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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을 생각한다]언론의 ‘조회 수 장사’(2023. 10. 13 11:05)
- 2023. 10. 13 11:05 오피니언
- 언론에 따르면 이달 말 용인 장애아동 학대 사건의 4차 공판이 예정돼 있다. 공판 직후 기사가 쏟아질 것이고, 작은 시민단체가 혐오의 쓰나미를 막아내긴 힘들겠지만 그래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해보기로 했다. 지난 10월 6일 우리는 19개 언론사를 아동학대처벌법 위반으로 고발했다. 아동학대처벌법 제35조 제2항에 따르면 가해 행위자, 피해 아동, 신고인의 신원을 특정할 수 있는 인적 사항을 보도하는 것은 명백한 불법으로 이를 어길 시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피해 아동이 다닌 학교, 학년 등 인적 사항뿐 아니라 신고인이자 피해 아동의 아빠인 유명 웹툰 작가의 이름과 사진을 보도하는 것 역시 범죄행위다.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10월 아동학대처벌법 제35조 제2항 중 아동학대 행위자 보도 금지 조항에 대한 위헌 제청(2021헌가4)에 대해 만장일치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헌재 결정문은 “한편 피해 아동 측이 자발적으로 제보해 보도하는 경우에는 피해 아동 보호의 필요성이 축소되거나 그 목적이 이미 달성돼 아동학대 행위자에 대한 식별정보 보도 금지의 필요성이 없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아동학대 행위자에 대한 식별정보 보도 금지는 아동학대 및 2차 피해로부터 피해 아동을 특별히 보호해 이들의 건강한 성장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므로 그 보도 여부를 전적으로 피해 아동 측의 의사에 맡길 수는 없다”라고 판시했다. 즉 판결 취지에 따라 신고인 자신이 입장문을 냈더라도 언론은 그의 실명을 보도할 수 없다. 다수 언론이 장애아동을 마치 성범죄자처럼 묘사하고, 학대 피해 아동의 인적 사항을 공공연히 보도하고, 댓글창에는 장애인 혐오가 난무하는 상황이 두 달 넘게 지속됐다. 조회 수 장사에 급급한 언론은 자정 능력을 완전히 상실했다. 이런 보도 행태가 장애인을 혐오하고 분리·배제하려는 구시대적 퇴행을 이끌었다. 국가가 장애인의 교육권을 보장하지 않는 현실은 은폐되고, 장애인이 비장애인의 교육권을 침해하는 존재로 그려지도록 조장했다. 세상에는 문제 교사도 있고 문제 학부모도 있는 게 당연한데, 학부모가 정당한 문제 제기조차 못 할 정도로 가스라이팅하고, 특히 장애학생과 그 가족들을 사회에서 고립시키고 위축시켰다. 이게 언론인의 소명인가? 모든 학생·학부모·교직원을 대상으로 장애 인식 교육을 하지 않고, 전문인력·보조인력도 턱없이 부족한 엉터리 통합교육 시스템이 빚어낸 사건으로 접근해도 시원찮을 판에 학대 피해자인 장애아동에게 ‘본능에 충실’하다거나 ‘사타구니, 바지 훌러덩’이라니 이런 표현이 아동에 대한 정서학대라는 생각은 안 들었나? 한국기자협회 ‘인권보도준칙’은 “장애인을 위한 제도 개선과 사회의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항상 노력한다”라고 명시한다. 대한민국 언론인은 자신들이 정한 준칙과 거꾸로 가고 있다. 당신들이 왜 그러는지, 계속 그렇게 살 것인지 자문해 보라.
- 오늘을 생각한다
- 윤건영 “윤 정부, 안보장사로 제 발등 찍고 있다”(2022. 12. 09 11:27)
- 2022. 12. 09 11:27 정치
- ㆍ‘문재인 전 대통령 복심’ 윤건영 의원 심층 인터뷰 ‘정황 대 정황’, ‘추정 대 추정’의 싸움이다. 더 이상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인간의 ‘판단’이 사법부 앞에 섰다. 해양수산부 공무원 고 이대준씨가 바다에 빠진 이유, 북한에서 발견돼 살해된 이유 등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무엇 하나 확실치 않은 상황에서 속도를 내는 것은 ‘구속 수사’로 대표되는 처벌만이 유일하다. 이마저도 사건의 본질인 ‘왜 바다에 빠졌나’가 아닌 ‘직권남용’, ‘허위공문서 작성’ 등이 쟁점이다. 사진/박민규 선임기자 이른바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은 정황 정보를 바탕으로 누가 더 그럴싸한 추정을 하느냐의 대결이 됐다. 같은 정보를 갖고도 전혀 다른 판단을 내린 문재인 정부, 윤석열 정부의 격돌은 사건의 본질을 주변화한다. 이 과정에서 국방부, 해양경찰청 등은 하루아침에 기존 입장을 번복했다. 어느 쪽 판단이 맞느냐와 별개로 이들 기관의 태도는 ‘영혼 없는 공무원’, ‘정치화된 사건’의 전형을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온다. 사건이 정쟁화된 만큼 진실보다 주목받는 것은 전·현직 정부 간 자존심 대결이다. 확실치 않은 사실관계는 양쪽 모두를 겨누는 칼이다. ‘오판 가능성’과 ‘틀렸다고 입증할 수 없는 판단을 처벌할 수 있느냐’의 싸움이 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검찰 수사 정보는 쏟아지고 있다. 진실처럼 통용되는 검찰의 ‘생각’을 두고 전임 정부 관계자들은 방어권을 위협받는다고 주장한다. 특히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검찰 수사에 대한 문재인 전 대통령의 입장문을 대독하며 싸움의 최전선에 섰다. 윤 의원은 문재인 정부에서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지냈다. 문재인 정부의 운영방식과 국정철학을 잘 이해하고 있는 만큼 그에게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에 관해 물었다. 지난 12월 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난 그는 “윤석열 정부가 제 발등을 찍고 있다”고 말했다. -유족 측은 ‘문 전 대통령 스스로 ‘사실을 명확하게 규명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고 했는데 왜 해경이 월북을 단정해서 발표했느냐’고 묻는다. 당시 정부는 월북 판단을 내릴 수 있을 만큼 유의미한 정보가 있었던 것이 맞나. “우선 판단의 근거가 되는 사실관계가 2020년이나 지금이나 바뀐 게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모든 것이 같은데 결론만 바뀌었다. 당시 정부는 월북이라고 단정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월북 추정’ 판단을 내린다고 했다. 그렇다면 당시 판단 근거가 된 정보가 무엇이냐가 쟁점이 된다. 첫째는 국방부 SI(특수정보) 첩보에 ‘월북’이라는 단어가 두 번 이상 등장했다. 질문과 답변 과정에서 나온다. 둘째는 이씨가 구명조끼를 입고 발견됐다. 셋째는 실종자가 연평도 주변해역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넷째는 표류 예측 시스템 분석 결과가 있었다. 이러한 정보들을 취합해 가장 합리적 판단을 구했고, 그것이 월북 추정이었다.” -판단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뒤집혔다. 정부, 여당, 검찰 모두 오판 가능성을 의심하는데. “당시 국민의힘도 월북 추정을 인정했다. 왜 이제 와서 입장을 바꾸는지 아무런 해명이 없다. 정부가 판단을 뒤집은 것은 새 정부 출범 후 바꾼 해경과 국방부의 입장에 근거한다. 해경에 가서 무슨 근거로 판단을 번복했는지 따졌다. 내부 보고서가 있을 테니 그 보고서를 열람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런 보고서는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국방부에 가서도 ‘왜 판단을 번복했느냐. 그럼 당시 SI 첩보에 대한 분석까지도 번복하는 것이냐’고 물었다. 국방부는 ‘아니다. 당시 판단을 존중한다’고 답변했다. 해경과 국방부 모두 당시 판단을 뒤집을 만한 근거를 찾은 것이 아닌데 결론만 바뀌었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했다는 점 외에 사실관계가 변한 건 아무것도 없다.” -월북 추정 판단과 공표가 너무 빨랐던 것은 아닌가. “만약 정부가 획득한 정보를 감추고 아무런 판단도 하지 않은 채 시간을 끌었다고 생각해보라. 아마 더 큰 문제가 생겼을 것이다. 당시 정부는 사건과 관련된 정보를 투명하게 밝히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심지어 SI 첩보의 주요 내용까지 국회에서 공개했다. 뒤에 주한미군 측에서 너무 많은 SI 정보를 노출하는 것 아니냐고 항의했다고 들었다. 획득한 정보와 판단을 공개하지 않았다면 아마 더 큰 문제로 삼았을 것이다.” -그동안 유가족 물음에 크게 대응하지 않았다. 반박 논리가 빈약하기 때문이라는 의심도 있는데. “우선 유가족 관련해서는 존중의 의미였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다. 정부가 국민과 싸울 수는 없지 않나. 그런데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이 안보사항을 정쟁에 이용하기 시작했다. 자기 발등 찍는 일이다. SI 첩보같이 한국에서 개입할 수 없는 정보에서 ‘월북’ 이야기가 나오는데 검찰은 싹 무시하고 ‘실족’이라고 한다. 그게 어떻게 정상적인 판단인가. ‘선을 넘었기 때문에’ 대응에 나선 것이다.” -현 정부 들어서 판단이 뒤집힌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용산 대통령실이 뒤에 있다고 생각한다.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인 5월 말, 대통령실에서 참석 대상도 아닌 해양경찰청장까지 불러 국가안전보장(NSC) 회의를 했다. 이때 판단을 뒤집기로 결정했다고 생각한다. 해경이 입장 번복을 발표한 다음 날 감사원에서 사건 감사에 착수했다. 동시에 국정원은 전직 국정원장들을 고발하고 검찰은 기다렸다는 듯이 강제수사에 나섰다. 일련의 움직임에 배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결국 대통령실이다.”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이 구속됐다. 허위 월북 근거를 국방부 장관에게 전달했다거나 감청정보 등을 군사통합정보처리체계(MIMS·밈스)에서 삭제하게 지시했다는 등의 혐의를 받는다. 