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총 512 건 검색)
- ‘죽음의 진실’ 밝히기 2년…이주노동자엔 기적 같은 ‘산재 인정’ 받았다
- 2024. 12. 28 09:00사회
- ... 회사, 다단계 하도급과 불법이 일상이 된 업계, 이 구조의 제일 밑바닥에서 과중한 업무를 떠안는 이주노동자들, 이런 모든 구조적인 모순에도 불구하고 회사가 제출한 형식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산재가...
- 글 몰라도 알기 쉽게…노동부, 이주노동자 산재예방 그림문자 제작
- 2024. 12. 17 09:00사회
- ... 제작·배포한다고 17일 밝혔다. 안전보건 픽토그램은 한국어에 익숙하지 않은 이주노동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사업장 내 위험요인과 주의사항을 그림으로 표시한 것이다. 올해 배포되는...
- 숨진 이주노동자 93% 정보 ‘공란’…차단당한 ‘사회적 애도’
- 2024. 12. 01 20:10사회
- .... 2022년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에 신고된 사망자 중 미등록 또는 노동 가능한 비자를 가진 이주노동자 수는 3340명이다. 이들 중 행정시스템에 사망 정황이 기록된 사람은 214명으로 전체 사망자의 6...
- 이주노동자국가인권위원회노동 사각의 외침
- [여적]통계도 안 잡히는 ‘이주노동자 죽음’
- 2024. 12. 01 18:50오피니언
- ... 관련 통계의 미비가 대표적인 예다. 서울대 산학협력단이 최근 인권위 의뢰를 받아 수행한 ‘이주노동자 사망에 대한 원인 분석 및 지원체계 구축을 위한 연구’ 보고서를 제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스포츠경향(총 11 건 검색)
- 아이디병원, 사단법인 푸른사람들 이주노동자 위해 화장품 기부
- 2024. 04. 19 11:13 생활
- 박상훈 아이디병원장과 사단법인 푸른사람들 관계자들이 후원품 전달식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아이디병원이 사단법인 푸른사람들 이주노동자에게 판매가 1,800만원 상당의 아이디플라코스메틱 화장품 세트를 기부했다고 19일 밝혔다. 아이디병원은 성형외과, 치과, 피부과를 운영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미용 성형 병원으로 2024년 개원 20주년을 맞이하고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진행할 방침이다. 이에 사단법인 푸른사람들 이주노동자를 위한 화장품 기부를 결심했다. 사단법인 푸른사람들은 1994년 창립한 비영리 민간단체로 1998년부터 베트남,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필리핀, 중국 등의 이주노동자 및 다문화 가정에 한국어 교육 및 상담을 지원하고 있다. 아이디병원은 지난 18일 서울 동대문구에 위치한 사단법인 푸른사람들 사옥을 방문해 화장품 200세트를 기부하고 푸른사람들 대표 및 팀장, 베트남 회원, 필리핀 회원 리더와 함께 간담회 시간을 가졌다. 간담회에서 박상훈 아이디병원장은 “아이디병원의 소명은 모든 사람들이 아름다움으로부터 소외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며 “타지에서 생활하는 이주노동자 분들이 소외받지 않고 좀 더 행복한 삶을 영위하도록 후원 물품 기부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서화진 푸른사람들 대표는 “비영리단체는 누군가 직접 찾아보지 않는 한 관심을 갖기 어렵다”며 “도움의 손길을 먼저 내밀어주신 아이디병원께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긍정적인 영향을 나누면 좋겠다”고 언급했다. 이어 베트남 회원 및 필리핀 회원 리더와 함께 타지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의 고충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공감하는 시간을 가졌다. 박 병원장은 “타지에서 생활하는 이주노동자분들과 아름다운 동행을 이어나가고자 한다”면서 “이번 기부를 초석으로 삼아 앞으로도 정기적인 기부 릴레이를 이어나가겠다”고 언급했다.
- 카타르 루사일 스타디움에서 케냐 경비원 추락사···이번 월드컵 도중 두 번째 이주노동자 사망
- 2022. 12. 16 08:29 축구
- 루사일 스타디움. 게티이미지코리아 2022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 월드컵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던 이주노동자가 경기장에서 추락해 사망했다. 케냐 출신의 경비원 존 냐우 키부에(24)는 지난 10일 카타르의 루사일 스타디움에서 근무 중 8층에서 떨어졌다. 월드컵 최고위원회는 “키부에가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은 뒤 3일 만에 사망했으며 그의 추락사를 둘러싼 조사를 수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키부에의 여동생 앤 완지루는 케냐 매체인 ‘스탠다드 신문’에 “우리는 키부에의 사망 상황에 대한 답변을 원한다. 그의 고용주는 키부에가 술에 취해 있었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키부에가 오랜 시간 일했다고 들었다. 어떻게 추락했는지가 불명확하다”라고 이야기했다. CNN의 보도에 따르면 키부에는 도하의 하마드 종합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었는데, 심각한 머리 부상과 안면 골절 및 골반 골절을 입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번 월드컵에서 이주노동자가 근무 도중 사망한 것은 키부에가 두 번째다. 12월 초에도 사우디아라비아 축구대표팀 훈련장인 씨라인 리조트에서 필리핀 국적의 노동자 1명이 사망했다.
- 카타르 월드컵 이주노동자 착취 내부고발자, 월드컵 기간 고문당했다
- 2022. 12. 08 07:35 축구
- 압둘라 이바이스. ITV 뉴스 화면 캡처 2022 카타르 월드컵 경기장 건설 현장에서의 이주노동자 인권 탄압을 내부고발한 뒤 3년형을 선고받고 투옥된 카타르 월드컵 조직위원회의 이전 미디어 매니저 압둘라 이바이스가 카타르 당국으로부터 월드컵 기간 고문을 당했다고 그의 가족이 주장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의 보도에 따르면 그의 가족은 인권단체 ‘페어스퀘어’에 보낸 편지에 “이바이스는 신체적 폭행을 당한 후 완전한 어둠 속에서 4일을 보냈다. 에어컨을 최대로 틀어놓아 영하가 된 2제곱미터 면적의 작은 방에서 지내야 했다”라고 썼다. 요르단 출신의 압둘라 이바이스는 영국 방송사 ITV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 ‘카타르, 공포의 제국’ 다큐멘터리에 카타르의 이주노동자 인권 탄압 실태를 내부고발한 뒤 지난달 체포됐다. 이바이스는 지난 2019년 ITV와의 인터뷰에서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과 알바이트 스타디움 건설 현장에서 200여 명의 노동자가 마실 물을 받지 못했고, 4개월간 급여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카타르 당국은 지난 2019년 직무에서 해임된 이바이스가 월드컵 소셜미디어 콘텐츠 제작 계약과 관련한 사기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페어스퀘어’는 이바이스가 자백을 강요받았으며,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없다고 반박했다. 이바이스의 가족은 ‘페어스퀘어’에 보낸 편지에서 “지아니 인판티노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은 한때 ‘월드컵은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한 말을 따르지 않고 있다. FIFA는 이바이스의 투옥에 연루돼 있으며, FIFA의 침묵은 우리 가족을 찢어놓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FIFA와 월드컵 최고위원회는 이 편지 내용을 확인했지만, 아직 공식 견해를 밝히지는 않고 있다.
