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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재 인정은 기적”…이주노동자 유족의 지난한 2년(2024. 12. 30 06:00)
- 2024. 12. 30 06:00 사회
- 유족과 베트남 공동체의 노력으로 힘겨운 법정 싸움 끝 승소 판결 건설현장의 불법·정부기관 부실 조사로 잊힌 죽음 다시 밝혀내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이 2021년 4월 서울 중구 덕수궁길에 ‘산재 사망 건설노동자 시민 분향소’를 설치했다. / 권도현 기자 “좀더 버텨볼게. 혈압이 떨어지는지 눈앞이 빙빙 돌고 힘이 하나도 없네.”(즈엉 반 응웬) “이번 일 끝나면 힘들지 않은 일당 자리를 찾자.”(김윤정씨) 김윤정씨(35)가 남편 즈엉 반 응웬과 나눈 대화는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2022년 11월 18일, 두 사람이 문자메시지를 나눈 지 두 시간도 채 되지 않아 응웬은 일터에서 쓰러졌고, 이내 사망했다. 부검 결과 사인은 급성 심장사. 당시 응웬은 32세였고, 아이는 첫돌도 지나지 않은 상황이었다. “아이 때문에, 아이를 위해서, 아이가 있어서 힘을 냈어요.” 지난 2년간 윤정씨는 응웬의 죽음이 산업재해였음을 인정받기 위해 싸웠다.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싸움이었다. 애초에 돌연사는 한 해에 산재로 인정되는 사례가 17건(2022년 기준)에 불과할 정도로 산재 인정이 드물게 이뤄진다. 더구나 응웬은 불법 하도급이 만연한 건설업에서 일했다. 그가 일한 시간을 증명할 서류는 형식적으로만 작성돼 있었고, 응웬이 ‘진짜 일한 시간’을 증언해 줄 동료들은 일감을 찾아 이 현장 저 현장을 떠돌고 있었다. 결정적으로 베트남 출신의 응웬은 흔히들 ‘불법’이라고 말하는 미등록 이주노동자였다. 때문에 윤정씨와 사이에 아이를 얻고도 혼인신고를 하지 못했다. 역시 베트남 출신으로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는 윤정씨는 자신이 응웬의 ‘유족’이 맞다는 걸 입증한 이후에야 본격적인 산재 인정 여부를 다툴 수 있었다. “기적이에요.” 윤정씨의 지난한 싸움을 도왔던 원옥금 이주민센터 동행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서울행정법원은 2024년 12월 19일 응웬의 죽음이 산재임을 인정해 달라며 윤정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윤정씨의 손을 들어줬다. 원 대표의 말에 담긴 것은 가까스로 산재가 인정됐다는 안도감만이 아니다. 이주노동자들이 더 비공식적이고, 더 힘들고, 더 위험한 일을 도맡고 있지만, 사고가 일어났을 때 구제 가능성은 기적에 가까울 만큼 비현실적으로 적다는 한탄이 담겼다. 응웬의 죽음과 윤정씨의 싸움은 한국사회의 일면을 보여준다. 일을 시키면서도 일하는 사람을 책임지지 않는 회사, 다단계 하도급과 불법이 일상이 된 업계, 이 구조의 제일 밑바닥에서 과중한 업무를 떠안는 이주노동자들, 이런 모든 구조적인 모순에도 불구하고 회사가 제출한 형식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산재가 아니라고 판단하는 정부기관. 한국사회의 이 고착된 구조를 뚫고 응웬의 죽음의 원인을 밝혀낸 건 베트남 이주민 공동체였다. 더 위험하고 더 힘든 일로 딸과 함께 차에 타고 있는 생전의 즈엉 반 응웬. 응웬은 2022년 11월 32세의 나이로 건설현장에서 숨을 거뒀다. 유족 제공 2019년 한국에 입국한 응웬은 건설현장 철근공으로 일하며 생계를 이어왔다. 체류 자격 없이 일한 미등록 노동자였다. 철근공은 철근을 운반해 자르고 구부리고 묶어 벽이나 바닥이 될 곳에 넣고 고정한다. 무거운 철근을 다루는 일이라 팔꿈치나 무릎에 무리가 가기 십상이다. 응웬이 마지막으로 일했던 곳은 인천 검단의 아파트 건설 현장이었다. 응웬은 2022년 11월 5일부터 숨을 거둔 11월 18일까지 열흘 정도 이곳에서 일했다. 이전처럼 철근공으로 일했지만 일하는 방식이 달랐다. 철근공들이 모인 팀인 ‘석방팀’의 일원으로 일했기 때문이다. 석방팀은 건설업체로부터 일감을 따낸 팀장이 팀원을 모집해 꾸린다. 일한 시간이 아니라 작업한 면적에 따라 보수를 받는다. 일종의 도급이다. 철근공들이 철근을 채우면 콘크리트를 타설해 벽과 바닥을 만드는 공정이 이어지는데, 이 공기를 맞추기 위해 석방팀이 활용된다. 석방팀에 일을 맡기는 건설업체는 석방팀이 몇 명이고, 어떻게 일하는 지에는 크게 관심이 없다. 오로지 요구하는 건 정해진 시간 내에 일감을 끝내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석방팀은 일감이 많은 날 남들보다 일찍 출근해 늦게 퇴근하고, 쉬는 시간이나 식사 시간도 제대로 챙기지 못한 채 일에 매진한다. 건설업체가 정한 마감 시한을 지키기 위해 일하는 속도에 대한 압박이 심할 수밖에 없다. 일감이 너무 많으면 석방팀장이 사람을 더 구하기도 하는데, 사람이 늘수록 개개인이 가져가는 몫은 줄어든다. 일이 고된 석방팀의 유일한 장점은 후한 보수였다. 일당직 철근공으로는 하루에 17만~19만원을 벌었지만, 석방팀으로 일한 열흘간 응웬은 하루평균 27만원을 벌었다. 응웬도 석방팀 일이 힘든 걸 알았지만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했기에 이 일을 시작했다. 2022년 1월 응웬과 윤정씨 사이에 딸이 태어났다. 응웬은 미등록 이주노동자였기에 윤정씨와 혼인신고도 할 수 없었고, 딸을 호적에 올릴 수도 없었다. 한국 국적이 있는 윤정씨와 혼인신고를 하면 결혼비자를 받을 수 있지만, 그전에 미등록으로 지냈던 기간만큼 범칙금을 내야 했다. 제반 비용까지 합치면 3000만원가량이 필요했다고 한다. 합법적인 가족으로 살기 위해 시작한 일은 끝내 응웬의 목숨을 앗아갔다. 응웬은 처음 경험하는 석방팀의 업무 속도를 버거워했다. 다음날 콘크리트를 타설한다는 공사 일정이 나오면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 안에 일을 끝내야 했다. 응웬은 석방팀에서 일을 시작하고 주변에 “팀장의 눈치가 보이고 팀원들에게 미안하다”, “다른 일을 알아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응웬의 베트남 출신 동료 A씨는 법원에 제출한 진술서에서 “응웬은 석방팀의 일원으로 일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이런 방식에 적응을 못 해서 많이 힘들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사망 당일 아내 윤정씨에게 “아침부터 힘이 없다”고 말했던 응웬은 팀장에게 조퇴 의사를 밝혔다. 전날 팀원 한 명이 그만둬 안 그래도 인력이 부족한 터라 팀장은 처음엔 난색을 표하다 응웬의 상태를 보고 조퇴를 허락했다. 그러나 응웬은 택시를 잡는 방법을 몰랐고, 결국 다시 현장으로 복귀해야 했다. 몸이 보내는 위험신호를 참고 일하던 응웬은 이날 오후 3시쯤 쓰러진 뒤 이내 사망했다.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죽음 윤정씨는 당시를 회상하면서 베트남어로 “한국말에 혼백이 날아간다는 말이 있나요. 너무 황당하고 기가 막혀서 심장이 벌렁거렸어요”라고 했다. 윤정씨는 황망하게 응웬의 장례를 치렀다. 응웬과 근로계약서를 쓴 전문 건설업체에서는 단 한 사람이 장례식장을 찾았다. 윤정씨는 “딱 한 명 찾아왔어요. 사장은 아니고 팀장 위에 있는 사람이래요. 힘내라는 격려 한 마디 없었어요. 일 때문에 사망한 것 같은데 장례비만 주고 그 후에는 모른 척했어요. 그 회사 이름을 아직도 제대로 몰라요”라고 했다. 응웬조차 자신과 근로계약서를 작성한 회사의 이름은 몰랐을 가능성이 크다. 불법 하도급을 숨기기 위한 형식상 계약이었기 때문이다. 건설산업기본법은 일감을 따낸 수급인이 다시 일감을 떼주는 재하도급을 원칙적으로 금지한다. 법이 허용하는 것은 ‘발주처-종합건설업체(원청·시공사)-전문건설업체(하도급)-건설노동자’로 이어지는 계약구조다. 때문에 응웬은 표면적으로는 전문건설업체 B사와 근로계약을 썼다. 그러나 실제로는 ‘철근사장’이라는 인물로부터 재하도급을 받은 석방팀의 일원으로 일했다. 실제로 석방팀이 몇 단계의 재하도급을 거쳤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기형적인 고용구조는 회사가 사망한 노동자에 대해 가져야 할 최소한의 책임감마저 희석한다. 응웬의 죽음은 한동안 산재가 아닌, 경찰이 조사하는 변사사건으로 다뤄졌다. 윤정씨도 “응웬이 미등록이니까” 산재보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해 산재를 신청하지 않았다. 그러나 산재보험 가입자는 개별 노동자가 아니라 사업장이다. 사업장에서 일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수급권이 있다. 윤정씨는 지인의 귀띔에 뒤늦게 산재 신청을 했지만, 한국어가 유창하지 않은 그에게는 무엇 하나 쉽지 않았다. 