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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태겸의 풍경](57)충남 아산 곡교천 - 노랗게 물든 행복의 길(2023. 11. 16 07:00)
- 2023. 11. 16 07:00 문화/과학
- 마지막 축제다. 올해는 유독 단풍이 늦게 올라오는 듯한 감이 없지 않다. 그래서인지 절정에 달한 빛깔이 더 화려하게 느껴진다. 충남 아산의 곡교천. 이곳은 단풍이 낙엽이 되기 직전 거리가 온통 노랗게 물들었고, 이 노란 빛을 찾아 사람이 모인다. 곡교천 은행나무 길은 아산시가 가을마다 자신 있게 추천하는 여행지다. 곡교천 은행나무길은 충무교에서 현충사 입구까지 2.1㎞ 구간에 조성돼 있다. 산책로를 따라 양쪽으로 은행나무가 길게 늘어선 모습이다. 이곳에 은행나무가 가로수로 조성된 건 1973년의 일. 당시 수령 10년생의 나무를 심었다고 하니 인간의 나이로는 얼추 환갑에 가깝다. 그사이에 나무들은 가지를 길게 뻗어 멋들어진 광경을 자아내고 있다. 평소에는 별다른 감흥이 느껴지지 않을 수 있지만, 가을만큼은 다르다. 매년 11월 초가 되면 모든 잎이 노랗게 물들고 바람이 불 때마다 노란 은행잎 비가 내린다. 천천히 길을 따라 걷는 동안 들어오는 사람들의 표정. 누구 하나 찌푸리지 않고 함박웃음이다. ‘행복’이라는 두 글자가 표정에서 드러난다. 바닥에 떨어진 은행잎을 한 아름 안아 던지고 그 사이로 뛰어가는 사람, 이 아름다운 절정을 사진으로 담는 사람. 계절이 주는 행복이 이 거리에 가득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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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태겸의 풍경](54)충남 공주 정안천 메타세쿼이아 꽃길 - 연꽃향 대신 청량한 숲의 향기(2023. 09. 15 10:58)
- 2023. 09. 15 10:58 문화/과학
- ㆍ 햇볕이 제법 온화하다. 비로소 가을이 제자리를 찾아온 느낌. 충남 공주 여행을 떠난 길에 입소문 자자한 메타세쿼이아 숲길을 찾았다. 메타세쿼이아가 양쪽으로 늘어선 아름다운 풍경으로 손꼽히는 곳은 단연 전남 담양일 테다. 하지만 공주 정안천 곁에서도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정안천은 금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지류, 그러니까 금강수계에 해당하는 지방하천이다. 이 물길을 따라 곳곳에 충적평야가 만들어진다. 정안천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보물앞들, 새보들, 백보들, 오인들, 수촌들처럼 ‘들’이 붙은 지명이 유난히 많다. 물길이 만들어진 평야임을 보여주는 이름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풍광이 오밀조밀한 한 폭의 그림을 그려낸다. 정안천 생태공원 일대는 그런 면모의 정점을 이루는 곳이다. 과거 이 주변은 방치돼 있던 곳이었다. 시대가 변하고 자연생태의 가치가 부각하면서 2010년대에 이 일대를 공원화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었다. 메타세쿼이아 나무를 심은 것도 이즈음이다. 이제는 양쪽으로 울창하게 늘어선 나무가 터널을 만든다. 여름 내내 이 일대에 연꽃 향기가 은은했지만, 지금은 메타세쿼이아의 청량한 향기가 그 자리를 가득 메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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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태겸의 풍경](50)충남 보령 삽시도 - 안개 걷힌 섬의 보랏빛 노을(2023. 07. 14 11:19)
- 2023. 07. 14 11:19 문화/과학
- ㆍ 며칠 동안 바다는 뿌연 안개에 덮여 있었다. 충남 보령의 섬, 삽시도로 떠나기로 한 날 아침. 여객터미널에서는 배가 뜰지 알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것 같았던 해무가 삽시간에 걷히기 시작했다. 어렵게 배는 바다로 나아갔다. 섬은 그렇게 한여름 여행자의 방문을 허락해 주었다. 한반도의 바다 위에 떠 있는 수많은 섬 중에서 삽시도는 잘 알려진 편이 아니다. 눈을 현란하게 하는 풍경이나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하는 비경을 숨겨둔 섬이 아니어서 그런 걸까. 사람의 발길이 잦지 않은 섬은 그 대신 여유를 선사한다. 인적 없는 해안가에 텐트를 치고 앉아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는 호사를 누리던 오후. 멀리서 하늘이 어둑해지더니 보랏빛 노을이 눈앞에 드러났다. 오직 나만이 누릴 수 있는 이 섬의 선물. 이 정도면 삽시도의 오로라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싶을 만큼 아름답다. 낮에는 해변에서 동죽을 캐고, 저녁에는 자줏빛 하늘에 취하는 섬. 언제고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면 꼭 다시 찾고 싶은 곳으로 기억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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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태겸의 풍경](44)충남 논산 돈암서원 - 봄햇살 가득한 예학의 산실(2023. 03. 24 12:50)
- 2023. 03. 24 12:50 문화/과학
- 충남 논산에는 꼭 들러야 할 곳이 있다. 돈암서원이다. 서원은 유생이 공부하는 인재양성소를 떠올리면 되겠다. 서원에 뭐가 있냐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돈암서원은 2019년 소수서원, 남계서원, 옥산서원 등 8개 서원과 함께 14번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인정받았다. 돈암이라는 명칭은 연산면 임리에 있는 바위를 일컫는다. 워낙 유명해 인근에 사원을 세우고 추후 왕이 사액하면서 ‘돈암’이라는 이름을 내렸다. 1634년(인조 12년) 기호학파의 거두 사계 김장생 선생을 배향해 건립했다. 흥선대원군이 서원훼철령을 내릴 때도 돈암서원은 살아남았다. 그만큼 인재를 많이 양성했고, 서원의 본보기라 할 만큼 예학의 산실로 여겨진 덕이었다. 서원은 입지부터가 범상치 않다. 전형적인 배산임수 지형이다. 담장 밖 산앙루는 찾는 이를 압도한다. 담장 밖의 백미가 산앙루라면, 담장 안의 백미는 응도당이다. 이곳은 유생을 위한 강당이다. 마루가 넓어 십수명의 유생이 나란히 앉아 학문을 논하는 그림이 절로 그려진다. 서원이 지금의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겠지만, 막상 그 안으로 발을 디뎌보면 보이는 게 있다. 사람들이 입을 모아 칭송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 정태겸의 풍경
- [청년이 외친다, ESG 나와라](2)서울대·부산대·충남대·전남대를 합친다면(2021. 12. 17 13:23)
- 2021. 12. 17 13:23 사회
- “금지하는 것을 금지한다(Il est interdit d‘interdire).” 1968년 5월 다른 세상을 꿈꾸며 거리로 뛰쳐나온 프랑스 젊은이들이 전면에 내세운 유명한 구호다. 68혁명으로 명명된 이 사건은 기성세대와 권위주의에 반기를 들어, 프랑스에서 낡은 사회체제의 골간인 대학을 전면적으로 개혁하여 대통합을 이루는 계기가 됐다. 68혁명의 자장(磁場) 안에서 시행된 당시 대대적인 프랑스 대학개혁은 국립대 통합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프랑스는 1968년 대학 평준화를 이룬 이후 쭉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그로부터 50여 년이 지난 지금, 한국에서도 원인은 다르지만 대학개혁의 필요성이 긴급하게 대두되고 있다. 68혁명의 대학개혁 실험이 현재 근본적 변화를 앞둔 한국 고등교육의 현장에 어떤 시사를 줄 수 있을까. 12월 12일 종로학원이 주최한 2022정시 합격점수 예측발표 및 특별전략 설명회가 열리고 있다. / 이준헌 기자 ■1968년 격변의 프랑스, 대학 개혁을 이루다. 1968년 프랑스의 ‘5월의 사건들’은 대학에서 시작됐고, 대학생이 주도했다. 1960년대 서구 산업국가에서 한결같이 시행된 고등교육 확대에 힘입어 프랑스의 대학생 수는 1960년 20만 명에서 1968년 58만7000명으로 급격히 늘어났다. 사회적 신분 상승을 꿈꾸며 대학 문턱을 밟은 중산층 및 소시민 출신 학생이 급증한 탓이었다. 대학 입학생이 한 해 평균 4만 명 이상 증가하는 추세가 지속되면서 프랑스 정부의 고등교육 예산 증액에도 불구하고 대학생 증가세를 따라잡지 못해 교육환경이 열악해졌다. 드골 정부는 이에 따라 1964년 선별 입학 시험제를 도입해서 전체 대학생 인원을 제한하려고 했다. 드골 정부의 이러한 고등교육 정책은 반발에 부딪혔고 프랑스 사회에서 대학개혁 방향을 둘러싼 격렬한 논쟁이 일어났다. 결국, 선별 입학제도 시행이 유보되고, 대입 자격 고사에 합격한 모든 학생에게 대학의 문호를 여는 동시에 대학 운영에 민주적 거버넌스를 도입하는 쪽으로 대학이 개혁됐다. 그렇다면 개혁 이후 프랑스 대학의 모습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대개 포르법(Faure loi)으로 일컬어지는 고등교육 기본법에 따라서 소르본 대학은 1969년 여러 대학으로 분할되기 시작했고, 70년대 초에 현재의 13개 파리 대학이 완성됐다. 이 중 현재 파리8대학의 기원인 뱅센 대학이 1969년 1월에, 현재 파리9대학인 도팽 대학이 71년 1월에 새로 설립됐다. 다른 파리 대학 가운데 1대학부터 7대학은 1968년 이전에 파리 시내에 존재하던 파리 대학의 다양한 단과대들이 종합대학으로 확대된 것이며, 낭테르 대학은 10대학으로 명칭을 변경하며 종합대학이 됐다. 11대학은 파리 남쪽 교외에 위치하던 대학 건물을 기반으로 1971년 1월에 종합대학이 됐다. 12대학은 69년에 건립된 의대 건물을 기반으로 70년 3월에 종합대학이 됐으며 13대학은 60년대 초 건립된 파리 이과학대 부속 건물을 기반으로 71년 1월에 종합대학이 됐다. 