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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편과 재결합 가능성 없어요” ‘돌싱글즈4’ 하림 인터뷰②
전남편과 재결합 가능성 없어요” ‘돌싱글즈4’ 하림 인터뷰②
2023. 11. 03 07:11 화제
하림씨가 본인의 인스타그램에 좋아하는 사진 중 하나라고 꼽은 자신의 사진. <돌싱글즈4>는 <나는 솔로> 16기와 비슷한 시기에 방송되며 새로운 사랑을 결심한 ‘돌싱’들이 마주한 현실과 고민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또한 이국적인 휴양지 칸쿤과 ‘생활감’ 가득한 실제 거주 공간을 배경으로 나이와 국적, 직업, 결혼 이력과 상관없이 호감을 느낀 대상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애틋한 감정까지 보여주며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반면 촬영 초기 모든 개인 정보를 공개하는 <나는 솔로>와 달리 <돌싱글즈>는 매일 하나씩 개인 정보를 공개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때문에 미국 편에서 커플 선택의 변수일 수 있는 거주지 정보가 뒤늦게 공개되고, 특히 재혼을 결심한 이들에게 가장 중요할 수도 있는 자녀 유무가 가장 늦게 밝혀지며 일부 시청자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정작 하림씨는 이에 대해 오롯이 출연자 개인만을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선진적인 방식이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최근 하림씨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전남편의 사진과 함께 그에 대한 호의적인 글을 올려 재결합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샀다. 재결합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그는 “없어요. 노노~~”라고 답했다. 남편에 대한 글은 현재 삭제된 상태다. - 출연자들이 방영 이후에도 잘 지내는 모습을 공개해 보기 좋았습니다. <돌싱글즈4>를 통해 인해 얻은 것이 있다면요? “좋은 하나의 가족을 또 얻은 것 같아요. 너무나 좋은 분들이 모여서 뿌듯해요 또한 제가 너무 감사한 게 저는 무엇이든 그 안에서 큰 목표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이번 프로그램이 혼자서 힘들어하는 싱글페어런트와 육아하는 부모들에게 제가 힘을 줄 수 있는 기회였다고 봐요. 겉으로는 누구나 지저분하고 약한 모습 보이기 창피할 텐데 저는 그런 거에 필터가 없기에 오히려 저를 통해 그런 완벽하지 않은 서로의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생각을 키우는 목표가 생겼다고 봐요. 그런 면으로 <돌싱글즈4>에서 너무나 큰 선물을 받아가는 거죠.“ <돌싱글즈4> 출연자들과 함께한 촬영 당시 사진. 이하림 인스타그램 - 하림씨를 보고 용기를 얻어 <돌싱글즈>에 출연하려는 싱글들도 있을 듯한데요. 그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요? “어떤 상황에 있던 본인의 인생은 최고의 가치를 갖고 있으니 감정이 움직이는 대로, 발전이 보이는 대로, 기회가 있는 대로 움직이세요. 가장 소중한 것은 삶의 다양한 경험인데 그런 경험을 막는 사회적 제한이 있다면 본인이 그 밖으로 나가보는 리더가 되어보세요. 자녀가 많아서 안될 것 없고, 나이가 많아서 안될 것 없고, 사회 위치가 어때서 안 될 것 없어요. 이런 면에서는 정보 공개(나이, 거주지, 자녀 유무 등)를 바로 안 하고 아무것도 서로 모르는 상황에 한국 사회의 “언니 오빠”도 없이, 개인만 바라보게 한 <돌싱글즈>가 큰 기회를 줬다고 생각해요. 존경합니다.“ - 하림씨는 4살 때 이민을 했음에도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고, 다른 출연자들과 달리 하림이라는 한국 이름을 쓰고 있습니다.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이 하림씨에게는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고 있나요? “저는 한국사람이면서도 서양적인 면이 다른 교포분들보다 더 많은 것 같아요. 저는 아무래도 이사를 많아 다니며 다른 교포분들처럼 비슷한 교포들끼리 어울리는 어린 시절 보다는 레바논 시골에서 전형적인 컨트리 백인들이랑 살았어요. 그 뒤로도 여러 문화 친구들과 어울리며 고등학교 때도 히피 문화 같은 환경을 즐기며 미술적인 친구들과 어울렸어요. 제 존재를 설명하자면 ‘Don’t take life too seriously‘로 정리할 수 있어요. 사람의 마인드는 무한한 다양성을 갖고 있기에 사회에서 교정시키는 원형이나 위치로 개인을 해석하지 않고 진심으로 개성을 찾아가는 중요성을 깊이 믿어요. 성별, 인권, 압박적인 종교 등으로 사람의 인생을 교정시키려는 체제에 굉장히 반대하는 사람이에요. 역사상 제일 좋아하고 존경하는 분이 나혜석이라면, 이해가 쉬우실 것 같아요.” <돌싱글즈4>의 출연자 하림씨가 운동하는 모습. 이하림 제공 - 출연 당시 미모로도 화제가 됐습니다. 아이 셋을 둔 엄마라고는 믿기지 않는다는 얘기도 함께요. “외모는 상황이 힘들수록 내 자신을 잃지 않고 싶어서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거예요. 바쁘신 부모들이 아시다시피 육아를 하다 보면 딱히 내 자신에게만 줄 수 있는 시간이 흔치 않아 관리를 안 하게 될 수 있어요. 하지만 저는 이미 너무 특이한 이혼 상황을 겪었고, 너무나 힘든 하루하루 중 내 자신을 바라봤을 때 나는 피해자가 아닌 승리자다, 라는 것을 내 개인 관리로 유지하며 정신력을 키우고 싶었어요. 내 자신에 대해 정체성을 잃지 않아야 정신과 마음도 강하게 유지할 수 있잖아요. 부모가 자신감이 있어야 아이들도 힘든 상황에서 엄마를 보며 같이 자신감을 받을 거라고 생각해요. 원래 운동을 자주 했었는데요. 집에서 할 수 있는 간단한 운동 방법들도 있고요. 저는 디톡스를 많이 해요. 제 삶의 방식에 피로가 많이 생기다 보니까 디톡스 만큼 중요한 게 없는 것 같아요. 집에서 마실 수 있는 간단한 자연 레시피나 누워서도, 일하면서도 할 수 있는 방법들이 있어요. 제가 20대부터 사용한 방법들도 있고 또는 코스메틱 사이언스 쪽에서 마케팅을 하다 보니 많은 정보를 얻게 된 부분도 있고요. 제가 소셜미디어로 하나씩 공개해볼까 합니다.” - 방송 출연 이후 하림씨에게 여러 유형의 프러포즈가 쏟아졌을 것 같습니다. 일과 사랑, 앞으로의 계획을 들려주세요. “사실 이번 경험에 제가 너무나 많은 열정을 부었고 그게 마무리가 된 후 사랑에 대한 애타는 마음은 조금 가라앉은 것 같아요. 특별한 계획은 없고 지금처럼 열심히 일하고 있으면 내 노력과 열정과 야망을 사랑해주는 사람이 나타날 거라 생각해요. 지금은 아이들과 최대한 시간을 많이 보내는 게 우선이고요.“ - 기회가 있다면 한국에 올 계획은 없나요? “사실 한국에서 살고 싶어요. 기회가 된다면 그러고 싶어요! 욕심을 부린다면 시애틀과 한국을 왔다갔다 하고 싶네요.” 당분간은 아이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고 싶다고 밝힌 하림씨는 “싱글페어런트들을 응원하고 긍정적인 마인드를 응원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계획과 함께 심리 관련 서적 집필, 대학원 진학, 무에타이와 양궁을 배우고 싶다는 포부도 전했다. 이 같은 호기심과 성취에 대한 열정의 온도가 같은 파트너를 만나고 싶다는 소망도 함께. ▶ 관련기사 “싱글맘 현실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돌싱글즈4’ 하림 인터뷰①
전남도, 전국민 대상 ‘일자리정책 아이디어’ 공모
전남도, 전국민 대상 ‘일자리정책 아이디어’ 공모
2020. 05. 03 12:13 화제
전남도청 전경.전라남도가 도민 중심의 안정된 일자리 창출을 위해 이달 30일까지 ‘일자리정책 아이디어 공모전’에 나선다. 이번 공모전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구직자와 구인기업, 청년, 여성, 중장년 등 다양한 계층의 의견을 수렴해 일자리 정책 사업에 반영하고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마련됐다. 공모주제는 일자리창출 지원방안과 정책에 대한 아이디어이며, 접수된 아이디어는 전남도청 해당 부서들의 검토를 마친 후 일자리전문가로 구성된 심사위원회를 거쳐 오는 7월 최종 선정된다. 선정된 우수제안은 자료집으로 발간해 전라남도 일자리 사업 아이디어를 발굴하는 데 활용될 예정이다. 부상으로는 상장과 함께 최우수상 1명에게 150만원 상당의 의류탈취기를, 우수상 3명에게는 100만원 상당의 공기청정기, 참가상 20명에게는 5만원 상당 온누리상품권을 제공한다. 참여는 전라남도일자리통합정보망 누리집(job.jeonnam.go.kr)에서 온라인으로 신청하면 되고, 자세한 사항은 전라남도일자리통합정보망 누리집을 통해 확인하거나 전라남도일자리종합센터(080-500-1919)에 전화로 문의하면 된다. 배택휴 전라남도 일자리정책본부장은 “국민 누구나 참여해 참신하고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많이 제시돼 전남 일자리정책에 반영되고 일자리가 많이 늘어나기를 기대한다”며 “전국민의 적극적인 참여와 관심으로 행복한 전남시대를 앞당기는 데 소중한 역할을 해줄 것을 바란다”고 전했다.