합리적 판단을 한 것이라면 왜 삭제가 필요한가. “전제가 잘못됐다. 삭제된 것이 없다. 이미 이종섭 국방부 장관이 국회에 나와 몇 번이나 이야기하지 않았나.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정보들은 모두 군이 가지고 있고,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볼 수 있다. 삭제된 것이 없다는 의미다. 보안 유지 차원에서 배포선을 통제한 것을 두고 정보를 삭제했다고 한다. 예를 들어, 민감한 정보를 10군데 배포한 것이 많으니까 7군데는 배포하지 말라고 한 것이 정보 삭제 지시라는 식이다. 핵심 정보인 SI 첩보가 단 하나도 삭제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는데 대체 무슨 정보가 삭제됐다는 것인가.”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의 최종결정권자로 지목된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지난 12월 2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 이준헌 기자 -정보가 알려진 상황이라면 뒤늦게 통제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나. “그렇지 않다. 보안 업무를 담당하는 분야에선 당연히 필요한 조치다. 전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걸 문제삼는다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지 말라는 얘기다.” -‘문재인 정부가 대북정책 성과를 지키기 위해 사건을 은폐했다’는 주장도 나오는데. “월북이라는 발표를 해서 문재인 정부가 얻을 게 무엇인지 모르겠다. 오히려 월북 추정 판단은 북한과의 관계를 더욱 악화시키는 조치다. 월북 의사를 밝힌 사람을 살해했다. 이건 누구든 규탄할 수밖에 없는 극악무도한 행위 아닌가. 북한의 잔혹함을 드러내는 일을 공개했는데 오히려 북한 눈치를 봐서,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위해 월북 추정 판단을 했다고 한다.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사건의 핵심쟁점은 ‘월북이 아니면 무엇이냐’다. 검찰은 ‘실족’ 가능성을 언급한다. 사실 문재인 정부가 ‘월북 추정’ 판단을 한 것이나 검찰이 ‘실족 추정’ 판단을 하는 것이나 맥락은 같다. 검찰은 주장이 틀려도 책임은 안 진다. 반면 전 정부는 책임을 지게 됐는데. “검찰 수사와 구속영장 청구는 문재인 정부의 주요 인사들에 대한 ‘모욕주기’라고 생각한다. 백번 양보해 월북이 아니라면 이게 무엇인지를 밝혀야 한다. 실족에 의한 건지 극단적 선택인지 무엇인가 이유가 있을 것 아닌가. 문재인 정부는 구명조끼를 입고 실족을 하는 것이 어색하고, 첩보를 통해 월북이라는 단어를 확인했다고 판단 근거를 밝히지 않았나. 검찰은 이러한 사실을 어떻게 반박했고 또 실족에 대해서는 어떤 합리적 근거를 제시했나.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정치보복 수사라고 하는 것이다.” -검찰 수사로 정책 추진 결과에 따른 정치적 책임과 사법적 처벌이 구분이 안 된다는 지적도 있다. 앞으로 국가기관이 정책을 추진할 땐 검찰 확인을 받고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인데. “검찰 공화국이 문제다. 검찰 주요 인사들이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 대통령은 검찰총장처럼 국정을 운영한다. 첩보나 안보에 대한 정책적 판단을 정치보복에 이용하면 앞으로 대한민국에 제대로 된 첩보 분석은 없을 것이다. 실력 있는 공무원이 많다. 그분들이 서 전 실장 구속을 보고 제대로 분석을 하겠나. 같은 정보를 가지고 한쪽은 월북이라고 하고 한쪽은 실족이라고 한다. 이를 판단했더니 구속 대상이라고 한다. 아무리 뛰어난 정보분석가라고 해도 정부가 바뀐 뒤 걸면 걸리지 않겠나. ‘검찰이 선을 넘고 있다’고 지적한 건 바로 이런 우려 때문이다.” -결국 전임 정부 인사가 구속됐다. “황당하다. 검찰과 법원이 증거인멸이 우려돼 영장을 청구하고 발부했다고 하는데 그 증거인멸 우려 사유가 서훈 전 실장의 반박 기자회견이다. 지금 윤석열 정부 검찰과 감사원은 공권력을 총동원해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하지 않나. 그럼 이 상황에서 서 전 실장은 가만히 있으라는 것인가. 되묻고 싶다. 억울하다고 반박한 기자회견이 구속 사유가 되다니 코미디다.” -국민 생명권이 침해됐기 때문에 사법의 영역이 맞다는 주장도 있다. “우리 국민이 돌아가신 것은 그 자체로 굉장히 슬프고 안타깝다. 다만 당시 상황을 보면 피격은 북한에서 벌어진 일이다. 우리 집 들여다보듯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첩보라는 것은 쓸 만한 정보로 확인될 때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걸린다. 사건이 발생한 것은 2020년 9월 22일이었다. 판단이 가능한 정보형태로 보고가 올라온 것은 9월 24일이었다. 정부가 국민 생명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데는 동의한다. 해당 논리대로라면 한국의 수도 서울 이태원에서 158명이나 돌아가신 10·29 참사는 왜 동일 잣대에 놓지 않나. 해당 사안에 대해 국무총리, 행안부 장관, 대통령, 심지어 용산구청장도 빠져나가려고 한다. 남의 죄는 없는 것도 만들고, 자기 죄는 있는 것도 가리고 있는 게 윤석열 정부 아닌가.” -유족 측은 ‘문 대통령이 모든 과정을 투명하게 진행하겠다고 약속해놓고, 퇴임하면서 관련 정보를 대통령 기록물로 지정했다’고도 지적한다. 어떻게 생각하나. “대통령 기록물은 퇴임할 때 전부 대통령 기록관으로 넘겨야 한다. 이는 법으로 정해져 있다. 다만 기록을 넘길 때 외교안보와 관련된 것은 지정기록물로 만들어 일정 기간 동안 열람할 수 없게 한다. 그래서 해당 사건 관련 내용도 지정기록물이 된 것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지정기록물이냐, 아니냐가 아니다. 그 기록물을 지금 전부 누가 가지고 있나. 윤석열 정부가 가지고 있다. 보고 싶으면 정부가 그냥 볼 수 있다. 너무 답답한 게 기록을 못 본다고 하는데 이 사건 같은 경우에는 청와대가 만든 기록이 거의 없다. 국방부·해경·국정원 등 대부분 각 부처에서 만든 기록이다. 심지어 그 자료들은 대통령 지정기록물도 아니고 모두 각 부처에 있다. 필요하면 정부에서 다 들여다보고, 실제로 그렇게 하고도 있다. 무슨 기록을 어떻게 숨겼다는 것인가.”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은폐 혐의를 받는 서욱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 10월 21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마치고 법원을 나서던 중 유족 이래진씨의 항의를 받고 있다. / 성동훈 기자 -북한과 관련된 기록물 이야기는 다른 것도 많은데. “비슷한 이야기로 국민의힘에서 2018년 도보다리 회담에서 문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USB를 준 것을 두고 원전 관련 내용이 담겨 있었다고 공개하라고 한다. USB 속의 그 자료는 통일부에서 만들었다. 문재인 정부에게 묻지 말고, 권영세 통일부 장관에게 연락해 공개하라고 하면 된다. 제발 좀 그 USB 안에 뭐가 있었는지 통일부가 공개해라. 원전에 원자라도 나오면 나도 책임지겠다. 대신 안 나오면 국민의힘에서 음모론을 퍼뜨리는 분들이 책임져야 한다.” -가장 주목받는 것은 문 전 대통령으로까지 수사가 향할 것인가다. 어떻게 보나. “윤석열 정부는 처음부터 문재인 정부를 괴롭히고 모욕 주기 위해 사건을 기획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 장·차관 23명이 수사를 받고 있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의 정책 사항 전반을 뒤지고 있다. 전방위 수사는 대통령실의 기획 없이는 불가능하다. 결국 수사는 문 전 대통령을 향할 것이다. 검찰이 잘 쓰는 표현 중 하나가 ‘수사는 살아 있는 생명’이라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행한 정책 사안을 전방위로 들여다보는 것이 검찰이 할 일이 없어서이겠나. 의도한 바가 있다고 본다.” -진보에서 보수로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북정책에 대한 수사가 있었다. 민주당이 대북화해 정책을 추진하지 않았다면 북한을 둘러싼 정쟁구도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나. 남북 화해협력을 추진한 이유는 무엇인가.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평화는 공기와 같아 평상시에는 그 중요성을 모른다. 만약 남북 간 긴장이 격화되고 국지전이 발생한다고 생각해보라. 대한민국 경제가 멈추고 그 피해는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민주당이 평화를 지키자, 한반도를 화해협력으로 끌고 가자고 자꾸 말씀드리는 것은 힘이 없거나 북한이 좋아서가 아니다. 그게 우리의 생존에 더욱 이롭기 때문이다. 역대 보수정부도 이를 알았다. 박정희, 노태우, 김영삼 정부 때 모두 대북정책 관련 일정한 성과가 있었다. 심지어 이명박 정부도 북한과의 접촉을 시도하지 않았나. 아무것도 안 하고 싸우기만 하는 건 윤석열 정부가 유일하다.” -문 전 대통령이 따로 언급한 건 없나. 윤 대통령은 사안마다 ‘전임 정부 사례’와 곧잘 비교하는데. “윤 대통령은 자격지심이 있는 것 같다. 전임 정부와 그만 좀 비교하고 윤석열 정부 일에만 집중하면 좋겠다. 대통령이 자꾸 과거와 싸우려고 하면 어떡하나. 미래를 이야기해야지. 문 전 대통령은 특별히 말씀하신 것이 없다. 다만 옆에서 지켜볼 때 정치를 떠나 소박하게 살고 싶어하신다는 건 느껴진다. 윤석열 정부가 그만 좀 불러내면 좋겠다. -문 전 대통령의 측근으로 알려지다 보니 전임 정부 관련 논란에서만 주목받는 측면도 있다. 아쉽지 않나. “지역 국회의원으로서 맡은 역할과 일은 한치도 소홀함 없이 하려고 한다. 다만 전임 정부에 대한 무도한 정치보복에 대해서는 이제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하는 상황이 왔다’고 생각한다. 단호하게 맞설 수밖에 없다. 객관적 정보, 상황을 보고 국민께서 판단해주시리라 믿는다.”
