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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길]태권도 지도자 주신규, 강해야 강한 자를 키운다(2008. 10. 16)
2008. 10. 16 문화/과학
일반 스포츠와 달리 태권도 수련에서 중요시하는 ‘정신’은 태권도의 가치를 높여주는 요소로 작용한다. ‘태권도 정신’이란 태권도의 수련을 통해 함양할 수 있는 도덕적 신념을 가진 인간 행동의 바탕이며 주된 수련 목표의 하나다. 전인적 인간의 완성을 지향하는 태권도 수련은 심신의 조화로운 향상을 통해 인간과 인간 혹은 인간과 자연이 협동하여 공생하고자 하는 홍익인간, 즉 상생의 정신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 이경명 ‘한국 전통무예의 철학-태권도’ 중에서 원주 상지대학교 체육학부 주신규(55) 태권도 감독의 요즘 목표는 더 강해지는 것이다. 그것도 정신적으로. 내가 먼저 강해지지 않으면 강한 제자를 키워낼 수 없다. 그가 상지대학교 태권도 감독으로 부임한 것은 그의 태권도 인생에서 어쩌면 마지막 승부일지도 모른다. 10여 년의 선수생활, 그리고 그 두 배가 넘는 기간 동안 걸어온 지도자의 길. 그리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대과도 없었다. 비록 국가대표 선수로 뛰지는 못했지만 국가대표 코치를 맡기를 수차례, 지도자로서의 명예와 자존심을 마지막까지 지켜내야 한다. 그의 각오는 사뭇 비장하기까지 하다. 그는 지난 9월 1일 상지대학교 체육학부 초빙교수 겸 태권도 감독으로 부임했다. 상지대학교 체육학부에서 태권도 특기생들을 받아들인 것은 2년 전부터. 그 수래야 한 해 2명씩 고작 4명. 일반학생으로 태권도를 선택한 수까지 합쳐도 태권도부는 12명을 채 넘지 않는다. 따라서 그가 부임한 상지대학교는 태권도에서만큼은 아직 불모지나 다름없다. 그런 곳에서 새로운 역사를 써야 한다. 그게 오히려 주 감독의 투지를 불러일으켰다. 그는 먼저 체육관 한쪽 방에 숙소를 마련했다. 집이 있는 서울에서 출퇴근을 할 수도 있었지만 이제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승부를 앞둔 마당에 스스로 다그칠 필요가 있었다. 그런 생활이야 이미 오래전부터 몸에 익은 터이기도 했고. 그가 태권도를 처음 시작한 것은 중학교 때. 그는 태권도 명문 광성중·고등학교를 나왔다. 초등학교 때까지는 육상 및 축구 선수로 뛰었기에 운동신경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친구들과 어울려 재미삼아 태권도를 흉내 내던 그는 2학년 때 학교 태권도부에 들어가 정식으로 운동을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운동은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으로 이어졌다. 학창시절 그는 참 열심히도 운동했다. 통행 금지가 있던 시절, 밤 늦게까지 운동을 하다 걸어서 집으로 돌아간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가 그렇게 운동에 빠져 산 것은 당시 집안형편과도 상관이 있었다. 어릴 적 제법 부유했던 집안 형편은 갈수록 기울었다. 자칫 엉뚱한 길로 나갈 수도 있을 즈음, 그는 운동으로 자신을 다스렸다. 마음이 어지러울 때면 선배들과 겨루기를 하면서 얻어맞는 역으로 절제심을 키웠다. 그는 여러 차례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국가대표하고는 영 인연이 없었다. 제1회 세계 선수권 대회 국가대표 선발전 때만 해도 결승까지 올라갔지만 무승부를 이뤄 계체량 끝에 분루를 삼키고 말았다. 참으로 기가 막힌 일이었다. 분명 상대선수가 체중이 더 나갔는데도 불구하고 심판은 상대의 손을 들어줬다. 당시만 해도 무덕관이니 지도관이니 출신 체육관에 따라 승부가 뒤바뀌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 일로 마음의 상처를 받은 그는 한때 운동을 포기하려고까지 했다. 그러나 그는 마음을 다잡았다. 승부의 세계에선 결국 실력만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최선을 다했다면 그것으로서 이미 이긴 것이기도 했다. 한국가스공사 감독 시절. 그가 선수로서 출전했던 마지막 시합도 잊을 수 없다. 신촌체육관 소속으로 대통령배대회 단체전에 출전해 결승에서 한국체대와 맞붙었다. 1, 2회전에서 두 명의 선수가 일방적으로 승리해 2-0 스코어로 우승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때 감독을 맡고 있던 고의민 사범이 선수들을 불러 뜻밖의 지시를 내렸다. 한국체대에 우승을 양보하자는 것이었다. 당시 한국체대 태권도부는 대학에서 처음 창설한 팀이었다. 현 세계태권도연맹 기술심의의장이기도 한 고 감독은 태권도계의 발전을 위해서는 한국체대가 우승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 고심 끝에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이다. 다른 이유로 승부를 포기한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결국 스승의 뜻에 따르기로 했다. 비록 그의 마지막 시합은 그렇게 2등으로 막을 내렸지만 더 이상의 아쉬움은 갖지 않았다. 때론 양보가 승리보다 값진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주 감독이 지도자의 길로 들어선 것은 1980년도였다. 1975년부터 봉천동에 태권도장을 열어 4년간 운영했지만 별로 비전이 없는 것 같아 이를 접고 포항으로 내려갔다. 포항에서 수산업에 손을 대 잠시 외도를 하던 중 정찬모 서울대 교수가 수원 수성고 코치직을 권유해왔다. 마침 하던 일이 난관에 봉착해 있던 터라 이를 수락하고 수원으로 올라왔다. 봉급이래야 차비 정도에 불과했지만 마음은 편했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자신의 적성에도 맞았다. 1년 만에 한 선수를 우승으로 이끈 후 동대문상고로 자리를 옮겼다. 1984년 아시아선수권대회 코치를 시작으로 국가대표팀과 인연을 맺었다.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같은 해 아비장 국제태권도대회,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등에서 국가대표팀을 맡았다. 1997년에는 한국가스공사 태권도팀 초대 감독을 맡아 이후 6년간 선수들을 가르쳤다. 그는 국가대표팀을 맡는 동안 가장 잊을 수 없는 선수로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헤비급 우승을 차지한 김제경 선수를 꼽는다.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태권도는 비록 시범 종목이기는 했지만 여느 종목 못지않게 경쟁이 치열했다. 올림픽 정식 종목 채택을 앞두고 태권도 종주국으로서 위상과 체면이 걸려 있기도 했다. 다른 체급이야 우승을 당연한 일로 여기는 분위기였지만 최중량급인 헤비급만큼은 신장과 파워에서 앞서는 유럽선수들을 상대하기란 결코 만만찮은 일이었다. 그래서 헤비급만큼은 어렵지 않겠느냐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흘러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김제경 선수는 그런 우려들을 한 방에 날려버렸다. 그 이면에는 3개월 동안 비디오를 분석하며 철저히 작전을 준비한 주 감독의 역할이 있었다. 김제경 선수의 우승은 후에 김경훈, 문대성, 차동민으로 이어지는 최중량급 연속 석권과 스타 탄생의 예고편이기도 했다. 주 감독이 선수들에게 가장 먼저 강조하는 것은 항상 최선을 다하라는 것이다. 최선을 다해서 얻은 승리의 기쁨은 최선을 다하지 않고 얻은 승리와 비할 바가 아니다. 최선을 다해 이겼을 때 비로소 진정한 승자다. 단지 시합뿐 아니라 인생 자체가 그렇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선수들 역시 언젠가 지도자의 길로 나갈 터인데, 항상 최선을 다한 선수는 진실성을 가진 최고의 지도자가 되고 약은 선수는 약기만 한 지도자가 된다는 것이 주 감독의 지론이기도 하다. 태권도 지도자의 생활은 돈과는 인연이 먼 생활이었다. 바르셀로나 올림픽이 끝난 후 체육관을 운영하면서 잠깐 큰돈을 만져본 것을 제외하고는 박봉과 격무에 시달리는 생활의 연속이었다. 한국가스공사 감독 시절, 그나마 꼬박꼬박 월급을 집에 가쳐다 준 것을 빼놓고는 가장 노릇도 변변히 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항상 아내에게 미안하다. 넉넉하게 벌어다주지도 못하면서 해외 원정이다 전지 훈련이다 밖으로만 도는 남편을 두고도 아내는 두 아이를 키우면서 용케도 버텨왔다. 아내가 어떻게 살림을 꾸려왔는지 신기할 따름인 그로서는 아내를 생각할 때마다 눈시울이 뜨겁다. 상지대학교에 부임하면서 주 감독은 남다른 각오를 다졌다. 마지막으로 모든 것을 걸고 승부를 걸어볼 작정이다. 상지대학교를 태권도 명문으로 만들고 떠나는 것이 그의 꿈이다. 그 길만이 한평생 태권도의 길을 걸어온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는 길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 날을 위해서는 끊임없이 스스로 채찍질해야 한다. 강해져야 한다. 여력이 있다면 사회체육으로서 태권도의 대중화에도 앞장서볼 생각이다. 태권도에 춤이나 오페라 등을 접목해 태권도를 친근한 스포츠로 대중에게 다가가도록 해보고 싶은 것이다. 말만 국기(國技)지 비인기 종목의 설움을 톡톡히 치르고 있는 태권도를 명실 상부한 국민의 스포츠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태권도 인생’ 주신규가 나아가야 할 길이다.
