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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라진 정부…우크라에 ‘살상무기 지원’ 가능할까(2024. 11. 11 06:00)
- 2024. 11. 11 06:00 정치
- “방어무기부터 지원” 일주일 전과 온도 차이…신중 대응 필요 트럼프 당선으로 국제정세 다시 변곡점…북은 러서 실리 챙겨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0월 17일 인민군 제2군단 지휘부를 방문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8일 보도했다./연합뉴스 “북한군 40명이 우크라이나에서 사망했다.”, “우크라이나에 도착한 북한군 병사가 제공된 음식의 다양함과 푸짐함에 놀랐다.”, “북한군은 누렁이 개고기라고 쓰인 통조림을 먹는다.” 연일 쏟아지는 북한군 파병 관련 소문이다. 출처를 따라가다 보면 대부분 X(옛 트위터)와 같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닿는다. 주로 ‘친우크라이나’로 분류되는 계정이 시작점이다. 거짓과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 뒤섞여 ‘전황’이라는 이름으로 유통되는 중이다. 지난 11월 5일(현지시간)에는 북한군과 우크라이나군이 교전을 벌였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이를 실명으로 확인해준 것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다. 그는 북한군과의 교전을 두고 “세계가 불안정성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반면 동일한 내용에 대해 뉴욕타임스(NYT)는 익명의 미국 정부 당국자를 인용해 “상당한 수(a significant number of)의 북한군이 사망했다”고만 보도했다. 한국 정부도 교전의 의미를 확장 해석하는 데는 선을 그었다. 지난 11월 6일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소규모 인원이 정찰 활동이나 전쟁 이외의 사전준비 차원에서 무슨 사건이 있었는지는 저희도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면서도 “전투는 개시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루 뒤인 11월 7일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우크라이나에) 무기지원을 하면 어찌 됐든 방어무기부터 우선으로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살상무기 제공’, ‘파병’ 가능성까지 나왔던 일주일 전과 비교하면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다. 급변한 태도의 원인으로 짐작해볼 만한 정황은 있다. 북한군 교전설이 불거진 지난 11월 5일 미국에서는 대통령선거가 진행됐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4년 만에 제47대 미국 대통령 당선인으로 돌아왔다. 트럼프 당선인은 선거 기간 내내 ‘러시아와 담판을 통해 빠른 시기에 종전을 추진하겠다’고 공언했다. 승리 선언 연설에서도 “나는 전쟁을 시작하지 않고 끝낼 것”이라고 쐐기를 박았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바람과 달리 국제정세는 다시 한번 변곡점을 맞았다. 확인되지 않는 정보는 누가 흘리나 SNS만 보면, 러시아 서부 쿠르스크 지역에 있다는 북한군 움직임을 한눈에 볼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들의 키, 얼굴, 복장, 말투, 심지어 머리 스타일까지 누구나 쉽게 찾아볼 수 있게 공개돼 있다. 사실관계는 확인되지 않지만 파급력은 진짜 정보와 동일하다.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선 “북한군이 전투 경험을 쌓기 전에 한국이 대응해야 한다”거나 “총알받이가 된 북한군이 불쌍하다”는 반응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국을 억지로 전쟁에 끼워 넣고 보면, 누군가 정보를 흘리며 심리전을 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는 상황이다. 인터넷을 중심으로 유통되는 정보의 신빙성에 대해 조한범 통일연구원 석좌연구위원은 “전부 걸러 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근거는 쏟아져 나오는 정보가 한쪽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다. 그는 “북한군이 러시아 군복과 신분증을 충분히 위조할 수 있는데 정보라고 나오는 것들을 보면 전부 북한 신분증, 인공기를 대놓고 가지고 다닌다”며 “게다가 우크라이나군이 북한군 포로를 잡았으면 공개하면 그만인데 우크라이나 당국이 아닌 민간단체가 포로라며 공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한군이 전쟁에 참전했다는 것이 주요 문제가 될수록 한국을 포함한 국제사회로부터 지원이 필요한 우크라이나 입장에선 좋은 압박 수단이 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 10월 30일 KBS와의 인터뷰에서 북한군 참전 사실을 지적하며 “북한이 우크라이나와 싸우기 위해 온 군대라는 공식적인 지위를 얻은 뒤 (한국에) 구체적인 요청서를 제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린 한국으로부터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있으며 가장 먼저 필요한 건 방어, 특히 방공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0월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하고 있다./대통령실 제공 우크라이나의 바람과 별개로 한국에 필요한 것은 ‘사실 확인’이다. 북한군이 실제 최전선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느냐가 핵심이다. 애초 대다수 군사 전문가들은 러시아에 파병된 북한 ‘폭풍군단’은 적진 후방에 침투해 요인 암살, 시설 파괴 등을 담당한다고 설명했다. 북한군이 최전선에서 교전하는 것에 회의적이었다. 그러나 미국 정부 관계자 등을 통해 북한군의 교전이 조금씩 확인되고 있다. 조 위원은 “폭풍군단 특성을 봤을 땐 상식적이지 않지만 북한군이 전투에 투입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은 맞는 것 같다”며 “다만 겨울이 임박한 시점에서 대규모 병력이 투입됐다는 정황은 아직 없고, 우크라이나 측이 예상한 북한군 투입 시점도 계속 미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겨울을 앞둔 시점에 파병돼 빠르게 전투에 참전한 이유’가 중요해졌다. 실리 챙기는 북한 미국에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게 된 만큼 전쟁은 ‘신속한 종전’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문제는 방법이다. 이에 대해 트럼프 행정부의 부통령을 맡게 될 J. D. 밴스 당선인은 지난 9월 시사점을 남겼다. 그는 “트럼프가 당선되면 ‘평화적 해결’을 기대하며 크렘린궁과 우크라이나, 유럽 관계자들과 협상을 시작할 것”이라며 “아마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현재 경계선’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트럼프 취임 전 형성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선이 어디냐가 핵심으로 떠올랐다. 겨울이 임박한 상황에서 투입된 북한군의 존재 역시 이와 무관할 수 없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군의 존재는 러시아가 전선을 유지하면서 전투 요원을 순환 배치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준다는 측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며 “이들이 본격적으로 전투에 투입된다면 협상 국면에 진입하기 전까지 원래 러시아 영토인 쿠르츠크 지역에 남은 우크라이나 점령지를 수복하는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군이 개입됐다는 산발적, 소규모 교전도 전선 유지 측면에서 보면 설명이 가능하다. 어떤 이유든 북한은 국제사회의 비판을 무릅쓰고 ‘파병’이라는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한 데 이어 실질적 ‘손실’까지 감내하며 러시아를 돕고 있다. 겨울을 앞둔 파병 시점, 예상을 뛰어넘는 빠른 참전 등은 모두 평화협상 이후 반대급부를 키우는 포석이 된다. 문제는 한국 정부의 대응이다. 핵심은 ‘평화협상’을 말하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앞둔 상황에서 여전히 ‘살상무기 지원’이 가능하냐, 해당 조치가 전후 북한이 받을 혜택을 줄일 수 있느냐 등이다. 한 군사 전문가는 “그래서 외교에서 말이 앞서면 안 된다는 것”이라며 “우크라이나는 북한군과의 교전 사실을 키워서 한국에 공식 지원을 요청하겠다는 것인데 이제 정부는 스스로 뱉은 말을 수습해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애초에 한·미동맹을 그렇게 좋아하는 정부가 미국의 액션플랜(실행계획)도 나오지도 않은 상황에서 왜 선제적으로 나서는지 모르겠다.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할 때까지 최대한 관망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북한군 참전을 명분으로 한 한국의 전쟁 개입은 평화협상 이후 문제를 남길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결과가 러시아의 한국 적대나 실질적 압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한국 정부의 더욱 신중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 [IT 칼럼] 애플 RCS 지원, ‘카톡 왕국’ 흔들릴까(2024. 10. 11 16:00)
- 2024. 10. 11 16:00 경제
- 통신사가 RCS를 지원하면, 아이폰의 설정>일반>정보에서 아래로 스크롤해 이동통신사 항목을 탭하면 나오는 IMS 상태가 음성, SMS 및 RCS라고 표시된다. 김국현 제공 아이폰 16과 함께 등장한 최신 모바일 운영체제 iOS 18. 가장 큰 캐치프레이즈는 애플판 인공지능 애플 인텔리전스였는데 별로 홍보되지 않는 큰 변화가 하나 더 있다. SMS/MMS를 잇는 차세대 문자메시지 표준 RCS(Rich Communications Services)를 드디어 지원하게 된 것. 독과점이라고 사방에서 압박받던 애플이 백기를 들었다. 등 떠밀려 탑재했어도 업계의 판도를 바꿀 수도 있는 기능인데 이번에도 한국에선 무용지물이다. 사실 카카오톡이 있으면 RCS가 아쉽지 않다. 통신사에 비용을 내지 않아도 장문과 사진을 전송할 수 있고, 무엇보다 단톡방을 만들 수 있다. 스티커도 보낼 수 있고, 읽었는지 확인할 수도 있다. 상대방이 뭔가를 입력할 때 궁금해하며 기다릴 수도 있다. 통신사 기본 문자는 제공해 주지 못하던 체험은 강렬했다. 그렇게 카카오톡은 한국에서, 비슷한 위챗과 라인은 각각 중국과 일본에서 왕국을 건설했다. 휴대폰 대리점에서도 새 휴대전화기를 산 어르신들에게 카톡을 대신 설치해 주는 친절을 베풀어야 할 정도니, 차원이 다른 의존도였다. “사실상 국가 기간망”이라던 대통령의 말도 틀리지 않는다. 먹통 사태마다 그 독과점이나 과의존에 벗어날 때가 됐다고 말은 해도 이런 앱은 나 혼자의 의지로 벗어날 수 없다. 명색이 통신사인데 메신저 역할 하나 제대로 못 해 국가 기간망 역할을 일개 앱에 양도해 버리다니. 통신사들은 카카오톡이 지녔던 각종 장점을 흡수한 표준을 함께 만들기로 한다. 그런데 통신사들은 인터넷 기업들처럼 소프트웨어를 친절히 만들 줄 몰랐고, 협업마저 서툴렀으니 될 리가 없었다. 이런 통신사의 실태에 답답해진 이가 있었다. 마침 자기네 메신저 앱이 잘 안 되던 구글이다. 반면 아이폰에 기본 탑재된 아이메시지의 위력은 날로 커졌다. 아이폰끼리는 기능이 풍부한 파란 말풍선을 띄웠지만, 안드로이드는 일반 문자로 차별하며 녹색으로 칠했다. 녹색은 파란 친구들 단톡에 초대될 수도 없었다. 이 차별을 겪어 본 아이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아이폰을 사고 싶어지게 마련이다. ‘블루 버블 그린 버블’이라는 사회현상이다. 아이폰과 안드로이드를 통합하는 메신저가 필요했던 구글은 정리되지 않은 RCS에서 마지막 희망을 봤다. 대신 나서서 국제표준도 정리하고 공짜 문자 앱도 만들어줬다. 애플만 RCS를 지원하면 된다고 조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iOS 18은 국제표준을 이제 지원한다. 그런데 이번 신기능도 한국에서는 되지 않는다. 한국 통신사들은 국제표준과 미묘하게 다른 방식으로 RCS를 구현해 버린 갈라파고스 상태라서다. 갤럭시에 기본 탑재된 RCS 앱 채팅 플러스도 국내용은 이미 비표준 신세. 비표준 RCS를 쓰는 중국이 있어서 외롭지 않으려나 했는데, iOS 18.1 업그레이드에서 중국용 RCS를 애플이 특별히 지원하기로 했다. 한국은 통신사가 국제표준으로 바꾸든 애플이 삼성처럼 한국식으로 고쳐주든 해야 할 텐데 SMS 과금에 맛 들인 통신사는 만사 귀찮고, 애플도 한국을 중국처럼 편애할 것 같지 않으니 카카오톡 왕국은 당분간 별 이상 없어 보인다.
