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디경향(총 4 건 검색)
- 검색창으로 바라본 19대 총선
- 2012. 04. 03 12:20 화제
- ㆍ네티즌이 가장 많이 검색한 Hot Issue만 모았다 3월 22일 후보자 등록이 진행되면서 4.11 총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공천과 경선으로 뜨거웠던 지난 3월, 네티즌들은 ‘총선’에 대해 ‘무엇’을 검색했을까. 인터넷 포털 사이트 네이버의 ‘일간 종합 검색어’ 중 총선과 관련된 검색어만 간추렸다. 검색창에 가장 많이 입력한 정치 관련 단어 열 개를 소개한다. 일간 종합 검색어 손수조 순위 5일 4위 / 6일 1위 / 7일 6위 / 8일 12위 / 14일 1위 / 15일 9위 이번 총선의 최고 관심지로 꼽히고 있는 부산 사상구의 새누리당 손수조 후보가 조사 기간 중 이틀이나 일간 종합 검색어 순위 1위를 기록했다. 부산 사상구에 출마를 선언한 민주통합당 문재인 상임고문의 대항마를 찾던 새누리당은 27세의 젊은 정치 신예, 손수조를 선택했다. 새누리당 공천 발표가 있던 다음날인 6일과 박근혜 비대위원이 직접 부산을 방문했던 14일에 일간 종합 검색어 1위를 차지했다. 연관 검색어 손수조는 누구 올해 스물여덟의 젊은 여성이다. 부산광역시에 위치한 삼덕초등학교, 덕포여자중학교, 주례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국문학을 전공했다. 중·고등학교 시절 학생회장을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대학교 졸업 후 언론 홍보대행사에서 잠깐 동안 직장생활을 하다 퇴사 후 언론사 입사를 준비 하던 중 출사표를 던졌다. 2월 중순부터 새누리당 최연소 예비 후보로 화제를 모으며 포털 사이트 검색어 순위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손수조 선거법위반 지난 3월 14일 새누리당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과 손수조 후보(당시 예비 후보)는 부산 시내에서 차량으로 이동하는 도중 차량 선루프 밖으로 몸을 빼 손을 흔들었다. 이것이 선거법에 저촉되느냐, 안 되느냐를 놓고 논란이 일기도 했다. 손수조 지지율 차기 대권주자로 지목되고 있는 민주통합당 문재인 상임고문과 정치 초년생인 손수조의 맞대결은 ‘달걀로 바위 치기’,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고 표현됐으나 그 지지율의 격차가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지난 3월 11일 한 언론사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문 고문은 47.9%, 손 후보는 39.6%의 지지율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다른 언론사의 19일자 여론조사에서는 43.5% 대 27.5%로 지지율이 변하고 있어 네티즌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일간 종합 검색어 봉주 8회 순위 7일 18위 / 8일 18위 / 9일 9위 / 10일 14위 / 11일 9위 / 12일 16위 (익일 19위 검색어 나는 꼼수다 봉주 8회) 지난 3월 11일에 방송된 팟캐스트 방송 ‘김어준의 나는 꼼수다(이하 나꼼수)-봉주 8회’가 화제가 됐다. ‘봉주 8회’에서 BBK 주가조작 사건과 관련된 ‘김경준씨 육성 녹취록’이 공개됐기 때문. ‘나는 꼼수다’의 PD이자 민주통합당 노원갑 김용민 후보가 미리 “‘봉주 8회’에서 김경준씨 녹취록을 공개할 것이다”라고 예고하고도 방송이 예상보다 늦어졌기 때문인지 방송 전후에 걸쳐 오랜 기간 검색어 순위에 머물렀다. 방송에서 공개된 ‘김경준씨 육성 녹취록’에는 “처음에는 박근혜 쪽에서 나한테 와서 협상하자고 했다. 빨리 오라는 것이다. 