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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희의 사람 향기가 있는, 고택](6) 종부, 온기와 정취를 불어넣다 - 의정부 박세당 고택
[정덕희의 사람 향기가 있는, 고택](6) 종부, 온기와 정취를 불어넣다 - 의정부 박세당 고택
2014. 05. 29 11:35 레저/여행
박세당 고택에는 세상이 한 번 뒤집히고, 옛것이 점점 사라져갈지라도 묵묵히 종부의 미덕을 지키며 살아가는 한 여인이 있다. 그 정성이 하늘에 닿았는지 그녀가 맞이한 서른을 갓 넘은 젊은 며느리는 자신이 앞으로 이어 나가야 할 어머니의 삶의 모습을 이해하고 지지하며 따른다. 나란히 앉은 종부와 차종부, 두 사람은 고택 뜰 안에 핀 모란을 닮아 어여쁘다. 도심 한가운데, 여유 서계 박세당 고택의 뜰 안에 발을 들여놓으니 드넓은 잔디밭에서 천연덕스럽게 뒹굴고 있는 예닐곱 마리의 진돗개들이 보인다. 볕이 좋아 일광욕하기 딱 좋은 날씨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듯 보였다. 집 지키기는 이미 그들의 소명이 아니었다. 누구 하나 낯선 이에 대한 경계 기미도 없이 보란 듯이 배를 쭉 내밀고 여유를 부리고 있으니, 이 고택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발길을 두었는지 짐작할 수 있겠다. 12대 종부인 김인순씨(60)는 종가에 시집와 한 일의 대부분이 오가며 들르는 손님이나 문중 어른들 방문에 차 대접, 밥 대접이라고 말한다. 타인에 대한 베풂 또한 예부터 내려온 종부가 치러야 할 중요한 덕목이었다. 어느새 그녀의 특기 적성이 됐나. 종부는 집터 한 곳에 소담스러운 찻집을 하나 내었다. 그녀가 직접 만든 송화다식은 입 안에 퍼지는 질감이 딱 알맞게 부드러워 별미다. “손님맞이는 생활의 일부지만 다른 일을 하다 보면 갑자기 오시는 분들을 일일이 마주할 수가 없는 것이 안타깝지요. 종부에 대한 자부심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못 왔을 거예요. 남편과 중매로 만나 시집을 온 후 한 번도 ‘이 땅을 떠나겠다’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죽어도 이 땅에 묻혀야 하는 줄 알았죠.” 서계 고택의 사랑채 문을 열면 산바람이 사방에서 불어 한여름에도 더운 줄 모른다. 또 문을 통해 호방한 기운으로 우뚝 선 도봉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자연이 빚어낸 풍경을 정원 삼아 호사스럽게 지은 집이다. 이 집을 지을 당시만 해도 도봉산자락까지 모두 서계 선생의 땅이었다고 하니 도봉산이 정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지금은 친인척들과 땅을 분재했고, 한창 개발의 물결을 탈 시점에 대부분의 후손은 토지를 팔았다고 한다. 도심 속에 남겨진 고택의 불행인지, 조상이 후손에게 남긴 행운의 유산인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종부는 여전히 조상이 물려준 토지를 한 평도 팔지 않고 있다. 집터만 해도 3천 평으로 그동안 수많은 유혹의 손길도 많았지만 돈에 대한 욕심을 부리자면 한도 끝도 없는 법이다. 종부는 그보다 중요한 고택을 지켜야 할 가치를 알고 있었다. “한국전쟁 당시 집이 폭격을 맞아 안채가 사라지고 이 사랑채만이 남았어요.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고택을 지키기 위해 고생도 많이 하셨어요. 그런 모습을 봐왔던지라 안채를 꼭 제 손으로 복원하고 싶어요. 마지막 남은 소명이랄까요?” 14년 전 사랑채에 기거하던 시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빈집으로 있던 이곳을 정부의 지원을 받아 고택 체험 숙박시설로 다시 꾸몄다. 집이란 사람이 드나들어야 오래가는 법이다. “시아버님이 돌아가신 지 3년이 되니까 이곳에 날짐승들이 자꾸 들어왔어요. 집도 사람이 살아야 생기가 도는 법이죠. 겨울에는 사람이 살면서 난방을 하며 온기를 넣어줄 필요가 있더라고요. 그렇지 않으면 집이 겨우내 얼었다 봄에 녹으며 기둥이 물러 무너져버린다고 해요.” 재작년에 맞이한 첫째 며느리도 사랑채 뜰에서 사람들을 모아 전통혼례를 올렸다. 집안의 개입 없이 ‘소개팅’으로 만나 결혼했지만 골라도 이렇게 잘 고를 수 없을 정도로 예쁜 새사람이 왔다. 오순도순 함께 사는 즐거움 요즘은 전통혼례도 독특한 이벤트 결혼식이라는 이미지가 있어 굳이 종가가 아니더라도 많이 올리는 편이지만, 대부분의 결혼을 앞둔 여자들에게 순백의 화려한 웨딩드레스는 포기할 수 없는 로망이다. “요즘 세상에 이렇게 진솔하고 속이 찬 아이가 있을까 싶어요. 저희가 아무리 전통혼례를 치르고 싶어도 며느리의 의견이 가장 중요했는데 흔쾌히 따라줘서 잔치를 잘 치를 수 있었어요. 그런데 며느리는 서울 태생인데 부모님이 부여 출신이라 문중 어른들은 ‘부여댁’이라고 불러요. 그 부분이 이해가 가지 않나 봐요. ‘나는 부여에서 살아보지도 않았는데…’라고 가끔 투덜거려요(웃음).” 