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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총 67 건 검색)

[박희숙의 명화 속 비밀 찾기](2)만화를 예술로…빨간 자동차의 의미는(2024. 01. 25 05:30)
2024. 01. 25 05:30 문화/과학
‘차 안에서’(1963년, 캔버스에 마그나펜, 뉴욕 로이 리히텐슈타인 재단 소장) ‘만화’ 하면 코흘리개 시절, 공부하라는 엄마 눈치를 보면서 몰래 읽었던 싸구려 이미지가 강하다. 그런 이미지 때문에 만화를 좋아한다는 것을 남들한테 대놓고 표현하지는 못하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한국 웹툰은 전 세계 만화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책에서 웹으로 만화가 이동하면서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즐길 수 있게 됐다. 장소와 시간에 상관없이 휴대전화만 있으면 만화를 볼 수 있는 환경이 열리면서 전 세계 젊은이들이 한국의 만화에 열광한다. 웹툰 인기의 가장 큰 원인은 상상력에 있다. 일상생활에서 할 수 없는 일도 만화에서는 가능하기 때문이다. B급 문화로 취급받던 만화를 예술로 업그레드한 화가가 로이 리히텐슈타인(1923~1997)이다. 로이 리히텐슈타인이 만화를 주목하게 된 이유는 디즈니 만화를 좋아한 아들 때문이었다. 어린 아들의 부탁을 받고 디즈니 만화를 그려주면서 대중에게 주는 만화의 영향력을 깨달았다. 작품의 주제를 바꾸게 된 배경이다. 리히텐슈타인의 만화적 화풍을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 ‘차 안에서’이다. 붉은색 넥타이를 맨 남자가 운전대를 잡고 있지만, 시선은 옆자리에 앉아 있는 금발의 여인을 향하고 있다. 남자의 시선은 그가 운전보다 여자에게 관심이 많다는 것을 나타낸다. 금발에 진주 귀걸이를 한 여자는 남자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앞만 바라보고 있다. 여자의 시선은 남자에게 별 관심이 없음을 의미한다. 금발 머리, 붉은 입술 그리고 긴 속눈썹은 1960년대 할리우드 영화 속에 등장하는 미인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이는 상업 만화에서도 미인의 이미지를 드러낸다. 이처럼 젊고 아름다운 미인은 남성 중심 사회가 만들어낸 이미지로 남녀의 애정 관계를 나타내기 위해 주로 사용됐다. 여인의 진주 귀걸이와 노란색 모피코트는 여자가 멋쟁이임을 뜻한다. 약간 치켜 올라간 남자의 입꼬리는 여자를 유혹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을 암시한다. 앞만 바라보고 있는 여자의 시선은 미인의 자만심을 상징한다. 자동차 창의 그려진 줄무늬는 만화에서 주로 사용하는 표현기법으로, 리히텐슈타인은 차가 빠르게 달리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만화의 시각적 이미지를 차용했다. 붉은색 자동차는 남자의 성적 욕망을 의미한다. 로이 리히텐슈타인은 만화의 이미지를 차용하면서도 만화의 방식을 그대로 따르지는 않았다. 이 작품은 DC 코믹스의 1950년대 만화책 시리즈인 <소녀들의 로맨스> 78번째 이야기에 등장한 장면으로, 원본에는 말풍선이 있지만 그는 말풍선을 생략했다. 그것이 만화와 다르게 관람객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리히텐슈타인은 이 작품처럼 만화 같은 회화 양식으로 사랑과 비난을 동시에 받았지만, 그가 대중에게 인정받은 최초의 미국 팝아트 화가라는 것 또한 틀림없는 사실이다. 영원한 아웃사이더는 없다. 시대를 잘 만나면 주류가 되기도 한다. 단지 그 시대가 언제 오느냐다. 기다리면 당신의 시대를 만날 수 있다.
박희숙의 명화 속 비밀 찾기
“왜 내는가” 대신 “너도 더 내라”만 남은 자동차세 개편(2023. 09. 01 10:57)
2023. 09. 01 10:57 경제
ㆍ일부 경차 제외 모두 오를 가능성 대통령실 국민제안 웹사이트에서 지난 8월 1일부터 21일까지 진행한 ‘자동차세 등 배기량 중심의 자동차 재산기준 개선’ 토론 / 대통령실 국민제안 홈페이지 갈무리 국민의 의무인 ‘납세’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국가는 ‘조세부과의 원칙’을 준수한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등이 강제적으로 부과·징수하는 조세가 국민 재산권의 중대한 제한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제약을 둔 것이다. 한국은 헌법 제38조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납세의 의무를 진다”, 제59조 “조세의 종목과 세율은 법률로 정한다”는 조항을 근거로 ‘조세 법률주의’를 준수하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조세의 종목과 세율은 법률로 정해야 한다는 ‘과세요건 법정주의’, 과세요건은 명확해야 하며 불확정개념이나 개괄조항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과세요건 명확주의’ 등이 도출된다. 쉽게 말해 한국에서 조세의 부과 및 징수는 ‘명확한 근거와 형평에 어긋나지 않는 적절한 수준에서 법률에 근거해 이뤄져야 한다’는 뜻이다. ‘조세부과의 원칙’을 준수하는 것은 국민주권주의와 법치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국가들에서 나타나는 공통 원리다. 그런데 해당 원칙이 존재한다는 것과 일상에서 국민이 조세가 정말 ‘공정하다’고 느끼느냐는 것에는 온도차가 있다. 조세부과의 기준이 변화한 시대상을 반영하지 못하거나, 조세가 소득재분배 기능에 역행하거나, 조세 부과 목적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등이 대표적 이유다. 특히 개편 방안이 ‘증세’에 초점을 맞춘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는 경우 더 큰 문제가 된다. 어느 정부를 막론하고 ‘증세’라고 설명하지는 않으므로 국민은 세금 고지서를 받고 나서야 그것이 ‘증세’였음을 알게 된다. 이 모든 의심이 한꺼번에 나타나고 있는 것이 바로 대통령실에서 불을 댕긴 ‘자동차세 개편’ 논란이다. 대통령실이 직접 운영하는 ‘국민제안’ 웹사이트가 있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이곳에선 모두 4개 사안에 대한 국민 참여 토론이 이뤄졌다. 해당 사이트에 노출되는 토론 주제는 대통령실이 선정한다. ‘다수 민원이 제기된 사안’이라는 설명이 붙지만 토론장을 마련한 주체가 대통령실인 만큼 ‘여론 확인용’(테스트 베드)이라거나 지지자를 결집하는 ‘여론 조성용’이라는 비판도 있다. 실제로 TV 수신료 징수방안, 집회·시위 요건 및 제재 강화 등이 토론 주제로 선정됐고, 여기서 논의된 내용은 정부가 추진한 정책을 뒷받침했다. ‘국민 참여 토론’이 사실상 정부의 정책 방향을 확인할 수 있는 풍향계가 된 상황에서 네 번째 토론 주제로 ‘자동차세 등 배기량 중심의 자동차 재산기준 개선’이 등장했다. 지난 8월 1일부터 21일까지 진행된 토론에는 2200여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1500여개에 달하는 추천도 붙었다. 댓글에서는 “배기량 기준으로 자동차세를 부과하는 것은 시대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주를 이뤘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비싼 고급차가 배기량이 낮아 자동차세를 적게 내는 사례가 발생한다는 것이 원인이었다. 전기차·수소차 등 배기량이 따로 책정되지 않는 차량의 보급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 등도 지적됐다. 정부는 토론 내용 등을 숙고해 개선 방안을 만들겠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해당 논의가 국산 내연기관차와 외제차, 전기차 등의 차주 간 갈등으로 흐르는 사이 반드시 짚어야 할 두 가지 사안이 교묘하게 빠졌다. 첫째는 자동차세 개편이 어떤 식으로 이뤄지든 향후 세 부담이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특히 자동차세의 가격 반영은 과세권자가 세수 확대를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현대차그룹을 포함해 한국에서 판매 중인 주요 차량 중 시간이 지남에 따라 차량 가격을 내린 경우는 사실상 전무하다. 새로 차를 구매하는 사람들은 비싸진 차량 가격만큼 더 세금을 내게 될 것이라는 의미다. 또 전기차·수소차 등에 대한 자동차세도 대폭 인상될 가능성이 높다. 기존에 내연기관 차량을 보유하고 있는 소유주가 증세 기조를 비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동차세 개편은 조세 감면이 아니다. 특수한 몇몇 경우를 제외하고 세금은 ‘하방경직성’을 갖는다. 전기차·외제차에서 더 걷는 만큼 국산 내연기관차의 세금을 줄여줄 가능성은 희박하다. 부족한 세수를 메우는 데 활용될 수 있다는 의미다. 일부 경차를 제외하면 오히려 세금 현실화를 명목으로 자동차세가 오를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은 이미 나오고 있다. 본질은 ‘증세’인 셈이다. 두 번째 사안은 보다 근원적인 부분임에도 논의가 되지 않았다. ‘대체 왜 매해 자동차세를 내느냐’는 조세 목적성 부분이다. 대통령실이 밝힌 토론 발제문에서조차 “자동차세의 취지를 재산가치와 환경오염, 도로파손 가능성 등을 감안한 세금으로 이해한다면”이라는 말이 나온다. 납세의무자가 자동차세를 무슨 이유로 내는지도 명확히 알지 못하는 상황이다. 법에 나온 대로라면 자동차세는 ‘지방재정 확보’가 과세 근거다. 재산, 환경오염, 도로 문제 등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으로 사후 명분을 갖다 붙였을 뿐이라는 뜻이다. 대통령실 국민제안 웹사이트에서 진행한 토론들 / 대통령실 국민제안 홈페이지 갈무리 일단 내고, 사후 정당화하는 자동차자동차세를 규정하고 있는 것은 지방세법이다. 해당 법 제10장 1절에 따르면 정확히는 ‘자동차 소유’에 대한 자동차세다. 같은 법 제9장에서 재산세를 별도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 자동차세는 소유자가 매해 낸다는 점에서 ‘보유세’에 가깝다. 그런데 기존 자동차세를 둘러싼 비판, 토론 댓글 등을 보면 국민의 인식은 자동차세를 재산세 혹은 사치세에 가깝게 생각한다. 상대적 고급차, 즉 ‘가격’은 비싸지만 배기량이 낮아 자동차세를 덜 내는 차량들에 대한 불만에서 논의가 시작되고 있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자동차세를 재산 보유에 따른 세금으로 본다면, 차량 가격을 기준으로 세금을 부과할 경우 조세 형평성이 달성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 비싼 물건에 더욱 높은 세금을 부과하는 방향이다. 언제까지 자동차를 사치재로만 볼 거냐는 반론이 있지만, 쌓인 불만은 해소될 수 있다. 문제는 가격 기준으로만 단순화할 경우 세금의 정책적 활용 여지가 사라진다는 점이다. 자동차세가 ‘환경’도 생각하고, ‘도로의 유지·보수’도 따지는 것이 되면 향후 ‘증세’, ‘활용’ 면에서 재량의 폭이 커진다. 자동차세 과세표준을 두고 ‘이산화탄소 배출량’, ‘차량의 무게’, ‘운행거리’ 등 온갖 기준이 섞이기 시작한 상황은 이와 무관치 않다. 궁극적으로 납세자들은 왜 이 세금을 내는지 모르거나 각자 세금을 내는 이유가 다른 상황에 이르게 된다. 지난 8월 16일 서울 시내 한 전기차 충전소에서 전기차들이 충전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정부가 자동차세 개편에 대해 한국지방세연구원에 의뢰한 결과에서도 과세표준은 한 가지가 아니었다. 자동차세 부과 기준을 ‘가격 기준’과 ‘환경지표’로 이원화했다는 점이 핵심이다. 여기서 환경지표는 또 세분화된다. 내연차량의 경우 이산화탄소 배출량, 전기차는 중량이 과세표준이 된다. 이처럼 과세표준을 세분화할 수밖에 없는 근원에는 전기차의 보급 확대가 있다. 전기차는 내연기관 차량과 구동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별도의 배기량이 없다. 이에 따라 ‘배기량’ 기준인 현행 자동차세 체제에서는 10만원(교육세 포함 13만원)만 1년 자동차세로 납부한다. 결국 전기차에도 과세를 해야 하는데 명분이 필요해진 것이다. 실제로 가격 기준으로 자동차세를 부과하면 정부 스스로 정책적 모순 상황을 만들게 된다. 한쪽에선 전기차 보조금 지급 등을 통해 가격 부담을 낮추려고 노력하고, 또 다른 한쪽에선 전기차에 세금을 부과해 부담을 올리는 모양새다. 이는 친환경차 보급을 확대하겠다는 정부의 장기적 목표와도 상충한다. 여기에 전기차 시장 확대에 나선 한국 자동차 산업까지 고려하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환경오염을 기준으로 세금을 부과하는 것도 유사하다. 