원은 1000명만 늘어난 4058명이 된다. 동시에 정부는 의사 단체가 대화에 나설 것을 강조했다. 한 총리는 “정부는 지금이라도 의료계가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단일안을 제시하면 열린 자세로 대화에 나설 준비가 되어 있다”며 “오늘의 결단이 문제 해결의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그러나 의료계는 이날 정부 발표에도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의사 단체의 대화 거부는 의사들의 사회적 고립을 심화시킬 여지가 있다. ‘거야’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총선 공약으로 지역의사제와 공공의대 신설을 내걸었다. 모두 문재인 정부 때 추진하다 의사들의 반대로 무위에 그친 정책으로 지역 내 의료 인력을 확충하는 내용이다.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언제 불의의 인명 사고가 터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다만 현장은 전공의 공백에 적응한 모습도 보인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4월 둘째 주 기준으로 ‘의사 집단행동 피해신고지원센터’에 접수된 피해신고는 일평균 6.3건이었다. 집단행동 초기인 2월 중순, 미리 잡힌 수술과 진료 일정이 줄줄이 취소되면서 일평균 45.4건의 피해신고가 접수된 것에 비하면 신고 건수가 줄었다. 3월 셋째 주의 13건보다 적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두 달 전에 입원, 항암치료, 수술이 연기됐던 환자들이 더 연기할 수 없는 상황이 돼 치료를 받고 있다. 코로나19 때도 환자들이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는 상황을 경험했기에 인내하면서 버티고 있다. 병원은 병원대로 인력이 줄었지만 신규 환자도 줄면서 아직은 여력이 있는 양상이다. 그러나 사각지대에서 환자의 상태가 악화하거나 생명을 위협받는 사고는 분명히 있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한계가 임박했다. 전공의 공백에 서울대 의대 교수의 41%는 주 80시간 이상 일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성균관대 의대 교수 비상대책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주 52시간을 초과해 근무한 교수가 86.4%에 달했다. 외래와 입원 환자 모두 줄어든 병원은 경영 적자를 무급휴가, 희망퇴직 등으로 다른 직원들에게 전가하고 있다. 나백주 교수는 “어쨌든 돌아가고는 있지만 지속 가능하지는 않은 것처럼 보인다. 정부와 의사 단체 모두 대화할 의지는 커 보이지 않는다. 환자들만 마음을 졸이고 있다”고 했다.
[메디칼럼](35)의대 증원 여론몰이의 의도
[메디칼럼](35)의대 증원 여론몰이의 의도(2024. 02. 02 17:35)
2024. 02. 02 17:35 건강
지난해 12월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복도에서 관계자가 의협의 주장이 담긴 벽보 앞을 지나고 있다. /연합뉴스 의대 정원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가 끝나자마자 의대 정원 확대 이슈로 여론몰이를 하는 것에 대해 정부의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다. 백년지대계인 교육과 더불어 백년 계획을 세워야 하는 지역의료, 필수의료에 대한 담론과 공청회는 뒤로 한 채 총선을 위한 하나의 이슈 놀이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물론 의대 정원 문제는 중요한 사안이고, 의료계를 포함해 대부분의 국민은 의대 정원을 늘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다면 충분한 논의 과정과 철저한 계획을 세운 후에 추진해야 한다. 정부는 의협을 파트너로 생각하지 않고 단순히 학장들에게 원하는 의대 정원을 물어본 후 바로 언론에 발표했다. 의정 갈등만 부추기는 행위다. 공공의대, 의대 정원, 필수의료, 지역의료 등에 관련된 수많은 이익단체의 입장과 국민의 처지를 생각하는 시민단체 입장, 정부의 입장이 서로 다르다. 그렇기에 이러한 첨예한 사안을 토론할 때는 여러 번의 공청회와 전문가 단체의 의견을 참고해야 한다. 언론에서는 서울대 김모 교수가 주장하는 낙수효과에 대한 인터뷰를 집중적으로 내보내고 있다. 그 교수가 얘기하는 낙수효과는 여러 면에서 허점이 많을 뿐 아니라 의사들의 인간적 본성을 간과하는 발언이다. 우선 의료서비스는 수요공급 원리가 작용하지 않기 때문에 의사 수를 늘리면 그만큼 전 국민 의료비가 상승하게 된다. 그리고 의사가 늘어난다고 필수의료를 하는 의사 증가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당연한 얘기지만 필수의료를 하지 않겠다는 의사가 지역의료를 담당하려 하겠는가. 고되고 의료사고 위험 높은 필수의료 대책 마련부터 의사 수를 적정하게 늘리자는 데는 아무도 반대하지 않는다. 필수의료와 지역의료를 살리려면 꼭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단순히 의사 수만 늘리면 그 숫자는 고스란히 미용의료 등의 영역으로 빠지게 된다. 