혼인신고가 안 된 상황에서 응웬의 유족임을 밝히기 위해 돈을 빌려 딸의 유전자 검사까지 해야 했다. 윤정씨는 “결혼을 안 해서 사실혼이잖아요. 각종 서류를 준비하는데 돈이 많이 들어갔어요. 엄청 복잡하고 힘들었어요”라고 했다. 급성 심장사 등 돌연사가 산재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몇 가지 요건이 필요하다. 단기간 업무 부담이 늘었거나, 사망 전 12주 동안 주당 평균 노동시간이 60시간을 초과했다면 산재로 인정될 가능성이 크다. 얼마나 오래 일했는지를 입증하는 게 첫 관문인 셈이다. 그러나 불법하도급이 만연한 건설업의 제일 밑바닥에서 일했던 응웬의 경우에는 노동시간을 정확히 산출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었다. 베트남 결혼 이주여성이기도 한 원옥금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제조업처럼 한 곳에서 일하면 알기 쉬운데, 건설업은 어느 현장에서 일했는지를 찾아내는 것도 힘들었어요. 기껏 일한 현장을 찾아내도 며칠 나오다가 며칠 안 나온 경우가 있어요. 그러면 그때는 다른 현장에서 일했을 수 있는데 찾을 수가 없어요. 고인 휴대전화를 다 뒤져보고, 현장 찾아서 동료들 이야기를 듣는 걸 반복했어요.” 근로복지공단은 2023년 11월 “발병 전 12주 동안 1주 평균 업무시간은 37시간 7분”이라며 응웬의 죽음이 산재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응웬이 사망 전 열흘 동안 석방팀에 근무하면서 단기간 업무량이 급증했다는 점은 고려하지 않았다. 오히려 공단은 회사 측이 제출한 자료를 거의 그대로 받아들였다. 예컨대 회사 측은 해당 건설현장의 노동자들이 점심시간을 포함해 하루 2시간을 쉬었다며 응웬이 일한 석방팀도 2시간을 쉬었다고 주장했다. 공단은 이 주장을 바탕으로 응웬의 근무시간에서 하루 2시간씩을 일률적으로 뺐다. 그러나 석방팀은 높은 노동강도로 인해 하루 두 차례 10분가량 쉬는 것이 전부였고, 점심시간도 30~40분만 주어졌다. 공단 측의 조사는 충실했다고 보기 어렵다. 공단의 요양업무처리규정은 심장질환 등을 조사할 때 동료근로자 등의 진술을 확보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그러나 응웬이 일한 석방팀의 팀장이었던 베트남 출신 노동자 C씨는 법정에서 “제가 알기로는 (근로복지공단에서) 팀원 가운데 누구도 부르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했다. 조사 과정에서 회사는 거짓도 섞었다. 회사 측은 응웬의 가슴에 수술 자국이 있다며 기존 병력이 있었을 가능성을 암시했다. 그러나 부검 결과 응웬의 가슴에서는 아무런 수술 자국도 발견되지 않았다. 윤정씨는 “남편이 사망하고 아무 도움은 못 줄망정 거짓말하고 책임 회피하는 것이 너무 분했다”고 말했다. 2년 만의 산재 인정 대부분의 이주노동자 유족과 달리 윤정씨는 공단의 산재 불인정 판단에도 불구하고 소송을 택했다. 원옥금 대표, 사건을 맡은 박다혜 변호사와 함께 응웬의 죽음을 증언해 줄 동료들을 찾아 나섰다. 마지막 현장에서 함께 일했던 이들과 어렵게 연락이 닿았다. 그들이 새로 일하고 있는 현장에서 일을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밤늦게 만나 증언을 수집했다. 다행히도 석방팀원들 대부분이 윤정씨와 말이 통하는 베트남 노동자였다. 이는 일이 고단한 철근공, 그중에서도 힘든 석방팀 일을 사실상 이주노동자들이 도맡고 있음을 뜻하기도 한다. 응웬과 열흘간 함께 일한 것이 인연의 전부인 A씨는 흔쾌히 진술서를 써줬다. A씨는 진술서에서 “응웬은 철근공으로 일해왔지만 일당으로만 일을 했습니다. 석방팀은 도급이라 아침 체조도 생략하고 정해진 근무시간도 없습니다. 늘 빨리하라고 재촉받고 진도가 늦으면 안 되니까 최대한 빨리 일을 해야 합니다. 일당으로 일하는 것보다 훨씬 힘듭니다”라고 했다. 석방팀장이었던 C씨는 바쁘게 일터를 오가는 와중에도 진술서를 쓰고, 법정에 증인으로 나와 진술도 했다. 그가 인천 검단 현장에서 일한 내역을 기록한 노트는 응웬의 업무강도를 입증하는 주요 증거가 되기도 했다. C씨는 진술서에서 “응웬씨가 죽은 날은 일이 많고 한 사람이 일을 나오지 않아서 작업량이 더 많았습니다. 응웬씨가 몸이 피곤하고 힘들다고 일찍 퇴근하고 싶다고 했는데 갑자기 쓰러졌습니다. 응웬씨가 쓰러진 후에 팀원 4명을 더 충원해서 불렀습니다”라고 했다. 동료 A씨가 베트남으로 귀국하면서 한때 연락이 끊기기도 했다. 원옥금 대표는 페이스북에 응웬의 동료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고, 이 편지가 베트남 공동체를 통해 알음알음 전파되면서 다시 A씨와 연락이 닿게 됐다. 원 대표는 “같이 일했던 동료들이 적극적으로 도와줬다. 일이 힘들어서 사망했는데 아무 보상도 없다는 걸 직접 눈으로 본 사람들이었다. (동료들이) 자신들도 그런 일을 겪지 않을까 걱정되고 무서운 마음도 있고, 미등록(노동자)이라 하더라도 사람의 권리라는 게 있으니까,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적극 도와줬다. 산재 인정이 되고 동료들에게도 바로 알려줬다. ‘너무 기쁘고 다행스럽다’고 하더라”고 했다. 서울행정법원 재판부는 석방팀의 특성으로 인해 업무강도가 급증했다는 유족 측의 주장을 받아들여 “사망 직전 고인에게 급격하고 과도한 육체적 부담과 스트레스가 있었다고 보이고, 이로 인해 급성 심정지가 발병, 사망에 이르렀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현장의 불법, 정부 조사 기관의 실패로 잊힌 죽음을 유족과 베트남 공동체의 노력으로 다시 밝혀냈다. 박다혜 법률사무소 ‘고른’ 변호사는 “원옥금 대표님이 통·번역 지원을 해주셨다. 그런 지원이 없이 이 사건을 맡았다면 동료 노동자들을 수소문하는 것도 불가능에 가깝고, 어디서 일하는지를 알아도 소통이 어려웠을 것이다. 더구나 불법 하도급이라 형식적인 근로시간만 기록돼 있고, 실질적으로 어떤 노동을 했는지는 가려져 있었다. 그런 점에서 근로복지공단의 역할이 필요한데 충실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던 것 같다. 이런 사건을 다룰 때 공단의 역할을 다시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특집
- “너네 죽어도 다른 사람 와”…뒷전 된 이주노동자 생명(2024. 07. 08 06:00)
- 2024. 07. 08 06:00 사회
- 이주노동자들과 시민·사회 단체들로 구성된 화성공장화재이주민공동대책위원회 회원들이 지난 6월 27일 경기 안산시 단원구 다문화공원에 마련한 화성 일차전지 공장 화재 사고 추모분향소에서 헌화를 마친 후 눈물을 닦고 있다. 조태형 기자 그는 손으로 허공에 선을 그으며 말했다. “한국에서 내 인생 끝났어요.” 방글라데시 청년 자파(가명·37)는 2011년 처음 한국에 왔다. 소방설비 제조업체, 원단 염색가공업체, 철근 가공업체를 거쳐 2021년부터는 경기 안성시의 농기계 제조업체에서 일했다. 금속기계의 표면을 매끄럽게 하는 그라인딩 작업이 그의 일이었다. “그라인딩할 때 철먼지가 많이 생겨요. 숨쉬기가 힘들어서 방진마스크 달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반장이 이렇게 말해요. ‘그냥 이걸(면마스크)로 해, 괜찮아. 아니면 나가.’” 일한 지 1년도 되지 않아 자파는 계단 오르는 것도 힘겨울 만큼 숨쉬기가 어려워졌다. 그해 12월 폐가 딱딱하게 굳어 기능이 정상의 60%밖에 되지 않는다는 진단(간질성 폐질환)을 받았고, 대학병원에서 수술했다. 이후 산재 신청을 했지만 불승인 처분이 나와 재심을 신청한 상태다. “근로복지공단에서 조사를 나와서 제가 철먼지 마시는 일 얼마나 많이 했냐고 물었어요. (저에게 배정된 일감의) 80%는 철먼지를 마시는 일이었어요. 그런데 반장은 5%라고 했고, 그 사람들(근로복지공단 조사원)은 5%라고 적었어요. 그것 때문에 산재 안 됐다고 생각해요.” 2021년부터 경기 안성의 한 농기계 제조업체에서 일하다 간질성 폐질환을 얻은 방글라데시 노동자 자파(가명)는 산재 신청을 했지만 불승인 처분을 받았다. 재심을 신청해 결과를 기다리는 중에 비자가 만료돼 정기진료도 받지 못한 채 약만 먹으며 버티고 있다. 송윤경 기자 농기계 표면을 매끄럽게 하는 그라인딩 작업을 맡았던 자파(가명)는 쇳가루 분진투성이 작업장에서 일했다. 왼쪽은 그의 작업장 사진이고, 오른쪽은 사업주가 자파에게 제공한 면마스크다. 사업주는 방진마스크 지급은 거절했고 ,자파는 간질성 폐질환을 얻었다. 자파(가명) 제공 자파는 산재 재심 결과를 기다리다 비전문취업(E-9) 비자가 만료돼 정기 진료도 받지 못하고 있다. 방글라데시 의료 수준으로는 다루기 어려운 질병이라 고국으로 돌아가기도 어렵다. “산재 인정 못 받으면 결국 고통스럽게 죽게 될 것”이라 말하는 그에게 18명의 이주노동자가 사망한 ‘화성 참사’는 남 일이 아니었다. “우리 한국에 죽으러 온 거 아니잖아요. 어떻게 하면 사고가 안 날지 알려줘야 하는데 안 해요. 대신에 ‘X새끼야, 빨리해’ 욕해요. 때리는 경우도 있어요. 한국 사람들 우리를 사람으로 생각 안 해요. 동물로 생각해요.” 지난 6월 24일 경기 화성시에서 발생한 리튬전지 공장 화재는 무엇을 말하는가. 