환경오염을 따지면 기존 내연기관 차량보다 전기차의 자동차세가 낮은 것이 정상이다. ‘무거운 전기차가 도로를 파손한다’는 가정까지 동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렇듯 하나의 세금을 두고 납세의무자마다 사유가 다른 상황은 다시 근원적 의문을 촉발한다. 차량 소유주들끼리 누가 더 내고, 덜 내고가 아닌 ‘대체 이 세금을 왜 내느냐’이다. 지난 8월 20일 경기도 안성시 경부고속도로 안성휴게소 서울방향 주유소에 차량이 주유를 위해 줄을 서 있다. / 연합뉴스 자동차세, 왜 낼까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자동차세는 1949년 도입됐다. 4기통 이하 차량에 대해 배기량에 따라 차등 부과한 것은 1968년이다. 1991년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으로 전체 차량에 대해 배기량을 기준으로 자동차세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1995년에는 ‘기타 승용차’라고 해서 전기차·알코올 등의 연료를 이용하는 차량에 대해서도 과세를 시작했다. 영업용 2만원, 비영업용 차량 10만원 기준이 이때 탄생했다. 이는 2010년에 '그 밖의 자동차'로 명칭만 개정했다. 자동차세는 과세 대상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하지만 애초에 이 세금이 왜 부과됐느냐가 여전히 불분명하다. 재산세를 이유로 하기에는 자동차를 구매할 당시 취·등록세를 내고 있다. 보유세를 주장하기에는 여타 보유세에 비해 실질 세율이 높은 편이다. 게다가 차종에 따라 감가상각도 천차만별인데, 일괄적으로 세금을 부과할 수 있느냐도 문제다. 환경오염을 이유라고 한다면 친환경차 보급과 함께 자동차세 부담은 점차 소멸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결국 재정을 뒷받침하려는 명목으로 걷어온 세금을 다양한 이유로 포장해 오다가 사실상 증세를 하겠다는 것이다. 이마저도 차량 소유주들 간 불평등과 불만 등에서 개편 이유를 찾고 있다. 국가에 국민이 어떻게 길드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정부 역시 해당 문제를 잘 알고 있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자동차의 어떤 부분에 왜 세금을 부과해야 하느냐는 결국, 사회적 합의의 문제”라며 “반드시 자동차의 어떤 부분에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고 정해지거나 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동차세 문제는 쉽지 않기 때문에 개편을 논의 중이지만 어떤 과세 기준을 정할지, 언제 결론이 나올지 등에 대해서는 말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며 "특히 전기차 자동차세를 올릴지 내릴지는 정해진 것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업계가 충격 받을까봐 조심스럽다. 자동차세 개편 논의는 과세형평성을 제고하기 위한 것이고, 증세를 목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종합하면, 세금은 무조건 내야 하는데 무슨 명분으로 낼지는 사회구성원들이 각자 정해보라는 것이다. 대통령실 ‘국민제안’ 웹사이트에서 논의된 것은 사실상 돈을 내야 할 당사자들이 앞으로 더 많이 돈을 낼 명분을 찾는 일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자동차세 개편을 둘러싼 논의는 “너도 더 내라”가 아닌 “이 세금을 왜 걷는가”, “정확히 어디에 쓸 것인가”에 대한 것이어야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봉석의 북미 환경편지](3)변하는 자동차, 변해야 할 자동차(2022. 02. 25 15:00)
2022. 02. 25 15:00 국제
지난 1월 17일 월요일, 캐나다 토론토에 많은 눈이 내렸다. 일요일 밤부터 눈이 내렸지만, 겨울철에는 도로 제설작업을 바로바로 수행하는 토론토의 특성상 큰 고민 없이 월요일 아침 출근길을 나섰다. 집을 나서자마자 밤새 쌓여 있는 눈의 양이 평소와 다름을 느꼈다. 스노타이어를 장착한 차들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헛바퀴만 돌리고 있었다. 눈에 고립된 차들을 구조하러온 소방차도 눈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나 역시 출근을 포기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캐나다 토론토의 남북을 관통하는 ‘Yonge Street’가 지난 1월 17일(현지시간) 폭설로 인해 차로와 인도를 구분하기 어렵게 됐다. / 정봉석 제공 존 토리(John Tory) 토론토 시장은 월요일의 눈보라 상황과 내린 눈의 양이 이례적이고 공공안전에 위험이 된다며 “중대 눈폭풍 상황”을 선언했다. 캐나다 환경청(Environment Canada)에 따르면 이날 토론토 피어슨 국제공항의 강설량은 32㎝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눈폭풍으로 토론토 도시 전역에서 산발적인 정전이 발생했고 학교는 문을 닫았다. 많은 곳의 도로가 폐쇄돼 시는 시민에게 이동 제한을 계속적으로 요구했다. 또한 토론토시는 이번 폭설로 쌓인 눈 4만5000t을 제거하면서 역대 최고 제설량을 경신했다. 이는 트럭 약 1만4000여대 분량으로 길이로는 약 700㎞에 달한다. 토론토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제설작업이었다. 눈폭풍의 주요 원인으로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를 꼽는다. 관계당국은 이러한 기상이변이 좀더 자주 발생할 것으로 예측했다. 기록적인 월요일의 눈폭풍을 제외하면 토론토의 올해 겨울은 비교적 따뜻하다. 지난겨울도 따뜻했다. 약 20년 전 처음 토론토에 왔을 때 캐나다의 겨울은 마치 북극에라도 온 것처럼 상당히 추웠다. 한국의 ‘따뜻한’ 겨울이 그리웠다. 요즘 토론토의 겨울은 마치 부산의 겨울 날씨같이 (가끔 발생하는 기록적인 눈폭풍은 있지만) 비교적 온화하다. 주변의 캐나다인들과 대화를 하면서 나만 느끼고 있는 변화가 아님을 확인한다. 이런 변화의 조짐으로 인해 지난해 9월 캐나다 총선에서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 문제가 캐나다인들의 핵심 이슈가 됐다.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에 대한 고민은 미국도 심각하다. 2021년 분석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의 기온은 1994년 이후 역대 최고의 더위 및 추위 기록을 세웠다. 폭염이 이러한 기록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미국 정부가 기상 관측을 디지털 방식으로 기록하기 시작한 1948년 이후 그 어느 해보다 높은 수치였다. 지난해 2월 중순 텍사스에는 기록적인 겨울 폭풍이 몰아쳐 잭슨빌의 기온이 영하 20도까지 떨어졌다. 일조량이 많고 온화한 기후 지역인 텍사스의 온도가 동시간대 알래스카 지역의 온도보다 더 낮아지는, 믿기 힘든 일이 발생했다. 겨울철 난방수요는 생각하지도 않던 텍사스에서 난방 목적의 전기 사용이 폭증했다. 대규모 정전사태로 이어지면서 246명이 사망했다. 오리건주 세일럼시는 6월 28일 기온이 47도까지 치솟았다. 6월 평균 최고 기온이 23도로 시원한 세일럼시는 기록적인 폭염으로 최소 110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재앙적 기후변화의 위험을 최소화하려면 지구의 온도 상승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섭씨 1.5도로 막아야 한다고 말한다. 현재 지구는 지난 세기 동안 이미 1.1도 상승했다. 2015년 파리기후협정을 통해 모든 국가가 이산화탄소 순배출량 ‘제로’를 목표로 하여 자체적으로 온실가스 배출 목표를 정하고 실천하자는 협약을 했다. 이에 맞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030년까지 미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2005년 수준보다 50% 이상 줄인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러나 이것이 쉽지 않은 과정임을 보여주는 보고서가 최근 나왔다. 미국 온실가스 배출량 보고서 미국 기후컨설팅사인 로듐 그룹(Rhodium Group)의 새로운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경제가 팬데믹 위기에서 회복되면서 온실가스 배출량이 2021년에 6.2% 증가했다. 코로나19로 에너지 사용이 떨어졌던 2020년 이후 규제가 완화되고 경제활동이 회복되면서 배출량은 다시 반등했다. 특히 미국 최대의 온실가스 배출원인 운송과 에너지 부문의 배출량 증가가 확연했다. 미국 온실가스 배출량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운송 부문(29%)은 2020년 15% 감소한 후 2021년 10% 증가했다. 두 번째 많은 에너지 부문(25%)은 2020년에 10% 감소했다가 2021년에는 6.6% 증가했다. 모든 화석 연료 중 가장 많이 오염을 일으키는 석탄 화력발전소의 배출량은 2020년에 19% 감소한 후 2021년에 17% 증가했다. 2014년 이후 미국에서 석탄 발전이 증가한 첫 사례였다. 2021년 추운 겨울과 수출 증가에 힘입어 천연가스 가격이 거의 2배 올라 전력회사가 석탄 화력발전소를 더 자주 가동했기 때문이다. 그간 석탄 사용이 감소하고 재생에너지가 점점 시장 점유율을 높여가는 게 전반적인 추세였다. 그럼에도 재생에너지가 2021년 미국 전력 발전량의 20%를 차지한 건 새로운 이정표 도달이란 의미를 지닌다. 현재로선 바이든 정부의 기후 목표 달성은 어려워 보인다. 2030년까지 미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2005년 수준보다 50% 이상 줄인다는 목표를 달성하려면 지금부터 2030년 사이 매년 배출량을 약 5% 줄여야 하는데, 이는 코로나19 시기 이전보다 훨씬 빠른 속도다. 이에 바이든 정부는 가장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운송 부문에 규제의 칼을 들었다. 강화된 배기가스 연비 기준 최근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이산화탄소 배출의 주요 원인인 자동차 배기가스 강화 기준을 발표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지금까지 취한 조치 중 가장 강력한 기후변화 대응으로 자동차 배기가스 연비를 대폭 상향 조정했다. 현재 자동차의 평균 연비는 갤런당 38마일(리터당 16.2㎞)이다. 이를 2026년까지 갤런당 55마일(리터당 23.4㎞)로 약 45%의 연비 향상을 자동차 제조사에 요구했다. 환경보호청에 따르면 새로운 자동차 배기가스 규제는 2050년까지 31억t의 이산화탄소 방출을 막을 수 있고, 연소되는 휘발유 약 3600억갤런을 절약해 2050년까지 전국 휘발유 소비를 연간 15% 감소시킬 것으로 예상했다. 자동차 운전자는 보다 효율적인 차량 연비로 연간 약 1080달러를 절약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동안 미국 배기가스 규제는 민주당·공화당 정권이 바뀔 때마다 요동치곤 했다. 2012년 오바마 정부는 2025년까지 갤런당 51마일(리터당 21.7㎞)의 연비 기준을 제시했지만, 2020년 트럼프 정부는 2026년까지 갤런당 44마일(리터당 18.7㎞)로 규제를 완화했다. 바이든 정부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고 기후변화를 늦추고자 2030년까지 판매하는 신차의 50%를 전기자동차로 만든다는 목표를 세웠다. 지난해 11월 미 의회는 전국적으로 약 50만개의 전기충전소를 건설하는 데 필요한 75억달러와 전기자동차 생산을 위한 공급망 강화에 들어가는 75억달러를 포함한 1조달러의 인프라 법안을 통과시켰다. 또한 바이든 대통령은 연방 정부가 2035년까지 탄소 배출이 없는 자동차와 트럭만 구매하도록 하는 행정명령에 지난해 12월 서명했다. 미국은 전 세계 자동차 산업의 역사에 이정표를 찍는 역할을 해왔다. ‘자동차왕’ 헨리 포드(Henry Ford)의 모델 T가 태어난 1908년 이후 자동차 대중화를 이끌었고, 지금까지 자동차 생산과 소비의 최대 시장이다. 미국에서 자동차는 생필품으로 자동차 없는 생활은 생각하기 어렵다. 많은 미국인은 교외에 살며 도심 일터로 출퇴근한다. 이들은 하루 평균 50㎞ 이상을 운전하며 한두시간을 자동차에서 보낸다. 미국의 특성상 주거지역이 상업지역과 구분돼 있어 자동차 없이는 편의점도 가기 어렵다. 미국은 전 세계 자동차 산업에 또 다른 이정표를 찍으려 한다. 최근 상승한 미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주로 운송 부문에 기인한다. 이에 바이든 정부는 강력한 자동차 배기가스 연비규제를 만들었다. 미국은 전 세계적으로 영향력이 가장 큰 시장이기에 전 세계 자동차 제조사들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자동차 산업이 변하고 있다. 아니 생존하기 위해 변해야 한다.