- 특집
- [문화캘린더]소리꾼 장사익이 돌아온다(2022. 08. 26 15:00)
- 2022. 08. 26 15:00 문화/과학
- ㆍ국악 장사익 소리판 ‘사람이 사람을 만나’ 국악 장사익 소리판 ‘사람이 사람을 만나’ 일시 10월 5일 장소 서울 세종문화회관 관람료 R석 15만원, S석 12만원, A석 8만원, B석 6만원, C석 4만원 코로나19로 만나볼 수 없었던 한국의 소리를 다시 들어볼 수 있게 됐다. 거리 두기, 집합금지 등으로 잠시 멈췄던 장사익이 4년 만에 전국투어 콘서트를 시작한다. 오는 10월 서울 세종문화회관 공연이 첫 시작이다. 공연 주제는 ‘사람이 사람을 만나’로 정했다. 마종기 시인의 ‘우화와 강’ 속 한 구절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 두 사람 사이에 물길이 튼다”에서 착안했다. 서로 부대끼며 슬픔과 기쁨, 용기와 믿음을 나누는 것이 사람살이의 본질임에도 코로나19로 만날 수 없었던 시간을 아쉬워하고 만남의 의미를 다시 되새겨보자는 의미다. 소리꾼 장사익은 1994년에 45세로 데뷔해 가요, 국악, 재즈를 넘나들며 자신의 재능을 발산해왔다. 특히 삶의 깊이가 느껴지는 아름다운 시에 곡을 붙여 장사익의 소리는 단순한 노래가 아닌 인생을 말하는 것 같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제로 김영랑, 김춘수, 서정주, 윤동주, 정호승, 김초혜, 허영자 등의 시인부터 무명 시인의 시에 이르기까지 삶의 철학을 담고 있는 시를 노래로 만들었다. 이번 공연에서는 시를 노래한 신곡을 추가했다. 서정춘 시인의 ‘11월처럼’, 허형만 시인의 ‘구두’, 한상호 시인의 ‘뒷짐’이 대표적이다. 나이를 먹어가며 깨닫는 지혜를 노래하는 시들로 인생의 가을을 맞이한 장사익 본인은 물론 관객들에게도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의 질문과 답을 제시하고자 했다. 장사익은 “시를 읊으면 음악이 따라오고 음악이 흐르면 노래가 되는, 시와 노래가 서로를 부르고 다독이며 순응하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공연을 펼칠 것”이라고 각오를 밝혔다. 02-396-0514 전시 랩.엑스(Lab.Ex) -홀 어스 트럭 스토어 2022 일시 8월 26일~9월 11일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7전시실(비타민스테이션) 관람료 무료 실험적인 공간을 의미하는 랩(Lab), 전시(Exhibition)·확장(Expansion)·즐거움(Excitement) 등을 의미한 엑스(Ex)를 결합한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첫 전시로 ‘홀 어스 트럭 스토어(Whole Earth Truck Store)’라는 이름으로 오래 쓰는 가구를 소개한다. 02-580-1651 연극 양자전쟁 일시 8월 31일~9월 11일 장소 대학로 민송아트홀 2관 관람료 전석 3만원 아인슈타인, 보어 등 천재 과학자들이 모인 ‘솔베이 회의’를 연극으로 되살렸다. 불변의 진리로 여겨졌던 이론을 위협하며 새롭게 등장한 양자역학의 ‘코펜하겐 해석’을 주제로 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일반적 시선에 의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0507-1444-0425 콘서트 Someday Festival 2022 일시 9월 3~4일 장소 서울 난지한강공원 관람료 2일권 14만9000원, 1일권 11만원 가을의 시작과 함께했던 콘서트 Someday Festival이 돌아왔다. 거미, 윤하, 잔나비, 십센치, 박재정, 국카스텐, 선우정아, 이무진, 이석훈, 카더가든, 박창근, 박혜원 등이 출연한다. 02-761-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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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재현의 생각있는 스타톡](5) 전설의 천하장사 이태현 용인대 무도스포츠산업학과 교수(2021. 01. 29 17:13)
- 2021. 01. 29 17:13 스포츠
- ㆍ“앞으로 삶의 목표도 ‘씨름’ 두 글자” 이태현 용인대 무도스포츠산업학과 교수는 2000년대 초반 씨름판을 호령하던 ‘전설’이다. 630경기 472승 158패(승률 74.9%)로 역대 최다 전적, 최다승과 천하장사 3회, 백두장사 20회 등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은퇴 후 학자, 씨름 홍보대사, 씨름 해설위원으로 바쁘게 살고 있다. 민족 고유의 스포츠인 씨름이 남북화해의 물꼬를 틀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는 이 교수는 “우리가 먼저 화합을 만들어내면 그것이 곧 세계적인 씨름이 될 것”이라고 자신한다. 김재현의 생각 있는 스타톡이 이 교수를 만나 씨름을 세계화하고 싶은 그의 ‘꿈’을 들어봤다. -씨름 홍보대사, 씨름 해설위원, 용인대 교수, 씨름부 선수지도 등 많은 일을 하고 있다. “이 모든 게 나에게는 ‘배움’이라고 생각한다. 하나하나 배워가면서 하나의 덩어리가 되고, 결국 그 꼭짓점은 씨름이 되더라. 나의 앞으로의 삶의 목표는 아마도 ‘씨름’ 이 두글자가 아닐까 싶다.” -씨름은 한반도의 ‘전통 스포츠’다. 남북교류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남북이 갈라지기 전에는 같은 씨름이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각자 맞는 형식으로 바뀌었다. 북한은 옷을 입고 우리는 팬티만 입고, 샅바의 방법도 우리는 타이트하게 북한은 느슨하게, 씨름장이 우리는 모래, 북한은 매트다. 하나의 씨름으로 만들고 싶다. 우리가 같은 민족인데 휴전선으로 나뉘었다는 이유만으로 왜 다른 씨름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우리가 먼저 화합을 해서 (씨름을 하나로) 만들어낸다면 그것이 곧 세계적인 씨름이 되지 않을까 싶다. 대표자들이 만나서 합의를 하면 좋겠다. 씨름은 과거부터 승자를 만들어 누군가를 짓밟는 것이 아니고 마을 간에 불화가 있을 때, 일종의 화합을 위한 행위로 사용했다. 농경 시절에 어느 쪽에 물을 먼저 댈지, 어느 쪽 품앗이를 먼저 할지 결정하고자 할 때 마을의 대표가 나와 이긴 팀부터 돕고, 음식을 대접해 잔치를 열었다. 그래서 씨름은 우승과 화합, 먹거리가 따른다. 우리도 남북의 거리가 이렇게 떨어져 있을 때, 씨름이라는 매체를 통해 풍성하게 음식을 가져다 놓고 즐거운 웃음소리가 들리는 함께하는 화합의 장을 만들면 좋을 것 같다.” -남북이 서로 몸을 맞대면 잘 소통되는 것 같다. “맨살을 맞대며 하는 운동은 씨름이 유일하다. 그러다 보니 씨름하는 선수들은 성격이 굉장히 온순하고, 상대를 존중하는 경향이 있다.” -2019년 전통 민속 씨름이 남북 공동으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유네스코 등재 의미는 무엇인가. “이제는 씨름이 우리만의 잔치가 아닌 전 세계인들이 함께 배우면서 보존해 후대에 알릴 의무가 생겼다는 거다.” -씨름이 유네스코 등재될 때 현장에 있었다. 느낌은 어땠는가. “북한이 먼저 유네스코에 독자적으로 씨름을 등재하려다가 실패했다. 이후 남북이 공동으로 자료를 보충해 등재를 시도했는데, 솔직히 확률이 반반이었다고 한다. 씨름이 유네스코에 등재가 됐다고 발표되는 순간 남북뿐만이 아니라 그 자리에 있었던 전 세계인들이 기립박수를 쳤다. 그때 기뻐도 눈물이 난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온몸에 닭살이 돋으며 말도 못 하겠더라. ‘드디어 우리가 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냈다’는 의미는 ‘세계 진출을 할 수 있는 기본(바닥)을 다졌다’라는 의미다. 그날 유네스코 행사에 참석했던 북측 대표자 두사람이 나에게 와서 ‘실례지만 뭐하나 물어봐도 됩니까?’라고 묻더라. 큰 질문일 줄 알았는데 몇㎏인지 물었다. 내 몸무게를 듣고는 ‘대단하다’며 놀라워했다. 이처럼 개인적인 것을 물어볼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졌고, 우리가 친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막상 대화하다 보니 별것 아니었는데 왜 여태까지 벽을 갖고 있었나 싶더라.” -씨름을 세계화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인가. “첫 번째는 모두가 신뢰할 수 있는 경기규칙을 좀 더 다듬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이것을 가지고 세계에 보급해야 하는데 씨름인들만으로는 힘들다. 국가나 기업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 도움을 받게 되면 헌신적으로 알리고 세계인들을 한데 묶어 함께할 수 있는 장을 만드는 것이 씨름인들이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북한 선수들을 초청한다면 무엇을 하고 싶나. “일단 소주 한잔해야 할 것 같다(웃음). 그래야 많은 생각을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우리 집에 초대해 그냥 내 삶을 보여주고 싶다. 