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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빈곤 청소’란 국가범죄의 진실
[신간] ‘빈곤 청소’란 국가범죄의 진실(2024. 04. 10 06:00)
2024. 04. 10 06:00 문화/과학
고립된 빈곤 박유리 지음·시대의창·1만8000원 우리는 열심히 빈곤을 청소했다. 달동네를 밀고 아파트를 지었다. 남루한 동네가 번듯해지면 빈곤이 사라진 듯했다. 1987년까지 또 다른 방법도 동원했다. 군사정권은 거리에서 빈곤해 보이는 이들을 붙잡아 수용시설로 보냈다.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1981년부터 도시정화를 목적으로 부랑인 단속을 강화하자 형제복지원은 거리에서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붙잡아왔다. 정부지원금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렇게 내복을 입고 아빠 심부름을 나간 소녀가, 술에 취해 거리에서 잠을 자던 아빠가, 여관비를 아끼려 역에서 밤을 지새우던 사람이 끌려와 하루아침에 수용자가 됐다. 나가게 해달라고 하면 매타작이 시작됐고, 탈출하다 붙잡히면 죽을 듯이 맞았고, 죽었다. 서로 때리고 구경하게 했다. 1975년부터 1987년까지 이곳에 5만명 넘게 감금당했고, 그중 657명이 숨졌다. 언론인 출신의 작가는 피해자, 생존자를 10년 넘게 인터뷰해 사건의 진상을 기록했다. 작가는 한국판 아우슈비츠로 불리는 형제복지원 사건의 본질을 국가가 주도한 ‘빈곤 청소’라고 봤다. 기업의 세계사 윌리엄 매그너슨 지음·조용빈 옮김·한빛비즈·2만2000원 기업을 번영의 원동력이라 보는 이도 있지만, 이윤만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집단이라고 여기는 시선도 있다. 저자는 기업의 역사를 보면 이런 상반된 시선을 모두 갖게 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책은 기업의 원형이라고 할 고대 로마의 소치에타스를 먼저 소개한다. 정부를 대신해 세금 징수, 도로망 구축 일을 맡았던 소치에타스는 속주 시민을 노예로 삼는 등 탈법적 행동으로 로마의 몰락을 앞당겼다. 주식을 발행해 자금을 모았던 대항해시대 동인도회사와 현재의 스타트업까지 기업의 진화를 살핀다. 왕의 수명을 줄여라 편용우 외 지음·흐름출판사·1만8000원 조선시대의 중범죄 재판인 추국에 대한 법정 속기록인 <추안급국안>에 상상력과 통찰을 더해 재구성한 이야기 모음집이다. 경직된 계급사회에 균열을 내려 한 이들의 사연이 담겼다. 속기의 특성상 이두를 적극 사용해 현장감이 살아 있다. 시간의 물리학 존 그리빈 지음·김상훈 옮김·휴머니스트·1만6700원 천체물리학자인 저자가 SF 속 시간여행의 가능성을 살펴본다. 상대성이론, 블랙홀, 멀티버스 등의 연구로 시간여행의 과학적 실체를 탐구한다. 시간여행은 진지한 과학적 연구 대상이며 SF는 재밌는 이야기를 넘어 물리학적 사고실험이라고 강조한다. 한 사람의 노래가 온 거리에 노래를 신경림 외 지음·창비·7000원 창비시선이 50주년을 맞아 출간한 기념시선집 <이건 다만 사랑의 습관> 함께 출간한 특별시선집이다. 시인들이 직접 즐겨 읽는 시를 모았다. 시를 사랑하는 독자를 위한 선물이자, 시가 어렵기만 했던 이들에게 더없이 좋은 마중물이 된다.
신간
“3월 소아청소년과 대란···2~3년 뒤 폐과 우려”(2023. 01. 06 14:18)
2023. 01. 06 14:18 사회
ㆍ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 인터뷰 보건복지부가 공개한 전국에 있는 ‘소아청소년과’(소청과) 진료가 가능한 병원은 2022년 8월 말 기준, 3247개소다. 지난 5년간 소청과 617곳이 새로 개업했고, 662곳이 폐업했다. 특히 코로나19 유행이 본격화된 2020년, 2021년 두 해에만 78곳의 소청과가 순수하게(개업-폐업) 사라졌다. 병원 몇 개 줄어드는 것이 뭐 그렇게 대수냐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병원이 지역 내에 있는 유일한 소청과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사진/성동훈 기자 누군가는 ‘서울에서 살면 된다’고 답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해답의 유효기간은 얼마나 될까. 올해 전반기 전공의를 모집한 64개 수련병원에서 소청과를 희망한 전공의는 단 33명이었다. 한 명이라도 소청과 전공의를 받은 병원은 11곳에 그쳤다. 조만간 아이가 아파 서울 시내 주요 대학병원을 찾아도 치료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출생률이 감소하니 당연한 것 아니냐’고 따질 수도 있다. 실제로 한국의 영유아 수는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2017년 기준 145만243명에서 2022년 8월 말 기준 105만4928명으로 39만5315명 감소했다. 그런데 영유아 1명이 감소할 때마다 몇 개의 소청과 병원, 몇 명의 전문의가 줄어들어도 괜찮은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이들이 다루는 것은 생명이다. 누구도 답하기 어렵기 때문에 현대사회는 이를 국가의 역할로 돌렸다. 설사 적자가 발생해도 사회를 유지하는 기반시설은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이 기본이다. 병원은 대표적인 사회 기반시설이다. 소청과 전공의가 부족하면 의사 수를 늘리면 될 것 아니냐는 주장도 있다. 의료인력 양산이 의료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린다는 수치화할 수 없는 주장은 논의할 필요가 없다. 전반적인 품질 저하에 앞서 분명한 편중 현상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건강보험통계연보에 나온 의원급 표시과목별 요양급여비용 실적을 보면 내과, 외과, 정형외과, 안과 등 과목별로 어느 과가 돈을 잘 벌었는지를 알 수 있다. 지난해 요양급여비용은 18조7710억원으로 전년 대비 10.20% 증가했다. 이중 2011년부터 2021년까지 10년간 연평균 진료비가 감소한 유일한 곳이 소청과다. 수치화해도 2021년 소청과의 진료비 규모는 5134억원으로 최하위다. 이를 보면 소청과 전공의가 부족한 것은 비슷한 노력을 하고도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처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소청과 의사 부족 사태가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라는 뜻이다. 지난해 12월, 가천대 길병원의 소청과 입원중단 사태에서 촉발된 진료체계 붕괴는 뚜렷한 해결책 없이 시간만 끌고 있다. 길병원 사태는 상급종합병원 심사 등을 무기로 정부가 압박하면 결국, 병원이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하지만 이 문제는 언젠가 터질 수밖에 없는 임계치를 향하고 있다. 이미 일부 병원에서는 소청과 전문의가 더 이상 배출되지 않는다. 지난 1월 4일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을 경향신문 본사 건물에서 만났다. 임 회장은 임기를 시작한 7년 전부터 해당 문제를 지적해왔다. 그는 “2017년에 영유아 및 아동청소년 건강을 위하겠다며 보건당국·의료계 협의체를 출범시킨 적이 있다. 그때 딱 한 번 회의하고 지금까지 논의 한 번 안 했다”며 “그때나 지금이나 정부의 보여주기식 대책 외에 개선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임 회장이 지적한 딱 한 번 열렸다는 협의체 관련 자료는 여전히 보건복지부 홈페이지에 공개돼 있다. -소청과가 한국 의료체계에서 정확히 어떤 역할을 담당하나.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들은 사정이 좀 낫겠지만 일반적으로는 잘 모르실 수 있다. 반면 의사들에게 물어보면 ‘왜 소청과가 중요한지’를 금방 안다. 우리가 좀더 친절하게 설명드렸어야 했다. 의사 수련체계를 설명하는 말 중에 ‘내외산소정’이라는 말이 있다. 각각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정신과를 의미한다. 이 5가지 과목을 의료 수련 체계상 주요(메이저) 과목이라고 한다. 물론 다른 과들도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아니다. 다만 이들 과목을 떼어 메이저라고 부르는 건 사람 목숨과 직접적으로 연관되기 때문이다. 인턴 시절에 이 5개 과를 돌고, 전공을 결정하게 된다. 아이들은 성인과 병의 진행 양상이 다르다. 처치만 잘하면 어른에 비해 금방 호전되지만, 증상이 급변하고 다루기가 까다롭다. 초기 진단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살릴 수 있는 아이가 죽을 수도 있고, 반대로 죽을 뻔한 아이가 살기도 한다. 의사의 판단과 처치로 생명을 살린다는 의료의 본질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 소청과다.” -진료 대상은 누구인가. “신생아부터 대략 18세 청소년까지가 대상이다. 실제 응급실 체계도 이와 같다. 18세 이하 환자가 왔는데 인턴이 내과나 다른 과에 노티(알림)를 주면 ‘왜 소청과 환자를 우리에게 주냐’는 말이 돌아온다. 우리나라는 아이를 낳고 나면 산모가 산후조리원을 가는데 미국은 출산 전후에 소청과에 가서 아이 상태도 확인하고 출산 후 산모의 우울증 등도 관리한다. 아직 인식이 잡혀 있지 않지만, 소청과 의사들이 진료할 수 있는 분야다.” -소청과 위기가 어느 정도로 심각한 상황인가. “올해 3월이면 소청과 관련 의료대란이 날 것이고, 이대로 아무런 조치 없이 2~3년이 흐르면 소청과는 폐과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 이는 전국 64개 수련병원의 연차별 전공의 숫자를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2019년에 들어와 4년간 전공의 생활을 마치고 올해 2월, 전문의 시험을 보는 선생님들이 187명이다. 