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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재 후]조현병 환자 가족에게서 온 메일(2019. 07. 19 15:27)
- 2019. 07. 19 15:27 사회
- 이하늬 기자 조현병을 앓고 있는 사람은 지역, 인종, 문화에 관계없이 1% 수준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유전적 요인도 있지만 그게 전부가 아닙니다. 조현병 환자의 절반 이상이 아이를 낳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조현병에 걸린 사람의 비율은 1%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모르지만 누구나 걸릴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제가 일하는 언론사에는 500명 가까운 사람이 일하고 있습니다. 간단하게 계산하면 이 중 5명은 조현병을 앓을 수도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들의 가족까지 계산하면 2인 가족을 기준으로 10명은 조현병과 무관하지 않다는 수치가 나옵니다. 친척 혹은 친구로 범위를 넓히면 수치는 더 올라갑니다. 조현병은 그만큼 ‘드물지 않은’ 병입니다. 하지만 주변에 조현병 환자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회적 낙인이 심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당사자와 가족은 목소리를 내기 어렵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래서 낙인과 공포는 더 강화됩니다. 미국 철학자 랠프 왈도 에머슨의 말처럼 두려움은 몰라서(무지에서) 생깁니다. 두려움은 불안을 동반합니다. 조현병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여느 때보다 높습니다. 기사가 쏟아지고 토론회가 열리고 정책이 만들어집니다. 곳곳에서 열리는 토론회를 몇 번 갔습니다. 그곳에서 당사자와 가족에게는 마이크가 쥐어지지 않았습니다. 의사, 국회의원, 사회복지사, 교수 등 ‘전문가 그룹’이 다수였습니다. 당사자의 목소리는 토론회 도중 ‘항의하는 정신장애인들’ 정도로 보도됐을 뿐입니다. 조현병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기사가 보도된 이후 e메일을 많이 받았습니다. 저는 보통 항의 혹은 제보 메일을 많이 받습니다. 이번에는 ‘그냥’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내용이 다수였습니다. ‘통곡을 하고 싶지만 이제는 우는 것도 사치일 정도로 힘이 듭니다.’ ‘나의 상황과 너무 똑같아서 공감이 갑니다.’ ‘더 견디지 못하고 또 병원에 보냈네요.’ ‘지금 저희 가족 앞에 놓인 현실이 쉽게 바뀌진 않겠지만….’ 당사자와 가족의 경험이 절대적인 것도 아니고 옳은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무언가를 논의해야 한다면 최소한 당사자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어려움은 무엇인지, 필요한 건 무엇인지 등은 알아야 합니다. 조현병을 비롯한 정신질환에 대해 ‘알게 되면’ 편견과 낙인은 점차 줄어들게 될 것입니다. 이는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를 위한 일입니다.
- 취재 후
- [표지 이야기]조현병 환자 가족 “우리가 죽으면 누가 돌보나요?”(2019. 07. 12 14:31)
- 2019. 07. 12 14:31 사회
- 조현병 환자를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 사회의 편견은 환자는 물론 그 가족들에게까지 향한다. 세상의 무서운 눈을 피해 오랜 세월 힘든 고통을 겪는 환자와 가족들은 지칠 수밖에 없다. 이정인씨(63·가명)는 최근 보도되는 조현병 관련 범죄를 접할 때면 자기도 모르게 움찔한다. 이씨의 남동생은 40년 가까이 조현병을 앓고 있다. 순한 성격의 동생이 강력범죄를 저지를 거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지만, 정신질환자들을 위한 아무런 안전망이 없는 상황에서 자신과 80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면 혼자 남게 될 동생이 걱정이다. 보통 조현병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에 발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씨의 동생도 24살에 첫 증상을 보였다. 