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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사교육 잡은 이명박” 칭찬은 팥소 없는 찐빵(2021. 08. 13 14:57)
2021. 08. 13 14:57 사회
교육평론가이자 <문재인 이후의 교육> 저자 이범 선생은 ‘이명박이 잘했다’ 제목의 글을 경향신문(8월 5일자 25면)에 기고했다. 아파트값과 사교육비가 이명박 정부에서 하락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2022년 대선후보들은 이명박 정부의 정책을 참조해 중심을 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 대치동의 한 어학원 앞 도로에서 학원 수업을 마친 초등학생들이 집으로 가기 위해 학원버스로 향하고 있다. / 정지윤 기자 그런데 정말 이명박 정부가 잘했을까? 아파트값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으나 적어도 이명박 정부가 대입과 고입 정책을 잘해 사교육비가 줄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먼저 이범 선생의 주장을 요약해보자. 그에 따르면 ①‘학생 1인당 사교육비’는 2009년 이후 하락 반전해 3년 연속 내렸다. ②이명박 정부가 선발 전형의 난이도를 낮추고 전형요소의 복합성을 해소했기 때문이다. 실제 사교육 ‘참여’학생 평균이 핵심 통계청이 매년 발표하는 사교육비 조사결과에는 초·중·고 전체 사교육비와 학교급별 사교육비가 구별된다. 또한 ‘총 사교육비’와 ‘학생 1인당 평균 사교육비’가 구별되고 사교육 참여율이 보고되기 때문에 ‘참여학생 1인당 평균 사교육비’를 구분할 수 있다. 총 사교육비는 2009년에 정점을 찍고, 2015년까지 매년 하락하다가 2016년 다시 상승세로 돌아서서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하지만 이러한 총 사교육비의 추세는 실제 사교육 부담을 보여주지 못한다. 학생수의 변동을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총 사교육비가 같더라도 학생수가 절반으로 줄었다면, 실제 부담해야 하는 사교육비는 2배 증가하게 된다. 그래서 사교육비 부담 수준의 변화를 보기 위해서는 총 사교육비가 아니라 학생 1인당 평균 사교육비의 변화를 봐야 한다. 학생 1인당 평균 사교육비는 총 사교육비를 학생수로 나눈 값이다. 학생 1인당 평균 사교육비는 2009년 월평균 24만2000원까지 올랐다가 24만1000원(2010년), 24만원(2011년), 23만6000원(2012년)으로 3년 연속 하락한다. 그리고 2013년 이후 상승세로 돌아서서 2019년까지 매년 계속 상승했다. 따라서 학생 1인당 평균 사교육비만 보면 이명박 정부 시기에 3년 연속 사교육비가 하락했다는 이범 선생의 주장은 ‘사실에 근거’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총 사교육비가 사교육비의 실제 부담 정도를 보여주지 못하듯이 학생 1인당 평균 사교육비도 마찬가지로 사교육비의 실제 부담 정도를 보여주지 못한다. 왜냐하면 매년 사교육에 참여하는 학생수가 변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학생 1인당 평균 사교육비가 동일하다고 하더라도 사교육에 참여하는 학생수가 절반으로 줄었다면, 실제 사교육비의 부담은 2배로 늘어난다. 그러므로 실질적인 사교육비 부담 정도를 알기 위해서는 ‘학생 1인당 평균 사교육비’가 아니라 ‘참여학생 1인당 평균 사교육비’를 봐야 한다. 그리고 ‘참여학생 1인당 평균 사교육비’를 알기 위해서는 사교육에 참여하는 학생의 비율을 고려해야 한다. 사교육에 참여하는 학생 비율은 2009년 이후 2016년까지 매년 하락했다. 특히 이명박 정부 시기인 2009년에서 2012년 사이에는 매우 큰 폭으로 하락했다. 더구나 이 시기에 전체 학생수도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따라서 사교육에 참여하는 학생수는 대폭 줄어들었다. 고등학생 사교육비 오히려 늘어 그러면 이명박 정부 시기에 사교육에 참여하는 학생들의 1인당 사교육비는 어떻게 됐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이명박 정부 내내 사교육에 참여하는 학생들의 사교육비 부담은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참여학생 1인당 사교육비는 월평균 32만3000원(2009년)에서 32만7000원(2010년), 33만5000원(2011년), 34만원(2012년)이다. 그러므로 이명박 정부의 성공적인 대입·고입 정책에 덕분에 사교육비가 하락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이 점은 고등학생 사교육비의 변화를 보면 더 극명하게 확인된다. 고등학생의 사교육 참여학생 1인당 사교육비는 40만3000원(2009년), 41만2000원(2010년), 42만2000원(2011년), 44만2000원(2012년) 등 이명박 정부 내내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이범 선생은 “나는 참여학생은 고려하지 않고, 학생 1인당 평균 사교육비 추세”에 근거했기 때문에 주장에 문제가 없다고 변명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변명은 설득력이 없다. 이범 선생이 주장하듯 이명박 정부가 대입 전형의 난이도를 낮추고 복잡성을 줄이는 정책을 통해 사교육비가 감소했다는 것은 그런 정책 덕택에 사교육에 참여한 학생들의 비용부담이 줄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좋은 정책 덕분에’ 사교육에 참여하지 않는 학생들의 사교육비 부담이 줄었다고 말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따라서 이런 주장이 입증되려면, 단순히 사교육비를 전체 학생수로 나눈 1인당 평균 사교육비 자료를 들이대는 것이 아니라 사교육에 참여하는 학생들의 수를 고려한 사교육에 참여하는 학생들의 사교육비 부담 자료를 제시해야 한다. 그러나 객관적 자료가 보여주는 것은 이명박 정부 시기에는 사교육에 참여하는 학생수가 줄어들어 1인당 평균 사교육비가 적어 보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 사교육에 참여하는 학생들의 사교육비는 오히려 증가했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가 뭔가 잘해서 사교육비가 하락했다”는 주장은 사실과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칭찬도 데이터에 근거해야 문제는 이런 주장을 진보적인 교육평론가로 잘 알려진 이범 선생이 했다는 점에 있다. 그런 만큼 이 주장은 진보적인 인사가 보수정부의 좋은 정책을 칭찬한 ‘객관성과 합리성’을 갖춘 견해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크다. 조금 더 나아가서는 “그것 봐라. 그래도 보수적인 이명박 정부가 정책을 훨씬 잘했잖아”라고 주장하는 근거로 이용될 가능성이 크다. 진영 논리를 넘어서 진보적인 인사가 보수 정부의 정책을 칭찬하거나, 보수적인 인사가 진보 정부의 정책을 칭찬하는 일은 그 자체로 아름다워 보일 뿐 아니라 우리 사회가 건강하게 발전하는 데 꼭 필요한 일이다. 특히 이와 관련해 지식인이나 전문가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러나 모든 칭찬 또는 비판은 객관적 데이터와 사실에 근거해야 한다. 데이터를 편향적으로 사용하고, 사실을 왜곡하는 정보에 근거한 주장은 어떤 경우에도 생산적인 논의와 올바른 정책형성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언더그라운드 넷]‘하츠네 미쿠’는 어쩌다 ‘이명박’이 됐을까(2021. 03. 12 16:11)
2021. 03. 12 16:11 사회
보배드림 “누가 설명 좀 해줘요. 저 녹색 머리 캐릭터가 이명박인가요?” 3월 9일, 인터넷커뮤니티 보배드림에 올라온 질문 글이다. 올라온 글을 보면 트위터 글이다. 일본어로 적힌 글인데 바로 아래 마이크로소프트 ‘빙’의 자동번역에 따르면 그 내용은 이렇다. “삼성역 이명박 10주년 광고가 9월 27일 수요일까지 연장되었습니다. 위대한 이명박의 광고를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입니다.” 이게 뭔 소리? 감옥 간 ‘그분’의 추종 단체가 낸 광고일까. 그런데 첨부된 삼성역 사진 속 광고패널 등장인물은 보컬로이드 캐릭터 ‘하츠네 미쿠(初音ミク)’다. 하츠네 미쿠는 어쩌다 ‘이명박’이 됐을까. 웹 자동번역 서비스 오류다. 먼저 확인해 봐야 할 것은 실제 저런 트위터 글이 있었는지, 만약 있다면 지금도 자동번역은 이명박으로 되고 있는지 여부다. 하츠네 미쿠 보컬로이드 서비스가 처음 론칭된 것은 2007년 8월 31일이다. 트위터 글에서 10주년이라고 했으므로 삼성역에서 저 행사가 열리고 사진이 찍힌 것은 2017년 8월에서 9월 사이다. 원본 글을 찾는 건 실패했다. 실제 해당 트위터 글을 작성한 사람은 지금도 열혈 사용자인데, 웬일인지 2018년 초 이전 글은 뜨지 않았다. 사실 하츠네 미쿠가 이명박이 된 경위와 관련해서는 더 오래된 풀이가 있다. 구글 번역이 서비스되던 초창기에 사용자 참여로 번역오류를 잡는 도구가 있었다. 여기에 장난기가 발동한 일부 사용자들이 하츠네 미쿠의 한국 번역어로 이명박을 넣었는데, 당시 구글 측 가설로는 집단지성이 오류를 바로잡을 것으로 봤는데 그게 작동 안 되면서 참사가 벌어졌다. 인터넷에 보면 여러 ‘이명박’ 굿즈 증거사진이 올라와 있다. ‘이명박 수영복 ver. Freeing’, ‘『페르소나 4 댄싱 / 올나이트』?에 이명박이 등장! 8월 중순 곡 배달 확인’, ‘이명박 인간처럼 노래’ 등. 그런데 궁금한 건 이것이다. 애초의 오류는 구글 번역에서 난 것이다. 그런데 왜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제공하는 빙에서도 ‘하츠네 미쿠=이명박’ 오역이 이어진 것이었을까. “2017년에 왜 번역오류가 났는지 지금은 확인할 수가 없네요. 머신러닝 기술로 웹 검색에서 사용자들이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번역어를 캐치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데, 당시 어떤 알고리즘이 적용됐는지 알 수 없습니다.” ‘구글 번역에서 발생한 오류가 어떻게 마이크로소프트 빙 번역 오류로 이어졌는지’ 질문에 대한 마이크로소프트 측 답변이다. 마이크로소프트 측은 “특수문자를 더하면 여전히 ‘이명박’으로 오역된다는 주장이 있으나 확인 결과 현재는 정상적으로 번역된다”고 덧붙였다. 트위터가 제공하는 번역서비스는 현재는 빙이 아닌 구글 번역이다. 트위터 코리아 측은 “2018년 12월부터 구글 번역이 사용됐으며, 현재도 구글 번역 기능이 적용 중”이라고 밝혔다.