- IT칼럼
- 윤 대통령 “소상공인 맞춤형 지원…‘민주당 25만원’은 무분별한 지원”(2024. 07. 03 14:06)
- 2024. 07. 03 14:06 경제
- 윤석열 대통령이 3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및 역동경제 로드맵 발표’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은 3일 “포퓰리즘적인 현금 나눠주기식이 아니라 도움이 절실한 소상공인에게 맞춤형으로 충분한 지원을 펼치겠다”며 “25조원 규모의 소상공인 종합대책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영빈관에서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 및 역동 경제 로드맵 발표’ 회의를 주재하고 “코로나19 팬데믹 때 가장 큰 타격을 받은 소상공인이 여전히 어려운 상황”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윤 대통령은 “저금리 대환대출 지원 대상을 저신용자에서 중저신용자까지 확대해 소상공인의 부담을 낮춰드리고, 최대 80만명의 소상공인에게 정책자금과 보증부대출의 상환 기한을 5년까지 연장하겠다”고 했다. 또 전기료 지원 대상의 매출기준을 현재 연 3000만원에서 6000만원으로 높이고, 소상공인에게 임차료를 인하해 준 임대인에게 제공하는 착한 임대인 세액공제 제도를 2025년 말까지 연장하겠다고 했다. 아울러 코로나 피해 소상공인에게만 지원했던 새출발기금을 올해 6월 말까지 사업한 모든 소상공인으로 확대하고 자금 규모도 10조원 늘려 약 30만명을 추가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이 경제정책 방향을 논의하는 회의를 주재한 것은 이번이 다섯 번째다. ‘역동 경제로 서민·중산층 시대 구현’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회의에서는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 소상공인·자영업자 종합대책과 더불어 성장잠재력 저하·부문 간 격차 확대 등 우리 경제의 구조적 문제 해결을 위한 ‘역동 경제 로드맵’을 함께 논의했다. 윤 대통령의 모두발언에 이어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 역동 경제 로드맵, 소상공인·자영업자 종합대책을 발표했으며, 헤어 디자이너, 양식당 운영자 등 소상공인이 토론자로 참석해 민생 현장의 어려움을 전했다. 이날 회의에는 정부에서 한덕수 국무총리, 방기선 국무조정실장,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 김주현 금융위원장,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 김주현 민정수석, 박춘섭 경제수석, 장상윤 사회수석, 박상욱 과학기술수석 등이 참석했고, 국민의힘에서 황우여 비상대책위원장, 정점식 정책위의장 등이 참석했다. 윤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의 총선 공약인 ‘전 국민 25만원 지원법’(민생위기극복 특별조치법)도 겨냥해 비판했다. 윤 대통령은 무분별한 현금 지원 주장을 예로 들며 “그렇게 되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뻔한 것 아니겠느냐”며 “일단 물가가 상상을 초월하게 오를 뿐 아니라 신인도가 완전히 추락해서 정부나 기업들이 밖에서 활동할 수도 없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냥 돈을 나눠주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으로 정말 필요한 곳에 맞춤형 지원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3고 속 복합위기 ‘빚 눈덩이’…환갑 사장님은 퇴로 막혀 ‘막막’지난 5월 17일 오후 방문한 서울 중구 황학동 주방거리는 적막했다. 중고물품을 구경하는 사람도, 사려는 사람도 없었다. 흥정 없는 거리엔 무거운 공기가 내려앉았고 철거 용품...https://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4&art_id=202405270600031 빚 돌려막기 급급한데…정부 대책은 ‘언 발에 오줌 누기’자영업자 부채 문제가 수면 위로 떠 오르면서 정부와 정치권도 지원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내수 경기가 반등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데다 자영업자의 원리금 상환에 대한 부담이 가...https://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4&art_id=202405270600041 [취재 후] 불황의 시대, 퇴로가 없다“모두가 가난해지는 것 같네요.” 자영업자 부채를 취재하면서 만난 사장님은 “물가가 월급보다 더 올라 직장인들이 지갑을 닫는 게 체감된다”라며 이같이 말했다. 자영업자들은 코...https://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4&art_id=202406050600011
- [취재 후] 한부모가족 지원 강화해야(2024. 06. 26 06:00)
- 2024. 06. 26 06:00 사회
- 오는 7월 19일 ‘위기임신 지원 및 보호출산제’가 시행된다. 시행에 앞서 위기임산부에게 무엇이 정말 필요한지 듣고 싶었다. 아무런 연고가 없는 서울에서 만 3세 아이를 홀로 양육하는 A씨(22)를 만났다. 인터뷰는 예상보다 길어져 2시간 가까이 진행됐다. 물론 인터뷰를 요청한 쪽은 기자였지만 그는 ‘할 말’이 많았다. 임신·출산 과정, 남자친구와의 갈등, 양육의 어려움, 현재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에 도움을 요청해 긴급주택에서 지내게 된 이유까지 조곤조곤 설명했다. 그는 임산부로서, 한부모가족으로서 받을 수 있는 공공의 정책과 민간의 지원을 대체로 알고 조건이 되면 이용했다. 그는 지난 몇 년간 학업과 경제활동, 양육을 병행하면서 “친구들보다 철이 일찍 든 채”로 “아등바등 살았”음에도 현재 ‘위기’에 처해 있다. 가장 큰 부분은 경제적 어려움이다. 매우 사적인 부분이어서 기사에 쓰진 못했지만 대출을 받기까지 과정, 공공임대주택에 당장 들어갈 수 없는 사정은 A씨의 잘못이 아니었다. 그는 과도한 책임을 지고 있었다. 앞으로 보건복지부·아동권리보장원 관장 하에 전국 16개 광역 시·도 지역상담기관에서 위기임산부 상담이 이뤄진다. 그동안 분절적으로, 그것도 민간에서 주로 이뤄지던 위기임산부 상담을 이제는 공적 체계에서 진행한다. 취재 과정에서 “정부가 잘할 수 있을까요”라거나 “위기임산부들이 그 체계를 이용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죠”라는 말도 들었다. 정부가 그간 역할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불신’이다. 숙련된 현장 전문가들이 위기임산부를 상담하고, 정부가 상담·지원 체계를 만들어 매뉴얼화했기 때문에 A씨에게, 또 그와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필요한 지원책을 찾아내리라 믿는다. 다만 어떤 정책의 사각지대는 ‘자세히 들어야 보인다’는 걸 나도 이번 인터뷰를 통해 배웠다. 인터뷰 중에 A씨는 ‘아이를 키우는 기쁨’과 ‘아이에게 못 해주는 것에 관한 슬픔’을 말했다. 후자를 말할 땐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아이에게 못 해주는 것으로는 정서적인 것과 경제적인 것이 있었다. 그는 “주말마다 아이와 더 잘 놀아주려고 도시락을 싸서 지하철 타고 무료시설 위주로 여기저기 다니고 있다”고 했다. 정부를 비롯한 우리 사회가 한부모가족 지원 방법을 찾으려 더 노력해야 할 것이다.
- 취재 후
- 실질 지원 기대감 “해봐야”…익명 출산 딜레마 “해봤자”(2024. 06. 17 06:30)
- 2024. 06. 17 06:30 사회
- shutlerstock 지난 5월 19일 밤. 김가연씨(18·가명)는 생후 2개월 아이와 단둘이 서울에서 꽤 떨어진 곳에서 기차를 탔다. 그는 청소년 부모이자 한부모다. 그날 서울역에서부터 긴급주택까지 가연씨와 동행했던 유미숙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사무국장은 “날이 어둡고 모르는 길로 가자고 하니까 가연씨 입장에선 무서웠을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아니요. 저는 그냥 감사하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다 알아보고 왔고, 아이랑 어떻게든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거든요.” 지난 5월 31일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가 운영 중인 서울 마포구 내 ‘힐링홈 금순이네’(긴급주택 및 상담공간)에서 만난 가연씨가 말했다. 그는 남자친구와 3년쯤 연애한 후 임신했다. 가연씨는 “서로 아이를 좋아해서 갖자고 했는데 막상 임신하니까 남자친구 태도가 바뀌었다”며 “남자친구 수입이 고정적이지 않았고, 한 번씩 아이를 지우자고 말해 자주 다퉜다”고 했다. 가연씨는 비혼모 지원시설에 들어갈까 고민해 상담도 했는데 당시만 해도 남자친구와 관계가 다시 풀려서 시설엔 가지 않았다. “아이를 일찍 낳고 싶었고,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출산할지 말지 고민은 많이 안 했어요. 솔직히 남자친구가 (아이를) 지우라고 할 때 흔들리긴 했죠. 남자친구가 그런 말을 할 때 ‘이러다 내가 혼자 키우게 될 수도 있겠구나’란 생각은 했던 것 같아요.” 가연씨는 청소년 부모로 등록해 의료비(임신 1회 120만원)를 지원받아 병원을 꾸준히 다녔다. 제왕절개 수술로 출산했는데, 수술비를 마련하기가 어려웠다. 서둘러 출생신고를 하고 부모급여(월 100만원)를 받았다. 기초생활보장제 생계급여도 신청해 받았다. 이렇게 가용 가능한 자원을 찾아 출산까지는 버텼는데, 더 큰 위기가 양육 단계에서 찾아왔다. 남자친구 본가에서 생활하긴 했지만 신생아를 두고 일자리를 구할 순 없었다. 남자친구도 수입이 들쑥날쑥했다. 양가 부모로부터는 생활비나 양육비, 돌봄 도움을 전혀 받지 못했다. 남자친구와 관계가 더 나빠져 아이 생후 한 달쯤 됐을 때 헤어졌다. 갈 곳이 없어진 가연씨는 ‘같이 살자’고 손을 내민 지인들을 따라 타지로 거처를 옮겼다. 그런데 “지인들이 부모급여·생계급여를 ‘생활비로 쓰자’, ‘빌려달라’ 하면서 자꾸 돈이 빠져나갔고, 여기서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연씨는 사단법인 비투비(BtoB)가 운영하는 비혼모 지원 플랫폼인 ‘품’ 애플리케이션(앱)에서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의 긴급주택 서비스를 알게 됐다. 남자친구로부터 양육비는 받지 못하고 있다. ■‘위기임산부 상담·지원체계’ 첫 제도화 지난해 ‘수원 냉장고 영아시신 사건’과 2000명이 넘는 출생 미등록 아동 전수조사 결과 발표를 계기로 ‘출생통보제’(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와 ‘위기임신 지원 및 보호출산제’(위기임신 및 보호출산 지원과 아동 보호에 관한 특별법·이하 특별법)가 각각 국회 문턱을 넘었다. 오는 7월 19일 동시 시행된다. 출생통보제는 의료기관이 출생 사실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통해 알리고 관할 지방자치단체가 출생신고 사실을 최종 확인·보장토록 한 제도다. 그동안 부모에게만 출생신고 의무를 부여해 사각지대가 발생했던 것을 개선한 것이다. 출생신고는 아동의 안전을 보장하고 시민으로서 공적 자원을 누릴 수 있는 각종 권리의 토대가 된다. 다만 미등록 이주민 자녀는 출생통보제 대상에서 빠져 ‘태어난 즉시 이름과 국적을 가질 권리’(유엔아동권리협약 제7조)를 온전히 보장하지는 못한다. 