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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총 12 건 검색)

[편집실에서] 모든 죽음에 존엄한 장례를
[편집실에서] 모든 죽음에 존엄한 장례를(2024. 11. 06 06:00)
2024. 11. 06 06:00 오피니언
홍진수 편집장 “2024년 10월 28일(월) ○○○ 님, △△△ 님의 장례가 서울시립승화원에서 있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빌며, 영결식에 참여 부탁드립니다. (중략) ○○○(남) 님은 1961년생으로 2024년 9월 13일 사망하셨습니다. 마지막 주소지는 서울시 중구입니다. ○○○ 님의 유골은 화장 후 분골하여 무연고 추모의 집에 봉안될 예정입니다. △△△(남) 님은 1988년생으로 2024년 9월 10일 사망하셨습니다. 마지막 주소지는 서울시 동작구입니다. △△△ 님의 유골은 화장 후 분골하여 무연고 추모의 집에 봉안될 예정입니다.” 무연고 사망자와 저소득층의 장례를 지원하는 단체 ‘나눔과나눔’의 홈페이지에 공지된 장례 일정 중 일부입니다. 올해 10월 일정을 보니 단 하루도 비는 날 없이 장례 일정이 있습니다. 다른 달도 일정이 빡빡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명절 등 며칠을 제외하고는 매일 적게는 2건에서 많게는 4건의 장례를 치릅니다. 망자 이름에 외국인이 올라가 있기도 합니다. 태어났으면 언젠가는 모두 죽습니다.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러니 100개의 탄생이 있다면 100개의 죽음이 따릅니다. 모든 삶이 순탄하지는 않듯이 죽음도 그렇습니다. 어떤 이는 당연히 여길 장례를, 어떤 이는 기대할 수조차 없습니다. 지난해 한국의 ‘무연고 사망자’는 5415명이라고 합니다. 2020년(3136명)보다 72.7% 늘었습니다. ‘1인 가구’의 증가추세를 보면 무연고 사망자 역시 앞으로 더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누군가는 ‘왜 그들의 장례를 굳이 치러줘야 하냐’고 물을 수도 있습니다. 그냥 시신을 ‘처리’해 주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냐고 말입니다. 그러나 장례와 애도는 살아 있는 사람에게 더 필요한 의식입니다. 무연고자라고 해도 사회와 연결이 완전히 끊어진 것은 아닙니다. 법적인 관계는 없지만, 인연이 있는 사람은 얼마든지 주변에 있을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도 망자를 보내는 시간과 절차가 필요합니다. 또 내가 죽은 뒤 누군가 나의 장례를 치르고 애도할 것이라는 믿음이 살아가는데 큰 위안이 되기도 한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인간의 삶만큼 죽음도 존엄해야 합니다. 주간경향 이번 호 표지 이야기는 ‘무연고자 공영장례 현장에서 바라본 한국사회’입니다. 한해 무연고 사망자 5000명이라는 통계는 현재 한국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지표 중 하나입니다. 피할 수 없는 ‘대세’의 일부이기도 하고, 연대가 끊어지고 ‘각자도생’으로 내몰린 한국인들의 자화상이기도 합니다. 공영장례를 치르는 사람들을 만나고 장례 현장도 다녀왔습니다. 또 무연고 사망이 계속 늘어나는 상황에서 법적 결혼과 혈연을 넘어선 장례를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지도 알아봤습니다.
편집실에서편집실에서
[간호사가 보고 있다](7)인간은 존엄하다(2019. 04. 16 09:32)
2019. 04. 16 09:32 사회
ㆍ환자들은 인간이길 포기한 것이 아니다 환자에게 바지를 꼭 입히고, 사방에 커튼이나 칸막이를 쳐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고, 상태가 양호한 환자가 화장실을 가기를 원하면 이동형 모니터링 기계를 달고 간호사 동반하에 화장실을 갈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가? 서울 한 대형병원 중환자실.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없음)/김창길 기자 ‘존엄’은 감히 범할 수 없을 정도로 높고 엄숙하다는 의미다. 인간은 스스로를 존엄한 존재로 보고, 다른 동식물들보다 자신의 생명을 좀 더 특별하게 여긴다. 그래서 병원에서는 그 ‘인간’의 생명을 가장 우선시해야 할 가치로 보고 생명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의 생명이 너무나도 소중해서 지켜야 하기 때문에 바로 그 ‘존엄성’을 버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일부 중환자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중환자실 환자들은 바지를 입지 않는다. ‘바지를 입지 않는다면 외국처럼 치마형 환자복을 입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냥 바지를 벗겨놓는 것뿐이다. 마치 곰돌이 푸우처럼. 중환자실 환자는 대부분 의식이 없거나 의식이 있다 해도 중요한 장치가 많이 달려 있어서 화장실에 갈 수가 없다. 침대 위에서 대소변을 봐야 한다. 기저귀 교체하던 중에 회진 진행 누워 있는 환자의 바지를 입히는 것도, 벗기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그래서 기저귀를 교체해줘야 할 때마다 바지를 아예 벗겨놓고 작은 시트로 덮어둔다. 그 시트는 가로세로 길이가 1m 남짓이기 때문에 환자가 무릎을 세우거나 다리를 조금만 움직이면 주요 부위가 다 드러나곤 했다. 그래서 신규간호사 때 교육받은 한 가지가 바로 ‘바지’였다. “중환자실 밖을 나갈 때 바지를 꼭 입혀라.” 아픈 사람과 아프지 않은 사람, 환자와 나. 그 차이는 무엇일까. 환자가 되는 순간, 수치심과 존엄성이 사라지기라도 하는 걸까? 병원 치료만 받을 수 있다면 어떤 대접을 받든지 감내해야 하는 걸까. 의식이 없는 환자라 해도 신체가 노출되는 등의 프라이버시 침해에서 지켜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의식이 있는 환자에게서도 지켜지지 않는 것을 보고 대부분의 의료진은 포기하게 된다. 실제 의식이 있는 중환자가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것 중 하나가 여러 사람들이 있는 공간에서 대변을 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 대변을 치워달라고 요청을 하고 항문과 성기를 드러내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의학적인 사유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인력이 충분하다면 의료인과 함께 화장실을 갈 수 있는 상태의 환자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병원에는 늘 시간과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환자는 맨정신으로 침대에 누워서 기저귀에 대변을 본다. 이런 상황을 반쯤 포기하고 있던 어느 날, 이런 고민이 내가 예민하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어느 환자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의식은 매우 또렷했지만 기관절개술을 받아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고, 장기간 입원으로 근육이 거의 소실되어 팔다리를 거의 움직이지 못해 의사를 표현하기 힘든 상태였다. 환자는 그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기저귀에 대변을 봤고 간호사들이 기저귀를 교체해주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환자의 담당교수님이 한 무리의 의사들과 함께 회진을 왔다. 의사들이 침대를 에워싸다시피 하자 자연스럽게 간호사들은 잠시 자리를 비키게 되었다. 문제는 기저귀를 교체하던 중이라서 환자의 아랫도리가 벗겨진 상태였다는 것이다. 교수님은 매우 친근하고 정중하게 치료 경과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설명했고 전공의와 의대생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무언가를 열심히 받아 적었다. 