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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출신 의원들, 의료대란 진단과 처방 왜 다를까
의사 출신 의원들, 의료대란 진단과 처방 왜 다를까(2024. 09. 30 06:00)
2024. 09. 30 06:00 정치
안철수·이주영 적극적…대부분 초선이라 제대로 못 나서 지난해 말 국회 의원회관에서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과 인요한 혁신위원장이 면담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결국 의료시스템이 붕괴되는 길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의사 출신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9월 19일 경향신문과 인터뷰에서 진단한 현재 의료계 상황이다. 컴퓨터 바이러스 전문가로 널리 알려졌지만, 안 의원은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단국대 의대 교수로 활동했다. 안 의원은 “대통령이 의과대학 교육이 뭔지도 모르면서 자신 있게 이야기한다”라고 비판했다. 4선 안 의원의 처방은 비관적 진단에서 나오는 만큼 극단적이다. 내년인 2025학년도 의대 입학 정원까지 논의 대상에 포함해야 전공의들이 돌아오고, 의료시스템이 정상화된다고 보고 있다. 이미 진행 중인 내년 대입 수시 입학 절차까지 재검토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안 의원 측은 “안 의원은 오래전부터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대책을 촉구해왔으나, 주변에서는 그의 주장을 비현실적이라고 무시해왔다”며 “최근 그의 말이 옳았음이 입증되고 있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한 대표의 ‘심각’ 인식 배경엔 한지아 의원 같은 여당이면서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 소장 출신인 인요한 의원의 처방은 다르다. 최고위원이기도 한 인 의원은 지난 9월 9일 최고위원 회의에서 의료계에 정치권과의 협상을 호소했다. 의료위기를 겨우 넘긴 추석 이후에는 최고위원 회의에서 더 이상 의·정갈등을 언급하지 않았다. 친윤(친윤석열)계로 분류되는 인 의원은 정부의 2000명 의대 증원 강행에 보폭을 맞춰왔다. 진단과 처방 역시 ‘의료개혁 추진’이라는 정부·여당의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앞서 인 의원은 지난 9월 5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휴대전화를 보다가 ‘수술 청탁성 메시지’를 받은 사실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신뢰도가 떨어져 버렸다. 대표적인 친한(친한동훈)계 인사인 한지아 의원은 을지대병원 재활의학과 교수 출신이다. 한동훈 대표가 의료대란 문제를 매우 심각하게 인식하는 배경에는 한 의원의 조언이 있다. 한 대표는 여·야·의·정 협의체를 제안하며 2026학년도 의대 증원이 논의 대상이 될 수 있다며 정부보다는 훨씬 더 유연한 입장을 보여왔다. 추석 이후인 지난 9월 19일 한 대표는 “여·야·의·정 협의체가 아니면 이 문제를 풀기 위한 출발이 어렵다”며 “골든타임이 지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의료위기가 없었다’는 여당 원내 지도부와는 전혀 다른 목소리를 낸 것이다. 국민의힘의 한 관계자는 “한 대표가 지금 의료대란의 심각한 양상을 정확히 알고 있는 듯하다”면서 “여기에는 한지아 의원이 큰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에서도 활약하는 한 의원은 최근 국민의힘과 의료계 대화 시도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한 의원은 지난 9월 26일 당대표실 앞에서 기자들에게 의료계와의 대화 상황을 설명하며 “의협에서 2025학년도 의대 증원 입장을 내달라고 하므로 어려운 상황”이라며 “내년 의대 증원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한 대표의 처방은 윤석열 대통령과의 독대 시도 실패에서 드러나듯이 한계에 부딪혀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여당 내 의사 출신 의원들도 친윤(인요한)-비윤(안철수)-친한(한지아)으로 나뉘면서 의료대란에 대해 공통된 하나의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야당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의료대란 문제를 지적하고 있는 의사 출신 정치인은 이주영 개혁신당 의원이다. 이 의원은 순천향대 천안병원의 소아전문응급센터에서 오랫동안 전문의로 근무했다. 얼마 전까지 현장에서 일해 의료계 문제점을 가장 정확히 알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의원은 지난 6월 말 국회 보건복지위 청문회에서 슬라이드를 동원해 정부의 일방적인 의료개혁이 향후 10년간 의료시스템을 뒤흔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공의들이 결코 현장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과 그것이 어떤 문제를 일으킬지를 정확하게 진단한 것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의 한 관계자는 “이 의원이 지금 의료계로부터 가장 신망을 얻는 의사 출신 의원”이라고 평가했다. 의사 출신 의원 해법 근원적 비판도 제기 22대 국회에 들어온 의사 출신 의원은 모두 8명이다. 국민의힘에서 안철수·인요한·한지아·서명옥 의원이,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차지호·김윤 의원이, 개혁신당에서 이주영 의원, 조국혁신당에서는 김선민 의원이 있다. 이중 한지아·서명옥·김윤·이주영·김선민 의원 등 5명의 의원이 보건복지위에서 활동하고 있다. 안철수·인요한·차지호 의원은 국회 외교통일위에 속해 있다. 서울대 의대 교수 출신인 김윤 의원은 지난 9월 12일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한덕수 총리를 향해 의료대란에 대한 사과를 요구했다. 사실 김 의원은 오래전부터 의사 증원의 필요성을 역설해왔다. 이 때문에 진작부터 의료계로부터 불신을 받고 있기도 하다. 정부가 의료개혁을 하는 발단을 제공했다는 오해도 받는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민주당으로서는 지금 김 의원을 전면에 내세울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의사 출신은 아니지만 복지위에서 박주민 위원장과 강선우 간사를 내세워 정부의 2000명 증원 강행을 비판하고 있다. 의사 출신 의원들은 대부분 초선이다. 그 때문에 의료대란이라는 정국 최대 현안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목소리가 당론에 크게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의사 출신인 김윤 의원의 해법이 그대로 당에서 수용되기에는 아직 그의 정무 능력이 뒷받침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의사 출신 의원들은 지금 사태의 원인을 가장 정확히 알고 있을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각 당에서 자신의 입지 때문에 제대로 나서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페이스북을 통해 정부의 의료개혁 강행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는 이상돈 전 국민의당 의원(중앙대 명예교수)은 “의사 출신 여당 의원들이 정부에 각을 세우고 쓴소리를 했어야 했다”면서 “지금으로서는 다 늦었고, 상황은 모두 끝났다”고 말했다. 이 전 의원은 “의사 출신뿐만 아니라 모든 직역 출신 의원들이 자신이 바로 헌법기관이라는 소신을 갖고 정치를 해야 하는데 국회에 들어간 후 정당의 목소리에 파묻혀 버렸다”고 비판했다. 의사 출신 의원의 의료계 해법에 대해서는 근원적인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의사 증원 문제를 공급자의 시각에서만 보게 되면 지금 문제가 비록 해결되더라도 이른바 빅5 병원(5대 대형병원) 중심의 왜곡된 형태로 나갈 수밖에 없다”면서 “의료개혁은 철저히 수요자인 국민을 중심에 두고 바라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의료계 출신 의원이 의료개혁을 공급자 문제로만 다루게 되면 그것 역시 또 다른 문제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문화캘린더]서른, 안중근 의사의 삶과 고뇌
[문화캘린더]서른, 안중근 의사의 삶과 고뇌(2024. 05. 22 06:00)
2024. 05. 22 06:00 문화/과학