출생통보제 시행으로 ‘병원 밖 출산’이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산모의 신원을 알리지 않고 출산하는 익명 출산제가 대책으로 제시됐다. 그러나 익명 출산이 ‘아동의 부모를 알 권리’를 침해한다며 반대 여론이 일었다. 특별법은 위기임산부에 대한 공적 상담·지원체계를 갖춰 양육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돕고, 보호출산 시엔 아동의 출생증서를 아동권리보장원이 보관해 추후 정보공개권(친생부모 동의 시)을 보장한다는 조항을 넣어 국회 문턱을 넘었다.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와 중앙상담기관인 아동권리보장원은 “보호출산은 최후의 보루”이며 “위기임산부에 대한 촘촘한 상담과 서비스를 통해 원가정 양육을 할 수 있게 지원하는 것이 제도의 취지”라고 설명한다. 지난 5월 말 전국 16개 광역 시·도별로 지역상담기관이 지정됐다. 그간 비혼모 상담·지원을 해온 비혼모 지원시설 등 민간기관(단체)이다. 정부는 또 위기임산부 상담과 긴급 대응을 위한 전용 전화 ‘1308번’을 운영한다. 아동권리보장원은 지난 6월 11~14일 서울에서 지역상담기관 종사자, 시·도 담당 공무원 등 100여 명을 대상으로 워크숍 및 기본교육을 진행했으며 상담 매뉴얼도 배포했다. 청소년 부모이자 한부모인 김가연씨(가명·오른쪽)가 지난 5월 31일 서울 마포구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힐링홈 금순이네에서 ‘자립지원 프로그램’에 대한 설명지를 보고 있다. 김향미 기자 ■위기임산부 상담·지원체계는 어떻게 특별법에 따르면 위기임신 지원 및 보호출산제 대상자는 ‘경제적·심리적·신체적 사유 등으로 인해 출산 및 양육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임산부’다. 지역상담기관은 상담 매뉴얼에 따라 국민기초생활보장법(생계급여 등), 모자보건법(임산부·영유아 건강관리 등), 한부모가족지원법(생계비·교육비 지원 등), 국민건강보험법(임신바우처 등) 등에 근거해 위기임산부에 필요한 각종 지원 사항을 충분히 제공해야 한다. 정부는 위기임산부가 복지제도에 대한 ‘정보 취약층’일 가능성이 크니 접근성을 높여주면 양육을 선택하는 사람이 많아질 것이라 기대한다. 위기임산부들이 이런 복지망에 가닿게 하는 것이 1차적 과제였던 셈이다. 그동안 위기임산부 상담은 민간이 담당해왔다. 서울시나 경기도 등 지자체별로 위기임산부 상담 ‘핫라인’ 창구를 개설했지만, 최근 몇 년 사이의 일이다. 가연씨는 “정부나 지자체에서 어떤 지원을 받으려고 하면 내야 하는 서류가 너무 많고 소득 조건이 까다로워서 신청부터 힘들더라”고 했다. “진짜 당장 급한 사람들이 엄청 많을 텐데 정부 지원들은 신청 후 (선정·지원 때까지) 몇 달씩 ‘기다려라’ 하고요. 정부가 심사 같은 기간을 좀 짧게 하면 좋을 것 같고 제가 들어간 긴급주택처럼 민간에서 그걸 좀 메워주는 것도 필요한 것 같아요.”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의 트라이앵글 프로젝트는 ‘긴급성’에 호응한 지원책들로 구성됐다. 긴급 생계비, 긴급주택 등을 지원한다. 비투비가 2020년 서비스를 시작한 플랫폼 ‘품’은 사용자가 입력한 상황에 따라 필요한 자원을 바로 찾아볼 수 있는 맞춤 정보를 제공한다. 두 단체는 소득, 연령, 거주지 등 조건을 맞추지 못해 복지망 밖으로 ‘탈락’하는 위기임산부를 지원하고자 했다. 위기임산부 자립지원 프로그램도 병행한다. 위기임신 지원 및 보호출산제 시행에 따라 공적 지원 체계도 일부 개선된다. 여성가족부는 이 제도 시행에 맞춰 오는 7월 말부터 위기임산부 누구나 한부모가족복지시설(121곳)에 입소할 수 있도록 기준을 변경한다. 그동안엔 만 24세를 넘는 경우 소득 수준을 따져 입소 여부가 갈렸다. 향후 16개 지역상담기관에서도 위기임산부에 직업훈련, 학업 등을 지원한다. 유미숙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사무국장은 지난 5월 28일 마포구 힐링홈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위기임산부에 정보를 주는 것만으로는 안 되고, 긴급주택 입주와 같은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지원을 병행해 신뢰를 형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비혼모 지원) 시설로 들어가기보다 지역사회에 거주하고 싶어하는 위기임산부들이 있다”며 “우선 긴급주택에서 지내면서 기초생활보장 생계급여가 나올 때까지 3개월은 긴급복지지원으로 생활할 수 있게, 공백없이 지원돼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임대주택 자원을 연계해주고, 심리상담이나 직업 연계도 해줄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2012년부터 현장에서 수백 명의 위기임산부 상담을 해온 유 사무국장은 이들에게서 “청년 빈곤”이라는 공통점을 발견했다. 현금, 주거, 식품 등 물적 지원만으로 위기를 벗어나기 어려운 경우도 많았다. 범죄에 노출·연루된 경우나 경계성 지능인 경우, 미등록 외국인 등은 복지 신청주의가 만든 사각지대에 있는 사례들이라고 한다. 그는 “개인의 사정에 따라서 부채 탕감을 비롯한 재무, 주거, 직업 교육 및 생활·양육 교육까지 여러 분야에서 전문적인 지도와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했다. 그러자면 ‘1년 이상 사례관리’가 필요할 수도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처음 제도를 시행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상담·지원 경험이 있는 기관을 지역상담기관으로 지정했다”며 “지역상담기관에서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어서 지역의 다양한 단체, 자원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해 정책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도 시행 한 달 앞으로···기대·우려 혼재 정부가 예산을 들여 위기임산부 상담·지원체계를 구축해가는 것은 국가 책임성을 강화하는 일이다. ‘출생통보제 도입에 따른 보호출산 제도 운영 방안 연구’(2023)의 책임연구자인 변수정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기자와 주고받은 e메일에서 “‘낙태법’ 위헌 판정 이후 대체입법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또한 한국 문화·정서상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임신했을 때 임신 중지, 입양, 양육 등 어느 선택 하나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서 위기임산부에 대한 공적 지원보다는 민간 상담·지원이 더 많이 이뤄지는 현실”이라고 했다. 변 연구위원은 “지금은 공적 영역에서 위기임산부 상담·지원이 부족하지만 보호출산제 운영을 하면서 지역상담기관을 설치하기 때문에 앞으로는 나아지고 현재 부족한 위기임산부 지원 내용도 보완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유미숙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사무국장이 지난 5월 28일 서울 마포구 ‘힐링홈 금순이네’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보호출산’이 가능해지면서 “익명 출산을 부추길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기저에는 “한국은 한부모가 아이를 양육하기 어려운 사회”, “비혼모에 대한 편견이 강한 사회”라는 인식과 현실이 자리한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연구관이 지난 5월 22일 국회 토론회에서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한부모가족 아동빈곤율이 가장 낮은 덴마크에서는 2021년 기준 일반가족 아동과 한부모가족 아동의 빈곤율 격차는 6.1%포인트다. 한국은 그 격차가 37.7%포인트에 달한다. 유소라씨(22·가명)는 4년 전 출산해 아이를 홀로 양육하고 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오래 사귄 남자친구와의 사이에서 아이가 생겼고, 둘은 아이를 출산해 같이 책임지기로 했다. 소라씨는 임신 말기에 비혼모 지원시설에 들어가 출산했으며 남자친구와는 1년여 후 헤어졌다. 지난 6월 7일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가 지원한 긴급주택에서 만난 소라씨는 “남자친구 집에서 반대가 심했는데 남자친구는 자기 부모와의 갈등이 커지는 것을 잘 못 버텼고, 그러면서 저도 점차 지쳤던 것 같다”며 “남자친구가 헤어진 후 양육비를 3개월 보냈고, 그 이후로는 아예 연락되지 않는다”고 했다. 소라씨는 출산 후 소라씨가 어릴 때 재혼해 별도로 가정을 꾸린 엄마와 같이 생활하게 됐다. 소라씨는 스스로 등록금을 벌어 대학을 졸업했다. 양육과 학업과 경제활동을 동시에 하던 시절 “아등바등 살았다”고 그는 말했다. 취직은 했지만 야간 당직이 돌아오는 일을 하면서 아이를 키우기는 쉽지 않았다. 소라씨는 “엄마에게 아이 돌봄을 전적으로 맡기기 어려웠고, 회사에도 눈치가 보였다”며 “하루는 회사에 아이 때문에 하루 결근하겠다고 말했다가 선임으로부터 엄청 혼이 나기도 했다”고 말했다. 결국 “아이를 잘 키워야 한다는 생각”에 일을 그만뒀다. “제가 정말 독립이 급할 때 주민센터에 전화했더니 ‘도와줄 게 없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긴급주택 같은 지원이 제가 살던 곳엔 없어서 결국 (전남에서) 서울까지 오게 된 거죠. 아무런 연고는 없지만 그래도 아이와 함께 살 공간이 있어서 좋아요.” 그는 지난 4월부터 긴급주택에 입주해 당장 주거비는 아꼈지만 기초생활보장 생계급여와 아동수당 등을 받아 빠듯하게 생활한다. 아이는 어린이집에 다니는데, 정부 지원 보육료 외에도 차량비 등 부대 비용이 든다. 게다가 지난 4년간 독립을 위해 집을 구할 때마다 조금씩 대출을 받는 바람에 빚도 수백만원 있다. 그는 “올여름 빚을 다 갚을 것 같다”며 “그 후엔 일자리도 알아보고 사회생활도 다시 시작해보려 한다”고 했다. 다만 직장을 구해도 아이가 아프거나 긴급한 일이 생길 때 맡길 곳이 없는 것이 걱정이다. 소라씨는 “‘365열린어린이집’(서울시 운영)이 예약제인데 대기가 많아서 이용하기 어렵다던데, 저처럼 아이 맡길 곳이 없는 한부모들을 위한 보육서비스가 더 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허민숙 연구관은 지난 6월 10일 통화에서 “양육을 원하지 않는 여성에게 아이를 양육하도록 하는 것이 여성과 아이 모두에게 과연 이로운가 질문할 수 있고, 아동의 태생에 대해 알권리를 제한하는 제도를 만드는 것에 대한 비판도 나올 수 있다”며 “이 논쟁은 계속될 것이라고 본다”고 했다. 그는 “다만 이 제도가 한부모가족 지원체계를 강화하는 역할을 하도록 우리 사회가 매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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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형중의 정책과 딜레마](35) ‘감세 축소형 민생회복지원금’은 어떨까(2024. 06. 07 16:00)
- 2024. 06. 07 16:00 정치
