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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년차 ‘소울리스좌’는 왜 정규직이 아닐까(2022. 06. 03 11:23)
- 2022. 06. 03 11:23 사회
- ㆍ재입사만 3번으로 근무기간 공백… 정규직 회피 꼼수 “머리! 젖습니다. 옷도! 젖습니다. 신발! 젖습니다. 양말까지 젖습니다. 옷, 머리, 신발, 양말 다 다 젖습니다. 물에 젖고 물만 맞는 여기는 아마존. 아, 마, 존조로존조로존.” ‘소울리스좌’라는 별명이 붙은 에버랜드 캐스트(기간제 노동자) 김한나씨(23)가 놀이기구인 ‘아마존 익스프레스’ 안내 멘트를 하고 있는 모습 / 유튜브 화면 갈무리 삼성물산이 운영하는 에버랜드의 놀이기구 ‘아마존 익스프레스’에서 일하는 캐스트(기간제 노동자)의 안내 멘트 동영상이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에버랜드 유튜브 채널 ‘티타남’이 지난 4월 4일 ‘에버랜드 아마존 N년차의 멘트! 중독성 갑’이라는 제목으로 올린 이 영상의 조회 수는 지난 6월 1일 현재 1500만회를 넘었다. ‘소울리스좌 열풍’ 김한나씨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다는 이 영상의 주인공 김한나씨(23)에겐 ‘소울리스좌’라는 별명도 붙었다. 현란하고 경쾌한 속사포랩과 대비되는 영혼 없는 눈빛 때문이다. 영상 댓글창에는 “최선을 다하지만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한 영혼 없음”, “정박과 엇박을 왔다갔다 하는 미친 박자감, 초점 없는 눈빛, 자본주의에 지친 발걸음이 합쳐져 더할 나위 없는 시너지”, “진짜 시급만큼만 일하는 교과서” 등의 반응이 나왔다. 영혼을 갈아넣지 않으면서도 효율적으로 일하는 모습이 직장인들의 반향을 이끌어낸 셈이다. 소울리스좌 열풍으로 김씨 근무경력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에버랜드가 있는 경기 용인시 출신인 김씨는 2019년 7월 처음 에버랜드에 입사했다. 올해가 에버랜드에서 일한 지 4년째다. 지난 4월 말 근로계약 기간이 끝난 김씨는 재계약 뒤 티타남을 운영하는 마케팅 부서의 캐스트로 일하고 있다. 온라인상에선 이번 재계약이 정규직 전환이라는 추측도 나왔지만 김씨는 여전히 기간제 비정규직 노동자다. 기간제법은 “2년 이상 일한 기간제 노동자의 경우 무기계약직으로 본다”고 규정한다. 4년째 근무 중인 김씨는 왜 여전히 비정규직일까. 김씨가 3번의 재입사 과정을 거치면서 근무기간 공백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기간제 노동자가 공백 없이 일하길 원하는데도 재입사 관행을 통해 회사가 공백 기간을 두는 것은 ‘꼼수’라는 비판이 나온다. 노동계는 소울리스좌의 ‘소울리스’ 이면에 ‘쪼개기 계약’ 관행이 있다고 지적한다. 에버랜드는 기간제 노동자를 캐스트라고 부른다. 연간 수천명의 청년 노동자들이 캐스트로 일한다. 근무 분야는 놀이기구(어트랙션), 손님 안내, 음식·음료·캐릭터 상품 등 판매, 청소, 주차, 동물원, 티켓 판매, 이벤트·공연기술 보조 등 다양하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캐스트는 ‘하루 9시간·주 5일 기본 근무’를 하는 상시직(F-CAST)이 가장 많다. 이밖에도 2~6개월 근무를 하는 단기 상시직(I-CAST), 하루 6.5시간을 일하는 파트직(PD6), 주말 근무를 원칙으로 하는 주말직(H-CAST) 등이 있다. 시급은 올해 최저임금인 9160원부터 1만원 사이로 일하는 분야에 따라 다르다. 포털사이트 등에서 ‘에버랜드 캐스트’로 검색하면 지원 방법, 근무 후기가 수없이 올라와 있을 정도로 청년 노동자들 사이에선 인기 있는 일자리다. 현재 캐스트의 근로계약 기간은 기본적으로 10개월(2개월+4개월+4개월)이다. 10개월 근무 뒤 면접 등을 거쳐 ‘트레이너’로 전환하면 10개월(5개월+5개월)을 더 일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연속해서 일할 수 있는 최장 기간이 20개월이다. 에버랜드 측은 “대부분의 캐스트들이 20대 초중반으로 입사 시 ‘평균 6개월 근무 미만’을 희망하는 비율이 높고, 실제 평균 근무기간도 약 6개월이다. 휴학, 군 입대, 사회진출 등 다양한 캐스트들의 상황을 고려해 계약기간을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트레이너 전환 전 최장 근로계약 기간을 10개월로 한 것이 퇴직금 지급 회피 의도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선 “평균 10개월을 근무한 캐스트는 모두 트레이너 선발 대상자가 되며 본인이 희망할 경우 대부분 트레이너로 전환된다”고 설명했다. ‘눈 가리고 아웅’인 재입사 관행 고용노동부의 ‘기간제 노동자 고용안정 및 근로조건 보호 가이드라인’은 “사용자는 기간제 근로계약을 갱신하는 경우에 근로계약 관계의 단절을 목적으로 합리적인 이유 없이 근로계약과 근로계약 사이에 공백 기간을 설정하지 않도록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2년 이상 일한 기간제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을 회피하려 ‘쪼개기 계약’을 해선 안 된다는 내용이다. 쪼개기 계약은 중소기업중앙회와 2년간 7차례에 걸쳐 근로계약을 맺은 한 여성 기간제 노동자가 2014년 해고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사회적 주목을 받았다. 이듬해 현대차가 23개월간 16차례에 걸쳐 쪼개기 계약을 한 촉탁직 노동자에게 계약 만료를 통지한 것도 논란이 됐다. 노동부는 2014년 12월 쪼개기 계약 관행을 막기 위해 총 계약기간(2년) 내 갱신 횟수를 최대 3회로 제한하는 내용을 기간제법에 포함시키자는 대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법 개정까지 이어지진 못했다. 독일은 2년 한도로 최대 3회까지 갱신을 허용하고 위반 시 기간제 노동자를 무기계약직으로 간주한다. ‘소울리스좌’라는 별명이 붙은 에버랜드 캐스트(기간제 노동자) 김한나씨(23)가 지난 4월 유튜브 채널 ‘티타남’에 출연해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유튜브 화면 갈무리 에버랜드에선 캐스트들이 퇴사 뒤 재입사하는 사례들이 있다. 3번 재입사한 소울리스좌가 대표적이다. 전직 캐스트 A씨(28)는 “놀이기구 운영 파트는 재입사하는 경우가 다른 파트보다 더 많았다. (소울리스좌처럼) 3번 재입사한 사람도 꽤 있었고, 4번 재입사한 경우도 봤다”고 말했다. 전직 캐스트 B씨(27)는 “3번 넘게 재입사한 캐스트는 ‘몸속에 (삼성을 상징하는) 파란 피가 흐른다’는 이야길 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에버랜드는 재입사 때까지 6개월의 공백을 두는 규정을 운영 중이다. 에버랜드 측은 “퇴사 후 1~2개월 안에 빠르게 재입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다만 상시직 캐스트로 일하다 복학 등의 이유로 퇴사한 뒤 주말직으로 재입사를 원하는 경우 근무 유형이 다르기 때문에 비교적 빨리 재입사한다”고 밝혔다. 전직 캐스트들은 현장에선 이 규정이 잘 지켜지지 않는다고 짚었다. A씨는 “6개월이 되기 전 돌아온 사람이 오히려 더 많았다”고 말했다. B씨는 “회사도 새로 오는 사람보다 키워둔 사람을 쓰고 싶어한다. 관리자가 재입사 의향이 있는 캐스트에게 ‘한두 달 있다가 다시 들어오는 걸로 하자’고 말하는 경우도 봤다”고 했다. 캐스트들은 규정과 달리 어떻게 6개월이 지나기 전 재입사할 수 있을까. 에버랜드 캐스팅센터에 6개월이 되기 전 재입사가 가능한지 문의하니 “규정은 6개월인데 e메일을 바꿔 다시 지원해도 된다”는 답이 돌아왔다. 에버랜드의 재입사 관행은 노동부 가이드라인 위반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박준성 금속노조 법률원 노무사는 “기간제 노동자가 계약 갱신을 원하는 경우에도 일괄적으로 공백 기간을 두는 건 2년 이상 근무 시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해야 하는 기간제법을 회피하기 위해 근로기간 단절이라는 ‘외형’을 만들려는 꼼수”라고 말했다. 에버랜드와 함께 양대 테마파크로 꼽히는 롯데월드는 2020년 2월부터 캐스트와 1개월 단위(최장 23개월)로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이는 “단기의 근로계약을 불필요하게 반복적으로 갱신하지 않도록 노력한다”는 노동부 가이드라인에 반한다. 롯데월드는 “향후 엔데믹으로 정상 운영이 가능해지면 예전처럼 노동자가 장기(12개월), 단기(4개월) 근로계약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23개월로 계약기간을 제한한 것이 기간제법 회피 목적이라는 지적에 대해선 “현재 장기근로 근무자 중 우수인력을 선발해 정규직 전환을 시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정규직 전환 사례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원칙과 예외가 바뀐 청년 아르바이트 근본적으로 놀이공원에서 일하는 캐스트가 맡는 업무 중 상당수는 향후 2년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상시·지속 업무’다. 노동부 가이드라인은 상시·지속 업무의 경우 무기계약직 채용을 권고하고 있다. 가이드라인대로라면 에버랜드·롯데월드는 원칙적으로 캐스트를 무기계약직으로 채용하고, 성수기 때 일시적으로 더 필요한 인력만 기간제로 뽑아야 한다. 하지만 캐스트 노동시장은 원칙과 예외가 뒤바뀐 상황이다. 박준성 노무사는 “중·고령자를 배제하고 청년 노동자를 계속 갈아끼우는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놀이기구의 안전사고 방지가 중요한 놀이공원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숙련성을 갖춘 정규직 노동자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놀이기구 조작 자격증을 땄던 A씨는 “필기·실기 등 깐깐한 과정을 거쳐 자격증을 따지만 계속 캐스트가 물갈이되면 아무래도 안전관리 수준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기업들은 청년 아르바이트 노동이 무기계약직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지만 무기계약직 채용 방식을 도입한 사업장도 있다. 국내 최대 영화관인 CJ CGV는 티켓 발권, 상영관 안내, 음료·팝콘 판매, 관리·청소 등의 업무를 하는 ‘미소지기’를 무기계약직으로 채용한다. 성수기 등에 대비해 근로계약 기간이 6개월 이내인 단기 미소지기도 뽑지만 무기계약직 채용이 원칙이다. 지난 3월 말 현재 일반 미소지기(1773명)가 단기 미소지기(329명)보다 5배 이상 많다. 김유정 금속노조 법률원장은 “기간제 남용 해결을 기업의 선의에만 맡겨둘 순 없다. 상시·지속적 업무에 대해선 원칙적으로 기간제 근로계약을 금지하고, 노동자가 원한다는 명시적 의사가 있을 때만 기간제 사용을 허용하는 식으로 규제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 건보 고객센터 상담사 정규직 전환은 언제쯤(2021. 01. 29 17:25)
