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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희숙의 명화 속 비밀 찾기](4)소년은 어디에서 탈출하고 싶었을까(2024. 03. 13 06:00)
- 2024. 03. 13 06:00 문화/과학
- ‘비평으로부터의 탈출’(1874년, 캔버스에 유채, 스페인 마드리드 국립은행 소장) 인공지능의 발달은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세상을 보여준다. 직접 운전하지 않아도 주행할 수 있고, 아이디어만 있으면 그림이나 음악을 완성하기도 한다. 직접 가보지 않고도 오지를 탐험하는 경험을 할 수 있게 한다. 이렇듯 인공지능은 우리 생활에 편리성을 제공하지만, 한편으로는 본래와 다른 의도로 사용되는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즉 지진이나 전쟁 사진을 교묘하게 편집해 실제보다 더 참혹하게 표현한 이미지로 후원을 유도하거나 정치인의 이미지를 실제와 다른 모습으로 묘사해 진실처럼 보이게도 한다. 인공지능 때문에 진짜와 가짜의 구별이 쉽지 않은 세상이 된 것이다. 진짜의 이미지와 가짜의 이미지를 혼동하게 만든 대표적인 작품이 페레 보렐 델카소(1835~1910)의 ‘비평으로부터의 탈출’이다. 소년이 어두운 실내를 벗어나기 위해 두 팔로 창틀을 잡고 오른쪽 발을 들어 창문을 넘어가고 있다. 소년의 창틀에 걸쳐져 있는 오른쪽 발은 밖으로 도망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며, 반쯤 벗겨진 상의와 드러난 어깨 그리고 무릎 위로 올라간 바지는 탈출 순간의 절박함을 암시한다. 흰자위가 반쯤 보일 정도로 크게 뜨고 있는 눈은 탈출하기 위해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며, 밖을 염탐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어두운 배경은 암울한 현실을 의미한다. 이 작품에서 창틀은 액자다. 액자는 작품의 세계와 현실 세계의 경계를 의미한다. 델카소의 이 작품에서 소년은 화가 본인의 심정을 뜻한다. 당시 델카소를 비롯해 착시효과를 극대화한 트롱프뢰유 화가(서양 미술사에서는 실물을 착각할 정도로 생생하게 표현하는 방식을 트롱프뢰유, 즉 ‘눈속임 그림’이라고 한다)들은 비평가들의 비난 때문에 굉장히 어려움을 겪었다. 델카소는 도망치는 소년으로 악평 때문에 활동을 포기해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대변했다. 19세기 말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트롱프뢰유 기법이 인기를 끌면서 전문 화가들도 나왔다. 하지만 비평가들은 물론 미술가들 사이에서는 비난이 점차 커졌다. 당시 사진의 발명으로 현실 세계를 똑같이 복제하는 기술은 더 이상 필요치 않게 되면서 화가들은 그림을 통해 사회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밝혀야 한다는 분위기였다. 즉 화가들은 완성된 작품을 통해 자신의 의견과 입장을 밝힐 수 있는 존재가 된 것이다. 델카소는 그림이 만든 가상 세계로 통하는 창을 둬야 한다고 비평가들에게 주장하고 있다. 또 소년이 빠져나오는 창틀은 관람객에게 두 세계를 생각해보도록 유도하는 장치가 된다. 결과적으로 델카소의 이 작품은 트롱프뢰유를 상징하는 작품이 됐다. 트롱프뢰유 기법으로 현재 우리는 트릭아이 미술관에서 그림을 재미있게 체험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가짜 이미지 때문에 피곤하다. 가뜩이나 복잡한 세상, 눈에 보이는 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머리를 써야만 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 박희숙의 명화 속 비밀 찾기
- 저성장 늪에 빠진 한국, 탈출구는(2024. 02. 02 17:35)
- 2024. 02. 02 17:35 경제
- 지난해 GDP 1.4%…심각한 내수 부진·수출 둔화 영향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월 15일 경기 수원시 장안구 성균관대 자연과학캠퍼스 반도체관에서 열린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세 번째, 민생을 살찌우는 반도체 산업’에서 마무리 발언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1.4%. 지난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다.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19 사태 등과 같은 경제위기를 제외하면 사실상 최저 수준이다. 일본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과 비교해도 낮다. 대외 요인과 함께 국내적으로 내수가 얼어붙고 수출이 경쟁력을 잃어버린 탓이 크다. 저성장 위기를 경고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성장률 1.4%의 의미 성장률 1.4%는 경제 규모가 큰 미국(2.5%), 일본(1.9%)보다 낮은 수준이다. 일반적으로 경제 규모가 클수록 성장률은 낮다. 반대로 신흥개도국 성장률은 주요 선진국 대비 높은 편이다. 지난 1월 30일(현지시간) 국제통화기금(IMF)이 발표한 ‘1월 세계경제전망(WEO)’을 보면, 인도(6.7%), 러시아(3.0%), 브라질(3.1%), 멕시코(3.4%) 등 신흥개도국(평균 4.1%)은 대체로 주요 선진국(평균 1.6%)보다 성장률이 높았다. 한국의 역대 성장률에서도 1.4%는 이례적이다. 최근 기준으로는 코로나19 대유행 첫해인 2020년(-0.7%) 이후 3년 만에 가장 낮았다. 이 전엔 2차 오일쇼크가 있었던 1980년(-1.6%), IMF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5.1%), 금융위기 때인 2009년(0.8%) 등 국내외적으로 큰 경제위기가 닥쳤을 때 역성장을 하거나 저조한 성장을 기록했다. ‘잃어버린 30년’으로 평가받는 일본에 성장률이 역전된 것도 외환위기 때였던 1998년 이후 25년 만에 처음이다. 저성장 위기감도 커지고 있다. 정규철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망실장은 “과거엔 우리 경제성장률을 얘기할 때 이례적인 상황을 제외하곤 1~2%대를 전망한 일이 거의 없었다. 작년 1.4%에 이어 올해 2% 안팎 수준의 전망치가 많은 것을 봐도 우리 경제의 저성장 추세가 이미 (이러한 전망치들에) 반영돼 있다고 봐야 한다. 다만 한 해 수치만 놓고 장기 저성장 국면에 진입했다고 보기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해 수출이 6327억달러로 전년보다 7.4% 감소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지난 1월 1일 컨테이너가 쌓여 있는 부산항 /연합뉴스 성장률 저하 원인은 성장률이 저조했던 건 심각한 내수 부진과 수출 둔화 영향이 컸다. 우선 내수를 보면, 민간소비와 정부소비가 각각 1.8%, 1.3% 증가하는 데 그쳤다. 전년 4.1%, 4.0%와 비교했을 때 큰 폭의 감소다. 가장 큰 원인은 고금리·고물가 영향이다. 정부가 올해 상반기 재정 집행을 확대하겠다고 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내수 부진은 통계청이 1월 31일 발표한 ‘2023년 12월 및 연간 산업활동 동향’에서 확인된다. 승용차 등 내구재(0.2%) 판매는 늘어난 반면 음식료품 등 비내구재(-1.8%), 의복 등 준내구재(-2.6%)가 줄어 전년보다 1.4% 감소했다. 2003년(-3.2%) 이후 최대 폭 감소이자, 전년(-0.3%)에 이어 2년째 감소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자체 집계해 1월 1일 발표한 자료에서도 지난해 우리 내수가 얼마나 힘든 한 해를 보냈는지 알 수 있다. 이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국내 민간소비 증가율(전년 동기 대비)은 0.2%였다. 국내 민간소비 증가율은 사회적 거리 두기 완화가 본격화한 2021년 4분기 6.1%였으나, 고금리·고물가 영향이 본격화한 지난해 2분기 1.5%, 3분기 0.2%로 쪼그라들었다. 같은 시기 OECD 38개 회원국 평균은 1.5%였고 경제 규모가 큰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이탈리아, 캐나다 등 주요 7개국(G7)의 평균은 1.2%였다. 골목상권 경기는 더욱 얼어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1월 3일 발표한 소상공인의 올 1월 전망 경기지수를 보면 79.5(100 이상이면 경기가 호전됐다고 보는 업체가 더 많고 100 미만이면 악화했다고 보는 업체가 더 많다는 뜻)로 전달 대비 5.4포인트 하락했다. 지난해 10월부터 넉 달 연속 하락세다. 수출은 최대교역국인 중국으로의 수출이 줄면서 1년 내내 부진을 겪었다. 중국 전체 수입에서 한국 비중은 6.3%로 전년의 7.4%보다 1.1%포인트 하락했다. 1992년 한·중수교 이듬해인 1993년(5.2%) 이후 30년 만에 가장 낮다. 수출 효자품목인 반도체가 부진한 영향이 컸다. 한국의 지난해 대중 반도체 수출은 361억달러로, 전년보다 30.6% 줄었다. 야당에서는 국정기조 변화를 촉구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1월 31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우리 경제는 지난해 외부 충격도 없이 1%대 성장이라는 역대급 위기를 겪었다”며 “윤석열 정부는 임기 초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초부자 감세를 추진했다. 경제가 성장할 것이라며, 있지도 않은 이른바 낙수효과를 내세웠다. 현실은 성장은커녕 막대한 세수결손만 초래하고, 재정 부족에 따른 서민지원 예산 삭감, 연구개발(R&D) 예산 대규모 삭감을 불러왔다”고 비판했다. 중국으로의 수출 부진, 국내 부동산 경기 악화 등이 성장률 저하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도 있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경제학)는 “저조한 성장률은 크게 2가지 측면에서 구조적인 문제가 드러난 결과라 할 수 있다. 첫째는 2010년대 이후 중국으로의 반도체 수출이 우리의 성장 동력이었데, 작년에 반도체 경기가 위축되고 중국 경제가 부진하다 보니 우리도 이런 부정적 영향을 받게 된 것이다. 또 하나는 내수 측면인데, 그간 우리 경제는 가계부채 증가와 맞물려 부동산 시장이 살아나면서 내수가 활기를 띠는 구조였는데, 지난해 부동산 경기가 죽으면서 이러한 내수 진작 방안이 힘을 쓰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전통적 방식의 성장 엔진이 과거처럼 작동하지 않는 한계를 보인 것”이라고 말했다. ‘저성장 우려’ 해법은 정부와 국내외 기관들이 전망하는 올해 한국의 성장률은 2%대 초반이다. IMF는 1월 31일 발표한 ‘세계경제전망’에서 한국의 올해 성장률을 2.3%로 전망했다. 지난해 10월 제시한 전망치(2.2%)보다 0.1%포인트 높아진 것으로, 정부(2.2%)·한국은행(2.1%) 전망치보다 높고 OECD(2.3%)와 같다. 기획재정부는 올해 세계 경제가 회복하고 미국, 중국 등 주요 교역국 상황이 양호한 점을 감안해 IMF가 이런 (상향) 전망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중국 반도체 이미지 / 로이터 | 연합뉴스 반도체 경기가 개선될 것이란 관측도 이런 전망의 배경이 됐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지난 1월 30일 발표한 올해 품목별 수출 증가율 전망치(전년 대비)를 보면 반도체 21.2%, 컴퓨터 55.4%, 무선통신기기 7.7%, 디스플레이 5.9%, 가전 5.1% 등으로 나온다. 연구원은 스마트폰, PC 등 전방 IT 품목의 수요가 개선되면서 반도체 수출의 성장세가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변수가 많다는 점에서 낙관적인 전망이라는 반론도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1월 28일 ‘2024년 한국경제 수정 전망’에서 잠재성장률 수준의 성장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지만, 소비와 투자가 바닥을 찍지 않았다는 점에서 불확실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연구원은 성장률이 상반기 2.3%, 하반기 2.1%로 연간 2.2%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부문별로 성장 하방 압력이 크다고 진단했다. 소비는 고물가·고금리가 지속돼 실질 처분가능소득이 감소하며 회복세가 제한될 가능성이 있고, 건설투자는 선행지표 부진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등 영향으로 건설기업의 자금경색이 지속되고 건설 체감 경기 악화가 이어질 것으로 관측했다. 수출 역시 기업의 수출 경기 회복 체감도 개선이 지연되는 가운데 경기 차별화, 환율 변동성 확대 등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고 연구원은 지적했다. 연구원은 앞서 지난해 9월 ‘2024년 한국경제전망’ 보고서에서는 “연간 2.2%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다만 “2023년 상반기의 낮은 성장률(0.9%)에 대한 기저효과에 기인하는 것으로 실질적으로는 상반기와 하반기가 유사한 경기 흐름을 보일 가능성이 커보인다”고 적었다. 하준경 교수도 “반도체 경기가 작년보다 올해 나아질 가능성이 높다. 다만 기저효과 등을 감안했을 때 경제주체들이 경기 호황을 체감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동향분석팀장은 “수출은 기업이 주도해야 한다는 점에서 정부는 수출 친화적인 정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수출 보험, 저리 융자, 보증 등과 같은 기업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정책들 말이다. 특히 수출입은행이나 무역보험공사 등의 공적자금을 동원해 그간 정상외교를 통해 맺은 국가 간 업무협약(MOU)을 신속하게 추진하고 사업화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 ‘공공의 적’ 낙인찍힌 은행, 탈출구 없나(2023. 11. 17 16:10)