내가 먼저 마음을 열면 그들도 마음의 문을 열지 않을까 싶다. 국밥 한그릇 먹고 에버랜드 갔다가, 민속촌도 가고 내가 사는 용인을 보여주고 그러면서 가까워지는 것이 아닐까.” -개인적인 얘기 좀 해보자. 씨름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아버지 친구분의 아들이 씨름을 했다. 감독이 나를 딱 보더니 우유랑 빵을 준다고 ‘내일부터 나와’ 했다(웃음). 내 고향이 김천인데 구미까지 아침마다 1시간씩 버스를 타고 통학했다.” -씨름이 적성에 맞았나. “초등학교 때까지는 너무 힘들어 씨름의 묘미를 몰랐다. 의성중학교 3학년 말에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고등학교 선배들이 생활하는 모습을 보고 ‘나는 바른길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씨름에 대한 묘미를 찾고, 목표가 생겼다. 제일 좋은 건 내가 노력한 만큼의 보답이 왔다는 거다. 씨름이 고마웠다.” -현역시절에 가장 힘든 부분은 무엇이었나. “(웃음) 하루하루가 힘들었다. 운동이라는 게 그렇지 않나. 한겨울에 뛰다가 목이 너무 말라 내리는 눈을 넘어지면서 한움큼 잡고 입안에 넣고 뛰기도 했다. 순간적으로 ‘이 산에서 떨어지면 한 일주일 쉬겠지’라는 생각이 들더라. 한창 동계훈련할 땐 새벽 5시에 일어나 밤 10시까지 운동을 했다. 가장 힘든 시기는 고등학교에서 프로로 전향할 때였다. 고교 졸업 이후에 대학 진학이냐, 실업 프로팀에 취업하는가를 놓고 고민했다. 내가 수능 1세대였는데, (입시에) 떨어졌다. 처음으로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은 거였다. 그때가 제일 정서적으로 힘들었다. (그래도) 그다음에 재수했는데 역시 공부를 하니까 거기에 맞는 성적이 나오더라.” -스무 번이 넘도록 ‘장사’ 자리에 올랐다. 자신에게 ‘장사’는 어떤 의미인가. “20대 때 청바지와 가죽점퍼가 트레이드 마크였다. 천하장사를 하고 나서도 그렇게 입고 다녔다. 그러니까 어른들이 ‘천하장사가 맨날 이렇게 입고 다니냐’고 했다. 내가 씨름의 대표라고 했다. 또 지나가다가 더워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데, ‘천하장사가 어디 길거리에서 아이스크림을 빨고 있냐’는 거다. 어릴 때는 ‘아니, 더워서 아이스크림 먹고 있는 건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순간 씨름에 연륜이 쌓이고 장사를 여러 번 하면서 사람들한테 호응과 관심을 받고 나서부터는 행동을 조심하게 됐다. 길가에 침도 못 뱉겠더라. (내가 하는) 행동들이 씨름 전체의 이미지가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 거다. 장사라는 것이, 노력해 얻은 대가도 있지만, 거기에 따른 책임감도 분명 가지고 있다. 나는 (그 책임감을) 잘 이끌어가는 선수가 좋은 선수라고 생각한다.” -국내의 씨름 부흥을 위해서는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 “관중이 있어야 스포츠가 살아난다. 그러려면 모래 위에서 희로애락이 나와야 한다. 이겼을 때 즐거움을, 패배했을 때의 슬픔을 모래 위에서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 한판 지더라도 나의 기쁨을 만들기 위해 더 파이팅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경기력은 후배들이 노력해 많이 올라왔는데, 아직까지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은 좀 부족한 것 같다. 이만기·강호동 선배들 보면 모래 위에서 텀블링을 하고 고함을 지르고 한다. 이겼다고 환호를 하면 사람들이 같이 좋아해 주고, 졌을 때 모래를 치면 아이고 소리도 난다. 이런 게 나왔을 때 (관중과의) 교감이 이루어진다. 그게 조금 더 가미가 된다면, 진짜 대형 스타가 나올 것 같다.” - 선수 시절에 별명이 ‘황태자’였고, 최고 미남이지 않았나. “지금 선수들 너무 잘 생겼다. 내가 봐도 부럽다.” -스포츠에는 ‘홈어드밴티지’가 있다. 씨름도 그런가? “씨름은 반대다(웃음). 씨름은 집(고향)에 가면 팬들이 많으면 웅성웅성하고, 기대감이 커진다. 축구, 야구, 농구 같은 구기종목은 시간 파트가 나뉘어 있기 때문에 장시간 보여줄 수 있는데, 씨름은 단 1초에 끝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구미에서 시합할 때, 내가 듣기에는 (관중의) 90%가 이태현을 외쳤다. 그러면 들어갈 때 기분은 정말 좋다. 그런데 한판 이기고 경기장에 들어오면, 가슴이 벌렁벌렁 뛴다. 이런 홈어드밴티지가 개인적으로는 부담으로 느껴질 때가 많았다.” -역대 상금 랭킹 1위인데? “지금 남은 건 없다(웃음). 보통 상금을 타면 팀 회식을 했다. 시합 끝나고 고기를 먹고, 뒤풀이로 호프집에 가서 맥주와 폭탄주 마셨다. 그날 저녁은 기분 좋아 쐈다. 1994년에 첫 장사 때 1500만원을 받았다. 그런데 동네잔치부터 모교 찾아가고, 주위 인사도 하고 밥을 수십 번 샀다. 심지어 기념품도 만들었다. 그러니까 천몇백만원 적자가 났다. 94년 추석부터 95년 추석까지 9연승을 했다. 아버지께서 ‘대현아, 이제 밥 못 사겠다’고 하셨다(웃음).” -예전 선수들은 막대한 수입을 올리면 많이 베풀었던 것 같다. “씨름은 상대가 있어야 실력을 키울 수 있다. 혼자 연습을 하는 건 한계가 있다. 기술 훈련은 동료가 있고, 팀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래서 서로 큰 부담이 가지 않는 선에서, 감사를 표현할 정도만 이뤄진다면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
- 김재현의 생각있는 스타톡
- [렌즈로 본 세상]“전기세도 아까워 불 끄고 장사합니다”(2020. 09. 11 14:31)
- 2020. 09. 11 14:31 사회
- “구경하고 가세요.” 지난 9월 6일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 서문 입구의 한 옷가게 앞. 주인은 불 꺼진 가게에서 무기력함이 섞인 상투적인 목소리로 손님을 불렀다. “전기세도 아까워 불 끄고 장사하죠.” 불 꺼진 가게는 문을 닫은 옆 가게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한 줌의 햇살이 닿은 가게 안 주인의 얼굴은 ‘아직은 살아 있다’고 말하는 듯했다. 중앙로 안쪽 빛이 닿지 않는 골목은 깜깜했다. 인적은 드물었고, 대부분 가게 문은 닫혀 있었다. 이불가게 한 군데만이 언제 올지도 모르는 손님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빛이 들지 않는 골목 안 홀로 켜진 조명은 유독 밝게 빛났다. 쓸쓸하게 골목 안을 밝히는 가게의 불빛은 위태롭게만 보였다.
- 렌즈로 본 세상
- [표지 이야기]유기동물로 장사하는 보호센터(2019. 06. 28 15:29)
- 2019. 06. 28 15:29 사회
- ㆍ‘안락사 없는 보호소’ 내세우는 사설 업체들 맡아줄 때도 입양할 때도 돈 받아 지난 6월 인천에 사는 ㄱ씨는 경기도 김포시 한 도로에서 진도 믹스견 한 마리를 구조했다. 믹스견은 편의점 앞 도로에 버려졌는데 마침 편의점에 있던 ㄱ씨는 강아지가 버려지는 장면을 목격했다. 승용차 한 대가 편의점 앞 도로에 멈춰서더니 하얀 개 한 마리를 내려놓고 떠났다. 순식간이었다. 그대로 뒀다가는 차에 치이겠다 싶어 일단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일러스트 김상민 유기견은 6개월 된 수컷이었다. 병원 검사 결과 건강에 이상이 없었다. 눈치가 빠르고 대소변도 잘 가렸다. ㄱ씨는 유기견에게 ‘아치’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정이 들었지만 곧 아이가 태어날 집이어서 아치와 함께 살 수는 없었다. 유기견 보호센터에 보낼까 했지만 10일 이내 새 주인을 못찾으면 안락사시킨다는 말을 듣고 생각을 접었다. ‘잡종’은 유기견 시장에서 인기가 없다. 아치는 안락사당할 가능성이 높았다. 다시 보호소 맡기면 파양비도 받아 ㄱ씨가 택한 곳은 ‘안락사 없는’ 사설 유기동물 보호센터였다. 센터에 맡기는 데는 돈이 들었다. 알아보니 유기견 개월 수와 예방접종 여부, 몸무게에 따라 비용이 달랐다. ㄱ씨는 아치를 센터에 입소시키는 데 모두 40만원을 지불했다. 적지 않은 돈이지만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나마도 아치를 받지 않겠다는 센터를 설득해 간신히 맡긴 터였다. ㄱ씨는 “돈은 들었지만 안락사를 시키지 않는다니 그걸로 됐다”며 “좋은 주인 만나기만을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아치와 같은 유기동물들은 어떻게 될까. 이들의 프로필은 곧 센터 홈페이지에 게재된다. 새 주인을 찾기 위해서다. 새 주인을 찾는 동안 센터에 머무는데 이때 센터는 동물들에게 일절 의료·진료 지원을 하지 않는다. 사료를 주고 비정기적으로 하는 목욕이 업체에서 제공하는 서비스의 전부다. 입양에도 돈이 든다. 입양 희망자들은 센터에 책임 분양비 명목으로 최소 20만원을 내야 한다. 품종과 크기에 따라 분양비는 더 올라가기도 한다. 환불은 안 된다. 입양 이후 질병·감염 사실이 발견되어도 센터 측은 일절 책임을 지지 않는다. 데리고 갔다가 다시 보호소에 맡기려면 파양비 명목으로 40만원 이상을 지불해야 한다. ㄱ씨가 아치를 맡긴 사설 유기동물 보호센터는 지자체·동물권 보호단체에서 운영하는 동물보호소와는 운영방식이 상이하다. 