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총 195 건 검색)
- 전북현대 김진수, 전북대병원 어린이병원에 500만원 기부
- 2024. 11. 20 16:20인물
- ... 기부하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전북대병원 제공 전북현대모터스FC(전북현대) 김진수가 전북대학교 어린이병원에 500만원을 기부했다. 전북대학교병원은 전북현대 김진수가 전북대병원을 찾아...
- 김진수어린이병원전북현대전북대
- “고립 청년 돕자”···전북대, ‘라면 나눔’ 나선다
- 2024. 09. 13 10:39사회
- ... 제공 전북대학교가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고립 청년 지원을 위해 라면 나눔 캠페인에 나선다. 전북대는 전주시가 사회복지관들과 함께 진행 중인 ‘전주함께라면’ 사업에 동참한다고 13일 밝혔다. 이...
- 전북대전주위기가구발굴함께라면
- 전북대 학생·일반인 32만명 개인정보 털렸다
- 2024. 08. 01 14:56사회
- ... 운영” 전북대에서 학생과 졸업생, 평생교육원 회원 등 32만 2425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전북대는 1일 “지난달 28일 오전 3시와 오후 10시, 오후 11시 20분 등 세 차례에 걸쳐...
- 개인정보유출전북대해킹
- 충북대·전북대 내년도 의대 증원분 50%만, 울산대는 75% 늘린다
- 2024. 04. 29 19:36사회
- ... 압살했다. 앞으로 어떻게 싸워나갈지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 등과 상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북대 역시 이날 정원조정위원회를 열어 2025학년도 의대 신입생 모집인원을 정부가 발표한 증원 규모의 50...
스포츠경향(총 10 건 검색)
- 제36대 한국방송학회장 전범수 한양대 교수 취임…차기 학회장 최용준 전북대 교수 선출
- 2023. 11. 13 20:45 연예
- 사진 왼쪽부터 한국방송학회 제36대 신임 학회장 전범수 한양대 교수, 차기 학회장 최용준 전북대 교수. 한국방송학회 제36대 신임 학회장으로 전범수 한양대 교수가 취임했다. 임기는 내년 11월까지 1년이다. 전범수 신임 학회장은 한양대 신문방송학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뉴욕주립대(버팔로) 커뮤니케이션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문화체육관광부 여론집중도조사위원회 위원, 한양대 언론정보대학 학장 등을 역임했다. 이후 한국방송학회 한국방송학보 편집위원장, 미래방송학아젠다특별위원회 위원장 등을 맡았고 현재 방송통신위원회 미디어다양성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전범수 학회장은 “미디어와 콘텐츠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교육적, 학술적,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며 성장해 온 한국방송학회의 전문성을 강화하는 데 집중하겠다”라며 “미디어 콘텐츠 쟁점과 정책 현안에 대한 학술적 대응 강화, ICT 기반 미디어 기술 중심의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겠다”라고 밝혔다. 더불어 최용준 전북대 교수가 차기 한국방송학회장에 선출됐다. 중앙대 신문방송학 학사를 마치고 미국 마?대에서 방송학 석사, 남미시시피주립대에서 언론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한국콘텐츠진흥원(옛 방송영상산업진흥원) 책임연구원, 방송통신위원회 산하 지역방송발전위원회 위원, 방송균형발전연대 자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최용준 차기 학회장은 “최근 다양한 분야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발전하고 있는 가운데 방송학의 정체성도 도전을 받고 있다”라며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방송학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나아가 미디어 환경의 변화를 주도하는 학회가 되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밝혔다.