[뮤지컬]<영웅> 15주년 기념공연 일시 5월 29일~8월 11일 장소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관람료 VIP석 16만원, R석 14만원, S석 10만원, A석 8만원, B석 6만원 2009년 안중근 의거 100주년을 기념해 제작된 뮤지컬 <영웅>이 올해 15주년 기념 공연을 연다. <영웅>은 지난 15년 동안 9번의 시즌을 보내며 한국을 대표하는 뮤지컬로 자리 잡았다. 올해는 15주년이자 <영웅>의 10번째 시즌으로 더욱 의미를 더한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영웅>을 대표하는 배우 정성화, 양준모, 민우혁 등이 안중근 의사 역할로 합류했다. 이토 히로부미는 배우 김도형, 서영주, 이정열 등이 맡았다. 2009년 10월 한국에서 초연한 <영웅>은 2011년에는 미국 뉴욕, 2015년에는 중국 하얼빈에 진출하는 등 세계로 무대를 넓혔다. 2019년에는 10주년 기념 전국 10개 지역 투어를 진행했고, 20만명의 관객을 모았다. 지난해에는 <명성황후>에 이어 국내 창작 뮤지컬 사상 두 번째로 누적 관객 100만명을 돌파했다. 뮤지컬 <영웅>이 다루고 있는 이야기는 안중근 의사의 삶 중 1909년에 맞춰져 있다. 대한제국 주권을 일제에 완전히 빼앗길 위기에 놓인 시점에서 갓 서른 살이 된 청년 안중근의 고뇌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가 독립운동의 결의를 다지고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을 방문하는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는 과정을 모두 담고 있다. <영웅>이 다루고 있는 안중근 의사의 이야기를 통해 당시 시대 상황과 조선 청년들의 고뇌를 함께 엿볼 수 있다. 이번 <영웅> 공연에서는 세종예술아카데미와 연계해 초등학생 대상 교육을 함께 진행한다. 교육은 노래, 서예, 안무, 역사 강좌로 구성되며 수강을 하면 <영웅> VIP석 표를 할인된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다. 교육에 참여하는 초등학생의 보호자에게도 VIP석 표를 할인된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는 할인권을 제공한다. 아이와 함께 <영웅>을 관람하고자 하는 부모님들에게는 좋은 기회가 될 전망이다. 02-2250-5900 *주간경향을 통해 소개하고 싶은 문화행사를 이 주소(flycloser@kyunghyang.com)로 알려주세요. 주간경향 독자들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공연이나 전시면 더욱더 좋습니다. [연극]존경하는 엘레나 선생님 일시 6월 1~30일 장소 상명아트홀 1관 관람료 전석 6만원 인간의 도덕성과 그것을 판단하는 잣대에 관해 이야기하는 연극이다. 1980년 러시아 극작가 류드밀라 라주몹스까야의 작품으로 유럽 내 100개가 넘는 극장에서 공연됐다. 선과 악에 대한 기존의 관념을 바꾸려는 철학적인 작품이다. 1566-5588 [무용]몽유도원무 일시 6월 28~30일 장소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관람료 R석 4만원, S석 3만원 꿈속에서 본 듯한 아름다운 모습을 춤으로 풀어낸다. 이상과 현실이 공존하는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모티브로 삶의 무게를 벗어던지고 이상으로 향해가는 인간의 모습을 춤으로 형상화했다. 02-2280-4114 [콘서트]아시안 팝 페스티벌 2024 일시 6월 22~23일 장소 파라다이스시티 관람료 양일권 17만6000원, 1일권 11만원 다양한 장르와 스타일의 공연을 한 공간에서 만나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넬, 마이 엔트 메리, 김창완밴드, 백예린, 브로콜리너마저, 크라잉넛 등 국내 정상급 가수들도 함께한다. 1544-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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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재의 플라이룸](50) 한국의 의사, 중국의 엔지니어
[김우재의 플라이룸](50) 한국의 의사, 중국의 엔지니어(2024. 05. 03 16:00)
2024. 05. 03 16:00 사회
정부의 의대 증원 추진에 반발한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난 지 60일째인 지난 4월 18일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연합뉴스 캐나다에서 살던 때의 일이다. 쇼핑몰에서 뛰던 아이가 넘어지면서 바닥에 튀어나와 있던 못에 무릎이 크게 찢어지는 일이 있었다. 오후 6시가 다 돼가던 시간이었고, 급하게 지혈을 하며 근처 병원 응급실로 차를 몰았다. 첫 번째 응급실 간호사는 아이의 무릎 상태를 자세히 보지도 않은 채 증상이 심각하지 않다고 판단했고, 두어 시간을 기다리다 지쳐 더 큰 대학병원 응급실로 향했으나 마찬가지였다. 8시간을 기다리고 나서 들어온 젊은 전공의들은 도대체 왜 이렇게 오랫동안 기다렸냐며 급하게 찢어진 상처를 꿰매는 수술을 진행했다. 그 후에야 캐나다에선 웬만큼 심각한 증상이 아니면 응급실이나 병원에 가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 전 국민 무상 의료를 실시하고 있는 캐나다의 현실이다. 완벽한 의료체계란 없다 한국, 미국, 캐나다, 중국의 의료체계를 직접 경험하며 살았다. 미국은 잘 알려져 있듯이 의료비가 엄청나게 비싸다. 보험 없는 사람이 자칫 응급실이라도 실려 갔다간, 엄청난 빚더미에 앉게 될 수 있다. 하지만 돈 있는 사람들에게 미국 의료체계는 천국이다. 자본주의의 극단에서 만들어진 의료체계를 보고 싶다면, 미국을 보면 된다. 미국에서 아이를 출산할 때, 우연히 나중에 명세서를 보게 됐는데, 약 2000만원이 청구돼 있었다. 대학에서 제공해주었던 보험이 아니었다면, 가난한 박사후연구원이 낼 수 있는 수준의 금액이 아니었다. 캐나다는 의사가 부족하다. 의사가 얼마나 부족하냐면, 당장 죽을 정도의 질환이 아니면 의사를 만나는 것 자체가 힘들다. 한 지인이 피부질환으로 수술을 받고 싶어했는데, 미용 목적으로 판단돼 몇 년을 기다리는 걸 본 적이 있다. 물론 캐나다는 진짜 무상 의료를 추구하는 국가다. 암에 걸려도 무료로 치료받은 사례를 여럿 목격했다. 하지만 그건 소득의 절반 이상을 세금으로 내는 캐나다라 가능한 일이다. 또한 부족한 의사 수 때문에 무상 의료를 받기 위해선 기다림이 필수다. 캐나다는 미국에 경제적으로 종속된 국가다. 과학기술은 물론 의료체계까지 캐나다는 미국이라는 이웃의 대국에 영향을 받는다. 실제로 캐나다 사람들은 급한 경우에 미국에 가서 치료를 받는다. 그리고 캐나다 의대생들은 졸업 후 미국에서 의사로 일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캐나다보다 미국 의사의 연봉이 훨씬 높기 때문이다. 중국은 의사가 인기 없는 직업이다. 물론 의사가 되면 공무원처럼 평생직장을 보장받을 수 있지만, 들이는 시간과 일하는 양에 비해 의사 연봉이 형편없다고 알려져 있다. 근처 병원의 의사가 공동연구를 원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과학자인 내 연봉의 절반도 안 되는 돈을 받고 일하는 걸 보고 놀란 적이 있다. 의사가 인기가 없으니, 의료체계가 공공의료 중심으로 유지되고, 결국 첨단 의료에서 뒤처지게 된다. 중국의 의료체계는 문명국가를 추구하는 중국의 큰 약점 중 하나다. 의대생 증원을 두고 의료계와 정부의 대립이 지속하는 가운데 교수들의 사직서 제출이 시작된 지난 3월 25일 서울의 한 대학 병원에서 의료진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한수빈 기자 공대생이 만든 나라 실제로 첨단과학기술 분야 대부분에서 미국을 앞선 중국이 유일하게 미국과 한국에 뒤처지고 있는 분야가 의생명과학 분야다. 특히 반도체를 제외한 대부분의 산업 분야에서 중국에 주도권을 내주고 있는 한국은 지난 수십 년간 큰 규모의 투자와 더불어 여전히 중국보다 우위를 점유하고 있는 의생명과학 분야에 대한 장기적인 전략을 세울 필요가 있다. 최근 북경과 선전 일대의 의생명과학 관련 연구소와 회사들을 둘러보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대로 게임이 진행된다면, 한국의 의생명과학 분야는 곧 주도권을 잃게 될지 모른다. 지난 4월 초에 미국 재무장관 재닛 옐런이 중국을 재차 방문해 태양전지판 등의 생산을 억제해 달라며 공급과잉의 우려를 전했다고 한다. 테무와 알리의 공습에서 알 수 있듯이, 이제 중국은 과잉생산을 통해 전 세계의 공급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고, 미국이 이를 위협으로 느낄 정도가 된 것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한국 언론은 중국에 관한 자극적인 기사만 내보내고 있고, 대통령과 정부는 아예 중국과의 관계에서 손을 뗀 상황이다. 그렇다고 더불어민주당이 딱히 제대로 된 대안을 가진 것 같지도 않다.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은 중국을 공대생이 만든 나라라고 말한다. 실제로 중국의 역대 최고 지도자 모두가 공대생이었다. 덩샤오핑은 프랑스에서 자동차공학을, 장쩌민은 상해 교통대 전기공학을, 후진타오는 칭화대 수리공정과를, 그리고 잘 알려져 있듯이 시진핑 현 주석은 칭화대 화학과를 전공하거나 졸업했다. 전병서 소장은 바로 이 중국 최고권력의 공대생 마인드가 서비스에 약한 공대생의 나라를 만들었다고 말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서비스업은 과학기술이라는 하부구조의 견고함이 없으면 결코 창발을 만들어낼 수 없다. 그것이 인도의 발전에 한계가 명확한 이유다. 의한민국 직업에 따라 노동의 대가가 어떻게 달라야 하는지에 대한 합의는 없다. 극단적으로 모든 노동에 대해 동일 시간 동일 임금을 주장할 수도 있고, 임금을 시장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직업별 노동의 가치를 사회적 맥락 속에서 정량화할 방법은 아직 없다. 그런 게 있다고 해도 완벽하지 않을 것이며 부작용이 더 클 것이다. 하지만 한 직업이 지나치게 큰 가치를 부여받는 사회에선 해당 직업의 가치를 평가하기 위해 사고실험을 해볼 수는 있다. 즉 해당 직업이 없다면 사회가 얼마나 빨리 무너질 것인지 상상해보는 것이다. 바로 이 사고실험을 통해 의사라는 직업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명확해진다. 의사는 분명 사회의 기능에 중요한 직종이며, 그들의 임금이 평균보다 높은 것도 당연하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 사회는 의사만큼 중요한 다른 직종들에 대해서도 그 정도의 임금을 보장하는가. 엔지니어가 없는 사회를 상상해보자. 발전소가 멈출 것이고, 당장 전기와 통신을 비롯한 생존의 필수체제가 무너질 것이다. 즉 엔지니어가 사라진 사회는 의사가 없는 사회보다 훨씬 더 빠르게 무너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노동이 공정하게 대접받는 사회에선 공대생이 의대생만큼 대접받아야 한다. 적어도 미국과 중국은 그런 점에서는 공정성이 유지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의 엔지니어 중에 기회만 된다면 외국으로 옮기려는 비율이 얼마나 될까. 그 답이 머릿속에 그려진다면, 대안은 뻔한 것이다. 얼마 전 AI 분야 상위 인재의 대부분이 중국계 과학기술자라는 통계를 보았다. 중국은 과학기술 인재 양성에 국운을 걸고 움직여왔고, 한국은 의사 양성에 국운을 건 듯 움직여왔다. 의사가 나라를 구할 것이다. 그러길 바란다.