- 2023. 11. 17 16:10 경제
- 시중은행 ‘돈 잔치’에 여·야·정 모두 고통 분담 요구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1월 1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주부, 회사원, 소상공인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제21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우리나라 은행들은 일종의 독과점이기 때문에 갑질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의 ‘은행권 때리기’가 거세지고 있다. 대통령은 ‘갑질’, ‘종노릇’이란 표현을 동원해 비판하고, 당정은 상생·서민 금융을 확대하라고 요구한다. 손쉽게 막대한 이익을 거뒀으니 그에 걸맞게 사회공헌을 확대하라는 것이다. 야당은 초과이익 환수를 위한 ‘한국형 횡재세’ 도입을 추진 중이다. 은행권은 바짝 엎드렸지만, 노조는 강하게 반발한다. 전문가들은 은행의 사회적 책임 확대 필요성엔 공감하면서도 지금처럼 은행권 팔 비틀기 방식은 부작용만 키울 수 있다고 지적한다. 여권의 전방위 압박 윤석열 대통령의 최근 은행권을 향한 발언은 직설적이고 강도가 세다. 윤 대통령은 지난 10월 30일 국무회의에서 “마치 은행의 종노릇을 하는 것 같다”는 한 소상공인의 발언을 전하며 ‘독과점 구조’에서 ‘고금리 이자이익’을 챙기는 은행권을 강하게 비판했다. 11월 1일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는 “우리나라 은행들은 일종의 독과점이기 때문에 갑질을 많이 한다”, “은행의 독과점 행태는 정부가 그냥 방치해서는 절대 안 된다. 강하게 밀어붙여야 한다”고 했다. 올 초 ‘은행은 공공재’, ‘돈 잔치’ 발언 이후 한동안 잠잠했던 은행권 압박의 강도가 최근 다시 격해지는 모습이다. 윤 대통령은 올 2월엔 “고금리로 서민들이 힘든 와중에 은행들은 돈 잔치와 이자 장사를 벌이고 있다”며 은행의 ‘돈 잔치’와 관련한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앞서 1월 금융위 업무보고에서는 “은행은 공공재 측면이 있다”면서 은행권에 고통 분담을 요구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 발언 이후 정부·여당도 압박 강도를 높였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1월 7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서민층은 어려운 가운데 은행은 막대한 이자수익을 올리는 상황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이 곱지 않다”고 했다. 같은 날 유의동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시중은행은 별다른 혁신 없이 매년 역대 최대 이익을 거둔다. 지난해 은행권 당기순이익은 18조5000억원이었고, 올 상반기만 해도 14조1000억원을 기록했다”고 했다. 은행권 노조는 연일 이어지는 대통령과 당정의 압박에 불만을 제기한다.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정책으로 풀어야 할 국민의 대출상환 부담 증가를 은행들의 ‘이자장사’ 탓으로 돌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박홍배 금융노조 위원장은 “대통령의 금융에 대한 몰이해가 가장 큰 문제”라고 했다. 그는 “독과점으로 인해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주장은 금융산업의 특성을 전혀 모르고 하는 얘기다. 은행산업이 완전경쟁체제인 국가는 없다. 대통령이 과점체제가 은행산업 전체 문제의 원인인 것처럼 결론을 내리자 정부와 여당이 은행권을 부도덕한 집단으로 몰아붙이고 있다”고 말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올 상반기 국내 은행의 당기순이익은 14조1000억원이다. 1년 전 동기(9조8000억원) 대비 43.9% 늘었다.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만 보면, 올 들어 지난 3분기까지 누적 이자이익은 30조9366억원이다. 1년 전 동기(28조8052억원)보다 7.4% 늘었다. 은행권 전체 사회공헌 규모는 지난해 기준 총 1조2380억원이다. 2021년(1조617억원)보다 1763억원 늘었다. 다만 은행권의 당기순이익 대비 사회공헌 비중은 지난해 기준 6.5%로, 2021년 6.9%보다 0.4%포인트 낮아졌다. 야당의 ‘한국형 횡재세’ 도입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11월 10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 대표는 회의에서 “횡재세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은행권이 지금보다 사회공헌을 확대해야 한다는 데엔 정부와 여야 모두 이견이 없다. 다만 어떤 방식으로 초과이익을 환수할지에 대해서는 서로 입장 차이가 있다. 정부와 여당은 은행권의 자발적인 사회공헌 확대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부담금 형태로 환수하는 ‘한국형 횡재세’ 도입을 추진 중이다. 횡재세란 예상치 않은 상황에서 과도하게 이익을 거둔 기업에 매기는 세금이다. 유럽 등 일부 국가에서는 이미 도입 중이거나 도입을 검토 중이다. 지난 3월 국회입법조사처가 공개한 ‘횡재세 도입 논의의 현황과 과제’ 보고서를 보면, 유럽연합(EU)은 지난해 9월 ‘연대기여금’이란 명칭으로 횡재세를 도입했고, 영국은 같은해 5월 영국 대륙붕의 석유 및 가스 생산으로 벌어들인 이익에 세금을 부과하는 ‘에너지 이익 부담금’ 도입을 발표했다. 지난해 3월 미국 상원에서는 석유회사들의 초과이익에 대해 소비세 형태로 과세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국내에서는 코로나19 극복 과정에서 불로소득을 거둔 기업에 횡재세를 거둬야 한다는 여론이 컸다. 민주당이 택한 방식은 전통적인 의미의 횡재세가 아닌 부담금 부과 형태로 초과이익을 환수하는 방식이다. 지난 11월 14일 당 정책위 부의장인 김성주 의원이 대표 발의한 금융소비자보호에관한법률 등 개정안을 보면 은행, 보험사, 증권사 등 금융회사가 고금리 덕에 벌어들인 초과이익의 일부를 부담금(상생금융 기여금) 형태로 정부가 환수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채은동 민주연구원 연구위원은 “국가가 거둬서 재정에 쓰는 것(조세)과 특정한 사업에서 거둬서 특정한 사업에 쓰는 것(부담금)이 조세와 부담금의 큰 차이”라고 했다. 사실상 민주당 당론으로 결정된 개정안에는 이재명 대표, 홍익표 원내대표, 이개호 정책위의장 등을 포함해 강은미 정의당 의원, 강성희 진보당 원내대표, 용혜인 기본소득당 대표 등 모두 55명의 야당 의원이 동참했다. 앞서 11월 10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횡재세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해당 법안 발의 직후인 11월 15일 X(옛 트위터)에 관련 보도를 소개한 뒤 “함께 사는 세상을 향해…”라고 글을 달기도 했다. 채은동 연구위원은 “당정의 상생금융 확대와 야당의 상생기여금 도입은 근본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1년, 또는 2~3년 정도 효과를 보는 단기적인 처방에 가깝다. 은행권 입장에서도 횡재세를 도입하는 것이 안정적이다. 정부와 여론의 눈치를 볼 필요 없이 기준치 이상의 초과이익이 발생할 때 정해진 룰에 따라 내면 된다”고 말했다. 서울 시내에 설치돼 있는 주요 은행들의 현금인출기 /연합뉴스 횡재세 도입에 선 긋는 당국 개정안은 지난 5년 동안 평균 순이자수익의 120%를 초과하는 순이자수익을 얻을 경우 해당 초과이익의 40%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기여금을 내게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은행의 사회적 공헌 차원 기부를 정부가 은행의 팔을 비틀어서 걷는 관치 대신 법률에 따르도록 제도화시킨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김 의원실은 설명한다. 김 의원실에 따르면 올 상반기 국내 은행권(산업은행 제외) 이자수익에서 이자비용을 뺀 순이자수익은 약 28조원이다. 하반기에도 비슷한 추세가 이어진다고 가정해 단순합산하면 연간 순이자수익은 약 56조원이다.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5년간 평균 순이자수익 약 42조6000억원에서 기여금 수준을 최대치로 책정하면, 올해 대략 1조9600억원의 기여금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된다. 윤석열 정부는 횡재세 도입에 선을 긋고 있다. 법인세를 내고 또다시 횡재세를 내는 것은 이중과세이고, 시장경제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는 논리다. 정부는 횡재세 도입보다는 은행권의 독과점 구조를 깨고 은행 자발적으로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횡재세 도입 추진을 밝힌 지난 11월 10일 한덕수 국무총리는 “횡재세보다는 환경이 좋아서 돈을 많이 벌었으면 기존 누진적 세금 체계를 통해 내는 것이 옳다고 본다. (횡재세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고 했다. 같은 날 ‘대통령실과 당국은 은행 독점구조 개선 방안을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으며, 이를 정리해 연내 은행 독점 완화 대책을 발표할 계획’이라는 언론 보도도 나왔다. 국회입법조사처도 지난 3월 보고서에서 횡재세 도입과 관련해 초과이익 과세 기준 설정과 소급입법 문제와 관련한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고 적었다. 보고서는 어느 정도를 해당 기업의 초과이익으로 과세할 수 있는지 명확한 기준이 제시돼야 한다고 짚었다. 또 영업이익이 예년 동기 대비 일부 증가한 것을 두고 횡재세 부과대상이 되는 영업이익이라고 보아 일종의 초과이득세를 과세하는 것은 용이하지 않을 수 있다고도 했다. 김성주 의원실 관계자는 “초과이익을 거둔 은행들에 무조건 돈을 걷겠다는 것이 아니다. 횡재세는 사회 환원이라는 목적도 있지만, 은행들 스스로 과도한 예대마진을 줄이는 유인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도입 그 자체로 가격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지난 10월 29일 서울 시내 한 은행에 대출 금리 관련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은행권은 바짝 엎드린 모양새다. 정부와 여당의 눈치를 살피면서도 내부에선 불만의 목소리가 새어나온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주변에선 올해 역대급 실적을 거둬서 성과급도 많이 받을 것이라고 부러워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지금 분위기에서 성과급을 받으면 얼마나 받겠나. 다른 업종과 비교해 다소 억울한 측면이 있다. 성과급을 받는 다른 대기업이 이런 비판을 받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 고금리로 서민은 고통받는데 은행원들만 배를 불리고 있다는 프레임 때문에 많은 직원이 마치 죄를 지은 것처럼 위축돼 있다”고 말했다. 노조에서는 경영진의 안이한 대응과 인식이 현 사태를 불러왔다고 지적한다. 금융노조 관계자는 “최근 노사 단협 과정에서 우리가 사측에 제안한 내용이 있다. 각 금융사가 금융산업공익재단에 기금을 출연하고, 이를 통해 사회공헌 활동을 적극 추진하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사측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별로 이미 사회공헌 투자를 하고 있는데 굳이 한꺼번에 모아서 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아무래도 재단을 통하면 각사의 브랜드 마케팅과 홍보 효과가 크지 않을 수 있다고 판단해 제안을 거부하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노사 참여하는 사회적 책임 확대” 하지만 대통령의 은행권 비판과 당국 압박이 본격화된 이후 금융사들은 사회공헌 투자를 확대하는 방안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하나은행은 지난 11월 3일 소상공인·자영업자 30만명에 대한 1000억원 규모의 금융 지원 계획을 내놨고, 신한금융그룹도 11월 6일 약 1000억원 규모의 취약 금융 계층(소상공인·자영업자·청년) 지원 방안을 내놨다. KB금융·우리금융·NH농협금융 등도 이자 이익의 기부나 출연 확대, 취약계층 고금리 대출의 저금리 전환 등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20여개 회원기관(은행·보증기금·한국주택금융공사)은 2019년 1조1059억원, 2020년 1조929억원, 2021년 1조617억원, 2022년 1조2380억원 등 4년 연속 1조원 이상을 사회공헌에 썼다. 지난 2월에는 3년간 취약계층에 10조원(보증 재원 승수 효과 포함) 이상을 지원하겠다는 상생 방안도 추가로 발표한 바 있다. 박홍배 금융노조 위원장은 “지난해 사회공헌 기금 규모가 1조2000억원이 넘고 올해는 지난해 수준을 상회할 정도로 매년 사회공헌 규모를 늘리고 있지만, 여전히 은행들은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은행이나 금융지주를) 방문할 때마다 상생금융 보따리를 풀고 있다. 당국이 금융산업의 건전성·안정성이라는 중차대한 이슈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의문스럽다”고 했다. 그는 민주당의 상생금융 기여금 도입 추진에 대해서도 아쉽다는 반응을 보였다. 박 위원장은 “기여금이란 표현을 쓰고 있지만 사실상 횡재세와 마찬가지다. 야당 안대로 하자면 올해만 1조9000억원 넘게 기여금이 발생하는데, 그렇다면 이 기여금만 내면 사회공헌 명목의 추가 출연금은 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인지 되묻고 싶다. 횡재세 도입 논의가 부상하면서 노조 차원에서 도입의 적정성 여부를 논의하기 위한 토론회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민주당이 현장의 의견을 제대로 들어보지도 않고 법 개정을 추진하는 것에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권오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책국장은 “금융의 공공성이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있고, 은행권 역시 이에 대한 이견이 없다. 문제는 정부가 상생금융이라는 명분 아래 윽박질러 토해내게 하는 방식이다. 당장은 효과를 거둘 수 있겠으나 중장기적으로는 금융사뿐 아니라 금융시장 전체에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다. 노사가 참여하는 금융산업공익재단이나 기금 마련을 통한 통합적·사회적 책임의 확대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특집