- 2년 전 주간경향에 ‘정책과 딜레마’라는 연재를 시작하면서 거의 모든 정책에는 장점과 단점이 있으니, 어느 쪽도 쉽게 선택하기 어려운 ‘딜레마’의 관점으로 정책을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부러라도 딜레마에 빠져서 생각해봐야 정책을 제대로 볼 수 있고, 역설적이게도 딜레마를 고려한 정책 결정이 딜레마에서 벗어나는 길을 제시한다고 강조했다. 딜레마에서 벗어나는 중요한 방법으로 제시한 것은 ‘정책 조합(policy mix)’이었다. 하나의 정책이 가진 단점, 한계, 부작용 등을 보완하는 정책을 함께 추진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이런 관점으로 최근 현안인 ‘민생회복지원금’에 대한 새로운 제안을 해보고자 한다. 바로 지난 2년간 윤석열 정부가 추진한 감세를 일부 철폐하고, 그 재원으로 추진하는 ‘감세 축소형 민생회복지원금’이다. 지난 5월 17일 서울 관악구 신사시장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한수빈 기자 윤석열 정부의 감세 규모는 5년 90조원 규모 민생회복지원금은 ‘전 국민에게 25만원을 지역화폐의 형태로 지급하는 정책’으로 더불어민주당이 제22대 국회의 1호 법안으로 추진 중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총선 시기인 지난 3월 24일 발표한 정책으로 이 대표가 5월 29일엔 “(소득계층별) 차등 지원도 수용”하겠다며 입장을 선회했지만, 정부와 여당은 여전히 반대하는 상황이다. 특히 이 정책에 대해 여야의 표면적인 찬반 공방 이외에 제대로 된 공론의 장이 펼쳐지지 못하고 있다. 민생회복지원금을 왜 이 시점에, 왜 전 국민에게, 왜 25만원을, 왜 지역화폐의 형태로 지급해야 하는지, 또 물가를 자극하지는 않을지에 대해 세심한 논의가 뒤따르지 않고 있다. 지금부터 이런 의문들에 대해 하나씩 살펴보겠다. 민생회복지원금이 지금 시점에 필요한 이유는 경제가 어렵기 때문이고, 전체 경제 안에서도 내수 경제가 안 좋기 때문이고, 그중에서도 자영업자들의 다수가 위기 상황에 빠졌기 때문이다. 물론 정부는 1분기 경제성장률이 최근 2년 3개월 만에 최고치인 전 분기 대비 1.3% 성장했기 때문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위한 정부의 추가경정예산 편성의 요건 자체가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가재정법은 제89조에서 재난과 재해, 경기침체, 대량실업 등 대내외 중대한 변화를 추경의 요건으로 삼고 있다. 1분기 경제성장률만 가지고 지금의 경제 상황을 파악해선 곤란하다. 2023년 경제성장률은 1.35%로 한국경제사 70년 가운데 6번째로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이런 저조한 수치는 민간 경제가 침체함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건전재정’을 내세운 소극적 재정 운용으로 정부의 성장기여도가 2023년 0.2%포인트 수준으로 극히 낮았기 때문이다. 이는 이전 보수 정부와도 다른 행보다. 이명박 정부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있던 2008년 정부의 성장기여도를 2.3%포인트로 끌어올렸다. 박근혜 정부도 2015년 전년보다 경기가 위축되자 정부의 성장기여도를 2014년 0.4%포인트에서 2015년 0.8%포인트로 증가시켰다.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경기가 위축될 땐 정부가 위기의 방패막이 돼주고, 경기가 과열될 땐 뜨거운 김을 빼는 역할을 하는 것은 경제 운용의 기본이다. 하지만 그 기본을 윤석열 정부는 지키지 않았다. ‘건전재정이 언제나 옳다’는 이념 때문이었다. 더 큰 문제는 무분별한 감세로 재정조차 불건전해졌다는 점이다. 경기침체와 정부의 감세가 맞물리면서 2023년 국세 세수입(세입예산안 기준)은 정부가 애초 들어올 것이라 예상한 400.5조원에 56.4조원 못 미치는 344.1조원을 기록했다. 올해도 상황은 여전하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해 1~4월 국세 수입은 125.6조원으로 전년 동기간보다 8.4조원 줄었다. 애초 예산안에서 예상한 세수입에서 실제 들어온 금액을 의미하는 ‘세수 진도율’은 34.2%로 대규모 세수 펑크가 발생한 작년(38.9%)보다 낮다. 이런 세 수입의 감소는 경기 위축과 정부 예측의 실패, 대규모 감세라는 세 가지 요인이 두루 작용한 탓이다. 특히 윤석열 정부는 2022년과 2023년 세법 개정안으로 향후 5년간 총 77.8조원(국회 예산정책처 추계)을 감세했다. 정부의 세법 개정안에도 없다가 대통령의 즉흥적 발언으로 추진된 반도체 세액공제율 인상만으로도 5년간 13조원(나라살림연구소·21대 국회 정의당 장혜영 의원실 추계)을 감세했다. 합치면 5년간 90조원 이상을 감세한 것이다. 지난 5월 17일 서울 관악구에 있는 한 상가에 임대 안내 종이가 붙어 있다. 한수빈 기자 자영업자들의 신음, 어디에서 비롯됐나 1분기 경제성장률로 인해 추경 요건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과 달리 내수 경기(내수의 성장기여율은 3분기 연속 마이너스·원계열 기준)는 여전히 침체 상황이고, 지난 2년간 고물가 상황에서 가계의 실질소득은 감소(현 정부 기간 –1.1%포인트 감소)했고, 무엇보다 올해도 예상되는 대규모 세수 펑크를 메우기 위해서라도 추경은 필요한 상황이다. 국회는 예산 심의·확정권이 있기 때문에 정부는 애초의 세수입 예측(세입예산안)과 지출 규모를 수정하는 세입경정 추경안을 제출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민생회복지원금과 같은 정책이 필요한 이유는 자영업 부문이 위험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이는 여러 지표에서 드러난다. 한국은 올해 3월 기준 자영업자 수가 557만명(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으로 집계되는, 자영업 과잉 공급 국가다. 문제는 과잉 공급을 줄일 마땅한 대책이 없다는 것이다. 좋은 일자리가 줄어들고, 은퇴 창업도 여전하다. 그런데 최근의 위기는 구조적 문제 때문만은 아니다. 코로나19 시기에 방역에 협조한 대가로 빚을 떠안았다가 최근 경기 침체와 식재료 가격 인상 등이 겹친 탓이다. 한국지역정보개발원 자료에 따르면 폐업한 서울의 일반음식점은 2020년 1만1633곳에서 2023년 1만4642곳으로 늘었고, 올해 4월까지 벌써 5248곳이다. 자영업자의 채무 상황도 심각하다. 나이스평가정보가 양경숙 전 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개인사업자 대출 인원과 금액 규모가 2019년 말과 비교해 각각 60%, 51% 증가했다. 3개월 이상 상환하지 못한 자영업자의 수도 작년 말 6만1474명에서 올 1분기 7만2815명으로 늘었고, 다중채무자도 증가했다. 노란우산공제 폐업 공제금도 최근 급증세다. 상황이 이렇게 된 시작점엔 정부의 미온적인 코로나19 대응이 있었다. 국제통화기금이 발표한 ‘각국의 코로나19 대응 추가 재정 지출’에서 한국은 2021년 10월까지 GDP(국내총생산) 대비 6.4%를 지출했는데, 이는 선진국 10개국 평균(14.6%)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그때부터 시작된 문제가 켜켜이 쌓여 금리와 물가 인상으로 터진 셈이다. 그렇다면 자영업 지원 정책으로 민생회복지원금은 적절할까. 전 국민이 아닌, 취약계층이나 자영업자들을 선별해 지원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이 방안 모두 여러 장단점이 있고, 이미 코로나19 시기에 1차 재난지원금(전 국민 대상)과 5차 재난지원금(하위 88% 소득계층 대상), 코로나19 손실보상 등으로 경험해본 적도 있다. 전 국민 지원이 손쉽고 신속하지만, 재분배 효과가 약하다. 선별 지원은 소득 자료의 한계(과거 시점의 자료·건강보험 지역가입자의 부과체계 차이 등)를 보완하려면 시간과 비용이 드는 문제가 있다. 소비자에게 지원할 것인가, 자영업자를 지원할 것인가는 선택의 문제이기도 하다. 만일 자영업자에게만 지원하면 상당 부분 부채 상환, 임대료 등에 쓰여 경기 활성화에 미치는 효과는 미미할 가능성이 크다.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비자와 자영업자, 양쪽을 지원하는 효과도 있다. 왜 25만원이냐고 물으신다면··· 각각의 방안이 가진 단점을 보완하는 방법의 하나는 ‘전 국민 지원’과 ‘감세 축소’를 연계하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연간 18조원 규모의 감세를 단행했고, 이중 일부를 철폐한다면 민생회복지원금의 재원 13조원은 충분히 마련할 수 있다. 감세 축소와 연계한다면 재분배 효과도 탁월하다. 5년간 총 73.6조원의 감세 효과가 있는 2022년 세법 개정안의 경우 고소득자와 대기업의 감세 규모가 34.8조원이 넘는다(국회 예산정책처 추계). 세금 감면은 고소득층일수록 더 큰 혜택을 받기 때문에 이를 줄이고 모두에게 지급하면 당연히 재분배 효과가 있고, 선별의 어려움도 없이 신속하게 전 국민에게 지급이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왜 하필 1인당 25만원이냐는 질문에 답변해 보겠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가 민생회복지원금 25만원을 윤석열 정부의 의대 증원 규모 2000명에 빗대 “근거가 없다”고 비판했지만, 25만원은 물가를 자극하지 않는 수준의 규모라는 나름의 근거가 있다. 한 나라가 모든 생산요소를 정상적으로 가동해 인플레이션 없이 달성할 수 있는 생산 수준이라는 ‘잠재 GDP’라는 개념이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추계로는 한국의 잠재 GDP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실질 GDP보다 큰 상황이다. 여러 이유로 달성 가능한 생산수준에 이르지 못하고 있단 의미다. 실질 GDP에서 잠재 GDP를 뺀 수치가 지난해 -0.42, 올해 -0.25로 추산된다. 이는 국가 GDP에 견줘볼 때 지난해 10조원 이상, 올해엔 5조원 이상의 생산이 증가해도 인플레이션의 우려가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 1인당 25만원을 지급하기 위한 13조원의 재정이 새로 풀릴 경우 추가 소비승수는 연구마다 다르지만 20~40%로 보고된다. 이 경우 2.6조~5.2조원의 추가 소비가 이뤄진다. 최근 물가의 여러 지표를 감안해도 한국 경제가 감당할 만한 추가 소비인 셈이다. 정치의 목적은 당연히 ‘사람들의 삶’(민생)을 개선하는 것이다. 심도 있는 정책 논의가 이어져 민생회복지원금이든, 혹은 같은 취지의 정책이 조속히 시행됐으면 한다. 아울러 소중한 지면을 할애해 지난 2년간 정책에 대해 심도 있는 고민을 하게 해준 주간경향에 감사드린다. ※이번 호를 끝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 윤형중의 정책과 딜레마
- 장애 아들 40년 돌봄의 ‘비극’…공적 지원 부족 탓에 악순환(2024. 05. 20 06:00)
- 2024. 05. 20 06:00 사회