[길 위의 독서]전남 구례&경남 하동 섬진화서(蟾津花序)
[길 위의 독서]전남 구례&경남 하동 섬진화서(蟾津花序)
2016. 03. 03 16:28 레저/여행
무르녹은 꽃 시절, 유순한 섬진강 줄기가 곁을 내어준 마을은 산수유마을이나 매화마을 같은 꽃의 이름으로 불린다. 이 골짝 저 골짝 뭉글뭉글 꽃 대궐이라, 꽃그늘 아래 앉아서도 강 건너 꽃구경이 일이다. 꽃길 순례에 밭은 일정은 예의가 아닌 바. 홀리는 대로 걷다가 마음 머무는 자리에 멈춰 가만히 바라볼 일이다. 피는 꽃과 지는 꽃을, 낱낱의 이별에 연연하지 않고 다만 흐를 뿐인 강물을. 유정도 무정도 아닌 아득하고 무한한 서사를. 초록의 차밭과 한데 어우러진 하동의 백매는 색다른 아름다움을 뽐낸다.이즈음 남도의 꽃 소식은 ‘꽃몸살’이니 ‘꽃멀미’니 ‘꽃사태’니 하는 제목을 달고 전해진다. ‘꽃-’을 떼고 보면 하등 좋을 것도 없는 몸살과 멀미와 사태가, ‘꽃-’을 만나 별안간 환해진다. ‘꽃차례’란 단어를 처음 봤을 때도 실은 그 연장선상에 있는 표현인 줄 알았다. 잔설을 떨친 가지마다 이제는 꽃차례라는 건가 보다, 바야흐로 만개하는 시절, 꽃 세상이라는 뜻인가 보다 했다. 북풍한설이 물러나며 ‘꽃, 네 차례야-’ 하고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다. 충분히 그럼직하다 여겼으나 기실, 꽃차례는 가지에 붙어 있는 꽃의 배열 상태를 뜻하는 말이다. 한자로는 ‘화서(花序)’라 이른다. 단꽃차례와 복꽃차례, 무한꽃차례와 유한꽃차례 등 형태와 순서에 따른 분류법도 주섬주섬 주워 삼켰지만, 한 번 마음 붙인 오독은 여전히 유효하여 이렇게 주억거리곤 한다.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이 마을, 저 마을 모두 꽃 대궐이다.‘아무렴, 이제 꽃차례지. 그래 지금 누구 차례인가, 매화? 산수유?’ 그리하여 내 멋대로 명명한 섬진강 봄꽃 지도의 또 다른 이름은 섬진강 꽃차례 혹은 섬진화서(蟾津花序)다. 남도의 봄꽃 성지로 손꼽히는 구례, 광양, 하동은 섬진강을 줄기 삼아 피어난 꽃마을이다. 강줄기가 곁을 내어준 마을마다 차례차례 산수유가 번지고 매화가 벙글고 벚꽃이 터진다. 시간 순서로 보자면 산수유와 매화는 동시다발로 피어나고 벚꽃이 한발 늦다. 산수유가 아른아른 봄볕 속에 멸하고 매화 꽃잎 난분분 흩날릴 때가 물 오른 벚꽃의 시간, 벚꽃 차례다. 강물 위로 매화 꽃잎이 낱낱이 흩날릴 즈음 하동 십리 벚꽃이 만개한다.지리산 자락에 깃든 노란 꽃구름 구례의 봄은 산동면 일대에 번진 산수유꽃으로 노랗게 들떠 온다. 매화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봄의 전령사임을 자임하는 산수유는 3월 초에 꽃을 틔우기 시작해 3월 말쯤 절정을 이룬다. 통칭 ‘산수유마을’로 불리는 대평, 반곡, 하위, 상위, 현천, 계척마을 중 지리산과 가장 가까운 상위마을의 풍광을 으뜸으로 친다. 오래된 돌담을 따라 굽이굽이 이어진 노란 꽃길이 정겹기 그지없다. 중국 산둥성에서 들여와 우리나라에 가장 먼저 심었다는 산수유 시목(始木)은 계척마을에 있다. 화엄사 각황전 앞에 자리한 300년 수령의 홍매. 붉다 못해 검붉다 하여 흑매라고도 불린다.산수유나무는 일교차가 심한 산비탈에서 잘 자란다. 지리산 산자락에 깃든 이들 마을이 국내 산수유 생산량의 70%를 책임지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산수유 열매는 신장과 골수를 튼튼하게 하고 신경통에도 효과가 있다고 알려졌다. 매년 봄에는 꽃으로 가을엔 열매로 축제를 여는데, 올해의 ‘산수유꽃축제’는 3월 19일부터 27일까지 개최된다. 같은 노랑꽃이라도 개나리와 산수유는 느낌이 영 다르다. 개나리가 경쾌한 웃음소리라면 산수유는 아련한 미소 같다 할까. 한데, 의외로 반전이 있는 꽃이다. 멀리서 보면 파스텔톤 연노랑빛이 아른아른한데, 가까이 들여다보면 그 낱낱의 형태가 밤하늘을 수놓은 불꽃의 향연과도 같다. 자디잔 꽃송이들이 마치 폭죽 터지듯 펼쳐져 있어 한 송이라 여긴 게 실은 한 무더기다. 이와 같은 꽃의 배열을 산형꽃차례라 한다. 꽃대의 꼭대기 끝에 여러 개의 꽃이 방사형으로 달린 무한꽃차례의 하나다. 산골 마을의 고요 속에 매화 향기가 그윽하다.산수유를 묘사한 잊을 수 없는 명문은 김훈의 「자전거 여행」 중 여수 기행문 편에 등장한다. 동백부터 매화, 산수유, 목련에 이르기까지 봄꽃에 대한 탁월한 묘사가 페이지마다 흥건하여 꽃 여행을 떠날 때면 다시 펼치게 되는 책이다. ‘산수유는 다만 어른거리는 꽃의 그림자로서 피어난다. (중략) 그 그림자 같은 꽃은 다른 모든 꽃들이 피어나기 전에, 노을이 스러지듯이 문득 종적을 감춘다. 그 꽃이 스러지는 모습은 나무가 지우개로 저 자신을 지우는 것과 같다. 그래서 산수유는 꽃이 아니라 나무가 꾸는 꿈처럼 보인다.’ -김훈, 「자전거 여행」 중 매화 향기 속을 호젓하게 거닐고 싶다면 섬진강을 사이에 둔, 광양 다압면 맞은편 하동 먹점마을이 제격이다.실은, 생강나무 앞에서도 저 문장을 곱씹었던 부끄러운 기억이 있다. 산수유꽃과 생강나무꽃을 구분 못하던 시절, 꽃놀이를 가도 꽃구경보다는 술추렴이 더 좋았던 때의 이야기다. 구례까지 와서 산수유만 보고 떠나긴 아쉽다. 광양으로, 하동으로 무수한 꽃길과의 약속이 바쁘더라도 화엄매가 피었다는 소식이 들리거든 기필코 화엄사에 들러야 한다. 각황전 앞에 키가 우뚝한 300년 수령의 홍매로, 꽃이 붉다 못해 검붉다 하여 흑매라고도 부른다. 순천 선암사의 600년 선암매가 꽃을 피우면 그 향기가 산 너머 화엄매를 깨운다는데, 작년에는 화엄사 홍매가 먼저 피었더랬다. 출사객과 관광객에 에워싸여 소란한 와중에도 화엄매는 장엄미를 견지했다. 눈을 찌르듯 선연한 진분홍 꽃잎을 한참 우러르다 ‘아름다움이란 우리가 가까스로 견딜 수 있는 무서움의 시작’이란 릴케의 말을 떠올렸다. 무한한 시간 단위도 겁(劫), 무서움도 겁(怯). 피고 지고 피고 지는 무한한 꽃의 윤회에, 겁(劫)의 시간을 돌아왔을 것 같은 꽃나무의 정령에, 겁(怯)인 듯 경외심인 듯 절로 수굿해지는 것이었다. 노란 꽃구름을 두른 구례 산수유마을.봄이 다 가도록 숨어 살고픈 꽃그늘 섬진강변 매화 일번지는 광양 다압면 청매실농원이지만, 호젓하게 매화를 감상하고 싶다면 하동 흥룡리 먹점마을이 좋다.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청매실농원 건너편에 자리 잡은 산골 마을로, 청매실농원이 블록버스터라면 먹점마을 매화군락은 독립영화에 가깝다. 지리산 구제봉 중턱 해발 400m 고지에 일부러 숨긴 듯 들어앉은 마을은 산세의 비호 속에 6·25전쟁 때도 아무런 피해를 당하지 않았다고 한다. 산간 오지에 내린 축복은 그런 것일 게다. 아수라판 같은 세상사와 절연할 수 있는 자유. 먹점은 이곳에서 먹이 많이 생산됐다 하여 유래한 지명으로 묵점이라고도 부른다. 황토를 이겨 바른 농가와 다랑이밭, 오솔길이 어우러진 수더분한 풍경 속에 다문다문 깃든 매화는 화려하기보다 은은하다. 그 고요에 기대 오롯이 향기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게 먹점마을 매화 감상의 즐거움이다. 청신하고 달큰한 암향(暗香)에 취해 걷노라면 눈을 뜨고도 꿈을 꾸는 것 같다. 화엄사 각황전 앞에 자리한 300년 수령의 홍매. 붉다 못해 검붉다 하여 흑매라고도 불린다.‘ 매화는 질 때, 꽃송이가 떨어지지 않고 꽃잎 한 개 한 개가 낱낱이 바람에 날려 산화(散華)한다. 매화는 바람에 불려가서 소멸하는 시간의 모습으로 꽃보라가 되어 사라진다. 가지에서 떨어져서 땅에 닿는 동안, 바람에 흩날리는 그 잠시 동안이 매화의 절정이고, 매화의 죽음은 풍장이다.’ -김훈, 「자전거 여행」 중 마을에 방 한 칸을 얻어 매화가 꽃보라로 사라질 때까지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아침, 저녁으로 돌담 밑에 흩뿌려진 연분홍 손톱 같은 매화 꽃잎을 쓸어 담으며, ‘봄이 오는 사태만큼 사실 큰 사건은 없다’라고 중얼거리고 싶었다. 봄이 오는 사태만큼 사실 큰 사건은 없다 지금은 쓸쓸한 춘궁, 그래도 봄날은 올 것이며 씹어 먹어도 먹어도 굽은 등 떠밀며 또 봄날은 갈 것이다 -문인수, ‘동백 씹는 남자’ 중 <■글 / 고우정(여행작가) ■사진 / 현일수(리빙룸스튜디오)>
길 위의 독서
떠오르는 여행지, 전남 강진
2015. 07. 09 14:07 레저/여행
문화재청장을 지냈던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통해 ‘남도답사 1번지’라고 칭했을 정도로 역사적 명소가 가득한 강진. 모란 시인 김영랑의 생가, 다산 정약용 선생이 목민심서를 집필한 다산초당, 고려청자를 굽던 가마터 등이 이곳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강진의 한정식은 남도에서도 단연 으뜸. 지난 4월 호남선 KTX가 개통돼 나주까지 기차를 타고 가면 강진까지 버스로 쉽게 이동할 수 있다. 기차 여행지로도 손색없는 강진의 대표적인 관광지를 소개한다. 무위사 월출산 자락에 자리한 고찰로, 신라 진평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했다. 당시 지어졌던 대부분의 건축물이 임진왜란 때 소실돼 버렸다. 아미타불이 봉안된 극락보전은 조선 세종 때 건립됐으며, 현존하는 조선 목조건축물 중 가장 오래된 건물로 국보 제13호로 지정됐다. 내부의 벽화 역시 조선시대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강진다원 월출산은 해방 직전까지 국내 최초의 녹차 제품인 백운옥판차(白雲玉板茶)를 생산하는 차산지였다. 습도가 적당하고 주야간 온도차가 크며 안개가 많아 차의 떫은맛이 적고 향이 강한 것이 특징. 이곳에서는 이른 봄부터 어린 싹을 따기 시작해 1년에 3~4회 채엽을 한다. 잘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이 지역을 찾은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명소다. 백운동 원림 조선 중기에 조성된 정원으로 담양 소쇄원, 보길도 부용동 정원과 함께 호남의 3대 원림으로 꼽힌다. 정약용, 초의선사 등의 당대 저명한 문사들이 시를 남긴 곳이기도 하다. 진입로의 울창한 동백림, 담 옆으로 흐르는 백운동계곡, 활엽수와 동백나무, 고택이 어울린 정원의 풍경이 비밀의 정원에 온 듯한 느낌을 준다. 다산 유배길 다산 정약용 선생이 백련사 명승 혜장을 만나기 위해 오르내리던 길이라고 하여 ‘다산 유배길’이라 불린다. 소나무, 편백나무, 비자나무가 빽빽한 길을 걷다 보면 정약용 선생이 강진 유배 18년 중 10여 년을 생활하면서 「목민심서」, 「경세유표」 등 600여 권의 저서를 집필한 곳인 ‘다산초당’에 다다른다. 쭉 이어진 길의 끝에서는 동백군락지로 이름난 백련사를 만나볼 수 있다. 영랑생가 김영랑 시인이 1903년에 태어나 1948년 가족과 함께 서울로 이주하기 전까지 45년간 살았던 집이다. 그가 서울로 이주하면서 생가는 다른 사람의 소유가 됐지만 1985년 강진군청이 다시 사들여 초가집의 원형을 되살렸다. 그의 대표작인 ‘모란이 피기까지는’의 이미지에 맞게 생가 주변에는 모란이 많이 심어져 있다. 청자박물관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청자 가마터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강진에 조성된 국내 유일의 청자 박물관이다. 강진군 대구면 일대는 9세기에서 14세기까지 고려청자를 제작했던 지역이다. 박물관 주변에 고려청자를 재현하는 작업장이 있어 우리나라 청자의 과거와 현재를 살펴볼 수 있다. 마량항 해질녘이 특히 아름다운 마량항은 천혜의 미(美)항으로 손꼽힌다. 항구 앞에는 천연기념물 제172호로 지정된 까막섬이 수묵화처럼 떠 있다. 싱싱한 제철횟감을 싸고 푸짐하게 먹을 수 있는 횟집들이 즐비해 있고 방파제를 따라 산책로가 멋스럽게 가꿔져 있기도 하다. 매주 토요일 밤마다 작은 음악회가 열린다. <■글 / 노도현 기자 ■사진 제공 / 코레일>
[정원 여행자] 전남 담양 - 여름 담양으로의 자명한 산책
2015. 06. 30 18:59 레저/여행