- [시사 2판4판]원세훈도 광복절 ‘탈출’(2023. 08. 11 14:45)
- 2023. 08. 11 14:45 정치
- 시사 2판4판
- 미·중·러 손길에 “빚의 덫 탈출해야” 달라진 아프리카(2023. 04. 07 11:45)
- 2023. 04. 07 11:45 국제
- 아프리카에 세계열강의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최근 다시 적극적으로 구애를 펼치는 나라는 미국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아프리카에서 영향력을 확대하자 이를 견제하기 위해 뒤늦게 아프리카 각국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오른쪽)이 지난 3월 28일(현지시간) 가나의 케이프코스트성에서 전통 부족 지도자를 만나고 있다. 이 성은 과거 미 대륙으로 노예들을 보내기 위한 감옥으로 사용된 40개 성 중 한 곳이다. / AP연합뉴스 하지만 아프리카 현지에서는 미국, 중국, 러시아 등의 관심이 그리 달갑지 않은 분위기다. 19세기 유럽 열강의 세력 다툼과 같은 ‘자원 쟁탈전’이 펼쳐질까 우려하고 있어서다. 이미 천문학적인 원조가 아프리카에 쏟아졌지만 달라지지 않는 대륙의 현실에 ‘자립’을 외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아프리카 3개국 순방 나선 미 부통령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은 지난 4월 1일(현지시간) 1주일간의 아프리카 3개국 순방 일정을 마치고 귀국했다. 서아프리카 가나 수도 아크라를 방문한 뒤 이후 동아프리카 탄자니아의 경제 중심지 다르에스살람과 잠비아 수도 루사카를 차례로 방문했다. 첫 방문지 가나에서 해리스 부통령은 수천명의 청중에게 “우리는 엄청난 경제 성장과 기회를 가져올 아프리카의 독창성과 창의성에 투자해야 한다”며 아프리카와의 새로운 동반자 시대를 약속했다. 나나 아쿠포아도 가나 대통령을 만나 1억달러(약 1300억원) 규모의 지원도 약속했다. 가나의 높은 인플레이션과 무슬림 극단주의 세력으로 인한 안보 불안 해결 등에도 힘을 보태기로 했다. 해리스 부통령은 탄자니아에서는 탄자니아의 첫 여성 수반인 사미아 술루후 하산 대통령과 나란히 서서 “우리의 만남은 또 다른 이정표”라며 “탄자니아의 젊은 여성들에게 영감을 줄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또 양국 간 무역을 증진하고 탄자니아의 민주주의를 장려하기 위해 5억6000만달러(약 7000억원) 규모의 탄자니아 지원 계획도 발표했다. 마지막 방문국인 잠비아에서는 기후변화 대처와 식량 생산 개선을 위해 아프리카 일대에 민간부문 투자 70억달러(약 9조2000억원)를 약속했다. 아프리카 순방의 속내를 드러내기도 했다. 지난 3월 31일 잠비아 수도 루사카에서 하카인데 히칠레마 대통령과 연 공동기자회견에서 “잠비아의 모든 채권국은 상당한 규모의 부채 감축을 제공해야 한다”고 밝혔다. AP통신 등은 중국을 겨냥한 우회적 발언이라고 해석했다. 다시 열강 각축장 된 아프리카 해리스 부통령의 이번 순방은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올해 진행 중인 여러 고위급 인사의 아프리카 방문 계획의 일환이다. 이미 재닛 옐런 재무장관, 린다 토머스 그린필드 주유엔 미국대사, 질 바이든 여사,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 일정을 마쳤다. 바이든 대통령도 연내 아프리카를 찾을 예정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아프리카에서 영향력을 키워가자 부랴부랴 아프리카 환심 사기에 나선 셈이다. 미국은 현재 중국이 경제적 투자 명목으로 아프리카에 빌려준 돈이 결국 아프리카를 ‘빚의 함정(debt trap)’에 빠뜨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현재 아프리카의 대중국 대출금 총액은 2020년 기준 835억달러(약 109조원)에 달한다. 중국에서 빌린 돈은 전체 아프리카 대출액의 12%를 차지한다. 20년간 5배가 증가했다. 지난 3월 31일(현지시간) 잠비아 수도 루사카에서 하카인데 히칠레마 대통령(오른쪽)이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을 맞이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중국이 아프리카에 막대한 자본력을 행사하면서 영향력을 넓혀왔지만, 부작용도 속출하고 있다. 일부 채무국이 빚더미에 앉거나 상환 불능 상태에 빠졌기 때문이다. 대표적 나라가 잠비아다. 대외 부채 173억달러(약 22조7000억원) 중 3분의 1이 넘는 금액이 중국에 진 빚이다. 해리스 부통령이 잠비아를 방문해 ‘부채 감축’을 언급한 것은 결국 중국을 겨냥한 셈이다. 중국의 ‘빚’ 부담에 허덕이는 아프리카에 미국이 다시 지원 의사를 밝히며 환심을 사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기 때문이다. 러시아에 우호적인 아프리카 나라들의 움직임도 미국과 서방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 1월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남아프리카공화국 프리토리아를 방문해 나레디 판도 남아공 국제관계협력부(외교부) 장관과 회담했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벌써 두 번째 아프리카 순방이다. 지난해 7월 이집트, 콩고공화국, 우간다, 에티오피아 등 4개국 순방 이후 6개월 만에 또 아프리카를 찾아 관계 다지기에 나섰다. 러시아와 아프리카 여러 나라는 오랜 기간 우호적인 관계를 이어왔다. 러시아는 냉전 당시 아프리카 국가들의 식민지 독립을 지원했다. 지금도 아프리카에서 수입하는 무기의 절반 이상이 러시아산이다. 끈끈한 관계는 국제무대에서도 목격된다. 지난해 3월 우크라이나 전쟁 직후 열린 유엔 긴급특별총회에서 아프리카 24개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는 결의안을 거부하며 러시아 편에 섰다. 경계 나선 아프리카…자립 외치다 아프리카가 세계열강의 러브콜을 달갑게 여기는 것만은 아니다. 지난 1월 말 콩고민주공화국(민주콩고)을 찾은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를 겨냥한 듯 “아프리카는 빼앗길 광산이나 약탈당할 영역이 아니다”라며 세계를 향해 “아프리카에서 손을 떼라”고 경고했다. 아프리카가 여전히 ‘자원 식민주의’의 그늘에 있음을 지적한 셈이다. 외국의 원조는 그동안 아프리카를 변화시키지 못했다. 지난 30년간 아프리카 원조 추정 금액은 1조2000억달러(약 1447조원)에 달한다. 천문학적인 돈이 아프리카를 향했음에도 현실은 시나리오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1970년대 세계 빈곤층의 10%만이 아프리카에 거주했지만, 현재 이 비율은 75%에 이른다. 2030년엔 세계 빈곤층의 90%가 아프리카에 집중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아프리카가 빈곤을 떨치지 못하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유럽 열강이 임의로 그어놓은 국경선은 아프리카 부족 간 갈등과 분쟁의 도화선이 됐다. 정부가 제 역할을 못 하는 사이 부정과 부패가 뿌리내렸고 가난과 질병이 독버섯처럼 퍼져나갔다. 부패한 지도층의 배만 채운 해외원조는 아프리카를 ‘부채의 함정’에 빠뜨렸다. 최근 아프리카에서 변화가 감지된다. 열강의 패권 전쟁에 끌려다니지 않고 ‘자립’을 이루겠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지난 1월 세네갈 수도 다카르에서 열린 ‘다카르2 정상회담’에서는 아프리카의 식량위기를 해결하고 ‘식량주권’을 되찾자는 논의를 펼쳤다. 2월에 개최된 아프리카연합(AU) 정상회의에서는 대륙 전체의 자유 무역 협정을 추진하자는 논의가 이어졌다. BBC는 “경제적 지원과 함께 민주주의, 인권을 강조하는 미국과 달리 중국과 러시아는 그런 조건을 달지 않아 아프리카 독재 정권과도 손을 잡을 수 있었다”며 “19세기의 식민지 역사가 되풀이될까봐 우려하는 아프리카 나라들은 이제 강대국들과 동등한 입장에 서서 상호 존중을 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민주당 ‘지지자 리스크’ 탈출 가능할까(2023. 03. 17 14:26)
- 2023. 03. 17 14:26 정치
- ㆍ돌아온 민주당의 시간…이재명, 지지자 반발 돌파에 달려 “피눈물이 납니다! 우리도 퍼줄 만큼 퍼줬어요. 얼마나 참았는지 알아요?” 울분이 섞인 목소리다. 뒤에 서 있던 중년 여성이 분통을 터뜨렸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원래 미워지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나쁘게 보인다. 그런 것을 최소화해야 한다”며 징계청원이 당의 갈등요인이 되고 있다고 말한 순간이었다. 3월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에서 더불어수박깨기운동본부 관계자들이 비명계 의원들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수박’은 이 대표를 지지하지 않는, 겉과 속이 다른 배신자라는 뜻으로 이 대표 측 지지자가 지난 대선 당시 경선 상대였던 이낙연 전 대표의 측근 등을 비난할 때 쓰는 표현이다. / 연합 3월 14일 오후 국회 앞 민주당사 2층 당원존. 행사를 앞두고 이재명TV 등 당 공식 채널엔 구글 검색창을 흉내 낸 이날 행사공지 안내 웹포스터가 올라와 있었다. ‘솔직담백 토크’를 내건 이날 당대표와 대화 행사공지 포스터에서 눈에 띈 건 검색 아이콘 옆 “이재명 당대표” 밑 과거 검색 이력 형식으로 상징화된 이날 토론 주제였다. “아프다 많이 아프다”, “좌표… 색출…”, “청원에 대한 입장”, “4·5 재보궐선거.” 솔직담백 토크라고 했지만 2시간 가까이 진행된 이날 토론 내내 이 대표의 입에서 민감한 현안을 직접적으로 지칭하는 단어는 나오지 않았다. 결국 위 불만이 터져나올 때 언급한 당의 갈등요인이 되고 있다는 징계 청원이 누구에 대한, 어떤 징계 청원인지 직접적으로 거론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 대표나 이날 행사참석자들은 모두 누구에 대한, 어떤 사건인지 알고 있다. 이낙연 전 대표나 박지현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해당행위를 했다며 영구제명·출당 권유 등 퇴출을 요구하는 이재명 지지당원들의 징계요청 청원이다. 당원 청원게시판인 국민응답센터에 올라온 이들 청원을 보면 이낙연 전 대표 제명엔 7만3412명이, 박지현 전 위원장 출당 권유엔 7만8852명이 참여했다. 국민응답센터의 운영규정으론 5만명 이상이 요청하면 당이 공식답변을 내놓아야 한다. 3월 16일, 조정식 당 사무총장이 답글을 올리면서 청원은 ‘답변된 청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조 사무총장은 이날 온라인 공지에서 “이재명 대표가 이미 유튜브 라이브와 SNS를 통해 입장을 밝힌 바 있기 때문에 이를 본 청원에 대한 답변으로 갈음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자제 호소에도 끊이지 않는 불만들 이 대표의 입에서 이낙연 전 대표의 이름이 나온 것은 이날 토크행사가 거의 마무리되는 시점이었다(박지현 전 비대위원장의 이름은 끝내 거론되지 않았다). “…이낙연 전 대표님은 당의 소중한 자산이십니다. 당이라고 하는 것은 다양성이 생명이지요. 달라야 시너지가 있는 것입니다. 청원하는 것보다 창녕 후보를 지원하는 것이 더 낫지 않습니까.” 마지막에 거론한 창녕 후보란 이번 4·5 재보궐 창녕군수 선거에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출마 등록한 성기욱 전 창녕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을 말한다. 내부공격보다는 보궐선거에 출마한 자당 후보에 대한 지원에 힘을 돌리는 것이 더 낫지 않냐는 권고다. 하지만 이날 행사에 참석한 당원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서초구 권리당원이라고 밝힌 장년층 여성 하은경씨의 말이다. “민의가 이렇게라도 발현되지 않으면 예를 들어 지난 (당대표 체포동의안) 투표에서 반대하고 기권하고 그런 표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은 ‘이 사람들 만만하네’라고 (그런 해당행위를) 계속할 것이다. 우리는 견제세력이다. 응원하고 지지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다. 견제하기 위한 것이지 (그 사람들을) 몰아내고 그런 것을 위한 행동이 아니라는 점을 알아주면 감사하겠다.” 