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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총 331 건 검색)

정선군 여량면 ‘천년의 숲’에 전망대 설치···은행나무 군락 조망
정선군 여량면 ‘천년의 숲’에 전망대 설치···은행나무 군락 조망
2024. 12. 03 11:05사회
... 규모의 전망대를 조성하고 벤치, 안내판 등을 설치할 예정이다. 또 숲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도록 전망대 주변 500㎡의 수목을 제거하기로 했다. 앞서 정선군은 2022년부터 15억 원을 들여 여량면 유천리와...
정선군전망대은행나무여량면
동해 해랑전망대 일원에 생기는 ‘도째비 야시장’…“밤바다 보며 먹거리 즐겨요”
동해 해랑전망대 일원에 생기는 ‘도째비 야시장’…“밤바다 보며 먹거리 즐겨요”
2024. 05. 22 10:34사회
... 전경. 동해시 제공 강원 동해시는 오는 7월 12일부터 9월 15일까지 2개월여간 관광 명소인 해랑전망대 일원에서 밤바다를 보며 이색적인 먹거리를 즐길 수 있는 ‘도째비 야시장’을 운영한다고 22일...
도째비야시장동해시해랑전망대묵호등대
현대차 GBC 105→55층 변경안, 서울시 반려…“105층 전망대 무산돼”
현대차 GBC 105→55층 변경안, 서울시 반려…“105층 전망대 무산돼”
2024. 05. 02 18:04지역
... 가장 높은 초고층 빌딩 설계가 가능해진 것이다. 대신 공공기여로 시민에게 공개되는 ‘105층 전망대’를 만들고 문화·편의 시설을 함께 짓기로 했다. 이 같은 내용은 현대차 부지를 대상으로 한...
서울시현대차합의건물
관광객 1000만명 돌파 위해…단양, 만천하스카이워크 전망대 연중무휴 운영
관광객 1000만명 돌파 위해…단양, 만천하스카이워크 전망대 연중무휴 운영
2024. 04. 10 13:17사회
... 희망하는 관광객이 더 많았다. 단양관광공사는 또 지역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만천하스카이워크 전망대를 연중무휴로 운영하기로 했다. 방문객들이 야경을 감상할 수 있도록 주말인 금~일은 오후 10시까지...
만천하스카이워크운영관광객돌파전망대

스포츠경향(총 23 건 검색)

오타니 50호 홈런볼 ‘경비원만 4명’ 89층 전망대에 전시···역대 최고가 야구공 대만서 공개
오타니 50호 홈런볼 ‘경비원만 4명’ 89층 전망대에 전시···역대 최고가 야구공 대만서 공개
2024. 11. 14 12:23 야구
오타니 쇼헤이의 50호 홈런볼이 13일 대만 타이베이101 타워에서 삼엄한 경비 속에 특별 전시됐다. AP연합뉴스 LA 다저스 오타니 쇼헤이(30)의 역사적인 올시즌 50호 홈런공이 대만의 랜드마크 ‘타이베이 101’ 타워에서 특별 전시에 들어갔다. 14일 현지 언론에 따르면 “오타니의 50홈런 홈런공이 대만에서 가장 높은 ‘타이베이 101’ 타워 89층 전망대에서 13일 공개됐다”라며 “대만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팬들이 찾아왔다”라고 밝혔다. ‘타이베이 101’ 타워는 높이 509.2m의 빌딩으로 세계에서 9번째로 높은 건물이다. 오타니의 50호 홈런공은 내년 3월 2일까지 이곳에서 전시된다. 이번 특별전의 주제는 ‘꿈을 향해 높이 날자’로 정했다. 이번 전시 관계자는 “대만에서 야구는 인기 스포츠다. 이번 전시회를 통해 대만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일본과 대만의 교류를 강화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경매에 부쳐진 오타니의 50호 홈런볼이 13일 대만 타이베이 101 타워에 전시됐다. AP연합뉴스 오타니는 9월 20일 마이애미전에서 시즌 50호 홈런을 쏘아 올려 메이저리그(MLB) 역사상 최초로 50홈런-50도루를 달성했다. 야구장에서 이 공을 잡은 크리스 벨란스키는 수십만 달러를 제시한 다저스 구단의 제안을 뿌리치고 경매 업체에 내놓았다. 공은 지난달 23일 경매를 통해 수수료 포함 439만2000 달러(약 61억 8000만 원)에 낙찰됐다. 종전 홈런공 최고액이었던 마크 맥과이어의 1998년 시즌 70번째 홈런공 가격(305만 달러·43억 원)을 가볍게 돌파했다. 오타니의 50호 홈런공을 경매에서 낙찰받은 이는 대만 기업 UC 캐피탈로 확인됐다. 많은 관람객들이 13일 대만 타이베이 101 타워에 전시된 오타니의 50호 홈런볼을 사진찍고 있다. AP연합뉴스 UC 캐피탈은 “이 역사적인 50호 기념공은 전 세계 많은 야구팬에게 성배와 같은 존재로, 대만으로 가져와 역사의 한 순간을 공유하게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라며 “우린 대만·일본 기관과 협력하여 공익 전시를 계획함으로써 팬들이 가까이에서 그 빛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게 돼 기쁘다”라고 밝혔다. 미국 매체 ‘스포르팅뉴스’는 “대만 전시회에서 오타니의 50-50 홈런볼이 선보였지만 (소문대로) 정말 4명도 경비원이 있었다”고 삼엄한 경계에 놀라움을 나타냈다. 일본 야구대표팀이 14일 프리미어12 경기를 치르기 위해 대만에 입국하는데, 그 전날 전시가 시작된 것도 눈길을 끈다.