- [부고] 최용준(전북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씨 빙부상
- 2023. 07. 30 10:52 생활
- ▲박창한씨 별세, 박성은·성진·성아·지현씨 부친상, 정재형·최용준(전북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김영민·김욱진씨 빙부상= 연세대학교 신촌세브란스 장례식장 13호실, 발인 31일 오후 1시20분, 장지 서울시립승화원/돈암동천주교묘지. ☎02-2227-7500
- 부고
- 한국장기조직기증원·전북대학교병원뇌사관리업무협약 체결
- 2022. 06. 17 09:28 생활
- 한국장기조직기증원 전북대학교병원 관리업무 협약 사진(좌측 유희철 원장, 우측 문인성 원장)한국장기조직기증원(원장문인성)과 전북대학교병원(원장 유희철)이 6월 14일 생명나눔 문화 조성 및장기기증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을체결했다고 밝혔다. 이날 전북대학교병원 본관 3층 온고을 홀에서 개최된 협약식에는 문인성 한국장기조직기증원 원장, 유희철 전북대학교병원 원장 등 주요 관계자들이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양 기관은 이번뇌사관리업무 협약으로 뇌사 추정자 발생시 신속한 연락 체계를 구축하여 뇌사판정 및 효율적인 업무 관리를 수행하기로했다. 또한, 장기기증 인식 개선과뇌사추정자 발굴 및 관리에서 상호 협력프로세스를 구축해 장기기증 활성화에노력하기로 하였다. 전북대학교병원은 전북도민의 건강증진과 의학발전을 선도해 온 지역거점병원으로 지역민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사람중심의 의료 서비스를 펼치고 있다. 또한, 전북대학교병원은 1998년 5월 첫 번째 뇌사자관리를 시작으로 2005년 7월 뇌사판정 대상자관리 전문기관 지정을 받은 후 더욱 적극적인 기증자 발굴에 힘써왔다. 그 결과 작년 9월, 장기기증 활성화를 도모하고 생명나눔 문화확산에 기여한 공로로 보건복지부장관표창을 받았다. 유희철 전북대학교병원장은 “이번 협약을 통해서지역 최고의 이식 의료기관으로 역할을 다하고 지역사회 환자들에게 수준 높은 의료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말했다. 문인성 한국 장기조직기증원장은 “뇌사자 장기기증은 삶의 끝에서 다른 누군가를 살리는 숭고한 일이다”라며 “전북대학교병원과 협력을 통해 장기기증 인식 개선과 생명나눔 문화확산을 위해 노력해 나가겠다”고밝혔다.
- 한국장기조직기증원·전북대학교병원뇌사관리업무협약 체결
- 대선 선거방송심의위원장에 권혁남 전북대 명예교수
- 2021. 09. 01 18:02 연예
-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제20대 대통령선거 선거방송심의위원회가 1일 첫 회의에서 호선 방식으로 권혁남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를 위원장으로, 박동순 한국YWCA연합회 국장을 부위원장으로 선출했다고 밝혔다. 선거방송심의위는 이날 회의에서 공정한 선거방송을 위해 준수해야 할 내용을 담은 안내문도 의결·공표했다. 주요 내용은 ▲ 선거여론조사 보도기준 준수 ▲ 후보자의 방송 출연제한 ▲ 선거보도의 공정성 및 객관성 유지 등으로, ‘선거방송 심의에 관한 특별규정’과 기존 심의 사례 등을 담았다. 회의에 앞서 방통심의위는 선거방송심의위 위원 위촉식을 열었다. 방통심의위는 지난달 30일 전체회의에서 선거방송심의위 위원 9명을 위촉했으며, 임기는 이날부터 내년 4월 8일까지다. 이들 위원은 정일윤 전 진주MBC 대표이사 사장, 권혁남 전 한국언론학회장, 김일곤 경남대 경영학부 초빙교수, 박수택 전 SBS기자, 정영식 전 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 사무처장, 구본진 법무법인 로플렉스 대표변호사, 김언경 미디어인권연구소 뭉클 소장, 이나연 성신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박동순 한국YWCA연합회 국장 등이다.
