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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 제2공항 수천 필지 뜯어보니…역시나, 투기의 그림자(2024. 11. 18 06:00)
- 2024. 11. 18 06:00 사회
- 제주참여환경연대 조사…“부지 선정 발표 직전 거래 폭증” 땅 소유자 60% 이상이 외지인…사전 정보 유출 가능성도 지난 10월 27일 촬영된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 일대의 제주 제2공항 예정지. 무가 듬성듬성 심겨 있지만 관리가 되지 않아 잡초가 무성하다. 제주참여환경연대 제공 “제2의 하와이보다는 우리의 삶의 터전으로서, 생활의 보금자리로서의 제주도를 원한다.” 지난 11월 11일 찾은 제주시 이도2동 제주시청 앞 도로에는 1991년 11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청년 양용찬의 33주기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양용찬은 제주 관광 개발의 절차를 간소화하는 제주도개발특별법이 1991년 국회에 상정되자 분신했다. 그는 특별법이 제주 주민들의 삶의 터전을 위협하고 주민들을 소외시킨다고 봤다. 끝내 특별법은 국회를 통과했고 이후 33년간 제주도는 개발에 개발을 거듭했으며, 현재도 개발이 진행 중이다. 그 상징 중 하나가 제주 제2공항이다. 계속된 개발로 관광객이 늘자 누군가는 제주도에 공항을 하나 더 지어야 한다고 했고, 10년의 찬반 논란 끝에 국토교통부는 지난 9월 제주 제2공항 건설 계획을 고시했다. 제주의 두 번째 공항 건설은 이제 기정사실이 됐다. 제주 제2공항을 바라보는 제주도민들의 시선은 복잡하다. 제주도 밖의 뭍 사람들이 제주공항 이용에 불편함을 느끼고 막연히 공항 하나 더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 제주도민 절반은 제2공항을 통해 더 많은 관광객이 들어올 때 숙박·렌터카 업체는 물론 도내 건설업 등에도 미칠 긍정적인 영향에 주목한다. 나머지 절반은 또 다른 공항 건설로 인해 관광객이 더 늘어나면 지하수가 줄고, 이미 포화 상태인 하수·쓰레기 처리가 전보다 곤란해질 것을 우려한다. ‘제주도를 하와이로 보느냐, 삶의 터전으로 보느냐’ 양용찬은 여전히 질문을 던지고 있다. 시민단체 제주참여환경연대는 국토부가 제주 제2공항 건설 계획을 고시하자, 공항 부지로 편입된 2840필지가 그간 누구의 손을 거쳐 누구의 소유가 됐는지를 토지대장 등을 통해 일일이 조사했다. ‘보라! 제주땅의 실상을’이라고 이름 붙은 이 보고서가 드러낸 것은 세 가지다. ‘땅 소유자의 60% 이상이 외지인이었다’는 점, ‘제2공항 부지 선정이 발표되기 직전 부동산 거래량이 폭증했고, 그중 상당수는 기획부동산 업체들의 투기성 거래’였다는 점, 끝으로 ‘부지 선정 이전에 사전 정보가 유출됐을 가능성이 작지 않다’는 점이다. 이 단체의 2명뿐인 상근자로 광범위한 조사를 진행한 홍영철 공동대표, 박유라 사무국장을 지난 11월 11일 제주시 이도2동 제주참여환경연대 사무실에서 만났다. 소문으로만 떠돌던 제주 제2공항 부지를 둘러싼 투기가 실제 어떤 식으로 이뤄졌는지, 이 개발 사업의 이익은 누구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큰지, 사업 계획을 재검토할 필요성은 없는지를 물었다. 부지 발표 전 거래량 폭증 제주참여환경연대 홍영철 공동대표(왼쪽)와 박유라 사무국장이 지난 11월 11일 제주참여환경연대 사무실에서 제주 제2공항 부지 토지 소유 실태 조사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박유라 사무국장은 추석 연휴도 반납하고 두 달간 조사에 매진했다. 그는 일을 계속하는 동기에 대해 “분노다. 행정이 주민들을 현란한 말로 기만하는 것을 보면 분노가 치민다. 분노가 힘이다”라고 했다. 이효상 기자 -수천 필지를 조사하는 것이라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을 텐데 어떻게 조사하게 됐나. 홍영철 제주참여환경연대 공동대표(이하 홍 대표) “제주 제2공항 부지에 대한 투기 의혹이 해소되지 않고 남아 있었다. 제주 제2공항 부지 선정 결과가 발표된 건 2015년 11월 10일인데, 며칠 뒤 도의회에서 법무사 출신의 한 도의원이 ‘제주도민만 몰랐지, 이미 정보 유출이 다 됐다’는 얘기를 공개적으로 했다. 2021년에는 제주 지역 언론에서 국토교통부 직원이 제2공항 부지 사전 정보로 친인척에게 투자를 권유한 것으로 보이는 카카오톡 메시지가 보도되기도 했다. 우리 단체도 참여하는 제주제2공항강행저지비상도민회의에서 해당 직원을 경찰에 고발도 했는데 고발인 조사도 이뤄지지 않았다. 국토부가 지난 9월 6일 제2공항 관련 고시를 하면서 필지가 공개됐는데, 나온 김에 다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여다보자, 해서 조사를 하게 됐다.” 조사 결과는 예상을 뛰어넘는다. 제2공항 부지는 서귀포시 성산읍 고성리·난산리·수산리·신산리·온평리 일대 2840필지인데, 부지 선정 결과가 발표된 2015년 11월 이전에 토지 거래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예컨대 2010~2014년 5년간 이 일대 땅의 토지 거래 건수는 평균 132.4건이었다. 그런데 2015년에는 439건으로 3배 이상 거래됐다. 특히 부지로 선정된 2015년 11월에는 한 달 동안 2014년 전체의 거래 건수(154건)보다 많은 172건의 거래가 이뤄졌다. 부지 선정 직후 이 일대 땅이 지가 상승을 막기 위한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돼 토지 거래가 제한된 점을 고려하면 부지 발표 직전 비정상적으로 거래가 폭발했다는 얘기가 된다. 개별 필지의 소유권 변동 현황을 보면 2015년 무렵 소수의 부동산개발업체, 농업회사법인들이 여러 필지를 사들여 지번을 쪼갠 후 부지 발표 전 매각한 흔적이 나타난다. 이른바 ‘기획부동산’의 유입이다. 2015년 1월 만들어진 울산의 한 부동산 회사는 그해 3월부터 이 일대 땅 14필지를 사들여 23필지로 쪼갠 후 대부분의 필지를 같은 해 8월 이전에 매각했다. 이 일대 땅 91필지를 거래한 A개발업체는 2015년 11월까지 필지를 모두 매각하고는 그해 12월 법인을 해산했다. 부지 발표 전 매입과 필지 분할, 매각을 통해 이익을 극대화하고, 부지 발표 직후 해산하는 기획부동산의 전형이다. 땅을 사들인 건 외지인들이었다. 이 일대 토지 소유자 2108명 중 60.2%(1270명)는 제주도 밖에 주소지를 두고 있었고, 제주도 거주자는 39.8%(838명)에 그쳤다. 한때 A업체에서 부회장을 지낸 것으로 알려진 인물은 주간경향에 “이런 업체들은 순간에 했다가 없어지는 거다. 그렇다고 무슨 책임이 있는 건 아니지 않느냐”고 했다. 투기와 투자는 법적으로 뚜렷이 구분되지 않는다. 부지 정보가 사전 유출된 정황이 없는 한 그렇다. -부지 정보가 사전 유출됐다고 보나. 홍 대표 “부지 선정 전 매매 건수가 늘어난 걸 보면 다른 해석이 불가능하다. 제주 부동산에 2013년부터 중국 자본이 들어오기 시작해서 2015년까지 제주 전역에서 부동산 거래가 늘고 부동산 가격이 오른 건 사실이다. 그러나 이 지역은 2013년부터 거래량이 쭉 올라가는 흐름을 보이지 않다가 2015년, 특히 그해 11월에 갑자기 늘었다. 이 지역은 애초에 중국 자본이 들어올 만한 곳이 아니었다. 해안지역이 아닌 중산간 지역 농지였고, 소규모 필지가 많아 대규모로 개발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정보를 가지고 거래가 이뤄진 것이 아니라면 다른 이유를 찾기 힘들다.” 사전 유출 의혹은 진즉 제기됐다. 제주 지역방송 JIBS가 2021년 보도한 내용을 보면 국토부 직원은 친인척에게 ‘막내야, ○○리 공항 신도시 자리야. 혼자만 조용히 투자하길 바란다. 이거 들키면 오빠 잘린다’고 했다. 그러나 이후 이렇다 할 후속조치는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조사에서도 사전 유출을 의심할 만한 정황이 더러 발견됐다. 국토부 산하 한국공항공사의 전 직원 B씨는 2015년 3월 제2공항 부지로 편입되는 땅 2필지를 경매로 매입했다. 해당 필지는 길이 연결되지 않은 맹지였다. B씨는 “농사를 지으려고 샀다. 맹지지만 차가 들어갈 수 있게끔 돼 있다. 공사 직원들과 친하게 지내지 않았고, 들은 이야기도 없고 현재도 연락 안 한다”고 했다. 국토부는 2021년 사전 유출 의혹이 제기되자 “제2공항 관련 입지 정보 사전 유출은 없었다”고 했다. -2015년 11월 원희룡 당시 제주지사가 “(부지 일대의) 토지 보유 동기를 정확히 따지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후속 대책은 없었나. 홍 대표 “그 이후 대책들이 나오긴 했는데, 시늉만 했다고 본다. 일례로 2016년 2월에 부동산 투기 방지를 위한 토지 분할 업무처리 지침이 나왔는데, 이전에 분할된 땅은 예외로 규정했다. 제2공항 부지는 분할이 다 끝났는데 건드리지 않고 넘어갔다.” 투기 흔적 모르쇠, 사업 강행 -왜 바로잡지 않을까. 홍 대표 “국책사업에서 투기는 불공정일 뿐 아니라 국가나 국민을 가장 힘들게 하는 문제다. 투기가 있는지 확인해서 투기가 발견되면 사업 자체가 오염됐으니 중단하고 재검토해야 한다. 그런데 사업 자체에 영향을 줄 정도가 되면 권력을 쥔 사람들이 막아버린다. 정치인들은 대규모 사업이 업적이 된다. 행정은 거래가 늘고 땅값이 오르면 양도세·취득세 등 세수가 는다.” -외지인들에게 팔린 땅들은 현재 어떻게 관리되고 있나. 홍 대표 “한 번 돌아봤다. 전혀 관리되지 않고 있다. 어떤 데는 감귤나무 죽은 것을 심어놨다. 나무를 심어서 보상을 극대화하려는 거다. 또 다른 특징은 밭 면적을 늘리는 것이다. 튜물러스라고 해서 용암이 쌓인 돌무더기 지형이 있는데, 이걸 긁어냈다. 