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디경향(총 2 건 검색)
- [화보] 여전히 아름다운 손예진의 출국길
- 2023. 07. 05 10:15 패션
- 손예진은 4일 메종 발렌티노(VALENTINO)의 컬렉션 패션쇼 참석을 위해 출국했다. 배우 손예진이 여전한 미모를 과시하며 프랑스 파리로 향했다. 손예진은 4일 이탈리안 럭셔리 오트 쿠튀르 브랜드 메종 발렌티노(VALENTINO)의 ‘2023년 가을·겨울 오트 쿠튀르, 발렌티노 샤또’ 컬렉션 패션쇼 참석을 위해 출국했다. 손예진은 4일 메종 발렌티노(VALENTINO) 컬렉션 패션쇼 참석을 위해 출국했다. 오랜만에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손예진은 이날 네이비 컬러 라이닝이 들어간 화이트 컬러의 크리스프 트위드 더블 브레스트 재킷에 메탈 V로고 장식이 포인트인 쇼츠를 매치해 깔끔한 스타일링을 선보였다. 클래식한 컬러의 조화는 그의 우아함을 한층 돋보이게 했다. 또한 락스터드 펌프스로 모던한 룩에 세련된 포인트를 더했다. 손예진의 의상은 발렌티노 2023년 가을 발렌티노 어반 리비에라 컬렉션이다. 발렌티노 측은 “리조트 분위기에서 영감을 받은 패턴과 활기 넘치는 컬러는 부드러운 실루엣과 만나 한층 풍부한 매력을 자아낸다”고 설명했다. 한편 2022년 3월 배우 현빈과 결혼식을 올린 손예진은 같은 해 11월 아들을 출산했다.
- 학력 위조 고백, 홍콩 출국 전 인터뷰 배우 윤석화
- 2007. 09. 18 연예
- 배우 윤석화가 지난 8월 14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고백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는 “저는 이화여대를 다니지 않았습니다”라고 밝히고 “부끄럽고 두렵지만 후련하다”며 “이 고백을 통해 더 정직하고 성실하게 제게 주어진 길을 갈 수 있도록 지도하며 살겠다”고 썼다. 다음날 밤, ‘레이디 경향’은 12시간의 기다림 끝에 배우 윤석화를 직접 만났다. 지난 8월 15일 오전, 인터넷 포털 사이트는 배우 윤석화(51)의 학력 위조 고백으로 달아올랐다. “30년 전 철없던 시절의 거짓말이 양심의 발목을 잡았다”는 내용의 고백을 접한 네티즌들은 “이해한다”와 “배신감을 느낀다”는 두 갈래로 나뉘었다. 신정아, 이창하, 김옥랑, 장미희 등 문화 예술계에서 두드러진 학력 위조 릴레이에 “윤석화마저…”라며 실망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뼈조차 눈물로 녹아 내릴 것 같은 회개”를 통해 용기를 냈다는 그의 글은 쉽지 않은 ‘고해 성사’였다. 하지만 “잇따른 학력 위조 파문에 쫓기듯 고백한 것 아니냐”는 논란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을 필요가 있었다. 지난 8월 15일 오후, 윤석화의 서울 종로구 가회동 가옥을 찾았다. 현장에 도착했을 당시 주변 분위기는 예상과 달랐다. 조용했다. 간간이 취재 기자들이 수첩을 들고 집 근처를 오갔지만 그들은 몇 번인가 벨을 눌러보고는 자리를 떴다. 그러는 사이 ENG 카메라도 다녀갔다. 그들 역시 집 주변을 서성이다가 가옥을 촬영하고, 벨을 눌렀다. 반응은 없었다. 일부 언론에서는 ‘이미 홍콩으로 떠났다’ 또는 ‘잠적했다’는 보도가 있었지만 확신할 수 없었다. 집에서는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지만 에어컨 실외기가 계속 돌아가고 있었다. 오후 8시, 해가 졌지만 집 안의 실내등은 켜지지 않았다. 그러나 담벼락에 싸여 있는 지하층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간간이 강아지가 짖는 소리도 들렸다. 인근 주민들은 “여기 무슨 일이 있느냐?”며 의아해했다. 오후 9시, 다시 한번 벨을 눌렀지만 묵묵부답이었다.8월 15일 오후 11시 윤석화의 집으로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차고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에게 “윤석화씨 안에 계시냐?”고 물었다. 그는 “(윤석화씨가) 홍콩으로 떠났고, 안에는 안 계신다”고 대답하고 “강아지가 한 마리 있어서 먹이를 주러 들어가는 길”이라고 덧붙였다. 5분 정도 후에 집에서 나온 남자는, 약 30분 후에 다시 나타나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집 안으로 들어간 지 10분 후, 집 밖의 전등이 켜졌다. 누군가 집 안에 있다는 신호였다. 그리고 몇 분 후, “강아지 먹이를 주러 간다”던 남자가 녹색 승용차를 몰고 윤석화씨 집 앞에 나타났다. 남자가 들어갔던 차고 문이 열리고 윤석화가 나타났다. 청바지에 흰색 셔츠 그리고 회색 모자를 눌러썼다. 포토그래퍼의 플래시가 터지자 그는 “사진은 찍지 마세요”라며 얼굴을 가렸다. 