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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총 27 건 검색)

[우정 이야기]임신부 질병·태아 희소질환 무료 공익보험
[우정 이야기]임신부 질병·태아 희소질환 무료 공익보험(2023. 11. 29 07:00)
2023. 11. 29 07:00 경제
우정사업본부가 11월 24일 임신중독증, 임신성고혈압, 임신성당뇨 등을 지원하는 무료 공익보험을 출시했다. |우정사업본부 제공 우정사업본부(우본)가 임신성 당뇨, 임신중독증 등 임신 관련 질환 의료비를 지원하는 무료 공익보험을 출시했다. 우본이 11월 24일 출시한 ‘대한민국 엄마보험’(이하 엄마보험)은 산모·자녀 동시 보장 보험이다. 주요 임신 질환은 임신부의 분만 시까지, 희소질환 치료비는 태아부터 만 9세까지 보장해준다. 엄마보험은 2022년 4월 우본이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우체국 4대 국민생활 밀착형 서비스’로 제시하면서 설계됐다. 우본은 “임신부가 겪는 다양한 질병 치료를 지원해 저출산 문제 해결에 기여하기 위해 도입했다”고 밝혔다. 엄마보험 가입 대상은 17~45세의 임신 22주 이내 임신부와 태아다. 임신 증명 사실을 갖추면 병력이나 건강 상태와 관계없이 누구나 가입할 수 있다. 보장 내용은 임신기간 동안 발병 가능성이 높은 질환에 집중됐다. 임신중독증, 임신성 고혈압, 임신성 당뇨병에 각각 10만원, 5만원, 3만원이 지급된다. 자녀의 희소질환 진단 판단 시에는 100만원을 받는다. 보험료는 우본이 전액 지원하기로 했다. 가입자는 번거로운 갱신 절차 없이도 만기 10년(임신기간 포함)까지 보험을 지원받을 수 있다. 보험 가입은 가까운 우체국 창구를 방문하거나 우체국보험 홈페이지(www.epostlife.go.kr) 및 모바일앱(잇다 보험)을 통해 가능하다. 최근 국내에서 만혼이 늘어나면서 35세 이상 산모 비율이 증가하는 추세다. 2017년 29.4%에 그쳤던 35세 이상 산모는 지난해 35.7%로 그 비중이 크게 늘어난 상태다. 이에 따라 임신 질병이 발병할 확률도 높아졌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임신중독증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는 2017~2021년 5년간 40% 이상 증가했다. 최근 5년간 임신성 고혈압 등 주요 임신질환 환자도 29만5000여명에 달한다. ‘임신성 고혈압’은 임신 20주 이후 고혈압이 발생하거나 임신 전 만성 고혈압이 임신 중 악화하는 경우를 말한다. 우정사업본부는 갑진년(甲辰年) 푸른 용의 해를 맞이해 연하우표 62만4000장과 연하카드·연하엽서 10종을 오는 12월 1일 발행한다.|우정사업본부 제공 한국은 합계출산율 0.78명으로 이미 초저출산 국가(합계출산율 1.3명 이하)에 진입한 상태다. 지난해 국내 출생아 수는 24만9000명으로 2012년 48만4000명에서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저출산은 생산인구 감소와 인구 고령화를 가속하면서 청년세대의 미래부담을 가중할 뿐만 아니라 경제성장률 저하 및 부양을 위한 사회적 비용 증가 등 우리나라의 미래 핵심위기 요인으로 손꼽힌다. 조해근 우본 본부장은 “대한민국 엄마보험 출시가 국가적 문제로 대두된 저출산 문제 해소에 작은 마중물 역할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편 우본은 갑진년(甲辰年) 푸른 용의 해를 맞이해 연하우표 62만4000장과 연하카드·연하엽서 10종을 오는 12월 1일 발행한다. 연하우표는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비상하는 용, 그리고 위엄과 기백이 느껴지는 용의 얼굴을 담았다. 연하카드는 다양한 용의 모습과 함께 희망과 행복을 전하는 디자인으로 제작됐다. 연하엽서는 제주 용두암을 배경으로 떠오르는 해의 모습을 담았다. 연하우표(2종)는 430원, 연하카드 고급형(3종)은 1600원, 일반형(6종)은 1500원, 연하엽서(1종)는 900원이다.
우정이야기
임신중지권·주식 파킹 논란···드라마틱한 ‘과거’(2023. 09. 22 11:24)
2023. 09. 22 11:24 정치
ㆍ‘박근혜 청와대 공동 대변인 출신’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잇단 구설수 9월 18일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조태형 기자 “드라마틱하게 엑시트(EXIT)하겠다.” 지난 9월 14일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는 여가부를 폐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후보자는 이날 서울 서대문구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의 인사청문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며 “윤석열 대통령께서 여가부를 폐지하겠다는 게 대선공약이었다”고 말하며 이같이 말했다. ‘드라마틱하게 엑시트’라는 표현이 ‘빠르게 폐지’를 뜻하느냐는 질문에는 “그건 아니다. 이건 정치 일정하고 맞물려 있다”고 설명했다. 김 후보자는 2013년 박근혜 정부 출범과 함께 청와대 공동 대변인으로 활동했다. 2014년에는 여성가족부 산하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장을 맡았다. 지난해에는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 대변인과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으로 활동했다. 여성 자기결정권 부인 발언 도마 위에 김 후보자가 임명되면 김현숙 전 여가부 장관에 이어 ‘부처 폐지’의 소임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0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고 주요 업무 기능을 보건복지부 내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로 이관하겠다는 정부조직개편안을 발표했다. 당시 김현숙 전 장관은 기자회견을 열고 “여가부와 보건복지부 통합으로 보건복지 분야 전반에 걸쳐 양성평등정책의 집행력이 강화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야당과 시민사회의 반대로 지난 2월 정부조직법 개정안은 여가부 폐지 내용을 뺀 채 국회를 통과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후보자가 정부의 기조에 좀더 적극적으로 다가서리라는 전망이 나온다. 그러나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김 후보자의 인식이 부처 장관으로서, 특히 여성가족부 장관으로서는 더욱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9월 15일 여성의 임신중지권에 대한 질문에는 여론과 사법적 판단에 역행하는 듯한 발언을 해 논란이 일었다. 김 후보자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이라는 ‘미사여구’ 뒤에는 경제적·사회적 여건으로 낙태를 택하는 여성들이 있고, 이는 국가의 책임”이라며 “경제적 능력이 안 되거나 미혼 부모가 될지 모르는 두려움, 청소년 임신 등 어쩔 수 없이 낙태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낙태’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에 넣을 수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같은 김 후보자의 발언은 과거 그가 엄격한 낙태죄를 적용하고 있는 필리핀을 사례로 언급한 것이 드러나면서 더욱 논란이 됐다. 9월 20일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김 후보자는 2012년 위키트리 방송에서 “(필리핀은) 강제적으로 제도를 정비한 것”이라며 “임신을 원치 않지만, 예를 들어서 너무 가난하거나 남자가 도망갔거나 강간을 당한 경우라도 여자가 아이를 낳았을 때 사회적·경제적 지원 이전에 우리 모두가 부드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톨러런스(관용)가 있으면 여자가 어떻게든 아이를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의 이런 인식은 2019년 형법상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헌재 판단과 어긋난다. 당시 헌재는 “임신한 여성이 임신 유지·종결을 결정하는 것은 스스로 선택한 인생관·사회관을 바탕으로 깊은 고민을 한 결과를 반영하는 전인적 결정”이라며 “태아가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임신 22주 내외에 도달하기 전이면서 여성이 자기결정권을 행사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보장되는 시기의 낙태에 대해서는 국가가 생명보호의 수단 및 정도를 달리 정할 수 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했다. 국민 여론과도 다르다. 헌재 결정을 앞둔 2019년 4월의 리얼미터 조사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6명에 이르는 다수가 낙태죄 폐지에 찬성했으며, 이념이나 여야 진영 관계없이, 60대 이상을 제외한 모든 연령·지역·성별·이념성향·정당지지층에서 낙태죄 폐지 여론이 대다수인 것으로 나타났다. ‘시누이에 주식 넘겼다 재매입’도 시끌 야당에서는 당장 비판이 쏟아졌다. 이재랑 정의당 대변인은 “헌재 결정은 물론이거니와 세계보건기구(WHO)도 이미 임신중단의 ‘완전한 비범죄화’를 이야기하고 있는 마당이다. 이런 와중에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부정하고 국가가 낙태의 ‘적법’을 가리겠다는 의식을 보여준 김행 후보자의 발언은 완전히 과거 퇴행적인 것”이라고 비판했다. 신지혜 기본소득당 대변인은 “‘미사여구’라는 말로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부정할 뿐만 아니라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부정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 후보자가 창업한 인터넷 매체 ‘위키트리’를 둘러싼 이른바 ‘주식 파킹’ 의혹들도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김 후보자는 2013년 청와대 대변인으로 임명된 이후 백지신탁을 위해 배우자 소유의 ‘소셜뉴스(위키트리 운영사)’ 주식을 시누이에게 넘겼다. 시누이에게 넘긴 것 자체가 불법은 아니지만, 당시 시누이에게 주식을 넘긴 과정 및 2019년 김 후보자가 소셜뉴스 주식을 재매입하는 과정에 대한 해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의힘 내에서도 해명을 요구하고 나섰다. 김웅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9월 20일 자신의 SNS 계정에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배우자인) 정경심 전 교수의 죄 중 하나는 공직자윤리법 위반”이라며 “정 전 교수는 2017년 5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민정수석에 임명된 이후에도 코링크프라이빗에쿼티 등의 주식을 단골 미용사 등의 명의를 이용해 거래했다. 이른바 ‘주식 파킹’의 일종”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내정자에게 “(후보자) 본인과 가족 명의 주식에 대한 매각 당시 매각신고서, 거래내역, 이체내역, 자금출처, 2019년 재매입 관련 계약서, 이체내역, 자금출처 등을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김건희 여사와의 친분으로 장관에 임명됐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 9월 19일 KBS에 출연해 지난해 지방선거를 앞두고 김 내정자가 국민의힘 중앙당 공관위원에 임명된 배경을 설명했다. 이 전 대표는 “제가 인사를 한 건 아니지만 정진석 (공관)위원장이 추천하셨길래 제가 임명했던 것”이라며 “나중에 정 위원장한테 물어보라. 둘 다 아니면 누군가가 추천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대표도 아니고 공관위원장도 아니면 누군가 있겠죠. 그런 정도의 영향을 가진 사람이”라며 김건희 여사와의 친분설에 힘을 실었다. 여러 의혹이 잇따라 제기되자, 김 후보자는 “가짜뉴스가 도가 지나치다”며 지난 9월 19일 출근길 문답(도어스테핑)을 중지했다. 이후 지금까지 “청문회에서 밝히겠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특집
[꼬다리]임신, 그 설렘과 두려움(2023. 07. 28 11:06)
2023. 07. 28 11:06 사회
모두의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권리보장 네트워크 소속 활동가들이 지난 4월 9일 서울 용산역 광장에서 낙태죄 폐지 2주년을 맞아 국가에 임신중지를 건강권으로 보장할 것을 촉구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 한수빈 기자 출산예정일을 20여 일 앞두고 있다. 짬 날 때마다 진통을 줄이는 호흡법 같은 것들을 찾아본다. 아기를 낳는 경험은 인류 공통의 것이지만 지극히 개인적이기도 해서, 모든 사람의 경험담이 다 다르다. 내 것은 어떻게 남을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두려움을 물리친다. 출산에 대한 어떤 이야기들은 참으로 경이롭다. 보통 궁극의 고통 혹은 통증을 ‘산고’ 혹은 ‘산통’에 비유하지 않나. 그 끝에 무한한 가능성을 품은 존재가 나오고, 새로운 만남이 시작된다는 게 여타의 고통과는 다른 점일 텐데, 어떤 이들은 이런 희망조차 없이 차가운 화장실 바닥 같은 데서 오롯이 혼자 고통을 감내한다. 돌이켜보면 임신과 출산이 기대와 희망의 단어가 된 것은 30대 중반에 들어선 최근 몇 년의 일일 뿐이다. 그보다 훨씬 긴 시간 동안 저 두 단어는 근심의 근원이자 공포의 대상이었다. 생각해보면 어질어질한 일이다. ‘낙태’가 고민이던 여성이 불과 몇 년 사이에 ‘난임’을 고민하게 됐다. 또래 여성과 주로 공유하는 고민이 임신을 어떻게 중지할지, 비용은 어떻게 마련할지, 상대와의 관계를 지속할지 같은 것이었다가, 어느 순간 하루빨리 난자를 냉동해야 할지, 아기를 낳는다는 ‘숙제’를 어떻게 해치울지, 막대한 시간과 돈을 들여 인공수정이며 시험관 시술 코스를 밟아야 하는지가 돼버렸다. ‘낙태죄’는 이미 2년 전에 폐지됐다. 안전한 임신중지는 아직 먼일이다. 지난 3월 ‘여성의날’(3월 8일)을 앞두고 경향신문이 게재한 ‘임신중지라는 건강권’ 기획기사에 그 현황이 잘 드러나 있다. 후속 입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서 임신중지 시술은 부르는 게 값이다. 의료 현장에서도 가이드라인이 없어 우왕좌왕한다. 세계보건기구가 지정한 필수의약품인 임신중지 약물은 합법적 경로로 구할 수조차 없다. 이런 상황에서 때를 놓쳐 임신을 중지하지 못한 이가 화장실에서 출산하고, 당황한 채로 아기를 버리거나 죽인다. 병원에 출산 기록이 있지만, 출생 등록이 안 된 영아가 8년간 6000여명에 달한다는 감사 결과가 나오자, 정치권은 빠르게 합심해 영아 유기·살해도 최대 사형에 처하도록 형법을 개정했다.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임신중지 선택지도 없고 아이를 낳아 기를 수도 없는 ‘이중 구속’의 상태에 여성을 방치한 채 범죄자만 양산하겠다는 태도와 의지가 읽힌다. 임신 막달이 되니 불룩 나온 배를 보고 모르는 사람들이 부쩍 말을 건다. 단골 멘트는 “요즘 같은 세상에 애국자시네” 같은 것이다. 그때마다 나는 굳은 얼굴을 펴지 못한다. 아기를 버리는 ‘비정한 엄마’와 대척점에 선, 출산일을 기다리는 ‘희망에 찬 임신부’로서의 나의 존재는 무엇을 은폐하고 있는 걸까. 임신중지를 원하는 여성과 아이를 간절히 원하는 여성. 둘은 달라 보이지만 실은 한 사람이다. 시간과 환경의 간극이 존재할 뿐이다. 재생산이라는 미래지향적 일로 여성 스스로 건너가게끔 다리를 놓아야 한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저출생을 넘어설 수 없다. ‘안전한 임신중지’를 선택할 수 있게 만드는 일이 첫 번째다.
