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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총 61 건 검색)

국토부, 전국 공항 ‘콘크리트 둔덕’ 손본다
국토부, 전국 공항 ‘콘크리트 둔덕’ 손본다(2025. 01. 13 16:29)
2025. 01. 13 16:29 경제
정부가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의 후속 대책으로 항공 분야 전반의 안전 체계 혁신에 나선다. 전기차 화재와 열차 탈선, 지하차도 침수 등 큰 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 교통 현장 전반에서의 사고에 대비한 안전 관리도 강화한다. 국토교통부는 1월 1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국토교통 안전 관리 방안을 담은 ‘2025년 주요 업무 추진 계획’을 발표했다. 국토부는 오는 1월 24일까지 전국 공항에 대한 특별안전 점검을 거쳐 시설 개선 계획을 세우기로 했다.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가 일어난 무안국제공항의 방위각 시설(로컬라이저) 설치 ‘콘크리트 둔덕’처럼 항공기 안전을 위협하는 구조물은 철거하거나 재시공을 검토한다. 무안공항(2m) 외에도 여수공항(4m), 포항경주공항(2m), 광주공항(1.5m) 등 최소 3곳의 전국 공항에는 콘크리트와 흙으로 만들어진 둔덕 위에 로컬라이저가 세워져 있다. 무안공항의 둔덕이 설치·개량되는 과정에서 위반 논란이 제기된 공항 건설·운영 지침은 검토를 거쳐 올해 상반기 내에 부족한 점을 개정한다는 방침이다. 또 이달 말까지는 전국 공항의 18개 관제 시설에 대한 특별 안전 점검을 통해 관제사 인력난 등의 문제를 살핀다. 저비용항공사(LCC)를 포함한 항공사들이 정비를 철저히 하고 있는지 종합 안전 점검도 실시한다. 국토부는 공항과 항공사 등 분야별 안전 점검 결과를 바탕으로 오는 4월까지 항공 안전 혁신 방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이 작업에는 민간 전문가도 참여한다. 사고 유가족을 위해서는 생활·의료 지원, 추모사업 등을 포함한 특별법 제정을 추진한다. 체계적인 지원을 위해 오는 1월 20일까지 지방자치단체·공공기관 합동 전담 조직을 신설한다. 사고 조사 과정에서는 단계마다 조사 결과를 유족에게 공개한다. 사고조사위원회 조사의 객관성과 활동의 독립성을 높이기 위해 조직·인적 구성 개편을 포함한 법률 개정 등 제도 개선을 추진한다. 유가족 지원, 사고 조사 등 과정을 매뉴얼로 남기기 위한 백서 발간도 준비한다. 항공 분야 외에 자동차·철도·도로 등 교통 전반에서의 안전 취약점도 개선한다. 전기차에 탑재된 배터리관리시스템(BMS)이 배터리 상태를 진단해 위험할 경우 소방 당국에 자동으로 알려 주는 서비스를 오는 4월부터 시범 사업으로 진행한다. 정부가 직접 배터리 안전기준 적합 여부 등을 검증하는 ‘배터리 인증제’와 배터리 식별번호를 등록해 관리하는 ‘배터리 이력관리제’는 다음 달부터 실시한다. 열차 탈선·장애 위험을 미리 감지하기 위한 첨단 안전 시스템도 확충한다. 올해 중 KTX-산천 38편성에 먼저 차축 온도 모니터링 시스템을 설치한다. 선로에서 차축 온도를 확인할 수 있는 장치(동대구역 인근 2곳)와 열화상 카메라(광명·대전·울산·익산역)의 추가 설치도 추진한다. 도로 시설의 강우 설계빈도 기준을 강화한다. 침수 취약 구간의 지하차도 배수시설 강우 설계빈도는 50년에서 100년으로, 비탈면 배수시설은 20년에서 30년으로 늘린다. 또 교량 세굴(유속·유량 증가로 인한 침식) 조사 의무화 등 취약 시설물에 대한 안전 점검 기준을 높인다. 싱크홀 사고 대책도 마련한다. 노후 상수관로 등 고위험 지역의 점검 주기를 ‘5년에 1회’에서 1년에 최대 2회로 단축하고, 지반 탐사 지원사업 구간을 2300㎞에서 3300㎞로 확대해 취약 구간을 집중적으로 관리한다. 건설 현장 안전을 위해 설계, 시공, 감리 등 건설공사 단계별로 안전 관리를 강화한다. 올해 상반기에는 건축구조기사 자격 신설을 추진해 구조 관련 전문 인력을 확충한다. 건축구조기사는 건축구조기술사를 지원해 건축물 구조 도면 작성을 돕게 된다. 또 건설 현장을 감독하는 감리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국가가 우수 감리를 인증하는 ‘국가인증 감리’를 올해 하반기 중 400명 규모로 처음 선발한다. 인증받은 감리자에게는 입찰 가점과 책임감리 자격을 부여한다. 국토부는 또 건설 현장에서 빈발하는 추락 사고를 막기 위한 맞춤형 안전 대책을 다음 달 중 마련한다. 지난해 건설 현장에서 나온 사망자 204명 중 104명(51%)은 추락 사고로 숨졌다.
[시사 2판4판]‘국힘 영업사원’ 전국 순회 중!
[시사 2판4판]‘국힘 영업사원’ 전국 순회 중!(2024. 03. 18 06:00)
2024. 03. 18 06:00 정치
시사 2판4판
‘랍스터 특식’ 효원고의 작은 기적, 전국으로 뻗어갈까
‘랍스터 특식’ 효원고의 작은 기적, 전국으로 뻗어갈까(2024. 01. 05 16:30)
2024. 01. 05 16:30 사회
학교식당 ‘잔식 기부’ 성공사례…음식쓰레기 줄이고 취약계층 돕고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효원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점심 급식으로 제공된 랍스터 테일 구이를 식판에 담고 있다. 연합뉴스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 이틀 전이었던 지난해 11월 14일. 경기도 수원시 효원고등학교 점심 급식에 ‘특별한’ 메뉴가 등장했다. 치즈를 듬뿍 얹어 오븐에 구워낸 ‘랍스터 테일 구이’. 토막 난 조각도 아닌 제대로 한 마리 랍스터다. 배식 집게로 랍스터를 집어 드는 학생들의 눈이 신기하다는 듯 반짝인다. 효원고 학생과 교직원 1100여명에게 오랫동안 기억될 이날의 급식은 일명 ‘랍스터 특식’으로 불리며 이후 유명세를 탔다. 학교 급식에 랍스터가 등장한 게 처음은 아니다. 효원고의 랍스터 급식이 정말 ‘특별한’ 이유는 값비싼 식재료라서가 아니라 ‘나눔’과 ‘탄소 절감’의 결실이기 때문이다. 효원고는 2022년 9월부터 급식 후 남은 음식(이하 ‘잔식’)을 주변 취약계층에게 기부했다. 취약계층에겐 양질의 급식 제공(나눔), 학교에는 잔반 처리 비용 절감(탄소 절감)이라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나타났다. 이렇게 절감된 비용으로 랍스터 특식이 탄생했다. 효원고의 성공사례는 경기도의 ‘학교급식의 잔식 기부 활성화에 관한 조례’ 제정(2023년 10월)으로 이어졌다. 환경부는 ‘2023년 공공집단급식소 남은 음식물 감량경진대회 최우수상’ 기관으로 효원고를 선정(2023년 12월)했다. 앞으로는 전국의 모든 학교에서 ‘랍스터 특식’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정부가 학교 등의 집단급식소에서 음식물 처리 비용을 절감하거나 개인의 잔반량이 일정 기준 이하를 충족할 경우 ‘탄소중립포인트’를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효원고 성공사례 전국 확대될까 학교 급식의 ‘잔식 기부’를 고안한 오종민 조원고 행정실장이 지난 1월 2일 기자와 만나 학교 음식물쓰레기 감축에 대한 탄소포인트 지급 필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송진식 기자 환경부가 2019년 발표한 ‘전국 폐기물 발생 및 처리현황’ 통계를 보면 국내 일일 생활쓰레기 발생량(5만3490t)의 약 29%에 해당하는 1만5903t이 음식물쓰레기다. 이렇게 발생하는 음식물쓰레기를 매립이나 소각하는 데만 연간 8000억~1조원이 소요된다. 처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량도 연간 885만t가량으로 추산된다. 2013년부터 전국 모든 지자체가 음식물쓰레기 종량제를 시행하면서 1인당 음식물쓰레기 배출량은 점차 줄어드는 추세다. 문제는 종량제 외 추가적인 쓰레기 감량 해법이 뾰족이 없다는 점이다. 음식물쓰레기를 사료나 퇴비, 바이오가스 등으로 자원화하는 방안도 계속 추진 중이지만 속도가 더디다. 국내 음식물쓰레기의 경우 수분이 많은 특성상 80%가량이 폐수로 배출돼 막상 재활용량이 많지 않다.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의 발병 우려로 남은 음식물의 돼지 급여 등도 제한되고 있다. 추가 대책으로 효원고의 성공사례가 주목받고 있다. 