그에게 다가가 레이디경향 기자임을 밝히자, 그는 “오래 기다리셨죠? ‘객석’에서 뵙죠”라고 말하고는 급히 승용차에 올랐다. 어렵게 웃어보이는 그를 따라, 혜화동에 자리한 월간 객석 사무실로 향했다.어두운 표정으로 인터뷰 테이블로 다가온 윤석화는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간간이 목소리가 떨렸고, 눈물을 글썽였지만 차분하게 질문에 대답했다. - 어떻게 해야 할지, 아둔하고, 막막합니다. 이런 불미스러운 일로, 뭐 잘났다고… 여러분(기자)을 만나지 않은 것은, 부끄러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좋은 일로 만나고 싶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미안하다고 생각합니다. 홈페이지에 쓴 글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그리고 ‘잠적’이 아니라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제가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죄송하고, 미안합니다.그동안 어디 계셨나요? - 집에 있었습니다. 오후에 공항으로 가려고 했는데, 기자들이 집 앞에 있다고 했어요. 그래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과연 만나는 것이 좋은지 고민했습니다. 바람은 하나입니다. 스스로 사실을 밝혔고, 심정도 얘기 했으니까 가능하면 모든 것이 조용하게 지나가길 바랐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저에게 속았다고 몹시 분노하거나 절망하는 사람들이 있겠죠. 용서 못 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사실, 가장 힘든 일은 제가 자신을 용서하는 일입니다. 주변에 저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던 일인데, 차라리 옛날에 얘기할 걸, 하고 후회 아닌 후회도 했습니다. 자책했습니다. 한순간의 용기가, 왜 이때에 이르러서야 났을까. 그런 자신을 용서하는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NYU(뉴욕대) 논란에 대해서는? - 뉴욕에서는, 상당히 힘들게 생활했습니다. 제가 NYU와 CUNY(뉴욕시립대)의 차이를 모르는 사람은 아닙니다. 뉴욕시립대는 세 곳을 다녔고, 뉴욕대에서는 네 과목을 들었어요. 사립대라 무척 비쌌습니다. 시립대는, 제가 영주권자이기 때문에 강의료가 쌌습니다. 가난한 저로서는 당연한 선택이었습니다. (대학을) 여기저기 다닌 것은 제가 학위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공부를 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졸업장을 원했지만 극단 ‘민중’에서 “극단이 어려우니 연극을 해달라”고 했어요. 한 학기가 남아 있다는 사정을 얘기했지만 ‘연극하려고 한 공부인데 학위가 중요한가’하는 생각, 저에게는 연극이 최우선이라는 생각 때문에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85년도에 돌아와서 한 것이 ‘선인장꽃’과 ‘꿀맛’입니다. (좌)기자와 인터뷰를 하기 위해 ‘월간 객석’으로 향하는 윤석화와 박정자. 박정자는 ‘학력위조 고백’으로 힘들어하는 윤석화에게 마음의 위안이 되어준 것으로 알려졌다. (우)서울 가회동 윤석화 가옥.약력에는 수료라고 써 있습니다. - 수료의 개념을 정확히 몰랐습니다. 졸업 못하면 수료라고 하는 줄 알았습니다. 이수 학점을 다 채우지 못한 것은 사실입니다. 이 사회가 학력 위조에 관심이 쏠려 있지만, 저에게는 단순히 학력이 아니라 삶의 문제입니다. 그것을 끄집어낸다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이제는 상처로부터 자유롭고 싶다는 욕망도 있었죠. 두 아이의 엄마로서, 여자로서 어떤 상처도 녹여낼 수 있을 것 같은 배짱과 용기를 낼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하지만 후회가 됩니다. 저를 믿었던 팬들은 배신감을 느낄 것입니다. 너무 부끄럽고 미안했지만 그래도 버릴 수 없는 것은 연극이었습니다. 지금은 안식년 중이지만 11월에 ‘토요일 밤의 열기’ 연출을 위해 돌아올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정말 용서를 구하고 싶다면 제발 조용히 있어라”는 한 네티즌의 글을 읽으면서, 이 기회에 낮아질 수 있는 만큼 낮아지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의 꿈과 약속, 그리고 후배들에 대한 책임을 생각하면 연출을 접는 것이 어려운 결정이지만, 당분간 조용히 아이들과 있고 싶습니다. 하지만 잠적은 아닙니다. 