전공학과 중심의 기존 단과대학들은 각자의 학문적 강점을 가진 독립된 종합대학으로 재편되고 뱅센느 대학과 같은 민주적이고 진보적인 실험대학이 창설됐다. 포르법의 세 가지 원칙(자율, 참여, 다(多)학문성) 가운데 다학문성(pluridisciplinarite)으로 인해 일부 단과대학(faculte)의 명칭이 바뀌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문과대는 ‘문학과 인문과학 대학’(Faculte des Lettres et Sciences Humaines), 법과대는 ‘법학과 경제학 대학’(Faculte de Droit et des la Sciences Economiques) 등으로 바뀌었다. ■프랑스의 대학개혁… 수월한 학문 간의 연계와 높은 대학 접근성 프랑스의 대학 개편의 가장 큰 특징은 단과대에서 종합대 체제로 전환하면서 다양한 학문 사이의 연계가 수월해졌다는 점이다. 다양한 학문 분야를 연결하면서 새로운 통합학문의 등장이 가능해졌다. 이미 20세기 중반부터 언어학과 인류학, 역사학과 심리학, 문학과 정신분석학, 철학과 수학 등이 결합한 상황에 비하면 많이 늦어진 것이긴 했지만 시대 변화에 부응하려는 의지가 담긴 개편이었다는 평이다. 또 다른 특징은 ‘실험대학의 도입’이다. 어려운 형편으로 교육의 기회를 얻지 못한 이들에게 혜택을 주기 위한 재교육 기관으로 파리8대학이 설립된 것이다. 대학 캠퍼스가 위치한 지역의 이름을 따서 뱅센느 대학이라고도 하는 파리8대학은 1968년 5월에 터져 나온 사회적 소외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시도였다. 인상적인 것은 이러한 성인 재교육 기관을 특수 기관의 형태로 만들지 않고 일반 대학의 형태로 설치했다는 점이다. 파리8대학은 다른 대학과 동일한 체제로 운영되었지만, 대학입학 문호를 일반 직장인에게까지 확대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일정 정도의 직장경력을 인정받으면 최종학력이 대학입학 기준에 미달하더라도 다른 학생들과 동등하게 학위 과정을 이수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했다. 예컨대 중학교 졸업이 최종학력인 공장 노동자라도 정식 대학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지원자의 학력 공백은 직장경력을 심사해 대신 인정해주었다. 현재 프랑스의 대학은 공동입학, 공동학위 수준의 높은 통합도를 구현한 상태다. 법적으로는 바칼로레아 시험에 합격한 학생이라면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의 대학에 입학할 권리를 갖는다. 대학은 특별한 선발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학생을 입학시키며, 학생들은 학부 재학 중 필요에 따라 쉽게 대학을 이동할 수 있다. 프랑스에선 국공립대학이 전체 학부생 정원의 97% 이상을 교육하고 있고, 국공립대학이 전국적으로 평준화하였기에 가능하다. 하지만 1968년의 대학개혁을 개혁할 필요성 또한 끊임없이 제기된다. 대학 평준화로 프랑스 일반대에서 선별시험을 폐지한 결과 학부 재학생이 너무 많아 문제들이 불거지고 있고, 중도탈락 비율이 70%가 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선별시험을 다시 도입해야 한다는 요구와 함께 국립이 갖는 경직성에서 벗어나서 예산 등 대학운영의 자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2000년대 들어와서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인센티브 중심으로 대학 자율 통폐합 도모한 핀란드 핀란드는 정부에 의한 강제적인 대학 통폐합 대신 인센티브 제공을 통해 자율적이면서 과감한 대학 통폐합을 이뤘다. 2000년대 들어 유럽연합(EU)은 2010년까지 유럽 공통의 고등교육 학위체제를 만드는 ‘볼로냐 프로세스(Bologna Process)’를 진행했고, 핀란드 교육문화부는 이러한 국제적 흐름에 부응하여 고등교육 재구조화 방향을 설정했다. 2006년 핀란드 교육문화부는 을 발표하면서 고등교육기관 간 학과 중복을 최소화해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을 핵심 목표로 내세웠다. 또 산학협력을 촉진하기 위해 지역별 특성을 반영한 고등교육 기관 간 역할의 분화를 제안했다. 이에 따라 같은 해 대학체제가 개편돼 핀란드의 종합대학교 20개 중 12개가 5개로 통폐합하면서 전체 종합대학이 13개로 줄어들었다. 5건의 통폐합 중 4건은 같은 도시에 있는 대학 간의 통폐합이었다. 예외적으로 동핀란드대학(University of Eastern Finland)은 캠퍼스 간 거리가 90km나 되는 대학 사이의 통폐합이었다. 대학 통폐합의 핵심 목표 중 하나인 ‘대학별 특성화’는 핀란드 정부와 사회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이나, 정부 인센티브를 활용한 대학의 자율적인 통폐합이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대학 간 통폐합을 촉진하기 위해 ‘성과기반 재정지원 시스템’이 도입돼 2007년과 2010년 사이 통폐합에 참여한 대학에 1200만~400만 유로, 협의체를 구성한 대학에는 610만 유로가 지원됐다. 핀란드의 대학교는 모두 정부와 지자체 지원을 받는 공립기관이었지만 대학별로 높은 자율성이 인정됐기에 통폐합의 최종 결정권은 각 대학에 있었다. 정부는 통폐합 대학들에 대한 재정적 인센티브 제공을 통해 통폐합을 촉진하는 역할만 담당했다. 핀란드 정부는 2009년 일반대학법을 개정해 모든 국립대학을 법인화하여 대학 운영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했고, 성과기반 재정지원 제도를 전면 도입해 대학의 주도하에 자율적인 발전 목표를 설정할 수 있게 했다.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1960년대에 학생 수가 급증하자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체제를 개편했다. 증가하는 고등교육 수요를 소화하면서 대학교육의 질을 지키기 위한 폭넓은 개혁조치였다. 상위권 학생을 수용하는 연구중심 대학은 선별기준을 높이고, 대신 성적과 무관하게 입학할 수 있는 등록금이 매우 저렴한 커뮤니티칼리지를 활성화했다. 늘어난 고등교육 수요에 대처하는 동시에 상위대학 편입을 대폭 허용함으로써 기회의 폭을 넓히는 방향의 개방성을 지향했다. 캘리포니아 주립대 체제는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시스템은 4년제 연구중심 대학(UC), 4년제 교육중심 대학(CSU), 2년제 커뮤니티칼리지(CCC)로 3분할 체제이다. UC는 10개의 캠퍼스가 있고 교교 졸업생의 상위 8분의 1에 응시 자격을 부여한다. CSU는 지역별 23개 캠퍼스가 있고 응시기준은 졸업생 성적 3분의 1 이내에 들어야 한다. CCC는 진학 혹은 취업을 위한 교육을 담당하는 2년제 대학으로 72개 지역에 113개의 대학이 있고, 고교졸업생이면 누구나 무시험으로 입학할 수 있다. UC는 주의 주요 공공연구 대학으로 학사, 석사, 박사 및 기타 전문학위를 수여하며, CSU는 교양 및 과학 교육에 중점을 두고 주로 학사 및 석사 학위를 수여한다. CCC는 4년제 대학으로 편입할 수 있는 하위 학군 교육과 직업 훈련을 시행하고, 준학사 학위 및 수료증을 준다. 등록금은 각 단위의 대학에 차등하여 책정되어 있어 UC가 1만3000달러인 반면 USC는 6000달러로 UC의 반액이다. CCC 등록금은 1000달러 정도이고, 많은 학생이 학비를 면제받는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은 기능에 따라 대학입학의 기준을 확고하게 정해 대학교육의 수준을 지키면서도 동시에 모든 고교졸업자에게 2년제 커뮤니티칼리지 입학을 개방하고 있다. 동시에 상위 대학 편입을 쉽게 하는 방식으로 두 번째 기회를 주고 있다. 2020년 UCLA편입 비율을 보면 신청자의 85%가 캘리포니아주 커뮤니티칼리지(CCC) 재학생이었으며 그중 27%가 편입에 성공했다. 상위 대학 진입장벽을 대폭 낮추어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고 있다. 2018년 부산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 서성일 기자 ■해외 사례 참고하며 한국의 특수성을 반영하는 대학개혁 앞서 살펴본 여러 나라의 대학개혁은 충분히 참고할만한 사례이지만, 각각의 역사적 배경과 특수성이 있음을 감안해야 한다. 첫째, 파리대학과 캘리포니아주립대 체제 개편은 둘 다 1960년대 대학이 팽창하던 국면에서 이루어졌다. 고등교육의 대중화 단계를 준비하는 성격을 가졌다. 프랑스는 1960년대 베이비붐 세대의 대학입학 적령기가 도래하면서 고등교육 기관의 절대 부족과 정원 제한으로 교육수요를 감당하는 데 근본적인 어려움에 봉착했다. 기존 파리대학(1215년 설립ㆍ1968년 해체, 소르본대학이라고도 한다)에는 시대에 동떨어진 커리큘럼에다 권위주의 및 위계질서가 강한 대학풍토가 존재하였다. 이러한 ‘구태’에 학생들의 반발이 커지며 근대대학다운 정비가 필요한 상태였고, 고등교육 수요 대응과 고등교육 대중화 시대에 걸맞은 행정개혁이 필수적이었다. 캘리포니아주립대 또한 학생 수의 급증에 대비하여 기존 3분할 체제(연구중심 대학, 교육중심 대학, 커뮤니티칼리지)를 더 공고히 하고 커뮤니티칼리지의 확대를 통해서 대중수요에 대응하는 한편 4년제 대학의 입학 자격을 전보다 강화함으로써 교육의 질을 유지하고, 적절한 예산 배정 등으로 행정 효율 제고를 도모했다. 두 나라의 대학 체제 개편의 시대적 배경은, 인구감소로 급격한 규모 축소를 대비해야 하는 현재 한국 대학의 상황과는 상반된다. 교육부는 학생 수 감소로 3년 내 국내 대학 38개교가 폐교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통계청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학령인구(6~21세)는 2020년 789만 명에서 향후 10년 195만 명이 줄어들고, 2070년엔 328만 명에 불과할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우리나라는 프랑스나 미국 캘리포니아주와 달리 인구감소를 염두에 두며 대학체제 개편에 접근해야 한다. 