- 인판티노 고향에 등장한 광고판···“수천 명 이주노동자가 월드컵의 희생자였다”
- 2022. 12. 08 06:34 축구
- 잔니 인판티노 FIFA 회장. 게티이미지코리아 잔니 인판티노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의 고향인 스위스에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의 이주노동자 인권 탄압 행위를 비판하는 광고판이 세워졌다. 국제 시민단체 ‘아바즈’는 인판티노 회장의 고향인 스위스 브리그에 “인판티노, 당신의 가족은 이주민이었다” “그들과 같은 수천 명이 이번 월드컵의 희생자였다” “당장 보상하라”라는 메시지를 적은 광고판을 세웠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의 보도에 따르면 인도, 파키스탄, 네팔,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출신의 이주노동자 6500명 이상이 카타르 월드컵 기반 시설을 짓는 과정에서 사망했다. 국제앰네스티를 비롯한 인권단체들은 월드컵 상금에 상응하는 4억 4000만 달러를 카타르 이주노동자들의 피해를 지원하는 데에 사용하라고 FIFA에 촉구한 바 있다. FIFA는 앰네스티의 요구에 대해 “관련 노동자 보호를 위해 전례 없는 실사 절차를 진행 중이다”라고 밝혔다. 유럽연합(EU) 의회는 지난달 월드컵 준비 기간에 인권 탄압을 당한 노동자뿐 아니라 사망한 이주노동자들의 가족에게 보상할 것을 FIFA에 촉구하는 결의안을 승인했다.
주간경향(총 18 건 검색)
- “산재 인정은 기적”…이주노동자 유족의 지난한 2년(2024. 12. 30 06:00)
- 2024. 12. 30 06:00 사회
- 유족과 베트남 공동체의 노력으로 힘겨운 법정 싸움 끝 승소 판결 건설현장의 불법·정부기관 부실 조사로 잊힌 죽음 다시 밝혀내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이 2021년 4월 서울 중구 덕수궁길에 ‘산재 사망 건설노동자 시민 분향소’를 설치했다. / 권도현 기자 “좀더 버텨볼게. 혈압이 떨어지는지 눈앞이 빙빙 돌고 힘이 하나도 없네.”(즈엉 반 응웬) “이번 일 끝나면 힘들지 않은 일당 자리를 찾자.”(김윤정씨) 김윤정씨(35)가 남편 즈엉 반 응웬과 나눈 대화는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2022년 11월 18일, 두 사람이 문자메시지를 나눈 지 두 시간도 채 되지 않아 응웬은 일터에서 쓰러졌고, 이내 사망했다. 부검 결과 사인은 급성 심장사. 당시 응웬은 32세였고, 아이는 첫돌도 지나지 않은 상황이었다. “아이 때문에, 아이를 위해서, 아이가 있어서 힘을 냈어요.” 지난 2년간 윤정씨는 응웬의 죽음이 산업재해였음을 인정받기 위해 싸웠다.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싸움이었다. 애초에 돌연사는 한 해에 산재로 인정되는 사례가 17건(2022년 기준)에 불과할 정도로 산재 인정이 드물게 이뤄진다. 더구나 응웬은 불법 하도급이 만연한 건설업에서 일했다. 그가 일한 시간을 증명할 서류는 형식적으로만 작성돼 있었고, 응웬이 ‘진짜 일한 시간’을 증언해 줄 동료들은 일감을 찾아 이 현장 저 현장을 떠돌고 있었다. 결정적으로 베트남 출신의 응웬은 흔히들 ‘불법’이라고 말하는 미등록 이주노동자였다. 때문에 윤정씨와 사이에 아이를 얻고도 혼인신고를 하지 못했다. 역시 베트남 출신으로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는 윤정씨는 자신이 응웬의 ‘유족’이 맞다는 걸 입증한 이후에야 본격적인 산재 인정 여부를 다툴 수 있었다. “기적이에요.” 윤정씨의 지난한 싸움을 도왔던 원옥금 이주민센터 동행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서울행정법원은 2024년 12월 19일 응웬의 죽음이 산재임을 인정해 달라며 윤정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윤정씨의 손을 들어줬다. 원 대표의 말에 담긴 것은 가까스로 산재가 인정됐다는 안도감만이 아니다. 이주노동자들이 더 비공식적이고, 더 힘들고, 더 위험한 일을 도맡고 있지만, 사고가 일어났을 때 구제 가능성은 기적에 가까울 만큼 비현실적으로 적다는 한탄이 담겼다. 응웬의 죽음과 윤정씨의 싸움은 한국사회의 일면을 보여준다. 일을 시키면서도 일하는 사람을 책임지지 않는 회사, 다단계 하도급과 불법이 일상이 된 업계, 이 구조의 제일 밑바닥에서 과중한 업무를 떠안는 이주노동자들, 이런 모든 구조적인 모순에도 불구하고 회사가 제출한 형식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산재가 아니라고 판단하는 정부기관. 한국사회의 이 고착된 구조를 뚫고 응웬의 죽음의 원인을 밝혀낸 건 베트남 이주민 공동체였다. 더 위험하고 더 힘든 일로 딸과 함께 차에 타고 있는 생전의 즈엉 반 응웬. 응웬은 2022년 11월 32세의 나이로 건설현장에서 숨을 거뒀다. 유족 제공 2019년 한국에 입국한 응웬은 건설현장 철근공으로 일하며 생계를 이어왔다. 체류 자격 없이 일한 미등록 노동자였다. 철근공은 철근을 운반해 자르고 구부리고 묶어 벽이나 바닥이 될 곳에 넣고 고정한다. 무거운 철근을 다루는 일이라 팔꿈치나 무릎에 무리가 가기 십상이다. 응웬이 마지막으로 일했던 곳은 인천 검단의 아파트 건설 현장이었다. 응웬은 2022년 11월 5일부터 숨을 거둔 11월 18일까지 열흘 정도 이곳에서 일했다. 이전처럼 철근공으로 일했지만 일하는 방식이 달랐다. 철근공들이 모인 팀인 ‘석방팀’의 일원으로 일했기 때문이다. 석방팀은 건설업체로부터 일감을 따낸 팀장이 팀원을 모집해 꾸린다. 일한 시간이 아니라 작업한 면적에 따라 보수를 받는다. 일종의 도급이다. 철근공들이 철근을 채우면 콘크리트를 타설해 벽과 바닥을 만드는 공정이 이어지는데, 이 공기를 맞추기 위해 석방팀이 활용된다. 석방팀에 일을 맡기는 건설업체는 석방팀이 몇 명이고, 어떻게 일하는 지에는 크게 관심이 없다. 오로지 요구하는 건 정해진 시간 내에 일감을 끝내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석방팀은 일감이 많은 날 남들보다 일찍 출근해 늦게 퇴근하고, 쉬는 시간이나 식사 시간도 제대로 챙기지 못한 채 일에 매진한다. 건설업체가 정한 마감 시한을 지키기 위해 일하는 속도에 대한 압박이 심할 수밖에 없다. 일감이 너무 많으면 석방팀장이 사람을 더 구하기도 하는데, 사람이 늘수록 개개인이 가져가는 몫은 줄어든다. 