그러나 검찰은 그것을 다 알고도 관심이 없다고 했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연관 검색어 김용민 결국 노원갑구에 민주통합당 후보로 출마했지만 ‘봉주 8회’ 방송 당시 김용민 후보는 출마 여부를 놓고 고심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해 관심을 끌었다. 나경원·주진우 ‘나꼼수-나경원-주진우’ 검색어가 서로 연관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10월부터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직전 주간지 「시사IN」의 주진우 기자가 ‘나꼼수’를 통해 “나경원 후보의 남편 김재호 판사(서울동부지법 부장판사)가 검사에게 기소를 청탁했다”라고 폭로한 이후다. 이후 나 후보가 ‘허위 사실 유포’ 등의 혐의로 주 기자를 고소하자 주 기자는 ‘명예훼손 및 무고 혐의’로 맞고소했다. 이어 지난 2월 29일, ‘나꼼수-봉주 7회’ 방송에서 “검찰 자체 조사에서 박은정 검사(인천지검 부천지청)가 기소 청탁 사실을 시인했다”라고 폭로함으로써 국민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일간 종합 검색어 김지윤·고대녀 순위 8일 11위(22위 고대녀) / 9일 4위(7위 고대녀) / 10일 7위(10위 고대녀) / 12일 22위 지난 8일 무소속 강용석 의원이 통합진보당 청년비례 후보 김지윤씨를 ‘모욕죄’ 혐의로 고소하면서 김지윤씨가 논란의 중심에 섰다. 김지윤씨는 지난 4일 자신의 트위터에 ‘제주 해적기지 반대. 강정을 지킵시다’라고 적힌 피켓을 든 사진을 올렸다. 강 의원은 해군을 ‘해적’으로 비유한 것이 ‘해군을 모욕했다’라며 전우회 123명을 대리해 김지윤씨를 고소했다. 김지윤씨는 통합진보당 청년비례대표 후보 경선에서 4위에 그쳐 탈락했다. 연관 검색어 고대녀 고려대 문과대 학생회장 출신인 김지윤씨는 ‘2008년 촛불시위’ 당시 MBC ‘100분 토론’의 ‘한승수 총리와의 대화’에서 대담을 나눈 뒤 ‘고대녀’로 알려지며 유명세를 탔다. 공지영·김용민 김 후보의 ‘해적기지’ 표현에 대해 김용민 후보가 ‘기죽지 말라’라고 지지한 내용과 공지영 작가가 ‘해적이 맞다’라고 동의한 내용이 연관 검색어로 등록됐다. 이와 관련 공 작가는 11일 일간 종합 검색어 17위에 오르기도 했다. 김용민 순위 9일 23위 / 14일 3위 / 15일 17위 9일 김지윤씨의 발언을 지지한 내용과 ‘나경원 의원 불출마 선언’ 등이 맞물려 검색어 순위에 올랐다. 김용민 후보는 12일 나경원 의원 측으로부터 ‘허위 사실 유포’ 혐의로 고발당하고, 13일에는 검찰에 출두해 조사를 받았다. 그리고 14일, ‘나꼼수-호외4’를 통해 19대 총선 출마를 선언하자, 민주통합당은 정봉주 전 의원의 지역구인 노원갑 후보에 그를 단독 공천했다. 김 후보는 통합진보당과 야권 단일화 경선 여부로 주목을 받았다. 연관 검색어 홍용표 후보 김 후보가 전략 공천되자 ‘야권 단일화 경선’을 치르자고 제안한 통합진보당 노원갑 후보다. 홍 후보는 17대 총선 때 정봉주 의원 공동선거 대책 본부장을 지내 정봉주 전 의원과 인연이 있다. 일간 종합 검색어 나경원 순위 5일 28위 / 8일 15위 나경원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 8일 오후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19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서울지방경찰청에서 김재호 판사에게 소환 통지를 보낸 지 하루 만의 일이었다. 그간 ‘나꼼수-봉주 7회’ 방송 이후 나경원 의원의 총선 출마 여부에 대한 논란이 지속돼왔다. 