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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총 3,826 건 검색)

‘윤석열 체포’에 전북 시민사회 환호···전북운동본부 “내란 잔당 모두 처벌해야”
‘윤석열 체포’에 전북 시민사회 환호···전북운동본부 “내란 잔당 모두 처벌해야”
2025. 01. 15 12:06정치
... 모든 국민이 법 앞에 평등하다는 것을 보여야 할 것이다”고 했다. 김관영 전북지사 SNS 캡처. 김관영 전북지사도 이날 자신의 사회관계망 서비스(SNS)에 “내란수괴 체포, 대한민국의 시간이 다시...
윤석열체포체포영장내란김관영전북윤석열 체포
이사비에 고용지원금까지···전북 지자체, 전입 청년 지원
이사비에 고용지원금까지···전북 지자체, 전입 청년 지원
2025. 01. 15 10:55사회
... 참여한 구직자들이 취업 상담을 하고 있다. 전주기전대 제공 지방 소멸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전북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정책이 다양해지고 있다. 전북으로 전입한 청년에 이사비와 보증금 등을...
청년전입전북취업
박항서 전 감독 ‘전북 명예 홍보대사’로 뛴다
박항서 전 감독 ‘전북 명예 홍보대사’로 뛴다
2025. 01. 13 21:09인물
... 전북 홍보대사로 활동한다. 전북도는 13일 도청에서 박항서 전 베트남 축구국가대표팀 감독을 전북 명예 홍보대사로 위촉했다고 밝혔다. 박 전 감독은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대표팀 수석코치로 거스...
전북박항서명예홍보대사2036하계올림픽
윤석열퇴진 전북운동본부, 국힘 조배숙 ‘내란 선동’ 혐의 고발
윤석열퇴진 전북운동본부, 국힘 조배숙 ‘내란 선동’ 혐의 고발
2025. 01. 13 15:01사회
... 오전 전북경찰청 민원실에 조배숙 국민의힘 의원을 고발하는 서류를 제출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퇴진 전북운동본부는 지난 6일 윤석열 대통령의 체포영장 집행을 막기 위해 대통령 관저로 달려갔던...
조배숙내란윤석열퇴진전북운동본부선동탄핵, 국내외 영향

스포츠경향(총 1,743 건 검색)

[오피셜] ‘거스 포옛호’ 출범한 전북, 젊은 피 대대적으로 수혈···진태호·서정혁 프로계약 전환, 신인 7명 추가 영입
[오피셜] ‘거스 포옛호’ 출범한 전북, 젊은 피 대대적으로 수혈···진태호·서정혁 프로계약 전환, 신인 7명 추가 영입
2025. 01. 13 16:31 축구
전북 현대 진태호. 프로축구연맹 제공 거스 포옛 감독과 새로운 여정에 나서는 전북 현대가 2025시즌을 앞두고 젊은 피를 수혈했다. 전북은 13일 “준프로에서 프로 계약으로 전환한 2명을 포함해 총 9명의 신인 선수를 영입했다”고 밝혔다. 준프로에서 프로로 계약을 전환한 선수는 지난해 아시아챔피언스리그2(ACL2)에서 가능성과 잠재력을 선보인 ‘2006년생 듀오’ 진태호와 서정혁이다. 전북 현대 서정혁. 프로축구연맹 제공 여기에 전북은 역시 구단 산하 유스팀 출신인 황승준과 우선지명으로 프로 계약을 했다. 황승준은 지난해까지 용인대에서 오른쪽 측면 수비수로 활약했다. 또 전북은 자유계약으로 6명의 선수를 추가 영입했다. 조선대 왼쪽 풀백 김준영, 홍익대 공격형 미드필더 윤현석, 한남대 중앙미드필더 김민재, 윙포워드인 용인대 강현종과 용인축구센터 출신의 이재준, 상지대 최전방 공격수 정상운이 전북에 합류했다. 전북 현대의 2025시즌 신인 선수들. 윗줄 왼쪽부터 김민재, 정상운, 강현종. 아래 줄 왼쪽부터 윤현석, 김준영, 황승준, 이재준. 전북 현대 제공
‘쌀딩크 신화 재현’ 김상식, 전북 현대 사령탑 물러날 때 설움 다 날렸다
‘쌀딩크 신화 재현’ 김상식, 전북 현대 사령탑 물러날 때 설움 다 날렸다
2025. 01. 06 15:36 축구
5일 방콕 라자망갈라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2024 아세안 스즈키컵 결승 2차전 태국과 베트남의 축구 경기에서 승리한 베트남의 김상식 감독(가운데)과 선수들이 트로피를 들고 기뻐하고 있다. 방콕|AFP연합뉴스 한국 축구 지도자의 저력이 다시 한번 입증됐다. 김상식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축구 대표팀이 5일 동남아시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아세안축구연맹(AFF) 미쓰비시컵에서 태국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박항서 감독에 이어 베트남을 다시 한번 정상에 올려놓으며 한국 축구 지도자의 우수성을 알린 김 감독은 이번 우승으로 2023년 5월 전북 현대에서 성적 부진으로 자진 사임하며 쫓기듯 물러났던 아픔까지 씻어냈다. 베트남은 조별리그부터 결승까지 7경기 연속 승리라는 완벽한 우승을 일궈냈다. 조별리그에서 라오스, 말레이시아, 싱가포르를 상대로 연속 무실점 승리를 거두었고, 4강에서는 인도네시아를 2-0으로 제압하며 결승에 올랐다. 결승에서는 일본인 감독 이시이 마사토가 이끄는 태국과 맞붙어 1, 2차전 모두에서 승리를 거두며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지난 2일 하노이 미딘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1차전에서 2-1로 승리한 데 이어, 방콕에서 열린 2차전에서도 3-2로 이기며 합계 5-3 완승을 했다. 결승 2차전은 접전 속에 역전승 드라마를 써냈다. 베트남은 전반 8분 팜뚜언하이의 선제골로 앞서갔으나, 전반 28분 태국 벤 데이비스에게 동점 골을 허용했다. 후반 19분에는 상대에게 석연치 않은 골을 내줬다. 베트남이 부상을 호소하는 태국 선수를 배려해 볼을 터치라인 밖으로 보냈으나, 태국은 이후 스로인 상황에서 ‘매너 볼’을 돌려주지 않았다. 오히려 베트남 수비진이 정비되기도 전에 수파촉 사라차트가 기습적인 중거리 슛으로 득점에 성공했다. 하지만 베트남은 동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태국이 후반 28분 위라텝 폼판의 경고 누적 퇴장으로 수적 열세에 놓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판사 헴비분의 자책골로 동점에 성공했다. 후반 추가시간 15분, 태국의 마지막 공세 속에서 응우옌 하이롱이 하프라인 부근에서 빈 골문을 향해 쐐기 골을 성공시키며 3-2 승리를 확정했다. K리그 전북 현대 사령탑 시절 김상식 감독. 프로축구연맹 제공 김상식 감독은 선수 시절 성남 일화(현 성남FC)와 전북 현대에서 K리그를 대표하는 미드필더로 활약했다. 은퇴 후에는 전북 현대에서 코치로 지도자 경력을 시작했고, 2020년 제6대 감독으로 선임됐다. 부임 첫해인 2021년 K리그 우승을 이끌며 순조로운 출발을 보였으나, 2022년 FA컵 우승에도 불구하고 팀 경기력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결국 2023년에는 성적 부진으로 홈 팬들의 거센 항의를 받았고, “김상식 나가” 구호 속에 5월 자진 사임하는 아픔을 겪었다. 김상식 감독은 우승 후 기자회견장에 베트남 국기를 어깨에 두르고 등장해 현지 취재진의 박수를 받았다. 