꼬다리
[청년이 외친다, ESG 나와라](1)“체외임신·출산 가능하면 애 낳고 싶어요”(2021. 12. 10 14:35)
2021. 12. 10 14:35 사회
청년의 함성은 세상을 바꾸는 힘입니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는 경제사회를 지배하는 새로운 규칙입니다. 주간경향은 제20대 대통령선거 석달을 앞두고 청년들이 한국사회에 제안하는 ESG프로젝트를 21회에 걸쳐 게재합니다. 청년들의 건강한 제안은 한국사회를 더 나은 사회로 만드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이 기획은 ESG연구소(소장 안치용), (사)ESG코리아(상임대표 조준호), 감신대 생명과평화연구소(소장 유경동)와 공동으로 진행합니다. -편집자 주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이것들이 부화기라는 것입니다. (중략) 이번 주에 할당된 난자들입니다. 이것은 혈액과 같은 온도로 보관되고 있습니다.” 올더스 헉슬리의 소설 (1932년)에서 ‘인공부화, 조건반사 양육소’ 소장이 학생들에게 인공부화기를 소개하는 장면이다. 인공부화기가 개발되고 체외 임신 및 출산이 가능해진 600년 후(지금으론 500년 후)를 그린 작품이다. 는 미래소설 중 디스토피아를 그린 대표작으로 꼽힌다. 여기서 체외임신이 가능해져서 여성이 직접 임신하지 않는 모습에 국한한다면, 이것을 디스토피아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ESG연구소의 ‘ESG국가 청년제안’ 프로젝트팀이 20대 대학생 122명(남녀 동수)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10명 중 9명 이상이 ‘멋진 신세계’의 세계관에 동의를 표했다. “시험관 임신 및 출산을 가능하게 하는 것”에 대한 찬반을 물었더니 91%가 찬성했다. 남성 92%, 여성 90%로 남녀 사이에 차이가 없었다. 물론 이 조사 결과는 공장식 임신ㆍ출산이 아니라 특정 남녀 유전자를 조합하는 현존 가족제도의 존속을 전제한 응답이기에 ‘멋진 신세계’의 세계관과 전적으로 동일한 것은 아니다. 시험관 임신 및 출산을 직접 이용할 의향도 높게 나왔다. “국가에서 ‘수정뿐 아니라 임신 및 출산도 인공적으로 체외에서 하는’ 체외임신을 지원하는 시스템을 제공해준다면 활용할 의향이 있는가”란 질문에 응답자의 58%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여성 54%, 남성 62%로 남성의 비율이 더 높았다. “미래에 아이를 가질 의향”에 대해서는 ‘있다’가 55%로 ‘없다’보다 다소 높았지만, 거의 절반 가까이 출산의향이 없다는 사실은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아이를 가질 의향은 여성 40%, 남성 70%로 남성이 월등하게 높았다. 흥미로운 점은 ‘출산의향이 없다’고 답한 여성 중 38%가 체외임신을 국가에서 지원해 주면 활용할 의사가 있다고 답했다는 사실이다. 지금으로선 출산 의향이 없지만, 다른 방식의 임신과 출산이 가능하다면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뜻이다. 체외임신까지 포함하면 여성의 출산의향 비율은 62.8%로 올라가게 된다. 출산의향이 있다고 답한 여성 중에서는 67%가 체외임신을 활용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출산의향이 없다고 대답한 남성 중에서 체외임신을 지원해 준다면 활용하겠다고 한 사람이 62%였다. 현 가부장제 상황을 반영하듯 20대에서도 출산의향은 남성이 여성보다 현저히 높았고, 출산의향이 없는 집단에서 체외임신이라는 새로운 임신ㆍ출산 경로가 생긴다면 아이를 갖겠다는 비율 또한 남성이 상당히 높았다. 체외임신ㆍ출산(18.6%)까지 포함하면 남성의 출산의향 비율은 88.6%로 올라간다. 체외임신을 포함한 전체 출산의향 비율은 75.7%가 된다. 체외임신을 고려하지 않았을 때의 출산의향 비율(55%)보다 20.7%p가 상승한 셈이다. ■한국에 닥친 인구절벽, 임신의 부담을 홀로 짊어진 여성 한국 사회는 2020년에 사망자 수가 출생자 수를 넘어서는 ‘데드크로스’를 보여 인구의 자연감소 시점에 이르렀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출생아는 전년보다 3만339명 줄어든 27만2,337명으로 이 해 사망자(30만5,100명)보다 3만2,763명 적었다. 이에 따라 인구 자연증가율(인구 1,000명당 자연증가)은 전년보다 0.7명 감소한 0.6명을 기록했다. 40대 초반을 제외한 모든 연령층에서 출산율이 낮아지며 2020년은 1970년 인구 통계조사가 시작된 이래 역대 최저 출산율을 기록했다. 전체 인구는 해외 유입 요인으로 전년(5,177만9203명) 대비 0.1% 증가한 5,182만9,136명으로 집계됐다. 생물학으로나 제도적으로 여전히 임신과 출산은 개인, 그것도 거의 여성의 책임이다. 임신과 출산 과정은 불가피하게 여성의 사회적 위치의 변화와 남녀 불평등 문제를 심화한다. 사회적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여성이 가부장제에 결정적으로 순응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이를 낳는 과정에서 겪는 문제들 때문이다. 아이를 낳는 과정은 임시적 기형 상태라고 표현될 만큼 여성의 신체에 많은 변화를 초래한다. 커지는 자궁에 장기가 눌려 통증에 시달리고, 입덧으로 먹고 토하기를 반복한다. 또한 임신한 여성은 급격한 호르몬 변화로 심한 감정 기복을 보이고, 정서적으로 불안정해지며 무기력ㆍ불안ㆍ분노 등의 감정을 경험한다. 두 아이를 낳아 대학까지 보낸 박 모씨(52ㆍ직장인)는 “임신기간에 소화가 잘 안 되고 회복 기간이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는 점이 힘들었다”고 임신ㆍ출산의 고통을 회상했다. 출산 경험이 있는 다른 여성들도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는 식사에 제약이 따르고 정상적인 활동을 하지 못하는 등 생활의 모든 방면에서 조심스럽고 힘들어진다고 입을 모았다. 개인주의가 확대되며 자신의 신체를 자산으로 여기는 젊은 여성들은 임신과 출산에 따른 신체적 고통과 변화를 당연히 받아들여야 할 희생으로 수용하지 않는다. 여성에게 임신은 사회적인 위치와 역할의 변화를 상징하는 중대한 사건이다. 사회는 출산과 양육에 있어서 여성에게 큰 기대를 한다. 아무리 국가에서 임신과 출산 그리고 양육이 공동 책임이라고 외쳐도, 생물학적 출산의 연장으로 육아 책임의 화살이 여성에게로 향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임신과 출산 과정 동안 여성은 남성에게 감정적으로 의지하거나 경제적으로도 기대며, 어쩔 수 없이 경제활동에서 뒤처지고 사회적 단절을 경험한다. 인공수정 장면 / 픽사베이 취학 전인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박 모씨(41ㆍ주부)는 “임신이 경이로운 사건임은 분명하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이 따라온다”라고 말했다. 출산휴가 등 명목상의 제도에도 불구하고 여성이 경력단절의 걱정 없이 마음 놓고 임신과 출산을 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아니라는 것이 박 씨의 생각이다. 그는 첫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 낙태의 위험 때문에 조심해서 일하다가 눈치가 보여 직장을 그만뒀다. 윤 모씨(39ㆍ주부)는 근무 중에 유산한 경험 후 다음에 아이를 가졌을 때는 아예 임신 초기에 직장을 그만두었다. 허 모씨(42ㆍ직장인)는 첫아이를 낳고 어머니가 낮에 아이를 돌봐주어 그나마 일과 육아를 어렵사리 병행할 수 있었지만, 퇴근 후 육아와 가사노동까지 책임져야 해 매일 밤 쓰러지듯 잠들었다고 회고했다. 이렇듯 21세기 여성은 경제활동에도 참여하는 가운데 돌봄과 가사노동의 의무를 짊어진다. 여기에다 여성은 가정을 결속시키며 좋은 어머니가 되어야 한다는 부담을 떠안는다. 박 모씨(41ㆍ주부)는 “주변을 둘러보면 사회적으로 기대하는좋은 엄마의 역할을 즐기는 여성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여성도 많다”라며 “앞으로 다양한 모습의 어머니상이 존중되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기성세대 여성에게 경력단절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었다면, 오늘날의 여성은 임신과 출산으로 인한 경제활동의 중단을 거부한다. 현경주씨(24ㆍ대학생)는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많고, 개인적인 생활도 누려야 하는데 임신과 출산으로 1년 이상 경제적, 사회적 지위가 정체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두렵다”라며 “아이는 낳고 싶지만 이러한 두려움 때문에 낳게 될 것 같지 않다”라고 말했다. ■한 아이를 낳는 과정이 오롯이 여성 개인의 몫이어야만 할까 인구절벽으로 국가의 지속가능성이 위협받는 오늘날의 전례 없는 시대 상황에도 국가는 출산을 개인에게 떠넘겨야만 할까. 국가가 여성에게 자신의 신체를 임신과 출산에서 분리할 수 있는 선택권을 제공한다면 어떤 사회가 만들어질까. 국가가 임신과 출산을 대신해 준다는 발상이 허무맹랑할 수 있다. 그러나 국가가 아이를 낳아주고 키워주는 발상이 나온 지는 수천 년이며, 이상적인 형태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플라톤은 국가가 개인의 결혼과 출산에 개입하면 모든 사람이 가족이 되므로 서로 공경하고 순종하며 우애를 지키게 된다고 하였다. 