나경원 의원은 자신의 지역구인 서울 중구 출마를 희망, 도전했으나 새누리당 3차 공천자 명단에 포함되지 못하자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연관 검색어 나경원 남편·나경원 기소청탁·박은정 나경원 의원의 남편 김재호 판사는 아내인 나 의원이 자신을 비방한 누리꾼을 고소한 사건과 관련해 박은정 검사에게 기소를 청탁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일간 종합 검색어 전여옥 순위 5일 21위 / 9일 21위 3선 의원인 새누리당 전여옥 의원은 공천 탈락의 위기에 놓이자 새누리당을 탈당하고 국민생각에 입당하는 발 빠른 행보를 보였다. 전 의원의 입당은 현역 의원으로는 처음으로 국민생각에 합류하는 것 이기도 했다. 입당 후 국민생각의 공동 대변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선거 일정 3. 22~23 후보자 등록-3. 22~27 부재자 신고-3. 29 선거기간 개시일- 4. 2-선거인명부 확정-4. 5~6 부재자투표소 투표-4. 11 선거일 ●투표시간 2010. 4. 11(수) 오전 6시~오후 6시 ●선거권 만 19세 이상의 국민, 1993. 4. 12 이전 출생자 ●1인 2표제 지역구 국회의원 투표, 정당별 지지도 투표 ●임기 2012. 5. 30~2016. 5. 29 일간 종합 검색어 국민생각 순위 9일 13위 전여옥 의원이 전격 입당을 선언한 9일, 전 의원보다 더 높은 관심을 모았던 검색어다. 중도 보수신당으로 분류되고 있는 국민생각은 지난 2월, 박세일 전 의원(17대 한나라당 국회의원)이 19대 총선을 앞두고 창당했다. 창당 초 녹색사민당 장기표 대표가 참여했으나 정책적 이견으로 탈당했다. 일간 종합 검색어 강성태 순위 11일 21위 새누리당이 ‘공부의 신(神)’이라는 별칭으로 유명한 강성태씨를 한때 비례대표 후보로 영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인터넷을 후끈 달아오르게 했다. 강성태씨는 1983년생으로 서울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했다. 무료 온라인 동영상 강의 사이트인 ‘공신닷컴’을 운영하며 학부모와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공부의 신」, 「공부의 신 돈 없이 공부하기」 등이 있다. 연관 검색어 석해균·최란 강성태씨와 함께 새누리당 비례대표 후보로 물망에 오른 사람들이 연관 검색어를 장식했다. 국가대표 탁구선수였던 이에리사 용인대 교수, ‘아덴만의 영웅’으로 잘 알려진 석해균 선장, 영화 ‘완득이’에서 얼굴을 알린 이자스민씨, 배우 최란 등이 있다. 지난 20일 발표된 새누리당 비례대표 후보 명단에는 이에리사 교수, 이자스민씨가 포함돼 있다. 원자력 분야를 전공한 여성과학자 민병주 후보가 1번, 박근혜 위원장은 11번에 배치됐다. 당초 비례대표 영입이 거론됐던 석해균 선장과 강성태씨는 명단에 오르지 않았다. 일간 종합 검색어 박선규 순위 14일 25위 13일 밤 ‘4월 총선 이것이 쟁점이다’를 주제로 방송된 MBC-TV ‘100분 토론’에 출연하며 화제를 모았다. 이날 방송에는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을 지낸 박선규 새누리당 후보와 유시민 통합진보당 공동대표를 비롯해 남경필 새누리당 국회의원, 이용섭 민주통합당 정챙위의장이 출연했다. 이날 박 후보는 시민 논객의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 유시민 공동대표와 비교당하는 등 네티즌들의 입방아에 올랐다. 박 후보는 서울 양천갑구에 공천을 신청했지만 전여옥 의원의 선거구인 영등포갑에서 공천을 받았다. 연관 검색어 정옥임 박 후보가 당초 희망했던 양천갑구에 도전장을 던졌던 새누리당 의원이다. 그녀 또한 양천갑구가 아닌 강동을 지역에서 공천을 받았다. 천호선 ‘100분 토론’이 화제가 됐던 것처럼 지난 2월 29일에는 tvN에서 방송된 ‘백지연의 끝장토론’의 반응도 뜨거웠다. 박 후보는 참여정부 때 청와대 대변인을 지낸 천호선 후보와 설전을 벌였다. 자료 출처 일간 종합 검색어 포털 사이트 ‘네이버’에서 제공하는 3월 5일부터 3월 18일까지의 일간 종합 검색어 순위를 이용했다. 문화, 방송, 건강 등의 전반적인 분야에서 검색된 단어들을 하루 단위로 정리해놓은 인기 순위다. 그중 총선과 관련된 키워드만 골라 소개했다. 연관 검색어 3월 19일자 기준으로 검색창에 해당되는 일간 종합 검색어를 입력한 후 그와 관련된 연관 검색어를 활용했다. 이번 총선과 관련된 연관 검색어만 언급했다. <■글 / 진혜린(객원기자) ■사진 / 이주석, 경향신문 포토뱅크 ■참고 자료 / 네이버 일간 종합 검색어>