- 2021. 01. 29 17:25 사회
- ㆍ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민간위탁 운영… 전환 대상이지만 4년째 감감무소식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건보공단) 고객센터 상담사는 하루에 몇통의 민원전화를 받을까. 지난 1월 26일 ‘국민건강보험 고객센터 민간위탁 적절한가’ 국회 토론회에서 한 상담사의 업무일지가 공개됐다. 이에 따르면 고객센터 상담사는 오전 9시 3분 첫 상담(지역 건강보험료 조정·2분 7초 소요)을 시작으로 18시 퇴근 시간까지 113건의 상담을 처리한다. 113건의 상담 중에는 45초짜리 임신·출산 진료비 해지 상담도 있었고, 11분이 넘는 임의계속가입자 관련 상담도 있었다. 8시간 노동 가운데 휴식시간은 ‘0’분이었다. 점심시간 1시간(11시 33분~12시 33분)을 제외하고 상담이 중단된 시간은 단 15분. 화장실 이용을 위해 네 차례 자리를 비운 시간이었다. 공공운수노조 국민건강보험 고객센터지부의 기자회견 모습 / 김기남 기자 건보공단 고객센터 상담사는 재난 상황에서 사회 기능을 유지하는 ‘필수노동자’로 분류된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건보공단 고객센터 상담사들은 질병관리본부 콜센터(1339)로 걸려오는 코로나19 관련 상담 업무도 떠맡았다. 민간업체가 다루는 민감 개인정보 그런데 필수노동자가 된 상담사의 노동환경은 전보다 열악해졌다. 상담콜수는 2019년 대비 최대 40% 이상 증가했는데 인력충원과 처우 개선은 이뤄지지 않았다. 일자리의 질은 여전히 취약하다. 임금은 여전히 최저임금 수준에 머물러 있다. 건보공단 고객센터 상담사는 공단과 도급계약을 맺은 민간위탁운영사 소속 노동자다. 이들 일자리에는 도급업체의 임금 중간착취와 허술한 개인정보 관리, 취약한 효율성 문제가 녹아 있다. 정부는 이들을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대상으로 분류했다. 하지만 4년째 이들은 정규직 전환 논의 테이블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건보공단 고객센터는 총 7개로 12개 도급업체가 맡아 운영한다. 1623명(상담인력 1451명, 관리인력 172명, 2020년 기준)의 고객센터 소속 상담사들은 건강보험 자격과 보험료, 보험급여, 건강검진, 4대 사회보험 징수통합 등 1069개 상담 업무를 다룬다. 모든 고객센터 상담은 고객의 주민등록번호 13자리가 필요하다. 상담사는 고객 주민등록번호를 토대로 주소와 소득, 직장 이력, 진료내역, 교정시설 수용 이력 등 개인정보 대부분을 열람할 수 있다. 개인의 진료개시일과 입·내원 일수, 요양기관명뿐만 아니라 본인만 확인 가능한 건강검진 일자도 확인 가능하다. 민감한 개인정보를 민간 도급업체가 쥐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개인정보는 어떻게 다뤄지고 있을까. 지역 고객센터 소속 이민영씨(가명·20대)는 상담콜이 뜰 때마다 제증명 발급 업무가 아니길 바란다. 상담 과정에서 본인이 아닌 제3자에게 제증명을 발급한 경험이 있어서다. 물론 제증명 발급 매뉴얼을 따랐다. 고객의 주민등록번호와 이름, 주소와 가족관계를 확인했다. 신분증 진위 여부를 비롯한 정보확인 지침을 지켰고 절차를 밟아 제증명을 발급했다. 업무가 끝나자 고객은 ‘본인이 아니고 사실은 회사 동료’라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만약 제증명을 악용해 대출 사기를 벌인다면 막을 방법이 없다. 지침에 따라 이행한 업무이기 때문에 상담사와 도급업체, 건보공단은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 이씨는 “상대방이 미리 정보를 알고 속이려고 작정하면 당할 수밖에 없다”며 “상담사 잘못이 아니라 해도 누군가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괴로웠다”고 말했다. 고객센터를 통해 개인정보를 빼내려는 시도는 현장 상담사들이 종종 겪는 일이다. 정보 유출이 의심되는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상담사는 적극 대응하지 못한다. 추가 질문을 하거나 개인 확인 절차를 늘리면 고객은 반발한다. 일부 고객은 상담사를 상대로 ‘불친절’ 민원을 넣기도 하는데 이는 급여 삭감으로 이어진다. 상담사 등급은 ‘SS’에서 ‘D’로 분류된다. 불친절이 뜨면 등급이 깎이고 등급에 따라 인센티브와 급여도 삭감된다. 박지원 공공운수노조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 총무실장은 “상담사가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면 오히려 불이익을 받게 되는 구조”라며 “상담사의 노력에 기대는 방식은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공단사번 부여하고 이력 관리 이에 대해 건보공단 측은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매월 정기적으로 협력사 자체 개인정보보호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며 “건강보험 업무 과정에서 가입자의 권리(보험급여를 받을 수 있는 자격 처리)와 이익(4대 사회보험료, 보험급여비용, 장기요양급여 등)을 결정하는 경우 반드시 건보공단 직원이 직접 수행한다”고 밝혔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고객센터의 민간위탁 운영 방식은 공공기관의 경제적 효율성 강화를 위해 이뤄진 조치다. 그렇다면 얼마나 효율적일까. 고객센터의 민간위탁에 투입되는 비용은 약 1198억원(2020년 4월~2022년 3월)이다. 고객센터 상담사 1인당 평균 도급 단가는 약 307만원 정도로 추산된다. 그런데 상담사 급여는 평균 210만원(세전) 수준이다. 1인당 100만원가량이 도급업체 ‘관리비’로 흘러간다. 그런데 고객센터 사무실과 시설·장비, 유지·보수 모두 건보공단에서 제공한다. 상담사에 투입되는 교육과 교재도 공단에서 담당한다. 도급업체는 사실상 인력·실적 관리 업무만 전담한다. 이재훈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위원은 “민간위탁으로 들어가는 일반관리비, 이윤과 부가가치세액 등으로 오히려 예산이 낭비된다. 해당 예산을 상담노동자 처우 개선에 활용할 경우 숙련노동자 확보와 서비스 질 향상 효과가 이뤄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민감한 개인정보를 다루는 고객센터 상담사 업무는 숙련 노동을 요구한다. 건보공단은 이들에게 별도의 사원번호(공단사번)를 부여하고 업무 수행과 근태, 교육 이력을 관리한다. 상담사 관리를 위해 도급업체가 바뀌더라도 공단사번은 유지된다. 상담사의 직무능력 관련 시험내역과 점수내역도 공단이 통합 관리한다. 1월 27일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 총파업투쟁 선포 기자회견에 참석한 13년차 상담사 이연화씨는 “공단사번은 한 번도 변한 적이 없는데 소속은 4번 변경됐다. 13년 동안 일하며 달라지지 않는 건 최저임금과 처우뿐이다”라고 말했다. 고객센터 상담사들은 열악한 노동환경과 처우 개선을 요구해왔다. 상담사가 처한 노동환경을 다룬 기사에는 이들의 노동을 ‘단순 안내’로 폄하하는 댓글이 달린다. 이들의 상담은 본사로 업무를 이관하는 역할 수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사실일까. 고객센터 고유 업무는 진료확인번호 승인 및 취소, 홈페이지 등 관련 상담 업무, 장기요양기관 청구 원격 상담 등 5가지 정도다. 그 밖의 업무는 고객센터와 공단에서 동시에 수행 가능하다. 대부분의 업무 영역이 겹치거나 연계돼 있다. 고객센터에서 공단으로 업무를 이관하는 경우도 있다. 이때 고객센터 상담사는 고객에게 업무 처리를 위한 자료 요청을 안내하고 필요한 고객정보 탐색 작업 등 1차 업무를 처리한 뒤 공단에 이관한다. 경인고객센터 상담사 서민선씨(가명·38)는 “업무 처리에 필요한 서류와 개인정보, 상담 내역을 보고서처럼 작성해야 한다”며 “오류가 있으면 보고서가 반려 조치될 정도로 상담사들이 꼼꼼하게 작업을 한 뒤 공단 담당자에게 업무를 이관한다”고 말했다. 고객센터 노조는 협의회 참여 못 해 건보공단 고객센터는 정규직 전환 대상이다. 정부는 2017년 발표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에서 건보공단 고객센터와 같은 민간위탁 기관도 정규직화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비슷한 업무를 하는 국민연금공단, 근로복지공단 소속 노동자는 이미 정규직 전환이 이뤄졌다. 하지만 건보공단 고객센터 정규직 전환은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2019년 10월 신설된 고객센터 민간위탁 사무 논의 협의회에서 한 차례 회의를 한 뒤 모든 논의가 중단됐다. 그나마 고객센터 노조는 협의회에 참여하지 못한다. 지난해 7월 고용노동부는 “고객센터 노조의 협의기구 직접 참여는 객관적 합리적 판단이 곤란해질 수 있다”며 노조의 참여를 불허했다. 김성희 교수(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는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은 과도한 차별을 합리적 차이로 바꾸는 게 목적”이라며 “인천공항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불거진 공정성 논란 이후 정부가 정규직 전환 이슈를 방치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정규직 전환은 청년 일자리 빼앗기가 아니라 사회 전반의 일자리 질을 높일 수 있는 정책이다. 정부가 전면에 나서 반발 여론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건보공단 측은 “고객센터는 기간제나 파견·용역근로자와 달리 민간위탁으로 업무 성격과 공단과의 관계가 전혀 다르고 고객센터에 대한 정부의 직고용 방침도 명확하지 않은 상황”이라며 “형평성 논란 등 공단 내외부의 극심한 반발과 부정적 여론 등 여러 문제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접근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 [취재 후]정규직 기사와 비정규직 기사의 온도차(2020. 09. 24 16:42)
- 2020. 09. 24 16:42 사회
