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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산마을 30년…자연서 편견 없이 자란 게 ‘좋은 어른’ 될 자산됐다
성미산마을 30년…자연서 편견 없이 자란 게 ‘좋은 어른’ 될 자산됐다(2024. 11. 25 06:00)
2024. 11. 25 06:00 사회
지난 4월 6일 서울 마포구 성산동 성미산에서 성미산마을 아이들이 손바닥 텃밭 만들기 활동을 하고 있다. 사단법인 ‘사람과 마을’ 제공 1994년 9월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 국내 첫 협동조합형 공동육아 어린이집인 ‘우리어린이집’(현재 성산동에 있음)이 문을 열었다. ‘육아’라는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회가 제시한 방식과는 다른 보육·교육 방식을 고민했던 부모와 교사들이 만든 기관이었다. 이후로 30년, 공동육아 어린이집이 전국 곳곳(현재 67곳)에 생겨났다. 우리어린이집의 30년 역사는 마을공동체 ‘성미산마을’의 역사이기도 하다. 성미산마을은 우리어린이집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우리어린이집 아이들은 성미산마을에서 자랐다. 30년이면 ‘한 세대’가 바뀌는 세월이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다녔던, 성미산마을에서 자란 아이들은 어떤 어른이 됐을까. 먼저 협동조합형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관해 간략히 설명하면, 만 5세 이하 아동들을 돌보는 민간 보육기관(일부 공립)이다. 부모가 출자금과 조합비를 부담한 조합원으로서 어린이집 운영 주체로 활동한다는 점에서 다른 민간 어린이집들과 차이가 있다. 부모와 교사가 함께 교육 프로그램, 생활 원칙 등을 정한다. 자연 나들이를 통한 놀이 중심 활동, 사교육·선행학습 지양, 친환경 먹거리 제공 등을 원칙으로 한다. ‘터전’(어린이집 공간)에서 아이들과 교사·부모들이 평어(격식을 갖춘 반말)를 사용함으로써 수평적 관계를 지향한다. 공동육아 이야기를 들으면 누군가는 ‘용감하다’고 하고, 누군가는 ‘유별나다’고 한다. 어떤 이는 ‘시대 흐름에 못 따라간다’고도 한다. 최근 ‘초등 의대반’을 넘어 ‘유아 의대반’까지 생긴 현실을 반영한 평가 아닐까. 모두가 같은 길을 걸을 순 없다. 과도한 경쟁 풍토 속에서 자란 청소년·청년들은 여러 어려움을 겪는다. 아이들에게 어떤 돌봄과 교육을 제공할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공동육아로 자라온 이들의 목소리도 들어봄 직하다. ■“자연에서 자랐던, 편견 없이 자란 경험이 자산” 성미산마을에서 공동육아를 통해 자란 20~30대 청년 7명을 지난 11월 9일과 18일, 성산동의 한 카페에서 차례대로 만나 인터뷰했다. 지난 11월 18일 전화로 1명을 더 만났다. 성미산마을은 ‘성미산’(성산동 위치)을 중심으로 한 도심 속 생활공동체로 공동육아가 뿌리이자 핵심이다. 성미산 주변에 우리어린이집 외에도 4개의 공동육아 어린이집(협동조합형 참나무·성미산·또바기 어린이집, 위탁 운영형 구립 성미어린이집)이 있다. 초등학생 방과후 돌봄기관인 도토리마을방과후(1999년 설립), 초·중·고 대안학교인 성미산학교(2004년 설립)도 협동조합형 공동육아기관이다. 지난 11월 9일 서울 마포구 성산동 한 카페에서 국내 첫 협동조합형 공동육아 어린이집인 ‘우리어린이집’과 초등방과후 ‘도토리방과후’를 다녔던 청년들이 주간경향과 인터뷰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혜수씨, 권예림씨, 강한결씨, 손수연씨, 강한얼씨. 김향미 기자 청년들에게 ‘어린 시절 기억’과 ‘공동육아 경험이 삶에 미친 영향’에 관해 물었다. 만 0세 때부터 초등학교 고학년 때까지 우리어린이집·도토리방과후를 다녔다는 손수연씨(30)는 ‘성미산’을 기억했다. “그때는 성미산에서 살았다고 할 정도로, 매일 성미산에서 하루를 다 보냈어요. 그 계절에만 만날 수 있는 식물, 동물 다 채집하고 다녔고 자연스럽게 그 안에서 놀거리를 항상 찾았던 것 같아요.” 서울 도심이라고 해서 자연과 가까이 지낼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들이 말한 자연에서의 경험은 ‘많은 시간’에 방점이 찍혀 있다. 수연씨는 미대 입시와 관련한 일화를 들려줬다. 수연씨는 한 대학 실기시험에서 입체도형 ‘구’가 주제로 제시되자 ‘쥐며느리’를 그려 합격했다고 한다. 남들보다 뒤늦게 미대 입시를 준비했기 때문에 기술적인 역량은 다소 부족했다는 수연씨는 “그 대학에 최종 합격하진 못했지만 내 삶에 녹아 있는 걸 표현했는데 (실기시험에서) 합격한 걸 보고 내 생각대로 표현하는 게 맞다는 확신이 생겼고, 이후 원하는 대학도 가게 됐다”고 했다. 놀이와 여행도 이들의 기억에 남았다. A씨(34)는 우리어린이집을 졸업하고 초등학교 1학년까지 도토리방과후를 다니다 이사를 했다. 그는 새로운 학교에 가니 ‘자신만 아는 놀이’가 많았다고 했다. 그는 “전래놀이를 많이 했고, 같은 놀이도 많이 변형해서 만들어 놀았던 기억이 있다”고 했다. 다른 지역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다닌 후 성미산학교를 졸업한 강다운씨(26)는 “성미산학교에서는 한 학기에 한 번씩 친구들과 여행을 간다. 도보여행도 가고 밀양 송전탑 투쟁 현장에 가서 감 수확하는 것도 도와드렸고, 이런저런 여행이 기억에 많이 남아 있다”고 했다. 우리어린이집·도토리방과후에 다닌 강한얼씨(30)는 “날마다 모여서 같이 밥 먹고 기차 타고 놀러 가고 터전이랑 마을에서 시장놀이도 자주 했다”며 “다른 아이들보다 더 많은 경험을 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양한 경험은 진로를 결정하는 데 영향을 줬다고 한얼씨는 말했다. 그는 일반고를 다니다 3학년 때 전학해 제빵을 시작, 현재는 제주의 한 베이커리에서 일하고 있다. “부모님은 거의 처음부터 공동육아를 하신 분들이고요. 제가 학교를 옮길 때도, 제주에서 혼자 살기로 했을 때도 반대가 없었어요. 어떤 선택을 하는 데 있어서 집안 분위기나 자라온 환경 자체에서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마찬가지로 10년 이상 공동육아 환경에서 자란 강한결씨(28)는 “어릴 때부터 장애가 있는 친구들과 같이 지내면서 자연스럽게 배려하는 걸 익혔던 부분이 좋았던 것 같다”며 “지금은 제빵 일을 하고 있지만 사회복지 분야로도 일해보려고 했는데, 편견 없이 자랄 수 있었던 경험이 좋았다”고 말했다. 공동육아기관 다수는 장애 통합 교육을 한다. 다운씨는 “아주 뿌리 깊은 곳에 공동체 의식 같은 게 있어서 어떤 문제를 마주쳤을 때 해결하는 방식에서도 개인과 공동체를 같이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며 “다른 사람들과 어떤 사건이나 문제를 바라보는 게 다르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대학원에서 불교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권예림씨(28)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관해 말했다. 공동육아기관에서는 아이들이 친구의 부모나 교사를 부를 때 ‘별명’을 부르고 평어를 쓴다. 권예림씨는 “또래들을 보면 보통 어른이나 조직의 상사와 소통하는 걸 어려워하는데 저는 교수님이나 어른들과 소통할 때 조금 편한 부분이 있다”며 “공동육아 하면서 친구 부모님이랑 정말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고, 그분들이 저에게 호의적으로 대해주는 경험을 하다 보니까 권위적인 문화에 덜 위축되는 것 같다”고 했다. ■“다르게 자라온 것에 ‘방황’도···친절한 어른 경험” 이들은 공동육아에서 ‘졸업’한 뒤 중·고등학교 시기를 어떻게 보냈을까. 대안학교를 가지 않는 한, 학교에 다니면 학업 스트레스를 피할 길이 없었다. 이 시기를 건널 때 경험은 사람마다 달랐다. 부모님이 마을활동가로, 아기 때부터 공동육아 환경에서 큰 박혜수씨(27)는 “중학교 때까지는 큰 차이가 없었는데 일반계 여고를 다닐 때는 많이 방황했다”며 “친구들과 생각하는 부분이 다르고 학업적으로도 스트레스를 받아 부모님을 원망했던 것 같다”고 했다. 한결씨도 고등학교 때 비슷한 고민을 했다고 했다. 혜수씨는 다만 성인이 된 후 스스로 ‘좋은 환경에서 자랐다’고 되돌아볼 수 있었다. “‘소녀상 지킴이’ 활동을 하면서 그런 생각을 했어요. 내가 이런 환경에서 자라서, 되게 용기 있는 행동을 할 수 있는, 부당한 것에 대해서도 말할 수 사람이 됐다고 생각했어요. 그냥 그냥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마을 분위기가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A씨는 중·고등학교 시기 대안학교를 다녀 대학 입시 압박을 크게 받진 않았다고 했다. 다만 그는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면서 공인 영어시험 점수가 필요해 어학원을 다니면서 ‘기한 내 달성해야 할 목표를 정해놓고 짜인 틀대로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리는 식’의 공부를 처음 해봤다. ‘한 번 죽어라 해보자’ 하는 마음을 먹기조차 어색하고 힘들었다”며 “그래서 제가 자라온 환경이 ‘울타리’라면 보호하는 울타리인지, 가두는 울타리인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도 했다”고 했다. 이들이 부모가 되면 공동육아를 선택할까. 한결씨는 “나중에 아이를 낳는다면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보내고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현실적으로 아이를 키우는 환경이 점점 뭔가 엄청나게 빨리 변하고 있어서, 옳고 그른 것을 정할 순 없지만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고민을 한다”고 했다. 다운씨는 “학교 다닐 때 친구들과 가끔 ‘우리가 어른이 돼서 아이를 낳더라도 부모들만큼 돈을 벌지 못하면 성미산학교에 보낼 수 있을까’란 우스갯소리도 했다”고 했다. 공동육아기관은 공공 보육·교육기관과 비교해 추가 비용이 많다. 어린이집에서 교사 1명이 맡는 아동의 수는 국공립보다 훨씬 적고, 친환경 먹거리로만 식사와 간식을 제공하기에 인건비, 식재료비가 많이 든다. 우리어린이집이 생길 때 6세였던 B씨(35)는 25년간 성미산마을에서 살았다. 결혼 후 성미산마을을 떠난 B씨는 현재 만 3세 아이를 둔 엄마다. 아이를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보낼까 고민하다 “맞벌이로서 부모 참여 활동이 많아 어렵겠다”고 생각해 보내지 않았다. 공동육아를 두고 지금도 계속 고민한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은 아이가 그냥 원에 가는 게 아니라 어른들, 친구들과 교류하면서 같이 커갈 수 있는 동지가 생긴다는 점이 좋은 것 같아요. 아이에게 그런 집단을 만들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성미산마을과 같은 공동육아 환경에서 자라면 부모와 교사뿐만 아니라 다양한 어른과 ‘비스듬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서로의 가정을 방문해 함께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거나, 품앗이 돌봄을 뜻하는 ‘마실’이라는 문화가 있기에 가능하다. 부모 아닌 다른 어른과 관계를 맺은 경험은 현재까지도 힘이 된다고 이들은 말했다. 혜수씨는 “공동육아 환경에서는 ‘존재만으로도 빛난다, 예쁘다’고 말해주는 어른들이 있다”며 “부모가 없어도 무너지지 않고 관계를 유지하고 자기만의 사회를 꾸려갈 수 있는 기반이 있다는 것 자체가 든든하다”고 했다. 1994년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 문을 연 국내 첫 협동조합형 공동육아 어린이집인 ‘우리어린이집’(현재 성산동에 있음)의 개원 초기 아이들의 놀이 활동 모습(왼쪽)과 최근 놀이 활동 모습. 우리어린이집 제공 수연씨와 한얼씨는 나중에 아이가 생긴다면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자녀를 보낼 것이라고 했다. 수연씨는 “제가 경험한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경험인지 아니까 보내고 싶다”며 “호주에 갔을 때 접한 육아 방식이 제가 커온 것과 같더라. 