일이 고된 석방팀의 유일한 장점은 후한 보수였다. 일당직 철근공으로는 하루에 17만~19만원을 벌었지만, 석방팀으로 일한 열흘간 응웬은 하루평균 27만원을 벌었다. 응웬도 석방팀 일이 힘든 걸 알았지만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했기에 이 일을 시작했다. 2022년 1월 응웬과 윤정씨 사이에 딸이 태어났다. 응웬은 미등록 이주노동자였기에 윤정씨와 혼인신고도 할 수 없었고, 딸을 호적에 올릴 수도 없었다. 한국 국적이 있는 윤정씨와 혼인신고를 하면 결혼비자를 받을 수 있지만, 그전에 미등록으로 지냈던 기간만큼 범칙금을 내야 했다. 제반 비용까지 합치면 3000만원가량이 필요했다고 한다. 합법적인 가족으로 살기 위해 시작한 일은 끝내 응웬의 목숨을 앗아갔다. 응웬은 처음 경험하는 석방팀의 업무 속도를 버거워했다. 다음날 콘크리트를 타설한다는 공사 일정이 나오면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 안에 일을 끝내야 했다. 응웬은 석방팀에서 일을 시작하고 주변에 “팀장의 눈치가 보이고 팀원들에게 미안하다”, “다른 일을 알아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응웬의 베트남 출신 동료 A씨는 법원에 제출한 진술서에서 “응웬은 석방팀의 일원으로 일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이런 방식에 적응을 못 해서 많이 힘들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사망 당일 아내 윤정씨에게 “아침부터 힘이 없다”고 말했던 응웬은 팀장에게 조퇴 의사를 밝혔다. 전날 팀원 한 명이 그만둬 안 그래도 인력이 부족한 터라 팀장은 처음엔 난색을 표하다 응웬의 상태를 보고 조퇴를 허락했다. 그러나 응웬은 택시를 잡는 방법을 몰랐고, 결국 다시 현장으로 복귀해야 했다. 몸이 보내는 위험신호를 참고 일하던 응웬은 이날 오후 3시쯤 쓰러진 뒤 이내 사망했다.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죽음 윤정씨는 당시를 회상하면서 베트남어로 “한국말에 혼백이 날아간다는 말이 있나요. 너무 황당하고 기가 막혀서 심장이 벌렁거렸어요”라고 했다. 윤정씨는 황망하게 응웬의 장례를 치렀다. 응웬과 근로계약서를 쓴 전문 건설업체에서는 단 한 사람이 장례식장을 찾았다. 윤정씨는 “딱 한 명 찾아왔어요. 사장은 아니고 팀장 위에 있는 사람이래요. 힘내라는 격려 한 마디 없었어요. 일 때문에 사망한 것 같은데 장례비만 주고 그 후에는 모른 척했어요. 그 회사 이름을 아직도 제대로 몰라요”라고 했다. 응웬조차 자신과 근로계약서를 작성한 회사의 이름은 몰랐을 가능성이 크다. 불법 하도급을 숨기기 위한 형식상 계약이었기 때문이다. 건설산업기본법은 일감을 따낸 수급인이 다시 일감을 떼주는 재하도급을 원칙적으로 금지한다. 법이 허용하는 것은 ‘발주처-종합건설업체(원청·시공사)-전문건설업체(하도급)-건설노동자’로 이어지는 계약구조다. 때문에 응웬은 표면적으로는 전문건설업체 B사와 근로계약을 썼다. 그러나 실제로는 ‘철근사장’이라는 인물로부터 재하도급을 받은 석방팀의 일원으로 일했다. 실제로 석방팀이 몇 단계의 재하도급을 거쳤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기형적인 고용구조는 회사가 사망한 노동자에 대해 가져야 할 최소한의 책임감마저 희석한다. 응웬의 죽음은 한동안 산재가 아닌, 경찰이 조사하는 변사사건으로 다뤄졌다. 윤정씨도 “응웬이 미등록이니까” 산재보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해 산재를 신청하지 않았다. 그러나 산재보험 가입자는 개별 노동자가 아니라 사업장이다. 사업장에서 일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수급권이 있다. 윤정씨는 지인의 귀띔에 뒤늦게 산재 신청을 했지만, 한국어가 유창하지 않은 그에게는 무엇 하나 쉽지 않았다. 혼인신고가 안 된 상황에서 응웬의 유족임을 밝히기 위해 돈을 빌려 딸의 유전자 검사까지 해야 했다. 윤정씨는 “결혼을 안 해서 사실혼이잖아요. 각종 서류를 준비하는데 돈이 많이 들어갔어요. 엄청 복잡하고 힘들었어요”라고 했다. 급성 심장사 등 돌연사가 산재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몇 가지 요건이 필요하다. 단기간 업무 부담이 늘었거나, 사망 전 12주 동안 주당 평균 노동시간이 60시간을 초과했다면 산재로 인정될 가능성이 크다. 얼마나 오래 일했는지를 입증하는 게 첫 관문인 셈이다. 그러나 불법하도급이 만연한 건설업의 제일 밑바닥에서 일했던 응웬의 경우에는 노동시간을 정확히 산출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었다. 베트남 결혼 이주여성이기도 한 원옥금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제조업처럼 한 곳에서 일하면 알기 쉬운데, 건설업은 어느 현장에서 일했는지를 찾아내는 것도 힘들었어요. 기껏 일한 현장을 찾아내도 며칠 나오다가 며칠 안 나온 경우가 있어요. 그러면 그때는 다른 현장에서 일했을 수 있는데 찾을 수가 없어요. 고인 휴대전화를 다 뒤져보고, 현장 찾아서 동료들 이야기를 듣는 걸 반복했어요.” 근로복지공단은 2023년 11월 “발병 전 12주 동안 1주 평균 업무시간은 37시간 7분”이라며 응웬의 죽음이 산재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응웬이 사망 전 열흘 동안 석방팀에 근무하면서 단기간 업무량이 급증했다는 점은 고려하지 않았다. 오히려 공단은 회사 측이 제출한 자료를 거의 그대로 받아들였다. 예컨대 회사 측은 해당 건설현장의 노동자들이 점심시간을 포함해 하루 2시간을 쉬었다며 응웬이 일한 석방팀도 2시간을 쉬었다고 주장했다. 공단은 이 주장을 바탕으로 응웬의 근무시간에서 하루 2시간씩을 일률적으로 뺐다. 그러나 석방팀은 높은 노동강도로 인해 하루 두 차례 10분가량 쉬는 것이 전부였고, 점심시간도 30~40분만 주어졌다. 공단 측의 조사는 충실했다고 보기 어렵다. 공단의 요양업무처리규정은 심장질환 등을 조사할 때 동료근로자 등의 진술을 확보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그러나 응웬이 일한 석방팀의 팀장이었던 베트남 출신 노동자 C씨는 법정에서 “제가 알기로는 (근로복지공단에서) 팀원 가운데 누구도 부르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했다. 