베트남 골키퍼 딘찌에우는 한국 국기를 들고나와 “김 감독님은 한국인이고 저는 베트남 사람이다. 이 깃발은 두 나라의 우정을 상징한다”고 말했다. 베트남 현지 매체 ‘뚜오이쩨’는 “김상식 감독의 전술 변화가 승리의 핵심이었다”고 평가했다. 특히 결승전에서 깜짝 선발 발탁한 팜 뚜언 하이의 기용이 적중했다고 치켜세웠다. 팜 뚜언 하이는 팀의 첫 골을 터뜨리고 자책골까지 유도하며 감독의 믿음에 보답했다. 박항서 감독이 2018년 대회 우승으로 베트남 축구를 동남아시아 정상에 올려놓은 이후, 김상식 감독은 후임으로서의 부담을 완전히 떨쳐냈다. 2024년 9월 부임 이후 첫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베트남 축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다. 우승 후 김 감독은 “이제 베트남은 더 큰 무대를 향해 나아갈 것”이라며 2027 아시안컵과 동남아시안게임에서의 선전을 다짐했다. 전북 현대에서의 아쉬움을 완벽하게 씻어낸 김상식 감독의 도전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연봉분석] 가성비 최저 전북 현대, 새해 어떨까
[연봉분석] 가성비 최저 전북 현대, 새해 어떨까
2025. 01. 06 07:39 축구
거스 포옛 전북현대 모터스 신임 감독. 연합뉴스 2024시즌 국내프로축구에서 많은 돈을 쓰고도 최하위권에 머문 대표적인 팀은 전북 현대다. 전북의 연봉 총 지출액 204.5억원이다. 울산 HD(204.9억원)보다 아주 약간 뒤진 2위다. 연봉 공개를 한 2014년 이래 전북이 연봉 총 지출액 순위 1위에서 물러난 것은 지난해가 처음이다. 전북은 지난시즌 최종 순위에서 12개팀 중 10위에 머물렀다. 강등 플레이오프에서 가까스로 이겨 잔류했다. 연봉 총 지출액에서 울산과 거의 동일했지만 울산은 우승한 반면, 전북은 강등을 면했다. 전북 현대 2024시즌 연봉 분석 전북 외국인 선수 1인당 평균 연봉은 12.3억원이다. 울산(9.8억원), FC서울(10.9억원)보다 많은 전체 1위다. 그런데 몸값을 한 외국인 선수는 없다. 공격수 티아고가 득점랭킹 17위(7골)에 머물렀다. 미드필더 보아텡은 21경기를 뛰었지만 공격포인트가 없다. 에르난데스는 14경기에서 2골 2도움, 안드리고는 15경기 3골 2어시스트에 그쳤다. 한해 농사를 좌우하는 외국인 선수 수급 효율성에 대한 고민이 필요해졌다. 전북의 국내 선수 평균 연봉은 3.26억원이다. 울산(5.2억원)에 이은 2위지만 액수 차이가 크다. 실제 연봉이 적었다기 보다는 전북 선수단 규모가 50.1명으로 최다인 반면, 울산은 34.2명으로 최소라서다. 전북은 B팀을 운영하는 데다, 강등 탈출을 위해 지난해 몇몇 대어급 선수를 영입했다. 결국, 전북 국내 선수 기량이 울산 국내 선수에 비해 평균 연봉 차이인 2억원만큼 약하다고는 볼 수 없다. 선수단 구성 특성상 몸값의 양극화가 있고, 몸값이 높은 베테랑 선수들이 경기력에서나, 팀 워크에서나 제몫을 하지 못했다. 전북은 지난해 한국남자 축구국가대표팀 사령탑 후보로 거론된 거스 포옛 감독(우루과이)을 사령탑에 앉혔다. 최근 두 번이나 외국인 감독을 쓰고도 실패했지만 다시 외국인 감독을 택한 것은 포옛 감독의 능력과 명성 때문이다. 전북은 울산, 서울과 함께 선수들 자존심과 개성이 강하다. 콧대 높은 선수들을 컨트롤하기 위해서 이름값이 있는 감독이 필요한 팀이다. 어느 팀이나 새로운 감독이 부임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베테랑들을 정리하는 것이다. 신임 감독에 순종하면서 팀을 위해 기꺼이 희생을 감내할 의사가 있는 베테랑과 그렇지 않은 베테랑을 솎아내는 과정이다. 지난해 주장 수비수 김진수(33)는 최근 서울로 이적했다. 동갑내기 공격수 문선민도 전북과 동행을 마무리했다. 그외 적잖은 선수들이 팀을 떠났고 조만간 떠나리라 예상된다. 반면, 과거 박지성 테크니컬 디렉터 시절 전북을 떠나야 했던 국가대표 골키퍼 송범근은 다시 전북으로 돌아왔다. 전북은 몸값이 높은 베테랑, 외국인들을 정리한 뒤 꼭 필요한 선수 몇몇만 영입하는 선에서 선수 수급을 끝내리라 전망된다.
“전북 경기 마음 졸이면서 챙겨봤다” 송범근, 전북의 구세주 될까
전북 경기 마음 졸이면서 챙겨봤다” 송범근, 전북의 구세주 될까
2025. 01. 02 15:42 축구
전북현대모터스 공식 유튜브 캡쳐. 전북 현대 모터스의 수문장 송범근이 친정팀에 복귀한 소감을 밝혔다. 1일 송범근은 전북 현대 모터스 구단 공식 유튜브를 통해 이적 후 첫 인터뷰를 진행했다. 송범근은 “많이 보고 싶었다”며 친정팀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2018년 전북 신인으로 입단한 송범근은 데뷔와 동시에 주전을 꿰차며 전북의 전성기를 함께했다. 지난 2022년 시즌 종료 후 FA 신분으로 일본 J리그 쇼난 벨마레로 이적한 후 2년 만에 다시 전북 유니폼을 입게 됐다. 전북현대모터스 공식 유튜브 캡쳐. 훈련장을 돌아보던 송범근은 “(예전과) 똑같다”며 “마음이 너무 편안하고 집에 온 느낌”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송범근은 “편안함보다는 압박과 부담을 가지고 책임감 있게 임해야 할 것 같다”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내가) 잘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매년 K리그의 절대 강자로 군림하던 전북은 이번 시즌 그야말로 처참하게 몰락했다. 사상 첫 하위 스플릿을 맞은 건 물론, 2006년 11위 이후 18년 만에 최저 순위인 10위를 기록했다. 결국 구단 최초로 승강 플레이오프(PO)를 치뤘고, 간신히 K리그 잔류에 성공했다. 이번 시즌 전북의 경기를 챙겨봤냐고 묻자 “진짜 마음 졸이면서 봤다. 아마 전북에 있었던 선수들이면 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봤을 것”이라고 답했다. 송범근은 “안에 있던 선수들이 더 힘들었을 것 같다. 그 무게를 함께하고자 온 거다”이라며 책임감을 드러냈다. 전북현대모터스 공식 유튜브 캡쳐. J리그 쇼난 벨마레 이적을 ‘유학’이라고 표현한 송범근은 “(유학을 통해) 성장을 했는지 안 했는지는 내년에 경기장에서 보여드려야 할 것 같다”며 “팀에서 나에 대한 신뢰를 잊지 않아줘서 복귀를 결심했다”고 밝혔다. 내년 시즌을 “재미있을 것 같다”고 기대하는 마음을 나타내며 열망을 드러낸 송범근은 “쇼난 이적 후 이기는 경기가 많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많이 이기고 싶다’는 승리의 갈망이 큰 상태”라고 의지를 드러냈다. 송범근은 “팀이 다시 왕좌에 오를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목표”라며 “멀리 일본에 있을 때도 많은 전북 팬들이 응원해주셨다. 전북 팬들 덕분에 지금과 같은 선수가 될 수 있었다”고 소속팀과 팬들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어 “경기장에서 승리로 보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서 준비하겠다”며 다음 시즌에 대한 각오를 밝히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주간경향(총 26 건 검색)