사람의 빛
[그때 그장면]아테네 올림픽 태권도 헤비급 결승
[그때 그장면]아테네 올림픽 태권도 헤비급 결승(2007. 07. 03)
2007. 07. 03 스포츠
종주국 위상 드높인 ‘한 방’ 3년 전 아테네올림픽. 국민들은 태권도 종주국답게 새벽잠을 설쳐가며 문대성 선수가 참가하는 태권도 헤비급(80㎏ 이상) 결승전을 시청했다. 결승전에서 문 선수는 환상의 뒤후려치기 한 방으로 상대방을 매트에 떨어뜨렸다. 사진은 문 선수가 2004년 8월 30일 아테네 팔리로스포츠센터에서 열린 태권도 헤비급 결승전에서 강력한 뒤후려치기로 그리스의 알렉산드로스 니콜라이디스의 안면을 강타하는 모습이다. 그는 전 세계 태권도 팬들에게 태권도의 진수를 보여줬으며 팬들은 아직도 당시의 짜릿한 장면을 잊지 못하고 있다. 올림픽 이후 그는 선수생활에서 은퇴하고 모교인 동아대 태권도학과 교수 겸 감독으로 일해왔다. 그런 그가 6월 20일 “내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을 따겠다”며 선수 복귀를 전격 결정했다. 문대성 선수의 ‘깜짝 복귀 결정’은 올림픽 이후 그를 뒤따를 ‘포스트 문대성’이 없기 때문이다. 후배 헤비급 선수들은 올림픽 후 세계 절대 강자의 위치에 오르지 못했다. 그는 “세계 무대에서 후배들의 패배가 나의 패배처럼 가슴 아팠다”며 “그동안 꾸준히 몸관리를 해왔기 때문에 근력과 체력 면에서는 문제가 없다”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과연 문대성 선수가 3년 동안의 공백기와 나이(31)를 극복하고 다시 한 번 태권도 종주국의 진면목을 보여줄 수 있을까.
그때 그장면
[독자세상]태권도 종주국 위상이 흔들린다 外(2005. 07. 19)
2005. 07. 19 사회
장하진 장관 보육문제 개선의지 기대 632호 ‘유인경이 만난 사람-장하진 여성가족부 장관’을 읽었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진 시점에 여성들의 가장 큰 문젯거리인 보육문제를 적극 해결하겠다는 데에는 많은 여성이 박수를 보내리라 생각한다. 지금껏 여성의 사회참여는 높아졌지만 육아나 자녀교육 문제는 여전히 여성 몫으로 남아 있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장 장관은 남성도 가정 대소사에 참여하고, 육아휴직까지 과감하게 택할 수 있는 파파쿼터 제도를 제시해 앞으로 여성들의 삶이 크게 변화할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장 장관은 행복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가족 구성원 각자가 독립적으로 건강하게 사는 것”이라 대답했다. 즉 행복이란 높은 곳이나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 있는 가장 평범한 것이라는 말이다. 우리가 가정을 지키는 것이 거창한 일만이 아님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이현주〈충남 예산군 예산읍〉 도박은 인생 망치는 ‘악마의 유혹’ 632호 ‘베팅 무제한 도박 권하는 사회’를 읽고 도박이 얼마나 우리 일상에까지 닿아 있는지 새삼 느꼈다. 이 기사에는 도박으로 재산을 날리고 이혼까지 한 사람이 다시 도박에 손을 댄 사례가 있다. 도박에 대해 우리 사회가 지나치게 관용을 베푼 결과는 아닌지 모르겠다. 우리나라는 도박중독자를 위한 치료전문기관이 턱없이 부족하다. 알코올 중독이나 정신병을 치료하는 병원은 날로 늘어나는 반면 도박에 관해서는 그저 개인의 사사로운 문제로 일축해버리는 게 현실이다. 도박은 분명히 심각한 개인 파산이며 나아가 가정 파탄까지 불러오는 주범인데도 말이다. 이제 인생역전을 꿈꾸며 도박판에 뛰어드는 이들이 있다면 그들에게 더 이상 도박은 금맥을 캐는 곳이 아닌, 자신의 인생을 피폐하게 만들어버리는 ‘폐광’과 같은 것임을 깨우쳐줘야 한다. 이태수〈대전시 대덕구 법동〉 형평성 잃은 가석방 국민정서 외면 가석방 제도가 원래 취지에 맞지 않게 적용됨으로써 국민의 원성과 빈축을 사고 있다는 기사(632호·아니 벌써! 가석방)를 읽었다. 걸핏하면 정치적 고려라는 빌미로 개전의 정이 없는데도 가석방하는 것은 국민정서를 외면한 처사다. 원래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게 적용돼야 하는데 우리 사회에서는 권력과 부유층 인사들에게는 솜방망이요, 일반시민들에게는 엄격하기 짝이 없다. 법 적용이 누구에게는 무르고 누구에게는 가혹하다면 굳이 법이 존재할 이유가 있는가. 김운용씨나 김홍업씨 모두 권력형 부정비리와 연루되어 있는데 참여정부가 비리부패를 근절시키겠다고 해놓고 이들을 슬그머니 풀어준다면 이율배반이요, 앞뒤도 맞지 않는다. 이런 사람일수록 더욱 행형에 모범을 보이고 만기를 채우도록 해야 법의 권위와 존엄성이 설 것이 아닌가. 박옥희〈부산시 사하구 신평동〉 태권도 종주국 위상이 흔들린다 서울올림픽 때부터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던 태권도가 퇴출될 위기에 처해 있다는 632호 기사(태권도 퇴출이냐 도약이냐)를 읽은 후 한동안 불안한 마음을 가졌다. 하지만 IOC싱가포르 총회에서 다시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다는 뉴스를 보고 안도감을 느꼈다. 태권도는 여태껏 올림픽에서 메달박스로 여길 정도로 효자노릇을 톡톡히 해왔는데 향후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기사는 우리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수십 년간 종주국의 위상을 지켜왔지만 이제 유럽과 중남미의 추격에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특히 기술로써 버티기에는 이미 한계가 온 듯한 느낌이다. 한국 태권도의 지도자들이 세계 각국에 초빙되어 기술을 전수함으로써 유럽과 중남미 등에서도 한국을 위협하는 추세다. 종주국이란 말은 이제 더 이상 통하지 않으며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체력을 기르지 않으면 독주하던 시대는 지났다고 본다. 이에 대한 대비책이 절실하다. 우향화〈서울시 동작구 흑석동〉
독자의 소리
[조명]태권도 퇴출이냐 도약이냐(2005. 07. 12)
2005. 07. 12 스포츠
아테네올림픽 이후 퇴출 거론… IOC 싱가포르 총회 결정 앞두고 촉각 곤두 1993년 3월 김정길 대한체육회장은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했다. 8명의 최고위원을 뽑는 민주당 최고위원 경선에서 김 회장의 당선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1위 득표가 유력했던 김 회장은 오히려 자파인 노무현 대통령의 동반 당선을 위한 선거운동에 더 열심이었다. 결과는 노 대통령 5위, 김 회장은 9위였다. 걱정했던 노 대통령은 무난히 당선됐지만 정작 자신은 1위 득표는 고사하고 지도부에서 탈락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최근 김 회장은 12년 전의 악몽을 다시 떠올렸다. 선거란 이런 것이다. ‘뚜껑’을 열어보기 전에는 절대 마음을 놓지 말고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게 김 회장이 선거판에서 뼈저리게 체득한 교훈이다. 12·13대 국회의원을 지낸 김 회장은 3당합당 이후 국회의원 선거에 다섯 번 나가 다섯 번 떨어졌다(보궐선거 1회 포함). 하지만 지난해 1월 대한태권도협회장 선거, 올 2월 대한체육회장 선거에서는 연거푸 이겼다. 최근 언론이 노 대통령의 총선 낙선인사 공직 임명 사례를 들면서 거기에 자신을 포함시킨 것이 무척 억울한 표정이다. 선거를 통해 선출된 자리를 임명직과 도매금으로 취급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선거 얘기가 나오면 김 회장은 할 말이 많다. 