- 17대 총선 출마후 본업에 열중하는 웨이터 윤대리
- 2004. 07. 01 화제
- “손님들이 ‘국회의원 출마한 사람 술 한번 받아보자’고 하는 통에 바쁘게 삽니다!” 17대 총선 민주노동당 서울 중구 출마자인 윤대리는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그는 웨이터다. 30년 넘게 웨이터 생활을 하면서 느닷없이 총선에 출마하기까지 조금은 엉뚱하고 조금은 저돌적인 그의 삶을 들여다보았다. “국회의원도 좋지만 웨이터가 천직이라고 생각합니다!” 윤대리(46·본명 조윤행)의 영업장인 명동의 한 호텔 나이트클럽을 찾았다. 주로 밤에만 활동하는 웨이터들에겐 한낮이 이른 시간이다. 하지만 그는 이른 아침부터 분주하다. 의욕이 넘쳐나는 그는 자그마한 동기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요즘엔 시나리오 한 편 쓰고 있어요. 제가 경험한 일들을 엮은 작품입니다. 벌써 영화사와 계약도 했구요. 이력이 하나 더 생기는 것 같아 뛸 듯이 기쁩니다.” 총선에 실패한 지 불과 한 달도 지나지 않은 상태. 흔히 정치판에 뛰어들었다가 논 팔고 밭 팔고 가진 재산 다 날렸다는 말들을 한다. 그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았다. 꿈과 과감한 도전의식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천직인 웨이터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하다. 웨이터 생활을 시작한 건 70년대 중반. 낮이면 공장에서 일하고 밤이면 야간 고등학교를 다니며 꿈을 키워나갔다. 그는 뮤지션이 되고 싶었다.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공장에서 일을 시작했지만 조금씩 절약해서 드럼 하나를 장만했다. 드럼 연주 실력이 남달라서 무대에도 섰다. 프로급은 아니지만 한동안 뮤지션으로서 자부심을 가졌다. 세월이 흘러 군대 갈 나이가 되고 잠시 일을 접었다. 제대 후 건설 현장에서 기술 자격증을 따며 이라크에도 파견 근무를 나가기도 했다. 절약이 몸에 밴 그는 저축한 돈으로 귀국 후 고향인 강원도 설악산에서 기념품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사업에 실패하고 상경한 그는 웨이터 생활을 다시 시작했다. 그의 성실성을 기억하던 나이트클럽 사장은 흔쾌히 받아주었다. 손님과 동료들에게 신뢰와 믿음을 쌓기엔 그가 적격이라는 판단에서였다. 본격적인 웨이터 생활을 하려면 예명이 필요했다. 본명인 ‘윤행’을 사용하기로 결정하자 지배인은 그를 불렀다. 그는 “웨이터는 유명인의 이름을 사용해야 한다. 나훈아, 김영삼 같은 이름을 사용해야 사람들 머릿속에 빨리 남는다”며 타일렀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그날 밤 우연히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은행에 다니던 친구가 대리시험에 합격했다는 기쁜 소식이었다. 순간 ‘대리’라는 직함이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바로 ‘윤대리’로 결정했습니다. 동료들이 다시 생각해보라고 했지만 전 윤대리가 맘에 들었습니다. 운이 좋았던지 웨이터 느낌이 안 난다며 손님들이 자주 찾아주었어요. 믿음이 간다는 사람도 있었구요. 그후 30년 동안 단 한 번도 예명을 바꾸지 않고 윤대리로 통하고 있습니다.” 그는 92년부터 95년까지 20쌍이 넘는 남녀를 결혼에 골인시킨 주인공이기도 하다. 