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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총 59 건 검색)

폴란드 추락 미사일이 남긴 것(2022. 11. 18 11:20)
2022. 11. 18 11:20 국제
러시아제 미사일이 지난 11월 15일(현지시간) 폴란드에 떨어져 주민 2명이 숨지면서 국제사회가 긴장했다. 폴란드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으로 러시아가 공격했다면 나토가 전쟁에 개입할 수밖에 없어 확전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나토가 우크라이나의 방공 요격 미사일 발사 실수로 잠정 결론 내리면서 사태는 다소 진정되는 모양새다. 하지만 확전 방지, 긴장관리를 위한 과제가 여전히 많이 남아 있어 안심하기에는 이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11월 15일(현지시간) 폴란드 동부 우크라이나 국경지대 마을인 프셰보두프에 경로를 벗어난 러시아제 미사일 2발이 떨어져 농장 트랙터 등이 부서진 채 뒹굴고 있다. 미사일이 폭발하면서 주민 2명이 사망했다. / 프셰보두프 | 로이터연합뉴스 시간 걸리는 나토 집단방어체제 러시아와 갈등 관계인 유럽국들이 나토에 가입하려는 이유는 회원국 전체가 나서는 집단방어체제의 보호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회원국이 공격을 당했다고 해서 자동으로 집단방어체제가 발동되는 것은 아니다. 지원 요청을 위한 절차를 밟으면서 군사 대응이 지체될 수 있다. 실제 발동 사례도 극히 드물어 나토 가입만으로 회원국의 안보를 장담할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사건 발생 직후 폴란드는 나토 헌장 제4조를 발동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나토 헌장 제4조에 따르면 회원국이 영토 보존과 안보에 위협을 받는 경우 나머지 동맹국에 협의를 요청할 수 있다. 폴란드는 사건 직후 긴급국가안보위원회를 소집하고 군의 대비태세를 격상시켰다. 러시아의 미사일 발사로 확인됐다면 집단 방위 근거 조항인 나토 헌장 제5조를 발동할 수도 있었다. 이 조항은 회원국이 공격을 받으면 회원국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회원국들은 협의를 거쳐 군사행동을 포함해 필요한 조치를 취한다. 협의에 정해진 기한은 없다. 자동으로 군사개입이 이뤄지지도 않는다. 1949년 기구 창설 이후 회원국 안보 위협 상황 대응에 관한 회의는 7차례 열렸다. 해당 조항은 2001년 미국 9·11 테러 직후 단 한 번만 발동됐다. 이번 사건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대규모 공습을 재개한 시점에 발생했다. 앞으로 러시아군의 실수로 나토 회원국이 공격당하면서 확전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러시아는 11월 15일 수도 키이우를 비롯한 우크라이나 전역에 100여발의 미사일 공격을 퍼부었다. 이에 러시아의 오발로 일부 미사일이 폴란드에 떨어진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러시아군이 서부 폴란드 접경 도시인 르비우에도 13발의 미사일을 쐈다고 밝혔다. 이에 동유럽 회원국들의 방공역량 강화가 화제로 떠올랐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11월 16일 기자회견에서 동유럽 회원국의 방공역량을 강화했음에도 대비에 실패한 것 아니냐는 취지의 질문을 받고 “동쪽의 방공체계는 순항 또는 탄도미사일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배치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사건처럼 방어 목적의 미사일이 잘못 떨어질 경우 대응할 방법이 없다는 취지다. 유사한 사례 재발 방지를 위해 나토 회원국의 방공망을 우크라이나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나토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당사자가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과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등이 11월 16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발리의 주요 20개국(G20) 회의장에서 러시아제 미사일 폴란드 추락 사건 이후 대응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 발리|로이터연합뉴스 나토의 위기대응 능력 시험대 사건 발생 이후 갈등관리는 나토의 위기대응 능력을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피해국인 폴란드는 우크라이나의 방공 미사일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발표하면서 나토 헌장 제4조를 발동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폴란드 내부에서는 이번 사건에 대해 우크라이나의 책임을 크게 제기하지 않고 있다. 안제이 두다 대통령은 “폴란드를 겨냥한 미사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폴란드에 대한 공격은 아니다”라고 정리했다. 폴란드 주민들도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탄보다 전쟁 확대에 대한 불안감이 더 커 비난을 자제하고 있다고 외신은 전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84%는 전쟁이 폴란드로 확대될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우크라이나는 이번 일이 자신으로 인해 벌어졌다면 사과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우선 공동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하지 않았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로 근본적인 책임은 러시아에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공군사령관의 보고를 언급하면서 “나는 그 미사일은 러시아가 쐈다고 믿는다. 우리의 미사일이나 미사일 공격일 리가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나토 회원국의 한 외교관은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중 아무도 우크라이나를 비난하지 않고 있는데 그들은 공개적으로 거짓말을 하고 있다”며 “이것은 미사일보다 더 파괴적이다”라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이번 사건으로 우크라이나와의 결속이 망가지기를 원치 않는 서방은 일단 ‘러시아 원죄론’에 더 힘을 싣는 분위기다.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에이드리엔 왓슨 대변인은 이번 사건이 우크라이나 인프라에 대한 러시아의 무차별 공격 도중 벌어졌다고 언급하면서 “이 비극적인 일의 궁극적인 책임이 러시아에 있음이 명확하다”고 밝혔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도 “러시아의 침공이 계속 위험한 상황을 만들고 있다”면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 맞서 자신을 보호할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지속되면 언제든지 확전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줬다. 발생 가능한 우발적인 상황을 막기 위한 신속한 갈등관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도 여실히 보여줬다. 이런 관점에서 ‘러시아 소행’이라던 당초의 추정에 제동을 건 미국과 나토의 신속한 대응이 우발적인 확전 방지에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러시아 크렘린궁도 “폴란드와 다른 국가들의 히스테릭한 반응과 달리 미국인들은 다소 절제된 반응을 보여줬다”며 이례적으로 호평을 내놓았다. 다만 일각에선 미국과 러시아 사이의 소통망이 아직 정상이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미군은 이번 사건 직후 러시아군 수뇌부에 전화를 걸어 논의를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의사소통 채널 가동의 실패는 위기 시 이들 군사대국의 갈등관리에 대한 우려를 낳는다. 이번 사건으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평화협상이 이어질지도 주목된다. 우크라이나가 유럽 동맹에 일종의 빚을 지면서 협상론에 힘을 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마크 밀리 미 합참의장은 “우크라이나군이 조만간 전쟁에서 완전히 승리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며 정치적 협상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그는 최근 브리핑에서 “우크라이나는 할 수 있는 데까지 러시아를 군사적으로 압박해야 하지만 겨울이 되면 작전이 자연스레 느려질 수 있다”며 “러시아가 후퇴하면서 정치적 해결의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박희숙의 명화로 보는 신화](21)추락하는 이카로스와 ‘날개’(2022. 10. 28 11:01)
2022. 10. 28 11:01 문화/과학
고지가 앞에 보이면 마음이 조급해진다. 금방 손에 잡힐 것 같아 무리하게 욕심을 내기 쉽다. 하지만 욕심이 앞서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인생이 흘러가는 경우가 많다. 욕망에 눈이 멀어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하기 때문이다. ‘이카로스의 추락’(1636년, 나무에 유채, 벨기에 왕립미술관 소장) 그리스신화에서 무리한 욕망으로 망가진 사람이 이카로스다. 이카로스는 건축가 다이달로스의 아들이다. 다이달로스는 테세우스를 사랑한 미노스의 딸 아리아드네에게 실타래를 주면서 탈출 방법을 알려줘 테세우스가 미궁을 빠져나올 수 있게 도와준다. 그 일로 다이달로스는 미노스 왕의 노여움을 사 아들 이카로스와 함께 섬에 갇힌다. 다이달로스는 섬을 빠져나가려면 하늘을 나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다이달로스는 자신의 재주를 한껏 발휘해 깃털과 밀랍으로 자신과 아들의 어깨와 팔에 날개를 만들어 붙였다. 다이달로스는 하늘로 날아오르기 전에 아들 이카로스에게 태양에 너무 가까이 접근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경고했다. 태양열로 밀랍이 녹아 깃털이 떨어져 나갈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다이달로스와 이카로스는 날개를 힘차게 저어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들은 방향을 북동쪽으로 잡아 파로스섬, 델로스섬, 사모스섬 위를 날아갔다. 스포라데스 제도와 이오니아 해안 사이를 지날 때쯤 이카로스가 비행에 도취한 나머지 아버지의 경고를 무시하고 한껏 하늘 높이 올라갔다. 그러자 태양의 뜨거운 열기가 날개의 밀랍을 녹였다. 날개를 잃은 이카로스는 그대로 바다로 추락했다. 이때부터 이 바다는 이카로스의 이름을 따 ‘이카리아해’라고 불리고 있다. 다이달로스는 근처의 섬(오늘날의 이카로스섬)에 착륙해 바다에서 아들의 시체를 건져 섬에 묻어줬다. 이카로스가 추락하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 페테르 파울 루벤스(1577~1640)의 ‘이카로스의 추락’이다. 몸에 날개를 달고 있는 남자가 다이달로스다. 머리가 바다를 향해 있는 남자는 이카로스다. 이카로스에게 날개가 없는 것은 밀랍으로 된 날개가 태양에 녹아내렸음을 나타낸다. 황금색으로 물들어 있는 하늘 전체는 강렬한 태양을 의미한다. 밝은 빛의 하늘과 대조되는 검은색 바다는 이카로스의 죽음을 암시한다. 루벤스의 이 작품에서 다이달로스가 날개를 활짝 펼치고 있는 것은 온몸을 다해 아들을 구하기 위해서다. 다이달로스의 어두운 얼굴은 아들을 구하고 싶어도 구할 수 없는 아버지의 마음이다. 눈에 보인다고 고지가 내 것이 되지는 않는다. 고지가 목전에 있을 때가 가장 위험한 순간이다. 곤두박질치느냐, 정상으로 올라가느냐가 결정된다. 올라갈 때는 힘이 들지만 내려올 때는 날개가 필요치 않다. 그저 추락의 속도가 줄어들기를 바랄 뿐이다.