익산 ‘황등석산’, 문화예술공원 위한 전망대 첫 삽
익산 ‘황등석산’, 문화예술공원 위한 전망대 첫 삽
2024. 07. 16 01:16 생활
정헌율 익산시장, “채굴하는 과정 자체를 관광 상품화로 만들어 주길” 15일, 문화예술공원 전망대 건립 기공식 거행 오는 2025년까지 1단계 사업으로 제1, 2 전망대 건립 김찬혁 황등석산 대표가 정헌율 익산시장에게 황등석산 문화예술공원 조성 계획 현황을 설명하고 있다. 국내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황등석(화강암)을 채석 중인 전북 익산의 황등석산이 15일 문화예술공원 전망대 건립 기공식을 개최했다. 이날 기공식에는 정헌율 익산시장을 비롯해 김경진 익산시의회 의장, 이춘석 국회의원 등 내외빈 관계자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황등석산에서 진행됐다. 황등석산 문화예술공원 전망대 건립 기공식이 15일 전북 익산 황등석산에서 개최됐다. “익산을 석재 산업 특구로 지정하기 위해 노력할 터”- 정헌율 익산시장 정헌율 익산시장은 “채굴하는 과정 자체를 관광상품화로 만들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기공식에 참석한 정헌율 익산시장은 기념사를 통해 “제가 미국 유타주의 세계 최대의 구리광산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곳은 현재에도 채굴을 하는 중이며, 세계적으로 많은 관광객이 관광버스를 타고 몰려오는 것을 보고 많이 놀랐다”라며 “채굴하는 장비가 성냥갑처럼 조그맣게 보이고, 인부들이 개미처럼 작게 보였지만, 그런 과정을 지켜보는 자체가 관광상품이 되는 것에 감명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정 시장은 “우리 황등석산도 구리광산 못지않게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는데, 채굴이 다 끝난 다음에 관광산업으로 전환하는 것보다 채굴하는 그 과정 자체를 상품화시키면 어떻겠는가? 이런 생각을 해 봤는데, 마침 황등산업에서 저하고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어 반가웠다”라며 “오늘 행사를 보며, 우리 주민들이 이 사업에 많은 관심을 보여주고 있고, 열렬히 후원하는 사업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좋은 자리였다”라며 “공사 기간에도 최대한 안전에 만전을 기해야 하며, 후에 관람객에게 개방할 때도 안전한 통로를 확보한 상태에서 사업을 진행해야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헌율 시장은 “조만간 국립 석재산업 지원센터가 건립될 예정이다. 이 센터가 만들어진다는 것은 익산이 석재산업을 다시 한번 살려 보겠다는 굳은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라며 익산의 석재산업을 특구로 지정해야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그는 “석재산업 특구를 지정하게 되면, 석재산업 진흥센터가 들어오고, 여기에 관광명소가 만들어져, 석재산업이 다시 한번 제2의 전성기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랜드마크가 되길...이익, 지역 사회 환원해야”- 김경진 익산시의회 의장 김경진 익산시의회 의장은 “지역의 랜드마크로 거듭나고 지역 경제에 기여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경진 익산시의회 의장은 축사를 통해 “황등석산 문화예술공원은 폐석산을 활용하여 문화, 예술, 관광을 접목해 새로운 콘텐츠로 재탄생시키는 것으로 시민들의 기대가 크다”라며 “포천의 아트밸리처럼 황등석산이 예술, 자연, 휴양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지역의 랜드마크로 거듭나고 지역 경제에 기여하길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황등 출신인 이춘석 국회의원(익산시갑)은 “대한민국의 랜드마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 사업을 길게, 크게 봐 줄 것”을 당부했다. 본인을 황등 출신이라고 소개한 이춘석 국회의원(익산시갑)은 축사를 통해 “황등석산 문화예술공원이 완공된다면, 우리 익산의 랜드마크뿐만 아니라 전라북도의 랜드마크, 대한민국의 랜드마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 사업을 길게, 크게 봐주실 것을 당부한다”라며 “문화예술공원이 조성되어 이익을 창출한다면, 반드시 우리 지역사회에 일정 부분 공유되고 환원되어야 한다는 점도 잊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고 말했다. 김찬혁 황등산업 대표는 공사 개요 진행 보고에서 “2022년 황등산업 공원화 사업을 위해 2회에 걸쳐 주민공청회를 개최했으며, 2023년 8월에 황등문화예술공원 사업 추진 및 운영을 위해 (주)황등아트앤컬쳐를 설립했다”고 말했다. 김찬혁 황등석산 대표가 문화예술공원 전망대 조성을 위한 사업추진 경과보고를 하고 있다. 김 대표는 “황등아트앤컬쳐는 2023년 10월 문화예술공원 사업의 시작을 알리기 위해 국제 미디어아트 파사드를 개최했으며, 2023년 7월부터는 황등석산 제1, 2 전망대와 산책로 조성을 위한 계획수립과 허가신청, 건축 허가를 위한 행정절차를 1년여에 걸쳐 마무리해 오늘 기공식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정헌율 익산시장이 “익산을 석재 산업 특구로 지정하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다. 2031년까지 총사업비 320억원 이상 투자...장기 프로젝트 황등석산 문화예술공원 프로젝트는 자기자본 170억, 민간 투자 150억을 합해 오는 2031년까지 총사업비 320억 이상이 투자되는 총 3단계의 장기 프로젝트이다. 오는 2025년 12월까지 진행되는 1단계 사업으로는 제1전망대, 제2전망대, 산책로 등이 조성될 계획이다. 제1전망대에는 황등석산의 채석 현장을 견학할 수 있는 전망대와 100여 평의 휴게시설, 미디어 아트 및 전시 시설 등이 들어선다. 