- 2022년 5월 장애인 가정에서 부모가 장애인 자녀를 살해하는 사건이 반복되자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서울 용산구 삼각지역에 발달·중증장애인 참사 분향소를 마련했다. 한 시민이 참사 분향소에 헌화하고 있다. / 한수빈 기자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반성하고 참회합니다. 반성하고 참회합니다. 반성하고 참회합니다. 반성하고 참회합니다. 반성하고 참회합니다. 반성하고 참회합니다.” 카키색 수의를 입은 초로의 남성은 지난 5월 3일 대구지방법원 11호 법정에서 최후 진술을 했다. ‘반성과 참회’를 되풀이할 때마다 그의 목소리는 커졌다. 마지막은 울음이 섞인 절규에 가까웠다. A씨(63)는 지난해 10월 대구의 자택에서 서른아홉 살 아들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사건 현장에는 아들의 시신과 함께 손발에 자상을 입고 쓰러진 A씨가 있었다. 함께 발견된 유서에는 A씨가 생전의 일을 정리해 달라고 당부하는 내용이 담겼다. 아들과 함께 “천사가 있는 하늘로 가자(A씨 법정 진술)”는 계획과 달리 A씨는 그날 죽지 못했다. 근 40년, A씨와 아들은 늘 한 몸처럼 움직였다. 아들은 1984년 지적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 거동에 불편함은 없었지만 다섯 살이 넘어서도 다섯 살 수준 이상의 대화는 불가능했다. 아들은 몸이 약했다. 간질과 저혈압으로 종종 쓰러졌고, 목 넘김이 좋지 않아 먹는 걸 싫어했다. 밥 먹을 때도, 잘 때도 부모의 보살핌이 필요했다. 아내는 학교 급식실 조리사로 일하면서 생계를 책임졌고, A씨가 아들을 돌봤다. 아들이 자라면서 돌봄의 난도는 갈수록 높아졌다. 아들의 덩치는 커졌지만 A씨가 돌봐야 할 시간은 줄지 않았다. 아들은 초등학교만 특수학교로 다녔을 뿐,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다니지 않았다. 혼자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았던 아들의 남는 시간은 오롯이 A씨가 책임져야 했다. 아들이 스무 살이 되던 해, A씨는 그간의 돌봄 부담에서 한숨 돌릴 수 있게 됐다. 아들을 시설에 맡기기로 했고, 아들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시설에 머물렀다. A씨는 화물차 운전을 시작했다. 주말에는 아들을 집으로 데려와 돌봤다. 시설 생활 10년째 되던 해, 아들은 뇌출혈로 쓰러져 두 달 동안 깨어나지 못했다. 간신히 의식을 회복한 아들은 뇌병변 1급 진단을 받았다. 아들은 이제 혼자서는 움직일 수도 없었다. 이후의 돌봄도 A씨의 몫이었다. 아내는 이 무렵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을 시작해 평일에는 직장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주말에만 집에 돌아왔다. 아내는 장기간 고된 노동으로 양 무릎이 퇴행성관절염 4기 진단을 받아 키가 큰 아들을 돌보기 어려웠다. A씨는 아들을 재활병원에 입원시키고 재활에 몰두했다. 일을 그만두고 24시간 병원에 머물면서 A씨의 심신도 많이 상했다. 병실의 보호자 간이침대에 머물다 보니 허리가 아팠다. 바깥출입이 줄다 보니 우울증도 생겼다. 이때 생긴 우울증은 이후 그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누워서만 생활하던 아들은 욕창이 생겨 울기도 많이 울었다. 거듭된 재활 끝에 아들은 왼손과 왼발을 조금 움직일 수 있게 됐다. 입원 생활 6년 만에 A씨와 아들은 집으로 돌아왔다. 지난 5월 3일 A씨의 결심 공판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아내 B씨(63)는 “(아들은) 평소 생활을 모두 남편과 함께했습니다. 남편과 함께 병원에 가고, 교회도 같이 가고, 버스도 같이 태워주고, 재활병원도 같이 가고, 온종일 남편이 데리고 다녔습니다. 의사소통은 ‘맞나, 안 맞나’ 물어보면 대답만 하는 정도였습니다. 신기하게도 아빠하고는 소통이 됐습니다”라고 했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이 가족을 뒤흔든 것은 2021년 3월 A씨의 교통사고였다. 이 사고로 A씨는 발가락이 절단됐고 근육파열과 신경손상을 입었다. 신경이 손상된 A씨는 작은 자극에도 극심한 통증을 느끼는 희소병인 ‘복합부위 통증 증후군(CRPS)’ 진단을 받았다. 진통제 없이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했고 치료를 받아야 했다. 아들의 돌봄 공백은 불가피했다. 지인이 위기에 처한 가족에게 장애인의 일상을 지원하는 장애인 활동지원사업이 있다고 귀띔했다. 활동지원을 신청했고, 아들은 집으로 찾아오는 활동지원사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다만 지원을 받는 시간은 월 90시간, 하루 3~5시간에 불과했다. A씨는 활동지원사가 오는 시간에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고, 그 외의 시간엔 아들을 돌봤다.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왼팔을 들어 올릴 수 없었지만, 키 179㎝·몸무게 50㎏의 아들을 “눕히는 일, 일으키는 일, 대변 받는 일을 다 했다(B씨의 법정 증언).”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부자 사이는 돈독했다고 한다. 아들의 활동지원사로 일했던 C씨는 기자와 통화에서 “두 분 사이가 엄청 좋았다. 이 정도로까지 챙겨주는 아버님은 못 봤다. 아버님이 병원 갈 때 외에는 늘 붙어 있었고, 병원 가서도 아드님이 어떻게 있나 확인하고 그랬다”고 했다. 그는 “○○형(A씨 아들)은 아버님하고 어머님하고 같이 있으면 좋아했다. 밖에 산책하는 것도 좋아했고, 예쁜 벽화 보는 것, 지나가는 사람 구경하는 것, 칭찬해주는 걸 좋아했다. 좋아하는 걸 하면 웃었다. 티가 났다”고 했다. 아내인 B씨도 통화에서 “(남편이) 힘든 내색을 안 했다. 수시로 뽀뽀하고 아를 억수로 좋아했다”고 했다. 상황은 오래지 않아 최악으로 치달았다. 교통사고 치료비를 지원하던 보험사는 지난해 8월 A씨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보험사는 더는 A씨의 치료비를 부담할 수 없다고 했다. 그해 10월 법원에서 조정 기일이 잡혔는데, 보험사 측은 ‘대형 보험사와 소송해봐야 못 이긴다’고 했다 한다. A씨는 어쩔 수 없이 조정을 받아들였다. 보험사가 제시한 합의금은 50만원이었다. 이후 보험사는 이미 지급한 치료비와 약제비 1300만원을 반환하라는 소송까지 추가로 제기했다. 우울증이 있던 A씨는 크게 낙담했다고 한다. B씨는 법정에서 “(조정을 받아들이고) 집에 와서 줄담배를 계속 피웠습니다. 힘들어했습니다”라고 했다. 비극은 그로부터 일주일 만에 벌어졌다. 자동차를 팔고 조용히 신변을 정리한 A씨는 유서를 썼다. 아들이 스무 살이 되던 해부터 10년간 아들을 돌봐준 복지관에 재산 일부를 기부해 달라는 내용 등이 담겼다. 사건 당일 오후 7시쯤 집에 돌아온 B씨는 이미 숨을 거둔 아들과 쓰러져 있는 남편을 발견했다. 유족인 동시에 가해자의 아내인 B씨는 법정에서 “이 사람(A씨) 정말로 우리 아 키우면서 애 많이 먹었습니다.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재활치료를 계속 맡겨서 미안한 마음입니다. 너무 정말로, 너무너무 힘들게 아를 키웠습니다. 저는 아파가지고 아를 돌볼 수 없었습니다. 자기 죽으면 이 아를 키울 수 없다는 그런 마음이 컸던 것 같습니다. 불쌍하게 살았던 사람입니다”라며 울음을 터뜨렸다. A씨는 피고인석 책상 위에 올린 두 팔에 고개를 파묻었다. 검사는 법정에서 “피고인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40년간 아들을 돌봤다. 희생과 노력이 안타깝다. 그러나 생명은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다. 사회에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이라는 것이 있다”며 A씨에게 징역 5년을 구형했다. 이 사건 선고는 오는 5월 31일 내려진다. 돌봄에 매몰된 부모들 지난해 9월 전남 영암군 영암읍 한 주택에서 50대 부부와 장애를 앓고 있는 20대 아들 3명 등 일가족 5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이 사건 현장으로 이어지는 길목을 통제하고 있다. 연합뉴스 보호자가 장애가 있는 가족을 오랜 시간 돌보다 살해하는 참극이 수없이 반복되고 있다. A씨의 사건 한 달 전인 지난해 9월에는 전남 영암에서 장애를 가진 20대 아들 3명과 50대 부부가 숨진 채 발견됐다. 같은 해 11월에는 서울 은평구에서 30대 어머니가 장애가 있는 여덟 살 자녀를 살해하고 자살하려다 실패했다. 올해 2월에는 서울 서대문구에서 40대 아버지가 장애가 있는 초등학생 딸과 함께 숨진 채 발견됐고, 지난 5월 7일에는 충북 청주에서 모두 지적장애가 있던 50대 어머니와 40대 남매가 숨진 채 발견됐다. 숨 막히게 반복되는 사건은 어제오늘 일도 아니다. 2022년 9월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는 한국 정부의 장애인권리협약 2·3차 국가보고서를 심의한 뒤 우리 정부에 전달한 최종견해에서 “장애인의 부모가 자녀를 살해하고 자살하는 사례 등을 매우 우려한다”고 했다. 잔혹한 범죄다. 그러나 사례들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범죄자 개인에게만 책임을 돌릴 수 없는 일면도 존재한다. 가해자들은 공통으로 장기간 돌봄을 전담해왔다. 시간이 지나도 돌봄 부담은 줄지 않았고, 그 끝도 가늠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대부분 24시간 돌봄에 매진하면서 사회적으로 단절되고, 우울증을 경험했다. 불안정한 심리 상태에 놓인 보호자들은 자살을 결심하게 하는 어떤 사건을 겪고 범행을 저지르는 양상을 보였다. 자녀의 죽음이 목적이 아니라, 자신이 죽기 위해서는 자녀의 죽음이 선행돼야 한다고 믿는 셈이다. 범행을 저지른 보호자들은 ‘내가 죽으면 돌볼 사람이 없다’는 판단을 했다. 다른 가족뿐 아니라 사회적인 지원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얘기다. 장애인 단체가 반복되는 비극적 죽음을 “사회적 타살”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실제 2019년 8월 울산에서 일어난 사건은 비슷한 경로를 그린다. 30대 어머니가 자폐성 발달장애를 가진 아홉 살 딸을 전업으로 돌보다 살해했다. 자신도 자살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이 어머니는 사건 2년 전부터 우울증을 앓았다. 2019년 초 시어머니가 교통사고로 사망하면서 충격을 받은 남편이 공황장애로 입원했고, 아내의 돌봄 부담·생활고가 가중됐다. 그리고 몇 달 만에 범행을 저질렀다. 그는 범행 후 병원에서 “나 혼자 가면 안 되니까…. 같이 데려가려고…. 케어할 사람이 없으니까…”라고 했다. 2022년 5월 인천에서는 60대 어머니가 서른여덟 살 딸을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어머니는 날 때부터 뇌전증과 지적장애가 있어 의사소통이 어렵고 대소변 처리를 못 하는 딸을 40년 가까이 돌봤다. 그해 1월 딸은 대장암 3기 진단을 받았고, 항암치료로 고통스러워하는 딸을 지켜보던 어머니는 심각한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그는 형사재판에서 “버틸 힘이 없었고, 내가 죽으면 딸은 누가 돌볼까 걱정돼 여기서 끝내자는 생각이었다”고 했다. 재판부는 “딸의 생명을 처분하거나 결정할 권리는 없다”면서도 “장애인을 돌보는 가족들은 국가나 사회 지원이 부족한 상태에서 오롯이 책임을 지고 있고, 이번 사건도 피고인 탓으로만 돌리기 어렵다”고 했다. 가족 돌봄 강제하는 제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들이 지난 4월 18일 서울 영등포구 63컨벤션센터 인근에서 제23회 장애인차별철폐의 날 기념식을 열고 있다. 연단에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 구축’을 촉구하는 띠가 걸려 있다. 정효진 기자 사건이 반복될 때마다 공적 지원의 부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4월 30일 발표한 ‘2023년 장애인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일상생활을 혼자 할 수 없어 지원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장애인은 35.3%로 조사됐다. 장애인 활동지원사업, 노인 장기요양보험 등 정부가 운영하는 장애인 복지서비스를 이용한 경험이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16%에 그쳤다. 