당시 집안은 택시회사, 물류회사 등 여러 사업을 크게 벌이고 있었는데 대표인 아버지가 병석에 눕는 바람에 20대 초반인 동생이 모든 걸 도맡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믿고 사업을 맡길 만큼 명석했다. 그런 동생이었기에 평소와 다른 행동을 보여도 의심하지 않았다. 주변에서 조현병에 걸린 사람을 본 적도 없었다. “어느 날 동생이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를 부르면서 큰아버지가 북한에서 장군이 됐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나는 믿었다. 그게 증상인 줄 전혀 몰랐던 거다.” 가족들에게 이씨의 큰아버지는 보도연맹사건 당시 수장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회사 직원들까지 알 정도로 증상이 악화됐지만 가족들은 몰랐다. 잠을 안 자고 밥을 안 먹어도 일이 바빠서 그러려니 했다. 폭력적인 행동을 보이거나 하는 증상은 없었다. 직원 중 한 명이 “우리 집안에도 그런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있다”며 “사장이 정신병인 것 같다”고 해서 동생을 대학병원 정신과에 데려갔다. 증상이 나타난 후 치료를 시작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정신질환 미치료기간’이라고 한다. 이 기간이 짧을수록 치료가 잘 되고 이후 경과도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12주 이내에 치료를 시작할 것을 권한다. 그러나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국내 환자들은 치료까지 약 56주가 걸리는 것으로 드러났다. 병에 대한 지식이 없고 사회적 편견이 심해서다. 증상이 악화돼 가족도 더는 감당할 수 없을 때 선택지는 입원뿐이다. 입원은 대부분 강제로 이뤄진다. 질환이 악화된 상태에서 병원을 찾기 때문에 입원기간도 길다. 2013년 한국의 정신의료기관 평균 재원 기간은 176일이다. 이씨의 동생도 이 과정을 밟았다. 유럽에서 입원 기간이 가장 짧은 나라인 이탈리아는 13.4일이다. 입원과 퇴원 반복, 30년 이상 치료 이씨는 처음 동생을 면회 갔던 날을 잊을 수 없다. 동생이 마치 ‘로봇’이 된 것 같았다. 몸은 뻣뻣하게 굳어 있었고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약이 너무 독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조현병에 대해 지식이 전혀 없으니 가족으로서 의견을 내기는커녕 치료가 제대로 되고 있는 건지 묻는 것도 의미가 없었다. 그냥 병원만 믿었다. 그런 식의 치료가 30년 이상 지속됐다. 퇴원 후 잘 지내다가 다시 증세가 보이면 강제로 입원을 시켰다. 돌이켜보면 입원을 하기 전의 동생의 모습은 늘 비슷했다. 아무것도 먹지 않고 잠도 안 잤다. 평소에 하지 않던 말을 하기 시작했고, 빠른 속도로 사람이 피폐해졌다. 가족이 계속 치료를 권하자 집을 나가기도 했다. 삐삐(호출기)도 없던 시절이었다. 지난해 3월, 문을 닫은 국내 1호 정신의료기관인 청량리 정신병원. 위 사진은 기사내용과 상관 없음. / 이상훈 선임기자 가족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현실로 믿는 동생이 답답했다. 입원을 권유하면 동생은 자신은 미치지 않았는데 왜 병원에 보내려 하느냐고 반발했다. 이런 갈등은 조현병 당사자와 가족 사이에서 빈번하게 나타난다. 조현병이 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뇌세포 간 신경이 전달되고 반응하면서 사고와 판단이 이뤄지는데, 조현병은 이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따라서 “네가 보고 듣는 게 가짜”라고 아무리 말해도 조현병 당사자에게는 생생하게 존재하는 소리(환청), 장면(환시), 냄새(환취)다. 이씨는 조현병이 뇌의 문제라는 것, 그래서 호르몬을 조절하는 약을 끊으면 증상이 심해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망상과 환청, 환시 등이 대표적인 증상이라는 것을 몇 년 전에야 알게 됐다. 그럼에도 가족은 동생을 놓은 적이 없다. 집을 나가면 전국 곳곳을 찾아 헤맸다. 대구에 있다고 하면 대구로 갔고 부산에서 누가 동생을 봤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부산으로 갔다. 입원을 시킨 후에는 같은 병동의 다른 환자들과 간호사들 간식까지 챙겼다. 퇴원 후에는 몸에 좋다는 한약은 다 지어 먹였다. 세월 갈수록 정신적·경제적 부담 가중 이런 노력 덕분인지 몇 달 입원을 하고도 집에 돌아오면 한두 달 만에 멀쩡해졌다. 로봇 같던 몸이 풀렸고 조리있게 말도 잘했다. 