국내 음식물쓰레기의 약 10%는 학교나 군부대, 기업이나 관공서 등의 ‘집단급식소’에서 발생한다. 효원고의 경우 잔식을 모두 기부하면서 음식물쓰레기량과 잔반 처리 비용이 각각 40%가량 줄었다. 효원고의 사례를 다른 집단급식소에 접목한다면 유사한 효과를 기대해볼 수 있다. 이런 발상에서 정부가 시행 중인 ‘탄소중립포인트 녹색생활실천(탄소중립포인트제)’에 ‘학교 음식물쓰레기 감축’을 포함시키자는 제안이 지난해 초 ‘대통령직속 2050 탄소중립녹생성장위원회’에 접수됐다. 제안자는 효원고의 잔식 기부를 고안한 오종민 조원고 행정실장(당시 효원고 행정실장)이다. 학교가 잔식 기부 등을 통해 음식물쓰레기를 줄이거나 학생들이 일정 기준(1인당 40g) 이하로 잔반 배출을 줄일 경우 인센티브를 지급하자는 내용이 제안의 골자다. 탄소중립위는 전문가들의 기본·종합 검토를 거쳐 제안의 실효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탄소중립위는 종합검토보고서에서 “효원고의 잔식 기부를 전국 집단급식소로 확대할 경우 연간 약 388억원의 잔반 처리 비용 절감이 예상된다”며 “이를 통한 폐수 배출이나 악취 문제, 온실가스 감축 등 환경개선 효과도 발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무조정실은 지난해 6월 종합검토보고서를 기획재정부, 농림축산식품부, 환경부 등 탄소중립 유관부처에 전달하고 관련 기술·정책개발 등에 협조를 요청했다. ■환경부 “긍정 검토 중”, 관건은 ‘예산’ 탄소중립포인트제는 국민이 친환경 생활·소비 활동을 할 경우 해당 실적에 따라 인센티브(포인트)를 지급하는 제도다. 현재 10개 항목에 대해 인센티브를 지급한다. 예컨대 종이영수증 대신 전자영수증을 발급받을 시 1회당 100원, 일회용컵 대신 텀블러·다회용컵을 이용할 시 1회당 300원, 폐휴대폰 반납 시 1회당 1000원을 지급한다. 연간 최대 7만원까지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다. 친환경에 대한 인식과 관심이 높아지고, 인센티브를 받는 ‘쏠쏠함’이 알려지면서 2022년 제도 시행 첫해 25만명이던 가입자가 최근 110만명까지 늘었다. 환경부도 제안에 긍정적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올 상반기 중 ‘탄소중립포인트 애플리케이션’ 개발과 함께 인센티브 지급 대상 개편을 추진할 계획”이라며 “집단급식소에서 음식물쓰레기를 감축하면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방안 역시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다만 “인센티브 지급이 예산사업이다 보니 기재부 등 유관부처와 협의를 거쳐 최종 결정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관건은 예산이다. 탄소중립포인트제 운영 예산은 2022년 첫해 24억5000만원에서 지난해 89억원으로 약 3.6배 증가했다. 그럼에도 가입자가 급증하고, 인센티브 지급이 늘면서 지난해 11~12월에는 예산 조기 소진을 이유로 신규 회원 가입을 제한하는 등 예산 부족 사태를 겪었다. 올해는 147억7000만원의 예산이 편성돼 작년보다 더 늘었다. 회원 가입 급증 추세가 이어지면 올해 또다시 예산이 조기 소진될 수 있다. 이 경우 학교 음식물쓰레기 감축에 대한 탄소중립포인트 지급 도입은 더 뒤로 미뤄질 전망이다. 오종민 조원고 행정실장은 “집단급식소의 잔식을 기부하면 탄소 감축과 비용 절감 외에도 취약계층을 위한 상시 무료급식소 개설 등 여러 복지 차원의 부가적인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며 “학교뿐만 아니라 공공기업이나 관공서, 군부대, 일반 기업 등의 구내식당에서도 충분히 실천 가능한 방안”이라고 밝혔다.
[이기환의 Hi-story](90)오디션 프로 원조는 557년 전 임금이 연 조선판 ‘전국노래자랑’(2023. 06. 30 11:25)
2023. 06. 30 11:25 문화/과학
단원 김홍도가 그린 것으로 알려진 는 ‘부벽루연회도’, ‘연광정연회도’, ‘월야선유도’ 세 폭으로 구성됐다. 대동강에서 평안감사가 베푼 잔치의 모습을 담은 그림이다. /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국내 최장수 프로그램이 뭔 줄 아시죠. 1980년 11월 정규 편성된 KBS <전국노래자랑>입니다. <전국노래자랑>은 ‘최장수’ 타이틀도 갖고 있지만 이른바 ‘시민 참여형 오디션 프로그램’의 원조라 할 수 있는데요. 하지만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오디션 프로그램’의 비조(鼻祖)가 따로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557년 전 전국노래자랑 1466년(세조 12) 윤3월 14일자 <세조실록>을 볼까요. 세조는 중창된 평창 상원사의 낙성식에 참석할 겸 금강산을 비롯한 강원도 지역을 방문하고 있었는데요. 강릉에 거동한 세조가 아주 특별한 영을 내립니다. “농가를 잘 부르는 농민들을 모아 장막 안에서 노래를 부르도록 했다”는 겁니다. <세조실록>은 이때의 경연에서 1등을 차지한 자는 강원도 양양의 관노 ‘동구리’였다고 전했습니다. 국왕이 주최하고, 직접 관람했으며, 점수까지 매긴 명실상부한 ‘제1회 전국노래자랑’이 펼쳐진 겁니다. “(경연 우승자인) 동구리에게 임금이 친히 아침·저녁 식사를 제공하는 한편 악공의 예로 왕의 행차를 따르게 했다. 그에게 저고리 1령을 내려주었다.” 관노 출신의 가수(동구리)가 임금이 하사한 아침·저녁 밥상은 물론 저고리 1령까지 받았다니 얼마나 대단한 파격입니까. 물론 동구리의 가장 큰 특전은 악공의 예, 즉 궁중가수로 발탁돼 임금을 수행했다는 겁니다. 지금 <전국노래자랑>이 43년째 최장수 프로그램이라죠. 하지만 알고 보니 557년 전, 즉 1466년 윤3월 14일 열린 ‘전국노래자랑-강원도’ 편이야말로 ‘원조 중 원조’였습니다. ‘동구리’야말로 경연 프로그램이 낳은 깜짝 스타였고요. 실록에 등장한 댄스 여가수 동구리처럼 실록에 이름을 낸 댄스 여가수가 한 분 있습니다. 세종 연간에 활약한 설매인데요. “1429년(세종 11) 5월 16일 명나라 사신이 조선을 방문했을 때 가무(歌舞)하는 여자 설매 등 8명을… 보냈는데….” 두 달 뒤인 7월 21일 의미심장한 기사가 보입니다. “…창가녀 설매 등 8명 등이 사신을 따라 명나라로 떠났다”는 겁니다. ‘조선판 댄스가수’였던 설매와 관련된 일화가 문헌에 남아 있습니다. 서거정(1420~1488)의 <동인시화>인데요. 즉 설매는 전악서(궁중 잔치와 의식에서 필요한 음악을 담당한 관청) 소속 기녀였는데요. 악사(樂詞), 즉 궁중음악에 맞춰 부르는 노래(시가)를 잘 불렀답니다. 어느 날 서쪽 지방을 순찰하러 떠나는 개국공신 하륜(1347~1416)을 위한 송별 잔치가 성 밖에서 열렸는데요. 이때 설매가 나서 임지로 떠나는 하륜을 위해 노래 한마디를 불러주었습니다. “그대에게 다시 한잔 술을 권하노니 서쪽으로 양관을 나서면 벗들도 없을 것일세.” 설매의 노래를 들은 고관대작들이 “캬~” 하는 감탄사를 연발했답니다. 이 노래가 당나라 시인 왕유(699?~759)가 타지로 떠나는 친구에게 보낸 전별시의 구절(서쪽으로 양관을 나서면 벗들도 없다·西出陽關無故人)이기 때문입니다. 설매의 신분이 비록 기녀였지만, 그래도 장악원 소속이었잖아요. 허다한 중국의 시가를 외우고 있다가 분위기에 맞게 노래를 부를 정도의 교양과 학식 그리고 재치를 겸비한 댄스가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김홍도가 그린 것으로 알려진 . 공연을 곁들인 야간 잔치에 수많은 평양 백성이 횃불을 들고 구경하고 있다. /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임금 앞서 속요 부르고, 무관을 욕한 여가수 조선조 성종(재위 1469~1494) 연간에 활약한 여가수가 또 한 분 있습니다. 함경도 영흥 출신 기녀 소춘풍인데요. 어느 날 소춘풍이 성종이 베푼 연회에서 기막힌 노래 3곡을 불렀습니다. 먼저 문관 앞에서 부른 노래는 “고금을 통달한 명철한 군자를 두고 어찌 무식한 무부(무신)를 따라가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 노래를 듣던 무신들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겠죠. 소춘풍은 이번에는 무신을 달래주는 노래를 불렀답니다. “앞의 말은 그저 웃자고 한 농담이요…. 문과 무가 일체임을 나도 알고 있으니 어찌 용맹스러운 무사를 따르지 않겠소.” 