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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저출생? 태어난 아이부터 잘 챙겨라
[신간] 저출생? 태어난 아이부터 잘 챙겨라(2024. 12. 11 06:00)
2024. 12. 11 06:00 문화/과학
이것은 사라진 아이들에 대한 기록이다 권희정 지음·날·1만7000원 ‘어떻게 하면 아이를 더 많이 낳을까.’ 정부와 지자체, 기업, 민간단체 불문하고 ‘저출생’을 타파해보겠다며 각종 지원책을 쏟아낸다. 가족, 젠더, 이혼 등을 주요 관심사로 연구해온 인류학자인 저자는 저출생 문제만큼 중요한 것이 태어난 아이들을 잘 키우는 것이라고 말한다. 어떤 아이들은 태어나자마자 죽임을 당하거나 버려지거나 방치되거나 입양된다. 저자는 과거 신문을 비롯한 국내외 관련 자료, 인터뷰 등을 토대로 아동 살해, 유기, 방임, 입양의 원인과 배경을 파헤친다. 어떤 아동 살해는 부계사회,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 안에서 벌어진 일들이고, 해외 입양은 ‘사업’으로서 이뤄지기도 했다. 아주 먼 과거의 일도 아니다. 최근까지도 영아 유기·살해 사건이 일어나고, 보호시설에서 자란 청년들이 자립 과정에서 목숨을 끊는 일도 계속된다. 저자는 국내외 입양인, 자립준비청년 등 당사자의 목소리를 전하면서 “아이를 버리게 하고 구하는 것보다 원가족 지원을 강화함으로써 구할 아이를 만들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압축 소멸 사회 이관후 지음·한겨레출판·1만8000원 정치학자로서 국회·정부에서 실무를 경험한 이관후 건국대 교수(국회입법조사처장·지난 11월 20일 취임)가 저출생, 지방 소멸 등 한국사회의 소멸 징후를 읽어낸다. 그는 한국사회가 지역, 산업, 교육 등 모든 분야에서 선택과 집중을 통해 효율성을 극대화하면서 성공(압축 성장)했는데, 그 효율성의 극대화에 위기(압축 소멸)를 맞았다고 본다. 특히 문제는 소멸에 이르는 ‘속도’가 빠르고, 한국이 선도국가 반열에 오르면서 위기 타개책을 참고할 해외 선례가 없다는 점이라고 진단한다. 소멸을 막을 방법은 ‘정치’의 복원이다. 그는 “사회의 소멸 이전에 정치의 소멸이 있다”며 정치권, 시민사회의 역할을 주문한다. 우리는 언제나 타지에 있다 고예나 지음·위고·1만5000원 농촌의 국제결혼 가정에서 태어난 ‘이주배경청년’의 회고록이다. 가족, 친구, 이주민으로 줄기를 뻗어 나가며 자기 정체성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곳에 뿌리내리고 있음에도 ‘언제나 타지에 있다’는 감각에 대해서 말한다. 타임 셸터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 지음·민은영 옮김·문학동네·1만7800원 과거를 기억하고, 그 기억을 통제하는 건 어떤 의미일까. 한 남성이 알츠하이머 환자들을 위해 과거를 완벽히 재현한 클리닉을 만들며 일어나는 일을 다룬 장편소설이다. 유럽 사회의 과거와 현재의 욕망을 들여다본다. 2023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수상작이다. 커피 이토록 역사적인 음료 진용선 지음·틈새책방·1만9000원 구한말 개화기부터 최근까지 140년간 한국에 커피가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 정리한 커피 문화사다. 시인인 저자는 1980년대 문학만큼 커피에 빠져 관련 자료를 모아 기록했다. 무엇 때문에 한국인들이 커피에 열광했는지 풀어낸다.
신간
저출생이 개·고양이 키우는 청년 때문?
저출생이 개·고양이 키우는 청년 때문?(2024. 09. 02 06:00)
2024. 09. 02 06:00 사회
대통령의 ‘국가 비상’ 선언에도 또 등장한 청년 책임론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8월 26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질의를 듣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인구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하고 저출생 문제를 극복하는 그날까지 범국가적 총력 대응 체계를 가동하겠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 19일 경기 성남시 HD현대 글로벌R&D센터에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를 주재하며 한 말이다. 그러나 저출생 추세를 반전시키겠다는 윤 대통령의 말이 무색하게 저출생에 대한 정부의 인식과 태도는 여전히 엉뚱한 방향으로 향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녀 수)은 0.7명 수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다. 김문수 “젊은이들이 개만 사랑한다” 최근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의 발언이 논란이 됐다. 김 장관은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위원장이던 지난해 9월 대구에서 열린 ‘청년 경청 콘서트’에서 “내가 걱정하는 것은 젊은이들이 서로 사랑하지 않고, 개만 사랑하고, 개만 안고 다니고, 결혼 안 하고, 애 안 낳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장관은 또 “젊음은 뜨겁게 사랑하는 것”이라며 “애를 낳아서 키워줘야지, 개를 안고 다니는 것이 어떻게 행복할 수 있느냐”고 했다. 저출생의 원인과 책임을 반려견을 키우는 청년 개인에게 돌리는 듯한 발언이다. 기자가 취재한 전문가들은 김 장관의 말이 사실인지부터가 제대로 확인되지 않는다고 했다. 한국의 저출생이 반려동물 양육 때문이라는 실증적인 연구자료가 없고, 학계에서도 구체적으로 논의된 바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통계청의 2020 인구주택총조사 결과에서 세대 구성별 반려동물 양육 비중을 보면 1인 가구가 9.8%로 가장 낮았다. 3세대 이상 가구가 20.1%로 가장 비중이 높았고, 그다음이 비친족 가구(18.5%), 2세대 가구(17.9%) 순이었다. 비혼 1인 가구가 출산 대신 반려동물을 키우는 게 대세라기보다는 규모가 있는 가정에서 반려동물을 키울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지난 8월 22일 청년진보당 관계자들이 서울 강남구에 있는 고용노동부 서울강남지청에 방문해 ‘저출생 청년 탓하는 김문수는 사퇴하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청년진보당 제공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구주의 연령대도 50대가 18.9%로 가장 많았다. 이어 40대(16.5%), 60대(14.4%), 30대(14.0%), 29세 이하(12.4%) 순이었다. 혼인 상태에 따라 구분해 보면 배우자가 있는 경우 16.5%가 반려동물을 키워 가장 많았고, 미혼은 11.9%만 반려동물을 키웠다. 통계청의 2019년 생활시간 조사 결과를 보면 맞벌이 부부임에도 여성이 남성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가사노동에 쓴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음식 준비’의 경우 여성이 하루 1시간 20분, 남성이 12분으로 성별 간 차이가 매우 컸다. ‘청소 및 정리’는 여성 31분, 남성 11분, ‘가족 및 가구원 돌보기’는 여성 36분, 남성 15분이었다. ‘반려동물 및 식물 돌보기’는 평균 소요 시간이 3분으로 전체 가정관리 시간(평균 1시간 33분)의 3.2%에 그쳤다. 여성의 과도한 가사노동 부담이 저출생의 원인임은 분명해 보이지만 반려동물 양육이 영향을 미치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성별 간 임금 격차, 장시간 노동, 출산·육아로 인한 경력단절 등 노동 문제가 저출생 문제 해결의 핵심이라는 점에서 고용노동부 장관의 태도는 중요하다. 조은주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금까지 한국에선 저출산 대책을 주로 보육 쪽으로 논의했는데, 핵심은 노동과 고용정책”이라며 “고용노동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데 (김 장관의 발언은) 시대 흐름에 뒤떨어진 말로 보인다”고 했다. 청년진보당 당원들은 지난 8월 22일 서울 강남구의 고용노동부 서울강남지청에 찾아가 “김 장관이 청년만 탓하고 있다”고 항의했다. 홍희진 청년진보당 대표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대통령도 국가비상사태라고 이야기하는 저출생 문제에 대해 경사노위 위원장으로서 책임이 있는 김 장관이 ‘청년들이 개나 안고 다니고 애를 안 낳아서 대한민국에 미래가 없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굉장히 무책임하고 청년들에 대한 모욕적인 발언”이라고 말했다. 홍 대표는 “낮은 임금, 노동시간 문제로 40만명 넘는 청년이 ‘쉬었다’고 집계되는 상황”이라며 “당장 어떻게 먹고살아야 할지 불투명한 현실에서 결혼, 임신, 출산, 육아를 고민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저출생에 대한 정부와 국책 연구기관 등의 시각이 논란이 된 것은 처음이 아니다. 2017년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고학력·고소득 여성이 소득과 학력 수준이 낮은 남성과도 결혼할 수 있게 유도한다’는 취지의 저출생 대책을 제안해 논란이 일었다. 2022년 나경원 당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위원장은 문화방송(MBC)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를 거론하면서 “이런 프로그램으로 혼자 사는 것이 더 행복한 것으로 너무 인식되는 것 같다”고 했다. 지난 5월엔 “남성의 발달 정도가 느리기에 여성을 1년 조기 입학시키면 서로 매력을 더 느끼게 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은 한국조세재정연구원 보고서가 비판을 받았다. 2017년 2월 27일 불꽃페미액션 회원들이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고학력·고소득 여성이 결혼을 위해 눈을 낮추도록 유도한다’는 내용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보고서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난 8월 26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청년들이 왜 비혼·비출산의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답은 이미 나와 있지만 정부가 그 부분을 외면하고 있다”며 “저출생 문제의 당사자인 청년 여성과 남성들을 중심에 놓고 사고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신 교수는 또 “혼자 살기를 선택하는 경우도 있고 비자발적인 경우도 있는데 (김 장관의 말은) 1인 가구, 비혼·비출산에 대한 (근거 없는) 공격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라고 했다. 