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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간]AI가 내 일자리를 뺏는다면(2023. 11. 22 07:00)
- 2023. 11. 22 07:00 문화/과학
- 일자리 그 위대한 여정 백완기 지음·지베르니·2만5000원 ‘챗GPT’로 대표되는 생성형 인공지능(AI)의 등장 후 ‘AI가 머잖아 인간을 대신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에 보다 힘이 실리고 있다. 샘 올트먼도, 일론 머스크도 “일할 필요가 없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견한다. AI 때문에 일자리를 잃는다면 인간은, 인간의 ‘삶’은 어떻게 될까. 단순히 먹고사는 문제만이 아니다. 저자는 인간에게 일자리가 무엇인지, 그리고 언젠가 정말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하는 시대가 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탐구한다. 인류 초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최초의 일자리가 생겨난 시점부터 사회와 함께 진화하고, 현재에 이르는 기나긴 여정을 추적한다. 인류 최초의 일자리는 ‘생존’이었다. 사냥과 수렵을 하고 열매를 채집했다. 대를 잇기 위한 ‘육아’ 역시 최초의 일자리다. 생존을 위해 살면서 ‘무리’를 짓고 사는 게 유리하다는 걸 깨달은 인류가 만들어낸 것이 바로 ‘사회’라고 저자는 분석한다. 사회가 탄생한 뒤 일자리의 의미와 인간의 삶이 어떻게 변화됐는지도 추적한다. 사회가 국가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인간은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고 받아들이게 됐다. 자기 일을 통해 국가와 사회 구성원으로부터 공정한 대우를 받으리라는 믿음이 바탕이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업혁명과 현대화 시기를 거치며 일자리의 의미가 퇴색되고, 인간은 하나의 ‘부품’으로 전락했다. 일자리의 미래는 ‘암울’하다. 저자는 AI 시대가 오히려 ‘기회’라고 역설한다. AI에 일자리를 빼앗길 걱정을 할 것이 아니라 그 일자리 대신 무엇을 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지금은 일자리로 인식되지 않았던 공익과 공공을 위한 일들이 새롭게 평가되고 일자리로서 존중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AI를 통해 생산된 부를 사회적으로 재분배하는 문제 역시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홍성욱의 그림으로 읽는 과학사 홍성욱 지음·김영사·1만9800원 스테디셀러 <그림으로 보는 과학의 숨은 역사>의 개정판이다. 이론과 개념의 발달을 중심으로 한 과학사에서 벗어나 ‘이미지’를 통해 과학의 역사를 새롭게 들여다본다. 그림 한 컷에 담긴 사연과 함께 독자들을 과학 세계로 초대한다. 달러의 힘 김동기 지음·해냄·3만3000원 전 세계가 왜 미국의 금리 발표에 숨을 죽이는지, 달러가 가진 ‘기축통화’의 힘이 무엇인지 등 현대인이 꼭 알아야 하는 미국 경제 패권의 실체를 분석한 책이다. 달러 패권 경제의 형성과 흐름, 그 위력을 세심하게 파헤쳤다. 사무실의 도른자들 테사 웨스트 지음·박다솜 옮김·문학동네·1만7500원 직장인들이 호소하는 어려움은 ‘일’보다 ‘사람 문제’에서 기인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사무실에서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도른자들’인 이들과 관계를 설정하고 나를 지키는 방법을 서술한다.
- 신간
- “교통비 내면 못 살지…저임금 일자리뿐인데”(2023. 02. 17 11:05)
- 2023. 02. 17 11:05 사회
- 김정국씨(가명·83)는 노인 일자리로 한 달 27만원을 번다. 기초연금이 유일한 소득인 김씨에게 노인 일자리를 통한 27만원의 추가 수입은 없어서는 안 될 돈이다. 아내와 함께 아끼고 아껴서 빠듯하게 한 달을 산다. 물가가 오른 이후에는 돼지고기 한 근 사먹기도 힘들다. 김씨는 노인 일자리로 독거노인의 고독사를 방지하는 업무를 담당했다. 인근 지역 독거노인의 집을 방문해 상황을 살피고 대화도 하면서 고립되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그러다가 지난가을 초등학교로 일자리를 옮겼는데, 생각지도 못한 어려움이 생겼다. 아침 9시까지 학교에 출근하기 위해 지하철을 타야 했다. 사람이 많기도 하거니와 경로우대석에 앉아 있다 보면 젊은 직장인들에게 눈치가 보였다. 김씨는 “나도 일하기 위해 출근하는 건데 젊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겠나. ‘저 노인은 왜 이렇게 바쁜 시간에 굳이 지하철을 타고 있을까’라며 욕할 것 같다. 가능하다면 다시 동네에서 하던 일로 바꾸고 싶다”라고 말했다. 서울 지하철 종로3가역에서 노인들이 개찰구로 향하고 있다. / 연합뉴스 노인 무임승차제도가 지하철 적자의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일각에서는 출퇴근 시간에 노인 무임승차를 폐지하자는 주장이 나온다. 출퇴근 시간에 지하철을 타는 노인은 소득이 있는 노인이라 요금 지불 능력이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김씨처럼 최소한의 생계를 위해 출퇴근 시간에 지하철을 타야만 하는 노인들도 있다. 서울시 지하철 기본요금(교통카드)은 1250원이다. 만약 매일 왕복 1회씩 무료로 이용한다면 30일 기준 7만5000원의 요금을 절약할 수 있다. 1인 가구 기준 기초연금(최대 32만원)의 25%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김씨처럼 기초연금과 저임금 노인 일자리가 유일한 소득인 상황에서 추가 교통비 지출은 막대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노인 무임승차제도’가 적자 원인? 서울시가 지하철·시내버스 요금 인상을 추진하면서 65세 이상 ‘무임승차제도’를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지난 1월 30일 오세훈 시장은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지하철·시내버스 요금 인상을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며 지하철 노인 무임승차를 주요 적자 원인으로 꼽았다. 오 시장은 “서울 지하철 요금은 8년째 묶여 있다. 300~400원 올린다고 해도 운송 원가에 턱없이 못 미친다”라며 “지하철 무임 수송에 대한 기재부 지원이 이뤄지면 요금 인상 폭을 조절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교통공사는 당기순손실이 2017년 5254억원에서 2019년 5865억원으로 늘었고,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승객 감소가 겹친 2020년에는 1조1137억원까지 확대됐다. 지난해 역시 적자가 1조원을 넘었다. 오 시장의 요구에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중앙정부도 빚을 내서 나라살림을 운영하는데, 지방자치단체가 어렵다고 지원해 달라고 하는 것은 논리 구조가 맞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지자체와 기재부의 재원 공방은 ‘노인 무임승차제도’ 논란으로 번졌다. 오 시장은 지난 2월 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대중교통 요금 인상이 발등의 불이지만, 급격하게 고령사회가 되는 상황에서 사회적 복지 구조를 어떻게 바꾸느냐 하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바탕에 있다”며 “머지않아 노령인구가 전체 인구의 3분의 1이 되고, ‘백세시대’가 될 터인데 이대로 미래세대에게 버거운 부담을 지게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지난 2월 10일 서울시가 개최한 ‘대중교통 요금 인상 및 재정난 해소방안 논의를 위한 시민공청회’에서는 이창석 서울시 교통정책과장이 2018~2022년 최근 5년간 무임손실이 3165억원에 달하며 지하철 적자의 30%를 차지한다고 말했다. 노인 무임승차가 지하철 요금 인상을 불러왔다는 여론이 형성되면서 ‘노인연령 70세로 상향 조정’, ‘출퇴근 시간 무임승차 제한’, ‘무임승차 소득별 차등 적용’ 등 무임승차 개편에 대한 갑론을박이 쏟아져 나왔다. 당초 서울시는 3월 물가대책위원회 심의를 거쳐 4월 말 대중교통 기본요금을 올릴 계획이었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이 올해 상반기 공공요금 동결 기조 유지 방침을 밝히면서 지난 2월 15일 요금 인상 계획을 철회했다. 서울시는 공공요금 인상 시기를 하반기로 조정하겠다고 밝혔다. 지하철 요금 인상이 하반기로 미뤄지면서 당장의 논란은 사그라들고 있지만, 불씨는 여전히 남았다. 사실 노인 무임승차제도는 해묵은 논쟁거리다. 2012년 제18대 대통령선거 당시 박근혜 후보가 고령층의 압도적 지지로 당선되면서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던 젊은층을 중심으로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 폐지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박근혜 후보가 보편적 복지에 반대하는 입장이니 노인 무임승차제도도 폐지하는 게 맞다는 반발이었다. 세대 갈등 양상을 보이던 노인 무임승차제도는 지하철 운영기관의 적자가 심화되면서 적자의 주범으로 지목됐다. 2021년 통계에 따르면 한 해 서울교통공사 기준 노인 지하철 무임승객은 1억7077만명이고 연간 비용은 2311억원에 달한다. 노인 무임승차를 적자의 원인으로 볼 수 없다는 반박도 만만치 않다. 노인의 지하철 무료이용이 배차 증가나 운행 비용 증가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김호일 대한노인회장은 지난 2월 9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출퇴근 시간을 제외하면 지하철에 빈자리가 많은 상태에서 다니는데 노인이 여러 사람 탔다고 왜 적자가 나느냐”고 말했다. 김호일 대한노인회중앙회장과 오세훈 서울시장이 2월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노인 무임수송 정책토론회에서 대화하고 있다. / 연합뉴스 2014년 한국교통연구원이 발간한 논문 ‘교통부문 복지정책 효과분석-지하철 경로무임승차를 중심으로’에 따르면 노인 무임승차제도의 시행비용은 0에 가깝다. 