제2전망대에는 공원 전체를 남측에서 조망하는 전망대와 전망 테라스, 익산시 농축산물 판매장, 전시 및 소규모 공연장, 그리고 황등석을 이용한 다양한 예술품 전시 공간과 외부 정원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제1전망대와 제2전망대를 잇는 산책로는 산책은 물론 인근에 있는 황등전통시장과 연계하여 볼거리와 먹거리가 함께 어우러져 지역 경제 활성화는 물론 관광객이 지속적으로 방문하는 명소로 발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황등석산 문화예술공원의 파급효과 연구 용역 결과에 따르면, 본 사업 완료 시 생산 유발 효과는 722억원, 부가가치 유발 효과는 234억원이며, 취업 유발 효과는 435명으로 예상된다. 또한, 2031년에는 연간 약 10만명의 방문객이 유입될 것으로 예상되며, 2035년에는 관광객 유입 50만명을 목표로 하고 있다. (주)황등아트앤컬쳐 김대동 총감독은 “황등석산 문화예술공원은 총 3단계 사업으로 나누어 진행되고 있으며, 이번 전망대 기공식이 1단계 사업에 속한다”라며 “지난 1월에는 2단계 사업 추진을 위해 삼안엔지니어링과 사업 진행을 위한 용역을 마친 상태”라고 말했다. 드론으로 촬영한 황등석산 전경 김 총감독은 “최근 폐석산을 활용해 문화예술, 관광, 산업 자원으로 성공한 일본, 중국, 프랑스, 오스트리아 등의 성공 사례지를 방문하고, 현지 관계자들을 만나 여러 가지 의견을 교환하는 시간을 가졌다”라며 “황등석산 문화예술공원을 성공적이며 지속 가능한 문화예술공원으로 개발하기 위해 성공 사례 등을 활용해 익산시에 맞는 콘텐츠로 개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주미식투어㉒] ‘금강산도 식후경’의 정석…한옥마을전망대카페
[전주미식투어㉒] ‘금강산도 식후경’의 정석…한옥마을전망대카페
2023. 12. 16 05:57 생활
한옥마을에서 가장 높은 전망을 볼 수 있는 한옥마을전망대카페는 현대건축과 한옥의 조합을 이룬 빌딩의 옥상이다. 전주한옥마을 공영주차장 바로 건너편에 있어서 전주를 찾는 많은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 전망대카페와 더불어 전주를 대표하는 전주비빔밥· 떡갈비 등 맛집을 한 건물에서 원스톱으로 즐길 수 있다. 이 건물에 있는 한정식집 ‘기와’는 1층에 전주비빔밥과 냉면, 2층은 보리굴비정식과 기와 비빔밥 한상, 기와 특선 한정식을 즐길 수 있다. 한옥마을전망대카페는 이 건물 7층에 있어 ‘금강산도 식후경’의 전형이 됐다. 다양한 음료와 디저트로 입안도 즐겁다. 이중 산딸기 수제 요거트는 인기 메뉴다.
인천 소래포구, 바다전망대 준공
인천 소래포구, 바다전망대 준공
2022. 04. 04 18:16 생활
인천시 제공인천 소래포구와 해오름공원을 찾는 관광객은 전망대를 통해 바다를 더 가까이 즐길 수 있게 됐다. 인천시는 39억원 사업비를 들여 남동구 소래포구 인근에 폭 46m·길이 84m 규모의 ‘소래 해넘이 전망대’를 준공했다고 4일 밝혔다. 소래포구 어선 모양을 형상화한 전망대 상부는 목재 데크와 강화유리로, 하부는 강관 구조물로 구성됐다. 전망대에는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LED 경관조명을 설치해 어두운 밤에도 은은하게 빛을 내도록 했고, 폐쇄회로(CC)TV를 설치해 방문객의 안전사고를 예방할 수 있게 했다. 중구 왕산해수욕장 경관 특화사업도 연내에 마무리될 예정이다. 시는 16억원을 들여 왕산해수욕장에 500m 길이의 친수 보행로와 광장을 조성하기로 했다. 왕산해수욕장 경관 사업은 을왕리해수욕장, 용유도 해변, 마시안 해변을 거쳐 거잠포 선착장까지 이어지는 용유도 유람길 테마 사업 중 하나로 추진되고 있다.

주간경향(총 7 건 검색)

[정태겸의 풍경](35)경기 시흥 갯골생태공원 - 흔들전망대 너머, 갯골의 가을(2022. 10. 21 11:08)
2022. 10. 21 11:08 문화/과학
ㆍ흔들전망대 너머, 갯골의 가을 경기도 시흥에 가면 꼭 봐야 할 게 있다. 바다가 내륙 깊숙이 밀려들어 마치 강처럼 흐르는 광경이다. 그냥 보면 하천인지 바다인지 구별하기 어렵다. 물이 빠져야 비로소 바닷물이었음을 알게 된다. 내륙 안쪽 수㎞까지 밀려들어왔다가 썰물이 되면 급격하게 바닥을 드러낸다. 마치 바다가 육지를 떠나기 싫어 깊이 흔적을 남겨둔 것만 같다. 시흥의 갯골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은 갯골생태공원이다. 강처럼 내륙을 가로지르는 그 물길 곁으로 넓은 공원이 있다. 이곳은 과거 인천의 소래포구까지 이어지던 염전의 일부다. 공원 안쪽에 소금창고가 있는 이유다. 공원의 안쪽에는 피사의 사탑을 연상시키는 흔들전망대가 섰다. 나무로 만들어 바람이 불면 슬쩍 움직이는 게 느껴지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매우 튼튼하다. 이곳에 오르면 시흥의 땅 안쪽으로 스며든 갯골의 깊은 골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래로 삼삼오오 공원에 놀러온 사람들은 평화롭고, 저 멀리 핑크뮬리와 빨갛게 단풍이 든 댑싸리가 알록달록하다. 어느새 이만큼 가을이 물들었다. 흔들전망대 너머 시흥의 가을 하늘이 높고도 파랗다.
정태겸의 풍경
[렌즈로 본 세상]장애인들의 특별한 외출 ‘전망대에서 세상을 보다’(2015. 09. 22 10:53)
2015. 09. 22 10:53 사회
사단법인 한국트레킹연맹이 마련한 장애인 숲 체험 행사에 참가한 척수장애인들이 경기 여주시 황학산 수목원 전망대에 올라 시원하게 펼쳐진 산 아래 풍광을 감상하고 있습니다. 난간이 시야를 가리는 불편함이 없도록 봉사자들이 휠체어를 들어 난간에 걸친 채 세상을 보여주는 모습이 감동을 자아냅니다. 특수 제작된 휠체어에 앉아 6~7명의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수목원 구석구석을 구경하고 같이 점심식사를 하며 보낸 4시간은 세상과 단절하고 지내온 이들에게는 소중한 추억을 안겨주는 값진 시간이었습니다. 낯선 사람들에게 불편한 몸을 의탁하러 나오기 전, 이들은 두려움 반 설렘 반이었지만 행사를 마치고 헤어지면서 선물을 나누며 아쉬워하는 모습을 볼 때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소통이 정말 소중한 것임을 알게 해주었습니다. 세상과의 소통을 위해 이 자리에 나온 것 자체가 이들에게는 도전입니다. 비록 몸은 불편하지만 이들의 도전이 계속되기를 빌어봅니다.