정부는 지난 6월 육아휴직 급여 인상, 출산·육아휴가 확대, 초등학생 늘봄프로그램 확대, 신생아 특례대출 소득 기준 완화 등을 저출생 대책으로 발표했지만 여전히 단편적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신 교수는 “국가가 청년과 여성을 외면하고 하향식으로 약간의 지원을 해주겠다고 핀셋 정책을 내놓아서 출산율을 반등시킨 나라는 없다”며 “경제적인 양극화, 젠더 격차를 해결하는 등 정부의 전향적인 자세, 사회 구조적인 개혁이 없이는 초저출산 추세가 반등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송다영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비정규직으로 다음 달 재계약이 될지 모르는 여성에게 자꾸 아이를 낳으라고 이야기하면 그 여성이 낳을 수 있겠느냐”며 “문제의 시작은 노동시장”이라고 했다. 송 교수는 “1주당 69시간까지 일해도 된다는 정책을 추진하면서 윤 대통령은 처음부터 저출산과 관련해 잘못된 신호를 준 것”이라며 “이런 신호를 보면서 젊은 세대는 사회가 달라지지 않는다고 느끼고 다시 얼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는 “윤 대통령이 여성가족부 폐지,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고 말하면서 출산과 양육의 주체인 여성들을 보호하지 않겠다고 한 것도 나쁜 신호였다”며 “저출산은 전 세계적인 기조이고 정부가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지만, 많은 정책이 나오고 예산이 들어가는데도 왜 바뀌지 않을까를 생각해본다면 결국 사회와 정책의 중심에 선 대통령이 좋지 않은 신호를 줬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난 8월 3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캣콘’의 한 부스에 J. D. 밴스 상원의원의 ‘자식 없이 고양이 키우는 여자’ 발언을 비판하는 취지의 고양이 얼굴 사진과 티셔츠가 걸려 있다. /게티이미지 ‘자식 없이 고양이 키우는 여자’를 표현한 그림들 /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캡처 “해리스는 자식 없이 고양이 키우는 여자” 미국에서도 저출생과 반려동물을 둘러싼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 대선에 공화당 부통령 후보로 나선 J. D. 밴스 상원의원이 2021년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을 향해 “자식 없이 고양이 키우는 여자(Childless cat ladies)”라며 “국가의 미래와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다”고 말한 게 논란이 됐다. 해리스 부통령은 2014년 남편 더글러스 엠호프와 결혼한 뒤 엠호프와 전처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들을 함께 양육해왔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여성들은 ‘출산하지 않은 여성은 정치인의 자격도 없다는 것이냐’고 분노했고, ‘해리스를 지지하는 자식 없이 고양이 키우는 여자’ 문구를 넣은 고양이 그림을 공유하며 분노를 표현하고 있다. 배우 제니퍼 애니스톤은 SNS를 통해 “미국의 부통령이 될 수 있는 사람에게서 이런 말이 나온다는 것을 정말 믿을 수 없다”며 밴스 의원을 비판했다.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는 지난 8월 21일(현지시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집이 불타고 있을 때 집주인의 인종, 종교, 그의 배우자의 성별, 투표성향을 묻지 않는다”며 “그 집이 자식 없이 고양이 키우는 여자의 집이라면 우리는 그 고양이도 구하려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필리핀 가사관리사 9월 투입…저출생 대책 될까
필리핀 가사관리사 9월 투입…저출생 대책 될까(2024. 07. 16 13:57)
2024. 07. 16 13:57 사회
필리핀 가사관리사(가사도우미) 100명이 오는 9월 처음으로 국내에 들어온다. 서울시와 고용노동부는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을 오는 9월부터 시작하기로 하고, 서비스를 이용할 가정을 이달 17일부터 다음 달 6일까지 모집한다고 16일 밝혔다. 이들은 9월부터 내년 2월 말까지 6개월 동안 각 가정에서 아동 돌봄과 가사 서비스를 한다. 서비스 이용 대상은 서울에 거주하는 가구 가운데 12세 이하 자녀(2011년 7월 18일 이후 출생아)가 있거나 출산 예정인 가구로, 소득 기준에 상관 없이 신청할 수 있다. 이용 시간은 월요일∼금요일 아침 8시부터 저녁 8시 사이에 전일제(8시간) 또는 시간제(6시간 혹은 4시간)로 선택할 수 있으며 52시간을 초과할 수는 없다. 비용은 시간당 최저임금(올해 9860원)과 4대 사회보험 등을 포함해 하루 4시간 이용 기준 월 119만원가량이다. 신청하려면 서비스 제공기관인 ㈜홈스토리생활(대리주부) 또는 ㈜휴브리스(돌봄플러스) 앱에 회원 가입을 한 다음 ‘서울시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을 클릭하면 된다. 서울시는 한부모, 다자녀, 맞벌이, 임신부가 있는 가정 순으로 우선 선발하되 아이들 나이나 희망하는 이용 기간도 고려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번에 들어오는 가사관리사 100명은 한국산업인력공단과 노동부 주관으로 선발됐다. 필리핀 직업훈련원에서 780시간 이상의 교육을 이수하고 정부 인증 자격증을 취득한 24∼38세의 가사관리사로, 영어가 유창하고 한국어로도 일정 수준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건강검진과 마약이나 범죄 이력 등 신원 검증도 거쳤다. 필리핀 가사관리사는 고용허가제(E-9)의 체류자격을 갖는다. 입국 전 필리핀 주관 45시간의 한국어 등 취업 교육을 거쳐 8월 입국한 다음에는 4주 동안 가사관리사 실무 및 한국 생활 적응 교육을 받는다. 가사관리사들은 비상벨과 상주 도우미 등이 있는 전용 공동숙소에서 생활한다. 시와 노동부는 시범사업 이용자 만족도를 높이고 가사관리사들을 보호하기 위해 민원·고충 처리 창구를 운영할 예정이다. 정부는 시범사업을 통해 서비스 만족도와 효과 등을 평가해 우리 사회에 맞는 합리적인 방안으로 보완한다는 계획이다. 법무부는 국내 체류 외국인이 개별 가정과 직접 계약을 맺고 돌봄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시범사업도 9월께 시작한다고 노동부는 전했다. 김선순 서울시 여성가족실장은 “경력 단절이나 자녀 양육에 어려움을 겪는 가정에 새로운 선택지가 될 수 있으니 많은 신청을 바란다”고 말했다. 필리핀 이모님, 돌봄 재난 구원투수 될까매번 뒷전에 밀렸던 돌봄노동이 최근 주요 정책 화두로 떠올랐다. 윤석열 대통령이 저출생 문제 해결을 위해 국내에 체류하는 외국인 유학생과 이민자 가족을 ‘구원투수’로 등판시켰...https://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5&art_id=202404150600081
[오늘을 생각한다] 노동시간 단축 없는 저출생 대책
[오늘을 생각한다] 노동시간 단축 없는 저출생 대책(2024. 06. 21 16:00)
2024. 06. 21 16:00 오피니언
장하나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 지난 6월 19일 윤석열 대통령은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를 주재하고 ‘인구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했다. 2004년 합계출산율 최하위 국가로 자리매김한 지 20년 만의 일이다. 대한민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합계출산율이 1명 이하로 떨어진 유일한 국가다. 2018년 합계출산율 0.98명을 기록한 이후 한국은 전인미답의 길을 걷고 있다. 새삼스레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했으면 비상한 대책이라도 발표할 것을…. 일·가정 양립, 양육(돌봄), 주거 등 3대 핵심 분야 지원에 역량을 집중하겠단다. 제자리걸음이나 제자리높이뛰기나 결국 제자리일 뿐이다. 본질을 모르는 것인지 알면서 외면하는 것인지, 정권이 바뀌어도 저출생 대책은 여전히 헛발질이다. 첫째, 문제의 핵심은 돈이 아니라 시간이다. 윤 대통령 스스로 “백약이 무효였던 원인이 무엇인지 심각하게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16년간 280조원을 써도 실패했으면 발상의 전환을 했어야지, 비상사태라면서 왜 재탕 삼탕인가? 주 40시간(연장근로까지 52시간) 근무제로는 외벌이 모델에서 맞벌이 모델로, 남성 생계부양 사회에서 보편적 생계부양 사회로 전환할 수 없다. 12시간 동안 집이 비는데 돌봄과 살림을 누가 언제 한단 말인가? 노동시간 단축 없는 저출생 대책은 가짜다. 주 35시간, 주 30시간으로 가는 청사진이 있어야 한다. 주 69시간 노동유연화를 주창했던 윤 대통령이 국가비상사태를 해결하겠다니 말이 되나? 주 69시간 일하면 나 자신도 못 돌볼 텐데 출산은 무슨! 주 69시간 노동유연화를 주창했던 윤 대통령이 국가비상사태를 해결하겠다니 말이 되나? 주 69시간 일하면 나 자신도 못 돌볼 텐데 출산은 무슨! 주 35시간, 주 30시간으로 가는 청사진이 있어야 한다. 둘째, 여성 고용단절 문제를 해결하라. 윤 대통령은 “현재 6.8%인 남성 육아휴직 사용률을 임기 내에 50% 수준으로 대폭 높이고, 현재 70% 수준인 여성 육아휴직 사용률도 80%까지 끌어올리겠다. 첫 3개월 육아휴직 급여 상한액을 월 250만원(현행 150만원)으로 인상하겠다”라고 밝혔다. ‘여성 육아휴직 사용률 70%’라니 현실 인식부터 글러 먹었다. 육아휴직은 안 잘려야 쓰는 것이고, 육아휴직 급여도 안 잘려야 받는 것이다.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22년 경력단절여성 등의 경제활동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만 25~54세 여성 중 42.6%가 결혼·임신·출산·육아·돌봄의 이유로 고용단절을 경험했다. 응답자의 76%가 혼인을 경험했고, 69.5%가 유자녀라고 답했으므로 자녀 돌봄으로 고용단절을 경험한 비율은 어림잡아 60%가 훌쩍 넘는다. 2005년 이후 여성의 대학 진학률이 남성을 앞서고 있는데 취업률·평균임금은 여전히 남성보다 낮고, 고용단절이라는 결정타가 도사리는 사회다. 여성 노동자의 관점에서 육아휴직·돌봄·주거정책으로 출생률을 제고할 수 없는 이유다. 이 밖에도 저출생 대책이 실패할 이유는 많다. 미래의 동료시민을 대상화하고 도구화하는 발상이라는 것부터 문제다. 그들은 우리 산 자들을 위해 태어나는 것도 아니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 태어나서도 안 된다. 이제 출산율에서 눈을 떼고 2018년부터 부동의 1위를 고수하고 있는 자살률에 주목하자. 염치가 있다면 살 만한 사회를 만들어 놓고 누군가 태어나길 바라자.
