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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톰 형이 짠하게 느껴진다면? ‘탑건:매버릭’②[영화에 관한 정신과 의사들의 대화]
- 2024. 03. 26 06:58 문화/생활
- [두 명의 정신과 전문의가 한 편의 영화를 두고 정신분석학적 시각과 정신의학 이론을 토대로 다각도로 분석해 보는 코너입니다.] <탑건: 매버릭> 보도 스틸 ▶남자들은 왜? ‘탑건: 매버릭’①[영화에 관한 정신과 의사들의 대화]에서 이어집니다. 윤 : <탑건2>에서도 반복되는 대사가 바로 “생각하지 말고 그냥 해”죠. 박 : 동물의 세계를 보면 ‘알파메일’이 있지. 힘이 가장 세서 모든 걸 차지하는. 매버릭도 그런 셈이야. 어쨌건 비행 실력과 그런 무모함 덕분에 가장 뛰어난 조종사잖아? 게다가 얼굴도 잘 생겼어. 잘 생겼다는 건 건강하다는 신호야. 원론적으로 얘기하자면 우리는 그 사람이 건강할지 아닐지를 외모를 보고 판단하도록 적응되어 왔어. 얼굴이 비대칭이고, 피부에 뭐가 많이 나고, 눈코입이 적당한 위치에 있지 않다면 건강하지 못하다는 신호로 받아들이지. 그 반대면 좋은 유전자를 가졌다는 의미고. 멋진 외모는 좋은 유전자를 갖고 있을 거라는 암시야. 물론 이건 수십 만년의 원시 사냥사회를 기준으로 했을 때의 얘기지만. 윤 : 잘 생기고 몸도 잘 발달해있고 얼굴도 잘생긴 매버릭은 알파메일인 셈이네요. 박 : 여기서 또 중요한 건 평판이라는 심리기제야. 톰 크루즈라는 잘 생긴 배우가 있는데 우리는 왜 그를 좋아할까? 여자뿐 아니라 남자들도 말이야. 알파메일은 나머지 개체들한테 경쟁자일텐데. 하지만 알파메일이랑 경쟁하는 대신에 그를 추앙한다면 얘기가 달라지지. 능력 있는 개체와 잘 지내는 것이 생존에 오히려 더 유리할 수 있거든. 흡혈박쥐들은 서로 피를 나눠 먹어. 한 마리가 피를 빨아오면 옆자리 박쥐한테 빨아먹은 피를 게워내서 나눠주지. 받아먹은 박쥐가 사냥해왔을 땐 갚아주고. 이런 식으로 협력하는 행동을 하는 개체들이 더 많이 살아남아서 그런 행동 경향은 후대로 전달되거든. 사람도 비슷해. 능력 있는 사람이 누굴 도와준다면 그의 평판은 올라가고, 좋은 평판을 받은 그 능력자도 지지자들 덕분에 이득을 보지. 윤 : 매버릭이 혼자 잘났다고 이기적으로 행동했다면 매력이 덜 했겠죠. 영화에서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동료들을 도와주잖아요. <탑건: 매버릭> 보도 스틸 박 : 톰 크루즈, 다시 말해 젊은 매버릭이 무모한 행동을 하고, 그런 모습을 왜 사람들은 좋아할까 하는 이유는 우리 유전자 속에 전달되어온 원시 사냥사회의 본능이 무의식적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내 설명이야. 윤 : 저는 사람들이 이 영화를, 그리고 톰 크루즈를 좋아하는 이유를 다른 식으로 봐요. 젊음도 있지만 사실 이 영화가 사람들이 받아들이기에 아주 쉽게 되어있기 때문이라는 거죠. 상징계적으로 되어 있어요. 남자주인공은 남성적이고 용감해. 그냥 우리 상식에 부합하고 거슬리는 부분이 별로 없어요. 매버릭이 제멋대로였던 이유도 타고난 기질도 있지만 다른 요인도 있다고 봐요. 일단 아버지가 없어요. 유능한 조종사였는데 전투에서 죽었죠. 근데 아버지가 너무 잘나면 자식이 힘든 경우가 많잖아요? 큰 나무 밑에서 작은 나무가 자라기 어렵듯이요. 특히 아들의 기질이 아버지랑 다르게 느슨한 경우 아이는 위축되고 우울 불안해지곤 하죠. 안 맞는 거예요. 반대로 아버지처럼 되기 위해서 너무 과하게 행동하는 경우도 있죠. 박 : 매버릭처럼 말이지. 윤 : 아버지와 동일시를 하는 거죠. 이게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 이어지는 과정과도 연결이 되고, 경쟁자이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니깐 우상화하고 아버지처럼 되기 위해서 노력하고… 그래서 더 무모한 행동을 하지 않나 싶어요. 그리고 여자도 하필 자기보다 키가 크고 연상인 여자를 좋아하죠. 박 : 나는 좀 다른 측면으로, 매버릭이 여자와 사귀는 장면에서도 인간의 보편적인 본성, 어떤 경향 같은 게 드러난다고 봐. 1편에서 술집에서 찰리를 보는 순간 딱 첫눈에 마음에 드니까 매버릭이 먼저 접근을 하잖아? 플러팅한다고 하지. 그것도 친구 구스가 거들면서 춤추며 노래까지 부르고. 이런 상황에서 왜 여자가 아니라 남자가 먼저 접근을 할까? 이것도 진화심리학에서 성 선택, 성 전략으로 설명이 돼. 남자의 정자는 값싸다고 하지. 정자 수도 많고 여기저기 뿌리는 게 자손 번식에 유리하거든. 반대로 여자의 난자는 비싸. 개수가 제한되어 있지. 게다가 자궁은 더 귀해. 한번 임신하게 되면 10달 동안 잘 사용해야 하거든. 소중하지. 그래서 여자들은 짝짓기 전략에 있어서 신중해. 매버릭은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구애를 하고, 찰리는 마음의 문을 천천히 열지. 남녀는 연애에서도 이렇게 기본적인 성향이 달라. 윤 : 하지만 그것도 요즘 세대는 여자들이 더 적극적인 경향이 있잖아요? 그러니깐 구애 행동에도 문화적인 영향이 있다고 봐요. <탑건: 매버릭> 보도 스틸 박 : 맞아. 그렇기 때문에 사실 정신의학이나 심리학 같은 학문이 과학적이지 못하다고 비난받는 면이 있어. 남자가 적극적이라고 했다가 그게 아니라고 했다가… 아까 아버지와의 관계 문제도 아버지가 훌륭하면 아들이 주눅이 든다고 했다가 동일시해서 더 강해진다고도 말하고…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비아냥을 사곤 하지. 근데 이건 좀 억울해. 사람의 복잡한 심리기제가 어떻게 공식 하나에 맞아떨어지겠어? 윤 : 그건 심리를 표현하는 데 언어라는 것이 사용되기 때문일 수도 있어요. 수학이나 과학처럼, 1더하기 1은 2처럼, 공식으로 딱 떨어지는 게 아니죠. 언어라는 건 불완전해요. 언어학에서 기표와 기의, 이렇게 얘기하는데 언어가 무언가를 표현할 때 내가 원하는 뜻을 상대방한테 확실히 이해시켜줄 수 있지가 않거든요. 내가 사과라고 말해도 내가 먹어본 사과랑 상대가 먹어본 사과가 다를 수 있죠. 극단적으로 말하면 난 달고 빨간 부사를 상상하면서 말하는데 상대는 시큼한 초록색 아오리를 떠올릴 수도 있는 거거든요. 박 : 그렇다고 정신의학이론이 논리적이지 않은 건 아니야. 여러 가설이 있지만 다들 논리성이 있지. 설사 다른 결론에 도달하더라도 말이야. 실제로 환자를 보다 보면 어떤 사람은 프로이트 이론이 들어맞고 어떤 사람은 융 이론이 적합하거든. 중요한 건 대화하면서 어떤 쪽일지 이야기를 풀어나가다 보면 환자가 깨닫고 동의하는 지점이 나와. 그러면서 문제가 해결되는 걸 우리 의사들은 직접 확인하곤 하잖아. 윤 : 그건 우리가 지금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형과 제가 다른 설명을 붙이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죠. 그리고 그렇게 다양한 시각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게 영화의 매력이기도 하고요. <탑건: 매버릭> 보도 스틸 박 : 다시 영화 얘기로 돌아가 보자고. 1편이 아직 어린 사내아이 같은 특성을 보이는 20대 톰 크루즈라면, 2편은 조종사이던 때를 벗어나지 못하는 중년 남자의 이야기이지. 인간은 어른이 되어서도 심리사회적으로 계속 발달을 해. 발달이라기보다는 난 변화라는 표현이 더 맞는다고 생각하는데, 20대일 때의 심리와 50~60대일 때의 심리는 다를 수밖에 없고 또 달라야 하지. 에릭슨에 따르면 청년기는 친밀감을 성취하는 시기라고 해. 뭔가에 익숙해지는 때라는 거야. 일에서도 그렇고 연애 같은 인간관계에서도 그렇고. 이때 이룬 거를 바탕으로 30대에서 50대까지 열심히 살면서 뭔가를 이뤄내. 생산성의 시기라고 하지. 그런 다음 이제 60대가 되면 자신이 이룬 것을 마무리하는 자아통합의 과정을 거쳐야 해. 윤 : 그렇게 되면 인생을 잘 살았다고 느끼게 되죠. 박 : 제독까지 오른 아이스맨은 아마 자아통합을 이뤘을 거야, 나 잘 살아왔다고. 하지만 매버릭은 생산성의 시기를 제대로 보내지 못한 것 같아. 그저 조종사이던 때의 성취감에만 계속해서 머물러 있지. 그 나이가 돼서도 여전히 젊었을 적의 가죽 점퍼를 입고 가와사키 오토바이를 타면서 아직도 자신이 전투비행사인 걸로 착각해. 그래서 아이스맨이 “It’s time to let go”라고 충고해. 그 시절을 이제 그만 떠나보내라고. 일뿐만 아니라 사랑에서도 매버릭은 변화하지 못했어. 젊은 시절 사귀었던 페니와 2편에서 다시 만나는 걸로 나오지. 가만 보면 30여 년이 흐르는 동안 페니랑도 만났다 헤어졌다를 반복한 것 같아. 페니랑 데이트한 날 페니 딸이 돌아오자 창문으로 도망쳐. 10대 아이 같지. 다크스타 프로젝트에서 무리하다가 추락해서 먼지투성이가 된 채로 식당에 들어온 장면도 엄마 말 안 듣고 가출했다가 거지꼴로 돌아온 청소년 같아. <탑건: 매버릭> 보도 스틸 윤 : 그리고 매버릭은 정착을 못 해요. 남자가 연애 상대를 고를 때 엄마를 찾잖아요, 엄마의 이미지를 가진. 근데 기대했는데 나중에 가면 실망하는 거죠. 엄마처럼 모든 걸 해주질 않으니깐. 다른 더 괜찮은 사람이 있을 것 같고. 그리고 또 실망을 하고. 바람둥이들이 대개 이러는데 매버릭도 이런 측면이 있어 보여요. 마침 아버지도 일찍 죽고 없으니까 더. 역사가 반복되는 것처럼 사람의 행동도 반복이 되고, 나이를 먹어서도 정착하지 못하고 여전히 떠돌죠. 박 : 반복이 맞아. 매버릭도 아버지가 죽은 것처럼, 루스터도 아버지 구스가 죽었어. 매버릭과 루스터는 같은 입장인 거야. 그래서인지, 자기가 살아온 삶에 후회가 있어서인지 매버릭은 루스터가 조종사가 되는 걸 방해해. 물론 루스터 엄마의 유언이라고 설명되긴 하지만. 2편이 진행되면서 결국 루스터는 매버릭처럼 돼. 도리어 매버릭한테 “생각하지 말고 그냥 해요”라며 되받아치지. 윤 : 매버릭이 루스터한테 아빠 역할을 해주고 싶었지만, 그러질 못했죠. 왜냐면 매버릭 본인이 결혼해본 적도, 아이를 낳아 아빠 역할을 해본 적도 없으니까요. 나중에 화해하는 걸 보면 부자 관계라기 보단 동료 사이에 가까워요. 박 : 매버릭만 과거에서 못 벗어난 게 아니라 영화의 플롯 자체도 똑같아. 마지막에 매버릭의 낡은 격납고에 등장인물들이 다 모이잖아? 모두들 과거에, 추억에 젖는 거지. 하기야 나도 마찬가지였지 뭐. F14의 날개가 펼쳐지는 장면에서 아마 우리 또래 남자들은 속으로 탄성을 질렀을 거야. 아무리 F16, F18이 나왔어도 남자아이들한테는 날개가 접히는 F14 전투기는 로망이거든. 윤 : 맞아요, 저도 그랬어요. 그래서 지금 분석은 하고 있지만 막상 이 영화를 볼 당시엔 그저 재밌게만 봤을 뿐이죠. 한마디로 <탑건2>는 향수에 젖는 영화에요. 그러니깐 톰 형이 짠하게 느껴지는 거고요. <탑건: 매버릭> 보도 스틸 Key Word : 에릭슨(Erik Erikson)의 생의 8단계 이론 프로이트가 아동기의 정신성적 발달에 대해 자세히 분석하였다면, 에릭슨은 성인기 이후의 세 단계를 추가하면서 심리사회적인 발달의 이론을 완성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발달이란 게 아동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성인기 동안에도 계속 된다고 본 거죠. 그렇게 해서 인생을 총 8단계로 나눴고, 각 단계마다 완수되어야 할 과제들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프로이트 개념의 구강기에 해당하는 유아시절엔 기본적인 신뢰를 쌓느냐 아니면 불신감을 키우느냐가 중요합니다. 걸음마를 배우고 배변훈련을 하는 항문기 시기엔 자율성을 키워야하는데 그렇지 못하면 수치심과 회의감이 많아지게 됩니다. 유치원 나이 때인 남근기에는 스스로 무언가를 주도적으로 하느냐, 금지된 것까지 하려다가 죄의식을 느끼게 되느냐가 결정이 됩니다. 초등학교를 다니는 잠복기 아이들은 스스로가 근면한지, 아니면 열등한 지에 대한 감각을 익히게 됩니다. 그러다가 사춘기인 생식기에 접어들면서 자아정체성을 완성하게 되는데 그러지 못하면 역할에 혼란이 초래됩니다. 이후 성인기에 3단계가 추가되는데, 청년기에는 친밀감을 쌓느냐 아니면 세상으로부터 고립되느냐, 장년기에는 생산성을 발휘해 성취를 이루느냐 아니면 그대로 침체되어 버리느냐, 노년기에 이르러서는 자아를 통합하게 되느냐 절망감에 빠지게 되느냐가 결정됩니다. 박성근과 윤병문은 정신과전문의이다. 고려대학교에서 공부를 하였고, 3년 선후배 사이로 같은 대학병원에서 정신과전문의 과정을 수료하였다. 현재 각각 마음과마음정신건강의학과 구로점과 용인수지점의 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두 사람 모두 영화를 좋아한다. 네트워크 원장 회의에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시간을 잡아 영화에 관해 수다를 떨어보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이 글이 쓰이게 되었다.