열심히 공부한 훌륭한 의사 인력을 필수의료로 유인하는 정책이 없다면 이들은 당연히 돈을 따라서 의대 졸업과 동시에 돈을 꽤 많이 벌 수 있는 미용의료로 빠지고 만다. 그게 현실이다. 단순히 사명감 하나로 일하라는 건 너무나 열악한 의료현장의 실상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필수의료 분야는 특히 그렇다. 필수의료를 담당하는 한 선배는 나한테 전화 너머로 얘기하기를 365일 중 364일을 병원에서 잔다고 했다. 집에서 잠을 자는 건 1년에 1번뿐이란다. 중간중간에 가족이 병원에 와서 잠깐 얼굴은 봤겠지만, 삶의 질을 놓고 봤을 때 가혹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나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노동 강도다. 이런 분들이 대우받아야 마땅하지 않은가? 이렇게 힘들게 필수의료를 담당하는 분들은 의료사고에 노출될 확률도 상대적으로 높다.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모든 민형사상 책임은 의사가 고스란히 져야 한다. 물론 의사가 직접 한 의료 행위에 대해 책임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불가피한 상황도 있을 수 있다. 이 경우에도 온전히 의사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지우는 게 가혹한 현실이다. 정부는 이러한 위험들은 상호 부조를 통해 의사들끼리 알아서 해결하라고 한다. 이러한 정부 정책이 과연 능력 있고 사명감 투철한 의사들로 하여금 필수의료로 향하게끔 만드는 유인책이 될 수 있을까? 정부는 여기서 가장 중요한 문제에 대한 명확한 답을 내놓아야 한다. 필수의료로 의사들을 가게 하려면 의료수가를 조정해야 한다. 한정된 재원을 놓고 벌이는 시소 놀이는 멈춰야 한다. 지금까지의 의료수가 조정은 여기서 울면 다른 곳에서 빼앗아 여기에 조금 주고, 빼앗긴 데서 울면 또 다른 데서 빼앗아 주는 식이었다. 악순환이었던 셈이다. 그러한 고리를 이제는 끊어내야 한다. 저렴한 의료수가를 방치해서는 필수의료 분야로 의사들을 끌어들일 수 없다. MRI, CT 등에 의료비를 지원하는 선심성 정책은 과감히 버리고 소아, 중증환자, 취약계층 등을 진료하는 필수의료 분야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재원을 모아야 한다. 정치권은 표 놀음을 그만해야 한다. 정치지도자라면 미래를 위해 결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학생 때 의사는 종교인과 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고 배웠다. 지금까지 정말 그렇게 살았노라 자신할 순 없지만 그에 상응하는 사명감을 가지고 업을 행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의사들은 사명감을 가지고 업무에 매진할 준비가 된 굉장히 자각 있는 집단이라고 생각한다. 정부 또한 이러한 자성 있는 집단과 생각을 공유하고 더 나은 방안에 대해 토의하고 합의안을 도출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현실은 그러나 두 집단의 간극이 너무도 크다. 수십 년에 걸친 상호 간의 신뢰 부족 때문이다. 의협, 범죄 연루 의사 현업 복귀 막는 등 자정노력 필요 의협에서도 분명히 해야 할 일이 있다. 아프더라도 썩은 살은 도려내는 심정으로 의료계 조직의 위계와 사회적 책임감, 아주 높은 수준의 윤리 의식을 위한 교육을 시행해야 한다. 의료 집단이 종교인에 필적하는 도덕적 수준으로까지 나아가지 못한다면 모든 목소리는 공염불처럼 허공을 떠돌 수밖에 없다. 마약 의사, 성 관련 범죄 의사, 사무장 의사 등이 왜 다시 현업에 복귀하고 있는가? 내부 단속은커녕 부도덕한 몇 명 살리겠다고 엉뚱한 판단을 내리고 차일피일 책임을 미루면서 스텝이 꼬이니까 언론의 지탄, 국민의 뭇매를 맞고 이 지경에 이르고 만 것 아닐까. 향후 10년을 목표로 문제 의사는 영구적으로 퇴출하는 등 국민과 정부에 우리의 자정 의지를 꾸준히 보여주는 일이 중요하다. 그러다 보면 서로 신뢰가 쌓이고, 의협도 결국에는 존경받을 수 있는 집단으로 재탄생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인재란 인재는 전부 의대로 쏠리고 있다. 그러한 인재들이 정말 필요한 곳으로 갈 수 있게끔 유도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정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과거 중국 관광객들이 물밀 듯이 밀어닥쳤을 때 정부는 이들의 단체비자 발급 수수료를 한시적으로 면제해준 바 있다. 돈이 된다는 판단에서였다. 의료계로 범위를 좁히면 미용성형, 피부시술 등을 위해 한국 병원을 찾는 중국 관광객들을 겨냥한 일종의 의료산업 진흥정책이었던 셈이다. 이런 산업적인 측면에 머물 게 아니라 정부가 정말로 국내 의료계의 발전을 원한다면 세계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한국의 의료기술을 전 국민이 골고루 안전하게 누릴 수 있도록 의료수가에 대한 전향적인 재고 정책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 미래 먹거리인 바이오산업의 발전 토대가 될 의과학자들도 자연스레 늘어날 것이고, 발등에 떨어진 불 수준으로 위기감이 커진 필수의료 분야의 문제점도 차츰 해결될 것이라 생각한다.