[정태겸의 풍경] (76) 전북 장수 영월암-쉼이 필요했던 날의 아침 풍경
[정태겸의 풍경] (76) 전북 장수 영월암-쉼이 필요했던 날의 아침 풍경(2024. 11. 27 06:00)
2024. 11. 27 06:00 문화/과학
연말이 다가올수록 몸이든 마음이든 지쳐가고 있다는 걸 절감한다. 하루쯤은 쉬고 싶다고, 마음 놓고 쉬고 싶다고 되뇌곤 한다. 가을이 깊어가고 겨울이 성큼 다가왔다는 게 느껴지는 어느 날이었다. 전북 장수는 좀처럼 인연이 닿지 않던 곳이었다. 한국의 오지를 이야기할 때, 강원도를 빼면 의외의 지역이 등장하게 마련이다. 그중 하나가 ‘무진장’이다. 무주, 진안, 장수. 전주와 대전이 가까워 무슨 오지가 있나 싶겠지만, 의외로 한국 최고의 오지라고 불리는 곳들이다. 그중 장수의 영월암을 찾았다. 인연 있던 스님이 그곳에 자리를 잡으셨다고 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였다. “스님 내려갈게요.” 전화기 너머에서 스님은 흔쾌히, 언제든 내려오라고 하셨던 참이다. 푹 쉬라면서 스님은 방의 한쪽을 내주셨다. 차를 마시는 동안 며칠 전 보았다는 절 아랫마을의 운무를 이야기해 주셨던 게 아른거려 늦잠을 잘 수 없었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와 절의 위로 올랐다. 맞은편 산 아랫마을에는 운무가 가득했다. 보통 봄이나 가을의 물안개는 물가 주변에서 피어오르게 마련이다. 큰 강이 없는 산서면에는 조그만 물길만이 졸졸 흐르고 있었지만, 그런데도 안개가 피어올라 마을 위를 덮었다. 가을 아침의 맑은 풍광이 눈에 가득 담겼다. 어깨를 묵직하게 누르던 피로감마저 저 안개 위로 스르륵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정태겸의 풍경
[정태겸의 풍경](75) 전북 익산 교도소 세트장-그대를 향한 내 마음, 철컹철컹
[정태겸의 풍경](75) 전북 익산 교도소 세트장-그대를 향한 내 마음, 철컹철컹(2024. 11. 13 06:00)
2024. 11. 13 06:00 문화/과학
예전에는 전북 익산을 여행지로 생각할 만했다. 충청도와 전라도로 뻗어 나가는 기찻길이 익산으로 모여들어 인구도 많았고, 여행하기 좋은 여건이었다. 지금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있었다. 아쉽게도 지금은 ‘여행지 익산’을 떠올리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이런 흐름을 바꿔놓은 게 있으니 익산 교도소 세트장이다. 폐교를 고쳐 교도소처럼 꾸민 곳인데, 온갖 영화와 드라마에 등장하면서 이제는 여기를 찾는 사람이 꽤 많아졌다. 여기에 하나의 장치를 더 했다. 수갑이다. 언젠가부터 연인들은 온갖 여행지에 자물쇠를 걸어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는 부질없는(?) 짓을 하기 시작했다. 연장선으로 떠올린 게 수갑이었다. 모든 건 관광두레 기획자의 아이디어. 교도소와 수갑의 원래 의미를 뒤집어 버린 생각의 전환이 전국의 가족과 연인과 친구들의 발길을 불러 모았다. 세트장만 덩그러니 있었다면 지금 같은 호응은 없었을 거다. 익산의 별칭도 만들었다. ‘고백의 도시’. 여러 의미를 담았다. 그만큼 갈 곳, 볼 곳, 먹을 게 많다는 의도이기도 하고, 고백하기 좋은 도시라는 뜻이기도 하다. 시도는 성공적이었다. 철조망에 수도 없이 많은 수갑이 주렁주렁 매달렸다. 자진해서 철창 안으로 들어가 익살맞은 사진을 남기기도 한다. 저 삭막한 철창과 철조망에, 로맨스라니. 나도 하나 걸어볼까 고민하다 그만두기로 했다. 기왕 할 거면 아내가 보는 앞에서 하는 게 맞다. 혼자서는 궁상맞기 그지없는 짓일 뿐이다.
정태겸의 풍경
[정태겸의 풍경](67) 전북 군산 경암동 철길마을-숨 가쁜 일상 속 나를 보듬는 철로
[정태겸의 풍경](67) 전북 군산 경암동 철길마을-숨 가쁜 일상 속 나를 보듬는 철로(2024. 05. 24 16:00)
2024. 05. 24 16:00 문화/과학
10년 만이다.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때만 해도 세상에 막 알려지기 시작할 때였다. 입소문을 따라 찾아온 사람이 이곳에서 사진을 찍고 독특한 여기만의 정취를 즐기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렇게까지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지금은 다르다. 대형마트 건너편, 도로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그 뒷골목은 이제 현란한 간판과 호객행위를 하는 소리로 시끌벅적하다. 예전 교련복으로 갈아입고 철길을 걸으며 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골목이 가득 찼다. ‘많이 변했구나’라는 생각에 실망감에 휩싸일 때쯤, 맞은편 골목이 눈에 들어왔다. 그곳엔 아직 예전의 분위기가 남아 있었다. 길을 건너 철길이 놓인 골목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기가 질릴 만큼 시끄러운 저쪽과 달리 이곳은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아직도 골목 안 철길 양쪽에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기차가 다니지 않지만 철로는 그대로다. 곁에 텃밭이 있고, 사람이 심은 꽃과 바람에 실려 날아온 꽃이 공존한다. 기차가 다니던 그 길을 따라 걷는데 마음이 짜르르 울렸다. 누군가의 일상이 나의 일상을 위로해 주는 풍경. 봄의 끝자락에 한들거리며 피어난 데이지, 한쪽 구석에 붉은 꽃잎 선명한 양귀비. 이 모든 것이 내 등을 어루만지는 손길 같았다. 쏟아지는 햇볕처럼 따뜻했다. 여행은, 이렇게 찰나의 순간으로 나의 삶을 다독거린다.
정태겸의 풍경
[정태겸의 풍경](37)전북 진안 사양제 - 이토록 아름다운 가을 햇살(2022. 11. 25 14:28)
2022. 11. 25 14:28 문화/과학
전북 진안의 새벽은 제법 차가웠다. 비로소 겨울 기운이 조금씩 스며드는 기분이었다. 인적 드문 아침을 열고 밖으로 나오자 햇살이 쏟아졌다. 그 온기에 새벽의 한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파란 가을 하늘을 배경으로 마이산 두 봉우리가 우뚝 모습을 드러냈다. 저 모습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마이산 자락 곁에 있는 사양제. 이곳은 말의 귀를 닮은 마이산의 모습을 가장 아름답게 담아내는 저수지다. 마이산 일대에는 유난히 저수지가 많다. 그럴 만한 것이 마이산은 역암(礫岩)으로 이뤄진 우뚝한 봉우리가 서 있어 좀처럼 물이 없을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남쪽 비탈면에서 섬진강의 수계가 시작된다. 북쪽에서는 금강의 첫 물길이 시작된다. 물이 풍부해 인근에서는 이 물길을 가둬 저수지를 많이 만들었다. 사양제도 그렇게 만들어진 곳이다. 저수지 동쪽 산 너머에서 떠오른 햇살이 차가운 대지를 달군다. 부연 물안개가 일어나고, 햇살이 나무와 나무 사이로 쏟아져 장관을 이룬다.
