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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총 52 건 검색)

우리가 극지에서 세계 최초로 밝혀낸 것들(2024. 01. 23 05:00)
2024. 01. 23 05:00 사회
남극의 꽃이 시들어가는 이유·‘불타는 얼음’ 채취 등 연구 성과 많아 남극 해빙 /극지연구소 제공 남극과 북극 등 극지는 기후변화의 최전선이자 미래 먹거리이며, 인류 생존의 열쇠를 품은 공간이다. 극지를 선점하기 위한 각국 경쟁도 치열하다. 극지의 기후변화와 자원 및 생태계를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기 위함이다. 한국은 1986년 남극의 평화적 목적 사용 등을 골자로 한 남극조약 가입을 시작으로 1988년 남극 세종과학기지 건설, 2002년 북극 다산과학기지 건립, 2004년 한국해양연구원 부설 극지연구소 설립, 2014년 남극 장보고과학기지 건설 등 극지 영토 확장을 위한 기반 조성과 연구 활동에 매진해왔다. ‘세계 최초’ 타이틀을 얻은 연구 성과도 무수히 많다. 남극의 얼음이 녹으면 한반도가 더워지는 원리, 북극 이상고온 현상 원인, 남극의 꽃이 병들어가는 이유 등을 규명하고 북극에서 차세대 에너지 저장 매체를 발견했다. 빙하가 녹으면 한반도가 더워지는 원리 지구온난화 영향으로 남극 기온이 오르면 빙하(남극 대륙에 눈이 쌓여 만들어진 얼음층)가 녹아내린다. 녹아내린 차가운 물은 남극 바다 표면의 수온을 낮추고 바다 얼음(해빙)의 형성을 도와 일정 기간 지구온난화를 늦추는 역할을 한다. 해빙은 극지 바다를 덮고 있는 거대한 얼음판으로, 태양빛을 반사해 지구의 온도를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얼음이 녹아내리면 전 지구적으로 해수면 평균온도가 상승하고 해수면 높이가 올라간다. 극지연구소가 1992년 이후 인공위성으로 관측한 남극과 그린란드 빙하량 변화를 분석하고 해수면 변화를 예측한 결과를 보면, 2050년 지구의 평균 해수면이 약 3.6㎝ 오를 것으로 예측됐다. 이 수치는 극지방의 빙하 손실만을 고려해 예측한 최소한의 해수면 상승치다. 탄소중립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실제 심각한 해수면 상승이 발생할 수 있다. 실제 남극과 그린란드에는 지구의 해수면을 65m 높일 만큼의 빙하가 쌓여 있는데, 최근 빙하의 손실량이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빙하가 녹아내리면 엘니뇨(적도 부근 해수온 상승)와 라니냐(적도 부근 해수온 저하) 등과 같은 기후재해가 반복해서 일어난다. 지구 전체 해양의 순환과 해양 생태계도 큰 영향을 받게 된다. 극지와 멀리 떨어진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도 이런 영향을 비껴갈 수 없는 셈이다. 국내 연구팀은 ‘빙하가 녹을 때 한반도에 어떤 영향이 미치는지’를 규명해냈다. 2020년 극지연구소 등이 진행한 해당 연구 결과를 보면, 남극 빙하에서 녹은 물이 1만7000㎞ 이상 떨어진 동아시아 온도를 0.2도 이상 끌어올리는 것으로 예측됐다. 연구팀이 규명한 원리는 이렇다. 남극 빙하가 녹아 바다에 유입된 차가운 물이 적도에 있는 열대수렴대를 북쪽으로 밀어 올리면 북태평양 서쪽의 고기압이 강해진다. 이 영향으로 동아시아로 따뜻한 공기가 흘러 들어가면서 온도가 올라간다. 온도 상승효과는 빙하가 녹은 물이 유입되고 22∼71년이 지나야 뚜렷하게 나타난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반면 이 기간 0.2도 오르는 동아시아와 달리 지구의 평균온도는 0.2도 넘게 하락한다. 당시 연구에 참여한 진경 극지연구소 정책협력부장은 “남극의 현재 모습을 반영한 시나리오와 수치모델 기법을 활용한 결과, 빙하가 녹은 물이 지구 해양의 순환 등을 거쳐 최대 71년 후에 한반도에 영향을 줄 것으로 예측됐다”고 말했다. 남극 세종과학기지 /극지연구소 제공 연구는 해양수산부 연구과제인 ‘서남극 스웨이츠 빙하 돌발붕괴의 기작규명 및 해수면 상승 영향 연구’의 일환으로 수행됐다. 서남극 스웨이츠 빙하는 얼음 바닥이 해수면보다 낮아 따뜻한 바닷물의 유입이 쉬운 곳으로, 최근 몇 년간 남극에서 가장 빠르게 빙하가 녹아내리는 곳이다. 진경 부장은 연구 착수 후 분석 결과를 내놓기까지 2년 가까이 걸렸다고 했다. 그는 “극지의 기후변화가 전 지구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연구는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으나,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에 미칠 영향에 대한 연구는 없었다. 이번 연구는 남극이 녹아내리면서 나타날 한반도의 미래 모습을 처음으로 규명해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고, 향후 기후변화 대응에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해당 연구 결과는 그해(2020년) 11월 미국 학술지 지구물리학연구회보에 게재됐다. 극지연구소는 또 외부에서 오는 따뜻한 바닷물을 막아 남극 빙하가 녹는 것을 늦추는 빙붕의 역할도 2020년 3월 세계 최초로 규명했다. 바다에 떠 있는 빙붕은 남극대륙을 감싸고 있는 수백m 두께의 거대한 얼음덩어리다. 빙붕은 대륙 위 빙하가 바다로 흘러내리는 것을 억제하는 기능을 한다. 북극의 경우도 북그린란드 빙붕이 북극 빙하가 바다로 녹아내리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한다. 다만 해양 온난화로 인해 빙붕 바닥의 얼음이 빠르게 녹으면서 북극 빙붕 전체 면적이 1978년 5386.6㎢에서 2013~2022년 3305.8㎢로 38.6%가 줄었다. 극지연구소는 스웨덴 국제공동연구팀과 공동으로 서남극 아문센해 겟츠 빙붕에서 바다에 잠겨 있는 두께 300~400m의 빙붕이 외부의 바닷물을 차단하는 현상을 관측했다. 연구팀은 빙붕이 줄어들면 남극 빙하 하부로 따뜻한 물의 유입이 늘어나고, 이로 인한 해수면 상승도 가속화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극지연구소 관계자는 “국내 최초 쇄빙연구선 아라온호를 활용해 겟츠 빙붕 주변 바다에서 2016년부터 2년에 걸쳐 수심에 따른 유속과 염분 변화 등을 측정한 결과, 빙붕에 가까워질수록 남극대륙으로 흐르는 따뜻한 바닷물의 속도가 감소했고, 해수 중 약 30%만 빙붕 너머 빙하 하부를 녹이는 데 영향을 미치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남극개미자리 /극지연구소 제공 남극의 꽃이 병들어간 이유 극지방 기후가 따뜻해지면 생태계 변화가 불가피하다. 남극에서 꽃을 피우는 식물도 마찬가지다. 2020년 5월 남극 세종과학기지 인근에서 남극 현화식물인 ‘남극개미자리’가 잎이 노랗게 변하면서 점차 하얗게 말라 죽는 원인을 세계 최초로 확인한 것도 국내 연구진이었다. 현화식물은 생식기관인 꽃이 있고 열매를 맺으며 씨로 번식하는 고등식물을 말한다. 겉씨식물과 속씨식물로 나뉜다. 남극에서는 남극좀새풀과 남극개미자리 2종만 자란다. 남극개미자리의 경우 위도 60도 이상의 남극에서 이끼류가 병원균에 감염된 사례는 보고된 바 있으나, 자연 상태에서 병든 사례가 학계에 보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극지연구소에 따르면 남극이 20도를 넘는 등 이상고온을 보이자 식물에 위해를 가하지 않는 곰팡이(내생균)가 병을 일으키는 곰팡이(병원균)로 활성화했다. 2020년 2월 9일 당시 남극 대륙의 북쪽에 있는 시모어섬의 관측 기온은 20.75도로, 사상 처음으로 20도를 넘어섰다. 세종기지가 위치한 서남극도 지난 50년간(1959~2009) 기온이 연평균 대비 3도 이상 상승하면서 생태계에 큰 변화를 맞고 있다. 