메디칼럼
“지역 의무복무 등 제도적 변화 없인 의대생 늘려도 도루묵”
“지역 의무복무 등 제도적 변화 없인 의대생 늘려도 도루묵”(2023. 12. 01 16:40)
2023. 12. 01 16:40 사회
지난 11월 21일 전병왕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이 정부서울청사에서 의과대학 입학 정원 수요 조사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11월 21일 정부는 의대가 있는 전국 40개 대학의 증원 수요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결과 2025학년도에 최소 2151명, 최대 2847명까지 증원 수요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30학년도에는 최소 2738명, 최대 3953명까지 수요가 집계됐다. 현재 의대 정원은 3058명이다. 예상보다 큰 수요조사 결과에 대한의사협회는 즉각 반발했다. 이필수 의협 회장은 삭발에 나섰고, 총파업을 언급하는 등 강경 투쟁을 예고하고 있다. 2020년에도 정부가 공공의대 설립과 의대 증원을 추진하자 대학병원 전공의들을 중심으로 파업을 벌였다. 당시 전공의 참여율이 80%에 육박했고, 의대생들은 의사고시 응시를 거부하는 등 의료현장에 큰 혼란이 빚어졌다. 결국 정부는 공공의대 설립 및 증원 추진을 중단했다. 이번에는 의대 증원에 대한 찬성여론이 높아 파업의 동력이 그리 크지 않으리라는 분석이 나온다. ‘아산병원 간호사 사망사건’, ‘응급실 뺑뺑이’, ‘소아과 대란’ 등 필수의료 및 지역의료 인력난으로 발생한 사건이 잇따르면서 의사 수를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론의 공감을 얻고 있어서다. 지난 11월 21일 보건의료노조의 발표에 따르면,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82.7%가 의료 취약지역과 공공의료기관에서 일할 의사를 충원하기 위한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복지부는 오는 12월 말, 늦어도 내년 1월 초까지는 총증원 규모를 발표한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국립대병원을 교육부에서 보건복지부 소관으로 이관하고, 국립대병원을 중심으로 지역의 필수의료 전달체계를 개선하는 ‘필수의료혁신 전략’을 수립하겠다는 방침이다. ■시장논리를 넘어선 정책 필요 일각에서는 증원을 통해 자연스럽게 필수의료, 지역의료로 인력이 충원되는 ‘낙수 효과’를 기대하기도 한다. 의료계 안팎에서는 그러나 증원만으로는 수도권·인기과목으로의 쏠림 현상이 더 강화된다고 우려한다. 아직 정부의 구체적인 로드맵이 나오지 않은 상황이긴 하지만 ‘낙수효과’라는 시장논리에서 벗어나 왜곡된 의료계 시스템 전반에 관한 체계적인 개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윤석준 고려대 의대 교수는 “개인적으로 의사 수요-공급과 관련해 절대 숫자와는 상관없이, 수도권을 제외한 지역과 중증외상 분야를 중심으로 소위 ‘필수의료’라고 불리는 분야의 의사 수가 부족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 문제를 푸는 여러 가지 정책 옵션 중에 증원이 있지만 만능의 키는 아니다”라며 “숫자를 늘리더라도 지역에 남아서 활동할 의사를 어떻게 붙잡아 둘 것인지, 필수의료에 활동할 의사 수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에 대한 별도의 정책 옵션이 맞물려서 패키지로 가지 않으면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 11월 21일 보건의료노조가 의대정원 확대 여론조사를 발표했다. / 연합뉴스 이와 관련해 의사 양성 및 배치의 권한을 광역 지방자치단체에 주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와 눈길을 끈다. 지난 11월 16일 국회에서는 ‘필수·지역의료 붕괴를 막기 위한 의사인력 증원,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서 김윤 서울의대 교수는 지역 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해서는 대학이 아닌 ‘지역’을 기준으로 의대 정원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른 조건 없이 의대 정원을 늘리기만 하면 대형병원 쏠림이 심해지고 2차 병원이 붕괴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또 의사 양성과 배치 또한 지방자치단체에 상당 부분 권한을 넘겨야 한다는 의견도 함께 제기됐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의 의료 접근성이 좋다고는 하지만, 전국을 약 1500개의 소진료권으로 나눠 봤을 때 인구 1만명당 9개의 의원이 있는 지역부터 0.2개에 불과한 지역까지 그 격차가 굉장히 크다”라며 “시·도별로 부족한 의사 수를 기준으로 배정하자는 것이며, 이는 다시 말해 의료생활권 중진료권당 의사 수 격차를 기준으로 정원을 배분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필수의료 유인 정책인 필수의료 수가 인상 등의 정책을 개별 지원이 아닌 ‘지역 필수의료 네트워크’ 중심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김 교수는 주간경향과의 통화에서 “지역 필수의료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수가 인상을 하지 않으면 부작용이 더 많이 생길 수 있다. 예를 들어 최근에 정부가 정신과 상담 수가를 올리니 대학병원, 종합병원에 있는 정신과 의사들이 개원의로 전환하는 부작용이 발생했다. 그 결과 조현병, 우울증 환자들이 입원해서 치료를 받기가 더 어려워졌다. 전체적인 시스템을 두고 고민해야지 어느 한 부분만 고치기 위한 개선책을 내놓으면 더 왜곡될 수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역의 공급체계를 개편해 선택과 집중을 하는 방식으로 수가를 올려야 한다. 예를 들어 뇌혈관 센터, 심장센터, 소아센터 등 각 광역시도별로 센터가 몇 개 필요한지 그 지역의 인구와 환자 수를 바탕으로 지정을 하고 해당 센터에 수가를 올려주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 그래야 수가 인상이 공급 과잉이나 의사 부족으로 이어지는 현상을 막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는 지자체의 역할과 권한이 강화돼야 하고 중앙정부는 건강보험재정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을 재원을 통해 지원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공공의대 신설 정부가 제시한 대로 지방 국립대를 중심으로 의대 정원을 늘리더라도 해당 의대를 졸업한 의사들이 지역의료 현장에 남지 않으면 지역의료 소멸 현상을 막을 길이 없다. 