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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삼성물산, 엘리엇에 지연손해금 267억원 안 줘도 된다”
법원 “삼성물산, 엘리엇에 지연손해금 267억원 안 줘도 된다”(2024. 09. 27 15:47)
2024. 09. 27 15:47 사회
서울 서초동 법원청사. 서울고등법원 제공 법원이 삼성물산이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에 지연손해금 267억원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고 판결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2부(최욱진 부장판사)는 9월 27일 엘리엇이 삼성물산을 상대로 제기한 약정금 반환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앞서 엘리엇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반대하며 주식매수청구권 신청을 했다. 삼성물산이 매수하겠다며 제시한 가격(5만7234원)이 너무 낮다는 이유였다. 양측이 2016년 3월 ‘다른 주주와의 소송에서 청구가격이 바뀌면 그에 맞춰 차액분을 지급하겠다’는 내용의 비밀합의를 맺으면서 엘리엇은 신청을 취하했다. 이후 대법원이 2022년 4월 삼성물산의 한 주당 가격으로 6만6602원이 적당하다고 결정해 엘리엇은 2022년 5월 삼성물산에게 724억원을 받았다. 삼성물산이 제시한 가격과 대법원이 결정한 가격의 차액이다. 엘리엇은 지난해 10월 267억원의 지연손해금을 추가로 받아야 한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삼성물산이 엘리엇에는 2015년 9월 8일부터 2016년 3월 17일까지만 지연손해금을 지급했는데, 다른 주주들에게는 2015년 9월 8일부터 2022년 5월 12일까지의 지연손해금을 지급했다고 주장했다. 1심 재판부는 “양측의 합의서 내용은 실질적으로 주식매매대금과 같지만 다른 명목으로 지급된 금원을 포함하기 위한 규정으로 해석될 뿐”이라며 “지연손해금을 포함하기 위한 규정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삼성물산이 엘리엇에 주식매수대금 원금만 지급하면 되고, 지연손해금까지 줘야 할 필요는 없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주주별로 지연손해금 발생 종결일이 달라질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어 ‘주당 대가’로 환산되기 어려운 성질의 금원”이라며 “합의서에 지연손해금을 주당 대가로 환산하는 정의 규정이나 계산 방식이 포함되어 있지도 않다”고 밝혔다.
발달지연 아동 의료자문 이대로 괜찮나
발달지연 아동 의료자문 이대로 괜찮나(2024. 02. 19 05:30)
2024. 02. 19 05:30 사회
보험사의 의료비 지급 회피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어 논란 서울의 한 어린이집에서 유아가 발달지연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검사를 받고 있다. 박용필 기자 설 연휴를 이틀 앞둔 지난 2월 7일. 발달지연을 겪는 자녀를 둔 A씨가 경찰서를 찾았다. 며칠째 졸린 눈을 비벼가며 작성한 고소장과 관련 증거를 꺼내 잠시 확인했다. 피고소인은 현대해상화재보험 의료비심사부의 B씨와 모 보험손해사정업체 직원 C씨. 그러고 보니 B씨와 C씨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다. B씨와는 자녀의 ‘의료자문’ 문제로 통화만 했다. 현대해상의 위탁을 받아 의료자문 전 현장심사 업무를 대행한 C씨와는 안면이 한 번 있을 뿐이었다. B씨 신상정보로 현대해상 사무실 주소와 전화번호를 적었다. C씨에는 개인연락처, 그리고 ‘기타사항’란에 ‘20대 중후반 외모’라고 적었다. 공무원 신분인 그가 경찰서에 고소장을 써들고 찾아간 건 난생처음이다. 변호사를 구할 형편은 못 된다. 제대로 쓴 건지도, 고소하는 게 맞는가도 싶지만 다른 길이 없다. “내용이 너무 장황해 5번이나 읽었어요.” 경찰이 살짝 핀잔을 주며 접수증을 내줬다. 접수증을 손에 쥐고 돌아오는 내내 아픈 아이 생각을 했다. ‘의료자문’ 후 치료비 지급 중단 자녀(2017년 9월생)에게 문제가 있다는 걸 확인한 건 유치원에 입학시킨 뒤인 2021년 9월이었다. 2022년 4월 거주지였던 지방의 한 신경과의원에서 언어, 인지, 대소근육, 감각통합 등 전반적인 발달지연이 있다는 진단을 받고 치료를 시작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인 2017년 3월 현대해상 태아보험(실손보험)에 가입했던 게 큰 힘이 됐다. 언어치료, 행동치료 등 월 200만원가량의 치료비를 보험금으로 충당했다. 치료는 효과를 봤다. 치료 시작 전인 2021년 9월 을지대학병원에서 검사할 당시 A씨 자녀는 ‘언어이해’나 ‘전체지능’ 등에서 전반적으로 ‘매우 낮음’이 나왔다. 본격적인 치료 시작 1년여 뒤인 2023년 7월 건양대병원 동일 검사에서는 ‘언어이해’, ‘전체지능’ 등이 ‘평균 이하’ 수준으로 높아졌다. 신경과의원 부설 치료센터에서 주기적으로 실시한 언어지연 검사 결과도 ‘13개월가량 지연’에서 ‘7개월가량 지연’으로 나아졌다. 치료에 희망을 품던 A씨에게 2023년 7월 현대해상이 보험금 지급을 보류한 채 현장심사를 요구했다. 현장심사는 보험사들이 보험금 지급이 적합한지를 판단하기 위해 벌이는 ‘의료자문’의 전 단계다. 심사를 통해 미심쩍다고 판단되면 의료자문이 진행된다. 당시 이미 현대해상은 발달지연 아동 보험금 미지급 문제를 놓고 여러 가입자와 분쟁을 벌이고 있었다. 이를 알고 있던 A씨도 현장심사가 내키지 않았다. 수락하지 않으면 보험금 지급이 보류된다는 말에 심사를 수용했다. 현장심사에 필요한 가입자 동의를 받고, 서류 구비업무 등을 진행한 담당자가 바로 보험손해사정업체 직원 C씨다. C씨는 진료 및 검사 기록 열람을 요구했다. A씨는 자녀가 장기간 치료받던 신경과의원 부설 치료센터, 건양대병원 검사기록 등의 열람 동의서를 써줬다. 같은해 10월 현대해상 측이 전해온 현장심사 결과는 ‘의료자문 진행’이었다. 현장심사 과정에서 C씨는 A씨 자녀의 건양대 검사기록을 현대해상에 전달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A씨는 이 문제 등을 들어 현장심사 무효를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현대해상은 지난해 12월 한 종합병원에서 의료자문을 강행했다. 자문 결과 나온 진단명은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상 ‘언어발달장애(코드기호 F80)’였다. 현대해상 보험약관에는 의사로부터 ‘장애’ 진단을 받은 가입자(보험수혜자)에겐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되는 ‘면책조항’이 있다. 현대해상은 의료자문 결과를 들어 결국 보험금 지급을 거부했다. 이렇게 작년 7월부터 최근까지 부지급된 보험금이 1700여만원이다. 보험금 없이 치료비를 감당하기 어려워진 A씨는 올 1월 자녀의 치료 횟수를 기존의 절반으로 줄였다. 이사 등으로 비용지출이 더 커진 2월에는 자녀의 치료를 중단했다. A씨는 “의료자문 과정이 불투명하고 결과도 납득하기 어렵다”며 여러 차례 문제 제기했지만 소용없었다. 벼랑 끝에 선 A씨가 찾아간 곳이 경찰서다. C씨를 보험업법 위반 및 배임 혐의로, B씨를 사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사회복지재단 소속 언어치료사가 한 유아를 대상으로 언어지연 치료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자문의는 대면진료 없이 “발달장애” 판정 국내 모든 실손보험에는 ‘의료자문’ 조항이 약관에 있다. 보험사기나 보험금 과다청구, 이로 인해 발생하는 타가입자들의 피해와 과잉진료의 폐해, 보험사의 재정건전성 악화 등을 방지하기 위한 조항이다. 