꽤 오랜 시간 설명이 이어졌다. 아랫도리가 벗겨진 채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환자를 보고 있자니 나는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의사들 사이를 헤집고 시트라도 대충 덮어줘야 하나.’ 안절부절못하고 있을 무렵, 환자의 손이 미미하게 움직였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이 향하는 곳이 어딘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환자의 손이 조금씩 조금씩 움직여서 자신의 성기를 반쯤 가리게 되자 아차 싶었던지 전공의 중 한 명이 황급히 환자의 아랫도리를 시트로 덮어주었다. ‘아…’ 하는 작은 탄식과 민망함을 담은 헛웃음이 몇 초간 지나갔다. 환자는 아랫도리에 시트가 덮여지기 전, 그 시간이 얼마나 길게 느껴졌을까. 프라이버시 보호에 무뎌져가는 의료인 이런 일은 비일비재했다. 커튼도 치지 않고 여자 환자의 가슴을 드러내놓고 심장 초음파를 보고 검사가 끝나면 앞섶을 다 풀어헤쳐둔 채 그대로 가버린다. 심전도를 찍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의식이 없거나 스스로 움직이기 힘든 환자들은 누군가 단추를 여며주기 전에는 젖가슴을 드러내놓고 있는 경우도 많다. 한숨이 절로 나오지만 간호사와 인턴의사, 전공의, 전문의들이 왜 그렇게밖에 할 수 없는지 이해한다. 의사들은 공식적으로만 주 88시간을 근무한다. 그러나 퇴근 후 비공식적 연장근무가 끝없이 이어진다. 또한 중환자실엔 늘 생명이 오고가는 문제들, 그러니까 먼저 처리해야 할 것들이 쌓여 있다. 그래서 의료인들은 서로 그런 것들에 무뎌져가고 있었다. ‘그래 사람 살리는 게 우선이지’,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데서 한가하게 프라이버시 타령이야.’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간호사들은 저마다 나름 꽂히는(?) 데가 있다. 어떤 간호사는 환자에게 이걸 꼭 해주려 하고, 또 다른 간호사는 아무리 바빠도 저것만은 꼭 지키려 한다. 달라 보여도 모두가 한결같이 ‘인간은 이보다 더 나은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적어도 지금 상태가 인간이 받아 마땅한 대접은 아닐 거라고,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해 줄 수 있을 거라고, 나는 내가 환자가 되었을 때 이런 일을 당하고 싶지 않다고. 그동안 이런 문제제기를 쉽게 하지 못했던 이유는 병원의 반응이 뻔했기 때문이다. 환자에게 바지를 꼭 입히고, 사방에 커튼이나 칸막이를 쳐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고, 상태가 양호한 환자가 화장실을 가기를 원하면 이동형 모니터링 기계와 약물주입펌프 등을 달고 의사나 담당간호사 동반하에 화장실을 갈 수 있도록 도와주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지침을 제대로 지키기 위한 추가 인력은 주지 않을 것이다. 맞는 말이 적힌 종이 한 장을 부서마다 돌리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실행은 힘든 일이다. 나는 동료들의 업무를 가중시키는 역적이 되고, 환자는 프라이버시를 얻는 대신 다른 어떤 것을 내놔야 할지도 모른다. 사람이 일을 할 수 있는 물리력에는 한계가 있다. 새로운 것을 손에 쥐기 위해서는 기존에 쥐고 있던 것을 내려놓아야 하는 법이다. 그럼에도 연재 마지막에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인간은 존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환자들이 이 모든 것을 참고 견디는 것은 그들이 인간이길 포기한 것이 아니라 그저 어쩔 수 없이 그런 상황에 처해진 것이다. 인간은 존엄하다. 그리고 환자는 단지 몸이 아픈 ‘인간’일 뿐이다. ‘간호사가 보고 있다’는 이번 호 연재를 끝으로 마무리됩니다.
간호사가 보고 있다
[내 인생의 노래]브루스 스프링스틴의  ‘스트리트 오브 필라델피아’-존엄성을 지켜주지 않은 사회
[내 인생의 노래]브루스 스프링스틴의 ‘스트리트 오브 필라델피아’-존엄성을 지켜주지 않은 사회(2017. 09. 25 17:49)
2017. 09. 25 17:49 문화/과학
영화주제가는 가사의 뜻을 몰라도 대강 어떤 내용인지 짐작할 수 있다. 에서 울려 퍼지는 ‘Eye of the Tiger’가 승리를 위해 다부진 노력을 해야 한다는 느낌이라는 건 영어를 전혀 몰라도 알 수 있다. 그리고 실제 가사가 뒷골목으로 다시 돌아온 한때 최고였던 남자가 호랑이의 눈으로 열정을 영광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내용임을 확인하면 아드레날린이 치솟는다. 운동할 때 들으면 팔굽혀펴기 한 개를 기어코 더 하게 하는 노래다. 노래의 풍(風)만으로도 감정이 동요되는 노래가 또 있다. 그런데 이 노래를 들으면 아드레날린 증가가 아니라 세로토닌이 쭉 빠지는 느낌이다. 영화 의 오프닝곡인 ‘스트리트 오브 필라델피아·Streets of Philadelphia’는 어둡고 칙칙한 반주에 가수는 허스키보이스로 중얼중얼 알아듣지 못할 가사를 내뱉는다. 하지만 영화의 이미지와 결합하며 이 노래는 암울의 가장 깊은 곳으로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끌고 간다. 미국 헌법이 탄생한 도시 필라델피아, 겉으로는 사람들이 각자 맡은 일에 충실하면서 마냥 행복해 보이지만, 그 뒤에는 오래된 고정관념이 떠다니고 약자들은 여전히 차별 받는다. 세상은 공정하다고? 개가 웃을 일이다. 열심히만 살면 행복할 수 있다고? 소가 웃을 일이다. 사회라는 견고한 벽은 개인이 팔굽혀펴기 한 개 더 한다고 깨지지 않는다. 바로 그곳에서 거대 로펌의 촉망받는 변호사였던 앤드류 베킷(톰 행크스 분)은 자신을 동성애자이자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환자라는 이유로 해고한 회사를 상대로 승산 없는 소송을 진행한다. 베킷의 변호사 밀러(덴젤 워싱턴 분)는 재판의 본질이 동성애자들에 대한 대중들의 혐오, 미움, 그리고 두려움이 어떻게 해고라는 차별로 이어졌는지 직시하자고 말한다. 그러자 판사는 “이 법정에서 정의는 인종, 종교, 피부색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성적 기호도 마찬가지”라면서 재판이 사회적 고정관념에 상관없이 공정할 거라고 선언하지만 밀러는 이렇게 되묻는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우리는 이 법정처럼 살지 않습니다. 그렇죠?” 맞다. 우리들의 ‘거리’에는 ‘그래도 된다’는 폭력이 무수하다. 오히려 현실을 법정이라 착각하고 고정관념에서 빠져나오길 거부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러니 오판은 비일비재요, 각성은 지난할 수밖에 없다. 오답도 우기면 정답이다. 교과서에서 배운 ‘정의로운 행동’은 온데간데없다. 누가 떨떠름한 눈빛으로 ‘그래도 이러면 안 되잖아요’라는 신호를 보내도 답은 간단명료하다. “그래도 된다.” ‘스트리트 오브 필라델피아’는 법정 밖에서 거적때기가 된 사람의 노래다. 그 거리에서 열정, 희망, 기쁨을 찾는 건 기만이다. 자신의 혈액이 검은 빗물처럼 흐르는 느낌을 아는 사람은 천사가 자신을 맞이할 거라는 기대가 없다. 그리고 이제 사라질 운명 앞에서 우리에게 묻는다. ‘무정한 입맞춤’(faithless kiss)이라도 좋으니 제발 자신을 감싸안아 달라고. 나는 이 솔직함이 너무 좋다. 나의 존엄성을 지켜주지 않은 사회에 책임을 묻는 저 뻔뻔함, 이건 우리의 미래를 행복하게 하는 철학이다. 어설픈 희망에 집착하여 몇 명 ‘더’ 행복해지자는 주술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구체적인 절망을 파괴하기 위해 객관적인 노력을 하는 사회에서 ‘나도’ 행복해지는 건 당연하다. 이를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현실 직시다. 가끔, ‘그래도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몽롱한 정신에 빠져들 때마다 나는 이 노래를 듣는다. 그 덕에 ‘읽을수록 우울해지는 책’을 계속 쓰고 있다. 나는 상처 받았고 내가 무엇을 느끼는지도 말할 수 없네. 내 자신조차 알아볼 수 없는 걸. 창에 비친 내 모습을 보아도 내 원래 얼굴이 기억조차 나질 않아. 오 형제여, 나를 버리고 떠날 건가. 이 필라델피아 거리에서.