또 다른 장년층 남성은 “민주당이 단합된 힘으로 싸워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라면서도 “수박이라는 비난을 비판하기 전에 그들이 먼저 해당행위를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가 당사 앞에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원성이나 그냥 분노가 아니다. 우리가 수박이라고 지칭하는 사람들 당사자에겐 모욕적이겠지만 방송이나 라디오에 나와 끊임없이 당대표를 맞잡고 끌어내리려 하고 있지 않나. 민주당의 분열을 누가 획책하고 있고, 당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 우리가 단순하게 극렬 극성지지자로 매도당하더라도 저네들이 멈춰야 하는 것 아닌가.” 마침내 뜨거운 감자인 ‘수박’ 논란까지 나왔다. 지난해 대선후보 경선 시점부터 불거진 이른바 수박 논란은 겉은 민주당 당색인 파란색이지만, 속마음은 국민의힘 당색인 빨간색과 같은 사람이 있다는 뜻으로, 주로 이재명 지지자들이 상대 후보 측을 비난하기 위해 쓴 멸칭이다. 당대표 체포동의안 국회 표결 과정에서 나온 무효·찬성 반란표를 두고 민주당 지지성향 SNS나 커뮤니티에는 이른바 ‘수박의원 리스트’가 돌았다. 의원 얼굴 사진에 의원실, 의원 개인 휴대전화 번호까지 명기해 항의전화, 문자폭탄을 유도하는 포스터다. 명단에 포함된 상당수의 의원은 지난 대선 당시 이낙연 캠프에 참여했거나 비명 성향으로 알려진 ‘민주당의 길’이나 친문의원모임 ‘민주주의4.0’ 등 소속 의원들이었다. 뜨거운 감자 ‘수박’ 논란 국회 본회의에서 당대표 체포동의안에 찬성 또는 무효표를 선택한 민주당 의원이 정확히 누군지는 알 길이 없다. 비밀투표였기 때문이다. 이른바 ‘수박리스트’는 반란표를 찍었을 것으로 의심이 가는 의원들을 낙인찍는 과정이다. 강성지지 그룹을 중심으로 의원 본인이나 의원실에 전화를 걸어 색출하는 작업이 이뤄졌고, 그 내용이 온라인으로 중계됐다. “떳떳하다면 자기가 어떤 투표를 했다고 공개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냐”는 명분이 붙여졌다. 유튜브엔 체포동의안 투표 직후의 국회 본관 앞 상황을 담은 영상이 남아 있다. 투표를 마치고 나오는 민주당 의원 중 찬성투표를 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의원들을 민주당 성향 유튜버들이 따라붙으며 “시민의 한 사람으로 궁금하다. 대표님의 등에 왜 칼을 꽂는 거냐”고 묻는 영상이다. 침묵하며 가는 의원의 등 뒤로 한 유튜버가 고함을 지른다. “왜 배신하고 수박이냐고. ○○○(의원 이름)! 뭐가 잘나서 뻔뻔하게 가운데로 걸어가냐 ○○놈아!” 해당 조우 장면만 따서 제작된 쇼츠(shorts) 영상에는 “속 시원하다”, “잘했다”는 응원 댓글이 1000여개 달려 있다. “그들의 행태는 이미 선을 넘어서고 있다. 강성 당원 지지자들은 정치의 기본 원리 자체를 부정하고 있다. 본인의 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안 된다며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처음부터 낙인을 찍고 있는 것이니까. 이런 지지자들의 행태를 일찍 단속해야 하는데 자꾸 활성화시키는 건 당의 리더십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3월 15일 통화한 민주당 한 현역의원의 말이다. 이 인사는 당의 단합을 위해 지난 당대표 체포동의안 때 부결을 찍는 게 당연하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한편으로 지지자들의 그런 ‘압박’은 도움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런 지지자들의 행태가 문제가 있다면 3월 16일 의원총회와 같은 자리가 있는데 그런 자리에서 당 지도부에게 강하게 문제 제기할 필요가 있지 않나. “의원총회에서 이야기 못 한다. 의원들의 발언 내용이 거의 실시간으로 중계되니까. 의원총회 자리에서 말하자마자 문자폭탄을 받는데 제대로 된 이야기가 나올 수 있겠나.” -당내 의견 그룹도 어렵나. 이를테면 ‘더미래’와 같은 의원모임과 당대표가 함께하는 자리가 이번 주에도 있지 않았나. “그런 자리에서 이야기는 이미 여러 번 했다. 당대표에게 여러 경로로 다 전달했다. 나도 표결 결과를 보고서는 화가 났다. 압도적인 부결을 해야 이재명 대표가 여러 선택지를 가질 수 있는데 당내 토론과 절차를 통해 의견을 전달하지 않고 체포동의안 안건에 표를 행사하는 방식으로 메시지를 낸다는 건 도의가 아니다.” -의원들 사이에서도 소통이 안 된다는 뜻 아닌가. “굉장히 심각하다. 실시간으로 중계되지 않는, 어떤 발언도 보장되는 워크숍을 빨리 열어야 한다. 그 사람들하고 이야기를 나눠보면 또 틀리다. 개인적으로 속해 있는 의견그룹에서 이 문제를 두고 내부적으로 치열하게 토론해보니 서로의 입장에 대한 절충점이 생기더라.” -전 당대표를 영구 제명해야 한다던가, 전 비상대책위원장에게 출당을 권유해야 한다는 청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제명이라는 게 명확한 불법과 부정부패에 연루됐을 때 추진하는 인사안이지 정치적 대립 관계로 쫓아낸다면 그게 무슨 당인가. 내부적으로 반대자의 목소리도 보장하지 않으면 어떻게 민주적인 정당이라고 말할 수 있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3월 1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당내 최대계파 더좋은미래와의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박민규 선임기자 “자제 요청 이미 늦었다” 이재명 대표가 강성지지층을 향해 수박표현 등 내부공격 자제를 호소한 것에 대해 전·현직 정치인이나 정치평론가들은 “당연히 나왔어야 하는 요청”이라면서도 “늦은 감이 있다”거나 보다 직접적으로 말려야 한다고 말한다. “이재명 대표가 좀더 강력하게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당내 소통이 대표가 비명·반명 의원만 만나는 걸 의미하지 않는다. 이재명 대표가 ‘개딸’(지지자 그룹)에게 더 분명하게 말해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누구를 위해서 하는 건가. 결국 자기네 한풀이·분풀이밖에 안 되는 것인데, 그 모습은 도움이 안 된다. 결국은 명분과 실리를 가지고 갈 수밖에 없는데 (지금 당내 비명인사를 공격하거나 색출한다는 것은) 명분도 안 맞고 실리도 없다. 현재의 모습을 두고도 당 밖의 국민은 혀를 차고 있는데, 내년 총선에서 중도의 마음을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 김유정 전 의원의 말이다. 그는 “당 지도부에 반하는 의원을 색출하겠다든가, 따라다니면서 인신공격하는 것은 이전에는 본 적도 없는 정치문화”라며 “그런 모습에 대해 민주당에 관심은 있지만, 애정이 없는 국민은 보면서 질려 하지 않을까”라고 반문했다. 이재명 대표는 이날 당원존 토크에서 지지층에 밝힌 자제 호소를 이튿날 자신의 SNS에도 게시했다. 지지층에선 그러나 쉽게 받아들일 기미가 안 보인다. 당장 이날 유튜브로 중계된 행사 영상에 달린 실시간 댓글을 보면 이런 댓글들이 눈에 띈다. “수박 아닌 밀정이다. 개딸 아닌 90% 당원이다. 검찰 2중대를 동지라고 안 한다. 윤석열을 지지하는 이들이 동지인가. 밀정 청산 없이 개혁 못 한다. 왜 밀정에게 사과하라고 안 하나”(유튜브 닉네임 ‘정의롭고 행복하기’) 심지어 자제를 호소한 이 대표에게 “실망했다”는 주장도 있다. “수박들만 감싸고 돌고 지지당원들을 내부 분란이나 일삼는 밀정 취급하는 이재명은 사과하라!”(유튜브 닉네임 ‘푸른바다거북’) 이 대표의 호소를 두고 여러 SNS와 친민주당 성향 커뮤니티에 올라온 반향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하는 대표의 처지는 이해한다. 하지만 우리가 할 일은 하겠다.” “노사모 초창기에도 그런 사람이 많았다. 너무 앞서 나가니까 옆에서 브레이크를 걸면 나 안 한다고 그만둔다. 자기 마음대로 돼야 하는 거다. 그런데 열심히 뛴다고 골이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내가 보기에 이재명 지지그룹에는 수비수가 없다. 다 전방의 공격수로 나가 있다. 다음 공격이 들어오면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대비가 없는 것이다.” 시사평론가 김성순씨의 말이다. 그는 역설적으로 현재의 지지그룹의 행태는 “이재명 당대표를 지킬 의지가 없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사람들에게는) 수박을 깨는 것이 중요하지 이재명 감옥 가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 만족도가 이게 높기 때문이다. 자기만족이다. 끝없는 갈라치기는 결국 고립을 낳는다. 이른바 ‘개딸’들도 사회생활을 할 텐데 자꾸 차단하면서 사회에서도 고립돼갈 수밖에 없다. 이재명 대표도 마찬가지다. 당대표된 후 공개적으로 국가원로들을 찾아가 본 적 있나. 연대할 생각이 있는지 모르겠다. 국가원로들을 찾아가 고개 숙이고 있으면 방패가 될 수 있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만나보지 않는다.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박신용철 더체인지플랜 선임연구위원은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의 팬클럽인 노사모나 친문과 현재의 이재명 지지그룹은 결이 다른 팬덤”이라며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2017년 대선 당시 만들어진 ‘손가혁’(손가락혁명군)이라는 이재명 지지 그룹이 있었다. 지금의 모습을 보면 당시와 유사한 측면이 있다. 자가발전으로 논리를 만들어 온라인에서 다른 민주당 지지그룹을 공격도 하고 활동력도 좋았다. 반면 일반 민주당 지지층이 보기에 ‘쟤네는 왜 저래’라고 할 만큼 주류가 이해하지 못하는 성격을 보였던 것이 손가혁이었다. 그게 또 이재명과 흡사하게 맞아 떨어졌다. 그 후 어느 시점에 이르러 자가발전이 오버되면서 이재명이 부담을 느끼는 바람에 수위를 좀 낮추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박신용철 위원에 따르면 그후 팬덤이 쪼개지면서 내분이 일어났다. 당시 이재명 후보의 호소를 받아들여 수용 후 조절하자는 쪽과 ‘우리가 지지하는 사람을 막아주려면 더 세게 나가야 한다’는 입장으로 나뉘어 갈기갈기 찢어졌다. 그러다 사라지고 말았다.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재명 대표로서는 관리하려 하겠지만 ‘따르자’는 쪽과 ‘그래도 갈 길을 간다’는 쪽이 나뉘어 앞으로도 계속해서 싸울 가능성이 높다.” 과연 그렇게 될까. 지지 그룹의 양상을 정치 팬덤으로 묶어 비판하는 것이 생산적이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출판된 <‘팬덤정치’라는 낙인> 저자 조은혜씨는 “‘팬덤정치’ 또는 ‘정치팬덤’이라는 말 자체가 이들 지지자 그룹이 비이성적이고 맹목적·일탈적 행위를 일삼으며, 사라져야 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라며 “핵심은 정치 불신, 대의권력 불신, 사회권력 불신이 인물지지 형태로 나타나는 것인데, 마치 팬덤정치만 사라지면 그 문제가 해소될 수 있는 것처럼 간단히 치환해 버린다”고 말했다. “지지자들이 왜 이런 형태의 정치참여를 하는가부터 짚을 필요가 있다. 팬덤이라고 부르는 것에서부터 내재적 편견이 있다. 이 사람들을 비이성적이고 문제적인 사람으로 보면 답이 없다. 실제 만나보면 정치 고관여층이면서 동시에 주권자 의식을 가진 개인들이다. 비판적 지지의 필요성이나 중요성을 몰라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강하게 지지해야 하는 사정을 봐야 한다. 이런 환경을 이 사람들이 만들었나. 정치 불신이 일어나는 현상의 ‘행위자’만 때릴 것이 아니라 구조를 해소하자는 논의가 오히려 필요한 시점 아닐까.” 정치팬덤 없애면 해소될까 국민의힘 당대표 경선이 끝나고 다시 ‘민주당의 시간’이 돌아왔지만, 전망이 밝진 않다는 것이 기자가 접촉해본 대부분의 정치권 인사나 시사평론가, 선거 컨설턴트의 반응이었다. 김유정 전 의원의 말이다. “중요한 것은 민심이다. 우리가 아무리 떠들어봤자 민심이 어떻게 받아들이냐가 정말 중요하다. 민심 앞에 장사 없다. 지지율이 떨어지면, 다시 말해 지역구 민심이 험악해지면 친명이고 비명이고 상관없이 혁신론이 분출돼 나올 것이다. 그 시점이 언제일 것인가를 눈여겨봐야 한다.” 당장은 5월 말로 다가오는 원내대표 선거다. 의원들이 치르는 원내대표 선거의 경우 친명 인사의 당선은 쉽지 않으리란 전망이 나온다. 당장 내년 총선 공천권이 걸려 있는 만큼 의원들의 견제심리가 작동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6월로 예정된 이낙연 전 대표의 귀국 후 이재명 대표와의 관계설정도 관전포인트다. 거취문제를 포함, 어떻게 하든 손을 잡는 모양새를 만들어내야 할 필요가 있어서다. 제명 등 축출을 주장하는 강성지지층의 요구와는 다른 속사정이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은 “어찌 됐든 민주당으로서는 이재명 체제로 간다고 봐야 하는데, 이 대표가 당면한 최대 문제는 의원들이 가지고 있는 총선 불안감과 공천 불안감을 어떻게 해소하느냐의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체포동의안 이탈표는 조직적인 반란이라기보다 총선 불안감에 기인한 ‘이재명 당신의 대책은 뭐냐, 빨리 내놓아라’라는 메시지”라며 “총선은 시간이 남았고, 공천 불안감은 지난 대선 때 이낙연 측에 섰던 이개호 의원을 공천TF단장으로 임명하면서 해소하려 하지만 완전히 무마되진 않은 상태”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민주당이 처한 딜레마가 “이재명 사법리스크를 끌어안으면서 동시에 정당지지율을 끌어올리기엔 쉽지 않은 여건에 있다”라며 “원론적이지만 민주당이 내년 총선에서 살아남으려면 과거 선거 전성시대 때 구가했던 ‘2050연합’을 복원해내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현재의 2030세대가 요구하는 주요 현안 기조로 민주당의 모습을 바꿔야 이재명 대표도 살고 총선도 이길 수 있다는 조언이다. 역시 쉽지 않은 길이다.