어머니는 혹여나 자식이 이상한 사람처럼 보일까봐 늘 옷도 깔끔하게 입혔다. 증세가 없을 때는 누구도 동생을 ‘미친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심지어 가까운 친구들도 몰랐다. 하지만 나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병이 10년, 20년 넘게 이어지자 이씨도 지쳐갔다. 또 동생을 입원시키고 나오던 날, 정신병원의 상담사가 이씨에게 “누나가 너무 힘들었겠어요”라고 말했다. 그 한마디에 무너졌다. 동생이 아프고 난 이후 그렇게 울어보긴 처음이었다. 동생이 안타깝고 또 이를 평생 짊어져야 할 가족의 앞이 막막했다. 이씨와 동생이 60대가 되고 어머니가 80대에 접어들면서는 경제적인 어려움까지 닥쳤다. 이씨가 경제활동을 할 때는 동생에게 주는 돈이 부담스럽지 않았지만 일을 관두자 짐으로 다가왔다. 자신의 몸을 돌보는 것만으로도 힘든데, 동생까지 생각하니 숨이 막혔다. 동생에게 “어떻게 나를 한평생 이렇게 괴롭히느냐”고 울면서 소리를 질렀다. 도움을 청할 데도 없었다. 이씨는 40년 동안 친구들은 물론이고 가까운 친척들에게도 동생이 아프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동생의 병을 숨기기 위해서라면 어떤 거짓말도 했다. 이씨는 “동생이 입원을 하게 되면 ‘알리바이’를 만드는 게 우리 가족의 일이었다”고 말했다. 정신장애인이나 질환자로 등록하면 지원금이 나오는 등 도움을 받을 수 있었지만 개인정보가 쉽게 유출되던 때라 등록하지 않았다. 혹여나 정보가 유출돼 취업 등에 어려움을 겪을까봐서다. 결국 가족이 모든 걸 떠안았다. 그 방법밖에는 없었다. 비단 이씨만이 아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한국의 ‘중증’ 조현병 환자는 44만명 정도로 추정되는데 이 중 복지부가 파악하고 있는 환자는 9만명 수준이다. 나머지 33만명은 병원에서 진단과 치료를 받고 약을 복용하고 있지만 국가의 지원시스템 밖에 있다. 지원시스템을 모르기도 하고 또 이씨처럼 불신해서이기도 하다. 만약 이런 가족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집을 나갔는데 아무도 찾지 않았다면? 병원에 5년, 7년, 10년씩 방치했다면? 같이 살지만 매일 싸우기만 했다면? 동일선상에 놓을 수는 없지만 강력범죄를 저지른 조현병 환자들은 병 이외에도 고립, 단절, 가족과의 불화 등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사회적 낙인으로 이어지고 낙인은 다시 고립으로 이어진다. 지난 4월 경남 진주의 한 아파트에 불을 지르고 사람을 해친 안인득은 60차례 정신과 치료를 받았는데도 혼자 살고 있었다. 가족은 안씨를 병원에 입원시키려 했지만 갈등의 골이 깊어 대화가 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경남 창원에서 위층에 사는 75세 노인을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10대 청소년 역시 사회와 단절된 채 집에서 애니메이션에 빠져 지냈다. 전문가들은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이 부분”이라고 입을 모은다. 조현병에 대한 공포와 불안이 확산되고 있지만 여러 요인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병에만 초점을 맞추게 되면 조현병 환자는 모두 위험하며 그래서 격리시켜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조현병 유병률은 지역, 인종, 문화에 관계없이 1% 정도로 알려져 있다. 격리가 답이라면 100명 중에 1명이 격리된다. 지난 4월 조현병을 앓던 10대가 할머니를 흉기로 숨지게 한 현장을 취재진이 살펴보고 있다. / 연합뉴스 환자와 가족도 국민, 국가의 역할은? 권일용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조현병 당사자 대부분은 범죄를 일으키지 않는데 범죄를 일으키는 사람은 패턴이 있다”면서 “사회적인 낙인이 찍히면 사회에서 자리를 잡기 어렵고 그러면 어쩔 수 없이 숨어서 지내게 된다. 여기에 약까지 먹지 않으면 망상이 심해져 사건으로 연결되는 식”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모든 조현병 환자의 가족이 이씨 같을 수는 없다는 점이다. 오히려 이런 케이스는 극소수다. 그나마 한때 경제적인 여유가 있었고 이씨와 동생의 사이가 좋았고, 이씨의 남편이 이런 상황을 이해해주어서 40년 동안 버텨온 셈이다. 가족의 희생 덕분인지 동생의 주치의는 “이 정도 생활하는 게 기적”이라고 말했다. 몇 년 전에야 동생의 병명과 증상을 제대로 알게 된 이씨는 ‘국가의 역할’을 생각한다. 