조사 과정에서 회사는 거짓도 섞었다. 회사 측은 응웬의 가슴에 수술 자국이 있다며 기존 병력이 있었을 가능성을 암시했다. 그러나 부검 결과 응웬의 가슴에서는 아무런 수술 자국도 발견되지 않았다. 윤정씨는 “남편이 사망하고 아무 도움은 못 줄망정 거짓말하고 책임 회피하는 것이 너무 분했다”고 말했다. 2년 만의 산재 인정 대부분의 이주노동자 유족과 달리 윤정씨는 공단의 산재 불인정 판단에도 불구하고 소송을 택했다. 원옥금 대표, 사건을 맡은 박다혜 변호사와 함께 응웬의 죽음을 증언해 줄 동료들을 찾아 나섰다. 마지막 현장에서 함께 일했던 이들과 어렵게 연락이 닿았다. 그들이 새로 일하고 있는 현장에서 일을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밤늦게 만나 증언을 수집했다. 다행히도 석방팀원들 대부분이 윤정씨와 말이 통하는 베트남 노동자였다. 이는 일이 고단한 철근공, 그중에서도 힘든 석방팀 일을 사실상 이주노동자들이 도맡고 있음을 뜻하기도 한다. 응웬과 열흘간 함께 일한 것이 인연의 전부인 A씨는 흔쾌히 진술서를 써줬다. A씨는 진술서에서 “응웬은 철근공으로 일해왔지만 일당으로만 일을 했습니다. 석방팀은 도급이라 아침 체조도 생략하고 정해진 근무시간도 없습니다. 늘 빨리하라고 재촉받고 진도가 늦으면 안 되니까 최대한 빨리 일을 해야 합니다. 일당으로 일하는 것보다 훨씬 힘듭니다”라고 했다. 석방팀장이었던 C씨는 바쁘게 일터를 오가는 와중에도 진술서를 쓰고, 법정에 증인으로 나와 진술도 했다. 그가 인천 검단 현장에서 일한 내역을 기록한 노트는 응웬의 업무강도를 입증하는 주요 증거가 되기도 했다. C씨는 진술서에서 “응웬씨가 죽은 날은 일이 많고 한 사람이 일을 나오지 않아서 작업량이 더 많았습니다. 응웬씨가 몸이 피곤하고 힘들다고 일찍 퇴근하고 싶다고 했는데 갑자기 쓰러졌습니다. 응웬씨가 쓰러진 후에 팀원 4명을 더 충원해서 불렀습니다”라고 했다. 동료 A씨가 베트남으로 귀국하면서 한때 연락이 끊기기도 했다. 원옥금 대표는 페이스북에 응웬의 동료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고, 이 편지가 베트남 공동체를 통해 알음알음 전파되면서 다시 A씨와 연락이 닿게 됐다. 원 대표는 “같이 일했던 동료들이 적극적으로 도와줬다. 일이 힘들어서 사망했는데 아무 보상도 없다는 걸 직접 눈으로 본 사람들이었다. (동료들이) 자신들도 그런 일을 겪지 않을까 걱정되고 무서운 마음도 있고, 미등록(노동자)이라 하더라도 사람의 권리라는 게 있으니까,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적극 도와줬다. 산재 인정이 되고 동료들에게도 바로 알려줬다. ‘너무 기쁘고 다행스럽다’고 하더라”고 했다. 서울행정법원 재판부는 석방팀의 특성으로 인해 업무강도가 급증했다는 유족 측의 주장을 받아들여 “사망 직전 고인에게 급격하고 과도한 육체적 부담과 스트레스가 있었다고 보이고, 이로 인해 급성 심정지가 발병, 사망에 이르렀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현장의 불법, 정부 조사 기관의 실패로 잊힌 죽음을 유족과 베트남 공동체의 노력으로 다시 밝혀냈다. 박다혜 법률사무소 ‘고른’ 변호사는 “원옥금 대표님이 통·번역 지원을 해주셨다. 그런 지원이 없이 이 사건을 맡았다면 동료 노동자들을 수소문하는 것도 불가능에 가깝고, 어디서 일하는지를 알아도 소통이 어려웠을 것이다. 더구나 불법 하도급이라 형식적인 근로시간만 기록돼 있고, 실질적으로 어떤 노동을 했는지는 가려져 있었다. 그런 점에서 근로복지공단의 역할이 필요한데 충실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던 것 같다. 이런 사건을 다룰 때 공단의 역할을 다시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특집
- “너네 죽어도 다른 사람 와”…뒷전 된 이주노동자 생명(2024. 07. 08 06:00)
- 2024. 07. 08 06:00 사회
- 이주노동자들과 시민·사회 단체들로 구성된 화성공장화재이주민공동대책위원회 회원들이 지난 6월 27일 경기 안산시 단원구 다문화공원에 마련한 화성 일차전지 공장 화재 사고 추모분향소에서 헌화를 마친 후 눈물을 닦고 있다. 조태형 기자 그는 손으로 허공에 선을 그으며 말했다. “한국에서 내 인생 끝났어요.” 방글라데시 청년 자파(가명·37)는 2011년 처음 한국에 왔다. 소방설비 제조업체, 원단 염색가공업체, 철근 가공업체를 거쳐 2021년부터는 경기 안성시의 농기계 제조업체에서 일했다. 금속기계의 표면을 매끄럽게 하는 그라인딩 작업이 그의 일이었다. “그라인딩할 때 철먼지가 많이 생겨요. 숨쉬기가 힘들어서 방진마스크 달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반장이 이렇게 말해요. ‘그냥 이걸(면마스크)로 해, 괜찮아. 아니면 나가.’” 일한 지 1년도 되지 않아 자파는 계단 오르는 것도 힘겨울 만큼 숨쉬기가 어려워졌다. 그해 12월 폐가 딱딱하게 굳어 기능이 정상의 60%밖에 되지 않는다는 진단(간질성 폐질환)을 받았고, 대학병원에서 수술했다. 이후 산재 신청을 했지만 불승인 처분이 나와 재심을 신청한 상태다. “근로복지공단에서 조사를 나와서 제가 철먼지 마시는 일 얼마나 많이 했냐고 물었어요. (저에게 배정된 일감의) 80%는 철먼지를 마시는 일이었어요. 그런데 반장은 5%라고 했고, 그 사람들(근로복지공단 조사원)은 5%라고 적었어요. 그것 때문에 산재 안 됐다고 생각해요.” 2021년부터 경기 안성의 한 농기계 제조업체에서 일하다 간질성 폐질환을 얻은 방글라데시 노동자 자파(가명)는 산재 신청을 했지만 불승인 처분을 받았다. 재심을 신청해 결과를 기다리는 중에 비자가 만료돼 정기진료도 받지 못한 채 약만 먹으며 버티고 있다. 송윤경 기자 농기계 표면을 매끄럽게 하는 그라인딩 작업을 맡았던 자파(가명)는 쇳가루 분진투성이 작업장에서 일했다. 왼쪽은 그의 작업장 사진이고, 오른쪽은 사업주가 자파에게 제공한 면마스크다. 사업주는 방진마스크 지급은 거절했고 ,자파는 간질성 폐질환을 얻었다. 자파(가명) 제공 자파는 산재 재심 결과를 기다리다 비전문취업(E-9) 비자가 만료돼 정기 진료도 받지 못하고 있다. 방글라데시 의료 수준으로는 다루기 어려운 질병이라 고국으로 돌아가기도 어렵다. “산재 인정 못 받으면 결국 고통스럽게 죽게 될 것”이라 말하는 그에게 18명의 이주노동자가 사망한 ‘화성 참사’는 남 일이 아니었다. “우리 한국에 죽으러 온 거 아니잖아요. 어떻게 하면 사고가 안 날지 알려줘야 하는데 안 해요. 