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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만 드러낸 통합…제3지대 웃음거리로 만든 이준석·이낙연
차이만 드러낸 통합…제3지대 웃음거리로 만든 이준석·이낙연(2024. 02. 23 15:30)
2024. 02. 23 15:30 정치
반국민의힘·반민주당만 합창하다 한계 드러내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왼쪽)와 이낙연 새로운미래 공동대표. 연합뉴스 11일. 만남부터 결별까지 걸린 시간이다. 막장 드라마 속 연인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의 정치개혁을 이끌겠다고 나선 이준석, 이낙연 두 정치인이 함께 만든 현실이다. 정치에서 ‘신뢰’를 기대하기 어려운 시대지만 이들은 ‘구태정치 타파’를 명분으로 모였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럼에도 과거 제3지대의 행태를 답습하며 자신들이 혐오한 정치를 그대로 재현했다. 명분, 능력 측면 모두에서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제3지대 ‘빅텐트’가 초기에 찢어지며 정치적 계산은 복잡해졌다. 국민의힘, 민주당의 대안으로 개혁신당이 떠올랐지만 다시 선택지는 넓어졌다. 제3지대 통합이 만들 파급력을 기대한 입장에선 악재일 수밖에 없다. 특히 여전히 이준석 대표를 중심으로 모여 있는 개혁신당은 확장성의 한계만 드러냈다. 류호정 전 정의당 의원, 배복주 전 정의당 부대표 등이 대표하는 세력과는 함께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이준석 대표 주요 지지층이 요구하는 바와도 일치한다. 문제는 추후 이준석 개인 지지세력과 개혁신당에 합류한 나머지 세력 간 의견이 엇갈릴 경우다. 결별 사태가 재현되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없다. 총선까지 함께 가더라도 늘 불안한 상황이 이어질 것이란 의미다. 한계를 드러낸 것은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이낙연 새로운미래 공동대표 역시 마찬가지다. 개혁신당에 들어갔다 나오며 확장력은 더욱 쪼그라들었다. 실제로 같은 민주당 출신인 ‘원칙과상식’에서 김종민 새로운미래 공동대표만 이낙연 대표를 따라나섰다. 이원욱, 조응천 의원은 이낙연 대표와 다른 길을 선택했다. 동시에 이낙연 대표가 추구하는 정치도 더욱 불분명해졌다. 그는 개혁신당과의 결별을 발표하며 “진짜 ‘민주당’을 세우겠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대표 출신인 이준석 대표와 손잡은 지 11일 만이다. 혼란한 정체성은 기회주의라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지향점이 분명치 않다면 정책 공약이라도 선점해야 하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제3지대에 모인 이들이 각자 당선 외에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제대로 알려진 바가 없다. 반국민의힘, 반민주당이 이들을 연결하는 사실상 유일한 고리다. 이마저도 당권을 놓고 양보와 타협이 불가능한 모습을 보이며 이들의 연대가 얼마나 허술한지를 보였다. 한국 정치를 개혁한다며 요란하게 시작했지만 제3지대는 시작부터 시험대에 올랐다. 이들은 왜 만났고, 왜 헤어졌나 “부실한 통합 결정이 부끄러운 결말을 낳았다”, “참담한 마음으로 국민께 사과드린다.” 지난 2월 20일 결별을 두고 각각 이낙연, 이준석 대표가 남긴 말이다. 개혁신당은 크게 4개의 정치세력(개혁신당·새로운미래·새로운선택·원칙과상식)이 모여 구성했다. 이들은 기존에 몸담았던 정당이 다르고 정치적 지향에서 완전한 합의를 이룬 적도 없다. 이는 이낙연 대표의 “신당 통합은 정치개혁의 기반으로 필요했다. 그래서 크게 양보하며 통합을 서둘렀다”는 설명을 통해 추론해 볼 수 있다. 쉽게 말해, 화학적 결합보다 총선을 겨냥한 물리적 결합에 가까웠다는 의미다. 제3지대의 이러한 통합을 두고 평론가들은 ‘묻지마 통합’이라고 입을 모은다. 김능구 폴리뉴스 대표는 그 원인으로 세 가지 동기를 지적했다. 첫 번째는 여론조사 결과에서 발견되는 독특성이다. 제3지대에 관한 지지와 제3지대를 표방한 세력에 대한 지지가 일치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여론조사에서 제3지대를 지지한다는 응답은 20% 가까이 나왔지만 제3지대를 표방한 정당에 대한 지지율은 1~3%에 그치는 식이다. 이러한 결과가 이들이 서둘러 묻지마 통합을 하게 한 첫 번째 동기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두 번째는 두 거대 정당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의 움직임이다. 제3지대는 이들 정당의 공천 잡음을 배경으로 통합을 시작하려 했지만 각 정당의 ‘컷오프’ 통보가 예상보다 늦어졌다. 결국 현역 의원 영입 등의 정치적 선전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워진 상황에서 우선 통합부터 시행했다는 의미다. 마지막 세 번째는 시점이다. 홍보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설 명절 앞에 통합을 발표하려다 보니 ‘대화와 설득’ 보다 일단 ‘양보’를 전제로 통합을 했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이를 종합해 “많은 것을 덮어둔 생존권 차원의 통합”이라고 비판했다. 의도야 어떻든 유례를 찾기 어려운 보수·진보의 통합인 만큼 이들이 만들 시너지에 대한 기대는 컸다. 묻지마 졸속 통합이라고 해도 총선이 50여 일 앞으로 다가온 시점에서 굳이 합의를 깨지는 않을 것이란 기대도 있었다. 그럼에도 이들은 결별을 선택했다. 왜 깨질 수밖에 없었느냐 역시 분석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앞서 주간경향은 1566호에서도 제3지대 통합 문제를 다뤘다. 당시 내부 사정에 정통한 인물, 전문가를 두루 만났는데 그중 유일하게 이준한 인천대 교수만 “개혁신당이 몇 주 사이에 깨질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예측했다. 그에게 다시 왜 그렇게 확신했는지 물었다. 이 교수는 “깨진 것이 놀라운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합당한 것이 놀랍지 않냐”며 “자꾸 결별 사유로 배복주니, 류호정이니 노선이 다르니 하는 거창한 말들을 하는데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좋겠다. 계산기를 두드려 보니 통합하기 전과 후의 결괏값이 달랐단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의 예측에는 나름의 근거가 있다. 첫 번째는 이준석, 이낙연 두 대표 모두 당의 전권을 노리는 인물이다. 어느 한쪽이 완전히 굴복하지 않는 이상 애초에 공존할 수 없다고 봤다. 두 번째는 이들을 제외하더라도 개혁신당에는 유독 한국 정치에서 개성이 강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이는 이들이 기존 정당에서 탈당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이해하기 쉽다. 마지막 세 번째는 이들의 이해관계를 초월할 정치적·이념적 지향점이 없었다는 점이다. 이 교수는 “오히려 최대한 빨리 정리된 것이 이들로서는 다행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빨리 깨진 것이 다행’이란 분석을 내놓은 것은 이 교수뿐만이 아니다. 새로운미래 측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이낙연 대표 쪽은 자신들이 연배도 높고, 정치 생활을 더 오래 했으니 예우를 할 것이란 순진한 기대가 있었던 것 같다”며 “차라리 지금 나오는 것이 민주당 쪽 문제의 반사이익을 거둘 확률이 더 높을 수 있다”고 말했다. 가치는 사라지고, 정치공학만 남았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가 지난 2월 21일 국회에서 열린 양정숙 의원 입당식에서 당 지도부와 함께 손뼉을 치고 있다. 연합뉴스 결별사태로 인한 관심은 이제 ‘제3지대의 존재감이 사라지느냐’, ‘총선의 핵심 변수로 다시 떠오르느냐’에 맞춰진다. ‘통합’을 화두로 삼았던 개혁신당과 새로운미래는 이제 정치적·이념적 ‘차이’를 강조하며 재기를 도모하려 한다. 개혁신당은 합당 파기 바로 뒷날인 지난 2월 21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지도부 전원이 당 상징색인 주황색 옷을 맞춰 입고 나왔다. 이준석 대표는 “최고위에서 우리의 지향점은 ‘진짜 민주당을 만들겠다’는 목적과는 다르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새로운미래와의 합당에 반발해 탈당한 당원들의 복당 신청을 받기 시작했다. 광범위한 통합에서 기존 지지층을 지키는 전략으로의 선회했다. 이는 비례선거와 같은 전국단위 투표에서 안정적인 득표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문제는 이러한 조치가 이준석 대표 개인의 정치적 기반을 결집하는 것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쉽게 말해, 도로 ‘이준석 당’이란 의미다. 이준석 대표가 국민의힘 당대표일 때 상근부대변인을 맡았던 신인규 변호사는 “냉정하게 말해 지금 개혁신당에 남은 사람들은 제3지대 같은 대의보다 본인 선거에 필요한 이준석 영향력을 기대하는 것 아니냐”며 “이렇게 보면 윤석열, 이재명이라는 두 지도자가 당을 사유한 상황과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더욱 심각한 것은 애초에 이준석 대표는 문제를 관리하고 조정할 능력이 없음을 보여왔음에도 누구도 지적하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라며 “이번 결별은 이준석 대표가 선거에서 벌어질 몇몇 전투는 승리할지 몰라도 결국 전쟁에서는 질 것이란 점을 예견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교수 역시 “이제 개혁신당은 제3지대 통합정당이라기보다 이준석 당이라고 봐야 한다”며 “과연 선거가 끝날 때까지 이 결합이 유지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낙연 새로운미래 공동대표가 지난 2월 22일 국회에서 인재영입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새로운미래 역시 사정은 비슷하다. 민주당 정체성을 언급하며 통합과는 멀어지는 중이다. 그런데 이는 민주당 내 공천 관련 잡음과 맞물리며 묘한 기류를 형성하고 있다. 실제로 민주당에서는 이른바 ‘이재명표 혁신 공천’을 두고 ‘비이재명(비명) 학살 불공정 공천’이란 반발이 나오고 있다. 이로 인해 탈당하는 현역 의원도 나왔다. 의정활동 평가에서 하위 20%를 받은 김영주 의원이 대표적이다. 통보가 이어지고 있는 만큼 추가 이탈자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이재명 대표에 대한 불만이 커질수록 부각되는 것은 그와 대척점에 선 이낙연 대표다. 김 대표는 “이제 새로운미래가 살길은 민주당 공천 내분이 어디까지 확대되느냐에 달려 있다”며 “이낙연 대표가 정통 민주당을 언급한 만큼 앉아서 죽느니 나가겠다는 사람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확장력이다. 민주당에서 컷오프된 현역 의원 몇몇의 합류로 독자적으로 존립 가능한 정당이 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결국 경쟁력 있는 지역구 출마자를 낼 수 있어야 하는데 이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이탈자를 받는 것조차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이 교수는 “민주당에서 컷오프된 사람들은 탈당해도 선거에서 이긴다는 보장이 없다는 점이 고민일 것”이라며 “차라리 당 내부에 머물며 선거가 끝난 뒤 이재명 책임론을 주장하는 편이 더 나을 수 있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가 개혁신당과 결국 다시 손을 잡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양쪽 모두 지역구 출마자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없는 만큼 비례선거는 각자 치르되, 지역구는 선거연대를 할 것이란 주장이다. 이준석 대표 역시 “우리는 언제나 새로운미래와 열린 입장을 가져갈 것”이라며 여지를 남겼다. 한 내부관계자는 “결별 과정에서 국민의힘, 민주당이 아닌 선택지를 요구하는 민심이 큰 만큼 지역구는 단일 후보, 비례는 각자 가는 방향으로 정리하자는 논의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며 “아직 총선까지 시간이 많이 남은 만큼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제3지대는 통합, 개혁 등을 외치며 시작했지만 이들의 미래는 정치공학, 선거전략에 달린 상황으로 변해 가고 있다.