긁어내 봐야 아래도 돌이라서 식물을 재배할 수가 없는데 경작 면적을 늘리려는 것이다.” -투기 단절을 위해 사업 자체를 재검토할 가능성은 있다고 보나. 홍 대표 “쉽지 않아 보인다. 오영훈 제주지사도 후보 시절에는 갈등이 큰 제2공항 사업을 주민이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현재는 차라리 주민투표를 하자는 도민들 요구에도 불구하고 국토부 장관에게 주민투표를 요구하지 않고 있다.” 서로 신공항을 유치하려는 다른 지역들과 달리, 제주도는 주민들의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다. 제주도와 제주도의회의 합의로 2021년 2월 진행된 두 차례의 공론형 여론조사는 두 건 모두 반대 의견이 높게 나타났다. 단 공항이 들어서는 성산읍에서는 찬성 의견이 높게 나타났고, 이를 근거로 원희룡 당시 지사는 사업을 계속 추진했다. 문재인 정부 때는 2021년 7월 환경부가 제2공항 전략환경영향평가를 반려하면서 사실상 사업에 제동이 걸렸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 제2공항을 다시 공약하고 원희룡 지사가 국토부 장관이 되면서 사업은 부활했다. 절차상 국토부 고시 이후에는 사업을 재검토할 기회 자체가 많지 않다. 오영훈 지사는 앞으로 진행될 환경영향평가의 심의 권한이 제주도에 있다는 점에서 “제주도의 시간이 될 것”이라고 강조해 왔지만, 제주도는 지난 9월 24일 국토교통부에 제2공항 건설사업에 제주지역 업체를 참여하게 해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이미 제2공항 건설을 기정사실로 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다른 지역과 달리 제2공항에 대한 반대 여론이 적잖게 나타난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홍 대표 “처음에 부지 발표가 됐을 때만 해도 여론조사에서 찬성한다는 응답이 70%까지 나왔다. 그런데 2016년부터 제주도의 하수처리장 대부분이 포화상태에 이르렀다는 사실이 알려진다. 제주도는 지하수 의존도가 몹시 높은데 2017년부터는 지하수 고갈 신호가 나타났다. 그 무렵에 전 세계적으로도 오버투어리즘 문제가 대두됐다. 이런 걸 고려한 계획이어야 한다는데 공감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또 초기 예측과 달리 현재는 2055년 제주도의 공항 이용객 수요가 연간 3970만명으로 줄었다. 현재 제주공항이 연간 3300만명을 감당할 수 있다. 연간 600만명의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제주공항보다 1.5배나 큰 공항을 하나 더 지을 필요가 있느냐.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번 조사 결과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박유라 사무국장 “땅은 지문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개발이나 이권의 흐름을 보여준다. 이번 보고서로 누가 이득을 보고 누가 손해를 봤는지가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홍 대표 “땅은 주권과 같다. 하와이 원주민들이 좋아서 원주민이 된 게 아니듯이, 땅 뺏기고 나면 주인이 아니라 거기 얹혀 사는 존재가 된다. 제주참여환경연대는 1991년 제주도개발특별법저지를 위해 결성된 범도민회(제주도개발특별법반대를위한 범도민회)의 후신이다. 범도민회는 특별법 통과 이후에 급속히 외지인들이 제주땅을 사들이고 있음을 1993년 제주지역 전수 조사를 통해 보여줬다. 그때 땅을 잃어버렸다면, 지금 제주도민들은 제주도의 미래라든지, 삶의 터전에 대한 결정력을 잃어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 특집
- [이기환의 Hi-story](29)“꺾이면 안 돼” 초대 주미 외교관들의 분투기(2022. 04. 08 14:53)
- 2022. 04. 08 14:53 문화/과학
- 얼마 전 독립운동가 월남 이상재 선생(1850~1927)의 서거 95주기(3월 29일)를 맞아 색다른 자료가 공개됐습니다. 선생이 한성감옥에 투옥(1902)된 뒤 감옥 도서실의 대출내역을 정리한 장부(‘한성감옥 도서대출대장’)입니다. 선생의 가문이 올 초 독립기념관에 기증한 자료인데요. 대출대장에는 선생뿐 아니라 훗날 독립운동가로 활약할 이승만(1875~1965), 정순만(1873~1911), 박용만(1881~1928), 이준(1859~1907), 이종일(1858~1925), 이동녕(1869~1940) 선생 등의 이름도 보인답니다. 1883년 9월 18일 미국 워싱턴을 방문한 보빙사가 체스터 아서 미국 대통령(재임 1881~1885)에게 큰절을 올리고 있는 모습(왼쪽). 1888년 1월 17일 워싱턴 상주를 위해 스티븐 그로버 클리블랜드 대통령(재임 1885~1889, 1893~1897)에게 신임장을 제출하려고 백악관을 찾은 초대 주미공사 일행의 모습(오른쪽).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저 여인들은 기생들이냐” 이상재 선생 자료를 보면서 문득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선생은 초대 주미공사 박정양(1841~1905)을 모시고 워싱턴 외교무대를 개척한 분입니다. 조선의 초창기 대미외교를 상징하는 몇가지 에피소드가 있죠. 첫 번째는 1883년 조미 수교 1주년을 맞아 미국을 방문한 민영익(1860~1914) 등 보빙사(조선 사절단)가 당시 체스터 아서 미국 대통령(재임 1881~1885)에게 큰절을 올리는 장면이고요. 두 번째부터 이상재 선생과 관련이 있는 에피소드죠. 바로 서구열강 중 처음 개설된 주미공사관원들의 워싱턴 데뷔기(1888년 1월)입니다. 초대 공사는 박정양이고요. 이상재 선생(서기관)은 참찬관 이완용(1858~1926), 서기관 이하영(1858 ~1919), 번역관 이채연(1861~1900), 미국인 의사 출신인 참찬관 호러스 앨런(1858~1932) 등과 함께 파견됐습니다. 1888년 1월 17일 박정양 공사 일행이 미국의 스티븐 그로버 클리블랜드 대통령(재임 1885~1889, 1893~1897)에게 신임장을 제정(提呈·파견국의 국가 원수가 대사에게 수여한 신임장을 주재국 국가 원수에게 전달)하는데요. 이때 해프닝이 일어납니다. 일행은 관복인 흑단령을 입고 백악관 접견길에서 대통령을 기다립니다. 잠시 후 클리블랜드 대통령이 집무실을 나와 신임장을 받으려고 접견실 중앙에 섰는데요. 공사 일행은 멀뚱멀뚱 서 있었습니다. 그럴 만도 했습니다. 일행은 조선 국왕의 곤룡포 같은 특별한 관복을 입은 대통령을 기다린 거죠. 대통령이 다른 관리들처럼 양복을 입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한 겁니다. 양복을 입은 이가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린 일행이 황급히 큰절을 올리려 했습니다. 그러자 미국 측에서 “그럴 필요 없다”고 정중히 만류합니다. 5년 전 보빙사의 해프닝을 미국 측에서 기억하고 있었던 겁니다. 우여곡절 끝에 업무를 시작한 초대 공사 일행은 워싱턴 정가를 발칵 뒤집어 놓았답니다. 걸을 때마다 사각사각 소리가 나는 풍성한 도포 자락과 말총으로 만든 모자(갓)를 쓴 조선외교관들의 모습(‘하퍼스 위클리’ 1888년 1월 28일자)이 화제를 뿌렸습니다. 워싱턴 사교계 데뷔기도 흥밋거리입니다. 박정양 공사가 파티에 모인 여인들을 보고 “저 여인들은 기생들이냐”고 물었답니다. 수행한 앨런이 큰일 날 소리라는 듯 “저 여인들은 미국에서 가장 저명한 부인들이자 딸들”이라고 손사래를 쳤다는군요. 그런 낯선 환경 속에서도 공사 일행은 우아하고 평온한 미소와 함께 사뿐사뿐 걸었답니다.(‘하퍼스 위클리’) 그러나 박정양 공사는 1888년 2월 7일 열린 미국 법무부 장관의 연회를 두고 ‘아찔한 경험이었다’고 회고했습니다. “술과 안주가 낭자하고…. 남녀가 서로 껴안고 춤추고 심지어 저고리를 벗어 맨살을 드러내고… 속적삼을 뚫고 머리를 산발하고 가발을 뒤로 늘어뜨리고…. 어지럽고 아찔하다.”(<미행일기>) 청나라 허락하에 미 대통령 만나야 했지만 그러나 이런 애로는 양념에 불과했습니다. 이상재 선생 가문이 2019년 국립고궁박물관에 기증한 자료를 볼까요. 선생이 10개월 동안(1888년 1~11월) 주미공사관 서기관의 임무를 수행하면서 작성한 업무편람(<미국공사왕복수록(隨錄)>)과 선생이 주고받은 편지모음집(<미국서간>) 등입니다. 초대 주미조선공사관은 1888년 1월 18일 워싱턴 시내의 일명 ‘피셔옥’을 임대했다. 그날부터 업무에 들어간 공관원들은 공사관 건물에 태극기를 꽂았다. 공관은 워싱턴 북서쪽 로건 서클 15번지 건물을 임대했고, 2년 뒤인 1891년 고종의 내탕금 2만5000달러를 들여 구입했다. 이 문건 등을 보면 초대 주미공사관의 첫 번째 임무는 바로 ‘영약삼단’(?約三端)’을 거스르는 것이었습니다. ‘영약삼단’은 ‘별도의 약속’을 뜻하는 ‘영약(?約)’과 ‘세가지 조건(三端)’을 합한 말입니다. 그 세가지 조건을 볼까요. “첫째, 조선 사절이 주재국에 도착하면 먼저 중국공사관으로 가서 보고한다. 둘째, 모든 행사에는 늘 중국 사신의 뒤를 따른다. 셋째, 중요 교섭 내용은 먼저 은밀하게 중국 공관의 지침을 받는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입니까. 해외 주재 조선 외교관이 청국공사의 허락을 받아야 외교활동을 벌일 수 있다는 얘기가 아닙니까. 주권국의 외교관에게 어떻게 이런 말도 안 되는 조건이 붙었다는 말입니까. 기막힌 히스토리가 있습니다. 당시만 해도 조선은 서구열강 가운데 가장 먼저 외교관계를 맺은 미국을 ‘대인배의 나라’로 여겼답니다. 