내 인생의 노래
[표지이야기]아직도 시민의 생명은 존엄하지 않다(2017. 01. 10 14:24)
2017. 01. 10 14:24 사회
ㆍ‘세월호 1000일’ 맞아 생명 지키는 의무 다하지 못하는 정부와 기업에 확실한 책임 물어야 2016년 5월 28일, 구의역에서 한 노동자가 숨졌다. 나이는 열아홉 살, 세월호에서 목숨을 잃은 이들과 같은 나이였다. 공고를 다니다 서울메트로 하청업체에서 현장실습을 하고 졸업과 동시에 그 하청업체에 정식 입사한 그 노동자는 스크린도어를 홀로 수리하다 달려오는 열차에 치여 숨졌다. 그 노동자는 죽어가는 순간 무엇을 생각했을까? 꿈도 많았고 의지도 굳세어서 매달 100만원씩 저축을 하던 이 젊은 노동자의 생명은 그렇게 쉽게 스러져갈 것이 아니었다. 지금도 죽지 않아도 될 생명이 한 해에 2400명이나 사라진다. 열심히 일만 해왔던 이들이 일터에서 죽어간다. 아직도 노동자의 생명은 존엄하지 않다. 생명과 안전을 자신의 역할로 여기지 않는 정부 그 생명이 존엄함을 인정받은 것은 시민들의 눈물이 땅을 적셨을 때였다. 시민들은 구의역 스크린도어에 국화꽃을 바치고 포스트잇을 붙였다.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했다. 사람의 생명이 기업의 이윤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 눈물과 공감 앞에서 ‘작업자 과실’이라던 서울메트로의 주장은 힘을 잃었다. 서울메트로는 결국 유가족에게 사과하고 진상조사를 약속했다. 진상조사 결과 생명·안전업무를 무분별하게 외주화했고, 같은 사고가 두 번이나 있었는데도 제대로 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것이 문제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결국 서울시는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는 노동자들 및 다른 안전업무 노동자들을 무기계약으로 전환시켰다. 많은 이들이 청년의 영전에 국화꽃을 바치고 포스트잇으로 자신의 뜻을 전한 이유는 무엇일까? 왜 시민들은 이 죽음을 자신의 고통으로 여겼을까? 이 청년의 모습 속에서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노동자의 생명을 우습게 여기는 사회에서 아등바등 살지만, 안전장치 하나 없는 위험한 일터로 내몰리고, 운이 나빠 다치거나 죽으면 모두 개인의 책임이 되고, 결국 최선을 다한 나의 노동이 죽음으로 끝나는 게 나의 삶일 수도 있다는 자각이 생겨난 것이다. 그래서 시민들은 ‘작업자 과실’이라는 서울메트로의 주장을 거부하고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이야기하며 ‘가만히 있지 않았던 것’이다. 지난해 5월 스크린어 사고가 발생한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9-4 승강장에 추모 쪽지와 국화꽃이 매달려 있다. 이곳에서 작업하다 사망한 19세 비정규직 청년을 추모하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 김창길 기자 ‘가만히 있지 않음’은 또 어디에서 시작된 것일까? 이 청년을 위해 흘린 눈물은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하루에 7명씩 죽어나가는 산재는 흔하디흔한 것이 되었지만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죽음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정말 죽을 수밖에 없는 죽음이었을까 하고 말이다. 그것은 세월호 참사로부터 시작된 질문이다. 누구라도 그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자각, 죄 없는 이들이 돈만 생각하는 기업과 정부 때문에 죽음에 내몰릴 수 있다는 자각, 사람이 죽는 것이 운이 나빠서가 아니라 정치적 선택의 결과물일 수도 있다는 자각이 세월호 참사로부터 형성되기 시작했다. 구해야 했던 의무를 가진 자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국민의 죽음을 방기하는 현실을 이대로 둘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사람들의 의식은 바뀌는데 정부는 변하지 않았다. 진실을 가로막기 위해 특조위를 해산하고, 언론을 통제하며, 법원에까지 압력을 행사한 이 정부는 세월호 참사 1000일이 다 되도록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사람의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후안무치함은 이 정권의 정책을 가로지르는 정서이며, 책임자들에게 각인된 행동지침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그것을 정상적인 업무라고 주장할 수 있는 뻔뻔함은 이 정부 책임자들의 머릿속에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 정부의 의무라는 인식이 아예 없음을 보여준다.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을 정부의 역할로 생각하지 않으니, 공공기관인 코레일도 승객의 생명을 우습게 여긴다. 2015년 대법원은 KTX 승무원들이 낸 근로자 지위 확인소송에서 승무원들은 코레일의 직원이 아니라고 판결했다. ‘KTX 승무원들이 안전업무를 하지 않는다’는 코레일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1000명이 타고 있는 고속열차의 승무원이 안전업무를 하지 않는다면, 그래서 안전교육도 받지 않고 응급처치도 할 수 없다면, 도대체 승객의 안전은 누가 보장하는가. 철도공사는 승무원을 비정규직으로 계속 사용하기 위해 이런 억지를 부렸다. 승객들의 생명과 노동자의 권리는 철도공사의 이윤논리 뒤로 밀렸다. 안전에 대한 정부의 관리·감독은 늘 허술하다. 2016년 1월 삼성전자의 휴대전화 부품을 만들던 20대 파견노동자 5명이 메탄올에 중독돼 이 가운데 4명이 실명했다. 노동건강단체들이 또 다른 피해자가 있는지 확인하라고 강력하게 주장하자 고용노동부는 전수조사를 하고는 ‘추가 피해자는 없다’고 확인했다. 그러나 이러한 고용노동부의 주장이 무색하게 그해 10월에 2명의 추가 피해가 확인됐다. 이미 고용노동부가 전수조사를 했다던 사업장 노동자들이었다. 고용노동부가 제대로 관리·감독을 했다면 막을 수 있었을 사고였지만, 고용노동부의 허술한 감독은 20대 노동자들의 소중한 빛을 빼앗아갔다. 삼성전자 휴대전화 부품 생산공장에서 일하다 메탄올 중독으로 실명한 파견 노동자들이 지난해 10월 국회에서 산재 신청 기자회견을 열었다. 확인된 실명 피해자만 현재까지 6명이다. / 이준헌 기자 정부는 안전과 생명을 돈벌이 대상으로 만들었다.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이후 정부가 내놓은 대책 중 가장 문제가 된 것이 ‘안전산업 발전대책’이었다. ‘안전산업 박람회’를 하고 ‘안전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펀드를 조성하고, 안전상품의 해외진출을 돕는 내용이다. 이때 안전산업의 사례로 든 것이 ‘의료민영화’인 원격의료산업이다. 생명과 안전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고, 심지어 안전을 파괴하며 돈벌이의 수단으로 만드는 것이다. 