언더그라운드 넷
[MBC의 몰락 10년사](13) 「PD수첩」, 이명박 정부의 치부를 드러내다(2017. 10. 10 16:29)
2017. 10. 10 16:29 사회
MB 정부는 기본적으로 사회적 약자들에 대해서 관용이 없었고, 국정운영은 법치를 가장한 독재에 가까웠기 때문에 「PD수첩」이 다루어야 할 내용들은 차고 넘쳤다. 21세기 문명국가에서 공영방송의 한 시사프로그램이 국가정보기관으로부터 이토록 처참하게 장악당한 적이 있을까? 이명박 정부의 국정원 언론장악 문건에 대한 조사를 위해 검찰에 출석한 전직 「PD수첩」 PD들은 비통한 마음이었다. 문건에 따르면 김재철·안광한 전 MBC 사장들과 측근들은 국정원의 ‘끄나풀’에 불과했다. 왜 MB 정부의 국정원은 이토록 집요하게 PD수첩을 장악하려 했을까? 이명박 정부는 2008년 출범하자마자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따른 거대한 촛불시위로 위기를 맞이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30개월령 이상의 거의 모든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라는 희대의 실책에는 눈을 감고, 위기를 오로지 「PD수첩」으로 돌렸다. 몇몇 기술적인 실수를 빌미로 프로그램을 공격했고, 「PD수첩」을 압수수색하기 위해 검사와 수사관을 MBC로 보냈다. PD들을 체포하고, ‘공무원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기소를 했다. 다시는 권력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지 말라는 위협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PD수첩」은 이후에도 굴하지 않았다. MB 정부는 사회적 약자들에 대해서 관용이 없었고, 국정운영은 법치를 가장한 독재에 가까웠기 때문에 「PD수첩」이 다루어야 할 내용들은 차고 넘쳤다. 9월 26일 최승호 전 MBC PD가 ‘방송사 블랙리스트’ 관련 피해자 조사를 받기위해 서울 서초동 중앙지검으로 들어서고 있다. 최 PD는 기자들에게 “이명박 정부 당시 국정원은 MB의 개인 정보기관”이라며 비판했다. / 이준헌 기자 권력에 굴하지 않은 「PD수첩」 「PD수첩」은 이명박 정부의 불법적인 공권력 사용에 반기를 들었다. 2009년 1월 용산참사가 터졌는데, 「PD수첩」은 경찰이 용역깡패들을 작전에 투입했다는 사실을 ‘용역깡패들이 물대포를 쏘는’ 장면을 포착해 증명해냈다. 공권력이 일부 건설자본에 포섭되었다는 결정적인 증거였고, 시민 안전을 위해 할 수 없이 무력진압을 했다는 논리는 설득력을 잃었다. 6월에는 노무현 대통령 서거국면에서 공권력이 광장을 경찰버스로 막고, 집회를 하는 시민들을 무차별적으로 체포하는 폭력을 고발했다. 경찰은 심지어 일본인 관광객을 시위하는 사람으로 오인하고 때리고 체포할 정도로 포악했다. 「PD수첩」은 4대강 사업을 집중적으로 해부했다. 2009년 11월 엄기영 사장은 ‘특별생방송 이명박 대통령과 국민의 대화’를 위해 진행자로 예정되었던 손석희를 내쫓는 ‘성의’를 보였다. 이 자리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4대강 수질을 지키는 로봇물고기’를 소개했다. 이 생방송이 끝나고 며칠 후 「PD수첩」은 보란 듯이 4대강 사업의 실체를 알리는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MB의 말은 거의 다 거짓말이었다. 정권 입장에서 엄기영 사장은 「PD수첩」을 정권의 입맛대로 ‘컨트롤’할 인물이 아니었다. ‘MBC 정상화’라는 타이틀을 가진 국정원 문건은 2010년 3월 2일 작성되었다고 한다. 바로 그날은 김재철 사장의 취임일이었다. 「PD수첩」 제작진이 검찰에서 확인한 문건에는 「PD수첩」에 존재하는 좌파 PD와 작가 등을 내보내고 「PD수첩」을 고립시킬 수 있는 방안이 세세하게 적혀 있었다고 한다. 김재철 사장은 실질적으로 국정원의 행동대장이었다. PD수첩 정리작전 김재철 사장은 부임하자마자 국정원 문건대로 먼저 ‘광우병 사태’ 이후 「PD수첩」을 이끌던 김환균 CP를 정리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MBC 시사교양국의 영혼은 살아있었다. 바뀐 국장과 후임 CP는 김재철의 ‘하수인’이 아니었고, ‘권력에 대한 감시’라는 명분과 PD들의 의지가 있으면 아이템에 성역은 없었고, 사장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2010년 5월에는 ‘검사와 스폰서’편을 통해 부패를 막아야 할 검찰이 도리어 부패의 본산임을 밝혀냈다. 6월에는 이명박 정부의 ‘국무총리실 민간인 불법사찰’을 폭로했다. 8월에는 4대강 사업의 정당성을 뒤흔들 ‘4대강 수심 6미터의 비밀’ 방영을 앞두고 일촉즉발의 위기상황까지 갔다. 국토부는 법원에 ‘방영금지 가처분신청’을 내면서 결사적으로 막으려 했지만 이유가 없다며 기각을 당해 방송을 막을 수 없었다. 김재철 사장은 존재를 과시해야 했다. 단체협약을 어기면서 MBC에서는 전례가 없었던 ‘사장 시사’를 내걸고 방영을 금지시켜 큰 사회적 파장이 일었다. 김재철 사장은 더 물러설 수 없었고, 이제 직접 칼을 휘둘러야 했다. 2011년 3월부터 「PD수첩」에는 피바람이 불었다. 국정원 문건에는 「PD수첩」을 ‘보도본부’로 이양해야 한다고 적혀 있었다. 김재철 사장은 더욱 세련된 묘안을 만들었다. 편성과 제작의 분리라는 원칙을 어겨가며 편성부문에 시사교양국을 얹어 편성제작본부라는 이상한 조직을 만들었고, 여기 수장으로 백종문 본부장을 임명했다. 직접 「PD수첩」을 담당하는 시사교양국장에는 윤길용을 임명했다. 「PD수첩」에서 잔뼈가 굵었던 그들은 국정원 문건대로 「PD수첩」을 초토화시켰다. 먼저 최승호 PD를 비롯해 6명의 PD를 강제로 전출 보냈다. 이어 ‘개성공단 폐쇄 1년’을 다루려는 이우환 PD를 용인 드라미아로, 시사교양국 총회에서 사회를 보던 한학수 PD를 경인지사로 강제 전출 보냈다. 남아있던 시사교양국 PD들은 매일 아침 국장 앞에서, 저녁에는 로비에서 피케팅을 했다. 「PD수첩」 젊은 PD들은 오전에는 피케팅을 하고, 오후에는 피케팅 당사자인 국장에게 아이템을 내고 까이는 아이러니한 시간을 보냈다. ‘MB 무릎기도 사건’, ‘내곡동 사저 논란’ 등 MB 정부가 불편해 할 아이템들은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임명한 ‘한상대 검찰총장 검증 논란’ 아이템의 경우, 담당 PD가 아이템 컨펌 여부를 알기도 전에 서초동 검찰청에서 이미 그 아이템이 ‘킬이 되었다’는 소문이 돌았고, 황당하게도 담당 PD에게 소문이 들려왔다. 거짓말처럼 다음날 부장은 아이템을 불허했다. MB가 직접 독려한 ‘제주도 7대 자연경관 선정 논란’은 부장이 담당 PD의 기획서를 찢는 기행을 보여주었는데, 이후 제주도 7대 자연경관 선정이 사기극에 가깝다는 게 밝혀졌다. PD들은 끊임없이 싸웠지만, 국정원 문건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170일 파업이 끝나자 신념을 지키려 싸웠던 「PD수첩」 PD들은 브런치 교육을 받는다는 신천교육대를 거쳐 비제작부서로 뿔뿔이 흩어졌다. PD수첩 작가 6명 해고가 잔혹극의 대미였다. 그렇게 2년여에 걸친 국정원·MBC 커넥션과 PD들의 싸움은 완벽하게 국정원·MBC 커넥션의 승리로 끝이 났다. 김재철·안광한·김장겸 밑에서 「PD수첩」을 망가뜨린 당사자들은 영전을 거듭했다. 백종문·윤길용·김철진·김현종 등은 모두 본사 임원과 지역사 사장을 수년씩 했고, 몇몇은 거기에 더해 좋지 않은 소문이 끊이질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들 중 몇몇은 과거 ‘시대의 정직한 목격자, 「PD수첩」’을 제작했던 PD들이었다. 백종문 현 부사장은 2003년 모교에서의 강연에서 ‘인생의 황금기를 「PD수첩」에서 맞았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그랬던 이들이 왜 ‘국정원의 끄나풀’로 자신의 인생 행로를 끝장내는 선택을 해야만 했을까? 아무런 단죄도 없이 시간이 흘러갈 것이라 믿었을까. 이런 질문들 옆에 그들과 비슷한 연배의 많은 선배들이 20년 터울의 후배들과 파업을 하며 언론자유를 외치는 모습이 보인다. 역사는 어떤 삶을 더 존중하고 기억할 것인가? 이제 촛불시민의 힘에 의해 탄생한 정부가 답할 차례다.