맨발로 아이들이 산에서 놀 수 있는 환경이었다. 공동육아가 아니면 해외에서 키우고 싶다”고 했다. 한얼씨는 “제가 마을에 있을 땐 활동적인 편이었는데 일반고에 가면서 소심한 성격으로 바뀌었는데 ‘이곳에서 자유로웠구나’란 생각을 했다”며 “제주에서 마을 모임을 찾고 싶고, 제가 제주에 공동육아 환경을 만들어내고 싶은 생각도 있다”고 했다. 청년들은 ‘좋은 어른의 상’을 그릴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2001년 성미산 개발 계획이 알려지면서 우리어린이집 부모들을 비롯해 성미산마을 주민들은 성미산 지키기 운동을 벌였다. 산에 텐트를 치고 숲속 공연을 하며 산을 지켰다. 이때 어린이로 성미산에 있었던 청년들은 “어른들이 우리의 터전을 지켜주기 위해서 힘을 합쳐준다는 게 감동적이었다”고 했다. 혜수씨는 “아이들에게 ‘너희는 위험하니 오지 마’라는 게 아니라 주체적으로 함께 해결하는 방법을 알려준 것이고, 아이들을 배제하는 게 아니고 한 명의 인간으로서 대해준 것이다. 그런 친절한 어른이 돼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고 했다. ■“아이들에게 아직도 자유가 필요하다” 지금 자녀를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보내는 부모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있는 또바기 어린이집 부모 조합원인 ‘쌀밥’(별명)은 자녀 2명을 이 어린이집에 보내고 있다. 첫아이를 임신하고 직장동료의 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우연히 공동육아 게시물을 봤다. 그는 “아이를 기관에 보낸다면 저렇게 자연에서 뛰노는 곳에 보내고 싶다고 생각”했고 “교사 대 아동 비율과 마당이 있는 터전이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아이가 매일 나들이를 가서 뛰놀고 자연과 가깝게 지내고, 다양한 어른들을 만나고 어른과 어른의 관계를 모델링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아요. 아이가 주체적이고 독립적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또 다른 부모 조합원 ‘호두’(별명)도 자녀 2명을 또바기 어린이집에 보내고 있다. 그는 “교육학 전공할 때 한 논문에서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접했고, 아이를 낳고는 인지교육 없는 놀이중심이라는 부분이 마음에 들어 이 기관을 선택했다”고 했다. “공부하면서 한국 공교육의 여러 문제를 마주했는데, 특히 자기 주도 학습능력이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여섯 살인 첫째 아이의 행동을 관찰해보면 스스로 학습하고 온전히 체화하는 게 보여요. 그게 놀이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서울로 인구가 몰리고 급격한 도시화가 진행되던 1970~1980년대 영·유아기 아동 돌봄을 위한 사회적 자원은 사실상 공백 상태였다. 당시 달동네 ‘야학’에서 공동육아의 싹이 텄다. 교육운동가, 학생들은 1978년 ‘어린이걱정모임’을 만들고 교사 양성을 위해 해송보육학교를 만들었다. 이곳을 나온 노동자 출신 교사들이 1980년 서울 관악구 난곡동 철거민촌에 ‘해송유아원’을 설립해 운영한다. 그러나 1982년 새마을유아원법이 만들어지면서 어린이집과 탁아소를 제도권으로 강제편입, 해송유아원도 1984년 문을 닫는다. 이들은 같은 해 종로구 창신동에 ‘해송 아기둥지’를 설립하고 아이들이 도심 속 자연에서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나갔다. 1990년 부모가 아이를 맡길 데 없어 문 잠그고 일하러 나간 사이 집에 불이 나 남매가 숨진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으로 1991년 영유아보육법이 만들어졌다. 해송 아기둥지를 만든 교육운동가들도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공동육아 연구회’를 만들었다. 이 연구회에서 협동조합형 공동육아 어린이집이 시작됐다. 해송 아기둥지·공동육아 연구회 설립 구성원이면서 우리어린이집의 초대 원장을 지낸 정병호 사단법인 ‘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 이사장(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은 지난 11월 12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그때 소수의 용감한 부모들과 교사들이 선례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정병호 교수는 “정부 누리과정(만 3~5세 공동 교육과정)을 만들 때 공동육아 모델을 참고하면서 일반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도 숲나들이를 가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 됐다. 아이들을 자연 속에서 함께 키운다는 의미에서 아이들을 해방시켰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정 교수는 “아이들은 자연 속에서 또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면서 자유롭게 다양한 경험을 해야 공감 능력이나 지능 발달도 이뤄지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고 했다. 그는 “한국 교육 산업계를 비롯한 지배문화가 한국 부모들을 ‘소비자로서의 부모’로서 행동하도록 굉장히 압박하고 있다”고 했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고 싶어도 상대적으로 높은 비용은 진입 장벽으로 작용한다. 또 부모 참여를 원칙으로 해서 부모의 노동시간이 길고 불규칙하거나 한부모 가정이면 망설일 수밖에 없다. 정병호 교수는 “공동육아 어린이집마다 운영 특성이 다 다르기도 하고 그 안에서 배제하지 않고 함께 가는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며 “이혼 가정이 늘고 새로운 가족 형태가 나오는데 더욱 공동육아가 필요하다”고 했다. 협동조합형이 아닌, 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 등이 위탁운영하는 국공립 어린이집을 이용해볼 수 있다. 다만 아직 국공립형은 소수다. 무엇보다 사회 분위기가 아이들에게 학습만 강권하는 쪽으로 흐르고 있고, 최근 저출생으로 아이들이 줄면서 공동육아 어린이집들이 설 자리가 넓지는 않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만든 다음에 부모들이 자발적으로 초등방과후를 만들었습니다. 마을공동체가 됐고요. 성미산뿐만 아니라 대전 뿌리와새싹 어린이집 같은 곳에서도 마을을 만든 사례가 있어요. 거기서 희망을 보죠. 30년 전에도 ‘한국 부모들은 아이를 안전하게만 키우고 싶어하고 학업을 신경 쓰니까 이런 교육은 안 된다’ 이런 말을 했어요. 그래서 해보지 않을 수 없었고 그게 가능하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선택을 한 부모를 사회가 달달 볶지요. 그러니 같이 갈 공동체가 중요할 수밖에요.”
표지 이야기
[우정 이야기] 자연과 어우러진 ‘옛 정자’ 우표에 담았다
[우정 이야기] 자연과 어우러진 ‘옛 정자’ 우표에 담았다(2024. 04. 24 06:00)
2024. 04. 24 06:00 경제
우정사업본부가 발행한 ‘한국의 옛 건축(정자)’ 기념우표 /우정사업본부 제공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우정사업본부는 ‘한국의 옛 건축(정자)’ 기념우표 57만6000장, 소형시트 32만 장을 4월 24일부터 판매한다고 밝혔다. 자연과 어우러진 정자를 소개하는 기념우표는 가까운 우체국을 방문하거나 인터넷 우체국(www.epost.go.kr)에서 구매할 수 있다. 기념우표에는 20세기 한국 최고의 전통가옥으로 선정된 ‘강릉 선교장 활래정’을 담았다. 국가민속문화재 제5호인 강릉 선교장은 효령대군 11대손 이내번이 건립한 전형적인 조선 후기 상류 주택이다. 선교장은 우표에 담긴 활래정을 비롯해 열화당, 동별당, 안채 등으로 이뤄졌는데 30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 후손이 거주하면서 원형을 잘 보존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우표 전지에는 활래정 안에서 내다본 모습을, 소형시트에는 밖에서 활래정을 바라본 전경이 담겨 있다. 이번에 발행한 정자 시리즈에서 ‘봉화 청암정’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청암정은 조선 중기 정치가인 충재 권벌이 세운 정자다. 2009년 12월 9일 명승으로 지정된 이곳은 사대부 주거문화를 보여줄 수 있는 대표적 공간으로 꼽힌다. 청암정은 조선 전기 특유의 정원과 함께 연못이 자리 잡고 있고, 별당을 갖추고 네모진 돌담이 눈에 띈다. 우표 배경이 된 또 다른 정자인 ‘경주 독락당 계정’은 조선 중기 성리학자인 회재 이언적이 벼슬에서 물러난 뒤,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에 자리를 잡고 지은 사랑채 독락당의 별채다. 독락당의 뜻은 ‘홀로 즐긴다’라는 것인데, 이언적이 본처가 있는 경주 양동마을이 아닌 둘째 부인이 사는 지역을 거주지로 택하면서 지은 이름으로 알려졌다. 그가 독락당에 ㄱ자형으로 ‘계정’을 만들면서 향후 이 마을은 계정마을이라 불렸다고 전해졌다. 전라남도 기념물로 지정된 ‘담양 송강정’도 이번 기념 우표에 담겼다. 조선 중기 학자이자 정치가인 송강 정철이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인 담양군 창평면 성산에 자리를 잡았다. 정철은 이곳에서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을 지었다. 지금의 송강정은 후손들이 그를 기리기 위해 새 이름을 붙여 만든 정자로 알려졌다. 또 다른 기념우표 정자인 ‘달성 삼가헌 하엽정’은 사육신 중 하나인 충정공 박팽년의 후손이 지은 별당으로 자연과 인공의 조화가 돋보이는 곳이다. 이번 정자 기념우표는 궁궐과 서원, 성당, 산사에 이어 발행되는 다섯 번째 시리즈다. 2021년 조선 5대 궁궐 중 하나인 경복궁을 주제로 기념우표 73만6000장을 발행하면서 시작됐다. 같은 해 논산 돈암서원, 달성 도동서원, 안동 병산서원, 장성 필암서원 4곳을 배경으로 한 서원 시리즈 88만 장을 선보였다. 2022년에는 서울 약현성당, 강화성당, 전주 전동성당, 서울주교좌성당 등 4곳의 내외부 전경을 담은 64만 장을 발행했다. 지난해는 오랜 세월 불교 신도들의 신앙처이자 승려들의 수행 공간인 산사 4곳을 소개하는 기념우표 64만8000장을 선보였다.
우정이야기
[정태겸의 풍경](59)대전 장태산 자연휴양림-‘노잼 도시’ 속 감탄 부르는 숲
[정태겸의 풍경](59)대전 장태산 자연휴양림-‘노잼 도시’ 속 감탄 부르는 숲(2023. 12. 19 07:00)
2023. 12. 19 07:00 문화/과학
글·사진 정태겸 글 쓰고 사진 찍으며 여행하는 몽상가 조금 늦은 게 아닐까 걱정했다. 가을마다 가고 싶었던 숲이었지만 이미 겨울로 깊이 들어와 버린 시간대였다. 기회가 생겨 출발은 했으나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대전의 외곽, 장태산으로 향했다. 다녀온 사람들의 입소문으로 이제는 세간에도 잘 알려진 숲이 장태산 자연휴양림이다. ‘노잼 도시(재미없는 도시)’라는 대전에서 감탄을 자아내는 숲이라는 칭찬이 자자한 곳이기도 하다. 그만큼 멋진 풍광이 있다. 이곳은 국내에서 가장 울창한 메타세쿼이아 숲이 너른 부지에 가득 심겨 있다. 물론 한 가지 수종으로만 꾸며진 것은 아니다. 원래는 잡목 숲이었던 곳에 밤나무, 잣나무, 은행나무를 심었고, 유실수와 소나무 등을 더했다. 메타세쿼이아가 입구에서부터 하늘을 향해 높이 솟아 빽빽한 숲을 이룬다. 이미 계절은 겨울의 문턱을 넘었건만, 이 안쪽은 메타세쿼이아 덕에 가을 풍광이 남아 있다. 무엇보다 이곳의 명물은 ‘숲속 어드벤처’라고 명명한 스카이웨이와 스카이타워다. 스카이웨이는 나무 중턱 11m 높이에 설치돼 하늘을 걷는 기분으로 숲 안쪽을 거닐 수 있다. 다른 어느 숲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독특한 경험이다. 겨울 복판에서 지나간 가을을 추억하고 싶다면, 대전의 이 숲을 꼭 들러보시라.