여름날 담양을 찾아야 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대숲을 흔드는 바람과 메타세쿼이아의 초록 터널, 멀미 나는 삶에 쉼표를 찍어주는 슬로시티, 은둔자의 소쇄한 정원 때문만은 아니다. ‘연못 담(潭)’에 ‘볕 양(陽)’ 자를 쓰는 담양은 연못에 가장 풍성한 볕이 드는 계절, 하여 생장점을 활짝 열어젖힌 수생식물들이 진초록으로 들끓고 볕에 기민한 수련이 눈 뜨는 여름이 제철이다. 담양의 명소 죽녹원은 16만㎡에 달하는 울창한 대숲의 위용을 자랑한다. 대숲에서 귀동냥한 푸른 속사정 담양의 첫 기억은 대통밥과 댓잎술이다. 담양에 도착하자마자 그걸 먹기 위해 간 것처럼 대통밥 정식으로 유명한 식당부터 찾았다. ‘담양’이란 지명을 떠올릴 때마다 자동적으로 따라붙는 푸른 대숲 이미지가 식욕 중추에도 영향을 미친 까닭이다. 전라도 밥상을 앞에 두고 흐뭇하지 않았던 적이 있던가. 맑고 순한 댓잎술로 반주도 걸쳤겠다, 걸음걸이에 절로 탄력이 붙을 만큼 기분 좋은 취기에 젖어 죽녹원으로 향했다. 담양군이 성인산 일대에 조성한 죽녹원은 16만㎡에 달하는 거대한 대나무 정원이다. ‘운수대통길’, ‘죽마고우길’, ‘사랑이 변치 않는 길’ 등 8가지 주제의 산책로로 구성돼 있는데, 어느 길을 걸어도 울창한 대숲 속에서 죽림욕을 즐길 수 있다. 전망대에 오르면 담양천과 수령 300년이 넘은 고목들로 조성된 관방제림,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 등 담양의 명소들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1970년대 초반 전국적인 가로수 조성사업 때 담양군이 3, 4년생 메타세쿼이아 묘목을 심은 것이 현재의 울창한 가로수 터널길이 됐다. 옛 선비들의 지극한 대나무 사랑이야 말해 무엇 할까. 사철 푸른 절개와 꼿꼿한 강직함에다 텅 빈 속이 상징하는 무욕의 경지까지. 무릇, 군자의 덕을 고루 갖춘 대나무에 대한 칭송은 무수한 시·서·화로 남아 있다. 그중 고려시대 승려 혜심의 「죽존자전(竹尊者傳)」에서는 다음과 같이 대나무를 예찬한다. 추위와 더위가 닥쳐도 용납하지 않고 / 해를 더할수록 더욱 절개를 가다듬고 / 날이 오랠수록 더욱 마음을 비우네 / 달빛 아래서는 맑은 그림자 일렁이고 / 바람 앞에서는 청정한 소리 보내나니 / 거기다 하얀 눈을 이게 되면 / 대숲은 뛰어난 운치가 이뤄지네 하지만 복효근 시인의 ‘어느 대나무의 고백’처럼, 대숲의 위엄 뒤에 가려진 절절한 속사정을 짚어볼 만도 하다. 늘 푸르다는 것 하나로 / 내게서 대쪽 같은 선비의 풍모를 읽고 가지만 / 내 몸 가득 칸칸이 들어찬 어둠 속에 / 터질 듯한 공허와 회의를 아는가 / 고백컨대 / 나는 참새 한 마리의 무게로도 휘청댄다 / 흰 눈 속에서도 하늘 찌르는 기개를 운운하지만 / 바람이라도 거세게 불라치면 / 허리뼈가 뻐개지도록 휜다 흔들린다 (중략) 생의 맨 끄트머리에나 있다고 하는 그 꽃을 위하여 / 시들지도 못하고 휘청, 흔들리며, 떨며 다만, / 하늘 우러러 견디고 서 있는 것이다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은 ‘2002 아름다운 거리숲’ 대상과 2006년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바 있다. ‘생의 맨 끄트머리에나 있다고 하는’ 대나무 꽃은 60~120년 만에 한 번 피는 까닭에 대밭 옆에 집을 짓고 살아도 보기 힘들다는 말이 있다. 그처럼 귀한 꽃을 피운 이듬해, 대나무는 생을 마감한다. 생애 단 한 번 마지막 꽃을 피우는 대나무의 일생을 생각하노라면, 맹렬한 속도로 진군하듯 자라나는 시퍼런 패기가 실은 하늘을 향한 하소연 같다는 생각도 든다. 땅 위의 인간들은 제 속도 모르고 군자의 풍모라 칭송만 해대니, 기구한 팔자를 고할 곳이 하늘밖에 더 있을까. 바람에 사각대는 청량한 댓잎 소리가 서글픈 비가(悲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중생대의 나무를 우러르며 담양의 나무들은 제 몸을 쭉쭉 뻗어 올려 하늘과 소통하는 것이 특징일까.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에서 또 한 번 하늘을 우러러본다. 양쪽으로 도열한 10~20m 높이의 아름드리나무들이 짙푸른 녹음을 드리우며 위용을 자랑한다. 메타세쿼이아 나무는 마지막 빙하기 이후 사라져 은행, 소철 등과 함께 화석으로 종종 발견됐기 때문에 ‘화석나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그러고 보면 공룡의 시대에 어울릴 법한 사이즈. 유전자에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의 무늬를 아로새긴 나무와 한 시절을 공유한다는 것은 꽤나 가슴 벅찬 일이다. 1 창평면 삼지내 마을은 고유의 생활방식과 문화유산의 가치를 인정받아 2007년 아시아 최초의 슬로시티로 지정됐다. 2 슬로시티의 특성을 살린 한옥 민박집이 정겹다. 3 돌담을 따라 굽이굽이 걷다 보면 100년도 넘은 전통 한옥을 만날 수 있다.‘메타세쿼이아’라는 이름은 미국 체로키 인디언 지도자의 이름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체로키 부족은 체로키 문자를 창시한 위대한 지도자 ‘세쿼이아’를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 세상에서 가장 오래되고 큰 나무에 그들 영웅의 이름을 붙였다. 이후 이 나무가 1년에 1m씩 자란다고 하여 메타세쿼이아라고 부른다. 나무 한 그루당 이산화탄소 흡수량이 소나무의 10배에 이른다고 알려졌다. 중생대의 나무를 가로수로 심은 고장답게 담양엔 세월의 깊이가 오롯하다. 아시아 최초의 슬로시티로 지정된 창평면 삼지내 마을로 드는 길. 마을 입구를 지키고 선 2층 누각 남극루는 16세기 초에 형성된 마을을 조망하고 있다. 월봉천과 운암천, 유천 3개의 물줄기가 마을로 모여 흐른다고 해서 ‘삼지내’라 이름 한 마을은 아직도 수세기 전의 평화로운 모습을 간직한 곳이다. 자연을 뜰 안에 들이되 나무 한 그루, 물길 하나 의미 없이 조성한 것이 없다.삼지내 마을의 트레이드마크이자 근대 유산으로 지정된 돌담길은 총 3.6km에 달한다. 진초록 담쟁이 넝쿨을 두른 정겨운 돌담을 굽이굽이 따라 걷는 것도 좋지만, 창평면사무소에서 자전거를 대여하는 방법도 권할 만하다. 천천히 페달을 밟으며 돌담길을 끼고 돌다 보면, 곳곳에서 100년도 넘은 전통 한옥을 만날 수 있다. 그중에서도 전라남도 민속자료로 지정된 고재선 가옥과 고재환 가옥은 남도 주택의 주거양식이 잘 보존돼 있다. 돌담길 중간중간 ‘창평전통쌀엿’이라는 간판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는데, 바삭바삭한 식감에 쩍쩍 들러붙지 않는 창평쌀엿은 임금님 진상품으로도 유명하다. 창평이 슬로시티로 지정된 데는 전통 방식을 고수해 만드는 먹을거리들이 톡톡히 한몫을 담당했다. 대를 이어 만드는 창평쌀엿과 창평한과, 장날 창평시장에서 먹으면 좋을 창평국밥 등이 그것. 또 종가집 며느리가 빚어내는 된장, 고추장도 슬로시티를 대표하는 웅숭깊은 맛이다. 창평면 유천리에 있는 기순도 명인의 집 장독대에선 구수한 냄새가 솔솔 피어난다. ‘치타슬로 국제연맹’이 창평을 슬로시티로 지정하며 극찬한 명인의 전통 장은 죽염을 기본 재료로 하는 것이 특징이다. 360여 년을 이어온 고씨 문중의 10대 종부로, 세월의 내공을 품은 슬로푸드의 진수를 보여준다. 500여 개의 장독 중에는 대대손손 물려 내려온 씨간장독도 있다 하니, 과연 전통의 장맛이라 자부할 만하다. 뜨거운 여름 볕을 잠시 피해갈 요량으로 한옥 민박집의 대문을 열었다. 슬로시티를 구경 왔다는 객에게 기꺼이 툇마루를 내준 민박집 안주인은 땀이나 식히고 가라며 얼음 동동 띄운 오미자차까지 내어준다. 짱짱한 볕 아래 바삭하게 말라가는 하얀 이불 홑청을 바라보며 툇마루에 앉아 오미자차를 마시는 오후란 여름날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사치였다. 1 주인의 처소인 제월당은 광풍각 뒤편에 자리 잡았다. ‘비 갠 뒤 맑게 부는 바람과 밝은 달’을 뜻하는 ‘광풍제월(光風霽月)’ 중 밝은 달에 해당한다. 2 작은 규모지만 폭포까지 갖춘 정원은 무릉도원과 같다. 3 3면 문짝을 활짝 들어 올리면 호방한 기개마저 느껴지는 광풍각. 대숲에 이는 바람과 계곡 물소리가 막힘없이 흐르는 사랑방이다. 은둔자의 오래된 정원에 깃들다 한국의 정원은 자연을 모방하거나 축소하기보다 자연 자체를 뜰 안에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특징을 지니는데, 이와 같은 정원 미학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곳이 담양의 소쇄원이다. 소쇄원은 1530년경 조선의 선비 양산보가 지은 별서 원림으로, 별서(別墅)란 살림집에서 떨어져 산수 좋은 곳에 마련한 주거공간을, 원림(園林)은 인공적인 조경을 삼가고 동산과 숲의 자연미를 살려 조성한 뜰을 이른다. 15세에 조광조를 만나 그의 문하에서 수학한 양산보는 스승이 기묘사화로 유배당한 후 사약을 받고 세상을 뜨자 그 충격으로 고향에 은둔한다. 이것이 청년 선비가 출세의 꿈을 접고 창암촌 계곡에 소쇄원을 꾸미게 된 계기다. 맑을 소(瀟), 깨끗할 쇄(灑). 양산보는 이 ‘소쇄’라는 말을 좋아해 자호도 소쇄옹(瀟灑翁)이라 했다. 그는 한평생 소쇄원을 가꾸며 당대 최고의 지식인 및 문인들과 교류를 즐겼는데 김인후, 송순, 정철, 송시열, 기대승 등이 이곳을 드나들었다. 대숲이 우거진 오솔길을 지나 계곡 건너편에 자리 잡은 3칸 팔작지붕의 정자가 사랑방의 역할을 했던 광풍각이다. 소쇄원의 아름다움을 읊은 김인후의 「소쇄원 48영(詠)」 중 제2영 ‘침계문방(枕溪文房)’에 해당하는 곳인데, 개울을 베고 누운 선비의 방을 뜻한다. 문이 닫혀 있을 땐 고졸한 암자 같지만 3면 문짝을 활짝 들어 올리면 호방한 기개마저 느껴진다. 대숲에 이는 바람과 계곡 물소리가 막힘없이 흐르는 가운데, 시와 술과 이야기는 햇빛이 달빛으로 바뀌도록 계속됐을 것이다. 주인이 거처하는 제월당은 광풍각 뒤편, 소쇄원에서 가장 높은 지대에 자리 잡았다. 이 역시 3칸짜리 소박한 규모의 집이다. ‘비 갠 뒤 맑게 부는 바람과 밝은 달’을 뜻하는 ‘광풍제월(光風霽月)’을 이름으로 나눠 가진 두 채의 건물 모두 소쇄하기 그지없다. 그 맑은 기운이 깃들까 싶어 광풍각 마루에 앉아 「소쇄원 48영」을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숨은 그림 찾기 하듯 시 한 수 읽고, 그 대상을 두리번거리며 더듬는 재미가 제법 쏠쏠했다. 정원을 가꾼다는 것은 제 삶의 뜨락에 무릉도원을, 유토피아를 건설하는 일일까. 물길 하나 틀 때도, 꽃나무 한 그루 심을 때도 의미를 부여한 소쇄옹의 촘촘한 무릉도원에서, 은둔자의 뜨거운 가슴과 언어를 짐작해볼 따름이다. 자연 그대로인 듯하지만 실은 한 사람의 세계관과 손길이 구석구석 닿아 있는 섬세한 세공품이다. 담양은 가사문학의 산실로도 유명하다. 소쇄원에서 서쪽으로 1km 정도 떨어진 도로변, 광주호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식영정(息影亭)은 송강 정철의 「성산별곡」이 탄생한 곳. 주변 경치가 무척이나 아름다워 ‘그림자도 쉬어간다’라는 이름이 붙은 정자다. 담양은 식영정 외에도 송강정, 독수정 원림, 면앙정, 명옥헌 원림 등 도처에 누각과 정자가 숱한 고장이다. 기본적으로 누정은 수려한 경관 속에 자리 잡게 마련. 누정 순례만 해도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담양은 연못 담(潭)에 볕 양(陽) 자를 쓴다. 담양문인협회가 최근 발간한 시집 제목이 ‘햇살연못’인 이유도 그래서다. 대숲은 사계절 푸르고 메타세쿼이아는 사계절 공히 장관이라지만, 그럼에도 담양은 연못에 가장 풍성한 볕이 드는 여름이 제철이다. 제 이름자에 새겨진 아름다움의 내력이 그러하다. Tip 담양의 여름 정원, 명옥헌 원림 담양군 고서면 산덕리 후산마을 안쪽에 위치한 명옥헌 원림은 소쇄원과 함께 조선시대 민간 정원의 백미를 보여준다. 넓은 뜰에 고졸한 정자와 시냇물, 노송이 조화를 이룬 가운데, 연못을 에워싼 20여 그루의 백일홍나무가 압권이다. 진홍빛으로 타오르는 한여름의 꽃나무는 8월이 적기라지만, 이름처럼 개화 시기가 길다 하니 여름 내 한 번쯤 찾아볼 만하다. <■글 / 고우정(여행작가) ■사진 / 현일수(리빙룸스튜디오)>