복지서비스의 전달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고 있거나, 지원이 제한적으로 이뤄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일상생활에서 장애인의 주된 지원자는 가족 구성인 경우가 82.1%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공적 서비스 제공자가 주된 지원자인 경우는 13.8%에 그쳤다. 공적 지원자 중에서는 장애가 있는 고령의 노인들을 돌보는 요양보호사가 9.7%로 많았고, 장애인의 일상을 돕는 활동지원사는 3.4%에 그쳤다. 연구자들은 장애인 가족의 돌봄 전담이 사회 구조적으로 사실상 강제됐다고 본다. 이민경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장애인정책연구센터장은 “한국에서 장애인을 주로 가족이 돌보는 경향성을 유교문화권의 가족주의와 연관 지어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문화권이 다른 그리스나 남유럽에서도 가족 안에서 장애인 돌봄이 이뤄지는 현상이 있다. 이들 국가에서는 공적 지원이 부족하거나 공적 지원에 대한 신뢰도가 낮은 것이 주된 원인이었다. 우리 사회의 가족 돌봄 경향도 문화나 내재적인 성향 때문이 아니라 공적 지원의 부족이나 지원체계에 대한 신뢰도 부족을 주된 원인으로 봐야 한다. 돕는 제도가 있어도 장애인을 믿고 맡길 수 없으면 결과적으로 가족이 안고 가는 경향이 있다. 제도를 이용해봐도 안 되니까 ‘내가 돌볼 수밖에 없구나’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올해 보건복지부의 장애인 복지 관련 예산은 지난해보다 5000억원가량 증액된 5조원 정도다. 이중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지원하고 가족의 돌봄 부담을 경감하는 장애인 활동지원사업이 2조2800억원으로 절반가량을 차지한다. 이 사업 예산은 지난해보다 3000억원가량 증액돼 처음으로 2조원대를 넘어섰다. 보건복지부는 올해 이 사업을 통해 지원받는 사람이 지난해보다 8700명 늘어난 12만3700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그러나 장애인 단체들은 장애인을 일대일로 지원하는 활동지원사의 최저임금 상승분이 반영돼 예산이 늘었을 뿐, 대상자와 지원 시간은 크게 늘지 않으리라고 본다. 게다가 올해 9월부터는 상이국가유공자들도 이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장애인 복지 명목으로 예산을 증액했지만, 실제 증가분은 보훈사업에 사용될 가능성도 크다. 지원을 받는 대상자의 숫자 자체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2023년 장애인 실태조사에서 ‘일상생활 대부분에, 또는 거의 모든 일에 타인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응답은 12.3%로 집계됐다. 단순 계산하면 등록장애인 260만명 중 30만명가량은 타인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중증 장애인이라는 얘기다. 장애인 가족에게는 제도 이용 신청부터 대상자 심사, 바우처를 지급받기까지의 과정이 모두 쉽지 않다. 대부분이 예산의 부족으로 빚어지는 문제다. 당사자의 신청이 있을 때만 제도 이용이 가능한 ‘신청주의’로 운영되는 탓에 제도 자체를 모르는 장애인 가족도 적지 않다. 경기도가 지난 1월 30일 발표한 ‘최중증 발달장애인 24시간 돌봄 실태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19.1%는 공적 돌봄서비스가 있는지를 몰라서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당장 A씨 가족 역시 지인의 소개로 2021년 5월에야 장애인 활동지원사업을 신청할 수 있었다. 제도 시행 10년 만에 처음으로 제도를 알게 된 것이다. 충분치 못한 예산은 심사 과정도 까다롭게 만들었다. 이용자가 신청하면 국민연금공단에서 장애인과 보호자를 대상으로 면담조사를 진행한다. 가구원 구성과 가족의 사회생활 여부를 조사하고, 목욕·배변·음식물 넘기기·대중교통 이용 등 21개 항목에 대해 어느 정도 지원이 필요한지를 조사한다. 독거가구나 취약가구일 경우, 가구원들이 모두 사회생활을 하는 경우 가점이 주어진다. 그러나 가구원 중 한 명이 사회생활을 하지 않고 돌봄에 전담하는 경우는 가점이 없어 충분한 지원을 받지 못할 수 있다. 장기간 돌봄으로 심신이 위태로운 지경에 놓인 보호자들, 잠깐의 휴식이 필요한 이들이 지원 후순위로 밀리게 된다는 얘기다. 예컨대 A씨 아들은 지적장애와 뇌병변 장애가 결합한 최중증 중복 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 월 90시간의 지원만 받을 수 있었다. 활동지원사업은 월 480시간을 지원받을 수 있는 1구간부터 월 60시간이 지원되는 15구간까지 15단계가 존재한다. A씨 아들은 끝에서 두 번째인 14구간에 해당했다. A씨 가족은 장애 정도보다 적은 시간이 지원된 이유도 뚜렷이 알지 못했다. 아내 B씨는 “우리도 (시간을) 더 달라고 했는데 안 줬다. 알 만한 사람한테도 물어봤는데 ‘원래 잘 안 준다’는 얘기만 들었다”고 했다. 장애인 부모들은 입을 모아 지원 시간 부족을 지적한다. 더불어민주당 강선우 의원실과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2022년 발달장애인 가족 보호자 433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하루 12시간 이상의 돌봄 지원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53%에 달한 반면 실제 ‘하루 12시간 이상의 활동지원을 받고 있다’는 응답은 1%에 그쳤다. 부족한 돈, 부끄러운 인식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제도 운용상의 문제도 있다. 이 사업은 장애 당사자를 돌보겠다는 활동지원사가 있어야 할 수 있다. 그런데 장애 정도가 중증이면 지원자를 구하는 데 어려움이 따른다. 일반 장애인보다 상대적으로 노동강도가 높아 지원자들이 기피하기 때문이다. 장애인 보호자가 직접 사람을 구해 활동지원사로 등록시키는 때도 있다. 50대 김모씨는 대구에서 뇌병변 1급 장애와 지적장애가 있는 열여덟 살 아들을 전담해서 돌본다. 현재는 월 250시간의 활동지원을 받고 있지만, 처음 이 제도를 이용할 때만 해도 사람을 구하는 데 애를 먹었다. 김씨는 “신생아처럼 위루관(입으로 음식 섭취가 어려운 환자의 영양공급을 위해 위장에 직접 연결한 관)으로 먹이고, 기저귀를 수시로 갈아주는 일도 하루 이틀이 쉽지 그걸 계속한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다. 처음에 한 분을 구했는데 일주일 하시더니 허리 아파서 안 되겠다고 그만두셨고, 그다음 분은 한 달 하시더니 손목이랑 무릎이 상했다고 그만두셨다”고 했다. 활동지원을 받는 시간에 김씨는 운동을 한다. 안아주는 것을 좋아하는 아들을 더 잘 돌보기 위해서다. 그는 “밖에 나와서도 활동지원 선생님한테 전화 오면 뛰어갈 준비를 항상 하고 있다. 집 밖으로만 나오면 발걸음이 빨라지고 직업병 아닌 직업병처럼 시계를 계속 쳐다본다. ‘이 시간엔 아들한테 뭐 해줘야 하는데’ 하면서. 아들이 경련을 많이 해서 하룻밤에도 4~5번씩 깬다. 늘 몽롱하다. 활동지원 시간이 좀더 길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인력난이 심각한 지역에서는 활동지원사를 구하기가 더 어렵다. 예컨대 충북 음성군의 등록장애인은 지난 4월 기준 7251명인데, 활동지원사업을 신청해 등급을 받은 사람은 183명이다. 이중 활동지원사업에 본인부담금을 내 실제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고 추정할 수 있는 사람은 127명이다. 신청자도 적고 서비스 이용자는 더 적다. 김신애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중복장애특별위원장은 경북 울진군에서 스물일곱 살 딸과 함께 산다. 딸은 뇌병변 장애와 난치성 뇌전증이 있다. 하루에도 수차례 경련을 일으킨다. 김 위원장이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딸은 월 340시간의 활동지원을 받고 있다. 딸을 돕는 활동지원사 2명은 모두 75세의 고령이다. 도시의 경우 70세 이하로 활동지원사의 연령제한을 두고 있지만, 지역은 인력난으로 인해 연령제한을 상향했다. 김 위원장은 오랜 시간 딸을 돌봐온 활동지원사들의 은퇴 이후를 걱정하고 있다. 그는 “두 분이 오랫동안 딸을 봐주시면서 이제는 경련이나 돌발상황이 일어났을 때도 능숙하게 대처를 하신다. 이분들이 일을 못 하게 되면 문제가 생길 것 같다. 울진군에 대체할 사람이 없다. 딸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모두 겪으려면 몇 년이 걸린다. 이분들이 계실 때 대체인력을 구해서 같이 일하게 해야 하지만 사람이 없으니까 할 수가 없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현재도 퇴근 후 딸아이의 침상을 지키는 등 돌봄에 매진하고 있다. 활동지원사를 구하지 못하면 돌봄 부담은 더 가중될 수밖에 없다. 활동지원사가 좋은 일자리가 된다면 해결할 수 있지만 결국은 또 돈이 문제가 된다. 장애 유형에 따라 간병과 돌봄의 방식이 다른 탓에 활동지원사에게는 일정 수준의 전문성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는 40시간의 교육만 이수하면 누구나 활동지원사가 될 수 있다. 김 위원장 자녀의 사례에서 보듯, 장기근속을 통해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전문성이 쌓이는 특성이 있지만 바우처 사업인 탓에 호봉은 인정되지 않는다. 열악한 제도만 탓할 문제일까. 정치는 결국 사회적인 가치에 따라 자원을 배분하는 과정이다. 열악한 정책적 지원은 장애인을 사회에서 배제하는 사회상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김 위원장은 “2018년에 스웨덴에 가서 충격을 받았다. 장애인에게 주거를 지원하는데 뇌병변 장애인에게는 다른 장애보다 넓은 집을 제공한다.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하니까. 간호인력도, 활동지원인력도 제공되고, 필수로 몇 시간은 햇볕을 쬐어야 하니 너른 마당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비장애인도 상상할 수 없는 집이다. 스웨덴 사람들은 장애인과 같이 살기 위해 세금을 더 내는 걸 감수한 것이다. 내가 내 돈 내고 지하철을 타는데 장애인 단체가 이동권 보장 시위를 해서 열차가 지연되면 민원을 넣는 비장애인 중심사회와는 다르다. 시골에 사는 평범한 엄마였다가 20년 전부터 딸을 데리고 장애인 권리 보장을 위한 투쟁을 했다. 슬픈 건 그때보다 지금이 더 힘들다는 점이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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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유찬의 실용재정](39) 재난지원금보다 중요한 것(2024. 05. 10 16:00)
- 2024. 05. 10 16:00 경제
