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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비 내리는 날 정동길 ‘광화문 연가’
[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비 내리는 날 정동길 ‘광화문 연가’(2015. 10. 05 18:32)
2015. 10. 05 18:32 문화/과학
종로, 대학로, 신촌. 이러한 지명들이 즉각적으로 환기시켜 주는 기억들을 어루만져 보면 ‘쓸쓸하면서도 아름다운 회한’에 잠기게 된다. 1970~80년대를 서울에서 보낸 사람들의 집합적인 정서다. 비가 내리고, 또 찬바람이 부는 날, 정동길을 걸었다. 뉴스를 보다가 날씨 예보가 나오면 다른 채널로 돌리기까지 하는 사람이라 일부러 비바람 부는 날을 택해 덕수궁 쪽으로 나간 것은 아니다. 우산도 안 들고 회의를 하러 시내에 나갔다가 잠시 비를 피해야 했고, 비싼 주차요금을 조금이라도 아끼려고 외진 곳에 차를 세워두는 바람에 세찬 바람을 맞으며 한참을 걸어야 했다. 그렇게 시월의 첫날, 정동길을 걸었다. 추석 연휴 직후의 쌀쌀한 날씨, 비에 젖은 정동길, 그 아래로 오래된 교회가 보였다. 거의 자동반사적으로 이문세가 부른, 이영훈의 아름다운 노래 가 생각났다. 아닌 게 아니라 정동길의 돌고 도는 로터리에는 이영훈의 노래비도 세워져 있다. 이제 모두 세월 따라 흔적도 없이 변하였지만 덕수궁 돌담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 다정히 걸어가는 연인들 언젠가는 우리 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가지만 언덕 밑 정동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 눈 덮인 조그만 교회당 이문세가 부른, 이영훈의 아름다운 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나는 주차장까지 걷다 말고, 비바람을 잠시 피하였다가 저마다의 사무실로 우루루 퇴각한 사람들의 어수선함이 잦아든 조그만 카페의 창가에 앉았다. 음악평론가 최지선은 이영훈의 작품에 대하여 “구체적인 스토리와 섬세한 묘사”를 통해 “절제되고 정제된 슬픔과 쓸쓸하면서도 아름다운 회한”을 그려냈다고 말했다. 과연 그런 풍경이 창밖의 때이른 쌀쌀한 가을 날씨에 묻어 있었다. 그 슬픔과 회한은 이영훈만의 고유한 기억이 아니라 1970~80년대를 서울에서 보낸 사람들의 집합적인 정서다. 종로, 대학로, 신촌. 이러한 지명들이 즉각적으로 환기시켜 주는 기억들을 어루만져 보면 ‘쓸쓸하면서도 아름다운 회한’에 잠기게 된다. 건강한 정서냐 하면 꼭 그렇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애써 부정할 필요는 없는 그런 감정이다. 종로와 세운상가와 광화문과 서울역을 쏘다니면서 서울이라는 대도시가 제공하는 거대한 스펙터클과 미세한 감각들을 샤워를 하듯 제 몸으로 받아들였던 세대들에게 이 덕수궁의 돌담과 정동길은 거대사와 미시사가 교차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작곡가 이영훈은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혜화동, 광화문, 정동길이 그의 노래에 익숙한 풍경으로 묘사된다. 마치 소읍 출신의 시인들이 자연부락의 풍광을 모천회귀의 연어처럼 읊는 것과 진배없다. 이영훈의 아내 김은옥은 이렇게 회고한 적이 있다. “그는 아침 9시면 언제나 혜화동 우리집 근처에서 기다렸다. 그리고 우리의 이른 데이트는 시작되었다. 이른 아침 문을 여는 곳은 고궁뿐. 그와의 고궁 순례는 매일 계속되었다. 창경궁, 경복궁, 창덕궁….” 그런 기억들이 그의 노래에 스며든다. 음악평론가 임진모와 인터뷰를 하면서 이영훈은 “곡을 써야 되겠다 싶으면 피아노 앞에 앉아서 담배 피우고 커피 마시면서 명상을 하죠. 어느 장면을 생각할까. 젊었을 때 대학로나 시청 앞에서 섰을 때 어떤 생각을 했을까. 버스를 타고 이런 구체적인 장면을 생각하면 그 배경음악이 떠올라요. 그럼 그걸 바로 쓰는 거죠”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영훈의 삶을 추모하고 그 음악을 기억하는 책 에 나오는 이야기들이다. 