정원 여행자
[정원 여행자]전남 곡성 - 기차는 추억의 속도로 달린다
2015. 05. 28 16:26 레저/여행
곡성 여행의 백미는 섬진강을 따라가는 여정에 있다. 옛 곡성역에서 출발하는 증기기관차는 종착역인 가정역까지 약 10km 남짓 섬진강 물줄기를 옆에 끼고 달린다. 추억의 속도로 나아가는 기차에 몸을 싣고 자장가처럼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노라면, 눈을 뜨고도 꿈을 꾸게 될 터. 그 꿈 자락에 화사한 장미 향기가 깃들 수도 있겠다. 곡성역엔 장미가 지천이다. 과거로부터 호출한 증기기관차는 추억의 힘을 연료 삼아 오늘도 운행 중이다. 지명은 그 지역에 대한 가장 기본적이고도 정확한 정보를 준다. 곡성(谷城)엔 이름 그대로 골짜기가 많다. 곡성의 주산 동악산과 제1 고봉인 통명산, 천년 고찰 태안사를 품은 봉두산 등 크고 작은 산자락을 성곽처럼 두른 까닭에 청정한 계곡이 곳곳에 깃들어 있다. ‘골짜기 곡(谷)’ 대신 ‘울 곡(哭)’ 자를 썼다는 설도 있지만, 이 역시 골짜기에서 유래한 이야기다. 해 질 때까지 걷고 또 걷는 것만으로 이동하던 시절, 험준한 심심산골엔 보부상들의 곡소리가 마르지 않았으리라. 인접한 남원이나 구례에 비하면 맛도 멋도 소박하게 느껴지는 고장이지만 알고 보면 지형적 축복이 꽤 쏠쏠하다. 곡성군을 경유하는 ‘남도의 젖줄’ 섬진강 때문이다. 섬진강을 끼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서정을 한 자락 얹고 가는 것은 섬진강변 마을들이 누리는 특권인 바. 심지어 그 마을들 중에서도 면적상 섬진강을 가장 많이 품고 있는 곳이 곡성이다. 진안과 장수읍의 경계인 팔공산 8부 능선에서 발원한 물은 임실-순창-남원-곡성-구례-하동을 거쳐 남해로 흘러드는데, 전체 구간 222km 가운데 46km의 물줄기가 곡성을 감아 돈다. 곡성에서 섬진강을 즐기는 코드는 낭만과 향수다. 옛 곡성역에서 출발하는 증기기관차는 종착역인 가정역까지 약 10km 남짓 섬진강 물줄기를 따라 17번 국도와 나란히 달린다. 봄에는 꽃이, 여름엔 녹음이, 가을엔 단풍이 함께하는 길이다. ‘뿌우~’ 기적 소리와 함께 하얀 수증기를 뭉게뭉게 뿜어내며 기차는 ‘추억의 속도’로 달리고, 차창 밖의 강물은 자장가처럼 흐른다. 아주 넓지도 좁지도 않은 강폭에 햇살 아래 반짝이는 잔물결은 눈부시지 않을 만큼 적당히 찬란하다. 유순한 강줄기를 바라보며 섬진강엔 어떤 수식도 불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그리운 어머니’라 부르지 않아도 ‘엄마’, ‘어머니’라는 단어에 그리움이 내포되듯, 섬진강도 그와 같다. 1 1960년대 미카형 증기기관차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관광용 증기기관차는 섬진강을 따라 달린다. 2 1933년에 지어진 구 곡성역은 ‘섬진강 기차마을’로 화려하게 변신, 증기기관차에 대한 향수를 가진 관광객들을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덜컹이는 기차 리듬에 몸을 맡기고 강물을 바라보노라니, 눈꺼풀이 채 닫히기도 전에 얕은 꿈이 밀려든다. 깜빡깜빡 명멸하는 알전구처럼 의식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사이사이로 섬진강의 전설이 흘러든다. 차내 방송이다. ‘섬진(蟾津)’을 한자 그대로 해석하면 ‘두꺼비 나루’란다. ‘섬섬옥수(纖纖玉手)’의 가느다랗고 고운 ‘섬(纖)’을 연상했건만, 알고 보니 ‘두꺼비 섬(蟾)’. 이유인즉, 이 강에 깃든 두꺼비 전설 때문이다. 왜구의 침탈이 잦던 고려 우왕 시절, 야음을 틈타 강을 거슬러 온 왜구를 향해 갑자기 나타난 두꺼비 떼가 엄청난 데시벨의 ‘떼창’으로 겁을 줬다는 것. 왜구를 물리친 두꺼비의 공적을 기리느라 강 이름도 두꺼비 나루가 됐다는 전설이다. 기차는 장미 향기를 싣고 달린다 ‘섬진강 기차마을’로 잘 알려진 옛 곡성역은 1933년부터 1999년까지 익산과 여수를 잇는 전라선 열차가 지나던 곳이다. 오일장이 서는 날엔 제법 흥청거리기도 했던 역이지만 전라선 복선화 사업은 유서 깊은 역사에 종말을 고한다. 곡성읍에 신축한 역사에 역의 기능을 넘기며 폐선 철로와 함께 철거 위기에 놓인 구역사의 운명을 바꾼 건 곡성군이었다. 철도청으로부터 자산을 매입, ‘곡성-가정’ 구간에 증기기관차를 운영하는 등 추억을 접목한 관광 상품을 개발한 것이다. 과거로부터 호출한 증기기관차와 폐선 철로의 만남은 탁월했다. 2005년 ‘섬진강 기차마을’로 변신한 옛 곡성역은 해마다 30만 명이 다녀가는 관광 명소다. 증기기관차는 하루 다섯 차례 운행하며, 가정역에서 잠시 쉬는 시간을 포함해 왕복 90분이 소요된다. 1933년에 지어진 옛 곡성역은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근대 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맞배지붕을 멋스럽게 드러낸 역사와 수화물 창고는 옛 모습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드라마 ‘토지’, ‘경성스캔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와 같은 시대극의 배경으로도 쓰였다. 기차마을 안의 또 다른 명소는 장미공원이다. 4만㎡의 너른 부지에 꽃 피운 1,004종의 장미가 제각각의 아름다움과 향기를 뽐낸다. 규모와 품종의 다양성 면에서 전국 최고를 자랑하며, 독일의 코르데스, 로젠유니온, 탄타우, 프랑스의 메이앙, 영국의 데이비드 오스틴, 하크니스 등 유럽의 주요 장미 품종을 만날 수 있다. 다양한 수목과 장미가 조화를 이룬 공원은 연못, 소망정, 분수, 유리온실, 야외 공연장 등의 시설을 갖추고 산책과 휴식을 돕는다. 매년 장미꽃이 가장 만발한 시기에 장미 축제가 열리는데, 올해의 축제 기간은 5월 22일부터 31일까지다. 축제 기간에 방문한다면 ‘장미와 동화의 만남’이라는 테마 아래 준비된 다양한 퍼레이드와 이벤트, 공연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장미 향기는 6월까지 지속될 터이니, 축제가 끝난 후 찾아도 무방하다. 아프로디테가 태어날 때 함께 만들어진 꽃이 장미라 했던가. ‘꽃의 여왕’이란 구태의연한 타이틀에 진심이 실린다. 옛 곡성역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또 다른 명소는 장미공원이다. 1,004종의 장미가 계절에 따라 번갈아 피고 지면서 향기를 뽐낸다. 만발한 장미정원을 걷노라면 장미 향수가 섞인 안개비를 맞는 기분이다. 이쯤에서 기억나는 인물은 장미 향수와 장미 목욕을 즐겼다는 그녀, 클레오파트라다. 안토니우스에게 장미 향기로 기억되고자, 그가 참석하는 연회엔 마룻바닥에 약 1m 높이로 장미 꽃잎을 깔았다는 여인. 클레오파트라에게 온전히 매혹됐던 안토니우스는 자신의 무덤에 장미를 뿌려달란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그에게 장미는 죽음 앞에서도 집착했던 정인의 체취였던 셈이다. 기실, 로마인들은 장미가 영원한 생명과 부활을 상징한다고 여겨 장례식 때 사용하거나 묘지에 재배하기도 했다. 천장부터 늘어뜨린 장미 아래서 주고받은 이야기는 절대 비밀을 지켜야 한다는 관습도 전해진다. 그 관습대로라면 곡성역 장미정원에서 나눈 이야기들은 끝까지 가슴에 묻어둬야 한다. 아프로디테가 태어날 때 함께 만들어진 꽃이 장미라 했던가. 이목구비 완벽한 조각 미남, 조각 미녀보다는 여백도 있고 조금 낯설기도 한 매력이 더 오래간다고 실컷 떠들다가도, 장미 앞에선 그런 말이 쑥 들어간다. ‘꽃의 여왕’이란 구태의연한 타이틀에 진심을 담아 어느 연극무대에서 들었던 이런 대사를 중얼거릴 따름이다. ‘당신이 왕이다. 그 대신 고독하라.’ 물론 꽃의 여왕은 추종자들이 많아 고독할 새가 없다. 연못 한가운데 오롯한 삼층석탑은 부처님의 사리를 모셔두고 있어 ‘사리탑’이라고도 한다.태안사 솔바람이 키운 시인을 만나다 기차마을에서 그리 멀지 않은 죽곡면 원달리, 봉두산 자락에 자리 잡은 태안사는 입구에서 절집까지 이르는 숲길이 근사하다. 고로쇠나무, 떡갈나무, 단풍나무, 소나무 등이 우거진 숲은 시원한 계곡과 나란히 2km 남짓 이어진다. 절 입구 계곡에 걸쳐 있는 능파각은 신라 문성왕 때의 목조 누각으로, 계곡을 건너는 다리와 사찰의 대문 역할을 겸하는 독특한 건축물이다. 경내로 들어서면 연못 한가운데 오롯한 삼층석탑이 눈길을 끈다. 고려 초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부처님의 사리를 모셔두고 있어 ‘사리탑’이라고도 한다. 석탑을 가까이에서 보려면 연못 위에 놓인 다리를 건너야 한다. 절집의 공간 구성은 늘 그렇듯 이쪽에서 저쪽으로, 다리를 건너야 비로소 피안이다. 태안사 숲길 초입엔 조태일 시문학기념관이 있다. 1970, 80년대 폭압적 현실에 시와 온몸으로 맞섰던 저항 시인으로, 시 전문지 「시인」을 창간했다. 태안사 대처승의 아들로 태어나 유년을 절에서 보낸 시인은 태안사를 일컬어 ‘시와 삶의 출발점이자 귀착점’이라 말한 바 있다. 기념관 입구에 자리한, 시인 고은의 글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여기 조국이 낳은 진솔한 시인을 기리는 집을 세워 그의 문학 불멸을 다짐하나니’라고 엄숙히 시작되는 기념사는 다음 대목에서 반전을 맞는다. ‘이 조가야, 그 체구엔 노동을 하는 게 썩 어울리겠는데 시를 쓰다니, 허허허 우습다, 조가야.’ 막역한 사이임을 짐작할 수 있는 고은 시인의 농담에 웃음이 나면서도 뒤이어 가슴이 저릿해온다. 이어지는 문장 곳곳에 그를 아끼고 잊지 못하는 마음이 짚이는 까닭이다. 계곡을 건너는 다리와 사찰의 대문 역할을 겸하는 능파각. 신라 문성왕 때의 목조 누각이다. 신라 경덕왕 때 창건된 태안사는 삼층석탑과 능파각 등 유서 깊은 문화재를 간직하고 있다. 진입로의 숲길이 특히 아름답다.‘6척 거구 조선 대지의 사나이 조태일의 풍모는 시인 자신이 일찍이 해학의 대상으로 삼아 노래한 바 있으나 그 우람한 기상과는 달리 인정머리가 깊숙하기 이를 데 없고 자상한 심금 늘 울려 마지않아, 겨레의 아픈 현실과 시대의 희로애락 그리고 자연 모체에의 애틋한 귀의의 가락이 그의 넘치는 술잔인 듯 솟아났으니 (중략) 저 식민지 시대 말 해동선풍 꽃피운 동리산 태안사 솔바람 소리 가운데 태어남이 이미 시인의 운명을 태에 감았으며 (중략) 산이 좋아 산을 오르내렸고 바다가 좋아 섬에 며칠째 갇혀 있기도 하였으며 술이 하도 좋아 술 취한 시간에 해가 지고 떠올랐더라. 여기 그이를 못 잊어 사람 냄새 진한 사람의 문학 영원히 새겨지기를.’ (조태일 시문학기념관에 부치는 고은 시인의 글 중에서) ‘태어난 곳도 자연이고, 죽어 묻힐 곳도 자연이기를 원한다’라는 시인의 바람대로 제자리를 찾은 문학관은 절집만큼이나 적요하다. 시인의 육필 원고와 유품을 찬찬히 둘러보다 장구와 꽹과리, 피아노가 눈에 걸렸다. 못 다루는 악기가 없었다는 조 시인. 언어의 가락을 짓는 시인에게 음악적 재능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복원된 시인의 집필실에서 눈길을 끄는 건 책상 앞에 걸어둔 전봉준의 초상이다. 그가 삶의 좌표로 삼았다는 녹두장군의 형형한 눈빛을 한참 마주했다. 기념관을 나와 숙소를 잡기 위해 기차마을 쪽을 다시 돌 즈음 붉게 물든 서쪽 하늘에서 조태일 시인의 시를 만났다. 여름 해는 참으로 뒤끝이 길어, 마음까지 붉게 물들였다. 태안사 숲길 초입에 자리 잡은 조태일 시문학기념관. 태안사 대처승의 아들로 태어나 유년을 절에서 보낸 시인은 태안사를 일컬어 “시와 삶의 출발점이자 귀착점”이라 했다. 집필실을 복원한 전시실에서 시인의 모습을 더듬어본다. 사람들은 누구나 해 질 녘이면 노을 한 폭씩 머리에 이고 이 골목 저 골목에서 서성거린다. 쌀쌀한 바람 속에서 싸리나무도 노을 한 폭씩 머리에 이고 흔들거린다. 저 노을 좀 봐. 저 노을 좀 봐. 누가 서녘 하늘에 불을 붙였나. 그래도 이승이 그리워 저승 가다가 불을 지폈냐. (조태일의 시 ‘노을’ 중에서) Tip 도림사 청류동 계곡 동악산 남쪽 자락엔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고찰이 있다. 도선국사, 서산대사, 사명대사 등 도인들이 숲처럼 몰려들어 도림사(道林寺)라 이름 지었다는 절이다. 도림사로 드는 길의 청류동 계곡은 200m에 달하는 암반계류가 절경을 이룬다. 아홉 구비마다 펼쳐진 너른 바위 위로 맑은 계곡물이 장쾌하게 흘러 삼남 제일의 암반계류라 불린다. <■글 / 고우정(여행작가) ■사진 / 현일수(리빙룸스튜디오)>