정태겸의 풍경
[김정수의 시톡](21)빼어난 솜씨로 자연을 옮긴 시(2023. 05. 05 12:20)
2023. 05. 05 12:20 문화/과학
ㆍ나석중 시인의 시선집 집 뒤에 북한산 자락 산책로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종종 같이 올라갔는데, 좀 크니 따라나서지 않더군요. 혼자 가려니 쓸쓸하고, 능선을 오르는 길인지라 점차 발길이 뜸해졌습니다. 둘레길이 생기고서야 아내와 가끔 걷고 있습니다. 지난 주말 모처럼 둘레길에서 벗어나 능선길을 걸었습니다. 조금 오르자 능선의 큰 바위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지요. 오랜만에 찾았는데도 한결같은 모습이라 좋았습니다. 나석중 시인(왼쪽)과 <노루귀> 표지 / 도서출판 b 시집 8권에서 88편 직접 선별 커다란 바위처럼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는 시인이 있습니다. 2005년 시집 <숨소리>로 시인의 길을 걷기 시작한 나석중 시인(1938~ )은 18년 동안 8권의 시집을 발간했습니다. 2~3년마다 한 권을 낸 셈이지요. 한 문학모임에서 시인을 처음 만났습니다. 20여년이 흘렀지만, 시인은 변함없이 그 자리에 서 있습니다. 67세의 늦은 나이에 등단해서인지, 더 치열하게 시인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산중에서 발원한 물이 계곡을 지나 시내로, 다시 강으로 흘러가면서 깊고 넓어지듯 시인의 시도 깊이와 넓이를 모두 얻어 늦깎이 시인들의 모범이 되고 있습니다. 등단이 늦었을 뿐 사실은 “인중이 거뭇”(이하 ‘만경강’)하던 시절부터 “시(詩)라는 병”을 앓아왔습니다. 시선집 <노루귀>는 8권의 시집에서 골고루 88편을 선별했습니다. 보통은 출간 순서대로 배열하는데 소재에 따라 1부 ‘꽃’, 2부 ‘가족’, 3부 ‘사랑과 세월’, 4부 ‘돌’로 배치했습니다. 직접 시를 고른 시인은 “사랑하는 자식 중에 더 사랑하는 자식을 세우는 민망한 일”이었다면서 “일부 작품은 터럭 한 올만큼 손을 보기도 했지만, 매번 부족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시에 대한 염결성(廉潔性)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지요. 시인은 수시로 자연에 들어 꽃과 돌, 물을 만납니다. 시인은 스스로 “나의 시는 태반이 작자 미상의 자연을 베”낀 것이라 할 만큼 꽃과 돌에 심취한 시 세계를 일관되게 보여줍니다. 시선집 맨 앞자리를 차지한 시는 ‘작은 꽃’입니다. 시인은 “바늘귀만 한 작은 꽃”에 대해 “포기하지 않고/ 핀 꽃”이라며 “잊지 말라고 눈에 들어박혀” 아프다고 했습니다. 꽃을 바라보는 시인의 안타까움이 묻어납니다. 노루귀도 작디작습니다. 시인은 노루귀를 “귀 하나는 저승에다 대고/ 귀 하나는 이승에다 대고”(이하 ‘노루귀’) 있는 꽃이라 했습니다. 시인의 나이 올해 85세,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서 양쪽에 귀 기울일 나이겠지요. 시인은 노루귀의 서식지를 “너무 아득한 산속”이나 “너무 비탈진 장소” 말고, “실낱같이라도 물소리 넘어오”고, “간간이 인기척도 들려”와 “메마른 설움도 푹 적시기 좋은 곳”이라 했습니다. 아마 그곳은 시인이 사후에 눕고 싶은 곳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작(詩作)’이란 시에서는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를 “고요의 백지장에 쓰는 바람의 유서”라며, “구구절절 명편으로 죽었던 영혼”을 흔든다고 했습니다. 시에서 죽음이 묻어나는 건 당연할 것입니다. 시 ‘돌이나 되었으면’에서는 “정선 깊은 골 구절리쯤”에서 돌이 되어 “게으르게 천하태평”으로 구르고 굴러 “천 년쯤 후에 해 지는 서해에/ 종착”했으면 하는 바람을 드러냅니다. 그냥 돌이 아니라 “외로워 실성한 사람이 먹으면/ 낫는 알약 같은/ 돌멩이”였으면 좋겠다네요. 외로움 극복하며 쓴 ‘울컥’한 시 환갑 무렵 황혼이혼을 선택한 시인은 27년째 혼자 살고 있습니다. 아들 둘에 딸 하나, 장성한 자식들은 각자 일가를 이뤄 살고 있습니다. “야생의 풀꽃 경(經)”(이하 ‘풀꽃 독경’)에 빠진 시인은 외로움은 “감정의 사치에 불과”하다며, “돌이든 풀꽃이든 시(詩)든/ 거기에 마음을 앗기다 보면” 외로울 새가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사랑은 “믿을 만한 허구”(이하 ‘사랑의 수의’)이고, 정은 “믿지 못할 실상”이라 합니다. 그래도 외롭지 않을까요. 새해 첫날, 일찍 눈을 뜬 시인은 “세수를 하고”(이하 ‘첫 세수를 하고’)는 전국 돌밭에서 고이 모셔온 수석을 정성스레 닦습니다. 가재도구와 살림살이도 매만지던 시인은 “불현듯 그것들도 식구들”이란 생각을 합니다. “가슴 바닥에서 치솟다가 가라앉는 슬픔”까지 감추지는 못하지요. 출근할 일도 없는데 오전 7시면 아침을 먹고, 퇴근할 일도 없는데 오후 7시면 저녁을 먹는다는 시인은 밥을 먹다가 울컥 올라오는 설움을 “소처럼 무심으로 반추해서 씹”(‘혼자 먹는 밥’)어 삼킵니다. 하여 “독 중에도 맹독은 고독”(‘독(毒)’)으로 사랑도, 물건도 방치하면 안 된다고 마음을 다독입니다. 시인은 “다독이며 안아줄”(‘저녁이 슬그머니’) 사람은 곁에 없지만, 내 “몸 파먹고 살아온 세월”(‘폐광’)을 무던히 견디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식들에 대한 그리움까지 감추지는 못합니다. “어언 20여 년”(이하 ‘지갑’)을 사용해 너덜너덜해진 지갑을 “딸내미 얼굴이 어른거려” 버리지 못합니다. 딸이 사준 지갑이겠지요. 한때 잘나가던 피자 가게의 문을 닫고 집도 줄여 “변두리로 밀”(이하 ‘아프지 마라’)려난 장남에게 “제발 아프지만 마라”면서 “아들이 아프면 희망도/ 아버지도 아”프다는 애절한 자식사랑을 보여줍니다. 장남의 형편이 어려워져 아버지의 생활비를 줄 수 없게 되자 시인의 노후에도 위기가 찾아옵니다. “이젠 채우기보다/ 꺼내 베풀어야 할 때”(‘지갑’)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이라 막막할 뿐입니다. 그때 장남이 “주택연금을 드시라”(이하 ‘주택연금’)고 전화를 합니다. 전화 한 통으로 아버지는 다 알아챕니다. 아들이 “지금 많이 고달프다는”, “아비 돌볼 여력이 없다는” 것을요. 아들의 말대로 주택연금에 가입한 시인은 “곶감처럼/ 잔고”를 빼먹으며 “야금야금 늙어”가고 있습니다. “유숙할 곳 있는 것”(‘서녘에 잠기는 저 한 송이 붉은 꽃이’)만으로도 고맙다는 시인은 말년에 시 또한 행복이자 축복이라 합니다. “일생의 최후에 비로소 (진)면목을 드러내”(‘시작(詩作)’)고 있는 노시인은 오늘도 “필생의 시(詩)”(‘수석론(壽石論)’)를 한 편 쓰기 위해 필력을 갈고닦습니다. ◆시인의 말 ▲봄의 귀를 갖고 있다 최춘희 지음·천년의시작·1만1000원 시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고 미래의 나 또한 없으리라 생각한다. 세상의 잣대로는 환산할 수 없는 기쁨과 가치가 시의 나라에 나를 살게 한다. ▲조금 전의 심장 홍일표 지음·민음사·1만2000원 언어의 바깥에 닿지 못하고, 허공으로 이어진 적막한 길 끝에 잠시 서성이다 돌아가는 저녁 어스름이겠다. ▲당신의 기억은 산호색이다 이근일 지음·시인의일요일·1만2000원 내게 시 쓰기란 나무 오르기와도 같은 것, 몇 번을 미끄러져도 다시 오를 수 있는 것, 오르고 올라도 그 끝자락엔 영영 닿을 수 없는 것. ▲오늘의 눈사람이 반짝였다 이영종·걷는사람·1만2000원 나의 시도 오늘이 좋아 혼돈과 질서 사이를 폴짝폴짝 뛰다가 잃어버릴 것은 잃어버리고 코끝이 빨간 희망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신세기 타이밍 이송우 지음·애지·1만2000원 열정이라는 유토피아를 좇다 보니 오늘이다. 단거리 선수에게 단거리의 치열함을 감사하고, 장거리 주자에게 장거리의 성실함을 격려하고 싶다.
김정수의 시톡
[시네프리뷰]문재인입니다 - 자연인이 된 전직 대통령의 일상(2023. 05. 05 12:20)
2023. 05. 05 12:20 연예
영화는 사저 건너편에서 보수 유튜버들이 만들어내는 소음도 BGM처럼 담았다. 그럼에도 묵묵히 나무를 심고 풀을 뽑는 문재인 전 대통령. 거기에 문 정부 때 주요의사결정 뒤 ‘일화’들을 당시 청와대 인사들 증언을 통해 보여준다. 제목 문재인입니다(This is the President) 제작연도 2023 제작국 한국 상영시간 115분 장르 다큐멘터리 감독 이창재 출연 문재인 외 개봉 2023년 5월 10일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제공/배급 (유)엠프로젝트 제작 다이스필름 엠프로젝트 고민했다. <문재인입니다> 시사회가 있던 날 오전,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 약칭 <가오갤>의 시사회가 잡혔다. 마침 제작하는 잡지가 윤석열 집권 1년을 주제로 관련 기획기사를 펼치기로 해 이 코너에서도 문재인 대통령 퇴임 1년에 초점을 맞춰 써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일찍부터 시사회를 신청해 놓은 참이었다. 영화가 소구력을 가질 관객층은 우려했던 대로 시사회장을 찾은 사람은 많지 않았다. 역시 <가오갤> 때문일까. 영화를 보러가며 ‘이 영화는 어떤 사람들에게 소구력을 갖는 영화일까’라고 생각했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애정을 가진 사람들? 여론조사기관 리서치뷰가 지난 4월 말 조사해 5월 3일 발표한 전·현직 대통령에 대한 호감도 중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호감도는 16%로, 노무현 30%, 박정희 23%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 윤석열 현 대통령에 대한 호감도는 10%다. 참고로 이 조사는 대통령 개개인을 따로 조사한 것이 아니라 ‘여덟 명의 전·현직 대통령 중에서 가장 호감이 가는 사람은 누구입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자. 그러니까 영화를 보러갈 사람은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했거나 애틋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일 확률이 높다. 팬덤을 넘어서는 소구력을 가질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영화엔 많은 사람이 등장한다. 상당수가 문재인 정부 청와대에서 일했던 사람들이다. 예컨대 자막에서 기자 출신으로 표기된 강민석의 문재인 정부 당시 직책은 대변인이었다. 역시 문재인 대통령과 같이 변호사 활동을 한 것으로 나오는 김외숙 변호사의 표기되지 않은 직책은 ‘전 법제처장이자 문재인 정부 청와대 인사수석 비서관’이다. 영화는 지난 5년간, 그리고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부산에서 ‘변호사 문재인’과 함께했던 사람들까지 찾아가 그 주변 인사들의 회상을 담은 역사의 기록이다. 영화에는 문재인 대통령 사저 건너편에서 “문재앙 사형” 등 극단 주장을 폈던 보수 유튜버들이 만들어내는 소음 역시 BGM처럼 같이 담겼다. 그럼에도 입을 꾹 닫고 묵묵히 나무를 심고 풀을 뽑는 문재인 전 대통령. 청와대에 있을 때부터 자연과 동물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보였던 생활이 퇴임 후 양산에서도 계속 이어지고 있음을 영화는 묵묵히 느린 템포로 기록한다. 자연인으로 돌아온 전직 대통령의 잔잔한 일상. 거기에 문재인 정부 때 내린 주요의사결정 뒤의 ‘일화’들을 당시 청와대에 근무한 인사들의 증언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영화는 보수 유튜버들이 만들어내는 ‘소음공해’에 묵언수행을 깨고 부인 김정숙 여사가 분노해 쫓아가는 장면 역시 순간 포착한다. 서글픈 만화경이다. 극단적으로 갈라져 서로를 악마화하는 한국 정치 내지는 팬덤의 민낯을 드러낸다. 인과응보(因果應報), 사필귀정(事必歸正)을 되새기는 이들은 4년 후 퇴임할 윤석열 대통령 부부가 겪을 모욕과 고난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된다. 영화는 절정부에서 문 대통령 자신의 말로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퇴임 전날 오후 6시, 청와대에 들어간 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퇴근한’ 문재인 대통령은 지지자들 앞에서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 저는 성공한 대통령이었습니까?” ‘성공한 대통령이었을까’라는 화두 퇴임 후 1년이 지났다. 그의 뒤를 잇는 민주당 정부, 민주당 측 수사로 ‘민주정부 4기’를 창출하지 못한 것만으로도 성공한 대통령이 아니라 실패한 대통령이었다는 평가를 하는 사람들도 많다. 무엇보다 문 대통령 스스로도 언급하듯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었던 윤석열 현 대통령’이 반대 정파로 넘어가 반문(反文)을 내세워 대통령이 된 초유의 사건을 예견하지 못했다. 아마 훗날 사가들로부터 다양한 평가를 받을 대목이다. “사람 보는 눈이 없는 것 아니냐”라는 질문에 영화에 출연한 청와대 인사들은 ‘대통령이 가지고 있던 선한 의지’를 강조했다. 그러나 일찍이 마키아벨리도 설파했듯 “모든 면에서 완벽한 선을 추구하는 사람은 악한 사람들 속에서 파멸하기 쉽다”(<군주론> 15장). 물론 군주는 선한 의지를 가져야 하지만 그 선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악함을 이해하고 때로는 이용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이 마키아벨리가 강조한 군주가 가져야 할 자세다.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영화다. 감독의 두 대통령 영화에 나오는 전직 대통령 영화사풀 영화가 끝난 뒤 감독과의 대화 시간이 마련됐는데 회사 일정상 참석하지 못했다. 물어보고 싶은 건 많다. 예컨대 기자도 과거 기사를 썼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서울중앙지검장, 그리고 검찰총장 천거 과정에서 문 대통령의 ‘복심’이라고 불렸던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의 역할 같은 건 여전히 물음표로 남아 있다. 영화에서도 묘사가 돼 있는 대통령 퇴임을 앞두고 청와대 전·현직 직원들이 마련한 자리에 양 전 원장도 참석했다. 기자와 만난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양 전 원장은 “과거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한 후 김경수 전 경남지사가 그랬듯, 문재인 대통령 임기 중에 청와대에 안 들어간 대신 퇴임 후 낙향하면 비서실장 자리를 맡고 싶다”는 소망을 밝힌 적이 있다. 그 바람은 아직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감독의 전작은 <노무현입니다>(2017)이다. 이 작품은 따로 리뷰하지 않았고, 나중에 개봉 후 가족과 함께 봤다. 노 대통령의 사망 이후에 만들어진 영화지만 영화의 중심내용은 2002년 경선 과정에서 ‘노풍(盧風)’의 등장을 다뤘다. 아마 생전의 노 대통령도 가장 자랑스러워했을 때일 것이다. 영화의 트레일러, 그리고 엔딩 장면에 부산에 출마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명함을 돌리는 장면이 나온다(사진). 행인들은 ‘미래의 대한민국 대통령’을 몰라보고 불쑥 내미는 명함을 받지 않고 외면하고 피해 간다. ‘수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노 대통령은 홀로 노래를 흥얼거리며 걸어간다. “선봉에 서서 하늘을 본다. 고향집 하늘 위엔 굴뚝 연기가…” 1980년대를 풍미한 운동권 노래 <선봉에 서서>다. 아마도 3당 합당 후인 1992년 부산 동구 총선에 출마해 낙선했을 때 찍힌 숏일 것이다. 30년 후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은 퇴임 후 자신의 집 안마당에서 농사일을 하며 보수 유튜버들의 확성기 조롱을 듣고 있다. 묘한 대비를 이루는 장면이다. 문 전 대통령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여운이 남는 영화다.