일반적인 유기동물 보호소는 입소과정에서 돈을 받지 않는다. 의료진들이 정기적으로 유기동물의 건강상태를 체크한다. 입양 전에 생긴 병은 보호소에서 치료한다. 유기동물 입양에 드는 비용도 다르다. 보호소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개 분양에 드는 비용은 최대 10만원(책임비)이다. 동물등록비 1만원만 받는 보호소도 있다. 돈을 받는 대신 입양자가 끝까지 동물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인지를 심사한다. 김정미 서울유기동물입양센터 센터장은 “유기동물을 입양하는 데 별도의 돈은 받지 않는다”며 “대신에 데려간 동물을 버리거나 파양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건다”고 말했다. 동물권보호단체에서는 ‘안락사 없는 보호소’를 내세운 자칭 사설 유기동물 보호센터들을 변종 ‘펫숍’이라고 본다. 개와 고양이 분양이 본업인 판매업체가 한편에서 유기동물을 내세워 별도의 수익을 챙기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동물자유연대는 업체 가운데 한 곳에 대해 ‘파양견의 보호비와 입양 시 책임비를 받아 챙기면서, 뒤로는 안락사와 자가진료를 지시했다’며 사기죄 및 수의사법 위반 혐의로 고발하기도 했다.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는 “안락사를 원치 않는 선한 사람의 마음을 악용해 돈을 버는 것”이라며 “유기동물 보호는 허울이고 수익 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업체”라고 말했다. 경기도 포천시 사설 유기견 보호소에서 한 유기견이 취재진을 보자 반가워하고 있다. / 이선명 기자 변종 펫숍은 우후죽순 늘어나고 있다. 검색창에 유기동물 보호소를 입력하니 여러 업체들이 쏟아졌다. 업체 이름은 다르지만 하나같이 ‘안락사가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입양 이후 발견된 질병 책임도 회피 6월 25일 전국에 여러 체인점을 운영하고 있는 ㄴ업체를 찾았다. 체인점 홈페이지에는 19마리의 유기·파양견 프로필이 올라와 있었다. 프로필 가운데 한 마리를 골라 입양 의사를 밝히자 다른 곳으로 입양됐다는 답이 돌아왔다. 홈페이지에 올라온 대부분의 동물들은 찾아볼 수 없었다. 실제로 해당 업체가 보유하고 있는 동물은 파양된 개 2마리가 전부였다. 있는 동물이라도 보고 싶다고 했더니 카운터 아래 별도의 공간에서 4개월 된 하얀색 믹스견을 꺼내 보여줬다. 책임분양비는 20만원. 어떤 경우에도 환불은 안 된다고 했다. 아픈 곳이 있는지 물었더니 점원은 “없는 것으로 안다”면서도 “정확히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점원의 말은 사실이다. 해당 업체는 보호 중인 동물에 대해 일절 검진을 하지 않는다. 이전 주인이 맡길 때 전달한 정보가 전부다. 진단을 받지 않기 때문에 질병 유무를 판단할 수 없다. 업체 측은 “여기 있는 동안에는 검진이나 치료를 하지 않는다”며 “입양 이후 발견된 질병에 대해서는 일절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밝혔다. 점원이 한 얘기는 대부분 계약조건으로 계약서에 적혀 있다. 여기에 별도의 비용이 발생하거나 분쟁소지가 있는 사안은 특약사항에 기입한다. 주로 ‘업체 측은 책임지지 않는다’는 내용들이다. 명보영 수의사(버려진 동물을 위한 수의사회)는 “수의사를 통해 동물 관리를 한다면 수지타산에 맞지 않을 것”이라며 “장사가 목적이기 때문에 치료에 대한 책임을 입양자에게 떠넘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해당 업체에서 광고 중인 ‘무료분양’도 사실과 달랐다. 유기동물 무료분양이 활발히 이뤄지는 것처럼 ‘무료분양’ 카테고리를 만들어 놨지만 실제 무료분양은 없었다. 업체 점원은 “아프거나 늙은 동물을 대상으로 가끔 무료분양을 한다”며 “평소에 무료분양은 없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현행 동물보호법상 반려동물업에 유기·파양견을 돈 받고 데리고 있다가 다시 돈을 받고 판매하는 업태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해당 업체들은 규제에서 자유롭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굳이 분류를 하자면 사설 동물보호소로 볼 수 있는데 관련 법령이 없다”며 “불법 여부를 논할 기준이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 표지 이야기
- [골목 내시경]장사동 전자골목-없는 게 없는 전자제품 부품의 천국(2019. 04. 01 14:59)
- 2019. 04. 01 14:59 사회
- 장사동 일대에서 취급하는 제품의 종류와 품목은 다양하다. 거래처도 개인부터 국가 연구소까지 다양해서 장사동이 문을 닫으면 우리나라 산업이 멈춘다는 이야기도 있고 “장사동 청계천에서 부품을 모아 인공위성 로켓도 쏠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도 들린다. 장사동 전자골목에서는 부품 뿐 아니라 개발에 필요한 각종 장비와 도구도 구할 수 있다. 세운상가를 중심으로 청계천4가 일대에 개발자들의 천국이 있다. 청계천에서 종로까지 가로세로로 촘촘히 이어진 골목길, 장사동 전자골목이다. 새로운 제품을 만들려는 이들은 부품과 재료를 찾아 이곳으로 온다. 한국전쟁 이후부터 지금까지 우리나라 산업의 가장 비밀스런 몫을 담당한 곳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많은 신제품들이 이곳에서 잉태됐다고 볼 수 있다. 개발자들이 장사동 전자골목을 사랑하는 이유는 개발에 필요한 대부분의 부품을 한 번에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원하는 부품을 찾지 못한다면 대강의 사양만으로 어느 가게에 있다는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다. 가게 주인들은 웬만한 부품의 사양은 모두 외우고 있고 유사품이나 대체품까지 꿰고 있다. 부품만큼은 개발자보다 한 수 위의 정보를 갖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손님들은 그 정보를 신뢰할 수 있어 믿고 의지하는 편이다. 부품과 이런저런 정보도 얻을 수 있어 장사동을 ‘개발자의 성지’쯤으로 여기는 것이다. 점포주들의 경험과 전문지식도 상당 양손에 부품꾸러미를 든 행인에게 장사동의 매력을 물었다. “필요한 부품 구하기가 쉬워서 편하다. 간혹 오래전에 단종돼 구할 수 없는 부품도 수십 년 동안 재고를 가지고 있는 가게도 있다. 어떤 부품이 새로 나왔는지도 알 수 있다. 가게 주인들의 경험과 전문지식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라고 답했다. 중소기업을 경영하면서 아직도 ‘개발’을 한다는 그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장사동을 드나들어 벌써 40년 넘는 ‘장사동 팬’이라고 했다. 장사동을 드나드는 사람들 중에 그는 성공한 편에 속한다. 겉모습은 오래지만 최첨단 부품과 장비로 무장한 장사동의 가게들. 세운상가가 들어서기 전부터 장사동 일대는 전자제품 조립공장과 부품가게들이 밀집해 있었다. 오래된 한옥과 판잣집에서 만든 라디오와 전축이 전국에 팔려나가고 수출의 역군이 됐던 시절이 있었다. 컴퓨터가 나와 이 땅에 자리를 잡을 때도 장사동이 제대로 역할을 했다. 그 시절이 장사동에서 부자들이 나온 때였다. 청계천 일대 상가 건물 여러 채를 가지고 있다는 건물주는 “1970년대 학생용 라디오 조립키트를 만들어 팔았다. 두 평짜리 판잣집 가게에서 시작했는데 돈을 자루에 쓸어 담았다. 전국에서 몰리는 주문을 감당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고 했다. 중·고등학교 과학 경시대회에서 그가 만든 라디오 조립키트가 채택되자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요즘 그는 가끔씩 장사동 골목길을 걸으며 경기 좋던 옛생각을 떠올린다고 한다. 그가 기억하는 70년대는 가난했지만 기회가 있었던 때라고 했다. 그와 같이 자수성가해 돈 번 사람 대부분은 장사동을 떴다는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그런 시절은 전설일 뿐 아마도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다. 장사동을 찾는 개발자들도 대부분 자신이 새로운 전설을 쓸 것이라 기대할 것이다. 장사동 전자골목에는 개발자에게 필요한 거의 모든 것이 있다. 무질서해 보이는 장사동의 긴 골목길은 세운상가가 건설되면서 동서로 갈라졌다. 예지동 시계골목과 붙어 있는 세운상가 동쪽은 요즘 들어 눈에 띄게 쇠락의 흔적이 보인다. 그 골목 안에 있던 전자제품 조립공장이나 ‘후끼’라 부르는 재생공장들은 시대의 추세에 따라 문을 닫거나 세가 줄어든 모습이 확연하다. 한 평 반 가게에서 대한민국 스피커 재생의 최고수라는 명성을 얻은 어느 가게는 아직도 문을 열고 있었다. 손으로 쓴 낡은 간판 아래에서 아직도 기술과 명성은 빛을 잃지 않은 셈이다. 청계천 바닥에서 유명하다는 가게들은 여전히 손님이 그치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많은 가게들은 “일거리가 줄었다”고 했다. 