이들은 3월 1일자로 일선 병원으로 나간다. 2020년에 들어와 3년차가 된 전공의는 총 147명이다. 2021년 들어온 전공의는 75명, 2022년은 57명이었다. 그리고 올해 2023년 기준 소청과 전공의로 총 33명이 지원했다. 내년에는 한 자릿수가 지원할 것 같다. 소청과가 사라진다는 것은 과장이 아니다. 의학지식은 도제식으로 전수된다. 4년차가 3년차를 3년차가 2년차를 가르치는 식이다. 이대로라면 지식 전달 체계가 무너진다. 게다가 당장 대학병원에서 제일 많이 일하는 사람 187명이 빠져나간다. 이들의 빈 자리를 메우는 것은 갓 인턴을 뗀 33명의 1년차 선생님들이다. 이들이 병원, 소청과 일에 익숙해지려면 대략 2년차는 돼야 한다. 실질적으로 3월부터는 4년차가 되는 전공의 147명, 3년차 75명, 2년차 57명 총 279명이 전국 상급종합병원 일 대부분을 떠맡는다. 지금도 인력이 부족한데 숫자가 더 줄어든다. 대란이 날 것이 뻔하지 않나.” 가천대 길병원 소아청소년과 홈페이지에 공지된 입원 중단 공지 / 가천대 길병원 홈페이지 갈무리 -전공의 외에 의료진들도 있지 않나. “지금도 교수들이 낮에는 외래 보고 밤에는 응급실, 소아중환자실, 신생아중환자실 등에서 교대로 당직을 선다. 그렇게 버티는 것도 하루 이틀이다. 결국 응급실 진료를 폐지하고, 입원치료가 중단된다. 지난해에만 상계백병원, 일산백병원, 이대목동병원, 강남세브란스병원, 서울성모병원, 한림대동탄성심병원 등이 응급실 진료를 중단했다. 소청과 붕괴는 예정이 아니라 이미 상당 부분 진행됐다는 의미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된다는 것인가. “지난해 보고된 사례 중 5일 동안 열이 난 아이가 어딜 가도 입원을 못 한 경우가 있었다. 결국, 분당서울대병원에 입원하긴 했는데 전공의는 당연히 없고, 교수님 딱 한 번 만나고 퇴원했다. 또 수원에서 24개월 된 아이가 코로나19에 감염돼 재택 치료를 하던 중 증상이 악화돼 서울 고대구로병원으로 이송하다 사망했다. 가까운 곳에 규모가 큰 아주대병원이 있었지만, 치료가 불가능해 서울로 가던 중 발생한 일이다. 아이들 병은 오전, 오후가 다르다. 계속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하는데 불가능한 구조다. 3월이 되면 이런 일이 더욱 빈번해지고 심각해질 것이다.” -아이들 치료만 영향을 받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어른도 걸릴 수 있는 심방중격결손증이라는 병이 있다. 아이들에게 많이 나타나다 보니 경험 많은 의사 대부분이 소청과 전문의들이다. 이들도 사라질 것이다. 백혈병도 마찬가지다. 흉부외과는 어떤가. 개흉 수술을 하고 나면, 수술 후 관리를 소아 심장과 등에서 분담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것을 하위 전문 분야(서브 스페셜리티)라고 한다. 소청과 내 세부 영역 전문의들을 키워서 담당해왔다. 전공의도 없는데 이런 것이 유지가 되겠나. 하위 전문 분야를 키울 수 있는 인프라도 다 붕괴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소청과 의사들은 사실상 감염성 질환(바이러스·세균) 전문가다. 또, 대부분 백신, 예방접종 전문가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정확한 부위, 방법으로 접종해야 면역이 잘 생기기 때문에 체중에 맞는 정확한 바늘 크기, 깊이, 부작용을 줄일 수 있는 방법 등을 항상 연구한다. 결국 이들이 사라지면 그 여파가 어른들의 건강관리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할 것이다.” -왜 상황이 악화되기만 하나. “도미노가 차례로 넘어가는 것과 유사하다. 4년간 많은 것을 포기하며 소청과 전공의 과정을 밟는다. ‘잠 한 번 푹 자는 것이 소원’이라고 할 정도다. 문제는 힘들게 소청과 전문의가 됐는데 전문의 과정을 이수하지 않은 ‘일반의’보다 수입이 적다. 심지어 소청과 의사회 임원들조차 병원을 폐업하고, 이리저리 옮겨다닌다. 일반의원으로 바꾸는 경우도 있다. 봉직의라고 해서 월급 받는 전문의로 일하려고 해도 마찬가지다. 동네 소청과는 하루에 환자 80명은 받아야 적자를 간신히 면한다. 그런데 20~30명이 전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봉직의로 일할 곳도 없다. 아이들이 좋고, 사명감을 가져도 생계유지가 안 된다. 이런 상황이 알려지다 보니 인턴들이 소청과를 전공하려고 하면 아버지, 어머니부터 말린다. 그 결과 전국 64개 수련병원 중 소청과 전공의를 한 명이라도 받은 곳이 11곳 밖에 없다.” -생계유지 어려움→전공 지원자 감소→의료대란 순서라면 이제 소청과 의사들의 몸값이 올라갈 차례 아닌가. “하루 평균 80여명의 환자를 받아야 적자를 면하는데 결코 적지 않은 숫자다. 다른 나라였다면 진료를 과다하게 한다고 비판받을 정도다. 적자를 면할 수 있는 다른 방법도 있을 텐데 왜 환자 수 이야기만 나온다고 생각하나. 이게 30년 동안 의료수가를 묶어놓은 결과다. 특히 소청과 진료비는 대만의 5분의 1 수준이고, 미국의 20분의 1 수준이다. 동네 소청과를 한 번 보라. 저녁 7시까지 진료하는 것이 기본이고 저녁 9시, 심지어 달빛병원이라고 자정까지 하는 곳도 있다.” -소청과만 그런 것인가. “우리나라 건강보험체계는 행위별 수가 방식을 택하고 있다. 의사가 검사든 처치든 행위를 할수록 더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런데 어린이 환자들은 적용 가능한 의료행위가 한정돼 있다. 수술이나 고급처치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사실상 진찰이나 주사 정도가 전부다. 그게 다른 나라에 비해 적게는 5분의 1, 많게는 20분의 1 정도 가격으로 책정돼 있다. 선진국은 고사하고 동남아, 아프리카 국가 수준보다 적다. 이렇게 얻은 의료수가도 의사가 다 가져가는 것이 아니다. 치료 원가, 직원 월급, 임대료 등을 빼야 한다. 소청과 게시판에 올라온 글 중 ‘이리저리 빼고 나니 한 달에 25만원이 남더라. 나도 직원들 월급만큼만 가져가면 좋겠다’는 내용이 있었다. 해당 글에 ‘당신은 좋겠다. 나는 계속 적자다. 정신과 약을 먹고 있다’는 댓글이 달렸다. 생계를 유지할 방법이 없다. 심지어 정부는 필수예방접종 사업을 하며 사실상 소청과의 유일한 비급여 항목도 가져갔다. 정부가 벼랑 끝에 내몰아 놓고, ‘왜 이런 위기가 생겼냐’고 하면 어떻게 하란 말인가.” -비급여는 또 무슨 말인가. “소청과도 13년 전에는 예방접종이라는 비급여 항목이 있었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새로운 백신이 우리나라에 들어올 때 제약회사가 의사회에 접종가를 어느 정도로 책정하면 좋겠냐고 물어봤다. 그러면 세금, 직원들 월급, 임대료 등을 감안해 적정가격 의견을 전달한다. 무한정 높은 가격을 책정할 수도 없다. 예방접종 가격이 부담되면 누가 맞겠나. 그런데 국가필수예방접종 사업이 도입되면서 소청과 의사들이 받고 있는 가격의 70% 수준에서 예방접종이 편입됐다. 이 가격은 계속 낮아지기만 하더니 급기야 올해 포함된 로타바이러스(장염) 백신은 시중 접종가의 40% 수준으로 편입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기술 발전으로 콤보(통합)백신이 나오는 경우가 있다. 디티피, 소아마비, 뇌수막염 등 따로 접종하던 것을 한 번만 맞으면 되는 백신이 대체하는 것이다. 미국은 개량 백신이 나오면 보급도 늘리고, 의료진도 보호하기 위해 예를 들어 2였던 시행비를 1.5 정도로 책정해준다. 반면 우리는 1 이하로 깎는다. 실제로 2017년 보건복지부 산하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영유아 필수 예방접종 시행에 들어가는 의료인 임금을 연구한 결과가 있다. 당시 최소 2만6923원은 지급해야 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런데 지난해 질병청이 소청과에 지급한 예방접종 시행비가 1만9400원이었다.” -가격은 제한하고, 예산지원도 하지 않는다는 것인가. 정부는 올해 저체중 조산아, 미숙아 지원예산도 삭감했는데. “더 줘도 시원찮을 판에 안타깝다. 건강보험제도가 도입된 후 의료수가는 사실상 30년 동안 동결이었다. 소청과 소멸위기는 출생률 등의 자연적 요인보다 정부 정책이 초래한 측면이 더 크다. 아이들 목숨을 담보로 정부가 러시안룰렛을 돌리는 형국이다. 투표권이 있는 어른들을 대상으로 한 사업은 예산을 못 깎는다. 말 못 하고, 투표권도 없고, 약하기만 한 아이들 관련 예산부터 깎는다.” -정부가 현장 목소리를 듣기는 하나. “답답하다. 현장에서 이런 문제가 있다고 아무리 말해도 유관 부처끼리 서로 탓을 한다. A부서 국장에게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하면 ‘B부서에서 예산 증액을 막았다’고 한다. 그러면 B부서 과장에게 전화해서 읍소한다. 이번에는 ‘A부서는 꼭 그런 식으로 거짓말을 한다. 우리는 그런 적 없다’고 한다. 이렇게 1~2년만 버티면 A부서 국장, B부서 과장은 보직 이동을 한다. 다시 원점부터 시작이다. 언젠가 아이들을 위한 의료체계가 완전히 붕괴돼 책임을 따져야 한다면 이는 국가, 정부가 자초한 것이라는 점은 꼭 밝히고 싶다.”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이 지난 1월 4일 경향신문 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성동훈 기자 -정부 수습대책 중 주목할 만한 게 있나. “없다. 달빛병원을 강화한다고 하는데 우리 입장에서는 이제 밤 12시까지 일하라는 말로밖에 안 들린다. 주말에도 오후 4~5시까지 일하는 곳이 많다. 잘 보면 병원 이름에 365소아청소년 병원 이런 곳이 많다. 365일 일을 해야 유지할 수 있다는 뜻이다. 