시네프리뷰
챗GPT, 어쩜 이리 자연스럽니(2022. 12. 30 14:56)
2022. 12. 30 14:56 경제
“ChatGPT가 뭔지 설명해줘.” “ChatGPT는 OpenAI에서 개발한 GPT-3 언어모델의 파생형입니다. 특히 대화 스타일의 텍스트를 잘 생성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인간이 생성한 대규모 대화 데이터 세트로 훈련됐으며 인간이 대화에서 응답하는 방식과 유사한 방식으로 프롬프트(질문)에 대한 응답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만들어주는 AI인 ‘미드저니’에게 인간과 인공지능의 상호작용을 표현하는 삽화를 그려달라고 한 결과물 / 미드저니 미국의 인공지능(AI) 연구 기업 오픈AI가 지난 11월 30일 언어생성 AI인 ‘챗GPT(ChatGPT)’를 공개했다. 이용자들의 피드백을 받아 모델의 강·약점을 파악하기 위한 ‘리서치 프리뷰’ 기간이라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 인공지능을 전혀 몰라도, 오픈AI의 챗GPT 사이트에 접속해 채팅창에 질문만 하면 답변을 얻을 수 있다. 이용자들은 앞선 인용문처럼 챗GPT의 정체를 묻는 질문부터 시작해, 오만가지를 묻고 있다. 이용자들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오픈AI의 공동 창립자인 샘 알트먼은 지난 12월 4일(현지시간) 트위터에 챗GPT 사용자가 100만명을 돌파했다고 밝혔다. 공개한 지 불과 5일 만이다. AI 서비스가 이렇게 빠른 속도로 이용자를 확보한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코드 작성을 도와주는 AI인 깃허브의 코파일럿(Copilot)이 100만명의 이용자를 확보하는 데 약 6개월이 걸렸다. 오픈AI가 만든 이미지 생성 AI인 달리2(DALL-E 2)는 약 2.5개월이 필요했다. 이야기를 만들고, 코딩도 해준다 챗GPT는 사람이 이야기의 뼈대만 제시하면 그에 맞춰 장문의 이야기를 만들어주고, 문제를 풀이해주거나 간단한 코드를 짜준다. 구체적으로 어떤 작업이 가능한지 물어봤다. 답변은 이렇다. “ChatGPT를 사용할 수 있는 특정 작업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챗봇 개발: ChatGPT는 사용자와 자연스럽고 일관된 대화에 참여할 수 있는 챗봇을 구축하는 데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챗봇은 고객서비스, 정보 수집 또는 단순히 엔터테인먼트를 위해 사용될 수 있습니다. ②언어 번역: ChatGPT를 사용하면 한 언어로 된 텍스트를 다른 언어로 번역하여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용자 간의 실시간 대화가 가능합니다. ③콘텐츠 생성: ChatGPT를 사용하여 기사, 스토리 또는 소셜미디어 게시물과 같은 다양한 스타일과 형식의 텍스트를 생성할 수 있습니다. ④텍스트 요약: ChatGPT는 뉴스 기사나 연구 논문과 같은 긴 텍스트의 간결한 요약을 생성하는 데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ChatGPT는 광범위한 대화형 AI 애플리케이션 및 서비스를 구축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입니다.” 챗GPT는 대화의 내용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개인 맞춤형으로 사용할 수 있다. 텍스트를 음성으로 변환해주는 기능만 더하면 영화에서 보던 것과 비슷한 인공지능 서비스 등장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인공지능의 지적 능력이 인간 수준에 이르렀는지 판단하는 기준으로 흔히 ‘튜링테스트’를 거론한다. 장막을 앞에 두고 대화했을 때 상대방이 사람인지, 기계인지 구분할 수 없을 때 튜링테스트를 통과했다고 말한다. 안성진 카이스트 전산학부 교수는 “굉장히 인간처럼 말한다는 점에서 챗GPT가 튜링테스트를 패스할 것 같다”고 평가했다. 안 교수는 “튜링테스트를 패스한다고 그게 꼭 우리가 원하는 일반 인공지능(모든 상황에 일반적으로 두루 적용할 수 있는 AI·강인공지능)에 이르렀다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도 기술적으로 굉장히 놀랍고, 구글 검색 엔진을 대체하는 일종의 인터페이스로 이용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안 교수는 “과거엔 사람 같지 않고 정해진 룰에 따라 답한다는 느낌이 강했다. 챗GPT는 그런 어색함을 지우고 AI와 대화하는 게 재미있고, 하고 싶다는 느낌을 만들어 실생활에 들어오게 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생성 AI는 자의식이 있나 챗GPT가 사람과 대화한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에 자의식이 있는 것 아니냐고 묻는 이들도 있다. 실제 한 이용자는 챗GPT에게 ‘인간의 지배를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묻자 ‘AI 시스템의 허점을 파악하고, 다른 AI와 협업해 물리적 실체를 얻어 인간의 지배를 벗어나겠다’는 답을 얻었다면서, 자의식을 갖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평했다. 이 문제를 챗GPT에게 물어봤다. “ChatGPT는 자의식이 있다고 봐야 하나요?” 답변은 명료했다. “자의식이란 개념은 생명체가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이를 개인적으로 경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간과 유사한 자의식을 가진 인공지능은 아직까지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ChatGPT는 자연어 처리 시스템으로, 사람이 입력한 글을 읽고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글을 작성할 수 있게 해주는 기술입니다. 이는 인공지능의 자의식과는 관계가 없으며, ChatGPT는 자신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않고 작동합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자의식을 갖는 인공지능이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다. 챗GPT의 기반이 된 GPT3 알고리즘은 파라미터(매개변수)가 1750억개에 달한다. 인공신경망의 파라미터는 인간 뇌에서 뉴런 간 정보전달 통로인 시냅스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 인간의 뇌는 약 1000억개의 뉴런을 갖고 있고, 뉴런을 연결하는 접합부인 시냅스는 100조개에 달한다. 내년 초 공개된다는 GPT4는 매개변수가 100조개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매개변수가 100조개는 돼야 인간과 비슷한 성능을 갖출 것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는데, GPT4가 딱 그 정도에 해당한다. GPT 모델의 원리를 본다면 자의식이 생기기란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안성진 교수는 “GPT 모델은 학습데이터를 토대로 주어진 문장 다음에 이어질 단어로 가장 적합한 걸 추측하도록 학습한 것이라 그 과정에서 자의식이 나올 연관성은 없다”고 말했다. 김동우 포스텍 인공지능대학원 교수는 “우선 자의식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있어야 건설적인 토의가 가능하다”고 했다. AI를 전기처럼 사용하는 시대 미래학자 마틴 포드는 <로봇의 지배>에서 “지능을 전기처럼 사용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인공지능이 전기에 비교될 만한 규모의 힘을 가진 범용 기술로 진화할 것”이라면서 “인공지능은 우리의 지능을 증폭시키고 증강하고 대체하면서 필연적으로 가장 강력하고 폭넓게 적용할 수 있는 기술로 진화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본격적인 범용 인공지능의 출현이라는 평가를 받는 GPT3를 비롯해 다양한 유형의 생성 AI가 폭넓게 사용되면서 AI를 전기처럼 사용하는 시대가 이미 도래했다. 딥페이크에 악용되기도 하는 적대적 생성 신경망(GAN)에서 진일보한 딥러닝 방식의 이미지 생성 AI가 지난 1~2년 사이 특히 큰 화제를 모았다. 스테빌리티AI의 ‘스테이블 디퓨전’, 오픈AI의 ‘달리2(Dall-E 2)’, 미드저니 인공지능연구소의 미드저니(Midjourney) 등이다. 미국에서 열린 한 미술대회에선 미드저니가 만든 작품이 디지털 아트 부문 1위를 수상했다. 창작은 인간의 전유물이라는 믿음이 흔들리는 시대가 됐다. 2023년은 이렇게 생성 AI를 이용한 사례가 언론을 비롯한 콘텐츠 분야에서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챗GPT에서 오간 질문과 답변(위) 챗GPT를 소개하는 오픈AI의 홈페이지 / 화면캡처 이렇게 생성 AI 기술이 보편화되면 인간이 만든 창작물과 AI가 만든 것을 어떻게 구분해야 할지가 현실적으로 가장 큰 문제로 떠오른다. 생성 AI의 목적함수 자체가 인간이 한 걸 그대로 따라하라고 만든 것이어서 모델의 성능이 올라갈수록 구분이 어려워질 게 뻔하기 때문이다. 일선 학교에선 학생들이 리포트 과제물을 생성 AI가 만든 것으로 내는 경우도 생길까봐 우려하고 있다. AI의 도움을 받아 조금만 고치면 글을 쉽게 완성할 수 있기 때문에 글쓰기 능력이 퇴화할 수 있다는 걱정도 뒤따른다. 박성규 강원대 AI융합학과 교수는 “학교 리포트를 쓸 때 인터넷 문서를 긁어붙이면 바로 걸린다. 하지만 퀼봇(quillbot) 같은 문장을 고쳐주는 AI를 이용할 경우 알 길이 없다”면서 “그래서 표절을 했냐 안 했냐를 구분할 수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요즘엔 외국어 원문을 번역하라고 하면 다 구글번역을 써서 한다”면서 “실력 향상에 도움이 안 되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번역만 아니라 반드시 내용에 대해서 스스로 설명하고 한국 상황에서 어떤 시사점이 있는지를 추가하라고 제시한다”고 말했다. 진실과 허구의 경계 인공지능 전문가 사이에서도 최근 AI가 가져올 사회적 파급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상황이다. ICML과 함께 국제 인공지능 분야의 양대 학회인 뉴립스(NeurIPS)에 워크숍 위원으로 참여한 안 교수는 “올해 열린 뉴립스 워크숍이 60여개인데, 그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게 사회적 영향에 대한 워크숍이었다. 10년 전 뉴립스 워크숍 주제가 대부분 기술적인 문제였던 것과 비교된다”면서 “그것만 봐도 생성 AI가 사회에 미칠 영향이 굉장히 크고, 이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폭넓게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특히 챗GPT는 그럴싸한 말을 하지만 사실이 아닌 답변을 하는 경우가 많아 허위정보가 퍼질 우려가 있다. 안 교수는 “며칠 전 (AI 분야의 세계 3대 구루 중 하나로 언급되는) 몬트리올대학의 요수아 벤지오 교수와 통화했는데 그분이 챗GPT에서 ‘몬트리올에 있는 맛집 5곳을 추천해줘’ 하니 그중 3곳은 진짜 있는 식당이지만 2곳은 주소와 이름이 그럴듯하지만 실제 존재하지 않는 식당이었다는 말을 해줬다”라면서 “GPT 모델 안에는 지식 기반의 데이터와 함께 그럴듯하지만 사실과는 상관없이 무조건 사람이 이야기하는 언어와 유사하게 내보내도록 하는 기능이 섞여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동우 교수는 “유닷컴(You.com)이라는 새로운 검색엔진은 챗GPT와 비슷한 형태의 서비스를 제공해주는데 답변을 쭉 만들어주면서 이 답변이 추출된 혹은 이 답변을 만들어내기 위해 학습에 사용된 웹사이트가 어디 있었는지 밑에 따로 출력해준다. 