한국사회는 힘들고 더럽고 위험한 3D 업종에 이주노동자들을 종사케 하면서 ‘생명 보호’라는 최소한의 안전관리마저 손을 놓았다. “죽으러 오지 않았다”는 이주노동자들의 외침은 우리가 그들을 얼마나 야만적으로 대해왔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일하다 죽을 확률 3배 현재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이주노동자 규모는 97만5000명(통계청·2023년 이민자 체류실태 및 고용조사). 여기에 41만9000명으로 추정되는 미등록자 수(출입국·외국인정책 통계월보 올해 3월호)를 합하면 한국의 이주노동자 규모는 130만명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주노동자가 죽음에 내몰리는 현상은 어제오늘의 얘기는 아니었다. 국내 취업자 수(약 2891만명)로 미루어볼 때 한국에서 일하는 사람 100명 중 4명은 이주노동자다. 그런데 지난 4년간 한국에서 산재 사고로 죽은 노동자의 100명 중 10명이 이주노동자였다(표 참조). 일하다 죽을 확률이 한국 노동자의 2~3배라는 얘기다. 이주노동자들의 노동 현장은 어떤 방식으로 굴러가길래 이토록 위험한 걸까. 2015년 고용허가제를 통해 한국에 온 인도네시아인 라야(가명·32)의 사례를 보자. 그는 4년 전 정부가 연계해준 일자리인 금속주조 공장에서 도망쳐 ‘미등록’ 신세가 됐다. 이유는 다름 아닌 “살기 위해서”였다. “뜨거운 금속이 금형(틀)에 들어갔다가 나오는데 (사람을 감지하는) 센서가 없으면 언제든지 금형이 닫힐 수 있어요. 손, 얼굴 다 들어갈 수 있어요. 그런데 그 공장에 센서 없는 기계가 있어서 수리해 달라 얘기해도 사장은 ‘일단 해봐, 일단 해봐, 조심조심’이라고만 했어요. 손 잘린 건 많이 봤고, 제 친구는 팔 위까지 잘렸어요. 다른 데 가고 싶다고 (근로계약 해지와 사업장 변경에 동의하는 서류에) 사인을 해 달라고 했지만 사장은 ‘사인 안 해준다, 도망가고 싶으면 도망가’라고 했어요. 결국 미등록밖에는 (방법이) 없다. 내가 살기 위해서 미등록이 됐어요.” 방글라데시에서 온 손조이(32)가 2017년 금속주조 공장에서 겪은 일도 판박이다. “사장은 빨리하라는 얘기만 해요. 그런데 기계에 손 들어갈 수 있고, 사람 죽을 수도 있어요. 같이 있던 스리랑카 친구들이 얘기해줬어요. 저 오기 전에 여기서 사람 죽었다고”,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근로계약 해지 및 사업장 변경 동의를 요구했던 그에게 사장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사인 안 해줘. 다른 데도 똑같아. 어디 가든지 다 똑같아. 여기 있어. 일해.’ 손조이는 결근으로 사장과 맞섰고, 사장이 그의 요구를 받아들이면서 다행히 합법적으로 사업장을 옮길 수 있었다. ■안전장치 고쳐 달라는 말에…“일단 해봐” 일터에서 도망친 라야는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되는 대신 일자리 이동의 자유를 얻었다. 이후 그는 브로커들을 통해 일자리를 구해왔다. 브로커 연락처는 인도네시아인 동료들이 건네주거나, 페이스북 등으로 손쉽게 구할 수 있다. “근로계약서 쓰는 건 없고, 일단 월급은 주야간 일하면 이 정도다 이렇게 말해줘요. 내가 일하고 싶다고 하면 거기(브로커가 말해준 업체)로 가면 돼요. 그리고 브로커가 한 달에 (수수료로) 3%, 5% 잘랐어요. 10% 가져가는 사람도 있어요.” 23명의 사망자가 나온 화성 참사에서 ‘메이셀’이라는 업체가 유사한 방식으로 ‘아리셀’에 인력을 공급했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 6월 29일 화성 참사 희생자 임시분향소를 찾은 동료 노동자는 기자들에게 “우린 근로계약서도 쓴 적 없고, 인터넷으로 구인 공고가 떠서 연락해 몇 시까지 모이라는 말을 듣고 출근했다”고 말했다. 중소 제조업계에서는 너무 만연해 불법이라는 인식조차 희미한 ‘불법 파견’이 이런 식이다. 채용은 인력업체가 하지만 업무지시는 원청에서 받는다. 원청은 인력업체를 통해 그때그때 필요한 만큼만 사람을 받아 쓴다. 원청 입장에선 언제든 자를 수 있는 인력이라 제대로 된 안전교육을 할 이유가 부족하다. 2015년 한국에 온 손조이는 한 금속주조 공장 기계에 손이 잘리는 사례 등을 보면서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손조이는 “위험하니 옮기고 싶다”고 했지만 사업주는 근로계약 해지 및 사업장 변경에 동의하는 서류에 사인을 해주려 하지 않았다. 손조이가 경기 포천의 거리에 서 있다. / 송윤경 기자 ■너네 죽어도 다른 사람 또 온다 죽음에 내몰리는 이주노동자의 현실을 바꾸려면 무엇부터 해야 할까. 이주노동자들을 돕는 단체들과 노조, 당사자 등의 진단을 종합하면 크게 두 가지 해결책이 절실하다. 먼저 고용허가제의 ‘사업장 이동 제한’부터 풀어야 한다. 이번에 화재 참사가 발생한 리튬전지 공장은 고용허가제 사업장은 아니었다. 그런데 알려지지 않은 더 많은 죽음은 고용허가제 사업장에서 일어나고 있다. 비전문취업(E-9) 비자로 입국한 이주노동자들은 사업주들이 기계 고장 등 심각한 위험이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도 일을 시키는 사례가 잦다고 토로한다. 화성 참사 발생 다음 날 대구 칠곡에서 일어난 산재 사망사고가 전형적인 사례다. 콘크리트관을 제조하는 이 업체의 사장이 고정장치가 고장 난 크레인으로 거푸집을 옮기다가 뚜껑이 떨어져 네팔 이주노동자가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주변 노동자들이 크레인이 고장 났다며 말렸음에도 사업주가 무리하게 일을 강행하다 사망자가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6월 17일 화성의 철골 자재 도장공장에선 지게차 밑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지게차에서 떨어진 철재 더미에 깔려 사망했다. 이곳에서도 지게차의 철재물을 고정하는 줄이 풀려 사고가 일어났다. 안전장치만 정상 작동했어도 막을 수 있는 죽음들이었다. 안전장치가 미비한데도 이주노동자에게 ‘그냥 일하라’고 하는 현실에 대해 손조이는 이렇게 말했다. “너네 죽어도 다른 사람 또 온다는 거죠. 사장님들은 ‘너네 죽어도 나랑 상관없다’ 그런 느낌이에요.” 포천이주노동자센터의 김달성 목사는 “현 고용허가제는 사업장 이동을 원칙적으로 금지해 사실상 강제노동을 가능하게 한다. 게다가 고용주가 고용허가 기간 연장 권한(3→4년 10개월)까지 갖고 있어서 이주노동자와 사업주 사이가 철저한 주종관계가 돼버린다”면서 “사업주가 절대군주인 상황에서 이주노동자는 ‘위험하다’는 말도 감히 할 수가 없고, 산재 신청서를 썼다가도 사업주가 종용해 취소하는 경우도 많다. 센터 자료와 여러 연구 결과로 추정해볼 때 이주노동자의 산재 은폐율은 80%에 이르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헛도는 안전교육 또 다른 대책은 중소 규모 사업장의 안전관리 체계를 바로 세우는 것이다. 지난 6월 24일 발생한 화성 리튬전지 공장의 첫 발화 상황이 담긴 폐쇄회로(CC)TV 영상을 보면, 노동자들은 배터리 상자에서 연기가 피어오르자 맨손으로 옮기고 소화기로 불을 끄려 한다. 리튬전지의 특성상 분말소화기로는 불을 끌 수 없고, 연쇄폭발이 일어날 수 있으니 즉각 대피해야 한다는 점을 숙지하지 못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화성 참사로 희생된 이주노동자들은 고용허가제로 발이 묶여 있는 이들은 아니었다. 상대적으로 취업이 자유로운 재외동포(F-4) 비자, 방문취업(H-2) 비자가 대부분이었다. 이들은 고용허가제의 이주노동자와 달리 일터를 선택할 자유가 있지만, 노동시장 최약자인 이들을 받아주는 업체는 대개 안전관리에 손을 놓은 곳들이었다는 사실이 이번에 드러났다. 지난 6월 30일 경기 화성시 화성시청에 마련된 아리셀 공장 화재 사고 추모분향소 앞에서 유가족협의회가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정효진 기자 최명선 민주노총 보건안전실장은 “‘안전교육이 이뤄지고 정보만 제공됐어도’라는 탄식이 나오는데 업체가 왜 제대로 하지 않았을까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면서 “자기 사업장의 위험이 뭔지 알고 그 위험에 맞춰 안전교육도 하고, 위급 시 매뉴얼도 만들 사람이 필요하다. 현재 50인 미만 사업장에는 안전관리자 선임 의무가 면제돼 있는데, 중소업체라서 사업장마다 1명씩 두기 어렵다면 산업단지 내 유사 업체들을 묶어 ‘공동안전관리자’를 고용케 하는 방안도 고민해봐야 한다”고 했다. 향후 고용노동부와 경찰의 아리셀 수사에서 안전교육은 주요 쟁점이 될 가능성이 있다. 분향소를 찾았던 동료 노동자들은 “안전교육을 받은 적이 없고 비상구도 몰랐다”고 증언한 반면 아리셀은 “상시적으로 (안전) 교육을 하고 있다”(지난 6월 25일 박순관 대표 기자회견)고 주장한다. 