국가가 책임지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정신질환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만 있었더라도 동생이 증상이 나타난 이후부터 병원에 가기 전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을 터였다. 입원기간도 짧았을 것이고 40년 동안 강제입원과 퇴원을 반복하지 않아도 됐을지 모른다. 동생이 약에 취해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할 때도, 이마에 물에 젖은 수건을 둘둘 말고 결박된 채 전기치료를 받았을 때도, 수 개월을 좁은 폐쇄병동에 갇혀 있을 때도 가족이 의지할 국가는 없었다. 의지는커녕 물어볼 곳도 없었다. 정보를 얻는 곳은 주치의가 유일한데 사실상 주치의는 ‘복불복’에 가깝다. 사회적 편견을 없애는 것도 국가의 역할이다. 조현병은 발병이 아니라 고혈압처럼 관리가 더 중요하지만, 누구도 이를 알려주지 않았다. 애초에 이를 알았더라면 차라리 마음이 편했을지도 모른다. 지난 40년 동안 동생의 병을 치유하기 위해 가족은 모든 돈과 시간, 에너지를 다 써버렸고 이제는 시간이 너무 지나버렸다. 이씨는 지금이라도 우울증, 조울증, 조현병 등 정신장애인·질환자들을 위해 국가가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국가가 아무 역할도 하지 않는 상황에서 가족까지 환자를 포기하게 되면 극단적인 일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조현병이 그렇게 위험하다면 왜 국가는 지금까지 아무것도 안 하고 가족에게만 맡겨놨는지 모르겠다. 이건 어떤 국민에 대한 무책임이고 폭력이 아닌가.” 이씨가 되물었다. 정신건강복지센터 위탁운영 인력난 “국가는 어디에 있나?” 정신질환자와 그 가족이 수십 년 동안 묻는 질문이다. 정부가 하는 일이 없지는 않다. 다만 인력과 재정이 ‘매우’ 부족할 뿐이다. 정부의 정신질환자 관리의 핵심 인프라는 보건복지부와 지방자치단체가 함께 운영하는 정신건강복지센터(정신센터)다. 환자 관리, 병원 진료 연계, 상담, 사회화 교육 등의 일을 한다. 전국 정신센터는 243곳이다. 이 중 보건소 직영은 30%이고 나머지는 사회복지법인이나 병원 등에 위탁운영하고 있다. 위탁운영은 인력 문제로 고스란히 이어진다. 위탁운영이 70%에 이르다 보니 센터 근무직원 중 지자체에 채용된 정규직은 25%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모두 비정규직이다. 고용은 불안한데 업무량은 많다. 한국에서 정신건강 전문요원 1명이 70명의 정신질환자를 맡는다. 외국은 요원 1명이 대략 10명 정도를 맡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직원들의 근속연수 역시 정규직은 3.6년, 비정규직은 2.9년으로 짧다. 업무에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다. 공백은 주로 휴일이나 야간에 나타난다. 광역 정신센터가 야간과 휴일을 담당하지만 전화상담만 하고 있다. 매뉴얼대로라면 경찰이 요청할 경우, 정신센터 위기대응팀이 응급출동을 해야 하지만 출동을 할 인력이 없다. 전국에서 응급출동팀이 있는 지역은 서울, 인천, 부산, 광주, 대구 다섯 곳뿐이다. 이런 체계로는 제대로 된 상담도, 사고 방지도 하기 어렵다. 조현병 관련 범죄가 논란이 되자 보건복지부는 올해 5월 부랴부랴 정책을 내놨다. 정신센터가 없던 15개 지역에 센터를 설치하고 2022년까지 전국 센터 근무직원을 785명 충원하겠다고 밝혔다. 복지부에 따르면 인력이 충원될 경우, 직원 1인당 관리대상자는 20~25명 수준으로 줄어든다. 하지만 근속연수가 짧다 보니 인력이 충원되어도 업무 연속성이 부족할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정신재활시설도 부족하긴 마찬가지다. 349곳이 있으나 수도권에 절반 이상이 몰려 있다. 재활시설이 한 곳도 없는 시·군·구가 100곳이 넘는다. 환자가 퇴원하면 시설에서 직업재활이나 일상복귀 훈련을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한국조현병환우회 심지회의 김현숙 이사(가명)는 “전국 지자체에 치매센터는 없는 곳이 거의 없다. 정신질환도 위험하다고 공포만 조장할 게 아니라 치매처럼 관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 표지 이야기
- [특집]이유는 모른다! 조현병 그래서 두렵다?(2018. 07. 30 15:03)
- 2018. 07. 30 15:03 사회