주간경향(총 1 건 검색)
- [포커스]‘최초의 논객’ 강준만 전북대 교수 “양극화된 담론판에서 치어리더 같은 존재가 논객들”(2015. 05. 26 19:52)
- 2015. 05. 26 19:52 사회
- “우리 모두 전례에 집착하지 맙시다. 정권교체도 어차피 전례가 없었던 일입니다.” 1998년 4월. 월간 이 창간됐다. 주변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전례가 없어서였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창간사에서 ‘전례에 너무 집착하지 말자’며 이러한 우려들을 가볍게 물리친다. 은 지식권력의 교체, 언론권력의 교체를 전면에 내세웠다. 이를 위해 언론개혁 세력의 ‘조직화’와 ‘시민참여’를 강조했다. 세 가지 목표가 있었다. 언론의 오만과 방종을 응징하고, 모든 종류의 차별에 대해 투쟁하며, 성역과 금기가 없는 실명 비판의 문화를 주류 문화로 정착시키겠다는 목표였다. 전선은 선명했고, 싸움의 속도는 빨랐다. 그를 시작으로 논리의 언어, 계몽의 언어가 만개했다. 노정태 칼럼니스트는 그의 책 에서 강준만 교수를 맨 앞자리에 둔다. 책은 ‘태초에 강준만이 있었다’로 시작한다. 유시민, 진중권, 김규항, 홍세화, 고종석 등은 그와 ‘논객시대’를 만들었던 또 다른 이름들이다. 강준만 교수는 그 시기의 ‘기원’이었다. 그러나 17년이 지난 지금, 그는 그 기원에서 뚝 떨어져 다른 무늬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그로 인해 촉발됐던 ‘안티조선 운동’의 유효기간이 지났다고 말하고, 그가 주류 문화로 자리매김하려 했던 실명 비판의 생산성에 물음표를 찍는다. 개혁을 추동했던 ‘조직화’는 파편화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고 진단했고, ‘참여’가 동반하게 되는 ‘순수주의’를 경계했다. 그는 변한 것일까. 17년 전, 강준만 교수의 전선은 한국 사회의 극우 이데올로기를 향해 있었다. 종으로 그었던 그때의 전선은 지금은 횡으로 가로놓였다. ‘진영논리에 투항하지 않겠다’는 그는 전보다 온도가 낮아진 언어로 진영논리로 포획되지 않고 해결되지도 않는 한국 사회의 구조와 고정관념과 싸운다. 그래서 오래 걸릴 것이라고 말하며 그 구조 속에 다수가 매몰돼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한다. 그는 ‘진영논리’라는 함수가 만들어낸 뻔한 해답을 ‘너무 쉽잖아’라고 일축하며, ‘변했다’는 일각의 비판에 대해서는 ‘일관성은 상상력이 없는 자들의 마지막 피난처’라는 오스카 와일드의 말을 인용해 반박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이 ‘안티조선’ 운동의 시작점이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조선일보’의 문제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나한테 달라졌다고 하는데, 우리는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를 거쳤다. 상황이 바뀌면 달라지는 게 옳다. 사람들이 말하는 일관성이라는 것이 징그럽다. 박정희 정권, 전두환 정권 때 복무했던 사람들이 일관성 있으려면 지금 어떻게 행동해야 하나. 물론 이해관계에 따라 인간관계를 뒤집고 변하는 것은 혐오스럽고 개탄스럽다. 이해관계에 좌우되지 않는 맥락에서 일관성은 높게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엄청난 사회적·환경적 변화가 일어났는데 그때 모델을 그대로 가져가야 한다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오스카 와일드는 일관성은 ‘상상력 없는 사람들의 마지막 피난처’라고 말했다. 얼마 전에 어떤 분이 내게 안티조선 운동을 왜 안 하느냐는 항의메일을 보냈다. 난 생각이 다르다. 