김우재의 플라이룸
의사 파업은 총선 호재냐 악재냐
의사 파업은 총선 호재냐 악재냐(2024. 03. 25 06:00)
2024. 03. 25 06:00 정치
의료대란 일어나면 여당에 불리·극적 타결 땐 유리 의대 증원으로 인한 반발로 의료대란이 지속하고 있는 지난 3월 12일 서울 시내 한 공공병원에서 의료진이 환자 옆을 지나가고 있다. 한수빈 기자 이번 총선도 4년 전처럼 ‘보건·의료’ 이슈가 여야의 승패를 좌우하게 될까. 지난 총선(2020년 21대 총선)은 ‘코로나19 사태’가 거의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됐다. 당시 ‘해외입국 원천봉쇄’를 주장한 야당(미래통합당)과 정부의 방역 대응을 옹호한 여당(더불어민주당)이 맞붙었다. 유권자들은 1차 대유행을 막은 문재인 정부의 능력을 높이 평가했고, 그 결과 민주당이 압승했다. 4년 전 코로나19 이슈보다 영향 적어 공교롭게도 4년 뒤 올해 총선에서도 윤석열 정부의 의대 입학정원 증원 추진이라는 보건·의료 이슈가 선거판을 흔들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지난 20일 내년도 의대 입학정원을 2000명 늘리는 안을 확정해 발표했고, 의대 교수들이 이에 항의해 집단 사직을 예고했다. 서로 각자의 길을 가는 의·정이 정면충돌해 총선 막바지에 ‘뜨거운 감자’가 될 가능성이 점차 커졌다.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은 “이종섭 주호주대사(전 국방부 장관)와 황상무 전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의 리스크(위험)가 어느 정도 가라앉게 되면 ‘의료계 집단행동’이 가장 변수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김철현 정치평론가 역시 “의사 증원이 마지막 클라이맥스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데, 국민의힘에는 가장 큰 총선 변수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 여당으로서는 지난 2월 말·3월 초의 유리한 국면을 되살릴 수 있는 ‘불씨’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최 소장은 최근 국민의힘에 불리하게 돌아가는 선거 판세 속에서 “만일 의·정의 극적 타결이 이뤄지면 보수가 결집하고 중도 일부가 합류해 국민의힘이 제1당이 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하지만 김 평론가는 “용산 대통령실에서 (의사 증원을) 밀어붙이고 여당에서는 정략적으로 거리 두기를 하는 모양새를 보인다”면서 “대통령실에서 소극적인 여당의 태도에 불만을 갖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고 진단했다. 엇갈린 처지로 인해 대통령실의 의대 입학 정원 증원 추진이 여당의 선거 경쟁력 강화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유권자들에게 있어 대통령과 정당은 구분이 된다”면서 “(의사 증원 문제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국정 지지율 상승에는 이득이 될지는 몰라도 총선을 앞둔 여당과는 별개의 문제가 되고 있다”고 짚었다. 문제는 야당인 민주당의 입장이다. 민주당은 정원 확대에는 찬성하면서도 의·정의 충분한 대화와 소통을 강조하고 있다. 충돌이나 의료대란 같은 극한 대결을 피하자는 것이다. 홍 소장은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면 양당 의견이 찬반으로 갈려야 하는데, 사실상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어정쩡한 입장이 민주당 득표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지만, 역설적으로 여당인 국민의힘에도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안일원 리서치뷰 대표는 “김포지역의 서울특별시 편입 문제처럼 민주당이 여당의 정책을 사실상 따라가는 모양새를 취하면 총선에 득인지 실인지 계산이 잘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총선에서 의대 정원 확대 문제가 큰 쟁점이 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양당의 입장이 대립적으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월 18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을 방문해 병원장 등 참석 의료진과의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상대적으로 의대 정원 확대 문제의 영향권은 4년 전 코로나19 이슈보다 넓지 않다. 코로나19 사태는 전 국민이 피할 수 없는 상황으로 몰렸는데 의대 정원 확대 문제로 인한 의·정 갈등은 환자와 환자 가족 등으로 피해 범위가 제한적이다. 따라서 총선에 미치는 여파가 그렇게 크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홍 소장은 “코로나19는 외생변수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사태지만, 의·정 대립은 정책 충돌로, 여러 가지 소통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차원이 다르다”고 말했다. 인위적인 방식으로 해결될 여지가 많다는 점에서 총선에 파괴적인 이슈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의료계 집단행동 사태는 이종섭·황상무 사태와도 묘하게 맞물려 있다. 앞서 의사 증원을 기대하는 유권자들의 바람은 여론조사에서도 확인됐다. 의대 정원 확대 방침 발표 이후 윤석열 정부의 국정 지지율은 20%대 하강 국면(갤럽 정기여론조사)에서 30%대(2월 3주차 조사)로 반등했다. 대통령 직무수행 긍정 평가 이유로 ‘의대 정원 확대’(2월 4주차 조사)를 손꼽는 비율도 높아졌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런 가운데 이·황 사태가 벌어졌고, 선거국면에 두 사안은 복잡하게 얽혔다. 민주당 측 보건복지위 관계자는 “의사 증원 정책이 국민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있으나 검찰 정권의 강압적 추진이 오히려 역기능을 낳고 있다”고 평가했다. 의료계와의 소통 방식이 대화와 절충·협상이 아닌 수사기관의 수사 압박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야권은 검찰 정권의 국정 운영 방식이 두 사안에서 똑같이 일방적인 지시와 강행으로 나타나면서 부작용이 더 커졌다고 보고 있다. “대통령실 일방적 추진에 피로감” 의료계의 저항과 진료 차질을 충분히 예상하고도 윤석열 정부가 대책을 전혀 준비하지 않은 점은 비판받고 있다. 그 때문에 국민 건강에 대해 불안감만 크게 증가하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안 대표는 “이번 사태는 대통령실과 여권이 총선을 앞두고 일방적으로, 당리당략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는 인상을 풍기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 여당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평가했다. 안 대표는 또 “대통령실의 일방적 추진이 국민에게 피로감을 안기고, 오히려 의료계 현안임에도 불구하고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이렇게 막무가내식으로 해결하려는가라는 의문을 낳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향후 의대 교수들이 집단으로 사직하게 되면, 한 달 이상 전공의의 이탈 공백으로 지친 병원에 의료대란이 발생할 수 있다. 의료대란으로 인한 불똥이 제대로 준비도 하지 않고 밀어붙이는 정부뿐만 아니라 여권에도 쏟아질 수도 있다. 최병천 소장은 “‘의대 정원 극적 타결’은 국민의힘에 도움이 되고, 반대로 윤석열 정부와 의료계가 정면으로 맞붙어 의료대란이 일어나게 되면 국민의힘에 불리하게 된다”고 전망했다.