이준석·이낙연 제3지대 빅텐트 실현될까
이준석·이낙연 제3지대 빅텐트 실현될까(2024. 01. 05 13:00)
2024. 01. 05 13:00 정치
연말·연초 여론조사 두 신당 합쳐 20% 내외 지지…‘양당체제 파열구’ 결과로 이어질까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와 가칭 ‘개혁신당’ 지도부가 지난 1월 1일 서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에 참배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새해 첫 업무일인 1월 2일 오후, 서울 여의도를 찾았다. 중앙선관위에 등록된 대부분의 정당은 국회도서관 건너편 블록에 모여 있다. 이날 오전 부산 가덕도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피습사건이 벌어진 탓인지 거리는 한산해 보였다. 신년을 맞아 플래카드가 내걸린 곳도 없었다. 이날 국회 앞 여의도를 찾은 것은 신당들의 움직임을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 측이 계약한 것으로 알려진 한양빌딩은 아직 공실로 남아 있었다. 과거 오랫동안 한나라당·새누리당사가 있던 곳이다(이곳을 떠난 국민의힘은 2020년 켄싱턴호텔 맞은편 남중빌딩을 매입해 현재까지 입주해 있다).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끌던 새정치국민회의 당사가, 2004년에는 당시 돌풍을 일으키며 10명의 당선자를 배출한 민주노동당이 이곳에 입주해 있기도 했다. 기자와 통화한 이낙연 전 대표 측은 “신당 당사 계약은 10층으로 한 것으로 안다”며 “이제 막 계약만 했을 뿐 아직 집기를 들이거나 하진 않아 올라가봤자 아무것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오전 발생한 ‘이재명 피습’ 사건이 신당 추진 일정에 차질을 빚지 않겠냐는 관측에 대해 그는 “며칠 정도 일정이 딜레이되는 것은 있겠지만, 큰 방향에서 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원칙과 상식 등 민주당 내 비명계 인사들의 합류도 당장은 어렵겠지만, 1월 말 정도 시점이 되면 어느 정도 입장이 정리되지 않겠냐고 덧붙였다. ‘강서구 당사’서 시작하는 이준석 신당 이준석 전 국민의힘 당대표가 추진 중인 (가칭)개혁신당의 당사는 특이하게도 국회 앞 여의도에 마련돼 있지 않다. 이 전 대표가 탈당 선언을 한 2023년 12월 27일 창당준비위원회를 신고한 것으로 돼 있는 이 당의 소재지는 ‘강서구 공항대로 396 귀뚜라미빌딩 3층’으로 돼 있다. 대표자도 당대표실 부실장을 지낸 조용환으로 돼 있다. 선관위에 신고된 활동기간 만료일은 2024년 6월 27일. 창준위 체제로 시작한 창당작업에 주어지는 시간은 6개월로 돼 있기 때문에 설정된 기간이다. 지난 1월 3일 기자와 통화한 조용환 부실장은 “창당 절차가 그렇게 간소하지 않아 임시로 창준위원장을 맡았다”며 “1월 4일이나 5일 중으로 천하람·이기인·허은아 전 의원 세 사람이 공동창당준비위원장을 맡는 것으로 변경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1월 4일 중앙선관위 대표자 정보는 위 세명이 맡는 거로 변경됐다.) 조 부실장의 말이다. “현재 당사로 등록한 곳은 업무 편의상 임시방편으로 서울시당과 겸한 것이다. 중앙당사 사무실은 새로 알아보는 중이다. 여러 곳을 알아보고 있는데 조만간 계약할 것이다. 기존 정당들이 여의도에 중앙당사를 둬야 하는 것처럼 돼 있는데 꼭 여의도에 중앙당이 있어야 한다는 법은 없는 것 아닌가.” 그는 ‘여의도 생활 20년’ 해본 경험으로 미뤄 특히 주차 문제 등에서 여의도 당사의 불편한 점도 고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국회에서 너무 멀면 또 언론 접근성 등이 떨어질 수도 있으니 여러 상황을 고려해 당사를 선정하려 한다.” 1월 초 신당 관련 가장 큰 이슈는 현재 각각 추진 중인 이낙연 신당과 이준석 신당의 연대 가능성이다. 1월 2일 오전과 오후 CBS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에 각각 출연한 이낙연·이준석 전 대표는 연대 가능성에 대해 열어놓는 발언을 했다. “양당 정치의 최악 폐해를 끝내자는 뜻에 동의한다면 누구와도 협력해야 한다.”(이낙연, <김현정의 뉴스쇼>), “이낙연 전 총리의 뜻이 정치 개혁에 있다면 저는 그 방향성에 대해 충분히 서로 얘기해 볼 계제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이준석, <박재홍의 한판승부>) 양측이 물밑 접촉을 하고 있다는 것은 여러 경로로 확인되고 있다. 하지만 공식적인 만남은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준석 전 대표가 천하람·이기인 등과 함께 진행하는 유튜브채널 ‘여의도재건축조합’을 통해 잠재적인 연대 상대인 다른 신당 측 인사들과 대담형식의 토론 영상 공개 방식을 ‘실황중계’ 중인 반면, 이낙연 전 대표 측의 움직임은 거의 외부에 노출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 12월 30일 전격적으로 이뤄진 ‘명낙회동’의 경우도 라디오에 출연한 이낙연 전 대표가 밝힌 바에 따르면 자신이 인터뷰하는 와중에 이재명 전 대표로부터 전화와 문자가 와서 기자들에게 이야기를 들으니 “(자신을 만나러 이재명 대표가) 사무실로 오거나 집으로 찾아오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해 ‘무리할 필요가 있느냐, 내일이라도 시간을 정해서 만나자’라고 해 이뤄진 자리”였다(위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이낙연의 발언). 이낙연 대표 측의 행보가 전형적인 기존 정치권 문법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면, 이준석 전 대표의 움직임은 지역구 갈빗집 탈당 선언부터 기존 정치문법을 깨는 형태로 계속 이어지고 있다. 여론조사서 존재감 드러낸 ‘제3신당들’ 연말·연초 진행된 여러 여론조사에서 이낙연·이준석 신당은 아직 구체화되지 않았음에도 상당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리서치뷰가 지난해 12월 29일부터 31일까지 사흘간 벌인 정기여론조사에서 신당이 출현할 경우 민주당은 35%, 국민의힘은 31%, 정의당 3% 그리고 이낙연 신당은 8%, 이준석 신당은 11%의 지지를 얻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당을 제외하고 조사했을 때는 민주당이 44%, 국민의힘이 39%, 정의당이 2%였다. (전국 18세 이상 1000명 대상 RDD무선 100%, 응답률 3.7%,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아직 두 신당 추진 세력의 실체도 불분명한데 두 당을 합쳐 20% 안팎으로 나온다는 것은 그만큼 기성정당에 대한 염증·불만족이 크다는 점을 반증하는 것이다. 신당 추진세력이 앞으로 구체화되고 뭔가 비전을 내놓고 인물들의 윤곽이 드러나면 2016년 안철수 국민의당 등장 때보다 파괴력이 더 클 수도 있다.” 위 조사를 진행한 안일원 리서치뷰 대표의 말이다. 민주당과 국민의힘 양당에서 ‘원심력’이 작동할 변수가 아직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 상황 변화에 따라 신당에 몰리는 구심력은 지금보다 훨씬 더 커질 수 있다는 진단이다. 안 대표의 말이다. “지금 국민의힘은 영남물갈이론이 대두되면서 현역 의원들이 보좌진을 데리고 지역구에 내려가 올인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국민의힘에서 기득권으로 찍힌 의원들은 좌불안석인 상황이다.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수박으로 낙인찍힌 수십명의 의원 지역구에 이른바 ‘친명자객’들이 출사표를 던지고 있다. 여러 지역 여론조사를 보면 지금 비명 현역 중 그나마 버티고 있는 사람은 홍영표 정도뿐이다. ‘원칙과 상식’에 참여하고 있는 네 의원(김종민·윤영찬·이원욱·조응천) 모두 회생불가로 나오고 있다. 친명 후보가 강세를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 예컨대 강력한 ‘친명 스피커’로 거론되고 있는 김어준 유튜브 방송의 구독자가 140만명인데, 평균 조회 수가 1콘텐츠당 100만 회다. 단순 계산하면 한 지역구당 4000명씩 있는 셈인데, 과거 권리당원 ARS투표가 40~50% 정도 나온다. 민주당 강성 친명 지지층이 한 지역구의 40%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ARS조사 특성상 비명 현역은 이길 수 없다. 여기에 현역한테 하위 20% 감점이 주어지는 반면 친명 신인의 경우 신인 가산점이 주어진다. 따라서 비명·반명은 십중팔구 날아간다고 봐야 한다. 결국 위기감을 느끼는 의원들은 경선이 시작되기 전 거취를 심사숙고할 것이고, 그런 것이 민주당에 남아 있는 악재라고 봐야 한다.” ‘이재명 피습’의 나비효과: 여당기조 변화 반면, 연초에 벌어진 이재명 피습이라는 악재가 당내 비명의 행보를 제약하게 되리라는 지적도 나온다. 공희준 시사평론가는 “이재명 지지층은 이전부터 결속될 대로 결속된 반면 정치라는 것은 어떤 속도를 얻었을 때 가속이 붙어야 움직일 수 있는데 한번 주춤하면 동력이 상당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적어도 언론에 이름을 올린 비명계 정치인은 이재명 피습으로 당을 나가기는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사건이 미치는 파장이 당내 비명계뿐 아니라 정부·여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체제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정부·여당이다. 한동훈 비대위까지 정부·여당에는 ‘이재명 때리기’ 이외의 플랜B가 없었다. 오로지 이재명을 사법처리하면 선거에서 이긴다는 미신 혹은 착각·환상에 빠져 있었다. 결국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은 ‘이재명 때리기’에서 ‘운동권 카르텔 때리기’로 앵글을 바꾸기만 했는데 문제는 이것이다. 역대 어느 집권세력도 야당 때리기만으로 선거에서 이긴 적이 없다. 2020년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여당이었고, 정권의 중간평가 성격의 총선임에도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야당, 즉 미래통합당을 잘 때려서가 아니라 사실상 선대위원장이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이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코로나19 위기관리의 대내외적 성공 덕분인데, 지금 정부·여당이 윤석열판 정은경을 발탁할 수 있겠나. 정은경이 있어야 할 자리에 한동훈이 있는 것 아닌가.” 그는 이재명 피습사건으로 이낙연 대표의 신당 행보가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제3신당의 추진 주체는 양·금·석(양향자·금태섭·이준석) 트리오가 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주간경향이 접촉한 선거전문가·정치평론가들은 4월 총선에서 제3신당이 의미 있는 자리를 가지기 위한 현실적 목표로 기호 3번을 달고 나올 수 있느냐가 1차 관문이 되리라는 의견에 대체적으로 동의했다. 이준석 전 대표는 지난해 11월 주간경향과 인터뷰에서 탈당 이후 자신이 만들 신당의 경로에 대해 “적어도 원내교섭단체 규모의 21대 현역 의원들과 같이해야 선거토론 등에서 3분의 1 지분이 생긴다”며 자신과 뜻을 같이할 현역 의원이 여야에서 상당한 규모로 나타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1월 4일 현재 현역 의원의 추가 탈당 선언은 그러나 비례 허은아 의원(1월 3일)이 유일하다. 비례의원의 경우 탈당과 동시에 의원직은 상실하게 되고 비례명단의 후순위 의원에게 승계된다. 현재 추진되는 신당 중 현역 의원이 있는 경우는 양향자 의원이 대표를 맡고 있는 한국의희망이 유일하다. 최진석 서강대 명예교수와 양향자 의원이 주축이 돼 만들어진 한국의희망은 현재 추진 중인 신당 중에서 가장 먼저 창당 선언을 하고 활동하는 정당이다. 김진수 한국의희망 대변인은 “양향자 대표는 이준석 전 대표와 개인적으로 연락하는지 여부는 알 길이 없으나 이미 유튜브 채널을 통해 토론 영상을 찍은 적이 있고, 이낙연 전 대표는 대표 시절 최고위원으로 두루두루 관계를 형성하고 소통을 계속하는 편”이라며 “전체적으로 우선해야 할 과제를 제시한 것에 따라 공통분모가 있다면 어느 순간에 만나게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의희망은 지난 총선에서 조정훈이나 용혜인 등 민주당의 위성정당에 참여하는 형식의 신당 창당은 선거공학에 따른 것이지 국민 지지에 따른 것이 아니라고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창당기조였다”라면서도 “다만 앞으로 총선 일정이 구체화된다면 상황에 따라 예컨대 양당 기득권 정치 청산 요구가 나온다면 얼마든지 제3신당 빅텐트 논의 주체와 대화 및 협력은 가능하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23년 12월 30일 서울 종로구의 한 음식점에서 이재명 대표와 회동을 마친 뒤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제3지대 빅텐트’ 1월 말 윤곽나온다 “4월 총선에서 적어도 3지대는 ‘하나의 빅텐트’로 모이지 않는다면 어느 당이나 당선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 다시 여의도. 극동VIP빌딩 8층에 마련된 새로운선택 당사에서 한지원 정책실장을 만났다. “3지대 빅텐트에 대한 기본문제의식은 공유하고 있다. 다만 다들 누군가 상을 차려주기만 기다리고 있다. 상이 멋지다 싶으면 숟가락을 얹으려고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나서서 물밑작업을 하려 하고 있다. 우리 당 정도면 딱히 고수할 기득권도 없고 어느 쪽이든 부담스러워할 것이 없기 때문에 우리 당이 중재 역할을 하기에는 딱 적당한 사이즈가 된다고 본다.” 금태섭 새로운선택 공동대표 측이 나서서 “각자 지지층에 명분이 약하고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이낙연·이준석 신당 측의 물밑 공동대응을 중재하겠다는 뜻이다. 이낙연·이준석·금태섭·양향자, 정의당 세번째권력 등 현 제3신당 추진세력이 모두 함께하는 ‘제3지대 빅텐트’는 과연 만들어질 수 있을까.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이준석의 경우 과거 정치권 신당이 의존했던 지역주의가 아니라 세대 콘셉트로 가는데 열린우리당 등이 나왔던 20~30년 전에는 2030세대 유권자들이 57%를 차지한 반면 지금은 그 규모가 31%밖에 안 된다는 점이 불리한 부분”이라면서도 “당장 이번 총선만 목표로 삼지 않고 세월을 자신들 편으로 보면서 장기전으로 나간다면 승산이 없지도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이낙연의 경우도 ‘이재명은 아니다’라는 관점에서 결국 ‘답은 이낙연·이재명 중 하나일 수밖에 없다’라는 게임을 하고 있는 셈인데 이재명의 성공 내지 실패 여부에 따라 결과는 정반대일 수밖에 없는 승부수를 던진 것”이라며 “당장 90여 일밖에 남지 않은 총선 국면에서 두 세력이 합당까지는 어렵더라도 예를 들어 서울 종로는 A당, 중구는 B당이 출마하는 식의 상호지원·선거연대는 가능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분명한 사실은 이번 총선과 2026년 지방선거를 통해 보수·수구 기득권 세력이 독점하고 있는 양당체제가 깨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4월 총선은 말하자면 이후 새로운 정치지형 변화의 교두보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1월 중순 정치분석서 <이기는 정치학: 현실주의자의 진보집권론>을 낼 최병천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은 “‘의미 있는 제3신당’이라는 말은 상당히 넓은 결과를 포괄하는 말”이라며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이를테면 4월 총선에서 민주당과 국민의힘 양당 모두 과반을 못 하는 경우의 수도 있는데 만약 제3신당이 그런 결과를 만들어낸다면 그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여론조사별로 차이가 있지만, 이준석 신당의 지지율이 예컨대 10% 지지율이 나온다고 할 때 이걸 의석으로 환원하면 4.7석이다. 이준석이 목표로 설정한 원내교섭단체에는 못 이른다고 하더라도 의미 있는 결과다. 최대로 의미를 설정한다면 교섭단체(원내 20석) 이상을 얻는 것인데, 나는 이준석이나 이낙연 쪽 모두 교섭단체 이상 당선자를 내긴 어려우리라고 본다. 관전포인트는 2016년 안철수 국민의당이 얻은 38석이라는 성적표다. 당시 국민의당이 호남 전체 28석 중 20석 이상 석권했는데 이번에 만들어질 신당 중 그만큼의 퍼포먼스를 보여줄 가능성이 있을지 여부다. 거의 없다고 본다.” 민주당과 국민의힘 양당 중심으로 4월 총선이 치러질 가능성이 여전히 높고, 제3신당이 교섭단체 이상의 지지를 받기는 어렵겠지만 설혹 한 자릿수라도 국회 진출에 성공하면 나름의 의미는 있으리라는 진단이다. 김성순 시사평론가는 “정치인들이 흔히 빠지는 함정이 메시지만 내면 국민이 박수 치고 따라오리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라며 “예컨대 코로나19 시기 백신에 대한 루머가 돌 때 문재인 대통령이 팔 걷고 백신을 맞는 것도 하나의 메시지이고 국민의 행동을 이끌어내는 일이었다. 지금 신당을 추진하는 정치인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현장에서 국민과 함께 동고동락하지 않고, 자기들끼리의 여의도 문법에 따른 이합집산뿐”이라고 말했다. 정치공학적 표 계산에 따른 ‘제3지대 빅텐트’는 만들어질 가능성도 낮고 설혹 만들어져도 성공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낙연 측 남평오 연대와공생 부이사장은 “(이낙연 측과) 이준석 신당의 연대 여부는 결국 시대나 국민의 요구에 따를 수밖에 없지 않겠나”라고 덧붙였다. 각자 신당을 만들더라도 양당 기득권 청산이라는 대의에 따른 국민적 요구로 인해 결국 하나의 길에서 함께하게 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과연 그렇게 될까. 남 부이사장이 내다보는 이낙연·이준석 연대 시점은 설날(2월 10일) 전후다.