- 정규직. 실무노동용어사전은 정규직 노동자를 “사용자와 직접 근로계약을 체결하여 사업장 내에서 전일제(full-time)로 근무하면서 근로계약기간의 정함이 없이 정년까지 고용이 보장되는 근로자”라고 설명합니다. 정규직 노동자를 다룬 기사는 상대적으로 많은 관심을 받습니다. 정규직 해고 이야기는 더욱 그렇습니다. 기사 밑에는 댓글도 많이 달리는 편인데 대부분 날이 서 있습니다. 나아가 노동조합에 가입한 정규직 노동자 다룬 기사 댓글창에는 종종 노동자에 대한 성토의 장이 열립니다. 지난호에 쓴 ‘쉬워진 해고, 단지 코로나 때문인가’ 기사를 두고도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습니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그런데 비정규직의 노동과 해고를 다룬 기사와는 온도차가 있습니다. 일터에서 밀려나는 비정규직 이야기는 정규직만큼의 관심을 받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비정규직은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에 한국 노동시장에 안착한 고용형태입니다. 물론 그 전에도 임시 일자리는 있었지만 지금처럼 ‘비정규직’이 보편화되지는 않았습니다. 외환위기 상황에서 기업은 비정규직을 서둘러 도입했고 순식간에 확산됐지요. 이후 비정규직은 한국사회의 뉴노멀이 됐습니다. 불안정 고용은 보편적인 고용형태로 자리 잡게 된 겁니다. 쉽게 해고되고 순식간에 밀려나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특별할 것 없는 우리 이웃의 이야기가 됐습니다. 사람의 관심은 희소성을 가진 재화입니다. 대중은 익숙한 이야기에 관심을 나눠주지 않습니다. 반면에 정규직 이야기는 어떨까요. 한국노동연구원이 정규직·노동조합 있음, 300명 이상 사업장 재직, 이 세 가지 요건을 충족하는 일자리를 ‘사회적으로 괜찮은 일자리’로 정하고 얼마나 될까 조사를 해봤습니다. 결과는 7.6%였습니다. 7.6%의 이야기, 더군다나 해고 이야기는 슬프지만 희소가치가 있습니다. 코로나19 이후 사회적으로 괜찮은 일자리는 더 줄어들 테고 어쩌면 이들의 희소가치는 더 치솟을지 모르겠습니다. 노동계는 코로나19 이후를 걱정합니다. 외환위기라는 재난 상황에서 비정규직이 노동시장을 점령했듯 코로나19라는 재난이 노동환경을 더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지요. 코로나19라는 재난을 틈타 눈엣가시 같은 노조를 솎아내려는 기업들이 눈에 띕니다. 흑자 폐업을 하는 외국 자본도 있고, 퇴사를 가장한 대규모 해고를 유도하는 기업도 있습니다. 이들이 행태를 용인하고 난 뒤 맞이할 한국사회의 ‘뉴노멀’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
- 취재 후
- [포커스]인천공항 정규직 연봉 9130만원이 되기까지(2020. 07. 17 15:54)
- 2020. 07. 17 15:54 경제
- ㆍ신입사원 평균 연봉도 4589만원으로 공기업 중 가장 높아 2019년 기준 공기업 정규직 직원들의 평균 연봉은 7941만7000원이다. 주요 대기업 평균 연봉과 유사하다. 기업평가사이트 CEO스코어의 지난 3월 조사결과를 보면, 국내 500대 기업 중 사업보고서를 제출한 318개사의 2019년 직원 연봉 평균 7920만원이었다.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 3층 출발층 / 김창길 기자 공기업마다 연봉 수준은 천차만별이다.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의 평균 연봉은 9159만원인데 한국공항공사는 7113만원이다. 가장 많은 평균 연봉을 받는 한국중부발전(9285만원)과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5937만원)의 차이는 3348만원이다. 왜 공기업 간 평균 연봉 차이가 크게 나는 것일까. 정흥준 한국노동연구원 노사관계연구본부 부연구위원은 “임금체계는 기준이 필요한데 현재 공기업 임금체계는 이렇다 할 합리적 기준이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정 위원은 “대체로 수익이 많이 나는 공기업의 임금이 높은 편이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도 아니다. 적자가 많은 공기업이라도 이미 공고화된 호봉체계가 작동해 높은 임금 수준을 유지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인천국제공항공사(이하 인천공항공사)의 2019년 정규직 직원의 평균 연봉은 9130만원이다. 신입사원 평균 연봉은 4589만원으로 공기업 중 가장 초임이 높았다. 인천공항공사는 최근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화 과정에서 갈등을 겪었다. 높은 초봉이 고임금 구조로 안착 인천공항공사 정규직의 고임금 구조를 단순히 ‘공사에서 수익이 많이 나기 때문에 임금도 높다’고 설명하긴 어렵다. 인천공항공사 임금구조를 들여다보면 공사 설립 과정, 정부의 정책 기조, 연공서열이 반영된 호봉제 등이 고임금 구조에 모두 녹아 있다. 인천공항공사의 모태는 신공항건설기획단(1990년·교통부 산하)이다. 이후 수도권신공항건설본부(1992년·한국공항공단 산하)→수도권신공항건설공단(1994년)으로 이어진다. 한국공항공단(현 한국공항공사) 산하에 있다 분리된 수도권신공항건설공단은 1999년 인천공항공사가 됐다. 인천공항공사 정규직 직원들이 받는 고임금의 토대는 ‘공단’ 시절 만들어졌다. 인천공항이 있는 인천 영종도는 1990년대만 해도 오지였다. 1994년 이후 인천공항공사 입사자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인천공항공사 직원들은 매일 오전 8시 인천 서구 율도에서 화물선을 타고 출근했다. 근무는 컨테이너에서 했다. 1996년 대기업의 평균 대졸 초임은 1860만원이었다. 1996년 공기업 정규직 연봉은 1400만~1600만원에서 형성됐다. 고임금은 일종의 유인책이었다. 당시 신공항건설공단은 평균 연봉이 1900만원을 넘었다. 인천공항공사에 따르면 교통비 명목으로 매달 40만~45만원이 수당으로 붙었다. 과거 정부기관 보고서에도 초창기 인천공항공사 임금 수준이 높았던 사실이 드러난다. 한국행정연구원이 2002년 12월 발간한 <우수 정책사례집>을 보면 “타 조직에 비해 높은 임금 수준을 책정하는 등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유인체계도 마련해 우수한 인재를 유치했다”고 나와 있다. 인천공항공사 임금체계는 고임금이 초기 인재 유인책으로 작용하고, 연차가 쌓일수록 임금이 높아지는 호봉제까지 더해지는 구조다. 박용석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장은 “초기 급여 인센티브에 신생 공기업이라 인사 적체가 없어 승진도 빠른 구조였다. 승진과 더불어 호봉제가 적용되니 임금 인상 속도도 상대적으로 빨랐다”고 말했다. 인천공항공사 정규직이 입사 초기 받는 고임금이 ‘정률제 임금 가이드라인’을 따라가다 보면 다른 공기업과의 평균 임금 격차도 벌어진다. 현재 공기업 임금은 기획재정부가 제시한 정률제 임금 가이드라인 틀에서 움직인다. 공무원 보수인상률에 준해 임금이 오르는 구조다. 물가상승률·경제상승률이 반영된다. 2015~2017년 공무원 보수인상률(3.8%→3%→3.5%)과 공기업 총인건비 인상률은 동일했다.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 항공일자리 취업지원센터 근처에서 보안검색 직원이 업무를 보고 있다. / 김창길 기자 정규직 고임금에 보탬이 된 아웃소싱 신입사원 초임이 2000만원인 공기업 ㄱ사와 1500만원인 공기업 ㄴ사가 동일하게 10%씩 5년간 임금이 올랐다고 가정해보자. ㄱ사는 5년 뒤 기본급은 3221만원이고, ㄴ사 기본급은 2416만원이다. 인상률은 같지만 총액 격차는 더 벌어진다. 인천공항을 둘러싼 정부의 정책 목표도 정규직 고임금과 무관하지 않다. 인천공항공사는 애초에 민영화를 전제로 출범한 조직이었다. 인천공항공사는 1999년 1월 공기업 경영구조개선 및 민영화에 관한 법률에 따라 민영화 대상에 포함됐다. 민간자본을 유치해 민영화를 한 뒤 경쟁력 있는 공항운영체제를 구축하겠다는 취지였다. 당초 목표는 2002년 민영화 완료였다. 정부는 민영화 추진을 위해 인천공항공사를 ‘가벼운 조직’으로 만들었다. 정부는 가벼운 조직이어야 민영화 추진에 직원들의 반발이 상대적으로 적고, 기업 입장에서 비용인 인건비를 최소화해 기업가치를 높일 수 있다고 봤다. 2000년 당시 건설교통부(현 국토교통부)는 비핵심업무를 아웃소싱하겠다고 국회에서 밝혔다. 규모는 필요인력의 85%인 3044명이었다. 인천공항공사의 정규직 직원은 2001년 675명, 2002년 714명, 2003년 735명이었다. 관리직군을 제외하곤 대부분 아웃소싱한 결과였다. 인천공항공사는 출범 이후 2007년까지 기재부의 경영평가를 받지 않았다. 대신 경영평가 결과에 따른 성과급 대신 자체적으로 실적수당과 성과급을 지급했다. 이때 평균 연봉은 2004년 5386만원에서 2007년 6549만1000원으로 올랐다. 2008년부터 경영평가를 받으면서 경영평가에 따른 성과급이 임금에 반영됐다.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전까지 기재부 경영평가 지침은 인건비를 줄이면 점수를 높게 줬다. 공공기관 경영평가는 노동생산성이나 계량인건비 등 적은 임금으로 노동자를 얼마나 고용했는지 평가해 아웃소싱을 유도했다. 이때 아웃소싱을 확대하면 성과급 확보에 유리한 구조가 만들어졌다. 사람을 줄일수록 노동생산성은 올라가고, 정규직 1명에게 돌아가는 성과급은 늘어나게 된다. 아웃소싱의 대가로 성과급을 한 푼이라도 더 받는 정규직과 그렇지 못한 비정규직 임금 격차는 자연스레 늘어났다. 인천공항공사의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 상대 임금은 2004년 65%에서 2016년 53.5%로 임금 차이가 벌어졌다. 인천공항공사가 추진한 아웃소싱 흔적도 곳곳에 나타난다. 기재부가 작성한 <2008년도 공기업·준정부기관 경영실적 평가보고서>를 보면 “인천공항공사는 2008년도에 2단계 사업의 오픈으로 인한 증원 소요 인력을 아웃소싱함으로써 인건비를 절감한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는 대목이 있다. 인천국제공항공사 노조원들은 지난 7월 9일 정규직 전환 추진에 대한 공익감사를 감사원에 청구했다. / 김영민 기자 과실은 주로 정규직에게 인천공항공사는 2008년 작성한 <경영효율화 추진계획에 의한 아웃소싱용역비 절감계획(안)>에서 2009년부터 4년간 1675억원에 달하는 아웃소싱비를 절감하겠다고 밝힌다. 세부 방안으로는 용역업체에게 ‘연장 및 휴일근로수당을 적용하지 않는 방안’, ‘교육훈련비 등 경비 최소화’, ‘소규모 공사의 수선유지 자체 시행’ 등을 제시했다. 정규직으로 고용했다면 투입해야 할 간접비를 최대한 줄이려는 의도가 드러난다. 황선웅 부경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이익을 공유하는 방식이 다소 불평등했다. 