오늘을 생각한다
[김유찬의 실용재정](40) 저출생대응기획부로 아기 울음소리 늘어날까
[김유찬의 실용재정](40) 저출생대응기획부로 아기 울음소리 늘어날까(2024. 05. 31 16:00)
2024. 05. 31 16:00 경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 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실에서 취임 2주년 기자회견을 갖고 “저출생·고령화에 대비하는 기획 부처인 가칭 ‘저출생대응기획부’를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한국의 저출생 문제가 심각하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역대 최저치인 0.72명을 기록했고, 올해는 0.68명까지 추락할 것으로 전망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의 평균 합계출산율은 2021년 기준 1.58명이다. 1명에도 못 미치는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 지난해 출생아 수는 22만9970명으로 역대 최저인데, 2013년의 43만6455명과 비교하면 10년 만에 반으로 줄었다. 윤석열 정부는 심각한 저출생 극복을 위해 ‘저출생대응기획부’를 신설하겠다고 한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정책심의 권한만 갖고 있고 독자적으로 정책을 의결하고 집행하는 기능은 없다. 정부는 저출생대응기획부 장관이 사회부총리를 겸직하고, 교육·노동·복지 분야를 아우르는 통합정책을 만들겠다고 한다. 저출생대응기획부로 출산율 반등은 가능할까. 저출생이 어떤 사회 구조적 특성과 맞물려 유발됐는지, 사회·경제적 메커니즘부터 살펴야 한다. 그래야 정부가 추구해야 할 출산율 수준을 어디에 둬야 할지에 대한 고려가 가능해진다. 한국의 저출생은 다양한 사회·경제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누적된 결과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와 지역 간 격차 심화 등 사회 구조적 개선이 함께 수반돼야 한다. ■ 출산율, 살 만한 국가인지 보여주는 성적표 우선 저출생은 삶에 대한 태도 변화에 기인한다. 개인주의적이고 다원주의적인 사회발전과 함께 자녀를 키우면서 누리는 삶의 기쁨보다 자신의 삶에 대한 상대적인 가치부여 비중이 자연스럽게 커졌다. 특히 여성들의 삶에 대한 태도 변화가 뚜렷하다. 가정과 배우자와 자녀보다 개인으로서 그리고 직업인으로서의 삶에 대해 큰 가치를 부여한다. 결혼 자체를 기피하는 경우도 흔하다. 이 관점에서는 국가나 사회를 중심으로 어느 수준의 출산율이 경제성장과 규모의 경제를 가능하게 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지양해야 한다. 어떤 개인도 국가 차원에서 생각하지 않고 국가를 위해 살지 않는다. 사회의 요구가 반영되고 들어설 공간이 없다. 이는 세계적인 현상이다. 사회는 이를 수용하면서 제도를 맞춰 나가야 한다. 한국만의 특수한 상황도 있다. 다른 어떤 나라에서도 보기 힘든 초저출산율은 과거와 현재, 한국인 자신과 국가에 대한 미래관을 반영하고 있다. 한국이 경험하는 초저출산율은 사회 양극화 및 사회적 압력이 결혼과 자녀 출산에 대한 의욕을 심각하게 저하시킨 결과이기도 하다. 과연 이 나라는 살 만한 나라인가. 아이들을 낳는다면 그들의 삶은 어떠할까? 불평등과 기후위기, 교육환경, 지역 불균형을 포함한 사회 문제들과 정치·사회적 분위기가 종합적으로 반영된 것이다. 아이 하나를 키우기 위해선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저출생은 그 나라가 살 만한 나라인지에 대한 종합 성적표인 셈이다. 개인이 아이를 낳을 것인가를 결정할 때는 거의 모든 것을 고려한다. 어떤 한 분야에도 문제가 있으면 출산을 피하게 된다. OECD에서 출산율이 최저라는 것은 한국에서의 현재와 미래 삶의 질에 대한 평가가 최악이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결국 저출생 대응 정책은 사람들이 살 만한 나라를 만들려고 노력해야 하고, 이것을 긴 기간 동안 일관성 있게 추구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국가의 의무이기도 하다. 국민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국가의 의무인데, 그렇다고 ‘자유평등부’라는 정부 부처를 만들지는 않는다. 국가의 모든 부서가 이를 위해 기능을 분담하고 있어서다. 결국 저출생은 국민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지 못해 발생하는 것이다. 저출생대응부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할 일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저출생 대책이라는 이름의 전시적 행정을 지양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저출생 극복을 위해서는 정부와 사회, 사람들이 나서서 좀더 살 만한 나라를 만들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출생대응부를 만들겠다는 생각보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서 심사숙고해 제안한 제도적 개선안을 행정부처 장관들과 협의하면서 대통령이 하나하나 실현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가장 중요한 제도적 개선 사항은 일 가정 양립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보육의 어려움과 양육 등이 승진누락의 사유가 되지 못하도록 하는 것들이 그런 것이다. 일하는 모든 이에게 직장과 가까운 곳에 보육 시설이 제공될 수 있어야 한다. 정부가 사회에 제공하는 사회 인프라로서 보육시설을 가장 우선순위에 둬야 할 것이다. ■ 대기업 위주 정책 저출생의 주요 원인 직장의 배려도 필요하다. 기업은 장시간 근로 관행을 정부와 협의하면서 제도적으로 고쳐나가야 한다. 초과근무도 매우 예외적으로만 허용하는 방식으로 제도가 개선돼야 한다. 일 가정 양립이 가능한 사회를 만들어나가기 위해 정부는 기업이 불편하게 생각하는 사안도 필요한 경우 받아들이고 기업이 수용하도록 법제화해야 한다. 기업의 이해와 근로자, 시민들의 이해가 조화를 이루는 나라에서도 기업 활동은 충분히 가능하고 성공적일 수 있다. 주거 여건 개선도 풀어야 할 숙제다. 아이 낳기를 주저하는 이들에게 아이와 함께 거주할 수 있는 주거공간의 마련은 경제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다. 수도권 이외의 지역에서는 일자리와 문화, 의료 등 생활 여건이 좋지 않다. 수도권에서 경제적으로 감당 가능한 주거지가 부족한 현실은 지역 균형 발전 없이는 저출생 문제의 해결이 어렵다는 것을 설명해준다.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에 그칠 것이 아니라 대기업의 지방 이전이 필요하다. 전기와 물 공급 문제 때문에 현실적으로 수도권 유치가 어려움에도 용인에 반도체 단지를 실현시키고 싶어하는 정부의 대기업 위주 정책이 바로 저출생의 중요한 원인이라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대안적이고 장기적인 지역 균형 발전 정책을 통해 지방에 청년층이 원하는 정주 여건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저출생이 초래할 사회적 여파에 대비도 해야 한다. 노동시장에서의 노동인구 감소 문제는 인공지능(AI) 시대 도래와 함께 대응이 상대적으로 무난하게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교육 분야에서 학령인구 감소는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인적 자원 수요에 맞춰 교육체계 구조에 큰 변화가 요구될 것이다. 국방영역에서도 인력 감소에 따른 군 체계의 질적 제고를 위한 노력이 필요할 전망이다.