1882년 체결한 조·미 통상조약의 제1조를 볼까요. “제3국이 한쪽 정부에게 부당하게, 또는 억압적으로 행동할 때는 다른 한쪽 정부가 원만한 타결을 위해 주선한다.” ‘거중조정’ 조항이라 하는데요. 고종은 그런 미국의 중재자 역할에 큰 기대를 걸고 워싱턴에 해외상주공사관을 두겠다고 한 겁니다(1887). 그러나 곧 난관에 봉착합니다. 청나라 북양대신 이홍장(1823~1901)이 위안스카이(袁世凱·1859~1916)를 통해 반대 입장을 전했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조선은 ‘청나라의 속국’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청나라는 “청국의 속방인 조선이 각국에 사절을 파견하려면 먼저 (종주국인) 중국의 인준을 받아야 한다”고 고집했습니다. 그러나 미국이 그런 조건을 받아들였겠습니까. 공관 설립 자체를 반대할 수는 없었죠. 초대 주미공사관원 일행. 앞줄 왼쪽부터 이상재, 이완용, 박정양, 이하영, 이채연. 뒷줄 왼쪽부터 김노미, 이헌용, 강진희, 이종하, 허용업 등 수행원과 하인들도 함께 찍었다. / 한국이민사박물관 소장 그때 청나라가 마지못해 내건 허락의 조건이 바로 ‘영약삼단’이었던 겁니다. 하지만 1888년 1월 워싱턴에 도착한 박정양·이상재 등 초대 주미공사 일행은 처음부터 이 영약삼단을 지키지 않습니다. 이상재 선생의 문건 중에 ‘송미국외부조회(送美國外部照會)’(1888년 1월 10일)가 눈길을 끕니다. 즉 초대 주미공사관이 ‘영약삼단’을 무시하고 청국공사 장음환(張蔭桓·1837 ~1900)을 찾아보지 않은 채 “토마스 베이야드(1828~1898) 미국 국무장관을 방문하겠다”고 국무부에 보낸 문서입니다. 이때 실무교섭을 담당한 앨런은 미국 측과 이 문제를 논의한 결과 “외교관례에 어긋나는 얼토당토않은 행위”라는 결론에 도달했다는군요. ‘주권국의 자존심을 지키다’ 박정양 공사 일행은 마침내 ‘청나라의 간섭을 받지 않고’ 대통령 면담일정을 조율한 뒤 클리블랜드 대통령을 접견하고 신임장을 제출(17일)한 겁니다. 박정양 공사는 고종에게 전보를 보내 “불가피하게 영약삼단을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을 보고했습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아차린 청국공사 장음환은 “영약삼단을 왜 지키지 않았느냐”고 앙앙불락합니다. 이때 박정양 공사는 “급히 출발하느라 청나라가 보낸 전보를 전달받지 못했다”면서 “우리 정부의 정식공문을 받지 못했는데 어찌하느냐”고 둘러댔습니다. 정식공문을 받지 못했다는데 어쩌겠습니까. 청나라 측은 일단 후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미공사 일행은 워싱턴의 일명 피셔옥(皮瑞屋·Fisher House)을 임대해 공사관으로 썼습니다. 이상재 선생은 “공관 건물 맨 꼭대기 층의 전면에 깃대를 세우고 태극기를 높이 게양했다”(<별건곤> 1926)고 회고했습니다. 워싱턴에 태극기를 꽂은 첫 번째 기록입니다. 그러나 조선 외교관들의 행보는 처음부터 가시밭길이었습니다. 청나라가 끈질기게 ‘영약삼단’ 문제를 거론하면서 주미공사관은 물론 본국 정부까지 괴롭혔습니다. 이상재 선생이 주고받은 편지(38통)에 조선 외교관들의 분투가 녹아 있습니다. “중국 공사가 예절(영약삼단) 문제로 매번 트집을 잡아 정말 소위 진퇴유곡의 처지다.”(1888년 2월 12일) “중국 공사가 양보하지 않고 고집부리는(相持) 것이 가장 참기 어렵다. 그러나 서로 부딪치면 우리나라가 중국으로부터 곤란을 당할까 두렵다. 그렇다고 명령을 들으면 외양의 기품을 면하기 어렵다. 중도를 취하기 어렵다.”(1888년 3월 2일) “중국 공사는 매번 우리나라 공사의 위에 서고자 하고, 우리 공사 역시 그 밑에 있지 않으려고 한다. …이 나라에 주재하는 각국 공사(30여개국)는 모두 부강한 나라이고, 오직 우리나라만 빈약하다. 그러나 각국 공사와 서로 맞서 지지 않으려고 한다. 만약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꺾이면 국가의 수치이고 사명을 욕보이는 것이다.”(1888년 5월 23일) 초대 주미조선공사 서기관이었던 이상재 선생의 편지(1888년 5월 23일) / 국립고궁박물관 소장·한철호 동국대 교수 번역 ‘구악 청나라와 신악 미국’ 낯선 환경과 부족한 예산도 걸림돌이었습니다. “우리 돈 10이 100금인즉 연봉 1000원으로는 역부족인데 어떻게 지내야 할지 모르겠다”(1888년 1월 20일)고 했고, “아침·저녁을 쌀과 고기를 사서 관내에서 밥을 지어 먹는데 물가가 너무 높다”(1888년 2월 12일)고 하소연했습니다. 그런 와중에서도 외교관들은 조선을 위해 열과 성을 다했습니다. 이상재 선생의 소장 문건 중에 1888년 11월 13일 미국인 ‘딸능돈(달링턴 혹은 탈링턴)’ 등이 설립한 회사가 ‘철도(경인선) 설치’를 제안한 문건과 계약서 초안이 수록돼 있는데요. “경성~제물포 노선 철도’를 건설하는 계약기간은 15년이며, 15년 후 재약정 여부를 가린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 철도부설권을 미국에 준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호러스 앨런은 “이 규약의 초안은 매우 좋다. 정부는 돈 한푼 내지 않지만 이 약정에 따라 시행하면 경성이 번화스럽기가 세계 각국과 같게 된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는데요. 그러나 박정양 공사는 “철도부설권을 미국에 준다 해서 미국이 조선을 보호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니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고 보고하면서 무산되고 맙니다. 박정양 공사는 청나라의 끈질긴 경질 압력 때문에 부임 10개월 남짓 만에 경질되고 맙니다. “병환 중인 박정양이 귀국하므로 서기관 이하영을 대리공사로 임명한다”고 미국 정부에 통보한 문건(1888년 11월 16일)이 보입니다. 박정양 공사와 이상재 선생 등이 귀국하게 되죠. 그렇지만 어떻습니까. 말도 통하지 않은 외교무대에서 그래도 기죽지 않고 고개를 세우려 했던 조선 외교관의 분투를 엿볼 수 있었죠. ‘영약삼단’이라는 해괴한 조건을 내세워 괴롭힌 청나라의 방해를 뚫고 말입니다. 그렇다고 미국은 문자 그대로 아름다운 ‘미(美)’자 미국이었을까요. 서구열강 중 첫 번째로 국교를 수립했고, 서구열강 중 처음으로 주재공사관을 두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수호조약 제1조의 조항에서 약속했듯이 미국의 거중조정에 큰 기대를 걸었습니다. 이 얼마나 순진한 생각이었는지 훗날 밝혀지죠. 미국은 그저 조선을 문호개방을 통해 이익만 챙겨가면 되는 대상으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막상 수호조약을 맺고 보니 “조선에서 수출 가능한 물품은 소가죽과 쌀, 머리털, 전복껍데기뿐”(루시어스 푸트 초대 주한 미국공사의 보고서)이라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결국 1905년 7월 일본의 조선 지배권과 미국의 필리핀 지배권을 인정해주는 이른바 가쓰라-태프트 조약을 미국-일본 간 맺게 되죠. 미국은 을사늑약 후(1905년 11월 17일) 가장 먼저 주한공사관을 철수한 국가가 됐습니다. 특사 자격으로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밝힌 고종의 친서를 들고 미국을 방문한 호머 헐버트(1863~1949)라는 분 있죠. 그러나 미국 정부로부터 홀대만 받았죠. 헐버트는 “미국은 한국이 어려움에 닥쳤을 때 제일 먼저 한국을 저버렸다. 그것도 가장 모욕적인 방법으로 인사말도 없이…”라고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얼토당토않은 영약삼단의 조건을 내건 청나라나, 을사늑약 후 가장 먼저 배신한 미국이나…. 외교란 자국의 이익만 챙기면 그뿐이었죠. 청나라가 ‘구악’이었다면 미국은 그저 ‘신악’이었을 뿐입니다. 국제정세는 예나 지금이나 냉혹할 뿐이죠. 철도부설권의 양도를 두고 “미국이 조선을 보호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니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던 박정양 공사의 한마디가 떠오르네요. “만약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꺾이면 국가의 수치이고 사명을 욕보이는 것”이라며 파이팅을 외친 이상재 선생의 다짐도 여운을 남깁니다.
- 이기환의 Hi-story
- [렌즈로 본 세상]“청년들은 월세 전전, LH는 투기 전전”(2021. 03. 12 16:11)
- 2021. 03. 12 16:11 사회
- 한국토지주택공사(LH) 전·현 직원들의 땅투기 의혹이 공분을 사고 있습다. 내 집 마련도 요원한 청년들의 절망과 박탈감도 말할 수 없이 커졌습니다. 지난 3월 9일 청년진보당 소속 청년들이 LH 서울지역본부에서 기습시위를 벌였습니다. 청년들은 “땅투기 집단 LH 가족, 차명 모두 처벌하라”, “지금 필요한 건 몰수와 처벌”, “LH 직원, 땅 내놓고 감옥으로” 등의 글이 적힌 손 현수막을 펼쳐 들고 구호를 외치며 건물 출입문으로 들어섰습니다. 본부장과의 항의성 면담을 신청했고, ‘업무 방해’라며 막는 직원들과 잠시 승강이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오영오 본부장이 내려와 출입문 앞에 선 채로 면담이 이뤄졌습니다. 오 본부장은 “최대한 조사가 빨리 이뤄지도록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기습시위는 청년들의 자조와 분노의 한마디가 담긴 스티커를 출입문에 붙이면서 마무리됐습니다. “청년들은 월세 전전, LH는 투기 전전”, “월세 내려고 50만원 벌 때 LH는 묘목 심고 수십억 꿀꺽!”