황 교수는 “아웃소싱 비용을 낮추는 것은 곧 비정규직의 임금을 낮추는 과정이었다. 아웃소싱 비용을 낮추면 경영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다”며 “인천공항이 각종 공항평가에서 1등을 한 것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다같이 모여 이룬 성과였다. 현재는 과실이 상당수 정규직에게 집중됐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실제로 인천공항이 우수한 평가를 받는 데에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몫이 적지 않다. 예를 들어 12년 연속 1위를 차지한 세계공항서비스평가(ASQ)에는 평가항목이 34개가 있다. 주요 평가요소 중 하나인 친절과 청결 항목은 대부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담당한다. 빠른 출입국 시간도 평가요소인데, 공항 설계 당시 갖춰진 정교한 시스템에 더해 보안검색 비정규직 직원들의 역할도 크게 작용한다. 공기업 임금체계는 어디로? 인천공항공사 정규직이 안정적인 고임금을 유지하는 또 다른 이유는 ‘독점’ 덕분이다. 인천공항공사는 국내 공항 인프라를 독점한 공기업이다. 독점적 지위에서 나오는 안정적 수입은 성과급을 포함한 고임금으로 이어진다. 인천공항공사의 독점적 지위에서 나온 수익의 대표 사례는 비항공수익이다. 비항공수익에는 상업시설 임대수익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지난해 상반기 인천공항공사 수익 1조3674억원 중 비항공수익은 9056억원(66.2%)이었다. 비항공수익에서 면세점 등 상업시설 임대수익은 8309억원이었다. 반면 착륙료·공항이용료 등 항공수익은 4618억원(33.8%)이었다. 인천공항이 문을 연 2001년에는 항공수익과 비항공수익이 각각 1867억원(49.6%), 1900억원(50.4%)으로 큰 차이가 없었다. 인천공항공사 측은 비항공수익이 높은 구조도 경영 방식의 일환이라고 했다. 인천공항공사 측은 비항공수익 비중을 높이는 대신 항공이용료 등을 낮춰 여객과 화물을 끌어모으는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인천공항공사 측의 설명을 감안하더라도 전체 수익의 3분의 2가량이 임대료에서 나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은 “독점을 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임대수익 등 일종의 ‘지대(Rent)’를 소수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맞는지 이제는 고민해봐야 할 때”라고 말했다. 공기업 임금체계를 둘러싼 고민은 인천공항공사만의 문제는 아니다. 2018년 기준으로 36개 공기업의 평균 임금은 5년 전에 비해 624만원 오른 7800만원이었다. 같은 기간 32개 공기업의 당기순이익은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공기업은 이익을 내지 못하고 있는데, 고임금이 고착화된 연차 높은 정규직 직원들의 임금 상승까지 맞물려 작용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철승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올초 쓴 논문 <기업 내 베이비부머·386 세대의 높은 점유율은 비정규직 확대, 청년고용 축소를 초래하는가?>에서 이 같은 통계를 근거로 “연공제로 인한 기업의 비용위기와 비용위기로 인한 비정규직의 증대 및 청년고용 감소”를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대대적인 공기업 임금체계 개혁은 저항에 부딪힐 가능성이 높고, 단계적으로 임금체계를 개선해나가야 한다고 했다. 황선웅 교수는 “불평등을 줄여나가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다만 기존 정규직의 임금을 깎는 방식으로는 어렵다”며 “오래 걸리더라도 같은 기업 내에서도 정규직-비정규직의 연대, 공항노동자들이나 운수교통노동자들처럼 산업별 연대의 움직임으로 해결해나가는 게 맞는 방향”이라고 말했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은 공기업 임금체계의 투명화를 진행해야 공기업 임금체계 개선도 이뤄진다고 봤다. 노 소장은 “지금은 공공부문 전체의 임금체계를 조금 더 객관화해서 임금 정보를 공유해야 한다. 어떤 일을 하는 사람들이 얼마를 받고, 어떤 시스템에서 임금이 지급되고 있는지 지금까지는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고 말했다. 정흥준 부연구위원은 “공공부문 임금체계 개편은 불가피하지만, 개편하면서 기존에 받고 있는 정규직의 임금은 수정하기 쉽지 않다”며 “결국 기존 임금은 보장하면서 새로운 임금체계를 도입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초봉은 다소 올리고 호봉 상승에 따른 기울기를 조금 낮추는 방식을 1차적으로 선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특집
- [법률 프리즘]‘직접고용’과 ‘자회사 정규직화’의 차이점(2019. 07. 26 17:56)
- 2019. 07. 26 17:56 사회
- 한국도로공사 수납원들이 ‘자회사 정규직화’를 반대하며 농성을 벌였다. 국립대 병원, 마사회, 한국가스공사 등 다른 공기업 또는 준정부기관에서도 직접고용이냐 자회사냐를 두고 정규직화 협의기구가 진통을 겪고 있다. 지난 7월23일 국회 정론관에서 이정미 정의당 의원이 정부와 도로공사의 톨케이트 1500명 집단해고 사태 책임과 관련한 발언을 하고 있다. / 권호욱 선임기자 최근 언론을 통해 고속도로 요금 수납원들이 무덥고 위험한 톨게이트 지붕 위에서 농성을 벌이는 모습이 보도됐다. 한국도로공사(도공)는 파견·용역직인 요금 수납원을 정규직화하기 위해 자회사인 한국도로공사서비스㈜를 설립했는데, 상당수 요금 수납원들이 자회사 입사를 거부한 채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싸우고 있는 것이다. ‘자회사 정규직화’를 둘러싸고 농성전이 벌어진 것은 이들 요금 수납원이 4년 전 제기한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이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이라는 사정(1심과 2심에서 노동자들이 모두 승소했고, 대법원에서 확정되면 도공은 이들을 직접고용해야 한다) 때문만은 아니다. 국립대 병원, 마사회, 한국가스공사 등 다른 공기업 또는 준정부기관에서도 직접고용이냐, 자회사냐를 두고 정규직화 협의기구가 진통을 겪고 있다. 공공부문 정규직화 과정에서 ‘직접고용이냐, 자회사냐’ 하는 문제가 첨예한 쟁점으로 남은 까닭은 무엇일까. 많은 전문가들은 정부가 2017년 7월 발표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의 내용 중 애매모호한 부분이 많다는 점을 꼽는다. 헌법재판소는 가이드라인에 대해 “정부가 ‘공공부문에 근무하는 사람의 정규직화’라는 정책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그 상대방에게 고용관계를 재정립하도록 하는 ‘유도적 기준’을 제시한 것으로 (…), 그 상대방의 업무나 고용관계의 특수성에 따른 예외와 그 해당 여부에 대한 판단에 대한 자율성이 비교적 넓게 인정(된다)”고 판시한 바 있다. 공공기관의 자율성을 강조한 결과일까. 가이드라인은 어떤 조건과 환경일 때 직접고용이 아닌 자회사 방식을 선택해야 하는지, 직접고용만 허용되는 생명·안전 업무는 무엇을 가리키는지 등 구체적 쟁점들에 대해 침묵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사정 때문에 파견·용역 노동자의 숫자가 많거나, 본사 정규직들이 직접고용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크게 내는 공공기관들에서는 ‘자회사 정규직화’를 밀어붙이곤 한다. 노동계는 자회사가 종전 용역회사와 실질적으로 다른 점이 없고, 자회사의 폐업·청산이 고용불안을 야기할 수 있으며, 모법인에 직접고용될 때에 비해 근로조건이 열악할 수밖에 없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자회사 방식’에 반발하고 있다. 정부가 신설되는 자회사를 공공기관으로 지정해 관리하겠다는 방침을 밝혔고, 모법인이 자회사와 안정적인 수의계약을 할 수 있도록 공기업·준정부기관 계약사무규칙도 개정했지만 갈등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자회사 정규직화’를 둘러싼 갈등을 완화할 방법은 없을까. 현행 공공기관운영법이나 공기업·준정부기관 경영 및 혁신에 관한 지침 등은 자회사의 신설에 관해 통제할 뿐, 그 자회사가 어떤 방식으로 운영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별다른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모법인과 자회사 노사가 근로조건 등을 논의하는 공동협의기구 설치를 강제하는 등 용역회사와 다름없는 ‘무늬만 자회사’의 출현을 막을 법·제도를 갖춘다면, 정규직화를 둘러싼 우리 사회의 갈등비용이 크게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
- 법률 프리즘
- “단 하루라도 정규직을 원합니다”(2019. 02. 19 14:19)
- 2019. 02. 19 14:19 경제