따라서 국가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갈등과 분열이 없어질 것이라고 보았다. 플라톤식의 논의가 멋진 신세계 세계상과 다른 것은, 그가 체외임신이라는 비(非) 포유류 생식 방법을 떠올리지 못했기에 생물학이 아닌 제도 측면에서 접근했다는 점이다. 체외수정을 통한 임신은 이미 보편화한 기술이며, 인공수정, 인공자궁과 체외 발생을 이용한다면 여성의 신체는 난자의 보급 이외에는 임신과 출산 영역에서 배제된다. 임신과 출산에서 여성은 난자, 남성은 정자를 제공하는, 비교적 평등한 역할 분담이 이뤄지는 셈이다. 설문조사에 참여한 이 모씨(24ㆍ여성ㆍ대학생)는 “체외임신을 활용한다면,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하혈ㆍ통증이나 갑자기 양수가 터지는 것처럼 몸이 심할 정도로 망가지는 사태를 방지할 수 있고, 경력단절 문제에서 벗어나게 될 수 있다는 점이 좋다”라고 말했다. ■체외임신의 실현 가능성 그렇다면 일종의 시험관인 인공 자궁으로 체외임신을 하는 것이 실현 가능할까. 국내에서는 현재 난임 부부를 위해서 남성의 정액을 인공적으로 자궁에 넣는 인공수정과 수정을 체외에서 하는 시험관 아기 시술이 이루어지고 있다. 시험관 아기 시술은 여성에게 배란 유도 호르몬제를 투여하여 과배란을 유도하고 난소로부터 난자를 채취하여 성숙시킨 뒤 정자로 수정을 시키는 방법이다. 체외임신의 전 과정 중에서 수정은 이미 시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임신에서 출산까지 전 과정을 체외에서 하는 것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 다만 인공 자궁 개발에 관한 연구는 존재한다. 한국에서는 조선대학교 병원의 송창훈 교수가 2003년에 인공 자궁ㆍ태반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였다. 염소 태아를 이용해 실험하였고, 인공 자궁ㆍ태반의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체외순환 회로를 구축하여 연구를 진행하였다. 실험에 사용된 염소 태아 35마리 중 15마리가 23시간 이상 인공자궁 태반의 시스템에서 생존하였고, 8마리가 48시간 이상 생존하였다. 인간에게 당장 적용하기에는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인공 자궁ㆍ태반을 구현하는 데 필요한 기술적 보완점을 찾아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미국에서 엠마뉴엘 그린버그는 1954년에 조산아에게 충분한 영양분을 주고 자궁과 비슷한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인공 자궁에 관한 특허를 냈다. 코넬대학교의 류흥칭 교수는 2001~2003년 인공 자궁의 필수조직인 자궁내막 조직을 만들어낸 후 쥐 배아를 인공 자궁에 넣어 만삭에 도달하기 직전까지 배아를 성장시키는 데에 성공하였다. 또한 인공 자궁에서 인간 배아를 10일까지 성장시키는 데에 성공하였다. 미국 필라델피아 아동 병원에서는 2017년에 어느 정도 성장한 양 태아 8마리를 인공 자궁에서 키워 출산하는 데 성공했다. 펌프가 없는 산소 공급기 회로를 연결한 시스템을 제작하여 자궁 환경을 재현했다. 이어 임신한 지 100일 정도 된 양의 태아를 인공 자궁에 넣어 4주 동안 성장시켜 정상적인 양 개체를 낳았다. 양들이 인공 자궁에서 성장한 후 일반적인 출생 과정을 거친 양들처럼 살아가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한 데서 이 실험의 의의가 있다. 이들은 모두 조산아를 위해 인공자궁을 개발한 연구이지만, 조산아를 키우는 용도 외에 체외임신 전반으로 인공 자궁의 적용 범위를 확대한다면 현존 가족제도를 유지한 채 ‘멋진 신세계’의 인간 재생산 방법을 실제로 구현할 수 있다. 미국 콜로라도 볼더 대학의 철학과 교수 샌더-스튜어트 모린은 “인공 자궁을 임신하는 데에 활용할 수 있다면, 여성의 몸을 통해서만 아이를 출산할 수 있다는 생각을 넘어서는 현실을 구현하여, 여성의 임신 부담감을 줄여줄 수 있고 모성의 문화적 의미도 전환될 수 있을 것이며, 결과적으로 성평등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과제들 인공 자궁을 활용하여 체외임신과 출산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아직 실제로 해 본 적이 없어서 선결과제가 많다. 우선 인공 자궁이 태아의 안전을 보장해야 한다는 데에는 이론이 없다. 안전성 확보를 위해서는 더 많은 실험이 필요한데, 양이 아닌 실제 인간을 실험에 활용하는 것은 윤리적 문제를 발생시키고, 법적으로 문제가 된다.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23조에 따르면 임신 외의 목적으로 배아를 생성할 수 없고, 29조에 따르면 잔여배아도 발생학적으로 원시선이 나타나기 전까지만 체외에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배아를 이용하지 않고 다른 시뮬레이션을 통해 위험이 없는 인공 자궁을 개발할 수 있는지가 체외임신에 관건이 된다. 체외임신에는 체외수정이 필수적인데, 체외수정을 위해 수정란을 냉동 보관하고 착상된 것을 제외한 나머지를 폐기하는 데서 미출생 생명의 법적 지위에 관한 논란이 생긴다. 복제 배아가 착상 시 인간으로 성장한다는 점에서 태아와 같은 본질로 본다면 인간 생명의 대량 파괴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임신 외의 목적으로 배아를 생성하여서는 안 된다는 법률 조항으로 인해, 배아를 인공 자궁 같은 체외임신 연구에 사용하는 것 말고도, 체외임신 자체에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 즉 체외수정뿐 아니라 명실상부하게 체외임신에 이은 체외출산까지를 광의의 임신으로 정의할 것인지, 아니면 출산까지 포함하는 체외임신을 특정하여 배아를 생성할 수 있도록 법적 기준을 명확히 할 것인지를 분명하게 정해야 한다. 또한 인공 자궁의 실용화를 위해서는, 출산이 아닌 다른 목적으로 인공 자궁이 악용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체세포 핵 치환 기술을 대신하여, 인간의 장기 생산 공장이 만들어지는 최악의 상황을 막아야 한다는 데 별다른 이견이 없어 보인다. 친생자 추정에 관한 민법상의 문제가 생긴다. 민법 제844조는 “아내가 혼인 중에 임신한 자녀는 남편의 자녀로 추정한다”고 규정한다. 인공 자궁 기술이 발달하고 체외임신이 가능해진다면, 이 조항만으로는 부모를 확정하는 데에 어려움이 생긴다. 체외임신이 도입되면 친생자 확인을 위한 새로운 기준이 필요해질 것이다. 아주 원론적인 논의로 체외임신으로 태어난 아이 또한 인간으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문제가 있다.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제13조 제1항 등 위헌확인(전원재판부 2005헌마346, 2010. 5. 27.)에 따르면, 초기배아의 기본권 주체성 여부에 대해서 “현재의 과학기술 수준에서 모태 속에서 수용될 때 비로소 독립적인 인간으로의 성장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에 체외임신으로 태어난 아이가 현행법으로는 기본권 주체성을 인정받지 못한다. 근본적인 문제는 아니지만 체외수정을 위해 난자를 채취하는 방식 또한 개선이 필요하다. 난자 채취 과정에서 여성들은 배란촉진 피하주사를 맞아야 하며, 난자를 잘 추출하기 위해 생식선 자극 호르몬 주사도 맞아야 한다. 그리고 긴 바늘을 질, 자궁, 나팔관, 난소의 경로를 따라 넣은 후 바늘로 난자를 흡수하는 시술을 받게 된다. 배란 유도 과정을 위해 투여한 호르몬에 의해 난소 과자극 증후군이 나타나서 복수가 차거나, 폐에 물이 고이고 혈액의 응고가 진행되는 상황이 올 수 있으며 바늘로 흡수하는 과정에서 통증을 느낄 수 있다. 체외임신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체외수정 과정에서의 고통을 줄이고, 난자를 제공하는 여성 신체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개선이 시급해진다. ■어떤 가족이 이상적일까? 역사학자 라르스 트래고드가 명명한 스웨덴식 사랑법에 따르면 사랑과 우정의 진정한 관계는 서로에게 의존하지 않거나, 불평등하거나 권력관계에 서 있지 않은 개인 사이에서만 가능하다. 과연 한국의 가족은 진정한 사랑의 관계를 맺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 의무적인 속박의 관계가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설문조사에서 아이를 가지고 싶지 않다고 답변한 어느 20대 여성은 “엄마가 아닌 나로 살고 싶어서 아이를 갖고 싶지 않다”라고 말했다. 우리가 익숙하게 느끼는 가족의 역할과 구조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가진 재래의 의무에서 벗어나 개개인을 더 존중하는 새로운 가족을 상상하는 것은 불온한 상상일까. 국가가 책임지는 임신이 그 첫걸음이 될 수 있다고 우리는 믿는다. 성평등 사회를 이루고 인구절벽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체외임신만이 해결책이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임신ㆍ출산ㆍ육아를 둘러싼 전반적인 문제의 해결책을 찾으면서 전혀 새로운 활로로 체외임신을 고려하는 것을 마다할 이유가 있을까. 적어도 논의의 시작은 가능할 것이다.