박희숙의 명화로 보는 신화
[박희숙의 명화로 보는 신화](17)파에톤의 추락(2022. 08. 26 15:01)
2022. 08. 26 15:01 문화/과학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상황에서 스스로 존재를 드러내고 싶어 안달한다. ‘파에톤의 추락’(1595년, 패널에 유채, 라이프니치 조형박물관 소장) 그리스로마신화의 파에톤은 태양신 아폴론의 아들이지만,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다. 파에톤이 성장하자 어머니 클리메네가 아버지에 대해 말해준다. 파에톤은 자기 아버지가 태양신 아폴론이라고 친구 에파포스에게 말하지만, 친구는 거짓말하지 말라며 놀린다. 파에톤은 친구의 조롱에 분을 참지 못하고 아버지를 찾아나선다. 오랜 여행 끝에 아버지를 만난 파에톤은 자신이 아들이 맞냐고 묻는다. 아폴론은 그동안 아들을 돌보지 않은 미안함에 파에톤에게 소원을 말하라고 한다. 파에톤은 아버지의 태양 마차를 한 번 몰게 해달라고 한다. 자신이 아폴론의 아들임을 온 세상에 보여주기 위해서다. 태양 마차는 아폴론만이 몰 수 있다. 그건 제우스신도 어려운 일이다. 곤란했지만 아폴론은 아들과의 약속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태양 마차를 내준다. 다음 날 아침 아폴론은 아들에게 마차를 내주며 절대 정해진 길에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하지만 마차가 가벼워진 것을 알아챈 말들이 출발하자마자 갑자기 궤도를 이탈하기 시작한다. 파에톤의 힘으로는 통제할 수 없는 마차가 궤도를 벗어나 하늘 높이 올라갔다. 지구는 참혹한 고통을 겪었다. 숲과 농작물이 타들어 가고 물은 말라버렸다. 아이티오피아(에티오피아) 사람들은 태양열에 피가 끓고 피부가 새까맣게 변했다. 자칫하면 올림포스 신들의 궁전마저 불에 탈 정도였다. 보다 못한 제우스가 번개를 들어 파에톤에게 던졌다. 제우스의 벼락을 맞은 마차는 산산조각이 나고 파에톤은 새카맣게 그을린 채 추락해 에리다노스강으로 떨어졌다. 파에톤은 꿈에 그리던 아버지를 만나 태양신의 마차를 몰았지만, 분에 넘치는 만용을 부리다 결국 최후를 맞았다. 파에톤이 추락하고 있는 장면을 그린 작품이 요제프 하인츠(1564~1609)의 ‘파에톤의 추락’이다. 화면 상단 하늘에서 독수리에 앉아 있는 제우스가 번개를 내리치고 있고, 화면 중앙 파에톤의 머리가 아래를 향하고 있다. 앞발과 뒷발을 들고 있는 말은 놀라서 마차를 몰지 못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땅을 향하고 있는 파에톤의 머리는 그가 추락 중임을 나타낸다. 화면 하단 여인들이 두려운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강물에 누워 있는 노인도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하늘을 보며 놀라고 있는 여인들은 아폴론의 딸들이다. 물에 누워 있는 노인은 강의 신 에리다노스다. 화면 중간 어두운 하늘은 파에톤 때문에 일어난 지구의 재앙을 의미한다. 존재감이 없는 사람일수록 조직이나 인맥의 힘을 자랑한다. “내가 누군지 아느냐. 나 이런 사람이야”라고 온갖 자랑을 늘어놓으면서 상대방을 깎아내리는 게 특징이다.
박희숙의 명화로 보는 신화
[영화로 보는 우크라이나 전쟁](7)소련 해체 후…러시아의 끝없는 추락(2022. 07. 01 14:51)
2022. 07. 01 14:51 문화/과학
ㆍ 2부작 흔히 북반구와 서방에 편중된 부유한 국가들을 ‘1세계’, 남반구와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에 밀집된 가난한 국가들을 ‘3세계’라 칭한다. 그렇다면 ‘2세계’는 어디인가. 바로 소련이 맹주로 있던 동구 현실사회주의 블록이다. 세계의 3축을 이루던 거대진영 중 1축이 증발해버렸다. 그 뒤에 남은 건 무엇일까. 영화 시리즈 주인공 다닐라의 그라피티와 동상 / abrakadabra.fun 몰락 이후, 술주정뱅이 옐친의 시대 소련이 해체될 때 다소간의 혼란은 예상했지만, 러시아 국민은 초강대국의 저력으로 곧 사태를 수습하고 더 잘살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현실은 정반대로 치달았다. 해체 이전 라이벌 미국의 절반 수준 경제 규모를 가졌지만, 대부분의 부를 국가가 소유했기 때문에 제대로 된 개혁만 이뤄졌더라면 러시아인의 꿈은 실현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거대한 국부는 혼란기에 잇속을 차린 과거 공산당 관료와 신흥재벌들에게 넘어갔다. 그들은 ‘올리가르히’라는 기득권 집단이 돼 국가의 부와 권력을 독점했다. 1990년대 초 소련의 1인당 국민소득은 5000달러가 넘었다. 1990년대 중반 러시아 1인당 소득은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보리스 옐친 대통령은 당시 세계를 휩쓸던 신자유주의 개혁을 단행했다. 그 결과 초(超)인플레이션이 발생해 러시아 국민의 90%가 빈곤층으로 전락했다. 1억4000만 인구 중 2000만명이 공식 실업자로 추산되는 참상이 벌어졌다. 소련이 자랑하던 복지제도는 작동을 멈췄다. 임금을 받지 못한 경찰은 부패하거나 범죄 집단으로 변했다. ‘브리트바’라는 마피아가 권력과 결탁해 무소불위의 행패를 부려도 막을 자가 없는 세상이었다. 소련 시절 국민의 물질적 형편은 서방에 비해 낮았지만 교육과 문화예술 접근성은 높았다. 2억9000만 소련 국민의 연간 영화 관객은 20억명이었다(!). 그게 5000만명으로 97.5% 감소했다(!!). 몰락이란 표현이 모자랄 지경이다. 한해 최고 흥행작의 관객 수가 50만명이던 시절이다. 사회 전 분야의 붕괴였다. 그런 기나긴 암흑기를 뚫고 부흥의 희망을 밝혀 당대 러시아의 사회상을 담아낸 작품이 알렉세이 발라바노프 감독의 <브라트>(‘형제’) 2부작이다. 러시아판 ‘택시 드라이버’의 세계 1990년대 ‘잃어버린 10년’ 동안 러시아는 추락을 거듭했다. 경제는 붕괴하고 민주주의는 정착하지 못했다. 소련 체제가 붕괴하자 소수민족의 독립운동이 이어졌다. 그중 대표격인 체첸 자치공화국과의 전쟁에서 러시아는 치욕적인 패배를 당했다. 아프가니스탄 침공의 후유증이 소련을 붕괴시켰듯 체첸에서의 졸전은 막대한 희생은 물론 국가적 자존심도 무너뜨렸다. 그 참전용사 중 1명, 행정병 출신이라며 씩 웃는 청년 다닐라가 <브라트>의 주인공이다.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할 일도, 반기는 이도 없다. 노모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성공한 사람’ 형 빅토르를 찾아보라고 한다. 빅토르는 범죄세계의 해결사였다. 그는 지역의 레드 마피아 보스 의뢰로 경쟁조직 체첸 마피아 보스 암살을 준비 중이다. 다닐라는 형을 돕기 위해 혼자 암살을 실행한 후 도주하다 트램 운전사 스베타와 만나게 된다. 그는 시장에서 깡패들에게 시달리던 고프만을 도와주고, 하루하루 쾌락을 좇는 또래 여성 카트와도 만난다. ‘도시’를 상징하는 존재들과 관계를 맺어가며 다닐라는 뒷골목 세계의 항쟁 속으로 빨려든다. 영화 포스터 <브라트>는 (배경인 1990년대 러시아 상황을 제외하면) 그저 이국적 배경의 액션 누아르다. 하지만 미국의 월남전 패배 이후 상실의 시기에 <택시 드라이버>, <람보>(1편)의 탄생에 비견될 만한 사례이자 현대 러시아인들에겐 그야말로 ‘전설을 넘어 레전드 오브 레전드’가 된 영화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비교할 수 없는 <브라트>의 조잡하고 음울한 배경은 구닥다리 느낌이 물씬 풍긴다. 조금만 몰입해보면 이 영화만큼 당대 러시아를 극사실주의로 잘 담아낸 작품이 없다. 날것 그대로 생생하게 억지로 살아가는 힘없는 이들과 그들을 등쳐먹는 악당, 아무 도움 안 되는 공권력, 범죄자가 동경 받는 선악 뒤바뀐 세상이 압축돼 있다. 여기에 홀연히 ‘반(反)영웅’이 나타나 심판을 펼친다. 다닐라는 순박하고 우직하다. 그는 자신과 동료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살인 기술을 배웠고 어떤 원호 대책도 없이 세상에 던져졌다. 그는 자신이 옳다고 믿으면 폭력을 행사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약자를 괴롭히면 응징해야 한다. 단순함이 그의 효율성을 극치에 이르게 한다. 불필요한 폭력, 약자 학대와는 거리가 멀다. 고독한 반영웅에 당대 러시아인들은 현실을 투영하며 열광했다. 1980년대 자유와 개혁을 원하던 청년세대에 빅토르 최가 아이콘이었다면 1990년대 궁핍하고 좌절한 세대에게 다닐라는 그들만의 영웅이었다. 