- [IT칼럼]카카오 먹통 방지법 말고 탈출 지원법을(2023. 01. 13 11:36)
- 2023. 01. 13 11:36 경제
- 지난해 10월 15일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로 서비스 장애를 빚은 카카오톡에서 오류 메시지가 뜨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카카오 사태의 보상 절차가 마무리 수순에 접어들었다. 무료 이모티콘이나 자사의 서비스 90일 이용권이 보상이란다. 그냥 마케팅이다. 무료 체험 기간이 지나면 과금으로 자동 전환된다니, 국민의 일상이 멈춘 사태도 그저 기회로 활용했다. 카카오톡 사용자가 사고 후 200만명 정도 줄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 역시 금세 복귀했다. 시장경제라면 처참할 정도의 책임감 부재를 드러낸 먹통 사태로 소비자의 대거 이탈이 벌어져야 마땅하다. 그렇지 않았다. 동급 대기업의 라인이라는 완전 대체재가 있음에도 그렇다. 카카오톡을 그만 쓰는 방법이 한국에선 없기 때문이다. 디지털 플랫폼 특유의 록인(lock-in) 효과 탓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나 홀로 그만 쓸 수 없다. 온갖 인정과 사정으로 점철된 단톡방의 관계가 발목을 잡는다. 카카오 플랫폼에 의존해 장사하는 사업자도 벗어날 수 없다. 심지어 정부조차 예외는 아니었다. 카카오 서비스에 연동된 안전신문고가 멈췄고, 단톡방으로 병상을 배정하던 보건소·지자체·중앙사고수습본부 역시 업무에 큰 차질을 겪었다. 디지털 플랫폼 정부로 전환하는 사이 회복 불가능할 수준으로 기대지 않을지 걱정이다. 정부로선 독자적 디지털 역량을 지니는 대신 하청에 의지해왔기에 피할 수 없는 길이다. 국회에서는 카카오 먹통 방지법이 통과됐다며 기뻐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필요한 것은 카카오 탈출 지원법이다. 상호운용성과 데이터 반출 기능을 의무화했다면, 사고 발생 시, 아니 그냥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단톡방 정도는 즉시 이사가 가능했으리라. 신규 서비스로 데이터를 옮기고 미가입자는 자동으로 초대되는 방식으로 대거 탈출이 가능했을 터다. 이러한 서비스를 데이터 센터도 이중화하지 않는 기업이 나서서 해줄 리 없다. 유럽연합의 디지털 서비스법(DSA), 디지털 시장법(DMA), 미국의 서비스 전환에 의한 상호운용·경쟁 강화법(ACCESS) 등 참고할 만한 입법 사례는 많다. 만약 사전 규제가 싫다면 사후적 정의라도 바로 서야 할 텐데, 미국식 집단 소송이 불가능한 한국에서는 몇 명이 전체를 대신해 승소해줄 수도 없다. 다 같이 몰려가 소송해도 스스로 손실을 입증해야 한다. 그래서 그런지 이번에도 이용자 소송은 한 건도 없었다. 우리는 내심 국내 기업을 응원한다. 이름난 기업이 지금 우리의 모습을 만들었다는 공감대에 만족한다. 해외에서도 알아주는 국산 공산품에는 감정이입도 쉽다. 대기업의 성장이 낙수효과를 만들어주리라는 기대가 뿌리 깊다. 실제 치밀한 하청구조는 사회 전체를 대기업이 정점에 서는 피라미드로 만든다. 국민주라는 단어가 있는 것처럼 중산층의 재테크 수단이 돼주기도 하니, 시민도 팔이 안으로 굽듯 대기업의 편의를 봐주는 정책을 눈감아준다. 심지어 응원하기도 한다. 큰 기업이 성장을 견인하며 좋은 세상을 만들어줄 것이라는 낙관, 전통적 재벌들이 성장을 멈추고 곳간에 현금을 쌓아두자 디지털 기업이 그 역할을 대체해줄 것이라 기대했겠지만 재벌 2.0도 다르진 않았다. 하청이 플랫폼 노동이라는 요즈음 말로 바뀌었을 뿐이다. 재벌을 정점으로 한 피라미드의 가치를 빨아들이면서, 낙수는 좀처럼 허용하지 않는 한국사회의 풍경은 그대로다.
- IT칼럼
- 곡물가 껑충…식량위기 탈출구를 찾아라(2022. 07. 08 14:24)
- 2022. 07. 08 14:24 경제
- ㆍ쌀 제외한 곡물 97% 수입에 의존 “식량안보, 위험한 수준” ㆍ윤 정부, 민간 주도의 해외 공급망 구축 추진 기후변화, 코로나19, 전쟁…. 전 세계 식량위기를 불러온 요인들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불에 기름을 부은 격으로 식량위기를 키웠다. 곡물 수급이 불안해지자 주요 곡물 생산·수출국들이 빗장을 걸어 잠갔다. 이는 다시 곡물 가격 상승을 부추기고 식량위기를 확산시키고 있다. 한국은 쌀을 제외한 곡물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한다. 곡물 가격이 뛰면 밥상물가도 급등한다. 식량위기 경고음이 나온 게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정부 대응은 효과적이지 않다. 안정적인 해외 공급망을 확보할 수 있도록 민간기업의 진출을 돕는 정책과 지원이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크라이나 소도시 보로디안카에서 러시아군 폭격으로 부서진 건물 사이로 우크라이나 국기가 보인다. / AFP|연합뉴스 곡물가격 급등과 수출제한 글로벌 곡물 공급망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이전부터 불안했다. 기후변화로 미국 등 주요 곡물 생산·수출국의 작황 부진이 심했다. 미·중 무역 갈등과 코로나19 대유행은 공급 상황을 악화시켰다. 2020년 하반기부터 밀과 옥수수, 콩 등 국제 곡물 가격이 본격적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지난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식량위기를 전 세계로 확산시킨 방아쇠가 됐다. 전쟁 이후 곡물 가격은 얼마나 뛰었을까. 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시카고상품거래소(CBOT)에서 거래된 밀의 선물가격(올 6월 14일 기준)은 t당 387.36달러다. 1년 전 247.65달러에 비해 56.4% 상승했다. 같은 기준 옥수수는 t당 301.86달러로 15.7%, 콩(대두)은 626.75달러로 15.9% 각각 상승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매월 발표하는 세계식량가격지수(2014~2016년 평균=100)는 157.4포인트(올 5월 기준)로 1년 전보다 22.9% 상승했다. 연간 밀 수출 규모로 보면 러시아는 세계 1위(3730만t·2020년 기준), 우크라이나는 세계 5위(1810만t)다. 세계 1위와 5위 밀 수출국 간에 전쟁이 터지자 전 세계 밀 공급이 심각한 차질을 빚으면서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여기에 세계 제2의 밀 생산국인 인도도 자국 사정을 이유로 밀 수출을 금지했다. 전쟁은 장기화 조짐이다. 외신에 따르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의 동부 루한스크 지역을 장악한 직후인 지난 7월 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에서 공세를 계속하라고 지시했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반발도 커진다. 이들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항구를 틀어막고 흑해에 기뢰를 설치하는 등 우크라이나산 곡물의 수출을 막아 의도적으로 식량위기를 부채질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실제 러시아는 침공 직후 우크라이나의 흑해 항구를 봉쇄하고 농업 시설을 파괴했으며, 농지를 빼앗고 이미 수확한 곡물을 훔치는 등 최대 식량 수출국 중 하나인 우크라이나를 국제시장에서 단절시키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푸틴 대통령이 전 세계를 상대로 ‘식량 인질극’을 벌이고 있다”고 했다. 당장 전쟁이 중단되더라도 원상복구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릴 전망이다. AFP통신은 지난 6월 13일(현지시간) 보도에서 “우크라이나의 경작지 면적은 남한 전체 면적의 약 3배에 해당하는 30만㎢ 정도인데, 러시아 침공 이후 7만5000㎢가량을 못 쓰게 된 것으로 우크라이나 당국은 추정했다”고 전했다. 올해 곡물 수확량은 지난해의 60%에 머물 전망이다. 우크라이나 자국 내 곡물 저장고에 묶여 있는 곡물도 2000만t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선 우크라이나의 식량 생산지와 수출이 타격을 입으면서 세계 식량위기가 향후 2년간 이어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전 세계의 식량위기는 주요 곡물 생산·수출국의 수출제한 조치를 불러왔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지난 6월 20일 내놓은 ‘식량 수출제한 조치에 따른 공급망 교란과 영향’이란 제목의 보고서를 보면, 올해 들어 34개 국가가 내린 식량·비료 수출제한 조치는 57건에 달한다. 수출금지 42건, 수출허가제 10건, 관세 5건 등이다. 이중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시행된 조치는 78.9%인 45건이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6월 7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식량위기 대응과 관련해 세계무역기구(WTO) 차원에서 논의 예정인 각료 선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협력하겠다”고 말했다. / 기획재정부 국내 영향과 정부 대응은 한국은 국내 곡물 전체 수요량의 대부분을 수입한다. 연간 수입량(2020년 기준)은 1717만t으로, 세계 7번째 곡물 수입국이다. 곡물자급률은 쌀을 포함하면 20.2%, 쌀을 제외하면 3.2%에 불과하다. 쌀을 제외한 전체 97%가량을 수입하는 셈이다. 곡물별 자급률은 밀 0.5%, 옥수수 0.7%, 콩 7.5% 등이다. 영국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가 매년 국가별 식량안보 수준을 비교 평가해 발표하는 세계식량안보지수(GFSI)를 보면, 한국(2021년 기준)은 113개국 중 32위, OECD 38개 국가 중 28위로 최하위권이다. 유엔 기후변화 전문가이자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농업 공적개발원조(ODA) 전문가인 남재작 한국정밀농업연구소장은 “한국의 식량안보는 위험한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곡물의 공급 차질과 가격 급등은 국내 수입단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이는 시차를 두고 국내 가공식품과 사룟값 등에 영향을 미쳐 식품·외식업계와 축산 농가의 비용 상승을 압박한다.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은 “주요국의 식량 및 비료 수출제한 조치에 따른 가격 상승이 국내 물가에 미친 영향을 분석한 결과, 수출제한 조치 이후 비료와 곡물, 유지 가격이 각각 80%, 45%, 30% 상승했다”고 분석했다. 밥상물가도 뛴다. 지난 7월 5일 통계청이 발표한 6월 소비자물가는 1년 전보다 6.0% 올랐다. 이중 농축산물은 축산물(10.3%)과 채소류(6.0%)를 중심으로 4.8% 오르며 전월(4.2%)보다 오름폭이 커졌다. 외식물가는 1년 전보다 8.0% 올라 1992년 10월(8.8%) 이후 약 30년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향후 물가 전망은 어둡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올해 3분기 곡물 수입단가가 2분기보다 13.4% 높아질 것으로 봤다. 김종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 농식품 물가 상승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정부의 통제권이 미치지 못하는 국제 농산물 가격 상승과 한국의 높은 수입의존도라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부의 대응은 어떨까. 문재인 정부의 식량위기 대응은 국내 생산기반 확대와 해외농업 개발에 초점을 맞췄다. 국내 생산기반의 경우 지난해 9월 내놓은 국가 먹거리 종합전략인 ‘국가식량계획’에 담겼다. 