청년이 외친다, ESG 나와라
미국 임신중단 금지의 정치학(2021. 10. 29 14:27)
2021. 10. 29 14:27 국제
ㆍ미 텍사스주 사실상 임신중단 전면 금지법 시행… 법정 다툼 속 대법원 판단 앞둬 여성의 ‘몸’이 정치권력의 도구로 또다시 소환됐다. 미국 보수 진영의 심장부 격인 텍사스주는 지난 9월부터 임신 6주 이후의 임신중단을 원천 금지하는 법안을 시행했다. 주 정부는 이를 ‘심장박동법(SB8법)’으로 명명했는데, 임신 6주는 여성이 임신 사실을 알기 어려운 시기라 사실상 임신중단을 전면 금지한 법으로 평가받는다. 공화당이 장악한 다른 주들도 임신중단을 대폭 제한하는 법 통과를 잇달아 예고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내년 미국 중간선거를 앞둔 공화당의 보수 결집용 정책”이라고 분석했다. 임신중단권이 정치세력에 의해 뒤흔들리는 역사가 어김없이 반복되고 있다. 여성 인권 운동가들이 3월 2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연례 여성 집회에 참석해 ‘우리 몸에 대한 금지령’이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서 있다. / 게티이미지 미국 텍사스주에서는 9월 1일(현지시간) 새벽 0시를 기해 태아의 심장박동이 감지되는 시점 이후로는 성폭행 등에 의한 임신이어도 임신중단을 할 수 없도록 규정한 법이 시행됐다. 이날 여성들은 “우리의 몸에 대한 금지령(bans off our bodies)”이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고 주의회 의사당 앞에서 법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문제의 텍사스주 법은 임신중단 수술을 시행한 의료기관과 의료진, 임신부의 이동을 도운 우버 기사 등 조력자에게 시민이 소송을 제기해 승소할 경우 1만달러(약 1160만원)를 제공한다. 다수의 클리닉이 처벌을 우려해 임신중단 수술을 중단했고, 여성들은 임신 상태를 이어가도록 강제되거나 다른 주나 국가로의 이동을 감수해야 한다. 미 CNN방송은 “금지령은 특히 유색인종, 농촌 지역 거주자, 경제적 여유가 없는 여성 등에게 불균형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며 “다른 주로 이동할 수단이 없는 여성들은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시민단체들은 여당인 민주당이 상위법인 연방법으로 주법에 제동을 걸어 임신중단을 권리로 보장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정치권력 도구’가 된 여성의 권리 미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멕시코에서는 같은 달 7일 대법관 10명의 만장일치로 ‘임신중단 범죄화는 위헌’이라는 판결이 나왔다. 재판부는 여성들에게 자신의 몸과 삶을 결정할 권리를 부여하기 위해 이 같은 판결을 내렸다고 밝혔다. 멕시코 인구의 약 80%가 임신중단에 보수적인 입장을 가진 가톨릭 신자다. 임신중단 합법화를 요구해온 여성단체들은 “역사적인 움직임”이라며 환호했다. 임신중단을 비범죄화하는 움직임은 더디지만 이어지고 있다. 가톨릭 소국 산마리노도 9월 26일 국민투표를 거쳐 임신 12주 이내 임신중단을 합법화했다. 다만 비범죄화가 온전한 임신중단권 보장으로 직결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안전한 임신중단을 위한 의료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은 경우가 많으며, 사회가 규정한 성 규범과 도덕적 감각 등에 기초해 임신중단을 허용하는 사유와 시기 등에 제약이 있기 때문이다. 임신중단권 보장의 역사는 1973년 미국 연방대법원의 ‘로 대 웨이드’ 판결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 법원은 7 대 2의 표결로 여성이 태아가 자궁 밖에서 독자 생존할 수 있는 임신 24주 전에는 헌법적으로 임신중단권을 보호받는다고 선언했다. 이에 따라 각 주의 관련 법도 대부분 임신중단 금지 시점을 20주 안팎으로 정하고 있다. 당시 해리 블랙먼 대법관은 “사람들이 출산에서 자신의 역할을 통제할 권리를 갖는다는 일반적인 원리는 임신중단에도 적용된다”고 판시했다. 다만 이 판결은 임신중단을 제한할지에 대한 판단을 주별 정치에 맡겼다는 한계점도 있었다. 당시 연방대법원은 태아가 헌법상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생명권을 갖고 있지 않지만, 생명의 가치는 지니고 있다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이 잠재적인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주의 강력한 이익’을 인정했다. 임신 기간을 3분기로 나눠 임신 중·후기에는 임신중단을 규제할 수 있도록 기본 틀을 설정했다. 하지만 주가 보호하도록 허용하는 종류의 이익은 무엇인지, 왜 그 이익이 태아가 체외생존이 가능한 시점 이후에 더 강력해지는지 등에 대한 설명은 미비했다. 법철학자 로널드 드워킨은 “‘반낙태 로비’가 특정 주에서 충분히 강력하다면, 그 주의 여성은 로 대 웨이드 판결 이전에 그러했던 것처럼 임신중단의 기회를 부인당할 것을 의미한다”고 진단했다. ‘강력한 이익’이라는 모호한 개념은 지지층을 끌어모으려는 정치 세력에게 호소력 높은 정치 의제로 구체화됐다. 임신중단권을 둘러싼 논의는 선거 등 주요 국면 때마다 단골 이슈로 등장했다. 로널드 레이건 정부는 1984년 임신중단 관련 단체에 대한 지원을 금지하는 정책을 실시했다. ‘멕시코시티 룰’로 불리는 이 정책은 정권에 따라 폐지와 부활을 거듭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17년 임신중단 등을 지원하는 국제단체에 연방정부 지원금을 끊는 행정명령에 서명해 이를 되살려냈다.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으려는 시도도 이어졌다. 비영리단체 구트마허연구소는 바이든 정부 취임 후 6개월 동안 공화당이 장악한 주의회가 90건의 임신중단 금지 규제를 도입했다고 밝혔다. 국가가 여성을 인구 조절 장치로 대상화해 임신중단권 제한에 나서기도 한다. 중국 정부는 지난 9월 27일 ‘중국부녀발전개요(2021~2030)’를 공개하고 ‘비의료적인 이유’의 임신중단을 제한한다고 발표했다. 임신부의 개인적인 사정 등은 임신중단을 허용하는 사유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 당국은 “원하지 않는 임신을 막고, 남성들에게도 원치 않는 임신에 대한 책임을 공유하도록 장려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최근 몇년 사이 급감한 출생률을 끌어올리기 위한 목적이라는 해석이 짙다. “보편적인 건강권 문제로 다뤄야” 임신중단을 둘러싼 법정 다툼은 갈수록 치열해질 전망이다. 미연방대법원은 텍사스주 법의 효력을 멈춰달라는 가처분 신청에 기각 결정을 내렸다. 이에 법무부가 나서 이 법의 효력을 중단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냈고, 1심 연방법원은 법무부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곧바로 항소법원이 이를 뒤집고 텍사스주의 주장을 받아들이면서 법의 효력은 계속되고 있다. 최종 결론은 법무부의 요청에 따라 대법원으로 넘어가게 됐다. 임신 15주 이후 임신중단을 금지한 미시시피주 법의 위헌 여부도 오는 12월 1일 대법원에서 가려진다. 대법원이 합헌 결정을 내리면 최소 11개주에서 임신중단이 불법이 될 수 있다고 미 일간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CNN방송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 보수 6대 진보 3으로 재편되며 보수 우위로 돌아선 대법원이 내년 안에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을 가능성이 크다고 일부 법률 전문가들을 인용해 보도했다. 지난해 임신중단을 합법화한 뉴질랜드 법안의 가장 큰 특징은 임신중단을 범죄가 아닌 건강 문제로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앤드루 리틀 법무부 장관은 법안이 통과된 뒤 “이제부터 임신중단은 건강문제로 다뤄질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앞서 유엔 인권위 역시 임신부의 ‘생명권’을 보호할 의무의 일환으로 국가가 임신중단 여성이나 의료 서비스 제공자에게 형사 제재를 가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나영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SHARE)’ 대표는 “캐나다의 경우 임신중단을 여성건강권, 안전권의 문제로 다뤘기 때문에 다른 소송들에서도 여성의 건강권에 영향을 미치는지가 기준이 됐다”며 “보건의료 접근성, 평등권을 더 확보하는 방향으로 담론이 이동해야 한다”고 짚었다.
[허브에세이]임신한약이 따로 있을까? 향부자(2020. 08. 28 14:21)
2020. 08. 28 14:21 건강
최근 40대 초반 유명 연예인이 ‘임신한약’을 먹는다고 하여 문의가 많이 온다. 임신한약 처방이 따로 있는지 묻는다면 <동의보감> ‘구사편(求嗣編)’, 즉 후세를 얻는 방법에 나와 있는 처방들을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여기 소개된 처방의 한약만 먹어서 임신할 수 있다면 난임으로 마음고생하는 환자들은 없을 것이다. 향부자는 기를 소통시켜 뭉친 것을 풀어 주며, 여자들의 월경을 좋게 하고 진통시키는 등의 효능이 있다. / 위키실록 다만 임신처방에 항상 반복해 나오는 약재가 하나 있다. 바로 더운 모래땅에서 잘 자라는 방동사니과 향부자(香附子)의 뿌리다. ‘기병(氣病)의 총사(總司)요, 부과(婦科)의 주사(主師)’라는 향부자의 별명은 기가 막혀서 생긴 병, ‘기병’에 총사령관급이며, 부인과 증상에서는 총지배인급이라는 뜻이다. <동의보감>에서는 “기가 울체되어 꽉 뭉친 것을 강하게 내려주고, 가슴 속 번열을 없애준다. 장복하면 기운이 생기고, 기분을 좋게 하여 답답한 것이 풀어진다. 통증에도 효과가 좋으며, 생리불순을 치료하고, 장기간 식체를 삭히게 한다. 묵은 것을 잘 밀어내고, 새것을 잘 생기게 한다”고 나온다. 대부분 난임부부들은 건강에 대한 불안감과 타인 시선의 부담스러움,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압박감에 시달린다. 이는 혈액순환을 저해하며, 여성의 자궁 혈행까지 원활하지 않게 된다. 이럴 때 사용하는 약재가 바로 향부자다. 그럼 향부자만 있으면 모두 임신이 될까. 그렇지 않다. 다음 두 사례를 보자. 마른 체형의 36세 여성 A씨는 생리통약 5~6알을 늘 먹는다. 결혼 3년차로 자연임신을 시도하지만 매번 실패했다. 여러 검사를 해도 정상이라며 스트레스를 받지 말라는 말만 들었다. 진맥을 하는데 손이 많이 차디차다. 배를 눌러보니 아랫배가 단단하고 차갑다. 얼굴에는 핏기 하나 없고, 목소리가 너무 작다. A씨는 평상시 식사를 한끼 정도만 하고, 나머지는 군것질을 한다고 한다. 제대로 된 식사는 주 5회 정도라고 한다. 자궁은 혈해(血海), 즉 피의 바다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그 정도로 혈액량은 자궁 건강과 직결된다. 식사량이 적고, 비위가 약한 분들에게 여유분의 혈액이 있을까? A에게 처방한 임신한약은 자궁이 아닌 비위를 좋게 해 식사량을 높이고, 영양분 소화흡수를 도와주는 소화기계 한약이었다. 권혜진 청효대동한의원 원장 보통 체격의 43세 B씨는 결혼 4년차로 생리주기가 불규칙하며 극심한 변비가 있다. 학원강사로 밤늦게 퇴근하고, 새벽에 식사한 후 오전 늦게 일어난다. 매년 달라지는 수업시간, 특강, 책 출판 같은 이벤트로 언제나 긴장된 상태라고 한다. 그는 과도한 긴장과 부족한 수면, 초조한 마음으로 장기간 교감신경이 과흥분되어 있다. 이로 인해 혈관은 좁아져 근육은 딱딱해지고, 호르몬 분비와 혈액순환이 엉키게 되니 배변도, 생리주기도 규칙을 잃어버렸다. B씨의 임신한약은 골반강의 혈액순환을 높여 변비를 치료하고, 자궁의 어혈을 제거하는 것이다. 어혈을 제거한다고 하니 착상을 방해하는 것 아닌가 싶을 것이다. 밭에 씨앗을 심으려는데 자갈과 큰 돌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어혈이 바로 이러한 돌이다. 하지만 B씨의 임신한약인 자궁어혈 제거약을 A씨에게 준다면 낭패다. 피가 부족해서 자궁벽을 두껍게, 다른 말로는 밭에 흙을 더 뿌려줘야 하는 A씨와 밭에서 자갈을 걷어내야 하는 B씨는 전혀 다른 접근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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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즈 법률카페](9)임신·출산·육아 관련 근로자 보호 규정(2020. 08. 14 14:23)