다른 어떤 병원이 그런 식으로 하나. 지난 5년간 소청과 병원 662개가 망했다. 지난 10년 동안 유일하게 진료비가 감소한 과다.” -소청과 위기는 출생률 감소 등으로 인한 수요·공급이 맞춰지는 과정으로 볼 수도 있지 않나. “자연히 줄어드는 것과 생태계 자체가 파괴되는 건 다르다. 소청과 위기라는 것은 감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 소멸을 의미한다. 소아과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붕괴하고 있다. 의사 공급은 의료 수요가 늘어난다고 곧바로 늘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시장논리로 수요와 공급을 맞추려면 특정 시점에서 환자 수와 의사 수의 균형이 이뤄져야 한다. 그런데 현재 소청과는 신규 의사 공급이 없는 수준으로 가고 있다. 이 경우 인센티브를 제공해서라도 공급을 늘려야 하는데 그것도 의료수가 등으로 제한이 걸린다. 흉부외과, 산부인과 등이 망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전공의 정원의 60% 정도는 채운다. 소청과는 15% 정도다. 단기간에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인프라가 붕괴된 상황이다.” -전공의가 부족하니 공공의대 설립, 의대 정원 확대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는데. “적어도 소청과 사태를 해결할 대안은 아니다. 문제의 근본 원인과 관계가 없다. 왜 지방 소청과부터 소멸한다고 보나. 환자는 없고 처우는 나아지지 않으니 소멸하는 것이다. 의대 정원을 늘린다면 소청과 전문의도 일정 비율 늘어날 수 있다고 잘못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이들이 전공의 과정을 거쳐 지방에서 개업했다고 해보자. 이들이 생계유지를 하려면 하루에 80여명의 환자를 진찰해야 적자를 보지 않는 구조인데 기껏해야 20~30명이다. 환자 수를 늘려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의미가 없다. 이 사태는 전공의들이 소청과에 미래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지 의대생 숫자가 부족해 생긴 문제가 아니다.” -동네 소청과 위기는 또 다르지 않나. “사실 우리나라 의료체계의 장점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 동네 소청과다. 일반적인 국가의 의료체계는 몸이 아프면 ‘일반의’라고 불리는 의사에게 가서 증상을 설명한다. 일반의의 판단에 따라 약을 처방받기도 하고, 위중할 경우 비로소 더 큰 병원의 전문의를 찾게 된다. 그런데 우리나라 소청과는 ‘전문가(스페셜리스트)’를 예약도 없이 아주 싼 비용으로 언제든 찾을 수 있는 구조다. 아이들의 경우 빠른 진단과 치료가 정말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가장 빠르게 동네에서 아이들을 진단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고 있다. 어느 날 진료를 보는데 새벽 5시부터 아팠다는 아이를 부모가 오전 10시에 데려왔다. 소청과 의사들끼리 쓰는 말 중에 ‘아기 때깔이 안 좋다’라는 말이 있는데 아이를 보니 딱 그 생각밖에 안 들더라. 즉시 119를 불러 타고 대학병원으로 갔다. 중환자의 경우 의료인이 동행해야만 해서 순천향대학교 부속 천안병원 소아과 응급선생님께 직접 인계를 하고 왔다. 그 아이가 몇 주간 입원했다가 진료를 받으러 왔다. 아이 두개골이 움푹 들어가 있었다. 이미 뇌가 녹아내렸고 조금만 늦었으면 목숨을 잃을 뻔했다는 의미다. 소청과 의사들은 전공의 과정에서 이런 중환자를 숱하게 본다. 이렇게 동네에서 전문의를 만날 수 있는 시스템은 미국, 캐나다, 영국, 프랑스, 일본 등과 비교해도 우리나라만이 가진 장점이다. 저출생이 심각한 문제인 상황에서 동네 소청과는 출생률 제고에 도움이 될 만한 거의 유일한 체제다. 이 체계가 정책 문제로 무너진다는 점이 안타깝다.” -대안은 무엇인가. “보건복지부, 질병청, 기획재정부, 소청과 의사들이 한 자리에 좀 모였으면 한다. 적어도 이런 문제가 생기면 협의체까진 아니더라도 상황파악을 위한 회의 정도는 해봐야 하는 것 아닌가. 아직까지도 그런 게 없다. 언론을 통해 보도만 안 될 뿐이지 틀림없이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하는 아이들이 나오고 있을 것이다. 특히 지방정부는 지역에 소아진료 인프라가 없다는 점에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아이들이 아파도 치료를 못 받는데 어떤 부모가 해당 지역에 살겠나. 일본은 어린이청을 만든다고 하고, 미국은 이미 유사한 기관이 있다. 반면 우리는 담당 부서가 산재돼 있다. 심지어 담당자도 1년, 2년 만에 바뀐다. 소아청소년과의사회장을 7년 동안 했다. 그동안 바뀐 담당자가 몇 명인지 모르겠다. 대통령직속으로 책임기구를 만들어줬으면 한다. ‘희생자가 나와야 움직이겠다’는 태도는 버려야 한다.” -이 정도로 위기라면 소청과 의사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사실 소청과 의사는 예전에도 돈을 가장 못 벌었던 과다. 그럼에도 ‘내가 아이를 살렸구나’ 하는 기쁨 같은 것이 있다. 800g 정도로 25주 만에 태어난 아이는 딱 손바닥만 하다. 그런 아이를 석 달, 넉 달 잠도 제대로 못 자고 2.5㎏을 만들어서 집으로 돌려보낼 때 그 기쁨은 정말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그 아이가 예방접종을 하러 병원을 오고, 또 외래를 오고 하면서 자연스럽게 커가는 것을 본다. ‘사람 살리는 것이 이렇게 보람이 있구나’ 하는 것을 그때 알게 된다. 남들은 알아주지 않아도 보람 있는 일을 한다는 기쁨이다. 동네에 ○○소아청소년과라는 이름을 쓰는 병원을 한 번쯤은 봤을 것이다. 그곳에는 소청과 전문의가 있을 확률이 높다. 동네병원이지만 이들 모두 대학병원에서 수많은 임상을 거쳐 개원한 의사들이다. 상급종합병원 이용에 불편함을 겪을 부모님들께 동네 소청과에 아이를 믿고 맡겨도 좋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다.”
특집
[방구석 극장전]청소년이 만들고 청소년이 배우는 학교(2021. 11. 12 12:02)
2021. 11. 12 12:02 문화/과학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다가왔다. 여전히 한국 교육의 모든 길은 입시로 통하고, 그 가장 큰 관문은 수능이다. 시험을 마치면 수십만 수험생들은 사회생활의 첫 단추를 낄 준비에 들어갈 테다. 하지만 기성세대는 세상에 나갈 그들에게 꼭 필요한 것은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다. 그 가운데 세대 간 단절은 심화하고, 청소년들은 닥칠 문제를 대비하지 못한 채 정글 같은 사회에 내던져진다. 가장 좋은 건 청소년의 목소리로 자신의 상황을 알리는 계기다. 청소년이 영화를 직접 제작한다면 바랄 게 없다. 당사자가 자기 경험을 영화화하는 이점은 무궁무진하다. 다큐멘터리 OTT ‘VoDA’에서 서비스 중인 (정호은)과 (김희준) / VoDA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는 다른 영화제들에선 보기 드문 ‘청소년경쟁’ 섹션을 유지 중이다. 동일한 주제를 다뤄도 어른들이 만든 것과는 시야나 밀도가 확연히 다르다. 예전에는 영화제 때 극장에 가야 볼 수 있었지만, 해당 영화제가 OTT ‘VoDA’를 발족시키면서 1년 내내 볼 수 있게 된 점은 환영할 일이다. <더 팬>(정호은·2018)은 아이돌 팬덤 문화를 다룬다. 10대 감독은 자기 세대가 왜 원거리 일 방향 연애에 빠져들게 되는지, 팬덤 문화는 어떻게 진화하는지에 대해 자기 생각은 물론 또래세대를 포함한 인터뷰를 진행한다. 누군가에게 뜨거운 애정을 보내는 행위를 아이돌을 대상으로 처음 접하는 청소년 세대 상황을 설명하고 적극적으로 자기 입장을 드러내는 과정을 통해 그들이 처한 상황에 대한 이해로 나아가게 만든다. <하루, 발자국>(김희준·2018)은 영화감독을 꿈꾸지만, 의지가 약한 10대 감독이 동갑내기 친구를 담는다. 친구는 아마추어 스케이트보드 선수다. 기성세대 시각에선 성에 안 차도 감독에게는 뚜렷한 주관으로 자기 길을 개척하는 ‘리스펙트’ 대상이다. 10대 보드 선수의 시각에서 보드 문화 활성화를 위해 지역에 필요한 게 뭔지 인터뷰하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당사자 입장 표명의 중요성과 현실적 진로 고민이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나의 낮은 몸 높은 마음>(배연우, 안수빈 감독·2017)은 청소년 우울증 문제와 대면한다. 기성세대의 단편적 인식 너머 만연한 정신질환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성찰이 돋보인다. 학교현장 상담교사는 순회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다 해당 사업 자체가 축소 내지 폐지 위기다. 두 공동감독은 문제를 알리고 목소리를 내고자 광화문광장에서 1인 시위와 홍보활동을 실천한다. 이런 작업을 소개하고 활용할 경우 ‘VoDA’는 동영상을 전시하는 것으로 끝내지 않는다. ‘독 스쿨’ 명칭으로 2020년부터 경기도 내 학교 시청각교육 프로그램에서 사이트에 들어가 영화 관람을 최소한의 인증과 기록으로 마칠 수 있음은 물론, 현장 토론과 의견청취를 보다 확산시키려는 의도로 공들여 작업한 토론 워크시트를 확인할 수 있다. ‘독 스쿨’ 작품은 워크시트를 통해 다양한 소감을 집적시킨다. 대충 겉치레로 만든 게 아니다. 영화에 대한 간단한 소감부터 쟁점에 대한 설문조사나 집단적 토론이 활성화하도록 세심하게 준비한다. 해당 과정은 이미 4만5000명이 넘는 경기도 학생들이 이용했다. ‘독 스쿨’ 라인업 중 청소년 제작 단편의 가치는 요즘 시기에 더 절실하게 다가온다.
