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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간] 뼈아픈 우생학의 흔적, 차별과 배제(2024. 10. 23 06:00)
- 2024. 10. 23 06:00 문화/과학
- 우리 안의 우생학 김재형 외 지음·돌베개·1만9000원 경성제국대학 위생학자들은 1931년부터 11년에 걸쳐 ‘조선인 발육 표준 연구’를 진행한다. 조선인의 발육 상태는 일본인과 ‘비교’해 열등한 것으로 조사됐다. 미래 전쟁 동원 인력으로서 조선인 아동의 건강이 중요해지자 일제는 1939년 중등학교 입학시험 제도에 신체검사 비중을 늘린다. 결핵, 정신질환, 한센병, 중증 시력 장애가 있는 사람은 응시조차 할 수 없었다. 조선 위생학자들의 관심은 그런 ‘배제되는 사람들’에 있지 않았고, 민족의 체질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있었다. ‘민족개조론’의 사례다. 사학자, 의사, 문학자, 과학사 연구자 등이 집필한 이 책은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사회에 뿌리 내린 ‘우생학’의 역사를 추적한다. 민족개조론, 한센인 강제 단종수술, 산아제한, 장애인 강제불임시술, 혼혈아 해외입양 등의 역사는 우생학과 닿아 있다. 다만 저자들은 이 책을 쓰는 이유가 한국 역사의 어떤 부분을 우생학이라고 악마화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생학이 어떻게 사회적 약자를 차별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는지 이해하는 것에 있다고 밝힌다. 한뼘 양생 이희경 지음·북드라망·1만8000원 인문학 공동체 ‘문탁네트워크’를 이끄는 이희경이 ‘양생(養生)’에 관해 쓴 에세이집이다. 다소 낯선 ‘양생’은 <장자>에 나온 말로, 직역하면 생명을 기르는 행위다. 이희경은 10년 전 어머니와 함께 살게 되면서 나이듦과 죽음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그로부터 그는 ‘양생’을 화두 삼아 공부에 매진했다. 이희경은 양생을 ‘스스로 삶을 돌보는 기예’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받아들인다. 어머니를 돌보는 동안 쓴 간병기록이자 개인적 경험에서 끌어올린 나이듦, 돌봄, 죽음에 대한 사유가 담긴 책이다. 물의 극장에서 이선이 지음·걷는사람·1만2000원 “세상의 고통은/ 혼자 오고 몰래 오고 쉼 없이 와서” 시인은 시를 쓴다. 참사에 아이를 잃고 이민 간 친구와 전쟁 중인 고국을 위해 기도하는 우크라이나 유학생을 생각하며 시를 쓴다. 이선이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이다. 무한히 흐르고 변화하며 확장하는 ‘물’과 같이, 시인은 내면과 외부세계 사이의 정서적 교감을 그려낸다. 공동공간 스타브로스 스타브리데스 지음·박인권 옮김·빨간소금·2만3000원 세계 곳곳에서 실험 중인 ‘공간을 공유하는 운동’(도시 커먼스·urban commons)에 대해 소개한다. 사회주택 건설, 광장 점령, 거리의 그라피티 등 사례를 제시하며 공동공간의 개념을 설명하고, 도시 공간에 대한 대안적 가능성을 탐구한다. 실학, 우리 안의 오랜 근대 이경구 지음·푸른역사·2만7900원 ‘실학’은 조선 후기 실용적·실질적 개혁을 주장한 학문으로 알려져 있다. 저자는 ‘실학’이라는 용어의 역사를 추적한다. 실학이 지닌 ‘진실, 실질, 실용’이라는 보편적 뜻에 대해 먼저 묻고, 실학이 시대적 요구에 부응해 의미를 갈아탔다고 정리한다.
- 신간
- 성소수자 차별·혐오가 종교의 자유인가(2024. 08. 26 06:00)
- 2024. 08. 26 06:00 사회
- 법원 2곳, ‘축복 목사’에 엇갈린 판결…감리교단은 목사들 줄줄이 고발 지난 8월 21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이동환 목사가 정직 2년 징계의 무효를 확인해 달라며 낸 소송이 각하된 뒤 입장을 밝히고 있다. 기독교대한감리회는 이 목사가 퀴어문화축제에서 성소수자 축복식을 집례했다는 이유로 정직 2년에 이어 출교 처분을 했다. 정지윤 선임기자 목사가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반대하며 기도를 한 것이 과연 중범죄인가. 퀴어문화축제에서 축복식을 집례했다는 이유로 교회에서 징계를 당하고 출교된 이동환 영광제일교회 목사(43)와 관련해 지난달과 이달 연달아 2건의 법원 판단이 나왔다. 그가 축복식을 집례한 지 5년 만이다. 이 목사 측은 헌법이 ‘평등권’을 모든 국민의 기본적 권리로 인정하는데 교회가 ‘동성애 찬성·동조 행위를 범죄로 처벌한다’는 내부 규정을 근거로 이 목사를 징계한 게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법원 판단은 엇갈렸다. 지난 7월 18일 수원지법 안양지원 재판부가 ‘시대와 사회의 변화’를 언급하며 징계에 위법 소지가 있다고 판단한 반면, 지난 8월 21일 서울중앙지법 재판부는 ‘종교 교리 해석의 영역’이라며 법원이 함부로 판단할 수 없다고 했다. 이 목사를 지지해온 이들은 한 달새 나온 엇갈린 법원 판단에 희망과 분노를 교차해 표출하고 있다. 문제는 성소수자 축복을 이유로 한 교회의 징계가 이 목사 1명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독교대한감리회(감리교) 측은 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한 목사 6명에 대한 추가 고발을 접수하고 조사와 재판 절차에 돌입했다. 이 목사 지지 성명에 서명한 목회자 137명도 조사에 나섰다. 고발 대상이 된 한 목사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인간은 모두 죄인이고, 그 죄인을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이 목사”라며 “목사가 성소수자를 위해서 기도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말했다. 성소수자 축복했다는 이유로 교회서 퇴출 이 목사는 2019년 8월 31일 인천 퀴어문화축제에서 축복식을 집례했다. “이 땅의 모든 성소수자들과 사회적 소수자들을 향한 낙인과 혐오, 차별과 배제에 반대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축복이자 선물입니다. 그대와 나는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존중받아야 하며, 나와 그대는 서로의 독특함을 존중해야 합니다.” 당시 축복식에서 종교인들이 읽은 내용이다. 그런데 감리교는 이 목사가 ‘교리와 장정(교회법)’을 어겼다며 재판에 회부했다. 감리교 교리와 장정 제3조 제8항은 “동성애를 찬성하거나 동조하는 행위를 했을 때”를 범죄(범과)로 규정한다. 감리교는 2022년 10월 이 목사에게 정직 2년 징계를 확정했다. 지난 3월엔 이 목사가 반성 없이 동성애 지지 활동을 계속했다는 이유로 출교를 확정했다. 출교는 목사뿐 아니라 교인의 지위까지 박탈해 교회에서 내쫓는 최고 수위의 형벌이다. 이 목사는 징계가 위법하다며 법원에 소송을 냈다. 제25회 서울 퀴어문화축제가 열린 지난 6월 1일 서울 중구 을지로 일대에서 참여자들이 입장하고 있다. 정효진 기자 재판 쟁점은 크게 두 가지였다. ①법원이 종교단체 내부 결정에 개입할 수 있는지 ②성소수자 축복식 집례를 이유로 정직 2년과 출교 징계를 한 게 정당한지다. 출교 건을 심리한 수원지법 안양지원 재판부는 두 쟁점에서 모두 이 목사 측 주장을 수용해 출교의 효력을 정지했다. 대법원은 종교단체 내부 징계는 헌법이 보장하는 종교의 자유 영역이므로 원칙적으로는 그 당부(옳고 그름)를 법원이 판단할 수 없지만, 구체적 분쟁이 존재하고 종교 교리 해석이 아니라면 판단할 수 있다고 본다. 안양지원 재판부는 이 목사 건을 법원이 판단할 수 있다고 봤다. 동성애 찬성·동조 처벌 조항이 교리와 일부 관련 있기는 하지만 이 목사의 재판청구권도 보장해야 하고, 정의 관념상 중대한 하자가 있는 경우까지 종교단체 내부 징계라는 이유로 법원이 판단을 안 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했다. 안양지원 재판부는 출교에 절차적·실체적 하자가 있는지를 본안소송에서 다툴 만하고, 징계 재량권이 일탈·남용됐을 가능성도 크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평등의 원칙’을 선언한 헌법 제11조 제1항을 거론했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는 조항이다. 또 국가인권위원회법이 합리적 이유 없이 성적 지향에 근거한 차별을 금지한다는 점도 짚었다. 특히 안양지원 재판부는 “동성애의 규범적 평가는 시대와 사회의 변화에 따라 바뀌어왔다”고 했다. 대법원도 2022년 동성 간 성행위를 무조건 군형법상 추행죄로 처벌해선 안 된다고 판결하면서 “동성애가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도덕 관념에 반하는 행위라는 평가는 이 시대 보편타당한 규범으로 받아들이기 어렵게 됐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정직 2년 건을 심리한 서울중앙지법 재판부는 정직 기간이 지나 이 목사의 권리가 제한되고 있지 않다는 등의 형식적인 이유로 소송을 각하했다. 그러면서 징계에 절차적·실체적 하자도 없다고 했다. 동성애 찬성·동조 처벌 조항이 이 목사의 기본권을 과도하게 침해하는지, 종교의 자유로 보장돼야 하는지는 ‘교리 해석의 영역’이라 법원이 함부로 판단할 수 없다고 했다. 서울중앙지법 재판부는 “기존 전통적인 개신교 사회에서는 창세기, 레위기 등 성경의 특정 구절을 동성애를 금하는 의미로 해석해왔음을 부인하기 어렵다”며 “피고(감리교) 내부의 민주적 합의를 거쳐 제정된 처벌 규정이 유독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차별·배제를 재생산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정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또 법원이 동성애 찬성·동조 처벌 조항이 위법하다고 판단하는 것은 “되레 교단의 고유한 특성을 도외시하고 교인들이 신봉하는 종교적 믿음에 개입해 교단의 존립 목적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라며 “정교분리의 원칙을 선언한 헌법 제20조에 반하는 것”이라고 했다. 감리교 손을 들어준 것이다. 제25회 서울 퀴어문화축제가 열린 지난 6월 1일 서울 중구 을지로 일대에서 한 참여자가 ‘사랑은 혐오보다 강하다’고 적힌 팻말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정효진 기자 “성소수자도 인간, 목사의 축복은 당연하다” 이 목사는 서울중앙지법 판결에 항소해 2심에서 계속 다툴 예정이다. 징계 관련 다른 재판도 진행 중이다. 감리교 측은 다른 목회자들도 압박하고 있다. 지난 6월 1일 서울 퀴어문화축제에서 열린 축복식에 참여해 동성애 찬성·동조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목사 6명이 고발을 당했다. 6명 중 일부는 각 연회의 재판 절차에 들어갔고, 일부는 ‘잘못을 저질렀으니 뉘우치고 회개하라’는 취지의 권면서를 받았다. 이들은 30년 이상 목사직을 수행하면서 차별 금지, 노동, 교육, 인권, 교회 개혁 등 분야에서 목소리를 내왔다. 은퇴를 앞둔 시점에 성소수자 차별과 혐오를 반대했다는 이유로 교회 재판에 끌려가게 됐다. 동성애대책위원회는 이 목사 지지 성명에 서명한 137명도 조사를 요구했다. 여러 목회자는 이런 교회 태도에 “매카시즘 광풍(1950년대 미국의 공산주의자 척결)이나 다름없다”고 반응했다. 권면서를 받은 박경양 목사(서울 평화의교회)는 지난 8월 20일 기자와 통화에서 “이 목사가 출교당하는 것을 보면서 ‘중세기 마녀재판과 무엇이 다르냐, 목사들이 침묵하면 안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어 (퀴어문화축제 참여를) 제안한 것”이라며 “예복을 입고 축복문을 낭독한 뒤 꽃을 뿌리는 퍼포먼스를 했을 뿐인데 고발을 당해 황당하다”고 말했다. 박 목사는 “미국 감리교에서 성소수자 문제로 교단이 갈라지기도 하지만 한국 교회처럼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노골적으로 하는 교단은 전 세계에 없다”며 “세계의 복음주의자들이 모인 2010년 로잔대회에서도 동성애의 원인이 뭔지 토론하고 연구한다는 내용에 더불어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는 단호히 반대한다는 문서를 채택했다”고 했다. 그는 “차별과 혐오는 성소수자의 인권 침해임은 물론 한국 교회의 선교에 상당히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며 “(교단이) 성소수자를 죄인 취급하는 상황에서 교회 내에 다양한 의견이 있다는 것을 세상에 알려야겠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국내 감리교 신자는 한때 150만명을 넘었다가 최근 110만명까지 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동환 목사와 공동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지난 7월 22일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법원의 출교 효력 정지 가처분 인용 결정에 대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대책위 제공 고발당해 지난 8월 19일 심사위원회에 출석한 윤여군 목사(인천 강화 남산교회)는 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한 이유에 대해 “성소수자들 역시 내가 믿는 하나님의 은총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고 생각했다”며 “그 사람들을 축복하는 것은 목사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윤 목사가 말했다. “과거 ‘흑인에게도 영혼이 있는가’라는 논쟁이 벌어진 적이 있죠. 