지역에 특화된 공공의대를 개설해 지역 사회에서 1차의료 및 필수의료에 최적화된 의사 양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이렇게 되면 지역의 공공의대가 배출한 의료 인력은 지역의료 기관에서 일정 기간 의무복무를 해야 한다. 2020년 문재인 정부 때 추진되다가 의협의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 나백주 서울시립대 도시보건대학원 교수는 “단순히 숫자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 공공의료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새로운 지역보건의료 개발에 대한 전망과 의욕을 가질 수 있도록 이를 지원하는 체계 구축 방안이 의사 수 증원과 동시에 개발 제시돼야 한다”며 “단순히 국립대 병원을 중심으로 지역의료체계를 개편한다고 해서 수도권 쏠림 현상을 막기는 역부족일 것이다. 지금도 지역의 국립의대 및 미니 의대에 입학하는 상당수는 수도권 쪽에서 넘어오는 학생들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의 교육체계가 학생들로 하여금 적극적으로 지역의료를 접하게 하고 이를 통해 의사로서의 비전을 키울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또 “지자체가 지역별로 의료 부족이나 편중 문제 등을 중앙정부보다 잘 알고 있을 테니 지자체가 책임을 지고 의료 인력 양성, 교육체계, 배치까지 권한을 갖고 책임도 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면서 “중앙정부는 예산을 지원하고 지역의료 구축의 성과를 모니터링해 의대 정원 숫자를 조정하는 방식도 생각해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서울 시내의 한 대학교 의과대학/ 연합뉴스 나 교수는 증원으로 배출된 의사들이 지역에 남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 없이 진행되는 현재의 논의를 회의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지금 의사 수 증원이 지역의료의 필요와는 무관하게 이루어지는 것 같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라며 “의료산업, 대형병원 등 자본 좋은 쪽으로만 가는 건 아닌지 하는 우려가 크다”라고 말했다. 정부가 지역 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해 국립대를 중심으로 증원을 한다면서 지역의 의료 인프라인 공공병원의 예산을 삭감한 것 또한 정부의 의지를 의심케 한다는 지적이다. 공공병원은 지역의 필수의료 제공과 취약계층 진료를 담당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코로나19가 대규모로 확산하던 시기, 공공병원은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지정돼 다른 환자의 치료를 중단하고 코로나19 감염병 환자를 돌봤다. 그 결과 공공병원의 심각한 적자와 경영위기가 이어졌고, 이 경영위기는 앞으로 4년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측된다. 국립중앙의료원에 따르면 2025년까지 예상되는 의료손실 규모가 2005년부터 2019년까지 15년간 의료손실 누계액보다 크다. 정부는 그러나 손실보상 예산을 대거 삭감했다. 국회예산정책처의 ‘2024년도 예산안 위원회별 분석’ 자료를 보면 정부는 내년도 감염병 대응과 관련해 의료기관 등 손실보상 예산에 지난해보다 98.2% 줄어든 126억1000만원을 편성했다. 나 교수는 “예컨대 진주의료원이 만들어지면 인근의 하동이나 남해, 산청 등의 의료취약지까지 보건소 등과 연계해 지원이 가능하다. 지역 국립대 병원에서 의료인력들을 양성해 배치한다고 해도 지역에서 일하려면 공공병원이 확충돼 있어야 하고 그래야 의무 복무도 연결이 될 수 있다”라며 “최근 울산의료원과 광주의료원 설립이 예비타당성조사 탈락으로 좌초됐다. 의사 수를 늘리면서 동시에 지역에서 배출된 의사들이 일할 수 있게끔 여러 가지 장치를 만들어줘야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겠나. 지금 정부가 지역의료를 대하는 방식은 굉장히 모순되게 각각 따로 가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라고 말했다. ■행위별 수가제 개편 고민 현재 의료 행위의 지급방식인 ‘행위별 수가제’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행위별 수가제는 진찰, 검사, 처치 등 개별 의료 행위에 각각 수가를 매겨 건강보험에서 이를 지급하는 내용이다. 의료계에서는 비급여 의료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고 저출생 등으로 사회구조가 급변하는 상황에서 ‘행위별 수가제’를 바탕으로 해서는 지역의료와 필수의료의 붕괴를 막기 어렵다고 본다. 윤석준 교수는 ‘대안적 지불제도’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예를 들어 소아과에는 저출산 문제 등으로 의사들이 가지 않으려고 한다. 그렇지만 꼭 필요한 분야다. 현재 행위별 수가제 하에서는 행위가 일어나야 수입이 발생하는 구조인데 저출산 상황에서는 당연히 소아과의 행위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라며 “대안적 지불제도라고 하는데, 어떤 지역에 의사가 존재함으로써 행위가 발생하지 않아도 일정 수준의 보상이 일어날 수 있는 이런 형태의 대안적 지불제도와 정책 옵션이 맞물려야 이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필수의료에 ‘버스 준공영제’ 같은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버스 준공영제’는 버스 운행은 민간 업체에 맡기지만, 노선 운영 등은 지방자치단체가 책임을 져 적자 노선이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말한다. 지난 11월 29일 정재훈 가천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대한병원협회 KHC 2023’(KOREA HEALTH CONGRESS 2023) 학술대회에서 “필수의료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버스에 도입한 준공영제를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해볼 수 있다”며 “필수의료를 국민에게 제공해야 하는 서비스로 정의한다면, 의료 서비스에 대한 지불 방식을 현재의 행위별 수가제에서 대가를 사전에 지급하는 ‘소방서 방식’으로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필수의료를 담당하는 의료기관에 운영비 전체를 사전에 보상해주는 방식으로 지불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제안이다. 그 결과 수익성에 대한 병원의 집착을 줄일 수 있고, 수익성이 낮은 진료과를 유지하면서 지역의료기관의 도산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환자가 상급종합병원에 몰리는 의료전달체계 문제, 실손보험 과다 청구를 초래하는 비급여 의료 수요의 폭증 등에 대한 통제도 필요하다. 