- ㆍ과기분야 정부 출연연 비정규직 “직고용 방침 이행하라” 주장 ‘9명.’ 과학기술 분야 25개 정부 출연 연구기관(출연연)의 정규직 전환 대상 파견·용역노동자 총 2739명 가운데 정규직으로 전환된 노동자 수다. 정부는 2017년부터 출연연 파견·용역노동자에 대한 정규직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전환방식을 두고 노사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용역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작업은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선(先) 노사 합의’라는 기존 입장만 거듭 밝히고 있다. 일러스트 김상민 출연연에서 선호하는 정규직 전환방식은 직접고용 대신 자회사 설립을 통한 고용승계 방식이다. 2월 14일 현재 25개 기관 가운데 22곳이 자회사 방식을 추진하고 있다. 반면 용역노동자들은 직접고용을 주장하며 투쟁을 벌이고 있다. 시설·경비·미화 업무를 맡고 있는 파견·용역노동자들은 고령으로 대부분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노동자들이다. 정규직 전환이 되더라도 곧 회사를 나가야 한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이들은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왜 정규직을 원하는 걸까. “차별의 대물림 끊겠다” ㄱ씨(64)는 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서 30년 동안 시설관리 업무를 해온 용역노동자다. ㄱ씨가 연구원 측으로부터 ‘통보’받은 정년은 65세. 1년 뒤 회사를 떠나야 한다. 용역직은 별도의 정년이 없다. 하지만 ‘원청’인 연구원에서 암묵적으로 시설 용역직의 정년을 65세로 정했고, 이 방침은 규정이 됐다. 1990년 ㄱ씨는 ‘정규직’으로 입사했다. 하지만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인원 감축 바람이 불면서 ㄱ씨와 같은 기술직 노동자들은 구조조정 1순위에 올랐다. 결국 ㄱ씨는 2000년에 용역직원이 됐다. 연구원 ‘기계주임’이 용역업체 소속 노동자가 된 것이다. 같은 일터였지만 업무환경은 달라졌다. 가장 큰 변화는 업무량이었다. 폐수처리 업무처럼 담당자가 따로 있는 일이 ‘덤’으로 얹어졌다. 폐수에 약품을 탔고 폐수처리작업이 제대로 됐는지 여부도 확인했다. 실험용 생쥐를 비롯한 동물 관리도 ㄱ씨와 같은 시설 용역직 몫이었다. 연구원 ‘정규직’ 시절에는 하지 않던 일이었다. 근무시간도 늘었다. ㄱ씨를 포함한 시설 용역 노동자 3명이 돌아가며 회사를 지켜야 했다. 이들은 1년 365일 중 122일을 회사에서 보냈다. 명절도 따로 챙길 수 없었다. 지난해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 소식을 듣고 연구원 측에 인원 보충 계획을 제안해 봤지만 대답조차 들을 수 없었다. 이렇게 일을 해도 법정 야간·휴일 근로수당을 받지 못했다. 문제를 제기했다가는 다음해 용역계약을 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ㄱ씨를 비롯한 시설·경비 용역노동자들은 지난해 노동조합에 가입한 뒤 대전지방고용노동청에 임금체불 진정을 제기했고 받지 못한 22개월치 초과근무수당의 절반가량을 용역업체로부터 돌려받았다. 이 과정에서 실질적으로 용역직원의 임금과 처우 수준을 정하는 연구원 측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았다. 2월 14일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앞에서 출연연 간접고용 노동자 직접고용 쟁취를 위한 집회가 열리고 있다. / 공공연구노조 업무환경과 처우보다 ㄱ씨를 힘들게 한 건 차별이었다. ㄱ씨와 관련된 업무지시를 비롯해 업무와 관련된 의사결정은 모두 ‘원청’인 연구원에서 이뤄졌다. 그럼에도 연구원 내 용역직원들은 늘 ‘외부인’이었다. 무엇보다 10년 동안 같은 정규직이었던 입사 동기·동료들의 싸늘한 시선을 견디기 어려웠다. 단합대회와 같은 공식 행사에도 참석할 수 없었다. 아무런 기준 없이 연구원에서 시키는 일을 해야 했고 지시를 따라야 했다. ㄱ씨는 “언젠가부터 ‘나는 정규직의 하인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내가 겪은 차별의 아픔을 남아있는 용역직원들에게 물려줘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 투쟁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차별 고착화 부를 ‘자회사’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에서 청소일을 하는 미화 용역직원 ㄴ씨(66)도 3년 뒤 연구원을 떠나야 하는 고령 노동자다. 연구원에서 직접고용한다 해도 정규직으로 일할 수 있는 기간은 3년 남짓이다. ㄴ씨를 비롯한 15명의 미화 용역노동자들은 대부분 60대로 ㄴ씨와 비슷한 처지다. “단 하루만이라도 좋으니 무시당하지 않는 정규직으로 일하고 싶습니다.” ㄴ씨의 말이다. ㄴ씨는 매년 12월이 되면 사표를 쓴다. 이후 1월에 새 용역업체로부터 연락이 오면 계약을 한다. 전화를 받지 못하면 그 길로 다른 일터를 찾아야 한다. 다행히 ㄴ씨는 8년째 일을 하고 있지만 해마다 일자리를 잃는 동료들을 봐왔다. ㄴ씨와 같은 미화 용역노동자들이 계약이 끊길까봐 불안해 하는 이유다. 이들의 출근시간은 주중 오전 6시40분이지만 절반 이상이 1시간 일찍 출근한다. 연구원의 지시는 아니지만 행여 사측에 밉보일까봐 노동자 스스로 출근시간을 당긴 것이다. ㄴ씨는 출연연에서 추진 중인 공동출자회사 채용을 통한 정규직 전환에 반대한다. 자회사 방식으로는 용역직에 대한 차별이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본다. 소속이 다르면 같은 직원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ㄴ씨는 경험을 통해 익혔다. 여기에 자회사는 일방적으로 정년 조정이 가능하고 경영상태에 따라 해고도 가능하기 때문에 당초 고용안정이라는 정부의 정규직 전환정책 취지와도 맞지 않는다. ㄴ씨는 “연구원에 직접고용이 된다고 해도 오래 일할 수 없고 처우가 나아지는 게 아니다”라며 “그저 일하는 곳에서 규정에 따라 업무지시를 받고 사람 대접 받으며 일하고 싶을 뿐”이라고 말했다. 출연연 측은 노동자의 직접고용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정규직 전환이 되면 지속적으로 처우개선과 임금인상을 요구할 것이라 부담이 크다’는 게 이유다. 직접고용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당장의 전환 비용은 문제의 핵심이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출연연의 한 고위 임원은 “본질은 박사급 연구원들이 느끼는 상실감과 박탈감”이라며 “정규직 전환에 따른 기존 연구원들의 사기저하가 심해서 대규모 이탈 움직임도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노조 측의 주장은 다르다. 직접고용에 비해 자회사로 전환하는 게 더 많은 비용이 든다는 것이다. 민주노총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의 분석자료에 따르면 시설관리 용역노동자 20명이 근무하는 한 연구원의 경우 자회사 전환 비용이 직접고용보다 연간 1억2000만원 더 소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상협 공공연구노조 조직국장은 “출연연이 책정한 자회사 대표이사의 연봉만 3억원”이라며 “자회사 설립은 과기부와 연구회 관료들을 위한 자리 만들기 작업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 [표지 이야기]파견근로자 보기를 정규직같이 하라(2018. 07. 10 13:37)
- 2018. 07. 10 13:37 경제
- ‘파견법’이 시행된 지 20년이 됐다. 파견근로자를 보호한다는 명목과는 달리 그동안 다양한 불법파견 문제를 낳았다. 법 개정과 함께 불법파견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과 기업의 인식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2014년 12월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린 ‘비정규직 종합대책 폐기 촉구 기자회견’에서 한 참가자가 팻말을 들고 생각에 잠겨 있다. / 김정근 기자 IMF 금융위기가 몰아치던 1998년 7월 1일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이 시행됐다. 국민들이 원한 결과는 아니었다. IMF는 구제금융 제공의 대가로 노동 유연성 확보 문제를 집요하게 요구했고, ‘악법’이라는 노동계의 반발 속에서도 국가 부도위기에 몰린 대한민국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많지 않았다. 노동 유연성은 ‘쉬운 해고’의 다른 말이다. 오늘날 658만명에 달하는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한편으론 정당화하는 개념이다. 지난 7월 1일부로 파견법 시행 20년이 됐다. 최초 26개였던 파견근로 허용업종은 2004년 32개로 늘었고, 2010년 이명박 정부가 17개 업종을 더 추가하려다 여론의 반발로 무산됐다. 2015년엔 박근혜 정부가 55세 이상 고령자와 관리전문직에게 파견근로를 새로 허용하려다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2002년 9만4000명이던 파견근로자 수는 지난해 18만5000명으로 늘었다. 노동계는 파견법이 파견근로자를 보호한다는 명목과는 달리 사내하청, 위장도급 등 법의 허점을 파고든 다양한 불법파견을 낳고 있다고 지적한다. 파리바게뜨 사태, 삼성전자서비스 사건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파견법의 개정 요구와 함께 그간 불법파견 문제에 대해 소극적으로 대응해온 정부를 향해 인식과 태도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파견법이 시행 20년 만에 중요한 변화의 기로에 섰다. 불법파견 문제 인식전환 시작됐다 시내의 한 파리바게뜨 매장에서 제빵기사가 빵을 굽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6월 28일 고용노동부 천안지청이 신한생명보험에 시정명령을 내렸다. 신한생명의 충남 천안연수원에 근무하는 파견업체 ㄱ사 소속 도급 근로자 9명에 대해 파견법 위반이므로 직접고용하라는 내용이었다. 지난해 여름 천안지청에 불법파견 문제로 진정을 제기했던 ㄱ사 소속 근로자 A씨(<주간경향> 1281호 보도)는 시정명령 소식을 전해듣고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노조도 없이, 근로자들끼리 틈틈이 노동관련법들을 공부해가며 원청업체와 벌여온 1년간의 싸움이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 A씨 등은 신한생명과 연수원 관리계약을 맺은 ㄱ사 소속 직원으로 길게는 5~6년씩을 근무했다. 채용될 때부터 근무하는 기간 내내 원청업체인 신한생명으로부터 업무지시 및 근태관리를 받았고, 이 경우 불법파견에 해당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천안지청에 진정을 냈다. 이튿날 더 놀라운 소식이 들려왔다. 신한생명 본사에서 사람이 내려왔다. A씨 등을 마주한 그는 “노동부 시정명령을 수용해 직접고용하겠다. 다음주 중에 구체적인 내용을 협의하자”고 말했다. 불과 이틀 전까지만 해도 “ㄱ사와는 도급계약 관계로 직접고용 의무가 없다”고 말하던 사측의 태도가 노동부 시정명령을 기점으로 하루아침에 바뀐 것이다. A씨는 “직접고용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땐 정말 꿈인지 생시인지 싶었다”며 “이렇게 간단하게 끝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쉽게 끝날 수 있는 문제가 왜 1년이나 걸렸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신한생명은 A씨 등에게 본사 정규직 채용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록 소규모이지만 ㄱ사 근로자들의 승리는 의미하는 바가 작지 않다. 