둘째, 전술한 대학통합 사례는 국가나 지방정부가 주도한 것이어서 사립대학이 많은 한국에 그대로 적용하기엔 무리다. 프랑스의 고등교육기관은 일부 사립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두 국립이며, 그랑제콜을 제외한 일반 종합대학은 등록금 수입에 의존하지 않고 국가 예산으로 운영된다. 또한, 대학개혁 당시 핀란드 고등교육기관은 높은 수준의 자율성을 갖고 있었지만 모두 정부와 지자체 지원을 받는 공립기관이었다. 반면 한국의 대학은 사립이 압도적이다. 대학 재학생의 80%가량이 사립대학에 재학중이다. 즉 우리나라는 사립대라는 변수를 가졌다. 한국교육개발원의 2020년 설립별 학교 수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대학 429개 중에서 사립대는 371개로 비중이 86.5%이다. 사립대가 많다고 알려진 미국 사립대 비율(66.3%)보다 20%포인트 높다. 우리나라의 사립대 비중이 월등하게 높다 보니 당장 실현가능한 대학개혁 방안의 하나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국공립대 통합’은, 자칫 통합된 국공립대를 서울의 유수 사립대보다 아래의 대학교로 전락게 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국립대 통합’ 방안은 사립대를 어떻게 유인하여 전체 대학개혁에 편입시킬지에 관한 고민과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지금껏 논의에 그친 국공립 통폐합 방안 지난 20년간 국공립대 통합 아이디어는 꾸준히 제시됐다. 2000년 김대중 정부하의 국립대 발전 계획안은 국립대의 특성별 연합 체제 구축을 제안했다. 계획안에 따르면 동일권역 내 대학 간 비슷한 학과나 중복학과를 통폐합하고, 대학끼리 단과대나 학과를 교환하고 통폐합하는 작업을 진행하고자 했다. 장기적으로는 인사, 시설, 재정을 통합하여 비용을 절감하고 교육 및 행정 효율을 제고하는 ‘연합대학’ 체제를 구성하고자 했다. 2004년에 민주노동당은 경상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의 정책 입안을 중심으로 국공립대 공동학위제를 주요 정당 정책으로 내세웠다. 이후 국공립대 통합은 총선과 대선에서 주요 공약으로 등장하게 된다. 2007년 대선에서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는 개방 입학제를 도입해 대학 평준화를 이루자는 공약을 제시했다. 2012년과 2017년에는 ‘국공립대 연합 체제 구축 방안’이 문재인 대통령 후보의 대선 공약으로 채택되기도 했다. 2017년 문재인 후보 대선 공약집에 따르면 중장기적 국공립대 연합체제 구축을 위해 국공립대를 연구 교육 직업 등 기능별, 중점 분야별 특화를 추진하고자 했다. ■국립대 통합네트워크 제안1(경상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 국공립대 통합네트워크는 총 3단계로 이뤄진다. 1단계에서는 거점 국립대학교 10개(서울대, 강원대, 경북대, 부산대, 전남대, 전북대, 충남대, 충북대, 경상대, 제주대)를 ‘국립한국대학’이란 이름 아래 네트워크로 묶는 방안이다. 2020년 기준 4년제 대학의 입학 정원은 약 31만 명이고, 10개 거점 국립대 입학 정원은 서울대 3330명을 포함하여 총 3만 1453명으로 전체 입학 정원의 10%이다. 국립대를 통합한 다음 2단계로는, 12개 지역 중심 국립대학(강릉원주대, 경남과기대, 공주대, 군산대, 금오공대, 목포대, 부경대, 서울과기대, 순천대, 안동대, 한경대, 한밭대)을 통합한다. 12개 대학의 입학정원은 1만 8950명이며 전체 입학정원의 6.1%이다. 3단계에서는 독립형 사립대를 포함해 네트워크를 확장한다. 이러한 국립대 통합네트워크의 기본 뼈대는 2003년 경상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이 제시한 국립대 통합네트워크 안이다. 경상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이 제시한 국립대 통합네트워크는 먼저 서울대를 포함한 기존 국립대학들을 하나의 통합네트워크로 구성하고, 일정한 수준이 되는 사립대학교도 국립대 통합네트워크에 편입시킨다. 네트워크 안에서 학부 과정을 이수한 모든 학생은 공통으로 국립대 학사 학위를 받게 된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경상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은 국립대 통합네트워크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입시제도의 개혁, 대학개혁, 제도개혁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먼저 절대 평가형 내신과 입학자격 시험에 의한 선발을 시행하고, 대학은 수용 능력을 고려해 대학입학 자격 수준을 제시한다. 자격이 충족된 학생은 지원순위와 추첨을 통해 대학을 배정한다. 서울대는 학부 학생을 두지 않고 대학원화하고, 지역 국립대는 현 거점대학을 중심으로 통합해 몇 개의 캠퍼스로 조직화한다. 대학원은 일반대학원과 전문대학원으로 나눠, 현재 전문직을 위한 학부 과정은 전문대학원으로 옮긴다. 마지막으로 통합네트워크로 가는 과정에서 등록금 인하, 지역인재 고용할당, 재원 마련을 위한 조세제도 개혁 등의 제도를 동시에 도입해야 한다. 경상대 사회과학연구원이 제시한 대학통합네트워크가 실제로 입시경쟁을 완화할 수 있을지는 확실하지 않다. 대입의 인기 학과였던 전문직 양성 학과가 대학원으로 바뀐다면 대학입학 경쟁이 대학원 입학 경쟁으로 치환될 수 있다는 우려다. ■국립대 통합네트워크 제안2(서울특별시 교육청) 대학통합네트워크 정책은 국립대와 사립대를 한꺼번에 편입해 바로 출범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는 판단하에 네트워크 과정이 세분돼 제시된다. 세분된 대학통합네트워크는 먼저 국공립대를 통합하고 동시에 사립대학교 및 사립전문대학을 공영형으로 전환하며, 공영형 사립대학교가 안정되면 국공립대통합테트워크와 공영형 사립대학 간 통합을 추진하는 방식이다. 서울특별시교육청도 2017년에 대학통합네트워크의 단계적 실현 방안을 제시했다. 먼저 지역 거점 국립대 간에 네트워크를 구축한 후 국립대와 공영형 사립대학교의 연합 네트워크를 구축한다. 연합 네트워크는 통합네트워크 이전 단계로, 대학들이 일종의 플랫폼을 공유한다. 이때 국립대는 기초학문을 지원받고, 사립대는 실용학문을 지원받는다. 마지막 단계로, 연합에서 더 나아가 독립형 사립대를 포함해 전체 공통교양과정을 운영하고, 교육 및 학교 운영에 있어서 상호적, 통합적 교류 체제를 구축하는 통합네트워크를 형성한다. 하지만 이미 지방 거점 국립대와 비교해 수도권 주요 사립대를 더 선호하는 상황 속에서 기초학문을 국립대로, 취업에 유리한 실용학문을 사립대로 집중해 지원한다면 현실적으로 국립대의 선호가 더욱 떨어질 것이라는 반론이 있다. 또한 어떤 대학이 공영형 사립대학교가 될지 제대로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사립 명문대학교가 과연 공영형 사립대학교 편입에 참여할지 미지수이며, 만약 참여하지 않는다면 사립 명문대학교를 중심으로 새로운 학벌을 형성할 가능성이 크다. ■국공립대 통합네트워크로 대학 경쟁력 강화 2012년 민주통합당 이용섭 정책위의장이 국립대 통합네트워크를 당의 대선공약으로 넣겠다고 밝히자 ‘서울대 폐지론’이라며 반발이 일었다. 국립대 통합네트워크가 국제적 입지가 있는 서울대학교를 소멸시키고 전체 국립대학의 하향 평준화를 초래해 결국 대학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우수 인재를 양성할 기회를 잃는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우려가 설득력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지금의 피라미드식 대학 구조가 교육의 본질을 왜곡하고 학문 연구를 어렵게 하며 대학 경쟁력을 낮추는 요소로 작용한다는 의견이 만만치 않다. IMD 국가경쟁력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가경쟁력은 2010년 이후 20위권이었지만, 대학교육 경쟁력 순위는 대체로 40~50위권을 나타냈다. 2019년에는 55위까지 내려갔다. 현재 한국 대학에서는 대학 졸업보다 입학에 열을 기울인다. 치열한 입학 경쟁을 뚫고 명문대에 입학하면 학벌 권력이 보장되기 때문에 학과 공부를 열심히 유인이 적다. 전공이나 직무가 아닌 대학 서열을 보고 학교에 간 학생들은 더욱 학과 공부를 할 의욕을 잃는다. 반면 낮은 순위의 대학에 진학한 학생들은 대학 공부를 열심히 해도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어렵기 때문에 전공 학과 공부의 필요성이 낮아진다. 이렇게 대학 서열을 우선으로 고려하는 진학은 졸업 이후 노동 시장에서 전공과 상이한 분야로 취업할 가능성을 높인다. 대학 전공와 취업 후 직무 간의 불일치 문제는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비용을 유발한다. 연구중심 대학을 축으로 국립대 통합네트워크를 개편하면 대학 경쟁력이 향상된다는 의견이 있다. 대학 체제 개편은 평준화와 함께 특성화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진행돼야 하기 때문이다. 연구중심 대학이 세계 지식 생산을 선도하고 글로벌 영향력을 행사하며 대규모 연구와 실험을 수행하는 추세에 맞춰 한국도 연구중심 대학으로 거듭나게 하는 국공립대 통합네트워크를 추진해야 한다는 제안이다. 다른 나라 대학체제에서도 대학이 기능별로 역할을 분담하고 있다. 프랑스는 대학을 평준화하였지만 일반대학과 구별되는 ‘대학 위의 대학’ 그랑제콜은 혹독한 경쟁선발방식을 유지한다. 대학과 별개로 연구기능의 많은 부분은 국립연구소가 맡고 있다. 캘리포니아 주립대 체제도 연구중심, 교육중심, 커뮤니티칼리지 등 각각의 역할이 분명하다. 