그러면서 소춘풍은 이때 문관과 무관을 모두 아우르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제나라(문관)도, 초나라(무관)도 대국인데, 소국인 등나라(소춘풍)가 그사이 끼었으니 제나라도, 초나라도 섬겨야죠.” 소춘풍은 문무 양반을 다 섬기겠다는 뜻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소춘풍은 임금 앞에서 고상한 궁중음악이 아니라 민간에서 유행된 속요(대중가요)를 불렀습니다. 조선의 가왕 ‘이세춘 밴드’ 10년간이나 조선의 가요계를 휩쓸었던 인물이 있습니다. ‘18세기 가왕’이라 할 수 있는 이세춘입니다. 문인 신광수(1712~1775)의 <석북집> ‘증가자 이응태’조를 볼까요. “당세의 가호(歌豪) 이세춘은 10년간 한양 사람들을 열광시켰지. 기방을 드나드는 왈짜들도 애창하며 넋이 나갔지.” 이세춘은 허투루 볼 수 있는 인물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통용되는 용어인 ‘시절가조(時節歌調)’, 즉 ‘시조’라는 말을 만들어낸 분이거든요. 새 장르의 노래를 뜻하는 ‘시조’는 기존의 노래를 뜻하는 고조(古調)와 구별되는 개념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이세춘은 기존의 창법과 전혀 다른 레퍼토리를 구사한 가수였던 거죠. 무엇보다 이세춘은 ‘솔로’가 아니라 ‘밴드가수’였습니다. 이름 붙이자면 ‘이세춘 밴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혜원 신윤복의 ‘청금상련’. 가야금 소리에 취해 연꽃을 감상한다는 뜻의 그림이다. 기녀 혹은 의녀는 하층민이었지만 때때로 양반들의 청에 따라 즉흥적으로 시를 읊어 분위기를 돋우기도 했다. /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어느 날… 남자가객 이세춘과 기생 추월·매월·계섬 등 여성가객, 그리고 금객(琴客) 김철석이 초당에 앉아 거문고와 노래로 밤이 이슥해 갔다.”(<청구야담> ‘유패영풍류성사’) 남성 보컬(이세춘)을 중심으로, 거문고 주자(김철석), 여성보컬(추월·매월·계섬) 등이 그룹활동을 했다는 겁니다. 18세기 연예기획사 그런데 이세춘 같은 전문 아티스트들과 같이 언급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세춘 밴드와 함께 활동했던 문사 심용(1711~1788)이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가수나 거문고 연주자 같은 전문 아티스트는 아니었고요. 이른바 ‘풍류남아’를 자처했던 인물입니다. 특히 이세춘 같은 가수들을 돌봐주는 일종의 후원자 역할을 했습니다. 시쳇말로 연예기획사 대표라고 할까요. 이세춘 밴드의 멤버였던 여가수 계섬도 대단한 보컬가수였습니다. “계섬이 노래를 할 때 마음은 입을 잊고, 입은 소리를 잊어 소리가 짜랑짜랑 울려퍼졌다”(<효전산고> ‘계섬전’)고 전합니다. 지방 기생들이 서울에 와서 노래를 배울 때는 모두 계섬한테 몰려들 정도로 ‘전국구 스타’가 됐습니다. 가수 지망생들의 ‘보컬 트레이너’가 된 겁니다. 계섬은 정조(재위 1776~1800)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1735~1816)의 회갑연에 초대받아 ‘오프닝’을 장식하기도 했답니다. 계섬은 훗날 ‘심용의 기획사’에 들어가 이세춘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기산 김준근의 풍속화 ‘기생 검무추고’. 조선시대 기녀는 춤과 노래에 능한 댄스가수였다. / 숭실대 기독교박물관 소장 이세춘 밴드의 또 다른 멤버인 추월은 춤과 미모로 유명한 ‘댄스가수’였답니다. 추월은 공주 기생 출신이었는데요. 궁중의 상방(尙方·임금의 의상을 책임지던 관청)에 들어갔는데, 풍류객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제3의 멤버인 매월은 종친인 이익정(1699~1782)의 문하에 있다가 이세춘 그룹의 일원이 된 것으로 보입니다. 김철석(1724~1776)은 당대 최고의 ‘거문고 연주자’였습니다. 별명이 ‘철돌(鐵突)’이었다죠. 이세춘 밴드의 평양 게릴라 콘서트 어느 날, 기획사 사장격인 심용이 이세춘 밴드 멤버들에게 “평양 한번 가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합니다. “평안감사가 대동강 위에서 잔치를 벌이는데, 평안도 모든 수령과 이름난 기생들, 명가수들이 다 모인다는구나.” 긴가민가하던 멤버들이 심용의 다음 한마디에 모두 손뼉을 치며 호응했습니다. “심회(心懷·스트레스)를 크게 발산할 수 있고, 전두(纏頭·개런티)로 비단과 돈을 많이 받을 것이니….” 이때의 평양 이벤트는 예조판서를 지낸 신회(1706~?)의 평안감사 시절(1765~1766) 연 대동강 잔치로 추정됩니다. 실은 초대받지 않은 공연이었습니다. 일종의 ‘게릴라 콘서트’였죠. 이세춘 밴드는 ‘금강산 유람’을 다녀온다고 소문낸 뒤 평양에 잠입했습니다. 잔칫날 아침 배 한 척을 빌려 차양막을 치고, 좌우에 주렴을 드리웠습니다. 멤버들을 태운 그 배는 능라도와 부벽정 사이에 숨겨두었습니다. 잔치의 시작을 알리는 풍악이 울리고 돛배가 강물을 뒤덮었습니다. 평안감사는 층배에 높이 앉아 잔치를 즐겼습니다. 모처럼의 구경거리에 성머리와 강둑은 인산인해를 이뤘습니다. 이때 심용이 노를 저어 평안감사의 층배가 보이는 곳에 배를 멈췄습니다. 그리곤 저쪽에서 검무를 추면 이쪽에서도 검무를 추고, 저쪽에서 노래를 부르면 이쪽에서도 노래를 불렀습니다. 마치 흉내내는 것 같았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히든싱어>일까요. 그 모습을 보던 평안감사 등이 “저 배를 끌고 오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끌려온 배가 평안감사의 층배 머리에 이르자 심용이 주렴을 걷고 껄껄 웃었습니다. 사실 심용과 평안감사는 친분이 깊은 사이였습니다. 심용의 정체를 알게 된 평안감사는 넘어질 듯 놀라며 반가워했는데요. 이후 이세춘 밴드와 현지의 평안도 그룹이 치열한 공연 배틀을 벌였습니다. 배틀의 승자는 이세춘 밴드였습니다. 18세기를 풍미한 이세춘 밴드의 평양 대동강 ‘게릴라콘서트’의 전말을 전한 ‘유패영풍류성사’ / 서울대규장각한국학연구원 제공 아무래도 서울에서 활약 중인 이세춘 밴드의 공연이 서도(평안도) 그룹과 수준차가 났겠죠. 개런티도 깜짝 놀랄 만큼 받았습니다. 평안감사(1000금)는 물론 다른 벼슬아치들까지 거의 1만금에 가까운 돈을 선뜻 냈답니다. 송귀뚜라미, 천상의 목소리 이세춘과 쌍벽을 이루는 가객이 송실솔이었습니다. 하루는 이세춘이 모친상을 당했을 때 송실솔이 조문을 했는데요. 문에 들어서면서 상주(이세춘)의 곡소리를 듣고 이렇게 응수했답니다. “상주가 계면조로 곡을 했으니 문상객은 평우조(일반 곡조)로 곡(哭)을 받는 게 마땅하지.” 그러자 빈소에 모인 문상객들이 웃었다는 이 일화가 인구에 회자했습니다(이옥의 <문무자문초> 중 ‘가장 송실솔전’). 송실솔은 노래를 배울 때 폭포수 밑에서 연습을 했습니다. 1년을 그렇게 하자 노랫소리만 남고 폭포수 소리는 들리지 않았답니다. 송실솔의 노래는 구슬처럼 맑았고, 연기를 날리듯 가냘프고 구름이 가로걸리듯 머물렀으며, 철 맞은 꾀꼬리같이 자지러졌다가 용이 울 듯 떨쳤답니다. 송실솔의 ‘실솔(??)’은 귀뚜라미와 같은 소리를 낸다 해서 붙은 이름입니다. 조선판 얼굴 없는 가수 조선의 대표적인 ‘얼굴 없는 가수’는 남학입니다. 당대 사람들은 벽을 사이에 두고 남학의 노래를 들었는데요. 생김새가 추했기 때문이랍니다. 얼굴은 귀신, 눈은 단춧구멍, 코는 사자, 수염은 늙은 양, 눈은 미친개, 손은 엎드려 있는 닭발 같았답니다. 남학은 그러나 타고난 미성의 소유자였습니다. 벽 너머에서 그의 노래를 들으면 여인들의 혼이 흔들리고, 마음이 격동했답니다. 막상 얼굴이 드러나면 여인들이 멍하니 앉아 있고, 때로 깜짝 놀라 울고 혀를 끌끌 차기도 했답니다(이옥의 <청남학가소기>). 여가수 금향선도 외모는 추악했지만 애절하고 원망하는 듯한 처절한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죠. 그의 노래를 듣는 이들은 “끓어오르는 춘정을 감출 수 없었다”고 합니다(안민영의 <금옥총부>). 섹시한 목소리의 소유자였던 겁니다. 절대고음을 자랑하는 모흥갑(1822~ 1890)도 유명합니다. 모흥갑은 ‘설상(雪上)에 진저리치듯 한다’는 소리를 들었답니다. 그의 목소리는 ‘고동상성(鼓動上聲)’이라 했는데요. 평안감사 초청을 받아 평양 연광정에서 소리를 할 때 10리까지 들렸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세계를 풍미하는 K팝의 조상들을 한번 살펴보았습니다.