쌀과 밀 등의 공공비축 매입 물량을 확대하고 밀·콩 자급률을 오는 2025년까지 각각 5.0%, 33.0%로 높이는 게 골자다. 해외농업 개발에서는 민간기업인 포스코인터내셔널이 2019년 우크라이나의 곡물터미널 지분 75%를 인수하고, 하림(팬오션)이 미국 워싱턴주에 있는 곡물터미널에 2대 주주(36.0%)로 참여하는 성과가 있었다. 이를 통해 2020년 10월에 처음으로 우크라이나산 밀을 국내에 공급하기도 했다. 평가는 박하다. 해외농업 개발로 인한 국내 반입 곡물량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정부 역할이 해외농업 개발에 진출한 민간기업에 현지 정보를 제공하거나 융자를 지원하는 수준에 그쳤다는 평가다. 김승남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2020년 기준 포스코인터내셔널과 팬오션을 통해 공급된 물량은 약 37만t(2020년 기준)에 그친다. 이마저도 모두 사료용으로, 국내 곡물 수요량의 1.9%에 불과하다. 한 민간단체 관계자는 “2008년 국제 곡물 가격 파동 이후 국내 민간기업이 해외에 진출할 수 있도록 정부가 관련 예산을 늘리면서 실제 동남아 지역에 진출한 기업들도 있었다”면서도 “국제 곡물 시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성급하게 진행되다 보니 진출한 기업들의 어려움이 커졌고, 이후엔 식량안보에 대한 관심이 줄고 관련 예산이 쪼그라들면서 결국 흐지부지되고 말았다”고 했다. 윤석열 정부의 식량위기 대응은 민간기업 주도로 바뀔 전망이다. 정부 관계자는 “윤석열 정부는 불가피하게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곡물들의 안정적인 물량 확보 등 글로벌 공급망 구축과 개선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정부가 나서게 되면 곡물 메이저사들과의 가격 협상에서 불리한 상황이 만들어질 수 있는 만큼 민간이 주도적으로 나서고 정부가 우회 지원하는 방식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구체적인 정부 대책은 하반기 중 나올 전망이다. 위기의 구조적 문제와 대안은 전 세계적인 식량위기의 근본적인 배경은 국제 곡물 시장의 구조적 문제에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국제 곡물 시장은 주요 곡물 생산·수출국이 식량안보 차원에서 자국 내 소비를 우선하고, 남는 부분을 다수의 국가에 수출하는 공급자 우위의 시장이다. 밀의 경우 러시아를 비롯한 상위 5개 국가의 생산량 점유비(2021년 기준)가 65%에 달한다. 같은 기준으로 옥수수는 상위 5개 국가가 73.3%, 콩은 89.9% 등을 차지한다. 농협경제연구소는 최근 ‘세계 곡물 가격 변동성과 식량안보 연구보고서’에서 “식량위기 시 곡물 생산·수출국은 자국 수요를 맞추기 위해 수출금지 또는 제한조치 등을 시행한다”며 “이에 시장 공급량이 변동되면서 세계 곡물 가격의 변동성이 크게 확대된다”고 설명했다. 김종진 연구위원은 “2000년대부터 세계무역기구(WTO) 체제로 인해 농업보조금 감축과 자유무역이 강조되면서 글로벌 식량 공급망에서 농업경쟁력을 보유한 소수 국가의 역할이 증가했다”며 “반면 농업경쟁력이 열위에 있는 국가들의 식량 수입의존도는 높아졌다. 이렇게 세계 식량 공급이 소수의 국가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기상 요인으로 인한 생산량 감소, 신흥국 수요 증가, 바이오 연료용 수요 증가, 세계경제 위기 등의 충격은 곧바로 국제 곡물 가격 급등이라는 시장 위기로 귀결됐다”고 했다. 세계 곡물 시장의 독점적 유통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는 점도 식량위기를 부채질한다. 현재 세계 곡물 시장은 이른바 ‘ABCD’로 불리는 ADM(아처대니얼스미들랜드), Bunge(번지), Cargill(카길), LDC(루이스드레퓌스컴퍼니) 등 4대 글로벌 기업이 세계 곡물 교역량의 약 75%를 장악하고 있다. 이들은 곡물 유통뿐 아니라 생산과 가공판매에 이르기까지의 전 과정에 개입하고 있다. 또 세계 여러 농산물 생산지나 선물거래소 등을 통해 대규모 곡물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곡물 수급과 가격에 영향을 미친다. 독점적 시장 구조이다 보니 새로운 기업의 시장 진입이 원천적으로 봉쇄될 뿐 아니라 이들을 통하지 않고서는 곡물 조달이 쉽지 않다. 한국도 곡물 수입량의 약 60%를 이들 4대 곡물 메이저 회사를 통해 구입하고 있다.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6월 9일 ‘분질미를 활용한 쌀 가공산업 활성화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분질미는 가루로 가공하기 쉬운 쌀의 종류다. 정부는 이번 대책을 통해 2027년까지 연간 밀가루 수요의 10%에 해당하는 20만t을 분질미로 대체할 계획이다. / 연합뉴스 곡물자급률을 높이는 게 근본적인 대책이라 할 수 있지만 여건상 쉽지 않다. 통계청이 올 초 발표한 ‘2021년 경지면적 조사결과’를 보면 지난해 전국의 경지면적은 154만6717㏊로, 2020년의 156만4797㏊와 비교해 1만8080㏊(-1.2%) 감소했다. 2012년과 비교해서는 9.5%나 줄었다. 밀과 콩 등 주요 곡물의 가격 경쟁력이 수입산보다 낮은 점도 고려해야 한다. 곡물은 규모의 경제가 크게 작용한다. 소규모 영농으로는 작물을 힘들게 수확해도 돈이 되지 않는다. 일본의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는 의견도 있다. 일본 정부는 1970년대부터 우리의 농협중앙회 격인 일본농협(젠노)과 종합상사들이 해외에 진출해 곡물터미널과 곡물저장고 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 결과 세계식량안보지수가 2012년 16위에서 2021년 8위로 뛰었다. 국제무역협회는 “한국과 비슷하게 곡물 및 식량 자급률이 낮은 일본처럼 식량 품목별 통계와 공급선 관련 통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취약 품목을 사전에 파악하고 대체 공급선을 마련하는 한편 아직 수출제한 조치가 활발하지 않은 수산물 등 품목에 대해서도 제재가 확장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이에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해외 곡물터미널 지분을 추가로 확보하거나 인수하는 방식으로 식량 유통망을 확보하고, 해외 메이저 곡물회사들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 단가 급등 시에도 안정적으로 물량을 국내에 조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한 정부 차원의 자금 지원, 정보 제공, 전문인력 양성 등의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남재작 소장은 “자급률을 높이려면 그에 맞는 농경지와 인력 등 인프라가 따라줘야 하는데 우리는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다. 따라서 안정적으로 공급처를 확보해 수입하는 게 중요하다. 주요 곡물 생산·수출국과의 무역협정에서 공급망을 확보할 수 있도록 단서조항을 붙이거나, 해외 투자 시 식량 스와프(교환)와 같은 조치들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표지 이야기
- 위기의 민주당, 언제쯤 탈출 가능할까(2022. 03. 18 14:04)
- 2022. 03. 18 14:04 정치
- ㆍ사면초가 비대위·친문 관계설정 ㆍ진짜 위기는 6월 지방선거 이후 “진짜 위기는 아직 시작도 안 됐다.” 기자가 접촉한 정치평론가·교수·선거컨설턴트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누구의? 이번 대선에서 패배한 민주당을 두고 하는 말이다. 0.73%포인트의 석패가 오히려 독이 되고 있다는 것 역시 엇비슷한 평가다.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가 3월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비상대책위원회 인선 발표를 마친 뒤 인사하고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 “대선(大選), 말 그대로 큰 선거에서 패배했으니 아무래도 실망감·허탈감·배신감 등으로 지지층 심경이 복잡할 것이다. 0.73%포인트라는 근소한 표 차로 패하긴 했지만, 지난해 서울·부산 보궐선거에서부터 이번 대선까지 반복해 확인되는 것은 민주당의 전략적 리더십이 취약하다는 사실이다. 당장은 임기 말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수행평가와 민주당에 대한 지지율이 우하향 곡선으로 나타날 것이고….” 안일원 리서치뷰 대표의 말이다. 리서치뷰가 내부용으로 낸 대선평가자료를 보면 여론조사 공표금지 기간에 나온 뉴스타파의 김만배 녹취록 보도로 양 후보의 지지율은 크게 출렁였다. “개인적으로는 지난 2012년 대선 직전 터진 국정원 댓글 조작에 필적할 만한 사건이었다고 본다. 뉴스타파 녹취록 보도와 인용보도한 다른 유튜브채널·지역지 유튜브 등의 조회수를 더해보면 1000만건이 넘었다. 막판에 그동안 나온 모든 이슈를 압도한 것이다.” 리서치뷰는 지난 3월 5일 사전투표가 끝난 직후부터 본투표 참여 의향을 포함한 예측조사를 시작했다. 안 대표에 따르면 “사전투표에서 이재명이 앞섰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실제 사전투표 결과는 실제 결과와 유사했고, 본투표에서 두 자릿수 이상 벌어졌다고 했다. “우리 여론조사는 자체 조사이다 보니 이틀 전에 선관위에 사전신고해야 했다. 미리 5일 저녁부터 3000명 표본을 신고해놨는데 임의로 늘릴 수도 없고, 7~8일 양일간 합치면 추세가 출렁이는 게 보였다.” 리서치뷰가 3월 9일 발표한 출구예측조사는 결과적으로 거의 정확한 수치를 보여준 방송 3사 출구조사와 달리 윤석열 당선인이 52.1%를 얻어 과반을 넘길 것으로 예측했다(이재명 후보 득표는 44.5%). “경기·세종·호남을 이재명 후보가 이겼는데 막판 녹취록 파장이 없었다면 실제로는 격차가 더 벌어졌다고 봐야 한다”는 게 안 대표의 주장이다. 문제는 대선 이후 치러지는 지방선거다. 20대 대통령 취임식은 5월 10일 열린다. 8회 지방선거는 6월 1일이다. 이 선거의 사전투표일은 5월 27일과 28일 양일간이다. 취임식과 사전투표일 사이의 간격이 2주 조금 넘는 17일에 불과하다. 많은 선거 전문가가 올해 치러진 대선과 지방선거를 한묶음으로 보는 이유다. 안 대표는 이렇게 덧붙였다. “새 대통령 취임이 모든 이슈를 압도한다. 정권의 극 초반기이니 허니문 등의 이름을 달고 국정안정론이 힘을 받을 수밖에 없다. 만일 윤석열 당선인이 취임식 이후 5월 18일 42주년 5·18 기념식, 5월 23일 노무현 대통령 서거일 전후 행사에서 통합·협치 행보를 보인다면 비호남지역에서 민주당으로서는 최악의 경우를 맞게 될 것이다. 여기에 총리나 장관·국무위원들을 내정하면서 호남인사나 구민주계를 중용하는 모습을 보일 수도 있다. 민주당으로서는 여러모로 곤혹스러운 상황이 될 것이다.” 지방선거 패배, 이미 예정됐다? 이번 대선에서의 ‘여론조사 효과’가 지속될 가능성도 높다. 중앙지·지방지를 막론하고 사방에서 여론조사 결과 보도가 나오고, 그 결과 호남 이외의 곳에서 민주당이 건질 곳이 없다는 것이 알려지면 역설적으로 호남에서조차 민주당이 외면받을 가능성도 있다. 실제 호남에서 무소속·기타 정당 광역단체장들이 휩쓴 2006년 지방선거와 2016년 총선이 그랬다. “2016년 총선의 경우 개표 전까지 당시 새누리당이 180석을 가져가고 민주당은 100석에서 턱걸이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투표하기도 전에 승부가 끝났던 것이다. 그 결과 호남을 국민의당이 휩쓸었다. 선거결과에 투표한 사람들조차 어리둥절해했다. 2014년 지방선거도 마찬가지였다. 호남은 ‘민주당 일당독재’에 반발하는 시민의 정서가 굉장히 뿌리 깊게 내려와 있다. 전국판이 그렇게 돌아가면 호남판은 완전히 반대로 튈 가능성이 있다.” 민주당 정책위 부의장을 역임한 신철우 정치컨설턴트의 말이다. 한발 더 나아간다. “여의도 정치판에서는 아예 민주당에 관심도 없다. 오히려 정치 아마추어인 윤석열이 어디로 튈까에 관심이 많다. 확실히 기존 정치인들과 행보가 다르다. 가장 무서운 것은 윤석열이 잘할 것 같다는 것이다. 