김유찬의 실용재정
[윤형중의 정책과 딜레마](32)저출생 문제 다룰 준비도 안 된 우리 사회
[윤형중의 정책과 딜레마](32)저출생 문제 다룰 준비도 안 된 우리 사회(2024. 03. 15 17:05)
2024. 03. 15 17:05 사회
지난해 12월 26일 서울의 한 공공산후조리원 신생아실에 일부 요람이 비어 있다. 연합뉴스 정책을 선악이 아닌 딜레마의 관점으로 보며 장점과 단점, 효과와 부작용을 꼼꼼히 검증해보자는 취지로 ‘정책과 딜레마’라는 이 코너의 연재를 2년여간 이어왔다. 이번 글에선 다소 다른 접근을 해보려 한다. 정책 이전의 담론, 인식, 문화의 문제를 짚어보고자 한다. 주제는 저출생이다. 최근 정치권에서 2023년 합계출산율 0.72를 접한 이후 관련 대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이런 대책들로 올해 합계출산율이 반전될 리는 만무하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아직 한국사회는 저출생 문제를 다룰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래도 정부와 정치권이 한목소리로 특단의 대책들을 내놓는다고 하는데, 나름의 성과가 있지 않을까. 두고 보면 안다. 진짜 필요한 정책을 제대로 집행하려고 할 때 그 동력이 과연 유지되느냐는 우리 사회 전반의 인식, 문화에 달렸다. 문제는 그 인식과 문화에 있다는 것이다. 저출생 예산 언급 신중해야 저출생 현상과 관련한 흔한 오해가 ‘많은 돈을 썼는데도 효과가 없었다’는 것이다. 특히 2021년에 ‘지난 15년간 200조원을 썼다’는 보도가 쏟아졌고, 지난해엔 정부가 한 해에만 50조원을 넘게 저출산 예산을 편성했다고 발표했다. 이런 발표와 보도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돈을 왜 이렇게 비효율적으로 썼느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효율을 떠나 이 문제에 과도하게 많이 쓴다는 것이다. 후자는 저출생을 중요한 문제로조차 인식하지 않는 시각이다. 후자의 반응은 익명화된 온라인 공간에서 ‘애 낳은 게 벼슬이냐’, ‘집에서 놀면서 아이도 안 돌보려고 하냐’ 등의 표현으로도 표출된다. 한동안 온라인을 넘어 공적인 영역에서도 이런 인식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고, 실제 정책으로도 반영됐다. 2016년 박근혜 정부가 도입한 맞춤형 보육이 그 사례다. 맞춤형 보육이란 전업주부의 보육기관 이용시간을 제한하는 정책이다. 정부로선 기존 보육비 바우처 형식으로 보육기관에 지급하던 재원을 상당분 아낄 수 있었다. 정부로선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지’란 인식에도 부합하고, 예산도 절감하는 정책인 셈이었다. 당시 보육시설과 보육서비스가 태부족인 상황에서 이런 정책이 도입됐으니, 지금 돌이켜보면 저출생의 심화는 정책 탓이란 느낌도 든다. 저출생이 점차 심화하면서 적어도 이 문제에 이렇게까지 돈을 쓰는 것이 잘못됐다는 목소리는 공적인 영역에서 힘을 잃었다. 대신 ‘비효율적인 예산 사용’이란 목소리가 강해졌다. 이건 맞는 얘기일까. 이 연재에서 여러 번 강조했지만, 틀린 얘기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분류하는 공적사회지출(SOCX·Social Expenditure)의 가족지출(family benefits public spending)을 보면 한국은 명확히 OECD 국가들 가운데 하위권이다. 각국을 비교할 수 있는 가장 최신의 자료인 2019년 기준 한국은 GDP 대비 가족지출이 1.374%이고, OECD 평균은 2.109%이다. 북유럽 국가들인 노르웨이, 핀란드, 스웨덴은 2.9~3.4%이고, 프랑스와 독일, 영국 등 서유럽 국가들은 2.4~2.7%다. 한국 다음으로 저출생 현상이 심각한 스페인, 이탈리아, 일본 등은 각각 1.419%, 1.274%, 1.748%다. OECD가 집계한 가족지출에는 아동에 대한 수당, 보육비와 보육서비스, 출산과 양육과 관련된 보조금과 세제 혜택 등이 포함된다. 한국 정부가 발표한 잡다한 항목은 대부분 제외되는 셈이다. 정리하면 한국은 저출생 예산을 비효율적으로 쓰는 나라가 아니라 독보적으로 저출생이 심각하면서도 누구보다 이 문제에 돈을 덜 쓰는 국가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들보다 당뇨병이 심하면서 처방약 복용도 안 하고, 누구보다 식단관리도 안 하면서 ‘나는 열심히 하는데 성과가 안 나온다’고 정신승리만 하면 결과가 어떻게 될까. 당연히 병세만 악화한다. 한국의 저출생이 그런 상황이다. 이런 인식과 실제의 격차로 인해 지난 연재(정책과 딜레마 (19))에서 ‘저출생 직접 예산’과 ‘저출생 간접 예산’을 구분하자는 제안도 내놨다. 하지만 솔직한 심정으론 저출생 예산과 관련된 논의를 좀 자제했으면 한다. 어떤 식으로든 이 얘기를 해봤자 결국 저출생에 상당한 예산을 쓴다는 내용으로 이어지고, 이는 양육자와 여성, 돌봄 노동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강화하기 때문이다. 즉 ‘막대한 지원을 받으면서도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않는다’는 따가운 눈초리를 쉽게 받는다. 경상북도가 지난 2월 20일 도청에서 ‘저출생과 전쟁’ 선포 행사를 하고 있다. 경상북도 제공 단적인 사례가 노키즈존이다. 한 해에 100만명이 넘게 태어나던 1970년대에 한국은 아이들이 어디나 갈 수 있는 사회였으나, 한 해에 30만명이 태어난 2019년엔 영화 <겨울왕국 2>의 노키즈 상영관을 만들자는 논의가 일 만큼 노키즈존의 전성기였다. 일부 극성스러운 양육자들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확연히 줄어든 양육자들이 과거보다 갑절의 문제를 일으킬 확률이 얼마나 될까. 예전엔 가게에서 사건이 발생하면 ‘문제적 개인’의 탓으로 봤다면, 이젠 ‘양육자들이 원래 저렇다’는 인식이 있었기에 이렇게까지 노키즈존이 늘어난 게 아닐까. 결국 노키즈존은 노키즈랜드로 확장됐다. 그리고 노키즈 국가가 머지않았다. 젠더 평등과 합계출산율의 관계 저출생 예산과 관련된 얘기를 길게 했지만, 한국사회가 저출생 문제를 다룰 준비조차 되지 않았다고 보는 더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다. 그것은 한국사회의 페미니즘에 대한 인식과 관련이 깊다. 이 글에서 페미니즘이 옳은가, 나쁜가를 따질 생각은 없다. 다만 페미니즘에 대한 인식이 저출생 현상과 관련이 깊은 것은 여러 연구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페미니즘이 지향하는 ‘젠더 평등’과 합계출산율과의 관계에 관한 대표적인 연구는 에스핑 앤더슨과 빌라리의 2015년 연구(Re-theorizing family demographics)다. 이 연구에서 연구진은 ‘다중균형모형’을 제시한다. 간단히 설명하면 젠더 평등의 인식이 확대되는 초기엔 합계출산율이 감소하지만, 나중엔 젠더 평등의 인식이 사회 지배적 규범에 이르러 출산율이 반등한다는 것이다. 처음에 새로운 가설로 제시된 다중균형모형은 여러 나라에서 진행된 연구들로 실증적인 근거들을 갖게 됐다. 올해 서울 초등학교 신입생 수가 지난해보다 10% 이상 급감하며 사상 처음으로 5만명대로 떨어진 가운데 지난 1월 3일 서울 시내 한 초등학교에 초등학생들이 등교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연구에 여러 어려운 용어가 등장하지만, 실은 누구나 아는 단순한 얘기다. 이를테면 요즘 여성들은 당연하게도 사회적 삶, 경제적 독립을 꿈꾼다. 현모양처, 전업주부가 꿈인 여성은 거의 없다. 그런데 여성이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낳게 되면 경제활동과의 병행이 쉽지 않다. 직장에선 남성과 동등하게 충직한 직원으로 인정받기 어렵고, 가정에선 육아와 가사 노동을 동등하게 분담하기가 불가능에 가깝다. 여성 직원이 아이 돌봄 문제로 쩔쩔매는 것이 민폐로 보이고 눈초리의 대상이 되지만, 남성 직원이 비슷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아예 낯설다. 따라서 경제적 독립과 자아실현을 추구하는 여성들의 증가와 이를 받쳐주지 못하는 사회의 규범과 시스템으로 인해 합계출산율은 감소한다. 한국뿐만이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그런 모습을 보여왔다. 하지만 다른 나라에선 젠더 평등에 대한 인식이 확산하면서 보육 정책의 확대, 일 가정 양립의 지원 등의 제도가 강화됐고, 다시 합계출산율의 반등이 이뤄졌다. 하지만 한국사회는 젠더 평등이 제도로 자리 잡길 거부하는 중이다. 그럼 구체적으로 어떤 정책들이 젠더 평등에 부합하면서도 꼭 필요한 정책일까. 여성이 사회적 삶과 가사를 병행할 수 있는 체계가 정책으로 마련돼야 한다. 정책의 효과는 여성의 고용률로 측정될 수 있다. 실제 한국은 35~39세 여성의 고용률이 OECD 국가의 평균보다 낮고, 비혼 여성이 증가하면서 이 고용률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그렇다면 기혼 여성의 고용률이 높아질 만큼 과소 공급된 보육서비스를 확대하고, 공공의 책임성을 강화하는 것이 우선이다. 구체적 정책으론 국공립 보육시설과 초등 돌봄 정책의 확대, 직장 어린이집 설치 등 기업의 보육 책임 강화 등이다. 하나하나가 모두 전국 단위 선거에선 공약으로 등장했지만, 이해관계자들의 반대로 추진이 쉽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국공립 보육시설의 확충은 민간 어린이집과 민간 유치원의 반대, 초등학생에 대한 돌봄 강화는 교원의 반대, 직장 어린이집 설치 등은 기업들이 비용 부담의 이유로 반대해왔다. 이들 이해관계자는 선거에서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집결된 유권자다. 젠더 평등에 대한 강고한 지지도 없는 마당에 정부와 정치권이 강고한 이해관계자들에 맞서고, 때론 협의하고 조정하며 필요한 정책을 추진할 이유가 있을까. 저출생 통계에 충격을 받아 몇몇 정책을 추진하다가 결국 ‘아이는 엄마가 봐야지’란 인식으로 뜻을 접지나 않을지 걱정이다. 우리가 진정 저출생 문제를 제대로 다루려면 정책 이전에 인식부터 바꿔나가야 하는 이유다.
윤형중의 정책과 딜레마
[취재 후]저출생 정책에서 실종된 중요한 고리(2023. 09. 08 11:23)
2023. 09. 08 11:23 사회
오세훈 서울시장이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을 제안하면서 “황무지에서 작은 낱알을 찾자는 것”이라고 말했을 때, 다소 뜬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무지 작은 낱알’은 해볼 만한 정공법은 다 쓰고 난 후에야 쓸 만한 비유 아닐까. 강은미 정의당 의원의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은) 낳고 키울 환경 다 갖춘 다음에나 고려해볼 정책”이라는 말에 공감했던 이유다. 박송이 기자 ‘낳고 키울 환경’의 핵심 중 하나가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양육자는 아이를 돌볼 시간과 스스로를 돌볼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장시간 노동에서 벗어나야 하고, 출산휴가 및 육아휴직을 보장받아야 하며, 여전히 여성의 몫으로 전가되는 돌봄을 남성에게도 끊임없이 요구해야 한다. 노동시간 단축과 성평등이라는 과제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 저출생 정책의 우선순위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 배경이기도 하다. 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저출생 핵심 원인 중 하나로 장시간 노동과 남성생계부양자 모델을 지적하면서 “남성이 장시간 노동을 하고 여성이 남성을 대신해 가사와 육아를 전담하는 ‘남성생계부양자 모델’을 보편적 생계부양자 및 돌봄자 모델로 전면 개편해야 한다. 남성과 여성 모두 일과 돌봄을 병행할 수 있게 하려면 당연히 노동시간 단축이 필수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맥락에서 정부가 쏟아내는 각종 저출생 대책에서 중요한 연결고리가 하나 빠졌다는 생각을 했다. 기업의 부담과 책임이다. 정재철 강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강사는 “기업 책임을 유도해야 한다는 발상 없는 지금의 위기대응은 ‘언 발에 오줌 누기’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공동체적 관점에서 기업도 책임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는 뜻이다. 저출생 예산은 점점 늘어나고 있지만 ‘낳고 키울 환경’으로의 유의미한 전환책이 보이질 않는다.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에 대한 다양한 우려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빠른 속도로 해당 정책을 추진 중이다. ‘저출생은 해결할 수 없다’는 무능한 한국 정치의 고백처럼 들린다.