정봉석의 기후환경 이야기
[브랜드 인사이드](16)‘자동차 안전의 대명사’ 변치 않는 이미지(2020. 07. 10 15:00)
2020. 07. 10 15:00 경제
독특한 디자인에 탁월한 운전성능을 지닌 소형차를 들어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브랜드 중 하나가 ‘미니(MINI)’다. 소형차의 대명사 미니는 ‘작은 차체, 넓은 실내’라는 콘셉트로 1959년 영국의 브리티시 모터 컴퍼니(BMC)에서 처음 제작됐다. 소형차면서도 1964~1967년 몬테카를로 랠리에서 4회 연속 우승하며 강인한 이미지도 갖추는 등 미니엔 확실히 다른 면이 있었다. 볼보 그러나 소형차에 대한 대중적인 수요가 감소하고 경쟁 차량이 속속 등장하면서 미니는 특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기 시작했다. 1994년 모기업 로버그룹이 BMW에 인수된 뒤에도 미니의 브랜드는 계속 유지됐다. 하지만 전통적인 미니 특유의 디자인을 새롭게 개선하기 시작했고, SUV 등 다양한 차종을 추가로 생산하기에 이르렀다. 미니의 개성 있는 정체성을 고스란히 보여준 둥근 헤드라이트, 육각형 모양의 그릴, 타원형의 손잡이 등 상징적인 디자인은 여러 요소가 더해지면서 본래 갖고 있던 무형의 가치를 잃어버렸다. 자신의 강점을 부각시키지 않고 약점을 덮는 데만 급급해 스스로 평범해지고 만 것이다. ‘3점식 안전벨트’ 발명 무상 공개 반대로 창업 이후 지금까지 줄곧 무형의 가치를 지속적으로 축적하면서 소비자의 충성심을 이끌어낸 자동차 브랜드도 있다. 스웨덴에서 시작한 자동차 제조업체 ‘볼보(VOLVO)’가 그 주인공이다. 볼보는 안전과 튼튼함의 대명사로 불린다. 특히 자동차 안전에 대한 볼보의 철학은 남다르다. 1927년 설립 당시 창업자 아사르 가브리엘손과 구스타프 라르손이 “볼보에서 만드는 모든 것의 우선 원칙은 항상 안전”이라는 점을 역설한 이래 지금까지 튼튼하고 믿을 수 있는 자동차를 생산하는 것을 목표로 해왔다. 볼보의 안전 철학을 설명하기 위해선 유명한 안전벨트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자동차 안전벨트인 ‘3점식 안전벨트(한 줄로 세 지점을 고정하는 방식)’는 볼보에서 최초로 발명했다. 이전까지는 비행기 안전벨트와 동일한 방식의 ‘2점식 안전벨트’가 주로 사용되었다. 1959년 당시 볼보의 수석 엔지니어였던 닐스 보린은 2점식 안전벨트가 지닌 단점을 보완해 세계 최초로 발명한 3점식 안전벨트를 볼보의 PV544 차종에 탑재했다. 기존 2점식에 비해 착용이 불편하다는 지적도 나왔으나 모의 충돌시험을 실시해 탑승자 안전 면에서 더 우수하다는 결과를 공개했다. 놀라운 사실은 이 기술을 전 세계 모든 사람이 누릴 수 있도록 자동차 제조사들에 무상으로 공개한 것이다. 특허 기술을 다른 자동차회사들에 판매했다면 엄청난 수익을 거뒀을 수도 있었겠지만 볼보는 정반대의 행보를 보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자사의 안전에 대한 신념, 즉 언제나 안전이 모든 것에 우선한다는 원칙을 보여주는 것이 더욱 중요했기 때문이다. 이 간단한 안전장치의 개발로 현재까지 목숨을 구한 이들은 100만 명 이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결과적으로 볼보는 기술만 뛰어난 다른 자동차 제조사들보다 ‘더 안전한 자동차’를 만드는 브랜드 이미지와 정체성을 동시에 구축할 수 있게 되었다. 볼보의 안전에 대한 노력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1967년 볼보는 세계 최초로 후방 어린이용 시트를 개발했다. 빈번히 일어나는 정면충돌 사고에서 신체에 가해지는 충격을 감당할 수 없는 어린이들을 위해 목을 지지하고 넓은 공간으로 충격을 분산시켜 큰 부상을 막을 수 있게 한 후방형 시트를 개발해 상용화했다. 또 1978년에는 어린이 안전을 위한 부스터 쿠션을 최초로 개발했고, 지속적인 연구·개발을 거쳐 편리한 기능도 보완했다. 이밖에도 안전을 향한 고집은 계속됐다. 측면 충격으로부터 탑승자를 보호하는 강한 프레임, 부상이 잦은 목뼈를 보호하는 시스템과 커튼식 에어백, 차량전복 방지 시스템, 사각지대 정보 시스템 등을 개발하는 데 항상 경쟁사들보다 한발 앞서나갔다. XC90 16년간 영국에서 사망사고 ‘무’ 2008년 볼보는 ‘2020년까지 볼보 차량과 관련한 자동차 사고에서 사상자가 없도록 하겠다’는 과감한 선언을 했다. 실제로 프리미엄 대형 SUV인 XC90은 16년 동안 영국에서 단 한 명의 사망사고도 나지 않은 기록을 세웠다. 미국 고속도로안전보험협회(IIHS)가 주관하는 충돌 테스트에서도 10년 이상 우수 등급을 받으며 안전에 대한 기술력을 대외적으로 증명했다. 이러한 자신감은 1970년부터 자체적인 교통사고 조사팀을 꾸려 사고현장마다 직접 찾아가 도로·교통상황, 사고원인과 피해 규모 등을 기록하며 축적한 연구결과에서 비롯됐다. 볼보는 총 4만3000건 이상의 사고 데이터를 기반으로 실제 충돌 상황에서 차량의 손상, 운전자와 보행자의 위험도 등을 분석하면서 첨단기술을 계속해서 개발했다. 레이저를 이용해 앞차와의 추돌 가능성을 감지하고,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밟지 않을 경우 자동으로 브레이크를 작동하는 ‘시티 세이프티 시스템’이 대표적인 개발 성과다. 통계를 분석한 결과 도로 위 전체 추돌사고의 75%가 시속 30㎞ 이하의 저속 상태에서 발생했고, 추돌사고의 50%는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밟고 있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게다가 이러한 안전 기능이 차종과 가격에 상관없이 탑재되는 점도 볼보의 이미지를 유지하는 데 기여했다. 브랜드란 고객의 마음을 얻기 위한 싸움과 다르지 않다. 앞서 나온 미니는 ‘브랜드 차별화 전략’을 설명할 때 대표적으로 언급하는 사례다. 무형의 가치를 축적하며 만들어지는 튼튼한 브랜드는 당장 기업의 매출이나 이익을 증대시키지는 않더라도 브랜드 고유의 특성을 소비자의 마음속 깊이 각인시킨다. 미니는 제품 카테고리를 늘리고 디자인 요소를 개선하는 데 중점을 뒀으나 결과적으로 평범한 브랜드가 되고 말았다. 볼보는 사회의 안전을 생각하는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했다. 그리고 경쟁우위를 창출할 수 있는 기술력을 차량을 만드는 정체성과 연결시켰다. 그 결과 ‘볼보=안전’이라는 인식을 정착시켰다. 볼보는 환경규제가 까다로운 북유럽의 기준을 맞추느라 엔진 설계와 성능 면에서도 기술력이 뒤지지 않지만 ‘안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 반면 비교적 뒤처진다는 평가를 받는 디자인이나 내장 등의 단점이 ‘안전’ 덕에 감춰지기도 했다. 이런 점들을 감안하면 어쩌면 그들에겐 브랜드 차별화 전략이 필요 없는 상태가 왔는지도 모르겠다. 오직 사람과 사회의 안전만을 생각하는 불변의 원칙에 따라 시간이 만들어 놓은 금자탑을 계속 쌓아나가기만 한다면.