정태겸의 풍경

레이디경향(총 3 건 검색)

[정원 여행자] 전북 전주 - 따끈한 구들 위로 단잠이 눈처럼 쏟아졌다
[정원 여행자] 전북 전주 - 따끈한 구들 위로 단잠이 눈처럼 쏟아졌다
2015. 12. 02 17:18 레저/여행
잘생긴 기와지붕을 얹은 전주 톨게이트를 지나 위풍당당한 ‘호남제일문’을 통과하는 짧은 찰나, 전주 사람도 아니거늘 고개가 빳빳해졌다. 한옥마을의 전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오목대에 올라 검푸른 기와의 도도한 물결을 마주한 순간에도 그러했다. 전주 땅을 밟는 순간, 「혼불」의 작가 최명희가 이야기한 ‘꽃심’이라도 지핀 것일까. 이 고장의 근거 있는 자부심에 동화된 채 종내 식지 않는 흥으로 걷고, 마시고, 기웃거렸다.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진 성당과 한옥마을이 어우러진 풍경은 고색창연한 조화를 이룬다. 고속도로를 통한 여행길이라면 톨게이트는 해당 여행지의 첫인상이 된다. 사실, 그 첫인상이 강렬한 도시는 많지 않다. 운전자가 아닌 이상 졸다 지나치기 십상이며, 모든 톨게이트가 해당 도시의 상징을 담고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전주는 다르다. 한옥 기와지붕을 맵시 있게 올린 톨게이트가 보일 때쯤 여행객은 비로소 전주에 왔음을 실감한다. 현판의 힘찬 서체도 근사하다. 한글이 반포된 이후 서민들이 쓰던 글씨체라 하여 ‘민체’라 이르는 서예가 여태명씨의 글씨다. ‘전주’ 현판은 입구와 출구의 글씨가 미묘하게 다르다고 알려져 있다. 입구 현판은 ‘전주’의 자음을 작게, 모음을 크게 쓰고, 출구 현판은 자음을 크게, 모음을 작게 썼다는 것. ‘자음은 아들을, 모음은 어머니를 뜻하는데, 고향으로 들어올 때는 어머니의 큰 사랑과 따뜻한 정을 느끼게 하고 나갈 때는 자식들이 크게 돼라’는 뜻을 담았다고 한다. 전주 톨게이트를 지나면 전주시의 관문인 ‘湖南第一門(호남제일문)’이 등장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일주문으로 유명하며, 현판의 한자는 강암 송성용 선생의 글씨다. 호남제일문이란 이름은 전주가 전라감영의 문, 호남평야의 첫 관문이란 뜻을 지니고 있다. 조선 초기 전주에 설치된 전라감영은 1896년까지 전라남북도를 포함해 제주도까지 통할하는 관청이었다. 전주는 후백제의 왕도이자 조선왕조의 시조인 전주 이(李)씨의 고장으로, 조선왕조의 발상지라는 자부심이 옹골찬 도시다. 왕복 5차선 대로를 가로지른 위풍당당 호남제일문은 그 유서 깊은 자부심의 첫인상이기도 하다. 육교의 기능도 겸하니 한번 올라가볼 만하다. 느릿느릿 걸으며 산책하기에 좋은 운치 있는 전주 한옥마을 풍경. 한옥마을의 전경을 한눈에 담고자 오목대로 향했다. 황산대첩을 승리로 이끈 이성계가 귀경길에 들러 잔치를 벌였다는 이 언덕은, 그가 개국의 꿈을 내비침으로써 정몽주와 갈라서게 된 역사적 장소이기도 하다. 700여 채의 한옥이 빽빽하게 군락을 이룬 풍경 앞에 감탄을 삼킨다. 때론 침묵으로 감탄사를 대신해야 할 때가 있다. 깊고 푸른 바다를 만났을 때가 그렇고, 도도한 검은 기와의 물결을 마주할 때도 그러하다. 전주 한옥마을의 유래는 1990년 초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일본인들의 세력 확장에 반발했던 전주 사람들이 교동과 풍남동 일대에 한옥을 짓고 모여 살면서 지금의 한옥마을을 이루게 됐다고 한다. 1 호남 지역의 서양식 근대 건축물로는 가장 오래된 전동성당.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 중 하나로 손꼽힌다. 2 전동성당이 세워진 자리는 원래 전라감영이 있던 자리로, 우리나라 천주교 첫 순교자가 나온 곳이기도 하다. 3 대하소설 「혼불」을 남긴 전주 출신 최명희 작가의 삶과 문학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최명희문학관. 4 기록문화의 땅으로 전주를 재조명하고자 설립한 완판본문화관. 꽃담 너머 이야기를 기웃거리며 「삼국사기」 중 백제 위례성의 새 궁실을 묘사한 문구인 ‘儉而不陋 華而不侈(검이불루 화이불치: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는 전주의 문화와 전통, 의식주를 아우르는 미학이다. 톨게이트부터 시작된 ‘전주다움’은 발길 닿고 눈길 닿는 족족 온전히 그러했다. 국내 현존하는 향교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제대로 보존된 전주향교는 공자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과 학생들을 가르치던 명륜당 등의 건물로 구성돼 있다. 마당에 400년 수령의 은행나무도 만날 수 있는데, 벌레가 타지 않는 은행나무처럼 유생들이 반듯하게 자라길 기원하는 마음으로 향교엔 꼭 은행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전주향교 앞의 완판본문화관은 기록문화의 땅으로 전주를 재조명하고자 설립한 곳이다. 전주에서 발간한 옛 책과 판본을 이르는 ‘완판본’은 서울의 ‘경판’과 함께 조선시대 목판인쇄의 양대 산맥으로 통했다. 목판인쇄 및 제본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당시의 기법으로 책을 만들어볼 수도 있다. 이야기를 품은 작은 골목길로 이어진 전주 한옥마을은 자신의 보폭으로 완성하는 여행지다. 담장 너머를 기웃거리며 발길 닿는 대로 이어지는 길 위에 마음을 얹으면 족하다. 야트막한 담장 너머 여염집을, 아기자기한 공방과 카페를 기웃거리며 걷다 보니 최명희문학관 앞이다. 「혼불」의 작가 최명희는 그의 고향이기도 한 전주를 ‘꽃심을 지닌 땅’이라 했다. ‘꽃심’은 사전에 없는 말이지만 ‘꽃의 마음’, 혹은 ‘꽃의 힘’으로 풀어도 충분하리라. 아름다운 우리말로 민족의 역사와 정신을 생생하게 그려낸 「혼불」은 그가 17년에 걸쳐 200자 원고지 1만2,000장 분량으로 완성한 대하소설이다. 작가는 말한다. “원고를 쓸 때면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 글씨를 새기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라고. ‘생애를 기울여 한마디 한마디 파나간’ 소설을 단숨에 읽어내릴 수는 없는 일. 적어도 한 시절을 기울여 읽어야 할 소설이다. 최명희문학관까지 왔다면 바로 이웃해 있는 부채문화관과 교동아트센터를 함께 둘러볼 만하다. 경기전과 전동성당도 가깝다.