연구중심 대학인 미국 미시간 대학이 심리학과에만 100여 명의 교수를 보유한 사례는 특성화의 방향을 보여준다. ■국공립대학 네트워크로 서울 지상주의 완화 한국의 엘리트 대학은 수도권에 집중돼있다. 2017년 중앙일보 평가에 따르면 상위 대학 15위는 모두 수도권에 분포했다. 2021년 세계대학학술순위(ARWU)에 따르면 세계대학 랭킹 500위 안에 든 한국 대학은 총 11개이다. 그중 서울대가 101~150위 안에 들었으며, 한양대, 카이스트 등 5개 대학이 201~300위 안, 경북대, 경희대 등 5개 대학이 301~400위 안에 들었다. 세계 랭킹 상위권에 든 우리나라 대학 11개 중 6개가 서울에 위치한다. 이러한 현상은 안 그래도 심한 서울 지상주의를 더 심화한다. 서울은 극소수를 위한 공간이며, 나머지 절대다수에게는 폐쇄와 배제의 공간이 된다. 서울의 주요 대학이 상위권을 형성한 서열 체계는 하위권에 속하는 지방대학의 위기를 초래하고, 지방 거주 학생이 서울 소재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치르게 만든다. 동시에 지역경제와 지역주민의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지방 거주자가 서울 소재 대학에 입학했을 때 유학에 따른 주거 및 생활비 등 추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지역의 부가 유출되고 경제활동이 위축되면서, 지역주민의 삶의 질과 만족도가 떨어지게 된다. 대학 서열화로 인한 수도권 중심의 인프라 형성과 인재의 수도권 쏠림 현상은 또다시 지역 간 불균등한 발전으로 이어지면서 악순환을 초래한다. 다른 나라는 우리나라와 달리 고등교육 기관이 지역적으로 골고루 분포한다. 프랑스는 대학을 평준화한 만큼 대학 서열화에 따른 지역 차이가 미미하다. 엘리트 양성 기관인 그랑제콜은 200개가 넘으며 프랑스 전국에 퍼져 있다. 그랑제콜 연합회에 따르면 그랑제콜은 파리 68개, 프랑스 북부 24개, 프랑스 중서부 30개, 프랑스 중동부 50개, 프랑스 남서부 25개, 프랑스 남부 10개 등 고루 포진한다. 미국 엘리트 대학도 전국에 퍼져 있다. 상하이 세계대학 순위 상위 100위 안에 든 미국 대학 50개는 동부 17개, 중부 12개, 서부 12개, 남부 9개 등 전국적으로 분포한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입시체제를 가지고 있는 일본도 한국과 비교했을 때 공간적 병목현상이 심각하지 않다. 상하이 세계대학 순위 상위 100위 안에 드는 대학은 도쿄 대학, 교토 대학, 나고야 대학, 오사카 대학이며, 상위 200위권 대학은 도호쿠 대학, 홋카이도 대학, 규슈 대학으로, 이 대학교들은 일본열도를 따라 고르게 위치한다. 일본 유수 대학의 전국적인 고른 분포는 지역 균형 발전뿐 아니라 학문적 경쟁력을 유지하는 데에 기여한다. 국공립대 통합네트워크가 안정적으로 운영되려면 대학의 참여가 절실하지만 서울대와 다른 국공립대 사이의 격차가 커 서울대를 끌어들일 유인이 매우 부족하다. 서울대를 포함한 국공립대 통합네트워크가 성사되더라도 이후 주요 사립대에 선호가 몰리지 않게 하려면, 통합네트워크에 전폭적인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네트워크 참여대학과 비(非)참여대학 간 차별화가 분명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경희대 사회학과 김종영 교수는 “통합네트워크 시행 시 참여하는 모든 국립대에 서울대 수준의 예산을 지원해야 한다”며 “단기적인 관점에서는 사립대가 우세할지도 모르나 장기적으로는 대학 병목현상이 해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통합네트워크 참여대학에 대해 교육 및 연구, 시설 여건 등의 확고한 재정지원이 바탕이 돼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 고등교육 예산은 초중등교육 예산과 비교해 안정성이 현저히 낮다. 2015~2020년 교육예산 구조와 추이에 따르면 교육 분야 예산은 연평균 7.3% 증가했다. 교육 분야 예산에 배정된 유아·초중등교육 예산과 고등교육 예산을 비교해보면, 유아·초중등교육은 2015년에서 2020년 사이 예산이 연평균 8.8%나 증가했으나, 고등교육 예산은 동일한 기간에 연평균 증가율이 0.6%에 그쳤다. 심지어 고등교육 예산은 2015년에 10조 5280억이었으나 2016년과 2018년 사이에는 10조보다 적었고, 2019년에도 2015년 예산액보다 적었다. 고등교육예산은 교육예산의 구조적 성격으로 인해 경직적이다. 따라서 고등교육 재정 확보를 위한 제도 신설과 법 제정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교육부의 2013~2017년 BK21플러스 사업 지원 현황에 따르면 서울 주요 사립대는 지방 국립대보다 해마다 1670억 원가량 지원금을 더 받았다. BK21플러스 사업 외에 대학혁신지원, 링크플러스 사업 등 정부의 2019년 대학 재정지원에서도 서울 소재 상위 10개 사립대가 1941억900만 원을 받은 반면 상위 10개 국립대는 1695억5000만 원을 받았다. 국공립대 통합네트워크를 시행하게 되면 사립대가 더 많은 지원을 받는 현재의 구조를 전환해 국립대 통합네트워크에 정부가 지원을 더 늘리게 된다. 국공립대 통합네트워크는 서울 위주 독점을 해체해 교육의 사회적 병목현상을 줄이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인구절벽과 4차 산업혁명, 위기에 놓인 교육… 국공립대 통폐합부터 이미 현실로 성큼 다가온 인구절벽 문제에 대응하려면 사립대 비율을 줄이고 국공립대 네트워크를 형성해 연대와 협력이 가능한 고등교육 패러다임을 만드는 변혁적인 시도가 필요하다. 김종영 교수는 “인구절벽으로 심각한 타격을 받는 곳은 지방 사립대와 거점 국립대이다. 부산대학교도 미달 사태가 있지 않았나. 국공립대 통폐합은 타격이 가는 거점 국립대에 수요를 창출하는 것이어서 인구절벽에 대응하는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김 교수는 “결국 돈을 어떻게 쓰느냐, 우선순위를 어디에다 둘 것이냐의 문제”라며 “미래 세대에 투자하는 것이 국가경쟁력을 키우는 가장 효율적인 정책”이라고 강조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가는 경로는 이미 마련됐다. 비대면 교육의 장기화로 대학과 고등교육의 진정한 의미에 관한 사회적 고찰이 이루어지고 있고, 기기를 통한 비대면 만남이 자연스러워지며 초연결사회로 대변되는 시대가 도래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더는 소수 엘리트만을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수직적 서열화의 시스템이 통하지 않는다. 단독의 개인, 기관의 역량을 통한 경쟁력보다 연대와 협력을 통한 다원화와 다양화의 경쟁력이 살아남는 시대이므로 고등교육의 패러다임 역시 이에 걸맞게 바뀌어야 한다. 국공립대 통폐합이 시작점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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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목! 이 사람]충남 부여 송정그림책마을 사람들(2020. 02. 07 15:23)
- 2020. 02. 07 15:23 사회
- ㆍ산골 주민들의 그림책 이야기 “가마니 팔고 나면 점심때여. 아버지는 장을 둘러보고 살 거 사고는 ‘야 가자’ 그려. 날은 춥고 부글부글 끓는 국밥이 눈앞에 있는디, 그거 한 그릇 사주면 조컸는디, 성큼성큼 걸어가. 빈 지게 지고 아버지 따라서 산 넘고 집까지 오는 거여.” 충남 부여 산골의 송정그림책마을. 이장 박상신씨(75)는 <가마니 팔러 가는 날>이라는 그림책에서 어릴 적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때는 마을에 80가구 수백여 명이 살았다. 지금은 30가구 50명 남짓이 산다. 다시 북적이는 마을을 만들기 위해 2015년부터 국비 공모사업으로 마을을 새로 가꾸기 시작했다. 테마는 그림책으로 잡았다. ‘그림책미술관시민모임’과 손잡고 주민들이 직접 그림책을 썼다. 2017년 8월 마을 입구에 문을 연 찻집에선 23권의 그림책이 반긴다. 주민 절반이 그림책 작가인 셈이다. “처음엔 나부터도 ‘농사꾼이 무슨 책이여’라고 생각했지유. 지금은 방문객들 앞에서 책을 읽어줄 때 굉장히 보람을 느끼고 자긍심을 갖게 돼요. 사람이 많든 적든 책 읽어드리면 같이 울고 웃어. 내 이야기로 서로 공감하고 소통하는 거지요.” 사업 초반 2년은 자신의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데 썼다. 이후 그림책에 실을 이야기를 정하고, 그림 그리는 법을 배웠다. 얇은 책 한 권에 3년 3개월의 노력이 고스란히 담겼다. 스물하나에 결혼해 송정마을로 온 부녀회장 김외숙씨(55)는 <내 고향은 바다마을>을 썼다. 통영 갈도의 외갓집 기억을 담았다. “외갓집에서 태어나서 여섯 살까지 살았는데 외할아버지가 나를 엄청 사랑해주셨어요. 방학하면 외가에서 놀았던 게 너무 그리운 거라. <쑥대머리>도 잘 부르시고 밥 뜨면 수저에 반찬을 꼭 앉혀주셨어.” “나는 신랑 얼굴도 모르고 혼인했어. 시집와서 보니, 참 일도 잘허고 맘씨도 착허고 인정도 많았어. 근디 술을 너무 좋아하네.” 박송자씨(77)는 <꽃 심는 닭 이야기>에서 오십여 년을 함께 산 남편 이야기를 꺼낸다. 그는 “평생 농사만 짓던 사람들이 이런 거 할 줄 누가 알았겠나. 책 만들고 사람들 만나는 게 기적 같다”고 했다. 소 여물 주고, 참새 잡고 놀던 기억으로 <내 친구>를 쓴 이정의씨(79)는 “(책 판매·찻집 운영 등으로) 생전 돈봉투 받아본 게 처음이다. 새끼들도 잘 만들었다고 하고 뿌듯하다”고 말했다. 마을 어르신들은 방문객들에게 옛날이야기 들려주며 같이 산책하고, 그림책을 토대로 인형극을 열기도 한다. 마을 사무장 이선정씨(43)는 어르신들의 든든한 버팀목이다. 한 달만 쉬다 가자며 이곳에 온 지 3년이 됐다. 이씨는 “짧은 시간 동안 어르신들의 삶을 간접 경험하기 위해서는 구전 형태의 그림책이 정말 효율적인 매체”라며 “이 마을이 누구나 자기 인생의 이야기로 그림책을 만들 수 있는 곳이었으면 좋겠다. 세대교체를 어떤 방식으로 할지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올해는 방문객들이 오래 머물다 갈 수 있도록 숙박 공간을 마련할 계획이다. 어르신들이 직접 키운 농산물로 만든 메뉴 개발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텅 빈 야학당 자리에도 의미 있는 공간을 만들어보려 한다. 마을은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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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희복의 인물탐구]식민지근대화론 비판 충남대 명예교수 허수열 “식민지근대화론 기초 통계부터 엉터리”(2019. 09. 27 14:37)