정부의 인식이 이 수준이니 중대재해가 발생해도 처벌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지난 6일 수백명의 사상자를 낸 ‘가습기 살균제 참사’ 제조·판매 책임자들은 최고 징역 7년형을 선고받았고, 존 리 전 대표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피해자 가족들은 ‘이 나라에 정의가 있느냐’고 울부짖었다. 노동자의 목숨값으로 이윤을 더하는 기업들 정부가 변하지 않으니 기업들도 변하지 않는다. 기업들은 안전을 ‘비용’으로 여겨 아끼려고만 하는데, 가장 많이 활용하는 것이 ‘외주화’다. 2015년 30대 기업 산재 사망 노동자의 95%가 하청노동자다. 경주 지진으로 KTX가 연착했을 때 선로를 유지·보수하던 하청노동자들은 사고를 피하기 위해 자갈이 든 손수레를 밀어넘기고 열차에 치여 숨졌다. 이 노동자들은 열차 연착 정보를 알지 못했다. 현대중공업과 현대제철 하청노동자들도 한 해 10명 가까이 떨어져 죽고, 압착으로 죽고, 지게차에 치여 죽는다. 핵발전소 하청 정비노동자의 피폭선량은 정규직의 18.9배이다. 기업들이 절감한 ‘비용’은 노동자들의 목숨값이다. 노동자들에게 권한이 없으면 위험은 더 커진다. 경주 강진이 발생했을 때 고용노동부는 경주 인근 사업장에 작업 중지를 지시하지 않았다. 그러니 기업들은 노동자들을 계속 작업시켰다. 현대자동차만이 노조의 요청으로 긴급하게 작업을 중단했다. 만약 이 지진으로 건물이 무너졌다면 노동자들이 가장 많이 사망했을 것이다. 2012년 구미에서 불산이 누출됐을 때에도 인접 산업단지 노동자들은 가장 늦게 대피통보를 받았고, 지난해 세종의 한 렌즈회사에서 유해물질이 누출됐을 때에도 노동자들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한 채 2시간이 넘도록 작업을 계속해야만 했다. 위험을 알고 대응할 권리가 노동자에게는 없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노동자들을 위험으로 내몰고, 죽거나 다치는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떠넘긴다. 삼성반도체는 200명 가까운 노동자들이 직업병으로 고통을 당하거나 죽었는데도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았다. 피해소송 증거채택을 위해 자료제출을 요구했으나 ‘영업비밀’이라면서 자료를 공개하지 않았다. 2013년 삼성공장 불산누출 사고 때도 당국에 신고하지 않고 은폐를 시도했다. 이때도 삼성반도체 공장 안전보건 종합진단 보고서는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공개되지 않았다. 유성기업에서는 한 노동자가 민주노조를 탈퇴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괴롭힘을 당했고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러나 노조 탄압을 기획한 원청 현대자동차도, 부품업체인 유성기업도 모두 사과 한마디 하지 않고 책임을 회피한다. 기업이 아직도 노동자의 죽음을 개인 책임으로 떠넘긴다. 2015년 말 현대건설의 대구 현장에 배치된 안전간판에는 ‘안전수칙을 지킵시다. 사고가 나면 당신의 부인 옆에 다른 남자가 자고 있고, 그 놈이 아이를 두드려 패며, 당신의 사고보상금을 없애는 꼴을 보게 될 것입니다’라고 돼 있었다. 현대건설은 노동자들이 안전모를 착용하지 않았다거나 산재를 요구했다는 이유로 블랙리스트를 작성했으며, 지난 10년간 무려 110명의 노동자가 사망한 최악의 살인기업이다. 최저낙찰제로 하청에 재하청을 반복해서 위험을 만들어놓고는 산재 책임을 노동자에게 떠넘기며, 노동자 가족에 대한 폄훼로 일관하고 있다. 기업들이 생명을 존중하도록 만드는 것은 법적·사회적 통제뿐이다. 지난해 4월 28일 '세계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을 맞아 노동자들이 산업재해 희생자의 영정을 들고 거리행진을 했다. / 서성일 기자 인간의 존엄과 생명이 가장 중요한 가치가 돼야 박근혜의 탄핵 사유에 ‘생명권 침해’가 포함돼 있다. ‘생명권’이 탄핵 사유로 인용되는 것은 정부가 시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존재할 가치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박근혜가 꼭 탄핵돼야 하는 이유다. 그동안 기업의 이윤논리 아래에서 ‘생명권’은 중요한 권리로 제기되지 못했다. 하지만 세월호 1000일을 맞은 지금, 인간의 존엄과 생명이 사회의 가장 중요한 가치가 돼야 한다는 깨달음이 점점 커지고 있다. 이 가치 위에 서 있을 때 안전을 ‘비용’으로 생각하지 않게 되고, 생명을 지키는 의무를 다하지 않는 자들에 대한 처벌방안이 제대로 마련될 수 있다. 생명을 지키는 것이 우리 사회의 중요한 가치로 인정되기 위해서라도 생명·안전업무를 하는 노동자들에게 권리가 부여돼야 한다. 비정규직인 노동자들이 승객들의 안전을 제대로 담보할 수 없고, 짧게 일하는 노동자들이 시민의 안전을 위한 훈련을 할 수는 없다. 노동자들에게 권리가 부여돼야 위험에 대해 사회에 알리고, 그 위험을 예방하기 위해 기업에 문제제기를 할 수 있다. 또한 생명과 안전을 우리 사회의 가치로 만들기 위해 ‘위험의 외주화’를 중단시켜야 하고, 안전장치를 제대로 하지 않는 기업을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 노동자의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 한 기업의 이윤도 없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이제 노동자와 시민은 변화하고 있다. 위험에 처했을 때 징계와 손배를 무릅쓰고 작업중지권을 행사한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이 있다.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은 지진대응 매뉴얼을 만들어서 배포하고 있다. 구의역에서 홀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사망한 노동자를 기억하며, 노동자와 시민의 안전할 권리를 위해 노조와 회사, 서울시와 시민들이 지하철 안전을 논의하는 협의체를 구성하도록 요구하기도 한다. 지역사회와 힘을 합해서 ‘유해화학물질에 대한 알권리 조례’를 제정하기도 한다. 전국 곳곳에서 알권리 조례가 만들어지고 이것이 ‘알권리법 제정운동’으로 나아가고 있다. 또한 노동자와 시민을 위험에 빠뜨린 기업과 최고책임자를 처벌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에 힘을 모으기도 한다. 세월호 1000일이 돼 가도 지금 정부와 기업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이런 정부와 기업을 시민들이 제대로 통제하기 위해서는 힘을 가져야 한다. 기업에 유해위험정보를 내놓으라고 요구해야 하고, 지역사회가 함께 안전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 세월호의 진실이 밝혀지더라도 그것에서 그치지 않고 생명의 존엄성이 보장되는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나가기 위해서 지역마다 기업과 지역 행정기관을 통제하는 안전지킴이를 구성해야 한다. 촛불광장에서 우리가 정치의 주체로 서 나가듯이 우리의 일상에서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주체로서 정부와 기업의 책임을 묻고 확실하게 통제하겠다는 선언을 해야 할 때다.