- ㆍ최근 범죄 늘자 공포감 확산… 병 자체 보다는 ‘허술한 관리’가 더 문제다 36년, 김진수씨(가명)가 정신병원을 오간 시간이다. 올해 환갑을 맞은 김씨는 20대 이후에 제대로 된 직장을 가져본 적이 없다. 김씨는 “일을 하려고 하면 스트레스 때문인지 다시 아프기 시작했다”고 웃으며 말했다. 큰 키에 단정한 머리, 짧게 깎은 수염, 여름 캐주얼 정장에 리갈 구두를 신은 김씨는 조현병 진단을 받은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 unsplah 김씨가 처음 병원에 간 건 24살 때였다. 광주에서 민주화운동이 일어나고 2년 뒤, 어수선한 정국이었다. 김씨 주변에는 ‘운동권’ 친구들이 많았다. 김씨는 “누군가 나를 빨갱이라고 하면 어떻게 하지”라는 불안에 휩싸였다. 그도 그럴 것이 김씨의 큰아버지는 해방 이후 좌익활동을 하다가 잡혀가 돌아오지 않았다. 시간이 지난 뒤 ‘어디 앞바다에 수장되는 걸 본 사람이 있더라’는 소문만 들었다. 조현병 환자, ‘묻지마 살인’ 3% 김씨는 “당시에는 이상하게도 큰아버지에 대한 생각이 떠나지 않았고 사람들이 나를 빨갱이라고 할까봐 무서운 마음이 사라지지 않았다”고 했다. 얼마 뒤, 김씨는 큰아버지가 사실은 수장당한 게 아니라 북한 고위직으로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처음에는 가족들도 김씨의 말을 믿었다. 워낙 어릴 때부터 똑똑했기 때문이다. 한참 뒤에서야 그게 환청이라는 걸 알게 됐다. 최근 조현병 환자의 범죄가 연이어 발생해 조현병에 대한 사회적인 두려움이 커지고 있다. 7월 9일 경북 영양군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이 대표적이다. 경찰관 2명은 ㄱ씨가 난동을 피운다는 가족의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 ㄱ씨는 출동한 경찰과 대화를 나누던 중 흉기를 가져와 휘둘렀다. 경찰관 한 명이 숨졌고 한 명은 치료를 받고 있다. 가족들은 ㄱ씨가 2012년부터 조현병을 앓았다고 진술했다. 조현병이 ‘공포의 대상’이 된 건 2016년 5월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다. 서울 서초동 주점 화장실에서 20대 여성을 살해한 가해자는 여성들이 자신을 괴롭힌다고 말했다. ‘여성혐오’ 범죄라는 지적이 일었으나 경찰은 조현병 환자에 의한 범죄라고 발표했다. 정신장애인에 의한 범죄가 증가추세라는 것도 공포심의 근거다. 경찰청 범죄통계에 따르면 정신장애인에 의한 범죄는 2012년 5298건에서 2016년 8287건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조현병 당사자들은 최근 분위기에 동의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김씨는 “그 사람들이 정말 조현병이 맞느냐”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김씨 경험에 한정된 것이지만 그는 40년 가까이 병을 앓으면서 모르는 사람에게 폭력을 행사한 적이 없다. 강제입원 과정에서 반항하거나 도망친 적은 있다. 그는 “나는 병이 깊어지면 사람들이 내게 해코지를 할까봐 무서워서 움츠러든다”고 말했다. 이정하 ‘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 대표는 “강남역 살인사건을 조현병 범죄라고 하는데 사람을 죽일 정도로 분별력이 없어지면 여자가 올 때까지 차분하게 기다리지 못한다”고 말했다. 강남역 살인사건 가해자는 남녀공용 화장실에서 6명의 남성을 그냥 보낸 다음, 처음으로 들어온 여성을 살해했다. 이 대표는 20년 전 조현병 진단을 받았다. “범죄자는 소수인데, 왜 그들이 대표가 되나요” 실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조현병 환자들의 ‘묻지마 살인’ 비율은 상당히 낮다. 서종한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가 살인을 저지른 조현병 환자 33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2010년)에 따르면 관계가 없는 사람을 살해한 경우는 3%였다. 피해자가 가해자의 가족인 경우는 84%에 달했다. 1999년 연구에서도 조현병 환자가 저지른 살인 가운데 가족 내 살인이 60%에 달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이런 당사자들 이야기는 잘 알려지지도 않고, 알려진다 해도 우리 사회에 만연한 두려움을 없애는 데 한계가 있다. ‘특수 사례’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김씨는 “일반 사람들 중에 범죄자가 소수인 것처럼 조현병 환자 중에서도 범죄자는 소수인데, 그 사람들이 조현병 환자의 대명사처럼 되고 나처럼 조용히 사는 사람은 특이하게 여겨진다”고 씁쓸하게 말했다. 김씨 말처럼 정신장애인에 의한 범죄가 증가했다 해도 전체 범죄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0.44%(2016년)로 여전히 미미한 수준이다. 2012년에는 0.29%였다. 