MBC의 몰락 10년사
[인터뷰]미세먼지 첫 한·중 국가 상대 손배소 낸 최열 환경재단 대표 “이명박과 내가 임무교대할 시간, 반드시 옵니다”(2017. 04. 18 11:11)
2017. 04. 18 11:11 사회
“7명이서 우선 시작했습니다. 소장 내고 1시간쯤 지나니 언론보도가 나옵디다. 그걸 보고 여기저기서 참여하겠다고 연락이 와요. 더 참여시킬 것인가 논의를 해보니 7명이면 숫자가 적고, 어느 정도 숫자가 되면 합의부가 다룬다는 거예요. 그래서 소송인단을 100명으로 늘리자고 결정했습니다.” 4월 12일, 환경재단에서 최열 대표를 만났다. 일주일 전인 4월 5일, 식목일 최 대표와 강원도 춘천의 안경재 변호사, 주부 등 7명이 한국과 중국 정부를 상대로 미세먼지 피해 소송을 냈다. 미세먼지 관련 국가를 상대로 한 첫 손배소다. 소장에서 중국 정부를 향해서는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오염물질을 수인가능한 범위 내에서 관리하여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염원을 관리하지 않았음을 지적하고, ‘사실관계를 규명하기 위해 중국은 이와 관련한 상세한 설명과 자료를 제출해 줄 것’을 요구했다. 대한민국 정부에는 인간 존엄성과 행복추구권이 명시되어 있는 헌법 10조를 근거로 ‘현재까지 대한민국은 미세먼지의 원인이 무엇인지조차 정확히 파악하지도 못하고 있다’며 석명을 요구했다. 중국 쪽에서도 반응이 나옵니까. “환구시보라고 중국 매체가 있습니다. 한국 소송 보도 이후 긴급 여론조사를 했습니다. ‘한국에서 중국발 미세먼지 피해소송을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이었습니다. 2000여명이 참여했는데 95%가 ‘이해할 수 없다’이고, 5%가 ‘충분히 이해한다’는 답이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를 같이 소송한 것은 우리가 중국에 무언가를 요구하려면 우리가 잘 하면서 요구해야지, 우리가 못하면서 요구하는 것은 아무런 힘이 없다고 생각해서입니다. 우리가 석탄화력발전을 계속하고 디젤차에 ‘클린디젤’이라는 딱지를 붙여주고 아무런 개선대책을 내놓지 못하면서 중국에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합니다.” 미세먼지 원인에 대한 기존 환경운동단체들의 캠페인을 보면 원인에서 우리 문제가 더 심각하다며 석탄발전 문제 등을 거론해 왔는데요. “국토는 한국과 중국으로 나뉘어 있는지 모르지만 오염물질은 이미 국경과 관계없이 퍼지고 있습니다. AI 등 인수공통전염병을 일으키는 철새의 이동도 마찬가지이고 바다쓰레기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미세먼지에는 경계가 없어요. 현재의 법체계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한·중 간에 미세먼지 협정도 없고, 같이 공동조사하자는 협의가 있더라도 형식적입니다. 아무리 공동조사를 해도 효과가 없으니 안 해야 할까, 그건 아니라고 봅니다. 운동은 안 되는 것에 대해 여론을 형성하고 전략을 마련하며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단 소송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결론을 내렸다면, 빨리 진행하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습니다.” 최열 대표는 1949년생이다. 조용필보다 한 살 많다. 환갑이 지나 70대를 바라보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운동’을 말하고 있다. “1인당 손해액을 우선 정신적 피해로 300만원씩 잡았는데, 7명이 하면 총 피해액 규모가 2100만원으로 약식재판을 할 수도 있다는 거예요. 100명이 소송을 하면 3억원이 아닙니까. 물론 재판은 길어지겠지요. 환경운동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 순발력과 지구력이 같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공익 목적의 소송이라는 것도 그렇습니다. 소송할 때만 반짝 관심이 있고 소송을 진행하는 변호사만 생고생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지요.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소송만 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에게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프로그램도 필요합니다.” 환경재단과 ‘미세먼지 소송모임’은 후속 프로그램으로 ‘미세먼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주제로 4월 21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긴급토론회도 개최할 예정이다. 미세먼지가 기후변화 문제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대표님 기고를 보니 시리아 난민문제에 대해 기후난민이라고 언급하신 것이 인상적이던데요. “학자들은 전 세계적으로 기후난민을 5500만명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인구보다 많아요. 다보스포럼에서 해마다 인류가 해결할 과제를 계속 제시하는데, 2000년대 들어 계속 나오는 것이 세 가지입니다. 빈곤, 양극화, 그리고 기후변화. 최근에 나오는 것이 4차 산업혁명인데 다 연결되어 있습니다. 양극화와 빈곤이 연결되어 있고, 기후변화는 모든 것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지구온난화뿐만 아니라 기온 자체가 양극화되고 있어요. 비가 많이 오는 데는 더 많이 오고 안 오는 데는 더 안 옵니다. 시리아가 대표적이에요. 2005년부터 2010년 사이에 비가 거의 안 왔어요. 그러니 농사를 짓지 못한 사람들이 도시로, 다마스커스로 몰린 겁니다. 독재정권인데 가난한 젊은 청년들을 때리니 도화선이 되어 IS가 생긴 거예요. 북아프리카 재스민 혁명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는 군사안보보다 기후안보가 더 심각한 문제라고 봅니다. 기온이 1도 올라가면 식량생산이 10% 줄어듭니다. 미세먼지 문제도 마찬가지예요. 기후변화로 기류가 바뀌니 공기 이동을 차단시키는 것 아닙니까. 이전에는 바람으로 날아가던 것이 한반도 상공에 머물러 있는 겁니다. 공기는 생존권 문제입니다. 대기오염물질로 피해가 나타나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큽니다. 특히 65세 이상된 사람들이 조기사망하는 원인일 수도 있어요.” 최 대표를 찾는 전화로 대화는 간간이 끊겼지만 기후변화, 4차 산업혁명, 국제정세와 한국 대선을 넘나들며 이야기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문득 궁금했다. 어느 쪽이든 정권교체가 되면 영입 1순위의 무게감을 갖고 있지 않을까. 총리나 장관을 맡으면 뜻을 펴기 더 쉬울 텐데. “안 해요. 정치는 할 사람이 따로 있고, 저는 한 길만 갈 겁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된 후 4대강에 찬성하지 않았다고 2008년 가을부터 9년간 탄압을 받았는데, 다른 단체가 그 정도 대통령으로부터 탄압당하면 조직이 사라지지만, 살아남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1년 살고 나왔을 때 기자에게 소감을 이렇게 밝혔어요. 이명박과 내가 임무교대를 할 때가 분명히 온다고. 권력은 5년이고 환경운동은 영원해요. 이번 대선은 인수위도 없는데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국내외적 정세가 누가 해도 힘들게 되어 있어요. 대선캠프에 참여한 사람들끼리 나눠 먹기 식으로 가면 망합니다.” 그러면 대표님은 무엇을 하시려고요? “다보스포럼이 있고, 또 사회운동을 중심으로 세계사회포럼이 있는데, 환경포럼을 우리나라를 중심으로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2000명 이상 타는 환경친화적 배를 만들어 선상에서 토론하고 결론도 도출하는 겁니다. 늦으면 2022년, 빠르면 2021년까지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70대가 되면 나도 배에서 놀면서 좋은 사람들을 모아 프로그램하는 데 보조원으로 활동하고 싶습니다. 배 타는 게 너무 좋아요.”