과거 도수치료나 백내장 수술 과잉 등의 사례로 실제 필요성이 입증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의료자문이 보험금 지급을 회피할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와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의료자문에 대한 법적 규제도 없고, 의료자문의 모든 절차를 사실상 보험사가 주도하기 때문이다. 우려가 계속되자 금융감독원과 보험업계는 2021년 자율지침격인 ‘의료자문 표준내부통제기준’을 제정해 시행 중이다. 하지만 강제성이 없고 기준 자체도 보험사에 유리하게 마련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발달지연 아동의 경우 ‘누가’ 의료자문의 대상이 되는지부터 불분명하다. 국내 어린이보험 점유율 1위인 현대해상에 의료자문 대상 선정기준을 묻자 “아동의 치료일지나 검사기록 등을 내부적으로 검토한 뒤 의료자문 진행 여부를 결정한다”며 “검토 과정에는 손해사정사나 전직 간호사 등이 참여한다”고 밝혔다. 의료자문 대상이 되는 아동들은 기존에 다니던 병원 의사로부터 ‘발달지연(R62·R49)’ 진단을 받아 보험금을 받아왔다. 현대해상 설명에 따르면 ‘의사가 내린 진단’에 대해 손해사정사나 전직 간호사 등이 의문을 제기해 의료자문 대상에 올린다는 말이 된다. 여기에서 ‘의사가 내린 진단’을 반드시 기억할 필요가 있다. 현대해상이 보험금 지급을 거부할 때 역시 ‘의사가 내린 진단’인 의료자문 결과를 근거로 삼기 때문이다. 현대해상은 “의사의 진단이라 해도 발달지연과 관련성이 떨어지는 한방병원, 정형외과 등에서 진단을 받거나 보험금 지급 판단에 필요한 검사나 치료기록이 누락된 사례도 많기 때문에 손해사정사 등을 통한 검토에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보험가입자가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필요한 모든 서류 등을 갖춰 대상을 정하는지도 의문이다. A씨의 사례처럼 심사 단계에서 중요한 검사기록이 반영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의료자문 과정도 투명하다고 보기 힘들다. 보험사들은 일명 ‘의료자문위탁기관’에 의뢰해 의료자문을 진행한다. 위탁기관이 의료자문단 풀(Pool)에 들어 있는 종합병원 전문의에게 의료자문을 받은 뒤 결과를 보험사와 보험가입자에게 통보하는 방식이다. 보험사들은 제3자에 해당하는 위탁기관이 의료자문을 벌이기 때문에 보험사의 ‘입김’이 자문 과정에 반영될 여지가 없다는 입장이다. 밖에서 보는 시각은 다르다. 의료자문에 필요한 수수료나 전문의에게 지급되는 자문료 등을 보험사들이 모두 부담하기 때문이다. 현대해상의 경우 현재 10곳의 위탁기관을 지정해 의료자문을 맡기고 있는데, 이중 학술단체에 해당하는 대한정형외과학회를 제외한 9곳이 민간 의료컨설팅 회사다. 한 소아청소년과 의사는 “보험사로부터 수수료를 받는 컨성팅 업체가 정말 공정하게 의료자문을 진행할지 의문”이라며 “자칫하다가는 ‘보험금을 주지 않기 위한’ 목적의 의료자문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다분하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보험손해사정사는 “의료자문 표준내부통제기준에서 ‘의료자문 실시 대상’ 관련 가이드라인을 주고 있음에도 보험사 임의대로 의료자문을 남발하는 사례가 빈번하다”며 “가입자 입장에서 볼 때 현행 의료자문은 객관적이고 공정한 제도라고 보기 힘들다”고 밝혔다. 발달지연의 경우 의료자문을 맡기는 병원과 전문의의 전공을 놓고도 논란이 일고 있다. 발달지연 진단은 의사라면 누구나 내릴 수 있다. 연관성이 높은 전공만 봐도 소아청소년과, 이비인후과, (소아)신경과, (소아)정신과, 재활의학과 등 다양하다. 발달지연 자체가 워낙 광범위한 원인에서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발달지연 전문 클리닉 등을 운영하는 종합병원이나 전문병원 중에는 각 분야 전공의 3~4명이 협진을 통해 진단과 치료를 하는 곳도 많다. 그럼에도 보험사의 발달지연 의료자문은 ‘정신과’ 전문의에게 치중돼 있다. 현대해상의 경우 아예 정신과 전문의에게만 의료자문을 받는다. 이유를 묻자 “발달지연 문제에 있어선 정신과가 가장 자문에 적절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답변했다. “의료자문 독립성·객관성 보장되도록 개선해야” 의료자문이 특정 병원에 집중된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손해보험협회의 ‘의료자문 현황 공시’ 자료를 보면 현대해상의 경우 2023년 상반기 중 전체 20곳의 종합병원 정신과에서 발달지연 의료자문을 받았다. 이들 병원에 의뢰된 총 자문 건수(정신과)는 607건이다. 여기에는 발달지연 외 다른 정신과 질환 자문도 일부 포함돼 있다. 607건 중 37%에 해당하는 225건이 특정 병원 두 곳(각 158건·67건)에 집중됐다. 공교롭게도 이 두 병원은 현대해상과 보험금 미지급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는 가입자들이 의료자문만 하면 보험금 면책에 해당하는 장애판정이 나온다고 해서 일명 ‘F코드의 무덤’이라고 부르는 곳들이다. 발달지연아동권리보호가족연대 관계자는 “의료자문을 받는 발달지연 아동 중 상당수는 재활의학과 등 정신과 외 전문의에게서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아온 아동도 많다”며 “현대해상이 왜 정신과에만 자문을 넣는지, 특정병원에 왜 자문이 몰리는지 등에 대해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가족연대 등은 의료자문을 하는 전문의가 ‘환자’에 해당하는 아동을 직접 진료하지도 않고 치료일지나 검사기록 등 서류만 보고 판정을 내리는 것에도 이의를 제기하는 중이다. 자문을 맡은 전문의조차 “대면 진료를 하지 않은 판정 결과로, 법적 효력이 없다”고 밝히고 있음에도 이를 근거로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는 보험사의 행태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다. 자료: 보험연구원(손해보험협회 공시자료 취합) 주간경향은 현대해상에 발달지연 아동 의료자문 의뢰 건수와 이에 따른 보험금 부지급률 자료를 공개해 달라고 공식 요청했다. 현재 손보협회에 공시 중인 현대해상의 의료자문 현황자료에는 의뢰 건수나 부지급률 통계가 개별 질병이나 질환별로 구분돼 있지 않아서다. 현대해상은 “관련 데이터가 워낙 많고 복잡해 취합이 어렵다”며 자료공개를 거부했다. 2022년 기준 국내 실손보험 가입자는 4000만명에 육박한다.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실손보험 불만 건수는 2017년 961건에서 2022년 3205건으로 3배 이상 늘었다. 보험사가 의료자문을 실시하는 건수도, 자문에 따라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 ‘부지급률’도 증가추세에 있다. 실손보험이 국민건강보험에 이어 제2의 의료안전망 역할을 하고 있는 점을 감안해 의료자문에 대한 분쟁이 생기지 않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험연구원은 2023년 10월 발간한 연구보고서 ‘의료자문제도 현황과 과제’를 통해 “최근 들어 보험회사의 의료자문 결과에 대해 보험소비자가 민원·소송을 제기하는 등 의료자문과 관련한 사회·경제적 비용이 발생하고 있다”며 “미국이나 호주 등과 같이 민간보험에도 독립적인 민간기구나 공신력 있는 국가기관이 개입해 자문 절차를 마련하고, 의료진의 참여를 독려해 독립적인 자문의 선정이 가능한 환경 및 제도적 기반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박양동 대한소아청소년행동발달증진학회 이사장은 “결국은 발달지연 아동에 대한 국가적 지원이 턱없이 부족한 탓에 부모들이 민간 실손보험에 치료비를 의존하다 보니 생기게 된 문제”라며 “근본적으로는 건강보험에서 발달지연 진단과 치료에 대한 급여지원에 나서는 등 근본적인 의료체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감 땐 “돕겠다”더니…발달지연 보험 상황 여전