[신간]의사가 밝힌 ‘의료 조력 사망’의 과정
[신간]의사가 밝힌 ‘의료 조력 사망’의 과정(2024. 02. 09 05:30)
2024. 02. 09 05:30 문화/과학
기꺼이 나의 죽음에 동의합니다 진 마모레오, 조해나 슈넬러 지음·김희정 옮김·위즈덤하우스·1만9800원 캐나다에서 최초로 ‘의료 조력 사망’을 시행한 의사이자 작가인 저자가 의료 조력 사망에 관해 밝힌 책이다. 의료 조력 사망은 ‘안락사’ 혹은 ‘존엄사’로도 불린다. 숱한 논쟁이 있었고, 여전히 찬·반 견해가 첨예하게 엇갈리는 주제다. 캐나다는 2016년 알츠하이머 등과 같은 말기 중증환자만 의료 조력 사망을 법으로 허용했다. 2021년에는 허용 대상을 불치병 환자까지 확대해 가장 ‘급진적인’ 의료 조력 사망을 시행하는 국가가 됐다. 본래 환자의 생명을 살리는 역할을 하던 저자는 의료 조력 사망이 법으로 허용된 이후 7년여 동안 많은 환자가 생을 마감하는 일을 ‘조력’해왔다. 책에서는 의료 조력 사망을 택하는 환자들이 어떤 생각과 마음을 갖고 있는지, 조력 행위가 시행될 때는 어떤 일이 현장에서 벌어지는지 등을 생생하고 솔직하게 묘사하고 전달한다. 하루는 조력 사망 과정에서 쓰이는 항불안 수면제의 일종인 ‘미다졸람’을 대상 환자에게 투여한 뒤 벌어진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나 아직 깨어 있어요.” 미다졸람 주사 뒤 환자가 잠들 때까지 기다리던 그에게 환자가 던진 말이다. 그를 지켜보던 모두가 폭소를 터뜨렸다. 저자는 “환자가 들은 마지막 소리가 이 웃음소리라는 사실이 기뻤다”고 서술한다. 조력 사망의 현장이 우리가 연상하는 장엄함이나 상실감과는 거리가 멀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전하는 내용이다. 책에는 이렇게 자신의 죽음에 ‘기꺼이’ 동의한 사람들이 여럿 등장한다. 조력 사망 행위 자체가 ‘고위험 의료 행위’라고도 저자는 말한다. 이는 시행자인 본인(의사)에게 하는 말이다. 누군가의 마지막을 지켜본다는 것은, 의료행위라고 할지라도 힘들고 아픈 일이다. 일을 하며 저자가 느낀 외로움과 슬픔, 사회적 문제에 대한 무력감 등 자신의 복잡한 내면과 심정도 담았다. 잡지, 기록전쟁 한기호 지음·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1만6800원 콘텐츠 산업이 격동을 겪고, 신문과 잡지 등 전통(레거시) 미디어가 위기를 맞은 시대다. 시시각각 폐간의 위기를 맞으면서도 ‘기획회의’, ‘학교도서관저널’ 등 25년간 치열하게 잡지를 발행해온 저자의 ‘생존 일기’다. 내가 누구인지 아는 것이 왜 중요한가 페터 베르 지음·장혜경 옮김·갈매나무·1만8500원 독일의 심리학자이자 명상코치인 저자가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서술한 ‘마음 챙김’ 지침서다. 남들이 평가하고 말하는, 고정된 ‘나’에 대한 관념과 허상을 끊어낼 때 언제나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 진정한 ‘자유’를 얻는다고 말한다. 강원국의 인생 공부 강원국 지음·디플롯·1만9800원 저자가 유시민, 표창원, 이슬아, 나태주 등 15인의 명사를 만나 그들의 삶을 경청한 뒤 정리한 ‘인생 지혜’에 관한 책이다. 이들 모두 예외 없이 역경을 겪었고, 이를 기회 삼아 지금의 삶을 일궈냈다는 공통점이 있다.
신간
70년간 기소 0건…피의사실공표죄 문제와 해법
70년간 기소 0건…피의사실공표죄 문제와 해법(2024. 01. 19 15:00)
2024. 01. 19 15:00 사회
법률상 범죄인데 수사기관에 허용하는 ‘규정’ 충돌…입법적 개선·법원 개입 등 필요 봉준호 감독 등 문화예술인연대회의가 지난 1월 12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고 이선균 배우의 죽음을 마주하는 문화예술인들의 요구’ 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문화예술인연대회의는 지난 1월 12일 경찰수사를 받다가 사망한 배우 이선균씨와 관련한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경찰의 무분별한 피의사실공표로 인해 이씨가 죽음에 이르렀다는 비판 여론이 거센 상황이다. 연대회의는 성명을 발표하면서 정부와 국회에 이렇게 촉구했다. “형사사건 공개 금지와 수사에 관한 인권보호를 위한 현행 법령에 문제점은 없는지 점검하고, 필요한 법령의 제·개정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 피의자 이권과 국민의 알권리 사이에서 원칙과 예외가 뒤바뀌는 일이 없도록, 수사당국이 법의 취지를 자의적으로 해석·적용하는 일이 없도록 명확한 입법적 개선이 필요하다.” 연대회의는 성명서를 국회의장실에 전달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최정화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대표는 이른바 ‘이선균 방지법’ 제정을 언급했다. 이후 최 대표는 지난 1월 18일 주간경향과 e메일 인터뷰에서 “속칭 ‘이선균 방지법’은 피의사실공표죄가 사문화되다시피 한 점을 넘어 ‘수사기법화’ 돼 가고 있는 상황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는 입장에서 출발한다”라며 “현재 수사기관의 훈령이나 규칙으로 피의사실공표죄를 사실상 무력화시키고 있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피의사실을 흘린 자들을 직접적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입법적 보완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대회의 성명서와 최 대표의 말에는 피의사실공표 실태와 개선 방향이 함축돼 있다. 형법 제126조는 수사기관의 피의사실공표 행위를 금지한다. 하지만 사실상 사문화된 조항으로 여겨진다. 지난 70년 동안 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되기는커녕 기소된 사례조차 없기 때문이다. ‘식물 조항’이라 불릴 정도다. 그렇다고 피의사실공표죄를 폐지하는 게 답은 아닐 것이다. 해당 죄가 존재함으로써 무차별적인 피의사실공표를 억지하는 효과를 간과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피의사실공표죄의 실효성과 규범력을 높이기 위해 법률을 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법원이 개입하는 방안까지 거론되고 있다. 무엇보다 피의자의 인권과 시민의 알권리 등이 적절히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대책이 무엇인지, 폭넓고 심도 있는 사회적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법무부·경찰청 공보 규정, 법적 근거 없어 피의사실공표죄는 1953년 형법이 만들어질 때부터 존재했다. 기본적으로 피의자의 인격권 등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이다. 재판이 시작되기 전부터 민감한 피의사실이 공개되면, ‘여론 재판’에선 이미 유죄가 확정된 것처럼 다뤄진다. 헌법상 무죄추정의 원칙은 의미를 잃고,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상실될 우려가 있다. 피의사실공표죄는 검사와 경찰 등 범죄수사 직무를 수행하거나 이를 감독·보조하는 사람이 피의사실을 기소 전에 공표하면 처벌된다. 주목할 점은 피의사실공표죄의 예외가 없다는 점이다. 조항만 놓고 보면 모든 피의사실공표는 처벌받게 된다. 그런데 법무부와 경찰청은 내부 훈령을 통해 피의사실공표의 예외를 규정하고 공보 활동을 하고 있다. 법적인 근거가 없이 내부 행정규칙에 근거해 공표행위가 이뤄지는 건 문제라는 말이 계속 나왔다. 법무부는 2010년 1월 ‘인권보호를 위한 수사 공보준칙’을 제정했다. 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수사를 받던 도중 서거한 게 계기가 됐다. 현재는 ‘형사사건 공보에 관한 규정’이란 명칭으로 운영한다. 여기에는 “사건관계인의 명예, 사생활 등 인권, 무죄추정의 원칙,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국민의 알권리, 수사의 효율성 및 공정성이 균형을 이루도록 적용돼야 한다”라며 운영 원칙이 명시돼 있다. 2009년 6월 2일 당시 이춘석 민주당 의원 등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수사한 이인규 대검 중수부장 등 3명을 피의사실공표죄로 고발하기 위해 고발장을 들고 서울 남부지검에 들어서고 있다. 김창길 기자 훈령은 원칙적으로 기소 전에 피의사실공표를 금지한다. 한데 예외가 많다. ‘오보 또는 추측성 보도가 존재하거나 발생할 것이 명백한 경우’, ‘중요사건으로서 언론의 요청이 있는 등 국민에게 알릴 필요가 있는 경우’ 등 6개 사항이다. 이런 예외 사유의 개념이 모호해 검찰이 자의적 판단에 따라 피의사실공표를 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둔 것이란 비판을 받고 있다. ‘중요사건’의 범위 또한 넓다. ‘공소시효가 임박한 사건’, ‘내란, 외환, 대공, 선거, 노동, 집단행동, 테러, 대형참사, 연쇄살인 관련 사건’, ‘판사 또는 변호사의 범죄’, ‘국회의원 또는 지방의회의원의 범죄’, ‘공안사건’,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등이 여럿 있다. ‘특히 사회적 이목을 끌 만한 중대한 사건’도 포함되는데, 이 또한 자체 해석에 따라 고무줄처럼 적용될 여지가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검찰이 일부 피의사실공표죄 사건을 수사하면서 이러한 수사기관의 내부 공보규칙을 예외, 즉 위법성 조각의 기준으로 삼았다는 분석도 나왔다. 검찰은 2020년 7월 울산경찰청 소속 경찰관 2명을 피의사실공표 혐의로 수사한 뒤 기소유예 처분했다. 혐의는 인정되지만, 여러 사정을 참작해 기소하지 않은 것이다. 이성기 성신여대 법학과 교수는 2021년 6월 ‘피의사실공표죄에 관한 연구’ 논문에서 이 사건의 불기소 결정문을 분석했다. 