인터뷰
[인터뷰]“이명박·박근혜 시대는 가능한 한 모든 추론을 멈추면 안 되는 시대”(2016. 12. 19 17:11)
2016. 12. 19 17:11 사회
ㆍ교통방송 아침 시사프로 진행 세 달째 김어준씨 9월 26일이 첫 방송이었으니 두 달을 훌쩍 넘겼다. tbs교통방송의 은 오전 7시부터 9시까지 김어준 ‘공장장’이 진행하는 라디오 시사토크 프로그램이다. 아침을 준비하는 처 덕분에 듣게 되었다. 출근을 해야 하니 끝까지 들으면 지각이다. 다운로드를 위해 오랜만에 팟캐스트에 다시 접속했다. 부동의 1위다. 원래 아침 출근시간대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은 전쟁터였다. 그리고 의 등장. 방송 첫 주 만에 동시간대 라디오 청취율 1위를 기록했다. 그런데 의외로 포털뉴스 검색을 해봐도 tbs에서 자체 전송하는 기사와 일부 인터넷 언론의 검색어 노출용 기사 외엔 기존 언론이 인용보도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탄핵정국이 한창 진행되는 중 안희정, 문재인, 박원순 등 주요 대선후보군을 차례로 섭외해 출연시켰는데도 기사는커녕 관련 언론사 ‘정보보고’가 올라오는 경우도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다른 아침 시사프로그램 출연자 발언 기사 인용빈도에 비하면 확실히 ‘김어준의 뉴스공장발’ 뉴스는 떨어진다. 왜일까. 일종의 관성? “인용을 하더라도 이라고 정확하게 밝히는 것이 아니라 ‘한 방송에 따르면’ 식이다. 주류매체 입장에서는 김어준을 재인용하는 것이 자존심 상하는 면도 있지 않나 짐작하고 있다.” 12월 8일, 충정로로 옮긴 ‘벙커1’에서 김어준 ‘공장장’을 만났다. tbs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진행자 김어준씨. 사진은 8일 방송을 마치고 서울 충정로 ‘벙커1’에서 찍었다. / 이상훈 선임기자 어느 정도 이해되긴 한다. 시사주간지 발 ‘특종’도 웬만하지 않으면 인용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인용하더라도 ‘한 매체에 따르면’ 식으로 한다. “내가 진행하는 인터뷰 특성도 있겠다. 미리 주고받은 사전 질문지에 따라 약속된 대련처럼 주고받아 기사화하기 좋게 정리되는 인터뷰가 아니다. 대본 없이 상대 답을 듣고 실시간으로 다시 질문하니 어수선하고 돌발적이다. 때로 다른 모든 질문은 무시하고 한 가지 질문만 반복하기도 하고.”ㅤ 그래도 출연자의 경우, 자신이 발언할 내용을 정리해 오지 않나. “작가들이 사전 질문지를 게스트에게 미리 주지만 항상 덧붙이는 말이 질문지와 무관하게 진행될 거라는 언질이다.” 출연자들도 당황스럽겠다. “정해진 대화만 주고받을 거면 그냥 기자회견하고 보도자료 내면 되는 거다. 뭐 하러 굳이 인터뷰를 하나. 공적 인물들이 준비되지 않은, 평소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내는 게 두렵고 불편하겠지만, 난 그들을 대리하는 게 아니라 그들을 드러내는 역할이다. 불편한 질문에 답을 하든 하지 않든 그 자체가 청취자에게는 판단기준이 되는 거고.” 촛불시위에 나와 ‘걱정 말아요 그대’, ‘애국가’ ‘행진’을 불렀던 가수 전인권씨 출연분이 화제를 모은 적이 있다. 전인권씨는 잠이 덜 깬 목소리로 인터뷰에 응했고, 생방송이었기 때문에 진행자인 김어준 공장장이 진땀을 빼는 모습이 청취자 머릿속에 그려진 사건이었다. “그때 당황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그는 “내가 실수하든 상대가 실수하든 그 과정에서 서로의 본모습이 드러나니 실수를 즐긴다”고 답했다(나무위키 같은 사이트에는 진행자 김어준의 ‘실수’는 인터넷 한겨레TV에서 를 찍은 다음날인 목요일 아침에 자주 벌어진다는 지적이 나와 있다. 밤늦게까지 진행해야 하므로, 아무래도 다음날 아침 생방송을 진행하기에는 체력적 무리가 따를 것이라는 추론이다). 을 진행하기 전, 김 공장장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일주일에 한 회씩 제작되어 유튜브 등에 공개되는 를 통해서였다. 이제 매일 진행하는 프로그램이 생긴 만큼, 출연하는 프로그램에서도 역할분담 또는 위상의 변화가 생기지 않겠느냐고 미리 보낸 질문지를 통해 물었다. “게스트의 폭과 사용 어휘가 다르지만 본질적 차이는 없다. 방송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건 정보가 아니라 태도다. 겁먹지 않아도 된다는. 그래서 이 촌스럽고 위선적이며 폭압적 시대를 웃으며 버틸 수 있는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 ‘뉴스공장’을 청취하면서 떠오르는 말은 ‘미친 섭외력’이다. 사실, 이건 아침 시사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손석희의 트레이드마크였다. 과거 같은 프로그램 진행을 롤 모델을 삼은 것도 있나. “손석희는 지상파의 교범이다. 하지만 난 다른 아침 시사프로와 경쟁한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나는 을 시작하면서 처음부터 종편을 경쟁상대로 상정했다.” 과거에도 아는 사람은 알았지만 팟캐스트 방송 이후 더 유명인사가 됐다. 불편함은 없나. 이를테면 편의점에서 담배 한 갑 살 때도 사람들이 다 알아볼 텐데. “뒤로 돌아 서 있어도 알아본다. (웃음) 나는 무심한 사람이다. 어떤 상황에서 우쭐하지도 않고 위축되지도 않고 덤덤하게 사는 놈이다. ‘이렇게 해서 너무 신나’ 그런 것도 별반 없고, ‘이건 큰일났어’ 하면서 좌절하지도 않고. 또는 ‘아, 저 사람은 권력자’ 하고 위축되는 것도 없고. ‘후줄근한 인생’ 앞에 으쓱해지는 것도 없다. 인격수양을 통해 도달한 게 아니라 원래 그렇게 생겨먹었다.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 그냥 덤덤하다.” 특정 입장을 전제한 편파적 진행이라는 비판도 있다. 방송에 출연한 박지원 국민의당 전 비대위원장이 공개적으로 말한 바 있다. 김 공장장이 이른바 ‘친문’(친문재인)이라는 것이다. 대담집 낼 때부터 문재인을 주목한 것은 사실인데. (김어준 공장장은 인터뷰 후 문자메시지로 이 부분에 대한 보충의견을 보내왔다. 다음은 문자로 보낸 의견이다)“난 문재인 좋아한다. 뭐가 문제인가. 그게 공격이 된다는 생각 자체가 유치하다. 선호가 없다는 것은 중립이 아니라 비겁하거나 자기기만이다. 오로지 문재인만 대통령, 이 생각은 없다. 진보진영 후보군이 이렇게 훌륭했던 적이 있었던가 싶다. 누구 하나 대통령에 부족하지 않다.” 연관되어 나오는 이야기가 김어준 공장장이 사건이나 사물을 바라보는 태도에서 여전히 어떤 배후의 의도나 음모에 대한 집착이 너무 강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역시 문자로 보충해 보내온 답변이다) “물론 세간에는 황당한 음모론, 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모든 추론은 입증되기 전까지 음모론이다. 자신의 경험치를 벗어난다는 이유만으로 합리적 가설을 무작정 음모론이라 공격하는 건, 그것이 사실로 입증되는 공포를 거절하는 방어기제거나 공작적 기획을 경험하지 못한 이들의 ‘설마’이거나 단순한 지적 상상력의 부재이거나 그 자체가 방해공작이거나이다. 특히 이명박·박근혜 시대는 가능한 모든 추론을 의도적으로 멈춰서는 안 되는 시절이다. 비밀과 공작이 그들을 지탱하게 한 양 축이다. 세월호를 보라.” 손석희 사장도 정치권에서 영입 제안이 많았을 것으로 보인다. 방송을 진행하다보면 왜 이렇게 안 하는 걸까, 내가 만약 정치를 한다면 더 잘할 수 있겠다, 이런 생각이 들진 않나. “전혀 없다. 나는 내 맘대로 사는 사람이다. 언제나 그렇게 살아왔는데, 우연히 시대가 맞아 어느 순간 방송도 하고 주목도 받는 시점이 있을 수는 있겠다. 하지만 이 또한 지날 것이며, 잠시 주목 받는다고 내가 다른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다. 자기가 자기가 아닌 사람이 될 방도가 있나. 언제나 이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이렇게 살아갈 거다.”