- 남자들은 왜? ‘탑건: 매버릭’①[영화에 관한 정신과 의사들의 대화]
- 2024. 03. 25 06:59 문화/생활
- [두 명의 정신과 전문의가 한 편의 영화를 두고 정신분석학적 시각과 정신의학 이론을 토대로 다각도로 분석해 보는 코너입니다.] <탑건: 매버릭> 보도 스틸 # 탑건 미해군 전투기 조종사 매버릭은 초계비행 도중 적국의 미그기와 마주치면서 일촉즉발의 위기에 처한다. 하지만 천부적인 재능과 과감함 덕분에 위기를 모면하고, 최고의 조종사를 양성하는 탑건 스쿨에 입학하게 된다. 술집에서 마주친 찰리에게 호감을 느껴 접근해보는데 다음 날 알고 보니 자신의 교관이었다. 몇 주간의 훈련과정에서 정석적인 비행을 하는 아이스맨과 경쟁을 하다가 사고가 발생해 파트너 구스가 죽게 된다. 방황하는 매버릭은 찰리와 가까워지면서 위로를 받는데, 인도양에서 적국과의 교전이 발생해 뒤늦게 합류되어 멋진 비행술로 전투를 승리로 이끈다. # 탑건: 매버릭 30여 년이 지난 현재도 매버릭은 전투기를 모는 조종사이다. 다크스타 프로젝트를 성공시키지만 그는 여전히 무모할 정도로 과감하다. 사령부로부터 핵개발 조직을 일망타진하는 임무를 수행할 조종사들을 가르치라는 명령을 받는다. 자신은 조종사이지 교관이 아니라고 항변하지만 오랜 동료 아이스맨 제독의 설득 때문에 임무를 맡는다. 각지에서 모인 쟁쟁한 조종사들을 훈련하기 시작하는데 그 안에는 죽은 구스의 아들 루스터도 포함되어 있다. 루스터는 감정이 좋지 않았고, 매버릭은 이런 과정에서 옛 애인 페니와 재회한다. 훈련은 힘들었고 임무 완수는 어려워 보였지만 매버릭이 직접 비행해 가능성을 보여줌으로써 작전은 개시된다. 핵시설을 파괴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매버릭과 루스터는 함께 낙오되었다가 가까스로 구출되면서 둘은 화해한다. 윤병문 : 이번에는 <탑건: 매버릭>, 앞으로 설명하기 쉽게 <탑건2>라고 하죠. <탑건2>를 얘기해볼 건데 그러려면 꼭 <탑건1>하고 같이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아요. 이게 진짜 36년 만에 나온, 거의 40년 가까운 세월의 차이가 나는 영화인데…. 박성근 : 윤 원장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는데, 나는 이 <탑건> 영화가 특히 각별한 세대라고 할까? 87년 작으로 되어있는데 내 기억으로는 88년에 우리나라에서 개봉했거든. 난 그때 재수생이라 몰랐는데 대학에 들어간 친구가 그러는 거야, <탑건>이라는 영화가 있는데 남자주인공이 엄청나게 멋지다고. 윤 : 여자들한테도 잘 생겼다고 난리가 났었죠, 이 배우 누구냐고. 톰 크루즈가 대중의 인기를 끈 첫 작품이었죠. 박 : 내 또래한테 각별하다는 얘기가 뭐냐면, 그때가 어렴풋이 기억나는 거야. 근데 얼마 후 막상 영화를 보고 나니까 영화는 별로 재미가 없었어. 윤 : 그렇죠. 사실 스토리는 뻔하거든요. 그래서 영화는 잘 모르겠지만 암튼 주인공이 잘 생겼다, 아니 그보단 뭐라고 할까 너무 탱글탱글하다, 젊음이 확 느껴지는 영화다… 박 : 그렇지. 내가 하고 싶은 얘기가 그거야. 스토리는 뻔한데 사람들이 왜 이렇게 열광할까? 젊다는 얘기처럼 그때 <탑건>에서 보여준 톰 크루즈의 모습은 모든 남자가 선망하는 모습이고 여자들도 매력을 느끼는 모습인 거야. 용감하고 동료애 뛰어나고, 정말 테스토스테론 ‘뿜뿜’이지. 윤 : 근데 <탑건2>를 보면 좀 느낌이 달라요. 물론 여전히 톰 크루즈가 멋있고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이고 아주 관리를 잘 했죠. 톰 형 안 죽었네, 살아있네… 하지만 한편으로는 좀 짠해요. 형 애쓴다, 형도 늙으니깐 좀 어쩔 수 없구나 싶은 거예요. <탑건: 매버릭> 보도 스틸 박 : 그 점이 이 영화가 우리 세대한텐 각별하다는 거야. 우리도 그렇게 늙었으니깐. 톰 형한테 열광하던 고등학생, 대학생이 이제는 그 또래 아이들을 둔 부모가 되어 있잖아. 윤 : 젊음은 좋은 거면서도 사실 무서운 거예요. 이건 톰 크루즈라는 배우 얘기만은 아닌 것 같아요. 그냥 영화 자체가 그래요. 스토리 배경에서도, 뭐라 할까 미국도 이제 늙었다 싶더라고요. <탑건1>이 만들어지던 당시만 해도 정말로 미국이 세계 최고였잖아요? 유일한 라이벌이던 소련도 무너질 무렵이고. 국력만이 아니라 당시에 물건도 ‘미제가 최고야’ 그랬었죠. 일제도 좋았지만 아무래도 우리나라 특성상 미국은 마치 힘센 아버지상과 같은 나라였어요. 박 : 특히 그때까지 우리는 지금처럼 잘 살고 국력이 세지는 못했었으니까. 윤 : 우두머리고 대장이라는 거죠. 그렇게 보면 미국은 상징계의 규칙을 만드는 나라였어요. 국가로 보자면 세계에 대해서. 흔히 경찰국가라는 표현처럼. 그러니까 이 나라 나쁜 나라야 그러면 쳐들어가서 때려 부수고. 박 : 적을 딱 규정할 수 있었지. 미그기와 싸우는 내용이 나오잖아? 미그기라고 하면 소련, 적어도 공산권 국가였던 거지. 윤 : 나치놈들, 소련놈들, 중공군들 그러면서 영화에서 상대 나라 이름을 막 댔어요, 눈치 안 보고. 자기네가 세계의 규칙을 만들었으니깐 마음대로였던 거죠. 근데 그러던 미국이 이번에 <탑건2>를 보고 있자니 미국도 이제 늙었구나, 톰 형만 늙은 게 아니구나 생각되더라고요. 일단 적국의 이름을 옛날처럼 대놓고 말하지 못해요. 그냥 핵무기 개발하는 조직이라고만 하죠. 심지어 무기도 적의 것이 더 좋다고 말해요. 옛날엔 미국 기술이 최고라고 자부했었는데, 상대가 5세대 전투기라서 우리 F18로는 못 이긴다고. 그러니깐 매버릭은 조종사가 더 중요하다며 정신승리 같은 얘기를 해요. <탑건: 매버릭> 보도 스틸 박 : 미국과 할리우드의 그런 분위기가 영화 설정에서도 그대로 반영되는 거 같아. 나중에 다시 말하겠지만, 톰 형이 늙은 것뿐 아니라 영화주인공 매버릭도 같은 처지지. 36년이 지난 지금 동기는 제독이 되어있는데 매버릭은 대령에 머물러있으니까. 윤 : 문화도 그런 거 같아요. 미국 물건만 최고라고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세뇌된 면이 있다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미국적인 생각을 하도록요. 예쁜 것도 바비인형처럼 서양적인 걸 기준으로 삼고요. 근데 세상이 바뀌어서 대표적으로 우리나라 같은 경우 경제적으로 위상이 올라가면서 케이팝을 미국 사람들이 더 좋아하게 되었죠. 박 : 난 좀 다르게 생각하는 게 그렇다고 케이컬처가 한국의 고유한 문화를 보여주는 건 아니잖아? 걸그룹 외모를 봐도 얼굴 작고 다리 길고 다 서구화된 모습이거든. 여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란 말이지. 좋든 싫든 현대 사회는 특성상 서구적인 외모가 더 적합한 건 사실이라고 나는 생각해. 윤 : 그건 문화사대주의나 우생학적인 시각이라고 공격받기 쉽겠는데요? 박 : 그렇긴 해. 그렇다 해도 우리가 인정할 수밖에 없는 건 그게 톰 크루즈든 차은우이든, 아니면 블랙핑크 제니이든 간에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선호하는 무언가가 있는 것만은 사실이야. 사람의 보편적인 성향을 설명하려면 진화심리학 이론이 적당해. 처음에 얘기한 대로 사람들은 왜 톰 크루즈를 보며 열광했을까, 그리고 <탑건2>에서의 톰 크루즈 모습은 <탑건1> 때 준 느낌과 왜 다를까 하는 의문에 대한 답인 셈이지. 윤 : 어떤 환경에 적응하기 적합한 특성이 더 많이 살아남아서 후대에 그 유전자가 전달된다는 게 진화론이죠. 목이 긴 기린이 높은 나뭇잎을 따먹기 유리해서 더 많이 살아남으니까 그 새끼들, 그러니깐 부모 닮아서 목이 긴 기린들이 갈수록 많아지고, 결국엔 목이 긴 기린들만 남는다, 이런 생존경쟁, 자연선택을 말하는 거네요? 박 : 그게 신체 특징만이 아니라 특정 행동도 자연선택된다고 보는 게 진화심리학이야. 그럼 진화되어 내려온 행동이 뭐냐, 사람들의 유전자에 새겨져 있는 행동패턴이 뭐냐를 생각해보자고. 산업화된 건 고작 200년 정도이고, 문명이란 게 만들어진 것도 대개 1~2만 년 정도이지. 근데 호모사피엔스가 세상에 나타난 건 60만 년 전쯤이란 말이야. 이 얘긴 현대인들의 행동 특성의 상당 부분이 사냥으로 먹고살던 때의 습성이란 거야. 윤 : 사냥 문화에 적합한 행동과 심리가 후대로 전달됐다는 거죠. 박 : 사냥해서 잘 살아남기 위한 형질이란 게 뭐냐면 힘이 세고, 달리기가 빠르고, 높은 곳도 무서워하지 않으면서 안 아프고 건강한 거거든. 수십 만 년 동안 인류는 전체적으로 그런 방향으로 진화되어왔지. 그리고 그런 특성들을 부러워하고 자신도 그렇게 되게끔 선망하도록 심리도 형성이 된 거야. 이런 건 아이들의 놀이에서도 확인이 돼. 어린아이들을 보면 그냥 놀아. 놀고 싶어하는 심리는 본능에 가까워, 마치 본능적으로 위험한, 날카로운 것 같은 것을 무서워하는 것처럼 말이야. 그럼 애들은 왜 놀까? 어른이 되었을 때 사냥을 잘하기 위한 예행연습 같은 거야. 애들이 놀 때 보면 막 뛰어, 적당히 높은 데로 기어 올라가 점프하고. 특히 남자아이들은 막대기 같은 거만 잡히면 칼처럼 휘둘러 봐. 아빠만 보면 씨름하자고 달려들지. 윤 : 하지만 그건 남자아이들 얘기고 여자아이들은 다르게 놀잖아요? 인형놀이를 한다던가 소꿉장난을 하죠. <탑건: 매버릭> 보도 스틸 박 : 그렇지. 근데 지금 톰 크루즈라는 남자의 행동에 대해 설명하는 거니까 남자아이들 특성만 얘기하게 되는 건데, 여자아이들의 놀이도 원시 습성으로 설명할 수 있어. 암튼 남자아이들은 장난감을 사도 너프 총, 파워레인저 칼, 장난감 자동차, 리모콘 비행기 같은 걸 골라. 친구들이랑 놀 때도 총싸움을 하고 축구 같은 경쟁적인 운동을 좋아해. 그런 놀이에선 늘 승패가 있고 영웅이 나와. 어렸을 때 이런 식으로 연습한 개체가 나중에 어른이 되었을 때 사냥에 유리한 법이지. 그래서 이런 행동들을 하도록 유전자 속에 각인되어 있어. 윤 : 정신분석학에서는 다르게 보거든요. 라캉식으로 말하면, 그렇게 되는 거는 문화라는 상징계의 규칙을 무의식적으로 아이들한테 주입시켰기 때문이라는 거죠. 넌 남자아이니깐 이렇게 행동해야 해, 칼싸움을 해야지 소꿉장난하면 고추 떨어져, 이런 식으로요. 그리고 이런 것도 있잖아요? 여자형제가 많은 집에 태어난 남자아이가 자기가 여자인 줄 알고 행동하면서 여성화되는 경향이 있다는. 박 : 늘 얘기되는 본성이냐 양육이냐의 논쟁이지. 물론 지금은 둘 다 중요하다고 받아들이고 있고. 근데 난 그 본성을 위주로 설명하려는 거고. 앞서 말한 남자아이의 본능을 톰 크루즈가 잘 보여준다는 거야. 일단 콜사인이 매버릭이야. 매버릭은 우리말로 망아지 같은 어감이거든. 윤 : 그 이름을 듣고 찰리가 ‘엄마가 싫어했냐’며 농담을 하죠. 말 안 듣고 날뛰는 개구쟁이 아들. 박 : <탑건1>에서 전투비행 때 “생각하다간 죽어요”라며 즉각적으로 행동하고, 교전 때 적기의 표적이 될 때까지 일부러 속도를 늦출 정도로 무모하기도 하지. 아이스맨이 “넌 아직도 위험해”라고 경고하고, 상관도 “아버지랑 닮아서 영웅심리가 있다”고 말하지. 윤 : <탑건2>에서도 반복되는 대사가 바로 “생각하지 말고 그냥 해”죠. ▶톰 형이 짠하게 느껴진다면? ‘탑건:매버릭’②[영화에 관한 정신과 의사들의 대화]로 이어집니다. <탑건: 매버릭> 보도 스틸 박성근과 윤병문은 정신과전문의이다. 고려대학교에서 공부를 하였고, 3년 선후배 사이로 같은 대학병원에서 정신과전문의 과정을 수료하였다. 현재 각각 마음과마음정신건강의학과 구로점과 용인수지점의 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두 사람 모두 영화를 좋아한다. 네트워크 원장 회의에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시간을 잡아 영화에 관해 수다를 떨어보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이 글이 쓰이게 되었다.