의사들의 수입 격차가 벌어져 쏠림현상이 나타나는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해결하지 않으면 의대 증원을 하더라도 현재 의료시스템의 구조적인 문제는 반복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윤 교수는 의료시스템의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결국 정치적 의지의 문제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정치적 의지가 있다면 국민의 동의를 받아 실손보험제도 개편, 병상 공급 규제 등의 문제를 신속하게 개선할 수 있다. 지금 개편한다고 해도 그 효과가 나타나는 데 몇 년씩 걸리는 문제들인 만큼 개편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지금이야말로 의료시스템 개편을 그 어느 때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그는 “첫째, 상황이 나빠졌다. 둘째, 그 나빠진 상황 때문에 국민의 관심과 정책 변화에 대한 요구 수준이 높아졌다. 셋째, 보궐선거 참패이든 무슨 이유가 됐든 현 정부가 어쨌든 의사 숫자를 늘리고 의료체계를 개편하겠다고 했다”라며 “지금 정책의 창이 열려 있는 상태인 것만은 분명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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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쏠림 심해질라…“대입 개편 병행해야”(2023. 06. 02 15:54)
2023. 06. 02 15:54 사회
ㆍ500명 확대되면 의대 5~6곳 신설 효과 ㆍ지역·계층 교육격차 심화 막을 대안 필요 2023학년도 대입수학능력시험을 앞두고 한 수험생이 자신의 수험표와 고사장 위치를 확인하고 있다. / 이준헌 기자 정부가 의대 입학 정원 확대 검토에 나선 가운데 교육계에선 가뜩이나 심각한 최상위권 학생들의 ‘의대 쏠림 현상’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일부 전망대로 최대 500명가량 정원이 확대될 경우 의대 5~6곳이 신설되는 것과 마찬가지 효과를 낳는다. 이렇게 되면 반도체학과 등 인재 양성이 필요한 이공계 학과들의 학생 이탈은 물론 사교육 수요 증가, 공교육 붕괴 가속화 등 다양한 부작용을 낳게 될 전망이다. 의대 입시의 경우 최근 4년간 정시 합격생 5명 중 1명이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에서 나왔다. 의대 쏠림이 심화되면 지역 간, 계층 간 교육격차 역시 확대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교육계에선 의대 정원 확대와 더불어 격차 확대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대입 정시 비중 축소, 수능평가 방식 변경 등 대안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상위권 학생들, 의대 입시에 ‘올인’ 지난해 보건복지부가 집계한 2020년 기준 의사 평균 연봉은 2억3070만원이다. 국세청 통계를 보면 2020년 근로자 평균 연봉은 3828만원이다. 의사의 수입이 일반 노동자 대비 6배 이상 높다. 한번 의사가 되면 개원을 하든 월급을 받고 일하든 평생 직업이 보장된다. 높은 수입과 사회적 지위, 안정된 처우 등은 의사를 가장 선호하는 직업으로 만들었다. 의대로 학생들이 몰리면서 입시 경쟁도 의대를 중심으로 개편된 지 오래다. 사교육 시장에선 ‘영어 유치원-사립 초등학교-특목중·고-의대’ 순으로 이어지는 ‘의대 코스’가 프로그램처럼 운영된다. 모 학원에서는 특정 고등학교 학생들만을 위한 의대 입시 심화 과정을 운영하기도 한다. 강남 대치동 학원가와 입시 열기가 높은 일부 지방 학원가에서는 최근 초등학생을 위한 의대 입시반이 생겼다. 과학고 등 영재고에서는 학생 이탈을 막고자 의대 진학 시 불이익을 주는 규정을 만들기도 했다. 대학 진학 후에도 의대 입시 열기는 꺾이지 않는다. 최상위권 대학 학생들의 경우 입학 직후 휴학을 하거나 재학 중 의대 시험을 치러 합격한 후 자퇴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으로 교육계는 추정하고 있다. 교육부의 ‘대학알리미’ 공시자료를 보면 일명 ‘SKY(서울·고려·연세)’ 대학에서 재학 중 학업을 포기하는 ‘중도탈락률’이 최근 5년 새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연세대는 2018년 444명이던 중도탈락 학생이 지난해 700명으로 1.57배 늘었다. 주목할 점은 중도탈락 사유 중 ‘자퇴’가 크게 늘었다는 것이다. 같은 기간 ‘미복학’으로 인한 탈락은 48명에서 28명으로, ‘학사경고’에 따른 탈락은 104명에서 75명으로 줄었지만, 자퇴는 260명에서 560명으로 2배 넘게 증가했다. 고려대와 서울대도 사정은 비슷하다. 고려대는 같은 기간 중도탈락 학생이 518명에서 866명으로 1.77배, 서울대는 234명에서 405명으로 1.73배씩 각각 늘었다. 카이스트는 최근 6년간 591명의 학생이 중도탈락했는데, 이중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273명(46.2%)이 의·치학 계열 대학으로 진학한 것으로 학교 측은 파악했다. 입학 직후 휴학하는 서울대 신입생 숫자 역시 크게 늘었다. 다른 사립대가 1학년 1학기 휴학을 금지하는 데 반해 서울대는 신입생도 곧장 휴학이 가능하다. 서울대가 김병욱 국민의힘 의원에게 제출한 집계 자료를 보면 2018년 65명이던 신입생 휴학생은 지난해 225명으로 3.5배가량 늘었다. 이에 대해 서울대 관계자는 “휴학생 중 의대 진입이 어려운 문과 비중도 상당히 되는 점을 감안하면 학점관리나 기타 개인 사정 등의 이유로 휴학이 느는 것이지, 의대 진학이 이유라고만 볼 순 없다”고 밝혔다. 반면 서울의 한 사립대학 교수는 “최상위권 학생들의 경우 학업을 포기할 요인이 거의 없기 때문에 중도탈락이나 휴학생 상당수가 의대 진학을 목표로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반도체학과 등 이공계 첨단학과조차 여러 번 신입생 추가모집을 해야 할 정도”라고 말했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의대 정원 확대로 인해 오히려 최상위권 학생들의 분산보다 집중 효과가 클 것”이라며 “의대 준비를 안 하던 학생까지 가세하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밝혔다. 서울시내 한 체육관에서 열린 대형 사립학원의 입시전략 설명회에서 참석자들이 강연을 듣고 있다. / 박민규 기자 “교육격차 심화 우려, 대입제도 개선을” 의대 쏠림 문제에도 불구하고 의료인력 확충을 위해 정원 확대가 불가피하다면 대입제도 개편을 통해 부작용을 줄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의대 입시 경쟁이 과열되면서 사교육 없이 의대에 입학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 됐다. 