논문은 노인 무임승차제도의 시행비용을 노인 무임승차 인원 운송에 소요되는 추가 비용으로 정의하고, 지하철 운영기관의 원가와 연간 이용객 수를 비교했다. 그 결과 총원가는 수송인원에 비례하지 않았다. 논문은 “지하철 수송인원과 1㎞당 수송원가의 상관관계가 거의 없으므로 경로무임승차자로 인해 추가 발생하는 운송비용은 0에 가깝다”고 결론내렸다. 또 출퇴근 시간대 경로무임승차자로 인한 혼잡 비용도 경로 무임승차자의 시간대별 이용패턴과 65세 미만 승차자의 이용패턴이 상이하기 때문에 혼잡비용 또한 매우 적다고 분석했다. 노인 무임승차제도를 축소 또는 폐지한다고 수익이 유미하게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이어졌다. 2013년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노인 교통 이용 요금제도 개선방안 연구: 지하철 무임승차를 중심으로’에 따르면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제도가 축소되면 지하철 이용을 줄이기 위해 외부활동을 줄이겠다는 응답이 43.8%에 달했다. 지하철 이용을 줄이고 버스나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하겠다는 사람도 12.7%를 차지했다. 노인 무임승차제도를 폐지 혹은 축소해도 노인 지하철 이용자가 줄어들어 기대했던 만큼의 이익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분석이다. 지하철 적자를 노인 무임승차제 탓으로 돌릴 게 아니라 대중교통 수요를 확대하는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김상철 공공교통네트워크 정책위원장은 지난 2월 10일 열린 공청회에서 노인 무임승차로 재정 압박이 심화되고 있다는 서울시의 주장에 대해 “실제로 노령층의 증가가 핵심인가, 아니면 유상 승객의 감소가 핵심인가”라고 물었다. 코로나19로 급감한 대중교통 이용 수요를 회복하고 기후위기 시대 친환경 대중교통의 이용 수요를 늘리려는 정책적 접근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노인빈곤과 사회적 편익 저임금 일자리에서 일하거나 소득이 없는 노인들은 지하철 무임승차제도가 유지돼야 한다고 말한다. 노인 일자리 상담사로 일하고 있는 임미령씨(66)는 노인연령 상향 조정 등 현행 무임승차제도 축소 논의에 대해 노인빈곤 현실을 전혀 모르는 주장이라고 말했다. 임씨는 “노인 대부분이 청소나 경비, 가사, 요양, 보육 등 저임금 일자리에서 일하고 있다. 그것도 70세 이전에나 가능하다. 정부가 제공하는 노인 일자리도 차례가 오지 않아 낙담하는 분이 많다”라며 “국민연금이 준비가 안 된 노인이 많고, 또 연금이 나오더라도 30만~40만원으로 적은 액수인 경우가 많다. 기초연금에 국민연금까지 더해도 한 달에 60만~70만원의 소득이 전부인 분들이 태반이다. 일을 안 하면 생활이 어려운데 일자리도 없다. 여기에 지하철 요금까지 내라고 하면 어떻게 되겠나”라고 말했다. 8개월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는 임씨도 오는 3월 계약 만료를 앞두고 있어 막막하기는 마찬가지다. 임씨는 “3월 중순에 계약이 만료된다. 나 또한 새로운 일자리를 구해야 한다. 기초연금 32만원 받고 있고, 4대 보험이 안 되는 직장에 주로 다니다 보니 국민연금 30만원이 전부다. 다음 일자리를 못 찾으면 60만원으로 한 달을 살아야 하는데 지하철 요금까지 더 내라고 하면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정인숙씨(75)는 10년 전 은퇴한 이후 무보수로 이주여성을 도와주는 일을 하고 있다. 은퇴 이후 예기치 못한 사고로 경제적 손실을 본 정씨는 기초연금과 생계급여가 유일한 소득이어서 생활이 빠듯하다. 그나마 지하철 무료이용 덕분에 사회참여 활동을 할 수 있다. 정씨는 “이주여성을 지원하려면 많이 돌아다녀야 한다. 지하철이 무료이기 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씩 여기저기 다닐 수 있다”라며 “은퇴 이후 문화생활은 거의 못 하고 있다. 지금 하고 있는 건 은퇴 전에 주로 하던 일이어서 내가 가진 전문성을 나눌 수 있기도 하고 교통비에 큰 부담이 없어 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씨는 노인 무임승차제도 논란과 관련해 “돈 있는 사람들은 자가용을 이용할 것이고 대부분의 저소득층 노인들이 지하철을 이용한다. 혼자 사는 노인도 많고 노인빈곤으로 인한 자살률도 높은데 교통수단마저 끊어버리게 되면 노인들에게 상당한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지하철 무임승차제도를 적자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비용의 문제로 봐야 한다는 연구결과도 많다. 2020년 서울연구원이 발표한 이슈보고서 ‘지하철 무임승차제도, 지속가능성 확보하려면 운영손실 정부지원 운영기준 변경 검토 필요(신성일·이진학)’는 무임승차제도로 3650억원의 사회적 편익이 발생한다고 분석했다. 이 보고서는 무임승차제도의 비용편익을 분석한 한국교통연구원의 2012년의 연구를 2020년 물가상승률을 적용해 이같이 환산했다. 다수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노인 경로 무임승차제도가 노인의 외부활동을 촉진해 여가활동 증가, 경제활동 증가, 노인복지, 관광 활성화 등의 사회적 효과를 낳고 자살자 감소, 우울증 감소, 교통사고 의료비 절감 등 노인복지예산 절감에도 기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승연 서울연구원 연구위원은 “노인 무임승차제도를 돈의 문제로만 봐서는 안 된다. 코로나19 3년 동안 집 밖을 나오지 않고 갇혀 있으면서 고립, 고독사가 사회적 문제가 됐다. 정부 또한 여기에 많은 돈을 썼다”라고 말했다. 김 연구위원은 “노인들은 소득에 따라 이동거리가 굉장히 차이가 난다. 그나마 지하철이 무료이기 때문에 일단 집 밖으로 나올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연구원이 발간한 책 <노인을 위한 동네>에 따르면 소득은 노인의 이동권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등 가난한 노인일수록 동네를 벗어나지 못했고, 소득이 높을수록 더 멀리 이동하는 경향을 보였다. 노인일수록 소득과 이동권의 상관관계가 높은 만큼 노인에 대한 적극적인 교통복지 제도가 필요함을 시사한다. 한 노인이 모아온 폐지를 손수레에 싣고 서울 교남동의 고물상으로 들어가고 있다. / 정지윤 기자 장기적인 과제 지하철 경로우대제도는 1980년 5월 8일부터 시행됐다. 처음에는 70세 이상 노인에게 요금의 50%를 할인해주다가 1982년 2월부터 대상을 65세 이상 노인으로 확대했다. 1984년 6월에는 할인율을 50%에서 100%로 확대했고, 1997년부터 수도권 전철로 확대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할인율 100%를 처음 도입한 1984년에는 전체 서울시 인구 중 노인인구는 2.8%에 불과했다. 2020년 기준 현재 서울시 노인인구는 15.4%이고, 2035년에는 28.3%로 증가해 3명 중 1명이 노인인구가 될 전망이다.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두고 노인 무임승차제도를 지하철 운영기관의 적자 개선 중심으로 논의하기보다 정년 연장, 연금개혁, 복지제도 보완 등 복지의 큰 틀에서 함께 논의해야 하는 배경이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은 “전반적으로 수명이 늘어나니 법정 혹은 복지기준에서의 연령도 올라갈 필요가 있는 것은 맞다. 문제는 이를 위한 사회경제적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는 점이다. 복지 혜택이 없어져도 생활하는 데 큰 문제가 없는지 다른 복지정책이나 일자리 정책 등을 보완했는지 등을 살펴봐야 한다. 아직까지는 개선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라며 “사회경제적 여건이 형성돼 있지 않았기 때문에 노인연령 상향 조정 등의 논의는 현재로서는 적합하지 않다”고 말했다. 대한노인회 측은 “지금 퇴직연령이 55세부터 이뤄지고 있고 보통 60세면 정년을 맞는다. 정년 이후 5년이 지나야 노인이 된다. 정년도 늘리지 않고 혜택을 중단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지자체는 노인 무임승차제도는 국가 복지정책의 일환으로 시작된 공익서비스이기 때문에 국가가 무임승차 손실액을 보전해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도시철도를 운영하는 서울·부산·대구·인천·대전·광주 등 6개 지방자치단체는 정부가 국고보조로 무임승차 손실분을 지원해줄 것을 꾸준히 요구해왔다. 반면 기재부는 도시철도 운영주체가 지자체이고 정부가 막대한 재정부담을 안을 수 없다면서 난색을 표했다. 지자체는 정부가 코레일에 지원하는 만큼 다른 철도 운영기관에도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는 공익서비스 의무(PSO) 명목으로 정부로부터 연 3800억원의 재원을 지원받고 있다. 정부는 대도시에 국한돼 있는 도시철도와 달리 코레일은 전국적으로 혜택을 제공한다고 본다. 신성일 서울연구원 연구위원은 “서울 지하철은 2500만명이 이용하고 있으며 서울지역교통공사의 지역 간 통행이 월등하다”라며 “수도권 대중교통 체계에서라도 분석을 해보면 코레일보다 서울교통공사가 노인 무임승차나 요금 등에서 더 많이 공공에 기여하고 있다. 기존의 법적 근거에 따라 최소한 코레일만큼의 보전은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도시 이외의 지역도 고려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현수 보건사회연구원 사회보장재정 정책연구실장은 “만약 기재부가 지원한다면 무임승차 때문에 생기는 적자를 보전하려는 명목보다 지역균형발전 차원에서 전반적으로 교통과 관련한 지원을 하는 방향으로 가야 할 것이다. 노인이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생기는 사회적 편익 등을 고려해 전국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 표지 이야기
- 일자리 잃었는데 제외? 재난지원금발 ‘이의신청’ 후폭풍(2021. 09. 24 14:59)
- 2021. 09. 24 14:59 경제