- 정신과 의사처럼 영화 보기 ‘웡카’②[영화에 관한 정신과 의사들의 대화]
- 2024. 03. 19 07:17 문화/생활
- [두 명의 정신과 전문의가 한 편의 영화를 두고 정신분석학적 시각과 정신의학 이론을 토대로 다각도로 분석해 보는 코너입니다.] <웡카> 보도 스틸 ▶이 영화가 정신과 의사에게 재미없는 이유? ‘웡카’①[영화에 관한 정신과 의사들의 대화]에서 이어집니다. 윤병문 : 오늘 마지막 시간을 정리하는 얘기일 것 같네요. 박성근 : 아까 난 3편이 재미없었다고 했잖아? 1, 2편과 달리 3편은 왜 재미가 없었을까 생각해봤지. 내 딸이 그러더라고. ‘이렇게 영화를 만들면 아이들이 좋아하겠지’라고 생각하면서 어른들이 만든 영화 같다고. 그러니까 어린이의 시각에서 본 게 아니라는 말이지. 동화든 영화든 모든 예술작품은 어린아이들이 느끼는 원초적인 즐거움을 자극해야 한다고 생각해. 윤 : 우리의 무의식을 살살 건드려줘야 재미와 감동이 느껴지는 거죠. 박 : 맞아. 무의식이란 게 뭐냐 하면 두 가지로 이뤄졌어. 하나는 인간이 태어날 때 기본적으로 갖고 태어나는 본능이야. 성욕과 공격성으로 대표되는 건데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이드지. 또 하나는 아주 어린 시절의 경험이야. 엄마와의 이자 관계이든 아빠까지 등장하게 되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이든, 대개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정도 나이까지 있었던 경험의 기억이지. 이런 기억들은 나이가 들어서 사춘기 동안 시냅스의 가지치기가 일어나면서 기억에서 잊혀. 무의식 속으로 억압되는 거지. 윤 : 하지만 그 무의식은 현실의 의식세계에 끊임없이 어떤 영향을 주게 되죠. 박 :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어린아이 같은 마음에 울림을 줘야 좋은 영화라는 거야. 아까 마블 시리즈나 범죄도시 얘기한 것처럼 일단 재미가 있어야 해. 여기서 어린이들의 놀이에 대해 우리가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 아이들이 노는 건 본능적인 행동이야. 가르치거나 배워서 노는 게 아니지. 그럼 애들은 왜 노느냐? 앞으로 생존해서 살아남기 위해서 세상을 탐색하고 연습하는 거지. 물웅덩이를 발로 첨벙 해보고, 나무 위에 기어 올라가 보고, 이 물건을 저 물건에다가 갖다 붙여보고… 그러면서 애들은 까르르르 즐거워해. <찰리와 초콜릿 공장> 보도 스틸 윤 : 즐거워야, 재미가 있어야 세상도 더 열심히 탐색할 거고요. 박 : 무의식 속에 감춰진 그런 아이 같은 마음을 자극해주는 게 재밌는 영화의 조건인 셈이야. 그럼 아이 같은 마음이 뭐냐? 첫 번째로 아이들 코드에 맞는, 그러니깐 아이들 눈높이에 맞는 스토리텔링이야. 어린아이들은 1차 과정의 사고를 하지. 뇌가 아직 미숙해서 신경들끼리 연결이 잘 안되어 있어. 세상을 배우면서 시냅스들을 하나씩 만들어가는 거지. 그러기 위해서 세상 것들을 서로 상관없는 것들끼리도 이리저리 막 연결해봐. 그래서 비논리적이야. 애들이 떠들고 노는 걸 보면 어른들은 좀처럼 이해가 잘 안 돼. 그 말이 무슨 뜻인지, 그게 왜 웃긴 지… 1차 과정 사고 중 대표적인 게 마술적인 생각이야. 1편에서 보면 거품 음료를 먹은 찰리와 할아버지가 하늘로 둥둥 떠오르잖아? 과학적으론 말이 안 되지만 아이들은 그런 장면에서 너무 재밌어하지. 윤 : 3편에서도 초파리가 날개 짓 하면 사람들이 몸이 떠오르는 걸로 나오죠. 박 : 그렇지. 어른들도 똑같아. 아이언맨이 슈트를 입고 하늘로 날아오르고, 스파이더맨은 손바닥에서 거미줄을 발사하지. 다 마술적인 생각들이야. 아이 같은 마음의 두 번째 속성은 쾌락원칙이라고 할 수 있어. 아이들은 즐거운 걸 좋아해. 춥거나 배고프거나 지루한 건 싫어하지. 원작의 기본 설정은 춥고 배고픈 현실이야. 그런데 초콜릿 공장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모든 게 즐거워져. 공장에 들어가자마자 외투부터 벗으라고 하잖아? 춥지 않다는 거지. 그리고 공장 안에는 강물도 잔디도 꽃잎도 다 먹을 수 있는 것들이야. 한마디로 소망을 충족시켜주는 판타지로 가득 찬 공간인 셈이지. 윤 : 저도 왜 하필 초콜릿일까 생각했어요. 달콤하고 금방 기분을 좋게 해주고 웃게 만드는 초콜릿을 먹고 싶지만 현실에서 어린 웡카는 신문 돌리는 일을 해야 하죠. 착한 아이예요. 콤플렉스의 전형인 거죠. 자기 욕망을 그대로 못하고 할아버지 담배 사 피우시라고 하고, 그 좋아하는 초콜릿마저도 식구들과 나눠 먹지요. 박 : 그런 아이들의 판타지가 잘 드러나는 것 중의 하나가 패밀리 로망이라는 게 있지. 오이디푸스 기를 지난 아이들은 사실 진짜 자신의 부모는 따로 있다고, 원래는 왕족이거나 부자라는 환상을 갖곤 해. 어쩌다 보니 지금의 부모 밑에서 살고 있지만 언젠가는 왕자나 공주라는 원래 신분으로 돌아갈 거라고 꿈꾸지. 원작의 결말에서도 보면 공장을 물려받아서 갑부가 되잖아? 윤 : 현실은 찢어지게 가난하고, 2편에서 보면 팀 버튼 특유의 위트처럼 말 그대로 다 쓰러져가는 모습의 집에서 살고 있죠. 박 : 그런 소망을 이루기 위해 이제 아이들이 바라는 세 번째 특징인 적당한 교훈이 가미되어야 해. 마술적인 생각만 하고 쾌락만 좇다가는 망하기 십상이지. 적당할 때 그건 아니라고, 참을 줄도 알아야 훌륭한 어른이 된다고 가르쳐주는 부모, 적당히 달래주는 초자아가 있어야 해. 그래서 동화나 영화의 결말들은 대개 권선징악이라든가 상을 받는 것으로 끝나. 천하무적 마동석이 마침내 악당들을 때려눕혔을 때 보는 사람들은 마음이 편해지지. <웡카> 보도 스틸 윤 :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편에서 타노스에 의해 세상의 절반이 죽어버리잖아요? 그때 사람들이 많이들 당황했어요. 이거 다음 편에 어떻게 마무리할 거냐고. 영화는 재미있게 봤는데 끝이 찝찝해. 박 : 그래서 지금까지 말한 세 가지 요소가 적당히 섞인 영화들을 관객들은 편안하게 즐기는 거지. 오락영화로서 말이야. 난 그런 특징을 아주 잘 보여주는 동화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고 생각해. 시계를 보면서 늦었다고 뛰어가는 토끼를 따라 토끼굴에 들어갔다가, 몸이 커졌다 작아졌다 하면서 자기 눈물에 빠져 헤엄치고, 동물들이랑 토론하고, 미친 모자 장수랑 티타임을 즐기다가 하트여왕의 재판에 끌려가 트럼프 병사한테 쫓기다가 꿈에서 깨어나지. 이야기 전개가 뒤죽박죽이야. 1차 과정 사고이고 쾌락원칙을 따르고 안도하면서 해소되지. 사실 이 동화가 만들어진 배경은 흥미로워. 저자인 루이스 캐롤이 자기 학교 학장의 딸인 앨리스랑 놀아주면서 그날그날 지어서 들려준 이야기를 한데 엮은 책이라고 해. 캐롤은 원래 당시 영국 사회를 풍자하려고 토끼나 모자 장수 등을 등장시켜서 빗댄 거다 보니, 그 상징과 은유를 눈치챈 어른들도 재미나게 읽은 거야. 윤 : 꿈도 똑같아요. 무슨 스토리가 있긴 한데 가만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죠. 말이 안 되니깐 사실 그게 자기 진심인 거예요. 무의식이 드러나는 거니까. 영화도 꿈과 비슷하게 감독이나 작가의 무의식이 드러나게 되어 있어요. 박 : 그 무의식은 등장인물에게로 투영이 되거나, 아니면 영화의 기본 설정 자체로 보여지지. 윤 :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있다.’는 말이 있어요. 라캉이 한 얘기로, 여러 가지로 해석되곤 하는데 이건 제 해석이긴 한데요… 무의식을 설명할 때 흔히 빙산의 일각이라고 표현하잖아요? 물 위에 드러나는 의식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고, 거대한 무의식은 물 밑에 가라앉아 있다고요. 그런데 그 무의식은 너무 커서 우리가 다 알 수는 없죠. 그래서 언어로 구조화될 수 있는 범위까지만 우리는 이해할 수가 있어요. 그런 부분을 우리는 전의식이라고도 표현하죠. 박 : 그렇다면 진정한 무의식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다는 얘기가 되네. 윤 : 그럴 수 있죠. 다르게 표현하자면 실재는 상징화되지 않아요. 물 밑에 남아있는 부분이 항상 있으니까요. 그런 부분이 바로 실재계라고 표현하는 거고요. 실재계는 아무도 모르는 부분이지만 그래도 언뜻언뜻 드러나겠죠. 그렇게 되면, 그 부분을 알게 되면 또 다른 전의식이 생겨나고 하는 거니까. 박 : 그렇다면 엄밀히 말해서 영화에서 드러나는 무의식 부분은 전의식에 더 가까울 거야. 윤 : 영화를 만드는 것뿐 아니라 우리가 감상하는 것까지도 그런 무의식 세계를 느끼게 되는 거니까 흥미를 끌고 재미가 느껴지죠. 박 : 그렇지. 내가 이 영화가 왜 재미있을까 스스로 곰곰이 생각해본다면,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자신의 갈등이나 기억, 특성 같은 것에 대해서 되짚어보는 좋은 기회가 될 거야. 윤 : 하지만 예술적인 은유나 상징을 통하지 않고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면 그건 오히려 불편해져요. 약간 가려져서 나오면 흥미가 생기지만, 대놓고 포르노면 불쾌감이 드는 것과 같은 원리죠.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예로 들자면 <파벨만스>는 대놓고 표현을 해서 대중적으로 흥행하지 못했다고 설명했잖아요? 하지만 팀 버튼은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서 덜 거부감이 들게 숨겨서 표현하니깐 관객들이 훨씬 받아들이기 편했던 거죠. 박 : 자, 이렇게 해서 총 10편이 마무리가 됐어.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했지. <스즈메의 문단속>부터 시작해서 오늘 얘기한 <웡카>까지. 남근의 상징, 애도반응, 열등감 이론, 융의 원형, 나르시시즘 그리고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까지 다양한 설명을 해봤어. 이렇게 다양한 설명이 가능한 것은 사람의 심리라는 게, 특히 무의식이라는 게 아무도 모르는 물밑의 빙산이고 그래서 그걸 바라보는 시선 또한 여러 가지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야. <파벨만스>에서 엄마가 말했듯이 “영화는 꿈”이지. 프로이트가 말한 대로 무의식에 이르는 왕도인 꿈. 그동안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윤 : 수고 많으셨습니다. <웡카> 공식 포스터 Key Word : 대상관계이론(Object Relation Theory) 주로 한 사람의 심리 구조를 분석적으로 설명한 프로이트 이론은 이후로도 계속 발전합니다. 특히 엄마를 비롯한 주변의 인물들이 아이의 심리발달에 아주 큰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죠. 아이가 대하게 되는 사람들을 통틀어 ‘대상’이라고 일컫습니다. 어린 시절 경험한 대상과의 관계는 앞으로 살아가는 데 중요한 기본틀이 됩니다. 대표적으로 엄마와의 관계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나중에 커서도 대인관계에 여러 가지 문제들을 보인다는 얘기입니다. 다시 말해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가 부족하죠. 대표적인 경우가 경계선 성격장애입니다. 채워지지 않는 공허감을 늘 느끼는 이런 사람들은 끊임없이 주변사람들의 사랑을 테스트합니다. 꿈에 그리던 사람이라고 이상화하다가 작은 실망에도 순식간에 그를 비난해버립니다. 변함없이 자신을 좋아해줄 것인지 확인하려는 듯 변덕을 부리면서 상대를 긁습니다. 좋은 사람 아니면 나쁜 사람, 이런 식으로 이분법적으로 편 가르기를 하죠. 하지만 그 결과 그는 더 외로워지고, 이런 악순환은 반복이 됩니다. 박성근과 윤병문은 정신과전문의이다. 고려대학교에서 공부를 하였고, 3년 선후배 사이로 같은 대학병원에서 정신과전문의 과정을 수료하였다. 현재 각각 마음과마음정신건강의학과 구로점과 용인수지점의 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두 사람 모두 영화를 좋아한다. 네트워크 원장 회의에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시간을 잡아 영화에 관해 수다를 떨어보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이 글이 쓰이게 되었다. 왜 여자를 전면에 내세우지? ‘스즈메의 문단속①’ [영화에 관한 정신과 의사들의 대화]■ 프롤로그 박성근 : 오늘부터 우리 둘이서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할 건데, 이 토크에 제목을 달아보면 어떨까? 윤 원장은 혹시 생각해본 제목이 있어? 윤병문 : 글쎄요. 형...https://lady.khan.co.kr/issue/article/202401220655011 거장 스필버그가 이제야 이 영화를 만든 이유? ‘파벨만스’①[영화에 관한 정신과 의사들의 대화][두 명의 정신과 전문의가 한 편의 영화를 두고 정신분석학적 시각과 정신의학 이론을 토대로 다각도로 분석해 보는 코너입니다.] 어린 새미 파벨만은 부모님과 함께 난생처음으로 ...https://lady.khan.co.kr/culture/article/202402051352001
- 이 영화가 정신과 의사에게 재미없는 이유? ‘웡카’①[영화에 관한 정신과 의사들의 대화]
- 2024. 03. 18 06:53 문화/생활