김 회장이 요즘 12년 전의 선거를 새삼 떠올린 데는 까닭이 있다. 태권도 때문이다. 김 회장은 현재 한국의 태권도를 대표하는 대한태권도협회장이면서 동시에 대한올림픽위원회(KOC) 위원장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7월 6일부터 9일까지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제117차 총회에서 2012년 하계올림픽 개최지와 종목을 결정한다. 태권도가 7월 8일 이뤄지는 28개 하계올림픽 종목에 대한 개별종목별 비밀투표에서 IOC 위원의 과반수 지지를 얻지 못하면 올림픽에서 퇴출될 위험에 처한 것이다. 판정 공정성 문제· 흥미 감소 등 지적 ‘태권도 위기론’이 근거가 전혀 없는 얘기는 아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부터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태권도는 2004년 아테네올림픽 이후 심판 판정의 공정성 문제, 단조로운 경기에 따른 흥미 감소 등이 지적되면서 퇴출 후보종목으로 거론돼왔다. 지난 6월 13일 IOC 프로그램위원회가 발표한 28개 올림픽 종목 및 5개 후보종목(럭비, 가라데, 골프, 스쿼시, 인라인롤러)에 대한 평가보고서는 ‘태권도 위기론’의 신빙성을 더해주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시드니·아테네 양대 올림픽에서 태권도가 거둔 성과는 회의적이다. 입장권 판매는 호조였으나 TV 시청률 및 관련기사 보도 건수가 저조했고, 심판 판정의 공정성이 의심스러웠으며, 득점 과정에 대한 일반인의 이해도가 낮았다는 것이다. 반면 5개 후보종목 가운데 일본의 가라데는 173개의 회원국을 보유하고 있으며 마케팅 및 방송권을 통한 수입이 많을 것으로 이 보고서는 분석했다. 올림픽 종목은 자크 로게 IOC 위원장 취임 후 경기종목 28개, 세부종목 301개, 선수 1만5000명으로 고정됐다. 기존 경기종목이 퇴출돼야 신규종목이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런 사정 때문에 열린우리당 체육특별위원장인 안민석 의원은 “같은 격투기 종목인 가라데의 진입을 원하는 IOC 위원이 태권도에 반대투표를 던질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만에 하나 태권도가 올림픽에서 퇴출되는 사태가 온다면 우리에게는 여간 심각한 일이 아니다. 태권도는 우리의 국기(國技)이자 김치나 삼성·현대 등처럼 국제사회에 이미 친숙해진 한국의 대표 브랜드 가운데 하나다. 지구촌 180여개국에 약 6000만 명이 즐기는 운동이고, 5000여명의 한국인이 종사하는 직업이기도 하다. 태권도가 퇴출된다면 우리 자존심이 구겨지는 것은 물론 경제적으로도 막대한 손실을 입게 된다. 김 회장은 이번 IOC 총회에서 태권도 퇴출 사태가 빚어질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 태권도가 가진 장점과 그동안 국제사회에 쌓아온 이미지가 만만찮다고 보기 때문이다. 태권도는 짧은 시간에 습득이 가능하고 시설비가 별로 들지 않는 대중적인 운동이다. 태권도가 퇴출되면 올림픽종목에서 발 공격이 가능한 운동이 사라지는 점도 있다. 지난 4월 로게 IOC 위원장도 스위스 로잔에서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낙관적 견해를 피력한 바 있다. 그렇다고 김 회장이 느긋하게 결과를 기다릴 수만은 없다. 퇴출이냐 잔류냐는 IOC 위원장이 아니라 위원 115명의 투표로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선거판의 속성을 누구보다 가혹하게 체험한 그로서는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게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김정길 회장 각국 IOC 위원 만나 설득 최근 김 회장은 국내에 머무는 날이 거의 없었다. 스위스, 스페인, 쿠웨이트, 중남미 등 IOC 위원이 있는 곳마다 찾아다니며 ‘스포츠 외교’를 펼쳤다. 최종적으로 6월 하순에는 KOC 부위원장인 오지철 전 문화광광부 차관, 총무인 김상우 전 의원 등과 3개 팀으로 나눠 취약지역으로 꼽히는 중남미·유럽·아프리카를 방문했다. 김 회장은 이 가운데 멕시코·파나마·페루·우루과이·아르헨티나·칠레 등 중남미 지역을 돌았다. 내년 3월말 서울에서 개최되는 국가올림픽위원회총연합회(ANOC) 총회 협의차 멕시코를 방문했다가 주변국 IOC 위원과 NOC 위원을 만나 지지를 얻어내기 위해서였다. ANOC 총회는 세계 200여개국의 NOC 위원이 참여하는 ‘스포츠 UN총회’ 격으로, 바스케스 라냐 멕시코 IOC 위원이 위원장을 맡고 있다. 최근 4개월여 동안 김 회장이 직접 만난 IOC 위원만도 25명이다. 위원 전원에게 서신도 띄웠다. 김 회장의 1차 목표는 태권도의 2012년 올림픽 잔류지만 진짜 목표는 다시는 퇴출 얘기가 나오지 않게 하는 것이다. 4년마다 실시하는 개별종목별 투표에서 아예 퇴출 대상으로 거론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이번 기회에 압도적 지지를 받아내야 한다. “방심은 금물”이라는 게 그의 ‘선거철학’이기도 하다. 김 회장은 IOC 위원에게 지지를 호소하는 것보다 태권도가 대중적인 스포츠로 거듭나는 것에 궁극적인 목표를 두고 있다. 태권도가 재미있는 스포츠가 돼야 관중이 많아지고, 그래야 TV로도 중계된다는 것이다. 언론이 태권도 보도에 인색하다는 것만 탓할 게 아니라 언론이 보도하지 않을 수 없게끔 인기 스포츠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세계태권도연맹(WTF, 총재 조정원)도 같은 맥락에서 태권도 개혁안을 마련하고 있다. 남자경기를 3분 3회전에서 2분 3회전으로 단축하고 무승부일 경우 서든데스로 승자를 결정하게 하는 등 경기에 박진감을 더하고 판정 시비를 줄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김 회장에게는 이번 IOC 총회 외에도 큰 ‘선거’가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 2011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대구 유치, 2014년 동계올림픽 평창 유치 및 아시안게임 인천 유치 등이다. 정치권에서 체육계로, 국내에서 세계로 무대를 옮긴 선거판에서 그가 어떤 역할을 할지 주목된다. 먼저 태권도 퇴출이냐, 새로운 도약인가를 판가름하는 싱가포르의 투표함에 체육계는 물론 온 국민의 눈길이 모일 수밖에 없다. “한국형 골든플랜 적극 추진할 것” 국론통합, 남북화합, 교육제도 개선, 건강보험 문제 해결, 청소년 범죄 예방…. ‘싱가포르 출정’을 사흘 앞둔 지난 6월 29일 서울 하얏트호텔 로비라운지에서 만난 김정길 대한체육회장의 입에서 나온 단어들이다. 정치인에게서나 흔히 들을 수 있는 화법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정치인 김정길’이 아니라 ‘체육인 김정길’의 말이었다. 그는 정치인 출신 체육인으로서 우리나라 체육과 체육계의 개혁을 주장한다. 먼저 김 회장은 우리나라 엘리트체육은 곧 한계에 이를 것이며, 이를 극복하는 길은 생활체육에 집중투자하는 길뿐임을 역설했다. “그동안 우리는 엘리트체육에 목을 매다시피 했습니다. 선수들을 메달 따는 기계로 만들었어요. 이런 정책이 우리나라를 스포츠 후진국에서 10대 스포츠 강국으로 단기간에 끌어올리는 데는 효과가 있었지만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김 회장은 머잖은 장래에 엘리트체육 자원이 고갈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자녀를 많이 낳던 시절과 달리 저출산 시대에는 선수층이 엷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나뿐인 자녀에게 운동을 시킬 부모는 많지 않다는 얘기다. “운동선수는 공부 안 해도 되고, 공부하는 학생은 운동을 못해도 되는 교육제도는 바뀌어야 합니다. 