그 책에 기록된 이영훈의 기억을 하나 더 인용해 본다. 2003년 초가을의 기록이다. “오늘 예술의 전당 언덕 위에서 내려다본 노을 진 하늘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만큼 아름다운, 우리가 어릴 적 바라보던 그런 하늘이었다. 지금의 서울 하늘 아래에서는 몇 년 만에 볼 수 있는 그리운 하늘이었다. 오래도록 그 하늘을 보았다. 구름이 변해가고 그 찬란한 색채가 변해가는 것을… 그 쓸쓸한 화려함이 어둠에 가려질 때까지… 지켜보았다.” 서울 중구 정동 덕수궁 돌담길 로터리에 있는 이영훈의 노래비 옆에 걸린 플래카드. / 정윤수 정동, 거대사와 미시사가 교차하는 지점 그는 20대 때부터 혜화동 로터리에 작업실을 마련하여 음악작업을 했다. 견실하게 일상생활을 했던 이영훈의 습관 중에 하나는 아침 일찍 도시를 산책하는 것이었다. 간밤의 흥취가 말갛게 사라진 대학로의 아침, 이를테면 9시쯤에 그는 커피 한 잔을 마시기 위해 천천히 걷는다. 그 무렵, 그 곳에는 ‘난다랑’이라는 커피숍이 있었다. 그곳에 들어가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창밖의 풍경을 완상하는 것이 이영훈의 첫 일과였다. 중·고교를 그 근처에서 다닌 나도 그 커피숍의 위치와 단아했던 내부의 풍경을 기억하고 있다. 특히 창가에 놓여 있던 노르스름한 색깔의 의자, 늘 그 앞에 지나갈 때마다 꼭 한 번 앉아봐야지, 하는 생각을 갖게 했던 ‘난다랑’의 그 의자, 나는 그 의자에 앉아 보지는 못했다. 늘 누군가가 앉아 있었다. 이영훈은 그 거리에서 1987년 이문세의 4집 앨범에 수록된 , , 등을 지었고, 1988년에는 이문세의 5집에 , , 등을 백미로 남겼다. 이 곡들은 소중하다. 거대한 도시는 쉼없이 기억을 지워버린다. 그래야 계속 거대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집합적 기억도 뭉개지고 사소한 기억도 금세 망실되는 것이 대도시의 운명이다. 그 자리는 가짜 기억이 장악하거나 기이한 물신들로 채워진다. 이를테면 광화문광장의 조잡한 시설물이나 덕수궁 대한문 앞의 영국 버킹엄식 수문장 교대식은 이 거대한 도시가 얼마나 기발하게 오랜 기억들을 뭉개버리고 키치 상품들로 성형을 하는지 잘 보여준다. 그러나 이영훈의 노래가 남아 있기에 아예 모든 것이 사라지지는 않은 것이다. 그래서, 예기치 않은 망중한의 일이건만, 그 비싼 정동 일대 주차장의 주차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잠시나마 텅 빈 카페에 앉아서 찬바람이 잉잉거리는 정동길을 내다보는 서푼어치 감상도 한 줌의 의미는 있는 것이다. 이 순간, 이 거리에 BGM을 흩날리게 한다면, 어김없이 이영훈의 노래일 것이다. 문득 불어온 찬바람에 의하여 올해의 가을이 예고되었으니, 한동안 이 거리는 이영훈의 노래들로 더욱 착잡해질 것이다. 향긋한 오월의 꽃향기가 가슴 깊이 그리워지면 눈 내린 광화문 네거리 이곳에 이렇게 다시 찾아와요 언젠가는 우리 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가지만 언덕 밑 정동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 눈 덮인 조그만 교회당
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
[편집실에서]정동길
[편집실에서]정동길(2015. 06. 23 11:48)
2015. 06. 23 11:48 오피니언
나뭇가지가 시원하게 살랑거린다. 사방이 고요하다. 실은 고요할 수가 없다. 사람들이 여기저기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런데 그 소리가 시끄럽게 들리지 않는다. 주변의 어느 빌딩에서 나오는 게 틀림없는 기계음이 있다. 웅웅거리는데 신경에 거슬리진 않는다. 그 기계음이 뜨락의 모든 소리를 다 집어삼킨다. 그러니까 소리가 없는 것은 아닌데 들리지는 않는 게 마치 무언극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정동길에 들어서면 천천히 흐르는 시간이 이곳에 들어오면 아예 멈춰버린다. 그 정지된 풍경 속에 들어가 나도 그 일부가 된다. 정동길을 다닌 지 무려 20년 만에 찾아낸 나의 비밀장소다. 