대신에 ‘X새끼야, 빨리해’ 욕해요. 때리는 경우도 있어요. 한국 사람들 우리를 사람으로 생각 안 해요. 동물로 생각해요.” 지난 6월 24일 경기 화성시에서 발생한 리튬전지 공장 화재는 무엇을 말하는가. 한국사회는 힘들고 더럽고 위험한 3D 업종에 이주노동자들을 종사케 하면서 ‘생명 보호’라는 최소한의 안전관리마저 손을 놓았다. “죽으러 오지 않았다”는 이주노동자들의 외침은 우리가 그들을 얼마나 야만적으로 대해왔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일하다 죽을 확률 3배 현재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이주노동자 규모는 97만5000명(통계청·2023년 이민자 체류실태 및 고용조사). 여기에 41만9000명으로 추정되는 미등록자 수(출입국·외국인정책 통계월보 올해 3월호)를 합하면 한국의 이주노동자 규모는 130만명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주노동자가 죽음에 내몰리는 현상은 어제오늘의 얘기는 아니었다. 국내 취업자 수(약 2891만명)로 미루어볼 때 한국에서 일하는 사람 100명 중 4명은 이주노동자다. 그런데 지난 4년간 한국에서 산재 사고로 죽은 노동자의 100명 중 10명이 이주노동자였다(표 참조). 일하다 죽을 확률이 한국 노동자의 2~3배라는 얘기다. 이주노동자들의 노동 현장은 어떤 방식으로 굴러가길래 이토록 위험한 걸까. 2015년 고용허가제를 통해 한국에 온 인도네시아인 라야(가명·32)의 사례를 보자. 그는 4년 전 정부가 연계해준 일자리인 금속주조 공장에서 도망쳐 ‘미등록’ 신세가 됐다. 이유는 다름 아닌 “살기 위해서”였다. “뜨거운 금속이 금형(틀)에 들어갔다가 나오는데 (사람을 감지하는) 센서가 없으면 언제든지 금형이 닫힐 수 있어요. 손, 얼굴 다 들어갈 수 있어요. 그런데 그 공장에 센서 없는 기계가 있어서 수리해 달라 얘기해도 사장은 ‘일단 해봐, 일단 해봐, 조심조심’이라고만 했어요. 손 잘린 건 많이 봤고, 제 친구는 팔 위까지 잘렸어요. 다른 데 가고 싶다고 (근로계약 해지와 사업장 변경에 동의하는 서류에) 사인을 해 달라고 했지만 사장은 ‘사인 안 해준다, 도망가고 싶으면 도망가’라고 했어요. 결국 미등록밖에는 (방법이) 없다. 내가 살기 위해서 미등록이 됐어요.” 방글라데시에서 온 손조이(32)가 2017년 금속주조 공장에서 겪은 일도 판박이다. “사장은 빨리하라는 얘기만 해요. 그런데 기계에 손 들어갈 수 있고, 사람 죽을 수도 있어요. 같이 있던 스리랑카 친구들이 얘기해줬어요. 저 오기 전에 여기서 사람 죽었다고”,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근로계약 해지 및 사업장 변경 동의를 요구했던 그에게 사장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사인 안 해줘. 다른 데도 똑같아. 어디 가든지 다 똑같아. 여기 있어. 일해.’ 손조이는 결근으로 사장과 맞섰고, 사장이 그의 요구를 받아들이면서 다행히 합법적으로 사업장을 옮길 수 있었다. ■안전장치 고쳐 달라는 말에…“일단 해봐” 일터에서 도망친 라야는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되는 대신 일자리 이동의 자유를 얻었다. 이후 그는 브로커들을 통해 일자리를 구해왔다. 브로커 연락처는 인도네시아인 동료들이 건네주거나, 페이스북 등으로 손쉽게 구할 수 있다. “근로계약서 쓰는 건 없고, 일단 월급은 주야간 일하면 이 정도다 이렇게 말해줘요. 내가 일하고 싶다고 하면 거기(브로커가 말해준 업체)로 가면 돼요. 그리고 브로커가 한 달에 (수수료로) 3%, 5% 잘랐어요. 10% 가져가는 사람도 있어요.” 23명의 사망자가 나온 화성 참사에서 ‘메이셀’이라는 업체가 유사한 방식으로 ‘아리셀’에 인력을 공급했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 6월 29일 화성 참사 희생자 임시분향소를 찾은 동료 노동자는 기자들에게 “우린 근로계약서도 쓴 적 없고, 인터넷으로 구인 공고가 떠서 연락해 몇 시까지 모이라는 말을 듣고 출근했다”고 말했다. 중소 제조업계에서는 너무 만연해 불법이라는 인식조차 희미한 ‘불법 파견’이 이런 식이다. 채용은 인력업체가 하지만 업무지시는 원청에서 받는다. 원청은 인력업체를 통해 그때그때 필요한 만큼만 사람을 받아 쓴다. 원청 입장에선 언제든 자를 수 있는 인력이라 제대로 된 안전교육을 할 이유가 부족하다. 2015년 한국에 온 손조이는 한 금속주조 공장 기계에 손이 잘리는 사례 등을 보면서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손조이는 “위험하니 옮기고 싶다”고 했지만 사업주는 근로계약 해지 및 사업장 변경에 동의하는 서류에 사인을 해주려 하지 않았다. 손조이가 경기 포천의 거리에 서 있다. / 송윤경 기자 ■너네 죽어도 다른 사람 또 온다 죽음에 내몰리는 이주노동자의 현실을 바꾸려면 무엇부터 해야 할까. 이주노동자들을 돕는 단체들과 노조, 당사자 등의 진단을 종합하면 크게 두 가지 해결책이 절실하다. 먼저 고용허가제의 ‘사업장 이동 제한’부터 풀어야 한다. 이번에 화재 참사가 발생한 리튬전지 공장은 고용허가제 사업장은 아니었다. 그런데 알려지지 않은 더 많은 죽음은 고용허가제 사업장에서 일어나고 있다. 비전문취업(E-9) 비자로 입국한 이주노동자들은 사업주들이 기계 고장 등 심각한 위험이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도 일을 시키는 사례가 잦다고 토로한다. 화성 참사 발생 다음 날 대구 칠곡에서 일어난 산재 사망사고가 전형적인 사례다. 콘크리트관을 제조하는 이 업체의 사장이 고정장치가 고장 난 크레인으로 거푸집을 옮기다가 뚜껑이 떨어져 네팔 이주노동자가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주변 노동자들이 크레인이 고장 났다며 말렸음에도 사업주가 무리하게 일을 강행하다 사망자가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6월 17일 화성의 철골 자재 도장공장에선 지게차 밑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지게차에서 떨어진 철재 더미에 깔려 사망했다. 이곳에서도 지게차의 철재물을 고정하는 줄이 풀려 사고가 일어났다. 안전장치만 정상 작동했어도 막을 수 있는 죽음들이었다. 안전장치가 미비한데도 이주노동자에게 ‘그냥 일하라’고 하는 현실에 대해 손조이는 이렇게 말했다. “너네 죽어도 다른 사람 또 온다는 거죠. 