렌즈로 본 세상
[정치]통일전망대 운영권 노터치?(2013. 12. 02 16:57)
2013. 12. 02 16:57 정치
ㆍ실향민 단체 이북도민회, 통일부에 경쟁 입찰 아닌 수의계약 요구 논란 보수성향이 짙은 실향민 단체인 이북도민회중앙연합회(이하 이북도민회)가 정부 소유인 오두산 통일전망대의 운영권을 독차지하려 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이북도민회는 지난 9월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통일교육용으로 부적절한 내용이 담긴 국정원이 제작·배포한 동영상을 상영해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정부는 오두산 통일전망대 운영과 관련한 위탁사업비를 지난 1992년 개관 이후 처음으로 일반예산으로 편성(12억9200만원)했다. 정부는 그동안 재정문제로 통일전망대에 대한 위탁사업비를 일반예산으로 편성하지 않고, 대신 위탁운영업체의 영업수입으로 대신하도록 했다.  하지만 이 같은 방법은 정부 예산 운용의 원칙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아왔으며, 기획재정부가 이를 수용해 내년 위탁운영비를 일반예산으로 편성했다. 대신 위탁운영업체의 수입은 국고에 전액 환수토록 했다.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북녘땅을 바라보는 관람객들. | 김기남 기자 남북 접경지역인 경기도 파주에 위치한 오두산 통일전망대는 전국의 통일전망대 중 유일하게 정부가 소유하고 있다. 전망대는 현재 통일부 산하 통일교육원의 소유로 되어 있다.  전망대에 오르면 북한 개풍마을 등 북녘땅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지상 5층, 지하 1층 규모인 이 전망대는 통일교육 관련 전시실, 영상관, 전망대 등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최근 오두산 통일전망대 운영권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그동안 위탁운영해온 ㈜동화진흥이라는 업체의 대주주가 경쟁입찰이 아닌 수의계약을 통해 통일전망대를 계속 운영하겠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화진흥은 이산가족 1·2세대를 중심으로 구성된 이북도민회와 일천만이산가족위원회가 공동으로 출자한 회사다. 이북도민회는 4억원, 일천만이산가족위원회는 5000만원을 각각 출자했다. 사실상 이북도민회가 동화진흥을 소유하고 있다. ‘동화진흥’ 20년 넘도록 사실상 독점 동화진흥은 전망대 개관 이후 지금까지 21년 동안 위탁운영해 왔다. 동화진흥은 1992년부터 2004년까지 정부와 수의계약을 통해 운영권을 확보했다. 하지만 참여정부 때 특정업체가 통일전망대 관리를 독점한다는 비판이 일었다. 이에 따라 2005년부터 2010년까지 관리권을 놓고 공개 경쟁입찰에 부쳤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일반예산 지원이 아닌 관람료 등 수입으로 관리비를 대체하는 수입대체경비제도를 택했기 때문에 다른 업체들이 지원하지 않았고, 유찰됐다. 동화진흥만이 경쟁입찰에 참여해 운영권을 확보했다. 2011년부터 올해까지는 다시 수의계약을 통해 동화진흥이 위탁운영을 하고 있다. 동화진흥은 그동안 관람료 수입 이외에 매점 및 식당 운영과 기념품 판매 등으로 영리사업을 해왔다. 관람료는 성인 기준으로 1인당 3000원이다. 그동안 관람료 수입만 9억∼12억원이었다.  하지만 위탁관리비를 정부 예산이 아닌 수입대체경비식으로 지급했기 때문에 위탁업체 입장에서는 더 많은 위탁관리 대가를 확보하기 위해 통일교육과 쾌적한 시설 유지보다는 수익 확보를 위한 영업활동에 치중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이에 따라 각종 민원도 뒤따랐다. 통일전망대 곳곳에 위치한 상점들과 위생상태가 불량한 화장실 등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관람객들로부터 제기되기도 했다. 더욱이 오두산 통일전망대의 관람객 수는 점차 줄고 있다.  관람객은 2004년 64만명을 기록한 이후 2012년에는 55만명으로 감소했다. 다른 접경지역에 우후죽순으로 통일전망대가 건립되면서 희소가치가 줄어든 데다 일본 등 외국인 관광객이 감소하고 있고, 올바른 통일교육의 장으로서의 역할도 제대로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위기상황에서 오두산 통일전망대의 운영예산이 어렵게 확보됐다. 내년 위탁운영 예산은 12억9200만원이다. 국회에서 이 예산안이 통과되면 통일전망대의 위탁사업자는 조달청을 통한 공개 경쟁입찰 방식으로 결정된다.  국가계약법(‘국가를 당자사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정부가 발주하는 용역계약의 경우 5000만원 이상이면 경쟁입찰을 하도록 돼 있다. 정부와 국회에서는 공개 경쟁입찰을 하면 예전과 달리 예산이 확보됐기 때문에 동화진흥뿐만 아니라 다른 업체들도 참여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동화진흥의 대주주인 이북도민회는 통일부에 경쟁입찰이 아닌 수의계약을 요구하고 있다. 이북도민회 관계자는 “오두산 통일전망대를 1992년부터 운영해 왔기 때문에 당연히 수의계약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라며 “오두산 통일전망대는 안보를 담당하는 관광시설이라는 특별한 경우”라고 말했다. 이북도민회는 국회 일부 여당의원들에게도 수의계약을 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 동영상 ‘비겁한 평화…’ 상영 물의 이북도민회는 처음부터 자기들이 출자해서 만든 회사(동화진흥)가 20년 이상 관리해온 만큼 기득권을 인정해줄 것과 오두산 통일전망대의 경우 현행법(국가계약법) 상 경쟁입찰의 예외조항인 수의계약 대상에 해당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같은 주장은 모두 논리에 맞지 않는다고 반박하고 있다. 동화진흥은 비록 실향민 단체인 이북도민회가 설립했지만 공익을 목적으로 설립한 공익재단이 아닌 영리를 목적으로 설립된 회사다. 또한 동화진흥은 21년 동안 관리해온 노하우를 내세우고 있지만 통일전망대를 운영하는 것은 특별한 노하우가 필요 없는 사업이다. 