취재 후
“노동시간 단축은 저출생·불평등 해결 열쇠”(2023. 04. 21 13:56)
2023. 04. 21 13:56 사회
ㆍ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인터뷰 지난 3월 정부는 주 노동시간을 현행 52시간에서 69시간까지 늘릴 수 있는 노동시간 개편안을 발표했다. 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정부의 노동시간 개편안에 대해 정규·비정규, 장시간·단시간, 성별을 망라한 “모든 노동자의 시간주권을 침해하는 방안”이라고 비판했다. 지난 4월 11일 연평균 노동시간이 1916시간(2021년 기준)으로 우리(1915시간)와 비슷한 칠레는 주 근로시간을 45시간에서 40시간으로 단축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아이슬란드는 노동자 상당수가 주 4일제(35~36시간) 적용 대상이며, OECD 국가 중 노동시간이 가장 짧은 독일(주 35시간)도 주 4일제(주 32시간)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이 교수는 오늘날 “근로시간 단축은 더 논의할 것도 없이 가야 할 방향”이라고 말하며, 특히 저출생, 소득불평등, 4차 산업혁명 등 굵직한 시대적 과제들이 중첩된 한국사회에서 “노동시간 단축은 이를 해결할 아주 중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주 4일제 도입이 긍정적인 파급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기대하면서도 이와 함께 새로운 노사관계, 사회보장제도 확대 등의 정책적 고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진 / 김창길 기자 -지난 3월 정부는 주 노동시간을 현행 52시간에서 69시간까지 늘릴 수 있는 노동시간 개편안을 발표했다. “정부는 ‘노동시간 선택권 확대’라는 미명하에 초장시간 노동을 ‘유연화’로 포장해 추진 중이다. 가뜩이나 후진적인 장시간 노동 관행을 완화해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노동시간을 늘리겠다고 나선 것이다. 당연히 일자리 감소, 노동자 건강 악화, 시간당 실질 임금 하락 등 많은 문제가 예상된다. 또 이번 개편안에는 근로자대표제도 정비 방안이 나와 있다. 그중 하나로 근무 형태나 방식이 다른 직종·직군의 노동자들이 본인에게 맞는 근로시간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한다. 이는 노동시간 개편이 특정 직종·직군에만 적용되는 경우, 사용자가 해당 노동자의 동의만 받아도 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현행법에 따르면 노동시간 변경을 위해서는 사용자가 과반수 노동조합 또는 ‘노동자 과반수를 대표하는 자’와 서면합의를 해야 한다). 정부 개편안은 이를 개별 노동자들과 하겠다는 건데, 사용자가 하겠다는데 이를 거부할 수 있는 교섭력을 가진 노동자가 얼마나 될까.” -여론의 반발에 대통령은 ‘주 60시간 이상 노동은 무리’라고도 했다. “지금 젊은 세대는 자신을 갈아 넣어서 산업 역군이 되는 일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세대가 아니다. 민주화·세계화 시대를 살아가는 인구집단이기에 산업혁명기의 장시간 노동으로 되돌아가는 퇴보에 당연히 반대할 수밖에 없다. 이번 개편안의 또 다른 문제는 정부가 국회 및 노동계와 충분한 토론 없이 이를 발표했다는 점이다. 이 정부의 일관된 특징 중 하나다. 정부가 내놓은 개편안의 상당 부분이 입법 사항이다. 여론의 반발이 있자 그제야 이야기를 듣겠다고 한다. 그마저 특정 노동인구, 특정 세대에 한해서만 의견 수렴을 하고 있다.” -정부는 개편안을 두고 노사에 ‘시간주권’을 돌려주는 것이라고 자평했다. “시간주권은 노동자가 자유롭게 시간을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다. 정부의 개편안은 모든 노동자의 시간주권을 침해한다. 장시간 노동은 국내에서는 점점 소수가 돼가는 핵심노동자(정규직)의 과로, 주변부 노동자(비정규직·간접고용 노동자·플랫폼 노동자 등)의 단시간 노동 및 실업을 유발한다. 핵심노동자는 휴식과 재생산·재충전의 기회가 박탈되고, 주변부 노동자는 저임금으로 휴식시간의 질이 심각하게 훼손된다. 또 핵심노동자의 다수는 남성이고 주변부 노동자의 다수는 여성이다. 장시간 노동을 하게 되면 누군가 옆에서 도와줘야 하는데, 여성이 그 역할을 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보니 계속해서 주변부 노동을 하게 된다. 결국 남녀 모두의 시간주권과 평등이 훼손된다. 게다가 이미 법정근로시간 밖에서 장시간 일하는 노동자들이 너무 많다. 지난해 8월 고용노동부는 3년간의 특별연장근로(근로기준법 시행규칙이 정하는 ‘특별한 사정’ 있는 경우 한시적으로 1주 최대 64시간까지 근무 가능) 인가 현황을 분석·발표했다. 특별연장근로는 노동부 장관의 허가가 있어야 가능하다. 2022년 1~7월 특별연장근로 인가 건수는 모두 5793건으로, 2021년 같은 기간에 견줘 2523건(77.2%) 늘었다. 놀라운 수치다. 행정부의 독단으로 장시간 노동은 이미 상당히 확대되고 있다.” -최근 칠레 의회가 주 4일제 법안을 통과시켰다. 한국과 달리 세계는 주 4일제 실험 등 노동시간 단축을 향해 가고 있다. “노동시간 단축은 모든 선진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사실 더 논의할 것도 없다. 첫째, 노동시간 단축은 일자리 확대와 연결된다. 노동운동이 주도해온 노동시간 단축은 노동자의 휴식과 여가 확보뿐만이 아니라 기술 발전으로 인한 실업을 막기 위해서도 필요했다. 둘째, 4차 산업혁명에 걸맞은 혁신을 위해 노동시간을 단축해야 한다. 짧은 노동시간은 기업으로 하여금 생산성 향상을 위한 더 나은 방식을 찾도록 한다. 이는 기술혁신으로 이어진다. 노동시간 단축이 단기적으로는 비용이 들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기술혁신과 창의성 증진으로 이어지므로 사용자에게도 나쁜 선택이 아니다. 경제학자인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1997년 외환위기를 겪은 한국 등 동아시아의 경제성장을 영감(inspiration)이 아니라 땀(perspiration)에 의한 것이라고 논평한 바 있다. 노동자를 쥐어짜내 성장하는 장시간 노동으로 가게 되면 앞으로 더욱 기술혁신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 셋째, 장시간 노동은 장기적으로 생산성을 낮추고, 소득불평등, 성불평등을 강화한다. 앞서 언급했듯 전일제 노동자들이 장시간 일하게 되면, 다른 한쪽에서는 단시간 노동, 불안정 일자리가 증가하게 된다. 장시간 노동자는 시간이 없어서, 시간제 노동자는 실질적인 돈이 없어서 총수요가 촉진되지 않는다. 노동자가 재충전하지 못하면서 인적자원의 손실도 발생한다. 넷째, 저출생은 필연적이다. 단시간 노동이나 불안정 노동에 종사하는 이들의 대부분이 여성이나 청년이다. 이들은 아이를 안 낳음으로써 단시간·불안정 노동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노동시간이 길어지면 돌봄, 자원봉사, 시민참여 등 공동체를 위한 의미 있는 활동이 위축된다. 장시간 노동으로 너무 바쁜 노동자들은 공동체에 관심을 두지 못하고 힘이 세고 영향력이 큰 미디어에만 의존하게 된다. 장기적으로 볼 때, 노동시간 단축은 경제 전반에 또 국민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간다. 지금 정부는 그러나 이런 혜택은 염두에 두지 않고 당장 사용자가 원하는 데로만 쫓아가고 있다.” 지난 4월 10일 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가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연구실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지난 대선 당시 이재명 민주당 후보,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주 4일제를 공약으로 내놓았지만, 크게 쟁점은 되지 못했다. “워낙 다른 이슈가 많았던 원인이 크겠지만, 주 4일제가 절대다수의 노동자에게 해당하는 일이 아니었다는 점도 주요 이유 중 하나였다. 1인 자영업자, 특수고용직, 플랫폼 노동자 그리고 근로기준법 적용이 안 되는 직종들에는 주 4일제 공약의 울림이 크지 않았을 것이다.” -주 4일제를 도입하면 대기업 정규직에만 혜택이 돌아갈 거라는 비판이 있다. “국내에 주 4일제를 도입하는 데 두 가지 걸림돌이 있다. 첫째는 저임금과 임금불평등이다. 임금불평등도가 높으면 저임금은 물론 고임금 직종 또한 장시간 노동을 하게 된다는 조사가 있다. 임금이 낮으면 일을 많이 할 수밖에 없어 당연히 장시간 노동을 선호하게 된다. 고임금은 노동시간에 대한 보상이 크고 휴식에 대한 기회비용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임금일수록 일을 더할 인센티브가 생기는 것이다. 