표지 이야기
[그래, 나는 일을 못한다]‘인간의 존엄’을 지켜주면서 살자(2016. 04. 05 15:15)
2016. 04. 05 15:15 사회
그저 당신 곁의 존재가 이름 없는 돌덩이가 아니라, 누가 코 풀고 몰래 버린 휴짓조각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살자. 7-3번 플랫폼 노란색 안전선 뒤에서 열차를 기다린다. 익숙한 음악이 들리고, 열차가 들어와 멈췄다. 어라? 문이 열리지 않는다. 열리지 않는 문과 승객 사이에 잠시 정적이 흐르고 열차는 슬그머니 뒷걸음질한다. 멈춰야 할 지점에 정확하게 서지 않으면 종종 발생하는 일이다. 그렇게 열차는 두 걸음쯤 뒤로 물러나더니 문을 열어주었다. 나는 슬그머니 웃는다. 열차라는 기계에 ‘인간미’를 느끼는 그 순간, 나는 묘한 희열을 느낀다. 여기에도 ‘일못’이 있었군요! 반가워요. 개찰구를 벗어나 빠르게 출구로 이동한다. 언제부터 문을 열었는지 모를 세계 과자 할인점과 편의점을 지나 7번 출구 에스컬레이터에 도착하니, 출입금지 표지판이 버티고 서 있다. 어딘가 고장이 났는가 보다. 8번 출구로 나가기 위해 돌아서려는 찰나, 구불구불한 기계 한 부분을 들어내고 일하는 인부를 보았다. 순간, 그동안 자동으로 오르내리던 내 밑에서 저 사람이 열심히 기계를 굴리고 있었던가, 착각할 정도로 그는 기계라는 보호색을 입고 열심히 땀을 흘리고 있었다. 아마 잠시 후 에스컬레이터는 다시 사람들을 부지런히 태워 나를 것이다. 그의 땀 비린내 나는 열심 덕분에. 거기에도 사람이 있었군요! 반가워요. 며칠 전에는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약 50대쯤 되었을 것 같은 여성이었다. 그는 수줍게 말했다. “저… 여론조사 기관 OOO인데요. OOO 의뢰를 받아 여론조사를 하는 건데요….” 누가 들어도 초보인 것 같은, 떨리는 음성으로 버벅대며 말했다. 3분이면 되는데 시간이 되느냐고. 무심하게 전화를 받던 나는 건조하게 대답했다. “지금은 곤란합니다. 죄송합니다.”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가 대답했다. “그죠…, 서로 민망한 상황이네요…, 죄송합니다.” 짧은 대화를 마치고 전화를 끊었는데, 잘못했다 싶었다. 3분 아끼려다, 오전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는 매일 그렇게 떨리는 목소리로 몇 통의 전화를 해야 퇴근할 수 있을까? 3분을 떼어주기 힘겨울 만큼의 곁이 없는 나는 잘 살고 있는 걸까? 이세돌이 알파고에 4대 1로 패했을 때 당황한 인간들은 저 기계 따위보다 인간이 얼마나 나은 존재인지 증명하기 위해 온갖 지혜를 짜 모았다. 누구는 바둑을 두는 즐거움을 기계 따위가 알겠느냐 에헴! 했고, 어떤 사람은 담배 피우는 이세돌의 뒷모습이 담긴 사진을 공유하며 기계는 담배 맛을 모른다며 우쭐거렸다. 그러다가 찾아낸 단어가 있었다. 존엄. 미지의 불가항력적인 존재 앞에서도 품격을 잃지 않았던 이세돌을 극찬하며 인간에게는 존엄이 있노라 뿌듯해했다. 나는 생각했다. 우리에게 존엄이란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우리는 서로의 존엄을 지켜주고 있을까? 밀린 임금을 받지 못한 배달 종업원이 노동청에 진정을 내자 업주가 자기 방식대로 밀린 임금을 깎아 계산하여 17만4760원(170만4760원도 아니고!)을 1000원짜리 지폐 4장에 나머지는 10원짜리와 50원짜리 동전으로 줬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 동전을 한 아름 받게 된 김씨는 수치심을 느꼈다고 했다. 기계보다 나은 인간이 가졌다는 그 존엄이 아니라, 수치심 말이다. 정치권에서는 때아닌 ‘존영’ 싸움이 벌어졌다. 탈당한 새누리당 의원 사무실로 박근혜 대통령의 존영을 반납하라는 공문을 보냈다고 한다. 그 존엄이 아니라, 존영 말이다. 17만4760원어치의 존엄도 보장받을 수 없는 세상에서 감히 존엄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당신 곁의 존재가 이름 없는 돌덩이가 아니라, 누가 코 풀고 몰래 버린 휴짓조각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사실, 큰 기계 덩어리 안에도 사람이 있고, 자동으로 굴러가는 계단 밑에도 사람이 있고, 휴대전화 너머 반복하여 상품을 설명하는 누군가도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존엄이라, 서로의 존엄을 지켜주었다고 인정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다 함께 외쳐보자. 존영 말고 존엄을 지키자! 수치심 대신 수지침이나 맞자! <오수경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 회원>
그래, 나는 일을 못한다
[비상식의 사회]존엄사 강요당하는 수많은 세 모녀들(2014. 04. 14 18:16)
2014. 04. 14 18:16 사회
어느날 세 모녀는 얼싸안고 엉엉 울었으리라. 고통스러운 삶을 더 이상 유지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도 가지지 못한다고 생각될 때, 택할 수 있는 건 품위 있는 죽음뿐이었다. 지난 3월 마지막 토요일, 전교조 초대 위원장 고 윤영규 선생님 9주기 추모행사가 광주 5·18 묘역에서 열렸다. 나는 그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교육운동 초기에 함께했던 분들과 함께 주최 측에서 마련한 버스에 올랐다. 오랜만에 만나는 얼굴들이 반가웠다. 그런데 80년대 중반 교육운동을 처음 시작할 때 30~40대 젊은이들이 모두 초로의 얼굴이 되어 있었다. 주고받는 얘기도 뜨거운 현실 문제보다는 앞으로 남은 날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것들이었다. 나도 촉촉이 봄비가 내리는 창밖을 바라보며 죽음에 대한 생각에 잠겼다. 그때 손전화 진동이 울렸다. 요즘 웬만한 건 문자나 카톡으로 하고 음성통화는 귀한 데다가 전화 오는 횟수도 줄어 모처럼의 전화가 반갑기도 했다. 저장된 번호는 아니었다. 누굴까? 반신반의하며 전화를 받았다. 세 모녀가 자살한 서울 송파구 석촌동의 한 주택 반지하 방. 지난 2월 28일 찾은 이 집 텔레비전 위에는 먼저 세상을 떠난 아버지와 찍은 가족사진이 놓여 있었다. / 박은하 기자 “여보세요. 여긴 ○○보험회산데요.” 모르는 여성의 목소리는 활기찼지만 내 기분은 별로였다. 내 분위기를 눈치챘는지 속사포처럼 말이 날아왔다. “아버님, 지금 들고 계신 암보험은 80세까지만 보장이 되거든요. 아버님 혈압약 드시는 거 상관없이 100세까지 보장되는 보험으로 바꿔드릴 수 있어요 아버님!” 그 쪽은 내 나이와 병력 등 내 개인정보를 훤히 알고 있는 듯했다. 한편으론 괘씸한 생각도 들었지만 내가 벌써 이렇게 됐구나 생각하니 안타깝기도 했다. 며칠 전에는 주민센터로부터 공문 형식의 편지 한 통을 받았다. 