부끄러운 일로 만나는 것이 민망해서 피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고백에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을 줄로 믿습니다. 하지만 MBC의 취재에 쫓겨서 ‘(고백을) 선수쳤다’는 의심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 아닙니다. 취재에 쫓겨서 고백한 것이 아니에요. 그동안 주변에서 “이대 다녔느냐?”고 물을 때마다 “에이, 잠깐 다니다 만 건데요”라고 회피했습니다. 그것도 30년 동안 저를 괴롭게 했습니다. 그것(학력)이 연극하면서 중요한 것이 아니고, 철없을 때의 거짓말이 원치 않는 꼬리표처럼 붙어 속상하지만 자유로워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혼자 자유로워질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지난 8월 13일부터 다일공동체의 영성수련회에 참가했습니다. 휴대폰을 열자 몇몇 언론사 기자로부터 메시지가 와 있었고, 남편과 연락이 닿았는데 그때 김옥랑씨에 대해서 들었습니다. ‘객석’에서도 급히 연락 바란다는 메시지가 와 있었죠.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두려움도 있었죠. 그러나 첫 날 최일도 목사님의 강의 주제가 “거짓의 옷을 벗어라”였습니다. 속으로 “주님이 나를 정말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 부르셨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내 입으로 얘기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울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그렇게 울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왜 진작 용기를 내지 못했을까를 반성했습니다. 내 자신이 밉고, 한심함도 있었습니다. 용기가 사라지기 전에 풀어놓자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논란이 되고 있는 2년 전 월간 ‘신동아’ 인터뷰에 대해서 하실 말씀이 있으신지요? (당시 윤씨는 “연극영화과를 나오지 않은 자신의 생각을 다른 배우들에게 논리적으로 이해시키기 어려울 때 속으로 ‘너네들 공부 못했으니까 드라마센터 갔지. 나는 그래도 이대 출신이야’라고 생각했다”고 말한 것으로 나와 있다) - 그때 그렇게 얘기한 적이 없습니다. (그 기자분은) 20년 동안 네 번밖에 만나지 않은 분입니다. 그분이 자료를 가지고 와서 “다녔느냐”고 물어서 “그렇다”고 (거짓말을) 했지만, 당시 다른 사람들은 연극영화과 출신인데 나는 아니니까 서러운 것이 있었습니다. 그때 정진수 선생님(현 성균관대학교 연기예술학과 교수)께서 유학을 장려해주셔서 용기를 냈습니다. 그래서 “너희는 드라마센터 나왔지만 나는 유학간다. 나도 연극공부 할 거야”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홈페이지에 올린 고백의 글에 대해서는? - 그렇게 빨리 많은 분들이 볼 줄은 몰랐습니다. 제 홈페이지가 인기가 있는 곳이 아니거든요. 하지만 정말 빨리 많은 분들이 보셨습니다. 거기서 끝내고 싶었지만 그게 아니었습니다. 제가 잠적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으로, 삶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두 아이가 (감기에 걸려) 아프다고 하니, 어머니로서 있어야 할 곳에 가고자 했습니다. (논란이 불거지기) 전에 고백할 생각은 없으셨는지요? - 8년 전쯤에 존경하는 목사님(강원용 목사)께 이 사실은 털어놓고 “자유로워지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죠?” 하고 물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목사님이 “윤석화가 이대 다니지 않은 게 뭐가 중요하냐. 연극배우가 연극 열심히 하면 되지. 하지만 앞으로는 절대로 (거짓말)하지 말아라”고 하셨어요. 이후로는 그런 (거짓)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밝힐 용기가 없었지요. 바보같이. (고백을 하고 나니) 속이 시원하신지요? - 네. 미안하고 부끄럽지만. 부끄러운 저를 용서할 수 있는 시간이 지나면 많이 자유로워질 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에 거짓 학력으로 포장된 사람이 많을 거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 똑같이 부끄러운데, 제가 무슨 할 말이 있겠어요. 다만 각각 상황은 다릅니다. 