방구석 극장전
청소년 부모에게도 집을 ‘허하라’(2021. 08. 30 11:04)
2021. 08. 30 11:04 경제
ㆍ원룸, 고시원, 모텔, 보호시설 등에 주로 거주 은영(가명·19)이가 공인중개사에게 반복해 들었던 말은 “안 된다”였다. 월세 20만원짜리 원룸을 얻으려 찾아간 부동산이었다. 미성년자가 임대차 계약을 맺으려면 법정대리인의 동의가 필요하다. 부모나 친척 ‘어른’의 동의서 없이는 임대차 계약을 맺을 수 없다. 은영이가 어머니·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집을 나온 지 3년이 넘었다. 연락을 달가워할 리 없었고, 연락하고 싶지도 않았다. 다세대주택 밀집지역 / 경향신문 자료사진 운 좋게 소개받아 집을 보러갔더니 이번에는 애가 있으면 “안 된다”고 했다. 은영이는 15개월된 아이를 키운다. 아이를 맡길 곳이 마땅치 않아 집을 보러갈 때면 아이를 업고 갔다. “안 된다는 이야기만 대여섯 번” 들었다. 수도권 외곽, 그것도 도심이나 산업단지와 떨어진 변두리라 수요가 많지 않은 지역이었는데도 “안 된다”고 했다. “애가 있는 게 죄는 아닌데, 아마 (제가) 어리다는 이유에서 그랬겠죠. 너무 안 구해지더라고요.” 은영이가 말했다. 주거환경은 ‘절대 취약’ 은영이는 ‘청소년 부모’다. 청소년 부모는 보통 청소년복지지원법(이하 청소년복지법)상 청소년의 기준인 만 24세 미만인 부부를 지칭한다. 은영이는 지난해 초 아이를 낳았다. 남편도 미성년자다. 민간단체에서 지원해준 주거에서 1년을 채우고 나왔다. 어렵게 구한 빌라 반지하에 6개월 살았는데 “아기 피부가 다 짓물러” 집을 다시 알아봤다. 집을 구하다, 구하다 실패해 몸이 불편한 친언니와 함께 집을 구했다. 방 3개의 5층 빌라에 산다. 보증금 130만원에 월세 110만원, 목돈도 없는데다 받아주는 곳을 찾다 보니 비싼 월세를 부담하게 됐다. 친언니가 친구와 월세 55만원을 내고 은영이가 나머지 절반을 낸다. 남편이 아이를 보고, 은영이가 하루 12시간 전자제품 부품 불량 체크하는 일을 해 번 월 200만원에서 월세를 낸다. 은영이는 “이웃 신고 안 들어오도록 약속하고 들어왔어요”라고 말했다. 청소년 부모는 어떤 집에서, 얼마의 집세를 내며 지낼까. 현장에서는 “집이 없으면 육아계획을 세우거나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게 불가능하다”(최영화 ‘청개구리 밥차’ 활동가)거나 “주거가 일정해야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이지영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청소년 부모 멘토)고 말한다. 정작 정부가 청소년 부모의 규모나 주거실태 파악에 나선 적은 없다. 규모만 어림짐작할 뿐이다. 통계청 인구통계를 보면 2018년 한국에서 태어난 아이 32만6822명 중 19세 이하 여성에게서 태어난 아이는 1300명이다. 만 24세 미만 청소년 부모 중 19세 이하는 2018년 기준으로 최소 1300명이 된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출생신고하지 않은 아이까지 포함하면 규모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보호시설에서, 원룸에서, 고시원에서, 모텔에서, 일부는 공공임대주택에서 살고 있다고 추정할 뿐이다. 한국에선 청소년 부모 정책을 둘러싼 정부의 빈자리를 민간이 채우는 구조다. 청소년 부모 통계도 민간에서 먼저 냈다. 한국미혼미지원네트워크가 2020년 초 발간한 ‘청소년 부모 생활실태 조사 및 개선방안 연구’(이하 청소년 부모 생활실태 조사)를 보면, 조사대상이었던 청소년 부모 315명 중 절반(44.4%) 정도는 ‘보증금 있는 월세’에 살고 있다고 답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공공임대 유형인 전세임대주택일 가능성이 큰 전세(18.7%) 비중도 적지 않다. ‘가족 및 친척 거주지에서 무상으로 거주’(15.2%)하거나 고시원과 같은 ‘보증금 없는 월세’(6.7%) 혹은 ‘모텔이나 찜질방에서 지내고 있다’(6.3%)는 응답도 이어졌다. 생후 5개월된 아이를 키우는 수진(가명·18)이는 ‘가족 및 친척 거주지에서 무상으로 거주’하는 사례다. 수진이는 어머니와 함께 경남지역의 한 영구임대아파트에 산다. 아버지는 중학교 1학교 때 돌아가셨다. 어머니가 기초생활수급자여서 영구임대아파트를 제공받았다. 원래는 만 24세를 넘은 남편과 함께 방 2개짜리 빌라에 살았다. 남편이 ‘아이를 소파에 던져’ 집을 나왔다. 임신했을 때도 옥상에서 청소년 부모는 크게 은영이와 수진이처럼 원부모와 동거 여부로 나눠볼 수 있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이 지원하는 청소년 부모 25가구 중 9가구는 청소년 부모의 부모님 집에 함께 산다. 나머지 16가구는 원부모와 관계가 단절되거나 연락은 하더라도 따로 거주한다. 주로 한부모 시설이나 공공임대, 민간임대주택에 거처를 마련했다. 어느 쪽이 더 나은 형태의 주거라고 단정짓기는 어렵다. 청소년 부모와 원부모와 함께 지내면 “아이를 맡겨두고 검정고시를 치고 왔다”(수진)는 이야기처럼 양육에 도움을 받기도 한다. 부모와 살더라도 관계가 원만하지 않거나 집안의 경제적 여력이 충분치 않으면 청소년 부모의 스트레스도 커진다. 수진이는 어머니와 사이가 나쁘지 않지만, “언제까지 몸이 불편한 어머니에게 양육을 기댈 수 없다”며 성인이 되는 대로 세대분리를 하고, 일자리를 구해 독립할 생각을 하고 있다. 그래도 머물 집이 있으면 어느 쪽이든 나은 편이다. 정부나 민간기관에 포착되지 않은 청소년 부모는 더 열악한 환경에 놓인 경우가 많다. 지원 시설이 그나마 존재하는 “수도권을 벗어나면 청소년 부모를 도울 자원조차 부족하다.”(김민영 자주스쿨 대표). 지은(가명·22)이는 네 살 딸 아이를 홀로 키운다. 한부모 시설에 있다가 아버지에게 보증금을 빌려 공공임대주택에 들어갔다. 아버지가 돈이 필요하다며 보증금을 다시 달라고 해 급하게 집을 뺀 뒤 고시원에 들어갔다. ‘보증금 없는 월세’에 사는 청소년 부모가 됐다. 한몸 정도는 누일 수 있지만, 고시원에 아이까지 데려갈 순 없었다. 포털사이트에서 비공식 위탁모를 수소문해 아이를 맡기는 선택을 했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지금은 돈을 벌며 빌라에 살지만, 은영이는 임신 6개월 때까지 일정한 주거지가 없었다. 이미 가정폭력을 피해 집을 나온 뒤였다. 다세대주택 옥상에서, 겨울에도 히터가 작동하는 공중 화장실에서, 빌딩 계단에서, PC방에서 잤다. 옥상에 옷 몇벌을 두면 훔쳐가는 이도 있었다. 은영이는 “모텔이나 찜질방에서 자는 생활은 돈 많은 언니·오빠들이나 할 수 있어요”라고 했다. 은영이는 ‘모텔이나 찜질방에서 지내고 있다’고 답한 6.3%에도 속하지 못했던 셈이다. 청소년 부모의 법적 정의와 청소년 부모를 특정한 주거지원 근거는 올해 처음 마련됐다. 정부는 오는 9월 24일 개정 시행되는 청소년복지법에서는 청소년 부모를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가 모두 청소년인 사람(만 24세 미만)’으로 규정했다. 청소년복지법에는 가족지원서비스, 복지지원, 교육지원, 취업지원 규정이 포함됐다. 시행령 개정안은 지난 8월 20일 재입법 예고됐는데, 개정안은 ‘가족지원서비스 및 복지지원’에 ‘청소년 부모와 그 자녀의 의식주 등 기초생활을 유지하는 데에 필요한 자원’을 규정했다. “청소년 부모에게 양육자 역할만 요구하는 게 아니라 청소년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 권리도 법으로 보장하겠다는 취지”(김지연 청소년정책연구원 연구위원)를 담은 입법이다. 주거지원 등 청소년 부모를 도우려는 정부의 움직임은 첫발을 뗐지만, 여전히 한계는 남는다. 이선영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서울아동옹호센터 팀장은 “청소년 부부가 원가정 부모의 보호를 받고 있다고만 전제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예를 들어 미성년자인 청소년 부모가 그들의 부모와 연이 끊겼는데, 부모의 소득이나 재산이 잡히면 부양의무자 기준이 적용돼 기초생활수급 등 각종 지원대상에서 제외될 우려가 있다. “청소년 부모가 ‘가정’을 꾸렸다면, ‘가정’을 기준으로 지원해야지 부양의무기준을 섣불리 적용해선 안 된다”(이선영 팀장)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주거지원 빈틈 막아야 청소년 부모가 모텔이나 고시원을 전전했던 이유 중 하나는 정부지원의 ‘사각지대’가 많았기 때문이다. 대표사례가 LH가 공급하는 공공임대주택 입주였다. 공공임대주택은 유형별로 다소 차이가 있지만, 보통 기초생활수급대상이나 아동시설 퇴소자, 한부모 가족에게 우선 공급한다. 청소년 부모가 그들의 부모에게 소득이 발생해 기초생활수급대상이 아니면 공공임대 입주 자격이 주어지지 않는다. 청소년 부모 2명 중 1명(50.8%)은 국민기초생활수급과 법정 한부모 둘 다 등록하지 못한 상황(‘청소년 부모 생활실태 조사’)인 점을 감안하면, 청소년 부모에게 공공임대도 지금까지 높은 문이었다. 청년대상 공공임대주택은 전부 만 19세 이상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만 18세 이하 청소년 부모는 입주 자격이 없다. 청소년복지법 개정을 계기로 삼아 “청소년 부모들이 지원대상에서 모래알처럼 빠져나가는”(류정희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 시스템을 개선해 지원 체계를 ‘통합’해야 한다는 주장도 꾸준히 나온다. 류정희 연구위원은 긴급복지지원제도를 예로 들었다. 긴급복지지원법 제4조에는 긴급지원 대상자에게 주거지원을 하도록 규정돼 있다. 보건복지부의 ‘2021 긴급복지지원사업 개정사항’을 보면 1개월이 원칙이지만 추가 9개월까지 주거지원이 가능하다. 류정희 연구위원은 “긴급 지원이 끝났을 때 청소년 부모들이 갈 수 있는 주거를 지방자치단체나 정부에서 체계적으로 마련해주는 시스템이 아직까지 없다”고 했다. 현장에서는 “집과 다른 자원도 함께 투입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청소년 부모 지원을 한데 묶어야 한다고 본다. 주거지원과 동시에 “상담, 교육 등도 투자하는 방식으로 집중 지원해야 청소년 부모가 집에 정착할 수 있다”(최영화 활동가)는 것이다.