보수적인 교회에서는 여전히 여성에게 목사 안수를 주지 않습니다. 여성이 지도하거나 어떤 모임을 대표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전근대적인 집단들도 있어요. (징계 논란은) 보편적인 인간의 권리를 확대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봅니다. 다만 이 어려운 문제를 (출교 같은) 폭력적 방식이 아니라 내부에서 진지하게 고민하고 우리보다 앞서 겪은 사회의 경험을 참조하면서 해결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남재영 목사(대전 빈들공동체교회)는 지난 7월 대전 퀴어문화축제에서 부스를 운영하면서 전도지를 나눠주고 축복식을 진행했다가 고발당했다. 지난 8월 13일 화해조정위원회가 열렸다. 남 목사가 이달 말까지 ‘동성애를 찬성·동조한 범죄’를 인정하지 않으면 정식으로 교회재판에 넘겨질 수 있다. 남 목사는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인데 혐오와 차별의 언어가 난무하고 있다”며 “기후위기나 성착취 등 교회가 목소리를 높일 만한 일이 너무 많은데 동성애 문제를 갖고 한국 교회가 이렇게 하는 것은 자신을 죽이는 행위”라고 했다. 남 목사는 성소수자를 포용하는 교회를 애써 찾아다녀야 하는 성소수자들의 현실을 이야기했다. 그의 말이다. “먼 지역에서 우리 교회로 오는 성소수자가 있어요. 왜 그렇게 멀리에서 오냐면 교회에 가야 하는데 공포감이 있는 거예요. 내가 이 교회 안에 들어갔을 때 교회가 나를 안전하게 보듬어줄 수 있는지 모르잖아요. 다섯 번은 교회 앞까지 왔다가 갔다고 하더라고요. 용기를 내서 교회에 오는 거죠. 많은 성소수자가 교회에서 상처를 받아서 교회를 나가고, 신앙생활을 하고 싶은데 교회를 찾지 못하고 있어요. 사정을 좀 아는 사람들도 교회에서 동성애 문제로 하도 난리가 나니까 모난 돌이 정 맞을까 싶어 침묵하고 있죠. 하지만 인간의 존엄성은 동성애자도 가진 것이잖아요. ‘하나님 안에서 너희도 존엄한 존재다’라고 알려줘야죠. 그들도 영혼을 가진 사람인데 당연히 목사가 돌봐야 하는 것 아닌가요? 교회가 계속 이렇게 가면 사회로부터 버림받을 것을 우리는 걱정합니다.” 지난 6월 1일 제25회 서울 퀴어문화축제가 열린 서울 중구 을지로 일대에서 한 참여자가 ‘함께라니, 완전 럭키비키자낭’이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있다. 정효진 기자 조금씩 생기는 균열, 교회는 바뀔 수 있을까 한국 교회가 왜 동성애에 포비아(공포증)적으로 대응하는지는 여러 분석이 있다. 성경이 쓰인 역사적 맥락과 배경, 오늘날의 새로운 사회적 흐름을 삭제한 채 성경의 문구에만 집착해 편향 해석을 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여기에 항문 성교 등에 대한 왜곡된 정보가 합쳐진다. ‘반동성애’가 교회 기득권층의 정치 이데올로기로 활용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독교 단체들은 2010년대 들어 “동성애를 조장한다”며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반대하기 시작했고, 최근엔 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하고 있다. 이 목사 처벌 근거인 동성애 찬성·동조 처벌 조항이 만들어진 것은 2015년으로 10년도 되지 않았다. 한 종교 전문가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한국 교회 안에서 ‘내가 다음 표적이 될지 모른다’는 성소수자 포비아가 작동한다는 사실은 신앙의 자유를 침해하고, 교회가 전체주의화 돼가는 것”이라고 했다. ‘차별과 혐오없는 평등세상을 바라는 그리스도인 네트워크’의 정경일 박사는 지난 8월 19일 서울 마포구 강북노동자복지관에서 열린 ‘사랑은 계속 이긴다’ 토론회에서 “한국 기독교는 ‘반공’, ‘반동성애’, ‘반무슬림’을 내세우는데 계속 새로운 적을 찾고 공격하면서 교회의 위기를 극복하려는 성향이 있다”며 “동성애가 교회에 위기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위기가 이미 있었고, 교회가 그 위기를 넘기 위해 반동성애 운동을 한다고 보면 될 것 같다”고 분석했다. 정 박사는 징계 사태에 대해 “법과 신앙, 사회와 교회와의 관계에서 굉장히 징후적인 사건”이라고 했다. 그는 “기독교인들은 항상 법 너머를 상상했고 악법을 깨뜨리면서 싸워왔는데, 이번 사건에서는 교회 윤리가 법과 사회의 기준보다 아래에 있는 것을 볼 수 있다”며 “법 감정, 사회적 상식의 변화에 대해서 교회가 신학적·신앙적 응답을 찾아야 할 때”라고 했다. 제25회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열린 지난 6월 1일 서울 중구 을지로 일대에서 참여자들이 축제를 즐기고 있다. 정효진 기자 강고해 보이던 한국 교회의 ‘반동성애’ 분위기에도 조금씩 균열이 생기고 있다. 이 목사가 있고, 추가 고발된 6명의 목사가 있고, 이 목사를 지지한 137명의 목회자가 있다. 최근엔 교회 내의 성소수자 당사자, 여성 페미니스트에서 나아가 남성 페미니스트의 존재를 확인한 연구논문도 나왔다. 이민지 서강대 인권·성평등센터 연구원은 교회 내의 30대 남성 페미니스트 5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성소수자 혐오 정서가 강한 교회 내에서 성서 해석에 대한 열린 태도를 바탕으로 개신교인으로 해야 할 역할을 성찰하고 성소수자에 대한 입장을 재정립하는 청년 남성들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 연구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교회 안 남성 페미니스트의 존재를 확인한 것은 남성 중심적인 교회 집단 속에서 (젠더·성소수자 등 문제가) 여성뿐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이 다 같이 논의할 수 있는 의제가 됐다는 의미가 있다”며 “교회 안에 페미니즘에 동의하는 다양한 남성이 있고, 지금의 청년그룹이 중장년이 돼 의사결정할 수 있는 위치가 되면 교회는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호림 ‘모두의 결혼’ 대표는 토론회에서 “종교인들은 성소수자 인권에 대해 부정적일 것이라는 편견, 동성애 법제화에 반대할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뒤흔드는 종교인들의 목소리가 있다”며 “이는 성소수자만이 아니라 이 사회 모든 시민에게 변화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굉장히 큰 희망의 움직임”이라고 말했다. 감리교 본부와 동성애대책위원회 측은 이번 사안에 모두 별다른 입장이 없다고 기자에게 밝혔다.
- 한 ‘윤과 차별’-이 ‘먹사니즘’…“중원 잡아라” 2차 대결(2024. 08. 26 06:00)
- 2024. 08. 26 06:00 정치
- 지난해 말 한동훈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예방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8월 18일 ‘전 대표’에서 ‘대표’가 됐다. 두 번째 대표직을 연임하게 됐다. 상대 정당인 국민의힘에서는 한동훈 대표가 이미 지난 7월 23일 전당대회에서 선출돼 ‘카운터파트’인 이 대표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 4월 총선의 1차 대결에서는 이 대표의 압승으로 끝이 났다. 그때 한 대표는 비대위원장이었다. 이번에는 ‘대표 대(對) 대표’로 맞승부를 펼친다. 양 대표가 각각 보수·진보 지지층을 결집한 후 그다음 숙제로 중도층을 잡으려는 ‘중원 싸움’이 시작된다. 한 대표가 차기 대선 출마를 위해 사퇴하게 되는 내년 9월까지, 그리고 대선이 열리는 2027년 3월까지 최소 1년, 최대 2년 6개월의 ‘한-명 2차 대결’이다. 이 대결의 최후 승자는 과연 누가 될까.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거대양당의 전대 결과를 ‘또 어대한(어차피 대표는 한동훈), 어대명(어차피 대표는 이재명)’으로 표현했다. 과거에는 대선 전 당대표를 차기 대선후보 경선 관리를 할 인물이 맡았으나, 이번 전대에서는 차기 대선후보가 직접 당대표를 맡고 나섰다. 만약 두 대표가 2027년 대선에서 겨룬다면 30%대의 보수 지지층과 역시 30%대의 진보 지지층을 각각 전통적인 기반으로 삼는다. 남은 공간은 30%의 중도층이다. 여야가 22대 국회에서 격렬하게 정쟁을 벌이면서 어느 정당이 이들 중도층의 마음을 사로잡을지 쉽게 가늠하기 어렵다. 안일원 리서치뷰 대표는 “지금과 같은 초유의 정치 행태 속에서는 이를 탈피하려는 변화·쇄신의 모습을 보이려는 리더에게 중도층의 마음이 쏠릴 것”이라며 “무엇보다 이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정책 의제를 던지고, 이를 실행해 나가려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2026년 지방선거나 2027년 대선에서 어떤 정책이 주요 의제로 부각되느냐에 따라 중도층의 표심 향방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넓디넓은 중도층 표밭을 공략하기 위해 이재명 대표는 이미 ‘전 대표’ 시절부터 정책 카드를 서둘러 꺼냈다. 종합부동산세(종부세)와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완화를 의제로 던졌다. 이를 정면으로 반대하던 진성준 정책위의장을 대표 선출 뒤에도 유임시키면서도 이 대표의 종부세·금투세 완화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지난 8월 21일 국세청 차장 출신인 임광현 의원과 기획재정부 차관 출신인 안도걸 의원을 정책위 상임부의장에 임명한 것은 이런 포석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 대표는 상속세 완화 의지까지 밝혔는데, 임 의원이 이를 적극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이 대표의 중도화 전략은 앞으로 더 선명하게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종부세·금투세는 친문·비명 세력 사이에 이념적 좌표로 여겨지고 있는 만큼 이 대표의 ‘먹사니즘’(먹고사는 문제+ism)은 이념적 허들을 우선 넘어야 한다. 이 대표는 점진적 변화를 선택했다. 이런 시도는 ‘투트랙 전략’이라 볼 수 있다. 기존의 이념적 좌표는 그대로 둔 채, 이 대표가 앞장서서 중도화 의지를 보이면서 당론을 서서히 중도 쪽으로 움직이는 방식이다.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장은 “이 대표의 투트랙적 중도확장 시도는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면서 “전통적 지지를 굳히고 중도 확장을 동시에 이루려는 전략인데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지는 별개의 문제”라고 말했다. 반면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본인을 옥죄고 있던 이념에서 전향적인 입장 변화를 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엄 소장은 “이 대표의 이런 변화가 기존의 지지층으로부터 반발을 사진 않을 것 같다”고 전망했다. 김철현 경일대 특임교수(정치평론가)는 “이 대표의 중도 의제 세팅이 굉장히 빠르게 이뤄졌다”고 보았다. 한동훈 대표는 지난 7월 23일 당대표로 선출된 뒤 수락연설에서 세 가지 변화를 이야기했다. 첫째가 민심과 국민 눈높이, 둘째가 유능, 셋째가 외연 확장이다. 모두 중도층을 향한 메시지다. 용산 대통령실과의 갈등 속에서도 ‘친윤’인 정점식 정책위 의장을 물러나게 하고, 그 자리에 김상훈 의원을 앉힌 것도 이런 정책 전환의 한 시도였다. 여의도 연구소장도 과거 유승민계였던 유의동 전 정책위 의장으로 교체했다. 한 대표는 최근 금투세 폐지, 전기세 감면, 격차해소특위 출범 등으로 민생의제 해결에 나섰다. 지난 8월 22일 금투세 폐지 정책토론회에 참석하는 등 정책 드라이브에 시동을 걸었다. 엄경영 소장은 “한 대표가 격차해소 특위 등을 통해 중도층 공략을 본격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 대표의 중도층 공략은 윤석열 대통령과 차별화를 염두에 둔 포석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광복절을 앞두고 독립기념관장에 뉴라이트 인사로 지목된 김형석 교수를 임명하고, 노동부 장관에 김문수 경사노위 위원장을 지명하는 등 극우 쪽으로 한 걸음 더 다가섰다. 전통적 보수 지지층을 강화하겠다는 포석이다. 안일원 대표는 “한 대표가 윤 대통령과 차별화를 하게 되면 그 자체가 중도보수는 물론 중도층의 관심을 끌 수 있다”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한 대표는 지난 7월 전당대회에서 김건희 여사 문자메시지 거부, 제3자 추천 채 상병 특검안 관철 등으로 윤 대통령과의 차별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그것까지였다. 