물론 나만 알고 있는 장소는 아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다. 다만 나만의 시간을 방해할 게 틀림없는 직장 동료들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는 점에서 이곳은 나의 비밀장소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오늘도 나는 이곳에 앉아 있다. 무덥고 나른한 오후다. 잎들도 처지고 무기력한 권태가 사방에 가득 차 있는 듯하다. 불현듯 소나기가 쏟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시원한 소나기가 세상을 확 씻어주면 좋겠다….’ 머릿속에선 이미 시원한 빗줄기가 땅바닥을 때리고 나뭇잎을 때리고 있다. 후두둑 소리가 난다. 뜨락을 포근히 감싸안고 있는 나무들도 점점 젖어간다. 나무는 비를 먹을수록 점점 검게 변한다. 새들은 갑작스러운 비의 공세에 어쩔 줄 모르면서 나뭇가지에 앉아 있다. 사람들이 손으로 머리를 가리고 황급히 자리를 피한다. 갑자기 뜨락이 텅 빈다. 비 내리는 벤치에 나만 앉아 있다. 고요해질수록 빗소리가 점점 더 선명하게, 크게 들려온다. 그 고요와 함께 슬픔이 밀려온다. ‘한 사람이 있었지.’ 정동을 떠나는 날 정동길을 한없이 천천히 걸어가던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한 걸음에 하나씩 그는 정동길 구석구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정동의 모든 것을, 추억을 눈에 담아가기라도 하는 듯이. 그 모습을 보면서 언젠가는 정동길에 대해서 꼭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문세의 ‘광화문연가’ 같은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글을. 그러나 그가 담아간 것은 정동길의 아름다운 풍경과 추억만이 아니었다. 원망과 증오와 저주까지 담아갔음을 얼마의 시간이 지나 알게 되었을 때 나의 정동길은 결코 아름답지도, 낭만적일 수도 없게 됐다. 상념 속에 빠져 있다 문득 정신을 차린다. 다시 돌아온 세상은 조금 전 그대로다. 사람들은 여전히 소곤거리고, 오후의 햇살을 즐기고, 신문을 읽고,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 해질 무렵의 정동길이 더없이 평화롭다. 가로수, 돌담, 교회, 카페 같은 평범한 것들이 모여 정동길만의 정취를 만들어낸다. 정동길에 들어서면 차원이 달라진다. 모든 게 느려진다. 시간의 흐름도, 발걸음도, 마음도. 오늘도 느릿느릿 정동길을 걷는다. 벽에 매달려 있는 덩굴들이 강희안의 에 나오는 그 덩굴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 한 번 더 쳐다본다. 사람들이 앉아 있다. 그 중 한 사람은 오가며 자주 봤던 사람이다. 정신이 약간 온전치 않아 보이는 그가 소리 높여 노래를 부른다. 그런데 그 모습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대한문 쪽에 가까워지자 농성을 하는 단체의 구호들이 어지럽게 걸려져 있다. 그 한쪽에 간이의자를 놓고 지쳐 보이는 사람들이 담배를 피고 있다. 무수히 걸어다녔던 길. 시간이 갈수록 마음을 열수록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던 길. 이 정동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숨어 있을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저마다의 사연이 저마다의 가슴속에, 그리고 정동길에 남아 있을 것이다. 다시 비밀공간. 20년 뒤 이 자리에 다시 앉으면 어떤 느낌일지 생각한다.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지는 않을까. 정동길을 걸었던 때가 내 인생의 봄날이었음을 그때 비로소 알게 될까. 이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그 봄날을 그리워하고 슬퍼하며 울지 않을까. 그 봄날의 흔적이 덕수궁 돌담길에 남아 있을까.