국감 땐 “돕겠다”더니…발달지연 보험 상황 여전(2023. 11. 27 07:00)
2023. 11. 27 07:00 사회
복지부, 한 달 넘게 무대응…당사자들에 연락 없어 국감장 출석 피한 현대해상은 차일피일 지급 미뤄 서울의 한 어린이집에서 유아가 발달지연 여부를 알아보기 위한 검사를 받고 있다. 박용필 기자 발달지연 자녀를 둔 A씨는 최근 은행에 들러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했다. 발달지연을 겪고 있는 자녀의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서다. 본래 A씨는 현대해상의 어린이실비보험 가입자다. 5월까지만 해도 치료비를 보험사에 실비청구하면 나오는 보험금으로 치료를 이어왔다. 5월 18일에 현대해상 측이 “보험금 지급 기준이 변경됐다”며 갑자기 문자로 통보해왔다. 6월부터 월 수백만원의 치료비를 자비로 부담하다 9월엔 보험 대출을 받기도 했다. A씨는 “치료를 통해 아이가 좋아지는 것이 명확한데 돈 때문에 아이의 미래를 포기하고 싶지 않다”며 “무리를 해서라도 치료를 이어가려 한다”고 말했다. B씨는 현대해상의 보험금 지급이 끊기면서 발달지연 자녀 놀이치료 횟수를 주 2회에서 1회로 줄였다. B씨는 “부모 탓에 아이가 제대로 치료도 못 받는 것 같아 가슴이 끊어지는 것 같다”며 “겨우 유지하는 주 1회 치료도 내년에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현대해상의 어린이실비보험금 미지급 사태(주간경향 1551호 보도)가 6개월 이상 장기화하면서 보험금으로 치료를 이어오던 가정의 경제적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이미 치료비가 부족해 자녀의 치료과목·시간 등을 줄이거나 치료비 마련을 위해 가정이 빚더미에 올라앉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올해 국정감사에서 도움을 약속했던 정부는 한 달 넘게 아무 소식이 없다. 현대해상은 차일피일 문제 해결을 미루고 있다. ■국감만 모면하면 끝? 복지부와 현대해상은 무얼 했나 보험금 미지급 사태는 올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도 주요 질의안건(10월 12일)으로 올라왔다. 국감장에 출석한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질의를 들은 뒤 “매우 안타깝다. 건강보험으로 안 된다면 정부 예산으로라도 지원할 수 없는지 알아보겠다”고 말했다. 국감이 끝나고 조 장관과 이 대표가 문제 해결을 언급한 지 약 한 달이 지난 지금.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 복지부는 보험금 문제를 호소했던 부모들과 전화 통화 한번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국감장에 나와 증언하며 문제를 제기했던 ‘발달지연아동 권리보호 가족연대(이하 가족연대)’ 측은 “국감 이후 복지부에서 연락해오거나 만나자는 제안을 받아본 적 없다”고 말했다. 그럼 복지부는 무얼 했을까. 복지부 관계자는 “보험금 지급 문제 해결이 필요하다는 의견 등을 금융당국에 전달했고, 현재 발달장애·지연 아동에게 지급되는 바우처 예산을 늘리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밝혔다. 가족연대 관계자는 “복지부 관계자가 말한 내용은 이미 과거 민원에서 받아본 답변과 똑같아 새로울 게 전혀 없다”고 말했다. 종합하면 국감장에서 조 장관이 “돕겠다”고 언급한 이후 복지부가 새로 한 일은 없는 셈이 된다. 이 문제로 이성재 현대해상 대표도 본래 국감장에 증인으로 출석할 예정(10월 27일)이었다. 하지만 증인 출석이 당일 돌연 취소됐다. 전날(10월 26일) 이 대표가 강훈식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만나 “일단은 보험금을 지급하겠다”고 밝힌 것이 반영된 결과였다. 강 의원은 해당 만남 뒤 “발달지연아동 치료와 관련된 제도가 안착할 때까지 치료사 문제와 상관없이 보험금을 우선 지급하겠다는 현대해상의 약속을 이끌어냈다”며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강훈식 더불어민주당의원(맨 오른쪽)이 10월 26일 국회 사무실에서 이성재 현대해상 대표와 보험금 미지급 사태 관련 간담회를 갖고 있다. 강훈식 의원실 제공 대표이사(혹은 회장)의 국감장 출석은 기업에 비상사태와 같다. 해마다 국감철을 앞두고 기업 대표나 총수를 국감장에 세우려는 의원들과 이를 막아보려는 기업 간 치열한 ‘수싸움’이 벌어진다. 이 대표의 경우 2020년 현대해상의 대표이사가 됐다. 지난해 현대해상은 영업이익 5746억원이라는 사상 최대 실적을 냈다. 이 대표는 올해 주총에서 재신임을 얻어 향후 3년간 연임됐다. 그렇다면 이 대표의 국감장 출석을 모면한 현대해상은 무엇을 했을까. 역시 달라진 건 없다. 가족연대 측은 “여전히 보험금 지급이 안 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현대해상 관계자는 “민간치료사나 비의료기관에서 치료를 받은 경우 보험금을 지급하기 어렵다는 입장은 동일하다”며 “다만 강 의원과 협의한 내용에 따라 보험금 지급을 위한 새로운 기준을 마련 중이고, 기준이 확정되기까진 다소 시간이 걸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강훈식 의원실 측은 “기준을 마련한다고 해서 현재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며 “이달 내 발달지연아동을 치료 자격을 ‘국가자격화’하기 위한 토론회를 여는 등 계속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겠다”고 밝혔다. ■보험사의 ‘의료자문’은 공정한가 보험금을 지급받지 못하고 있는 발달지연 가정 상당수는 ‘의료자문’ 문제로 현대해상과 갈등을 빚고 있다. 현대해상의 어린이보험 특별약관을 보면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에 따른 정신 및 행동장애(의료코드 F04~F99)에 해당하는 질병은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다”고 명시돼 있다. 이른바 ‘면책사유’다. 현대해상은 발달지연 아동이 5세가 되면 부모에게 “장애 여부를 의료기관에서 판단받아 보자”며 의료자문을 제안한다. 이는 보험약관에 규정된 사안으로, 현대해상은 이를 제안할 권리가 있다. 가족연대 측은 현대해상이 제안하고 진행하는 의료자문이 공정하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1차 의료자문의 경우 현대해상이 자문기관으로 선정한 병원에서 진행되는데, 결과 대부분이 보험금 면책사유인 정신·행동장애로 나와 보험사에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가족연대 관계자는 “1차 의료자문은 아이의 진단서, 치료일지, 검사지 등 서면검토 후 내려질 뿐 해당 자문의가 아이를 만나보지도 않고 판단을 내린다”며 “자문의도 정신과로 한정돼 줄곧 재활치료만 받던 아이가 정신장애 판단을 받기도 한다”고 밝혔다. 1차 의료자문 결과는 법적 효력이 없다. 자문을 해주는 전문의도 해당 서류 말미에 “대면 진료를 하지 않고 내린 판단이며 법정에서 자료로 활용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현대해상은 1차 의료자문에서 정신·행동장애가 나오면 보험금 지급을 중단한다. 부모들은 1차 자문을 받아들이지 않고 현대해상과 협의를 통해 다른 제3의 의료기관에 재차 의료자문(2차)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1차에서 정신·행동장애가 나온 이상 2차 자문에서 번복되기는 어렵다는 게 가족연대 측의 주장이다. 현대해상은 “의료자문은 공신력 있는 전문의를 통해 진행되고, 병원에서 보험사에 유리하게 진단할 이유도 없다”며 “1차 자문에서 장애 진단이 나온 후 2차 자문에서 다시 보험금 지급이 가능한 ‘발달지연’으로 변경된 사례 역시 있다”고 밝혔다.