지난해 발표된 대검찰청 범죄분석 보고서에 보면 비정신장애인이 범죄를 저지를 확률은 1.2%인 반면 정신장애인이 범죄를 저지를 확률은 0.08%로 나타났다. 15배 차이다. 박종언 <마인드포스트> 편집국장은 “가해자들이 조현병으로 입원을 했거나 약물을 복용하고 있으니 사건·사고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면서도 “비정신장애인들이 저지르는 사건·사고보다 조현병 환자에 의한 사건·사고는 과하게 부각된다. 부정적인 시각으로만 본다”고 말했다. <마인드포스트>는 정신장애 당사자들이 만든 전문언론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당사자들은 ‘정신보건법 개정안’이 문제라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최근 일각에서는 강제입원 요건을 강화한 개정안이 문제라는 주장이 나온다. 강제입원이 어려워져 자·타해 위험이 있는 정신장애인을 격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애초 강제입원을 위해서는 보호의무자 2명과 전문의 1명의 판단만 있으면 됐다. 개정 이후에는 보호의무자 2명과 서로 다른 의료기관 전문의 2명의 판단이 필요하다. 박영은씨(가명)가 정신병원 폐쇄병동 독방에서의 경험을 그린 그림. / 파도손 제공 하지만 과거에 비추어 봤을 때 입원요건 약화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일단 강제입원율이 지나치게 높다. 2006년 기준 강제입원은 90.0%에 달했다. 2016년에도 강제입원 비율은 61.6%였고 현재는 37% 수준이다. 반면 프랑스의 강제입원 비율은 12.5%(1999년), 오스트리아는 18%(1999년), 영국 13.5%(1999년), 포르투갈은 3.2%(2000년)에 불과하다. 강제입원 과정에서 환자의 인권은 쉽게 무시됐다. 김씨는 “길을 걷고 있는데 응급차가 오더니 사람들이 다 보는 곳에서 나를 잡아서 차에 욱여넣었다”고 말했다. 김씨의 경우가 특별한 게 아니다. 심지어 정신질환이 없는 사람이 가족에 의해 입원되는 일도 있었다. 대학생 딸이 18살 차이의 남성과 결혼하려 하자 부모가 정신병원에 입원시킨 사례가 대표적이다. 괜찮을 땐 우울증, 상태 나쁠 땐 조현병 진단 인권침해는 입원 후에도 이어진다. 김씨는 강제 약물투여, 결박, 전기치료까지 당해보지 않은 게 없다. 그는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침대에 눕혀서 머리에 띠를 감았다. 그런 다음에 전기를 통하게 했다”며 “나는 폭행을 당하지 않았지만 과거에는 간호사 말을 듣지 않는다고 맞는 환자들도 많았다”고 말했다. 정도는 다르지만 인권침해는 최근까지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박영은씨(가명)는 2014년 인천에 위치한 한 정신병원 여자병동 독방에서 결박을 당했다. 박씨는 “독방에는 난방이 되지 않았는데 나는 발가벗겨진 채 침대에 묶였다. 이불도 덮어주지 않았고 대소변을 처리하기 위해 기저귀만 채운 채 방치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방식의 입원치료가 도움이 안 된다는 점이다. 김씨와 이 대표 모두 퇴원 후 가장 크게 느낀 감정이 ‘우울’이라고 답했다. 배성우 경북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정신장애인에 대한 과보호적이고 통제적인 치료환경은 결과적으로 이들을 단조롭고 기계적인 생활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만들고 오히려 ‘환자’ 역할을 부추긴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당사자와 전문가들은 ‘제대로 알기’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박 편집국장은 “어떻게 보면 비정신장애인들이 조현병 환자를 두려워하는 건 당연하다. 조현병에 대해 아는 게 없기 때문이다”라며 “우리 사회는 조현병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는 주지 않은 채 사건·사고를 통해 ‘이성이 마비된 사람’ ‘우발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으로만 소비한다”고 말했다. 조현병 당사자인 김씨와 이 대표는 조현병을 정확하게 정의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두 사람 모두 상태가 나쁘지 않을 때는 ‘우울증’ ‘조울증’ ‘조증’ ‘홧병’ 등의 진단을 받았다. 그러다 상태가 심각해지면 ‘조현병’ 진단을 받는다고 했다. 한 번 조현병 진단을 받았다 해서 상태가 죽 이어지는 게 아니라는 의미다. 조현병 환자에 의한 범죄 역시 마찬가지다. 