제3자 채 상병 특검안에 대해 한 달째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최병천 소장은 “한 대표에게 있어 중도층 공략은 정책이 문제가 아니라 용산 대통령실과의 정무적 문제가 더 중요하다”면서 “채 상병 특검을 두루뭉술하게 지나가려고 하면서 중도층 공략에 나선다면 어느 누가 한 대표의 메시지를 믿겠느냐”고 말했다. 한 대표는 윤 대통령이 잇달아 극우 성향 인사를 중용하는 것에 대해서도 아무런 반박을 하지 않은 채 넘어갔다. 윤 대통령과의 차별화가 중도 확장으로 여겨지는 상황에서 전당대회 이전과 반대 방향의 길을 걷는 셈이다. 한 대표의 중도층 공략 지지부진은 당내의 불안한 처지에서 비롯된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85.4%의 득표율로 승리한 반면 한 대표는 전당대회에서 상대적으로 적은 62.8% 지지에 그쳤다. 당내 기반이 약한 만큼 중도층 공략에 선뜻 나서기가 힘들다. 홍준표 대구시장, 오세훈 서울시장, 원희룡 전 국토부 장관, 유승민 전 원내대표 등 당내 대선 경쟁자도 즐비하다. 김철현 교수는 “이 대표가 아무리 사법리스크가 있다 하더라도 이미 명실상부한 민주당 대선주자인데 반해, 한 대표는 여전히 보수의 정체성을 의심받고 있어 보수 대선주자로서 자리매김부터 먼저 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수 지지자들은 지난 7월 전당대회에서 한 대표를 이재명 대표를 상대할 맞수로 선택한 것일 뿐 아직 차기 대선주자로서의 확고한 입지를 굳히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 대표는 오히려 이재명 대표와 싸움을 통해 당내 기반을 넓힐 가능성이 크다. 홍 소장은 한 대표와 이 대표를 “순망치한의 관계”로 보았다. 이 대표가 있음으로써,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를 공격하는 검사 출신 한 대표가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윤 대통령의 ‘우향우’를 견제하려다가는 보수 전통 지지층으로부터 역풍이 불 수 있기 때문에 당분간 이 대표와의 싸움에 집중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한 대표의 중도층 전략은 당의 기반을 다진 이후에야 본격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한 대표로서는 오는 10월 이 대표가 연루된 1심 재판의 결과를 기다린 후 중도층 공략을 위한 장기적인 전략을 내세울 가능성이 크다. 홍 소장은 “한 대표의 중도화 전략은 오히려 이 대표와 싸우면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것, 그 자체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와의 정쟁이 중도화 전략으로 변질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난 8월 중순 쿠키뉴스가 한길리서치에 의뢰해 발표한 정기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이 대표와 한 대표가 차기 대선에서 맞붙으면 이 대표의 지지율이 50.7%로 30.4%인 한 대표를 압도한다. 중도층에서도 50.6% 대 29.1%(자세한 여론조사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로 대동소이하다. 이 대표가 전통적인 야당 지지층인 40~50대에서 격차를 많이 벌렸고, 60대에서는 치열한 격전을 벌였다. 86세대(55∼65세)와 포스트 86세대(45∼55세)라는 민주당의 확고한 지지 기반을 바탕으로 삼은 지지율이다. 65세 이상 유권자 조사에서는 한 대표의 지지율이 더 높다. ‘포스트 86세대’와 ‘86세대’, 그리고 ‘86세대 이전 세대’ 중 중도층은 각각 중도진보, 중도보수적 성격을 지니고 있어서 선거가 닥치면 결국 자신의 평소 신념에 따라 진보나 보수 정당을 선택하게 된다. 하지만 45세 이하의 중도층은 다르다. 정치 저관여층으로 선거에 임박해서 ‘자신에게 유리한 정당’을 고르게 된다. 이 대표와 한 대표가 결국 대선에 맞붙는다면 중도층 공략은 젊은 층에 어떻게 설득력을 얻을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나이로 보아서는 한 대표가 전적으로 우위에 있다. 이 대표는 1964년생으로 86세대의 대표적 인물이다. 한 대표는 1973년생으로 포스트 86세대이면서 그 이후 세대에도 어필하고 있다. 한 대표의 토론 스타일, 패션, 행동방식, 이미지 등이 이 대표보다 더욱 젊어 보이게 만들기도 한다. 홍 소장은 “한 대표는 학력고사 세대지만 이후 수능 세대와 비슷한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면서 “수능 세대는 위 세대의 강요를 특히 싫어한다”고 말했다. 한 대표가 이 대표와의 회담을 생중계 방송하자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대표의 토론 방식과는 다른 스마트한 토론 태도를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안일원 대표는 “선거 국면에 가면 한 대표의 세련된 패션과 태도가 2030에 강렬한 인상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 4월 총선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지원 유세에 나섰다. 박민규 선임기자·성동훈 기자 지난 4월 총선에서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었던 한 대표는 이런 이미지 전략을 구사했지만 성공하지는 못했다. 4월 총선 출구조사를 보면 지역구 후보 지지정당에서 20~30대 남성에서는 국민의힘 후보가 박빙의 차이로 이겼으나, 20~30대 여성에서는 민주당 후보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최병천 소장은 “한 대표가 젊은 층에 어필하는 것은 잠재력으로 평가할 수 있지만, 아직도 선거나 여론조사 등에서 실제로 작동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최근 한길리서치 조사에서도 한 대표는 젊은 층을 대상으로 한 맞대결에서 이 대표에게 밀렸다. 29세 이하에서는 22% 대 55%로, 전체 30.4% 대 50.7%와 비교하면 더 격차가 벌어졌다. 30대에서는 31.2% 대 46.2%로 그나마 격차가 줄었다. 청년층 유권자에게는 취업·주택 문제 해결 능력이 대선주자를 평가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 김 교수는 “이미 이 대표는 성남시장 당시 청년수당을 통해 청년들을 지지층으로 끌어들이는 정책을 직접 집행한 적이 있다”면서 “청년층을 위한 추상적인 정책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정책을 추진해야만 이들에게서 표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홍 소장은 “주택 문제 같은 경우 여당의 한 대표가 능력을 보여줘야 하고, 취업 문제의 경우에서는 이 대표가 예전 지자체장 때처럼 시원한 ‘사이다식’ 정책으로 새로운 산업패러다임을 제시해 고용동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대표가 중도층이 많은 청년 유권자의 표를 받으려면 넘어야 할 또 하나의 장벽이 있다. 바로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이다. 2022년 대선 당시 이준석 당대표로 상징되는 국민의힘은 20~30대 사이에서 바람을 일으켰다. 그러나 지난 4월 총선에서는 이런 바람이 전혀 일지 않았다. 총선 전 이 전 대표는 탈당해 개혁신당을 창당했다. 총선 출구조사에 의하면 29세 이하 유권자 사이에서 개혁신당의 지지율은 10%로 두 자릿수에 도달했고, 30대에게도 6.5% 지지를 받았다. 차기 대선에 이준석 의원이 출마한다면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다. 충청지역 ‘맹주’로 역대 대선에서 항상 캐스팅 보트 역할을 했던 김종필 전 총리(JP)의 예가 언급된다. 김 교수는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처럼 누가 이 전 대표를 잡을 것이냐가 2030 중도층을 사로잡는 관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최병천 소장은 “보수연합(한동훈+이준석)이 아니라면 한 대표는 이 전 대표의 지지층을 뺏어와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고 말했다. 엄경영 소장은 “2030 남성에 집중된 이준석 의원의 지지율은 국민의힘보다 민주당으로 가면 파괴력이 더 있다”고 분석했다.
- 표지 이야기
- 혐오와 차별에 무감각해지지 않게(2024. 07. 01 06:00)
- 2024. 07. 01 06:00 문화/과학
- ‘나란 나란 읽는 시대’ 전시…다양성 주제로 각자의 생각 공유 지향 서울 종로구 창성동에 있는 갤러리 ‘팩토리2(factory2)’에서 지난 6월 24일 ‘나란 나란 읽는 시대’ 전시 관람객이 책을 읽고 있다. 팩토리2 제공 서울 종로구 창성동에 있는 예술공간 ‘팩토리2(factory2)’에서 지난 6월 19일부터 열리고 있는 무료 전시 ‘나란 나란 읽는 시대’는, 말하자면 ‘다양성 책방’을 표방한다. 어떤 책을 알리고 팔기 위한 책방이 아닌 책 읽는 행위 자체를, 그 주변에서 번지는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는 것에 의미를 뒀다. 시각예술, 사진, 출판, 건축, 교육, 공연 등 문화예술 분야 작가, 활동가 20명이 ‘다양성’이라는 주제로 꼽은 책 20권을 ‘전시’했다. 20권의 책이 천장에서 내려온, 회색 천으로 만든 간이 책꽂이에 꽂혀 있다. 손을 넣어 꺼내 들어야만 책 표지를 볼 수 있다. 김다은 팩토리2 기획자는 “혐오와 차별, 무관심과 적대감은 강렬하고 쉽게 가시화되지만 사랑과 희망, 환대와 연대는 연약하고 여전히 부족한 사회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며 “결코 쉽게 얻을 수 없고, 시간과 품을 들여야 자리 잡을 수 있는 이러한 가치와 태도가 전시가 끝나더라도 지속해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에서, 시간과 품을 들여야 하는 여러 권의 책을 놓았다”고 했다. 최태윤 작가가 지난 6월 20일 서울 종로구 창성동에 있는 예술공간 ‘팩토리2’에서 열린 ‘나란 나란 읽는 시대’ 전시 모임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팩토리2 제공 오로민경 다원예술 작가는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2021)를 통해 “과거와 현재, 학살과 난민의 서사”를 읽고 그 속에서 ‘타인의 고통’을 기억하는 일을 이야기하자고 제안한다. 강소영 출판편집자는 김영옥의 <늙어감을 사랑하게 된 사람들>(2023) 책에 담긴 요양보호사·반빈곤운동 활동가 등의 말을 빌려 ‘늙어감’에 관한 다른 생각을 전달한다. 어린이들의 놀이 환경을 연구하는 ‘플레이 워커’ 오은비 팝업플레이서울 대표는 박새한의 <아빠풍선>(2022)이란 책을 통해 어린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을 충분히 할 수 있게 하는, ‘허용’하는 태도에 관해 질문한다. 읽기뿐만 아니라 듣기, 말하기의 경험도 할 수 있다. 황예지 사진작가의 연작 ‘거기 있는 이들’(2022)이 전시공간 벽면을 채운다. 관계와 투쟁, 애도의 순간들이 펼쳐진다. 전시장 전체에 김다움 시각예술 작가가 다양한 울림을 중첩해 만든 전자음이 흘러나오고, 전시장 한쪽엔 책 20권에서 뽑아낸 말소리로 구성한 소리를 홀로 듣는 공간도 있다. 전시기간 팩토리2에서 11번의 오프라인 모임이 열린다. 서울 종로구 창성동에 있는 갤러리 ‘팩토리2(factory2)’에서 열리는 ‘나란 나란 읽는 시대’ 전시장/ 팩토리2 제공 지난 6월 20일 첫 모임. 작가이자 교육자인 최태윤 작가가 ‘상호의존’이라는 주제로 관람객들과 만났다. 최 작가는 앞서 ‘불확실한 학교’(2016) 전시 등에서 장애인 예술가들과 자주 협업하며 미디어 아트 및 드로잉 작업을 펼쳐왔다. 최 작가가 추천한 책은 영화감독 애스트라 테일러의 <불온한 산책자>(2012)다. 그는 “책에서 화가이며 휠체어 이용자인 수나우라 테일러와 페미니스트 철학자 주디스 버틀러가 대화하는 내용이 인상적이다. ‘상호의존성’이라는 개념을 통해 정상성에 대한 신념을 깨뜨리자는 제안이 나오는데, 요즘 제 연구·활동의 관심사”라고 했다. 최 작가는 이날 모임에서 “장애인 예술가와 그 옆에 있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 특히 장애인 예술가의 가족이 또 한 명의 예술가로서 역할을 하는 사례를 소개했다. 모임 참석자들과 최근 한국에서 ‘장애인 예술가’에 대한 사회적 주목도가 올라간 것에 대한 배경, 반면에 현실적으로 나아지지 않은 장애인의 삶에 관한 이야기도 주고받았다. 한 참석자는 비장애인인 자신이 장애인 이동권 운동에 동참해야겠다고 결심한 이유로 “누구도 외롭지 않았으면 해서”라고 했다. “‘팩토리2’가 있는 서울 서촌 일대에는 다양한 사람이 지나다니는데 ‘뭐 하는 곳이지?’ 하며 들어왔다가 자신도 모르게 예술과 책이라는 매개체에, 그리고 그것이 향하고자 하는 다양성이라는 주제에 은은하게 다가가는 시간을 경험하길 바랍니다. 이 전시를 통해 자신의 다양성과 소수성을 인지하고, 이곳에서 얻은 자기 주변과 세상을 향한 신선한 감각이 자신의 일과 삶에서 불쑥불쑥 끼어들기를 바랍니다.”(김다은 기획자) 전시는 오는 7월 7일(월요일 휴관)까지, 모임 신청은 링크(https://linktr.ee/factory2)에서. 관람비·모임 참가비 무료.