나이트클럽에 온 손님들의 관상을 보고 나서 하나 둘 연결해준 것이 사랑으로 발전해 좋은 결실을 맺은 것이다. 그의 ‘중매쟁이’ 역할이 소문나면서 모 방송국에서 그와 함께 결혼한 커플을 방송에 출연시키려 했다. 하지만 성사되진 않았다. 당사자들이 나이트클럽에서 부킹해 결혼에 골인했다는 사실을 자녀들에게까지 알리고 싶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즘은 인터넷 때문에 채팅 문화가 발전하고 인터넷 동호회도 활발한 활동을 하지만, 당시만 해도 남녀가 자연스럽게 만나는 장소는 나이트클럽이었거든요. 지금의 채팅 문화와 다를 바 없었으니까요. 예전엔 남자들의 손을 이끌고 부킹을 시켜줬는데 요즘엔 여자들을 데리고 다닙니다. 7년 전으로 기억하는데요. 그 시점이 어디부터인지 아세요? 바로 강남의 오렌지족 문화가 생기면서 변화된 부킹 문화입니다. 돈 있는 남자들이 마음에 드는 여자에게 연락처를 적은 수표를 전달했고, 그것을 받은 여자가 마음에 들면 그 남자에게로 가는 거였죠. 그후 카바레까지 그 문화가 번졌죠. 참 재미있는 세상입니다.” 그런 그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 계기는 우연히 들은 제안 때문이다. 밤늦게 일을 마치고 해장국을 먹기 위해 허름한 식당에 갔다. 때마침 TV에서는 차떼기 정치에 대한 보도가 한창이었다. 식당 안에 있던 모든 손님들은 브라운관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주문을 받으러 온 식당 주인은 그를 보자마자 대뜸 “아저씨같이 성실한 사람이 국회의원이 되면 우리같이 소외된 사람들이 먹고살기 편할 텐데 말이지요”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저 웃음으로 지나쳤던 이야기를 그날 집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또다시 들었다. 마포구 아현동에 사는 그가 택시를 타자 한숨을 내쉬며 운전사가 말을 건넸다. 경기가 나빠서 살기 힘들다는 이야기였다. 교통방송에 가끔 게스트로 출연해 음주 문화에 대해 열변을 토하던 그를 알아본 택시기사는 “아저씨 같은 사람이 정치를 하면 즐겁고 재미있지 않겠어요”라며 우스갯소리를 했다. 하루에 연거푸 두 번이나 들은 그 말에 그는 잠을 설쳤다. 그리곤 결심했다. “다음날 공탁금을 내러 갔습니다. 등록하자마자 돈을 내야 하는 줄 알았는데 예비 등록 때는 서류만 제출하더군요. 서류도 거의 백 장이 넘는 분량을 준비해야 했습니다. 그걸 혼자서 준비했다면 믿으시겠어요? 정말 정신없이 뛰어다녔습니다.” 공탁금 1천5백만원은 지금 살고 있는 4천만원짜리 전셋집을 담보로 사채를 빌린 것이었다. 30여 년의 웨이터 생활 동안 겨우 재산이 그것밖에 안 되냐는 질문도 많이 받는다. 사실 그는 99년 사업에 손을 댔다가 그간 모은 재산을 고스란히 날렸다. 살 곳 하나만 남기고 다시 맨몸이 됐다. 하지만 그는 절대 주저앉지 않는다. 그를 바라보며 믿고 따라주는 아내와 아들, 두 딸이 있기 때문이다. “총선이 끝난 후 다시 웨이터 생활을 하러 왔는데 손님들이 자주 찾아줍니다. ‘어디 국회의원이 따라주는 술 한번 먹어보자’는 통에 즐겁게 지냅니다. 선거에서는 예상대로 실패를 했지만 저는 용기를 얻었습니다. 학벌 없는 웨이터지만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용기 말입니다. 요즘은 자기 PR 시대라고 합니다. 저만큼 제대로 자신을 알린 사람이 드물지 않겠습니까. 제가 맡은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할 겁니다.” 글 / 강수정 기자 사진 / 장태규
- [4·15총선특집] 주목받는 이색당선자 3인방
- 2004. 05. 01 화제