발달지연복지부현대해상
발달지연 아동 ‘의료 공백’ 부모만 속 탄다(2023. 10. 27 11:21)
2023. 10. 27 11:21 사회
ㆍ정부 사실상 방치…현대해상 실비 미지급 사태로 번져 서울 서초구 한우리정보문화센터에서 한 아동이 센서와 터치 스크린을 이용한 디지털 재활치료를 받고 있다. / 김보미 기자 “여기 계신 모든 분께 부탁드립니다. 제발 도와주세요.” 지난 10월 12일 열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국정감사 현장. 발달지연 자녀를 둔 한 여성이 울먹이며 발언을 마쳤다. 질의하던 위원도, 듣던 장관도 표정이 어두워졌다. 국감장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여성은 현대해상이 올해 5월부터 발달지연 치료비(실비) 지급을 중단하자 피해를 호소하러 증인으로 출석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안타깝다. 정부가 약관을 살펴보고 도울 수 있는 부분이 있는지 살펴보겠다”고 대답했다. 현대해상과 가입자 간 발달지연 치료비 지급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난 건 지난해 하반기부터다. 매년 치료비 청구 및 지급이 큰 폭으로 늘자 보험업계가 자체 조사에 착수했고, 일부 부적절한 청구사례가 확인됐다. 그러자 발달지연 치료가 무자격 의료기관에서 이뤄진 점 등을 문제삼아 어린이 보험업계 1위인 현대해상이 실비 지급을 제한하고 나서면서 사태가 본격화됐다. 이 문제는 ‘흔한’ 보험금 지급 분쟁 사례가 아니다. 넓게 보면 발달지연이라는 장애를 앓고 있는 아이들에 대한 정부 차원의 ‘의료 공백’ 문제다. 발달지연 아동에 대한 국가 지원이 크게 부족한 가운데 민간 실비보험에 치료비를 의존해야 하는 각 가정의 현실이 문제의 근본 원인이기 때문이다. 의료계에서 추산하는 발달지연 아동 수만 전국 24만여명. 지금부터라도 발달지연 아동 지원을 위한 각종 기준을 마련하고, 제도 정비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죄책감” “경제적 어려움”이중고 발달지연이란 발달 선별검사에서 해당 연령의 정상 기대치보다 25%가 뒤처져 있는 경우를 의미한다. 잘 앉거나 서지 못하는 대근육 문제부터, 물건을 손에 쥐거나 잡지 못하는 소근육 문제, 언어·인지 발달 문제, 사회성(사회생활) 문제 등으로 나타난다. 장애 판단을 내리기엔 아직 이르거나, 향후 치료 등을 통해 지연 상태를 벗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자폐증, 지적장애 등 장애 진단이 확정된 ‘발달장애’와 구별된다. 발달지연에는 선·후천적 원인이 다양하게 거론되지만 아직까지 정확하게 규명된 것은 없다. ‘원인 불명’이란 뜻이다. 뒤집어 말하면 부모 중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는 얘기가 된다. 그럼에도 발달지연 자녀를 둔 부모들은 가슴에 ‘돌덩이’를 얹고 산다. A씨는 “발달지연이란 얘기를 듣고 의사 선생님이라지만 남 앞에서 그렇게 울어본 것은 난생처음”이라며 “처음에는 아이를 너무 일찍 어린이집에 보내서 그랬나 자책도 많이 했다. 발달지연 자녀의 부모 모두가 ‘내가 뭔가 잘못했나’ 하는 자책을 하며 살 것”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년에 출산했다는 B씨는 “아이가 좋아지지 않으면 장애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너무 괴로웠다”며 “아이가 마음껏 뛰고 걷고, 친구도 사귀며 원하는 삶을 살 수 없다면 부모로서 죄인이라는 숙명을 평생 짊어지고 살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자녀가 발달지연의 일종인 ‘원인 불명의 난독증’ 진단을 받았다는 C씨는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이 되면서 책읽기에 대한 불안감이 심해져 결국 항불안제를 먹이게 됐다”며 “어른도 먹기 힘든 약을 아이에게 먹이려니 가슴이 정말 찢어지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자녀 치료를 위해 큰 경제적 부담도 져야 한다. 발달지연 아동의 경우 언어치료, 재활치료는 물론 놀이치료, 감각통합(감통), 음악치료, 미술치료 등 아동의 지연 정도에 따라 다양한 치료를 받는다. 문제는 이런 치료가 모두 건강보험 적용이 안 되는 ‘비급여’라는 점이다. 보통 하나의 치료당 주 2회, 월 8회로 진행하는데 한번 치료를 받을 때마다 7만~8만원에서 많게는 17만원까지 비용이 들어간다. A씨는 “언어치료 하나만 받는데도 월 80만원가량을 지출 중”이라고 밝혔다. 이런 치료를 일주일에 2~3과목 이상 진행하다 보면 치료비가 금세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단기간에 치료가 끝나는 것도 아니어서 수년간 비용 지출을 각오해야 한다. 이렇다 보니 발달지연 진단이 나오면 병원 측에서 부모의 직업이나 재정상황을 먼저 물어보기도 한다. B씨는 “오늘이 월급날인데 남편이 빚을 갚으러 갔다. 발달지연 가정치고 빚이 없는 가정은 드물 것”이라며 “마이너스통장은 기본이고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거나 가족이나 친척, 지인 등으로부터 돈을 빌리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아이 치료를 위해 부모 중 한명이 일을 그만두기도 한다. 치료 일정을 챙겨야 하고, 아이를 보육기관에 맡길 경우 언제 보육기관에서 아이 문제로 “와달라”는 연락이 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경제적 문제나 아이 치료에 대한 관점의 차이, 아이 돌봄 과정의 스트레스와 피로 등으로 곧잘 가정불화로 이어지기도 한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0~19세 발달지연 진료 환자는 2018년 6만4085명에서 2022년 12만6183명으로 2배 가까이 늘어났다. 올 2023년 상반기(1~7월)까지는 10만7564명으로, 현재 추세라면 지난해의 약 2배 이상이 될 것으로 강 의원은 추정했다. 특히 0~9세 아동에서 발달지연 진료가 늘었다. 0~3세 아동 환자는 2018년 2만9665명에서 지난해 5만1217명, 같은 기간 4~5세 환자는 1만3188명에서 3만213명, 6~9세 환자는 1만3067명에서 2만9070명으로 증가했다. 발달지연 아동은 늘고 있지만 정부 지원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진료나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거점병원이나 치료센터부터 턱없이 적은 탓이다.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발달장애인법)’에서는 국가와 지자체가 발달장애인 의료 지원을 위해 거점병원과 행동발달증진센터를 두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전국 17개 광역 지자체 중 거점병원과 센터가 있는 곳은 8곳뿐이다. 올 7월에 발달장애인법을 개정해 거점병원 등이 없는 곳에도 설치를 의무화했지만, 실제 시행은 1년 6개월 뒤로 미뤄졌다. 당초 국회에 제출된 개정안 초안에는 법안 통과 후 ‘6개월 이내’ 거점병원 등의 설치를 의무화했지만, 국회 논의 과정에서 시행 시기가 밀렸다. 10월 12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감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한 발달지연 자녀 부모가 발언하고 있다. / 국회방송 화면 갈무리 부모들 “맘카페나 유튜브에서 배워” 급증하는 환자에 비해 병원이나 센터가 적기 때문에 진료나 치료를 받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자폐증이나 지적장애 등 발달장애인들도 같이 이용하다 보니 진료 예약조차 잡기 어렵다. 대학병원(종합병원)의 치료센터 역시 붐비는 환자들로 일상적인 이용이 불가능할 정도로 민간 인프라가 부족하다. A씨 등은 “종합병원 센터에서 치료를 받으려면 기본 대기가 1~2년 이상이라고 보면 된다”며 “대기를 해놓고 있다가 자리가 났대서 보면 기존에 진행 중인 치료 시간과 일정이 맞지 않아 이용할 수 없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번 국감에서 공개한 내용을 보면 종합병원급 센터의 경우 평균 치료 대기기간이 200일, 최장 900일이 넘는 곳도 있다. 발달지연 치료가 대부분 비급여인 데 반해 정부 지원금액은 있으나 마나 한 수준이다. 현재 발달지연 아동에게는 ‘발달재활 지원’으로 바우처 형태의 지원금을 지급한다. 최대 지급액이 그러나 월 25만원으로 적은 데다, 소득이 높을수록 지급액은 더 줄어든다. 지급대상 역시 ‘만 6세 이하’로 한정돼 있고, 지자체의 재정상황에 따라 바우처가 고갈되면 받지 못할 수도 있다. 강은미 의원은 “전체 발달지연 환자의 증가 사례 중 영·유아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만큼 발달지연 아동에 대한 바우처 확대와 금액의 상향 등 관련 예산을 늘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발달지연의 조기 진단과 치료에 관한 정부 차원의 지원체계도 아직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다. 발달지연 아동이 전국에 몇 명인지 등에 관한 기초적인 자료조차 없다. 