내·외국인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산업안전관리법은 사무직과 판매업 종사자는 1년에 12시간, 그외 노동자는 1년에 24시간의 안전교육을 받도록 하고 있다. 일용직으로 고용됐을지라도 1시간은 안전교육을 받아야 하고, 유해하거나 위험한 작업에 투입되면 별도 교육도 이뤄져야 한다. 이주노동자들 인권침해에 대한 여러 소송을 이끌었던 최정규 변호사는 “사측에서 ‘교육이 충분했다’고 하는 것을 보면 형식적인 교육은 했을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왜 ‘불붙으면 도망가야 한다’가 학습이 안 됐을까 하는 점”이라면서 “법이 현장에서 작동을 안 하는데 노동부는 감독할 의지가 없다. 20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근로감독이 사업주 입장에서 무서울 리가 없다”고 말했다. 노동부의 느슨한 관리·감독이 현장의 빈껍데기 같은 안전관리를 초래했다는 얘기다. 아리셀이 ‘위험성 평가’를 우수하게 했다고 인정받아 산재 보험료까지 감면받을 정도로 관련 제도가 헛돈 데 대해서는 “책임자 징계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위험성 평가는 사업주가 노동자 참여 하에 사업장의 무엇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따져 감소대책을 세우는 제도를 말한다. 노동부 산재예방정책과장을 지낸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위험성 평가를 정말 잘했다면 사측이 ‘위험 감소대책’을 세웠을 테고, 노동자들에게 ‘리튬전지 화재 때는 열폭주가 발생하니 빨리 대피해야 한다’면서 대피 방법 등을 제대로 알려줬어야 한다. 리튬전지 수만개를 한꺼번에 보관했을 리도 없다”면서 “위험성 평가 실적이 급급하다 보니, 안전보건공단이 실제로 업체가 잘했는지를 따져보지 않은 것 같다. 정부는 각성해야 하고 책임자 징계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 표지 이야기
- [렌즈로 본 세상]화려한 월드컵 뒤 이주노동자 잔혹사(2022. 11. 25 14:28)
- 2022. 11. 25 14:28 국제
- 2022 카타르월드컵이 지난 11월 20일(현지시간) 개막했다. 사상 처음으로 ‘겨울’에 ‘중동’에서 열리는 대회다. 취재를 위해 개막 일주일 전 입국했다. 카타르는 월드컵 준비를 미처 다 끝내지 못한 상태였다. 월드컵 경기장 주변 도로 곳곳을 공사나 보안 등의 이유로 통제했다. 월드컵 개막을 나흘 앞둔 지난 11월 16일 도하에 마련된 ‘팬존’인 ‘피파 팬 페스티벌(FFF)’ 언론 공개 현장으로 향했다. 역시나 도로 주변은 통제가 심했다. FFF 앞 지하철역은 닫혀 있었다. 택시를 타고 행사장과 꽤 떨어진 곳에서 내려 FFF로 걸었다. 정오가 조금 지난 시각이었다. 땡볕 속을 걷다 보니 순식간에 옷이 땀에 젖었다. 걷는 길에 만난 터널 속 그늘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이주노동자들이 뜨거운 햇볕을 피해 드러눕거나 벽에 기댄 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카타르는 이번 월드컵 준비를 위해 2000억달러(약 265조원)를 쏟아부었다. 카타르 정부는 신규 경기장 7개 등 월드컵 인프라 건설에 이주노동자들을 투입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카타르에서 일하다 목숨을 잃은 이주노동자가 6500명에 달한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화려한 개막식을 카메라에 담는 내내 터널 속 이주노동자들의 잔상이 아른거렸다.
- 렌즈로 본 세상
- 미등록 이주노동자 대사면 이뤄질까(2022. 08. 05 14:38)
- 2022. 08. 05 14:38 사회
- ㆍ외국인 205만명 중 40만명… 더 이상 못 본 척할 수 없는 숫자 “▲국내 불법체류 기간이 3년을 초과하지 아니한 자 ▲코로나19 백신 2차 이상 접종 완료한 자 ▲과거 범법 사실 없는 자 ▲과거 난민 신청 경력 없는 자” 농촌에서 일하는 캄보디아 이주노동자가 휴대폰 불빛에 의지해 숙소 밖 간이화장실로 걸어가고 있다. / 권도현 기자 지난 7월 말 이주노동자들의 커뮤니티에는 이런 내용의 ‘지라시(정보지)’가 급격히 확산됐다. 조만간 한국 정부가 미등록 이주노동자(불법체류자)들을 대사면(체류안정화 조치)할 예정이고, 대상자가 되려면 위의 조건을 갖춰야 한다는 내용이다.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자진신고할 경우 범칙금은 면제되고 최장 2년간 합법 체류할 수 있게 된다는 체류조건도 덧붙었다. 여러 언어로 번역된 지라시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 사이에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연락 많이 왔어요. 반응이 좋았어요. 원래 (합법화 정책이) 8월에 나오려고 했는데 법무부가 취소했어요. 법무부가 공지하면 그때 다시 (합법화 정책이) 시작될 거예요.” 이 지라시를 퍼나른 경기 안산의 한 행정사 사무실 관계자의 말이다. 그는 마치 법무부의 정책 결정 과정을 알고 있다는 듯이 말했다. 당초 이주노동자 공급은 국가가 독점하지만,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늘어나면서 민간 영역에는 노동력을 중개하는 또 다른 시장이 생겼다. 브로커와 인력사무소가 인력 공급을 담당한다면, 행정사는 이주민들의 행정업무를 대행하며 ‘이주산업’의 한축을 맡고 있다. 특히 먼저 이주해온 이주민들이 때로는 브로커로, 때로는 행정사 사무실 관계자로 ‘변신’해 한국 물정을 잘 모르는 신입 이주민을 끌어모으는 역할을 한다. 동남아시아 출신의 이 행정사 사무실 관계자도 자신을 팀장이라고 소개했다. 왜 체류안정화인가 이 지라시는 ‘가짜뉴스’다. 여기에 혹해서 이주산업 생태계가 요동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정부의 공식적인 태도 변화가 감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7월 25일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은 한덕수 국무총리에게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합법화 또는 대사면” 가능성을 물었다. 한 총리는 “전체적으로 필요성으로 보면 당연히 해야 한다”며 “우리의 이민 정책과 약 30만인 이분들에 대한 양성화가 좀 같이 가야 하는 것 아닌가 이렇게 생각을 한다”고 했다. 사흘 뒤 외국인 체류관리를 총괄하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언급도 정부의 기류가 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지난 7월 2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불법체류 외국인을 어떻게 감축할 계획인가”라는 조정훈 의원의 질의에 이같이 말했다. “불법체류자들에 대해서는 사실 전원이 불법이니까 불법상태를 해소하는 것이 맞는 것이다. 다만 그렇게 됐을 경우 여러 부작용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거기 맞춰서 (합법화 대상의) 적정 수준이 얼마만큼 되는지 저희가 집중적인 분석을 하고 있다.” 국무총리와 실세 장관이 미등록 이주민에 대한 ‘사회적 묵인’ 기조가 바뀔 수 있다는 시그널을 던진 셈이다. 그간 한국사회는 이들의 불법 상태는 못 본 체하고 노동력만 활용해왔다. 조치가 언제 이뤄질지, 세부적인 대상과 방식은 어떻게 결정할지 등 구체적 언급은 없었지만, 문제의 지라시 확산세에 기름을 붓기에는 충분했다. 지난 7월 하순 이주노동자 커뮤니티에 확산된 ‘불법체류자 합법화 정책’ 관련 ‘지라시’ / 경주이주노동자센터 제공 정부 태도가 달라진 배경은 무엇일까. 일단 주목해야 할 것은 미등록 이주민의 규모다. 통상 보수정부는 체류 외국인을 합법과 불법으로 나누고, 불법을 단속하는 체류관리 정책을 펴왔다. 이제는 체류관리만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규모가 됐다. 지난 6월 기준 법무부의 출입국·외국인정책 통계를 보면, 한국에 체류 중인 외국인은 205만6000여명으로 이중 39만4000여명이 미등록 이주노동자다. 체류 외국인 5명 중 1명꼴이다. 한해 출생자 수(26만5000여명)보다 많다. 그에 반해 법무부의 체류관리 인력은 300명이 채 안 된다. 1명당 1300명을 관리해야 하는 실정이다. 이주노동자 없이는 존속이 어려운 산업의 현실도 직시해야 한다. 이미 미등록 이주민 40만명이 노동력을 제공 중이지만 산업현장의 인력난은 계속되고 있다. 코로나19는 이주노동자들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코로나19로 지난 2년간 고용허가제를 통해 입국해 한국에 체류하는 이주노동자의 수는 약 6만명 감소했다. 