아세아 전자상가의 전자부품 가게들도 하나둘 문을 닫았거나 자리를 옮겨 활기가 예전만 못했다. 오디오용 일본제 전자부품을 취급하는 가게 주인은 “이명박 시장 시절 청계천 재개발계획으로 문정동 이주 압박이 심했다. 그때도 버텼는데 이제는 더 이상 못버티겠다”고 했다. 그는 생산공장이 중국으로 건너가고, 작은 거래처들이 문을 닫아 수요가 사라진 점을 이유로 들었다. 취급하는 제품들도 유행에 뒤처진 것이 쇠락의 원인일 수 있다. 게다가 예지동 일대 재개발계획이 현실화되면서 골목 분위기는 바닥을 치며 어수선해졌다. 개발자가 원하는대로 만들어 주는 공장도 장사동의 주역이다. 세운상가 중심 서쪽보다 동쪽이 침체 광도전자상가 뒤편의 서쪽 골목은 여전히 드나드는 사람들로 붐빈다. 꾸준히 개발자들이 들르고 주변 공장들에도 일거리가 있는 분위기다. 30년째 가게 문을 열고 있다는 부품업체 주인은 “사람들이 요즘 경기가 나빠졌다고 하는데, 모르는 소리다. 내 경험에 IMF 한파가 닥칠 때는 그런대로 견뎌내는 것 같았는데 한 5년쯤 지나니까 정말 추워지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회복이 안 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외환위기 사태 이후 우리나라 경제가 구조적으로 달라졌다고 분석했다. 돈을 벌어들이던 제조업체가 줄어든 것이 시장이 침체한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시장 바닥의 체험에서 우러난 이야기라 귀 담아 들을 만했다. 장사동 골목, 같은 장소에서 50년 동안 모터를 팔아온 사장은 “개발자들의 분위기가 확실히 달라졌다. 찾아오는 사람은 줄지 않았는데, 주머니에 돈은 없다. 예전에는 필요에 따라 사양별로 모터 여러 개씩 사갔지만 지금은 꼭 필요한 것 하나만 사간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는 장사동을 드나드는 사람 중에는 그야말로 큰 성공을 거둔 이도 있는데, 성공하면 다시 찾아오지 않으니 얼굴을 볼 수 없다고 하면서 웃었다. 그가 곁에서 지켜본 개발은 참으로 어렵고 고독한 일이라고 했다. 만들다 버리고, 버리기를 계속하고, 아무도 이해하지 않는 어려운 길을 걷는 사람들이 개발자라고 평했다. ‘전자골목’이라는 한마디로 묶어 말하기에는 장사동 일대에서 취급하는 제품의 종류와 품목이 다양하다. 골목 어귀에서 미군 항공기에서 떼어낸 케이블을 취급하는 노점상부터 초정밀 반도체까지…. 대략 보이는 품목만 해도 산업용 계측기, 각종 반도체, 저항과 콘덴서, 회로기판, 스위치와 전원 부품, 디스플레이와 조명류, 케이스, 명판 조각, 케이블, 조립용 나사류, 모터, 공장용 케미컬 제품, 화학실험기구 등 공장과 연구실에 들어가는 거의 모든 것들이 장사동에 있다. 거래처도 개인부터 국가 연구소까지 다양해서 장사동이 문을 닫으면 우리나라 산업이 멈춘다는 이야기도 있다. “장사동 청계천에서 부품을 모아 인공위성 로켓도 쏠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도 들린다. 50년 관록의 가게 주인은 전문가 이상의 지식과 정보를 지니고 있다. 진열장 가득 갖가지 전자부품을 채운 골목에서 사이로 빠져 샛골목으로 들어서면 시내에서 보기 드문 공장지대가 나타난다. 공장이라 해도 산림동의 철공장과는 달리 컴퓨터 제어의 초정밀 가공기계들이 분주히 돌아가는 작은 공장이다. 그 중에는 주문형 전원트랜스를 감는 공장도 있다. 공장 주인은 “특별한 용량의 트랜스가 필요한 경우 주문에 따라 만들어 준다. 한 개부터 수십 개까지 소량 제품을 만든다. 개발자뿐 아니라 오디오 마니아들도 진공관 앰프에 필요한 트랜스를 주문한다”고 했다. 다품목 소량생산에 충실한 4차 산업혁명형 공장이다. 건너편에는 케이스 가공공장도 눈에 띈다. 컴퓨터가 제어하는 드릴이 자동으로 전자제품 케이스 표면 정확한 위치에 글자를 새기고 구멍을 뚫는다. 약간은 촌스럽고 투박해 보이지만 개발자의 생각이 고스란히 드러난, 풋냄새 나는 모습이다. 도면을 들여다보던 공장 주인은 “여기서는 대부분 시제품 케이스를 가공한다. 여기까지 오면 개발이 반쯤은 성공한 것이다. 소량생산 제품은 이대로 상품이 돼서 팔릴 수도 있고 대량생산이 된다면 더 손을 봐서 제품화될 것이다”라고 했다. 저가의 중국산 케이스가 밀려와도 주문에 따라 특별한 가공은 이곳에서만 가능하다고 했다. 공장마다 낡은 겉모습엔 수십 년 같은 일을 반복해온 관록이 겹쳐 있고, 안에는 확연히 달라진 신기술로 채워져 있다. 종이 위에 대충 그린 도면 대신 컴퓨터에 캐드 화면을 띄워놓은 채, 줄과 망치로 손수 쇠를 깎던 일은 로봇이 레이저와 드릴로 대신하고 있었다. 오랜 경험과 최신기술이 작은 공장 안에서 조화를 이루고 있다. 70년대 분위기의 손글씨 간판이 무색하리만치 시대의 가장 앞선 자리에서 일하는 셈이다. 낡은 겉모습과 달리 안에는 첨단기술 장사동 전자골목의 시장성과 잠재력은 다국적 부품회사도 인정하는 편이다. 작은 규모의 가게 사이에 다국적 대형 부품 상점도 문을 열고 있다. 로봇에 필요한 부품이나 첨단 전자제어장비까지 취급하는 매장이 골목 안에 숨어 있어 새롭다. 대형 부품 상점은 개발자에게 전화번호부 두께의 부품 카탈로그도 제공하고 필요한 부품은 전세계에 수배해 찾아주는 서비스도 선보인다. 장사동 전자골목의 가치가 그만큼 높다는 점을 보여준다. 장사동 전자골목을 차지한 또 다른 주인공은 실험실용 이·화학 장비들이다. 화학 실험이나 의학 실험용 초자 장비, 실험실 용품을 취급하는 전문상가가 장사동에 밀집해 있다. 요즘에는 커피 붐이 불면서 더치커피를 내리기 위한 장비를 구하려는 커피 마니아들도 이곳을 자주 찾는다. 유리관과 플라스크, 정류기용 밸브 등으로 커피 거르는 장비를 만들기 위해서란다. 장사동을 둘러싸고 청계천 쪽은 조명가게와 각종 공구상가가 줄을 이었다. 종로 쪽은 음반과 의료용품 가게가 연이어 있다. 큰길가에서는 장사동 골목 안의 모습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다만 종로를 따라 연이은 긴 골목은 맛집 유랑객들에게도 잘 알려진 장소다. 점심시간이면 삼치와 고등어를 굽는 생선구이집에 발길이 몰리고, 저녁이면 닭한마리로 유명한 식당에 술꾼들이 모여든다. 좁고 긴 골목길에 들어선 국밥집, 횟집, 백반집은 주변의 상인과 공장 사람들 모두에게 사랑 받는 식당가다. 이곳의 특징은 가격은 싸고 양은 많고 맛은 좋다는 점이다. 옷은 낡아도 마음은 새로울 수 있다. 장사동 전자골목을 걸으면서 집과 길이 새로움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기술이 신세계로 이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다. 부품 몇 개를 손에 쥐고 바쁘게 돌아가는 이들 중에는 인류의 오랜 숙제를 해결할 이도 나올 수 있을 것이다. 혹은 왕년에 장사동 골목을 드나들던 추억담을 말하며 추억에 잠길 큰 부자도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도시를 새롭게 하는 것은 높이 올린 빌딩숲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만들기 위해 도전하는 사람들의 몫이다. 그 사람들이 우리 곁을 무심히 스쳐가며 지금도 장사동 전자골목을 걷고 있다.
- 골목 내시경
- 노이즈 마케팅 ‘선수’ 나이키의 남는 장사(2018. 09. 17 14:24)
- 2018. 09. 17 14:24 국제
- 나이키가 캐퍼닉과 광고 계약을 체결하며 기대한 효과도 논란과 대중의 관심, 이에 따른 매출 증대다. 캐퍼닉 광고를 계기로 나이키에 반대하는 소비자들이 생기겠지만 그런 위험은 감수할 수 있다고 계산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 뉴욕 맨해튼의 한 건물에 8월 7일 콜린 캐퍼닉 전 미국프로풋볼(NFL) 선수가 등장한 나이키 광고가 걸려 있다. / 뉴욕|EPA연합뉴스 세계적인 스포츠 의류 브랜드이자 노이즈 마케팅의 ‘귀재’인 나이키가 또 한 번 섶을 지고 불로 들어갔다. 인종차별 항의시위를 벌여 미국프로풋볼(NFL)에서 사실상 퇴출된 콜린 캐퍼닉 전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 쿼터백을 광고 모델로 기용해 전국적인 찬반 논란을 일으킨 것이다. 논란거리를 던져 주목도와 매출 상승의 ‘두 마리 토끼’를 잡던 나이키의 마케팅 수완이 이번에도 성공할 것인지 시선을 끌고 있다. 나이키는 ‘저스트 두 잇(Just Do It)’ 캠페인 30주년 모델로 테니스 선수 세리나 윌리엄스, 미국프로농구(NBA) 르브론 제임스 등과 함께 캐퍼닉을 발탁했다. 캐퍼닉과 다년 계약을 체결한 나이키는 캐퍼닉의 이름을 붙인 운동화와 티셔츠 등도 새로 출시할 예정이다. 인종차별 항의한 NFL 선수 모델 기용 나이키가 캐퍼닉을 모델로 선택했다는 사실은 캐퍼닉의 트윗 한 줄로 간단히 세상에 공표됐다. 캐퍼닉은 9월 3일 트위터에 자신이 등장한 나이키 광고 사진을 게재했다. 캐퍼닉의 얼굴을 근접 촬영한 이 흑백 사진에는 ‘무언가를 믿어라. 이것이 모든 것을 희생한다는 의미일지라도’라는 광고문구가 적혀 있다. 캐퍼닉이 NFL에서 했던 시위와 이 때문에 그가 치러야 했던 대가를 암시하는 문구다. 캐퍼닉은 2016년 경찰이 흑인을 과잉진압해 사망에 이르게 하자 이에 항의하는 의미로 경기 전 국가 연주 때 무릎을 꿇었다. 국가 연주 시 바로 선 자세를 규범으로 여기는 미국에서 캐퍼닉의 행동은 비애국적이고 무례한 것으로 간주됐다. 스포츠계 안팎에서 뜨거운 찬반 논쟁이 일었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까지 나서 캐퍼닉에겐 애국심이 없다고 공격했다. 