- ㆍ지자체 담당자가 케이스별 판단해야 하지만 기준 애매한 경우 적지 않아 사진/박민규 선임기자 #1 “세금도 내고 건강보험료도 납부하는데 왜 국민지원금을 못 받나요?”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 A씨는 이 같은 이의신청을 남겼다. 외국인은 원칙적으론 지급대상이 아니지만, 주민등록이 돼 있고 건강보험 가입자, 피부양자, 의료급여 수급자일 경우엔 포함된다. 다만 한가지 조건이 더 붙는다. 영주권자나 결혼이민자가 아닌 이상 한국 국민 1인 이상과 ‘민법상 가족관계’를 증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2 “6월 이후 재산을 다 처분했어도 안 되나요?” B씨도 문의했다. 이번 국민지원금 기준상으로 그는 고액자산가(2020년 귀속분 재산세 과세표준액 9억 초과 또는 연 금융소득 2000만원 초과)에 해당하지만, 과세대상이 된 2019년과 지금의 자산규모가 달라졌다는 점이 문제다. 실제로 9월 23일까지 접수된 코로나19 상생 국민지원금 이의신청 사례다. 행정안전부 집계에 따르면 22일 오후 6시까지 접수된 이의신청 건수는 30만8444건에 달한다. 이의신청 판단, 또 다른 혼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벌써 5번째 지원금이지만 지급대상 선정을 둘러싸고 잡음이 끊이질 않고 있다. 불만이 커지자 당정이 진화에 나섰지만 메시지가 오락가락해 한차례 혼란을 겪었다. 박완주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신청 초기인 지난 9월 9일 “최대한 구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88%보다는 조금 더 상향, 더 많은 사람이 혜택을 받아 90% 정도”라고 했다. 이를 두고 지급대상을 확대하는 것이냐는 해석이 나오자 신현영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9월 14일 “과거 이의신청을 경험한 바로는 30만~40만명이 예상된다. 그런 경우에 90%를 말씀하셨던 것”이라고 했다. 이의신청을 폭넓게 받아줄 경우 결과적으로 90%가 받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는 의미다. ‘고무줄 지급’ 논란이 일자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9월 13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지급대상 자체를 늘리려 했던 것은 아니었다”고 선을 그었다. 홍남기 부총리는 “경계선에 있어서 이의신청이 인정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는 사안이면 가능한 한 국민 입장에서, 지원하는 방안으로 해주면 좋겠다는 것이 당초 정부가 정했던 입장”이라며 “88%를 89%, 90%로 지급대상 자체를 늘리려 했던 것은 아니었는데 일각에서 혼선이 있었다”고 말했다. 박완주 정책위의장은 다시 9월 15일 KBS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서 “이의신청자를 최대한 수용하겠다고 하는 부분이 핵심이다. ‘고무줄 지급’은 언론의 오해”라고 했다. 결국 혼란과 불만을 줄일 수단으로 이의신청을 제시한 셈이다. 하지만 이의신청 판단에는 또 다른 혼란이 기다리고 있다. 실제 이의신청은 지방자치단체의 담당자가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인용 여부를 결정한다. 이의신청까지 나서는 사례는 한눈에 판단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거나 기준이 애매한 경우가 적지 않다. 앞서 언급된 외국인 사례만 보더라도 가족관계, 비자 종류 등을 검토해야 하는데, 문제는 외국인인 A씨가 고액자산가인지를 확인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교정시설 재소자처럼 별도 지침이 아직 마련되지 않은 경우도 있다. 담당 업무를 하는 공무원 C씨는 “민원창구를 국민신문고로 하는 바람에 기존 전자행정시스템, 지자체, 건보공단과 연계가 용이하지 않아 인편이나 팩스로 전달하고 있다”며 “쏟아지는 이의신청을 처리하느라 본래의 업무는 하나도 못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은 “불필요한 행정력 낭비는 결국 일선 현장의 공무원과 국민에게 돌아가고 있다”며 “선별지급을 철회하고 모든 국민에게 지급하라”고 촉구했다. 선별복지의 난점도 되풀이되고 있다. 직장가입자의 경우 ‘2021년 6월 기준 건강보험료’라고 시점과 기준을 못 박았기 때문에 이후 상황이 변한 이들은 불이익을 받게 된다. 지난 6월까진 직장에 다니며 건보료를 냈지만 7월부터 일자리를 잃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지원금이란 취지에는 부합하지만 정작 지원대상에서 빠지게 되는 것이다. 사례 B씨와 같은 지역가입자의 경우엔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인 2019년도분 소득이 반영된 2020년 종합소득세를 고려하기 때문에 ‘코로나19로 인한 피해를 구제한다’는 국민지원금 성격에 적합하지 않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를 비롯해 지난 6월 이후 출생하거나 귀화한 경우 국민지원금을 받기 위해선 별도로 이의신청을 해야 한다. ‘취약계층 지원’ 본질은 어디에 현재의 혼란은 이미 지원대상을 정할 때부터 내재돼 있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대상자 선정방식의 한계를 보완하는 노력이 미흡했다고 지적했다. 예산정책처는 “국민지원금은 취약계층을 지원한다는 점에서 지난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긴급재난지원금과 차이가 있다”며 “그럼에도 긴급재난지원금 당초 정부안(건보료 기준, 소득 하위 70%)과 마찬가지로 특정 소득 이하를 대상으로, 선별방식도 동일하게 적용했다는 점에서 선별에 따른 우려(형평성 등)를 해소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다”고 봤다. 하위 88%에서도 소득이나 자산 수준이 천차만별인데 같은 금액을 주는 것이 맞느냐에 대한 회의도 여전하다. 소득과 자산 차이를 ‘슬라이딩’ 방식으로 원만하게 반영해야 한다는 대안이 지난해에도 나왔으나 행정비용 문제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슬라이딩 방식은 소득이나 자산이 적은 사람에게 더 많이 주고, 많은 사람에게 적게 주는 역삼각형 구조다. 반면 이번 지원금은 기준을 충족한 모두에게 동일한 액수를 지급하고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아예 주지 않는다. 이럴 경우 “기준소득 인근에서 소득 역전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등)”는 예상이 가능하다. ‘누군 받고 누군 못 받는다’는 논란 속에서 국민지원금의 의미는 ‘88%, 90%, 100%’로 상징되는 숫자 싸움에 갇혀버렸다. 이의신청이 쌓일수록 지원금의 본래 취지를 돌아볼 기회는 멀어졌다. 이경민 참여연대 사회경제2팀 팀장은 “88%, 90%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코로나19 위기에 벼랑 끝에 선 사람들을 위한 두텁고 장기적인 소득보장이 필요하다. 코로나19가 장기화하는 상황에서 일시적이고 보충적인 의미의 지원금보다는 가장 취약한 계층을 위한 대책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 [특집]코로나 생존기- 아랍에미리트, 일자리 잃은 외국인들 고국으로(2020. 09. 24 16:41)
- 2020. 09. 24 16:41 국제
- 지난 2월까지만 해도 여덟 살 딸은 방과 후 동네친구들과 저녁 7시까지 노는 게 일상이었다. 그러나 반년이 지난 지금 집 안에서 혼자 책을 읽거나 만화를 본다. 친구들이 모두 동네를 떠났기 때문이다. 각 가정사의 속내는 잘 모르겠으나 그중 반은 일자리를 잃어 본국으로 돌아갔고, 반은 더 싼 집으로 이사를 간 것으로 보인다. 두바이의 한 학교 운동장에서 학생들이 부모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 손원호 제공 두바이 인구의 80% 이상이 외국인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수많은 외국인이 일자리를 잃고 조국으로 돌아갔다. 이에 따라 두바이의 주택 공실률이 높아지고 집 렌트비용이 급락하자 지난 6개월간 대이동이 있었다. 더 싼 곳으로, 아니면 같은 가격의 더 나은 곳으로 거처를 옮긴 것이다. 나는 매일 저녁 아내와 동네 산책을 하는데 이전과 다르게 빈 집과 빈 주차 공간이 눈에 띈다. 씁쓸한 기분이 든다. 한편 두바이는 2020년 10월 엑스포가 열릴 예정이었다. 2500만명의 관광객 유치를 위해 최근 몇 년간 두바이의 각지에서는 각종 건물을 올리며 활기찬 모습을 보여왔다. 코로나19로 인해 엑스포는 2021년 10월로 연기되었고, 많은 건축 사업이 중단되거나 취소되었다. 두바이 정부는 관광 산업의 회복을 위해 하늘문을 열고 여행 규제를 완화하고 있지만, 아직 코로나 감염에 대한 우려와 까다로운 출입국 규정이 이를 가로막고 있다. 대신 국내 여행에 관심을 돌리는 스테이케이션(staycation) 여행객이 증가하고 있다. 위험을 무릎쓴 유럽 여행보다는 안전한 국내 사막 여행이 더 낫다는 것이다. 지난 4월 4일, 두바이 정부가 2주간 24시간 통행 금지령을 내리자 온라인 플랫폼이 급속도로 발달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아내는 밤만 되면 열심히 휴대폰을 두드리며 무엇인가를 주문했다. 하루에 배달원이 누르는 초인종 수만 서너 번이다. 9월 학기부터 오프라인 수업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한 지 약 반년이 되었다. 다행히 조금씩 새로운 질서가 잡혀감을 느낀다. 두바이의 많은 학교는 9월 학기부터 오프라인 수업을 재개했다. 지난 학기 온라인 교육을 하느라 지칠 대로 지쳐버린 부모들 대부분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있다. 물론 최근 코로나19 확진 학생이 늘고 있지만 같은 반 아이들만 2주간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하고 나머지 아이들은 정상 등교한다. 초기에 몸을 사리던 사람들도 코로나 블루를 극복하기 위해 이제는 주말만 되면 집 밖에 나선다. 두바이 정부는 철저히 방역에 힘쓰고 있다. 9월 둘째 주 주말에는 두바이 경찰이 쇼핑몰 4곳에 불시 점검을 나와 마스크 미착용, 불법 단체 모임 등을 단속했다. 이틀 동안 221건의 벌금을 부과하고, 3300건의 경고문을 발급했다. 자유롭게 돌아다니되 지킬 건 지키라는 강력한 메시지다. 22개 아랍 국가에서의 하루 신규 확진자만 1만명이 넘었다. 내가 사는 아랍에미리트(UAE)에서는 9월 이후 하루 평균 700명을 넘어서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바이의 많은 사람은 소소한 일상에서 작은 행복을 찾으며 살아간다. 코로나19가 잦아들어 정상화가 되기까지 사람들이 이 작은 행복을 계속 이어갔으면 좋겠다.