검찰이 피의사실공표의 위법성 조각 사유를 형법 제20조의 정당행위에서 도출했고, 정당행위 성립 여부를 구체적으로 판단할 때 수사기관의 공보규칙을 근거로 했다고 한다. 이 교수는 “수사기관의 규칙을 피의사실공표의 근거로 삼을 경우 수사기관의 자의적 판단에 의한 구성요건 창설의 가능성으로 인해 앞으로 피의사실공표죄가 계속 사문화된 채 규범성을 상실하게 될 우려가 크다”고 짚었다. 수사기관의 내부 규정은 수사기관이 자체적으로 얼마든지 바꿀 수 있기 때문에 이를 피의사실공표죄의 처벌 기준으로 활용하면, 피의사실공표죄의 성립 요건을 수사기관 마음대로 설정하는 것과 다름 없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검찰은 또 피의사실공표와 관련한 민사소송의 대법원 판례도 참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피의사실공표죄로 기소된 사례가 없기 때문에 형사판례는 없다. 다만 피의사실공표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 소송 등 민사판례는 몇 건 존재한다. 피의사실공표의 위법성 조각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공표 목적의 공익성, 공표 내용의 공공성, ??표의 필요성, 피의사실의 객관성 및 정확성, 그 표현 방법, 침해되는 이익의 성질 및 내용 등을 두루 고려해야 한다는 게 판례 내용이다.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도 2019년 5월 법무부의 공보규정에 담긴 예외 사유가 지나치게 모호하다며 “법률상 범죄로 규정된 피의사실공표죄가 존재함에도 수사기관이 피의사실공표를 허용하는 규정을 둔 것은 법체계상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부 차원에서 이런 문제를 정리하려는 시도는 있었다. 법제처는 2018년 11월 ‘인권보호를 위한 행정규칙 정비’ 과제 14건을 발표했다. 법무부와 경찰청의 형사사건 공보 관련 훈령도 포함됐다. 법제처는 “형법상 공판 청구 전 피의사실공표가 금지되고 있음에도, 법률상 근거 없는 행정규칙에 근거해 피의사실공표가 이뤄지고 있다”며 2021년까지 법적 근거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뤄지지 않았다. ■피의사실공표 법률 정비해야 피의사실공표와 관련한 법률을 손질해야 한다는 견해는 학계와 시민사회 등에서 줄곧 제기돼 왔다. 피의사실공표죄는 피의자의 인권을 보호한다는 취지인데, 국민의 알권리 및 언론의 자유 등의 가치와 충돌할 수밖에 없다. 또 피의사실공표가 논란이 되는 건 허용과 금지의 경계가 불명확하고 사회적으로 합의된 기준이 없기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이 때문에 피의사실공표의 예외 사유를 포함하는 방향으로 법률 제·개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면 현행보다 피의사실공표죄의 규범력을 강화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으리란 평가가 있다. 김재현 오산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재직 시절인 2019년 9월 펴낸 ‘피의사실공표죄의 합리적 적용방안 연구’ 보고서에서 “피의사실공표죄의 사문화는 공보와 피의사실 및 위법성 조각 사유 사이에 얽힌 법리와 명확하지 못한 기준들도 적지 않은 원인이 됐을 것”이라며 “명확한 기준 제시를 통해 공표의 내용과 범위를 설정하는 게 규범력을 회생시키는 데 가장 중요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예외의 기준과 범위를 어느 선까지 둘 것인지가 핵심 쟁점이 된다. 김상겸 동국대 법학과 교수는 2019년 9월 ‘수사기관의 피의사실공표 관행 방지를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피의자의 인권과 국민의 알권리 관계를 고려해 보다 조화롭게 개정해야 한다”라며 “피의사실이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는 중대한 범죄로 인해 공익적 목적이 있거나 피의자가 공적 인물인 경우 우선 예외적으로 인정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피의자의 기본권 보장과 관련한 엄격한 기준이 적용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2019년 9월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수사기관의 피의사실공표 관행 방지를 위한 정책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이준헌 기자 한상훈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수사 과정에서의 일반적·절차적 사항은 공표가 가능토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봤다.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한다는 관점에서 접근했다. 한 교수는 통화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구속영장 청구나 압수수색의 사실 등 일반적·절차적인 내용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이런 점들은 실제 법정에서 잘 다투지 않는다. 객관적 사실은 착오가 생길 여지가 없다. 중요한 건 진술과 증거 내용이다. 가장 민감하다. ‘아’ 다르고 ‘어’ 다르지 않나. 어떤 맥락이나 관점에서 해당 진술을 보느냐에 따라 의미가 뒤바뀔 수 있다. 증거도 위법하게 수집됐거나 ‘전문 증거’(타인에게 전해 들은 말)일 수도 있다. 법원이 심리 절차를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일방적 진술이나 증거가 진위 확인도 없이 공개되면 편견과 선입견을 심어줄 수 있는 것이다.” 피의사실공표 여부를 결정할 때는 수사기관이 자체적으로 결정할 게 아니라, 외부의 통제를 받는 방법이 거론된다. 이성기 교수는 “피의사실공표에 관한 구체적인 판단은 시민이나 전문가가 참여해 결정하는 시민참여 방식이 타당할 것으로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공표 기준은 피의자의 명예 보호, 무죄추정과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에 기초해 구체적으로 판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소들을 절대적 금지사항으로 규정해야 한다”라며 “이 외의 정보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범죄의 중대성, 혐의의 명확성, 범죄예방을 위한 필요성과 공표의 목적과 수단의 적합성, 공표 내용의 최소 침해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피의사실의 개념과 범위도 명확히 정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범죄사실의 뼈대는 아니지만,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범죄사실과 관련한 내용’ 가운데 어느 수준까지 피의사실로 봐야 할지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허위 내용을 피의사실이라며 공표하면 가중처벌하는 방안도 언급된다. 공표 행위도 마찬가지다. 수사기관이 언론에 개별적으로 ‘흘리는 행위’도 공표로 볼 수 있는지 논란이 있을 수 있다. 따라서 ‘누설’과 ‘유출’ 행위도 금지토록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과거 국회에서도 이런 개선책 등이 담긴 형법 개정안이 여러 차례 발의됐지만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최근에는 김승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12월 29일 형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피의사실공표죄와 관련해 21대 국회에서 제출된 첫 법안이다. 개정안에는 피의사실공표를 금지하는 내용은 유지하되, 공표가 가능한 예외 사유를 신설했다. ‘압수, 수색, 체포, 구속된 사실’, ‘기타 일반적·절차적 사실로서 재판의 실체적 판단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없는 사실’ 등 4개다. 피의사실공표의 금지와 허용 사유, 공표 절차 등을 망라한 ‘수사공보에 관한 법률’(가칭)을 제정해야 한다는 견해도 나온다. 이를 위해 범정부 차원의 ‘수사공보 제도개선 위원회’를 구성할 것을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가 2019년에 권고한 바 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법센터는 지난해 12월 29일 논평을 내고 “피의사실공표 등 위법·부당한 수사관행을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라며 ‘수사절차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백민 변호사(민변 사법센터 검경개혁소위원회 간사)는 통화에서 “수사기관마다 각자 다른 공보 규정이 있는데, 수사 절차와 관련한 공보와 인권보호 등 각종 규정을 하나로 통합해 어느 수사기관이 수사를 하든 공통으로 지킬 수 있는 절차법을 만드는 게 필요하다”라고 설명했다. 앞서 ‘이선균 방지법’의 필요성을 언급한 최정화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대표는 “법률적 검토나 준비는 민변과의 협조를 도모하고 있고, 기자회견을 본 이후 여러 법조인이 도움이 됐으면 한다는 연락을 주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입법적 사안이기 때문에 국회의원들과 공조가 반드시 필요하다”라며 “이번 사안은 정파적인 접근이 아니기 때문에 여러 여야 의원실과 함께 단계를 밟아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최 대표는 “단기간에 해결되는 사안이 아니기 때문에 끈기를 갖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최선을 다해 입법적 보완을 이뤄내도록 할 것”이라며 의지를 보였다. ■법원이 개입해야 이렇게 법률을 정비하더라도 수사기관이 엄정한 수사를 통해 기소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이 때문에 법원이 개입하는 제도가 대안으로 제시되기도 한다. 