내가 다음달이면 만 65세가 되니 노령연금 등 해당자는 미리 신고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기분이 묘했다. 나도 이젠 어쩔 수없이 ‘지공대사’(지하철 공짜 대상)가 되는구나, 이젠 슬슬 죽을 준비를 해야 되는구나 생각하며 품위 있는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헌법상의 권리인 자기결정권 올해는 4월 20일이 기독교 교회력으로 부활절이다. 예수가 죽은 지 사흘 만에 다시 산 것을 기념하는 날이지만, 실제로는 예수가 로마의 압제로부터 이스라엘 민중을 구원하기 위해 스스로 십자가형을 받으며 죽어간 일을 기억하고 그 의미를 잊지 말자는 것이다. 예수의 죽음은 철저히 인간의 기본권으로서의 자기결정권에 기반하고 있다. 성경 기록자들에 따르면, 예수는 죽기 전에 그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노골적으로 표현하고 피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했지만, 결국은 스스로 그 길을 선택하고 실천에 옮긴 것으로 되어 있다. 전태일도 마찬가지였다. 당시의 노동 현실과 처참한 노동자의 삶을 고발하고 알려 고칠 수 있는 방법이 자기희생밖에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는 과감히 분신을 결단했다. 우리는 이러한 죽음에 어떠한 법이나 윤리, 도덕의 잣대도 들이대지 않는다. 그 행위가 누구의 억압이나 간섭도 없이 이루어졌고, 그 내용이 철저히 이타적 공익에 부합함은 물론 인류의 진보에 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오히려 우리는 이러한 삶을 존경하는 차원을 넘어 따라 배우려는 모범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중요하게 등장하는 자기결정권이란 인간은 누구나 스스로 행복을 추구하려는 헌법상의 권리이다. 국가권력을 비롯하여 그 누구로부터도 간섭 없이, 일정한 사적 사항에 관하여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의적 권리를 말한다. 그런데 가장 큰 쟁점이 되는 것은 역시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이다. 의학적으로는 존엄사라는 말로 통용된다. 전혀 깨어날 가망성이 없는 의식상실 상태의 환자가 품위 있게 죽음을 맞이하도록 생명유지치료를 중단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는 2009년 5월 대법원 전원합의에 의해 ‘환자의 신체 침해를 수반하는 구체적인 진료행위가 환자의 동의를 받아 제공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진료행위를 계속할 것인지 여부에 관한 환자의 결정권 역시 존중되어야 한다’는 판례 수준으로 소극적 안락사를 제한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이러한 존엄사에 대한 자기결정권이 가장 적극적으로 행사된 사례가 바로 스콧 니어링의 죽음이다. 니어링 부부는 복잡한 도시 뉴욕에서의 단칸방 생활을 청산하고 산골로 내려가 손수 집을 짓고 농사를 지으며 행복하게 산다. 어느 해 그는 언젠가 맞을 죽음에 대해 ‘이웃에게 드리는 글’을 통해 자기의 소회와 각오를 밝힌다. “마지막 죽음의 순간이 찾아오면 죽음의 과정이 다음과 같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어떤 의사도 주위에 없기를 바란다. 의학은 죽음에 대해 무지한 것처럼 보인다. 죽음이 임박했을 때 지붕이 없는 열린 곳에 있었으면 한다. 죽음이 다가오면 음식을 끊고 마시는 것도 끊고자 한다. 어떤 장례식도 열려서는 안 된다. 어떤 식으로든 목사의 설교, 그 밖의 다른 종교인이 장례를 주관해서는 안 된다. 화장이 끝난 뒤 재를 거두어 우리 땅의 나무 아래 뿌려주기 바란다.” 가난의 벽에 절망, 생을 정리하다 그는 100살이 되기 한 달 전 유서를 다시 써서 부인에게 맡기고 단식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는 1983년 가장 품위 있고 평화롭게 죽음을 맞이했다. 스콧 니어링의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은 ‘더 이상 산다는 것이 어떤 내용도 지니지 못한다’는 판단이라고 유서에서 고백하고 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의미한 삶에 대한 포기의 자기결정이 존엄한 인간의 태도라는 것이다. 결이 다르긴 하지만, 최근 나는 가난의 벽 앞에서 절망하며 스스로 생을 정리한 서울 송파구 세 모녀의 죽음도 또 다른 존엄사라고 생각한다. 60세의 어머니와 35·32세의 두 딸, 8년 전 아버지는 암으로 돌아가시며 빚만 남겼다. 딸 둘은 고혈압·당뇨 등으로 일을 할 수 없는 환자였고, 어머니가 식당 주방 아르바이트로 겨우 가족의 삶을 유지시키고 있었다. 장래에 대한 희망이 조금도 없는 상태에서 하루하루를 어쩔 수 없이 살아야 하는 그 고통과 절망감이 오죽했을까? 죽음의 유혹은 이미 그들 곁에 웅크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날 유일한 노동력인 어머니가 팔을 다쳐 식당 일을 못하게 되고, 수입이 전혀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손 벌릴 데가 없었다. 동사무소나 다른 기관도 찾아봤지만 형식 요건이 되지 않았다. 반경 500m 안에 크고 작은 교회가 10개도 넘었지만 아무 상관없는 닫혀 있는 건물에 불과했다. 어느날 세 모녀는 얼싸안고 엉엉 울었으리라. 도대체 길이 없는 막힌 절벽. 넘을 수도 없었지만 어찌어찌 넘는다 해도 기다리는 건 절망밖에 없다고 판단했으리라. 고통스러운 삶을 더 이상 유지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도 가지지 못한다고 생각될 때, 택할 수 있는 건 품위 있는 죽음뿐이었다. 남은 돈으로 죽기 전 마지막 여행도 할 수 있고, 맛있는 음식도 먹을 수 있었으리라. 그러나 그렇게 하면 밀린 집세와 공과금을 낼 수 없었기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주인아주머니께 짧은 글을 남겼다. 그리고 그것이 유서가 되었다. ‘죄송합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짧은 글 속에 ‘죄송합니다’라는 말이 두 번이나 들어갔다. 이 나라는, 우리 사회는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는데, 그들이 오히려 미안해 하고만 있다. 어느 전직 대통령은 수백억의 나라와 사회에 대한 빚을 갚지 않고 떵떵거리고, 어느 재벌은 일당 5억짜리 노역을 살다가 들통이 나는 이런 비상식의 사회에서, 우리 주변의 수많은 가난한 세 모녀는 오늘도 존엄사를 강요당하고 있다.