- 특집
- [취재 후]일자리는 빈부·학력 차별 없이 안전해야(2020. 05. 04 14:00)
- 2020. 05. 04 14:00 사회
- “이제 만으로 마흔하나인데 나이가 많다고 출근하지 말라고 하네요.” 인천 파라다이스시티 카지노의 하청업체에서 일한 ㄱ씨는 지난 3월 중순 회사로부터 계약을 연장하지 않겠다는 말을 들었다. 비정규직이긴 했으나 계약을 매년 갱신해 수년 이상 일한 장기근속자가 적지 않은 회사였다. ㄱ씨는 ‘해고’가 부당하다며 난생처음 시위에 나섰지만 바뀐 것은 없었다. 오히려 동종의 다른 업체에 이력서를 낼 때마다 ‘데모한 친구들’이라는 낙인이 찍혀 거절당하기만 했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ㄱ씨는 최근 모델하우스 셔틀버스 운전자로 채용됐는데 하루 만에 ‘나이’를 이유로 채용을 번복당했다. 그는 이제야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그와 함께 만난 동료 ㄴ씨는 “워크넷(고용노동부가 운영하는 취업정보사이트)에 들어가 이력서를 넣어도 딱히 연락 오는 곳이 없다. 거절 문자조차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지난 4월 21~22일 이틀간 인천국제공항 인근 지역을 돌아다니며 ‘고용절벽’으로 내몰린 이들을 만났다. 감염병에 항공·관광산업을 비롯해 거의 모든 산업이 위기에 몰려 잠시 몸을 의탁할 곳을 찾기조차 어렵다. 갈 곳 없는 노동자들은 쿠팡 택배와 음식 배달일로 몰리고 있다. 더 불안정하고, 더 위험한 일감에 생존을 의지하게 된다. 코로나19로 하늘길이 끊기면서 이미 수천 명의 사람이 일터에서 사라졌다. 비정규직은 계약이 연장되지 않고, 신입 직원들은 대기발령을 받고, 인턴 채용은 취소당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실업의 ‘전염병’에서 가장 취약한 사람들은 청년·불안정 노동자들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한 위기가 장기화하면 누구도 자신의 일자리가 안전하다고 장담할 수 없다. 우리가 할 일은 먼저 고용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 그다음엔 피치 못해 일자리를 잃더라도 그 고통이 견딜 만하도록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 원청업체를 지원하면서 도급계약을 유지하도록 조건을 달아 하청노동자들의 고용을 간접적으로라도 보장할 필요가 있다. 특수고용노동자·프리랜서도 고용보험에 가입해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고용보험법을 개정할 필요도 있다. 일터를 더 안전하고 안정적인 곳으로 만드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 새벽 근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연락을 준 한 면세점 하청업체 직원은 “자르면 나갈 수밖에 없는 계약직은 진짜 더 이상 겪으면 안 된다고 느꼈다. 안전하고 오래 갈 수 있는 일자리를 잡고 싶은데 능력이 없다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자신이 가진 것, 배운 것과 상관없이 일자리만큼은 안전하고 오래갈 수 없을까.
- 취재 후
- 정당한 대접 못 받는 ‘노인 일자리’(2020. 04. 24 15:43)
- 2020. 04. 24 15:43 경제
- ㆍ60세 이상 인구 중 40%가 근로자… 임금은 낮고 해고 위험은 높아 정오가 되자 김정국씨(가명·60)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점심을 먹기 위해서다. 김씨가 찾은 곳은 아파트 지하실이다. 햇빛이 전혀 들지 않는 지하는 깜깜했다. 스위치를 올리자 불이 들어왔다. 머리 위를 지나가는 노란색·파란색·빨간색 배관부터 눈에 들어왔다. 습도가 높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지하실 한쪽에 김씨가 마련한 공간이 보였다. 침대와 담요, 책상, 냉장고, 옷장, 선풍기 등 살림살이가 빼곡했다. 지하실 특유의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여기서 어떻게 밥을 먹고 잠을 자는지 물었다. 김씨의 답은 짧고 명료했다. “어쩌겠어요.” 2000세대가 넘는 거대한 아파트단지에서 김씨가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곳은 지하실뿐이다. 일하는 노인은 점점 늘어나고 있지만 이들 대부분이 불안정. 저임금 일자리에 머물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없음)/이준헌 기자 김씨는 성실하게 살았다. 20대에는 전국 곳곳 건설현장을 누비며 일했다. 1980년대 중반, 건설 호황이 끝나자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 30대에는 공무원으로 일했다. 아이 둘을 키웠고 집을 샀다. 40대 중반, 아내가 시작한 식당도 잘됐다.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부족하지도 않은, 중산층의 삶이라 생각했다. 근로시간을 따지면 최저임금 이하 정년퇴직하면 공무원연금을 받을 터. 좀 더 시간이 지나면 부부 모두 기초연금을 받을 수 있다. 그때가 되면 자식들은 모두 30대 중반, 이미 자기 일자리를 찾았을 것이다. 자식들의 결혼자금이 걱정되긴 했지만 집을 팔고 전세로 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자식에게 도움은 못 줘도 부부가 살기엔 괜찮을 것 같았다. 하지만 중산층이라 생각했던 삶의 토대는 그리 견고하지 않았다. 장인어른이 쓰러진 게 시작이었다. 아내가 식당을 쉬는 날이 잦아졌고 수익이 줄었다. 공무원 월급보다 식당을 유지하는 게 나아 보였다. 김씨는 20년 만에 일을 관뒀다. 돈이 급했던 김씨는 연금 대신 일시금을 택했다. 그 돈은 모두 식당에 들어갔고 1년 뒤 식당은 문을 닫았다. 50대 초반, 뭐든지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무엇’이 없었다. 20년 공무원 경력은 재취업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건설현장을 찾아 3년을 일했다. 56세, 김씨는 자신이 노인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실제 노인으로 규정되는 나이도 아니다. 하지만 김씨가 할 수 있는 일은 ‘노인 일자리’밖에 없었다. 김씨는 주차관리원·경비원 등을 전전했다. 모두 2교대 또는 3교대를 해야 하는 고된 일이었지만 임금은 늘 110만원에서 190만원 사이를 오갔다. 일하는 시간을 따지면 최저임금 이하다. 경비원은 명목상 8시간에서 10시간가량 휴게시간이 있지만 그 시간에 쉬는 경비원은 없다. 음식물 쓰레기·화단 청소·택배 정리 등 일이 넘쳐난다. 심지어 김씨의 야간 휴게시간은 3시간, 4시간으로 나눠져 있다. 새벽에도 차와 주민은 오가기 때문이다. 각 동의 경비원들이 교대로 한 시간씩 근무한다. 김씨는 “3시간 자고 1시간 일하고 다시 4시간 자는 게 사람 몸으로 가능합니까? 쉬지 말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에는 야간에 일하는 경비원이 있었지만 최저임금이 오르자 해고됐다. 운이 나빴던 걸까. 김씨는 고개를 저었다. 단지 김씨의 의견이 아니다. 숫자가 김씨의 얘기를 뒷받침한다. 60대 이상 인구가 늘어나면서 일하는 노인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통계청의 2020년 2월 고용동향을 보면 60세 이상 인구 1171만 명 중 468만 명(39.9%)이 일하고 있다. 전체 취업자(2680만 명) 중 17%가량이 60대 이상인 셈이다. 높은 고용률은 일하는 노인이 특별하지 않다는 걸 의미한다. 특히 60대 이상 남성의 고용률은 50.7%에 이른다. 최혜지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고령기는 여가를 중심으로 삶을 재편할 것으로 기대하지만 노후 소득보장이 불충분한 한국사회에서 고령자에게 노동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고 말했다. 468만 명에 이르는 노인들은 어디에서 일하고 있을까. 한국노동연구원의 ‘65세 이상 노인 노동시장 동향’ 연구에 따르면 2004년에는 절반 이상의 노인이 농림어업에 종사했다. 2017년 농림어업 종사자 비율은 27.4%까지 떨어졌다. 대신 보건복지업(간병인·요양보호사), 사업관리지원서비스업(경비원·청소부), 공공행정(공공근로)의 취업자 비중이 증가했다. 하지만 이런 일자리의 상당수는 임금이 낮고 해고 위험은 높다. 노동시간을 따져보면 최저임금도 못 받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최 교수는 “고령자는 주로 재취업자이며 (노인은 노동생산성이 낮을 것이라는) 시각을 고려해 불안정한 일자리에 수용적이다”라고 말했다. 