- 2019. 09. 27 14:37 사회
- 이영훈 이사장의 낙성대경제연구소가 펴낸 책 <반일종족주의>가 논란이다. 조국 법무부 장관이 “구역질 나는 책”이라고 비난하자 저자 6명이 모욕죄로 고소하기도 했다. 이러한 논란에 힘입어 <반일종족주의>는 베스트셀러 대열에 오르는 기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 책에 논란은 많지만 ‘학계’에서 정식으로 비평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러다 보니 언론도 분명하게 비평·보도하지 못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충남대 허수열 명예교수(69)는 식민지근대화론을 ‘학술적’으로 비판하는 몇 안 되는 학자다. 그러나 그는 언론 인터뷰를 꺼린다. 학회에서 논쟁은 하지만 언론에 직접 얼굴을 내밀기는 아마 처음일 것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그와 이 이사장은 고교(경북고)·대학(서울대 경제학과) 동기동창이고 그 역시 식민지근대화론 창립자인 안병직 교수 제자이기 때문이다. 이영훈과 고교 대학 동기동창 -이영훈의 책 <반일종족주의>는 소설가 조정래의 <아리랑>에 대한 비난으로 시작된다. 뉴라이트 기관지 격인 <시대정신> 2007년 여름호에 만경평야가 일본인에게 수탈당하는 것으로 묘사한 <아리랑>은 ‘허구’라고 주장한다. “이영훈의 글을 선입관을 빼고 읽어보면 틀림없이 ‘혹’한다. 그러나 하나하나 뜯어보면 모두 거짓말이다. 나는 국가기록원에 있는 일제하 수리조합·토지 개량사업 자료 해제작업을 많이 했다. 당시 조선총독부에 제출한 수리조합 설립신청서는 낙성대경제연구소도 보지 못한 자료다. 이 자료를 보면 만경강 북쪽 옥구·익산·군산은 1909년 이미 빈틈 없이 수리조합이 있고, 만경강 남쪽 동진강 호남평야도 수리조합이 설립신청서는 냈지만 허가 나지 않은 상태였다. 수리조합 설립을 신청했다는 것은 이미 농사를 지었다는 것이다.” -<아리랑>의 배경을 놓고 벌인 이른바 ‘벽골제 논쟁’의 핵심은 무엇인가. “이영훈은 벽골제가 바닷물 유입을 막는 방조제로 그 하류 <아리랑>의 주인공이 살던 지역은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바다·갯벌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수리조합 신청서에 첨부된 당시 ‘동진강 수리조합 구역도’를 보면 이 지역에 마을과 수로 표시가 있다. 갯벌에 수로 표시를 할 이유가 있을까. 서울대 규장각에 있는 1872년 지도에는 전북 김제군에 5개 장시(5일장)가 있는데 그 중 2개가 벽골재 하류에 있다. 갯벌 위에 5일장이 열릴 수 없다.” -식민지근대화론의 핵심은 조선후기 산업의 핵심인 농업이 몰락했고, 이를 일본 기술과 자본이 일으켜 결국 근대화를 이룩했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허 교수는 조선후기 농업 몰락을 수치로 반박했다. “낙성대경제연구소 문건을 보면 ‘두락당 지대량의 장기 추세’ 그래프가 있다. 1685년부터 1945년까지 논 한 마지기에 지대를 얼마 받았느냐를 회귀분석을 통해 그래프로 그린 것이다. 지대가 떨어진 것을 생산량 하락으로 봤다. 그래프는 1910년 거의 바닥으로 농업이라는 산업기반이 무너진 것을 표시한다. 이 그래프에는 1685년 지대로 22말을 받았는데, 1935년에는 14말 받은 것으로 돼 있다. 1935년은 일제강점하 농업생산성이 가장 높았던 시기로, 1685년보다 토지생산성이 낮았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조선 농업의 몰락 사실은 이영훈 교수의 학문적 근거이자 바탕이다. 이런 허술한 그래프가 이론적 바탕인 것이 놀랍다. “이 그래프는 30여개 지주 장부를 근거로 회귀분석한 것인데 회귀분석에서 유의성과 사실은 별개다. 이 지주 장부도 일관성이 없고, 연도별로 드문드문 있다. 그 중 전라도 영암 남평 문씨 문중 논에 대한 지대장부만 이런 추세를 보이고, 나머지는 대체로 일정하다. 이 1개 장부가 전체 통계를 왜곡시킨 것이다. 한 개의 데이터가 매우 특이할 때 통계에서 그것을 제외해야 하는데 이영훈은 그리하지 않았다. 또 하나 문제는 조선후기로 들어와 소작제도가 변화하면서 지대를 받는 방법이 달라졌다. 그걸 감안하지 않고 장부상 수치만 보다 오류가 생겼다.” 사실 낙성대경제연구소는 실증적 연구와 수학을 동원한 수량경제학을 강조한다. 조선후기 농업을 전공한 이영훈을 비롯한 낙성대경제연구진이 전국 수리조합 창고를 뒤져 장부를 발굴해 쓴 <근대조선 수리조합 연구>는 조선후기·일제하 농업연구의 기반이 되는 연구서로 식민지근대화론의 이론적 바탕이 되는 책이다. 그런데 일제하 공업·노동을 전공한 허 교수가 이 책의 기반을 흔들었다. 2005년 <개발 없는 개발>이라는 책으로 식민지 시대 개발을 비판한 그는 2011년 <일제 초기 조선의 농업>이라는 책으로 아예 식민지근대화론자의 이론적 근거인 농업부문 허구를 폭로했다. 경제학자로서 치밀하게 수치로 반박 낙성대경제연구소(김낙년 <한국의 경제성장 1910~1945> 370쪽)가 추계한 1910년부터 1918년까지 실질농업생산액은 빠르게 증가한 것으로 돼 있다. 이후 1930년까지 평탄한 수준을 유지하다 다시 1940년까지 급속히 상승한다. 그리고 1942년까지 평탄하게 유지되다 끝난다. 결국 1910년부터 1942년까지 조선의 농업생산량이 급속히 성장한 것은 일본의 덕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허 교수는 이 통계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때는 일제가 토지조사사업을 한 기간으로 생산량이 증가할 합리적 이유가 없고, 토지조사사업으로 경지면적을 정확히 파악한 결과일 것이라는 것이다. 허 교수는 “일제가 산미증식운동을 벌인 1930년대 이후 농업생산량이 비슷한 것도 오류”라고 말했다. 특히 이 그래프는 1942년 일제가 미드웨이 해전에서 패배하면서 급격히 악화한 경제를 반영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허 교수는 “1943년 이후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 수준까지 떨어졌다”면서 “이것을 빼고 일제가 경제성장을 이뤘다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했다. 일제강점기 개발이 조선인 생활을 향상시켰다는 주장도 “일제의 하천개수사업은 철저히 일본인과 일본군을 위한 사업”이라고 말했다. 그는 농업생산량은 해방 후 급격히 늘었고, 한국 경제는 일본에 의해 성장한 건 아니라는 게 그의 결론이다. 허수열 교수가 이영훈 통계의 허상을 조목조목 반박하고 있다. 허 교수가 이렇게 치밀하게 수치로 반박할 수 있었던 것은 경제학자라서 가능했다. 숫자와 통계를 들이밀며 얘기하면 국사학계 학자들은 반박을 못한다. 허 교수는 “이영훈의 특징은 숫자를 들이밀며 얘기해 반박하기 어려운데, 문제는 그 숫자가 모두 엉터리라는 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영훈 이사장과 고등학교 동기동창에 대학도 같은 과를 다녔으니 매우 친하다. 학회에서 치열하게 논쟁을 하다가도 점심 때 같이 웃으며 식사하는 사이다. 허 교수도 “이영훈은 학생운동을 하다 군대에 끌려간 운동권으로 나를 ‘의식화 교육의 대상’으로 삼았다”면서 “나는 달라진 것이 없는데, 그들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뭐가 달라졌을까. 이영훈 이사장은 1970년 전태일이 분신했을 때 제일 먼저 달려간 서울대생이며 대학생 시절 위장취업을 한 노동운동가다. 이 이사장은 학생운동으로 제적돼 군대에 강제로 끌려갔다가 제대 후 겨우 복학했을 정도다. 사실 운동권에서 역사문제는 매우 치열한 ‘주제’였다. 특히 원시 공동사회-고대 노예제 사회-중세 봉건사회-산업혁명 이후 근대 자본주의 사회를 거쳐 공산주의로 가는 마르크스의 사적 유물론은 1930년대 백남운의 <조선사회경제사> 이후 광범위하게 확산됐다. 마르크스 이론을 우리에게 맞추려면 조선에서 농업의 몰락과 자본주의 시작을 어디로 볼 것인가가 매우 중요하다. 경제사학자 중에 운동권·진보 성향이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이사장 역시 백남운 이론에 심취하다 1980년대 17세기 조선의 노비 인구가 오히려 줄고 19세기 조선 농업이 몰락하는 것을 발견, 백남운 이론에서 탈피했다. 이 이사장의 스승인 안병직 교수 역시 진보적 학자로 일제강점기를 ‘식민지반봉건사회론’으로 설명했다. 이는 해방 후 미국 식민지로 이어져 80년대까지 운동권의 주요 이론이 됐다. 그러나 지금은 식민지근대화론의 ‘시조’로 평가받는다. “학문의 세계도 정치판과 비슷” 식민지근대화론은 1980년대 중반 ‘사회 구성체 논쟁’ 때 역사학계를 중심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당시 진보 역사학계를 중심으로 ‘한말·일제침략하 자본주의 근대화론’ 논쟁이 일었다. 1922년 반식민지 민족해방 투쟁을 포기한 부르주아 민족주의자 이광수의 ‘민족개조론’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혔다. 허 교수는 “1970~80년대 고도성장의 부작용이 드러나던 시기에 중국 사회주의가 평등사회 모델로 많이 언급됐다”면서 “그러나 1991년 사회주의 환상이 무너지자 운동권이 대거 식민지근대화론으로 옮겨갔다”고 말했다. 이것이 ‘뉴라이트’의 탄생이다. 