둘째는 비표준적 고용관계다. 노동자로서 고용계약을 맺지 못하는 특수고용직, 자영업자로 오분류된 플랫폼 노동자와 같은 위장된 1인 자영업자가 비표준적 고용관계에 놓여 있다. 이들은 법정근로시간이 아무리 줄어도 이를 적용받지 못한다. 특히 이들은 ‘노동하는 시간’과 ‘노동하지 않는 시간’에 대한 구분이 잘 안 된다. 플랫폼 노동자의 경우 단시간 일감이므로 일하지 않는 시간에도 끊임없이 신경을 쓰고 있어야 한다. 고용관계라면 노동시간에 포함될 수 있는 대기시간이다. 기업들은 점점 더 정상적인 고용관계를 맺기보다 업무를 극단적으로 외주화하려고 한다. 과거에는 정규직 노동자로 고용했던 직종을 독립계약자, 1인 자영업자에게 맡기는 전략을 쓰고 있다.” -주 4일제 도입과 함께 어떠한 정책들을 고려해야 하나. “새로운 노사관계, 사회보장 확대 등을 고려한 정책이 수반돼야 한다. 비표준적 고용관계에 놓여 있는 노동인구가 늘고 있는데, 여전히 노동법과 사회보장체제는 위계적이고 집합적인 고용관계를 상정하고 있다. 기존의 노동법과 사회보장법으로는 이 노동자를 보호할 수 없다. 노동자성을 판단하는 기준을 완화하고 이를 입증하는 책임은 사용자가 지도록 해야 한다. 직접 근로계약을 맺지 않지만,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플랫폼 사업자 등의 사용자성을 인정하고 교섭의무도 명확히 해야 한다. 유럽연합 등 선진국에서는 플랫폼 노동자의 상당수인 배달·운송 종사자를 노동자로 인정하는 판례가 축적돼 있다. 기존의 노동법에서 노동자 개념·사용자 개념을 재정립해 노동법의 보호를 받는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 노동법의 외연을 넓혀도 자영업자, 프리랜서 등 노동법적 보호가 불가능한 사람들이 있다. 이들을 위해서는 사회보장의 보편성을 확대해야 한다. 고용보험·산재보험 등 지금의 사회보험제도는 고용을 매개로 이루어지고 있다. 노동법에 들어오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일하는 모든 사람을 위한 기본법’ 등을 통과시켜 사회보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나는 기본소득도 하나의 대안이라고 본다. 이론과는 달리 현실에서 사회보험과 기본소득에 대한 수요는 배타적이지 않다. 기본소득이 미래의 모든 형태의 불안정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는 사회보장제도로 기능할 수 있고, 장시간 노동을 제어할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조세, 공공주택 정책 등 더 정교한 제도 설계와 소통으로 주 4일제가 가져올 수 있는 차별적 효과를 완화할 수 있어야 한다.” -주 4일제 도입을 위해서는 국가의 개입이 필수적이지만, 현 정부의 정책 기조와는 거리가 멀어보인다. “정부의 정책적 개입이 없다면 지불능력이 큰 대기업 조직에서만 하게 할 것이다. 지금의 20~30대는 주 4일제를 원하기 때문에 좋은 인력을 끌어들이려면 기업은 결국 주 4일제를 할 수밖에 없다. 그 외의 대다수 노동자는 지금 정부의 방침대로라면 장시간 노동으로 더 힘들어질 우려가 크다. 시장에만 맡기면 불평등이 심화되기 때문에 국가가 개입해 불평등을 최소화하는 게 맞다. 하지만 이에 대한 개념이 없는 정부 같아 사실 현재로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우선적으로 대기업 조직에서만 주 4일제를 시행하더라도 효과가 없다고만은 볼 수 없다. 제한된 대상으로라도 시행돼 문화 자체가 확산되면 그 추세를 되돌리긴 어렵다. 문화의 특성이 그렇다. 일부에서 시작만 해도 그 자체로 긍정적인 효과가 있으리라고 본다.”
표지 이야기
[윤형중의 정책과 딜레마](19)저출생, 많은 돈 쓰고도 왜 효과 없나(2023. 03. 24 12:51)
2023. 03. 24 12:51 경제
2022년 합계출산율이 0.78이란 숫자가 발표되자마자 저출생이 심각한 사회문제라는 논의가 갑자기 넘쳐나기 시작했다. 0.78이란 숫자가 사상 최저치인 데다 세계적으로도 이례적인 수치이기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압도적 최하위일 뿐 아니라 여러 나라의 역사를 봐도 전쟁이나 대기근 정도의 환경에서 나오는 합계출산율보다 훨씬 낮다. 출생아 수를 보면 더욱 극적이다. 2002년 한 해 출생아 수 50만명대가 깨진 뒤 한동안 40만명대를 유지해왔다. 통계청 등 주요 기관은 한국의 저출생 현상이 심각하긴 하지만, 40만명대를 상당 기간 유지할 것이라고, 이런 상황도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런데 2017년 35만7771명을 기록하며 처음 40만명대가 깨진 이후 2020년 27만2400명으로 3년 만에 30만명대마저 무너졌다. 코로나19 영향일까. 임신 기간을 감안하면 코로나19 영향은 크지 않다. 그리고 2022년엔 24만9000여명을 기록해 역대 최저치를 다시 경신했다. 1958년생부터 1970년대생 초까지 매년 100만명 정도가 태어나던 것을 감안하면 불과 50년 만에 출생아 수가 4분의 1토막이 나고,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는 세계사적으로도 유일한 사례다. 2022년 합계출산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꼴찌인 0.7명대로 떨어졌다. 사진은 서울의 한 대형병원 신생아실 / 연합뉴스 그렇다면 이런 이례적인 숫자를 어떻게 봐야 할까. 좀 다른 얘기부터 해보겠다. 코끼리는 동물원에서 새끼를 잘 낳지 않는다. 코끼리만큼은 아니지만, 오랑우탄이나 고래, 북극곰 등도 동물원에서 임신과 출산을 잘하지 않는다. 이들이 인간처럼 피임하는 것도 아닌데도 그렇다. 왜 그럴까. 과학적인 원인 규명은 쉽지 않겠지만, 자연의 원리만 봐도 당연한 현상이다. 동물원이 이들에게 새끼를 낳고 기를 만한 좋은 환경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의 한국사회도 마찬가지 아닐까. 겉으론 선진국에 진입했다는 성취(?)에 취해 있지만, 젊은 세대들에겐 대한민국 사회가 아이를 낳고 키울 만한 곳이 아닌 것이다. 다시 말해 저출생은 거의 모든 문제의 결과란 의미다. 따라서 저출생 현상은 한두 가지의 원인을 지목하고, 그걸 개선하는 방식으론 결코 풀 수 없다. 누군가를 탓하거나 책임을 부과하는 방식으로는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경제 성장을 위해, 국가가 유지되기 위해 아이를 더 낳아야 한다는 ‘인간을 수단화하는 접근’으로는 문제의 해결이 요원해질 뿐이다. 복합적인 원인이 중첩돼 있기에 구조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인간의 존엄 및 행복과 관련이 있기에 세심한 접근이 중요한 문제다. 이 연재에서 ‘저출생’을 두 차례에 걸쳐 짚고자 한다. 우선 저출생과 관련된 ‘담론의 문제’부터 다루고, 그다음 연재에서 ‘돌봄의 문제’를 주제로 삼고자 한다. 이 글에서 ‘아이가 적게 태어나는 현상’을 ‘저출산’이 아닌 ‘저출생’이란 용어로 쓴다는 점을 먼저 밝힌다. 이 현상은 ‘낳는 주체’보다는 ‘적게 태어나는 현상’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인구학자 조영태 서울대 교수는 ‘출산’이란 용어가 여성의 산전·산후 건강까지 포함하는 개념으로 여성의 권익에 더 부합한다고 보지만, 필자는 오히려 저출산이란 용어에선 출산의 주체가 먼저 떠오르고, 이는 저출생 담론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저출생은 특정 성별, 세대의 주체적 선택이라기보다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사회적 현상이기 때문이다. 저출생 담론이 저출생의 원인이다 필자는 이미 학제 개편을 다룬 지난 연재에서 ‘저출생의 해법이 저출생의 원인’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정책과 딜레마 ⑧ ‘학제 개편’ 딜레마에서 빠져나오려면). 무슨 의미냐 하면 해법에 내포된 인식이 저출생 현상을 만든 원인이라는 것이다. 지난해 윤석열 정부의 박순애 전 교육부총리는 학제 개편을 추진한 배경으로 “일찍 입학해 일찍 나와 결혼 연령도 빨라지고, 그렇게 해서 나온 결과물(저출생 대응 효과)을 부정할 수는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과거 이명박 정부의 핵심 인사이자 국민의힘 출신의 임태희 경기도교육감은 당시 대놓고 “저출산 고령화 문제 해소”를 위해 “취학연령 하향 조정 문제를 논의하자”고 밝혔다. 다시 말해 ‘입학연령을 앞당길 테니 빨리 졸업하고 결혼해 애 낳으라’는 의미였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맞춤형 돌봄 역시 추진 과정에서 주요 주체들이 저열한 인식을 여과없이 드러낸 바 있다. 정부가 2016년에 도입한 맞춤형 돌봄이란 어린이집 이용시간을 맞춤반은 6시간, 종일반은 12시간으로 개편하는 정책으로 전업주부에게 보육시설 이용시간을 제한해서 되도록 영유아를 가정에서 키우도록 하자는 취지의 정책이었다. 정부는 전업주부가 이기적이어서 아이를 보육기관에 보낸다고 생각한 것일까. 