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봉안하기 위해 창건된 경기전은 경사스러운 터에 지어진 궁궐이란 뜻을 담고 있다. 경기전에서 궁궐 담장 너머로 바라보는 전동성당은 매우 인상적이다.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진 성당과 한옥마을이 어우러진 풍경은 이물감보다는 고색창연한 조화를 이룬다. 세월을 입은 건축물들은 동서양의 차이를 넘어 아름답게 낡아가는 속성을 공유하는 까닭이다. 내친김에 보폭에 탄력을 실어 남부시장까지 걸었다. 조선 3대 시장으로 통했을 만큼 역사와 규모를 자랑하는 전통 재래시장에 색다른 재미가 깃들었다는 소문을 들어온 터였다. 시장 2층에 형성된 ‘레알뉴타운’ 청년몰이 그것. 재기 발랄한 청년들이 운영하는 20여 곳의 이색 점포들은 전통의 도시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1·3 남부시장 2층에 조성된 청년몰. 재기 발랄한 청년들이 운영하는 이색 점포가 전통시장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2 유수한 명창들의 판소리 공연이 열렸던 학인당 본채 거실. 일제강점기 국악인과 예술인들의 교류 장소로 기능했다. 4 한옥마을의 정신적 중심지인 전주향교의 대성전. 샘이 깊은 집에서의 하룻밤 여행객에게 해가 짧은 겨울은 언제나 아쉽다. 더욱이 전주처럼 볼 곳 많은 도시라면 뉘엿거리는 해가 입 속에서 닳아 없어지는 알사탕처럼 아깝기만 하다. 하지만 또한 다행인 것이, 전주에서의 한옥 숙박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여정이 된다. 한옥마을엔 숙박이 가능한 한옥 체험관과 한옥 게스트하우스, 한옥 민박 시설이 100여 곳에 이른다. 그중에서도 학인당에 방을 잡은 것은 행운이었다. 고택 문화재이기도 한 학인당은 1905년부터 약 3년에 걸쳐 연인원 4,280명이 참여해 지은 집으로, 한강 이남 민가 중 가장 화려한 고택으로 손꼽힌다. 궁중 건축양식을 민간 주택에 도입한 예로 본채 건물의 내부 구조는 창덕궁 희정당과 비슷하다. 건물 구조는 전통 한옥 양식을 취했지만 유리 여닫이문을 두르고 내부 생활공간을 서재, 세면장, 목욕탕, 화장실 등 양옥 형태로 구성해 생활의 편리를 추구했다. 개량형 한옥의 모습을 지닌 학인당은 근대 한옥 구조 변천사를 이해할 수 있는 건축사 학술 자료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학인당은 국내 최초의 한옥 국악 공연장으로도 유명하다. 학인당의 건립자 인재 백낙중은 국악과 소리를 아꼈던 인물. 전주감영과 전주부에서 내려오던 대사습 경연이 조선 말 중단된 것을 안타까이 여긴 그는 본채의 넓은 대청을 판소리 연희장으로 제공, 국악인들을 초청해 꾸준히 공연을 열며 판소리의 명맥을 유지하도록 후원했다. 그의 아들 백남혁 역시 선대의 유지를 받들어 일제강점기 때 국악인과 예술인들의 교류 장소로 학인당을 제공했다. 임방울, 박녹주, 김연수, 박초월, 김소희 등 유수한 소리꾼들이 이곳을 거쳐 갔다. 소리로 민족의 정신을 지켜낸 학인당은 광복 후, 김구 선생 등 정부 요인의 전주 방문시 영빈관의 역할을 맡기도 했다. 본채 큰방의 명칭이 ‘백범지실’인 이유도 그 때문. 김구 선생이 머물렀던 본채 큰방도 숙박 체험공간으로 일반에게 공개하고 있다. 학인당에서 또 하나 주목할 곳은 정원이다. 소나무와 돌과 연못을 배치한 정원은 여느 전통 한국식 정원과 다를 바 없지만 그 이면엔 비밀스러운 샘을 간직하고 있다. 연못 한쪽에 조성된 이끼 낀 돌계단을 따라 지하로 내려가 만나게 되는 아담한 박우물이 그것. 땅 밑에 있다 하여 땅샘이라 부른다. 학인당 본채를 지을 당시 발견한 우물 자리를 보존하기 위해 그와 같이 독특한 구조를 고안해냈다고. 기실, 대부분의 우리나라 전통 정원이 본채 뒤에 조성되는 데 반해 학인당은 본채 앞에 정원을 조성한 것이 특징인데, 이 오래된 우물을 지키기 위한 의도임을 짐작할 수 있다. 강물은 흐르고 샘은 솟아야 조화로운 법. 먼저 자리 튼 물길을 위해 사람이 비켜 선 사려 깊은 조경 원칙과 마주하니, 정원이 꼭 인위의 산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땅샘은 여름에도 서늘한 온도를 유지해 예부터 자연 냉장고로 쓰였다고 한다. 지금도 여름이면 수박 같은 과일을 띄워놓는 운치를 누린다 하니, 샘을 지킨 복록이 대대손손 이어지는 듯싶다. 학인당의 종손은 초겨울이라 정원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며 아쉬워했지만 샘솟는 이야기가 야윈 풍경을 충분히 갈음했다. 100년 전에 지어진 잘생긴 한옥에서 머무는 하룻밤은 가만가만, 선비 걸음으로 깊어갔다. 잠들기 아쉬운 밤, 시간이 사위어드는 풍경을 지켜보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따끈한 방바닥에 몸을 뉘고 바스락거리는 홑청에 싸인 솜이불을 코까지 끌어다 덮으니 단잠이 눈처럼 쏟아졌다. 모처럼 꿈 없는 잠을 잤다. <■글 / 고우정(여행작가) ■사진 / 현일수(리빙룸스튜디오)>
정원 여행자
[정원 여행자]전북 고창, 서럽도록 붉고 시리도록 푸른 봄날에
[정원 여행자]전북 고창, 서럽도록 붉고 시리도록 푸른 봄날에
2015. 04. 02 11:15 레저/여행
보리밭 사잇길을 지나, 철쭉을 휘감은 조선시대의 읍성을 한 바퀴 돌고, 천년고찰을 병풍처럼 에워싼 동백 숲에 이르렀다. 청춘의 보리는 눈이 시리도록 푸르고, 고창 군민의 정원이라 할 모양성과 후드득 눈물처럼 꽃이 지는 선운사는 서럽도록 붉었다. 봄의 절정, 봄이 봄을 밀어내는 풍경 앞에 마냥 헤실거릴 수도 없지 않나. 어쨌거나 이별인데. 초록 물결이 끝도 없이 펼쳐진 학원농장은 봄날, 고창에 가야 하는 강력한 이유다. 초록 물결 일렁이는 보리밭 사잇길로 보릿고개를 알 턱도 없고, 보리피리를 불어본 경험도 없다. 보리에 대한 기억이라면 그저 어린 시절에 즐겨 하던 ‘쌀, 보리’ 놀이와 가곡 ‘보리밭’을 배우던 음악 시간 정도다. 한데 몇 해 전 4월, 고창 청보리밭 축제를 다녀오고부터 보리에 대한 애착이 생겼다. 바람이 불고 멈춤에 따라 물결치는 바다가 됐다가 침묵하는 호수가 되기도 하는 보리밭 사잇길을 걸어본 연후, 멥쌀에 구수한 찰보리를 섞어 밥을 짓고 보리차를 끓여 마셨다. 가루녹차 같은 보리순 분말을 찬물에 녹여 녹즙처럼 마시기도 했다. 입 안 가득 짙은 풀내를 머금고 있노라면 청보리밭에 이는 청신한 바람이 몸속으로 스미는 것 같았다. 고창의 옛 지명인 ‘모양현(牟陽縣)’의 ‘모’ 자는 보리를, ‘양’ 자는 태양을 뜻한다. 문자 그대로 해석하자면 ‘보리가 잘 자라는 고장’인 셈이다. 