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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군까지 공격하는 이스라엘···‘부글부글’ 들끓는 국제사회(2024. 10. 21 06:00)
2024. 10. 21 06:00 국제
국제사회 ‘국제법 위반’ 비판 불구 더 노골적 공격에 나서 이스라엘의 막무가내 행보 막을 실질적 방법 없어 속앓이 10월 12일(현지시간) 레바논 남부에서 레바논 지역 유엔 평화유지군(유엔 평화유지군) 소속 차량이 순찰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스라엘이 레바논 지상전 과정에서 유엔 평화유지군까지 공격했다. 유엔 회원국인 이스라엘이 평화유지군을 공격하는 상황을 두고 국제사회에선 ‘국제법 위반’이자 ‘전쟁범죄’라는 비판이 빗발치고 있다. 이스라엘은 아랑곳하지 않고 되레 더 노골적으로 공격에 나섰다. 동시에 레바논 전역으로 공습 범위를 넓혀 민간인 인명 피해도 불어나고 있다. 유엔 기지 ‘헤즈볼라 방패’라는 이스라엘 유엔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은 지난 10월 13일(현지시간) 오전 레바논 남부 접경 지역에 있는 레바논 지역 유엔 평화유지군(UNIFIL) 기지 정문을 탱크로 부수고 강제 진입했다. 이 과정에서 유엔 평화유지군 대원 15명이 다쳤다. 앞서 지난 10월 11일부터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유엔 평화유지군 대원이 잇따라 다치자 파병한 40개국은 이스라엘을 규탄하는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이스라엘은 이를 전혀 신경 쓰지 않고 하루 만에 유엔 평화유지군 기지를 공격했다. 레바논 지역 유엔 평화유지군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에 따라 이스라엘·레바논 국경 지대에 주둔하며 양국의 완충지대 역할을 해왔다. 한국을 포함한 50개국에서 파병한 1만여명의 병사와 지원 인력이 이곳에 주둔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국제사회의 거센 비판에도 유엔 평화유지군 공격을 정당화했다. 처음엔 “고의적 공격이 아니었다”는 입장을 밝혔다가 이내 이스라엘·레바논 국경을 따라 넓게 주둔하는 유엔 평화유지군 뒤에 숨은 친이란 무장정파 헤즈볼라를 무력화하기 위한 조치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유엔 평화유지군이 헤즈볼라를 위한 ‘인간 방패’가 되고 있다”며 유엔에 레바논 지역 유엔 평화유지군 철수를 공식 요청하기도 했다. 이스라엘군은 유엔 평화유지군 기지 인근 현장을 월스트리트저널(WSJ)과 뉴욕타임스(NYT) 등 일부 언론에 공개하기도 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스라엘군이 기자들에게 국경지대 산비탈에 있는 땅굴 입구 2개를 공개했으며, 여기에서 불과 90m 떨어진 곳에 유엔 평화유지군 기지가 있었다고 전했다. 앞서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 북부 최대 병원인 알시파 병원 진압 작전으로 국제사회 비판에 직면했을 때도 병원 아래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땅굴이 있다며 외신에 현장을 공개한 적이 있다. “레바논 남부의 눈과 귀 없애려는 것” 국제사회의 시선은 싸늘하기만 하다. 유엔 안보리는 지난 10월 14일 처음으로 성명을 내고 “유엔 평화유지군과 시설은 절대 공격 대상이 돼선 안 된다”라며 “강한 우려”를 표했다. 유럽연합도 지난 10월 13일 “레바논에서의 즉각적 휴전과 안보리 결의안 1701호의 이행을 위해 이스라엘의 유엔 평화유지군 공격 중단을 촉구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4개국 외교장관도 같은 취지의 공동 성명을 냈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스라엘이 유엔의 결정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이스라엘은 국제법 위반의 새로운 장을 연 것”(나지브 미카티 레바논 총리) 등 국가수반들의 비판도 이어졌다. 국제형사재판소(ICC) 설립의 근거가 된 로마 규정에 따르면 평화유지 임무와 관련된 요원이나 시설 등에 대한 고의적 공격은 전쟁범죄에 해당한다. 국제형사재판소는 전쟁범죄 혐의를 조사·기소하고 재판 절차를 밟을 수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동안 국제형사재판소뿐 아니라 국제사법재판소(ICJ)가 대량학살(제노사이드) 등 전쟁범죄 혐의를 두고 있는 상황도 모른 채 해왔다. 지난 10월 16일(현지시간)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남부 교외 지역에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인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AP연합뉴스 이스라엘군은 2006년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간 전쟁 종식을 위해 채택된 안보리 결의 제1701호 내용을 위반했다는 비판도 받는다. 안보리 결의 제1701호는 이스라엘군이 레바논에서 완전히 철수하고 레바논 리타니강 이남에는 헤즈볼라가 아닌 레바논 정규군과 유엔 평화유지군만 주둔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이스라엘은 안보리 결의 제1701호가 제대로 지켜진 적 없어 유명무실하다고 주장하지만, 미국과 레바논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더 이상의 확전을 막기 위해 이 결의의 기능을 회복시키고자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스라엘의 막무가내 행보를 막을 실질적 방법이 없다는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이스라엘군이 레바논 지상전의 구체적인 실상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유엔 평화유지군을 공격하고 철수까지 요구한다고 본다. 유엔 평화유지군은 극히 제한된 조건에서만 무력을 사용할 수 있어 억지력이 사실상 없다는 평가를 받지만, 안보리 결의 위반 상황 등을 유엔에 보고할 수 있다. 미셸 마틴 아일랜드 외교장관은 “이스라엘이 레바논 남부에서 눈과 귀를 몰아내고 자유로운 통치권을 얻으려 한다”며 “국제사회는 (이스라엘이 국제 질서를 지키도록) 매우 분명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엔 평화유지군은 계속되는 이스라엘의 철수 요구에도 이스라엘·레바논 국경 지역에 잔류하겠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전역으로 공격 확대, 민간인 피해 속출 이스라엘은 레바논과의 국경 지역에서 지상전을 이어가는 동시에 공격 범위를 확대해 레바논 전역을 폭격하고 있다. 헤즈볼라 본부 중심지로 알려진 남·동부와 거리가 먼 북부의 기독교 마을까지 공습하자 레바논이 ‘제2의 가자지구’가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총 22명이 숨졌으며 공습받은 건물엔 피란민들이 거주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지난 10월 15일 기준 레바논 전체인구의 25% 이상에 대피령이 내려졌다. 레바논 정부는 120만명 이상이 피란길에 올랐다고 전했다. 이중 어린이는 약 40만명에 달한다. 테드 차이반 유니세프 인도주의적 행동담당 부국장은 “(한 달 사이) 레바논의 학교는 접근할 수 없게 됐거나 전쟁으로 손상돼 피란처로 사용되고 있다”며 “레바논 어린이들이 ‘잃어버린 세대’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끝나지 않은 전쟁 속에 분쟁 지역 아이들은 학교뿐 아니라 미래를 위해 최소한의 희망조차 꿈꿀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다는 뜻이다. 레바논 보건부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가자지구 전쟁 발발 후 1년 동안 레바논에서 2300명이 사망했다. 이중 75%는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상대로 군사 작전을 확대한 최근 한 달 새 숨졌다.
“국제사회는 왜 이스라엘의 전쟁범죄를 방치하는가”(2024. 10. 07 06:00)
2024. 10. 07 06:00 국제
중동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국제정치 전문가들 e메일 인터뷰 “서구 이중잣대가 문제의 핵심”…전면전보단 국지전에 무게 중심 지난 10월 1일(현지시간) 진행된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폐허가 된 레바논 베이루트 시가지 모습/신화통신사=연합뉴스 ‘다른 나라를 침범하여 공격함’.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정의한 ‘침공’의 정의다. 이스라엘은 지난 9월 23일(현지시간) 레바논 전역을 폭격한 데 이어 지난 10월 1일에는 레바논 남부(이스라엘 북부) 국경지역에서 작전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고로 이스라엘은 레바논을 ‘침공’했다. 주권국가 성립 이후 국제사회는 ‘침공’ 행위에 관한 정의를 문서로 확립해 왔다. 국제법의 한 영역인 ‘개전에 관한 정의론(jus ad bellum)’이다. 대표적인 것이 국제연합헌장(유엔헌장) 제2조 제4항이다. ‘모든 회원국의 무력 위협이나 행사를 금지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피해 합법적으로 침공을 할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다. 국제연합헌장 제51조에 나온 예외조항에 따라 ‘무력공격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개별적 또는 집단적 자위권(self-defence)을 발동했다’고 인정받는 것이다. 지난 1년, 이스라엘의 행보는 이 예외조항의 성격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가 됐다. 지난해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는 이스라엘 남부지역을 기습공격했다. 즉각적 보복을 밝힌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본거지인 가자지구 폭격과 지상전을 시작했다. 압도적 무력을 앞세운 이스라엘이 하마스를 궤멸하고, 단기간에 전쟁을 끝낼 것처럼 보였다. 개전 후 1년이 지났다. 가자지구에는 여전히 이스라엘군의 폭격이 진행 중이다. 첫째로 자위권 행사는 정해진 종료 기한이 없다는 것이 확인됐다. 이스라엘은 전쟁 시작 1주년을 맞아 오히려 레바논으로 전선을 확대했다. 레바논 내 무장단체 ‘헤즈볼라’가 하마스를 돕는다는 것이 침공 명분이 됐다. 둘째로 자위권 행사는 보복 대상에 한계가 없다는 것이 확인됐다. 국제사회는 이스라엘 행보에 제동을 걸지 못했다. 특히, 미국은 이스라엘 지상군의 레바논 진격을 두고 “자신과 자국민을 방어하고 민간인을 안전하게 집으로 돌려보낼 권리에 부합하는 것”이라며 자위권을 인정했다. 반면 이란의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 움직임을 두고는 “어떠한 공격을 가하든 엄정한 후과를 치러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스라엘은 지난 7월 31일,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하마스 최고 정치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를 암살했다. 셋째로 자위권을 시행할 수 있는 국가는 ‘미국과 그 우방국’으로 정해져 있다는 것이 확인됐다. 지난 10월 1일 진행된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폐허가 된 레바논 베이루트 시가지 모습/신화통신사=연합뉴스 기간, 대상에 한계가 없는 이스라엘의 ‘자위권 행사’가 길어지는 만큼 사상자 수도 비례해서 늘었다. 이미 지난 8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사망자가 4만명을 넘었다는 외신 보도가 쏟아졌다. 유엔인권사무소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레바논 폭격으로 단 2주 만에 이미 1000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레바논 보건부는 지난 10월 1일 하루 동안에만 폭격으로 55명이 숨지고, 156명이 다쳤다고 발표했다. 하마스의 공격으로 발생한 이스라엘인 피해는 1200여명 사망이었다. 자위권 행사는 필요성과 비례성을 충족해야 한다는 국제사법재판소(ICJ)의 판례는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다. 이스라엘은 자위권 행사와 침략전쟁을 구분 불가능한 것으로 만들었다. 전쟁 목표가 ‘귀환’인가, ‘패권’인가 이스라엘은 전쟁을 중동 전역으로 확장할 기세다. 