이기환의 Hi-story
[우정이야기]복지 살피는 등기 배달 전국 확대(2023. 03. 31 11:22)
2023. 03. 31 11:22 경제
독거노인이 많이 거주하는 노후주택 지역을 중심으로 집배원들이 ‘등기우편물’ 배달에 나선다. 집배원들이 복지 관련 안내문이 담긴 등기우편을 각 어르신에게 전달하는 동시에 어르신들의 주거상황을 직접 살펴 지방자치단체에 전달하는 ‘복지 징검다리’ 역할을 하게 된다. 우정사업본부 ‘복지등기우편서비스’ 포스터 / 우정사업본부 제공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우정사업본부(우본)는 지난해 7월 부산 영도구 등 8개 지자체에서 시범운영한 ‘복지등기우편서비스’를 4월 3일부터 전국으로 본격 확대·시행한다고 밝혔다. 복지등기우편은 지자체가 위기징후 가구나 독거가구 등을 선정해 복지 관련 안내문이 동봉된 등기우편물을 매달 1~2회씩 발송하는 서비스다. 집배원은 등기우편물을 배달하면서 해당 가구의 주거환경과 생활실태를 파악하는 체크리스트(위기가구 실태 파악 항목)를 작성해 지자체로 회신한다. 지자체는 이를 토대로 각 가정의 상황을 파악하고, 결과에 맞춰 공공·민간 복지서비스와 연계하는 등 지원을 결정한다. 우본은 “이번 사업을 통해 그동안 논란이 돼온 수원 세 모녀 사망사건이나 신촌 모녀 사망사건 등 위기가정의 비극적 사고나 고독사 등 유사사례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우본은 부산 영도와 전남 영광, 서울 종로·용산·서대문, 강원 삼척, 충남 아산, 광주 북구 등 8개 지역에서 해당 사업을 시범운영했다. 당시 모두 6279통의 우편물을 발송해 622가구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장애인 등록 신청, 긴급생계비 신청, 통신요금 감면 등 공공서비스 혜택을 받았다. 공공서비스 지원기준에는 못 미치지만 지원이 필요한 254가구는 민간 지원기관과 연계해 생필품 및 식료품 등 지원을 받을 수 있게 했다. 실제 부산 영도구 주민 A씨는 ‘복지등기우편서비스’ 시범사업을 통해 처음으로 기초생활수급대상자로 선정됐다. 집배원 B씨가 평소 A씨에게 독촉장과 고지서 등이 자주 발송되는 것을 체크리스트에 적어 지자체에 전달하면서 지자체가 A씨의 상황을 알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영도구 행정복지센터 복지담당 공무원은 A씨가 받아온 실업급여가 종료되는 등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데다 건강까지 악화돼 병원치료 중인 상황을 확인했다. 행정복지센터는 A씨가 기초생활수급대상자로 선정될 수 있도록 각종 신청절차의 진행을 도왔다. A씨는 “막대한 의료비 지출로 부담감이 큰 상황에 퇴사 후 실업급여까지 종료되면서 생계유지가 막막한 상황이었다”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순간에 손을 내밀어준 우체국과 지자체 직원분들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우본은 또 시범에 종이로 작성했던 체크리스트의 불편함을 개선해 앞으로는 집배업무용 PDA에 직접 기입할 수 있도록 전자시스템화했다. 그동안 우편으로 회신했던 자료를 파일 형태로 곧바로 보낼 수 있게 돼 신속·정확성을 높였다. 이와 함께 ‘복지등기우편서비스’ 우편요금의 75%를 우체국공익재단 예산으로 지원하고, 생필품 지원도 추진하는 등 더 많은 지자체가 참여할 수 있도록 적극 행정을 펼쳐나간다는 계획이다.
우정이야기
전국총경회의 주도 류삼영 총경 “지시 무조건 따르는 조직은 위험”(2022. 12. 23 11:37)
2022. 12. 23 11:37 사회
“주로 노트북 화면을 보고 앉는 사람이었는데, 요즘은 그 맞은편에 앉을 일이 많다.” 류삼영 총경(57)은 지난 12월 19일 울산 중구의 한 카페에서 노트북을 펼쳐 둔 기자의 맞은편에 앉으며 말했다. 경찰대 시절을 포함해 40년에 가까운 경찰생활 대부분을 그는 부산·울산·경남에서 상대방을 취조하는 수사경찰로 일했다. 류삼영 총경이 지난 12월 19일 울산 중구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류 총경은 행정안전부 경찰국 설립 반대를 주도했다가 정직 3개월의 중징계를 받았다. / 이효상 기자 지난 7월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행정안전부의 경찰국 신설 반대를 주도하다 대기발령됐다. 이어진 감찰로 조사대상이 됐다. 지난 12월 13일에는 정직 3개월의 중징계가 확정됐다. ‘전국경찰서장회의’를 중단하라는 상부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고, 잦은 언론인터뷰로 품위를 손상시켰다는 이유가 붙었다. 그가 징계위원회에 출석하면서 이태원 핼러윈 참사에 대해 사과한 것, 참사와 경찰국 신설을 연결지은 것이 중징계의 진짜 원인이 됐다는 말도 나왔다. 지난 5개월 그의 행보를 두고 한편에서는 비난을, 한편에서는 기대를 보낸다. 이번 ‘경찰국 사태’를 지난 정부 때 벌어진 정권과 검찰의 불화와 포개어 보는 이들도 있다. 당시 갈등의 주역이던 검찰 수장은 유력 정치인을 뛰어넘어 단숨에 대통령이 됐다. 류 총경을 향하는 비난과 기대, 두 가지 상반된 반응은 어떤 면에서는 같은 뿌리를 두고 있다. 그는 “비판하는 사람들은 내가 처음부터 정치적인 목적을 가지고 그랬을 것이라고 본다. 반대쪽 사람들은 앞으로 좀 그렇게 하라고 한다”며 “경찰국 문제가 진짜 국민을 위하는 건지 한번 보자, 그게 다였다. 내가 무슨 정치적 성향이 있어 그랬겠느냐. 오히려 (경찰국이) 문제를 야기할 것이 불 보듯 뻔한데 가만히 있는 게 정치적이다”라고 했다. -경찰청 중앙징계위원회가 정직 3개월 중징계를 내렸다. 예상했나. “더한 것도 예상했다.” -경찰청 시민감찰위원회는 경징계를 권고했는데, 윤희근 경찰청장은 중앙징계위에 중징계를 요구했다. 어떤 배경이 있었다고 보나. “시민감찰위는 징계를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절차가 아니다. 그런데도 시민감찰위를 개최해 경징계하라는 시민들의 권고를 받아놓고 이를 뒤집었다. 일관성이 없다. 경찰청장의 생각이 아닐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지시라는 것인가. “장관도 자기 일로 바쁘지 않나. 바둑 용어에 ‘아생연후살타(我生然後殺他)’라는 말이 있다. 사활이 걸려 있으면 자기가 먼저 살아난 이후에 상대를 공격해야 한다는 뜻이다. 장관도 먼저 살아야 하기 때문에 나에 대해서 이슈를 만드는 것 자체가 불편할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라고 보나. “전혀 아는 바가 없다.” -징계위 분위기는 어땠나. “왜 서장회의를 했는지, 그게 조직을 위한 것이었는지, 국가를 위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나 자신을 위한 것이었는지 최소한 이런 평가를 하고, 왜 경찰청장이 갑자기 직무 명령을 내렸으며 그게 합법적이고 타당한지 이런 걸 물어야 하는데 관련 질문이 없었다. 거두절미하고 ‘직무 명령을 받았나’, ‘안 받았나’, ‘언제 받았나’만 계속 물었다.” 그의 첫 번째 징계 사유는 ‘복종 의무 위반’이다. 