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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무대 위의 어릿광대들(2005. 07. 26)
2005. 07. 26 사회
“싱가포르의 정치판에 기회주의자와 어릿광대, 바보 등 세 부류가 모여 있다”고 독설을 퍼부은 사람은 리콴유(李光耀) 싱가포르 전 총리다. 영국 식민지로부터 독립을 이뤄낸 것은 물론 국민소득 3만달러의 밑바탕을 마련한 주인공. 중국인과 말레이시아인, 인도인이 뒤섞여 인종·언어·종교가 복잡한 환경을 극복하고 나라의 기틀을 잡아가는 과정에서 겪어야 했던 정치인들에 대한 불신감을 한마디로 응축하고 있다. 매사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리면서도 걸핏하면 싸움질과 자기 과시에 열중하는 우리의 정치 현실을 이런 독설에 대입시켜 본다면 어떨까. 몇 명의 ‘주연배우’를 제외한다면 옆에서 바람이나 잡는 어릿광대들이 설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이지, 반복되는 그들의 어설픈 춤사위를 지켜보아야 하는 관객들의 입장은 따분하다 못해 민망할 지경이다. 서글프기도 하다. 정책 추진에 필요한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주변에서 북과 장구를 치며 거들어야 하는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이 생길 때마다 똑같은 목소리로 “맞습니다, 맞고요” 소리가 합창으로 울려퍼진다면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다. 리콴유가 자신의 총리 재임시절 아무 생각없이 박수나 쳐대는 얼치기들로 인해 정책 추진에 상당한 도움을 받았으면서도 한심스러워 못 참겠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는 점도 그것을 말해준다. 요즘 벌어지는 서울대 논술고사 논란에서 비슷한 모습을 목격할 수 있다. 서울대를 향해 쏟아지고 있는 집중포화가 그렇다. 어느 쪽이 옳고 그른지를 따지자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어쩌면 치고 빠지는 발언들이 그렇게도 일사불란할 수 있는지 신기할 정도다. 오히려 마이크에서 흘러나오는 대사보다 한술 더 뜨는 경우마저 엿보인다. 부동산투기를 잡기 위한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문제에 있어서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마치 구령에 맞춰 ‘앞으로, 나란히’ 자세를 취하는 유치원생들 모습이라고나 할까. 얼마 전 친미·반미를 둘러싼 외교논란이 제기됐을 때도 그랬다. 정부와 여당에 대한 지지도가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는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정책추진 과정에 다양한 의견을 지닌 사람들이 두루 참여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것은 민주사회의 강점이다. 중요한 인사 때마다 각계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인물들이 하마평에 오르내리는 것도 그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눈앞에 펼쳐지는 것은 ‘윗분’의 한마디에 움찔대며 자신이 뱉은 말까지 서둘러 번복하는 안쓰러운 광경이다. 정책추진에 혼선을 초래하면서까지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지만, 그냥 입을 다물고 있거나 박수만 치는 것도 칭찬받을 일이 아님은 분명하다. 이는 대통령이 정책의 전면에 직접 나서서 진두 지휘하고 있기 때문에 빚어지는 현상이기도 하다. 국정을 챙기는 방식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기보다 운용의 정도에 따른 문제이겠으나, 대통령이 직접 챙기는 현안에 대해 누가 감히 아니라고 나서기는 어려운 일이다. 주연배우의 역할이 돋보일수록 조연이나 엑스트라의 역할은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더욱 서글픈 사실은 어릿광대의 역할은 연극이 끝나면서 곧바로 잊혀지게 마련이라는 점이다. 아무리 호화롭고 높은 무대에 올랐다 해도 어릿광대는 어디까지나 어릿광대에 불과하다. 물론 본인들은 펄쩍 뛰며 그렇지 않다고 우겨댈지도 모른다. 아닌 게 아니라 어릿광대의 역할이 중요한 연극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설사 어릿광대는 아닐지라도, 리콴유의 지적대로 기껏 기회주의자, 아니면 남의 얘기나 따라하는 부류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못할 것이다. 허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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