국회 예산정책처 관계자는 “동화진흥이 20년 이상 운영해온 노하우가 있다고 하더라도 통일전망대 시설관리는 다른 업체들도 충분히 할 수 있다”며 “오두산 통일전망대 운영과 관련한 일반예산을 받은 만큼 반드시 경쟁입찰을 통해서 위탁관리업체를 선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이북도민회는 오두산 통일전망대 위탁사업은 국가계약법 상 수의계약할 수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가계약법 시행령(제26조 나)에는 ‘국가 안전보장, 국가의 방위계획 및 정보활동, 군 시설물의 관리 등 보안상 필요가 있거나 국가기관의 행위를 비밀리에 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 수의계약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그러나 오두산 통일전망대는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오두산 통일전망대가 민통선 지역에 위치하고 있지만 일반인들에게 자유롭게 개방되는 등 군 시설물과는 관련이 없다.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우상호 의원(민주당)은 “국가계약법을 보면 오두산 통일전망대 운영위탁사업은 수의계약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따라서 법을 위반하면서까지 특정업체와 수의계약을 체결하는 것은 오두산 통일전망대 운영 정상화라는 예산편성 취지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특히 동화진흥은 2005년과 2008년 두 차례에 걸쳐 경쟁입찰에 참여한 적이 있기 때문에 이번에 수의계약을 주장하는 것은 명분이 약하다. 동화진흥은 지난 9월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국정원이 제공한 ‘비겁한 평화는 전쟁을 부른다’는 제목의 11분50초짜리 동영상을 상영해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이 동영상에는 천안함 피격사건과 아웅산 테러 등 북한의 주요 대남 도발사건을 제시함과 동시에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놓고 벌어진 강정마을 사태, 평택 미군기지 건설 저지 시위, 한·미 연합 군사훈련 반대 장면 등도 담고 있다. 통일교육원은 이 동영상이 통일교육용으로 부적절하다며 동화진흥 측에 상영 중단을 지시했다. 통일부도 이 동영상에 대해 정치적 중립성에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정부의 조치에 대해 이북도민회 측은 “종북좌파 눈치 보는 통일교육원 폐쇄하라”며 거세게 반발하기도 했다. 이 동영상은 더 이상 상영되지 않고 있다.
[월드컵 전망대]기대치 8강 이상, 외신은 16강 탈락(2006. 06. 13)
2006. 06. 13 스포츠
한국 축구 예상 성적은, ‘부상’ 돌발변수 걸림돌이지만 태극전사의 ‘땀’을 믿자 2002 한·일 월드컵 4강전에서 터키에 아깝게 패한 한국 축구 대표팀이 관중에게 인사하고 있다. 한반도 전체를 뜨겁게 달궜던 2002년 한·일월드컵 이후 4년 만에 다시 월드컵의 계절이 찾아왔다. 태극전사들은 2002년 월드컵 4강 진출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독일에 입성하기 전까지 연일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기업들은 월드컵 마케팅에 열을 올리면서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붉은악마 등 축구팬들도 태극전사들을 응원하기 위한 준비를 서두르는 등 월드컵의 열기로 한반도 다시 가열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대한민국 축구가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도 2002년의 4강 진출을 재현하기를 열망하고 있다. 이번 월드컵이 원정경기인데다 조별예선부터 프랑스, 스위스, 토고와 한 조에 속해 16강에 진출하는 것도 쉽지 않다는 전망이 쏟아지고 있지만 태극전사들을 향한 기대감은 월드컵 개막이 다가올수록 더욱 높아져만가고 있는 게 현실이다. 2002년의 영광을 재현하기에 시간이 부족하다. 2002년 월드컵에서 한국은 거스 히딩크 감독이라는 세계적인 명장에게 모든 것을 일임했다. 그는 K리그 경기까지 멈추어가면서 대표팀을 소집하는 등 2002년 월드컵을 위해 대부분의 시간을 대표팀에 할애했다. 그 결과 탄탄한 조직력과 뛰어난 체력을 바탕으로 폴란드,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 등 축구 강호들을 연파한 끝에 결국 4강 진출의 업적을 이루어냈다. 그러나 2006년 독일월드컵 준비기간은 2002년 월드컵 당시와 큰 차이가 있다. 딕 아드보카트 감독도 태극호 사령탑에 부임한 이후 이 부분에 대한 부담감을 나타냈다. 아드보카트 감독뿐 아니라 2002년 이후 한국 대표팀을 맡았던 움베르투 쿠엘류, 조 본프레레 감독 모두 이 부분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면서 한국을 떠났다. 대표팀이 월드컵을 앞두고 소집된 것은 불과 대회 개막 한 달 전. 2002년과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한 기간이다. 대표팀 코칭스태프는 짧은 기간에 전력을 극대화하면서도 체력 훈련까지 소화해야 하는 어려운 입장에 놓여 있다. 결국 아드보카트 감독은 체력보다는 조직력을 갖추는 데 훈련 초점을 맞춰 월드컵 준비를 진행하고 있다. 체력담당인 레이몽 베르하이옌까지 네덜란드에서 데려왔지만 그는 선수들의 컨디션을 월드컵 본선 경기에 맞춰 끌어올리는 역할을 담당할 뿐이다. 2002년처럼 강도 높은 체력훈련 프로그램은 전혀 가동하지 못하고 있다. 준비과정만 놓고 보면 현 아드보카트호의 준비과정은 탄탄하지 않은 게 사실이다. 부상자 속출 등 불길한 징조도 나타나 짧은 준비과정 속에서도 태극호에 부상자가 속출하는 등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좋지 않다. 아드보카트 감독이 지난 1~2월 사우디아리비아·미국 등에 열린 전훈에서 대표팀 주전 원톱이 확실했던 이동국이 가장 먼저 무릎십자인대 파열로 독일행이 좌절됐다. 이동국을 제외하고 23명의 최종엔트리를 확정한 이후에도 부상자는 끊이지 않고 있다. 대표팀이 지난 5월 중순부터 소집훈련을 시작한 이후 김남일, 박지성, 이을용 등 주축선수들 뿐 아니라 이천수, 백지훈, 이호 등 차례로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리고 있다. 