실제 세종과학기지 기상관측 자료에 따르면 2014∼2021년 평균기온은 영하 2.4도에서 영하 0.3도로 높아졌다. 극지연구소는 빙하가 녹고 드러난 땅을 식물들이 빠르게 덮고 있으며, 눈에 보이지 않는 곰팡이도 함께 세력을 확장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해당 곰팡이 유전체 분석 결과는 지난해 4월 세계적인 학술지인 ‘플랜트 디지즈’에 실렸다. 극지연구소는 또 지난해 11월 남극에서 극초미세먼지가 구름으로 형성되는 과정을 실시간 관측하기도 했다. 극초미세먼지는 대기 중에 존재하는 직경 1μm(마이크로미터·100만분의 1m) 미만 크기의 먼지다. 극초미세먼지의 기원은 주로 바다와 바다얼음에서 배출된 전구물질이다. 전구물질은 디메틸황이나 요오드처럼 특정 조건에 반응하는 가스 형태의 물질을 말한다. 이 극초미세먼지가 서로 뭉쳐 수분을 흡수하면 구름 응결핵으로 성장할 수 있다. 그동안 학계에서는 극초미세먼지가 구름 생성 과정에 기여하는 것으로 추정해왔으나, 극지방에서도 극초미세먼지가 구름 생성 과정에 기여한다는 사실은 확인된 적이 없었다. 펭귄의 배설물이 극초미세먼지 생성에 기여한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바람이 세종기지 인근의 펭귄마을을 지나갈 때 펭귄의 배설물 등에서 배출되는 전구물질이 극초미세먼지의 생성을 많이 증가시킨다고 연구소는 설명했다. 쇄빙연구선 아라온호 /극지연구소 제공 북극 동시베리아해에서 채취한 ‘불타는 얼음’ 쇄빙연구선 아라온호가 북극 동시베리아해에서 가스하이드레이트를 채취한 것도 최초 사례다. 가스하이드레이트는 물 분자 내에 메탄 등 가스 분자가 들어가 만들어진 얼음 형태의 물질이다. 불을 붙이면 메탄이 타면서 강한 불꽃을 만들어 ‘불타는 얼음’으로 불린다. 액화 및 압축 천연가스 기술보다 상온·저압 조건에서 천연가스를 저장할 수 있어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차세대 에너지 저장 매체로 주목받는다. 다만 가스하이드레이트가 녹으면 강력한 온실가스인 메탄이 대량 발생하게 돼 지구온난화를 가속화할 수 있다. 극지연구소에 따르면 아라온호는 2016년 8월 북극 동시베리아해 대륙붕 탐사 도중 수심 500m에 있는 해저언덕 구조에서 가스하이드레이트를 채취했다. 전 세계적으로 가스하이드레이트가 매장된 지역은 많지만, 북극 동시베리아해에서 채취한 사례는 처음이었다. 북극에는 전 세계 가스하이드레이트 총매장량의 약 20%가 분포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아라온호를 타고 연구팀을 총괄한 진영근 극지연구소 책임연구원은 “북극 알래스카에서 아라온호를 타고 출발해 약 한 달 동안 북극 동시베리아해 일대를 탐사했다. 국내에선 처음으로 이 일대 탐사에 나선 것이었다. 가스하이드레이트가 매장돼 있을 만한 곳을 찾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고 했다. 가스하이드레이트는 상용화 여부가 중요한 과제다. 진영근 책임연구원은 “가스하이드레이트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북극 영구 동토층에 자연 상태로 방치된 가스하이드레이트는 대기권에 메탄을 대량 발생해 지구온난화를 가속화시킨다. 반대로 가스하이드레이트를 채취해 상용화할 경우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 석유, 석탄 등 화석연료를 대체할 청정에너지원이기 때문이다. 다만 상용화 기술 개발이 꾸준하게 이뤄지고 있지만 실제 상업화로 이어지기엔 아직 미흡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북극 해저 자원 환경 조사 및 해저 메탄 방출 현상 연구’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해당 프로젝트를 통해 탐사 기간 해저 광물자원인 망간단괴를 채취하고 바닷물 속 메탄의 농도가 전 세계 해양의 평균값보다 약 40배나 높은 해역을 발견하기도 했다. 남극 장보고과학기지 /극지연구소 제공 북극의 이상고온 현상도 국내 연구진이 처음 밝혀냈다. 북극의 평년기온은 영하 20~25인데, 2016년엔 20도 이상 치솟으며 0도에서 최대 영상 5도를 기록한 바 있다. 북극의 이러한 이상고온 현상이 중위도의 인구 밀집 지역인 동아시아와 북미·유럽 지역의 한파, 폭설, 폭염 등의 기후재해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극지연구소는 2017년 1월 북극의 이상고온 현상이 열과 수증기로 꽉 찬 ‘태풍급 저기압’의 북극 유입 때문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극지연구소 관계자는 “2015년 말 북대서양에서 발생한 중심기압 930hPa의 태풍급 저기압이 북극으로 유입된 것인데, 이 영향으로 많은 양의 수증기와 열이 공급되면서 극단적인 고온 현상이 일어났다”고 설명했다. 연구소에 따르면 당시 2015년 12월 28일 북대서양에서 생성된 저기압이 31일 북극으로 유입된 후 소멸했고, 다음 날인 1월 1일부터 이상고온 현상이 시작됐다. 북극의 기온 상승이 북극해 얼음 감소 등 북극 내부 요인 때문이라는 분석 결과는 많지만, 외부 요인이 이상고온에 더 큰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밝혀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연구소는 설명했다.
[시네프리뷰]드림-한국 최초 ‘홈리스 월드컵’ 진출기(2023. 04. 21 13:55)
2023. 04. 21 13:55 연예
2010년 브라질 홈리스 월드컵 출전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됐다. 가장 큰 기대 요소는 감독 이병헌의 이름이다. ‘기-승-전-신파’ 흥행공식에 얽매이지 않는 ‘뒤끝 없는 코미디’, 그의 특기가 고스란히 살아 있다. 제목 드림(Dream) 제작연도 2023 제작국 한국 상영시간 125분 장르 코미디, 드라마 감독 이병헌 출연 박서준, 아이유, 김종수, 고창석, 정승길, 이현우, 양현민, 홍완표, 허준석 개봉 2023년 4월 26일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앞서도 언급한 적 있지만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가 봇물이다. 이중에도 한국영화는 스포츠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 유독 도드라진다. 실화는 아니지만 단거리 육상을 소재로 한 최승연 감독의 <스프린터>가 5월 개봉예정 라인업에 추가됨으로써 이 같은 경향은 더욱 뚜렷한 족적을 남기게 됐다. 이런 특정 장르 영화의 편향성은 공교롭게도 최근 팽배하게 제기되고 있는 한국영화 위기론과 맞물려 애매한 위치에서 조망되고 있다. 개별 작품의 평가도 주변의 불안하고 뒤숭숭한 분위기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리바운드>, <킬링 로맨스>에 이은 한국영화관산업협회의 개봉지원 마지막 작품인 <드림>은 2010년 브라질 홈리스 월드컵에 처음 출전한 대한민국 팀의 실화를 모티브로 제작됐다. 잘나가는 동료를 향한 질투와 경쟁의식을 주체할 수 없는 축구선수 윤홍대(박서준 분). 결국 중요한 경기의 결정적인 순간에 치기어린 실책을 저질러 팀을 우스갯거리로 만들고 만다. 금전이 아쉬운 홍대는 축구계에서는 들 수 없게 된 반반한 얼굴을 밑천으로 연예계 진출을 계획한다. 하필이면 처음 섭외가 들어온 방송이 홈리스 풋볼(엄밀히는 풋살) 월드컵을 다루는 예능이란다. 등 떠밀려 마지못해 방송 출연을 결심하지만, 설상가상으로 함께할 사람들의 면면이 가관이다. 4년 만에 돌아온 젊은 1000만 감독의 야심작 작품을 기대하게 만드는 가장 큰 요소는 뭐니 뭐니 해도 감독 이병헌의 이름이다. 연출가 이전에 각본가로, 지금은 제작자로서도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과속스캔들>, <써니>, <레슬러> 등이 각색으로 이름을 올린 작품이다. 