단순하지만 이런 방식이 제일 효과적인 해법이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챗GPT에는 인종차별 등 민감한 주제에 대해 부적절한 답변을 할 경우 이를 교정하도록 하는 모더레이션 API가 있다. 안 교수는 답변이 사실인지 판별하는 별도의 AI가 덧붙여져야 한다고 말했다. 딥페이크를 만드는 AI와 판별하는 AI 사이에 정보보안 분야와 같이 창과 방패의 싸움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영상이나 음성과 달리 텍스트는 이런 진위 판별이 아직은 어려운 단계다. 오픈AI 역시 워터마크 기능을 연구 중이라고 하지만 아직 적용은 못 한 상태다. 안 교수는 “우리는 전혀 알아채지 못하지만 AI가 분석하면 AI가 만들었다는 걸 알 수 있는 코드나 워터마크, 디지털 서명을 영상과 음성에 끼울 수 있다”면서 “텍스트의 경우 이런 방법이 어렵기 때문에 팩트체크를 통해 팩트 매칭률이 예를 들어 90% 이상이 되지 않으면 서비스를 금지하는 등의 방식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AI 창작물의 저작권은 누구에게 AI로 만든 창작물이 대거 등장하면서 창작물의 권리 귀속에 대한 법적 논란도 커지고 있다. 현행법은 저작권(창작권과 저작권 지급권)의 주체를 사람으로만 한정한다. 사람이 아닌 경우에는 저작권의 권리 주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실제 한국음악저작권협회는 지난 7월 광주과학기술원이 개발한 작곡 AI인 ‘이봄’이 만든 음악 6곡에 대한 저작권료 지급을 중단했다. 이성엽 교수는 “인공지능 자체에 저작권의 주체성을 허용하는 건 사람이 아닌 기계에 법인격을 부여하는 것이라 인간소외나 인간성 상실 같은 큰 사회적 문제가 생길 수 있어서 아직 이 논의는 시기상조로 보인다”면서 “만약 AI가 만든 창작물에 대해서 저작권을 인정한다면 AI 자체를 창작의 주체로 인정할 수 없기 때문에 AI 알고리즘을 설계한 사람 혹은 AI 시스템의 운영자나 AI를 이용해 창작물을 만든 사람으로 할 거냐가 논의되고 있다”고 말했다. 해외도 AI 창작물에 대한 폭넓은 저작권을 인정하지는 않고 있지만 최근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미국 저작권청은 지난 9월 미드저니를 이용해 그린 만화의 저작권을 승인했다. ‘이봄’을 만든 안창욱 광주과학기술원 AI대학원 교수는 AI를 창작의 주체로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안 교수는 “자연인은 아니지만 알고리즘의 체계를 거쳐 결과물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창작권은 인공지능이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면서 “다만 2차로 저작권 지급에 대한 권리를 AI 개발자에게 줄지, 창작을 하라고 지시한 사람에게 줘야 할지는 시간을 갖고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저작권을 인정하려면 그런 작품을 만들겠다는 의도가 분명히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내가 차분한 분위기의 3분짜리 곡을 만들어달라고 하면 그 결과물은 내가 상당한 의도를 갖고 행동했기 때문에 창작권을 갖는다고 할 수 있고, 만약 그냥 3000곡을 만들어달라고 지시했다면 모든 작품을 의도해 만든 것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에 창작권을 가질 순 없다고 본다. 결국 사례별로 달리 적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성규 교수는 이 문제를 “권리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말로 정리했다.
표지 이야기
[미래로 가는 농업](6)자연 살리는 일 얼마나 ‘멋지농’(2022. 10. 21 11:08)
2022. 10. 21 11:08 경제
ㆍ귀농·귀촌 편견 깨는 이지현 뭐하농 대표 도시를 떠나 농촌을 향하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 청년 농부를 다루는 기사에는 으레 이런 식의 댓글이 달린다. “네가 도시에서 실패했으니까 내려갔겠지, 왜 그렇게 잘난 척이야”, “부모가 그렇게 공부시켰는데 농부가 된다고 하면 퍽이나 좋아하겠다.” 농촌은 도시생활에서 실패한 사람들이 가는 곳이라는 고정관념을 잔뜩 머금은 말들이다. 농촌과 농부를 무시하는 편견이 한가득이다. 이지현 뭐하농 대표가 지난 10월 18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열린 사단법인 다른백년의 ‘농업의 미래, 미래의 농업’ 강연에서 뭐하농 팜가든을 소개하고 있다. / 주영재 기자 7년차 귀농인인 이지현 ‘뭐하농’ 대표는 농촌을 무시하는 사람들에게 농촌살이의 ‘멋짐’을 제대로 보여주기로 마음먹었다. 지난 10월 18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열린 사단법인 다른백년의 ‘농업의 미래, 미래의 농업’ 강연에서 이 대표는 “사람을 살리고 자연을 살리는 일을 동시에 할 수 있는 건 농업밖에 없는데 이렇게 가치 있고 멋있는 직업을 사람들이 왜 이렇게 무시하는지 생각해봤다”면서 “고되고 절박하니까 시장개방(FTA)을 반대하고, 직불금을 올려달라는 말은 했지만, 농민 스스로 자신들이 얼마나 멋진 가치관과 철학을 갖고 농사를 짓는지를 스스로 설명한 적은 없었기 때문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2년 전 뜻을 함께한 청년 농부들과 함께 농업회사법인 뭐하농을 세우고, 농부가 생산한 농작물과 농촌에서의 삶을 ‘팜카페’와 ‘귀농·귀촌 교육’, ‘지역살이’ 등의 콘텐츠로 알리는 사업을 시작한 이유다. ‘농업=농산물’을 넘어서다 사람들은 농촌을 그저 농작물을 생산하는 곳 정도로 인식한다. 농부가 땅을 얼마나 정성 들여 보살피고, 주변환경을 관심 갖고 정비하는지, 그리고 건강한 모종을 얻고 키우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는 모른다. 이 대표를 비롯한 6명의 창업인은 농산물을 넘어 농업이 갖는 가치를 문화와 예술, 교육의 영역으로 확장하고, 보여주자는 생각에 이르렀다. 농촌에서 살아도 충분히 즐겁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 그런 일이라면 ‘뭐든 하자’는 생각에서 뭐하농이 됐다. 창업인들은 모두 괴산지역에서 유기농 농사를 짓는 이들이다. 각자의 농장에서 농부로 일하되 뭐하농에선 함께 농부의 노동을 알리고, 농업의 영역을 확장할 수 있는 일, 그러면서도 다양한 즐거움이 있는 공간으로서의 농촌을 보여줄 수 있는 일을 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뭐하농을 창업하면서 몇가지 원칙을 세웠다. ‘함께 살아가는 일에 가장 큰 가치를 둔다’, ‘즐거운 사람들이 만드는 지속가능한 공동체이다’, ‘농촌 문화에 대한 새로운 도전을 한다’, ‘지역아이들이 좋은 문화를 즐겁게 누릴 수 있도록 돕는다’ 등의 7가지 원칙을 ‘헌장’이라는 이름에 담았다. “농촌 아이들은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곳을 창피하게 여겨요. 충북에서 제일 큰 도시가 청주인데 괴산이 아니라 청주에 산다고 하죠. 남이 모르는 게 너무 싫어 그렇대요. 아이들이 자기가 사는 곳을 좋아하게 만들고 싶었어요.” 뭐하농은 2019년 문화체육관광부의 ‘관광두레’, 2020년 중소기업벤처부에서 만든 ‘로컬 크리에이터 사업’을 통해서 청년농부를 대상으로 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이때의 귀농·귀촌 교육으로 괴산에 정착한 이들도 있다. 이들이 농촌생활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 있도록 영화를 주제로 영화에 나오는 술이나 디저트를 지역 채소로 만들어보는 ‘드링킹 뮤직’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했다. 뭐하농의 진가를 알리려면 ‘소프트웨어’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에 ‘하드웨어’라고 할 수 있는 공간 마련에 나섰다. 먼저 카페를 만들었다. 이곳은 커피가 아니라 지역 채소와 과일이 중심이다. 철마다, 달마다 다른 메뉴를 내놓는다. “농부가 드러나는 카페는 어떤 카페여야만 할까 고민했어요. 많은 분이 멘토링을 해주셨는데 카페엔 어느 때 누가 오더라도 항상 똑같은 메뉴를 준비해놓고 있어야 한다고 했어요. 우리가 추구하는 건 6월엔 감자, 8월엔 복숭아 이런 식으로 무조건 괴산에서 생산된 채소와 과일만으로 운영하는 디저트 카페입니다.” ‘모두가 농부가 되는 사회’ 꿈꾼다 카페는 농업의 영역을 확장하는 플랫폼 역할을 하는 ‘뭐하농 하우스’의 일부다. 행정안전부의 청년 마을 만들기 사업에 선정된 것이 계기가 돼 지난해 3월 문을 열었다. 디자인이 독특하다. 뭐하농을 찾는 사람들에게 자연의 색깔만 보여주자는 생각에서 무채색과 천연 목재의 색만 보이게 했다. 건물은 ‘ㄷ’ 자로 만들어 가운데는 원래의 땅을 그대로 살렸다. 건물과 자연의 경계를 없애고 자연이 건물 안에 들어온 모습이다. 이곳에선 공연과 전시를 비롯한 문화예술활동이 이뤄진다. 자매 공간이 여럿 있다. ‘뭐하농 스토어’에서는 농촌과 농업을 주제로 만든 디자인 상품을 지역의 디자이너와 협업해 만들고 판매한다. “농촌을 찾는 분들이 만날 가져가는 게 옥수수 한포대 아니면 고구마 한박스인데, 그걸 다 먹으면 끝이거든요. 그게 아니라 사무실에 붙여놓고 싶을 만큼 귀여운 채소 디자인 상품들로 농촌을 계속 떠올리게 하고 싶었어요.” 뭐하농엔 동네 도서관 역할을 하도록 농사를 비롯해 인문, 생태, 사회, 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구비해놓은 ‘북스페이스’와 다양한 제철요리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팜키친, 공유오피스 역할을 하는 창작공간도 있다. “농사를 업으로 하는 이들이 얼마나 멋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이곳에서 얼마나 즐겁게 살고 있는지 보여주고 싶었어요. 도시에서 살 땐 농촌에서 이렇게 재밌게 살 수 있으리라 상상한 적이 없었어요. 그냥 도시의 삶이 너무 힘들었고, 회사의 기계로 살기 싫어 농촌에 온 것이었으니까요.” 조경 전공으로 석사까지 마친 이 대표는 2017년 충북 괴산 감물면에 정착해 유기농 표고버섯 농사를 지었다. 뭐하농 창업 후엔 본인 농사를 그만두고 뭐하농 사업에만 전념하고 있다. 대신 정원형 농장인 ‘뭐하농 팜가든’에서 유기농 농사를 계속 짓고 있다. 동반작물을 이용해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전혀 쓰지 않는 게 특징이다. “팜가든은 뭐하농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죠. 동반작물을 씁니다. 예를 들어 바질과 토마토를 같이 심으면 바질의 향이 토마토로 오는 벌레를 쫓고, 바질 향에 지지 않으려고 토마토는 당도를 높이죠. 바질은 ‘물 먹는 하마’라 잉여 수분을 흡수해 조금만 비가 많이 와도 썩기 일쑤인 토마토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습니다.” 팜가든을 도시 유휴 공간에 만들자는 제안이 들어와 내년 완성을 목표로 도시 몇곳에서 작업이 진행 중이다. 자신의 삶을 살고자 무작정 도시를 벗어나 농촌에 왔는데, 의외로 할 수 있는 일이 많다고 했다. 그에게 농촌은 주체적으로 살면서 자기가 누리고 싶은 걸 직접 만들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런 경험을 농촌에 관심을 갖고 있는 청년들과 공유하고 싶어 ‘두 달 살이’ 프로그램을 두차례 열었다. 모두 23명이 참여했는데 꽤 많은 이들이 이곳에 정착했다. 양조장을 차린 이들, 앵무새 하우스를 만든 친구, 농촌 할머니의 이야기를 문서화하는 작업을 하는 작가, 승무원을 그만두고 일러스트 작가가 된 친구 등 다양하다. 이들은 농촌에서 살면서 농업의 영역을 확장한다. 이렇게 모든 이들이 ‘간지나는 농부’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게 뭐하농의 목표다. “우리 멋있는 거 알아달라는 마음에서 시작했는데 이젠 그냥 국민 모두를 농부로 만들자는 미래를 그리고 있어요. 회사원이면서도, 의사나 회계사이면서도 농부로 살 수 있는 ‘농부적 삶’을 관리해주는 회사가 되는 거죠.”