대표팀 전원이 제대로 훈련한 날짜가 한 손으로 셀 수 있을 정도로 태극호가 본격적인 월드컵 준비를 시작한 이후 부상자가 연이어 발생하면서 아트호가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4년 전을 돌아보자. 당시 대표팀에는 거의 부상자가 발생하지 않았다. 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이영표가 종아리 근육 파열이라는 부상을 입었을 뿐이다. 최종엔트리 23명 중 이영표 1명만 제외하고 모든 선수들이 부상 없이 계획대로 훈련을 소화하며 4강신화의 밑거름을 다졌다. 그 결과 전력의 99%를 가동하면서 조별예선 첫 번째 경기부터 폴란드를 2-0으로 격파하는 등 최상의 전력으로 월드컵을 치러냈다. 아드보카트호에 부장자 속출 등 불운이 계속된다면 월드컵 4강신화 재현은커녕 16강 진출도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16강 진출도 쉽지 않다. 적지 않은 수의 축구팬들은 지난 월드컵 4강팀인 한국이 이번 월드컵에는 16강 진출은 무난하고, 그 이후에 어떤 팀을 만나느냐에 따라 성적이 달라질 것이라고 예상한다. 아드보카트 감독 등 대표팀 코칭스태프들이 공식인터뷰를 통해 “2002년 월드컵에 못지않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여러 차례 밝히면서 팬들의 기대치를 올려놓았다. 또한 지난 월드컵에서 보여줬던 태극전사들의 놀라운 정신력과 체력이 이번 월드컵에서도 빛날 것으로 기대하는 팬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외국 언론들의 반응은 냉정하다. 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쏟아지는 외신들은 한국의 16강 진출조차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 월드컵 조별예선 G조에 속한 한국, 프랑스, 스위스, 토고 4개국의 전력을 놓고 16강 진출팀을 예상하는 기사들 대부분이 프랑스와 스위스가 16강에 진출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영국의 유명 베팅업체들도 저마다 프랑스와 스위스의 16강 진출에 낮은 배당률을 적용하면서 이 2개국의 16강 진출을 예측하고 있다. 외신들과 베팅업체들은 하나같이 “한국이 2002년 월드컵에서는 홈에서 경기를 치러 4강에 진출했지만 원정으로 벌어지는 독일월드컵에서는 16강 진출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또한 최근 평가전에서 드러난 수비불안을 지적하면서 “한국 대표팀의 가장 큰 약점은 수비에 있다. 한국이 스위스를 이기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라는 전망이 이어지고 있다. 국내 축구팬들은 16강 진출은 물론, 8강도 가능하다고 믿고 있지만 외국의 유명 언론들과 축구 관련 전문가들은 한국의 16강 진출에 어두운 전망을 내놓는다. 그래도 축구공은 둥글다. 축구는 아주 주관적인 경기이면서도 변수가 많은 스포츠 종목 중 하나다. 세계랭킹 150위가 세계랭킹 10위 팀을 꺾을 수 있을 정도로 변수가 많기 때문에 팬들을 더욱 열광시킨다. 한국이 독일월드컵 조별예선 G조에서 약체로 구분되고 있지만 경기 결과는 어느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태극전사들이 2002년 월드컵처럼 프랑스를 꺾는 등 이변을 속출하면서 조별예선을 무난하게 통과할 수도 있다. 반대로 심지어 토고에도 패하면서 3패로 우리의 기대를 무너뜨릴 수도 있다. 아드보카트 감독이 이끄는 태극호의 전사들은 이번 월드컵에서 좋은 결과를 얻어 국민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겠다는 일념으로 하루도 쉬지 않고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그들도 프랑스와 스위스, 심지어 토고가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월드컵 성적에 관한 전망이 밝지 않지만 태극전사들이 그라운드에서 흘리는 땀이 헛되지 않을 것임은 분명하다. 최용석〈스포츠칸 축구전문기자〉 gtyong0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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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 속 ‘SBS 전망대’ 하차한 김민전 교수
논란 속 ‘SBS 전망대’ 하차한 김민전 교수
2009. 05. 11 화제
김민전 교수는 슈퍼우먼이다. 단아한 외모, 깔끔한 진행, 소신 있는 발언. 학계는 물론이고 신문과 방송에서 눈에 띄는 활약을 펼치고 있는 그녀는 어느 것 하나 모자라는 점이 없는 사람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녀의 겉모습만 보고 하는 소리다. 지난 3월, SBS 라디오의 간판 시사 프로그램인 ‘SBS 전망대’를 하차한 그녀를 경희대학교 수원 캠퍼스에서 만났다.논란 속 방송 하차, 아이와 보낼 시간 많아져 행복해 새 학기가 시작된 캠퍼스만큼 에너지가 넘치는 곳이 또 있을까. 약속보다 조금 늦은 시간, 시끌벅적한 학생들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낸 김민전(43) 교수의 얼굴에는 여유로움이 묻어난다. 강의와 여러 학교 행사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요즘이지만 매일 새벽 6시 15분, 라디오 부스에서 아침을 맞았던 때보다는 훨씬 여유롭다. 그녀는 최근 7개월간 진행했던 SBS-FM ‘SBS 전망대’에서 하차했다. “한 가지 일이 없어지면 또 다른 일이 생기잖아요. 학교에서 여러 가지 일을 하고는 있지만 새벽에 집을 나서지 않아도 되니 그것만으로도 편해요. 큰애가 올해 중3이에요. 요즘은 고3보다 중3이 더 바쁘다고 하잖아요.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동안 아침을 챙겨주지 못하는 게 내내 가슴 아팠는데 한편으로는 잘됐다는 생각도 들어요.” 사실 이번 진행자 교체를 두고 적지 않은 논란이 있었다. SBS 라디오 봄 정기 개편이 3월 말이나 4월 초에 진행될 예정이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때 그녀의 갑작스러운 하차에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 있었다. 