상대적으로 사교육에 더 큰 비용을 들일 수 있는 계층에서 의대 입학 가능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사걱세)이 2019~2022년 전국 의대 정시 입학생 출신을 분석한 결과 10명 중 6명이 수도권 출신인 것으로 집계됐다. 수도권 출신 중에서도 강남·서초·송파의 강남 3구 학생 비중은 전체 정시 입학생의 22%로, 5명 중 1명꼴을 차지했다. 수능 비중이 높은 정시의 경우 통상 재수생과 사교육 입김이 더 강하게 작용한다. 최근 2~3년 사이 의대 입시에 특화된 전문 사교육이 등장하면서 강남의 특정 학원이 의대 입시를 아예 석권하다시피 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자체 집계 자료를 보면 지난해 전국 39개 의대 정시 입시 합격생(941명) 중 절반에 해당하는 470명(49.9%)이 이 학원에서 나왔다. 한 사교육 업계 관계자는 “누가 어느 의대에 갈지 이미 이 학원에 들어가면서 사실상 결정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라고 말했다. 장승진 사걱세 정책위원은 “의대 입시가 이미 특정 계층의 전유물처럼 변질된 현실을 고려해 정시 확대 정책을 중단하고, 학생들 간 공정한 경쟁이 가능하도록 입시제도 개편이 뒤따라야 한다”며 “강남권의 ‘원정교육’ 대상이 된 지역인재 선발제도의 개선을 비롯해 수능평가 제도 개편 등 보다 근본적인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표지 이야기
의대 정원 확대와 함께 병든 시스템도 고쳐라(2023. 06. 02 11:30)
2023. 06. 02 11:30 사회
18년째 그대로인 의대 정원 확대 방안이 검토 중이다. 의대 정원은 2006년부터 지금까지 3058명으로 동결 상태다. 2000년, 의약분업 당시 정부는 의사들의 반발을 달래기 위해 의대 정원을 10% 감축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의대 정원은 조금씩 줄어 2006년 3058명이 됐고, 현재까지 유지 중이다. 지난 2020년 8월 30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본관 출입구 앞에서 의대 정원 확대 등을 두고 전공의와 전임의들의 1인 시위가 진행됐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2020년 문재인 정부는 공공의대 신설 등을 골자로 연 400명씩 향후 10년간 의대 정원을 4000명 늘리는 방안을 추진했다. 이중 3000명은 지역의사로 배출해 비수도권 지역의 의료난을 해소하겠다고 했다. 의사들은 코로나19가 한창인 상황에서 파업을 불사하는 등 강력 대응으로 막아섰다. 정부는 코로나19 안정화 이후 대한의사협회(의협)와 다시 협의하기로 합의하고 물러섰다. 의사 수 부족한가? 보건복지부는 지난 1월 9일 발표한 ‘2023년 업무계획’에서 의사 정원 확대 등을 의료계와 협의해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복지부는 조만간 의료현안협의체에서 의협과 의대 정원 증원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의협은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의협은 지난 1월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에 대해 “인구는 점점 감소하고 추가 배출되는 의사는 매년 늘어나고 있어 우리나라는 의사 부족이 아닌 의사의 공급 과잉을 우려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반박했다. 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건강통계에 따르면 ‘국민 1인당 외래 진료 횟수’는 연간 14.7회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게 나타났다”고 말했다. 의료접근성이 높은 만큼 의사 정원이 부족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최근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은 의료접근성이 높다는 의협의 주장과 배치된다. 지난해 8월, 빅5 병원 중 하나인 서울아산병원의 간호사가 근무 중 뇌출혈로 쓰러졌다. 개두술을 할 수 있는 신경외과 의사가 휴가 등으로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다른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사망했다. 지난 3월 대구에서는 건물에서 추락한 중학생이 2시간 동안 응급실을 찾아다니다가 심정지로 사망했다. 지난해 12월 수도권 상급종합병원인 길병원은 의료진 부족으로 소아청소년과 입원 진료를 잠정 중단한다고 밝혔다. (길병원은 지난 1월 입원진료를 다시 재개했다) 길병원만의 문제가 아니다. 올해 소아과 전공의 충원율은 16.6%에 불과했다. 필수과 의사 부족, 지방 의료시스템 붕괴, 소아과 대란 등 지역·필수 의료를 중심으로 의료공백이 심각해지면서 여론도 의대 정원 확대로 의견이 기울어지고 있다. 지난 4월 5일 보건의료노조는 보건의료인력 현황과 확충에 관한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전국 17개 시·도 만 19세 이상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58.4%가 의사 인력이 부족하다고 응답했다. 의대 정원 확대와 관련해서는 응답자의 66.7%가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한다는 응답은 9.8%에 불과했다. 임준 서울시립대 도시보건대학원 교수는 “지역과 필수의료 분야로 이야기되는 응급·외상·심혈관·소아과·산부인과의 의료 인력이 부족한 현실을 국민이 다 절감하고 있는 상황에서 의협이 의대 정원 확대를 아예 반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통계로 나타나는 절대적인 수치도 의사 수 부족을 가리킨다. 지난 7월 보건복지부가 OECD 자료를 분석해 발표한 ‘OECD 보건 통계 2022’ 자료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2.5명(한의사 포함)으로 OECD 평균인 3.7명에 크게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의사를 제외하면 2.1명으로 OECD 평균의 절반 수준이다. 또 의학계열(한의학 포함·치의학 제외) 졸업자는 인구 10만명당 7.2명으로 OECD 국가 중에서 일본(6.9명) 이스라엘(6.9명)에 이어 두 번째로 적었다. 지난 1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전문과목별 의사 인력 수급 추계’에 따르면 2025년에는 5516명, 2035년에는 2만7232명의 의사가 부족할 것이라고 진단됐다. 특히 의협의 주장과는 반대로 인구가 감소하더라도 고령화 등의 이유로 의사 수요는 더 늘어나리라고 내다봤다. 지난 5월 16일 윤석열 대통령이 간호법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한 이후, 역설적으로 의대 정원 확대 논의는 더 탄력을 받고 있다. ‘직역 간 업무 범위 명확화’ 등을 골자로 한 간호법이 대통령의 거부권으로 사실상 폐기되면서 간호협회는 준법투쟁을 시작했다. 