한동훈 등판·이준석 탈당…누가 살아남을까
한동훈 등판·이준석 탈당…누가 살아남을까(2023. 12. 29 16:00)
2023. 12. 29 16:00 정치
김건희 특검법까지 상정 세밑 슈퍼위크 향배에 촉각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해 12월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비상대책위원장 수락 연설을 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착각이다. 그가 놓인 상황은 공격수가 아니다. 9회말 투아웃 투스트라이크 상황에서 역전 만루홈런을 꿈꾸는 대타로 불려나온 것이 아니다. 수비수,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으로 불려나온 구원투수다. ‘9회말 투아웃 투스트라이크’ 상황도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를 야구로 비유한다면 1년 8개월째다. 9회가 아닌 3회말이나 4회초다. 경기 초반부터 온갖 실책으로 무너진 셈이다. 아마추어 경기라면 콜드게임을 우려해야 하는 처지다. 정권의 지지기반인 보수매체 칼럼니스트들도 경고한다. 2024년 총선에서 지면 윤 대통령이 물러나야 하는 상황이 될 것이라고. 세밑 슈퍼위크였다. 크리스마스 다음 날, 국민의힘 당사에서는 한동훈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 취임식이 열렸다. 이튿날, 이준석 전 대표는 지역구인 노원구의 숯불갈빗집에서 탈당과 신당창당계획 기자회견을 열었다. 12월 27일은 12년 전, 그가 현 국민의힘 전신 한나라당에 입당한 날이다. 그리고 다시 국회. 김건희 특검법이 상정됐다. 원내 1당인 민주당과 정의당, 야권의 시간이었다. 4월 총선을 넘어 윤석열 정권의 남은 정치적 시간과 구도를 정초(定礎)하는 세밑 ‘슈퍼위크’였다. 누가 결국 살아남아 승자가 될까. 9회말 투아웃 대타…한동훈의 착각? “묻고 싶다. 586을 척결하면 나라가 흥하나. 제2의 윤석열은 될 수도 없고 성공할 수 없다. 윤석열은 지난 대선 때 정치 문외한으로 나타나 반문재인·반이재명으로 대선을 치렀다. 반민주당·반이재명으로 총선을 치르려 하면 안 된다. 1년 8개월 국정을 운영했고,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면에서 어려워진 상황이다. 국민과 소통하지 않고 일방주의 국정운영으로 빨간불이 켜져 실망감과 분노·허탈이 자리 잡았는데 답을 줘야 할 사람이 그에 대해서는 하나도 이야기하지 않으면서 대통령은 대통령의 길, 당은 당의 길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가면 지난 총선보다 국민의힘은 더 어려워질 수 있다.” 김능구 폴리뉴스 대표의 말이다. 그는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최적의 선택이었나”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고 말했다. “차라리 원희룡이 나았다고 본다. 당 사정도 알고 당내 소장개혁파 경력도 있다. 최고위원으로 지도부 활동도 해봤고, 단체장·장관도 해봤다. 부동산 문제 심각성도 알고 있고, 김건희 여사 양평 특혜 논란은 국토부 장관을 맡아 온몸으로 겪었다. 비대위원장이나 공관위원장은 당을 잘 알면서도 이미지가 망가지지 않은 사람이 맡았어야 했다.” 정치권 주변 국민의힘 쪽에서 한동훈의 등판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대부분의 추측은 그러나 비상대책위원장이 아니라 공동 선대위원장이었다. 원희룡이나 박민식 같은 장관 출신 정치권 인사가 비대위를 맡고, 공천관리위원장은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이 맡은 다음 한동훈 등이 공동선대위원장으로 참여하는 수순으로 내다봤다.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은 불과 2~3주까지만 하더라도 국민의힘 안팎에서 유력한 안이 아니었다. ‘비상상황’은 표면적으로는 김기현 대표가 험지 출마 또는 불출마라는 용산의 외압에 견디지 못하고 사퇴하면서 벌어졌다. 하지만 진짜 위기는 이대로라면 “4월 총선에서 서울은 6석밖에 못 건질 것”이라는 당 내부보고서가 외부로 유출되면서 터져나왔다. 4월 총선의 승부처인 서울·수도권 참패는 총체적인 패배를 뜻한다. 지금대로라면 야권 일각에서 주장하는 심판선거를 넘어 탄핵 선거가 되고 말 것이라는 위기감의 발로였다. 김기현 대표체제의 갑작스러운 붕괴 지난해 12월 26일 취임한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지역구로도 비례로도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선언은 동시에 승리를 위해서는 국민의힘 의원들도 희생하라는 메시지로 읽혔다. “공직을 방탄수단으로 생각하지 않는 분들, 특권 의식이 없는 분들만을 국민에게 제시하겠다”고 했다. 표면적으로는 사법리스크를 안고도 당대표 자리를 내려놓지 않고 있는 이재명 당대표에 대한 공격이지만, 동시에 자당 출마자들에게도 승리를 위한 ‘용기와 헌신’을 보이라는 압박이다. 한동훈은 과연 국민의힘 개혁에 성공할 수 있을까.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은 수락 연설에서 ‘개딸 전체주의, 운동권 특권세력’의 폭주와 같은 생경한 용어를 동원해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을 비판했다. 그런데 이 표현이 등장하는 책이 있다. ‘국내 최초 한동훈 분석서’라는 표식을 붙인 <73년생 한동훈>이라는 책이다. 한 위원장이 직접 인용은 하지 않았지만 책을 읽어보면 한 장관이 수락 연설에서 밝힌 많은 내용이 중첩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공포는 반응이고 용기는 결심”이라는 말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시내각 수상 처칠이 ‘?蝸?르크 철수’ 직후 하원연설에서 내놓은 표현이다. “상륙지점에서, 들판과 거리에서, 언덕에서 싸울 것이고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처칠의 격정적인 연설에 등장하는 장소는 호남을 필두로 한 전국 일곱 군데 지역으로 대체됐다. 처칠에 대한 언급이나 한 장관이 인용한 서태지와 아이들(한 위원장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데뷔곡 ‘난 알아요’가 나온 1992년에 대학에 입학한 92학번이다)에 대한 이야기가 책에 언급돼 있다. 한 위원장도 자신을 분석대상으로 삼은 저 책을 읽은 것일까. “저도 한 위원장에게 많은 영감을 받아 책을 썼지만 레퍼런스가 됐을 수는 있다. 책에서 서태지 세대의 성장과 퇴행을 언급했는데 한 위원장이 서태지를 좋아하는지는 몰랐다. 저는 세대감성으로 썼는데 한 위원장과 일면식은 없지만 분석을 틀리게 하지는 않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책 저자인 심규진 스페인 IE대학 조교수의 말이다. 그에게 물었다. - 책이 나올 때까지 김기현 대표체제가 무너지고 한동훈이 ‘조기 등판’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듯하다. “탄핵을 거치면서 국민의힘은 지역 토호가 산재해 있지만 각자도생하는 정당이 됐다. 더 이상 계파정치가 가능하지 않은 상태에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벌어지는 허허벌판, 만주벌판과 같은 상황이다. 김기현은 계파정치가 무너진 상황에서 자신을 지역 토호로 생각했기 때문에 정치거래가 틀어진 것이다.” - 당대표 김기현이 그동안 보여준 것이 용산의 신임에 자신 있다는 것 아니었나. “정치 리소스(resource)를 당원으로 볼 때 당원들은 윤석열을 보고 김기현을 찍어준 것이었다. 그런데 김기현은 생각이 달랐던 거로 보인다. 본인은 대권까지 꿈꾸면서 용산을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동업자 관계로 생각한 것이다. 당원들 입장에서는 용산이 책임지고 뭘 할 수 없으니까 김기현을 대통령의 대리인이자 동반책임을 져주는 관계로 생각했는데, 그는 이른바 윤심을 등에 업고 그 자리를 얻은 것 아닌가. 김기현 본인은 ‘내가 대통령보다 더 못할 것이 뭐가 있나, 나는 할 도리를 다했다, 내가 왜 대통령 대신 매를 맞아야 하는가’라고 지역 토호로서 영토를 지키겠다고 하니 정치적 합의가 깨져버렸다. 대통령도 멘붕이 왔고. 김기현 체제는 이런 상황에서 그에게 정치적 생사고락을 함께하는 계파가 없기에 붕괴됐다.” - 수직적 당·정 관계를 바꾸는데 한동훈이 적임자라고 보나. “기자들 질문·답변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각자의 일을 하면 된다고 생각할 것 같다. 윤석열 대통령과도 검찰에서 일로 만난 관계다. 프로젝트를 같이하는 관계로 리더십과 팔로워십에서 역할분담을 인정하는 관계다. 이 사람은 비대위원장으로 자기 역할을 하고, 책임지고 결단하는 역할은 대통령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누가 주도권을 잡아서 뒤통수를 치거나 말을 듣게 하는 그런 사이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일종의 실용주의적 파트너십인 셈이다.” 그는 ‘눈물 젖은 빵을 먹고 노력해 자수성가했기 때문에 대중의 고통을 잘 안다”는 이명박이나 이재명의 성공스토리와는 다른 엘리트 한동훈의 능력주의 서사가 오히려 2030세대, MZ세대에는 더 먹힐 수 있다고 주장했다. “2030세대는 우리나라가 선진국에 들어설 때부터 경제적 풍요를 누린 세대로 주눅 들지 않는다. 한 위원장이 살아온 삶, 치열한 경쟁을 뚫고 성취를 이룬 것에 대한 리스펙트가 있다. 감정적으로 합리화하거나 설득력 있는 내러티브를 구사하는 행위 자체를 촌스럽게 느끼는 것이다. 예컨대 영화 <범죄도시> 시리즈를 보면서 MZ세대가 마동석에게 기대하는 것은 자기 이야기를 구질구질 합리화하는 것이 아니라 성과나 퍼포먼스다. 지난 대선에서 이재명에게 투표한 MZ세대도 마찬가지다. 페스트 행정이라는 능력을 보고 뽑은 것이지 소년공 이야기에 감화된 것이 아니다. 윗세대는 이념 같은 걸 중시하지만 MZ세대는 그런 점에서 다르다.” MZ세대와 한동훈 비대위원장 “한동훈의 취임사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총선 불출마 등 여권 내부 메시지는 당분간 2인자 전략을 유지하겠다는 뜻이다. 지금 떠버리면 권력서열이 바뀔 수 있다. 지금 윤 대통령은 인기도 없고 지지율도 낮은데 굳이 나서서 대립각을 만들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4월 총선은 한동훈 대 이재명, 미래 대 과거, 586 특권 대 재기발랄할 X세대로 치르겠다는 전략을 설정했다. 이 두 가지를 천명했다고 보면 된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의 진단이다. 그는 “세밑 슈퍼위크의 승자는 한동훈이 된 것으로 보인다”고 평했다. “분명 민주당 지지층에는 반감을 샀지만, 국민의힘 지지층이나 중도층 일부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는 메시지를 내놓았다. 결과적으로 선거프레임에서도 2030남성을 타깃으로 삼아 이준석 신당 이슈를 쪼그라뜨리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해 12월 27일 오후 서울 노원구의 한 음식점에서 탈당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그는 이준석 신당의 성공 가능성을 낮게 봤다. 가장 핵심적인 문제로 신당 추진과정에서 이준석이 추진 중인 ‘(가칭) 개혁신당’이 어느 세대, 어느 지역을 대상으로 어떤 비전을 제시할지를 구체화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과거에는 반윤석열 TK신당 영남신당을 설정했다가 중간에는 비윤석열 영남·보수신당으로 갔다가 12월 27일 기자회견에서는 3지대로 완전하게 이동하는 듯보였다. 한마디로 모호한 정체성을 드러냈다.” 그는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등장이 이준석의 탈당으로 나타날 국민의힘 2030지지층의 공백을 100% 메우기는 어렵지만 70~80%는 회복할 수 있으리라고 봤다. 그렇다면 국민의힘 쪽에서 ‘민주당의 4월 필승 카드’로 보고 잔뜩 경계하고 있는 김건희 특검은? “김건희 특검은 단기 이슈다. 예정된 거부권 행사를 두고 비판 여론이 일겠지만 파장이 오래가진 않을 것이다. 당장 민주당에 호재처럼 보일지 몰라도 한동훈만큼의 파괴력은 아니다. 윤 대통령이 장고하지도 않을 것이다. 한동훈 비대위원장 수락 직전인 일요일(12월 24일) 고위 당·정·대 회의를 통해 특검법에 대한 방침을 정하면서 한동훈 위원장의 부담감을 줄여준 전략과 유사한 흐름을 이어갈 것으로 본다.” 민주당이 밀고 있는 프레임처럼 한동훈은 ‘윤석열 아바타’, ‘김건희 호위무사’라는 식으로 일관했을 때 자칫하면 실기의 위험이 있다는 지적이다. 문재인 청와대에서 초대 청년소통정책관을 지낸 여선웅씨는 “저쪽이 설정하고 있는 ‘86 대 97세대 프레임’으로 볼 때 국민이 민주당을 올드하게 느낄 수 있다는 점은 사실”이라며 “우리에게는 안 좋은 프레임인데 그걸 깨는 카드를 내놓지 못한 채 ‘한나땡’(한동훈이 나오면 땡큐)만 외친다면 큰 문제”라고 말했다. “한동훈 위원장의 취임 일성이나 그에 대한 민주당 주변의 반응을 보면 양당이 서로 지지층을 바라보는 정치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보수층이 보수 결집하고 민주당이 민주 결집으로 치닫는다면 사실 민주당으로서는 보수층이 훨씬 더 두텁기 때문에 불리하다. 게다가 저쪽은 여당이다. 위기는 오히려 국면의 주도권을 잡지 못하고 있는 민주당에 닥칠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 인물과 정책변화 기대할 수 있을까 그는 상대방이 당대표·비대위원장·대선후보 간판까지 교체할 태세인 반면 민주당은 총선을 앞두고 인물과 정책에서마저 변화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1월 중순까지 기다려본다고 하지만 강서보궐선거 이후 4개월을 그냥 허송세월로 보내고 있는 상황이다. 모두의 예상을 깨고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불출마카드를 던졌는데 정권심판 여론이 높다고 민주당은 안주하거나 부자 몸 사리기로 비친다.” 문제는 역설적으로 민주당이 지금의 ‘시스템 공천’을 유지하는 한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국민의힘은 20% 컷오프를 하는데 민주당은 컷오프도 없이 시스템 공천을 하겠다고 한다. 민주당만 놓고 보면 지난 2020년 총선에서 103명의 현역 의원이 공천 신청을 해서 그중 93명이 공천을 받았다. 90%가 살아남았다. 시스템 공천이라는 것이 완벽히 현역한테 특혜를 주는 공천 시스템이다. 민주당 서울 국회의원이 49개 지역구 중 40명인데 선수를 세어보니 89선이다. 이분들이 사실상 내년에 거의 다 된다고 하면 선수만 120~130선이 되는 거다. 서울에만 평균 선수가 3선이 넘는 중진 의원이 40여명 되는 셈이다. 국민이 볼 때 인적 쇄신이 미흡하지 않겠는가. 임종석 대통령실장도 다시 출마한다고 하는데 비유하자면 2002년 월드컵 영웅이던 황선홍·홍명보 같은 선수들이 또 뛰겠다는 거나 마찬가지다. 이강인이나 손흥민 같은 선수들은 못 나오고.” 박신용철 더체인지플랜 선임연구위원은 지난 12월 말 정립된 구도가 오는 4월 총선을 넘어 이후로도 쭉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다. “돌발변수가 있어 김건희 특검에 대해 윤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를 안 한다면 모르겠지만 한동훈은 비례도 안 맡고 지역도 안 하겠다고 선언했다. 지역구를 포기하고 비례 맡는 방안까지 검토 중이라고 알려진 이재명 대표와 변별력이 커져 버렸다. 문제는 한동훈 효과가 크면 클수록, 또 이준석과 한동훈 간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이재명에 대한 집중도가 떨어진다는 점이다. 민주당으로선 고민스러운 대목이다.” 그럼에도 4월 총선의 최우선 화두는 정권 심판 구도가 되리라는 점 또한 지금으로선 명확한 사실이다. 이런 총선 프레임을 민주당 심판론으로 바꿔보려는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시도는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민주당판 이준석’ 왜 없는 걸까