브랜드 인사이드
[골목내시경]장안평 자동차 골목-뜯고 고치고 광내서 새 차로 거듭나다(2019. 12. 16 15:10)
2019. 12. 16 15:10 사회
지역 이름만 들어도 무엇을 하는 데인지 명백한 곳이 있다. 장안평, 혹은 장한평 일대 골목길은 중고자동차를 사고팔고, 뜯고 고치는 모든 것이 몰려 있다. 천호대로를 중심으로 남쪽 골목은 중고자동차매매센터를 중심으로 판매 정비·수리업체들이 몰려 있고, 북쪽 골목길은 각종 부품과 재생부속 업체들이 줄을 이었다. 예전에는 무·배추를 길렀고, 말목장이 있었다고 하던, 그저 너른 들판은 1970년대 말부터 자동차단지가 자리 잡았다. 그 후로 지금까지 장안평은 중고차와 그에 딸린 산업의 중심지가 됐다. 장안평은 중고자동차와 관련 산업의 중심지다. 천호대로에서 중고자동차매매센터 쪽으로 걸어가면 수많은 이들의 똑같은 질문을 만난다. 걸어가면 “차 필요해요?”, 차를 타고 가면 “팔 거예요?” “차 필요해요?” 똑같은 질문 수없이 들어 날이 추우니 업자들은 두껍게 옷을 껴입고 발을 동동 구르며, 수없는 무시와 거부를 무릅쓰고 묻고 또 묻는다. 앞사람을 지나쳐가면 뒷사람이 또 묻는다. 하루종일 한 명이라도 걸리느냐 묻자 고개를 저었다. “돈 없으니 길에서 소리치고 있지 돈 있으면 왜 이러겠냐”는 것이 돌아온 대답이다. 겨울이 될수록 길에서 보내야 하는 시간은 더 가혹하고 힘겹게 다가온다. 자동차 골목 입구에 화려하고 거대한 새 건물이 우뚝 섰다. ‘장안평 자동차산업 종합정보센터’. 장안평을 되살려보겠다고 새로 지은 곳이다. 그 옆 오래된 매매센터나 낡은 간판의 정비소들과는 겉모습부터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1980년에 장안평에 들어와 지금까지 자리를 잡고 있다는 정비소 사장에게 종합정보센터에 대해 물었다. 아주 짧고 분명하게 “뭘 하는 곳인지 모르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자동차 축제도 하고, 판매상 교육도 하고 이것저것 벌인 일들이 적지 않다지만 장안평 사람들에겐 친근하지도, 다가서기에 쉽지도 않은 곳으로 버티고 섰다. 40년된 상가 주변에 최신 첨단시설을 갖춘 중고매장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장안평 경기는 극과 극으로 갈라섰다. 길에서 손님을 찾고 매물을 잡으려는 이들에겐 진즉 바닥을 지나 밑 없는 늪이라고 했다. 골목 양쪽 옆 자기 가게라도 장만해 뿌리를 내린 이들은 “요즘 별로 나쁘지 않다. 계절 탓에 활발하지는 않아도 썩 나쁘지 않다”고 말한다. 예나 지금이나 별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같은 골목이라도 서 있는 자리에 따라 느끼는 온도가 달라지는 것이다. 낡은 매매상가를 빼고는 골목 안 모습이 많이 달라지고 있다. 대형 매장들이 들어섰고, 인터넷 중심 매장들도 생겼다. 한 눈에도 돈을 많이 들인 듯한 최신 시설의 중고차 매매빌딩도 보인다. 재벌과 자본이 중고차 시장에 눈을 돌린 후 장안평도 이제 예전처럼 오다가다 걸리는 뜨내기들의 장터로 남아 있지 못하게 된 것이다. 상가에 걸린 “대기업은 중고차 시장에서 손을 떼라”는 현수막이 무색해 보인다. 분야별 전문 정비업소들이 줄지어 있는 것이 장안평의 장점이다. “견적부터 판매까지 인터넷으로 모두 해결한다”는 대형 매장에 비해 길가에서 오가는 이들을 잡는 옛 방식은 턱도 없어 보였다. 골목에 서 있는 업자는 “팔리지도 않는 고물차 달랑 3대 가지고 있다. 팔러 오는 차들도 비싸게 불러서 잡지도 못한다. 노느니 길에 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그 사이에도 대형 매장 건물에는 수입차와 고급차가 연신 드나들고 있었다. “인터넷에 허위 매물을 올려놓고 손님 끄는 경우가 많다. 그 때문에 우리가 손해를 입는다”는 것이 그의 불만이지만 현실 속 중고차 사는 이들이나 파는 이들이 시장을 보는 방식은 확실히 달라졌다. 매매상가에는 중고차 업자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보험업체도 있고, 대출업체도 있다. 요즘엔 중고차도 할부가 되는 시대라서 그것만 전담하는 업자들이 상가에 둥지를 틀고 있다. 거대한 전시주차 공간뿐 아니라 상가 안 길목은 물론이고 모서리 작은 공간에도 모조리 차들이 들어서 있다. 녹슨 차도 전부 돈이다. 대형트럭과 버스는 연식과 가격조건, 차량 상태와 연락처를 붙여놓고 손님을 기다린다. 업자들도 전문 분야가 있어서 승합차·승용차·트럭·버스 전문이 다 달랐다. 트럭 전문이라는 업자는 “불경기엔 화물차가 잘 나가는데 요즘엔 그도 주춤하다”고 했다. 수리용 페인트로 범퍼에 노련하게 붓질하는 그는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하고 조금이라도 값을 높여야 하니 작은 흠은 직접 손본다”고 한다. 경남호텔 주변은 유흥가 골목이 형성돼 있다. “대기업은 중고차 시장 손 떼라” 현수막 매매상가 안 통로는 길고 어둡다. 마음에 드는 차를 고른 듯 현금인출기에서 돈을 뽑는 젊은이도 보이고, 서류를 들고 개인택시 면허 거래업체 문을 여는 이도 보인다. 업자는 “개인택시 면허를 내놓는 사연들이야 다 다르다. 몸이 안 좋아서 내놓는 사람은 그나마 나은 거고, 택시를 잡히고 노름하다가 넘기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귀띔한다. 이제 막 시장에 발을 들이고 중고차 매매를 배우려는 중년의 새내기 업자는 소위 잘 나가는 선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이게 복잡해 보여도 체계적으로 배우면 어렵지 않다”고 하지만 낯선 바닥에서 쉬운 일이란 결코 없으리라. 작은 부품 하나도 버려지는 것 없이 활용된다. 장안평에서만 30년이 넘었다는 업자는 “중고차 시장은 여름이 성수기다. 놀러갈 때 차를 샀다가 파는 경우가 많아 물량이 넘치고 가격도 괜찮다. 겨울은 완전히 얼어붙는다”고 했다. 시장 분위기도 계절을 타서 봄이 되면 조금씩 풀릴 것이라고 한다. 모닥불이나 쬐다가 엄동설한에 얼어죽지 않으면 내년 봄이 되면 또 좋은 시절을 볼 수도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얼음 아래서 희망을 갖는다는 것은 참으로 가여운 일이다. 경쟁자 많은 판매상과 달리 골목 주변의 정비업체들은 비교적 분위기가 좋았다. 엔진을 들여다보던 업자는 “여긴 기술 하나 인정받으면 일감이 몰려온다. 중고차란 것이 손봐야 할 것투성이니 노다지”라고 했다. 저마다 엔진·변속기·내장재·전기·판금 등 특화된 분야가 있고 잘 보는 차종별로 소문이 나 있어서 ‘뭐하면, 누구’ 하는 식으로 바닥 정보가 있다고 한다. 중고차 하나를 팔기 위해서는 우선 세차를 하고 광택을 입혀 겉을 손보고, 비싼 차량이면 의자까지 뜯어내 살균청소를 한다. 엔진부터 타이어까지 손보고 광을 내야지 제값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중고차 한 대가 골목 여기저기를 돌아서 새로 태어나야 제값 받는 상품이 된다. 세차만 20년 넘게 한다는 업자는 “손봐서 파는 차도 있고, 출고 전에 손보는 경우도 있다. 세차하고 다음엔 선팅 업체에 가져다 놓든지 내장 업체에 가져다 달라고 주문이 온다. 인맥이 이 바닥 경쟁력이다”라고 들려줬다. 어떤 연식의 차종이라도 장안평에서 부품을 구해 고칠 수 있다. 천호대로를 건너 장안평 북쪽 골목길은 매매시장 쪽과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군데군데 정비소들이 있고, 그 사이사이로 부품가게들이 줄지어 있다. 부품이라지만 대부분은 중고 재생부품들이다. 외제차 부품만 전문으로 다루는 곳도 있고 특정 차량, 특정 부품만 취급하는 업체도 있다. 예를 들면 전조등 전문 업체도 있고 화물차 배기관만 취급하는 곳도 있었다. 지붕 위로 부품 하적 장소를 만들어 차량 부품을 쌓아두고 주문을 받으면 곧바로 배달하는 방식이다. 수만 개의 부품이 모여 차 하나가 되었다가 다시 뜯기고 해체되어 새로운 쓰임을 기다리는 곳이다. 그라인더로 부품을 갈아내던 업자는 “외제차에 사고가 나면 부품 구하기가 쉽지 않다. 정비공장에서 본사에 주문해서 받는데 한 달에서 길게는 반 년도 잡아먹는다. 여기는 재고만 있으면 바로 갖다 준다. 당장 없어도 여기저기 수배해서 찾아다 준다”고 했다. 외제 자동차 로고부터 라디에이터 그릴까지 고물을 쌓아둔 것 같지만 돈 주고도 못 구하는 보물들이란다. 폐차장이나 사고현장에서 거둬들인 부품들은 중간 업자를 거쳐 이곳 전문업자들 손에 들어오면 그야말로 몸값이 뛴다. 요즘엔 전국에서 주문이 온다고 했다. 뭐든지 한 우물을 판 이들은 승리하는 법이다. 부품가게들 사이사이에도 정비소들이 있는데 길 건너 업소들과는 분야가 달랐다. 매매상가 주변 정비소들은 매매를 위해 손보는 일을 하지만 이곳은 그야말로 차를 고쳐 타기 위해 오는 곳이란다. 시동 소리만 들어도 고장난 곳을 안다는 업체 사장은 “이 바닥은 실력 없이는 못 버틴다. 말로는 속일 수 있지만 솜씨는 드러나는 법 아니냐”고 강조했다. 적어도 차 만지는 사람이 장안평에서 10년 넘게 살아남았다면 실력을 인정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경력을 묻자 “열아홉에 버스회사에서 기름밥을 먹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50년 됐다”고 힘을 준다. 40년 오랜 흔적 도시재생 가능할까 장안평 일대는 알게 모르게 많이 달라졌다. 주택가로 개발되면서 북쪽 골목골목 빌라와 소규모 아파트가 들어섰고, 지하철 5호선이 지나면서 대형 오피스텔들이 들어섰다. 개발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경남호텔 근처 골목골목이 유흥가로 이름 높았던 때도 있었다. 번창하던 안마시술소와 마사지 가게들은 이제 주춤해졌다. 다만 골목 곳곳에 숨어 있는 성인오락실과 주말이면 문을 여는 경륜 경정장들이 환락이 지배하던 시절의 뒷모습을 보여준다. 근처 식당 주인은 “중고차 시장 경기가 1990년대에 한창이었다. 마이카 붐이 불고 국산차들이 쏟아져 나오고 할 때는 물건 하나만 제대로 잡으면 한 달 수입도 들어왔다. 이 주변이 온통 흥청망청했다”고 말한다. 낮에도 짙은 커튼 뒤에서 열심히 돌아가는 사행성 오락기계들과 남들이 쉬는 날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한 방에 수십 배의 베팅이 이뤄지는 경륜 경정장들은 한 시절 찰나 같은 번영에서 깨어나지 못한 몽상의 추억이다. 장안평은 아마도 더 달라질 것이다. 일대의 골목과 산업들이 도시재생의 큰 과제로 주목받고 있다. 이 시절이 더 이상 40년된 오랜 흔적을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매매상가엔 재개발을 위한 지주 동의를 구하는 내용과 협동조합 구성을 위한 현수막이 걸렸다. 바깥 골목엔 종합지원센터에서 내건 세련된 지원 약속 현수막도 눈에 띈다. 40년째 제자리를 지킨 정비소 주인은 “이 골목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중고차 들어오면 고쳐 새 주인 만나서 나가고, 거기 붙어서 살아가는 모습은 앞으로도 똑같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골목 안 겉모습은 달라져도 살아가는 속사정은 쉽게 변치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장안평 자동차 골목에서, 또 아침저녁 걷는 내 집 앞 골목길에서 그 사정을 만날 수 있다.