사장님들은 ‘너네 죽어도 나랑 상관없다’ 그런 느낌이에요.” 포천이주노동자센터의 김달성 목사는 “현 고용허가제는 사업장 이동을 원칙적으로 금지해 사실상 강제노동을 가능하게 한다. 게다가 고용주가 고용허가 기간 연장 권한(3→4년 10개월)까지 갖고 있어서 이주노동자와 사업주 사이가 철저한 주종관계가 돼버린다”면서 “사업주가 절대군주인 상황에서 이주노동자는 ‘위험하다’는 말도 감히 할 수가 없고, 산재 신청서를 썼다가도 사업주가 종용해 취소하는 경우도 많다. 센터 자료와 여러 연구 결과로 추정해볼 때 이주노동자의 산재 은폐율은 80%에 이르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헛도는 안전교육 또 다른 대책은 중소 규모 사업장의 안전관리 체계를 바로 세우는 것이다. 지난 6월 24일 발생한 화성 리튬전지 공장의 첫 발화 상황이 담긴 폐쇄회로(CC)TV 영상을 보면, 노동자들은 배터리 상자에서 연기가 피어오르자 맨손으로 옮기고 소화기로 불을 끄려 한다. 리튬전지의 특성상 분말소화기로는 불을 끌 수 없고, 연쇄폭발이 일어날 수 있으니 즉각 대피해야 한다는 점을 숙지하지 못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화성 참사로 희생된 이주노동자들은 고용허가제로 발이 묶여 있는 이들은 아니었다. 상대적으로 취업이 자유로운 재외동포(F-4) 비자, 방문취업(H-2) 비자가 대부분이었다. 이들은 고용허가제의 이주노동자와 달리 일터를 선택할 자유가 있지만, 노동시장 최약자인 이들을 받아주는 업체는 대개 안전관리에 손을 놓은 곳들이었다는 사실이 이번에 드러났다. 지난 6월 30일 경기 화성시 화성시청에 마련된 아리셀 공장 화재 사고 추모분향소 앞에서 유가족협의회가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정효진 기자 최명선 민주노총 보건안전실장은 “‘안전교육이 이뤄지고 정보만 제공됐어도’라는 탄식이 나오는데 업체가 왜 제대로 하지 않았을까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면서 “자기 사업장의 위험이 뭔지 알고 그 위험에 맞춰 안전교육도 하고, 위급 시 매뉴얼도 만들 사람이 필요하다. 현재 50인 미만 사업장에는 안전관리자 선임 의무가 면제돼 있는데, 중소업체라서 사업장마다 1명씩 두기 어렵다면 산업단지 내 유사 업체들을 묶어 ‘공동안전관리자’를 고용케 하는 방안도 고민해봐야 한다”고 했다. 향후 고용노동부와 경찰의 아리셀 수사에서 안전교육은 주요 쟁점이 될 가능성이 있다. 분향소를 찾았던 동료 노동자들은 “안전교육을 받은 적이 없고 비상구도 몰랐다”고 증언한 반면 아리셀은 “상시적으로 (안전) 교육을 하고 있다”(지난 6월 25일 박순관 대표 기자회견)고 주장한다. 내·외국인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산업안전관리법은 사무직과 판매업 종사자는 1년에 12시간, 그외 노동자는 1년에 24시간의 안전교육을 받도록 하고 있다. 일용직으로 고용됐을지라도 1시간은 안전교육을 받아야 하고, 유해하거나 위험한 작업에 투입되면 별도 교육도 이뤄져야 한다. 이주노동자들 인권침해에 대한 여러 소송을 이끌었던 최정규 변호사는 “사측에서 ‘교육이 충분했다’고 하는 것을 보면 형식적인 교육은 했을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왜 ‘불붙으면 도망가야 한다’가 학습이 안 됐을까 하는 점”이라면서 “법이 현장에서 작동을 안 하는데 노동부는 감독할 의지가 없다. 20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근로감독이 사업주 입장에서 무서울 리가 없다”고 말했다. 노동부의 느슨한 관리·감독이 현장의 빈껍데기 같은 안전관리를 초래했다는 얘기다. 아리셀이 ‘위험성 평가’를 우수하게 했다고 인정받아 산재 보험료까지 감면받을 정도로 관련 제도가 헛돈 데 대해서는 “책임자 징계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위험성 평가는 사업주가 노동자 참여 하에 사업장의 무엇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따져 감소대책을 세우는 제도를 말한다. 노동부 산재예방정책과장을 지낸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위험성 평가를 정말 잘했다면 사측이 ‘위험 감소대책’을 세웠을 테고, 노동자들에게 ‘리튬전지 화재 때는 열폭주가 발생하니 빨리 대피해야 한다’면서 대피 방법 등을 제대로 알려줬어야 한다. 리튬전지 수만개를 한꺼번에 보관했을 리도 없다”면서 “위험성 평가 실적이 급급하다 보니, 안전보건공단이 실제로 업체가 잘했는지를 따져보지 않은 것 같다. 정부는 각성해야 하고 책임자 징계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 표지 이야기
- [렌즈로 본 세상]화려한 월드컵 뒤 이주노동자 잔혹사(2022. 11. 25 14:28)
- 2022. 11. 25 14:28 국제
- 2022 카타르월드컵이 지난 11월 20일(현지시간) 개막했다. 사상 처음으로 ‘겨울’에 ‘중동’에서 열리는 대회다. 취재를 위해 개막 일주일 전 입국했다. 카타르는 월드컵 준비를 미처 다 끝내지 못한 상태였다. 월드컵 경기장 주변 도로 곳곳을 공사나 보안 등의 이유로 통제했다. 월드컵 개막을 나흘 앞둔 지난 11월 16일 도하에 마련된 ‘팬존’인 ‘피파 팬 페스티벌(FFF)’ 언론 공개 현장으로 향했다. 역시나 도로 주변은 통제가 심했다. FFF 앞 지하철역은 닫혀 있었다. 택시를 타고 행사장과 꽤 떨어진 곳에서 내려 FFF로 걸었다. 정오가 조금 지난 시각이었다. 땡볕 속을 걷다 보니 순식간에 옷이 땀에 젖었다. 걷는 길에 만난 터널 속 그늘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이주노동자들이 뜨거운 햇볕을 피해 드러눕거나 벽에 기댄 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카타르는 이번 월드컵 준비를 위해 2000억달러(약 265조원)를 쏟아부었다. 카타르 정부는 신규 경기장 7개 등 월드컵 인프라 건설에 이주노동자들을 투입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카타르에서 일하다 목숨을 잃은 이주노동자가 6500명에 달한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화려한 개막식을 카메라에 담는 내내 터널 속 이주노동자들의 잔상이 아른거렸다.