‘민주당판 이준석’ 왜 없는 걸까(2023. 12. 08 17:00)
2023. 12. 08 17:00 정치
11월 2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더불어민주당 전국청년위원회가 연 2024년 총선필승 전진대회 및 총선기획특별위원회 발대식에서 참석자들이 피케팅을 하고 있다. /연합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11월 26일 국회 의원회관. 더불어민주당 전국청년위원회가 총선필승 전진대회를 열었다. 국회에서 취재를 하다 보면 익숙한 광경이다. 토론회나 행사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은 현역 국회의원, 그리고 당내 주요 인사들이다. 정청래 수석최고위원, 조정식 사무총장 등이 이날 내빈으로 참석해 축사를 했다. 축사를 마치고 기념사진을 찍은 뒤 이들은 대회장을 떠났다.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리던 취재진도 떠났다. 이날 행사장에는 그러나 전국청년위원회가 ‘미는’, 내년 총선 활동의 중심인물인 전국 17개 시·도 총선기획특별위원회 위원장들의 사진이 걸렸다. 이들 17개 시·도위원장들의 결의를 듣는 시간도 마련했다. 민주당 현역 의원 중 그나마 행사 끝까지 자리를 지킨 인사는 전용기 의원이 유일했다. 그는 민주당 전국청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2부 행사로 열린 토크콘서트에서 그가 말했다. “총선이 너무 시급하다. 언론은 청년예산을 민주당이 반대해서 잘랐다고 하는데 내가 환노위 위원이다. 그 사람들(국민의힘)이 미는 내일채움공제 2000억원짜리 예산을 이것은 인정할 수 없다고 해서 잘랐다. 자기들이 청년예산 4000억원을 자른 것은 숨기고 민주당이 청년예산 발목을 잡고 있다고 언론플레이하고 있다. 사실이 뭔지 바로 알아서 대응하고 사람들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총선승리도 가능한 것 아닌가.” 이날 행사에서는 전국청년위원회가 결의한 ‘총선필승결의문’을 낭독했다. 다음 시대를 열기 위한 이들의 결의사항 중엔 배지를 단 현역 국회의원들을 겨냥하는 비판도 들어 있었다. “…하나. 선거철 청년세대와 사진 하나 찍고 넘어가는 정치인, 청년을 이용해 정치적 이점을 취하려는 태도에 순수하게 혁신을 요구하는 청년들은 지치고 있다. 고민은 다음 청년세대로 상속되고 있다. 이제는 이 악순환의 고리를 완전히 끊고 우리는 청년의 목소리를 정치에 반영하고, 청년의 눈물이 사회변화로 이어지기 위해 노력하겠다. 골목골목마다, 진짜 변화를 위해 공약실현까지 동행하겠다.” ‘외부 인재영입’에 대한 항변 12월 5일 국회. 전용기 의원이 다시 소통관 마이크 앞에 섰다. 내년 총선에 도전할 6명의 ‘청년정치 신인’들과 함께였다. 기자회견문의 제목은 “깜짝 영입보다 당에서 훈련된 청년정치인이 필요하다. 당과 함께 성장한 청년 육성 인재, 당이 길을 열어줘야 합니다”였다. 이날 기자회견을 한 이유는 12월 중순으로 예정된 민주당 인재영입 1호 인사 발표가 당내인사가 아니라 외부인사 발탁으로 가닥을 잡았기 때문이다. “선거를 맞아 당의 외연 확대 등을 생각하면 외부인사 영입 필요성은 공감한다.” 12월 6일 접촉한 박재균 전국청년위원회 수석부위원장의 말이다. 그는 앞서 11월 26일 열린 총선필승 전진대회에서 총선기획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인사이기도 하다. “…다만 최소 몇 년에서부터 10년 넘게 당에서 헌신한 사람들을 외면하지 말아 달라는 것이다. 그중에는 험지에도 고생하면서 안 될 것을 알면서도 출마를 한 사람도 있다. 나는 청년기업가 출신으로 춘천시 의원을 했다. 잘 나가던 사업도 내려놓고 지역에서 당을 위해 노력했는데 선거 때마다 외부에서 영입된 인재만 반복적으로 부각되는 것이 전부가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자체적인 인재풀(pool)이 있는데 마른논에 물 대기 식으로 외부에서만 끌어오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이념정당이 아닌 포괄정당(catch-all party)인 한국 정당 문화에서는 어쩔 수 없는 문제 아닐까. “그래도 차이가 있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청년정치를 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청년 시절 기회를 얻어 성장한 것 아닌가. 천하람이 주목을 받은 것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민주당은 그런 기회조차 없었다. 전용기 위원장도 언급한 것처럼 5선의 이상민 의원도 당성이 없어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탈당하기도 하는데 갑자기 영입된 인재들이 당에 대해 얼마나 이해하고 공헌할 수 있겠는가.” 밀어주고 끌어주지도 않는 결절세대 1981년생으로 올해 42세인 그는 자신의 세대가 “당 내에서 결절된 세대”라고 덧붙였다. “돌려서 말씀드리면 저보다 바로 윗세대인 직전 선배들은 학생운동 연줄로 밀어주고 끌어주는 것이 있었다. 우리와는 다르다. 민주화운동 세대, 학생운동 세대와 민주화가 이뤄지고 난 다음 현재 청년들이나 삶의 기회가 정치·정당 내에서 단절되면서 청년 어젠다도 민주당이 뺏긴 것이 아니냐는 걱정이 있다. 이대남 같은 자극적인 이슈를 국민의힘이 주도했지만 보다 본질적인 청년이 걱정하는 문제, 주거·경제·육아 문제에 대해 전문성이 있고 분야를 대표하는 사람들이 나올 필요가 있다.” “그 벽이 너무 크다. 586이라는 벽.” 12월 5일 기자회견에 참석한 임세은 전 청와대 부대변인의 말이다. “진짜 대립구도는 친명·비명이 아니라 586이냐 아니냐다. 친명이냐 비명이냐는 상관없다. 자기들끼리는 공고하다. 시대가 바뀌면 사람도 바뀌어야 하는데 유독 정치권만 그분들 그대로다.” 임 전 부대변인은 내년 총선에서 관악을에 도전할 예정이다. 현역 의원은 재선 중진으로, 당 싱크탱크인 민주정책연구원장을 맡고 있는 정태호 의원이다. 11월 26일 열린 총선필승 전진대회에서는 그동안 역대 선거에서 전체 출마자 10%는 청년 후보를 공천하도록 규정돼 있는 당헌을 지키지 못한 데 대해 총선을 관장하는 당 지도부와 싸워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다. 또 당헌에는 청년 후보가 예비후보로 등록하면 최소한 경선까지는 치를 수 있도록 보장돼 있는데 그것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한다. 임 전 부대변인은 12월 12일부터 시작하는 선관위 예비후보 등록을 할 예정이다. “올해 5월 제정된 특별당규에도 ‘정치신인이 포함된 지역구는 경선을 원칙으로 한다’고 돼 있다. 문구를 보면 ‘청년 10% 이외에도 여성은 30%를 공천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돼 있다. 피해갈 구멍을 만들어놓은 셈이다.” 정치신인은 지역위원장을 맡고 있는 현역 의원에 비해 불리하다. 당원명부를 볼 수도 없다. 등록 전에는 정당사무소는 안 되고 개인사무소만 개설할 수 있다. 경선에 올라가더라도 당선을 보장받기 어렵다. 유력한 후보가 도전하면 다른 후보를 내세워 3자경선으로 만들면 여유롭게 따돌릴 수 있다. 임 전 대변인은 이렇게 덧붙였다. “…그래서 당에서 육성된 청년 혹은 인재들은 탈당해야 하나, 이런 이야기까지 나온다. 2020년 총선 때 전략공천은 모두 외부영입 인재였다. 경선도 없이 쫙쫙 들어왔다. 대선을 세 번 치르면서 당원들과 함께 고생하고 희로애락을 겪은 사람들은 소외되고 자꾸 외부에서 찾는다면 누가 열심히 할 마음이 생기겠는가.” 12월 5일 국회 소통관에서 전용기 민주당 전국청년위원회 위원장과 6명의 민주당 청년육성인재들이 외부영입보다 당내 청년정치 인사 공천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진은 발언을 하고 있는 임세은 전 청와대 부대변인/전용기 의원실 제공 “어차피 그때나 지금이나 도전하는 언더독 입장인 것은 마찬가지다.” 경기 동두천·연천 지역구에 도전장을 낸 손수조 리더스클럽 대표의 말이다. 이준석 전 대표와 함께 ‘박근혜 키즈 1호’로 부산 사상구에서 당시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에 맞서 ‘자객공천후보’로 나섰던 그는 그후 고깃집 운영, 상조회사 근무 등을 하다 다시 총선 도전에 나섰다. “장례지도사를 하며 회사에서 경기북부 지역 담당 팀장을 했다. 여기서 활동을 해서 동두천에 눌러앉은 것이다. 고깃집도 하고 유튜브도 하고 리더스클럽이라는 동두천 소재 정책용역회사를 운영 중이다.” 동두천·연천 지역은 국민의힘의 오랜 텃밭이었다. 그도 이 지역에서 공천을 받으려면 당협위원장이면서 여의도연구원장을 맡고 있는 김성원 의원을 넘어서야 한다. “쉬운 길을 가려고 했다면 처음 출마할 때 제안받았던 비례를 택했을 것이다. 지금도 출마하는 입장에서 쉬운 길을 가려고 했으면 갈 길이 많았을 것이다. 나는 지역민과 부대끼면서 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그는 여야를 떠나 정치권 청년정치의 미래를 낙관한다고 덧붙였다. “민주당을 포함해 청년정치인이 점점 늘어나는 것은 긍정적이다. 결국 이준석만 남고 아무도 못 키워낸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있는데 한명의 스타플레이어로 먹고사는 정치는 끝났다. 클러스터를 구축해서 다 같이 세대를 교체하는 힘이 커져야 한다. 나는 청년정치가 꽃필 환경이 무르익었다고 생각한다.” 과연 그렇게 될까. “청년정치 후보 약진 가능성? 없다” 김두수 시대정신연구소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선거법이 바뀌게 되면 청년정치의 자리는 더 줄어들 것이다. 일단 우리나라가 압축성장을 했다. 압축적 성장의 과정과 결과를 사실상 산업화·민주화 세대가 독점했는데 그 핵심그룹이 386이다. 386세력이라는 청년그룹이 쭉 30년을 성장해 올라갔다. 그 과정에서 아랫세대 청년정치가 들어설 여지가 별로 없었다. 그 자리를 386들이 꽉 틀어막고 놔주지를 않았다. 나도 청년정치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깡그리 청년세대로 교체돼야 한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다시 말해 새로운 세계관이 필요하다. 나 역시 민주화운동·학생운동을 한 사람으로서 내 또래 동지들을 바꿔보려고 했는데 잘 안 되더라. 새로운 사람이 필요하다. 전대협 세대를 한총련 세대로 바꾼다고 해서 세대교체가 되겠나.” 그는 청년세대 바깥에 있지만 이준석이 향후 정치권 변화에 있어 ‘태풍의 눈’이 될 거라고 내다봤다. “지금 정치권에서 선거제개편 논의대로 병립형으로 간다면 신당을 하겠다는 나머지 사람들은 이준석 밑으로 무릎을 꿇고 들어가야 한다. 이준석은 역설적으로 어떤 형태로 당을 만들더라도 국민이 볼 때는 젊은 정당이 될 것이다. ‘공천 떨어진 사람으로 몸집 불린다고 되겠냐, 가치가 중요하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데 내년 총선에서 이준석 바람이 불 것이다. 나비 날갯짓이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고 있는데 사람들은 내년에 어떤 태풍이 몰려올지 모르고 선거제도 타령만 하고 있다.” 이런 김 대표의 전망에 모두 동의하지는 않는다. 반대 주장도 만만찮다. 젠더 갈등을 이준석이 자기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이용하고 있으며, 그의 정치가 혐오에 기초한 갈라치기이기 때문에 근본적인 태도 전환이 없는 한 더 크기는 어렵다는 예상이 현재로선 더 많다. 2020년 총선 당시 <청년정치가 답이다>라는 제목의 책을 펴냈던 오세제 서강대현대사회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정치학에서 ‘4대 균열’이라고 하는 계급·이념·지역·세대에 인종이나 젠더는 갈등요소로 들어가지 않는데 한국에서는 젠더 문제가 뜨거운 이슈인 게 사실”이라며 “원래 권위주의·가부장제 요소에다가 이준석과 같은 정치인들, 그리고 청년정치인들이라는 사람들이 갈등을 부추기며 확대 재생산했기 때문에 설혹 신당을 만들더라도 더 큰 관심이나 지지를 받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3주 전 이준석 신당 기획을 하면서 가장 큰 의문은 길게는 2010년 초부터 “청년정치를 하겠다”고 밝혀온 민주당 쪽에서 왜 이준석의 등장과 같은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었다. 민주당 상근대변인을 지낸 하헌기 새로운소통연구소 소장은 이렇게 답했다. “이준석과 우리의 차이는 그것이다. 이준석은 당 지도부를 들이받으면서 자기주장을 관철하려고 했다. 반면 우리는 입을 꾹 다문다. 공천을 받으려면 지도부와 각을 세워서 좋을 게 없으니까. 타협안이 그렇게 만들어졌다. ‘당내 계파갈등에 대해 우리는 모른다. 우리는 불평등을 해소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말은 맞는데 공허한 이야기다.” 그는 이준석에 대한 민주당·진보의 비판도 진보진영에 만연한 정치적 밈(meme)에 근거한 게으른 비판이라고 주장했다. “이준석이 갈라치기를 한 것이 아니라 선후 관계를 보면 이미 젠더는 갈라쳐 있었다. 2018년 국정 지지율 추이를 보면 남성과 여성이 똑같이 80%대 지지였는데 혜화역 시위 이후 남성 지지율은 20%로 곤두박질쳤다. 그후 남성층은 무주공산으로 남았다. 그 공백을 이준석이 치고 들어온 것이다. 나는 여기서 진보나 민주당의 대응이 오랜 진보진영의 정치적 밈만 되풀이하면서 실패했다고 본다. ‘혐오를 멈춰주세요’가 아니라 이대남이 반(反)진보로 달려가지 않도록 하려면 적어도 지지층의 반은 가져오는 정책을 펴야 하는데 이들의 마음을 얻으려는 작업은 하나도 하지 않았다. 불평등 해소만 외친다고 그들한테 마음으로 가닿겠나. 공허한 메아리다. 정권 지지층 다 뺏기고 담론시장 망가지고 남은 것은 혐오 세력 규탄밖에 없다.” 그는 ‘정당이 청년을 키워야 한다’는 것도 듣기 좋은 당위론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원래 정당엔 사람을 키워주는 시스템이 없다. 다 자기가 3선, 4선 하고 싶어하지 잠재적인 경쟁자를 키워주고 싶은 정치인이 누가 있겠나. 키운다면 자기 홍위병이나 호위병으로 쓰는 수준에서 그친다. 이게 정치 현실이다. 언론은 정당에 사람 키우는 시스템이 없다고 비판하지만 한국 정치에서 그렇게 커서 성공한 사람이 누가 있는가. 권력을 스스로 물려준 사례는 없다. 다 찬탈당했지. 386들은 과거 DJ가 발탁해 컸는데 막상 자기들은 후배를 키우지 않고 있다는 말도 있지만, 냉정히 보면 그때 DJ도 자기 권력을 키우려고 한 것이 본질이다. 후배를 키우는 정치인은 없다. 적어도 나는 본 적이 없다. 다 스스로 쟁취해서 커야 한다. 