외국의 경우 공부와 운동을 다 잘 해야 국가대표선수가 될 수 있고 일반 학생도 적어도 한 가지 운동을 잘해야 좋은 학교에 진학할 수 있지요. 이제는 우리도 선진국처럼 건전한 학교체육·생활체육의 바탕 위에 건전한 엘리트체육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김 회장은 1960년대 독일의 골든플랜에서 따온 ‘한국형 골든플랜’을 추진중이다. 향후 10년간 스포츠예산을 1%로 끌어올리고(현재 국민체육진흥기금 포함 0.2%), 언제 어디서나 국민 모두가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스포츠클럽을 조성하는 생활체육 프로그램이다. 이것은 엘리트체육 발전을 위해서도, 앞에 말한 국가적 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독일·일본·호주 등처럼 생활체육을 육성한 나라가 국민 평균수명도 길고 스포츠강국이 됩니다. 일본도 엘리트체육으로 가다가 1980년대부터 생활체육에 집중투자했지요. 그래서 한동안 국제대회에서 별 성과를 못 냈지만 아테네올림픽 때 5위로 뛰어오르지 않았습니까.” 국민이 건강해야 건강보험 재정이 절감되고, 월드컵·박찬호 효과에서도 보듯 스포츠를 통해 국민통합을 이룰 수 있으며, 독일 통일 과정처럼 스포츠 교류로 남북통일의 길을 열어갈 수 있다는 게 김 회장의 논리다. 미국의 경우 3대 메이저대회 때 범죄율이 16%나 준다고 한다. 스포츠의 ‘히어로 효과(hero effect)’는 청소년 범죄를 줄이기도 한다는 게 그의 ‘스포츠 예찬론’이다. “체육 정책의 궁극적인 목표는 국민이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과 국제 스포츠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 두 가지가 결합돼 같이 가야 합니다. 체육회와 생활체육협의회가 분리돼 있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어요. 합쳐져야 합니다.” 다음 일정 때문에 자리에서 일어서는 김 회장에게 마지막으로 김운용 전 IOC 부위원장의 가석방과 최근 논란이 된 ‘3각 빅딜설’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의 대답은 단호했다. “죄는 죄지만 고령이고 스포츠에 기여한 점이 있기 때문에 잘된 일이라고 봅니다. 빅딜설은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로게 위원장이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칠 수는 있겠지만 어떻게 그가 태권도의 올림픽 잔류를 보장하고 ‘딜’을 할 수 있겠습니까.”
조명
[화제]태권도 ‘남북통일’ 틀까(2005. 03. 22)
2005. 03. 22 사회
ITF총재 장웅 북한 IOC위원 방한 의사… 올림픽 종목 유지 한목소리 국제태권도연맹(ITF) 총재인 장웅 북한 IOC위원이 양대 태권도연맹의 통합을 위해 조만간 한국을 방문할 뜻을 갖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3월 7일 방한한 ITF 박종수부총재는 “오는 4월 세계태권도연맹(WTF) 총회에서 새로운 총재가 선출되면 장웅총재가 4월말이나 5월초 남한을 방문해 양대 태권도연맹의 통합을 본격적으로 논의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WTF는 오는 4월 12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리는 총회에서 4년 임기의 신임 총재를 선출하게 된다. 박부총재의 전언에 따르면 장총재가 현 WTF 조정원총재와 통합 문제를 놓고 여러 차례 대화를 나눴다는 것. 박부총재는 “조총재 역시 통합에 큰 관심을 두고 있으나 4월 경선에서 총재가 돼 새로운 임기를 보장받으면 본격적으로 논의할 뜻을 내비쳤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WTF총재 선출 후 본격 논의 김운용 전총재의 사퇴로 지난해부터 잔여임기를 채우고 있는 조총재는 이번 경선에서 유력한 후보로 거명되고 있다. 조총재 외에 박선재 이탈리아태권도협회장이 출마를 선언, 2파전이 될 전망이다. 지난해 선거에 출마했던 박차석 팬암태권도연맹회장은 최근 “조정원총재에게 4년 임기의 기회를 열어주고 태권도인의 역량을 결집해야 한다“며 불출마를 선언했다. 태권도계의 관심사는 오는 7월 열리는 IOC총회. 여기에서 태권도가 2012년 올림픽 종목으로 계속 남느냐, 마느냐의 기로에 서게 된다. WTF 경선불출마를 선언한 박차석회장 역시 불출마의 이유로 IOC총회를 앞두고 태권도계의 단결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항간에 소문으로 떠도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의 '태권도 제외설'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ITF역시 IOC총회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박종수부총재는 “태권도가 IOC총회에서 계속 올림픽 종목으로 유지되는데는 양측의 통합이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면서 “IOC위원인 장웅 ITF총재가 적극 지원할 뜻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WTF의 한 관계자는 “올림픽의 이미지를 살리기 위해서도 양대 기구가 적극적으로 나서면 크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서 “ITF쪽에서 만나자고 하면 거절할 이유는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관계자는 “최홍희 전 총재의 사후에 ITF가 세개의 세력으로 나뉘어 내분 문제로 오히려 좋지 않는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며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WTF쪽에서는 ITF가 창구를 단일화해 주길 바라는 것이다. WTF는 태권도의 영향력 확대를 위해 양대연맹의 통합보다 개혁위원회를 통한 경기 방식 개선에 더 비중을 두고 있다. 대한체육회 회장도 남북교류 강조 ITF는 창시자인 최홍희 전총재가 2002년 사망한 후 세개의 세력으로 나뉘었다. 장웅 IOC위원과 최 전 총재의 아들인 최중화씨, 베트남 출신의 트란 트류 콴이 서로 ITF의 정통임을 내세우는 것이다. 박부총재는 “현재 최중화씨 쪽은 ITF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못하게 돼 거의 힘을 잃은 상태이며, 트란 트류 콴 쪽과 법정 소송에서도 우리가 승소하고 있다“며 장웅총재 체제로 굳어지고 있음을 밝혔다. 박부총재는 “최전총재는 태권도 통합을 위해서는 장총재가 적임자임을 생전에 누차 말했다“고 강조했다. 대한체육회 김정길 신임회장이 지난 2월 당선되자마자 남북 교류를 중요한 과제로 내세운 것도 IFT쪽에서는 고무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박부총재는 “장웅총재가 방한한다면 태권도협회장인 김정길 체육회장과도 태권도 통합에 대해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터뷰]박종수 ITF부총재 “경기 방식 차이 많이 좁혀“ -최홍희 전총재와의 인연은? 1950년대 중반 태권도를 시작했는데 먼 발치에서 최전총재를 봤다. 최전총재와의 인연은 1964년부터 시작됐다. 그후 40여년을 그의 곁에서 일했다. 1973년 최전총재가 박정희 전대통령과의 갈등으로 한국을 떠나 캐나다로 왔다. 나는 1966년부터 캐나다에서 태권도 사범으로 정착해 있었다.“ -이번에 방문한 목적은? “경북과학대 체육학과 태권도 전공에 처음으로 ITF태권도를 도입하게 됐다. 