그만큼 했는데 안 됐으면 안 됐다고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 안티조선 운동은 보수신문을 좋아하는 독자들과의 싸움이다. 가장 정점에 올랐을 때도 이들이 신문을 바꿀 생각이 없다는 게 충분히 입증됐다. 물론 그분들의 싸움은 존중한다. 순수하신 분들이다. 그러나 정당 지지자들도 그렇고 가끔 순수가 사람 잡는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순수하기 때문에 계산하거나 바라는 것도 없다. 그렇지만 외곬이 많아 양보와 타협이 없다. 참여라는 미명 하에 자기 잣대로 세상을 바라보는 분들이 주로 남게 된다. 안티조선 운동 하다가 더 골병든 게 진보언론이다. 안티조선 운동의 심리가 뭐냐, 다른 신문들을 향해서도 조금이라도 마음에 안 들면 그것을 문제삼아 거부하겠다는 심리다. 유시민씨가 대표적이다. 노무현 대통령 ‘관장사’ 제목 때문에 한겨레 절독 선언을 하지 않았나. 이것이 네거티브(Negative) 운동이 갖는 가장 큰 문제다. 그래서 네거티브 운동은 길게 가서는 안 된다. 대의와 명분을 알리고 끝내든가, 포지티브(Positive)와 병행해서 가야 한다.” 을 필두로 활발했던 논객들의 논쟁이 이제는 사라졌다는 생각이다. “유의미한 논쟁들이 모두 끝나서 관두자라기보다는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난 달라져야 한다고 본다. 내가 온몸으로 겪고 나 자신을 통해 배운 게 있다. 나는 양 진영이 갈라진 구도에서 열화와 같은 뜨거운 지지를 받기도 했다.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출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증오나 공분에 코드가 맞으면 좋다고 한다. 그러다 양비·양시론으로 이야기하면 안 먹힌다. 나는 2003년 민주당 분당 때 분당을 반대했다. 그때 사람들의 이성에 대해 절망했다. 이렇게까지 미쳐 돌아갈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로 집단지성을 못 믿겠더라. 민주당 분당 이후 야당의 행보는 내가 말한 대로 됐지만, 그것에 대해 아무도 인정하지 않고 사과하지 않았다. 그때 잘못된 주장을 한 사람은 여전히 계속 큰소리를 친다. 그 이후로는 논객이라는 이름이 진영의 치어리더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진영논리에 따라 자신의 관점을 강화시켜주는 사람일 뿐이다. 정해진 이분법 구도에서 하나로 확실하게 편을 들었을 때 사람들은 열화와 같은 지지를 보내지만, 이게 아닌 것 같다고 말하면 영 호응이 없다. 진보와 보수로 양극화된 우리의 담론판에서 논객은 치어리더가 맞다고 생각한다. 운이 좋았기 때문에 이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또 하나는 미디어 결정론적인 생각인데, 이전에 논객이라는 것이 나름 부작용은 있었을망정 교통정리와 합리화 기능을 했다고 본다. 그런데 다매체 시대가 되니까 대중이 다양화·파편화됐다. 논객은 일종의 공통분모가 있을 때 가능했는데 인터넷 시대에는 공통분모를 찾아내 이야기하는 것은 상품성이 떨어진다.” 논객을 ‘치어리더’라고 표현한 것은 냉소적으로 들린다. 민주당 분당사태 이후 ‘냉소’가 생긴 것인가. “냉소보다는 쿨해진 것이다. 냉소가 좋은 의미도 있다. 너그러워진다는 점에서 그렇다. 인간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사람이 이 정도구나라는 체념 같은 게 생긴다. 어떻게 보면 인간에 대한 기대수준을 높인 상태에서 정치를 보는 것보다 인간이라는 동물의 한계를 알고 정치에 대해 기대수준을 낮출 때 정치를 현실적으로 바꿀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과거에는 정치가 아니면 도대체 무엇이 바꿀 수 있을 것인가라는 생각을 했는데, 얼마 전부터는 정치의 영역을 줄여나가고 중립지대의 영역을 넓히자고 말한다. 