국민의힘도 마찬가지다. 후배는 안 키운다. 이준석은 이에 맞서 ‘너희가 물러나라’며 한번 붙자고 덤비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한다는 말이 들어줄 리도 없는 ‘3선 금지’ 이런 주장만 한다.” “이준석에 대한 진보·민주당의 시각 틀렸다” 송현석 넥스트브릿지 운영위원장은 “내년 총선에서 청년정치를 내세우는 후보가 약진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며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정치권에서 청년정치 세대란 40대 초반을 일컫는 말이다. 이들 중에서 자기 콘텐츠나 서사를 제대로 만들어낸 친구들을 찾기가 쉽지 않다. 솔직히 자기 서사를 쌓으려면 많은 시간과 에너지, 돈과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청년정치라고 하지만 사실상 비례공천을 염두에 두고 ‘로또’ 기다리는 거다. 내년 총선까지 이제 3~4개월밖에 안 남았는데 냉정하게 말해 이재명 당대표와 지도부에 얼마나 줄을 잘 서냐에 달려 있는 것 아닌가.”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시절 당 혁신위원이었던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지금 청년의제라고 제시되는 것들 모두 그때도 나왔던 이야기들이다. 10여 년이 지났는데 거의 달라지는 것이 없다면 한 번쯤은 다른 각도에서 이 문제를 들여다봐야 하지 않을까.” 최병천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도 김두수 대표처럼 세계관 교체가 본질이라고 주장했다. “정치에서 세대교체는 나이 교체가 아니라 세계관 교체다. 본질적인 것은 어젠다의 업데이트로 봐야 한다. 지금 유권자 지형을 보면 2030 세대에서 무당파가 40~50%를 차지하는데 국민의힘은 ‘친북공산전체주의 배격’ 중심이고 민주당은 ‘친일독재타도’를 내세우고 있다. 둘 다 요즘 문제를 이야기하는 정당들이 아니라 옛날 이야기하는 당인 셈이다. 이슈파이팅 관점에서 보면 진보계열에서는 보수의 역사적 공을 인정하고 사람으로 치면 박정희의 역할을 인정해야 한다. 보수도 노무현·김대중의 역할을 인정해야 한다. 그런데 이준석의 스탠스가 그것이다. 노무현·김대중과 민주화 세력의 기여를 인정해야 한다고 보수 내에서 목소리를 낸다. 진보 내에서는 그런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없다.” 박신용철 더체인지플랜 선임연구위원은 이렇게 덧붙였다. “언론이 이준석을 인터뷰할 때 반윤연대로 과연 성공 가능하겠냐고 묻는데, 그는 반윤연대를 해서 뭐하냐고 답한다. 윤석열 정부는 이미 망한 정부이므로 자기는 ‘윤석열 다음을 본다’는 거다. 일종의 미국식 마인드다. 자유주의·개인주의·실리주의로 어젠다 세팅을 노리는 셈이다. 나는 이준석이 앞으로 안티페미도 버릴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그것도 하나의 전략이었다고 주장할 것이다. 아마 이준석 신당이 가시화되면 내년 총선에서 비례 포함해 두 자릿수 이상 의석은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창당을 앞둔 이준석 신당이 이미 꽤 의미 있는 세력으로 자리 잡았다는 주장이다. 과연 그럴까. 주목해볼 일이다.
청년정치
[취재 후]이준석 신당과 조국 전 장관의 선택
[취재 후]이준석 신당과 조국 전 장관의 선택(2023. 11. 28 07:00)
2023. 11. 28 07:00 정치
“Segui il tuo corso et lascia dir les genti.” 조국 전 장관이 언제부터인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려놓은 경구입니다. 유명한 문구죠. 카를 마르크스가 <자본론> 1판 서문 맨 말미에 적어놓은 말입니다. “네 갈 길을 가라, 남들이 뭐라 하든” 정도의 뜻입니다. 이 경구는 단테의 <신곡> ‘연옥편’에 나오는 “Vien retro a me, e lascia dir le genti(나를 따르라, 남들이 뭐라 하든)”는 말을 비튼 것이었죠. 정치권 신당을 커버스토리로 다루기로 하면서 주간경향 회의에서 격론이 벌어졌습니다. 사전 취재를 해보니 정치권 주변의 ‘전문가’들이 의외로 회의적인 반응을 내놓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준석은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일종의 ‘벼랑 끝 전술’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죠. 신당과 관련 원래의 키워드는 ‘이준석’과 ‘조국’이었습니다. 이준석 신당 못지않게 야권에서는 조국 신당 논의를 두고 설왕설래가 벌어졌습니다. 조국 전 장관이 11월 6일 인터넷방송인 <김어준의 겸손은힘들다 뉴스공장>에 첫 출연해 “비법률적 방식의 명예회복”을 언급하면서부터입니다. 조 전 장관은 나흘 뒤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방송 발언에 대한 일종의 ‘해명성 글’에서 “장관도, 교수도 아닌 주권자 시민으로서 할 일을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주권자 시민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란 여럿입니다. 정권을 규탄하는 거리 시위에 나설 수도 있고, SNS를 통한 의견 개진이나 온·오프 집단행동의 주도나 참여, 그리고 각종 선거에서 투표권 행사도 포함되는 일입니다. 그런데 주권자 시민이 할 수 있는 일 중에는 피선거권 행사, 다시 말해 선거 출마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준석 못지않게 조국의 선택을 두고도 말이 엇갈렸습니다. 신당 기사를 쓰면서 이준석과 조국 각각 코멘트를 다 받아뒀지만, 기사는 이준석 신당에 포커스를 맞춰 썼습니다. 조국 신당에 관한 한, 아직 가시화된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처음에 인용한 단테를 비튼 마르크스의 경구는 조 장관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려놓은 말이지만 이준석의 현재 행보와 더 맞아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이준석 신당 논란이 기존에 각축전을 벌이던 신당 논의를 블랙홀처럼 다 빨아들인 형국입니다. 지금의 분위기가 그가 신당을 창당하겠다고 밝힌 12월 말까지 이어질까요. 참고로 ‘이준석 신당은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 정치평론가들 쪽은 아직도 그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취재 후
[인터뷰]이준석 “12월 말 지나면 돌아갈 다리도 끊는다”
[인터뷰]이준석 “12월 말 지나면 돌아갈 다리도 끊는다”(2023. 11. 17 16:10)
2023. 11. 17 16:10 정치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11월 15일 서울 강서구 등촌동의 한 스튜디오에서 신당 창당과 관련해 주간경향과 인터뷰하고 있다./서성일 선임기자 ‘정치권의 풍운아인가, 대중의 관심을 좇는 기회주의자인가.’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2011년 정계에 입문한 뒤 달고 다니는 꼬리표다. 보수정당에 기반을 두고 정치를 했지만, 그에 대한 평가는 보수, 진보 내부에서부터 엇갈린다. 그를 평가절하하는 사람들이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폭넓게 나타나고, 그를 높게 평가하는 사람들 역시 진영을 초월해 포진해 있다. 한국 정치사에서 진영과 무관하게 비난과 찬사를 동시에 듣는 보기 드문 인물인 셈이다. 이 전 대표를 향해 붙는 또 다른 꼬리표 중에는 이른바 ‘싸가지’가 있다. 주로 “나이도 어린데 예의가 없다”는 내용이다. 심지어 주요 언론사 칼럼 제목에서도 ‘이준석 싸가지’를 찾아볼 수 있다. 한국에서 정치인을 평가하는 기준이 ‘능력’인지, ‘싸가지’인지 헷갈릴 정도다. 정치인이 ‘싸가지 있는 말과 행동’을 한다고 국민들이 직면한 문제가 해결되진 않는다. 그럼에도 이 전 대표를 향한 비판의 초점은 그곳에 맞춰진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는 이 전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 그가 툭툭 내뱉는 말 속에 포함된 날 선 단어, 말싸움을 하면서도 꼭 들고나오는 통계자료 등은 국민감정에만 편승하려는 기존 정치인들과는 다른 모습이다. 상황에서 느끼는 감정과 현실의 차이를 ‘꼬박꼬박’, ‘따지듯’ 지적하는 그가 곱게 보일 리 없다. 정치 입문 이후 늘 논란의 중심에 서온 이 전 대표는 이제 그 정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지만, 예의를 숭상한다는 한국 정치에서 감히 ‘대통령’과 ‘여당’을 향해 싸움을 걸었다. 총선을 5개월여 앞두고 제3지대 신당 추진에 불을 지피고 있다. 당과 대통령을 향한 날 선 비판을 쏟아내며 언론 보도의 중심에도 섰다. ‘지금의 윤석열 대통령, 국민의힘으론 미래가 없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의 한마디, 한마디가 주목받는 상황에서 주간경향은 지난 11월 15일 서울 강서구에 있는 한 스튜디오에서 이 전 대표를 만났다. 더욱 자극적인 발언을 찾는데 집중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정치인 이준석이 꿈꾸는 ‘신당이 과연 무엇인지’를 더 듣고자 했다. 윤 대통령, 국민의힘을 향한 비난이 눈과 귀를 사로잡을 수 있을진 몰라도 한국 사회가 직면한 각종 문제까지 해결해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신당 관련 추측성 보도들이 쏟아지고 있다. 가능성을 매일 퍼센트(%) 단위로까지 따지는데. “신당 가능성에 관해서는 명확하게 ‘12월 말’이라는 시간 조건을 못 박았다. 그 시점이 지나면 100% 신당으로 간다. 그전까지는 60%든 70%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정도로밖에 설명할 수 없다.” “유리한 곳 공천? 지금 국민의힘이 유리한 곳이 전국 어디에 있다고 그런 소리가 나오는지 모르겠다. 탈당 후 무소속 출마? 언급한 적도 없고, 생각하고 있지도 않다. 다들 자기들 상식선에서만 이야기하니까 틀리는 것이다.” -12월 말까지 여지를 두는 것은 왜인가. ‘허장성세’다. ‘대구처럼 당선에 더 유리한 곳에서 공천받기 위한 전략이다’라는 말까지 나온다. “지금 국민의힘이 유리한 곳이 전국 어디에 있다고 그런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만약 유불리를 따졌다면 여러 조건을 제시했을 것이다. ‘이 시점 이후론 끝이다’는 시간 조건 외에 어떤 요구 사항도 밝힌 것이 없다. 단순 폄훼가 목적이 아니라면 무슨 맥락에서 그런 추측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요구 사항을 건 적도 없고, 그런 전략을 고려하고 있지도 않다. 총선 전 국민의힘을 개혁할 수 있는 마지노 시점과 신당이 필요한 최소한의 리드 타임(설계 이후 본격적인 생산이 시작되기까지의 시간)이 겹치는 때가 딱 12월 말이다. 그래서 기다리는 것이다.” -‘탈당 후 무소속 출마’를 고려할 것이란 전망도 있다. ‘탈당 후 무소속 출마’도 선택지에 있나. “탈당 후 무소속 출마를 언급한 적도 없고, 생각하고 있지도 않다. 신당 관련해서 평론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정치권 언저리에 머물며 추측성 발언을 한다. 그런데 역사가 그렇게 움직였나. 자기들 상식선에서만 이야기하니까 자꾸 예측이 엇나가는 거다.” -정치인은 대권이 목표가 아닌가. 탈당보다 신당 창당 후 복당이 더 어렵다, 그래서 대권을 생각하는 이준석이 신당보다 탈당 후 무소속 출마하지 않겠느냐는 분석도 나온다. “국민의힘 대표를 하며, 대선을 승리로 이끌어봤다. 그만큼 당의 취약점도 잘 알고 있다. 이미 당의 개성, 특징이 사라진 지 오래다. 지금은 검찰조직의 원칙까지 이식된 듯한 모습이다. 국민의힘이 지금처럼 윤석열 대통령을 따르는 거수기 노릇만 한다면 다음 총선 결과가 100석 밑으로 나올 수도 있다. 사실상 영남당이 된다는 말이다. TK나 PK 지역에서도 극보수인 지역에서만 당선자를 배출한다는 것인데 이후 당의 진로는 뻔하지 않나. 더욱 오른쪽으로만 가려고 할 것이다. 이런 스펙트럼으로는 도저히 전국, 수도권을 아우르는 선거를 감당할 수 없다. 국민의힘이 변하지 않는다면 어떤 대선주자가 등장하든 탄핵 직후 자유한국당 시절보다 더 어려울 수도 있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오른쪽)와 인요한 혁신위원장이 지난 10월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면담하기 전 악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당이 개혁하면 어떤가.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은 ‘계속 기다리고 있다. 들어와서 함께 고치자’고 한다. “인요한 위원장은 문제 해결보다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는 역할만 하는 것 같다. 인 위원장에게 정치에 대해 조언을 듣거나 지령을 받을 입장이 아니다. 무엇보다 인 위원장이 정치를 바라보는 관점도 모르겠고, 말하고 있는 것이 본인 생각인지조차 의문이다. 강서구청장선거에서 성적이 안 나와 혁신위 체제로 갔으면 누구 때문에 결과가 안 좋은지 진단해야 할 것 아닌가. ‘환자는 서울에 있다’고까지 알려줬지만 ‘영남 중진 의원 수도권 출마 혹은 불출마’를 처방이라고 내놓았다. 콧물이 흐르는데 다리를 고치겠다는 격이다. 이게 무슨 진단과 처방인가. 주호영 의원이 불출마하면, 강서구청장 선거 패배가 수습되나.” -인 위원장과 협상할 여지는 없나. “다시 말하지만, 인 위원장이 하는 말의 의미나 의도를 전혀 모르겠다. 굉장히 위험한 발언만 쏟아내고 있다. 대통령이 ‘소신껏 맡은 임무를 거침없이 하라’고 메시지를 전달했다 하는데 그럼 윤 대통령 지령을 받고 있단 말인가. 또 요즘은 저와 ‘밀실’에서 만나서 대화하고 싶다고 한다. 이분은 한국어에서 밀실이라는 단어가 갖는 뉘앙스도 이해를 못 하는 것 같다. 무슨 음침한 대화를 할 것이 있다고 밀실에서 만나나. 생소한 인물을 내세워 호기심을 자극할 때가 있고, 엄중한 상황에서 말 한마디 한마디에 주의해야 할 때가 있다. 적어도 지금 상황이 인 위원장을 내세워 정치적 호기심을 끌 단계는 아니지 않나. 의미 없는 시간만 흘러가고 있다.” -복귀 가능성은 없나. 이 정도면 돌아갈 만하다는 조건이 있을 수 있지 않나. “오해 사는 것이 싫어서 시간 외에 조건은 하나도 걸지 않았다. 내가 조건을 제시할 문제가 아니다. 대통령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고, 본인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면 신당의 동력은 자연히 사그라들 것이다. 대통령이 어떤 것을 제안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오는데 무얼 하든 윤 대통령을 믿지 않는다. 옆구리 찔러서 절 받고 싶지도 않다. 앞으로도 조건을 걸거나 이렇게 해달라고 할 생각이 전혀 없다. 12월 말까지 대통령이 변할 것이란 기대도 하지 않는다.” -국민의힘 혁신도 어렵다고 보나. “애초에 기대도 하지 않았다. 