영화 포스터 / DAUM 영화 미국으로 떠난 주인공 복수와 응징이 끝난 후 다닐라는 어두운 ‘도시’의 근원까지 확인해보겠다며 모스크바로 떠난다. 영웅 훈장을 탄 전우와 재회한 그는 친구의 동생이 미국 아이스하키팀에 스카우트돼 스타가 됐지만, 불공정계약으로 착취당한다는 이야길 듣는다. 친구는 미국 마피아 사업가와 동업하던 레드 마피아에게 살해당한다. 이제 다닐라는 러시아의 영혼을 좀먹는 타락한 자본주의의 본산, 미국으로 복수를 위해 친형 빅토르와 비행기에 오른다. <브라트 2>는 너무나 대조적인 두 형제가 각각 미지의 땅 미국에서 벌이는 로드무비로 변모한다. 1편과 2편 사이 3년 동안 러시아는 많은 변화를 겪는다. 무능하고 부패한 옐친에서 KGB(소련의 비밀정보기관) 출신 푸틴으로 정권이 교체되고 강대국 러시아의 부흥을 꿈꾸는 민족주의 정서가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1편의 허무감 대신 2편은 풍자 개그가 지배한다. 미국에서 다닐라는 이상향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미국의 빈부 격차와 인종차별 실상을 체험한다. 조국의 가난 때문에 흩어져 비참한 삶을 살아가는 동포들에게 시선을 돌린다. 그 과정에서 서방의 환상이 무너진 자리에 민족주의와 반미주의의 그림자가 엿보이기 시작한다. 반면에 친형 빅토르는 돈만 있으면 뭐든 할 수 있다며 미국을 예찬한다. 감독은 이를 통해 당대 두 부류의 러시아인을 효과적으로 묘사한다. 다닐라는 미국으로 상징되는 서방에 대한 실망, 말쑥한 차림 이면에 권력을 악용해 부를 쌓는 기득권을 거부하고 소박하고 진실한 삶을 원한다. 그런 다닐라 역을 맡은 배우 세르게이 보드로프 주니어는 시대의 아이콘에 등극하지만 불과 2년 후 촬영사고로 사망하고 시리즈는 이어지지 못한다. 그 덕분에 다닐라는 전설로 온전히 남을 수 있었다. 소박한 러시아인들의 자존심과 향수를 응축한 것 같은 영웅전설의 주인공으로. 당시 러시아인들의 분노가 시간이 흘러 국수주의적 행보로 이어진 현실을 생각하면 차라리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영화로 보는 우크라이나 전쟁
‘엔화의 추락’ 일본경제 깊은 시름(2022. 04. 22 15:11)
2022. 04. 22 15:11 국제
일본 엔화의 추락은 어디까지일까. ‘안전자산’의 대명사였던 엔화의 명성에 금이 가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엔·달러 환율은 두 달째 가파르게 오르면서 20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환율이 오르면 수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통념도 깨졌다. 지난해 7년 만의 최대 규모 무역수지 적자를 낸 데 이어 올해는 42년간 이어온 경상수지 흑자 행진이 막을 내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일본경제의 체질이 허약해진 데서 비롯된 ‘나쁜 엔저’의 공포가 번지고 있다. 100달러와 1만엔짜리 지폐 / 신화연합뉴스 지난 4월 21일 도쿄 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은 129.38엔까지 치솟았다. 2002년 4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엔화 가치는 전날까지 14거래일 연속 하락세를 이어갔다. 엔화 가치 하락 방어를 위해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가 견제구를 던졌지만 통하지 않았다. 구로다 하루히코 총재는 지난 4월 18일 결산행정감시위원회에서 “기본적으로 엔저는 일본경제에 플러스”라면서도 “엔화 약세가 급속하게 진행되면 불확실성을 고조시켜 경제에 마이너스로 작용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스즈키 ??이치 일본 재무상도 같은 자리에서 “지금의 엔저는 좋은 엔저라고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일본경제의 양대 기관 수장이 동시에 엔저 현상의 부정적 측면을 말한 건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달러화 강세 속 엔화만 약세 구로다 총재의 발언으로 엔·달러 환율은 이날 하루 오름세가 주춤했으나 대세를 꺾지는 못했다. 오히려 일본 정부가 완화적 통화정책을 멈추지 않겠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지면서 엔화 가치 하락은 계속되고 있다. 미쓰비시UFJ은행의 이노 텟페이 수석 애널리스트는 니혼게이자이신문에 “경험한 적이 없을 정도로 급격한 엔화 가치 하락이 이어지고 있다. 어디까지 진행될지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엔화는 달러화와 함께 대표적인 안전자산으로 꼽혔다. 전 세계적으로 불확실성이 높은 시기에는 엔화 가치가 대체적으로 강세를 보이는데,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로 지정학적 위험이 높아진 상황에서 오히려 반대 흐름이 나타났다. 달러화가 강세를 지속하는 반면, 엔화는 약세를 보이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과거 엔화 가치가 하락하면 수출품의 가격경쟁력이 오르면서 기업 실적이 개선되는 효과도 있었으나 최근 일본경제에서는 정반대의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원자재 수입가격 부담이 상승하면서 무역적자 폭이 커지고 수입물가가 비싸지면서 가계의 부담만 가중되고 있다. 연일 환율이 치솟는 이유는 미국과 일본의 금리차 때문이다. 올해 들어 미국이 돈 옥죄기에 나섰지만, 일본은 반대 방향의 정책을 펼쳤다. 지난 3월 16일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기준금리를 올린 후에도 일본은행은 금리를 동결했다. 현재 일본의 단기금리는 -0.1%, 장기금리의 기준이 되는 10년물 국채금리는 0%다. 이후 장기 국채를 정해진 이율에 무제한 매수하는 ‘지정가 주문’까지 단행해 금리 상승을 막았다. 일본경제가 코로나19에서 제대로 회복하지 못했다고 판단한데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파장으로 원자재와 에너지 가격이 오른 상황에서 금리 인상이 실질적인 가계소득 감소와 경제위축으로 이어질 걸 우려했기 때문이다. 구로다 총리가 “엔저는 기본적으로 플러스”라고 말한 이유이기도 하다. 환율보다 금리를 지키겠다는 일본 정부의 의지가 확인되면서 엔저 현상이 굳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엔화 가치 하락의 방아쇠를 당긴 건 전쟁이지만 ‘나쁜 엔저’는 결국 아베노믹스의 뒤늦은 청구서라는 진단도 일본에서 상당한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아베 신조 전 총리의 2차 집권기(2012년 12월~2020년 9월) 경제 정책이었던 아베노믹스는 완화적 통화정책, 기동적 재정정책, 규제 완화를 중심축으로 한다. 돈을 풀어내 엔화 가치를 떨어뜨리고 인위적인 인플레이션을 만드는 게 핵심 내용이었다. 잃어버린 20년 동안 오르지 않던 물가를 돈이라도 풀어 끌어올림으로써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계산이었다. 2013년 일본은행 총재로 취임한 구로다 총재가 아베노믹스의 핵심 조타수였다. 정부의 고환율 정책은 2010년대 들어 부진에 빠진 수출기업의 경쟁력을 살린다는 취지도 있었다. 엔고를 견디지 못한 일본 기업들은 2000년대 들어 대대적으로 생산시설을 해외 이전했다. 그 결과 2010년대 이후 무역수지 흑자 규모가 점차 줄어들었고, 해외 저축과 투자의 이자·배당 수익으로 이를 만회하는 경제구조가 고착돼왔다. 하지만 기업이 이미 생산기지를 이전한 이상 엔저로 인한 수출 경쟁력 회복 효과는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통화공급이 늘어나도 비정규직 비중이 높은 구조에서 임금인상으로 이어지지 않았고, 실제로는 시중에 돈이 제대로 돌지 않는 현상이 나타났다. 오히려 저축률이 높고 해외 투자를 활발하게 해왔던 일본 국민이 엔화 가치의 하락으로 가만히 앉은 상태에서 가난해져 버린 셈이 됐다. ‘아베노믹스의 청구서’ ‘값싼 일본(cheap Japan)’이란 표현이 최근 들어 일본 언론에 부쩍 자주 등장하고 있다. 각국의 실질구매력 평가에 이용되는 빅맥지수에서 일본은 3.38달러로 태국(3.84달러), 한국(3.82달러)보다 저렴하다. 