어떻게든 저걸 잡아야 한다는 생사의 문제로 정치를 보게 하지 말자는 것이다. 예컨대 방송을 보면 정부가 입맛에 맞는 사람을 공영방송 사장으로 앉힌다. 기관장도 마찬가지다. 정치가 지배하던 방송영역이나 기관장 공모제에서 정치의 영역을 축소한다. 중립적으로 운영하는 범위를 넓혀나가면 정치가 죽고사는 올인하는 게임에서 벗어날 수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재·보선에서 패배하자 조국 교수가 기득권자들은 친노건 비노건 물러서야 한다는 혁신안을 주장했다. 나는 그건 아니라고 본다. 결국은 70년 내내 반복되어온 밥그릇 싸움인데, 그렇게 되면 세대 간 밥그릇 싸움이 될 뿐이다. 여기는 사람이 낡았고, 저기는 신선하다? 내가 볼 때는 젊은 사람들도 더 열렬하게 이분법으로 나눠져서 싸운다. 그냥 물갈이는 답이 아니다. 이를 둘러싼 전반적인 우리 행태의 문제를 봐야 한다. 그래서 호흡을 좀 길게 갖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당장의 정치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평하는 것에 대해서는 흥미를 잃은 것도 이 때문이다.” 진보·보수의 이분법 구도를 벗어나야 한다는 뜻인가. “쓸 계획은 없지만, 진보·보수 사기론을 주장하는 책을 쓰고 싶었다. 지난 대선도 그랬지만, 진보와 보수의 구분이 갈수록 약해진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부도는 냈어도 후보 때 치고 나왔던 공약이 경제민주화와 복지였다. 어디가 보수고 어디가 진보인지 알 수가 없었다. 리처드 세넷이 ‘플랫폼 정치’라는 말을 했다. ‘왜 갈수록 정당들 간 싸움이 격화되는가’라는 물음을 던졌는데, 답은 이슈가 차별화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당과 저 당의 정책에 큰 차이가 있으면 정당이 격하게 안 싸워도 된다. 유권자들이 각자 자기가 좋아하는 대로 표를 찍으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차이가 없으니까 사소한 것 가지고도 싸우게 되는 것이다. 한국 정치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한국 사회는 당면한 문제들이 절박하다. 그래서 진보·보수의 구분이 더 의미가 없어졌다. 예컨대 취업문제를 해결하자고 하는 데에 진보가 어디 있고 보수가 어디 있나. 오히려 진보가 그만의 오리지널한 방안을 고수하느라고 현실적 방안을 외면할 가능성도 높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보수가 더 진보적일 수 있다.” / 강윤중 기자 진영논리, 특히 진보의 그것을 많이 비판해 왔다. 진보의 진영논리 문제점은 무엇인가. “진영의 진영에 의한 진영을 위한 게 제1 목표가 됐다. 책임윤리가 없다. 피터팬 신드롬이다. 애라는 것이다. 당위만을 말한다. 당위에 대해서 누가 시비를 거나. 진보언론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삼성이 임금동결했다. 진보언론에서는 다 비판했다. 솔직히 어이없었다. 일단 노동자는 우리 편이라고 시작하는 사고방식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비정규직 문제와 대기업·중소기업 간 격차문제가 상층에 속하는 노동자들의 수준을 계속 유지하면서 해결될 수 있을 거라고 보나? 정말로 재벌들은 악당이고 노동자는 다 우리 편인가? 우리가 정직해져야 하지 않나? 그런 식으로는 안 된다. 뭐가 진보지? 노동자 간 격차를 안 줄이고 자본에서 모든 게 나온다는 그게 진보인가? 새정치민주연합 노동 전문 의원들 인터뷰를 보면 그런 생각이 들었다. 총량을 늘려야 한다는데 그게 어느 세월에 가능한가. 그거는 천당 가면 평등해지니까 천당 갈 때까지 참으라는 말과 똑같다. 