보리는 10월 말, 11월 초에 파종해 11월 말경 잔디 모양으로 자라며, 이후에는 성장을 멈추고 눈 속에서 봄을 기다린다. 겨울 추위를 이겨낸 보리는 이듬해 3월 초 무럭무럭 자라기 시작해 이삭이 패기 시작하는 4월 중순부터 누렇게 익기 전인 5월 중순 사이가 가장 예쁜 ‘청춘’이다. 이 시기의 보리를 ‘청보리’라 부르는 이유도 그 때문. 고창 학원농장에서 열리는 청보리밭 축제는 오는 4월 18일부터 5월 10일까지 진행되는데, 광활한 보리밭을 배경으로 보리밭 사잇길 걷기, 보리 음식 먹기를 비롯한 다양한 체험을 즐길 수 있다. 초록 물결이 끝도 없이 펼쳐진 학원농장은 봄날, 고창을 찾는 강력한 이유가 된다. 보리밭 사잇길을 걷노라면 유명한 노랫말처럼 ‘뉘 부르는 소리’에 걸음을 멈추게 될지도 모른다. ‘옛 생각’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대개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때문이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가곡 중 단연 상위권을 차지할 ‘보리밭’은 박화목의 시에 작곡가 윤용하가 곡을 붙였다. 한국전쟁 당시 종군기자였던 박화목은 부산 피난 시절 해군음악대 소속의 윤용하를 만났다. 고향이 같고 연배가 비슷해 쉽게 친해진 이들은 대폿집에서 술잔을 기울이다가 “이 참담하고 어지러운, 실망과 좌절의 시기에 국민들에게 따뜻함을 줄 수 있는 노래를 만들자”라며 의기투합했다고 한다. 박화목이 회고한 가곡 ‘보리밭’의 탄생 비화다. 1 고창읍성 내 대숲도 압권이다. 영화 ‘관상’의 촬영지이기도 한 맹종죽림 안에는 서늘한 바람이 고여 있다. 2 벚꽃이 지고 나면 철쭉으로 갈아입는 고창읍성. 이처럼 화려한 꽃단장은 봄의 마지막 인사다. 3 시문학관 인근에 위치한 안현돋음볕마을은 미당의 시를 모티브로 한 벽화로 꾸며져 있다. 4 서정주 시인의 고향인 부안면 선운리에 세워진 미당시문학관. 5 청보리밭 축제 기간에 만날 수 있는 유채밭은 언제나 좋은 사진 촬영 포인트다.윤용하는 음악을 전공하진 않았지만 음악적 재능을 타고난 인물이었다. 20세에 이미 오페라를 작곡했으며, 동요 ‘나뭇잎배’와 ‘노래는 즐겁다’ 등을 지었다. 하지만 배곯던 시절, 음악가로 산다는 건 쉽지 않은 길이었다. 가난과 고독을 술로 달래던 그는 자신의 노래가 그처럼 널리 사랑받는 것을 보지 못한 채 홀로 단칸방에서 세상을 떠났다. 꽃 피던 날은 짧았지만 꽃 진 뒤의 날들은 오래도록 푸르고 깊다 (도종환, ‘초록 꽃나무’ 중에서) 올해는 43세에 절명한 작곡가 윤용하의 50주기가 되는 해다. 순정한 예술가의 삶은 짧고 외로웠지만 그가 남긴 노래는 맥랑이 일렁이는 계절 내내 불리고 또 불려진다. 고창에 시심(詩心)을 지핀 건 8할이 미당이다 ‘모양성’이란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고창읍성은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조선 단종 원년(1453년)에 축조된 자연석 성곽으로 성벽의 높이는 4~6m, 길이는 1,700m에 이른다. 고창읍성에는 성 밟기와 관련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머리에 돌을 이고 성을 한 바퀴 돌면 다릿병이 낫고, 두 바퀴 돌면 무병장수하고, 세 바퀴 돌면 극락에 간다’라는 이야기다. 읍내 한가운데에 위치한 고창읍성은 고창 군민들에게 오래도록 사랑받아온 공원이다. 이곳 토박이들은 성곽길을 밟으며 자라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엄마 등에 업혀 오르던 길이자 소꿉동무와 달렸던 길이며, 첫사랑의 손을 잡고 걸었던 길이다. 그렇게 몇 바퀴를 돌고 나면 엄마가 그랬듯 내 아이를 업고 걷기도 할 것이다. 주택가 인근에 이와 같은 숲길, 꽃길이 있다는 건 축복이다. 각자의 대문을 열고 나와 아름다운 정원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함께 성곽길을 걸었다. 붉은 꽃길도 좋지만 성 안의 소나무 숲과 대숲도 장관이다. 영화 ‘관상’의 촬영지이기도 한 맹종죽림은 하늘에서 지상으로 내리꽂은 죽비인 것처럼 맑고 서늘한 기운이 짱짱하다. 선운사에 가기 전 미당시문학관을 찾았다. 미당 서정주 시인의 고향인 부안면 선운리에 세워진 문학관은 미당의 유품 5,000여 점과 함께 시인으로서 빛나는 삶은 물론 친일 행적까지 담아냈다. 누군가는 이곳에서 천생 시인을, 또 누군가는 오욕의 사내를 읽고 갈 터. ‘미당의 시로 그의 처신을 덮어버릴 수는 없다. 미당의 처신으로 그의 시를 폄하할 수도 없다’라는 김춘수 시인의 딜레마가 문학관 한쪽 벽면에서 시선을 잡아맨다. 미당의 ‘자화상’이라든가 ‘동천’ 같은 시를 처음 만났을 때의 두근거림을 잊지 못한다. 내 마음속 우리 임의 고운 눈썹을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섣달 날으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서정주, ‘동천(冬天)’) 6 만세루에서 바라본 선운사 대웅보전. 차를 즐길 수 있는 휴식공간이다. 7 꽃과 잎이 함께 돋은 꽃나무와 함께 봄날도 저물어간다. 8 낱낱의 꽃잎을 흩뿌리지 않고 꽃송이째 툭- 떨어지는 동백은 낙화의 비장미로 주목받는 꽃이다. 9 주변 풍광을 거울처럼 담아내는 도솔천 덕분에 물 밖 세상과 물 속 세상이 데칼코마니처럼 펼쳐진다. 차가운 겨울밤 눈썹 같은 초승달을 볼 때면 설화 같은 저 시가 먼저 생각났고, ‘나를 키운 건 8할이 바람이다’ 같은 시구엔 ‘바람’ 대신 ‘술’, ‘안개’, ‘잠’ 무엇을 넣어도 적절해 기분 따라 돌려쓰곤 했으니. 미당의 처신을 싫어하긴 쉽지만, 그의 시를 좋아하지 않기란 힘들다. 미당은 생애 마지막 10년 동안 무려 1,625개에 달하는 세계의 고봉 이름과 그 높이를 외웠다고 한다. 왜 매일같이 산 이름을 외우는가 물으면 “세계의 모든 산신령과 친구 되는 기분이 든다”라고 답했다는데. 노 시인이 택한 그 독특한 두뇌 운동은 세속적 욕망이건 시적 성취건 늘 높은 곳을 지향했던 미당의 삶을 보여주는 단편적인 일화가 아닐까 싶다. 문학관 인근에 위치한 안현돋음볕마을은 미당의 ‘국화 옆에서’를 모티브로 한 벽화로 꾸며져 있다. ‘젊음의 뒤안길에서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이’ 같은 마을 아주머니들의 푸근한 얼굴을 수놓은 담벼락이 정겹다. 