인터뷰
[박점규의 노동여지도]이명박 집안과 15년 싸움 ‘경주의 달밤’(2014. 11. 10 17:32)
2014. 11. 10 17:32 사회
다스 민주노조 6년, 그러나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된다. 저들은 나태해지고 관성화된 노조의 틈을 비집고 들어와 민주노조를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경북 경주의 야트막한 산에도 붉은 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늦은 가을걷이 손길이 분주한 들녘과 한적한 산길을 지나자 외떨어진 곳에 낡은 공장이 덩그러니 서 있다. 금속노조 정진홍 경주지부장 직무대행이 회한에 잠겨 공장을 둘러본다. 그가 일하던 회사다. 신라공고를 졸업한 정진홍(38)은 1997년 세광공업에 들어갔다. 자동차 시트 레일을 용접해 시트 완성품을 만드는 대부기공에 납품했다. 대부기공은 이명박 실소유 논란으로 유명한 다스의 전 이름이다. 그는 세광공업도 이명박 소유 계열사라고 믿었다. 당시 대표이사는 이명박의 매제인 김진이었다. 이명박씨가 공장을 방문하면 회사는 극진한 예우를 갖춰 VIP 대우를 했다. 이명박 장로가 장신대 장학재단의 감사를 하던 1997년, 아무 관련도 없는 세광공업은 5000만원을 후원금으로 내기도 했다. 경주다스공장. | 박점규 자동차 시트 회사 다스와 납품업체들 2000년 7월, 군대보다 못한 공장에 마침내 노동조합이 만들어졌다. 정진홍은 다음해 노조사무장을 맡았다. 매출이 급증하고 회사 직원도 1998년 60명에서 150명으로 늘어났는데, 세광공업은 “노사분규로 인해 물량 수주를 받지 못했다”며 2001년 5월 폐업했다. 조합원들은 위장폐업을 철회하라며 서울시장으로 출마한 이명박 후보의 집과 소망교회를 찾았다. 이명박은 “내려가 있으면 잘 해결될 것”이라고 했고, 유광테크라는 회사를 차려 남은 조합원 26명을 고용했다. 이명박은 서울시장이 됐고, 2년이 지나지도 않은 2004년 회사는 다시 문을 닫았다. 이명박 집구석과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고, 첫 번째 전쟁은 완패했다. “지부장님이 여기 출신이라 안 했능교?” 공장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던 다스 조합원이 반갑게 맞는다. 세광공업 공장은 북미로 수출하는 시트 반조립제품(CKD)의 물류창고로 사용되고 있다. 다스에 시트 레일을 납품하는 ㈜금강의 조합원 두 명도 인사를 나눈다. 금강은 이명박 처남댁이 최대주주인 회사다. 지난해 12월 10일 금속노조에 가입했다. 정규직 노동자 140명이 캄보디아, 필리핀, 베트남, 우즈베키스탄, 중국 노동자 30명과 함께 만든 아름다운 노조다. 금강 조합원들이 다스에 납품하는 물량이 줄어들고 있다며 한숨을 쉰다.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대기업이 세광공업처럼 하루 아침에 중소기업을 날리는 일은 ‘식은 죽 먹기’다. 울산의 길목 외동농공단지 자동차 시트 제조회사 다스. 회장은 이명박의 큰형 이상은, 부사장은 매제 김진, 경영기획실장은 아들 이시형이다. 점심을 먹고 나온 노동자들의 얼굴이 활기차다. “오늘 삼겹살입미더. 후딱 식사하이소.” 깔끔한 식당에 삼겹살과 상추가 놓여 있다. 6년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풍경, 민주노조는 식판부터 바꿔놓았다. “노동조합이 바뀌면서 제일 좋은 건 노예근성에서 벗어나 당당하게 노동자의 삶을 살게 됐다는 거예요. 중간관리자 눈치 안 보고, 욕 안 얻어먹고, 내 할 일 하고 내 월급 받아가게 됐다는 거죠.” 임도형 지회장이 환히 웃는다. “저는 아침에 일어나서 금속노조 보고 감사하다고 절을 합니다. 꼬박꼬박.” 김재홍 부지부장의 허풍에 웃음보가 터진다. 임도형·김재홍을 비롯한 다스 8인방이 금속노조 경주지부 정진홍을 찾아간 것은 2008년 5월. 이명박 집안과 2차 전쟁의 시작이었다. 정진홍은 8인방을 일요일마다 만났다. 당시 한국노총 다스 노조 위원장이 1991년부터 18년 동안 장기집권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철저히 보안을 유지하면서 교육, 전술, 역할분담, 현장조직을 치밀하게 준비해나갔다. 회사는 프레스와 금형 등 핵심 라인을 빼고 모두 하도급으로 전환하려고 했고, 어용노조도 낌새를 채고 있었다. 7월 15일, 김진 부사장의 해외 출장일을 ‘거사일’로 잡았다. 전날 여관에서 함께 보낸 8인방과 정진홍이 새벽 회사에 들어와 주야 조합원들을 식당으로 모았다. “서울로 가다 돌아온 김진 부사장이 식당으로 들어오려고 해서 우리가 밀어냈죠. 말단 관리자한테도 말 한마디 못했는데 최고경영자를 쫓아내니까 조합원들이 빵 터졌습니다.” 임도형 지회장은 흥분해하며 그날을 떠올렸다. 비상 조합원 총회에서 98.6%로 18년 독재자를 쫓아냈다. 한국노총을 탈퇴해 금속노조에 가입하고 새 지도부를 선출했다. 노동자들이 일손을 놓자 시트 생산이 중단됐고, 현대자동차 라인이 멈추는 상황이었다. 회사는 두 손을 들었고, 금속노조 교섭대표인 정진홍이 내민 종이에 도장을 찍었다. 최고의 복수전이었다. 장기집권 어용노조 몰아낸 다스 8인방 현장을 한 바퀴 돈다. 올해 1월 1일부터 심야노동을 없애고 주간 2교대로 일한다. 18년 독재의 시절을 끝내고 민주주의를 만끽하고 있는 조합원들이 활력 넘치는 얼굴로 반갑게 인사한다. 스타렉스 라인, 시트를 조립하고 다림질하는 손길이 바쁘다. 모두 비정규직이다. 2008년부터 매년 10%씩 정규직으로 전환해 지금까지 70명이 정규직이 됐다. 지난해 7월 2일 93명의 사내하청 노동자를 노조로 받아들여 같은 식구가 됐고, 올해는 별도의 단체협약까지 체결했다. 노조 간부들을 맞는 비정규직 조합원들의 표정이 밝다. 다스 민주노조 6년, 그러나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된다. 저들은 나태해지고 관성화된 노조의 틈을 비집고 들어와 민주노조를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노조 간부 8명이 지난 6개월 동안 공부와 토론을 하고 있다. 회사 탈의장에서 눈물을 펑펑 쏟아내며 마음을 나누기도 했다. 2008년 7월 15일, 어용노조 해방기념일의 마음으로 노조를 지켜내겠다고 다짐한다. 다스 이후 작은 외동공단에 민주화 바람이 불어 금속노조 사업장이 4개가 됐다. 다스 맞은편, 현대자동차에 금형을 납품하던 시그오토멕 공장이 6개월째 멈춰 있다. 지난 5월 10일 파업으로 현대차 라인이 끊기자 현대차는 납품업체를 다른 회사로 바꿨다. 회사는 경영 악화를 이유로 폐업했다. 현대차 손짓 하나에 150명의 목숨줄이 날아간 것이다. 노조는 위장폐업 철회와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공장 사수 철야농성에 돌입했고, 현대차와 승원그룹 규탄투쟁을 벌였다. 불 꺼진 농성장. 특전사 출신 조합원의 단전호흡 시범에 한바탕 웃음꽃이 핀다. 이날 아침 회사는 금형을 빼가려다 금속노조 간부와 조합원들의 저지로 물러섰다. 매각협상이 진행되고 있다고 하지만 믿을 수 없다. 최장춘 사무장은 “힘겨운 싸움이지만 포기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경주 시내로 향하는 7번국도 양쪽으로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들었다. 정진홍 직무대행의 전화가 쉴 새 없이 울린다. “경주는 현대차 부품공단입니더. 지금이 아이템 낙찰 시기 아닝교. 금속노조 깃발을 꽂으면 물량을 빼돌리거나 줄이니까 힘들지만, 우짭니까. 죽기살기로 싸우는 수밖에.” 경주의 가장 오랜 용강공단 입구에 있는 일진베어링이 보인다. 민주노총을 탈퇴한 사업장이다. ‘대통령 집구석 민주노조 습격사건’ 이후 벌어진 3차 전쟁. 2010년 1월 1일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와 복수노조 창구 단일화 법안이 통과된 이후 이명박 정부는 금속노조 사업장을 조지기 시작했다. 포항노동청이 총대를 멨다. 2010년 7월 금속노조 경주, 포항지부 소속 19개 노조에 대해 전임자 임금만이 아니라 조합원 자격, 시설편의 제공 등 10개 항목의 단체협약을 시정하라는 공문을 보내 전방위적으로 압박했다. 노동부와 경찰, 회사의 탄압을 견디지 못하고 경주에서만 발레오만도, 광진상공, 일진베어링, 이너지, 전진산업, 영진기업 등 6개 사업장 1000여명이 금속노조를 떠났다. 단체교섭 거부→직장 폐쇄→공권력 투입→단체협약 해지→어용노조 설립으로 이어지는 민주노조 말살 전쟁은 경주를 시작으로 대구, 구미, 충청, 경기로 이어졌고, 창조컨설팅과 컨텍터스 용역깡패의 폭력이 알려지면서 에스제이엠(SJM) 안산전투에서 멈췄다. 당시 포항노동청과 경찰들은 “다스만 금속노조 탈퇴하면 건드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다녔다. 경주의 노동자들은 대통령 집구석에 민주노조가 세워진 직후 노동부 출신과 ‘영포라인’으로 만들어진 공직윤리지원관실이 불법 민간인 사찰과 함께 노조 파괴공작을 주도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명박 집구석 피의 보복 1호 발레오만도 농성장에서 아주머니 조합원들이 이야기꽃을 피운다. 2010년 2월 공장에서 쫓겨난 29명의 해고자들이 공원에서 5년을 살았다. 축사 철거, 모내기, 딸기농사, 포도수확, 정월대보름 달집 만들기, 은행나무 채집…. 안 해본 일이 없었다. 지난 2년 동안 금속노조 경주 조합원들이 매달 1만원씩 돈을 내 월 100만원가량 생계비를 지원해줬다. 고난의 시간이 끝나간다. 금속노조 탈퇴 총회와 해고가 무효라는 소송이 고등법원까지 이기고 조만간 대법원 판결이 내려진다. 빼앗긴 임금을 되찾는 소송도 추가로 진행되고 있다. 이명박 정권의 보복 1호 발레오만도 가장 행복한 건 공장 안에 금속노조 조합원이 100명 생겼다는 사실이다. 비밀조합원까지 포함하면 훨씬 많다. “일과시간에 생산량을 못 채우면 잔업을 무료로 해줬어요. 그런데 지금 금속 조합원들이 거부하니까 멈추게 됐죠. 식당 앞에서 홍보물 주면 잘 받아갑니다. 한 10년은 걸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발레오만도 정연재 전 지회장이 조만간 기쁜 소식을 전해줄 것이라고 말한다. 