정원 여행자
[정원 여행자]전남 순천 - 매향이 깃들까, 꽃그늘 아래 한참을 맴돌았다
2015. 03. 05 15:51 레저/여행
한 발 한 발 북상하는 꽃이 내 집 문 앞에 이르도록 기다려보자 싶다가도, 남도의 꽃 소식에 붕붕거리는 마음을 다잡을 수 없었다. 꽃과의 인연도 타이밍이 관건인지라, 꽃구경만큼은 미뤄선 안 된다고 지난봄에 다짐한 터. 꽃 시절에 찾은 순천엔 꽃이 지천이다. 600년 묵은 매화나무도 꽃을 피워 올린다. 그 전설 같은 꽃 사태 앞에 ‘도시가 아니라 정원입니다’라고, 순천시 관광 책자에서 읽은 슬로건을 주억거렸다. 도시가 아니라 꽃밭이었다. 선암사 원통전 담장 뒤편의 백매화. 수령이 600여 년에 이르는 고목으로, 천연기념물 제488호로 지정됐다. 이른 봄엔 잎보다 꽃이 먼저다 이른 봄의 꽃나무들은 잎보다 꽃이 먼저 핀다. 매화, 산수유, 생강나무, 벚나무, 개나리, 진달래 등 다수가 그러하다. 나무에 따라 잎이 먼저일 수도 꽃이 먼저일 수도 둘이 함께일 수도 있건만, 유독 잎보다 꽃이 먼저 피는 꽃나무들을 바라볼 때면 감탄이 배가된다. 아마도 그네들이 꽃을 틔우는 이즈음의 정서가 한몫하는 것 같다. 겨울과 봄 사이, 초록은 아직 멀고 말이 예뻐 꽃샘추위지 바람은 독하기 짝이 없는 시절. 한데 이 메마르고 강퍅한 풍경이 별안간 환해진다. 마른 가지에 산수유가 번지고 매화가 벙글어서다.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더니, 겨울과 봄의 경계 위에 피는 꽃들은 애틋하고 대견하다. 잎보다 꽃이 먼저 피는 저간의 사정이야 나무마다 다를 테지만, 일찍 꽃을 피워 벌과 나비를 선점하기 위한 치열한 생존 전략으로 그 사정을 풀어내기도 한다. 하지만 이른 봄 꽃그늘 아래를 걷노라면, 이런 해석이 더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법이다. 돌담을 따라 꽃터널을 이룬 선암매. 그 길을 걷는다는 건, 봄날에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사치요, 복이다. 매화나무나 벚나무는 잎보다 꽃이 먼저 핀다. 목련도 개나리도 진달래도 꽃이 먼저 핀다. 자신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부터 보여준다. 참으로 순수한 열정이다. (정호승, ‘꽃이 먼저 핀다’ 중에서) 송광사는 통도사, 해인사와 함께 삼보사찰의 한 축을 담당하는 조계종의 본산이다. 가장 아름다운 모습부터 보여주고픈 순수한 열정이라니, 연애 초기의 감정이 아닌가. 그러고 보면 상춘객이 앓는 꽃 몸살은 달뜬 연애 감정을 닮았다. 꽃구경 간답시고 살랑살랑 옷맵시 좀 냈다가 호되게 봄 감기를 앓은 게 한두 해인가. 꽃을 보고 와서 앓고, 꽃을 보러 가지 못해 앓아눕는 이른 봄날. 꽃단장한 시절이 작정하고 연애를 걸어오니 별수 없다. 기꺼이 걸려 넘어지는 수밖에. 이번 순천행은 매화 때문이었다. 선암사의 늙은 매화나무가 꽃망울을 틔웠다는 소식에, 들썩이는 마음을 누를 길이 없었다. ‘선암매(仙巖梅)’의 수령은 무려 400~600년에 이른다. 그 정도 늙은 나무에 피는 꽃은 전설인 바, 살아 있는 전설에 예를 갖춰 인사하고 싶었다. 잘생긴 절집에 노란 산수유가 번지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늙은 꽃나무는 향기가 환하다 선암사는 무지개 모양의 승선교를 포함한 많은 보물과 수려한 경관이 어우러진 단아한 절이다. 매화를 비롯해 동백, 자산홍, 왕벚나무, 은목서 등 아름다운 꽃나무들이 철마다 쉼 없이 피고 지는 까닭에 ‘꽃절’이라 불린다. 사철 고운 선암사지만 백미는 봄이다. 선암사 동백이 제아무리 고와도 선암동백이라 불리진 않는다. 수많은 꽃 중 오로지 매화만이 ‘선암’을 앞에 달고 고유명사가 된다. 고승 같은 매화나무 앞에, 절로 두 손이 가슴께에 모아졌다. 선암매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토종 매화로, 고려시대 대각국사가 선암사를 중창할 때 삼성각 앞 와송과 함께 처음 심었다고 전해진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선암매를 알아보는 방법은 간단하다. 원통전 뒤편의 백매와 무우전 돌담길의 홍매로, 카메라를 든 이들이 에워싼 곳이라면 어김없다. 매화나무는 만개해도 벚나무처럼 화사하지 않다. 가지가 보일 틈도 없이 꽃을 매달아, 멀리서 보면 거대한 솜사탕처럼 보이는 벚나무와 확연히 다르다. 매화나무는 멀리서 보는 것보다 가까이서 보는 편이 좋다. 꽃과 가지를 함께 봐야 하기 때문. 매화가지가 그려내는 선에 따라 꽃의 인상이 다르다. 출사객들 틈바구니에 자리를 잡고 선암매를 향해 연신 셔터를 누르다 멈칫했다. 사진을 찍으면 영혼이 빠져나간다 하여 사진 찍히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라오스의 소수민족 이야기가 떠올랐다. 사실, 그런 이야기는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다. 어린 시절 외할머니에게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 옛 시골 어른들이 흔히 하는 이야기였다. 전설 같은 향기가 오래도록 이어지려면 지나치게 욕심을 내어선 안 될 것 같았다. 자고로 늙은 꽃나무엔 만발한 꽃을 기대하지 말고 향기를 맡으라 했다. 꽃은 적게 피지만 향기가 짙어, 그 언저리를 맴돌다 보면 매향이 옷에 밴다 했다. 옷깃에든 귀밑머리에든 그윽한 매향이 깃들길 바라며 매화나무 꽃그늘 아래 한참을 서성였다. 선암사 입구에 위치한 전통야생차체험관. 다도 체험은 물론 숙박이 가능하다. 매화는 늘 소인묵객들의 뮤즈다. 봄눈이 내리면 설중매를 찾아 탐매행(探梅行)을 떠나는 것은 물론, 매화를 보며 시를 짓고 묵매를 치는 것은 선비들의 큰 즐거움이었다. 매화를 노래한 91수를 따로 모아 「매화시첩」을 펴냈을 만큼 퇴계 이황의 지극한 매화 사랑은 유명하다. 매화분과 마주 앉아 술을 마셨으며, 병중엔 초췌한 모습을 보일 수 없다며 매화분을 다른 방에 두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심지어 “매화분에 물을 주라”라는 유언을 남겼다고도 한다. 퇴계 선생이 매화를 마치 정인 보듯 했던 속사정으로 널리 회자되는 것이 관기 두향과의 러브 스토리다. 그가 그토록 애지중지했던 매화분이 두향의 마지막 선물이었다는 설이다. 어쩌면 「매화시첩」의 뮤즈는 매화 자체가 아닌, 매화를 닮은 여인이었을까. 꽃절은 뒷간마저 남다른 문화재다.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로 시작되는 정호승 시인의 ‘선암사’에도 언급된 바 있다. 2층 누각 구조로 지어진 웅장한 규모에 깊기는 또 얼마나 깊은지, “선암사 뒷간에서 초하룻날 변을 보면 떨어지는 소리가 섣달 그믐날 들린다”라는 우스갯소리도 전해진다. 선암사 자리는 옥 같은 미녀가 잔을 올리는 옥녀헌배형(玉女獻杯形) 명당이라 한다. 자리가 아름다워 절집도, 꽃도 그리 고운 모양이다. 선암사를 중심으로 자연스레 조성된 조계산의 야생 작설차밭은 그 명성이 자자하다. 선암사 입구에 다도 체험은 물론 숙박이 가능한 ‘전통야생차체험관’이 있다. 은은한 차향 속에 단잠을 자고, 아침 일찍 선암사와 송광사를 잇는 굴목재길을 걸어도 좋겠다. ‘명상로’라 이름 지어진 산길은 고즈넉한 트레킹 코스로도 인기가 많다. 순천만 S자 수로를 붉게 물들인 낙조는 비경 중의 비경이다.갈대밭까지 매향이 따라왔다 순천은 조계산과 순천만 등 산과 바다를 두루 안은 축복의 땅이다. 부드러운 산세를 지닌 조계산은 그 자체로도 명산이지만, 산자락 동쪽과 서쪽에 각기 자리 잡은 선암사와 송광사로 더 유명하다. 송광사는 통도사, 해인사와 함께 삼보 사찰의 한 축을 담당하는 조계종의 본산으로, 많은 고승대덕을 배출한 승보종찰이다. 선암사가 예쁜 절집이라면 송광사는 잘생긴 절집이다. 울울창창한 숲 속의 가람은 담담하고 장엄하다. 한국 불교의 승맥을 이어온 사찰답게 꼿꼿한 기상이 서늘하다. 이왕 나선 탐매행이라면 월등면 계월리의 향매실마을도 놓치지 말자. 매화마을이라 하면 광양을 먼저 떠올리게 마련이지만, 이쪽도 꽃대궐이다. 매화나무가 군락을 이룬 마을은 공기 자체가 달콤하다.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구례군과 경계를 이룬 순천은 비옥한 평야와 온난한 기후로 매실 재배의 최적지이기도 하다. 순천 여행엔 일몰 감상도 빼놓을 수 없으니, 와온해변과 순천만이 그 포인트다. 와온은 시가 된 바다다. ‘해는 / 이곳에 와서 쉰다 / 전생과 후생 / 최초의 휴식이다’ 곽재구 시인의 ‘와온 바다’는 이렇게 시작된다. 해가 쉬러 온 곳은 바다가 아닌 갯벌이었다. 무수한 생명의 숨구멍들이 뽀글뽀글 들끓는 검고 드넓은 갯벌이 망망대해처럼 펼쳐졌다. 1 이즈음의 향매실마을은 매화로 꽃대궐을 이룬다. 향 좋은 매실로 유명한 마을이다. 2 와온해변 앞바다는 짱뚱어, 새꼬막, 숭어, 맛, 찔렁게, 낙지 등의 수산자원이 풍부하며, 특히 꼬막 생산지로 유명하다. 3 수목원 구역에 자리 잡은 한국정원. 궁궐의 정원, 군자의 정원 등을 두루 볼 수 있다. 4 세계적 정원 디자이너인 영국의 찰스 젱스가 순천에 머무르며 직접 디자인한 호수 정원. 광활한 갯벌과 갈대밭으로 이뤄진 순천만생태공원은 흑두루미가 날고 짱뚱어가 뛰노는 자연의 보고다. 연안습지 최초로 람사르 협약에 등록된 국내 대표 생태 관광지로, 순천만 S자 수로에 비친 낙조는 손꼽히는 비경이다. 생태공원 인근엔 2013년 국제정원박람회를 개최한 순천만정원이 있다. 통합권을 끊어 두 곳을 함께 돌아볼 수도 있는데, 소형 무인궤도차 스카이큐브를 이용하면 공원과 정원 간의 이동이 용이하다. 문제는 두 지역을 다 돌아보는 데 시간이 만만치 않게 걸린다는 점이다. 바삐 움직여도 5~6시간은 기본이다. 선암매에 홀려 시간 배분을 제대로 못한 필자는, 세계의 정원과 천혜의 자연경관 속에 고민하다 후자를 택했다. 아쉬움을 두고 가면 다시 찾게 될 터. 초록이 짙은 다음 계절을 기약하고 돌아섰다. 순천만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전망대에 오르기까지, 수런대는 갈대의 노래에 홀려 몇 번이나 걸음을 멈췄다. 임금님 귀가 당나귀 귀라는 진실도, 오랫동안 혼자 앓아온 사랑의 열병도, 세상의 모든 비밀은 갈대밭으로 흘러든다. 비밀한 봉기, 비밀한 슬픔, 비밀한 열정이 수런대는 갈대밭에서, 절집의 향 매운 꽃가지 하나 훔치고 싶었던 탐심을 고했다. 늙은 매화나무에게 인사만 하고 오자, 향기만 실컷 즐기고 오자, 결심하고도 사진을 꽤 많이 찍었노라 고백했다. 600년 선암매의 혼이 오래도록 건승하길 빌었다. 낙안읍성민속마을.(사진 왼쪽)과 순천오픈세트장Tip 순천 관광 명소 낙안읍성민속마을 조선시대 읍성의 원형과 옛 마을의 정취를 간직한 낙안읍성민속마을은 선암사와 가깝다. 높이 3m의 성곽은 길이가 1,400m에 달하며, 성 안에는 동헌, 낙안루, 낙안객사, 돌샘을 비롯해 크고 작은 초가집 140여 채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민속촌 같지만 실제 주민들이 거주하는 공간이라 생활의 훈김이 묻어나는 곳이다. 문의 nagan.suncheon.go.kr 순천오픈세트장 조례동에 위치한 드라마 세트장은 순천 여행에 쏠쏠한 재미를 더한다. 195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까지의 순천 읍내와 번화가, 서울 변두리 달동네 등을 재현한 세트장을 구경하노라면, 시간 여행자가 된 것만 같다. ‘제빵왕 김탁구’, ‘늑대소년’ 등 무수한 인기 드라마와 영화가 이곳에서 촬영됐다. 개장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문의 061-749-4003 <■글 / 고우정(여행작가) ■사진 / 현일수(리빙룸 스튜디오) ■사진 제공 / 순천만정원(www.scgardens.or.kr)>
정원 여행자
[주말에 떠나는 테마여행]전남 나주에서 일곱 가지 미션을 완수하라!