내수 부문에서 저물가 저수익 고리가 형성되면서 기업의 모험적 투자도 둔화됐다. 전반적인 일본경제의 체질약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코로나19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 교란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자 원자재 가격만 치솟는 결과가 됐다. 유니클로의 모기업 패스트리테일링의 야나이 타다시 회장도 최근 “엔저가 일본경제에 좋은 부분이 거의 없다”며 자사 제품가격 인상을 시사하기도 했다. 금융인 출신인 다쓰자와 겐이치 교토다치바나대 객원교수는 최근 경제 주간지 ‘프레지던트’에 보낸 기고문에서 이런 문제들을 지적하며 “지금 발생하고 있는 엔화 약세와 물가 상승은 아베노믹스의 청구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밝혔다. 우에노 쓰요시 닛세이기초연구소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도쿄신문에 “일본은행은 임금인상을 수반하는 물가 상승을 목표로 강력한 금융완화 정책을 해왔지만 ‘낙수 효과’가 일어나지 않은 채 완화정책을 질질 끌 수밖에 없게 됐다”고 밝혔다. 미국과 일본의 금리 차가 계속 확대되면 엔화 가치의 하락을 막을 수 없다. 미국 FRB는 인플레이션 방어를 최우선으로 여기며 앞으로도 공격적으로 금리를 인상할 태세다. 일본 정부는 금리 인상에 여전히 부정적이다. 엔저가 지속될 경우 일본 정부가 ‘극약 처방’의 하나로 24년 만에 ‘엔 매수·달러 매도’ 개입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지만 ‘환율조작’으로 간주될 수 있어 고민하고 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전했다. 실질적 임금인상이나 산업의 체질개선 없이 통화정책만으로 경기회복을 꾀했던 ‘아베노믹스’의 다음 정책이 일본경제에 절박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시네프리뷰]모비우스-비상과 추락의 기로에 선 안티히어로(2022. 04. 01 14:19)
2022. 04. 01 14:19 문화/과학
<모비우스>는 안티히어로 영역 안에 있다고 확실히 구분할 수 있는 작품이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말이다. 내면적으로는 최근 선보였던 유사작품들과 비교해 뚜렷한 목적과 단순한 갈등구조만을 보인다는 면에서 되레 과거로 회귀했다고 평가하는 게 옳을 것 같다. 제목 모비우스(Morbius) 제작연도 2021 제작국 미국 상영시간 104분 장르 액션, SF 감독 다니엘 에스피노사 출연 자레드 레토, 맷 스미스, 아드리아 아르조나, 자레드 해리스 개봉 2022년 3월 30일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소니 픽처스 안티히어로(Antihero·반영웅)란 말과 다크 히어로(Dark Hero·흑영웅)란 말은 혼란스럽게 사용되기도 한다. 둘 다 인물의 가치관이나 행동방식이 절대적 선을 추구하는 전통적인 영웅의 모습과 다르다는 점에서는 뚜렷이 구분되지만,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거나, 애초 욕망 자체가 이기적인 사욕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는 혼란스럽다. 단순한 구조로만 반복돼오던 히어로물의 이야기가 언제부턴가 복잡하게 진화하고 인물들의 내면 역시 다층적 심리와 복합적 갈등으로 팽창되면서 이러한 양태는 더욱 빈번히 발견되고 있다. 두 단어를 엄밀히 구분하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액면 그대로 반(反)과 흑(黑)이라는 두 단어가 지닌 뜻만 좇으면 된다. ‘영웅으로 보기엔 혼란한 인물’과 ‘혼란한 인물로 보이는 영웅’으로 정의할 수도 있다. 후자는 의심의 여지 없이 전통적인 영웅의 궤에 속한다. <모비우스>는 안티히어로 영역 안에 있다고 확실히 구분할 수 있는 작품이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말이다. 내면적으로는 최근 선보였던 유사작품들과 비교해 뚜렷한 목적과 단순한 갈등구조만을 보인다는 면에서 되레 과거로 회귀했다고 평가하는 게 옳을 것 같다. 심지어 영화가 끝나고 추가된 쿠키 영상을 통해 인물들의 처지를 딱하고 어렵게 만들기까지 한다. 범상한 감독의 비범한 캐릭터 영화 희귀 혈액병을 앓고 있는 천재 생화학자 마이클 모비우스(자레드 레토 분) 박사는 자신과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친구 마일로(맷 스미스 분)를 위해 신약 개발에 몰두한다. 오랜 연구 끝에 흡혈박쥐의 혈액을 이용한 치료제 개발에 성공한 그는 동료이자 연인 마르틴(아드리아 아르조나 분)과 함께 자신의 몸에 임상실험을 감행한다. 다행히 병은 치유되지만 뜻밖의 부작용으로 그는 수시로 흉측한 외모로 돌변해 걷잡을 수 없는 폭력성을 분출하게 된다. 더 큰 문제는 주기적으로 인간의 피를 마시지 못하면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모비우스 박사가 처음 세상에 소개된 것은 1971년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만화책에서였다. 스파이더맨에 등장하는 악당들의 공통적 특징인 자신의 단점을 과학의 힘으로 극복하려다가 결국 선을 넘어버려 악인이 되고 마는 전통적 형태를 그대로 따르는 인물이다. 스웨덴 출신의 다니엘 에스피노사 감독은 “대부분의 위대한 히어로는 안티히어로다. 양쪽 편에 발을 하나씩 디디고 있는 인물들은 흥미롭다”며 연출의 변을 밝혔다. 재미있는 점은 <이지 머니>, <세이프 하우스>, <차일드 44>, <라이프> 같은 그의 이전 작품들 역시 딱히 걸작이나 졸작이라 규정할 수 없는 미묘한 지점의 작품들로 일관한다는 사실이다.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이야기에 집중시키는 재능이 탁월한 감독임은 분명하다. 불안한 명품배우의 새로운 가능성 영화 <모비우스>의 영화화 소식이 전해지며 가장 큰 기대를 모은 요소는 주연을 맡은 배우 자레드 레토였다. 배우와 동시에 유명밴드인 ‘30 세컨즈 투 마스(Thirty Seconds to Mars)’의 보컬이기도 한 그는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연기파로 구분되지만, 역할에 대한 과잉몰입과 촬영장 주변에서의 기행으로 구설수 또한 끊이지 않는 인물이기도 하다. 특히 최근 개봉한 리들리 스콧 감독의 <하우스 오브 구찌>에서는 파올로 구찌 역을 맡아 바탕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의 특수 분장으로 ‘눈에 띄는’(!) 연기를 해내 최악의 영화에 수여되는 ‘골든 라즈베리 시상식’의 남우조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모비우스>에서 그의 모습은 비교적 평범하고 연기도 안정적이어서 팬들에게는 반가운 선물이 될 것 같다. 하지만 상영시간의 상당 부분이 특수 분장과 CG로 채워진 작품임을 고려할 때 배우의 연기가 온전히 차지할 수 있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협소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은 아이러니다. 결국 이 작품은 관객들이 주인공 모비우스란 인물의 고뇌를 깊이 공감하거나 이를 통해 색다른 매력을 느끼게 만드는 데는 한계를 보인다. 그나마 가장 큰 의미를 찾는다면 적어도 다음에 만들어질 후속작 또는 관련 영화에 활용할 수 있는 캐릭터 한명 이상을 미리 준비했다는 제작사 입장에서의 자기 위안 정도일 것 같다. 다종교배로 탄생한 혼란스러운 안티히어로 소니 픽처스 할리우드를 장악한 마블 코믹스의 대세에 편승해 그중에서도 알짜배기라 할 수 있는 <스파이더맨>의 영화화 판권을 소유하고 있는 소니 픽처스로서는 이와 관련해 최대한 많은 수익을 창출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체 제작한 영화의 성공과 몰락, 한계를 경험한 후 결국 <스파이더맨>의 본가라 할 수 있는 마블과의 협업을 통해 간신히 심폐소생은 성공했지만, 어떻게든 지분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도를 병행해야만 했다. 그렇게 악당들에게 눈을 돌린 소니는 <베놈>의 영화화를 통해 어느 정도 가능성을 확인했고, 내친김에 ‘소니 스파이더맨 유니버스(SSU: Sony’s Spider-Man Universe)’라는 원대한 계획까지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연장선상에서 야심차게 제작한 <모비우스>는 안타깝게도 급조한 흔적이 역력하다. 애초 흡혈귀라는 캐릭터가 지닌 한계적 정체성으로 인해 통념적 형태를 벗어나기 힘들었겠지만, 이미 무수히 넘쳐나는 유사변종들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는 점은 치명적이다. 흡혈박쥐가 중요한 소재이긴 하지만 빈번하게 등장하는 박쥐 떼의 모습은 족보가 다르고 연관도 없는 <배트맨>을 무시로 떠올리게 하고, 재미의 상당 부분을 책임지고 있는 액션과 비행장면 역시 기존의 <스파이더맨>을 의식한 듯 보인다. 제작현장과 관련해 이런저런 소문이 떠돌며 작품에 대해 걱정하는 시선이 없지 않았는데 완성 후에도 코로나19로 개봉이 미뤄지는 등 김샌 분위기가 더해지면서 우려의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소니는 이미 내년 공개를 목표로 한 <베놈 3>를 비롯해 SSU에 속한 다수의 작품제작 계획을 발표했지만, 이 작품의 성패로 추진의 향방이 가늠될 것으로 보인다.