꽃이 져도 같이 울지 못했다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바람 불어 설운 날에 말이에요 동백꽃을 보신 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후드득 지는 꽃 말이에요 특유의 너울거리는 창법으로 송창식이 부르는 ‘선운사’는 이렇게 시작된다. 낱낱의 꽃잎을 흩뿌리지 않고 꽃송이째 툭- 떨어지는 동백은 ‘나무에서 한 번, 땅 위에서 다시 한 번’ 피어난다는 헌사와 함께 낙화의 비장미로 주목받는 꽃이다. 이를 두고 ‘마치 백제가 무너지듯이, 절정에서 문득 추락해버린다’라는 김훈의 문장도 탁월하지만, 그럼에도 동백이 지는 모습을 묘사한 글귀 중 가슴에 맺히는 것은 ‘눈물처럼 후드득 지는 꽃’이다. 하여 송창식의 ‘선운사’를 들을 때면 행간의 여백마다 맞장구로 일관한 추임새를 넣곤 한다.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있지요. 바람 불어 설운 날에 말이에요- 그럼요. 동백꽃을 보신 적이 있나요- 봤지요. 눈물처럼 후드득 지는 꽃 말이에요- 그러게요…. 선운사에 갔던 날들을 돌아보니 스물일곱에서 서른둘, 서른아홉, 마흔으로 내 나이만 달라질 뿐 때마다 봄이었다. 조금 이르거나 늦은 4월 언저리, 매번 동백을 보러 갔건만 첫 번째 선운사행에선 동백을 보지 못했다. 일러도 너무 일러, 선운사 입구 사하촌에서 동백처럼 붉은 복분자주만 들입다 마셨다. 술잔에 핀 꽃으로도 충분하다고 취해 떠들었지만 술 깨고 돌아오는 길엔 영 시무룩했던 기억이다. 선운사는 동백을 보러 가는 절이다. 여자에게 버림받고 살얼음 낀 도랑물을 맨발로 건너와 ‘동백꽃 붉게 터지는 선운사 뒤안에 가서 엉엉 울었다’라는 사연(김용택 시인의 ‘선운사 동백꽃’)도, 아직 일러 피지 않은 동백꽃 대신 막걸리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만 듣다 간 사연(서정주 시인의 ‘선운사 동구’)도 이곳에는 차고 넘치리라. 일주문을 지나 선운사까지의 진입로는 도솔천을 따라 이어진다. 동백으로 이름난 선운사가 가을에도 사랑받는 이유는 이 천변에 도열한 단풍나무들 때문인데, 신록이 물오른 도솔천도 선경이긴 매한가지다. 주변 풍광을 거울처럼 담아내는 도솔천은 반영 사진을 찍는 포인트로도 유명하다. 물 밖 세상과 물 속 세상이 데칼코마니처럼 펼쳐진다. 경내로 들어서면 대웅전을 병풍처럼 감싼 동백나무 숲의 위용을 우러르게 된다. 평균 높이 6m에 달하는 500년 수령의 동백나무 군락 앞에 잠시 걸음을 멈추고 숨을 고른다. 기막힌 아름다움과 슬픔을 경험하는 순간의 공통점은 탄성과 탄식조차 삼키게 된다는 것. 동백나무 그늘 밑에 낭자한 젊고 붉은 주검 앞에 끽소리도 내지 못했다.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어야 하거늘. 꽃이 져도 너를 잊은 적 없어야 하거늘. 오래도록 같이 울지 못한, 너무 빨리 잊어버린 4월의 죄의식이, 눈물처럼 후드득 꽃이 지는 동백 숲에서 송연히 되살아났다 Tip 고창의 추천 명소 매산리 고인돌 유적 고창은 전남 화순, 경기도 강화와 더불어 국내 3대 고인돌 분포 지역으로 손꼽힌다. 특히 500여 기에 달하는 고창 매산리 산기슭의 고인돌 유적은 산 전체가 고인돌 군락지라 할 만큼 밀집도가 높고 탁자 모양, 바둑판 모양 등 다양한 형태를 선보여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기도 했다. 유적 탐방에 앞서 고인돌박물관부터 둘러보면 고인돌과 선사문화에 대한 이해를 도모할 수 있다. 전시 및 체험 공간과 아울러 입체영상관, 뮤지엄 숍 등을 운영하는 박물관은 고인돌 유적까지 탐방 열차인 ‘모로모로 열차’를 운행한다. <■글 / 고우정(여행작가) ■사진 / 현일수(리빙룸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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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금 전북여성일자리센터장의 경력 단절 여성을 위한 조언
2014. 12. 29 14:26 화제
20대에 취업 전선에 뛰어들어 40대 중반이 되면 커리어 면에서 정점을 찍는다. 이론상으로는 분명 그렇다. 하지만 결혼 뒤 임신, 출산, 육아, 자녀 교육, 가족 돌봄으로 직장을 그만두는 우리나라 상당수의 3040 여성들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는 얘기다. 그리고 그들은 ‘경력 단절 여성’이라는 사회적 이름을 얻는다. 천신만고 끝에 재취업 지난해 11월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15~54세 기혼 여성 중 직장을 그만둔 여성이 213만9천 명으로 전체 기혼 여성의 22.4%를 차지했다. 직장을 그만두는 사유는 결혼(82만2천 명), 육아(62만7천 명), 임신·출산(43만6천 명), 가족 돌봄(16만2천 명) 순으로 나타났다. 중학교 교사, 소비자 운동가로 활동하다가 2011년 전북여성일자리센터장으로 부임한 김보금씨(55)는 경력 단절 여성들의 재취업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우리 사회의 경제적 여건이 ‘맞일’을 하지 않으면 자녀들 교육비와 생활비 감당이 어려운 환경으로 경력 단절 여성들의 취업 요구가 높아진 데 따른 것이다. 김 센터장은 전북은 대기업보다는 중소형 업체가 많은 지역으로 청년층보다는 ‘1인 다기능’이 가능한 주부들이 취업하기 유리한 틈새가 있다는 점을 간파했다. 덕분에 지난 2013년 한 해 동안 전북여성일자리센터를 통해 4천433명의 여성이 취업에 성공했다. “아이도 잘 키우고 싶고 일도 하고 싶고 돈도 벌고 싶다는 주부들이 많지만, 일과 가정의 양립이 어렵다 보니 갈등도 있어요. 또 취업은 하고 싶은데 자격증 등 스펙에서 밀리거나 자신감이 없다는 분들도 많고요.” 김 센터장에게 취업 연계를 의뢰하는 여성들의 연령대는 40대가 가장 많다. 30대에 육아에 매진했던 그녀들은 이제 빠듯한 생활비와 아이들의 교육비로 인해 다시 바깥일이 필요해진 것이다. ‘잘할 수 있을까’, ‘그냥 남편 월급으로 어떻게든 살아볼까’ 하는 갈등을 딛고 취업에 성공해도 직원 간의 소통, 가사 부담 등의 일명 ‘경(력)단(절) 사춘기’를 겪는 탓에 취업 1년 뒤 남는 인원이 100명 중 31명밖에 안 되는 것이 현실. 그만큼 어려운 것이 ‘경력 재생’이다. 그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를 들려주기 위해 김 센터장은 최근 경력 단절 여성 13인의 재취업 성공 스토리를 담은 「엄마, 어디 가?」를 펴냈다. 그녀는 이 책에 소개된 이들은 ‘천신만고 끝에 취업에 성공한 사례’라고 일컬었다. 