실제 2017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65~74세의 연평균 소득은 1275만원이다. 이는 전체빈곤율과 노인빈곤율의 격차에서도 드러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노인빈곤율과 전체빈곤율 격차는 1.1%(2015년) 수준이다. 은퇴 후 계층 이동이 크지 않다는 의미다. 반면 한국의 격차는 34.4%로 나타났다. 이른바 ‘소득절벽’을 겪으면서 보통의 삶을 영위했던 상당수가 빈곤층으로 떨어진다는 의미다. 김씨가 바로 이 34.4% 중 한 명인 셈이다. 게다가 한번 빈곤층으로 들어가면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김은영 한국고용정보원 책임연구원은 ‘빈곤노인의 은퇴 후 노동시장 재취업’ 연구에서 “하지만 한번 빈곤 상태에 놓인 노인은 노년기를 빈곤하게 보낼 가능성이 높고 빈곤 지속기간이 증가할수록 빈곤 탈출률이 감소한다”며 “빈곤 진입과 탈출에 은퇴가 중요한 변수”라고 지적했다. 지금과 같은 소득절벽을 겪는 방식의 재취업이 아니라 성별·지역·연령별로 맞춤화된 고용 정책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하는 노인이 특별하지 않는 고령사회 일하는 노인은 증가해왔고 앞으로 더 증가할 것이다. 노인인구라는 분모 자체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2000년 고령화사회(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7% 이상)에 진입한 데 이어 2017년 이미 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14% 이상)로 들어섰다. 65세 인구가 전체의 20%를 넘는 초고령사회로의 진입도 얼마 남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2026년에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예상한다. 따라서 더 늦기 전에 대책을 세워야 한다. 전문가들은 대책이 없지 않다고 말한다. 먼저 은퇴제도의 강화다. 이장원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정년 전까지 기업 안에서 근로시간 단축, 정부의 부분 실업급여 지급 등으로 고용안정을 이루고 이후에는 정년 후 재고용, 파트타임 직무로의 재취업을 통해 고용연장을 도모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정부의 공공근로를 두고 일각에서는 ‘돈 주고 일자리를 만든다’, ‘쓸데없는 일’이라는 지적이 있지만 큰 틀에서 봤을 때 이는 손해가 아니다. 건강하게 일하는 노인이 많을수록 복지와 의료에 들어가는 재정 부담이 줄어든다. 특히 한국처럼 노후 소득보장이 낮은 나라일수록 이런 일자리는 필요하다. 나아가 근본적으로는 노후 소득보장을 높이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 국내외를 불문하고 모아놓은 재산이 없는 한, 은퇴한 노인들의 주요 소득은 국민연금이나 기초연금 등 공적연금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한국 노인가구의 전체소득에서 공적연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30%로 OECD 회원국 중 꼴찌 수준이다. OECD 회원국 평균은 58.6%이고, 프랑스는 80%가 넘는다. 성재민 한국노동연구원 동향분석실장은 “고령층의 높은 고용률은 기본적으로 노후소득 부족으로 발생하는 문제다. 한국과 해외의 노후보장은 수준이 다르다”며 “당장 논의가 가능한 것은 국민연금과 달리 1차적 연금 역할을 해주는 기 초연금을 더 광범위하게 지급하는 것이다. 국민연금도 사각지대가 많다”고 지적했다. 은퇴제도 조정 등 근본 대책 세워야 얼마 전, 김씨가 일하던 아파트에는 입주자대표회의 공고문이 붙었다. 공고문에는 ‘경비 용역업체 재입찰’이 안건으로 쓰여 있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김씨는 용역업체가 바뀔지, 바뀐다면 자신은 고용승계가 되는 것인지, 해고되는 것인지, 몇 명의 경비원이 해고될 것인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걱정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김씨는 또 담담하게 답했다. “나가라면 나가야죠. 노인네가 무슨 힘이 있나요.” “모든 고령 노동자들이 겪는 보편적인 경험” 저자 조정진씨가 책을 들고 있다./조정진 제공 60대 노동자가 직접 쓴 노동르포 <임계장 이야기>가 지난달 말 출간됐다. 저자 조정진씨(63)는 공기업에서 38년을 일했다. 퇴직할 무렵, 아들이 3년 과정의 전문대학원에 가고 싶다고 했다. 퇴직하자마자 은행에선 신용이 사라졌다며 대출금의 즉시 상환을 요구했다. 거기에 주택담보대출이 남아 있었다. 결국 그는 다시 버스회사·아파트·빌딩·고속버스터미널 등의 일터로 가게 됐다. 그리고 그는 다쳤다는 이유로, 본부장 차에 호루라기를 불었다는 이유로, 아파트 자치회장의 심기를 거슬렀다는 이유로 각각의 일터에서 해고됐다. 마지막 일터에서는 쓰러져 응급실로 후송됐다. 그는 회사에 “지금 직장이 없어지면 건강보험이 안 돼 치료받기가 어려우니 며칠만이라도 질병휴가로 해달라”고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난 4월 18일과 21일 전화와 서면을 통해 조씨와 인터뷰했다. -투병 이후, 다시 일터로 복귀했다고 들었습니다. “7개월간 항생제를 맞았습니다. 항생제 투여로 콩팥이 손상됐고 신장투석을 받아야 할 정도로 몸이 많이 상했어요. 그러나 가족을 부양해야 해서 치료할 시간도 없고 경제적 여건도 못 됩니다. 지금은 한 지역의 주상복합건물에서 경비원 겸 환경미화원으로 일하고 있어요.” -메모가 책으로 나왔습니다. 메모를 시작한 계기가 있나요. “시급노동을 해보니 부당한 지시와 처우, 불법이 일상이었습니다. 공기업에서 노무 업무를 담당해본 적이 있어요. 그래서 이런 상황을 고용노동부에 알리면 금방 개선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근로감독관은 이런 상황이 일상이라며 어쩔 수 없다고 했습니다. 억울함과 설움을 말할 곳이 없어서 메모를 시작했습니다.” -책에 담긴 내용이 ‘보통의’ 노동환경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제 수첩을 본 동료들은 한결같이 출간을 권했습니다. 동료들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만 글이 짧아서 할 수 없는 것이 아쉽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이 책은 저 혼자 겪었던 별난 경험담이 아닙니다. 모든 고령 노동자를 대표할 수는 없지만 보편적인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공기업에서 일했던 60대 남성의 선택지가 시급노동밖에 없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습니다. “퇴직자들이 다시 일터로 나가는 이유 중 하나가 자녀들의 취업연령 때문입니다. 주변만 봐도 퇴직 전에 자녀가 정규직 취업에 성공한 경우는 드물어요. 자식이 비정규직으로 살기를 바라는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니 부양하는 기간이 늘어날 수밖에요. 특히 지방에서 서울 노량진 고시학원을 보내려면 임계장(임시 계약직 노인장)들은 피눈물이 납니다.” -최초의 노인노동 르포입니다. 책에 대한 반응은 어떤가요. “많은 분들의 응원과 격려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정말 귀를 기울여야 할 사람, 힘을 가진 사람은 외면하더군요. 마침 총선이라 몇몇 국회의원 후보자에게 책을 보냈습니다. 노동조합 관계자에게도 책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소속 조합원도 챙기는 게 힘들어 노인노동 문제에 뛰어들 여력이 없다’였어요. 정치인들은 국민의 60% 이상이 아파트에 살고 있으니 심기를 거스르기 싫어합니다.” -60대 이상 인구가 늘어나면서 일하는 노인도 더 많아질 것으로 보입니다. “간담회에서 시의원이 ‘노인이 일하면 건강에 좋고 용돈까지 벌어서 더 좋다’고 말하더군요. 고령 노동자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각이 이 정도예요. 지금 시대에 용돈을 벌기 위해 일터로 나오는 노인은 없어요. 가족을 부양하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나옵니다. 이런 절박함을 알고도 사람을 쉽게 해고할 수 있을까요. 편견과 선입관부터 없어져야 합니다.” -제도적 개선도 시급해 보입니다. “감시단속직 노동자가 아닌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규정을 없애는 게 우선입니다. 이게 무슨 시혜를 주는 게 아니에요. 지금은 법이 현실에 한참 뒤떨어져 있습니다. 근로기준법이 적용되면 경비원도 주 52시간 근무, 휴일·야간 근무 적용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일을 할수록 지금의 노인노동은 복지를 지향하는 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 [포커스]김재삼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전문위원 “그린 뉴딜, 좋은 일자리 창출 가능”(2020. 02. 21 16:01)