- “차별과 고립이 건강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데이터화할 것”(2024. 04. 01 06:00)
- 2024. 04. 01 06:00 사회
- 김승섭 서울대 교수팀, 장애인과 부모 3000명 20년 추적 관찰 연구 시작 김승섭 서울대 교수(가운데)가 이끄는 서울대 보건대학원 ‘장애와 건강’ 연구팀이 주간경향과 인터뷰하고 있다. 왼쪽부터 문영민 박사, 김승섭 교수, 김자영 박사 /정지윤 선임기자 김승섭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환경보건학과)와 그가 이끄는 서울대 장애와 건강 연구팀은 2023년 1월부터 ‘사회적 환경과 조기 노화 연구’를 시작했다. 지체장애인, 발달장애인, 발달장애인의 부모 각각 1000명을 대상으로 이들이 살아가는 사회적 환경이 조기 노화를 포함해 건강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20년 동안 추적 관찰한다. “한국사회를 실험실 삼아 몸으로 부대끼면서” 이들이 어떤 시간을 보내는지 조사하고, 변화의 지점을 찾는 게 목표다. 지난 3월 22일 김 교수와 연구팀의 김자영·문영민 박사를 만났다. -장애인의 건강을 연구 주제로 택한 이유는. 김승섭 “2020년 <장애의 역사>(킴 닐슨)를 번역했다. 그때 들었던 고민이 있다. 내가 성소수자, 이주민, 비정규직 노동자의 건강을 연구했는데 하다 보면 항상 장애라는 개념과 닿게 되더라. 우리 사회는 능력 있는 몸과 능력 없는 몸을 구분하고, 교육받고 일하고 투표할 자격이 있는 몸과 없는 몸을 구분한다. 소수자와 장애가 맞닿는 지점이다. 장애라는 개념 자체가 한국사회의 다양한 소수자를 연구하는 데 정말 중요한 화두라고 생각했다. 특히 부모가 발달장애 아동을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매년 10건 정도 발생한다. 이런 비극이 또 발생할 걸 알고 있는데 방치되고 있다. 지체장애인의 이동권 투쟁을 보면 많은 경우 요구사항이 지극히 상식적인데 마치 억지를 쓰는 것처럼, 불한당의 행동처럼 취급받는 걸 보면서 저들의 삶을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는 데이터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체장애인, 발달장애인, 발달장애인의 부모 연구를 함께할 방법을 고민했고, 브라이언임팩트(김범수 카카오 창업자가 설립한 재단)의 기금을 받아 시작할 수 있었다.” -기존 장애 연구와 차별점이 있다면. 김승섭 “세계적으로 장애인, 특히 인지장애와 자폐성장애를 일컫는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에 관한 연구는 드물다. 그들을 추적 관찰하면서 삶을 따라가 보는 연구는 거의 찾기 어렵다. 사회적 권력을 갖고 있지 못한 인구 집단에는 연구 기금도 잘 나오지 않는다. 발달장애인의 경우 거의 모든 해외 연구가 영유아·청소년 시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아이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개입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관심 있는 건 19세 이후다. 19세 이상의 발달장애인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관한 이야기는 극히 부재하다. 2021년 정부 통계에 따르면 한국에 등록된 자폐성장애인의 99%가 만 40세 이하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자폐성장애를 가진 장년, 노인 인구가 등장하는 사회가 곧 올 거라는 말이다. 아무런 준비가 안 된 상황이라 발달장애인, 발달장애인의 가족 그리고 지체장애인을 20년 동안 추적 관찰하면서 그들의 삶과 몸과 건강에 관한 이야기를 데이터로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장애 유형이 다양한데 지체장애, 발달장애에 초점을 둔 이유는. 김승섭 “지체장애인은 한국의 등록 장애인 중 40% 이상을 차지해 장애 연구를 기획할 때 가장 먼저 떠올랐다. 발달장애는 40대 이하에서 훨씬 많다. 점차 한국사회의 미래 이슈·과제가 되는 지점이 있다. 성인 장애인은 성장이 1차적으로 끝난 시기이고, 그럼 이들을 바꾸기보다는 사회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에 관한 질문으로 가야 한다.” 김승섭 교수: “자폐성장애인의 99%가 만 40세 이하예요. 한국에서 처음으로 자폐성장애를 가진 장년, 노인 인구가 등장하는 사회가 곧 올 겁니다. 그들의 삶과 몸과 건강에 대한 이야기를 데이터로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김승섭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가 3월 22일 주간경향과 인터뷰하고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 -지금까지 어떤 작업을 했나. 김승섭 “20년 코호트 연구를 목표로 하고 있다. 추적 관찰로 변화를 보는 건데 연구를 시작할 당시 측정이 안 되면 변화를 볼 수 없다. 작년 한 해 동안 매달 서울대 장애와 건강 포럼이라는 이름으로 장애인 당사자, 활동가, 학자, 가족을 불러 강의를 듣고, 사람을 모으고, 회의하고 자문하는 일을 계속했다.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서 발달장애인 부모 심층 인터뷰를 기반으로 한 질적 연구와 지체장애인 이동권과 화장실 접근성에 관한 연구도 진행해 지금 분석 단계에 있다.” -올해 연구 계획은. 김승섭 “앞서 말한 분석 결과를 논문으로 발표한다. 발달장애인 부모의 경우 혈액 검사로 스트레스와 조기 노화 지표를 확인한다. 그분들의 삶과 건강을 확인하는 대규모 조사가 예정돼 있다. 지체장애인의 경우 버스와 지하철, 장애인 콜택시 같은 이동권과 관련된 자원의 제약이 장애인들의 삶의 가능성, 즉 교육받고 노동하고 투표하고 사랑할 수 있는 삶의 가능성을 어떻게 제약하는지에 대한 대규모 조사도 기획하고 있다.” -참여 연구진은. 김승섭 “연구책임자인 나를 포함해 일곱 명이다. 옆에 두 박사님은 전업으로 이 연구를 하고 있다. 지체장애인 연구를 책임지는 문영민 박사와 발달장애인 부모와 발달장애 당사자 연구를 책임지는 김자영 박사다. 김자영 박사는 총괄도 같이해주고 있다.” -연구는 어떻게 진행되나. 김승섭 “심층 인터뷰를 기반으로 한 질적 연구, 건강보험 등 행정 데이터와 설문조사를 기반으로 한 역학연구, 텔로미어와 후성유전학적, 생리학적 지표와 같은 바이오마커 측정을 같은 인구 집단에 시행한다.” 김자영 박사: “발달장애인의 부모들은 이런 얘기를 합니다. ‘남편도 퇴직 연령이고, 나도 곧 60대에 접어드는데 우리 아이는 어떻게 될까.’ 연구하면서 이러한 어려움을 어떻게 잘 담아낼 수 있을까가 제일 큰 고민입니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장애와 건강’ 연구팀 김자영 박사가 3월 22일 주간경향과 인터뷰하고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 -텔로미어 길이를 재는 이유는. 김자영 “텔로미어는 염색체 말단 부위인데 염색체 복제 과정에서 생기는 오류로 인한 정보 손실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텔로미어 연구로 미국의 분자생물학자 엘리자베스 블랙번이 2009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는데, 이 연구팀에서 만성질환 아동을 돌보는 어머니들을 대상으로 아동을 돌본 기간과 텔로미어 길이의 연관성을 본 연구를 했다. 그 결과 돌봄 기간이 증가할수록 텔로미어 길이가 짧아지는 걸 확인했다. 텔로미어 길이가 짧아지면 세포의 노화가 온다고 판단할 수 있다.” 김승섭 “텔로미어를 측정하는 것은 지체장애인·발달장애인 당사자, 부모가 고립과 낙인 속에서 어려움을 겪는데 그런 것들이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바이오마커를 통해 보려고 하는 거다. 우리의 관심은 개입이다. 우리가 해야 하는 건 무엇인가. 사회적 지지의 중요성, 정책적 지지의 중요성이다. 부모들은 ‘내가 죽은 다음에 아이가 인간으로서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는데, 그 고민을 사회가 감당하는 순간 달라지는 것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 근거를 마련하는 연구를 해보려는 것이다.” -발달장애인 심층 면접은 어떻게 진행하나. 김자영 “발달장애 당사자 연구가 제일 어렵긴 하다. 그래서 동시에 여러 연구를 시작하기보다는 단계적으로 준비를 해나가려고 한다. 작년 여름 ‘스테이 스트롱 투게더(Stay Strong Together)’라는 중증 발달장애인 가족이 모이는 캠프에 찾아가 참여 부모 몇 분을 인터뷰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찾아가 인사하면서 상황을 물어보고 관계를 만들어가는 중이다.” -매년 연구 결과를 내나. 김승섭 “조직의 PI(연구책임자)로서 그 과정이 성과로 나와야 하는 건 당연하다. 그래서 올해 하는 조사에서 논문은 계속 나올 거다. 준비 과정이라기보다는 이 자체로 중요한 논문들로 나올 것이고, 이미 쓰고 있다.” -연구 과정에서의 어려움은. 김승섭 “선행 연구가 극히 드문 연구 방식이고 연구 내용이라 열심히 공부하면서 길을 찾지만 물어볼 곳이 많지 않은 면이 있다. 당사자를 인터뷰할 수 있는 카페도 그렇게 많지 않다. 문턱이 있거나 복도가 좁아 휠체어 회전이 안 된다. 엘리베이터에 휠체어가 못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이 과정 자체가 왜 이토록 한국사회에서 장애인 연구가 부재했는가를 보여준다. 논문 한 편을 쓸 때 더 많은 노력과 고민, 그리고 많은 실패를 경험해야만 하는 연구이다 보니 지식 생산은 더더욱 안 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기본적인 주장을 할 때도 ‘억지 부린다, 떼를 쓴다’ 이런 표현의 대상이 돼버린다.” 문영민 박사: “이동을 못 한다는 건 기본적인 교육·노동·관계맺음 등 모든 삶의 선택지를 다 제약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시민권 제약의 측면에서 이동권이 다양한 측면에서 건강과 삶의 질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장애와 건강’ 연구팀 문영민 박사가 3월 22일 주간경향과 인터뷰하고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 -이동권이 보장되지 않으면 건강하기도 어려울 것 같다. 문영민 “이동을 못 한다는 게 그냥 여기서 여기까지 가지 못하는 문제가 아니라 그것 때문에 이 사람이 기본적인 교육을 못 받고 노동을 못 하고 관계를 못 맺고 갈 곳이 없는 등 모든 삶의 선택지를 다 제약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동권의 제약이 다양한 측면에서 건강과 삶의 질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김승섭 “장애인들이 건강검진에 참여하지 못한 이유를 물으면 첫 번째로 아픈 데가 없어서 안 받았다고 하는데, 그다음으로 높은 건 검진장소까지 이동하기가 힘들어서다. 휠체어에 맞는 높이가 없어서 가슴 엑스레이를 찍을 수 없는 등 검진기관이 장애인 친화적이지 않은 문제도 있다. 의사 역시 많은 경우 장애인이 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른다. 나쁜 마음이 있어서가 아니라 경험이 없고 배운 적이 없어서다. 환대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병원에 더 안 가게 된다. 이동의 제약을 만드는 이유 중 하나는 이동 과정에서 겪는 차별 경험이다. ‘차별받을 경험’마저 사회적으로 박탈되는 구조를 이야기하지 않으면 장애인의 삶에 대한 이해는 정말 어려워진다는 걸 연구하면서 계속 배우고 있다.” 문영민 “장애인 콜택시를 예로 들겠다. 장애인 콜택시는 카카오택시처럼 바로 연결되는 게 아니다. 보통 60분 정도 걸린다고 하는데 어떨 때는 전화하면 바로 올 때도 있고, 빨리 왔으면 좋겠다 싶을 때는 2~3시간 기다려야 될 때도 있고. 그러니까 생활을 예측하고 계획할 수가 없다. 버스를 탈 수 있다 없다가 아니라 그 과정 자체를 내가 통제할 수 없고, 예측할 수 없다는 게 문제의 핵심이다.” -장애인 조기 노화는 일반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다. 김승섭 “낯선 논의라는 걸 먼저 기억해야 할 것 같다. 노화 개념을 말하면, 이것 자체가 한국 안에서도 법에 따라 다르다. 노인복지법이나 노인장기요양보험에서는 65세가 기준이고 연금 관련 법에서는 60세가 기준이다. 고용촉진법에서는 55세가 기준이다. 법마다 그 법이 목적으로 하는 바와 그 법이 제정된 사회환경에 따라 고령자의 범주가 다르다. 노화가 역사적·사회적 구성물이지 생물학적으로 명확히 나뉘는 것이 아니라는 거다.” -장애인 조기 노화의 원인은 뭔가. 김승섭 “노화를 생물학적 노화, 심리적 노화, 사회적 노화로 나눈다. 생물학적 노화는 근력량의 감소와 같은 신체적 기능의 퇴화를 말하고, 심리적 노화는 정서적인 변화, 사회적 노화는 관계가 축소되고 지위가 달라지는 건데 이 3개가 다 얽혀 있다. 보건학자로서 우리의 관심 지점은 우리가 개입해 변화를 만들 수 있는 사회적 요인 중 무엇이 장애인들을 더 우울하고 아프게 만들고 있는가이다. 그건 당연히 사회적 고립, 차별이고 이것이 생물학적 조기 노화, 심리적 조기 노화와 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장애가 있는 사람에게 다른 장애가 또 생길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문영민 “장애가 있는 신체가 취약성을 갖기 쉬운 것 같기는 하다. 나는 계속 앉아 있을 수밖에 없으니까 허리가 아플 수 있고, 다리를 못 쓰고 팔을 계속 써야 하니까 관절이나 연골이 쉽게 마모될 수도 있다. 병원에 자주 가지 못하고, 운동을 하지 못하는 문제가 결합이 되니 나쁜 건강 상태, 더 나아가면 다른 장애로 이어질 수 있다.” -장애인의 건강과 관련해 사회가 바뀌어야 할 점이 보인다면. 김승섭 “이동할 수 없어서 건강검진을 받지 못한다든가 건강검진을 받으러 갔는데 엑스레이 검사를 받을 수 없는 점들은 명백히 바꿔야 한다. 화장실을 못 가는 것도 중요한 문제다. 방광염에 걸리고 요도 감염에 걸리는 것들이야 짐작할 수 있는데 실은 그걸로 인해 투표장에 나가기 두려워지고, 먹는 음식을 제한하게 되고, 물을 안 먹게 된다. 이런 것까지도 짐작했는데 그것만이 아니다. 가족과의 관계 악화나 친구와의 관계, 사회적 관계의 문제까지도 닿아 있는 것이고, 그걸 학술 언어의 형태로 보여주려고 인터뷰하고 분석하고 있다.” 문영민 “한 분은 어머니가 화장실을 도와줄 때마다 계속 한탄을 하셨다고 한다. 그 한탄 때문에 잠깐 거주시설에서 살기도 했다. 어른이 됐는데도 부모와의 관계가 아직도 안 좋다는 거다. 화장실에서 비롯해 해소되지 못한 문제가 쌓였기 때문이다. 장애인 등의 편의 증진 보장에 관한 법은 1997년, 장애인차별금지법은 2007년에 제정됐는데 장애인 건강권 및 의료접근성 보장에 관한 법은 2015년에 제정, 2017년에야 시행됐다. 건강에 관한 관심은 다른 주제에 비해서 많이 늦게 시작된 편이고, 모든 논의가 시작되는 측면이 많다.” 김자영 “발달장애인의 부모를 만나면 이런 얘기를 한다. ‘남편도 퇴직 연령이고 나도 곧 60대에 접어드는데 우리 아이는 어떻게 될까. 혼자 살아갈 수 있을까.’ 그런 발달장애 부모들의 고민이 먹먹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연구하면서 이러한 어려움을 어떻게 잘 담아낼 수 있을까가 실은 제일 큰 고민이다.”