- [두 명의 정신과 전문의가 한 편의 영화를 두고 정신분석학적 시각과 정신의학 이론을 토대로 다각도로 분석해 보는 코너입니다.] <웡카> 보도 스틸 # 찰리와 초콜릿 공장 초콜릿 업계의 큰손 윌리 웡카는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인물이다. 어느 날 5명을 뽑아 공장을 견학시켜주겠다는 그의 얘기에 세상은 흥분한다. 찰리를 비롯한 5명의 어린이가 당첨되어 공장 안으로 들어간다. 공장 안에는 갖가지 신기한 것들이 많았는데, 아이들은 참지 못하고 욕심을 부리다가 난처한 처지에 빠진다. 하지만 찰리만은 끝까지 솔직하고 착한 모습을 보여 공장의 후계자로 낙점받는다. # 웡카 7년간의 항해를 마치고 윌리 웡카는 육지에 도착한다. 돈이 없어 길에서 자야 할 처지가 되었을 때 웬 남자가 다가와 여관으로 안내한다. 하룻밤을 보내고 달콤 백화점에 가서 자신의 초콜릿 제품을 사람들에게 선보이지만 초콜릿 연합은 웡카를 방해한다. 빈손으로 여관에 돌아온 웡카를 여주인은 함정에 빠뜨려 지하 세탁실에 갇혀 죽도록 일만 하도록 만든다. 입양 소녀 누들의 도움을 받아 탈출하려 하지만 움파룸파가 초콜릿을 다 훔쳐가는 바람에 뜻대로 안 된다. 초콜릿을 다시 만들기 위해서는 기린 젖이 필요해 동물원에 가서 젖을 구하고, 그걸로 만든 초콜릿으로 비밀 장사를 해서 돈을 벌어 달콤 백화점에 상점을 열지만 초콜릿 연합의 음모로 엉망이 되어 버린다.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웡카는 세탁소 직원들과 함께 초콜릿 연합의 비리를 파헤치려 하지만 도리어 초콜릿 탱크에 빠져 죽을 위기에 처한다. 그때 움파룸파가 나타나 구해주고 비리에 가담한 자들은 모두 경찰에 붙잡힌다. 용기를 얻은 웡카는 마을에 초콜릿 공장을 짓는다. 박성근 : 우리가 계획한 10편의 영화, 그 마지막이네. 윤병문 : 어떤 영화를 고를 것인가가 제일 고민이었어요. 우리가 얘기하고 싶은 영화들이 사실 사람들이 아주 많이 본 영화가 아닌 경우가 많아요. 흥행에 크게 성공한 영화들은 보기가 편한 것들인데 대개 속이 시원하고 단순하죠. 박 : 대표적인 게 마블 영화들이나 ‘범죄도시 시리즈’ 같은 것들인데, 하지만 이런 영화들을 사람들이 많이 보는 데에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고 봐. 윤 : 오늘 할 영화는 그 중간쯤으로 잡아서 대중의 인기를 끈 오락영화이면서 동시에 저희가 얘기할 거리도 있는 <웡카>에요. 아무래도 요즘 제일 핫 한 배우인 티모시 샬라메 덕분에 흥행하는 것 같기는 하지만요. 박 : 사실 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면 그 배경부터 짚고 들어가야 해. 원작은 로알드 달이 1964년에 쓴 <찰리와 초콜릿 공장>이라는 동화이지. 영어권의 안데르센, 그림형제라고 불릴만한 아동작가이고, 대표작인 이 동화는 아이들이 영어 배울 때 필독서라고 하더라고. 1971년에 영화화돼서 <윌리 웡카의 초콜릿 공장>이라고 개봉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초콜릿 천국>이라고 제목이 달렸어. <찰리와 초콜릿 공장> 보도 스틸 윤 : 영화 제목이 바뀐 건 웡카 초콜릿을 만들어서 팔기 위한 상품화 전략이었다고 하죠. 박 : 그런 식으로 이름이 헷갈리니깐 편의상 1971년작을 1편이라고 부르자고. 그러다가 개성 넘치는 영화로 유명한 팀 버튼 감독이 재해석을 해서 2005년에 <찰리와 초콜릿 공장>을 제작했고, 이게 우리가 잘 아는, 가장 유명한 영화이지. 이게 2편. 사실 1편과 2편의 스토리는 거의 같아. 다만 1편은 찰리의 시각에서 이야기가 전개되는 데 반해 2편은 웡카가 주된 인물로 그려지지. 그의 배경에 대해서도 나오고. 그러다가 이번에 3편 <웡카>가 개봉한 거야. 여기서는 1, 2편의 스토리가 만들어지는 배경, 그러니까 웡카가 초콜릿 공장을 만들게 된 사연을 설명하면서 전편들과는 다른 이야기가 전개돼. 윤 : 프리퀄이죠. 스타워즈로 치자면 에피소드 4부터 먼저 개봉했다가 인기를 끄니까 나중에 그 배경인 1, 2, 3편이 나온 것처럼요. 박 : 이런 배경을 감안해두고서 오늘 선정한 영화인 <웡카>, 그러니까 3편부터 얘기를 해보자고. 일단 나는 이 영화가 재미가 없었어. 윤 : 흥행은 했지만 실망스럽죠. 특히 전편들에 비해서… 너무 갈등이 없어요. 그냥 말 그대로 동화 같고, 있는 그대로 읽히는 영화죠. 박 : 맞아. 영화 같은 예술에는 뭔가 숨은 의미가 있고 상징이 있으면 좋은데. 대표적으로 우리 정신과 의사들은 엄마 아빠와의 관계를 굉장히 강조하는데, 3편에서 나오는 건 아버지는 없지만 엄마가 그냥 엄마야. 착하고 아들에게 헌신적인 전형적인 엄마, 좋은 엄마. 그러니깐 재미가 없어. 윤 : 원작 자체도 전형적이에요. 움파룸파가 부르는 노래를 보면 아주 상징계적이죠. 규칙을 따르라고. 그러지 않으면 풍선이 되거나 쓰레기통에 처박히는 벌을 받는다고, 아주 교훈적이죠. 박 : 교훈적이지. 찰리가 영원히 씹는 껌을 되돌려주니깐 착하다며 상으로 공장을 물려주기까지 하고. 1, 2, 3편 모두 교훈적인데, 유독 3편만이 재미없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고 봐. 1, 2편은 애들만 재미있게 본 게 아니야. 어른들도 너무너무 즐거워했거든. 어른들 마음속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어린 시절의 유아적 소망을 충족시켜주기 때문에 재미가 있는 거거든. 윤 : 3편은 그러질 못했다는 거군요. 박 : 그렇지. 움파룸파의 노래나 동화의 결말은 상징계적이지만, 그 내용은, 특히 초콜릿 공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상상계적이지. 프로이트식으로 얘기하자면 상상계는 쾌락원칙을 따르는 1차 과정 사고이고, 상징계는 현실원칙을 따르는 2차 과정 사고라고 할 수 있어. 동화가 재미있으려면 그 사이를 미묘하게 왔다갔다 해줘야 해. 쾌락도 추구하면서 현실성도 주는 거지. <웡카> 보도 스틸 윤 : 다섯 명의 아이들은 쾌락만을 추구하는, 상상계적인 인물의 전형들이라고 볼 수 있죠. 식탐, 소유욕, 경쟁심 같은 거요. 융의 원형 개념과 비슷해요. 박 : 하지만 3편에서는 그러질 못했어. 쾌락원칙에 따르는 내용이 너무 약해. 일단 기본 설정 자체부터 등장인물들이 다 어른이야. 그리고 초콜릿을 좋아하는 것도 아이들이 아니라 어른들이지. 그러다 보니 초콜릿 연합 같은 어른들이 벌이는 행동이, 이건 초콜릿이 아니라 꼭 무슨 마약상 얘기 같아. 마약을 둘러싼 음모와 암투, 그런 느낌을 준단 말이야. 윤 : 지나치게 상징계만을 다룬다는 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관여되어있기 때문일 수도 있어요. 3편에는 아버지가 없어요. 아버지에 대한 얘기가 전혀 안 나오죠. 그러면서 웡카는 자기보다 위에 있는 사람들하고는 타협을 못 해요. 초콜릿 연합들도 그렇고 경찰서장이나 신부님도 다 자기보다 나이 많고 기득권자들이죠. 다시 말해 권위주의가 있는 사람들은 다 적이고 깨부숴야 하는 존재들에요. 여관 주인 두 남녀한테도 그렇고요. 박 : 어떻게 보면 2편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묻어있는 것 같아. 우선 아버지가 하필이면 치과의사야. 아이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곳이 어디? 치과지. 이빨 뽑는 걸 세상에서 제일 겁내. 발치란 신체에 대한 손상이지만, 한편으론 상징적으로 페니스가 뽑히는 거세를 의미하기도 하지. 그런 아버지는 웡카한테 단것을 먹지 못하도록 해. 그러고는 크고 괴상한 교정기를 씌우는데, 그게 치아를 교정하는 게 아니라 마치 억지웃음을 짓게 만드는 기계처럼 보여. 그러다가 웡카가 집을 뛰쳐나올 때 집들 사이에 아버지 치과건물 한 채만 쏙 빠진 장면이 나오는데 그 모습이 꼭 이빨 빠진 것처럼 보여. 윤 : 나중에 치과건물이 다시 나타나는데 그땐 그 한 채만 딱 서 있어요. 꼭 페니스 같아 보이죠. 상징적인 이미지로요. 하지만 팀 버튼 감독의 다른 영화들, 그러니까 <가위손>이나 <배트맨>과는 다르게, 2편에서는 아버지와 화해를 해요. 그래서 이 영화는 좀 다르다고 생각됐어요. 박 : 실제로 감독 자신이 아버지와의 관계에 문제가 많은 사람이라고 해. 주로 할머니가 키워줬고 죽을 때까지 아버지랑은 말 한마디도 안 했다고 하니까. 윤 : 아버지가 없는 경우에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아니라 그 대신 엄마와의 애착관계가 병적으로 될 수도 있어요. 엄마와의 2자 관계에서 제대로 분할이 안 된다면 성격장애 쪽으로 갈 가능성이 높죠. 아이는 유기불안, 그러니깐 엄마마저 없다면 완전히 버림받게 될 거라는 두려움을 느끼기 쉬워요. 이런 아이들이 보이는 반응은 첫 번째로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 빠지는 거죠.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원하는 것에 맞춰줘요. ‘인간의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라는 말이 있죠. 여관에서 계약서에 서명을 강요받을 때 그게 부당한 데도 그냥 사인을 해요. 지하 세탁실에 갇혀서도 자기만 탈출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해방시켜주려고 하죠. 그들이 바라는 것을 위해서. 박 : 마지막에 엄마가 남긴 딱 한 개의 초콜릿마저도 나눠 먹지. 윤 : 또 다시 버림받지 않으려면 착한 아이가 돼서 남들의 욕망까지도 이뤄줘야 하는 거죠. 눈치도 보고, 언제나 밝고 명랑해야 하죠. 박 : 2편에서 보이는 괴팍하고 신경질적이고 심지어 어린아이를 싫어하는, 조니 뎁이 연기한 웡카와는 아주 다르게, 3편의 티모시 샬라메의 웡카는 해맑고 늘 웃지. 윤 : 유기불안이 클 때 벌어지는 두 번째 가능성은 경계선 성격이 되는 거예요. 집착하고 계속 상대방을 테스트하는 성격이죠. 무슨 일이 있어도 나를 안 버리는 사람을 원하잖아요. 1, 2편의 웡카는 5명의 아이를 불러다 놓고 자꾸 시험해요. 맛있는 걸 보여주고 먹지 말라고. 애들이 못 참고 먹어버리면 가차 없이 벌을 주죠. 처음엔 천사처럼 대하다가 자기 말을 어기면 ‘너는 악마야’ 하는 식으로 극단적인 경계를 왔다갔다해요. 박 : 그러니까 1, 2편의 비슷한 웡카랑, 3편의 다른 웡카 모두 공통적으로 그것이 아버지와의 관계 때문이든 엄마와의 관계 때문이든, 웡카는 기본적으로 유기불안을 가진 사람이라는 얘기네? <웡카> 보도 스틸 윤 : 그래서 제가 보기에는 웡카가 정말로 원했던 게 뭘까? 진짜로 초콜릿 공장을 물려줄 아이를 찾는 것일까 하는 거예요. 사실 전문적으로 경영할 어른을 뽑는 게 더 합리적이잖아요? 그런데 그러지 않는 것을 보면 공장을 물려주는 것에 대해 양가감정적일 수 있다는 거죠. 원래 사람이라는 게 욕망을 꿈꾸면서도 그것이 충족되는 것을 두려워해요. 박 : 그렇지. 거기에는 초자아의 개념이 들어가지. 윤 : 툭하면 아프다는 소리를 하는 할머니는 병원에 데려가 주길 바라는 게 아니죠. 사실 원하는 건 자식들이 자기한테 좀 더 신경 써달라는 거잖아요? 그런 것처럼 웡카도 바라는 것도 공장을 물려주는 게 아니라 누가 같이 있어 주는 거죠. 그래서 2편에선 아버지를 찾아요. 박 :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1, 2, 3편 모두 웡카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이든 유기불안이든 어떤 갈등과 관련된 스토리라는 거네. 윤 원장이 이 영화 자체에 대해 분석을 했다면, 나는 오늘 다른 쪽으로 얘기를 하고 싶어. 아이들은 왜 동화를 좋아하고, 어른들은 왜 영화를 즐길까 하는 얘기지. 윤 : 오늘 마지막 시간을 정리하는 얘기일 것 같네요. ▶정신과 의사처럼 영화 보기 ‘웡카’②[영화에 관한 정신과 의사들의 대화]에서 계속됩니다. 박성근과 윤병문은 정신과전문의이다. 고려대학교에서 공부를 하였고, 3년 선후배 사이로 같은 대학병원에서 정신과전문의 과정을 수료하였다. 현재 각각 마음과마음정신건강의학과 구로점과 용인수지점의 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두 사람 모두 영화를 좋아한다. 네트워크 원장 회의에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시간을 잡아 영화에 관해 수다를 떨어보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이 글이 쓰이게 되었다.
- ‘오펜하이머’의 무의식을 들여다 보니 ②[영화에 관한 정신과 의사들의 대화]
- 2024. 03. 12 07:31 문화/생활
- [두 명의 정신과 전문의가 한 편의 영화를 두고 정신분석학적 시각과 정신의학 이론을 토대로 다각도로 분석해 보는 코너입니다.] <오펜하이머> 보도 스틸 ▶‘IQ는 높은데 EQ가 별로? ‘아카데미 휩쓴 오펜하이머①[영화에 관한 정신과 의사들의 대화] 에서 이어집니다. 박성근 : 오펜하이머가 자기애성 성격인 건 맞다고 봐. 대신 나는 다른 인물, 특히 스트로스도 자기애의 관점에서 바라봤어. 한마디로 말해 이 영화는 나르시시즘에 관한 영화라고 할까? 그러니까 오펜하이머와 스트로스 둘 다 자기애에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보이는 거야. 그럼 자기애가 과연 뭐냐는 근본적인 얘기부터 좀 해봐야겠지. 윤병문 : 자기애는 자기심리학이라는 학파에서 많이 얘기하죠. 처음에 프로이트가 말한 자아-이드-초자아로 나누어 분석하기 시작한 정신분석학은 학문이 발전하면서 자아심리학이라고 불렀죠. 대신 인간의 심리를 계속 연구하다 보니까 한 사람의 심리구조, 즉 자아의 구조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주변 인물, 그러니깐 어떤 대상과의 상호작용도 중요하다고 본 거죠. 그러면서 대상관계이론과 자기심리학이 발전되어 왔고요. 박 : 그렇지. 자기심리학 이론으로 자기애를 설명하면 이 영화의 치밀하고 복잡한 구조가 이해돼. 좀 어렵지만 자기애에 대해 설명을 좀 해볼게. 갓 태어난 아기는 인지적으로 미성숙하기 때문에 세상엔 자기밖에 없는 것으로 느껴. 마치 엄마 배 속에 있을 때처럼 말이지. 근데 자기가 배가 고파서 우니까 먹을 것이 들어와. 엉덩이가 축축해서 우니깐 뽀송뽀송해져. 신기하지. 아기는 자기가 전지전능하다는 착각 속에 살아. 사실은 엄마가 다 해준 건데 말이야. 윤 : 차츰 엄마의 존재를 인지하면서 이자관계, 아빠까지 눈에 들어오면 삼자관계가 되죠. 박 : 그렇게 인지하기 전까지 아이는 자폐적이면서도 전능감에 사로잡혀 있는데 이걸 1차적 자기애라고 불러. 하지만 윤 원장 말대로 누군가가 자기를 도와준 것이며, 자신은 전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차츰 깨닫게 되면서 아이의 자기애는 상처를 입어. 그걸 보완해줘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부모의 역할이야. 아이가 옹알이를 하면 엄마가 너무 기뻐하는 반응을 보이지. 걸음마라도 하면 온 가족이 박수치고 아주 난리가 나. 이런 걸 거울반사라고 부르는 데 이걸 통해서 아이는 손상된 자기애를 어느 정도 회복하게 돼. 또 다른 방식은 아기가 자기 주변의 대상을 전능한 존재로 이상화하는 거야. 우리 엄마는 요리도 잘 하고 우리 아빠는 힘도 세요. 그런 전능한 부모가 자기를 돌봐주니깐 아기 자신도 전능하다며 자기애, 즉 나르시시즘을 회복하게 되는 거지. 이런 거울반사와 이상화전이를 2차적 자기애라고 불러. 윤 : 그런 발달의 과정 어디에선가 문제가 생기면 자기애가 지나치거나 부족해질 수 있는 거죠. 박 : 그렇지. 오펜하이머는 1차적 자기애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고, 스트로스는 2차적 자기애가 완성되지 못한 사람으로 보였어. 이게 무슨 얘기냐면 우선 오펜하이머는 태생적으로 잘난 사람이야. 집안도 유복했지, 어려서부터 똑똑했지, 탄탄대로였거든. 계속 인정만 받아왔을 테니깐 좌절이라는 걸 몰랐을 거야. 자기애 성격은 두 타입으로 나누는데 이런 경우는 오만한 유형이야. 흔히 보는 나르시시스트 환자들이 이런데, 꼭 과대망상증 환자 같아. 근거도 없이 그냥 자기가 제일 잘 났고 대단한 능력을 가진 것으로 착각하며 살지. 또 다른 타입은 예민한 유형이야. 사람들의 평가나 시선에 너무 민감하지. 이건 거울반사나 이상화전이 같은 게 부족해서 2차적 자기애가 잘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야. 한마디로 칭찬을 잘 못 받고 살아온 것을 보상받기 위해 끊임없이 주변으로부터 인정과 존경을 받으려고 해. <오펜하이머> 보도 스틸 윤 : 스트로스처럼 말이죠? 박 : 맞아. 우리가 ‘자존심이 세다’는 말을 하는데 이게 두 가지 의미로 쓰여. 하나는 자존심이 강해서 자만감에 빠져있는 경우지. 다른 하나는 자존심에 상처받는 걸 싫어해서 누가 무시하면 버럭 하는 경우이고. 전자가 오펜하이머이고 후자가 스트로스야. 오펜하이머는 “대답이 별로였다”며 닐스 보어라는 위대한 인물한테 같은 질문을 반복하지. “똑똑하면 많은 게 용서된다”는 말도 하고, 동위원소 수출 건에 대한 회의에서 스트로스한테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고, 심지어 자신의 재능을 몰라주는 교수를 독 사과로 죽이려 들기까지 하지. 상당히 오만해. 윤 : 반대로 스트로스는 자존감이 떨어져 있는 사람처럼 주변 사람들의 시선에 민감하죠. 청문회를 통해 장관으로서 인정받길 기대했고요. 박 : 누가 ‘스트로스씨’라고 부르자 “제독이요”라며 정정해주지. 살아온 과정 자체가 오펜하이머와는 대조돼. 가난한 집안 태생이라 과학 공부를 그만두고 구두판매원이 되었는데, 오펜하이머가 ‘미천한 구두판매원’이라고 표현하니깐 발끈하지. 스트로스는 과민한 나르시시스트라고 볼 수 있어. 