지난 7월 23일 전국경찰서장회의 도중 상부에서 내려온 해산명령을 즉시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또 22차례 언론인터뷰와 2차례 기자회견으로 품위 유지 의무를 위반했다고 봤다. -역대로 경찰서장회의가 열린 적이 있나. 왜 주도했나. “77년 경찰 역사상 처음이다. 7월 18일에 경찰국 신설을 논의하는 화상회의가 열렸다. 지역청장들과 서장들이 참여했는데 내용을 보고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날 내부망에 서장회의를 열자고 제안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후배들도 서장회의 소집을 제안했다. 내가 빨리 실행에 옮겼을 뿐이다.” -정권교체 직전에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 박탈)을 통해 경찰의 권한이 커진 건 맞지 않나. 통제가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경찰의 힘이 세지면 감시하고 통제하는 힘도 세져야 하는 게 맞다. 그런데 그게 민주적 통제여야 한다. 그날 서장회의의 정식 명칭은 ‘경찰의 민주적 통제를 위한 전국경찰서장회의’였다. 민주적 통제는 정치적 균형을 갖춘 사람들이 참여하는 위원회를 통해 통제하는 것이어야 한다. 정치권력과 입장이 같은 사람이 경찰을 통제하는 것은 민주적 통제가 아니다. 경찰을 정권하고 붙여놓으면 큰일이 난다고 해서 분리시켜 놨는데 왜 국회 논의도 없이, 경찰청장도 없이, 내부 구성원들의 의사 결집도 없이 시행령으로 바꾸는가. 입법예고 기간도 40일은 줘야 할 것을 4일만 줬다.” -경찰 지휘부가 회의 도중 회의를 해산하라는 직무명령을 내렸다. 지휘부는 애초에 서장회의 개최 사실을 몰랐나. “알고 있었다. 회의 전에 전체 서장들한테 자제하고 숙고하라는 e메일이 왔다. 상부에서 전화가 와서 ‘경찰청장님께서 회의 마친 후에 회의 결과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자. 원하면 식사도 같이하자고 한다’는 얘기를 두 번이나 했다. 회의 해산하라는 직무명령도 경찰청장 생각이 아니라고 본다. ‘회의 잘 마치고 얘기하자’고 하고는 ‘왜 회의했냐’고 하지는 않을 것 아닌가.” 김순호 초대 경찰국장이 지난 8월 2일 서울 종로구 서울정부청사 내 경찰국 입구에서 직원 격려방문을 마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기자회견을 지켜보고 있다. 김 국장은 경무관에서 치안감으로 승진한 지 6개월 만인 지난 12월 20일 치안정감으로 ‘초고속’ 승진했다. / 이준헌 기자 -초유의 서장회의인데 생각보다 많은 인원이 모였다. 예상했나. “서장 지위에 해당하는 총경 626명 중에 과반이 넘는 357명이 취지에 공감한다는 뜻으로 화환을 보냈다. 54명은 현장에 직접 참석했다. 얼마나 올까 싶어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다. 회의장 앞에 서 있는데 귀한 하객 맞이하는 혼주 같더라. 한 번의 회의가 중요한 게 아니고 경찰의 밝은 미래를 봤다. 문책을 당할 수도 있는데 많은 사람이 책임을 불사하고 의견을 표시해줬다. 경찰은 옛날 같으면 권력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이었다. 옳은 일을 하고, 국민을 위한 명령을 따르지 시킨다고 다 하는 사람들은 아니라는 걸 보여줬다. 앞으로도 이런 일에 의견을 표시할 수 있다고 본다.” -이상민 장관은 ‘쿠데타’에 비유했다. 어떻게 봤나. “무조건 지시하면 따르는 조직이 오히려 쿠데타에 취약하다. 지시하면 지시한 대로 이행하는 경직된 조직이 아니고 지시가 법에 맞는지, 국민을 위한 건지 생각하는 조직임을 보여줬다. 오히려 조직의 탄력성이 회복됐다고 본다.” -혼자만 징계를 받았다. 이유가 뭐라고 보나. “현장 참석자들 모두 감찰 조사를 받았다. 서장회의 드레스 코드가 사복이었는데 혼자만 정복을 입었다. 책임을 묻는 상황이 벌어졌을 때 누가 누구인지 모르게 되면 참석자들 모두가 위험해질 수 있었다. 내가 표적이 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징계 불복절차 진행할 것인가. “서류가 준비되는 대로 소청 심사를 제기하려고 한다. 징계 효력을 정지하는 가처분도 신청할 방침이다.” -경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 방안으로 국가경찰위원회를 실질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민주화 이후 모든 정부에서 나왔지만 실현되지 못했다. 왜 그랬다고 보나. “정권이 자기 불편할 일을 안 한 것이다. 내무부 치안본부 시절을 지나 1991년에 경찰청이 만들어질 때는 국무총리 산하에 위원회를 두고 경찰을 통제하는 밑그림을 그렸다. 3당 합당이 이뤄지면서 제도 취지가 왜곡됐다. 지금이라도 그 법을 참고해 경찰을 민주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 -정치적 중립을 위해 경찰국 설립에 반대했다고 하지만 기존 경찰이 얼마나 정치적으로 중립적이었느냐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경찰의 정치적 중립에 대한 평가는 다를 수 있다. 그렇지만 지금은 제도로 중립이 아예 불가능하도록 만들어버렸다. 행안부 장관이 경찰 인사권을 쥐고 있으면 정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개별적인 사건에서 정치적인 중립이 흔들릴 수도, 지켜질 수도 있었던 기존 상황하고, 아예 제도로 불가능하게 만들어버린 것하고는 차원이 다르다.” -한편으로는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선출된 권력의 국정 운영에 비선출직 관료들이 반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시각도 있다. “대통령이든 선출 권력이든 법의 테두리 안에서 권한을 행사해야 한다. 민의에 따라 선출됐기에 법에는 있지도 않은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또 법에서 위임한 범위 안에서 대통령령과 부령이 만들어지고 이를 행정관료들이 집행한다. 법에서 위임한 범위 안에서 시행령이 만들어졌다면 타당하지만, 법에 없는 내용을 시행령으로 마음대로 바꾸는 것은 법 위반이다.” -정부조직법상 행안부 장관의 사무에 경찰 업무가 적시되지 않은 것을 말하나. “그렇다. 왜 없을까. 실수로 빠진 게 아니라 의도하고 뺀 것이다. 내무부 치안본부 시절만 해도 내무부 장관의 사무에 경찰 업무가 있었다. 문제가 있어서 삭제했는데 법도 안 바꾸고 시행령으로 뒤집는 것은 법을 무시하는 처사다.” -경찰국 설립 후 달라진 것이 있나. “눈치를 본다. 승진 대상자들은 누가 내 인사권을 쥐었느냐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일하다 보면 그 사람 생각을 안 하겠느냐.” -징계위에 출석하면서 경찰국 설립이 이태원 참사의 원인 중 하나라는 취지의 말도 했다. 무슨 뜻인가. “그날 배치된 경력을 보면 예전과 달랐다. 국민의 안전이 1번이 돼야 하는데 소홀했다. 이태원 참사 이전과 비교하면 바뀐 것은 경찰국 설치와 대통령실 이전 정도밖에 없다. 