그래서 과목 개설 행사를 위해 방문했다.“ -최홍희 전총재가 ITF를 북한에 보급한 이후 ITF는 북한태권도가 아닌가 하는 오해를 받고 있다. 최전총재 사후에 장웅위원이 총재가 되면서 그런 오해가 더욱 증폭되고 있다. “최전총재는 생전에 태권도 문제는 자신이 결정한다고 누차 말했다. 그런 언급 때문에 북한과 한때 마찰을 빚기도 했지만 김일성주석과 단독면담을 통해 이를 관철하기도 했다. 지금도 장총재는 태권도 문제는 전적으로 집행부에 맡기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ITF는 총재가 아니라 집행부와 회원들의 뜻에 따라 움직인다.“ -일각에서는 북핵 문제 등으로 태권도 통합 문제가 영향을 받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통합이 중요하다는 것은 양쪽 다 공감한다. 갑자기 통합이 되는 것도 어렵지만 원칙을 세워 거리를 좁혀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남북통일보다는 빨리 될 것으로 생각한다. '스승들끼리 싸우면서 제자들한테 뭘 배우라고 하는가'라고 주위에서 비판할까봐 걱정이다. 태권도 스승의 나라로서 떳떳하게 통합돼야 한다.“ -WTF와의 통합에 있어 경기방식이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지금 ITF 경기위원장을 맡고 있어 여기에 관심이 많다. 올림픽 경기에서는 WTF의 방식을 따르고 있다. 하지만 WTF가 최근 주먹 기술에 득점을 부여한다든지, 기술에 따라 차등점수를 준다든지 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ITF의 경기방식과 비슷해지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방식의 적응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WTF에서는 한국 선수가 우수한 성적을 보이고 있다. ITF에서도 북한 선수가 우수하다고 들었는데, 양쪽이 맞붙는다면 누가 실력이 우수하다고 보는가? “경기방식에 따라 다를 것이다. 일단 북한 선수들은 주먹기술을 습관적으로 사용하고 경기 때 착용하는 보호구에 익숙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외국에서는 ITF선수들이 WTF경기에 출전해 좋은 성적을 보이고 있다.“ 태권도가 인기를 얻으려면 경기방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은 어떻게 생각하나? “최전총재는 태권도가 많이 발전했다고 평가하면서도 자유겨루기를 항상 못마땅해 했다. 제 기량을 드러낼 수 없다는 것이었다. 현란한 기술에 점수를 많이 줘야 한다. 그래야 관중들이 관심을 갖는다. 그리고 두뇌를 쓰는 동작에 중점을 둬야 한다.“ -한국에서는 ITF가 거의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130여개 ITF 회원국에서는 종주국인 한국을 방문하고 싶어한다. 많은 ITF도장이 생겼으면 한다. ITF에서도 여기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경북과학대에서 ITF태권도를 교과목으로 채택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월드리포트]"32년만에 정통 태권도 귀환 감격"(2004. 10. 28)
2004. 10. 28 국제
국제태권도연맹(ITF) 세계대회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지난 10월 14일부터 19일까지 대전 엑스포 무역전시관에서 열렸다. ITF 최중화 총재는 대회 개막 전날 [뉴스메이커]와 단독인터뷰를 하고 "32년 만에 귀환해 국민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태권도의 원형과 진면목을 보여주게 돼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세계태권도연맹(WTF)과의 통합 문제에 대해서는 "ITF는 무도성(martial art)에 중점을 두는 반면, WTF는 운동성(sports)이 특징이기 때문에 두 단체를 통합하기보다 병존시켜나가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며 부정적인 입장를 보였다. 다음은 최 총재와의 일문일답. 32년 만의 귀환이라는 역사적 행사에 최 총재가 참석하지 못한 이유는. "ITF 발전과 이번 세계대회의 성공을 저지하려는 일부 세력이 핵심임원들을 테러리스트 혐의자로 거짓 밀고하는 바람에 입국을 못했다. 이런 중차대한 시기에 극단적 회교 무장단체의 한국에 대한 테러위협이 터져나온 것이라 운이 없다고 본다. 한국 공항에 내릴 때 환영받기는커녕 정보기관에 끌려가 조사를 받는 수모를 당하느니 차라리 멀리서 지켜보며 격려하는 편이 낫다는 ITF 임원들의 건의를 받아들여 입국하지 않았다. 하지만 조만간 꼭 한국에 들어가 국민에게 진실을 얘기할 것이다." 부친 최홍희 초대 총재께서 돌아가신 뒤 ITF가 3분됐다. 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무엇보다도 정통성이 제일 중요하다. 북한의 장웅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과 베트남 출신 트란 트류 콴 등이 각자 자기가 최홍희 총재의 후계자라고 주장하지만 정통성에 문제가 많다.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있는 ITF 쪽으로 태권도인이 더 많이 몰려올 것이다." WTF와의 통합 문제는 어떻게 보는가. "조정원 WTF 총재에게 이번 대회 참석을 요청하는 초대장을 보냈다. 그동안 양쪽에서 통합 얘기가 여러 차례 나왔다. 하지만 정치적 이해관계와 파워게임으로 성사되지 못했다. 더구나 ITF와 WTF는 태권도를 바라보는 철학이 달라 기술이나 운영 면에서 큰 차이가 난다. ITF는 무도성에, WTF는 운동성에 각각 중점을 두기 때문에 억지로 통합하기에 무리가 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각기 그 나름의 태권도의 장점을 발전시켜나가는 것이 합리적이고 현실적이다. 물론 올림픽경기에서 태권도가 영구종목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ITF가 적극 지원할 것이다." 앞으로의 활동에 대해 말해달라. "1972년 부친께서 캐나다로 망명한 뒤 32년 만에 ITF태권도가 한국으로 돌아온 만큼 한국에 뿌리내리는 데 전력할 것이다. 한국의 모든 시-도에 지부를 설치, 조직을 확대시키고 한국이 '태권도의 성지'인 만큼 태권도대학도 설립할 것이다. 내가 태어난 제주도에 태권도대학이 들어설 부지를 광범위하게 조사해놓았다." 인터뷰[최중화 국제태권도연맹(ITF) 총재] 토론토[김정남 통신원 namkimm@hanmail.net]
월드리포트
[문화]"태권도 로봇이라 더 끌려요"(2003. 10. 02)
2003. 10. 02 문화/과학