- 렌즈로 본 세상
- [표지 이야기]주택공급 확대보다 투기수요 차단이 우선(2020. 07. 24 16:03)
- 2020. 07. 24 16:03 경제
- ㆍ그린벨트 해제는 집값 상승만 부추겨… 장기공공임태주택 늘려야 숫자를 세기도 어려울 정도로 부동산 대책을 남발한 정부는 신뢰를 잃었다. 정부 대책을 비웃듯 집값 상승세가 멈추지 않자 대통령까지 나서서 공급 확대를 독려했다. 정부는 수도권 주택공급 확대를 위해 서울 강남권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해제까지 검토했지만 결국 물러섰다. 그린벨트 개발로 집값을 잡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과 해제에 부정적인 여론 때문이었다. 정부는 주택 공급확대 방안의 하나로 태릉골프장과 인접한 육군사관학교 등 군 시설과 잠실 유수지 등 공공 유휴부지를 택지로 개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사진은 서울 노원구 육군사관학교 일대 부지 / 연합뉴스 그린벨트 해제 카드가 사라지면서 태릉골프장 등 군 시설과 잠실 유수지 등 공공 유휴부지를 택지로 개발하는 방안, 용적률 상향과 고밀도 개발이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부동산 업계를 중심으로 이 기회에 재건축·재개발을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하지만 부동산 개발의 공공성을 강조해온 전문가들은 집값 상승만 부추길 수 있는 공급 대책보다 투기수요 차단이 우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투기수요 차단 없으면 ‘밑 빠진 독 물 붓기’ 그린벨트 해제 논란은 손쉽게 부동산 공급을 늘리기 위한 대안이었다. 하지만 지금 부동산 수요는 투기수요가 실수요를 압도하는 형국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리 공급을 해도 수요를 맞추기 어렵다. 전강수 대구가톨릭대 교수는 “공급 대책을 이야기할 때는 실수요를 갖고 따져야 한다”며 “실수요를 파악하려면 우선 투기수요를 잠재우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전 교수는 부동산 가격 상승을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보는 프레임 자체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투기수요를 없애는 정공법으로 부동산 보유세(종합부동산세·재산세)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부동산 보유세 실효세율인 1%까지는 아니라도 현재 0.16% 수준에서 적어도 0.5% 수준으로는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전 교수는 “정부는 지금 핀셋 방식으로 종부세에 미세한 조정만 하고 있다”면서 “조세저항이 심해서 굉장히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그걸 해내지 않으면 변죽만 울리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남기업 토지+자유연구소 소장은 “보유세가 가장 중요한 수단인데 한 번에 높일 수 없기 때문에 장기 로드맵을 내놓고 시장 참여자가 앞으로 수익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상황을 알게 만들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지난 7월 22일 발표한 세법개정안에서 종부세 대상자인 고가 1주택 보유 고령자 세액공제율 및 합산공제율 한도를 각각 10%씩 상향 조정했다. 부동산 가격 상승에 비해 세부담이 적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세부담 자체를 완화하기보다 과세이연제도 등 부동산을 처리하거나 상속·증여할 때 납부하는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주택 공급을 한다면 개발로 더 이상 이득을 누릴 수 없는 방식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간 정부는 ‘교차보조’ 방식을 택해 그린벨트를 수용해 얻은 땅을 민간에 비싸게 팔아 얻은 돈으로 임대주택을 공급했다. 하지만 공사가 적자를 보전하는 방식으로 땅장사를 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민간 건설시장의 가격 상승을 부추긴다는 지적도 있었다. 세종시의 임대료와 집값이 비싼 것도 이런 방식으로 택지개발 과정에서 땅값이 비싸졌기 때문이다. 대안으로 택지개발을 위해 땅을 수용할 경우 이를 다시 민간에 매각하지 않고 건물만 분양하는 방식으로 주택을 공급하는 ‘토지임대부’ 방식이 거론된다. 땅값이 빠지는 만큼 분양가가 낮아진다. 이명박 정부 시절 서울 강남구 세곡동의 보금자리주택 중 일부가 이런 토지임대부 방식으로 공급됐다. 하지만 이런 아파트단지는 매달 부담하는 토지임대료를 감안한 정도만 가격에서 빠질 뿐 시세는 주변 아파트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택지를 개발하면서 얻은 이익이 보금자리주택을 분양받은 소수에게 고스란히 돌아갔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 제도를 재도입한다면 싸게 분양받아 큰 차익을 누리는 ‘로또 아파트’가 나올 수 없도록 매매 시 공공에 환매의무 등 이익을 환수하는 장치를 더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은영 도시연구소 소장은 “토지임대 방식은 환매의무가 없으면 큰 의미가 없다”며 “투기 상황에서는 무엇보다 개발이익을 환수하려는 공공개발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토지임대 방식으로 공급해야 투기수요를 해소하고 공급을 늘리는 대책으로 역세권 등 목 좋은 곳을 공공개발해 분양 주택이 아닌 장기공공임대주택을 지어야 한다는 제안도 있다. 실제 경기주택도시공사는 무주택자 누구나 30년 이상 장기거주가 가능한 ‘기본주택’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토지는 공공이 소유하고 건축물은 비영리법인, 공익법인, 협동조합, 사회적기업, 마을기업 등 사회적경제주체가 소유하는 장기임대주택이다. 소득·자산에 상관없이 살 수 있도록 해 임대주택을 저소득층의 주거지로 보는 ‘낙인효과’를 없앤 것이 특징이다. 공급대책의 하나로 거론되는 재건축·재개발 완화는 투기 수요만 자극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최은영 소장은 “그간의 공급대책에 더해 유휴부지를 활용한 공급 효과와 분양가 상한제, 초과이익환수제와 같은 규제 효과가 점차 나타날 것으로 본다”면서 “재건축·재개발은 초고가 아파트를 만드는 방식이라 주택 가격을 인상하는 요인이 된다는 점에서 규제 완화는 불붙은 시장에 기름을 붓는 실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재개발과 고밀도 개발을 도시 공간의 재구성이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유현준 홍익대 건축도시대학 교수는 “은평뉴타운처럼 골목길을 다 때려부수는 방식으로 짓는 것이 아니라 보존할 곳은 보존하면서 부분적으로 밀도를 높여 상업성을 만들고, 동시에 경의선 숲길처럼 동네를 연결하는 공원을 만들어 걷고 싶은 도시를 만드는 건축적 의미의 재건축·재개발은 시도할 만하다”고 말했다. 여권은 최근 청와대와 국회를 비롯한 공공기관의 세종시 이전을 추진하자고 제안했다. 참여정부의 균형발전 의제를 부동산 안정을 위한 대책의 하나로 꺼낸 모양새다. 하지만 혁신도시 등 그간의 균형발전 정책이 수도권 인구를 분산하는 효과는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유현준 교수는 “KTX 같은 교통이 발달할수록 중력처럼 중심부인 수도권으로 쏠리게 된다”며 “오히려 세종시나 혁신도시가 인접 도시의 인구를 빼와 지방 구도심의 공동화 현상을 낳는 부작용이 크다”고 지적했다.
- 표지 이야기
- [포커스]“문재인 정부 들어 투기 더 심해졌다”(2019. 11. 29 15:32)
- 2019. 11. 29 15:32 경제
- ㆍ김헌동 경실련 부동산건설개혁본부장 울분 토로 김헌동 경실련 부동산건설개혁본부장은 정말로 화가 나 있었다. 답답해했다. 집 없는 서민을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있는 부동산 문제에 대해 누구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대통령은 물론 시민사회·진보언론까지. 지난 11월 28일 그가 몸담고 있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서울 아파트값 변화에 대한 것이다. 경실련 자체조사결과, 25평 아파트를 기준으로 서울은 4억원, 그중 강남은 6억원이 올랐다. 30개월 재임기간 중 상승한 기간은 26개월, 하락은 4개월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1월 19일 ‘국민과의 대화’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대부분의 (집권) 기간 동안 부동산 가격을 잡아왔고, 전국적으로는 부동산 가격은 오히려 하락할 정도로 안정되어 왔다”고 말했다. 이날 열린 기자회견 보도자료의 제목은 ‘누가 대통령과 국민에게 거짓 보고하나?’였다. 김 본부장과 인터뷰는 기자회견 하루 전, 서울 종로구 동숭동 경실련 사무실에서 3시간에 걸쳐 진행했다. -‘국민과의 대화’가 열린 시점이 대통령 선거 후 2년 반, 딱 임기 절반이다. 참여정부 때 임기 중반 시점에 정부가 8·31 부동산대책을 발표했다. 그만큼 집값을 잡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는데, 문재인 정부 인식은 “이미 부동산은 잡혔다”는 생각인 것 같다.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리는 세력이 있다. 언론에는 자고 나면 1억원씩 집값이 오른다는 기사는 있는데 어디에서 얼마나 올랐는지 정확한 실태를 제공하지 않는다. 방송도 그렇고 신문도 그렇다. 문재인 정부 들어 집값이 많이 오른 것은 맞는데 얼마나 올랐고 왜, 그리고 얼마나 심각한지 알려주는 데는 없다. 국민의 소득이 늘어나서 오른 걸까. 그건 아니다. 집값만 오르는 것이다. 이런 것에 대해 대통령은 모르고 있다. 누가 와서 제대로 보고하지 않으니까.” -대통령의 부동산 문제 인식에 실망한 것 같다. “물론 더 시급한 다른 현안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일반 시민, 대한민국 보통 서민에게 집은 인생이고 모든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내 방 갖기를 꿈꾸고 안정된 곳에서 살기를 바란다. 성인이 되면 내 집 한 채를 갖기 위해서 일하고 좋은 집을 갖기 위해 노력한다. 노인이 돼서는 그게 노후대책이다. 그러니까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집이 모든 것’인데, 그런 자기 인생의 꿈과 희망이 불안해지고 실현 불가능하거나 사라지는 중이다. 대통령은 이미 집도 있고, 자식들 집 걱정도 없을 정도로 이뤄놨으니 관심사가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대한민국을 구성하고 있는 국민의 꿈과 희망인데, 그걸 멀어지게 만든 대통령이 그런 발언을 하는 것에 정말 화가 치밀어오른다.” -집값 상승에 대통령 책임이 크다는 말인가. “문재인 정부 들어 부동산 투기가 더 심해졌다. 우리나라는 30명이 1만1000채의 집을 갖고 있다. 나눠보면 한 사람이 367채꼴로 갖고 있는 것이다. 자산기준으로 상위 1%, 12만여 명이 92만여 채를 갖고 있다. 10여 년 전인 2008년에는 11만 명이 37만 채를 갖고 있었다. 지금 상위 1%가 92만 채이니 지난 10년 동안 약 54만 채를 새로 사들인 것이다. 그다음으로, 상위 10%가 450만 채를 가지고 있는데, 지난 10년 동안 그 사람들은 200여만 채를 샀다. 지난 10년 동안 공급된 주택이 500만 채다. 그중 250만 채를 기존에 집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산 것이다. 집을 아무리 더 짓고 만들어봐야, 집을 가진 사람들, 투기꾼만 배 불린 것이다. 정부는 집값 잡는다고 수도권에 신도시를 짓는다든가, 오래된 집을 재개발·재건축해 신규개발한다는 것인데, 투기꾼들의 먹잇감이 됐을 뿐이다.” -지난해 여름 무렵 집값이 들썩일 때 ‘마·용·성(마포·용산·성동)’, ‘노·도·강(노원·도봉·강북)’이라는 신조어가 나왔다. 강남을 넘어 서울 전역의 집값이 흔들렸다. 지금은 어떤가. “우리 조사로는 올해 7월부터 집값이 올랐다. 강남구 삼성역 주변부터 폭등이 시작됐다. 삼성역 역세권에 박원순 서울시장은 영동대로 지하도시를 만들고, 잠실운동장에 대형 컨벤션센터, 제2코엑스를 만든다고 했다. 또 동서남북광역철도망을 삼성역에 연결하고, 여기에 현대차 신사옥 부지를 3종 주거지 용도에서 상업용도로 바꿔 원래 30층을 지을 수 있는 땅에 105층을 허락해주겠다고 했다. 삼성역 주변에만 50조원 이상 투자로 토건사업을 벌이겠다고 했다. 올해 초에는 생활형 사회간접자본(SOC) 지자체 예산 58조원을 잡아줬다. 예타(예비타당성조사)는 면제시켜주면서…. 전부 다 합쳐 150조원 이상의 토건산업을 벌이는데, 대통령은 ‘자기 임기 중에는 인위적인 건설경기 부양은 안 한다’고 말한다. 그게 인위적인 건설경기 부양이 아니면 도대체 뭔가. 그럼에도 ‘부동산값은 안정되어 있다’고 말하는 걸 보면 대통령이 무능하거나 참모가 거짓보고를 하거나 둘 중의 하나라고 본다.” -부동산 관련 시민단체들은 김수현 전 정책실장을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린 ‘원흉’쯤으로 지목하고 있다. 그런데 그가 퇴임한 지 벌써 4개월이 지났는데, 지금은 누가 부동산정책을 총괄한다고 생각하는가. “나도 정확히 모르겠다. 김수현이 독점하다가 김수현의 말을 잘 듣는 관료 출신을 앉혀놨을 것이다. 나는 김수현을 노무현 정부 출범 직후인 2003년 3월 처음 만났다. 이정우 당시 정책실장을 만나러 가면 비서관으로 배석하고 있었다. 직책은 정책실 쪽은 아니고 빈부격차 차별시정위원회 위원장을 이정우 실장이 겸직하고 있었는데, 그쪽 비서관으로 근무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본인이 빈민운동, 임대주택운동을 했다고 하지만 부동산정책은 잘 모르는 친구였다. 그런 사람에게 부동산정책을 맡긴 것이다. 경실련에서는 다음 주 ‘대한민국 땅값이 문재인 정부에서는 얼마나 올랐나’를 추계 발표할 예정이다. 잠정적인 계산으로는 2000조원이 올랐고, 그중 서울에서만 1000조원이 올랐다.” -왜 진보정부 시기에 유독 집값이 폭등하는 현상이 나타난다고 보는가. “진보정부가 못 한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관료가 정책을 좌지우지한다. 사실상 과장이나 국·실장이 정책이나 법안을 좌지우지한다. 그 사람들이 반대하면 법안소위도 통과하지 못한다. 그 사람들은 대통령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이 아니다. 재벌총수, 그리고 그 밑에 있는 자기 동창들을 따른다. 자기들이 감옥에 가도 끝까지 책임져줄 수 있는 사람을 위해 정책을 쓰는 것이다. 재벌은 무제한의 편의와 노후를 보장할 수 있는 노하우를 제공하고 선배들이 그런 것을 누리고 있는 걸 보고 배우는 것이다. 대통령은 임기가 5년이지만 재벌총수 권력은 영원하다. 진보든 보수든 소위 일류대 나온 사람들은 결혼식장이나 상가(喪家), 동창회, 골프장에서 거의 매일 만난다. 이념과 상관없이 한 덩어리로 움직이는 기득권이다. ‘강남좌파’란 말이 있다. 강남에 아파트 한 채 가지고 있었더니 노무현 정부 때 10억원, 문재인 정부 2년간 5억원이 올라 불로소득을 15억원 챙긴 사람이 바로 강남좌파다. 자기가 아무런 노력을 안 했는데 ‘공돈’ 15억원을 만들어준 것이다. ‘불로소득이니 이건 안 돼’라고 말하는 사람 한 명도 못 봤다. 그게 무슨 진보냐.”