- 한나라당 김희정 당선자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17대 국회 입성하는 최연소 의원 부산 연제구 한나라당 김희정(34) 후보는 여성 후보끼리 맞대결을 벌인 끝에 승리했다. 또한 17대 국회의원 선거 최연소 여성 당선자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한나라당 전국 최연소 여성 당선자이면서 고 박순천 여사 이후 50여 년 만에 부산 지역구에서 여성 국회의원이 나온 셈이다. 김희정당선자는 공천 과정에서부터 화제를 뿌렸다. 30대 미혼인 그녀가 공개 토론 끝에 50대 현역 의원을 누르고 공천을 받았기 때문이다. 1995년 신한국당 공채 4기로 정치에 입문한 후 지역구에 출마해 금배지를 단 최초의 여성이기도 하다. 정치인의 평균 연령에 한참 미달되는 그녀가 정치 선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 던진 무기는 단연 ‘젊음’이다. 스스로 2030세대를 응집시키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는 정치인, 소외된 여성을 대변할 수 있는 토론회용 여성 정치인으로 평가하면서 주말엔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며 선거 활동을 하는 등 신세대 특유의 열정을 보여줬다. 그녀는 새로운 정치와 투명한 정치를 하고 싶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몸싸움과 막말이 없는 정치 문화를 만들고 싶어한다. 국민 위에 군림하지 않고 국민과 함께 하는 정치인이 되고 싶다는 그녀의 포부가 이루어지길 바란다. 민주노동당 노회찬 당선자 정치 9단을 낙마시킨 유머 9단의 진보적 신인 선거 때만 되면 후보들의 말 한마디가 이슈가 되고 유행이 된다. 17대 총선에서 최고의 ‘입심’을 자랑한 당선자는 단연 민주노동당의 노회찬이다. 노회 찬당선자는 대통령 탄핵 이후 토론 프로그램에 잇따라 등장해 능수능란한 비유를 가미한 언변으로 ‘비유의 제왕’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그의 언변이 이슈가 된 것은 현란한 말솜씨에만 있지 않다. 자신의 당도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 꼬집는 모습이 국민들에게 카타르시스 같은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에겐 ‘야당은 이래야 해…’ ‘우린 민주노동당이니까…’ 라는 식의 전근대적인 생각은 통하지 않는다. 실제로 민주노동당의 이미지는 운동권이라는 인식이 크다. 하지만 노회찬 당선자는 민주노동당은 운동권들의 정당이 아니라, 전체 국민을 포용하는 책임 있는 현실적 정치 세력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전체 진보정치 세력의 실질적 대표체로서 거듭 나는 당이 되겠다는 다짐도 잊지 않는다. 비례대표 마지막 자리를 두고 자민련 김종필 총재를 낙마시키면서 한 편의 드라마를 연출하기도 했다. 이는 정치의 구습을 타파하고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축포와도 같은 것이다. 말뿐만 아니라 현실 정치에서 탁월한 재능을 발휘하기 바란다. 열린우리당 김성곤 당선자 로버트 김 친동생으로 이 문제의 Key Maker! 96년 당시 미국해군정보국(ONI)에서 컴퓨터 정보분석관으로 근무했던 로버트 김(64·한국명 김채곤)은 주미 한국 대사관을 통해 미 해군기밀 40여 건을 대한민국 해군에게 넘겨줬다며 97년 미 연방법원으로부터 징역 9년에, 보호감찰 3년형을 선고받아 현재 앨런우드 연방교도소에 수감중이다. 그의 친동생이 이번 17대 총선에서 당선되어 화제다. 전남 여수갑 선거구에서 열린우리당 김성곤 당선자가 그다. 김성곤 당선자는 15대 국회의원으로 16대엔 지역구를 선배에게 양보했었다. 이후 국립중앙청소년수련원 원장과 로버트김석방위원회 상임이사로 활동을 했다. 김성곤 후보의 당선으로 로버트 김 구명운동이 더욱 활기를 띨 것으로 예상된다. 김성곤 당선자는 당선 소감으로도 로버트김후원회에 적극 협조하겠으며 “오는 7월 형님이 만기 출소하면 이후 대책 문제를 국회에서 정식 거론하겠다”고 밝혀 차후 로버트 김 문제의 핵심 키워드를 가진 인물로 평가된다. 글 / 이혜진(프리랜서) 사진 / 웹하드