물론 당시의 쟁점은 전업주부에 대한 차별이 아니었다. 들고일어난 쪽은 어린이집들이었다. 정부가 맞춤형 보육을 도입하면서 맞춤반의 보육비를 적게 책정했고, 결과적으로 어린이집이 받는 지원금이 줄어들었다. 어린이집들은 지원금의 축소에 항의한 것이다. 그 상황에서 취직하지 않은(혹은 못 한) 양육자가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심정은 어땠을까. 내 아이의 꼬리표엔 ‘적은 보육비’가 달린 셈이라 어린이집에서 미움받지 않을지 노심초사했던 게 당시 맘카페의 분위기였다. 최근에도 ‘해법이 원인’인 사례는 넘쳐난다. 조정훈 시대전환 국회의원이 3월 21일 외국인 가사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는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조 의원은 “올해 한국의 최저임금 시급은 9620원, 월 210만원이다. 이런 비용으로는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하는 우리 청년들이 가사도우미를 쓸 수 없다”며 “제가 발의한 법안이 시행된다면 싱가포르와 같이 월 100만원에 외국인 가사도우미의 사용이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이는 인권과 노동권의 차원에서도 큰 문제가 있는 시각이면서 가사와 돌봄 노동에 대한 폄하를 부추기는 언행이기도 하다. 이런 돌봄 노동에 대한 폄하는 노동시장에서 가사와 돌봄 관련 직종의 처우를 악화시키고, 결국 성별 임금 격차와 젠더 평등을 악화시키는 요인이기도 하다. 젠더 평등과 출산율 필자가 소속된 민간연구소 랩2050은 지난 2년간 국내총생산(GDP)의 대안지표인 참성장지표(GPI·Genuine Progress Index)를 만드는 연구를 수행했다(관련 내용 www.gpi-lab2050.org). GPI엔 GDP엔 산정되지 않는 돌봄과 가사노동, 여가의 가치, 교육과 자기계발의 가치, 기후와 환경의 변화까지 총 100여개 통계를 이용해 만든 지표가 담겼다. 그중 하나가 가사와 돌봄 노동의 가치다. 의외의 수치가 하나 나왔다. 한국의 가사와 돌봄 노동의 가치는 경제성장률보다 낮은 수준을 유지해왔지만, 2018년부터 급격하게 높아졌다. 이 기간에 가사와 돌봄 노동의 가치가 더 높게 평가받은 것일까. 그렇지 않다. GPI는 랩2050이 독자적으로 만든 게 아니라 이미 여러 나라에서 만들어진 바 있고,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가사와 돌봄 노동의 가치 측정법을 국내에 적용한 것이다. 그 측정법은 가사와 돌봄 노동시간에 관련 직종의 평균임금률을 곱한 것인데, 한국의 경우 관련 직종의 평균임금이 낮아 최저임금 인상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이처럼 돌봄 일자리의 대부분은 최저임금 일자리다. 이런 상황에 조 의원은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돌봄에 적용하자고 주장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다른 돌봄 직종의 처우도 다 같이 무너지게 된다. 최근 합계출산율 0.78 통계 발표 이후의 논의를 보면 ‘해법’보다 그 전 단계의 ‘저출생 담론’부터가 문제로 보인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그토록 많은 돈을 썼는데도 효과가 없다’이다. 이 논의가 조금 더 ‘책임론’으로 이어지면 ‘엉뚱한 곳에 돈을 썼다’부터 ‘돈을 받고도 애를 안 낳는다’까지 이어진다. 3월 13일자 중앙일보에 실린 김진영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의 칼럼엔 이런 문장이 있다. “출산장려금이 이렇게 적은데 왜 아이를 낳아야 하느냐는 2030세대의 질문을 받으면 과연 아이를 낳는 것인지, 낳아주는 것인지 모를 지경이다.” 이쯤 되면 저출생과 관련된 담론이 저출생의 원인이 아닌가 싶다. 물론 그 담론 중에서 가장 심각한 수준 중의 하나는 저출생의 원인으로 ‘페미니즘’을 지목하는 것이다. 마침 그런 시각을 가진 이가 이 나라의 대통령이다. 이래도 독보적 저출생 현상이 과연 우연일까. 젠더 평등은 초기엔 출산율을 일부 낮추는 요인이 될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여성들의 가족형성과 자기실현을 돕는 일이어서 여러 선택지를 택할 권리를 보장하게 된다. 현실에선 젠더 평등 수준이 높은 나라들의 합계출산율이 상대적으로 높다. 저출생 예산의 이름부터 바꾸자 저출생 예산이 잘못 쓰이고 있다는 지적은 꽤 오래됐다. 주된 지적은 과거에 예산이 주로 출산과 양육 지원에 집중했는데, 알고 보니 결혼한 사람들은 애를 그래도 낳고 있고, 결혼을 잘 안 하는 게 문제이니, 결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돈을 써야 한다는 것이었다. 필자가 기억하기론 이런 인식에 중요한 영향을 준 연구는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가 2012년 발간한 ‘한국의 합계출산율 변화요인 분해: 혼인과 유배우 출산율 변화의 효과’란 논문이다. 논문의 핵심 내용은 결혼한 여성(유배우 여성)의 출산율은 지속적으로 올라간 반면에 결혼한 여성의 비율(유배우 비율) 자체가 떨어졌기 때문에 합계출산율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논문은 정책적인 시사점으로 “현재까지 추진된 저출산 대책들은 출산 장려금, 보육 지원, 일과 가정생활 양립을 위한 근로조건 개선 등 주로 유배우 여성들의 출산을 장려하는 성격의 정책들”이라며 “이 연구의 결과가 보여주듯이 유배우 비율이 감소한 요인이 출산율의 결정요인과 무관하다면 현재의 저출산 정책만으로는 유배우 비율을 제고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쉽게 말하면 결혼을 하지 않는 게 문제이니, 출산과 양육 지원 위주의 정책을 바꿔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기일 보건복지부 차관이 3월 4일 저출산 대응책 마련을 위한 2030 청년과의 긴급 간담회를 주재하고 있다. / 연합뉴스 2015년에 발표된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2016~2020년까지 적용)이 기존의 출산·양육 중심의 지원을 생애주기별 지원으로 겉으로나마 ‘구조적 전환’을 한 것에 이 논문이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논문의 분석이 정확하고 정합성이 있느냐와는 별개로 ‘저출생 담론’엔 두 가지 측면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하나는 출산과 양육 지원에 대한 회의적 시선이 늘어났다는 점이다. 이 교수가 논문에서 “출산율 장려정책의 필요성을 부정하지 않는다”고 밝혔지만, 이 정책들의 효과가 제한적이란 핵심 주장이 강력한 나머지 이런 정책들이 비효율적이며 돈만 낭비한다는 인식이 널리 퍼졌다. 다른 부정적인 영향은 원인 간의 관계를 과소평가했다는 점이다. 과연 아이를 키우기 힘든 환경과 결혼하기 힘든 환경이 서로 분리돼 있을까. 만일 아이를 키우기 힘든 환경이 그대로 유지되는데도 사람들이 결혼만 하면 아이를 낳을까. 직관적으로도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인식 조사에서도 드러난다. 시사인과 한국리서치가 2월 10일부터 14일까지 만 18~49세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조사한 결과 ‘자녀는 반드시 낳아야 한다’는 인식에 대해 20대 여성은 10%, 30대 여성은 26.1%만 동의했다. 같은 나잇대 남성의 경우엔 각각 35.5%, 37.7%로 상당한 차이가 있다. ‘자녀가 생기면 나의 사회적 성취를 이루기 어렵다’는 인식에 20대 여성은 68.7%, 30대 여성은 57.5%가 동의했고, 반면 20~30대 남성은 37.3%, 35.1%만 동의했다. 바로 윗세대의 경험은 다음 세대의 중요한 참고자료였다. 사실 정부가 발표하는 ‘저출산 예산’은 잘못된 지표다. 올해 기준으로도 50조원이 넘는데, 이 예산에 포함된 사업 목록엔 아동학대 방지, 군 인력 개편 등 직접적 관련 없는 예산이 대부분이다. 국제 비교지표인 OECD 통계를 보자. GDP 대비 사회복지 지출(social expenditure) 가운데 아동수당, 육아휴직수당, 보육서비스 등이 담긴 아동가족(family) 항목의 비중은 2019년 기준 OECD 평균이 2.1%이고 한국은 1.4%다. 평균에 훨씬 못 미치는 예산 규모인 셈이다. 새로운 제안을 하나 해본다. 저출생 예산을 ‘저출생 직접 예산’과 ‘저출생 관계 예산’으로 나눠보면 어떨까. 실제로 ‘관계’ 예산이란 ‘관계가 별로 없는 예산’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직접 예산’이다. 숫자의 착시에서 벗어나 담론의 구조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그러고 나서 무엇이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예산’인지 가려내야 한다.