고용노동부의 올해 상반기 사업체 노동력 조사결과를 보면 300인 미만 중소기업은 전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30% 많은 외국인을 채용했음에도, 여전히 3만3000명의 외국 인력이 부족한 것으로 집계됐다. 정부는 서둘러 이주노동자 5만명의 조기 입국을 추진 중이다. 특히나 인력난이 심각한 곳은 농업부문이다. 벌써 몇년 전부터 농가는 미등록 이주노동자 없이는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충남에서 딸기농사를 짓는 A씨는 “현실적으로 농장에서 한국 사람이 일한다는 건 성립이 안 된다. 청년들이 도시에 있는 공장도 안 가려 하는데 비전도 없고, 연애할 때 떳떳이 밝힐 수도 없고, 영화 한편 볼 데도 없는 농촌에서 왜 일하겠느냐. 20대 중후반 청년들을 데려다 일 시켜봤는데 며칠 오다 안 온다. 외국인도 똑같다. 공장 가고 싶어하지 누가 농장 가고 싶어하냐”고 했다. ‘내국인 일자리를 이주노동자들이 빼앗고 있다’는 속설은 “현실을 모르는 얘기”라고 했다. 이주민 합법 고용도 어려운 농가는 미등록 이주민에 러브콜을 보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린다. 장덕상 사단법인 국제농업협력네트워크 사무총장은 전남 소재 B군(郡)의 사례를 예로 들었다. “이 지역 농가에 필요한 인력은 1000명 정도인데 올 한해 계절근로자 제도로 100여명의 외국인이 들어왔다. 고용허가제로 100명이 들어왔다고 쳐도 일손 800명이 빈다. 농가 태반은 불법체류자를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엄진영 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의 논문 ‘농업부문 미등록 외국인 근로자 고용실태와 과제’(2021)를 보면, 이주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작물재배 농가 중 91%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고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양날의 검’ 미등록 불안정 인력 수급 불균형은 다시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규모를 키운다. 농가가 합법적으로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려면 고용허가제와 계절근로자 제도 중 하나를 통해야 한다. 이렇게 입국한 이주노동자들은 체류기간 동안 정해진 농가에서 일해야 하지만, 여러 이유로 중도 이탈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지난해 강원도는 계절근로자 제도로 300명의 이주노동자를 배정받았는데 이중 60%가 무단이탈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되면 신분은 불안정해지지만, 역설적으로 자신이 일할 곳을 선택할 수 있다. 합법 신분일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도 있다는 얘기다. 합법적으로 들어온 농가 이주노동자들의 하루 임금은 9만~10만원이다. 일손이 부족한 농가가 미등록 이주민을 찾으면서 일당이 한때 15만~18만원까지 치솟기도 했다. 이는 다시 농업경쟁력을 악화시키고, 더 많은 이주노동자를 미등록 신분으로 유인하는 요인이 된다. 모든 미등록 이주민에게 더 많은 임금이 허락되는 것도 아니다. 한국에 정주하고자 하는 미등록 이주민들이 불안정 신분을 볼모로 잡혀 권리를 박탈당하는 사례도 많다. 인권 측면에서도 이들의 불안정 상태를 해소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미등록 이주민 C씨와 D씨는 필리핀 출신으로 경기도 포천에서 17년간 일했다. 최근 이들은 5년간 일한 섬유공장을 퇴사했다. ‘불법 사람’이라는 이유로 퇴직금을 받지 못했다. 지난 5년간 이들의 노동조건은 법과는 거리가 멀었다. C씨는 매일 저녁 7시부터 다음날 아침 9시까지 주 6일을 일했다. 매일 1시간의 휴게시간을 빼도 주 78시간 노동이었다. 그러고도 임금은 매달 고정된 250만원을 받았다. 야간·특근수당은 물론 최저임금도 못 받은 셈이다. 사업주는 코로나19로 일감이 줄어들자 두 사람에게 휴업을 명하고, 그만큼 임금을 삭감했다. 일을 더한다고 돈을 더 주지는 않지만, 일을 안 하면 임금을 철저히 깎는 구조였다. 이는 두 사람이 퇴사를 결정한 결정적 이유로 작용했다. 농촌 이주노동자가 숙소로 사용하는 비닐하우스 안에 이주노동자들의 작업복이 걸려 있다. / 권도현 기자 이들이 불법 신분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두 사람은 이 공장에서 합법적으로 체류하는 이주노동자 5명과 함께 근무했다. C씨는 양팔을 위아래로 벌리면서 “(그들은) 일은 적은데 300만원 이상 (받았다), 샐러리 디퍼런트(Salary Different)”라고 했다. 그는 “일할 때 힘들지만 열심히 일하고 잠 잘 못 자고, 다음날 일할 때 사장님 또 시키면 많이 울었어. 다른 사람은 조금만 시키는데, 우리 불법 사람이니까 너무 많이 시켜서, 일할 때 너무 힘들어서 일어나면 울었는데, 또 일어나면 이런 거 시켜”라고 했다. 한국 정부가 체류안정화 조치를 시행하면 신청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두 사람은 고개를 여러 번 끄덕였다. 체류안정, 누구를 어떤 조건으로 문제의 지라시는 합법화 대상자의 조건을 체류기간 ‘3년 미만’이라 기재했다. 2003년의 선례를 참고한 것이다. 한국 정부는 그해 대대적인 미등록 이주민 합법화를 추진했다. 당시에는 체류기간 4년 미만의 이주민이 자진신고할 경우 총 체류기간이 5년이 될 때까지 체류자격을 보장하고, 4년 이상인 경우에는 강제출국 조치했다. 이때 18만4000명의 미등록 이주민이 합법 체류자격을 얻었다. 이중 30~40%는 체류기간을 채우고도 출국하지 않아 다시 미등록 이주민이 됐다. 미등록 이주민이 늘어나자 다급히 내놓은 임시변통 정책일 뿐, 근본 대책은 되지 못했다는 평가가 많다. 김철효 전북대 사회과학연구소 전임연구원은 “국적법을 보면 5년 이상 체류한 사람은 귀화에 접근할 수 있는데, 2003년에는 오래 체류한 사람은 돌아가게 하고 짧게 머문 사람에게 체류자격을 줬다. 정부는 계속해서 신규 인력을 데려오겠다고 얘기하는데 오래 머물러 한국사회에 적응한 사람들을 쫓아내지 않고 유지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본다. 수십만명의 인력을 몇년 있다가 다시 내보내는 사회는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전제 조건은 우리 사회 인구구조가 바뀔 수밖에 없다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이라고 했다. 포천이주노동자센터를 운영하는 김달성 목사는 “40만명의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언젠가는 사회적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음에도 정부는 방치해왔다. 5~10년간 문제없이 일한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선별·합법화해 산업현장의 착취구조, 비인간적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고 했다. ‘이주민이 정주민이 돼서는 안 된다’는 정주화 금지 원칙을 폐기하고 오래 체류한 이주민들의 ‘체류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한준성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학술연구교수는 “체류를 오래한 분들은 체류자격과 무관하게 이 사회와 유대관계를 형성하고, 이 사회에 뿌리를 내린 부분이 있다. 해외에서도 체류기간이 길면 길수록 (체류안정화) 자격 요건을 주는 경우가 많다”며 “체류안정화 조건은 공동체가 합의한 수준에 따라 결정할 수밖에 없다. 충분한 논의를 거쳐 결정해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 법만 있고 집은 없는 ‘이주노동자 대책’(2022. 05. 13 14:18)
- 2022. 05. 13 14:18 사회