정부는 지난 4월 “실태 파악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해 12월에는 “육아종합지원센터, 의료기관 및 재활서비스제공기관을 연계해 발달지연 검사-상담-재활·치료 서비스의 연속적 지원체계를 구축해 나가겠다”(복지부 관계자)고 했지만, 가정에서는 별 체감을 하지 못하고 있다. A씨는 “병원에서 발달지연 진단 확정 후 지자체 등 여러 곳에 문의해봤지만 별다른 도움을 받지 못했다”며 “아이에게 필요한 치료가 무엇인지 등을 알기 위해 맘카페나 블로그, 유튜브 등을 주로 참고하고 공부해야 했다”고 말했다. 수년째 급증하는 환자와 정부의 무관심 그리고 막대한 의료비 문제에 직면해 있는 발달지연 가정이 그나마 기댈 수 있는 건 민간실손보험뿐이었다. 현대해상의 발달지연 아동 실비 지원금 미지급 사태는 방치돼온 발달지연 아동 문제가 곪을 대로 곪은 뒤 터져나온 결과물이다. 보험업계가 집계한 발달지연 관련 주요 5개 보험사가 지급한 실손보험금 규모를 보면 2018년 190억원에서 지난해 1185억원으로 4년새 5배 이상 늘었다. 보험금 지급이 급증하자 보험업계는 자체적으로 발달지연 치료 현황에 대한 조사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정신과, 소아정신과, 소아청소년과 등 발달지연 진료 및 진단과 별 연관성이 없는 안과, 정형외과, 한방병원 등에서 자체 발달지연치료센터를 운영하는 사실을 다수 확인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강남구의 한 사회복지관에서 발달장애인의 회화수업을 참관하고 있다. / 연합뉴스 곪을 대로 곪은 구조적 문제 터졌다 일부 병원에선 발달지연센터 개소를 전문적으로 하는 일명 ‘브로커’가 개입해 센터를 열고, 센터 운영을 의사가 아닌 브로커가 내세운 비의료인이 맡는 사례도 확인됐다고 보험업계는 주장한다. 이 같은 센터에서는 대부분 민간자격증을 소유한 치료사들이 아동 치료를 맡고 있는데, 이 역시 의료법 위반 소지 등이 있다는 것이다. 결국 아동실손보험 시장 점유율 1위인 현대해상은 종합병원급 센터에서 치료를 받은 경우에 한해 보험료를 지급하기로 하고 관련 사실을 가입자들에게 통보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정당치 못한 보험금 청구가 많아질수록 결국 전체 보험가입자가 피해를 보게 돼 취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말했다. 그간 실비 청구를 통해 자녀 치료비 보조를 받아온 보험가입자들은 반발하고 있다. 현대해상이 명확한 기준제시나 별다른 예고도 없이 갑자기 보험금 지급 기준을 바꾸면서 자녀들의 치료가 중단될 위기에 놓였기 때문이다. 보험금 지급대상인 종합병원에선 대기시간 때문에 치료를 받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C씨는 “현대해상 조치 뒤 아이를 담당하던 직원이 바뀌어 치료의 연속성이 중단될 위기”라며 “아이 치료를 위한 시간이 일분일초라도 아까운 부모들은 속이 타들어 가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미술치료 업무를 해온 한 민간 자격사는 “일이 기존의 절반 이하로 줄었고, 환자가 줄면서 일을 그만둔 자격사도 주변에 많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발달지연 치료 관련 자격 문제 등도 명확히 정리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발달지연 실손보험금 피해자 모임인 ‘발달지연아동 권리보호 가족연대’는 “문제가 되는 병원이나 센터가 있다면 가입자들이 이용하지 않도록 안내를 하면 될 일”이라며 “보험금 지급액이 늘어 재정적으로 부담이 된다고 일부 문제를 빌미로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는 건 계약위반이자 무책임한 행위”라고 지적했다. 한 보건의료업계 관계자는 “국가가 지원하고 부담해야 했던 발달지연 아동에 대한 의료비가 민간에 전가돼왔고, 수년간 비용이 누적되면서 결국 갈등이 촉발된 것”이라며 “지금이라도 정부가 발달지연 의료비를 급여화하고, 각종 지원을 위한 공공의료체계를 정비하는 등의 노력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박양동 대한소아청소년행동발달증진학회 이사장은 “보험금 지급 문제로 치료 시기를 놓쳐 발달지연 아동들이 피해를 보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 “(보험사들이) 종합병원만 고집할 게 아니라 진료 유관성이 있는 의원급 병원 치료센터 등에는 일단 보험금을 지급해 아이들이 치료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고 밝혔다.
특집
[우정이야기]지난 5년간 우편물 지연시킨 태풍, 몇 개일까(2023. 08. 18 10:47)
2023. 08. 18 10:47 경제
제6호 태풍 카눈이 한반도로 북상하던 지난 8월 10일 부산 광안리해수욕장에 파도가 몰아치고 있다. / 한수빈 기자 우정사업본부(우본)는 제6호 태풍 카눈이 8월 10일 새벽 남해안을 통해 상륙한 후 느린 속도로 한반도를 관통할 것으로 예보되자 폭우나 강풍 등으로 우편물 배달이 지연될 수 있다고 8월 9일 오후 5시 30분 밝혔다. 우편물 배달이 어려운 지역은 사륜 차량을 이용해 시한성 우편물 위주로 배달하고, 집배원과 소포위탁배달원의 안전 문제를 고려해 배달을 재개하는 식으로 국민 불편을 최소화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태풍 카눈은 한반도를 관통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피해가 클 것이라는 우려가 컸지만, 실제 인명피해는 없었다. 태풍 특보는 8월 11일 해제됐다. 우본은 매년 주요 태풍이 한반도에 영향을 미칠 때마다 우편물 배달이 지연될 수 있다고 알리고 있다. 최근 5년간 우편물 배달을 지연한 태풍은 무엇이었는지, 실제 재난 피해는 어느 정도였는지 확인해봤다. 지난해는 제11호 태풍 힌남노로 우체국 업무가 차질을 빚었다. 우본은 2022년 9월 5일 힌남노가 다음 날까지 제주도와 남부지방을 관통할 것으로 예보되자 우편물 배달이 일부 지연될 수 있다고 밝혔다. 9월 7일 오후 3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집계 기준 인명피해는 사망 11명, 실종 1명, 부상 3명이었다. 당시까지 9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할 정도로 피해가 컸다. 2019년에는 제13호 태풍 링링이 영향을 미쳤다. 우본은 9월 6일 링링이 한반도를 관통할 것으로 예보돼 추석 연휴(9월 12~15일)를 앞두고 우편물 배달이 일시적으로 정지될 수 있다고 밝혔다. 6명이 사망한 2010년 8월 곤파스보다 세력이 강한 태풍인 만큼 집배원의 안전사고 예방과 우편물 보호를 위해 지역마다 배달을 일시 정지한 후 기상 상황이 호전되면 차례로 재개하겠다고 알렸다. 실제 링링으로 인한 피해는 컸다. 9월 8일 오전 11시 기준으로 사망 3명, 부상 23명의 인명피해가 있었고, 시설물과 농작물 피해는 각각 3642곳, 7145헥타르(㏊)였다. 2018년 8월 22일 제19호 태풍 솔릭이 북상하자 우본은 피해 최소화를 위해 종합상황실을 24시간 운영했다. 당일 오후 6시 기준으로 항공편과 선편이 결항하면서 전남 지역 일부 섬과 제주도 지역의 배달이 중단됐다. 언론에서는 솔릭으로 인한 피해가 곤파스만큼 클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 인명피해는 실종 1명, 부상 2명으로 당시 기준으로 한반도를 관통한 태풍 중 인명피해가 가장 적었다. 지금까지 가장 큰 피해를 낸 태풍은 1936년 발생한 ‘3693호’ 태풍이었다. 그해 8월 26일부터 28일까지 1232명이 숨지거나 실종됐다. 2000년대 가장 큰 피해를 준 태풍은 2002년 8월 루사로서 246명이 숨지거나 실종됐다. 우본은 태풍 등 천재지변으로 배달이 지연될 때, 우편물 수취인에게 문자메시지(SMS) 등으로 상황을 안내한다. 등기우편물의 운송·배달 상황은 우본 홈페이지, 인터넷우체국, 우체국 앱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우정이야기
[시사 2판4판]‘국가 폭력’ 형제복지원, 35년간 지연된 정의(2022. 08. 26 14:59)
2022. 08. 26 14:59 정치
시사 2판4판
“판사들이 명심해야 할 점은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는 것”(2021. 08. 09 14:09)
2021. 08. 09 14:09 사회