공정한 재판을 받기 위해 피의자 등이 수사기관의 공표·발표를 금지하도록 법원에 신청토록 하는 방안이다. 법원의 피의사실공표 금지 명령을 수사기관이 어기면 처벌토록 한다. 한상훈 교수는 “현재 피의사실공표죄가 실효적으로 작동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국민의 알권리 및 언론의 자유와 충돌하는 지점에서 사후적으로 수사기관의 공표, 브리핑에 대해 형벌을 부과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라며 “사전에 방지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국과 영국, 캐나다 등에서 유사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형법 개정안을 발의한 김승원 의원은 이런 내용을 반영해 형사소송법 개정안도 함께 내놓았다. 개정안은 피의자가 법원에 피의사실공표 금지를 청구하면 법원은 모두 인용하거나 일부라도 금지를 명령할 수 있게 했다. 명령 전에 심문 절차도 거쳐야 한다. 금지 명령을 위반하면 5년 이하 징역, 10년 이하 자격정지에 처할 수 있게 했다(형법 개정안). 피의사실공표죄보다 처벌 수위를 높인 것이다. 한 교수는 위법하게 공표·유출·누설된 피의사실은 증거 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제도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는 법정에서 증거로 쓸 수 없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나아가 피의사실공표가 반복되면 아예 공소기각 판결을 내리는 것을 제안했다. 법원이 언론에 보도를 자제 요청하는 방안도 언급했다. 그는 “언론사 기자나 직원에 대해 처벌을 확대하는 것은 언론의 자유를 고려할 때 어렵겠지만, 보도자제의 요청은 가능할 것”이라며 “기소가 돼 공판이 시작되면, 공판정에서 자유롭게 진술 내용을 취재해 보도하는 것은 허용되기 때문에 일시적인 보도의 자제라고 이해하면 될 것”이라고 했다. 이와 맞물려 언론의 자정 노력 또한 병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수사기관의 단순한 ‘스피커’가 아니라 해당 내용을 검증하고, 구체적인 지침 등을 만들어 보도에 신중을 기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표지 이야기
[메디칼럼](33)이식외과 의사의 ‘진한 순간’
[메디칼럼](33)이식외과 의사의 ‘진한 순간’(2023. 11. 23 07:00)
2023. 11. 23 07:00 건강
최병현 교수가 췌장이식 수술을 하고 있다. 양산부산대병원 제공 밤 11시쯤 잠자리에 들려 할 때, 장기이식 코디네이터에게서 연락이 왔다. 대구에 있는 모 병원에 뇌사자가 발생했는데 장기기증 의사가 있고, 우리 병원에 신장과 췌장을 등록해 놓고 기다리고 있는 분이 수혜를 받게 될 것 같다고 했다. 우선 코디네이터 선생님에게 환자에게 이식수술을 받을 의사와 상황이 되는지 확인해보라고 한 뒤, 컴퓨터를 켜서 환자 차트를 열어보았다. 투석이 필요하니 당연히 신장내과에 다니고 있고, 심장 쪽에 문제가 있어 심장내과 교수 외래도 다니는 분이었다. 심장내과 교수에게 조심스럽게 메시지를 보내니 마침 바로 답장이 왔다. 그쪽도 안 자고 있었나 보다. 환자에 대해 상의하고 내일 응급실에 도착하는 대로 심장 초음파를 해보기로 했다. 코디네이터 선생님에게 환자가 수술을 받겠다는 의지를 보인다는 연락을 받았다. 아침 8시까지 응급실에 오시라 이야기하고는 잠을 청했다. 이미 새벽이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병원에 출근해 환자의 이전 기록을 살펴보았다. CT를 보니 환자의 혈관은 석회화가 심하지 않아 이식할 신장과 췌장의 혈관을 붙일 자리는 쉽게 확보될 것 같았다. 환자가 장기이식센터에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고 환자와 면담 후 수술에 대한 설명과 동의서를 받았다. 환자가 응급실에서 수술을 위한 기본적인 검사와 심장초음파를 받는 동안, 심장내과와 의견교환을 하고 장기 적출 수술을 위한 준비를 했다. 신장과 췌장을 받기 위해 대구로 오후 2시에 앰뷸런스를 타고 대구에 있는 병원으로 출발했다. 1시간이 조금 넘게 걸려 그 병원에 도착한 뒤 수술실로 향했다. 해당 기증자는 폐는 기증하지 못하고 심장과 간, 췌장과 신장을 기증하는 수술을 하는 환자였다. 심장 적출팀 및 간 적출팀과 수술 순서와 수술에 걸리는 시간 등을 상의한 뒤 이식할 췌장의 상태를 확인하러 수술실에 들어갔다. 췌장은 약간의 지방이 끼어 있었으나, 신장과 같이 이식해야 하므로 이 정도면 이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수혜자의 경우 신·췌장 동시이식을 받아야 하므로 췌장을 포기하면 신장도 같이 포기해야 한다. 하지만 신장이식을 해서 얻는 이득이 더 크므로 췌장이 아주 이상적인 상태까지는 아니더라도 웬만하면 이식을 진행해야 할 것으로 판단했다. 심장, 간, 췌장, 신장순으로 장기구득 수술을 진행했다. 간 적출팀이 수술의 마지막 과정을 시행하는 부분에서 나도 합류해 췌장 쪽으로 가는 혈관이 손상되지 않도록 도와드렸다. 간 적출팀이 수술을 끝내고 췌장을 적출 중일 때, 수술실에 같이 있던 장기기증원(KODA) 선생님이 상황이 바뀌었음을 알렸다. 원래 한쪽 신장만 우리가 가져오고, 나머지 한쪽 신장은 다른 병원에서 가져가기로 했는데, 그 병원 수혜자가 코로나19 양성으로 나와 나머지 한쪽 신장을 받을 수혜자를 그 시간에 다시 찾아야 하는 형편이었다. 그때가 이미 오후 6시 정도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장기를 적출하는 수술을 중단할 수는 없기에 우선 내가 장기 적출을 하고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KONOS)의 판단을 기다리기로 했다. 그 시간에 새로운 수혜자를 전국에 수배해 다시 그 환자를 해당 병원으로 불러서 이식 수술을 하려면 이미 기증자의 몸에서 떨어져 나온 신장인데 제법 많이 기다려야 할 것처럼 보였다. 또한 기증자의 상태가 혈역학적으로 불안정해 이미 신장수치가 많이 상승한 상태였으므로 속으로 나는 ‘아마 저 신장도 우리 환자에게 같이 붙이게 될 것 같군’이라고 생각했다. 장기기증원 선생님이 KONOS의 결정이 나야, 즉 전국에도 저 신장을 쓰겠다는 이식센터가 없어야 나머지 한쪽 신장도 우리 환자에게 이식할 수 있다. 우선 그 신장도 같이 가져간 다음 수술은 KONOS의 허락이 떨어지고 난 뒤 하는 게 어떻겠냐고 말했다. 나는 알겠다고 하고 수술을 끝낸 뒤 췌장과 양쪽 신장을 든 채 앰뷸런스를 타고 우리 병원으로 향했다. 국내 첫 ‘췌장과 신장 2개’ 동시이식 양산부산대병원에 도착할 때쯤 KONOS에서 전국에 수혜자가 없으니, 장기를 버리지 말고, 우리 환자에게 가능하다면 2개의 신장을 모두 붙여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뇌사자 신장이식을 위해 대기기간이 6년이 넘어가는데, 2개의 신장을 한 사람에 붙이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이처럼 췌장 및 신장 2개를 동시에 1명의 수혜자에게 이식하는 수술은 국내 최초다. 항상 현실에서는 예상 못 했던 역설적인 일이 일어나는 법이다. 수술실에 도착해 옆 수술실에 누워 있는 수혜자를 수술하기 위해 마취과 선생님이 준비하는 동안 나는 장기를 붙이기 위해 다듬는 수술을 시행했다. 췌장 1개와 신장 2개의 준비를 마치고 수혜자 수술에 들어갔다. 환자의 배를 열고 오른쪽 장골 동맥과 대정맥을 노출한 뒤 췌장의 혈관부터 문합했다. 지혈하고 췌장과 붙어 있는 십이지장과 환자의 소장을 문합하고, 초음파로 혈류가 원활한 것을 확인했다. 그 뒤 아래쪽 혈관을 박리해 기증자의 왼쪽 신장을 수혜자의 오른쪽 아래에 붙였다. 노르웨이 이식외과 형님에게 배운 방식이 머리에 떠올라 수혜자의 왼쪽 장골 혈관은 복막을 아래쪽으로 박리하기로 했다. 처음 해보는 수술 방식이었지만 다행히도 아주 쉽게 잘 됐다. 덕분에 기증자의 오른쪽 신장도 수혜자의 왼쪽 신장에 무사히 이식할 수 있었다. 양쪽 요관을 수혜자의 방광에 문합하고 나서 시계를 보니 새벽 3시였다. 수술실에 계속 있었지만, 나를 도와주었던 외과의사는 3~4명이 교체됐다. 이제부터는 지혈이 중요하다. 피가 나서 재수술을 하는 경우는 없어야 하니 말이다. 지혈을 꼼꼼히 하고 새벽 4시가 넘어선 시각, 환자가 중환자실로 나왔다. 환자는 마취에서 잘 회복했으며, 이식한 신장에서 소변도 잘 나오는 상태였다. 밤을 새우며 기다린 보호자에게 다가가 수술이 잘 됐다고 설명했다. 36시간 만의 퇴근…‘진한 순간’의 보람 날이 밝고 오전에 CT를 다시 촬영해 이식한 장기들에 피는 잘 가는지, 출혈은 없는지 등을 확인했다. 다 괜찮았다. 이제 수술을 마친 환자 상태를 안정화하는 일이 남았다. 수혈을 하고, 수액 양을 조절하고 혈당을 체크하면서 환자의 상태가 나아지는 것을 확인했다. 비로소 퇴근을 했다. 거의 36시간 만이었다. 곧바로 잠에 곯아떨어졌다. 다음 날 아침, 병원에 출근해 환자가 괜찮은 것을 확인하고 일반 병동으로 옮겼다. 뿌듯함이 밀려왔다. ‘이 순간을 위해 산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과대학생들이 응급 야간 당직 중 하나라도 들어가는 과는 무조건 피한다고 한다. 필수과 의료가 위기라고도 한다. 여기저기서 필수과 의료진의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수가를 올려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많다. 다 맞는 말이다. 그럼에도 필수과 의료만큼 이렇게 진하게 살 수 있고, 진한 순간 뒤에 얻는 보람이 큰 분야가 어디 있을 것인가 하는 생각이 가시질 않는다. 세상에는 돈만으로 살 수 없는 것들도 있다고 생각한다.