구체적으로 레바논(헤즈볼라)-예멘(후티)-이란으로 이어지는 ‘시아파 벨트’가 목표로 꼽힌다. 같은 시아파인 이라크·시리아 역시 잠재적 대상이다. 이중 가장 주목받는 것은 ‘시아파 맹주’로 불리는 이란이다. 하마스, 헤즈볼라, 후티 등의 무장단체는 이란의 전통적 군사전략인 ‘포워드 디펜스(Forward Defense)’의 핵심이다. 이는 ‘이란 국경 밖에서 적과 전쟁을 치른다’는 전략이다. 이에 따라 이들 무장단체는 이란이 상정한 적에 맞설 대리인(Proxy)이 된다. 즉 이들의 궤멸을 목표로 한 공격은 이란 안보에 대한 실질적 위협이라는 의미다.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이스라엘은 이란을 향해 “전쟁에 나오라”고 외친 것이다. 중동 지역에 형성된 시아파 벨트 이란은 응답했다. 지난 10월 1일 새벽 이란에서 발사한 미사일이 이스라엘 텔아비브 상공에 나타났다. 이스라엘 당국에 따르면 이날 발사된 미사일은 180여발이다. 다만 압바스 아락치 이란 외무장관은 X(옛 트위터)에 “이스라엘 정권이 추가 보복을 하지 않는다면 이란의 보복 조치는 종료된다”며 확전을 경계하는 발언을 남겼다. 또 테헤란에서 암살당한 하마스 지도자 하니예와 지난 9월 27일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남부 다히예 지역 표적 공습으로 사망한 헤즈볼라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에 대한 보복이라는 설명까지 곁들였다. 이란은 최소한의 자위권만 행사했음을 거듭 밝힌 셈이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반응은 “이란이 큰 실수를 저질렀다. 대가를 치를 것”이라는 경고였다. 그러면서 팔레스타인 자치구인 요르단강 서안 및 가자지구, 헤즈볼라 거점 레바논, 친이란 정부가 통치하는 시리아, 후티 반군이 있는 예멘, 이란을 ‘악의 축’으로 거명했다. 이들은 이스라엘에 맞선 ‘저항의 축’으로 자임하고 있는 국가 및 단체다. 이스라엘이 이들의 파괴를 목표로 하고 있음이 분명해 졌다. 지난 10월 2일 이스라엘의 폭격을 받은 레바논 베이루트 시가지에서 한 남성이 이스라엘에 의해 살해된 헤즈볼라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의 사진을 들고 있다./EPA=연합뉴스 이스라엘의 시아파 무장단체 공격→이란의 반격→이스라엘의 재반격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은 ‘전쟁의 목적’을 의심케 한다. 명분은 ‘이스라엘 북부(레바논 남부) 피란 주민들의 귀향’이지만, 실질은 ‘이스라엘의 지역패권 도전’ 아니냐는 것이다. 실제로 외교 전문지 ‘폴리티코’, ‘포린어페어스’, ‘포린폴리시’ 등에는 ‘이스라엘이 중동 권력의 현상변경을 추진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따라 이스라엘의 행보가 언제까지 중동의 ‘움마’(이슬람 공동체)를 깨우지 않고 지속될 수 있느냐에 관심이 쏠린다. 중동 내 이슬람 국가들은 수니파, 시아파로 나뉘어 대립하는 종파 갈등에 놓여 있다. 그런데 이 대립 구도에 시오니즘(유대 민족주의)이 끼어들면 어떻게 되느냐가 문제다. 답을 유추해볼 수 있는 선례가 있다. 지난해 이스라엘과 수교를 논의했던 수니파 맹주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스라엘이 시아파 이란의 지원을 받는 하마스를 공격하자 협상을 중단했다. 종파 갈등과 별개로 이슬람권이 공유하는 움마가 있다는 의미다. 이스라엘의 행보가 이를 자극할 경우 초래될 결과는 하나다. ‘제5차 중동전쟁’이다. 주간경향은 이스라엘 행보에 대한 중동 내 분위기, 확전 가능성 등을 확인해보기 위해 지난 9월 30일부터 10월 3일까지 중동지역에서 활동하는 교수, 언론인, 연구원 등과 e메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가장 먼저, 이번 전쟁의 의미를 물었다. 이에 대한 답변으로 이들이 공통적으로 언급한 키워드는 ‘Unjustified’(정당하지 않은)였다. 중동이 느끼는 ‘이중잣대’ 하마다 샤반 박사(Dr. Hamada Shaaban)는 반극단주의 및 평화 연구로 유명한 이집트 알 아즈하르 대학 연구소의 책임 연구원이다. 그는 이번 전쟁의 의미를 두고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이나 레바논에서 자행한 민간인 거주 건물 폭격 사례는 이번 전쟁의 부당함을 잘 보여준다”며 “우리는 전 세계가 침묵하는 상황에서 인권을 강조한 서구식 가치관이 무너지고, 이를 보호해야 할 국제기구의 필요성이 말살되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은 ‘대이스라엘(Greater Israel)’ 건설을 목표로 중동지역을 전쟁터로 만들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에선 다소 생소한 개념인 ‘대이스라엘’은 이스라엘 국경에 관한 정치적 개념이다. 좁게는 팔레스타인, 넓게는 1921년부터 1946년까지 존재했던 영국령 자치국 트란스요르단 지역이 전부 이스라엘 영토라는 인식이다. 이곳은 현재 대부분 요르단 영토다. 쿠웨이트에서 활동하고 있는 ANA(Arab news agency) 소속 언론인 마그디 톨바(Magdy Tolba) 에디터 역시 유사한 인식을 드러냈다. 그는 “이스라엘 군대가 헤즈볼라 사령관이나 무장세력을 넘어 여성과 어린이를 포함한 수천명의 민간인 사상자를 내고 약 10만명에 달하는 레바논, 시리아 국민을 난민으로 만들었다”며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아랍 영토 점령에 단호히 반대하는 모든 저항 단체를 말살하려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제사회의 압박이 없다면 이스라엘은 ‘저항의 축’을 구성하는 하마스, 헤즈볼라, 시리아, 이라크, 예멘을 박멸할 때까지 휴전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스타파 알사왈리(Mustafa Alsawahly) 이집트 알 아즈하르 대학 교수는 “이스라엘은 레바논을 무자비하게 폭격하며 가자지구 저항세력(하마스)을 지원하면 어떻게 보복당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며 “이는 모든 문제가 그들이 가자지구를 야만적으로 점령한 것에서 비롯됐음을 무시한다는 측면에서 부당할 뿐만 아니라 사실상 정치생명이 끝난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권력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전쟁을 이용한다는 측면에서도 부당하다”고 말했다. 세 사람 모두 이스라엘 주장과 달리 이번 전쟁을 단순한 자위권 행사로 보지 않는다. 주목할 점은 전쟁의 근원에 대한 이들의 관점이다. 이스라엘이나 이란 등의 주요 행위자가 아닌 서구사회의 ‘이중잣대’를 문제의 핵심으로 지적한다. 샤반 박사는 “미국을 포함한 서구국가들의 경고를 보면 ‘이스라엘에 대해 어떠한 공격도 하지 말라’고만 할 뿐, ‘이스라엘이 새로운 단체나 국가를 표적으로 삼는 것’을 문제 삼지 않는다”며 “이스라엘이 공격하면 자위권 행사이고, 공격받으면 확전이라는 논리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의 행보보다 서구사회의 이중잣대가 아랍 세계의 ‘움마’를 더 자극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톨바 에디터는 “아랍인들 대부분이 인권과 도덕을 강조하는 국제사회가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벌인 범죄행위를 중단하도록 하지 않는 태도에 분노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란의 이스라엘에 대한 미사일 공격으로 지난 10월 2일 긴급 소집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아미르 사이드 이라바니(왼쪽) 주유엔 이란 대사와 대니 다논 주유엔 이스라엘 대사가 발언하고 있다./AFP=연합뉴스 다만 이란의 미사일 공격 이후 단기적 상황에 대해서는 세 사람 모두 ‘전면전’보단 ‘국지전’에 무게를 실었다. 가자지구, 레바논을 넘어선 지역에서 국지전이 발생할 수 있지만, 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면전 형태의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은 작다는 것이다. 알사왈리 교수는 “이스라엘은 이란의 공격에 직접 대응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헤즈볼라를 완전히 궤멸시키지 못한 상황에서 지리적 거리가 있는 이란으로까지 전선을 확장하기를 원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상황이 관리될 가능성이 제기됐다. 샤반 박사는 “이란의 이스라엘 공격 사실이 알려지며 주요 산유국들 수출 통로인 호르무즈해협이 폐쇄될 수 있다는 우려가 생겼고, 지난 10월 2일 WTI(서부텍사스유) 국제유가가 한때 5% 이상 급등했다”며 “이로 인해 미국 및 유럽 국가들이 경제적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판단한다면 극적인 휴전이 이뤄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전쟁은 중동 내 이스라엘, 레바논, 이란 등이 하고 있지만 이를 지속할지, 말지는 전적으로 미국 및 서구 지역이 두드리는 계산기에 달려 있다는 의미다. 미국에 전쟁은 어떤 의미인가 미국의 군사력은 이스라엘을 겨냥한 이란의 미사일 공격에서도 빛났다. 공격 감행 3시간 전 이미 이란이 탄도미사일을 발사할 것이고, 이스라엘에 도달하는데 12분 정도 걸릴 것이라는 분석까지 내놨다. 지중해 동부에서 작전 중이던 미군 구축함 두 척이 요격미사일 12발을 발사해 이란 미사일을 격추하기도 했다. 문제는 중동에서 바닥을 친 외교력이다. 본래 바이든 정부의 정책은 ‘탈중동’이었다. 이스라엘과 사우디를 연결해 이란과 힘의 균형을 맞추고, 미국이 ‘역외균형자’ 역할을 한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으로 전략이 일그러졌다. 이스라엘은 이를 ‘중동 재편’의 기회로 삼고 사실상 미국의 의사를 무시한 채 움직이고 있다. 지난 9월 17일, 미국에 알리지 않고 헤즈볼라 대원들의 삐삐(호출기)와 무전기를 폭발시키며 단숨에 전선을 확장했다. 가자지구에서 휴전 협정 역시 이스라엘 측 거부로 공전을 거듭하는 중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란의 참전은 미국이 본인 의사와 관계없이 전쟁에 휘말리게 된다는 뜻이다. 지난 10월 1일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건물이 무너진 레바논 베이루트 시가지 모습/EPA=연합뉴스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는 이를 두고 “미국이 중동지역 분쟁에 너무 쉽게 끌려들어 가고 있다. 중동에서의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핵심은 ‘셔틀 외교’(서로 직접 대화하지 않는 두 나라를 중재하는 외교)의 복원이다. 이스라엘이 주도하는 전쟁에서 뒷짐을 지고 있는 이집트, 카타르 등과 함께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압박하고, 하마스를 고립시켜 휴전안에 서명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미 레임덕에 빠진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이에 필요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느냐다. 게다가 중동에 만연한 미국의 ‘이중 잣대’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걸림돌이다. 톨바 에디터는 “미국이 이스라엘을 맹목적으로 지원하는 한 중동지역의 대립 구도는 아무런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큰 걸림돌은 이스라엘에 대한 조치가 오는 11월 5일 치러지는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어느 쪽에 유리하게 작용할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서정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스라엘 문제는 미국 정치적으로 ‘유대인의 돈’이냐, ‘젊은 유권자의 지지냐’의 문제로 치환된다”며 “선거를 치르는 데 유대인의 자금력이 필요하지만 젊은 유권자를 중심으로 나오는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 목소리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경우 최선은 선거가 끝날 때까지 중동 문제를 현상 유지 수준에서 내버려 두는 것이다. 미국 대선이 끝난 후에야 중동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일 것이란 분석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미국 대선까지 한 달 남짓 남았다. 현재의 전쟁 기조가 이어진다면 산술적으로 발생 가능한 사망자 수는 최소 2000명이다.