ㆍ박형남 부장판사가 들려준 칼럼에 미처 담지 못했던 이야기 박형남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62)는 작가다. 2018년 책 <재판으로 본 세계사>를 냈고, 종종 대중강연도 나선다. “판사들이 인문학적 소양을 갖춰야 한다”는 이야기도 자주 한다. 박형남 부장판사는 주간경향에 ‘법정에서 못다 한 이야기’를 23회 연재했다. 시민과 판사의 간극을 좁혀보겠다는 의도에서 시작했다. 연재물은 책으로 나온다. 박 부장판사를 지난 8월 2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 사무실에서 만났다. 칼럼에 미처 담지 못했던 이야기를 들어봤다. 박형남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 법원 제공 -최근 새 대법관 인선이 이뤄지고 있는데, 대다수 판사가 대법관을 꿈꾸는지 적지 않은 분들이 궁금해할 것 같다. “마음속으로 대법관을 원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거다. 판사도 공무원이어서 승진을 원한다. 경제적인 측면은 어느 정도 유명 변호사에 비해 희생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일을 잘해 인정받고 싶어한다는 점에서 판사도 예외는 아니다. 승진은 동기부여도 된다. 시민이 대법관이 되고 싶어하는 판사를 권력욕이 있다고 타박하는 것은 좀 과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좋은 재판으로 실력과 자질을 인정받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 -퇴임 이후에 변호사 개업을 할 의향도 있나. “그건 당연하다. 우리나라는 퇴직한 판사가 일할 영역이 넓지 않다. 로스쿨은 수많은 판례를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알려줘야 하는데 정년 퇴임한 판사에게는 적합하지 않은 일이다. 미국은 공익법인이 많아 활동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는 거의 없다. 사실 판사가 사회봉사 차원에서라도 퇴임 후 변호사 활동이 필요할 것 같다. 전관임을 내세워 돈을 많이 버는 게 문제다. 전직 판사들이 공익법인이나 석좌교수로 나가는 길이 좁은 상황에서 결국 변호사 개업을 택할 수밖에 없다. 나도 현재, 나름대로 투잡을 하려고 글을 쓰고 책을 내고 있지만(웃음).” -2013년 국가정보원 선거개입사건에서 국정원 간부 2명을 기소하라는 결정을 내린 재판이 기억에 남는다. “당시 검찰이 국정원 선거개입사건에서 국정원장만 기소했다. 나머지는 기소유예했다. 예전에 안기부 시절 총풍·세풍처럼 선거개입 때 어떻게 기소가 됐는지를 먼저 분석했다. 넘버원만 기소한 사례는 없었다. 선거개입 책임자 3~4명을 기소해왔는데, 말단까지는 아니더라도. 이 사건도 의문의 여지가 없었다. 결론적으로 특정 정당에 불리한 결론이 나왔지만, 당파성 없이 올바르게 처리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다.” -서울고등법원에 온 뒤로 노동사건과 공정거래사건을 많이 맡았다. “공정거래위원회와 기업이 규제의 정당성을 두고 다투는 사건을 주로 맡았는데, 우리나라 공정위만 다루는 사건들이 있다. 공정위는 전통적으로 담합방지를 주로 하는데, 우리는 총수일가의 일감 몰아주기나 가맹사업자 보호도 한다. 이 사건들은 해외에서도 판례가 거의 없다. 판사 입장에서 공정위에 학술적으로 백업할 수 있는 연구나 논문을 요구하는데, 공정위는 내부적으로 사무관이 만든 10여쪽짜리 페이퍼를 내더라. 예산 부족 등의 사정이 있겠지만, 총수 일가 견제와 같은 업무를 공정위가 하려면 탄탄하게 전문가 풀과 이론을 다져갈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산업재해사건에서 최초로 심리적 부검을 해 화제가 됐다. 최근에는 노동사건을 많이 다뤘는데,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 “우리 사회는 과로가 많지 않나. 노동자가 병을 얻거나 산재로 죽는 것은 숫자나 산술적 통계의 문제가 아니다. 개인마다 다른 육체적 건강과 스트레스를 이겨내는 능력의 차이인데. 노동사건 재판의 하급심 격인 노동위원회에서는 지나치게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다. 법적 안정성을 고려하는 것이기 때문일 텐데,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은 너무 기준이 형식적이고 좁다. 또 하나 유의할 점은 평균 노동자가 아니라 특정 개인의 주변환경과 건강상태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같은 상황이라도 어떤 사람은 버티고 어떤 사람은 쓰러지는데, 쓰러진 사람에게 너는 왜 다른 사람처럼 이겨내지 못했냐고 탓할 수는 없다.” 박형남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가 방송 출연 직후 출연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박형남 제공 -판사들의 과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많다. “판사수가 사건수에 비해 현저히 적은 게 문제다. 프랑스, 독일이나 일본보다 판사 1명이 맡은 사건수가 3~4배 많다고 한다. 지금까지 어느 정도 판사들이 희생한 측면이 있다. 그렇다면 이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근본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시민이 제일 불만인 게 5분, 10분 재판한다는 것 아닌가. 결국 판사수를 늘려야 한다. 현실적으로 사건을 줄이라고 할 순 없지 않나. 판사가 번아웃된 상태에서 법정에 들어서면 시민에게도 좋지 않다.” -연재한 글에서는 검사와 판사의 관계나 검찰을 향한 비판적 시각도 종종 볼 수 있었다. 그런데 검찰개혁이 이뤄진 뒤 ‘형사가 민사재판에 가서 증거를 수집해오라고 한다’는 시민의 불만이 적지 않다. 경찰이 수사를 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비판인데. “역량 문제라고 본다. 사실 경찰은 지금까지 수사 분야를 키우는 데 소홀했다. 어차피 검찰에서 다시 조사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경비나 정보 분야에서 주로 승진했다. 검찰개혁의 일환으로 여러 법률이 개정되기 전에 경찰의 수사 역량을 강화하고 확대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해 부작용이 나타나는 것 같다. 사실 ‘형사사건의 민사화’는 부작용의 한 모습이고, 경찰이 수사 역량을 키우지 못했던 부분이 원인이라고 본다.” -검찰을 바라보는 시각은 그대로인지도 궁금하다. “우리나라 형사사법에서 검사가 입법, 행정, 사법 권한을 사실상 다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의원은 검사 출신이 많다. 행정은 여기서 말하는 수사도 포함한다. 법무부는 수많은 행정부 내부, 유관기관과 관계를 맺고 있다. 형사재판의 집행권한이나 교도소와 구치소 운영도 관여한다. 우리 형사사법은 사실상 검사가 의원이 돼서 법도 만들고, 수사도 하고, 행정적으로 지원하고 집행해 제대로 견제받지 않았다는 게 문제의 핵심이라고 본다. 민주화 이후 검찰을 견제할 수 있는 기관은 사실상 법원밖에 없다.” -그렇다면 법원은 누가 견제할 수 있을까. 이른바 ‘사법농단’ 사태 이후 ‘윗선’의 재판 개입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대법원은 대법관 인사권이나 예산권이 없다. 판사들 봉급 올려달라고 하더라도 기획재정부가 ‘노’ 하면 안 되잖은가. 그래서 항상 대법원과 법원행정처는 인사·예산권에 대해선 국회와 정부의 눈치를 봐야 하고 영향을 받는다. 어느 정도 영향을 받는 게 곧 견제를 받는 시스템일 것이다. 문제는 적절하게 견제받아야 하는데, 최근 사법농단 사례는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권이 법원행정처나 대법원에 특정 목적을 갖고 특정 사건에 부당하게 개입한 데서 비롯된 것 아닌가. 대법원이나 법원행정처가 자제해야 했는데, 일선 판사나 심의관에게 얘기해 적극적으로 대처한 게 문제였다.” -직접 압력을 받은 적은 없었나. “내 경험만 보면, 34년 동안 법원장이나 대법원에서 재판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한 적이 한 번도 없다. 국정원 대선개입 재판하면서도 대법원이나 정치권에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사법농단 재판에서는 여러 법기술적인 부분이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이라는 이름으로 여럿 등장하기도 했다. 검찰수사를 받았던 판사들이 영장 발부 등에 더 엄격해졌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판사들이 피고인이 되면서 법정에서 지켜지는 절차가 더 꼼꼼해졌다는 지적은 아프다. 우리가 아는 ‘미란다 원칙’의 미란다는 사회 엘리트나 권력자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미연방대법원은 체포 시 변호사 선임권 등을 경찰이 통보해야 한다며 피의자 권리를 보장해줬다. 사법농단 재판에서 절차를 하나하나 따지는 부분은 사실 일반 재판에서도 적절히 따졌어야 할 문제다. 지금까지 사법 편의주의로 결론만 좋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 해서 절차를 무시하거나 넘어간 게 많았다. 절차가 하나하나 지켜진다는 점에선 좋지만, 그게 판사인 피고인에게만 엄격하게 적용되는 건 문제라는 비판은 수긍이 간다.” -사법농단 재판이 길어지면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판사들이 명심해야 할 것이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는 점이다. 절차적 사정이 있겠지만 2년 이상 재판이 지연된 것에 대해서는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우리가 흔히 수사를 질질 끈다고 하면서 이를 ‘봐주기 수사’라고 비판하는데, 수사만이 아니라 재판도 늘어지면 안 된다. 다시 미란다 재판을 이야기하고 싶은데, 가장 억울한 사람, 힘없는 사람에게 재판에서 여러 권리가 보장돼 재판이 길어졌다면 시민이 뭐라고 하진 않았을 것이다.”