비상식의 사회
[시사2판4판]존엄 손상 문구(2013. 07. 23 17:01)
2013. 07. 23 17:01 정치
주의: 이런 문구는 상대방의 존엄을 마구 건드릴 수 있습니다. 제재 조평통: 우리의 존엄을 털끝만치라도 건드린다면 무서운 보복의 불벼락을 면치 못할 것이다. 존엄을 건드리다 푸른기와집: 우리 국민에게도 존엄이 있다. 귀태 새누: 우리 존엄에 대한 모욕이다. 환생경제 친노: 우리도 할 말이 있다. 사찰 음지: 우리에게도 명예가 있다. 가짜 29만원: 우리가 가진 미술품에 대한 모욕이다. 취업했니 백수: 우리의 존엄을 건드렸다. 무더운 여름날 차마 존엄을 지키지 못하고 드러내지 말아야 할 부분을 드러내는 사람이 많다. 이제라도 존엄을 지켜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시사 2판4판
[2030세상읽기]밥벌이의 존엄(2011. 12. 14 15:25)
2011. 12. 14 15:25 오피니언
“너희도 이와 같이 너희의 빛을 사람들 앞에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 (마태오의 복음서 5장 16절, 공동번역성서) 한국에 사는 20~30대라면 유년시절에 교회에 가본 경험이 한 번은 있을 것이다. 문학의 밤, 크리스마스 이브 행사 등 다양한 행사가 있었지만 이 가운데 신규 회원 유치에 가장 효과적인 대외 사업을 꼽자면 단연 성경학교였다. 예배당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진행하기도 하지만 2박3일 일정으로 외부에서 진행되기도 했다. 식사시간에는 줄을 서서 성경 구절 암송 테스트를 통과해야 식당에 들어갈 수 있었다. 뜻도 잘 모르고 외웠던 구절 하나가 퍽 인상적이었다. 신앙심은 없었지만, 좋아하는 성경 구절은 말할 수 있었다. 김상민 대학에 들어가니 운동권과 교회 전도 방식은 비슷한 점이 많았다. 대표적인 맨투맨 영업. 학교에서 소위 ‘권’도 아니었고, 소심한 학생이던 나는 그나마 말이 통하는 이들과만 어울렸다. 연극 동아리 선후배들, 인문·사회과학 전공자들, 자치 언론, 학생회 등을 하는 친구들이었다. 현장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 세대였고, 세미나에는 선배들에게 낚여서 들어온 친구들이 많았다. 그래도 어린 마음에 선배들은 멋졌다. 그들은 나름 치열해 보였고, 맨투맨 작업은 신입생 새터부터 시작되었다. 의외의 아이들이 선배들에게 혹해 운동권에 발을 들여놓았다. 어떤 책을 읽고, 어떤 고민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며 사회를 보는 논리를 어떻게 만들었는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어느 순간 이들은 운동권 학생들로 불렸다. 한편 2000년대 자칭 좌파 청년들이 생겨나고, ‘나꼼수’ 덕분에 직장에도 반MB 구호와 일상 지사들이 넘쳐난다. 적어도 트위터를 보면 말이다. 나는 타인을 말로 설득하는 일에는 자신이 없다. 어느 논객이 일상에서 동네 주민에게 그들의 언어로 진보를 이해시켰다는 글을 보고 그를 존경했지만, 치열하지도 못하고 똑똑하지도 못한 우리는 그렇게 살 수 없다. 범인(凡人)으로서 그저 점심시간에 자리에 앉아 조용히 정당 대표단 선거를 마치고 서둘러 인터넷 창을 닫을 뿐이다. 어쩌다 나온 정치적인 질문에는 말꼬리를 흐린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인간적으로 덜 나쁜 인간이 되고 싶은 내 모습’을 보여주고, 그들이 물었을 때 지지하는 정당이나 후보나 정책이나 세계관을 대답해주는 것뿐이었다. 이런 소시민은 ‘먹고사니즘’을 방패 삼는다.  다니는 직장이나 하는 일에 모두 엄밀한 잣대를 들이댈 수는 없다. 가령 출판사에 다니는 사람에게 ‘그런 책을 내는 회사에 다니는 것’이 당신이 추구하는 가치와 배치되지 않느냐고 질문한다면, 상당히 난감해진다. 1인 출판사나 창조적 기업 운운하는 소규모 사업장은 자본가라고 부르기에는 열악하고, 대기업 정규직이 자신들을 노동자로 인식하고 있는 사회도 아니다. 미안하지만 나는, 평범한 사람들이 월화수목금금금으로 일하는 사회에서 ‘먹고사니즘’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글을 쓰는 매체의 상황을 빤히 알게 되고 난 뒤에는 후원이나 정기구독 전화가 오면 거절하지 못한다. 그 배너광고들을 밀어낼 수 있는 구독자 수를 만들어줄 수 있는 게 아니라면 그냥 한 푼 보태면 된다. 그것도 안 하면서 ‘정치적 올바름’ 운운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이마저도 없어질 수 있다. 엄한 잣대로 기업의 문제를 인식한 뒤에, 그렇다고 더 큰 독식업체에서 물건을 사는 선택을 하는 것은 무지의 결과다. 예수도 말했다. “너희 중 죄 없는 자, 돌로 쳐라”고. 그렇게 먹고사니즘에서 자유로운가? 난 그 시간에 진심을 담은 맨투맨 영업을 하겠다. 좀 과장되더라도, 사람들을 낚아서라도, 세상이 좋아지는 데 일조할 수 있다면 그 또한 일상을 사는 이들의 몫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김류미
2030세상읽기
[시민사회 중계석]사회 구성원 누구나 존엄하게 대변되어야
[시민사회 중계석]사회 구성원 누구나 존엄하게 대변되어야(2011. 05. 18 15:59)
2011. 05. 18 15:59 사회
대한민국 국회는 사실상 성인들만의 국회이고, 좀 더 정확히는 50~70대들이 주도하는 장·노년 국회나 다름없는데요. 대한민국에 ‘어린이 국회’라는 것도 있다는 것을 아시나요? 아마 처음 들어보시는 분들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성인들끼리 어른들 위주로만 국회를 운영하는 것이 부담스러워서인지 우리나라도 어린이 국회 같은 형식적인 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어린이 국회(http://youth.assembly.go.kr)는 2005년부터 매년 열리고 있는데요. 2005년 전국 어린이 대표들이 모인 첫 어린이 국회에서 통과시킨 법률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지난 2009년 10월 경기도 안산에서 치러진 재·보궐선거에서 후보자들의 선거벽보가 붙어 있는 벽 앞을 한 어린이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고 있다. |서성일 기자 현재 우리나라의 투표권은 만 19세 이상에게만 주어지고 있습니다. 만 19세 미만의 수백만 청소년과 아동은 투표권이 없습니다. 투표에 참여하고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모든 국민의 당연한 권리인데, 청소년과 아동에게는 이 권리를 박탈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날 그리스, 로마의 직접민주정치에서 모든 시민에게 투표권을 줬지만, 그때도 여성, 노예, 아동에게는 투표권을 주지 않았었죠. 이처럼 투표권은 시민으로서 대접받고 존중받고 있느냐, 아니냐는 가장 중요한 증표인 것입니다. 즉, 지금 투표권이 없는 청소년과 아동들은 국민, 시민 대접을 제대로 못 받고 있는 것입니다. 