특집
눈뜬 청소년들의 ‘잠 못 이루는 밤’(2021. 08. 13 14:58)
2021. 08. 13 14:58 사회
ㆍ수면 부족 핵심 원인은 과도한 학습 활동… 게임 셧다운제 실효성 되짚어야 “늦어도 밤 11시 전에는 침대에 누워요. 그런데 잠들지를 못해요.”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고등학교 1학년인 정현우군(가명)의 스마트폰 기상 알람은 오전 7시 30분에 맞춰져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오기 전 중학생 시절부터도 그랬고, 지금도 그대로다. 지난해 상반기 개학이 연기되면서 학교에 가지 않을 때도, 온라인으로 수업을 듣던 기간에도 역시 기상시간은 바꾸지 않았다. 잠에 취해 알람을 끄고 누워도 어차피 부모님이 방문을 열어젖히며 깨우는 것은 같았기 때문이다. 기상시간이 변하지 않는 상황에서 정군이 조절할 수 있는 것은 취침시간뿐이다. 친구들과 스마트폰 메신저로 대화하거나 소셜미디어(SNS)와 인터넷 커뮤니티를 보느라 침대 위에서 보낸 심야시간은 빠르게 흘러간다. 정군은 꿀잠을 잔 뒤 개운하게 일어나는 꿈을 매일 꾼다면서도 막상 자리에 누우면 마음먹은 대로 잠들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부모님에 의한 강제 기상시간이 정해진 상황에서 5분이라도 더 자고 싶은 정군은 왜 일찍 눈을 감지 않을까. 사실 정군이 스스로 정할 수 있는 시간이 취침시간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그가 늦게 자는 이유도 납득이 될 여지가 있다. 하루 일과를 마친 뒤 집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난 정군이 과외수업을 마치는 시간은 오후 10시쯤이다. 이후 간식을 먹거나 거실에서 부모님이 보느라 켜둔 TV를 잠시 멍하니 보다 친구들에게서 오는 메시지를 확인하러 다시 자기 방으로 돌아간다. 정군과 비슷하게 하루 일과를 보낸 친구들이 대화를 집중적으로 주고받는 시간도 이때부터다. “뭐 크게 중요한 얘기는 없어요. ‘아무 말 대잔치’지만 그런 대화가 없으면 허전하죠.” 코로나19, 관계도 수면도 흔들었다 정군은 코로나19 시대를 맞아 화상 대화 프로그램인 ‘줌’으로 과외를 하고 있다. 그런데 대체로 과외 수업이 있는 날이 취침시간도 늦은 편이다. 최근엔 다니고 있지 않지만 학원에서 수업을 듣던 때나, 과외가 없는 날 온라인 게임에서 접속한 친구들과 같이 게임을 즐길 때는 조금이나마 취침시간이 앞당겨졌다. “학원에서는 얼굴을 보니까 마치고 짧게라도 얘기할 시간이 있고, 게임할 때도 채팅으로 대화를 하거든요.” 정군의 말대로라면 마치 친구들과의 하루 대화 할당량 같은 것이 있어서 채우지 않으면 허전해지고 또 욕구를 충족할 때까지 잠들기도 어렵다는 결론이 나온다. “부모들은 친구의 존재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지만 청소년에게는 친구가 세상의 모든 것이 될 수 있다. 아동과 청소년이 느끼는 단절은 강력한 소속감을 주는 집단인 학급 동료로부터의 단절을 뜻한다.” 김현수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말이다. 아무리 매일 온라인으로 친구와 대화를 해도 직접 만나는 것과는 차이가 있고, 여러 이유 때문에 소통의 양과 질이 모두 저하되면 청소년들에게는 심리적 부담이 더해진다는 것이다. 김 교수가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코로나19 이후 아동·청소년의 트라우마 호소 증상 역시 단절과 박탈에 바탕을 두고 있다. ‘고립 및 단절’, ‘위생 관련 잔소리’, ‘혼공·혼밥 생활’ 등의 트라우마가 함께 작용해 청소년들의 정신건강을 악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한 또래 집단 구성원들과의 단절이 청소년의 정신건강과 수면에 악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높지만, 늘어난 비대면 활동과 실내생활 시간에 따라 수면각성주기가 교란된 점을 지적하는 전문가도 있다. 특히 아동·청소년의 수면각성주기가 깨지면 장기적으로도 정신건강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소희 국립중앙의료원 정신건강의학과장은 “달라진 수면각성주기는 수면의 질을 떨어뜨리고 우울증 등 정신건강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며 “모든 아동·청소년을 관찰하고 관심을 가져야 하지만, 특히 고위험 아동·청소년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고위험군으로 분류되는 학생들을 위한 지원이 코로나19 이전 평시보다 대폭 위축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보니 이들 청소년에게 닥칠 악영향도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게임 셧다운제가 짚은 헛다리 한국 청소년의 수면시간은 유독 짧다. 우선 한국인의 수면시간이 전 세계적으로 낮은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6년 기준 회원국 간 수면시간 비교 통계를 보면 한국인의 평균 수면시간은 7시간 51분에 그쳤다. OECD 회원국 평균인 8시간 22분보다 31분이 모자라 최하위를 기록했다. 그중에서도 청소년기의 수면시간은 더 짧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지난해 8월 발표한 ‘청소년의 건강 및 생활습관에 관한 조사’를 보면 초등학생의 평균 수면시간은 8시간 41분, 중학생 7시간 21분, 고등학생 6시간 3분으로 나타났다. 미국 수면재단이 권장하는 10대 청소년 수면시간이 8시간 이상임에도 중고교생은 크게 미달했고, 실제로 응답자의 절반 이상인 55.2%가 수면이 부족하다고 응답했다. 그렇다면 코로나19가 특히 청소년들의 인간관계와 정서생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고, 수면각성주기까지 교란했음을 감안하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청소년의 수면시간은 더욱 줄었을 것이라고 예상할 법하다. 그런데 또 다른 조사결과는 다소 다른 경향을 보여준다. 여성가족부와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2020년 11월부터 올해 2월까지 진행한 조사를 바탕으로 발표한 ‘2020년 청소년종합실태조사’를 보면 9~12세 청소년의 주중 수면시간은 평균 9시간 13분, 13~18세는 8시간 4분으로 이전 조사인 2017년 조사와 비교할 때 수면시간이 늘어난 것으로 나왔다. 코로나19가 여전히 맹위를 떨치는 기간에 조사가 수행된 점을 볼 때 코로나19로 인해 청소년 수면시간이 줄었다고 보기엔 어려운 결과가 나온 것이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 교실에서 학생들이 엎드려 잠을 자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물론 조사 방식에 따라 집계되는 수면시간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다른 조사결과와 단순히 비교할 수는 없다. 보고서에서도 “이 방식은 자기기입식으로 수면시간을 측정하는 것으로 다소 부정확한 한계가 있으며, 이런 이유로 이 조사의 수치는 통계청의 생활시간조사, 보건복지부의 건강행동실태조사의 수면시간과 차이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이를 감안해 해석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2011년 이후 3년마다 수행된 4회의 수면시간 조사를 비교해 볼 때 점차 청소년들의 수면시간이 늘고 있는 추세는 발견된다. 2011년의 전체 청소년 주중 평균 수면시간이 7시간 17분이었던 데 비해 2020년에는 8시간 20분으로 계속해서 늘었기 때문이다. 청소년의 수면시간은 지난 6월부터 서서히 논쟁의 주제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국회가 논쟁의 무대가 됐다. 당초 논쟁의 시발점은 ‘게임 셧다운제’ 존폐 여부였다. 전용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6월 25일 셧다운제를 명시한 청소년보호법 제26조를 폐지하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인터넷 게임의 제공자는 16세 미만 청소년에게 오전 0시부터 오전 6시까지 새벽시간 동안 인터넷 게임을 제공하면 안 된다”는 내용을 삭제하려는 개정안이었다. 2011년 셧다운제 도입 당시 취지가 청소년들의 수면권 보호였음에도 제대로 된 효과는 없이 관련 산업을 위축시킬 뿐 아니라 불필요한 사회적 차별과 갈등을 야기한다는 비판이 지난 10년간 줄곧 이어졌다. 셧다운제 폐지 논의는 지난 7월 2일 ‘마인크래프트의 성인게임화를 막아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제기되면서 더욱 불이 붙었다. 마인크래프트는 온라인 공간에 육면체 블록을 쌓아 게임 이용자가 자신이 원하는 대로 가상공간을 꾸미는 게임이다. 한달 이용자 수가 전 세계 1억4000만명에 이를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고, 특히 초등학생 사이에서 높은 인기를 누린 덕에 지난해 5월 청와대의 어린이날 행사에선 이 마인크래프트 게임 속에 가상 청와대를 만들어 어린이 이용자들을 초청하는 행사가 열릴 정도였다. 