이스라엘과 이란, ‘그림자 전쟁’은 끝났다(2024. 05. 01 06:00)
2024. 05. 01 06:00 국제
맞불 공격으로 중동서 게임 규칙 완전히 바꿔 예측 불가능한 상황과 판단 착오 가능성 우려 이스라엘의 대 미사일 방어시스템이 지난 4월 14일(현지시간) 이란이 발사한 드론과 미사일들을 요격하고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가자 전쟁 이후 갈등이 심화해온 이스라엘과 이란이 최근 서로의 영토에 공격을 감행하며 중동의 긴장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지난 4월 19일(현지시간) 이란 이스파한에서의 공방 이후 양쪽이 소강상태를 보이면서 긴장은 일단 누그러졌으나, 은밀히 대립해온 양국이 ‘직접 공격’이라는 금기를 깼다는 점에서 중동 정세가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 대씩 주고받은’ 이스라엘과 이란 AP통신 등에 따르면 이란 당국은 지난 4월 19일 오전 4시쯤 중부 이스파한주 주도 이스파한시 인근에 있던 군 공항이 외부의 공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공격 수단을 두고는 무인기(드론)와 미사일 등 여러 분석이 나왔으며 명확히 확인되진 않았다. 이란군은 “방공망이 의심스러운 물체를 격추했다”며 특별한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핵시설도 피해가 없었으며,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이런 사실을 확인했다. 국제사회에선 이번 공격을 이란에 대한 이스라엘의 재보복으로 봤다. 이스라엘은 앞서 지난 1일 시리아 주재 이란 영사관을 공격해 이란혁명수비대(IRGC) 정예 쿠드스군 사령관인 모하마드 레자 자헤디 등 13명을 사살했으며, 이에 이란은 4월 13일 드론 170여 기와 미사일 140여 발을 동원해 이스라엘 본토를 보복 공격한 바 있다. 이란의 미사일과 드론은 대부분 요격돼 피해는 미미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공격을 받은 이스라엘은 이란에 대한 재보복을 거론했다. 다수의 군사시설이 있는 이스파한은 이란이 이스라엘을 공격한 원점 중 하나로 알려졌다. 이스라엘이 4월 19일 공격을 감행하자 이란 현지 주민들은 동요를 감추지 못했다. 피해는 적어 일상에 특별한 변화는 없었으나, 자칫 양국의 전면전이 발발하진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아스파한의 한 주민은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이란이 (이스라엘을) 공격했을 때 우리는 모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 걱정했다”고 전했다. 이스라엘과 이란의 전면전은 곧 ‘5차 중동전쟁’으로 연결될 수 있다. 이란은 이스라엘의 공격을 평가절하하며 당장 반격에 나서진 않았다. 호세인 아미르압돌라히안 이란 외무장관은 4월 19일 미국 NBC와의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이 우리의 이익에 맞서 새로운 모험을 하지 않는 한 새로운 대응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언론과 인터뷰에서 이란 정부를 대표하는 고위 인사가 이스라엘에 대한 신중한 대응 기조를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이다. 미국 언론은 이스라엘이 애초 긴장 격화를 피하기 위해 이란에 제한적인 공격을 벌였으며, 이로 인해 파국까지 이르진 않았다고 봤다. 이스라엘의 재보복이 이뤄졌지만 그 강도 면에서 절제된 것이었으며, 여기에는 전면전을 피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것이다. 파국을 피하려는 미 정부의 방침도 이스라엘의 수위 조절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미 언론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이란에 대한 재보복 계획을 미국에 사전 통보했으나, 미 당국은 이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란이 이스라엘을 공격한 직후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에게 전화를 걸어 이란에 대한 이스라엘의 반격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는 이스라엘이 재보복에 나서면 전쟁이 확대될 가능성을 우려한 데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지난 4월 1일(현지시간) 구조대원들이 이스라엘군의 폭격으로 파괴된 시리아 다마스쿠스 주재 이란 영사관 건물에서 구조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날 폭격으로 이란혁명수비대(IRGC) 고위 간부 등 여러 명이 숨졌다. | 신화연합뉴스 ■‘그림자 전쟁’ 이후 중동의 운명은 이스라엘과 이란이 한 차례씩 공격을 주고받은 뒤 상황은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다만 양국이 ‘그림자 전쟁’으로 알려진 막후 대결을 벗어나 무력 공세의 물꼬를 튼 것은 우려스러운 지점으로 남아 있다. 중동의 오랜 앙숙인 이스라엘과 이란은 그간 반목을 거듭하면서도 직접적인 충돌은 피했다.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시설을 은밀히 공격하고 요인을 암살하면서 이를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았다. 이란 역시 팔레스타인 하마스와 레바논의 헤즈볼라, 예멘 후티 반군 등 ‘친이란’ 대리 세력을 통해서만 이스라엘을 공격했다.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 ‘그림자 전쟁’의 지속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7일 시작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의 가자지구 전쟁으로 이러한 구도는 흔들렸다. 이스라엘은 하마스를 지원하는 이란을 압박하고자 이란혁명수비대를 겨냥해 공격 수위를 높였고, 이란은 가자 전쟁에 개입할 수 있음을 내비치며 이스라엘을 위협했다. 그 뒤 이스라엘이 이란 영사관을 폭격했고, 양측의 대응이 이어지며 ‘그림자 전쟁’은 실제 군사적 충돌로 표면화됐다. 전문가들은 이스라엘과 이란의 이번 맞불 공격으로 중동지역에서 게임의 규칙이 바뀌었다고 분석했다. 미 외교안보 연구기관 ‘우드로윌슨센터’의 메리사 쿠르마 중동국장은 “(이스라엘과 이란의 충돌은) 두 적대국 사이의 교전수칙을 완전히 바꿨다는 점에서 획기적 사건”이라며 “지역 전체의 긴장을 고조시켰고, 역내 여러 국가에는 전면전의 망령이 현실이 됐음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특히 우려스러운 지점은 예측 불가능한 상황과 판단 착오의 가능성이다. 그간 가자지구 전쟁이 이어지는 과정에서 이스라엘과 이란 모두 예측하기 힘든 행동을 보였으며, 판단 착오로 갈등을 확대하기도 했다. 이번 이란 영사관 공격에서도 이스라엘은 이란의 격렬한 보복을 예상하지 못했으며, 미국은 이스라엘의 공격 계획을 사전에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싱크탱크 ‘국제위기그룹’의 중동 전문가 알리 바에즈는 “(이스라엘과 이란이)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다른 문제에 직면한다면 전 세계가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일단 이스라엘과 이란의 충돌이 잠잠해진 만큼 당분간 다시 가자지구의 포성이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스라엘은 앞서 가자지구 최남단 도시 라파에 진입하는 작전을 계획하고 있었으나, 이란과의 긴장이 격화되자 일시 보류한 바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네타냐후 총리가 긴장 확대를 자제할 것을 요구하는 미국과 이란, 하마스를 상대로 좀더 과감한 조치를 원하는 이스라엘 내 강경론자 사이에 끼어 있어 의사 결정의 여지가 많지 않다고 봤다. 이에 기존에 하던 대로 하마스를 상대로 공세를 강화하는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으며, 이는 가자 전쟁에 다시 화력을 집중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미 대학 ‘문화전쟁’ 번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2024. 01. 02 07:00)
2024. 01. 02 07:00 국제
고액 후원자들 ‘반유대주의’에 빼든 칼 학내 정치적 표현의 자유 한계 쟁점으로 반(反)유대주의 논란을 빚은 클로딘 게이 하버드대 총장을 “국가적 수치”라고 비난하는 광고판을 단 트럭이 지난해 12월 12일(현지시간)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의 하버드대 주변을 돌고 있다. AFP연합뉴스 석 달째 계속되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 전쟁은 미국사회를 갈라놓았다. 그중에서도 갈등이 극명하게 드러난 곳은 대학 캠퍼스다. 학생들은 ‘친이스라엘’과 ‘친팔레스타인’ 진영으로 나뉘어 시위 등을 벌이며 대립했다. 의회 청문회에 출석한 아이비리그 대학 총장들에겐 ‘반유대주의’에 모호한 태도를 취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펜실베이니아대(유펜)는 총장의 자진 사퇴로 일단락되고, 하버드대에선 총장이 유임됐지만 논문 표절 의혹 제기 등 파장이 이어지고 있다. 대학 내 ‘표현의 자유’의 경계를 둘러싼 논쟁도 불거졌다. 고액 후원자들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미 대학들의 실상도 드러났다. 아이비리그 대학들의 진보 색채에 불만을 품어온 보수 일각에서 이참에 ‘문화전쟁’에 나섰다는 지적도 있다. ■유펜 v 하버드의 경우 지난해 12월 5일(현지시간) 미 하원 교육·노동위원회가 연 청문회에는 세 곳의 명문대학 총장이 나란히 자리했다. 엘리자베스 매길 유펜 총장, 클로딘 게이 하버드대 총장, 샐리 콘블러스 매사추세츠공대(MIT) 총장이었다. 이들은 ‘유대인 학살을 주장하는 학생들의 발언이 대학 윤리 규범 위반에 해당하느냐’는 취지의 질문에 “상황에 따라 다르다”고 답해 도마 위에 올랐다. 특히 학생들의 반유대주의 언사를 분명히 규탄하지 않고 “그런 위협이 실제 행동으로 옮겨지면 괴롭힘이 될 것”이라며 ‘법률가적’ 태도로 발언한 매길 총장에게 공세가 집중됐다. 사실 청문회 이전부터 매길 총장은 이사회와 고액 기부자, 펜실베이니아 유력 정치인들로부터 눈총을 받는 상태였다. 하마스의 공격과 캠퍼스 내 반유대주의 시위 등에 대해 미온적으로 대처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오랜 후원자이자 부호 가문인 존 헌츠먼 전 주러시아 미국 대사는 매길 총장을 겨냥해 “침묵은 반유대주의다”라고 성토하기도 했다. 매길 총장이 표현의 자유 존중을 내세워 지난해 9월 학내 팔레스타인 문학축제 개최를 승인한 것도 비판을 받았다. 당시 후원자들은 반유대주의 발언 전력이 있는 연사가 초청됐다면서 행사 취소를 요구했다. 여기에 전국에 생중계된 청문회 발언까지 겹치면서 매길 총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여론이 증폭됐다. 매길 총장은 공개 사과에 나섰지만, 결국 청문회 나흘 뒤 사임했다. 매길 총장이 물러나자 청문회에 함께 출석했던 게이 총장에 대한 퇴진 압박도 거세졌다. 그런데 하버드대의 처분은 달랐다. 교수들은 대학의 독립성과 학문의 자유를 위해 총장 사퇴 요구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고, 이사회는 만장일치로 그의 유임을 결정했다. 그러자 총장 해임을 줄기차게 요구해온 헤지펀드 거물 빌 애크먼 등은 게이 총장의 논문 표절 의혹을 제기했다. 관련해 하원 내 공화당 의원들은 정식 조사에 나섰다. 이사회가 논문 표절 문제에서도 사실상 게이 총장 재신임을 확인하자 하버드 이사회 특유의 비밀·폐쇄적 의사결정 구조를 문제 삼는 목소리도 나왔다. 고액 후원자들의 기부 중단 행렬도 멈추지 않고 있다. 하버드 역사상 첫 흑인 총장인 게이 총장은 자리를 지켰지만, 여전히 논란의 한복판에 서 있다. 지난해 12월 12일(현지시간) 하버드대 앞에서 활동하는 친 팔레스타인 시위대 모습./AP 연합뉴스 ■후원자 압박에 문화전쟁 양상까지 일련의 사태에서 두드러지는 점은 고액 후원자들의 막강한 힘이다. 특히 유대계 자본가인 후원자들은 전쟁 발발 이후 대학 내에 상당한 입김을 행사해왔다. 기부금 의존도가 높은 명문 사립 대학들의 재정 구조상 취약점이 드러났다는 평가도 나온다. 게이 총장과 각을 세우고 있는 애크먼 역시 유대계로 모교 하버드의 ‘큰 손’이었다. 그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발발 직후부터 ‘실력 과시’에 나섰다. 전쟁 초기 하버드대 일부 학생 단체들이 하마스 공격의 책임을 전적으로 이스라엘에 돌리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자 그는 즉각 성명 참여자들의 신상 공개를 요구했다. 특히 학생들의 월가 취업을 막겠다며 ‘취업 블랙리스트’까지 공언했다. 애크먼이 게이 총장에 대한 개인적 불만으로 퇴진 운동에 앞장서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자신이 대학에 낸 수천만 달러의 기부금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아무런 상의도 없었다는 점에 분노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의회 청문회를 주도한 공화당 등 보수 진영이 반유대주의를 빌미로 대학 내 진보 담론을 겨냥해 ‘문화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보수파는 그동안 명문 대학들이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강박에 경도돼 있다고 비판하며, 성소수자, 인종차별, 임신 중단 등 첨예한 이슈에 대해서도 학내 표현의 자유를 옹호해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표현 규제에 힘을 실으면서 대학들을 압박하다니 정치적 의도가 다분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반유대주의를 둘러싼 미 대학 내부의 혼란은 표현의 자유에 관한 질문들도 환기하고 있다. 미국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수정헌법 제1조를 금과옥조로 여기며, 혐오 등을 담은 발언의 경우에도 실질적이거나 임박한 위해가 명확할 때만 규제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하지만 전쟁 이후 학내 정치적 발언을 어디까지 허용할지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판단 이전에 이해” 학문의 역할 화두로 전쟁이 촉발한 미국 대학 내 갈등이 단기간에 가라앉을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희망이 전혀 없지는 않다. 이코노미스트 등 외신은 다트머스대 사례에 주목했다. 전쟁 발발 직후 이 대학은 이스라엘, 레바논, 이집트 출신 교수들이 주축이 돼 두 차례 공개 포럼을 열었다. 한쪽에 대해 섣불리 가치판단을 내리기보다 양쪽 모두의 입장과 분쟁의 복잡한 맥락을 충분히 듣고 토론해보자는 취지였다. 많아야 십수명이 참석할까 싶던 행사에 수백명이 모여들었다. 이집트의 전직 외교관이자 소설가인 에제딘 피셰레는 포럼 참석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여러분은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이해하기 원합니까, 아니면 비난할 누군가를 찾으려고 합니까? 그저 분개하려 한다면 아이비리그 대학까지 올 필요는 없습니다. 이곳에서 여러분이 누리는 것은 배움의 기회입니다.” 포럼을 공동 개최한 수새나 헤셸 다트머스대 유대인학과 교수는 “어떤 경우에도 단순한 내러티브에 만족하지 않는 법”을 학생들이 배우게 됐다고 전했다.