시네프리뷰
[시네프리뷰]문폴-지구로 추락하는 달의 비밀(2022. 03. 18 14:03)
2022. 03. 18 14:03 문화/과학
영화 초반에 등장하는 사고 장면부터 미심쩍은 의문을 던지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좀처럼 납득하기 힘든 가설을 떡하니 던져놓는다. ‘차마 그건 아니겠지’란 생각에서 ‘하기야 그거 말곤 없겠군’이라고 스스로 타협해야만 하는 순간을 관객들은 강요받게 될 것이다. 제목 문폴(Moonfall) 제작연도 2022 제작국 미국, 영국, 중국 상영시간 130분 장르 SF, 모험 감독 롤랜드 에머리히 출연 할리 베리, 패트릭 윌슨, 존 브래들리, 마이클 페나, 도널드 서덜랜드 개봉 2022년 3월 16일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누리픽쳐스 “맙소사!” 영화의 설정을 듣고 부지불식간 튀어나온 말이다. 이제껏 별의별 재난영화를 봐왔지만 이젠 달이 지구로 내리꽂혀 충돌한단다. 감독의 이름을 듣고 나니 고개가 끄떡여진다. 롤랜드 에머리히. 그라면 충분히 가능한 영화다. 어느 날 달의 궤도가 틀어져 지구를 향해 다가오고 있다는 끔찍한 결과가 보고된다. 앞으로 충돌까지 남은 시간은 30일. 중력이 무너지고 자기장이 뒤틀리는 바람에 끔찍한 재난이 속출하고 자포자기한 사람들은 하루가 다르게 커지는 달을 올려다볼 뿐이다. NASA 연구원 조 파울로(할리 베리 분)는 어떻게든 상황을 수습하려고 전면에 나서 안간힘을 쓴다. 10년 전 우주비행을 함께했지만 불명예 퇴역한 후 비루한 생활을 하는 동료 브라이언(패트릭 윌슨 분), 우주 덕후 K.C.(존 브래들리 분)와 의기투합한 조는 박물관이 전시 중이던 우주왕복선을 수선해 달을 향해 날아오른다. 1955년 독일에서 태어난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은 ‘재난영화의 왕’으로 통한다. 상업적 감각과 재능이 남달랐던 그는 일찌감치 할리우드에 연착륙했다. <유니버설 솔져>(1992), <스타게이트>(1994) 등 국내에도 친숙한 초기 흥행작이 있지만 이름을 각인시킨 작품은 역시 <인디펜던스 데이>(1996)다. 도시를 뒤덮을 정도로 거대한 외계 우주선과 풍비박산 나는 백악관 장면을 담은 예고편만으로도 관객들은 열광했고 제작비의 10배가 넘는 티켓값을 모아줬다. 방황 끝에 돌아온 ‘재난영화의 왕’ 이후 <고질라>(1998), <투모로우>(2004), <2012>(2013) 등 역시 초자연적 재난 상황이 강렬한 인상을 남겼으니 그를 재난영화의 왕으로 인정할 만하다. 조금만 들여다보면 범상한 작품들도 적지 않았다. 어쩌면 낙인처럼 각인된 재난영화 감독이란 수식을 지워내려는 몸부림이었는지도 모른다. <2012> 발표 직후엔 더 이상 재난영화는 찍지 않겠다고 선언까지 했으니 말이다. 미국의 독립전쟁을 배경으로 한 <패트리어트: 늪 속의 여우>(2000), 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정체와 진실을 가정하는 <위대한 비밀>(2011) 같은 역사극도 연출했다. 성소수자 인권운동의 전환점이 된 스톤월 항쟁을 극화한 <스톤월>(2015), 미드웨이 해전을 다룬 <미드웨이>(2019) 등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스크린 위에 재현하기도 했다. 결심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자신의 가장 큰 성공작인 <인디펜던스 데이>(2016) 속편에 이어 드디어 지구와 달이 정면충돌하는 영화까지 선보이게 됐다. <문폴>은 그동안 에머리히 감독의 재난영화를 호의적으로 즐긴 관객들에게도 그리 좋은 평가를 받긴 힘들 것 같다. 일단 소위 자연재해를 빌미로 구현하던 대규모 군중 신을 상당히 축소했다. 그나마 체면상 제공하는 홍수와 해일 신 등도 인공미가 가득한 CG에만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어 과거 아날로그 재난영화에서 느낄 수 있던 놀라움은 증발하고 말았다. 제작비 절약과 더불어 많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중국의 기술력에 지나치게 의존한 탓이 아닐까 의심스럽다. 관객에게 익숙하고 감독에겐 친숙한 가장 큰 문제는 달이 지구로 추락하는 ‘이유’와 이를 해결하는 ‘방법’이다. 작품을 즐기는 데 중요한 요소이므로 직접적인 언급은 피하겠다. 영화 초반에 등장하는 사고 장면부터 미심쩍은 의문을 던지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좀처럼 납득하기 힘든 가설을 떡하니 던져놓는다. 허구의 상상력에 한계가 있겠느냐마는 이게 어느 정도 그럴듯해야 할 것 아닌가. ‘차마 그건 아니겠지’란 생각에서 ‘하기야 그거 말곤 없겠군’이라고 스스로 타협해야만 하는 순간을 관객들은 강요받게 될 것이다. 이런 난장 사이에서 출중한 배우들의 존재감이나 연기 평가는 끼어들 틈조차 없다. 에머리히 감독은 크리스토퍼 나이트가 발간한 책 <누가 달을 만들었는가>(2005)에서 대담하다 못해 극악무도한 아이디어를 시작했다는데 각본의 완성까지 5년이란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책에서 주장하는 강력한 추론은 가뿐히 무시한 채 관객들에게는 익숙하고 자신에게 친숙한 소재 쪽으로 방향을 튼다. 애초 나이트의 과학적인(?) 주장 자체가 평범한 사람들을 설득하기에 한계가 있지만, 그렇다고 넘쳐나는 달 착륙 관련 음모이론에 풍덩 뛰어든 각본도 명석한 선택으로 보이진 않는다. <문폴> 전에 <문 크래쉬>가 있었다 imdb.com 성공 뒤에는 아류가 뒤따르게 마련이다. 영화계도 당연히 오래전부터 이런 경향을 보였다. 흔히 언급하는 패러디, 오마주, 레퍼런스 등의 단어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 유사한 장르의 작품을 양산하는 점잖은 경우도 있지만 때론 원작과 아류를 혼동할 정도로 대놓고 뻔뻔한 사례들도 적지 않다. 대놓고 만드는 아류작품들을 지칭하는 ‘목버스터’란 단어가 있을 정도다. ‘가짜, 속이다’라는 뜻의 목(mock)과 흥행대작을 뜻하는 블록버스터(blockbuster)의 합성어다. 현대적 목버스터의 본격적 등장 현상은 미국영화사 어사일럼(The Asylum)의 역사라 단정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원래는 배급사업으로 출발한 어사일럼은 2000년대 들어서며 본격적인 아류영화 제작사로 거듭난다. <탑 거너>, <트랜스모퍼>, <애틀랜틱 림>, <시니스터 스쿼드> 등 제목만 들어도 원래 어떤 영화를 염두에 뒀는지 금세 눈치챌 수 있을 정도의 작품들이다. 하지만 이들에게 톡톡히 효자 노릇을 한 작품들은 <메가 샤크> 시리즈나 6편이나 속편을 만든 <샤크네이도> 같은, 주로 상어가 등장하는 ‘코믹 공포물’이다. 최근엔 어사일럼의 성공에 고무된 후발 영화사 뉴 호라이즌 픽쳐스나 시네텔 필름이 목버스터계의 패권을 넘보고 있기도 하다. 목버스터의 가장 큰 특징은 오리지널보다 먼저 관객들을 찾아간다는 점이다. 당연히 에머리히 감독의 <문폴> 개봉에 사흘 앞서 어사일럼이 <문 크래쉬>를 내놓았다. 달에 문제가 발생해 지구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다는 설정이야 당연하지만, 공교롭게도 전자기 펄스(electromagnetic pulse, EMP)를 언급하는, 문제의 결정적 해법까지 유사하다.