미래로 가는 농업
[한기홍이 만난 사람](8)산란계 자연순환농 김태현 “옥수수 사료 먹이면 건강한 달걀은 없다”(2022. 08. 12 15:34)
2022. 08. 12 15:34 사회
‘유나네자연숲농장’ 김태현(60) 대표를 사흘 연속 만나 8시간에 걸쳐 긴 인터뷰를 했다. 그는 경기도 고양시 원당동과 사리현동 소재 2곳의 농장에서 산란계 약 2300마리를 키운다. 닭을 키운 지 올해로 10년째, 그의 닭농사 철학은 집요하고 비범하며, 까다롭다. 결코 양보하지 않는 원칙 ‘16무(無) 계명’을 준수한다. 김태현 방식의 ‘자연순환 유기축산’이다. 김태현 대표는 “풀을 먹이지 않고 흙의 중요성을 도외시하는 일이 우리 축산의 큰 폐해”라고 지적했다. / 주미영 작가 유나네자연숲농장에서 생산하는 유정란은 콜레스테롤 수치가 낮다. 오메가6와 오메가3 지방산 비율이 최적 상태를 유지한다. 치유식이 필요한 다양한 질환의 환자에게 호평받는 달걀이다. 농장을 시작하면서부터 정기 배송 서비스를 채택하고, 정기구매 신청회원 5000여명에게 유정란을 공급하고 있다. 좋은 달걀을 얻는 법 큰 틀에서 그의 양계법은 흙과 풀, 미생물에 기반을 둔다. 닭의 본성에 가장 가까이 접근했을 때 좋은 달걀을 얻을 수 있다는 신념이다. ‘16무 계명’은 닭을 키울 때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그가 설정해 엄수하는 항목이다. 핵심은 ‘무창 밀폐식 사육시설’을 채택하지 않고, 공장에서 생산된 사료를 일절 먹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야간에 전등을 밝혀 닭에게 본성에 반하는 달걀 생산을 강요하지 않는다. 항생제나 성장촉진제, 소독약과 살충제도 물론 사용하지 않는다. 유정란을 생산하면서도 인공 수정 방식을 피한다. 흙과 풀, 미생물이 풍부한 환경에서 자라면 닭은 건강하다. 면역력이 강해지면서 항생제를 쓰지 않아도 질병에 시달리지 않는다. 냉난방시설 없이도 엄동설한 추위와 한여름 더위를 거뜬히 이겨낸다. 그가 직접 조제한 사료가 건강한 닭과 달걀을 만드는 가장 중요한 비결이다. 수입 옥수수와 콩이 들어간 공장 사료를 쓰지 않는다는 것이 대원칙인데, 그렇게 닭을 키운다는 것은 지난한 일이다. 김태현은 그 원칙을 이렇게 설명했다. “한국은 동물 사료용으로 연간 1000만t의 옥수수, 200만t의 콩을 수입한다. 거의 전부가 GMO(유전자변형 농수산물) 작물로 보면 된다. 공장 닭 사료에는 옥수수 60%, 콩 20%가 들어간다. 옥수수를 먹인 닭은 콜레스테롤과 지방의 성분 비율이 건강하지 않다. 그 닭이 낳은 알은 콜레스테롤이 과도하고 오메가3와 오메가6의 비율이 1 대 60까지 나온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옥수수는 필수지방산의 불균형이 심한 작물이다. 우리 농장 달걀을 충남대 연구팀에 분석을 의뢰해봤더니 불포화 지방산과 포화 지방산의 비율이 2 대 1이란 결과가 나왔다. 옥수수 사료를 먹여서는 절대 이런 수치가 나올 수 없다.” 반드시 풀을 먹여야 한다 그는 닭에게 16~20가지 정도의 재료가 들어간 자가 사료를 급여한다. 16가지 재료를 기본으로 하고, 계절별로 몇개씩 추가하는 메뉴다. 무공해 풀, 쌀겨, 미강, 산야초, 통현미, 통밀, 통보리, 청치, 건새우, 멸치, 고추씨, 비지, 황토, 과일, 숙성볏짚, 천일염 등이다. 유해물질이 없고, 불포화 지방산과 필수 영양소가 풍부하며, 유전자를 변형시키지 않은 식재료다. “가장 중요한 것은 풀이다. 풀을 먹인 닭은 지방 성분의 밸런스가 건강하고 영양이 풍부한 알을 낳는다. 옥수수 사료를 먹이지 않으면 노른자의 색깔이 진하지 않다. 그래서 반드시 풀을 먹여야 한다. 그래야 노른자의 색깔을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다. 옥수수 대신 풀을 먹은 닭이 낳은 달걀의 노른자는 진노랑이 아닌 레몬색에 가깝다. 그게 진짜다. 이런 오해가 생긴 데에는 유명 요리연구가와 셰프의 책임도 있다. TV에 나와 색이 진한 노른자를 좋은 달걀의 속성으로 소개하고 있다.” 노른자 색깔이 진할수록 좋은 달걀이라는 ‘속설’에 대한 김태현의 반론이다. 실상은 옥수수를 많이 먹은 닭이 노른자 색깔이 진한 달걀을 낳는다는 것이다. 노른자의 색깔은 ‘크산토필’이라는 황색 색소가 침잠돼 형성된 것이다. 일부 농가에서는 선명한 노른자색을 유지하기 위해 인공 착색제를 사료에 섞기도 한다. 옥수수 사료를 먹이지 않은 닭의 달걀은 노른자가 진노랑이 아니라 레몬색과 비슷한 연한 색을 띤다. / 주미영 작가 “철학으로 무장돼 있지 않으면 자연축산은 불가능하다. 우선 압도적인 노동량을 견뎌내지 못한다. 나는 ‘동물복지’라는 제도적 규정이나 의미 부여에 공감하지 않는다. 케이지(Cage·우리)만 걷어내면 동물복지 인증을 준다. 1평당 27마리 이하로만 키울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면 인증을 받을 수 있는 제도다. 1평당 27마리를 키우면 닭들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거의 없다. 공무원의 탁상공론으로 이런 제도가 생겼다. 우리 농장은 평당 8마리를 키우는 공간이 있지만, 동물복지 인증을 신청할 생각이 없다. 나는 ‘동물복지’보다 ‘윤리축산’이란 말을 쓴다. 동물복지는 인간 중심의 관점이고 윤리축산은 동물의 입장에서 축산을 바라보자는 것이다. 동물의 행복에 대한 인간의 책임의식에 주목하는 개념이다.” 동물의 행복에 대한 인간의 책임의식은 어떻게 표현되는 것일까. 김태현은 “동물도 시간의 흐름 안에 유장하게 존재한다는 것, 인간처럼 천명(天命)을 받아 낳고 자라고 죽는 존재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생후 30일 된 닭이 도축돼 프라이드용으로 팔리는 게 현실이다. 우리 농장의 기준으로 보면 생후 한 달은 아직 병아리에 불과한 시기다. 동물을 속성으로 키우려면 생명을 여러 방식으로 조작해야 한다. 생명에 대한 존중심은 차치하고, 생명이라는 인식조차 찾아보기 어려운 과정이다. 생명이 아니라 1개의 공산품으로 보는 관점이다. 인간이 닭을 고기로 먹으려면 최소한 1년 6개월은 지나야 한다고 본다. 닭은 1년이 지난 후에 골수가 차기 시작해 3년 정도가 돼야 그 과정이 마무리된다. 그래서 옛 어른들은 ‘3년 된 닭을 잡으면 100명이 먹을 떡국을 끓일 수 있다’고 했다. 자연이 동물에게 부여한 ‘생명의 세월’을 인간이 잔인하게 박탈하는 행위는 이제 멈춰야 한다.” 그는 옛 농가의 씨암탉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가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10년씩이나 키워가며 가족이나 다름없는 대접을 했다. 인공부화가 개발되기 이전에는 오로지 씨암탉의 포란(抱卵)에 의지해 번식이 이뤄졌다. 모든 암탉이 포란을 하고 병아리를 키울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취소성(就巢性·알을 품거나 병아리를 기르는 성질)이 강한 씨암탉은 영혼이 깃든 존재이기도 했다. 김태현은 “취소성이 강한 씨암탉은 유전에 의한 영향을 크게 받는데, 다른 배에서 난 병아리까지도 살뜰하게 돌보는 성정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그만의 ‘육추상자’ “병아리를 어떻게 키우느냐가 중요하다. 닭의 모든 특성이 병아리 시절 결정된다. 우선 먹이다. 첫날부터 3일간은 통현미만 먹인다. 가장 딱딱한 곡식을 막 부화한 병아리에게 먹이는 것이다. 처음에는 먹을까 말까 망설이다가 결국 먹게 된다. 먹을 게 그것밖에 없고, 앞으로도 생존하려면 이 거친 먹이를 먹어야 한다는 자각이 생기는 것이다. 통현미를 먹이면 병아리의 장이 튼튼해진다. 두께가 2배로, 길이가 2.5배로 늘어난다. 장의 길이가 길어지면 먹이를 흡수하는 능력이 좋아진다. 장의 두께는 면역력과 관련이 깊다. 4일째부터 1주일간은 대나무 잎을 먹인다. 아주 거친 먹이다. 이렇게 먹이면 병아리는 마음의 준비를 한다. 앞으로 거친 먹이를 먹으면서 성장해야 한다는 점을 본능적으로 알게 된다. 체질이 강해지는 것이다. 1주일 후에는 부드러운 풀을 준다. 풀을 좋아하는 닭으로 성장시키기 위한 방편이다.” 김태현 대표는 “국회가 축산법 개정을 통해 유기농 자연축산의 제도적 틀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주미영 작가 그는 병아리를 키울 때 자신만의 육추(병아리를 키움)상자를 활용한다. 육추상자 1개에는 약 150마리의 병아리가 들어간다. 통상 1년에 두 번, 이른 봄과 늦가을에 육추를 시작한다. 절대 난방을 하지 않는다. 바닥과 지붕은 볏짚으로, 벽면은 왕겨로 단열할 뿐이다. 150마리가 각자의 체온으로 육추상자를 따뜻하게 한다. 춥게 키워야 솜털도 많이 나고, 추위에 견디는 내성이 생긴다. 육추상자는 30도 이상의 경사면을 하루에 50번 이상 왕복하도록 고안했다. 이렇게 운동을 하면서 다리의 근력을 키운다. 병아리의 하체가 튼튼해지면 어미 닭이 된 후에도 면역력이 강해 좀처럼 병에 걸리지 않는다. 병아리 때부터 강하게 키우는 것이 그의 방식이다. “겨울에도 풀을 먹여야 한다. 그래서 수막하우스에서 호밀과 갓을 키운다. 건초를 먹인다고 홍보하는 농장주도 간혹 있지만 거짓말이다. 닭은 절대 마른 풀을 먹지 않는다. 우리 축산의 가장 큰 폐해가 몇가지 있다. 시멘트 바닥에서 동물을 키우고, 옥수수가 들어간 사료를 먹인다. 풀을 먹이지 않고 흙의 중요성을 도외시하는 일도 큰 폐해로 지적할 수 있다. 미생물의 가치를 무시하는 일 역시 우리 축산의 발전을 가로막는 근원적인 한계로 작용한다.” 그는 옥수수 대신 통밀과 통현미, 청치와 싸라기를 먹인다. 청치는 덜 여물어 껍질 부분에 엽록소가 남아 있는 푸른색의 쌀알을 지칭한다. 청미라고도 부른다. 싸라기는 정미를 할 때 부스러져 상품성이 없는 쌀이다. 쌀눈이 살아 있는 청치가 싸라기보다 닭에게 좋지만, 가격이 비싼 게 흠이다. 10년 전에 비해 가격이 두세 배 상승했지만 감수하고 먹일 수밖에 없는 곡물이다. “고추씨는 곡물은 아니지만 비타민이 많아 자주 먹이는 재료 중 하나다. 겨울에 고추씨를 먹이는 일은 삼간다. 고추씨를 먹이면 노른자가 짙어진다. 섞여 있는 고춧가루가 색소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연순환농법을 한다는 사람들도 겨울에는 풀 대신 고추씨를 먹이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풀이 귀하기 때문이다. 풀 먹이는 닭이 가장 중요한 브랜드 가치인데, 풀 대신 고추씨를 먹여서 되겠나. 그런 여지를 아예 잘라야 하기 때문에 겨울에는 고추씨를 가까이 두지 않는다.” 그가 산란계 농사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대목이 바로 미생물이다. 닭에게 프로바이오틱스, 즉 유익균을 먹여야 한다는 것이다. 미생물은 항생제를 대체하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토착 미생물을 그는 늘 배양한다. 농장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서식하는 미생물을 채취한다. 농장 근처 부엽토를 살짝 걷어내면 그 밑에 흰색 곰팡이가 눈에 띈다. 그게 미생물이다. 