의도적일 수도, 한때의 실수로 잘못된 생각과 상황이 몰고 간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것에 대해서는 감정적으로 부추길 게 아니라, 조금은 이성적이고 상식적인 자세로 그들을 질타하거나 용서하거나 혹은 정말 죄값을 치르게 하는 데 있어서 분별력이 있었으면 합니다. 이 일로, 은퇴를 생각한 적은 있으신지요? - 아니요. 하지만 한 치 앞을 알 수는 없겠지요. 확률은 적지만 정말 언론과 네티즌이 저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고 한다면 소망을 잃게 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잘못에 대한 반성은 필요하겠지만 정말 은퇴할 이유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배우로서 자성의 시간을 갖고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두 아이의 엄마로서도 제가 좀 더 강해지고. 제가 죄인이지만 일단 일상을 자연스럽게 하고 싶습니다.15일 자정 무렵에 시작된 인터뷰는 16일 새벽 1시 10분경 끝났다. 윤석화는 인터뷰를 마치고 떠날 채비를 하는 기자에게 “더 나아진 모습으로, 성숙한 모습으로, 더 자유로워진 모습으로 다시 뵙고 싶다. 시간이 많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16일 오전 9시경 그녀는 국내 항공 편을 이용해 홍콩으로 출국했다. 현재 윤석화는 가족과 함께 홍콩에 머물며 자성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윤석화는 오랜 시간 연극배우로서, 문화 예술계 인사로서 아낌없는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그의 학력에 대해서는 신경 쓰는 사람도, 의심하는 사람도 없었다. 대중은 그와 그의 연기를 사랑했고, 입양한 두 아이에 대해서도 지지를 보냈다. 그가 이화여대 출신이 아니라고 해서, 그의 연기력을 폄훼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가 사랑한 것이 그의 ‘학력’은 아니다. 그러나‘철없던 시절’의 ‘거짓말’은 씻기 어려운 상처로 남았다. ■ 글 / 정우성 기자 ■사진 / 원상희 윤석화의 글 ‘고백입니다’ 사랑하는 친구들에게그간 안녕하셨지요? 그동안, 안식년을 결정하고, 1년이 조금 안 되는 시간 동안, 남편이 있는 외국에서 두 아이들의 엄마로, 아내로, 교회와 집을 오가며 지극히 평범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가능한, 일체의 외부 활동과 지인들과의 만남도 접고 ‘월간 객석’의 살림에 제가 꼭 필요한 일만 하고 지냈습니다. 친구들의 반가운 소식도 애써 잊으려 하면서 말이지요. 그런 제가 다소 의외의… 어쩌면… 친구들에게 실망감을 안길지도 모르는 ‘고해성사’같은 고백을 용기 내어 하려 합니다. 이 ‘고해성사’를 하기까지… 거의 30년의 세월이 걸렸네요. 그만큼 제게는 몹시도 힘이 들고 부끄러운 고백입니다.고백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저는 이화여대를 다니지 않았습니다.’어릴 적, CM송을 부르던 시절에, 철없이 했던 거짓말이 30년 세월 동안 제 양심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이제나저제나 ‘고백’의 ‘때’를 생각했지만… 결국, 용기가 없어 주저하는 사이에 이 ‘때’에 이르게 되었음을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외국에서 1년을 살면서 국내 소식에 둔감했던 저는, 안식년 동안 꼭 해보고 싶었던 ‘영성 훈련’을 위해 며칠 전 서울에 왔습니다. 제가 아는 동숭아트센터 김옥랑 대표의 학력 위조로 문화계가 고심하는 것을 알게 되었고, 부끄러워 애써 숨기려 했던 양심이 곤두박질쳤습니다.다행히, 영성 수련에 제 마음을 맡길 수 있었던 저는, 제 상처난 청춘의 한 조각. 그 거짓을… 뼈조차 눈물로 녹아내릴 것 같은 ‘회개’를 통해 용기 내어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부디, 제 고백을 받아주시고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더불어, 간구 드리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30년 넘게 연극을 향하여 걸었던 ‘길’과 착하게 살고 싶었던 사람으로서의 ‘꿈’은 의심하지 말아 주시기를 기도 드립니다. 부끄럽고 두려웠지만, 후련하기도 합니다. 이 ‘고백’을 통해 더 정직하고 성실하게 제게 주어진 길을 갈 수 있도록 지도하며 살겠습니다. 허물많은 저의 친구가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2007년 8월 14일 윤석화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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