- 특집
- 카슈미르 난민의 한국 분투기(2019. 02. 18 15:33)
- 2019. 02. 18 15:33 사회
- ㆍ뉴질랜드로 가기 위해 한국 경유하다 발 묶여 부당한 대우에 항의 단식까지 카슈미르 출신의 난민 사다르 리즈완(36)은 ‘싸우는 사람’이다. 고향 카슈미르에서는 독립을 위해 싸웠고, 한국에서는 난민 신청자에 대한 부당한 대우에 항의하며 단식까지 했다. 난민 지위를 획득한 지금은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며 다른 난민 신청자와 외국인들을 위해 목소리를 낸다. 카슈미르 출신의 난민 사다르 리즈완(36)이 자신이 난민임을 증명하기 위해 법무부에 제출한 서류를 들어 보이고 있다. / 리즈완 제공 2월 13일 리즈완이 일하는 서울 서초구 변호사 사무실 인근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그의 명함에는 ‘사무원’이라는 직함과 영어, 힌디어(인도), 우르두어(파키스탄)가 가능하다는 설명이 적혀 있었다. 리즈완은 그 외에도 벵골어(방글라데시), 타밀어(스리랑카)도 구사한다. 그의 뛰어난 언어능력은 사실 카슈미르의 슬픈 역사와 맞닿아 있다. 한국에 남아 다른 난민 신청자들 도와 카슈미르는 인도 서북부에 자리잡고 있다. 고급의류 소재로 쓰이는 캐시미어가 바로 주요 생산지인 카슈미르에서 유래했다. 1947년 영국이 인도에서 철수하면서 인도 반도는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분리됐는데 카슈미르 역시 인도와 파키스탄 두 나라로 나뉘어 편입됐다. 히말라야 산맥 끝자락에 위치해 만년설을 볼 수 있지만 분쟁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옥’으로 불리기도 한다. 리즈완은 게릴라전을 벌이는 무장세력으로 알려진 카슈미르해방전선(JKLF) 당원이다. 이들은 인도나 파키스탄이 아닌 카슈미르의 독립을 요구한다. 두 나라 정부가 독립운동을 탄압하는 과정에서 주민 7만여명이 사망했고 20만명 이상의 난민이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12월에도 인도 정부가 시위대에 총을 쏴 시위대 5명과 민간인 7명이 숨졌다. 리즈완은 해방전선 지역당 대표였다. 2009년 6월 그는 갑자기 차에 태워져 어디론가 끌려갔다. 파키스탄 정보국 ISI였다. 그는 사흘 동안 고문실에서 다른 동료가 고문받는 장면을 보며 협박을 받았다. “계속 활동하면 너도 저렇게 될 수 있다.” 하지만 리즈완은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이후 두 차례 더 연행됐고 급기야 2013년 6월에는 그에게 체포영장이 떨어졌다. 그는 체포영장을 발부받은 뒤 주검으로 돌아온 동료 2명을 기억했다. 서둘러 짐을 싸 카슈미르를 떠났다. 당초 리즈완의 목적지는 한국이 아니었다. 다른 동료가 이미 난민 인정을 받은 뉴질랜드였다. 한국은 경유지일 뿐이었다. 하지만 경유하는 과정에서 위조한 여권이 들켰다. 리즈완은 그렇다면 뉴질랜드로 보내달라고 요구했으나 한국 정부는 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그는 카슈미르로 돌아갈 수 없었다. 체포영장이 발부된 이후 가짜여권으로 해외도피까지 한 상황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한국에서 난민지위를 받아야 했다. 동료들이 이미 유럽과 뉴질랜드 등에서 난민 인정을 받고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이어가고 있었다. 자신의 활동이력과 체포영장 등을 근거로 제시하면 난민 인정이 크게 어렵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 그가 출입국사무소와 법무부에 제출한 서류는 분량만 1400쪽이 넘는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리즈완이 ▲사흘 만에 풀려났으며 심한 폭행이나 고문을 당하지 않았고 ▲‘납치’ 이후 5년이 지나 이로 인한 박해의 공포가 충분하지 않으며 ▲체포영장 발부는 합법적 절차로 보이고 ▲당사자는 재판을 통해 입장을 밝힐 기회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는 등의 이유로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얼마나 심한 폭행을 당해야 난민으로 인정받을 수 있나”라고 그가 되물었다.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한 리즈완이 갈 곳은 외국인보호소뿐이었다. 그는 화성 외국인보호소로 보내졌다. 한두 달이면 될 것 같았던 보호소 생활은 1년 6개월이나 지속됐다. 그마저도 리즈완이 ‘장기체류’에 항의하며 2015년 4월 14일부터 6월 10일까지 단식투쟁을 했기 때문에 1년 6개월에서 멈춘 것이었다. 단식 이후 보호소는 건강상의 이유로 그를 ‘석방’했다. 재신청 통해 3년 만에 난민지위 받아 실제 난민 신청자를 한국처럼 오래 가둬두는 나라도 없다. 대한변호사협회 보고서에 따르면 뉴질랜드는 6개월이 넘는 구금에 대해서는 특별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독일은 최장 보안구금의 기한을 12개월로 정해두고 있다. 12개월이 되면 예외를 두지 않고 석방하는 것이다. 리즈완은 “화성 외국인보호소에는 2년 넘게 구금돼 있는 사람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보호소에서 ‘인간 이하’의 생활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보호소에서 깨끗한 음식과 영어신문 제공, 하루 1시간 운동시간 보장 등을 요구하다 독방에 갇혔다. 그는 “문서에는 ‘보호소’라고 되어 있지만 현실은 달랐다. 그곳은 지옥이었다”며 “감옥은 깨끗한 음식이 나오고 매일 운동을 할 수 있다고 들었다. 그리고 수감기간도 알 수 있다. 차라리 감옥이 낫다”고 말했다. 리즈완은 보호소에서 나온 뒤 다시 난민 신청을 했고, 법무부 ‘이의신청’을 통해 난민지위를 획득할 수 있었다. 한국에 온 지 근 3년 만이었다. 그는 “난민지위를 인정받는 순간 그동안 힘들었던 기억이 떠오르면서 다른 난민 신청자들이 나와 같은 일을 겪게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가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며 다른 외국인들을 돕는 이유다. 힘든 일을 겪으면서도 한국을 떠날 생각은 하지 않았다. 싸워서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모든 사람이 쉬운 길로 간다면 누가 목소리를 내서 싸우고 변화를 이끌 수 있겠나”라며 “싸워서 권리를 쟁취하는 것이 나를 나로 만든다. 사람의 삶은 동물과는 달라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로 리즈완이 한국에 온 지 5년째다. 5년 전만 해도 난민은 한국에서 크게 주목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예멘인들이 집단으로 제주도로 들어온 이후, 난민은 주요 이슈가 됐다. 리즈완도 난민에 대한 한국 사회의 부정적인 시선에 대해 알고 있다. 하지만 그는 이에 대해 “이런 현상은 어느 나라에서나 있는 일이다. 부산 사람들이 한꺼번에 서울로 온다고 가정해보자. 지역갈등이 생길 것이다. 어차피 다문화 사회로 나아가는 과정일 뿐”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난민 신청자들이 돈을 벌기 위해 한국으로 왔다는 의심의 눈초리는 거둬달라고 당부했다. 한국에서 난민으로 인정받기란 세계 평균 난민 인정률(38%)에 크게 못미친다. 불과 3.9%밖에 되지 않을 만큼 까다로울뿐더러, 그 전까지는 보호소에 ‘수감’되어 있어야 하는데 오직 돈을 목적으로 그 과정을 겪고 견딜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그는 “그럼에도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은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는 걸 알아달라”고 말했다.
- [취재 후]“투기가 아니라는 데 내 인생과 재산을 걸겠다.”(2019. 01. 21 14:53)
- 2019. 01. 21 14:53 정치
- 전남 목포시 문화재거리에 있는 적산가옥 등에 부동산 투기를 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적극적으로 반격에 나섰다. 특히 자신을 향한 비판에 집중하고 있는 자유한국당과 나경원 원내대표를 향해서는 “함께 의원직을 거실 것인가, 전재산을 거실 것인가”라는 비판글을 올리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손 의원은 자신의 조카 등 친척과 지인 등의 명의로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에 있는 건물 9채를 집중 매입해 부동산 투기를 통한 이익을 노렸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근대 건축물이 등록문화재가 될 경우 국비나 지방비로 수리·보수작업 비용을 지원받으므로 부동산 가격이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 연합뉴스 손 의원을 향한 야당의 비판은 청와대로까지 번졌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가 “손 의원은 김정숙 여사와 절친”이라며 “그냥 권력형 비리가 아니라 초권력형 비리”라는 자극적인 표현까지 동원했다. 김병준 한국당 비대위원장도 손 의원을 향해 “친문의 상징”이라며 “영부인 친구라는 위세를 업고 사익을 추구했다는 의혹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라고 거들었다. 논란이 확산되는 상황에 대해 청와대는 경고성 메시지를 전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정치판이 아무리 혼탁하다 해도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의와 선이 있다. 그 선을 지켜 달라”고 말했다.