그는 “극좌에서 중간까지만 갔으면 좋았는데, 극우로 간 것이 문제였다”면서 “비극은 거기에서 시작했다”고 말했다. -<반일종족주의>를 쓴 낙성대경제연구소는 일제 강제징용과 종군위안부의 정부 강제성이 없다고 주장한다.(연세대 류석춘 교수의 위안부 발언이 논란이 되고 있다) “일제하 공업·자본·노동이 내 전공이다. 1930년대 주로 북한지역에서 공업화가 빠르게 이뤄지면서 노동수요가 증가한다. 1937년 중일전쟁 이후 조선총독부는 국가총동원법을 만들어 노동규제를 실시한다. 1942년 미드웨이 해전 패배로 일본·조선 경제가 급속히 악화되면서 강제징용이 시작된다. 조선총독부는 알선이라 하지만 실제는 강제다.” -일본이 계속 주장하고, 우리나라 학자상당수도 종군 위안부 모집에 정부의 강제성 문건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 정말 없는 것인가, 학자들이 찾지 못한 것인가. “그런 문건을 조선총독부가 남겨 두겠는가. 8월 15일 일왕이 항복을 선언하고 9월 미군이 들어오기 전까지 조선총독부는 계속 서류를 소각했다. 더 중요한 자료는 일본 방위성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공개하지 않는다.” -스스로 경제사학계의 ‘소수파’라고 했다. 식민지근대화론을 논박하는 교수들이 별로 없어 보인다. 혼자 고군분투하는 것 같다. “학문의 세계가 합리적이고 논리적 질서가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정치판과 비슷하다. 식민지근대화론을 신봉하는 교수 아래서 반대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을 수 있나. 경제사학을 전공해 밥먹고 살려면 서울대 이외에는 힘들다. 충남대의 내 밑에서 경제사학을 전공해 어느 대학 교수로 갈 수 있을까. 현실이 그렇다. 다수가 그러니 그냥 침묵하고, 나와 같이 엉덩이에 뿔난 사람만 소리치는 것이다.” 허 교수는 1951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경북고, 서울대 경제학과 70학번이다. 이영훈·김문수 전 경기지사 등과 동기동창으로 친하게 지냈다. 대학 때 이영훈만큼 운동권은 아니었다. 조교를 거쳐 안병직 교수로부터 1985년 박사학위도 받았다. 1978년부터 충남대에서 강의를 하면서 일본 교토대 초빙교수, 미국 하버드대 방문교수 등을 지내고 정년퇴직했다. 지금은 명예교수로 저술과 강연활동을 하고 있다. 가만히 허 교수를 보고 있으면 ‘점잖은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카메라 앞에서 기자의 뺨을 때린 친구 이 이사장과 180도 달라 보였다. 우정보다 진실이 더 중요했겠지만 그래도 친구를 공개적으로 비난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원 기자가 임종국상 수상자이지 않았으면 인터뷰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인터뷰하기 전 2006년 임종국상 수상소감을 기자에게 보여줬다. 그 수상소감에는 13척으로 330척과 맞선 명량해전을 앞둔 이순신 장군의 말이 인용돼 있다. ‘一夫當逕 足懼千夫(일부당경 족구천부)’. ‘한 명의 병사가 길목을 막으니 족히 천 명의 사내가 두려워한다’는 의미다. 식민지근대화론이 횡행하는 지금 그의 심경을 정확히 대변하는 것 같다.
- 원희복의 인물탐구
- [기획 시리즈-대선주자 릴레이 정책 검증](4) 안희정 충남지사… 안희정표 대연정론 경선에선 마이너스?(2017. 02. 14 15:00)
- 2017. 02. 14 15:00 정치
- 최근 여의도 정가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최대의 화제는 ‘안희정 현상’이다.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설 전후로 대선주자 지지율이 두 배로 뛰었다. 그 이후에도 상승세가 멈추지 않고 있다. 10일 한국갤럽이 발표한 2월 2주(2월 7∼9일 조사) 여론조사에서는 19%로 급등했다. 한 주 전 여론조사의 10%에서 두 배 가까이 뛴 것이다. 민주당에서 가장 지지율이 높은 문재인 전 대표의 지지율 29%에 한 걸음 성큼 다가섰다. 대선을 둘러싼 논쟁에서도 ‘안희정표 대연정’이 최고의 이슈로 등장했다. 안 지사는 2일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예비후보 등록 후 기자간담회에서 대연정론을 제기했다. 이날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는 새누리당의 포함 여부에 대해 “누구든 개혁과제에 합의한다면”이라는 조건을 달았다. 문재인 후보가 새누리당 포함 대연정론에 반대하면서 대연정 이슈는 가장 폭발력 있는 이슈로 발전했다. 진보진영 내부의 일부 비판에도 불구하고 안 지사는 대연정론을 거둬들이지 않았다. 안 지사는 9일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대연정은 선거전략이 아니다”라며 “민주주의자 안희정으로서의 일관된 제 소신이고 신념”이라고 말했다. 대연정론이 야권은 물론 정치권 내부에서 논란이 되면서 안 지사에 대한 대선후보 평가는 대연정론, 하나의 문제로 몰려가는 국면이다. 여권의 한 의원은 “문재인 후보의 대세론 때문에 여권에서도 안 지사의 대연정론을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새누리당의 한 의원은 “개인적으로는 안 지사의 주장을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2월 8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반도미래재단 초청 토론회에 참석해 연단에 오르고 있다. / 김창길 기자 비문 진영 움직임 이끄는 촉매제 안 지사의 대연정론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그동안 잠잠했던 비문(非文) 진영의 움직임을 이끄는 촉매제가 되고 있다. 문 후보에 맞서온 비문 의원들이 대연정론에 동조하며 안 지사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의제와전략그룹 ‘더모아’ 윤태곤 정치분석실장은 “대연정은 당위에서는 부정적”이라고 말했다. 윤 분석실장은 “안 지사가 협치를 자주 말했지만 대연정은 세게 말한 것”이라면서 “전체 지지율에서는 플러스가 되지만 민주당 경선에서는 마이너스가 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다만 윤 실장은 “밖에서 펼치는 중도 전략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 커지면 민주당 경선에서 마이너스가 묻힐 수 있다”고 말했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안 지사의 대연정 주장이 이례적으로 나타난 것이 아니다”라면서 안 지사의 예전 정치적 발언을 상기시켰다. 홍 소장은 “참여정부 이후 한·미 FTA가 불거졌을 때 대부분의 인사는 참여정부 때와는 달리 반대의 입장을 보였는데, 안 지사는 참여정부 때 정책이 옳았다고 이야기했다”면서 “자기 신념이 명확하고 정치적 뚝심이 있다”고 평가했다. 이런 주장의 연장선상에 대연정론이 있다는 것이다. 홍 소장은 안 지사의 이런 발언 때 진보진영에서 반론이 거의 없었던 점이 특이했다고 보았다. 윤 정치분석실장 역시 대연정론에 대해 “안 지사가 진보진영에 대해 자신감을 갖고 있는 듯하다”고 평가했다. 만약 정치적 신념이 약하거나 아니면 정치적 행보가 의심스러웠다면 진보진영으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았을 것이지만, 안 지사의 정치적 소신을 헤아리고 있는 진보진영에서 일단 노골적인 비난을 삼가고 있다는 것이다. 윤 실장은 “정치에서 가장 나쁜 것이 오락가락하는 것인데, 안 지사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라든지 복지 문제에 대해 그것이 옳든 그르든 일관성이 느껴진다”고 평가했다. 안 지사는 사드 배치에 대해 다른 민주당 대선주자에 비해 전향적이다. 잘못된 결정이지만 한·미 군사동맹의 합의를 중요시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복지 문제에 대해서도 이재명 성남시장과 신경전을 벌였다. 이 시장이 내놓은 기본소득 등의 복지공약에 대해 안 지사가 ‘공짜밥’에 비유하자, 논쟁이 벌어졌다. 안 지사는 과의 인터뷰에서 “제가 말하는 것은 민주주의 정치인의 태도”라면서 “선거를 앞두고 뭘 더 주겠다는 것은 표를 얻을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민주주의 공화국의 국민적 합의와 국가의 품질을 높이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안 지사는 사드 배치 문제에 대해 “내가 동의하지 않지만 전임 정부가 잘못된 결정을 통해 사드를 합의했다”면서 “일단 존중한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문제 풀기에 유리하고 국가를 덜 분열시킨다”고 말했다. 복지정책에 대해서는 “내 원칙은 반드시 근로능력이 있는 자에게는 일자리를 통해 (정책을 펼쳐야 하고), 근로능력이 없는 자에게는 국가가 책임을 지고 보살펴야 한다는 것”이라면서 “논쟁거리가 될 수 있지만 이런 원칙을 갖고 원칙이 훼손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지도력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안 지사가 주장하는 모든 정책과 주장의 근거에는 민주주의의 원칙이 있다. 안 지사는 과의 인터뷰에서도 민주주의 원칙이 대화와 타협임을 몇 번씩이나 강조했다. 이 같은 주장에는 안 지사가 오랫동안 민주당에서 보좌관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참모로, 충남도지사로 활동해오면서 민주주의의 원칙을 견지해 왔다는 점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안 지사의 민주주의 원칙은 충남도정(道政)에서도 시도됐다. 대표적인 것이 3농 혁신이다. 2010년 충남도지사에 취임한 후 안 지사는 3농 혁신을 도정의 핵심과제로 밀어붙였다. ‘지속가능한 농업’ ‘살기좋은 농어촌’ ‘행복한 농어업인’이 3농 혁신의 목표다. 다른 지자체장들이 성과와 실적 쌓기에 좋은 기업 육성에 앞장서는 것과는 달리 안 지사는 오히려 농업 혁신을 도정의 맨 앞자리에 뒀다. 