2020. 08. 14 14:23 사회
임신 중인 예비맘 A씨는 한 달 동안 20시간이나 야근을 했다. 그런데 급여명세서를 보니 야근수당이 ‘0원’이다. 인사팀에 물어보니 임신 중인 직원은 법적으로 야근을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야근수당도 지급할 수 없다고 한다. 인사팀의 답변은 맞는 걸까. A씨는 야근수당을 받을 수 있을까. 우리나라 노동법은 임신, 출산, 육아와 관련해 여러 가지 근로자 보호 규정을 두고 있다. 이미 많은 독자가 알고 있겠지만 핵심적인 내용만 정확히 한 번 더 정리해보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사규가 노동법보다 불리하면? 워킹맘의 노동법상 권리를 살펴보기 전에 미리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다. 근로기준법과 같은 노동법은 ‘강행규정’이라는 사실이다. 강행규정이란 쉽게 말해 ‘강제로 적용된다’는 뜻이다. 우리 회사 규정에 출산휴가가 80일이라고 되었다고 치자. 그런데 근로기준법에는 90일 이상이라고 규정되어 있다. 따라서 사규의 ‘출산휴가 80일’이라는 부분은 효력이 없다. 이와 같이 근로계약서나 사규에 정해진 근무조건이 근로기준법보다 낮으면 그 부분은 무효가 되고 근로기준법의 내용이 강제로 적용된다. 다만 근로계약서나 사규의 근무조건이 근로기준법보다 유리하면 유리한 내용이 우선 적용된다. 사규에 출산휴가가 100일이라고 되어 있으면 사규가 우선 적용된다. 임신 중인 예비맘들의 권리 근로기준법,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임신 중인 예비맘 근로자에게 부여되는 권리는 크게 다섯 가지다. 첫 번째, 태아 검진시간을 사용할 수 있다. 즉 반차를 쓰지 않고도 근무시간 중에 산부인과를 다녀올 수 있다. 임신 28주까지 4주마다 1회, 29주부터 36주까지는 2주마다 1회, 임신 37주 이후는 매주 1회 가능하다. 법에는 ‘필요한 시간’을 청구할 수 있다고만 되어 있고 정확히 몇 시간이 보장되는지는 정해져 있지 않다. 통상 4시간 정도는 허용되는 것으로 해석된다. 두 번째, 임신 후 12주 이내 또는 36주 이후에 있는 예비맘은 ‘임금삭감 없이’ 하루 2시간의 근무시간 단축을 신청할 수 있다. 횟수에 상관없이 사용할 수 있다. 즉 임신 후 12주 이내에 사용했어도 36주가 됐을 때, 다시 사용할 수 있다. 사업주가 들어주지 않으면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에 처해진다. 세 번째, 난임 치료휴가, 즉 인공수정 또는 체외수정 등 난임 치료를 받기 위해 연간 3일까지 휴가를 청구할 수 있다. 3일 중 1일은 유급이어야 한다. 이밖에도 사업주는 임신 중인 근로자에 대해서는 시간외근무를 시켜서는 안 된다. 예비맘이 시간외근무에 동의했어도 사업주는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처벌된다. 밤 10시부터 새벽 6시까지의 심야근무나 휴일근무도 안 된다. 일단 회사의 지시에 따라 시간외근무나 심야·휴일근무를 한 경우라면 비록 법을 어긴 상황이기는 하지만 일단 수당은 줘야 한다. 물론 수당을 줘도 임산부에게 시간외근무를 시킨 사업주의 죄는 여전히 남는다. 출산휴가는 어떻게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출산휴가는 90일이다. 물론 회사가 허용하기만 하면 당연히 90일 이상이어도 된다. 90일 중 출산 후에는 반드시 45일 이상이어야 한다. 다둥이인 경우 120일 이상(출산 후는 60일 이상)이다. 예비맘이 유산·사산의 경험이 있는 경우나 위험이 있다는 의사의 진단서가 있는 경우, 그리고 만 40세 이상인 경우 출산 전 어느 때라도 최대 44일(다둥이는 59일)까지 출산휴가를 나눠 쓸 수 있다. 사업주는 출산휴가 기간과 출산 후 30일 동안 예비맘을 절대로 해고할 수 없다. 또한 출산휴가 종료 후에는 반드시 휴가 전과 같은 업무 또는 동등한 수준의 임금을 지급하는 직무에 복귀시켜야 한다. 예비맘이 출산하면 남편도 출산한 날부터 90일 이내에 10일의 유급휴가를 사용할 수 있다. 10일 이내에서 1회 분할 사용도 가능하다. 육아휴직은? 근로기준법에 따라 만 8세 이하 또는 초등학교 2학년 이하의 자녀를 가진 근로자는 1년 이내의 육아휴직을 쓸 수 있다. 1회 분할 사용도 가능하다. 당연히 아빠들도 사용할 수 있다. 올해 2월 28일부터는 ‘같은 아이에 대해’ 부모가 ‘동시에’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이 기간 급여는 회사가 지급하지 않고 고용보험에서 지원된다. 휴직 시작일부터 3개월까지는 월 통상임금의 80%가 지급된다. 다만 이 금액이 150만원을 넘으면 150만원(상한), 70만원 미만이면 70만원이 지급된다(하한). 휴직 4개월째부터 휴직 종료일까지는 월 통상임금의 50%가 지급된다. 다만 상한액은 120만원, 하한액은 70만원이다. 한부모 가정인 경우 지급액이 조금 더 많다. 육아기 근무시간 단축 육아기 근무시간 단축, 즉 육아휴직 대신 근무시간 단축을 할 수도 있다. 기간은 1년간 사용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만일 육아휴직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그 기간만큼 추가로 사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육아휴직을 6개월만 썼다면 육아기 근무시간 단축은 1년 6개월 동안 할 수 있다. 육아휴직을 전혀 안 썼다면 근무시간 단축은 2년간 가능하다. 단축 후 근로시간은 주당 15시간 이상 35시간 이내면 된다. 1일 근무시간은 그대로 하고 근무일만 줄일 수도 있다. 단축한 근무시간만큼 삭감된 임금은 고용보험에서 일부 보전받을 수 있다. 육아기 근무시간 단축은 몇 차례로 나누어 사용할 수 있다. 다만 나누어 사용하는 1회의 기간은 3개월 이상이 되어야 한다. 사업주는 육아휴직이나 육아기 근무시간 단축이 끝난 후에는 그 근로자를 휴직 전과 같은 업무 또는 같은 수준의 임금을 지급하는 직무에 복귀시켜야 한다. 유급 수유시간 생후 1년 미만의 아기를 가진 워킹맘은 직장에서 1일 2회 각 30분 이상의 유급 수유시간을 쓸 수 있다. 사업주와 협의해 출퇴근 시간을 30분씩 늦추거나 당기는 식으로 사용할 수 있다. 베이비시터는 노동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부모가 고용하는 베이비시터에게는 노동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최근 노동법을 적용하는 방향으로 법 개정이 추진되고 있으나 아직은 적용 제외 대상이다. 근로기준법은 ‘가사사용인’을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근로계약서를 작성할 의무도 없고 주휴일, 연차휴가, 퇴직금도 줄 의무가 없다. 근로기준법 대신 민법이 적용된다. 따라서 베이비시터를 고용한 사람은 베이비시터를 언제든 사유를 불문하고 해고할 수 있다. 그러나 계약기간을 정해서 고용한 경우 계약기간 중에 해고하는 것이라면 ‘부득이한 사유’가 있어야 해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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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중소 여행사 직원 “임신하자 해고당했다”(2020. 04. 17 15:03)
2020. 04. 17 15:03 사회
ㆍ서울지방노동위 회사 손 들어줬지만 검찰이 기소의견으로 송치 ‘무음’으로 설정해놓은 휴대전화 액정이 번쩍였다. 18개월 된 아이를 막 재우던 참이었다. 화면에 ‘02-530’으로 시작하는 발신자 번호가 떴다. 어딘가 낯익은 번호였다. 급히 이어폰을 끼고 통화 버튼을 꾹 눌렀다. 박지혜씨가 다녔던 중소기업 여행사가 2017년 10월 ‘정규직 채용’이라고 내건 채용공고(왼쪽)와 박씨가 예전에 여행사 사장과 대화한 내용(오른쪽). /박지혜씨 제공 “저희 쪽으로 보내주신 탄원서는 반송했습니다.” 지난 3월 27일 오후 1시 23분, 서울중앙지검 소속 실무관에게서 온 전화였다. 자신을 해고한 대표를 꼭 처벌해달라고 검사한테 보낸 탄원서가 반송이라니, 어찌된 일인가 싶었다. 실무관은 “약식기소를 해 사건이 법원으로 넘어갔습니다. 법원에 다시 탄원서를 보내시면 될 것 같습니다”라고 했다. 기소는 검찰이 범죄 혐의가 있다고 판단한 피의자를 재판에 넘기는 절차다. 약식기소는 서면 심리로 공판 절차를 대신해달라며 재판을 청구할 때 쓰인다. 벌금 등 재산형을 구형한 사건에만 한정돼 약식기소를 할 수 있다. 박지혜씨(30·가명)는 전화를 끊자마자 아이를 친정엄마에게 맡겼다. 지하철을 타고 서울중앙지법이 있는 서초동으로 향했다. 검찰이 기소됐다고 알린 중소기업 ㄱ사 대표 ㄴ씨의 혐의가 적시된 공소장을 열람하기 위해서였다. ㄴ씨는 박씨가 출산 전 다녔던 직장 대표였다. 그는 임신한 뒤 ㄴ씨가 자신을 부당해고 했다고 주장하며 사측과 1년 반 가까이 분쟁을 겪고 있다. 박씨는 지난 3월 31일 오후 4시 30분, 공소장 복사본을 받았다. 총 세 장이었다. 공소장에는 근로기준법 위반,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양립지원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이 적혔다. 검찰이 ㄴ씨를 벌금 500만원에 약식기소한 사실도 알게 됐다. 박씨는 집에 돌아와 모둠전·골뱅이무침을 주문했다. 밤막걸리도 한 병 시켰다. 동생과 마주앉아 종이컵에 막걸리를 따라 마셨다. 임신·출산에 이어 모유 수유까지 이어져 2년 넘게 입에 대지 않던 술이었다. “너도 날 좋아하는 줄 알았다” 그는 1991년 7월, 서울에서 태어났다. 큰 부족함 없이 자랐다. 어릴 적엔 태권도·피아노·컴퓨터·보습학원에 다녔다. 