메디칼럼
대통령이 ‘의사’ 안 밝혀도 명예훼손 처벌하나요?(2023. 10. 06 11:06)
2023. 10. 06 11:06 정치
ㆍ피해자 의사 반해 처벌 못 할 뿐, 침묵해도 기소 가능 대통령일 땐 국민 억압·수사 압박 모양새 탓 ‘침묵’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8월 3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주재한 제19차 비상경제 민생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 대통령실사진기자단 검찰이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언론사와 기자 등을 수사하면서, 윤 대통령이 처벌과 관련한 어떠한 의사를 밝힐지도 관심사로 떠올랐다. 명예훼손죄는 ‘반의사불벌죄’이다.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나타내면 처벌할 수 없다. 반대로 윤 대통령이 처벌 의사를 밝히면 기소와 처벌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윤 대통령이 ‘처벌을 원한다, 원치 않는다’가 아닌 아무런 입장을 표시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윤 대통령이 내심 처벌 의사를 가지고 있다면 그럴 가능성이 크다. 과거 대통령들도 명예훼손 사건에서 대체로 처벌 의사를 명시적으로 밝히지 않고 침묵했다. “피해자가 침묵하면 처벌해야”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은 ‘김만배·신학림 허위 인터뷰 의혹’ 사건을 수사 중이다. 검찰은 지난 9월 14일 이들의 인터뷰 내용을 인용해 보도한 뉴스타파 등을 상대로 압수수색을 벌였다. 검찰은 이들에게 윤석열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를 두고 있다. 명예훼손 사건의 수사는 국민의힘의 고발에 따른 것이다. 뉴스타파 등이 지난 대통령선거 직전 ‘윤 대통령이 2011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2과장으로 재직할 당시 대장동 사업 관련 불법 대출 내용을 인지했는데도 수사를 무마했다’는 취지의 보도가 허위이고 이에 따라 윤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게 고발 취지다. 이번 명예훼손 사건의 핵심 쟁점은 뉴스타파 등이 이런 의혹이 허위라는 점을 명백히 인식했는지, 즉 ‘악의적으로 윤 대통령을 공격할 목적’이 있었는지 여부다. 이러한 ‘비방 목적’이 없었다면 명예훼손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게 대법원 판례다. 이 외에도 윤 대통령이 처벌과 관련한 의사를 밝힐지 주목된다. 명예훼손죄는 반의사불벌죄여서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죄를 물을 수 없다.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기소 자체를 할 수 없다. 기소 후 재판 과정에서도 피해자가 처벌 불원 의사를 나타내면, 법원은 공소기각 결정을 내리게 된다. 처벌 불원 의사는 1심 선고 이전에 밝혀야만 그 효력이 인정된다. 명예훼손죄는 친고죄가 아니어서 피해자의 고소가 없더라도 제3자의 고발로도 수사는 진행할 수 있다. 보통 수사기관은 명예훼손과 같은 반의사불벌죄 혐의를 수사할 때 피해자에게 처벌 의사를 파악한다.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면 굳이 수사를 이어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 관계자는 윤 대통령의 처벌 의사를 확인했는지 여부를 두고 지난 9월 14일 “법리를 검토하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라며 “수사나 공판 과정에서 피해자의 의사를 확인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윤 대통령이 앞으로 처벌 의사를 표시하지 않는다고 해도, 기소하는 데 걸림돌이 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앞서 대통령실 측이 지난 9월 5일 이번 사건을 두고 “이번 기회에 악습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밝힌 점을 검찰이 윤 대통령의 처벌 의사로 간주할 수도 있다. 보다 근본적으로 피해자의 침묵은 처벌 여부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 형사법 전문가인 이창현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본적으로 반의사불벌죄는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서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지, 처벌 의사가 있어야만 처벌할 수 있다는 게 아니다”라며 “피해자가 침묵한다면 검찰은 기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피해자가 아무 의사를 밝히지 않는다는 건 처벌을 원한다는 취지로 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명백하고 믿을 수 있는 방법으로 표현돼야” 과거 법원 판결에서도 이런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2014년 가토 다쓰야 일본 산케이신문 전 서울지국장은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행적과 관련한 사생활 의혹을 제기했다가 박 전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됐다. 보수단체의 고발에 따라 수사가 시작됐다. 박 전 대통령은 처벌 여부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이에 따라 가토 전 지국장 측은 재판 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의 처벌 의사가 명확하지 않다”라며 기소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1심 법원은 그러나 이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반의사불벌죄는 피해자가 범인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하거나, 처벌의 의사를 철회한 경우가 아니라면 공소를 제기하거나 범인을 처벌하는 데 지장이 없다”고 판시했다. 다만 법원은 가토 전 지국장에게 비방의 목적이 없었다며 무죄를 선고했고, 검찰이 항소하지 않아 판결이 확정됐다. 전광훈 목사가 문재인 전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사건에서도 법원은 같은 판단을 내렸다. 전 목사는 2019년 문재인 당시 대통령을 향해 “간첩”, “공산화 시도” 등의 발언을 한 혐의로 기소됐다. 마찬가지로 제3자의 고발에 따라 수사가 시작됐다. 전 목사는 1심 재판 중에 문 전 대통령이 처벌 의사를 두고 침묵하기 때문에 공소를 기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문 전 대통령이 2020년 8월 공식 행사 자리에서 언급한 ‘국민의 비판은 달게 받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처벌 불원 의사로 봐야 한다고도 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반의사불벌죄는 친고죄가 아니라 공소제기를 위해서 반드시 피해자의 명시적인 처벌 의사가 필요하지 않다고 밝혔다. 또 문 전 대통령이 행사에서 한 발언을 ‘명시적인 처벌 불원’ 의사로 볼 수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처벌 불원 의사는) 피해자의 진실한 의사가 명백하고 믿을 수 있는 방법으로 표현돼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2001년 6월)를 근거로 들었다.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는 간접적인 표현으론 부족하고 직접적이고 명시적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대통령들이 현직에서 처벌 의사를 직접 드러내지 않는 것은 대통령이라는 지위의 특성이 작용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명예훼손의 피의자 혹은 피고인은 대체로 언론이나 일반 개인이다. 대놓고 이들을 처벌해 달라고 밝힌다면 ‘주권자인 국민을 억압하는 대통령’이라는 부정적 이미지에 갇힐 수 있다. 또 명시적인 처벌 의사는 수사기관에 강력한 ‘수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기소 후 재판을 담당하는 사법부(법원)를 압박하는 모양새로 비칠 우려도 있다. 여러 비판이 제기되면서 정치적 논란에 휩싸일 수 있는 것이다.