- 취재 후
- [특집]‘투기의 유혹’ 부동산 광풍 현장(2018. 09. 10 15:24)
- 2018. 09. 10 15:24 경제
- ㆍ규제 의지를 뛰어넘는 구매 열기… 불패 신화 부추기는 강연회 성황 지난 1년간 서울의 집값이 5.26%가량 올랐다. 부동산 공급물량이 적어져서 가격이 오른다고 분석하는 이도 있고, 과도한 투기 열기로 수요가 많아져서 부동산 가격이 오른다는 이도 있다. 확실한 것은 부동산을 사겠다는 의지가 정부의 규제 의지를 넘어섰다는 것이다. 서울 용산구의 한 사무실에서 부동산 강연회가 진행되고 있다. 9월 5일 서울 용산구의 한 오피스텔 건물 사무실을 찾았다. 여기서 ㅍ부동산업체 대표 ㄱ씨가 진행하는 부동산 강연회가 열렸다. 책상 20개에 40명이 앉아 ㄱ씨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50∼60대 여성들이 많았다. 캐주얼한 복장의 남성들도 10명 정도 눈에 띄었다. 강연회는 3시간가량 이어졌지만 한 명의 이탈자 없이 모두 좌석을 지켰다. ㄱ씨는 강연 중간중간 “정부와 서울시가 여러분에게 기회를 주고 있다. 여러분에게 투자할 지역을 이렇게 친절하게 알려주고 있다”는 말을 했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규제를 강하게 비판할 줄 알았는데 의외의 말이 나온 것이다. 우선 ㄱ씨는 서울시의 2030서울도시기본계획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2030서울도시기본계획은 박원순 서울시장이 2013년부터 준비한 종합개발계획이다. 올 6월 지방선거에서도 박 시장은 균형발전 전략 공약으로 2030서울도시기본계획을 내놓았다. “정부가 투자처를 알려주고 있다” ㄱ씨가 화면을 누르자 서울시 전체 지도가 나타났다. 지도 곳곳에 주황색, 하늘색, 연두색 원으로 2030서울도시기본계획에 나온 3도심, 7광역중심, 12지역중심이 표시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53개 생활권 지구가 들어서자 서울 전역이 동그라미로 꽉 찼다. ㄱ씨는 지도를 가리키며 말했다. “지도를 보세요. 이명박 전 시장 때 서울 온동네에 뉴타운 개발을 해서 집값이 많이 올랐죠. 이 지도도 그때와 비슷하지 않습니까. 박원순 시장이 어디에 투자를 해야 할지 이렇게 친절하게 알려주고 계시는 겁니다. 어차피 부동산값은 한 번 오르면 잘 안 내려가요. 정부가 양도세 규제를 강화해서 거래를 줄이고 있는데 언젠가 부동산 거래는 다시 풀릴 수밖에 없습니다.” 다음 화면에는 ‘서울 개발호재 정리’라는 제목으로 서울시 개발계획에 언급된 지역을 정리한 표가 나왔다. 뒤쪽에 앉은 사람들이 글자가 잘 보이지 않았는지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한두 명이 휴대전화 카메라로 화면을 찍기 시작하자 다른 이들도 덩달아 휴대전화를 꺼냈다. 셔터 소리가 한동안 이어지고 나자 ㄱ씨는 “이따 충분히 찍을 시간 드리겠습니다”라며 강연을 이어갔다. ㄱ씨는 진보·보수 어떤 정권이 들어서고 어떤 성향의 서울시장이 와도 부동산의 우상향은 계속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박 시장의 2030개발계획은 박 시장만의 아이디어가 아니라고 했다. 이명박·오세훈 전 서울시장 시절 수립됐던 개발계획을 박원순 식으로 수정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새로 개발계획에 포함되거나 제외된 지역이 있고, ‘도시재생’이라는 표현이 들어갔을 뿐 2006년 수립된 2020서울도시기본계획과 큰 틀에서는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ㄱ씨는 현 정부가 투기지역을 선정해 강하게 대출규제를 하는 것도 나쁘게 볼 일은 아니라고 말했다. 오히려 정부가 투자자들에게 정보를 주는 것이라고 했다. “서울시뿐만 아니라 정부에서도 여러분에게 좋은 투자처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새로 투기지역으로 지정되는 곳이 있다면 거기가 바로 가장 핫한 지역입니다. 투기지역의 부동산을 사면 값이 많이 오를 겁니다라고 정부가 알려주고 있는 거죠. 투기지역으로 지정이 되면 오히려 그 동네 사람들은 좋아합니다. 투기지역 부동산을 사기 어렵다 싶으시면 투기과열지역, 그것도 어려우면 조정대상지역으로 선정된 곳을 보세요.” 본격적으로 부동산 공부에 빠진 이들 ㄱ씨는 부동산을 사기 위해 대출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했다. “부동산 강의를 수만 번 듣는 것보다 내 마음에 드는 곳을 직접 투자해보면서 공부를 해야 됩니다. 은행이 왜 있나요? 은행은 돈 맡기라고 있는 데가 아니라 돈 빌리라고 있는 곳입니다.” 강연을 마치고 나서 ㄱ씨는 서울시 개발계획표 화면을 다시 띄웠다. 중간에 미처 사진을 찍지 못한 이들은 연신 셔터를 눌렀다. 부동산 강연회에 등장한 서울시 지도를 자기 방에 붙여놓고 사는 사람도 있다. 강남역 인근의 직장에 다니는 이신영씨(가명·33)다. 올해 초만 해도 이씨는 성남시 분당구의 전세아파트에서 강남역으로 출퇴근하던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부동산 가격이 들썩인다는 기사를 몇 번 봤지만 자신과는 다른 세계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7월, 이씨는 우연히 직장 선배가 부동산 투자로 큰 돈을 벌게 된 사실을 알게 됐다. 자기보다 회사를 몇 년 더 다녔을 뿐 비슷한 생활수준으로 산다고 생각했던 선배의 투자를 알게 된 이씨는 충격에 빠졌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이씨는 ‘부동산 공부’를 시작했다. 이씨는 또래들 중에서는 투자에 관심이 많은 편이었다. 주식투자는 물론이고 지난해에는 한 달 월급을 가상화폐에 투자한 일도 있었다. 하지만 돈을 벌자는 생각보다는 투자에 대한 지식을 쌓는다는 정도의 생각만 갖고 있었다. 하지만 부동산에서는 “반드시 돈을 벌겠다”는 게 이씨의 생각이다. 일단 그는 지금의 부동산 광풍을 이해하고 싶었다. 정부의 부동산 규제책이 연이어 발표되는 이유에도 불구하고 집값이 계속 오르고, 가까운 이들 중에도 부동산으로 돈을 번 사람이 나오는 사실 자체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는 유명 인터넷 카페와 네이버 밴드를 돌아다녔다. 구독자가 10만명이 넘는 유명 부동산 유튜버의 영상도 퇴근시간마다 반복해서 시청했다. 서울특별시 행정전도를 사서 방에 붙여놓고 출근할 때 한 번, 퇴근하고 잠 들기 전에 한 번씩 보고 잠들기도 했다. 참가비를 내는 유료 강연회도 다녔다. “정부가 투기꾼을 단속한다고 하고, 집을 여러 채 가진 이들에게 강한 세금을 매긴다고 하는데도 자꾸 집값이 올라간다. 내 일만 하기 바빴을 때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됐다. 그런데 유튜브를 보거나 부동산 강연회를 가면 거기서 ‘왜 집값이 이렇게 오르는지’ 그들의 논리로 설명을 해준다. 물론 부동산 상승론자들의 말을 맹신해서는 안 되겠지만 그들만큼 속시원하게 설명해주는 사람도 또 찾기가 어렵다.” 이씨가 실제로 부동산 계약을 하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유료 부동산 강연회였다. 8월 초, 이씨는 평소 다니던 부동산 카페에서 400명 정원의 유료 세미나 정보를 봤다. 공지가 올라온 지 2시간이 채 되지 않았지만 남은 자리는 고작 5자리였다. 서둘러 이씨는 자신과 부인의 자리를 예약하고 그 주 일요일에 서울 동작구의 강연회장을 찾았다. 15분 정도 먼저 도착했지만 이미 맨 뒤의 2줄을 제외한 모든 자리에 사람들이 꽉 들어차 있었다.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에서 바라본 강남 아파트 단지. / 김기남 기자 “사실 강연 내용 자체는 평범했다. 다만 앞으로 부동산이 오를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400명이 다같이 박수를 치는 모습을 보니 뭔가 설레는 게 있었다. 집에 돌아가자마자 방에 있는 서울전도를 뚫어져라 살펴봤다. 서울 경계 안쪽에는 들어가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그래도 경계선과 멀지 않은 곳에는 내가 살 집이 있었다. 최종적으로 경기도 과천시에 집을 계약했는데, 2주 만에 호가가 몇천만 원이 올랐다. 30년간 갚아야 할 대출금은 좀 골치가 아프지만 ‘미래의 나’가 잘 해줄 거라 믿는다.” 서울 전역의 부동산 인상으로 전월세를 사는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서울을 떠나기도 한다. 여의도에 직장이 있는 전문직 김진호씨(가명·31)는 최근 경기도 용인시 죽전역 인근의 아파트를 구입했다. 그는 지난 4년간의 전세생활을 “남 좋은 일만 했던 4년”이라고 말했다. 4년 전 그는 전세금 1억5000만원에 실평수 12평짜리 빌라에서 살기 시작했다. 2년의 계약기간이 끝날 때쯤에야 달라진 집값이 눈에 들어왔다. 비슷한 크기의 인근 빌라 전세금은 2억원 근처로 올라 있었다. 올라간 전세금을 맞출 상황이 되지 않았던 김씨는 비슷한 전세가의 영등포역 인근 빌라로 이사했다. 계약금 돌려주고 해지하기도 이번엔 전세 계약기간이 끝나기 전인 올해 초부터 미리 주변 시세를 살폈다. 처음 입주했을 때에 비해 주변 아파트 가격이 1억원 이상 올라 있었다. 집주인이 김씨에게 전세금에 대해 특별한 언급은 하지 않았지만 그는 분명히 전세금이 오를 것이라며 불안해했다. 이사를 결심한 김씨 부부는 아예 집을 사기로 했다. 김씨는 “전세자금대출 등으로 이자를 매달 50만원씩 내는 데다가 전세금이 갑자기 오를지도 몰라서 매달 80만원씩 적금을 하고 있었다. 허리띠 졸라매고 살고 저축을 열심히 해도 결국 남 좋은 일만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지금이라도 집을 사면 부동산 상승장의 막차라도 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집값이 하도 오르다 보니 계약이 파기되기도 한다. 올해 7월 김씨는 성남시 분당구 정자역 인근의 20년 된 아파트를 5억원에 계약했다. 계약금 10%를 내고 잔금일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부동산에서 연락이 왔다. 집주인이 도저히 팔 상황이 되지 않으니 계약을 해지하고 싶다는 것이다. 김씨는 이유라도 알려달라고 했지만 집주인의 개인사정이라 알려드릴 수 없다는 말만 들었다. 결국 계약금에 약간의 보상금을 받고 그는 용인시에 있는 다른 아파트를 계약했다. 김씨는 계약 파기 며칠 뒤에 부동산에서 연락이 왔다고 했다. 매매가를 2000만원만 올려주면 다시 계약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김씨가 부동산 쪽에 화를 내며 왜 그러냐고 묻자 부동산은 중간에 다른 계약자가 매매가를 2000만원 올려 계약을 하려다가 잘 안된 모양이라고 설명했다. 김씨는 “지금 와서 보니까 6억원 정도에 거래되고 있더라. 2000만원을 더 주고서라도 그때 계약했어야 했는데 하는 아쉬움도 살짝 든다”고 말했다. 김씨는 자기가 그나마 전문직이라 다행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동안 마이너스 통장으로 전세금의 상당 부분을 충당해 왔고, 현재 아파트를 구입하는 데 2억원 이상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사실 내가 전문직이라 대출이 많이 된 것 같고, 일반 사무직 친구들은 대출을 많이 못 받는 경우도 많더라. 