이스라엘·러시아 등 포화 속에 커지는 병역 거부 목소리(2023. 11. 24 16:40)
2023. 11. 24 16:40 사회
‘살상 반대’ 이야기만 꺼내도 기생충·반역자 취급 이스라엘은 전쟁 망명한 우크라이나인까지 징집 튀르키예선 기본권 박탈도…“국제적 연대 필요” 세계 각지의 평화활동가들이 지난 11월 29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개최된 ‘양심적 병역거부, 진단과 모색’을 주제로 한 국제콘퍼런스에 참석했다. 전쟁없는세상 제공 전쟁에 반대하는 양심적 병역거부와 평화운동은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다. 살상과 폭력을 거부하고 나아가 억압적인 군사주의 해체를 지향한다. 특히 러시아·우크라이나,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이들 국가에서도 평화운동이 펼쳐지고 있어 주목된다. 세계의 평화활동가들이 지난 11월 29일 전쟁없는세상과 참여연대 등이 주최한 국제콘퍼런스에 참석해 자국의 군사주의 실상을 비판하며, 전쟁 중단을 위한 국제적인 지지를 호소했다. 또 해외 양심적 병역거부자와 국제적인 지원단체 활동가 등도 자리해 병역거부의 의미를 짚으며 연대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이번 콘퍼런스에는 40개국의 90개 이상 단체로 구성된 평화주의·반군사주의 네트워크인 ‘전쟁저항자인터내셔널(WRI)’,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권리 옹호 활동을 하는 국제단체인 커넥션이브이(Connection e.V) 등도 함께했다. ■군모를 쓰고 있는 태아 이스라엘인 오르는 반군사주의 평화운동 단체인 ‘뉴프로파일’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 단체는 병역거부 상담을 지원하고 정부의 무기 수출 활동 등을 감시한다. 이스라엘은 여성도 징집한다. 오르는 15년 전 병역을 거부했다. 이날 콘퍼런스에 참석한 오르는 “이스라엘은 전역이 군사화돼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모든 시민이 ‘나는 군인이 될 것’이라는 명제를 당연히 받아들이도록 교육한다며 “학교, 미디어 등을 총동원한 세뇌교육이 이뤄진다”라고 말했다. 오르는 군복을 입은 사람이 어린이들 앞에서 무언가를 설명하는 사진을 제시하며 “심지어 유치원생을 상대로도 병역을 거부하면 구직이 어렵고 연금도 받을 수 없다는 식으로 교육한다”고 말했다. 또 한 아이가 기관총을 조준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초등학생들이 직업 엑스포 같은 곳에 가서 군인이 되는 미래를 꿈꾸도록 한다. 학교 교실에서도 총을 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오르는 이날 태아가 군모를 쓴 채 거수경례를 하는 모습의 광고 포스터도 화면에 띄웠다. ‘임신중지를 할 때마다 군인 한명이 죽는 것’이라는 문구가 담긴 임신중지 반대 광고도 존재한다고 오르는 전했다.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기생충 같은 사람’으로 낙인찍힌다고 했다. 그는 “병역거부 이후 관계가 끊어진 친구들도 있고, 가족 중에서도 나와 지금까지 말을 섞지 않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스라엘 사회에서도 군대에 부정적인 견해를 지닌 이들도 많다고 했다. 오르는 “군 내에서도 특정 행위를 거부하는 군인들이 있다”라며 “예를 들어 전쟁이 발발했을 때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나 서안지구에서는 복무하지 않겠다거나, 공습은 하지 않겠다는 등 선택적으로 군사행위를 거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우익 성향의 사람들도 가자지구에 보내면 거부하겠다는 등 병역을 거부하고 있다”라며 “이들 또한 뉴프로파일은 지원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은 자국민뿐 아니라 거주권을 가진 모든 사람을 징집 대상으로 삼는다고 오르는 말했다. 이에 따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이스라엘로 망명한 우크라이나인들도 군대에 가야 하는 실정이라고 했다. 오르는 “죽음을 피해 이스라엘로 피란을 와서 난민으로 인정받아 거주권을 받았지만, 몇 달 뒤 군대에 끌려간다”라며 “입대를 거부하면 추방될지 몰라서, 언어도 통하지 않고 위계질서가 아주 강한 군대에서 어떤 지원도 못 받고 복무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는 비공식적으로 확보한 통계에 따르면 이런 사례는 약 1000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태아가 군모를 쓰고 거수경례를 하는 모습의 이스라엘 광고 포스터. 오르 제공 오르는 이스라엘 내에서 ‘평화’를 말하면 상당한 위협이 뒤따른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소셜미디어(SNS)에 전쟁 반대 메시지를 적어도 추적을 당한다”라며 “전쟁이 싫으면 가자지구에 들어가서 같이 죽으라는 식의 욕을 듣기도 한다”고 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 이러한 군사주의를 바탕으로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오르는 봤다. “한쪽에서 민간인을 죽이면 다른 쪽에서 분노를 느껴 폭력으로 복수하게 된다. 복수는 꼬리의 꼬리를 문다. 양측 간 증오와 분노가 고통을 야기하고 있다. 폭력은 악순환만을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을 제대로 이해해야 고리를 끊어낼 수 있다. 사회의 군사화를 중단해야 폭력을 멈출 수 있다.” ■“국제적인 연대 필요” 러시아에서도 전쟁에 반대하는 활동이 이뤄지고 있다. 이날 콘퍼런스에는 러시아 내 평화단체인 ‘양심적 병역거부를 위한 운동(MCO)’에서 활동하는 타라스와 나탈리아가 참석해 자국 상황을 전했다. 타라스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SNS 구독자 숫자가 대폭 증가했고, 특히 2022년 9월 부분 동원령이 내려진 이후 더 늘어났다고 밝혔다. 타라스는 “러시아에서 살상을 거부하는 발언을 하는 것도 불법”이라고 말했다. “군을 지지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반역자가 된다”라며 “나도 지금 반역자”라고 부연했다. 나탈리아는 러시아에서 대체복무 기회를 얻지 못하고 살상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고통을 겪는 이들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러시아가 매우 폐쇄적이기 때문에 이런 사실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고 했다. 또 재판이 군사법원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언론의 취재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러시아 내 활동가 개인은 물론 가족들도 위협에 처해 있다”고 토로했다. 타라스와 나탈리아는 한목소리로 국제사회의 관심과 연대를 요청했다. 이들은 “우리는 국제무대에서 국내 평화수감자에 대한 인식 제고를 위해 더 노력할 것”이라며 “병역거부의 진정한 의미를 널리 확산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우크라이나에서 평화운동을 진행하다가 가택 연금 중인 유리 셸리아젠코도 이날 화상으로 참여했다. 유리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 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보냈다가 기소됐다”라며 “나는 분명히 러시아 침략 전쟁을 규탄한다고 했는데, 외려 침략 전쟁을 정당화한다는 터무니없는 혐의를 씌워 탄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어떤 형태의 전쟁 수행도 거부하며 평화적 수단으로 저항한다”라며 “누구든 살상을 거부할 권리가 있고, 모두가 그러면 세계에서 전쟁을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군사화된 정치·문화·경제는 전쟁을 낳는다. 모든 걸 동원해 피부에 와닿는 평화의 방식을 퍼뜨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 각종 권리 박탈 해외의 양심적 병역거부자들도 참석해 목소리를 냈다. 태국의 네티윗 초티팟파이살은 2014년 9월 태국 최초로 병역거부를 선언했다. 태국에선 1932년 이후 ‘성공한 쿠데타’만 13차례 발생했다. 네티윗은 “군부가 사회적 담론을 지배하는 시기가 굉장히 많았기 때문에 폭력이 일상화돼 있다”라며 “이런 사회적 상황을 거부하고 비판하기 위해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그는 징병제를 운용하는 태국의 군 내에서 학대로 사망하는 등 인권침해를 당하는 사례가 굉장히 많다고 했다. 군은 급여도 낮고 부정부패도 만연하다고 네티윗은 말했다. 이런 입대는 ‘운’에 따라 결정된다고 한다. 태국은 21세가 되면 추첨을 실시한다. 빨간색을 뽑으면 2년 동안 군 복무를 해야 하고, 검은색을 뽑으면 면제된다. 네티윗은 “제비뽑기 전에 사원에 가서 검은색을 뽑게 해 달라고 기도를 올리는 사람들도 있다”라고 전했다. 학생 시절에 1주일에 하루, 3년 동안 훈련을 받으면 군 복무를 면제받을 수 있으나 이는 특권층만 가능하다고 했다. 네티윗은 병역거부 이후 매년 입영통지서를 받고 있다고 한다. 내년에도 통지서가 오면 불응하며 공개적으로 시위를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군부가 집권하는 상황을 바꾸기 위해서는 불복종하고 거부해야 한다”라며 “변화의 희망을 더욱 열어나가기 위해, 희망의 불씨를 지펴나가기 위해 이런 행동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1월 29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개최된 ‘양심적 병역거부, 진단과 모색’을 주제로 한 국제콘퍼런스에서 병역거부자이자 활동가인 튀르키예의 메르베 아르쿤(오른쪽)이 발언하고 있다. 