편집실에서
[렌즈로 본 세상]정동길 ‘은행잎 카펫’
[렌즈로 본 세상]정동길 ‘은행잎 카펫’(2010. 11. 17 15:42)
2010. 11. 17 15:42 사회
서울 덕수궁 돌담길과 연결돼 있는 정동길에 은행잎이 가득 떨어져 있다. 가을을 노랗게 물들였던 은행잎은 추위가 닥치면서 생명을 다한다. 가로수로 은행나무가 있는 길은 정취가 있다. 회색빛 건물과 아스팔트, 보도블록으로 돼 있는 도심의 삭막한 길을 은행잎은 정취가 있는 길로 만들었다. ‘레드카펫’은 아니지만 ‘옐로카펫’ 위를 걷는 소녀의 마음에는 노란 물결이 일렁일 것이다.
렌즈로 본 세상
[서울의 길을 따라]정동길(2004. 09. 16)
2004. 09. 16 문화/과학
메트로폴리탄 서울은 한강을 기준으로 강남과 강북으로 나뉜다. 강남과 강북은 생활은 물론 문화적 감성도 크게 다르다. 서울의 옛 역사는 4대문과 궁궐이 모두 있는 강북에서 찾을 수 있다. 아직도 꼬불거리는 도심 속 도로가 남아 있는 강북과는 달리 새로 개발된 강남에는 직선도로가 쭉쭉 뻗어 있다. 도로뿐 아니라 문화에서도 강남과 강북의 차이는 극명하게 나타난다. 구획화된 강남의 뒷골목에서 발견하는 작은 공원, 옛 하천을 복원해 산책로를 만든 하천변 산책로, 도심 속 산으로 올라가는 작은 오솔길 등 옛것과 지금의 것이 조화를 이뤄 새로운 문화를 형성해가는 서울의 길들. 이들은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도심의 삭막함을 털어내는 청량제 역할을 한다. 곳곳에 숨어 있는 서울 시민들의 쉼터인 길. 그 첫번째로 서울 중심부의 문화벨트 '정동길'을 짚어본다. 덕수궁 돌담길 정동길이 시작되는 시청앞 덕수궁 돌담길은 우리의 향수를 자극하는 대표적인 길이다. 유행가 가사부터 드라마의 단골 촬영지로 등장하는 이 길은 우리 역사의 슬픔을 간직하고 있는 길이기도 하다. 멀게는 조선왕조의 마지막을, 가깝게는 미 대사관저가 자리해 마음껏 드나들 수 없는 빼앗긴 길이 된 것이다. 덕수궁을 따라 돌아가는 좁고 구불거리는 돌담길에서는 슬픔이 배어나온다. 마치 우리네 어머니들이 머리에 이고지고 장으로 떠나가던 고갯길처럼.... 정동길은 덕수궁 옆으로 들어가는 좁고 긴 길로 경향신문사까지 이어지는 약 900m의 길을 말한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정동길이 시작되는 곳은 서울시립미술관 앞 원형 로터리부터이다. 서울시립미술관 앞 원형로터리는 정동으로 통하는 많은 길이 만나는 곳이며 정동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주위를 둘러싼 빌딩들에서 정동의 특징을 볼 수 있다. 그리 높지 않은 건물들로 이어지는 이 길에는 100년의 역사를 간직한 건물들도 꽤 많이 볼 수 있다. 정동제일교회, 신아기념관, 이화여고 심슨기념관 등 근대 건축물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에 지어진 빌딩들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이 건물들은 정동을 '정동답게' 만들어주는 주역이기도 하다. 원형로터리 광장에 나지막하게 솟아오르는 현대적 감각의 분수대와 로터리 한쪽 바닥에 그려진 정동의 옛 지도들을 보는 것도 재미있다. 커다란 길바닥 지도는 18세기 중엽, 1900년 구한말, 1947년 해방 후, 1998년 현재의 정동으로 나뉘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해온 정동의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도심 속 문화공간 정동에는 다양한 미술관과 공연장이 자리하고 있다. 제일 먼저 만나는 곳은 서울시립미술관. 원형로터리 옆으로 난 작은 숲길을 따라가면 고건축 방식과 현대적 건축방식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서울시립미술관 광장이 나온다.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어 정동을 다른 눈높이에서 만날 수 있다. 