부모님이 대학 등록금도 꼬박꼬박 챙겨주셨다. 고교시절엔 역사를 좋아했다. 2학년 땐 교내 국사경시대회에 나가 금상도 받았다. 대학 진학도 역사 공부를 할 수 있는 곳을 생각했다. 수능을 보고 난 뒤 진로를 고민하다 여행에 마음이 이끌렸다. 전문대에 들어가 관광경영을 전공했다. 21세에 조기 취업해 정원 500명 규모의 크루즈선 승무원이 됐다. 하루 두세 시간씩 자면서 일주일을 꼬박 일본과 러시아를 오갔다. 한 달에 3주 일하고 1주 쉬는 패턴이었다. 한 달에 180만원을 벌었다. 그는 “2011년에 월급 180만원이면 또래들보다 넉넉히 번 거였다”고 했다. 크루즈선을 6개월 정도 타자 몸과 마음이 지치기 시작했다. 오래 다닐 수 있는 직장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가 찾은 곳은 직원 세 명이 있는 작은 여행사였다. 항공권 발권 업무를 주로 맡았다. 2년 만에 대리로 승진했다. 사장은 상여도 챙겨줬고 6개월마다 임금도 올려줬다. 경력을 발판 삼아 대기업과 거래하던 여행사로 자리를 옮겼다. 연봉도 올랐다. 매출의 80%가 대기업과 거래에서 나오는 회사였다. 그는 “큰 회사랑 거래하다 보니 일도 배울 게 참 많았다. 예전에 일하면서 배운 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했다. 인연은 길지 않았다. 경쟁 관계에 있던 중소 여행사가 그가 다니던 여행사의 대기업 물량을 가져갔다. 매출 감소를 견디지 못한 대표는 그에게 퇴사를 권유했다. 박씨는 “그 회사는 원래 굴지의 대기업 항공권 발권을 담당했는데, 대기업에서 여행사를 자회사로 만들어 자체적으로 소화하는 바람에 물량을 빼앗겼다고 했다. 그 여파가 다니던 회사에도 미친 것”이라고 말했다. 딱한 회사 사정을 고려해 퇴직금도 받지 않고 나왔다. 2017년 2월, 기존 중소기업 여행사가 만든 신설 법인에 다시 취업했다. 40대 중반의 남자 팀장이 “퇴근한 뒤에 치맥하자”며 카카오톡을 보냈다. 팀장은 일주일에 3~4번씩 단체 회식을 제안하기도 했다. 직장에선 가까이 다가와 어깨와 팔을 ‘터치’하는 건 예사였다. 참다못해 대표에게 카카오톡 대화를 비롯한 증거 자료를 A4용지 한 장에 정리해 제출했다. 사장은 “신경썼어야 했는데 미안하다”고 했다. 팀장은 “지혜씨도 저한테 관심이 있는 줄 알았다”고 했다. 회식하자고 할 때 곧잘 참석한 걸 두고 ‘관심’으로 받아들였다고 했다. 팀장은 부인과 이혼한 뒤 재혼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는 입사한 지 3개월 만에 다시 회사를 그만둬야 했다. 2017년 5월이었다. 박지혜씨가 다녔던 중소기업 여행사 대표가 직원들에게 강요했다는 영업비밀보호서약서 중 일부. ‘휴대폰 통제 및 검열에 동의합니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박지혜씨 제공 임신 뒤 찾아온 분쟁 뜻밖의 여유시간에 대학원 논문 준비를 했다. 그는 대학원에서 관광경영을 공부했다. ㄱ사에서 전화가 온 건 2017년 10월이었다. 경력직에 지원해볼 생각이 있느냐는 제안이었다. ㄱ사는 8명으로 운영되는 중소기업 여행사였다. 그는 “전화를 끊고 정규직 채용으로 직원을 모집한다는 구인 사이트 공고를 확인한 뒤 ㄱ사에 면접을 본다고 의견을 전했다”고 말했다. 박씨는 채용이 이뤄지고 한 달 뒤 근로계약서 작성은 했지만 사본을 교부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박씨는 수습 기간으로 간주된 3개월 동안 하루 8시간씩 출근해 일하면 자연스레 4대 보험 가입과 함께 정규직이 되는 줄만 알았다. 박씨는 “4대 보험도 3개월만 지나면 들어줄 거라고 얘기를 들었는데 대표가 정부지원금을 받아야 한다며 보험 등록도 차일피일 미뤘다”고 했다. 박씨는 2018년 4월 갑작스러운 임신 사실을 알게 됐다. 4대 보험 가입 요구를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출산휴가 등을 보장받고 검진 비용도 고려해야 했기 때문이다. 박씨는 “이때부터 대표의 움직임이 이상했다”고 했다. 박씨는 “갑자기 대표가 이력서에 적어낸 경력을 다 증명하라고 했다. 전에 다니던 회사에까지 연락해 이력이 사실이냐고 확인을 했다”고 했다. 박씨가 제공한 카카오톡 내역을 보면 전 회사 대표가 “가지가지한다”고 말한 내용도 담겨 있다. ㄱ사 측에서 갑자기 박씨의 경력 확인을 하자 남긴 말이었다. 그는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대표 ㄴ씨가) 경위서를 쓰라고 한 것도 수차례였다”고 했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2019년 6월 12일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홈페이지에 올린 ‘임신을 이유로 해고위기에 처했어요!’ 카드뉴스/대한민국 정책브리핑 홈페이지 갈무리 ㄱ사에 다녔던 또 다른 직원 ㄷ씨도 ㄱ사에서 대표와 직원 사이에 분쟁이 많았다고 했다. ㄷ씨는 “대표가 퇴직금을 주지 않으려고 해 최소 3명 이상의 직원이 분쟁을 겪었다. 일부는 노동청에 신고한 뒤에야 합의가 됐고, 일부 직원은 퇴직금 액수를 깎아서 받았다”고 말했다. ㄱ사 대표 ㄴ씨의 주장은 최초 근로계약서 작성이나 채용공고에 ‘정규직’ 표시 여부 등 주요 쟁점에서 박씨의 주장과 엇갈렸다. ㄴ씨는 오히려 악의적인 것은 박씨라고 반박했다. ㄴ씨는 “박씨가 저에게 낸 부당해고 무효 확인소송 민사소송가액이 5000만원인데 돈 때문에 사실이 아닌 주장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ㄴ씨는 “박씨가 본 채용공고에는 ‘정규직’이라는 표시가 없고, 애초에 프리랜서로 일을 하기로 구두 합의가 됐었다. 입사 직후 근로계약서는 애초에 합의 하에 쓰지 않은 것이 맞고 이는 저도 인정하는 사실”이라며 “갑자기 임신 사실을 알린 뒤에 4대 보험 가입을 요구했다. 박씨가 직원들과 저 사이에서 이간질도 했다”고 주장했다. ㄴ씨는 “악의적인 주장을 하는 직원들이 많아질수록 영세한 기업을 운영하는 저희 입장에서는 채용을 늘리기가 쉽지 않다. 다른 직원의 퇴직금 문제도 다 해결된 사항”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지방노동위원회(지노위) 판정문을 보면 박씨가 계약기간이 명시된 근로계약에 합의했다고 본 부분이 분명히 드러난다. 이는 부당해고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계약 종료임을 증명해주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지노위는 “부당해고 아냐” 박씨가 2019년 1월 산후조리를 한 뒤 찾아간 곳은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이었다. ㄱ사 측이 그에게 ‘계약 종료’를 알린 뒤였다. 배정된 근로감독관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임신한 뒤 회사 대표에게 부당 대우를 받았고, 부당해고로도 이어졌다며 증빙자료를 제출했다. 근로감독관은 박씨에게 “부당해고는 일단 노동위원회에서 판단 받아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고용노동부도 임신에 따른 부당해고 구제는 노동위원회에 진정하라고 소개한다. 지노위나 중앙노동위원회는 하루 동안 심문을 거친 뒤 바로 판정을 한다. 노동자의 빠른 권리 구제를 위한 조치다. 노동위는 준사법기관으로 행정심판을 내리는 기구다. 지노위는 2019년 3월 ㄱ사 대표 ㄴ씨의 손을 들어줬다. 부당해고가 아니라는 취지의 판정이었다. 지노위가 핵심적으로 판단한 부분은 근로계약서에 명시된 계약기간이었다. 박씨가 ㄴ씨에게 임신 사실을 알린 2018년 4~5월, 두 사람은 근로계약서를 두 차례 작성했다. 처음 작성한 근로계약서에는 계약기간이 정해져 있지 않았다. 박씨는 “대표가 2018년 표준근로계약서로 다시 근로계약서에 서명을 하자고 했다”고 주장했다. 두 번째 근로계약서에는 크게 두 가지가 바뀌었다. 계약기간이 명시됐고, 기타조항도 추가됐다. 두 번째 근로계약서에는 계약기간이 ‘2018년 4월 1일부터 2018년 10월 31일까지’로 적혔다. ㄱ사 대표 ㄴ씨는 “박씨도 당연히 계약이 종료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부당해고라는 건 명백한 거짓 주장”이라고 했다. 박씨는 두 번째 계약서를 쓸 때 ‘계약기간’으로 명시된 대목이 찜찜했다. 그는 “계약서를 고쳐달라고 했더니 출산 예정일인 2018년 10월 27일에 맞춘 기간일 뿐, 크게 의미가 없으니까 서명을 하라고 했다”며 “그래도 내키지 않아서 기타조항을 넣어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기타조항에는 ‘근로계약서에 명시된 근로계약기간 이내에 출산휴가, 육아휴직 신청 시 신청일로부터 정상적으로 휴직기간에 들어간다’고 쓰여 있다. 박씨는 지노위 공익위원들이 근로계약 기간만 따졌다며 아쉬워했다. 그는 “근로계약서를 작성한 전후 사정과 맥락을 종합적으로 판단했다면 결론이 달라지지 않았을까”라고 말했다. 노무법인 ‘시선’의 김승현 노무사는 “임신을 하지 않았다면 근로계약서를 한 번 더 쓰고 특별조항을 넣는 일이 없었을 것”이라며 “계약기간을 규정한 근로계약서가 위법하게 작성됐는지 여부를 노동위에서 중점적으로 따지지 않은 점이 아쉽다”고 했다. 지난해 10월 서울 영등포구 IFC몰에서 보건복지부 주최로 열린 ‘임산부의 날’ 행사에서 시민이 쓴 쪽지들이 나무에 걸려 있다./연합뉴스 권오성 성신여대 법대 교수는 “노동위는 일주일 전쯤 공익위원들이 자료를 받고 하루에 심문과 판단을 마친다. 준사법기관이라는 한계도 있다. 합의된 근로계약서 효력을 무시하기에는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다”고 했다. 권 교수는 “다만 노동위 공익위원 중에 민법은 잘 알아도 노동법에 전문 지식이 있는 사람은 드물다. 노동법을 아는 전문가들이 들여다봤다면 다른 각도에서 판단했을 순 있다”고 말했다. 검찰 “임신에 따른 부당해고” 결론 근로감독관은 올 초 박씨의 임신에 따른 부당해고 진정을 내사 종결했다. 지노위가 내린 부당해고가 아니라는 판단이 주된 근거였다. 검찰에는 ㄱ사 측이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점만 인정해 기소의견으로 송치했다. 상황이 바뀐 건 사건이 검찰 단계에 접어든 뒤다. 검찰은 박씨에게 직접 “진정내용을 검토해본 결과 혐의가 입증되는 것 같다”고 전했다. 박씨 측 변호인은 바로 의견서를 제출했고, 검찰은 의견서를 토대로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은 박씨와 ㄱ사 측의 대질조사도 진행했다. 검찰은 박씨의 임신이 해고의 단초가 됐다고 봤다. 검찰은 지난 2월 28일 임신한 박씨를 해고한 혐의로 ㄱ사 대표 ㄴ씨를 약식기소했다. 검찰 공소장에는 “ㄴ씨는 박씨에게 즉시 해고할 뜻을 보임으로써 성을 이유로 차별적 대우를 했다”, ”박씨가 ㄴ씨의 해고할 듯한 태도에 노동청에 진정을 넣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해고의사표시를 철회해 박씨에게 진정을 철회하게 했다”, “ㄴ씨는 2018년 10월 31일자로 박씨와 근로계약을 일방적으로 종료함으로써 박씨를 해고했다”고 나와 있다. 검찰 관계자는 “노동청에서 올라온 서류만 본 것이 아니라 피해자가 제출했던 진정내용까지 들여다봐 기소에 이를 수 있었다”고 말했다. ㄱ사 대표 ㄴ씨는 “조사 과정에서 담당 검사가 바뀌었는데 제 의견은 전혀 반영되지 않은 채 기소됐다. 변호인과 저 모두 받아들이기 어려운 결과다. 