- 렌즈로 본 세상
- 미등록 이주노동자 대사면 이뤄질까(2022. 08. 05 14:38)
- 2022. 08. 05 14:38 사회
- ㆍ외국인 205만명 중 40만명… 더 이상 못 본 척할 수 없는 숫자 “▲국내 불법체류 기간이 3년을 초과하지 아니한 자 ▲코로나19 백신 2차 이상 접종 완료한 자 ▲과거 범법 사실 없는 자 ▲과거 난민 신청 경력 없는 자” 농촌에서 일하는 캄보디아 이주노동자가 휴대폰 불빛에 의지해 숙소 밖 간이화장실로 걸어가고 있다. / 권도현 기자 지난 7월 말 이주노동자들의 커뮤니티에는 이런 내용의 ‘지라시(정보지)’가 급격히 확산됐다. 조만간 한국 정부가 미등록 이주노동자(불법체류자)들을 대사면(체류안정화 조치)할 예정이고, 대상자가 되려면 위의 조건을 갖춰야 한다는 내용이다.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자진신고할 경우 범칙금은 면제되고 최장 2년간 합법 체류할 수 있게 된다는 체류조건도 덧붙었다. 여러 언어로 번역된 지라시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 사이에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연락 많이 왔어요. 반응이 좋았어요. 원래 (합법화 정책이) 8월에 나오려고 했는데 법무부가 취소했어요. 법무부가 공지하면 그때 다시 (합법화 정책이) 시작될 거예요.” 이 지라시를 퍼나른 경기 안산의 한 행정사 사무실 관계자의 말이다. 그는 마치 법무부의 정책 결정 과정을 알고 있다는 듯이 말했다. 당초 이주노동자 공급은 국가가 독점하지만,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늘어나면서 민간 영역에는 노동력을 중개하는 또 다른 시장이 생겼다. 브로커와 인력사무소가 인력 공급을 담당한다면, 행정사는 이주민들의 행정업무를 대행하며 ‘이주산업’의 한축을 맡고 있다. 특히 먼저 이주해온 이주민들이 때로는 브로커로, 때로는 행정사 사무실 관계자로 ‘변신’해 한국 물정을 잘 모르는 신입 이주민을 끌어모으는 역할을 한다. 동남아시아 출신의 이 행정사 사무실 관계자도 자신을 팀장이라고 소개했다. 왜 체류안정화인가 이 지라시는 ‘가짜뉴스’다. 여기에 혹해서 이주산업 생태계가 요동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정부의 공식적인 태도 변화가 감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7월 25일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은 한덕수 국무총리에게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합법화 또는 대사면” 가능성을 물었다. 한 총리는 “전체적으로 필요성으로 보면 당연히 해야 한다”며 “우리의 이민 정책과 약 30만인 이분들에 대한 양성화가 좀 같이 가야 하는 것 아닌가 이렇게 생각을 한다”고 했다. 사흘 뒤 외국인 체류관리를 총괄하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언급도 정부의 기류가 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지난 7월 2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불법체류 외국인을 어떻게 감축할 계획인가”라는 조정훈 의원의 질의에 이같이 말했다. “불법체류자들에 대해서는 사실 전원이 불법이니까 불법상태를 해소하는 것이 맞는 것이다. 다만 그렇게 됐을 경우 여러 부작용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거기 맞춰서 (합법화 대상의) 적정 수준이 얼마만큼 되는지 저희가 집중적인 분석을 하고 있다.” 국무총리와 실세 장관이 미등록 이주민에 대한 ‘사회적 묵인’ 기조가 바뀔 수 있다는 시그널을 던진 셈이다. 그간 한국사회는 이들의 불법 상태는 못 본 체하고 노동력만 활용해왔다. 조치가 언제 이뤄질지, 세부적인 대상과 방식은 어떻게 결정할지 등 구체적 언급은 없었지만, 문제의 지라시 확산세에 기름을 붓기에는 충분했다. 지난 7월 하순 이주노동자 커뮤니티에 확산된 ‘불법체류자 합법화 정책’ 관련 ‘지라시’ / 경주이주노동자센터 제공 정부 태도가 달라진 배경은 무엇일까. 일단 주목해야 할 것은 미등록 이주민의 규모다. 통상 보수정부는 체류 외국인을 합법과 불법으로 나누고, 불법을 단속하는 체류관리 정책을 펴왔다. 이제는 체류관리만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규모가 됐다. 지난 6월 기준 법무부의 출입국·외국인정책 통계를 보면, 한국에 체류 중인 외국인은 205만6000여명으로 이중 39만4000여명이 미등록 이주노동자다. 체류 외국인 5명 중 1명꼴이다. 한해 출생자 수(26만5000여명)보다 많다. 그에 반해 법무부의 체류관리 인력은 300명이 채 안 된다. 1명당 1300명을 관리해야 하는 실정이다. 이주노동자 없이는 존속이 어려운 산업의 현실도 직시해야 한다. 이미 미등록 이주민 40만명이 노동력을 제공 중이지만 산업현장의 인력난은 계속되고 있다. 코로나19는 이주노동자들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코로나19로 지난 2년간 고용허가제를 통해 입국해 한국에 체류하는 이주노동자의 수는 약 6만명 감소했다. 고용노동부의 올해 상반기 사업체 노동력 조사결과를 보면 300인 미만 중소기업은 전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30% 많은 외국인을 채용했음에도, 여전히 3만3000명의 외국 인력이 부족한 것으로 집계됐다. 정부는 서둘러 이주노동자 5만명의 조기 입국을 추진 중이다. 특히나 인력난이 심각한 곳은 농업부문이다. 벌써 몇년 전부터 농가는 미등록 이주노동자 없이는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충남에서 딸기농사를 짓는 A씨는 “현실적으로 농장에서 한국 사람이 일한다는 건 성립이 안 된다. 청년들이 도시에 있는 공장도 안 가려 하는데 비전도 없고, 연애할 때 떳떳이 밝힐 수도 없고, 영화 한편 볼 데도 없는 농촌에서 왜 일하겠느냐. 20대 중후반 청년들을 데려다 일 시켜봤는데 며칠 오다 안 온다. 외국인도 똑같다. 공장 가고 싶어하지 누가 농장 가고 싶어하냐”고 했다. ‘내국인 일자리를 이주노동자들이 빼앗고 있다’는 속설은 “현실을 모르는 얘기”라고 했다. 이주민 합법 고용도 어려운 농가는 미등록 이주민에 러브콜을 보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린다. 장덕상 사단법인 국제농업협력네트워크 사무총장은 전남 소재 B군(郡)의 사례를 예로 들었다. “이 지역 농가에 필요한 인력은 1000명 정도인데 올 한해 계절근로자 제도로 100여명의 외국인이 들어왔다. 