그런데 마인크래프트를 운영하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자사의 엑스박스 계정을 통해 로그인하는 방식으로 접속 방법을 변경하려 하면서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엑스박스 이용대상을 19세 이상 성인으로 제한한 한국의 청소년들은 졸지에 즐기던 게임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아동과 청소년이 쉽게 즐길 수 있는 게임조차 막아버리는 국내의 과도한 게임 규제가 도마 위에 오르며 ‘갈라파고스’식 규제의 대표 항목으로 꼽히는 셧다운제 역시 도마 위에 올랐다. 청소년 수면시간 보장 문제로 논의의 범위가 더욱 넓어지면서 청소년보호법을 관할하는 여성가족부도 제도 변화 가능성을 시사했다. 최성유 여성가족부 청소년정책관은 “청소년 보호제도가 국민 눈높이에 맞게 합리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제도 개선 노력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청소년만의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게임시간을 줄이고 그 시간에 청소년들을 자게 하자며 도입한 셧다운제가 시행되는 내내 실효성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특히 청소년의 수면권을 보장했는지에 대해 ‘그렇지 않다’는 결론을 내린 연구결과가 속속 나왔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지난 3월 발간한 ‘2020 게임이용자 패널 연구’ 보고서를 보면 “아동·청소년과 성인 게임이용자 모두 게임이용 시간과 수면시간의 유의미한 상관성이 도출되지 않았다”는 분석결과가 나온다. 이 보고서는 “효과성 측면에서 셧다운제가 재검토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셧다운제가 청소년 수면시간에 미친 영향이 미미했던 것은 청소년 수면 부족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큰 원인이 게임이나 여가활동이 아니었기 때문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청소년에게서 잠잘 시간을 뺏는 가장 큰 활동이 학원, 숙제, 강의 등 학습 관련 활동이라는 것이다. 조문석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는 “셧다운제 도입 후 청소년의 수면시간이 충분히 확보되지도 않았고, 심야시간대 게임 이용을 완전히 통제하지도 못했다”며 “청소년 수면시간 부족의 주요 원인을 게임으로 지목한 것이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셧다운제는 청소년 수면 부족을 해결하려다 헛다리를 짚고 정작 잠이 필요한 청소년들을 위한 대책을 마련해주진 못한 셈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거보다 다소 개선되긴 했으나 여전히 잠이 부족한 한국의 청소년들과 청소년기는 지났으나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수면장애를 겪는 인구가 늘어난 성인층 모두에게 생활리듬 회복이 우선돼야 한다는 해법이 제시되고 있다. 이는 코로나19 이후 외출 및 이동을 자제해야 하는 분위기에 재택근무가 늘고 예기치 못한 실업까지 겪는 성인층에게도 적용되는 문제다. 실제 건강보험 통계를 보면 코로나19 확산이 시작된 지난해 수면장애로 진료를 받은 인구는 전년보다 4.1% 증가했다. 김혜윤 가톨릭관동의대 국제성모병원 신경과 교수는 “청소년들의 잠이 부족한 원인으로 거론되는 요인 중 하나는 학업 문제지만, 청소년기 호르몬 문제 때문에도 자는 시각과 깨는 시각에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면서 “수면과 낮의 각성시간은 분리해 생각할 수 없으므로 수면각성주기를 원상회복하기 위해선 낮에 직접 햇빛을 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여성 노동운동 ‘이 장면’](11)홍대 청소노동자들에겐 ‘학생들의 연대’가 있었다(2021. 07. 23 15:03)
2021. 07. 23 15:03 사회
공공노조 서울·경인지부가 2007년 7월에 출범하면서 대학 비정규직 용역노동자들의 조직화가 본격 시작됐다. 대학교 청소노동자 조직 1호는 고려대학교 분회다. 2002년 시도는 실패했지만, 2004년 용역 재계약과 맞물린 노동자들의 불만이 노조 결성의 불을 댕겼다. 2007년 성신여대, 2008년 연세대, 2010년에는 이화여대 청소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노동조합이 만들어지기 전 이화여대의 어느 청소노동자는 밥을 사먹기 힘들어 도시락을 싸서 다녔다. 화재위험이 있다고 학교가 유난을 부리는 바람에 밥과 국을 데워먹기 힘들어 겨울이면 찬밥을 먹었다고 했다. 공공노조 서경지부가 2009년 9월부터 대학과 대학병원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들의 노동안전을 파악하면서 듣게 된 얘기다. 어느 학교의 청소노동자 휴게실은 일하는 사람에 비해 턱없이 좁았고, 또 다른 학교는 남자 화장실을 개조해 휴게실을 만든 탓에 화장실 냄새가 지독했다. 2012년 6월 청소노동자들이 홍익대학교 앞에서 ‘포기할 수 없는 꿈, 우리는 아직도 꿈을 꾼다’라는 주제로 행진 행사를 열었다. 빗자루 등 청소 도구를 피켓 삼아 800여명의 청소노동자들이 홍익대 일대에서 최저임금 보장 및 비정규직 철폐등을 외쳤다. / 김기남 기자 2010년 3월 3일, 신촌에서 ‘청소노동자에게 따뜻한 밥 한끼의 권리를’ 1차 거리 캠페인이 있었다. 밥 한끼 따뜻하게 챙겨먹기 어려운 청소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조건과 박탈당한 권리를 알리기 위해 공공노조와 사회단체가 진행한 캠페인이다. 노조 만들자 집단해고 2010년 당시 홍익대학교에는 170여명의 청소, 경비, 시설 노동자들이 용역계약을 맺고 일하고 있었다. 용역회사는 향우종합관리와 ㈜인광엔지니어링 두 업체였다. 홍익대 청소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이 있는 인근 학교들과 자신들의 노동조건을 견주며 불만이 많았다. 이들은 아침 8시에 출근해 저녁 6시에 퇴근했다. 주변 다른 대학들이 오후 4시에 퇴근하는 것과 비교하면 2시간이나 더 일한 셈이다. 그런데도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75만원의 임금(2010년 최저임금은 4110원, 주40시간 근무한다면 월급은 약 86만원은 넘어야 한다)과 한달 9000원(하루 300원×30일)의 식대를 받았다. 언제든 쓰레기가 생긴 곳에 달려가야 했기 때문에 휴게시간은 사실상 ‘대기시간’이었다. 근무지 외 청소노동 등 부당한 업무도 요구받았지만, 나서는 사람들이 없었다. “우리가 있는 대기실을 (학생) 두세명이 세 번씩 방문했어요. 처음엔 노조 얘기 안 하고 설문조사만 하다 두 번째 왔을 때 노조 얘기하는데 귀가 솔깃했어요. 그래서 학생들이 도와주면 노조를 만들겠다 했죠.”(<나는 청소노동자다_홍익대 청소노동자, 김금옥 씨> 작은책) 2011년 배우 김여진씨가 주축이 된 트위터 모임 ‘김여진과 날나리 외부세력’이 홍익대 청소노동자의 농성을 지지하며 조선일보에 낸 지면 광고. / 경향신문 자료사진 다른 학교에 비해 노동조건에 대한 불만이 많았기 때문이었을까? 이화여대는 노동조합 결성까지 1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는데, 홍익대 노동자들은 학생들과 만나기 시작한 지 6개월 만인 2010년 12월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노동조합의 교섭 요구사항은 ▲최저임금을 넘어선 생활임금 보장 ▲장시간 노동문제 해결 ▲용역 재계약에 따른 고용불안 해결 ▲제대로 된 쉴 곳, 밥 먹을 곳 보장 ▲이 모든 문제를 진짜 사장, 대학총장이 책임질 것 등이다. 그러나 학교는 교섭에 나서지 않았다. 설 연휴가 끝나기 전날인 2011년 1월 2일 새벽에 용역업체와의 계약을 해지했다. 같은 조건으로 3개월 연장하자는 제안을 용역회사가 거절했다고 했다. 용역회사가 바뀌어도 그대로 일했던 관례가 있었으므로, 설 휴가를 마치고 출근한 노동자들이 출근 도장 찍으려는데 출근 카드가 없었다. 학교는 “용역업체 측의 계약 포기가 주원인”이라고만 했고, 결국 노동자 170명 모두를 해고했다. 아무 설명도 없이 벌어진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던 노동자들은 학교 본관을 점거하고 장기간 농성에 들어갔다. 2011년 2월 20일, 농성 49일 만에 학교 측은 새로 계약한 용역업체들, 공공노조 서경지부와 고용승계 및 임금인상 등을 골자로 한 잠정적인 합의안에 서명했다. 2011년과 2021년 홍익대분회 조합원들은 ‘김여진과 날라리 외부세력’이 보여준 ‘존중하는 태도’에서 자신감도 얻었다. 배우 김여진씨가 1월 7일 농성장을 방문해 조합원들과 함께 밥을 차려먹고 농성장 분위기를 전하는 글을 쓰면서 트위터 이용자들과 만든 모임이었다. 이들은 조선일보 광고 게재, 우당탕탕 바자회 개최 등 다양한 활동을 벌였고, 덕분에 학생들과 시민의 연대가 이어졌다. 2011년 9월 경희대, 2012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울시립대, 인덕대, 2013년 이후 중앙대·광운대·서울여대·카이스트까지 노동조합 결성 분위기가 줄을 이었다. 