전쟁없는세상 제공 튀르키예 병역거부자들이 각종 기본권을 박탈당하는 실태도 발표됐다. 메르베 아르쿤은 튀르키예 ‘양심적 병역거부 감시단(COW)’ 활동가이면서 여성 병역거부자다. 여성은 병역 의무가 없지만, 단순히 군대에 가지 않겠다는 의미를 넘어 병역거부를 선언했다. 여성운동의 맥락에서 뿌리 깊은 군사주의에 저항한다는 취지다. 튀르키예에서는 2004년 첫 여성 병역거부자들이 등장했다. 튀르키예 내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1989~2022년 약 600명으로 추정된다. 실제 거부자 수는 훨씬 많은 것으로 보인다고 메르베는 말했다. 그러나 튀르키예는 유럽평의회 국가 가운데 유일하게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인정하지 않는다. 대체복무제도가 없는 것이다. 메르베는 병역거부자들은 여러 사회·경제·정치적 권리를 침해받고 있다며 “사회생활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우선 행정적으로 벌금 처분을 받고, 형사기소도 당한다. 메르베는 “불이익이 한 번에 끝나는 게 아니고, 이후에 정기적인 신원 확인을 진행할 때마다 다시 벌금을 받고 형사기소가 반복된다”고 말했다. 또 선거 참여와 고등교육 이수가 제한될 수 있다. 공공은 물론 민간 부문에서도 일할 수 없다. 메르베는 “병역거부자를 고용한 사람도 기소된다”라며 “이에 따라 거부자들은 비공식적으로 일할 수밖에 없어서 사회보장제도에 가입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이동의 자유도 제약을 받는다고 한다. 그는 “병역거부는 당사자 한 사람을 처벌하는 게 아니라 그의 가족 전체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라고 했다. 메르베는 이처럼 병역거부자가 겪는 권리 침해가 증가하면서, 망명 문의도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해외로 출국하는 것을 고려하는 양심적 병역거부자 수가 지난 몇 년 사이 크게 증가했다”라며 “출국이나 망명 신청에 대한 정보를 구하는 사람이 상당히 많다”고 했다. 메르베는 “우리는 양심적 병역거부권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고 튀르키예의 상황을 지역 및 국제 인권단체에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표지 이야기
‘국제법 무덤’ 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2023. 11. 13 07:00)
2023. 11. 13 07:00 국제
이스라엘이 국제적으로 금기시되는 ‘악마의 무기’ 백린탄을 레바논 공격에 썼다고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가 지난 10월 31일(현지시간) 주장했다. 사진은 지난 10월 15일 백린탄으로 추정되는 이스라엘군 포탄이 레바논 남부 국경 마을에 투하돼 폭발하는 모습 / AP연합뉴스 이스라엘, 백린탄 사용·민간시설 공습…하마스, 민간인 살해 ‘어떤 상황에서도 민간인 살상을 최소화하라’. 국제법의 첫 번째 원칙이다. 이 원칙은 그러나 가자지구에서 한 달 넘게 벌어지고 있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비껴가고 있다. 전쟁이 장기화하리란 전망이 짙어짐에 따라 이번 전쟁은 수많은 무고한 이들의 무덤, 더 나아가 국제법의 죽음으로 기록될 위기에 처했다. 빛바랜 ‘민간인 보호’ 여기서 말하는 국제법이란 1949년 제네바협약과 여기에서 파생된 추가 의정서들을 포괄하는 국제인도법(IHL), 종류별 무기 사용 규약, 국제형사재판소(ICC)의 전쟁범죄 규정 등을 총칭한다. 이러한 여러 국제법은 전투행위와 무관한 이들을 보호하고 전투의 수단과 방법을 제한함으로써 무력 충돌로 인한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여러 국제기구와 인권단체의 평가를 종합하면, 이스라엘은 이번 전쟁에서 크게 ▲백린탄 사용 ▲경고 없는 공습 ▲병원과 구급차 위협 ▲난민촌·빵집 등 민간시설 공격 등을 저질러 국제법을 위반한 혐의를 받는다. 국제앰네스티는 이스라엘군이 지난 10월 중순 헤즈볼라를 상대로 레바논 남부를 공습할 때 백린탄을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앰네스티가 주민과 의사 등을 인터뷰해보니 이들이 묘사한 냄새, 발화 형태 등이 백린탄의 그것과 같았다. 백린탄 불꽃이 몸에 닿으면 살이 뼈까지 타들어 가기 때문에 백린탄은 ‘악마의 무기’, ‘악마의 비’로 불리며 국제법상 사용이 엄격히 제한된다. 경고 없는 공습의 경우 지난 10월 31일 가자지구 북부 자발리야 난민촌 공습이 특히 문제가 됐다. 당시 대규모 폭격을 경험한 주민들은 “빵을 사러 줄을 서 있었는데 경고도 없이 미사일이 떨어졌다”고 진술했다. 과거 이스라엘은 공습 전 주민들에게 전화를 걸거나, 비폭발성·저화력 탄약을 사전 경고성으로 지붕에 떨어뜨리는 일명 ‘루프노킹(지붕 두드리기)’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 같은 조치가 없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전했다. 빵집과 구급차 등 민간시설 공격 또한 비판받고 있다. 국제법에 따르면 민간시설을 불가피하게 목표물로 삼아야 할 때도 모든 공격은 목표물의 군사적 가치에 비례해 행해야 한다. 유엔에 따르면, 11월 7일 현재 가자지구 북부에서 운영 중인 빵집은 단 한 곳도 없다. 폭격으로 파괴됐거나 밀가루와 연료 공급이 끊겨 가동할 수 없는 상황이다. 빵을 사기 위해 몇 시간 동안 줄을 설 때도 공습에 노출되는 실정이다. 의료시설 피해도 이어져 휴먼라이츠워치(HRW)는 이스라엘군이 이달 초 가자지구 북부 알시파 병원 인근에서 구급차를 공격했다며 “전쟁범죄로 조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둘 다 잘못했다, 하지만… 이스라엘도 이번 전쟁에서 막대한 인명 피해를 보았음은 부인할 수 없다. 지난 10월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 마을을 공중, 육상 등으로 침투하면서 이스라엘인 약 1400명이 무참히 살해됐다. CNN이 정리한 통계를 보면, 이번 인명 피해 규모는 2008년부터 15년간의 이·팔 분쟁에서 사망한 이스라엘인의 총합보다 월등히 크다. 하마스의 살해 방식도 잔인해 가족과 이웃을 잃은 이스라엘인들의 충격과 분노가 터져나왔다. 아직 인질 약 200명이 생사조차 불분명한 상태로 붙잡혀 있다. 하마스의 행위 또한 국제법 위반이다. 싱크탱크 미 외교협회(CFR)의 데이비드 셰퍼 연구원에 따르면, 하마스가 아동을 포함한 민간인을 살해한 것은 제네바협약, ICC의 전쟁범죄 및 반인도적 범죄에 관한 규정 등 국제법 다수에 저촉된다. 비국가행위자인 하마스가 국제법 적용을 받는 주체인지에 대해선 견해가 갈리나, “하마스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자체 군사력을 보유한 사실상의 통치자라는 점에서 국제법 준수 의무가 있다”고 셰퍼 연구원은 해석했다. 이처럼 하마스와 이스라엘 각각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이 ‘제로섬’은 아니다. 양측 모두 국제법을 위반한 정황이 있으며, 각자가 택한 방식이 무고한 민간인의 피해로 이어졌음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잘못, 하마스의 잘못을 별도 맥락에서 언급한다고 해서 ‘둘 다 잘못’이라는 기본 전제가 흔들리지는 않는다. ‘비례성의 원칙’ 넘어섰나 전쟁 초기에는 국제사회에서도 하마스를 규탄하는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자신들이 행한 가자지구 봉쇄, 병원·난민촌 폭격, 무차별한 공습의 명분으로 번번이 “하마스가 먼저 그랬다”를 들고나온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스라엘은 전쟁 3일 차인 지난 10월 9일부터 가자지구 봉쇄를 선언하며 연료, 수도, 전기 공급을 끊었다. 이 같은 비인도적 처사는 민간인 생명을 위협한다는 점에서 ‘학살’, ‘집단처벌’이란 비판을 받았다. “전쟁에도 규칙이 있다.”(10월 13일), “하마스의 공격이 진공 상태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다”(10월 24일)라는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의 언급이 대표적이다. 다른 여러 국가도 이스라엘의 민간인 위협을 규탄했으나, 이스라엘은 자국이 본 피해를 호소하며 반박해왔다. 이에 대해 HRW의 클라이브 볼드윈 수석법률고문은 “국제인도법은 상대방이 무엇을 했는지와 무관하게 적용된다. ‘상대방이 먼저 공격했다’는 이유로 내가 민간인을 의도적으로 공격하거나 집단처벌을 가하는 건 정당화되지 않는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가자지구 참상을 규탄하는 여러 주체의 메시지를 거칠게 요약하자면, 이스라엘의 수단이 ‘목적에 비해 지나치다’는 것이다. 이는 곧 국제인도법상 ‘비례성의 원칙’을 위반했을 가능성을 지목한다. 특히 민간인이 밀집 거주하는 난민촌이 공격을 받았고, 누적 사망자 절반가량이 아동과 여성이란 사실은 이스라엘에 불리한 정황이다.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는 “많은 민간인 사상자와 파괴 규모를 고려할 때 자발리야 난민촌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습은 전쟁범죄에 해당할 수 있는 불균형적 공격”이라고 밝혔다. 지난 10월 말 ICC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중 누가 저질렀든, 어떤 범죄에 대해서든 조사하고 있다”며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 벌어진 전쟁범죄 혐의를 적극적으로 밝히겠다고 했다. 그러나 ‘오늘이 마지막 날’이란 생각으로 버티는 가자지구 주민들에게 국제법은 너무 멀다. ICC 상설재판소가 지난 21년 동안 내린 유죄판결이 10여 건에 불과하다는 점과 판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점은 ‘국제법에 따른 정의’를 기대하기 어렵게 한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오랜 법언이 오늘날 가자지구에서 또다시 뼈저리게 입증되고 있다.