[메디칼럼](30)나는 왜 외과의사를 하는가(2023. 08. 04 11:21)
2023. 08. 04 11:21 건강
의료진이 수술실에서 환자를 수술하고 있다. / pixabay 최근 필수의료가 위기라는 이야기가 많이 들린다. 4층에서 떨어진 여학생이 응급의료센터에서 치료를 받지 못해 소위 구급차에서 ‘뺑뺑이’를 돌다가 결국 사망한 사건도 있었고, 서울 한복판에서 고열을 앓던 어린이가 병실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5개 병원에서 입원을 거부당한 뒤 사망하는 일도 있었다. 좀더 전에는 우리나라 최고의 병원이라는 곳에서 뇌수술할 의사가 없어 해당 병원 간호사가 다른 병원으로 이송된 뒤 사망한 사건도 있었다. 호사가들은 저마다의 의견을 내고, 의사들은 의사들 나름대로 자신이 생각하는 이유와 원인을 제시하고 해법을 제시하지만, 이러한 문제가 금방 해결될 것 같지는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쩌면 당연하게도, 필수의료라 불리는 내과, 외과, 흉부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등을 지원하는 전공의들은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 더 이상 ‘낭만’을 추구하던 의사들은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것 아닐까 생각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나는 과연 왜 외과의사를 하고 있을까에 대한 생각이 문득 들었다. 외과의사 중에서도 삶의 질이 좋지 않다는 이식외과의사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고민해보게 됐다. 이전까지 그런 생각을 하지 않고 산 이유는 누구나 다 그렇듯이 살다가 보니 그렇게 됐기 때문일 것이다. 어렸을 적에 가지고 있던 꿈을 이루며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도 어렸을 적 꿈은 의사가 아니었다. 어쩌다 보니 의대에 진학하게 됐고(그 당시는 지방 의대가 서울 SKY대학의 인기과보다 들어가기 더 쉬웠다), 또 외과가 재미있고 보람 있어 보여 외과의사가 되기로 했다. 그중에서도 장기이식이 좋아 이식외과의사가 됐다. 지나고 보면 내 선택의 결과로 된 셈이다. 지금까지 외과의사를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이유도 하나의 직업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다른 사람들의 그것과 비슷하다고 하겠다. ‘죽어가는 사람 생명의 불꽃을 다시 살리기 위해’, ‘내 한 몸 희생해서 여러 사람의 삶을 구원하기 위해’와 같은 고귀하고 비장한 마음으로 외과의사가 되기로 한 측면이 아예 없지는 않았겠지만, 그게 주된 요인이라고 말하기에는 좀 낯간지러운 것도 사실이다. 장기 적출 때 느끼는 책임의 무게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직업에 대한 사명의식과 직업윤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그걸 당연하게 여기는 곳이 선진국이라고 생각한다. 외과의사의 사명감이나 직업윤리가 다른 직종보다 더 투철하고 비장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르나, 어깨에 지워지는 책임의 무게가 너무나 무겁게 느껴지는 때가 있는 건 사실이다. 특히 뇌사자의 장기를 적출해 말기장기부전이 있는 분들에게 이식하는 이식외과의사의 경우는 그러한 사례가 좀더 많은 것 같다. 수술실에 놓여 있는 수술 도구들 / pixabay 얼마 전에도 소아 뇌사자의 간 적출을 부탁받은 적이 있다. 어렸을 적 의료사고로 짧은 생 대부분을 누워서 지내야 했던 아기였다. 아기의 배를 열기 전에 수술실에 있는 모든 의료인이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기 어머니께서 특별히 추도사를 적어오셨다. 추모사를 읽는 장기기증원 직원분도, 추모사를 듣고 있는 의료진도 모두 눈물이 나서 바로 수술을 하지 못할 정도였다. “…네 덕분에 행복해했던 사람들이 많아 엄마는 너무 기쁘단다. 엄마에게, 우리에게 와줘서 정말 고맙고 평생 항상 감사하면서 살게…. 우리 예쁜 딸 만나 행복이 뭔지 가르쳐줘서 정말 고맙다….” 추모사가 끝난 후에 어린 아기의 배를 열고 간을 적출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느끼며 소임을 다하는 사람이 돼보는 이런 경험은 사실 외과의사가 아니면 쉽게 갖기 어렵다. 그렇다고 그러한 책임감만 가져야 한다면 그 누가 견뎌낼 수 있을까. 외과의사끼리 서로서로 수술을 통해 소통하고 배우면서 느끼는 기쁨도 있다. 다른 직종에서는 드문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의형제처럼 지내는 노르웨이 이식외과의사 ‘형님’이 날 보러 양산에 놀러 오셨다. 마침 뇌사자 수술이 많이 생겨 그분과 사흘 동안 췌장 재이식, 신췌장 동시이식, 응급수술(지혈술), 생체 신장 이식수술을 함께 진행한 적이 있다. 형님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현재 더는 노르웨이에서는 이식수술을 못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나와 함께 장기 이식수술을 시행하면서 무척 행복한 모습이었다. 수술을 통한 소통의 기쁨도 있기에 노르웨이는 인건비가 비싸다. 의료제도가 우리나라와는 많이 달라 간이나 췌장 이식 같은 큰 수술도 경험이 부족한 레지던트 1명 정도만 데리고 수술을 한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3명이 수술한다. 대신 노르웨이에서는 비싼 기구와 견인기 등이 사람의 역할을 대신한다. 따라서 어느 나라 어느 회사의 어떤 수술 기구가 좋다는 식의 지식이 풍부하다. 또 사람이 부족하더라도 수술을 잘할 수 있는 방법을 많이 알고 있다. 자연히 그에게서 그런 쪽의 지식을 많이 배울 수 있었다. 형님이 다녀간 뒤, 그가 추천한 기구를 병원에 신청해 샀다. 인력이 부족한 지방 병원의 실정에 맞게 그가 가르쳐준 비법을 적용해 수술하고 있다. 결과는 매우 만족스럽다. 외과의사가 되면 인생을 좀더 ‘찐’하게 살 수 있다. 앞으로는 어떨지 모르겠으나 현재까지는 매우 만족한다. 비록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직장인의 한 사람으로 살고 있지만, 외과의사를 선택하지 않았다면 결코 경험해볼 수 없는 수많은 일을 겪고 있다. 좋기만 한 일은 아니겠으나, 나처럼 호기심이 많고 안 좋은 경험도 굳이 해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겐 잘 맞는 옷처럼 어울리는 일인 듯싶다.
메디칼럼
[문화캘린더]“투사가 돼라” 윤봉길 의사 유서엔(2023. 08. 04 11:21)
2023. 08. 04 11:21 문화/과학
ㆍ제78주년 광복절 기념 등 특별공개 일시 8월 5~31일 장소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실 1층 중근세관 대한제국실 관람료 무료 윤봉길 의사 이력서 및 유서(사진 왼쪽), 이봉창 의사 선서문 / 국립중앙박물관 제78주년 광복절을 맞아 국립중앙박물관이 의미 있는 전시를 연다. 독립운동가 윤봉길·이봉창 의사의 유품을 특별 공개한다. 보물로 지정된 ‘윤봉길 의사 자필 이력서 및 유서’, ‘이봉창 의사 선서문’이 그 대상이다. 두 의사는 1931년 김구 선생이 중심이 돼 조직한 한인애국단 단원으로 일본의 주요 인사를 암살하는 임무를 맡았다. ‘윤봉길 의사 자필 이력서 및 유서’는 1932년 훙커우 공원 거사 직전에 공책에 직접 쓴 것이다. 상해에 오기 전까지 본인의 삶을 요약한 이력서, 어린 두 아들에게 남긴 유서, 거사 전날 훙커우 공원을 답사한 뒤 쓴 시, 김구 선생에게 남기는 시 등이 적혀 있다. 특히 포대기에 싸인 두 어린 아들에게 “반드시 조선을 위하여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고 당부하는 유서에서는 24세의 나이에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윤봉길 의사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이봉창 의사 선서문’은 1931년 12월 이봉창 의사가 일왕을 저격하기 위해 일본으로 떠나기 전 직접 작성했다. 한인애국단 1호 입단 선서문이자 조국 독립을 위한 투쟁을 다짐하는 내용이다. 태극기 앞에서 폭탄 2개를 손에 쥐고 찍은 이봉창 의사의 대표 사진을 자세히 보면 이 선서문을 가슴에 걸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이번 전시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태극기인 ‘데니 태극기’를 함께 관람할 수 있다. ‘데니 태극기’는 고종이 외교고문이었던 미국인 데니에게 하사했다. 광복절을 맞아 박물관을 찾는 관람객들에게 잊지 못할 감동을 선사할 전망이다. 02-2077-9463 ▲클래식 | 조진주 & 김규연 듀오 콘서트 일시 8월 22일 장소 IBK챔버홀 관람료 R석 5만원, S석 3만원 바이올리니스트 조진주와 피아니스트 김규연이 함께 20세기를 수놓은 작품들을 선보인다. 드뷔시, 풀랑크, 프로코피예프 등의 작품을 바이올린과 피아노의 선율로 만나볼 수 있다. 1668-1352 ▲무용 | 남산골 밤마실 <기담야행 2: 망혼일 축제> 일시 8월 17~19일 장소 서울남산국악당 관람료 전석 1만원 이승과 저승이 만나는 망혼일.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 즐기는 축제를 주제로 한 공연이 열린다. 투어형 축제로 관객들이 서울남산국악당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공연에 직접 참여하고 관람할 수 있다. 02-2261-0500 ▲연극 | 하노이 가정식 일시 8월 18~20일 장소 피카소 소극장 관람료 자유석 3만3000원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배다른 여동생을 처음 만나며 일어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미성년자인 여동생이 엄마가 남긴 베트남 식당 ‘하노이 가정식’을 물려받기 위해 언니에게 도움을 청하며 남매가 협력하는 과정을 다룬다. 010-3695-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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