한국비정규직노동센터의 지난해 비정규직 통계자료를 보면 파견근로자의 절반에 가까운 44%가 시설관리·사업지원서비스업에 종사하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파견직이 될 수도 있는 용역근로자의 경우 87.7%가 이 직종에 몰려 있다. A씨 등 9명 역시 시설관리·경비 근로자들이다. 김대환 노무사는 “최근까지의 불법파견 시정명령 사례를 보면 대부분이 제조업 분야였다”며 “파견근로자가 특히 많은 서비스 업종에서 나온 결정이어서 유사한 다른 사업장에도 영향을 주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간 불법파견 문제가 크게 부각되지 않았던 제1금융권 내 주요 기업 사례라는 점에서도 이례적이다. 대기업인 신한생명이 즉각 직접고용을 전제로 협의에 나선 부분도 주목할 만하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1년간 파리바게뜨, 한국GM, 만도헬라, 캐논코리아 등 대기업을 대상으로 한 여러 불법파견 시정명령 사례 중 이렇게 이른 시간 내 전향적인 해결 의지를 보인 기업은 없었다. 직접고용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아도 기업은 1인당 1000만원의 과태료만 내면 된다. 신한생명의 경우 직접고용 대상이 9명이라 과태료 부담도 크지 않았다. 한 재계 관계자는 “파리바게뜨나 한국GM의 경우 불법파견 문제가 크게 부각되면서 기업 이미지 등에 많은 손실을 입혔다”며 “문제가 더 커지기 전에 빠른 해결책을 찾는 게 낫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고 밝혔다. LG유플러스가 2일 협력사 직원 1800명을 정규직으로 직접고용하겠다고 밝힌 것도 불법파견 문제에 대한 기업들의 태도 변화를 보여주는 사례다.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LG유플러스는 노동부의 불법파견 시정명령이 내려지기 직전에 이 같은 결정을 내리고 실행했다. 선의에 의한 결정은 아니었다 해도 기업들이 과거 불법파견 문제를 무시하고 ‘버티기’로 일관하던 자세에서 최근엔 적어도 이 문제를 ‘리스크’로 받아들이고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한다는 게 재계의 해석이다. “노동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근로자가 불법파견 문제를 제기하고 최종 승리하기까지 과정은 험난함 그 자체다. 민·형사재판을 통해 사측의 위법행위를 가리는 방법과 정부의 시정명령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있다. 이 중 근로자들에게 그나마 쉬운 길은 정부의 판단을 받아보는 쪽이다. 형사재판의 경우 노동부에서 불법파견 판단이 나오더라도 검찰에서 이 판단을 뒤집는 경우가 많아 재판까지 끌고가는 것도 어렵다. 형사에서 막히면 민사로 가야 하는데 ‘근로자지위확인소송’으로 불리는 불법파견 관련 민사소송은 소송기간도 길뿐더러 파견법이 워낙 복잡한 탓에 결과도 장담할 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대자동차만 해도 사내하청 근로자들이 민사소송을 통해 대법에서 불법파견 확정판결을 받기까지 8년이 걸렸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파견근로자들이 파견법 취지대로 ‘보호’를 받으려면 노동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대표적인 게 지난해 파리바게뜨 사건이다. 정부는 통상 정기 근로감독을 통해 불법파견 실태를 조사하고 적발된 사례에 대해 시정명령을 내려왔다. 파리바게뜨의 경우 정의당 이정미 의원을 통해 문제제기가 된 후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해 5378명의 제빵기사를 직접고용하라고 명령했다. 파리바게뜨는 사태 초기 법적 대응을 거론하며 버텼지만 정부가 추가 사법처리 및 530억원 규모의 과태료 부과 강행방침을 밝히자 결국 직접고용에 나섰다. 파리바게뜨 사태 이후 노동계에서는 “오랜만에 잘했다”며 노동부를 칭찬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ㄱ사 근로자들만 해도 천안지청에서 시정명령을 내리지 않았다면 올 연말 도급업체와의 근로계약 만료 이후 상황을 장담하기 어려운 입장이었다. 지청에서 불법파견 판단을 내리지 않은 이상 검찰에서 추가로 문제제기할 가능성도 낮고, 민사소송을 할 만한 여력은 없기 때문이다. 신한생명 제안대로 직접고용이 실현된다면 양질의 일자리 9개가 늘어나는 동시에 9명의 잠재적인 실업도 막는 효과가 생기는 셈이다. 반대로 노동부가 제 역할을 못했을 때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지는 삼성전자서비스 사태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가 6월 30일 발표한 조사 결과를 보면 노동부는 2013년 삼성전자서비스 AS센터에 대해 불법파견 의혹이 제기되자 수시근로감독을 벌였다. 당시 현장에서 감독활동을 벌인 근로감독관들은 불법파견에 해당한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노동부 고위공무원들이 개입하면서 최종 결론이 뒤집혔다. 그 결과 이듬해 AS센터 소속 근로자가 자살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고, 사측의 노조 파괴활동이 자행되는 등 숱한 문제점이 발생했다.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김성희 교수는 “불법파견 문제가 과거보다 중요하게 인식되는 추세인 건 맞지만 비용이나 인력관리 측면에서 기업들이 먼저 파견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나설 가능성은 아직 낮다”며 “정부가 의지를 가지고 불법파견에 대한 판단을 적극적으로 하는 한편, 공적 부문 간접고용 문제 해결에 대한 의지도 계속 보여줘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불법파견 시정명령 건수 및 업체가 이를 수용하는 비율은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노동부 집계를 보면 2016년 111개 사업장, 3208명이었던 시정명령 건수는 지난해 167개 사업장, 8593명으로 크게 늘었다. 시정명령을 업체가 수용하는 비율도 같은 기간 46%에서 81.9%로 뛰었다. 노동부 관계자는 “노동인권과 일자리를 중시하는 새 정부 출범 후 노동부 내 분위기가 예전과는 많이 바뀐 것이 사실”이라며 “불법파견 문제에 있어서는 정부 권한을 적극적으로 행사할 수 있도록 대응을 강화해가고 있다”고 밝혔다. 1995년 10월 열린 근로자파견법 제정 반대 등을 위한 당시 전국사무노동조합연맹의 공동대책위 발족식에서 참석자가 발언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검찰도 변해야 한다 노동계에서는 실질적인 사법처리 권한을 갖고 있는 검찰 역시 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동부의 경우 시정명령을 내릴 수는 있지만 그 자체로는 명령을 강제할 법적 효력이 없다. 기업 입장에서는 직접고용 대상 파견근로자가 많을 경우 비용을 따져봐서 직접고용보다 과태료 납부가 낫다는 판단이 들면 과태료를 내면 그만이다. 기업을 파견법 위반혐의로 기소해 경영진 등을 처벌할 권한은 어디까지나 검찰에 있다. 문제는 검찰이 파견법 위반으로 기업을 형사처벌한 사례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8년이 걸린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근로자들의 민사소송도 발단은 검찰의 불기소 처분이었다. 노동부가 2004년에 일찌감치 불법파견 판단을 내렸지만 검찰에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고, 근로자들은 결국 기나긴 민사소송을 택했다. 경북 구미시에 있는 일본기업 아사히글라스의 불법파견 문제도 검찰에서 판단이 뒤집힌 사례다. 노동부 구미지청은 지난해 9월 22일 아사히글라스가 파견법을 위반했다며 178명에 대해 직접고용하라고 시정명령을 내렸다. 검찰에도 불법파견 혐의에 대해 기소의견을 달아 송치했지만 검찰은 같은 해 12월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아사히글라스는 시정명령 이행을 거부한 채 과태료를 내고 버텼고, 문제가 처음 불거졌을 당시인 2015년에 해고당한 근로자들은 아직도 회사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올 5월 고검에서 재수사 지휘 결정이 내려져 김천지청에서 수사를 진행 중이지만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미지수다. 검찰은 노동부의 근로감독관에 대한 수사지휘도 겸하고 있다. 불법파견 여부를 수사하고 가리는 단계에서부터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얘기다. 이에 비해 불법파견 등 노동문제는 통상 검찰 공안부에서 맡는 터라 담당검사의 노동법이나 노동현장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노동계는 지적한다. 장석우 민주노총 법률원 변호사는 “노동법 중에서도 파견법은 특히 복잡하고 어렵다”며 “담당검사가 사측 변호인이 주장을 하면 그대로 받아들여 불기소 처분하는 경우도 많이 봤다”고 밝혔다. 장 변호사는 “노동문제를 시국·선거사범 등을 다루는 공안에서 다룬다는 것 자체가 적절하지 않다”며 “검찰 내 전문성을 가진 노동 전담부를 신설하거나 법원에 아예 노동법원을 따로 두는 방안 등의 개선책을 검토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불법파견 사건을 최초로 접하고 현장에서 수사하는 근로감독관들도 보다 엄격한 법 집행에 나설 필요가 있다. 직장갑질119가 지난해 11월부터 6개월간 근로감독관들의 갑질 사례를 접수받은 결과 100여건의 제보가 전국 각지에서 쏟아졌다. 이 중에는 공정한 위치에 서야 할 근로감독관이 노골적으로 회사 편을 들거나 불명확한 이유로 사건 처리를 지연하고, 직무범위에 어긋나게 사측과 합의를 종용하는 등의 다양한 갑질이 포함됐다. 노동부도 지난해 근로감독관 문제를 인식하고 근무기강 확립과 인력 충원 등 대책을 내놓았지만 여전히 논란은 지속되고 있다.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그간 기업 입장에서, 자본 편에서 판단해 왔던 노동부의 고위관료들과 검찰, 근로감독관들 모두 인식을 전환해야 할 시점이 왔다”며 “현행 파견법 역시 폐지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불법파견을 낳는 여러 독소조항을 제거하고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엄단할 수 있도록 새로운 기준을 세워야 한다”고 밝혔다.