서울 종로5가 보령약국 뒷골목에 자리잡고 있는 한 허름한 건물. 꾸불꾸불한 계단을 타고 올라 맨 꼭대기층까지 오르자, 작은 옥탑방이 나온다. 6평이나 될까. 부엌도 없는 방안은 온통 1970년대 중반부터 80년대를 풍미한 각종 어린이 용품이다. 조립식 장난감과 [새소년] [어깨동무] 등 잡지, 클로버문고, 학용품 등 7,000~8,000점의 물건이 4개의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눈에 띄는 것은 1976년 극장 개봉 이래 90년까지 어린이의 우상이었던 '로봇 태권V' 관련 자료이다. 어림잡아도 200여 종이 넘는다. LP판, 카세트테이프, 1970~80년대 신문, 크레파스, 책가방, 물통, 화판, 책받침, 털신 등 태권V가 그려진 것이면 다 모아놓은 듯하다. 이 방 주인은 국내에서 태권V 자료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인정받고 있는 남상우씨(31)다. 방 안을 채우고 있는 유물은 그가 지난 6년간 전국을 샅샅이 뒤지다시피 해서 얻은 것들이다. 이 방은 날로 불어나는 이런 물건을 보관하기 위해 남씨가 보증금 1백50만원에 월세 17만원씩을 주고 얻은 것이라고 한다. 자료 보관 위해 따로 방까지 얻어 종로5가에서 웨딩드레스 원단 판매 회사를 운영하는 남씨가 태권V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네 살 때, 당시 서울 대한극장에서 상영한 김청기 감독의 애니메이션 영화 [로봇 태권V]의 그림이 그려진 종이카드를 삼촌에게 받은 후 태권V에 푹 빠졌다. 겨우 아장아장 걸어다닐 나이임에도 손에 동전을 쥔 채 태권V 그림카드를 사겠다며 동네 문구점을 돌아다녔고, 잇따라 속편이 제작될 때마다 동시에 출시된 태권V 프라모델(조립식 장난감)을 사달라며 아버지를 졸랐다. 1976년 여름 개봉한 [로봇 태권V]는 당시로는 꽤 좋은 흥행성적이라고 할 수 있는, 전국 14만 명의 관객을 끌어모았다. 그 여파를 타고 1976년 겨울 개봉한 2탄 [우주작전]을 비롯해 모두 7편의 속편이 제작됐다. [철인 007] [소년 007] 등 국산 애니메이션영화 제작 붐도 일었다. "태권V가 탄생하기 전엔 일본의 마징가 시리즈가 우리 어린이들을 사로잡고 있었어요. 그게 일본 만화인 줄도 모르고 좋아했죠. 나중에 마징가, 아톰 등 TV를 통해 본 만화영화가 모두 일본산이라는 것을 알고는 기분이 이상했어요. 배신감이 들었어요. 태권V는 우리 고유의 무술인 태권도를 기본으로 한 로봇이라는 점 때문에, 더 강렬하게 끌렸던 것 같아요. 제비호를 타고 태권V 머리에 올라타 조종하며 악의 무리를 물리치는 훈이와 영희도 저를 포함한 당시 모든 어린이에겐 우상이었죠." 본격적으로 태권V 자료를 수집하게 된 계기는 6년 전 황학동 벼룩시장을 지나다가 발견한 [로봇 태권V] 비디오테이프 때문이다. 그것을 집으로 가져와 틀어보니, 어릴 적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마침 군제대 직후여서 비교적 시간 여유가 많았던 터라 본격적으로 태권V 수집을 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미 너무 오래된 캐릭터여서 자료 찾는 일이 쉽지 않았다. "부산 마산 창원 대구 등 전국 문구점을 찾아 다녔고, 800여 문구점을 수소문한 끝에 태권V 프라모델 하나를 겨우 찾을 수 있었어요. 그런데 지방 문구점을 다니다보니까, 사명감이 생기더라고요. 신제품이 들어오면 재고 물건을 불에 태우거나 버리는 장면을 자주 목격했거든요. 더욱이 문구점이 점차 팬시점으로 바뀌니까 태권V를 비롯한 옛날 장남감이 설 자리는 전혀 없어요. 태권V 보존 차원에서라도 제가 유물을 모아야겠다는 결심을 한 건 그런 배경에서였죠. 무작위로 수집하던 것을 이후엔 그래서 체계적으로 모으기 시작했어요." 체계적으로 수집할 수 있었던 것은 [새소년] 등 1970~80년대 어린이잡지와 신문에 게재된 광고 덕분이었다. 잡지와 신문  발행 날짜를 통해 해당 장난감이나 영화가 나온 시기를 정확히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지방을 돌아다녀도 더 이상 살 물건이 없어요. 대신 개인이 가지고 있는 게 있다고 하면 구하죠. 주로 인사동과 황학동에서 정기적으로 열리는 옛날 장난감 경매 행사나 인터넷 경매 사이트를 통해 구입해요. 최근 로봇 태권V 프라모델 5개를 개당 20만원씩 쳐서 1백만원에 샀어요. 옛날엔 개당 400~500원 하던 것이만 지금은 워낙 희귀품이 되다보니 가격도 만만치 않아요." 400원 하던 프라모델 20만원에 구입 로봇 태권V 수집을 하면서 느끼는 아쉬움도 있다. 영상과 음악, 캐릭터 관련 저작권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점이다. 이로 인해 로봇 태권V 2탄인 [우주작전]의 경우 필름을 소장하고 있는 사람이 있지만, 저작권 문제로 비디오나 DVD로 출시하지 못하고 있다. 남씨는 "필름을 소장하고 있는 개인이 그것을 상품화해 내놓는 것을 저작권을 가진 측에서 용납하지 않아 로봇 태권V 대중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 역시 지난 춘천국제만화축제에서 로봇 태권V 전시회를 가지려 했다가 저작권 문제로 막판에 취소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오는 10월에는 국내 최초의 '로봇 태권V' 전시회가 열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산하기관인 문화콘텐츠진흥원은 남씨가 소장하고 있는 각종 로봇 태권V 유물을 토대로, 서울 역삼동 문화콘텐츠센터((02)2051-3070)에서 '로봇 태권V' 전시회를 열 계획을 추진 중이다.
"태권도는 이데올로기 아닌 무예"(2003. 09. 25)
2003. 09. 25 스포츠
2004년 10월 대전에서 개최될 제14회 국제태권도연맹(ITF) 세계선수권대회를 준비 중인 ITF대한태권도연맹 오창진 회장대행(36)의 각오는 남다르다. 이번 대회가 정치적 이유 등으로 그동안 한국과 등을 졌던 ITF 태권도를 한국에 알릴 수 있는 기회인 동시에 32년 만에 한국 귀환(?)의 성공을 좌우할 시험대이기 때문이다. 오 회장대행을 만나 준비 과정과 의미 등을 들어봤다. 개최지를 폴란드에서 갑자기 한국으로 바꾼 이유는. "회원국의 반발도 적지 않았지만 최중화 ITF 총재의 염원 등에 힘입은 것이지요. 그만큼 한국대회에 거는 기대가 큽니다. 가장 큰 기대는 ITF의 진수를 32년 만에 국민에게 직접 선보일 수 있다는 것과 이를 통한 ITF 태권도의 재조명이라는 점입니다. 정치적 이유 등으로 그동안 접하지 못했던 태권도의 진면목을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나아가 두 개로 갈라진 태권도가 하나로 거듭 나는 데 이번 대회가 초석이 될 것입니다." 2002년 11월 한국이 ITF로부터 일반회원국도 아닌 특별회원국으로 정식승인받게 된 의미는. "지난해 11월 ITF로부터 한국이 정식으로 연맹가입국으로 승인받았습니다. 현재 120여 개 회원국 가운데 한국과 일본이 특별회원국이며 나머지는 일반회원국입니다. 특별회원국의 경우 승단심사 등 독자적인 사업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ITF대한태권도연맹 설립에 오 회장대행의 역할이 적지 않았다는데요. "1993년 용인대학교 태권도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에서 태권도 사범 생활을 하다 우연한 기회에 고 최홍희 총재가 이끌던 ITF의 시범경기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시범경기였지만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단순한 스포츠가 아닌 하나의 '무예' 그 자체였습니다. 이데올로기를 떠나 무인으로서 태권도를 받아들였고, 그래야만 합니다. 물론 북한이 정치적으로 태권도를 악용하려는 데 대해서는 분명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태권도의 고향은 분명 대한민국이며 연맹본부도 한국으로 옮겨와야 합니다." ITF대한태권도연맹이 지난해 설립됐지만 아직 구체적인 활동과 회장 등 임원진 구성이 안 된 것으로 압니다. "빠르면 오는 11월께 임원진 등 구체적인 집행부를 공식 발표할 계획입니다. 여러 가지 주변상황 등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현재 임원진을 발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재 임원진은 대부분 내정된 상태입니다. 정부에 공식기구로 인정해달라는 청원서도 최근 제출했습니다. 공식적인 절차를 통해 명실상부한 단체로 인정받겠다는 게 ITF대한태권도연맹의 입장입니다." ITF가 한국으로 본부를 옮길 경우 파급효과가 적지 않을 것 같은데요. "당장은 어렵겠지만 만약  ITF 본부가 한국으로 올 경우 정치-경제적인 측면에서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기대효과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태권도에 거는 세계인의 기대가 그만큼 크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북한측이 억지를 부리는 것입니다." WTF와의 통합이 쉽지 않다는 지적이 많은데요. "WTF와의 통합은 장기적인 과제입니다. 당장은 힘들더라도 단계적인 통합을 통해 태권도가 세계적인 무술로 거듭 태어나야 합니다. 최중화 ITF 총재는 통합만 할 수 있다면 모든 기득권도 포기할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이제는 ITF를 제자리(한국)로 되돌려놓을 때라고 최 총재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각에서 거론하고 있는 북한측과의 통합 협상은 일고의 가치도 없습니다." 인터뷰/김재홍 기자 atom@kyunghyang.com