골목 내시경
자동차 리콜 시스템 확실히 개선”(2019. 07. 19 15:26)
2019. 07. 19 15:26 경제
ㆍ[인터뷰]자동차관리법 개정안 발의한 박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1년 전 이맘때 신문 사회면의 주인공은 ‘자동차 리콜’이었다. BMW 화재로 촉발된 리콜 이슈는 여름 내내 타올랐고 부실한 리콜 시스템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리콜 시스템의 전면 개선을 약속한 정부는 지난해 9월 자동차 리콜 혁신방안을 발표했다. 국민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새로운 리콜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취지다. 박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7월 1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 권호욱 선임기자 리콜 혁신안은 자동차제작자의 책임 강화에 무게를 뒀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와 과징금 강화, 자료제출 의무 확대와 같은 방안이 담겼다. 소비자들은 정부의 혁신안을 환영했다. 이전 리콜 시스템은 차량 결함 입증이 까다롭고 리콜을 받기 어려워 소비자 불만이 컸다. 1년이 지난 지금 리콜 시스템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거의 없다. 제도를 바꿀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동차관리법 개정안은 20여건 발의됐지만 국회는 공전을 거듭했다. 그간 자동차 리콜 시스템 문제를 제기해온 박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만났다. 인터뷰는 7월 1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진행됐다. 최근 박 의원은 자동차관리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지금 쯤이면 리콜 시스템 개선이 어느 정도 이뤄졌을 거라 생각했다. “말하기 미안할 정도로 바뀐 게 없다. 아시다시피 법은 많이 나왔다. 바꿔 말하면 법만 많이 나온 거다. 교통법안심사소위에서 오늘(16일) 처음으로 BMW 후속조치 관련 입법 논의를 했다. 법 개정을 해야 세부 제도를 손볼 수 있는 건데 처음부터 막혔다. 국토부도 개선 의지는 있는데 시행령만으로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여야뿐만 아니라 자동차업계, 소비자단체 모두 입장이 제각각이다. 나침반을 봐야 하는데 시계 갖고 싸우고 있는 상황이다. 국회에서 의견을 모아 조율을 해도 모자랄 시간인데 장외투쟁으로 시간을 허비했다. 당을 떠나 부끄럽다.” -국민들은 지금도 리콜 시스템을 불신한다. “솔직히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여당 국회의원인 나도 못믿겠다. 예전에 리콜 여부를 결정하는 국토부 자동차 제작결함심사평가위(현 자동차 안전·하자심의위원회)에서 심사한 리콜 자료를 받아본 적이 있다. 자료가 부실해서 회의록을 요청했더니 회의록이 없다고 하더라. 그냥 평가위원이 자필로 ‘시정조치 사항 아님’이라고 한 줄 써놓은 게 전부다. 누가 어떤 근거로 리콜 여부를 판단했는지, 그게 적절했고 합리적인 판단이었는지, 어떤 과정을 밟았는지, 업계와 유착관계에 있는 것은 아닌지 전혀 알 길이 없다. 그런 상황에서 이거 결함 아니다. 리콜 못해준다. 정부 말 믿어라 하면 누가 믿겠나.” -<경향신문>에서도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기사가 나간 뒤 제작결함심사평가위원회(현 하자심의위) 측에서 반발했던 기억이 난다. “감사원이 국토부 리콜 실태 감사를 벌였다. 결과도 지난 5월에 나왔다. 어떻게 나왔을 것 같나. 2013년 1월부터 2018년 6월까지 위원회 위원 25명 가운데 12명이 자동차 제조회사와 부품 제작사, 관련 업체로부터 42건의 용역을 받아 수행했다. 쉽게 말해 심사대상인 자동차회사에서 일감을 받고 돈을 받은 거다. 이렇게 해서 받은 용역비만 49억원이다. 이런데도 ‘공정하다’, ‘문제없다’고 말할 수 있나. 국민들이 믿겠나. 2013년 이전에 수행한 용역을 포함하면 금액은 더 늘어난다.” -제도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리콜 심사과정을 투명하게 만들자는 게 이번에 발의한 자동차관리법 개정안의 취지다. 리콜 결정과정을 세세하게 기록한 회의록을 작성하고 해당 회의록은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했다. 위원 결격사유도 강화했다. 배우자나 4촌 이내 혈족, 2촌 이내 인척관계에 있는 사람이 리콜 건과 이해관계가 있으면 심사를 못한다. 최근 2년 내 결함심사 대상 자동차회사에서 자문이나 연구·용역을 한 경력이 있는 위원도 리콜 심사에서 빠진다. 제조사와 심사위원 간 유착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 -법안 발의는 했지만 통과시킬 수 있을까. “내가 발의한 법에 앞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골자로 한 개정안 심사가 난항을 겪고 있다. 이견이 커서 입장 차를 좁히기가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래도 자동차 제작결함 조사와 리콜은 소비자의 안전과 직결된 사항이다. 진통이 있더라도 제대로 된 개선안을 만들어내야 한다. 이번에 대표발의한 법안은 이르면 8월에 상정될 것으로 본다. 늦어도 연내에는 통과될 수 있도록 여야 의원들을 전방위적으로 설득할 생각이다.” -국회 내부에서 반대도 있겠지만 자동차회사들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자동차업계는 이제껏 너무 많은 특혜를 누렸다. 나라에서 특별대우를 해줬다. 그러다보니까 해외 자동차 메이커도 우리나라에 들어오면 갑이 된다. BMW든 벤츠든 우리나라에선 리콜 안 해도 되고 보상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해외에서 그렇게 잘나가는 BMW가 왜 우리나라에서만 불이 나나. 우리나라를 어떻게 생각하면 이런 일이 생기나. 이들은 불량차를 팔고도 고개 숙이지 않는다. 국내 업체들을 보고 배운 거다. 이걸 바로 잡자는 것뿐이다.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리는데 무슨 산업이 위축된다는 말인가. 국내 자동차산업도 투명해야 발전할 수 있다. 결함 눈감아주고 기업 손해 걱정해서 리콜 안 하게 뒤 봐주다가 나중에 사고 터지면 더 큰 손해를 입는다. 어설프게 감춰줬다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맞게 된다.” -3전4기 만에 입성한 국회다. 해보니 어떻던가. “의원 활동을 얼마 안 했지만 이건 참 너무 잘못됐다는 생각이 든다. 완전히 섬이다. 이쪽 집단 저쪽 집단이 아예 다른 섬으로 나뉘어 있다. 이념 때문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자유한국당은 보수이고, 민주당은 진보이고 이렇게 나눌 수도 없다. 다 보수다. 저쪽은 기득권을 원하는 보수이고 우리는 조금 더 공정한 보수를 원한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이념과 사고의 경계에 있어야지 한 곳에 함몰되면 안 된다. 지금도 ‘빨갱이 타령’ 하고 그걸로 논쟁하고 싸우는데 그건 정치가 아니다. 36년 정치권에 있으면서 국회가 이런 모습이라고는 생각 못했다.” -의정활동 기간이 1년도 남지 않았다. “출마하면서 공약했던 법안은 거의 다 소진한 것 같다. 적어도 공약은 지켰다고 생각한다. 나는 정치를 노무현 대통령에게 배웠다. 스스로를 머슴이라고 생각한다. 지역 주민들에게 ‘머슴은 놀게 하면 안 됩니다’라고 말한다. 누구를 만나든 직통 전화번호가 찍힌 명함을 드리는데 전화가 자주 온다. 직접 받으면 놀라는 분들도 더러 있다. ‘비서가 받을 줄 알았다’고 하더라. 그럴 때마다 아직 국회가 권위적이라고 느낀다. 지금보다 더 가까워져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포커스]자동차산업 고용한파 닥칠까(2019. 05. 31 15:08)
2019. 05. 31 15:08 경제
ㆍ친환경차 시대에는 부품 및 공정 간소화로 일자리 감소 불가피 전기차가 미래차의 중심으로 부상하면서 자동차산업의 고용이 줄 수 있다는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당장 매섭게 불고 있는 글로벌 자동차업계의 구조조정 바람 이면에는 자동차 수요 감소 외에도 전기차로의 전환을 대비한다는 포석이 있다. 완성차 1위 업체인 폭스바겐이 5년간 직원 7000명을 줄이겠다고 밝히는 등 최근 반년 사이 글로벌 자동차업체들이 밝힌 감원규모는 3만8000명을 넘는다. 폭스바겐 등 완성차 업체들은 사무직과 관리직 중심으로 인원을 줄여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투자를 강화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지난 5월 8일 서귀포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6회 국제전기자동차엑스포’에서 기아자동차의 전기차 ‘쏘울 부스터 EV’가 관람객의 관심을 끌고 있다. / 기아자동차 제공 내연기관의 배기가스 규제 강화와 미국 일부 주와 중국의 친환경차 의무판매제도 등은 완성차업체들의 전기차 전환을 재촉하고 있다. 영국, 프랑스 등은 가솔린과 디젤차의 단계적 폐지를 선언했다. 이런 흐름 속에 자동차업계는 전체 내연기관의 판매량이 지난해 정점을 찍고 올해부터 내리막을 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미 자동차 시장조사업체인 LMC 오토모티브에 따르면 글로벌 경량차량의 판매량은 지난해 전년보다 0.5% 감소한 9480만대로 집계됐다. 전기차 전환과 내연차의 판매 감소 등은 전통 자동차 부품산업의 고용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독일의 프라운호퍼 연구소는 지난해 6월 조사에서 전기차는 차량 전자장치와 배터리 영역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지만 전체적으로는 약 7만5000개의 일자리가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전체 84만개의 일자리 중 약 9%에 달한다. 2030년까지 전기차가 모든 차량의 25%를 차지하고, 하이브리드 차량이 15%, 내연기관 차량이 60%를 차지하는 것을 가정한 수치이다.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의 부품 대부분이 독일 내에서 생산되는 상황을 가정했다. 전기차 전환으로 인한 고용 감소는 부품과 공정의 변화 때문이다. 일본 자동차부품공업협회에 따르면 내연기관의 부품 수는 3만개인데 비해 전기차는 1만9000개, 수소차는 2만4000개이다. 내연기관 차는 변속기와 파워트레인, 흡기계와 배기계, 냉각계 등 수많은 기계계통 장치 부품이 필요하지만 전기전자계통 부품이 중심이 되는 전기차에서는 이런 기계 부품이 간소화되거나 불필요해진다. EV 전환으로 고용 감소 우려 공정이 모듈화하면서 생산과정이 상대적으로 단순해지고 기간도 단축된다. 표준화된 부품을 조합하는 모듈화는 제조 공정에서 숙련 기술이 필요한 부분을 크게 줄여준다. 고도의 엔진 기술이 없어도 모터와 배터리 제조사와 협력해 자동차를 만들 수 있다. 테슬라와 중국의 바이톤 등 전기차 제조사들이 등장할 수 있었던 것도 모듈화, 수평분업화로 자동차산업의 진입장벽이 크게 낮아져서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금 내연차는 대부분 강판 위주이지만 탄소섬유강화플라스틱(CFRP)이나 알루미늄으로 바뀌면 프레스 공정과 용접 공정에서의 고용이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처럼 3D 프린팅을 적극 활용하면 어려운 부품도 설계도만 있으면 언제든 손쉽게 만들 수 있다. 속도와 원가 문제만 개선하면 장차 숙련 생산공의 자리를 위협할 수 있다. 이런 위기감을 현장의 노동자들도 감지하고 있다. 