- 방송기자에서 예비 정치인으로 변신…총선을 준비하는 노웅래
- 2003. 12. 01 화제
- “기자로서의 비판과 정치인으로서의 정견, 따지고 보면 둘다 공익을 내세우는 것 아닌가요” 터닝포인트는 결단이다. 안정적인 직장을 박차고 나와 무한 경쟁의 정치판을 지향하는 것은 도전이고 모험이다. 안락함보다 새로움을, 앉아 있기보다는 일어서서 희망을 찾으려는 MBC 사회부 기자 출신의 노웅래의 출사표. 온화한 외모지만 결단하면 탱크같다 말은 정말 쉽다. 상사의 꾸지람에 “이놈의 회사 내가 그만둔다. 그래”라고 악다구니를 써보지만 진짜 사표를 던지는 모험을 감행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TV에서 뉴스만 보면 “저것들도 국회의원이라고, 내가 해도 너희들보단 낫겠다”라고 분통을 터뜨리지만 출마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정말 보기 드문 일. 그런데 이 두 가지를 일사천리로 실천에 옮긴 사람이 있다. MBC 보도국 사회부의 노웅래 차장이 그다. 얼마 전 사표를 던졌으니 정확하게 말해서 자연인 노웅래(46)다. 시사매거진 2580, 문화부, 경제부, 선거방송기획단을 두루 거쳤다. 하지만 정치부는 아버지가 국회의원이라 회사나 본인 스스로 피했다고. “20년 가까이 기자 생활을 했습니다. MBC 노조위원장도 맡았었고요. 그리고 현업으로 돌아와서 현장을 떠나 평기자들을 도와주는 지원 업무를 하다 보니 기자로서의 역할이 끝난 것 아니냐는 생각도 들었죠. 이제 새로운 것을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고. 하지만 정치를 하기 위해 어느 정파에 들어가는 것이 MBC에나 동료들에게도 짐을 지우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조심스러웠어요. 공익에 기반을 두고 비판하다가 정파의 이익을 대변해야 한다는 것이 딜레마이기도 하고요. 그러나 따지고 보면 공공의 이익에 기반한다는 것은 마찬가지라 생각하고 열심히 해보려고요.” 그가 말한 출사의 변은거침이 없다. 그만큼 의욕적이란 것이고 그만큼 해야 할 것이 많다는 것이기도 하다. 어쩌면 그의 유전자에 정계 진출의 코드가 입력이 되어 있어서인지도 모른다. 그의 부친이 국회부의장을 지내고 마포구청장을 역임한 5선의 노승환 의원이라는 것도 노웅래의 정계 진출의 모티브라 아니할 수 없다. “부친이 5선 의원이라 선거 노하우가 많지 않냐”는 질문에 “워낙 가진 게 없어서 정말 바닥을 훑는 선거 운동을 하셨기 때문에 제가 나간다고 하니 친척이나 주위 분들이 고개를 가로 저으며 반대를 많이 했다”는 말로 어려움을 얘기했다. 반대하는 것도 당연한 것이 선거 운동은 도와주어야 하는데, 그 이후에 국회의원이랍시고 가족이나 친인척들을 도와주는 게 없었으니 모두들 괜한 고생을 한다고 생각할 만하다.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고 10번 가까이 선거를 치렀으니 지칠 만도 했을 게다. 더군다나 50년간 전통 야당 외길을 한눈 팔지 않고 걸어온 만큼 철저했던 아버지의 결벽증(?) 탓에 어머니가 구슬을 꿰고 봉투를 부치는 것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을 많이 봐왔으니 누구 하나 그 길이 영광의 길만은 아니란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아이들도 “국회의원되면 더 바빠지는 것 아니야?” 하면서 내심 걱정하는 눈치란다. 아버지 역시 자신이 걸어온 길을 가겠다는 아들을 잡고 길게 말할 수 없지만 호의적이지는 않았다고 한다. “성인이니까 알아서 하겠지만 권하고 싶지는 않다”고 잘라 말했단다. 다행히 아내의 반대가 제일 약했다. 첫 직장이던 매일경제신문사의 동기로 만났고 현재 대학강사를 하고 있는 아내 정호정씨(43)는 “연애할 때, 유난히 사회봉사와 공익이라는 말을 자주했던 기억이 나요. 