-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지난 4월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회담 종료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4월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만남에서 이 대표는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의 필요성을 꺼냈다고 한다. 소요예산을 13조원으로 추산하면서 물가 상승으로 힘들어하는 서민들이 많은 만큼 추경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은 “현재 편성된 소상공인 지원 예산을 잘 집행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전 국민 현금지원에 대해 여론이 부정적이고 사회적 약자를 표적화해서 지원하는 것이 재정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현재 경제 상황은 단기적 경기사이클에서 약간 숨통이 트이는 듯한 국면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을 0.4%포인트 상향해 2.6%로 수정했다. 소비자물가상승률은 0.1%포인트 낮춘 2.6%로 잡았다. OECD의 수정 전망은 한국은행이 발표한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전기 대비 1.3% 성장한 것에 상응한다. 기획재정부는 1분기 한국 경제가 성장경로에 들어왔다고 평가했다. 반도체 수요 회복에 따라 수출이 늘면서 미약했던 내수가 하반기 이후 함께 회복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수출증가가 하반기 내수를 회복시켜줄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 수출 경기와 내수와의 연결고리가 갈수록 약해지고 있다. 수출품의 국내 부가가치 창출 비율이 낮아지고 있어서다. 그래도 수출이 회복된다면 전국민재난지원금을 배포할 정도의 시급한 국면은 아니라고 판단할 수 있다. ■ 한국 경제, 다층·구조적 위기 직면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정작 중요한 문제는 들여다보지도 않고 있다. 한국을 둘러싼 다층적인 구조적 위기의 문제다. 한국 경제는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위기 중에 있다. 기후위기와 에너지전환에 대해 한국 정부는 제대로 된 국가전략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경제·사회적으로는 소득과 자산의 양극화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금융완화정책과 이에 기인한 자산 버블(거품)의 영향이 민생위기와 주거 불안 등의 모습으로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경제 성장잠재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시기와 원천을 예측하기 어려운 단기적 위기의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가계부채로 인한 국내발 금융위기의 가능성도 상존한다. 미국에 경기침체가 임박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달러나 미국 국채의 국제적 신뢰도 저하가 일으킬 수 있는 금융시장의 파급 효과는 그 파괴성의 규모를 가늠하기조차 힘들다. 한국의 수출주도형 경제모형 문제도 심각하다. 수출 의존 비중이 높은 경우 대외 경제 여건 변화에 따라 부침이 커 안정적인 경제 운영이 어렵다. 몇몇 주력 업종에 의존하는 수출주도형 경제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반도체나 2차전지 같은 한국의 주력업종에 대해 경제 규모가 큰 모든 국가가 자국 내 생산을 유치하기 위해 사활을 걸고 있다. 세계 경제의 변화된 구조로 인해 몇몇 주력 종목의 수출에 의존해 경제를 운영하는 한국의 방식은 위험하다. 한 분야에 치우친 산업발전은 커다란 위험으로 작용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기후위기 대응 국가전략의 수립과 단계적 실행, 불평등 위기 극복을 위한 사회안전망 구축, 수출주도형 경제모델의 극복을 포함한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대응책이 필요하다. 동시에 오래갈 수 있는 심각한 경제 침체기에 한국사회의 소득 취약계층에 대한 효율적인 긴급 구조책도 준비해야 한다. 심각한 경제침체가 계속되면 인플레이션이나 국가부채를 걱정할 단계가 아닐 것이다. 코로나19 시기처럼 모든 것을 제치고 어려운 상황에 있는 사람들을 구제하는 것이 우선된다. 이런 시기가 되면 재난지원금 수십만원을 1회 배분하는 것으로 상황이 끝나지 않는다. 매달 그 두세 배의 금액을 1년 정도 제공해야 한다면 전 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을 제공한다는 것은 재정적으로 생각하기 힘들다. 그 때문에 지금 바로 해야 하는 일은 진짜 어려운 사람들을 가려내 지원할 수 있는 선별적 체계를 갖추는 것이다. 한국은 아직 그런 시스템이 없다. ■ 선별적 재난지원 시스템 구축 시급 코로나19 시기 미국은 어려운 사람들을 가려내 지원할 수 있는 선별적 체계를 갖추지 못했기에 전 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을 배분했다. 이와 달리 독일은 고용보험체계를 이용해 지원이 필요한 이들을 파악하고 재난지원금을 선별적으로 지급했다. 대부분의 노동자는 재택근무 등을 통해 근무하며 정상적인 급여를 받아 이들에게는 재난지원금을 지급할 필요가 없었다. 늘어난 실업자와 근무시간을 단축한 노동자에 대한 지원으로 고용보험 재정이 곤란을 겪게 돼 독일 정부는 필요한 만큼 고용보험에 재정지원을 한 것이다. 추가로 과세 당국의 자료를 통해 사업자들에 대한 재정 및 금융지원도 있었다. 전 국민에 대한 지원에 비해 이런 시스템을 통해 재난지원이 필요한 이들을 파악하고 선별적으로 지급하는 방식이 재원 투입 규모가 작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더 깊은 지원을 할 수 있다. 조세체계가 종합소득세 체계를 완비하고 있고 이 체계에 의해 모든 이들의 소득이 실시간으로 파악된다면, 이 체계는 납세자들에 대한 과세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고 생계를 유지하기에 소득이 부족한 사람에 대한 파악도 실시간으로 할 수 있다. 실시간은 1~2개월의 격차를 두는 정도를 뜻한다. 어떤 사람의 2024년 5월 소득이 최소한의 생계유지에 부족한 수준이라는 것을 국세통합전산망에서 같은 해 7월경에는 포착한다는 것이다. 이런 시스템을 갖고 있다면 정부는 재난지원금 지급이 필요한 경제위기 시기에 지원이 시급한 사람들에게 선별적으로 재난지원금을 지급할 수 있다. 그런데 한국 국세청은 아직 그런 실시간 소득 파악 시스템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대안으로는 고용보험 시스템을 생각해볼 수 있다. 모든 노동자가 고용보험에 가입된 경우 고용보험 시스템을 통해 재난지원금 배분이 가능하다. 문제는 한국에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가 많다는 점이다. 이들은 법적으로 근로자 신분이 아니지만 다른 사람의 사업을 위해 노무를 제공하고 사업주로부터 일정한 대가를 받기로 한 노무 제공자로서 근로자 성격이 뚜렷한 사람들이다. 보험설계사 등 14개 적용대상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로,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2020년 704만4000명 정도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전국민고용보험이라는 이름으로 이 특고종사자들을 고용보험에 포괄시키기 위해 노력했으나 국회에서 입법화에 성공하지 못했다. 현재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실시간 소득 파악과 전국민고용보험을 제도적으로 마무리 짓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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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원 줄고 유가 널뛰고 농민은 ‘한숨’(2023. 11. 24 16:40)
- 2023. 11. 24 16:40 경제
- 원자재 가격 급등에 소득 줄어…에너지 절감 기술 확대해야 국민과 함께하는 농민의길 회원들이 지난 4월 24일 국회 앞에서 열린 윤석열 정권 거부 및 양곡관리법 전면개정 촉구 농민대표자회의에서 쌀 수입 중단과 양곡관리법 전면 개정 등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성동훈 기자 ‘949만원’. 지난해 농가당 영농활동 소득이다. 원유와 곡물 등 국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소득이 쪼그라들었다. 소득 감소는 농촌의 불평등과 빈곤까지 키운다. 농민들은 생산비 부담을 호소한다. 전문가들은 국제 원자재 시장이 요동칠 때 농가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대안으로 에너지 절감 기술의 보급과 확대, 신재생에너지 활용 등이 제시된다. 소득 줄고 생산비 부담 커지는 농가 지난해 농가의 평균 소득 4615만원 중 농업소득은 949만원이다. 전년 1296만원에서 348만원(-26.8%) 줄었다. 관련 통계가 작성된 1962년 이래 최대 감소 폭이다. 지난해 농업소득이 대폭 감소한 것은 국내외 악재가 한꺼번에 작용한 탓이다. 김태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작년엔 국내적으로 쌀과 한우 가격이 폭락하고, 원유와 곡물 등 국제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생산비 부담이 크게 늘면서 농업소득이 감소했다”고 말했다. 농업소득은 농업총수입에서 농업경영비(비료·사료 비용 등 생산비)를 뺀 것이다. 지난해 농업총수입은 쌀의 산지 가격 하락 등 영향으로 전년(3720만원)보다 7%가량 줄어든 3460만원으로 집계됐다. 반면 농업경영비는 전년(2423만원)보다 3.7% 상승한 2511만원이었다. 역대 최고치다. 농가소득 중 농업소득이 차지하는 비율도 크게 줄었다. 농업소득 비중은 2018년 30.7%에서 2022년 20.6%로 10.1%포인트 하락했다. 농업소득 감소로 줄어든 전체 농가소득은 부업과 같은 농외소득이나 공적 연금소득, 공익직불제 등과 같은 정부의 이전소득으로 메우고 있는 것이 농촌의 현실이다. 소득 감소는 불평등도와 빈곤율 심화로 이어졌다. 농촌경제연구원이 지난 11월 1일 내놓은 ‘2018~2022년 농가경제 변화 실태와 시사점’ 보고서를 보면 농가 유형별 소득분포에서 소득의 불평등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2021년 0.389에서 지난해 0.395로 상승했다. 농업소득이 줄면서 농가소득 편차가 커진 이유에서다. 통상 지니계수 값이 0.4 이상이면 소득 불평등도가 심각한 것으로 간주된다. 농촌의 지니계수는 과거 0.4 이상을 보였으나 2020년 들어 0.4 이하로 줄었다. 당시 첫 실시된 공익직불제와 코로나19 시기 지급된 각종 보조금 등 영향으로 소득 불평등이 완화된 영향이 크다고 보고서는 적었다. 빈곤율도 마찬가지다. 전체 농가 빈곤율은 2015년 9.0%에서 2020년 재난지원금 지원, 소농직불금 지급 등 이전소득이 증가하면서 6.4%로 하락했으나, 지난해는 농업소득 감소로 인해 7.8%로 다시 상승했다. 농촌 고령인구도 2018년 63%에서 2022년 76%로 크게 늘었다. 보고서는 현재 고령화 추세를 감안하면 향후 1차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들이 영농에서 은퇴하는 시점이 도래할 때 농업 생산 분야에 심각한 충격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지난해 역대급 규모를 보인 생산비 부담은 올해도 별반 다르지 않다. 특히 최근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 등으로 국제유가 시장의 불확실성이 크다. 