현세에서 줄여보자는 말이다.” 진보가 현실적인 해법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것인가. “예컨대 진보는 인재·리더십에 대해서 가치를 두지 않는다. 지역에서 하다못해 사회적 기업을 하나 하더라도 열정적이고 창의적인 인재는 필요하다. 그러나 모두 평등하다는 말로 인재나 리더십의 중요성을 간과해 버린다. 나는 자기계발서 비판에 대해서도 이견이 있다. 자기계발서와 거시적인 것을 어떻게 연결시키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진보에서 왜 그렇게 를 쓴 김난도 교수를 욕하는지 모르겠다. 김난도 교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것 그 자체가 문제다. 300만부 팔린 게 사회문제이지 그걸 왜 그 사람 책임으로 돌리나. 어떤 사람에게는 그 책이 좋다. 진보는 자기계발을 책임의 개인화로 비난한다. 맞다. 사회적 차원에서 우리의 기본적 토대나 발상이 잘못됐구나라는 깨우침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빚내서 등록금 내고 대학 다닌 졸업생은 취업해야 한다. 자기계발해야 한다. 그것과 진보에서 가난하긴 하지만 사회 진출해서 먹고살 길이 있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이 무슨 자기계발 따위냐고 말하는 건 무슨 수작인가.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사람이 있고 개인 차원에서 그럴 수밖에 없는 사람이 있다. 그 흐름과 거시적인 것을 접목시켜 고민해야 한다. 진보하는 사람들은 자기계발 산업의 농간에 왜 휘둘리냐고 욕한다. 욕하는 것은 너무 쉽다. 나도 자기계발서 다 읽어봤다. 개인 차원에서 도움이 된다. 진보적 지식인들이 사람들을 파편화시키고 이기심에 몰두하게 한다고 비난하는 자기계발서가 누군가에게는 성경 이상의 구세주가 된다. 진보에게 자기계발서 예찬하라는 게 아니다. 거기서 더 나아가 고민을 해줘야 한다. 너무 집단에만 방점을 찍는다. 개인과 집단이 동시에 가야 한다. 내가 기가 막히게 본 게 마쉬멜로우 시리즈다. 개인의 자제력을 키워 출세하자는 마쉬멜로우 시리즈 3권에서는 기부와 사랑 이야기가 나온다. 빌 게이츠가 모델이다. 약육강식의 논리에 따라 돈을 벌어 성공한 다음 이웃에 베풀라고 한다. 개인적 탐욕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이 사회에서 이렇게 머리를 쓴다. 그런데 왜 그 반대의 머리는 이 쪽에서 왜 안 나오나. 김난도 교수를 맹비난하는 이런 상황에서 그렇게 쓸 만한 역량을 가진 분들도 오해받고 그럴까봐 못 쓰는 것이다.” 에서 메시지가 아닌 메신저를 강조했다. 끊임없이 진보의 태도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 같다. “메시지만이 중요하던 시절은 군사독재 시절이다. 법에 의하지 않고 중앙정보부에서 고문받던 시절인데, 그 시절에 어떻게 싸가지를 지키나.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 현재 야권을 보면 사울 알린스키가 한 말이 떠오른다. 알린스키는 미국의 빈민운동가로 오바마 대통령의 사상적 대부로 알려져 있다. 알린스키가 1960년대 미국에서 빈민운동을 하면서 신좌파 대학생 지도자그룹과 사이가 안 좋았다. 알린스키는 이들 그룹이 하는 것은 혁명(Revoulution)이 아니라 존재증명(Revealation)이라고 비판했다. 진보적 어젠다를 실천하는 데,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힘을 쓰기보다는 자신들의 존재증명에 급급하다는 것이다. 빈민의 관점에서 이들의 삶을 개선시키는 데 관심이 없고, 원칙을 지키고 양보할 수 없다는 태도만 고수한다. 타협은 변절이고 배신인 셈이다. 우리 식으로 보면 ‘선명야당’ 같은 거다. 