이스라엘 ‘보복’의 나비효과(2023. 11. 03 11:13)
2023. 11. 03 11:13 국제
ㆍ지상군 투입 인도주의 문제 명분, 아랍권 똘똘 뭉쳐 중국이 중재자 자처할 때 미 바이든은 재선 악영향 지난 11월 1일(현지시간) 이스라엘군의 공습을 받은 가자지구 북부 자발리야 난민촌이 폐허로 변했다. / AP연합뉴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분쟁이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지난 10월 28일(현지시간) 기자회견을 열고 “가자지구에서 시작한 지상 군사작전으로 전쟁이 두 번째 단계에 들어섰다”며 “길고 어려운 전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네타냐후 총리가 말한 두 번째 단계는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점령을 뜻한다. 진격을 시작한 이스라엘군은 10월 31일 가자 북부 자발리야에 있던 하마스 근거지를 장악하고 50여명의 적을 제거했다고 밝혔다. 11월 1일 기준 지상전으로 인해 이스라엘군 역시 11명이 전사했다. 이스라엘의 지상군 투입으로 가자지구에서 시가전이 발생할 가능성은 높아졌다. 민간인 사살 가능성도 커지며 상황은 점차 인도주의 문제로 번지고 있다. 국제사회도 빠르게 반응하고 있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이스라엘에 대한 변함없는 지지를 밝히면서도 이스라엘군이 초래할 인도주의 문제에는 선을 그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10월 31일 “지금은 일반적 의미의 휴전을 할 때가 아니다”면서도 “가자지구 내 주민들이 인도적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전투 중단은 검토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아랍권은 인도주의 문제를 명분으로 ‘반이스라엘’ 깃발 아래 뭉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UAE)와 요르단, 바레인, 카타르, 쿠웨이트, 사우디아라비아, 오만, 이집트, 모로코 등 주요 아랍 9개국은 10월 26일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공습을 규탄했다. 27일에는 유엔 총회에서 요르단 주도로 아랍 22개국 명의의 휴전 촉구 결의안도 채택됐다. 구속력은 없지만 휴전 요구가 민간인 보호, 지원 등을 근거로 하는 만큼 정치적 무게감을 갖는다. 이스라엘의 군사행동이 하마스와 팔레스타인을 구분하며 직접 개입을 망설인 국가들까지 결집시킨 셈이다. 분쟁 장기화가 인도주의 문제를 낳고, 이를 명분으로 한 대립구도도 확대되는 모양세다. 단순히 이스라엘 대 하마스가 아닌 이스라엘 대 아랍, 미국 대 중동으로의 확장이다. 이미 전쟁에 다양한 국가의 시각, 이해가 투영되기 시작했다. 러시아는 하마스와 그 배후로 지목받은 이란과 접촉하며 밀접한 관계임을 재확인했다. 중국 역시 중재자를 자처하며 구두 개입을 시작했다. 반면 미국은 ‘탈중동’ 구상이 실패로 돌아가며 판을 새롭게 짜야 할 상황이다. 이스라엘과 사우디를 연결해 이란과 힘의 균형을 맞추고, 자신은 ‘역외균형자’ 역할을 하려던 미국의 구상이 사실상 일그러졌다. 이스라엘의 ‘보복’이 국제질서에 나비효과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피해자 이스라엘의 가해행위 우려는 곧바로 현실이 됐다. 이스라엘 지상군이 진격을 시작하자 막대한 민간인 살상이 발생했다. 가자지구 북부 자발리야 지역에서 벌어진 작전이 문제였다. 이스라엘군은 성명을 통해 “기바티 보병여단이 주도하는 보병들과 탱크부대가 자발리야 서쪽에 있던 하마스 군사조직의 근거지를 장악했다”며 “이 과정에서 50여명의 테러범을 사살했다”고 밝혔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가자지구 최대 난민촌이 공습을 받았다는 점이다. 지역 병원 관계자들의 발언 등을 인용한 로이터통신, 뉴욕타임스, AFP 보도 등을 종합하면 이날 이스라엘군 공습으로 사망한 인원이 최소 50여명에 달한다. 하마스는 별도로 “자발리야에서 400명이 사망하고 부상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난민촌 공습으로 외국인 3명을 포함해 인질 7명이 사망했다고도 주장했다. 지상 작전이 인질 구출에 유리하리라는 이스라엘 측 주장을 무색게 하는 결과다. 지난 11월 1일 가자지구에서 지상전에 나선 이스라엘군(IDF)이 탱크 위에 서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이스라엘이 각종 우려에도 지상작전에 돌입한 이유는 전략적 확신 때문으로 보인다. 가자지구를 점령하려면 이른바 ‘가자 메트로(Metro)’라 불리는 가자지구 내 지하터널을 효과적으로 봉쇄해야 한다. 터널은 마치 지하철처럼 면적 360㎢에 달하는 가자지구 지하에 뻗어 있는데, 총길이만 300마일(약 483㎞)이고 깊이도 지하 30~40m로 추정된다. 하마스는 지도부의 은신처, 지휘 사령부뿐만 아니라 각종 로켓 등의 무기, 식량 등을 비축하는 데 지하공간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4년 ‘제3차 가자전쟁’ 당시에도 땅굴에 발목이 잡혔던 이스라엘은 이번에는 종전의 ‘빠른 대규모 공습’ 대신 새로운 전략을 들고나왔다. 이른바 ‘고사 작전’이다. 이스라엘군의 전략은 하마스의 거점 지역을 포위하고, 정예 병력을 활용해 땅굴을 파괴하며 조금씩 전진하는 방식이다. 한 공간에 대규모 지상군을 투입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목표다. 문제는 적을 작은 부분으로 쪼개서 격파하는 살라미(salami) 방식이 민간인 피해도 최소화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해당 전략의 한계는 이스라엘군 관계자들 입에서 여러 차례 확인된 바 있다. 이스라엘 공군 총장 이얄 그린바움 준장은 영국 더타임스와의 최근 인터뷰에서 땅굴 위에 민간 건물들이 지어져 있다고 말했다. 즉 땅굴 장악은 민간 건물에 대한 폭격과 지상군의 진격이 순차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의미다. 폭격과 시가전이 함께 벌어지면 민간인 목숨은 담보할 수 없다. 이를 실제로 입증한 것이 자발리야 공습이다. 이에 대해 이스라엘군 수석대변인 다니엘 하가리 소장은 “문제는 하마스가 거기(민간 건물 아래)에 땅굴을 만들고 병력을 운용했다는 점”이라며 땅굴 공략 과정에서 주변 건물들이 무너져 민간인들이 사망한 것을 정당화했다. 결국 이스라엘군의 지상작전은 민간인을 계속해서 죽여 나가며 수행될 전망이다. 이는 이스라엘의 전쟁 명분을 약하게 한다. 민간인 공습이 불러온 나비효과 이스라엘군이 밝힌 자발리야 공습의 주요 명분은 이브라힘 비아리 자발리야여단 지휘관의 사살이다. 그는 10월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을 도운 인물이다. 하마스는 그러나 “우리 지휘관 중 이스라엘의 공습이 이뤄진 시간대에 자발리야에 있었던 이는 없다”며 “이스라엘군이 극악무도한 범죄를 정당화하려는 근거 없는 거짓말”이라고 일축했다. ‘무엇을 위한 공습인가’는 불분명한 반면, 민간인이 다수 살상됐다는 결과만 분명히 나타났다. 이로 인해 국제사회에는 다양한 파생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먼저 이스라엘을 향한 직접적 성토가 커지고 있다. 민간인 희생에 가장 강력히 반발하고 있는 것은 아랍권이다. 특히 이번 사태 전 이스라엘과 수교 협상을 벌였던 사우디는 11월 1일 외무부 명의의 성명을 내고 “사우디 왕국은 가자지구 자발리야 난민촌에 대한 이스라엘 점령군의 비인도적인 표적 공격으로 수많은 무고한 민간인이 사망하고 부상한 것을 가능한 가장 강력한 표현으로 규탄한다”며 “이스라엘 점령군은 민간인 밀집 지역을 계속 표적으로 삼고 국제법과 국제인도법을 위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요르단 역시 “이번 폭격의 책임은 이스라엘에 있다”며 “모든 인간적·도덕적 가치와 국제 인도주의법에 어긋나는 공격을 요르단은 강력하게 거부하고 규탄한다는 것을 확인한다”고 밝혔다. 남미 국가들 역시 이스라엘 규탄에 나섰다. 볼리비아는 이스라엘과 단교를 선언했고, 칠레와 콜롬비아는 주이스라엘 자국 대사를 소환했다. 지난 11월 1일(현지시간) 가자지구 자발리야 난민촌 주택가에서 주민들이 이스라엘의 공습에 따른 사상자 수색 작업을 지켜보고 있다. / 연합뉴스 민간인 살상은 단순 비난을 넘어 국제사회의 리더십 경쟁에도 불을 붙였다. 분쟁이 격화되면 국제사회는 개입을 기대한다. 이러한 역할은 주로 지역 혹은 국제사회의 패권국들이 맡는다. 문제는 중동에서 벌어진 이번 사태의 중재자 역할을 미국이 아닌 중국이 자임하고 나섰다는 점이다. 실제로 중국은 올해 초 중동 지역 내 양대 국가인 사우디와 이란의 데탕트(화해)를 이끌어내며 영향력을 입증한 바 있다. 중국은 이란의 가장 큰 교역국이면서 이스라엘과도 경제, 기술 등에서 협력한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모든 이해관계자와 대화할 수 있는 독특한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다만 중국이 실제로 중재에 나설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중동 지역의 안정은 중국의 원유 수급 측면에서 분명 중요하다. 하지만 일대일로 정책에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은 중국이 굳이 일대일로에 참여하는 아랍국가들과 불편한 상황을 만들며 중재를 할 이유도 없다. 이로 인해 중국은 선전 효과만 노릴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 소장은 “중국은 미국이 협상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스라엘, 아랍권 양측 모두와 대화할 수 있다는 점을 부각해 대내외적으로 영향력을 과시하는 수준에 머물 것”이라고 말했다. 평판 상승만 노릴 수 있는 중국과 달리 미국은 이제 실질적 해결책을 모색해야 할 입장이다. 특히 인도주의적 문제가 커질수록 이스라엘을 지지한 미국의 부담도 늘어나고 있다. 반미로 돌아서는 중동 상황이 대표적이다. 이번 사태 초기부터 미국이 가장 우려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는 “이번 사태에서 최고의 딜레마 상황에 빠진 것은 미국이다”며 “팔레스타인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않고 사우디와 이스라엘을 중재하려다 실패했는데 뾰족한 수습방안도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 미국이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이스라엘이 짧은 시간 안에 하마스를 ‘궤멸시켰다’고 선언하고 빠져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의 민간인 사살은 내년 치러질 미국 대선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스라엘 지지를 선언한 바이든 대통령이 빠르게 아랍계 미국인의 지지를 잃고 있다. 아랍아메리칸연구소(AAI)가 아랍계 미국인 500명을 대상으로 10월 23~27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17.4%만 바이든 지지 의사를 밝혔다. 2020년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아랍계 미국인의 지지율이 59%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약 42%포인트나 급감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폭력에 대한 바이든 대통령의 대응’ 평가를 묻는 질문에도 전체 응답자의 67%가 부정적이라고 답했다. 인도주의적 문제가 불거질수록 미국 내 이러한 추세는 더욱 빠르게 확산할 수 있다. 가자지구에서 불어온 바람이 국제질서를 변화시키는 태풍으로 덩치를 키워나가고 있다.