사실 이 영화의 줄거리를 한 줄로 말하자면 오만한 오펜하이머한테 무시당한 과민한 스트로스가 복수를 하는 과정이거든. 윤 : 자기애를 지키기 위해서 둘이 힘겨루기를 한 것 같죠. 박 : 놀란 감독은 영화를 간단하게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고 했잖아. 이 영화도 알고 보면 꽤 복잡해. 영화는 첫 장면이 중요한데, 오펜하이머 얼굴에 ‘분열’이라는 자막이, 스트로스 얼굴에 ‘융합’이라는 자막이 나오지. 사전적으로야 핵분열과 핵융합, 그러니까 원자폭탄 개발과 수소폭탄 개발을 뜻하는 거라지만, 사실 두 인물의 인생 과정을 보여주는 단어로 보이기도 해. 오펜하이머가 유수의 과학자들을 한데 모아 맨해튼 프로젝트를 성공시키는 것 같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로브스 장군과 정치인들한테 이용당한 셈인 거지. 자기가 제일 잘 난 줄 알았는데 말이야. 게다가 청문회에 가서는 동료 과학자들의 배신도 이어지지. 자기애가 분열되는 거야. 오펜하이머가 블랙홀 설명을 할 때 이런 말을 해. “별이 클수록 소멸의 과정도 더 격렬하다. 중력이 너무 응축되면 모든 걸 집어삼킨다”라고. 자기애가 너무 커서 자아가 분열되는 결과가 되는 거지. 윤 : 반대로 스트로스는 융합이 되는 건가요? 박 : 이 사람은 자기애가 부족한 상태에서 계속 타인으로부터 인정을 받아서, 그러니까 거울반사를 받으면서 점점 과대해져 가는 거거든. 그 덕에 구두판매원에서 제독을 거쳐 장관후보자까지 올라간 거지. 하지만 끝없이 인정받길 원해. 그걸 안 해준 게 오펜하이머야. 반면에 아인슈타인은 스트로스에게 이상화의 대상이야. 가장 위대한 과학자니깐. 그래서 아인슈타인이 자신의 말에 대답하지 않은 일을 두고 아인슈타인을 욕하는 게 아니라 오펜하이머를 의심하지, 이렇게 자기애를 키우기 위해 스트로스는 계속해서 인물과 권력을 규합해. 이런 말을 하잖아? “힘은 그림자 속에 머무는 거라고.” 융합이지. 하지만 이쪽으로 치우친 과민한 자기애도 결국엔 실패하지. 스트로스도 장관이 되진 못하잖아. 한마디로 적당한 자기애는 삶을 열심히 살아가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지만, 그게 지나치면 때론 적을 만들고 스스로 상처를 받게 된다는 거야. 윤 : 저는 여기서 오펜하이머가 이런 식으로 평가받게 되는 이유에 대해 좀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그를 표현하는 말이 원자폭탄의 아버지잖아요? 상징적인 아버지라는 거죠. 그 아버지라는 단어는 무의식적인 질서 같은 거예요. 비슷한 걸로 오펜하이머가 하는 말이 “난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고 하죠. 이것도 권위자를 상징해요. 그런데 그런 오펜하이머가 결국엔 몰락하잖아요? 박 : 그렇지. <오펜하이머> 보도 스틸 윤 : 프로이트가 쓴 <토템과 터부>라는 책에서 보면 원시사회의 아버지가 나와요. 아들들이랑 대립하다가 아들들이 아버지를 죽이죠. 여자를 포함해 모든 것을 다 차지하고 있던 아버지를 죽인 다음에 아들들이 보니까 너무 무질서해진 거죠. 그러니깐 이제 협정을 맺어요. 서로 경쟁만 하다가 조직체가 완전히 붕괴되는 걸 막기 위해서 죽은 아버지의 법을 받아들이기 시작해요. 예를 들어 근친상간을 하면 안 된다는 터부가 만들어지면서 이제부터는 다른 여자는 포기하고 자기 여자만을 사랑해야 한다는 법이 만들어지죠. 결국 아버지는 죽은 뒤에야 권위가 세워지는 거예요. 권력과 힘이 있는 아버지는 경쟁자이지만, 죽고 나면 존경을 받게 돼요. 박 : 그러니까 오펜하이머도 몰락해서 힘이 없어지고 나니까 원자폭탄의 아버지라고 추앙을 받게 되는 거군. 아인슈타인도 그런 얘기를 하지. 어디 가서 강연한 뒤 연어구이나 먹고 훈장이나 받으면서 지내게 될 거라고. 실제로 그렇게 되거든. 윤 : 게다가 죽고 나니까 자신에 대한 영화까지 만들어지는 거죠. 박 : 난 이 영화의 원작인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라는 제목도 오만하다고 봤거든. 신이잖아. 그런데 윤 원장 생각은 사후에 이상화되고 심지어 신격화까지 된 거라는 거네. 근데 난 또 다르게 본 것이, 영화를 보면 오펜하이머의 단점들이 그대로 다 드러나. 이건 성웅 이순신 같은 위인전 얘기가 아니야. 머리는 똑똑할지 몰라도 성격적으로 결함도 많고 인간관계도 그다지 좋지는 않아. 자기애성 성격자들의 특징 중 하나가 타인에 대해 미안함이나 죄책감을 잘 느끼지 않는 거거든. 남편이 있는 여자를 꾀어서 임신을 시킨다거나 오래된 애인한테 그 사실을 무덤덤하게 얘기하고는 매정하게 차버리지. 윤 : 오늘이 끝이라고 하면서도 필요하면 또 언제라도 올 수 있다고도 하죠. 박 : 하지만 한편으로는 원자폭탄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큰 죄책감을 느끼면서 자기모순에 빠지기도 해. 그 잘난 오펜하이머도 사실 들여다보면 복잡한 면도 있다는 거야. 인상적인 장면이 청문회 때 발가벗은 채 앉아있는데 진이 나타나서 노골적인 성행위를 해. 그만큼 오펜하이머는 그 자리에서 수치심을 느꼈다는 걸 상징적으로 나타내주는 거지. 초반부에 오펜하이머가 “재판장님”하고 부르니까 청문회 위원들이 “우린 판사가 아닙니다”라고 말해. 삶을 재판받는 기분이었을 거야. 그리고 스트로스도 똑같았어. 장관 청문회에 들어가면서 “삶을 재판받는 기분”이라고 명확하게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지. 그렇게 보면 이 영화는 오펜하이머를 단순히 추앙하는 것이 아니라, 분열과 융합, 컬러와 흑백, 오펜하이머의 시각과 스트로스의 시각을 대비하면서 한 사람의 입체성을 잘 드러내 보여준다고 볼 수 있지. 윤 : 한편으로는 이런 것들이 오히려 오펜하이머가 무의식적으로 의도한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원자폭탄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죄책감이 어떤 사죄의 행동을 하게끔 했다고 할까요? 수소폭탄 개발에 반대했다거나, 더 중요하게는 초자아가 스트로스라는 대리인을 통해 자아를 벌준 것이죠. 그래서인지 청문회 자리를 재판받는 것처럼 느끼고, 검사의 공격에 그저 당하고만 있어요. 이런 심리는 사실 무의식적으로 면죄부를 받는 것이기도 해요. 어린아이가 컵을 깼을 때 엄마한테 크게 혼나고 나면, 깬 실수에 대한 잘못은 이제 다 용서받았다고 느끼는 것과 같죠. 박 : 그것도 충분히 가능한 설명이네.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은, 여러 측면으로 해석해볼 수 있는 영화인 것 같아. <오펜하이머> 포스터 Key Word : 성격장애(Personality Disorder) 성격장애란 성격상으로 문제가 심각하여 일상생활에 큰 지장을 주는 경우를 말합니다. 총 10가지의 성격장애가 있는데, 이들은 특징적인 패턴에 따라 A, B, C의 세 군으로 분류됩니다. A군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괴팍하고 기이한 특성을 보이는데, 끊임없이 타인을 의심하는 편집형 성격, 세상에 무관심하여 사람들과 어울리려 하지 않는 분열성 성격, 독특한 방식으로 생각하며 기행을 일삼는 분열형 성격 등이 포함됩니다. B군의 사람들은 감정적이고 변덕스러워 행동을 예측하기 힘든 특성을 보이는데, 남들의 입장을 무시하고 피해를 주는 반사회성 성격, 대인관계와 정서상태가 수시로 변해 종잡을 수가 없는 경계선 성격, 감정 표현이 극적이며 늘 관심의 대상이 되고 싶어 하는 연극성 성격, 스스로가 대단하다고 믿기 때문에 남들을 무시하면서 늘 존경받기를 바라는 자기애성 성격 등이 해당됩니다. 그리고 C군 환자들은 소심하고 불안해하는 사람들로 타인으로부터 상처를 받을 것을 두려워 해 인간관계를 꺼리는 회피형 성격, 자신감이 없어 누군가로부터 계속 도움을 받으려는 의존성 성격, 정리정돈과 완벽함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강박성 성격 등이 있습니다. 박성근과 윤병문은 정신과전문의이다. 고려대학교에서 공부를 하였고, 3년 선후배 사이로 같은 대학병원에서 정신과전문의 과정을 수료하였다. 현재 각각 마음과마음정신건강의학과 구로점과 용인수지점의 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두 사람 모두 영화를 좋아한다. 네트워크 원장 회의에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시간을 잡아 영화에 관해 수다를 떨어보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이 글이 쓰이게 되었다.
- ‘IQ는 높은데 EQ가 별로?’ 아카데미 휩쓴 오펜하이머①[영화에 관한 정신과 의사들의 대화]
- 2024. 03. 11 06:43 문화/생활
- [두 명의 정신과 전문의가 한 편의 영화를 두고 정신분석학적 시각과 정신의학 이론을 토대로 다각도로 분석해 보는 코너입니다.] # 맨해튼 프로젝트 자신을 무시하는 교수를 독살하려 할 정도로 정서적으로 불안정하던 오펜하이머는 닐스 보어의 강의를 들은 뒤 마음을 잡고 이론물리학 연구에 매진한다. 그 과정에서 여러 과학자와 인연을 맺고, 공산주의자들과 어울리기도 하면서 유부녀이던 키티와 결혼을 한다. 2차 대전이 한창이던 때 그로브스 장군으로부터 독일이 개발 중이던 핵폭탄을 먼저 만들어줄 것을 요구받는다. 학계 인맥 등을 통해 유수의 과학자들을 한데 모아 기적적으로 맨해튼 프로젝트를 성공시킨다. 핵폭탄은 일본에 투하되어 전쟁을 승리로 이끌지만 수많은 희생자를 낳게 된 것에 죄책감을 느낀 오펜하이머는 더 강력한 무기인 수소폭탄의 개발은 반대한다. # 1954년 오펜하이머 청문회 원자력위원회 보안 승인에 대한 청문회에서 오펜하이머는 검사의 집요한 추궁에 시달린다. 젊은 시절 공산주의자들과 어울렸던 경력이 문제가 됐는데, 특히 옛 애인인 진과의 계속된 불륜관계는 오펜하이머를 곤혹하게 만든다. 불공정한 청문회 진행과 동료 과학자들의 배신으로 결국 위원회 자격을 박탈당하는 수모를 겪는다. # 1959년 스트로스 청문회 장관 임명 청문회를 무사히 통과할 거라 예상되는 가운데에서도 스트로스는 긴장을 한다. 특히 공산주의자일 가능성이 있는 오펜하이머를 고등연구원 소장으로 앉힌 경력이 역풍을 맞는다. 급기야 오펜하이머에 대한 시기심 때문에 그의 청문회를 불공정하게 사주했음이 드러나면서 장관으로 임명되지 못한다. <오펜하이머> 보도 스틸 박성근 : 이번에는 최신의 따끈따끈한 영화지. <오펜하이머>. 가장 주목받은 영화이기도 하고. 어떻게 봤어? 윤병문 : 너무 길어요. 3시간. 한 번으로는 다 파악이 안 돼서 이번에 재상영하길래 영화관 가서 다시 봤어요. 박 : 나도 와이프랑 함께 영화관 가서 봤었어. 미리 유튜브로 역사적 배경에 대한 사전 지식도 좀 보고 갔지. 원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가 머리를 많이 써야 이해가 되잖아? <메멘토>부터 <테넷>까지. 그래서 처음엔 마음 단단히 먹고 갔는데 첫 소감은 그냥 ‘오펜하이머’에 대한 전기영화인 거야. 복잡한 거 없이. 그런데 이번에 다시 보고 나니까 사람 심리에 대해서 굉장히 분석적으로 머리를 쓰면서 만든 영화 같더라고. 윤 : 근데 그러기에는 등장인물에 대한 배경이 너무 부족했어요. 그 사람들의 심리를 이해해보려고 해도 주어진 단서가 많지 않아요. 심지어 핵폭탄 개발이라는 역사적인 사실을 둘러싸고 너무 많은 사람이 나와서 하나의 핵심에 집중이 안 되고 좀 흐트러진 느낌을 받았어요. 박 : 나도 그랬어. 오펜하이머에 대해 검색해 봐도 유년 시절에 대한 얘기가 별로 없어. 그냥 어렸을 때부터 똑똑하고 공부 잘했다는 내용 밖에…. 윤 : 물론 이게 영화니까 실제랑은 다르게 감독이 각본에 맞춰 바꾼 부분도 있겠죠. 그래서 이번에는 영화에서 보여주는 말과 행동, 그러니깐 현 상황만 보고 이 사람을 판단해야 한다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전제로 하고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아요. 일단 특징적인 거는 오펜하이머는 성격에 문제가 좀 있었던 것 같다는 거죠. 박 : 주변 인물들도 그렇게 얘기를 하지. ‘그 자만심만큼이나 중요한 사람’이라고. 윤 : 정신과에서 다루는 영역을 보면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죠. 먼저 신경증적인 분야, 그러니깐 누구나 조금씩은 가지고 있을 수 있는 불안이나 우울, 강박 같은 것들이요. 이게 너무 커져서 본인이 괴로울 정도가 되면 노이로제가 되죠. 그다음은 정신병인데 보통 사람들한테는 없는 거, 예를 들어 환청이나 막상 같은 게 있는 거예요. 세 번째는 성격적인 문제인데 이건 신경증이나 정신병과 달리 자기 자신보다는 주변 사람들이 더 괴로울 수 있죠. 이런 성격 문제는 또 세 가지로 분류되는데, 오펜하이머는 그중에 B형 성격에 해당하는 자기애성 성격일 가능성이 있어 보여요. 박 : 그건 나도 동의하고 그런 식으로 해석되더라고. 윤 : 아니면 다른 식으로 보면 머리가 좋은 천재들에서 종종 보이는 문제인데, IQ는 높은데 EQ가 별로인 경우일 수도 있어요. 심하면 약간의 자폐 성향을 가지고 있는 거라고 볼 수도 있고요. 아스퍼거성이라고 할까요? 다른 사람의 감정에 공감을 잘 못 하는거죠. 거기다가 특정한 행동을 반복하기도 해요. 애인인 진 테트록한테 매번 꽃을 들고 가는 것처럼요. 박 : 그렇다고 오펜하이머가 자기애성 성격장애나 아스퍼거증후군을 가진 환자라는 얘기는 아니지. 그런 성향이 있는 것 같다 정도. <오펜하이머> 보도 스틸 윤 : 그렇죠. 그냥 그런 점이 두드러지는 것 같다는 거죠. 자기애성 성격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늘 남들보다 뛰어난 존재가 되어야 하죠. 찬사와 인정을 받아야 하고요. 속으로는 무의식적으로 자신감이 없어서 그런 걸 수도 있지만요. 그래서 이런 사람들이 리더가 됐을 때 잘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사람들을 조종하려 들곤 하죠. 박 : 스트로스도 오펜하이머가 자신과 과학자들 사이를 이간질한다, 아인슈타인한테 내 흉을 봤을 거라고 말하지. 윤 : 실제로 그랬을 가능성도 있어요. 저는 이 영화에서 나오는 중요한 인물을 4명으로 봤어요. 오펜하이머와 그의 부인인 키티, 애인인 진, 그리고 스트로스 제독이요. 먼저 스트로스 제독은 피해망상이 좀 있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망상장애 환자라는 얘기까지는 아니고 편집증적이라는 거죠. 망상이라는 거는 남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혼자 잘못된 믿음을 갖고 잘 설득이 되질 않아요. 자기 심리 속에서는 그게 진실이기 때문이에요. 대표적인 게 의처증이나 의부증 같은 질투망상인데, 스트로스는 일종의 피해망상을 가진 것 같아요. 물론 이런 경우의 망상은 조현병에서 보이는 것처럼 기괴하거나 아주 비현실적인 건 아니죠. 박 : 그래서 사람들이 언뜻 보기엔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 윤 : 편집증적인 사람들은 자신을 박해하는 사람을 제거하기 위해서 소송을 한다든가, 영화에서처럼 청문회 같은 걸로 엮어서 괴롭히죠. 그래서 악역처럼 보이기도 해요. 박 : 그러니까 오펜하이머는 실제로 스트로스를 이간질했을 수 있고, 편집증적인 스트로스는 그걸 민감하게 눈치채고는 오펜하이머를 벌주려고 했다는 거군. 윤 : 자기애성 성격이랑 편집증적인 성격이라고 파악한 것처럼 키티를 분류하자면 히스테리 성향이 있는 걸로 보여요. 주변의 관심을 끌려는 연극적인 성격인데 이런 사람들은 실제로 어느 정도 매력적이기도 해요. 