송승연 정신건강복지사는 “지금은 과거에 한 번이라도 정신과 진료를 받았다면 이를 범죄 원인으로 직결시키는 경향이 있다”며 “하지만 정말로 정신건강 문제 때문에 범죄를 저지른 것인지, 아니면 다른 요소들이 있는지 그 부분이 명확하게 규명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조현병 환자가 저지른 범죄에 대한 처벌과 범죄율을 낮추기 위한 노력은 이 기반 위에서 이뤄져야 한다. 송 복지사는 “개인적으로는 정신건강을 이유로 범죄를 저지른 조현병 환자에게 형량을 감해주거나 무죄를 선고하는 건 반대다”라며 “행위에 대해 책임을 지게 해야 자기결정권을 주장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 편집국장도 “죄를 지었으면 당연히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리고 그게 조현병 때문이라면 감호치료를 받는 게 당연하다”며 “하지만 한국에 조현병을 비롯한 정신장애인 범죄자가 갈 수 있는 치료감호소는 전국에 한 곳뿐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조현병 치료도, 범죄율을 낮추는 것도 어렵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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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집]20년 전 조현병 진단받은 이정하 ‘파도손’ 대표 “국가도 사회도 편견 우린 피뢰침과 같다”(2018. 07. 30 15:03)
- 2018. 07. 30 15:03 사회
- 이정하 ‘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 대표(48)는 정신장애인이다. 20년 전 조현병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제대로 치료받은 기억은 없다. 가족들에 의해 8차례 강제입원을 당했다. 병원을 다녀오면 일시적으로 증상이 완화됐지만 재발하기 십상이었다. 가족, 병원, 지역사회 어디서도 ‘돌봄’을 받지 못했다. 취업도 쉽지 않아 점점 고립돼 갔다. 정신장애인 대부분이 비슷한 과정을 겪는다. 이 대표는 “방치된 아이였다”고 어린 시절을 표현했다. 부모는 벌이에 바빴고 이 대표와 형제들은 친척집을 전전했다. 9살 때부터 성추행·성폭행에 시달렸다. 가해자는 친척 남성들이었다. 환청이 들린 건 그때부터다. 시간이 지날수록 환청이 심해졌고 어느 날부터는 환각도 보였다. 지금도 가끔씩 환청이 들리지만 이제는 조절하는 방법을 안다. 정신장애인들은 이런 상태를 ‘생존자’라고 일컫는다. 최근 조현병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강력범죄사건 가해자들이 조현병 병력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이들을 격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 대표는 “무조건 입원을 한다고 해서 상태가 좋아지는 건 아니다”라며 “조현병에 대해 알지 못하기 때문에 두려움부터 생기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대표를 7월 24일 서울 중구 파도손 사무실에서 만났다. -파도손이 꾸려진 배경이 궁금하다. “2009년부터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이 온라인에서 정보를 교환했다. 2013년에 오프라인에서 단체를 만들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처음에는 정신장애인 문화예술협동조합을 만들려고 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정신장애인이라는 용어 자체가 낯설 때였다. 정신병 환자로만 봤다. 그렇다고 다른 질병을 앓는 환자들처럼 ‘환자 대우’를 해주는 것도 아니었다.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해 협동조합은 무산됐다. 지금은 사단법인이다.” -활동에 어려움이 컸겠다. “협동조합이 무산된 이후, 인권운동을 시작했다. 정신장애인에 대한 편견, 그리고 편견에 기반한 제도가 바뀌지 않는 한 활동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다른 운동에 비해서 ‘운동’으로 인정받기가 어려웠다. 많은 사람들이 정신장애인을 강제입원의 대상으로만 봤다. 활동가들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스트레스가 심해지면 증상이 올라온다. 2014년 한 활동가가 투신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사건으로 나도 증상이 심해져 강제입원을 당했다. 당분간 활동이 중단됐다.” -당사자 운동을 시작한 계기가 궁금하다. “폐쇄병동에 입원했다가 퇴원하면 일시적으로 증상이 완화된다. 