천성적으로 남에 대한 배려와 관심이 많아요. 그런 탓에 언젠가는 기자보다 직접적이고 능동적으로 공익을 위해 일하는 이 길을 걷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심하게 반대하지는 않았죠”라고 얘기한다. 어제까진 행복한 가정, 이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야 그녀가 이번 결정에 대해 그에게 물은 것은 세 가지다. “피할 수 있는 거냐?” “지금처럼 살면 안 되냐?” “술 더 많이 먹어야 하는 거 아니냐?”는 것이었다. 그녀 역시 12대 국회의원 선거때부터 선거 운동원으로 일했던 터라 선거철이 돌아오면 얼마나 정신없을지 모르는 바가 아니다. 아버지가 다져놓은 마포가 지역구가 되는 탓에 혹자는 “그냥 먹는 장사”라고도 한다. 하지만 2년 사이에 마포 지역이 재개발되면서 어드밴티지는 없어졌다. “방송기자 출신이니 모르는 사람은 없겠다”고 부러워하는 시선이 있지만 2~3년 여 방송 현업에서 떨어져 있으면서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그 역시 아버지처럼 밑바닥 여론을 박박 긁는 수밖에 방법이 없다. 그러나 그 일이 쉽지 않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래도 아버지의 지인들이 가만히 있겠느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민주당이 분당되면서 열린우리당으로 행로를 정한 자신과는 당이 유별하다고 얘기한다. 결국 그가 가는 길은 새롭게 개척해야 할 미완의 장소인 셈이다. “중학교 다닐 때였던 것 같아요. 국회의원 다섯 번에 민선 구청장에 동장 선거까지 정말 온 가족과 친척들이 정신이 없었어요. 어린 마음에 아버지를 도울 요량으로 선거 전단을 길거리에서 나누어 주었죠. 그때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야, 너 동정표 얻으려고 그러지!’ 아직도 그 말이 가슴에 못박혀 있어요.” 그런 기억 탓인지, 아이들이 상처받는 일이 없도록 노심초사다. 기자 일을 하면서도 야근이라고 핑계대는 일이 없었다. 아이들이 원하면 무조건 OK. 한번은 밤샘을 하고 돌아온 노웅래를 붙잡고 아이들이 놀이동산에 가자고 안달이었다. 아이들의 정당한 요구를 흔쾌히 받아들인 그는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노는 그곳 벤치에서 부족한 잠을 채우기도 했다. 간혹 가족동반 여행이라도 가면 같이 간 친구 가족으로부터의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워낙 스킨십을 좋아하는 탓에 아이들을 괴로울 정도로 만지는 통에 같이 온 동료 가족들의 부러움을 한눈에 받기 때문. 이렇게 아이들과 가정을 존중하는 이유는 외부 일이 바쁘기도 했지만 자식들에게 정을 표현하지 않는게 부모의 자세라고 믿었던 아버지의 유교적 가르침을 시대 변화에 맞춰 ‘반면교사(다른 사람이나 사물의 부정적인 측면에서 가르침을 얻는다는 뜻)’로 여기기 때문이다. 집도 아내와 공동 명의로 하고, 일에 있어서도 아내의 영역을 존중한다고. 이 때문인지 정호정씨는 외국어대학 동시통역대학원에서 최초의 박사 학위를 거머쥘 인물로 거론되고 있다고. “과거의 정치가 권력과 특권의 산물이었다면 지금은 삶의 질을 변화시키는 공공 서비스, 생활 속의 정치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민주화 투쟁 이후 단계를 준비해야죠. 그것은 실생활과 연계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지금은 경선 시스템이잖아요. 서로 선의의 경쟁하면서 정치를 업그레이드시켜야죠.” 글 / 강석봉 기자 사진 / 전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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