그게 진짜 무섭다. 선거 때까지의 (민주당 측) 논리가 ‘아마추어에게 나라를 맡겨도 되겠습니까’였다면 지금은 ‘여의도 정치꾼이 못해낸 개혁을 해낼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말이 나온다.” 한마디로 ‘잘할까봐 무섭다’가 여의도 정가의 속내라는 얘기다. 계속된 그의 진단이다. “진영으로 쫙 갈린 선거에서 이번 대선처럼 열심히 당원들이 뛴 선거는 없었던 것 같다. 처음이다. 세력 대 세력으로 붙었다. 그런데 이쪽(민주당)의 경우 ‘윤석열’이라는 키워드로 묶였다. 화학적 결합이나 정치공학적 결합이 아니라 윤석열이라는 인물에 대한 거부감이었다. 이걸 민주당 지지율로 착각하는 순간, 민주당은 무너지는 길로 갈 수밖에 없다.” 문제는 그 상황을 알면서도 수습할 지도력 내지는 당내 구심점이 없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20대 여성들의 표가 생각보다 많이 민주당에 들어왔고, 과거에 무관심하던 2030세대도 막판에 민주당으로 돌아왔는데 대선 후 당의 수습책이라고 하는 게 오히려 더 구태라고 할 만큼 너무 보여주기식이다.” 그가 언급한 ‘보여주기식 수습책’은 선거 후 지도부 총사퇴에 이은 의원총회에서 비대위를 만든 과정이다. 윤호중 원내대표와 지난 선거에서 선대위 여성위원회 부위원장 겸 디지털성범죄근절특별위원장을 맡은 박지현 전 n번방추적단 ‘불꽃’ 활동가가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이어진 비대위원 인선에서 이소영·조응천 민주당 의원과 배재정 전 의원, 그리고 바른미래당 의원이었던 채이배 전 의원 등이 참여했다. 권지웅 전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이나 광주광역시 출신 청년창업가 김태진씨 등 6명을 선임했다. 비대위는 총 10명으로 꾸릴 예정이다. 나머지 한명은 3월 25일 선출할 원내대표이며, 다른 한명은 이번 대선에서 이재명 지지를 선언한 한국노총이 추천할 예정이다. 윤호중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3월 1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재선 의원 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 외부인사는 들러리? 당장 나오는 비판은 “현재 선임된 8명의 면면을 보니 ‘현역정치권 인사 5명+청년대표성을 가진 외부인사 3인’의 형식인데 실제 운영에서는 ‘노회한’ 민주당의 정치권 인사들이 주도하고, 외부인사들은 들러리를 서는 형태가 되지 않겠느냐”다. 강성친문·이재명 팬덤에서는 또 그 현역 정치권 인사들조차 민주당의 주류가 아닌 비주류·반문계파 측 인사들이 아니냐는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대선 전까지 원내대표를 맡았으니 자동으로 윤호중 의원이 비대위원장을 맡은 셈인데,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을 맡아 자리가 비니 다시 원내대표 선거를 하는 셈이고… 문제는 비대위 체제가 언제까지인지, 예를 들어 지방선거까지인지, 새로운 대표를 선출할 8월 전당대회까지인지 아무것도 정한 것 없이 실무선에서 결정하니 반발이 나오는 것이다.” 박신용철 더체인지플랜 선임연구위원의 말이다. 의원실 보좌관 출신으로 여러 당 실무 경험이 있는 그에 따르면 외형상 비대위원장의 권유로 위원이 선임되는 것으로 보이지만 100% 라인을 타고 결정되는 것이 정치권 관례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는 비대위다. 라인을 통해 다음에 뭐할지 주고받기를 하는 상황에서 오더를 받아 공천관리까지 하려고 할 거다. 물론 공천관리위원회는 별도로 꾸리겠지만 현재 선임된 비대위원들을 두고 잡음이 계속되면 새로 선임될 공관위원들을 통해 라인을 구축하려고 할 것이다.” 그는 대선 패배 후 민주당 국회의원들 앞에 놓인 딜레마는 모두 반성과 혁신을 말하지만, 결과적으로 패배가 예정된 싸움(지방선거)에 자기 몸을 내던져 뒤집어쓰려 하는 사람이 나오기 어렵다는 데 있다고 덧붙였다. “선거가 끝났으니 당을 바꾸자는 말이 나올 수 있는데,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여러가지가 걸릴 것이다. 일단 의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역적으로 몰리는 것이다. ‘뭐하러 분란을 일으키나, 사리사욕에 관종짓하는 거 아니냐’는 기류가 워낙 강한 정당이 돼버렸다. 문재인 대통령의 퇴임이 얼마 안 남았지만, 여전히 강성 지지층이 굳건하다. 이 시점에 당의 체질을 바꾸자는 건 판을 깨자는 건데…. 당장 6월 지방선거가 코앞인데 이후엔 또 바로 22대 총선 일정이 기다리고 있다. 결국 의원들로선 올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공천권이 걸려 있으니 몸을 사릴 수밖에 없는 국면으로 판단하는 듯하다.” 친문 의원들의 반발 그가 말한 ‘당 체질 변화’란 이른바 ‘친문정당’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박신용철 위원은 지난 2020년 총선 직후 “180석이라는 대승 결과가 이후의 당 행보에서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내다본 적이 있다. 그는 지금의 대선 결과도 그 연장선에서 평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의석이 많아졌으니 먹을 것도 많아졌다는 것이다. 결국 눈치볼 것이 많아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건 5월 9일 이후 야당이 될 현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다. 배도 부르고 등도 따스운데 뭐하러 광야에 나가 내 몸을 불사르나. 21대 총선에서 180석이 되는 순간 민주당은 두들겨 맞는 수순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사실 지난해 재보궐까지 진짜로 두들겨 맞지 않았다. 그 결과가 대선 패배로 이어졌다. 이렇게 표현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반대편의 시각에서는 문재인 청와대의 거수기 노릇만 한 것 아닌가. 그럴 만도 한 것이 지난 2년간의 민주당 모습이 수평적 당·청·정 관계였다고 말할 수 있을까. 모두 청와대만 바라보며 ‘어떻게 하면 장관이 될까’, ‘지역예산을 딸까’만 고민했다. 거기에 새로 국회의원이 된 인사들의 3분의 1은 속칭 ‘문재인키드’라 더 힘들었다. 대선 후 치러진 일부 여론조사 결과에도 나오지만 문재인 대통령에게는 대선 패배 책임이 없을까. 누구든 대통령에게 탈당을 하든, 사과를 하라는 식으로 그 책임을 물어야 하는데 아무도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지 않는가. 다시 말해 초선이나 중진이나 ‘나는 책임지기 싫다. 국회의원은 한번 더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 아닌가 모르겠다.” 논란은 지난 3월 16일 광주에서 연 비대위 회의에서 채이배 비대위원이 “문재인 대통령이 퇴임사엔 반성문을 남기고 떠났으면 한다”라고 발언하자 당장 문재인 정부 청와대 출신 국회의원 14명이 연명해 반박 입장문을 내면서 불거졌다. 이들은 3월 17일 낸 입장문에서 “우리는 지난 5년이 ‘공’은 하나도 없이 ‘과’로만 채워져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5년의 국정운영이 ‘나쁜 정치’라는 한 단어로 규정되는 것에도 결코 동의할 수 없다”며 “선거에 필요할 때는 너도나도 대통령을 찾고, 당이 어려워지면 대통령에게 ‘반성문을 쓰라’고 벼랑 끝으로 모는 것이 채이배 위원이 생각하는 ‘좋은 정치’인가”라고 반발했다. 이른바 강성팬덤이 윤호중 비대위 체제에 비호감을 넘어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도 부담거리다. 유튜브 인터넷 언론 열린공감TV에 패널로 참가하고 있는 김두일 작가는 SNS에 올린 글에서 “윤호중 비대위원장은 과거 원내대표에 출사표를 던지면서 법사위를 지키고, 검찰개혁법안을 마무리하며 언론중재법을 연내(2020년)에 통과시키겠다는 세가지 약속을 했지만 결국 세가지 다 지키지 않았던 인물”이라며 “원내대표로 윤호중은 송영길 대표와 비슷한 수준의 대선 패배 책임의 무게가 있는데 당직 사퇴 대신 비대위원장으로 나오는 것 자체가 명분이 없다.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이 수습하는 격”이라고 비난했다. 실제 3월 16일 광주광역시에서 열린 비상대책회의장 앞에서는 비대위 해체와 민주당 각성을 주장하는 강성지지자들의 피켓시위가 이어졌고, 일부 강성지지그룹 중심으로 3월 하순엔 민주당사 앞에서 비대위 체제에 항의하는 오프라인 시위도 계획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SNS와 강성친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현재 비대위는 낙엽파(이낙연계)와 세균파(정세균계)가 차기 당권을 놓고 나눠먹기를 하려고 만든 비대위이며 구색을 갖추려고 정치 경험 없는 애들 같은 청년들을 채워놓았다”며 “검찰 주도로 뒤가 구린 민주당 의원 30여명의 뒷자료를 확보해 협박·회유를 통해 분당을 획책해 30여명만 넘기면 민주당 과반이 무너지고 여대야소의 국면으로 전환하려고 한다”는 등의 음모론적 주장까지 나오는 형국이다. 박지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대위원장이 3월 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줌(ZOOM)을 통해 모두발언하고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 윤호중의 승부수, 박지현 공동비대위원장 “지난 대선 당시 당내 경선에서 윤호중 원내대표의 입장은 무색무취, 중립이었다. 원내대표이기 때문에 더더욱 특정 후보 지지 입장이어서는 안 되기도 했고.” 민주당 한 당직자의 말이다. 그는 “물론 의원총회 과정에서도 일부 반대 목소리가 나왔지만 반발은 일부가 하는 것이고 비대위 체제는 이미 출범해 가고 있는 것”이라며 “특정 계파가 비대위 배후에 있다는 것은 당의 분열을 노리는 당 밖의 사람들이 만들어낸 이야기이지 내부에서는 전혀 그렇게 보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예컨대 현재 비대위 멤버에서 이른바 이낙연계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이낙연 국무총리 시절 1기 비서실장을 지낸 배재정 전 의원이 유일하다는 것. “배재정 전 의원이 강성(이낙연계 인사)도 아니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구색상 이낙연계 인물로 끼워넣은 것으로 보인다. 만약 정말 이낙연계로 채우려고 했다면 캠프에서 끝까지 함께한 최인호·윤영찬 같은 인물이 왔을 것이다.” 이 인사는 이렇게 덧붙였다. “지금 상황이 녹록지 않다는 것을 안다.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이기기 쉽지 않다. 비대위 임기는 잠정적으로 다음 당대표를 뽑을 전당대회까지라고 하지만 지방선거에서 대패하면 바로 다 물러나야 할 수도 있다. 윤 위원장이 그 리스크를 안고 가겠다고 설득해 의총에서 받은 것이다.” 당 내외에서는 이번 대선 직전 민주당에 입당한 박지현 n번방 추적단 ‘불꽃’ 활동가를 공동비대위원장으로 영입한 ‘승부수’가 통할 수 있을지를 두고도 여러 말이 나오고 있다. ‘승부수’라고 하지만 이미 전력이 있다. 이낙연 당대표 시절 최고위원으로 깜짝 발탁한 박성민씨의 사례다. 그는 민주당 최고위원을 거쳐 청와대 청년 비서관을 맡았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실 청년운동 1세대로, 10년 넘게 운동과 정책 경험을 쌓은 발군의 젊은 리더들이 전국 구석구석에 많이 포진해 있다”며 “그런 사람들을 다 제치고 어느 날 갑자기 정치를 시작한 사람을 끌어올리는 방식은 여느 평범한 청년들의 눈에도 공정하지 않아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청년 세대가 민주당이나 정의당이 해온 깜짝 발탁에 대해 가장 용납하지 못하는 부분”이라며 “평범한 많은 청년은 밑바닥에서부터 피땀 흘려 노력해 얻은 결실에서 정의를 보는 것인데, ‘시행착오’를 왜 되풀이하는지 아쉬움이 남는다”고 덧붙였다.