연출은 2009년 단편 <냄새는 난다>를 발표하고, 2012년 <힘내세요, 병헌씨>로 장편 데뷔했다. 각본가로서의 전력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그의 영화들은 코믹한 상황설정과 걸출한 입담이 난무한다. 성격도 이상도 다른 세 친구의 좌충우돌을 그린 <스물>(2015)과 체코영화 <희망에 빠진 남자들>을 리메이크한 성인코미디 <바람 바람 바람>(2018) 등 후속작 역시 같은 특징을 공유하고 있는 작품들이다. 하지만 2019년 1월 개봉한 <극한직업>의 흥행은 이전 그의 경력을 깡그리 지워버려도 무색할 만큼 강력한 작품이 됐다.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코미디 영화가 1626만 관객동원을 기록한 것은 말 그대로 센세이션이라 할 만한 사건이었다. ‘기-승-전-신파’라는 한국영화 특유의 흥행공식에 얽매이지 않는 ‘뒤끝 없는 코미디’의 대가로서 관객들의 큰 지지를 받고 있기도 하다. 이번 작품 역시 이런 그의 특기가 고스란히 살아 있다.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들이 엔딩 자막이 올라가기 전 실존인물들의 사진과 후일담을 자막으로 서술하는 의례적인 부분도 이 작품에는 없다. 철저히 영화적 허구와 창의에 충실했다는 선언처럼 읽힌다. 코미디와 멜로를 넘나드는 배우들의 향연 소위 대사발로 재미를 이끌어가는 작품인 만큼 배우들의 연기가 더욱 부각될 수밖에 없다. 전면에 나서 작품을 이끄는 박서준은 위태로운 개인의 위기에 더해 심란한 집안사까지 짊어진 피곤한 청춘을 적절히 소화해낸다. 코미디와 정극 연기를 오가야 하는 만큼 만만치 않은 배역임에도 적절한 균형감을 유지하며 중심을 잡아나간다. 그의 차기 출연작으로 11월 개봉 대기 중인 <더 마블스>가 한국배우로는 마동석에 이어 두 번째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합류한 할리우드 대작이기에 박서준을 향한 화제는 계속될 듯하다. 영화와 드라마를 넘나들며 배우로서의 입지를 넓혀가고 있는 아이유는 똘기 충만한 사차원 PD 이소민을 연기한다. 포커페이스로 사람들 앞에서 철저히 속내를 숨기는 프로인 동시에 절박한 순간에는 처절한 생존본능으로 과격한 본색을 드러내기도 하는 다층적 인물이다. 다소 과장된 느낌도 있지만, 장르 안으로 충분히 수용될 수 있는 정도다. 연기도 하는 가수라는 편견을 깨고 전문 연기자로서의 입지를 확실히 자리매김한 느낌이다. 이밖에 개성 넘치는 독특한 인물들을 연기한 김종수, 고창석, 정승길, 이현우 등 다양한 작품들에서 감초 연기로 친숙한 배우들이 크게 눈에 띄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부족하지도 않게 재미에 힘을 보탠다. <극한직업>의 형제영화들 imdb.com 2019년 초 <극한직업>의 개봉 당시 중국에서는 누리꾼들을 중심으로 난데없는 표절 논란이 일었다. 앞서 2018년 6월 개봉한 중국영화 <용하형경>을 <극한직업>이 베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곧바로 진위가 밝혀졌다. 두 영화는 문충일 작가가 쓴 하나의 각본 판권이 두 나라에 별도 판매돼 개별적으로 개발 제작된 작품이었다. 이 시나리오는 2015년 한국콘텐츠진흥원과 중국국가신문출판광전총이 공동주최한 ‘한·중 스토리 공동개발 프로젝트’에 응모했던 306편 가운데 뽑힌 20편 중 하나였다. 같은 원작을 모태로 진행됐지만, 중국 작품은 현지화를 통해 다수의 차별점을 가지고 있다. 형사들의 직업윤리마저 뒤흔드는 대박음식 ‘통닭’이 ‘샤오룽샤(민물가재)’로 대체됐다. 또 등장인물이 수난을 겪는 사건의 형태 등 전체적인 규모가 훨씬 단출하다. 무엇보다 <용하형경>이 그저 그런 성적으로 잊힌 반면 <극한직업>은 한국 역대영화흥행기록 2위를 기록하는 대성공을 기록했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다. 이 영화는 2020년 8월 <비밀경찰: 랍스터 캅>이라는 제목으로 극장 개봉 없이 IPTV & 디지털케이블TV VOD 등을 통해 국내에도 소개됐다. 지난해 4월 베트남에서 개봉한 <초간단직업>은 <극한직업>의 공식 리메이크 작품이다. CJ E&M이 베트남 진출 후 현지 제작사인 HKFilm과 합작해 2017년 설립한 CJ HK 엔터테인먼트가 제작에 참여했다. CGV 극장체인을 통해 주력 배급된 이 작품은 예매 6시간 만에 1만5000장에 달하는 영화 티켓이 팔리며, 베트남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는 등 큰 인기를 누렸다. 여기서도 ‘통닭’은 베트남 현지인들이 즐겨먹는 ‘갈비 덮밥’으로 현지화됐다.
시네프리뷰
[우정이야기]최초 달 궤도선 ‘다누리’를 기념하다(2023. 04. 07 11:44)
2023. 04. 07 11:44 경제
2022년 8월 5일 오전 8시 8분 미국 플로리다주 케이프커내버럴 우주군 기지에서 한국의 첫 달 궤도선 ‘다누리’가 발사됐다. 다누리는 4개월간 총 732만㎞의 항행 끝에 그해 12월 달 임무 궤도에 도달했다. 이로써 한국은 세계 7번째 달 탐사 국가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우리보다 앞서 달 탐사에 성공한 국가는 러시아, 미국, 중국, 일본, 유럽연합(EU), 인도밖에 없다. 우리나라 최초의 달 궤도선 ‘다누리’ 기념우표 / 우정사업본부 제공 주목할 부분은 한국의 우주과학기술이 다누리를 시작으로 지구 주변을 벗어나 먼 우주로까지 확대됐다는 점이다. 다누리는 1992년 한국의 첫 인공위성인 우리별 1호가 발사된 지 정확히 30년 만에 발사에 성공한 궤도선이다. 다누리 이전까지 한국이 만든 위성들은 모두 지구 중력장 내에서 운영됐다. 다누리는 다른 천체의 중력장으로 들어가 궤도를 돈다는 점에서 우주항공사에서 한 단계 진보한 성과를 낳았다. 다누리는 현재 2시간마다 한 바퀴씩 달을 돌며 달 표면 등을 관측 중이다. 최근 한국 탐사선으로는 최초로 달 표면 촬영에 성공했다. 이는 우리나라가 달에 가서 촬영한 첫 월면(月面) 사진으로, 달 표면에 운석이 떨어지면서 움푹 파인 충돌구와 평평하고 고도가 낮은 지형인 ‘바다’도 선명하게 찍혔다. 다누리는 이에 앞서 ‘레이타 계곡’, ‘비의 바다’를 관측하는가 하면 ‘폭풍의 바다’를 찍는 데도 성공한 바 있다. 다누리에는 모두 6기의 관측 장비가 실려 있다. 이 가운데 5기를 국내 연구진이 만들었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이 개발한 ‘감마선 분광기’는 달에 묻힌 광물자원을 탐사하는 역할을 한다. 달 광물자원 채굴 가능성이 대두되는 상황에서 특히 주목받는 장비다. 미래에 달에서 자원을 캘 수 있다면 현지 기지를 짓는 데 사용할 수 있고, 향후 지구로 수송해 활용할 수도 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이 개발한 ‘우주 인터넷 시스템’은 달에서 인터넷 통신을 시도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미 먼 우주에서 달 궤도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그룹 BTS의 노래 ‘다이너마이트’ 뮤직비디오를 전송하는 데 성공한 상태다. 다누리는 올해 말까지 임무를 수행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우정사업본부가 우리나라 최초의 달 궤도선 ‘다누리’의 성공적 발사를 축하하기 위한 기념우표 62만4000장을 4월 7일부터 발행했다. 기념우표는 달 임무 궤도에 성공적으로 진입한 다누리의 모습과 함께 다누리가 직접 촬영한 달의 표면과 지구의 사진을 담았다. 다누리는 달을 공전하며 탑재체를 활용해 달 과학연구, 우주 인터넷 기술 검증 등의 임무를 수행할 예정이다. 특히 고해상도 카메라가 촬영한 달 표면 영상은 오는 2032년 시도될 달 착륙선 후보지 선정에 활용할 계획이다. 기념우표는 가까운 우체국을 방문하거나, 인터넷우체국(www.epost.go.kr)에서 구매할 수 있다.