- 2020. 02. 21 16:01 경제
- 2020년 4월 총선 선거판에 ‘그린 뉴딜(Green New Deal)’이 등장했다. 녹색당은 그린 뉴딜을 총선 제1공약으로 내세웠고, 정의당도 정책 공약으로 채택했다. 그린 뉴딜. 낯설지 않다. 2008년 그린 뉴딜(녹색 뉴딜)은 한국 경제를 이끌던 주류 정책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녹색 성장(녹색 뉴딜)’을 새로운 국정 기조로 제시했고, 4년간 50조원을 투입해 일자리 96만 개를 창출할 것을 약속했다. 당시 정부는 녹색 뉴딜이 경제와 환경이 조화를 이루는 친환경 성장 정책이라고 홍보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녹색 뉴딜에는 ‘녹색’이 없었다. 온실가스 배출량은 되레 증가했고, 질 나쁜 단기 일자리가 양산됐다. 감사원은 23조원이 넘는 예산이 투입된 4대강 사업의 이수 치수 효과가 미미하다고 밝혔다. 비용 대비 편익 비율은 0.21에 그쳤다. 이명박 정부의 녹색 뉴딜은 ‘생태계의 창조적 파괴’ 사업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동시에 시민에게 녹색 뉴딜은 토목사업으로 각인됐다. 이명박 정부의 ‘삽질’로 ‘녹색’ 구호는 생명력을 잃었다. 환경시민단체는 이명박 정부에게 ‘녹색’을 도둑맞았다고 토로했다. 4대강 바닥에 묻혔던 녹색 뉴딜은 12년 만에 돌아왔다. 이번에는 ‘그린 뉴딜’이다. 명칭은 같은데 전혀 다르다고 한다. 무엇이 다를까. 왜 지금 그린 뉴딜일까. 김재삼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전문위원(58)에게 물었다. 인터뷰는 지난 2월 18일 서울 종로구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그린 뉴딜,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2020년 한국의 그린 뉴딜은 무엇인가. “그린 뉴딜은 단순히 기후위기로부터 지구를 살리겠다는 생태학적 구호가 아니다. 인간의 삶의 방식, 에너지 자원과 산업의 대전환을 의미한다. 대전환은 탄소 감축을 위한 신산업과 순환경제를 육성하고 농업·운송·식품을 포함한 전 분야에 걸쳐 이뤄진다. 요약하자면 기후위기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경제적 불평등도 해소할 수 있는 대전환 전략이다. 기후위기 시대, 성장 동력을 잃은 한국사회가 가야 할 방향이다.” -부의 양극화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는 건가. “탄소 발생을 줄이기 위해서는 새로운 인프라가 필요하다. 탄소 감축 공법 개발을 위한 연구 시설과 생산 공장도 새로 지어야 한다. 공장뿐만이 아니다. 탄소 저감 공법을 도입해 기존 건축물도 손봐야 한다. 에너지 전환으로 재생에너지라는 새로운 산업이 확대된다. 이 모든 과정에 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일자리가 창출된다. 과거보다 질 좋은 일자리다. 좋은 일자리는 안정적인 세수 확보로 이어진다. 이렇게 마련한 재원으로 사회복지를 늘릴 수 있다. 사회안전망을 두텁게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노동자가 늘면 조세 개혁을 할 수 있는 동력도 생긴다. 노동자와 생태주의자의 이상을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다.” -그럼에도 기후위기, 이른바 ‘녹색 이야기’는 대중 속으로 쉽게 파고들지 못한다. 당장 오늘 하루 먹고살기 힘든데 10년, 20년 뒤 일을 왜 지금 걱정해야 하느냐고 묻는다. “처음에는 기후위기가 내 손자세대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손자가 아니라 자식세대가 걱정이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내 문제가 됐다. 처음부터 기후위기가 아니었다. 예전에는 지구 온난화였다. 그러다 기후변화로 불렸고, 지금은 기후위기가 됐다. 2030년이 지나면 인간이 어떤 행동을 해도 기후위기를 막지 못한다. 2030년 이후에도 나는 살아 있을 확률이 높다. 세상의 멸망을 보는 것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있다.” -환경운동을 하는 분들은 늘 절박한 문제라고 호소한다. 그래도 대중에게 통하지 않는다고 한다. 벽에 부딪히는 기분이라고 하는데. “한국의 산업구조 문제와 관련이 있다. 한국은 화석연료 기반 산업이 주류다. 노동시장도 조선·철강·자동차 산업 등 제조업 종사자들이 핵심이다. 대전환을 통해 주류 산업의 전환이 이뤄지면 일자리를 잃는다. 자동차만 해도 전기자동차로 교체되면 기존 노동인력 60%가 실직하게 된다. 기존 산업 종사자 입장에서는 대전환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일자리를 유지할 시간이 짧아진다. 원자력이나 화력발전 업계와 같은 기존 주류 에너지 업계에서 재생에너지 괴담을 퍼뜨려 에너지 전환 속도를 늦추려고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기후위기는 몇십 년 후 문제이고 일자리는 당장 내 삶에 영향을 미치니까 기후위기를 인정하지 않거나 고민을 미뤄두는 것이다.” -생계 문제라면 그럴 수 있겠다. “일방적으로 기존 산업계, 종사자를 비난할 수는 없다. 사실 이는 한국의 사회안전망 수준이 낮기 때문에 나타난 문제다. 산업 구조 재편으로 실직하더라도 사회안전망이 촘촘하다면 후손과 미래를 생각해 대전환에 동의할 텐데 지금은 노동자들은 그럴 여유가 없다. 사회구조 문제이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강요하기도 어렵다.” -그린 뉴딜 과정에서 밀려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그린 뉴딜은 정의로운 전환을 전제로 한다. 전환 과정에서 탈락하는 노동자들,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에너지 취약 계층을 보호하면서 전환을 진행해야 한다. 사라지는 산업군들 이른바 ‘좌초 산업’ 문제를 풀지 못하면 또 다른 사회 문제를 낳을 수 있다. 밀려난 이들을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에 우선 배치하고 전환에 앞서 정부가 재교육 과정을 밟도록 지원한다. 온실가스 배출을 많이 하는 이들에게는 과세 수준을 높이고, 반대인 집단에는 세금을 적게 부과한다. 탄소세를 신설하고 거기서 마련한 재원으로 사회안전망을 확충할 필요가 있다.” -한국에서 그린 뉴딜은 아직 주요 사회적 논제가 아니다. 정부도 그렇고 정치권에서도 주류 어젠다로 다루지 않는다. “미국은 이번 대선에서 그린 뉴딜이 주요 의제로 떠올랐다. 유럽은 그린딜이란 이름으로 이미 진행 중이다. 우리는 아직이다. 정부는 기후가 ‘위기’에 처해 있다고 보지 않는다. 특히 관료들은 여전히 ‘국제사회 압력에 굴하지 않고 더 많이 탄소 배출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따오는 것’이 애국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온실가스 배출을 많이 하는 권리를 가져오면 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인식이다. 전 세계가 그린 뉴딜로 가는 상황에서 이런 식의 사고는 애국이 아니다. 나라를 망하게 하는 길이다. 그린 뉴딜에 대응하지 못하면 우리는 경제위기를 맞는다. 10년 안에 세계적인 대변혁이 이뤄질 것이다. 유럽에 탄소 국경세가 생기면 수출에 타격을 입는다. 수출의존도가 높은 우리에게 이런 변화는 치명적이다. 서둘러 대응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해 기술 혁신을 이야기하는데 세상의 변화는 기술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사회적 필요성에서 온다. 기후위기를 막으려는 흐름이 새로운 기술을 탄생시킨다. ‘온실가스 제로’라는 거대한 사회적 필요성이 기술적·경제적 변화를 불러올 것이고, 우리는 변화에 대비해야 한다.”