이스라엘, 미국 만류에도 지상군을(2023. 10. 27 11:20)
2023. 10. 27 11:20 국제
ㆍ‘인질 희생 감수하겠다’ 강경론 폭격 수위 올려 희생자 급증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다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주민들이 10월 23일(현지시간) 가자시티에서 치료를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 가자시티 | AP연합뉴스 지난 10월 7일 시작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무력 충돌이 본격적인 지상전을 앞두고 한층 격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스라엘의 지상군 투입은 이란의 개입 등 확전으로 이어지기에 국제사회에선 신중론을 제기했으나, 하마스에 잡혀 있는 인질들의 희생을 감수하고도 지상전을 벌이겠다는 강경론이 이스라엘 내부에 팽배한 상황이다. 지상전을 앞두고 이스라엘이 폭격 수위를 올리면서 가자지구에선 하루 700명 이상이 사망하는 등 인도주의 위기가 심화되고 있다. 확전 우려 부르는 이스라엘의 지상군 투입 이스라엘은 최근 가자지구에서의 지상전 가능성을 계속 언급해왔다. 요아브 갈란트 국방장관이 지난 10월 19일(현지시간) 가자지구 국경 근처 부대를 방문해 “곧 내부에서 가자지구를 보게 될 것”이라고 언급한 것이 대표적이다. 헤르지 할레비 군 참모총장도 이틀 뒤 이스라엘 북부 지역을 담당하는 ‘골라니여단’ 지휘관에게 “가자지구로 진입해 하마스를 제거하기 위한 작전을 시작하겠다”고 예고했다.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 진입을 통해 앞서 하마스에 납치됐던 인질들을 구출하고 하마스 대원들을 소탕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혀왔다. 이를 위해 전면적인 침공을 감행하거나, 세분화된 공격을 할 수도 있다고 CNN 등 외신은 전망한다. 일각에선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이집트 시나이반도로 완전히 몰아내려는 것이 이스라엘의 최종 목표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지상군 투입은 이란의 개입에 따른 확전으로 이어질 수 있어 국제사회가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실제 이란 최고위 지도자들은 이번 전쟁에 깊숙이 개입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국내 정치적 리스크와 그간 추진해온 중동지역 내 패권 전략에 미칠 영향 등을 두고 현재 고심을 거듭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슬람 시아파 국가인 이란은 그간 하마스뿐 아니라 레바논의 무장정파인 헤즈볼라, 예멘 내 후티 반군,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 등을 지원하며 역내 수니파 국가들과 패권을 다퉜다. 이런 상황에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하마스의 팔레스타인 내 기반이 파괴되면, 이란이 이들 무장단체를 ‘대리 세력’으로 내세워 구축한 역내 네트워크가 손상될 가능성이 있다. 시아파의 맹주로 40년 넘게 구축해온 이란의 지역 패권에 균열이 생기는 시나리오다. 지난 10월 22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가자지구에서 연기가 치솟고 있다. / 가자지구 | AP연합뉴스 다만 이란이 직접 전쟁에 개입하기에는 국내외적 상황이 녹록지 않다. 이란 경제는 2018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이란 핵협정을 파기한 뒤 대규모 경제 제재를 부활시켜 위기에 빠졌다. 여기에 지난해 시작된 ‘히잡 시위’ 등 반정부 시위도 여전히 이어지는 중이다. 이란의 한 고위 외교관은 “이란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에게 최우선 순위는 이슬람공화국의 생존”이라며 “이것이 직접적인 군사 개입을 자제해온 이유”라고 전했다. 이에 이란은 전쟁에 대한 제한적인 개입을 시도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10월 22일 로이터통신은 이란이 레바논의 무장정파 헤즈볼라가 이스라엘에 제한적 공격을 벌이는 것을 허용하고, 자국과 연계된 역내 다른 무장단체들에는 미국을 겨냥한 수위 낮은 공격을 허용했다고 보도했다. 대리 세력들을 통한 제한적인 공격을 통해, 자국이 전쟁에 직접 휘말리는 시나리오는 피하겠다는 취지로 분석된다. 미국의 권고에도 이스라엘 강경론 ‘팽배’ 이란만큼이나 미국 역시 고심이 깊다. 가뜩이나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힘이 분산된 상황에서 이번 전쟁까지 개입하면 ‘두 곳의 전선’에 연루되는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특히 이스라엘의 지상전을 통해 가자지구에서 인명 피해가 속출하면 이란이나 헤즈볼라가 더 깊게 개입할 명분을 줄 수 있다는 점이 미국의 고민거리다. 이에 미국은 하마스에 잡혀 있는 인질들의 안전이나 가자지구의 인도주의 위기를 거론하며 지상전 연기를 이스라엘에 권하고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 측에선 ‘인질들의 희생을 감수하고도 지상전을 벌이겠다’는 등 강경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스라엘 고위 관계자는 최근 인터뷰에서 “우리도 모든 인질이 가능한 한 빨리 석방되기를 원하지만, 인도주의적 노력이 하마스 파괴라는 임무에 영향을 미쳐선 안 된다”고 밝혔다. 이스라엘 정보 관료 출신 아비 멜라메드는 영국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이) 인질이 없는 것처럼 전쟁 계획을 추진하리라 본다”고 전망했다. 다만 이스라엘 내부에 아직 헤즈볼라의 공격이나 가자지구에 억류된 인질들의 생사, 이스라엘군 사상자 등에 대한 우려가 있어 지상전의 범위는 조정될 가능성이 있다. 이스라엘군은 지난 10월 23일 가자지구에 처음으로 지상군을 투입했다. 제한적인 기습작전이었다. 인질들의 가족은 현재 이스라엘 정부에 전쟁을 자제하고 인질 석방 협상에 나서달라고 호소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스라엘군은 지상전을 조심스레 검토하면서도 폭격의 수위는 올리고 있다. 특히 지난 10월 24일 가자지구에 쏟아낸 폭격은 심대한 사상자를 불렀다. 가자지구 보건부에 따르면 이날 하루에만 이스라엘 공격으로 어린이 305명을 포함해 704명이 사망했다. 전쟁 발발 이후 이날까지 숨진 가자지구 주민들은 모두 5800여명이다. 병원 등 가자지구 내 시설이 거의 마비된 만큼 향후 인도주의 붕괴 위험성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인도주의 위기가 엄습하고 있음에도 가자지구 내 생존자들은 도로의 파괴 등으로 대피조차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이스라엘은 남부 일대를 안전지대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이곳에도 공습이 이어져 피란이 쉽지 않다. 또 남부 역시 이미 피란민 수십만명이 몰려들어 식수와 식량, 대피소가 부족해졌기에 다시 북부로 되돌아가는 이들도 나오고 있다. CNN에 따르면 사면초가에 놓인 가자지구 일부 주민들은 자녀의 다리와 배에 이름을 적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폭격으로 죽게 되면 신원이라도 확인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스라엘의 지상전을 앞두고 가자지구의 슬픔이 커져만 가는 양상이다.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결론 없는 전쟁, 이번에도 민간인 살육만 남길까(2023. 10. 13 16:00)
2023. 10. 13 16:00 국제
지난 10월 10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이스라엘 지지 시위(왼쪽). 지난 10월 11일(현지시간)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 / AP=연합뉴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간 유혈 충돌로 사망자 수가 양측 모두 1000명 단위를 넘어섰다. 사태가 전쟁 양상으로 치달으며 사망자와 부상자를 더한 사상자 수는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이번 충돌은 지난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 남부 지역을 기습공격하며 시작했다. 이스라엘 공영 방송 칸을 인용한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하마스의 공격으로 인한 이스라엘 측 사망자 수는 지난 10월 11일 기준, 1200명에 달한다. 팔레스타인 측 사망자도 빠르게 늘고 있다. 팔레스타인 보건부를 인용한 AFP통신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보복 공습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지난 10월 12일 기준 1200명을 넘어섰다. 공격과 보복이 오가며 하루아침에 사망한 ‘사람’이 2000명이 넘는다. 민간인의 목숨을 앗아간 ‘비극’은 수천명의 사망자와 함께 서서히 전쟁 관련 ‘통계’로 변해가고 있다. 2년여 전 아프가니스탄에서 철군하며 중동 지역에서 ‘간신히’ 발을 뺐던 미국은 최대 우방 이스라엘이 공격받자 다시 중동으로 돌아가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10월 10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가진 대국민 연설에서 “이스라엘이 국민을 보호하고 나라를 지키고,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갖게 될 것임을 분명히 한다”며 “탄약과 아이언돔(이스라엘의 대공 방어 체계)을 보충할 요격 무기들을 포함한 추가적 군사지원을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하마스의 공격은 이슬람국가(ISIS)의 광란 행위와 닮았다”고 비난했다. 실질적 지원도 이어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지난 10월 10일, 미 항공모함 제럴드 포드함이 이스라엘 인근 동지중해에 도착했다. 직접 개입보단 이스라엘의 보복으로 불안정해질 중동정세를 사전에 진압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지난 9월 20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양자 회담을 하기 전 악수하고 있다./연합뉴스 미국의 지지를 등에 업은 이스라엘은 시가전까지 불사하며 가자지구를 점령할 계획이다. 하마스가 붙잡고 있는 인질, 가자지구에 남은 민간인 등의 추가 피해가 예상된다. 문제는 미군 철수 이후 힘의 공백 지대에 있던 중동이 이스라엘과 함께 돌아오는 미국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점이다. 지난 2년여간, 세계는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자유진영과 미국과 대립하는 지역으로 갈라졌다. 아시아에선 한국, 일본 등의 미국을 지원하는 단단한 린치핀(마차나 수레, 자동차의 바퀴가 빠지지 않도록 축에 꽂는 핀, 외교가에선 공동의 정책 목표를 달성하는 데 꼭 필요한 동반자 등을 의미한다)이 있지만 중동은 다르다. 당장 중동의 맹주를 자처하는 양대 세력 이란, 사우디아라비아가 모두 팔레스타인 지지를 발표했다. 이들은 하마스와는 선을 긋고 있지만, 미국이 직접 개입할 경우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는 알 수 없다. 미국 중심의 단극체제가 유럽에 이어 중동에서도 거센 도전에 직면했다. 하마스는 무엇을 노렸나 지난 10월 7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공격으로 파괴된 자동차 모습(왼쪽).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기습 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이스라엘군이 지난 10월 7일(현지시간) 공습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건물들 곳곳에서 화염과 연기가 뿜어나오고 있다./AP연합뉴스 지난 10월 7일 발생한 하마스의 기습공격은 두 가지 방어선을 뚫었다. 하나는 미국 CIA, 이스라엘 모사드 등으로 대표되는 정보기관의 힘이다. 이번 공격에서 하마스는 이스라엘 남부 지방을 향해 로켓포 5000여발을 발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보기관은 하마스가 5000여발의 로켓포를 확보하는 과정, 기습적으로 발사하는 것에 대한 정보를 모두 놓쳤다. 이를 두고 미국 CNN은 “이스라엘 양대 정보기관인 신베트(국내 첩보)와 모사드(해외 첩보), 방위군의 자산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누구도 하마스의 대규모 공격을 예측하지 못한 것은 놀라운 일”이라고 평가했다. 이는 이스라엘과 정보 협력을 해온 미국 CIA를 향한 비판이기도 하다. 또 다른 하나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자랑하고, 세계가 부러워 한 ‘아이언돔’의 실패다. 이는 한국 정부가 구축 중인 미사일방어체계(KAMD)의 원조격이다. KAMD를 ‘한국형 아이언돔’이라고도 부른다. 이러한 방어체제를 C-RAM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C는 대응한다는 의미의 Counter, RAM은 로켓(Rocket), 곡사포가 중심인 대포(Artillery), 박격포(Mortar)를 의미한다. 즉 이스라엘은 국경 북쪽에서 대립하고 있는 레바논과 시리아, 국경 내부에 있는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아이언돔을 구축했다. 요격 성공률은 90%에 달한다고 홍보했다. 그러나 이번 하마스의 공격에서 아이언돔은 사실상 무기력했다. 날아오는 미사일을 공중에서 요격하는 시스템이 불완전하다는 점만 노출했다. 하마스의 공격은 성공적이었다. 문제는 한 번의 성공이 객관적 전력의 열세를 뒤집지는 못한다는 점이다. 여기서 역설이 발생한다. 하마스의 공격 성과가 커질수록 이스라엘의 보복으로 인한 붕괴 가능성도 높아진다. 실제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하마스가 가혹하고 끔찍한 일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며 “전례 없는 공세를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10월 10일에는 리처드 헥트 이스라엘 방위군 대변인이 “이스라엘 남서부와 가자 봉쇄선 부근에서 약 1500명의 하마스 전투요원 시신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하마스가 보복 위험을 감수한 공격에 나선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이스라엘과의 해묵은 원한에서 원인을 찾는다. 하지만 이는 ‘왜 꼭 지금, 이 정도로 대규모 공격에 나서야 했나’를 설명하지 못한다. 중동전문가인 김강석 한국외대 아랍어과 교수는 “양측의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은 있다고 봤지만, 이 정도의 대규모 공격은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이라며 “하마스의 기습공격은 마치 제4차 중동전쟁을 연상케 할 만큼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이는 팔레스타인 내부 정치 상황을 통해 추론해볼 수 있다. 