시네프리뷰
[언더그라운드 넷]섬뜩한 엘리베이터 13층 추락 예지몽?(2020. 10. 12 14:11)
2020. 10. 12 14:11 사회
“이거 보고 소름 돋았어요.” 추석 연휴 화제를 모은 ‘섬뜩한 네이버 지식인 예지몽’이라는 글에 대한 반응이다. 글의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자신을 고3이라고 밝힌 누리꾼이 지식인에 꿈풀이를 부탁했다. 꿈 내용은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데 갑자기 멈추고 “13층입니다. 죄송합니다”라는 안내방송이 나오더니 추락하더라는 것이다. 네이버 지식인 누리꾼이 “소름 돋는다”는 반응을 보인 건 글에 달린 해몽 답변이 아니다. 20여일 뒤에 글 작성자가 “반쪽짜리 예지몽이었나 보다”며 스스로 남긴 답글이다. 글을 올린 1주일 뒤, 엘리베이터의 전원이 잠시 내려갔고, 다시 그 뒤에 전원이 완전히 나가는 사고가 있었다는 것이다. “사진을 올리고 나니 층수도 이상하네요. 상당히 무서웠습니다.” 문제의 사진을 보자. 누리꾼이 ‘소름 돋는다’라고 한 부분은 바로 표시된 층수에 있다. ↑E1 정도로 보이는 층수 표시를 뒤집어보면 2주 전쯤에 꿨다는 꿈속의 ‘13↓’이 되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궁금하다. 표시된 E1의 뜻은 무엇일까. 누리꾼 댓글을 보면 “에러가 한번 났다는 표시 같다”는 주장이 있긴 하다. “아닙니다. 엘리베이터에 올라가는 층 나오는 표시기를 인디게이터라고 하는데, 거기에 이를테면 ‘고장 났다’와 같은 제어코드가 나오지는 않아요. 적어도 우리 회사제품은 그렇습니다.” 10월 6일 통화한 엘리베이터 제조사 관계자의 말이다. E1이라고 찍힌 것은 자신도 처음 봤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가능성은 두 가지다. “한국엔 없는데, 일부 동남아 국가에서는 스페셜 층을 E로 표기하기도 합니다. 둘째는 흔히 지하 1층을 B1으로 표기하는데 도트가 수명을 다해 B의 일부분이 보이지 않는 경우죠.” 노파심에 ‘13층에서 1층으로 추락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물었다. “승강기는 엘리베이터에 표시된 하중의 7배 이상 인장강도를 가진 강선에 매달아 운영합니다. 게다가 누가 인위적으로 로프를 끊더라도 승강기가 규정 속도 이상으로 하강하면 자동으로 세이프티 모드로 들어가 물리적으로 브레이크가 걸립니다.” 실제론 승강기가 13층에서 바닥까지 추락할 일은 없다고 하니 꿈 풀이 문의 글을 올린 고3 학생도 그냥 흔한 개꿈 정도로 생각하고 넘어가면 될 듯싶다.
언더그라운드 넷
항공계 빅딜, 결국은 추락하나(2020. 08. 07 15:25)
2020. 08. 07 15:25 경제
ㆍ제주항공의 이스타항공 인수 포기…현산과 아시아나항공 협상도 물 건너가 항공업계 ‘빅딜’이 ‘노딜’로 가는 모양새다. 코로나19의 확산과 장기화 탓이다. 항공사 간 인수·합병으로 주목을 받았던 제주항공의 이스타항공 인수는 결국 없던 일이 됐다. 제주항공은 지난 7월 23일 이스타항공의 경영권 인수를 위한 주식매매계약을 해제했다고 공시했다. 지난해 12월 18일 주식매매계약에 대한 양해각서(MOU)를 맺은 지 7개월 만이다. 제주항공과 이스타항공은 코로나19 여파로 항공업계가 불황에 빠지면서 그간 인수·합병 계약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어왔다. 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 경영권 인수를 위한 주식매매계약(SPA)을 해제했다고 공시한 7월 23일 오전 서울 강서구 김포공항 국내선 이스타항공 창구가 썰렁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권도현 기자 HDC현대산업개발(이하 ‘현산’)과 아시아나항공의 상황도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다. 현산이 지난 7월 24일 아시아나에 대한 12주간 재실사를 요구한 이후 갈등이 커지고 있다. 현산은 아시아나의 당기순손실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는 점 등을 들고 있지만 채권단은 현산이 재실사 무산을 빌미로 인수에서 발을 빼려는 것으로 추측한다. 최대현 산업은행 기업금융 부행장은 지난 8월 3일 “이미 7주간의 실사를 거쳤고 6개월 이상 인수 작업을 했는데도 재실사를 요구한 것은 통상적인 인수·합병 절차를 넘어서는 과도한 요구”라며 재실사를 거부했다. 산은은 아시아나 주채권은행이다. 현산은 8월 6일 인수 의사가 여전하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항공업계에서는 사실상 ‘노딜’로 보는 분위기다. 한 항공업계 관계자는 “다들 현산-아시아나의 딜은 물 건너갔다고 말한다. 이제 계약금 가지고 싸우는 일만 남은 것 같다”고 말했다. 아시아나 관계자 역시 “확언하기는 어렵지만 그런 분위기가 있다”고 말했다. 산은은 현산에 8월 11일까지 인수 계약을 마무리 지으라고 최후통첩을 날린 상황이다. 코로나19라는 돌발 악재 빅딜이 흔들리는 원인으로는 코로나19가 첫 번째로 꼽힌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안 그래도 아시아나는 재무구조가 좋지 않았는데, 코로나19 때문에 매출도 증가하지 않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황 교수는 매각 초기부터 분리매각도 고민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황 교수는 “산은은 이제 와서 나중에 분리매각을 할 수 있다고 하는데, 애초에 분리매각을 고려했다면 공적자금을 들이지 않고 아시아나를 매력적인 매물로 만들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간 산은은 통매각이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매각의 신속성, 항공 관련 시너지 효과 등을 위해서다. 이번 딜에는 아시아나항공을 비롯해 자회사인 에어서울, 에어부산, 아시아나IDT, 아시아나개발, 아시아나세이버, 아시아나에어포트 등 6개 회사가 포함됐다. 이스타항공의 경영권 인수 불발 역시 코로나19가 결정적이었다. 이스타항공 고위 임원은 “코로나19에 더해 갈등 기간이 길어지면서 피해가 커졌다. 제주항공이 차라리 4~5월에 인수를 포기했다면 피해가 이렇게 커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5월에 가슴까지 물이 차 있었다면 (포기를 공식화한) 7월에는 물이 목까지 차올라 있는 상황이었다”고 덧붙였다. 제주항공도 인수 포기와 관련해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의지와 중재 노력에도 현재 상황에서 인수를 강행하기에는 제주항공이 짊어져야 할 불확실성이 너무 크다고 판단했고 주주를 포함한 이해관계자들의 피해에 대한 우려도 큰 것이 사실”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아시아나는 산업은행 관리 가능성 커져 아시아나는 현산과의 매각협상이 무각될 경우, 산은 관리하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코로나19 상황에서 항공업계에 인수자가 나타날 가능성은 희박하다. 황 교수는 “가격을 엄청나게 낮춘다면 모를까 현산이 제시한 가격으로 다시 아시아나를 인수하려는 기업은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교수는 “시장 논리대로라면 매각협상 무산 시 청산이 맞지만 아시아나 장거리 노선이 해외 항공사 수중에 떨어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어떻게든 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아시아나가 업계 2위 항공사라는 상징성도 크다. 산은 관리하에 들어가는 것과 관련해 아시아나 내부에서는 불확실성이 줄어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고 전망하는 분위기도 있다. 협상이 불투명한 것보다 산은의 지원을 받는 게 낫다는 것이다. 아시아나 관계자는 “매각을 하든 안 하든 빨리 결정이 났으면 하는 분위기가 있다”고 전했다. 이스타항공은 현재 새로운 인수 희망자와 협상을 진행 중이다. 이스타항공 고위 임원은 “다섯 곳의 인수 희망자가 있었다. 