전·현직 군인들 중 일부는 캐퍼닉의 시위가 군을 모욕하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캐퍼닉은 2017년 초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취득했지만 어느 팀과도 계약하지 못했다. NFL 32개 전 구단이 논란 한가운데에 있는 캐퍼닉과 계약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한 탓이다. 이 ‘뜨거운 감자’를 나이키가 덥석 집었다. 노이즈 마케팅을 노린 것이다. 나이키의 노이즈 마케팅 전략은 19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갈 만큼 역사가 유구하다. 1993년 NBA 피닉스 선스의 파워포워드 찰스 바클리와 함께 진행한 ‘나는 롤모델이 아니다’ 캠페인이 대표적이다. 당시 청소년들의 우상이었던 바클리는 이 광고에서 “나는 롤모델이 아니다. 내가 덩크슛을 할 수 있다는 게 당신의 자녀를 키워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선언했다. 이 광고는 프로 운동선수의 행동규범, 팬과의 관계 등에 대한 논쟁을 불러왔다. 광고의 성공으로 나이키는 반항적이고 불안한 청춘을 표상하는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했다. 2016년 9월 25일 미국프로풋볼(NFL)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의 콜린 캐퍼닉이 경기 전 국가 연주 때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의미로 무릎을 꿇고 있다. / 시애틀|AP연합뉴스 1996년 21세의 골프 천재 타이거 우즈가 등장한 광고 캠페인 ‘안녕 세상아(Hello world)’도 직설적이고 신랄한 문구로 화제가 됐다. 우즈는 이 광고에서 “여전히 미국의 일부 골프클럽은 피부색을 이유로 내가 플레이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며 미국 사회의 인종차별을 꼬집었다. 우즈는 “세상은 내가 준비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당신들은 나를 맞을 준비가 됐는가”라는 도발적인 대사로 젊은 소비자들의 마음을 흔들고 지갑을 열게 했다. 이번 캐퍼닉 광고에 대해 <뉴욕타임스>가 “나이키가 익숙한 마케팅 전략으로 돌아갔다”고 평가한 것도 이런 선례들이 있기 때문이다. 나이키가 캐퍼닉과 광고계약을 체결하며 기대한 효과도 논란과 대중의 관심, 이에 따른 매출 증대다. 캐퍼닉 광고를 계기로 나이키에 반대하는 소비자들이 생기겠지만 그런 위험은 감수할 수 있다고 계산한 것으로 보인다. 광고 공개 후 소셜미디어 반응 뜨거워 우선 캐퍼닉이 지닌 상품성이 이런 리스크를 상쇄할 만한 수준이다. 캐퍼닉은 지난해 2분기 NFL 공식 유니폼 판매 순위에서 39위에 올랐다. 유니폼 판매 상위 50명 중 현역선수가 아닌 사람은 그가 유일했다. 캐퍼닉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의미다. 시장조사기관 NPD그룹에 따르면 미국에서 나이키를 입는 소비자 중 3분의 2는 35세 이하 청년들이다. 이들 세대는 베이비붐 세대보다 인종 구성이 다양해 캐퍼닉의 시위에 호의적일 가능성이 크다. NPD그룹의 스포츠산업 분석가 맷 파월은 “나이키는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 이 일을 시작했다고 본다”며 “이 광고가 일부 소비자를 불쾌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도 나이키는 알고 있다”고 말했다. 기대는 적중했다. 나이키는 홍보비용 한푼 들이지 않고 캐퍼닉의 트윗만으로 언론과 대중의 즉각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캐퍼닉이 광고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공개하고 단 몇 시간 만에 네티즌들은 100만건이 넘는 반응을 보였다. 이 가운데 해시태그 ‘보이콧나이키(#BoycottNike)’가 포함된 트윗은 캐퍼닉의 트윗 이후 24시간 동안 10만건 이상이 올라왔다. ‘저스트 두 잇’을 패러디한 ‘저스트 번 잇(#JustBurnIt)’이라는 해시태그도 등장했다. 캐퍼닉에 반대하는 네티즌들은 자신이 소장한 나이키 제품을 불태우는 사진에 이 해시태그를 달아 소셜미디어에 게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나이키가 (캐퍼닉을 광고 모델로 기용함으로써) 끔찍한 메시지를 보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소셜미디어 분석업체 리슨퍼스트는 나이키가 ‘남는 장사’를 했다고 분석했다. 소셜미디어에서 나이키와 캐퍼닉을 지지하는 반응이 더 우세했다는 것이다. 나이키는 노동절(9월 3일) 매출이 지난해 대비 31% 증가했다고 밝혔다. 나이키 광고는 부수적 효과도 낳았다. NFL 시즌 개막일(9월 6일)을 앞두고 공개된 캐퍼닉 광고는 NFL에서 뛰고 있는 유색인종 선수들이 인종차별 항의시위를 지속하게 하는 힘이 되고 있다. 마이애미 돌핀스의 케니 스틸스와 앨버트 윌슨은 9월 9일 열린 홈 개막전에서 국가 연주 시 무릎을 꿇었고 로버트 퀸은 주먹을 들어올려 캐퍼닉의 대의를 이어갔다.
- [클릭TV]장사로 재미 보는 예능(2018. 01. 15 16:44)
- 2018. 01. 15 16:44 문화/과학
- 새해가 되면 많은 매체나 방송 평론 전문가들이 ‘올해의 방송 경향’을 전망하며 예민한 촉을 세웁니다. 방송 프로그램은 어찌보면 하나의 생명체와 같아서 어떠한 형태로 진화할지 만드는 사람들도 예상할 수 없습니다. 2018년 1월 현재 가장 뜨거운 예능 소재는 무엇일까요. 저는 조심스럽게 ‘장사 예능’을 꼽아보고 싶습니다. 바야흐로 ‘장사를 권하는 예능’ 또는 ‘장사로 재미를 보는 예능’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이는 지금까지 유행했던 ‘요리 예능’ ‘먹는 예능’ ‘관찰 카메라’ ‘리얼리티’ 등의 많은 인기 요소들이 결합된 총아입니다. 강식당 / tvN 수치가 이를 증명합니다. 지난 5일 첫 방송을 내보낸 tvN의 예능 <윤식당 시즌2>(이하 윤식당2)는 첫 방송부터 닐슨 코리아 집계로 전국 가구시청률이 14%를 넘었습니다. 안 그래도 ‘대박’으로 평가됐던 지난해 첫 시즌의 첫 회 시청률 6%를 두 배 이상 뛰어넘은 수치죠. 그리고 방송되는 금요일 오후 9시50분 시간대에서 지상파, 케이블, 종합편성채널을 아우른 전체 순위에서도 선두입니다. 윤식당 시즌2 / tvN 인도네시아 길리에서 스페인 가라치코로 무대를 옮긴 방송 촬영지에 대해서도 방송 즉시 누리꾼들이 구글 지도 등을 동원해 단번에 장소를 알아내는 등 관심도 폭발적입니다. 그에 앞서 막을 내린 tvN <신서유기 외전-강식당>(이하 강식당)도 5~6%의 시청률을 올리며 본편인 <신서유기>보다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습니다. 이 역시 멤버들이 제주에서 식당을 열고 메뉴를 개발하고 장사를 하면서 좌충우돌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결이 좀 다르긴 하지만 전문적인 창업과 그 운영을 돕는 예능도 있습니다. 이는 SBS 예능국과 요리연구가 백종원이 천착하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지난해 <백종원의 푸드트럭>을 통해서 청년의 소자본 창업기를 음식 조리, 컨설팅 등과 뒤섞은 SBS는 이번에는 백종원이 골목상권을 살리기 위해 골목의 식당들에 조언하는 <백종원의 골목식당>을 론칭했습니다. 첫 회 촬영지로 거론된 서울 이화여대 앞 골목은 벌써 온라인에서 화제가 되기 시작했죠. 백종원의 골목식당 / SBS 앞서 말씀드렸듯 ‘장사 예능’은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예능이 각종 장르를 섭렵하며 쌓아온 노하우가 집중된 결과물입니다. 과거 MBC <일밤-신장개업> 등의 프로그램에서 식당의 리모델링을 다루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지금의 예능들은 좀 더 요리행위와 레시피를 세심하게 전합니다. 그리고 경험이 없거나 경험이 있어도 요령이 없는 식당주의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남에게 재화를 제공하고 돈을 얻는 ‘장사’라는 행위의 긴장감과 책임감 그리고 본질을 탐구해갑니다. 그리고 식당에 손님으로 들어온 이들의 반응도 주요한 관전 포인트입니다. <윤식당2>나 <강식당>은 모두 해외가 배경이라 한식을 모르는 외국인들이 한식에 드러내는 날 것 그대로의 반응이 우리 음식을 타자화시켜 볼 수 있는 기회를 줍니다. <백종원의 골목식당>의 경우도 손님들이 맛 평가를 하는 모습이 식당주들을 각성시키는 계기가 되죠. 이제 예능에서 장사를 권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이는 경제불황으로 ‘직장인의 신화’가 꺼지고 자영업자가 700만명까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현실을 담고 있기도 합니다. 사는 게 하나가 절박한 시대에 손님의 만족을 놓고 오가는 첨예한 긴장감은 자연스럽게 시청자들의 몰입을 돕습니다. ‘장사 예능’이 지금 신선한 가장 큰 이유입니다.