나도 100% 연관이 있다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경찰국의 존재 자체가 경찰관의 판단기준이나 관심을 옮겨놨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 지난 7월 28일 전국 각지 경찰들이 보낸 경찰국 신설 반대 근조 화환이 세워져 있다. / 한수빈 기자 -이태원 참사에 대해 사과도 했다. 어떤 취지인가. “경찰이 이 참사의 책임에서 자유로운가? 사과한 적은 있나? 수사가 먼저가 아니고 사과하고 사죄하고 위로하는 게 먼저다. 이걸 뒤집어서 수사할 때까지 모든 절차를 중단하겠다고 하면 국민이나 유족들은 누가 위로를 해주나. 수사가 언제 끝날지 모르고, 수사가 끝나도 대법원 확정판결까지는 몇년이 걸릴지 모른다. 그때 사과와 사죄가 무슨 의미가 있나. 내가 자격이 되는지 모르지만 사과가 필요하다고 봤다.” -이태원 참사에 대한 공개 발언 자체를 정치적 또는 당파적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부담은 없었나. “진심이었다. 39년 동안 경찰 밥을 먹었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것이 우리 일이다. 이 바보짓을 해서 죄송하고 용서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사실 이번 징계에서 해임도 나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옷을 벗고 민간인으로서 ‘사과합니다’라고 해봐야 무슨 의미가 있나. 정복을 입은 온전한 경찰일 때 사과하고 싶었다. 지금은 직무가 정지된, 목만 안 잘린 경찰이라 경찰 넥타이만 매고 있다(그는 이날 사복에 붉은색 경찰 넥타이를 맸다). 정치적인 뜻이 있었다면 12월 16일 이태원 참사 추모제에 방문했을 때 정치적인 발언이라도 한마디 했을 것이다. 뒤에서 울기만 하다가 왔다.” -정치에 뜻이 있나. “정치할 깜냥 안 된다. 이런 질문 자체가 경찰국 반대의 취지를 훼손할 수 있다.” -서장회의를 주도한 이후부터 정치적인 해석이 뒤따른다. 조국 수호 촛불 집회에 참석했다는 가짜뉴스가 나기도 했다. “메시지에 시비를 못 걸면 메신저를 공격한다. 내가 처음부터 서장회의를 기획했다고 음해하는 사람도 많다. 일부러 고향을 숨겼다는 얘기도 있더라. 고향이 부산이다. 경찰관들은 인사기록 카드에 본적, 고향, 출신 고등학교명을 다 지운다. 나만 그런 게 아니다. 차별 방지 차원이다. 숨긴 게 아니다. 우리 구성원들은 내가 앞에 잘 나서지 않는 사람인 걸 안다. 평소에 정치적인 사람이었으면 서장회의가 활성화됐겠느냐. 오히려 ‘저 사람까지 나설 정도면 사태가 심각하다’는 게 있었다.” -한 언론인터뷰에서 ‘경찰은 국민의 경찰이다. 국민에게 충성하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고 했다. 검사 시절 윤석열 대통령의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을 연상시킨다. “완전히 다르다. 그 발언은 검찰의 의사 결정 과정에 대한 발언이었기에 조직에 충성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내 말은 경찰은 국민에게 충성한다는 것이다.” -정년이 2년 남은 것으로 안다. 경찰에서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나. “그동안에는 밥벌이를 위해서 숨고 조심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마지막이라도 대의와 명분이 있는 큰 이야기를 한 번 한 것 같다. 징계를 받았지만 손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경찰 수장과 조직에 당부하고 싶은 말은. “윤희근 경찰청장이 경찰 조직을 잘 추슬러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확보하는 그런 유능한 경찰로 다시 돌아갈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다. 정치적 외압을 막는 우산이 되시길 바란다.”
[신간]전국투표전도 2021 外(2021. 03. 19 14:04)
2021. 03. 19 14:04 문화/과학
ㆍ올 4월 재보궐 선거 가이드북 ▲전국투표전도 2021 | 조현익 외 지음·스튜디오하프-보틀·2만1000원 각자 1표씩 던져 공공을 위해 일할 일꾼을 뽑을 때가 다시 돌아왔다. 올 4월 치러질 이번 재보궐 선거는 선거가 치러지는 지역뿐 아니라 전국의 정치 상황을 가늠하고, 또 바꿀 수 있는 분기점이 될 것이기에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전국에서 가장 큰 두 도시의 광역단체장을 뽑을 정도로 재보선치고는 상당히 큰 규모인데다 앞서 역임했던 지자체장이 자리를 비우게 된 이유가 유난히 심각한 문제 때문에 관심이 많이 쏠린다. 내년에 있을 대선과 지방선거까지 생각하면 여야가 각기 무엇을 손보고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선거이기도 하다. 이번 재보선을 고민과 불신 속에서 지켜보며 표심을 어디로 보낼지 꼼꼼히 따져보려는 유권자들에게 판단에 도움을 줄 가이드북이다. 1장에선 이번 선거의 전국 단위 정보와 의미에 대해 다룬다. 역사적으로 재보궐 선거가 치러지게 된 요인은 무엇이었는지, 이번에 치러지는 선거 단위와 일정, 투표 방법은 어떠한지를 살펴본다. 2장에선 이번 선거에서 전국적으로 함께 주목할 관점이 무엇인지 살펴보기 위한 2건의 인터뷰를 담았고, 3장은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 밀려 주목받지 못하는, 나머지 공직자(지방의회 의원, 구청장, 군수 등)를 선출하는 재보궐 선거에 대해 간단하게 살펴본다. 가장 관심이 집중되는 부산과 서울, 두 도시의 시장 선거에 관한 내용은 각각 4장과 5장에서 깊게 다룬다. 그저 누가 당선될지만을 점치는 대신 새로운 공직자들에겐 어떤 점이 필요하고 무엇을 요구해야 할지 고민하도록 유권자의 결정을 도우려 한다. 2018년 지방선거와 2020년 국회의원 총선거에 이어 시리즈의 세 번째 책으로 만들면서 보다 깊이를 더했다. ▲나도 한 문장 잘 쓰면 바랄 게 없겠네 | 김선영 지음·블랙피쉬·1만3800원 방송작가를 하면서 단어와 문장을 매만지던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 글쓰기 코치로 일하고 있는 저자가 매일 어렵지 않게 글쓰기 실력을 쌓을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매일 15분씩 따라 하다 보면 모르는 사이에 쓰기 실력이 단단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왜 당신들만 옳고 우리는 틀린가? | 다카다 세이지 지음·박성관 옮김·이비·1만8000원 자유롭고 다양한 생각을 존중하는 듯하지만, 자신과 다르게 생각하는 이들에게 선을 긋고 배제하는 것이 일상이 되고 말았다. 저자는 현대사회가 만들어내는 모순과 문제를 해결할 열쇠를 철학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하며 보편적인 인식을 공유할 방안을 모색한다. ▲사랑의 기억 | 김진영 지음·한길사·1만5000원 삶과 사랑에 관한 잠언을 모았다. 깊은 성찰을 거쳐 인간의 운명을 고뇌한 글들을 모아 날카로운 시처럼 삶의 순간을 되새기게 한다. 저자가 현실에서 마주한 체험과 생각의 단상을 스쳐 지나가게 놓치지 않고 붙잡는 태도로 섬세한 언어를 길어냈다.