지금 야당이 하는 것을 보면 다 그런 거다. 어떤 이슈가 나오면 상대를 악마화시키고 저 쪽의 정당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식이다. 10대 0 식으로 나는 전부 옳고 저 쪽은 틀렸다는 것이다. 그런 게 어디 있나. 적어도 7대 3, 6대 4로 봐야 한다. 아무리 싫어도 3~4는 인정해 주자는 것이다. 진보언론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 경남에서 무상급식 논쟁이 벌어졌을 때 진보언론의 기사는 ‘아이들 밥을 빼앗는 나쁜 어른들’ 식의 기사가 많았다. 그렇게 접근할 문제가 아니다. 경남에서 무상급식 논쟁이 벌어지고 홍준표 도지사에 대한 여론이 오히려 좋아진 측면이 있었다. 그때 돋보였던 기사는 보편적 복지가 선별 복지보다 경제적으로 이득이라는 논리를 편 것이었는데, 그런 접근이 설득력이 있다.” 진영논리를 넘어 한국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나. “우리가 생활에서 진리처럼 갖고 있는 상식에 대해서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예컨대 지방에서 오래 살다보니까 개천에서 용 났다면 좋아하는 분위기가 있다. 그럼 개천에 남은 사람들은 뭐냐. 개천에서 난 용이 다시 개천으로 돌아오지는 않는다. 개천에서 난 용을 칭찬하는 이면에는 승자 독식주의가 있다. 미꾸라지들을 위한 배려는 없다. 지난 70년간 한국 사회를 이 모델이 지배했다. 우리 국민 모두가 어떻게든 내 자식 신분상승시켜 계층이동해야겠다는 생각만 했다. 이미 부작용이 나타났다. 자살률 최고, 출산율 최하다. 이 모델은 끝장났다는 것이다. 이 이상 좋은 지표가 어디 있나. 그럼 모델을 바꿔야 한다. 바꾸는 데 오래 걸린다고 해도 방향이라도 맞게 가야 한다. 그런데 보수건 진보건 개천에서 용이 나야 한다고 말한다. 근본적으로 개천에서 용 나는 모델을 바꿔야겠다고 하면 저절로 달라질 수 있는 게 많다. 당장 지방자치단체에서 서울에 지어놓은 학숙부터 철거해 버렸으면 좋겠다. 이 말 때문에 지역에서 욕 많이 먹었다. 서울에, 명문대에 가서 인재들이 돌아오냐는 말이다. 안 돌아온다. 그냥 남은 사람들만 열패감을 느낀다. 열패감 때문에 여기서 뭘 해보려 하기보다는 밤낮없이 구조 타령만 한다. 학습된 무력감이다. 학숙에 들어가는 돈이 중요한 게 아니다. 학숙이 말하는 정서체계가 있다. 지방에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따가운 시선이 있다. 졸업생이 지방대 차별하는 건 서울이 아니라 지방이라고 말한다. 한국 사회에서 존경받는 지식인들 담론을 분석해서 그들의 글에서 지방이 어떻게 투영되고 있나 분석해 보고 싶다. ” 과거에 이성이나 논리를 강조했다면, 이제는 심리나 태도에 집중하는 것 같다. “개인 경험의 소산인 것 같다. 당파적 세몰이에서 벗어나는 게 필요하다. 그런데 계몽이라는 것이 끝났느냐는 데 대해서는 아직 의문이다. 얼마 전 신영복 선생이 인터뷰에서 누가 누굴 가르치는 계몽의 시대는 끝났다는 요지의 말씀을 하셨는데, 계몽의 죽음에는 동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계몽의 연장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엔터테인먼트 요소를 가진 계몽이 등장한 것처럼 계몽의 형식이 바뀌었을 뿐이다. 계몽 없는 세상이 가능할까. 우회적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지금도 계몽이 이루어지고 있다. 책을 쓰면서 갈수록 내 생각을 강하게 주장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 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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