전문직도 서울에서 밀려날 정도면 젊은 사람들이 서울에서 ‘내집 마련’하는 건 이미 불가능한 시점이 아닌가”라고 말했다. 1000만원 이하로 투자가 가능하다? 부동산에 투자할 자금이 상대적으로 적은 사람들에게도 부동산 투자 혹은 투기라는 유혹의 손길은 멈추지 않는다. 이씨가 소개했던 부동산 카페, 밴드 등에 가입해 봤다. 하루에도 수십 건씩 다양한 부동산 광고가 올라온다. 그 중 실투자금 1000만원 이하로 부동산 투자가 가능하다는 한 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대출을 두려워 말라. 과감하게 질러라”고 권하는 한 부동산 강연회의 모습. 광고에 나온 주소를 찾아가봤다. 경기도 용인시에 위치한 지식산업센터 홍보관이었다. 여기서 ㄱ부동산업체가 내년 완공될 용인시 기흥구 지식산업센터 분양을 하고 있었다. 직원의 안내에 따라 상담실로 자리를 옮겼다. 상담실에서 만난 이는 ‘본부장’이라는 직함이 담긴 명함을 건네줬다. 본부장은 “지금 정부가 주택거래를 다각도로 옥죄고 있다. 주택에 투자하려면 대출을 받기도 어려운데, 정부의 규제를 피하면서도 비교적 적은 금액으로 투자할 수 있는 곳이 이곳이다”라고 설명했다. 지식산업센터는 과거 아파트형 공장으로 불린 곳이다. IT, 바이오 등 신기술기업들이 주로 입주한다. 본부장은 “지식산업센터는 문재인 정부의 4차 산업혁명과 맞물려 유망한 곳으로, 지속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는 투자처다”라고 말했다. 어떻게 1000만원 이하 투자금으로 부동산 투자를 할 수 있는 것일까. 본부장의 설명은 이렇다. 분양가가 4억원인 사무실 하나를 매입하려 할 경우 주택과 달리 대출규제가 없다. 그래서 최대 90%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지식산업센터는 정부의 중소기업 세제지원 대상이기 때문에 공급가의 10%에 해당하는 부가가치세를 사후에 환급받을 수 있다. 초기 투자금에 부가가치세 환급금을 제하면 실제 투자액은 1000만원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출이자의 경우에도 지식산업센터 입주기업의 월세로 충당할 수 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게 본부장의 설명이다. 본부장의 말이 사실이라면 투자를 안 하는 게 이상한 곳이다. “조건이 지나치게 좋아서 의심이 든다”고 하자 본부장은 말을 이어갔다. “이미 조성된 지식산업센터를 보면 분양한 이후 못해도 평당 500만원 이상씩 가격이 올랐습니다. 정부 시책과도 딱 맞는 산업단지라 완공하고 2~3개월 이내에 입주가 다 될 걸로 예상됩니다. 일단 사장님이 입주업체로 사업자 등록을 하신 다음에 나중에 임대업을 추가하시면 매매하는 데에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ㄱ부동산 직원들은 자신들이 소위 말하는 ‘떴다방’과도 다르다고 강조했다. 한 직원은 “사실 분양현장에 가보면 조금 무서운 곳에 있다 오신 분들도 많이 보이고, 떴다방은 실체가 없다. 저희 명함에 적힌 주소에 회사가 있으니까 직접 오셔서 저희가 떴다방인지 정직하게 거래하는 곳인지 직접 판단해 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취재 목적으로 부동산 투자 상담을 받았지만 ‘어느 정도 투자할 만하다’는 생각도 조금 들었다. “정부가 규제하는 건 투기꾼이고 저희는 투자자입니다. 투자자와 투기꾼은 뭐가 다를까요. 내가 하면 투자자고 남이 하면 투기꾼입니다”라는 용산 오피스텔 부동산 컨설턴트 ㄱ씨의 말도 떠올랐다. 투자할 생각이 아예 없었던 이조차 마음이 흔들릴 정도로 부동산 투자 혹은 투기의 유혹은 강렬했다. 부동산 중개사들은 정부의 ‘극약처방’이 있어야만 지금의 부동산 광풍을 잠재울 수 있다고 보고 있다. 18년째 부동산 매매업을 해온 양희영 공인중개사(가명)는 “지금 시장엔 유동자금이 넘치기 때문에 강남, 여의도 집값을 잡으려 해도 다른 곳에 자금이 몰려가 집값을 올린다. 돈 있는 사람들이 집을 사기 시작하면 집 없는 사람들도 돈 빌려서 집을 산 게 수십 년간 반복된 모습”이라며 “집값 인상보다 비싼 집을 여러 채 가질 때 발생하는 손해가 더 크다는 인식을 심어줄 정도로 강한 처방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 특집
- 도시재생사업도 투기세력 못 막았다(2018. 07. 10 13:37)
- 2018. 07. 10 13:37 경제
- ㆍ창신ㆍ숭인지구에 기획부동산 활개… 세운상가는 임대료만 대폭 올라 2014년 말부터 마을에 외지인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개중에는 지도를 펼쳐놓고 값이 오를 만한 땅과 집을 설명하는 무리도 있었다. 신기하게도 1900년대 초반에 지어진 ‘허물어진 집’들이 팔리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대여섯 채씩 집을 사들였고, 팔린 집의 소유주가 자주 바뀌었다. 평당 800만원 선에 머물던 집값은 몇 년 새 1500만원을 넘어섰다. 2015년 10월 4억원 초반대에 거래됐던 한 주택은 1년여 만에 6억원 가까운 금액에 팔렸다. 최근 4년간 도시재생사업이 이뤄진 서울 종로구 창신·숭인지구에서 벌어진 일이다. 2014년 국토교통부는 서울 창신ㆍ숭인지구를 도시재생 선도지역으로 선정했다. / 반기웅 기자 창신·숭인지구는 서울형 도시재생사업을 처음으로 시행한 ‘재생1번지’다. 종로구 창신 1~3동·숭인1동 일대 83만130㎡ 규모로, 지난 2014년부터 국비와 시비를 합친 200억원을 투입해 ‘마중물’ 재생사업을 마무리했다. 도시재생은 쇠퇴한 지역을 싹 밀어버리는 ‘철거 후 신축’ 방식을 피하고 도심 원형을 유지하면서 지역을 정비하는 개발방식이다. 막무가내식 개발이 아닌 ‘주민공동체’의 참여와 의사결정을 통한 지역 활성화 사업이 근간이기 때문에 개발예정지역마다 나타나는 기획부동산과 투기세력도 도시재생사업 구역에서만큼은 힘을 쓰지 못할 것으로 기대했다. 창신동, 주택 거래 3배 이상 늘어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고 투기세력은 보란 듯이 나타났다. 도시재생에 참여했던 일부 주민들은 이 같은 투기세력의 등장에 대해 창신·숭인 도시재생사업이 당초 취지와 달리 서울시 등 ‘관’이 주도해 미리 정해둔 ‘계획’에 따라 진행됐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도시재생이 이전 개발계획처럼 정해진 틀에 따라 진행됐기 때문에 기획부동산이 들어올 여지가 생겼다는 것이다. ‘개발 밑그림’을 손에 쥔 투기세력이 극성을 부린 곳은 채석장 절개지 바로 아래 창신동 돌산마을이다. 고지대에 위치한 돌산마을은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마을 전망대와 어린이공원, 소통공작소 등 굵직굵직한 도시재생 기반시설이 들어왔거나 들어올 예정지다. 내부 사정을 잘 아는 마을주민은 “2014년 말부터 외부인들이 집을 한꺼번에 사들여서 많은 원주민들이 집을 팔고 떠났다”며 “다운계약서를 통해 매매가격을 낮췄기 때문에 겉에서 볼 때는 집값이 많이 오르지 않은 것처럼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주민들 사이에서는 도시재생사업 관련 인물들과 여러 인맥으로 얽혀 있는 ‘사모님’들이 집을 사들이고 있다는 소문도 돌았다. 창신·숭인 뉴타운 지구가 해제되고 도시재생사업이 사작되면서 창신동 내 주택 매매거래는 급증하기 시작했다. 국토교통부 부동산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2011년 한 해 20건에 머물렀던 창신동 단독·다가구 주택 매매거래 건수는 도시재생사업지로 확정된 2014년 38건으로 늘어나더니 사업이 본격화된 2015년 67건, 2016년 73건, 2017년 69건 등 사업 이전과 비교해 평균 4배 가까이 증가했다. 창신동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는 “절개지 인근 지역에 몇 년 새 주택 매매가 활발했던 건 사실”이라며 “서울 도심에 있는 집치고는 저평가돼 있기 때문에 더 오를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기획부동산뿐 아니다. 인구 3만명, 4개동을 한 사업지로 묶어놓은 창신·숭인지구 도시재생사업은 우여곡절이 많았다. 첫 번째 재생사업지역이다 보니 서울시와 주민 간 갈등도 잦았다. 도시재생센터라는 민·관 소통창구를 마련했지만 대화는 이뤄지지 않았고 주민들의 참여는 기대를 밑돌았다. 기껏 주민협의체 회의를 열어도 참석한 주민이 5명도 채 되지 않았다. 도시재생센터에서 주민 참여를 독려하고 홍보했지만 주민들은 모이지 않았다. 일부 주민 중심으로 사업이 진행되다보니 대부분 주민들은 사업 내용조차 알지 못했다. 소외감을 느껴 도시재생사업에 적대심을 보이는 주민도 있었다. 창신·숭인지구 도시재생사업 주민협의체 활동을 했던 ㄱ씨는 “대부분 주민들은 사업 내용을 잘 모르기 때문에 거수기 역할을 하는 데 그친다”며 “어쩌다 주민들이 반대의사를 밝히면 서울시는 개선방법을 찾는 게 아니라 주민을 설득해서 원래 계획대로 사업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서울시의 일방 통행, 주민과 갈등 빚어 지난 4년간의 도시재생사업이 단순한 시설 건립·정비사업에 그쳤다는 지적도 나왔다. 창신·숭인지구 도시재생사업에 투입된 예산 200억원 가운데 절반 이상은 부지 매입과 건축, 시설 정비에 쓰였다. 백남준 기념관과 봉제거리박물관 등이 재생사업을 통해 건립된 대표적인 기반시설이다. 마을 명소는 생겼지만 이 시설들이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를 하고 있는지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 오히려 시설 소유권이 서울시에 있기 때문에 세금을 들여 서울시 자산만 늘린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창신·숭인 도시재생사업 코디네이터(자문 기획자)로 활동했던 손경주 창신·숭인 도시재생협동조합 운영실장은 “애초에 도시재생사업이 무엇인지 아는 주민이 없었고, 주민 참여를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면서도 “그동안의 노력 덕분에 지금은 주민들이 도시재생이 재개발과는 다르다는 인식을 하게 됐다는 측면에서는 성과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세운상가는 서울시가 내세우는 대표적인 도시재생사업지 가운데 하나다. / 반기웅 기자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는 창신·숭인지구와 다른 고민을 안고 있는 도시재생사업지다. 지난 2015년 서울시는 상권 쇠락으로 철거위기에 놓였던 세운상가를 살리기 위한 재생사업 ‘다시·세운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광장을 만들고 청계보행로를 상가 상부와 연결하는 ‘보행 재생계획’을 세웠다. 여기에 세운상가 일대 44만㎡를 4차 산업혁명을 이끌 산업거점으로 만들어 ‘산업재생’을 이루겠다는 게 세운상가 재생사업의 핵심이다. 1단계 공사로 청계 대림상가와 세운상가를 연결하는 공중데크가 완성됐다. 보행데크 구간에는 29개의 창업공간이 마련됐다. 흉물처럼 널브러져 있던 시설들이 깨끗하게 정비됐다. 상가를 오가는 사람이 늘었고 점포에 카페와 음식점, 전시관이 새로 들어왔다. 