미술관 뒤쪽의 미니멀리즘의 극치인 현대 건축물들과 앞쪽의 '덕수궁'이 만나는 이곳은 덕수궁이 동떨어진 공간이 아닌 정동의 일부이게 하는 곳이기도 하다. 언덕 위에 자리한 서울시립미술관, 특히 3층의 카페테리아에 앉으면 덕수궁의 모든 건물과 정원이 한눈에 들어온다. 뿐만 아니라 건너편 정동제일교회의 붉은 벽돌이 이끌어내는 세월의 절묘한 조화도 감상할 수 있다. 때문에 이곳은 도심 속에서 계절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도 손꼽힌다. 차 한 잔의 여유와 함께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다. 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이다. 서울시립미술관은 10월 15일까지 '색채의 마술사-샤갈 전'을 열고 있다. 관람시간(3월~10월)은 평일은 오전 10시 30분~오후 9시, 토요일과 공휴일은 오전 10시~오후 7시이다. 월요일은 정기휴관일. 입장료는 어른 1만원, 청소년 8,000원, 어린이 6,000원. 문의:(02)2124-8800, http://seoulmoa.org 열린 쉼터 정동극장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내려오면 정동에 다양한 숨결을 불어넣는 곳 '정동극장'이 있다. 난타 전용극장, 팝콘하우스, 도깨비스톰 전용관 등 다양한 공연장들이 있는 정동에서 한국 전통예술을 꾸준히 무대에 올려온 정동극장은 정동의 또다른 열린 쉼터이다. 정동극장의 안마당인 쌈지마당이 종종 공연무대가 된다. 특히 1997년부터 시작된 시민을 위한 점심시간 공연은 도심 곳곳에서 열리는 점심공연의 원조이다. 재즈에서 판소리까지 다양한 레퍼토리로 열리는 이 공연은 도심 즐기기에 나선 시민들에게 무료로 제공된다. 올 가을 정오의 예술무대는 9월 30일~10월 15일, 공연시간은 낮 12시 30분~1시. 문의:(02)7511-500, http:// www.chongdong.com 산책하기 좋은 길 정동 즐기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정동에서만 즐길 수 있는 은행나무 산책로이다. 돌담길을 따라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사이를 걷는 것은 정동이 아니면 느낄 수 없는 가을정취이다. 아직 옅은 푸름을 간직하고 있는 은행나무터널은 이화여고의 돌담길로 이어진다. 이화여고의 수수한 돌담은 덕수궁의 위엄 어린 돌담과는 다르다. 담장 위를 덮고 있는 담쟁이덩굴과 기와틈 사이로 작은 홀씨 하나 숨터 자라는 것조차도 정겨운 것. 돌담길의 끝에는 조선시대 전통 사주문 양식인 이화여고의 옛 대문이 있다. 정동경향갤러리 정동길이 끝나는 곳에 최근 새로운 문화공간이 문을 열었다. 정동경향갤러리이다. 적극적인 문화활동을 하고 있는 정동경향갤러리는 한국을 대표하는 중견화가들의 작품을 활발히 전시하고 있다. 2004년 9월 8~14일에는 '남궁원-노재순-정연서-차일만 4인전'이 열린다. 문의:(02)6731-6751 1. 정동으로 가는 길 지하철 1-2호선 시청역에서 내려 덕수궁 방향 출구로 나와 공사를 하고 있는 대한문 옆 돌담길을 따라 들어오면 정동길이다. 지하철 5호선을 이용할 경우 서대문역에서 내려 경향신문사 방향으로 나오면 된다. 경향신문사 앞에서 오른쪽으로 내려가는 길이 정동길. 2. 정동의 맛집 정동극장 옆의 남도집은 추어탕으로 유명하다. 구수한 된장과 어우러져 미꾸라지 특유의 갯내가 나지 않는다. 때문에 아이들과 여성들에게도 인기이다. 메뉴는 추어탕 단 한 가지. 1인분에 8,000원이다. 영업시간은 오전 11시 30분~오후 8시. 하루 준비된 분량이 떨어지면 영업을 마치므로 문 닫는 시간은 일정치 않다. 글-한은희[출판기획팀장]sky3600@kyunghyang.com,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
[문화]정동길, 역사 알고 걸으면 슬프다(2003. 10. 16)
2003. 10. 16 문화/과학