- 표지 이야기
- 여성 노동자 차별구제 어디서 하라고(2023. 11. 03 11:13)
- 2023. 11. 03 11:13 사회
- ㆍ고용평등상담실 예산 삭감…직장내 성희롱·성차별은 여전 지난 9월 25일 ‘전국고용평등상담실네트워크’ 회원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24년간 여성 노동자를 지켜온 고용평등상담실 폐지, 퇴행하는 고용노동부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한국여성노동자회 제공 “고용평등상담실은 고용평등 의식 확산을 통한 성평등한 노동환경 조성과 함께 현장 노동자들이 겪는 고충을 함께 고민하고 해결 방안을 찾는 데 구심점 역할을 해왔다. 앞으로도 고용평등상담실이 피해자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길 바라며, 성희롱·성차별 등 피해 고충이 있는 경우 주저하지 말고 고용평등상담실이나 고용노동부를 찾아주실 것을 부탁드린다.” 2022년 2월 고용노동부는 <고용평등상담실 우수사례집>을 발표하면서 고용평등상담실의 성과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고용평등상담실은 고용노동부에서 예산을 지원받아 성차별, 직장내 성희롱 등에 대한 상담 및 권리구제 서비스를 제공한다. 2019년부터는 심리정서 치유프로그램을 연계·지원해왔다. 2000년 5월 10개소에서 시작된 고용평등상담실은 2023년 현재 전국 19개소가 운영 중이다. 정부가 2024년부터 고용평등상담실 지원을 중단하기로 했다. 고용노동부는 2024년 예산안에서 12억원 규모의 관련 예산을 5억5100만원으로 54.7% 삭감했다. 고용평등상담실에서 제공하던 서비스는 지역노동청 주관으로 8개소에서 각 1인의 상담사를 채용해 자체운영하겠다는 방침이다. 하루 3~4건의 전화 업무? 고용노동부의 이 같은 결정에 대해 성차별·성희롱 피해 노동자의 권익보호가 축소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22년까지 누적된 고용평등상담실의 총 상담 건수는 16만8000건이다. 2005년 5906건이었던 상담 건수는 2022년 1만1398건으로 증가했다. 24년간 전문적으로 상담을 제공해온 고용평등상담실 지원을 중단하고, 19개 상담실을 절반 이하로 줄인 8개소에서 이런 증가세의 상담 신청을 제대로 처리할 수 있을까. 고용노동부는 상담의 91.5%가 전화·온라인 상담이라 충분히 수요 대응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하루 3~4건의 전화 업무 수준으로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10월 31일 국회에서 ‘민간 고용평등상담실 폐지를 막기 위한 국회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전윤정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그동안 31명이 전국 각지에서 담당하던 상담을 8명이 어떻게 전담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인지 절대적인 수치만을 놓고 비교해도 납득이 어렵다. 고용평등상담실 제도의 축소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절대적인 수치만이 아니라 상담의 질 또한 문제다. 김난주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이 발표한 ‘고용평등상담실 24년 성과와 필요성’에 따르면, 이용 노동자들이 겪는 문제는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 사안이 중첩된 복합문제다. 김 위원이 인용한 고용평등상담실 이용자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직장내 성희롱’, ‘직장내 괴롭힘’, ‘임금 차별’, ‘임금 외 복리후생 차별’, ‘퇴사’, ‘승진 배치 차별’, ‘임금 체불’, ‘육아휴직 사용 관련’ 등 1명의 이용 노동자가 13개의 상담 영역에 대해 복수의 상담을 받은 것으로 분석됐다. 이용 노동자의 상담도 1회에 그치지 않는다. 고용평등상담실 상담사례에 따르면 이용 노동자들은 전화·방문·온라인 상담을 여러 차례 이어가며 지속적으로 고용평등상담실과 대응을 논의했다. 파견 계약직 노동자 A씨는 성희롱 피해를 입었지만, 파견직이라는 이유로 회사에 신고해도 보호를 받지 못했다. 상사였던 가해자는 회사에 신고한 A씨를 오히려 고소하겠다고 나섰다. A씨는 고용평등상담실과 전화 등 온라인 상담 18회, 방문 상담 4회 등 모두 22회의 상담을 진행했다. 고용평등상담실이 연결시켜준 노무사, 변호사의 무료상담을 받기도 했다. 피해 사실 진술서 작성, 법률전문가 동행 등 고용평등상담실의 밀착 지원 결과, 가해자는 성희롱 사실을 인정했고, 회사에서 징계를 받았다. 또 회사로부터는 성희롱 예방교육 실시 등 재발방지대책 수립을 이끌어냈다. 신상아 서울여성노동자회 회장은 “고용평등상담실 상담은 정보 제공뿐만 아니라 사내 대응, 고용노동부 진정, 노동위원회 구제 신청, 민·형사 대응,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등 사안에 따라 다양한 방식을 취하게 된다. 상담은 당해에 끝나기도 하지만 몇 년씩 이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신 회장은 “상담사는 수시로 전화로 소통하게 되는데 30분 이상은 기본이고 1시간 이상 소요되기도 한다. 밀착지원이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는 방문 상담을 통해 심층적으로 사건을 파악하고 보다 면밀하게 피해자의 상황을 살핀다. 방문 상담은 최소 1~2시간 이상 소요되며, 진술서 작성을 검토하거나 자료 작성이 필요한 경우는 그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고 말했다. 이러한 모든 과정에서 여러 차례의 상담과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만, 상담은 1건으로 처리된다. ‘하루 3~4건의 전화 업무라 감당할 수 있다’는 고용노동부의 접근을 두고 성차별·성희롱 피해노동자의 권리구제를 기계적·도식적인 전화 안내 정도로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고용평등상담실 폐지 규탄 기자회견’에서 한 참가자가 찢겨진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 /한국여성노동자회 제공 특수고용노동자 등 사각지대 구제 의문 고용노동부는 “상담에서 권리구제까지 원스톱 지원을 위한 창구 단일화로 피해 권리구제 실효성을 제고하겠다”는 이유를 사업변경 이유로 들었다. 하지만 ‘창구단일화’는 민간이 행정기관을 견제·보완할 수 있는 순기능을 차단할 수 있다. 기존에 고용노동부가 불인정한 사건을 고용평등상담실이 결과를 바꿔낸 사례들이 있다. 직장내 성희롱 피해자인 B씨는 국민신문고를 통해 성희롱 피해 사실과 회사의 조치 미흡에 대한 민원을 접수했다. 피해자는 해당지청에 직장내 성희롱 피해사실과 다른 피해자들의 진술서 및 연락처 등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해왔으나 해당지청은 회사가 제출한 자료를 근거로 사건을 종결 처리하려고 했다. 이에 고용평등상담실은 근거자료를 바탕으로 의견서를 작성해 해당 사업장에 대한 조사와 관리·감독을 요구했다. 고용평등상담실이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면서 해당 사건의 재조사가 결정됐고, 회사는 가해자에 대한 징계를 내리게 됐다. 신상아 회장은 “재진정 사건에서 중요한 지점은 ‘지청’이란 공간에서 같이 근무하는 근로감독관에게 상담사가 근로감독관의 판단이 잘못됐다고 문제 제기를 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형사사건의 경우도 이의신청 수용비율이 낮은 것은 검사의 판단을 다른 검사가 잘못했다고 이의제기하기를 꺼리기 때문이다. 하물며 지청에서 상담사가 아닌 근로감독관이 다른 근로감독관에게 당신의 판단이 잘못된 것이라고 적극적으로 끝까지 나서 줄 것인지 의문스럽다”고 말했다. 민간 고용평등상담실의 견제·보완 기능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고용노동부의 성차별적 인식과 사각지대 때문이다. 고용평등상담실에는 노동부 사건처리 과정에서 2차 피해를 호소하는 피해자들의 상담이 지속되고 있다. 직장내 성희롱 피해를 입고 노동청을 찾아간 피해자에게 “이런 것만으로 성희롱이라고 주장하면 본인이 행정소송이 걸릴 수도 있다”고 하거나 조사과정에서 진정인을 “아줌마”라고 호명하며 제출한 자료를 “볼 필요 없다”고 무시한 사례 등도 있다. 한 고용평등상담실 상담원은 “상담 오신 분 중에는 근로감독관한테 상처를 받고 오는 이중 피해 케이스가 한둘이 아니다”고 말했다. 홍수경 공인노무사는 “직장내 성희롱, 고용상 성차별 등에 대해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의 업무전문성이 강화됐거나 성인지감수성에 대한 교육이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근로감독관들이 격무에 시달리고 있어 전문상담업무에 배치되더라도 다른 신고사건을 같이 수행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여러 여건에 비추어 고용노동부가 법률에 정해진 본연의 직무도 수행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민간단체의 헌신과 열정으로 운영돼온 고용평등상담실을 내부화해 잘 운영할 수 있을지 부정적이다”라고 말했다. 프리랜서, 플랫폼 노동자 등 노동법 사각지대에서 일하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의 권리 구제가 더 어려워지리라는 우려도 나왔다. 고용평등상담실 사례를 보면 다수의 노동자가 “고용노동부에 문의했더니 5인 미만 직장은 해결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특수고용직이었기 때문에 고용노동청에서 직장내 성희롱으로 진정조차 할 수 없었다”고 하소연하며 고용평등상담실을 찾았다. 특수고용노동자인 C씨는 직장에서 성추행 피해를 당했지만,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해 보호를 받을 수 없었다. “직업고아가 된 것 같다”던 C씨는 고용평등상담실을 알게 됐고, 위로와 격려 및 도움을 받으며 비로소 고소 절차를 시작할 수 있었다. C씨는 “고용평등상담실은 나 같은 약자를 국가가 이렇게 도와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준 연결통로였다. 이곳이 폐지되면 이 순간에도 이런 일을 경험하는 피해자들은 어디서 구제를 받아야 하나”라고 말했다. 사업 유지한다더니… 2022년 9월 정부가 발표한 국고보조사업 연장평가보고서는 고용평등상담실 사업에 대해 “직장내 성희롱·고용상 성차별 등 피해 근로자의 대처방안 등 관련 정보의 신속한 제공으로 분쟁을 사전에 예방하고, 상담 과정을 통해 해결이 용이하지 않은 사안은 행정기관(지방관서·노동위원회·국가인권위원회 등) 활용 안내 및 근로감독관과의 연계·협업 활성화로 신속한 권리구제 등 실효성을 높이는 데 일정부분 기여했다”라고 평가하고 있다. 또 “일련의 법 개정 및 제도 개선으로 정책 목적은 일부 달성했으나, 이것이 실제로 작동하는 경과를 지켜보는 동안 이 사업을 유지할 필요성이 있다. 이는 각 제도의 개선에 대한 경과를 확인하고 사업(전달체계)별 사각지대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다”라며 사업 유지 입장을 밝혔다. 유지를 결정한 지 불과 1년 만에 정부가 갑자기 이 사업을 폐지하겠다고 나섰다. 전윤정 입법조사관은 “민간 고용평등상담실은 그동안 여성 노동자들의 ‘보루’로 인식되면서 수많은 사건을 구제했고, 우리 사회에 차별에 대한 문제 제기를 끊임없이 던지면서 그 역할을 충분히 해왔다”며 “정부 행정에서 ‘고용평등’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제도를 중단하는데 과연 정부가 국회와 어떤 논의를 거쳤는가”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정부 예산안이 현재 각 소관 상임위에 제출된 상태로 심의가 이뤄지고 있다. 민간 고용평등상담실 제도의 필요성과 그 의의를 충분히 숙고해 정부 행정의 중요한 사업이 중단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 [한용현의 노동법 새겨보기](28)무기계약직은 차별이 아니라지만(2023. 11. 03 11:12)
- 2023. 11. 03 11:12 사회