상가는 예전보다 활기를 띠었지만 세운상가 상인들의 매출은 제자리다. 오른 건 임대료였다. 세운상가 3층 바열, 한 점포에서 15년 동안 전자제품 판매를 해온 조상천씨(가명·70)는 지난해 12월부터 임대료 인상을 두고 새로 바뀐 점포 주인과 실랑이를 벌여왔다. 최근 상가 내 점포 3개를 사들인 소유주는 조씨에게 그동안 월 20만원이었던 임대료를 40만원으로 올려줄 것을 요구했다. 조씨에게 한 달 40만원은 큰 부담이었다. 장사가 바닥인데도 그나마 가게 문을 열고 버틸 수 있었던 건 싼 임대료 덕분이었다. 조씨는 “장사가 안되는 걸 뻔히 알면서 이렇게 올리면 어떻게 하느냐”며 사정했지만 조씨에게 돌아온 건 소송문이었다. 지난 4월 소송에서 패소한 조씨는 결국 한 달 뒤 점포를 비워야 했다. 조씨는 “장사가 안되는 건 똑같은데 보행로 생겼다고 임대료를 올리는 게 말이 되느냐”며 “다른 상가 상인들도 나처럼 갑자기 쫓겨날까봐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씨와 같은 처지에 놓은 상인들은 더 있다. 조씨가 있던 점포 바로 옆에서 노래방 기기 도소매를 하고 있는 김영락씨(가명)는 지난 1993년부터 세운상가에서 장사를 해왔다. 당시 김씨가 낸 임대료는 매월 80만원이었지만 호황기였던 만큼 부담이 될 만한 금액이 아니었다. 상가가 쇠락의 길을 걸으면서 김씨네 점포 임대료는 15만원까지 떨어졌다. 다른 곳도 상황은 비슷했다. 점포 주인들도 ‘비워놓느니 싸게 임대를 주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인근 점포들의 임대 시세는 20만원 선에서 형성됐다. 하지만 도시재생사업이 시작되고 정비사업이 이뤄지면서 점포 소유주들이 속속 바뀌기 시작했다. 임대료는 이내 2배 넘게 뛰어올랐다. 김씨는 “50만원 달라는 걸 간신히 깎아서 40만원에 있기로 했다”며 “옆집 사장이 나가는 걸 봤기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올려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임대료 인상 자제 상생협약도 무용지물 임대료 인상이라는 ‘된서리’를 맞은 점포가 한두 개씩 생기자 일부 부동산업자들이 점포 소유주들에게 바람을 넣기 시작했다. “책임지고 더 받아줄테니 임대료를 올려라”고 부추겼다. 세운상가는 임대료 급등을 막기 위해 상가건물의 임대인과 임차인, 서울시장이 함께 임대료 인상을 자제하자는 취지의 ‘상생협약’을 맺었지만 효과는 없었다. 창신·숭인지구와 세운상가 지구는 서울시의 대표적인 도시재생사업으로 꼽히는 사업지다. 두 곳은 각각 주거지 재생과 산업·상업지 재생으로 유형은 다르지만, 개발방식은 다르지 않다. 더 큰 문제는 보완할 부분이 많은 ‘미완’의 서울형 도시재생 모델이 정부가 추진하는 ‘도시재생 뉴딜정책’의 ‘롤모델’이 된다는 데 있다. 도시재생사업은 문재인 정부의 주요 국정과제 중 하나로, 전국의 낙후지역 500곳을 정해 5년간 총 50조원을 투입하는 대형 사업이다. 7월 초에 각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사업 신청을 받고 심사과정을 거쳐 8월 말에 최종 선정지가 결정된다. 이미 물밑에선 지자체별로 치열한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다. 도시재생사업을 실질적으로 이끌 주체는 서울 131곳 도시재생사업에 참여했던 업체와 인력들이다. 이들은 그동안 서울형 도시재생사업에서 쌓은 ‘노하우’를 토대로 경험이 없는 지자체 공무원들을 대신해 사업의 밑그림을 그린다. 전국 각지에 서울형 도시재생 모델이 퍼지는 셈이다. 이렇게 되면 젠트리피케이션(임대료 상승으로 원주민이 내몰리는 현상)과 기획부동산 난립, 주민 참여 배제 등 서울형 도시재생이 가진 문제점이 고스란히 재현될 수 있다. 수주전이 과열되면서 도시재생 뉴딜 시장은 벌써부터 아수라장이다. 지역 활동가가 사회적 기업을 창업해 사업에 뛰어드는 일도 예사다. 익명을 요구한 한 도시재생조합 관계자는 “이 상황에서 도시재생 ‘업자’가 우후죽순 생겨나는 걸 막을 도리가 없다”며 “500곳이 새로 생기기 때문에 용역업체 말고는 다른 인력으로 수요를 감당할 수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사회적 기업 등 외부업체들은 실질적으로 도시재생사업을 추진하는 주체지만 실패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는다. 구본기 구본기생활경제연구소장은 “도시재생 전문인력이 없는 상황에서 지금은 누가 예산을 따가느냐는 다툼만 이어지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더 늦기 전에 부작용을 막을 수 있는 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 ‘투기판’ 전락한 가상통화 난립(2018. 05. 21 16:09)
- 2018. 05. 21 16:09 경제
- ㆍ실명제 이후 시장의 현주소, 널뛰는 가격에 투자 피해자 속출 지난 1월 말 정부가 가상통화 시장에 실명제를 도입한 지 4개월이 지났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불었던 가상통화 ‘묻지마 투자’ 광풍은 가라앉았다. 그러나 가상통화 시장은 ‘투기판’으로 전락했다. 비트코인 이외에 다른 가상통화를 의미하는 알트코인들이 난립하고, 국내 거래소는 수수료를 벌기 위해 경쟁적으로 알트코인들을 상장하고 있다. 상장을 위해 제공된 정보는 실제로 맞는 정보인지 누구도 알 수 없다. 가격은 널뛰고 이 과정에서 피해를 보는 건 투자자들이다. 특히 최근 국내 최대 거래소인 업비트조차 검찰 수사를 받게 되면서 가상통화 시장은 다시 한 번 출렁였다. 실명제 이후 100일이 지난 가상통화 시장의 현주소를 짚어봤다. 서울 중구의 한 가상통화 거래소에 있는 전광판을 바라보는 시민의 모습. / 권도현 기자 거래소들 코인 상장 경쟁 지난 1월 말 가상통화 실명제 시행 이후로 가상통화 거래 열기는 사그라졌다. 10대부터 70대 노인까지 뛰어들 정도로 인기였지만 실명제 이후 기존 회원 10명 중 3명만 실명 전환해 신규거래에 참여했다. 가격도 반토막이 난 상태다. 빗썸 거래소에서 비트코인 가격은 16일 현재 917만원이다. 가상통화 광풍이 불던 지난 1월 6일 장중 최고가인 2598만원에 비교하면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실명제 전환 직후인 지난 2월 초에는 장중 660만원까지 떨어졌고, 3~4월 800만원대를 오가다 최근에서야 1000만원대 근처까지 왔다. 실명제 이후 신규고객이 유입되지 않고 거래량이 확연히 줄자 거래소들이 눈을 돌린 곳은 ‘신규 가상통화 상장’이다. 국내 최대 거래소가 된 업비트는 지난 2월부터 시린토큰, 왁스, 제로엑스 등 새로운 가상통화를 잇달아 상장했다. 빗썸도 3월부터 아이콘이라는 가상통화를 기점으로 상장 경쟁에 뛰어들었다. 이들의 상장 경쟁은 한쪽이 상장을 예고한 가상통화를 다른 한쪽이 먼저 치고들어와 기습 상장하는 행태까지 보였다. 서로 고객을 뺏고 빼앗기지 않겠다는 싸움이 벌어졌다. 당장 16일 저녁에도 빗썸은 신규 가상통화 5종을 무더기로 상장한다고 밝혔다. 급기야 국내 두 번째 거래소인 빗썸에서는 투자자들이 먼저 나서서 상장하려는 신규 가상통화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상장이 연기되는 일까지 발생했다. 빗썸은 지난 15일 오후 ‘팝체인’이라는 가상통화를 세계 최초로 단독 상장한다고 회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투자자들은 ‘팝체인’에 의혹의 눈길을 보냈다. 지난달 30일 만들어진 이 가상통화는 가상통화공개(ICO) 과정을 거치지도 않았고, 가상통화의 90%가량이 특정 2개의 계좌에 집중되어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직접 개발한 코인이 아니라 코드를 그대로 복사해서 붙인 것” “듣도 보도 못한 코인을 상장시켜서 개미들 돈만 가져가려고 하는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 매수하지 않겠다는 서명을 하자는 글까지 올라왔다. 논란이 일자 빗썸 거래소는 16일 오후 “허위사실이 유포되어 시장에 불안감이 팽배해 있는 것을 인지했다”면서 “시장에 불필요한 논란을 야기시킬 수 있어 상장을 연기한다”고 밝혔다. 가상통화 업계 관계자는 “새로운 가상통화가 생기면 누구든지 ‘단타(단기투자)’로 이익을 내고자 하는 투자자들이 거래소를 옮겨가며 거래를 하기 때문에 ‘거래수수료’가 주된 이익인 거래소 입장에서는 신규 가상통화 상장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거래소 투명성 높여야 문제는 이 과정에서 입는 투자자들의 피해이다. 신규 가상통화가 나오면 일시적으로 수십 배까지 급등했다가 폭삭 주저앉는 일이 잦다. 지난달 19일 국내 최대 거래소인 업비트에서 상장된 모나코는 상장과 동시에 가격이 1만2800원에서 8만원까지 폭등했다가 이날 현재 1만900원으로 내려왔다. 다음날 빗썸에 상장됐을 때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 상장한다는 소식을 미리 접한 소수 투자자와 가상통화 거래소가 결과적으로 차익과 수수료 등 대부분의 이익을 가져간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장이 이토록 혼탁해졌으나 정부의 가상통화 관련 정책 ‘시계’는 지난 1월 실명제에서 멈췄다. 추가적인 대책이 나오지 않고 있다. 실명제로 ‘급한 불’은 껐으니 추가 대책은 국제적 동향을 지켜보면서 내놓겠다는 분위기다. 가상통화를 규제하지 말아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20만명’ 답변 요건이 되자 지난 2월 중순 내놓은 답변은 “가상통화 취급업소(거래소)의 불공정행위는 막고 블록체인 기술은 적극 육성한다”는 정도이다. 현행법상 통신판매업인 가상통화 거래소는 간단한 등록절차만 거치면 바로 문을 열 수 있다. 가상통화 상장절차도 명확한 규정이 없고 누가 심의했는지 객관적으로 따져볼 근거도 없어 무분별하게 상장이 이뤄지고 있다. 검찰 수사로 일부 거래소의 경우 대표가 구속까지 되는 상황이다. 거래소들은 중소 거래소가 난립하지 않도록 등록제든 신고제든 운영해달라고 하지만 그들 스스로도 자율규제안을 지키지 않는 실정이다. 거래소들의 자율적 모임인 한국블록체인협회는 가상통화의 신규상장 사실을 미리 공지하도록 하는 자율규제안을 내놨지만 유명무실하다. 홍기훈 홍익대 교수는 “정부가 아직 가상통화의 가치를 명확히 규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금융자산을 규정하고 가상통화 시장에 ‘자본시장법’을 적용하면 결국 현재 있는 거래소들은 다 문 닫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지금 상태에서 최선은 정부가 가상통화 거래소가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지 밝혀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직도 가상통화 거래소가 불투명하고 그들끼리만 운영하는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에 문제점을 정부가 밝히고, 거래소도 스스로 시장의 투명성을 제고하는 길을 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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