그 중에는 올 초 SBS에서 방송됐던 ‘대통령과의 원탁 대화’에서 김민전 교수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수 차례 비판적 질문을 던진 것이 갑작스러운 진행자 교체의 이유가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다. SBS 측에서는 제작비 절감과 내부 인력 활용을 위한 진행자 교체라고 설명했지만 원탁 대화가 끝난 다음주 갑작스럽게 진행된 진행자 교체는 그러한 논란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녀는 “솔직히 ‘SBS 전망대’ 관련 인터뷰였다면 거절하려고 했다”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당시 제가 들은 이야기는 비용 절감 측면에서 내부 인력을 활용하기로 했다는 것과 ‘건전 보수’라는 SBS의 정체성을 살리고 싶다는 것이었어요. 아무래도 저는 중도적인 색깔이 강하니까 그런 면에서 맞지 않는 것일 수도 있죠. 저로서는 정말 중립적인 방송을 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는데…, 시원섭섭해요.” 덕분에 아침저녁으로 아이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그동안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느라 아이를 챙기지 못했는데 이제는 미안함을 좀 덜었다. “제가 원탁 대화에 출연한다고 했을 때 딸이 한 말이 ‘엄마, SBS 전망대 ‘그만두고 가’였어요. 엄마가 좀 더 중립적으로 이야기하려면 그만두고 가야 하는 거 아니냐고요. SBS에서 진행을 하면서 그곳에 가서 이야기하는 게 상당히 부담스럽다는 걸 저도 느꼈고 아이도 느낀 것 같아요. 진행자보다 학자로서 이야기하기를 바랐죠. 다녀오고 나니까 ‘거봐, 그만두라고 했잖아요. 말 제대로 못했잖아’ 이러더라고요. 말을 제대로 해서 그만두게 됐다는 얘기가 나왔는데, 딸애가 보기엔 그게 아니었나 봐요. 결국 아이 말대로 됐죠(웃음).”오기로 버틴 30대, 일과 가정 두 마리 토끼 잡으려 했던 ‘슈퍼우먼’ 서울대 외교학과 84학번인 그녀에게 학창 시절을 묻자 “튀는 걸 싫어했던 평범한 학생”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어렸을 때부터 주목받는 걸 좋아하지 않았어요. 공부 잘하면 ‘선생님이 편애한다’는 소리 들을까봐 학급 행사에 나서지도 않았고요. 대학 입학 후 깜짝 놀랐던 게 강의 내용이 너무 어렵다는 것이었어요. ‘내가 부산에서 와서 서울말을 잘 못 알아듣는 건가’라고 생각할 정도로 교수님 말씀을 이해하기 힘들었어요. 1학년 때부터 독서실에서 살았죠. 대학 도서관 말고 고등학생들이 다니는 독서실이요. 도서관에 가면 아는 사람 만나는 게 싫어서요.” 그렇게 조용히 외교관의 꿈을 키워가던 그녀는 대학 수업을 들으며 정치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진로를 바꾸었다. 서울대 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 미국 아이오와대에서 미국의회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국회사무처 연수국 교수 등을 지내며 정치통으로 이름이 알려질 무렵 방송계로부터 러브 콜을 받았다. 2001년 말이었다. “당시 KBS ‘심야토론’에 세 번 정도 패널로 출연했는데 ‘추적 60분’에서 출연 섭외가 왔어요. 원래 나서기 싫어하는 성격에 부산 말투고 해서, 그때까지 방송이 내가 할 수 있는 것 중 하나라는 생각은 전혀 해본 적이 없었어요. 3주 정도 제작진의 끈질긴 설득이 있었고 저도 작가가 써주는 게 있으니까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출연을 허락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첫회 방송 나가고 홈페이지에 불이 났어요. 그때 알았죠. 내가 생각해서 말하는 것보다 남이 써준 걸 말하는 게 훨씬 어렵다는 걸요.”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라온 글들 중 ‘PD와 진행자의 관계를 추적하라’라는 글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며 지금은 웃으며 얘기한다. 그 뒤로도 계속 방송 제의를 받고 토론회에 패널로 출연했다. 하지만 주변의 시선은 그녀를 힘들게 했다. ‘연구에는 관심 없고 TV 출연만 밝히는 텔레페서’라는 말을 들을까 전전긍긍하기도 했다. 그녀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녀의 외모만 보고 완벽주의자라는 오해를 하기도 한다. 30대까지는 그 말이 맞았다. 스물일곱에 결혼해 공부를 계속하면서도, 공부 때문에 아이 갖는 걸 미루고 싶지 않았고 아무리 바빠도 사람을 썼으면 썼지 남편에게 밥 해달라는 소리는 안 했다. “주변의 시선을 많이 의식했던 건 그만큼 모든 면에서 완벽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남편이나 아이들에게, 일하는 엄마라서 다른 엄마들보다 잘 못 챙긴다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았죠. ‘슈퍼우먼이 되고 싶다’가 아닌 ‘슈퍼우먼이 돼야만 한다’였어요. 물론 밖으로는 그런 티 안 냈죠. 저의 30대는 오기가 지배할 정도였어요.” 보수적으로 소문난 학계, 그것도 남성 중심인 정치학계에서 여성으로 살아남는 것 또한 그녀에게는 큰 도전이었다.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좋지 않은 프레임 중 하나가 여자가 뭘 하면 아버지나 남편, 혹은 외모 덕을 봤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제가 국회에 있을 때 국회의장과 양당 총무가 모두 서울대 정치학과 출신이었어요. 제가 후배라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국회의장 딸이라느니, 비서실장 딸이라느니 하는 소문이 돌았죠. 사실 말 없는 소문에 투쟁할 수 있는 방법은 없어요. 결국 능력으로 승부해야겠다는 생각에 더 열심히 했는데 지나고 보니 그것도 그리 좋은 방법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근본 원인을 바꾸지 않는 한 갈등은 재생산되게 마련이거든요. 