영화에서도 관심을 끄는 행동도 하고 감정적으로 잘 안정되지 못하고 충동적이기까지 해요. 박 : 오펜하이머 청문회 때에도 남편한테 왜 그렇게 당하고만 있냐며 공격하라고 자꾸 주문하지. 뒤끝도 있어서 배신자 텔로한테는 끝까지 악수도 안 하잖아? 하기야 결혼 과정도 그래. 여러 남자와의 결혼이 있었고, 유부녀인 상태에서 오펜하이머와 사귀고는 덜컥 임신까지 해버리지. <오펜하이머> 보도 스틸 윤 : 더군다나 자신이 주목을 받아야 만족이 되기 때문에 히스테리성인 사람들은 육아 같은 걸 매우 힘들어해요. 자신을 희생해서 자기 아이를 돌봐야 하는 게 너무 힘든 거죠. 키티도 사실 그 시대 배경이라든가 전업주부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물론 육아가 쉬운 건 절대 아니지만, 지나치게 힘들어해요. 우는 아이를 방치하고 술만 마시다가 심지어 입양 보내려고 하기까지 하죠. 박 : 그럼 진 테트록은 어떤 성격에 해당할까? 문득 드는 생각이 우울성격 아닐까 싶어. 물론 성격장애 유형 10가지 내에 포함되는 분류는 아니긴 하지만…. 윤 : 맞아요. 저도 그렇게 봤어요. 오펜하이머를 좋아하면서도 그의 사랑을 받아들이질 않아요. 매번 꽃을 받아도 쓰레기통에 버리죠. 마치 자신은 누군가의 사랑을 받을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는 의미처럼요. 일종의 마조히즘이죠. 결국 잔인하게 이별을 통보받고는 자살해버리고요. 근데 저는 여기서 오펜하이머와 진과의 관계가 흥미로웠어요. 애인 사이이다가 나중엔 불륜 관계가 되잖아요? 진은 오펜하이머에게 약간 엄마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도 싶어요. 이루어질 수는 없지만 언제라도 돌아갈 수 있는 그런 대상이요. 거기다가 진은 공산주의자예요. 공산주의라는 게 사실은 금기잖아요? 금기를 어겨야 쾌락이 오는 거죠. 박 : 또 다른 식으로 보면 오펜하이머는 자기애성이고 키티는 히스테리성이란 말이야? 둘은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어. 같은 B유형의 성격이라서 비슷한 점이 많기 때문이지. 송곳 대 송곳처럼. 하지만 진과는 달라. 진은 우울이야. 그러면 오펜하이머랑 합이 맞거든. 하나는 튀어나와 있는데 다른 하나는 들어가 있어. 자존심에 센 오펜하이머는 자존감이 떨어져 있는 진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고, 진은 오펜하이머한테 돌봐주고 싶은 대상이 되지. 윤 : 그런 식으로 성격 유형에 따라 찰떡궁합이거나 상극인 패턴들이 있죠. 박 : 오펜하이머가 자기애성 성격인 건 맞다고 봐. 대신 나는 다른 인물, 특히 스트로스도 자기애의 관점에서 바라봤어. 한마디로 말해 이 영화는 나르시시즘에 관한 영화라고 할까? … … ▶‘오펜하이머’의 무의식을 들여다 보니 ②[영화에 관한 정신과 의사들의 대화]로 이어집니다. 박성근과 윤병문은 정신과전문의이다. 고려대학교에서 공부를 하였고, 3년 선후배 사이로 같은 대학병원에서 정신과전문의 과정을 수료하였다. 현재 각각 마음과마음정신건강의학과 구로점과 용인수지점의 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두 사람 모두 영화를 좋아한다. 네트워크 원장 회의에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시간을 잡아 영화에 관해 수다를 떨어보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이 글이 쓰이게 되었다.
- ‘어머니가 필요한 아들의 이야기?’ 헤어질 결심②[영화에 관한 정신과 의사들의 대화]
- 2024. 03. 05 07:09 문화/생활
- [두 명의 정신과 전문의가 한 편의 영화를 두고 정신분석학적 시각과 정신의학 이론을 토대로 다각도로 분석해 보는 코너입니다.] <헤어질 결심> 보도 스틸 ▶‘서래와 해준, 어디가 닮았다는 거죠?’ 헤어질 결심①[영화에 관한 정신과 의사들의 대화]에서 이어집니다 윤병문 : 여기서 서래가 왜 중국인인가에 의미가 있어요. “한국말 익숙하지 않습니다.” 그러잖아요. 라캉에서는 우리가 말을 할 때 그 내용보다는 실수라던가 어떤 분위기 이런 것들이 더 중요하다고 보거든요. 왜냐하면 그런 데에서 무의식, 그러니까 본심이 드러나는 거죠. 언어 같은 의식적인 내용들은 이미 억압되고 검열돼서 나오는 것들이니까요. 그러니까 한국말에 익숙하지 않다는 것은 본심을 더 잘 표현할 수 있다는 설정인 셈이죠. 박성근 : 그 얘기는 둘이 언어가 달라서 꼭 의미가 정확하게 전달되지 않더라도, 어떤 마음으로 어떤 음성과 시선을 전달해주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거네. 윤 : 그렇죠. 그래서 저는 돌봐줄 부모가 필요한 아이와 부모 역할을 해주는 대상 사이의 관계 이야기라고 봤어요. 1부는 아빠를 필요로 하는 딸의 이야기이고, 2부는 엄마가 필요한 아들의 이야기에요. 여기서도 지금쯤은 다들 짐작하셨겠지만, 이 영화에서도 서래에겐 아빠가 없어요. 언급되질 않아요. 어쨌든 아이는 자기를 지켜봐 주고 속삭여주는 부모를 원해요. 그런데 이렇게 원하는 것이 금지될 때엔 그 욕망이 더 커지거든요. 금지된 것이 더 욕망을 자극하죠. 규칙을 어길수록 쾌감은 커져요. 박 : 그냥 남녀 간의 사랑이면 별로 쾌감이 없지만, 살인자와 형사의 관계라면, 이게 현실적으로 금지된 것들이니까 더 애절한 거지. 윤 : 아버지가 필요한 여자인 서래 이야기에서 남근을 상징하는 게 나와요. 남편을 떨어뜨려 죽인 산 모양이 꼭 남근석처럼 생겼어요. 반대로 서래가 읽어주는 책 이름은 산해경이에요. 그렇게 보면 1부는 남성적 이미지인 산이고, 2부는 엄마의 이미지인 바다인 거죠. 박 : 그럼 해준은? 부모에 대한 내용은 안 나오지만 결핍은 별로 없어 보이잖아? 아내와의 관계도 안정적이고. <헤어질 결심> 보도 스틸 윤 : 해준은 상징계적인 인물이죠. 규칙과 규범을 따르는. 근데 서래는 더 본능적이라서 무섭단 말이에요. 위험하죠. 그게 두려워서 서래를 떠나게 되는데 어떻게 보면 두 번째 거세인 셈이에요. 첫 번째는 나에게 편안함과 쾌락을 주는 대상인 엄마를 갖고 싶은데 그건 근친상간으로 금지된 거니까 포기했었죠. 그러고선 규범에 따라 살아가고 있었는데 서래가 나타난 거야. 매력을 느끼니까 불안해지는 거죠. 금지된 사랑을 하니깐 붕괴가 돼요. 나중에 서래가 그러잖아요. “날 사랑한다고 말하는 순간 당신의 사랑이 끝났고, 당신의 사랑이 끝나는 순간 내 사랑이 시작됐다.” 이 말의 의미는 이래요. 해준이 사랑한다고 말한 적은 없어요. “난 완전히 붕괴됐어요”라는 말을 서래는 사랑한다는 말로 받아들인 거예요. 어린 시절의 상상계, 아니면 무의식의 세계인 실재계의 사랑과 쾌락을 느끼면서, 주이상스라는 죽을 정도의 향락 충동까지 느끼면서, 해준은 질서와 규칙의 세계인 상징계가 붕괴되는 경험을 해요. 불안해진 해준은 다시 안정적인 상징계로 돌아가려고 아내 정안이 있는 곳으로 도망을 가죠. 박 : 다시 한번 쾌락의 원천을 잃어버리는 거니깐 이게 두 번째 거세라는 거군. 그래서 해준은 우울증에 빠지는 거네. 윤 : 그러니까 이제 2부는 어머니가 필요한 아들의 얘기인 거죠. 그걸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게 서래가 두 번째 남편의 시체를 물로 씻는 장면이에요.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는데 해준이 피 냄새를 싫어해서라잖아요. 엄마가 애 힘들까 봐 해주는 거죠. 우리 애 이런 거 보면 안 돼 이런 식으로. 그리고 아까 얘기했듯이 해준이 시선으로 지켜봐 줬던 것처럼 서래는 자기 목소리로 들려줘요. 박 : 그치. 해준이 잠을 못 자니깐 미 해군이 개발한 수면법이라면서 자기 목소리를 들려주지. 윤 : 게다가 이번엔 서래가 해준을 지켜보면서 이야기를 해줘요. 그게 상황이 직접 말해주지는 못하니깐 애플워치에다가 말을 해요. 잠을 못 잔 것 같네, 수염을 안 깎았네. 엄마 같은 행동이란 말이죠. 그러니까 서래는 해준에게 바다 같은 엄마다…. <헤어질 결심> 보도 스틸 박 : 근데 난 여기서 반대로 본 게 윤 원장은 서래가 바다고 해준이 산이라고 했잖아? 난 거꾸로 보였어. 서래가 산이고 해준이 바다야. 왜냐하면 일단 해준 이름에 바다해(海)자가 들어가. 그리고 질곡동 사건, 왜 이 얘기를 집어넣었을까 궁금했는데, 범인 이름이 홍산오잖아. 여기엔 산(山)자가 들어가. 홍산오의 러브스토리가 바로 서래의 러브스토리야. 질곡동 사건 얘기를 듣고는 서래가 그러잖아? “한국 사람들은 좋아하는 사람이 결혼했다고 좋아하기를 멈춥니까?” 딱 자기 얘기거든. 유부남인 해준을 좋아하는…. 그래서인지 서래는 홍산오의 마음을 알아. 홍산오가 지금 어디 있는지 맞히지. 그리고 홍산오도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 때문에 살인을 저지르잖아? 앞으로 서래도 해준때문에 살인한다는 복선이기도 해. 그러니까 서래는 산인 셈이지. 윤 :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요. 박 : 그래서 서래는 남편을 산에서 죽이지만, 자신은 바다에 빠져서 죽어. 해준한테 빠져서 죽다는 상징처럼. 윤 : 이름 얘기하니까 생각난 건데, 이 영화에서는 박찬욱 감독 특유의 언어유희가 보여요. 아까 해준 아내의 이름이 정안이라고 말씀하셨잖아요? 성도 안씨라서 안정안. 그리고 대사에서 “원전 완전 안전해요”라는 말장난도 나오죠. 그렇게 따지고 보면 송서래와 장해준이라는 이름에서도 뭔가를 유추해볼 수 있어요. 둘의 성을 합치면 송장이에요, 죽음을 뜻하는. 서쪽에서 온 여자라는 의미의 서래, 거기다가 떠나는 걸 뜻하는 송, 그래서 송서래 아닐까 했고요. 장해준도 길게 바다에 머물다, 그러니깐 서래가 사라진 바다에 오랫동안 마음을 두게 된다 이런 게 아닐까 싶어요. 박 : 그런 거야 감독만이 알겠지. 윤 : 다시 주제로 돌아가서, 남녀가 왜 사랑에 빠지는가를 보면 라캉이 그런 얘기를 했거든요, ‘궁정풍 사랑’이라고. 이게 무슨 뜻이냐면 옛날에 기사들이 그냥 어떤 한 여성을 정해놓고 되게 신격화를 하는 거예요. 너무 예쁘고 높은 존재로 이상화하고는 그 사람을 위해서 막 목숨을 바치는 거죠. 그런데 그 여자를 실제로 가지게 되면 오히려 그게 환상이 깨지는 거예요. 그러면 죽음에 이르는 길인데 살려면 그냥 환상 속에서 머물러야 하는 거죠. 그래서 이 영화에서도 둘이 사귀는 동안 자지도 않고 결국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죠. 박 : 현실의 연애에서도 그렇잖아. 서로 잘 모를 때 설레고 잘해주는 거지 막상 결혼하고 나면 지지고 볶고 싸운단 말이야. 영화에서도 만약에 베드신이라도 들어갔으면 감흥이 덜했을 거야. <헤어질 결심> 보도 스틸 윤 : 왜 1, 2부가 다른 건가, 남녀의 그런 모습을 다 갖고 있는지 생각해봤더니 박찬욱 감독이 여성 작가랑 둘이서 계속 상의하면서 시나리오를 썼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두 사람의 입장을 참 미묘하게 잘 살린 이런 훌륭한 영화가 나온 게 아닌가 싶어요. 박 : 나는 서래와 해준이 무의식적으로 자신과 닮은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익숙하니까 편하니까 서로에게 끌렸다가 현실은 그게 아닌 걸 깨닫고는 헤어지게 되는 거라고 봤어. 그런데 윤 원장은 아빠나 엄마와의 관계가 상대에게 투영이 돼서 환상을 갖고 좋아하는 거라고 해석하는 거네. 그럼 둘이 헤어지기로 결심한 이유도 나랑은 다르겠네. 윤 : 사랑은 눈으로 시작되었다가 귀로 지속된다는 얘기가 있잖아요. 영화에서도 응시로 시작했다가 녹음된 소리로 지속되죠. 1부에서 서래는 아빠가 필요한 딸이었지만, 2부에서는 녹음된 해준의 음성을 들으면서 이제 자신이 엄마로서, 해준을 돌봐주는 아들로 대하기 시작한 거예요. 하지만 해준이 받아주질 않아요. 사랑이 영원하려면 해준이 자신을 계속 바라봐줘야 하는데 말이죠. 사랑이라는 거는 상징계가 아니라 비논리적인 거니까 이게 흐려 보이고 모호한 안개나 베일같은 것에 가려진 것처럼 보이는 거죠. 그래서 궁정풍 사랑처럼 계속 끌리는 거고. 해준은 안개처럼 흐린, 모호한 사랑을 안약을 넣으면서까지 똑바로 쳐다보려 하지만 그게 잘 안 돼요. 박 : 박찬욱 감독이 만든 영화제작사 이름이 모호필름이야. 그래서 이 영화의 첫 장면도 모호필름이라는 로고가 뜨면서 시작하지. 윤 : 해준의 시선이 계속 서래 자신에게 향하게 하려면 계속 모호해야 해요. 해준은 미결사건의 사진을 집에 붙여놨잖아요? 그러니까 다시 내 사진을 붙여놓고 계속 나를 응시해주라는 거예요. 박 : 서래가 “당신의 영원한 사랑을 받고 싶기 때문에 당신한테 영원한 미결 사건이 되고 싶어요”라고 말하지. 윤 : 그런데 그냥 사라지는 게 아니라 자살까지 하잖아요? 서래는 돌아갈 상징계가 없는 인물이에요. 해준과도 헤어지지만, 상징계, 즉 세상과도 헤어질 결심을 한 거죠. 박 : 요즘 영화를 만드는 걸 보면 그냥 천재 같은 감독 한 사람이 즉흥적으로 창작해내는 것 같지 않아. 아까 얘기한 작가처럼, 여러 사람과 의논도 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넣거나 불필요한 건 빼거나 하면서 계속 다듬어 나가면서 만들지. 어쩌면 박찬욱 감독은 이 영화에다가 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싶었을 지도 몰라. 근데 2시간 18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을 생각해봤을 때 그나마 많이 참았던 것 같아. 그나저나 다음에 얘기하기로 한 오펜하이머는 무려 3시간짜리인데 이건 또 어쩌나?(웃음) <헤어질 결심> 보도 스틸 Key Word : 반복강박(repetition compulsion) 사람들은 종종 같은 실수를 반복하곤 합니다. 무의식적으로 뭔가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죠. 그 중 사람과의 관계에서 강박적으로 반복되는 어떤 패턴은 종종 심한 문제를 일으킵니다. 예를 들어 위에서 말한 ‘매 맞는 아내’ 같은 경우죠. 아버지가 어머니를 때리는 모습을 보고 자란 여성이 나중에 아버지와 비슷하게 폭력을 일삼는 남자와 결혼을 합니다. 그렇게 되는 이유는 첫 번째로 그런 상황이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낯선 상황이 내게 더 좋은 것이더라도 이러다가 더 나빠지면 어떡하지하는 두려움 때문에 익숙한 상황으로 관계를 만들어 갑니다. 두 번째로 폭력도 사랑의 일부라고 오해해서입니다. 인질범들이 범인을 옹호하는 스톡홀롬 신드롬 같은 심리죠. 세 번째로 아픈 과거를 씻어내기 위해 일부러 비슷한 상황에 노출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극복하지 못하고 같은 실수를 되풀이합니다. 네 번째로 그런 폭력이 무관심보다는 낫기 때문입니다. 때리더라도 밥은 먹여주지만 그냥 방치해버리는 것은 나약한 아이에게는 생존에 더욱 치명적입니다. 어떤 기전에 의해서이건 공통적인 것은 어린 시절 어떤 대상에게 경험했던 기억과 감정이 현재의 누군가에게로 전치되었기 때문이 이런 행동이 나타난다는 사실입니다. 박성근과 윤병문은 정신과전문의이다. 고려대학교에서 공부를 하였고, 3년 선후배 사이로 같은 대학병원에서 정신과전문의 과정을 수료하였다. 현재 각각 마음과마음정신건강의학과 구로점과 용인수지점의 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두 사람 모두 영화를 좋아한다. 네트워크 원장 회의에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시간을 잡아 영화에 관해 수다를 떨어보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이 글이 쓰이게 되었다.