국민이 바라는 것은 윤 대통령의 변화된 태도와 상황을 이렇게 만든 윤핵관들이 상응하는 처벌을 받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상황을 보면, 인 위원장이 ‘제발 윤핵관분들 좀 물러나 달라’고 요청하는 모양새다. 과거 하나회 척결 때를 생각해보라. 김영삼 전 대통령이 물러나 달라고 요청했나. 어느 날 자고 일어나 보니 모두 척결됐다. 국민이 바라는 것은 이런 과감함과 전격성이다. 인 위원장처럼 해서는 국민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없다. 오히려 윤핵관이 불출마를 선언하면 구국의 영웅처럼 띄워줄 분위기 아닌가. 대체 뭐 하자는 것인지 모르겠다.” -모든 갈등의 중심에 대통령이 있는 것 같다. 윤 대통령의 문제는 뭐라고 보나. “두려움이 대통령을 둘러싸고 있다. 그래서 명목상의 권력을 휘두르며 두렵지 않은 척한다. 당장 국민이 이상함을 느끼지 않나. 집권 1년 반이 지나도록 아직도 윤석열 정부의 경제정책이 무엇인지, 교육정책이 무엇인지, 통일정책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한다. 통치의 기회가 왔는데 윤 대통령은 아무런 통치도 하지 않았다. 이 치명적 약점을 국민이 알아채기 시작하자 두려움을 느끼는 것 같다. 또 하나는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다. 본인이 검사 시절에 전직 대통령 2명을 잡아넣지 않았나. 지금 국민의힘에서 대통령이 됐지만, 절대권력을 장악하지 않으면 나중에 자신을 배신하고 칼을 들이댈 것을 아는 것이다. 그러니 지난 1년 반 동안 정적 제거만 하고 있다. 보수 정당을 기반으로 한 대통령이 이준석, 유승민, 홍준표, 안철수, 나경원 누구 하나하고도 잘 어울리지를 못한다. 한 사람과 다섯 사람 이상이 반목하면 확률적으로 그 한 명이 별난 것 아니겠나. 더 큰 문제는 이제 두려움을 넘어 외로움의 단계까지 보인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인재 기용이다. 대통령 스스로 ‘이제 내가 모르는 사람도 써야겠다’고 한다. 뒤집어 보면, 지금까지 아는 사람만 기용했는데 더 쓸 사람도 없다는 것 아닌가. 대부분 잊고 있지만,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낙마한 이후 후속 인사가 아직도 발표가 안 되고 있다. 청문회 하나를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두렵다는 것과 기용할 만한 사람이 없는 외로운 상황임을 직·간접적으로 잘 보여준다. 과거 사례를 보면, 대통령이 두려움과 외로움을 느낄 때 상식 밖의 통치행위를 보이는 사례가 있었다. 그래서 더욱 걱정된다. 대통령 스스로 자존심과 무오류성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극복될 텐데 쉽지 않으리라고 본다.” 2021년 11월 이준석 당시 국민의힘 대표(왼쪽)와 윤석열 당시 대선 후보가 서울 마포구 한 음식점에서 대화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신당으로 간다고 해도 기존 보수정당과 차별점이 있나. 대구를 기반으로 한 지역정당 하나가 더 생긴다거나 이준석 개인 당이 탄생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신당의 시대정신이 뭔가. “신당의 기치는 출범과 함께 구체적으로 밝힐 것이다. 아직 공개적으로 말하지 않는 것은 신당이 어떤 구성원과 함께하느냐를 통해 방향성이 확정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합리적 토론이 가능하다면 정의당 계열과도 함께할 수 있다고 이미 말했다. 신당이 가진 기대치를 바탕으로 어느 정도로 넓은 스펙트럼을 가진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지 보고 이에 맞춰서 강령, 정강, 정책 같은 것을 구성할 것이다. 그래야만 총선 이후에도 흔들리지 않고 안착할 수 있다. 신당에 합류하려고 본인 생각을 바꾸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과거 당대표 시절부터 강조해온 것이 공존이다. 억지로 끼워 맞추려고 하면 조직이 경직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단계에서 어떤 방향성 하나를 정해놓고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다. 과거 바른미래당, 국민의당 시도에서 가장 안타까웠던 점이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일방적인 이야기만 한다는 점이었다. 그런 걸 탈피해 보려고 한다. 신당에서는 주요 사안에 대해 구성원들이 자유롭게 토론해서 결정할 것이다. 동의하는 사람이 많다고 무조건 옳은 것이 아니고 수가 적다고 틀린 것도 아니다. 누구든지 자신의 이름을 걸고 나와서 자유롭게 토론해 결과를 만들어갈 것이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만큼 완벽한 합의에 이르긴 어려울지 모른다. 하지만 국민에게 우리가 토론과정을 통해 정반합에 이르렀다는 것을 보여줄 순 있다. 그게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정당 운영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억지로 끼워 맞추려고 하면 조직이 경직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단계에서 어떤 방향성 하나를 정해놓고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다. 신당에서는 주요 사안에 대해 구성원들이 자유롭게 토론해서 결정할 것이다.” -진보·보수·중도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인물을 모은다는 것이 약점이 될 수도 있지 않나. 명확한 ‘합류 기준’이 있나. “토론을 할 수 있는 능력, 즐길 수 있는 자세를 갖춘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함께할 수 있다. 구호에 매몰되거나 본인만의 독선에 빠진 사람들은 최대한 배제하려고 한다. 토론할 가치가 있는 것들에 대해서 우선순위를 정하고 공개토론을 할 것이다. 정치인도 논리를 제시하고 이를 뒷받침할 자료를 제공하면 합리적 판단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전문성·당사자성에 집착해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고 듣기만 하는 정치는 그만하려고 한다. 토론을 통해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면 국민들도 정치가 바뀌었다고 느낄 수 있다.” -진보·보수로 대표되는 이념의 정치에서 능력주의 정치로 패러다임 변화를 추구한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굳이 보수를 표방할 필요가 있나. “패러다임 전환을 꿈꾸는 것이 맞다. 과거 정의당이 제시한 어젠다 중에 수용자 인권 문제처럼 관심있는 부분이 있었다. 그런데 이게 보수, 진보의 문제인가 하면 그렇지 않다. 보편적 인권의 문제다. 보수든 진보든 이런 담론의제를 피하면 안 된다. 이를 위해 안보 보수, 수구 보수와는 결별하겠다. 북한, 전쟁이라는 공포를 이용해 국민에게 표를 달라고 하는 보수에서 탈피하겠다는 것이다. 대신 정책적인 면에서 따뜻한 보수를 지향하려고 한다. 예를 들어 지난 선거에서부터 애착을 가진 공약이 양육비 미지급 사태 해결 방향이다. 국가가 아이를 키우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돈을 지급하고 이후 비양육 배우자에게 구상권을 청구하자는 것이 핵심이다. 정치권이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싸우는 대신 이런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다. 기존의 한국형 보수는 종말을 고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부정적으로 통용되는 한국형 보수에 갇힐까봐 불안할 때도 있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11월 15일 서울 강서구 등촌동의 한 스튜디오에서 신당 창당과 관련해 주간경향과 인터뷰하고 있다./서성일 선임기자 -문제는 총선에서 살아남아야 뜻을 펼칠 수 있는 것 아닌가. 당장 국민의힘 현역의원들의 동조 움직임이 없는 것 같다. “국민의힘 현역의원들은 특징이 있다. 의외로 이분들이 선거에서 떨어지거나 져본 적이 없다. 지난 총선에서 180석이나 민주당에 내주며 졌는데 반대로 생각하면 지금 국민의힘 현역의원들은 어떻게든 살아남았다는 뜻이다. 대부분 지지기반이 탄탄한 영남이 지역구거나 비례의원이다. 이들은 기여도와는 별개로 자기 선거, 오세훈 서울시장의 보궐선거, 대통령선거, 지방선거 등 다 승리 경험뿐이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 이르러서야 우리가 질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 공천도 마찬가지다. 초선 위주다 보니 공천에서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모른다. 공천을 떨어뜨리기 위해 얼마나 다양한 방법을 쓸 수 있는지도 모른다. 현실을 직시하라고 여러 차례 조언해도 여전히 판단을 못 하는 분이 많다. 그런 맥락에서 이분들이 빠르게 신당에 합류하거나 동조 움직임을 보이기는 어려우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냄비 안 개구리라도 주변이 뜨거워지기 시작하면 분명 느낄 것이다. 그때는 여러 사람이 뛰쳐나오리라고 본다.” -유승민 전 의원은 어떤가. 교감하는 것 없나. “모른다. 특별히 교감하거나 하는 것은 없는 상황이다.” -민주당 비명계의 합류 여부는 어떤가. “누군지는 밝힐 수 없지만 비명계로 분류되는 분들과 소통하고 있다. 만나서 이야기도 한다. 그런데 그때마다 꼭 물어보는 것이 ‘의원님, 새로 만들 당에서 끝까지 버텨서 대통령선거까지 함께 치를 수 있겠느냐’다. 그 정도로 진정성을 계속 확인하고 있다. 당장 공천이 불리해졌다고 민주당 정체성은 버리지도 않고, 신당에 합류하는 것은 서로 불편한 일밖에 안 된다. 저부터 기존의 ‘안보 보수’, ‘수구 보수’와는 결별할 뜻을 분명히 하지 않았나. 과거의 정체성과 결별하지 못한 채 새로운 담론에 뛰어들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갈라치기, 혐오의 정치를 했기 때문에 이준석 신당에 참여하기 어렵단 지적도 있다. “깊은 고민이나 토론도 없이 무조건 혐오로 규정하는 일은 그만둬야 한다. 먼저, 장애인 혐오를 했다고 하는데 지금껏 장애인 관련 이야기를 한 것은 전장연이 지하철을 막아세우는 시위 방식을 지적한 것이 전부다. 그 외엔 장애인에 대해 어떤 말도 한 게 없다. 이게 혐오인가. 이런 방식의 낙인찍기는 진보 진영도 잘 생각해봐야 한다. 배울 것이 없어서 보수의 ‘종북 담론’을 배우나. 과거 통일 정책에 대해 조금만 다른 의견을 말하면 ‘너 종북이지’라며 말문을 막지 않았나. 그걸 그대로 배워 장애인 단체의 행동을 비판하면 ‘너 장애인 혐오하지’라며 정체성 문제로 치환한다. 북파공작원 동지회가 지하철을 점거하는 방식의 시위를 했더라도 똑같이 ‘비문명적 시위’라고 비판했을 것이다. 이런 문제에 대해 토론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대한민국 정치인 대다수는 사회적 이슈에 관한 토론을 진행할 역량이 안 된다. 국민생활과 관련된 실질적 문제를 형이상학적 담론으로 바꾸고 대화조차 하지 않는 분이라면 나 역시 함께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페미니즘 관련 논란도 있지 않나. “여성혐오를 했다고 하려면 적어도 내가 했다는 혐오 발언이 문장 형태로 존재해야 할 것 아닌가. 지금까지 그런 지적을 하는 사람을 많이 봤지만 혐오발언을 인용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실제로 없으니까.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여성 할당제에 대한 정책적 의견을 제시한 것 외에 페미니즘에 대해 구체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적이 없다. 오히려 이렇게 중요한 문제를 다뤄야 할 정치권은 논란이 될 것 같으니 아예 회피해 버리지 않나. 사회에 꼭 필요한 담론이라면 설사 욕을 먹더라도 정치인들이 논의할 수 있어야 한다. 조금만 반발이 나오면 비겁하게 도망가는 게 맞는 일인가. 만약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여성 경력단절’에 관해 토론하자고 하면 얼마든지 나설 것이다. 그런데 ‘여자라서 죽었다’에 관해 토론하자고 하면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그건 정책의 관점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 페미니즘 운동의 전개를 보면, 정책적으로 무엇인가를 하자는 것보다 공감해 달라는 구호가 많다. 가장 현실적이어야 할 정치권부터 정책보다 철학이나 신념으로 페미니즘을 소비한다. ‘여성이 걷기 안전한 거리를 만들어보자’고 외치면 얼마든지 정책적으로 논의가 가능하다. 단순히 ‘여자라서 죽었다’, ‘남성은 잠재적 가해자다’고 외치면 그때부턴 개인적 신념이다. 따지고 보면, 사실 이 문제는 젠더 문제도 아니다. 치안을 강화하자는 것 아닌가.”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11월 15일 서울 강서구 등촌동의 한 스튜디오에서 신당 창당과 관련해 주간경향과 인터뷰하고 있다./서성일 선임기자 -문제는 의견이 좁혀지지 않으면 꼭 필요한 인물을 영입하기 힘들 수 있다는 것 아닌가. 금태섭 전 의원 등 중도세력과의 관계가 그렇지 않나. “정치를 하려면 본인이 흔들림 없이 중심을 잡아야 한다. 젠더, 장애인 담론에 있어서 혐오라고 지적하는 분들이 과연 얼마나 진지한 고민을 해왔는지 모르겠다. ‘좋은 게 좋은 것이다’는 식의 두리뭉술한 통합은 반드시 폐해가 남는다. 비겁하게 회피하면서 정치할 생각은 없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어야 한다. 금 전 의원이 했던 말들은 알고 있다. 그러나 언론이나 전언을 통한 이야기로 평가할 것은 아니고, 실제로 만나서 들어보고 접근 방법이 어떤지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지만, 페미니즘도 구체성을 갖고 정책 중심으로 토론한다면 언제든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다.” -그럼에도 신당에 대한 의구심은 많다. 많은 시도가 있었지만 결국, 양대 정당에 흡수되지 않았나. “우리 국민이 제3지대에 대한 시도를 볼 때 안철수 트라우마가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 안철수 의원은 지금보다 제3지대를 추진하기 좋은 조건이었다. 대중적 인기를 바탕으로 제3지대를 지킬 동기, 능력, 인물 등이 갖춰져 있었다. 그런데 그걸 스스로 포기했다. 제3지대라는 개념이 안철수 의원과 결부돼 평가받는 것이 안타깝다.” -12월 말, 국민의힘을 떠난다면 돌아갈 다리는 완전히 끊고 나온다고 이해하면 되나. “그때가 되면 그렇게 생각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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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꾼·유명인 넘어, 이준석의 선택은(2022. 10. 14 14:52)
2022. 10. 14 14:52 정치