- ㆍ‘비닐하우스 사망’ 후에도 여전히 가건물 사용 열대몬순기후의 나라 캄보디아 출신 누온 속헹(Nuon Sokkheng)에게 한국의 겨울밤은 춥고 길기만 했다. 그는 2016년 봄, 스물여섯에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들어왔다. 2021년 1월이면 제도가 허용하는 4년 10개월의 기간을 채울 예정이었다. 꿈에도 그리던 고향으로 향하는 항공권을 일찌감치 끊어 놓았다. 고향의 대기가 덥고 습하다 한들 한국의 외딴 농장 한여름 비닐하우스 일터보다는 안락할 터였다. 무엇보다 그곳에는 가족이 있다. 가족의 꿈과 미래와 맞바꾼 자신의 꿈이 머나먼 타국에서 조금씩 무너지고, 고된 노동으로 몸 여기저기가 비명을 지르고 알량한 비닐하우스 숙소에 몸을 누일지언정 군소리 없이 일해왔다. 고용주에게 순순한 일꾼이어야만 귀국해 가족과 해후한 후 다시 코리아로 돌아와 고용허가제로 4년 10개월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렇게 들판과 비닐하우스에서 일하고 비닐하우스에서 살았다. 한파주의보가 내린 동짓달 밤, 유일한 난방장치였던 전기 패널조차 덥히지 못하는 숙소에서 속헹은 그렇게 홀로 가족을 그리며 잔뜩 몸을 웅크리고 잠을 청했을 것이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세계 이주노동자의 날 기념 대회가 열린 지난해 12월 19일 참가자들이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사망한 캄보디아 노동자 속헹씨를 추모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캄보디아인 속헹씨 다행히 산재 승인 2020년 12월 20일 냉골의 비닐하우스에서 속헹의 싸늘한 주검이 발견됐다. 이주노동자지원단체들은 그의 죽음을 알렸고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당국의 조사결과는 죽음의 원인을 식도정맥류 파열로 인한 과다출혈로 추정했다. 노동지청은 개인 질병으로 인한 사망이라는 이유로 면밀한 재해조사를 수행하지 않았다. 간경변으로 건강에 문제가 있었던 노동자가 며칠 전까지 고된 농사일을 하다가 한파가 몰아치는 밤에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홀로 피를 토하며 사망했다. 한국사회의 잔혹을 성찰하고 이 참담한 사건의 연원을 따져서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밝히고 대책을 강구하기보다 ‘얼어죽은 것은 아니다’라는 추정으로 책임 없음을 강변하는 듯 보였다. 추위에 노출되면 말초혈관 수축, 간문맥압 상승, 신경호르몬 변화 등으로 간경변 환자한테 식도정맥류 출혈의 위험을 높일 수 있으며 과로도 마찬가지다. 농장주가 자신이 관할하고 있는 숙소에서 노동자가 적절한 난방조치 없이 생활하도록 방임했고, 건강검진 등을 통해 건강상태를 파악하지 않고 간경변 및 식도정맥류 환자에게 과도한 수준의 업무를 부여했다면 마땅히 업무와 사망과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해야 할 일이었다. ‘이주노동자 기숙사 산재사망 대책위’를 중심으로 참담한 현실을 드러내고 사회적 책임을 묻기 위해 산재를 신청했고, 500일이 지난 올해 5월 2일에서야 산재 승인 결정을 받았다. 산재 승인은 우리 사회가 최소한의 염치를 보인 것이며 환영할 일이다. 산재 승인을 도왔던 변호사는 그러나 이것을 ‘우연한’ 산재 인정이라 했다. 요행스럽게 농장의 노동자가 5명이라 산재보험 적용대상이 됐고, 산재의 권리조차 모르고 있던 캄보디아의 유가족과 어렵사리 연결돼 위임을 받을 수 있었다. 가려질 뻔한 죽음이 사회적으로 알려져 직업환경의학과 의사인 필자에게 닿아 업무 관련성을 따질 수 있었다. 이런 여러 요행이 허락되지 않은 농업 이주노동자들의 손상과 죽음은 여전히 개인의 비극으로 마감되고 만다. 속헹의 산재 승인만으로 참담한 죽음에 이 사회가 책임을 다했다고 말할 수 없다. 농업 이주노동자들은 여전히 이중 삼중의 차별과 착취 상태에 놓여 있다. 2021년 12월 열린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안전보건 및 노동권 실태와 과제’ 국회토론회 당시 주당 노동일, 노동시간, 월간 휴무일 등 노동조건 전반과 신체적·정신적 건강 수준 전반에서 제조업에 비해 농업 이주노동자의 상황이 훨씬 열악하다는 조사결과가 발표됐다. 제조업에서는 직장건강보험이 적용되고, 근로기준법 적용 및 산재보험 대상이 될 가능성과 산업안전보건법 등의 법적 보호를 받을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 소규모 영농인들이 사업자등록증 없이도 이주노동자들을 고용할 수 있어 농업 이주노동자들은 비용부담이 높은 지역건강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5인 미만의 소규모 자영농에 고용된 이주노동자들은 산재보험 적용대상이 아니다. 제도적 허점을 악용한 고용주들은 편법으로 산재보험 가입을 피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이주노동자들에게 돌아간다. 여성 이주노동자들은 고립된 농촌지역에서 성폭력의 위험까지 더해진다. 인권·노동권·건강권 없이 노동력 착취 몇년 전부터 이주노동자들과 인권단체들은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니다”라는 구호를 걸고 싸워 왔다. 그 결과 ‘비닐하우스 주거 방지법’이라는 이름으로 근로기준법과 외국인고용법이 개정돼 2019년부터 시행됐다. 근로기준법에서 기숙사는 화장실과 세면·목욕 시설을 ‘적절’하게 갖출 것, 채광과 환기를 위한 ‘적절’한 설비 등을 갖출 것, ‘적절’한 냉난방 설비 또는 기구를 갖출 것, 화재 예방 및 화재 발생 시 안전조치를 위한 설비 또는 장치를 갖출 것 등을 규정했다. 안전하고 쾌적한 거주가 어려운 환경의 장소에 기숙사를 설치해서는 안 되게끔 했다. 외국인고용법에서 ‘사업주가 근로기준법을 준수한 기숙사를 제공하도록 하는 규정’과 ‘사업주가 이주노동자와 근로계약을 체결할 때 기숙사 정보를 사전에 제공하도록 하는 규정’을 신설했다. 노동부는 2019년 전국적으로 외국인 고용 사업장 숙소 유형 지도점검에 나섰지만 2020년 겨울 속헹은 비닐하우스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법과 규정이 있어도 작동하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다. 노동자들에게 살 만한 ‘집’을 제공하겠다는 정책적 의지가 전제돼야 한다. 속헹의 죽음 이후 비닐하우스 내 컨테이너, 조립식 패널 등을 숙소로 제공하는 경우 고용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다지만 여전히 가건물은 완전히 규제되지 않고 있다. 숙소를 옮겨준 농장주가 시세의 4~5배에 이르는 월세를 임금에서 공제하는 일도 빈번하다. 행정당국은 법과 규정에서 이야기하는 ‘적절함’을 판단하고, 시정명령을 통해 개선을 관철할 권한과 책임이 있다. ‘뜻’이 없기에 ‘법’만 남는다. ‘법’만 있고 ‘집’은 없는 상황이 지속된다. 법과 규정에 앞서 이주노동자를 편견으로 대하는 시각이 팽배한 농촌사회에서 품앗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돼온 착취가 얼마나 문제인지 자성할 수 있어야 한다. 드러낼 때 출발할 수 있다. 자신들만의 공동체 속에서 공유해온 비상식을 부끄러워하고 서로 경계해야 한다. 드러내고 연결해야만 농업 이주노동자들의 권리 옹호를 외면해온 근로감독과 안전보건 행정을 바로잡을 수 있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한 국제적 이동의 제한은 우리 사회가 그동안 이주노동자들에게 얼마나 의존해왔는지를 깨닫게 해주는 계기가 됐다. 이러한 깨달음이 이주노동자들의 인권이나 노동권, 건강권 확장으로 이어지지 않고, 부족한 노동력을 더욱 혹독한 착취로 메꾸고자 하는 시도로 이어지지는 않았는지 돌아봐야 한다.
- 특집
- [렌즈로 본 세상]열악한 숙소, 이주노동자들의 호소(2021. 05. 28 11:33)
- 2021. 05. 28 11:33 사회
- 캄보디아 출신 이주노동자 윤사비씨(오른쪽)가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이라고 소개한 사진은 ‘비닐하우스’였다. 그는 지난 5월 26일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7년간 한국에서 일하면서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더운 비닐하우스 기숙사에서 지냈는데 한달에 20만원씩 냈다”고 말했다. 기자회견 맞은편에서 열리고 있는 ‘이주노동자 기숙사 사진전’ 숙소의 모습도 비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작업장과 붙은 비닐하우스와 컨테이너 숙소는 냉난방도, 채광도, 환기도 잘되지 않는 곳이었다. 화재로 타고 있는 어느 가건물 숙소 모습은 섬뜩했다. 길을 가던 시민들은 인권이 사라진 숙소 사진 앞에서 한참 동안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이주노동자의 주거와 생활 실태 및 정책 과제(이주미·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고용주가 이주노동자에게 제공하는 기숙사 주거형태의 설문결과 비거주용 건물 내 공간, 임시적인 가건물, 무허가 불량주택, 컨테이너 등 열악한 주거형태의 비율이 40.5%에 달할 정도로 이주노동자들의 숙소는 열악하다. 최소한의 주거권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이주노동자의 삶은 위태롭다. 한파 경보가 내려진 지난해 12월 20일에는 캄보디아 국적 이주노동자가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다. 해당 기사에는 다음과 같은 댓글 하나가 달렸다. “외국인이고, 내국인이고가 문제가 아니라 제발 사람 목숨 귀하게 여깁시다.”