- ‘서래와 해준, 어디가 닮았다는 거죠?’ 헤어질 결심①[영화에 관한 정신과 의사들의 대화]
- 2024. 03. 04 06:48 문화/생활
- [두 명의 정신과 전문의가 한 편의 영화를 두고 정신분석학적 시각과 정신의학 이론을 토대로 다각도로 분석해 보는 코너입니다.] <헤어질 결심> 보도 스틸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유능한 형사 해준은 그간 지지부진하던 질곡동 살인사건의 수사를 자기 팀에서 맡기로 한다. 그리고 구소산 등산객 추락사 사고의 현장조사를 한다. 사고 경위를 알아내기 위해 사망자의 아내인 서래를 경찰서로 소환하는데 해준은 서래에게 관심을 보인다. 조사 과정에서 서래가 가정폭력에 시달렸음이 밝혀지자 용의 선상에 올려놓고 잠복근무를 한다. 그러면서 점차 서래에게 호감을 갖고, 살인사건일 수도 있는 단서들이 나와도 서래를 감싼다. 서래가 한국에 오기 전에 자신의 어머니를 마약으로 죽음에 이르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는 사실까지 밝혀지지만 해준은 기어이 사건을 종결시킨다. 그 후 둘은 밀회를 즐기고, 서래의 도움 덕에 질곡동 사건의 범인까지 검거한다. 우연한 계기로 서래가 돌보던 할머니의 핸드폰을 보던 해준은 서래가 구소산 사건의 범인임을 알게 되고는 그녀를 찾아가 헤어지기로 결심한다. 아내가 일하는 이포로 내려온 해준은 우울해져서 불면증은 더 심해졌다. 한편 서래는 재혼을 했지만 두 번째 남편의 사기행각 때문에 이포로 도망 온다. 어느 날 해준 부부와 서래 부가 이포의 어시장에서 마주치고, 그 후 서래 남편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해준은 서래의 범행으로 의심하지만 서래는 결백을 주장한다. 서래의 부탁으로 함께 호미산에 올라 서래 어머니의 유골을 뿌린 뒤 서래는 바닷물에 빠져죽기로 결심하고, 뒤늦게 서래의 마음을 알게 된 해준은 서래를 찾아 바닷가를 헤맨다. 박성근 : 지금까지 우리는 등장인물이라든지 아니면 영화를 만든 감독이라든지, 어떤 한 개인의 심리가 영화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주로 이야기했는데, 오늘은 좀 다를 것 같아. 한 사람의 심리가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연결되는가 하는 거지. 윤병문 : 그래서 고른 영화가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이죠. 사랑 얘기가 하고 싶었거든요. 박 : 맨 먼저 제목이 <헤어질 결심>이야. 어? 이게 무슨 의미지? 그래서 영어 제목을 찾아봤더니 ‘Decision to Leave’더라고. 떠나가기로 결정했다. 헤어지기 위해선 우선 만나야 하고, 떠나기 위해선 일단 좋아해야 하는 거잖아? 그러니깐 사람과 사람의 만남에 대한 이야기인 셈이지. 윤 : 저는 결심인 이유를, 그게 헤어지지 못하니깐 결심이라고 봤어요. 헤어지기 어려우니까. 박 : 내가 만남에 주목했던 이유가 뭐냐면, 누가 누구를 좋아하기도 하고 아니면 미워지기도 하는데 왜 이런 식으로 인간은 타인과 관계를 맺을까 하는 쪽으로 바라봤어. 관계를 이해하려면 먼저 그 사람의 특성부터 이해해야 한단 말이야. 주인공인 서래와 해준의 마음을, 지금까지 우리가 분석했던 방식대로 의식과 무의식으로 나눠 보자고. 먼저 서래는 나쁜 애야. 살인을 했어, 어쨌거나. 심지어 거기에 죄책감도 느끼지 않아. 사철성한테 두들겨 맞는 장면에서도 서래는 보통내기가 아니야. 그냥 맞고만 있지 않아. “내가 10분만 참는댔지”라며 포크로 찔러. 이런 식으로 서래의 의식 세계는 아주 폭력적이고 공격적이야. 하지만 서래의 무의식 세계는 정반대로 여린 사람이지. 사람들을 돌봐줘. 윤 : 맞아요. 간호사잖아요? 박 : 엄마도 돌보고, 한국에 와서도 간병인 일을 해. 그리고 중요한 건 불면증에 시달리는 해준을 돌봐주지. 근데 사실 돌봐주는 이유는 자신이 돌봄을 받고 싶어서야. 사랑받고 싶은 거지. 해준이 내가 왜 좋냐고 물으니까 서래가 “당신의 잠 못 드는 그 눈으로 날 지켜봐 줄 것 같아서”라고 답하지. 본성은 착한 애야. <헤어질 결심> 보도 스틸 윤 : 근데 어쩌다가 폭력적이 되었을까요? 박 : 성장 환경 때문일 거라고 의심돼. 외할아버지가 독립군이었는데 일본 장교의 목을 물어뜯어 죽였다고 나오지. 외할아버지는 어쨌거나 폭력적인 사람이었을 거야. 여기서부터 관계 얘기가 조금씩 나오기 시작하는 건데 ‘매 맞는 아내’의 심리 있잖아? 윤 : 맞고 나서 만날 헤어질 거라고 말은 하지만 정작 그러지 못하고 계속 맞고 살죠. 박 : 그 이유로 드는 게 아버지가 때리는 사람이었다는 거지. 어렸을 때 난 커서 절대로 아버지 같은 사람이랑은 결혼하지 않을 거라고 마음먹지만 막상 결혼하고 보니 남편도 아버지랑 똑같은 거야. 술 먹고 막 때려. 이런 걸 반복강박이라고 부르는데 그런 폭력에 익숙한 거지. 힘없는 아이 입장에선 부모가 없는 것보다는 때리더라도 있는 게 나아. 없으면 아예 굶어 죽어버릴 테니까. 윤 : 폭력적인 사람을 무의식적으로 나도 모르게 따르게 되는 거죠. 박 : 이건 어디까지나 가정인데, 외할아버지가 폭력적이었다면 서래의 엄마는 폭력적인 남편을 만났을 거고, 그럼 서래도 폭력적인 남편을 만나게 되겠지. 첫 남편인 기도수는 소유욕이 강하면서 서래를 학대해. 두 번째 남편인 임호신도 폭력을 쓰진 않지만 서래한테 다정하진 않아. 무시하고 땍땍거리지. 해준이 서래한테 묻잖아? 왜 그런 사람들이랑 결혼하냐고. 윤 : 내가 왜 좋냐고 물으니까 품위가 있어서라고 답하잖아요? 다른 식으로 설명하자면 서래는 자존감이 낮아서 그랬을 수도 있어요. 내가 진짜 원하는 거는 자상하고 잘해주는 사람이지만, 내가 생각해도 내가 별로니까 괜찮은 사람은 뭔가 불편하죠. 대신 나한테 익숙한 거는 나를 무시하거나 학대하거나 하는 사람들이고. 박 : 일종의 자학성이지. 그래서 처음에 서래는 해준한테 별다른 호감을 느끼지 않았던 거야. 반면에 해준은 서래랑 반대야. 의식 세계는 굉장히 반듯해. 꼿꼿하고 품위가 있지. 사건을 볼 때도 똑바로 보기 위해서 안약을 넣어. 근데 참 아이러니한 게 안개가 끼면 소용이 없거든. 상황이 계속 모호해. 그리고 아내도 반듯해. 이름이 정안이야. 안전이 제일인 원자력발전소에서 일해. 이 부부의 사이도 아주 안정적이야. 외견상 친해 보이지만 의무방어전을 보면 열정은 없어…. 의식은 이런데, 해준의 무의식세계는 반대로 폭력적이야. 첫 장면에서 “요즘 살인 사건이 뜸하네”라고 하지. 아내 정안도 그러잖아, 당신은 살인 사건이 있어야 힘이 난다고. 해준이 생선 손질하는 장면에서도 칼로 배를 가르고 손에 피를 잔뜩 묻히잖아? <헤어질 결심> 보도 스틸 윤 : 그럼 서래는 의식세계가 폭력적인 거고, 해준은 무의식세계가 폭력적인 거네요? 박 : 폭력적인 무의식 때문인지 해준은 살인용의자인 서래를 보면서 처음부터 끌려. 그걸 눈치챘는지 서래는 조사받을 때 향수를 뿌리고 허벅지 상처를 보여주는 식으로 유혹적인 행동을 해. 그건 아마 용의선상에서 벗어나려는 의도였을 거라고 봐. 처음엔 해준에게 큰마음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서래의 여린 무의식은 품위 있는 해준의 의식세계 모습을 좋아하게 되지. 이런 식으로 누가 누구를 좋아하게 되는 데에는 무의식적인 동기가 있는 거야. 윤 : 저는 반대로 보는데, 좀 이따가 말씀드릴게요. 박 : 겉으로는 살인자와 형사 사이지만 서래와 해준은 사실 서로 코드가 맞는 거지. 서래를 왜 중국인으로 설정했을까? 이질적이라는 건데, 알고 보면 외할아버지가 조선인이었기 때문에 절반은 같은 민족인 셈이야. 그리고 서래의 부러진 갈비뼈 사진이 팔 쪽으로 쭉 이어지는 장면은 그게 해준의 팔로 연결돼. 같은 인물인 거고, 초반부터 둘은 같은 드라마를 보고 같은 대사를 따라 하지. 서로 닮았다는 거야. 윤 : 그리고 둘 다 담배를 피우죠. 극중엔 안 나오지만 해준은 늘 담배 피웠냐고 아내의 추궁을 받잖아요. 박 : 해준이 서래를 좋아하는 걸 1부, 서래가 해준을 따라 이포로 온 걸 2부로 나눠봤을 때, 1부 끝에서 해준은 왜 서래와 헤어질 결심을 하는 걸까? 무의식적으로는 끌리지만 현실에는 안 맞으니까 어쩔 수 없는 거야. 자아가 붕괴되어 버리니까. 2부에서는 누군가를 돌봐주고 또 돌봄을 받고 싶은 서래의 무의식이 해준을 좋아하지만 살인자라는 의심만 받지. 그게 사실이기도 하고. 그래서 해준이 그러잖아? “내가 만만합니까?” 난 꼿꼿하니까 당신 같은 살인자한테 안 넘어간다는 거지. 그 말에 서래는 대답을 하는 게 아니라 도리어 되물어.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 살인을 저질러 놓고도 말이지. 결국 어긋날 수밖에 없는 거야. 이번엔 서래가 헤어질 결심을 하게 되는 거지. 윤 : 형은 각 개인의 측면에서 분석했다면 저는 보편적인 사랑 얘기로 봤거든요. 그럼 도대체 사랑이란 게 뭐냐? 태어난 뒤 얼마 동안은 아이는 아직도 자기가 엄마랑 탯줄로 연결되어있듯이 느끼거든요. 배고프면 엄마가 젖도 먹여주고, 변을 봐서 찝찝하면 그걸 다 치워주죠. 하지만 이런 본능적인 쾌감 말고도 중요한 게 있어요. 바라봐 주는 거랑 내게 속삭여 주는 거죠. 나를 응시한다는 거는 언제든 내가 무언가를 필요로 할 때 그걸 제공해주겠다는 신호에요. 아이는 마치 엄마 뱃속처럼 그 시선을 바라볼 때 편안함을 느껴요. <헤어질 결심> 보도 스틸 박 : 엄마의 음성도 그런 셈이지. 그게 정확히 무슨 뜻인지는 몰라도 부드러운 목소리를 내게 들려준다는 것, 그게 바로 사랑인 거지. 윤 : 우선 이 영화의 시각을 보면 독특해요. 보통은 주인공의 시각이나 전지적 시점에서 카메라로 촬영을 하는데 여기서는 좀 다르게 누군가가 응시하는 듯한 느낌을 주거든요. 그러니까 시선이 중요하다는 얘기죠. 누군가가 나를 지켜봐 주는 시선이. 영화에서 둘이 왜 사랑에 빠졌을까? 처음에는 해준이 서래의 집을 계속 지켜보고 있어요. 멀리서 보니까, 아까 안개 말씀하셨던 것처럼 정확하게 안 보여요. 그러니까 더 매력적이죠. 우리는 모르는 대상에 대해서 매력을 느끼잖아요. 그리고 서래 입장에서도 누군가가 나를 지켜봐 주고 다정하게 이야기해주기를 바라는데 그걸 해준이 해줘요. 박 : 서래도 해준이 용의자를 검거하는 모습을 차에서 바라보지. 윤 : 여기서 서래가 왜 중국인인가에 의미가 있어요. “한국말 익숙하지 않습니다.” …… ▶‘어머니가 필요한 아들의 이야기?’ 헤어질 결심②[영화에 관한 정신과 의사들의 대화]에서 계속됩니다 박성근과 윤병문은 정신과전문의이다. 고려대학교에서 공부를 하였고, 3년 선후배 사이로 같은 대학병원에서 정신과전문의 과정을 수료하였다. 현재 각각 마음과마음정신건강의학과 구로점과 용인수지점의 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두 사람 모두 영화를 좋아한다. 네트워크 원장 회의에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시간을 잡아 영화에 관해 수다를 떨어보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이 글이 쓰이게 되었다.