- 출범 1년 공수처 위기 탈출 해법 있나(2022. 01. 21 15:22)
- 2022. 01. 21 15:22 정치
- ㆍ수사력 부족·인권침해 논란에 운용 미숙까지 “국민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에 실망하는 것은 단지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주지 못해서가 아니다. 기존의 수사기관들과 별다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기존 기관들만큼의 성과도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김지미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법센터 검경개혁소위원장)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박시영 검사와 수사팀이 지난해 9월 10일 서울 여의도 김웅 국민의힘 의원실을 상대로 한 압수수색을 중단하고 철수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공수처가 출범 1주년을 맞았지만 내부 분위기는 뒤숭숭하다. 수사력 부족, 인권침해 논란에 운용 미숙까지 그야말로 ‘총체적 위기’다. 공수처가 1월 21일 첫돌 행사를 내부 인사만 참석한 채 비공개로 연 것도 이런 분위기의 반영이다. ‘검찰의 기소독점권을 견제하며 고위공직자의 부패를 엄단한다.’ 시민이 기대하는 공수처의 역할이자 설립 취지다. 신생 기관인데다 ‘미니 공수처’라 불릴 만큼 규모가 작다는 점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의 시행착오는 예상했다. 문제는 공수처가 1년간 보여준 모습이 그 예상을 밑돈다는 데 있다. 특히 ‘인권 친화적 수사기구’를 표방했지만 새로운 수사 패러다임을 제시하지 못한 채 기존 수사관행을 답습했다. 전문가들은 공수처의 전반적인 쇄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구성원의 역량 강화는 물론이고 수사 사건의 ‘선택과 집중’, 책임성 강화를 위한 외부 견제 장치 마련 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 처장 등 지휘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다만 공수처 폐지를 거론하는 건 아직 이르다는 게 대체적인 의견이다. 인권 친화적 수사기구? 공수처를 향한 여러 비판 가운데 가장 뼈아픈 대목은 인권침해 논란이다. 이는 기존의 부적절한 수사방식을 답습한 데서 비롯됐다. 김진욱 공수처장은 지난해 1월 취임사에서 공수처가 “국민의 신뢰를 받는 인권 친화적 수사기구”라는 점을 수차례 강조했다. 김 처장은 “적법 절차와 무죄추정의 원칙에 입각해 인권을 과도하게 침해하지 않는 품격 있고 절제된 수사”를 원칙으로 내세웠다. 공수처는 그러나 피의자의 출석을 압박하려고 지나치게 인신 구속을 시도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공수처는 지난해 10월 ‘고발사주’ 의혹 사건의 핵심 피의자인 손준성 전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현 대구고검 인권보호관)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구속영장 청구 불과 사흘 전 손 검사의 체포영장을 법원이 기각했다. 체포영장의 기각 이후 곧바로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건 이례적이다. 공수처는 손 검사가 출석을 차일피일 미뤄 이 같은 조치를 취했다고 밝혔다. 당장 공수처의 행위가 피의자를 압박해 방어권을 무력화하려 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체포영장이 발부되면 최대 48시간 동안만 피의자를 잡아둘 수 있지만, 구속영장을 통해서는 기소 전 최대 20일까지 구금할 수 있다. 구속영장이 체포영장보다 인권침해 요소가 더 크고, 발부 요건도 더 엄격하다. 또 법원이 영장 발부 여부를 결정하기 전까지 피의자는 반나절가량 구치소에서 대기해야 한다. 심리적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법원은 예상대로 손 검사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서울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일종의 피의자 괴롭히기”라고 말했다. 공수처 수사심의위원인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 1년간 최악의 장면”으로 꼽았다. 공수처가 통신자료를 무더기로 조회한 사실이 지난해 12월 밝혀지면서 인권침해 논란은 더 거세졌다. 조회 대상이 야당 정치인, 법조인, 언론인과 그 가족 등 300여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면서 ‘사찰’ 의혹까지 일었다. 통신자료 조회는 법에 근거가 명시돼 있고 검·경 등 기존 수사기관이 활용해온 수사 방식이다. 법원의 영장 없이 휴대전화 사용자의 성명, 주민등록번호, 주소 등의 개인정보를 손쉽게 획득할 수 있어 사생활의 비밀을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있었다. 영장을 통해 정보를 취득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논란이 불거지자 국가인권위원회도 지난 1월 6일 송두환 위원장 명의의 성명을 내고 우려를 표명했다. 공수처는 지난해 3월 ‘수사 외압’ 의혹을 받는 이성윤 당시 서울지검장(현 서울고검장)을 조사하면서 김 처장의 관용차를 제공해 ‘황제 조사’ 논란을 자초했다. 이 고검장은 친정부 성향으로 분류된다. 권력자들을 조사할 때 이른바 ‘모셔오는’ 편의를 제공하는 기존 수사기관의 행태와 다르지 않다는 지적을 받았다. ‘고발사주’ 의혹의 핵심 인물인 손준성 전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왼쪽)이 지난해 10월 27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법원에 청구한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경기 의왕 서울구치소에서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전반적인 운용 ‘갸우뚱’ 공수처 출범 직후의 최대 관심사는 첫 수사 대상이었다. ‘1호 사건’은 상징성이 큰 만큼 공수처의 설립 취지에 부합하는 사건을 선정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검찰이 축소·은폐했거나 다단계 구조의 권력형 범죄 사건, 공수처가 기소권을 가진 판·검사나 경무관 이상의 경찰관이 연루된 사건 등이 거론됐다. 공수처는 그러나 지난해 4월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부정채용 의혹을 첫 수사 대상으로 결정했다. 감사원이 감사를 통해 문제점을 지적하고 경찰이 수사하고 있던 사건이었다. 권력형 부패 범죄로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고, 공수처가 조 교육감을 직접 기소할 수도 없다. 현직 검사를 상대로 수사한 첫 번째 사건에 기소권을 행사하지 않은 점도 도마 위에 올랐다. 공수처는 지난해 12월 ‘윤중천·박관천 면담보고서’를 허위로 작성하고 유출한 혐의를 받던 이규원 검사 사건을 수사한 뒤 검찰로 넘겼다. 기소 여부는 검찰이 판단하라는 취지다.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을 지낸 양홍석 변호사는 “공수처의 존재 의의를 스스로 저버린 행동이었다”고 말했다. “공수처는 아마추어” 공수처는 아직 직접 기소한 사건이 없다. 불구속 수사가 원칙이기 때문에 피의자의 구속 여부를 수사 성과의 절대적 지표로 삼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공수처가 구속 필요성을 주장하며 법원에 청구한 영장이 모두 기각됐다는 사실을 단순히 그냥 흘려보낼 수는 없다. ‘고발사주’ 의혹의 핵심 당사자들이 수사와 관련 법에 정통한 전·현직 검사들이지만 공수처는 이들에게 빈틈을 보였다. 공수처는 지난해 9월 김웅 국민의힘 의원(검사 출신)의 국회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가 별다른 소득 없이 빈손으로 철수했다. 김 의원이 제기한 준항고를 법원이 인용해 압수수색을 전면 취소하기도 했다. 압수수색 당시 수사팀 내에서 현장 경험 많은 수사관들이 전면에 나서지 못하는 등 인력 통솔 과정도 미흡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여운국 공수처 차장의 “우리는 아마추어” 발언은 공수처 신뢰 하락을 부채질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수처 설계 자체가 아마추어 중심이다. 기존 수사관행으로부터 벗어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문제는 제대로 된 역량을 키우기도 전에 수사에 나섰다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청와대를 강제수사하지 못한 점도 아쉬운 대목으로 꼽는다. 공수처는 지난해 7월 이규원 검사의 ‘윤중천·박관천 면담보고서’ 허위 작성 과정에 이광철 당시 청와대 민정비서관이 개입했다는 의혹을 확인하기 위해 청와대를 압수수색했다. 공수처는 임의 제출 형식으로 관련 자료를 넘겨받았다. 한 교수는 “권력형 범죄의 핵심은 청와대”라며 “청와대를 압수수색하지 못한다면 권력형 범죄수사를 제대로 해낼 수 없다”고 말했다. 선택과 집중, 외부 견제 장치 필요 지난해 12월 31일 기준 공수처에 접수된 사건수는 2849건이다. 이 가운데 24건을 입건했고 사안별로 분류하면 12건이다. 785건은 분석 중이다. 공수처가 여러 사건에 손을 대기보다 선별 과정을 거친 소수의 사건에 집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검 검찰개혁위원회 위원을 지낸 김한규 변호사는 “한건이라도 공수처의 설립 취지에 부합하는 사건을 제대로 처리해 무게감을 나타내면서도 절제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치적으로 민감하고 성과를 내기 어려운 사건보다는 뇌물처럼 ‘눈에 확실히 보이는 사건’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정치적 공격을 덜 받는 부패 사건 처리를 통해 경험을 쌓고 수사 역량도 키울 수 있어서다. 이런 의견은 공수처 내부에서도 나왔다. 검사의 기본 임기가 3년이고 최대 9년까지만 임기를 보장한 점은 인재 영입의 걸림돌이다. 적어도 공수처에서 3년 이상은 일해야 스스로 수사를 기획하고 추진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길 거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소신을 가지고 일하려는 검사한테 반복적인 재임용 절차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공수처가 제 역할을 하려면 조직 규모를 지금보다 키워야 한다. 현재 공수처의 수사 인력은 검사 25명, 수사관 40명이다. 여기에 외부 수사인력도 파견받아 운영하고 있다. 수사대상이 고위적이고 유형이 복잡한 부패 사건을 다루기 때문에 일반 범죄보다 더 많은 공력을 필요로 한다. 기소 후에 일부 인력은 공소유지를 전담해야 한다. 수사 인력이 줄어든다는 얘기다. 현재 규모로는 사건수가 많아지면 수사와 공소유지 두가지를 모두 굴리기에 벅찬 구조다. 오병두 홍익대 법학과 교수(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는 “부패 사건은 정치권, 검찰, 언론, 기업 등이 서로 얽히고설켜 매우 복합적인 양상을 띤다”며 인적·물적 요소들을 확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공수처와 검찰·경찰 간의 협력 체계 구축도 향후 과제다. 기관별로 사건을 배분하고 수사 협조 등을 논의할 수 있는 테이블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 기관 모두 수사권을 가지고 있고, 기소권은 공수처와 검찰이 가지고 있다. 공수처의 책임성 강화를 위해 외부 견제 장치를 둬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공수처의 독립적 수사 활동을 보장하되 ‘제 식구 감싸기’ 등을 방지할 수 있도록 감시의 눈을 두자는 주장이다. 공수처 징계위원회의 위원장은 공수처 차장이다. 징계위원 6명을 모두 차장이 지명·위촉한다. 김지미 변호사는 1월 20일 참여연대가 개최한 ‘위기의 공수처 1년, 분석과 제언’ 토론회에서 “대다수의 기관이 징계위원회에 외부 관여를 허용해 폐쇄성을 지양하고 객관성·투명성을 꾀하는 것과 대비된다”고 지적했다.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지난해 12월 30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국회사진기자단 지휘부가 책임져야 일부에선 공수처 운영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김진욱 공수처장의 사퇴를 촉구한다. 공수처장의 임기는 3년으로 법에 보장돼 있다. 양홍석 변호사는 “김 처장 등 지휘부의 리더십이 부족하다”며 “공수처 전체를 리뉴얼하려면 공수처장과 차장을 바꾸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남근 변호사(민변 개혁입법특별위원회 위원장)는 “공수처 차원에서 왜 성과가 지지부진했는지 등을 자체적으로 평가하고 진단해야 한다”면서도 지휘부 사퇴에는 반대했다. 1년밖에 안 된 공수처의 폐지 여부를 언급하는 건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숨 고르기할 수 있는 시간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대선후보 측 입장 대선 국면에서 대선후보들은 공수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윤석열 국민의힘, 안철수 국민의당, 심상정 정의당 후보 가운데 공수처 존폐 여부의 견해를 공식적으로 밝힌 건 안 후보뿐이다. 안 후보는 1월 11일 한국기자협회 주최 대선후보 초청 토론회에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고 불법적 사찰을 하는 공수처는 없애야 한다”고 밝혔다. 홍경희 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은 기자와 통화에서 “공수처가 1년이 됐지만 평가할 만한 게 없다”라며 “‘검수완박’(검찰 수사권의 완전 박탈)을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공수처와 관련한 주간경향의 질의에 다른 후보들 측에서는 후보의 공식 입장을 밝히는 데 신중했다. 다만 선거 관련 기구나 대변인·공보단장 명의로 입장을 밝혔다. 이들 모두 공수처가 성과를 내지 못한 점을 지적했지만 존폐 여부를 두고는 의견이 갈렸다.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소속 사법대전환위원회는 공수처가 현직 검사를 상대로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대검을 압수수색한 점 등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검사들도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공수처 폐지를 거론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했다. 사법대전환위원장인 김용민 의원은 “기득권들 입장에서 공수처는 껄끄러운 존재”라며 “이 때문에 공수처는 무능하다는 여론을 조성해 무용론을 만들고 싶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의원은 “인력 증원, 처우 개선, 예산 확대 등을 통해 원활한 운영과 수사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선 과제”라고 했다.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이자 선거대책본부 대변인인 전주혜 의원은 공수처의 1년을 “독립성은 완전히 저버린 채 ‘무능·무지·무도의 3무 공수처’를 확인하는 시간이었다”고 혹평했다. 전 대변인은 공수처의 통신자료 조회와 체포·구속영장 청구 및 기각을 거론하며 “인권 친화적 수사 표방은 말뿐인 허언”이라며 “정권 입맛에 맞게 선택적 수사를 하는 ‘정권 보위처’로 전락했다”고 말했다. 그는 “공수처의 수사 역량과 능력은 7000명에 이르는 고위공직자 범죄를 중립적으로 수사할 수 없는 수준임을 드러냈고, 독립성과 중립성을 견지해 철저하게 수사할 수 있다는 신뢰마저 완전히 상실했다”며 공수처 폐지를 주장했다. 심 후보의 직속기구인 종합상황실 박원석 공보단장은 “공수처가 이대로 간다면 존폐 논란을 면할 수 없을 것”이라며 “불법 사찰 의혹의 분명한 대국민 사과와 책임 있는 조치, 재발 방지 대책을 제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공수처장 선출 방식 변경, 공수처의 수사·기소권 일치, 국회 차원의 수사 절차 통제 방안 등 개선책을 제시했다. 박 단장은 “공수처장이 반복되는 문제점을 개선할 능력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처장 자격을 심각하게 물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공수처는 관련 법에 근거해 설치된 기관이다. 공수처 설립을 주도한 민주당이 국회 의석수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정권이 바뀌더라도 공수처를 쉽게 폐지할 순 없으리라는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다만 공수처를 둘러싼 정치적 갈등이 커질 수는 있다. 향후 공수처의 행보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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