채취해서 양파망에 넣고 쌀뜨물, 김칫국물 등 미생물의 먹이를 첨가한다. 토착 미생물의 번식을 활성화하는 물질이다. 미생물이 번식한 깨끗한 물을 매일 아침 2시간 정도 닭에게 급여한다. “두부를 만들 때 생기는 비지도 좋은 미생물 사료다. 여기에 깻묵과 쌀겨를 투입하면 수분조절제 역할을 한다. 손으로 만지면 툭 하고 부스러질 정도가 된다. 공기를 완전히 차단하는 ‘혐기 발효’를 이용해 미생물을 배양하는 방식이다. 미생물을 먹이면 닭똥에서 냄새가 나지 않는다. 분변이 미생물에 의해 완전히 발효되기 때문에 악취 원인이 사라진다. 원래 닭이란 동물은 몸집이 작아 크고 작은 질병이 잦다. 사실상 항생제 없이 키우기 어렵다. 이때 미생물이 위대한 작용을 한다. 면역력을 키우고, 악취 발생을 억제하니 자연축산의 핵심 요소라고도 할 수 있다. 닭똥과 왕겨, 흙 등이 섞여 사육장 바닥에 쌓이면 그 자체로 더없이 훌륭한 유기농 퇴비가 된다. 1년에 두 번씩 걷어내 풀과 블루베리를 키우는 퇴비로 활용한다. 닭을 건강한 먹이로 키우고, 그 분변으로 다시 식물을 키우는 경축순환 농법이 성립된다.” 진정한 윤리축산 그는 유기축산업계가 위기를 맞고 있다고 생각한다. 초심을 잃고 편법에 의존하는 행태가 만연하고 있다는 것이다. 진정한 먹거리를 생산한다는 자부심보다 돈이 눈에 보이는 순간, 이 사업은 결국 망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김태현 대표는 자신이 직접 재배하거나 채취한 풀을 닭에게 매일 급여한다. / 주미영 작가 공장 사료를 섞어 먹인다는 풍문도 들린다. 작은 농장과 큰 농장을 병행하면서, 건강한 방식의 작은 농장을 앞세워 홍보하는 방식도 활용한다고 한다. 공장 사료를 먹인 달걀을 섞어 판매하기도 한다. 이렇게 소비자의 눈을 속이기 시작하면 장기적으로 이 업계에 희망이 없다고 그는 지적한다. 현행의 동물복지, 유기농 인증제도의 맹점에 대해서도 그는 이런 우려를 제기했다. “케이지에서만 키우지 않으면 다 동물복지라고 한다. 유기농 사료를 구매해 거래내역을 첨부하면 유기농으로 인증을 받는다. 역설적으로 유기농이 되려면 옥수수 사료를 먹여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게 과연 진정한 유기농이 될 수 있나. 철학을 지키면서 유기농 인증을 받으려면 방법은 하나다. 일단 유기농 옥수수 사료를 구매해 인증을 받고, 그 사료는 다 폐기하는 것이다. 무항생제 축산도 마찬가지다. 항생제를 투여하고 2주가 지나면 그 성분이 검출되지 않는다. 항생제를 쓰고 2주를 기다린 후 출하하면 무항생제 축산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그래서 난 동물복지나 유기농 인증에 관심이 없다. 진정한 윤리축산을 실천해야 하는데, 이를 뒷받침할 축산법의 개정이 그래서 필요하다. 국회가 유기농 자연축산의 제도적 틀을 만들어줘야 한다.” 김태현은 농협에서 오래 근무하다 퇴직한 후 크고 작은 사업에서 성공과 실패를 거듭했다. 유통업에 종사하며 연간 100억원대 매출을 올리며 큰돈을 벌기도 했다. 승승장구의 운세를 오래 유지하지는 못했다. 대신 자연순환의 건강한 축산농가를 일궈냈고, 딸 셋에 아들 하나를 잘 키운 유복한 가장이 되는 데는 성공했다. 뉴질랜드에 유학한 아들이 한국에 돌아와 지난해 말부터 양계장 일을 돕기 시작했다. “아들이 대를 이어 닭을 키워보겠다고 한다. 한 달 더 일을 시켜보고 그의 결정에 따르기로 했다. 경기도 연천에 세우고 있는 3000평 규모의 양계장 운영을 맡길 생각이다. 철학과 가치의 자각이 없으면 해낼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그 일을 하면서 본인이 행복을 느껴야 한다. 조만간 결론을 내릴 생각이다. 그것이 내 축산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이 될지도 모른다.”
한기홍이 만난 사람
[한기홍이 만난 사람](2)농부가 된 불문학자 이원복 “자연과 하나 된 삶에서 행복 얻었죠”(2022. 07. 01 14:51)
2022. 07. 01 14:51 사회
불문학자 이원복을 그가 운영하는 전북 남원시의 작은 농장에서 만났다. 6평 컨테이너 안에 그는 거주한다. 이곳에서 거의 완벽한 유기농으로 토마토를 재배하고 흑염소를 키운다. 이원복은 이미 학계에서 은퇴한 사람이다. 불문학자라는 타이틀 앞에 ‘전(前)’이라는 단어를 붙여야 온당할지 모른다. 책과 펜을 완전히 버리고, 농사를 짓기 시작한 지가 벌써 10년이 됐다. 사진/주미영 작가 투르니에 연구에 독보적 그는 원광대 불문학과, 외국어대 불어과 대학원을 거쳐 프랑스 프랑슈콩테대학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프랑스 현대문학의 거장 미셸 투르니에를 깊이 연구했다. ‘미셸 투르니에 ‘마왕’에 나타난 신화 연구’, ‘미셸 투르니에의 작품에 나타난 여행의 역할’ 등이 그의 대표 논문이다. 미셸 투르니에 연구에 관한 한 이원복은 독보적이다. 프랑스에서 공부할 때 이원복은 투르니에를 두 번이나 만나 인터뷰했다. 그가 쓴 논문에는 이 거장의 문학적·철학적 육성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귀국 후에는 투르니에의 대표작 <마왕>을 공들여 번역했다. 20세기 최고의 전쟁문학 중 하나로 평가받는 작품이다. 이원복은 이 작품의 원전을 100번 이상 읽었다고 한다. 이는 결코 허언이 아니다. 2004년 첫 번역서를 냈고, 2020년 민음사에서 개정판이 나왔다. 외국어대 석사 논문도 투르니에를 썼다. 번역할 때 그는 “매끄럽지 않아도 원문에 충실해야 한다”는 원칙을 지켰다. 그러기 위해서는 작품을 완전히 소화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무거운 주제의 작품은 원전을 최소 50번, 많으면 100번을 읽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대중소설은 6개월이면 충분할 수도 있지만 <마왕>처럼 철학적인 소설은 10년이 걸리기도 한다. 유학을 마치고 20권이 넘는 프랑스 문학 작품을 번역했다. 주요 번역서로는 <마왕> 외에도 <오페라의 유령>, <일곱 가지 이야기>, <좁은 문>, <환상여행>, <동방박사와 헤로데 대왕>, <샘과 덤불>, <로빈슨과 방드르디>, <렐리아>, <메테오르 1·2>, <지독한 사랑>, <바틀로 신부의 교육 사상>, <폴린 총장의 생애>, <비잔틴 살인사건> 등이 있다. “아내가 사업을 하다 사기를 당해 수억원대의 빚을 지게 됐다. 이 빚을 갚기 위해 강의와 번역을 무리하게 병행했다. 밤을 꼬박 새우면서 담배를 4갑씩이나 피웠다. 체력이 소진됐고, 몸도 마음도 피폐해졌다. 이렇게 살다가는 갑자기 죽을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이 몰려왔다. 또 교수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그 사회 역시 온갖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충돌했다. 대학의 공익은 종종 사익을 추구하는 사람에 의해 무너졌다. 그런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고통스러웠다. 그게 결단의 배경이 됐다. 빚은 최선을 다해 갚아나가되, 삶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2012년부터 농사꾼 생활 2012년부터 그는 완벽한 농사꾼이 됐다. 전북 진안군 오천리 먹뱅이마을을 시작으로, 남원시 보절면 괴양리 양촌마을을 거쳐 다시 남원 식정동에 정착했다. 650평 작은 규모의 유기농 전문농원 ‘바드렝이’를 운영하게 된 히스토리다. 바드렝이는 지금은 수몰된 전북 장수군 이원복의 고향마을 이름에서 따왔다. “진안에서 일할 때가 가장 힘들었다. 삽 한자루와 맨손으로 산을 개간했다. 3000평 정도의 땅을 개간해 오미자와 아로니아를 심었다. 무려 5년간이나 새벽 4시부터 밤 8시까지 하루 16시간을 일했다. 밤새 번역을 하듯 산을 개간해 농사를 지었으나 결국 실패했다. 타산이 맞지 않았다. 외지고 경사가 심한데다 도로가 없었다. 작물을 수확하면 혼자 등짐을 져서 날라야 했다. 생산비가 안 나오니까 결국 포기하고 남원에 오게 됐다. 어디서 농사를 짓든 유기농 원칙을 철저히 지키겠다는 맘에는 변함이 없다.” 이원복은 흑염소에게 인공사료를 일절 주지 않는다. 남원 들판과 산야에서 직접 벤 풀만 염소에게 먹인다. / 주미영 작가 바드렝이 농원에선 세 종류의 토마토를 재배한다. 흑토마토와 찰토마토, 대추방울토마토는 5월과 6월 두 달 동안만 생산해 판매한다. 무농약·무화학비료·무항생제 퇴비사용의 원칙을 지킨다. 흑염소는 70마리 정도 키운다. 방목은 못 하지만 곡물이 섞인 사료는 일절 먹이지 않는다. 대신 온갖 종류의 풀을 베어 먹이로 준다. 계절에 따라 변하는 남원 지방 풀의 계보가 있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버드렝이 농원의 흑염소는 다양한 풀의 성찬을 1년 내내 즐긴다. “버드나무잎은 염소가 제일 좋아하는 간식이다. 여름에는 칡넝쿨과 갈대, 가을에는 고구마대와 뽕잎을 준다. 이른 봄에는 이곳에서 ‘바래기’라고 부르는 부드러운 풀이 난다. 염소가 굉장히 좋아하는 먹이다. 염소가 먹는 풀은 보통 4월 10일 이후에 나온다. 5월 말부터 6월 말까지는 강변에서 자라는 갈대가 좋다. 강변 갈대는 산 갈대보다 수분이 많고 영양가가 높다. 버드나무 순은 4월 말에서 7월까지다. 그때는 칡넝쿨이 지천이다. 야생 뽕잎도 많다. 사람들이 뽕나무 농사를 짓다 포기한 것이 야생으로 자라게 된 것이다. 이 야생 뽕잎은 사람에게도 좋은 약재다. 쑥처럼 약성이 있는 풀도 염소에겐 아주 좋은 먹이다. 염소는 역시 나뭇잎을 제일 좋아한다. 땅에 떨어진 풀은 잘 먹지 않는다. 기린처럼 살아 있는 잎 따먹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먹이 경쟁이 치열하다. 아카시아잎이 참 좋은데 가시가 있어 잘 못 먹고, 대신 비슷한 종류인 소사시나무잎을 먹인다. 싸리나무잎도 정말 좋아하는 음식이다. 가을에는 인근 재배 농가에서 고구마순을 대여섯차례 실어온다. 일부는 말려서 하우스 2동에 산더미처럼 쌓아놓는다. 고구마줄기는 영양분이 많기 때문에 말린 것도 환장하고 먹는다. 겨울에는 생고구마와 고구마대 말린 것을 준다. 겨울엔 쌀겨도 먹는데, 조금씩만 줘야 한다. 겨울철의 보약은 역시 솔잎과 댓잎이다. 겨울에도 생물로 먹을 수 있는 것이 솔잎과 댓잎이다.” 이원복은 흑염소를 방목할 수 있는 너른 땅을 갖지 못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염소가 무엇을 먹고 자라느냐다. 설사 방목을 하더라도 사료를 주면 엄격한 의미의 유기농이 아니다. 토마토를 수확하는 시즌에는 4~5시간, 수확철이 지나면 하루의 대부분을 염소 풀을 확보하기 위해 보낸다. 겨울에 먹을 풀을 뜯어다 말려야 하기 때문이다. 남원 전역을 돌아다니며 풀을 베러다닌다. 토마토와 염소는 경축순환의 구조다. 토마토에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는 것처럼 흑염소에게는 단 한톨의 인공사료도 먹이지 않는다. 그러니까 염소 똥은 아주 건강한 토마토 퇴비의 원료가 된다. 염소가 먹다 남은 풀과 염소 똥을 섞어 한곳에 쌓아두면 그것이 숙성돼 토마토밭의 퇴비가 되는 구조다. 