ㆍ윤석열 정권 수뇌부의 오판이 키운 ‘권력욕’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이하 ‘이준석’으로 호칭)는 2년 가까운 시간 동안 그야말로 선거만 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유명인, 즉 셀럽으로서의 그의 몸값은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졌지만 리더, 곧 지도자로서 이준석의 역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했다는 점이다. 윤석열이 권력과 능력의 드넓은 괴리 사이에서 길을 잃었다면, 이준석은 유명함과 유능함 간의 폭포 같은 낙차 앞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양상이다. 이준석 국민의힘 전 대표가 9월 28일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국민의힘 당헌 효력 정지 가처분 심문을 마치고 법원을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51부(황정수 수석부장판사)는 이날 이 전 대표가 국민의힘과 정진석 비대위원장 및 비대위원 6명을 상대로 낸 3∼5차 가처분 신청 사건을 심문했다. / 국회사진기자단 정치의 세계에서 싸움꾼은 자신의 말을 많이 하는 인간이다. 이준석은 기자를 만나서든, 지지자와의 모임을 통해서든, 아니면 그의 주특기인 SNS를 활용해서든 끊임없이 자기주장을 펴왔다. 싸움꾼과 달리 지도자는 타인의 얘기와 견해를 경청하고 수렴하는 사람이다. 윤석열 대선캠프에 잠깐 몸담았던 이동훈 전 조선일보 논설위원은 윤석열 대통령을 1시간 중 혼자 59분을 떠드는 사람으로 묘사하며 직격했다. 이준석은 이 부분에서 윤석열과 비교해 별다른 차별성이 발견되지 않는다. 최근 몇년 동안 이준석을 직간접적으로 겪어본 지인들로부터 필자가 전해들은 경험담이 있다. 이준석이 남의 얘기를 듣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역시 언급한 이준석의 특징이다. 무대 중앙을 갈망해온 ‘관종’ 이준석 싸움꾼은 무대 중앙을 차지해야 직성이 풀리게 마련이다. 지도자는 경우에 따라 조직의 중심에 있을 수도 있고, 외곽에 자리할 수도 있다. 왼쪽에 있을 수도 있고, 오른쪽에 위치할 수도 있다. 위에 있을 수도 있고, 아래에 포진할 수도 있다. 이준석은 무대 중앙에 서기를 줄기차게 열망해왔다. 많은 정치전문가는 그를 지기 싫어하는 성격으로 평가한다. 필자는 이준석을 지기 싫어하는 성격보다 대중의 관심과 이목을 잠시라도 끌지 못하면 견디지 못하는 체질로 분류하련다. 누리꾼들은 이런 범주의 인사들을 ‘관종’으로 부르며 비난해왔다. 정치권에서는 이준석이 당에 잔류해 고독한 투쟁을 이어갈지, 혹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소속 정당을 탈당해 신당을 창당할지 궁금해하고 있다. 독자들에게는 죄송한 말씀일 테지만 나는 여론조사 결과를 좀처럼 보지 않는다. 필자 글에 다른 대다수 정치칼럼과는 다르게 숫자와 통계가 등장하지 않는 연유다. 대신에 필자는 해당 인물의 성정과 욕망을 중시해왔다. 무엇보다 한 인간의 말과 행동을 추동하는 욕망이 어떠한 성질의 욕망인지에 천착한다. ‘윤핵관’들에게 시쳇말로 처절하게 털리기 이전의 이준석은 상대적으로 권력욕이 강한 인물은 아니었다. 권력욕은 리더의 기본값이고, 리더는 권력의 창출과 유지에 필요하다면 나머지 모든 것을 이 목적을 위해 기꺼이 희생시킨다. 이준석을 견인하는 핵심적 동기는 권력욕이 아니라 인정욕구였다. 용산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의 기득권 세력은 이준석을 구동시키는 기본적 욕망을 인정욕구가 아닌 권력욕으로 오독한 까닭에 그를 당대표 자리에서 사실상 폭력적으로 거칠게 몰아냈다. 이준석에게 권력의 무서움과 효용성을 제대로 확실하게 가르쳐준 셈이다. 필자는 이준석이 권력욕에 기초해 움직이는 인간이었다면 윤리위에서의 징계 논의 단계부터 신당 창당을 서둘러 준비했으리라고 판단한다. 이준석이 급조한 신당은 특정 지역이 아닌 특정 세대와 특정 성별에 기반을 둔 ‘청년자민련’ 내지 ‘이대남총련’ 정도의 초라한 위상에 머물러 있을 개연성이 크다. 윤석열 정권 수뇌부의 이준석 제거 작전은 그들의 원래 의중이 뭐였든 간에 이준석을 ‘권력을 아는 몸’으로 급속히 탈바꿈시켰다. 이준석은 그를 추종하는 젊은 당원들의 탈당을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어록을 인용하면서까지 만류했다. 이제부터 본격적 권력투쟁에 나서겠다는 공식적 선전포고라 하겠다. 당대표 이준석은 정규전만 수행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야인 신분이 된 이준석은 기존의 정규전은 물론이고, 다양한 형태의 비정규전까지 ‘동에 번쩍 서에 번쩍’으로 신출귀몰하게 구사할 수 있는 운신의 자유를 획득했다. 그 비정규전의 압권은 다음번 총선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낙하산으로 내리꽂은 친윤 계열 후보자들을 겨냥한 공공연하고 집중적인 게릴라식의 낙천낙선운동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예상되는 이준석의 ‘비정규전’ 지금은 ‘개딸’이 장악한 제1야당 더불어민주당도, 윤핵관에게 접수된 집권당 국민의힘도 중도층의 지지를 온전히 받기 힘든 상태다. 이준석이 그가 새롭게 장착한 권력욕을 순조롭게 충족시키려면 광활한 중도층 공략에 나서야 하고, 광활한 중도층 공략에 나서려면 말수는 줄이고 귀를 열어야 한다. A집단의 지지를 구하고자 B집단을 의도적으로 갈라치기하는 분열적 정치공학 또한 더 이상 추구하지 말아야만 한다. 대한민국은 현재 경제위기, 안보위기, 인구절벽의 위기, 기후변화의 위기라는 4가지 중차대한 위기에 안팎으로 봉착해 있다. 이 복합적이고 중층적 위기들을 무사히 헤쳐 나가려면 어느 정치인도 국민의 보편적 지지와 광범위한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는 리더십의 위기부터 시급히 극복해야만 한다. 군사학에는 ‘공세종말점’이란 용어가 있다. 공격자의 병력과 물자가 소진돼 더 이상 앞으로 전진할 수 없는 지점을 말한다. 이 한계선을 무리하게 돌파하려 시도하다가 적군에게 되치기를 허용하면 전쟁의 전체적 양상이 완전히 뒤바뀌고 만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30만명의 독일군이 한겨울의 스탈린그라드(현 볼고그라드)에서 포위·궤멸한 원인은 히틀러가 공세종말점을 진즉에 힘겹게 넘어선 장병들에게 닥공(닥치고 공격)을 고집스럽게 강요한 데 있었다. 이준석은 ‘파이터 이준석’ 역할로는, ‘셀럽 이준석’의 정체성으로는 공세종말점에 도달했다. ‘갈등 해결사’ 이준석으로, ‘믿음직한 지도자’ 이준석으로 이를 악물고 바뀌어야 하는 순간이다. 미래세대의 선두주자로 세간의 기대와 촉망을 받아온 이준석에게는 이러한 성숙한 변신에 성공하는 일이 급선무다. 당권을 되찾는 목표는 여기에 견주면 의미 없고 지엽적인 부차적 과제일 뿐이다. 그럼에도 이준석이 싸움꾼 이준석에, 유명인 이준석에 계속 안주한다면 그는 텔레비전만 틀면 짤방처럼 나오는 말 많고 시끄러운 흔하디흔한 종편 프로그램 패널로 소일하며 남아도 너무 많이 남은 그의 여생을 낭비하게 될 것이다. 국민의 오래된 간절한 여망인 한국사회 전반의 전면적 세대교체는 이준석의 때 이른 ‘조로(早老)’로 말미암아 한여름 밤의 허망한 꿈으로 그치고 말 것이다.
표지 이야기
[시사 2판4판]보고 있나? 이준석!(2022. 07. 29 14:15)
2022. 07. 29 14:15 정치
시사 2판4판
이준석 징계, 그리고 흔들리는 국민의힘(2022. 07. 15 14:31)
2022. 07. 15 14:31 정치
ㆍ6개월 징계 끝나도 당대표 임기 남아 ㆍ‘무혐의’ 시 갈등의 골 더욱 깊어질 듯 대통령선거, 지방선거에서 연달아 승리하며 기세를 올리던 정부·여당이 표류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30% 초반까지 떨어졌다. 반면 부정 평가는 최고 60%까지 치솟으며 긍정과 부정 평가가 뒤집어지는 이른바 ‘데드크로스’가 나타났다. 여당 지지율 역시 야금야금 하락하며 더불어민주당과의 격차가 줄어들고 있다. 미디어트리뷴 의뢰로 리얼미터가 지난 7월 4일부터 5일간 전국에 거주하는 만 18세 이상 남녀 2525명을 상대로 정당지지율을 조사한 결과 민주당 지지율(41.8%)이 국민의힘 지지율(40.9%)을 오차범위 내에서 앞섰다.(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2.0%포인트)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7월 8일 새벽 국회에서 열린 당 중앙윤리위원회 진술을 마치고 입장을 말하고 있다. / 권호욱 선임기자 지방선거 승리를 기점으로 정부·여당의 시대가 열릴 것 같던 상황은 고작 한 달여 만에 변곡점을 맞았다. 이들의 지지율 하락은 모두 ‘내부 요인’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미묘한 차이도 있다. 윤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은 자신의 발언, 인사, 경제 등 ‘상황적’ 문제에서 비롯됐다. 대통령 스스로 정제된 발언과 정책적 대안을 찾는다면 추세가 반전될 여지가 있다. 반면 국민의힘 지지율 하락은 권력 투쟁이라는 ‘구조적’ 문제다. 이준석 국민의힘 당 대표를 둘러싼 ‘성비위’ 논란이 이를 잘 보여준다. 지난 7월 8일 국민의힘 중앙윤리위원회는 이 대표에 대한 ‘6개월 당원권 정지’ 징계를 결정했다. 문제는 그 사유다. 사안의 본질인 이 대표의 성비위 의혹이 아닌 “당원으로서 예의를 지키고 자리에 맞게 행동해야 하며 당의 명예를 실추시키거나 국민 정서와 동떨어진 언행을 해서는 아니된다”는 당 윤리부칙 제4조 1항을 징계 근거로 밝혔다. 성상납 의혹 수사결과에 따라 부차적 사안에 대한 징계는 당위성이 흔들릴 수 있다. 이 대표를 지지하는 쪽에서 이번 징계가 ‘찍어내기’ 아니냐는 반발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이 대표는 징계 불복 의사를 밝혔다. 그럼에도 국민의힘 권력 구도는 이 대표를 배제한 채 빠르게 재편됐다. 권성동 원내대표가 당대표 직무대행까지 맡으며 ‘원톱’이 됐다. 차기 당권을 두고 경쟁할 인물들 역시 움직이고 있다. 국민의힘 원내대표를 지낸 바 있는 김기현 의원과 대선 직전 합류한 안철수 의원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의 행보를 견제하는 세력도 등장했다. 5선 중진인 조경태 국민의힘 의원은 권 원내대표의 당대표 직무대행을 두고 ‘지나친 권력 쏠림’이라고 비판했다.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이라 불리는 인사들의 향후 움직임도 변수다. 이들은 윤 대통령과 연결된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받는다. ‘활짝’ 열릴 것 같던 국민의힘 시대는 당내 갈등으로 급변했다. 이재명 의원의 당대표 출마 문제로 혼란스러운 민주당과 지지율까지 키 맞추기를 하는 모양새다. 보수의 ‘미래’로 등장한 젊은 정치인이 자신의 행보 문제로 ‘계륵’이 된 상황은 한국 정치의 ‘후진적’인 현실을 보여준다. 찍어내기인가, 정당한 징계인가 이 대표를 둘러싼 논란의 핵심은 ‘2013년부터 2016년까지 한 중소기업 대표로부터 대전 유성구 일대에서 20여차례 성상납을 포함한 접대를 받았느냐’다. 성상납 대가는 당시 대통령이었던 박근혜씨의 해당 기업 방문 추진으로 알려졌다. 이 경우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알선수재) 혐의가 적용된다. 이 대표는 일관되게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7월 13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광주 무등산에서 찍은 사진을 게시했다. 국민의힘 중앙윤리위원회의 징계 이후 첫 근황 소개다. / 이준석 페이스북 갈무리 국민의힘 윤리위는 ‘이 대표가 성상납을 포함한 접대를 받았느냐, 아니냐’를 징계 사안으로 다루지 않았다. 의혹이 불거진 뒤 이 대표가 성상납 의혹 제보자와 접촉해 증거를 없애라고 지시했고, 김철근 당대표 정무실장이 ‘7억원 투자각서’를 써주고 증거인멸을 시도했느냐만 쟁점이 됐다. 결과적으로 윤리위가 징계 결정을 내리면서 성상납 증거인멸 시도는 이 대표가 지시했거나, 적어도 알고 있었던 것이 됐다. 징계대로라면 윤리위는 성상납 역시 발생한 사건으로 보았다는 것이 합리적 추론이다. 만약 성상납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왜 증거인멸을 시도한 것인지’, ‘해당 사안을 증거인멸로 보는 근거가 무엇인지’ 등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윤리위는 이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양희 국민의힘 중앙윤리위원장은 “이 대표 성상납 의혹의 진위 여부는 판단하지 않았다”면서도 “그간 이준석 당원의 당에 대한 기여와 공로 등을 참작해 이같이 결정했다”고 말했다. 징계가 몰고 올 파장과 논란을 피하려다 보니, 논리가 빈약해지는 상황이다. 이 대표는 이 틈을 놓치지 않고 파고들었다. “발생하지 않은 사건에 대해 증거인멸을 시도할 이유가 없다”는 논리로 반발했다. 지난 7월 6일에는 “윤핵관이라 지칭되는 분들은 본인들 뜻대로 하고 싶은 게 많아 당대표를 흔들었다”며 “윤리위를 앞두고 가장 신난 분들이 윤핵관”이라며 배후설에 불을 지폈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윤핵관에 대한 이 대표의 지적이 완전히 근거 없는 의심이라고 보기도 어렵다”며 “당대표를 징계하는 사안을 두고 대통령이나 당 핵심 관계자들이 사전 조율이나 검토가 없었다는 것이 오히려 더 어색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징계 수위 역시 당에 미칠 영향 등을 최소화하는 선을 고려한 결과일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6개월 징계 결정은 이 대표도 당내 세력도 반발하기 어려운 애매한 지점에 놓인 한 수가 됐다. 이 대표 입장에서는 징계가 끝나도 대표 임기가 남아 있다. 이 대표에 반대하는 세력은 경찰 수사결과가 ‘무혐의’로 나올 경우 역공을 받을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 수위 조절이 필요했고, 그 결과가 6개월이라는 의미다. 실제로 권 원내대표는 “이 대표가 징계 결정을 수용해야 한다”면서도 조기 전당대회를 열어 당대표를 새로 뽑는 방향에 대해서는 선을 긋고 있다. 당헌당규상 ‘궐위’가 아닌 ‘사고’는 전당대회 개최 요건이 아니라는 해석이다. 결국 어느 쪽도 완전히 패배하지 않은 상태에서 6개월이라는 시간이 던져진 셈이다. ‘계륵’인가, ‘보수의 미래’인가 상황에 대한 고려는 이 대표의 태도에도 변화를 만들었다. 윤리위가 징계를 결정한 직후 이 대표는 “당대표에서 물러날 생각이 없다”며 “(징계에 대한) 가처분이라든지 재심이라든지 모든 조치를 하겠다”고 날을 세웠다. 하지만 이후로 일주일여를 특별한 활동없이 잠행했다. 지난 7월 11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당원 가입하기 좋은 월요일이다”는 메시지만 남겼다. 7월 13일에야 이 대표가 광주를 방문한 사실이 그의 SNS를 통해 알려졌다. 이 대표는 “원래 7월에는 광주에 했던 약속들을 풀어내려고 차근차근 준비 중이었는데 광주시민들께 죄송하다”며 “조금 늦어질 뿐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 대표의 행보를 두고 일각에서는 결국, 윤리위 징계를 수용하는 수순으로 가지 않겠느냐는 추측이 나온다. 