서울 시내에서 가장 운치 있는 거리를 꼽으라면 덕수궁에서 경향신문사에 이르는 정동길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은행나뭇잎이 노랗게 물들 때면 정동길의 운치는 절정에 이른다. 이때 열리는 정동문화축제는 문화의 향취까지 더해준다. 올해 5회째를 맞는 정동문화축제는 10월 8일부터 12일까지 열린다. 낭만과 문화의 거리 정동길은 근대사의 비극을 담은 역사의 거리이기도 하다. 문화의 향기는 역사를 모르면 반감될 수밖에 없다. 조선왕조 마지막 왕손 이석 황실보존국민연합회 총재, 사학자 한상권 교수(덕성여대)와 함께 정동길을 더듬어봤다. 덕수궁은 궁의 이름이 아니다. 황제자리에서 밀려난 고종에게 덕을 쌓으며 오래 살라는 의미로 붙인 칭호일 뿐이다. 원래 이름은 경운궁이다. 이곳은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의 집이었다. 임진왜란으로 피신했던 선조가 돌아와 머물면서 '정릉동 행궁'으로 불렸다. 그 뒤를 이은 광해군이 1608년 이곳에서 즉위한 후 1611년 경운궁이라 고쳐 부르고 7년 동안 왕궁으로 사용했다. 규모는 지금의 정동길을 모두 아우르는 크기였다. 지금의 덕수궁에서 정동극장을 지나 경향신문사, 옛 경기여고 자리와 조선일보사, 시청 옆에 있는 조선호텔까지 모두 경운궁이었다. 경향신문사와 구 러시아공사관 자리는 경운궁 뒤뜰이었다. 경운궁과 경희궁은 구름다리로 연결돼 있었다. 이때 정전(정사를 보던 곳)인 중화전과 침전인 함령전, 개인 업무를 보는 편전인 준명전 등 모든 건물이 회랑으로 연결돼 있었다. 덕수궁은 궁명 아니라 고종 칭호 이석 총재는 "어릴 적 궁에서 살 때 조금만 뛰어도 상궁들이 '마마, 뛰시면 안 됩니다'며 주의를 주었고 초등학교 때는 운동회가 되면 왕자는 뛰면 안 된다고 교장 선생이 대신 뛰었다"며 국왕이 이동하면서 땅을 밟는 일은 없었다"고 말했다. 원래 주변 길은 T자형이었다. 서대문에서 세종로 사거리를 거쳐 종로를 지나는 길이 큰 길이었다. 여기에 지금의 종로2가에서 롯데백화점 가는 길이 연결돼 있었다. 이외에는 길이 없었다. 왕궁 앞에 길이 생긴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지금의 시청앞 광장은 국민이 모이는 일종의 '퍼블릭 파크'였다. 고종이 승하하자 많은 백성이 경운궁 앞으로 몰려든 것이 그 예다. 일제는 이 광장을 없애기 위해 태평로를 만들고 담장과 같은 위치에 있던 대한문을 뒤로 물렸다. 경운궁 터는 1880년대에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 등 서양 여러 나라와 수교를 하면서 공사관 부지로 떼어줘 이리저리 잘려나갔다. 고종은 아관파천 이후 일본을 견제하기 위한 방법으로 경복궁이나 창덕궁을 버리고 경운궁을 택해 들어온다. 이후 고종이 황제로 있던 10년 동안 경운궁은 대한제국 역사의 중심지가 됐다. 고종이 경운궁을 택한 것은 서양 세력과 근거리 외교를 펼치면서 그들의 힘으로 일본의 압박을 견제하고자 한 때문이다. 1907년 순종이 즉위해 창덕궁으로 옮기면서 경운궁은 덕수궁이라는 궁호로 바뀌어 고종의 거처가 됐다. 일제에 의해 경운궁이 잠식당하고 부서졌다면 덕수궁은 우리 손으로 망가뜨렸다. 궁 안의 세종대왕상은 경운궁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다. 한상권 교수는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문신과 무신 중 가장 위대한 인물을 골라 동상을 만들라고 지시했는데 이때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 동상을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원래 세종로에 세종대왕 상을 세우고 충무로에 이순신 장군 상을 놓기로 했다"며 "그런데 군인 출신인 박 대통령이 무관인 이순신을 세종로에 놓으라고 지시하자 세종대왕이 갈 곳이 없어져 세종대왕 상이 덕수궁에 오게 됐다"고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오다 보면 서울시별관 건너편에 돌담길이 툭 튀어나온 곳이 있다. 이곳이 원래의 경운궁 정문이다. 