- 렌즈로 본 세상
- [홍명교의 눈]‘메이드 인 재팬’의 이주노동자 착취(2020. 05. 04 14:00)
- 2020. 05. 04 14:00 오피니언
- 일본의 작은 의류공장에서 일하는 중국인 이주노동자 메이는 50세의 숙련된 재단사다. 2016년 그는 우리 돈 520만원의 수수료를 빚지고 일본에 왔다. 일본어를 배우고 돈을 벌기 시작하면 조금씩 갚기로 했다. 하지만 일본에 온 후 메이는 모든 게 약속과 다르단 걸 깨달았다. 1년을 보장한다는 일본어 교육은 1개월 만에 끝났고, 곧바로 기후현에 있는 의류 하청공장에 보내졌다. 그가 마주한 첫 풍경은 쥐똥이 쌓인 낡은 방이었다. 메이는 오전 8시부터 자정까지 일했고, 총 1시간 반의 식사시간이 주어졌다. 하루 15시간, 일주일에 6일 일하는 게 다반사였다. 노동자들은 2층 침대가 있는 작고 낡은 단층 건물에서 노동과 의식주 모든 것을 해결했다. 나고야나 기후에 가본 사람이라면 여름철에 최대 41도까지 오르는 무더위의 공포를 알 것이다. 메이가 한 땀 한 땀 꿰매 만드는 바지는 시중에서 1만2000엔에 팔린다. 이곳 이주노동자가 받는 시급이 300엔이다. 자신이 만든 바지를 구매하기 위해서는 공제금액을 감안할 때 약 5일을 일해야 한다. 누구도 법정 최저시급이 자기가 받는 돈의 2배란 사실을 알려준 적 없었다. 더구나 메이는 사업장 이동의 자유가 없었기 때문에 사장의 강요대로 휴일에도 일해야 했다. 2018년 말, 일본 자민당은 이주노동자를 크게 확대하는 내용의 출입국관리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농어업과 숙박업 등 14개 업종에서 5년간 34만 명의 이주노동자를 받아들여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만성적인 노동력 부족을 해결하겠다는 심산이었다. 효과는 바로 드러났다. 2019년 146만 명, 2020년 166만 명으로 2년 연속 10% 넘게 늘고 있다. 한국 출신 이주노동자도 7만 명이나 된다. 일본의 기술인턴훈련프로그램(TITP)은 개발도상국에 기술을 전수한다는 명목으로 시작됐다. 하지만 실제로는 초고령사회 일본의 노동력 부족 해결을 목적으로 작동한다. 이주노동자들은 브로커에게 500만원이 넘는 막대한 수수료를 지불하는데, 일단 빚을 지고 와 쥐꼬리만 한 월급에서 차감한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이주노동자 67.6%는 최저임금 이하 월급을 받는다. 아웃소싱 생산라인은 값싸고 유연한 사업 모델이다. 바닥을 향해 치닫는 가난한 노동자들의 경주는 오늘날 동아시아 노동 빈곤을 낳고 있는 근본 원인이다. 하지만 자본가들은 하청공장의 이주노동자 근무조건에 대해 아무 책임도 지려 하지 않고 하청 고용주들은 급여명세서 위조, 도피와 허위 파산 등 각종 편법을 쓰며 책임을 회피한다. 한데 일본의 이런 현실이 남의 이야기처럼 들리지만은 않는다. 우리나라엔 100만 명 이상의 이주노동자들이 일하고 있고, 우리 이주노동 제도인 고용허가제 역시 일본처럼 사업장 이동의 자유가 없다. 노예와 같은 제도 아래에서 인권이 설 수 없다. 2018년 12월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가 우리 정부에 고용허가제 폐지를 권고한 것도 그 때문이다. 일본 자민당과는 다른 전망을 보여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21대 국회가 어떻게 응답할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 [김사강의 눈]살아서도 죽어서도 차별, 이주노동자들(2020. 01. 10 16:36)
- 2020. 01. 10 16:36 오피니언
- 새해가 밝았다. 최저임금이 올랐다. 올해 최저임금은 시급 8590원, 주 40시간 기준 월급은 179만5310원이다. 최근 몇 년간 최저임금 인상폭이 커지면서 노동자의 국적·지역·업종에 따라 최저임금을 달리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지만 아직은 모두에게 동일한 최저임금이 적용된다. 그러나 바다로 가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바다에서 일하는 선원들의 최저임금은 해양수산부 장관이 월 고정액으로 고시한다. 올해 선원 최저임금은 월 221만5960원이다. 일반적으로 선원 최저임금이 육상 노동자 최저임금보다 높게 책정된다. 노동시간이 길고 강도가 센 선상노동의 특수성이 반영된 결과다. 선원 중에서도 어선원의 경우 선원법상 노동시간, 휴식시간 및 휴일 규정을 적용받지 못해 장시간 노동을 하고도 가산수당은커녕 일한 시간만큼의 보수조차 받지 못한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어선원들은 비율급제라는 임금제도를 통해 최저임금 외에도 어획량에 따른 성과급을 노사 간 합의된 비율로 받는다. 이러한 비율급은 어선원의 직급에 따라 최저임금의 수 배에서 수십 배에 달한다. 하지만 선원 최저임금과 어선원 비율급제는 한국인 선원들에게만 적용된다. 선원 최저임금 고시에는 ‘외국인 선원의 경우 해당 선원노동단체와 선박소유자단체 간에 단체협약으로 최저임금을 정할 수 있음’이란 단서가 붙어 있다. 외국인 선원들은 가입할 수도 없는 노동조합이 입맛대로 사측과 단체협약을 체결하기 때문에 외국인 선원 최저임금은 한국인에 비해 언제나 낮게 정해진다. 올해 외국인 선원 최저임금은 연근해 어선원의 경우 월 172만3500원, 원양 어선원의 경우 월 625달러다. 외국인 어선원들에게는 이 최저임금이 곧 월급이 된다. 최저임금 차별은 재해보상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해양수산부 장관은 어선원의 재해보상 시 적용되는 승선평균임금을 선원 최저임금과 함께 고시한다. 비율급에 따른 실제 임금은 조업기간이 끝난 뒤 알게 되기 때문에, 조업 중 재해를 당하면 보상을 위한 평균임금을 계산하기 어렵고, 그러다보면 어선원이 불리한 처지에 놓일 수 있다는 이유에서이다. 2020년 고시된 승선평균임금은 월 458만3140원으로 선원 최저임금의 두 배가 넘는다. 그러나 외국인 어선원들이 재해를 당하면 고시된 승선평균임금이 아닌 외국인 선원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보상금이 산정된다. 2016년 대법원은 외국인 어선원에게도 해양수산부 장관이 고시한 재해보상 승선평균임금을 적용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지만, 어선원 재해보상을 담당하는 수협중앙회가 2018년 선원노련과의 합의를 통해 대법원 판례를 무력화시켰다. 어업은 국내 어느 산업보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2018년 말 기준 외국인 어선원은 전체 어선원의 43%를 넘어섰다. 나이든 한국인 어선원들을 대신해 고되고 힘든 일을 맡고 있는 것은 이주노동자들이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차별받는 부당한 현실을 견디지 못하고 배를 떠나는 이주노동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어선원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한국 어업의 미래가 사라지게 될 것이다.