고용허가제로 100명이 들어왔다고 쳐도 일손 800명이 빈다. 농가 태반은 불법체류자를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엄진영 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의 논문 ‘농업부문 미등록 외국인 근로자 고용실태와 과제’(2021)를 보면, 이주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작물재배 농가 중 91%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고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양날의 검’ 미등록 불안정 인력 수급 불균형은 다시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규모를 키운다. 농가가 합법적으로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려면 고용허가제와 계절근로자 제도 중 하나를 통해야 한다. 이렇게 입국한 이주노동자들은 체류기간 동안 정해진 농가에서 일해야 하지만, 여러 이유로 중도 이탈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지난해 강원도는 계절근로자 제도로 300명의 이주노동자를 배정받았는데 이중 60%가 무단이탈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되면 신분은 불안정해지지만, 역설적으로 자신이 일할 곳을 선택할 수 있다. 합법 신분일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도 있다는 얘기다. 합법적으로 들어온 농가 이주노동자들의 하루 임금은 9만~10만원이다. 일손이 부족한 농가가 미등록 이주민을 찾으면서 일당이 한때 15만~18만원까지 치솟기도 했다. 이는 다시 농업경쟁력을 악화시키고, 더 많은 이주노동자를 미등록 신분으로 유인하는 요인이 된다. 모든 미등록 이주민에게 더 많은 임금이 허락되는 것도 아니다. 한국에 정주하고자 하는 미등록 이주민들이 불안정 신분을 볼모로 잡혀 권리를 박탈당하는 사례도 많다. 인권 측면에서도 이들의 불안정 상태를 해소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미등록 이주민 C씨와 D씨는 필리핀 출신으로 경기도 포천에서 17년간 일했다. 최근 이들은 5년간 일한 섬유공장을 퇴사했다. ‘불법 사람’이라는 이유로 퇴직금을 받지 못했다. 지난 5년간 이들의 노동조건은 법과는 거리가 멀었다. C씨는 매일 저녁 7시부터 다음날 아침 9시까지 주 6일을 일했다. 매일 1시간의 휴게시간을 빼도 주 78시간 노동이었다. 그러고도 임금은 매달 고정된 250만원을 받았다. 야간·특근수당은 물론 최저임금도 못 받은 셈이다. 사업주는 코로나19로 일감이 줄어들자 두 사람에게 휴업을 명하고, 그만큼 임금을 삭감했다. 일을 더한다고 돈을 더 주지는 않지만, 일을 안 하면 임금을 철저히 깎는 구조였다. 이는 두 사람이 퇴사를 결정한 결정적 이유로 작용했다. 농촌 이주노동자가 숙소로 사용하는 비닐하우스 안에 이주노동자들의 작업복이 걸려 있다. / 권도현 기자 이들이 불법 신분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두 사람은 이 공장에서 합법적으로 체류하는 이주노동자 5명과 함께 근무했다. C씨는 양팔을 위아래로 벌리면서 “(그들은) 일은 적은데 300만원 이상 (받았다), 샐러리 디퍼런트(Salary Different)”라고 했다. 그는 “일할 때 힘들지만 열심히 일하고 잠 잘 못 자고, 다음날 일할 때 사장님 또 시키면 많이 울었어. 다른 사람은 조금만 시키는데, 우리 불법 사람이니까 너무 많이 시켜서, 일할 때 너무 힘들어서 일어나면 울었는데, 또 일어나면 이런 거 시켜”라고 했다. 한국 정부가 체류안정화 조치를 시행하면 신청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두 사람은 고개를 여러 번 끄덕였다. 체류안정, 누구를 어떤 조건으로 문제의 지라시는 합법화 대상자의 조건을 체류기간 ‘3년 미만’이라 기재했다. 2003년의 선례를 참고한 것이다. 한국 정부는 그해 대대적인 미등록 이주민 합법화를 추진했다. 당시에는 체류기간 4년 미만의 이주민이 자진신고할 경우 총 체류기간이 5년이 될 때까지 체류자격을 보장하고, 4년 이상인 경우에는 강제출국 조치했다. 이때 18만4000명의 미등록 이주민이 합법 체류자격을 얻었다. 이중 30~40%는 체류기간을 채우고도 출국하지 않아 다시 미등록 이주민이 됐다. 미등록 이주민이 늘어나자 다급히 내놓은 임시변통 정책일 뿐, 근본 대책은 되지 못했다는 평가가 많다. 김철효 전북대 사회과학연구소 전임연구원은 “국적법을 보면 5년 이상 체류한 사람은 귀화에 접근할 수 있는데, 2003년에는 오래 체류한 사람은 돌아가게 하고 짧게 머문 사람에게 체류자격을 줬다. 정부는 계속해서 신규 인력을 데려오겠다고 얘기하는데 오래 머물러 한국사회에 적응한 사람들을 쫓아내지 않고 유지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본다. 수십만명의 인력을 몇년 있다가 다시 내보내는 사회는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전제 조건은 우리 사회 인구구조가 바뀔 수밖에 없다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이라고 했다. 포천이주노동자센터를 운영하는 김달성 목사는 “40만명의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언젠가는 사회적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음에도 정부는 방치해왔다. 5~10년간 문제없이 일한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선별·합법화해 산업현장의 착취구조, 비인간적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고 했다. ‘이주민이 정주민이 돼서는 안 된다’는 정주화 금지 원칙을 폐기하고 오래 체류한 이주민들의 ‘체류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한준성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학술연구교수는 “체류를 오래한 분들은 체류자격과 무관하게 이 사회와 유대관계를 형성하고, 이 사회에 뿌리를 내린 부분이 있다. 해외에서도 체류기간이 길면 길수록 (체류안정화) 자격 요건을 주는 경우가 많다”며 “체류안정화 조건은 공동체가 합의한 수준에 따라 결정할 수밖에 없다. 충분한 논의를 거쳐 결정해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