이스라엘 영토 내부에 쪼개져 있는 팔레스타인. 하마스가 지배하는 가자지구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통치하는 서안지구로 나뉘어 있다. 서안지구는 이스라엘의 유대인 정착촌 확대로 규모가 줄어들고 있다. 팔레스타인은 크게 가자지구와 이른바 웨스트뱅크로 불리는 서안지구로 나뉘어 있다. 각각의 지구를 통치하는 세력이 다르다. 가자지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1987년 무슬림형제단의 팔레스타인 지부로 출발한 하마스다. 이들은 ‘정치이슬람(political Islam)’을 대(對)이스라엘 투쟁의 이념으로 삼고 출발했다. ‘이슬람국가(Islamic State)’ 건설이 목표다. 서안지구를 통치하고 있는 것은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세력이 주축이 된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다. 이들은 ‘팔레스타인 민족주의’를 앞세워 출발했다. 부패 문제로 비판받지만, 서구 및 이스라엘에는 상대적으로 우호적이다. 동-서로 분리된 팔레스타인의 영토 안에 각각의 통치세력이 존재하는 상황은 자연히 경쟁을 낳는다.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중동센터장은 “하마스가 이스라엘만큼 싫어하는 것이 국제사회가 팔레스타인을 대표한다고 인정한 서안지구 자치 정부”라며 “하마스가 무리해 보이는 공격을 감행한 것은 이들의 경쟁관계에서도 원인을 찾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하마스와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의 관계에 변수가 생겼다. 사우디의 등장이다. 수니파 이슬람의 수장격인 사우디는 미국의 중재로 이스라엘과의 관계개선에 나섰다. 사우디는 이스라엘과의 수교로 ‘네옴시티’ 사업 등을 추진하면서 실리를 확보하고자 했다. 문제는 이스라엘과의 수교가 불러올 중동 지역의 반발이다. 이에 사우디는 역시 수니파 이슬람이 구성원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처우 개선을 수교 조건에 넣었다. 그런데 사우디와 협력하는 팔레스타인은 시아파 이란의 지원을 받는 하마스가 아닌 서안지구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였다. 차질없이 수교가 이뤄진다면,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는 국제사회가 인정한 정부일 뿐만 아니라 경제적 지원까지 확보하게 된다. 경쟁관계인 하마스 입장에선 달가울 수 없다. 수니파 사우디와 경쟁하는 이란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판을 깨는 데 전쟁만큼 좋은 방법이 있을 리 없었다. 팔레스타인 내 주도권 다툼과 지정학적 변화를 종합해보면 ‘왜 지금 대규모 공격이 필요했는가’에 대한 설명이 가능하다. 이를 바탕으로 ‘하마스의 의도가 성공했는가’까지 평가해볼 수 있다. 지난 10월 9일 국내 언론은 사우디의 실권자로 알려진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의 “계속해서 팔레스타인을 지키고 영토의 평온과 안정을 되찾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보도했다. 사우디가 이스라엘의 반대편에 선 것처럼 읽힌다. 그런데 해당 보도에는 전후 맥락이 생략된 부분이 있다. 빈 살만 왕세자가 통화에서 지지 의사를 밝힌 건 팔레스타인 전체가 아닌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 수반이라는 사실이다. 사우디와 하마스와의 거리는 변한 것이 없다. 거대한 체스판이 움직일까 지난 9월 26일(현지시간) 나예프 알수다이리 요르단 주재 사우디아라비아 대사(왼쪽)와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라말라에서 만나고 있다./EPA연합뉴스 ‘사우디가 이스라엘과의 관계개선을 포기한다’, ‘중동 내 무장단체를 지원하는 시아파 수장 이란이 개입해 이스라엘·미국과 대립한다’ 정도면 하마스가 목적을 달성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문제는 국제정치의 셈법이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점이다. 사우디는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혔을 뿐, 하마스를 지지한다고까지 나아가지는 않았다. 수교가 잠시 미뤄질 수는 있겠지만, 이스라엘과의 관계개선도 포기했다고 볼 수 없다. 이란 역시 선을 긋고 있다.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는 지난 10월 10일 이란 테헤란에서 열린 사관학교 임관식에 참석해 “시온주의 정권(이스라엘) 편을 드는 자들은 지난 2~3일간 (하마스) 행동의 배후가 이란이라는 소문을 퍼뜨리고 있다”며 “그들은 틀렸다”고 말했다. 이러한 기조는 ‘이란 배후설’이 적극 제기됐던 미국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난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이 하마스 공격에 개입했다는 확실한 증거는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이란의 전통적인 대외 군사전략이 ‘포워드 디펜스(Forward Defense)’라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이는 이란 내부의 혼란을 막기 위해 전쟁은 이란 국경 밖에서 치른다는 전략이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주요 요소 중 하나가 대리인(Proxy)의 존재다. 즉 이란은 레바논, 시리아, 예멘, 이라크 내 시아파 무장단체를 지원해 이란 국경 밖에서 자신들의 적과 대리전을 벌인다. 레바논의 헤즈볼라, 예멘의 후티가 대표적이다. 실제로 이번 사태에서 하마스 편에서 직접 개입하고 있는 곳은 레바논과 골란고원 지역을 두고 이스라엘과 영토분쟁을 해온 시리아 정도다. 이른바 ‘시아파 벨트’를 언급하며 확전 가능성을 언급하는 것은 이런 상황을 대략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만일 시아파 벨트 국가들의 추가 참전이 이어지더라도 이란은 전략적 선택에 의해 직접 개입할 확률이 높지 않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을 둘러싼 지정학적 위치. 레바논, 시리아, 이라크, 이란이 이스라엘에 적대적인 시아파 벨트를 형성하고 있다. 미국이 하마스의 의도대로 중동 지역 분쟁에 직접 개입할 것이냐는 점 역시 변수다.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것과 전쟁에 개입해 싸우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김준형 전 국립외교원장은 “미국이 이스라엘을 지지할 수는 있어도 중동에서 또 다른 전쟁을 할 여력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며 “중동 지역 주요 국가들도 하마스를 직접 비판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는 만큼 미국이 직접 개입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진짜 변수는 하마스의 공격을 방어하지 못한 이스라엘 네타냐후 정권에서 찾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는 민간인 지난 10월 11일(현지시간) 하마스의 이스라엘 남부 공격으로 사망한 시신을 옮기는 이스라엘 보건당국 관계자들.(오른쪽) 지난 10월 12일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폭격으로 사망한 시신을 옮기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연합뉴스 하마스의 공격이 발생하기 전 이스라엘에 대한 관심은 사법제도 재편을 둘러싼 내부 갈등에 맞춰져 있었다. 끊임없이 시위가 발생했고, 시민들은 “우리는 민주주의를 원한다”고 외쳤다. 극우세력과의 연대도 마다하지 않은 네타냐후 정부는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을 안보 강화로 정당화했다. 하마스의 공격은 민주주의를 위협한 네타냐후 정부가 안보에도 무능력하다는 점을 보여준 셈이 됐다. 장 센터장은 “이스라엘 내부에서는 네타냐후 정부의 정보, 안보, 리더십 실패에 대한 분노가 절정에 치닫고 있다”며 “이번 사태가 일단락되면, 가장 먼저 네타냐후 정부의 책임부터 물을 상황”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정권이 궁지에 몰리면 극단적 선택도 불사한다는 점이다. 좁은 가자지구 내에 사는 민간인이 하마스에 대한 전방위적 보복을 피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스라엘은 폭격 전 가자지구 내 민간인을 향해 철수할 것을 권고했다. 가자지구 내 민간인은 사실상 하마스의 인질에 가까운 데다 이스라엘에 의해 분리된 팔레스타인 영토 구조상 가자지구를 떠나 탈출할 곳도 없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폭격과 시가전 감행은 사실상 민간인도 함께 죽이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미국 역시 이에 대한 우려를 남겼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국민 연설에서 “(네타냐후 총리와) 이스라엘, 미국 같은 민주주의 국가들이 법의 지배에 따라 행동할 때 얼마나 더 강하고 안전한지를 논의했다”고 말했다. 민간인에 대한 공격을 금지한 전시 국제법을 떠올리게 하는 발언이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이를 고려할지는 불분명하다. 지난 10월 12일 이스라엘이 폭격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칸 유니스 남부 지역에 사람들이 앉아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10월 10일 이타르타스통신 등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당국의 발표를 인용해 “이스라엘군이 민간인 주거지역에 백린탄을 투하했다”고 보도했다. 백린탄은 가연성이 강한 파편을 흩뿌리는 화학무기로 연기만 흡입해도 대량 살상을 가능케 해 ‘악마의 무기’로 불린다. 비인도적 무기로 분류돼 제네바 협약 등에 의해 국제적으로 사용이 금지된 바 있다. 이스라엘군은 2009년에도 백린탄을 사용한 바 있다. 이번에도 사용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하마스 역시 지난 10월 7일 기습 당시 납치한 인질들을 이른바 ‘인간방패’로 세우고 있다. 이미 지난 10월 9일 아부 우바이다 하마스 대변인이 성명을 통해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민간인 주택을 사전 경고 없이 공격할 때마다 이스라엘 민간인 인질 1명을 살해하겠다”고 위협했다. 미국, 이란, 유엔 등 이번 사태와 직·간접적으로 엮여 있거나 중재할 능력, 의무가 있는 곳들은 상황을 관망 중이다. 더욱 최악인 것은 미국과 지역 강대국이 확전을 부담스러워하는 만큼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죽고 죽이는 상황이 더 길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 경우 피해는 군인보다 민간에 집중될 확률이 높아진다.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가’라는 질문만 남긴 채 지금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는 사망자 수를 기록한 통계수치가 쌓여가고 있다.
[방구석 극장전]이스라엘 여성 징병제의 현실(2022. 03. 11 11:18)
2022. 03. 11 11:18 문화/과학
20대 대선이 끝났다. 갈등과 반목을 넘어 산적한 현안을 해결해야 할 때다. 3년째 기승을 부리는 코로나19, 부동산, 경기불황, 계층·세대 간 갈등과 젠더 분쟁, 선거 시기에 터진 사드 추가배치 제안이나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안보 문제도 화두다. 군복무 문제는 늘 뜨거운 감자로 안보상황에 밀접하게 연관된 바, 추가로 젠더 갈등이 더해졌다. 하지만 큰 방향에서 머릿수가 아닌 첨단·과학화, 징병제에서 (준)모병제로의 전환은 적어도 전문가 집단 내에선 큰 이견이 없다. 고령화와 맞물려 예전의 대병력 유지는 불가능하다고 다들 인정한다. 포스터 / 왓챠 한국군 규모는 어느새 70만에서 50여만으로 줄었다. 병력이 부족해 문제가 많다. 그래서 2030남성 집단의 보상심리와 맞물려 ‘여자도 군대를 보내라!’는 식의 여성 징병제도 논쟁이 툭하면 튀어나온다. 찬성 쪽은 안보강국의 모범사례인 이스라엘의 여성 징병제도를 논한다. 과연 실제로 잘 돌아가고 있을까? 우린 실상을 잘 모른다. 없는 게 없는 OTT 덕분에 길이 열렸다. 왓챠에서 서비스 중인 영화 <제로 모티베이션>은 이스라엘 여성의 의무복무 제도를 코믹하게 소개한다. 감독 탈야 라비는 본인의 2년 복무 경험을 영화에 녹여냈다. 이스라엘에서 여성들은 남성과 동일한 기간 동안 군에서 복무하지만 면제 사유가 임신, 결혼, 출산 등 폭넓다. 실제 적용대상의 50% 정도만 입대한다. 여성에게만 주는 혜택은 아니다. 남성도 총력전 필요가 줄어들면서 70% 수준에 그치고 있다. 과거 아랍에 포위된 상태에서 조국을 지키기 위해 앞장섰던 기억은 희미해진 셈이다(대표 면제 대상은 근본주의 유대교 종파인 ‘하레디’ 신자들이다. 이들은 입대하더라도 복무 기간의 절반을 경전을 연구하며 보낸다). 영화는 코미디를 기반으로 하지만 우리에게 유용한 타산지석 사례들을 던진다. 영화 속에서 병력의 3분의 1이 여군이지만 이들은 대부분 전투병과가 아니라 행정·보급 등 지원 분야로 근무한다(실제로 대부분 나라에서 군 병력 중 전투병이 차지하는 비중은 3분의 1 정도다). 20대 초중반의 혈기왕성한 청춘들이 사막 한가운데 주둔지에서 시간을 보내는 풍경은 전역일을 계산하는 한국 장병들과 많이 닮았다. 물론 한국에 비해 잘 짜인 외박·휴가 규정에다 상급자들의 부당한 간섭 문제도 훨씬 적다. 그렇다고 애로사항이 없는 건 아니다. 영화는 행정부사관 조하와 다피를 주인공으로 부대 내 다양한 일화를 펼쳐보인다. 직업군인으로 남기 위해 상급자의 눈치를 보며 부하들을 들볶는 소대장, 다양한 출신과 계층이 아옹다옹하는 내무반, 혈기방장 남녀가 가득하다 보니 필연적인 성 군기 문제가 줄줄 터진다. 어떤 건 우리에게 친숙하고, 다른 부분은 ‘저기도 다 해결 못 했구나’ 하는 탄식을 자아낸다. 강압이 아닌 방식으로 통합을 끌어내기란 항상 지난한 숙제다. 소재의 희소성과 발칙함으로 뉴욕 트라이베카 영화제 최우수 장편상을 비롯해 이스라엘 역대 최대 흥행작에 오르며 인기를 끈 데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자원을 무한정 소비하는 군대는 엄밀히 따지면 ‘필요악’적인 존재다. 너무 비대해지면 사회 활력을 탐욕스레 빨아들이고, 방치하면 냉엄한 국제정세에서 안심할 수 없다.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 등으로 국방 안보상황이 더욱 첨예해졌다. 한국의 미래사회를 전망하고 대책을 수립할 때 <제로 모티베이션>이 담아낸 이스라엘군의 풍경은 충분히 참고할 만할 듯하다.
방구석 극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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