정종훈 금속노조 르노삼성자동차 지회장은 “전기차는 내연기관과 완전히 다른 차라 부품수가 많이 줄고 특히 전기차 도입 시기가 자동화와 맞물리면서 고용이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부품업체가 느끼는 위기감은 특히 강하다. 자동차 부품업체들이 밀집한 부산 장안공단에서 자동차 콘덴서와 배기가스 저감장치(EGR)를 만드는 독일계 기업 말레베어는 원래 260명이던 직원이 올해 희망퇴직과 자연퇴사로 210명으로 줄었다. 노조에서는 독일 본사가 전기차로 넘어가는 글로벌 차원의 흐름에 대비하기 위해 자금을 모으려는 움직임으로 해석했다. 임주희 금속노조 말레베어 분회장은 “내연기관 부품을 만드는 대부분의 사업장은 전기차 부품을 만들 준비가 안 됐다”며 “전기차로 인한 고용 감소가 이미 시작됐고, 앞으로 더 심해질 것이라고 본다”고 우려했다. 실제 국내 자동차 부품업체의 상황은 열악하다. 산업연구원이 지난해 상반기 상장사 94개사를 대상으로 경영성과를 분석한 결과 올해 1·4분기 평균 영업이익률이 2%에 못미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이자비용을 내려면 3% 정도는 되어야 하는데 지금은 이자비용은커녕 연구개발이나 설비투자도 못하는 상황이다”라며 “완성차업체는 영업이익률이 5% 정도, 부품업체는 6~7% 정도 나와야 하는데 수요 부족으로 앞으로 상황은 더 나빠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전기차로의 전환으로 고용이 줄어드는 규모는 완성차보다 부품업체에서 클 것으로 예상된다. 10억원의 매출당 고용인원을 뜻하는 제조업 취업계수를 보면 대기업은 0.9명, 중소기업은 4명이다. 10억원의 매출이 줄면 대기업에서 한 명의 고용이 줄 때 중소기업에서 4명의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뜻이다. “국내 기업 간 협력 강화해야” 업계는 전기차 생산의 손익분기점을 연간 생산량 10만대, 누적 생산량 100만대 정도로 보고 있다. 문제는 투자비를 회수할 만한 초기 수요가 적다는 점이다. 한 자동차 부품업계 관계자는 “전기차의 경우 리스크를 안고 갈 의지가 있는 업체가 아니면 못키운다”며 “조선산업은 수주와 관련되어 위기가 눈에 보이지만 자동차산업은 눈에 보이지 않게 조금씩 무너지고 있다”고 말했다. 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자동차산업의 직·간접 고용은 전체 취업자의 7% 정도인 170만명이다. 자동차 생산에 10만명, 자동차 운수 쪽에 80만명, 자동차 정비·판매 쪽에 26만명 정도 등이다. 주유소나 기타 활용지원, 교통 할부 리스 등에도 22만명이 종사한다. 구영모 자동차부품연구원 연구원은 “자동차 생산파트만이 아니라 주유소와 같은 후방산업의 고용도 친환경차로 가면서 많이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엔진과 달리 전기차 배터리의 경우 적어도 7년 정도는 고칠 일이 거의 없어 정비분야의 일도 줄어든다. 이항구 선임연구위원은 “현대차는 최근 2030년까지 내연기관차 생산량을 50만대까지 떨어뜨리고 전기차 70만대, 수소차 50만대를 생산한다는 목표를 밝혔다”며 “내연기관과 전기·자율주행차의 부품은 완전히 다른 만큼 전기차 시대에 맞는 인력으로의 변화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의 경우 전기차의 핵심인 배터리와 모터 기술은 일정 수준에 올라와 있지만 첨단소재의 생산 역량, 자율주행을 위한 소프트웨어와 센서 기술에서 많이 뒤처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국내 기업 간의 협력 부족, 장기 전속거래 관행이 전기차 전환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도체 기업인 삼성전자와 현대차가 서로 협력하지 않고, 전속거래라는 관행으로 부품업계도 삼성과 현대에 교차해 납품하는 경우가 적다는 것이다. 그는 “자율주행 전기차 시대에서는 자동차와 전기·전자, 통신기술이 융합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기업 간 협력이 필수이고, 그 협력 범위도 넓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처럼 성장기 전략인 ‘수직통합’만 고수하면 협력업체들은 갈 곳이 없어 각자도생할 수밖에 없다”며 “위기는 아래로부터 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특집
조선·자동차업계 지원해야 하나?(2018. 12. 17 14:55)
2018. 12. 17 14:55 경제
ㆍ최종구 위원장, 은행권에 협력업체 지원 당부… 은행권은 부실화 우려하며 고민 “신용등급이 낮고 부실징후가 있는 업체에 대출을 늘리다 보면 은행의 대출회수율은 떨어지게 돼 있다. 경기가 지금보다 더 나빠진다면, 은행의 부실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다.”(시중은행 관계자)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12월 6일 오전 열린 국회 정무위 전체회의에서 2019년 예산안 관련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연합뉴스 시중은행들이 금융당국의 ‘조선·자동차 등 협력업체 지원’ 압박에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비 올 때 우산 뺏는다’는 비판을 의식해 협력업체 지원에 동참하고 있으나, 당장 연체율 등 리스크 관리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금융당국의 ‘지원 압박’은 올해 내내 이어졌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지난 10일 “조선업이 힘겨운 ‘보릿고개’를 넘어설 수 있도록 (은행권이) 적극적으로 금융지원을 해달라. 정책금융기관뿐만 아니라 시중은행과 자본시장 등 민간 금융권이 동참해야 그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다”고 했다. 경남 고성군의 중소형 선박엔진 제조업체인 이케이중공업을 방문한 자리에서였다. 시중은행, 대출 연장·수수료 감면 등 화답 그는 한 달 전 경기 화성의 현대·기아차 1차 협력업체를 방문해 개최한 간담회에서는 “시중은행이 특정 산업의 리스크를 이유로 해당 산업의 대출을 일괄 회수할 게 아니라, 경쟁력 있는 기업을 선별해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간담회에는 국책은행장들을 비롯해 금융기관장들이 대거 참석했다. 한국GM 사태로 정국이 혼란스러웠던 지난 4월에는 시중은행장들을 만나 “‘품앗이’하는 마음으로 한국GM 협력업체를 지원해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이들 업체의 경영상태는 심각한 수준이다. 자동차 협력업체는 완성차업체의 수출부진과 내수위축 등으로, 조선 협력업체는 신용도 하락과 대출한도 초과 등의 영향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자동차 부품업체 단체인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이 최근 산업통상자원부에 전달한 ‘자금수요 조사 결과’를 보면, 부품업체들은 경영난을 해소하기 위해 은행권 대출 상환 연장과 시설투자, 연구개발(R&D) 등에 약 3조1000억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들은 특히 “은행들이 자동차업계를 ‘고위험 업종’으로 분류해 신규대출을 기피하거나 대출 만기 연장을 잘 해주지 않아 줄도산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은행권도 적극 화답하는 모양새다. 신한은행은 유동성 위기를 겪는 자동차·조선업 부품 관련 협력업체에 총 2200억원 규모로 금융지원을 하기로 했다. 신한은행은 ‘신한 두드림 자동차·조선 상생 대출’을 통해 보증료 연 0.5%포인트를 3년간 지원하고, 보증기관 보증료 우대 0.3%포인트 추가시 관련 업체들에 최대 연 0.8%포인트 보증료를 우대키로 했다. 우리은행은 지난 3월부터 경남 통영과 전북 군산지역 조선업 및 한국GM 협력업체 노동자들에게 수수료 감면과 만기도래 대출 만기 연장, 상환유예 등을 지원하고 있다. 성동조선 협력업체 250개사, 한국GM 군산공장 협력업체 145개사 등 중소기업, 통영·군산지역 소상공인 관련 기업, 휴직자, 퇴직자 등이 대상이다. 경영안정 특별자금 1000억원 지원, 만기가 도래한 여신의 무상환 연장, 수출환어음 부도처리기간 유예 연장, 대출금리 최대 1.3% 우대, 각종 수수료 감면 등이다. 하나은행은 지난 9월 한국해양진흥공사와 국내 선박금융 지원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고, 하나금융은 경남 거제시에 국·공립 어린이집을 짓기로 했다. 하지만 은행권 지원이 늘면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대상 업체들의 부실위험이 커지는 상황에서 무턱대고 여신 회수를 할 수도 없어 속앓이만 하는 분위기다. “노동구조 개선 등 정부 차원 대책 나와야” 금융감독원이 최근 은행들이 돈을 빌려준 2952개 기업을 대상으로 정기 신용위험평가를 실시한 결과, 190개 업체가 하위 등급인 C등급과 D등급에 포함됐다. 이 중에는 경영난에 직면한 조선업과 자동차 등 협력업체들도 대거 포함됐다. 업종별로 금속가공 22개사, 기계 20개사, 도매·상품중개 18개사, 부동산 14개사, 자동차부품 14개사 등이 부실징후기업으로 분류됐다. 철강(13개사)과 조선(10개사) 업종도 지난해에 비해 늘었다. 이들 기업이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 등 구조조정에 들어가게 되면 금융권에 미칠 파장도 상당할 전망이다. 최근 중소기업대출을 중심으로 한 기업대출 연체율이 상승하고 있는 것도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금감원이 최근 내놓은 ‘10월 국내 은행들의 원화대출 연체율’을 보면, 10월에만 신규 연체가 1조5000억원가량 발생해 연체채권 잔액이 8조6000억원으로 늘어나면서 연체율이 상승했다. 특히 대기업 대출은 1.72%로 전월 말보다 0.06%포인트 하락했지만, 중소기업 대출은 0.64%로 0.08%포인트 상승했다. 개인사업자 대출도 0.38%로 0.04%포인트 올랐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이 눈에 뻔히 보이는 손실을 감수하면서 신용도가 낮고 매출이 줄어들고 있는 업체에 추가 여신 등을 지원하는 이유는 당국의 지속적인 지원 압박 때문”이라며 “경영상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업체들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는 말에는 동의하지만, 한편으로 여신의 부실화 우려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노동구조 개선 등 중소기업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이 우선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국제 원자재 가격 인상과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노동비용 증가 등 대내외 요인으로 중소기업들이 겪는 어려움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며 “부실위험이 커지는 상황에서 은행 측에 무작정 지원하라고만 할 게 아니라 노동시장 구조 개선을 통한 중소업체들의 경쟁력을 높이는 일이 우선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헛바퀴 도는 자동차 대체부품제(2018. 11. 19 14:19)
2018. 11. 19 14:19 경제