불법임에도 관례적으로 의사의 업무를 일부 대신해오던 PA(진료보조인력) 간호사들이 ‘대리 의사’ 역할을 하지 않겠다고 나선 것이다. 전국적으로 1만명 이상일 것으로 추산되는 PA간호사의 존재는 의사 수가 부족한 대형병원의 현실을 드러내면서 의대 정원 확대에 설득력을 더하고 있다. 아직 복지부는 의대 정원 증원 방식 및 구체적인 수치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2025년 입시부터 500명 정도 늘리는 방안과 지난 2000년 의약분업 당시 감축한 351명을 증원하는 방안 등을 예상한다. 한 대학병원의 응급실 앞에 구급차가 대기하고 있다. 최근 진료가능한 의료진이 없어 구급차에서 떠도는 ‘응급실 뺑뺑이’가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의대 정원이 확대되면 필수과 의사 부족, 지역 의료진 부족 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의협은 의대 정원 확대는 필수의료 및 지역 기피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임준 교수는 의협의 주장에 대해 “맞는 말이기도 하고, 틀린 말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의대 정원 증원과 함께 여러 정책을 결합해야 현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맞는 말이고, 의대 정원 확대를 주장하는 쪽에서도 의대 정원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지금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에 틀린 말이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만이 아니라 산적한 의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다양한 정책패키지를 내놔야 한다고 말한다. 붕괴된 지역의료 시스템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역별 인구 1000명당 의사 수의 수도권·비수도권, 도·농 간 격차는 컸다. 2022년 7월 기준 서울(3.45명), 대전(2.63명), 대구(2.62명) 순이었고, 가장 낮은 세종은 1.31명으로 서울과 2.6배 차이가 났다. 이어 충남(1.54명), 경북(1.39명) 수준으로 낮았다. 비수도권 환자의 경우 적시에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어 사망하는 비율이 수도권보다 높게 나타났다. 2020년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5~2017년 기준 뇌혈관질환 사망비는 강원·영월권이 2.04로 서울 동남권의 0.84보다 2.4배 높게 나타났다. 응급 사망비 또한 서울 동남권이 0.85인 데 비해 강원·영월권은 2.09로 2.5배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망비는 실제 사망자 수를 예상 사망자 수로 나눈 비율로 수치가 클수록 사망하는 비율이 높다. 의협은 지역의 의료공백 문제를 수가 인상, 근무환경 개선 등 적극적인 정부의 지원책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지방소멸이 가시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수가 인상 같은 재정적 지원책은 더는 유인책이 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미 몇몇 지방의료원에서는 전국 의사 평균연봉인 2억3000만원보다 높은 3억~4억원을 연봉으로 제시해도 지원자가 없어 구인난에 허덕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고, 정부가 추진 중인 공공정책수가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분석이 나온다. 지난 1월 31일 보건복지부는 ‘필수의료 지원대책’을 마련했다. 모든 국민이 언제 어디서든 골든타임 내 필요한 필수의료를 제공받는 체계 구축을 목표로 내세우고, 그 방안으로 ‘공공정책수가’를 통해 필수의료 분야에 대한 보상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행위별 수가에 기반을 둬서 가산율을 올려주는 공공정책수가는 인구가 적은 지역에서는 효과를 보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다. 나백주 서울시립대 도시보건대학원 교수는 “보건복지부가 분만 인프라 구축을 위해 분만취약지 분만 수가 인상과 분만 취약지 지원 사업을 시행했다. 정책 결과 광역시 이상의 산부인과는 어느 정도 혜택을 볼 수 있지만, 광역시가 아닌 도에 있는 산부인과는 분만 자체가 워낙 적기 때문에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행위에 기반을 둔 수가를 가산하는 정책은 인구가 많은 수도권·대도시에 유리할 수밖에 없어 정작 필수의료가 부족한 지역의 작은 중소도시에는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오히려 쏠림현상이 강화될 수 있다는 우려다. 지난 4월에 발표된 논문 ‘분만 수가 인상만으로 분만 인프라 붕괴를 막을 수 있을까?’(안태규·황종윤)는 보건복지부가 공공정책수가 제도의 일환으로 추진 중인 분만 진료 분야의 가산 수가 제도를 시뮬레이션으로 분석했다. 가산 수가 제도는 특별시 및 광역시 이외 지역에 분만 수가의 200%를 추가 지급하는 파격적인 차등지원 제도이지만, 시뮬레이션 결과 해당 제도가 지방의 분만 병원에서는 효과를 발휘하기 어려울 것으로 분석됐다. 수가 인상에서 한발 더 나아가 공공의대 설립, 지역의사제 도입 등 정부가 직접 의료취약지에 의료인력을 양성해 공급하는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지역의사제’와 ‘공공의대’는 2020년 문재인 정부 때 추진되다가 의협의 반대로 무산됐다. ‘지역의사제’는 ‘지역의사선발전형’을 통해 지역 내 학생을 선발하고 이들이 지역 필수의료 분야에 10년간 근무하도록 하는 방안이다. ‘공공의대’는 국립의대가 없는 지역에 공공의대를 신설해 마찬가지로 지역의료에 일정 기간 의무복무하도록 하는 제도다. 남은경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회정책국장은 “의협은 수가를 올려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는 유인책을 제공하라고 하지만, 지방의료원에서 연봉을 높게 불러도 의사들이 가지를 않는다. 수가 인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지역에 의사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공급로를 열어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수도권으로 자원이 몰리고 있는 상황에서 공공의대 신설은 의대 간 격차를 심화하고 부실 의대를 발생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나백주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 의과대학의 교육이 개별 진료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물론 임상 교육이나 분과 교육도 당연히 해야 한다. 