윤형중의 정책과 딜레마
저출생 대책, 성평등 정책이 핵심이다”(2023. 03. 17 14:26)
2023. 03. 17 14:26 사회
ㆍ신경아 한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인터뷰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역대 최저인 0.78명을 기록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합계출산율이 1명 밑으로 떨어진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 2005년 저출산·고령사회 기본법이 제정된 이후, 저출생 대책으로 각종 정책이 쏟아져 나왔지만, 출산율은 매해 떨어졌다. 스웨덴, 독일, 이탈리아 등 저출생 위기를 겪은 국가들이 국가의 정책적 노력으로 출산율이 반등한 것과 대조적이다. 신경아 한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초저출생 위기에 처한 한국사회를 “큰 병에 걸렸는데 해열제만 먹고 있는 상황”이라고 빗대며,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를 쫓는 미시적인 정책이 아니라 구조적인 전환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신 교수는 구조적인 전환과 출산율 반등의 핵심에는 ‘성평등 정책’이 있다고 강조했다. 사진/우철훈 선임기자 -정부의 저출생 정책은 왜 효과적으로 작동하지 못했나. “사람들이 자신의 생애에 대해 다른 전망을 가질 수 있도록 사회가 방향을 틀어야 하는데, 가던 방향으로 계속 가면서 임시방편적인 조치만 취해왔기 때문이다.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출산지원금, 돌봄시설 확대, 난임 지원 등 기존의 정책들도 필요하다. 하지만 이들은 미시적인 정책이고 구조적인 전환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다 보니 시민들이 정책에 대해 반응하지 않는다. 몇몇 정책은 오히려 역효과를 낸다. 2016년 논란이 됐던 행정안전부의 가임기 여성 지도가 대표적이다. 흔히 ‘출산장려 정책’이라는 이 같은 접근에 여성들은 반감을 갖는다. 비혼 남성도 마찬가지다. 통계에 따르면 만 39세까지 비혼으로 살아가는 남성이 50%가 넘는다. 아이를 낳고 싶지만 전망을 찾기 어려운 남성들도 아이를 낳으라는 요구에 분노한다.” -근본적인 전환을 위해 어떠한 접근이 필요한가. “성평등 정책이 핵심이 돼야 한다. 저출생이 계속된 이유는 출산과 양육을 둘러싼 여성과 남성의 관계, 젠더 관계가 잘못됐기 때문이다. 다수의 여론조사가 일관되게 보여주는 것은 여성들이 출산에 대해 훨씬 부정적으로 생각한다는 점이다. 여성들이 출산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출산 이후의 상황을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전히 여성은 양육의 1차 책임자다. 여성들은 양육과 자신의 경력을 동시에 추구하는 일이 어렵다는 것을 잘 안다. 경제적 독립, 사회적 지위 확보, 자아실현 등을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먹고살기 위한 경제적 이유 때문에도 여성의 직업은 필요하다. 또 과거와 달리 비혼, 이혼율도 높다. 가족 속에서 자신의 미래를 계획하는 것이 불확실해졌기 때문에 누구든 자기 소득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아이를 낳게 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이 살아가기 위해 소득이 있어야 한다’라는 기본적인 조건을 충족하기가 어려워진다. 여성들의 마음이 출산에 긍정적으로 바뀔 수 있도록 성평등 정책으로 사회를 전환해야 한다.” -핵심은 여성에게 집중된 양육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인가. “성평등은 여성을 우대하고 남성에게 불이익을 주자는 게 아니다. 여성과 남성의 격차, 불평등을 해소하자는 것이다. 과거에는 남성이 주로 생계부양자였다. 지금도 남성이 주부양자라는 이데올로기는 남아 있으나 점점 불가능해지고 있다. 사람들은 중산층으로 살고 싶어한다. 중산층으로 살려면 ‘두 개의 소득’이 있어야 한다. 남성의 어깨에서 생계부양자의 짐을 덜어주고, 남성이 출산·양육에 동등하게 주체로 들어와야 한다. 2인 소득, 2인 돌봄의 방향으로 정책이 가야 한다. 남성이 혼자 250만원을 벌면 출산·양육을 하기가 어렵지만, 여성도 같이 250만원을 벌면 상황은 달라진다.” -현재도 여성의 경제활동을 보장하기 위한 육아휴직·돌봄 정책 등의 정책은 있다. “한국사회에서 일하는 여성의 절반은 비정규직이다. 법적으로 비정규직도 출산휴가를 쓸 수 있지만, 실효성은 불충분하다. 대기업 등 출산휴가·육아휴직이 보장된 조직이더라도 제도가 성평등하게 작동하지 않는다. 이와 관련해 2년 전, 심층 연구를 한 적이 있다. 가족 친화적이라고 평가받는 기업들의 인사담당자를 인터뷰했다. 여성 인사담당자조차 육아휴직에서 복직한 여성 직원에게 좋은 인사고과를 줄 수 없다고 했다. 그들은 ‘아침부터 밤까지 뼈 빠지게 일한 사람과 육아휴직한 사람을 같은 선상에 놓고 승진의 기회를 주는 게 공정한가’라며 오히려 되물었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의 논리와 사회의 재생산 논리는 충돌할 수밖에 없다. 국가의 역할이 필요한 이유다. 우선 남성이 육아휴직을 쓰는 것을 보편화해야 한다. 정책이나 제도가 남성에게 적용되면 빠르게 규범화되는 경향이 있다. 또 육아휴직자 대체 인력을 확보해야 한다. 육아휴직이 제도적으로 보장된다고 해도 육아휴직을 쓸 때 동료들의 눈치를 보게 된다. 대체 인력이 없다 보니 휴직으로 인한 업무 공백을 동료가 맡게 되기 때문이다. 스웨덴에서는 육아휴직자의 대체 인력 채용이 활성화돼 있다. 기업은 육아휴직에 들어가는 인력의 비율을 계산하고 업무를 재조직해 설계해야 한다. 여력이 안 되는 중소기업들은 국가가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시스템을 설계해 지원해 줘야 한다.” -2021년 제4차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에서는 처음으로 ‘성평등하고 공정한 사회’의 목표가 명시됐다. “획기적인 변화였다. 이전까지 ‘출산=여성’이었는데 이 프레임에서 벗어났다. 인구·출산과 관련한 대표적인 조사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3년마다 실시하는 ‘전국 출산력 및 가족보건 복지 실태조사’(2021년부터 ‘가족과 출산’ 조사로 명칭 변경)다. 출산을 여성의 문제로만 봤던 과거에는 기혼 여성만 조사 대상이었다. 2021년부터는 제4차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의 목표를 반영해 조사대상에 비혼자와 남성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도 비판할 지점이 있다. 프레임을 바꾸기 위해 노력했지만, 구체적으로 성평등 정책의 필요성을 깊이 있게 이해하고 이를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하지 않았다. 2019년 여성가족부 예산이 처음 1조원을 넘었어도 대부분이 ‘돌봄’ 예산이었다. 경력 단절, 유리천장 등 노동시장에서 여성들이 겪는 성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정책은 턱없이 부족했다.” 사진/우철훈 선임기자 -윤석열 대통령은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내걸어 당선됐다. 현 정부의 저출생대책에 성평등이 반영될 수 있을까. “현 정부는 여성을 지우고, 성평등을 거부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미약하게나마 성평등 정책으로 방향을 틀었는데, 다시 되돌려 퇴행하고 있다. 동유럽 일부 국가들은 저출생 대책으로 성평등 정책을 삭제하고, 전통적인 모성을 강요하는 출산장려 정책으로 회귀했다. 아직은 아니지만, 현 정부의 기조를 보면 한국도 그렇게 될 위험이 충분히 있다. 미래가 안 보이는 상황이다. 얼마 전, 정부는 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회 부위원장으로 김영미 동서대 교수를 임명했다. 김영미 교수는 성평등에 대해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왔다. 여가부 폐지를 내세웠던 이 정부도 저출생 문제는 성평등 없이 도저히 해결이 안 된다는 점을 아는 것이다. 정부도 알긴 안다고 보지만, 이를 정책에 반영할지에 대해선 비관적이다.” -저출생 대책으로 ‘육아기 재택근무’ 활성화를 검토 중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육아기 재택근무 자체는 필요하다. 하지만 성평등 기조 없이 육아기 재택근무를 실시하면 ‘일과 육아’라는, 여성들에게 강요된 이중부담이 더 강화되고 여성들의 출산 의욕은 더 떨어질 것이다. 기업은 재택근무 노동자와 출퇴근 노동자를 똑같이 대우하지 않는다. 여성 노동자는 계속 조직에서 주변인에 머물게 되고 유리천장은 더 단단해질 것이다. 결혼도, 출산도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더 강화될 수밖에 없다. 육아기 재택근무는 성평등 기조 아래 남성도 이를 보편적으로 쓸 수 있도록 성별 균형을 추구하면서 도입돼야 한다.” -서울시의 합계출산율은 전국 최저인 0.51이다. 오세훈 시장은 저출생 첫 정책으로 난임부부 지원 확대를 발표했다. “서울시도 저출생 정책에 성평등 기조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서울시의 난임부부 지원 정책도 난임을 여성의 문제로만 보고 있다. 서울시는 난자동결 시술 비용, 35세 이상 고령산모 검사비 등 난임부부 시술비를 소득 기준, 횟수 제한 없이 지원하겠다고 했다. 난임과 관련된 시술의 대상자와 지원사업의 수혜자가 여성에 집중돼 있다. 의학 통계에 따르면 난임은 남성 요인도 40~50%에 이른다. 그런데 남성 요인으로 난임 수술비 지원을 받은 사례는 전체의 10%가 안 된다. 남성 난임이라도 생리불순 같은 여성의 흔한 질환을 엮어 어떻게든 여성에게서 문제를 찾으려 하기 때문이다. 여성에게만 집중된 서울시의 난임 지원은 여전히 임신과 출산의 1차적 책임은 여성에게 있고, 남성은 보조적인 역할에 그친다고 보고 있다. 언뜻 남성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반대로 남성의 권리를 빼앗는 것이기도 하다. 남성도 분명 난임 치료를 받아야 하고, 양육의 권리가 있다. 현행 모자보건법은 부성이 빠진 ‘모성 및 영유아’만을 대상으로 한다. 왜 모성 건강만 있고 부성 건강은 없나. 장시간 노동, 각종 산재 위험, 스트레스 속에서 남성들이 건강한 재생산자와 양육자가 될 수 있을까. 여기에 대한 접근도 필요하다.” -성평등 정책으로 출산율이 올라간 사례가 있나. “유럽 등 출산율 저하를 먼저 겪은 나라들은 국가적인 노력으로 출산율 반등을 경험했다. 서구에서는 두 차례 젠더혁명이 있었다. 1차 젠더혁명은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다. 이 시기 가족 안에서 양육을 전담하던 여성들이 노동시장에 나가 소득을 얻고 경제적 부양자가 됐다. 돌봄 책임은 여전히 여성들에게 집중됐기 때문에 여성의 이중부담으로 출산율은 떨어졌다.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 계속되는 2차 젠더혁명은 남성의 양육 참여를 강조한다. 남성의 역할이 변하기 시작하면서 출산율은 회복되기 시작했다. OECD 38개국 가운데 코로나19 때 출산율이 상승한 나라가 27개국이다. 서구의 통계를 보면, 재택근무가 시행되면서 남성들의 가사노동·양육 참여 시간이 훨씬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들의 돌봄 시간이 늘어나면서 출산율도 올라가게 됐다. 이러한 변화는 국가의 정책적 노력에 따라 달라진다. 국가의 주도 없이는 불가능한 변화다.” -국가 주도의 인구정책이 개인에 대한 통제로 갈 우려는 없나. “아이를 낳는 건 여성의 몸이기 때문에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계속 밀고 가다 보면 여성에 대한 통제로 이어지기 쉽다. 인구정책이 통제정책이 되지 않기 위해서도 성평등 기조 위에서 추진돼야 한다. 성평등은 출산을 여성과 남성이 평등하고 자유롭게 선택한다는 데서 출발한다. 여성의 자율성을 증진하는 방향이다. 현금을 지원하든, 보육시설을 늘리든, 어떤 정책이든 성평등 기조에 비춰봤을 때 타당한가를 반드시 점검해야 한다. 제도가 바뀌어야 사람도 바뀐다. 스웨덴은 남성들의 육아휴직 사용률이 높고 육아참여도도 높다고 알려져 있다. 그들이 처음부터 육아를 했겠는가. 제도가 바뀌면서 의식이 바뀌고, 성평등이 자신의 행복에 도움이 된다는 점도 깨달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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