그중 한 곳은 신뢰성이 없다고 판단해 지금은 네 곳과 이야기를 하고 있다”며 “지난번과 같은 상황이 반복돼서는 안 되기에 신뢰성을 가장 우선으로 보고 있다. 아직은 협상 초기 단계”라고 말했다. 문제는 체불임금을 포함한 유류비와 리스료 등 1700억원에 달하는 미지급금이다. 이스타항공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회생 절차를 밟아 채무 일부를 탕감받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는 이스타항공이나 인수자 모두 ‘윈윈’하는 방식이다. 이스타항공이 인수자 없이 법정관리를 신청할 경우, 회생이 아닌 파산 결정이 날 가능성이 높다. 인수자 역시 채무 조정 없이 이스타항공을 떠안기는 어렵다. 이스타항공은 9월 초까지는 인수 협상 윤곽을 잡겠다는 계획이다. 두 항공사 모두 최악의 시나리오도 배제할 수 없다. 아시아나는 산은 관리하에서 ‘세금 먹는 하마’가 될 수도 있다. 과거 대우조선해양 사례가 대표적이다. 대우조선해양은 한화그룹이 인수를 추진하던 중 부실이 드러나 거래가 성사되지 못했다. 이후 19년간 산업은행 자회사로 있었고, 이 기간에 10조원이 넘는 공적자금이 투입됐다. 한 항공업계 관계자는 “대우조선해양처럼 20년 가까이 가지는 않겠지만 단기간에 끝날 것 같지는 않다. 새로운 인수자가 나올 때까지 공적자금이 투입되는 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8월 3일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아시아나항공 인수 문제와 관련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연합뉴스 최악의 시나리오 배제 못 해 이스타항공에 최악의 시나리오는 인수자 없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 경우 법원이 파산선고를 내릴 가능성이 높다. 박이삼 이스타항공 노동조합 위원장은 “국토교통부에서 법정관리 이야기를 하는데, 그건 사실상 파산하라는 이야기다. 너무 무책임하다”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최악의 상황을 면하기 위해서는 국토부가 항공운항증명(AOC)부터 살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스타항공은 지난 5월 이후 AOC가 중단된 상태라 국내선도 운항하지 못하고 있다. AOC 정상화에는 200억원에서 300억원의 비용이 드는데, 이를 삭감하거나 면제해달라는 것이다. 항공업계는 이런 상황이 두 항공사에서 끝나지 않을까봐 우려한다. 특히 LCC 시장은 포화상태에 이르렀다는 지적이 이전부터 나왔다. LCC의 주요 고객인 내국인 출국자 수는 2018년에는 전년 대비 10% 증가했으나 지난해 상반기에는 전년 동기 대비 5% 증가에 그쳤다. 일본상품 불매운동과 홍콩의 불안정한 상황 등으로 상승세가 꺾인 것이다. LCC의 한 관계자는 “LCC 신규면허 발급과 관련해 기존 업체를 보호하는 것 아니냐는 여론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 그럼에도 국토부가 신규 면허를 발급해서는 안 됐다고 본다. 지금 상황에서 국토부의 책임론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이스타항공의 고위 임원은 “이스타항공은 상장이 안 되어 있어서 위기가 빨리 왔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지속되면 살아남을 수 있는 LCC는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황 교수는 “항공업이 변화를 모색하는 방법밖에 없다.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도 화물운송을 더 늘리거나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원섭 공공운수노조 조직국장은 “항공업계의 연쇄적인 파산을 막기 위해서라도, 평소의 회생 기준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특수한 상황임을 감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저비용항공사 직원들 무급휴직 위기 국내 저비용항공사(LCC)들이 잇따라 직원들의 무급휴직 전환에 나서고 있다. 최근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8월 말로 끝나는 LCC에 대한 고용유지지원금 지급 기한 연장 합의안을 도출했지만 행정 절차가 남아 있다. 연장 적용 시기가 늦어질 경우에는 무급휴직 전환이 불가피하다. 지난 7월 28일 경사노위는 노사정 협약에 특별고용지원업종에 대한 고용유지지원금 ‘지급 기간 60일 연장’ 등의 내용을 포함시켰다. 하지만 행정 절차가 남아 있어 당장 효과를 발휘하긴 어려워 보인다. 일부 항공사는 발 빠르게 무급휴직을 준비하고 있다. 제주항공은 지난 7월 31일 임직원들에게 9월 무급휴직 운영 계획안을 전달하고 무급휴직 신청을 받고 있다. 티웨이항공도 지난 7월 29일까지 전 직원을 대상으로 무급휴직 전환 신청을 받았고, 7월 31일 무급휴직 고용유지지원금 신청서를 접수했다. 다른 항공사들도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현재 대부분 항공사 직원들은 ‘유급휴직’으로 쉬고 있다. 특별고용업으로 지정돼 휴직급여(평균임금 70%)의 최대 90%까지 고용유지지원금을 받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대부분의 LCC가 지난 2월부터 고용유지지원금을 받고 있다. 고용유지지원금 지급 기한은 180일로, 당초 예정대로라면 8월 말에 끝난다. 문제는 고용유지지원금을 60일간 추가로 받는다고 해도 무급휴직을 유예할 뿐이지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는 점이다. 정부가 코로나19 사태가 끝날 때까지 지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한 LCC 조종사는 “코로나19 직후, 하청업체 직원들부터 무급휴직과 해고에 들어갔다. 고용유지지원금이 중단되면 똑같은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순서의 문제”라고 말했다. 국내선 운항이 서서히 증가하고 있지만 출혈 경쟁 때문에 매출 회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도 직원들을 힘들게 한다. 8월 5일 국토교통부 항공정보포털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7월 국내선 여객 수는 494만6467명으로 잠정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90.3% 수준이다. 코로나19 이후 월 기준 여객 수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90% 수준을 회복한 건 7월이 처음이다. 한 LCC 관계자는 “제 살 깎아 먹기라는 걸 알면서도 울며 겨자 먹기로 운항하고 있다. 그거 말고는 답이 없는 상황이니까”라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진에어 관계자는 “국내선을 열심히 띄우는 동시에 최대한 비용을 절감하려고 노력을 많이 하는데 쉽지 않다. 지금으로서는 손실을 최소화해 어려운 시간을 버티는 수밖에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LCC 중에서도 제주항공과의 인수합병이 무산된 이스타항공 직원들의 상황이 가장 안 좋다. 이들은 무급휴직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이다. 회사가 파산할 경우 직원들은 최종 3개월분의 임금, 3년분의 퇴직금을 체당금으로 받을 수 있는데, 무급휴직을 하면 최종 3개월분의 임금이 0원이 된다. 이스타항공 노동조합 관계자에 따르면 기존 1600명 중 남은 직원은 1130명 정도다. 정원섭 공공운수노동조합 조직국장은 “지금 LCC들이 매달 몇백억원씩 지원을 받는데 지원금이 끊기면 고용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대규모 실업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 국장은 이어 “항공업계 종사자들은 그 분야의 특수직군이라 다른 직종으로 이동도 쉽지 않다”며 “그렇다고 정부가 계속 지원할 수는 없다. 추이를 보고 대책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표지 이야기]여행·호텔·카지노업도 ‘동반 추락(2020. 04. 24 15:43)