두 개의 태권도, 그 30년 전쟁(2003. 09. 25)
2003. 09. 25 스포츠
태권도 단체가 ITF와 WTF로 분파된 것은 1973년이다. 기존에 있던 ITF 총재였던 고 최홍희씨가 1972년 캐나다로 망명하자 73년 국내에서 WTF가 발족되면서다. 이후 두 단체는 세계를 무대로 태권도를 양분하며 소리없는 전쟁을 벌인다. 두 단체에서 바라보는 태권도 기원은 큰 차이를 보인다. WTF에서는 태권도가 4,000년 전부터 이어져 내려왔다고 말한다. 고대에 야생동물의 공격에 대응하기 위한 자기방어수단으로 태권도의 기본형인 막기-차기-지르기 등이 나왔다는 것이다. 이 형태는 삼국 시대에 이르러 무술 형태로 변화했고 고려 시대부터는 태권도(당시 이름은 태껸)가 됐다는 것이다. 반면 ITF에서는 태권도의 역사가 50년이라고 말한다. 태권도는 가라테를 기반으로 한 우리 민족의 고유 무도라는 것이다. ITF측은 1954년 이승만 당시 대통령이 군 시찰 때 군인들의 당수도 시범을 보고 "태껸이구먼"이라고 말한 것에서 착안해 최홍희씨가 태(跆)와 권(拳)이라는 말을 붙였다고 주장한다. 그 전에는 모두 당수도-공수도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1952년 최홍희 전 총재가 개관한 오도관의 명칭도 당수도였다. ITF 관계자에 따르면 당수도-공수도라는 명칭을 사용한 것은 당시 관장들이 일본에서 가라테를 배워 국내에 들여온 때문이라고 한다. 대한태권도협회 창립에 대해서도 두 단체는 다르게 기록하고 있다. WTF 기록을 보자. 한국전쟁 때 임시수도 부산에서 무술지도자들이 모여 대한공수도협회를 만들었다. 이 시기에 청도관을 중심으로 대한태권도협회가 만들어지는 등 단체가 난립했다. 대한공수도협회는 1961년 대한태수도협회로 바뀌고 63년 대한태권도협회로 개칭됐다. 박정희와 불화로 캐나다 망명 ITF에서의 기록은 이와 다르다. 오도관에 태권도라는 명칭을 사용한 최홍희씨는 1955년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태권도라는 명칭을 정식으로 인가받았다. 그는 1959년 9월 대한태권도협회를 창립하고 회장에 오른다. 하지만 공수도와 당수도라는 명칭에 집착한 관장들이 심하게 반발했다. 최씨가 말레이시아 대사로 떠났던 1961년 대한태권도협회가 대한태수도협회로 개칭된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말레이시아에서 돌아온 최 전 총재는 1965년 다시 대한태권도협회를 만들고 66년 9개국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국제태권도연맹을 창립한다. 이때 그는 독자적으로 우리 고유 무술을 이어받은 창헌류라는 새로운 틀을 만든다. 태권도가 가라테를 기반으로 했지만 우리 고유 무술이라는 ITF의 주장은 여기서 출발한다. 5-16 군사쿠데타 이후 최 전 총재의 입지는 크게 약화된다. 박정희 당시 대통령과의 불화 때문이었다. 당시 많은 군부 인사는 박 전 대통령에게 비협조적인 태도를 취했다. 5-16 당시 육군 소장이었던 최 전 총재도 그 중 한 명이었다. 말하자면 '박정희 편'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ITF 한 관계자는 "최 전 총재가 말레이시아 대사로 출국한 것도 그 때문"이라고 말한다. 알게 모르게 박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대립관계에 있던 그는 공수도-당수도를 고집하는 여러 관장과의 불화까지 겹쳐 1966년 대한태권도협회에서 불명예 퇴진한다. 최 전 총재가 협회에서 물러난 뒤인 1971년 김운용(현 IOC 부위원장)씨가 협회 회장으로 취임하고 박 전 대통령은 태권도를 국기로 지정한다. 이 과정에서 최 전 총재는 철저하게 배제된다. 결국 그는 ITF를 이끌고 캐나다로 망명한다. 지금 ITF 본부가 캐나다에 있는 이유다. 최 전 총재가 망명한 이듬해인 1973년 김운용씨가 이 세계태권도협회를 창설, 태권도는 ITF와 WTF로 양분된다. 이후 김씨의 외교술에 힘입어 국내 태권도는 WTF를 중심으로 발전한다. WTF의 승단 품새도 이때 새롭게 만든다. ITF 관계자에 따르면 캐나다로 망명간 최 전 총재에게 획기적인 변화가 찾아온다. 1980년 북한 김일성 주석이 최 전 총재에게 북한에 태권도를 전파해달라고 부탁하면서 비행기삯까지 부친 것이다. 최 전 총재는 "태권도는 한국인이 세계로 전파해야 하는데 남한에서는 나를 막고 있으니 북한에라도 태권도를 보급해야 한다"며 북한에서의 태권도 보급을 추진했다. 1980년 최중화씨(최홍희 아들로 현 ITF 총재)를 비롯한 실무진이 시범단을 이끌고 태권도를 전파하기 위해 북한으로 들어간다. ITF 태권도는 이때부터 북한의 국기가 된다. ITF측은 "북한의 국기가 ITF 태권도지만 북한은 동구권을 비롯한 수많은 회원국 중 하나에 불과하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고 말한다. ITF 태권도의 고향은 남한이라는 뜻이다. 2002년 최 전 총재가 사망하자 북한은 ITF 인수를 추진한다. 북한은 최 전 총재 100일 추모제를 빌미로 각 회원국 대표에게 특별총회 소집을 통보하고 장웅 북한 IOC 위원을 총재로 선출한다. 100일 추모제에 참석했던 모 인사는 "특별총회라는 말도 없이 플래카드가 들어오고 곧이어 장웅이 입장했다"며 "박수가 울리자 만장일치로 장웅이 총재로 선출됐다고 발표했다"고 말했다. 이 일을 기화로 북한은 ITF에서 고립된다. 북한 멋대로 총재 뽑아 따돌림당해 북한이 장웅을 ITF 총재로 만들려는 이유는 단순하다. 북한의 경제적-외교적 이익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ITF 소속 태권도인이 승단 심사를 받으면 심사비는 본부로 들어간다. 북한이 종주국이 되면 본부는 북한 소유가 되고 매년 모아지는 심사비도 모두 북한으로 들어간다. ITF 태권도인은 전 세계에 3천8백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승단 심사비가 매년 엄청나게 쌓인다. ITF 관계자는 "각국에 있는 도장도 따로 연맹에 연맹회비를 납부한다"며 "연맹회비만 해도 엄청나다"고 말한다. 북한이 종주국이 되면 연맹회비 역시 북한으로 들어간다. ITF 소속 태권도인 중에는 구 소련의 KGB 간부 출신이나 동구권 최고지도자도 많다. 북한이 종주국이 되면 이들 나라에 외교적 영향역을 가질 수 있다는 점도 북한의 노림수다. 하지만 북한식으로 치른 불법적 총회는 다른 회원국에 통하지 않았다. 심지어 러시아에서조차 인정하지 않았다. ITF는 2002년 11월 7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제14회 정기총회에서 최중화씨를 총재로 선출했다. 영국-러시아-호주-미국 등 세계 각국에서 참가한 임원들이 최 총재의 선출을 축하하고 정통성을 이은 합법적인 세계기구임을 인정했다. ITF는 곧 북한에 '장웅을 총재로 한 기구를 지속시킬 경우 ITF 상징마크와 명칭-도복-틀(WTF에서 말하는 품새) 등의 사용에 관한 일체를 금지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ITF 관계자는 "궁지에 몰린 장웅이 남북한 태권도 통일을 내세워 WTF 김운용 총재와 손을 잡고 최중화 총재를 견제하고 있다"고 말한다. 최 총재가 2004년 32년 만에 대전에서 세계대회를 열고자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 총재는 "남북한 태권도의 통합 주체는 북한이 아니며 한국을 뿌리에 둔 ITF와 WTF가 한국 내에서 교류하고 통합해야 진정한 태권도 통합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황인원 기자 hiw@kyunghyang.com