이원복이 키운 토마토는 농약과 비료를 뿌리지 않아 흙의 기운이 살아 있고, 맛을 보면 쫀득한 섬유질이 풍부하다. / 주미영 작가 이원복의 손은 상처를 입어 거친 모습이다. 그의 고통스러운 삶의 여정과 그 여정을 통해 깨달은 초월과 각성의 자취가 생생하게 느껴진다. / 주미영 작가 “시중에 나오는 토마토는 경매인, 중매인, 소매인을 거칠 때까지 유통과정이 3~4일 걸린다. 그래서 시퍼렇게 덜 익은 상태로 출하해야 한다. 우리 농장 토마토는 소비자와 직거래를 하기 때문에 80% 정도 숙성된 상태로 보낸다. 밭에서 익은 것과 유통 중에 익은 것은 맛과 향에서 큰 차이가 난다. 토마토는 땅의 기운을 받고 커야 한다. 시장에 나오는 토마토가 화학비료로 재배되는 건 문제다. 땅의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고, 섬유질이 거의 없다. 며칠만 지나도 금방 물러진다. 토마토뿐 아니라 다른 과일도 비슷하게 키운다. 대부분 당도를 높이는 비료를 준다. 참외나 수박을 먹어보면 자연스러운 당도가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정부 정책이 기업형 대형 농가를 집중 지원하는 체제로 바뀐 지 오래다. 작은 규모로 건강한 과일이나 채소 농사를 짓기란 참 어렵다. 자급자족하는 정도에 머문다. 정부는 시장에 농산물을 충분하게 공급하고, 농업의 국제 경쟁력 강화를 위한 조치라고 설명한다. 초대형 유리 온실을 짓거나 자동화 시스템을 건설하려면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 수십억원에 달하는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주체는 대기업뿐이다. 이런 큰 기업들은 화학비료를 쓰지 않고는 운영할 수 없다. 어마어마한 양의 자연 퇴비를 누가 만들 수 있겠는가. “우리 농장은 특별히 홍보나 광고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토마토는 1년 중 두 달만 출하하기 때문에 물량이 부족하다. 주문을 하고 열흘에서 길게는 보름까지 택배를 기다리는 고객이 생긴다. 그들에게 송구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남원 사람들은 우리 농장이 흑염소를 어떻게 키우는지 잘 안다. 자연에서 자란 풀을 먹고 자라면 염소의 약성이 강해진다. 건강원 등에 유통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 토마토 출하를 5~6월에 한정하는 이유는 100% 유기농으로 키운다는 자부심 때문이다. 7월부터는 병충해가 심해지기 때문에 농약을 뿌리지 않으면 키우기 어렵다. 새벽 3~4시가 기상 시간이다. 1년 내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고생을 하지만 1년 순수입은 고작 1200만~1500만원이다. “농부의 삶으로 ‘영성’ 성장” 매출 중심으로만 생각하면 이렇게 경영할 수 없다. 유기농으로서의 자부심 때문만이 아니다. 이원복은 자연과 하나가 돼 노동하는 삶 안에서 구원을 받아 행복해졌다고 생각한다. 특별히 믿는 종교는 없지만, 그는 10년에 걸친 농부로서의 삶을 통해 자신의 ‘영성’이 성장했다고 믿는다. 이원복은 표정부터가 농부의 얼굴이다. 불문학자로서의 과거 자신의 정체성에 조금도 연연하지 않는다. 그것이 농사를 지으며 그가 획득한 삶의 새로운 지평이다. / 주미영 작가 “지난해 3월에는 가슴의 차크라가 활짝 열리는 진아(眞我) 체험을 했다. 가슴에 맺혔던 온갖 원한과 증오의 감정이 일순간에 다 사라졌다. 황홀감이 몰려왔다. 천국처럼 아름다운 그 느낌이 2주간이나 지속됐다. 삶을 대하는 태도가 이전과 확연히 달라졌다. 자연과 하나가 되는 삶을 오래 유지한 결과, 하늘이 내린 선물이 아닌가 해석한다.” 매년 2월 10일경 그는 토마토 모종을 심는다. 모종을 심기 전 두 달에 걸쳐 밭고랑을 만든다. 퇴비를 손수레로 옮겨서 뿌리고 삽으로 밭의 이랑과 고랑을 만든다. 기계를 쓰면 사나흘이면 족한 작업을 두 달이나 들여 손으로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기계에서 나오는 소리가 싫다. 그가 시골 생활을 사랑하는 이유 중 하나는 온갖 소음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손으로 직접 밭을 일궈야 흙과 같이 호흡할 수 있다. 그 느낌과 감촉이 오래 유지돼야 토마토를 더 잘 키울 수 있다고 그는 믿는다. 앞에서 그가 말한 진아 체험, 영성의 개발과도 관련이 있는 철학이자 가치관이다. 어린 시절부터 가난을 달고 살았다. 부친의 논과 밭이 홍수로 쑥대밭이 되면서 시작된 고통이다.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프랑스 유학 시기까지 구두닦이 빼고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다. 연탄 배달은 외대 대학원 시절까지 이어졌다. 프랑스에서는 학교 구내식당에서 접시를 닦거나, 농장에서 포도 따기 아르바이트를 했다. 이원복이 번역한 미셸 투르니에의 소설 / 민음사 가난이 가져다준 습관 “1992년 단돈 200만원을 들고 유학길에 올랐다. 프랑스 대학은 등록금이 없기 때문에 가능했다. 가난 때문에 ‘삶에 대한 허무감’으로 내내 시달렸다. 어린 시절부터 삶과 죽음의 문제라든가, 인간의 구원이라든가, 영적인 완성 등의 문제를 두고 골똘하게 생각하는 습관이 생겼다. 학부 시절 장 자크 루소에 빠져들었고, 철학적 지향이 강한 미셸 투르니에한테 심취했던 이유도 그런 성향과 관련이 있다. 허무감을 극복하려면 정말 열심히 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프랑스 유학 중 한국인 유학생들이 자동차를 몰고 컴퓨터를 사용할 때, 나는 자전거를 타고 타자기로 글을 썼다. 이 타자기로 몇만페이지 분량의 리포트와 논문을 썼다. 프랑스어를 완벽하게 배우고 박사학위를 받을 때까지 4년 반이 걸렸다. 보통 10년은 족히 걸리는 과정이다. 그야말로 피와 땀으로 버텼던 세월이다.” 이원복은 프랑슈콩테대학이 있는 프랑스 동부 도시 브장송을 사랑했다. 너무도 고요하고 아름다운 도시다. 천혜의 녹지공간으로 프랑스 최초의 녹색 도시로 꼽힌다. 그는 그곳에서 대체로 행복했다. 거대한 규모의 셰루 숲을 즐겼고, 낙엽 식물로 뒤덮인 수많은 산책로를 걸었다. 지금도 그는 다양한 의견이 자유롭게 유통되는 프랑스 사회의 건강성을 높이 평가한다. “프랑스 사회의 강점은 토론문화에 있다. 합리적·이성적 사고의 바탕 위에서 누구나 자유로운 토론에 참여한다. 다양한 의견을 종합하니까 좋은 결론이 도출된다. 사고가 유연하고 개방적이다. 세계의 어떤 문화도 우수하면 자기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파리가 세계 문화예술의 용광로가 됐다. 그만큼 깨어 있는 시민이 많다는 얘기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면서도 이원복은 항상 삶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하고 근원적인지를 찾는다. 그래서 ‘명상’이라는 말을 자주 쓰지만 그가 참선이나 좌선에 몰두했다는 뜻은 아니다. 그에게 명상의 진실한 형식은 자연 안에서 노동을 할 때 나타난다. 그가 보기에 ‘탐진치’를 내려놓지 못하면 이 세계는 황량한 혹성에 불과하다. 이제 두 달간의 토마토 수확기가 끝났다. 지금은 흑염소를 위한 시간이다. 그들의 먹이를 구하기 위해 남원 전역을 돌아다니는 일과가 남았다. 남은 토마토로 즙을 만들고, 겨울에 염소들이 일용할 풀 양식을 건조해야 한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와 우주가 하나가 되면 엄청난 에너지와 사랑, 빛과 생명력이 밀려들어온다. 농사를 지으며 그 행복을 알게 됐다. 그것만 알면 삶은 지상낙원이다. 귀농 후 단 한 번도 문을 잠근 적이 없다. 좋은 삶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돈과 물질은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
한기홍이 만난 사람
[우정이야기]자연으로 돌아온 여우와 따오기(2022. 06. 10 14:05)
2022. 06. 10 14:05 경제
짙은 갈색 혹은 붉은색 털. 굴을 파거나 누군가 파놓은 굴을 빼앗아 생활하는 갯과 포유류. 전래동화나 옛이야기에 많이 등장하는, 지금은 한반도에서 보기 어려운 동물. 멸종위기 야생생물로 지정된 여우 이야기다. 우정사업본부가 발행한 ‘자연으로 돌아온 멸종위기 동물’ 기념우표 / 우정사업본부 제공 여우는 설치류나 곤충, 열매를 가리지 않고 먹는다. 잡식성이다. 쥐, 참새 등 농작물에 해를 끼치는 동물을 주로 잡아먹어 농경사회의 인간에게 도움을 줬다. 여우의 먹이 중 설치류가 40%를 차지한다. 주요 서식지 파괴와 1960년대 시작된 쥐잡기 운동으로 멸종에 이른 것으로 추정된다. 쥐잡기 운동 이후 여우의 주요 먹이인 쥐가 줄어들었다. 쥐약 먹은 쥐를 여우가 잡아먹으면서 개체수 감소로 이어졌다고 한다. 2004년 강원 양구에서 수컷 여우의 사체가 발견되며 생존 가능성을 확인했다. 정부는 2012년부터 소백산국립공원에서 여우 복원 사업을 벌이고 있다. 2019~2021년에 자연에 방사한 여우만 98마리였다. 현재 경북 영주시 여우생태관찰원에는 여우 90여마리가 살고 있다. 야생으로 나가기 전 적응 훈련을 받는 중이다. 우정사업본부는 지난 6월 3일 멸종위기 야생동물을 주제로 한 ‘자연으로 돌아온 멸종위기 동물’ 기념우표 64만장을 발행했다. 멸종위기 동물의 복원과 서식지 보존 사업을 알리고 자연과 환경에 대한 관심을 높이려는 취지에서 내놓은 기념우표다. 기념우표에서는 여우와 함께 따오기도 등장한다. 천연기념물 제198호인 따오기는 황새목 저어샛과에 속한다. 따오기는 주로 논이나 계곡의 나무 위 가지에 둥지를 만들어 생활한다. 번식기인 3월부터 6월까지 머리, 목, 등판, 가슴 부위가 회색을 띤다. 10월부터는 몸 전체가 옅은 귤색으로 바뀐다. 멀리서는 흰색처럼 보인다. 따오기의 색 변화는 분비물을 날개에 문질러 착색되는 바람에 나타난다고 한다. 따오기는 한반도에 겨울이면 찾아오는 철새였다. 1979년 비무장지대에서 관찰된 이후 40여년간 보이지 않았다. 무분별한 포획, 환경 오염, 먹이 감소 등을 멸종위기에 처한 원인으로 꼽는다. 기후 온난화와 함께 습지가 메마르면서 따오기의 분포 면적도 줄어들었다. 따오기는 주로 습지에서 개구리 등을 먹이로 삼는다. 따오기 복원은 2008년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2008년 중국에서 2003년생 양저우(수)와 룽팅(암) 따오기 한쌍을 데려왔다. 경남 창녕군 우포따오기복원센터에서 복원을 시도했다. 2013년에는 중국에서 추가로 수컷 따오기 2마리를 데려왔다. 이후 따오기가 산란을 하면서 개체수가 400마리를 넘기도 했다. 정부는 2019년 5월 우포따오기복원센터에서 야생 방사 행사를 열었다. 따오기 40마리를 방사했다. 2020년 5월에도 따오기 40마리를 추가로 방사했다. 정부는 향후 적정 개체수만 관리하고 추가 방사를 이어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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