지난 10월 25일 100여명의 발레오만도 조합원들과 지역 노동자들이 천막 앞에 모여 체육대회를 열었다. 5년 만에 처음이었다. ‘경상도 싸나이’ 정진홍은 이날 눈물이 쏟아져 말을 잇지 못했다. 2010년 교섭 자리에서 대구 대동공업 노무이사가 한 말이 떠올랐다. “저희도 발레오처럼 금속 탈퇴시키고 회사노조를 만들 생각을 안 했겠어요? 하지만 결국 노조가 생길 것이고, 돈은 더 들고 골치 아플 게 뻔한데, 하지 않겠다고 했죠.” 매일 금속노조와 싸우고 있는 발레오 강기봉 사장에게 하는 말이다. 발레오 건너편 에코플라스틱에서 1조 근무를 마친 김영민 조합원이 천막에 찾아와 아주머니 조합원들과 대화를 나눈다. 점심에 치킨이 나오면 챙겨서 갖다주는 사람이다. 한효섭 조합원은 농사 지은 쌀 한 가마니를 갖다놓았다. 너무 고마운 사람들, 조합원들은 싸움 꼭 이겨서 소를 한 마리 잡겠다고 말한다. 김영민 조합원은 “노조 간부들이 잘 오다가 임기가 끝나면 발길을 끊는다”며 속상해한다. 여성 조합원들이 담소를 나눈다. “아들 같은 용역깡패들이 거지들 또 온다며 가래침 퉤 뱉고, 진짜 억울해서 못 견디겠더라고요. 쫓겨나와 경제적으로는 어려워도 정신적으로는 강해졌어요.” 임임순 조합원의 말이다. 민주노총 최해술 경주지부장(42)이 천막을 찾았다. 1992년 세광공업에 들어가 2001년 노조 지회장을 맡아 싸우다 정진홍과 함께 해고됐다. 세광을 말아먹은(?) 두 사람. 정진홍은 금속노조에서 제조업을, 최해술은 경북일반노조에서 비제조업 노동자들을 조직했다. 지난 10년 동안 정진홍과 최해술이 만든 노조가 50개가 넘는다. 까먹은 노조도 있지만, 전국 최고의 ‘노조 제조기’다. 노조 효과도 적지않다. 보문관광단지에서 교육문화회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일반노조에 가입하니까 주변 호텔에서 노조를 못 만들게 하려고 임금을 올려주고 근무조건을 개선해준다. 경주CC, 더케이호텔, 드림센터, 경주엑스포도 그의 손을 거쳐갔다. “노조 만들겠다고 찾아오는 사업장 받고, 기존 노동조합 지키기에 급급한 게 현실입니다. 투쟁사업장이 많아져 많이 바쁘죠. 그런데 거기에 한 사람 더 있다고 크게 달라지지 않잖아요. 무슨 일이 벌어지더라도 노조 만드는 일에만 집중하도록 해야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지 않을까요?” ‘신라의 달밤’이다. 정진홍과 최해술이 바쁜 걸음을 옮긴다. 이명박 집안과의 전쟁은 현대차와의 전쟁으로 바뀌고 있다. “일만 하던 노동자야~ 일손을 멈추어라~ 노래를 불러보자~ 신라의 밤 노래를~”
박점규의 노동여지도
[정보공개로 본 세상]볼수록 의심되는 이명박 대통령 기록(2013. 05. 07 09:47)
2013. 05. 07 09:47 정치
지난 2월 이명박 정부가 끝날 무렵에 사람들의 눈을 의심케 하는 보도자료 한 장이 발표됐다. 이명박 정부에서 대통령 기록 1088만건을 생산하였고 이 중 96%가 전자기록으로 생산되어 ‘17대 임기 내 전자정부의 진전을 가늠케 한다’ 는 내용이었다. 이명박 정부에서 생산했다고 발표한 1088만건의 기록은 노무현 정부보다 20%나 많은 수치를 자랑한다. 이 발표대로라면 새로운 기록 대통령이 탄생되는 것이고, 이는 후손을 위해서도 매우 좋은 일이다. 하지만 이 발표를 믿기에는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것이 너무 많다. 왜냐하면 이명박 정권은 대통령 기록을 이관하는 단계부터 발표단계까지 무엇하나 명쾌하게 설명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우선 이명박 정부는 2012년 대통령 기록 이관을 위해서 대통령 기록 이관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에서는 TF 명칭, TF 구성일 및 내부위원 이름, TF 회의록을 정보공개청구했으나 ‘개인정보보호’ 등을 이유로 비공개 결정을 내렸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의신청을 막기 위해서 내용은 비공개했으나 통지는 ‘공개’로 결정하는 꼼수를 썼다는 점이다. 대통령이 되는 순간 대통령 기록 생산의무가 부과되고 그 의무를 다하여 국민들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사진은 지난 2월 25일, 여의도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이명박 전 대통령 부부와 인사를 하고 있는 모습. | 정지윤 기자 일부 언론에 의해 이명박 정권에서 생산한 대통령 기록 중 비밀기록이 한 건도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명박 정부 실무진에서는 비밀기록을 대통령 지정기록물로 묶어 이관했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비밀기록은 국가 안보를 위해서 반드시 참조해야 할 자료이고, 대통령 지정기록은 15년 동안 전직 대통령 외에는 아무도 볼 수 없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한반도 긴장 정국이 계속되는 가운데, 현 청와대는 무슨 기록을 보고 상황을 대처해 나갈지 걱정이다. 또한 2012∼2013년 사이에 대통령실 각 부서의 기록물 생산현황을 공개해달라고 청구해보았는데 답변은 놀라웠다. 비서실별로 자료를 공개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생산한 기록 통계만을 조악한 수준으로 공개했다. 이는 기록생산 현황 통보체계에도 맞지 않는 황당한 일이다. 이와 더불어2008∼2011년 대통령 기록생산 현황 보고자료를 보면 MB 대통령실 부서별 ‘기타 종이문서’ 생산량도 의혹 투성이다. 4년 동안 종이문서를 생산한 곳은 민원 관련 부서였던 민정수석실·사회통합수석실뿐이었고, 정작 기록을 제대로 남겨야 할 중요 정책결정 담당부서인 경제수석실·국정기획수석실·정무수석실 등에서는 문서 생산 표기란이 공란으로 돼 있다. 주요 부서에서는 단 한 건의 기타 종이문서도 만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업무를 담당했던 담당자는 현재도 청와대에서 근무 중이며, 비서실별로 구체적으로 공개하지 않는 질문에 대해서 답변을 하지 못하겠다는 말로 일관하고 있다. 또한 이 대통령 기록을 접수했던 대통령기록관 쪽에서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자신들이 답변할 성질의 사안이 아니라며 함구하고 있다. 이런 정황들로 봤을 때 이명박 정권의 대통령 기록은 적어도 부실하게 생산했거나 관리 자체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위와 같은 사안들은 그냥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검찰·감사원 등에서 대통령 기록 생산과 관련해 어떤 불법적인 일은 없었는지 조사해야 할 사안이며, 불법적인 정황이 드러난다면 책임을 물어야 한다. 대통령 기록의 소유는 전직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이다. 대통령이 되는 순간 대통령 기록 생산의무가 부과되고 그 의무를 다하여 국민들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우리 국민은 그 의무를 이행했는지 따져 물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전진한
정보공개로 본 세상
[신간 탐색]이명박 정권 인권위 수난사(2013. 02. 18 18:37)
2013. 02. 18 18:37 문화/과학
이명박 대통령은 15일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자화자찬했다. “내가 대통령이 되어서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이 정도로 인지도 생기고, 수백년 변방에서 세계 중심으로 갔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안경환 지음·살림터·1만3000원 안경환 전 국가인권위원장이라면 이 발언을 듣고 쓴웃음을 지을 것 같다. 그는 새 책 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즈음(2009년) 대한민국은 국제 인권사회에서 치욕을 겪고 있었다. UN은 물론 명망 있는 국제 인권단체들이 앞다투어 한국의 인권 상황에 우려를 표했고, 여러 차례 공개 서한과 메시지를 보냈다. (중략) 이로 인해 국제 인권사회에서 실추된 한국의 이미지를 만회하려면 오랜 세월에 걸친 체계적인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는 2009년 7월 위원장직을 전격적으로 사임하고 학교로 돌아간 그가 2011년 12월부터 1년 동안 월간 에 연재한 글을 묶은 책이다. 인권위원장 재임 중 인권위가 겪은 일들을 기록한 이 책은 한 마디로 ‘이명박 정권 시기 인권위 수난사’라고 부를 만하다. 인권위의 수모는 이명박 정부 인수위원회 시절부터 시작됐다. 2008년 초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새 정부 조직의 윤곽을 발표하면서 인권위를 대통령 직속기구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이 안은 결국 철회됐지만 이듬해 3월 행안부는 인권위 조직을 축소하고 정원 208명을 164명으로 축소하는 안을 확정했다. 2009년 당시 한국 국가인권위원회는 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ICC) 부의장국이었다. 2010년부터는 의장국을 맡게 되리라는 것이 유력한 상황이었다. 안 전 위원장의 임기는 2009년 10월 말까지였다. 새 ICC 의장은 2010년 3월에 선출될 예정이었다. 안 전 위원장은 이명박 정부 출범 후 1년이 넘도록 대통령을 만나지 못했던 터라 연임은 생각할 수 없는 처지였다. 그는 능력 있는 후임자가 ICC 의장이 되기를 바라면서 임기 넉 달을 앞두고 사임했다. 그러나 새 인권위원장으로 낙점된 이는 현병철 현 위원장이었다. 안 전 위원장은 책 말미에서 향후 인권위의 새로운 10년을 위한 로드맵으로 인권위의 헌법기관 승격, ‘인권기본법’ 제정, 인권위원 자격 심사제도 도입을 제안한다. 이 구상을 받을 수 있는 주체는 박근혜 당선인이다. 안 전 위원장은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진심으로 빈다”며 “경제와 인권이 서로 상극이 아니라 상생의 가치임을 입증해주시기 바란다”고 썼다.