우정이야기
[여성 노동운동 ‘이 장면’](8)서울대서 일어난 국내 최초 성희롱 소송(2021. 05. 21 13:34)
2021. 05. 21 13:34 사회
서울대 화학과 조교 A씨가 지도교수 신정휴의 성희롱 실태를 고발한다는 대자보를 붙였다. 신정휴는 A씨를 비롯한 여자 조교들에게 상습적으로 성희롱을 시도하다가 거절할 경우 고용상 피해를 줬다. A씨는 발령을 받기 2~3개월 전부터 출근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연수 등을 명분으로 원치 않는 신체접촉(뒤에서 껴안고 손과 어깨를 만지는 등)과 집요한 데이트(등산·여행 동반)를 강요받았지만, 신정휴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자 신정휴는 A씨가 정상적인 업무를 하기 어렵게 방해해 업무 소홀이라는 평가를 받게 하고, 2학기 조교 재임용에서도 탈락시켰다. A씨가 버티자 1993년 7월 1일부터 출근하지 말라고 통보했으며, 임기만료일인 8월 31일이 되기도 전에 부당 해임했다. A씨는 학교와 교육부 등에 이 사실을 알리고 탄원과 진정서를 제출했지만, 아무 대답을 듣지 못하자 대자보를 붙이고, 신정휴가 교수의 품위를 저버렸으므로 교단에서 추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대 신 교수 성희롱 사건 공동대책위원회가 1993년 10월에 연 기자회견 모습 / 경향신문 자료사진 1심 유죄, 2심 무죄, 상고심 일부 유죄 물론 A씨의 주장이 바로 지지를 받지는 못했다. 같은 과 대학원생들은 학과 규칙상 조교 임기가 1년이며, A씨의 평소 근무태도가 불성실했다면서 가해자 신정휴를 옹호하고 피해자를 비난하는 태도를 보였다. 1993년 9월 15일, 신정휴는 A씨를 상대로 명예훼손과 협박 혐의를 걸어 고소했다. 다행히 총학생회와 대학원 자치협의회, 여성문제 동아리 협의회 등이 진상조사단을 꾸려 A씨의 문제 제기가 사실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10월 18일, 국내 최초로 ‘성희롱’ 사건으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접수한다. A씨는 신정휴와 서울대를 상대로 법정 싸움에 돌입한 것이다. 소송접수 다음 날인 10월 19일 ‘서울대 조교 성희롱 사건 공동대책위원회(성폭력특별법 제정 추진 특별위원회, 서울대 총학생회, 대학원 자치회협의회 등이 참여. 이하 ‘공대위’)’가 활동을 시작한다. 공대위는 교육부 등에 진정서 보내기, 성희롱 피해 상담 창구 개설, 공개 토론회, 홍보 활동 등 다양한 연대 지원 활동을 벌였다. ‘직장갑질119 제보 사례 전수 분석을 통해 본 직장인 성희롱, 괴롭힘 실태 보고서’(2021) 1994년 4월 18일 1심 재판부는 신정휴에게 3000만원의 손해배상 지급 명령을 내렸다. 이 판결 이후 많은 여성은 “이것도 성희롱이냐, 이러면 3000만원이냐”는 조롱에 시달렸다. 1995년 7월 25일 항소심에서는 1심 판결을 파기하고 A씨가 패소했다. 이 재판에서 성희롱을 판단하는 기준을 어떻게 판단하느냐가 쟁점이 됐다. 공대위는 미국 법정에서 기준으로 삼고 있는 합리적 여성(reasonable woman)의 관점으로 위법성을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재판부의 결정을 비판했다. 1998년 2월 10일 상고심에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신정휴의 교수 지위를 언급하며 성희롱을 일상생활에서 허용되는 단순한 농담 등이 아니라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끼게 해 인격권을 침해하는 행동이라고 설명한다. 1999년 6월 25일 파기환송심에서는 A씨의 정신적 손해에 대한 500만원의 손해배상 지급을 명령했지만, 서울대학교 총장과 국가에 대한 피해보상 청구는 받아들이지 않은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했다. 이에 대해 직장 내 성희롱 가해자의 책임은 밝혔지만, 사용주의 책임을 묻지 않은 아쉬운 판결이라는 평가가 많다. 서울대 조교, 성희롱 불법성을 알리다 성희롱의 개념조차 없었던 시절, 신정휴 성희롱 사건은 직장 내 성희롱이 사회에 만연한 사회문제이고, 개인과 개인 사이의 사소한 다툼이 아니라는 것을 알리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그 계기를 만드는 데 가장 큰 역할은 A씨의 용기다. 성희롱에 대한 경각심을 갖도록 하기 위해, 또 같은 처지를 겪을 직장여성들이 용기를 얻기를 바라며 그는 힘든 시간을 버텨냈다. 서울대 신 교수 성희롱사건 공동대책위원회가 1995년 4월 명동성당 앞에서 성희롱 추방 거리 캠페인을 열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공대위가 직장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괴롭힘 중 하나인 성적 괴롭힘(sexual harassment)을 성희롱으로 번역한 데에는 1990년대 초 한국사회의 인식에 대한 고려가 있었다. 가벼운 농담이나 지분거림이 너무나도 일상적으로 일어나지만, 문제 삼기 어려웠던 현실에서 성희롱이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렸다는 것은 사건 당시를 기준으로 보면 분명한 성과라고 평가할 만하다. “지금 성희롱은 육체적·시각적·언어적으로 다 들어가는데 행정법이지 형법은 아닌 거잖아요. 성추행, 강간은 성폭력특별법, 형법인 데 반해 성희롱은 가볍게 인식되는 거죠. 성추행, 강간과 함께 성희롱을 광의의 성폭력 테두리에 포함했더라면… 국가가 책임지는 형사처벌과 국가가 책임지기도 하지만 기관의 책임을 묻는 행정법, 어떻게 보면 혼란을 가져온 것이에요. … 당시엔 성희롱이 불법행위라는 점을 알린 점만으로도 중요했던 시기였어요.”(1993년 ‘공대위’ 총무간사 <여성 가족 정책사 현장 재조명: 직장 내 성희롱 근절 운동과 중점이슈 변화>) 국제노동기구(ILO) 제190호 협약(일의 세계에서의 폭력과 괴롭힘의 제거에 관한 협약)은 직장 내 괴롭힘에 성차별적 괴롭힘을 포함하고, 성적 괴롭힘을 성차별적 괴롭힘의 하나로 보고 있다. 반면 한국은 성을 이유로 한 ‘차별’로서의 성희롱을 금지하는 데 주안점을 둔다. 성차별 해소를 위한 법률인 ‘남녀고용평등법’, ‘양성평등기본법’에 성희롱을 규정하고 있다는 것이 이러한 특성을 말해준다. 올 초 직장갑질119가 발표한 ‘직장인 성희롱, 괴롭힘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직장 내 성희롱은 수직적 권력관계에 의한 것이면서 괴롭힘과 성차별이라는 성격을 동시에 갖는다고 한다. 가해 행위자가 권력적 우위에 있는 경우가 89%에 달하는데 행위자와 피해자 간에는 고용 형태, 연령, 근무기간 등에 따라 위계가 존재한다. 비정규직이고 여성 혹은 성소수자라면 더욱 피해를 당하기 쉬웠다. 성별은 그 자체가 위계로 작동해 대부분의 피해자는 여성이지만, 남성이 피해자가 되는 경우(12.9%)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조사가 잘 이루어지지 않을 뿐더러 신고 후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가 90%를 넘는다는 것이 놀랍다.
여성 노동운동 ‘이 장면‘
[여성 노동운동 ‘이 장면‘](1)최초의 ‘여성 집행부’ 노조에 대한 탄압(2021. 01. 29 17:15)
2021. 01. 29 17:15 사회
1970년 봉제공장 재단사였던 전태일 열사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산화한 후 노동운동이 전면 확산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엄혹했던 70년대 노동운동의 명맥을 이은 이들은 다름 아닌 ‘여공’들이었다. 이후로도 여성들의 노동운동은 면면히 이어져 왔지만 늘 주변부 취급을 받아왔다. 반노동 정서는 물론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와도 싸워야 했던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언제쯤 현대사 속에 제대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 지난 반세기 동안 펼쳐진 한국 여성 노동운동의 ‘빛나는 장면’들을 연재한다. 1980년 5월 13일 동일방직 해고 노동자와 노조원들이 노총회관 대강당에서 ‘노동기본권 확보 전국궐기대회’를 열고 복직을 요구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1978년 3월 10일 오전 10시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노동절 행사가 열렸다. 수천명이 체육관을 가득 메웠다. 최규하 국무총리도 참석했다. 라디오와 TV로 전국에 생중계됐다. 30분이 지나고 정동호 한국노총 위원장이 기념사를 읽어갈 즈음 웬 구호가 울려퍼졌다. “동일방직 문제 해결하라”, “똥을 먹고 살 수 없다” 생중계가 잠시 중단됐다. 구호를 외친 여성들에게 경찰 등이 달려들어 발길질을 해댔다. 이 여성들은 누굴까. 이들이 해결하라고 외친 동일방직 문제는 무엇일까. 최후의 저항수단 ‘반나체 시위’ 동일방직 주식회사는 70년대의 대표 섬유회사다. 섬유·봉제공장은 당시 여성들의 주된 일자리였다. 동일방직도 노동자 대다수가 여성이었지만 노조 위원장은 남성이 맡았다. ‘대이변’은 1972년 5월 10일 노조 정기 대의원 대회에서 벌어졌다. 사측의 남자 후보들을 큰 표차로 물리치고 주길자씨가 지부장으로 선출됐다. 여성이 노조지부장에 뽑힌 건 최초였다. 3년 뒤에도 이영숙씨가 지부장으로 뽑혔다. 연이어 탄생한 여성 집행부는 사측과 남자 조합원들에게 눈엣가시였다. 사측은 이영숙 집행부를 무력화하려 했다. 1976년 7월 23일 인천 동부경찰서가 이영숙씨를 연행했다. 사측의 남자 조합원들은 여성들을 기숙사에 가두고 대의원 대회를 열었다. 분노한 여성 노동자들은 기숙사를 빠져나와 농성에 나섰다. 농성 사흘째 여성 노동자들은 파업했다. 수백명의 무장경찰이 농성장에 들이닥쳤다. 