신간
[표지 이야기]‘전국 검사들과의 대화’ 그후 18년(2021. 03. 12 16:10)
2021. 03. 12 16:10 정치
ㆍ참여정부의 검찰개혁 실패 경험 갖고 있어도 검찰의 영향력 여전 2003년 3월 9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시행한 ‘전국 검사들과의 대화’는 검찰개혁의 신호탄이었다. 김영삼 정부와 김대중 정부에서도 검찰개혁이란 단어는 종종 나왔지만 구호에 그쳤다. 국민의 정부 초기 김대중 대통령은 “검찰이 바로 서야 나라가 선다”고 일갈했지만 공언에 그쳤다. 그간 정치권력은 검찰개혁 대신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는 방식으로 검찰을 이용했다. 본격적인 검찰개혁은 참여정부 들어 시작됐다. 검찰의 저항은 거셌다. 검사와의 대화에서 검찰은 고졸 출신 변호사인 노 전 대통령에게 ‘학번이 어떻게 되느냐’고 물을 정도로 저항 의지를 숨기지 않았다. 이 자리에서 평검사들은 ‘검찰 독립을 위해서 인사권에 간섭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2003년 3월 9일 열린 전국 검사들과의 대화 / 청와대 사진기자단 2003년 2월 강금실 변호사를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하면서 개혁 작업이 시작됐다. 여성, 비검사, 낮은 기수 출신의 장관을 임명해 개혁 의지를 공고히 한 것이다. 검경수사권 조정과 검찰 중립성 확보 방안 등 구체적인 검찰개혁안도 나왔다. 참여정부는 정치권력으로부터 검찰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개혁 방향을 정했다. 청와대는 개별 사건에 대해 간섭하지 않는다는 방침도 세웠다. 검찰 독립성 보장 방침에 따라 당시 검찰은 살아 있는 권력에도 거침없이 칼을 겨눴다. 노 전 대통령의 참모이자 왼팔인 안희정 전 충남지사와 후원자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을 구속했다. 권력에 좌고우면하지 않는 검찰이라는 여론이 생겨났고 국민적 지지가 이어졌다. 여기에 한나라당에 ‘차떼기 당’이라는 오명을 안겨준 대선자금 수사까지 이어지면서 검찰의 신뢰도는 치솟았다. 검찰은 국민의 검사라는 평을 받았고, 동시에 검찰개혁 열망은 점차 희석됐다. 국민 지지에 힘입어 참여정부 첫 검찰총장인 송광수 총장은 “차라리 내 목을 쳐라” 하며 당시 정부가 추진하던 중수부 폐지에 반발했다. 보수정권 9년 공고해진 검찰공화국 참여정부는 검찰개혁에 실패했다. 개혁 실패에 대한 결과는 노 전 대통령의 서거라는 치명적인 비극으로 이어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저서 <문재인의 운명>에서 “우리는 검찰개혁의 출발선을, 검찰의 정치적 중립으로 봤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들어서자마자 그들은 순식간에 과거로 되돌아가 버렸다. 검찰을 장악하려 하지 않고 정치적 중립과 독립을 보장해주려 애썼던 노 대통령이 바로 그 검찰에 의해 정치적 목적의 수사를 당했으니 세상에 이런 허망한 일이 또 있을까 싶다”라고 회고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 들어서면서 ‘검찰공화국’이 도래했다. 보수정권은 “정치적 반대나 주장은 물론 시민사회의 집단적 요구나 민원조차 업무방해죄나 교통방해죄, 명예훼손죄 등의 형사문제로 만들어 검찰의 폭력 아래 처단했다.”(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검찰은 어떻게 무소불위 권한을 가지게 되었나>) 이명박 정부는 청와대에 검사를 편법 파견하는 방식으로 공생관계를 형성했다. 이명박 정부에서만 22명의 검사가 사직서를 내고 청와대에서 근무한 후 모두 검찰로 복귀했다.(‘청와대 검사 파견 현황 보고서’, 참여연대) 이명박 정부에서도 검찰개혁 논의는 있었지만, 개혁이 추진될 때마다 검찰은 집단 반발하며 기득권 수호에 나섰다. 2011년 수사권과 공소권을 분리할 수 있는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당시 대검 검사장과 검사들은 집단으로 사표를 제출하며 반발했다. 김준규 당시 검찰총장은 여기에 책임을 지고 임기 만료 46일을 앞두고 퇴임했다. 사실상 검찰 후배들이 김 전 총장의 책임을 물어 쫓아낸 셈이다. 2012년 한상대 전 검찰총장도 검찰개혁의 일환으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폐지를 추진하다 검찰 내부 반발로 인해 중도하차했다. 대검찰청 / 우철훈 선임기자 박근혜 정부는 노골적으로 검찰을 권력의 도구로 활용했다. 권력형 비리 부실 수사와 재벌·대기업 봐주기 수사, 정부 비판 세력에 대한 과잉 수사가 이어졌다. 칼끝을 청와대로 향한 검사는 좌천됐다. 2013년 채동욱 전 검찰총장은 박근혜 정부의 아킬레스건인 국정원 대선 여론(댓글) 조작 사건을 원칙대로 수사했다가 찍혀나갔다. 참여연대는 박근혜 정부 검찰을 ‘국민 위에 군림하고 권력에 봉사하는 검찰’이라고 규정했다. 박근혜 정부 4년간 검찰에 대해 정치로부터의 독립은커녕 기계적 권한 분배를 위한 힘빼기 작업도 이뤄지지 않았다. 검찰을 동원하기 위해 정치권력이 만들어준 검찰권력은 고스란히 남았다. 갈길 잃은 검찰개혁 박근혜 정권의 ‘호위무사’였던 검찰은 국정농단 사태가 터지자 박 정권에게 칼을 빼들었다.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다시 권력의 중심에 선 것이다. 국정원 댓글수사를 이끌었다가 좌천됐던 윤석열 당시 대전고검 검사는 박영수 특검에 합류하면서 재기했다. 대표적인 친박계 정치인 김재원 국민의힘 전 의원은 3월 11일 페이스북에 “탄핵과 적폐몰이의 중심에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있다. 본인은 처음부터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박 전 대통령 탄핵의 법적 토대는 당시 박영수 특검의 공소장이었고, 특검의 중심인물은 윤석열이었다. 이어진 적폐몰이 수사의 핵심이 윤석열과 한동훈이었던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고 말했다. 검찰개혁이 다시 전면에 나선 것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다. 9년 전 참여정부의 실패 경험을 토대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리라는 기대가 높았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검찰의 ‘권한 나누기 작업’은 속도를 내지 못했다. 오히려 적폐 청산 차원에서 이뤄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수사를 통해 검찰의 영향력과 지위는 공고해졌다. 검찰 조직론자 윤석열 검찰총장 취임 이후 검찰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에 대한 수사를 시작으로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수사, 월성원전 수사, 라임·옵티머스 수사 등 청와대를 겨냥한 수사를 이어왔다. 추·윤 갈등 국면에선 평검사들이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에 맞서 집단반발하기도 했다. 검찰개혁에 대한 기득권의 저항이냐, 정치적 중립성의 안착이냐를 두고 여론이 둘로 갈라졌다. 그 사이 검찰총장 윤석열은 정치인 윤석열로 거듭나 대권 행보를 시작했다. 검찰이 정권과 정면으로 맞서게 된 모양새다. 김재원 국민의힘 전 의원은 페이스북에 “이길 수만 있다면 윤석열이 괴물이면 어떻고 악마면 어떤가”라며 “차라리 윤석열이라도 안고 가서 이 정권을 끝내야 한다”고 말했다. 윤 전 총장의 출마는 검찰 부활의 신호탄이 될까. 아니면 시대적 요구는 피할 수 없을까. 1년 뒤면 그 답을 알게 된다.
표지 이야기
[렌즈로 본 세상]추석 선물만큼은 전국으로 퍼지기를(2020. 09. 24 16:42)
2020. 09. 24 16:42 사회
올 추석은 예년과는 다른 풍경이 펼쳐질 것이라 생각했다. 추석 계획에 대한 서울시의 여론조사 결과도 그럴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서울시민 4명 중 3명은 추석 연휴 동안 장거리 이동을 하지 않고 집에 머물 것이라 대답했다. 코로나19 감염 확산 우려 때문이다. 마트와 전통시장, 공원에 가겠다고 대답한 시민도 절반이다. 추석 대목을 기대하게 마련인 재래시장 분위기가 어떨지 궁금했다. 지난 9월 21일에 큰 화재가 발생했던 청량리 청과물시장 분위기를 살폈다. 다행히 시장은 북적이고 있었다. 포장된 선물용 과일 상자도 여기저기 쌓여 있었다. 정부의 추석 연휴 이동자제 권고는 사람에게만 해당했던 것. 온정을 담은 추석 선물은 전국으로 퍼져나갈 것이다.