[오늘을 생각한다]언제까지 아동 권리가 지연되어야 하나
[오늘을 생각한다]언제까지 아동 권리가 지연되어야 하나(2020. 10. 23 15:01)
2020. 10. 23 15:01 오피니언
지난해 장기체류 미등록 이주아동들에 대한 실태조사를 했다. 한국에서 태어났거나 어렸을 때 부모를 따라 한국으로 이주해 미등록 상태에서 성장기를 보내고 어느덧 청소년·청년이 된 이들을 만났다. 아이들, 아니 청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들의 삶이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보다 훨씬 팍팍했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팠다. 언제 낯선 땅으로 쫓겨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떨어야 했고, 미래를 꿈꾸지 못하거나 꿈을 가졌다가도 접어야 했다는 이야기를 담담히 전하는 이들 앞에서 미안할 뿐이었다. 소수지만 미등록 이주아동으로 살다가 극적으로 체류자격을 갖게 된 경우도 없지는 않다. 중학교 때 미등록으로 체류하던 아버지가 한국 여성과 결혼하면서 한국인의 자녀로 입양되어 국적을 취득한 경우, 고등학교 때 강제 출국을 당했다가 인권단체들의 구명 노력을 통해 몇 년 뒤 유학생이 되어 한국으로 돌아온 경우, 고등학교 졸업 후 일터에서 단속되어 강제퇴거 명령을 받았다가 공익변호사들의 도움으로 소송을 제기해 한국에 계속 머물 수 있게 된 경우 등이 그러했다. 하지만 대다수 장기체류 미등록 이주아동들은 그러한 운을 만나지 못해 이미 10년, 20년을 그리고 앞으로도 얼마가 될지 모르는 불안정한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들에게 운이 아니라 근본적인 길을 열어주고 싶었다. 일단 좀 더 시급한 상황에 처한 아동들이 있었다. 법무부 지침에 따라 단속과 강제퇴거 유예가 끝나는 시점인 고등학교 졸업을 코앞에 둔 아동들이다. 이들을 당사자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다.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고 대한민국에서 교육받고 성장하면서 정체성을 형성한 미등록 이주아동들을 강제 출국하도록 하는 것이 이들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행위라는 게 진정의 요지였다. 올해 3월 국가인권위원회는 아동 최상의 이익을 고려해 적정한 체류자격을 부여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할 것을 권고하는 결정문을 발표했다. 그러나 법무부는 해당 아동의 인권과 국민의 법감정을 균형 있게 고려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애매한 답변을 내놓았다. 고심 끝에 언론사를 통해 미등록 이주아동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당사자의 목소리로 전달하는 연재를 시작하기로 했다. 관심보다 비난과 질타가 쏟아지지 않을까 조심스러웠다. 이주아동들이 어떻게 미등록 체류자가 되는지, 왜 그 상황이 아동들의 책임이 아닌지, 무엇보다 이들이 견뎌온 삶의 무게가 어떠한 것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는 걸 예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상처받을까 두려웠다. 아니나 다를까 불법체류자니 쫓아내야 한다는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용기를 냈던 아이들은 다시 한 번 좌절해야 했다. 아동은 무엇보다 우선해서 아동으로 보아야 한다. 한국인이 아니라는, 체류자격이 없다는 이유로 권리가 부정당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대한민국이 비준한 아동권리협약의 기본 원칙이다. 대한민국은 이러한 원칙이 법과 제도를 통해 실현되도록 할 의무가 있다. 부디 정부가 혐오 댓글 뒤에 숨어 국민의 법감정을 운운하기보다 이들의 권리를 되찾아줄 방안을 내놓기를 희망한다.
[우정이야기]중국행 우편물 지연 국제사회 확산(2020. 02. 14 15:49)
2020. 02. 14 15:49 경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불똥이 우체국 해외우편물 발송에까지 튀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중국행 항공 노선이 제한되거나 중단되면서 중국행 우편물 배송도 차질을 빚고 있다. 192개국이 참여하고 있는 유엔 산하 만국우편연합(UPU)은 2월 12일(현지시간) 성명에서 “상황을 주의 깊게 모니터링하고 있다”며 “가능한 한 이른 시일 내 밀린 업무가 정리될 수 있도록 우편 사업자와 지속해서 접촉하고 있다”고 알렸다. 코로나19 발원지인 중국 후베이성 우한과 인근 지역 체류 한국인을 국내로 데려오기 위한 우한행 항공편 일정이 1월 30일 인천국제공항 2터미널 전광판에 표시되어 있다./권도현 기자 우정사업본부는 2월 12일 UPU 입장을 확인했다. 우정사업본부는 이날 “중국행 국제우편 배송지연을 안내하오니, 이용고객님께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는 내용의 긴급설명서를 내놨다. 우정사업본부는 이어 “중국행 발송우편물의 급증으로 인하여 주소변경 및 반환청구가 불가한 점 양해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국제사회에서 벌어지는 실제 상황은 우정사업본부나 UPU 인식보다 훨씬 심각하다. 중국행 우편물 지연 사태는 국제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감염자가 취급했거나 중국에서 받는 소포를 통해 코로나19에 걸릴 위험은 없다”는 WHO(세계보건기구)의 공식 입장도 무시하고 있다. 중국행 우편물 취급을 ‘거부’하는 나라가 속출하고 있다. 미국 우편 업무 관련 공기업인 미연방우편서비스(USPS)는 홈페이지를 통해 “2월 10일을 기점으로 ‘국제 특급우편’의 중국과 홍콩, 마카오에 대한 접수를 중단한다”고 긴급 공지했다. USPS의 국제 특급우편은 미국발 국제 우선취급 우편서비스다. 해당 조치의 배경에 대해 USPS는 “배송 능력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아 홍콩과 마카오를 포함해 중국으로 편지·소포·특급우편물을 수송하는 데 차질을 빚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 전역에 여행 금지를 권고하는 미 국무부의 여행 경보 조치로 중국행 항공편 운항이 중단됐다. 이에 따라 이들 지역의 우편물 배송도 차질을 빚은 것이다. 싱가포르·남아프리카공화국·오스트리아·스웨덴도 중국행 우편물의 배송 지연이나 불가를 고지했다. 특히 싱가포르는 중국행 우편물이 제3국에서 싱가포르를 경유하는 경로를 차단하기 위해 중국행 우편물 취급을 중단했다. 이 사실은 192개국이 참여하고 있는 UPU에 통보됐다. 오스트리아 우체국은 중국행 우편물과 소포를 처리하지 않지만 중국발 우편물의 수취는 여전히 가능하다고 전했다. 스위스 우체국도 중국으로 보내야 할 우편 물량의 3분의 2를 처리할 수 없는 상태로 알려졌다. 중국행 물량이 쌓이자 스위스 우체국은 “현재 중국으로 보내는 편지나 소포를 받고 있지 않다”고 전했다. 이어 정말 긴급하거나 절대적으로 중국으로 배송해야 할 경우에 한해 예외적으로 우편물을 받고는 있지만 배송 날짜를 보장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한편 우정사업본부는 방역망에 일시적으로 구멍이 뚫린 광주우편집중국을 임시 폐쇄하는 등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대응 수위를 높이고 있다. 코로나19 16번째 확진자와 접촉한 직원이 광주우편집중국에서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지난 2월 5일 확인됨에 따른 조처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직원 520명은 자가격리 조치됐다. 광주우편집중국 청사 및 시설·장비에 대해 방역 조치했다. 직원 비상연락체계를 유지하고 건강 이상 여부에 대한 신속한 보고 등 전방위적인 대응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우편집중국은 우체국에 접수된 우편물을 구분하는 물류센터 역할을 하는 곳이다. 우정사업본부는 자가격리 소포위탁배달원의 소득손실을 보전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도 마련 중이다. 소포 배달량에 따른 수수료 수입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위탁택배 노동자들은 유급휴가가 아닌 만큼 수당 등이 지급되지 않는다. 한편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모든 배달업무 종사자에게 마스크·손세정제 등의 안전용품을 소포위탁배달원 3662명에 보급 완료했다.