약식기소가 됐지만 정식 재판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 임신과 출산은 여전히 여성 경력단절의 가장 큰 원인이다. 2019년 나온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일·가정양립 실태와 정책 함의’ 보고서를 보면 첫째 자녀를 임신한 취업 여성의 50.3%가 둘째 자녀를 임신하기 전에 하던 일을 그만뒀다. 공공기관보다는 규모가 작은 개인 기업일수록 여성이 임신한 뒤 일을 그만두는 비율이 높았다. 박씨처럼 임신한 뒤 사측과 분쟁을 겪더라도 문제제기에 나서지 못한 여성들이 많을 가능성이 크다. 박씨는 2018년 출산 직후 이혼한 남편에게 양육비를 지급하라는 소송도 진행 중이다. 그의 전 남편은 박씨에게 아직 양육비를 한 번도 주지 않았다. ㄱ사 측과는 민사뿐 아니라 정식 재판에서 부당해고 여부를 다툴 것으로 보인다. 박씨는 “다른 사람 좋자고 하는 소송은 아니다. 그런데 저 같은 일이 또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딸을 키우는 입장에서 여성이 살기 조금 더 나은 세상이 되도록, 미미하더라도 작은 판례라도 하나 남기고 싶다”고 말했다. 해고당하며 알게 된 법의 ‘맹점’ 박지혜씨가 중소기업 여행사에 다니며 겪은 부조리는 해고만이 아니었다. 박씨는 “일하는 직원을 보호한다는 법에 허점이 너무 많았다”고 했다. 박씨가 꼽은 대표 사례는 ‘임산부 정기건강진단’이다. 그는 임신한 뒤에도 연차를 내고 산부인과에 다녀야 했다고 주장했다. 근로기준법 제74조의2는 “사용자는 임신한 여성근로자가 모자보건법 제10조에 따른 임산부 정기건강진단을 받는 데 필요한 시간을 청구하는 경우 이를 허용하여 주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루를 다 쉬는 연차 개념이 아니다. 아이를 가진 여성 노동자는 사용자와 협의해 보통 반나절가량 검진을 받을 수 있다. 2008년 3월 새로 생긴 규정이다. 사용자는 임신한 노동자가 건강진단을 받는다는 이유로 임금을 삭감할 수 없다. 임산부 정기건강진단 실시기준은 모자보건법에 구체적으로 나온다. 임신 28주까지는 4주마다 1회, 임신 29주에서 36주차 사이는 2주마다 1회씩 진단을 받을 수 있다. 임신 37주 이후에는 1주마다 1회 정기건강진단을 청구할 수 있다. 임산부와 태아를 보호하겠다는 법 도입 취지가 무색하게 한계도 뚜렷하다. 상시적으로 5인 이상 노동자가 근무하는 사업장의 임신한 노동자만 정기건강진단을 받을 수 있다. 5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사용자가 지키지 않아도 처벌조항이 없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꾸준히 지적됐다. 별도 과태료 부과 규정도 없다. 박씨는 “검찰조사 때, 정기검진을 받으면서 연차를 썼느냐고 질문받았다”며 “하지만 처벌조항이 없다고 설명을 듣긴 했다”고 말했다. 박씨는 채용공고가 과장돼 있더라도 제재가 어려운 현실도 짚었다. 박씨가 갈무리한 구인 사이트 채용공고를 보면, 그가 지원한 중소기업은 2017년 10월 ‘정규직’으로 채용형태를 표시했다. 박씨는 채용공고에서 사내 복지도 과장돼 있었다고 했다. 박씨가 갈무리한 구인 사이트 채용공고에는 ‘야근수당 지급’, ‘점심식사 제공’ 등이 명시돼 있다. 박씨는 “대표는 채용 이후에는 계약직 내지는 프리랜서로 채용한 것이라고 지속적으로 주장했다”며 “일정 금액 매출이 나오지 않으면 야근비가 지급되지 않았다. 식대도 전액이 아니라 3분의 1 정도만 받았다”고 했다. 허위 채용공고를 제재하는 법률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근로기준법상 제재 조항은 없지만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채용절차법)’에는 별도 조항이 있다. 채용절차법 제4조 ‘거짓 채용광고 등의 금지’에는 “구인자는 정당한 사유 없이 채용광고의 내용을 구직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한다. 거짓 채용공고를 하면 5년 이하 징역 혹은 2000만원 이하 과태료 처분을 받는다. 2014년 도입됐다. 문제는 법의 실효성이다. 노동자가 직접 신고를 해야 고용노동부가 조사에 나서는데, 불이익을 우려해 신고하는 구직자가 많지 않다. 법 시행 이후 처벌받은 사업장도 극히 드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집행된 벌금 수준도 200만~300만원 수준이라고 한다. 채용절차법은 30명 이상이 상시 근무하는 사업장의 채용절차에만 적용된다. 이 때문에 박씨가 근무했던 소규모 중소기업은 채용절차법의 제재에서도 비켜나 있다.
특집
임신∼출산의 오아시스 ‘태교여행’(2019. 05. 10 17:18)
2019. 05. 10 17:18 사회
ㆍ예비 엄마들의 스트레스 위로… “행복 호르몬은 태아의 뇌 발달에 도움” 서울에 거주하는 김수정씨(32)는 임신 16주차에 괌으로 4박5일 ‘태교여행’을 다녀왔다. 김씨는 “배가 별로 나오지 않아 저가항공도 탈 만했고, 평소 좋아하는 스노클링과 수영도 실컷 했다”며 “임신 후반기에 접어드니까 몸이 무거워지면서 숨이 차서 여행은 꿈도 못꾸겠더라. 그때 여행 가길 잘했다”고 말했다. 여행에 익숙한 세대, 달라진 태교 문화 김씨는 신혼여행보다 태교여행이 더 좋았다고 말했다. 신혼여행은 결혼이라는 큰 행사를 치른 직후라 피곤했고 양가 식구들까지 신경써야 해 부담스러웠다. 반면 태교여행은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었다. 여행은 오직 엄마를 위한 일정으로 짜여졌다. 김씨는 “언제 그렇게 속 편하게 여행을 가보겠나”라고 말했다. 그래서 김씨는 주변에 태교여행을 많이 추천하는 편이다. 출산 후 24개월 된 아이와 함께 여행을 다녀온 뒤로는 더욱 그렇다. 아이와의 여행을 두고 김씨는 “준비물부터 다르다. 챙겨야 할 것들이 엄청나다”며 “여행이 아니라 ‘야외육아’ 수준이다. 남편은 군대 유격훈련보다 힘들다고 했다”고 웃으며 말했다. 김씨 또래의 ‘예비 엄마들’ 사이에서 태교여행은 당연한 수순처럼 여겨진다. 온라인 맘카페에는 태교여행 전에 준비해야 할 것, 주의사항, 여행지 추천, 여행 후기는 물론이고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비해 현지 산부인과나 대형병원을 추천하는 글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만큼 보편화됐다는 의미다. 여행이 본격적인 태교상품으로 등장한 건 2010년대 초·중반 들어서다. ‘태교여행’ ‘베이비문’ 등의 용어가 생겨났고 임신한 연예인들의 여행 사진, 만삭 사진 등이 이슈가 됐다. 여행사와 호텔은 임신부에게 적절한 가벼운 운동이나 마사지, 태교에 좋은 음식, 산부인과 의사와 함께하는 여행 등의 패키지 상품을 내놨다. 이전에도 태교 시장은 존재했다. 태교 시장이 본격적으로 커진 건 1980년대다. 태교음반과 문화센터의 태교수업 등이 대표적이다. 1986년에 첫 아이를 출산한 김영희씨(64)는 “태교에 좋다고 해서 책을 많이 읽고 클래식 음악을 많이 들었다”고 말했다. 당시만 해도 여행은 드문 일이었다. ‘절대적 안정’이 우선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여행에 익숙한 세대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태교문화도 바뀌기 시작했다. 2040세대에게 여행은 ‘특별한 행사’가 아니라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 중 하나일 뿐이다. 이들은 관광이 아닌 ‘쉬기 위한’ 여행에 익숙한 세대이기도 하다. 최근 유행하는 ‘호캉스’(호텔+바캉스)를 주도한 것도 이들이다. 여행의 개념이 이전보다 가벼워진 것이다. 그렇다면 단기간의 여행이 정말 태교에 효과가 있을까. 일본 나가사키대 신경생리학과의 시노하라 카츠유키 박사는 “안정기에 접어들면 임신부의 몸에서 일어나는 호르몬 변화가 태아에게 고스란히 전달돼 영향을 미친다. 특히 행복 호르몬이라고 불리는 옥시토신은 태아의 뇌 발달에 도움이 된다”고 설명한다. 한 산부인과 의사도 “옥시토신은 태아의 뇌 발달과 움직임에 도움을 주고 산모와 태아 사이의 유대 형성에도 관여한다”며 “행복감이 중요하다. 여행이 엄마를 즐겁게 한다면 태교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단순히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좋은 음식을 먹는다고 해서 태교에 도움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임신 14∼28주 시기가 가장 적절 나아가 당사자들은 태교여행이 임신과 출산, 육아 과정에서 일종의 ‘오아시스’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임신 직후부터 출산 후 1년까지는 엄마의 몸상태, 그리고 육아 때문에 야외활동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김씨는 “태교에 도움이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엄마에게는 당시 추억이 순간이지만 위로가 된다”고 말했다. 태교여행 경험자들과 전문가들에 따르면 여행을 떠나기에 가장 적절한 시기는 제2삼분기(임신 14~28주)다. 이때를 안정기라고 하는데 임신 태반 구조가 완성되면서 호르몬 양이 안정을 찾고 입덧 증상이 가라앉아 임신 초기에 발생한 엄마의 신체적 부담이 줄어든다. 임신 말기에는 몸이 무겁고 조산 위험이 있다. 여행지로는 너무 멀지 않으며(4~5시간 이내로 갈 수 있는 거리), 사람이 적고 휴양시설이 충분한 곳이 적절하다. 무엇보다 위생관리 확인이 필수다. 벌레와 물에 의한 감염 확률이 낮아야 하며 건강한 식사를 할 수 있어야 한다. 해외 여행지로는 괌이나 사이판, 마카오 등이, 국내에서는 제주도가 인기를 모은다. 그러나 전치태반, 천식, 임신성 고혈압, 정맥혈전색전증 등을 앓고 있거나 조산 위험성이 있는 임신부는 가급적 여행은 피하는 게 좋다. 또 빈혈이나 심장병, 호흡기질환, 질 출혈, 골절 등이 있는 고위험군 임신부의 경우 조산 위험이 크므로 해외보다는 가까운 국내 여행을 추천한다. 실제 ㄱ씨는 27주차에 동남아시아 국가로 태교여행을 갔다가 사고를 당했다. 여행지에서 진통이 온 것이다. ㄱ씨 부부는 한국으로 돌아갈까 고민했지만 진통이 있는 상태에서 4~5시간 비행이 산모에게 위험할 것 같아 현지 병원에서 출산을 했다. 아이는 곧장 인큐베이터에 들어갔지만 의료시스템이 한국만큼 발달하지 못해 결국 사망했다. 따라서 태교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여행을 할 수 있을 만큼의 체력과 충분한 준비다. 여행을 앞두고 태아의 건강상태와 자궁수축, 자궁경부 등의 검진은 필수다. 또 현지 의사가 볼 수 있도록 차트를 복사하고 영어로 된 간단한 소견서를 챙기면 응급상황이 발생했을 때 도움이 된다. 영문 소견서를 요구하는 항공사도 있다. 여행지에 대한 정확한 정보도 필요하다. 비행기에서 내린 다음 숙소까지 교통편은 어떤지, 현지에서 감염 위험은 없는지, 가장 가까운 병원은 어디인지, 응급상황 발생시 현지 한국대사관에서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 등이다. 장시간 비행이나 멀미를 발생시킬 수 있는 굴곡이 심한 자동차 여행은 추천하지 않는다. 한 산부인과 의사는 “보통 ‘안정기’라고 하면 유산이나 조산의 위험이 사라져 아기가 절대적으로 안전한 상태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기 쉽지만 그런 의미가 아니다”라며 “가장 중요한 건 임신부의 상태다. 조금이라도 이상하다 싶으면 절대적으로 안정을 취해야 한다. 작은 증상들도 놓쳐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표지 이야기]“세상에 낙태하려고 임신하는 사람은 없다”(2019. 04. 16 09:32)