안 지사는 “사실 정치는 민주주의를 통해서 공정과 정의라는 가치를 높이는 것”이라면서 “정치가 당장 성과 나오는 쪽에 가서 그것이 마치 정치가 한 일인 것처럼 하는 활동에 대해 나는 그것이 정부나 정치의 자기 역할이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안 지사는 “시장의 실패, 시장에서 패배한 영역, 계층, 사람, 부분에 대해서 정부가 어떤 역할을 할지에 대해 주목해야 하는 것, 그것이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사드 배치 문제 한·미 합의 중요시 안 지사표 정책에서 늘 따라다니는 꼬리표는 참여정부의 공과다. 안 지사는 참여정부의 공과에 대해 “모든 정부의 공과를 평가하기보다는 역사에서 좋은 점을 계승하는 것이 역사를 대하는 태도라고 본다”면서 “현재의 문제점으로 나와 있는 것은 나의 숙제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안 지사는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전임 정부의 과 때문에 생겨난 문제라고 해서 전임 정부를 비판하는 데 시간을 안 쏟았다”면서 “현실의 문제는 우리들의 과제라고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참여정부의 공과는 이번 대선에서 중요한 정책 기준이 되고 있다. 민주당에서 양강 전선을 구축한 문재인 후보와 안 지사가 모두 참여정부의 적통이기 때문이다. 홍형식 소장은 “두 후보의 면면이나 정책을 볼 때 한쪽은 정치개혁을 주장하고, 다른 한쪽은 개혁 이후의 통합을 고려하면서 역사적 완결성을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단순히 중도냐 진보냐라는 논쟁보다 더 발전된 측면이 보인다”고 평가했다. 안풍(安風)이 불고 있음에도 문 후보의 대세론에는 아직 미치지 못하고 있다. 문 캠프 측 한 인사는 “지지율이 중요하긴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지지율의 강도”라면서 “이런 측면에서 보면 문 후보의 지지율 강도가 더 강하다”고 분석했다. 홍형식 소장은 “지금 국면에서는 정권교체 프레임이 작동돼 문 후보의 개혁론이 유리하지만 탄핵 결정이 나고 나면 다른 차원의 국면이 전개된다”면서 “그때가 되면 유권자들은 감성적이 아니라 이성적으로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 [주목! 이 사람]우리나라 자영업 특성 연구한 박창귀 한국은행 대전충남본부 경제조사팀장 “은퇴 후 자영업, 무직 징검다리”(2016. 08. 17 09:37)
- 2016. 08. 17 09:37 사회
- / 박창귀 제공 한국의 자영업은 무직으로 가는 징검다리다. 박창귀 한국은행 대전충남본부 경제조사팀장은 지난 2월 발표한 ‘우리나라 자영업의 과도기적 특성 연구’에서 한국 자영업을 이같이 분석했다. “우리나라 자영업은 50대 혹은 본격적인 은퇴기에 접어든 베이비붐 세대를 중심으로 늘고 있다. 이는 근로자로 있다가 은퇴하여 자영업을 창업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창업한 자영업자가 5년 이상 생존하는 비율은 20%를 밑돈다. 이들이 폐업하면 어디로 갈 것인가? 규모를 줄여 자영업을 하든지, 무직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큰 것이다.” 대기업 프랜차이즈가 골목상권을 장악하고, 주요 상권의 크고 작은 상점들이 외곽으로 밀려난다. 곳곳에서 대형자본들이 제 덩치를 키워가고 있는 지금 ‘자영업자로 살아남기’는 ‘계란으로 바위치기’나 다름없다. 상용근로자에서 자영업자로, 자영업자에서 무직으로 가는 이 메커니즘은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사회 구조에서 파생한 구조적 문제다. 박 팀장은 위기에 봉착한 자영업의 출구로 두 가지를 들었다. ‘협동조합’과 ‘농촌’이다. 모두 ‘공동체’를 강조한 해법이다. “영세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혼자 힘으로는 어렵다. 혼자서는 창업하고 폐업해 무직이 되는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규모가 있어야 생산·판매·유통 등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2012년 협동조합기본법이 마련되면서 협동조합 설립이 간소화되고 사업범위의 제한이 사라져 다양한 영역의 협동조합 설립이 가능해졌다. 박 팀장은 이를 토대로 정부 혹은 유관기관들이 창업지원을 할 때 이에 대한 교육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공동구매, 공동마케팅 등으로 비용을 절감하고, 정보 및 경영 노하우 등을 공유함으로써 경영역량을 강화시켜야 한다.” 자영업이 농촌에서 출구를 찾아 자영업과 농촌이 함께 상생하는 방안도 제시됐다. “인구 감소 및 노령화로 농촌이 크게 침체되고 있는데, IT기술을 어느 정도 습득한 베이비부머 등이 합류하게 되면 새로운 활력을 찾을 수 있고 부가가치도 높일 수 있다.” 박 팀장이 자영업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12년 ‘한국의 경제성장과 사회지표의 변화’ 공동연구를 하면서다. “공동연구했던 조윤제 교수님이 이전부터 자영업 문제가 상당히 심각해질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경제민주화에 대한 논의가 있어서 이 부분에 대한 연구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나 또한 2000년대 초반부터 가계부채 문제를 연구하면서 자영업에 관심을 갖게 됐다. IMF 사태 이후 가계대출이 늘었는데 2000년대 초반부터 문제점이 조금씩 드러났다. 그러나 해결은 되지 않고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 자영업은 한국 경제의 뇌관인 가계부채의 핵심고리이기도 하다. 박 팀장은 “자영업자·고령층·저소득자를 가계부채의 3대 약한 고리라고 하는데, 이는 자영업자가 가계대출을 받아 사업자금 용도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영업자의 하층은 임금근로자에 비해 소득이 크게 낮다. 그런 의미에서 ‘3대 약한 고리’의 핵심은 영세 자영업 문제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자영업의 활로를 찾기 위해 자영업을 사회복지의 문제와 연계해서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자영업 발전을 위해 정부가 노력하고 있기는 하나, 보다 체계화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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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인경이 만난 사람]홀로서기 성공한 ‘친노’ 안희정 충남지사(2013. 05. 28 11:04)
- 2013. 05. 28 11:04 정치
- ㆍ“노 전 대통령은 팔이 안으로 굽는 것 혐오했는데 친노가 그러니 노무현 정신 사라지기 바라나” 노무현… 이미 임기를 끝마친 전임 대통령이시다. 심지어 이 세상에 계시는 분도 아니다. 그런데도 세상은 왜 이리 그의 이름을 놓고 시끄러운가.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자산이 친노라는 이름으로 불공정 상속되고 있다는 불만이 이 소란을 일으키고 있는 원인 중의 하나다. (중략) 노무현 대통령 4주기 다음날인 5월 24일 새벽,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렸다. 노 대통령 생전에 ‘좌희정 우광재’로 불렸지만, 2008년 18대 총선에서 과거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전력으로 당시 비리전력자 공천 배제 룰에 걸려 공천장을 못 받고. 친노는 폐족이라고 선언했던 안희정 충남도시자는 그러나 정치인으로서 홀로서기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내년 지방선거 재선에 성공하면 노통 적자로서 대권가도에서도 유리해진다. 친노와 반노로 시끄러운 정국에서 안희정 지사를 만나 노무현 전 대통령, 그리고 그의 정치적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6월 2일이면 충남 도지사 3년째다. 3년차 소회를 말한다면. “한국 사회에서 아직 지방자치제가 자리잡지 못했다. 관선시대의 행정제도와 관행은 그대로이고 도지사 등 ‘장’들만 바뀐 것이다. 지난 3년간은 정부와 관이 주도하는 시대로부터 민이 주도하는 행정혁신 과제에 대해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선출직 도지사가 할 일이 뭔가, 어떤 일을 해야 하나 등 지도자 역할론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 이 시대, 이 지역에 맞는 지도력을 발휘하려면 전통 민주주의 가치와 지속가능한 발전 철학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공정성·청렴성·권력의 부패와 오남용을 막아야 도민들에게서 공평한 기회를 박탈하지 않는 것이다.” 이미지도 그렇고 전임자에 비해 너무 젊어서 ‘도지사님’이란 말이 잘 어울리지 않는다. 체질에는 맞는가. “공직자, 지휘자로서 훈련받는 과정이다. 일반 직장생활과는 확실히 다르다. 나를 지지했거나 반대한 이들 모두의 대표자로서 가치와 신념을 행정에 반영시키려 한다. 스스로 고민한 것이 매일 서류를 결재하면서 도지사로의 권리를 행사한다는 의식보다는 210만명의 도민 모두에게 결재받고 올린다는 심정으로 살핀다. 도민들은 추상적이긴 하나 확실한 실체다. 그분들이 그 기안에 사인을 해줄까, 안 해줄까를 먼저 고민한다. 그러면 내 마음 속의 추상적 실체인 도민들과 내 역사인식이 자꾸자꾸 자리잡고 실체화한다.” 최근 광역시·도 통폐합을 주장했다. “현재의 지자체 구조는 임금님이 나라 통치하던 시대의 유물이다. 1896년 고종 33년에 만들어진 체제다. 