- 특집
- [표지 이야기]“자동화와 일자리 소멸 피할 수 없는 숙명인가”(2019. 10. 25 17:54)
- 2019. 10. 25 17:54 경제
- ㆍ[인터뷰] 이광석 서울과기대 IT정책대학원 교수 한국 사회는 기술과잉의 현실을 방관했다. 기술이 생활을 편리하고 효율적으로 바꿔줄 것이라고 믿으면서 도입에만 신경을 썼다. 기술 진보로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는 상황은 불가피한 일로 방치했다. 기술은 저만큼 앞서가는데 불안정노동의 문제는 여전히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이광석 서울과학기술대학교 IT정책대학원 디지털문화정책학과 교수(50)는 기술혁신을 사회혁신과 동일시한 결과라고 봤다. 자동화로 인한 해고를 사회혁신을 위한 성장통쯤으로 치부했다는 것이다. 이광석 서울과학기술대학교 IT정책대학원 교수가 지난 10월 22일 서울 공릉동 연구실에서 과 인터뷰하고 있다. / 우철훈 선임기자 이 교수는 지난 10월 22일 서울 공릉동 서울과기대 연구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사회가 통제할 수 있는 능력 이상으로 기술을 도입하면서 생기는 여러 비정상적 현상들을 ‘기술잉여’라는 개념으로 소개했다. 그러면서 좁게는 노사 간에, 넓게는 사회 전체가 자동화 수준을 합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노동자가 플랫폼 운영을 책임지는 새로운 플랫폼 실험도 필요하다고도 했다. 이 교수는 기술, 사회, 예술의 교차점에 관심을 갖고 정보공유지 연구, 정보인권, 디지털 정치·경제학을 연구하고 있다. -기술 발전에 따른 일자리의 소멸은 늘 있었지만 지금은 인공지능과 자동화로 그 범위가 전례없이 넓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기술 도입을 속도전 식으로 가속화하면서 기존 사회의 모순이 더 심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점주는 카톡방을 여러 개 만들어 운영하면서 알바생에게 청소를 왜 이렇게 했는지 사진을 찍어서 보내는 등 노동시간 외에도 통제를 한다. 대만, 일본과 비교해보면 한국은 모바일 기술을 이용한 시간외 통제가 유독 강렬했다. 기술이 한국에 들어와 토착화되는 과정에서 생기는, 사회의 정치·사회 미성숙이 기술에 접붙어 생기는 굴절현상의 일종인 기술잉여라 할 수 있다.” -타다의 경우 운전기사 알선업체를 통해 운전사를 간접고용하는 방식을 써 ‘위장도급’ 의혹을 받고 있다. 앱을 이용해 일감을 얻는 배달 종사자들도 비슷한 처지에 있다. “플랫폼 사업을 들여다보면 호혜나 상생의 원리가 없다. 최근 타다나 유통업체 무인계산대, 톨게이트 무인화의 사례에서 보는 것처럼 노동하는 사람을 존엄의 대상으로 보는 게 아니라 효율과 편리를 추구하는 데 필요한 일종의 자원으로 본다. 타다라는 시스템이 있고 거기에 운전자가 필요할 뿐, 노동자로서의 권익이 그들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기술혁신을 곧 사회혁신이라고 보고 포용이나 노동의 질, 공생이라는 사회를 구성하는 핵심 가치에 대한 고려가 전혀 머릿속에 들어 있지 않다. 플랫폼 기업들이 노동을 중요한 자원으로 쓸 때 사회적으로 더 강하게 규제해야 한다.” -기술 진보로 인한 성장과 풍요의 과실이 소수 계층에만 집중되는 것 같다. “‘위태로운’ 노동이 기술의 희생양이 되는 측면이 있다. 플랫폼이 등장하면서 예전에 특정 사업장에 종사하던 배달원이 자영업자가 됐다. 오토바이도 자기 돈으로 사고, 사고가 나도 산재처리를 못받는다. 게다가 ‘새벽배송’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노동이 등장하면서 하루 2교대, 3교대가 아니라 시간대별로 노동을 지속화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휴식의 시간이라고 여겼던 새벽까지 노동을 하는 구조를 플랫폼이 만들었다. 빅데이터 분석으로 재고 소진을 예측하는 능력이 생기면서 물건을 미리 확보해 주문에 즉시 대응할 수 있다. 고객에게는 효율과 편리를 주지만 불안정노동자에게는 더 악화된 노동조건을 만드는 모순적 상황을 만들고 있다. 기술은 결국 한 사회의 사회·정치와 접해 있다. 대형 유통업체가 무인계산대를 쓰면서 소비자를 믿지 못해 가방을 뒤지는 해프닝에서 보듯이 무인자동화로 노동자 대체효과를 얻고 싶은데 실제에선 그걸 받아들이는 소비자도 믿지 못하고 있다.” -청와대 이호승 경제수석이 정규직 전환 농성 중인 한국도로공사 톨게이트 노동자들을 두고 ‘없어질 직업’이라고 지칭했다. “기술혁신을 사회혁신으로 등치하는 오류이다. 스타트업의 이데올로기에 포섭된 것이다. 효율성이나 편리성 같은 기술혁신 자체의 논리에 멈춰 있다. 현실사회를 비판적으로 인식하고 개선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기술이 이를 이루는 여러 조건의 하나가 되어야 하는데, 마치 기술을 채용하면 현실의 모순이나 질곡이 다 해결될 것처럼 이야기한다. 반면교사의 사례로 도요타는 과거 해고했던 자동차 조립공정의 최상급 장인인 ‘가미사마’들을 다시 불러들였다. 기계화만으로는 기업조직을 유지할 수 없고, 핵심에 리더십을 가진 장인들이 있어야 기업이 활력을 얻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최첨단의 부품공정이나 적시 생산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고용안정에 따른 노사 간의 신뢰와 인간을 존중하는 문화가 오히려 생산성 향상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도 이런 부분을 놓쳐선 안 된다. 자동화는 인간의 얼굴을 한 자동화, 약탈적 자동화가 아니라 포용적 자동화가 되어야 한다.” -정부가 혁신성장 논리에 치우쳐 노동권 보장을 위한 제도개선을 뒤로 미루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국제노동기구에서 정한 노동권 보장이나 노동시간 단축, 최저임금 인상은 삶의 질을 위한 기본전제로 봐야 하는데 이를 자꾸 협상하고 거래할 사안으로 보고 있다. 반면 자동화의 경우 양자택일이 아닌 협상의 영역에 있다. 예를 들어 독일은 임금협상 과정에서 기업이나 공장의 자동화 문제를 사업자와 같이 이야기한다. 노동자들도 모르는 사이 자동화가 진행되면 그만큼 해고 위험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임금협상을 하면서 자동화 수준을 함께 결정하고, 사회적으로도 자동화를 어디까지 가져갈 것인지를 의제화하고 합의하는 논의틀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성장, 발전해야 하는데 니네가 발목 잡아서 되느냐’라고 말하는 식이어서는 안 된다.” -플랫폼 노동의 불안정성을 해소할 대안이 있을까. “플랫폼 노동자들에게 최소한의 노동자성을 인정하고 이들을 보호의 사각지대에서 구해내는 대안이라도 마련해야 한다. 또 사회적 약자 스스로 주체가 되어 운영하는 플랫폼을 만들어야 한다. 내적으로 이익을 재분배하는 데 그치는 협동조합이나 노동이사제로 기업 경영을 민주화하는 방식을 넘어서 가치를 사회와 공유하는 개방형 플랫폼인 ‘커먼즈’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국·공유지의 개발권을 사기업에만 줄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아이디어를 내 점유·활용하도록 하자는 경의선공유지시민행동 같은 운동 흐름이 하나의 사례가 될 수 있다. 가령, 개인 수공예 장인들이 플랫폼이 없어서 카카오메이커스에 의존하는데 이제 그들 자신이 스스로 공생·자립하기 위한 대안 상상력이 필요하다. 이들을 비롯해 사회적 공생의 가치를 지향하는 시민들이 개방형 플랫폼을 만들고 여기에 정부나 지자체가 기술지원과 투자 매칭에 나선다면 플랫폼이 과다한 이익을 취하는 불평등 구조를 바꿀 수 있다.”