말 나온 김에 차종부, 조윤아씨(31)를 불러 앉혔다. ‘고택 시리즈’에 2대 종부가 함께 나오긴 처음이다. 시어머니와 함께 사는 젊은 차종부 또한 드문 일이다. 그녀는 결혼 전 남자친구의 집이 종가라는 사실은 전혀 몰랐다고 한다. “결혼하기로 하고 집안에 인사 온 날 처음 종가라는 사실을 알았어요. 그 순간 당황스럽고 무서웠어요. 그렇지만 시대도 많이 변했고 어머님을 보면서 종부의 삶이 희생만 강요당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았죠.” 그녀의 친정 역시 1년에 7번의 기제사를 지내고 있는 종손가였기에 제사 음식을 차리는 일은 받아들이기 그리 거북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서계 선생은 「계자손문(戒子孫文)」이라는 유언을 담은 소책자를 통해 제사상을 간소화시켰다. “음식의 개수를 한정시키기도 하셨고, 또 매년 형편과 상황에 따라 상을 차리도록 하셨어요. 후손들을 위해 가문의 겉치레를 과감하게 걷어내신 현명한 분이셨지요.” 조윤아 차종부는 시어머니와 살며 피부로 직접 종부의 삶을 체험하고 있다. 2년간의 ‘커리어’를 쌓은 그녀의 소감은 생각보다 힘들지 않지만 배워야 할 것들이 아직 많다고 말한다. “솔직히 말하면 예상했던 삶과 매우 달라요. 힘들 것 같다고 생각했던 부분은 비교적 쉬웠고요. 나도 잘할 수 있겠다 싶은 건 정작 잘 못했어요. 예를 들면 손님에 대한 예의나 환영하는 법이 아직 익숙하지 못해요. 어머님은 얘깃거리도 많고 손님을 대하는 것이 능숙한데 저는 아직 무슨 말을 나눠야 할지 모르겠어요.” 종부는 공부가 필요했다. 고택의 역사와 규모만큼이나 방대한 역사 공부는 기본이다. 고택 관리를 위한 조경부터 집의 양식, 복원 등 열심히 배워야 한다. 우리는 사라져가는 고택의 중요성은 익히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 경험하고 싶은 것은 고택에서 뿜어져 나오는 깊은 정서를 자아내는 흥취다. 그것은 고택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종부의 가치가 빛나는 이유 김인순 종부의 아침은 새벽 6시 앞뜰에 자란 잡초 뽑기로 시작한다. 때로는 인력의 도움을 받긴 하지만 어쨌든 내 손으로 해야 속이 편하다. 누군가는 미련스럽게 산다고들 하지만 그것이 그녀의 건강 비결이기도 하다. 속 모른 채 쉽게 말하는 타인의 말은 귀담아듣지 않는 편이다. “명절 때만 되면 어김없이 ‘명절증후군’이라 해서 며느리들이 불평불만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이 많이 나오잖아요. 그런 걸 보고 있으면 식구들이 먹을 음식을 정성껏 준비하는 제 모습이 오히려 잘못된 행동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명절 음식 장만은 분명 여자들에게 힘든 일이에요. 그렇지만 말없이 묵묵히 해내는 사람들을 바보나 별종 취급하는 것 같아 기분이 안 좋더라고요.” 종부를 바라보는 측은한 시선도 거두자. 그들의 ‘베풂’에는 마지못한 희생이 아니라 가문에 대한 자부심과 가족들을 배불릴 즐거움이 녹아 있다. “베풂은 돌고 돌아 결국 나에게 오는 겁니다. 내가 생면부지의 사람을 도와준다면 언젠가 내 아이가 다른 누군가의 덕을 볼 수도 있는 거거든요. ‘덕을 쌓는다’라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닌 것처럼 말이죠.” 종부는 지난 어버이날 혼자 계시는 집안 어른들을 집으로 초대해 식사를 대접했다. 스무 명이 넘는 인원의 음식을 준비해야 했지만 차종부는 어머니의 뜻을 따랐다. “어머님께서 이유 없이 저를 힘들게 하시는 것이 아니니까 괜찮아요. 사실 어버이날인데 혼자 식사를 하셔야 하는 어른들 입장을 생각하면 어머님께서 제게 터무니없는 요구를 한 것이 아니잖아요. 큰 칭찬을 받을 일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시어머니가 시키니까 (싫더라도) 한다’라는 과거의 묵묵하기만 며느리 상이 아닌, 그녀는 나름의 합리적인 기준으로 받아들일 것을 판단하는 똑똑한 며느리였다. 아직 나이 어린 차종부지만 고택을 맡겨도 될 만큼 든든하게 여기는 종부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한국 사회는 급격한 경제성장을 하면서 뿌리를 잃고 흔들린 적이 많았다. 가지가 무성해도 뿌리가 튼실하지 않으면 결국 나무는 썩는다. 그것을 잊고 살아오는 동안 우리는 수많은 경고장을 받았다. 이제 우리 사회의 틀, 세상의 틀을 다시 짜야 하는 때가 온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고개를 들고 있다. 물질보다는 변치 않는 옛 가치를 지키며 살아온 종부가 새삼 빛나 보이는 이유다. <■기획 / 이유진 기자 ■사진 / 김정원 ■촬영 협조 / 서계 박세당 고택(031-836-8600)>
정덕희의 사람 향기가 있는 곳, 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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