- 알레르기 유발 물질 없다더니?…美 의사 디즈니 식당서 식사 후 사망
- 2024. 02. 27 10:49 화제
- 미국 뉴욕대 병원의 한 의사가 플로리다에 있는 디즈니랜드 내 식당에서 식사 직후 사망했다. 유족들은 직원들을 고소했다. 픽셀 이미지 미국의 한 의사가 디즈니랜드의 한 식당에서 식사 후 사망했다. 미국 뉴욕포스트는 뉴욕대 랑곤 병원 의사 카녹폰 탕수안이 플로리다에 있는 디즈니 스프링스의 ‘래글런 로드 아이리시 펍 앤 레스토랑‘에서 식사 후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사인은 유제품과 견과류 알레르기에 의한 아나필락시스였다. 문제는 사망자가 해당 식당의 직원에게 견과류와 유제품 알레르기가 있음을 주문 전에 알렸다는 점이다. 유족들은 직원들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사망자의 남편 제프리 피콜로는 플로리다주 오렌지 카운티 순회법원에 19페이지 분량의 자료를 전달하고 소송을 제기했다. 그는 “탕수안이 식당 웨이터에게 자신의 알레르기에 대해 알렸으며 종업원들은 알레르기 유발 물질이 없는 음식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라고 주장했다. 탕수안은 해당 식당에서 브로콜리와 옥수수튀김, 가리비와 양파튀김을 먹은 뒤 후 복합 쇼핑몰을 둘러보다 이상 증세를 느꼈고 이내 심각한 호흡 곤란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즉시 알레르기 응급 처치제 에피펜을 투여했으나 그는 이송된 병원에서 사망했다. 법원 서류에 따르면 검시관의 조사 결과 그는 ‘체내 유제품과 견과류 수치 상승으로 인한 아나필락시스’로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 디즈니는 각종 홍보 자료를 통해 식품 알레르기를 가진 고객들에게 적합한 서비스를 하는 것이 최우선 순위라는 경영 방침을 갖고 있다고 강조해왔다. 해당 소송에서 유족들은 “홍보와 달리 디즈니가 직원들에게 알레르기 고객 대응 교육과 훈련을 지시하지 않았다”라고 주장했다. 남편 피콜로는 플로리다의 법에 따라 정신적 고통과 소득 손실 및 장례 비용 외에도 5만 달러(약 6600만원)가 넘는 손해 배상을 요구하고 있다.
- 백조가 흑조로 변한 이유는? 블랙스완②[영화에 관한 정신과 의사들의 대화]
- 2024. 02. 27 07:00 문화/생활
- [두 명의 정신과 전문의가 한 편의 영화를 두고 정신분석학적 시각과 정신의학 이론을 토대로 다각도로 분석해 보는 코너입니다.] 영화 <블랙스완> 보도 스틸 ▶엄마가 딸을 질투한다고? 블랙스완①[영화에 관한 정신과 의사들의 대화] 에서 이어집니다. 박성근 : 원래 그런 거잖아. 무의식이라는 게 받아들이기 힘든 것들이지. 그러니깐 무의식 속으로 억압되어 있는 것이고. 상담할 때에도 환자들이 그러잖아. 무의식적으로 이런 문제를 갖고 있는 것 같다고 해석해줬을 때 화를 내면서 부인하거나 저항을 하면 정곡을 찌른 거라고. 듣기에 불편한 진실이니까. 윤병문 : 강한 부정은 긍정인 법이죠. 박 : 그렇다면 이 영화도 <스즈메의 문단속>에서 나왔던 얘기처럼, 여자 버전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그러니까 엘렉트라 콤플렉스인 거네. 딸이 엄마를 없애고 싶어 하지만, 엄마 역시도 딸이 성인 여자가 되는 것을 막고자 하는 거라고. 윤 : 막는다기보다는 나보다 매력적이고 예쁜 어른이 되는 것을 경계한다고 할까요? 백설공주 이야기에서도 계모, 아니 원작으로는 엄마가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하고 묻잖아요? 백설공주가 어렸을 때에는 성적으로 발현이 안 되었기 때문에 경쟁자가 아니었는데, 매력을 가지는 나이가 되니까 거울이 ‘백설공주님이 제일 예쁘답니다’라고 대답하죠. 그러면서 엄마가 백설공주를 죽이려고 하게 되는 건데. 박 : 하지만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이게 딸의 심리적 현실이라는 것이지. 진짜 엄마가 그랬는지는 모르는 일이고, 딸의 눈에 비친 엄마는 그렇게 보였다는 거지. 윤 : 둘 다일 수 있지만 주된 거는 본인의 생각인 거죠. 박 : 나랑 겹치는 부분이 많긴 한데, 아까 흔한 해석으로 <지킬박사와 하이드씨> 얘기한 것처럼 난 그렇게 이 영화를 봤어. 현대판, 여성판 <지킬박사와 하이드씨> 이야기라고 나는 생각해, 어떤 사람이 착한 것 같아 보이지만 나쁜 점도 있구나. 이걸 좀 더 근본적으로 왜 그럴까? 윤 : 왜 한 인물에겐 천사성도 있고 악마성도 있을까 하는 거죠. 영화 <블랙스완> 보도 스틸 박 : 여기서 나오는 설명이 프로이트의 개념인데 인간의 심리를 의식과 무의식으로 나눴다가 그것만으론 충분한 설명이 되지 않으니깐 구조모델이라는 걸 만들어 내거든. 자아가 있고, 그 위에 초자아, 그러니깐 도덕의식이나 양심 같은 것이 있고, 자아 밑에는 이드라고 하는 본능이 있는 구조지. 이렇게 이 셋이 힘겨루기를 하면서 역동 관계를 이룬다고 설명을 해. 이 영화는 그 본능, 본성이 강해질 때 초자아와 자아가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를 잘 보여줘. 그럼 이드라는 본능은 어떤 거냐를 이해하려면, 프로이트와 동시대를 살았던 다윈의 진화론을 갖고 오면 돼. 어떤 생명체가 살아남으려면 두 가지가 필요해. 하나는 자연 선택되기 위한 생존경쟁.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먹잇감을 죽여야 하고 경쟁자들이랑 싸워야 해. 그게 공격성이야. 또 다른 하나는, 자신이 영원히 살 수는 없으니까 자기의 유전자를 후대에 전달해야 해. 성선택을 위한 짝짓기 전략이지. 이건 리비도야. 그러니깐 사람도 공격성과 리비도를 기본적으로 장착하고 태어나. 이것이 본능이고 본성인 셈이지. 근데 이런 본능에 따라서만 살면 ‘폭망’하거든. 그걸 엄마 아빠가 키워주면서 적절히 훈육하고 혼내기도 하면서 초자아가 만들어지지. 윤 : 그걸 어떻게 보면 거세가 되었다고 표현을 하고, 라캉식으로 표현하면 상징계로 들어갔다고 말하죠. 박 : 초자아에 의해 잘 길들여지는 것이 천사성이고, 본능대로만 움직이는 건 악마성이라고 말할 수 있어. 그러니까 한 사람 안에는 천사성도 있고 악마성도 있게 돼. 이제 <블랙스완> 얘기로 들어가서 설명하자면 니나라는 자아가 있어. 니나는 순수하고 열심히 하는 아주 바른 소녀지. 물론 니나의 이드에는 리비도라는 성적 에너지도 있고, 적개심이라는 공격적 에너지도 있지만 이런 본능의 에너지를 발레라는 예술로 승화해. 그건 엄마라는 초자아에 의해서 철저하게 통제되었기 때문이지. 윤 : 엄마는 니나가 뭘 입을 지부터 시작해서 오늘 스케줄은 어떻게 되는 지까지 하나하나 관리를 하죠. 니나 방에는 문손잡이가 없어요. 잠글 수 없죠. 엄마가 언제라도 들어와서 볼 수 있는 거예요. 심지어 니나가 잠을 잘 때도, 자위하는 장면 있잖아요? 거기서도 엄마가 의자에 앉아서 밤새 지키고 있던 거죠. 박 : 하지만 성공하고 싶은 욕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뭔가 에너지가 부족해. 그래서 안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던 본능과 욕구가 분출되면서 초자아를 꺾어버리는 게 돼. 그런 상징들로 몇 가지 장면들이 있어. 우선 오디션에서 실수를 해 실망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엄마로부터 전화가 걸려오는데 그 순간 맞은편에서 검은 옷을 입은 자신의 도플갱어가 다가와. 악마성의 상징이 초자아랑 마주치는 거지. 나중에 뜻밖에 백조로 합격을 하니까 니나는 기뻐서 엄마한테 전화를 거는데 화장실에서 나오니까 거울엔 창녀라는 글씨가 쓰여 있어. 누가 썼을까? 아무도 안 쓴 거야. 사실 니나가 단장한테 실제로 성상납을 하진 않았다고 봐. 그런 충동만 느꼈을 뿐이지만 엄마로 상징되는 초자아가 니나를 꾸짖은 거지. 또 언제 엄마한테 전화가 오냐면 클럽에 가서 릴리가 준 검은 옷으로 갈아입을 때, 남자들이랑 시시덕댈 때도 전화가 와. 전화를 꺼버리고 안 받지. 이제 마지막에 가서는 공연에 못 가게 막는 엄마를 막 밀치면서 손을 문으로 짓이겨. 내 예쁜 딸 어디 갔니 하니깐 ‘걘 죽었어’라고 니나가 소리치지. 윤 : 그럼 이드는 누구로 상징된다고 보세요? 박 : 니나는 원래 백조니까 흑조가 되도록 만드는 인물들이 이드이지. 단장이랑 릴리라고 볼 수 있어. 단장은 니나한테 자꾸 흑조를 보여달라고 하지. 욕망을 분출하라고, 물어뜯듯이 열정을 발산하라고. 첫 장면에서도 니나의 꿈에 까마귀같이 생긴 남자, 백조의 호수 이야기로 보자면 마법사인데, 그 남자가 하얀 니나를 잡아채려고 하잖아? 그리고 늘 검은 옷을 입고 등에 검은 문신까지 하고서 자유분방하게 행동하는 릴리도 이드이지. 윤 : 아까 제가 몸 얘기를 했었는데 릴리의 몸은 사실 발레리나의 몸이 아니에요. 좀 더 여성 성인의 모습을 갖고 있고 좀 더 본능적이죠. 영화 <블랙스완> 보도 스틸 박 : 한편으로 릴리는 니나와 동일인이기도 해. 아까 윤 원장도 같은 해석을 했지. 근데 내 이유는 좀 달라. 영화 줄거리를 보면 백조가 흑조로 되는 거잖아? 그런 사실을 암시하는 게, 원래 <백조의 호수> 원작에서 흑조는 마법사의 딸인데 영화에서는 백조의 쌍둥이 자매라고 설정돼. 그리고 여기서 또 원작과 다른 게, 원작에서는 왕자랑 함께 죽지만 영화에서는 백조 혼자서 절벽에서 뛰어내린다고 되어있지. 영화 마지막에 니나가 죽는다는 복선이기도 해. 암튼 클럽 장면에서도 릴리는 둘이 의자매 사이라고 소개하고, 나중에 둘은 동성애를 하는데 순간 니나 자신의 얼굴로 보이기도 하고, 연습실에서 단장과 관계를 갖는 사람도 릴리가 아니라 니나로 보이기도 해. 윤 : 저는 릴리가 여성으로서의 이상적인 자아라고 봤는데 형은 반대로 어두운 측면을 뜻한다고 본 거네요? 박 : 그치. 엄마라는 초자아에 의해 잘 길들여진 천사였던 니나가 점점 악마성에 의해 잠식되면서 흑조로 되어가는 게 영화의 내용이지. 예를 들어 니나의 방은 핑크에 화이트로 예쁘고 화장대도 공주 거울이야. 근데 연습하러 갈 때 보면 어두운 지하철 유리창에 니나 얼굴이 비쳐. 마치 검은 거울처럼. 그리고 연습복도 늘 흰색만 입다가 후반부에 가면 릴리처럼 검은 옷을 입고 연습을 해. 윤 : 저는 이게 아까 얘기했듯이 성인이 되는 과정이라고 본 거죠. 악마성이라기보다는요. 클럽에 갔다 와서는 방안의 인형들을 다 갖다 버리잖아요? 이것도 악마로 흑화되는 거가 아니라 나는 더 이상 12살 소녀가 아니라고. 박 : 나는 클라이맥스 부분에서 릴리를 죽이는 건 니나의 자아가 자신의 이드를 없애려고 한 행동이라고 봐. 하지만 이미 악마가 됐기 때문에, 릴리와 동일인이 되었기 때문에 결국 자기 자신을 죽인 꼴이 되는 거지. 여기서 베스라는 인물의 의미도 알 수가 있어. 베스도 니나 자신이야. 단장한테 성상납을 해서 백조 역을 따냈는데 퇴역하게 되니까 죽으려고 차에 뛰어들고 손톱 칼로 자기 뺨을 막 찌르잖아. 그 장면에서도 순간 니나 얼굴로 변해. 베스의 이런 결말은 니나도 마지막에 죽는다는 걸 암시하지. 영화 <블랙스완> 보도 스틸 윤 : 좀 복잡하긴 하네요. 초자아 얘기하니깐 생각난 건데 니나는 한편으로 보면 강박적이기도 해요. 정신분석학에서는 강박적인 사람들을 실수나 실패할 수 있는 권리를 잃어버린 사람이라고 표현하거든요. 그래서 니나가 마지막에 “난 완벽했어”라고 말하죠. 실수를 용납할 수 없어요. 사실 백조 파트에서 니나가 큰 실수를 했거든요. 떨어졌어. 그래서 99점이지만 강박적인 사람들은 100점이 아니면 0점이라고 생각해요.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니깐 괜히 상대 남자배우 탓을 하죠. 박 : 계속 다양한 해석들이 덧붙네. 영화라는 게 그런 거 같아. 감독이 어떤 의도로 만들었는진 몰라도 애매한 거를 보여주고서 그거로부터 사람들한테 어떤 상상력을 자극시켜주면 그게 훌륭한 예술 작품이 될 수 있지. 윤 : 신화나 성경 같은 것들에도 그런 요소들이 많죠. 맨 처음 저희가 말했듯이 정답은 없다고, 이렇게 볼 수도 있고 저렇게 볼 수도 있고, 그래서 재밌는 거죠. Key Word : 정신역동학(Psychodynamics) 프로이트는 인간의 심리가 초자아와 자아, 이드로 이루어졌다고 분석을 했습니다. 이드는 본능을 표출하려는 에너지로 늘 넘쳐납니다. 하지만 이런 본능이 무분별하게 분출되면 안 되기 때문에 초자아는 이드의 에너지를 억누르죠. 그 사이에는 자아가 자리하고 있으면서 이들 사이에서 힘의 균형을 맞춰나갑니다. 만약 이드가 너무 강해져서 초자아보다 세지면 자아는 본능적이 됩니다. 반대로 초자아가 너무 세서 이드를 너무 억압하게 되면 자아는 금욕적이거나 강박적이 되죠. 이렇듯 정신을 이루는 구조물들이 서로 밀고 당기면서 역학적인 관계를 이룬다는 의미로 ‘정신역동학’이라는 용어가 쓰입니다. 사람의 심리를 의식과 무의식, 그리고 초자아와 자아, 이드 등의 몇 가지 구조물들로 나누어 분석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사람들에게는 ‘정신분석’이라는 용어가 더 낯익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대정신의학에서는 정신분석보다는 역동정신의학, 즉 좀 더 포괄적인 개념을 사용해 환자를 상담하고 치료합니다. 박성근과 윤병문은 정신과전문의이다. 고려대학교에서 공부를 하였고, 3년 선후배 사이로 같은 대학병원에서 정신과전문의 과정을 수료하였다. 현재 각각 마음과마음정신건강의학과 구로점과 용인수지점의 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두 사람 모두 영화를 좋아한다. 네트워크 원장 회의에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시간을 잡아 영화에 관해 수다를 떨어보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이 글이 쓰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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