최진봉 성공회대 교수는 “이 대표의 고민은 ‘이준석답게’ 윤리위 결정을 공격하고 싸우는 모습을 보일 것이냐, 본인에게 더욱 불리한 상황을 막기 위해 타협할 것이냐에 있을 것”이라며 “경찰 수사가 남아 있는 상황에서 현 정부와 각을 세우는 것이 도움이 될지 따져보고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원 가입을 독려한다는 것은 결국 징계를 적당히 수용하는 모습을 보이고, 다시 당권에 도전하려는 행보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대표의 반발이 잠잠해진 건 여론조사결과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이 대표 징계 이후 발표된 여론조사결과를 보면 국민의힘 지지율은 거의 변동이 없다”며 “이 대표를 징계하면 국민의힘이 2030세대로부터 외면받으리라는 우려가 틀린 쪽으로 증명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표 역시 이러한 상황에 당황하고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이 대표 징계 직후 진행된,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에 등록된 여론조사는 7월 13일 기준으로 모두 5개다. 이중 4개가 이 대표 징계에 대한 의견을 직접 물었다. 모두 징계 찬성이 반대보다 높은 지지를 받았다. 특히 TBS 의뢰로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7월 8일부터 9일까지 전국에 거주하는 만 18세 이상 남녀 1002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벌인 결과, 이준석 대표 징계가 ‘적절하다’, ‘미흡하다’는 의견이 전체의 60.7%에 달했다. 31%만이 ‘과도하다’고 답했다.(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해당 여론조사에서 또 하나 주목할 만한 점은 2030세대에서조차 징계가 ‘적절하다’, ‘미흡하다’는 의견이 ‘과도하다’를 앞섰다는 점이다. 신 교수는 “공정에 민감한 2030세대가 이 대표 징계가 ‘적절하다’고 보는 것은 상징하는 바가 크다”며 “결국 2030세대의 이준석 지지는 같은 세대가 거대 정당의 대표가 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지지일 뿐 이준석에 대한 환호는 아니었던 셈”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표가 국민의힘에 돌아오는 것이 과연 당에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최 교수 역시 “결국 국민 사이에는 ‘이준석 피로감’이 있었다고 봐야 한다”며 “자신을 비판하면 참지 않고 공격하는 것이나 갈등을 유발하는 화법은 젊은 남성층 일부를 제외하면 선호되지 않는 태도”라고 지적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오른쪽)와 권성동 원내대표가 지난 6월 13일 국회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 권호욱 선임기자 반면 여론조사결과를 두고 상반된 의견도 나온다. 주로 2030 남성들이 모이는 인터넷 커뮤니티가 중심이다.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30대 A씨는 이 대표 징계를 두고 “2030세대의 표가 필요할 때는 이용하더니 이제 망신을 줘서 쫓아내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A씨는 커뮤니티에 올라온 여론조사결과를 분석한 내용을 보여주며 징계는 잘못된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해당 여론조사는 쿠키뉴스가 한길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7월 9일부터 11일까지 사흘간 진행한 여론조사다. 전국에 거주하는 만 18세 이상 남녀 1017명을 조사한 결과로 해당 여론조사도 이 대표에 대한 징계를 ‘잘했다’는 응답이 47.5%, ‘잘못했다’는 응답이 42.5%였다.(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A씨가 주목하는 것은 전체가 아닌 지역별·연령별 여론조사결과다. 모두 8곳으로 권역을 나눈 지역별 조사에서 대구·경북과 호남권에서만 이 대표 징계가 ‘잘못했다’는 응답이 더 높았다. 또 전 세대 중 30대 응답자만 징계가 ‘잘못됐다’는 응답이 48.4%로 ‘잘했다’는 응답(41.6%)을 앞섰다. 민주당 지지자라고 밝힌 사람 중 48.5%가 이 대표 징계를 ‘잘했다’고 지지한 만큼, 호남에서 역선택이 발생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A씨는 “이 대표는 TK(대구·경북) 지역에서 지지를 받고 있을 뿐 아니라 호남에 대한 확장성을 가진 유일한 국민의힘 정치인”이라며 “국민의힘은 지지기반이 약한 호남, 2030세대에 대한 강점을 가진 이 대표를 다시 찾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성상납 의혹에서 시작된 사태는 정치인 이준석에 대한 가치 평가 국면을 만들고 있다. 그러나 그보다 젊은 세대가 주도하는 정치혁신의 실상에 더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교수는 “정치혁신을 내세운 젊은 당대표가 성상납 의혹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 자체가 정치혐오를 키운다”며 “적당히 타협점을 찾는다고 해도 이 대표가 청년 정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키웠다는 점은 달라질 게 없다”고 말했다. 이준석 이후는? 이 대표가 특별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는 만큼 이제 관심은 문제를 어떻게 수습할 것이냐에 쏠린다. 전문가들은 “징계기간인 6개월을 채우기 전에 변곡점이 생길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신 교수는 “이미 경찰 수사가 상당히 진척된 것으로 알려진 만큼 결과 발표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것”이라며 “현재는 이 대표와 당내 반대세력이 전쟁을 앞두고 임시 휴전을 한 상태 정도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만약 경찰 수사결과가 무혐의로 나온다면 그때가 당이 최고로 흔들리는 시점이 될 것”이라며 “역공하려는 이 대표와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당내 세력 간 생존을 건 치열한 싸움이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실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이 대표가 복귀하면 더욱 시끄러워질 것이 분명한 만큼 차라리 빨리 끊어내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성상납 의혹에 대해 분명히 ‘사실무근’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럼에도 당 윤리위는 성상납 의혹의 증거인멸 시도를 인정하고 징계를 내렸다. 만약 이 대표가 윤리위 징계를 수용한다면 무엇에 대한 ‘인정’인지가 분명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신을 둘러싼 성상납 의혹마저 당의 결정에 따른다고 하기에는 시대가 너무 많이 변했다. 그동안 보여준 이 대표의 행보와도 어울리지 않는다.
표지 이야기
[박이대승의 소수관점](13)이준석의 ‘문제적 세계관’에 관하여(2022. 05. 13 14:18)
2022. 05. 13 14:18 정치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 대표와의 첫번째 토론에서 보여준 모습은 일종의 데자뷔 같다. 한편으로는 뻔하디뻔한 ‘통속적 합리성’을 재연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권위주의 국가 권력의 태도를 전형적으로 반복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5월 3일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긴급 의원총회를 열고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 관련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촉구하며 발언하고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 통속적 합리성 다소 도식적으로 요약하자면, 논변의 합리성은 전제의 정당성, 개념의 정확성, 개별 주장 사이의 논리적 일관성 등으로 구성된다. 수학적 증명 과정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자신을 합리적이라 평가하는 사람 중 다수가 세 번째에만 집착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로부터 ‘통속적 합리성’이 태어난다. 예컨대 ‘시험을 통해 채용하는 것이 공정하다’라는 전제에서 ‘시험을 보지 않은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는 것은 불공정하다’고 결론 내리는 사람이 많다. 이들은 전제와 결론 사이의 논리적 관계만 신경 쓸 뿐, ‘시험’과 ‘공정’이라는 개념을 명확히 정의하지 않고 전제 자체가 정당한지 묻지도 않는다. 이준석의 방식도 마찬가지다. 논리 전개에는 큰 문제가 없지만, 정치적으로 왜곡된 개념을 사용한다. 이는 그의 기본적인 세계관에서 비롯한다. 가장 심각한 것은 ‘시민’ 혹은 ‘일반 시민’이라는 말이다. 전장연 비판의 핵심에는 ‘시위대 대 불편을 겪는 시민’이라는 대립 구도가 있는데, 도대체 그가 말하는 시민이란 누구인가? 지하철 시위에 참여한 장애인은 특수 시민이나 비시민인가? ‘시위대가 시민에게 불편을 끼치고 있다’는 말은 사실 묘사가 아니라 특정 집단을 공격하기 위한 정치적 낙인찍기일 뿐이다. 지하철을 이용하는 사람도 시민이고 시위를 하는 사람도 시민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시민적 저항 운동의 한계를 정하는 작업이다. 이에 대한 태도는 두가지 방향으로 나뉜다. 첫째, 시민의 정치 참여는 보장해야 하지만, 결코 사회적 피해와 혼란을 발생시켜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둘째, 사회적 피해와 혼란이 발생하더라도 정치 참여를 최대한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도 있다. 이 둘 사이 연속적 스펙트럼이 존재하고, 그중 어디에 위치할지를 결정하는 것이 바로 숙의민주주의다. 현대 민주주의 발전을 주도해온 건 두 번째다. 이른바 선진국의 과거와 현재를 보라. 시위대는 거리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학생은 학교를 점거하고, 장애인은 대중교통을 중지시키고, 노동자는 생산 활동을 멈춘다. 저항 운동은 다른 시민의 불편을 초래하는데, 그중 상당수가 의도된 것이다. 그렇지만 ‘시민에게 불편을 주지 말아야 한다’는 식의 주장을 발견하기는 매우 어렵다. 오늘은 타인의 정치적 행동이 나에게 불편을 주지만, 언젠가는 나의 정치적 행동이 타인에게 불편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 나의 불편을 이유로 타인의 정치 참여를 규제한다면, 언젠가 타인의 불편을 이유로 내 정치적 권리가 제한될 것이다. 물론 첫 번째 입장에서 ‘시위대가 의도적으로 지하철 운행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건 충분히 가능하다. 단 이것이 합리적 주장이 되려면 정치적 낙인찍기나 집단적 증오와 단절하고, 정치적 권리에 대한 규제를 정당화할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특히 시민의 정치적 행동이 공공서비스를 방해할 수 있는 사회와 그렇지 않은 사회 중, 전자의 민주주의가 더 발전돼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당장 한국만 봐도 장애인 이동권이 이 정도라도 보장된 것은 쇠사슬로 몸을 묶고 버스를 멈춰 세웠던 장애인들의 투쟁 덕분 아닌가? 이준석의 세계 다음 사실에 주의하자. 이준석의 주장은 첫 번째 입장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의 목적은 두 입장 사이의 정치적 논의 자체를 차단하는 것이다. 그의 관심은 정치적 행동에 관한 원칙을 수립하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증오를 모아 소수를 공격하는 데 집중된다. 이러한 태도는 국가와 시민에 대한 그의 기본적 이해에서 비롯한다. 이준석은 박경석과의 토론 초반에 흥미로운 말을 한다. 전장연과 국민의힘이 ‘파트너십’을 가지고 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건 또 무슨 말일까? 시민과 여당의 관계를 ‘파트너십’으로 표현할 수 있는가? 토론이 이어지며 저 말의 진짜 의미가 드러난다. ‘우리가 당신들 요구를 검토해보고 들어주든지 말든지 할 테니까, 그냥 기다리라’는 것이다. 권위주의 국가 권력의 전형적 태도다. 시민은 ‘읍소’하고, 국가는 그중 일부를 ‘수락’해준다. 국가는 결코 ‘안 하겠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검토할 테니 기다리라’고 명령한다. 기다림에 지친 시민들이 저항하기 시작하면, 앞뒤 맥락은 다 잘라먹고 저항 방식을 문제 삼는다. 민주주의 국가의 존재 이유는 시민의 권리를 평등하게 보장하기 위함이다. ‘문명적’이고 ‘선진적’인 국가라면 어디에서나 다음 원칙이 수립돼 있다. 장애인 차별은 실재하고, 국가 권력 집단은 이들에게 평등한 권리를 보장할 의무가 있다. 이준석은 비민주주의적 세계관을 대표하는 정치인이다. 그의 세상에는 다수자와 소수자의 불평등도, 시민 평등의 원칙도, 국가와 시민의 의무-권리 관계도 존재하지 않는다. 거기서는 ‘인간은 불평등해야 한다’가 원칙이고, 다수자가 소수자를 희생시키는 것이 정상으로 인정된다. 이런 세계관이 늘 한국사회를 지배해왔지만, 다수 집단은 그것을 언어로 표현할 능력이 없었고 굳이 그럴 필요도 없었다(어차피 자신들이 주류이므로). 하지만 불평등과 차별에 저항하는 목소리는 꾸준히 성장해왔고, 이러한 목소리를 무시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을 때 이준석이 등장했다. 그가 ‘공정’을 자신의 가치로 제시했을 때, 윤석열 당선인이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고 했을 때, 한국의 주류 세계관은 명확한 자기 언어를 획득했다. ‘혐오’는 이준석을 비판하기에 너무나 부족한 말이다. 이 말은 집단적 증오를 재생산하는 사회적 메커니즘과 ‘혐오 표현’을 구별하지 못하고, “난 혐오 표현 안 했는데”라는 핑곗거리를 만들어준다. 지금 문제가 되는 건 혐오가 아니라 이준석이 대표하는 세계관 그 자체다. 그의 등장은 단지 ‘혐오 정치인’ 한명의 성공이 아니라 반민주주의적인 국가 권력과 사회적 관계의 지속가능성을 의미한다. ‘시민의 불편’ 따위의 언어가 공적 공간에서 완전히 사라졌을 때, 한국의 민주주의는 진정으로 발전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박이대승의 소수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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