2020. 04. 24 15:43 경제
ㆍ매출 급감으로 제한적 운영… 근로시간·임금 조정에 권고사직도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선언 이후 공항산업 생태계가 붕괴위기에 직면했다. 인천국제공항의 여객수요가 전년 대비 1~2% 수준으로 급감하면서 유관산업이라 할 관광업도 심각한 피해를 입고 있다. 지난 4월 21일 찾은 인천공항 1층 도착장의 입구 쪽에 늘어서 있는 관광·렌터카 영업점은 절반 정도의 자리에만 사람이 앉아 일하고 있었다. 인천공항 내 여행사에 근무하는 한 직원은 “4월부터 유급휴직, 5월부터 무급휴직을 한다”면서 “사측은 무급휴직보다 권고사직을 권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4월 4일 서울 송파구 탄천주차장이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영업을 나가지 못한 관광버스들로 가득 차 있다. / 연합뉴스 공항 인근의 일부 호텔은 무증상 입국자의 격리장소로 쓰이면서 기피시설 취급을 받았다. ‘큰손’인 일본·중국 손님들이 뚝 끊기자 카지노 업계도 비상이다. 한국경제가 5월부터 회복세에 들어가도 항공·관광 분야는 올해 4분기나 내년이 되어야 정상화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각자도생의 혼란 속에서 파견·용역 같은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가장 먼저 실업자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사측의 부당행위도 늘고 있다. “해직은 사형선고라는 것 처음 공감” 인천 영종도의 파라다이스시티 호텔 수송 담당 하청업체인 서빅의 직원 ㄱ씨는 지난 3월 12일 해고통지를 받았다. 원청인 파라다이스시티와 도급계약 만료일인 4월 30일 이후로 근로계약을 종료하겠다는 것이었다. 이 회사는 직원이 1050명인 LIG손자회사다. ㄱ씨를 비롯한 해고자들은 카지노를 찾는 외국인 VIP 고객들의 수송 업무를 맡았다. 롤스로이스·벤츠·제네시스 G90 같은 고급 세단으로 손님을 공항에서 픽업하거나 서울 명동·이태원이나 경기·강원도 등의 관광지나 골프장까지 태워다준 후 대기하다 카지노로 데려오는 일을 했다. 손님은 주로 중국인이나 일본인, 외국 국적을 지닌 한국인이었다. 연 단위로 연장되는 하청업체의 계약직이긴 하지만 이들은 파라다이스시티 유니폼을 입고, 원청 직원들의 근무 지시에 따라 여기저기로 이동했다. 대부분 직원은 파라다이스시티 카지노가 오픈한 이후 3년간, 다른 사업장을 포함해 길게는 10년을 이곳에서 일했다. 그러나 직장에서 내쳐지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해고통지 전날 저녁 직원들이 근무일자 등을 공지받는 밴드방에 ‘야근자를 포함해 전원이 오전 9시까지 수송부 대기실에 집합하라’는 긴급 안내문이 떴다. ㄱ씨를 비롯한 직원들은 회사가 어렵다는 말에 무급휴직에 동의한 상태였다. 이들은 사측의 호출이 무급휴직 기간을 알려주기 위해서라고 생각했지만 뜻밖에도 해고통지를 받아야 했다. 처음 회사가 제안한 안은 3월 이후 11일간 일한 월급에 한 달치 월급을 위로금으로 주는 것이었다. 회사 관리자는 “개별 질문은 받지 않겠다”며 군사작전을 하듯 통보한 후 떠났다. 전체 39명의 직원에게 해고통지를 한 지 두 시간이 지나 회사는 14명의 직원에게 개별 연락해 “해고대상자가 아니니 출근하라”고 통지했다. 이미 자신이 해고대상자가 아니라는 걸을 알고 있는 일부 직원은 애초에 집합시간에 오지도 않았다. 일부는 해고 당일 동료들과 점심을 함께하는 자리에서 회사 호출을 받고 머쓱해하며 자리를 떴다. 또 다른 일부 직원은 회사 처우에 반발하다 뒤늦게 복귀했는데 괘씸죄로 ‘대기발령’ 처분을 받았다. ㄱ씨는 “같이 일한 직원들을 적처럼 갈라놓는 현실이 서글프다”며 “해고의 기준을 공개하지 않고 서빅의 현장소장이나 원청의 현장 대리인과 친분이 있는 사람들 위주로 남겼다”고 말했다. 해고자들이 원청 앞에서 시위를 하고 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하자 사측은 해고를 철회했지만 위로금이 퇴직금으로 이름만 바뀌었을 뿐, 4월 30일 계약을 종료하겠다는 방침은 그대로였다. ㄱ씨를 비롯해 해고 통보를 받은 직원들은 3월 12일부터 4월 30일까지 무급휴직 동안 월급의 70%를 받고 있다. 200만원이 조금 넘는 수준이다. ㄱ씨는 “총각들은 그나마 버티는데 아이가 있거나 부모를 모시고 병원비를 내야 하는 친구들은 힘들어한다”며 “4월 30일이 사형선고를 기다리는 시간 같다”고 말했다. ㄱ씨는 “파라다이스시티는 2017년 4월 개장 후 매년 매출 기록을 경신했다”면서 “원청에서 인원 감축을 지시했다고 들었는데 불과 한두 달 매출이 감소했다고 바로 하청업체 직원을 정리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카지노 업계도 고용유지지원금을” 지난 3월 24일 정부의 고강도 물리적 거리 두기 조치에 따라 4주간 카지노 휴업에 들어간 파라다이스시티는 지난 4월 20일 카지노 운영을 재개했다. 그러나 개장 이틀이 지난 시점에 이곳을 찾았을 때 손님들은 드문드문 보였다. 파라다이스시티 관계자는 “지금 카지노에 오는 분들은 국내에 체류하는 외국인 신분을 가진 분들인데 사실 매출은 거의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라며 “다만 직원 절반이 유급휴직을 간 상황에서 매출을 조금이라도 방어하기 위해 사전에 방역 조치를 한 후 운영에 들어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서빅 측의 고용계약 해지에 대해서는 “파견업체의 고용관계를 직접 지시할 수 없는 상황이고, 인원 감축을 요구한 적도 없다”면서 “다만 분명 수요가 줄어서 일정 부분 조정이 필요한 상황은 불가피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이곳 호텔의 투숙률은 평일 10%, 휴일 20%대로 뚝 떨어졌지만 호텔은 계속 제한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카지노의 경우 큰손이라고 할 수 있는 일본·중국 관광객이 끊기면서 언제 회복을 기대할 수 있을지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전체 1500여 명의 직원 중 카지노 부문에서 일하는 직원은 약 800명이다. 호텔 직군의 경우 고용유지지원금 지원대상이 되지만 카지노 직군은 사행산업이라는 인식이 강해 지원대상에서 제외되어 있다. 이곳 관계자는 “관광·여행업계가 정말 어렵지만 정유나 항공 같은 기간산업군에 해당하지 않고 중소기업도, 대기업도 아닌 우리 같은 중견기업은 늘 정책의 후순위에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매출의 10% 정도를 관광진흥기금으로 내고 있는데 어려울 때는 여유를 가질 수 있도록 감면을 해주길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은 지난 3월 코로나19로 인한 한국 관광산업의 피해 규모가 최대 3조7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늘길이 막히고 불확실성이 커지자 관광업계는 근로시간과 임금을 일시적으로 조정하고 있다. 하나투어는 최소 인력을 제외한 전 직원이 4월 한 달 동안 급여의 70%만 받고 유급휴직에 들어갔다. 인터파크 투어의 경우 4월 한 달간 해외사업부는 급여의 70%를 받는 유급휴직, 다른 부서도 주 3~4일 단축 근무를 했다. 자유투어는 4월부터 3개월간 휴업에 들어갔다. 한 온라인 여행상품 중개사이트 관계자는 “트립닷컴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 2월 말부터 4월 10일까지 ‘상품 판매를 중단해달라’고 요청한 국내 호텔이 150여 곳에 달했다”면서 “코로나19가 끝나지 않았고, 정부도 물리적 거리 두기를 5월 5일까지 연장하면서 단체여행 자제를 당부한 만큼 여행 사업회복을 논하기에는 시기상조인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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