-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노동법은 차별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①남녀의 성(性)을 이유로, ②국적 ③신앙 또는 ④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근로조건에 대한 차별 대우를 하지 못합니다(근로기준법 제6조 ‘균등한 처우’). 노동자의 성별, 국적, 신앙을 이유로 차별을 금지한다는 말은 그래도 명확합니다. 특히 고용상 성차별은 남녀고용평등법에서 구체적으로 성별, 혼인, 임신 또는 출산 등의 사유로 채용 또는 불리한 조치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관련해 최근 성비 채용차별 사건이 문제 됐습니다. 정규직 신입사원 공개 채용 과정에서 여성 지원자를 떨어뜨리고 남성 지원자를 합격시키는 등 미리 정해둔 성비에 따라 지원자를 채용한 카드회사와 은행들의 인사담당자들이 각각 유죄 판결을 선고받기도 했습니다. 고용상 성차별은 형사처벌까지 하며 금지하고 있는 쟁점입니다. 어느 국내 항공사는 내부규정에서 ‘내국인’ 운항승무원의 경우 수염을 기를 수 없게 했지만, ‘외국인’ 운항승무원은 콧수염만을 허용하도록 규정했습니다. 항공사는 턱수염을 기른 A(운항 기장)에게 턱수염을 기르지 말 것을 지시했습니다. A는 이 규정이 차별적이라고 주장하며 지시를 거부했습니다. 회사는 A의 반응에 따라 그의 비행업무를 일시 정지시켰습니다. 법원은 ‘내부규정은 국적을 기준으로 내국인과 외국인 직원을 차별하며, 헌법 제11조(평등권) 및 근로기준법 제6조의 평등원칙에 위배된다. 내국인의 일반적 행동자유권을 과도하게 침해하며,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된다’는 취지로 판결했습니다(서울고법 2016누50206 판결, 비록 대법원의 판결 이유는 달랐지만, 법원에서 내국인 국적 차별을 명시적으로 인정한 드문 사례입니다). 신앙에 따른 차별과 관련한 차별 사건은 채용과 관련해 발견됩니다. 인권위원회는 종교의 이념과 무관한 학과 교수 채용 관련 세례기독교인을 요구한 사례에서 고용차별(05진차345)과 종립학교에서 일률적으로 모든 교원의 지원자격을 교회의 세례교인으로 제한하는 행위를 한 사례에서 고용차별(18진정0830800)을 각각 인정했습니다. 이렇게 성별, 국적, 신앙 차별 사례들은 비교적 명확합니다. 노동법상 ‘사회적 신분’의 모호함 그런데 ‘사회적 신분에 따른 차별금지’가 무엇인지는 생각이 필요한 문제입니다. 사회적 신분이라는 다소 생소한 단어는 헌법에도 있습니다. 누구든지 사회적 신분에 의해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헌법 제11조 제1항)고 나옵니다. 하지만 노동법학계에서 어떤 지위 내지 자격이 사회적 신분에 해당하는지에 관한 의견은 매우 다양합니다. 노동법상 사회적 신분은 주로 ‘고용형태’, 정규직과 무기계약직을 의미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계약직에는 ①2년 이내의 기간제 계약직과 ②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무기계약직)가 있습니다. 이중에 ①기간제 계약직 근로자는 기간제에 규정된 차별시정 구제신청제도(노동위원회)를 활용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②무기계약직 근로자는 동종 유사한 업무에 종사하는 정규직 근로자에 비해 차별적 대우를 받더라도 ‘차별시정신청권’이 없습니다(대법원 2013다1051도 “기간제근로자의 신분이 아니었으므로” 기간제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봤습니다). 현실적으로는 그러나 차별시정제도의 대상이 아닌 무기계약직 노동자들은 같은 공간에서 같은 업무를 함께 수행하고 있는 정규직 또는 공무원과 일상적으로 비교하면서 차별로 인한 좌절과 절망을 느끼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특히 정부 정책에 따라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 많은 노동자가 민사소송(임금 또는 손해배상청구)을 통해 고용형태에 대한 차별을 시정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 소송들은 ‘무기계약직이라는 고용형태가 사회적 신분에 해당하느냐’ 여부가 쟁점입니다. 고용형태에 대한 사회적 신분을 부정한 판결로는 ▲일반직업상담원이라는 근로자의 지위(서울고법 2017나2039724) ▲사무직 근로자의 정년과 기술직 근로자(서울행정법원 2010구합2203) ▲서울 지역에 근무하는 근로자와 청주 지역에 근무하는 근로자(청주지법 2014가합1338) 등이 있습니다. 반대로 사회적 신분을 인정한 판결은 ▲정규직과 실제로 동일한 업무를 하는 무기계약직(업무직·연봉직) 전환 근로자(서울남부지법 2014가합3505) ▲기능직 공무원과 동일·동종 업무를 수행하는 무기계약직(서울중앙지법 2017가합507736) ▲정규교원과 기간제교원(서울중앙지법 2019가합579124) 등이 있습니다. 무기계약직은 신분이 아니지만, 맞을 수도 위와 같은 결의 임금 사건인데, 원고인 노동자들은 국토교통부 국도관리원으로서 무기계약직(공무직)으로 일했습니다. 그런데 공무원과 공무직은 차이가 있었습니다. 공무원에게는 정근수당, 성과상여금, 가족수당, 직급보조비, 출장여비 등 여러 가지 수당이 지급되는 반면, 무기계약직인 공무직 노동자들은 수당을 받지 못했습니다. 무기계약직 노동자들은 이런 차별이 헌법상 평등원칙과 근로기준법 제6조 위반이라며 각 수당 상당액의 손해배상을 국가에 청구했습니다. 대법원은 최근 드디어 이 문제에 대한 판단을 내렸습니다(대법원 2023. 9. 21. 선고 2016다255941 전원합의체 판결). 대법원 다수의견(7인)은 개별 근로계약에 따른 무기계약직의 지위는 공무원과의 관계에서 근로기준법이 정한 차별 사유인 ‘사회적 신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봤습니다. 무기계약직과 공무원은 의무와 보수의 성격, 업무 변경 가능성, 근무조건 결정 방식 등에서 차이가 있고, (양자를) 본질적으로 동일한 비교 집단으로 삼을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특히 국가공무원 제도의 특수성 때문에 양자가 적절한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반대로 무기계약직이라는 고용상 지위는 자신의 의사나 능력 발휘에 의해 쉽게 회피할 수 없고 ▲한번 취득하면 장기간 점하게 되는 성격을 지니는 점 ▲공무직 근로자에 대한 열악한 근로조건과 낮은 사회적 평가가 고착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현실에 비춰보면, 사회적 신분에 해당한다는 반대의견이 있습니다(대법관 5인). 일단 사회적 신분은 인정하고 차별의 합리적 이유가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자는 별개 의견도 있습니다(대법관 1인). 61쪽의 긴 판결문에는 다른 의견에 대해 노동법적 인식의 빈곤함이 매우 안타깝다는 등 대법관끼리 벌인 격한 토론이 들어 있습니다. 다만 다수의견은 무기계약직의 사회적 신분에 대한 일반적인 판단은 아니고, “공무원과의 관계에서만의 판단”이라는 한발 물러선 의견을 특별히 추가했습니다. 즉 무기계약직은 공무원과의 관계에서는 사회적 신분이 아니지만, 공공기관·사기업에서는 맞을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무기계약직 차별이 크게 문제 되고 있는 현 상황에도 불구하고, 무기직에 대한 입법적 해결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법원의 적극적 해석이 요구됩니다.
- 한용현의 노동법 새겨보기
- 댓글로 뿌리내린 차별·폭력···닫을까 엄격관리할까(2023. 07. 07 11:29)
- 2023. 07. 07 11:29 경제
- 한 포털사이트의 이용자가 뉴스에 댓글을 달고 있는 모습 / 경향신문 자료사진 지난 7월 3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는 매일 퇴근시간에 서울 혜화역에서 장애인 이동권 예산 확대의 필요성을 알리는 선전전을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한국의 장애인 정책예산 비중(0.6%)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2.14%)의 3분의 1 수준. 전장연은 그간 “예산에 맞춘 제도가 아니라 필요한 제도에 맞는 예산을 편성해야 한다”고 지적해왔다. 전장연은 “기획재정부가 내년도 예산안에 장애인특별교통수단 예산 3350억원을 반영해 국회에 제출할 때까지 선전전을 계속하겠다”면서 “시위로 인한 열차 지연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전장연 활동가들은 열차 탑승을 시도했지만 서울교통공사에 의해 저지됐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올라와 있는 전장연 관련 최신 뉴스의 내용이다. 전장연의 요구사항인 ‘장애인특별교통수단 예산 확대’와 이들의 활동계획에 대한 시민들의 생각은 어떨까. 댓글란을 살폈다. 의견이라 보기 어려운 ‘감정 배설’을 발견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죽음’을 언급하는 혐오 댓글이 여러 건 눈에 들어왔다. 혐오표현이란 무엇인가. 어떤 개인, 집단이 가진 속성을 이유로 편견, 차별을 조장하거나 멸시, 모욕, 적의를 드러내고 폭력을 선동하는 표현을 말한다. 문제의 댓글을 두고 ‘혐오냐 아니냐’를 따지는 일은 한가하게 느껴졌다. 사람이 사람에게 해서는 안 될 표현이라는 걸 굳이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네이버는 악성 댓글 신고를 받고 있다. 이미지는 댓글 신고를 할 때 체크하도록 돼 있는 신고 이유 분류표 / 네이버 이미지 캡처 이 명백한 혐오 댓글들을 지우고 싶었다. 네이버·다음(카카오) 등이 회원인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는 지난 4월 28일 “혐오표현으로 인한 피해의 예방 및 구제 절차”를 담은 ‘혐오표현 자율정책 가이드라인’(혐오표현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바 있다. 미디어·법학 등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혐오표현심의위원회가 4개월여에 걸쳐 만든 이 가이드라인은 발표 직후부터 각 포털 사이트에 적용됐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회원사는 혐오표현을 ‘가리거나 노출을 제한하는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고, 혐오표현 여부를 판단하기 힘들다면 혐오표현심의위원회에 심의를 요청할 수 있다. 해당 혐오표현의 방치가 ‘가이드라인 위반’은 아닌지 혐오표현심의위원회 측에 물었다. “혐오표현에 대한 삭제 등의 조치는 포털의 몫이며 심의위원회는 포털이 요청한 사안에 대해 혐오표현인지 여부를 심의할 뿐”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심의위원회는 “(우리는) 포털이 혐오 댓글 삭제 등의 조치를 얼마나 제대로 하고 있는지 평가하는 기구는 아니다”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네이버 댓글 정책에 따라 ‘신고’를 해봤다. ‘욕설/생명경시/혐오/차별적 표현입니다’에 체크한 뒤 조치를 기다렸다. 댓글은 24시간이 넘어도 사라지지 않았다. 언론을 담당하는 네이버 관계자에게 문의했다. 이 관계자는 “‘클린봇’이 부적절한 표현을 탐지해 삭제 처리하고 있지만 완벽하지는 않다. 앞으로 더 노력하겠다”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그 기사 링크를 공유해주시면….” 몇 분 뒤 해당 댓글은 “운영규정 미준수로 인해 삭제”됐다. 그러나 ‘쓰레기’를 거론하며 폭력을 선동하는 내용의 또 다른 혐오 댓글들은 그대로였다. 소수가 쓰고 다수가 읽고 포털뉴스의 댓글은 누가 달까.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21 언론수용자조사’에 따르면 ‘지난 1주일 동안 뉴스에 댓글을 단 적이 있다’고 답한 이들은 100명 중 6~7명(응답자 3976명의 6.8%). 반면 댓글을 읽는 사람은 100명 중 62명(61.7%)이었다. 지난해 2월 한국리서치 조사에선 ‘항상’ 혹은 ‘종종’ 뉴스 댓글을 읽는 이들의 비중이 100명 중 88명(응답자 1000명 중 88%)이었고, 그중 42명은 댓글 많은 뉴스를 골라 읽고 있었으며 27명은 뉴스보다 댓글을 먼저 읽었다. 댓글 세계는 ‘소수 이용자의 독과점’ 상태에 가깝다. 2020년 12월 SBS와 이원재 카이스트 교수팀의 분석에 따르면 댓글 작성자의 10%가 전체 댓글의 73(다음)~75%(네이버)를 쓰고 있었다. 이처럼 소수가 지배하는 댓글창이 혐오·모욕·폭력성 댓글로 얼룩진 것은 하루 이틀의 얘기는 아니다. 