신간 탐색
[독자댓글]986호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 미래는 있을까”外를 읽고(2012. 08. 01 14:58)
2012. 08. 01 14:58 오피니언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 미래는 있을까”를 읽고 이번호 표지를 보고 충격 받았습니다. 이건 강물이 아니라 페인트군요. 녹색성장을 ‘녹색페인트칠성장’이라고 친구들과 얘기했는데, 정말로 그렇게 되리라곤 상상도 못했습니다. 낙동강이 저리 되도록 경남 주민들은? _트위터 pyodogi “통진당 구당권파 ‘역전 찬스’ 노린다”를 읽고 자기들만 물러나는 게 아니고 공동책임지고 같이 물러나는데 못 물러난다고 한 지 도대체 얼마냐? 정파의 문제가 아니었는데, 여론 형성하고 거짓말하는 것도 다 보이는데 정말 짜증난다. 선거도 끝나고 당원 의견 운운하더니 당원들의 숨은 마음들도 드러났는데 계속 생떼다. 고집 그 이상의 의미를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다. 추해 보인다. 이제 그만 좀 했으면 좋겠다. _다음 해리포터 “뒤탈 나더라도 일단 쓰고 보자?”를 읽고 자전거길이 있든 말든 사람들은 당신들이 생색내기 혈세를 바르기 전부터 나름대로 자전거 여행을 하고 다녔다는 겁니다. 다만 길이 하나 더 늘었다는 것만 다른 것입니다. 지자체 혈세의 사용처는 지자체가 결정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여가생활이 중요하긴 하지만 민생보다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_페이스북 이재식 토목공사라는 게 하루 아침에 나타나는 것도 아니고. 200년 만의 가뭄도 큰 피해 없이 잘 넘겼고, 매년 장마철이면 농경지 침수돼서 피해도 많았는데 올핸 별로 없지 않나. 전세계가 기상이변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데 미리 대비하는 게 잘못된 거라고 까기만 하나? 그럼 지구 기상이변에 대안이 뭐냐. _네이버 wang**** 일본에는 보통 집집마다 자전거 하나는 필수 교통수단이죠. 지하철 입구에 자전거 보관장소가 엄청나죠. 모두 교통 보조 형식으로 사용되며 MB처럼 사치품에 준하는 허황되고 어처구니 없는 자전거 도로는 만들지 않습니다. 국민 다수가 운용할 수 있는 길을 택해야지, 엄청난 돈을 퍼부어 일부 동호인이나 전문가들만 가는 길이라면 한심한 정책이죠. _경향 woon4568 4대강 자전거도로 좋지. 근데 도심에서 한강변 자전거도로까지 나가는데 자전거길이 제대로 안 되어 있다는 게 함정. 어느 게 먼저인지 정말 몰라서 그랬나? _네이버 gund**** “대통령 되면 정운찬, 안철수 등과 당적 초월해 ‘정치 드림팀’ 만들 것”을 읽고 김두관 후보는 겸손하며 서민의 삶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대통령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직까지 대중에게는 많이 알려지지 못했지만 이분의 진정성이 알려질 때 대한민국이 요동칠 것이다. _다음 아싸 김두관은 행정자치부 장관도 겨우 몇 개월, 시켜보니 뭔가 부족해 노 대통령도 더 이상 중책 안 맡긴 사람이다. 우연히 노무현 열풍에 경남도지사 되었을 뿐이고 그것도 겨우 2년 수행했다. 어떤 면으로도 함량미달이라 본다. _다음 우둥불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 국제기구 될까”를 읽고 쥐쥐쥐아이(GGGI)는 이명박표 전시효과를 위한 행정의 표본이다. 하고 싶음 청계재단에서 맡아서 하든가. _트위터 qfarmm
독자의 소리
[표지이야기]이명박 정부의 녹색 성장, 미래는 있을까(2012. 07. 24 18:15)
2012. 07. 24 18:15 정치
“너무 놀랐다. 개인적으로 환경운동을 한 지 20년이 넘었다. 낙동강 페놀사건, 위천공단 반대운동, 낙동강 벤젠 유출사고, 암모니아 발암물질 검사… 다 겪어봤다. 그런데 강이 그렇게 변할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임희자 마산창원진해(마창진) 환경연합 사무국장의 말이다. 지난 6월 말, 본포취수장을 방문한 마창진 환경운동연합 관계자들은 낙동강 물 가득히 출렁거리는 녹조에 놀란 가슴을 추스르며 ‘증거사진’을 채록했다. 채록작업은 7월에 들어서도 계속되고 있다. “다리 위에서 보면 안 보인다. 4대강 사업으로 물이 많아졌고 표가 안 나니까 ‘좋아졌나보다’ 하고 지나칠 수 있는데 가까이 다가가서 봐야 한다. 대개 ‘비릿한 냄새’로 알아차릴 수 있다. 강바람이 불 때마다 진동하는데, 전공교수에게 물어보니 그게 녹조가 죽으면서 사체가 내보내는 가스 냄새라고 하더라.”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에 대해 시민사회와 학계는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사업 방식의 문제가 제일 크다고 지적하고 있다. 지난 5월 2일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제17차 녹색성장위원회 및 제8차 이행점검 결과 보고대회를 주재하고 있다. | 연합뉴스 감시활동은 쉽지 않다. 녹조현상의 지속시간은 1~2시간. “녹조가 갈색으로 죽으면서 바닥으로 가라앉으면 또 별로 표가 나지 않는다”고 임 사무국장은 덧붙인다. “정부에서는 갈수기 때 낙동강에서 녹조가 나타날 수 있다고 했는데, 수량이 풍부해지는 여름에는 녹조가 끼지 않는다는 게 정설이다. 취수구 쪽에 근무하는 공무원들 말을 들어봐도 이전엔 진한 간장색의 조류를 본 적은 있어도 녹조는 이번에 처음 봤다고 한다.” 마창진 환경연합 측은 사진을 단체 공식 블로그에 게시하면서 다음과 같이 글을 덧붙였다. “어느 높으신 분의 말씀처럼 녹색성장으로 강이 뒤덮여 버렸습니다. 정말 대단하신 미래예측 능력입니다.” 이 게시글의 제목은 ‘이것이 녹색성장이라면 관둬라’다. ‘녹색성장’ 전성시대 2008년 8월 15일, 광복절 축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저탄소 녹색성장’을 새로운 국가비전으로 내놓으면서 ‘녹색성장’은 이명박 정부를 대표하는 구호가 되었다. 녹색성장은 매년 행정안전부의 지자체·비영리민간단체 지원사업의 중심 카테고리로 등장한다. 완공이 된 지금까지 논란을 빚고 있는 ‘4대강 사업’도 마스터플랜에 따르면 저탄소 녹색성장의 일환인 ‘기후변화 적응역량 강화사업’이다. 정부가 2009년 5월 내놓은 ‘녹색성장 5개년계획’에 따르면 ‘원자력 신뢰성 제고 및 원자력 비중 확대’ 정책도 10대 전략 중 하나인 ‘탈석유·에너지 자립 강화’의 핵심 방책이다. 5년간 107조원이 투입되는 전체 재정계획 중 두 사업(기후변화·에너지자립)과 관련된 예산은 56조원으로 추정되고 있다. 포털뉴스에서 검색하면 중앙정부뿐 아니라 지자체, 기초단체에서도 녹색성장은 범용적으로 사용되는 구호가 됐다. 이른바 ‘녹색성장 끼워팔기’에 대한 지적은 이명박 정부 집권 1년차인 2008년부터 제기되었다. 명확한 개념이나 기준이 없다는 지적이다. 현재도 달라진 것은 별로 없다. 오히려 관 주도 녹색성장 사업은 더 늘어나는 중이다. 행안부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지역 녹색성장 활성화 사업’ 30개를 선정해 총사업비 15억원을 지원할 예정이다. ‘녹색성장’ 전성시대는 내년, 차기 정권에서도 지속될까. 지난 6월 5일 프레스센터. 양수길 녹색성장위원회 위원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기후변화행동연구소가 주최한 ‘저탄소 녹색성장 4년-평가와 대안’ 세미나 자리였다. 양 위원장은 다음과 같이 자문자답했다. “녹색성장이 다음 정권에서도 계속될 것인가. 그렇다.” 양 위원장의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녹색성장법이나 온실가스 감축법, 배출권 거래제 등 주요한 입법조치가 만들어졌다는 것. 둘째,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GGGI)와 같이 녹색성장을 주제로 하는 국제기구들이 기후변화 파트너십의 일환으로 추진되고 있으며, 국제적으로 녹색성장에 대한 논의구조가 안착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날 양 위원장의 발언에서는 묘한 뉘앙스가 느껴졌다. “녹색성장은 여야 모두 지지했고, 정권을 넘어서 지속적으로 추진돼야 하지만, 방법론적으로는 수정될 필요성을 느낀다.” 그러니까 추진 방법이 수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존의 추진 방법에 문제는 무엇이었을까. 양 위원장이 이날 내놓은 답은 다음과 같다. “녹색성장이 기존 환경운동과 달리 기후변화 대응을 목표로 하다 보니 갈등이 없지 않았다. 예를 들어 기후변화 문제에 대한 ‘선제적 대응’으로 4대강 사업을 진행했는데 이에 대한 시각차가 있었다.” 지난 6월 하순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유엔 지속가능발전회의(리우+20)에서 한국 정부는 “정상회의에서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GGGI)의 국제기구 전환을 위한 설립 협정을 16개국과 맺었다”는 것을 성과로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민간위원회의 결론은 달랐다. 리우+20 한국 민간위원회는 6월 18일 녹색성장을 비판하는 공식 부대행사를 현지에서 열었다.   