왕궁은 반드시 정문이 남쪽으로 나 있다. 지금의 대한문은 동문 자리였다. 왕궁의 정문은 화(化)자 돌림이다.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 창덕궁의 돈화문, 창경궁의 홍화문, 경희궁의 흥화문 등 모두가 화자 돌림이고 경운궁도 인화문이었다. 정동극장 옆 골목으로 들어가면 미대사관저와 담 하나 사이에 서양식 건물이 나타난다. 중명전이다. 앞마당은 정동극장 주차장이다. 이 건물은 경운궁 내 최초의 서양식 2층 벽돌 건물로 고종 황제의 알현소나 연회장, 외국사절 접견소로 쓰이던 곳이다. 여기서 치욕적인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됐다. 이후 헤이그에 밀사를 파견하면서 이준과 이위종 등에게 밀서를 전한 곳이기도 하다. 세종대왕상 경운궁에 세워진 까닭은? 조금 더 올라가면 옛 러시아 공사관이 나온다. 고종이 아관파천을 하면서 들어간 곳이다. 1890년 르네상스풍의 우아한 벽돌 건물 2층 구조로 돼 있었다. 지금은 탑 부분만 남아 있다. 고종은 경운궁으로 돌아갈 때 정동길을 지나 인화문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그 위로 올라오면 500년 된 나무가 서 있다. 그 옆이 하남호텔이었다. 이 총재에 의하면 "덕흥대원군파 이기용씨가 소유하고 있었다"고 한다. 길 건너편으로는 손탁호텔이 있었다. 이 건물은 서울 최초의 서양식 건물이었다. 서양인과 국내 정치인의 친목단체인 '정동구락부'의 근거지이기도 했던 이 건물은 이화학당에 팔려 프라이홀이 들어섰는데 화재가 난 뒤 지금은 주차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경운궁 건너편에는 궁 안으로 외국 공사관이 계속 들어서자 그들을 위한 교회가 들어선다. 정동제일교회가 그것이다. 이 부근에 이화학당과 배재학당 등 고종의 지원을 받아 선교사가 세운 학교가 들어선다. 와, 정동문화축제 보러 가자 50여 종의 다양한 행사가 이어지는 이번 정동문화축제에서 특히 주목되는 행사는 '와인 페스티벌'. 향긋한 풍미를 자랑하는 베린저 화이트 진판델을 시음하며 달콤하고 상큼한 기분을 한층 높일 수 있다. 무료 와인 테이스팅과 함께 지난 7월 22일 TV에서 방영된 '생로병사의 비밀-적포도주 편'에서 국내 최초로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적포도주 효능 임상실험에 사용했던 콜롬비아 크레스토 와인 특별행사도 갖는다. 10월 8일 경찰악대와 정동극장 사물놀이패의 공연을 시작으로 의장대 시범, 각설이 마당극, 전통예술무대, 포크 공연과 전유성도 웃고간 연극시리즈 〈이〉가 공연된다. 다음 날에는 유리공예, 양초공예 시연이 있고 가야금-거문고-해금-아쟁 협주가 정동극장 쌈지마당에서 열린다. 드럼페스티벌과 공연도 이날의 주행사다. 3일째 되는 날에는 4인조 혼성 록그룹 밴드 공연과 미8군 군악대 공연 드럼페스티벌퍼포먼스가 이어진다. 다례 시연과 국악 퍼포먼스, 지진경 첼로연주회도 이날의 이벤트다. 토요일인 11일에는 애니메에션 캐릭터와 애니 코스 의상쇼 사진 촬영을 한다. '코스튬플레이 촬영회'이다. 젊은이에게 인기 있는 코스튬플레이는 어른에게 새로운 경험을 줄 것으로 보인다. 아름다운 요들송을 들을 수 있는 요들단 공연과 태권무와 전통 춤을 가미한 공연도 열린다. 클래식과 록이 만나고 노래와 춤, 아카펠라를 결들인 정동 퓨전콘서트도 가을날의 정동길을 빛내게 된다. 마지막 날인 12일은 주석렬 포크공연과 노영심의 작은음악회가 가을 저녁의 낭만을 전달하게 된다. 강남삼성병원과 적십자간호대학, 한국건강관리협회에서 비만도 측정, 당뇨 및 혈액검사 두피검사 등도 계획하고 있다. 8~12일까지 이화여고 앞에서 계속된다. 이외에 독자에게 호평을 받은 우리나라 산-바다-육지를 촬영한 경향신문 매거진X 사진전이 상설 전시되고 추억의 놀이기구 체험과 먹거리를 찾을 수 있는 전통거리 재현도 계속된다. 황인원 기자 hi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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