ㆍ시행 3년 705개 품목 가능하지만 실제 유통된 것은 6개 부품 125개에 그쳐 직장인 ㄱ씨는 최근 가벼운 접촉사고를 내 차량 헤드램프 일부가 파손됐다. 부분 수리가 안돼 헤드램프를 통째로 교환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제조사 정비소에 문의했더니 교체비용이 15만~20만원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15년 넘은 차량 연식을 생각하면 부담되는 비용이다. 좀 더 저렴한 대체부품도 없었다. ㄱ씨는 “헤드램프는 제조사 순정품만 판매된다고 들었다”며 “가격 부담 탓에 어쩔 수 없이 중고부품을 알아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서울의 한 자동차정비소에서 정비사가 차량 진단을 위해 내부 모습을 살펴보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대한민국은 ‘순정품’의 나라다. 순정품이란 자동차를 제조한 업체에서 만들어 유통하는 부품을 뜻한다. 안전성과 기술력을 요구하는 자동차 부품의 특성을 감안하면 제조사가 직접 부품까지 제공하는 게 불합리한 일은 아니다. 문제는 가격이다. 소비자들은 순정품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제조사별로 부품이 독점공급되다보니 가격도 제조사 마음대로 책정된다. 부품값이 비싸다고 느껴도 소비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국내 자동차 등록대수 2283만대로 세계 15위, 자동차 생산량 기준 세계 5위의 자동차 대국인 우리나라의 현주소다. 유명무실한 대체부품제도 순정품의 가격 논란은 진작부터 있어 왔다. 정부도 문제점을 인식해 2015년 1월부터 ‘자동차 대체부품 인증제’를 도입했다. 자동차관리법에 명시된 대체부품이란 ‘순정품과 성능 또는 품질이 동일하거나 유사하여 이를 대체할 수 있는 부품’을 뜻한다. 정부가 인증한 심사기관에서 일정 품질기준을 통과하면 중소기업들도 대체부품을 만들어 유통할 수 있도록 제도는 열려 있다. 모든 부품에 대해 대체부품이 허용되는 건 아니다. 안전과 특히 직결되는 내장부품을 제외한 펜더·후드 등의 외장부품과 제동등·방향지시등 등 등화부품이 대체부품 허용 품목이다. 소비자들이 차를 유지·관리하거나 수리할 때 가장 많이 쓰는 부품이기도 하다. 지난해 자동차보험 수리비 5조6761억원 중 부품가격 비중은 48%로 절반에 달했다. 보험개발원이 대체부품 가격을 순정품의 74% 수준으로 보고 자동차 수리 시 순정품이 아닌 대체부품을 사용했을 경우를 가정해 계산해보니 연간 7089억원의 수리비를 절감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체부품이 많이 쓰일수록 결과적으로는 소비자들이 이익을 본다는 뜻이다. 하지만 시행 3년이 넘도록 대체부품 인증제는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시민단체인 소비자주권회의가 조사한 결과 대체부품으로 팔 수 있는 품목은 올 들어 705개까지 늘었지만 실제 시장에서 유통된 부품은 6개 품목에 불과했다. 그나마 판매된 부품수량도 전체 125개에 그쳤다. 실적이 미미하자 금융감독원은 올 2월부터 소비자가 자동차 부품 보험수리 시 대체부품을 선택하면 순정품의 25%에 해당하는 금액을 현금으로 소비자에게 되돌려주는 자동차보험 특별약관도 마련했다. 하지만 이런 특약을 아는 소비자도 드물고, 보험사들도 굳이 특약가입을 권하지 않는다. 8개월이 지난 최근까지 이 특약이 시행된 실적도 전체 6건에 머물고 있다. 보험업계의 한 관계자는 “특약 구조 자체가 보험사가 아닌 소비자들이 현금을 돌려받는 구조라 특약 활성화로 보험사가 보는 이익이 딱히 없다”며 “특약에 쓸 만한 대체부품도 턱없이 부족해 보험사들도 특약을 적극 알리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체부품 인증제가 활성화되면 자동차 부품산업에도 이롭다. 국내 자동차 부품산업은 완성차 제조사가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오토모티브의 2015년 집계를 보면 전세계 10대 글로벌 자동차 부품기업에 현대모비스가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60위권에 위치한 현대위아, 현대다이모스, 현대파워텍 등도 모두 현대자동차그룹의 계열사다. 이렇다보니 중소 자동차 부품업체들 대부분이 완성차 업체들의 부품을 주문자상표생산방식(OEM)으로 생산 중이고, 이는 다시 하청에 재하청 구조로 이어진다. 산업구조상 완성차 업체가 어려워지면 부품산업 생태계 전체가 위태로워질 수밖에 없다. 올해 국감에서 성일종 자유한국당 의원은 “현대자동차가 부품산업 상생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며 현대모비스와 현대차의 합병을 요구하기도 했다. 디자인법 규제에 활성화 발목 잡혀 대체부품 활성화는 중소 부품업체들이 완성차에 대한 의존을 낮추고 자생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업체들의 의지도 강하다. 한국자동차부품협회 관계자는 “법적 규제 문제만 해결되면 당장이라도 부품을 만들겠다는 업체도 많고 기술도 충분히 축적돼 있다”며 “중국이나 미국 등지에선 부품을 공급해달라는 요청이 실제로 들어오고 있어 해외판로만 잘 개척하면 수출품목으로도 키워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업체들이 가장 큰 장애물로 꼽는 규제는 디자인보호법이다. 자동차의 부품 역시 법에 따라 20년의 독점적 디자인권을 인정받는다. 중소기업들이 대체부품을 생산하려면 디자인권이 소멸된 부품만 생산이 가능한 셈인데, 현실적으로 생산된 지 20년이 지난 자동차의 부품을 찾는 소비자는 극히 드물기 때문에 시장성이 없다고 봐야 한다. 제도가 공전하는 사이 이득을 보는 건 대기업들이다. 현대모비스의 경우 올 상반기 17조원의 매출과 9800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이 중 애프터서비스(AS)용 부품사업 부문의 경우 매출은 4조5000억원에 영업이익은 8550억원으로 영업이익률이 20%에 달했다. 주주들의 반대로 좌절되긴 했지만, 현대차가 그룹 구조개편을 위해 올 초 계열사 간 분할·합병을 추진할 당시에도 최대 관건이 그룹 내 핵심 ‘알짜’ 사업인 현대모비스의 AS사업 부문을 어떻게 분할해 합칠지 여부였을 정도다. 이 때문에 부품업계와 시민단체 등은 디자인법의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소비자주권회의 김한기 소비자정책팀장은 “고가의 순정품 판매로 소비자들의 선택권은 제한받고 완성차업체는 막대한 독점적 이익을 보고 있다”며 “자동차의 수리를 목적으로 한 부품에 한해서는 디자인법의 적용을 배제하는 등의 예외적용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올해 국감에서도 디자인법의 규제완화 문제가 거론됐다. 지난 10월 15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감에 출석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공정위의 경쟁제한적 규제개선 과제 중 하나로 현행 보호기간을 8년으로 단축하고 보호요건도 좀 완화하는 내용으로 업계와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부품업계는 “8년도 너무 길다”며 호주나 EU 등의 사례처럼 디자인법 적용 예외조항을 법에 명문화해달라고 요구 중이다. 완성차업계는 부품업계 등의 주장을 모두 수긍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현대모비스 관계자는 “미국의 경우 대체부품 인증제가 보다 활성화됐지만 막상 대체부품을 만드는 대부분의 기업이 중국이나 대만 기업들”이라며 “디자인법 규제완화가 부품산업 생태계에 긍정적이라고 단언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현대모비스의 AS 부문 수익의 상당수는 해외에서 발생한다”며 “대체부품 활성화의 취지엔 공감하지만 대체부품의 국내 및 해외 유통으로 인해 야기될 수 있는 자동차 수출여건 악화, 연구개발 및 투자 저하문제 등 각종 우려사항은 우선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자동차회사·리콜 심평위 ‘부적절한 관계’(2018. 09. 03 14:30)
2018. 09. 03 14:30 경제
ㆍ단독 결함 심사 전권 쥔 위원들 제조사로부터 ‘관리’ 받아… 일부 자녀는 취업 특혜 의혹도 <주간경향>은 ‘국내 리콜 시스템부터 리콜하라’는 보도(1292호)를 통해 자동차 결함을 심사하고 리콜 여부를 결정하는 국토교통부 산하 자동차제작결함심사평가위원회와 자동차 제작사 간 유착 의혹을 제기했다. BMW 화재사태로 적나라하게 드러난 국내 리콜 시스템의 후진성이 이 같은 유착문제에서 비롯된다는 내용이었다. 2013년 6월 26일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삼존리 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원에서 연구원들과 관계자들이 급발진 공개 재현실험을 하고 있다. / 촬영 서성일 기자 이후 <주간경향>에는 관련 내용을 제보하고 싶다는 각계 전문가와 기업 관계자들의 문의가 잇따랐다. 이 중에는 현직 심평위원도, 유착과정에 관여한 전직 제조사 임원도 있었다. 이들을 통해 유착 의혹은 점차 현실로 드러났다. 전·현직 심평위원의 자녀들이 유명 자동차 제작사에 다니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제조사들이 연구용역, 해외연수 등을 제공하며 심평위원들을 ‘관리’해온 정황도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2011년 이른바 ‘가스렌저’ 사건으로 큰 논란이 됐던 현대자동차의 ‘그랜저’ 배기가스 실내 유입 문제의 경우 의학전문가들이 “매우 위험하다”며 즉시 리콜을 권유했지만 심평위가 리콜을 거부한 사실도 새롭게 드러났다. 국토부는 이 같은 유착 정황을 까맣게 모르고 있다가 논란이 확산될 조짐을 보이자 “현재 구성된 심평위원을 전면 교체하고 새로운 심평위를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 리콜 권유 거부사실 드러나 “지금 리콜 시스템은 문제 없는데, 뭐 어떤 점이 문제라는 건가요?” 현재 자동차제작결함심사평가위원회(이하 심평위) 위원이자 서울 소재 한 사립대학 자동차공학과 교수의 말이다. 심평위는 자동차 결함을 심사해 ‘리콜’ 여부를 결정하는 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 산하 자문기구다. 리콜 시스템을 바라보는 심평위원의 시각은 “시스템이 후진적이고 모자라다”고 자책했던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과 확연히 달랐다. 심평위원은 왜 ‘문제가 없다’는 걸까. 심평위원을 이해하려면 그들이 어떻게 리콜 시스템을 지배해왔는지부터 알아야 한다. 2013년 6월 26일 경기도 화성시 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원에서 연구원들과 관계자들의 급발진 공개 재현실험 모습. / 촬영 서성일 기자 2011년 국내 자동차업계는 현대자동차 그랜저HG 배출가스 유입 논란으로 시끄러웠다. 현대에서 그랜저HG를 출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배출가스가 차 안으로 유입된다는 의혹이 운전자들 사이에 제기됐다. 탑승자들은 머플러로 빠져나가야 할 일산화탄소(CO)가 차내로 유입돼 두통 증상이 나타난다고 호소했다. 일산화탄소는 장시간 맡으면 정신을 잃을 수 있는 치명적인 유독가스다. 자동차 결함신고센터(현 자동차리콜센터)에도 배출가스 유입에 대한 결함 신고가 이어졌다. 센터에만 318건이 접수됐고 차량 동호회를 중심으로 항의가 이어졌다. 2011년 11월 1일 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원은 그랜저HG에 대한 결함 조사에 착수했다. 2010년 12월 30일부터 2011년 10월 28일까지 생산된 9만15대의 차량이 결함 조사 대상이었다. 제작 결함 조사를 통해 연구원은 해당 차량에 배출가스가 유입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시험모드 실험 결과, 차 안에서 최대 36.7ppm의 일산화탄소가 검출됐다. 트렁크에서 검출된 일산화탄소는 최대 74ppm에 달했다. 무상수리 조치를 한 차량에서도 수치는 감소했지만 일산화탄소 유입이 확인됐다. 무상수리 차량의 경우 차실에서 1.1~6.8ppm, 트렁크에서는 9~53ppm이 검출됐다. 리콜 권유를 ‘무상수리’로 낮춰 관건은 차 안으로 유입된 일산화탄소가 얼마나 유해한가였다. 연구원은 정확한 판단을 위해 의학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했다. 