2012. 06. 19 14:47 레저/여행
ㆍ2천 년의 역사를 간직한 풍요의 땅 드넓은 나주평야 가운데에 영산강이 굽이치는 곳 전남 나주. 예로부터 풍요의 땅이었던 나주는 2천 년 동안 묵혀온 ‘시간’이란 녀석을 이곳저곳에 숨겨놓은 채 가족 나들이객들에게 보물찾기 미션을 제시한다. 나주가 내놓는 일곱 가지 미션 완수에 도전해보자. 첫 번째 미션 고구려 궁내성에서 인증샷 남기기 “아빠, 멋지게 폼 좀 잡아보세요!” 아이의 말에 아빠는 어쩔 수 없이 어설픈 주몽으로 변신 중이다. “엄마! 자, 레디~ 액션!” 나주평야의 넓은 들녘 너머로 일과를 마친 해가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액션이란 말에 엄마는 얼떨결에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가족이 여행을 시작한 곳은 전남 나주의 영상테마파크이다. 흔히 접할 수 없는 고구려 가옥과 성곽을 그대로 재현해놓아 찾는 이들마다 구경하는 데 여념이 없다. 흔히 생각하는 드라마 세트장의 허술한 임시 건축물이 아니라 정성 들여 잘 지어놓은 세트장이다. 덕분에 고구려로 시간 여행을 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매표소를 지나면 낮은 언덕을 올라야 한다. 양옆으로 송일국, 한혜진 등 드라마 ‘주몽’에 출연한 배우들의 핸드프린팅과 시설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 아빠지만 인기 탤런트 한혜진을 모를 리 없다. 엄마의 눈치를 살피더니 그녀의 핸드프린팅 위에 슬쩍 손을 올려본다. ‘찌릿!’ 순간 날카로운 엄마의 눈빛을 직감했는지 “우와, 이 여자는 누군데 이렇게 손이 작아~” 하며 위기를 모면한다. 웅장한 성문 해자성은 세트라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그 위용이 대단하다. 유럽 영화에서 많이 봤던 성벽 밖 수로를 재현해 놓았다. 유럽형 수로인 현문이 우리나라 역사상 유일하게 실제 존재했던 장소가 나주였다고 한다. 흔히 보던 기와나 초가의 모습이 아니라 너와집으로 저잣거리를 만들어놓은 점도 나주 영상테마파크의 돋보이는 장점 중 하나이다. 간단히 요기를 할 수 있도록 매점과 식당으로 운영되는 곳도 있다. 중간 성문 앞에서는 고구려 장군 복장을 입고 기념 촬영도 할 수 있고, 염색 체험이나 도자기 체험, 한지와 매듭 체험 등도 할 수 있다. 1 수령이 600년이 넘은 고목이 금성관을 지키고 있다.2 나는 고구려의 주몽이다! 영상테마파크에서는 무료로 장군 의상을 입고 사진을 찍을 수 있다. 3 도래한옥마을 양벽정의 솟을대문은 이층 구조로 되어 있는 것이 특이하다. 볼 만한 구경거리는 국내성과 고구려체험관, 고구려궁, 태자궁, 신단 등이다. 대부분 고구려 때 건축물을 재현해놓아 그 규모와 생김새가 우리가 자주 보던 조선의 것과는 다른 양식이다. 테마파크를 제대로 돌아보려면 한 시간 이상을 잡아야 한다. 고구려궁 맞은편에 있는 성루에 올라서면 영산강과 넓게 펼쳐진 나주평야를 마주할 수 있어 조망이 좋다. 두 번째 미션 황포돛배 타고 영산강 누비기 “황토로 물들인 돛을 단 배가 황포돛배입니다. 이 배는 과거 영산강 수로를 이용해서 홍어, 소금, 미역, 곡물 등 온갖 생필품을 실어 나르다가 육로 교통이 발달하면서 자취를 감췄죠. 그렇게 모습을 감춘 지 장장 30년 만에 부활해서 여러분들이 지금 뱃놀이를 즐기고 계신 겁니다.” 선장의 구수한 전라도 억양의 설명이 이어진다. “비단처럼 부드러운 영산강 물결은 언제나 고요합니다. 이 물길을 따라 풍류를 즐겼던 석관정과 금강정이 병풍처럼 옆선을 수놓고 있고, 하늘에는 왜가리가 순풍에 날개를 휘휘 저으며 날아갑니다.” 선장의 말투가 마치 무성영화 시절 변사와 비슷하다고 생각이 들 무렵 함께 탄 할머니께서 이미자의 ‘황포돛배’를 흥얼거린다. 마지막 석양빛을 / 깃 폭에 걸고 / 흘러가는 저 배는 / 어데로 가느냐 해풍아 비바람아 / 불지를 마라 / 파도소리 구슬프면 / 이 마음도 구슬퍼 아아 아아아 / 어데로 가는 배냐 / 어데로 가는 배냐 / 황포돛배야 세 번째 미션 나주읍성 구석구석 발도장 찍기 나주읍성은 나주시청과 나주역에서 자동차로 10분 거리에 있다. 교통이 편리해서 나주를 찾는 사람들은 꼭 이곳을 방문한다. 금성관을 기준으로 사방으로 둘러처진 나주읍성은 그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아 아쉽다. 그럼에도 역사적 흔적을 품고 있는 것들이 곳곳에 터를 잡고 있어 나주 여행의 메카임을 자부한다. 1 목사의 살림집 나주목사내아에서는 한옥의 운치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2 아이들 체험거리가 즐비한 영상테마파크. 첫 번째 방문지는 나주목의 객사인 금성관이다. 객사란 고려 때부터 조선시대까지 지방 궁실로 임금을 상징하는 전패 혹은 궐패를 모셔두고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고을의 관리와 선비들이 모여 망궐례를 올리던 곳이다. 또 중앙관리들이 유숙하기도 했다. 조선 성종 때 건립된 이후 일제강점기에는 내부를 개조해서 나주군청으로 사용했다. 여름날 선선한 바람이 그리울 때 나주 시민들은 금성관 마루에서 더위를 식힌다고 한다. 삼면이 뚫린 마루에 앉아 있다 보면 나도 모르게 꿈나라로 여행을 떠날 것 같다. 영상테마파크는 흔히 보는 영화 세트장과는 수준이 다르다. 나주목문화관에서 나주목사 행렬 모형은 꼭 챙겨보자. 마한의 고분으로 추정되는 반남고분군. 나주목사내아는 정갈한 한옥의 기풍이 가득하다. 실내에 들어서면 석빙고에 들어선 것처럼 온몸에 오싹한 한기가 든다. 천장이 높고 사면을 한지로 마감해서 열 순환이 좋아 시원하기 때문이다. 어른 키보다 최소한 다섯 배는 높아 보이는 천장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마감이 화려하다. 파란색, 녹색 그리고 붉은색이 어우러져 보는 이의 눈을 유혹하기에 충분하다. 나주읍성과 나주목의 전체 모습이 보고 싶다면 나주목문화관을 찾으면 된다. 이곳은 나주가 983년 나주목이 된 후부터 1895년까지 나주의 역사와 문화를 보여주는 전시관이다. 전시관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나주목사 행차와 나주읍성과 관아 모형이다. 나주목사내아(www.najumoksanaea.com 061-332-6565, 061-330-8714)는 나주 지방 관리인 목사가 살던 살림집이다. 일제강점기 때 나주읍성과 함께 많이 훼손된 목사내아를 전면 해체, 복원해 현재는 숙박이 가능한 전통문화 체험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숙박 요금은 5만원부터 15만원까지이며 관람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다. “한옥은 사람이 살지 않으면 흉해진답니다. 사람의 온기가 입혀져야 집으로써 제 구실을 할 수 있어요.” 인근 주민의 말이다. 관람료도 없고 누구의 제재도 받지 않고 그냥 드나들 수 있어 좋다며 목사내아 자랑이 대단하다. 목사내아를 나와 토담벽 골목길로 접어들면 나주향교에 다다른다. 나주향교는 규모면에서 성균관 다음으로 컸다고 하니 타 향교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이다. 향교의 중심 건물인 대성전은 건물의 크기나 모양이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것 중에서 으뜸으로 인정받고 있다. 네 번째 미션 잃어버린 왕국 마한의 흔적이 남아 있는 반남고분군 찾기 이곳에 가면 신라의 천년고도 경주에 온 듯하다. 40여 기가 넘는 고분 때문이다. 나주평야는 이곳에 터를 잡고 사는 사람들에게 풍부한 먹을거리를 제공해주었다. 자료에 의하면 고분에서 출토된 유물로 봐서 삼국시대 이전 마한의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고분의 생김새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우리가 흔히 봐왔던 양식으로 봉긋한 모양이고, 다른 하나는 정상부가 평평한 모양이다. 안타까운 것은 고분 발굴로 출토된 대부분의 유물들이 일제강점기에 일본을 비롯한 해외로 유출됐다는 점이다. 주인과 시대를 알 수 없는 고분만 남아 있는 모습이 역사유적지라는 느낌보다 공원처럼 와 닿는 이유는 뭘까? 파릇한 잔디와 잘 정돈된 산책로가 잃어버린 왕국의 시간표를 확인할 수 없게 해 아쉬움을 더한다. 다섯 번째 미션 천연염색문화관에서 쪽빛 티셔츠 만들기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 여행이라면 무엇보다 체험거리를 찾게 된다. 체험에 안성맞춤인 곳으로 천연염색문화관이 있다. 이곳에서는 회색, 노랑, 분홍, 황토색 등 취향에 따라 천연 염료를 선택하고 스스로 작품을 만들어볼 수 있다. 유치원생을 대상으로 하는 손수건 염색과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티셔츠 염색도 인기가 좋다고 한다. 비용은 5천원부터 9천원까지이다. 그 외에 비누 만들기와 누에고치 목걸이 만들기 등 흔히 접할 수 없는 체험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다. 체험은 주말 오후 2시, 3시 30분, 4시 30분에 진행된다. 희망자가 적을 경우 진행하지 않으니 사전에 확인하는 편이 좋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문의 061-335-0160 여섯 번째 미션 도래전통한옥마을과 메타세쿼이아길에서 산책하기 도래전통한옥마을은 풍산 홍씨 집성촌이다. 민속자료로 지정된 홍기창, 홍기웅, 홍기헌 가옥을 비롯해 19세기에 지어진 한옥 수십 채가 터를 잡고 있다. 한옥의 멋스러움과 토담길을 거닐어보는 여유까지 챙길 수 있는 운치 있는 곳이다. 마을에서 챙겨봐야 할 곳은 영호정과 양벽정, 계은정 등이다. 특히 양벽정의 이층 구조로 된 솟을대문과 식산 중턱에 자리한 계은정에서 내려다보는 마을 전경은 소박하고 정겨운 느낌이다. 한옥마을 산책을 마쳤다면 자동차로 5분 거리에 있는 전라남도 산림연구원을 꼭 찾아보자. 이곳은 사랑을 키워가는 연인들이 자주 찾는 데이트 코스로 소문이 자자하다. 직선으로 곧게 늘어선 나무들이 산책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전형적인 배산임수 지형을 보여주는 도래한옥마을. 일곱 번째 미션 나주 3미(味) 즐기기 1味 곰탕의 특별한 맛, 나주곰탕 나주읍성 안 공영주차장 주변으로 나주의 대표 음식인 나주곰탕거리가 조성되어 있다. 흔히 곰탕 하면 우윳빛의 뽀얀 국물을 떠올리지만 이곳의 곰탕은 색깔부터 다르다. 읍성을 여행하다가 꼭 한번 들러 맛을 보고 가야 서운하지 않을 정도로 맛이 특별하다. 개운한 맛이 특징이며 기호에 따라 김치 국물을 넣어 먹어도 좋다. 노안곰탕(061-333-2053)과 남평할매집곰탕(061-334-4682) 등이 유명하다. 숲이 우거진 전라남도 산림수목원은 산책하기에 좋다. 2味 코가 뻥 뚫리는 그 맛! 귀한 음식 홍어 전라도에서 귀한 날, 귀한 손님에게 꼭 대접한다는 홍어. ‘서울에서 먹는 홍어는 홍어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나주 사람들은 홍어가 먹고 싶을 때 어김없이 영산동 선창가 부근 영산포 홍어거리를 찾는다. 이 일대에 홍어 전문점 30여 곳이 성업 중이다. 홍어가 뿜어내는 묘한 냄새가 거리에 진동하기 때문에 찾기 쉽다. 맛집으로 영산홍가(061-336-1265), 영산포대박홍어(061-335-5544)를 손에 꼽는다. 3味 미꾸라지를 먹고 자란 힘 좋은 구진포 장어 개운한 맛이 특징인 나주곰탕. 