이날 ‘비판적 관점에서 바라본 한국 녹색성장의 경험’이라는 주제로 발제를 한 박숙현 시민환경연구소 연구위원은 “정부 쪽에서 나오는 ‘녹색성장’에 대한 보고서는 많으니, 민간에서 보는 시각도 공유하자는 취지로 발제를 한 것”이라며 “소위 ‘녹색 뉴딜’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4대강에 대한 사례 연구의 형식으로 발제를 했다”고 말했다. 민간위원회는 6월 20일 열린 거리행진에 참가했다. 이들이 내건 구호는 이랬다. “STOP The Green Lie For 1%(1%를 위한 녹색 거짓말을 멈춰라)”, “Green Growth? Grey Growth!(녹색성장 아닌 회색성장이다!)” “녹색성장은 회색성장인가” 녹색성장에 대한 시민사회와 정부 측 인식 차와 골은 크고 깊다. 핵심은 4대강 사업과 원전 문제다. 앞의 낙동강 본포취수장 녹조문제도 마찬가지다. 경향신문을 비롯해 여러 언론이 낙동강 녹조를 보도하자 환경부와 국토해양부는 해명자료를 내고 언론중재위를 통해 정정보도를 요청했다. 정부의 주장은 낙동강의 녹조현상을 뒷받침할 수 있는 데이터는 chl-a(클로로필a)인데, 수질국가운영 측정망상 수치는 4대강 사업 공사 전인 2007년부터 2009년까지 3년간의 평균보다 개선되었다는 것이다.“4대강 사업으로 본류가 막히면서 흐르는 속도가 느려져 녹조현상이 나타났다”는 환경단체들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낙동강유역환경청 수생태관리과 안정훈 팀장은 “일부에서 정치적인 목적으로 너무 부풀리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6월 29일, 마창진 환경연합이 본포취수장 인근에서 찍은 녹조 사진. 마창진 환경연합은 4대강 보 때문에 물 흐름이 늦춰져 나타난 현상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환경부 등은 4대강 공사 이전에 비해 수질 오염원은 줄어들었기 때문에 녹조의 원인이 4대강 사업이라고 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 마창진환경연합 제공 녹조가 발생했더라도 상류에서 물을 방류하는 조치를 취하고 또 약품을 사용하거나 필터를 통해서 다 제거가 가능한데도 ‘수돗물 비상’과 같은 선정적인 주장을 내놓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환경단체들은 “평균수질이 개선되었다고 하지만 녹조가 집중되는 가장자리에 취수구가 있기 때문에 시민들이 오염된 물을 먹을 가능성이 높으며, 4대강 사업으로 물이 고이기 때문에 강에 유입된 ‘점오염원’인 질소와 인의 영향으로 녹조현상이 나타나게 된 것”이라며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정부와 시민사회의 대립과 반목은 이명박 정부 출범 이래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녹색성장에 대한 인식도 마찬가지다. 시민사회나 환경단체들은 “녹색과 성장은 일종의 형용모순 개념인데, 두 개념 사이의 연관관계를 이명박 정부는 아직 설득력 있게 제시를 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구도완 환경사회연구소 소장은 “녹색성장은 성장에 초점을 맞춰서 녹색을 들러리 세운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성장중심적인 담론이고 정책이며, 실제 행태에서도 원자력이나 4대강을 녹색성장으로 포장했기 때문에 문제다”라고 말했다. 이상헌 한신대 교양학부 교수는 “개발도상국에서 녹색성장은 의미있는 개념일 수는 있지만 그것을 일반화시켜 녹색경제 말고 녹색성장을 하자는 것은 통하기 어렵다”며 “특히 현재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녹색성장은 원자력에다가 녹색기술 개발 위주인데, 고용창출과도 관련 없고 경제를 운용하는 데도 큰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실증연구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인터뷰 말미에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녹색성장이 원래부터 있었던 개념이긴 한데 원자력과 4대강을 중심으로 한 녹색성장 개념은 이명박 정부가 만든 것이니 소유권을 주장할 만도 하다.”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에서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는 것은 민간과 협의방식이 아닌 ‘톱다운’ 방식 즉,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4대강 사업의 경우 정부가 주장하는 것처럼 강을 서로 연결하는 ‘한반도 대운하’를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면 4대강에서 대통령의 임기 내에 반드시, 동시에 진행할 필요가 없었다. 종교계와 보수매체를 중심으로 “한 개의 강에서 시범사업을 한 뒤 나머지로 확대”하는 절충안이 제시되었지만 묵살되었다. 구 소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8·15 광복절 경축사를 분석해보면 녹색성장의 핵심 관심은 기후변화 문제와 에너지 자원 위기인데, 기후변화를 이유로 해서 생태권위주의적 담론을 확산시키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녹색위, 시민사회와 화해 시도? ‘톱다운’ 추진방식은 종전에 국가기구로 있었던 지속가능발전위원회(지속위)를 축소시키고, 녹색성장위원회를 대체하는 과정에서도 나타났다. ‘저탄소 녹색성장’ 선언이 나온 후 이명박 정부 초대 지속위 위원장이었던 김형국 전 서울대 교수는 녹색성장위원회 위원장으로 옮겼다. 하지만 지속위는 방치되다가 2009년 9월에 환경부 소속으로 옮겨 다시 구성된다. 지속위 5기 사회통합위원이었던 정화선 푸른광주21협의회 사무처장은 이명박 정부 초반에 벌어진 ‘사태’에 대해 불쾌한 기억을 갖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6월 20일(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글로벌 녹색성장연구소(GGGI) 설립 협정 서명식’을 마친 뒤 유영숙 환경부 장관 등 한국 대표단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환경부 제공 “기존 위원들을 잘랐으면 정식으로 ‘해촉장’을 주든가 했어야 하는데,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얼마 안 있어 다시 꾸린다는 보도를 봤는데 없애지는 못하고 환경부 산하로 옮겨서 거의 유명무실하게 만들었다는 인상이 강했다.” 이상헌 교수는 “사실 녹색성장이라는 개념은 사회·환경·경제를 포괄하는 지속가능발전보다 포괄 범위가 작은 개념인데, 이명박 정부는 종전의 국가위원회였던 지속위를 부처 산하 위원회로 축소시킨 반면, 녹색성장을 기본법으로 삼아 도치시켜버렸다”며 “차기 정부에선 원래 지속위가 하던 역할을 복원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병옥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소장의 생각도 마찬가지다. “이전 사례를 보면 새로 만들어진 정부가 전 정부의 주요 국책기관이나 사업에 대한 ‘네이밍’에 부담을 안고 가지 않으려 하는 것이 통례다. 이후에 어떤 정권이 들어서든 녹색성장 대신 지속가능발전을 살리는 방식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녹색성장이 이미 국제적으로 보편화된 개념이기 때문에 살아남을 것이라는 주장도 의문부호가 찍히고 있다. 정권이 바뀐 뒤 ‘4대강’ 등 정권 차원의 스캔들에 대한 조사가 시작되면 GGGI 등도 같이 거론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당장 국회에서 협정 비준 과정에서 문제제기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녹색성장위원회의 한 고위 관계자는 “시민사회에서는 4대강과 원전을 녹색성장의 핵심으로 보고 있지만 실제 전체 녹색성장 의제 중 두 사안이 차지하는 비중은 높지 않다”며 “이후 차기 정권이 들어서면 자연스럽게 재조정이 이뤄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또 “이명박 정부가 녹색성장을 위로부터 밀어붙이는 식으로 진행했다고 하지만 앞으로 60년을 내다보고 계획을 세운다면 초기 세팅과정에서 의도하지 않게 벌어진 시행착오 정도로 생각해줬으면 좋겠다”며 “남은 기간 동안 시민사회와 관계회복을 위해 허심탄회하게 논의하는 자리를 많이 마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녹색성장위원회의 대외 협력업무를 맡고 있는 관계자는 “학계나 시민사회도 정권과 연계시켜 무조건 녹색성장을 버려야 할 개념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한다”며 “지금까지의 녹색성장을 녹색성장 1.0이라고 한다면, 이후 사회적 형평성을 보완한 녹색성장 2.0의 상을 같이 만들어가는 것이 차라리 낫지 않겠나”라고 반문했다. 녹색성장위의 ‘제안’이 차기 정권이나 시민사회에서 받아들여질지는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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