자문단은 임영욱 연세대학교 환경공해연구소 부소장 등 전문가 5명으로 구성됐다. 자문위원들은 만장일치로 그랜저HG의 배출가스가 인체에 유해하다고 판단했다. 전문가들은 의견서에 ‘자동차 운전은 고도의 집중이 필요한 작업으로 일산화탄소 노출 시 신경학적 이상이나 중독의 영향으로 운전자 및 동승자 안전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명시했다. 무엇보다 고속주행 시 차량 내 일산화탄소 농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어린이, 환자 등 민감계층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반드시 자동차의 보완조치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전문가들은 모두 그랜저HG의 ‘리콜’이 필요하다고 의견을 모았다. 의학전문가들의 견해를 토대로 연구원은 “소비자 보호 차원에서 적극적인 리콜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연구원은 결과 보고서를 국토해양부(현 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에 올렸고, 2011년 12월 16일 리콜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제64차 제작결함심사평가위원회(이하 심평위)가 열렸다. 심평위의 판단은 ‘무상수리’였다. 무상수리는 리콜보다 낮은 단계의 시정조치로 불만을 제기한 차주에 한해서 이뤄지는 조치다. 제작사는 결함과 관련해 차주에게 알릴 필요가 없다. 연구원이 권고한 시정조치 수위가 심평위를 통하면서 낮아진 것이다. 당시 그랜저HG 배출가스 결함 안건을 의결했던 심사평가위원장은 “처음에 차체 도장을 위해 구멍을 냈던 것이 문제였다”며 “하지만 거기에 고무패킹 같은 무상수리 조치를 했다고 가정을 해보면 문제는 해결된다”고 말했다. 이후 국토부는 심평위 판단을 근거로 “리콜에 해당하는 제작결함이 아니다”라며 현대차에 무상수리를 권고했다. 배출가스 유입이 인체에 유해하다고 판단했던 의학전문가들은 당시 국토부와 심평위의 결정에 크게 반발했다. 현장에서 심평위의 안건 심사 과정을 지켜봤던 임영욱 연세대 환경공해연구소 부소장은 “자동차 교수들이 모여서 하나같이 리콜이 필요없다고 하는 걸 보고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황당했다”며 “이대로 가면 위험할 수 있다고 경고했지만 누구도 듣지 않았다”고 말했다. 임 부소장은 “당시 심평위원들이 ‘이 정도로 리콜하면 대한민국 자동차 다 리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며 “이미 결론을 내려놓고 구색 맞추기로 나를 부른 것 같아 불쾌했다”고 덧붙였다. YMCA 자동차안전센터는 그랜저HG의 결함을 은폐했다며 당시 현대차 김충호 사장과 국내보증운영담당, 고객서비스지원담당, 서비스품질지원담당 등 회사 관계자 4명을 수사의뢰하고 장관을 비롯한 국토부 관계자 4명을 고발했다. 2013년 7월 검찰은 해당 사건과 관련된 관계자 전원을 무혐의 처분했다. 당시 검찰은 수사 결과에 대해 “정상적으로 차량을 운행할 때 인체에 유해한 수준으로 배기가스가 차량 실내에 유입된 흔적을 찾지 못했고 관련법에 배기가스 유입 관련 기준이 명확하게 규정돼 있지 않은 부분을 고려했다”고 말했다. 법 규정이 없어 처벌을 할 수 없다는 얘기다. 검찰의 무혐의 처분으로 그랜저HG 배출가스 사태는 무상수리로 마무리됐다. 성수현 서울YMCA 자동차안전센터 간사는 “검찰 수사 결과도 이해가 안 가지만 무엇보다 궁금했던 것은 ‘국토부가 어떤 심사과정을 거쳐 해당 차량에 결함이 없다고 결론을 내렸는가’였다”고 말했다. 결함 심사의 전권을 쥔 심평위는 의학전문가와 자동차연구원의 결정을 뒤집을 만한 권력을 쥔 조직이다. 심평위의 모든 심사과정은 비공개다. 심평위원 명단도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다. 객관적인 심사를 위해 마련한 규정이라는 게 국토부 설명이다. 하지만 이 같은 ‘비공개 원칙’이 제조사들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심평위원들은 제조사들의 집중 ‘관리’ 대상이다. 제조사들의 품질 담당자들이 이 같은 관리업무를 전담한다. 과거 품질 담당 업무를 했던 전직 대기업 관계자는 “자사 차량의 결함 심사 안건이 올라올 때마다 심평위원을 상대로 제조사의 입장을 전하는 게 품질 담당자들의 주요 업무”라며 “이 때문에 제작사 심평위원이 누구인지, 또 어떤 성향을 지녔는지까지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해외시장 조사 명목의 외유성 연수 올해 4월 운영 규정이 바뀌기 전 심평위원은 모두 20명(현 25명)이었다. 이 가운데 심평위의 전문가 그룹 16명 중 13명이 자동차 관련학과의 교수들이다. 이들 가운데 자동차 관련 학회에서 요직을 맡고 있거나 대학 산학협력단에 속한 이른바 ‘힘있는’ 교수들이 제작사의 주요 관리 대상이다. 평소 심평위원과 친분이 있는 동료 교수에 대한 관리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서울 소재 사립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나는 심평위원이 아닌데도 현대차 담당자가 학교로 찾아온 적이 있다”며 “당시 리콜 이슈가 있었는데, 혹시 외부에 코멘트 할 일이 있으면 잘 봐달라는 취지로 얘기했다”고 말했다. 제작사들은 심평위원들에게 자동차 관련 연구용역을 주는 방식으로 관리하기도 한다. 공모과정을 통해 이뤄지는 정부 연구용역 사업과 달리 제작사의 연구용역은 교수 개인이 제조사로부터 ‘따오는’ 구조다. 보통 2년 단위 프로젝트를 주는데 평균 단가는 1년당 5000만원 정도로 책정돼 있다. 지난 2011년부터 4년 동안 심평위 활동을 했던 한 공과대학 교수는 “교수가 제조사와 개인적인 친분이 있으면 그냥 회사에서 프로젝트를 준다”며 “제작사에서 연구 결과에 대한 기대 없이 보험 차원에서 주는 일감”이라고 말했다. 김효준 BMW코리아 회장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주최한 ‘BMW 화재사고’ 관련 긴급간담회에서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고 있다. / 권호욱 기자 해외 자동차시장 동향 조사라는 명목 하에 이뤄지는 해외 연수도 제작사가 애용하는 관리방법이다. 해외 모터쇼 관람이나 가짜 자동차 부품 유통현장 조사 등 적당한 타이틀을 만들어 외유성 해외연수 자리를 마련한다. 현재 심평위 활동을 하고 있는 자동차학과 교수는 “제작사에 친한 교수들 몇몇을 모아 현지에 가서 술 마시고 놀다가 부품상가 한 번 둘러보는 게 대부분 해외연수의 실태”라며 “문제가 생길 것에 대비해 뻔한 내용으로 보고서를 만들어 놓는데 그나마도 제작사에서 알아서 쓴다”고 말했다. 심평위원의 공정한 결함 심사를 방해하는 요인은 또 있다. 심평위원 자녀들의 제작사 취업 문제다. <주간경향> 취재 결과, 그랜저 배출가스건을 심사했던 모 심평위원의 자녀는 모 자동차 제작사의 계열사에 재직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역시 심평위원이자 최근 BMW 화재 민·관 합동 조사단으로도 위촉된 한 전문가의 자녀는 BMW에 재직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딸이 다니는 회사를 아버지가 조사하고 심사하게 된 셈이다. 자녀가 제작사에 재직 중인 심평위원은 “자녀의 취업은 심평위 활동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며 “자녀 문제로 심평위 심사를 부도덕하게 한 적도 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 같은 심평위원 자녀의 제작사 재직 문제는 같은 심평위원들 사이에서도 문제로 거론되는 사안이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심평위원은 “채용과정에서 특혜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며 “제작사가 부모 이력을 파악해 보험 차원으로 채용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심평위원으로 활동 중인 한 교수는 “제작사는 자기 직원과 부모를 통해 어떤 형태로든 심사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최소한 다른 위원의 발언 내용이나 성향과 같은 정보라도 캐 가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심평위원의 자녀들이 제작사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은 심평위 내부에서 공공연히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정작 2년마다 심평위원을 선정하는 국토부는 관련 사안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심평위 자녀가 제작사에 다닌다는 얘기는 처음 듣는다”며 “자녀 채용 문제까지 일일이 조사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국토부 해명은 현재 심평위원들 선정이 객관적인 검증절차 없이 이뤄지고 있다는 얘기처럼 들린다. 실제로 심평위 구성은 원동기·섀시·차체 및 기타분야·법률 등 분야만 나뉘어 있을 뿐 선정기준이나 절차는 마련돼 있지 않다. 심평위는 국토부 간부들의 추천을 통해 구성된다. 알음알음 소개로 위원이 위촉해 구성하는 구조다. 국토부는 <주간경향>의 취재가 시작돼서야 부랴부랴 대응에 나섰다. <주간경향>은 8월 28일 오후 류도정 한국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원장에게 심평위원들의 자녀들이 자동차업체에 다닌다는 사실을 알리고 문제의 소지는 없는지에 대한 입장을 달라고 요청했다. 류 원장은 “모르고 있던 사실”이라며 “지금으로선 내막을 알지 못해 답하기 어렵다”고만 답변했다. <주간경향>은 이튿날 오전 국토부 자동차정책과에도 같은 내용을 전하고 답변을 요청했다. 그러자 국토부는 답변을 주는 대신 교통안전공단에 “자녀가 BMW에 다니는 모 전문가를 민·관 합동 조사단에서 배제하라”고 지시했다. 공단은 해당 교수에게 민·관 합동조사단에서 사임할 것을 요청했다. 사실상 해임절차를 밟은 셈이다. 국토부는 <주간경향>에 “검토 결과 민·관 합동 조사단에 해당 교수를 포함시키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했다”며 “바로 조사단에서 배제시키기로 방침을 정했다”고 입장을 밝혔다. 자녀 취업 확인되자 조사단서 배제 교통안전공단은 논란을 감추는 데 급급했다. 배제 결정이 내려지자마자 ‘민·관 합동 조사단 명단 공개 및 운영 계획’이라는 보도자료를 언론에 배포하고 “당초 참여하기로 했던 한 전문가는 자녀가 BMW에 근무하고 있어 사임했다”고 밝혔다. 문제를 까맣게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 <주간경향>의 취재로 알았으면서도 마치 내부 절차를 거쳐 해당 전문가가 ‘자진사임’한 형식으로 일처리 과정을 포장한 것이다. 리콜 문제의 총제적인 부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합동조사단에서 사임한 전문가는 여전히 심평위원을 맡고 있다. 민·관 합동 조사단이 BMW 화재 결함을 조사해 심평위에 안건을 올리면 결함 및 리콜 여부를 결국 이 전문가가 판단하는 건 마찬가지가 된다. 개정된 심평위 운영규정 5조 2항 제2호에는 ‘위원이 해당 안건의 이해당사자와 친족인 경우 해당 안건 심의에서 제척된다’고 명시했다. 규정대로라면 해당 전문가는 심평위에서도 배제돼야 하는 게 맞다. 심평위와 자동차 제작사 간 유착 의혹이 커지자 국토부는 “올해 말까지는 심평위원을 전면적으로 교체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정확한 개편 시기에 대해서는 확답을 하지 않았다. 국토부 관계자는 “시스템을 재설계해서 언론에서 제기한 우려가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며 “늦어도 내년에는 새로운 심평위를 출범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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