바닷장어보다 민물장어가 몇 배는 더 비싼 가격에 판매된다. 특히 나주 구진포에서 잡히는 장어는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지역에서 서식하기 때문에 더욱 유명하다. 무엇보다 민물에서 미꾸라지를 먹고 자라기 때문에 스태미나에 탁월하다고 정평이 났다. 장어탕은 여름 보양식으로 인기가 좋으며 신흥장어(061-335-9109), 구진포강촌장어(061-332-6388)가 잘 알려진 맛집이다. 여행 정보 ▲ 나주 찾아가기 승용차 경부고속도로-천안논산고속도로-호남고속도로-광주톨게이트-제2순환도로-유덕IC-나주 방면 진출 고속버스 서울센트럴터미널-나주(영산포행) 첫차 오전 7시 10분, 막차 오후 6시 35분, 1일 6회 운행 KTX 용산-나주, 1일 4회 운행, 열차 용산-나주 1일 8회 운행 ▲ 영상테마파크 관람 시간 오전 9시~오후 6시, 요금 성인 4천원/어린이 2천원 황포돛배 체험 소요 시간 30분(5km), 운항 시간 오전 10시~오후 5시, 요금 성인 5천원/어린이 3천원 숙박 체험 무휼실 - 방 2개, 주방 시설 보유, 야외 바비큐 그릴 대여, 투숙 인원 7명, 요금 10만원 문의 www.najuthemepark.com, 061-335-7008 ▲ 나주목문화관 나주시 금계동 11-3, 061-332-5432 ▲ 천연염색문화관 나주시 다시면 회진리 163, www.naturaldyeing.or.kr 061-335-0091 ▲ 도래한옥마을 도래마을옛집 나주시 다도면 풍산리 199, www.ntdorae.com 061-336-3675 ▲ 전라남도산림수목원 나주시 산포면 산제리 산23, http://jnforest.jeonnam.go.kr 061-336-6300 ▲ 기타 문의 나주시 문화관광과 061-332-5432 여행작가 임운석은… 2001년 본인보다 여행을 1% 더 좋아하는 아내와 결혼해 평생 여행만 하며 살자고 약속했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니던 외국계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전업 여행작가의 길을 걷고 있다. 20대 때는 연극배우로 활동하면서 신인상 후보에 올랐으며,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문화부장관상을 수상하는 등 문화·예술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현재 한국여행작가협회 회원이며 문화재청 헤리티지채널 사진작가, 국내 아웃도어 전문 업체의 로드플래너와 사진작가로 활동 중이다. 블로그 ‘빛과 바람 그리고 떠나고 싶을 때 떠나라(http://roomno1.blog.me/)’를 통해 독자들과 소통하고 있다. <■글&사진 / 여행작가 임운석>
주말에 떠나는 테마여행
[장수마을]전남 순천…차별화된 노인 의료서비스
2010. 10. 06 17:24 건강
전국 4대 장수도시로 꼽히는 순천. 과연 순천시에는 어떤 비밀이 숨어 있기에 이렇게 장수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일까. 이곳 사람들이 어떻게 생활하고, 건강관리를 하는지 속속들이 파헤쳐보자. 전라남도 순천은 전통적이고 온화하며, 정이 넘치고 풍요로운 도시로 알려졌다. 교육, 문화 등 다양한 환경이 적절하게 어우러져 살기 좋은 ‘대한민국 생태수도 순천’을 만들고 있다. 순천은 자연 환경과 문화 유적지 그리고 사람들이 양질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생활 여건이 잘 마련된 곳이다. 우선, 순천만, 조계산, 주암호, 화포 일출, 용서 폭포 등 뛰어난 자연 환경을 포함해 성암사, 송광사, 정혜사 등의 유명 사찰, 낙안읍성, 순천왜성, 검단산성 등의 성곽, 팔마비, 임청대비, 장명리 석등과 같은 선조들의 숨결이 살아 숨쉬는 문화재 및 유적지 등이 풍부한 곳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순천 한정식과 남도 김치, 청정 미나리, 단감 등 음식과 특산품으로 ‘남도 음식’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으며, 순천만 자연생태관, 전국 최초 기적의 도서관, 시티 투어, 서면 청소년 수련소 등 지역 주민들의 삶에 도움이 되는 주요 시설들이 잘 조성되어 ‘살기 좋은 도시’의 표본을 보여준다. 2005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순천은 전국에서 4번째 안에 드는 장수도시다. 이 조사 결과는 순천 내에서도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자체적으로 100세 이상의 고령자들을 대상으로 ‘장수 비결’을 알아보는 설문 조사를 진행한 적이 있다. 100세가 되는 노인을 포함해 장수 노인 가정 26세대를 직접 방문해 설문 조사를 실시했고, 이를 통해 순천 장수 노인들의 비결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우선 조사 결과 첫 번째로 눈에 띄는 것은 100세 이상의 노인 중 여자가 20명, 남자가 3명으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장수마을 순천 ● 생활습관- 장수 고령자 대부분이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젊었을 적에 잠깐 피운 경험이 있기는 해도, 그리 많이 피우지는 않았고 현재는 아예 멀리한다고 한다. 이 밖에 적게 먹는 ‘소식’, 규칙적인 식사와 운동, 긍정적인 사고 및 매일 가벼운 산책을 중요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생활 수칙들이 바로 장수 노인들의 비결이었던 것.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대부분이 2대 이상의 가족과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이다. 가족 간의 유대감과 사랑이 삶에 더욱 활력을 불어넣어주기 때문인 듯하다. ● 음식- 장수 노인들이 자신의 건강을 위해 먹는 음식을 보면 대부분이 채소류이고, 그 다음으로 육류, 생선류를 즐겨 먹는다. 특히 이들의 소망은 자식이 잘되는 것을 바라보는 것과 편안하게 임종하기, 건강 회복 등으로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과 의지하는 마음이 매우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성격- 장수 노인들이 생각하는 삶의 만족감을 살펴보니 대부분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았다’,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나의 처지에 만족한다’고 대답해 전반적으로 삶에 대해 만족감을 나타냈다. 이와 같이 만족감이 높은 이유 중에 하나는 장수 노인들 대부분이 낙천적인 성격과 긍정적인 사고를 갖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 정책- 순천시는 앞으로도 노인들이 건강을 지키며 행복할 수 있는 정겹고 살기 좋은 도시가 되도록 다양한 시책을 마련할 계획임을 밝혔다. 이를 위해 지금까지 펼쳐온 골목호랑이할아버지 봉사단과 노인장수복지대학, 실버연주단의 운영에 더욱 내실을 기하고, 장수마을 지정 운영과 건강장수비결 책자 발간, 학술토론회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장수수당과 노인 청려장(일명 장수지팡이) 지급 등 다각적인 시책을 펼치는 한편, ‘전국 최고 장수도시’의 브랜드화도 검토하고 있다. Mini Talk 전국 최초로 노인들을 위한 ‘의료 차량’ 운영 순천시가 장수 노인이 많을 수밖에 없는 중요한 이유가 또 하나 있다. 바로 전국에서 최초로 의료 생활복지 통합서비스 ‘행복 24시 정겨운 순천 사람들’이라는 효도 차량 운영을 실시하고 있다는 것. 이 효도 차량이 출범한 지는 올해로 3년째이며,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노인들과 주민들로부터 뜨거운 호응을 얻고 있다고 한다. 순천은 도·농 복합 지역이어서 시골도 많은 곳이다. 과거에는 20여 가구가 살던 동네도 자식들을 키워서 도시로 하나 둘 내보내다 보니 이제는 노인들만 남은 경우도 있으며, 심지어 어느 마을에는 노인 한 명만 살고 있는 곳도 있다. 교통이 불편한 곳에 사는 노인들은 이동수단이 별로 없어 아파도 병원 가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이런 상황을 감안해 순천시가 아이디어를 낸 것. ‘행복 24시 정겨운 순천 사람들’은 교통이 불편하거나 경제적 어려움으로 의료나 복지 혜택을 받기 어려운 시민들을 민관이 찾아가서 자원봉사자와 함께 의료와 복지 서비스를 제공한다. 매일 이동 진료 차량 2대를 이용, 오지를 방문해 의사, 간호사, 자원봉사자 등의 전문 인력이 고립된 지역의 노인들을 보살피며, 평소 이야기할 사람이 없던 노인들은 의료 서비스보다 이들과 대화하기를 더 좋아한다고 한다. 전국 최초로 순천에서 시작된 ‘행복 24시 정겨운 순천 사람들’은 처음에는 버스로 운영하다 보니 몇몇 작은 마을에는 차가 들어갈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작은 차를 마련해 나머지 마을에도 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 진료 차량을 통해 노인들의 건강과 만성 질환자 관리, 의료와 기초생활에 필요한 약품을 제공하는 등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앞장서겠다는 게 목표다. 이 밖에 전기 수리 등 다양한 생활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고, 이동 물리치료와 한방진료, 치매 등 정신건강 상담까지 서비스해 만족도를 높이고 있다. 이는 한의사협회와 학교 등 지역사회 봉사단체들을 활용함에 따라 예산 절감 및 자원봉사의 활성화에도 기여하고 있었다. 이 제도는 노인들에게 중요한 소통의 도구로 혼자 고립된 것 같은 외로움에서 행방시켜 주는 긍정적인 효과까지 있다. 특히 거동 불편자 가정을 직접 방문해 청소, 빨래뿐만 아니라 진료, 이·미용, 치매검사, 장수 사진을 찍어주는 등의 서비스를 실시할 정도로 여러모로 세심하게 신경 쓰고 있다. 순천시의 이러한 효도 차량 운영 제도가 앞으로도 더욱 많은 사람들이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하는 ‘도우미’가 되지 않을까 싶다. <■글 / 김민주 기자 ■사진&자료 제공 / 순천시(www.suncheon.go.kr), 경향신문 포토뱅크>
[주말에 떠나는 가족여행]영산강 물결을 따라 흐르는 2천년 시간 여행-전남 나주
2009. 01. 08 재테크