- 표지 이야기
- [그래, 나는 일을 못한다]‘내 꿈은 정규직’도 모자라 ‘내 꿈은 생존’(2015. 07. 13 16:57)
- 2015. 07. 13 16:57 사회
- ‘무명’ 연극배우가, 꿈을 제대로 펼치지 못한 젊은 작가가 작은 방에서 웅크리고 죽는 사회는 결코 좋은 사회가 아니다. 얼마 전, 무명의 연극배우 두 명이 며칠 간격으로 세상을 떠났다. ‘무명 연극배우, 생활고로 숨진 지 5일 만에 고시원서 발견’, ‘무명 연극배우, 집 앞마당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 자살 추정’. 이 짧고도 건조한 기사 제목을 읽고 또 읽었다. 죽어서도 그들은 ‘이름’ 대신 ‘무명’으로 호명됐다. 이 비정한 현실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아니, 애초에 ‘해석’이 가능한 종류의 일이었을까? 2011년 어느 날, 젊은 작가가 생활고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남는 밥이나 김치가 있으면 문 좀 두드려 주세요.” 그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글이었다. 그가 살았다던 경기도 안양시 석수동은 우리 동네 인근이었다. 어쩌면 우리는 버스 안에서, 거리에서 한 번쯤 스쳤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가까운’ 누군가가 세상에서 사라지던 날, 하루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버스에서 스마트폰으로 그 소식을 읽으며 창피한 줄도 모르고 서러운 눈물을 흘렸다. 산다는 것이 참 거지 같다 생각했다. 세상은 호들갑스럽게 그의 죽음을 공유하고 슬퍼하며 일명 ‘최고은 법’이라는 예술인의 직업적 지위와 권리를 보호하는 법을 만들었으나, 법은 결국 무명의 예술가들을 구원하지 못했다. 한동안 <내 꿈은 정규직>이라는 스마트폰 게임이 유행했다. 청년이 면접을 보고 (일단) 인턴으로 입사해 심사를 거쳐 계약직, 정규직 등으로 승진을 한다는 내용이다. 재미 삼아 게임을 시작했는데 몇 번이나 면접에서 탈락했다. 이유도 없었다. 그냥 탈락이었다. 다시 면접에 도전할 때마다 게임 아바타의 넋두리가 바뀌는데 대략 이런 식이었다. “네 번째 회사, 이쯤 되니 ‘내 꿈은 정규직’이 아니고 ‘내 꿈은 출근’이다.” 그렇게 겨우 인턴으로 입사해 피라미드 구조로 구성된 사무실에서 열심히 일을 한 보람도 없이 번번이 잘리곤 했는데 이유는 단순했다. 일을 잘 못해서. 학자금 대출 갚으려먼 알바도 해야 하고, 승진하려면 스펙도 쌓아야 하는데, 그러기 전에 ‘일을 못 해서’ 잘리는 상황이 무한 반복됐다. 그렇게 꿈꾸던 정규직이 됐지만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잦은 야근과 주말 출근으로 다크 서클이 길게 늘어졌고, 눈은 충혈됐다. 결국 나는 게임을 삭제했다. 우리가 꿀 수 있는 꿈이 언제부터 ‘정규직’이 된 걸까? 생각해보면, 간호사, 의사, 박사 등 우리 꿈이 한 번도 ‘직업’ 영역을 벗어나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꿈 꿀 수 있는 최대치가 ‘대통령’ 정도였다. ‘바지 위에 아빠 빤스 입고 모가지에 보자기를 두르고’ 열심히 골목을 뛰어다녔지만, 엄마 립스틱 몰래 바르고 높은 굽 신고 공주 놀이도 해봤지만, 현실이라는 네모난 얼음 틀에 꿈의 모양을 맞추도록 교육받고, 교육하며 살아왔던 셈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 시절에 내세웠던 슬로건은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였다. 사람들은 ‘내 꿈’이 누구의 꿈인지 의심하고 따졌지만, 나는 그 문장의 주어가 어느 한 사람이나, 소수가 아니라 우리 모두이길 바랐다. 대통령 후보가 제시하는 슬로건 치고는 매우 추상적이라 생각했지만 ‘꿈’을 그렇게 소중하게 여기는 대통령이니 적어도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굶어죽을 일은 없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꿈’이었다. 굉장히 기분 나쁜 ‘개꿈’이었다. 어쩌면 우리는 그동안 수많은 ‘최고은’을 만났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생각하는 거리보다 더 가까운 곳에 ‘무명 연극배우’가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 꿈은 정규직’ 게임 속 캐릭터는 사실, 우리 모두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는 모른 척 살아간다. ‘사회적 약자’라는 이름으로 타자화시키거나 그저 ‘개인의 문제’로 치부해 버리곤 한다. ‘내 꿈’을 이루기 위해 ‘네 꿈’은 간단하게 무시한다. ‘무명’ 연극배우가, 꿈을 제대로 펼치지 못한 젊은 작가가 작은 방에서 웅크리고 죽는 사회는 결코 좋은 사회가 아니다. 꿈을 좇지 말고 눈을 낮춰 취업하라, 안 되면 중동이라도 가라고 윽박지르고 등 떠밀거나 ‘컴퓨터로는 밥 못 먹고 산다’며 누군가의 삶을 ‘밥’으로 간단하게 치환하는 사회는 불행한 사회다. 지금 우리 사회가 ‘내 꿈은 정규직’도 모자라 ‘내 꿈은 생존’으로 바뀌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다면 우리는 결국 되풀이되는 비극의 목격자요, 공범이 될 수밖에 없다. <오수경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 회원>
- 그래, 나는 일을 못한다
- [편집실에서]뭐, 정규직 때문이라구?(2014. 12. 09 15:42)
- 2014. 12. 09 15:42 오피니언
- 그의 발언을 들었을 때 귀를 의심해야 했습니다. 그만큼 엽기적이었습니다. “정규직에 대한 과보호로 기업이 겁이 나 인력을 뽑지 못하는 상황” “한 번 뽑으면 계속 책임져야 한다는 두려움 때문에 정규직 채용을 주저한다” “60살 정년이 제도화된 만큼 노동시장 유연화를 통해 기업 부담을 줄여주지 않으면 일자리를 만들 수 없다”…. 세상에, 경제부총리라는 사람이 어떻게 이런 발언을…. 가히 정규직에 대해 저주에 가까운 발언들입니다. 경제부총리가 정규직에 저주를 퍼부어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사회도 엽기적인 건 마찬가지입니다. 급기야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있는 중규직 도입을 정부가 검토 중이라는 보도까지 나오고 있는 걸 보면 그가 정규직에 대해 칼을 빼들긴 빼들 모양입니다. 드디어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진짜 속내가 보입니다. 본심은 주머니 속의 송곳과 같아 어떻게든 드러나게 돼 있습니다. 최 부총리는 정규직이 철밥통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 듯합니다. 세상 물정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 같습니다. 얼마 전 지방의 중소기업에서 임원으로 일하다 퇴직한 분과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정년 60세 연장 법’이 화제에 올랐는데, 그 전 임원은 코웃음을 치더군요. “회사가 사람 내보내려고 마음 먹으면 수십수백 가지 방법이 있어요. 버티기 쉽지 않습니다. 대부분은 제발로 나가게 됩니다. 정년까지 남아 있는 사람 거의 없어요. 현실에서 지켜지지 않는데 법만 만들면 무슨 소용입니까.” 노동시장이 유연하지 않아서 정규직도 해고를 마음대로 할 수 있어야 한다구요? 우리나라 노동자의 평균 근속연수는 5.1년에 불과합니다. 10년 이상 장기근속자 비율도 18%밖에 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기업 중 평균 근속연수가 가장 길다는 KB국민은행도 20.9년입니다. 군대 다녀와서 졸업 후 바로(약 26살쯤) 입사한다고 가정하면 50살 이전에 퇴직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정규직이라고 하더라도 회사가 갑이지 정규직이 갑인 적은 없었습니다. 최근 법원 판결만 봐도 그렇습니다. 회사가 구사할 수 있는 수십수백 가지 해고방법에 대해 법원이 연신 손을 들어주고 있지 않습니까. 쌍용차 노동자들, YTN 해고기자들이 모두 패소했습니다. 늘 회사가, 기업이 이겼습니다. 기업 프렌들리 정권은 쌔고 쌨어도 노동자 프렌들리 정권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기울어도 한참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뛰고 있는 게 한국의 노동자들입니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규직이 과보호되고 있다는 최 부총리의 인식은 무슨 ‘뜬금포’인지 그저 황당할 따름입니다. 정규직 때문에 기업의 성장이 정체돼 있다는 시각 또한 불편하기 그지없습니다. 내년엔 경제가 더 어려워진다는데 최 부총리가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고 있는 것인지 불안합니다. 최 부총리는 박근혜 정권에서 실세 중의 실세로 불리는 정치인입니다. 명색이 정치인이라면 꿈이 커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사회의 모든 비정규직을 없애 노동자들이 차별없이 평등하게 일할 수 있는 그런 사회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갖지는 못할망정, 정규직까지 기업 마음대로 해고할 수 있도록 하자니 쪽팔려서 제 얼굴이 다 화끈거립니다. 최 부총리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국민이 누구인지 이제 알 것 같습니다. 그의 국민은 정규직이나 비정규직 같은 노동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기업이었습니다. 수많은 ‘미생’을 만들어도 기업만 잘되면 된다는 게 그의 인식이었던 것입니다. 국민을 얼마나 우습게 봤으면 저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지 기분이 더러워집니다. 최 부총리가 잘 모르는 것 같아서 알려드립니다. 기업 위에 국민이 있습니다. 최 부총리는 부총리가 아니라 로비스트가 더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빨리 부총리 그만두고 기업 로비스트로 나가서 성공하길 바랍니다. 괜히 국민들 위하는 척하면서 진짜 국민들 열 받게 만들지 말고.