- 표지 이야기
- [취재 후]안전과 일자리, 기술혁신 ‘세 마리 토끼 잡기’(2019. 10. 07 14:36)
- 2019. 10. 07 14:36 사회
-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고령화보다 인프라 노후화가 더 심각한 문제입니다.” 지난달 초 만난 한 건설분야 국책연구기관 관계자의 말이다. 생각해보니 틀리지 않았다. 복지지출은 늘어나는데 일할 사람이 부족해지는 고령화가 국가적으로는 심각한 문제겠지만 적어도 사람이 죽는 문제는 아니다. 반면 인프라의 안전은 생명과 직결된다. 취재를 시작하니 무심코 지나가는 고가다리나 도로도 달리 보였다. 늦은 밤 퇴근길에 상하수도 공사 작업자들을 마주쳤다.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것들은 보이지 않는 시간과 장소에서 일하는 이들의 공로 덕분이라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지하에 묻힌 상하수도나 가스관, 전선, 통신선 등은 우리 사회의 ‘대동맥’이다. 도로와 다리, 발전소, 공항과 항만도 마찬가지다. 이런 생명선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낡아가고 있다. 터지고 갈라지고 녹슨 곳들이 늘면서 현장 작업자들은 늘 위험을 안고 작업한다. 지하의 공간 지도가 완비되지 않아 땅을 뚫었다가 온수관을 깨거나 준공도면이 없어 화재 시 소방관들의 투입로와 대피로를 제대로 알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지금은 전문가들의 우려에 그치지만 언제 현실이 될지 모른다. 한 건설분야 전문가는 1970년대 세워진 오랜 산업단지 공장들의 경우 준공도면이 없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당장의 쓸모를 위해 ‘속도전’ 양상으로 인프라를 건설하다보니 준공도면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단가를 후려치는 관행도 준공도면을 만들 여유를 주지 않았다. 기업들이 공개하지 않아 정확한 실태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처음의 설계와 달리 현장 상황을 반영해 수정한 준공도면이 없으면 이후 안전한 인프라 유지·보수에 심각한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 내구연한이 지난 전기·통신·신호설비가 늘면서 지하철 안전사고의 우려도 커지고 있지만 안전점검을 할 수 있는 시간은 하루에 고작 3시간 정도뿐이라고 한다. 지하철은 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우 인력과 시간, 환경의 한계를 로봇으로 해결하고 있다. 지하철 벽면에 붙어 다니는 ‘스파이더 로봇’은 시간의 구애 없이 콘트리트의 갈라짐 등을 점검한다. 댐이나 저수지의 균열을 점검하는 데도 로봇이 동원된다. 탁한 물 속에서도 선명하게 구조물을 스캐닝하는 기술이 핵심이라고 한다. 4차 산업혁명의 총화가 스마트시티라고 한다면 건설업에 더 적극적으로 인공지능과 로봇 기술을 융합해야 한다. 노후 인프라 유지·관리에 더 많은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진단을 단순히 이해관계에 따른 주장으로 치부하기는 어렵다. 수출과 내수의 성장동력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안전과 일자리, 기술혁신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는 새로운 뉴딜 정책을 검토해야 할 때다.
- 취재 후
- 광주형 일자리, 지방경제 살릴까(2019. 02. 18 15:33)
- 2019. 02. 18 15:33 경제
- ㆍ구미·군산 등 유치 나서… 한국형 일자리 모델로 확산될지 주목 ‘광주형 일자리’를 지역 고용회복의 마중물로 삼으려는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광주시와 현대자동차가 지난 1월 31일 광주시청에서 합작법인을 통해 광주시에 완성차 공장을 설립하는 투자협약식을 열면서 2014년 윤장현 전 광주시장의 공약으로 시작됐던 광주형 일자리가 거의 5년 만에 현실화됐다. 정부는 이달 안에 광주형 일자리의 일반 모델을 만들어 상반기 중 2~3곳의 지방자치단체에 더 적용하겠다는 계획이다. 전북 군산과 경북 구미가 제2·제3의 광주형 일자리로 지정될 가능성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1월 31일 광주광역시청에서 열린 광주형 일자리 투자협약식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 강윤중 기자 정부는 광주형 일자리를 바탕으로 한 ‘지역상생형 일자리’를 확산시켜 지방의 고용위기를 타개할 방침이다. 지방을 중심으로 불고 있는 산업 구조조정과 일자리 위기의 대안으로 광주형 일자리를 택한 것이다. 그러나 광주형 일자리가 미래 일자리의 궁극적 모델이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좋은 일자리와 미래의 노동에 대해 지역사회에서 민주적으로 고민하는 과정을 거친다는 광주형 일자리의 취지가 정부와 여당, 일부 지자체의 조급한 움직임으로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광주시·현대차 합작법인 설립키로 2월 13일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정부서울청사에서 제8차 경제활력대책회의를 열고 “모든 정책수단을 총동원해 올해 취업자 수 증가 목표인 15만명을 반드시 달성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홍 부총리는 일자리 창출방안으로 일정 기간 특정지역에 규제를 면제해주는 ‘규제 샌드박스’와 ‘대규모 기업투자 프로젝트 조기 착공’과 더불어 상생형 지역 일자리 모델 확산을 제시했다. ‘규제 샌드박스’는 신산업의 성장과 창업 활성화를, 대규모 기업투자 프로젝트 조기 착공은 건설투자 및 일자리 증대 효과를 노리는 정책이다. ‘상생형 지역일자리 모델’은 광주형 일자리의 확산을 염두에 둔 것으로 제조업 및 지역 고용위기 타개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는 광주형 일자리 타결 전부터 이 모델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킨다는 계획을 세워 왔다. 광주시와 현대차의 투자협약식이 있기 하루 전인 1월 30일 홍 부총리는 정부세종청사 인근에서 출입기자단 간담회를 열고 “광주형 일자리의 일반 모델을 만들어 상반기 내 기초 혹은 광역자치단체 2~3곳을 더 지정하겠다”고 밝혔다. 광주형 일자리의 일반 모델은 2월 중 발표할 예정이다. 정태호 청와대 일자리수석은 2월 1일 교통방송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광주형 일자리는) 해외로 나갈 공장을 국내에 유치한 것”이라며 “장기적으로 보면 우리 경제를 살리고, 지방 경제를 살리는 길이다.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광주형 일자리 유치에 적극적인 곳은 구미와 군산이다. 구미는 반도체 특화 클러스터에 참여하는 SK하이닉스의 반도체 신규 공장을 구미 국가5공단에 유치하기 위해, 군산은 새만금산업단지에 삼성이 전장(電裝)사업을 투자하도록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군산에서는 2017년 7월 폐쇄된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와 한국GM의 생산시설을 활용하자는 아이디어도 제시됐다. “정부와 지역 간의 매칭이 끝났다”는 이야기도 청와대 고위 관계자 등으로부터 나오고 있다. 정부 한 관계자는 “광주시와 현대차의 투자협약식이 이뤄지면서 가능성을 의심하던 많은 지자체들이 적극적으로 나오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정부가 재벌에 특정지역을 점찍어 투자를 강요하는 ‘제2의 창조경제혁신센터’ 방식이 재현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기재부 관계자는 “2월 중 발표할 예정인 상생형 일자리의 일반 모델은 정부 지원의 근거를 마련할 수 있도록 상생의 최소한의 조건을 규정하는 것”이라며 “지역 여건에 따라 스스로 제도를 설계하고 협약을 맺으면 정부가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결코 정부가 투자를 강요하거나 확정짓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상생’의 내용을 이루는 최소한의 조건으로 노사 간의 양보와 지자체의 지원, 지역사회의 참여를 꼽았다. 지역사회의 참여와 합의를 바탕으로 지자체와 민간기업이 결정하면 정부는 지원만 하겠다는 입장이다. 광주시와 현대차가 맺은 투자협약에 따르면 1000여명의 공장 정규직 노동자들은 주 44시간 노동에 첫 해 평균 3500만원 수준의 연봉을 받는다. 임금이 국내 다른 완성차 공장보다 낮은 대신 정부와 광주시는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노동자들에게 임대주택, 어린이집 등 각종 복지혜택을 제공한다. “지나치게 서두르는 것 아니냐” 우려도 하지만 광주형 일자리가 국내 고용을 늘리고 지역경제 발전을 이끌 ‘한국형 일자리 모델’로 확산될 수 있을지에 대해 산업계는 더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우선 신설 공장은 1000㏄ 미만 경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생산할 예정인데, 이 차종으로는 지속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있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공장이 정상 가동되려면 연간 최소 7만대 이상을 생산해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 경차 시장은 2014년 18만대가 판매된 이후 지난해에는 12만7412대로 4년 연속 내리막이다. 경형 SUV로는 수익을 내기 쉽지 않다는 관측이다. 이 같은 상태에서 제2의 광주형 일자리를 준비하는 지역에서는 지나치게 서두르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전북의 한 관계자는 “군산형 일자리를 위해 도 차원에서 밀어주는데, 지나치게 서두른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5년간 고민했던 광주에서도 협약에 한계가 있는데 전북은 ‘광주에서 만든 걸 그대로 적용하면 되는 거 아니냐’며 대규모 협의체를 꾸리는 것부터 진행한다는 계획”이라고 전했다. 광주형 일자리는 더 이상 기존의 제조업 일자리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판단을 전제로 한다. 제조업의 막대한 임금격차는 노동비용 상승뿐 아니라 정규직 대 비정규직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 자동차산업이 전기차 중심으로 전환되면 현재보다 필요로 하는 부품의 숫자는 압도적으로 줄어든다. ‘부품 생산직’ 노동자들을 다른 생산성 있는 연관산업으로 재배치하는 전략을 머리를 맞대고 짜야만 한다. 박병규 광주시 사회연대일자리 특별보좌관은 “광주형 일자리의 핵심은 ‘좋은 일자리’가 무엇인지 질문하는 것”이라며 “이 질문을 던지고 답하는 과정에서 기존 일자리 정책에서 소외된 미조직·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조직해나간다는 것이 가장 핵심적인 과제”라고 말했다. 바꿔 말하면 이 같은 협약과 고민, 미래 산업과 삶에 대한 논의가 없다면 제2·제3의 광주형 일자리들은 저임금과 함께 언젠가 떠날 공장만 남긴다는 의미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새로운 산업을 재구성하고 미래지향적인 일자리를 창출하자는 것보다 ‘정부 지원금을 가져와서 일단 고용위기를 빠른 시일 내 덮어보자’는 의도라면 이건 선거용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며 “기존 투자유치의 성과를 평가하고 산업정책에 대한 전망과 비전을 갖고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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