- [포커스]최저임금 사각지대 이주노동자(2019. 01. 14 12:56)
- 2019. 01. 14 12:56 사회
- ㆍ실제 일한 시간만큼 월급 못 받아… 고용주가 임대하는 숙소는 너무나 열악 시간당 7530원. 2018년 최저임금은 우리 사회를 흔들었다. 일자리 증가율은 2017년에 비해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고소득층이 벌어들이는 돈은 늘어났지만 저소득층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저소득층을 위해 올려놓은 최저임금이 오히려 그들의 일자리와 소득을 악화시키는 요인의 일부가 됐다. 캄보디아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이 3년 7개월간 거주한 숙소. 비닐하우스 안에 가건물을 설치해 숙소를 만들었다. / 이주노동자 제공 2017년 최저임금 6470원에서 2018년 16.4%가 올랐을 때 우리 사회는 자영업자와 그들의 종업원 일자리 문제에 모든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그들의 담론 밖에도 ‘사람’이 있었다. 일한 것보다 적다고 항의하자 해고 당해 대한민국 사회에서 합법적으로 일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는 50만명이다. 이주노동자를 빼고서는 각종 제조업, 농·축산·어업, 건설업 분야 노동자의 근무실태를 언급할 수 없다. 그러나 이들은 최저임금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암울한 영역에 머물러 있다. 주당 노동시간이 지켜지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법으로 정한 휴게시간도 챙길 수 없다. 자신들이 법정 최저임금을 보장받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경우도 많다. 설령 알아도 고용주에게 항의할 수 없다. “그만두겠다”는 말을 하고 다른 일자리를 구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무단으로 사업장을 이탈할 경우 출입국관리소에 붙들려간다. 최악의 경우에는 일한 만큼의 대가도 받지 못하고 강제로 출국당할 수도 있다. 캄보디아에서 온 이주노동자 A씨와 B씨는 지방의 한 농장에서 쌈용채소를 비롯한 농작물을 심고 따는 일을 했다. 2015년부터 3년 7개월 동안 한 곳에서 근무했다. 그들은 지난해 10월 고용주의 일방적 계약 해지로 농장에서 쫓겨났다. 월급이 일한 시간에 비해 적다고 항의했다는 이유에서였다. 달력에 차곡차곡 작성해 온 근무시간 곱하기 7530원을 했을 때 나오는 월급과 고용주가 지급한 돈의 액수 차가 너무 컸다. 고용주는 A와 B가 항의한 날 저녁 해고를 통보했다. 또 이들이 거주하던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바로 짐을 싸서 나가도록 했다. 너무 늦었고, 갈 데가 없으니 가더라도 다음날 가겠다는 이들에게 고용주는 “오늘로 (너희) 근로자 끝(고용계약 해지) 했어. 싸인했어. 왜 여기서 자? 마음 안 좋아(기분 나쁘다) 사모님. 가 얼른. 택시 타고 가”라고 했다. 하루아침에 갈 곳이 없어졌다. 지난 3년 7개월간 이들의 생활은 인간의 기본적인 삶과 거리가 멀었다. 숙소는 밭 위에 설치된 비닐하우스 안에 세운 가건물이었다(사진 참고). 여기에 이주노동자 8명이 살았다. 태국 출신 불법체류자 4명과 합법적으로 고용된 캄보디아 노동자 4명이었다. 숙박비는 1인당 월 30만원. 비닐하우스 한 채에 8명의 이주노동자가 거주했다. 캄보디아 노동자 4명이 고용주에게 낸 숙박비는 120만원이었다. 나머지 태국 출신 동료들이 숙박비로 얼마를 내는지는 물어보지 않아 알지 못했다. B씨는 “우리는 태국 불법체류자 잘 몰라. 기숙사비 태국 사람은 얼마 몰라. 그 사람들 월급 140만원 받았다”라고 했다. 그들도 동일하게 30만원씩 숙박비를 냈다면 월 240만원짜리 기숙사였다. 그러나 숙소는 냉방도, 난방도 되지 않았다. 지난해 사상 최악의 찜통더위 속에서도 이들은 선풍기로 버텼다. 선풍기를 틀어도 더운 공기가 몰려와 큰 대야에 찬 물을 담아 선풍기 바람을 쐬는 방식으로 찬바람을 만들어보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밤새 잠을 자지 못한 채 새벽 6시부터 농장에서 작업을 시작했다. 점심시간 1시간을 제외하고 꼬박 11시간을 일하고 돌아와서도 찌는 듯한 더위 때문에 쉴 수 없었다. 비닐하우스 내부가 시원할 수 없었다. 겨울은 너무 추웠다. 가건물 바닥에 깔린 열선 덕분에 등을 댄 바닥은 뜨거웠지만 공기가 너무 차가웠다. 단열이 되지 않았다. 숨을 쉬면 얼음장 같은 공기가 코 안으로 들어왔다. 추위 때문에 머리가 아파 모자를 쓰고 수건을 온몸에 두른 채 잠을 청했다. 3년 7개월 동안 1866만원 덜 받아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17년 9월 27일 이주노동자가 사업장 변경 요청을 할 수 있는 요건으로 ‘열악한 기숙사 상태’를 추가하는 등의 내용으로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 법률안’을 대표발의했으나 국회 법사위를 거치면서 이 부분은 삭제됐다. 이들이 쫓겨나기 전까지 농장에서 일하고 받지 못한 돈은 1인당 1866만2490원이다. 매일 달력에 출·퇴근시간을 기록한 자료를 근거로 이들이 월별로 근무한 총 시간은 311.5~332.5시간에 달했다. 여름 노동시간은 길고, 겨울로 갈수록 짧아졌다. 2017년 9월 한 달간 332.5시간(약 28일)을 일하고 이들이 손에 쥔 임금은 165만5200원이었다. 2017년 최저임금 6470원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49만6075원이 부족한 액수다. 2018년 7530원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더 차이가 난다. 매달 50만원 가까운 돈을 받지 못했다. 이들의 취업비자는 2019년 2·3월이면 각각 만료된다. 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미등록 상태로 남아 고용주를 상대로 미지급분 임금을 받아낼 것인지, 해고 예고수당 한 달치만이라도 받고 돌아갈지 아직은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어쩌면 기나긴 소송을 시작해야 할지도 모른다(법원 판례는 이주노동자가 소송으로 인해 체류기간이 늘어날 경우, 소송이 끝날 때까지 체류를 허용하고 있다). 캄보디아 이주노동자들이 김이찬 ‘지구인의 정류장’ 대표와 자신들이 살았던 숙소 사진을 보고 있다. / 류인하 기자 C씨는 지난해 3월부터 경기도의 한 농장에서 채소 재배 일을 하다 7개월 만에 농장을 나왔다. 고용주는 C씨가 일한 시간을 속여 표준근로계약서를 작성했다. 하루 10시간, 휴일도 거의 없이 한 달 28~29일을 일했지만 표준근로계약서 상의 소정 월 노동시간은 208시간으로 적혀 있었다. C씨가 받았어야 할 돈은 월 210만원이었지만 실제 받은 돈은 156만원에 불과했다. 한 달 평균 42만~63만원이 모자랐다. 또 동의하지 않은 수습기간을 임의로 정해 그나마 다 주지 않았다. C씨가 7개월간 받지 못한 임금은 355만6520원이었다. 그러나 농장주는 돈을 주지 않고 해고했다. 그는 “고용센터에 종료신고를 해버렸다. 더 이상 여기서 일하면 불법이다”라며 C씨를 쫓아냈다. C씨의 농장 고용주는 꾸준히 C씨에게 ‘상계계약서’라는 것을 작성하게 했다. 계약서에는 ‘갑과 을은 서로 상대방에 대하여 갖고 있는 채권·채무를 입사 시로 소급하여 상계하기로 합의한다’, ‘갑과 을은 제1조의 채권·채무에 관한 기한의 이익을 포기하고 이를 상계하는 데 자유의사에 기해 동의한다’, ‘갑과 을은 민사상 제소, 형사상 고소·고발 및 행정상 진정·소송·신청 등 어떠한 청구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을 보증한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또 매일 2시간씩, 월 56시간씩 일한 임금을 기숙사비 및 식료품비 명목으로 가져간다고 명시했다. 2018년 기준 매월 56시간분의 임금 42만1680원을 고용주가 임의로 가져가겠다는 의미다. C씨는 매달 이 계약서에 서명을 해왔다. 백도현 노무법인 노엘 고문은 “노동자의 임금은 전액불(全額拂) 원칙에 따라 회사가 임의상계를 할 수 없다”면서 “이 상계계약서 조항대로라면 노동자의 최저임금이 올라갈수록 기숙사비도 연동해 올라간다는 말인데 애초에 이런 문건 자체가 효력이 있을 수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C씨는 체불임금을 고용주로부터 받아낼 수 있을까. A씨와 B씨 역시 1800여만원에 달하는 임금을 받아낼 수 있을까. 이주노동자 지원센터 ‘지구인의 정류장’의 김이찬 대표는 “어떤 근로감독관을 만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했다. 이주민 노동자 지원센터인 ‘지구인의 정류장’ 사무실 한 편에 붙어 있는 최저임금 기준표. / 류인하 기자 소송 증거자료 확보 현실적 어려움 이주노동자가 아무리 매일 달력에 근무시간을 기재하고 출·퇴근 영상, 작업 영상을 촬영해 미지급분 임금청구 신청 증거를 만들어놔도 고용주가 “사후에 조작된 증거다”라고 버티면 달리 받아낼 방법이 없는 게 현실이다. 김 대표는 “어떤 감독관은 노동자가 제출한 증거에 대해 사업주가 ‘조작이다’라고 주장하면 ‘조작이라는 증거를 가져와보라’는 식으로 좀 더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분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분도 있다”고 말했다. 반면 외국인노동자밖에 고용할 수 없는 농어촌지역이나 열악한 제조업분야의 상황을 고려해 애초에 최저임금을 대한민국 국민과 동일하게 적용하는 게 무리가 아니냐는 주장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주노동자에게까지 최저임금을 모두 보장해주면 ‘값싼’ 인력을 고용하는 이점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실제 중소기업중앙회는 지난해 7월 ‘외국인노동자 수습제’를 공개적으로 제안하기도 했다. 이주노동자에게 수습기간을 도입해 수습 1년차에는 최저임금의 80%를, 2년차에는 90%, 3년차에 100%를 지급하자는 내용이다. 이주노동자를 1년간 고용해 최저임금의 80%를 지급하고 일방적으로 해고해도 ‘외국인노동자 수습제’에 따르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엄용수 의원 등 자유한국당 소속 의원 11명은 지난해 8월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과 ‘최저임금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외국인노동자가 일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농가의 부담이 커졌으므로 외국인 노동자는 내국인과 최저임금을 차등적용해 농가의 부담을 경감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지난 1월 7일 경기 안산지역에서 소규모 건설업을 하고 있는 최모씨(54)를 만났다. 그 역시 이주노동자를 고용하고 있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사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 않느냐’고 물었다. 최씨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사업이 망하고 있다는 뉴스는 나도 들어서 안다”면서 “그런데 이주노동자에게 최저임금도 줄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한 사업체라면 애초에 망하는 게 맞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2019년 시간당 최저임금은 8350원이다.
- 특집
- [렌즈로 본 세상]‘노동자의 권리’찾은 이주노동자(2015. 08. 24 16:21)
- 2015. 08. 24 16:21 사회
- 차별과 천대, 억압으로 이 땅에서 눈물의 세월을 보낸 이주노동자들이 드디어 서울지방고용노동청으로부터 노조설립신고필증을 받았습니다. 2005년 4월 24일에 노조를 만든 이후 무려 10년 4개월 만인 8월 20일 합법노조 지위를 부여받은 것입니다. 불법체류에 따른 강제추방, 업주들의 임금체불과 인권억압 등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미등록노동자도 노동법에서 정한 똑같은 노동자라는 것을 인정받은 이들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퍼집니다. 한국 노동자들과 똑같이 이들도 노동과 관련된 모든 권리를 보장받아 이 땅에서 행복한 한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빌어봅니다.
- 렌즈로 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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