그때 누군가 다급히 소리쳤다. “벗은 여자 몸엔 그 누구도 손을 못 댄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옷을 벗었다. 400여명이 상하의 속옷만 걸친 채 서로를 껴안았다. 벗어던진 작업복을 손에 쥐고 흔들며 노총가를 불렀다. 뜻밖의 행동에 경찰도 주춤했다. “주동자만 내놓으면 무사히 다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회유했다. “주동자는 따로 없다. 우리 모두가 주동자다.” 여성들은 굴하지 않았다. “얘가 대의원이다. 저 X도 대의원이니 잡아가라!” 회사 간부가 스크럼을 향해 손가락질했다. 경찰은 이들을 방망이로 내리치고 머리채를 잡아다 순찰차에 태웠다. 약 30분 만에 72명이 연행됐다. 40여명이 순간 졸도했다. 2명은 20여일 동안 병상에 누웠다. 강제로 해산된 자리엔 찢어진 작업복과 주인 모를 운동화, 작업모, 머리핀 등이 널브러졌다. 이날은 ‘반나체 시위’로 기록됐다. 여공에 똥물을 퍼부은 남성 노동자들 사측의 지독한 탄압에도 여공들은 1977년 또다시 여성 지부장을 선출하는 데 성공했다. 이총각 지부장이다. 노조파괴는 이듬해 대의원 선거를 기점으로 절정에 이르렀다. 1978년 2월 21일 오전 6시 노조 사무실. 여성 노조 간부들은 대의원 선거를 치르기 위해 곧 퇴근할 야간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고함이 들렸다. “이 빨갱이 X들아!” 남자 조합원 5~6명이 방화수통을 들고 노조 사무실로 뛰어들었다. 방화수통에는 화장실에서 퍼온 똥이 가득 담겼다. 방화수통을 여성들의 머리에 들이부었다. 고무장갑과 걸레에 똥을 묻혀 닥치는 대로 문댔다. 입에도 쑤셔넣었다. 도망가면 쫓아가 탈의실과 기숙사에 똥을 뿌렸다. 노조가 경비를 요청했지만 경찰은 방관했다. 한 여성 노동자가 울먹이며 도와달라고 하자 경찰은 말했다. “야! 이 XX아! 가만있어, 이따가 말릴 거야.” ‘똥물 투척 사건’으로 여성 70명이 다쳤다. 1978년 2월 21일 똥물을 맞은 동일방직 여성 노동자. 이 사진은 이총각 지부장이 동일방직 인근에 있는 사진관 사진사에 요청해 증거물로 촬영한 것이다. / 동일방직복직투쟁위원회 제공 이틀 뒤 섬유노조는 동일방직지부를 ‘사고지부’로 결정했다. 그해 3월 6일 이총각 등 노조 간부 4명을 ‘반노동조합적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제명했다. 동일방직은 그해 4월 1일 노동자 126명(2명은 자진퇴사)을 해고했다. 김영태 섬유노조 위원장은 이들의 명단을 부서, 생년월일, 본적까지 기재해 전국 노조와 사업장에 뿌렸다. ‘블랙리스트’였다. 블랙리스트 때문에 해고노동자들은 가는 곳마다 거부당했다. 이직해도 조사를 받은 뒤 잘렸다. 동일방직 여공들이 맞서야 했던 것은 독재정권과 사측만이 아니었다. 동일방직 사례엔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의 야만성을 드러내는 장면들이 잇달아 등장한다. 상당수 남성 노동자들이 사측에 서서 폭력을 휘둘렀다. 남성들이 ‘여성 집행부’를 받아들이지 못한 것은 ‘자존심’ 때문이었다. 한 남성 노동자는 이렇게 술회했다. “나는 어떻게든 노조(여성 집행부 중심의 민주노조)를 도와줄 목적으로 몇몇 안면이 있는 남자 대의원을 만나 여성 집행부를 지지해달라고 요청하였으나 여자 일색인 집행부는 자존심이 있으니 절대 지원할 수 없고 누구든 남자라야 한다는 묘한 고집이 머리 속에 박혀 있음을 확인하는 도리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나를 은근히 비웃는 눈치였습니다.”(<동일방직 노동운동 조합사> 동일방직복직투쟁위원회 지음·돌베개) 동일방직 여공들의 민주노조 운동을 뒷받침해준 이들은 동료 남성들이나 섬유노조가 아니라, 인천 도시산업선교회였다. 이곳의 조화순 목사는 동일방직에 6개월간 ‘위장취업’해 여공들의 가혹한 노동 현실을 목도한 후 함께 싸웠다. 23년의 세월이 흐른 2001년, 똥물 투척 사건 등 동일방직 여공들에게 가해진 야만적 폭력 뒤엔 중앙정보부가 있었음이 중정 직원의 양심 고백으로 드러났다. 동일방직 해고자들은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을 받게 된다. 그러나 동일방직 여성들의 싸움은 여전히 ‘역사 뒷이야기’ 정도의 취급을 받고 있다. 지난해 12월 14일 동일방직 해고자 중 한명인 정명자씨는 한진중공업 김진숙씨의 복직을 위해 연 기자회견에서 이런 말을 했다. “민주화운동을 했던 대학생들은 명예회복되어 교수도 되고 국회의원도 되어 역량을 펼치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그런데 ‘해고는 부당하다’는 판정을 받고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인정을 받은 김진숙 동지와 저 같은 노동자들은 현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노동자에게 진정한 명예회복은 무엇일까요. 해고당한 사업장으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일을 하다 우리 손으로 사직서를 쓰고 당당하게 정문을 내 발로 걸어나오는 것입니다.” 민주노조를 세우려 싸웠던 동일방직 여성 노동자들이 해고된 뒤 43년의 세월이 흘렀다. 동일방직 여성 노동자들은 ‘복직’되지 못한 채로 이 세월을 견뎠다. 멸시 속에서 민주노조를 위해 꿋꿋하게 싸웠던 동일방직 여공들의 이야기는 더 오래, 더 제대로 기억돼야 하지 않을까.
여성 노동운동 ‘이 장면‘
[표지 이야기]싱가포르, 백신 여권 최초 도입(2021. 01. 08 15:46)
2021. 01. 08 15:46 국제
ㆍ대규모 백신 접종 예고하지만 외국인 노동자 많아 방역 어려움 2020년 12월 21일 미국 화이자-바이오엔테크 백신이 아시아 최초로 싱가포르에 도착했다. 벨기에에서 생산된 백신은 DHL 물류서비스를 이용해 창이공항으로 공수되었고, 곧바로 냉동창고로 옮겨졌다. 예행연습까지 했던 테스크포스팀은 창고이동까지 30여분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로부터 9일이 지난 12월 30일 국립전염병 센터(NCID)의 46세 간호사가 처음으로 백신을 맞았다. 싱가포르 지하철 내부 / 본인 제공 성공적인 방역을 해낸 듯 보이는 싱가포르이지만 그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지난해 초 방역 자신감을 보였던 싱가포르는 3월 개학을 단행했다가 감염확산을 마주했다. 정부는 국가적인 차원의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추적 앱을 통한 동선 접촉자를 찾는 데 주력하는 등 노력을 기울였지만, 확산세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급기야 4월 초 하루 1111명의 최다 확진자가 나왔다. 정부 당국은 강력한 봉쇄조치인 서킷 브레이커를 발표했다. 비필수 부문 사업장과 교육시설을 일시적으로 전면 폐쇄하고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했으며, 공공장소 및 개인 주택에서 모든 개인 모임을 불허했다. 싱가포르의 방역에서 가장 큰 어려움은 30만명에 달하는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의 집단감염 위험성이다. 이들 대부분은 건설현장과 제조업 공장에서 근무하고, 좁은 숙소에서 집단생활을 하고 있어 감염병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정부 당국은 이들을 숙소에 격리한 상태에서 대규모 검사를 진행했다. 싱가포르 국민과 달리 이주노동자들은 제공받는 간단한 음식물만 섭취할 수 있었고, 외출이 금지된 상태에서 거리 두기가 불가능한 집단생활을 지속해야 했다. 심지어 지난해 4월 중순부터 당국은 지역사회 감염자수와 이주노동자 숙소에서 나온 확진자수를 분리해 발표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1월 4일 기준 자국의 신규 확진자수는 0명인데 여기 24명의 이주노동자는 포함되지 않고 별도 해외 입국 확진자로 발표된다. 물론 인근 말레이시아나 태국과 비교해 싱가포르 정부가 이주노동자들 감염차단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했음은 분명하나, 그들에 대한 불평등한 방역대처가 자행되고 있음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백신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국가경제 때문이다. 아세안 물류, 금융, 관광 허브인 싱가포르는 국가 간 이동제한과 서킷 브레이커 조치로 인해 2020년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경제적 타격을 입었다. 2분기 경제 성장률은 13.2%, 3분기는 5.8% 하락했다. 심각한 경기후퇴를 만회하기 위해 정부가 주력한 대안은 빠른 백신 도입을 추진해 국민이 일상생활로 복귀할 수 있게 만들고, 대외적으로 안전한 국가라는 신호를 보낸 것이다. 지난해 12월 14일, 리셴룽 총리는 2021년 3분기까지 모든 이에게 충분한 백신을 확보할 것이라고 밝혔다. 싱가포르가 최초로 국립전염병센터의 직원들부터 화이자 백신의 접종을 시작했지만, 아직 대규모 백신 계획은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지 않다. 다른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공공 의료 종사자들이 우선순위에 있고, 노인층이 그다음이라고만 언급했을 뿐이다. 현재 백신을 어디로 보냈는지 얼마만큼의 백신이 들어오는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8인 이상 모임도 여전히 금지되고 있다. 싱가포르는 백신 혹은 면역여권 프로그램을 최초로 도입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안전하게 왕래가 가능한 국가’로서의 자리매김을 하기 위한 싱가포르의 전략적인 행보다.