국제유가는 올 1월 평균 80.42달러(두바이유·1배럴당)에서 10월 89.75달러 수준을 보이고 있다. 국제유가 변동에 밀접하면서 비료의 주요 원료로 쓰이는 요소와 암모니아의 국제 가격은 올 여름 이후 다시 우상향하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비료용 요소 수입 단가(t당)는 지난 7월 387달러에서 9월 409달러로 올랐다. 국제 곡물 시장도 비슷한 흐름이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발표한 지난 10월 세계식량가격지수는 120.6으로 전월(121.3)보다 0.5% 내렸지만, 여전히 평균 가격(2014∼2016년 평균값 100)을 크게 웃돈다. 환율 상승도 농가 생산비용 측면에서 악재다. 2021년 8월 평균 1123원 수준이던 원/달러 환율은 올해 8월 1310원까지 올랐다. 유찬희 농촌경제연구원 동향분석실장은 “국제유가가 등락을 반복하고 있지만 (전기요금과 면세유값 등과 같은) 영농광열비와 비료비의 고공행진은 계속되고 있다”며 “지난해 농업소득의 기저효과로 올해 소득이 높아 보일 수는 있지만, 농업소득이 (평년 수준을 회복할 만큼) 충분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충남도연맹 관계자들이 지난 8월 28일 집중호우로 인한 피해보상 등을 요구하며 충남 예산군 예산읍 궁평리 한 논콩밭을 갈아엎고 있다. 연합뉴스 국제 원자재 가격 전망은 향후 국제 원자재 시장 전망은 어떨까. 국제유가의 경우 지난 9월 월평균 93.25달러(두바이유·1배럴당)에서 10월 3.8% 하락한 89.75달러로 최근 주춤한 흐름이지만, 변수가 많아 추이를 예단하기 힘든 분위기다. 우선 주요 산유국들의 추가 감산 여부가 변수 중 하나로 꼽힌다. 11월 20일(현지시간) CNBC와 로이터통신 등 외신을 보면 사우디아라비아는 최소 연말까지 석유 감산과 공급 감축 기조를 이어갈 것으로 전해졌다. 사우디는 유가 하락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지난 7월부터 하루 원유 생산량을 1200만 배럴에서 900만 배럴로 줄였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비OPEC 주요 산유국 협의체인 OPEC+ 회원국들도 추가 감산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주목할 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양상이다. 이란 참전 등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국제유가가 배럴당 150달러에 육박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산업연구원이 11월 8일 발간한 ‘이·팔 전쟁으로 인한 유가 변동 가능성과 국내 산업 영향 및 시사점’ 보고서는 전쟁 양상에 따른 3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먼저 가자지구 내에서 전쟁이 심화하다 종료되는 경우, 국제유가가 1배럴당 최소 3달러 이상 상승할 것으로 봤다. 전쟁 당사국들이 원유 생산국이 아니기 때문에 국제유가 변동에 미치는 충격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을 것이란 의미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레바논과 시리아가 전쟁에 가담하는 경우인데, 이때는 8달러에서 최대 31달러까지 상승할 것으로 봤다. 마지막은 전면전 시나리오인데, 이 경우 국제유가는 150달러 수준에 이를 것으로 예측했다. 올 1분기 기준 우리나라의 대중동 원유 수입 비중은 70.2%로, 어떤 상황이 됐건 국내에 미치는 파장이 크다.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최근 국제유가 전망치를 올려잡았다. KDI는 11월 9일 발표한 ‘2023 하반기 경제전망’에서 내년 국제유가 전망치를 기존(8월 전망치) 1배럴당 75달러에서 85달러로 상향 조정했다. 국제 곡물 가격 불확실성도 크다. 유엔 식량농업기구가 발표하는 세계식량가격지수는 올해 1월 130.2에서 꾸준히 하락해 지난 10월 120.6까지 내려왔지만, 전체적인 수준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영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2021년 기준으로 각각 세계 1위, 5위의 밀 수출국이다. 11월 22일 농촌경제연구원은 해외 곡물 동향에서 “소위 인도주의적 회랑을 통한 운송 재개에도 불구하고 수출 인프라에 대한 지속적인 공격으로 밀 시장은 계속해서 혼란을 겪고 있다”며 “올해 우크라이나의 밀 생산량은 전쟁 전 수준보다 35% 적었으며, 2024년에 (생산량이) 반등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진단했다. 곡물시장 악재는 또 있다. 밀과 쌀을 세계에서 각각 두 번째로 많이 생산하는 인도가 오는 12월 말 종료될 예정인 곡물 무료제공 프로그램을 5년 더 시행하기로 한 것이다. 프로그램은 8억여 국민에게 매월 밀이나 쌀 5㎏을 무료로 제공하는 정책이다.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위해선 밀과 쌀을 농민들에게 사들여야 한다. 자국 내 원활한 공급과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일환으로 취한 곡물 수출 제한 조치가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인도 정부는 지난해 5월 밀 수출을 금지한 데 이어 올 7월부턴 쌀 수출도 금지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1월 10일 경기 수원 팔달구 서호 잔디광장에서 열린 제28회 농업인의 날 기념식에서 어퍼컷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예산 확보와 신재생에너지 활용 중요” ‘국제유가 상승이 농가 생산비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줄 것인가’에 대한 분석도 최근 나왔다. 농촌경제연구원이 11월 15일 세계은행(WB) 분석 결과를 토대로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이 농가 소득에 미치는 영향을 추정한 ‘국제유가 상승 가능성, 한국 농업 부문에는 어떤 영향이?’란 제목의 보고서다. 보고서는 전쟁이 1973년 중동 석유 수출 제한 사태처럼 확산할 경우, 올 4분기 비료비 지수가 (당초 WB가 전망한) 베이스라인보다 3.7~4.9%, 영농광열비 지수는 35.8~47.9% 각각 상승할 것으로 봤다. 특히 이로 인한 내년 농업소득은 베이스라인보다 4.2~5.6%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보고서는 “농가는 농작물 생육 조건을 계속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유가가 올라도 단기간에 유류 사용량을 줄이는 일이 적다”면서 “유가가 계속 일정 수준 이상 인상된다면 일부 농가가 경작을 포기하거나 재배면적을 줄이면서 생산량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적었다. 국제 곡물 가격은 코로나19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영향으로 여전히 평균 대비 고점을 보이고 있다. 때문에 농가의 사료비 부담도 줄지 않고 있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전국 배합사료 평균 가격은 1㎏당 2020년 479원에서 올해 8월 672원 수준까지 올랐다. 농민단체들은 사료 가격이 안정되더라도 그간의 생산비 부담 누적과 가축 사육 기간(한우 30개월·육우 22개월)을 고려할 때 축산농가의 경영 여건이 당장 호전되기는 어려운 실정이라고 호소한다. 농민단체들은 특히 내년 예산의 보완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 예산안 규모가 생산비 부담이 커지고 있는 농촌 현장과 동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무기질비료 가격 보조 및 수급 안정 예산이다. 올해 1000억원인 무기질비료 가격 보조 예산은 지난 9월 국회에 제출된 내년도 정부안에서 전액 삭감됐다. 사업은 무기질비료 가격 인상분의 80%를 지원하는 것이 골자다. 기재부는 국제 비료 가격이 최정점을 보였던 2021년 8월과 비교해 올 5~6월엔 가격이 크게 하락했다며, 내년 예산을 삭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중국에서의 요소 수입이 원활하지 않고 국제 원자재 시장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올 7월 이후 요소 수입 단가가 크게 올랐다. 비료 가격은 운송비와 인건비 상승, 환율 상승 등 영향으로 여전히 고점을 유지하고 있다. 농가 생산비 부담을 덜 수 있도록 국회와 기재부를 설득해 관련 예산을 최대한 확보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10월 21일 소 바이러스성 질병인 럼피스킨병이 발생한 경기 평택시의 한 젖소 농가에서 관계자들이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국회 농해수위는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무기질비료 가격보조 예산을 576억8100만원으로 다시 증액했다. 한국후계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한농연) 등 농민단체들이 정부의 예산안 제출 이후 요구한 농사용 전기요금 인상에 따른 차액 보전 예산(519억2000만원), 농업용 면세유 인상액 차액 지원 예산(653억7200만원) 등도 신규 편성됐다. 다만 최종 예산 규모는 기재부와 협의를 거쳐 확정된다. 한 농민단체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많은 기관이 내년 원유와 곡물 등 국제 원자재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질 것이라고 한다. 무기질 비료만 보더라도 원료는 전량 수입하고 있기 때문에 국제 원자재 가격 변화에 민감하다. 무기질비료 가격 보조를 포함한 전기요금 인상 가격 보전, 면세유 인상액 차액 지원 등은 농가 생산비 부담을 줄여주는 대표적인 농가 경영 지원 예산이다. 농가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선 이런 예산들이 내년도 본예산에 포함돼야 한다. 그래야 돌발변수가 발생했을 때 신속한 지원이 가능하고 농가 경영의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농가 경영 안정을 위한 중장기적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주문이 나온다. 김태후 농촌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이렇게 덧붙였다. “농가 생산비 부담 상승의 원인, 즉 국제 원자재 가격의 변동성 확대와 환율 상승과 같은 국제 변수는 정부 입장에서도 사실 뾰족한 대응책을 내놓기가 어렵다. 당장은 무기질비료, 면세유, 전기요금 등에 대한 지원을 하고 있지만 엄밀히 따지면 미봉책에 가깝다. 농가가 에너지 절감 기술을 수용할 수 있도록 유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에너지 절감 노력을 하면 그에 상응하는 전기료를 보조해주는 방식 등이다. 또 신재생에너지 활용도를 높이는 것도 중요하다. 목재 펠릿을 활용하거나 가축분뇨를 이용한 바이오가스를 생산해 인근 농가 시설에 전기를 보내는 방식이다. 이런 시스템이 정착되면 국제 원자재 가격이 요동치더라도 충격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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