2019. 04. 16 09:32 사회
임신중절 경험 있는 3인의 여성이 털어놓은 속마음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 2월 발표한 ‘인공 임신중절 실태조사’를 보면 임신 경험이 있는 여성 5명 중 1명이 임신중절 수술을 했다고 응답했다. 성관계 경험이있는 여성만을 대상으로 한 질문에서도 10명 중 1명이 수술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대대적인 낙태 실태조사가 이뤄진 것은 2011년 이후 7년 만이다.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활동가들이 2017년 11월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낙태죄를 폐지하라는 시위를 하고 있다. / 김기남 기자 10명 중 1명, 5명 중 1명은 적은 비율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 주변에서 자신의 낙태 경험을 밝히는 목소리는 듣기 어렵다. 한 사람의 ‘몸’에서 일어나는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임에도 낙태는 늘 정부나 종교계, 산부인과 의사, 여성단체 등에서만 논의되어 왔다. 왜 낙태를 선택했는지, 어떤 과정을 겪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주간경향>은 임신중절 수술 경험이 있는 당사자 3명을 만났다. 30대 중반과 30대 후반, 그리고 40대 후반인 여성 셋의 경험은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멀게는 20년 전, 가깝게는 최근 임신중절 수술을 했다. 이들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낙태와 실제 낙태에는 차이가 있다”며 인터뷰에 응했다. 하지만 여전히 자신의 신상은 밝히기 어려워했다. #1 ㄱ씨(30대 중반, 낙태 당시 20대 초반, 현재 비혼) ㄱ씨는 생리주기가 ‘칼 같다’. 애매하게 한 달도 아니고 정확히 28일 주기로 생리를 시작한다. 덕분에 임신사실을 빨리 알 수 있었다. 임신테스트기를 사러 약국 앞까지 갔다가 되돌아오길 몇 차례나 반복했다. 결국 테스트기는 남자친구가 사왔다. 선명하게 두 줄이 나왔지만 믿을 수 없어 몇 개를 더 샀다. 제발 하나라도 한 줄이 나오길 바랐지만 모두 다 두 줄이었다. 가장 무서웠던 건 ‘부모님’이었다. 엄격한 부모님에게 임신사실을 알릴 바에는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온라인에서 추천받은 산부인과로 갔다. 여자의사는 딱 봐도 20대 초반의 학생처럼 보이는 ㄱ씨와 남자친구에게 “결혼은 언제 하실 거예요?”라고 물었다. ㄱ씨는 “나를 비난하려고 일부러 꺼낸 말 같았다. 너무 가증스러웠다”고 말했다. ㄱ씨는 당시 일련의 사건 중 그때가 가장 수치스러웠다고 기억했다. 수술은 다른 병원에서 했다. 비용은 남자친구가 냈다. 산부인과 대기실에서 ㄱ씨와 남자친구가 가장 어렸다.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다른 ‘여자 어른’들의 눈치가 보였다. 자신은 그 병원에 있으면 안 되는 사람 같았다. 수술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조금 차갑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차가운 느낌이 들었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회복실이었다. 낙태가 여성의 몸에 미치는 영향은 출산이랑 비슷하다며 남자친구가 며칠 동안 미역국을 끓여줬다. 크게 아프지 않았는데 눈물이 계속 났다. 아이의 성별을 잠시 생각했지만 4주차면 성별이 정해지기는커녕 장기도 형성되기 전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조금 마음이 놓였다. “‘엄마’라는 말은 안 나왔고 그냥 ‘내가 미안해’라는 말을 계속 했던 거 같아요.” 며칠 뒤, ㄱ씨는 망설이다가 일기장을 폈다. 그래도 그 날을 기록해야 할 것 같았다. 자신만 알 수 있는 단어들을 일기장에 적었다. 한 달쯤 지나고 ㄱ씨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ㄱ씨가 임신중절 수술 경험이 있다는 사실은 당시의 남자친구, 그리고 지금 남자친구만 알고 있다. 망설여졌지만 말을 꺼내고 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ㄱ씨는 “저는 그 시기를 무난하게 넘겼어요. 그런데도 여전히 ‘나는 죄를 지어서 아이를 못낳을 거야’라는 생각을 하거든요. 일종의 죄의식인 거죠. 아마 이 생각은 평생 할 것 같아요”라며 “그리고 그때 저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지만 지금 낙태를 하는 사람이 있다면 괜찮다고, 죄의식 갖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2 ㄴ씨(30대 후반, 낙태 당시 30대 후반, 현재 기혼, 자녀 없음) ㄴ씨는 지난해 임신중절 수술을 했다. 결혼 8년차에 생긴 아이였다. 하지만 기쁨보다는 당황스러운 감정이 컸다. 결혼하면 아이는 자연스럽게 생기는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아이는 생기지 않았다. 그렇다고 부부 모두 불임클리닉 같은 곳에 가면서까지 아이를 낳고 싶지는 않았다. 양가 부모님도 부부의 의사를 존중했다. 결혼 5년차가 지나고 30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마음이 편해졌다. 5년 동안 되지 않은 임신이 될 리 없다고 생각했다. 일상의 스트레스는 술과 담배로 풀었다. 그래서 임신사실을 알았을 때 가장 걱정됐던 건 아이의 건강이다. “아이가 아프면 치료비야 그렇다치고 그게 행복한 삶일까? 혹시 장애가 있으면 평생 차별과 싸워나가야 할 텐데.” 실제 주변에는 아픈 아이를 키우면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ㄴ씨 사촌언니도 그 중 한 명이다. 능력을 인정받으며 일했던 사촌언니는 직장을 그만뒀다. 형부는 쉬는 날이면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는 게 일상이었다. 사촌언니에게는 미안해서 말하지 못했지만 자신이 그런 상황을 겪게 될까봐 무서웠다. 부부는 낙태를 결정했다. 낙태비용은 생각보다 비싸지 않았다. 다만 현금을 요구했다. ㄴ씨에게는 부담이 아니었지만 누구에게는 부담일 수 있는 금액이었다. 수술 이후 병원은 ‘자궁수축 촉진제’를 권했다. 수축 촉진제, 영양제 등 받을 수 있는 처치는 다 받았다. 하지만 역시 누군가는 비용은 물론이고 다시 병원을 찾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ㄴ씨의 일상은 낙태 이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수술 이후 느끼기 쉽다는 우울감도 없었다. 오히려 우울감이나 죄의식이 들지 않아서 ‘죄책감’이 들긴 했다. 이게 모성애가 있고 없고의 차이일까? 나는 모성애가 없는 사람이 아닐까? 그런 생각으로 이어지자 아이를 낳지 않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남편은 정관수술을 했다. 임신 당시, 아이의 건강이 염려된다는 고민을 털어놨을 때 ㄴ씨를 비난하는 사람은 없었다. 사회·경제적으로 짊어져야 할 짐이 크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ㄴ씨는 손톱만큼 작은 태아의 발바닥을 보여주는 등 낙태의 잔임함을 강조하는 ‘운동’ 방식에 동의하지 않는다. “세상에 낙태를 하려고 임신하는 사람은 없어요. 그럼에도 낙태를 결정하는 다양한 이유를 들어주면 좋겠어요.” #3 ㄷ씨 (40대 후반, 낙태 당시 20대 중반, 현재 기혼, 자녀 1명) “아유, 대놓고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얼마나 낙태를 많이 했다고.” ㄷ씨는 25년 전쯤 임신중절 수술을 받았다. 실제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낙태는 사문화된 법이었다. 1960~1980년대에는 ‘가족계획’이라는 이름으로 국가가 낙태를 대놓고 권유하기도 했다. 문제는 ㄷ씨가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임신을 했다는 것이었다. 돌이켜보면 한 번도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아보지 못했다. 성인이 돼서 피임약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주변에 복용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약을 먹어서 생리주기와 배란기를 조절한다는 사실 자체가 낯설고 거부감이 들기도 했다. 당시 남자친구는 “내가 알아서 할게”라고 말했다. 콘돔을 끼거나 질외사정을 하는 거였다. 그때는 그러면 ‘완전’하게 피임이 되는 줄 알았다. 그래도 임신하면 어쩌느냐는 걱정에 남자친구는 임신이 되면 바로 결혼을 하자고 했다. 하지만 임신사실을 알리자마자 남자친구는 “애를 지우라”고 했다. 심지어 이후에는 연락까지 두절됐다. 국가가 낙태를 단속하지 않을 때라 비용은 비싸지 않았다. 다만 보호자가 동행해야 한다고 했다. 어려우면 전화로라도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가족에게는 도저히 말할 수 없어 친하게 지내던 친구에게 ‘아기 아빠’인 것처럼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ㄷ씨는 지금도 그 친구를 생각하면 고마워서 눈물이 난다고 말했다. 수술이 끝나고 나오자 어지러웠다. 기다리고 있던 친구는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신보다 친구가 더 안절부절못하는 게 눈에 보였다. 마취가 풀리자 ‘밑이 빠지는 것’ 같이 아팠지만 친구에게 미안해서 아프다는 말을 못했다. 오줌이 계속 나오는 것 같아 화장실에 갔더니 오줌이 아닌 피였다. 잊고 있던 낙태의 기억은 결혼 후 임신과 함께 찾아왔다. “그때는 배가 불러오기 전에 수술을 했기 때문에 몸의 변화는 별로 없었어요. 우리 애 가졌을 때 석 달이 지나니까 입덧도 하고 배가 나오더라고. 그런데 왜 그렇게 그때 생각이 나는 건지. 내가 낙태를 안 했으면 그 애도 이랬겠지 싶은 거죠.” 호르몬 분비, 신체 변화에 대한 스트레스, 과거의 기억 등이 합쳐지며 우울증이 찾아왔다. 낙태를 했던 기억이 슬퍼서 울고, 뱃속에 있는 아이에게 미안해서 또 울었다. 그래도 ㄷ씨는 돌아간다면 같은 결정을 할 수밖에 없을 거라고 대답했다. “여건이 갖춰져도 이렇게 힘든데 그때 임신과 출산을 겪었다면… 상상이 안 되죠.”
표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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