혐오 발언을 분류해내는 프로그램을 개발한 강태영 언더스코어 대표는 “악성댓글의 비중이 포털 뉴스 댓글창은 약 40% 정도”라고 본다. 2016년 인권위원회조사(혐오표현 실태조사 및 규제방안 연구)에 따르면 시민들이 ‘온라인 혐오표현’을 가장 많이 경험한 곳 1위는 뉴스(기사·영상) 댓글이었다. 10·29 이태원 참사 100일을 이틀 앞둔 지난 3월 3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시민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이태원 참사를 다룬 뉴스의 포털 댓글의 절반 이상은 ‘혐오성 댓글’이었다는 분석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 성동훈 기자 특히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민, 재난 참사의 피해자 등을 집중적으로 다룬 보도일수록 혐오 댓글은 두드러진다. 국민일보와 이원재 카이스트 교수팀이 지난해 이태원 참사 직후의 댓글 123만여 건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참사 관련 뉴스 댓글의 절반 이상(58.27%)은 ‘혐오 댓글’이었다. 이태원 참사 유족의 기자회견이나 장애인 이동권 현장을 다룬 보도의 댓글창은 그야말로 ‘혐오가 넘쳐 흐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영향 안받는다? 혐오가 난무하는 댓글창을 두고 혹자는 ‘무시하면 된다’고 말한다. ‘나는 혐오 댓글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생각에서 나오는 해결책(?)이다. 혹시 혐오 댓글에 휘둘리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 당신만 그런 것은 아니다. 미디어가 자신보다는 다른 사람들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하는 것을 ‘제3자 효과’라고 하는데 혐오 성격이 두드러지는 댓글에 대해선 이 효과가 커진다고 한다(‘혐오성 댓글의 제3자 효과’ 조윤호·임영호·허윤철). 그러나 우리 누구도 혐오 댓글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나는 영향을 안 받는다’는 생각이 사실이 아닐 가능성도 높지만(범죄기사와 지역감정 조장 댓글을 함께 본 경우 특정지역에 대한 편견이 증가함을 보여주는 실험 연구가 있다), 이 생각을 받아들이더라도 ‘혐오 댓글에 영향받는 다른 사람들’을 상정함으로써 자신의 여론 인식이 왜곡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악성 댓글이 여론 지각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는 연구(‘인터넷 뉴스 댓글이 여론 및 기사의 사회적 영향력에 대한 지각과 수용자의 의견에 미치는 효과’, 이은주·장윤재)가 나온 건 이미 15년 전 일이다. 박경석 전장연 공동대표가 지난 1월 20일 서울 지하철 4호선 삼각지역에서 오이도역 리프트 추락 참사 22주기를 맞아 헌화하고 있다. 지난해 전장연의 장애인 이동권 시위를 다룬 뉴스 댓글창에는 대규모의 혐오 댓글이 쏟아진 바 있다. / 성동훈 기자 이은주 서울대 교수는 혐오 발언을 다룬 강연집 <헤이트>(마로니에북스)에서 “<퍼블릭 오피니언>이라는 고전에서는 ‘객관적 실재로서의 세계’와 ‘우리 머릿속의 현실에 대한 그림’을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언론이 한다고 본다”면서 “오늘날은 온라인에서 접하는 다수의 이름 모를 사람들이 올리는 글들이 비슷한 방식으로 현실 인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 많은 연구에서 보고됐다”고 설명한다. 무엇보다 혐오 댓글은 당사자들에게 극한의 고통을 안긴다는 점에서 더는 방치할 수 없는 문제다. 혐오·모욕으로 점철된 댓글들로 고통받다가 생을 마감한 이들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다. 이태원 참사 46일 뒤 자살한 A군은 숨지기 직전 혐오·모욕 댓글에 고통을 받아왔다고 한다. A군의 유족은 인터뷰(MBC 뉴스데스크, 12월 14일)에서 “(A군이) 희생된 친구들을 모욕하는 댓글들을 보면서 굉장히 화를 많이 냈다”고 전했다. “너무 지쳤어요. 삶도, 겪는 혐오도, 나를 향한 미움도.” 전직 음악 교사이자 퀴어 활동가였던 고 김기홍씨가 유서에 남긴 말이다. 김씨와 같은 성소수자들이 주인공이 되는 ‘퀴어 축제’를 다룬 보도의 포털 댓글창은 올해도 혐오 발언들로 얼룩졌다. 가수 설리와 구하라, 프로배구선수 고유민은 생전 악성 댓글에 고통받아왔고, 이들의 죽음은 포털뉴스의 연예·스포츠 댓글창 폐쇄로 이어졌다. “차라리 댓글창 닫자” vs “적극적 관리부터” ‘혐오가 넘쳐 흐르는 댓글창’을 어떻게 할 것인가. 뉴스와 댓글, 혐오 발언을 오래 들여다본 미디어·사회학·법학·여성학 연구자들과 미디어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댓글창 폐지론’이 나오기 시작했다. 언론학자인 김민정 한국외대 교수는 2021년 3월 한겨레 시민편집인으로서 쓴 칼럼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 금지를 말하는 보도내용과 별개로) 댓글란에선 혐오의 언어가 넘쳐난다. 이 상황을 방치해선 안 된다”면서 “혐오의 언어를 걸러내기 위한” 댓글창 폐쇄를 촉구했다. 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장도 지난해 12월 한 칼럼을 통해 “인터넷 포털뉴스 댓글 이제는 없애자”고 제안했다. 권김 소장이 생각하는 방향은 이렇다. “기사의 댓글창을 일단 모두 닫고 예외적으로만 열면서 댓글 토론의 주제, 규칙을 정하고 토론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댓글창이란 공간에 대해 언론·포털이 책임을 지게 하자는 것이다.”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의 ‘혐오표현 자율정책 가이드라인’ 캡처 / 한국인터넷자율정책가구 홈페이지 댓글창을 폐지하면 ‘온라인 공론장’이란 순기능이 사라지므로, ‘혐오표현을 적극 삭제’하는 등으로 방법을 더 강구해야 한다고 보는 학자들도 있다. 최진봉 성공회대 교수는 “한국처럼 언론 지형이 이념적으로 명확하게 구분되는 상황에서 댓글이 사라진다면 ‘편파적이다’, ‘가짜뉴스다’라는 지적들까지 함께 사라지는 것”이라면서 “뉴스로 돈 버는 포털이 혐오표현이 올라오는 대로 적극 삭제하고, 혐오표현을 자주 사용한 이용자는 퇴출하는 방식으로 관리를 하면 된다. 혐오 댓글 때문에 댓글창을 닫자는 것은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막는 것”이라고 말했다. ‘혐오표현을 적극적으로 지우고 해당 이용자에 벌칙을 부과하면 된다’는 이 같은 주장에 대해 권김 소장은 “특정 표현을 삭제하면, 그 표현을 우회하는 방식의 혐오표현이 생겨난다는 사실이 확인되고 있지 않느냐”면서 “지금의 댓글 공간은 이미 온라인 공론장으로서 기능할 수 없기 때문에, ‘공론장이란 순기능을 살리냐 아니냐’라는 프레임부터 틀렸다고 본다”고 말했다. 2017년 ‘국정원 댓글’ 사건을 수사했던 검찰이 국정원 퇴직자 모임인 양지회의 서울 서초구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뒤 압수물을 옮기고 있다. / 연합뉴스 사회 약자를 멸시·억압하는 ‘일베’적 사고방식이 광범위하게 퍼져나가고 있음을 지적한 <보통 일베들의 시대>(오월의 봄)의 저자 김학준 독립연구자도 “포털뉴스 댓글엔 공론장 기능이 없다”고 본다. 그는 “수많은 사람이 동시에 모인 온라인 공간에서의 ‘말’은 결국 자극, 도발, 흥분의 언어놀이 성격을 갖고 있을 수밖에 없다”면서 “최소한 포털뉴스에선 댓글이 없어져야 하고, SNS의 댓글 공간 역시 (해당 계정이) 일정한 팔로워 수를 넘긴다면 계정주든 플랫폼이든 책임을 갖고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포털사들의 혐오표현 가이드라인 심의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장기적 교육’과 ‘관리’를 병행해야 한다고 본다. 그는 “사실 법적 처벌이 가장 강력하겠지만 사후대책일 수밖에 없고, 부작용도 크다. 댓글창의 순기능도 무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면서 “혐오, 차별, 배제를 담은 주장이 어떻게 민주주의와 공동체를 해치는지를 학교와 사회에서 적극 교육하면서 현재 마련된 것과 같은 포털사 혐오표현 가이드라인 규제가 더 적극적으로 활용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혐오 댓글 부추긴 언론·정치권 반성부터 다만 댓글창 ‘폐지’든 ‘삭제 관리’든 염두에 둬야 할 변수가 있다. 혐오표현 제재에 대한 이용자들의 수용성이다. 혐오 발언을 분류해내는 프로그램 ‘헤이트스코어’를 개발한 강태영 언더스코어 대표는 “댓글창 폐지 후 이용자들이 (포털이 아닌) 유튜브 등 다른 공간에 몰려가 혐오 발언을 퍼붓는다면 온라인이 시궁창인 것은 똑같다. 포털은 국내기업이지만 외국 플랫폼엔 정책적 수단마저 쓸 수 없게 된다”면서 “엄격한 삭제관리도 가능하겠지만, 이용자들이 ‘재미없다’면서 다른 공간으로 떠나는 순간 결과는 (댓글창 폐지와) 유사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미 댓글창이 폐지된 스포츠·연예 분야에선 커뮤니티로의 혐오표현 풍선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7월 서울광장에서 열린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 시민들이 잔디밭에 무지개 깃발을 펼쳐놓은 채 행사를 즐기고 있다. / 한수빈 기자 결국 넘쳐나는 ‘혐오성 댓글’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억제하느냐는 우리 사회가 혐오를 얼마나 단호하게 차단할 분위기를 갖추고 있느냐와 맞물려 있다. 시민 다수가 ‘혐오 댓글 그만’이라는 시그널을 받아들인다면 혐오를 배설할 ‘대체 창구’로 몰려가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혐오 댓글창’ 해법 모색의 첫 단계는 그간 혐오 댓글을 유도·방치한 언론과 정치권의 뼈저린 반성인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 댓글 폭력의 공범이다>의 저자인 정지혜 세계일보 기자는 책을 통해 “댓글창이 망가진 공론장의 오명을 갖게 된 데는 언론의 실책도 크다”면서 “포털에 좌판을 깔고 조회 수 낚시 기사를 써댄” 언론사 역시 ‘공범’임을 꼬집었다. 언론에 포털의 ‘혐오성 댓글’이 조회 수를 돈으로 환산하는 과정에서 생성된 부산물에 가까웠다면, 정치권에는 혐오성 댓글이 ‘표’였다. MB 정권은 국정원, 경찰 등을 동원해 노조, 세월호 유족 대상 혐오를 배설하는 ‘댓글 부대’를 운영했다. 댓글 추천 수 조작으로 여론을 움직이려 했던 ‘드루킹 사건’으로 민주당 측 역시 ‘댓글창을 망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해외 언론사들의 댓글 정책 사례를 참고할 필요도 있다. 영국과 미국에서 주간지를 내는 ‘더 위크’ 편집장 벤 프루민은 2015년 댓글창을 폐지하며 이렇게 밝혔다고 한다. “가장 현명한, 최선의 생각을 독자들에게 전달해야 한다는 우리의 (저널리즘적) 임무에 반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하루 30개 내외의 기사와 칼럼에만 댓글을 달 수 있고, 뉴욕타임스는 15% 정도의 기사에만 댓글창을 연다. 뉴욕타임스의 경우 모든 댓글은 관리자의 검토를 거쳐 게시 여부가 결정된다. ‘댓글 운영정책에 대해 과도하게 논의하는 댓글’조차 퇴출시킬 만큼 기준이 엄격하다. 노르웨이 공영방송 NRK는 기사 내용과 관련된 퀴즈를 풀어야만 댓글을 달 수 있게 하는 ‘노투코멘트’(know2comment)라는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아직은 일부 기사에만 적용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외 언론의 댓글창이 축소되고 있다’고만 해석하는 것도 곤란하다. 최지향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는 ‘신문과 방송’(2022년 9월호) 기고문을 통해 이렇게 지적했다. “2010년대 중반 많은 해외 언론사가 뉴스 댓글 기능을 폐지하면서 온라인 기사 댓글은 소멸할 것이라는 예측이 대두되기도 했지만, 지금도 기사 댓글 기능은 없어지지 않았고 도리어 그 기능을 강화하는 언론사도 있다.” 요컨대 해외 언론사들의 사례는 폐지하든 관리하든, 댓글 공간에서도 저널리즘적 책무를 놓지 않으려는 노력으로 봐야 한다는 뜻이다.