대부분의 대학 청소노동자들의 싸움에는 학생들의 연대가 큰 원동력이 됐다. 2010년 3월 서울 신촌역 앞에서 열린 ‘따뜻한 밥 한끼의 권리’ 캠페인에 참가한 노동·시민단체 회원들이 자신이 생각하는 ‘밥 한끼’의 의미 등을 적어 걸고 있다. / 강윤중 기자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의 싸움이 한창이던 올해 2월 22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 공공서비스지부는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홍익대 청소·경비 노동자 고용승계합의 10주년 맞이 LG트윈타워 고용승계 촉구 토론회’를 열었다. 2011년 2월 20일 홍익대분회의 투쟁이 마무리된 날에 맞춰 열린 이 토론회 참가자들은 10년 전 홍익대 청소노동자들과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의 싸움이 아주 유사하다고 주장했다. 홍대와 LG 측의 태도, 집단해고 정황과 논리는 정말 판박이다. 두곳 모두 노동조합을 만들자 용역계약을 종결하고 고용승계를 거부함으로써 사실상 집단해고를 단행한 것이다. 10년이라는 시간을 두고도 청소노동자들의 두 싸움이 이렇게 닮았다는 것은, 여전히 청소서비스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노동안전에 대한 근본적인 대안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울산과학대도 7년째 생활임금을 요구하며 싸우고 있고, 신라대 청소노동자들도 집단해고 철회와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142일 이어오던 싸움을 지난 6월 승리로 마무리했다. 도시 곳곳에서 지치지 않고 싸우는 청소노동자들의 존엄한 인간으로 일하고자 하는 모든 행보를 지지한다. 그리고 6월 26일 사망한 서울대 청소노동자의 명복을 빈다. 참고자료 <우리가 보이나요>(이승원, 정경원·2011·한내)
여성 노동운동 ‘이 장면‘
[박이대승의 소수관점](1)청소노동자 사망과 별점 테러(2021. 07. 23 15:03)
2021. 07. 23 15:03 사회
괴롭힘은 특수하고 일탈적인 사건이 아니라 노동 통제의 일상적 수단이 됐다. 그것을 해결하려면 노동시장의 불평등 구조와 노동 규율 방식, 플랫폼 노동의 불안정성 그 자체를 문제로 삼아야 한다. 서울대 청소노동자가 자신의 일터에서 사망했다. 노동사고는 끊이지 않고, 노동자들은 괴롭힘당하다 죽어간다. ‘괴롭힘’은 은유적 표현이 아니다. 고인에게 강요된 필기시험의 목적은 괴롭힘을 통해 노동자를 길들이는 것이고, 이런 광경은 한국사회 어딜 가나 어렵지 않게 목격된다. 괴롭힘은 특수하고 일탈적인 사건이 아니라 노동 통제의 일상적 수단이 됐다. 서울대 학생회관 1층 식권 판매소 옆에 마련된 청소노동자 추모공간/우철훈 선임기자 규율 혹은 훈육(discipline)은 현대 자본주의 노동의 핵심이다. ‘직장에서 일한다’는 것은 정해진 시간에 출근해 정해진 방식으로 행동함을 의미한다. 규율된 노동의 등장은 인류사의 충격적 사건이었다. <모던 타임스>의 찰리 채플린은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미친 듯이 나사를 조이다가 기계 안으로 휩쓸려 들어간다. 컨베이어 벨트는 단순히 기계 부품을 옮기는 장치가 아니라 인간을 기계의 리듬에 종속시키는 규율 장치다. 물론 규율은 공장 노동만의 특징이 아니다. 서비스 노동자는 매뉴얼에 따라 친절하게 인사하는 법을 연습한다. 지식노동자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워 보이지만, 임금의 대가로 성과를 내야 한다는 절대적 원칙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괴롭힘이라는 노동 규율 노동에 대한 규율 그 자체가 좋다 나쁘다 말할 수는 없다. 노동이 사회적 활동인 이상, 규율은 필수 요소다. 특히 노동현장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적절한 통제와 지시는 꼭 필요하다. 하지만 오로지 이윤과 효율적인 착취를 위해 만들어진 통제장치도 있다. 그중 가장 악랄한 것이 바로 괴롭힘이다. 도대체 왜 서울대는 청소노동자에게 업무와 상관없는 필기시험을 요구했을까? 괴롭힘을 통해 그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해서다. 그것은 노동자에게 모멸감을 주고 자존감을 파괴한다. 취약한 노동자의 영혼에 ‘당신은 존중받을 가치가 없으므로, 내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는 주문이 주입된다(물론 이런 식의 권력 행사가 노동현장만의 특징은 아니다. 최근 ‘가스라이팅’이라는 말이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현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제 사용자와 노동자는 노동계약의 두 당사자가 아니라, 우월한 인간과 열등한 인간으로 분리되고, ‘아랫사람’을 내려다보는 ‘윗사람’의 명령이 노동을 규율한다. 근로기준법은 ‘직장 내 괴롭힘’을 이렇게 정의한다.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여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70% 이상의 노동자가 괴롭힘을 경험했다고 한다. 인터넷에 ‘직장 갑질’을 검색해보라. 노동이 있는 모든 곳에 괴롭힘이 있다. 그 수준이 심각한 정도에 이르면, 그때서야 사회적 관심과 처벌의 대상이 된다. 괴롭힘이 이 정도로 일반적인 현상이라면, 과연 그것을 ‘예외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한때 체벌이 교육의 정상적 수단이었고, 뇌물이 사회적 관계의 정상 형태였던 것처럼) 괴롭힘은 오히려 일상적 노동 관리수단 중 하나가 아닌가? 노동자가 상급자의 요구를 만족시키지 못하거나 지시에 순응하지 않을 때, 가장 편하게 택할 수 있는 대응책이 괴롭힘이다. 가해자는 회사 조직일 수도, 특정 개인일 수도 있지만, 어느 쪽이든 ‘성격 이상한 직장상사의 일탈행위’로 축소할 수는 없다. 괴롭힘은 노동 규율이라는 명확한 목적을 가진 폭력이기 때문이다. 플랫폼 노동의 별점 괴롭힘 플랫폼 노동은 노골적으로 괴롭힘을 활용하지만,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개념은 그 문제를 다루지 못한다. 얼마 전 환불 문제로 고객과 논쟁하던 식당 운영자가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주간경향(1437호) 기사 ‘별점노동의 시대’에 따르면, 그것은 결코 예외적인 사례가 아니다. 별점 앞의 노동자는 아무 보호장치 없이 괴롭힘에 노출된다. 플랫폼은 기업, 노동자, 고객의 역할을 뒤집는다. 노동자는 피고용인이 아니라 독립적인 서비스 제공자로 취급된다. 기업은 노동자와 고객을 연결할 뿐 서비스 제공 과정을 책임지지 않는다. 고객은 단순한 서비스 구매자가 아니라 노동자에게 직접 지시와 명령을 내리는 지위에 오른다. 즉 사용자가 가지고 있던 노동 통제 권력이 고객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고객의 취향과 요구는 절대적이다. 노동자가 그것에 맞설 방법은 없다. 고객과 노동자는 계약의 당사자가 아니므로 협상할 방법도 없고, 단체 행동도 불가능하다. 결국 노동자는 고객에게 완전히 종속된다. 고객 입장에서도 이런 상황이 완전히 유리한 것만은 아니다. 기업의 역할을 본인이 직접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노사관계에서 다루어지던 문제가 노동자와 고객 사이의 갈등으로 전환된다(얼마 전 발생한 택배 노동자와 아파트 주민 사이의 갈등을 떠올려보자). 플랫폼이 고객 권력을 강화할수록 기업은 더 큰 이익을 얻는다. 하지만 기업 권력이 축소되는 것은 아니다. 고객의 명령은 플랫폼을 통해서만 전달되고, 그 작동 방식은 기업이 결정하기 때문이다. 결국 기업은 ‘고객의 이름으로’ 절대적 권력을 행사하면서도, 노동현장에서 발생하는 일을 책임지지는 않는다. 이것을 ‘중간착취’ 말고 다른 이름으로 부를 수 있을까? 어떤 이들은 플랫폼 노동을 ‘통제 없는 자유로움’으로 묘사한다. 출퇴근 시간도 없고, 잔소리하는 직장 상사도 없이, 원하는 때에 자유롭게 일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노동이 이윤의 수단인 이상, 규율 없는 노동은 불가능하다. 플랫폼 노동의 (표면적) 규율 권력은 고객으로 이동했고, 그들은 언제라도 괴롭힘의 가해자가 될 수 있다. 사실, 별점 평가의 작동 원리는 이미 괴롭힘의 가능성을 전제한다(고객 만족은 별점 5개의 칭찬, 불만족은 별점 1개의 모멸감). 고객과 노동자가 대립할 경우, 고객이 택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이고 강력한 대응책은 별점 테러다. 고객 개인의 양심을 제외하면, 그런 식의 괴롭힘을 차단할 장치가 마땅히 존재하지 않는다. 노동자를 향한 괴롭힘은 사회적 노동 통제의 한 부분이다. 한국의 위계적 사회관계, 노동시장의 심각한 불평등이 그것의 이상적 환경을 구성한다. 플랫폼 노동은 거기에 최악의 조건을 더한다. 첫 번째 희생자는 괴롭힘을 통해 가장 손쉽게 통제할 수 있는 이들, 가장 취약하고 불안정한 위치에 있는 노동자들이다. 괴롭힘이라는 개별 행위를 규제하거나, 사후 조치를 강제하는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기업의 책임을 면제하는 플랫폼 노동의 작동 방식을 손대지 않고, 별점 괴롭힘을 제거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노동시장의 불평등 구조와 노동 규율 방식, 플랫폼 노동의 불안정성 그 자체를 문제로 삼아야 한다. 박이대승은 정치철학자이자 불평등과시민성연구소 소장이다. 프랑스 툴루즈-장 조레스 대학교에서 질 들뢰즈와 펠릭스 과타리의 소수화 전략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 '개념' 없는 사회를 위한 강의: 변화를 위한 소수자의 정치전략」, 「임신중단에 대한 권리: 비합리는 헌법재판소에서 시작된다」를 썼다.