당연히 투표권이 없는 이들을 두려워하거나 신경 쓰는 정당이나 정치인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청소년과 아동을 위한 좋은 정책은 잘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만약에 지금 우리나라 어른들이 청소년과 아동들이 겪고 있는 것과 비슷한 강도로 어떤 고통을 받고 있다면, 어른들은 난리법석, 아우성을 쳤을 것이고 그것이 두려운 정치인들은 표를 잃지 않기 위해서라도, 또는 한 표라도 더 얻기 위해서라도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력을 다했을 것입니다. 최소한 그런 모양새라도 취했겠죠. 그래 놓고도, 5월 5일이 되면 권력자들이 어린이들과 함께 웃고 즐기는 모습을 연출합니다. 가장 드라마틱한 것은 아이들을 하루 청와대로 초청해 벌이는 행사입니다. 아동 복지와 관련한 예산을 대폭 삭감하고, 친환경 무상급식 등과 같은 좋은 정책이 ‘나라를 망하게 한다’고 반대하면서도 ‘아이들이 우리의 희망이다’라고 포즈를 취하는 모습이 너무나 역설적입니다. 만 19세로 투표연령이 낮아진 것이 2005년 6월입니다. 선거연령이 만 20세에서 한 살 낮춰지는 데에도 수십년이 걸린 것입니다. 그동안 일부 보수세력은 젊은층들이 자신들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 뻔하니 선거연령 인하를 결사 반대해왔습니다. 하지만 도저히 시대의 흐름과 청년세대의 열망을 거부할 길 없어서 겨우 한 살 낮추는 데 동의를 해준 것이죠. 그렇게 해서 2006년 지자체 선거 때부터 약 70만명의 청소년들이 추가로 투표권을 얻게 된 것입니다.  나아가 아동에게까지 투표권을 부여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문제일 것입니다. 급격한 변화가 불가능한 측면도, 또한 부정적인 측면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함께 상상은 해보자는 취지입니다. 그리고 적어도 다가오는 총선, 대선에서부터는 더 많은 청소년들에게 투표권을 주자는 이야기입니다. 곧 사회의 주역이 될 청소년들에게 자신들의 삶과 매우 중요한 관련이 있는 대통령 선거에 참여의 기회를 최대한 많이 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선거연령을 만 16세까지라도 인하해야 합니다. 수백만의 청소년·아동 시민들이 자신들의 대변자 하나 없는 상황, 어떠한 참정권도 봉쇄되어 있는 상황을 묵과해서는 안 됩니다. 총선을 앞두고 보수정당이 이를 동의할 리가 없어 법이 통과될 리가 없다고 누군가 이야기하지만, 그래도 간절하게 호소해야 하지 않을까요. 청소년과 아동에게 시민권·참정권을 주어야 한다는 얘기, “우리 사회 구성원 누구라도 가장 존엄하게 대변되어야 한다!”는 얘기 말입니다.  안진걸
시민사회 중계석
[요즘 이 책]한국사회에서 짓밟힌 이주노동자의 존엄성
[요즘 이 책]한국사회에서 짓밟힌 이주노동자의 존엄(2009. 05. 21)
2009. 05. 21 문화/과학
이란주 지음, 삶이 보이는 창 펴냄 아빠, 제발 잡히지마 지금도 미국과 일본 등지에는 이들과 똑같은 지위의 한국인 노동자들이 있다. 우리가 피해자 신분일때는 공감하고 분노한다. 가해자 신분일때는 외면하고 도리어 동참하는 경우까지 있다. “당신 어느 나라 사람이야? 한국 사람 맞아?” 외국인 상담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비난과 욕설에 익숙해져 있다. (삶이 보이는 창) 저자 이란주씨는 1995년부터 지금까지 줄곧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하고 있다. 먼저 이주노동자 아이들 문제가 있다. 인권 차원에서 학교에서 받아준 지는 몇 년 됐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면 나이보다 몇 학년씩 낮추어 배정된다. 자존심 팍팍 상하는 일이지만 한국말을 잘 못하는 ‘원죄’가 있으니 받아들인다. 엄마 아빠에게 무슨 문제라도 생기면 이들이 집안의 공식 통역사가 된다. 아이들은 정체성 혼란을 겪는다. 제 나라의 말·문화·가족관계와도 단절된다. 이주노동자 중에는 제 나라에서 지식인 반열에 있던 이도 상당수다. 살인적인 노동 강도와 부평초 같은 삶 속에서 이들에겐 책 한 권 손에 잡을 여유가 없다. 퇴화다. 그렇다면 대가는? 공포와 불안이다. 45만 이주노동자 중 절반이 미등록 노동자다. 해마다 이주노동자가 10만 명 정도 새로 들어온다. 계속 들어오고, 계속 잡혀가고, 계속 추방당한다. 단속은 공장이든 자취방이든 가리지 않는다. 여름날 창문조차 열지 못한다. 엄마가 잡혀가자 초등학교에 다니던 아이도 엄마 따라 제 나라로 돌아가고, 아빠만 남았다. 3년 만에 상담소로 전화가 왔다. 아이는 잊혀져가는 한국말로 숨죽여가며 아빠에게 말했다. “아빠, 제발 잡히지 마.” 불법체류자의 공포와 불안을 악용하는 일은 사용자의 권리다. 근로조건은 없다. 임금체불과 퇴직금 떼이는 일은 일상이다. 산업재해는 특별하게도 이들에게 집중된다. 손가락과 손목이 잘려 나간다. 그렇다고 문제를 제기했다간 당장 단속으로 이어진다. 제보라는 보복이다. 그래서 권리를 주장하는 일은 강제추방을 선택하는 일이나 다름없다. 강제추방은 죽음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저자의 책 속 제목은 ‘죽음보다 무서운 강제추방’이다. 더 이상 오갈 데 없는 이들은 자살을 선택한다. 의문사도 있다. 단속을 피해 공장 건물 외벽을 타고 달아나다 아래로 추락하여 뇌사 상태에 빠진 중국인 노동자도 있다. 성폭력에 노출되는 것은 여성 이주노동자의 의무다. 모욕과 폭력에 노출되는 것은 남녀 이주노동자의 공동 의무다. 이슬람의 율법을 따르는 무슬림 노동자들에게 억지로 고기를 먹이고, 술을 먹이고, 토하게 한다. 한국형 놀이문화다. 한국인 여자 친구와 사이에 아이가 생겼다. 여자는 어머니에게 끌려가 강제로 임신중절수술을 당했다. 남자는 오빠들과 아버지에게 끌려가 실컷 두들겨 맞고 경찰서에 넘겨졌다. 경찰이 사정을 듣더니 그냥 나가라고 했다. 오빠와 아버지는 불법체류자를 추방시키지 않고 그냥 내보냈다며 길길이 날뛰었다. “참 복도 많았다.” 두 번씩이나 무사히 풀려난 것은 기적이었다. 우리도 이런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미국과 일본 등지에는 이들과 똑같은 지위의 한국인 노동자들이 있다. 우리가 피해자 신분일 때는 공감하고 분노한다. 그러나 가해자 신분일 때는 외면하고 도리어 동참하는 경우까지 있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우리의 의식은 “(이주노동자는) 더럽고, 천박하고, 열등하고, 가난하다”는 정도다. 그래서 “한국에서 일하는 거의 모든 이주노동자는 인간의 존엄성 자체를 인정받지 못한 채” 살 수밖에 없는 것이고, 이렇듯 “한국 사회는 절대로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고통스럽지만 나부터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노예제도는 폐지되었지만 여전히 노예제도가 존재한다는 새 책 (벤저민 스키너, 유강은 옮김, 난장이 펴냄)과 함께하면 공감의 진폭이 확대될 수 있을 것 같다. 최재천 cjc4u@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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