렌즈로 본 세상
[포커스]기본소득이냐, 전국민 고용보험이냐(2020. 06. 12 13:00)
2020. 06. 12 13:00 경제
ㆍ어떤 제도가 위기 극복에 효과적이고 두 제도는 양립 가능한 것일까 “배고픈 사람이 빵집을 지나다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빵을 보고 먹고 싶은데, 돈이 없으면 먹을 수가 없다. 그러면 그 사람에게 무슨 자유가 있겠느냐.”(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 강원 정선군은 5월 20일부터 모든 주민을 대상으로 1인당 20만원씩 재난지원금을 지급한다. 사진은 정선군 재난기본소득 지역화폐 배분 작업 현장/정선군 제공 “비가 막 줄기차게 내리고 있는데 우산 쓴 사람한테까지 또 씌워드리기보다 장대비를 그대로 맞고 있는 사람에게 우산을 씌워주는 게 바로 전국민 고용보험제도다.”(6월 11일 박원순 서울시장) 지난 6월 3일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정치의 목표는 물질적 자유의 극대화”라고 언급한 이후 기본소득이 정치권의 화두로 떠올랐다. 동시에 문재인 대통령과 박원순 시장이 논의를 주도하는 전국민 고용보험과 대안경쟁을 하는 모양새다. 통계청이 지난 6월 10일 발표한 5월 고용 동향을 보면 지난달 실업자 수는 127만8000명으로, 1999년 6월(148만9000명) 이후 가장 많다. 코로나19로 경제활동이 위축되면서 그 피해가 비정규직과 영세자영업자·프리랜서·플랫폼 노동자에게 고스란히 돌아가고 있다. 사회안전망을 확충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졌고, 정치권은 기본소득이나 전국민 고용보험을 띄우며 화답했다. 다만 어떤 제도가 위기 극복에 더 효과적인지, 두 제도는 양립 가능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전망이 엇갈린다. 전문가들은 두 제도의 현실성, 실현 방안을 두고 구체적이고 깊이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정치권에서 두 제도 대안경쟁 양상 우선 두 제도는 기본 전제와 작동 방식이 다르다. 기본소득은 노동 활동을 전제로 하지 않고, 자산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모든 사회구성원 개인에게 정기적으로 균등하게 지급하는 소득이다. 완전한 기본소득을 시행하는 곳은 전 세계적으로도 사례가 없다. 다만 기본소득의 요건 중 일부가 빠지고, 지급 수준도 소액인 ‘부분 기본소득’이 코로나19 확산을 맞아 긴급재난지원금 등의 이름으로 지급되고 있다. 전국민 고용보험은 실업 상태가 된 사람에게 구직활동을 전제로 실업급여와 취업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비정규직·프리랜서·플랫폼 노동자·자영업자 등 고용보험의 사각지대에 있던 이들을 포괄하는 것이 목표다. 일하는 모두가 의무가입 대상이 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고용관계를 전제하지 않고 소득과 이윤을 기준으로 보험료를 납부하는 방식이 거론된다. 보험료 납부가 어려울 정도의 취약계층의 경우 정부가 보험료를 절반 이상 지원하거나, 아예 정부 재정으로 실업급여를 제공하는 방식이 도입될 수 있다. 고용보험의 사각지대를 없애면 사회안전망의 보편성을 갖춘다는 점에서 기본소득의 설득력이 약해진다. 반대로 기본소득을 생계가 가능한 수준으로 매달 지급한다면 전국민 고용보험을 도입할 필요가 없다. 원칙적으로 두 정책이 공존하기 어려운 구조다. 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기본소득 대신 복지제도의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데 재원을 써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실업급여 지출액은 총 9조3355억원, 1인당 실업급여 수급액은 최대 월 198만원이다. 지난 2월 기준 고용보험 피보험자는 약 1382만 명으로 전체 취업자(2433만 명)의 절반을 조금 넘는다. 지금보다 예산을 두 배로 늘리면 전체 취업자로 고용보험을 확대하고 보험료 지원정책도 강화할 수 있다. 양 교수는 “고용보험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추가 비용인 9조3355억원을 기본소득으로 5200만 명에게 똑같이 나눠주면 월 1만4900원이 된다. 사각지대는 해소되지만 아무런 의미가 없는 액수”라고 말했다. 198만원인 실업급여 최고액을 300만원까지 인상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쌍용차 해고자들처럼 생계의 어려움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이들이 없도록 최저임금 수준인 실업급여를 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막대한 재정이 소요되는 기본소득이 들어올 경우 사회보장 강화가 어려워진다는 것이 양 교수의 입장이다. 기본소득과 복지국가의 원리가 상충한다는 지적도 했다. 양 교수는 “보편 무상급식이 소득과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급식을 제공하는 것이듯 실업자라면 누구나 조건 없이 실업급여를 받게 하는 것이 보편복지라고 할 수 있다”며 “상부상조와 사회적 연대의 정신에 입각한 복지국가 원리에 비춰주면 기본소득은 보편복지가 아닌 무차별 지급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복지국가는 단순히 가난하다고 주는 게 아니라 위험(실직·질병)과 욕구(육아·돌봄)로 소득 활동을 하지 못하는 경우를 보장하는 것”이라면서 “복지급여는 저소득 빈곤 가구나 실업자·육아휴직자·은퇴자 등 소득이 없는 사람에게 가기 때문에 소득 재분배 효과도 더 크다”고 말했다. 한 달 기본소득을 1인당 200만원씩 준다면 1248조원으로 2000조원 수준인 국민총생산(GDP)의 62%에 달한다. 사각지대를 해소하면 실효성이 없고, 실효성을 키우려고 지급액을 늘리면 예산 확보가 불가능한 구조라는 비판이 나온다. 이상이 제주대 교수(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는 “사각지대가 넓고 각종 복지급여의 보장수준도 기대에 미치지 못해 실질적 보편주의를 달성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보편적 사회서비스를 확충하고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강화하려면 기본소득은 양립할 수 없다”고 말했다. 기본소득론자도 “고용보험 우선 확대” 두 제도를 대결구도로 볼 필요가 없다는 입장도 있다. 고용보험 사각지대 해소를 우선에 두고, 보조적으로 부분 기본소득을 활용하는 방식이다. 윤홍식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양립 가능성은 기본소득을 어느 수준에서 결정하느냐에 달린 문제”라며 “한국사회에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사회보장의 사각지대를 줄이는 데 유력한 대안을 찾기 위한 논쟁은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중위소득의 100%를 주는 정도의 기본소득이라면 국민연금·고용보험 등 모든 보장제도와 양립하기 어렵지만 통합당이나 이재명 지사도 그런 수준은 아니라 문제될 것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관계자들이 6월 2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에서 우비를 입고 ‘해고금지, 전국민 고용보험 도입을 위한 서명운동 및 서울지역 투쟁선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연간 1인당 20만~30만원 수준은 기본소득이라기보다 긴급재난지원금 성격에 가깝다”며 “당장은 고용보험 확충이 제도적으로 더 중요하지만, 위기상황에선 아주 낮은 수준에서 기본소득을 병행할 필요성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장기적으로 전국민 고용보험과 실업부조(국민취업지원제도)가 완성되면 기본소득의 첫 단계로 연결된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학자들도 우선 고용보험 적용을 확대하고, 추후 기본소득으로 나아가는 방식을 선호했다. 김교성 중앙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정치인들의 정쟁 도구로 활용되는 것 같은 우려도 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몽상가들의 상상 정도로 취급됐던 내용이 구체적인 대안으로 거론되는 건 반가운 일”이라며 “종국에는 기본소득을 지지하지만 조세방식의 전국민 고용보험이 실업 안전망으로 작용하면 그것만으로도 대단히 바람직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고용보험에 대한 논의가 확장되면 이를 발판 삼아 조세에 기반을 둔 소득수당 제도가 발전하고 그 이후 기본소득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하기 때문이다. 기본소득은 사회개혁·증세 이끌 제도 강남훈 한신대 경제학과 교수(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이사장)는 고용보험부터 먼저 시작하되 기본소득은 국민의 합의로 증세를 한 뒤 추진하자는 입장이다. 강 교수는 “고용보험은 보험이라는 점에서 재원의 상당 부분은 가입자들의 보험료로 충당하기 때문에 기본소득보다 예산이 적게 든다”며 “새 국회에서 공론을 거쳐 전국민 고용보험과 기본소득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쪽은 기본소득을 복지 차원을 넘어 새로운 사회개혁, 증세의 공감대를 이끌어낼 제도로 주목하고 있다. 김 교수는 “국가로부터 받는 복지급여에 대한 경험치가 쌓여야 증세에 대한 동의를 얻을 수 있다”면서 “기본소득을 토지와 정보를 비롯한 사회가 일군 ‘공유부’에 대한 배당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강남훈 교수는 금액의 충분성 여부가 기본소득의 중요한 조건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기본소득으로 인한 복지효과가 크지 않다는 점도 인정했다. 오히려 기본소득을 단순한 재분배정책이 아니라 사회적·생태적 전환을 이룰 수 있는 이행전략으로 강조했다. 강 교수는 “기본소득의 근본 원리에는 토지·환경·정보 등 우리 모두의 공유자산이 있고, 거기서 나오는 수익을 전국민이 배당받을 권리가 있다는 점”이라면서 “가령 이재명 경기지사가 제안한 국토보유세를 재원으로 1년에 60만원 정도의 토지배당을 하면 충분치는 않지만 토지가 우리 모두의 공유자산이라는 걸 국민 모두가 깨닫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토지배당의 금액은 많지 않지만 한국의 자산 불평등의 가장 큰 원인이 된 부동산 투기를 없애는 경제적 효과는 크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탄소세 역시 기후변화를 막고 지구를 살리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강 교수는 “탄소세는 기본소득(탄소배당) 없이는 정치적 저항 때문에 도입이 불가능하다”면서 “탄소세를 거둬 이를 모든 국민에게 똑같이 나눠주면 증세에 대한 저항 없이 탄소세를 도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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