임금님의 땅으로 통치 필요성에 따라 나누고 관찰사를 보낸 것이 도지사다. 중요한 것은 어떤 국가 시스템이 가장 효과적으로 작동하는가다. 이젠 임금님의 땅이 아니라 땅 위에 사는 사람들의 관점으로 국가를 봐야 그들이 필요로 하는 생활상의 요구들이 보인다. 학교, 도로, 버스정류장, 철도, 상하수도 등등…. 개인이 해낼 수 없는 생활상의 요구를 공공적으로 관에서 처리하라고 만들어진 것이 지자체 아닌가. 또 인구에 따라 나누기보다 땅 위에 살아가는 시민의 눈으로, 그들의 생활 필요의 기준으로 나눠야 한다는 것이다. 중앙정부에서 처리할 일도 있지만 국가 단위에 넘기기에는 애매한 공공수요들을 자방광역단체가 해야 한다. 정부는 외교·국방 등에 주력하면 된다. 그래야 대통령도 대통령답게 큰 그림을 그리고, 국회의원들 역시 국가 의제를 결정하는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지금 국회가 지역문제 해결하는 로비 장소로 변질된 것도 지자체의 구분부터 잘 안 되었기 때문이다.” 공약의 97% 완료 또는 정상 추진했다는 보도를 봤다. 공약은 그야말로 헛된 약속이라는데, 이것이 가능한 비결(?)은 무엇인가. “무리한 공약은 안 한 덕분이다.(웃음) 3년 전의 제1공약은 지역주의를 철폐하고 국가로부터 분권을 실천하겠다는 것이다. 세종시 원안 지키기, 무상급식, 무상보육 등이 완료되었거나 정상진행 중이다.” 지역민들과는 어떻게 소통하나 “그분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드린다. 어느 자리에서건 그분들이 이야기할 수 있도록 권위적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내 말을 자르고 들어오거나 비난을 해도 기분 나빠하지 않으면 된다. 도지사가 되고 많이 배운 것 중에 하나가 설령 답이 없더라도 들어주자는 것이다. 논쟁에서 결론을 내려 하지 않는다. 사실 모든 일은 전문가와 도민들이 직접 한다. 도지사가 삽을 드나, 모를 심나. 도정 목표를 설명하고 대화와 타협을 하고, 그 과정을 공정하고 투명하게 공개하면 된다. 민주주의 지도자로서 기본 원칙은 민이 주인이라는 것이다. ‘내가 해줄게’의 관점으로는 안 된다. 내 등 어디가 가려운지 남들이 모르는 것처럼 주민들의 요구는 주민들로부터 들어봐야 한다. 열린 마음으로 그 자리에 앉아 싫은 내색 없이 평온한 표정으로 있다. 주위에선 ‘도지사 하랬더니 마음공부하고 있네’라는 말도 한다.” OECD 가입국이긴 하나 도농간 격차가 매우 심한 나라이다. 최근 주장한 3농 혁신사업으로 그 격차가 해소될까. “도시의 임금생활, 혹은 제조업과 농업은 차원이 다른 일이다. 기계장치를 바꾸면 시간당 생산성을 높이는 제조업과 농업은 다르다. 지자체마다 CEO 농부를 강조하는데, 생산성과 소득증대의 관점에서 벗어나야 한다. 농사 등 농업은 자연재해 등에 속수무책일 때가 많아 농가소득 보전을 위한 각종 제도가 필요하다. 농가소득이 100원이라면 스웨덴 등 유럽의 경우 보전금이 45원 정도이고, 미국과 일본도 25원 정도 보전해주는데, 우리는 14원 정도이니 이걸 높여줘야 한다. 친환경 유기농도 그렇다. 소비자 신뢰 증진, 농토 자연환경 살리기에 정말 필요하지만 비료 등 기존 관행농법으로는 불편한 게 많다. 기술적으로 농민들의 자기혁신 운동이 필요하다. 지산지소, 즉 지역에서 생산된 산물을 그 지역에서 소비해야 하는데, 우리는 정작 전국의 모든 농수산물이 서울 가락시장을 다녀온다. 로컬푸드 시스템을 강화해 지역 농협과 학교 급식 시스템을 연계하는 등 직거래를 강화하고, 그 과정을 통해 브랜드 파워를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또 마을 가꾸기를 잘하는 것도 3농 혁신에 포함된다. 깨끗하고 예쁜 마을에서 아름답게 살자는 것이다. 농가에 고령의 어르신들이나 독거노인들이 대부분이라 쾌적한 노인 공동숙소를 만들어 안전망도 구축하려고 한다. 그런데 70대가 대부분인 이장님들부터 ‘내가 살면 얼마나 산다고 내 집을 고치거나, 새로운 곳에 모여 살아’라며 비협조적이시다. 5년 임대 조건으로 폐가나 폐교를 갤러리로 만드는 등 문화시설 증축도 필요하다. 귀농자들이 꼭 농사만 짓는 게 아니라 고향이나 농촌에 돌아와 숲을 가꾸고 이웃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등 행복감을 실천하며 제2의 인생을 만들 수 있다. 임금피크제가 아니라 인생피크제를 농촌에서 시작하면 되지 않는가.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렇게 되면 휴식과 관광, 레저 등 농촌의 6차산업화도 가능하다.” 이젠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5월 23일이 노무현 전 대통령 4주기였다. 한 인터뷰에서 ‘노무현을 보내자’고 했다. 무슨 의미인가. “전직 대통령을 여야가 정쟁수단으로 삼는 것은 못난 후손들이 하는 일이다. 노 대통령은 특권과 반칙이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하며 그 역할을 다 했으니 이제 역사의 대통령으로 보내드리자는 것이다. 솔직히 한나라당 시절에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너무 심하게 모욕을 드리지 않았나. 대통령 선거 끝나고도 자격 검증을 하자고 하고, 의원 연찬회에서도 조롱하고 희롱했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선택한 대통령인데 그건 결국 국민을 조롱한 것이다. 보내자는 것은 버리자는 것이 아니다. 친노와 비노가 나뉘는 것은 현실의 퇴행이고 후퇴하는 것이다. 정파로 몰아서 기득권을 가지려고 하는 것은 그 정신과 가치를 훼손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왜 민주당에서 친노와 반노로 나뉘고 친노들 사이에서도 싸우고 분란이 잦은가. “그건 모르겠다. 다만, 반칙과 특권을 앞세우면 다시 노무현 대통령의 정신이 현실의 정치적 파워가 되기에 불편해하는 것 같다. 인연과 연고주의, 팔이 안으로 굽는 것 등을 노 대통령이 너무 혐오했는데, 정작 자신들은 그러니 노무현 대통령의 정신이 사라지길 바라는 것 같다.” 노무현 대통령처럼 애증이 교차되는 지도자도 드문 것 같다. 노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가장 크게 오해받는 노무현 대통령의 이미지는 무엇인가. “정치적으로 분열시키고 항상 싸움하는 사람이란 이미지다. 원칙을 중요시하고 권력을 내려놓으려는 것이 대중들보다 권력층에 몹시 불편했을 것이다. 그래서 더더욱 그런 이미지를 보수언론이나 기득권층에서 강화한 것 같다. 종부세의 경우, 정말 노 대통령은 선량한 서민들의 주택 소유에 대해 신중하게 판단한 것인데도 엄청난 저항을 받았다. 안보문제도 한·미동맹은 강조하고 자주국방 책임은 지지 않아 무책임하다는 판단에서 따끔하게 지적을 한 것이다. 좋은 대한민국, 강인한 나라를 만들자는 호소조차 오해를 받았다.” 얼마 전 정상명 전 검찰총장을 만났더니 임기 중에 단 한 번도 대통령이나 청와대의 전화나 개입을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재벌 구속문제 등으로 여론이 들끓을 때는 차라리 적절한 조언이라도 받고 싶은 심정이었는데 혼자 고독하게 결정해야 해서 고통스러웠다고 하더라. 공과를 떠나 노무현 대통령이 관행적 지위까지 내려놓은 것은 확실한 것 같다. “참여정부의 기조는 각자의 자기 책임 완수다. 검찰은 물론 각 기구가 법률과 국민 앞에 사실에 입각한 책임을 다하면 된다. 20대 중후반인 나와 이광재 전 강원지사에게도 참모나 스태프가 아니라 업무 담당자로서의 영역을 존중해주셨다. 나 역시 주어진 권한에 책임을 다할 뿐이었다. 당시 제1당인 열린우리당 의원들도 ‘대통령 뜻이 뭔가요’라고 물었다.” 장군, 선생님, 총재로 카리스마를 가진 여러 전직 대통령에 비해 노무현 대통령은 너무 서민적이어서 국민들에게 불편하고 어색했다는 주장도 있다. “대통령이라고 부르고 마음 속으로는 임금님이라고 생각한 나라에서 처음으로 명실상부한 대통령이 탄생했으니 그런 저항감이나 어색함을 가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대중들은 변화를 거부하는 속성도 있다.” 최근 한 조사에서 가장 훌륭한 대통령으로 노무현 대통령이 꼽혔다. 그런데 친노는 왜 비난을 받을까. “친노란 주홍글씨이긴 하나 실체가 없다. 친노는 전매특허도 아니다. 우리 모두의 노무현이다. 폐쇄적인 정파로서의 친노는 없고 누구와 경쟁하기 위해 패거리지어 배타하고 골탕 먹이는 그런 쩨쩨한 친노는 없다. 그렇게 의심한다면 그 자체가 노무현 정신의 후예로서 모욕이다. 연고주의와 냉전시대 논리, 중앙집권의 논리로 대한민국을 지배해왔던 낡은 기득권 질서가 노무현 정신의 정치적 성장을 두려워하며 공격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과 반대하는 이들을 친노로 규정하는 것 같다.” 내년 지자체 선거에 다시 도지사에 도전하나. “도민이나 국민은 ‘디테일(세심함)을 함의하는 시대정신’이 있는 사람을 선택한다. 그걸 알고 성실히, 열심히 일했다. 이런 스타일과 태도가 이 시대가 요구하는 측면에 부합한다면 쓰임이 있을 것이다. 청바지도 처음 빨래할 때 물이 많이 빠지고, 두 번째부터는 덜 빠지지 않나. 두 번째 빨래할 때가 다가오면서 제가 이끌었던 충남도정을 도민이 어떻게 평가할지 궁금하다. 올 연말쯤 종합적으로 도지사 업무 실적과 평가서를 정리해 도민에게 보고하는 자리를 마련할텐데 선택은 도민의 것이다.” 원하건 원치 않건 대선후보로 꼽힌다. 2017년의 국민들은 어떤 대통령을 필요로 할까. “노무현 대통령처럼 확고한 국정철학이 있는 대통령을 원하지 않을까. 나 역시 매일매일 올라오는 서류를 결재하며 도민들의 마음과 손이 되어 그들에게 서류를 올린다는 고민을 하다보면 그게 정책 철학이 되더라. 내가 열심히 일해 박수받는 것은 내가 출세하는 것이 아니라 도민들에게도 유익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게 더 넓어지면….” 노골적으로 출마 선언을 하진 않았지만 그는 ‘노무현 정신‘으로 무장하고 도시자 재선을 거쳐 청와대로 가는 꿈을 갖고 있는 게 확실했다. 물론 결과는 국민들의 마음, 그리고 하늘이 조금 도와주셔야겠지만….
- 유인경이 만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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