공공의대의 역할, 비전, 교육, 커리큘럼 등을 지역 공공의료에 초점을 맞춰 지역 보건의료 현장에 대한 정책적 고민을 함께할 수 있는 의사들을 양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4월 11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필수의료 취약지 발표 및 공공의료 확충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서성일 선임기자 필수진료 기피 2022년 전공의 충원율은 소아청소년과 28.1%, 흉부외과 47.9%, 외과 76.1%, 산부인과 80.0%로 정원 미달됐다. 반면 업무 강도가 상대적으로 낮고, 개원 시 수입이 높은 피부과, 안과, 성형외과, 재활의학과, 영상의학과 등 소위 인기과에 대한 쏠림 현상은 점점 심해지고 있다. 흔히 외과, 흉부외과, 산부인과 등을 ‘기피 과목’이라고 부른다. 환자의 생명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과목이지만, 업무 강도가 높고 건강보험 수가는 낮아 의사가 부족해진 과목이라고 알려져 있다. 김윤 서울대 의대(의료관리학) 교수는 필수진료 기피의 원인을 3가지를 꼽았다. 첫째, 개원을 유도하는 왜곡된 건강보험의 진료비 보상방식과 만연한 비급여 항목 진료다. 김윤 교수는 “큰 병원에서 일하는 전문의에 비해 동네 개원의 수입이 1.7배나 더 많다. 흉부외과 전문의의 30~40%가 개원해 고혈압·당뇨병 환자를 보고 있고, 정작 큰 병원에는 전문의가 부족해 응급환자들이 진료를 받지 못하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대학병원이나 종합병원에서 필수의료를 수행해야 할 371명의 심장혈관흉부외과 전문의가 동네의원으로 개원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나마 자기의 전문 과목을 걸고 자기 분야의 환자를 보는 전문의는 67명(19.1%)에 불과했다. 81.9%인 304명은 전공과 다른 진료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둘째는 병원이 전문의를 너무 적게 고용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병원으로 하여금 부족한 전문의를 추가로 고용하도록 하는 인력 기준을 만들지 않다 보니 수가를 올려도 전공의 지원율은 높아지지 않았고, 전문의도 늘지 않았다. 김윤 교수는 “외국에는 환자를 보는 인력 기준이 있다. 급성심근경색, 뇌졸중, 중증 외상 등의 환자를 진료하는 병원은 24시간 365일 환자를 볼 수 있는 시스템을 유지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인력을 최소한 5명 이상 뽑는다”라며 “국내에선 이에 대한 규제가 없다 보니 모든 병원이 인력을 적게 뽑는다”라고 말했다. 강민구 대한전공의협의회장도 대학병원이 전문의를 뽑지 않고 전공의라는 값싼 인력으로 병원을 운영하려는 행태를 지적했다. 강 회장은 “우리나라 같은 경우 진료와 연구와 교육을 교수 1명이 모두 담당한다. 병원의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진료라면 교수들을 추가로 더 뽑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라며 “외국은 교수가 진료 교수, 연구 교수로 나뉜 시스템이 잘 정착돼 있다. 교수 한 명에게 진료·교육·연구를 모두 잘 하라고 요구하는 것보다 각각의 교수들을 뽑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인력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라고 말했다. 셋째, 큰 병원, 작은 병원의 역할이 나뉘어 있지 않아 병원들이 무한경쟁하는 의료체계다. 김윤 교수는 “급성심근경색 환자를 1시간 이내 골든타임에 진료할 수 있는 일정 규모 이상의 병원 숫자를 산정했더니 전국에 70개 정도는 있어야 하는 것으로 나왔다. 그런데 급성심근경색 환자를 진료하는 ‘스텐트 시술’ 가능 병원이 현재 전국에 180개나 있지만, 의사 수가 분산돼 있어 응급 대처는 한계가 있다”라며 “그러다 보니 24시간 365일 운영하는 체계를 갖추지 못해 응급환자가 와도 의사가 없다고 돌려보내게 된다. 응급실 뺑뺑이가 생기는 이유다”라고 말했다. 의사 수 부족과 맞물려 병상 과잉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인구 1000명당 급성기 병상 수가 2020년 기준 3.56인데 한국은 7.22로 병상 증가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지난 10년간 OECD 국가들이 병상을 감축해온 데 반해 한국은 오히려 병상을 늘리고 있다. 병상 증가는 인력을 빨아들여 지역·필수의료 인력 공백을 가속화한다. 임준 교수는 “의료는 병상의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쓸모 있는 병상이 중요하다. 응급환자를 볼 수 있는 응급의료센터와 여기에 연결된 수술장, 중환자실 등이 중요하다”며 “병원은 많은데 막상 위중한 환자가 입원할 병원은 없다. 큰 병원에는 의사가 부족하고, 개인병원이나 조그마한 병원으로 의사가 분산돼 있기 때문이다. 병상 수에 대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큰 병원의 외래환자를 줄여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임준 교수는 “큰 병원에 안 와도 되는 경증환자들이 외래 진료를 보게 되면 입원이나 중환자 수술장에 투여될 인력이 부족해진다”라며 “큰 병원이 1차 의료 기관과 경쟁하는 상황이다. 1차 의료를 강화하고 큰 병원은 입원 환자 중심으로 운영한다면 전체적으로 건강보험의 진료비도 상당히 효율적으로 쓸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종합적인 공급대책 필요 전문가들은 의대 정원의 단순 확대를 넘어 왜곡된 의료시스템을 바꿀 수 있는 종합적인 인력 공급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임준 교수는 “이 이야기들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고 오래전부터 논의돼왔던 문제들이다. 정부가 이런 고민을 해야 하는데 단편적으로 정원 증원만 갖고 의협을 상대하고 있으니 과연 이런 방식으로 고령화 등 현재의 위기 상황을 해결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김윤 교수는 “우리나라 의료에 공급과 관련된 정책이 없다. 민간에 맡겨놓으니 병원은 병원의 이익을 추구하고, 의사들은 의사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무질서한 공급 체계가 만들어졌다”며 “정부가 의사와 병원에 끌려다니는 정책을 해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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