하지만 과한 약물복용, 병원에서의 인권침해 등으로 인해 후유증이 생긴다. 폐쇄병동이 아닌 내과병동에서 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 매일 진료를 받았고 감시나 통제는 없었다. 퇴원 후 곧바로 일상생활이 가능했다. 진작 이런 치료를 받았다면 내 삶이 달라지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제도를 바꾸려면 당사자들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조현병에 대해 잘 모른다. 자신의 사례는 어땠나. “어렸을 때부터 우울증이 있었다. 환청은 처음에는 이명 같은 소리로 시작됐다. 그러다 어느 순간 사람 목소리가 들렸다. 일상생활에 무리를 주는 정도는 아니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은 적이 있다. 게임에 컴퓨터 그래픽 작업을 했는데 잠도 못자고 일을 했다. 환청이 심해졌고 귀신이 보이는 등 환시도 시작됐다. 나중에는 환후, 환미, 환각도 느껴졌다. 한계상황에 다다르니 여러 증상이 나타난 거다.” -어렸을 때부터 환청을 들었다고 했는데 이유가 있나. “9살 때부터 친척들로부터 지속적으로 성추행·성폭행을 당했다. 하지만 친척집에 맡겨진 상황이었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그때부터 ‘너만 죽으면 끝나’ ‘니가 죽어야 돼’ 같은 목소리가 들렸다. 사건이 일어났는데 묻고만 있으니 병이 된 거다. 조현병 환자 대부분이 그렇다. 원인 없는 발병은 없다. 그 원인은 가족과 사회가 함께 일으킨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런 맥락을 보지 않는다. 미친 사람이라며 낙인찍고 격리시킬 뿐이다.” -발병 후 어떤 조치를 취했나. “가족들이 취한 조치는 강제입원이었다. 가족들이 진료를 받아보자고 해서 병원에 갔더니 진료실에 남자들이 있었다. 그 사람들이 나를 끌고 가 침대에 묶었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은 없었고 왜 내가 병원에 있어야 하는지 설득해주는 사람도 없었다. 두 번째 입원도 마찬가지다. 아파서 응급실에 갔는데 어디론가 끌려갔고 침대에 묶였다. 세 번째 입원은 가족들이 ‘좋은 곳으로 요양을 가자’고 했다. 차를 타고 산속으로 갔다. 산속에서 또 남자들이 나왔다. 나를 개처럼 끌고 갔다. 8번째 입원까지 계속 그런 식이었다. 여전히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이후 증상이 완화됐나. “그 지점이 문제다. 병원에 갔다 오면 증상이 완화돼 사회 구성원으로 지낼 수 있어야 하는데 폐쇄병동은 오히려 그걸 방해한다. 폐쇄병동 안에서는 통신의 자유, 물건을 소지할 자유 등 아무것도 없다. 약물도 독하다. 손이 떨리거나 행동이 굼뜨게 된다. 입원하기 전에도 환청이 들렸지만 ‘장애’ 정도는 아니었다. 회사 생활을 했고 주변인들과도 어울렸다.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몸이 망가졌다.” -하지만 조현병 환자들에 의한 강력범죄가 발생하면서 강제입원, 폐쇄병동의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도 만만찮다. “자·타해 위험이 있는 환자는 강제입원이 필요하다. 폐쇄병동도 마찬가지다. 쟁점은 치료환경이다. 당사자들은 치료를 받고 싶다. 그런데 가고 싶은 병원이 없다. 치료환경이 너무 엉망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치료의 필요성을 이야기하지만 환자들이 어떤 환경에서 어떤 방식으로 치료받고 있는지 모른다. 그리고 어떤 치료가 효과적인지도 모른다.” -조현병 나아가 정신장애에 대해 어떤 인식이 필요하다고 보나 “비장애인이 그렇듯 정신장애인 중에서도 반사회적인 성향이 있는 사람이 있다. 범죄가 발생했다고 하자. 거기에는 개인의 기질 문제, 환경의 문제 등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다. 그럼에도 정신장애인의 범죄에 대해서는 ‘정신질환’으로만 단정짓는다. 너무 쉬운 답이다. 최근 일어난 친족간 살인사건도 조현병 때문이라고 보도가 됐다. 이 사건에 적용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정신장애인 친족 살인사건은 대부분 가정 내 학대 때문에 발생한다. 정신장애인들은 수십 년 동안 가족에게 학대를 당한다. 하지만 이런 맥락은 생략된다. 우리는 정신장애인 당사자를 ‘피뢰침’이라고 한다. 사회와 공동체의 가장 약한 부분이 펑 터지는 거다. 어떤 문제의 신호라는 의미다. 가족과 사회가 이 신호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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