우정이야기
[배상훈 프로파일러의 범죄도시](2)폭력에 대한 긴장의 부동화와 지연된 분노(2018. 03. 05 17:41)
2018. 03. 05 17:41 사회
자신에게 ‘매우 중요한 타자’가 가해자일 경우, 여성 혹은 청소년 피해자는 긴장성 부동화에 빠지게 되고, 그 상황에 대한 내적 합리화와 함께 분노의 내적 축적이 동시에 진행된다. 최근 한 언론이 ‘왜 소년들은 방아쇠를 당기는가?’라는 보도에서 <뉴욕타임스>의 칼럼 ‘The Boys Are Not All Right’를 인용했다. 미국에서 벌어지는 학내 총기난사사건의 97%가 소년 범죄라는 지적과 함께 ‘남성성의 좌절과 총기난사’의 관련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미국 사회의 왜곡된 남성성 모델(Be A Man!·강함을 기준으로 하는 전통적이고 시대착오적인 남성성 모델)에 갇힌 많은 소년들이 애초부터 도달할 수 없는 사회적 성취의 모순 속에서 좌절감에 길을 잃고 포기와 분노를 총기난사로 해결한다고 분석한다. 지난 2월 15일 역대 최악의 총기난사 참극으로 기록된 미국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 북쪽 파크랜드 소재 마조리 스톤맨 더글러스 고교 총기난사 사건 현장에서 피해학생의 부모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CNN 학대와 폭력으로 인한 청소년기의 좌절 이번 총기난사의 범인 니콜러스 크루즈나,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범 조승희는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무기에 대한 찬양과 함께 자신을 무시한 자들을 총으로 잔혹하게 사살할 것이라고 공공연하고 언급했었다. 자신의 열등감과 복수심을 총을 소유하고 사용하는 강한 남성성에 대한 동경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이런 현상에 대해 미국 내 전문가들은 일종의 피해의식에 기인하는, 타인을 지배하고 싶은 강한 남성에 대한 숭배가 결국 자신의 정체성 동일시로 작용하고, 이를 상징할 표상으로서 총기 혹은 총기난사 상황을 연출한다고 주장한다. 플로리다 사건 이후로 급격히 퍼지고 있는 이런 주장은 일견 당면한 상황에 대한 현상적인 설명력을 지니고 있다고 평가된다. 그러나 좀 더 깊이 들어가보면 과연 단순히 남성성의 결핍만으로 설명되기 어려운 지점이 생긴다. 특히 총기 소지 규제에 대한 논점을 흐리는 기제로 작용할 수 있다. 또 소수자를 비롯한 여성의 사회적 진출을 견제하려는 미국 백인 보수파들의 심리를 대변하는 주장에 불과하기도 하다. 미국의 범죄사회학자 머튼은 ‘아노미 이론’을 통해 사회적 목표와 그에 이르는 수단이 일치하지 않을 때 일탈적 수단이 사용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회적 성공’이라는 자아 실현이 좌절된 청소년들이 총기라는 일탈에 쉽게 접근한다는 주장은 너무 단순한 도식이라는 평가가 나올 수 있다. 실제 좌절한 청소년들이 접근할 수 있는 수단은 총기 외에도 술, 마약, 게임, 섹스 등 매우 다양하다. 그런데 그 수단을 마치 서부극 신화에 기대어 총기로 도식화하는 이유는 결국 정치적인 의도라고밖에 이해할 수 없다. 또한 본질적으로도 이러한 주장은 청소년기에 나타나는 학대와 폭력의 기제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도 없는 주장이다. 청소년기에 나타나는 좌절은 대부분 중요한 타자로부터의 학대와 폭력으로 인한 것이 많다. 아동기를 거쳐 청소년으로 성장하면서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 미국 사회에서 정한 성공지표에 현실적으로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을 청소년 자신은 인정하지만 그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부모와 그 주변인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자녀를 정신적·육체적으로 학대한다. 그리고 이 같은 좌절과 도달하기 어려운 목표를 위해 채찍질하며 발생하는 부모의 학대 및 폭력은 때로는 열등감 또는 자기학대로 변형돼 내적으로 축적된다. 그리고 축적된 기억은 분노로 내재된다. 그리고 분노의 방아쇠를 당길 계기를 기다리게 된다. 범죄의 외형으로 볼 때 이들의 총기난사는 잔혹한 연속살인이지만 동기의 측면에서 보면 이들은 자신을 직접적으로 학대한 대상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고 다수의 대중을 향해, 그리고 자신을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 일반적으로 학대와 폭력에 관해 오해하기 쉬운 선입견 중 하나가 폭력에 직면한 피해자는 당연히 그 폭력에 대해 즉각적으로 반응할 것이라는 믿음이다. 그러나 대중의 오해와는 달리 오히려 대부분의 사람들은 즉각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더 이상한 반응도 나타난다. 그 이유는 학대와 폭력을 당하는 상황이 매우 맥락적이기 때문이다. 학대와 폭력은 처음부터 가학적 형태로 접근하지 않는다. 때로는 관심의 형태로, 때로는 사랑의 모습으로, 때로는 훈육과 지도의 형태로 나타난다. 가해자 역시 전혀 모르는 제3자가 아니라 부모 혹은 교사 혹은 선배 혹은 관계상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타자(他者)일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피해자들, 특히 청소년 피해자들이 학대와 폭력에 대해 즉각적으로 저항하지 못하는 것이며, 폭력에 순응하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분노와 반발 역시 동시에 축적된다. 그리고 혼란 속에서 자기 부정과 자기 학대를 거쳐 자아가 상실된다. 이런 맥락에서 학대와 폭력의 피해자가 또 다른 잔혹범죄의 가해자가 되는 것이다. 범죄의 외형으로 볼 때 이들의 범죄는 묻지마 범죄, 증오범죄로 나타나지만 동기의 측면에서 보면 이들은 자신을 직접적으로 학대와 폭력을 행사한 대상을 향해 칼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대중을 향해 그리고 자신을 향해 찌른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즉각적 반응 못해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예측하지 못한 폭력적 상황에 직면할 때 즉각적인 반응을 하지 못하는데, 특히 전혀 그럴 것이라고 상상조차 하지 못한 상대로부터 상상도 하지 않은 폭력, 예를 들어 성추행이나 성폭력을 당했을 경우 보편적으로 예측되는 행동과 달리 이상한 행동을 하게 된다. 실제 대부분의 피해여성들은 성폭력을 당하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저항능력이 순간적으로 마비되는 ‘긴장성 부동화(tonic immobility·TI)’ 상태에 빠진다.(스웨덴 카롤린스카연구소 안나 몰러 박사팀의 ‘스톡홀름 강간 피해자 응급 클리닉’ -TI 경험과 후유증 등에 대한 조사 인용) 긴장성 부동화는 사람을 비롯한 동물이 긴장, 공포 등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몸이 굳어 꼼짝도 하지 못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런 긴장성 부동화는 상당 시간(때로는 몇 달, 때로는 몇 년이나 그 이상도 가능)이 지난 후에도 지속되는데, 문제는 긴장성 부동화를 겪은 피해자의 경우 장기지속의 PTSD(외상성 스트레스 장애)에 노출된다는 점이다. 이는 가해자와의 관계에서 저항하기 불가능했고, 자기가 처한 관계를 인지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또 다른 가해자인 방관자가 있는 상황에서 자신이 적극 저항하지 못해 꼼짝없이 당했다는 자책감(자기 학대)과 괴로움(자기 부정) 등이 스스로를 더욱 학대하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되며, 이 증상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고 교묘하게 자아를 무너뜨린다. 들불처럼 번지는 ‘미투(Me Too)’ 운동에 나서는 피해자들의 심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같은 축적되고 지연된 분노 상황과 긴장성 부동화 그리고 그 피해자들의 사회적 자살에 대한 이해가 반드시 필요하다. 특히 성폭력을 당한 청소년 피해자의 경우 더욱 적극적으로 설명될 필요가 있다. 자신에게 ‘매우 중요한 타자’가 가해자일 경우, 여성 혹은 청소년 피해자는 긴장성 부동화에 빠지게 되고, 그 상황에 대한 내적 합리화와 함께 분노의 내적 축적이 동시에 진행된다. 극복할 수 없는 가해자와의 공존은 스스로를 자기 학대 상황으로 내몰게 되어 결국에는 오랜 시간의 자기 부정에 이르게 된다. 학대와 폭력을 당할 때 누구나 정상적으로 저항할 수 있다는 논리는 가해자의 논리임을 폭로하는 것이 학대와 폭력을 피해자 중심으로 이해하는 가장 핵심적인 지점이다. 또한 학대와 폭력을 당한 기억은 치유되지 않는 한 피해자의 기억 속에서 언제까지나 분노와 좌절로서 축적되고 지연된다는 점도, 그리고 치유되지 않는 그러한 분노와 좌절은 결국에는 누구에게나 칼이 되고 총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우리 모두는 공감해야 할 것이다.
배상훈 프로파일러의 범죄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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