생명의 땅 나주라고 했다. 역사가 깊어 천년 고도라 했다. 호남의 곡창인 나주평야와 온 세상을 품어 유유히 휘감아 흐르는 영산강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 1천 년 동안 호남의 웅도로 문화와 정치, 경제를 선도해온 곳. 임진왜란 때 가장 먼저 의병이 일어나고, 민주화를 외치는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진원지가 되었던 곳. 뜨거운 생명력이 꿈틀거리는 곳, 나주에서 기축년 새해를 시작해보자.나주는 그림처럼 아름다운 자연과 오랜 시간 축적된 역사의 숨결, 그리고 정직하면서도 맛깔스러운 먹을거리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전주와 나주를 지칭해 전라도라 불렀다는 데서 알 수 있듯이, 구석기 시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조상들이 남긴 역사적 자취들이 곳곳에서 살아 숨 쉰다. 영산강, 나주호, 불회사 등 눈길을 돌리면 닿는 곳 모두가 가슴을 뻐근하게 만드는 절경이다. 게다가 테마파크, 스파, 체험 활동 등 즐길거리와 맛집이 가득하다. 남녀노소 모두의 취향을 만족시킬 수 있기에 겨울방학을 맞아 떠나는 가족 여행지로 안성맞춤이다.굽이굽이 흐르는 유려한 곡선을 따라 마음을 뉘는 감상 여행 비단고을 나주(羅州)의 풍경에 젖어드는 영산강과 나주호 광주, 전남 8개 시군을 관통하는 영산강은 호남의 젖줄. 끝없이 펼쳐진 호남 들녘을 넉넉히 휘감아 도는 물줄기를 따라가다 보면 일상에 찌들었던 몸과 마음이 편안해진다. 계절별로 달라지는 강 주변의 경치를 감상하는 것도 큰 재미. 겨울에는 억새와 어우러진 풍요로운 들판과 강물이 마음 한구석을 아련하게 적신다. 특히, 일몰 시간 붉게 타들어가는 강물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다. 지난 6월부터 황포돛배를 타고 영산강을 둘러볼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이 만들어져 나루터를 돌며 영산강의 옛 정취를 느껴볼 수도 있다. 단, 겨울에는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 나주댐의 완성과 함께 준공된 인공호수인 나주호에서는 어스름 물안개가 만들어내는 몽환적인 절경을 감상할 만하다. 나주호의 붕어와 잉어는 주변에 우거진 비자나무 숲 덕택에 기생충이 없다고 알려져 낚시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도 최고의 장소로 손꼽히고 있다. 산자락 끝에 매달린 풍경이 아련한 겨울 산사 불회사와 미륵사 백제 침류왕 때인 366년 인도 승 마라난타가 세웠다는 불회사는 백제의 불교 전파 경로를 밝히는 중요한 사료로 꼽힌다. 입구에서부터 펼쳐진 편백 숲을 거닐면 머리가 맑아진다. 사계절 모두 아름다운 산수를 자랑하는 불회사는 종이로 만든 부처가 모셔진 대웅전과 절 입구에 세워진 석장 승이 유명하다. 백제 성왕 22년에 지어진 미륵사에서는 철천리 석불입상과 칠불석상을 봐야 한다. 보물 제462호로 지정된 석불입상은 고려시대 초기 유행하던 거불 양식을 보여준다. 옛날에는 불상의 동자상을 돌려 잘 돌아가면 아들을 낳는다고 해 여인들이 치성을 드렸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조상들의 숨결을 찾아 느끼고 배우는 역사 여행 나주 목사가 되어 한옥에서 보내는 하룻밤 목사내아 문화재자료 제132호로 지정되어 있는 목사내아(內衙)는 목사가 정무를 보던 관아의 근처 살림집이다. 목사는 고려와 조선시대 행정구역 목(牧)을 맡아 다스린 정3품 문관이다. 오늘날로 따지면 도지사 정도가 되는 셈. 목사내아는 나주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유적으로 조선 후기 상류층의 생활공간을 엿볼 수 있다. 전통양식인 한옥 ㄷ자형으로 지어졌으며 평면 구조로 되어 있다. 나주시는 문화재청의 승인을 받아 이곳을 군불을 땔 수 있는 온돌방으로 바꾸고 생활 시설을 마련해 관광객들이 고택 체험을 할 수 있도록 꾸몄다. 매서운 바람이 부는 겨울날 뜨끈한 아랫목에 등을 대고 누워 온 가족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밤을 보내는 것도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다. 전통 한옥이지만 화장실, 샤워실 등이 현대적으로 잘 마련되어 있어 불편함은 전혀 없다. 귀중한 유적을 찾아서 금성관, 영모정, 남고문 등 금성관은 나주목의 객사 건물로 중앙에서 관리들이 내려오면 머물던 곳이다. 금성관 정문 망화루는 안타깝게도 일제시대 때 없어졌으나 최근 복원되어 찾아볼 만하다. 조선시대 문장가로 이름난 백호 임제 선생이 글을 짓고 사람을 사귀었던 곳이라는 영모정은 정자 아래로 흐르는 영산강과 주변의 느티나무가 뛰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국내 현존하는 향교 중 규모나 격식 면에서 가장 우수한 건축물로 평가받는 나주향교, 나주의 관문이었던 정수루, 삼국시대 고분군 등도 직접 찾아보도록 하자. 한양처럼 동서남북에 성문을 설치한 나주읍성은 호남의 대표적인 읍성. 현재 남고문과 동점문이 복원되어 있는데, 밤에 찾으면 색다른 느낌으로 접할 수 있다.평생 가슴에 새길 생생한 추억을 한가득 체험 여행 하늘빛 바람에 실린 천 년의 빛깔 천연염색문화관 천연 염색의 전통 계승 및 발전을 위한 전시와 교육, 체험 공간이 마련된 천연염색문화관은 관련 시설로는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쪽을 재배하기 적합한 지리적 조건 때문에 일찍이 쪽 염색이 발달한 이곳에서는 각종 생활 소품부터 옷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천연 염색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중요무형문화제 제115호인 염색장 보유자 정관채 선생의 공방에서는 석회, 잿물 등 매염제를 만드는 과정을 자세하게 배울 수 있으며 간단한 쪽 무늬 염색과 간색 염색 체험도 해볼 수 있다. 치자, 쪽, 황토 등의 염료를 이용해 아이들은 손수건을, 어른들은 스카프나 넥타이를 만드는 주말 체험 프로그램이 특히 인기다. 액세서리를 만드는 규방 공예 체험, 액자를 만드는 판화 체험 등도 놓치지 말자. 관람시간 오전 9시~오후 6시(겨울 오후 5시) 관람료 무료 / 천연 염색 체험료 : 사용 염료에 따라 5천~3만원(예약 필수) 문의 061-335-0091, 체험 문의 061-332-2684 웅장한 고구려의 기상을 만나는 곳 나주 영상테마파크 4만5천 평의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나주 영상테마파크는 인기리에 방영됐던 드라마 ‘주몽’과 ‘태왕사신기’의 촬영지로 고구려의 역사와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단순한 드라마 세트장을 넘어 전통 복식 체험, 활쏘기 체험, 승마 체험 등 조상들의 전통과 숨결을 잇는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 최근에는 주몽의 손자 대무신왕의 일대기를 그린 KBS-2TV 드라마 ‘바람의 나라’를 촬영하고 있으니 드라마 속 장면들을 따라 곳곳을 둘러보면 더욱 흥미로울 것이다. 특히, 영산강과 나주평야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조성돼 수려한 풍광을 자랑한다. 전면 리모델링 공사를 끝내고 지난 12월 중순부터 재개장하면서 다양한 오픈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으니 이 기회를 활용한다면 두 배로 알찬 체험을 할 수 있겠다. 입장료 성인 3천원 / 청소년 2천5백원 / 어린이 1천원, 문의 061-335-7008 넉넉한 인심과 정성스러운 손맛이 묻어나는 맛집을 찾아서 맛 여행 고집스러운 시간이 만들어내는 곰삭은 맛 젓갈 한동안 국민들을 불안하게 했던 젓갈 파동 속에 몇 안 되는 ‘안전한’ 곳으로 평가받은 공산면 금강토굴 젓갈. 길이 8km(연장 길이 48km) 토굴 안에서 숙성된 새우젓갈과 멸치젓갈을 생산 판매하고 있다.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 냉기로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며 젓갈을 숙성시키기 때문에 최상의 맛을 낼 수 있는 것. 김치의 깊은 맛을 내기 위해 최적의 숙성 환경을 끊임없이 연구하는 사장님이 고집스럽게 정도를 걸으며 지켜온 곳이기도 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곳의 젓갈만을 사다가 김치를 만드는 식당이 전국 곳곳에 있을 정도로 품질을 인정받은 곳이다. 금강토굴 061-335-5582 일등 재료와 차별화된 노하우로 만드는 맛 맛의 거리 나주를 대표하는 맛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바로 나주곰탕이다. 나주 5일 장터에서 소를 잡고 나온 내장과 고기로 육수를 내어 국밥으로 팔던 것이 지금까지 이어져왔다. 뽀얀 국물의 보통 곰탕과 달리 나주곰탕은 말갛고 시원한 국물 맛이 특징. 사골을 먼저 곤 국물에 다시 양지나 사태를 삶아 국물을 만들고, 그 날 잡은 1등급 한우를 삶아 만들어낸다. 조미료 대신 3년 정도 묵혀 간수가 빠진 소금 간을 하는 것이 원칙이다. 홍어는 흑산도나 목포를 원조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지만, 예부터 홍어의 본가는 나주 영산포였다. 흑산도 등지에서 홍어를 잡아 배에 실어 영산강 뱃길을 따라 올라와 닻을 내리면 그 사이 자연 발효된 홍어가 독특하고 절묘한 맛을 냈던 것. 영산포에 홍어의 거리가 조성되어 있고, 매년 4월 홍어축제도 열린다. 갯물과 민물이 만나는 지역인 구진포는 바다와 강을 오가는 장어가 많이 잡히기로 유명하다. 고단백 스태미나음식인 장어는 비타민 A와 지방이 풍부해 건강 회복에도 좋다. 다시면 가운리 구진포 삼거리에는 20여 곳의 장어집이 모여 장어거리를 형성하고 있다. 특히 구진포 장어는 미꾸라지를 먹고 자라기 때문에 더욱 뛰어난 맛을 자랑한다. 남평곰탕 061-334-4682, 대승장어 061-336-1265 전통과 일상에 깃든 깊은 맛 박경중 가옥과 화탑마을 나주시 남내동에는 개인 주택 단일 건물로는 가장 크고 오래된 양반 가옥이 있다.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53호인 박경중 가옥은 현재 살고 있는 박경중씨의 6대조가 잡은 터에 4대조인 박재규씨가 지은 전통 가옥이다. 실제로 박경중씨가 살고 있으면서 대부분 옛 모습 그대로 잘 보존하고 있다. 올해 국가지정 문화재로 승격을 앞두고 있으며, 문화유산상을 수상하기도 한 곳. 특히 이곳은 가옥의 사랑채를 식당으로 활용해 손님들에게 남도정식을 대접하고 있다. 30여 가지가 넘는 기본 반찬이 한 상 가득 차려지며, 하나같이 맛깔스러운 손맛이 들어가 젓가락을 멈출 수 없게 한다. 또 배 생산지로 잘 알려진 화탑마을에서는 최근 마을에서 직접 농산물 판매장을 만들어 믿을 수 있는 먹을거리를 판매하고 있다. 직접 기른 암소를 선별해 A++ 등급을 받은 것만 판매한다. 고기를 사서 마을에서 마련한 회관으로 가지고 가면 600g당 5천원의 세팅비를 내고 구워먹을 수 있다. 매우 저렴한 가격으로 최상급의 쇠고기를 맛볼 수 있어 화제가 되는 곳이다. 함께 나오는 반찬과 채소도 모두 이 마을에서 직접 재배하고 만든 것이다. 전통식당 사랑채 061-333-0116, 화탑마을 농산물 판매장·한우 직판장 061-337-2800 나주 찾아가는 길 KTX 이용시 - 용산역→나주역(2시간 55분 소요 / 하루 4회 운행) - 용산역→송정리역(2시간 40분 소요 / 하루 9회 운행) - 용산역→광주역(3시간 소요 / 하루 9회 운행) 송정리역과 광주역에서 160번 버스를 타면 나주터미널, 영산포역까지 운행.고속버스 이용시 강남고속버스터미널→나주버스터미널(4시간 10분 소요 / 하루 6회 운행)승용차 이용시 - 호남고속도로→광산 IC→13번 국도→나주 - 서해안고속도로→함평 IC→나주■글 / 이연우 기자 ■사진 / 원상희
주말에 떠나는 가족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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