태권도 통일 시대 열리나(2003. 09. 25)
2003. 09. 25 스포츠
베일 속에 가려졌던 고 최홍희씨의 태권도가 32년 만에 한국에 귀환한다. 최씨가 총재로 있던 국제태권도연맹(International Taekwon-Do Federation, 총재 최중화)의 제14회 세계대회가 내년 10월께 대전에서 열린다. 1972년 국내 정치 사정 때문에 망명길에 오른 태권도의 또 하나의 줄기가 되돌아오는 것이다. 최 전 총재의 망명 이후 ITF태권도는 국내에서 이름조차 거론되기 힘들 정도로 배척받았다. 최 전 총재의 친북 성향 때문에 '빨갱이 태권도'로까지 내몰렸다. 2004년 대전 ITF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는 1974년 첫 대회 이후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열리는 뜻깊은 대회다. 또한 3천8백만 명에 이르는 ITF 수련인구를 이끌고 종주국으로 돌아오는 '금의환향'의 의미를 지닌다. 종주국으로 '귀향'하는 만큼 국가 이미지 향상은 물론 승단과 관련된 각종 수익 등 국익 향상에 큰 도움을 줄 것이라는 것이 ITF측 주장이다.  ITF세계대회는 태권도계에 '32년 만의 귀환'보다 더 큰 의미를 지닌다. 어쩔 수 없이 남과 북의 태권도로 각각 갈라설 수밖에 없었던 세계태권도연맹(World Taekwon-Do Federation, 총재 김운용)과 ITF의 통합에 징검다리가 놓이는 것이다. 용인대 태권도학과 진중의 교수는 "내년 대전대회는 태권도의 뿌리가 하나임을 확인하는 대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며 "태권도의 통합은 남북통일의 준비 단계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양 기구의 통합에 이렇게 큰 의미를 두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김운용 IOC 부위원장을 중심으로 한 WTF와 최 전 총재를 중심으로 한 ITF는 국제 사회에서 남북분단의 또다른 상징이 돼왔다. 통합 분위기 조성을 위한 해빙은 먼저 남측에서 제공했다. 문민정부 이후 이데올로기 완화와 민주화 흐름은 ITF에 드리운 이념적 색깔을 서서히 지워나갔다. 한국에서도 ITF 지부가 생기기에 이르렀다. 최 전 총재의 아들인 최중화 ITF 총재는 지난해 ITF대한태권도연맹을 정식으로 인정하고 독립회원국으로 승인했다. 남한 ITF 독립회원국 승인 통합의 손길은 ITF에서 내밀었다. 2002년 최 전 총재가 북한 평양에서 사망한 후 북한의 장웅 IOC 위원이 ITF 총재로 추대되자 대부분 ITF 회원국은 최 전 총재의 아들을 총재로 옹립했다. ITF의 내분으로 최중화 ITF 총재가 태권도의 뿌리로 북한이 아닌 남한을 선택한 것이다. 현재 ITF는 세 갈래로 나뉘어져 있다. ITF대한태권도연맹 오창진 회장대행은 "ITF가 종주국으로 남한을 선택한 것이며, 태권도의 실질적인 통합을 원한다는 생각에서 원래 폴란드에서 열기로 한 2004년 대회를 대전으로 변경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남한에서의 태권도 통합이 실질적인 태권도의 통합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ITF대전대회와 ITF연맹 지부의 창설은 태권도계에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오 회장대행은 "ITF 태권도에 대한 국내의 갈증을 확인할 정도로 ITF연맹의 회원가입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ITF측은 연맹 본부의 승인 이후 6개월 만에 3만 명 이상의 회원이 가입했다고 밝혔다. ITF대전대회에는 해외에서 100여개국 6,000명 이상의 관계자와 관광객이 참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열흘 동안 진행되는 이 대회는 스포츠 전문 채널인 ESPN을 통해 미국-캐나다-러시아와 유럽 등 70여개국에 중계될 예정이다. 올림픽의 정식종목이 된 WTF태권도와는 달리 ITF태권도는 무술 그 자체에 중점을 두고 있다. 경기 자체가 박진감 있게 진행되며 볼거리가 다양해 관중의 흥미를 유발시킨다. 이런 이유로 비록 회원가입 국가는 적지만 관중 동원력이 WTF대회보다 더 크다. 대외적으로 ITF세계선수권대회는 상당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용인대 진중의 교수는 "우리나라에서는 ITF대회가 올림픽의 정식 경기가 아니라는 점 때문에 평가절하되고 있지만 외국에서는 태권도를 무술 그 자체로 즐기기 때문에 가치판단이 틀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WTF는 '흡수통합' 입장 내세워 무엇보다 한국인에게는 내년 세계대회가 ITF태권도의 진수를 본격적으로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있다. 최근 ITF태권도가 국내에 다시 소개된 것은 지난해 10월 북한 태권도 시범단에 의해서였다. 오 회장대행은 "대전대회 이후 ITF코리아 오픈대회를 매년 개최해 태권도 종주국의 입지를 굳혀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내년 대회의 준비위원장인 한남대 신윤표 총장이 ITF 부총재로 내정돼 있는 등 ITF 내 한국의 영향력도 점차 커지고 있다. ITF 쪽의 태권도 통합에 대한 기대와는 달리 통합의 한 당사자인 WTF 쪽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WTF측은 내년 대전대회의 개최 사실에 대해 아예 관심조차 없다는 입장이다. WTF 선재훈 사무차장은 "그 사람들의 대회일 뿐"이라고 일축하면서 "함께 참여하자는 요청도 없었을 뿐더러 규정과 대련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함께 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WTF는 조직의 영향력과 가입회원국의 수를 감안한다면 ITF와의 통합이 대등 통합이 아니라 흡수통합이 돼야 한다는 입장을 내세우고 있다. WTF의 김운용 총재는 ITF 한 분파의 총재인 북한 장웅 IOC 위원과 지난 8월 대구유니버시아드대회 전에 만나 양측 태권도기구 통합의 전 단계로 기술 및 행정통합조정위원회 구성을 합의했다. 선 사무차장은 "ITF가 WTF와 통합하려면 갈라져 있는 자신들의 조직부터 합친 후에 우리와 협의해야 한다"고 못박았다.      현실적인 이유로 통합보다 독자적인 발전에 비중을 두는 태권도인도 많다. WTF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단체인 대한태권도연맹의 박금실 회장은 "통합 자체가 힘들며 큰 의미가 없다"면서 "각 기구가 특수성을 살려 발전해나가는 것이 좋다"고 주장했다. 진중의 교수는 "통합은 명분을 충분히 갖고 있지만 힘든 게 사실"이라며 "그런 만큼 내년도 대전대회는 한국 태권도의 다양화를 꾀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윤호우 기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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