박이대승의 소수관점
[주목! 이 사람]한국청소년정책연대 이영일 공동대표 “학생증 대신 청소년증 확산을”
[주목! 이 사람]한국청소년정책연대 이영일 공동대표 “학생증 대신 청소년증 확산을”(2020. 05. 15 16:54)
2020. 05. 15 16:54 사회
“학생증 대신 청소년증을!” 한국청소년정책연대(정책연대)가 지난 몇 년 동안 꾸준히 주장해온 구호다. 청소년에게 다양한 혜택을 주기 위한 목적인 청소년증이 차별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다. 이 중심에 한국청소년정책연대 이영일 공동대표(50)가 있다. 이영일 한국청소년정책연대 공동대표 / 본인 제공청소년증은 교통카드와 일반결제가 가능할 뿐 아니라 각종 할인 혜택이 주어지는 매우 ‘편리한’ 카드다. 그런데 이 청소년증이 오히려 차별의 대상이 된다고? 성인은 잘 모르는 세계다. 이 대표는 “학교에 다니는 청소년들은 주로 학생증을 사용하기 때문에 청소년증은 학교 밖 청소년들만 사용하는 것이라는 부정적인 낙인이 있다”며 “마치 학교에 다니지 않는 아이들의 신분증처럼 됐다”고 말했다. 대학생들의 ‘과 잠바’처럼 학생이 중·고등학교의 ‘서열’을 나타낸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면서 이 대표는 ‘학생’ 위주의 정부 정책을 꼬집었다. 가령 코로나19 공적 마스크 구입과 관련해 본인 확인을 위해 제시하는 신분증 안내에는 학생증만 쓰여 있었다. 청소년이 처음으로 투표할 수 있었던 지난 4·15총선도 마찬가지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안내문에는 학생증만 소개돼 있었다. 교육재난지원금도 논란이 일었다.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 학교에 다니는 청소년만을 대상으로 지급했다. 이 대표는 “정부 부처조차 청소년증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그 중요성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는 증거”라며 “이렇다 보니 정책이 시작된 지 15년이 지났는데도 실효성이 미미하다. 이런 차별이 사라지려면 각 학교의 학생증이 아니라 청소년 전체를 아우르는 청소년증 사용이 보편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고등학교 시절, 학보사 활동을 한 것을 계기로 청소년 활동, 나아가 운동에 몸담게 됐다. 그가 고3일 때,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창립됐는데 ‘참교육 운동’이라 불렸던 당시 운동에는 교사뿐 아니라 학생들도 함께했다. 이후 흥사단, 성북아동청소년센터, 서울시교육청 학생인권위원회 등에서 활동했다. 그렇게 30년 이상 흘렀다. 그러다 2015년 정책연대가 탄생했다. 정책연대의 탄생 배경에는 ‘세월호 참사’가 있다. 청소년 운동 활동가들에게 세월호 참사는 큰 충격이었다. 항상 청소년들과 함께하고 활동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참사 이후 주변을 둘러보니 정작 청소년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정책을 제안하는 단체는 없었다는 것이다. 청소년 운동은 전체 시민운동의 일부분으로 여겨진 게 사실이다. 이 대표는 “청소년 단체 대부분이 돈이 없다 보니 정부나 지자체 예산에 의지하는 경우가 많고, 목소리를 내기도 힘들다”며 “좀 더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고 목소리가 정책 제안으로까지 이어지는 단체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2015년에 전국 400여 명의 발기인이 참여해 정책연대를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인터뷰 내내 이 대표는 청소년증의 정착을 수차례 강조했다. “어른들이 사원증을 가지고 투표합니까? 그런데 청소년은 늘 왜 학생증이 먼저죠? 어른은 주민등록증, 청소년은 청소년증이라는 문화가 정착되어야 합니다. 이런 일상의 차별부터 없애는 게 청소년 인권 향상의 방법입니다.”
주목! 이 사람
[주목! 이 사람]청소년 인권 주제 낸 공현씨 “법률·제도로 학생인권 보장해야”(2020. 04. 10 15:08)
2020. 04. 10 15:08 사회
때로 교복은 숨 막히게 느껴졌다. 체벌은 흔했다. “개학했으니 열심히 하자는 의미로 한 대씩 맞자”는 말이 나올 정도로. ‘자율’과 거리가 먼 야간 자율학습은 늦은 밤까지 이어졌다. 학교 현장에서 쌓인 불만은 공현씨(32)를 청소년 인권운동으로 이끌었다. 고교 3학년이던 2005년 내신등급제 및 두발규제 반대 촛불집회가 불씨를 댕겼다. 2011년에는 대학에서 자퇴했다. 대학서열체제와 입시경쟁에 대한 비판을 꾹꾹 눌러담은 ‘자퇴 선언’ 대자보는 적지 않은 반향을 일으켰다. 올해는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출범을 준비하고 있다. ‘대학입시 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 멤버이며 ‘교육공동체 벗’의 편집자로 일한다. 최근 청소년 인권을 주제로 기고한 글을 모은 <유예된 존재들>을 냈다. 누군가 자신처럼 청소년 인권문제에 눈을 뜰 때, 길라잡이가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제가 생각하는 청소년 운동은 청소년 인권이나 권익을 위해 사회를 바꾸려는, 최종적으로는 청소년 억압이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 생각해요. ‘어른들이 잘해주고 잘 자라게 해주세요’가 아니라 청소년이 어떤 힘을 가지고 무엇을 요구하고 바꾸거나 지킬 수 있는 사회, 사회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 해도 어떤 권리의 자격을 묻는 게 아니라 권리 보장에 필요한 게 무엇인지 묻는 사회를 만드는 거죠. 결국 모든 인권의 문제와 연결된다고 생각해요.” 청소년 운동은 값진 성과를 이뤄왔다. 2010년대 들어 경기·광주·서울·전북 4개 지역에서 두발자유가 인권임을 명시하는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됐다. 몇몇 학교는 두발자유화를 선언했다. 지난해 12월 ‘만 18세 선거권’이라는 진전도 얻어냈다. 만 18세라면 투표는 물론 선거운동이나 정당 가입도 할 수 있다. 하지만 학교 안에는 여전히 학생의 정당 가입·정치 활동 등을 금지하는 규칙이 있다.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가 전국 5600여 개 중·고교 가운데 533곳의 규칙을 조사해보니 정당 및 정치적 단체 가입을 금지하거나 정치활동을 금지·처벌하는 규칙을 가진 학교가 54.8%(292곳)로 나타났다. 10곳 가운데 7곳은 학교장 허가 없이 단체를 조직하는 것이나 불온 서클 가입 등을 처벌하는 조항을 뒀다. 제정연대는 “사상이 불온한 학생’을 징계대상으로 명시한 학칙 등 독재시대에나 어울릴 법한 규칙들도 다수 존재한다”고 말했다. “겉으로 드러나는 폭력이나 억압이 줄었다고 해서 불합리하고 비민주적인 규칙과 관행이 바뀐 건 아니에요. 학교 운영·생활규정을 정하는 데 참여할 수 없다거나 부당한 일을 당했는데 제대로 항의할 기회조차 가질 수 없는 현실은 예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아요. 법률이나 제도로 확실하게 학생인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봅니다.” 청소년 운동에 발을 들인 지 15년째. 동료들이 청소년기를 지나며 다른 길을 걸을 때 그는 같은 자리를 지켰다. 종종 “언제까지 청소년 운동을 할 거냐?”는 질문을 받는다. “처음 시작이 두발자유 운동이라서 두발자유 하나는 이뤄지는 걸 보고 싶어요. 진지하게 답한다면 할 수 있을 때까지, 죽을 때까지죠. 제가 청소년 인권문제의 당사자는 아니지만 청소년 인권운동의 당사자라고 생각하거든요. 이게 제 운동이고, 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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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설계]우울증·불안장애, 청소년도 증가
[건강설계]우울증·불안장애, 청소년도 증가(2020. 03. 27 15:35)
2020. 03. 27 15:35 건강
성인이 되어가는 청소년기는 신체적·정신적·도덕적·사회적으로 발달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시기다. 좌절과 불만을 쉽게 느끼고 사고가 극단적으로 치닫거나 과격한 감정을 갖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질풍노도의 시기’라고도 한다. 이런 특징 때문에 청소년기에 불안한 감정 상태를 보이는 경우, 사춘기가 와서 그런지 아니면 치료를 필요로 하는 우울증이나 불안장애에 해당하는지 판단을 내리기 어려워하는 부모가 많다. 우울증과 불안장애는 우리 뇌에서 감정과 스트레스, 불안을 조절하는 편도체의 기능 이상과 신경전달물질 이상으로 발생한다. 물론 환경적으로는 가정불화, 학교에서 친구와의 교우 관계나 왕따 문제, 사회에 대한 불만 등이 증상을 심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그래서 청소년기 아이들이 흔히 보이는 사춘기 증상, 이른바 ‘중2병’에 비해 그 증상이 심하고 스스로 컨트롤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른다. 우울증과 불안장애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문제를 인식하는 것이다. 현재 내가 힘든 게 내 잘못이 아니라 병 때문이라는 점을 인지해 도움을 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무슨 우울증이야?”라고 단순히 치부해버리다가 증상이 심해져 병원에 오는 경우도 많다. 증상이 가벼운 상태에서 체크하고 치료에 나선다면 증상이 장기화되지 않기 때문에 훨씬 예후가 좋다. 우울증과 불안장애가 극심하지 않더라도 과도한 스트레스는 자율신경과 관련된 신체의 이상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 두통, 어지럼증, 소화불량, 변비, 설사, 생리통, 기타 반복되는 통증이나 긴장감 등이 이에 해당한다. 신체적인 불편함이 나타났다는 것은 빠른 대처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증상이 나아지겠지’ 하고 방치하다가 우울증이나 불안장애가 심해지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신체 전반과 뇌의 감정 조절 기능을 연결하는 축은 매우 중요하다. 우울증·불안장애를 치료하는 데는 기타 신체 증상을 같이 해결해야 할 필요가 있다. 특히 소화 및 수면 기능 등의 치료가 꼭 따라줘야 한다. 전통 한약처방인 시호가용골모려탕·온담탕·치자시탕 등이 우울증과 불안장애를 치료하기 위해 많이 활용된다. 이외에도 추나요법, 침·뜸 및 부항치료, 상담치료 생기능 자기조절훈련 등을 환자의 상태에 맞게 적용한다.
건강설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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