표지 이야기
[장르물 전성시대]사소한 기원-인간과 외계 생물체 ‘최초의 접촉’(2021. 01. 08 15:39)
2021. 01. 08 15:39 문화/과학
인간이 외계인과 교감하는 이른바 ‘최초의 접촉’ 이야기가 단지 흥밋거리를 넘어 감동을 줄 수 있을까? 눈시울을 붉힐 만치? 일찍이 폴란드 작가 스타니스와프 렘은 그런 발상 자체가 우주의 현실을 도외시한다고 보았다. 그의 소설에 나오는 외계지성이 기계파리들의 늪(<우주선 무적호>)이나 행성만 한 크기의 플라즈마 바다(<솔라리스>)인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인간은 이처럼 별난 존재들을 좀체 이해할 수 없다. 프레드 호일의 <검은 구름>에서 초월적 지성을 지닌 성간구름은 인류를 벌레만도 못한 존재로 여긴 나머지 그냥 지나칠 뻔한다. 우리가 언제고 외계인과 마주한다면 신체적 정신적 격차에도 불구하고 과연 서로 소통할 수 있을까? 아작 「사소한 기원」 한국어판 표지 오슨 스콧 카드는 외계인을 프라믈링과 바렐스 그리고 라멘이란 세 범주로 분류했다. 프라믈링은 먼 미래에 화성 너머 외행성계에 정주할 인류의 분파로, 장기간 격리된 채 지구와 평행진화하느라 정신문화와 신체외형까지 꽤 차이가 날 수 있지만, 호모사피엔스에서 기원한 이상 소통이 아예 불가능하진 않다. 바렐스는 지능은 높아도 우리와 교감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외계종이다. 이런 유형은 솔라리스 바다같이 우리에게 무심하면 차라리 다행이다. 영화 <프레데터>나 <에어리언>에서처럼 포식자로 돌변한다고 생각해보라. 마지막으로 라멘은 100% 외계인이나 기본적으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존재다. 앤 레키의 <사소한 기원>에서 주요 캐릭터인 게크 종족은 라멘이다. 게크는 젤리 덩어리 같은 관족(管足)과 말하는 입구멍을 지닌 수생동물로 실체는 명확지 않다. 관전 포인트는 게크인들과 이들 행성에 정주를 허락받은 인간들 사이의 관계다. 과학문명이 인류보다 월등히 앞선 게크들은 원래 외부인을 자기네 행성에 들이지 않지만, 사고로 불시착한 일부 인간들을 포용한다. 어느 날 대대로 이 행성에서 살던 인간 중 한명인 ‘위진’이 우주선을 탈취해 달아난다. 이후 인간세계의 시민권을 교묘하게 손에 넣으며 이리저리 내빼는 ‘위진’과 그를 줄곧 뒤쫓는 게크인(게크 행성 전권대사) 간의 숨바꼭질이 한동안 이어진다. 게크 행성은 대부분 물이라 육지라곤 섬 몇개가 고작이다. 따라서 이곳 인간들은 나이가 들면 시술을 통해 게크인들처럼 수중생활에 입문한다. 그러나 위진이 수술할 때가 되자 엄마의 절친인 게크 대사가 반대한다. 해저 깊이 헤엄칠 수 없다는 것은 이 동네에서 ‘사람대접’ 받기 글렀다는 뜻이다. 굴욕을 곱씹으며 위진은 행성 상공의 우주정거장 근무에 자원한다. 그 뒤 우주선을 탈취해 달아난다. 그러나 위진은 게크 대사의 진의를 오해했다. 수중생활, 그것도 해저 깊숙이 헤엄치기가 가능한 인체개조는 누구든 시술만 한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게크 대사는 위진이 시술해봤자 결국 죽게 되리란 것을 알았고, 그로 인해 자신의 절친이 평생 가슴 아파할까 두려워한 것이다. 처음에 게크 대사는 위진을 어떻게든 고향세계로 다시 데려가려 한다. 하지만 그의 의사가 확고하자 흔쾌히 놓아준다. 그리곤 언제든 부담 없이 돌아오라고 덧붙인다. 엄마를 위해 용단을 내렸듯 아이를 위해서도 그렇게 한다. 그러면서 무척 상심했을 위진에게 사과한다. 게크 사회는 표면적 현상(도둑질)에 따른 기계적 처벌보다 동기의 해석에 주안점을 둔다. 외계인조차 우리의 불완전한 구석을 헤아릴 수 있다면, 인간이 인간을 헤아리지 못하는 일이 현실에서 빈발하는 것은 누구 탓일까? 게크인들이야말로 우리가 비춰봐야 할 거울이 아닐까?
장르물 전성시대
[알아두면 쓸모있는 과학](26)세계 최초 RNA 백신, 시장에 나올까?(2020. 08. 21 15:20)
2020. 08. 21 15:20 문화/과학
지난 8월 11일 러시아가 세계 최초로 코로나19 백신을 등록했다고 깜짝 발표했습니다. 이 백신은 러시아가 인류 최초로 쏘아 올린 인공위성의 이름 ‘스푸트니크’를 따 ‘스푸트니크V’로 이름 지어졌습니다. 이 백신은 아데노바이러스를 운반체로 이용하는 재조합 백신입니다. 아데노바이러스의 게놈에 코로나바이러스의 껍데기에 있는 스파이크 단백질 유전자를 삽입해 만든 백신입니다. 이 백신이 몸에 들어가면 코로나바이러스 껍데기를 만들어내고 이것이 항원 역할을 해 몸속에 항체 생성을 유도하는 원리입니다. 임상 1상에 돌입한 코로나19 백신을 맞고 있는 시험 참가자 / AP연합뉴스 8월 또는 9월에 의료진을 대상으로 스푸트니크V 접종이 시작된다는 외신 보도도 나왔습니다. 최초의 코로나19 백신으로 등록됐지만 백신 개발의 필수 과정인 임상 3상을 뛰어넘었기 때문에 안전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백신 개발은 후보물질 발견, 비임상실험 및 체계화를 통한 기초연구, 임상 1~3상, 허가 및 생산을 거쳐야 합니다. 러시아는 허가 직전 반드시 거쳐야 하는 임상 3상을 건너뛰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장기화되자 세계 각국은 다양한 형태의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세계 각국에서 개발 중인 코로나19 백신은 150종류가 넘습니다. 이중 임상 3상에 들어간 백신은 7개 정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코로나19 백신 개발 각축전 미국, 중국, 영국의 주요 제약사들이 코로나19 백신 개발 선두에 서 있습니다. 먼저 미국 국립보건원(NIH)과 백신을 개발 중인 미국 바이오업체 모더나는 세계 최초로 임상 3상에 돌입했습니다. 이 둘은 코로나바이러스의 mRNA-1273을 후보물질로 하는 백신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독일 바이오앤테크와 미국 대형 제약업체 화이자도 임상 3상에 돌입했습니다. 영국 옥스퍼드대도 제약업체 아스트라제네카와 임상 3상에 들어갔습니다. 중국의 시노팜도 임상 3상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임상 3상은 신약 개발의 마지막 단계로 수만명 규모의 대상자에게 약물을 주입해 안전성을 시험하게 됩니다. 이후 안전성이 검증되면 보건당국의 승인을 거쳐 시판으로 이어집니다. 한국도 코로나19 백신 후보물질 3종에 대해 임상시험을 올해 안에 실시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상태입니다. 3종은 단백질을 이용한 합성항원 백신 1종(SK바이오사이언스)과 유전물질인 DNA를 활용한 백신 2종류(제넥신·지원생명과학)입니다. 이중 개발이 가장 많이 진전된 백신은 제넥신으로 지난 6월 임상 1상과 2A상에 대해 정부로부터 승인을 받았고, 최근 원숭이를 대상으로 효능이 있다는 결과를 내놓기도 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초기만 해도 백신 개발은 4~5년 뒤에야 가능할 것이라는 예측이 주를 이뤘습니다. 팬데믹 선언 몇 달 만에 임상 3상에 들어갈 정도로 개발 속도가 빠른 데는 미국 정부의 다급함과 지원도 한몫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워프 스피드 작전’을 통해 백신 연구개발에 80억달러(약 9조5000억원)를 투자했습니다. 워프 스피드 작전은 미국 행정부가 가장 빠른 시간에 코로나19 백신을 개발·보급하기 위한 초고속 개발 작전입니다. 정부, 민간기업, 군대 등이 모두 참여해 내년 1월까지 미국 국민 3억명에게 투약 가능한 백신을 생산하는 것이 목표로 알려져 있습니다. 원래 백신은 체내에 항체를 만들기 위해 균을 죽이거나 약하게 만들어 접종하는 방식으로 이뤄져 왔습니다. 전통적인 방식은 균을 죽이거나(사백신), 균은 살아 있지만 감염을 일으키지 않을 만큼만 독성을 약화시켜(생백신·약독화 백신) 만들어왔습니다. 18세기 에드워드 제너가 최초로 개발한 천연두 백신이 생백신과 비슷한 형태입니다. 소아마비 백신, 홍역 백신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살아 있는 균을 쓰기 때문에 생백신을 개발할 때는 안전성을 철저하게 검증해야 하기 때문에 승인 과정이 길어집니다. 다양한 백신 가운데 현재 가장 큰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모더나의 mRNA 백신입니다. 모더나가 mRNA 백신 개발에 성공한다면, 세계 최초의 유전물질 백신 개발이라는 기록을 세우게 됩니다. mRNA 백신은 기존의 백신과는 원리와 생산방식이 다른 신개념 방식입니다. 1990년대부터 유전물질을 이용한 백신 개념이 제안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다양한 한계점 때문에 최근에 와서야 다양한 실험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코로나19는 유전물질 DNA 백신 개발의 전환기가 되었습니다. RNA(ribonucleic acid)는 유전물질의 한 종류입니다. 코로나19는 유전물질이 RNA로 이뤄진 바이러스입니다. 