- 클릭 TV
- [포커스]양계 큰 손 하림의 살처분 장사?(2017. 10. 31 18:44)
- 2017. 10. 31 18:44 사회
- ㆍ“소유는 농가 병아리지만 하림의 재산” 육계농가 보상금의 80% 가져가 조류인플루엔자(AI)와 살충제 계란으로 ‘공장식 축산’이 도마에 오른 가운데, 지난 10월 12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정기 국정감사에 출석한 하림그룹 김흥국 회장(60)에게 김현권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질문했다. “위탁농가에서 키우고 있는 닭은 하림의 소유입니까, 위탁농가의 소유입니까?” 김 회장이 답했다. “지금은 계약상 소유는 농가로 돼 있고, 재산권은 신탁양도담보를 해서 계열주체가 소유하고 있습니다.” ‘이 병아리가 누구의 병아리인가?’라는 질문에 ‘농가 소유의 병아리지만 하림의 재산’이라고 답한 것이다. 이 짤막하고 기묘한 문답에 최근 한국 축산업 이슈가 모두 들어 있다. AI로 인한 닭 살처분 보상금 문제부터 축산 계열화의 불공정 문제까지 핵심은 ‘병아리의 소유권’에서 출발한다. 김현권 의원실은 공장식 축산과 AI파동 등이 있을 때마다 부담을 떠안는 축산농가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병아리 소유권’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하림이 계약농가에 대해 ‘병아리 단가’를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도록 농가에 불리한 계약을 맺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하림은 하림계열 농가들은 불만이 없는데 업계 1위 기업이라 부당하게 견제 받는다고 어려움을 토로한다. 농림축산식품부는 계열화 사업구조를 개편하고, 불공정행위를 차단할 수 있도록 하는 개선대책을 내놓은 바 있다. 누구의 말이 진실일까. 역시 병아리 소유권이 포인트다. 축산 계열화 문제를 해결하려면 현재의 축산업계 행태가 수직적 계열화인지 수평적 계열화인지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병아리 소유권’이 이를 가늠하는 핵심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6월 5일 부산 기장군 장안읍 오리에 있는 한 토종닭 사육 농가에서 공무원들이 살처분을 하고 있다. 기장군은 조류인플루엔자(AI) 의심 농가에서 키우던 닭과 오리 4228마리를 살처분하고 반경 3km이내 농가에서 키우는 닭과 오리도 살처분했다. / 연합뉴스 ‘병아리 소유권’이 불공정 문제 핵심 김 회장이 국회 농해수위 국정감사에 출석한 이유 중 하나는 몇 년째 논란 중인 AI 살처분 보상금 문제 때문이었다. AI는 2003년 국내에서 처음 발생한 이후 2~3년 주기로 발생하다가 2014년 이후부터는 매년 발생하고 있다. 정부는 농가가 손해를 입지 않도록 살처분한 병아리들에게 시중 닭의 가격을 적용해 보상금을 지급한다. 양계농가를 중심으로 계열화된 육계(고기를 목적으로 하는 닭) 농가에서는 보상금의 80%를 하림 등 계열주체인 육가공업체가 가져간다는 지적을 계속 제기해 왔다. 하림 측에서는 보상금을 나눠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병아리가 애초에 하림의 재산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산란계 농가는 대부분 자율적으로 계란을 납품하는 반면, 국내 육계 농가의 94%는 특정 육가공 업체의 위탁을 받아 병아리를 기르고 납품하도록 계약이 맺어져 있다. 하림, 마니커, 체리부로, 선진(하림계열) 등이 대표적이다. 이 구조를 ‘계열화’라고 표현한다. 자본과 설비를 갖춘 대규모 육가공업체가 시장을 개척하고 판단하며, 농가는 안정적 공급망을 확보해 소득을 올리고 중간 유통단계를 줄여 경쟁력을 확보하고자 하는 시스템이다. 농가와 계약 단가, 하림이 일방적 결정 이런 계열화 체제에서 하림은 자체 종계장에서 부화시키거나 외부 종계장에서 사온 병아리를 계약농가에 맡기고 사료와 의약품을 공급한다. 농가는 이 병아리를 약 30~35일 동안 키워 하림에 납품하고 위탁수수료를 받는다. 병아리는 원래 하림의 소유이니 일종의 인건비 개념인 것이다. 하림은 수수료를 줄 때 병아리 및 사료·의약품 가격을 제외하고 지급한다. 하림은 이를 ‘원자재 가격’이라고 표현한다. 이 입수한 하림과 위탁농가 간 계약서에 따르면 정산은 납품 뒤 25일 이내에 하도록 돼 있다. 공정위의 표준계약서에 따라 병아리 단가는 농가협의회와 하림이 협의해 정산하도록 돼 있다. 그런데 하림은 ‘부칙’을 통해 하림이 일방적으로 가격을 변동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을 마련해 놓았다. 시중 시세 변동에 따라 ‘회사’의 서면통보로 변동할 수 있다는 부칙 제1조 2항의 구절이다. 하림은 지난 2014년 1월 전북의 한 계열농가가 원래 마리당 450원으로 계약돼 있던 병아리 단가를 살처분 이후 520원으로 변경했다. 농가에 지급되는 살처분 보상금을 이 기준에 따라 하림과 농가가 나눴다. 하림의 몫이 약 80%다. 김현권 의원실은 지난 12일 일방적 재정산으로 하림이 보상금을 타간 경우로 이 사례를 지목했다. 하림의 입장에서는 병아리가 원래 하림의 소유이기 때문에 농가와 재정산을 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로 보고 있다. 하림 관계자는 “병아리는 원자재로 당연히 개별농가가 구입가격을 지불해야 한다. 농가에서 병아리를 직접 사서 닭까지 생산하려면 시장의 불확실성을 감수해야 하고 판로를 직접 개척해야 하는 부담을 져야 한다. 계열화는 이 부담을 계열주체(하림)가 대신 지는 것으로, 닭의 가격 또한 시시때때로 변화되기 때문에 가격변동이 가능하도록 하는 조항이 들어 있다”고 설명했다. 하림 측은 ‘불공정 계약’이 아니냐는 질문에 “농가에서도 이 방식이 유리하기 때문에 계열화를 선호하고 94%의 육계 농가가 계열화를 선택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림은 계열화사업을 통해 농가와의 상생발전 시스템을 구축했으며, 계약 사육농가(3회전 이상 육계 사육)의 연평균 소득을 1994년 2500만원에서 2000년 5000만원, 2010년 7400만원, 2015년 1억7100만원, 2016년 1억8100만원으로 7배 이상 증가시켰다고 밝혔다. 병아리 및 사료 단가를 제외하고 하림이 지급한 연간 수수료를 소득으로 계산했다. 문제는 이 수수료 역시 계약농가들을 ‘상대평가’해 지급한다. 대한양계협회는 상대평가식 수수료 지급이 농가 간 분열을 부추기고 계열업체에 더욱 종속시키며 부담을 감내하게 하는 제도라고 비판해 왔다. 김흥국 회장은 국정감사에서 ‘상대평가’에 관한 질문을 받자 “불량사료에 대한 불만이 높아 농가에서 원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위험과 책임 농가에 전가 불공정 계약” 반면 김현권 의원실은 개별 농가들이 선택권이 없는 상태에서 하림이 위험과 책임은 농가에 부담시키는 불공정 계약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현권 의원실 김성훈 비서관은 “하림은 병아리 및 사료값을 뺀 나머지를 농가소득이라고 말하지만, 농가는 인건비, 자재비, 설비투자 융자금을 추가로 부담한다”며 “현재 개별 육계 농가에는 계열화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이다. 이를 두고 농가에 유리하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계열화를 선택했다는 설명은 납득할 수 없다”고 밝혔다. 계열화 방식은 수직적 계열화와 수평적 계열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림은 이 두 가지 방식 중 유리한 부분만 취하고 부담은 농가에 떠넘기고 있다는 것이 의원실 측의 분석이다.(그래픽 참조) 현재 하림은 병아리의 소유권을 주장한다는 점에서 수직적 계열화 모델을 취하고 있다. 그렇다면 AI 등 방역 및 살처분을 할 때 사람을 고용하는 비용을 모두 하림 측이 지불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있다. 김흥국 회장은 국정감사에서 병아리 판매계약을 통해 소유권이 이전된다는 점에서 수평적 계열화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외상거래’의 특성과 위에서 언급한 하림이 일방적으로 가격 변동을 통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하림과 농가를 수평적 관계로 보기 어렵다. 더욱이 수평적 계열화라면 병아리의 소유권은 개별 농가에 있다. 김 회장은 국정감사에서 하림은 “(판매계약이 발생하니) 수평적 계열화”라고 주장하면서도 병아리의 소유권에 대해선 모순된 답을 했다. 하림 측은 10월 27일 과의 통화에서는 “수직적 계열화가 맞다”고 대답했다. 김현권 의원실은 수직적 계열화라면 병아리 가격을 공제하지 말고 위탁수수료만 변동 없이 지급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수평적 계열화라면 농가 보상금 정산행위 없이 보상금은 오로지 농가에 가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의원실에 따르면 하림은 필요에 따라 수직적 혹은 수평적 계열화의 장점만 취하는 셈이다. 하림의 병아리 단가 보상을 통한 보상금 재분배 문제는 2014년부터 계속 제기되다가 이번 국감에서 크게 불거졌다. 전북의 한 계약농가가 2014년 1월 원래 마리당 420원으로 정산했던 병아리 정산단가를 800원으로 일방적으로 인상했다가 문제가 되자 520원으로 조정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온 이후였다. 하림은 “사실관계가 완전히 다르다. 하림이 보상금을 허위로 타내기 위해 마치 일부러 800원짜리 계약을 한 것처럼 비춰졌는데, 계약농가를 관리하는 외주업체가 농가 보상금 산정을 앞두고 내민 가상의 계약서 예시를 농가에서 오해해 협회에 알리는 바람에 문제가 된 것이지, 오히려 하림은 병아리의 시중 가격이 577원이었지만 농민의 사정을 감안해 520원에 계약했다”고 말했다. 이 해당 양계장 주인과 통화한 결과 주인 ㄱ씨도 “하림 측의 말이 맞다. 단가 800원짜리 정산은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하림의 위탁을 받아 농가를 관리하는 외주업체의 실수로 보인다. 그러나 450원→800원→520원은 아니었지만 450원→520원의 단가 조정이 이뤄진 것은 사실이다. 이 과정에서 하림이 일방적으로 가격 변동을 통보할 수 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김현권 의원실에 따르면 하림 등 상위 3개 계열화 사업자의 시장점유률이 2009년 36.3%에서 2012년 40.1%, 2016년 55.7%로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김 의원실 측은 “하림은 지난 10년간 닭·오리 계열사 지원자금의 40%, 500억원가량을 독차지하다시피 했고, 잡음도 불거지고 있으며, AI 등의 위험은 국민들에게 떠넘겨지고 있다”며 “기형적 체제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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