나이, 경력, 신체적·정서적 장벽에 부딪혀 주저앉은 여성들이 다시 일어서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만들었다는 이 책이 주는 공감의 힘이 크다. “13명 모두 대단한 여성들이에요. 그중 권효정씨는 27세에 육종암 판정을 받고 치료했는데 다시 재발하는 아픔을 겪었어요. 그 과정에서도 3명의 자녀를 낳은 그녀는 ‘딸아이에게 당당한 엄마가 되고 싶다’라며 저희 센터의 2개월 무료 맞춤형 교육을 받았고 연구소 사무직 면접을 봤어요. 면접 현장에서도 당당히 환자였음을 알리고 일자리의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어필해 여러 명의 후보를 제치고 합격했죠. 연구소 대표는 권효정씨의 당찬 일 처리에 칭찬을 아끼지 않고 있죠.” 김 센터장은 “재취업에 도전한 그녀들이 흘린 눈물의 질량을 어떻게 책에 다 담아내겠는가 싶기도 했다”라는 고백에 이어 건설 현장에서 남편을 잃고 4남매를 키우기 위해 재취업 전선에 뛰어든 유승화씨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먹먹하다고 했다. 13명의 주인공들이 남에게 드러내고 싶지 않을 수도 있는 이야기를 선뜻 이 책을 통해 공개하기로 마음먹은 데에는 취업을 고민하고 있는 수많은 여성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깊은 마음 씀씀이가 큰 몫을 했다. 자신의 상태 점검이 우선 “아줌마라고, 40세가 넘었다고, 제조업 일자리도 구하기 어려운데 무슨 사무직이냐고 고개를 내젓는 기업체 대표는 물론, ‘몇 푼이나 번다고 이 고생이냐’라고 볼멘소리를 하는 남편들의 항의도 재취업을 준비하는 여성들을 힘들게 합니다. 경력 단절 여성들의 재취업을 위한 기업의 배려는 물론 일과 가정이 양립될 수 있도록 가족 구성원의 적극적인 지원이 절실합니다. 가사 노동에 대한 부담도 함께 나누고 무엇보다 엄마의 노동의 가치를 인정해야겠죠. 아울러 어린이집 확충, 초등학교 돌봄 교실 확대 등 사회적인 관심과 지원도 늘어야 하고요.” 취업을 마음먹었지만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다는 여성들을 위해 김 센터장은 가까운 지역의 여성새로일하기센터를 방문하길 권했다. 그럼 취업의 반절은 성공한 거나 마찬가지라고. 경력 단절 여성 중 처음 취업에 나서는 여성들의 경우 두려움이 앞서 행동에 옮기지 않고 갈등만 하는 경우가 많다. “재취업을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자신의 상태를 점검해보는 거예요. 오랫동안 직장을 떠나 있었던 점을 감안해 자신의 성격과 직업의 공통점을 찾아봐야 합니다. 이를 위해 구직 상담 후 5일간의 집단 상담 프로그램 참여를 적극 추천해요. 취업을 희망하는 여성이면 누구나 무료로 받을 수 있고 자신의 성격과 직업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거든요. 특히 집단 상담 프로그램을 통해 경력 단절 여성이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과 만나 교류함으로써 위로를 받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어요.” 「엄마, 어디 가?」에 소개된 정연경씨의 경우 잘 운영하던 의류 대리점이 실패한 이후 재취업에 나섰으나 40대 후반이라는 나이에 발목이 잡혔던 케이스. 늦었다고 포기할 법한 나이에 그녀는 당장의 수입보다 투자를 택했다. 고객상담사 교육을 받은 전략은 성공했다. 고용노동부의 내일배움카드를 활용해 교육비의 80%를 지원받은 그녀는 고객만족(CS) 강사, CS 리더스 강사, 병원 코디네이터, 성폭력 예방 강사, 정리수납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현재 기업체와 청소년대학직업 캠프 등의 강사로 부지런히 활동하고 있다. 김 센터장 역시 재취업을 위한 각종 교육 프로그램을 활용할 것을 적극 권한다. 요즘 인기 드라마 ‘전설의 마녀’에는 제과제빵 교육을 받은 주인공이 그 능력을 살려 사회인으로서 기틀을 다지는 이야기가 나온다. 제과제빵이나 바리스타와 같은 요리 분야는 나이나 경력, 학력의 구애를 덜 받고 직업훈련을 통해 재진입이 가능해 눈여겨볼 만하다. 이 밖에 고용노동부와 한국고용정보원이 경력 단절 여성의 재취업이 용이한 직업으로 선정한 직종으로는 교육 관련 분야의 학습지도사(방과 후 교사, 직업진로체험지도사, 독서지도사 등), 사무직종 분야의 경리회계사무원(세무사회에서 추진하는 전산회계 2급 자격증 취득이 필수), 보건복지 분야의 요양보호사(요양보호사 1급), 병원 코디네이터(민간자격증), 상담 분야의 직업상담사(국가자격증), 상담심리사(민간자격증), 다문화방문교육지도사(민간자격증) 등을 꼽을 수 있다. 그 외에 미용, 고객 상담, 제조·가공·유통까지 품질관리를 책임지는 품질관리원 분야가 있다. 김보금 센터장이 꼽은 재취업을 계획하는 경력 단절 여성 십계명 1 자신이 희망하는 직업이 요구하는 능력을 얼마나 갖췄는지 객관적 진단 도구를 통해 확인할 것. 2 직업의식 및 자신감 회복을 위해 관내 취업 알선 기관에서 운영하는 집단 상담 프로그램에 참여해볼 것. 3 경력 단절 여성 중 기초부터 직업 역량을 키워야 하는 경우 직업훈련비를 지원하는 내일배움카드제 등을 이용해 훈련을 받거나, 살고 있는 지역의 관련 기관을 이용할 것. 4 정확한 직업 정보 제공을 받기 위해 워크넷, e-새일시스템에 들어가 구직 신청을 할 것. 5 급변하는 직업 동향을 따라잡기 위해 온·오프라인 강의를 통해 현재의 직업 흐름을 알아볼 것. 6 일과 가정 양립을 위해 현재 자신이 가진 강점과 약점, 기회와 위협적인 요소를 파악할 것. 7 국가자격증이나 민간자격증 취득을 계획할 때는 자격증 취득이 주는 장점과 단점을 구체적으로 파악한 뒤 도전할 것. 8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방향이 불분명한 경우에는 자원봉사센터의 프로그램이나 직업 체험을 통해 자신에게 무엇이 맞는지를 파악한 뒤 교육을 받을 것인지, 취업을 할 것인지를 결정할 것. 9 학력, 나이, 자격증, 경력 등에 비춰 자신이 현재 어떤 직종에 취업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알아볼 것. 10 입사할 회사를 선택할 때는 업체의 정확한 정보를 파악한 뒤 지원할 것. <■글 / 장회정 기자 ■사진 제공 / 김보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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