- 표지 이야기
-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 “정치권 의지 부족에 차별금지법 계류 중”(2022. 05. 20 15:42)
- 2022. 05. 20 15:42 정치
- 2007년 국회에 처음 발의된 뒤 15년째 표류하고 있는 법안이 있다. 바로 차별금지법이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를 포함한 시민사회는 정치권이 사회적 합의를 핑계로 법 제정을 미루는 걸 막기 위해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인권운동사랑방 미류 활동가는 40일 넘게 국회 앞에서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 시민들이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문자를 의원들에게 보내는 운동도 이어지고 있다. 트랜스젠더 방송인 하리수씨는 지난 5월 11일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를 만나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기도 했다. 사진 / 우철훈 선임기자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높지만 이 법이 적용되는 영역, 국가인권위원회 시정권고 수용률을 높일 수 있는 방안 등 세부적 쟁점에 대한 논의는 국회에서 본격화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5월 18일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를 만나 차별금지법의 구체적 내용, 향후 정치권이 논의해야 할 쟁점 등을 물었다.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에 앞장서온 홍 교수는 소수자 인권, 혐오표현·차별 등의 이슈에 꾸준히 천착해온 연구자다. -국회에 계류 중인 4개 법안(박주민 의원이 대표발의한 ‘평등에 관한 법률안’, 이상민 의원이 대표발의한 ‘평등에 관한 법률안’, 권인숙 의원이 대표발의한 ‘평등 및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안’, 장혜영 의원이 대표발의한 ‘차별금지법안’)의 명칭을 보니 크게 차별금지법과 평등법 등으로 나뉜다. “법안의 1차적 목적이 차별금지이니 차별금지법이 가장 직관적인 명칭이긴 하다. 평등법이란 명칭은 차별금지를 통해 지향하려는 가치인 평등을 강조하는 것이다. 국민에게 무언가를 금지해서 해결한다는 느낌을 주기보다 법 취지를 보여주는 데 방점을 찍으려면 후자가 적당한 명칭이라고 본다. 다만 어떤 명칭을 쓸지는 전략적 판단의 영역이다.” -인권위가 2020년 발표한 차별금지법 시안을 보면 이 법은 고용, 재화·용역의 공급이나 이용, 교육기관의 교육과 직업훈련, 행정·사법 절차와 서비스의 제공·이용 등 4가지 영역만 규율하고 있다. “헌법은 모든 영역에서의 차별금지를 규정하고 있지만 차별금지법은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혹자는 이 4가지 영역을 공공 영역이라고 하는데 고용, 재화·용역의 공급이나 이용, 교육기관의 교육 등은 주로 사적 영역이다. 그래서 ‘공공성이 있는 사적 영역’이라고 보는 게 맞다. 차별금지법의 핵심은 이 사적 영역에서의 자유를 일부 제한하는 것이다. 중요한 전환이다. 예를 들어 음식점 입구에 ‘무슬림 손님은 받지 않는다’고 써붙여 놓으면 이렇게 장사해도 된다는 신호를 주기 때문에 제한 조치가 불가피하다. 사적 주체도 이 영역에선 협조를 해야 한다. 종교, 가족 등의 영역은 빠져 있어 부족하다고 여기는 분들도 있는데 꼭 그렇게만 볼 건 아니다. 4가지 영역에서 차별이 개선되면 다른 영역의 차별도 개선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개신교에서 여성 목사 안수가 형식적으로나마 허용되는 흐름이 생긴 건 법 때문이 아니라 사회적 인식이 변했기 때문이다. 차별금지법이 직접 적용되지 않는 영역은 이렇게 간접적 영향을 주는 방식으로 풀어갈 수 있다. 회색지대도 있다. 종교기관이 대학을 만들었을 땐 당연히 법 적용을 받지만 종교 내부의 교육기관은 어떻게 되는지, 재화·용역의 영역에서 ‘1 대 1’로 하는 지극히 사적인 거래까지 적용할 건지 등에 대해선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 동네 탁구 동아리 같은 ‘단체’를 규율하는 조항을 만들자는 의견도 있다. 만약 모든 동아리가 무슬림은 회원으로 받지 않는다고 할 경우 가게에서 무슬림 손님을 받지 않는 것보다 파급력이 더 클 수 있다. 취미생활은 준필수영역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이런 쟁점들을 속히 논의해야 하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해 답답한 상황이다.” -인권위 시안을 보면 차별 유형 중 하나인 ‘괴롭힘’의 세부내용에 혐오표현도 포함돼 있다. 모든 혐오표현이 법 적용 대상인가. “우선 차별의 개념으로 접근해보자. 법은 차별 개념으로 직접차별, 간접차별, 성희롱, 괴롭힘 등을 열거하고 있다. 직접차별 조문만 있으면 나머지는 해석을 통해 차별의 일종으로 규정할 수 있다. 다만 국제적으로 차별의 개념이 넓어지다 보니 확대된 차별 유형을 입법으로 반영하는 흐름이 있다. 인권위 결정례가 쌓인 부분은 해석의 영역에 두지 말고 조문화하는 게 깔끔하다. 다음으로 혐오표현의 관점에서 접근해보면 광화문에서 ‘반동성애’를 외치는 건 혐오표현이지만 이 법의 적용 대상은 아니다. 고용 등 4가지 영역에서 혐오표현을 하면 차별의 하나로 간주되면서 이 법의 적용 영역으로 들어온다. 예를 들어 직장 상사가 무슬림 직원에게 ‘무슬림은 다 테러리스트’라는 말을 했다면 직접적 불이익은 아니다. 하지만 해당 직원을 괴롭힌 것이니 차별로 보는 것이다. 이런 부분은 현행 인권위법으로도 규율할 순 있지만 명시적 조문이 없다 보니 한계가 있다.” -한국사회에서 혐오표현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차별금지법만으로는 사각지대가 생기는 것 같다. “법을 집행하려면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하는 면이 있다. 일반적인 혐오표현은 차별금지법이 아닌 별도 입법을 통해 규제하는 게 맞다. 차별금지법에 그간 차별이라는 말로 포섭하기 어려웠지만 마땅히 근절해야 할 괴롭힘 같은 영역을 담는 것은 바람직하다. 다만 혐오표현은 차별과 연결돼 있긴 하지만 차별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차별금지법에 다 끼워넣는 건 법의 일관성·체계성 면에서 오히려 바람직하지 않다. 대부분의 나라도 혐오표현은 별도의 법으로 다루고 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이종걸 공동대표(오른쪽)와 미류 책임집행위원이 지난 4월 11일 국회 앞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 / 우철훈 선임기자 -기존 인권위법과 차별금지법은 어떻게 다른가. “구제 차원에서 보면 인권위가 시정권고를 하는 것은 같다. 현재 권고 단계에서 많은 기관이 수용도 하지만 최종적으로 강제하려면 소송절차가 있어야 한다. 소송이 빈번해지는 게 좋진 않지만 (차별 피해자들이) 소송에서 이길 가능성은 늘 열려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행위자들한테 ‘소송 가면 질 수 있으니 인권위 말을 듣자’는 동기부여가 생긴다. 기존 인권위법과 달리 차별금지법에는 가중적 손배배상, 입증책임 전환, 차별 피해자에 대한 소송 지원 등의 장치가 있다. 소송 지원은 권고가 수용되지 않을 경우 차별 피해자에게 소송 관련 재정 지원을 하는 것이다. 권고를 수용하도록 압박하는 효과가 있다.” -차별금지법에 있는 보완장치들을 강력한 수단이라고 볼 수 있나. “대단한 것이라고 보긴 어렵다. 차별금지법은 인권위법보다 더 강한 계기를 제공할 뿐이다. 그래서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지금 보이는 반응은 과도한 걱정이자 너무 ‘오버’하는 측면이 있다. 실제 법이 제정된다 해도 특별히 많이 바뀌진 않는다. 소송 지원이야 말 그대로 비용을 지원하는 것이고, ‘손해액의 3~5배 배상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가중적 손해배상도 손해가 인정돼야 의미가 있다. 노키즈존 운영, ‘첫 손님이 여성이면 재수가 없다’며 승차거부를 한 택시기사 등의 차별로 인한 손해 입증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아울러 법원은 차별과 관련된 손해배상 인정에 인색하다. 다만 차별금지법이 법원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역할은 할 수 있을 것이다. 재판부가 왜 불법이냐고 물어올 때 조직법의 성격이 강한 인권위법을 언급하면 다소 궁색한 면이 있다. 차별금지법이 있다면 왜 불법인지 좀더 명확해질 수 있다.” -차별금지법에는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차별시정 의무도 규정돼 있다. “아주 큰 의미가 있다고 보긴 어렵지만 정부가 적극적으로 차별금지 노력을 하려고 할 때 힘을 받을 순 있다. 법률적 근거가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현재 법무부에 인권국이 있는데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차별금지국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여론이 만들어질 여지가 생긴다. 지자체에서 관련 조례를 만드는 근거가 될 수도 있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4가지 법안이 큰 차이가 있나. “대동소이한 편이다. 다만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발의한 차별금지법안에는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으면 3000만원 이하의 이행강제금을 부과할 수 있는 내용 등이 더 들어가 있다.” -국회에서 아직 차별금지법 공청회 일정조차 잡지 않고 있다. 차별금지법 제정의 열쇠를 누가 쥐고 있다고 보나. “결국 열쇠는 167석을 갖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이 쥐고 있다. 왜 차별금지법 제정이 안 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예전에는 반대하는 사람이 많아서 그랬다고 답했지만 이젠 틀린 답이 됐다. 정치권이 법을 제정하려는 의지가 부족해 그렇다. 절박하게 입법 필요성을 느낀다면 세부적 쟁점을 궁금해할 수밖에 없는데 그런 정치인이 잘 보이지 않는다. 최근 갤럽, 리얼미터 등의 여론조사 결과만 봐도 차별금지법에 찬성하는 비율이 더 높게 나오지 않나. 여기까지 분위기를 끌고 온 건 정치권이 아닌 시민사회의 힘이다. 이렇게 차린 밥상에 정치권이 숟가락 하나 올려놓지 못하는 상황이 안타깝다. 사회적 합의를 핑계 대는 건 더 이상 말이 안 된다. 정치전략상으로 볼 때도 민주당이 차별금지법에 미온적인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예전에 노무현 정부 때 국가보안법을 건드리려다 당했던 기억을 떠올리는지 모르겠는데 지금은 그런 상황도 아니다. 중도는 ‘이런 법 정도는 있어야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고, 민주당의 왼쪽은 차별금지법 제정을 절실한 과제로 보고 있다. 차별금지법 제정이 이 두 그룹의 지지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
- 표지 이야기
- [만화로 본 세상]하트스토퍼-차별금지법 이후의 사랑(2022. 05. 20 15:41)
- 2022. 05. 20 15:41 문화/과학
- “갑자기 게이를 데려와 놓고 우리보고 좋아해 달라니 말이 안 되잖아.” 닉은 찰리와 만나고 있지만, 친구들에게는 알리지 않은 채로 우선 소개부터 했다. 닉의 친구들은 찰리를 기껍게 여기지 않았다. 찰리는 일찍 자리를 떠났다. “말해봐. 찰리의 어디가 불만이야?” 화난 닉은 친구들에게 물었고, 저 말이 답변으로 돌아왔다. “찰리가 게이라 문제라는 거군.” 닉이 확인한다. 친구들 사이에서 게이 혐오 분위기를 주도하는 해리가 답한다. “이러지 마. 닉. 여기에 동성애 혐오자는 없어.” 앨리스 오스먼의 한 장면 / 위즈덤하우스 1994년생 영국 작가 앨리스 오스먼이 2016년 연재를 시작한 만화 <하트스토퍼>의 한장면이다. 영국에서는 이미 2010년에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해당하는 평등법이 발효됐으니, 작가도 찰리와 닉도 성소수자 차별을 금하는 사회 속에서 10대를 보냈다. 그런데도 저런 동성애 혐오를 왜 그렸을까? 차별금지법으로는 부족한 걸까? 사실을 살피자면, 부족했던 게 맞다. 법만으로 사회와 개인이 단번에 바뀌지는 않는다. 10만명 이상을 대상으로 한 2018년 조사에서 영국 성소수자의 3분의 2가 차별을 염려해 공공장소에서 동성연인과 손을 잡지 않는다고 답했다. 40%는 언어폭력 및 물리적 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고등학교에서 게이임이 아우팅된 찰리도 힘든 경험을 했다. 찰리를 만나고서 바이섹슈얼로 자신을 정체화한 닉은 이제 혐오와 차별을 더 피부 깊숙이 느낀다. <하트스토퍼> 곳곳에서는 차별금지법 이후의 사회가 그 이전의 사회, 곧 한국의 지금과는 다르다는 것도 드러난다. 앞선 장면만 해도 그렇다. 혐오 발언의 말풍선이 덮어버렸던 세 친구는 이후 닉을 찾아와 사과한다. “미안해. 우리가 해리에게 그만하라고 말렸어야 했어.” 시간이 지난 후 해리도 찰리에게 사과한다. 이들이 잘못을 깨닫는 과정이 그려지지는 않지만 그 이유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혐오를 자유롭게 발언하게 두고 잘못을 깨닫지도 못하게 하는 우리 사회에는 없는, 차별금지법과 그것이 만든 사회적 분위기다. <하트스토퍼>는 차별금지법 이후의 세계에서 동성 간 사랑이 어떤 모습일지 차분히 알려준다. 그 세계에서는 성소수자가 연애한다는 사실을 주변에 공표하고 친구와 가족의 축복과 응원을 받으며 사랑할 수 있다. ‘만화로 본 세상’ 칼럼에서 다룬 한국 작품의 성소수자들은 가족의 반대에 부딪히거나(<환절기>), 아예 고백하기를 포기하거나(<각자의 디데이>), 정말 소수의 친구에게만 자신의 연애를 알릴 수 있었다(<모두에게 완자가>·<남남> 등). <하트스토퍼>의 세계에서는 찰리와 닉뿐 아니라 트랜스젠더 여성도, 레즈비언 커플도 친구들의 축복 속에 만남을 이어간다. 가족도 “네가 행복하다니 나도 행복하구나”, “엄마에게 말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느끼게 만든 적이 있다면 미안해”라고 말한다. 어려움도 남았지만, 지지가 더 크다. 이런 사회가 그저 왔을 리 없다. 법이 제정되더라도 성소수자들은 여전히 힘들 것이다. 하지만 숨지 않을 수 있고, 사회의 지지와 응원을 느낄 수 있다. 혐오와 차별을 일삼던 이들도 법과 사회의 압력 아래 변할지 모른다. 이런 삶이, 이런 사랑이 가능한 사회가 가까이 있다. 입법을 미루고 미루는 이들에 의해 지연되고 있을 뿐이다. 더 이상 미루지 않길, 나도 더 이상 이런 글을 쓰지 않아도 되길, 마음 다해 바란다.
- 만화로 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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