유전물질에는 DNA와 RNA 두 종류가 있습니다. DNA는 4개의 염기(아데닌·구아닌·시토신·티민)가 연결된 각각 2개의 고리가 나선형을 이루며 꼬여 있습니다. 비교적 안정적인 구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반면 RNA는 염기가 단일 가닥으로 형성돼 있습니다. 단일 가닥이기 때문에 변이가 잦은 편입니다. 바이러스는 숙주 세포의 표면에 달라붙는 방식으로 세포 안으로 들어갑니다. 숙주의 세포 안으로 들어간 바이러스는 유전체를 방출하고, 숙주의 세포 안에서 원래 작동하고 있던 유전자 발현 과정에 끼어들어 자신의 유전체가 전사되도록 합니다. mRNA는 이 과정에 사용되는 유전물질입니다. RNA 백신은 코로나바이러스의 겉껍질 돌기(스파이크)를 만들어내는 RNA 유전자를 백신에 담아 주입합니다. 균을 직접 몸에 넣지 않고 균을 체내에서 만들어낼 유전물질만 접종하는 것입니다. mRNA가 체내에 들어가면 단백질 코딩 과정을 통해 세포가 항원을 스스로 만들게 되고, 그 결과 항체가 생성됩니다. mRNA는 스파이크 단백질을 합성한 뒤 분해돼 없어져 버린다는 면에서 안전성이 높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RNA 백신 첫 상용화 기대와 우려 단백질을 만들고 바로 분해되기 때문에 항원을 충분히 만들지 못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몸에는 RNA를 분해하는 효소가 많아 mRNA가 세포까지 전달되지 않을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RNA 백신은 미리 개발해둔 범용 백신 플랫폼에 RNA만 바꿔 끼워 넣으면 되기 때문에 다양한 백신을 단시간 내에 제조할 수 있습니다. RNA는 빠르게 개발할 수 있어 현재 가장 개발 속도도 빠르고 기대를 모으고 있지만, 아직 안전성과 효용성이 철저히 검증되지는 않은 방식이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알아두면 쓸모있는 과학
[언더그라운드 넷]5·18 최초 사망자가 인민재판으로 죽었다는 극우 유튜버(2020. 05. 29 14:48)
2020. 05. 29 14:48 사회
“상식적으로 생각해봅시다. 계엄군이 왜 가만히 있는 시민을 사이코패스처럼 두들겨 패서 사망하게 했겠습니까. 말이 안 되잖아?” 유튜브 캡처 극우 성향 유튜버 배인규씨(30)가 지난 5월 19일에 올린 영상과 함께 내놓은 주장이다. 그는 지난 3월 자신이 올린 5·18민주화운동 관련 영상에서 시민군의 공격으로 숨진 경찰이 5·18 당시 발생한 최초 사망자라고 주장했다. 가짜뉴스 팩트체크 유튜버 헬마우스팀이 “5·18 첫 사망자는 경찰이 아니라 청각장애인 시민 김경철씨(24)”라고 반박하자 내놓은 답변이다. 그러면 배씨는 김경철씨가 어떻게 죽었다고 하는 걸까. 그는 “김씨의 검시보고서에는 계엄군에게 맞아죽었다는 내용이 없다”며 얼마 전 공개된 미 중앙정보국(CIA) 비밀문서에 김씨의 사망 원인이 적혀 있다고 주장한다. 그가 제시하는 CIA 문서의 대목은 ‘온건파 시민위원회는 주도권을 상실했으며, 극렬분자들이 주도권을 잡은 것으로 판단. 인민재판이 열리고 있으며 몇몇이 처형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김씨가 사망한 것이 계엄군의 구타에 의한 것이 아니라 시민군들이 인민재판을 열어 죽이고 계엄군의 소행으로 둘러댔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엉터리 주장이다. CIA 문서의 바로 뒷부분엔 ‘당시 계엄사 측이 그렇게 주장하고 있는데, 믿을 수 없는 이야기’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게다가 문건이 묘사하는 상황은 10여 일간의 항쟁 기간 거의 막바지에 이르러 ‘도청사수’를 주장하는 강경파와 협상을 주장하는 온건파의 대립을 두고 하는 이야기다. 논쟁은 있었지만 인민재판 같은 것은 없었고, 처형당한 사람도 없었다. 진압을 정당화하려는 계엄군 측의 흑색선전이다. 김경철씨는 1980년 5월 18일 계엄군의 구타로 이튿날 새벽 3시쯤 사망했다. 배씨의 주장은 사자명예훼손에 해당한다. “TV를 보니 하나 죽었는데 김항렬이라고 병원에 있다고 나와요. 적십자병원에 와서 확인하라고 연락이 왔는데 우리 ‘애기’와 이름이 달라서 아닌 갑다 했는데….” 지난 5월 27일 통화한 김씨의 어머니 임금단씨(89)의 말이다. 임씨는 40년 전 가슴에 묻은 아들을 아직도 ‘우리 애기’로 부르고 있었다. 40년이 지났지만 남은 사람들의 고통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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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서울시의 ‘최초’ 시도, 뇌병변장애인 희망될까(2019. 11. 18 14:57)
2019. 11. 18 14:57 사회
ㆍ전국에서 처음으로 중증중복장애인을 위한 5개년 계획 총 604억원 투입 ‘최초’라는 수식어가 부끄러울 때가 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다가 나중에 시행하면서 붙게 되는 ‘최초’라는 수식어는 그다지 달갑지 않다. 중증중복뇌병변장애인을 위한 5개년 마스터플랜을 내놓은 박원순 서울시장. /서울시 제공 박원순 서울시장이 전국 최초, 대한민국 최초로 중증중복뇌병변장애인을 위한 5개년 마스터플랜을 세웠다. 2019년부터 박 시장의 임기가 마무리되는 2023년까지다. 예상되는 비용은 총 604억원이다. 박 시장은 이 예산을 순차적으로 들여 뇌병변장애인을 위한 복지서비스를 마련하기로 했다. 비장애인들은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사업이다. 장애인에 대한 정부의 복지정책은 지금껏 계속 있었는데, 어떻게 여기에 ‘최초’라는 단어가 붙게 된 것일까. “지금껏 장애인에 대한 각종 복지정책이 있었지만 중증중복뇌병변장애인에 대한 정책은 비어 있었다.” 서울시 관계자의 말이다. 서울시 전체 장애인 중 10.8% 중증중복뇌병변장애란 쉽게 말해 여러 장애가 복합적으로 중복된 장애를 가진 것을 말한다. 장애가 하나만 있어도 힘들다. 그런데 중증중복장애인들은 여러 장애를 한꺼번에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뇌병변장애인은 뇌성마비나 외상성 뇌손상, 뇌졸중 등 뇌의 기질적 손상으로 일상생활 및 동작에 심한 제약을 받는 중추신경장애를 지닌 사람들을 통칭하는 말이다. 언어나 지적장애, 시각장애, 청각장애를 비롯해 손발을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모든 장애가 수반된다. 한마디로 장애인 중에서도 삶을 온전히 누리기가 가장 어려운 상태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들만을 위한 정책은 지금껏 단 한 번도 만들거나 시행된 적이 없다. “장애아 부모들끼리 이런 이야기도 해요. 중복뇌병변장애를 갖고 있는 우리 아이들이 가장 생활하기 편한 장애인시설을 만들어놓으면, 다른 장애아이들은 얼마나 더 편하게 시설을 이용하겠냐고요. 우리 아이들을 기준으로 장애인시설을 만들면 모든 장애인이 시설을 이용할 수 있죠. 우리 아이들이 가장 최악의 장애를 갖고 있으니까요.”(뇌병변 1급 장애인 ㄱ씨의 엄마 ㄴ씨) 그러나 중증중복뇌병변장애를 가진 장애인들은 매번 장애인 정책 수립이나 법률 제정 과정에서 소외돼 왔다. 이유는 너무 단순하다. 중증중복뇌병변장애를 가진 장애인들의 수가 여타 장애인의 수보다 턱없이 적기 때문이다. 돈을 들여 정책을 만들어도 수혜자가 적으니 소위 말하는 ‘돈 들인 티’가 날 리가 없다. 법은 넓은 범위를 포섭해야 한다는 이유로 이들을 제외해왔다. <주간경향>이 단독으로 입수한 ‘서울시 뇌병변장애인 중장기 지원계획 수립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말 기준 서울시 전체 장애인 수는 39만1753명으로, 이 가운데 뇌병변장애인은 전체 장애인의 10.8%인 4만2287명에 불과하다. 고령에 따른 뇌병변장애인(65세 이상)을 모두 포함한 숫자다. 태어날 때부터 평생을 뇌병변장애인으로 살아야 하는 장애인의 숫자는 고령으로 인한 뇌병변장애인을 제외하면 더 적어진다. 2017년 말 기준 0세부터 19세 사이 서울시 거주 뇌병변장애인은 2041명, 20세부터 49세까지 뇌병변장애인은 5526명이 전부다. 이 보고서는 서울시복지재단이 서울시의 용역을 받아 지난해 11월 최종 보고한 273쪽 분량의 연구자료다. 보고서는 이들이 소외된 이유를 보다 명확하게 분석하고 있다. 한마디로 우선순위에서 밀렸다는 이야기다. “그동안 정부는 각종 법적·제도적 정비와 장애인 복지 분야에 대한 투자 확대를 통해 장애인의 생활안정과 사회참여 확대를 위한 노력을 해왔으나, 뇌병변장애인은 장애인 정책에서 이중적 소외를 받아왔다. 뇌병변장애의 세부 장애 유형에 해당하는 뇌성마비장애인의 경우 지적장애를 동반하거나, 통상적인 발달이 지연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2014년 5월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의 적용대상에 포함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으나, 결과적으로 발달장애 범주를 지적·자폐성 장애로 한정하면서 관련 제도 및 서비스의 혜택에서 배제되고 있는 실정이다.” 