그때는 어려서 그랬구나, 하고 웃어넘기지만 지금 젊은 여성들이 여전히 그런 환경에 놓이게 되면 정말 힘들죠. 지금의 10대나 20대가 사회에 나갈 때는 근본적으로 다른 환경이 만들어지지 않겠나 싶어요.”뇌종양 선고 후 어떻게 살았나 싶을 만큼 힘든 시간 보내 그렇게 스스로에게, 그리고 남들에게 완벽하려는 욕심으로 자신을 옭아맸던 삶에 큰 변화가 찾아온 건 2004년 여름, 뇌종양 진단을 받으면서부터다. 불행은 한꺼번에 온다고 했던가. 남편의 사업 실패와 맞물려 찾아온 뇌종양은 자존심 센 그녀에게 받아들이기 힘든 시련이었다. “종양 진단을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젊었을 때는 자존심이 상당히 강했어요. 추하게 사느니 차라리 죽겠다는 철없는 생각도 했었죠. 그런데 막상, 이제 학교 들어간 아이가 둘이고 사업 망한 남편이 집에 있으니 죽을 수가 없더라고요. 내가 살아야 애들이 살고 우리 가족이 살겠구나 싶어 마음을 독하게 먹었죠.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 시간을 지나왔나 싶을 정도로 굉장히 힘들었어요.” 억울하다는 생각보다는 ‘내가 죽으면 아이들은 어떻게 하나’라는 생각에 첫날은 울었다. 하지만 그 다음엔 울지도 않았다. 작은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였다. 20년만 더 살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병원에서는 하루빨리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지만 혼자 생계를 책임져야 했기 때문에 당장 병원에 입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어떻게든 한 학기는 마치고 방학 때 수술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시간을 보내는 동안 뇌종양은 서서히 그녀의 시력을 앗아갔다. “1월에 진단을 받았는데 7월에야 수술을 받았어요. 늦어도 4월에는 수술을 했어야 하는데 학기 중이라 그럴 수가 없었죠. 강의 시간에 학생들 얼굴도 안 보이는데 그냥 강의를 했어요. 그때 YTN ‘쟁점 토론’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그때 했던 방송을 보면 눈동자가 허공을 맴도는 게 티가 나요. 참 바보 같았지만 그때는 어쩔 수 없었어요.” 집안에 닥친 불행은 한창 엄마 아빠 손이 많이 필요했던 둘째아이에게 견디기 힘든 시련을 주었다. 머릿속에는 언제 터질 줄 모르는 폭탄을 가지고 잘 보이지 않는 눈으로, 자꾸 밖으로만 돌려고 하는 막내아들을 찾으러 다녔다.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는 터널과 같은 시간이었다. 그런 힘든 시간을 보내고 눈이 거의 안 보이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수술을 받으면서도 시력이 회복될 거라는 기대는 거의 하지 못했다. 눈이 안 보여도 살 수만 있다면 좋겠다, 내가 살아서 아이들과 함께 있을 수만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2주 후부터 시력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기적이었다. 힘든 수술을 겪고 나서 그녀는 비로소 스스로에게 관대해질 수 있었다. “아프고 나서 많이 달라졌어요. 뭐든지 혼자 책임지려 했던 게 잘못된 판단이었다는 걸 깨달았죠. 주변 사람을 정말 사랑한다면 내가 힘든 걸 얘기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어야 해요. 쓸데없는 오기도 버렸어요. 그전에는 스스로 ‘~하면 안 돼’라는 게 많았어요. 스스로 통제하고 억지로 만들어내려고 했는데 물 흐르듯 사는 게 좋은 거라는 걸 알았어요. 막상 죽을 순간이 오니까 내가 그동안 눈치 보고 신경 썼던 사람들은 내가 죽는다고 해도 별 관심도 없을 것 같더라고요. 내가 뭣 하러 그렇게 사람들 눈치를 보고 살았나 싶었죠. 내가 좋은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더 이상 애쓰지 말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그 에너지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수술 후에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이 감사했다. “7개월 동안의 암흑을 지나 다시 꽃 한 송이를 보았을 때의 기쁨을 아느냐”라고 묻는 그녀에게서 성숙한 한 인간의 향기가 느껴졌다.좋은 집안, 좋은 머리, 좋은 학벌을 가지고 소위 말하는 ‘엄친딸’과 같이 어려움 없이 살았을 거라는 선입견 때문에 보지 못했던 그녀의 인간적인 면이 보였다. “누구에게나 어려움이 있어요. 저도 ‘이대로 끝이구나’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어요. 바닥까지 추락했지만 거기서 끝이 나는 건 아니더라고요. 지금은 저도 건강해졌고 남편도 대학에서 제2의 삶을 살고 있어요. 너무 상투적인 이야기지만 가족의 끈을 놓지 않고 있으면 언젠가는 다시 일어설 때가 있어요. 인생이라는 게 그런 굴곡이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정치 안 하느냐”는 질문을 유난히 많이 받는 그녀다. 우스갯소리로 남들이 하도 그러니까 오기가 생겨서라도 절대 안 한다고 한다. 계속 학계에 남아 공부를 하고 싶다고. “토론 프로그램의 패널 출연을 일부러 거절할 생각은 없지만 당분간은 쉬고 싶어요. 사실 ‘SBS 전망대’를 진행할 때 다른 토론 프로그램에 패널로 나가거나 정치적 사안에 대한 인터뷰는 피했어요. 그렇게 되면 방송을 진행하며 중립적인 입장을 지키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래서 한동안 자제했는데 정치 현상에 대해 학자로서 하고 싶은 말을 못할 때는 답답하더라고요. 보수, 진보를 떠나 정치학자로서 비판할 건 비판해야죠. 학자의 역할 중 하나가 바로 현실 비판, 권력 비판이니까요. 어느 편에도 서지 않는 게 가끔 외롭기도 하지만 그제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글 / 노정연 기자 ■사진 / 이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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