- 편집실에서
- [박점규의 노동여지도]돌아와요 부산항에 그리운 정규직이여~(2014. 05. 20 16:23)
- 2014. 05. 20 16:23 경제
- 한진중공업 영도공장이 활기를 찾고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 조선 1번지 한진중공업 부산항에 돌아올 노동자는 그리운 정규직이 아닌 하청노동자들뿐이다. “우리 부산에서 한진이 젤로 크고 존 회사 아입니꺼? 올해 배 수주도 마이 했다 하이까 더 좋아질 끼라예.” 부산대교를 건너 한진중공업이 보이기 시작하자, 택시기사님이 자랑스레 얘기하신다. 정문 앞에 이르자 ‘대한민국 조선 1번지 한진중공업’이라고 쓰인 대형 현수막이 시선을 붙잡는다. 회사는 ‘22년 연속 세계 최우수 선박 건조사’라고 자랑한다. 부산항에 조선소가 들어선 것은 1937년. 세계 1위 조선 강국의 문을 연 대한조선공사의 옛 영광을 재현하고 싶은 부산 사람들의 마음이다. 한진중공업은 부산의 상징이다. 지금은 부산은행에 자리를 내주었지만 2008년까지 한진은 부산의 1등 기업이었다. 외환위기 때도 한진은 끄떡없었다. 도리어 환차익으로 돈방석에 앉았다. 5년치 배를 수주해 놓았기 때문이었다. 2008년까지 많은 돈을 벌었다. 부산에서 번 돈으로 필리핀 수빅조선소를 만들었다. 지금까지 쏟아부은 돈만 1조3000억원이 넘는다. 한진중공업 부산 영도조선소 조업현장. | 연합뉴스 2008년까지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와 다대포, 울산공장에는 하청노동자까지 포함해 7000명이 넘는 생산직 노동자가 일하고 있었다. 부산항에 있는 한진중공업 연구개발(R&D)센터는 설계를 하는 젊은 사무직 노동자들로 활기가 넘쳐흘렀다. 비정규직 노조를 결성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했다. 한진중공업노조는 정규직 노조에 하청노동자들을 가입시키는 ‘1사 1노조’ 사업을 추진하기도 했다. 필요한 추가인력 하청노동자 채용 계획 2008년 미국에서 시작된 경제위기가 유럽까지 강타하면서 한진중공업에 먹구름이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회사는 울산공장을 팔고 하청노동자들을 내쫓았으며 직영노동자들에게 정리해고를 통보했다. 3000명이 넘는 용접공들이 조선소가 몰려 있는 거제와 울산으로 떠났다. 2010년 1월 6일 대한조선공사 해고자 김진숙 지도위원이 2003년 한진중공업 김주익 전 노조지회장이 올라가 목을 맸던 85호 크레인에 올랐다. 김진숙을 살려야 한다며 6월 11일 첫 희망버스가 부산으로 달려와 공장 담장을 넘었다. 그해 내내 희망버스는 부산을 뜨겁게 달궜고, 한진중공업 조남호 회장은 국회 청문회에 불려나가야 했다. 마침내 정리해고를 철회하기로 노사가 합의하면서 김진숙 지도위원은 309일 만에 살아 내려왔다. 4년 전 손쉽게 넘을 수 있었던 얕은 담장이 교도소 담벼락보다 높아졌다. 노조사무실이 공장 안에 있지만 회사는 국회의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 있다. 복수노조가 만들어졌고, 민주노조는 소수노조로 전락했다. 김진숙과 함께 크레인에 올랐던 박성호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장은 “2010년의 기억을 잊고 싶었는지 회사가 85호 크레인도 철거해버렸다”고 말한다. 우울하던 공장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영도공장 4개의 도크에는 부경대 실습선, 해경 구조선, 전투함 등 7척의 배가 건조되고 있다. 지난해 특수선 15척과 올해 컨테이너선 2척을 수주해 2016년까지 17척의 배를 만든다. “한진중공업이 살아야 부산의 조선 경기가 살아나고 일자리도 늘어나면서 부산 경제가 활성화된다”며 부산시장과 국회의원들이 한진중공업을 지원하기 위한 추진위원회까지 만들었다. 휴업 중인 노동자 350명이 공장으로 돌아왔고, 내년 1월이면 모두가 현장에 복귀할 예정이다. 수주받은 배를 만들려면 2500명 정도의 인원이 필요한데 직영노동자는 750명뿐이다. 회사가 좋아지고 인력이 필요하지만 정규직은 안 뽑는다. 회사는 앞으로 1000명이 넘는 하청노동자들을 데려다 배를 만들 계획이다. 50명이 일하던 엔진 파트에 20명밖에 없지만 설치와 프로펠러를 하청업체에 넘기면 된다. 방산법 때문에 비정규직을 쓸 수 없는 특수선을 빼고 상선의 설계도 이미 외주화했다. 대한민국 조선 1번지 한진중공업의 부산항에 돌아올 노동자는 그리운 정규직이 아닌 하청노동자들뿐이다. 한진중공업에 이웃한 대선조선의 일자리는 괜찮을까? 조선공업협회 자료를 찾았다. 국내 9위 조선소로 1년에 20척이 넘는 컨테이너선과 벌크선을 만드는 조선소다. 그런데 직영노동자는 139명뿐이다. 하청노동자가 무려 1739명이나 된다. 한진중공업보다 훨씬 심각한 하청 조선소다. 정규직의 절반도 안 되는 월급을 받으며, 배를 수주하지 못하면 쫓겨나 이 도시 저 도시를 떠돌아다녀야 하는 하청 용접공. 그들이 만드는 배는 안전할까? 버스를 타고 작은 조선소들을 지나 연안여객터미널에 내렸다. 대합실이 조용하다 못해 스산하다. 승객이 거의 없다가 최근 들어 조금 늘었단다. 6층 전망대에 올랐다. 아무도 없다. 항구에는 부산에서 제주를 왕복 운항하는 서경파라다이스호가 정박해 있다. 트럭과 지게차가 쉴 새 없이 드나들며 화물을 싣는다. 이 여객선의 나이는 몇 살일까? 이 배는 안전할까? 승무원들은 정규직일까? 하청조선소서 만드는 배는 안전할까? 가까이 있는 국제여객터미널도 한산하다. 부산에 놀러왔다 돌아가는 가난한 일본 여행객들이 분주히 발걸음을 옮긴다. 국내 여객선과는 달리 국제 여객선은 인원과 화물 적재가 엄격하다. 여권과 비자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승선 인원을 모르는 일은 있을 수 없고, 화물도 수입과 수출 통관절차를 거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원들의 처지는 다르지 않다. 계약직 선원들이 많고,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자회사를 만들어 선원을 채용하기도 한다. 선장을 비롯해 핵심 부서인 갑판부와 기관부 선원 17명 중 12명이 비정규직이었던 세월호와 별반 다르지 않다. 부관훼리에서 일하는 강회숙씨는 “20년 전 같은 여객선 회사에서 일해도 선원은 육상업무를 하는 사무직의 두 배가 넘는 월급을 받았다”고 말한다. 그런데 지금 선원의 월급은 사무직 노동자들과 차이가 없거나 더 낮다. 한 배에서 10년씩 일하는 항해사는 찾아보기 어렵다. 강씨는 노동조건은 열악한데 먹고 살기 힘드니까 이직률이 높다고 말한다. 국내 선원 3만8000여명 중 비정규직은 70% 이상으로 추산되고 있다. 연안여객선 선원의 평균 월급은 2011년 기준 329만원 정도였다. 육상업무를 하는 사무직 노동자들도 계약직이 많아졌다. 동방, 세방 등 화물 하역회사도 마찬가지다. 회사의 잘못을 감시하고 근로조건을 개선하는 노동조합은 아예 없거나 있어도 힘이 없다. 우리는 비정규직이 관리하고, 화물을 싣고, 운항하는 여객선을 타고 있다. 자갈치시장을 지나면 보이는 공동어시장은 어선을 타는 선원들이 오가는 곳이다. 20년 동안 트롤어선을 타고 있는 항해사 최재천씨는 한 달에 200만원을 벌기 힘들다고 말한다. 그나마 항해사와 기관사들은 나은 편이다. 한국인들이 떠난 고깃배는 이주노동자 선원들로 채워지고 있다. 부산에만 1200명 정도의 이주노동자 선원들이 일한다. 지난 2월 14일 인도네시아 선원이 한국인 동료들에게 맞아 숨진 사건이 벌어졌다. 2012년 국가인권위원회 실태조사 결과 94%가 폭언을, 43%가 폭행을 경험했다. 해고되고 강제출국을 당하기 때문에 신고도 못한다. 공동어시장에서 거리 상담을 통해 떼어먹은 체불임금과 수수료를 받아주는 활동을 하고 있는 ‘이주민과 함께’의 김그루씨가 들려준 이주노동자 선원들의 실상은 끔찍했다. 김경협 의원은 지난 5월 8일 선원 등 국민 생명과 안전에 밀접한 업무에 대해선 계약직 노동자 채용을 금지하는 법률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하지만 선주들은 강력 반발하고 있고, 정부는 다른 직종으로 확산될까봐 입을 닫고 있다. 대한민국 최대 항구도시 부산. 배를 만들고 배를 타는 노동자들의 신음소리가 항구에 가득하다. 부산항의 일자리는 비정규직 노동자들로 채워지고 있다. 돌아와요~ 부산항에~ 그리운 내 정규직 노동자여~
- 박점규의 노동여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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