서울시는 이 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604억원이라는 예산(5년간 순차적으로 배정)을 들여 뇌병변장애인 지원 마스터플랜을 지난 9월 발표했다. 그동안 장애인 정책 중에서도 가장 ‘나중에’로 밀려 있던 중증중복뇌병변장애인을 위한 복지정책을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서울시는 가장 먼저 중증중복뇌병변장애인들만을 위한 돌봄센터(종합복지관)를 건립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중증중복뇌병변장애인은 학교를 졸업하는 순간부터 사회로부터 격리된다. 그나마 학교에 다닐 때는 낮시간에 갈 곳이 있었지만 졸업과 동시에 갈 곳이 사라지는 것이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가 지난 10월 16일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최중증·중복장애인 인권침해 및 장애차별 집단진정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부모연대 뇌병변장애인 전용 복지관 8곳 설립 성인 중증중복뇌병변장애인들이 갈 수 있는 장애인복지관은 서울시 내에서 단 두 곳밖에 없다. 2018년 1월 말 기준 서울시에는 48개의 장애인복지관이 있지만 뇌병변장애인을 위한 복지관은 노원구의 서울시립뇌성마비복지관과 강서구의 강서뇌성마비복지관이 전부다. 모든 종류의 장애인들을 수용하는 종합장애인복지관이 서울시 내 30곳이 있지만 뇌병변장애인들은 사실상 이곳을 이용할 수 없다. 가래흡인(석션) 등의 의료지원이 반드시 있어야 하고, 섭식지원 인력도 필요하지만 대부분의 장애인복지관은 이에 대처할 인력이 없다. 또 대형 휠체어가 회전하고, 이동할 수 있는 공간이 충분히 확보돼야 하고, 간간이 누워 있을 침대가 있어야 하는 등 여타 장애인에 비해 차지하는 공간이 많아 수용에 한계가 있다. 이 때문에 일부 장애인복지관은 처음부터 중증뇌병변장애인의 입소를 거부하고 있는 실정이다. 다소 격한 행동을 하는 장애인들과 한곳에 머물 경우 예기치 못한 사고 등이 발생할 수 있어 뇌병변장애인들 스스로 종합복지관을 꺼리는 경우도 있다. 이 같은 이유로 서울시 전체 뇌병변장애인 4만2287명 가운데 장애인복지관을 이용하는 장애인은 9641명(22.8%)에 불과하다. 나머지 3만2646명(78.2%)은 복지관 시설을 이용하지 않는 것으로 추정된다. 낮시간 동안 돌봄을 하는 ‘장애인 주간보호시설’ 역시 서울 시내에 121개 소가 있지만 뇌병변장애인을 위한 주간보호시설은 단 6곳뿐이고 이용자는 74명에 불과하다. 그래서 뇌병변장애인의 주간보호시설 이용률은 4.8%에 그친다. 결국 장애인복지시설 및 주간보호시설을 이용하는 소수의 뇌병변장애인들을 제외한 나머지 대다수는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서울시는 중증뇌병변장애인들을 집 밖으로 나오게 하고, 이들을 돌보기 위해 집 안에 머무는 가족들을 위해 2023년까지 서울 시내 8곳에 114억원(예상)을 들여 중증뇌병변장애인들을 위한 종합복지관 ‘비전센터(가칭)’를 건립할 계획이다. 학교 졸업과 동시에 갈 곳 없는 성인 중증중복장애인들에게 가장 절실했던 영역을 일부나마 해소하겠다는 것이다. 강병호 서울시 복지정책실장은 “아직까지 명확한 복지관 형태나 위치, 중증뇌병변장애인 1인당 간호사 수 등 세부적인 계획은 뇌병변장애인 가족을 비롯한 전문가들과 계속 논의하고 있다”면서 “중증뇌병변장애인들은 화장실의 크기나 휠체어가 공간 안에서 이동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 등 여러 가지 고려할 것이 많아 그들에게 가장 적합한 형태로 설계해 완성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현재 각종 TF회의를 중증뇌병변장애인 부모들과 함께 진행하고 있다. 장애인 당사자 또는 가족들이 아니면 알기 어려운 세부적인 내용을 가족들에게 직접 물어 정책으로 만드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나온 정책이 ‘기저귀 구입비 지원 대상 연령 확대’다. 그동안 만 5세부터 만 34세까지만 지원해왔던 대·소변흡수용품(기저귀) 구입비 지원을 2023년까지 64세로 순차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중증뇌병변장애인들은 평생 기저귀를 차고 용변을 해결한다. 구입비용 역시 만만치 않다. 중증중복장애인 가정은 통상 한 달에 적게는 5만~10만원, 많게는 20만원 이상을 기저귀 구입비용으로 지출하고 있다. 또 성장기에 있는 중증뇌병변장애 아동과 청소년들의 보조기기 교체비용도 지원을 확대하기로 했다. 중증뇌병변장애를 갖고 있더라도 모든 아동·청소년들은 키와 몸무게가 여타 비장애인들처럼 늘어난다. 그런데 이들의 신체를 지지하는 보조기기는 아동·청소년의 성장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많은 중증뇌병변장애 가족들이 적절한 시기에 보조기기를 교체해주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각 가정당 보조기기 연평균 지출비용은 1314만원으로, 장애인 보조기구를 제때 교체하지 못하는 가정의 74.7%가 ‘교체비용이 부담되기 때문에’ 적절한 시기에 보조기구를 맞춰주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장애인 보조기기는 임대사업을 통해 많은 장애인이 임대로 이용하고 있지만 수요가 높은 특정 보조기기는 대기기간만 평균 2개월 이상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는 18세 이하 뇌병변장애 아동 및 청소년에 대한 보조기기 구입비 지원을 늘려, 더 많은 뇌병변장애 아동·청소년이 보조기구를 쉽게 임대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또 2023년까지 만 18세 미만 장애인 300명을 대상으로 휠체어, 자세보조용구 등 맞춤형 보조기기 제작 및 수리를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전국으로 확대 가능할 것인가 물론 이 모든 계획을 모두 해나가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박원순 시장의 의지만으로 불가능한 영역도 존재한다. 재화는 한정돼 있고, 그 재화를 필요로 하는 수요는 엄청나기 때문이다. 서울시가 시민을 위해 가용할 수 있는 한 해 예산은 약 35조원이다. 중증뇌병변장애인 지원계획에 5년간 소요되는 예산 총액은 604억원으로 전체 예산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그러나 977만6000여 서울시민의 0.4%밖에 되지 않는 중증뇌병변장애인만을 위해 이 같은 예산을 지출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각종 정치적 이해관계와 맞물려 시행이 어려워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실제 일부 보건복지위 소속 상임위원과 서울시 의원 중 일부가 뇌병변장애인들을 위한 서울시 정책예산에 대해 난색을 표한 것으로 전해졌다. 총선을 앞두고 지역구의 민원처리를 위해 또다시 중증뇌병변장애인 정책을 ‘나중으로’ 돌리려 한다는 이야기다. 서울시 관계자는 그러나 “기존에 계획한 목표는 그대로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일부에서 제기되는 우려를 일축했다. 이 관계자는 “서울시의회 의원 및 보건복지위 상임위원 모두 장애인 영역에 대한 예산배정은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는 점에 공감하고 있고, 서울시 역시 강한 의지를 갖고 추진하기 때문에 큰 우려는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10월 7일 서울시 홈페이지 게시판에 한 중증뇌병변장애인 부모의 글이 올라왔다. 자신을 현재 특수학교에 재학 중인 뇌병변장애아의 부모라고 밝힌 그는 A4용지 3장 분량의 편지에서 “(서울시의 중증뇌병변장애인 계획이 제대로 시행된다면) 우리 딸이 혼자서 밥을 못 먹는다 해서 외면받지 않고, 혼자서 못 걷는다 해서 홀로 방에 갇혀 있지 않고, 건강하지 못하다 해서 거부당하지 않는, 당당한 존재로 함께할 수 있는 서울시민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적었다. 다음은 전국으로의 확대다. 아직까지 서울시와 같은 형태의 중증뇌병변장애인 지원책을 내놓는 시·도는 없다. 서울시의 지원책도 2023년까지 모두 추진된다고 해도 일부 지역 중증뇌병변장애인에게만 돌아가는 혜택이다(서울 시내 8개 구에만 비전센터 설치). 때문에 2023년 이후도 중요하다. 아무리 소수라도 장애인을 위한 정책이 ‘나중에…’라며 밀리면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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